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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대 북한 외교 적극 전개”/외교청서 발표/동서화해에 능동대처

    【도쿄 연합】 일본은 16일 앞으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공식 표명했다. 이날 각의에 보고된 금년도 일 외무성 외교청서(일 외교 근황)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소련을 비롯 사회주의국가들과 한국간의 급속한 관계개선은 남 북한 분단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동서 대립 구도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일본도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 관계개선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서는 또 대소 문제와 관련,『동서 긴장완화 추세를 전세계적으로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 소 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중요하다』고 전제,내년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서는 특히 미국의 경우 『소련에 대한 위협 인식이 저하되고 있는 반면 일 경제기술력에 대한 위협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경제ㆍ사회ㆍ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을 이질적인 나라로 간주해 별도의 규정을 적용해야 된다는 이른바 「대일정책 수정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밝혔다.
  • 「사노맹」명의 성명/「국민련」서 발견

    반국가지하단체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명의의 성명 1장이 16일 상오 서울 종로구 충신동 「국민연합」사무실에서 발견돼 경찰에 신고됐다. 8절지 크기의 복사지 앞뒤에 워드프로세스글자로 쓰여진 이 성명은 정부당국의 남한사회주의연맹 대탄압에 대한 「특별성명 제1호」란 제목으로 『10월현재 우리조직과 관련해 18명의 혁명투사들이 안기부에 의해 구속됐으나 상부핵심조직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주장했다.
  • “동서화해의 조율사” 고르비/올 노벨평화상 수상 공적

    ◎신사고 앞세워 동구대변혁 촉발/핵감축등 실현,평화분위기 조성/독립요구ㆍ경제난 등 내홍겪기도 노벨상이 수상자 개인에게 가져다 주는 영광과 명예는 몇십만 달러의 상금으로 측정되어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노벨상이 갖는 권위와 함께 수상자 선정과정의 비밀성,의외성이 곁들여져 무명의 수상자까지도 하루아침에 최상의 명예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금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경우는 이러한 명예와 감동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는 느낌이다. 그의 수상으로 오히려 노벨평화상의 권위가 더 빛나게 됐다고나 할까. 몇몇 후보자가 거론됐지만 금년도 평화상이 그에게 돌아간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금년초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0년을 마감하며 그를 「80년대의 인물」로 선정했다. 당시 타임은 『세계역사의 무대에 기적이 펼쳐지고 있다. 견고했던 냉전의 껍질이 깨지고 새로운 세계가 전개되고 있다. 이 기적의 물꼬를 튼 기적의 마술사. 그가 바로 미하일 고르바초프다』라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이 설명은 노벨평화상의 경우에도 그대로 합당하다. 동유럽 전역을 휩쓴 사회주의권의 대변혁과 그에 이은 역사적인 독일통일,미소관계는 물론 유럽ㆍ아시아에까지 밀어닥친 화해의 대기운속에서 그는 처음부터 이 모든 과정의 훌륭한 지휘자였다. 지난 85년 당서기장으로 집권한 이래 그는 개혁을 통한 사회주의의 재생을 기치로 사회주의 혁명 70년의 낡은 유물들을 몰아내기 위한 일대운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소련은 전임 서기장들 시대의 암울하던 모습을 벗고 점차 새로운 힘을 되찾아가게 됐다. 이 새로운 기운은 동유럽 전역으로 번져가 증폭된 힘으로 동유럽의 거의 모든 사회주의 정권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무서운 힘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놀라운 균형감각을 발휘,급진 보수의 양극단을 적절히 조절하며 「무혈」 변혁을 유도해냈다. 물론 국내적으로는 개혁에 따른 많은 부작용들을 겪게 되었다. 발트해 연안 공화국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분리독립요구는 점차 그 기세를 더하고 있고 개혁의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데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항의시위등으로 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발트해 3국의 독립요구를 거부하고 있는 그의 태도는 소련내의 전반적인 인권문제와 함께 수상자 선정과정에서 결격요인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질서의 탄생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결단은 결코 과소평가될 수 없을 것이다. 미소 중거리핵무기(INF) 감축협정,아프간 주둔 소련군 철수 그리고 소련군의 대규모 일방감축선언 등은 냉전시대를 마감하고 동서화해의 새시대를 여는 중요한 견인구실을 했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86년 블라디보스토크선언,88년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 등을 통해 아시아지역으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난 6월 노태우 대통령과 가진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과 그에 이은 두 나라의 수교는 고르바초프의 극동중시 아시아정책과 우리정부의 북방정책이 맞아 떨어진 극적인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59세로 31년 남부러시아 프라볼르노 태생. 모스크바대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78년 농업담당서기로 당중앙위에 진출,80년 정치국원이 됐다. 지난3월 헌법을 개정,임기 5년의 대통령직에 선출돼 현재 당서기장직과 겸직하고 있다. ◎노벨평화상위가 밝힌 수상 이유 노르웨이 노벨평화상위원회는 90년 노벨평화상을 오늘날 국제사회의 중요한 부분들을 특징지우는 평화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에게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지난 수년동안 동서관계에서는 수많은 극적 변화들이 일어났다. 대입이 협상으로 전환됐으며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많은 민족국가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군비경쟁의 속도가 둔화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군축과 무장해제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확실하고도 능동적인 진전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일부 지역분쟁들이 해결됐거나 마침내 타결을 향해 접근해가고 있으며 유엔은 법에 의해 지배되는 국제사회에서 수행해야 할 창설 당시의 본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같은 역사적 변화들은 몇가지 요소들로부터 파생된 것이나 90년 노벨평화상위원회는 이같은 역사적 변혁과정에서 수많은 결정적 역할을 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치하하고자 한다. 그가 소련사회에서 일으킨 엄청난 개방물결은 국제적 신뢰를 증진시키는 데도 크게 도움을 주었다. 노벨평화상위원회의 견해로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지대한 공헌을 한 이같은 일련의 평화과정이 이데올로기ㆍ역사ㆍ문화적 갈등으로 점철된 수많은 난제들을 해결하려는 세계사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것으로 평가한다.
  • 강원대휴학생 1명/사노맹 관련 구속

    국가안전기획부는 15일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 사건과 관련,유경종씨(28ㆍ강원대 화학2 휴학)를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 가입)혐의로 구속했다. 유씨는 지난4월 사노맹에 가입,강원도 원주와 영월,태백지역에서 광부 등으로 일하며 이 지역의 노동운동 상황을 사노맹에 보고하고 「메이데이 투쟁격문」 등 유인물을 배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북한도 이젠 변해야 한다/남북고위급 평양회담에 앞서(사설)

