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회주의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 탐방객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 영화계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 거제시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 혐오감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02
  • 민중의 역린 ‘연금’ 건드린 푸틴, 집권 이후 최대 위기

    민중의 역린 ‘연금’ 건드린 푸틴, 집권 이후 최대 위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간곡한 설득과 양보에도 불구하고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민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2일(현지시간) 수도 모스크바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서 반(反) 연금개혁법 시위가 열렸다. 주최측인 제1 야당 공산당 추산 1만명(경찰 추산 6000명)이 모스크바에 모여 연금개혁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사회주의 부활이 러시아를 살리는 길’, ‘모든 권력을 노동자에게’, ‘민중을 테러하는 자본가 정권은 물러가라’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이외에도 모스크바 인근의 블라디미르, 모스크바 남부 보로네슈, 서부 스몰렌스크 등에서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TV 대국민 담화에서 연금 개혁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그는 또 여성 정년 및 연금 수급 연령을 당초 개혁안의 63세에서 60세로 완화하는 조치도 내놨다. 그러나 남성에 대한 대책이 없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금개혁안 발표 이후 두 달 만에 16%포인트 하락했다. 이에 대해 로이터통신은 “이날 시위는 연금개혁안이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인공지능 스피커로 시진핑 사회주의 사상 학습하는 중국인

    인공지능 스피커로 시진핑 사회주의 사상 학습하는 중국인

    “샤오야! 샤오야!” “여기 있어요.” “‘30일 만에 이해하는 신사상’을 듣고 싶어.” “좋아요. 지금 ‘30일 만에 이해하는 신사상’을 들려드릴께요.” 인공지능 스피커로 공산당 사상을 학습하는 것이 중국에서 인기다. 3869만명의 중국인들이 지난 6월 출시된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해 시진핑 사상을 들었다. ‘샤오야(小雅·작은 인공지능)’라는 이름의 이 인공지능 스피커는 색깔도 빨간색인데다 낫과 망치를 새긴 중국 공산당의 상징 마크로 장식돼 있다.빨간색 ‘샤오야’는 사회주의 사상 학습 외에도 일상생활 정보 및 음악듣기 등 인공지능 스피커가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갖추고 있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한 사회주의 사상 학습은 손이 자유로운 데다 훨씬 쉽고 편하게 당성을 쌓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중국 인터넷 매체 소후는 전했다. 게다가 5~10명의 사람이 동시에 학습을 할 수도 있다. 샤오야 인공지능 스피커는 책으로 배우는 고전적인 사회주의 스타일에서 벗어나 좀 더 기술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공산당 사상 학습이 가능하도록 했다. 인공지능 스피커를 개발한 히말라야사는 오디오북을 만드는 업체로 지난해 2월부터 중국 상하이 당 건설 센터와 협력해 샤오야를 만들었다. 공산당 사상 학습을 녹음한 이들은 전국 최고의 라디오와 텔레비젼 방송국 앵커들이다. 지난 5월 24일 히말라야사는 ‘중국 특색 사회주의 시진핑 사상’을 ‘30일 만에 이해하는 신사상’이란 제목으로 제작해서 내놓았다. 시진핑 사상을 들은 횟수는 18시간 만에 100만 회가 넘어설 정도로 출시하자마자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고 제작사는 설명했다. 6월에 시장에 공개된 샤오야는 첫날 5만개가 팔렸고, 경쟁사인 샤오미사의 인공지능 스피커보다 사용시간이 7~8배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 스피커 산업은 최근 2년간 급격하게 발달했지만 샤오야는 공산당과의 협력을 통해 거대한 시장을 확보했다. 샤오야는 학습 시간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통계를 제공하며 자동으로 질문도 던진다. 중국에서 금지된 사이트인 트위터 이용자들은 시진핑 사상을 가르치는 인공지능 스피커의 존재에 대해 처음에는 가짜 뉴스가 아니냐며 의심하기도 했다. 이어 미국 인터넷매체 악시오스의 중국 전문가인 빌 비숍은 “지난 3월 중국 공산당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에서 시진핑 사상을 헌법에 삽입한 이후 만우절에 시진핑 사상 학습 인공지능 스피커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농담했는데 현실이 됐다”며 씁쓸해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중국 남성 화장실만 성관련 낙서가 많은 이유

    중국 남성 화장실만 성관련 낙서가 많은 이유

    화장실 낙서는 중국 대륙뿐 아니라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다. 중국 온라인매체 ‘sixthtone’은 29일 왜 유독 남자 화장실 벽에만 낙서가 많은 지에 대해 주목했다. 최근 중국 안후이사범대 연구진은 남녀 화장실 낙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여성 화장실 낙서는 대부분 시험 대역을 찾는 것이었고 남성 화장실 낙서의 내용은 54%가 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안후이사범대 연구진은 성과 관련된 화장실 낙서를 5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는데 성에 대한 질문, 성에 대한 환상, 동성애, 성 서비스 제공에 대한 문의, 기타 등으로 나누었다. 대부분의 화장실 낙서는 성에 대한 환상을 그렸으며 특히 주먹으로 성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비현실적인 내용이 많았다.중국에서 성은 터부시되는 주제지만 공공화장실만은 예외였다. 특히 네 명의 남학생이 한 방을 쓰는 대학기숙사에서 화장실은 성에 대한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유일한 개인적 장소로 사용됐다. 중국 속담에 ‘주방에서는 주부, 거실에서는 숙녀, 침실에서는 창녀’란 말이 있는데 만약 여성들이 이런 남성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당장 놀림감이나 조롱의 대상이 된다. 특히 동성애와 관련한 화장실 낙서는 중국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 관념을 보여준다. 동성애 관련 낙서는 대부분 파트너를 찾는 것이었지만 “남성을 정복하는 것은 여성을 정복하는 것보다 훨씬 큰 성취다”란 내용도 있었다. 중국 저장성 사회과학원의 왕진링은 “현대 중국의 성은 전통적, 가부장적, 남성 중심적, 서방에서 수입된 관념 등 네 가지가 중첩되어 있다”며 “중국 사회주의에서 성은 혁명의 필요성 때문에 제한됐다”고 설명했다. 현대 중국의 남성은 점점 그 남성성을 발현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으며 오직 화장실 낙서를 통해서만 과시하고 있다고 연구진은 결론지었다. 중국 남성 대학생들의 성에 대한 겉으로는 소극적이지만 실상 지대한 관심은 한국 영화 ‘색즉시공’의 아류작이 8편이나 중국에서 자체 제작된 사실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대학생들의 성에 대한 환상을 담은 코미디인 ‘색즉시공’은 중국에서 정식 개봉되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최근 영유아에게 필수적으로 접종해야 하는 백신이 품질 미달로 밝혀져 중국에서 분노 여론이 들끓었을 때 ‘공산당 전복’이란 내용의 낙서가 베이징, 상하이 등 주요 도시 아동병원 화장실에 등장하기도 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기업이 선물한 민박촌 中 빈곤 퇴치 선봉으로”

    “기업이 선물한 민박촌 中 빈곤 퇴치 선봉으로”

    주중 한국대사관은 28일 베이징에서 기업의 빈곤퇴치 분야에서의 사회공헌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설명회에서 눈길을 끈 건 중국삼성이었다. 중국삼성은 작년 여름부터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 난위촌에 고급 민박집을 건설했다. 지난해부터 민박 운영에 참여한 주민들이 3000위안의 월급을 받으면서 외지로 나갔던 주민 20여명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왕양(汪洋) 중국 정협 주석이 이미 중국삼성의 사례를 직접 청취했고 허베이성 64개현의 지도자들이 방문했을 뿐 아니라 남아프리카 등 7개국 농업장관도 난위촌을 찾았다. 중국삼성 추이란(崔) 총감은 “중국 허베이성 난위촌의 빈곤탈출은 하늘에서 떨어진 떡이 아니라 민박집을 아기처럼 보살피고 운영 중인 촌민들의 변화 덕분”이라며 “빈곤퇴치는 도로, 주거시설 등 하드웨어뿐 아니라 촌민이 변해야 지속적으로 발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한국 SK와 합작사를 운영하고 있는 중국 에너지기업 시노펙은 달리는 안과병원 ‘건강열차 광명호’, 티베트에 ‘하늘과 가장 가까운 학교’ 설립 등 의료와 교육 분야의 사회공헌 활동을 소개했다. 매년 기업들의 사회공헌활동 지수를 발표하는 사회과학원의 왕제(汪杰) 총경리는 “빈곤퇴치를 통해 공평하게 잘사는 아름다운 삶이 진정한 사회주의의 완성임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씨줄날줄] 출산율 1.0 붕괴/임창용 논설위원

