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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론] 은산분리 완화 어려우면 복합금융그룹 규제를/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시론] 은산분리 완화 어려우면 복합금융그룹 규제를/강경훈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정부의 금융개혁 작업이 한창이다. 과거에도 정부가 금융규제 완화를 추진했지만 최근 금융개혁의 범위와 강도가 더 세진 듯하다. 갖가지 세부 방안도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온다. 이번에는 반드시 고질적인 병폐 등을 해소해 금융을 탈바꿈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 정도의 금융개혁으로는 ‘관치금융’을 해결할 수 없다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금융 선진국인 영국, 호주가 실시했던 ‘금융 빅뱅’ 이상의 강도 높은 개혁을 해야 하는데 함량 미달의 개선 과제들만 내놓아서는 말짱 도루묵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일부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금융 규제를 강화하는데 “왜 우리나라만 규제 완화를 하느냐”며 금융개혁 필요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와 금융이 이미 높은 수준으로 개방돼 있기 때문에 세계적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순리라는 주장이다. 학계에서조차 한쪽은 강도 높은 금융개혁을, 다른 한쪽은 규제 강화를 외치고 있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체 이렇게까지 꼬여 버린 금융개혁의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까. 금융 부문의 규제가 워낙 과중한 것은 사실이다. 정부의 간섭이 심한 것도 맞다. 하지만 금융개혁은 일직선 위의 점 하나를 찾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자. 기존의 금융규제는 경제 여건, 금융산업 현황, 사회문화 조건 등 다양한 요소가 뒤얽힌 복잡한 산물이다. 같은 규제라도 여건과 맥락에 따라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세계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으면서 우리 현실에 맞게 규제를 고치는 것이 핵심이다. 23년 만에 등장하는 새 은행 ‘인터넷전문은행’을 예로 들어 보자. 최근 카카오뱅크와 케이(K)뱅크가 인터넷은행 예비인가를 획득했다. 이들의 사업계획을 들어 보면 ‘고인 물’ 은행산업에 큰 변화가 올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히 있다. 현행 은행법은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배 금지)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대형 은행과 제대로 맞붙으려면 은산분리 완화가 선행돼야 하는데 언제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될지 미지수다. 낡은 은산분리 규제가 금융 산업 발전을 방해하고 있다는 설득에도 야당은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대 논리는 이렇다. 은산분리를 완화했을 경우 대기업의 ‘사금고화’가 우려된다는 점이다. 이해상충 문제도 제기한다. 은행이 기업에 대한 정보 생산 및 모니터링, 구조조정 역할을 하는데 대기업이 대주주라면 이해관계가 얽히면서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은산분리 원칙을 지키면서도 그 규제의 형태를 달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해상충 문제도 양자 간의 소유 제한 및 사전적 규제 외에 다른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금산결합 형태를 포함한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감독 체계를 구축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미 EU 등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면서 그동안 규제되지 않던 비금융 계열사로부터 초래되는 위험도 포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금융 감독이 미흡한 수준에 그치는 우리나라와는 대비된다. 2013년 동양그룹 사태가 터진 것도 결국은 비금융계열사 및 비규제 금융계열사에 대한 금융 감독의 공백이 주요 원인 아니었던가. 오죽하면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나라에 그룹감독체계의 도입을 강력하게 권고했을까. 규제 완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난데없는 또 다른 규제가 생기는 걸 반가워할 리 없다. 그러나 복합금융그룹에 대한 감독 체계가 효과적으로 구축되는 경우 은산분리 나아가 금산분리 규제 문제에 훨씬 더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다. 지분 보유 또는 의결권 제한과 같은 사전적 규제 위주의 경직성이 해소되면 금융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은산분리 규제, 복합금융그룹 감독은 복잡한 문제이며 여러 측면에서 검토돼야 한다. 그런데 그 출발점은 금융규제의 완화냐, 강화냐의 여부를 따지는 데서 벗어나 규제의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효과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한 가지 형태의 금융규제가 적용돼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 [이경형 칼럼] 野 분화, 다당제 시험대다

    [이경형 칼럼] 野 분화, 다당제 시험대다

    한국 정치사에서 총선을 앞두고 정당들의 이합집산은 흔히 있는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지난 13일 탈당을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대수로운 일은 아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당과 맞짱을 떠야 할 원내 제1 야당의 지도급 인물이 당의 전열을 흩뜨리는 정치적 선택을 한 데 대해 비난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치킨게임 식으로 대결하는 지금의 여의도 정치를 돌아보면, 그의 탈당이 양당제 대결 정치문화에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 본다. 제1, 제2당이 원내 의석을 양분하고 있는 양당제 대의정치가 우리 국가 발전 현실에 과연 적합한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미국도 양당제 정치를 하지만 상·하원 양원제라는 완충 장치가 있고, 우리처럼 당론 중심으로 의원의 의사를 강제하지 않는다. 정기국회에 이어 임시국회가 열렸지만 노동개혁 관련법을 비롯한 시급한 입법 과제들은 계속 방치되고 있다. 내홍 속에 파묻힌 야당은 원내 교섭단체 역할도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국회의 미작동 상태는 여야가 합의를 하지 않으면 입법을 못 하는 국회선진화법 탓이라고만 할 수 없다. 보다 본질적인 원인은 고질화한 양당의 정치 행태 때문이다. 양당 간에 저급한 거래의 흥정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 ‘여의도 정치’는 설상가상으로 진영 논리까지 무장하고 있다. 진영 논리는 완강한 이분법적인 사고로 피아 구분을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는다. 이런 병폐는 여야가 역사 교과서, 폭력시위 문제를 바라보는 판이한 시각에서부터 노동개혁법 등 쟁점 법안을 다루는 양당의 태도에 이르기까지 잘 드러나고 있다. 1987년 현행 헌법 체제의 여의도 국회는 노태우 정권의 과도기를 거쳐 보수개혁 정권의 YS에 이어 DJ, 노무현의 진보정권 10년, 다시 MB, 박근혜 보수정권 10년의 구도로 움직이고 있다. 양당이 지배하는 여의도 정치는 보수~진보~보수 정권 간에 시계추 운동을 하면서 더욱 진영의 성벽을 강고하게 쌓아 갔다. 가령 국가 경영을 두고 여야가 ‘성장 대 분배’의 치열한 노선 논쟁을 하면서 의회주의를 존중했다면, ‘성장 6, 분배 4’와 같은 중간 타협점을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껏 양당 정치는 지독한 이분법적 진영 논리의 덫에 걸려 이런 접점을 찾는 데 실패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더이상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양당제 정치 때문이라고 본다. 중진국에서 선진국 문턱으로 가고 있는 한국 사회 복잡다단한 이해집단의 정치적 의사를 양당제와 같은 이분법적인 틀에 가둬 놓기는 어렵다. 거의 모든 의사 결정이 51대49로 판가름 나는 다원화한 사회에서 다수결의 원칙만을 고집할 수도 없다. 미세한 차이로 승자가 되었다고 독식하다가는 감당할 수 없는 갈등만 키운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다양하게 대변하는 다당제는 의원내각제가 아니더라도 현행 헌법 아래서도 가능하다. 현행 국회의원선거법은 소선거구제 등 양당제를 촉진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기존 정당들의 기득권 보호가 도를 넘고 있다. 이러한 악조건 아래서는 유권자들이 투표를 통해 제3, 제4당으로 정치적 의사를 촘촘하게 반영하는 다당제로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 만약 내년 4월 총선에서 제1, 제2, 제3, 제4당이 ‘4:3:2:1’이나 ‘5:3:1:1’의 비율로 원내 의석을 얻었다고 하자. ‘60%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을 강제하고 있는 지금의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면 내년부터 여의도 정치는 제1당과 제3당이 정책 연대를 하거나 정당 연대의 새로운 타협의 정치로 크게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안철수 의원의 탈당이 의미 있는 야권의 분화, 중도개혁 노선을 표방하는 ‘새정치’의 깃발을 올린다면 양당 구조의 정계를 개편하는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제3의 원내 교섭단체를 이룰 수 있는 정당이 태동한다면 한국 정치의 발전 측면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주필
  • [씨줄날줄] ‘NIMT 현상’/구본영 논설고문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근대 국가의 조직은 관료제의 합리적 권위에 기반을 둔다고 했다. 하지만 관료제도의 장래에 기대와 불안이 엇갈렸던 모양이다. 제대로 된 관료제도가 “영혼이 없는 전문가나 마음이 비어 있는 육감주의자” 앞에서 무릎을 꿇을까 염려했다니 말이다. 현대사회에서 관료제의 순기능 못잖게 역기능도 두드러지고 있다. 세계 각국이 국민보다는 조직 내부만 바라본다거나, 업무량과는 관계없이 기구만 늘려 놓고 보는 관료주의의 병폐를 앓고 있다지 않은가. 베버가 염려했던 대로다. 최근 회자되는 조어인 ‘님트’(NIMT·Not In My Term) 현상도 그런 차원인가. ‘내 임기 동안은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면 이보다 일부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주의를 더 잘 설명할 순 없을 것 같다. 돌이켜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인 이른바 개발연대엔 관료들이 국가 발전의 견인차였다. 경제기획원을 만들어 맨땅에 헤딩하듯 ‘증산·수출·건설’을 부르짖던 그 시절, 관료들은 ‘하면 된다’ 정신(캔두이즘)의 전령 격이었다. 당시에도 공무원 조직에 문제야 없었겠느냐만, 그래도 우수 인력이 많이 모여 한번 해 보자는 사명감도 컸던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저성장 시대인 요즘 관료 조직이 꼭 민간보다 우월한 집단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런데도 혹여 우리 공직사회가 복지부동에 젖어들고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인사혁신처가 그제 ‘직무와 성과 중심의 공무원 보수체계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앞으로 공무원 조직에 성과연봉제를 확대하고, 특히 업무 난이도나 중요도에 따라 우대한다고 한다. 공정한 잣대만 세운다면 일 잘하는 관료를 대우한다는데 반대할 국민은 없을 게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공직사회에서 님트 현상을 없애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즉 상벌 기준을 명확히 해 혹시 잘못됐을 경우 문책이 두려워 아무 일도 않으려는 공직자들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릇 깰까 두려워 서로 설거지를 미루는 가정이 화목할 리도, 번창할 리도 없다. ‘실수하지 말고 중간만 가자’는 무사안일주의가 횡행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지역사회 이기주의, 즉 님비(NIMBY·Not In My Backyard)보다 더 무서운 풍조가 님트 현상일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관료사회보다 우리 정치권이 더 문제라는 생각도 든다. 국가적 차원에서 아무리 유익한 정책일지라도 자신들에게 표를 줄 계층이나 지역민이 싫어하는 일은 않겠다는 선량들을 보면서다. 일찍이 베버는 신념윤리도 책임윤리도 없는 ‘생계형 정치인’의 출현을 극도로 경계했다. 이들을 ‘영혼 없는 관료’보다 더 해로운 존재로 본 셈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동·금융 개혁을 한사코 가로막으며 격돌하다 외환위기를 부른 김영삼 정부 시절의 여야 대치를 요즘 데자뷔인 양 다시 보면서….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꾸자] (1) 은메달 따고도 죄송하다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 체질부터 바꾸자

