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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좌절 담은 ‘300자 카타르시스’

    분노·좌절 담은 ‘300자 카타르시스’

    30대 남성 댓글 여론 주도 “사회 문제에 직면한 30대 댓글로 두려움 드러내는 듯” 네티즌 38%만 “댓글 신뢰” “최근에 한화그룹 재벌 3세 난동 기사를 보니 화가 치밀더군요. 댓글을 달고 ‘공감’ 버튼을 10번 넘게 눌렀더니 기분이 좀 풀렸습니다. 다들 분풀이하는 걸 테니 댓글 내용은 안 믿습니다.”(30대 직장인 전모씨) 30대 남성이 인터넷 댓글을 주도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결혼·보육·주택 문제 등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들었다. 댓글이 일종의 분노 분출구가 된다는 의미다. 실제 10명 중 2명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쓴 댓글을 스스로 삭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여론을 파악하면서도 댓글 내용을 신뢰하지는 않았다. 네이버의 1월 둘째주(7~13일) 댓글 1위 기사는 지난 12일 YTN이 보도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귀국 인터뷰’였다. 17일 오전 11시까지 1만 3615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성별로는 남성이 64%였고, 연령별로는 30대가 36%로 가장 많았다. 경제 기사 중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외식 물가도 급등… 소주값은 역대 최고’(KBS) 기사도 4949개의 댓글 중 남성이 80%를 작성했고, 연령별로는 30대가 38%로 가장 많았다. 언론재단이 지난해 네이버 뉴스에 게시된 댓글 2400여만건을 분석한 결과도 남성이 댓글을 단 비율이 79.7%였고, 30대가 32.0%로 가장 많았다. ●작성자 스스로 삭제한 댓글 17%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30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 직면하는 세대”라며 “결혼, 보육, 주택 문제 등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댓글을 통해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댓글 중에 분노를 담은 내용을 쉽게 볼 수 있다. 네이버에서 댓글 작성자 스스로 지운 댓글이 약 17%를 차지하는 것도 같은 이유로 보인다. 관계자는 “자극적인 사건 사고, 절망을 더하는 사회 이슈 등에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댓글을 썼다가 지운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30대 남성이 상대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하지 않아 댓글을 주요 소통 통로로 삼는다는 분석도 있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통상 10대·20대의 댓글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실제는 30대 이상의 댓글이 훨씬 많다”며 “젊은 세대가 SNS로 자신의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지만 중·장년층은 댓글로 목소리를 전한다”고 말했다. ●“전체 여론 아니지만 무시 못해” 네티즌들이 댓글을 통해 여론의 흐름을 읽으면서 정작 그 내용을 신뢰하지는 않는 점도 눈에 띈다. 지난해 한국언론재단 조사(890명 설문)에 따르면 65.7%가 ‘댓글로 전체 여론을 짐작할 수 있다’고 했지만 37.9%만이 ‘댓글을 믿을 수 있다’고 답했다. 또 댓글의 영향력에 대해 ‘사회 갈등을 유발한다’가 81.2%였고 ‘다른 사람을 화나게 한다’가 84.2%나 됐다. 박경우 동아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소수의 댓글이 사회 전체의 여론을 대표하는 것처럼 포장된다는 우려도 있지만, 댓글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여론 창구”라며 “하지만 ‘댓글 신고’부터 ‘명예훼손 소송’까지 법적·제도적 장치가 갖춰진 만큼 성숙한 토론을 위해 네티즌들의 자정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감사원 첫 여성 국장 탄생

    감사원 첫 여성 국장 탄생

    감사원은 장난주(45·여)씨가 개원 68년 만에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국장(고위감사공무원)으로 승진했다고 16일 밝혔다. 현재 감사관 963명 중 여성은 145명으로 15.1% 수준이다. 장 국장은 경남 사천 출신으로 진주제일여고,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1996년 행정고시 3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1998년 행시 출신 여성 공무원으로는 처음으로 감사원에 전입한 뒤 공공기관 감사국 감사관과 산업금융감사국 과장 등을 역임했다. 장 국장은 “후배 여성 감사관들에게 모범이 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생계 수단” vs “면세 특혜”…노점 줄어도 끝없는 갈등

    “생계 수단” vs “면세 특혜”…노점 줄어도 끝없는 갈등

    “15년째 이 자리에서 노점을 하고 있습니다. 상가 건물도 들어서기 전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철거라니, 죽으라는 소리입니까.”(이수역 주변 노점상 A씨) “우리도 영세상인인데 임대료에 세금까지 꼬박꼬박 내면서 고객도 노점과 나누라는 겁니까. 억울합니다.”(이수역 주변 상인 B씨) 지난 9일 찾은 서울 동작구 이수역 7번 출구 앞에는 ‘강제 철거 중단하라’, ‘살기 위한 합동장사’ 등 현수막을 내건 비닐 천막 2개와 2층 높이의 컨테이너 박스가 있었다. 노점들이 지난해 9월 동작구청의 강제 철거에 저항하기 위해 만든 ‘합동 노점’이다. 한 노점 상인은 “평생 장사만 했는데 구청에서 다른 교육을 시켜 준다며 장사를 그만두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며 “세금을 낼 테니 여기서 장사만 하게 해 달라”고 울분을 토했다. 반면 인근 상인은 “노점이 간판을 가려서 우리 가게를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많아 손해를 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주민 한모(50·여)씨는 “다니기 불편하고, 컨테이너가 떨어질까 무서워서 그쪽으로는 안 간다”고 말했다. 구청 관계자도 “노점이 좁은 인도를 차지하고 바닥에 있는 점자블록까지 가려서 시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노량진의 컵밥거리처럼 부스형 가게로 양성화해 달라는 주장도 있지만, 특화할 만한 테마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과거 노점상은 ‘저소득층 생계수단’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일부에선 ‘임대료와 세금 없는 특혜 상점’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거리환경 정비 차원에서 지방자치단체들도 적극적으로 노점 관리에 나서고 있다. 그 결과 특색 있는 노점군으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철거되는 곳들도 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갈등에 대해 전문가들은 노점, 주변 상인, 지자체의 소통 외에는 해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점상전국연합(민주노련)과 전국노점상총연합에 따르면 현재 동작구, 마포구, 용산구 등에서 지자체와 노점의 갈등이 빚어진다. 서대문구는 이화여대 앞 특화거리 조성, 중구는 노점상 실명제를 두고 마찰이 인다. 동대문구는 건물 입주 상인과 노점상이 직접 대립 중이다. 제기동 약령시협회 관계자는 “(입주)상인들은 세금에 비싼 임대료까지 꼬박 내는데, 노점상들은 금싸라기 땅에서 큰돈 안 들이고 장사한다. 게다가 판매 품목까지 겹친다”며 “동대문구 상인회와 함께 노점 퇴출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노점상들은 결과적으로 서울시 노점상들이 경기도로 밀려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 8826개였던 서울시 노점은 지난해 7718개로 12.6% 줄었다. 노점 양성화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노원구의 경우 생계형 노점만 허용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재산 3억원(2인 가족 기준)을 초과하는 노점상은 퇴출하기로 합의했다. 서초구는 최근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신논현역 6번 출구에 이르는 650m 구간에 노점상 43곳을 분산시켜 푸드트럭과 부스형 판매대로 전환하도록 유도했다. 이제선 연세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인도 폭이 최소 1.3m 정도 확보되지 않으면 정상적인 보행이 불가능하다”며 “보행이 불가능하면 외면받게 되고 노점과 상인 모두 피해를 본다. 인도 폭에 따라 노점의 크기를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우석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는 “노점상이 불법이어도 수년간 장사했다면 어느 정도 점유권이 인정된다”며 “상인과 노점상, 지자체 간에 지속적인 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누가 백악관 실세되나… “맏사위 쿠슈너”

    누가 백악관 실세되나… “맏사위 쿠슈너”

    오는 20일 임기를 시작하는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그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오른쪽)를 백악관 선임고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법적·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어 ‘위험한 결정’이라는 언론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9일(현지시간) 트럼프 인수위원회는 장녀 이방카(왼쪽)의 남편인 쿠슈너를 백악관 선임 고문으로 임명한다고 밝혔다. 쿠슈너는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 전략가와 함께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무역과 중동 문제 등 다방면에 관여할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오는 11일 기자회견 때 쿠슈너의 구체적인 역할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쿠슈너가 공식 직책까지 맡게 되면 트럼프 정권의 명실상부 ‘최고 실세’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대선 기간에 장인인 트럼프 당선인의 연설문 작성에서부터 정책 수립, 일정과 자금 관리 등 모든 분야를 진두지휘하며 트럼프의 ‘눈’과 ‘귀’ 역할을 했다. 2009년 이방카와 결혼한 쿠슈너는 올해 36세이며 정통 유대교 신자이자 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다. 하버드대학 사회학과, 뉴욕대 로스쿨을 졸업한 수재다. 2007년 미국에서 가장 비싼 건물인 뉴욕 맨해튼 5번가의 2조여원대 빌딩을 사들여 주목받은 데 이어 주간지 ‘뉴욕옵서버’를 인수, 언론계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공직 경험은 전혀 없다. 미 언론은 쿠슈너의 백악관행에 대해 이해충돌 소지와 함께 ‘친족등용 금지법’(Nepotism rule) 위반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1967년 만들어진 연방 친족등용금지법은 대통령 친·인척의 공직 임명을 금지하고 있다. 다만 이 법이 백악관에도 적용되는지는 논란이 있다. 앞서 쿠슈너는 백악관에서 일하게 되면 급여를 한 푼도 받지 않음으로써 문제의 소지를 없애겠다고 밝혔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새벽 여는 ‘여명의 소리’… 귀신 쫓는 ‘빛의 전령’