    [씨줄날줄] 출산율 1.0 붕괴/임창용 논설위원

    2년 전 서울에서 열린 인구 관련 국제 콘퍼런스에서 노베르트 슈나이더 독일연방연구소장이 출산율에 관한 의미심장한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발표에 따르면 1990년 독일 통일 전 동독 여성의 합계 출산율은 1.67로 서독(1.43)보다 높았다. 인구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인 가족친화 정책을 편 덕분이라고 했다.하지만 통일 뒤 출산율이 추락했다. 1990년 1.49명, 1991년 1.01명으로 떨어지더니 1992년엔 0.89명으로 1명대가 무너졌다. 체제 붕괴 이후 동독 주민들이 시장경제 체제에 적응하지 못했고, 경쟁력이 낮아 결혼과 출산을 기피했기 때문이라는 게 슈나이더 소장의 분석이었다. 비슷한 현상은 1992년 옛소련 해체 당시에도 나타났다. 사회주의 붕괴로 각종 복지혜택이 사라지면서 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진 적이 있다. 체제 급변으로 사람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 미래가 불안해 결혼과 아이 낳기를 포기하거나 최대한 미뤘다고 한다. 동독 출산율은 동·서독 격차가 줄어들면서 2000년 후반에야 서독과 비슷해졌고, 옛소련에서 떨어져 나간 나라들도 오랜 시일이 지난 뒤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합계출산율은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수 있는 자녀 수다. 산술적으로 2명 이상이 돼야 인구가 현상유지된다. 동독과 옛소련의 사례에서 보듯 1명에 미달하는 합계출산율은 체제 붕괴 때나 나타나는 수치다. 미래가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젊은이들이 출산 기피를 당연시해 저출산이 가속하기 쉽다고 한다. 통계청이 어제 발표한 ‘2018년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 2분기 합계출산율이 0.97명에 그쳤다. 연말로 갈수록 출생아 숫자가 줄어드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합계출산율이 1.0명 아래로 떨어질 게 확실시된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화위원회는 이미 지난달 올해 출산율이 1.0명 이하가 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연간 출생아 숫자도 작년 35만여명에서 올해 30만명대 초반으로, 내년엔 20만명대로 떨어질 전망이다. 1970년대 100만명을 넘겼던 데서 한 세대 만에 3분의1 토막이 났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17 세계인구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198개 나라 중 합계출산율 1.0명 이하인 나라는 없다. 출산율 0점대 유일 국가로 기록될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체제 붕괴 사태도 없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만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역대급 취업난과 주거난, 양육 부담이 젊은이들에게 ‘체제붕괴급´ 불안을 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sdragon@seoul.co.kr
  • 美 민주당, 트랜스젠더·무슬림 등 이색 여성 후보 약진

    美 민주당, 트랜스젠더·무슬림 등 이색 여성 후보 약진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 민주당 후보 중 트랜스젠더와 동성애자·무슬림 등 이색 여성 후보들이 약진하고 있다. 15일(현지시간) CNN 등에 따르면 버몬트 주지사 민주당 예비경선(프라이머리)에서 크리스틴 홀퀴스트(62) 후보가 당선됐다. 3명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11월 중간선거에서 치러지는 버몬트 주지사 선거 본선행 티켓을 따낸 것이다. 주지사 또는 연방 선출직 후보로 트랜스젠더 여성이 확정된 것은 미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알려졌다.버몬트의 전기협동조합을 12년간 이끈 홀퀴스트는 2015년 성전환 수술을 거쳐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커밍아웃했다. 버몬트는 지난 2016년 대선에서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돌풍을 일으킨 버니 샌더스(76) 상원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홀퀴스트는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하는 롤 모델이 된 것이 자랑스럽다”면서 “버몬트는 미국의 나머지 지역을 위한 희망의 등대”라고 말했다. 흑인 여성 주지사 후보도 나왔다. 민주당의 조지아 주지사 후보로 선출된 스테이시 에이브럼스(44) 전 조지아주 하원의장이 주인공이다. 흑인 여성이 주요 정당의 주지사 후보로 선출된 것도 미 역사상 처음이다. 최초의 무슬림 여성 연방의원도 탄생도 예상된다. 지난 7일 미시간주 13선거구 민주당 연방하원의원 예비선거에서는 팔레스타인 이민자 2세인 라시다 탈리브(42)가 본선행 티켓을 거머줬다. 디트로이트 대부분과 교외 지역을 포함하는 이 선거구에서는 공화당과 제3정당 후보가 아무도 출마하지 않아 11월 중간선거에서 탈리브의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탈리브가 연방의회에 입성하게 되면 최초의 무슬림 여성 의원이 된다.여성 동성애자(레즈비언) 후보의 약진도 눈에 띈다. 텍사스의 민주당 주지사 후보로 루페 발데스(70) 전 댈러스 카운티 경찰국장이 당선됐다. 발데스 후보는 히스패닉이자 여성 동성애자다. 발데스 후보는 공화당 성향이 강한 텍사스주의 그레그 애벗 현 주지사와 맞붙게 된다. 또 뉴욕 주지사 민주당 후보 경선에 뛰어든 신시아 닉슨(51)도 화제다.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인기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변호사 미란다 호브스 역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2012년 성소수자(LGBTQ) 활동가인 동성 연인과 결혼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상하이에서 읽는 동아시아

    [홍석경의 문화읽기] 상하이에서 읽는 동아시아

    사람마다 꿈꾸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는 상하이였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았기에 올 8월에야 처음 방문하게 된 상하이. 물론 국제학회에서의 발표를 위해 왔지만, 도시 전체가 텍스트인 이곳, 하루 정도 ‘발로 하는 독서’의 매력을 물리칠 수 없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에 조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서구와 동아시아 간 순간이동 터널 역할을 했다. 상하이를 통로로 서구가 동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왔고, 동아시아인은 상하이에서 멀고 먼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의 일부를 만났다.서구에도 상하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오손 웰스의 1947년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는 상하이에서 보낸 몇 년의 과거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팜파탈의 반열에 오른다. 그녀는 유명한 거울 신 속에서 죽는데, 이 장면이 중국을 다시 글로벌한 동서 간 문화교류 속으로 끌어들인 이소룡에 의해 ‘용쟁호투’(1973)에서 패러디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대한민국에게 상하이는 문자 그대로 동아시아에 열린 서구의 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젊은 장군 드골이 대서양을 건너가 런던에 임시정부를 세울 것을 생각하기 무려 20년 전 근대국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됐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3·1운동으로 깨어나 이곳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웅지를 틀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당시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조선인의 힘든 삶을 실감할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대륙 침탈을 준비하는 일본의 기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내걸어 민족의 정당하고 자주적인 미래를 도모한다는 결의와 실행은 얼마나 큰 결심과 신념이 있어야 가능했을까. 레지스탕스를 부르는 드골의 런던 행보에 대한 프랑스의 역사적 대접을 보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그간의 한국 내 이견이 부끄러웠다. 당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 속에서 주인공들이 거사 전날 모여 샹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임시정부의 상하이 커넥션이 강하게 암시된다. 1930년대 상하이와 조선의 커넥션은 영화 속에서 임시정부를 넘어선다.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진린은 한국인이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당시 상하이의 위상을 고려할 때,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라고 불렸다는 이 한국인 남자 배우의 의미는 되새겨볼 만하다. 한국 이름 김염,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이고 고모부가 무려 김규식이니, 아무리 험난한 세월 속 인척 간 교류와 교육의 영향이 크지 않았더라도 그의 존재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상하이, 중국을 잇는 노드(node)다. 동아시아의 초국적 인기인의 전형과도 같은 노래하는 배우 장국영과 그 뒤를 잇는 한류 스타들이 있기에 앞서서 1930년대 글로벌 상하이에 한국인 배우 김염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니 팔월에 크리스마스같이 치장한 불야성의 상하이가 펼쳐진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이처럼 극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이라니. 하늘을 향해 다투어 치솟는 푸둥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파사드를 마주 보는 와이탄의 강변로에는 프랑스 니스 해변의 콜로니얼 건축을 닮은 건물들이 육중하게 늘어서 있다. 와이탄 지역은 명·청대의 상점과 정원을 배경으로, 70년대 재개발 서민촌을 닮은 거리를 감추고 있다. 어두운 골목 끝 고담시티를 연상시키는 상하이타워가 구름 속으로 치솟는다. 중국의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처럼.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훙구공원에 해가 뉘엿뉘엿하자 노인들이 배 두드리며 나와 바람을 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서구 문호들의 동상 군집에서 멀지 않은 곳엔 새로 세워진 중·일 청년들의 우의를 다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내 도처에서 한국어가 들리지만 한국 사드가 지나간 중국 어느 곳에도 한류의 자취는 없고, 일본식 바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거대한 쇼핑몰 벽에 붙은 한류 스타를 똑 닮은 중국 배우의 모습이 묘하게 과거와 현재의 상하이, 그리고 동아시아의 굴기 속 중국의 욕망을 느끼게 해 준다.
  • 2018년 상하이에서 감상해 본 1930년대 동아시아