    [스포츠 패러다임을 바꾸자] (1) 은메달 따고도 죄송하다는 한국… ‘엘리트 스포츠’ 체질부터 바꾸자

    체력은 국력일까. 이 체력이 각종 국제대회 성적을 뜻하는 것이라면 한국은 분명 스포츠 선진국이다. 야구 대표팀은 지난달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초대 챔피언 자리에 올랐고, 축구 대표팀은 이미 13년 전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다. 해방 이후 한국이 하계올림픽에서 딴 메달은 모두 243개로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에 이은 3위다. 수영, 피겨 등 전통적으로 한국이 불모지라고 여겨졌던 종목에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가 등장하면서 한국의 스포츠 경쟁력은 점점 더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언뜻 강해 보이는 이 체력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한국 스포츠계는 현재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올해는 오랫동안 체육계에 곪아 있던 병폐가 한꺼번에 터진 해였다. 동계올림픽 메달밭인 쇼트트랙은 일 년 내내 성추문, 폭행 사건에 휘말려 구설에 올랐고 프로농구 개막 직전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스타 선수들의 승부조작과 불법 도박 혐의가 드러나 팬들을 실망시켰다. 프로야구는 올 시즌에도 연일 최다 관중 기록을 경신하며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자리를 지켰지만 해외 원정 도박 수사망을 피해 가지는 못했다. 지난 6월에는 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역도 금메달리스트인 김병찬씨가 생활고로 숨지면서 복지 사각지대에 몰린 은퇴 선수들의 삶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다. 뒤늦게 스포츠가 국위 선양의 수단만이 아닌 개인의 행복을 위한 복지의 영역임을 인식한 정부는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 통합을 시작으로 기존의 엘리트 체육 중심에서 생활체육 위주로의 시스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인에게 필요한 스포츠는 무엇일까. 한국 스포츠는 앞으로 어떤 체력을 키워야 진정한 스포츠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새해를 앞두고 국내 체육계 인사들이 화두를 던졌다. ●잠재적 실업자 양산하는 엘리트 선수 육성 “시대가 변했는데 엘리트 선수 육성은 여전히 예전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전문가들은 ‘메달 지상주의’라는 오래된 스포츠 패러다임부터 벗어던져야 생활체육 위주의 선진국형 시스템이 자리잡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은퇴 선수 재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장미란재단 김종성(37·전 대통령청년직속위원회 위원) 사무국장은 “어렸을 때부터 각종 대회 입상을 목표로 선수들을 훈련에만 집중시키는 지금의 교육 방식이 모든 운동선수를 잠재적 실업자로 만들고, 결국 선수층을 얇게 해 스포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스포츠 스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은퇴한 체육인은 학교 다닐 때 오로지 올림픽 메달만을 목적으로 운동만 했기 때문에 은퇴 후 지도자로 자리를 잡지 못하면 끝”이라며 “그나마 중·고등학교나 실업팀 코치 같은 비정규직 지도자 자리조차 한정돼 있어 경쟁이 치열한데, 비인기 종목 같은 경우는 실업팀도 몇 개 없어 더 열악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운동을 하려고 할까. 결국 생활체육이 활성화돼 학교 클럽이나 동호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가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는 선진국형 시스템으로 가야 선수 저변도 넓어지고 운동만 한 실업자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드니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정부경(37·정부경유도관장)씨는 “생활체육으로 가야 한다는 큰 방향은 맞지만 전국체전과 소년체전, 각종 전국대회 입상 경력이 선수의 대학 입시 결과를 좌우하고 각 지역 체육 예산과 지도자들의 인사고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 상황에서 공부와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듣기 좋은 말에 그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도 “2009년 학교체육진흥법이 통과된 이후 중·고등학교 운동부 아이들에게 의무적으로 수업일수를 채우도록 했지만 막상 현장에 가 보면 학생들이 운동도 못하고 공부도 못한다는 의견이 많다”며 “학교, 학생, 지역이 걸린 전국체전 직전에는 하루에 훈련만 세 번을 해야 하는 아이들의 현실을 정책이 전혀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K리그는 외면, A매치만… 스포츠 단절의 예 한국 사회의 ‘메달 지상주의’에서 비롯된 선수 육성 방식은 입시 비리, 스포츠 도박 및 승부조작으로 얼룩진 한국 스포츠의 병폐와도 직결된다.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윤동식(43)씨는 “10대 때부터 합숙 생활을 하는 어린 선수들은 부모의 보호 없이 또래끼리 모여 있다 보니 기본적인 윤리 의식을 키우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 “특히 입시가 가까워지면 승부조작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선수들에게 정정당당한 스포츠맨십을 바라는 것도 힘들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시드니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심권호(43·대한레슬링협회 이사)씨도 “운동만 했던 친구들이 사회에 나오면 아무래도 적응이 힘들지 않겠느냐. 후배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운동만 하는 건 정말 아닌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엘리트 체육 위주의 시스템은 생활체육과의 완전한 단절을 야기하기도 했다. 류태호 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특정 종목에서 메달이 나온다는 것은 그 사회의 많은 사람이 해당 종목의 운동을 하는 상태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이 국가대표로 선발된 결과여야 한다. 즉, 해당 종목을 잘하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과의 간극이 없고 서로 소통이 되는 상태를 뜻한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한국은 운동을 잘하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이 단절돼 있다”며 “K리그는 보지 않고 국가대항전인 A매치에만 시선을 집중하는 우리의 모습이 이러한 단절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유도관을 열고 생활체육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정씨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도를 가르치면서 엘리트 유도와 생활체육 유도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유도 동호회 사람들은 제대로 된 유도를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어 목이 말라 있더라. 블로그에 동영상을 올리고 도장에서 직접 사람들에게 코치도 해 주니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체육대학교에서 5년간 선수들을 지도해 봤지만 졸업한 뒤 운동을 관두는 학생들에게 부사관 정도밖에 권할 수 없었던 게 현실”이라며 “생활체육이 활성화돼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엘리트 체육인들이 동호회나 학교 클럽에서 기술을 전수해 준다면 스포츠 수준도 전반적으로 향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는 “연결점은 생활체육에 있다. 엘리트 위주의 체육 시스템을 버리고 풀뿌리(생활체육) 중심 시스템으로 간다면 당장은 메달이 안 나올지 몰라도 (유소년이 성인이 되는) 8년 뒤에는 국제대회 성적이 오히려 지금보다 잘 나올 것”이라고 조언했다. ●생활체육 시설 부족… 정책도 뒷받침돼야 “선진국처럼 보는 스포츠에서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합니다.” 전문가들은 스포츠가 ‘복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영국, 미국, 독일, 일본 등의 선진국처럼 인구 대비 클럽활동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류 교수는 “한국만 스포츠를 학교 체육,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 등으로 나눠서 분류하는데 이 분류체계부터 허물어야 한다”며 “스포츠 선진국에서는 메달리스트뿐만 아니라 국가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는 것만으로도 존경을 받는다. 함께 스포츠를 즐기다가 수준에 따라 자연스럽게 선수가 되는 과정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브스, 데일리 텔레그래프 한국 특파원 앤드루 새먼(48·영국)은 “생활체육, 엘리트 체육 모두 중요한 건 맞지만 하나만 선택하라면 개인의 행복과 건강을 위한 스포츠가 먼저”라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14번째로 부유한 국가다. 엘리트 체육이 아닌 생활체육에 투자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열겠다는 국민 행복 시대로 갈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다만 한국은 영국 등 선진국에 비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과 공간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같다”며 “생활체육으로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세심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도움 주신 분들 (왼쪽부터) ① 김종성 (장미란재단 사무국장, 전 대통령청년직속위원회 위원) ② 정희준(동아대 스포츠과학대학 교수) ③ 류태호(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 ④ 앤드루 새먼(포브스, 데일리 텔레그래프 한국 특파원, 전 타임스 한국 특파원) ⑤ 정부경(시드니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⑥ 윤동식(히로시마아시안게임 유도 금메달리스트) ⑦ 심권호(시드니올림픽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 [기고] 영화 ‘돌연변이’ 유감/이형기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기고] 영화 ‘돌연변이’ 유감/이형기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

    영화 ‘돌연변이’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제약회사의 생동성시험에 참가한 후 약물의 부작용으로 생선 인간이 돼 가는 한 청년이 겪는 사건을 통해 이 사회의 병폐를 풍자적으로 묘사한 감독의 착상이 기발하다. 풍부한 상상력에는 점수를 줄 만하지만, 플롯을 지탱하는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시험과 제약회사를 둘러싼 음모의 디테일은 기본적인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영화에 삽입된 듯하다. 줄거리의 개연성이 떨어지니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감동이 반감된다. 신약을 먹고 잠만 자면 30만원을 준다는 말에 제약회사의 주사제 생동성시험에 참여한 박구(이광수)는 부작용으로 ‘생선 인간’이 된다. 그러나 주사제는 생동성시험을 하지 않는다. 생동성시험에서는 약물의 흡수를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데, 주사제는 흡수 과정 없이 바로 체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기본적인 사실이 틀렸다. 사실관계의 오류는 또 있다. 영화 속 뉴스 캐스터는 “신약의 부작용을 실험하는 회사의 한 생동성시험에 참가한 한 젊은이”로 생선 인간을 묘사한다. 하지만 신약의 부작용 실험과 생동성시험은 번지수가 전혀 다르다. 생동성시험은 부작용을 알 수 없는 신약이 아니라 특허가 만료된 신약의 제네릭 의약품을 허가받으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의 특허가 만료되면 신약 성분과 같은 제네릭 의약품을 만들 수 있는데, 생동성시험을 통과해 동등성을 인정받아야 판매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생동성시험을 마치 제약회사의 후미진 실험실에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처럼 묘사한 부분이다. 영화에 보면 실험기구를 세척하거나 오물을 버리는 개수대 옆에 생선 인간이 누워 있는 침상이 나온다.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생동성시험은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 지정받은 병원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다. 영화 속 제약회사처럼 비위생적인 실험실은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이처럼 영화의 개연성이 떨어지게 된 데에는 흔히 ‘생동성 알바’, 즉 마치 제약회사가 생동성시험에 참가하는 자원자를 돈으로 매수하는 것처럼 여기는 왜곡된 인식이 한몫했다. 영화적 상상과 달리 생동성시험 참가자에 대한 금전 보상은 결코 장기 매매와 같은 종류일 수 없다. 생동성시험 참가자들이 경험할 수 있는 불편함과 시간 사용에 대한 보상일 뿐이다. 실제로 식약처는 생동성시험 참가자의 예비 명단을 사전에 일일이 검토해 아르바이트처럼 참가하는 사람들을 추려 낸다. 그뿐만 아니라 생동성시험이 시행되는 병원 현장에 나와 매 단계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확인해 윤리적이고 안전한 시험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 제네릭 의약품은 신약보다 저렴하다. 양질의 제네릭 의약품이 뒷받침돼야 건강보험 재정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생동성시험은 제네릭 의약품을 허가받으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영화 ‘돌연변이’를 재미있게 보는 것은 괜찮지만, 그렇다고 생동성시험에 마치 무슨 음모라도 있는 것처럼 여기면 곤란하다. 목욕물 버린다면서 아이를 함께 버릴 수는 없으니까.
  • 비열한 회사 이상한 회사 참 나쁜 회사