    북한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 북한 내부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몇 가지 사항들은 그들의 대외정책 내지 한반도문제 접근자세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 주석 김일성은 며칠 전 방북중이던 도이 다카코(토정) 일본 사회당위원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두 개의 제도 두 개의 자치정부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해 종래의 고려공화국연방안을 거듭 고집하고 나섰다. 북한 부주석 이종옥과 박성철도 그들 노동당창건 45주년 기념사를 통해 고려연방제안을 주장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남북대화에 있어서의 정치 군사문제 우선토의 등을 계속 주장하고 나선 바 있다. 또한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략 수행기구로서 경우에 따라 대남 창구역할을 도맡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허담이 물러나고 대신 노동당 중앙위원인 윤기복이 기용된 것도 그들의 대남 전략과 관련하여 예삿일로 보이지 않는다. 윤은 지난 72년 남북적십자 서울 본회담 때부터 자문위원으로 또는 공식대표로 여러 차례 서울에온 일이 있는 인물이다. 적십자 서울회담 땐 서울 한복판 회담장에서 축하연설 명목으로 공개적으로 김일성과 북한 체제에 대한 찬양,선전ㆍ선동 연설을 해 생방송중계로 이를 듣던 시민들의 분노를 샀던 일도 있다. 조평통은 61년에 창설된 그들 노동당 외곽단체이며 대남 통일전선 조직으로서 남한의 정치 사회적 혼란을 부추겨 대남 혁명전략을 수행하는 전위기구이다. 이런 일 저런 현상으로 미루어 북한의 대남자세는 아직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북한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하나의 조선」 논리도 최근 들어 그 강도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체제ㆍ이념,경제력면에서 북한보다 월등 우월한 한국의 실체를 애써 부정하려는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이미 소련과 수교를 이뤘고 중국과의 관계개선도 크게 진전되는 단계에서 구태여 「두 개의 조선」 부정에 대해 괘념하는 바 아니나 그들의 대한반도 시각과 고리타분한 대남 전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남북한 문제의 장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북한 축구경기와 뉴욕의 남북영화제,한국 음악인 초청 등에서 보인 북한의 유화적 태도도 다분히 계산된 전략의 하나가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우리는 남북 문제해결의 역사성이나 민족적 당위성에 비추어 북한의 정책을 일일이 반박하거나 항상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접근자세나 대화 및 교류노력에 비추어 그쪽의 주장과 입장이 문제해결 차원이 아닌 대결승부의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는 듯한 점에 아쉬움을 갖는 것이다. 남북한간 체제와 이념은 지금 구태여 그 우월의 차이를 따질 필요가 없다. 특히 전통적인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에 관한 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탈이념,일당독재 포기,자본주의 시장경제도입 등이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파악하는 것으로 그 해답은 가능하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국가간의 분쟁이나 현안타결은 패권주의로서 이뤄질 수가 없다. 남북한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김일성도 최근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흡수 통합되는 것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지난번 서울에서 열렸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측의 연형묵 총리도 이점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북문제 접근에 있어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성과 진실성이다. 통일은 오랫동안 분단된 국토와 민족을 하나로 하는 가장 역사적이며 민족적인 과업이다. 우리측의 순수하고도 진지한 자세와는 달리 북한은 언제나 대남 전략차원에서 대화와 교류에 임하고 있음을 우리는 아쉽게 여기는 것이다. 남북축구 교환 평양경기에 이어 곧 서울경기가 열린다. 남북한 음악인회의가 열리고 그보다 오는 16일부터는 남북고위급 제2차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린다. 그 모든 대화와 접촉을 전략차원에서만 수행할 경우 국면의 진전이나 바람직한 결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변해야 하고 한반도문제 접근에 있어 민족적 대의로서 순수하고 진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있어 최선의 통일은 자유와 협력공존의 틀이 최대로 보장되는 평화적 통일이다. 따라서 안팎의 사정이 어렵고 북한의 대남전략이 변하지 않고 있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남북대화 정책이나 통일정책은 분명하고도 명확해야 하리라고 본다.
  • 설 땅 좁아지는 중국의 시장경제/천안문사태 이후 중앙통제 강화

    ◎강택민,“기업가 입당 불가” 천명/“개방ㆍ개혁조치로 빈부격차만 심화” 주장/민간업체에 원료공급 중단등 제재 강화 『공산당은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의 전위이다. 따라서 착취를 통해 부를 얻은 개인기업가는 당원이 될 자격이 없다』 이 말은 중국 당총서기 강택민이 지난 4월 당간부회의에서 한 것으로 당원들만 볼 수 있는 내부 참고책자에 실렸다가 최근 공개됐다고 11일 홍콩 스탠더스지가 보도. 지난 79년 이후 중국에서 개방ㆍ개혁이 추진돼 많은 사람들이 개인사업으로 부자가 된 상황에서 이들을 「착취자」로 규정,당가입불가론을 공언한 것은 강이 처음이다. 50년대에 들어 중국당국이 민간부문의 사업체를 본격적으로 국영화하기 시작했을 때 대도시는 5명,기타지역에선 3명 이상 종업원을 거느린 개인사업자들이 착취를 일삼아 온 자본주의자로 구분됐고 이들은 사회주의 재교육을 받았다. 60년대 중반 이후의 문화혁명기간을 거쳐 70년대 후반에 이를 때까지도 구멍가게 정도를 제외하곤 개인기업이 발붙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것이 등소평의 흑묘 백묘론(고양이는 검든 희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ㆍ잘살기만 하면 된다)을 바탕으로 개방ㆍ개혁이 추진되면서부터 개인기업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국당국은 현재 종업원이 8명 이상인 경우를 개인기업가로 분류하고 있으며 이들은 지난해 천안문사태 이후의 중앙통제식 긴축정책으로 숫자가 많이 줄긴 했으나 2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부자의 입당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처음 생긴 것은 지난해 4월로 요령성에서 운수업을 벌여 백만장자가 된 유희귀(36)란 개인기업가가 당원자격 취득신청서를 냈던데서 비롯됐다. 종업원 2백40명,고정자산 5백20만원(약 7억5천만원)인 그의 입당 가부심사는 얼마 후에 발생한 천안문사태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게다가 조자양(전 당총서기)등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려 했던 개혁세력들이 천안문사태와 관련,된서리를 맞고 강경보수파가 우위를 차지하게 되자 중국당국은 개인기업에 대한 원료 및 제품공급중단 등의 제재를 가했고 이러한 중앙통제식 계획경제 운용으로 민간경제의 설 땅은 점차 좁아지는 실정이다. 그런데가 강당총서기가 개인기업가를 근로자들로부터 잉여가치를 착취하는 자라고 마르크스이론을 새삼스레 강조함에 따라 중국이 자본주의를 도입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진 것 같고 앞으로 개방ㆍ개혁을 하더라도 사회주의경제의 틀 안에서 제한적으로 추진할 것이란 분석을 낳게 하고 있다. 현 중국지도층이 개인기업을 백안시하는 것은 개방ㆍ개혁으로 적잖은 사람이 부자가 됐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관리들이 관련된 부정ㆍ부패가 전국적으로 만연됐고 계층간 빈부격차가 심화돼 천안문사태 발생의 한 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 얼마전 강경보수파의 하나인 왕진 부주석은 외국귀빈을 접견한 자리에서 『중국은 개인적인 백만장자 또는 억만장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는 국부배분의 양극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됐다. 낙후된 경제상황에도 불구,11억인구의 심리적 동요를 막고 통치기반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주의 체제를 고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중국지도층의 입장인 것 같다.
  • “사회주의 고수” 재천명/김일성,당 「지도적 역할」 제고 강조

    【내외】 북한 김일성은 10일 사회주의 노선의 고수를 강조하면서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 와해책동에 대처,당을 더욱 강화하고 「지도적 역할」을 높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일성은 이날 당창건 45주를 맞아 평양 금수산 의사당에서 베푼 기념연회연설을 통해 노동당의 당면한 중대과제는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 공세와 반북한 책동을 짓부수고 사회주의 위업을 끝까지 완성하며 조국의 평화통일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3대혁명(사상ㆍ기술ㆍ문화)수행에 입각한 사회주의 고지를 점령할 것을 역설한 것으로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김일성은 또한 한반도 통일문제에 언급,『통일로 나아가는 온 민족의 거세찬 흐름을 적극 떠밀어 통일운동을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시켜야 하며 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유리한 국면이 마련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하고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에 의한 통일실현을 강조한 것으로 이 방송은 전했다.
  • “북한정권은 스탈린이 세워줬다”/소 주간지 「뉴타임스」 주장

