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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金보다 값진 투혼’ 그대는 진정한 영웅

    ‘金보다 값진 투혼’ 그대는 진정한 영웅

    지난 11일 ‘갈비뼈 골절’의 고통을 참으며 남자유도 73㎏급 결승에 나섰다가 13초 만에 한판으로 패한 왕기춘. 이튿날 11만명의 네티즌이 그의 미니홈피를 찾아 은메달을 축하했다. 왕기춘은 “부족한 은메달인데도 격려를 보내준 여러분께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고 했다. 같은 날 여자 펜싱 플뢰레 결승전에서 4초를 남기고 역전패한 남현희의 미니홈피에도 11만명이 찾아왔다. 다리에 쥐가 나 쓰러지면서도 끝내 바벨을 놓지 않았던 역도 이배영은 이미 ‘올림픽 영웅´이 됐다.1등만을 기억하는 한국의 고질적인 올림픽 응원문화가 아깝게 패한 선수들에게도 찬사를 보내는 풍토로 바뀌고 있다. 올림픽을 계기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1등주의’가 조금이나마 허물어질지 주목된다. ●투혼 이배영은 이미 ‘올림픽 영웅´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는 ‘올림픽을 통해 본 천박한 한국의 1등주의’,‘2,3등에게도 찬사를’ 등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은메달·동메달 100개를 따도 금메달 1개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것은 올림픽의 기본 정신에도 어긋납니다.”라고 지적했다. 금메달 유망 종목 위주로 중계방송을 편성하는 방송국에도 항의가 잇따르고 있다. 네티즌들은 방송사들이 왕기춘의 은메달 시상식을 생략하자 거세게 비판했고, 조정·승마·다이빙 등 비인기종목도 방송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시청률을 무시할 수 없는 방송사의 입장은 알지만 방송 3사가 24시간 내내 거의 똑같이 중계방송을 편성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비인기 종목이나 메달 가능성이 희박한 종목에 출전한 한국 선수를 보려면 일본 방송을 봐야 한다.”고 혀를 찼다. 이른바 ‘2등 신드롬’에 대해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태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1등주의는 개발지상주의 시대의 발상”이라면서 “시민들은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며 서로 다른 능력을 인정하고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혜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경기 남양주시 D고등학교 윤모(39) 교사는 “올림픽을 계기로 학생들이 ‘1등주의’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면서 “교사로서 공부 1등만 챙기기보다는 음악·체육 등 각자의 특기를 살리는 교육에 더 힘써야겠다.”고 말했다. 중견기업 인사부에 근무하는 윤모(32)씨는 “올림픽을 보면서 자기만 잘난 줄 아는 1등보다 회사의 큰 버팀목이 되는 2등이 더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왕기춘·남현희 홈피 11만명 “축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패자에게도 박수를 보내는 문화가 올림픽 때만 반짝하고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직장인 이모(33)씨는 “4년 전 아테네올림픽 때도 핸드볼 신드롬이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면서 “사회 전반에서 2등과 3등 그리고 꼴찌를 격려하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주 김승훈기자 kdlrudwn@seoul.co.kr
  • “남한 경제용어 너무 어려워요”

    “남한 경제용어 너무 어려워요”

    “마케팅,SWOT분석….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새터민 김모(19)군의 호소다. 김군은 2005년 6월 중국으로 단신 탈북한 뒤 태국을 거쳐 입국했다.3년 전 한국에 먼저 온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새터민 대안학교인 하늘꿈학교에서 공부하며 초중고 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했다. 김군은 “북한이나 남한이나 경제 활동은 같은데, 그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왜 이렇게 어려운 용어를 쓰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14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는 ‘남북 청소년 비즈니스 체험 캠프’가 열린다. 남북 청소년이 ‘자본주의’를 주제로 한 자리에 모인 것은 처음이다. 참가자 45명 가운데 새터민 청소년은 17명이다. 연령층은 16세부터 20대 후반까지 다양하다. 이들은 ‘메몬트리팀’,‘대세는A팀’ 등 7개 팀에 배정돼 남한 청소년들과 함께 사업·창업 등 경제 활동에 대해 배운다. 각 팀에는 국내 대학의 경제동아리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이 멘토(조언자)로 나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탈북 청소년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남한식 경제 용어다.2002년 3월 부모와 함께 입국한 김모(17)양은 “단어들이 외래어투성이라서 힘든 면이 있지만 남한 친구들과 호흡하며 실생활에 대해 배우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2001년 4월 입국한 ‘메몬트리팀’의 멘토 오세혁(29·한국외대 중국어과)씨는 “북한 아이들이 남한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어 차이부터 극복해야 한다.”면서 “남한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기특하다.”고 했다. 한국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늘푸른고등학교 최재영(17)군은 “비즈니스에 대해 북한 친구들과 시각차를 좁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런 활동이 ‘통일의 씨앗’을 심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이번 캠프를 주관한 한국청년정책연구원 박길성(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원장은 “통일 시대를 대비해 남북 사람들이 화합하는 방식을 모색하는 작은 첫걸음이자, 새터민 학생들이 남한의 경제 운영 방식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해 줬다는 데 의미가 크다.”고 자평했다. 글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내 책을 말한다] 중국과 세계경제 연결의 특이성

    2008년, 올림픽 개최 준비와 티베트의 저항, 그리고 대규모 지진 등 현기증 나는 여러 가지 변화들 속에 묻혀, 그렇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또한 이런 변화들의 배경을 이루는 중요한 면모들이 중국 사회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나는 2006년부터 준비되어 왔고, 수많은 논란을 동반한 노동계약법이 본격 시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두 해 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중국의 거대한 외환보유고 수준이 이제는 완전히 세계 1위의 자리를 공고히했고, 달러 대비 인민폐의 외환 비율도 처음으로 7.0 이하로 하락하였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변화가 중요한 것은, 그들 모두 ‘금융세계화’라는 우리 시대의 전 지구적 변화가 중국적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두드러진 특징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먼저 노동계약법에 대해 살펴보자. 개혁개방시기 중국의 새로운 체제가 중시해 온 ‘탈사회주의’ 요소의 핵심적 특징 중 하나는 고용의 유연성 도입이다. 쉽게 말해 종신직장, 완전고용 개념을 버리고 이제는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고, 다양한 방식의 고용제도를 도입할 수 있고, 임금도 차별화할 수 있는 노동력 관리체제를 만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 삶의 안정성이 무너져 내린 도시 노동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농촌에서 대대적으로 유입된 농민공들의 불만도 적지 않았으며, 구조조정을 거쳐 배출된 면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어떤 장치도 존재하지 않았다.2000년대 들어 ‘조화사회’라는 구호가 등장한 것은, 그만큼 사회가 조화롭지 못하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했다. 노동계약법의 등장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데, 다양한 원천에서 부각되어 온 사회적 갈등을 법적 틀을 통해 해결의 방향을 모색해 보려는 노력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본격적으로 새로운 갈등과 대립의 출발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국이 처한 난점을 보여준다. 노동계약법의 문제가 금융세계화의 충격이 국내적으로 미친 영향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면, 중국 외환보유고의 급성장은 중국과 세계 경제의 연관고리의 중요성을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런 양면성, 특히 그 취약성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벌써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동아시아 내의 국제적 분업구조의 하위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바 있기도 하다. 중국은 동아시아 발전모델을 복제하면서도, 그 발전모델 자체가 지속될 수 없는 시기에 그 모델을 복제하고 있다는 특이성을 보이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창비 펴냄.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씨줄날줄] 골드 파파/오승호 논설위원

    요즘 젊은이들은 아버지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최근 서울신문사 입사시험(작문) 결과를 보면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들은 아버지를 과거 산업화의 역군으로 일에만 매진하는 사람, 직장에서 늦게 퇴근해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사람, 자식들에게 무조건 명령만 하는 권위주의적인 사람 등으로 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는 경제적인 요인 즉 수입을 으뜸으로 꼽기도 한다. 자본주의 사회가 강화되면서 아버지의 역할이나 기능이 돈을 잘 버는 것으로 바뀌는 것 같다. 그런가 하면 가정에서 소통이 없다고 지적한다. 또 보수적 시각을 갖고 있다고 본다. 쇠고기 촛불 집회에 참석하러 가면서도 아버지에겐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무조건 반대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아버지와 자식간 간극은 좁힐 수 없는 걸까.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선 소통 부족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는 “아버지는 일이 바빠 가족과 여행을 가거나 취미 생활을 하기 쉽지 않다.”면서 “자녀와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책임이 아버지에게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세대간 문화 차이를 꼽는다. 김 교수는 “우리 세대만 해도 가부장적 권위에 익숙한 반면 자녀들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확산에 익숙하다.”면서 “애정을 갖고 자녀와 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가족 중심인 외국과 달리 우리는 사회 중심이기 때문에 자녀가 아버지에게 먼저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제적인 여유와 패션 감각이 있는 40∼50대 중년 남성, 이른바 ‘골드 파파(gold papa)’들이 자신을 가꾸는 데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노화 방지를 위한 기능성 화장품이 인기를 끌고, 주름을 펴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아 보톡스 주사를 맞는 아버지들도 늘고 있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세대간 문화 이식 현상이라고 말한다. 외모에 신경 쓰는 풍조가 중년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골드 파파가 자녀들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번지면 소통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승호 논설위원 osh@seoul.co.kr
  • 동북아 현대사의 블랙박스 만주

    흔히 동북3성(랴오닝성·지린성·헤이룽장성)을 가리키는 중국의 ‘만주’.17세기말 청나라와 함께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이 지역은 일제하 항일운동의 본산이자 중국 조선족의 본향이다. 최근엔 한국판 웨스턴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무대로도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한석정 등 지음, 소명출판 펴냄)은 지난 수십년간 역사의 뒷전으로 밀려났던 만주를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한다.1998년 창립된 만주학회 회원들이 필자로 나섰다.‘거란과 여진’등 북방민족의 요람으로써의 만주 역사부터 오늘날 탈북자들의 은거지가 된 만주의 현대적 의미까지, 만주의 실체를 살핀 18편의 논문이 실렸다. ‘중국 조선족의 현황’(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만주 이해에 도움을 줄 만한 논문. 개혁·개방 이후 동북3성 조선족의 인구변동, 한국인과 결혼인구 등을 꼼꼼하게 짚어 조선족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산업화로 인한 이농현상과 출산율 저하로 1980년대 전체의 40%선을 넘었던 옌볜 조선족 인구는 2000년대 초반 37%으로 떨어졌다.1990년대 ‘한국 바람’으로 한국내 불법 체류자가 6만명선을 넘어서며 조선족 사회는 심각한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만주국과 오키나와의 비교사적 고찰’(임성모 연대 사학과 교수)은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권´의 중심이었던 괴뢰국 만주국과 2차세계대전 이후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패권 장악에 필요했던 일본 오키나와가 ‘공식 식민지’가 아니라 ‘간접 지배지’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는 주장을 편다.‘간도문제의 시대적 변화상,17∼21세기’(박선영 포항공대 교수)는 조선시대의 모호한 영토개념 이래 20세기의 간도를 둘러싼 국경문제를 살핀다. 편저자인 한석정(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제하 항일 민족운동의 본산이라는 우리 민족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만주가 ‘전설의 땅’으로 치부돼 왔다.”며 “항일운동 역사뿐 아니라 가려져 있는 만주의 역사를 추적하는 데 서술의 초점을 맞췄다.”고 밝혔다. 한족 중심의 중국 민족주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만주가 아닌, 베일 속에 가려진 만주의 본모습을 끄집어냈다는 데 이 책의 미덕이 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1050 세대를 말하다] “우리는 ㅁ 세대다”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1050 세대를 말하다] “우리는 ㅁ 세대다”

