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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포스트 카스트로/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포스트 카스트로/오일만 논설위원

    쿠바의 ‘카스트로 시대’ 가 62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59년 쿠바 공산혁명 이후 장기 집권을 했던 형 피델 카스트로(1926∼2016)에 이어 권좌를 물려받았던 동생 라울 카스트로(89)가 최근 사임을 발표했다. 라울은 지난 16일 제8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나는 임무를 완수했고 조국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후임 총서기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미겔 디아스카넬(60) 대통령 겸 국가평의회 의장이 이어받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는 3년 전 라울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겨받은 상태다. 디아스카넬은 쿠바혁명 다음해인 1960년 태어난 ‘혁명 후 세대’를 대표한다. 로큰롤을 좋아하고 청바지를 즐겨 입으며 비틀스 팬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뒤 비야클라라주, 올긴주 당서기 등 지방에서 성장해 중앙 정계로 진출했다. 관광자원을 개발해 해외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을 인정받아 2003년 최연소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됐다. 그는 2009년 고등교육장관, 2012년 국가평의회 부의장으로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라울의 퇴진으로 쿠바는 ‘포스트(Post) 카스트로’ 시대가 열렸지만 쿠바의 상황은 심각하다. 돛대도 부러지고 삿대로 망가진 고물선과 비슷하다. 라울이 쿠바 경제를 되살리려던 계획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에 큰 좌절을 겪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쿠바와 극적으로 관계 정상화를 이뤘지만 뒤를 이은 트럼프가 그 결정을 번복하면서 양국 관계가 다시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2015년 경제성장률 4%로 반짝 성장세를 보였던 쿠바는 2016년 마이너스 0.9%로 역성장했고, 2017년 0.5%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로 주력인 관광업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지난해 최소 11%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인구 1100만명의 섬나라 쿠바는 1962년 도입된 배급제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경제난 속에 쿠바 시민들은 점점 더 부족해지는 식량, 의약품, 기타 필수품을 받기 위해 매일 수시간씩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 외신의 전언이다. 포스트 카스트로 시대 중국식 또는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기대하는 시선이 많다. 하지만 미지수다. 라울은 한 번도 탈사회주의를 선언한 적이 없는 강경보수 사회주의자다. 라울이 낙점하고 키운 후계자 디아스카넬이 라울이 죽기 전에 자본주의를 도입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관측도 많다. 라울의 외아들인 알레한드로 카스트로(55)는 내무부 산하 정보기관의 수장이다. 라울이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기 전까지 과도기 지도자로 디아스카넬을 활용한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쿠바의 행보를 주목한다.
  • 막 내린 62년 ‘카스트로 시대’… 쿠바 새 길 열릴까

    막 내린 62년 ‘카스트로 시대’… 쿠바 새 길 열릴까

    라울 카스트로(왼쪽·89) 쿠바 공산당 총서기(제1서기)가 총서기직 사임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1959년 쿠바 혁명 후 62년간 이어진 ‘카스트로 시대’가 막을 내리게 됐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카스트로 총서기는 지난 16일(현지시간) 수도 아바나에서 열린 제8차 공산당 전당대회 첫날 쿠바 최고 권력인 공산당 총서기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군복 차림으로 당원들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대회장에 들어온 카스트로 총서기는 개회사에서 “살아 있는 한 내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 한 발을 등자(발걸이)에 디딘 채 항상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며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이미 2016년 제7차 전당대회에서 “혁명과 사회주의의 깃발을 젊은 세대에게 넘겨주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와 함께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90) 부서기도 함께 물러나면서 쿠바 혁명세대가 모두 무대 뒤로 떠나게 됐다. 카스트로 총서기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였던 형 피델 카스트로(오른쪽·1926~2016)에 가려진 채 50년 가까이 2인자로 쿠바를 통치해 왔지만 형보다 더 정통파 공산주의자로 평가된다. 바티스타 친미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멕시코로 망명했던 그는 체 게바라(1928~1967)를 만나 그를 형 피델에게 처음 소개했다. 그는 쿠바 혁명 때는 사령관으로 여러 전투를 지휘했고 1959년 바티스타 정권이 무너지고 혁명정부가 들어선 후 국방장관, 국가평의회 부의장, 공산당 부서기 등을 맡았다. 피델의 건강이 악화하자 2008년 카스트로 총서기는 형에 이어 국가평의회 의장에 공식 선출됐고 2011년 쿠바 공산당 총서기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1인자가 되어 쿠바를 지휘하기 시작한 후에는 사회주의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실용주의 노선을 걸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 시절 미국과 국교 정상화를 이끈 것은 카스트로 총서기였다. 카스트로 시대가 무대 뒤로 물러나게 됐지만 카스트로 총서기가 막후에서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며 쿠바의 사회주의 모델에 당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카스트로 총서기는 당의 새 지도부에 대해 “열정과 반제국주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뒤를 미겔 디아스카넬(60) 대통령이 이을 전망이다. 로이터는 코로나19로 쿠바의 경제 악화가 더욱 심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지도자들은 젊은층으로부터 개혁 특히 경제 변화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피델 이어 라울도 ‘카스트로 시대‘ 저물어…막후에서 덩샤오핑처럼

    피델 이어 라울도 ‘카스트로 시대‘ 저물어…막후에서 덩샤오핑처럼

    쿠바의 ‘카스트로 시대’가 60여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라울 카스트로(89) 쿠바 공산당 총서기(제1서기)는 16일(이하 현지시간) 수도 아바나에서 개막한 제8차 공산당 전당대회 첫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는 지난 2016년 7차 전당대회에서 “혁명과 사회주의의 깃발을 젊은 세대에게 넘겨주겠다”며 5년 후 차기 전당대회에서 총서기직을 내려놓을 것임을 시사한 바 있다. 이날 카스트로 총서기는 누구에게 자리를 물려줄지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미겔 디아스카넬(60) 대통령이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 이미 기정사실화됐다. 쿠바 혁명 이후인 1960년에 태어난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앞서 2018년 카스트로 총서기로부터 국가평의회 의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이로써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에서는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60여년 이어진 ‘카스트로 시대’가 저물게 됐다. 쿠바 혁명의 주역인 피델 카스트로(1926∼2016년)가 2011년까지 공산당을 이끌었고, 이어 동생 라울 카스트로가 자리를 물려받았다. 라울은 1931년 6월 3일 가난한 사탕수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하바나의 예수교 학교에서 공부했다. 하바나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며 공산당 청년 그룹과 어울렸다. 1953년 형 피델을 도와 풀젠시오 바티스타 장군을 축출하기 위해 몬카다 군대 참호를 공격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는데 실패한 뒤 13년형을 선고받았지만 1955년 사면을 받고 멕시코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아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를 만나 형 피델에게 소개해줬다. 라울은 쿠바인들이 7월 26일 혁명운동이라 부르는 피델의 망명자들과 함께 그랜마 호에 올라 1956년 12월 쿠바로 돌아와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에서 게릴라 전투를 벌여 끝내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고 피델이 총리에, 라울이 혁명군 사령관을 맡았다. 라울은 1965년 새로 구성된 공산당 중앙위원회 2서기로 올라섰다. 피델은 1서기로 같은 해부터 2011년까지 일한 뒤 동생에게 물려줬다. 피델은 2016년 11월 병사했고, 동생 라울은 산티아고 드 쿠바에 있는 산타 이피게니아 공동묘지에 있는 형의 묘에 유골을 뿌렸다. 19일까지 나흘간 이어지는 전당대회에선 호세 라몬 마차도 벤투라(90) 부서기도 물러날 예정이라 혁명세대들이 모두 공산당 정치국에서 퇴장하게 된다. 다만 쿠바의 공산당 1당 체제나 사회주의 모델에 당장 급격한 변화가 오지는 않을 전망이다.영국 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노먼 매케이 연구원은 AFP 통신에 “카스트로가 통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공산당 스타일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변화의 압력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1960년대 이후 미국의 금수 조치로 어려움을 겪어온 쿠바 경제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제재 강화와 코로나19가 겹쳐 더욱 위기를 맞고 있다. 주된 소득원이던 관광산업이 마비되면서 지난해 경제는 11% 추락했다. 식품 등 생필품 부족도 심해져 국민의 삶의 질도 크게 낮아졌다. 쿠바 당국은 올해 이중통화 제도를 폐지하고, 민간에 대한 경제 개방의 폭도 점점 넓혀가고 있다. 좀처럼 들리지 않던 체제 비판이나 반대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엄격한 코로나19 방역 지침 속에서도 최근 쿠바 곳곳에서 소규모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쿠바계인 마코 루비오 미국 상원의원은 최근 트위터에 “라울 카스트로가 공산당 당수에서 물러나는 것이 진정한 변화는 아니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라울 카스트로 총서기는 은퇴 후에 책을 읽고 손주들을 돌보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그러나 그가 무대 밖으로 퇴장해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쿠바 전직 외교관인 카를로스 알수가라이는 AFP·로이터 통신에 “라울은 계속 중요인사로 남을 것”이라며 “중국 덩샤오핑이 모든 직책을 내려놓은 후에도 계속 최종 결정권을 가졌던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460만 시청한 동양인 비하… 다리 꼬고 SNS로 사과