    ◎“김일성에 의한 정권수립” 정면 부정/“중ㆍ소 지원 받아 6ㆍ25남침”거듭 확인 소련의 유력 정치주간지 노보에 브레미아(뉴타임스)는 최근호에서 북한이 전후 동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탈린이 세운 사회주의국가」라고 주장,북한의 정통성을 부인하고 나서 주목되고 있다. 9일 소련 관영 모스크바 방송에 의하면 노보에 브레미아지는 한소 수교와 관련된 기사에서 이같이 강조함으로써 북한의 「김일성에 의한 정권수립」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한편 『평양의 후계자(김일성을 지칭)는 자기 선배(스탈린을 지칭)보다 훨씬 오래 살아 남았을 뿐 아니라 스탈린주의의 실행에서 보다 큰 열성을 발휘했다』고 강조,김일성의 장기독재권력체제를 비판했다. 이 잡지는 이어 6ㆍ25와 관련,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을 인용,『1949년말 김일성이 남침계획안을 갖고 모스크바로 찾아 왔다. 그는 스탈린과 모택동의 허가를 받고 4백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그 전쟁을 시작했다. 스탈린은 무기로만 김일성을 뒷받침해 준 것이 아니다. 그는 소련항공사들과 기타 군사고문단들을 파견해 주었는데 그들도 역시 죽음을 당하게 됐다』고 밝혀 6ㆍ25가 김일성이 소중의 지원으로 일으킨 남침전쟁이었음을 거듭 확인했다. 이 잡지는 한소 수교에도 언급,북한을 포함,일부에서 소련이 북한의 「구식경제」로는 도움이 되지 않지만 일본을 뒤따라 잡으려고 하는 한국에 의해서는 경제적 뒷받침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국과 수교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으나 한국의 대소 경제지원이 한소 수교의 주요동기는 아니며 세계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나라와 정상관계를 발전시킨다」는 소련의 「신사고」외교정책에 의거,한국을 자주국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잡지는 전후 한반도에서의 두개 한국이 발생하게 된 것이 두개 독일발생과 그 원인을 같이 하고 있다고 전제,소련이 서독과는 일찍부터 수교를 하고서도 오랫동안 북한은 우호국ㆍ동맹국으로,한국은 「미국의 괴뢰나라」로만 취급해 오다가 뒤늦게 한국과 수교한 사실을지적,스탈린∼흐루시초프∼브레즈네프로 이어지는 소련 수뇌부의 대 한반도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이 잡지는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이 한소 수교에 즈음,뉴욕에서 북한과 「기존의 선린ㆍ우의에 기초하여 관계를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말한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평양쪽으로 무릎을 꿇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강조,소련이 북한에 대해 의연히 대처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 잡지는 이어 지난 9월 초 북한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가 소련 장관급 인사로서는 처음으로 김일성을 접견하지 못했다고 밝히고 셰바르드나제가 평양을 떠난 후 『김일성은 중국을 비밀리에 방문,심양에서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과 만나 그로부터 중국이 북한의 대외 정치노선에 대해 변함없이 지지한다는 공약을 받아냈다』고 김일성의 중국 방문설을 확인하면서 향후 북한이 소련에 대한 의지에서 탈피,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공고히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 잡지는 김일성이 중국 방문 직후 북한을 방문한 일본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금환신) 전부총리를 접견,오는 11월에 북 일수교문제 논의를 위한 회담을 갖기로 합의한 사실을 지적,북한이 일본과 관계개선을 함으로써 주한미군 철수를 촉진시키려 꾀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극동지역에서 북한의 이같은 움직임은 「자기 자리」를 상실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논평했다. 나아가 이 잡지는 김일성이 『48세가 된 자기 아들 김정일을 후계자로 공식 발표했다』고 강조,권력세습을 꼬집으면서 『자기 후계자에게 공고한 자리를 넘겨주려는 소망이 그로 하여금 한소 수교에 주는 대답으로 외교적 차원에서 새 보조를 취하도록 하는 것 같다』고 평가,김일성이 김정일로 이어지는 후계체제를 보다 공고히 하기 위해 한소 수교에 대응,대일 수교를 가속화시켜 나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 김일성­도이ㆍ오자와 연쇄회담 내용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10일 상오 10시52분부터 11시15분까지 평양의 금수산의사당에서 일본 집권 자민당의 오자와 이치로(소니일랑)간사장을 비롯한 자민당 대표단과 회담을 갖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에 강한 의욕을 표시했다. 김주석은 이 회담이 끝난후 오자와 간사장 등을 위한 오찬을 베풀고 계속 환담을 나눔으로써 대일수교에의 열의를 나타냈다. 이보다 앞서 9일에는 일본사회당의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 위원장과도 만나 남북통일문제등을 둘러싼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북한ㆍ일 관계정상화에 장애 없다”/“이제 문 열렸으니 친선ㆍ우호관계로 발전” 김일성/“한 테이블서 정부차원의 정상화 노력을” 오자와 ▷김일성­오자와 회담◁ ▲김일성=나는 귀하가 우리의 초청을 받고 조선을 방문해 준데 대해 감사한다. 특히 가네마루(금환) 전부총리가 방문한 이후 자민당이 우리 로동당의 45주년 기념식에 초청을 받아들여 간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표단을 맞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열렬히 환영한다. 선생들의 북한방문으로 창당기념일이 빛나게되었으며,더욱 기쁜 것은 조선 로동당과 자민당이 관계를 수립한 사실이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오자와 간사장=초대를 받아 감사한다. 가네마루회장이 방문 했을 때 신세를 져 고맙다. 당을 대표해 평양을 방문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양당ㆍ양국간의 교류가 깊어져 친선ㆍ발전에 도움이 되길 희망한다. ▲김=간사장을 비롯,자민당을 대표하는 여러분이 방문해 줄 줄은 몰랐다. 열렬히 환영한다. 크게 감동하고 있다. ▲오자와=새로운 역사의 또다른 한 폐이지다. 가네마루회장을 비롯한 양국 대표단의 결단이 없었더라면 될 수 없었던 일이다. 이것을 계기로 양국간의 우호를 장래에 걸쳐 한층 더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김=가이후(해부)총리에게도 잘 전해 달라. 먼길 외유를 마치고 귀국한 인사를 드려달라. 가네마루 선생에게도 안부 전해달라. 가네마루 회장은 『바람구멍을 열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문을 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가깝고도 밀접한 관계가 되어가는 것은 기쁜 일이다. ▲오자와=국회에서는 일상 사회당과 상당한간격이 있지만 이번 일에 관해서는 일치 협력,무겁고도 무거운 문이지만 여는 것이 가능했다. 앞으로도 이 무거운 문을 다시 열어 보다 훌륭한 관계를 구축했으면 한다. ▲김=문은 열렸기 때문에 드디어 정상화의 관계에 들어간다. 3당합의에 대해서도 장애물은 없다. 이제부터는 결정해 들어가야 한다. ▲오자와=나도 동감이다. 가능한 한 정부사이에 같은 테이블에서 정상화를 위한 한층의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 ▲김=매스게임은 어제 예정을 오늘로 변경했다. 술(와인 글라스)은 4잔밖에 마시지 않는다. 담배는 60살부터 피우기 시작했다. 75살 생일날 의사들이 말려 관두었다. 가네마루씨는 『내년은 조선ㆍ일본 관계개선을 위해 진력하고 싶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오자와씨에 달려있다. 가이후총재에게도 그렇게 전해달라. ▲오자와=꼭 그렇게 하겠다. ▲김=아시아대회에서 중국대표가 『남과 북이 하나가 되면 분규가 일지 않겠는가』라고 걱정했는데, 대회에서 하나가 되어 성원하는 장면을 보고 놀랍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축구팀이 민족애라고 말할까.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 있었다. 나는 TV로 보았다. ◎“분단 50년 되기전에 고려연방제로 통일” 김일성/“남ㆍ북한,자주적 평화통일 조기성취 염원”도이 ▷김일성­도이 회담◁ ▲김=통일에 대해서는 조선인민의 바람은 매우 깊다. 전 조선인민이 분열되어 50주년이 되기 전에 통일하지 않으면 안된다. 미군이 2000년에도 남에 주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분열 50주년까지는 통일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민심은 하늘을 이긴다』고 한다. 민심이 하나로 뭉치면 그것을 꺾을 수는 없다. 우리는 통일은 다른 하나가 또다른 하나를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2개의 제도,2개의 자치정부로 하자고 말하고 있다. 그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즉 연방공화제라는 것이다. 2개의 제도를 남겨 두어도 큰 문제는 없다. 하나는 사회주의제도,하나는 자본주의제도인데 하나의 세력이 한쪽을 통합하려고 하면 또 싸움이 된다. 연방공화제로 통일하는 것이 인민의 소원이다. 남북총리회담을 위해 16일에 남쪽 총리가 평양에 온다. 이쪽 총리가 남쪽에 가서 노태우대통령과 만났을 때,대통령은 『김일성주석이 말하고 있는 자주ㆍ평화ㆍ대단결을 지지하는 뜻을 꼭 주석에게 전해달라』고 발언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이 3개 원칙을 대통령도 지지하고 승인까지 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연방공화제에 찬성한다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쪽 총리가 서울에 갔을 때 통일에 대해 3가지를 제안했다. 총리회담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팀스피리트를 중지하든가,적어도 2년간은 연기해야 한다. 칼을 갖고 평화의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노대통령은 7ㆍ7선언에서 북한도 동료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을 방문해서 붙잡힌 문목사ㆍ임학생을 즉각 석방해야 한다. 우리총리가 노대통령이 꼭 결단을 내려 두사람을 석방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대통령은 자신을 믿어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직접 남쪽 총리에게 어떤 결단을 노대통령이 내렸는지 들어보려고 생각하고 있다. 유엔 단독가입은 중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도록 했다. 단독가맹은 2개의 조선이 되어 통일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제기한 3가지 점에 대해 그 어떤 것도 회답이 없다. 16일에 남쪽 총리가 오는데 3가지중 일부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한다. ▲도이=하루라도 빠리 자주적ㆍ평화적인 통일을 마음으로부터 염원한다. ▲김=3당 공동선언에는 조선은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써 넣었다. 조선은 반드시 하나가 된다. 3당이 바라고 있으며,또 하나의 당이 이 3당처럼 된다면 통일은 빨리 이루어진다. 또 하나의 당이란 남한의 민자당이다.
  • 「사노맹」 관련 9명 구속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연맹(사노맹)의 배후조직을 수사하고 있는 국가안전기획부는 10일 민중당 마산갑구 학생연대사업국장 안성철씨(27) 등 정당 관련자 3명과 대구 대덕국교 교사 정미화씨(22ㆍ여)를 비롯한 학생ㆍ회사원 등 모두 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이적단체가입 등)혐의로 구속했다. 이로써 사노맹에 관련된 구속자는 모두 16명으로 늘어났으며 안기부는 이번 주말쯤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구속자는 ▲이성철 ▲정미화 ▲김옥현(28ㆍ민중당 대구 북구지구당 대외협력간사) ▲차무정(27ㆍ 〃 영풍지구당위원장) ▲김해룡(25ㆍ선경 천안공장 공무부사원) ▲공인현(22ㆍ경남대 음악교육과4년) ▲장해숙(23ㆍ여ㆍ경북대 조경학과4년) ▲김은미(22ㆍ여ㆍ무직) ▲윤진환(20ㆍ성균관대 국문과2년 휴학)
  • 가까워진 서울과 북경/북경의 「정치아시아드」:4ㆍ끝

