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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액체 시대의 고체 정부/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액체 시대의 고체 정부/이창길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차량 통행이 드문 한적한 도로를 지나다 보면 오가는 사람도 없는데 빨간 신호등 앞에서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있다. 갈까 말까. 운전자들은 천천히 움직이며 규정과 현실 사이에서 눈치를 살피다 결국 신호를 위반하곤 한다. 가끔 엄격한 법 적용으로 딱지를 떼이기도 한다. 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기계적인 규정의 망을 피해 가기는 어렵다. 직장에서는 전 직원이 참여하는 행사와 교육이 참 많다. 기관장 취임식과 이임식, 월례조회, 특별교육, 결의대회, 기념일 행사에 이르기까지 명칭도 다양하다. 이것들 대부분은 형식적인 연설이나 일방적인 전달 또는 윤리 정신교육이다. 그래서 대체로 흥미도 못 느낄뿐더러 재미도 없다. 참가자들은 마지못해 참가하지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형식이란 틀에 갇혀 버린 일상이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한때 줄어들었던 대국민 담화가 요즘 들어 많아졌다. 올 들어서만 해도 대통령, 경제부총리와 법무부 장관 등의 담화문이 발표됐다. 정책 발표나 기자 브리핑도 증가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호한 정책 의지를 일방적으로 발표한다. 질의응답이 아예 없거나 충분치 않아 국민들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사용하는 용어도 ‘전면 폐쇄’, ‘단호 조치’, ‘엄정 대처’, ‘강경 대응’, ‘기강 확립’ 등 사뭇 위협적이고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영국의 유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를 ‘액체 사회’라고 진단했다. 즉 현대사회는 ‘견고한 것을 녹이는’ 액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액체는 형태가 자유롭게 변화하고 시시각각 이동한다. 액체 사회는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에서도 흐르는 물처럼 유연하게 대응하는 사회다. 반면 고체는 딱딱하고 무겁다. 형태도 변하지 않는다. 고체 사회는 공격적이고 적대적이며 경직돼 있어 타협할 줄 모른다. 고체 유지를 위해 감시와 통제도 많다. 우리는 어떤가. 아직 고체 사회의 고체 정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규정의 기계적 적용이나 형식적인 교육 또는 일방적인 정책 발표는 전형적인 고체 사회의 모습이다. 외교와 통일, 경제와 사회, 그리고 교육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에 단호함과 엄정함만이 넘쳐난다. 하나의 형태, 하나의 정책, 하나의 가치만을 고집한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이미 액체 사회에 진입해 있다.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서로 교환하고 있다. 모든 사물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정보혁명이 현실화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역동성이 넘치는 우수한 인재들이 사회 곳곳에서 액체 사회의 든든한 자산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제 액체 사회에 걸맞은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물론 대응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 딱딱한 규정보다 먼저 사람을 보아야 한다. 현대사회는 획일화와 단일화를 강요할 수 있는 단단한 상자가 아니다. 정부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명령문과 법령집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작은 교차로의 신호등에는 자동센서를 달거나 외국처럼 ‘정지’(STOP) 표지판을 만들어 운전자들에게 편리한 교통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불필요한 형식보다는 실질적인 내용을 앞세우자. 이어령 교수는 일찍이 우리 ‘보자기’ 문화의 우수성을 일깨워 줬다. 보자기는 실용적이면서 어떤 형태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유연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전 직원이 참가하는 형식적인 의전 행사나 일방적인 직장 교육은 아예 폐지하는 것이 좋겠다. 대신 일부 직원이라도 좋아하고 공감하는 행사를 만들자. 아울러 진지하고 솔직한 대화가 오가는 토론 문화를 만들자. 다양한 대안 중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깊이 있게 논의하는 모습이 아쉽다. 담화문을 발표할 때에도 질의응답 시간을 충분히 갖고 친절하게 설명하는 정부를 보고 싶다. 노자의 도덕경에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이 나온다.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뜻이다. 물은 구석구석 빠짐없이 흐르면서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툼도 없다. 흐르는 물처럼 무리가 없는 결정을 하고, 단단한 바위 틈새를 가득 채워 주는 액체 정부를 기대한다.
  • 역사학·건축학… 12가지 학문으로 바라본 서울의 속살

    역사학·건축학… 12가지 학문으로 바라본 서울의 속살

    서울의 인문학/류보선 외 11명 지음/창비/328쪽/1만 8000원 도시는 렌티큘러와 비슷하다. 보는 각도를 조금만 달리해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의 종로 2~3가를 예로 들자. 도로 북쪽은 탑골공원, 종묘공원 등이다. 이 이름들에서 가장 먼저 환기되는 건 노인들이다. 여기에 ‘박카스 아줌마’가 연관검색어처럼 끼어들며 노인들의 에로티카를 만들어 낸다. 도로 남쪽은 다르다. 팔팔한 청춘들의 거리다. 밥집, 술집, 학원 등이 줄을 섰고, 북쪽과 사뭇 다른 유형의 욕망들이 꿈틀댄다. 겨우 도로 하나를 경계로 매우 다른 삶의 풍경들이 펼쳐지는 셈이다. 영역을 확장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인구 1000만명의 거대도시다. 그만큼 다양한 표정을 가졌고, 어제와 오늘이 다를 정도로 변화상이 극심하다. 그러니 서울의 현재를 다층적이고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풍경과 수치화된 자료 아래 감추어진 서울의 속살을 끄집어내야 한다. 바로 그 작업이 새 책 ‘서울의 인문학’의 지향점이다. ‘2015 서울인문학’ 프로젝트에 참여한 12명의 저자가 문학, 역사학, 사회학, 건축학, 철학 등 다양한 학문을 프리즘 삼아 여러 각도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들여다보고 있다. 류보선의 ‘광장의 꿈, 혹은 권력의 광장에서 대화의 광장으로’는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이 탐구 대상이다. 저자에게 두 광장은 우리의 사회정치적 관계가 응축돼 드러난 공간이다. 2002년 월드컵을 통해 우리 사회의 상징적 공간으로 단단히 자리잡았으나, 세월호 사고 이후 대립과 갈등의 공간으로 바뀐 징후가 뚜렷하다. 저자는 ‘멈추어 서서 대화하는 곳’으로서의 광장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염복규의 ‘서울 남촌, 100년의 역사를 걷는다’는 북촌이나 서촌 등에 견줘 상대적으로 소외된 ‘남촌’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살핀다. 저자는 일제 시기 일본인의 정착지이자 식민지배의 표상이었던 남촌에 새겨진 100년 역사를 되짚은 뒤, 남촌의 역사를 어떻게 현재에 되살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제시하고 있다. 조연정은 ‘이 멋진 도시를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통해 우리 사회 청년 세대가 직면한 빈곤과 절망의 현실을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같은 문제가 개인이나 세대에 국한되지 않은, 공동체와 시대 전체의 문제란 것을 강조한다. 김성홍은 ‘용적률’ 개념에 주목했다. 그는 ‘땅과 용적률의 인문학’을 통해 땅과 자본의 역학관계를 분석하면서 지금이야말로 건축의 ‘크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조절 장치를 모색해야 할 때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시론] 세대간 관계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시론] 세대간 관계 나이보다 중요한 것은/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서울시 통계 발표에 따르면 2027년 서울은 5명 중 1명이 고령자인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2012년에 100만명을 넘었던 고령인구가 2028년에는 200만명이 된다. 15년 남짓한 기간에 고령자 규모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고령자 증가의 의미가 실감 나지 않는다면 지하철 노약자석을 생각하자. 노약자석이 고령자만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고령자 증가율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현재 대략 20% 내외인 지하철 전동차 내 노약자석은 두 배가 돼 거의 절반에 이를 것이다. 어쩌면 고령자 전용으로 좌석을 대폭 늘린 전동차 칸이 따로 등장할지도 모른다. 고령화 사회는 의료비 증가, 사회보험 재정 악화, 대규모 노인 빈곤, 성장잠재력 저하 등 심각한 경제적 문제를 초래한다. 고령화 사회의 경제적·재정적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의 도전을 잘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차원에서의 문제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세대 간 질서를 규정하는 문화의 문제다. 고령화 사회에서 세대 간 갈등이 서서히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세대 간 대립 양상은 연공서열 임금 구조나 연금 재정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고령자 교통 혜택을 둘러싸고 인터넷에서 표출되는 청년층의 광범위한 거부감, 지하철 노약자석을 둘러싼 다툼과 민원의 빠른 증가 추세를 들여다보면 고령화 사회의 세대 간 갈등이 객관적인 이해관계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세대 간 관계를 규정해 왔던 논리는 가부장적인 장유유서 논리였고, 이에 바탕을 둔 연공서열이 사회조직의 권한 및 보상 배분의 기본 논리로 작동해 왔으나 이제 한계가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그 양상이 상당히 역설적이다. 한편으로는 장유유서 논리가 젊은 층에까지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면서 나이에 따른 위계서열의 중요성이 유지되거나 강화된다. 이번에 대학에 입학할 신입생 중 ‘빠른 98’은 재수, 삼수한 동기들을 어떻게 호칭할 것인가, 얼마나 우대해 줄 것인가의 문제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경험보다 새로운 기술의 수용이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정보화 사회에서 연장자가 가지던 경험의 가치가 줄고, 나이 든 사람이 누리는 보상의 우위 근거가 급격하게 붕괴된다. 정보화의 논리를 생각해 보면 장유유서를 대신할 세대 간 관계 윤리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기존의 세대 간 문화가 젊은 층에도 반복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의 존재를 젊은 사람들이 부담스러워하고 불편해하며, 가능한 한 나이 많은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경향이 나타난다. 지난해 개봉했던 영화 ‘인턴’은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는 다른 직업에서 이미 중역에 이르기까지 많은 경력을 쌓았고 한때 은퇴했던 70대가 30대의 열정적인 여사장을 보스로 하는 인턴으로 취업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들을 그린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영화의 배경인 미국에서도 예외적이니 너무 과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서로의 솔직한 의사소통과 상호 간의 존중을 통해 역전된 나이 차이에서도 서로 자연스럽게 도우며 일할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런 영화가 현실 속에도 가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대 간 관계를 자연스럽게 규정하는 조직 문화와 사회적 분위기 형성이 필요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동등한 인격으로 존중받고, 상호 평등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세대 간 평등한 의사소통과 상호 인격 존중에서 고령자의 일자리 창출이 좀 더 지속적으로 가능해질 것이다. 이런 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우리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어느 모임에서건 연장자라고 혼자서 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나보다 나이 어린 사람들이 지루함을 견디며 내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보자. 전체의 대화 시간에서 연장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클수록 이미 세대 간 평등한 의사소통에서 멀어지는 것이고, 그 모임에 있는 어린 사람들은 그 연장자가 어서 돈 내고 가 주기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
  • [아랍 S다이어리] 중동의 여성인권? 미혼남성도 피해자!

    [아랍 S다이어리] 중동의 여성인권? 미혼남성도 피해자!