    460만 시청한 동양인 비하… 다리 꼬고 SNS로 사과

    460만 명이 시청한 이탈리아 지상파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노골적으로 동양인 비하를 했다. 논란이 되자 진행자는 SNS를 통해 사과했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지상파 ‘카날5’(Canal5) 시사풍자 프로그램에서 나왔다. ‘스트리샤 라 노티치아(Striscia la Notizia·뉴스가 기어간다는 뜻)’의 진행자인 게리 스코티와 미셸 훈지커는 현지 공영방송 라이(RAI)의 중국 베이징 지국을 소개하며 양쪽 눈을 찢었다. 그리고 ‘RAI’를 ‘LAI’로 어설프게 발음하며 ‘R’ 발음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양인을 흉내냈다. 전형적인 동양인 비하 행동은 패션업계 내부 고발계정으로 유명한 ‘다이어트 프라다’(Diet Prada)를 통해 퍼졌고, 거센 비판을 받았다. 사회주의자당 하원의원을 지낸 게리 스코티와 훈지커가 평소 성 소수자(LGBTQ) 권리와 여권 신장에 앞장서 왔다는 점에서 노골적인 인종차별적 진행은 큰 실망감을 안겼다. 미셸 훈지커는 14일 인스타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줬다면 매우 미안하게 생각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에 민감한 시점임을 깨닫는다. 이를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은 불찰”이라며 다리를 꼬고 사과를 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있기는 하는가. 이젠 놀랍지도 않다” “성의없는 사과 와닿지 않는다”며 비판 댓글이 달리고 있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김종대의 한반도 시계] 미얀마 군부가 믿는 구석

    [김종대의 한반도 시계] 미얀마 군부가 믿는 구석

    민 아웅 흘라잉 총사령관이 이끄는 미얀마 군부 세력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다. 미국이나 중국이 절대 자신들의 내정에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믿음 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얀마를 포함한 10개의 아세안 국가들은 다른 나라에 감 놔라 배 놔라며 개입하지 못한다. 아세안 회원국인 브루나이,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을 보라. 민주국가는 보이지 않고 왕정이나 일당독재, 또는 민주화 초기의 혼란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 나라는 대부분 소수민족 문제로 분열하고 내전을 겪었거나 가혹한 시민 탄압이 간헐적으로 자행됐다. 그러나 이걸 이유로 회원국 간에 서로 비난하거나 충돌한 적은 없다. 아세안이 설립된 1967년 이후 동남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모두 외세의 개입에 의한 전쟁이었지 아세안 회원 국가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세안 창립 당시의 방콕 선언은 “어떠한 형태의 외세 개입”도 반대한다는 것을 강력히 천명하고 있고, 그 이후 아세안은 회원국들의 주권과 자결의 원칙을 지켜 왔다. 이는 나폴레옹 전쟁 후인 1814년에 왕정국가들이 만든 빈체제(Vienna system)와 비견된다. 반동적인 왕정연합 빈체제가 유럽에서 100년의 평화를 만들었다. 빈체제에 비해 느슨하기는 하지만 권위주의 공동체인 아세안은 지난 50여년간 동남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의 초석이었다. 동남아 국가들의 핵심 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진정한 국가안보는 권위주의건 사회주의건 나라를 잘 다스려 안정시키는 것이고, 남의 나라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지 않는 데 있다. 옆집에 불이 나도 내 집만 안전하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아세안 국가들 중에는 팽창주의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 패권을 노리며 지역 질서를 변경하려는 수정주의 세력도 없다. 특별한 규범을 타국에 강요하지 않으면서 공존을 지향한다. 제국주의와의 투쟁 속에서 반외세와 자결의 역사를 써 온 강력한 동남아의 지역 정서라 할 수 있다. 이런 민족공동체 국가주의는 항상 민주주의를 압도한 사상으로 현재 동남아 질서의 토대를 형성했다. 미얀마 군부가 견고한 주권 사상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면서 내전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안정화한다면 과연 주변국이 개입할까? 지금 미얀마 군부는 북부 소수민족 무장 세력을 제압할 기회를 노리며 명분을 축적하는 중이다. 머지않은 시기에 군부는 탱크와 전투기를 앞세워 소수민족 거주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전개하게 되면 참혹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상황을 깨끗이 정리할 것으로 기대한다. 비극이 다가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미얀마 시민불복종운동(CDC)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지원할 것을 기대하며 애타게 도움을 요청한다. 미국이 2010년의 시리아처럼 반군에 무기를 지원하게 되면 지정학적 격변으로 이어지는 시리아 사태의 재판이 될지도 모른다. 아랍의 봄에서 좌절한 중동과 달리 아세안 국가들의 시민들은 교육 수준이 높고 기술문명에 친화적이며 훨씬 개방적이다. 근본주의자들도 아니다. 시장경제에 힘입어 성장한 시민세력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세계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은 미얀마 군부가 믿는 신성한 주권의 사상을 잠식하면서 세계의 개입을 촉구한다. 국제사회가 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결단한다면 시민을 보호하는 인도적 개입을 구상할 수 있다. 21년 전에 새 천년을 맞이한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제안해 구성된 국제위원회(ICISS)는 개별 국가가 인권보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가 개입해야 한다는 ‘보호책임(R2P) 개념’을 고안했다. 이 개념은 주권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있다. 그러나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국가 주권을 우회하면서 시민에 대한 직접 지원을 촉진하고 학살 위협 피해자들에 대한 긴급 보호, 난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현대 기술문명을 활용한 활발한 소통과 적절한 자금 투입, 외교적 압박을 망라하는 구상이다. 교육과 정치의식 수준이 높은 동남아 시민과 연대하는 새로운 전략은 분명 중동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다. 군부가 믿는 구석이 사라지는 것이다.
  • [글로벌 In&Out] 사료, 마오쩌둥선집 그리고 북한사 연구/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사료, 마오쩌둥선집 그리고 북한사 연구/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역사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史料)이다. 사료를 고찰하고 실증해 사실(史實)을 밝히는 것이 가장 전통적인 연구방법이다. 타임머신이 발명되지 않은 이상 자연과학과 달리 실험이 불가능한 역사학은 사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사학의 이러한 한계는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돼 왔다. 사료가 특정 사람이나 집단을 보호하거나 사상적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자 무기로서 사용되면서 크게 수정하거나 아예 위조됐다. 기독교의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직설적으로 서술하고 치열한 내부 논쟁을 멈추기 위해 성경에 삽입된 ‘요한의 콤마’가 대표적 사례이다. 필자가 하는 한중일 사회주의운동 역사 연구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자주 나타난다. 중국의 마오쩌둥의 경우를 살펴보자.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 10월 1일 마오쩌둥에 의해 수립됐다. 12월 16일, 마오는 소련을 방문해 스탈린과 회담을 가졌다.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등에 대해서 합의한 후 스탈린은 마오쩌둥 저작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해 물었다. 이 질문에 당황한 마오는 그 저작은 오류가 많아 수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중국어 원문 편집까지 도와줄 것을 소련에 요청했고 스탈린은 동의했다. 1950년 5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마오쩌둥선집편집위원회’를 설립했다. 1951년 10월, 마오쩌둥선집 제1권을 시작으로 총5권까지 출판됐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의 저작을 수록한 선집은 중국 국내외에 인기가 많았으며 중국혁명사연구의 기본 사료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 중국이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진짜 마오쩌둥 사상”을 학습하기 위해 반항의 자유를 맛본 홍위병 조직들은 반동분자라는 죄목으로 숙청당한 사람들의 이름을 제외하고 마오쩌둥 저작들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수록한 ‘마오쩌둥 사상 만세’라는 시리즈의 책들을 비밀리에 출판했다. 이 사실을 발견한 중공은 이 책들의 인쇄를 금지했으나 ‘마오쩌둥 사상 만세’는 해외로 유출돼 버렸다. 이 자료를 접하게 된 일본 학자들은 마오쩌둥 저작의 연구에 들어갔으며 1970년대 총 10권으로 구성된 ‘마오쩌둥집(集)’을 출판했고 1980년대에는 연구를 한층 더 심화해 제2판까지 발표했다. 중국의 마오쩌둥선집에 수록된 글과 비교한 결과 1950년대 편집 과정에서 중공이 원문 내용의 50% 이상을 삭제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선집은 사료적 가치를 완전히 상실해 버렸다. 일본 학자의 노력은 마오쩌둥 사상을 규명하는 역사학적 연구가 비로소 가능하게 했고 전 세계의 중국혁명 연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러면 북한사 연구는 어떠한가? 북한이 발행한 ‘김일성전집’은 원문 왜곡에서 ‘마오쩌둥선집’의 수준을 크게 초월했다. 김일성은 마오쩌둥과 달리 항일투쟁 초기에 논문을 쓰는 것보다 유격활동에 더 집중했기 때문에 1945년 해방 이전에는 저작이 거의 없다. 해방 직후에도 소련군정의 영향과 간섭을 많이 받아서 완전히 독립한 활동을 하는 것이 어려웠다. 때문에 한국전쟁 직후 주체사상을 내세운 북한은 김일성이 해방과 새로운 조선의 건설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국가와 정권의 정통성을 세계공산주의 운동이 아니라 김일성의 혁명활동에서 찾기 시작한 북한의 학자들은 김일성전집을 발행하면서 김일성의 연설문 등 저작들을 근본적으로 수정하거나 아예 조작했다. 김일성의 저작에서 소련군과 스탈린에 대한 칭찬이 사라진 것뿐만 아니라 당시 역사적 배경을 감안하면 전혀 있을 수 없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도 김일성전집에 대한 사료 비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의 일부 북한사 연구자들도 이에 수록된 자료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 톈안먼 민주항쟁의 마지막 흔적 역사의 뒤안길로