    ◎한­중관계 개선 앞당긴 「장외외교」/민간기업들의 지원이 우호이미지 심어/「무역사무소」정지 끝내 조기 수교에 순풍 북경 아시안게임은 한중 관개개선의 결정적인 촉매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개최 및 진행을 돕기 위해 많은 한국의 대기업들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광고탑 설치 등을 통해 한국의 이미지를 대륙 전체에 심는데에도 적잖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기업들의 노력이 대회기간중 한중간의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크게 뒷받침한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 같다. 또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부 고위인사 및 관계자들은 비교적 수월하게 중국측과 공식ㆍ비공식의 잦은 접촉을 통해 양국 관계의 정상화 방안을 협의할 수 있었다. 지난해 6ㆍ4 천안문사건으로 중단되다시피 했던 한중 무역사무소 상호교환설치 문제가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빠른 속도로 풀리기 시작했으며 오는 16일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이선기 사장은 북경에서 중국국제무역촉진회(CCPIT) 정홍업 회장과 만나 이 문제에 관한 협상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영사기능이 부여되는 무역사무소 설치는 양국 수교시기를 크게 앞당기는 작용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중국 외교부장 전기침은 지난 2일 유엔총회가 열린 뉴욕에서 『중국과 한국의 경제교류는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분위기 조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남북한 총리회담이 중국측에서 바라던대로 큰 성과가 있었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국의 최호중 외무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중 수교가 내년말까지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있게 밝혔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볼 때 한중 관계개선은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 같은 느낌이다. 또 조만간 무역사무소가 설치될 경우 양국 사이의 직교역과 정기직항로개설이 뒤따라 이뤄져 상호교류 물동량은 크게 늘어날 것이고 경제협력의 유대도 더욱 강화될 것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한중 관계개선은 한소 수교에 이어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고 한반도 통일을 촉진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할 게 틀림없다. 그렇지만 한중 관계정상화를 저해하는 요인이 적은 것은 아닌 것 같다. 첫번째로 꼽을 수 있는 걸림돌은 북한과 중국의 특수관계일 것이다. 북한은 한소 수교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퍼붓고 앞으로 평양과 모스크바의 사이가 나빠질 것이라며 소측에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물론 소련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같은 북한의 반발을 도외시 할 수 있는 정책방향을 이미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한소관계는 순조롭게 밀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역사적으로 자국을 중심으로 해서 주변관련 국가들과의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외교정책을 추진해 오고 있으므로 섣불리 북한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중국과 북한은 과거 40년동안 상호 혈맹관계임을 강조해 왔고 등소평을 비롯한 중국의 혁명 1세대들이 건재하고 있기 때문에 「노붕우」인 평양측의 체면을 하루아침에 무시하는 자세를 보이긴 힘들다는 것이다. 다음으론 중국이 한국과 수교를 하게 되면 한반도내 두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이 되고 그럴 경우 대만도 별개의 또다른 중국으로 간주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북한이 최근 일본과 수교키로 원칙을 세운 점등 주변정세와는 관계없이 북경 당국은 대만을 언젠가는 1국2체제 형태로 흡수합병,통일중국을 이룬다는게 불변의 기본 통일전략이다. 때문에 이러한 전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한중 수교에 대해 중국측은 대만과의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거나 대내외적으로 수교를 불가피하게 만드는 예상밖의 변화가 있기까지는 신중한 자세를 견지할 것으로 관측통들은 보고 있다. 이와 함께 현 중국 지도층의 인맥이 대부분 사회주의 고수를 강조하는 강경보수파들로 구성돼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앞으로 상당기간 동안은 한국과는 경제교류를 심화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북한에 대해선 정치적 뒷받침을 포기하지 않는 두개의 정책을 균형있게 추진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어려운 나라살림/북경의 정치아시아드:3

    ◎“개혁보다 빵이 우선””… 경제안정에 주력/아주대회 큰 부담… 올 적자 25억불 추정/“소ㆍ동구식 변화는 혼란 가중” 인식 팽배 이번 아시안게임은 겉으론 성대하게,성공적으로 치러져 중국당국이 정치적 선전효과는 크게 얻은 것으로 예측되지만 손익계산을 하면 적자운영을 면치 못했다. 중국은 올해 재정적자가 1백20억원(25억3천만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이같은 재정난때문에 이미 25억원의 아시안게임 국채를 발행했다. 외국기업들로부터 광고비와 기부금을 받고 TV중계료 등의 수입이 있기는 하지만 적자를 메우기엔 부족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회의 적자운영과 함께 국내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지난달말쯤 이붕총리 주재로 각 성장과 중앙부처 관계자들이 합동대책회의를 가졌다. 성장들은 명목상 대회개막식에 참석키 위해 북경에 모인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 목적은 범국가적인 경제현안을 논의키 위한 것이었다. 합동회의에서 성장들은 관할지역의 문제점 등을 보고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협의했으며 특히 광동 복건성 등 경제개방지역 관리들은 경제개혁을 가속화,침체국면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붕을 비롯한 중앙부처인사들은 빠른 속도의 개혁이 경제안정을 해친다고 반박,의견일치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등 강경보수파는 천안문사태 이후 강력한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를 추진,개방개혁의 부작용인 과열경제ㆍ물가폭등ㆍ계층간 격차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또 긴축정책으로 어느정도 물가를 안정시키기는 했지만 많은 국영기업 및 개인기업이 문을 닫는 등 심한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회주의 통제경제를 신봉하는 보수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게 요즘의 중국인 것 같다. 얼마전 중국 사회과학원부원장 유국광은 당기관지 인민일보에 발표한 글을 통해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든 인민을 배불리 먹게 하는 일이다. 경제건설은 그 다음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소련ㆍ동구가 급진적으로 자본주의 지향의 개혁을 추진해서 경제가 크게 혼란상태에 빠져 있다고 주장하고 마르크스 경제이론가인 진운 중앙고문위주임의 조롱경제론을 찬양했다. 이 이론은 중국의 경우 개혁(새)이 사회주의 경제체제(새장)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으로 중앙계획의 경제운용방식을 강조하기 위한 보수파의 지론이며 등소평의 흑묘 백묘론(검든 희든 쥐민 잘 잡으면 된다)에 배치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자율적인 개방개혁은 지역간 불균형발전과 계층간 빈부격차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키기 때문에 11억 인구를 다스리기 위해선 경계통제를 강화,안정위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또 한정된 자원의 균등배분과 물가안정을 위해 긴축이 불가피함을 강조하는게 보수파들의 입장이다. 따라서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 중국지도층이 대외적으로 개방ㆍ개혁의 추진을 부르짖는 것은 서방선진국의 자본과 기술을 유치하고 이 정책의 틀을 마련한 등소평의 체면을 의식하는 두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개방ㆍ개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모든 정책가운데 안정을 절대우위에 놓고 이 목표가 달성된 후에 장기적으로 균형을 잃치않는 범위안에서 천천히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때 중국이 내년부터 추진할 제8차 5개년계획(91∼95년)은 긴축기조위에서 짜여질 것이며 개방개혁은 정체될 것이라는게 북경주채 외국상사원들의 견해이다. 때문에 앞으로 상당기간 중국이 신규개발사업을 벌일 것으로 보지 않고 있으며 현지 영업활동도 신장세가 둔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또 아시안게임으로 적잖이 느슨해진 경제분위기를 바로 잡기 위해 대회가 끝나면 단기적으로 긴축과 통제를 강화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 통독이 한반도에 준 교훈(새 독일 탄생:5ㆍ끝)