    비열한 회사 이상한 회사 참 나쁜 회사

    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데이비드 와일 지음/송연수 옮김/황소자리/528쪽/2만 8000원#1. 오하이오의 한 케이블 설치기사는 미국 제일의 케이블 설치회사인 캐스콤 로고가 붙은 작업복 차림으로 캐스콤이 요구하는 새벽 시간에 타임워너사의 케이블 수리 중 사망했다. 하지만 캐스콤도, 타임워너도 유감만 표시했을 뿐 법적 책임에서는 발을 뺐다. 작업 중 사망한 노동자는 작업 단위로 돈을 받는 자영업자 신분이었기 때문이다.#2. 빈센트 스미스라는 29세 남성은 리용 앤 산스 허쉬 초콜릿 생산공장에서 일하다 섭씨 50도의 초콜릿 탱크 속으로 떨어졌다. 10여분이 지난 뒤에야 소방관들이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스미스는 사망한 뒤였다. 감사 결과 작업상 여러 건의 보건안전 규정 위반이 드러났지만 허쉬는 이 사건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자신들과 무관한 하청업체 소관이었으니까. 미국에서 다반사인 노동 현장의 사고와 대응을 보여 주는 일련의 사례들이다. 미 노동부 산하 근로기준분과 첫 종신행정관인 경제학자가 쓴 ‘균열 일터, 당신을 위한 회사는 없다’에서는 이것 말고도 노동시장의 위험한 변화를 고발한 안타까운 실상이 세세하게 풀어진다. 그리고 그 위험한 변화를 저자는 한마디로 ‘균열 일터’로 집약해 표현한다.‘균열 일터’란 쉽게 말하자면 일터가 쪼개지고 있다는 뜻이다. 더 자세하게 풀이하자면 하청, 아웃소싱, 위탁경영, 프랜차이즈, 간접고용, 비정규직, 도급제도 등 기업들이 기능과 인력을 외주화하는 경향을 말한다. 혁신의 논리를 앞세워 ‘비핵심 역량’을 털어내는 기업들의 생존 전략을 비꼬는 말이기도 하다. 과거 IBM은 공장 노동자들까지 직접 고용했지만 현재의 애플은 전 세계 75만명 직원 중 단 6만 3000명만 직접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이미 전 세계의 노동시장은 그 ‘균열 일터’의 늪 속에 깊숙이 빠져 있다. 책은 바로 그 같은 기업들의 전략으로 인해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노동환경과 병폐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하던 경비며 청소, 제조, 관리 등의 기능을 외부 시장으로 분리하면서 좋은 일자리는 줄고 고용 관계는 불안정해졌으며 일터는 더 팍팍해졌다고 지적한다. 기업들의 ‘고용 털어내기’를 현대사회의 일자리와 일터의 모습을 악화시키는 핵심 원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이 같은 ‘일터의 균열’은 당연히 비정규직 양산이며 노동조건 악화는 물론 실질임금 정체, 중산층 붕괴, 부의 불평등 문제를 낳는다. 실제로 저자는 “현장 조사 결과 사내에 있던 대다수 직종의 실질임금이 사실상 정체됐고 대기업이 전 직원과 함께 수익을 나누던 곳에 균열이 생기면서 경제활동으로 창출된 가치를 배분하는 방식에도 불평등이 점증하고 있다”고 썼다.그렇지만 자본과 노동, 그 어느 쪽에도 일방적인 책임을 돌리지는 않는다. 대신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 법, 제도 같은 사회적 방책들을 꼼꼼하게 제시했다. 미국 현상과 사례들에 치중됐지만 지금 노동문제의 핵심을 새로운 관점에서 파악한 점이 도드라진다. 공공정책이 기업의 일거양득 행태를 방치해 왔다는 지적을 비롯해 현행 노동관계법과 근로규정이 달라진 고용 관계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변화된 시대에 맞춰 새롭게 적용되는 법적 판단이며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의 역할, 기업이 혁신적 기업가치를 구현하는 동시에 노동자들에 대해서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규제하는 시민사회의 행동 방향은 이 땅의 노동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강수돌 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추천의 말을 통해 이렇게 쓰고 있다. “미국 사례들을 다루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이러한 조직적 변화들을 쉽사리 볼 수 있다. 우리 노동자들도 경제 및 기업의 조직화 방식, 미래지향적 삶의 방식에 대해 성찰적 토론을 왕성히 해 나가야 할 때다.”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폴크스바겐 사기극...독일 신뢰 추락, 클린디젤은 몰락 예고

    폴크스바겐 사기극...독일 신뢰 추락, 클린디젤은 몰락 예고

    독일 폴크스바겐 그룹은 22일(현지시간) 전 세계적으로 약 1100만 대의 자사 브랜드 디젤 차량이 '눈속임' 차단장치 소프트웨어를 통해 배출가스 테스트를 조작적으로 통과했을 가능성을 인정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2009년부터 6년간 미국에서 판매한 48만2000대의 디젤차량에 소프트웨어를 장착해 배출가스 검사를 받을 때는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고, 실제 도로에서 주행할 때는 꺼지도록 하는 방식으로 미국 환경보호청의 배출가스 검사를 통과한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받고 있다. 폴크스바겐은 내부 조사 결과, 애초 알려진 규모보다 훨씬 많은 차량에 문제의 소프트웨어가 장착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폴크스바겐은 "EA 189 형 차량에서만 정지 테스트와 도로 주행 간의 배출가스 용량이 차이 난다"면서 이 타입의 차량이 1100만 대라는 점을 확인했다. 이날 폴크스바겐 그룹은 이번 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 결과에 맞추어 소요될 비용을 고려해 3분기 기준으로 65억 유로(약 8조6108억원)를 유보해 두고 있다고도 밝혔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이에 따라 마르틴 빈터코른 최고경영자(CEO)는 오는 25일 이사회를 거쳐 물러나고, 후임에 마티아스 뮐러 포르셰 스포츠카 사업부문 대표가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 여파로 이날 프랑크푸르트 증시에서 폴크스바겐 주식은 장중 19% 가량 속락하면서 이틀째 크게 하락했으며, 일각에선 폴크스바겐 자체의 명운을 가를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왜 배출가스 조작했나 세계 1, 2위를 다투는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 폴크스바겐이 왜 소비자의 신뢰를 저버리고 배출가스 조작에 나섰을까. 전문가들은 폴크스바겐이 미국의 배출가스 기준에 맞춰 추가적인 장비를 장착하는 비용을 줄이려고 하드웨어보다 더 싼 소프트웨어 장착을 선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해당 소프트웨어 장착은 차량의 연비 개선에도 도움을 줬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배출가스 저감장치가 꺼지면 연비도 개선되기 때문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클린디젤'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라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는 점이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유럽에서 배출가스 검사를 할 때 관계당국이 차량제조업체들의 부정행위를 눈감아 주는 것은 고질적인 병폐이자 업계의 관행이었다고 지적했다. 이탈리아 소비자단체인 알트로콘수모는 최근 조사에서 자동차제조업체들이 배출가스 차량테스트를 할 때 합법적으로 눈속임하는 9가지 방법을 찾아냈다. 예를 들면 엔진에 부하를 줄이기 위한 발전기 끄기, 주행시 저항을 줄이기 위한 타이어 과잉팽창, 공기저항성을 줄이기 위한 패널 간격 줄이기 등은 모두 허용되는 조치들이다. 이런 조치들은 차량의 공식적인 배출가스를 줄일 뿐 아니라 비현실적인 연비측정을 가능하게 한다.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이런 허점을 이용하는 것이 소비자들로부터 비판받을 수 있겠지만, 자동차 제조업체 입장에서는 이를 활용하지 않는다면 경쟁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당초 유럽 관계당국은 작년까지 더욱 엄격하게 배출가스 차량테스트 체계와 기준을 개선하려 했지만, 2017년까지 연기했다. -독일 정부와 EU 집행위 이미 알고 있었다? 또 독일과 유럽연합 정부는 이번 사건에 대해 모른 척하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사실은 이미 '속임수 소프트웨어'가 쓰이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디벨트는 지난 7월 28일 독일 녹색당이 배출가스 차단 장치의 문제점 등에 대해 독일 교통부에 질의해 받은 답변서에 이같은 사실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녹색당은 휘발유와 경유 차량을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차량에 장착된 배출가스 차단장치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규제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이에 교통부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견해는 이 차단장치를 금지할 방안이 아직은 실무적으로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연방정부는 이러한 견해를 공유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통부는 또 "연방정부는 유럽연합 규정을 개선하기 위한 작업, 특히 자동차의 '실제' 배출가스량을 더욱 줄이기 위해 진행하고 있는 규정 개선 작업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디벨트는 이에 대해 독일 교통부가 이미 폭스바겐이 미국에서 사용하다 적발된 차단장치 기술의 존재를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무너지는 '클린 디젤'...업계 판도도 변하나 폴크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파문으로 '친환경 디젤 엔진'의 신화도 붕괴되고 있다. 디젤 엔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폴크스바겐 그룹의 명운마저 위태로울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이 나올 정도다. TDI 엔진을 대표적인 ‘친환경 디젤(Clean Disel)’로 자랑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 얼마나 커질 지 예상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일반적으로 배기가스 억제 시스템이 가동되면 엔진 수명이나 연비·출력 등 차량의 성능이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폴크스바겐은 ‘연비와 출력이 높으면서 배기가스도 적은 엔진’을 만들기 위해 이처럼 눈속임을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배기가스 조작 파문의 당사자인 폴크스바겐은 2009년 미국 자동차 시장 공략을 위해 '클린 디젤'이란 생소한 용어를 빼들었다. 가솔린 엔진 천국인 미국에 안착하기 위해선 '디젤 엔진은 환경을 오염시킨다'는 미국 소비자들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연비가 경쟁 가솔린 차량의 1.5배에 이르면서 유해물질 배출량이 비슷한 클린 디젤은 기술적 찬사를 이끌어내며 미국시장의 물꼬를 트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한국 등 다른 국가에서 폭스바겐을 필두로 한 클린 디젤 마케팅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하지만 2010년 이후 디젤의 본고장인 유럽을 중심으로 디젤의 친환경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었던 데다 폴크스바겐 사태로 그동안 디젤 엔진이 보여주던 놀라운 수치가 '사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유럽산 디젤 엔진이 각국의 엄격한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지 못할 경우 그 빈자리는 일본·미국 자동차업체가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관심이 연비를 개선한 최신 가솔린 엔진이나 하이브리드, 플러그인하이브리드, 전기차 등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인다. 먼저 도요타 등 하이브리드 기술에서 가장 앞선 일본 업체의 약진이 예상된다. 현대·기아차 역시 반사이익을 얻을 전망이다. 디젤 기술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솔린 엔진 기술이 강한 현대·기아차가 디젤 차량의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방승언 기자
  • [사설] 거품 없는 작은 결혼식 널리 확산돼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남녀가 평생의 반려자가 되겠노라고 약속하는 일생일대의 신성한 의례가 결혼이다. 이런 뜻깊은 의식이 우리에게는 허례로 찌든 사회 병폐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오죽했으면 ‘결혼으로 깨가 쏟아지는 게 아니라 빚이 쏟아진다’는 우스개가 나왔겠는가. 결혼식이 물질만능주의와 자기 과시의 마당으로 변질된 세상에 대해서는 너나없이 개탄한다. 소박하고 작은 결혼식이 의미 있다는 데에는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과 가족의 결혼식이 닥치면 검소한 예식을 외면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하객 한 사람에 얼마짜리 호텔 뷔페를 하느냐에 자존심을 거는 호화 결혼식이 여전히 많다. 거품 혼례의 뿌리 깊은 관행을 벗어나기가 그만큼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허례허식을 벗고 작은 결혼식을 실천하려는 이들이 는다는 소식은 다행스럽다. 서울신문이 어제까지 시리즈로 선보인 기획 보도에 따르면 값비싼 스튜디오 촬영이나 주례를 대동한 전형적인 형식에서 벗어나 일상 공간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치르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나 해변, 숲길 등 실속파 예비 부부들이 선택하는 결혼식 공간도 다양하다. 서울시 주관으로 서울시민청에 마련되는 ‘작은 결혼식’은 내년 6월까지 예약 신청이 마감됐다고 한다. 실속 있는 결혼식에 얼마나 갈급했는지 짐작된다. 스튜디오 촬영, 웨딩 드레스, 메이크업 등 이른바 ‘스드메’에 대개는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원을 쏟아붓는다. 이 거품 관행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전에 없이 두드러진다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젊은이들의 이런 분위기가 빠르게 공유돼 결혼문화 개선 시도에 유행처럼 가속이 붙길 기대한다. 올 초 한 결혼정보업체의 조사 결과를 보면 기혼 남녀 1000명 중 87.4%가 간소화 결혼식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어려운 이유를 ‘고착된 결혼 절차 때문’이라고 꼽았다. 허례허식에 기댄 관습의 고리가 잘못 끼워져도 단단히 잘못 끼워져 있다는 얘기다. 혼사 비용이 겁나서 결혼 자체를 엄두 내지 못한다는 청년들도 부지기수라니 안타까운 일 아닌가. 형식에 매달리는 대신 개성 있는 결혼식으로 축하와 박수를 받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해답이다. 누구나 하면 되고, 내 가족이 먼저 할 수 있는 일이다.
  • [글로벌 시대] 신조어에 반영된 중국 청년 세대의 애환/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신조어에 반영된 중국 청년 세대의 애환/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중국의 청년 세대들이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 심각한 취업난과 경제적 빈곤으로 미래에 대한 꿈까지 포기하곤 한다. 마치 우리의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포기), 88만원 세대를 연상케 한다. 올해 대학 졸업자가 749만명. 지난해보다 22만명 늘어났다. 1999년 85만명에 비하면 무려 9배 늘어난 셈이다. 취업이 어렵고, 대졸자 임금도 낮은 수준이다. 올해 대졸자가 희망하는 월급 수준이 2500위안(약 50만원)까지 내려왔다니, 최근 5년 내 최저다. 베이징의 사찰 와불사(臥佛寺)에는 취업을 바라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기도를 올린다. 사찰 이름 와불(臥佛)의 중국어 발음 ‘워포’가 영어의 채용(offer)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도 취업이 어렵다. 한 베이징대 출신이 고향에 내려가 정육점을 연 것이 언론에 크게 보도돼 사회적 논쟁을 일으켰고, 그의 이름을 따 루부쉬안(陸步軒) 현상이 생겨났다. 대학이 무분별하게 늘어난 것도 문제가 있다. ‘예지(野鷄)대학’이라는 것이 있다. 2005년 발표된 이런 이름의 우언집에 꿩(野鷄)마저 대학에 가게 됐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됐다. 대학 설립은 합법이지만 학위 기간과 졸업 조건이 완화된 능력 미달의 대학을 말하는데, 어떤 방식으로든 학위를 받겠다는 학력 중시의 사회적 병폐가 반영된 것이다. 현재도 유학 붐을 타고 미국에서만 855개의 예지대학이 운영되고, 중국 대도시에 학위만을 양산하는 꿩대학들이 무수히 존재하는 현실이다. 취업이 어렵다 보니 취업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데, 이를 만주예(慢就業)라고 부른다. 우리의 졸업 유예, 취업 포기와 비슷하다. 경제적으로 빈곤한 중국 젊은이들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신들의 처지를 표현하는 글자로 벌거벗을 라(裸·뤄)를 이용해 자신들의 인생을 한탄한다. 뤄비(畢)는 ‘취업이 안 된 채 하는 졸업’을 의미하고, 뤄훈(婚)은 ‘집이나 돈 없이 하는 결혼’을 뜻한다. 심지어는 결혼을 망설이고 두려워하는 쿵훈주(恐婚族)까지 생겨났다. ‘뤄’(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하우스 푸어, 워킹 푸어, 에듀 푸어의 푸어(poor)와 비슷한 개념일 것이다. 중국 대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은 우리와 마찬가지로 공무원이다. 평생 고용이 보장되는 공무원을 예전엔 톄판완(鐵飯碗·철밥통)이라 했지만, 지금은 진판완(飯碗·금밥통)으로 부를 정도다. 특히 중국인은 관(官) 본위 사상 때문에 공무원이 되기 위해 엄청난 경쟁이 벌어진다. 다른 부류들은 촹커(創客·혁신창업가) 열기에 몸을 싣는다. 수많은 차오건(草根·초근목피로 생활했던 저소득층)들이 대박을 노린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창업이지만 이 역시 ‘가진 것 없이 창업하는’ 뤄촹(創)이다. 청년 창업 세계 1위라고 주장하는 중국 정부의 발표가 공허하게 들린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광풍처럼 불었던 벤처 신드롬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부류는 아예 부모를 갉아먹는 컨라오주(?老族)가 되기도 한다. 독림심 약하고 의타심이 강한 주링허우(90後·90년대생)의 특징이다. 니터주(尼特族·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라고도 불리는 소위 캥거루족이다. 중국은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대학 졸업자에게 정부 당국이 직업을 정해 주는 ‘직업분배제도’를 시행했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학점, 전공, 학과 교수의 추천에 따라 직장을 100% 분배 배치했고, 졸업생은 원하지 않는 통보 결과를 받아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요즘처럼 취업이 힘든 마당에 차라리 ‘아, 옛날이여’를 그리워하는 자조의 소리도 들린다. 참 힘든 세상이다.
  • 탈선 청춘들 … 날선 조국비하