    중국 베이징 중심가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핏빛으로 물들인 중국 민주주의 항쟁의 마지막 흔적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비운의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1919∼2005) 전 공산당 총서기의 유족이 베이징 둥청(東城)구 왕푸징(王府井)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푸창후퉁(富强胡同) 6호’ 사합원(四合院)에서 이삿짐을 싼 까닭이다. 자오쯔양 유족들이 푸창후퉁 6호를 떠난다는 것은 이 옛집의 자오쯔양 시대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지난 5일 평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 라오바이싱(老百姓·일반 서민)들이 그의 흔적을 찾아 추념하며 톈안먼 민주화 운동을 떠올리는 일이 완전히 사라지는 셈이다. 사실 중국에서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중국 본토 인터넷을 검색하면 자오쯔양 옛집 퇴거 소식은 찾을 수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중국 당국이 인공지능(AI)를 활용해 톈안문 민주화 운동 관련 콘텐츠를 거의 완벽하게 온라인에서 통제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던 톈안먼 광장의 상흔은 평소 일반인들은 접근 자체가 어려운 금단의 공간이 되고 있는 셈이다. ‘ㅁ’자로 닫힌 형태의 중국 전통 주택양식인 사합원 형태의 푸창후퉁 6호는 중국 공산당이 1949년 10월 1일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한 이후 중국 공산당 소유의 관저였다. 1987년까지 당총서기를 지냈던 개혁파 지도자 후야오방(胡耀邦·1915~1989)도 한동안 베이징시 시청(西城)구 후이지쓰후퉁(會計司胡同) 25호 사합원에서 머물렀다. 중국 공산당은 사망한 국가 지도자 주택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자오쯔양의 딸인 왕옌난(王雁南· 본명 趙亮)과 남편 왕즈화(王志華)가 머물고 있던 푸창후퉁 6호 사저를 당중앙판공실이 회수할 예정이다. 시진핑(習近平) 당총서기는 앞서 2016년 11월 30일 당중앙정치국 회의를 주재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 예우와 관련된 규범을 통과시켰다. 당시 정치국 회의에서는 사무실·사저·관용차·교통편·비서 규모·휴가 격식 등 당과 국가 지도자에 대한 대우 수준을 규정하고 당과 국가 지도자가 퇴임한 뒤 적시에 사무용 관저에서 퇴거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톈안먼 민주화 운동은 1989년 4월 후야오방 전 당총서기가 사망하자 이를 추모하는 대학생·시민들이 그에 대한 명예회복 등을 요구하며 톈안먼 광장에 몰려들면서 시작됐다. 당시 당총서기였던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결정한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실각했다. 그는 실각한 이후 2005년 1월 사망할 때까지 16년 가까이 이 집에 가택연금 생활을 했다. 자오쯔양은 후야오방과 함께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주목받았으나, 당총서기였던 1989년 5월 톈안먼 민주화 시위로 궁지에 몰리며 결국 권좌에서 쫓겨나야 했다. 자오쯔양은 회고록에서 “1989년 6월3일 밤 가족과 함께 마당에 앉아 있다가 총소리를 들었다”며 “세계를 놀라게 한 비극은 피할 수 없었으며 결국 발생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학생운동이 반당분자와 반사회주의 세력들의 계획된 음모라고 규정하고 배후 지도부와 향후 계획, 당내 결탁 세력 등을 알아내기 위해 고심했다”며 “그러나 나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단지 우리의 단점을 고칠 것을 요구한 것이지 정치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설득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학생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을 동원한 당총서기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자오쯔양은 1989년 5월19일 새벽 비장한 마음으로 톈안먼 광장에 섰다.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당시 장면을 보면 그가 빨간색 메가폰을 잡고 학생들과 시위 참가자들에게 행한 7분 가량의 연설은 여전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해준다. “우리가 너무 늦게 왔습니다. 미안합니다. 당신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것을 말하고 비판하건 가치가 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대학생들에게 단식 중단을 요구하며 “대화의 문은 열려 있고 당신들이 제안하는 모든 것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냉정하게 생각하기를 간곡하게 부탁 드립니다”라고 설득하는 그의 마지막 연설을 50대 이상의 중국인들이 적잖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자오쯔양은 30시간 가량의 육성 녹음테이프를 남겼다. 그의 절친한 친구 3명이 몰래 중국 밖으로 갖고 나간 것을 녹취한 것으로 그의 사후 회고록 ‘국가의 죄수’(Prisoner of The State)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됐다. 이 책에서 자오쯔양은 무력 진압을 주도한 강경 보수파 리펑(李鵬) 총리의 당지도부 내부 모임 발언이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 실리도록 배후 역할을 해 시위가 격화됐고, 덩샤오핑이 권력을 상실할까 조바심을 내 민주화 시위에 대한 무력 진압을 강행했다고 주장했다. 자오쯔양은 이른바 개혁파로서 덩샤오핑의 후계자로 유력했기에 실각의 정치적 파장은 더욱 컸다. 이후 6월 4일 무력 진압이 현실화됐고 권좌에 쫓겨난 그는 가택 연금을 당하다가 2005년 1월 별세했다. 작고한 뒤에도 자오쯔양의 유골은 사저를 떠나지 못했다. 자오쯔양의 묘지가 개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체제 세력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한 탓이다.이런 까닭에 자오쯔양은 이 세상을 떠나서도 통상적으로 중국 최고 지도자들이 사망 후 안치되는 베이징 근교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 지도자 구역에 안치되지 못했다. 2015년 중국 당국은 그의 매장을 허락했으나 베이징과 멀리 떨어진 허난(河南)성 고향을 요구하는 중국 당국과 이에 반대하는 유족 사이의 긴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결국 2019년 10월 18일 그의 부인 량보치(梁伯琪·1918~2013)와 베이징 도심에서 북쪽으로 멀리 떨어진 창핑(昌平)의 민간 묘지 천수원(天壽園)에 합장됐다. 매장 의식은 물샐 틈 없는 보안 속에 비밀리에 치러졌다. 자오쯔양 사망 후 해마다 6월 4일을 비롯해 그의 생일(10월 17일)과 기일(1월 17일), 중국 전통명절인 칭밍제(淸明節·4월 5일 전후) 등 기념일이 되면 자오쯔양의 푸창후통 집에는 공안 당국의 삼엄한 감시와 통제에도 아랑곳 없이 적지 않은 지지자와 추모객들이 찾았다. 2019년에는 자오쯔양의 옛집 부근 곳곳에 출입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얼굴인식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고인의 옛집 서재에는 고인의 사진과 기록물, 소장품들을 보관한 소규모 추모 공간이 마련돼 있고 고인의 유해도 2019년 10월 부인과 합장하기 전까지 이 집에 안치돼 있었다. 후야오방의 후손 역시 2019년 5월 19일 그가 생전에 머물던 후이지쓰후퉁 25호 사합원에서 퇴거했다. 공산당 내 대표적 개혁파였던 후야오방은 1989년 4월 15일 사망했는데, 그 추모 물결이 6·4 톈안먼 민주화 운동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를 추앙하던 베이징대 등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보수파에 대한 비난 등 정치개혁에 대한 요구들이 확산됐다. 마침내 후야오방의 장례식을 계기로 그의 명예 회복을 요구하는 대학생들이 집회를 갖고 여기에 라오바이싱들이 가세해 민주화운동의 거센 불길이 타올랐다. 자오쯔양 유족이 사저를 떠나는 모습이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은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기자 가오위(高瑜·77)가 지난 4일 올린 트위터였다. 가오위는 칭밍제 당일 자오쯔양 푸창후퉁 집에서 짐을 싸는 모습을 과거 자오쯔양 유족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올렸다. 그는 이날 트위터에 자오쯔양의 생전 사진과 2018년 그의 기일에 찍은 사진, 사합원 정문과 유족이 싼 이삿짐까지 모두 4장의 사진을 올렸다. 원로 여성 언론인인 가오위는 톈안먼 민주화 운동 직후 6년간 옥고를 치렀고 이후 중국 정부의 언론 조치를 담은 문건을 폭로해 다시 징역형을 선고받은 반체제 인사이기도 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北, 세포비서 1만명 모여 이틀째 회의…“대중의 정신력 발동시켜야”