    “여자는 들어오면 안돼요.” 무심코 들어가려 했던 샌드위치 가게 문 앞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출입을 거절 당한 적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인권 후진국이라더니 이게 말로만 듣던 여성 차별인가 싶었다. 그러나 반대로 남자라서 특히 총각이라서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 공평한 듯 불공평한 사우디의 문화는 이렇다. 커피숍, 식당, 쇼핑몰과 같이 모두가 이용하는 일부 장소들은 보통 ‘싱글즈(남성전용)’와 ‘패밀리(가족전용)’ 섹션을 나누어 남녀를 분리한다. 같은 커피숍이라 하더라도 남자와 여성을 포함한 가족(또는 여성단체)이 들어가는 문이 따로 있고 줄 서는 곳, 테이블 등의 공간을 커튼이나 파티션으로 구분해 놓는다. 어떤 장소에 패밀리 섹션이 없으면 여자는 들어갈 수 없기도 하고, 또 여자 ‘패밀리’가 없으면 이 패밀리 섹션에 남자가 들어갈 수 없기도 한다. 얼마 전 수도 리야드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여성출입을 일시적으로 금지해 이슈가 됐다. 이 매장에 남성과 여성을 갈라줄 칸막이가 무너졌는데 종교경찰이 이를 발견하고는 칸막이를 복구할 때까지 매장에 여성손님을 받지 말라고 명령했다. 매장은 곧 ‘여성은 출입금지이오니 운전기사를 통해 주문해주십시오’라는 안내문구를 문에 붙여 놓았다. 그런데 사정을 몰랐던 한 여성 고객이 이 매장을 찾았다가 자신의 트위터에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스타벅스 매장이 내가 여자라는 이유로 주문 받기를 거절했다. 남자를 대신 보내란다”라고 적어 논란을 일으켰다. 스타벅스 측은 “해당 매장은 지역 관습에 따라 싱글 남성과 가족을 따로 수용할 수 있도록 보수 중”이라며 “2주 안에 완성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KFC나 맥도날드 같은 대형 패스트푸드점이나 레스토랑 체인점도 매장을 지을 때 처음부터 인테리어에 남녀를 분리하는 이곳의 문화를 접목시킨다. 과거에 여자는 가족이 아닌 남자의 말을 듣거나 말을 섞는 것, 심지어 남자를 보는 것도 허락되지 않는 때가 있었다고 한다. 원리주의를 고수하는 일부 이슬람 학자들은 여전히 패밀리 섹션에서 조차도 남성과 여성의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패밀리 섹션에는 여성단체도 있기 때문에 미혼여성과 유부남이 한 데 있으면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남녀 공간을 분리하는 관습은 종교와는 상관없다는 시각도 있다. 대학에서 종교 교리를 가르치는 압둘 아지즈 알-카심 교수는 이슬람이 남자와 여자 사이에 사교적 상호작용을 완전히 차단하진 않는다며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와 결혼한 여성 카디자를 예로 든다. 부유한 미망인이었던 카디자는 결혼 전에 무함마드를 대상(隊商)으로 고용했다. 이는 가족이 아닌 남자와 여자 사이에 교류가 있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대다수의 보수적인 사우디 여성들의 성향도 반영됐을 것이다. 이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르는 벽이 없는 매장을 기피한다. 민웨르 알 무한나는 “파티션 뒤에서 여자들이 히잡을 벗고 식사를 하는데, 밥 먹는 모습을 보이는 걸 꺼리는 여자들이 있다. 개인마다 다른데 우리 가족만해도 어머니와 누나는 파티션이 없어도 신경 쓰지 않지만 여동생은 많이 불편해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자와 여자를 차별하는 문화로 인해 가장 피해를 받는 건 미혼남성들이다. 미혼 남성인 민웨르는 “쇼핑몰 10곳 중 8곳은 여자 가족이 없으면 마음대로 갈 수가 없으니 불편하다”고 했다. 한국사회라면야 쇼핑몰이 아니더라도 갈 데가 많지만 영화관 하나 없는 이곳은 주말에 놀러 갈 거의 유일한 장소가 바로 쇼핑몰이다. . 젊은 남성들은 주말에 쇼핑몰에 들어가기 위해 여자 친척들에게 부탁하는 경우도 많지만 모르는 여자들에게 친척인 것처럼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대가로 100리얄(약 3만원)을 지불하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돈을 떼이는 경우도 있는데 쇼핑몰 게이트 앞에서 여자가 돈을 받고는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버리면 남자는 밖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미혼남성들을 딱하게 여기는 기혼남성들이 가족인 것처럼 해서 쇼핑몰 안으로 들어가게 도와주기도 한다. 사회학자인 마데하 알-아즈루시는 이와 관련한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총각은 범죄자가 아니다”라며 사회공동체의 다른 섹션으로부터 미혼남성들이 배제되는 방식을 비판했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녀 공간 분리 덕에 젊은 남자들이 가족과 소녀들을 귀찮게 구는 것을 막는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소년들에게 사람들을 존경하고 잘 행동하도록 오래 전부터 가르쳤다면 우리는 소년들이 패밀리 섹션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규칙을 만들진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특정 성이나 결혼한 사람들을 위한 규칙이 아니라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부적절한 행동을 규제하는 규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메카지역 주지사 칼리드 알-파이살 왕자는 최근 청년들이 쇼핑몰과 마켓에 들어갈 수 있게 허락했다. 학교가 봄방학으로 문을 닫는 동안 하야 제다 쇼핑과 유산 축제가 시작하기 때문에 갈 곳 없는 청년들을 구제해준 것이다. 그러나 칼리드 왕자는 경호업체들이 충분한 인력을 제공하여 가족이나 여성들이 이들로 인해 성가신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누가 사우디에서 여성 인권이 낮다 하였나.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 총각들의 인권이 더 낮아 보인다. 글·사진 윤나래 중동 통신원 ekfzhawoddl@gmail.com
  • ‘필리버스터’ 막전막후…도대체 무슨 말을 ‘뭘 가지고’ 그렇게 오래 했나