    탈선 청춘들 … 날선 조국비하

    청춘들의 조난신호(SOS)일까, 극단적 사고의 방종일까, 아니면 ‘뭘 해도 안 된다’는 자기 비하일까. ‘헬조선’, ‘망한민국’, ‘지옥불반도’ 등 한국과 한민족을 혐오·비하하는 신조어가 2030세대에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마다 꼬리표처럼 붙기 시작한 ‘헬조선’은 ‘지옥(Hell) 같은 한국’이라는 의미다. 비슷한 의미로 ‘망한민국’(이미 망한 대한민국), ‘개한민국’(부정적 의미의 ‘개’와 ‘대한민국’의 합성어), ‘지옥불반도·불지옥반도’(지옥불 같은 한반도) 등의 표현도 쓰이고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해 부르던 ‘조센징’도 부활했다. 서울신문이 29일 트위터 분석 사이트인 ‘톱시’(http://topsy.com)로 조사한 결과 지난 한 달 동안 ‘헬조선’이 등장한 트윗은 4700여건에 달했다. ‘망한민국’은 2533건, ‘지옥불반도’는 1681건, ‘개한민국’은 1288건이 노출됐다. ‘헬조선’이라는 사이트도 최근 개설됐다. 이 사이트에는 청년 세대가 처한 각박한 현실이 주로 언급돼 있다. 과중한 근로시간, 수능 일변도의 주입교육, 열악한 삶의 질 등 게시판마다 우울한 자기 처지와 국가와 사회를 향한 분노, 적개심을 드러낸 글이 적지 않다. 페이스북에 개설된 ‘망해 가는 대한민국’이라는 페이지는 팔로어가 2만 4000명이 넘는다. 이곳 역시 공공연히 한국을 부정하는 글들로 넘친다. 이렇게 극단적인 비하 표현들은 온라인뿐 아니라 일상 용어에도 자주 등장한다. 대기업 3년차 직장인 윤모(30)씨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 표현들이 자주 오르내린다고 말한다. 윤씨는 “경직되고 옴짝달싹할 수 없는 직장 문화 등을 성토하다 보면 속이 터질 것 같다”며 “우리 또래끼리는 이 나라가 참 싫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전했다. 그의 목표는 자유로운 사내 문화를 가진 미국 현지 기업 취직이다. 윤씨는 여름휴가를 핑계로 간 실리콘밸리에서 현지 기업 취업 면접을 보기도 했다. ‘헬조선’과 ‘망한민국’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구조에 대한 적대감은 “한국인은 뭘 해도 안 된다”는 식의 국민성 비하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재난과 취업난 등 사회적 병폐와 불안, 피로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회사원 김모(29)씨는 “취업준비생 시절부터 30회 이상 낙방하며 깊은 좌절감을 맛봤다. 세월호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서 절감한 정부의 무능을 보면 차라리 외국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탈조선’도 떠오르는 신조어다. ‘지옥 같은 한국을 떠나 새로운 이상향으로 가고 싶다’는 정서다. 전통적인 이민 선택지인 미국·캐나다뿐 아니라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복지국가 이민에 도전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있다. 2013년 미국에 어학연수를 간 조모(27·여)씨와 2011년 영국에 유학 간 정모(32)씨 모두 현지에 눌러앉았다.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는 ‘지잡대’(지방대를 낮춰 부르는 말) 출신 서러움에 인턴 자리도 구하기 힘들었다”며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옳다’ ‘그르다’는 식의 규범적 접근을 하기보다는 갈수록 계층·세대별 불평등이 심해지는 현실에서 젊은 세대들이 보내는 일종의 조난신호라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젊은이들의 국가 비하적 표현 확산이 기득권을 쥔 기성세대에 대한 비난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헬조선이 가리키는 대상은 국가 전반이 아니라 지금의 각박한 현실을 만든 기성세대”라고 밝혔다. ‘헬조선’ 현상이 사회를 변혁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 대신 혐오·비하에 머무는 현 2030세대의 한계를 보여 준다는 지적도 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동적인 환경에서 자란 현재의 2030세대들은 이전의 386세대만큼 사회변혁의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지 못하다”며 “젊은 세대들이 좀 더 희망을 갖고 우리 사회에서 미래 비전을 발굴하는 노력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온라인상의 언어 표현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사회구조 속의 좌절감과 울분이 사적 폭력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씨줄날줄] 출구 안 보이는 그리스 사태/구본영 논설고문

    중국, 이집트, 이탈리아와 같은 관광대국의 공통점은 뭘까. 선조들이 남긴 문화 유산의 혜택을 후손들이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백성들의 고혈을 짜낸 산물인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가 후대를 먹여 살리고 있다니 기막힌 역설이다. 그런 점에서 서구 문명의 요람이었던 그리스도 마찬가지다. 국가 부도 상태에 빠진 그리스의 운명이 예측을 불허한다. 급진좌파 시리자 정권이 채권단을 상대로 곡예 외교를 펼치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는 채권단 개혁안을 국민투표에 부쳐 부결시겼다. 하지만 그의 기대대로 총부채 3230억 유로 중 30%를 삭감하는 헤어컷(채무 탕감)이 이뤄질지는 극히 불투명하다. 미국이 일부 탕감을 중재하려는 기미가 있긴 하다. 그리스가 유로존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포석이다. 그러나 최대 채권국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정부 부채를 직접 깎아 주는 건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요즘 그리스 국민들의 생활고는 말이 아니다. 수입에 의존하는 일부 기초 의약품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현금 가치가 떨어지면서 환금성 높은, 샤넬과 같은 외제 명품 가방을 구매하는 기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긴 터널의 끝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3차 구제금융 대가로 채권단에 ‘향후 2년간 재정흑자 120억 유로(약 15조원) 추가 확보안’ 등 경제 개혁안을 제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채권단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건 논외로 치자. 목표 달성 전망이 불확실한 게 더 큰 문제다. 달콤한 복지에 맛들인 국민들이 지출 삭감을 반기지 않는 데다 외화를 벌어들일 산업 인프라도 부실한 탓이다. 그리스는 관광업과 해운업 등 광의의 서비스업이 주력 산업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보몰의 병폐’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경제가 성숙할수록 산업 구조가 서비스업 위주로 옮겨 가게 되지만,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제조업보다 낮아 파생되는 후유증을 겪는다는 얘기다. 더욱이 그리스 경제는 고용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이 아예 공동화돼 디폴트 수렁에서 출구를 찾기도 어려운 형국이다. 사실 그리스가 그간 외채의 일부라도 미래 먹거리 산업에 투자했더라면 오늘의 곤경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사회당의 테오도로스 팡갈로스 전 부총리는 아테네의 한 광장에서 “2000년대 들어 끌어들인 외채는 다 어디 갔느냐”는 청년들의 물음에 “우리가 함께 먹어 치우지 않았나”라고 답했단다.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 정치를 편 그리스 정치권이 국가부도 사태를 빚은 주범이라면 여기에 중독된 국민이 공범이라는 탄식처럼 들린다. 하긴 남 말 할 때가 아닌 듯싶다. 공공·노동·교육·금융 등 미래를 위한 구조개혁이 정치권 등 각 부문에서 저항에 부딪혀 표류하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구본영 논설고문 kby7@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5부) 업종별 기업&기업인 대웅제약] 건강·장수의 神 ‘곰’… 우루사·베아제 히트 업계 4위 ‘우뚝’