    ◎「통일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서독,69년 동방정책 이후 꾸준히 접촉/물적ㆍ인적 교류 늘려 갈등해소 노력을/한민족 공감대 형성… 북한 개방분위기 조성 도와야 독일 통일은 동독국민들의 「대탈출」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1월이후 불과 1년도 못되는 사이 ▲2월6일 동독내의 비공산당연립정부 출범 ▲6월17일 동독국가 해체작업 시작 ▲7월1일 동서독 경제ㆍ사회 통합 ▲9월14일 통독조약 조인 등 급템포로 이루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패전의 페허에서 49년 출범한 서독 기민당(CDU)의 아데나워 정권은 자유민주정치제도와 친서방 보안정책으로 서방진영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하면서 경제 재건과 번영을 바탕으로 착실한 분배정책을 펴 내부적인 안정을 다졌다. 이어 69년에 출범한 사민당(SPD)의 브란트 정권은 CDU 정권의 업적을 토대로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을 이룩했으며, 「일민족 이국가」론에 기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동독과의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독관계를 안정시키고 인적ㆍ물적 교류 확대의 물꼬를 텄다. 82년에 다시 집권하게 된 CDU의 콜 정권은 SPD의 동방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동독 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동독국민들 가슴 속에 개방과 민주화의 씨앗을 묻었다. 그 씨앗이 때마침 불어닥친 소련 개혁정책의 화풍 속에 발화,마침내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 저간의 과정이다. 이같이 치밀하고 장기간에 걸친 통일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숨쉬던 조직들이 하나로 묶이기까지에는 겪어야 할 많은 후유증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4일 독일 통일 후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에서 가진 첫번째 전독의회에서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된 헬무트 콜 총리는 『이제 독일이 통일되었으나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모든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내부적인 분단을 공동의 목표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수년간 정신적ㆍ문화적ㆍ경제적ㆍ사회적인 분단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통일 작업은 이처럼 역대 정권들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얻어진 것이지만 막상 통일이 이루어진 오늘 독일 사회에서는 내부적 갈등의 해소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서분단 이후에도 경제적인 교류와 인적왕래가 이루어지고 TV시청 등을 통해 양 체제 속에 사는 국민들이 서로를 잘알고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반분야에 남아 있는 갈등과 후유증 극소화가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동서독과 같은 인적ㆍ물적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양체제의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문화적ㆍ사회적 갈등과 충격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볼 때 같은 냉전의 결과로 빚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독일분단은 「지리적인 분단」이라는 점을 빼 놓고는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독일은 하나의 게르만민족이라는 정신 아래 상호신뢰의 기틀을 다져 왔으나 우리의경우는 적개심의 심화만이 가속화되었다고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의 개방과 상호교류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와 함께 통일에 대비한 힘의 축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독은 시장경제에 뿌리내린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의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추진해왔다. 서독은 동독과의 무역거래에 있어 동독이 제15위의 교역상대국이지만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 서독은 소련 다음의 교역상대국이어서 동독경제가 서독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대서독 무역거래에 있어 매년 2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보았으며 서독으로부터 지난 10여년간 1백억달러의 무이자 신용대출을 받아 그 결과 서독의 경제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파산될 취약구조로 바뀌로 말았다. 특히 서독은 지난 83년 동독이 외화부족으로 외채지불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7억달러의 현금차관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동독의 개방과 양독간의 교류증대를 요구하는 등 동독의 개방을 계속해서 유도했다.이와 함께 독일통일이 대중매체인 TV의 상호시청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동서독간에는 TV시청에 관한 합의는 없었지만 동독국민들은 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서독 TV를 시청하고 있어 서독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동독국민들은 TV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으며 결국 트라비승용차 한대를 구입하는데 신청 후 13년이 걸리고,냉장고나 TV를 구입하려면 3∼5년이 걸리는 사회주의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에 염증을 느껴 대탈출을 결행했던 것이다. 통독으로 독일이 하나의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동안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동독지역을 얼마나 빨리 서독지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느냐는 것이다. 통일독일정부는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시급한 도로ㆍ상하수도ㆍ주택 문제를 서독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 아래 이미 복구작업에 착수했다. 독일의 통일 뒷마무리 작업이 이같이 순조로울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로는 단단한 내실과 이해득실을 떠난 한민족이라는공감대가 강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독일의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통일에 대비한 노력과 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하겠다.
  • 외언내언

    14세기말부터 16세기에 걸친 이탈리아는 전국시대. 밀라노,나폴리 등의 군주국에 피렌체,제노바,베네치아 등의 도시국가가 대립 항쟁을 계속한다. 마키아벨리는 그중 피렌체의 귀족 출신. 조국 피렌체가 살아남게 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쓴 것이 「군주론」이다. ◆그 7장에서 그는 『군주는 필요에 따라 짐승의 방법과 인간의 방법을 구별하여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짐승의 방법을 택할 때는 여우와 사자한테서 배우라는 것. 즉 덫을 간파하는 여우의 교활함과 늑대를 쓰러뜨리는 사자의 힘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신의를 지켜 성실하게 사는 군주가 칭송받는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제는 책략으로 사람을 속이는 군주쪽이 위업을 이룬다는 주장. 영원한 적도 영원한 내편도 없는 국제관계를 잘 지적한 말이다. ◆유가류로 해석하자면 부도덕한 사술이지만 그것이 냉엄한 국제사회의 질서. 때로는 여우가 되고 때로는 사자가 되면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이 엄연한 인류사다. 한때는 맞닥뜨려 싸우기도 했던 중 소와 우리가 수교의 물꼬를트는 것도 현실적으로 국익에 부합되기 때문. 북한의 로동신문은 그렇게 우리와 가까워진 동맹국 소련을 맹렬히 비난하고 나섰다. ◆남을 비난하기에 앞서 북한은 「외곬 45년」의 자신부터 성찰해보아야 한다. 「하나의 조선」론이 오늘의 시류에서 국제적 설득력을 과연 가질 수 있는 것일까. 『사회주의의 와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난하기보다는 70여년 동안 그걸 신봉해온 종주국 소련이 어째서 그 틀을 벗어나려 하는가부터 먼저 숙고함이 순서다. 어떤 주의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삶의 형편ㆍ삶의 질이 아니겠는가. ◆교주고술. 때와 장소ㆍ형편에 따라 적절히 고치지 않고 고정시켜놓고 생각하며 처신하는 어리석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눈이 핑핑 돌게 변전하는 국제사회에서 40여년 전 생각에 집착하여 그 잣대로 남을 비난하는 것은 웃음거리되기 십상 아닐까.
  • “북한 사회주의는 세습적 군주제/김일성 정권 지원중단을”

    ◎소 「신시대」지 주장 【도쿄 연합】 소련은 북한과의 우호관계와 김일성 정권을 지원하는 것을 명확히 구별지어야 한다고 소련 정치주간지 노브에 브레미야(신시대)가 최신호에서 주장했다. 이 주간지는 한소 수교 후의 한반도정책에 관한 논설중에서 북한의 사회주의를 『세습적 군주제도와 같은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하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지지(시사)통신이 5일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노브에 브레미야는 이어 북한은 철의 장막 속의 독재체제로 민중은 극빈생활을 하고 수십만의 정치범이 수용소에 갇혀 있으며 과학도 문화도 예술도 김일성과 김정일의 성과로 돌려진다고 이들을 신랄히 비판,이제 북한 정권에 대한 경의표명을 중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베를린의 한국교민들이 본 통일 현지좌담