    2018년 상하이에서 감상해 본 1930년대 동아시아

    사람마다 꿈꾸는 도시가 있을 것이다. 나에게 그 도시는 상하이였다. 오랫동안 프랑스에 살았기에 올 8월에야 처음 방문하게 된 상하이. 국제학회에서의 발표를 위해 왔지만, 도시 전체가 텍스트인 이곳, 하루 정도 ‘발로 하는 독서’의 매력을 물리칠 수 없다. 아편전쟁의 결과로 19세기 후반 서구 열강에 조계를 내줄 수밖에 없었던 이곳은 오랫동안 서구와 동아시아 간 순간이동 터널 역할을 했다. 상하이를 통로로 서구가 동아시아로 쏟아져 들어왔고, 동아시아인은 상하이에서 멀고 먼 프랑스와 영국 등 서구의 일부를 만났다.서구에도 상하이는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지는 신비한 곳이었다. 오손 웰스의 1947년 영화 ‘상하이에서 온 여인’의 주인공 리타 헤이워스는 상하이에서 보낸 몇 년의 과거와 중국어를 한다는 사실에 힘입어 영화 역사상 가장 강력한 팜파탈의 반열에 오른다. 그녀는 유명한 거울 신 속에서 죽는데, 이 장면이 중국을 다시 글로벌한 동서 간 문화교류 속으로 끌어들인 이소룡에 의해 ‘용쟁호투’(1973)에서 패러디됐던 것도 우연이 아니리라. 대한민국에게 상하이는 문자 그대로 동아시아에 열린 서구의 문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젊은 장군 드골이 대서양을 건너가 런던에 임시정부를 세울 것을 생각하기 무려 20년 전 근대국가를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하고 식민지가 됐던 조선의 엘리트들은 3·1운동으로 깨어나 이곳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웅지를 틀었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당시 조선의 어두운 미래와 조선인의 힘든 삶을 실감할 수 없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청나라에 이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대륙 침탈을 준비하는 일본의 기세 속에서 자신과 가족의 운명을 내걸어 민족의 정당하고 자주적인 미래를 도모한다는 결의와 실행은 얼마나 큰 결심과 신념이 있어야 가능했을까. 레지스탕스를 부르는 드골의 런던 행보에 대한 프랑스의 역사적 대접을 보면서 임시정부에 대한 그간의 한국 내 이견이 부끄러웠다. 당시 경성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 ‘암살’ 속에서 주인공들이 거사 전날 모여 샹송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에서 임시정부의 상하이 커넥션이 강하게 암시된다.1930년대 상하이와 조선의 커넥션은 영화 속에서 임시정부를 넘어선다. 중국 영화사에서 가장 빛나는 별 진린은 한국인이었다. 동아시아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던 당시 상하이의 위상을 고려할 때, ‘동양의 루돌프 발렌티노’라고 불렸다는 이 한국인 남자 배우의 의미는 되새겨볼 만하다. 한국 이름 김염, 그의 부친은 독립운동가 김필순이고 고모부가 무려 김규식이니, 아무리 험난한 세월 속 인척 간 교류와 교육의 영향이 크지 않았더라도 그의 존재는 조선의 독립운동과 상하이, 중국을 잇는 노드(node)다. 동아시아의 초국적 인기인의 전형과도 같은 노래하는 배우 장국영과 그 뒤를 잇는 한류 스타들이 있기에 앞서서 1930년대 글로벌 상하이에 한국인 배우 김염이 있었던 것이다. 밤이 되니 팔월에 크리스마스같이 치장한 불야성의 상하이가 펼쳐진다. 강의 이쪽과 저쪽이 이처럼 극적으로 서로 다른 모습이라니. 하늘을 향해 다투어 치솟는 푸둥 고층 건물들의 화려한 파사드를 마주 보는 와이탄의 강변로에는 프랑스 니스 해변의 콜로니얼 건축을 닮은 건물들이 육중하게 늘어서 있다. 와이탄 지역은 명·청대의 상점과 정원을 배경으로, 70년대 재개발 서민촌을 닮은 거리를 감추고 있다. 어두운 골목 끝 고담시티를 연상시키는 상하이타워가 구름 속으로 치솟는다. 중국의 들끓는 자본주의적 욕망처럼.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훙구공원에 해가 뉘엿뉘엿하자 노인들이 배 두드리며 나와 바람을 쐰다. 사회주의 리얼리즘 계열 서구 문호들의 동상 군집에서 멀지 않은 곳엔 새로 세워진 중·일 청년들의 우의를 다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시내 도처에서 한국어가 들리지만 한국 사드가 지나간 중국 어느 곳에도 한류의 자취는 없고, 일본식 바와 음식점이 즐비하다. 거대한 쇼핑몰 벽에 붙은 한류 스타를 똑 닮은 중국 배우의 모습이 묘하게 과거와 현재의 상하이, 그리고 동아시아의 굴기 속 중국의 욕망을 느끼게 해 준다. 글·사진: 홍석경 서울대 언론학과 교수
  • [김균미의 글로벌 이슈] 11월 미국 중간선거 판세? ‘反트럼프’ 여성들에 달렸다

    [김균미의 글로벌 이슈] 11월 미국 중간선거 판세? ‘反트럼프’ 여성들에 달렸다

    2018년은 과연 미국인들에게 ‘성난 대졸 여성들의 해´(Year of the Angry College-Educated Female)로 기억될 수 있을까.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가 여성들 선택에 달렸다고 전망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1994년 중간선거 때 ‘성난 백인 남성’들이 공화당을 선택해 빌 클린턴 대통령을 견제했을 때와 비교한다. 거침없이 반(反)여성적 발언을 하고 태도를 보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책에 분노하는 여성 유권자들이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잔뜩 벼르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남성 후보들을 더이상 믿지 못하겠다며 직접 선거에 뛰어든 여성 후보들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여풍이 거센 중간선거의 결과는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비판적인 대졸 이상의 고학력, 상위 중산층의 백인 여성들이 얼마나 투표를 할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를 추구하는 여성들의 의지와 트럼프에 대한 ‘분노’가 연간 4%라는 높은 성장률과 넘쳐나는 일자리 등 경제 호황을 이끈 트럼프의 성과를 넘어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美 전역 반대 시위부터 미투 운동까지 결집 전통적으로 미국 여성은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민주당 성향을 보여왔다.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등 비(非)백인 여성들의 민주당 지지는 압도적이다. 하지만,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 여성들의 선택이 선거의 결과를 갈랐다. 1980년과 1984년, 1988년 대선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와 조지 H W 부시 후보가 모두 민주당 후보들보다 여성 표를 더 많이 받았다. 미국 럿거스대 미국여성정치센터(CAWP)의 분석에 따르면 1980년 이후 선거에서 남녀 투표성향 차이는 확연하다. 2016년 대선 출구조사 결과 남성 유권자의 52%와 여성 유권자의 41%가 트럼프를 각각 지지했다. 남녀 간 격차는 11% 포인트로 1996년과 2000년, 2012년에 이어 역대 네 번째이다. 하지만 2016년 대선 결과가 기존 결과와 다른 점은 여성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됐다는 것이다. 힐러리를 찍었거나 힐러리가 이길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들을 믿고 투표하지 않은 중도 개혁 성향의 여성 유권자들이 11월 중간선거가 ‘2016년의 재판’이 되는 걸 막겠다며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 취임식 직후 미 전역에서 열린 여성들의 트럼프 반대시위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여성들은 민주당 지지층을 넓히고자 지역 유권자 모임을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미투운동(나도 피해자다)도 여성 유권자들의 결집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여성 후보들을 지원하는 단체들의 활약이 더해져 지난해부터 실시된 여러 차례의 연방 상·하원 의원 특별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가 이어졌다. 정치와 선거전문가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여성 유권자, 특히 대졸 이상의 고학력 백인 여성들에 주목한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른바 ‘교외 지역의 여성’들이다. 이들 중에는 민주당으로 기운 무당파 여성들 이외에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를 지지했지만, 현재 트럼프에 대해 유보적인 공화당 지지 성향의 여성 유권자들이 포함돼 있다.●“트럼프 국정 긍정적” 대졸 백인여성 26%뿐 이 같은 분석의 근거는 최근 1년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에 대한 남녀 간 편차가 크다. 여론조사 결과의 평균치를 발표하는 정치전문매체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의 최근 수치를 보면 ‘트럼프의 국정운영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43.5%, ‘지지하지 않는다’가 52.1%로 8.8% 포인트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이후 40% 안팎을 꾸준하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지지층의 지지율이 90%에 육박해 말 그대로 콘크리트 지지를 과시한다. 하지만 남녀 지지율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지난 7월 초 발표된 워싱턴포스트의 여론조사에서 남성의 54%가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답한 반면 여성은 32%에 그쳤다. 공화당 지지자 중에서 남성은 91%. 여성은 82%가 ‘지지한다’고 답했다. 이 중 ‘매우 지지한다’고 응답한 남성은 68%였지만 여성은 31%로 격차가 매우 컸다. 7월 NBC·월스트리트저널의 조사에서도 트럼프의 국정운영에 긍정적이라고 답한 여성은 39%였지만,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58%였다. 대졸 이상의 백인 여성들은 26%만 긍정적이라고 답했고 무려 71%가 부정적으로 조사됐다.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 조사에서 2016년 대선 때 트럼프에 투표했던 대졸 여성 유권자 중 14%가 지난 3월 조사에서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는데 지난해 11월 1%였던 것과 비교하면 주목할 만한 변화라고 뉴욕타임스 등의 언론들은 보도했다.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2016년 대선에서 투표한 3014명에 대한 추적 조사 결과를 보면 백인 여성 중 트럼프를 찍은 비율은 47%로 힐러리를 찍은 45%보다 2% 포인트 높았다. 대졸 이상 백인 유권자의 55%가 힐러리에 표를 던졌고, 트럼프는 38% 득표에 그쳤다. 여성의 56%가 민주당을 지지하거나 민주당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대졸자 비율도 계속 높아지고 있다. 여성 유권자들은 경제와 세금 못지않게 이민정책과 건강보험, 인권에 관심이 많다. 부모와 자녀를 강제 격리시켰던 트럼프의 이민정책에 대해서는 소속 정당을 떠나 비판적인데 특히 여성들의 반대 수위가 높다. 무엇보다 변화를 지지한다. 또한 지도자의 도덕적 덕목과 정직함을 중시한다. 정치 전문가들은 여론조사에서 드러난 여성 유권자들의 표심이 실제 투표로 이어져야 여풍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본선행´ 여성 후보 역대 최다… 초강력 ‘여풍’ 미국 언론들과 정치전문가들은 또 올해를 여성 의원 수가 2배로 늘어난 1992년에 이은 제2의 ‘여성의 해’라 부른다. 11월 중간선거에서 연방 상·하원 의원과 주지사에 출마한 여성 후보 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하며 초강력 ‘여풍’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CAWP가 지난 9일 현재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모두 592명의 여성 후보들이 공화·민주당의 연방 상·하원과 주지사 후보를 뽑는 경선에 나서 209명이 최종 후보로 확정됐다. 민주당 후보가 428명으로 72%로 압도적으로 많다. 연방 상원에서는 35명을 새로 뽑는데 민주당에서 31명, 공화당에서 23명이 각각 출사표를 던졌다. 9일 현재 민주당은 9명의 여성이 상원 의원 후보로 결정됐고 공화당은 4명이 본선행 티켓을 확보했다. 하원 의원으로는 모두 476명(민주당 356명, 공화당 120명)이 경선에 나서 185명(민주 143명, 공화 42명)이 양당의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경선이 끝나면 본선 진출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유리천장이 높았던 주지사 선거에도 62명이 경선에 나서 11명(민주 8명, 공화 3명)이 본선에 올라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다. 관건은 이 중에서 과연 몇 명이 당선되느냐이다. 미 전문가들은 정치 활동 경험이 있는 후보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어 본선 경쟁력도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또한 민주당 경선(프라이머리)과정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20·30대 신예들의 활약이 관심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식당에서 일했던 사회주의자연합 소속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테즈(28)는 차기 원내대표로 꼽히던 10선의 지프 크롤리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2016년 대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의 영향을 받은 이들 ‘밀레니얼 세대’(1981~1996년생)들은 민주당의 정체성을 좌클릭함으로써 트럼프의 공화당과 차별화를 확실히 한다는 전략이다. 여성 정치인들의 증가가 다양성 확대와 함께 정치·사회 문화의 변화를 가속화하는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 kmkim@seoul.co.kr
  • [여기는 남미] 술취한 국회의원, 공항에서 옷벗고 추태 부리다가…