    [재계 인맥 대해부 (5부) 업종별 기업&기업인 대웅제약] 건강·장수의 神 ‘곰’… 우루사·베아제 히트 업계 4위 ‘우뚝’

    대웅제약의 모체는 부산 경남여고 앞 선화약국이다. 경남 합천이 고향인 설립자 윤영환(81) 명예회장은 성균관대 약대 졸업 후 제2의 고향이기도 한 부산에서 개업했다. ‘약 잘 짓는 약국’이라는 소문에 약국은 문전성시를 이뤘고 그만큼 돈이 모였다. 당시 윤 명예회장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했다. 1966년 평소 알고 지내던 박문수 사장이 자신의 제약회사인 대한비타민사의 인수를 제안하자 그는 주저 없이 받아들였다. 인수가는 1억 2000만원. 우선 현금 6000만원에 공장과 기계, 원료 등을 건네받고 나머지는 1년 내 갚는 조건이었다. 윤 회장은 원료 입고에서부터 생산, 영업 방식까지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회사 내 고질적인 병폐와 부실 기업의 흔적 등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직원들과 밤을 새워 일하기를 밥 먹듯 한 결과 1966년 인수 당시 350만원에 불과했던 회사 월매출은 5년 후 10배 이상인 4000만원까지 치솟았다. 34위에 머물던 업계 순위도 1970년대 들어 12위까지 올랐다. 해마다 60%가 넘는 급성장이었다. 운도 따랐다. 1969년 일어난 사이클라메이트 발암물질 파동이다. 당시 제약사들이 드링크에 설탕 대신 인공 감미료인 사이클라메이트를 넣었는데 이 물질이 발암물질로 판명되면서 사회에 엄청난 파문이 일었다. 대한비타민의 ‘아스파라S 드링크’에는 유일하게 발암물질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소비자에게 알려지면서 해당 드링크제는 불티나게 팔렸다. 윤 회장은 서울행을 결심했다. 부산은 유능한 인재와 양질의 원자재, 경영정보 등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1972년 9월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4300평 땅에 성남 공장을 완공했다. 현대화된 새 공장에서 사원들은 신제품 개발과 원료 합성, 생산기술 개발에 매달렸다. 1973년에는 기업 공개와 함께 우리사주조합도 발족시켰다. 회사의 주인은 사원인 만큼 이익도 응당 나눠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이듬해인 1974년에는 제약연구소를 설립해 독자적인 원료 합성개발에도 나섰다. 이런 기반에서 탄생한 간장약이 ‘우루사’다. 이미 경쟁사가 간장약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던 터라 뭔가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고 이내 웅담을 꺼내 들었다. 귀한 한약재인 웅담의 약효 성분인 우루소데속시콜린산(UDCA)이 들어갔다는 광고에 대중은 반응했다. 발매 당시 1억원이던 판매 실적은 1985년 127억원, 1990년대에 들어서는 200억원에 이르렀다. 결국 우루사는 간장약 시장의 50%를 접수하며 사실상 시장을 평정했다. 우루사 덕분에 대웅제약은 1980년대 중반 제약업계 10위권에 진입했다. 이후 대웅제약은 성장을 이어가 지난해 매출 기준으로 제약업계 4위에 올라섰다. 우루사는 회사 이름도 바꿨다. 창립 33주년을 맞은 1978년 2월 윤 회장은 대한비타민사라는 이름 대신 대웅제약이라는 이름을 내걸기로 했다. 대한비타민의 ‘대’자와 웅담의 ‘웅’ 자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곰은 라틴어로 북두칠성을 뜻하며 장수의 신, 치료의 신, 건강수호의 신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후 대웅제약은 선진 기술을 배우고자 부지런히 다녔다. 미국의 유명 제약사인 일라이 릴리사, 알피셰러사 등과 손을 잡았다. 1988년에는 국내 최초로 국산 배합신약 종합 소화제인 베아제정을 개발했다. 베아제정은 몇 해 만에 200억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는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이 됐다. 대웅제약은 신약 개발에도 몰두했다. 첫 결과물은 국내 바이오 신약 1호인 ‘이지에프’였다. 심한 당뇨에 발이 헐어 버리는 당뇨병성 족부궤양 치료제로 1988년 이후 무려 13년이 넘는 연구개발 끝에 국내 기술로 탄생한 신약이다. 더 큰 도약을 위해 윤 명예회장은 2002년 10월 대웅제약을 지주회사인 대웅과 대웅제약으로 분할 상장했다. 최근에는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13년 중국 선양에 있는 제약회사 바이펑을 인수해 2017년 현지 생산과 판매에 나설 예정이다. 특히 최근에는 나보타를 앞세워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나보타는 대웅제약이 5년간 연구를 통해 자체 기술로 개발한 고순도 보툴리눔톡신 제제로 현재 60여개국에 약 70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신경숙 표절 논란, 문학·출판권력 문제로 확산

    신경숙 표절 논란, 문학·출판권력 문제로 확산

    소설가 신경숙(52)씨의 표절 논란이 작가 본인과 해당 출판사를 넘어 문학·출판권력 전반의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신씨의 표절 의혹 제기 이후 2000년대 초반 문학권력 비판을 주도했던 평론가들이 전면에 나서며 표절을 낳은 한국 문단의 고질적인 병폐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으면서다. 한국작가회의는 이런 흐름을 감안해 문단에선 처음으로 신씨의 표절 문제 공론화에 나섰다. 검찰도 통상적인 고발 사건 처리 절차에 따라 고발장 내용 검토에 들어가 문단의 자정 노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한국작가회의는 문화연대와 함께 23일 오후 4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 아래 긴급토론회를 연다.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이 사회를 맡았다. 이명원 문학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논란의 진실, 혹은 문화적 맥락’, 오창은 문학평론가는 ‘신경숙 표절 국면에서 문학권력의 문제’를 주제로 각각 발표한다. 이번 토론회는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45)씨가 ‘신경숙 표절’ 문제에 불을 지핀 이후 권성우(숙명여대 교수)·이명원(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오길영(충남대 교수) 등 과거 문학권력 비판에 앞장섰던 평론가들이 문단의 그릇된 비평 문화를 집중 비판하고 나서면서 마련됐다. 오길영 평론가는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어느 순간부턴가 한국 비평계에서 평가와 판단은 금기어가 된 느낌”이라며 “평가를 내리는 것은 작품을 훼손하는 폭력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섬세한 비평은 공감의 비평이고 좋은 비평이요, 가치평가와 비판으로서의 비평은 뭔가 투박하고 공격적이라는 이분법이 내재화된 인상을 받는다”며 “이것을 해체하는 것도 비평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권성우 평론가는 “창비 이상으로 신경숙의 이런 엄청난, 그리고 슬프기까지 한 추락에 ‘문학동네’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그동안 문학동네 지면을 통해 이뤄진 신경숙 소설에 대한 글과 대담, 리뷰는 상당 부분이 신경숙에 대한 지나친 확대해석, 문학적 애정 이상의 과도한 의미 부여, 영혼 없는 주례사 비평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오창은 평론가는 “비평가들의 책임이 크다”고 통탄했다. “문학비평이 표절에 대한 검증을 하고, 문학권력에 대한 적극적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비평은 위기와 무능 상태에 처해 있다.” 문단 안팎에선 신씨의 표절 논란이 마녀사냥식 인신공격으로 흘러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문학평론가는 “신씨 사태가 ‘신경숙은 영원히 펜을 들어선 안 된다’는 등 반지성적 행태로 흘러가서는 문단 발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우려했다.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도 “인터넷상의 글들을 보면 사태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방향이나 대안을 제시하기보다는 평상시 감정들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며 “건전한 토론을 통해 제대로 된 평가 시스템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5] 메르스 사태를 보는 또다른 시선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5] 메르스 사태를 보는 또다른 시선