    ‘필리버스터’ 막전막후…도대체 무슨 말을 ‘뭘 가지고’ 그렇게 오래 했나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테러방지법)’ 제정안을 막기 위해 야당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 돌입해 이틀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무제한 토론은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뒤 처음 시행되는 것인 데다 ‘필리버스터’에 관한 기록은 주로 1960년대에 머물러 있었다. 그만큼 최근 헌정사에선 유례가 없던 장시간의 필리버스터 행사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이 ‘테러방지법’을 직권상정하면서 야당이 무제한 토론을 벌이기로 급히 결정된 데 비해 의원들이 최장시간의 기록을 거듭 깨면서 발언을 이어가고 있어 이들에게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도대체 5시간, 10시간 동안 한 자리에 서서 어떻게 발언을 이어갈 수 있는 걸까.   무제한 토론의 ‘첫 타자’로 나선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대로 된 준비 시간을 갖지 못하고 단상에 올랐다. 23일 더민주가 정 의장에게 필리버스터 요구를 제출한 것이 오후 3시 45분쯤이고 김 의원이 발언을 시작한 것은 오후 7시 6분이다.  더민주 의원총회에서 테러방지법 직권상정에 맞서 무제한 토론에 돌입하기로 결정됐는데, 김 의원은 이 때 “내가 먼저 해야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테러방지법을 심의해왔기 때문이다. 가장 젊은 의원인 점도 어느 정도 염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 타자 김광진 의원, 지역구 있던 보좌진이 ‘카톡’으로…  김 의원이 첫 번째 필리버스터 주자로 결정되자 의원실은 분주해졌다. 의원실에는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비서관 1명만 자리를 지킨 상태였고 나머지 보좌진들은 20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전남 순천·곡성 지역에 있었다. 급히 자료가 필요하다는 김 의원의 연락에 보좌관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파일을 전부 의원실에 있는 비서관에게 보냈다. 그럼 비서관이 그 파일을 열어 인쇄를 한 뒤 김 의원에게 전달했다. 그동안 상임위나 대정부질문을 위해 모아두었던 자료가 총동원됐고, 국회도서관에서 빌린 책도 모두 모았다. 그러나 김 의원은 발언 내내 A4 용지로 된 자료만 넘겼다.  단상에 가지고 간 자료의 목록을 달라고 하자 김 의원의 보좌관은 “너무 많아서 정리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이날 무제한 토론을 통해 테러방지법이 제정되지 않아도 현행 제도에도 대(對) 테러활동지침이 마련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발언을 이어갔다. 바로 대통령훈령 제47조인 ‘국가 대테러활동 지침’을 근거로 들면서다. 이 훈령은 1970년대 만들어진 것으로 대통령 산하에 테러대책기구를 두게 돼 있다. 김 의원은 테러방지법에서는 국무총리가 의장을 맡는 테러대책기구를 두게 한다는 점을 꼬집었고, “아마 (대테러활동 지침의 내용을) 대통령도 몰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토론 초반에 이 대테러활동 지침의 모든 조항을 낱낱이 또박또박 읽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테러가 발생할 경우 각 부처·기관별로 어떻게 기능을 하게 되어있는지를 일일이 설명했다.   이후에 참고한 자료들은 김 의원이 평소에 상임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축적한 것들이라고 한다. 김 의원은 국방위원회에서 줄곧 활동했고 정보위 법안심사소위원으로 테러방지법을 직접 다뤘다. 발언이 마무리 될수록 테러방지법 제정안의 각 조항을 조목조목 따지며 수정·보안되어야 할 내용을 설명하기도 했다.   오후 7시 6분부터 24일 오전 12시 39분까지 김 의원은 총 5시간 33분 동안 발언했다. 이는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준연 의원의 구속 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기록을 깬 것이다. 김 의원은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그 긴 시간동안 반대토론을 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같이 고민해 달라”고 호소했다.   발언을 마치고 나온 김 의원은 바나나를 먹은 것으로 알려졌다. 본회의장 앞에서 일부 기자들과 만나 발언에 나섰던 소회를 밝힌 뒤 다시 본회의장으로 들어와 더민주 두 번째 주자인 은수미 의원에게 준비사항을 일렀다. 24일 김 의원은 출마예정지인 전남 순천 지역으로 이동해 출근길 인사를 마쳤고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예비후보로서의 선거운동을 곧바로 이어갔다.  ●10시간 발언 은수미 의원 SNS에 SOS… “긴급 부탁”  본회의 ‘최장 발언’이라는 기록을 단 번에 깬 김 의원 다음으로 나선다면 더욱 부담이 컸을 듯 하다. 전체 야당 의원 가운데 세 번째, 더민주에선 두 번째 주자로 무제한 토론에 나선 은수미 의원은 무려 10시간 18분 동안 밤샘 토론을 했다. 24일 오전 2시 30분부터 오후 12시 48분까지다. 이는 ‘상임위 최장 발언’ 기록으로 남아있던 지난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 국민투표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10시간 15분 동안 반대토론을 한 것을 깬 기록이다.   은 의원이 들고 올라간 자료는 주로 시민단체들의 테러방지법에 대한 의견서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은 의원은 자료를 읽는 모습 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더 주력했다. 발언 초반부터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설명하면서 그 과정에서 국정원(과거 안전기획부)가 어떻게 권한을 남용했는지 역설했다. 은 의원은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노동운동을 시작해 1992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으로 검거돼 6년간 복역했다. 당시 국가안전기획부 분실에서 고문당했고, 고문후유증으로 폐렴과 폐결핵, 종양 등 여러 질환을 앓았고 큰 수술도 두 차례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 의원은 또 10시간여 동안 발언을 한 뒤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연설을 인용하며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섭니다. 그게 참된 용기입니다”라고 말하며 울먹이기도 했다. 은 의원 측 관계자는 “앞서 김 의원이 테러방지법의 문제점을 잘 이야기하셨기 때문에 은 의원은 국정위의 인권 유린 및 침해 우려를 중심으로 하자는 콘셉트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은 의원은 특히 일찌감치 SNS에 힘을 보태줄 것을 당부했다. 전날 오후 7시 4분 페이스북을 통해 “긴급 부탁. 자료를 올려 주십시오. 준비할 시간 없이 필리버스터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면서 “여기에 올라온 내용을 받아 국민의 의견으로 발표하겠습니다. 같이 밤을 샌다 생각해 주셔요”라는 글을 올렸다.  이후 은 의원은 이와 관련, 토론을 마친 뒤 “댓글이 도움이 도움이 됐다”면서 “헌법 조문과 비교해서 테러방지법이 헌법이나 인권과 무관한 조치라는 이야기를 꼭 해달라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래서 헌법 이야기도 하고 정치가 얼마나 올바라야 하는지, 테러방지법이 왜 문제인지 등을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은 의원은 ‘10시간여 발언’에 대해 “힘들었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온 몸이 아팠다”면서 “(제가) 그렇게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버틸 수 있을까 고민도 했었는데 버티게 되더라 다행히”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시간 연설을 위해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했다고 밝혔다. “아무 것도 안 마시고 수분을 뺀 상태”라고 덧붙였다. 결국 은 의원은 10시간 18분의 발언을 마무리하며 눈물을 쏟았다. ●박원석 의원 “10시간 동안 꼼짝 못 해” 본회의장에서 ‘공부’   최장 기록이 모두 경신된 뒤 나선 주자는 박원석 정의당 의원이었다. 세 명의 의원이 17시간 동안 토론을 펼치는 것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준비를 했을까.  다른 의원들의 지쳐가는 모습을 보며 쪽잠을 자거나 끼니를 채우고 싶지는 않았을까. 그러나 박 의원은 10시간 동안 본회의장에서 “꼼짝도 못했다”. 은 의원이 무제한 토론에 들어간 뒤 30분쯤 뒤부터 자리를 지켰다. 이유는 “언제 끝날지 몰라서”였다는 게 보좌진의 설명이다. “앞 순서 의원이 발언을 모두 마친 뒤 박 의원을 찾았는데 만약에 자리에 없으면 바로 다음 의원으로 순서가 넘어간다”면서 “언제 부를지 모르니 본회의장에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는 것이다. 앞서 의원들의 토론을 지켜보며 미리 준비한 것은 ‘운동화’ 뿐이었다. 은 의원도 이날 운동화를 신었다.   박 의원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을 해왔기 때문에 테러방지법을 직접 심의할 일은 없었다. 때문에 의원실에서도 테러방지법에 대한 ‘전문가’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박 의원이 몸 담고 있던 참여연대에서 지난 2001년부터 테러방지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온 만큼 박 의원 역시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보좌관은 “우리가 직접 작성해 드린 자료는 없다”면서 각종 자료를 들고 박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간 뒤 한참 뒤에 “마킹(표시)할 것 좀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자료는 주로 민변, 대한변협 및 법학 관련 교수 등 전문가 그룹에서 작성한 의견서 등의 자료를 추천 받았고, 국정원 및 정보기관의 문제점을 다룬 책 5권을 가지고 들어갔다. 또 최근 미국 대선의 쟁점으로까지 부상한 ‘애플’사의 ‘아이폰 잠금해제 불가 방침’과 관련된 자료들도 포함됐다. 박 의원은 토론에 들어가기 전 “한 두시간 만에 끝내면 안 되지 않겠느냐”면서 “하는 데까지 해보겠다”고 밝혔다고 한다. 그는 현재 세 시간 이상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편, 전날 밤 트위터 등을 중심으로 한 때 “박원석 의원이 무제한 토론을 대비해 ‘요실금 팬티’를 준비했다”는 메시지가 확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의원 측 보좌관은 “왜 그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진작 그런 게 있는 걸 알았다면 미리 준비했을 텐데 안타깝다”며 웃어 보였다.   다음은 야당 의원들의 주요 자료 목록.   ●김광진 의원  -대통령훈령 제47조 (국가 대테러활동 지침) -테러방지법 제정안 전문 -테러방지법 관련 상임위 및 대정부질문 자료 (너무 방대해서 열거 불가능)  -관련 서적   ●은수미 의원  -‘북한의 대남테러 준비’ 국정원 보고 미덥지 않은 4가지 이유 (참여연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테러방지법 관련 법률 의견서  -‘진보넷 정보운동’ 테러방지법·사이버테러방지법 의견서  -테러방지법·사이버테러방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각계 전문가들의 칼럼  -2014년 테러방지법 토론회 자료집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자료  -국정원의 잘못된 과거사 관련 자료들   ●박원석 의원  -헌법 전문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비상사태 선언에 대한 특별담화문 -민변,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전문가 모임과 시민사회단체의 테러방지법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 발제문  -국가정보원발전위원회 보고서  -정의당 국가정보원법 전면개정안 -애플 ‘아이폰’의 잠금해제 논란을 통해 본 정보기관의 수사편의성과 시민의 자유에 대한 전문가 의견서 -애플 팀 쿡 CEO가 고객들에게 주는 편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논문 ‘박근혜 정권의 국정원 정치’  -국정원 진실위 보고서 -단행본 ‘조작된 공포 :세계 정보기관의 진실’ (전세계 정보기관의 부적절 행위를 다룬 해외번역서)  -단행본 ‘미국을 발칵 뒤집은 판결 31’ -단행본 ‘간첩의 탄생’ (유우성 간첩 조작사건 관련 참고 서적)  -단행본 ‘No Place to hide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미국의 ‘스노든 사건’을 취재한 전직 가디언 기자가 쓴 책)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In&Out] 선수생활 은퇴하고 나면 뭐하고 살지?/김종성 운동학습병행전문컨설턴트·사회학 박사

    [In&Out] 선수생활 은퇴하고 나면 뭐하고 살지?/김종성 운동학습병행전문컨설턴트·사회학 박사

    지난 1년간 장미란재단에서 70여명의 청소년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운동학습병행컨설팅을 진행했다. 운동학습병행컨설팅은 운동과 학습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청소년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성격 유형별로 효과적인 학습법과 시간관리에 관한 상담을 제공해 주는 전문 컨설팅이다. 컨설팅을 수행하면서 한 가지 놀라웠던 점은 컨설팅에 참여한 대부분의 학생들 고민이 ‘어떻게 하면 공부와 운동을 잘할 수 있을까’보다는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였다. 청소년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진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왜 청소년 운동선수들은 제대로 된 진로상담을 받아 본 적이 없을까. 학교 선생님들은 청소년 운동선수들이 학교 수업시간에 잠을 자도 ‘운동하는 학생이니까’, 운동을 그만둘까 고민을 해도 ‘운동하고 잘하고 있는데 뭐’라는 인식 때문에 학교의 진로상담 대상에서 항상 뒷전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나 본 청소년 운동선수들은 현재 운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을 평생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에 대한 자기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특정한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진지한 고민도 부재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어떤 직업이 있고, 그 직업을 갖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는지, 이런 직업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적인 진로교육을 접한 적도 접할 기회도 전무했다. 이러한 상황은 대학생, 성인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국가대표 선수를 포함한 체육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앞으로 뭐하고 살까’에 대한 고민은 다들 가지고 있다. 대학교에서 체육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진로, 취업 교육이 이루어지는 게 당연하지만, ‘다른 선수들이 열심히 운동하는 것에 방해’가 된다는 교수님의 말씀에 체육전공 학생들을 위한 전문취업센터 설립과 전문 상담은 이루어지기 힘들다. 고등학생 운동선수가 컨설팅 도중 했던 한마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운동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면 바로 인생의 막장으로 떨어진다고 우리들끼리 농담 삼아 자주 이야기한다”는 말이다. 이는 청소년 운동선수가 ‘진로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가 성인이 된 후 ‘고용 서비스의 사각지대’로 전환되는 상황을 쉽게 표현해 주는 말인 듯하다. 현재 정부의 은퇴 선수들에 대한 취업 및 진로 지원은 대한체육회와 체육인재육성재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여러 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대한체육회의 은퇴 선수 지원 대상은 20세 이상이 돼야만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초·중·고등학교 학생 등 10대에 은퇴한 선수들은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전체 은퇴 선수들의 데이터베이스(DB) 구축이 부재하기 때문에 10대에 은퇴하는 선수들의 경우는 소재 파악조차 불분명한 실정이다. 2014년 대한체육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04~2013년) 48만 2302명이 은퇴를 했으며, 작년 한 해만 해도 실업팀 진출 좌절, 부상, 조기 은퇴 등으로 4만 3637명이 선수생활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수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기초적인 통계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다. 청소년 운동선수들이 성인이 된 후 선수생활을 마감한 이후 자연스럽게 노동시장으로 진입할 수 있는 어릴 적부터의 체계적인 진로·취업 교육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 운동선수들의 정확한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기초적인 조사와 함께 청소년 운동선수들이 어떤 직업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적합 직종 발굴, 이에 대한 전문적인 진로 컨설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서울교육청, 과도한 두발규제 등 ‘불량학칙’ 정비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중·고등학교의 과도한 복장·두발 규제와 강제 자율학습 규정 등 학생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큰 이른바 ‘불량학칙’을 대대적으로 정비한다.  교육청의 인권정책 심의기구가 학생인권 보호 강화를 위해 조희연 교육감에게 학교생활 규정 전반을 정비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학생인권위원회가 초·중·고교의 학칙 등 다양한 규정들이 더욱 인권 친화적이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바뀌도록 지도·감독을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고 23일 밝혔다.  학생인권위원회는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를 위원장으로,시민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하는 서울교육청의 인권정책 심의기구다.  위원회는 권고문에서 “학교의 규칙·규정을 이용한 학생인권 침해가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작년 말 학생인권단체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가 공개한 불량학칙 사례들을 예로 들었다.  서울 지역 중·고교의 경우 두발·복장규제,강제 자율학습,학교행사 참여 제한,학생의 물품 압수·폐기,처벌 시 이의제기 불가,학생의 학칙 재개정 과정 참여 제한,이성 간 대화 및 접촉 불가 등이 대표적인 ‘불량학칙’ 사례로 꼽혔다.  현행 학교생활규정은 학생의 권리보장을 명시하기보다 통제와 제한의 내용으로 더 많이 채워져 있어 인권침해 소지가 크고,여전히 학교 현장에 구시대적인 폐단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학생인권위원회의 판단이다.  교육청은 이런 권고에 따라 새 학기가 시작되면 중·고교 전체를 대상으로 불량학칙 점검에 나설 방침이다.  이미 ‘학교생활규정 제·개정 컨설팅단’을 꾸려 불량학칙과 관련된 기초자료와 제보 등을 수집하고 있다.  교육청 윤명화 학생인권옹호관은 “중·고교의 일부 불량학칙들을 인권 친화적이고 민주적인 규정들로 바꿔나가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굴러온 돈의 횡포…뜨는 동네의 눈물