    北, 세포비서 1만명 모여 이틀째 회의…“대중의 정신력 발동시켜야”

    김정은 불참...“만성적 사업 태도 안 버리면 대중 이탈”당의 최말단 책임자들이 모인 세포비서대회를 이틀째 진행한 북한은 부정 부패와의 투쟁을 강조하며 조직의 역량을 높이기 위한 개선책을 논의했다. 지난 6일 개막식에 참석해 개회사를 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둘째날 회의에는 불참했다. 조선중앙통신은 8일 조용원 당 조직비서와 중앙위원회 비서들이 지난 7일 이틀째 회의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당의 최하부 조직 책임자인 세포비서들은 회의에서 당원과 주민들의 잘못을 방관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며 개선을 다짐했다. 토론자들은 “세포비서가 구태의연하고 만성적인 사업 태도를 털어버리지 않는다면 당세포는 집행력과 투쟁력이 없는 무맥한 조직으로 되고 당 결정은 종잇장 위의 글로만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부정과의 투쟁을 강도높이 벌이지 못하고 당적 원칙이 없이 사업한다면 단합을 파괴하고 나아가서는 당과 대중을 이탈시키는 엄중한 후과를 초래하게 된다는 교훈을 찾게 됐다”고 했다.북한은 앞서 첫날 회의에서도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 척결을 강조하며 당세포가 핵심 역할을 하며 세포비서들이 솔선수범할 것을 주문했다. 통신은 “대중의 정신력을 발동하는 정치사업을 주선으로 틀어쥐고 세포비서들이 늘 일감을 두 몫, 세 몫씩 맡으며 어렵고 힘든 일에 남 먼저 어깨를 들이밀고 돌파구를 열어나갈 때 혁명과업 수행에서 새로운 혁신과 위훈을 창조할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절감했다”고 전했다.당세포는 5~30명으로 구성되는 당의 최말단 조직으로, 이번 대회에는 당세포 조직의 책임자인 세포비서들을 비롯해 도당 책임 간부, 시·군 및 연합기업소 당 책임비서, 당중앙위원회 해당 간부 등 1만 명이 참가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당 최말단 조직까지 직접 챙기는 김정은

    당 최말단 조직까지 직접 챙기는 김정은

    북한은 지난 6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제6차 당 세포비서대회를 열고,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목표 달성을 위해 당의 최하부 조직 책임자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7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당 중앙과 대중을 하나의 혈맥으로 이어주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당의 노선과 정책 관철을 위해 직접 조직 동원하는 위치에 있는 당 세포비서들을 철저히 준비시키는 사업은 당 중앙위원회 중대사”라며 “세계에서 말단 기층조직 책임자들의 대회를 정기적으로 소집하고 당 중앙이 직접 마주 앉아 사업을 토의하는 당은 우리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북한은 지난 1월 열린 제8차 당대회에서 당의 최하부 조직인 당세포비서 대회를 당대회에 맞춰 5년에 한 번씩 정례화하기로 했다. 이후 당 전원회의와 시군 당 비서 강습회, 당 세포비서대회 등을 잇따라 개최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당대회에서 결정된 사업들을 독려하는 것이지만, 자칫 해이해질 수 있는 당의 최말단 조직에까지 김 위원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당 조직지도부 출신으로 조직·전략통인 조용원 당 비서가 이번 대회에서 전면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지난 8차 당대회에서 직위가 수직 상승한 그는 이번 대회에서 보고를 진행하며 김 위원장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확고히 추진하지 못하고 당원들의 당성 단련 지도에 미흡했던 점 등을 지적했다. 또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타파를 강조하며 당 세포 조직의 역할을 주문했다. 국제사회 제재로 오로지 자력갱생으로만 버텨야 하는 상황에서 외부 문물을 엄격히 차단함으로써 내부를 결집시키려는 전략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남한 영상물을 유입, 유포할 경우 처벌 기준을 최대 사형으로 높이는 등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포토] 북한, 3년여 만에 ‘당 최말단’ 세포비서대회 개최