      최근의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옛날에도 바이러스 질환이 있었을까’라는 황당한 의문을 가져봅니다. 이런 생각이 왜 황당하다고 여기느냐 하면, 바이러스라는 생명체는 지구와 생존의 역사를 같이 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옛날을 떠올리는 건 지금의 사태가 주는 많은 시사점과 교훈 때문입니다. 좀 나이가 드신 분들은 예전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비루스(Virus)’를 생각하시기도 하겠지요. 바이러스의 독일어식 발음인 그 비루스가 바로 바이러스입니다.  바이러스는 괴물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지구 탄생의 순간부터 인간과 함께 살아왔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오랜 세월을 거쳐 진화해 왔듯이 바이러스도 꾸준히 진화했지요. 진화라는 게 ‘환경에 적응하려는 변화’를 말하는데, 인간의 환경이 계속 바뀌었고, 거기에 우리가 적응해 지금의 문명을 이룩했듯이 바이러스의 세계에서도 지금을 황금기라고 보고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우선, 종류가 다양합니다. 숙주의 종류에 따라 식물 바이러스, 동물 바이러스, 세균 바이러스 등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생명체의 증식에 있어 결정적인 핵산의 종류에 따라 크게 DNA바이러스 계열과 RNA바이러스 계열로 나누고,여기에서 다시 유형별로 세분하는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바이러스는 증식에 필요한 효소를 못 가져 외부의 조력이 없으면 증식을 하지 못합니다.그래서 반드시 숙주 생물을 이용하는데,최근 국내에서 문제가 된 메르스 역시 사막지역의 낙타를 숙주로 한다고 알려져 있더군요.바로 이 놈이 RNA바이러스 계열의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거창한 이름이 사람들에게 더 큰 공포감을 주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이 명칭은 현미경으로 볼 때 모양이 태양의 겉면인 코로나와 비슷해서 붙여졌을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사람 등 포유류와 조류에서 코감기 등 호흡기 질환을 일으키는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문제가 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우리가 사스(SARS)라고 불렀던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입니다.    알고 보면 특성도 재밌습니다.이 놈들은 살아있는 세포 내에서만 기생하고,증식도 잘 하는 생물적 특성을 가졌지만,이걸 생물이라고 딱 부러지게 단정하기에는 다른 특성도 있습니다.그런 탓에 20세기 초에 처음 발견됐을 때는 학자들 사이에서 “생명체다” “아니다”를 두고 열띤 논쟁도 있었습니다.     먼저,생물적 특성을 보면 숙주의 효소를 이용하지만 그래도 물질 대사를 한다는 점,증식·유전·적응 등 생명체의 특성을 보인다는 점,자기복제가 가능하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흔히 말하는 바이러스의 변신 역시 자기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무생물적인 특성도 또렷합니다.먼저,세포의 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또 세포막 등 일반적인 세포의 구성 요건도 못 갖추고 있으며,효소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물질대사를 할 수 없다는 점도 그렇습니다.다시 말해,숙주 세포 안에서는 확실한 생명체로 존재하지만,숙주를 벗어나서는 미세한 결정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무생물적인 특성이 두드러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놀라운 환경 적응력  이처럼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죽도,밥도 아닌 바이러스이지만 의료 영역으로 들어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일단 바이러스가 만드는 질병이 간단치 않습니다.바이러스가 원인인 질병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단연 독감과 감기일텐데,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원인이고,감기는 리노 바이러스나 아데노 바이러스가 가장 흔한 유형이며,이번의 메르스처럼 코로나 바이러스가 원인인 경우도 있습니다.또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은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가 원인이고,소아마비와 마마라고 불렸던 천연두,아프리카를 공포에 빠뜨린 에볼라와 국내에서 숱하게 가축의 생명을 앗아간 구제역 등이 모두 바이러스 질환에 속합니다.    질병의 이름만 들어도 모골이 송연하지만,더 두려운 것은 바이러스의 변신 능력입니다.요즘 세상에 단순한 세균 질환은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이 쉬워 일단 원인균만 알아내면 치료나 예방이 어렵지 않지요.가장 대표적인 결핵의 경우 정상적인 치료 과정만 거치면 거의 대부분 완치에 이를 수 있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바이러스라는 꼬리표를 달고 나오면 사정이 달라집니다.독감을 한번 볼까요.국내에서도 해마다 독감이 한,두 차례씩 유행하지만 아직도 맞춤형 백신은 만들지 못합니다.같은 독감이지만 바이러스가 자주 변신해 매년 유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만들어낸 백신이 바로 우리가 사용하는 ‘표준형 백신’이지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크게 A·B·C형 3종으로 구분하는데,이 중 주로 A형과 B형이 주로 유행을 일으킵니다.이에 따라 국내에서는 해마다 거의 반복적으로 유행하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중에서 이 A형과 B형의 항원성과 유사한 바이러스주를 사용해 백신을 만들지요.즉,이 유형의 바이러스가 올해도 독감을 유발할 것이라는 예측을 전제로 미리 백신을 만들어 놨다가 접종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같은 독감이지만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변신을 하기 때문에 특정 유형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백신을 만들기 어렵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한 예방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는 것이지요.    메르스가 정말 그렇게 대단한가  앞에서도 말했지만,메르스에 대한 필자의 사견은 ‘그렇게 호들갑을 떨 병이 아니다’는 것입니다.물론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메르스 때문에 고통을 겪은 분들에게는 이렇게 얘기하는 게 좀 저어하지만,그렇다고 저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는 않습니다.    메르스에 대한 저의 사견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메르스는 생소한 병명에도 불구하고, 흔한 감기와 견줘 특별히 가공스러운 파괴력을 가진 질병은 아니다.단,건강 상태가 좋지 못한 만성질환자나 노약자,임신부 등이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다.’    물론 견해가 다른 사람도 있겠지만, 엄청난 사회적 파장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아는 메르스에 대한 정보가 상당 부분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거나 잘못 알려지고 있다는 점이 이렇게 판단한 첫째 이유입니다.지금까지 발생한 사망자의 경우 대부분 면역력이 취약한 고령의 기저질환자였으며,따라서 이들에 대한 보도는 ‘메르스에 의한 사망’이라기보다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가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에서 사망했다’는 식으로 전하는 게 옳습니다. 사인이 메르스인지, 아니면 다른 기저질환인지 가려서 보도하는 것은 질병 보도의 기본입니다.메르스 감염자가 사망했다고 해서 항상 사인이 ‘메르스’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국내에서는 일반적으로 감기의 사망률을 따지지 않습니다.그것은 감기가 사소해서가 아니라 감기라는 감염질환이 평균적인 수준에서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런 감기지만 중증 폐렴 환자가 걸렸다면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마치 메르스가 그런 것처럼.    그런데도 메르스 감염이 국내에서 처음 문제가 됐을 때 치사율이 40%라는 엉뚱한 통계가 제시돼 사람들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습니다.만약 치사율 40%인 감염질환이 지금처럼 퍼지고 있다면, 두 말할 것도 없이 전쟁에 준하는 상황이겠지요.학교는 물론 극장,시장,경기장은 모두 폐쇄되고,폭동과 약탈에 대비해 전국 곳곳에 군인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계를 펴야 할지도 모릅니다.당연히 대중교통도 멈춰야 하고,동물원의 낙타는 살처분될 겁니다.그 와중에 또 누가 마음 편히 직장에 출근을 하며,또 누가 손님 맞아야 하는 영업을 하겠습니까.    상황이 이런 데도 치사율이 40%라는 이 희대의 ‘구라’에 대한 진위는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그 바람에 사람들은 잔뜩 주눅이 들고, 급기야 국내 5대 종합병원 중 한 곳이 사실상 진료를 중단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맞았습니다.    외국의 전문가들이 본 한국의 메르스 사태  그렇다면 시선을 좀 바꿔볼까요.지난 8일부터 6일간 서울 코엑스에서는 메르스 파동 속에서 세계과학기자대회가 열렸습니다.조직위원장을 맡은 필자로서는 걱정이 태산같았지요.‘이걸 계속 강행해야 할까’ ‘그럴 경우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과연 예상처럼 국내외 과학기자들이 찾아올까’ 등등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대회는 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40여개 국에서 450여명의 해외 과학기자와 과학자들이 서울을 찾았고,국내에서도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찾아 아침부터 등록대에는 장사진을 이뤘습니다.더 놀라운 사실은 야마나까 신야 박사와 팀 헌트경 등 2명의 노벨상 수상자,그리고 데보라 블럼 박사와 덴 페이긴 등 3명의 퓰리처상 수상자 등을 포함해 당초 방한을 약속한 인사들이 예외없이 서울을 찾았다는 점입니다. 메르스 때문에 계획을 바꿔 방한을 취소한 외국인은 5명에 그쳤습니다.내국인은 100명이 넘게 취소했는데도 말이지요.취소자는 모두 중국 쪽 인사들이었는데,이 중 홍콩대 의대 교수는 “메르스가 두려운 게 아니라 병원쪽에서 한국 방문을 자제하라는 지침이 내려졌고,이 지침을 어기고 서울에 갈 경우 돌아와 다시 2주간 격리되어야 하기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설명을 곁들이기도 하더군요.    메르스 사태를 보는 이들의 시각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일부를 소개할까 합니다.저명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의 국제뉴스 편집장인 리처드 스톤은 “메르스를 이겨내려는 한국 측 노력은 이해하지만,통제가 가능한 상황에서 행사를 미루거나 학생들에게 휴교조치를 내린 것은 난센스”라고 하더군요.그는 “일반적으로 메르스는 두려움을 느껴야 할 질병이 아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역시 사이언스지에서 활동하며,이번 대회에서 에볼라 세션을 주도한 마틴 엔서링크 기자는 서울에 오기를 망설였지 않느냐는 물음에 “만약 망설일 정도로 걱정했다면 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겠느냐”면서 “나는 에볼라가 창궐할 때 아프리카 취재 현장에 있었던만큼 이런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 지를 충분히 알고 있고,그래서 이번 서울방문을 두고 한번도 고민해본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영국 BBC에서 활동하는 런던 시티대 코니 세인트루이스 교수도 “오기 전에 한국의 상황을 알았지만,그것이 나의 방한을 포기할 이유가 될 수 없었다”면서 “WHO에서도 한국의 메르스 사태가 잘 통제되고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되묻더군요.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의 의학 담당 부국장인 론 윈슬로의 지적도 귀담아 들을만 합니다.그는 “한국 보건당국이 메르스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밝히고 시민들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면서 “보건 당국은 병원내 상황이라고 발표하면서 학교 휴교나,단체 행사를 미루도록 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조치”라고 꼬집더군요.“메르스가 그렇게 두렵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감염질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요.    이들 말마따나 일주일간 이어진 행사 기간 중에 기침이나 발열 등 유사 증세로 현장 응급의료단을 찾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습니다.이런 메르스 탓에 시민활동이 극도로 위축돼 급기야 내수경기마저 바닥을 치고 있다니,초장에 너무 호들갑을 떨다가 수습도 못하는 상황에 이른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물론 적극적,선제적으로 감염 차단에 나선 것까지 나무랄 일은 아니지만 말이지요.    엎어진 김에 쉬어가는 심정으로  일부에서는 메르스 공포의 상당 부분이 언론 탓이라고도 말합니다.첫 발병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보도 패턴이 마치 봇물 쏟아지듯 해 시민들의 두려움을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부분적으로는 그런 측면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더러는 사안에 말초적으로 접근해 본질을 밀쳐두고 지엽적인 문제를 침소봉대하거나,근거없는 보도로 공포감을 조장한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보도는 단순한 양이 아니라 질과 영향력으로 평가하는 게 옳습니다.그런 점에서 언론보도가 있어 대규모 감염질환의 감시체계 부실이나,환자 및 병·의원 허술한 관리시스템과 보건행정의 대책없는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보는 게 옳겠지요.물론 언론의 지대한 관심이 한순간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속성이 이번에도 반복되겠지만,그렇더라도 언론의 역할은 이번에도 중요했습니다.그런 신문이나 방송이 없다고 가정해 보면 어떨까요.바로 그 느낌이 언론의 존재 이유일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의 행정은 한 마디로 ‘이게 국민 보건을 책임진 정부 부처가 맞나’ 싶은 수준입니다.‘저 사람들은 국록을 먹으면서, 저 자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했나’하는 게 메르스 사태를 보는 시민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무슨 일만 터지면 우왕좌왕,갈팡질팡 정신을 못 차려 심지어는 지방자치단체의 힐난까지 들어야 하는 처지가 됐으니 말입니다.보건 행정을 실질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이런 사태가 반복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그 사람들 행태를 보면,병·의원과 의료인들 윽박지르는 수준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합니다.그러니 시민들 사이에서 “브리핑 말고는 잘 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기관”이 되고 만 것이지요.이 사태를 겪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가 어떻게 혁신의 방향을 잡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시민들의 행태도 변해야 합니다.‘이 나라에 국민은 있어도 시민은 없다’는 자조적인 말이 인터넷에서 떠도는 한 지식인의 한탄에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도처에 국민정신은 끓어 넘치는데,시민정신은 바닥 수준이라는 뜻이지요.여기에서 국민이니,시민이니를 두고 논쟁할 생각은 없습니다.그러나,감염 의심자가 통제에 반발해 난동을 부리는 무책임하고,이기적인 사회, 대책없이 격리하면서 그 사람의 생계에는 관심조차 없는 사회라면 누가 시민 자격을 말하며,또 누가 정책에 순응하겠느냐는 말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외국의 사례를 들먹일 것도 없는 일인데,우리나라의 병원에는 무슨 문병객이 그렇게나 많은지 한숨이 나옵니다.‘환자가 하나면 문병객은 열’이라는 병원 관계자들의 말은 애당초 방향을 잘못 잡은 우리나라 문병문화의 한 단면입니다.병원은 환자가 병을 치료하는 곳인데, 환자가 병상에 누워 문병객들을 세고, 어떻게든 환자의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듯 전국에서 몰려와 장사진을 치고 병실의 문을 여는 문화는 반드시 고쳐야 할 병폐이지요.이럴 바에야 차라리 우체국에 값 싼 ‘문병 엽서’ 같은 것 비치해 거기에다 마음을 담아 전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만약 그렇게 된다면 아마도 병원발 감염이 지금보다 크게 줄어들 게 분명합니다.병원의 선물가게가 호황을 누리는 우리의 문병의식에 대해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병원과 의료인들도 정신 차려야 합니다.외형에만 집착해 멀쩡한 건물부터 짓고, 곳곳에 광고 도배를 하면서 정작 안을 들여다 보면 감염 관리는 가관입니다.적어도 감염 대책에 관해서라면,어디부터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왜냐 하면,처음 등록 때부터 병실,수술방,회복실까지 모두가 엉성하고,허술하기 때문입니다.이번 메르스 감염사태가 ‘병원 내 상황’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병원이 가장 위험하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팩트인데,상황이 이렇다면 병원 폐쇄 등의 조치와는 다른 축에서 정부 차원의 감염관리 대책이 시행되어야 할 것입니다.이런 일에는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이제는 ‘병원들의 어려움을 고려해서’ 등등의 기만적인 언사를 제발 거둬들이기 바랍니다.모든 피해가 고스란히 시민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jeshim@seoul.co.kr
  • [사설] 황교안 총리 후보자 사건 수임 적절했나