    [여기는 남미] 술취한 국회의원, 공항에서 옷벗고 추태 부리다가…

    잔뜩 술에 취해 비행기에 오르려던 볼리비아의 여당 하원의원이 추태를 부리다 경찰에 체포됐다. 볼리비아의 하원의원 도밍고 소토(사회주의운동)는 8일(현지시간) 동료 의원들과 함께 지방도시 코차밤바를 방문했다. 이곳에서 열린 볼리비아 창군 193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문제는 행사에 참석한 뒤 수도 라파스로 돌아가기 위해 공항에 나오면서 발생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소토를 공항경찰이 가로막았다. 한눈에 봐도 비행기 여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그는 잔뜩 술을 마신 상태였다. 지금처럼 취한 상태로는 비행기에 오를 수 없다는 공항경찰의 말에 소토는 버럭 화를 내며 막무가내로 기내에 진입하려 했다. 그런 그를 공항경찰이 끌어내면서 공항에선 소동이 시작됐다. 소토는 고함을 지르며 셔츠와 바지를 훌러덩 벗기 시작했다. 경찰이 말리자 공항 바닥에 누워 속옷까지 벗으려 했다가 제지당했다. 상황을 이대로 둘 수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소토를 무력으로 제압, 강제로 바지만 입혀 연행했다. 수사과로 넘겨진 소토는 8시간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국회의원의 추태가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정계는 발칵 뒤집혔다. 여당 사회주의운동(MAS)는 사건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기로 했다. 여당은 "윤리위원회가 진상을 파악하고, 징계가 필요하다면 징계할 것"이라고 했지만 대국민 사과는 하지 않았다. 야권에선 총공세에 나섰다. 중도파 정당 '국가연합(NU)'의 대표 사무엘 도리아는 "(소토의 알몸뿐 아니라) 체제의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라면서 "12년 이상 정권을 잡고 있는 집권세력이 어떤 상태인지 국민은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야당 상원의원 아르투로 무리요는 "본이 되어야 할 최고 지도층이 규정을 무시하고 최악의 본을 보였다"면서 "위기는 잘못된 정신에서 온다. 지도층부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사진=크로니카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광주비엔날레 한달 앞으로…전시 작품 첫 공개

    ‘2018 광주비엔날레’ 개막일이 한달 가량 앞으로 다가오면서 작품설치 등 행사준비도 본격화하고 있다. 10일 광주비엔날레에 따르면 올 행사(9월 7일~11월 11일·66일)에 전시되는 작품설치와 반입이 이뤄지고 개막식과 심포지엄 등 부대 행사의 내용도 확정됐다. ‘상상된 경계들’을 주제로 열리는 이번 비엔날레는 모두 43개국 165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올 전시 장소는 시내 전역에서 이뤄진다.광주비엔날레 전시관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시내 미술관 등을 비롯해 옛 국군광주병원 등 광주의 역사적 장소 등도 포함됐다. 광주비엔날레는 지난 8일 광주비엔날레 2전시실에서 그리티야 가위웡 큐레이터의 ‘경계라는 환영을 마주하며’ 섹션에 선보일 작품으로 해포식을 가졌다. 이날 전시장에는 방글라데시 작가 무넴 와시프의 ‘씨앗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리라’(Seeds Shall Set Us Free)는 작품이 설치됐다. 이 작품은 쌀을 활용한 평면으로 방글라데시 농촌사회와 아시아 근현대사 속에서 진행됐던 식민지의 아픔을 담았다.. 이번 해포식을 시작으로 ‘클라라 킴의 ‘상상된 국가들/ 모던 유토피아’ ?크리스틴 Y. 김&리타 곤잘레스의 ‘예술과 글로벌 포스트인터넷 조건’ 데이비드 테의 ‘귀환(Returns)’ 등에서 선보일 작품들이 차례로 비엔날레 전시관에 설치될 예정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에서는 정연심&이완 쿤의 ‘지진: 충돌하는 경계들 ’ 김만석&김성우&백종옥의 ‘생존의 기술: 집결하기,지속하기,변화하기’ 문범강의 ‘북한미술: 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 등 3개 섹션도 설치에 들어갔다. 또 이미 국내에 반입된 북한미술작품 22점은 작품 보관을 위한 사전 작업과 전시공간인 스튜디오 시설공사 등이 마무리되는 대로 광주로 옮겨진다. 개막식은 9월 6일 오후 7시 30분 광주비엔날레 광장에서 열린다. 이번 개막식은 기존 공연 위주가 아니라 미디어아티스트 이이남의 신작 미디어 프로젝션 퍼포먼스로 기획됐다.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 전시 주제를 재해석, 인간의 상상으로 형성된 경계를 넘는 예술의 역할이 음악과 퍼포먼스, 미디어아트가 융·복합된 형식으로 표현된다. 9월 7~8일 열리는 국제심포지엄은 랄프 루고프(2019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가 기조발제를 맡았다.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등이 참여해 광주의 역사적 장소에서 진행했던 신작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GB 커미션: 큐레이터 및 작가 토크’도 펼쳐진다. 광주신세계백화점 1층 컬처스퀘어에 설치된 홍보관도 오는 16일까지 운영한다.‘이곳에서는 상상된 경계들’ 주제를 반영해 시민들이 생각하는 경계에 대해 묻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광주비엔날레 관계자는 “작품설치와 홍보 등을 입체적으로 진행하면서 이번 행사를 널리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며 “대회 성공을 위해서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조성룡·심세중의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200년 전 英산골 도시계획 실험… 노동자 운명 바꿨다