    새벽 여는 ‘여명의 소리’… 귀신 쫓는 ‘빛의 전령’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1979년 10월 헌정사상 의원직 제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겪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정권을 향해 던진 이 말은 유신 시대의 종언을 예고한 일성으로 오랫동안 회자됐다. 닭의 울음소리인 ‘계명성’(鷄鳴聲)은 우리 역사 속에서는 한 시대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고, 민간에서는 밤을 떠돌던 귀신들이 사라진다는 ‘축귀’의 신앙이 됐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을 상징하는 십이지 동물인 ‘닭’은 고대로부터 우리 문화의 상징적 위상을 가진 동물로 가까운 존재였다. ●경주 천마총 망자 위한 제물 달걀 발견 삼국유사에 묘사된 박혁거세와 김알지 신화에서도 닭이 등장한다. 박혁거세의 왕비인 알영 부인은 계룡(鷄龍)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고, 입은 닭의 부리를 닮았다고 전해진다. 금빛 찬란한 황금 궤 안에서 나온 김알지는 하얀 닭이 울어 그의 탄생을 알렸다. 신라의 국명이 한때 계림이었던 것도 신라인이 닭을 숭배했던 것과 연관돼 있다. 경주 천마총에는 수십 개의 달걀이 든 단지가 발견되었고, 여러 고분에서 닭 뼈가 발굴됐다. 가야 지산동 고분에서 발굴된 닭 뼈는 무덤의 부장품으로 망자를 위한 제물로 쓰였다. 무덤의 주인에게 전하는 내세의 식량인 동시에 부활이라는 종교적 의미도 담고 있다. 고구려 무용총 천장에는 닭이 한 쌍 그려져 있고, 신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 ‘수탉을 죽여라’고 외쳤다는 일본서기의 기록이 전해진다. 고구려는 천축에서 ‘계귀국’으로 불렸다. 닭은 전통적으로 귀신을 쫓는 영험한 동물이었다. 조선 시대 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새해가 되면 각 가정에서 닭이나 호랑이, 용을 그린 세화를 벽에 붙이고 액을 쫓는 풍속이 전해져 내려온다. 대보름달 꼭두새벽에 첫 닭이 열 번 이상 울면 그해는 풍년이 든다는 말이 있듯 정초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닭그림 그리거나 닭 피로 귀신 쫓기도 이렇듯 닭은 나쁜 정령을 쫓는 ‘빛의 전령’이었다. 민간에서 귀신을 쫓을 때 닭 그림을 그리거나 닭 피를 뿌리는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닭은 새벽녘 어둠을 가르고 길게 울음을 토해내면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의 존재이기도 하다. 시계가 없던 시절, 닭의 울음소리로 시간의 흐름을 파악하고 제사를 지냈다. 그래서 닭이 제때 울지 않거나 울 때가 아닌데 울면 불길하다는 말도 퍼졌다. 토속 신앙에서는 닭이 초저녁에 울면 재수가 없고, 한밤중에 울면 불행한 일이 벌어지며, 해가 진 후에 울면 집이 망한다고 했다. 조선의 선비들에게는 입신출세의 상징이었다. 수탉의 볏은 벼슬을 상징하는 관을 쓴 모양과 같아 선비들의 서재에는 닭 그림이 많이 걸렸다. 공명의 상징인 수탉과 부의 상징인 모란을 함께 그려 부귀공명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드러냈다. 집안의 큰 행사인 결혼식에서 닭은 반드시 초례상에 올려졌다. 신랑 신부가 마주 서서 백년가약을 맺을 때, 청홍 보자기로 싼 닭 앞에서 서약을 했다. 신부가 시댁에 폐백례를 드릴 때도 닭고기를 놓고 절을 했다. 일생의 가장 중요한 의례인 혼인에 닭이 등장하는 이유는 예로부터 닭을 길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닭고기는 우리 국민에게는 가장 대중적인 보양식이자 요리 재료였다. 우리 국민 1인당 연간 닭고기 소비량은 15.4㎏이고,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도 254개에 달한다. 닭이 여름철 보양식이 된 데는 매년 음년 6월 20일이면 닭을 잡아먹는 제주도의 풍속이 퍼진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중국 ‘본초강목’에는 ‘조선 닭이 좋다 하여 중국의 세력가들은 조선에까지 가서 닭을 구해 간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약용으로서 한반도의 닭은 인기가 있었다. 토종닭의 경우 기름이 적고, 맛과 향이 탁월하며, 기를 보하는 약효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치킨 프랜차이즈 바람 타고 ‘치맥’ 열풍 현대에는 닭튀김인 ‘치킨’이 국민적 간식이 됐다. 닭고기는 1980년대부터 식육문화의 상징으로, 치킨이라는 국제화된 이름을 얻었다. 여름철 백숙과 삼계탕에 한정된 소비가 연중 소비로 확장된 출발점은 1960년대 초에 유명세를 얻은 ‘전기구이 통닭’이었다. 이는 닭고기를 삶는 요리에서 오븐 요리로 전환시켰고, 닭고기를 대표적인 겨울철 간식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닭은 튀겨지는 요리가 됐고, 1980년대 초가 되면 ‘후라이드와 양념 반’인 치킨 프랜차이즈가 본격화된다. 특히 1982년 프로야구 개막은 치킨 산업을 도약시켰다. 이른바 ‘치맥’ 열풍의 시발점이다. 이는 호프집들이 맥주 안주로 튀긴 닭들을 내놓게 된 계기가 됐다. 김종엽 한신대 교수는 “국내 치킨산업의 성공에는 닭고기가 가진 자질과 역사적·문화적 배경뿐 아니라 해방 이후 한국인의 미각이 걸었던 모든 행로가 응결되어 있는 양념치킨의 존재가 있다”고 분석했다. 양념치킨은 길거리 떡볶이 문화의 후계자 격이다. 식용유로 튀겨 닭의 무미함을 감추고, 튀김의 느끼함을 다시 고추장 양념으로 삭히고, 매운맛을 달콤한 설탕과 콘시럽으로 포장한, 그리고 그 위에 마늘을 다져 얹은 양념치킨은 식초에 절인 무로 완성된다. 우리의 양념치킨은 요리 산업과 미각이 서로 상승작용을 해온 맛의 역사가 담긴 증인이기도 하다. ●국내 치킨집 전 세계 맥도날드보다 많아 치킨 산업 연구자인 정은정씨는 국내 닭튀김 간식의 전쟁사를 “미국 프랜차이즈인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와의 싸움에서 KFC(코리안 프라이드 치킨)의 승리”(대한민국 치킨전: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2014)로 요약한다. 한국식 닭튀김의 승리 요인으로는 미국 KFC가 하지 않는 배달과 맥주를 함께 판매하는 한국 고유의 전략이 꼽힌다. 김 교수는 “전자는 식민지 시대의 냉면 배달로부터 해방 후 짜장면 배달로 이어졌던 긴 문화적 전통의 활용이었고, 후자는 치맥이라는 새로이 창조된 문화가 작용했다”고 설명한다. 한국에서 치킨은 자영업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국내 치킨 점포 수가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은 ‘치킨 공화국’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13년 조사에 따르면 국내 치킨 전문점 수는 10년간 연평균 9.5%씩 급증해 3만 6000여개에 이른다. 한 해 평균 7400개의 치킨집이 새로 생기고, 5000여개가 문을 닫는다.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 너도나도 창업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과잉 경쟁, 조류인플루엔자(AI) 사태까지 한국의 치킨은 자영업자들에게는 눈물을 뿌리게 하는 존재다. ※도움말 주신 분: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장, 김종엽 한신대 사회학과 교수, 이희훈 현대축산뉴스 발행인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현실은 답답 정보는 캄캄 ‘불확실 시대’

    “찌라시 사실로 밝혀져 이젠 소문도 믿게 돼” 가짜뉴스도 혼돈 부추겨 “충분한 사실 확인 필요” “인터넷에서 ‘유력 야당 대권 후보인 A씨가 대통령이 되면 대한민국이 공산국가가 된다’는 글을 읽었죠. 그 글엔 한 신문에 실린 A씨의 인터뷰도 있었는데, 기사를 읽어 보니 정작 그런 내용은 아예 없었어요.”-직장인 박모(45)씨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맞아 미확인 정보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 공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유포되면서 혼란을 호소하는 시민이 늘고 있다. 유언비어, 음모론에 이어 최근에는 가짜 뉴스(fake news)까지 가세했다. 최근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등 믿을 수 없는 사건들이 사실로 확인되자 허황된 얘기마저 사실일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이 혼돈을 부추기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게이트의 본질과 연관 있는 정보를 가려내는 작업을 통해 이런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강모(40·여)씨는 “예전에는 막장 드라마를 보면서 욕했는데 이제는 현실이 더 막장”이라며 “정유라의 생모가 최순실이 아니라는 사설정보지(찌라시)까지 그럴듯해 보인다”고 답답해했다. 전모(35)씨도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사설정보지를 믿지 않았는데, 지금은 청와대를 둘러싼 갖가지 추문에 대해 반신반의하게 됐다”며 “2년 전 정윤회 문건 때 청와대가 나서서 찌라시라고 했는데 돌아보면 사실이었다.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입수 경위 의혹’, ‘박근혜 대통령 중환자실 입원’ 등과 같은 가짜 뉴스도 유통되고 있다. 실제 보도물과 형식이 같고 사진과 영상도 첨부돼 언뜻 보면 구분하기 어렵다. 허위 정보 유포가 늘면서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17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물타기 유언비어 신고센터’라는 온라인 페이지를 만들었다. 카카오톡, SNS, 댓글 등의 유언비어 화면을 캡처해 올려 달라는 건데, 22일 오후 2시까지 2889건이 접수됐다. 의혹의 당사자라는 점에서 경우는 다르지만 청와대도 지난달 18일 공식 홈페이지에 ‘이것이 팩트입니다’ 코너를 만들고 박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참사 당일 머리 손질 의혹, 비아그라·주사제 처치 등에 대한 입장을 싣고 있다. 김학수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정보의 불확실성이 유언비어를 낳는다. 사실이 숨겨져 있어 대중이 알 수 없을 때 그 불확실성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창조되는 것”이라며 “시공간을 초월한 의사소통 기술 때문에 유언비어는 더 빠르게 확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동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극적인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소문의 사실 여부가 아니라 소문이 사태의 본질과 맞닿아 있느냐다. 지금은 시민들의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합리적인 질문까지 음모론이나 유언비어로 낙인찍는 것은 의문과 비판에 재갈을 물리려는 전략”이라며 “다만 사실 확인이 충분히 되지 않은 정보를 섣불리 정답이라고 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팔자 바뀔까… 매년 15만명 이름 바꾼다