    법조계의 전관예우는 뿌리가 깊다. 판검사로 재직하던 전관 변호사들이 맡은 사건을 현직의 판검사들이 잘 봐주는 악습이 수십 년간 이어져 내려왔다. 검찰총장 등 고위 판검사 출신들은 아예 선임계조차 쓰지 않고, 현직의 후배들에게 전화를 걸어 의뢰인을 석방시키는 ‘마술’을 부리기도 했다.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면 풀려나고, 그러지 못하면 감옥에 가는 것은 법조계의 불문율이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면서 2011년 변호사법을 개정, 퇴직 후 1년간은 퇴직 이전 1년 이상 근무한 기관의 사건을 맡지 못하도록 했지만 법의 맹점을 파고드는 전관예우는 여전하다. 현직 법무부 장관인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전관예우 의혹에 휩싸였다. 8일부터 열리는 사흘간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 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라고 한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황 후보자는 2011년 부산고검장에서 퇴임한 뒤 법무법인 태평양에 영입돼 1년 동안 부산지검 사건을 최소 6건 맡았다. 부산지검이 마지막 근무 기관이 아니어서 법에 저촉되지는 않지만 부산고검이 부산지검을 사실상 지휘하는 상급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꼼수 전관예우’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황 후보자가 수임했던 사건들이 적절하게 처리됐는지 그 결과를 꼼꼼히 따져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 의원은 또 황 후보자가 정식 선임계를 내지 않고 ‘전화 변론’을 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2012년 횡령 혐의를 받던 청호나이스 정모 회장이 태평양에 변론을 맡길 당시 선임계 없이 변호인으로 활동했다는 것이다. 법무장관으로 내정된 후 닷새 더 태평양에 근무하며 1억 1700여만원의 급여와 상여금을 추가로 받은 점도 석연치 않다. 이 밖에 국회에 제출한 사건 수임 자료에는 119건 가운데 19건의 내역이 지워져 있어 고의 삭제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황 후보자에 대해서는 이미 병역면제 의혹과 종교 편향성 등이 문제가 된 바 있지만 고위 법조인 출신으로 부적절하고 편법적인 전관예우 수혜를 누렸다는 의혹이 확인된다면 이보다 치명적인 하자도 없다. 이는 청와대가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을 적임자”라며 황 후보자를 내세운 논리와도 어긋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고질적인 병폐로 작용해 온 법조계 전관예우의 수혜자가 국정을 이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인사청문회에서 관련 의혹이 명명백백하게 규명돼야만 한다.
  • [오늘의 눈] ‘1년짜리 국회의원’에 대한 걱정/한재희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1년짜리 국회의원’에 대한 걱정/한재희 정치부 기자

    29일 밤 4명의 국회의원이 새로 탄생한다. 치열한 선거운동을 펼쳤던 4·29 재보선 후보 16명도 이제 겸허한 선택의 순간을 마주하게 됐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세월호 1주년’과 ‘성완종 파문’ 등 국정을 흔드는 이슈들이 재보선 판을 휘감으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박빙의 승부가 펼쳐졌다. 아마 새로 금배지를 달게 되는 4명의 ‘편입 의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환희의 밤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눈에는 걱정이 가득하다. 편입 의원들의 임기는 내년 5월 29일까지로 ‘1년짜리’다. 당선자들이 의정 활동을 시작도 하기 전에 폄훼할 의도는 아니지만 과연 이 짧은 기간 동안 제대로 된 의정 활동을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는 합리적인 의구심일 것이다. 이들은 선거 기간 동안 대선 후보인 양 앞다퉈 ‘뻥튀기 공약’을 쏟아냈다. 경전철 조기 착공, 지하철 유치, 연륙교 건설 등 적게는 수천억원에서 많게는 수조원이 투입되는 대형 국책 사업들이다. 지역 실정과 상관없는 재벌 개혁이나 사회복지세 도입, 최저임금 1만원 등 거대 담론을 주장하는 후보도 있었다. 지역구 의원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들이다. 이 때문에 “1년짜리 국회의원이 공약은 대선 후보급”이라는 눈총이 적지 않다. 지역 유권자들도 이들의 공약이 제대로 실천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당선자들이 서둘러 기본 업무를 파악하고 공약 실현을 위한 법안을 발의한다고 해도 본회의 통과까지는 물리적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여야 합의가 수월하게 이뤄질 수도 있겠지만 천문학적 예산 투입이 필요한 사업이 속전속결로 이뤄지기는 난망하다. 어쩌면 국회 한쪽에 서류 뭉치로 쌓여 있다가 결국 폐기될 수도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19대 국회에 발의된 의원 법률안 1만 3200여건 중 70%가량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내년은 20대 국회의원 선거가 예정돼 있어 이에 열중하느라 입법 발의는 뒷전으로 밀릴 공산이 크다. 공약(公約)이 그야말로 공약(空約)으로 끝날 수 있다. 국정감사에서도 제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된다. 국감이 시작되는 9월까지 상임위의 현안을 속속들이 아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각 상임위원은 수십 곳에 달하는 피감 기관의 오랜 병폐와 최신 정책의 장단을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국감장에서 피감 기관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을지, 작은 문제점 하나라도 개선하려는 땀이 밴 노력을 보일지 유심히 지켜봐야 한다. 무엇보다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하다. 거짓 공약과 거창한 구호만 부르짖는 후보에게 소중한 한 표를 낭비해선 안 된다. 지금 우리는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특권 의식이 아니라 소명 의식을 갖고 국민에게 헌신할 의원이 필요하다. “1년만 써 보라”고 외치는 후보들 속에서 ‘1년 후에도 쓰고 싶은 후보’를 가려내야 한다. 경기 중반에 투입돼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구원투수’ 같은 의원들이 당선됐다는 평가를 기대해 본다. jh@seoul.co.kr
  • [시론] 한국 정치와 소통의 복원/문상현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시론] 한국 정치와 소통의 복원/문상현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을 가장 잔인한 달이라 표현했다. 문득 이 구절이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대한민국의 4월에도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1주년을 맞은 세월호 참사와 정경유착의 검은 거래를 폭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회장 사건의 여파로 온 나라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정경유착과 소통의 부재라는 한국 정치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사실 퇴행적 행보를 거듭하는 한국 정치를 보자면 냉소를 넘어 정치가 백해무익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나아가 개인과 공동체의 행복을 위해 정치에 대한 기대를 버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독일의 정치이론가 한나 아렌트로부터 구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정치행위란 언어를 매개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자유로운 인간의 활동이며, 인간은 정치행위를 통해서만 인간답게 살 수 있다. 따라서 아렌트에게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권력 획득의 도구적 수단이 아니라 공공 영역에 참여한 시민들 간에 이루어지는 의사소통 행위다. 아렌트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정치가 정치인들의 사적 이해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했을 뿐 아니라 아렌트가 정치의 핵심이라고 본 시민참여와 소통의 원칙이 정치 시스템 내에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다. 성 전 회장 사건은 정치가 사적인 이해관계에 복무할 때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지 잘 보여 준다. 망자에 대한 예의와 그가 한 폭로의 공적인 가치를 잠시 잊고 냉철하게, 그리고 양비론을 경계하며 이 사건을 바라보자. 억울하게 배신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는 자신이 폭로한 부패의 공모자이자 수혜자였다. 스스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했던 성 전 회장은 돈으로 매수한 정치권력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이용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원망하며 정죄하고 싶어 했던 부패의 숙주(宿主)들이 괴물로 자라는데 그 역시 적지 않은 역할을 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유권자인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하기보다 은밀한 거래를 통해 권력을 얻고자 할 때 이미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정치가 아닌 것이다. 4월 16일로 1주년을 맞은 세월호 참사 역시 우리 정치가 소통이라는 정치의 본원적 가치에 얼마나 무감각한지를 잘 보여 준다. 300여명의 희생자를 낸 세월호 참사 앞에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던 한국 사회는 하나의 마음이 됐다. 어른들의 탐욕으로 꽃 같은 아이들의 생명이 희생됐고, 더이상은 이렇게 살아가면 안 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유가족과 국민 앞에서 대통령이 흘린 눈물은 이러한 열망을 국가 개조를 통해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다짐이었을 테다. 그러나 1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국가 개조는커녕 진상 규명을 통한 유가족과 희생자들의 해원(解?)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리고 대화와 관용적 배려를 통해 시민적 덕성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세월호 이슈는 정파적 이해와 진영 논리를 앞세우는 정치인들에 의해 사회 갈등과 분란의 원인으로 폄훼됐다. 잔인한 4월의 끝 무렵에 선 우리에게 두 길이 놓여 있다. 하나는 권력만 추구하는 정치인과 이들에 기생하는 모리배에게 정치를 맡기고 사적인 삶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편한 길이다. 또 다른 길은 정치적 냉소주의를 떨쳐 버리고 참여적 시민의 삶을 살아가는 수고스럽지만 가치 있는 길이다. 어떤 길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길인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소통의 시민정치를 복원하는 일이 시급하다. 진영 논리에 매몰돼 서로 비난하고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다양성과 생각의 차이를 인정하고 대화를 멈추지 않으려는 노력을 바로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소통의 주체로 나서 ‘그들만의 리그’인 한국 정치를 개혁하는 것, 그것이 죽음의 그림자를 걷어 버리고 한국 사회를 생명과 희망의 땅으로 만드는 길이 아닐까.
  • ‘YWCA가 뽑은 좋은 TV 프로그램 상’ 시상

    ‘YWCA가 뽑은 좋은 TV 프로그램 상’ 시상

    제19회 ‘YWCA가 뽑은 좋은 TV프로그램 상’ 시상식이 24일 서울YWCA 대강당에서 총 5편의 수상작 제작진 40여명과 심사위원단, YWCA회원, 김필례기념사업단 이사 등 총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대상의 영예는 JTBC 보도특집 ‘여객선 세월호 참사 보도’에게 돌아갔다. 현장 생중계, 전화인터뷰, 심층탐사, 전문가 토론 등 다양한 취재방법을 활용,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현장에 남아 꾸준한 취재로 보도의 본연의 임무를 성실히 수행했으며 뉴스의 진정성을 보여줬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평화 부문에는 후쿠시마 핵폭발 사고 이후 일본산 먹거리의 방사능오염 여부와 피해 실태를 밀착 취재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의 소중함을 부각시키며 핵발전소 사고의 위험성과 안전의 중요성을 잘 드러낸 KBS 시사기획 창 ‘일본산 먹어도 되나요?’가 수상했다. 여성부문에는 가족 간의 갈등, 물질만능주의, 치열한 경쟁의 교육현실 등 우리가정과 사회가 당면 문제들을 리얼하게 그리면서 물질만능과 성공주의에 사로잡힌 우리사회의 병폐를 통렬하게 그리는 동시에 여성들의 자매애를 통해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 MBC 드라마 ‘마마’가 선정됐다. 특별상은 2편으로 광주MBC 창사 5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백년의 유산-여성교육자 김필례’와 KBS 청소년기획 ‘세상 끝의 집’ 6부작이 선정됐다. 김주혁 선임기자 happyhome@seoul.co.kr
  • [사설] 전문성 떨어지는 ‘정피아’가 ‘관피아’보다 더 문제다