    [포토] 북한, 3년여 만에 ‘당 최말단’ 세포비서대회 개최

    북한은 6일 수도 평양에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한 가운데 ‘당 최말단’ 세포비서 대회를 개최했다고 7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번 세포비서 대회는 지난 2017년 12월 열린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이후 약 3년여 만에 개최된 것이다. 북한은 이번 세포비서 대회에서 반사회주의?비사회주의 현상을 근절하는 데 당세포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1.4.7 연합뉴스
  • 북한, 어제 ‘당 최말단’ 세포비서대회…김정은 개회사

    북한, 어제 ‘당 최말단’ 세포비서대회…김정은 개회사

    북한의 ‘당 최말단’ 세포비서 대회에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참석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7일 보도했다. 통신은 “조선로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가 4월 6일 수도 평양에서 개막됐다”면서 김 총비서가 대회를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조용원 당 조직비서는 보고를 통해 “당세포가 반사회주의, 비사회주의를 쓸어버리는 발원점이 되여 맹렬한 투쟁을 벌리며 도덕기강을 확립하기 위한 된바람을 일으켜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총비서는 개회사에서 “기층 조직을 강화하여 전당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 당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당 건설원칙이며 자랑스러운 전통”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경제사업과 인민생활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눈에 띄는 변화와 발전을 이룩하여 우리 식 사회주의 위업을 한 단계 전진시키려는 당대회 결정의 집행 여부가 바로 당의 말단 기층조직인 당세포들의 역할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포비서대회에서는 지난 2017년 12월 열린 제5차 세포위원장대회 이후 당세포비서들의 사업정형을 전반적으로 분석·점검하고, 현시점에서 개선해야 할 당세포사업의 과업과 방안도 토의될 예정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이번 세포비서대회에는 조용원 당 조직비서를 비롯해 당 중앙위원회 비서인 정상학·리일환, 권영진 군 총정치국장, 당중앙위원회 부장인 김재룡·오일정·허철만 등이 참석했다. 당세포는 5∼30명으로 구성되는 당의 최말단 조직이며 당세포 비서는 이 조직의 책임자를 일컫는다. 올해 당세포비서대회는 김정은 집권 이후 세 번째로 열리는 것이다. 앞서 2013년 1월과 2017년 12월에 개최된 당세포비서대회 때도 김 총비서가 직접 참석했다. 지난달 북한매체는 제6차 세포비서대회가 ‘4월 초순’ 개최될 예정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참가자들이 지난 3일 평양에 도착해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고 김일성 주석 생가인 만경대 등을 돌아보며 사상교육을 받는 등 사전행사가 진행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글로벌 In&Out] 북한 주민과 탈북민의 자부심/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글로벌 In&Out] 북한 주민과 탈북민의 자부심/피터 워드 북한 전문 칼럼니스트

    북한 사람과 탈북자는 북한의 무엇을 자랑거리라고 생각할까. 통일이 되든 분단이 영원하든 이는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다. 이런 자랑거리를 똑바로 알면 만약 통일이 됐을 때 북한 사람들이 통일국가에서 원하는 것, 높이 평가하는 것 등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분단이 우리가 죽을 때까지 이어져도 북한 당국이 정신적으로 어떠한 요소에 의존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여론조사 등을 실시할 수 없고, 조사를 하더라도 당국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뻔한 결과가 나올 공산이 크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의 가치관을 간접적으로나마 알아볼 수밖에 없는데 이는 탈북민 조사를 통해 가능하다. 만약에 한반도 통일이 되면 북쪽의 가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데, 탈북민 조사로 탈북민들이 북한을 바라볼 때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불변적 의식을 엿볼 수 있어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탈북자는 북한의 무엇을 자랑스럽게 여길까. 최근에 필자의 선배들이 ‘Korea Journal’(한국저널)에 투고한 ‘북한 애국심’(North Korean Patriotism)이라는 논문을 보니 탈북민 응답자의 대다수는 북한의 체육 성과와 예술, 즉 문화적 성취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전쟁과 무력으로 영토를 탈취한 시대가 대부분 지나갔고, 이제 세계 사회에서 문화와 체육 성과를 통해 민족심을 고취시키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와 달리 소위 말하는 ‘혁명역사’나 ‘주체사상’ 혹은 ‘백두혈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응답자는 20% 안팎이었다. 이는 정치적이고 사상적일수록 북한에 대한 자부심이 떨어진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것이 한국 정착 과정에서 나온 결과인지 북한에 있었을 때부터 든 의식의 연장선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북한이 개방됐을 때 사상의 허상에 접하게 될 북한 주민들의 의식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 반면 응답자의 30% 정도가 군사력과 사회주의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한 것은 북한 주민들이 인프라와 식량 부족이 극심한 상황에서 긍지의 대상을 찾은 셈이다. 그러나 무서운 것은 나라가 체면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이런 자랑 요소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점이다. 기근과 경제난을 버티면서 핵보유국이라는 위상을 쟁취한 북한은 우리에게 위험하고 우려스럽지만, 군사력의 상징인 핵이 곧 국가의 주요 긍지가 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을 체육과 예술로 대체할 수 있을까. 탈북자 응답자의 20% 정도만 북한의 경제 실적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으로 나온 걸 보면 핵 대신 경제 지원 같은 합의가 새로운 긍지가 될 수도 있다. ‘꿩 대신 닭’의 논리로 볼 때, 주민들에게 경제 살리기는 꿩이겠지만 여전히 핵을 고집하는 당국의 행태를 보면 경제는 닭임에 틀림없다. 또 닭으로 여겨 왔던 경제를 살리게 되면 응답자의 30% 정도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회주의가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즉 경제를 살리려면 북한 당국이 말하는 ‘장사풍’, 즉 시장과 신흥자본가 계층인 돈주를 적극 포용하는 정책을 펼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사회주의가 맞지 않는 현상이 정상화되게 된다. 그동안 ‘비정상적’ 현상으로 주장한 개인도매(되거리장사 등), 국영기업소에 연계된 개인장사꾼 등이 합법화의 길로 가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힐 것이기에 쿠바와 중국에서 했듯이 합법적 사적 경제 영역을 확장시켜 나갈 수밖에 없다. 빈부격차 문제 등 자본주의 사회 같은 문제가 이미 등장했지만 더 심화되는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또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그런 문제가 없어지기는커녕 심화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도 크다. 통일 후에 사회주의가 북한 사람들에게 향수의 기반이 될 위험도 크다.
  • 북한 노동당 말단 책임자들 평양 집결…‘세포비서대회’ 임박