    삶을 이루는 정치·사회·경제·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심각한 세대갈등은 화두가 된다. 하지만 ‘갈등은 또 다른 힘’이다. 갈등이 있어 서로 원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세대 소통’이 생기고 ‘화합’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반대로 갈등을 인지하려 하지 않는 태도가 사회발전의 동력을 꺼버리는 결과를 낳는다.15명의 시민들이 나름의 단어를 통해 자신의 세대에 대해 정의했다.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에게 자신이 처한 어려움을 표현했고, 중장년층은 자식세대에게 알아주지 않는 희생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사회 곳곳에 갈등이 넘친다고 말하지만 정작 마음 속에는 표현하지 못한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작고도 큰 세대 갈등이 소통과 화합을 이끌어내는 힘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무한도전] ●김동현(16·황지고 1학년)군 10대에겐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20대부터 100세까지 자신의 삶을 그려나갈 수 있다. 우리는 때묻지 않은 하얀 캔버스지와 같은 세대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좋지만 골프·바이올린·만화·컴퓨터 게임 등 무엇이든 목표를 정하고 달려갈 수 있다. 한두 차례 실패도 용인된다. 무한도전 가능성, 그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의 특권이다. 대한민국을 이끌 재목이며, 앞으로의 세상을 이끌 주역들인 10대, 우리에게 불가능은 없다. [실험대상] ●강우주(16·의정부 영석고 1학년)군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우리 세대의 교육에 대한 거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사라졌던 0교시가 부활했고 우열반이 생겼다. 우리의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교육이 아니라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들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실험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은 우리를 ‘어떻게 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 누구보다 먼저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선 우리 세대의 자율성을 무시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죄수] ●남용우(17·경기상고 2학년)군 대학입시라는 원죄 때문에 학교와 학원에 갇혀 산다. 학교는 학생이 아닌 선생님 중심이다. 수업은 국·영·수 위주다. 고등학생 정도면 0교시 수업, 광우병 등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웬만큼 안다. 하지만 의견을 개진하면 어른들은 ‘어린 게 뭘 안다고 말하느냐.’며 무시한다. 우리를 ‘어리다.’는 울타리에 가둬놓고 있다. 우리 목소리를 낼 공간이 없다. 촛불집회도 처음에는 우리를 주목하는 척했지만, 지금은 10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슈퍼맨] ●김지윤(24·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씨 2008년을 사는 20대는 슈퍼맨이 되기를 강요당한다. 학점관리, 영어, 한자, 컴퓨터에서 취업을 위한 스펙(학력·학점·토익 점수 등을 합한 것) 관리까지 뭐든지 다 잘해야만 한다. 등록금 1000만원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아르바이트 한두 개는 기본이다. 하루 24시간은 짧고 20대의 낭만은 사치다. 하지만 우리를 희망 없는 ‘88만원 세대’로만 단정하는 것은 곤란하다. 우리는 미선·효순 사건부터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까지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배운 세대다. 취업에 눌려 살지만 불의에는 결연히 나선다. 마치 슈퍼맨처럼.20대, 여전히 희망은 있다! [안습] ●김차준(27·경남대 북한대학원생)씨 경제가 어려워서 학생운동도 못 해보고, 대학의 낭만도 누려보지 못하고, 학점과 외국어에만 몰두했다. 군대 다녀오고 대학 졸업하면 쉽게 취직이 될 줄 알았는데, 다시 청년 실업에 직면했다. 비정규직 안 하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그것마저 정규직 세대에게 ‘처지를 모르는 배부른 소리’라고 비판당한다. 이런 우리 세대를 보면 안구에 습기가 차지 않을 수 있나. 우리 세대는 마음 깊은 곳에 설명하기 힘든 박탈감을 갖고 살아간다. [창조적] ●김혁근(22·서울시립대 경제학부)씨 대졸자가 넘쳐나는 지금 기업들은 창조적 인재를 선호한다. 어려운 취업문을 뚫기 위해서는 그들이 원하는 창조적 마인드를 갖춰야 한다. 직업의 종류와 상관없이 창조적이라는 말은 ‘최고’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단어의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지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게 하는 힘인 것은 분명하다. 창조를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 여행 등을 통해 얽매이지 않는 지성을 길러야 한다. 어차피 기업에 들어가면 다시 비창조적으로 변할 테지만. [재테크] ●이복무(35·LG파워콤 대리)씨 좀 진부하지만, 이 말처럼 우리 세대를 잘 나타내 주는 말도 없는 것 같다.30대는 한창 가정을 꾸려 갓 낳은 아이와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할 시기다. 지금 세 살 난 아이가 있는데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다. 그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재테크뿐이다. 사실 월급만으로 여유있게 살기란 쉽지 않다. 많은 동료들도 모두 어떻게 하면 재테크를 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경쟁도 치열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고 재테크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시스템 트레이딩’이란 것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 ●이정민(35·주부)씨 30대가 아이러니 세대인 이유는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장 힘든 삶을 사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외환위기 때 한창 취업을 위해 땀흘렸던 세대다. 취업난, 경제난 등 힘든 시기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가정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는 세대라는 점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는 세대이기도 하다. 베이비붐 세대로 경쟁에만 몰두했던 세대로서, 번영의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사회에서는 가장 치열하고 가정에서는 가장 행복한 것이 30대다. [샌드위치] ●유환선(39·교원그룹 홍보디자인팀)씨 우리는 직장과 가정이라는 무거운 빵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한다.30대 초반에는 적금·펀드 등에 몰두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다. 결혼 후에는 집을 장만하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허리띠를 꽉꽉 졸라맨다. 직장에서는 실력을 인정받아 승진하기 위해 구슬땀, 아니 식은땀을 흘린다. 밤샘 야근도 불사한다. 결국 직장과 가정에서 오는 중압감을 지혜롭게 이겨내는 게 30대를 잘 보내는 핵심인 듯하다. [동네북] ●이영숙(47·주부)씨 우리 세대에게 부모님을 공경하고 모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뭐라고 하셔도 그냥 꾹 참고 살았다. 하지만 요즘엔 아이들도 부모를 무척 쉽게 본다. 너무 오냐오냐 키운 부모 책임도 크지만 가끔은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마치 우리 세대를 마냥 ‘동네북’처럼 여기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겹쳐 있는 5월이면 그런 갑갑함이 최고조에 이른다. 어린이날이라고 아이들 챙겨주고 나면 3일 뒤 다시 부모님을 챙겨드려야 했으니까. 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는 언제쯤 ‘동네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버림받은] ●이계숙(43·자영업자)씨 40대는 부모님을 모시는 마지막 세대다. 다음 세대가 우리가 늙으면 보살펴 줄지 의문이다. 우리는 대가족과 핵가족의 과도기에 끼여 있다. 집단주의와 개인주의의 과도기 사이에 불안하게 서 있다. 한마디로 외로운 세대다. 홀로 살던 노인이 자살하고 신(新)고려장이 시작됐다는 등의 기사를 가끔 접하곤 한다. 하지만 ‘20∼30년 후에도 독거노인이 기사거리가 될까?’라고 생각한다. 이미 버림받을 것을 알고 살고 있지만 자식에 대한 온갖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비참한 세대인 셈이다. [건곤일척] ●이성호(47·인천 현대유비스병원 원장)씨 인간은 인생을 걸고 한판 승부를 펼쳐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앞만 보고 달려왔다.30대에 가정을 이룬 뒤 안정적인 기반 마련과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 쉼 없이 내달렸다. 레지던트에서 한 병원의 원장이 되기까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환자와 병원을 위해 살았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가정에 소홀했다는 것을 알았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이제야 가정적인 남편,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절제] ●우석만(52·KT 파주지점장)씨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참 표현력이 강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주장을 거침없이 얘기할 줄 아는 당당함이 보기 좋다. 이번 촛불집회도 젊은이들의 힘이 컸다고 들었다. 하지만 때론 그 표현력이 다소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히 KT에서 일하면서 인터넷 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은 데 절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많이 나와 당황할 때가 많다. 우리는 ‘절제’의 세대다. 쉽게 내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금기로 여겼다. 우리 세대의 장점을 잠시 배워보는 게 어떨까. [기도] ●김정자(56·주부)씨 우리는 자녀를 건강하고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나는 못먹고 못 입어도 아이들을 잘먹이고 잘 입히기 위해 그들보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 이제 자식들이 사회로 나갔지만 아직도 기도하며 살아간다. 이런 마음을 자녀들이 몰라줘 슬플 때도 많았다. 하지만 어제와 비교할 수 없는 오늘은 우리 세대의 수도자와도 같은 근면함의 결과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 세대는 좁게는 내 자식의 오늘과 미래를 걱정하고 넓게는 그에게 영향을 미칠 대한민국의 오늘과 미래를 위해 기도한다. [거름] ●박정덕(59·주부)씨 우리 세대 특히 여성들은 남편과 자녀들을 위해 끝없이 희생했다. 우리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들이 우리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땅을 비옥하게 하지만 드러나지 않고, 결국 흔적없이 사라지는 거름과 같은 역할을 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희생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하지만 사회는 달디단 열매에만 주목한다. 당연한 일이지만 오늘 따 먹는 열매가 어디서 왔는지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경주 이경원 김정은기자 kdlrudwn@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촛불과 진보의 앞날] “촛불은 멈출 곳을 미리 정하지 않아 긴 호흡·먼 시선으로 보는 지혜를”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촛불과 진보의 앞날] “촛불은 멈출 곳을 미리 정하지 않아 긴 호흡·먼 시선으로 보는 지혜를”