    굴러온 돈의 횡포…뜨는 동네의 눈물

    뜨는 동네의 딜레마, 젠트리피케이션/DW 깁슨 지음/김하현 옮김/눌와 출판/408쪽/1만 8000원 어느 시골에서 상경한 듯한 가족. 삽과 곡괭이가 가장의 머리맡에 놓여 있고, 어린아이는 아버지 옆에, 임신한 아내는 남편의 아랫배에 머리를 대고 곤히 공사장에서 잠들어 있다. 잠자는 가족의 모습 뒤로는 폐허가 된 도시가 있고, 귀퉁이 한쪽 논밭에서는 어린애를 업은 채 논일을 하는 아낙네가 보인다. 임옥상 화백의 회화 ‘행복의 모습’(1983)은 역설적이다.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피곤에 찌들어 잠든 가족의 모습을 행복의 한 장면으로 꼽는다. 행복하기보다는 상실감과 인간 소외가 느껴지는 그 그림 속 여인의 배는 불러 있다. 그럼에도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학자 우석영은 신간 ‘철학이 있는 도시’(궁리)에서 이 그림을 가리켜 “논밭이라는 농촌공동체의 토대는 이제 변두리 공간으로 밀려나고 중심 공간은 난개발이 일어나는 도시 공간으로 한국의 대도시 이주민 집단 전체의 알레고리로 봐야 한다”고 분석한다. 장면을 바꿔 보자. 2013년 뉴욕 시장에 당선된 빌 더블라지오는 “우리는 거대 개발업자들에게 더 저렴한 주택을 지으라고 요구하고, 동네 병원을 럭셔리한 콘도로 바꾸지 말라고 항의한다”며 “이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며 이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동네에서 매일매일 건강하게 일하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공약했다. 뉴욕은 월가뿐 아니라 도시 전체가 마치 자본주의의 ‘견고한 성채’ 같다. 거대한 자본들이 뉴욕으로 몰려들었고, 낡은 집들을 허문 자리에는 새 건물과 멋진 상점, 카페들이 들어선다. 집값과 임대료가 치솟고,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과 상인들은 변두리로 밀려나고 만다. 바로 한국의 홍대, 성수동, 이태원, 경리단길, 가로수길 등 ‘뜨는 동네들’에서 건물주의 갑질과 맞물려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 등이 쫓겨나는 현상)이다. 뉴욕과 서울은 이 점에서 쌍둥이처럼 닮아 있다. 이 책의 저자는 20여년 전만 해도 소득이 낮은 유색 인종과 이민자들이 거주하던 지역에서 소위 쿨한 동네로 떠오른 뉴욕 브루클린에 사는 수십명의 사람들을 만나 젠트리피케이션의 생생한 현장을 포착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누구에게는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긍정적 일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정든 삶의 터전을 떠나게 만드는 자본의 횡포가 되고 있다. 저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그 폭력성을 뚜렷하게 드러내지 않는다”며 “총알이나 칼날보다는 한 건물 한 건물씩 서서히 퍼져 나가는 유독한 일산화탄소 가스와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낸다. 브루클린의 부동산 업자인 트칼라 키튼은 “브루클린이 개발돼서 쫓겨난 사람이 몇 명이나 있습니까? 있어도 그건 쫓겨난 게 아니었어요”라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옹호한다. 주택 임대업자는 “피땀 흘리지 않고 번 돈이 단 1달러도 없다”고 강변하고,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젠트리피케이션은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5대째 브루클린에 살고 있는 토박이 주민 샤이타 스트로더는 “새로 온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건축가 기타 난단은 “주민에게 필요 없는 가게가 들어오는 건 젠트리피케이션의 전형”이라고 반론한다. 딜런 고티에 뉴욕시립대 교수는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빨리 알아차리자”고 역설한다. 한 미술품 중개인은 “임대료가 터무니없이 비싸져서 아예 뉴욕을 떠나버리기 전까지 예술가들은 얼마나 더 변두리를 전전해야 할까요”라고 반문한다. 뉴욕을 서울로 바꿔 읽으면 홍대에 있던 예술가들이 치솟는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쫓겨나는 현상과 다를 바 없다. 저자 역시 명쾌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하지만 결론만큼은 단호하다. 개발업자뿐 아니라 동네 토박이들조차 땅을 상품으로만 여기고 젠트피케이션의 개발 신화에 젖어 있다는 비판이다.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은 자본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 간의 상호 작용이라는 저자의 인식이 전환적 출발점이 되지 않을까.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토닥토닥 힘내” 낯선 이의 위로, 읽는 이의 힐링

    “토닥토닥 힘내” 낯선 이의 위로, 읽는 이의 힐링

    위로를 해 주기도, 위로를 받기도 힘든 세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경쟁 상대요, 지친 사람들이다. 학업 성적을 놓고 예민해져 있는 친구들, 승진으로 경쟁하는 직장 동료들, 팍팍한 살림살이에 아이 키우느라 힘든 아내와 남편들. 하지만 이럴수록 짧은 위로 한마디가 절실해진다. 다행히 사람들이 낯선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음이 담긴 위로를 전하는데,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친 삶을 보듬어 줄, 바로 그 ‘위로 한마디’를 들려주는 힐링의 공간들로 떠나 봤다. 지난 3일 저녁 지하철 4호선 이수역 부근의 작은 공간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뜻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한 평(3.3㎡) 정도의 공간에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여대생 이모(21)씨가 쭈뼛쭈뼛 들어와 앉더니 펜을 들었다. 이씨는 ‘오늘도 두렵고 힘든 하루를 버텨 낸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낸 것만 같아도 당신이 주인공인 이야기의 내용은 정말 멋졌어요’라고 적었다. 그는 금방 적은 이 엽서를 놓아 두고 앞서 다른 사람이 먼저 써 둔 엽서를 들고 자리를 떴다. 5분쯤 지나자 30대 남성이 들어와 엽서에 글을 적은 뒤 앞서 이씨가 남겨 둔 엽서를 들고 갔다. ‘쌈드림’으로 불리는 이곳의 주인 최현우(31)씨는 “4년째 응원 엽서 릴레이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 낯선 사람에게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5000여명 정도 된다”며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각박한 세상에 다른 사람과 나누는 위로 한 줄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2013년에 우리 쌈드림을 찾은 30대 트랜스젠더 여성은 ‘당신은 존재만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누군가의 엽서를 마주하고 30분간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더군요. 부모도 모른 채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보육교사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더군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로해 준 게 처음이라고 했어요.” 7년째 고시공부를 하던 남학생은 ‘할 수 있다’는 네 글자가 적힌 엽서를 들고 힘을 얻었다. 대학생 딸과 산책을 하던 엄마는 ‘당신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부드럽고 넓은 존재’라는 글귀로 누군가에게 힘을 주었다. 최씨의 당초 구상은 대입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 지친 노량진 수험생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30대만 참여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70대 남성도 “노인정에서 자식 문제로 힘들어하는 다른 노인이 생각난다”며 글을 남겼고, 초등학생도 이곳을 찾아 “잘될 거야”라는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1200여장의 엽서를 복사해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당역, 이수역, 여의도 한강공원 등을 순회하고 오는 4월에는 청계천에도 쌈드림을 설치할 생각이다. 최씨는 자신이 수집한 위로 문구 중 가장 감동적인 것들은 빔프로젝터로 건물 외벽에 비춰 준다. 그는 ‘응원의 벽’이라고 이름 붙였다. ‘당신으로 인해 행복이 시작되었고 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힘내’ 등 그다지 특별한 문구들은 아니다. 하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동작구와 함께 지난해 11월 동작구의회 건물 외벽에 문구들을 띄웠고, 지난 3일에는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안에도 선을 보였다. 경복궁역에서 위로 문구들을 봤다는 직장인 김모(44)씨는 “20년 넘게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따뜻한 위로의 글을 보기는 처음”이라며 “거창한 문장이 아니어서 더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이 써 놓은 글귀를 통해 위로를 받는 공간은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음이 울적해지면 마포대교를 찾는다는 이모(40)씨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가드레일에 적어 놓은 것인데 고민이 있을 때 읽으며 건너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조금 늦는다고 속상해하지 마’, ‘‘인생의 정답이란… 없습니다’ 같은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위로 문구를 담아 시청 건물 정면에 내거는 대형 간판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관광 가이드에게 의미를 물어보며 사진을 찍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토닥토닥’이라는 문구에 이어 현재는 ‘올해는 당신입니다’라는 글귀가 내걸려 있다. 직장인 최모(47)씨는 “대학 시절 도서관이나 화장실에 적혀 있던 위로의 낙서 문구들이 떠오른다”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관악구도 2011년부터 지금까지 25편의 위로 문구를 게시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시인 도종환), ‘태양에 임자 있나요. 가슴에 품은 사람이 임자지요’(소설가 이외수),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시인 최영미) 등이다. 올해에는 시인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를 붙였다. 벽화마을에서도 좋은 문구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벽화에는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길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이라는 문구가 예쁜 꽃과 함께 적혀 있다. 직장인 김모(29·여)씨는 “지난해 갔던 전주 한옥마을의 한 카페 앞에서 ‘당신이 날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옥상에서’라는 문구를 보았다”며 “옆에 있는 종이비행기 그림과 함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젊은이들이 주로 가입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 ‘어라운드’의 진화는 온라인의 ‘위로 열풍’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된 경우다. 100만명 이상이 가입했고, 익명으로 짧은 글을 공유하되 악플이 아닌 선한 내용으로 소통하는 게 이 앱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달콤쪽지’라는 코너가 있다. 짧은 응원글을 적은 메모지를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전동차 내부,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 공공장소에 붙여 놓는 식이다. 메모지에 달콤쪽지라는 문구와 함께 붙인 날짜와 시간, 내용을 넣는다. 지난 3일 오전 5시 20분 한 버스 안에 붙은 달콤쪽지에는 ‘널 위한 하루야 힘내! 그리고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수도권에서 출발해 전국으로 퍼졌다. 위로를 받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지하철역 및 대학교 사물함을 빌려 위로 문구와 함께 과자나 초콜릿 등을 놓아 둔 뒤 비밀번호를 앱에서 공유하는 ‘달콤창고’도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달콤쪽지를 붙인다는 김민정(24·여)씨는 “쪽지를 붙인 후 다음날 쪽지가 없어진 것을 보면 나 자신이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위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익명성을 전제로 한 단순한 글귀라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데 큰 효과를 낸다”며 “‘너 얼마나 힘들었니’ 같은 말은 언뜻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실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울림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위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설명하기에 앞서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며 “키워드 중심의 핵심적이고 쉬운 내용들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하지만 위로마저 가장 가까운 가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익명의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오늘의 눈] ‘위험 사회’와 인공지능, 그리고 불안감/오상도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위험 사회’와 인공지능, 그리고 불안감/오상도 국제부 기자