    최순실 동명이인도 개명 신청 “교원 임용고시를 볼 예정인데 철학관을 찾은 어머니가 제 이름이 교사와 맞지 않는다고 했다면서 새 이름을 받아 오셨어요. 사실 그 말을 믿는 건 아니지만 큰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서 이름을 바꿨죠.”-사범대학 4학년 김모(22·여)씨 “장사도 잘 안 되고 관두려 해도 직장도 안 잡혔어요. 이름 때문인가 싶어서 작명소에서 개명했죠. 사실 이름을 바꾸고 상황이 크게 나아지진 않았는데요. 그래도 마음은 편하니까요.”-자영업자 노모(35·여)씨 법원의 개명 허가를 받아 새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해마다 15만명이 넘는다. 작명소나 철학원 관계자들은 예전에는 놀림감이 되는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취업, 시험, 건강, 결혼, 진학 등 일신상의 이유로 개명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청년층의 개명이 증가한 것도 새로 나타난 특징이라고 전했다. 20일 대법원에 따르면 2005년 7만 2833건이었던 개명 신청은 절차가 간소화된 2006년 10만 9567건으로 늘었고, 2009년 이후부터 지난해까지는 매년 15만건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법원은 지난 10년간(2006~2015년) 제기된 151만 9523건의 개명신청 가운데 93.3%(141만 6956건)를 받아들였다. 서울에서 작명소를 운영하는 김모(57)씨는 “예전에는 ‘김개똥’, ‘안테나’, ‘강도야’ 등 놀림감이 되는 이름을 바꾸겠다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이름 때문에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젊은층이 많다”며 “특히 취직시험에 떨어졌다며 찾아오는 이들이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와 주변 인물들이 개명을 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개명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도 크게 늘었다는 의견이 일각에서 나온다. 하지만 한 작명가는 “최순실 사건 때문에 개명 요청이 늘지는 않았다”며 “다만 연쇄살인범 강호순(2009년)이나 김길태(2010년)처럼 최순실도 기피하는 이름이 됐고, 동명이인이 개명을 신청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한글 이름은 유지하고 음이 같은 한자로 개명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성명학이 사주, 운세, 별자리 등에 맞춰 획수와 음절이 맞는 한자를 고르는 것이어서 가능하다. 회사원 이진희(33·여)씨는 “단명수가 있다고 해서 이름에 사용하는 한자를 ‘빛날 희(熙)’에서 ‘기쁠 희(喜)’로 바꿨다”고 말했다. 김기승 한국작명가협회 이사장은 “많은 이름을 만들다 보니 결국 좋은 이름이란 부르기 좋고 발음이 정확해 혼동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개명 열풍은 최선을 다했음에도 시험 합격이나 취직 등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조성된 것”이라며 “기복신앙에 기대는 심리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실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니 개명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거나 상황이 개선되기를 기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정치참여 변화? 단순 무관심? 총학 선거 올해도 찬바람

    두 달 넘게 계속되는 ‘촛불집회’로 대학생들의 정치 참여가 활발하지만, 학내에서는 총학생회 출범이 무산되는 경우가 속출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학생들의 정치 무관심은 여전하다는 의견이 있다. 반면 촛불집회와 같은 새로운 유형의 학내 정치 참여 형태가 생기면서 기존의 총학생회가 쇠퇴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19일 연세대 관계자는 “지난달에 치르려 했던 총학생회 선거에 입후보자가 한 명도 나서지 않아 무산됐다”고 밝혔다. 후보자 부재에 의한 선거 무산은 55년 만에 처음이다. 숙명여대, 서울시립대, 서울여대 등도 총학생회장 입후보자로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에게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생기고, 취업·학점 등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면서 파편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며 “대학 진학률이 85%를 넘는 현실 속에서 과거와 같이 스스로가 사회 변화를 주도하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자각도 희미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학 내 정치 행위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지난 7월 28일부터 본관 점거 농성을 시작해 미래라이프대학 사업을 중단시킨 이화여대 학생들의 시위는 총학이 아닌 학생 중심의 조직이 이끌었다. 서강대도 최근 남양주 제2캠퍼스 사업을 둘러싸고 학내 진통이 계속되자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서강사랑’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성명서를 발표하고 동문간담회를 열었다. 지난 8일 서강사랑은 해체를 선언하며 “이곳의 이력을 학생회 등 어떤 활동에도 내세우지 못하도록 참가자들의 신원을 밝히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촛불집회처럼 평소 학교를 감시하면서 필요할 경우 자발적으로 집결하는 형태다. 백승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이 국회의원을 국민의 대표라고 체감하지 못하듯 대학생들도 총학에 대해 점점 큰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은 정치적 욕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해 보는 실험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미 일상의 부당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 본 경험이 있는 20대는 학내 이슈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집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 인위적으로 사람들을 조직하고 특정 구호 밑에 모이는 형태의 사회운동이 약해지면서 새로운 유형이 등장하기 위한 과도기 단계”라며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정체성이 명확한 성격을 가진 주체가 없을 때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결집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이석기·계엄령, 이런 구호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석기·계엄령, 이런 구호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촛불집회와 보수단체의 집회 간에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지만 양측 집회 모두 일부에서 외치는 정치적인 구호로 논란을 빚었다. 전문가들은 대중의 인식에 부합하는 행보를 견지하지 않는다면 자칫 외면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날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끝까지 간다! 박근혜 즉각 퇴진! 공범처벌·적폐청산의 날’로 주제를 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과 황교안 총리 퇴진을 촉구했다. 주최 측은 “국민은 박근혜가 즉각 퇴진하라고 명령하고 있다”며 “대통령 행세를 하는 황교안 총리도 즉각 사퇴하고, 헌재는 박 대통령을 신속히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남 목포에서 올라온 박민정(39·여)씨는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급 의전을 바라는 등 민심과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며 “촛불이 줄어든다고 분노가 사그라든 게 아니며, 감시의 눈빛이 소홀해진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갑론을박이 오가기도 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한상균 위원장 석방을 외치는 게 부당하다는데, 그는 박 대통령 퇴진을 우리보다 먼저 외치다 감옥에 갔다”고 주장했다. 시민 이모(44)씨는 “촛불집회가 일부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통로로 변질된다면 참여하지 않겠다”고 지적하고 “다만 일부의 한상균, 이석기 구호를 과대포장해 촛불집회가 변질된 것처럼 말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보수단체 50여개로 구성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이 오전에 개최한 박 대통령 탄핵반대 집회에서도 과도한 구호가 난무했다. 주최 측은 “계엄령을 선포하라”, “빨치산처럼 밤만 되면 나오는 촛불 패거리”, “촛불은 종북”이라고 촛불집회 측을 비난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인 구호는 시민들의 폭넓은 공감을 얻기는 어려우며 촛불집회의 지배적 이슈가 아니기 때문에 시민들도 호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교수는 “보수단체의 경우 극단적인 구호를 통해 세력 결집을 꾀하고 있는데 계엄령, 빨갱이 등의 주장들은 대중의 인식과 괴리가 있다”고 말했다. 오후 4시 시작된 촛불집회는 오후 9시쯤 마무리됐다. 퇴진행동은 24일과 31일에도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이날 오후 8시 40분 기준으로 서울에 65만명, 이를 포함해 전국에 총 77만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찰은 일시점 최다인원을 기준(오후 7시)으로 서울 6만명, 전국 7만 7000명이 왔다고 추산했다. 보수집회에는 촛불집회의 절반이 넘는 3만 3000명(주최 측 100만명)이 모였다고 전했다. 경찰이 촛불집회의 인원을 보수집회의 2배도 안 되는 것으로 추산하면서 편향적이라는 논란이 불거졌다. 경찰 관계자는 “촛불집회와 탄기국 집회의 참가 인원을 추산하는 담당 부서가 다르지만 똑같이 페르미 방식을 이용해 엄정히 추산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서울 도심에 경비병력 228개 중대(1만 8200여명)를 배치해 촛불집회와 보수단체 집회 참가자 간 충돌을 막았으며 행진 과정에서 양측 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할 말 하는 乙… ‘진짜 소통’ 열었다