    2008년의 촛불시위는 한국 진보진영에 익숙한 많은 것들을 낡은 것으로 만들었으며, 그동안의 관념과 실천을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몇 가지 점에서 2008년의 촛불은 매우 독특하다. 첫째 촛불시위 참여자들은 위계적 조직에 의한 동원과 지도를 거부하며,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서 저항을 전개하려 한다. 이들은 단단한 중핵을 갖는 방사형 구조 속에서 움직이지 않고, 크고 작은 각양각색의 점들을 모아 점묘화를 그리려 한다. 사람들이 아고라에서, 인터넷 동호회에서, 한 명의 개인으로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모아 집단적 흐름을 만들었다. 둘째 촛불 참여자들은 운동조직으로 제도화된 분업체계를 거부하며, 느슨하고 거대한 규모의 공동체적 협동으로 전체를 작동시킨다. 기존의 진보단체들은 틀을 가진 벌집형 분업체계 속에서 움직였다. 이에 반해 촛불시위대는 색종이 조각들을 붙여가며 전체의 모자이크를 만들어간다. 사진전문가, 트럭운전사, 신경과 의사, 김밥집 아줌마, 인쇄소 아저씨가 각자 자기 재주를 발휘해 촛불 작품을 만든다. 정해진 의무도 아니고,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셋째 이념과 사상, 거대담론들이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삶의 구체적 문제와 열망이다. 그 이야기들이 모여 사회적 담론이 되는 것이지, 사회체제의 이념이 먼저 있어 그것을 좇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지금 단 한 번도 진보를 말하지 않은 채 대한민국 진보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그러나 촛불의 새로운 힘 역시 그에 상응하는 약점과 한계를 갖고 있다. 촛불시위의 자유분방함은 그것의 생명력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바로 그 장점이 약점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계획되고 조직된 저항과 달리, 개인들의 무수한 물줄기들이 만나 흐르는 촛불의 강은 그것이 멈출 곳을 미리 정하고 흐르지 않는다. 모두가 당장 내일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긴 호흡, 먼 시선이 부족한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상황이 너무나 급박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촛불의 동력이 거시적이고 장기적 비전에 관련된 토론으로까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촛불 참여자들이 애초에 쇠고기 이슈에서 출발하여 점차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의 다양한 문제들을 깊고 포괄적으로 제기해 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일각에서는 촛불집회가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견해가 있지만, 정치적 표현과 정치행동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다. 우리나라 헌법은 결코 대통령과 국회의원만이 정치에 관한 발언과 표현의 권리를 갖는다고 규정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점에서 2008년의 촛불 참여자들은 놀랍게도 적극적이었다. 시민들은 정당·사회단체의 선전지를 받아 단지 읽기만 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 이들은 아고라에서, 인터넷 동호회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며 의견을 나누고 공론을 만들어간 주체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개인들의 일상이 정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사회의 문제는 개인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자각은 지금 우리 손에 쥔 작은 촛불의 생명력을 더욱 끈질기고 강인한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 가슴 속의 불씨는 이제 꺼지지 않을 것 같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촛불과 진보의 앞날] “이것이 촛불정신”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촛불과 진보의 앞날] “이것이 촛불정신”

    “촛불시위에서 발현된 저항정신을 동력으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장에서의 권위주의와 싸워 이겼으면 한다(조희연).” 진보는 이론 이전에 삶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 재구성된다.11일 오후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가 사회과학부 2학년 학생들과 마주 앉았다. 김이민경, 소현, 정훈씨는 시위에 꾸준히 참석해온 ‘열성 촛불들’이다. 네 사람은 각자가 촛불을 통해 경험한 강렬한 기억들을 삶의 공간에서 어떻게 실천으로 풀어낼 것인지를 유쾌한 언어로 토론했다. 조 교수는 “우리는 학교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으니까 강의실에서 권위주위를 퇴출시킬 방법부터 의논해 보자.”며 운을 뗐다. ●“호칭만 바꿔도 많은 게 변해요” “촛불의 정신은 부당한 권위에 대한 거부라고 할 수 있어. 평소 교수와 학생이 강의실에서 평등해질 수 있는 방법을 많이 고민해 왔는데, 위계관계가 반영되지 않는 별칭을 정해 부르면 좋을 것 같아. 교수-학생간 권력관계는 호칭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니까. 난 아버지가 조씨, 친어머니는 은씨, 새어머니가 서씨니까 ‘조은서’ 혹은 ‘조은’이라고 불러줘(조희연).” “조희연 교수님이라 부를 때와 조은이라 부를 땐 엄청 다른 느낌(정훈)!” “그럼 난 ‘땡땡이’(김이민경).” “난 ‘총총’(소현).” “꼭 별칭을 만들어 불러야 한다는 것도 억압이야. 난 그냥 ‘정훈’(정훈).”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모든 권력이 희화화되잖아요. 그런데 촛불을 들고 권력을 희화화했던 사람들이 정작 자신의 삶 속에서는 권력관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우리 학교 선후배 관계만 해도 그래요. 후배들은 선배들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도 찌르면 안 되는 그런 거 있잖아요(소현).” “권력을 희화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권력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넘어 약자로서 강자의 권력에 대해 여유를 보여 주는 것과 같아요(정훈).” “예비역 남자 선배들과 평등하게 말을 놓자고 합의하고 이름을 불렀는데, 싫어해요. 선배들은 그냥 오빠로서 말을 놓자는 뜻이었던 거죠. 호칭이 뭐냐에 따라 사람과의 관계까지 결정돼 버리잖아요.‘선생님 어떻게 생각해요?’와 ‘조은 어떻게 생각해요?’는 매우 달라요. 호칭만 바꿔도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어요(김이민경).” “모든 권위에 의문을 표하는 비판적 사회과학의 방법론과 호칭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지(조희연).” ●“촛불도 탈권위적이지만은 않아” “촛불시위 현장이 꼭 탈권위적이지만은 않아요. 한번은 초등학생이 자기 발언을 한 적이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초딩은 가라.’는 식으로 반응하는 거예요. 중·고등학생들은 아예 학교에서 시위 참석을 막고요. 다 어른들의 시각이잖아요. 저는 촛불시위에서만큼은 모든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김이민경).” “10대는 스스로 정치적 주체임을 선언했는데, 기존의 규율권력은 여전히 10대를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묶어두려고 하는 거지(조희연).” “이런 경우도 있어요. 전경과 대치할 땐 남자가 앞으로 나가고 여자는 뒤로 빼주거든요. 물론 배려라고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배제된다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힘이 충돌하는 현장에서는 장애인들도 자기 의사를 전달하는 데 무리가 있어요(김이민경).” “규율과 보호는 동전의 양면이야. 예비군이 앞장서는 것도 차이에 따른 분업이 아니라, 기존의 규율체계에 따른 분업이라 할 수 있지. 여성은 보호받고 남성은 보호하는 분업체계가 촛불시위에서도 형성되는 거야(조희연).”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겼어요” “촛불 이후가 기대되는 게, 촛불을 통해 말하지 않던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잖아요. 중·고등학생이 말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들이 말하기 시작했어요. 촛불 이후에도 그들이 예전처럼 그냥 학교와 가정에만 있을까 싶어요. 한번 말하기 시작했는데 그냥 말문을 닫고 있지는 않을 거라 믿어요(김이민경).” “자기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건 아주 중요한 지적이야.1980년대는 반독재라는 시대적 과제 때문에 자신의 고유한 관심사를 드러내지 못한 게 사실이거든. 지금은 그런 집단주의 시대는 아니지. 촛불을 통해 개인의 차이를 그 자체로 존중해 주는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조희연).” “촛불 이후에도 자신의 문제의식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광장이 유지됐으면 좋겠어요. 촛불이 꺼지고 나면 광장까지 사라질 것 같다는 걱정이 들어요(정훈).” “촛불 이후에 저도 계속 말하고 싶은 게 있어요. 촛불시위를 진압해야 하는 전·의경들도 많이 괴로울 거 같아요. 그들도 국가폭력의 희생자들이거든요. 질서유지란 이름으로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때 전·의경의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으면 좋겠어요(김이민경).” “촛불에서 찾아낸 정치적 주체성을 토대로 우리 삶 속 권위주의를 어떻게 해체할 거냐를 이야기했는데, 나 역시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촛불을 들고 가야 할 궁극적인 곳은 청와대가 아니라 결국 우리의 삶 속이란 생각이 드네(조희연).” 글·사진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세대를 말하다] 이태백… 사오정… 2050 함께 눈물

    ■ 경제 경제분야의 세대갈등은 일자리를 둘러싸고 일어나고 있었다. 어떤 세대도 가정 경제의 근간이 되는 일자리를 차지하고 싶지만, 성장이 둔화된 현실에서 일자리 확보는 다른 세대의 퇴장을 의미한다.20대는 40·50대가 물러나야 정규직 일자리가 생긴다는 입장이다. 그 반면에 더 이상 평생직장이 없어진 40·50대는 너무 빨리 물러서야 하는 이유가 20·30대의 빠른 성장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정규직 20대는 일자리를 원하지만 회사에는 자리가 없다.30대는 평생직장이 사라지면서 이직을 고민하고 있다.40대는 명퇴압박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50대는 재취업전선에서 고군분투한다. 지난 2003년 4년제 대학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이모(29)씨는 6년째 공무원 시험준비중이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고시원에서 운영하는 독서실의 시간제 총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지만 한달에 버는 돈은 60만원 남짓이다. 게다가 정부는 공무원 수를 줄인다고 발표했다. 취업의 꿈은 멀기만 하다. 그는 “기업 정규직이나 공무원이나 붙기 힘든 건 마찬가지여서 하던 것을 계속하고 있다.”고 힘없이 말했다. 반면 대기업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는 황모(33)씨는 요즘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업계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지만, 미래가 불안하다. 올해 선배 두 명이 공사로 옮겼고 남은 8명 중 3명도 같은 고민이다. 이직의 큰 이유는 ‘정년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고속승진도 끝내는 독이 되는 것을 여러번 봤다. 마흔이 넘었는데 임원 승진을 못 하면 퇴물이 된다. 중견기업 부장인 박모(46)씨는 요즘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임금피크를 지났고, 회사에서 은근히 나갔으면 하는 눈치다. 아마도 쉰살 전에 퇴직해야 할 모양이다. 그는 퇴직 이후 법원 경매물건을 전문으로 다뤄 볼 생각이지만 이 분야도 경쟁이 치열하다. 그는 “고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고 있는 얘들을 연금보험이나 저축해 놓은 것만으로 대학을 졸업시키고, 시집 장가 보낼 생각을 하면 그저 막막하다.”고 후회했다.3년전 퇴직한 김모(58·전직 공무원)씨는 퇴직과 동시에 시작한 식당을 4개월 전 정리했다. 프랜차이즈 회사의 말만 믿고 무턱대고 퇴직금과 그동안 모았던 돈을 투자했는데 영업 3년만에 간신히 본전만 건졌다. 김씨는 사무직종에 재취업을 하고자 컴퓨터를 배우고 있다. 서울산업대 사회학과 정이환 교수는 다른 세대를 밀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 것은 능력과 상관없이 정년제로 운영되어온 기업문화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 역시 198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청년층이 정규직으로 취업하지 못하면서 같은 과정을 거쳤다는 것이다. 일자리 세대간 갈등은 좋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층은 취직할 자리가 줄고 윗세대는 자리압력을 받아 양쪽이 모두 불만을 갖게 된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도 일자리를 못 갖는 20대는 불만이 생기고 40·50대는 이전의 선배들이 누렸던 평생직장 보장을 못 받아 불만을 갖는다. 정이환 교수는 “이렇듯 좋은 일자리를 둘러싸고 생기는 세대간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은 대기업·공기업의 일자리와 일반 중소기업 일자리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금을 근로 연수에 따라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책무 등에 따라 차별적으로 책정하고, 여기서 남는 임금으로 새로운 인력을 창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면 고려대 사회학과 현택수 교수는 일자리 세대간 갈등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힘들었던 외환위기를 뚫고 나온 비정규직 세대가 20대라면 외환위기 때 상당히 쇼크를 받고 힘들게 지내온 세대가 30대 중후반”이라면서 “반면 40대 이상은 386 등 정치변동을 겪으면서 팽창시절, 좋은 시절을 보냈으므로 세대별로 인식차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40·50대가 빨리 회사에서 퇴장할수록 20·30대는 빨리 취직을 하게 되지만 이들 역시 40·50대가 되면 고용기간은 짧아진다. 황비웅 장형우기자 stylist@seoul.co.kr
  • [서울신문 창간 104주년 특집-多문화가 경쟁력이다] 급증하는 다문화가정 현주소