    지난해 타계한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한국 사회에 남다른 메시지를 던졌다. 그가 창시한 ‘위험사회론’은 세월호 참사 이후 언제 어디서 어떤 대형사고가 터질지 몰라 불안에 떠는 한국인의 뇌리에 다시금 되새김질됐다. 제대로 된 일자리를 잡고, 먹고살기조차 힘든 우리 사회에서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2008년 3월 방한했던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한국 사회를 “극단적 압축 성장에 따라 더 위험이 고조된 사회”라고 평가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걸 금세 깨닫게 된다. 생태적 재앙, 핵위기, 실업과 금융대란, 환경파괴는 물론 메르스와 같은 전염병이 거의 매년 번갈아 우리 주위를 맴돌다 사라진 탓이다. 이처럼 위험이 반복해 재생산되는 가운데 우리 사회의 위험에 대한 자각은 점차 무뎌져 왔다. 이미 이 위험의 실체가 우리의 손을 떠나 탈국가화된 가운데 막연한 불안감만 확산됐을 뿐이다. 산업화·근대화가 가져온 기술발달과 물질적 풍요는 여기에 기름을 붓고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전미과학진흥협회(AAAS) 회의에선 인공지능(AI)과 로봇이 화두였다. 라이스대학의 모셰 바르디 교수는 “기계가 모든 면에서 인간을 능가하고 대신하는 시대가 오면서 사람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졌다. 인공지능이 학문의 영역에서 실생활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인간의 지위는 위협받고 있다. 불안감도 잔뜩 고조된 상태다. 일부 컴퓨터는 이미 인간처럼 보고 듣기 시작했으며 시스템 스스로 움직이고 작동하기도 한다. AI를 탑재한 자율주행자동차는 앞으로 25년 안에 도로를 점령할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바둑계의 이세돌 9단은 1000년간의 기보를 탑재한 AI 프로그램 알파고와 조만간 대국할 예정이다. 또 반도체 공장의 라인 오퍼레이터들은 차츰 기계에 밀려 공정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일부 경제지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분석해 단 0.3초 만에 시황 기사를 오타 없이 객관적으로 생산하는 AI를 운용 중이라고 한다. 이 같은 4차 산업혁명은 수많은 일자리를 앗아 가며 대량 실업을 몰고 올 것이란 불안감만 키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물결을 가장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누구일까. 단연 위정자(爲政者)가 아닐까 싶다. 300명 가까운 여의도의 국회의원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간단히 구현될 직접 민주주의의 첫 제물이 될 것이다. 정파의 이해관계에 밀려 ‘왜곡된’ 간접 민주주의를 행하던 의원들은 백수로 전락할 전망이다.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지도자들 또한 마찬가지다. 최근 정가는 위안부 협상과 개성공단 중단, 사드 배치 등으로 시끌벅적하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떠나 합리적이고 타당한 의사결정 과정이 드러나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못하다. ‘도덕성’과 ‘윤리’는 아직까지 사람만이 지닌, 기계가 인간을 넘보지 못하는 고유의 영역이라고 한다. 이 고유의 영역을 십분 활용해 ‘기계적’ 판단을 벗어나는 위정자들을 기대해 본다. sdoh@seoul.co.kr
  • 당신이 오카야마에 간다면