    할 말 하는 乙… ‘진짜 소통’ 열었다

    교사 성희롱 폭로·이대 사태 등 권위·관습에 굴복 않고 저항 탄핵안 가결시킨 촛불이 촉매제 절대적 권위 및 복종으로 상징되는 ‘갑을 관계’에서 유연한 소통으로 옮아가는 사회적 변화가 촛불집회를 전후로 직장, 학교, 기업 등에서 일어나고 있다. ‘을’의 항변에 ‘갑’이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 강남 S여중 학생들의 교사 성추행 폭로는 교육계를 흔들고 있고,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는 다른 대학에서 학생과 학교의 소통이 활발해지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두고 전문가들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생활 민주주의로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15일 교사 A씨는 “성추행, 성희롱 등은 보통 학생도 쉬쉬하는데 S여중생들의 용기 덕에 수사까지 이어졌다”며 “학교 측이 초기에 명예훼손을 거론하는 등 학생들의 폭로를 막으려 했지만 언론과 학부모가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결과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4일 S여중 교사 8명이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에 게시되자 학교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제보가 계속 이어졌다. 이후 실태조사에 나선 서울시교육청은 교사 8명에 대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지난 10월부터 불거진 문단 내 성추행 폭로도 과거에는 당하고 참던 ‘을’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불거졌다. 지난 5월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역시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모여 책임자 수사가 가능했다. 최근 경찰에서는 일선 지역 경찰의 항의로 ‘공약 특진’ 결과가 뒤집히기도 했다. 경찰청의 경관이 낙점된 데 대해 지방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이 내부망인 ‘현장 활력소(청장에게 바란다)’ 게시판에 항의 글을 올렸고 이의신청도 접수했다. 결국 경찰청은 재심 후 지방청 소속 직원으로 특진자를 교체했다. 한 경찰은 “특진 결과가 바뀌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데 이철성 경찰청장이 보고를 받고 재심을 지시했다고 들었다”며 “하위직이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지휘부 의견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화여대가 신설하려던 평생단과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도 유사하다. 학교 측이 계획을 발표하자 학생들이 본관을 점거하며 농성을 벌였고, 학교 측은 결국 계획을 백지화했다. 이후 고려대가 단과대 ‘크림슨칼리지’ 신설을 추진했다가 학생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수정했고, 서울대도 시흥캠퍼스 신설을 두고 반발하는 학생들과 적극적으로 대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 사건, 촛불집회 등의 경험들이 ‘소통을 위한 사회적 통로’를 만들었고 정의와 민의에 기반해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떼법’과 소통을 구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의 목소리가 제도권에 반영되고 승리하는 경험이 누적되며 사회의 ‘을’들이 자존감을 회복했다”면서 “더이상 권위에 굴복하는 것을 숙명으로 생각하지 않고 자존감을 바탕으로 권위에 저항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 속 민주주의’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직장, 학교, 가정 등에 확산되고 정착될 것으로 봤다. 다만 임 교수는 “이런 소통 방식을 제도화할 때 정치권은 이익집단의 목소리에 과민 반응하지 말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집회라는 경험을 통해 시민들이 앞으로 사회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며 “특히 집단 저항을 시작한 청년들의 분노는 지속적으로 표출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이제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높고 정보 접근성이 큰 집단지성의 시대”라며 “성별이나 연령, 소속 집단에 상관없이 자신의 주장을 거리낌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고 말했다. 서동욱 서강대 철학과 교수는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지만 그간 확인할 수 없었다”며 “권력을 위임받은 통치자의 권력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만연했던 권위가 쇠퇴하고 교실, 직장 등에서 훨씬 더 투명하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박탈감의 근원지이자 치료제, 運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박탈감의 근원지이자 치료제, 運

    운(運)이란 무엇일까. 운을 사회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어떤 사람은 부자로 잘살고 어떤 사람은 가난뱅이로 사는가. 그것을 오로지 능력의 차이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능력이 남보다 나으면서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능력만으로 보면 남보다 나을 것이 없는데도 잘사는 사람이 있다. 같은 현상이 지위의 높고 낮음에도 나타난다. 같이 출발한 동료 중에서 능력이 남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먼저 승진하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능력상으로는 별로다 하는 사람이 반드시 뒤로 처지는 것도 아니다. ‘특혜와 책임’이라는 책을 쓰면서, 그리고 지난 회의 뉴리치 뉴하이를 올드 리치 올드 하이와 비교하면서, 특혜를 받아들이는 우리와 서구 간의 가장 큰 인식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운’이라고 말한다면, 아니 보다 정확히는 운이 차지하는 부분이 능력에 못지않게 크다고 말한다면,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 중 이를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물론 조선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쓴 말 중 하나가 운수 탓으로 돌리는 운수소관(運數所關)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도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다. 미국 사회학과 교육학 책에 자주 인용되는 피터 프린시플(Peter‘s principle)이라는 것이 있다. 이 프린시플은 ‘사람은 누구나 무능력 수준만큼 승진한다’는 것이다. 능력 수준만큼 아니라 무능력 수준만큼 승진한다니, 이해는 고사하고 기가 찰 일이 아닌가. 이 말을 한 로버트 피터(Robrt Peter)가 처음 초등학교 교사를 했을 때, 거기서 가장 무능력한 사람이 교장이 되었고, 다음 공직으로 자리를 옮겨서 보니 역시 거기서도 가장 무능력한 사람이 국장이 됐고, 다시 직장을 바꾸어 회사로 갔을 때 거기 또한 가장 무능력한 사람이 임원이 되더라는 것이다. 무능력한데 어떻게 위로 올라갔느냐. 그 누구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이 말이 어떻게 ‘프린시플’이 됐느냐. 원칙이 되고 법칙이 되었느냐이다. 피터 설명에 의하면 “처음엔 누구나 유능했다. 그래서 선생이 되고 공무원이 되고 회사원이 됐다. 그러나 그 유능이 다하고 마침내 무능이 드러날 즈음, 바로 그 즈음에서 그 자리에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최후 단계로 최고로 올라가서 그 직장에서 제일 높은 장(長)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무능이 먼저 다 드러나서 물러가는 사람들이 더 많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이를 모두 운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물론 운으로 다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무능력이 완전 드러나도록까지 승진하는 데는 운이 크게 작용했다는 의미다. 끝까지 유능했는데 승진했다면 거기에 운이 파고들 여지는 적다. 무능한데도 올라갔기 때문에 운이라는 변수를 큰 요인으로 드는 것이다. 문제는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과학적으로 사회현상을 따지고 분석하는 서구 학자들이 ‘피터 프린시플’을 자주 인용한다는 데 있다. 미국 경제학이나 사회학에서도 불평등을 다룰 때는 으레 불평등 요인으로 운(fortune)이라는 것을 든다. 우선 어떤 부모를 두었느냐가 운이다. 누구도 자기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 태어나니 어떤 사람은 부잣집이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집이었다. 그래서 영어에 부(富)와 운수(運數)를 같은 단어 ‘fortune’으로 쓴다. ‘fortune’은 어떤 경우엔 ‘rich’라는 의미로 쓰이고 어떤 경우엔 ‘luck’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우리도 최근 어떤 게이트(gate)에 걸린 사람의 딸이 “돈도 실력이야 너 부모를 원망해”했다고 비난이 들끓었다. 그러나 이 경우 “돈도 실력이야”가 아니고 “돈은 운이야”했어야 맞다. 내 실력으로 번 돈이 아니면 그것은 횡재든 운이든 둘 중 하나다. 하긴 횡재도 운이다. 내 대학동기 중에 박정희 대통령 때 나이 40이 될까 말까 해서 장관이 된 서석준이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장관 취임식 때 내가 물었다. “석준아, 너는 어떻게 이 젊은 나이에 장관이 됐니?” 그때 그 친구 대답이 40년도 더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다. 내가 운이 좋아서다. 우리 부서(경제기획원)에 나보다 능력이 나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내가 장관이 된 것은 정말 그들보다 운이 좋아서다.” 그는 전두환 대통령 때도 장관(경제기획원)을 했고, 아깝게도 1983년 10월 아웅산에서 죽었다. 그 또한 운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특혜와 운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그 어떤 관계로 운을 그렇게 장황히 늘어놓는가.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회심리를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는 목적에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어떤 나라 사람들보다 유달리 높은 상대적 박탈감을 갖고 있다. 상대적 박탈감은 남과 비교해서 내 몫이 적은 것은 남에게 그 내 몫을 빼앗겼기 때문이라는 심리다. 실제로 빼앗긴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나 내남없이 다 그렇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면, 도대체 빼앗은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그 빼앗은 사람에서 예외인가. 만일 내가 예외라면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예외라 생각할 것이고, 그렇다면 전체적으로 빼앗긴 사람만 있고 빼앗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가 유달리 상대적 박탈감이 그렇게 높은가. 이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개인심리학을 창시한 알프레드 아들러에 의하면 상대적 박탈감은 열등감에서 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 열등감은 누구나 다 갖는 보편성을 띠고 있다고 사회심리학자들은 말한다. 그렇다면 누구나 다 갖는 이 열등감을 우리가 특별히 더 많이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고, 그래서 학벌 사회를 끊임없이 규탄하면서도 내 자식만은 좋은 학교에 보내야겠다고 사교육에 모두 열을 올린다. 하지만 누구나 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열은 결국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박탈감을 높이는데, 그것도 유달리 높이는 대로 작용했다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상대적 박탈감, 나는 결코 못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았음에도 나는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이 박탈의 사회심리에 우리가 당면하는 그 많은 딜레마를 연계해 볼 수 있고, 광장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촛불 시위도 이와 무관하다 할 수가 없다.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의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가 쓴 책이 1백만 부도 더 넘게 팔린 적이 있다. 그만큼 우리가 정의에 목말라 있다는 것 또한 높은 상대적 박탈감에서 연원하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 책을 읽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이해한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는 서구인들의 정의와는 달리 실은 공정(公正)이고 공평(公平)이다. 그것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개념보다는 사회주의 공동체주의 개념에 가깝다. 서구인들은 공정 공평은 법치만 엄격하면 실현된다고 보지만, 폴리스라인도 무시해버릴 만큼 법치 개념이 약하거나 없는 우리는 오직 ‘빼앗겼다’는 박탈감의 심리에서 공정도 공평도 사회정의로 보는 것이다. ‘특혜’라는 말에서도 서구인들은 어떤 이익 어떤 자리에 대한 권리(right)를 먼저 상정하는데, 반대로 우리는 부정(不正) 불공정(不公正) 불공평(不公平)을 먼저 생각한다. 문제는 우리 내부에 깊이 잠재해 있는 이 열등감. 그 열등감에서 밖으로 맹렬히 분출해 나오는 그 상대적 박탈감을 어떻게 줄여 볼 것인가이다. 그렇게 해서 행복감도 높이고 사회갈등도 줄여보자는 것이다. 그 방법의 하나로 우리에게 아주 익숙해 있고 잘 받아들여지는 추첨제라는 것을 든다면, 이 추첨제가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그것은 바로 복불복(福不福), 운수소관이다. 우리에게도 전혀 생소하지 않은 이런 운수소관은 서구인들의 운 관념과도 같아서, 박탈감 완화 등 심리안정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든 서구든 운은 천운이다. 내 힘이 아니라 하늘의 힘이다. 그것은 싸워서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해서 따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박탈의 심리를 완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운은 그냥 나에게 오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나 운은 오지만 누구나 다 그 운을 잡는 것은 아니다. 오직 준비하는 자에게만, 열심히 준비하고 또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그리고 간절히 기구하는 이에게만 온다. 그 사람만이 운을 잡는다. 서구인들이 운을 숭상하고 운에 복종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연세대 명예교수
  • [제8회 서울신문 정책포럼] ‘유용·유해’ 화학물질 양면성…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 알려야