    잡종은 강하다. 순종보다 잡종이 우월하다는 것은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진화론이 가르쳐 준 생물학적 교훈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역사상 가장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헬레니즘 제국도,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로마제국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교잡한 ‘잡종 국가’의 선물이었다.20세기를 호령한 팍스 아메리카나의 힘 또한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하이브리드(hybrid) 문화에서 나왔다는 것은 상식이다.●한국은 이미 다민족·다문화사회 한국은 이미 ‘다민족·다문화사회’에 진입했다.2007년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67만 8000여명. 한국인과 외국인 배우자로 구성된 이른바 ‘다문화가정’도 13만가구에 육박한다. 한국인 남성과 제3세계 출신 여성의 국제결혼이 증가한 결과다.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다문화가정 2세도 4만 4000여명에 이른다. 하지만 ‘단일언어·단일민족’의 신화에 속박된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은 여전히 주류질서에 편입되지 못한 ‘2등 국민’으로 음산한 사회의 주변부를 배회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언어·문화적 이질성에 따른 소통의 어려움이 원활한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이중의 장벽으로 기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한국인의 시선은 여전히 평면적이다. 민족적 동질성을 해치는 이질적 존재로 규정해 배제·차별의 대상으로 바라보거나, 노동력의 세계화에 따른 디아스포라(離散)의 피해자로 간주해 원조·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식이다.●20~30년 뒤엔 이민세대 전면에 그러나 다문화가정을 한국사회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증진시키는 ‘사회적 우성인자’로 인식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다문화가정의 적응 장벽인 언어·문화적 차이를 세계화의 긍정적 자산으로 삼을 수 있다는 역발상적 사고다. 서울 성동외국인근로자센터의 김준식(58) 관장은 “미국이나 유럽에서처럼 이민 2세대는 그 자체로 소중한 민간 외교자원”이라면서 “특히 외교·통상관계에서 모국과 한국의 연결고리로서 충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미국의 경우만 보더라도 외교·국방라인에서 한반도 문제를 총괄하는 핵심 실무관료의 상당수가 한국계다. 국방부 한국과장 스티브박, 국무부 한국과장 성김, 북한팀장 유리김 등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의 아시아담당 수석특보 발비나황도 한국계다. 이민의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의 경우 2세대의 사회진출이 본격화되는 20∼30년 뒤엔 미국과 같은 이민세대의 공직진출이 가시화되리라는 게 김 관장의 전망이다.●해체되는 폐쇄적 혈통신화 아직은 시작 단계지만 공교육과 사교육 현장에서 외국어 강사로 활동하는 다문화가정 1세대도 늘고 있다. 대부분 영어·중국어권 출신의 고학력 결혼이민자들이다. 원어민교사 확보가 쉽지 않은 농어촌 지역의 초·중등학교 방과후교실에서는 영어권 출신 결혼이민자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여기에 이주노동자의 국적이 다양해지면서 이들을 상대하는 관공서 등에서 소수언어권 출신 한국어 능통자에 대한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 그러나 다문화가정의 확대가 가져다 주는 긍정적 효과는 이들의 ‘이중언어’능력을 활용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다문화가족의 보편화가 차이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확산에 기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진욱 교수는 “다문화가정의 확대를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한국사회의 폐쇄적 혈통신화는 해체의 수순에 접어들게 된다.”면서 “이런 점에서 다문화가족은 차이를 존중하고 문화적 스펙트럼을 넓혀 삶의 지평을 확대하는 열린 사회의 씨앗”이라고 평가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촛불 ‘생활 속으로’

    촛불 ‘생활 속으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가 평일에는 촛불집회를 더이상 열지 않기로 결정하고, 촛불집회를 원천 봉쇄하고 있는 경찰이 종교계의 시국집회에 대해서도 사법처리 가능성을 밝혀 촛불집회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우선 매일 저녁 서울광장에 모여들던 촛불이 각 이슈별로 분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미국산 쇠고기의 유통에 맞서는 불매 운동 차원의 ‘생활 촛불’로 거듭나고 있다. 국민대책회의는 지난 7일 “평일 촛불집회는 각 부문과 단체가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식으로 주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8일 오후 7시에는 민주노총이 단독으로 주관한 ‘공영방송 사수’ 촛불집회가 여의도 문화방송(MBC) 본사 앞에서 열렸다. 이석행 위원장은 “조합원들을 독려해 책임지고 촛불을 살려 나가겠다.”고 말했다.9일에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린다. 경찰의 종교인 사법처리 검토 방침이 알려지면서 종교계도 다시 술렁거리고 있다. 시국법회를 추진했던 지관 스님은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원천봉쇄하는 등 정부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교계가 촛불집회 전면에 나서는 등 중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시민들의 뜻과 마음이 일그러져 종교인들이 양심상 참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광우병 기독교대책위 김경호 집행위원장도 “종교인 사법처리는 촛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면서 “정부가 오만한 자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종교계는 즉각 연대해 거세게 저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촛불의 응집력이 약화됐지만 오히려 ‘생활 촛불’은 확산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미국산 쇠고기 불매운동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녹색연합 최승국 사무처장은 “미국산 쇠고기가 시중에 유통되지 못하도록 전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성단체연합 남윤인순 대표도 “쇠고기 구매 제로 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매운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말했다. 가정주부들의 모임인 인터넷 카페 ‘세상을 바꾸는 여자들’ 회원 3100여명은 장바구니, 유모차 등 생활용품에 ‘미국산 쇠고기를 불매합시다.’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강남 직장인들의 모임인 인터넷 카페 ‘아고라’ 회원들은 점심시간 때 번개 모임을 갖거나 퇴근 뒤 강남역 일대에서 게릴라 시위를 하며 불매 운동에 나섰다. 온라인 촛불집회 공간인 ‘실타래’에는 1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해 촛불을 밝히고 있다.‘미국산 쇠고기 불매’라는 문구가 찍힌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늘었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미국산 쇠고기 전면 재협상이라는 촛불의 상징성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다양한 형태의 저항이 나오고 있다.”면서 “불매운동은 촛불이 생활화한 단적인 예”라고 평가했다. 김승훈 김정은 황비웅기자 hunnam@seoul.co.kr
  • [7·7 소폭 개각] 감사원장·장관 3명 평균재산 17억