    이모가 남긴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반세기 전 한 가족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잘 가꾸어진 잔디밭 뒤로 드문드문 들어선 새하얀 양옥 주택, 젊은 부부와 두 어린 아이가 함빡 웃는다. 1970년대 초 울산의 대한석유공사(유공, 현 SK) 사택이다. 막내의 가슴에는 유공유치원 이름표가 달랑거린다.울산에 정유공장을 중심으로 한 석유화학단지와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사택 단지나 사원 아파트가 함께 조성되었다. 서구에서 온 엔지니어들은 공장과 함께 사택과 클럽을 조성하고, 유치원과 볼링장, 실내 수영장도 운영했다. 도심의 사원 아파트에는 무료 셔틀버스가 시간마다 운행되었다. 사택이라고 하면 탄광촌이나 철도 관사 등이 쉽게 떠오르지만, 노동자들의 살림집으로 회사에서 공급하는 주택(社宅)도 있다. 앞서 소개한 옥타비아 힐의 아버지가 추종했던 200년 전 영국 사람 로버트 오언(초상화·1771~1858)은 대개 공상적 사회주의자이자 협동조합 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데, 그 이전에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의 주거를 기업의 주된 과제로 여기고 적극적으로 풀어내는 최초의 실험을 한 인물이다. 스코틀랜드 클라이드 계곡 골짜기의 뉴 래나크에서 말이다. “오언은 그전에 맨체스터에 있었어요. 같은 산업혁명 상황이라고 해도, 맨체스터를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후에 엥겔스(1820~1895)가 나쁜 주거 환경을 묘사해서 보고서를 낸 곳이죠. 소셜리스트라는 말로 워낙 알려졌지만, 오언은 도시를 만드는 것, 타운 플래닝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에요. 도시 계획 자체가 오언에게는 자신의 사회적 이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오언은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려고 하면 그 사람이 처한 환경 문제로 들어가서 그것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오언은 웨일스 대장장이의 아들로, 9살 때 런던으로 상경해 포목점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면 방적 산업이 폭발적으로 커지던 맨체스터로 옮겼고, 20대 초에는 작은 공장을 인수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맨체스터에서 철학과 문학 클럽을 드나들면서 세상을 보는 안목도 키워 나갔다. 20대 말인 1800년엔 북쪽으로 한참 떨어진 스코틀랜드의 산골로 들어가 뉴 래나크 면 방적 공장을 인수했다. 당시 발명된 리처드 아크라이트(1732~1792)의 수방적기를 도입해 데이비드 데일(1739~1806)이라는 기업가가 차린 공장이었다.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여러 공장이나 탄광이 그렇듯, 수력을 기계 동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에 낙차가 큰 물 근처에 공장을 두어야 했고, 클라이드 강의 수려한 계곡이 바로 그랬다. “맨체스터에서 왜 래나크로 갔을까. 맨체스터에서 스스로 일하면서 노동자들 현실을 봤겠죠. 산업 혁명에 따른 문제를 풀지 못할 문제라고 보느냐, 아니면 풀 수 있느냐, 거기에서 두 길이 나뉘는 거예요.” 오언이 래나크로 간 것은 사랑에 빠져서였다. 데이비드 데일의 딸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출신의 격차가 컸다. 장인의 환심을 사려고 기업의 주주가 된 것이다. 공장을 인수하고 보니, 운영이 문제였다. 인근 주민들은 전통적인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공장에 출퇴근을 할 생각이 없었고, 기술자들은 먼 도시에 살았다. 공장에는 교회 구빈원에서 노동력이랍시고 보낸 수백 명의 어린 아이들과 일에 별 의욕이 없는 떠돌이 임시 노동자들뿐이었다. 돈만 생기면 술 마시고 뻗어 버리는 노동자들을 구타하거나, 적게 먹는 아이들을 초과 노동시키면서 영국은 위대한 산업화를 이루어 내는 중이었다. 몸집이 작고 손가락이 가는 아이들은 거대한 방적기 아래를 드나들며 실오라기를 줍고 실을 잇는 데 동원되었다.오언은 맨체스터 생활을 접고 뉴 래나크로 이사를 갔다. 그는 뉴 래나크에서 일하려고 먼 곳에서 온 노동자들에게 반듯한 집과 더 많은 월급을 먼저 주기로 했다. 공장 곁에 사택을 조성해 한 가족이 한집에서 살게 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지지 않아도 되었고, 노동자들은 출퇴근에 고생하지 않아도 되었다. 아동 노동을 금지하고, 일이 줄어도 월급을 주고, 하루에 8시간만 노동하게 했다. 마을 안에 매점을 조성해 생필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도록 했는데, 월급은 적게 주면서 공산품은 턱없이 비싸게 팔아 두 배의 이익을 취하는 것은 식민지에서나 모국에서나 제국의 기업가들이 꾀한 기본 모델이었다. 1817년에 오언은 뉴 래나크에 노동자 자녀와 고아들을 위해서 영국 최초로 초등학교를 두었다. 오언의 경영 방식은 해마다 더 높은 수익률로 되돌아왔지만, 다른 주주들은 노동자를 위하느라 기업주의 이익을 줄인다며 투자에 훼방을 놓았다. 오언은 1813년에 반대자들의 주식을 몽땅 사 버렸다. 이후 10여 년간 이 산골 공장 마을은 유럽 곳곳의 정치가, 왕족의 방문 행차를 맞았다. 방문객들은 청결하고 쾌적한 작업 환경에 만족한 활기찬 노동자들이 사업성을 높이고 수익 목표를 달성한다는, 세 가지 목표를 한번에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목도하고 대단히 놀랐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기록하고 소개한 글이 1817년에 발표한 ‘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견’이다. “오언의 상상도는 뉴 래나크를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글로 썼는데, 나중에 그림으로 알기 쉽게 정리한 거죠.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증기 기관이 발명되고, 엄청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도시가 그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 거야. 자기가 그걸 직접 해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 아닌가. 가난한 노동자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수준을 넘어서서 달라진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구체적인 실현 방법을 찾은 거지요. 물론 이상 도시 계획은 그전에 르네상스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오언이 다른 점은 당시에 가장 중요하게 대두된 산업, 기계 시대에 먹고사는 문제하고 연결한 거죠. 그리고 권력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렇게 해 냈어요.” 오언은 실업의 원인을 기업주들의 잘못된 수익 목표에 두었다. 나폴레옹 전쟁(1804~1813)을 거치면서 영국의 공장은 기계화되어 엄청난 공산품을 생산했지만 전쟁이 끝나고서도 생산량을 줄이지 않아 결국 불황이 닥쳤다. 그러자 기업주들은 노동자부터 대량 해고해 버렸다. 경기에 따라 해고되고 취업되는 노동자들은 결코 기술을 쌓거나 기계를 이기지 못한다. 오언의 대안은 인구 1000명 안팎의 작은 일자리 공동체를 많이 만들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은 언론에 실리면서 환영과 함께 맹렬한 비난도 받았는데, 먹고살 만한 노동자들이 아이를 더 많이 낳아서 결과적으로는 실업 빈민 수가 더 급증할 것이라는 위협이었다.아무리 수익성으로 증명해 보여도 기업주들의 욕심이 멈추지 않는 데 질린 오언은 1925년에 큰 이익을 본 뉴 래나크를 매각했다. 그 돈으로 한 건축가와 함께 만든 도면과 모형을 들고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했다. 워싱턴 하원에서 모형을 전시하고, 마침내 인디애나주의 개신교 정착촌 뉴 하모니에서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어중이떠중이 몰려든 사기꾼과 알코올 중독자들은 월급만 받고 일하려 들지 않았다. 뉴 래나크에서 25년 동안 모은 재산을 2년 만에 날리고 고국으로 돌아온 오언에게 공상가라느니, 협동주의 운동가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국 하원에서 발표한 오언의 개념도는 이렇다. 네 방향의 반듯한 도로와 텃밭에 둘러싸인 블록이 있다. 블록 한가운데에는 공공시설과 어린이집, 각급 학교, 공동 부엌, 강당, 클럽, 도서관과 종교 시설이 들어간다. 야외는 녹지로 조성되어 운동과 여가 장소로 이용된다. 블록의 세 변에는 노동자를 포함한 4인 가족마다 방 4개짜리 주택들이 계획된다. 나머지 한 변은 독신자와 고아 숙소, 먼 곳에서 놀러 온 친지나 가족들을 위한 손님방, 교사나 의사의 관사, 공동 창고가 들어선다. 한쪽 도로 건너편에는 이들이 노동할 공장이나 회사가, 반대쪽 건너편에는 입주민들에게 식량으로 공급될 논밭과 과수원이 배치된다. 공장과 주거, 곧 사택 단지 사이에는 키 큰 나무를 심어 적절히 분리한다. “그 그림이 당시 사람들이 보기에 공상적이었는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거죠. 오언은 미봉책으로 조금조금 해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를 새로 만들어서 해결해 보자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나는 이런 내용을 예전에는 구체적으로 잘 몰랐어요. 우리가 사회주의라는 말을 언제부터 쓸 수가 있었느냐고요.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서로 얘기를 못했잖아요.” 오언의 계획은 이후 여러 추종자들을 거쳐 20세기 미국과 일본, 수많은 근대 국가에서 실현되었다. 그를 ‘공상적 사회주의자’라고 가르쳤던 우리의 학교도 바로 그렇게 조성된 사택 단지나 아파트 안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러나 오언은 공상을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뉴 래나크라는 공장에서, 동시대 현실에서 직접 마주친 문제를 해결해 보았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 나갔을 뿐이다. “우리가 1960년대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왔기 때문에 도시 주택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도 어떻게 보면 피상적이에요. 서구 사례에서 대응하기 쉬운 짝을 찾아서 사지선다형처럼 고르려고 한 거지 문제의 본질에 들어가지 않은 것 같아요. 결과물로 나온 도시의 모양은 비슷한데, 근본적인 해결이 나오지는 않아요.”사택 살던 아이들이 그렇듯 이모네 가족도 이모부의 전근에 따라 몇 년 후 서울로 이사를 갔다. 그들의 주소는 사택이 아니라 강남의 아파트가 되었다. 오언의 개념도가 착실하게 실현된 200년 후 대한민국의 귀결은 협동조합이나 화폐 없는 공동체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면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월급보다 더 큰 재미를 보았다. 프라이버시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 오언을 따른다며 사택을 짓고 특정 종교나 생활 방식을 강요하려 든 기업주도 역사상 많았다. 강점기 일제 관료의 사택은 문화재가 될지언정, 우리 노동자의 공단 사택과 클럽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고층 아파트로 재건축됐다. 주택 청약권이 아니라 노동자가 이사하지 않고 일터 가까이에 거주할 권리, 회사에서 아이를 키울 권리를 따질 수는 없었을까. 새벽 5시부터 30도를 오가는 날, 아득하게 펼쳐진 아파트 숲 사이를 매일 1시간 넘게 땀 흘리며 출근해야 하는 신도시 노동자들은 벌써 피곤하다.
  • [라오스 댐 붕괴] 정부 긴급구호대 도착… 라오스 당국은 피해 축소

    [라오스 댐 붕괴] 정부 긴급구호대 도착… 라오스 당국은 피해 축소

    일각 “수력발전소 수출 타격 받을까 쉬쉬”라오스 정부가 ‘세피안·세남노이’ 수력발전 댐 사고 피해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한국 정부에서 파견한 ‘대한민국 긴급구호대’(KDRT)가 29일 사고가 발생한 아타프주와 가장 가까운 참파사크주 팍세공항에 도착했다. 의료인력 15명, 지원인력 5명으로 구성된 구호대는 30일부터 열흘 동안 수재민 치료와 감염병 예방 등 본격적인 구호 활동에 나선다. 앞서 정부는 사고 발생 5일 만인 지난 28일 담요 1200여장과 대한적십자사의 위생 키트 20여점, 댐 시공사인 SK건설의 의류 등 구호품 보내 현지 재난 당국에 전달했다. 이번 사고 사망자 수를 놓고 라오스 당국의 발표가 오락가락하면서 당국이 의도적으로 피해자 수를 줄이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영 라오스통신(KPL)은 지난 26일 사망자 27명, 실종자 131명, 이재민 3060명이라고 보도했다. 비엔티안타임스는 28일 라오스 고위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사망자가 1명 늘어 전체 사망자가 5명이 됐다”고 보도했다. 통룬 시술릿 라오스 총리는 2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해외 주요 매체가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과장하고 있다. 보도 내용의 진위를 따져 봐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주의 국가인 라오스의 공식 매체는 모두 정부 소유다. 현지 주민, 수몰 지역 생존자들은 당국의 발표를 믿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BBC는 “지역 주민들이 사망자가 300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라오스 정부가 수력발전소를 지어 전기를 수출하는 사업에 타격을 입을까 봐 우려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막대한 인명 피해에 따른 반정부 기류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라오스 정부는 이번 사고에 대한 외신 기자의 취재를 공식적으로 허가하지 않고 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기자칼럼]노회찬 의원이 말했던 “진보가 희망인 이유”