    지난해 4월의 세월호 참사 이후 ‘관(官)피아’가 떠난 자리를 ‘정(政)피아’가 빠른 속도로 꿰차고 있다. 공기업 28곳, 준정부기관 85곳, 기타 187곳 등 300개의 공공기관을 조사한 결과 지난 1년간 관피아는 줄고 정피아는 늘었다. 공공기관 300곳의 기관장·감사 등 397명 중 관피아는 세월호 참사 당시 161명이었으나 지난달에는 118명으로 43명이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정피아는 48명에서 53명으로 늘었다. 관료 출신의 공기업 기관장, 감사가 물러나자 정치권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그 자리에 속속 입성했다. ‘어부지리’를 얻은 꼴이다. 정치권 언저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에게 공공기관의 요직을 선심 쓰듯 나눠 주는 것은 큰 잘못이다. 외부 출신이라고 무조건 배척해서도 안 되지만, 최소한 그 자리에 걸맞은 능력을 갖춘 인사가 가야 한다는 건 상식이다.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척결은 시대적 과제로 떠올랐다. 전관예우와 민관유착으로 인한 부정부패의 고리가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음이 확인됐다. 관피아가 없어진 자리를 정피아가 차지하는 건 더 심각한 문제다. 정피아는 일반 공기업은 물론이고 금융기관까지 접수하면서 또 다른 ‘적폐’가 되고 있다. 조직에도 해가 되지만 혁신을 바라는 국민의 열망을 외면하는 일이다. 금융권의 감사 등 핵심 요직이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문외한’들이 중요 보직을 다 꿰차면 조직의 투명성과 경쟁력이 살아날 수가 없다. 정피아를 막으려면 공공기관 인사 선발 시스템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 법에 정해진 대로 공공기관이 적임자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하고 그 책임을 함께 묻게 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기업공개를 한 공공기관이라면 기관장과 감사 선임 과정에서 주주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치인을 비롯한 낙하산 인사는 역대 정권에서 항상 반복됐다. 대선캠프 출신을 비롯해 정권 창출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사람들은 대통령 임기 내 한 자리씩을 차지해 왔다. 비정상적인 관행이며, 끼리끼리 문화의 전형이다. 오랜 병폐의 싹을 잘라야 한다. 비정상적인 잘못된 관행을 이제 없애야 한다. ‘제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맨날 비리척결만 외친다면 어느 국민이 정권을 믿을 수 있겠는가. 이제는 전문성이 없는 낙하산을 없앨 때도 되지 않았나.
  • [이슈&논쟁] 퇴임 대법관 변호사 개업 신고 반려 논란

    [이슈&논쟁] 퇴임 대법관 변호사 개업 신고 반려 논란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문제를 놓고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새로 구성된 대한변호사협회 집행부가 퇴임 대법관은 변호사 개업 신고를 하지 말라고 공개적으로 권고하더니, 결국 로펌의 공익재단에서 활동하겠다는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를 법적 근거 없이 반려했다. 또 퇴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을 제한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법조계의 고질적 병폐인 전관예우 타파라는 변협의 행보를 지지하는 경우도 많지만 변협의 월권이라거나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라는 지적도 만만찮다. 다수의 퇴임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해 활동하는 상황인 만큼 평등권에 반한다는 의견도 있다. 법조계에서 나오는 찬성과 반대의 목소리를 함께 들어 본다. [贊] 강신업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도장 한번 찍어 주고 수억 받기도…돈보다 재능나눔으로 봉사해야” 법조계에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3년간 “100억원을 못 모으면 바보”라는 속설이 있다. 그리고 얼마 전 개업 10개월 만에 27억여원의 매출을 올린 대법관 출신 총리 후보자의 사례는 이 속설이 빈말이 아님을 확인시켜 줬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버는가. 전직이 대법관인 변호사는 도장 한 번 찍어 주고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는다. 사건을 수임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사건은 대개 다른 변호사가 가져온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먼저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귀하다. 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고 대법관은 대법원장까지 포함해 14명이기 때문에 대법관을 마치고 퇴임하는 변호사는 산술적으로 1년에 2명밖에 안 된다. 반면 1년에 대법원에서 처리하는 상고 사건은 3만 6100건에 이른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찾는 사람들은 줄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 찾는 사람은 많은데 수가 귀하면 몸값은 치솟게 마련이다.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상고심에서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선임하면 1심과 2심에서 진 소송도 뒤집을 수 있다고 믿고 거액을 쓴다. 진 쪽이 대법관 출신을 선임하면 이긴 쪽도 불안한 마음에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대법관 출신을 찾아 나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로펌 입장에서도 대법관 출신 변호사를 영입하면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결국 전직 대법관 변호사와 이를 영입한 로펌은 거액을 벌게 된다. 그렇다면 국민도 그만큼 이익을 보는가. 그렇지 않다. 이기더라도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쓴 터라 상처뿐인 영광이다. 거액을 쓰고도 재판에 지게 되면 그야말로 패가망신이다. 또 반드시 이겨야 될 소송을 대법관 출신 변호사 때문에 지게 되면 화병에 결려 인생이 송두리째 망가지기 쉽다. 결국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재판의 공정성을 해친 대가로 막대한 돈을 벌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게 된다. 이쯤 되면 전직 대법관들의 도장 장사는 전관예우가 아니다. 그것은 대법관이라는 지위를 팔아 돈을 버는 비리 행위요, 범죄 행위다. 일각에서는 로펌 등에서 개업하더라도 공익 활동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로펌이 땅을 파서 장사하는 것도 아니고 수억원씩 연봉을 줘 가면서 영입한 전직 대법관 변호사를 공익 활동만 하도록 놔두겠는가. 일각에서는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 아니냐고들 한다. 그러나 꼭 변호사 개업을 해야 직업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김영란 전 대법관은 2010년 퇴임 뒤 서강대에서, 배기원 전 대법관은 구청에서 무료 법률상담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법관이 개업을 해서 비리 행위로 돈을 버는 것은 직업의 자유 보호범위에 속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김능환 전 대법관이 몇 년 전 선관위원장을 끝으로 퇴임하고 편의점 사장이 됐을 때 국민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낸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전 대법관이 편의점 사장으로 동네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소시민으로 사는 모습은 ‘청백리’에 목말라 있는 국민들에게 많은 행복감을 줬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능환 전 대법관이 대형 로펌에 자리를 잡았다는 소식은 국민들에게 더 큰 상실감을 안겼다. 국민들은 더이상 대법관이 변호사로 개업해 재판의 공정성을 해치는 것도, 수십억원을 버는 것도, 낮 뜨거운 쇼를 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대법관으로 퇴임한 분들은 개업 행위를 막는 것이 법적 근거가 없다느니,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느니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한평생 법관으로 재직하며 누린 명예를 공익 활동을 통해 재능 나눔으로, 봉사로 돌려줘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대법관 본인에게는 평생 명예로운 선비로 남는 길이 될 것이고, 법조계에는 국민의 사랑과 신뢰라는 선물을 안겨 주는 길이 될 것이다. [反]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전관예우 근절 법치에 부합해야…변협 개업신고 반려는 월권행위” 대한변호사협회 하창우 집행부가 차한성 전 대법관의 변호사 개업 신고 반려, 대법관 인사 청문회에서의 퇴임 뒤 변호사 개업포기 서약서 제출 요구, 대법관 출신 개업 변호사에 대한 제재 추진 등 충격적인 조치를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사실 대법관 전관예우 문제는 오래전부터 사법 개혁의 단골 메뉴였다. 전관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경우든 재판 과정에 영향을 주는 것은 법치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설사 재판의 결과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재판 진행상 편의를 제공받는 것도 절차의 공정과 중립을 핵심 가치로 삼는 사법부의 신뢰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반헌법적 전관예우나 그 관행에 편승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반사회적이다. 필자 또한 전관예우를 비롯해 법조계의 반헌법적이고 반사회적 제도와 문화의 개혁이 한국 사회가 보다 발전된 문명 사회로 나아가는 전제 조건임을 역설해 왔다. 그러나 이번 변협의 조치에 대해서는 정당한 취지에도 불구하고 방법에는 선뜻 동조할 수 없다. 전관예우를 척결해야 하는 이유가 법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면 방법도 법치에 부합하는 것이어야 한다. 법치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권력 작용이 예견할 수 있는 규범에 근거해 필요한 범위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법관의 개업 금지를 추진하는 방식이 법적 근거와 정당성을 가지지 못한다면 목적의 정당성마저도 퇴색하고 말 것이다. 더구나 변협은 공공성이 강한 법률가들로 구성된 전문가 단체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러한 법치의 정신에 투철할 의무가 있다. 무엇보다 차 전 대법관에 대한 개업 신고 반려는 관련 법인 변호사법에 근거가 없는 월권 행위다. 변호사법은 법적 결격 사유를 가진 자의 변호사 등록 여부에 대해 변협이 실질심사권을 가지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법 제7~12조). 변호사법 제15조에 따른 개업신고 제도는 자격 심사를 통한 등록 거부 절차를 둔 등록제와 달리 아무런 사후 조치도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변호사 단체의 관리 편의를 위한 장치일 뿐이고 설령 심사가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형식 심사에 그쳐야 한다. 변협의 회칙에서도 등록과 관련한 실질적 심사의 근거는 마련돼 있으나 개업 신고의 실질 심사를 가능하게 하는 근거 규정은 없다. 변협은 회칙 제40조의 4 제1항에서 “등록 및 신고가 있는 경우에는 규칙으로 정한 바에 따라 심사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을 근거로 주장하나 타당성이 없다. 이 위임 규정은 기껏해야 형식 심사를 위한 절차를 규정한 것에 불과하다. 법에 따라 등록한 변호사의 개업을 거부하는 것은 직업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제한인데 이를 법률의 명시적 근거에 의하지 않고 가능하다고 회칙을 해석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법치주의에 대한 교과서적인 이해도 결여된 주장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개업 신고자의 변호사 결격 사유가 있다면 개업 신고 반려가 아니라 등록 취소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 국회 인사청문 절차에서 개업 포기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강제할 것을 국회의장에게 요구하는 것도 법치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야 할 변협으로서는 취할 대안이 못 된다. 국회가 아무리 국민의 대표기관이라 한들 국민의 기본적 인권의 포기를 강요하는 절차를 법률적 근거도 없이 도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청문 과정을 통해 정치적으로 권유할 수는 있을지언정 법률적 근거도 없는 기본권 포기 서약서 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법치와 양립할 수 없다. 결국 이번 사태는 법 정신을 경시하고 권력을 오남용하는 한국 사회의 반법치적 풍조에 변호사 단체마저 가담하는 잘못을 범한 것이다. 개업 금지를 법제화하되 퇴임 대법관의 예우를 강화하는 합리적 대안을 공론화하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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