    [7·7 소폭 개각] 감사원장·장관 3명 평균재산 17억

    ■ 내각 인선 배경·뒷얘기 7일 정부가 개각 명단을 발표하기까지 거의 한 달이 걸렸다. 그만큼 청와대가 시기와 폭, 교체 대상 등에 대해 고심을 거듭했다는 증거다. 일처리에서는 ‘불도저’라고 알려진 이명박 대통령이 인사 문제만큼은 ‘햄릿’ ‘거북이’임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이번에 교체된 3명의 장관과 1명의 차관은 각각 충북, 전남, 경북, 충남 등으로 지역 안배에 신경을 썼다. 감사원장과 장관 3명의 평균 재산이 17억원이라는 점에서 ‘강부자’라는 지적을 벗어나고자 고민한 흔적도 엿보인다. ●철통보완속 재산문제 철저 검증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인선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검토됐었다. 그러나 재산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탈락한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면서 인선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인선작업은 이 대통령과 정정길 대통령실장, 김명식 인사비서관을 중심으로 철통보안 속에서 진행됐다.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에 내정된 장태평 전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은 막판까지도 베일에 가려 있었다. 재경부와 농림부를 두루 거쳐 세제와 농업분야에 밝은 데다 호남 출신이라는 점이 발탁 요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에는 한때 김도연 장관의 유임도 검토됐으나 결국 안병만 미래기획위원장이 낙점됐다. 의외의 인물을 포함해 제3의 인물까지 폭넓게 검토됐다가 검증 단계에서 모두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는 일찌감치 한나라당 전재희 의원이 내정됐다. 한때 부동산 문제로 검증 과정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한다. 개각의 또다른 관심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3명+α’에 포함되느냐로 모아졌었다. 강 장관을 교체하는 대신에 최중경 차관을 경질한 것에 대해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실무적으로 협력이나 기조설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면서 “환율을 최종 책임졌던 차관을 경질하는 것으로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강 장관을 대신한 희생양 성격의 경질이라는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 차관은 강 장관과 더불어 수출 위주의 경제성장 정책을 강조한 인물이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경제팀을 바꾸라고 했는데 기획재경부 차관 정도 교체하면서 개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처 행정공백 많아 조기 개각 국회 등원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내던지듯이 개각을 발표한 시점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이 G8 확대정상회담에서 귀국한 뒤 해도 늦지 않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장에 내정된 김황식 대법관도 헌법상 보장된 임기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자리를 옮겨 논란을 낳고 있다. 이 대변인은 “국회와의 관계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면서 “그러나 일부 부처에서 눈에 안 보이는 행정공백이 많이 있어 더 이상 늦출 수 없다는 차원에서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고환율 유탄에 최중경 차관 ‘대리 경질’ 강만수 재정부장관 유임 기획재정부 최중경 제1차관의 경질은 고환율 정책에 따른 고물가 파동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강만수 재정부장관은 개각에서 살아 남은 대신 오른팔 격인 최 차관을 잃었다. 그러나 환율 정책의 잘잘못은 가리지 않고 이례적인 차관 경질로 넘어가려 한다고 말이 많다.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역대 개각에서 장관은 남은 채 차관만 경질된 사례는 거의 없다. 장·차관의 일괄 교체 또는 일괄 잔류가 아니면 장관 개각 뒤 시일이 지난 뒤 차관을 교체하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강 장관의 유임 가능성은 일찌감치 관측돼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데다 ‘747’ 공약의 입안자를 교체해야 하는 정권의 정권의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재정부 안에서는 강 장관의 유임에 대해 ‘경제정책의 연속성을 위해 다행’이라는 반응이지만 최 차관의 경질에 대해서는 납득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최 차관은 평소 부처 후배들을 잘 챙기면서 신망을 받아 왔다. 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고유가 등 대외변수에 따라 어려워진 경제의 책임을 장관 대신 최 차관이 짊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고환율 정책을 채택한 것은 성장위주 전략을 기조로 잡은 MB노믹스 자체인 만큼 최 차관이 ‘747 공약’의 희생양이 됐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 차관도 이날 이임식에서 “정책의 효과를 내려면 최소한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후에 평가해 줬으면 좋겠다.”고 섭섭한 속내를 드러냈다. 최 차관이 강력한 환율주권론을 주창, 시장에서 ‘최틀러’라는 별명을 처음 얻은 것은 지난 2003년. 당시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일하면서 원·달러 환율의 하락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시장에 퍼부었다. 덕분에 2004년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140원이라는 ‘최중경 라인’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과도한 환율방어는 2조원의 손실이라는 부메랑이 되었고, 끝내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실용정부 출범 이후 최 차관은 강 장관과 함께 ‘최강 라인’을 구성, 수출증대를 위한 고환율정책을 다시 펼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화값 약세에 따른 인플레이션 가중의 주범으로 몰렸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부처 첫 여성 장·차관 라인 떴다 복지부, 4년만에 女수장 전재희 의원이 복지부 장관에 내정되면서 정무 부처를 제외한 일반 부처 가운데 처음으로 여성 장·차관이 함께 일하는 장면이 연출될 전망이다. 복지부에는 이미 2월부터 이봉화(55) 차관이 근무하고 있다. 이는 문민정부 시절 여성업무를 담당해 여성만 임명하던 정무제2장관실 장·차관(당연직) 이후 한 부처에서 여성 장·차관이 함께 일하는 10년 만의 일이기도 하다. 특히 복지부는 참여정부 초대 김화중 장관 이후 4년만에 여성장관을 맞게 된다. 7일 행전안전부와 복지부에 따르면 역대 정부 부처 가운데 여성 장·차관이 동시에 재임한 사례는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김영삼 정부 때 정무제2장관실에서 권양자 장관, 김영순 차관을 필두로 4차례나 여성 장·차관이 함께 일했지만 독립된 부처가 아니었다. 문민정부 시절 정무제2장관실의 역대 장·차관 8명 모두 여성이었다. 결국 1998년 이연숙 장관, 신태희 차관이 정무제2장관실에서 퇴임하면서 이같은 모습은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때문에 전재희 장관 내정자, 이봉화 차관을 바라보는 주변 눈빛도 남다르다. 전 내정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정책을 보좌한 ‘측근’으로, 이 차관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사회교육문화분과)을 지낸 ‘실세’로 불리기 때문이다. 전 내정자가 ‘여성 최초의’ 행시패스, 중앙부처 국장, 민·관선 시장 등의 타이틀을 달고 다니는 동안 이 차관도 7급 지방공무원으로 시작해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승진과 영전을 거듭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감사원장 - 장·차관급 내정자 프로필 ■ 법조계 신망 높은 외유내강형 성품 김황식 감사원장 온화하고 합리적인 성품의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판사시절부터 대법관감으로 불릴 정도로 일찌감치 법조계 내부에서 신임을 받았다. 1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을 수석으로 수료,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법원행정처 법정국장, 기획조정실장 등 행정처 요직을 거치며 행정경험도 겸비했다. 특히 부동산등기 및 독일법 분야에서 실력자로 꼽힌다. 독일에서 민법과 부동산 등기법을 연구하고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 부동산 등기제도의 기틀을 마련했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는 판결을 다수 선고했다. 공안사건 등에서는 보수성향을 보였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법조계 기독교 모임인 ‘애중회’ 회장이며, 예술품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 법조계 테니스대회에 법원 대표로 출전할 만큼 테니스실력이 수준급인 스포츠맨이다. 부인 차성은(58)씨와 1남1녀. ▲전남 장성(60) ▲광주제일고, 서울대 법대 ▲사시 14회 ▲서울민사지법 판사 ▲전주·광주지법 부장판사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광주지법원장 ▲법원행정처 차장 ▲대법관 ■ 外大총장 역임한 행정학계 원로학자 안병만 교육과학부장관 이명박 대통령의 동갑내기 측근 가운데 한 명이다. 이 대통령 당선 전부터 외곽자문기구인 바른정책연구원 이사장직을 맡아 정책자문 역할을 했다. 이런 인연으로 새 정부의 초대총리 후보로 자주 거론됐다. 한국외국어대 총장을 두 차례나 역임한 행정학계의 원로학자이기도 하다. 한국외대 총장 때는 용인외고와 사이버외대를 설립하고 학내 분규를 해소해 ‘정이사’ 체제로 전환시키는 등 대학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또 총장 시절 졸업식 때 학생들에게 일일이 직접 졸업장을 수여해 화제가 됐다. 무난하고 모나지 않은 성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는 식의 경영스타일로 다소 우유부단하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20대 후반부터 대학강단에 섰다. 기독교 신자로, 취미는 테니스와 골프다. 부인 박정희(68)씨와 1남1녀. ▲충북 괴산(67) ▲경기고 서울 법대 ▲한국행정학회 회장 ▲한국외대 총장 ▲한국대학총장협의회 회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 ■ 조세·정책홍보 업무 밝은 경제관료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행시 20회로 공직에 입문해 옛 경제기획원, 재정경제원 등에서 예산·세제·정책홍보 등 업무를 두루 거친 정통 경제관료다. 특히 재경원 국제조세과장·법인세제과장과 재정경제부 법인세제과장·재산세제과장,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등을 거쳐 조세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2004년에는 ‘국장 교류제’를 통해 1년8개월 동안 농업정책국장·농업구조정책국장을 맡으면서 농수산식품부(옛 농림부)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농업·농촌종합대책 및 119조원 투·융자 계획과 농협법 개정 등의 마무리 작업을 원활하게 처리해 농림부 안팎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온화한 성품이며,2001년에는 ‘강물은 바람을 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는 제목의 시집을 낼 정도로 문학적 조예도 깊다. 부인 강명희(58)씨와 1남 1녀를 두고 있다. ▲전남 무안(59) ▲경기고 ▲서울대 사회학과 ▲경제기획원 소비자정책과장 ▲재정경제원 국제조세과장 ▲재경부 법인세제과장 ▲재산세제과장 ▲국세심판원 상임심판관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 ▲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 여성 첫 행시합격·시장 지낸 정책통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여성 최초의 행정고시 합격자(13회), 민·관선 시장(광명시)으로 공직사회의 각종 여성 관련 기록을 갈아치웠다. 노동부에서 중앙부처 첫 여성국장을 지낸 뒤 1994년 관선 광명시장에 임명됐고 이듬해에는 지방선거에서 여성 최초의 민선 시장에 선출됐다. 16대 국회에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입문한 뒤 18대까지 내리 3선을 기록했다. 당의 대표적인 정책통으로 2004년 예결위에선 소액 연체자가 본인의 국민연금 일시 반환금을 이용해 신용불량에서 구제받는 방안을 당론으로 관철시켰다.2005년 유시민 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내정자의 국민연금 미납 사실을 지적,‘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답변을 이끌어 냈다.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오래 활동해 이 분야에 두루 밝으며, 대선 과정에선 일류국가비전위 산하 제2공약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이명박 대통령의 복지·교육분야 대선 공약 작업을 주도했다. 조달청 차장을 지낸 남편 김형률(58)씨와의 사이에 1남 1녀. ▲경북 영천(59) ▲영남대 법정대 ▲노동부 직업훈련국장 ▲경기 광명시장 ▲16,17,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한나라당 최고위원 ■ 노동현안 두루 밝은 ‘6·3사태’ 출신 김대모 노사정위원장 6·3사태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공대 학생회장을 동시에 맡아 법대 학생회장을 지낸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함께 학생운동을 했다. 노동계와는 지난 1992년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연을 맺었다. 1993∼1996년에는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을 역임해 노동계 현안에 두루 밝고, 원장으로 일하면서 방향 제시 등 선 굵은 행정업무를 선보였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기존 노사정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재조정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부인 진양희(63)씨와 1남2녀. ▲평양(65) ▲서울고, 서울대 화학공학ㆍ경제학 ▲미 라이스대학 경제학박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최저임금심의위원회 공익위원 ▲한국노동연구원장 ▲중앙대 정경대 학장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 ■ 정책 조정력 뛰어난 거시경제통 김동수 기획재정부 1차관 물가 관리 분야를 두루 거친 거시경제 관료다.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시작으로 재정경제부에서 생활물가과장·물가정책과장 등 물가관리 부서를 모두 섭렵했다. 물가 부문을 담당하면서 제조물책임법·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등을 제정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기본법의 토대를 마련했고, 서민 주거생활 안정을 위해 주택보급을 확대하고 전세보증금 융자제도도 도입했다. 인화를 중시하며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데 능숙하고 합리적이어서 정책 조정에 뛰어나다는 평가다. ▲충남 서천(54) ▲행시22회 ▲고려대 경영학과 ▲미 하와이대학원 경제학 박사 ▲경제기획원 예산실 ▲재정경제부 물가정책과장 ▲국무조정실 규제개혁2심의관(2급) ▲재정경제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기획재정부 차관보 ■ 유엔 차석대사 거친 국제법 전문가 신각수 외교부 2차관 30년 경력의 국제법 전문 외교관으로 유엔 차석대사 등을 거쳐 다자외교를 총괄하는 제2차관에 적임자라는 평가다. 외무고시 9회로 1977년 입부, 주로 대일 외교를 맡다가 91년 국제법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유엔 참사관, 조약국장, 유엔 차석대사 등을 맡아 다자외교로 전공을 바꿨다.2006년부터 이스라엘 대사로 활동해 왔다. 차분하고 꼼꼼해 복잡한 다자교섭에서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성격이 소탈하고 인간관계도 원만하다는 평가다. 새 정부 출범 당시 차관 등 물망에 올랐지만 유명환 외교장관의 고교 후배라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후문도 있다. 부인 홍소선(50)씨와 1남1녀. ▲충북 영동(53) ▲서울고 ▲서울대 법학과 ▲외시 9회 ▲동북아1과장 ▲장관보좌관 ▲유엔 참사관 ▲조약국장 ▲유엔 차석대사 ▲이스라엘 대사 ■ 김덕룡 대통령 국민통합 특보 ▲전북 익산(67)▲서울대 사회학과 제적 ▲13·14·15·16·17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한나라당 부총재 ▲정무 제1장관 ■ 이성준 대통령언론문화 특보 ▲서울(63) ▲서울대 인류학과 ▲한국일보 편집국장 ▲한국일보 대표이사 편집인(부사장) ▲관훈클럽 총무 ▲한나라당 제17대 중앙선대위원회 언론위원회 본부장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 ■ 민봉기 황해도 지사 ▲황해(72) ▲국제대 중퇴 ▲인천광역시 지방행정동우회장 ▲인천시 북구청장▲인천시 남구청장 ▲16대 국회의원 ■ 한원택 함경남도 지사 ▲함남(67) ▲성균관대 사회과학부 행정학과 교수 ▲성균관대 행정대학원장 ▲한국도시행정학회 부회장 ▲한국지방자치학회 부회장 ■ 김정기 대통령실 교육비서관 ▲경북(52)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육인적자원부 평생학습국장 ▲교육인적자원부 교육인적자원연수원장 ▲교육인적자원부 차관보 ▲선문대 부총장 ■ 박찬모 과학기술특보 ▲충남 천안(73) ▲서울대 화학공학과 ▲포항공대 총장·대학원장 ▲한국컴퓨터그래픽스학회장 ▲재미한국과학기술자협회장 ▲한국과학기술한림원종신회원
  • 자취감출 이대(梨大) 명물「메이·퀸」