    북한 노동당 말단 책임자들 평양 집결…‘세포비서대회’ 임박

    이달 초부터 근로단체 동맹대회 릴레이 개최 김정은, 8차 당대회 이후 당 중심 국가 강화 경제발전 5개년 달성 총동원...조직·내부 결집 북한의 노동당 최하부 조직인 세포 단위 책임자들이 세포비서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3일 평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회 개최가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4일 “조선노동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 참가자들이 3일 평양에 도착했다”며 참가자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당 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대오를 강화하고, 당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전했다. 당세포는 5∼30명으로 구성되는 당의 최말단 조직으로, 북한은 지난 1월 제8차 당대회 때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당대회와 함께 당세포비서대회와 초급당비서대회도 5년에 한번씩 개최하기로 했다. 이에 이번 세포비서대회는 당대회 후속 성격으로 당의 최하부 조직까지 결집을 도모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집권 후 2013년 1월 제4차 세포비서대회를, 2017년 12월 제5차 세포위원장 대회를 열었고 두 번 모두 직접 참석했다. 이번 대회에도 김 위원장이 참석해 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달성을 독려하고, 당의 조직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오는 7월 초순에는 평양에서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제9차 대회 개최도 예고했다. 이달 초엔 근로단체 조직인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 대회가 예정돼 있고, 5월 하순 조선직업총동맹, 6월 중순 사회주의여성동맹 등이 잇따라 대회 개최를 예고한 바 있다. 지난 8차 당대회에서 총비서 체제를 부활시키고, 조직지도부 출신의 조용원 당 비서를 서열 3위까지 단숨에 끌어올린 김 위원장은 당의 위상을 정비하며 당 중심의 국가체제를 강화해 나가는 모습이다.통신은 “대회에서 총결기간 동맹사업 정형을 심도 있게 분석 총화하고 노동당 제8차 대회가 제시한 강령적 과업 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농근맹조직들의 전투적 기능과 역할을 더욱 높여 모든 동맹조직들이 맡겨진 혁명 임무를 원만히 수행해나가도록 하기 위한 대책들을 토의하게 된다”고 전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민생 해결에 총력전 펼치는 김정은, 새달 세포비서대회

    민생 해결에 총력전 펼치는 김정은, 새달 세포비서대회

    미국과 치열한 수싸움 중에도김정은, 연일 민생 행보 연출경제난에 빠진 北 주민 달래기김정은 노동당 총비서가 심각한 경제난에 빠진 북한 주민들의 민심 다잡기에 나섰다. 다음달 초순 세포비서대회에서도 경제난 극복을 위한 내부 결집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조선중앙통신은 28일 “당 제6차 세포비서대회가 4월 초순 평양에서 열리게 된다”고 보도했다. 당 중앙위원회 비서국은 대회 소집과 관련해 “전당에 총비서 동지의 유일적 영도를 철저히 실현하는 데서 당세포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중시하고 혁명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의 요구에 맞게, 우리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공고히 하며 현시기 당세포사업을 근본적으로 개선 강화하는 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토의하고 지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선 8차 당대회에서 밝힌 새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 달성을 촉진하고 당조직을 강화하기 위한 세포비서들의 임무와 역할이 주로 논의될 전망이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2013년, 2017년 각각 제4차 세포비서대회·5차 세포위원장대회를 열었다. 김정은 총비서는 두 차례 모두 참석했다. 당세포비서는 5~30명으로 구성된 당의 최말단 조직인 당세포의 책임자를 일컫는다. 김정은 총비서는 지난 25일 미사일 발사 현장 대신 평양 주택단지 부지를 시찰하는 등 연일 민생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북정책 검토를 거의 마무리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는 와중에도 김정은 총비서가 경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은 그만큼 내부 사정이 열악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논설에서 시·군이 나라 경제의 ‘주춧돌’에 해당한다며 “시·군들이 발전해야 사회주의 건설이 힘있게 추진되고 국가가 부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北, 김정은·시진핑 구두친서 공개… 북중 손잡고 美에 맞서나

    北, 김정은·시진핑 구두친서 공개… 북중 손잡고 美에 맞서나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북한이 김정은(왼쪽) 국무위원장과 시진핑(오른쪽)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친서 내용을 공개하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 포위 전략으로 가치외교를 내세우며 중국과 북한을 동시에 압박하자 중국 쪽으로 더 바짝 다가갈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23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구두친서에서 국방력 강화와 남북 관계, 북미 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설명하고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이어 “적대 세력들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중국이)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괄목할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 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북중 간 친서 교환은 당대회 등을 계기로 종종 이뤄져 왔으나, 이번엔 시기적으로 미 외교안보팀의 아시아 순방과 미중 간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 직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미중 패권 다툼이 치열해지자 북중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시 주석은 친서에서 “두 나라 인민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고 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의사를 밝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중 간 직간접적인 정상외교와 무역 재개, 신압록강대교 개통 등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며 “북한은 최근 말레이시아와의 단교 등으로 국제사회 고립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김 위원장이 지난 1월 당대회 결정 내용을 바탕으로 국방력 강화 입장을 전달한 데 비해 시 주석은 이에 대한 언급 없이 “국제 및 지역 정세는 심각히 변화하고 있다”면서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고만 강조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은 중국과의 정책 공조를 통해 미국의 압박을 극복하려고 하지만 중국은 북한과는 달리 한중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북중 관계를 긴밀하게 발전시킬 의도는 없어 보인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자국의 안보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고 중재자 역할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23일 중국을 거쳐 8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향후 협력 방안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라브로프 장관은 25일 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와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김정은-시진핑 친서 교환하며 밀착 과시…美 대항 전략적 제휴?

    김정은-시진핑 친서 교환하며 밀착 과시…美 대항 전략적 제휴?

    美-中 고위급 회담 갈등 표출 후 친서 공개 김정은 “中 투쟁성과 자기일 처럼 기쁘다” 시진핑 “양국 인민에게 훌륭한 생활 마련”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구두친서 내용을 공개해 친밀함을 과시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포위 전략으로써 가치 외교를 내세우며 중국과 북한을 동시 압박하자 전략적 제휴의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23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구두친서에서 국방력 강화와 남북관계, 북미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설명하고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북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 이어 “적대세력들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괄목할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中, 경제적 지원 약속...北 외교적 고립 면하나 북중 간 친서 교환은 당대회 등을 계기로 종종 이뤄져 왔으나, 이번엔 시기적으로 미 외교안보팀의 아시아 순방과 미중 간 알래스카 고위급 회담 직후 나온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미중 패권 다툼이 가시화되자 북중이 각자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항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정대진 아주대 통일연구소 교수는 “중국과 북한이 대미 외교전선에서 힘을 합쳐 보조를 맞춰 나간다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친서 교환”이라며 “북한에게는 향후 북중교역 확대와 협력을 통한 고립 탈출, 중국에게는 대미 패권경쟁에서 역내 우군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시 주석은 친서에서 “두 나라 인민에게 보다 훌륭한 생활을 마련해 줄 용의가 있다”고 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원 의사를 밝혔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중 간 직간접적인 정상외교와 무역 재개, 신압록강대교 개통 등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북한은 최근 말레이시아와의 단교 등으로 국제사회 고립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中, 북한의 국방력 언급 회피...외교적 수위 조절 다만 김 위원장이 지난 1월 당대회 결정 내용을 바탕으로 국방력 강화 입장을 전달한 데 비해, 시 주석은 이에 대한 언급 없이 “국제 및 지역 정세는 심각히 변화하고 있다”면서 “조선반도(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수호하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발전과 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인 공헌을 할 용의가 있다”고만 강조했다.친서를 통해 양국의 협력 가능성을 재확인하면서 동시에 외교적 수위는 조절했다는 분석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은 중국과 정책 공조를 통해 미국의 압박을 극복하려고 하지만 중국은 북한과는 달리 한중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북중 관계를 긴밀하게 발전시킬 의도는 없어 보인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의 핵 미사일 능력 고도화가 자국의 안보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북한에 정치적 해결을 촉구하고 중재자 역할을 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중국을 거쳐 8년만에 한국을 방문하면서 향후 협력 방안에도 관심이 쏠린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라브로프 장관은 오는 25일 회담을 갖고 북핵 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와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할 전망이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김정은, 시진핑에 구두친서…“적대세력 방해 속 북중 단결 강화”