    당신이 오카야마에 간다면

    그러니까 이 모든 건 다 기차 때문이다. 일본 기차 여행이 편리한 건 여행 좀 해본 사람이면 다 아는 사실이라지만,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200km 넘게 떨어진 오카야마가 이렇게 쉽게 연결될 줄은 몰랐다. 꼭 가야 할 곳이라며 기나긴 리스트를 작성하지 않아도 좋은 동네. 느긋한 오카야마로의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This stop is Okayama첫 번째 역오카야마岡山 청명함, 단출함 그리고 느긋함 오카야마는 오사카와 히로시마 사이 세토내해와 접해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 간사이 지방, 서쪽으로 히로시마와 규슈, 남쪽으로 시코쿠를 연결하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이곳은 예로부터 교통과 물류의 요지였다. 게다가 일조량이 풍부하고 기후가 온난해 땅과 바다에서 거둬들인 수확도 풍부했다. 스스로를 청명한 고장이라 칭하는 이곳은 이름처럼 자연과 더불어 느리고 풍요롭게 발전해 온 지방이다. 그러한 오카야마로 최근 외국 여행자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어디로 발길을 돌려도 좋은 그 느긋함을 찾아서다. 오카야마시는 오카야마현의 최대 도시지만 도심 풍경은 단출하다. 서쪽 오카야마 기차역에서 동쪽으로 30여분 거리 안에 오카야마의 자부심인 오카야마성과 일본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고라쿠엔을 비롯해 다수의 미술관과 심포니홀 등 문화 공간이 흩어져 있다. 먼저 도착한 곳은 오카야마성. 영주 우키타 히데이에에 의해 1597년에 완성된 오카야마성은 아사히강을 해자처럼 두르고 솟아 있다. 본래 흐르던 강의 줄기를 바꿔 지금처럼 성을 휘돌아 나가게 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영주의 권위와 힘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키다 나오이에부터 이케다 아키마사까지 총 14명의 영주가 280년에 걸쳐 성의 주인으로서 이 지역을 관할했다. 성에서 가장 높은 6층 천수각에 올라 보면 그들이 조망하려 했던 풍광이 어떤 것이었는지 짐작 가능하다. 내부에는 이케다 가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일본의 성 중 드물게 검은색을 띄고 있어 우조, 까마귀 성이라는 별명도 얻은 이곳은 1945년 세계대전 중 소실되었고, 1966년 복원해 현재 오카야마시가 관할하고 있다. 오카야마성에서 쯔루미 다리를 건너면 고라쿠엔으로 이어진다. 이바라키현의 가이라쿠엔, 이시카와현의 겐로쿠엔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정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미슐랭 가이드는 음식과 관련한 레드 가이드 외에 여행 정보를 평가하는 그린 가이드도 펴내는데, 레드와 동일하게 그린 역시 별 3개를 최고점으로 친다. 고라쿠엔은 이 그린 가이드에서 당당하게 별 3개를 받은 곳이다. 과거 영주가 찾으면 기거하는 곳이었다던 엔요테이 안쪽의 가쿠메이칸. 다다미로 칸칸이 이어진 내부의 나무문을 열어젖히니 고라쿠엔의 풍광이 바람처럼 왈칵 밀려들어온다. 나무와 물과 바람과 하늘, 자연의 조화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감탄하고 있는데 거짓말처럼 두루미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아간다. 고라쿠엔의 홍보담당자 미카 사카모토씨에 의하면 고라쿠엔에는 현재 8마리의 두루미가 있는데, 이들은 매일 산책길을 걷는 등 일정한 훈련을 받고 있단다. 4마리는 아직 초보이고 훈련이 잘 된 4마리가 시간에 맞춰 공원을 우아한 몸짓으로 날아다닌다는 것. 3대 정원의 명성은 거저 얻은 게 아니었다. 약 14만2,000m2의 이 드넓은 정원은 봄의 벚꽃과 매화부터 여름의 꽃창포와 차나무,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까지 계절을 눈으로 맛볼 수 있다. 어디를 걸어도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 드는 고라쿠엔에서 가장 좋은 뷰포인트를 꼽자면 단연 니시키가오카 언덕이다. 6m 가량 올라온 인공 언덕인데 시선을 가리는 건물이 하나도 없으니 내려다보는 전망이 고층 전망대 못지않다. ▶inside Okayama 모모타로의 전설일본 전역에서 통용되는 동화 같은 설화 모모타로 이야기가 이곳 오카야마에선 특히 자주 등장한다. 모모타로가 구술 전술된 이야기기에 이곳과 관련 있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으나 오카야마가 복숭아의 고장이란 점, 유난히 물이 맑고 청명한 지역이라는 것 때문에 자연스럽게 오카야마의 상징이 되었다. 오카야마 서쪽 외곽에는 모모타로 전설의 근원으로 여겨지는 일본의 고대 왕족을 모신다는 기비츠신사도 있다. 도시 곳곳에서 모모타로의 동상과 그림을 볼 수 있으며, 특히 시내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맨홀 위의 모모타로가 앙증맞다. 명물 전차 오카덴 오카야마시에선 이곳의 명물 노면전차 오카덴을 타 보자. 오카야마성과 고라쿠엔에 가려면 오카야마 기차역에서 출발해 시로시타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약 5분 남짓 소요된다. 요즘 일본에서 전차의 부활이 유행인데, 오카야마는 비록 운행 구간이 축소되긴 했지만 한 번도 명맥이 끊어지지 않고 100년을 이어 왔다. 전차의 부활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회학자들은 주민의 평균 연령이 높아지는 것에서 찾는다. 장년층이 속도 위주의 지하철보다 전차를 훨씬 편안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쇼핑은 이온몰 일본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대형 쇼핑몰 이온몰. 2014년 오카야마시에 개관했는데 기차역에서 도보 3분이라는 초중심지에 들어선 것이 특징이다. 지하 2층에서 7층까지 도심 속 쇼핑몰로는 꽤 큰 규모인데 패션부터 리빙, 갤러리, 다이닝까지 입점 점포도 훌륭하다. 특히 1층에 질 좋은 슈퍼마켓을 전면 배치했는데 시민은 물론이고 여행자가 이용하기에게도 더할 나위 없이 편리하다. ●This stop is Kurashiki두 번째 역 구라시키倉敷 곳간에서 꺼낸 우아한 미관지구 오카야마시를 벗어나 오카야마현으로 여행 구간을 넓히면 입소문 1순위는 단연 구라시키다. 오카야마에서 기차로 20분이면 닿는 이곳 구라시키에는 에도시대의 건축물이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 있다. 구라시키는 에도시대 초반부터 물류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구라시키강을 따라 쌀과 면화를 보관하기 위한 창고가 들어섰고, 물길을 따라 배들이 물건을 실어 날랐다. 구라시키라는 도시의 이름 자체가 광, 곳간을 뜻하는 ‘구라’에서 왔을 정도. 이런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바로 구라시키 미관지구美觀地區다. 역사보존지구이자 관광지인 셈인데 다른 지역과 달리 상점가 이층에 일반 시민들이 살아간다. 과거와 현재, 관광과 일상이 그윽하게 맞물려 있는 모범적인 예라 하겠다. 구라시키 기차역에서 걸어서 10분여, 미관지구에 들어서면 마치 시간을 건너 뛴 듯 에도시대의 전통가옥과 거리풍경이 펼쳐진다.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한 공간에 아름다운 일상용품을 전시한 구라시키 민예관, 수백년이 넘은 상인의 집을 개조한 료칸, 옛 방적공장을 개보수한 아이비스퀘어 등은 이 미관지구를 떠받치는 장소들이다. 미관지구를 풍요롭게 하는 상징적인 장소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오하라 미술관이다. 1930년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설립된 오하라 미술관은 무려 3,5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 작가 목록이 모네, 로댕, 엘 그레코, 샤갈, 고갱, 모딜리아니, 르누아르, 세간티니, 피카소 등 놀랍도록 화려하다. 오하라 미술관은 구라시키에서 방적공장을 일군 오하라 마구사부로와 그가 후원했던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의 합작품이다. 성공한 사업가이자 문화 후원에 관심이 높았던 오하라 마구사부로에게 화가 고지마 도라지로는 서양의 대작을 소장할 것을 권유한다. 1920년대 고지마 도라지로는 직접 유럽으로 출장을 떠나 세심하게 작품을 선별했다. 이 과정에서 모네와 마티스에게서 직접 작품을 구입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구라시키의 자랑이 된 오하라 미술관은 그렇게 태어났다. 안타깝게도 고지마는 미술관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했지만 그의 뛰어난 감식안과 선견지명은 지금껏 수많은 주민과 여행자들의 예술적 허기를 채워 주고 있다. 오하라 미술관에서 대각선으로 강을 건너 내려가면 아이비스퀘어에 닿는다. 붉은 벽돌로 쌓은 외벽을 담쟁이덩굴이 싸고도는 모양이 이름 그대로다. 이곳은 옛날 방직공장을 리모델링하여 호텔과 레스토랑,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켰다. 1974년 완성되었는데 건물의 기본 형태는 그대로 유지한 채 내부시설을 바꾸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를 가미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실제로 현지 주민들의 결혼식 야외 촬영 장소로 각광받고 있다. 161개의 객실을 보유한 아이비스퀘어호텔 역시 과거의 기억을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당시 골조를 살리며 공사하느라 몹시 애를 먹었지만 그 덕분에 특유의 분위기를 이어 올 수 있었다는 평가다. 그러니까 이곳 구라시키는 과거 곳간 창고가 넘쳐나는 물류지대에서 한동안 방직공장이 즐비한 도시였다가 그 역사를 잘 보존해 오늘날 여행자를 품는 곳으로 변모된 셈이다. ▶inside Kurashiki 아기자기한 미관지구 구라시키 미관지구를 생동감 있게 하는 것은 단연 아기자기한 가게들이다. 천편일률적인 토산품 가게가 아니라 제 개성을 뽐내는 곳들이 많다. 공업용 테이프를 생산하던 회사가 이제는 디자인 중심의 마스킹 테이프를 생산하는데 이를 활용한 체험도 가능하다. 이 밖에 과거 구라시키의 직물 생산의 전통을 재현한 가게, 다양한 디자인의 향초 공방 등이 오밀조밀 이어진다. 구라시키강의 유람선3월부터 11월까지는 구라시키강을 오가는 유람을 즐길 수도 있다. 작은 배에 몸을 싣고 버드나무 아래서 올려다보는 미관지구의 풍광은 또 다른 맛이다. 풍요로운 반달, 무라스즈메 구라시키 미관지구에서 자주 눈에 띄는 간식은 반달 모양의 ‘무라스즈메’다. 과거 풍요로운 곳간을 상징하듯 곡물을 활용한 전통 간식이다. 구수하면서도 달콤해 자꾸 집어 먹게 된다. 반죽을 달궈진 팬 위에 얇게 펴 부치고 그 위에 팥소를 넣어 만두처럼 덮어 내는데 만들기 체험도 가능하다. 3개 만들기 체험 500엔. 오카야마 대표 음식들 오카야마현의 대표 음식을 나열하자면 마마카리, 문어, 기비 당고(수수경단) 등이다. 물론 대표 과일인 하얀 복숭아와 피오네 포도도 빼놓을 수 없다. 이중 청어과 생선 밴댕이에 해당하는 마마카리는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데, 초밥으로도 전채로도 인기다. 또 가쓰오부시 육수에 살짝 데쳐 먹는 타코 샤브샤브, 문어밥으로 먹는 타코메시도 대표 메뉴다. ●This stop is Kojima세 번째 역 고지마幸島 청바지를 입은 도시 인구 7만2,000여 명의 작은 도시가 청바지로 인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계단부터 개찰구까지 청바지가 수놓아져 있고, 기차 역사 밖으로 청바지가 나부끼며, 청바지 래핑을 두른 버스와 택시가 거리를 누비는 이곳은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 있는 작은 마을 고지마다. 고지마는 일찍부터 방직·섬유산업이 발달해 한때 일본 학생복의 90% 이상을 생산했던 곳이다. 이곳에 청바지가 보편화된 건 1964년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일본 전역에 전파된 서양 문화와 맥을 함께한다. 그러나 고지마 관계자는 이미 그 이전 군정 시기에 미군부대를 통해 흘러들어온 청바지를 고지마의 다수가 공유하고 있었다고 회상한다.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1965년 고지마의 ‘빅존’이라는 회사가 처음으로 일본산 청바지를 생산했다. 이때만 해도 미국에서 수입한 청바지 원단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몹시 딱딱하고 두꺼워 고지마의 발달된 봉제기술로만 제조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73년부터 일본산 원단을 직접 생산하면서 뻣뻣한 청바지 원단을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고지마의 장인들은 각종 아이디어를 냈다. 기계에 청바지와 돌을 같이 넣고 돌리는 ‘스톤 워싱’도 이곳에서 개발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사쿠라지마의 가벼운 화산석이 그들이 원하는 워싱을 만드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청바지의 워싱이나 자연스러운 주름이 절로 완성된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인체 곡선에 더 편안하게 맞고 더 아름다운 핏을 내는가를 장인들이 고심한 결과다. 패스트 패션이 등장하면서 고지마의 청바지 브랜드도 한때 위기를 맞았지만, 고지마는 질 좋은 일본산 청바지라는 원점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한 해 입고 마는 나쁘지 않은 청바지가 아니라, 한번 구입하면 입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고급화를 추구한 것. 이는 기성품과 오더 메이드 양쪽 모두에 적용되었는데 방향 전환은 빼어난 한 수였다. 누구의 장롱을 열어도 최소 다섯 장은 들어 있을 만큼 청바지는 흔한 아이템이지만, 고작 몇 밀리미터의 차이로 핏이 미묘하고 불편한 어려운 제품이기도 하다. 고지마에서 주문할 수 있는 ‘오더 메이드 진’은 이런 개개인의 체형과 취향을 십분 이해한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템이다. 베티하우스의 경우 가장 중요한 원단 선별과 패턴 제작부터 시작해, 벨트 레이블, 리벳, 단추, 스티치 등 소소한 부자재도 모두 선택할 수 있다. 원단도 다양해 솜을 누빈 것부터 캐시미어가 함유된 데님도 있다. 평생 패턴을 보관해 주므로 언제든 재주문도 가능하다. 품질 때문에 한 번 입어 본 사람은 다시 찾는데 일본 전역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대만뿐 아니라 멀리 유럽에서도 찾아온다는 게 베티 스미스의 이야기다. 인근 체험관에선 자투리 데님 원단을 활용해 핸드폰 고리나 열쇠고리를 만들어 볼 수 있으며, 아이디어 넘치는 소소한 상품 코너도 있다. ▶Travel tip 특급열차를 5일 동안 무제한으로 간사이 와이드 패스 낯선 오카야마현으로의 여행이 수월했던 건 바로 JR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한 ‘간사이 와이드 패스’ 덕분이다. 간사이공항에서부터 간사이 지방이 아닌 오카야마현까지 신칸센을 포함해 특급 기차를 5일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차 패스다. 성인 기준 9,000엔(국내에서 구입하면 8,500엔)으로 일본 내국인의 단순 1회 왕복 요금보다 저렴하다. 때문에 바쁜 오사카 여행 전후로 혹은 오카야마를 콕 집어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여행이 충분히 가능하다. 오카야마 공항을 연계하는 직항편도 있지만, 보다 다양한 도시를 보고 싶다면 항공편이 훨씬 다양한 오사카 간사이공항을 통해 이동하는 방법도 괜찮기 때문. 신오사카 1회 환승을 포함해 간사이공항에서 오카야마역까지 약 1시간 40분이 소요된다. JR은 또 간사이공항 인근에 있는 유니버설스튜디오재팬USJ도 연결하므로 하루를 활용해 즐기기도 좋다. USJ는 지난해 해리포터 존 개관으로 월 관람객 신기록을 갱신하는 등 인기몰이 중이다. 에디터 천소현 기자 글 Travie writer 김정은 사진 Travie photographer 이승무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낯선 이와의 카톡 위안과 결핍 사이