    27일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국회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평생을 한국의 민주화와 진보정치에 바쳤던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 의원을 기억하며 그가 2009년 당시 ‘서울신문’ 기자들의 공부모임이었던 ‘연대와 희망’ 초청강사로서 세 시간 가까이 진솔한 얘기를 들려줬던 얘기를 다시 꺼내놓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노 의원이 초청강연을 했던 2009년 1월 16일 당시 그는 2004년부터 2008년까지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뒤 진보신당 공동대표로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2008년 1월부터 서울 노원(병)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할 당시 겪었던 얘기로 자신의 17대 의정활동에 대한 반성을 시작했습니다. 선거를 준비하면서 노 의원은 유권자들한테 받을 예상 질문을 뽑아서 맞춤형 답변을 열심히 연습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건 헛수고였습니다. 선거까지 석 달 동안 아무도 그가 준비했던 예상질문이었던 “너무 과격한 거 아니냐” “너무 한쪽으로 편향된 거 아니냐” “중간에서 폭넓게 해야 하지 않느냐” “왜 밤낮 데모만 하느냐”를 묻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만 많이 받았답니다.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서민들 먹고 살게 해달라”였고, 그 다음이 “서민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일해달라”는 것이었답니다. 노 의원에게 특히나 충격적이었던 건 자신이 몸담았던 민주노동당이 유권자들에게 서민의 대변자로 비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국회 당시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넓은 현대차 공장에서 옷차림만 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섞여서 같은 일을 하는데 복장이 다른 겁니다. 노 의원은 “정규직들은 우리를 보면 장갑을 벗고 반갑게 악수를 하며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눈다”면서 “비정규직은 장갑 안벗는다. 다가가서 손을 내밀어도 외면하기도 한다”고 털어놨습니다. 노 의원으로선 서운할 법도 한 그런 상황은 왜 벌어졌던 것일까요. 노 의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일은 똑같은데 월급은 절반 밖에 안된다. 정규직노조가 파업이라도 하면 비정규직은 일감이 없어서 굶어야 한다. 정규직노조는 2층짜리 단독건물을 노조사무실로 쓴다. 상근자도 엄청 많다.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은 공장 한켠에 한 평 정도 된다. 노조 설립하고 나서 1년까지는 유선전화도 회사에서 안 놓아줬다고 한다.” 결국 비정규직 입장에선 정규직노조는 남의 편입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노조 집합체입니다.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민노당은 당연히 자기들 편이 아닌 겁니다. 노 의원은 그런 인식이 굳어지도록 방치한 책임을 크게 느꼈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정말로 당시에 서민을 위한 정당이라고 인식됐다면 지난 대선 지지율이 20%는 거뜬했을 것”이라면서 “돌이켜보면 진보라는 사람들이 오히려 준비 부족, 정치력 부족, 전략 부족… 그런 걸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의원은 2000년 1월 창당한 민노당 초기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 민노당은 놀라운 성장세를 이어갔습니다. 노 의원은 “민노당이 창당 당시 당원 7000명에서 1년만에 두배, 2년차에 3만, 3년차에 5만, 4년차에 7만, 나중에 10만 됐다”면서 “지지율도 처음엔 1~2%였는데 17대 총선에서 정당투표로 13.4%까지 기록했고 그해 말 지지율이 18~19%까지 나왔다”고 회상했습니다. 노 의원은 “13%라는 건 국민들 사이에서 진보를 수용할 수 있는 토대가 꽤 있다는 걸 보여준다”면서 “문제는 그걸 더 끌어내는 것과, 고정지지로 만드는 거였는데 민노당 의정 4년에 결과적으로 제대로 못하니까 국민들이 지지를 철회한 것이지 국민이 보수화된 게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런 점에서 노 의원은 17대 국회 4년 동안 가장 아쉬운 대목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첫번째는 민노당 17대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공약을 제대로 끌고가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국민들은 그 공약의 실현가능성을 본 게 아니라 그런 얘기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라면서 “문제는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를 민노당의 브랜드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4년 원내 진출 이후 1년 내내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벌인 국가보안법 판에 휩쓸렸다”면서 “2005년 가을에야 무상교육 무상의료 부유세 관철 위한 본부를 만들었다. 노력도 별로 안하고 타이밍도 놓쳐버렸다”고 아쉬워했습니다. 2004년 당시 한창 시끄러웠던 국가보안법 논쟁도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고수하자는 쪽은 한나라당 내에서도 적었다고 합니다. 국가보안법 7조(이적단체, 이적표현물, 이적행위)만 없애자는 게 한나라당 개혁파와 민주당 주류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열린우리당 강경파와 민노당에선 완전폐지를 주장했다. 노 의원은 “국가보안법 사범 보면 95%는 7조가 문제다. 나머지는 간첩처럼 국보법 없더라도 잡혀갈 사람들이었다”면서 “당시엔 나도 국보법 완전폐지 주장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반성할 부분 있다”고 말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한 것을 계기로 탄생한 특검도 많이 아쉬운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특검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한 노 의원이었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경륜부족”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상황에선 구석에 몰린 검찰이 대검중수부장 지휘받는 특별수사본부에 삼성 수사 열심히 해 좌천된 사람들로 구성했다. 이들이 당시에 제일 수사 잘할 사람들이었다. 성과도 있었다. 그런데 특검 때문에 중단됐다.” 노 의원은 “특검이 검찰보다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 특검은 누가 되느냐에 따라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는데 노무현(대통령)이 검찰보다도 의지가 적었다”면서 “민변이 추천한 변호사가 했으면 100중에 60은 했겠지만 노무현은 삼성맨을 특검으로 임명했다. 나는 그것까지 내다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당시를 떠올리며 “운동권 관성과 흑백논리”를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노 의원은 17대 의원 시절을 반성하면서 미래에 대한 목표와 전망도 밝혔습니다. 지금 들어도 시사점이 많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진보는 지금 분명히 위기다. 지금 진보진영에게 필요한 건 실용노선, 즉 실사구시라고 생각한다. 역사를 되돌아봐도 성공한 혁명은 모두 실용노선으로 성공했다. ‘실사구시’를 진보의 기본철학으로 삼아야 한다.” 18대 총선 당시 선거참모들이 노회찬에게 “자유총연맹 회의가 있으니 거기 가서 인사를 하라고 권했답니다. “그 말을 듣고 몸이 굳어졌다”는 노 의원은 참모들 강권에 별 수 없이 자유총연맹 회의에 갔답니다. 그가 거기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요. “내 선거구 인구가 20만명이고 9개 동이다. 자유총연맹이 동마다 조직이 있다. 내가 찾아간 자리는 어느 동의 운영위원회 뒷풀이였는데 거기 참석한 사람만 줄잡아 30명이었다. 본격적인 이념투쟁 벌어질거라 생각하고 각오 단단히 했다. 하지만 막상 가보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노 의원은 “자영업 위해 먹고살기 위해 가입한 사람도 있고, 동네에서 사람들 많이 만나야 하는 필요 있는 사람들도 있고, 놀랍게도 여성이 절반 정도였다”고 했습니다. 그는 “자유총연맹 수뇌부는 극우조직이지만 하부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다. 처음엔 인사만 하고 나오려 했는데 주저앉아서 결국 소주를 너댓병 먹었다”면서 “만나보니 자유총연맹 회원이라는 사람들이 서민 범주에 드는 사람들이었다. 나중에는 9개 동네 운영위원회마다 가봤다”고 회상했습니다. 결국 내친김에 재향군인회도 찾아갔답니다. 재향군인회 사무실 한쪽은 6.25참전무공자회가 쓰고 있었답니다. 연배가 최소 60세는 되는 이 단체 소속 할아버지들이 재향군인회보다 훨씬 반갑게 맞아줬습니다. “외롭고 소외돼 있는데 알려진 사람이 찾아오니 반가운 거다. 나중엔 노원구 총회가 있는데 와달라고 귀띔까지 하더라. 70대 할아버지 500명이 모이는 자리였다. 후보들 중 유일하게 초청받아서 인사를 했다.” 그는 “결국 다른 게 아니다. 불의에 맞서 싸우는 거와 약자 편에 서는 활동에 호감 보인것”이라면서 “대중들을 만나보니 ‘친북만 아니면 사회주의도 좋다’는 정서가 강했다. 한국에선 노무현 정부조차도 친북으로 몰아세우는 분위기가 있지만, 가만히 보니 북한만 편드는 거 아니면 이데올로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레드컴플렉스가 막상 보니 웃기는 거였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노 의원이 말하는 “진보가 희망이 있다는 근거”였습니다. 그런 고민 위에서 노 의원이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은 남북문제였습니다. 노 의원은 “박근혜가 북한에 가면 조선노동당 관계자들이 만나준다. 정동영 전 통일장관이 북한 가도 조선노동당 관계자를 만났다. 하지만 민노당이 북한에 가면 노동당이 아니라 사회민주당이 만나준다”고 했습니다. 쿠바나 중국같은 혈맹은 조선노동당이 만나고 사회민주당은 서방세계 대표단 만나는 당이랍니다. 노 의원은 “북한은 오히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힘’을 본다. 우리만 짝사랑한다고 되는게 아니다”면서 “오히려 진보정당이 북한 비판하면 그게 오히려 북한에게 따끔하다. 그걸 감안해서 북한에 대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습니다. 당시 노 의원은 선거제도 개혁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제는 바로 현재 정의당이 가장 주력하는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선거제도 개혁이 개헌보다 더 중요하다”는 노 의원의 외침은 이제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 됐습니다. “국민들이 5% 지지하면 5%만큼 의석을 가져야 한다. 1등 말고는 다 떨어지는 구조에선 최소 50% 국민의 선택이 무의미해진다. 유럽정치도 초기엔 완전비례대표제도를 위해 한세대 가까이 걸린 투쟁이 있었다. 그걸 거쳐서 좌파정당이 집권도 하고 그런 거다.” 세종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열린세상] 비핵화 이후 북한의 발전 모델과 중국의 개입/박두복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열린세상] 비핵화 이후 북한의 발전 모델과 중국의 개입/박두복 국립외교원 명예교수