    김정은, 시진핑에 구두친서…“적대세력 방해 속 북중 단결 강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양국 친선 강화를 강조하는 구두 친서를 보냈다. 조선중앙통신은 23일 “김정은 동지께서는 두터운 동지적 관계에 기초해 두 당 사이의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따라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습근평 동지에게 구두 친서를 보내 노동당 제8차 대회 정형(결정 사항)을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친서에서 “조선반도 정세와 국제관계 상황을 진지하게 연구·분석한 데 기초해 국방력 강화와 북남 관계, 조미(북미) 관계와 관련한 정책적 입장을 토의결정”한 것을 통보했다며 “적대 세력들의 전방위적인 도전과 방해 책동에 대처해 조중 두 당, 두 나라가 단결과 협력을 강화”할 것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적대세력들의 광란적인 비방 중상과 압박 속에서도 사회주의를 굳건히 수호하면서 초보적으로 부유한 사회를 전면적으로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서 괄목할 성과들을 이룩하고 있는 데 대해 자기 일처럼 기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중국이 홍콩과 신장위구르 지역 인권 문제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로부터 압박을 받고 있는 데 대해 중국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은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과도 치켜세웠다. 다만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구두 친서가 전달된 날짜나 구체적인 경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시진핑, 김정은에 “北동지 손잡고 한반도 평화 적극 공헌” 구두친서

    시진핑, 김정은에 “北동지 손잡고 한반도 평화 적극 공헌” 구두친서

    시진핑 “북중 관계 견고히 발전시키자”“한반도 평화안정 지키는데 공헌하고파”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구두 친서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형세 아래에 북한 동지들과 손을 잡고 노력하고 싶다”며 북·중 관계 발전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시 주석은 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지키는게 적극적으로 공헌하고 싶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양국 사회주의 끊임없이 성과 거두자” 22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중련부) 부장은 이날 베이징에서 리룡남 신임 중국 주재 북한 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서 “북·중 관계를 잘 지키고 견고히 하며 발전시키고 싶다”는 시 주석의 구두 친서를 전달했다. 시 주석은 “중국은 북한 및 관계 당사자들과 함께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 방향을 견지한다”면서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지키며, 지역의 평화안정과 발전번영을 위해 새로운 적극적 공헌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또 “양국의 사회주의 사업이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거두고, 양국 인민들이 더욱 행복하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그러면서 “현재 100년 만의 정세변화와 세기적인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중첩됐다”면서 “국제적 및 지역적 형세가 심각히 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친서는 미국과 중국이 지난 18~19일(현지시간) 미국 알래스카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공개적으로 충돌하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부 장관이 중국을 방문 중인 상황에서 전달됐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사양산업·공동경영에 흔들… 中 최고 부촌 ‘부채제일촌’ 되다

    사양산업·공동경영에 흔들… 中 최고 부촌 ‘부채제일촌’ 되다

    2011년 10월 8일 장쑤(江蘇)성 장인(江陰)시에 있는 중국 최고 부자 마을인 화시(華西)촌이 건립 50주년을 맞아 5성급 룽시궈지(龍希國際)호텔에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국내외 인사 1만 5000여명이 참석해 축하하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세계 50여개국에서 몰려든 500여명의 기자들이 화시촌의 성공 비결을 취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기념식은 절정으로 치달았다.특히 이날 문을 연 지하 2층, 지상 72층짜리(높이 328m) 룽시궈지호텔 건립에는 마을 주민 5만여명이 30억 위안(약 5200억원) 규모를 투자해 건설한 것이다. 당시 세계 15번째로 높은 이 호텔은 베이징에서 가장 높은 궈마오(國貿) 빌딩(330m)과 비슷한 높이를 자랑했다. 호텔 60층에는 3억 위안을 들여 순금으로 만든 무게 1t짜리 황금소 동상이 늠름하게 서 있고, 61층에는 흐벅지게 핀 꽃들이 어우러지고 새들이 노니는 화려한 공원이 꾸며졌다. 2층에는 2000㎡(약 605평) 규모의 고급 쇼핑센터가 들어섰고 호화 스위트룸도 갖춘 까닭에 연간 250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됐다. 외화벌이에 목을 매던 북한은 이 호텔에 여성 종업원들을 파견하기도 했다. ●주민들 투자금 잃을까봐 서둘러 주식 팔아 ‘천하제일촌’(天下第一村)이라고 불리며 중국 최고 부자 마을로 부러움을 샀던 화시촌이 파산 위기를 맞고 있다. 화시촌 주민들이 공동 운영하는 화시그룹의 주력 사업인 철강·방직·해운업 등이 사양길로 접어든 가운데 신성장 동력 개발에는 등한시한 채 몸집을 불리기 위해 이웃 마을을 편입시켜 부동산 개발에 의존하다 보니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징(財經) 등에 따르면 화시촌은 2019년 이후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화시그룹의 부채는 2016년에 300억 위안을 넘은 뒤 현재 500억 위안을 돌파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지난달 25일 화시촌에는 새벽부터 마을 주민 수백 명이 투자한 주식의 배당금을 받기 위해 장사진를 치고 있었다. 화시촌이 유동성 위기를 맞으며 파산할 수 있다는 우려감이 커지면서 마을 주민들이 쏟아지는 빗속에도 아랑곳없이 한 푼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풍경이 연출된 것이다. 배당금 30%를 약속받고 화시촌에 3년간 넣어 둔 주식을 팔러 왔다는 한 주민은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겨우 원금 정도만 돌려받았다고 털어놨다. 다른 주민은 배당금이 약속된 30%가 아니라 0.5%밖에 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언론들은 이번 사태를 전하며 ‘천하제일촌’이 ‘부채제일촌’이라는 불명예를 얻었다고 꼬집었다. 화시촌 공산당위원회 측은 이 문제와 관련한 취재를 거부했다고 차이징은 전했다. 화시촌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융합한 ‘중국식 공동체 마을’의 최고 성공 사례로 선정됐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기업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큰 수익을 창출했다. 개혁·개방 전부터 각종 영리사업에 나서 마을 경제의 기반을 닦았고, 개혁·개방 정책이 시작된 1978년 화시그룹을 세워 마을 전체를 기업집단으로 전환하면서 돈벌이에 앞장섰다. 2004년 중국 농민 1인당 연평균 소득이 2936위안일 때 화시촌 주민들의 1인당 소득은 무려 13만 위안이나 됐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공동 경영하는 화시그룹의 배당금을 나눠 가진 덕에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것이다. 주민 대부분은 유럽식 별장 같은 주택에 살면서 통장 잔고가 600만 위안을 넘었고 화시그룹의 매출액은 2010년 500억 위안을 돌파했다. 덕분에 화시촌은 중국 사회주의 신농촌 건설의 전형으로 추앙받았다. 화시촌을 평범한 농촌에서 최고 부자 마을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은 우런바오(吳仁寶) 화시촌 전 당서기다. ‘화시촌의 덩샤오핑(鄧小平)’, ‘화시촌의 리콴유(李光耀)’로 불린 그가 2013년 사망했을 때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人民日報)는 추모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우런바오는 1957년 화시촌 당서기로 부임해 낙후한 마을을 발전시키기 위해 1961년부터 양어장 건설 등의 사업을 시작했다. 1978년에는 화시그룹을 창업해 주민이 주주이자 직원으로 참여하도록 했다. 화시촌은 철강과 방직·해운업 등 사업에 뛰어들어 시장을 선점하면서 승승장구했다. 농업부가 1996년 화시그룹을 제1호 ‘향진(鄕鎭·농촌)기업’으로 선정했고, 화시그룹은 주변 마을들을 합병하면서 행정 규모를 키웠다. 우 전 서기는 2005년에는 시사주간 타임에 커버 인물로 소개됐다. 그는 “혼자서 잘사는 것은 진정한 부유함이 아니다. 전체가 잘살아야 비로소 부유한 것”이란 지론을 폈다. 2015년에는 20개 마을이 ‘화시촌 대가정(大家庭)’에 편입됐고 2016년에는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6개 마을’ 중 하나로 선정됐다. 화시그룹은 208개의 계열사를 거느리며 총자산이 541억 위안(2016년 기준)으로 불어나는 등 급성장했다.그러나 화시그룹의 공동경영 방식이 결국 저(低)부가가치 상품 생산으로 이어지면서 지난 몇 년 새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주력 산업을 과감하게 전환시킨 탓에 차입금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화시그룹은 주로 철강과 방직, 에너지, 화공 분야의 회사들을 운영해 엄청난 돈을 벌었지만 2010년을 전후해 경제 패러다임이 급격히 변하면서 금융과 신에너지, 의료, 교육 분야로 사업의 방향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의 돈을 쏟아부어야 했다. 반면 화시그룹의 주력 산업인 철강부문 총이익률은 2012년 마이너스로 전환한 이래 해마다 손실이 확대됐다. 해운업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손해가 커졌고 방직업 역시 전형적인 낙후 산업으로 체질 전환에 실패했다. 여행업은 화시그룹 내에서 유일하게 수익을 내는 사업이었으나 이 역시 그룹의 손실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더욱이 중국식 농촌 성공 모델을 답사한다는 기존 여행 취지는 빛이 바랜 지 오래고, 유료 관광지를 무료로 전환했으나 여행객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30억 위안을 들여 쏟아부은 랜드마크 룽시궈지호텔도 몇 년째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돌파구 마련을 위해 금융·자원 분야로 투자를 확대했으나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코로나19 충격파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한 데다 유가 폭락까지 겹쳐 손실 규모는 더욱 커졌다. ●집단주의식 공동 경영에 부채 늘어 화시촌의 또 다른 실패 원인은 집단주의식 공동 경영이 꼽힌다. 더욱이 화시그룹은 우런바오 전 당서기의 가족족벌기업으로 전락했다. 아버지를 승계해 화시촌 당서기를 맡고 있는 넷째 아들 셰언(協恩)은 화시그룹 회장직을 겸하고 있다. 그의 부인 쑨후펀(孫惠芬)은 200개가 넘는 그룹 계열사의 모든 물품구매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맏아들로 화시촌 상무 부서기인 셰둥(協東)은 그룹 부회장과 함께 계열사 8개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사망한 둘째 아들 셰더(協德)는 화시촌 부서기 겸 그룹 부회장을 지냈고, 셋째 아들 셰핑(協平)은 화시촌 부서기, 장인시 화시여행사 사장 등 8개 계열사 대표를 맡고 있다. 우런바오의 딸 펑잉(鳳英)은 화시촌 부서기로 재직 중이고 그녀의 남편 머우훙다(繆洪達) 역시 화시촌 부서기 겸 그룹 부회장, 화시모방 사장을 맡고 있다. 우런바오의 조카, 손녀 등 친인척들도 모두 그룹 계열사의 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 이런 판국에 모든 주민들이 화시그룹 주식을 공동 소유하다 보니 개인의 부채도 집체의 부채로 이전돼 경영이 방만해졌다. 실제로 화시촌 일부 자녀들은 해외 유학까지도 자신의 돈을 쓰지 않고 다녀오기도 했다. 수익의 20%는 주민들에게 나눠 주고 나머지 부동산, 차량 등은 공동 소유하면서 제대로 된 재정·인사 관리는 이뤄지지 못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khkim@seoul.co.kr ■이 기사는 서울신문 홈페이지에 연재 중인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인터넷에서 ‘김규환 기자의 차이나 스코프’(goo.gl/sdFgOq)의 전문을 만날 수 있습니다.
  • [글로벌 In&Out] 3·8국제부녀절과 북한/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글로벌 In&Out] 3·8국제부녀절과 북한/바실리 V 레베데프 도쿄대 인문사회계연구과 박사과정