    낯선 이와의 카톡 위안과 결핍 사이

    “가까운 사람과 다이어트를 같이 하면 내 치부를 다 알게 되는걸요. 그럴 바에야 모르는 사람이 훨씬 낫죠.” “실연의 상처를 안은 사람들끼리 마음이 통해서 좋아요. 사람들이 제가 누군지 모르니 어떤 얘기를 해도 민망할 일이 없죠.” 서로를 전혀 몰랐던 사람들이 특정한 주제나 목표를 정해 놓고 카카오톡 단톡방(집단 채팅방)에서 만나 활동하고 헤어지는 인스턴트형 소모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왜 자신의 일상을 지인이 아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공유하려는 것일까. 2주에 걸쳐 ‘다이어트방’ ‘아침기상방’ ‘옛 애인에게 연락 안 하기방’ 등 다양한 단톡방에 가입해 활동하며 그 내면을 들여다봤다. 다이어트방- 네이버의 한 카페에 뜬 모집 글을 보고 가입 신청을 했다.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 5명이 모였다. 각자 체중 감량 목표치와 ‘닉네임’(별명)을 제외하고 다른 정보는 전혀 공유하지 않았다.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30분간 열띤 메시지 토론 끝에 ▲섭취한 모든 음식을 사진으로 인증한다 ▲매주 화요일 아침 몸무게를 사진으로 인증한다 ▲운동 방법을 공유한다 ▲규칙을 10번 어기면 퇴출된다 등 4개의 규칙을 정했다. 이튿날 카페에 들러 조각 케이크를 시키려다 사진 인증에 대한 부담 때문에 단념했다. 저녁 식단을 조작해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야식이 그립다’고 채팅방에 푸념을 했다. 답변으로 날씬한 모델 사진이 올라왔다. 지난 5일 회식 후 저녁 식사 인증을 못 하고 잠이 들었다. ‘규칙 위반 1회’가 기록됐다. 지난 9일 첫 몸무게를 쟀는데 제자리였다. 한 명만 0.5㎏이 빠진 저울 사진을 올려 부러움 섞인 찬사를 받았다. 아침기상방- 매일 아침 8시까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화면에 있는 날짜와 시간을 사진으로 찍어 채팅방에 올리는 게 규칙이다. 완전히 일어나 집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1분이라도 늦으면 벌금 5000원을 내야 한다. 처음 가입할 때 단톡방의 방장이 1만원을 계좌로 받는다. 가입 기간 동안 100% 인증에 성공하면 탈퇴 시 1만원을 돌려받을 수 있다. 벌금은 1개월 단위로 모아서 공평하게 나눠 갖는다. 가입자는 6명으로 대부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평일에는 출근을 하며 사진을 찍으면 됐지만 주말인 6일에는 오전 7시 45분에 눈을 떠 세수도 하지 않고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동네 은행 ATM에 뛰어가 7시 57분에 사진을 찍었다. 대화는 전혀 없다. 하루에 한 번 사진만 올린다. 옛 애인에게 연락 안 하기방- 남자 2명, 여자 2명이 가입했다. 메시지는 주로 밤 시간대에 주고받았다. 몰랐던 사이였지만 서로 말을 놓기로 규칙을 정했다. “나 지금 너무 힘들어서 여자 친구 집 앞으로 가고 있어.” 지난 10일 밤 멤버 A씨가 이런 글을 올리자 채팅방에 불이 났다. “술 취했지. 궁상떨지 말고 당장 차 돌려라.” 급기야 한 명이 단톡방 전체를 상대로 ‘그룹 음성 채팅’을 신청했다. 다급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정신 차려!” 음성 채팅 종료 후 30여분이 지나고 A씨가 글을 올렸다. “다들 고마워. 나 그냥 집으로 돌아왔어.” 단톡방 참여자들은 장점으로 정신적인 연대감과 위안을 꼽는다. 지난해 8월 3년간 교제한 애인과 헤어지고 이별 단톡방에서 2개월간 활동한 직장인 이모(29)씨는 “단톡방에서 해결책을 기대하기보다 편하게 내 약한 모습을 털어놓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승원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편의에 따라 일시적으로 만드는 온라인 관계의 특성과 소수가 마음을 나누는 오프라인 관계의 특성이 결합된 형태”라고 설명했다. 부수현 경상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은 낯선 사람일수록 심리적으로 새로운 반응과 정보를 줄 거라는 기대를 갖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유기적 관계가 아닌 인스턴트 관계에만 의존할 경우 관계에 대한 갈증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작은 것은 가능하다(라일 에스틸 지음, 황승미 옮김, 텍스트펴냄) 오지랖 넓은 저자가 자신이 사는 채텀 카운티를 이웃들과 함께 변화시켜가는 성공담을 재미있고 통찰력 있게 풀어낸다. 300쪽. 1만 3000원. 번영과 풍요의 윤리학(마시모 피글리우치 지음, 서민아 옮김, 스윙밴드 펴냄) 철학과 정치사회사상을 비롯해 진화생물학, 심리학, 뇌과학의 최신 지식까지 훑은 ‘폭넓은’ 교양서로 더 좋은 삶을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을 탐구한다. 352쪽. 1만 5000원. 장정일, 작가(장정일 지음, 더숲 펴냄) 작가인 저자가 8년여에 걸쳐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43인의 작가들을 인터뷰해 독자와의 만남을 주선하는 책이다. 332쪽. 1만 5000원. 대혼란을 넘어(에이드리언 울드리지 지음, 고영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의 경제전문 편집장인 저자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포착한 57가지 세계 경제 변화들을 소개했다. 344쪽. 1만 7000원. 지그문트 바우만,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지그문트 바우만·리카르도 마체오 지음, 나현영 옮김, 현암사 펴냄)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과 에릭슨 출판사의 편집자인 리카르도 마체오가 소비 지상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사회를 논한다. 224쪽. 1만 3000원. 알(이기훈 지음, 비룡소 펴냄) 엄마 몰래 달걀을 품어 병아리를 키우려던 아이의 앞에 호랑이, 코끼리 등 갖가지 아기 동물들이 알을 깨고 나온다. 동물들이 커 갈수록 아이의 방은 통제 불능 상태로 빠져든다. 단어 하나 없어도 상상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48쪽. 1만 3000원.
  • [부고]

    ●장규호(한국은행 금융검사실 특수은행팀장)수웅(운수업)호용(대우썬텍 대표)씨 부친상 홍덕희(협성ENG 대표)이정팔(한국남부발전 부장)씨 장인상 5일 부산의료원, 발인 7일 오전 8시 (051)607-2651 ●최신덕(전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씨 별세 주동문(전 위싱턴타임즈 회장)씨 모친상 1월 28일 미국 메릴랜드주 애나폴리스 별세, 빈소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9일 오전 이후), 발인 10일 오전 (02)3010-2000 ●정만순(국기원 원장)씨 장모상 5일 대전 을지대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30분 (042)611-3980 ●정해주(전 한국석유공사 감사실장)씨 별세 진호(평양과학기술대학 대학원장)진용(전 석유개발공사 과장)경희(라이온브릿지코리아 실장·숙명여대 겸임교수)원희(지존학원 원장)씨 부친상 박병일(LG CNS 수석)이춘열(영남대 교수)씨 장인상 최문선(연변과학기술대 교수)씨 시부상 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7일 오전 9시 (02)2227-7580 ●임주택(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차장)씨 장인상 5일 경남 통영 숭례원 장례식장, 발인 7일 오전 9시 (055)641-2828 ●이제원(이베스트투자증권 IB2본부장)씨 부친상 5일 부천 순천향대병원, 발인 7일 오전 (032)327-4444 ●김용섭(코스콤 구매업무실 차석)씨 모친상 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2227-7556 ●신성철(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종철(서울성모병원 의사)경철(한국산업기술대 실장)씨 모친상 장길평(제이에스건설 회장)여준구(미국 거주·의사)씨 장모상 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7일 오전 7시 (02)2258-5940
  • 국회 대변인에 박흥신 전 靑비서관

    국회 대변인에 박흥신 전 靑비서관

    정의화 국회의장은 3일 국회 대변인(1급)에 박흥신(57) 전 대통령실 언론비서관을 임명했다. 박 신임 대변인은 19대 국회가 끝나는 오는 5월 29일까지 근무하게 된다. 충남 서산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그는 경향신문 부국장 출신으로 이명박 정부 시절 청와대 언론비서관과 정책홍보비서관 등을 지냈다.
  • [기고] 집단민원 해결, 그리고 ‘조정’의 힘/김인수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기고] 집단민원 해결, 그리고 ‘조정’의 힘/김인수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갈등 모형을 최초로 정립한 사회학자 랄프 다렌도르프는 “모든 사회는 갈등을 경험한다”고 했다. 우리도 급속한 사회 변화와 국민들의 권리의식이 향상되면서 사회 구성원 간 이해관계의 상충으로 많은 갈등을 경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행정 과정에서도 그대로 투영돼 공공정책이나 사업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갈등 관리는 사회가 건강한지를 보여 주는 척도 중 하나다. 주민과 공공기관 간에 자주 발생하는 갈등의 초기 증상은 집단민원으로 표면화되는 경우가 많다. 집단민원은 몇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위법 부당한 처분의 취소를 요구하는 일반 고충민원과 달리 어떤 사안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이 자기의 주장만 되풀이하다 보면 불신이 점점 커지고 곪아서 갈등으로 변해 간다. 다음으로 집단민원은 여러 기관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데, 그렇지 않다 보니 주민의 민원(民願)은 민원(民怨)이 돼 가는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문제들을 잘 풀어 나갈 수 있을까. 권익위법은 중립적 제3자에 의한 조정이라는 처방책을 제시한다.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입장 차이를 좁혀 갈등을 해소해야 하는 경우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필요가 있는 집단민원에는 조정이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조정이 한 건 성사되기까지는 여러 번의 현장 방문과 이해 관계자 면담 및 의견 조율이 필수적이다. 민원 하나를 조정하는 데 최소 3~4개월이 걸릴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된다. 하지만 신뢰와 인내심을 갖고 당사자 간 소통을 주선하고 다양한 대안에 대해 논의하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창의적인 해법을 찾아 합의에 이르게 된다. 지난해 9월 낙동강의 강정고령보 상단에 놓인 우륵교 차량 통행을 둘러싼 갈등 조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정 당시 대구 달성군과 경북 고령군 주민들은 ‘교통편의’와 ‘수질오염’을 각각 내세우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국민권익위원회의 조정 담당자들이 두 지역을 수차례 오가며 소통을 매개하고 대안을 모색하다 ‘우회도로 건설’이라는 상생의 해법을 찾아 3년 동안의 갈등을 매듭지었다. 한 민원인은 “처음에는 무조건 안 된다고 하던 기관들도 한데 모여 자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가능한 방향으로 합의점을 찾아가게 됐다”고 고마워했다. 현장 중심, 열정과 창의, 진실한 소통 이것이 바로 조정의 정신이고 힘이다. 하지만 집단민원의 해결에 이러한 조정이 많이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깝고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지난해 권익위는 241건의 집단민원을 접수해 약 30%를 조정으로 해결했다. 같은 해 지자체에 6900여건의 집단민원이 접수됐으나 얼마나 조정으로 해결됐는지 의문이다. 올해는 국민에게 고충을 주는 민원이 좀 줄어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권익위에 접수된 민원에 대해서는 정성껏 국민의 입장에서 그리고 조정의 정신을 살려 해결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아울러 조정 전담 인력을 확대 운영하고 관련 제도의 보완과 홍보를 강화하는 등 집단민원 해소를 위한 조정 시스템의 힘을 극대화하는 노력도 병행하려 한다.
  • [시론] 사회 위기의 해답, 공동체 복원에 있다/김병권 사회혁신공간 데어 상임이사