    미·중 양국이 핵·경제 병진노선에서 경제 우선으로 전환한 김정은의 노선 변화를 적극 받아들이면서 북한 비핵화의 전망이 밝아지고 있다. 이는 미·중이 대북 관계에서 북한 비핵화에만 머물지 않고 비핵화 이후 북한의 변화·발전에 대한 그들의 역할까지로 정책 영역을 확장시켜 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래 북한의 발전 모델을 둘러싼 미·중의 경쟁과 대립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최근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베트남 방문 중에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와 함께 경제성장을 이룩한 ‘베트남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실현 이후의 변화에 대한 정책 방향이나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폼페이오의 발언에 대해 중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반도 비핵화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을 대신해 미래를 구상하는 것은 지나치게 앞서 나가는 것으로 타국의 발전에 간섭해 온 그들의 낡은 버릇의 소산이라고 강조했다. 베트남 모델은 사회주의 발전 단계를 저급한 단계로 규정하고 생산성 증대를 위해 비사회주의적 요소, 즉 자본주의의 도입을 위한 이론적 틀이라는 점에서 중국 모델과 동질적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북한의 미래 발전 방향과 관련해 베트남 모델을 강조하는 것은 북한의 변화 결과 출현하는 북·미 관계가 제2의 친미적 미·베트남 관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북·중 관계의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심각한 불신이 존재하고 있다. 북한이 언제고 대미 일변도화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중국에 베트남 모델은 그들의 대북 정책 기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역사적·지정학적으로 그들의 안보를 위협할 북한에 친미적 정권이 출현한다는 것은 중국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사실 한반도 비핵화 실현 이후 북한의 미래에 대한 중국의 이해와 관심은 미국보다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초 북한 체제 유지에 중대한 이해를 갖은 중국은 북한에 개혁과 개방을 촉구했다. 그러나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 측의 부정적 태도로 중국은 직접적이고 분명한 입장을 개진하거나 정책을 추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김정은이 경제 우선적 신(新)정책 노선을 확립하고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북한이 전면 부정에서 긍정적으로 전환한다면 중국이 북한의 개방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본 여건이 확립됐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인식을 기초로 중국은 앞으로 북한에서 전개될 개혁개방과 경제발전 과정에서 그들의 역할과 협력을 적극 모색해 갈 것이다. 이는 정상회담 이후 당과 국가 건설 경험에 대한 상호교류를 강조하면서 중국 개혁개방의 성과에 대한 북한의 학습 과정이 본격화되고 있는 데서 이미 잘 나타나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와 더불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면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 증대를 위해 시장을 비롯한 자본주의적 요소의 도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만큼 자본주의적 요소 도입을 정당화하고 합법화하는 이론의 확립도 절실해질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선행적으로 이루어진 경험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증대될 것이다. 최근 북한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하고 개선하는 중국 정부가 왕후닝(王扈寧) 정치국 상무위원을 전면에 배치하고 있는 것도 북한이 개혁개방을 선택한 이후 전개될 양국 관계를 고려한 중국의 세심한 개입 의도로 보인다. 왕후닝은 경제사회 발전과 다원화 추세에 따라 중국 공산당 일당 체제가 도전을 받게 되자 공산당의 체질과 성격을 이러한 사회 변화에 적응하는 방향에서 변화시킴으로써 공산당 일당 체제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구축하는 이론적 틀을 구축한 핵심적 인물이다. 중국은 북한이 김정은 일인 중심의 권력 집중을 지속·강화하고자 노동당 일당 체제의 유지를 전제로 전개돼 갈 때 일당 체제의 정당성을 구축해 온 중국의 경험을 절실히 필요로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의 개혁개방 과정에 그들의 선행 경험을 적극 접목시킴으로써 북한 경제의 대중 의존성을 심화시키고 북한이 대미 일변도로 향할 가능성을 근원적으로 차단하는 정책을 추구해 갈 것이다.
  • 광주전남 남북화해무드 타고 문화예술 교류 활발 추진

    올 가을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에 ‘북한미술전’이 열리고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 북한 작가가 초대되는 등 광주·전남지역과 북한간 문화예술 교류 물꼬가 터질 전망이다. 26일 광주비엔날레에 따르면 올 행사에 ‘북한미술전’을 열고 이를 정례화하는 방안을 마련 중이다. 김선정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는 최근 열린 기자회견에서 “올 행사부터 북한작품 전시를 정례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표이사는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는 회화 중심의 북한작품을 선보인다”며 “다음에는 조각·설치 등 특정 장르나 테마를 정해 행사때 마다 북한작품전을 열겠다”고 말했다. 광주비엔날레는 오는 9월7일~11월11일 ‘상상된 경계들(Imagined Borders)’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행사에서 ‘북한미술-사회주의 사실주의의 패러독스(North Korean Art-Paradoxical Realism)전’을 준비하고 있다. 7개 주제전 중의 하나이다. 이 전시는 그동안 9차례나 방북한 북한미술 전문가이자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인 문범강 큐레이터가 기획했다. 전시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 문화창조원 6관에서 열린다.전시에선 평양 만수대창작사에서 제작한 4~5m 폭의 대형 집체화 등이 최초로 공개된다. 광주비엔날레는 또 통일부 등 관계 기관을 통해 김성민(조선미술가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창호(인민예술가), 김인석(공훈예술가) 등 3명의 북한 작가를 초청했다. 전남도는 올해 처음으로 목포와 진도 등지에서 열리는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에 북한 작가를 초청, 작품 30여점을 전시하겠다는 뜻을 최근 통일부를 통해 북측에 전달했다. 인민작가와 공훈작가 등 20여명이다. 도는 이들이 초청에 응한다면 행사기간 특정 지역에 거주하며 창작활동을 할 수 있도록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련할 방침이다. 목포 갓바위문화타운 일원의 3개 전시관은 ‘현대수묵’을, 진도 운림산방 일원의 3개 전시관은 ‘전통수묵’을 콘셉트로 수묵작품을 전시한다. 9월 1일~10월 31일 두달간 10개국 300여 국내외 수묵 작가가 참여한다. 도 관계자는 “전시 등 남·북간 문화예술 활동의 정례화가 한반도 평화 정착에도 보탬이 될 것으로 본다”며 “지속적인 교류를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쿠바의 봄’… 42년 만에 사유재산·동성결혼 허용

    ‘쿠바의 봄’… 42년 만에 사유재산·동성결혼 허용

    ‘공산주의 사회 건설’ 구절 삭제 평의회 의장 5년 중임 임기 제한 총리직도 신설… 독점 권력 분산 시장경제·민주적 요소 일부 수용사회주의 일당 독재국가인 쿠바가 사유재산과 동성 결혼을 허용하고 최고 지도자의 장기 집권을 금지하는 새로운 헌법 개정안을 42년 만에 확정했다. 지난 4월 새 국가평의회 의장(대통령)으로 미겔 디아스카넬(58)이 선출되며 59년 만에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를 연 쿠바의 첫 변화를 향한 조치다. ●하반기 국민투표 거쳐 최종 발효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쿠바 국회인 인민주권민족회의(이하 인민회의)는 사회주의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1976년 제정했던 낡은 소련식 헌법을 개정했다. 이 개헌안은 하반기 국민투표를 통해 최종 발효된다. 개헌안의 가장 큰 특징은 그동안 자본주의의 잔재로 여겼던 사유재산 보유를 허용하고, 헌법 조문에 있던 ‘공산주의 사회 건설’ 문구를 삭제했다. 대신 해외 투자 유치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내용을 새로 넣었다.그동안 민간 주도 경제를 점차 확대해 온 쿠바 정부가 본격적인 개혁 개방을 모색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기존 헌법에서는 오로지 국가, 협동조합, 농민의 재산권만 인정됐다. 쿠바의 우방인 북한도 2009년 개정 헌법에서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삭제했다.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2016년 사망)의 동생인 라울 카스트로(87) 전 국가평의회 의장(현 공산당 제1서기)은 경제난 타개를 위해 2010년부터 식당, 미용실 등 제한된 업종에서 자영업을 허가하는 시장 개혁 조치를 실시했다. 이후 쿠바의 시장경제는 상당한 규모로 커져 현재 전체 노동자의 13%가량이 비공공 부문에서 일하고 있다. 쿠바는 2011년에는 자동차·주택 매매를 허용했고 2013년에는 해외 여행도 자유화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국교를 정상화하고 경제제재를 완화한 것도 쿠바 정부의 경제 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테드 헨킨 뉴욕시립대학 교수는 “쿠바가 그동안 진행해 온 개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이제 헌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여태까지의 개혁 조치가 위헌이 돼 버리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각료 34명 임명… 25명은 유임 인민회의는 총리직도 신설해 국가원수인 국가평의회 의장이 독점한 권력을 분산했다. 이에 따라 국가평의회 의장은 기존 내각에 대한 통솔 권한을 총리에게 이임하게 된다. 그리고 그동안 연임 제한 규정이 없어 카스트로 형제가 장기 집권했던 국가평의회 의장직도 임기를 5년 중임(최장 10년)으로 선을 그었다. 이 밖에 60세 이하 인물만 평의회 의장으로 취임(첫 임기)할 수 있도록 해 지도자의 세대 교체까지 보장했다. 다만 공산당이 쿠바를 지도하는 유일 정당으로 규정한 내용은 헌법에서 그대로 유지됐다. 획기적인 건 결혼을 남성과 여성의 결합으로 규정한 기존 헌법 조항을 두 개인 간 결합으로 대체한다고 해 사실상 동성 결혼까지 용인했다는 점이다. 한편 인민회의는 21일 개헌안 통과와 함께 각료 34명을 공식 임명했다. 이 가운데 신임 각료는 9명이며 나머지는 카스트로 전 의장 시절의 각료들이 유임됐다. 이는 여전히 당을 장악하고 있는 ‘막후 실력자’ 카스트로 전 의장의 영향력이 건재함을 의미한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건물주 배만 불려주던 의사는 왜 중국에 진출했나