    ◎“「중단없는 교류」가 통독 앞당겼다”/60년대부터 동독지원… 공감대 넓혀가/「반세기의 벽」실감… 국민성격까지 차이/“장벽 무너질 땐 남다른 감회… 통일은 개인업적 될 수 없어” 분단 45년만에 통일을 맞은 통독은 이제 단일국가로서의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같은 냉전체제의 유물이었던 우리나라의 분단과는 달리 양쪽체제가 재결합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주어진 통일이 아니라 얻어낸 통일이라는 것이 현지에서 통일과정을 지켜본 대부분 한국교민들의 소감이다. 현재 베를린에만 3천5백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 통일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체험했으며 남다른 통일염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눈에 비친 독일통일의 원동력,통일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일들을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이일남 (베를린 한인학교 교장) △조종식 (베를린 한인학교 추진위원장) △박춘식 (재독한국과기자협 회장) △정동양 (한인회장) △이석순 (베를린 한국간호협 부회장) ▲박춘식=지난해 11월 동독 국민들의 대탈출로 독일통일이 급속히 진전됐지만 사실 독일은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양쪽 체제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으로 중단없는 교류를 추진해 왔으며 이러한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0월3일 독일의 통일에 앞서 동독축구팀이 분데스리가에 편입되고 2개밖에 없는 동독 아이스하키팀이 서독협회에 들어와 대표팀으로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통일작업을 계획적으로 추진해 왔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우월성 확인 ▲이일남=이번 독일통일은 그동안 반세기동안에 걸친 사회주의 운영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 비교가 끝났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온 서독정부는 60년대부터 동독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동독 국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서독측이 동독측에 너그럽게 대해 왔다는것이 우리와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일례로 동서독이 분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독정부가 경제적인 이유로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는 차량들의 검문을 강화하면 그 이유를 눈치채고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동독정부는 모르는 척 하며 종전과 마찬가지로 서독지역과 서베를린을 오가는 차량통행에 대한 검문을 완화했습니다. ○서독 자신감이 원동력 ▲조종식=상대에게 관대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도움을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그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래전에 남한이 큰 홍수가 나 북한이 쌀과 옷감을 보내왔을 때 쌀에서 냄새가 난다느니 옷감의 질이 어떻다느니 하는 기사가 신문에 나는 것을 보고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가 흘린 것인지 신문이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그런 기사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성숙한 통일의식을 갖고 상대방에 너그러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0년을 넘게 독일에 살아왔지만 이곳 매스컴들이 생색을 내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동독국민들은 그러나 어떤 체제가 살기 좋은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대탈출로,또 통일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서독은 자신감을 갖고 동독의 투정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정동양=이곳에서 볼 때 우리정부의 시책에 현실감각이 결여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동서독이 이미 통일을 하기로 합의를 하고 지난 7월1일 경제통합을 이루어 동서베를린의 왕래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음에도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과 여행자들은 동베를린에 가기 위해서는 현지공관에 사전신고를 하도록 해 많은 불편을 주었습니다. 분단국의 국민으로 통일이 되는 나라에 찾아와 여러곳을 보고 싶은 심정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는 동베를린이 동구권에 속하는 만큼 동구권 여행지침에 따라 동베를린을 여행할 경우 외교관ㆍ언론인들은 사후신고를,일반인은 사전신고를 의무화해 현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간섭을 고수해왔습니다. ○통일 뒷처리 완벽 준비 ▲이일남=최근 베를린 시내에는 전 동독지역에서 관광을 하러 오거나 쇼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 익숙해져 있는 전 서독 사람들이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때문에 좋게 말하면 세련되고 나쁘게 말하면 까졌다고 할 수 있는 데 비해 전 동독 주민들은 순박하고 어수룩한 면이 있을 정도로 행동과 표정만 보아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동부지방 사람들은 가난에 익숙해 인내심이 강하고 관대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체험론입니다. 이에 비해 서부지방 사람은 풍족한 생활을 하다보니 까다롭고 외국인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한민족이 반세기 가까이 떨어져 생활을 하다보니 국민들의 성격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이석순=서독정부는 통일에 대비해 말없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통일과 더불어 도로ㆍ통신ㆍ주택확충을 위해 서독은 앞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서독국민들은 더많은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통일과정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정부는 장기간에 걸친 재정적인 축적으로 국민들의 납세를 최소화하고 동독의 재건에 신속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현재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이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내도 3년을 먹고 지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가기도 전에 흥청망청 지내는 바람에 막상 통일이 될 경우 통일 뒤처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군요. 최근 통일열기가 고조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에 대비한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동양=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 분단국인 한국인만큼 독일통일에 대한 감정이 착찹했던 국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마르크시즘이 독일에서 발전돼 한세기에 걸쳐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 시험의 시기를 거쳤는데 처음 시작한 국가들에서 자체내의 문제점들이 곪아터져 막을 내리는 마당에 북한과 중국에서만 아직까지 변화의 징조가 없다는 것이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출발한 사회주의가 동양국가에서 열매를 맺을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완 크게 다른 여건 ▲조종식=우리나라에서도 통일이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소수에 의한 정치체제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논의의 대상도 되지 않지만 해방후 남한의 권력구조가 소수의 그룹으로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통일문제도 그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독일의 경우 동방정책은 아데나워 총리시절부터 추진돼 브란트 콜총리에 이르기까지 같은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콜총리시대에 꽃을 피운 독일통일이 특정개인이나 특정정당의 성과로 평가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국민과 더불어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정동양=제가 독일에 올때는 그야말로 잘 살아보겠다는 한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제 잘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통일에서 보다시피 동독의 모든제도가 서독에 통합흡수됨으로써 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는 시장경제이나 사실은 사회시장경제체제 입니다. 물론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와 다르다 하겠습니다. 국가가 세제를 통해 꾸준히 사회복지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괴리감이 없어 통일문제에 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통일과제에 대해서는 자체내의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해 내부적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다가 정부가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그 찬스를 재빨리 나꿔챘다고나 할까요. ○한반도에도 기쁨 올 것 ▲이일남=그에 비해 우리의 정치상황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통일을 당쟁차원에서 다루다보니 그럴듯한 제안들만 풍성할 뿐 힘의 축적이나 발전이 없습니다. ▲이석순=최근 포츠담 경찰국장이 공산치하에서의 경찰국장을 했다는 데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포츠담시 당국은 한달여의 공백기간이 있음에도 통일정부가 경찰국장을 임명해야 한다며 새국장의 임명을 미룬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국장이 사임한 뒤 누구도 그의 비리를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춘식=독일통일이 우리에게는 부러움을 주지만 우리도 어느땐가 통일의 기쁨을 누릴 때가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신의 일에 충실해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무척 다른 것만은 사실입니다.
  • “소는 실익 앞세워「동맹국」도 배신”/북한로동신문,한ㆍ소수교 비난

    ◎“「두개 조선」 고착화… 통일역행 처사/미와 손잡고 사회주의 와해 시도” 북한은 5일자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소국교수립은 소련의 배신행위이며 한반도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책동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다음은 로동신문논평 내용이다. 역사의 전진 협정에는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와 이합집산 과정이 항상 동반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영광과 영예로 빛나는 때도 있고 또한 추문과 오점으로 얼룩진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번에 소련이 자기입장을 1백80도 전환하여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한것은 이 후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외신들이 전하는데 의하면 지난 9월30일 미국 뉴욕에서는 소련과 남조선사이에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유포되어온 여론이 현실적으로 나타났을 따름이고 별로 신기할 것은 없다. 냉정하게 관찰하면 도리어 물이 재골수로 흐르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련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 외교관계 설정은 소련이 개편바람의 자국과 혼란에 빠져 쇠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때에 산생된 현상이란 것이다. 지난 9월초 평양에서 있은 조소외교부장 회담때 소련측은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키로 결정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지금의 소련은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로 되었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였다. 그후 소련측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소련의 이익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자주국가인 소련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므로 그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말들을 종합하여 보면 지금의 소련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를 견지하던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고 그 어떤 다른 성격의 국가로 변질된 것 만큼 그에 상응하게 새로운 벗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나라 다른민족 심지어는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주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 소련이 이 엄연한 공약들을 다 휴지통에 집어던지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기로 하였으니 이것이 배신이란 말 이외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소련으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38선으로 분열시킨데 책임이 있는 나라이며 동시에 조선을 맨 선참으로 조선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현실인정의 구실을 붙이건 말건 결국은 조선에 두개 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자기들의 공약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행동을 하는 것으로 된다. 하기야 오늘 소련에서는 10월혁명 후 소련인민이 걸어온 간고분투의 영광스러운 역사자체를 하나의 암흑시대로 규정하면서 투정하고 있는 판국이니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전날에 우리와 한 언약들을 집어던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면 주관적 의도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는 두개조선으로 분열을 고착시키고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며 소위 개방에로 유도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뒤집어 엎으려는 미국의 기본 전략에 공공연히 가담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될 수 없다. 이것은 조선을 둘러싼 미국 소련 남조선의 3각 결탁관계의 형성을 의미하게 되며 평화적 이행 조약에 따라 아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와해하기 위한 포위망 형성의 일환으로 되게 될 것이다. 오늘 분열된 나라들이 통일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다. 조선에서도 통일에 대한 북남 전체인민들의 열망은 어느때 보다도 높아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소련이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여 남조선을 국가로 인정하고 조선의 두개 국가가 존재한다면서 통일을 방해하고 분열을 고취하는데로 방향전환한 것은 오직 미국과의 보조 일치를 위해서라고 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 소련측이 평양에 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도 한가지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한데 의하면 지금 소련 경제가 다 파괴되는 위기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 설명을 듣고 보면 물에 빠진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세상에는 실지로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허무감마저 없지 않다. 보도에 의하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하였다는 소식과 때를 같이 하여 남조선이 소련에 경제협력자금으로 23억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대국으로서의 존엄과 체면,동맹국의 이익과 신의를 23억달러에 팔아먹은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체계를 시장경제체계로 넘긴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운영 방법에 기초지식을 습득하는데 애쓰고 있는 소련의 학자들로서는 외교관계설정이라는 무형의 상품을 비싼 값으로 팔아먹은 것이 아주 수지가 맞는 자본주의적 상거래 행위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흡족해 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의 남조선의 형편에서는 그 막대한 돈을 낼 원천도 없거니와 아마도 그것은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기 위한 미제의 특별기금에서 나올 것이 뻔하다. 우리는 아무리 우여곡절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부닥치는 암초를 외도리면서 자기가 갈길을 끝까지 갈 것이다. 역사는 배신과 변절,부정과 전횡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다.
  • 교역등 경제협력 전망(한·소 새 출발:2)