    [제8회 서울신문 정책포럼] ‘유용·유해’ 화학물질 양면성…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 알려야

    지난 4월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새롭게 조명받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온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글로벌 기업과 국내의 대기업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물질을 원료로 만든 가습기 살균제가 아무런 제재 없이 대형마트를 비롯해 동네 슈퍼마켓에서 팔려 나갔고 허위 과장광고로 소비자를 속여 임산부와 영유아를 죽음에까지 몰아갔다는 사실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지난달 29일 정부는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대책을 발표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대책이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보완대책은 무엇인지 전문가들의 진단을 통해 살펴본다. 서울신문은 지난 9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제8회 정책포럼을 열었다. 환경부 이민호 환경정책실장이 지난달 발표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대책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정진호 서울대 약대 교수와 임영욱 연세대 환경공해연구소 교수가 각각 의학적·과학적 분석과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바탕으로 한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에 관한 주제발표를 했다. 또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의 사회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실장, 노재성 대한상공회의소 지속가능경영원 실장, 진경호 서울신문 부국장 겸 사회부장이 패널로 참석해 이번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 필요한 해법을 찾기 위한 열띤 토론을 벌였다. 김문조 교수는 토론에 앞서 “화학물질의 유해성은 어느 순간만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닌 진행형 형태로 나타나는데 일반 대중들은 당장 해로운가 아닌가라는 찬반양론으로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나타나는 현상과 사람들의 인식 간 괴리를 줄이기 위해 정책은 융통성과 유연성을 갖고 마련돼야 할 것”이라며 운을 띄웠다. 정진호 교수는 ‘가습기 살균제 사태 교훈’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가습기 살균제 사태는 국내 화학물질 안전관리 전반에 대해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계기가 됐다”며 정부의 위험관리 시스템 혁신과 과학기술계의 자성과 변화를 주문했다. 정 교수는 지난 반세기 동안 화학물질 안전관리가 정부 부처별로 나뉘어 있다 보니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하고 통합 관리를 통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관리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또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 때문에 정부가 모든 화학물질을 관리하기 어려운 만큼 ‘정직한 기업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인식을 기업이 갖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특히 이번 사건처럼 과학기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만큼 과학 기반 사회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교수는 “병원균에 의한 감염성 질환이 아닌 화학물질에 의한 폐질환 같은 비감염성 질환에 대해 전문성 부족도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초동 대처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이라며 “지금이라도 화학물질 독성기술과 안전성 평가 기술의 수준을 높이기 위한 중장기 연구개발 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스크 커뮤니케이션으로 본 생활화학제품 안전관리’에 대한 발표자로 나선 임영욱 교수는 일반적으로 위기상황은 위기 자체가 주는 위협보다는 불필요한 오해와 소문, 왜곡된 정보 전달에 따른 커뮤니케이션의 잘못으로 위기가 증폭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임 교수는 “여성들은 하루에 515가지 종류의 화학물질을 몸에 바른다는 연구결과가 있을 정도로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데 필요한 제품들은 다양한 화학물질들로 이뤄져 있다”며 “우리가 사용하는 화학물질들은 유용성과 유해성이라는 양면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강조하는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은 나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성공적인 리스크 커뮤니케이션과 위해 관리의 첫 걸음은 소비자에게 정확하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임 교수는 강조했다. 제대로 된 정책은 그렇게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제기된 소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취합해 만드는 것이라는 얘기다. 임 교수는 “화학물질은 지금도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법적 규제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산업체-일반대중간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토론자로 나선 김신범 실장은 이번 정부 대책이 파격적인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은 ‘과도기적 대책’이라고 평가했다. 김 실장은 “인체에 유해한 살생물제는 아예 시장에 내놓지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은 상당히 파격적인 부분으로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산업부가 아닌 환경부에 서 관리를 하게 되면 정책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볼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인력과 예산만으로는 적극적인 화학물질 관리에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며 유럽화학물질청(ECHA)과 같은 조직 강화 대책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유해성이 낮은 완성제품과 어린이용품을 여전히 산업부에서 관리하도록 한 것 역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고도 했다. 김 실장은 “기업이 제대로 책임지고 그렇지 못하면 퇴출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기업이 자신들이 만든 제품이 위험하지 않고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입증 책임과 국민 안전을 의도적으로 무시할 경우 징벌적 배상 책임을 지워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의 입장을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노재성 실장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화학물질에 대한 건강의 위협과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높아지는 동시에 기업경영에서 환경적,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기업 내 환경담당 부서는 중요도가 여전히 뒤떨어지는 만큼 정부가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이끌어가는 것도 기업을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 소비자와의 소통을 통해 합리적 대안들을 제시하고 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만약 안전관리를 명분으로 기업 현실과 동떨어진 비현실적 규제나 행정집행은 제도 운영의 효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진경호 서울신문 부국장 겸 사회부장은 언론에서 바라보는 이번 대책과 환경문제에서 언론의 역할에 대해 설명했다. 진 부국장은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정책이 올바로 집행되도록 하는 게 중요한 만큼 국민들을 상대로 효과적으로 정책을 설명하고 동참을 이끌어내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진 부국장은 또 “강력한 환경정책을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독일의 예에서 보듯 환경정책이 성장의 걸림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을 견인하는 동력이라는 인식, 즉 환경이 곧 경제라는 인식을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환경부는 정부 안에서 경제 관련 부처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용기부터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민호 실장은 “이번 생활화학안전대책은 환경부만의 것이 아니라 범정부 대책인 만큼 중간에 흐지부지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향후 전문가들의 의견을 지속적으로 수렴해 대책을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문조 교수는 “정치적 사건과 달리 가습기 살균제처럼 환경과 안전문제와 관련된 화두는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오랫동안 사회적 상흔으로 남는다”며 “이번 포럼을 계기로 국민건강이나 안전과 관련한 정책들에서는 현장의 목소리를 바탕으로 정책을 마련하는 보텀업(bottom-up) 방식과 사전예방 형식이 자리잡도록 할 필요가 있다”며 포럼을 마무리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그들만의 정치 심판한 촛불, 평화 낳고 직접민주주의 밝혔다

