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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르기스공,주권선언/국호서 사회주의 삭제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소련 중앙아시아 지방의 키르기스공화국은 국호에서 「소비에트」와 「사회주의」란 단어를 삭제하고 「키르기시아」로 개칭하는 한편 공화국이 천연지원에 대해 전면적인 통제권을 행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주권선언을 승인했다고 프라우다지가 12일 보도했다.
  • 노대통령 방소 계기로 본 두나라 관계사

    ◎극동패권 겨냥,러시아함대 1854년 첫 입항/거문도 상륙뒤 한달동안 동해지역 실측/열강침탈 막으려 1884년 조·로조약/노·일전에 지자 공식관계 끝나… 일제땐 독립운동의 무대로 근대에 들어와서 한국과 러시아가 외교관계를 정식으로 맺게 되는 것은 1884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관계의 수립에 앞서서 러시아인과 한인들 사이의 교섭관계가 선행되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1850년대 초반에 러시아와 미국은 일본의 개항문제를 둘러싸고 서로 경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이때에 러시아의 해군중장 푸티야틴은 대일교섭을 위하여 마닐라에서 북상하여 나가사키로 가는 도중 분산된 함대의 집결장소로 거문도를 지적하였다. 1854년 4월2일 푸티야틴의 기함 팔라다호를 위시로 러시아함대는 5일간 거문도에 상륙하였다. 러시아함대는 계속 북상하여 4월20일부터 5월 중순까지 약 1개월간 한반도의 동해지역을 실측하기도 하였다. 푸티야틴은 또한 강원도 봉천군 금난진과 함경도 안변부 화등해진,영흥부 고령사 대암진 등에 상륙하거나 정박하였다. 이러한 사건은당시에 빈번하게 출몰하였던 많은 이양선사건의 하나를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당시에 러시아는 조선을 개항시키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었으므로 그 이후의 다른 특별한 관계는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아는 19세기 중엽에 극동으로의 진출을 활발히 하게 되어서 1858년에는 아이훈조약을 통하여 아무르지방을 러시아영토로 편입하였고 1860년에는 이어서 북경조약을 체결하여 우수리지방을 러시아 영토로 편입시켰다. 그리하여 연해주를 통하여 조선과 러시아는 국경을 맞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히 러시아와 조선과의 관계가 일어나는 조건을 만들게 되었다. 1863년에는 조선에서의 흉년을 계기로 함경도의 농민들이 국경을 넘어 연해주로 이주함으로써 재소 한인의 첫 이민그룹을 형성하였다. 이어서 많은 한인들이 연해주로 속속 이주하였고 이들 한인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양측간의 교섭도 이루어졌다. ○흉년 못견뎌 국경 넘어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시의 극동의 정세로서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들은 한반도를 침탈하여자신의 영향권 아래에 두려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당시의 조선정부는 러시아에 대하여 대단한 공포의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에 기대어 나라의 독립을 유지해 보려던 계획이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조선정부는 방향을 바꾸어 적성국이었던 러시아를 끌어 들였다. 청에 대한 견제세력으로,그리고 영국과 일본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삼으려 한 것이다. 이때에 또한 러시아측으로서도 코르프가 프리아무트 총독으로 부임하면서 동아시아정책을 적극화 하여 일본의 한국지배를 막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와 한국과의 외교는 급진전되어 1884년 7월7일에 처음으로 공식적인 국교를 수립하게 되는 것이다. 조선과 러시아의 첫 외교관계는 이같이 열강의 침입을 외교적 균형을 통해 회복하려는 조선의 노력과 그 열강의 일원으로서 동아시아정책을 강화하려던 러시아의 정책이 만남으로써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와의 국교수립 이후의 조선은 아직 자주적인 역량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국가의 외교적 힘이 강화되는 것이 아니라 침략하고 있는 외세에 의존하여 문제를 풀어보려는 의존심만 키워주었고 그것조차도 결국은 만족되지 못하였다. ○1896년 친로내각 러시아는 결국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국의 이권을 위하여 한국에 진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러시아와의 관계 이후에 친러세력이 조정에서 형성되었으며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을 삼국간섭을 통하여 일본의 세력을 견제한 러시아의 외교적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여 친러세력은 더욱 더 강화되었다. 바로 이렇게 강화된 친러세력의 형성으로 인하여 1896년에는 아관파천이 일어나고 친런내각까지 성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친러내각의 성립은 러시아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해 주는 역할 밖에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강화되어가는 러시아세력과 한반도의 식민지화를 기도하던 일본과의 대립은 드디어 1904년에는 러일전쟁으로 폭발하였고 이 전쟁에서 일본이 기선을 제압하면서 1904년 5월18일에 한로 조약은 폐기되어 공식적으로 한로관계는 차단되고 만다. 한로조약의 폐기 이후 한국은 얼마 안되어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 상태로 1945년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공식적으로 외교적 관계는 없었지만 한국의 정치적 지도자들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다양한 형태를 통하여 여러 각도에서 이루어졌다. 일제에 의하여 나라를 빼앗긴 한인들은 노령으로 정치적 망명을 하여 거기에서 독립운동의 꿈과 실질적 힘을 키워나갔다. ○북방정책의 결실 맺어 또 1917년의 러시아의 10월혁명 이후에는 소비에트정부의 민족해방운동의 지원을 기대하고 민족운동자들로 하여금 러시아와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많은 노력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역시 한인들은 나라가 없는 상태에서 소련의 지원을 기대한 것이므로 이 기대는 종종 기대 수준에 못미쳤을 뿐 아니라 민족운동의 발전에 역행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1921년 6월에는 자유시 사변이 일어나고 1925년에는 일로협약에 의하여 한인의 독립운동이 또다시 제약을 받았으며 그외에도 소련은 자주적 민족운동세력이 새로운 한국건설의 주역이 되는 것을 허용치 않았다. 