    ◎대륙 투자 디딤돌… 「소련특수」 기대/자본·자원 상호보완… 교역 급증 예고/가전품공장 설립·호텔진출등 활기 한소 양국간의 역사적인 국교수립으로 3억의 인구와 무진장의 자원을 보유한 소련시장의 문이 마침내 우리 앞에 활짝 열렸다. 한소 수교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들의 대한 시장개방 요구와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 경제에 「뉴 프런티어」를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60년대 베트남과 70년대 중동에서 개가를 올렸던 우리 기업들은 벌써부터 「소련특수」의 꿈에 부풀어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도 국내기업의 소련 진출에는 많은 위험요소와 불편이 따른다. 지난 89년의 실질 GNP(국민총생산)성장률이 1.4%에 그친 소련은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갖는 비능률적 요소를 떨쳐버리기 위해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미완성의 시장이기 때문이다. 한소 수교를 계기로 이것이 갖는 경제적 의의 및 제2차 한소경제회담에서 주요의제가 될 것으로 보이는 한소 경협문제,그리고 우리의 대소 교역및 진출 현황 등을 알아본다. ▷경제적 의의◁ 소련과의 국교수립은 세계경제 무대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나라는 동남아→한국→소련 극동→모스크바→서구로 연결되는 새로운 경제권을 형성함에 있어 지리적으로 그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동아시아의 경제강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셈이다. 한국과 소련은 상호보완적인 경제구조를 갖고 있다. 따라서 한소의 관계개선으로 우리는 3억인구를 가진 방대한 소련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원료와 첨단기술의 안정적인 공급처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기술 및 자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우리 경제가 새로운 발전의 계기를 맞게 됐음을 의미하고 있다. 특히 한소간의 관계개선은 주변국가들에도 영향을 미쳐 한중 관계개선을 유도하고 남북 경제협력의 가능성을 증대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동안 한소의 경제협력은 교역부문에서 매년 1백% 정도로 급격히 증대되고 있으나 투자나 기술및 자원협력 등의 분야에서는 투자보장협정 등 협력여건의 미비로 큰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번 양국간의 수교합의가 이루어짐에 따라 경제협력을 위한 제도적 여건이 한층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한소간의 경제협력은 소련이 우리의 경공업제품 수출시장과 자원·첨단기초기술 등을 공급하고 우리가 소련에 경제개발경험을 전수해주고 소비재생산증대에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과거 중동건설이 우리 경제의 도약을 뒷받침했듯이 3억인구를 가진 소련 시장을 수출부진 타개책으로 적극 활용할 방침이다. 현재 소련 시장은 외환이 부족해 수출시장으로 부적합하다는 측면이 있으나 구상무역을 확대시켜 수출대금 결제에 따르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해 나간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대소 차관제공 문제◁ 한소 수교 및 경제협력 확대와 관련해 우리측이 제공하게 될 대소 차관의 규모와 방식이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이 문제는 10월중 서울에서 열리는 2차 한소경제회담에서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이는 데 대소 차관의 규모는 20억∼30억달러 선이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소 차관 제공의 방식은 ▲타이드론(조건부 융자)형태의 전대 차관 ▲물자 차관 ▲외상수출을 포함한 상업 차관 등 3가지가 검토되고 있다. 이 가운데 물자 차관이 주류를 이루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대 차관은 소련측이 우리 정부나 민간으로부터 돈을 꾸어 한국산 상품을 수입하도록 용도를 지정해주는 방식이다. 이 경우 소련정부나 금융기관의 지급보증이 있어야 한다. 물자 차관은 공장설비 등 각종 자본재를 제공하고 그 값을 돈으로 평가,원리금을 상환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원자재로 교환하는 방식이다. 이밖에 수출조건에 미리 대금상환 시기를 못박아 물품값에 이자까지 포함시켜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외상수출 형태 상업차관이다. ▷대소 교역 및 진출현황◁ 우리의 대소 수출은 87년에 6천7백만달러에 불과했으나 88년 1억1천2백만달러,89년 2억8백만달러로 급증하고 있으며 올들어 7월까지 2억2천9백만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대소수입은 87년 1억3천3백만달러에서 88년 1억7천8백만달러,89년 3억9천2백만달러로 늘어났으며 올들어 7월까지는 1억8천7백만달러에 이르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치약·비누·섬유류·신발 등 생필품과 기계류·전기전자제품·선박이 소련으로 수출되고 농수산물·식품류와 원면·석탄·비료·목재·펄프·선철·니켈괴 등의 원자재가 수입되고 있다. 국내업계의 대소 투자진출 현황을 보면 조업중인 것은 진도의 모스크바 모피공장 1건에 불과하지만 국내 대기업을 중심으로 투자진출이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어 한소 수교를 계기로 투자진출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룹별로 보면 현대가 연해주 스베틀라야지역의 삼림개발 사업을 비롯,석탄개발 2건,가스전개발 2건과 펄프공장 및 퍼스널컴퓨터공장 설립 등을 추진중이다. 럭키금성그룹은 미 벡펠사와 합작으로 레닌그라드 종합개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으며 세탁기·전화기 등 가전제품 공장설립과 모스크바에 한소 트레이드타운 건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삼성은 호텔사업분야와 롯데는 백화점 사업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염주영 기자〉
  • 「분단 41년」의 청산과 과제(새 독일 탄생:3)