    그들만의 정치 심판한 촛불, 평화 낳고 직접민주주의 밝혔다

    탄핵소추안 가결시킨 원동력 평가 대의 민주주의 한계 뛰어넘은 듯 국민 의사 표현할 법적 방법 필요 지난 10월 29일 시작된 촛불집회는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킨 원동력이었다. 총 7차례의 촛불집회가 끝난 시점에서 5명의 전문가에게 촛불집회의 의미를 물었다. 이들은 ‘직접 민주주의의 시작’, ‘정치계급의 붕괴’, ‘비폭력 명예혁명’ 등으로 답했다. 향후 촛불집회는 정치권을 계속 감시하는 기능을 해야 하며 국민소환제 등 미래의 대안을 토론하는 공론의 장이 됐으면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① 촛불은 직접민주주의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원장은 촛불집회에 대해 국민이 의사 결정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직접 소통하면서 여론을 이끌었고, 그 여론에 의해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나왔다”며 “자신의 목소리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직접민주주의’를 진하게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민들은 탄핵안을 가결하는 과정을 경험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을 기각하거나 각하한다고 해도 실망하거나 무력감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며 “촛불이나 SNS를 통해 직접 민의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계속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② 촛불은 정치계급의 붕괴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기존의 정치권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거나 또는 주군을 위해서 일하는 악습을 반복했지만 촛불집회에서 국민은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지 못하는 정치권에 반기를 들었다고 해석했다. 전 교수는 “기존 정치 계급을 빨리 끌어내야 한다는 국민의 생각이 촛불집회를 만들어 냈다”며 “촛불집회는 직접민주주의, 또 대중영합주의와 맞닿아 있다. 촛불집회로 인해 기존의 정치계급은 붕괴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또 “탄핵안이 가결되고도 7차 촛불집회에 100만명의 시민이 광장에 나온 것을 볼 때 촛불은 휘발되지 않고 지속력을 갖고 있다”며 “시민의 힘으로 뭔가를 이뤄냈다는 성공의 힘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③ 촛불은 비폭력 명예혁명이다 안병욱 가톨릭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87년 6월 항쟁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한국 사회를 억압해 온 권위주의를 이번에 청산했다”며 “촛불의 힘으로 세계 역사에서 유례없는 명예혁명을 이뤄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촛불집회의 가장 큰 원동력은 성숙한 시민의식이었지만 오랜 기간 진행된 공권력의 변화도 동력 중 하나였다고 전했다. 과거에는 공권력의 폭력 진압으로 극히 일부 계층만 집회·시위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김대중 정부 이후 집회·시위 자유가 확산되고 비폭력 집회가 자리를 잡으면서 남녀노소 모든 계층이 집회에 참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6월 항쟁이나 촛불집회나 일차적인 장애물을 제거해 냈다는 결과는 같다”며 “하지만 촛불집회는 앞으로 과거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정치권을 감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④ 촛불은 민주주의를 복원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처음에는 시민들이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표출하러 촛불집회에 참가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민주주의를 바로잡으려는 모습으로 발전했다”며 “민주주의 복원에 대한 열망과 외침이 표출된 것”이라고 정의했다. 강 교수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 이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정치권에 시민들이 직접 이정표를 제시하며 제도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었다”며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집회가 이뤄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참여했고, 투쟁적인 과거 집회와 달리 문화 축제로 승화시켰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도 “대통령은 헌법과 법을 어겼지만, 시민들은 법을 지키며 촛불집회를 했다”며 “시민들이 도덕적 우위를 점했고, 민주주의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켰다”고 말했다. ⑤ 촛불은 국민 주권을 되묻는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과 교수는 촛불집회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황 교수는 “기존 혁명과 다른 것은 국민이 주인이었다는 사실”이라며 “주최 측이 분명치도 않고, 누가 주최하든 국민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촛불집회 말고 국민의 의사를 표현할 법적인 방법을 보장해야 한다”며 “일정 수 이상의 주민이 뜻을 모아 지자체장을 소환하고 파면하는 주민소환제를 확장한 국민소환제의 도입을 장기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탄핵, 끝이 아닌 시작… 헌재 심판일까지 지속”

    “탄핵, 끝이 아닌 시작… 헌재 심판일까지 지속”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를 이끈 건 ‘촛불’의 힘이었다. 지난 3일까지 서울 광화문광장 등 전국에서 펼쳐진 6차례의 촛불집회를 이끈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9일 국회의 박 대통령 탄핵소추 의결을 환영하면서도 ‘축배를 들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밝혔다. 퇴진행동은 박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촛불집회를 평일과 주말에 계속 개최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날 박 대통령의 직무정지 조치로 향후 촛불집회의 규모가 다소 줄어들 수 있지만 집회 자체는 헌법재판소 선고 때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퇴진행동은 이날 성명을 내고 “탄핵소추안 가결은 박근혜 정권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전국 방방곡곡의 광장에 나선 국민 촛불의 위대한 힘이 이룬 소중한 성과”라며 “탄핵 가결은 끝이 아닌 시작으로 축배를 들기에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돼도 즉각 퇴진 의사가 없음을 이미 밝혔으며 이는 국민과의 대결을 계속하겠다는 선전포고”라며 “촛불민심은 여전히 ‘즉각 퇴진’에 있다”고 주장했다. 퇴진행동은 “향후 박 대통령 즉각 퇴진과 적폐 청산의 촛불을 더욱 확산시키겠다”고 덧붙였다. 또 10일 7차 촛불집회를 ‘박근혜 정권 끝장내는 날’로 정했다. 9일 퇴진행동이 주최한 평일 촛불집회에는 평소보다 많은 시민 3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오후 7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물러나Show’라는 제목으로 공연이 열렸고, 오후 8시부터 청와대 200m 앞에 있는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행진했다. 집회에 나온 김원일(57)씨는 “직장이 여의도인데 탄핵 가결 뉴스를 보고 기분이 좋아 퇴근하고 광화문에 왔다”며 “여러 번 촛불집회에 나온 보람이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오준(40·여)씨는 “한번도 빼놓지 않고 촛불집회에 나왔다”며 “헌법재판소도 국민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 거다. 촛불은 끝까지 타오를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퇴진행동은 향후 촛불이 국회나 헌법재판소 앞에서 타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남정수 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퇴진 시점까지 촛불집회는 평일에도 주말에도 계속 열릴 것”이라며 “헌법재판소도 국민의 명령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향후 상대적으로 촛불집회에 모이는 사람들의 규모 자체는 줄겠지만 기본적으로 헌재에서 결정이 날 때까지 국정 농단에 대한 항의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강신 기자 xi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총리·국회 비상협의체 가동… 겸손한 국정을”

    탄핵 후 한국사회 새 길 고민해야 경제 컨트롤타워 세우는 게 급선무공직사회 우수… 각자 본분 다하길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로 대한민국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이후 12년 만에 대통령 직무가 정지되는 비상사태를 맞게 됐다.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의 혼란이 불가피해진 가운데 특히 경제가 외환위기(1997~1998년) 이후 최악의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우려되고 있다. 위기를 서둘러 수습하고 그 과정에서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각계 전문가들로부터 들어봤다. 임채정 전 국회의장은 “여·야·정이 힘을 합해 경제나 안보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내각의 지혜가 필요하다”면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내각도 대통령과 함께 탄핵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종전처럼 강한 정부를 이끌겠다는 생각은 곧 실패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야당은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를 인정하고, 대선 주자들도 촛불 민심으로 이번 탄핵이 가결된 만큼 겸손하고 신중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이제부터는 헌법과 법률 등 절차에 따라 질서 있게 처리돼야 하고 국정이 수습되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어야 한다”면서 “특히 정치 지도자들은 말을 아끼고 서로의 감정을 자극하지 않는 등 특별히 겸손한 자세로, 대선보다는 민생과 국정 수습이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황 총리가 대통령 직무대행으로서 엄중한 책임감을 갖고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 탄핵안 통과 당시 직무대행을 했던 고건 전 총리에게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면서 “특히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총리실과 국회 사이에 생산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비상 협의기구를 만드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00만 촛불 민심이 대선 정국으로 들어가는 순간 두세 갈래로 갈라져 길을 잃을 수도 있다”면서 “촛불이 좌절이 아니라 성취감의 경험으로 남기 위해서는 탄핵 이후를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개인적인 희망이지만 새누리당은 해체하고 비박계 중심 또는 새로운 당에서 50대 리더십을 창출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탄핵 때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지금 경제가 2004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 국민은 뛰어난 위기 대처 능력을 갖고 있다”면서 “(공직사회가) 평상심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고 각자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은 우리나라 공무원의 우수성을 믿어도 된다”면서 “정부 경제팀은 당장 동절기 서민대책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경제부총리를 조속히 뽑아 인사권과 주요 정책에 대한 권한을 맡기고 일사불란한 경제팀을 이뤄 그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에서 수렁에 빠진 경제를 구해 낼 구세주를 기대하기는 어렵고 법적인 절차도 마땅치 않기 때문에 현재의 유일호 경제팀이 순장조의 역할을 하는 게 맞다”면서 “순장조는 무리하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외 경제 상황이 나쁘고 앞으로 더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정책은 정치와 분리해 독립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종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서울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서울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탄핵 정국] 국민 10명 중 8명 “朴대통령 책임… 퇴진·탄핵해야”

    [탄핵 정국] 국민 10명 중 8명 “朴대통령 책임… 퇴진·탄핵해야”

    탄핵 후 7~8개월간 행정부 부재 시민정치가 다음 목표 설정해야 “탄핵 이후 새 정권이 탄생하는 7~8개월간 국가(행정부)는 부재할 것이고, 정당구조는 요동칠 것이다. 경제는 생존의 길을 모색해야 하고, 재벌 기업은 비난의 협곡을 건너야 한다.”-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국가정책포럼 조직위원장) 6일 ‘탄핵 정국. 국가위기, 어떻게 건널까’를 주제로 아시아연구소 삼익홀에서 열린 제2회 서울대 국가정책포럼에서 학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사퇴가 없을 경우 탄핵 외 대안이 없다고 했고, 사태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인섭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탄핵의 성사는 비박(비박근혜)계가 아니라 국민의 의지에 달려 있다”며 “정치권의 움직임이 여의치 않으면 국민적 저항권이 또다시 대폭발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이날 포럼에서 발표된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가운데 8명(76.8%)은 박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거나 탄핵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질서 있는 퇴진’은 13.1%에 그쳤다. 조사는 지난 3~4일 서울·경기 및 6대 광역시에 거주하는 15~6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탄핵 이후 사회에 대해서는 ‘국가의 시대에서 국민의 시대로 전환’, ‘정당의 재정렬’, ‘경제 체제 변화’ 등을 전망했다. 송 위원장은 “국가 주도의 정치는 끝났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때까지는 시민적 자율성과 도덕성, 양보와 자제의 집단 양심이 국정운영의 기본 원리가 될 것”이라며 “이념 진영으로 갈라져 격렬한 투쟁 상태를 연출할 수도 있다. 시민정치는 이제 다음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주의가 사실상 종말을 맞게 되고, 당내 계파를 떠나 이념, 정책에 따라 정당이 재정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송석윤 서울대 로스쿨 교수는 “중장기적으로 대통령이 소속 당을 통해 입법부를 좌지우지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없애야 하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국회의원이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는 현재의 정치 행태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현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경제가 수출 붕괴와 내수 부진으로 일본식 불황 위기에 놓였다”며 “당장 리스크 관리를 하고 재벌경제 개혁, 중소기업 동반성장 등 경제정책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이미 무너졌다”며 “다가올 대선에서는 경제 위기의 본질과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있는지, 위기 대응 방안을 찾아낼 능력이 있는지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금현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도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됐지만 제대로 된 삭감이 이뤄지지 않는 등 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소홀하다”며 “새로운 정부에서 충분한 검증 없이 기존의 정책을 무조건 바꾸려는 시도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꼼수’ 靑·당리당략 국회가 촛불 더 키웠다