    [시론] 사회 위기의 해답, 공동체 복원에 있다/김병권 사회혁신공간 데어 상임이사

    사망한 지 무려 두 달 만에 창원의 한 고시텔에서 발견된 40대 남성은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비단 그가 롯데백화점 창원점 비정규직 노조 지회장이었다가 해고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조합활동을 할 만큼 활동적이었던 중년 노동자가 해고 뒤 환경미화원과 일용직을 전전하던 기간이 4년이었다고 한다. 그동안 가족을 포함해서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된 채 죽음에 이르기까지 혼자 방치돼 있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미 5년 전에 일본 국영방송 NHK는 일본 노인을 중심으로 고독사가 급격히 증가하는 사례를 생생하게 파헤치면서 이를 ‘무연사회’라고 불렀다. 2010년 기준 1인 가구가 25%에 이른 우리나라도 일본을 따라 무연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일까. 1인 가구는 사실 노인뿐 아니라 청년을 포함해 중장년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넘어 확산하는 추세다. 그렇다면, 앞으로 사회적 관계가 점차 단절되고 고립된 생활을 하는 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우리의 미래일까. 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에 대한 희구가 커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1인 가구 현상을 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사회학 교수 에릭 클라이넨버그는 저서 ‘고잉솔로, 싱글턴이 온다’에서 1인 가구 현상을 여성의 지위 상승, 통신 혁명, 대도시의 형성 그리고 혁명적 수명 연장이라는 발전과 사회적 변화의 자연스러운 선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의 의무적 관계나 조직의 틀에 구속되지 않고 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러한 개인화 추세를 대부분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제는 개인화나 1인 가구의 증가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여기에 맞게 생활환경과 관계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혼자 사는 생활은 기존의 가족 단위 생활에 비해서 엄청난 변화를 수반한다. 주거 공간이 중대형 아파트일 필요가 없는 것과 비슷하다. 식생활과 문화생활의 변화 그리고 사회 안전망에 연결되는 방식의 변화도 동반한다. 당연히 이에 맞는 대인관계에 대한 필요와 욕구도 변화한다. 혼자 사는 사회를 가능하게 해준 온라인 네트워크로 다른 사람과 연결되지만 온라인 관계만으로는 인간관계를 만족할 수 없다.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쉽고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새로운 공동체 방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시점이 온 것이다. 2012년부터 서울시를 필두로 펼치는 마을 공동체 만들기 운동은 정확히 이 시점에 부응한 적절한 시도다. 오랜 기간 풀뿌리에서 숙성되어온 마을 만들기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지원을 지렛대 삼아 탄력을 받고 붐을 이루고 있다. 이런 취지로 보면 마을 만들기 운동의 핵심은 단순히 과거의 관계를 복원시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개인화 시대의 새로운 ‘친밀 공동체’를 만들려는 시도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요원하다. 주축이 됐던 서울시조차 극히 적은 시민만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아파트 주민들의 공동체 복원 움직임은 의미가 크다. 실상 아파트는 개인화와 고립화의 상징이 아니던가? 올해 초 이웃과 공동체라는 틀에서 함께 살아가려는 시도가 개인주택 지역을 넘어서 아파트 공간까지 확장되고 있는 사례가 있었다. 일산 호수초등학교에 다니는 한 6학년 학생이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은 아주 좋은 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는 글로 경비원 감축 계획을 막았다. 입주자회의에서 경비원 인원을 줄이기로 했지만 이런 주민들의 마음의 모이면서 결국 경비원들과 공생하게 됐다. 성남의 한 아파트에서도 주민 부담을 조금씩 늘리면서까지 “경비·미화 노동자들의 임금을 인상하고 휴게 시간을 늘리기로” 결정했다. 춘천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고 강남에서도 아파트 경비 노동자를 직접 고용으로 바꾸고 정년을 70살까지 연장하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불과 몇 년 전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들이다. 더욱이 지금은 수년째 경기가 내리막을 걸으면서 아파트 주민들도 경제적 형편이 나빠지는 상황이 아닌가? 어려울수록 더 타인과의 관계를 원하고 그리워하게 된다. 따뜻한 공동체라는 의지처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 [씨줄날줄] 조폭의 수입/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조폭의 수입/임창용 논설위원

    형사정책연구원이 조직폭력배(조폭)의 운영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조사 대상자의 37%가 월 100만원도 벌지 못한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궁금한 건 더 있다. ‘그럼 뭣 때문에 남아 있는 거지?’ 영화 ‘조폭 마누라’의 신은경이나 ‘넘버3’의 한석규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검은 양복 차림의 조직원들처럼 어깨에 힘주고, 돈도 웬만큼은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섣부른 것일까. 10여년 전 스티븐 레빗이란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가 ‘괴짜 경제학’이란 책을 내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깨는 세상 읽기로 사회현상을 설명해 극찬을 받은 책이다. 책 내용 중 미국의 한 갱단, 우리로 치면 조폭의 운영 생리를 명쾌하게 분석한 대목이 있었다. 1989년 시카고대의 한 사회학도가 시카고의 빈민가를 무대로 운영돼 온 ‘검은 갱스터 사도단’이란 갱단의 한 지부 장부를 분석한 내용이다. 이 갱단은 코카인을 가공한 마약인 크랙 판매를 주수입원으로 하는 조직이었다. 4년간의 기록을 담은 장부에서 레빗이 가장 주목한 부분이 바로 수입 배분이었다. 이 지부 보스는 3명의 중간 보스와 50여명의 ‘땅개’(거리에서 크랙을 파는 조직원)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월 8500달러의 순이익을 챙겼다. 3명의 중간 보스에겐 총 2100달러를, 나머지 땅개들에게 7400달러를 지급했다. 1인당 시급으로 보면 지부 보스는 66달러, 중간 보스는 7달러, 땅개들은 3.3달러였다. 땅개들은 4년간 체포되거나 다칠 횟수가 각각 5.9회와 2.4회, 살해당할 확률이 4명 중 1명에 이를 만큼 위험한 환경에서 일했다. 그래도 이들이 갱단을 떠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 지부 보스는 인터뷰에서 “땅개들에게 더 많이 줄 수는 있지만 현명한 짓은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내가 보스라는 걸 잊게 해선 안 된다. 그들은 하나같이 내 자리를 노리고 있다”라는 설명과 함께. 즉 자신들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은 수익을 챙기는 보스 자리가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동한다는 의미다. 형사정책연구원 보고서를 보면 이런 조직 운영 생리는 우리나라 조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조폭 말단과 달리 상위 21%는 500만원 이상의 고수익을 올리고 있고, 1000만원 이상 챙기는 조폭도 6.4%나 됐다. 조폭 말단 역시 시카고의 땅개와 비슷하게 위험을 무릅쓰고 바닥을 기지만 대가는 초라한 것이다. 레빗은 크랙 판매 조직이 일반적인 자본주의 회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꼬집는다. 양쪽 다 고수입을 올리기 위해 상층부에 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커지는 경영진과 일반 직원들의 임금 격차를 보면 이런 시각이 꼭 과장됐다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맨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토너먼트 게임을 벌이면서 올라가야 하는 것은 샐러리맨들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임창용 논설위원 sdragon@seoul.co.kr
  • [영화 多樂房] 캐롤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은 1950년에 발간한 그의 저서에서 겉으론 사교적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는 현대인들의 자화상을 묘사한 바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고독한 군중’(Lonely Crowd)은 집단 윤리와 기업 논리 아래 개인의 성취 혹은 행복을 추구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당시 미국 소시민들을 적확하게 표현한 단어다. 순종적인 성품과 안정적인 생활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는 1950년대를 관통하며 가속화된다. 영화 ‘캐롤’에서 이처럼 보수적인 사회가 용납하지 못하는 사랑에 빠져든 테레즈(루니 마라)는 캐롤(케이트 블란쳇)에게 말한다. “난 언제나 혼자 새해를 보냈어요. 군중 속에서요. 올해는 혼자가 아니에요”라고. 동성 간 사랑을 다룬 영화들은 기본적으로 성적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를 포함하게 마련이지만, 금기된 사랑의 표본이라는 측면이 보다 강조된 작품도 많다. ‘브로크백 마운틴’(2005)이 그랬던 것처럼 ‘캐롤’은 사랑의 두 주체가 동성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정도로 인물들의 정서적 교감에 집중한다. 자신의 인생에 무엇인가가 결핍돼 있음을 감지하며 살고 있던 테레즈와 캐롤은 여느 러브 스토리의 주인공들과 마찬가지로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강한 자성을 느낀다. 애인이 있는 젊은 백화점 직원과 이혼소송 중인 중산층 부인 사이에 극복해야 할 점이 많다는 사실은 동성애라는 특수성과 함께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의 보편성까지 포괄하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오프닝 신에서 50년대 영화처럼 정지된 이미지를 배경으로 출연진과 스태프의 이름이 커다란 글씨로 지나가게 하면서 아예 관객들을 그 시절의 영화관으로 옮겨 놓는다. 획일화된 문화와 가치관을 거부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두 여인의 여정에 관객들이 온전히 동참하게 되는 것은 이처럼 용의주도한 연출 때문이다. 영화의 모든 요소가 나무랄 데 없이 합을 맞춘 수작이지만, 자칫 자극적으로 흐를 수 있는 이야기를 우아한 멜로 드라마로 완성시키는 데 훌륭하게 기여하고 있는 것은 미술과 의상이다. 이미 ‘파 프롬 헤븐’(2002)에서 50년대 미국을 재현한 바 있는 헤인즈 감독은 이후 십여 년의 세월을 반영하듯 훨씬 원숙하게 그 시절과 그 시절의 사람들을 묘사한다. 특히 리얼리티를 살리면서도 드라마의 감성을 듬뿍 담아 놓은 공간 연출은 주목해 볼 만하다. 너무 평화로워 보여서 오히려 긴장감이 느껴지는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의 거리와 레스토랑, 수많은 사람이 오가고 있음에도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백화점, 계급 차의 대비와 정서적 공감대가 함께 느껴지는 두 사람의 집 등 캐롤과 테레즈가 함께 있는 공간들은 매 장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2013)의 격정과 ‘브로크백 마운틴’의 고적함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작품이다. 2월 4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패륜·폭력 ‘막장 드라마’에 법원 첫 제재

    패륜·폭력 ‘막장 드라마’에 법원 첫 제재

    #1.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딸이 복수를 위해 어머니의 의붓아들에게 접근한다. 딸은 ‘예비 며느리’ 신분으로 만난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혈연관계를 밝히며 “당신 같은 사람이 날 낳았다는 게 싫어, 버러지가 버러지를 낳았겠지”라고 소리친다. #2. 결혼식 당일, 아들이 맹장염에 걸려 입원한 어머니를 병문안하러 가는 길에 비명횡사한다. 병원에서 건달들과 시비가 붙어서다. 어머니는 아들의 죽음을 “하늘의 뜻”이라며 담담히 받아들인다. 버려진 친딸이 며느리가 된다는 설정의 MBC TV 일일 드라마 ‘압구정 백야’는 2014년 10월 첫 방영 당시부터 패륜적이면서 황당한 설정으로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이 드라마는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인 오후 9시에 방영됐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4월 “지나치게 비윤리적이고 폭언이 심한 장면을 여러 차례 방송해 방송 심의 규정에 어긋난다”며 방송사 관계자들에 대해 징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드라마 관계자들은 징계 이후에도 폭언과 폭력 장면을 계속 내보내 다시 경고 처분을 받았다. MBC는 “권선징악이라는 주제를 고려하면 폭언은 사회 통념의 범위 내에 있다”며 방통위를 상대로 재심 결정 전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방통위의 손을 들어줬다. 방송사가 드라마 심의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한 것도, 드라마 징계에 대해 법원이 판단을 내린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차행전)는 “방통위 제재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극의 내용이 사회적 윤리 의식을 저해하고 가족 정서를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방송사가 이 드라마를 청소년 시청 보호 시간대에 방영한 것은 청소년의 정서 발달 과정을 고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MBC는 ‘압구정 백야’를 쓴 작가 임모씨의 다른 작품으로 2013년 방통위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었다. 재판부는 “과거 동일 작가가 쓴 드라마가 제재 처분을 받았고, 당시 방송사는 저품격 드라마에 대한 집중 심의 기간임을 알고 있었다”며 “제재의 필요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정탁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막장 드라마 논란이 자율적으로 해결되지 않고 법원의 판단을 받은 것은 그만큼 해당 콘텐츠가 일반 정서에 어긋났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청자들은 막장 드라마를 있는 그대로의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만큼 창작자에 대한 징계는 최소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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