    ◎“과도기 없이 통일”… 현실적 융화에 어려움/낙태ㆍ환경보호문제 등 의견 대립 첨예/베를린행 인파 급증… 주택ㆍ교통난 심화/동독기업 도산 속출… 연말가면 실업 1백만 예상 최근 베를린 도심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간선도로마다 버스ㆍ택시전용차선이 등장했다. 일반승용차가 버스전용차로 운행할 경우에는 20마르크(9천2백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버스전용차선으로 다니는 승용차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벌금을 둘러싼 시비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규율과 질서를 존중하던 독일정신(Deutsche Geist)의 실종이라고 하겠다. 이 문제에 대해 지난 9월28일자 「베리리널 몰겐포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관계자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만프레드 카이절(49ㆍ열쇠공)은 『최근엔 버스를 타도 전보다 30여분 늦게 귀가하게 된다. 나는 직장에 늦지 않게 출근하고 싶으며 역시 퇴근후 정확하게 집에 도착하고 싶다. 그래서 가끔 차량들이 없는 버스차선을 이용하게 된다. 교통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디터 스캄브락스(37ㆍ경찰국 경감) 『동독지역서 온 운전자들이 버스차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은 버스차선에 대해 전혀 유념하지 않고 있다. 최근 악화된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공공교통수단의 우선 소통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서독의 서민대상 백화점인 알디(ALDI)에는 요즘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사려는 동독지역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줄을 서 있다. 아침 10시부터 개점하는 백화점은 오전중에 일부 상품이 동이 나 줄서기에 익숙하지 못한 서베를린 사람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이 선호하는 상품은 주로 가전제품이어서 컬러TVㆍ비디오제품들을 들고 가족들이 무리를 지어 베를린 도심을 다니는 동독지역 주민들이 눈에 많이 띈다. 1마르크라도 절약하기 위해 알디의 바겐세일을 고대하던 서베를린 중산층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가격도 상승해 생활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밖에 통독 이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업종은 주택임대업자와 중고자동차판매업 등이지만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서민들의 생활이 쪼들리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시내 주택임대사무실에는 임대 신청을 하기 위한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으며 임대료가 몇달새 2배까지 오른데다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2∼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방3에 응접실이 있는 1백㎡ 규모의 아파트는 월 임대료가 연초 2천5백마르크 정도였으나 최근엔 4천여 마르크로 치솟았다. 통일뒤 베를린에만 30여만명의 외래인이 몰려 들었다는 집계여서 주택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3년된 중고차도 여유있는 동독출신 사람들이 몰려들어 벤츠 300의 경우 2만5천∼3만마르크를 홋가,통일전에 비해 5천∼1만마르크가 상승한 가운데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모든 문제는 독일통일 예상을 뒤엎고 급속히 진전되는 바람에 독일정부가 국민들의 통일요구에 사전준비가 제대로 안된채 끌려간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독일통일의 동기를 여러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으나 지난해 가을 서독으로의 대탈출로 불이 당겨진 이후 전광석화처럼 통일 작업이 추진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리 계획된 통일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분출된 갑작스런 욕구때문에 이뤄진 통일이어서 많은 문제점과 갈등을 과제로 남겨 두었다고 하겠다. 통일의 직접동기는 여행자유화였던 것이다.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묶어둔 동독의 사회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불만과 반발을 자초했으며 평소 강제로 주입시켜온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도 퇴색시켰다. 지난해 동독시위의 첫 구호는 「여행자유화」였으며 이것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장기화,이에 따른 폐쇄사회의 모순,경제침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서독으로의 대탈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갑작스런 통일은 많은 갈등을 과제로 남겨놓고 있다. 이때문에 40여년 분단갈등의 해소문제는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보다는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동독사람들이 경쟁과 능력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사회에 어떻게 빨리 적응하느냐 하는 사회적인ㆍ경제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통일조약에 따라 사회주의 동독의 각종 제도는 서독체제에 맞도록 개편되어야 하는데이 과정에서 벌써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표적인 과제들중에는 낙태법ㆍ실업ㆍ투자ㆍ환경문제 등이다. 이런 문제들은 통일독일 정부가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지만 서독국민과 동독국민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많아 쉽사리 실마리를 찾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서독에서는 낙태를 금지시키고 있으나 동독은 이를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통일후 서독 여성들이 동독으로 건너가 낙태시술을 받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독의 집권 기민당은 낙태법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으나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낙태에 관해서는 기소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통독후 가장 골치아픈 문제로는 실업문제와 인플레현상이다. 사회주의경제가 다 그러하듯 동독의 경제는 지금까지 적정인력 투입이나 균등분배에 중점을 두어왔기 때문에 통계상으로는 실업률 0% 였으나 경제통합후 3개월만인 현재 동독지역의 실업자수가 30여만명에 이르는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독 문제연구소의 쿳페박사는 최근 『새 경제질서는 충분한 사전준비나 과도기도 거치지 않고 갑자기 닥쳐왔다』며 『향후 2년내에 동독기업의 30%가 도산할 것이며 실업자수는 연말까지 1백만명,91년까지 전체 노동력의 25%인 2백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양국의 체제가 합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갈등은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며 독일인들은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 “슈퍼 게르만”…새로운 열강으로 부상/독일통일과 국제질서에의 파장

    ◎경제력 바탕,마르크화 블록 형성할 듯/안보리 상임국 확실… 정치입김도 막강 독일통일로 세계사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2차대전후 지금까지 동서냉전체제와 세계질서는 독일의 분할과 이에 기초한 유럽의 분할에 근거한 것이었다. 때문에 동독의 소멸과 새로운 통일독일의 출현은 독일이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그리고 새로이 탄생되는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일까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독일은 지난 1년간 그들의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구사할지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지금부터의 일이다. 독일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거대 독일출현이 또 다시 침략의 역사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시각과 이제는 독일이 세계경제와 평화에 이바지 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으로 나뉘고 있다. 1871년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통일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1933년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 배경. 즉 통일된 독일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또 다시 중부유럽 더 나아가 유럽과 전세계를 제패하는 패권국가를 꿈꿀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편 통일독일이 과거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세계경제발전과 평화유지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1ㆍ2차대전 당시 독일은 후발선진공업국으로서 영ㆍ불이 독점하고 있는 제국주의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무력사용이 불가피했지만 이제는 독일도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냉전체제는 무너지고 신질서는 창조되지 않아 독일의 역할에 따라서는 몫을 훨씬 늘릴 수 있을 만큼 국제환경이 바뀌었다. 또 당시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집단안보체제가 확립돼 있기도 하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불안과 건전한 시민사회의 결여가 전체주의 정권출현의 배경이 됐던 것과는 달리 현 독일은 「독일의 유럽」이 아니라 민주화된 「유럽의 독일」로 재탄생 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지난 1년간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주변국의 우려,특히 국경선문제에 민감한 폴란드와 안보이익을 우선시하는 소련에대해 평화유지에 명확한 태도를 취해 온 것도 독일통일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통일이 냉전체제의 종식과 신질서 대두의 신호탄이라고 일컬어져 왔으나 아직 앞으로 창조될 새 국제질서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려진 적은 없다. 따라서 통일독일이 새 국제질서 창조에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는 국내외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여건을 쫓아 가늠해 보는 수 밖에 없다. 독일통일은 무엇보다 사회주의권의 패배와 연결되고 있다. 사회주의권내의 모범국가였던 동독이 서독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패배,서독체제의 동으로의 확산을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국제정치면에서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사회주의권의 약세는 소련 내부 개혁과정과 맞물려 유럽내 세력관계의 완전한 기축이동 및 냉전체제하의 동서 균형상태의 절폐를 의미한다. 이미 지난 6월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군사적 집단안보기구에서 정치기구로 전환한데서 보듯이 동서 군사대결의 시대는 지나갔다. WTO의 최전선국가이자 핵심국가인 동독이빠져나감으로써 WTO는 눈동자를 잃은 셈이 됐으며 이의 반사작용으로서 NATO 또한 목표와 구조의 변화가 불가피 하다. 동독등 동유럽지역으로 부터 소련군이 철수함으로써 독일에 대한 군사적 압력은 크게 덜어지고 집단안보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과정에서 독일은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구상이나 중립화방안을 거부하고 나토잔류를 선택했다. 하지만 동유럽의 안정도 약속함으로써 독일이 앞으로 동서유럽의 교량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물론 독일의 교량역할 수행에는 경제력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구 8천만,GNP 1조3천억 달러의 경제력은 유럽경제의 기관차로 유럽통합을 가속화시키는 한편 동구의 개방과 때맞춰 중부유럽에 마르크화 경제권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서 블록경쟁시대로부터 평화공존의 시대,다변화시대로 접어듦으로써 개별국가간의 협조가 중요성을 더할 것이며 독일은 우수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유럽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독일의 행보를 결정짓는 데는 이밖에 독일내의 정세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은 지난 1년동안 소련의 전승국으로서의 간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나토잔류 결정을 내려 독자성을 과시해 왔다. 미ㆍ영ㆍ불도 점령국으로서의 권한행사보다는 독일의 주권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이런 점에서 오는 12월에 치러지는 전독선거는 향후 독일정세를 결정짓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지난 동독선거에서 참패,서독 정치지도에서처럼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할지 의문시 되는 겐셔 외상의 자민당,서독지역에서 대두 가능성을 키워 온 공화주의 극우세력 등이 얼마나 지지를 획득하느냐,기민당이 걷고 있는 대서양주의(Atlanticism)를 사민당도 계속 수용할 것인가 등등 향후 유럽질서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많다. 여기에 동독지역은 서독과는 달리 동독이 독일민족의 고유한 문화,진보적 전통 등 긍정적 요소를 계승한 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정치선전과 반서방 반나토적인 정치선전이 되풀이 돼 왔기 때문에 중립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꽤 남아있는 상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선거를 통해 보여주는 결과는 독일이 장래에 크든 작든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독일의 발언권은 벌써부터 높아지고 있다. 이미 소련은 독일을 UN안보리의 6번째 상임이사국으로 천거,각국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이미 확보된 국제적 지위,중부유럽을 뒷마당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경제력,45년간 과거와 단절한 채 쌓아온 민주적 기본질서 등 독일이 국제질서의 파괴자라기 보다는 신질서 창조의 주역으로 활동할 배경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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