    ‘당파적 계산’ 정치권에도 분노 “정신 차려라” 여의도 집회 촉발 지난 3일 6차 촛불집회에 역대 최대 규모 시민이 모인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문과 국회 탄핵소추 발의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전문가들은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질서 있는 퇴진’으로 의견을 모으면서 오히려 촛불의 역풍을 맞았다”고 해석했다.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이 내놓은 3차 담화는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사심을 품지 않았다”거나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고 요약됐다. 이것이 국정농단을 여전히 부정하고 집권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는 설명이다. 서울 집회에 처음 참여했다는 고순환(80)씨는 “박 대통령의 담화와 정치인들의 당파적 계산은 국민의 요구와 괴리감이 있다”며 “2일 종결짓기로 한 탄핵소추안 발의가 무산되면서 정치인들에게도 크게 실망했다”고 말했다. 남준영(28·여)씨도 “담화를 생중계로 보고 대통령의 교묘한 말장난과 책임감 없는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며 “청와대가 어떤 정치적 꼼수를 쓸지 모른다는 점, 시간이 지날수록 참석자가 줄면서 촛불의 동력이 사그라질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꼭 나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집회 참석 이유를 밝혔다. 3차 담화 이후 박 대통령과 국회에 대한 부정 언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국회에 대한 분노는 이번 집회를 기점으로 절정에 달했다. 4일 소셜메트릭스 인사이트에서 ‘국회’를 언급한 트위터, 블로그 등 인터넷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대통령의 3차 담화가 있던 29일 국회에 대한 부정 언급은 4만 1660건으로 전날 6149건에 비해 6배 이상 급증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인 게시글은 3차 담화 당일 9만 3613건으로 치솟았다. 전날은 4만 9522건이었다. 부정 언급은 국정농단, 혼란, 분노, 실망 등 부정적인 단어와 함께 쓴 글을 의미한다. 이전 5차 집회까지 박 대통령에게 집중됐던 분노는 탄핵 정국을 맞아 정치권에 대한 실망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6차 집회에서는 ‘정신 차리라’거나 ‘밥값 하라’는 새로운 구호가 등장했고, 새누리당 당사가 있는 여의도에서도 사전 집회가 열렸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퇴진론에서 나아가 국회 해산론까지 제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은 대통령의 무능과 무책임에서 비롯한 사회적 혼란을 빨리 종결하고 싶어한다”며 “국민의 뜻은 즉각 퇴진인데 이것이 정치적으로 반영되지 못하면서 지난 주말 총 집결이 이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마지막 목격자들(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연진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저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구소련 벨라루스의 ‘전쟁고아클럽’과 ‘고아원 출신 모임’ 101명을 인터뷰해 복원해 낸 비극적인 역사. 벨라루스는 나치 독일의 소련 침공 전초지로 삶이 철저히 파괴된 지역으로, 인구 4분의1이 사망하고 전쟁 고아는 2만 5000명에 달했다. 책은 참극 속에서 가장 작고 무기력한 존재였던 어린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증언하는 소름끼치는 전쟁의 악은 부서져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기억과 역사로 남아 있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작가의 고국 벨라루스와 소비에트연방 현대사의 독특한 한 장을 써내고 있다. 420쪽. 1만 6000원. 쫓겨난 사람들(매슈 데스먼드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 펴냄) 미국 하버드대 사회학과 교수의 빈곤 현장연구 기록물이다. 저자는 수년 동안 밀워키 지역 도시 빈민들과 함께 살며 빈곤의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해냈다. 여덟 가정의 도시 빈민층 이야기를 통해 대도시의 주거 정책이 어떻게 가난과 불평등을 야기하며 지속하는지를 보여 주는 ‘빈곤, 불평등 연구의 전범’으로 평가된다. 저자는 주거 문제가 빈곤의 주요 원인이며 여성이나 흑인과 같은 소수자일수록 퇴거에 더 취약하다는 점을 질적·양적 연구를 통해 드러낸다. 저자는 ‘게을러서 가난’한 게 아니라 가난한 이들은 게으름을 통해 하루하루의 생존 전쟁을 치러내기 위한 에너지를 분배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540쪽. 2만 5000원. 1%를 위한 나쁜 경제학(존 F.윅스 지음, 권예리 옮김, 이숲 펴냄) 주류 경제학의 문제점과 새로운 경제학의 가능성을 제시한 책. 자유 시장, 수요 공급, 국가 부채, 세계화 등 주요 주제에 대한 주류 경제학의 이론과 주장이 내포한 허구를 실증적으로 파헤치고 1%의 부자들에게 봉사하는 경제학이 어떻게 99%의 대중을 불행하게 했는지를 제시한다. 특히 임계점을 넘어버린 소득격차와 양극화, 심화되는 계급 간 갈등과 대립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우리 현실에 대한 효과적 제안과 자료를 담고 있다. 저자는 경제 체제가 다수를 위해 작동하는 사회에선 어느 누구도 빈곤선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하는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344쪽. 1만 6000원.
  • “규모는 의미 없다” 꼼수 사과에 분노 더 커지는 촛불

    “규모는 의미 없다” 꼼수 사과에 분노 더 커지는 촛불

    주최 측 ‘즉각 퇴진의 날’ 선포… 청와대 분수대 앞 행진여부 관심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주말 촛불집회가 3일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박 대통령이 3차 대국민담화에서 진퇴 문제를 국회로 미룬 데다 여야가 이를 두고 갈팡질팡하고 있는 점 등이 비판 여론을 고조시켜 집회 동력은 유지될 전망이다. 집회 주최 측인 박근혜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1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월 퇴진, 6월 대선은 꼼수”라며 즉각 퇴진을 주장했다. 퇴진행동은 지난 주말 5차 집회에서 전국 190만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즉각 퇴진을 요구했는데도 박 대통령이 ‘시간 끌기용 기만책’을 내놓았다면서 3일을 ‘박근혜 즉각 퇴진의 날’로 선포하고 서울 광화문광장을 비롯해 전국 동시다발 촛불집회를 연다고 밝혔다. 이어 퇴진행동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촛불 규모(다섯 차례 누적 430만여명)만으로도 이미 민심은 확인됐으니 이번 집회에서 규모를 구체적으로 전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노진철 경북대 사회학과 교수도 “더이상 규모 자체는 의미가 없다”며 “시민들이 집회에서 어떤 의견을 내놓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촛불집회에 190만명이 참여한 것은 이미 전국민의 의사가 드러난 것”이라며 “탄핵, 질서 있는 퇴진 등을 놓고 잠시 관망하면서 집회 참여가 줄어들 순 있어도 사태 해결이 되지 않으면 결국 시민들은 다시 광장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즉각 퇴진’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꼼수를 부리는 박 대통령과 정치권을 향한 분노는 여전하다. 세 차례 집회에 참석한 문정근(32)씨는 “박 대통령이 올해가 가기 전에 자리에서 내려오고 잘못에 대한 사과를 해야 한다”며 “이번 주말 촛불집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6차 집회날 서울 최저기온은 1도, 최고기온은 10도로 지난주보다 다소 오를 전망이다. 소요 비용도 현재까지는 큰 문제가 없다. 퇴진행동이 공개한 재정보고에 따르면 10월 29일부터 한 달간 국민들의 성금으로 총 6억 2000만원이 모였고, 5회 집회에 5억 1000만원 정도를 사용했다. 퇴진행동 관계자는 “현재 1억 1000만원 정도가 남아 있어 이번 집회를 여는 데 큰 무리는 없다”고 전했다. 한편 경찰은 주최 측이 신고한 청와대 분수대 앞 행진 1건, 새마을금고 광화문지점 앞 등 청와대 주변 집회 7건을 금지 통고했다. 이에 주최 측은 서울행정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해 이번에도 청와대 주변 집회·행진 여부는 법원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분수대는 청와대 담에서 8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 부근에서 집회가 허용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이번 집회에서는 본행사 전인 오후 4시부터 청와대를 에워싸는 경로로 사전 행진이, 본행사 이후 오후 7시부터 2차 행진이 진행된다. 이전 집회와 마찬가지로 평화집회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만큼 경찰과의 큰 충돌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올 국가직 7급 직렬별 최고 득점자 2인 합격 노하우