    자취감출 이대(梨大) 명물「메이·퀸」

    이화(梨花)여대 창립 기념행사 가운데 「하일라이트」로 사랑받아온「메이·퀸」 대관식이 71년을 마지막으로 아주 폐지되거나 5년단위로 거행될 것이라는데…. 1908년에 이화학당(梨花學堂) 창설자 「스크랜톤」부인을 초대 「메이·퀸」으로 선발한 이후 63년이 지난 올해까지 계승돼온 이 유서깊은 신록의 잔치를 폐지하려는 까닭은? 너무 흔해져 당초 멋 잃어 가장 오랜 「메이·퀸」대관행사의 전통을 자랑해온 이대가 63년만에 「메이·퀸」행사에 대한 비판론을 들고나왔다. 이 문제가 교무회의에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재작년부터 있었던듯. 처음에는 5년 또는 10년마다 한번씩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이제는 완전 폐지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다는것. 『69년부터 「메이·퀸」행사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상당했는데 송두리째 없애는것보다는 아무래도 전통적인 개교기념행사의 하나니까 5년마다 한번씩 아니면 10년에 한번씩 하기로 일단 결정을 봤던 거예요』 이대 한 당국자의 신중한 발언. 그러나 지난 5월은 어차피 개교 85주년이니까 별 이견없이 「메이·퀸」을 뽑았다. 그러다가 올들어 완전 폐지쪽으로 의견이 기울기 시작, 지난 7월에는 거의 결정을 보았다고 암시했다. 『그거 별로 재미가 없어져 간단 말예요. 애초 개교기념 행사때는「메이·퀸」행사가 아주 엄숙하고 뜻깊은 거였는데 요즘에는 유행병처럼 아무 학교나 다 하고 있잖아요? 우리 학교는 5월에 창립했으니까 「메이·퀸」이고 개교기념일도 「메이·데이」라고 하는데 다른 학교에서도 「메이·퀸」을 선발하는게 「난센스」가 아니겠어요? 그리고 「메이·퀸」에 당선되면 그 뒤끝이 별로 좋지않단 말입니다. 가령 최근에는 살해사건 까지 난 정도가 아녜요?』 그러니까 7월의 교무회의 결정은 덕성여대 「메이·퀸」유신숙(柳信淑)양(22)의 살해사건의 충격파라고나할까? 초기엔 학교 유공자 선출 일제땐 명침 바꿔 9월에 유양의 죽음이 「메이·퀸」에 대한 일반의 인상을 흐리게한건 사실 유양이 「나이트·클럽」이나 「호텔」에 드나든게 청초해야 할 대학생의 「이미지」에 먹칠을 한 것도 사실이었다. 결국 이러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이상 교육자의 입장으로도 이 제도를 다시 한번 검토하게 되는게 당연한 일. 그래서 5년 단위로 하자던 주장이 아주 중단해 버리자는 주장으로 바뀔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게 이대 당국자의 말이다. 어쨌든간에 내년부터는 이대 창립기념식행사의 「하일라이트」였던 「메이·퀸」대관식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최초의 「메이·퀸」 행사는 1908년 5월 30일. 「아래 위를 흰옷으로 입고 치렁치렁 땋아내린 칠흑같은 머리끝에 빨간 댕기를 드리운 여학생들의 행진하는 모습은 한국 역사이래 처음일지도 모르는 진풍경이요, 이색적인 「미의 제전」이었다. 제 1회의 영광스러운 관을 쓴 「메이·퀸」은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스크랜톤」부인. 그이후 1925년 이전까지 초창기에는 주로 학교설립의 유공자나 존경받는 교원들이 5월의 여왕으로 선출되었다. 학생신분으로 최초의 「메이·퀸」이 된 사람은 1917년에 뽑힌 문과 4학년생이었던 고 김활란(金㓉蘭) 박사. 그 후에도 교사중에서 「메이·퀸」을 뽑다가 27년부터 본격적으로 학생 「퀸」이 등장했고, 29년 이화학당이 여고와 전문학교로 나뉘어지자 교대로 1년마다 「메이·데이」행사를 주관하게 됐고 따라서 해마다 여고와 전문부에서 「메이·퀸」을 번갈아 뽑았다. 1933년부터는 일제의 압박으로 「메이·퀸」행사가 「자세여왕(Posture Queen)」이란 이름으로 바뀌고 날짜도 매년 9월로 변경되었다. ”시국 혼란해 행사 못한다” 중단-부활-중단의 수난 그나마 37년부터는 일제의 탄압으로 모든 행사가 중단되었다가 1947년 제61주년 창립기념일에 비로소 부활되어 해방후 첫 번째인 15대 「메이·퀸」으로 가사과 4학년의 김계현양을 뽑았다. 그러나 시국의 혼란으로 48년부터 55년까지 중단됐다가 1956년에 다시 부활, 제 15대 「메이·퀸」 에 교육과 4학년 신장현(申長鉉)양을 선출, 1960년에는 4·19로 중단하고 올해까지 계속되어왔다. 「메이·퀸」 선발 자격규정을 보면 (1)각대학 각학과의 4학년 재학생으로 (2)기독교 신자로서 신앙생활이 깊으며 (3)성적(3.0학점 이상)이 우수하고 품행이 단정하며 (4)활동적이고 지도자 자격이 있는자로 (5)신장은 160cm 안팎이라야 한다는 비교적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있다. 그외에 여왕이나 시녀는 한복을 입어야 하고 여왕으로 뽑힌 뒤에는 기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방식은 4학년 학생들 전원의 투표로 각과에서 1명씩의 여왕 후보자를 뽑고 마지막으로 교수와 동창생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심사를 거쳐 「메이·퀸」의 왕관을 쓸 주인공을 뽑는다. 「메이·퀸」 이 되지못한 각과의 후보자들은 시녀가 되어 여왕의 뒤를 따르게 했다. 요즘에는 특히 균형잡힌 체격미와 교양을 심사에서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역대의 「메이·퀸」 은 다음과 같다. 여왕조건 몹시 까다롭고 뽑힌뒤엔 기권 인정안해 1대 「스크랜톤」부인(1908년) / 2대 최활란(崔㓉蘭)교사(1910년) / 3대 김활란(金㓉蘭)학생 (대학부4년·1917년) / 4대「처치」선생 (1920년) / 5대 「밴프리트」선생(1923년) / 6대 「미시즈·토머스」(W·F·M·S)「신시내티」지부 총무 (1925년) / 7대 알수없음 (1927년) / 8대 전수진(全壽鎭)양(문과=1928년) / 9대 최신덕(崔信德)양(문과=1930년) / 10대 최예순(崔禮順)양(문과=1932년) / 11대 심양순(沈良順)양(가사과=1933년) / 12대 김갑순(金甲順)양 (문과=1934년) / 13대 김순임(金順林)양(보육과=1935년) / 14대 손인실(孫仁實)양(문과=1936년) / 15대 김계현양(가사과 1947년) / 16대 신장현(申長鉉)양(교육과=1956년) / 17대 김진명(金鎭明)양(음악과=1957년) / 18대 고광애(高光愛)양(사학과=1958년) / 19대 오선향(吳仙卿)양(영문과=1959년) / 20대 최인숙(崔仁淑)양(사생과=1961년) / 21대 배정자(裵正子)양(정외과=1962년) / 22대 정정자(鄭貞子)양(체육과=1963년) / 23대 고선희(高鮮姬)양(의과=1964년) / 24대 김정자(金貞子)양(약학과=1965년) / 25대 유중근(兪重根)양(영문과=1966년) / 26대 김록희(金鹿姬)양(불문과=1967년) / 27대 김혜숙(金惠淑)양(기독교 문학과=1968년) / 28대 이성례(李聖禮)양(시청각 교육과=1969년) / 29대 홍사원(洪思媛)양(사회학과=1970년) / 30대 신영희(申永熙)양(교육심리학과=1971년) 이상과 같이 찬연한 전통을 이어온 이대의 「메이·퀸」행사가 이제 어쩔수 없이 퇴장하게 됐다. 과연 이 순수하고 의의깊었던 행사가 변질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그 책임은 어디에 있을까? <식(植)> [선데이서울 71년 9월 26일호 제4권 38호 통권 제 155호]
  • 교수 3개단체 “재협상” 시국선언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고시 강행 이후 정국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학술단체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교수3단체는 4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정부의 쇠고기 수입고시 철회와 재협상 개시 ▲촛불시위 폭력진압 중단 ▲어청수 경찰청장 해임 및 내각 인적 쇄신 ▲촛불시위 구속자 석방 등을 요구했다. 교수3단체는 “정부는 촛불집회를 ‘불법집회’로 단정하고 국민의 소리를 외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기틀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면서 “민주주의에서 국민은 결코 훈계나 다스림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의회와 행정부, 사법부가 국민의 감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시국선언에 앞서 ‘촛불과 한국사회 2차 국민대토론회-촛불 어디로 갈 것인가’를 개최하고 촛불의 역사적 성격 및 촛불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집시법의 문제, 재협상의 필요성 등을 토론했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 단계 촛불시위의 의미와 과제’란 발표에서 “많은 사람들이 광장의 직접민주주의가 활성화되고 대의민주주의 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우려하고 있지만 촛불시위는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시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경제로 촛불끄기’ 부메랑?