    건물주 배만 불려주던 의사는 왜 중국에 진출했나

    “한국 의료계는 경쟁이 너무 심해 개업한 의사는 건물주 배만 불려주는 상황이고, 중국은 의사들이 수련 과정에서 어깨너머로 배운 경우가 많아 전문적이지 않습니다.”  유정원(56) 중평제이케이 원장은 22일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서비스 부문 협상이 타결되면 중국 진출 시 가장 경쟁력 있는 분야가 의료산업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오는 의료관광도 지난해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이후 시들해지는 추세에서 경쟁력 있는 한국 의사의 중국 진출은 한국 의료산업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의료 부문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지는 않지만 베이징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한국 의사의 면허를 인정해주고, 합작회사를 건립해 한국 의료법인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난 2일에는 2021년 개관을 목표로 세브란스 병원 착공식이 칭다오에서 열렸고, 허난성 성도인 정저우에서 중평제이케이도 이날 중국 당국의 면허 발급과 함께 진료를 시작했다. 그동안 성형외과, 피부과와 같은 한국 의료기관의 중국 진출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성공사례는 없다. 중국 현지사정을 잘 모르는데다 중국 공동 사업자의 신뢰도가 낮아 실패하는 예도 많았다. 중평제이케이는 지난 1년여간 1만여명의 중국인에게 평균 1111위안(18만원)의 비용으로 최신 기기를 이용한 건강검진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한국 의료에 대한 신뢰도를 높였다.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유 원장은 의약분업에 반발한 의사들의 초유의 파업사태가 있었던 직후인 2001년 제자들의 개업으로 더는 대학병원에 남을 수 없어 서울 압구정동에 개원을 감행했다. 하지만 매년 오르는 임대료에 건물주만 이득을 보는 상황에서 도전정신을 갖고 2015년 중국 시장 진출을 결심했다. 그는 구순구개열(언청이) 수술의 대가인 미국 의사 사뮤엘 누도프가 제자들을 길러낸 대만 장경기념병원에서 수련했다. 성형수술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대만 병원에서의 연수는 류 원장의 중국 진출의 발판이 됐다.  유 원장은 “중국은 한국과 심미관이 달라 중화권 대표 여배우 판빙빙과 같은 인공적인 미를 선호하며 중국 환자들은 의사를 존중하기보다 자기 주관이 강한 편”이라며 “사회주의 중국의 의료제도는 모든 인민에게 병을 고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로 공무원의 입김이 세다”고 중국의 의료제도 현황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암 완치율이 66%로 미국의 65%보다 높은 한국의 의료수준은 중국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정저우의 인구는 1000만명으로 서울과 비슷하지만 강남구에만 400여개의 성형외과가 있는 한국에 비해 경쟁은 덜한 편이다. 중국도 최근 권위있는 학술지에 발표하는 의학 논문 숫자가 미국 다음으로 많을 정도로 의료기술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아직 중국인의 신뢰를 못 받고 있다. 유 원장은 “중국을 이해하지 않고 중국 시장에 진출했다 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이라며 본인의 실패 사례도 털어놓았다. 상하이에서 3년 계약으로 근무했다가 1년 만에 이사짐 120상자를 들고 귀국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평제이케이가 건강검진으로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 한국의 의료기술을 안정적으로 선보인다면 해외진출의 새 역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김정은, 나훈아 기대…리설주 ‘남자는 다그래’ 가사에 공감”

    “김정은, 나훈아 기대…리설주 ‘남자는 다그래’ 가사에 공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남북정상회담 사전행사로 열린 남측 예술단 평양공연에 나훈아가 오기를 원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0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7회 여기자포럼에 참석해 평양공연 당시 김 위원장과 나눈 대화의 한 토막을 공개했다. 도 장관은 “나훈아가 ‘스케줄이 있다’고 답하니, 저쪽은 사회주의 체제라 국가가 부르는데 안 온다니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이었다”고 밝혔다. 도 장관은 윤도현이 부른 록 버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끝 부분에 ‘남자는 다 그래’ 가사가 나오자, 부인 리설주 여사와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가사 내용에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치며 웃더라는 이야기도 전했다. 도 장관은 또 “평양공연을 계기로 우리가 남북교류에서 우리 것만 (북쪽에) 갖고 가서 영향을 줄 생각을 하지, 좀 준비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 점을 어떻게 보완할지가 과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선희와 북한 가수 김옥주가 ‘얼굴’을 손잡고 부를 때가 가장 뭉클했다고 밝혔다. 그는 “평양 순안공항 귀빈실에서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으로부터 ‘우리 노래 많이 준비해 왔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라면서 “북한은 10곡을 준비했는데 우리는 (북한 노래를) 알지도,불러보지도 않아서 준비해간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도 장관은 리 여사와 김 제1부부장,현 단장을 비교해달라는 요청을 “북측에서 여기 뉴스를 실시간으로 다 본다”며 물리치면서 “(북한의) 아주 고위급 인사가 지난번에 밥 먹는 자리에서 ‘드루킹이 뭐에요’라고 묻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도 장관은 다만 “현 단장이 제일 활달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김 제1부부장이 실질적인 역할을 참 많이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주어진 역할이 매우 크고 중하다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4월 공연에 화답할 ‘가을이 왔다’ 서울 공연을 위해 “서울 주요 공연장들이 이미 1년 전에 대관이 완료된 상황이라 서울을 포함해 일산과 경기, 지방까지 알아보는 중”이라면서 “공연장이 있어야만 여러 날짜를 제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 장관은 “북한이 유연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라면서 “삼지연관현악단 (방남) 특별공연 당시 사회주의 찬양 노랫말을 제외하고 팸플릿을 배포하지 말아 달라는 우리측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을 두고서는 “자유스럽고 호탕하고 대화에 거침없고, 호기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유럽에서 오래 생활한 영향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행스럽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국인의 눈물 역사를 바꿨다

    한국인의 눈물 역사를 바꿨다

    한국인 식민지배·전쟁·배고픔 등 경험 독재 시절·경제 성장 땐 눈물의 전성기 권력자 위기감 선호 ‘신파적 눈물’ 이용 대중 동원하고 억압성 감추며 폭력정치 이산 상봉·세월호 참사·박근혜 퇴진 등 역사의 변곡점마다 ‘거대한 눈물’ 존재 우리는 이제 어떤 의미의 눈물 흘리나 한국인은 유독 눈물이 많다. 올림픽 시상대에 선 운동선수들은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흘러나오면 약속한 듯 눈물을 흘린다. ‘목포의 눈물’, ‘사랑은 눈물의 씨앗’, ‘난 바람 넌 눈물’ 등 ‘눈물’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들어간 대중가요가 차고 넘친다. 1983년 KBS 1TV가 기획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당시에는 전국이 눈물바다였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동체 구성원이 단기간에 이토록 많은 눈물을 함께 흘린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야말로 ‘눈물의 민족’이라 할 만하다.신간 ‘눈물과 정치´의 저자 이호걸은 한국인의 감정에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거대한 눈물의 파도’를 찾았다. 저자는 이를 ‘신파’(新派)라 명했다. 개화기에 상연됐던 신극 이전의 연극을 의미하는 ‘신파극’의 바로 그 ‘신파’다. 저자는 20세기 초반의 신파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면서 강한 흐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독재 시절, 경제성장 때마다 큰 파도가 됐다고 설명한다. 예컨대 196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경제는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이 시기는 그야말로 눈물이 철철 흘렀던 이른바 ‘눈물의 전성기’다. 이 시기를 담아낸 윤제균의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가 대표적인 사례다. 덕수는 일터에서는 근면 성실, 가족에게는 희생적인 존재다. 흥남에서 아버지와 헤어지고, 휴전으로 막내를 다시 볼 수 없어 파독 광부 지원을 결심한다. 그곳에서 간호사 영자를 만나고 갱도에 갇혀 생사의 기로를 오간다. 귀국해 가족과 상봉하고, 해양대 입학을 포기하고 베트남에 간다. 인생을 회고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면서 덕수는 말한다. “산다는 게 참 힘이 듭니다”라고. 저자는 우리가 눈물의 민족이 됐던 이유를 ‘결핍’에서 찾는다. 일제 식민 지배와 전쟁과 분단의 경험, 그리고 배고픔의 경험이다. 눈여겨볼 점은 저자가 눈물을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꼽은 사실이다. 한국인의 눈물을 쥐어짰던 신파가 언제, 어떻게 등장했는지 살펴보니 결과적으로 정치와 연결이 되더란 뜻이다. 권력을 행사하려는 자들은 위기감을 선호한다. 위기감으로 눈물을 흘리게 하면 대중을 선동하기 쉬워진다. 눈물이 한국인의 삶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부적절한 정치적 실천을 유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박정희 시대 파시즘을 설명한 부분이 좋은 사례다. 5·16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신파적 눈물을 강력하게 환기하며 파시즘적인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억압적이고 착취적인 폭력정치를 밀어붙이며, 한편으로는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또 한편으로는 억압성을 감추고자 눈물을 이용했다. 국민은 ‘조국 근대화의 눈물’로 이에 응답했다. 수령을 ‘어버이’로 칭하고 압제를 정당화한 북한도 비슷한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눈물로 가득한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민족주의, 파시즘, 사회주의, 자유주의를 풀어낸 저자는 “1990년대 들면서 고생의 시대가 막을 내렸고, 눈물도 마르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최근 대중문화가 성공 강박증에 빠져 메마른 긴장감을 재현하는 이유다. 2007년 MBC 드라마 ‘하얀거탑’ 주인공 장준혁(김명민 분)이 그런 사례다. 유명 대학병원 외과의사인 그는 가난했던 과거를 뒤로한 채 절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최근 방영한 tvN의 드라마 ‘비밀의 숲´에서는 바뀐 신파를 여실히 보여 준다. 어린 시절 뇌수술로 감정을 잃고 살아가는 황시목 검사(조승우 분)는 감정이 제거된 인물이다. 눈물보다는 공평무사한 법의 집행이 더 중요함을 역설한다. 한국의 근대를 눈물로 읽어낸 저자의 관점은 굉장히 신선하며, 사례로 든 대중문화도 적절하다. 저자는 ‘우리가 한(恨)의 민족이라서’라든가 ‘고생을 많이 해서’와 같은 이유 대신 정치에 따라 시대별로 나타났던 신파를 설명한다. 역사의 주요 변곡점마다 거대한 눈물의 파도가 있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거대한 눈물을 불렀던 세월호 참사, 그리고 감정을 절제한 채 광장에서 외쳤던 박근혜 퇴진을 지나, 이제 우리에게 어떤 신파가 덮쳐올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