    올 국가직 7급 직렬별 최고 득점자 2인 합격 노하우

    지난달 25일 921명의 최종 합격자를 낸 국가직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의 내년 일정이 정해졌다. 내년 6월 5일 원서 접수를 시작으로 8월 26일 필기, 11월 9~11일 면접시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신문은 다가오는 국가직 7급 공채시험을 치를 수험생들을 위해 올해 일반행정직과 세무직에서 각각 가장 높은 점수를 취득한 합격자 2명의 과목별 공부 방법, 생활 패턴 등을 인터뷰해 정리했다. ■일반행정직 김상윤씨 기본 중심 집중공부… 모르는 부분 줄여야 올해 일반행정직 합격자 가운데 최고득점을 한 김상윤(25·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씨는 지난해 7월 3학년 1학기를 마친 직후 수험 생활을 시작했다. “2개월 정도 공부한 후 연습 삼아 지난해 국가직 7급 시험을 쳤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서울시 7급, 국가직 7급을 치렀으니 3번 시험에 응시해 붙은 셈입니다.” 김씨의 첫 시험 성적은 합격을 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김씨는 “영어에서 95점을 맞았지만 나머지 과목은 전부 찍어서 20점대를 받았다”며 “올해 공부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은 국어였다”고 말했다. 그는 난관을 뛰어넘어 국어에서 고득점하겠다는 생각보다는 80점을 목표로 공부했다고 전했다. 암기하면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한자 공부는 특히 신경을 쓴 부분이다. 김씨는 “영어는 꾸준한 단어 암기와 문법 기출문제 또는 OX문제집 중 한 권만 보기를 권한다”며 “한국사는 시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필기노트 2개를 본 뒤 더 자세한 것에 모르는 내용을 중심으로 표시해 단권화했다”고 설명했다. 경제학은 이론, 기출문제 강의를 들은 후 문제 풀이를 하고 모르는 선지를 표시한 것을 시험 전에 다시 봤다고 했다. “나머지 과목들도 전부 이론 강의를 2~3회 정도 듣고, 기출문제를 통해 모르는 내용을 줄여 나가는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1년여의 수험 기간 동안 김씨가 주로 공부한 장소는 집과 독서실이다. 김씨는 “9시부터 오전엔 영단어와 한자 공부, 오후엔 경제학 문제 풀이를 하고 회독 중인 과목을 잠들기 전까지 익혔다”며 “수험 생활 초기엔 집에서, 올해 5월부터 8월까지는 독서실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면접은 학원과 스터디를 병행했는데, 스터디를 할 때는 다른 학원에 다니는 사람과 함께해 더 많은 정보를 공유했다고 덧붙였다. 김씨는 자신만의 합격 노하우로 선택과 집중을 꼽았다. “수험 공부의 핵심은 기본서와 기출문제로 양을 제한하고, 모르는 부분을 줄여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범위를 넓히는 것보다 적은 양이라도 충실히 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어 면접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공무원시험 준비생이 워낙 많다 보니 면접까지 올라오는 수험생들의 수준이 상당히 높습니다. 점수가 높다고 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준비하길 바랍니다.” ■세무직 오상훈씨 많고 넓게 반복학습… 돌발 문제 대비해야 올 세무직 최고득점자는 세무사 자격을 겸비한 오상훈(25·한양대 행정학과)씨다. 시험공부를 시작한 지 8개월여 만에 필기시험을 치른 오씨는 지난달 25일 최종 합격자 발표를 끝으로 수험 생활을 마무리했다. 국가직 7급, 국가직 9급 세무직렬에 모두 합격했다. 오씨는 자신의 합격 비결에 대해 “공무원시험에서 최소 1~2문제는 평소 자신이 공부하지 못한 부분에서 출제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공부 범위를 좁혀 공부하기보다는 최대한 넓게 반복해서 보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면접에 관해서도 최대한 많은 유형의 질문과 답변을 준비하고, 스스로 왜 공직자가 돼야 하는지 생각해 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다른 직렬에 비해 전문성을 갖출 수 있다는 점은 오씨가 세무직을 선택하게 된 이유다. 수험 기간이 짧았던 만큼 하루 일정을 빡빡하게 짰다. 오씨는 “인터넷 강의나 실제 강의를 많이 활용한 편인데, 오전 9시에 노량진 독서실로 가서 영어 모의고사, 한국사 공부 후 오후엔 국어, 헌법 등 인강을 듣거나 경제학, 회계학 문제 풀이를 했고 저녁엔 주로 복습을 했다”며 “특정 과목에 대한 시간을 정해 놓고 공부하기보다 오늘 나가야 할 과목별 범위를 정해 놓고 공부했다”고 말했다. 과목 중 가장 취약했던 것은 헌법이다. 오씨는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던 과목이기도 하다”며 “공부량이 너무 많아 기출문제집은 제대로 풀어 보지 못했고 기본서와 최신 판례 위주로 공부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는 것만이라도 최대한 틀리지 말자는 생각에 공부한 내용은 확실하게 반복해서 봤다”고 덧붙였다. 올 1월부터 매일 2~3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최대한 헌법 내용에 익숙해지는 방식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수험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5월입니다. 학원에서 헌법 강의를 들었는데, 따라가면서 다른 과목과 밸런스를 맞추는 게 너무 벅찼습니다. 기출문제 강의까지 듣고 난 후 최신 판례 특강과 압축회독 강의를 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급성장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출문제는 국가직 7급, 서울시 7급, 국회직 7·8급을 풀었습니다.” 반대로 경제학은 오씨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 중 하나였다. 오씨는 “평소 관심도 있고 어느 정도 공부를 한 상태라 올 1월 인터넷 강의를 하루에 4~5개씩 빠르게 들었다”며 “이후 미·거시 서브노트를 통학 중에 보면서 복습했고, 3월 초쯤엔 기본서를 다시 보면서 헷갈리는 부분에 대해서만 기본 강의를 들었다”고 말했다. 4월에 9급 시험을 치른 후엔 미·거시 문제를 풀고, 객관식 강의를 들었다고 오씨는 덧붙였다. 세법은 기본 강의 없이 곧바로 개정 세법 강의를 들은 뒤 시간을 재면서 모의고사, 기출문제를 푸는 데 집중했다. 오씨는 “세무사 자격증을 따면서 이미 공부를 한번 했기 때문에 기본서를 혼자 읽으며 핵심 요약집 위주로 공부하고, 시험 직전엔 기출문제, OX문제집을 풀었다”고 조언했다. 하루 20~30문제를 푸는 것을 목표로 하고, 남는 시간에는 연도별, 시행처별 기출문제를 인쇄해 풀어 보는 방식이다. 그는 “예전에 공부하던 재무회계책의 문장들을 반복해서 읽었다”고 밝혔다. 올 1월 공부 시작과 동시에 오씨는 공부를 깊게 하는 것보다 최대한 많이 시험장에 가져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일단 국가직 9급 시험을 치러야 하는 까닭에 국어의 경우 강의를 듣되 복습은 따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씨는 “3월 초부터 한 달간은 하루에 2강씩 한자와 독해 강의를 들었다”며 “4월부터는 복습에 들어갔고, 5월엔 기출문제 풀이 강의를 들었다”고 설명했다. 다른 과목을 정리하는 게 벅찼기 때문에 국어에만 시간을 쏟진 못했다는 오씨는 “최대한 방어적으로 공부했다”며 “중요한 것 위주로 문제 풀이를 하고 어휘, 속담, 한자 등은 지하철 안에서도 틈틈이 외우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영어를 공부하는 데 가장 큰 암초는 어휘였다. 오씨는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던 과목이지만 어휘량이 부족해 항상 모르는 표현은 메모장에 적어 놓고 외웠고, 매일 1회분씩 모의고사를 풀었다”며 “문법, 독해는 강의보다는 혼자 푸는 문제량을 늘렸다”고 말했다. 한국사 역시 오씨가 가장 좋아한 과목 중 하나다. 오씨는 “기존에 공부한 적이 있는 터라 강의를 2배속으로 최대한 빠르게 듣고, 7월 중순부터는 7·9급 동형 모의고사를 풀었다”며 “강의를 들을 땐 바로바로 복습을 하기보다 내용에 최대한 익숙해지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기출문제 강의를 들을 때는 어려운 부분은 해설을 듣고, 쉬운 부분은 혼자 풀거나 필기노트로 복습을 거듭했다. 오씨는 최근 5년치 수능 국사, 근현대사 모의고사를 풀어 본 것도 도움이 됐다고 귀띔했다. 국가직 7급 면접은 9월 초부터 일주일에 2번씩 스터디를 하며 대비했다. 면접날 가장 처음 하는 것은 자기기술서 작성이다. 오씨는 “자기기술서 2문항을 20분 동안 작성한 후 6~7명씩 한 조를 꾸려 1시간가량 집단토의를 진행했다”며 “가장 첫 번째 조에 뽑혀 점심을 먹자마자 개인 프레젠테이션(PT)을 했다”고 전했다. 개인 PT는 주어진 자료를 보고 30분간 발표문을 작성한 뒤 8분간 발표, 7분간 면접관의 후속 질문에 답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오씨는 “면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질문은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도중 갑자기 전면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대처를 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그 결과가 무엇인지 기술하라’였다”며 “육하원칙에 맞춰 보다 매끄럽게 대답을 했어야 하는데, 서툴게 대답해 면접관으로부터 정말 본인이 경험한 게 맞느냐는 질문을 재차 들어야 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마지막으로 내년을 준비하는 수험생을 향해 “수험 기간이 저처럼 짧은 분이라면 최대한 자투리 시간을 많이 활용해야 한다”며 “잘 외워지지 않는 것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 자주 보려고 했다”고 조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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