    정부가 “촛불집회가 계속되면 경제가 더 힘들어진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가운데 민생경제의 위기가 촛불을 끌 수 있을 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촛불을 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다른 편에서는 어려워진 경제 때문에 시민들이 몰려나오면 걷잡을 수 없는 시위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정부는 지난 2일 ‘3차 오일쇼크’에 비견되는 경제위기를 강조하면서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안정 위주의 정책으로 변경했다. 이날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일대 상인 200여명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 촛불시위 중단을 요구하는 서명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당정은 촛불시위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시위주도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등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시위현장에는 오히려 어려워진 경제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에 참석한 회사원 이모(23·여)씨는 “점점 양극화가 심해지고 경제가 더 안좋아지면서 답답한 마음에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이슈로 촛불을 끄려다 오히려 발목을 잡힐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촛불집회의 이슈가 계속 확장돼 왔듯이 최근에는 국민들이 집회에서 이명박 정부의 무력한 경제정책에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면서 “민생문제가 촛불 집회의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고유가·고물가·저성장 등 민생문제는 쇠고기 문제와 같은 생활형 이슈여서 파괴력이 크다는 것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김건호 부장은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저소득층으로 가는 경향에 따라 민생문제가 본격 거론되면 중산층까지 거리로 나와 촛불집회가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부가 촛불시위 때문에 경제가 어려워진다고 강조하지만 경제가 어려워져 촛불의 힘이 커지는 것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석운 상임집행위원장은 “촛불집회는 직접민주주의를 위한 초석으로 아직 경제와의 연관성은 크지 않다.”면서 “향후에도 경제이슈가 촛불집회를 끄거나 혹은 지피는 추동력으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폭력 촛불엔 최루 물대포”

    “폭력 촛불엔 최루 물대포”

    정부의 장관 고시 강행 이후 촛불이 과격해지고 있다. 광화문 일대에서는 밤마다 촛불시위대와 경찰 간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으며 시위대의 폭력행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경찰은 촛불집회의 과격화·폭력화 양상이 심각하다고 보고 최루액을 넣은 물대포 사용을 검토하는 등 강경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주말인 28·29일 열릴 1박2일 동안의 촛불집회에서 충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위가 더 격렬해지면 최루액을 넣은 물대포를 살포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면서 “(그 전 단계로) 물대포에 형광색소를 넣어 살포한 뒤 집에까지 찾아가 전부 연행하겠다.”고 밝혔다. 시위대가 전경버스를 끌어내고 부수는가 하면 경찰·전경을 폭행하는 등 시위양상이 변하고 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경찰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과 ‘2MB탄핵투쟁연대’ 백은종 공동대표 등 8명에 대해 불법 시위 주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 받았다. 검찰은 이날 ‘사이버폭력 유관기관 대책회의’를 열고 기업활동을 저해하는 광고중단운동을 단속하기로 했다. 오는 30일에는 전국 40개 검찰청 공안부장과 형사1부장 등이 참석하는 ‘법질서 확립 전국 부장검사회의’를 이례적으로 갖고 대책을 논의한다. 또 촛불집회 이후 처음으로 주최측 간부인 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 등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시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단체들이 서울광장에 불법 설치한 천막과 텐트를 강제로 철거했다. 당국의 강경진압 방침에 대해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비민주적 행태로 최악의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면서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보장하는 헌법을 부정하는 불법을 저지른 어청수 경찰청장을 즉각 파면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밝혔다. 대책회의는 그러나 “왜곡보도를 하는 조·중·동에 대한 시위라도 평화적으로 하자.”고 호소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촛불이 시민들의 공감을 얻은 건 비폭력 기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이고 비폭력이 정부에 더 부담을 주는 방법이니 시민들은 폭력시위를 자제해야 한다.”면서 “다만 정부가 1주일 만에 강경 드라이브로 선회하며 소통을 막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홍지민 이재훈 김정은기자 nomad@seoul.co.kr
  • 대중독재론 발판 ‘탈민족’ 분야로 보폭 확장

    대중독재론 발판 ‘탈민족’ 분야로 보폭 확장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대중독재’ 연구가 6년간의 연구를 마무리한다. 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해온 연구 프로젝트를 끝내며 일단의 매듭을 짓는다.2003년부터 3년씩 두 번 프로젝트를 수행했고,5차례의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27일부터 사흘에 걸쳐 연구를 정리하는 학술대회(한양대 국제화상회의실)도 개최한다. 주제가 ‘대중독재-사라지지 않는 과거’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대중독재’ 연구가 6년간의 연구를 마무리한다. 학술진흥재단이 지원해온 연구 프로젝트를 끝내며 일단의 매듭을 짓는다.2003년부터 3년씩 두 번 프로젝트를 수행했고,5차례의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27일부터 사흘에 걸쳐 연구를 정리하는 학술대회(한양대 국제화상회의실)도 개최한다. 주제가 ‘대중독재-사라지지 않는 과거’다. ●이분법적 역사인식 깨기 시도 대중독재론은 한국 역사학계의 이분법적 역사인식에 균열을 시도했다. 민주와 반민주,‘저항하는 다수’와 ‘억압하는 소수’란 도식을 깨고 탈근대적 중간지대를 모색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대중의 동의에 뿌리내렸다는 이론은 박정희 시대에 대한 새로운 사유를 강제했다. 대중독재 연구는 연구소 소장인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의 사유 궤적을 따라 이론체계를 확장시켜 왔다. 임 교수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우리 안의 파시즘’(계간 ‘당대비평’이 1999년 가을호부터 이듬해 봄호까지 연재한 연속기획) 논의에서 고민의 싹을 틔웠고, 학진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대중독재란 개념틀을 만들어 냈다. 최근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트랜스내셔널(탈민족·초민족) 인문학 연구로 보폭을 넓혀 가고 있다. 대중독재론의 이념적 지형은 모호하다. 진보와 보수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한다. 당대 정치·사회 상황과 맞물리며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은 이유다.‘외국이론 수입상인 한국 학계가 생산해낸 세계적인 자생이론´이란 견해에서부터 ‘독재체제에 면죄부를 주는 시도´란 지적까지 평가는 극단을 달린다. 사법적 과거청산에 대한 회의적인 태도 탓에 ‘변형된 독재옹호론’으로 독해되기도 했다. 보수언론이 박정희 긍정평가를 위한 이론적 지렛대로 대중독재론의 ‘상품성’에 주목했던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지금도 학계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다만 초기와는 달리 대중독재론의 긍정적 기여에 대해서는 대체로 동의하는 분위기다.“한국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성과 군사주의의 작동방식을 ‘일상적 파시즘’이란 시각으로 학문적 논쟁장에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김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는 데는 이견이 없다. 임지현 교수와 가장 치열한 논쟁을 펼쳤던 조희연 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의 입장변화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중독재론이 파시즘 정당화 논리로 역이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던 그는 지난해 출간한 ‘박정희와 개발독재’에서 대중독재의 문제의식을 끌어들여 박정희 체제 분석틀로 활용했다. 조 교수는 “대중독재론은 독재가 단순히 폭압만으로는 환원되지 않는다는 중요한 통찰을 제공했다.”면서 “대중독재의 관점을 반진보적 도전이 아니라 진보의식의 확장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 또한 변화하고 있다.‘주권독재’(대중의 주권행사를 통한 다수의석 확보에 기반한 독재)와 ‘합의독재’(대중의 합의에 기반한 독재) 개념을 동시에 사용하던 임 교수는 후자에 대한 학계의 문제제기를 수용해 ‘합의’란 용어 사용을 자제한다. ●일반이론화의 위험성 제기 비판도 만만치 않다. 일반이론화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김원 연구원은 “박정희 당시의 모든 모순들을 대중독재론이란 틀 속에 짜맞추면서 현실적 긴장과 실천력을 잃어버린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조희연 교수도 “대중독재론을 일반이론화하는 것은 이론보다 훨씬 복합적인 현실의 모순을 간과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예컨대 대중독재론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킨 임 교수의 탈민족주의적 사고 하에서는 촛불시위가 요구하는 검역주권조차 폐쇄적 민족주의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독재에 대한 대중의 동의가 어느 정도의 자발성에 기초한 것이냐는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내놓는 것도 연구팀의 남은 숙제다. 염운옥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대중의 동의엔 강압이 존재한다는 비판을 새겨들어 추후 연구를 보완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해동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대중독재론이 세계적 이론으로 설득력을 가지려면 박정희 시대에 대한 실증연구부터 체계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양사 전공자들이 주축이 된 대중독재론은 독일과 프랑스 등 해외 상황과 이론 소개에 심혈을 기울여온 데 비해 정작 한국사 실증연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학진 프로젝트를 마친 연구팀은 대중독재론에 역사, 문학, 철학까지 포함하는 트랜스내셔널 인문학 분야로 향후 연구를 확장시킬 계획이다. 이번 학술대회 결과물은 내년 2월쯤 한국과 영국 출판사에서 각각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2期 청와대 ‘소통’ 모드로 전환

    2期 청와대 ‘소통’ 모드로 전환

    24일 단행된 청와대 조직개편의 핵심은 정무·홍보 기능 강화다. 지난 20일 이뤄진 대통령실장과 수석 전면교체에 이어 국민과의 소통을 넓혀 나가려는 조치다. ‘소통’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이날 박형준 전 한나라당 의원이 청와대에 입성했다.‘홍보기획관’이라는 임명장을 받아들고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 이전 청와대의 홍보수석에 해당하는 자리다. 조직 슬림화 차원에서 없앴다가 쇠고기 민심에 화들짝 놀란 이 대통령이 다시 부활시켰다. 홍보기획관 신설로 청와대에서 언론과 홍보를 담당하는 비서관은 모두 8명으로 늘었다. 홍보기획관과 대변인실이 각각 4명의 비서관을 두게 됐다. 홍보수석이 대변인을 겸했던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6명보다 2명 많다. 지금 이 대통령이 얼마나 국민과의 소통에 부심하는지를 말해 준다. 그만큼 새로 투입된 박형준 홍보기획관의 역할이 막중하다. 구원투수인 셈이다. 박 기획관은 “우선 쇠고기 파동을 거치면서 불거진 민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민심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정책홍보의 출발점이라는 얘기다.“그동안 국정홍보의 큰 그림을 기획하는 곳이 없었는데 그런 부분을 채우고 보완하는 한편 정부 부처 대변인들과 긴밀히 협의해 정부 정책을 알리는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도 했다. 지난 1기 참모진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는 “오늘 업무를 시작하는 처지에 1기 참모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박 기획관은 여권에서 이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대선 때 11차례 이뤄진 이 대통령의 TV연설 원고가 모두 류우익 전 대통령실장과 박 기획관에 의해 쓰여졌다. 대선 전엔 이명박 캠프 대변인과 당 대변인으로 그의 입이 됐고, 대선 후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 분과위원을 맡아 정부 조직개편과 국정 철학의 밑그림을 짰다. 이 대통령의 머릿속을 읽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류 전 실장이 이 대통령의 복심(腹心)이라면 박 기획관은 독심(讀心) 그 이상은 된다는 평가다. 박 기획관은 이 대통령 측근 가운데 학생운동권(고려대 교지 편집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2기 청와대에 균형감을 갖춰줄 인물로 평가된다. 진보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 대통령 주변에서 진보진영을 이해하는 인물로 꼽힌다. 신문 기자와 방송 시사토론 진행자,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 등을 지내며 쌓은 다양한 경험도 이 대통령의 소통에 도움을 줄 것으로 청와대는 기대하고 있다. 박 기획관 기용으로 청와대의 홍보기능은 대변인실과 홍보기획관실로 이원화됐다. 대변인실은 현안을 중심으로 한 공보기능을 담당하고, 홍보기획관실은 한 발 물러나 중장기 정책홍보전략을 수립, 각 부처 홍보정책 전반을 조율하게 된다.PI(President Identity·최고책임자 이미지)를 관리하고, 인터넷 등을 통해 민심의 소재를 파악하는 기능도 맡는다. 청와대 홍보기능 강화에 대해 일각에서는 정부와 국민간 쌍방향 소통보다 정부 일방의 주장과 논리를 강화하려는 포석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 일방의 주장만 펴다 쇠고기 파동이 터진 것 아니냐.”면서 “쌍방향 소통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美쇠고기’ 이제 논의의 장을 열자/최용락 연세대 사회학과 3학년