    북한은 기념일이 많은 나라이다. 북한의 조선말대사전에서 ‘명절’이란 단어를 검색하면 첫 번째 뜻으로 ‘나라와 민족에 의의 깊고 경사스러운 날로서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경축, 기념하는 날’이라는 말이 나온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3·1운동을 기념하는 ‘반일인민봉기일’이나 1947년 8월 20일 김일성이 북한 역사상 최초의 비행대를 창설한 것을 기념하는 ‘공군절’ 같은 기념일들이 가장 대표적이다. 하지만 북한은 이러한 민족적 기념일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으로 도입된 국제기념일도 있다. 보통 사회주의 명절이라 하면 제일 먼저 꼽히는 것이 5·1 노동절이지만 한 가지 더 대표적인 것이 있다. 바로 여성의 날, 일명 ‘3·8국제부녀절’이다. ‘여성의 날’의 역사는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요일이었던 1909년 2월 28일, 미국 사회당이 여성의 날을 처음 선포하고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 후 여성의 날은 유럽의 여러 나라에도 퍼졌으며 국제적인 기념일로 승격됐다.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행사들은 당시 유럽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린 1917년 3월 8일(구력 2월 23일) 러시아 2월 혁명의 배경까지 됐다. 하지만 2월 혁명이 러시아 국민의 염원에 응답하지 못하자 10월 혁명이 일어나 레닌을 수반으로 하는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다. 사상 최초 노농정권인 레닌 정부는 1919년 이를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국제 근로여성의 날’이라 명명했다. 여성의 날이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20년대이다. 동아일보에 따르면 러시아 혁명을 비롯한 유럽 사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의 모체였던 염군사가 1924년 3월 8일 종로 청년회관에서 ‘국제 부인 데이 기념강연’의 개최를 시도했으나 일제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하지만 이러한 정치 탄압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국제부인절을 계속 기념해 나갔다. 해방이 되자 상황은 급변했다. 국제 여성의 날을 공식화하려던 지식인들의 노력이 남한에서 미군정에 의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북한에서는 반대로 소련군의 지지와 지원을 얻었다. 1946년 3월 8일, 조선공산당 북조선 분국 기관지인 ‘정로’에서 국제부녀절을 기념하는 일련의 기사가 발표되고 일부 지역에서 각종 행사도 진행됐다. 공산당 기관지이지만, 김일성이나 당을 찬양하는 내용이 극히 적었다. 재미있게도 북한에서 명절의 국제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기념일이 유럽에서 등장한 1911년을 원년으로 해서 해마다 ‘3·8국제부녀절 ○○돐’이라고 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북한에서 국제부녀절의 의미도 변화했다. 1920년대 한반도에 들어온 국제부녀절은 근대화의 상징으로 봉건적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1945~1948년 건국 시기의 북한은 민족의 통일과 ‘민주국가 건설에 민족영웅’이 돼야 한다는 뜻이 강조되고 있었다. 한국전쟁 직후 북한 국제부녀절 행사에서는 북한 여성들도 사회주의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선전이 비교적 강했다. 북한이 기념하는 국제부녀절의 특징이 한국전쟁 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다. 1950~1960년대 초 국내·소련·연안파가 숙청되고 김일성의 우상화가 진행된다. 1960년대 유일사상체계가 확립되면서 여성의 날은 여성 해방뿐만 아니라 김일성의 혁명활동과 관련된다. 이 과정이 본격화되면서 1970년대 이후 여성 해방이 김일성의 송가로 바뀐다. 이러한 추세는 나날이 강화되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돼 왔다. 2020년 3월 8일 노동신문이 북한의 여성을 ‘영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을 지니고 일편단심 충직하게 받들어 나가는 참된 혁명가’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변화가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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