    [옴부즈맨 칼럼] ‘美쇠고기’ 이제 논의의 장을 열자/최용락 연세대 사회학과 3학년

    집회현장에서 시민들이 주고받던, 될 때까지 모이자던 다짐이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주 토요일 또다시 6만여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모였고 명박산성에 맞서 국민토성을 쌓아올렸다. 이쯤 되면 한국인의 특성 중 하나로 냄비근성을 꼽던 논의가 무색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아직 알 수 없다. 문제상황을 해결하지 못한 채 식어버린다는 사실, 그 하나가 냄비근성이라는 딱지의 충분조건이다. 냄비근성은 한국만의 특수한 국민성이 아니다. 해결방법의 부재가 가져오는 필연적 결과물일 따름이다. 언론의 역할은 사회현상의 분석에서 해결방법의 제시까지 걸쳐 있다. 냄비근성이 국민성으로 여겨지는 현실에 대한 책임에서 언론도 자유롭지 못하다. 정부가 마지막 승부수로 띄워 올린 추가협상의 결과물은 재협상이 사태해결의 유일한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서울신문 6월21일자 ‘SRM 차단 합의한 듯’이라는 제목의 앞선 보도를 반박하는 의견이 아직도 있다. 국민건강을 위한 수의사연대 박상표 정책국장은 뇌, 눈, 척수, 머리뼈 등 4개 부위를 제외한 혀, 내장, 등뼈, 사골, 꼬리뼈 등은 제대로 협상이 이뤄지지 못했으며,4개 부위에 대해서도 ‘극소한 머리뼈의 조각 또는 미량의 척수 잔여 조직’이 발견되는 경우 제대로 반송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폈다. 송기호 변호사는 QSA를 통해 검역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검역 민영화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끝내 재협상에 나서지 않으며 내세우는 논리는 무엇인가. 재협상이 국가신인도의 하락과 무역보복조치를 불러오리라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6월12일자 ‘쇠고기 재협상 못하는 이유 설명하라’라는 사설을 통해 정부 측에 재협상이 불러올 구체적인 손해의 내용을 놓고 국민 설득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추가협상결과가 발표된 지금까지도 손해에 대한 정부측의 구체적인 해명은 눈에 띄지 않는다. 재협상을 하면 잃게 된다는 ‘엄청난 국익’은 아직도 제대로 설명이 되지 않고 있다. 반면,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으로 잃게 될 국민건강을 둘러싼 우려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추가협상이 진정한 대안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본다. 집회일수는 어느덧 50일을 넘겼다. 언론의 역할은 분명하다. 재협상이 가능한 조건이 무엇인지를 검토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 기사의 내용에서 해결방법 모색을 위한 노력은 그리 치열해 보이지 않는다. 지난 한 주는 추가협상을 두고 찾아온 소강 국면이었기에 추가협상의 과정을 따라다니는 보도가 많이 나왔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추가협상단이 파견되기 이전의 보도에서도 상황은 다를 바 없다. 서울신문의 지면에서는 정부와 국민 간 의사소통의 부족이라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데 그치거나 새로운 집회형식의 출현에 얼떨떨해하는 표정이 잡힐 뿐이다.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는다거나, 해결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활발한 논의의 장이 되려는 움직임이 잘 감지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가능성을 목도하고 있다. 가능성이 결국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또 다른 냄비근성의 발효로 기억되어 냉소주의를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곤란할 것이다. 서울신문은 정부측의 설명이 미흡하다면 재협상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와 같은 상황에 서울신문은 과연 성실하게 응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차례다. 정부만 쳐다볼 것이 아니다. 국제통상 사례들을 정리해서 재협상의 실질적인 가능성을 모색하자. 또 한가지, 국내정치상황에서 재협상을 이끌어낼 실마리가 어디에 있는지 검토하자. 실질적인 논의진전의 장을 서울신문이 열어젖히길 기대한다. 최용락 연세대 사회학과 3학년
  • [靑수석 전면 교체] 수석·특보 프로필

    [靑수석 전면 교체] 수석·특보 프로필

    ■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 MB정부 초기 밑그림 그린 정책통 행정관료와 교수 출신으로 17대 한나라당 비례대표를 지냈다.17대 대통령직 인수위에서는 정부조직 개편을 주도하는 등 이명박 정부의 초기 밑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맡았고, 새 정부 초대 정무수석이 됐다. 1979년 행정고시 23회에 합격한 뒤 총무처와 감사원 등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문민정부 시절에는 대통령비서실 서기관을 지냈다.94년에는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겼고 경실련 정책위의장도 맡았다. 지난해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에는 강재섭 대표 비서실장으로 경선을 무난하게 치러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의원회관에 가장 오래 남아 있는 의원으로 꼽힐 정도로 성실함이 강점으로 꼽히지만, 동시에 학구파 이미지 때문에 정무 활동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가도 받았다. 부인 오문옥(51)씨와 1남1녀. ■ 맹형규 정무수석 - 온건·합리적 성격의 3선 정치인 앵커 출신으로 15대 총선 때 정계에 입문, 서울 송파갑에서 3선 의원을 내리 지낸 중진 정치인이다. 온건하고 합리적이며 대인관계가 원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나라당 총재 비서실장과 기획위원장 등 요직을 맡으며 당내 입지를 굳혔고,2005년에는 정책위의장을 맡았다.2006년 1월 서울시장 당내 경선에 나섰지만, 오세훈 현 시장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후 보궐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에 입성,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에는 중도를 표방하며 ‘중심모임’을 이끌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뒤 인수위 기획조정위 간사로 활동하며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18대 총선 공천에서 낙천한 뒤에도 12년 동안의 의정활동 보고서를 발간하는 의연함을 보였다. 주량은 소주 1병이다. 부인 채승원(59)씨와 2녀. ■ 정동기 민정수석 - 기획력·정책판단·추진력 탁월 기획력이 뛰어나고 정책판단력과 추진력이 돋보인다는 평이다. 지난 2004년 대구지검장 재직 당시 정상명 대구고검장과 함께 기업경영 혁신기법인 ‘6시그마’ 운동을 검찰에 처음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호관찰제도의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다. 저서 ‘보안처분제도론’과 ‘보호관찰제도 10년의 평가’ 등 다수의 논문을 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우리나라 보호관찰제도를 정착시킨 주인공으로 알려져 있다. 무엇보다 검찰로서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지휘 통솔력이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에 대한 충성도도 뛰어나다. 후배인 임채진 검찰총장이 취임하기 직전인 지난해 11월 말 대검찰청 차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통령직인수위 시절 법무행정위 간사를 맡으면서 이명박 정부와 인연을 맺었다. 부인 김외숙(54)씨와 1녀. ■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 양·다자외교 섭렵한 정통외교관 대미·대러 관계 등 양자외교와 다자외교를 두루 맡은 30년 경력의 정통 외교관. 성품이 부드럽고 강단 있게 업무를 추진해 따르는 후배들이 많다. 외시 10회로 1977년 외무부에 들어간 뒤 인도·러시아 등에서 근무했으며, 주미대사관 참사관으로 일하던 1990년대 후반 당시 주미공사였던 유명환 외교장관에 의해 발탁돼 북미국 심의관, 북미국장 등 요직을 맡았다. 이후 기획관리실장을 거쳐 2006년부터 오스트리아 대사로 다자외교에 주력했으며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다자외교를 총괄하는 제2차관에 올랐다. 양자외교뿐 아니라 다자관계에도 해박해 이명박 정부의 외교정책인 ‘한·미 관계 강화’ 및 ‘글로벌 코리아’를 동시에 추진하는 데 적임자라는 평가다. 또 대인관계가 원만해 외교안보부처간 조율에도 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부인 이숭덕(54)씨와 2녀. ■ 박병원 경제수석 - 두뇌 회전 빠른 거시경제 전문가 옛 재경부 경제정책국장을 2년5개월 동안 최장수로 역임한 거시경제정책 전문가. 재경부 차관을 지낸 뒤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하면서 민간경험도 쌓았다. 암기력이 좋고 두뇌 회전이 빠르다.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놓고 여권과 갈등을 빚었을 만큼 소신도 강하다. 송도 경제자유구역을 탄생시킨 경제자유구역법을 주도했고, 수도권 공장설립 규제완화 등을 처리하면서 개혁주의자로 평가받았다. 달변에 화법이 직설적이며 중국어와 라틴어 등 6개 외국어를 한다.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이사 퇴임 강연을 러시아어로 해 놀라게 했다. 식물학, 와인, 미술 등에도 관심이 많다. 식물학, 중국어는 책을 쓰고 사전을 만들기도 했다. 법학, 산업공학, 경제학 등 석사 학위가 3개다. 부인 최명수(53)씨와 사이에 1남1녀. ■ 강윤구 사회정책수석 - 맡은 일에는 꼭 승부 보는 뚝심파 복지부 재직 시절, 사람과 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름을 날렸다. 호방한 스타일로 보스 기질이 강하다. 하지만 맡은 바 분야에선 승부를 내는 뚝심파다. 1974년 행정고시 합격 뒤 옛 경제기획원에서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87년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복지부로 옮겨와 가정복지과장, 보험정책과장, 총무과장, 연금보험국장, 기획관리실장, 사회복지정책실장 등 요직을 거쳐 차관을 역임했다. 전남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시절 민주당 수석 전문위원으로 파견 나가기도 했다. 관계에 발이 넓은 편이다. 밤늦게까지 술을 마신 뒤에도 연구실에 들어가 집필활동을 이어온 덕분에 과장으로 재직한 분야마다 책을 한 권씩 냈다. 복지분야에선 기초생활보장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인 김현애(55)씨와 1남1녀. ■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 - ‘교육 본질’ 중시해온 교육학자 교육철학을 전공한 국내 대표적인 교육학자 중 한 사람이다. 자율화를 기초로 하는 새 정부의 교육정책 방향에는 뜻을 같이하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침 없이 교육의 본질과 근간을 중시해온 학자로 알려져 있다. 언론에 교육관련 기고도 꾸준히 해왔다. 외국어고 설립 제한에 반대하거나 ‘무학년제·수준별수업’을 지지하는 글에서 알 수 있듯 교육의 평등주의보다는 엘리트주의에 더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까지 두루 거치며 정책자문과 평가 등의 활동을 해왔다. 최근에는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단 부위원장으로 위촉됐다. 때문에 전교조 등 일부 교원단체로부터 권력지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부인 조경원(54·이대 교육학과 교수)씨와 1남1녀. ■ 박형준 홍보특보 내정 - 기획·전략이론 뛰어난 MB 최측근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한 명으로 지난해 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 선거대책위 대변인을 맡았다. 특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는 기획조정 분과위원을 맡아 이명박 정부 국정철학의 밑그림을 그린 ‘브레인 중의 브레인’이다. 하지만 지난 4·9총선에서 영남에 불어닥친 ‘친박(친박근혜) 바람’에 무릎을 꿇고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여권의 기획통이자, 전략이론가로 꼽혀왔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스핀 닥터’(spin doctor·정치홍보전문가)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라는 평이다. 고려대 재학 시절 교지 편집장을 맡아 학생운동의 이념적 틀을 제공하는 이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신문사에서 3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동아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다. 부인 조현(52)씨와 1남1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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