이로써 1945년 해방 이후에도 패권주의에 입각하여 미국과 더불어 남북한을 분단시키고 북한에서도 자주적 성격의 정권이 성립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게다가 분단된 한반도에 냉전논리를 강요하면서 소련은 북한을 사회주의국가로 간주하고 일방적으로 지원하였고 그 결과 남한은 소련과 적대적인 채로 남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기본적으로 1985년 소련에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기간중 냉전논리의 현실적 적용의 결과 1950년에서 1953년까지 피비린내나는 내전이 있었으며 이는 스탈린의 승인에 의한 것이었다. 전쟁이 끝난후 한국과 소련은 서로 적의 상태에서 남남이었다. 이 기간중 1978년 KAL기 무르만스크호수 기착과 같이 외교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소련이 한국에 대하여 인도주의적 일반원리를 따라서 행동한 적도 있었지만 1983년에는 KAL기를 격추하여 2백69명의 승객을 전원 사망케 하는 비인도적인 행위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는 것이며 이해관계가 있을 뿐이다. 소련은 남한의 경제력을 새롭게 평가하고 있으며 동북아의 냉전구도를 바꿀 필요를 느끼게 되었고 남한 역시 통일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위해 냉전논리에서 탈피하여 1988년부터 북방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한국과 소련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되어 1990년 6월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양국의 정상이 회담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9월에 한소 수교를 이룬 것이다. 그리고 12월13∼16일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하여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공식적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이렇게 하여 한로관계의 역사상 두번째로 다시 국교관계를 가지게 되는 한국과 소련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양상을 가지고 있다. 소련은 더이상 한국에 대해 패권주의를 강요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며 한국은 더이상 저개발국이 아니다. 한국은 경제면에서 소련과 대등한 위치에서 교섭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며 한국민이 원하면 한국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평화적 통일정책은 소련의 기본적인 정책과 어긋나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은 한국과 소련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며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실질적으로 이루어나가는데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북경TV에 다시 등장한 「동지」호칭/우홍제 홍콩특파원(특파원수첩)

    ◎개방 이후 붕괴된 평등의식 고취 안간힘 『시청자 동지들 안녕하십니까!』(관중동지문 만상호!) 중국전역과 홍콩 일부지역에서도 방영되는 북경 중앙TV의 저녁뉴스시간에 아나운서들이 하는 인삿말이다. 종전에는 그냥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각위 관중문 만상호!)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 중순부터 「동지들」로 바뀌고 있다. 중앙TV의 이같은 호칭변경을 옹호하듯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얼마전 평론을 통해 『우리는 사회주의 정신에 의한 자아완성을 위해 노력하는 동지들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개방개혁을 추진해온 80년대 우리 주변에는 공산혁명이전의 낡은 시대에나 쓰이던 아가씨(소저) 부인(태태)선생이란 말이 다시 범람하기 시작했다』며 경고성 논평을 했다. 인민일보에 따르면 중국에서 아가씨란 호칭은 과거에 주로 기녀나 여자종을 가리키던 것이고 선생은 자기 남편 또는 다른 여자 남편의 높임말로,부인도 과거 지주나 관리의 아내에 대한 존칭으로 많이 쓰였다는 설명이다. 굳이 한국식으로한다면 선생은 「주인님」,부인은 「사모님」「마님」 정도가 될 것 같다. 물론 현재의 중국에서 이러한 말들은 다른 의미로 이해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과거의 예를 들어 언어사용의 반혁명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쨌든 중국 당국은 앞으로 그들 국민이 동지란 호칭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쓰도록 강요할 것 같다. 동구 등 다른 사회주의국가들이 서구식 민주개혁을 단행하는 데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중국 공산당지도자 입장에선 어떻게 하든 국민들이 사회주의 혁명정신으로 더욱 강하게 무장되기를 바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다시말해 개방개혁으로 경제가 발전하는 것은 매우 염원하는 바이지만 정치사상적으론 사회주의 노선을 더욱 굳게 견지하고 싶은 것이다. 중국 근대사에서 동지란 호칭은 손문이 청조타도의 혁명을 주장할 때 쓰기 시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뒤 공산혁명 투쟁기간과 중국 정부수립 이후의 대륙에선 너나 할 것 없이 서로를 동지라고 불렀다.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중국 국민들이 어두운 색깔의 중산복을 입고 혁명을 외치는 등 겉모양이나 의식이 획일화한 구석이 많아서 상호간 호칭이 「동지」로 단일화 하는게 자연스러웠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개방개혁 이후 중국 국민들은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옷차림이 제각기 달리 밝게 바뀌었을 뿐 아니라 의식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또 그동안 해외에 있던 화교들이나 외국인들의 발길이 잦아지면서 상대방에 따라 동지란 말을 쓰기가 거북하게 느껴져서 아가씨·선생 등으로 다양하고 세련된 표현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북경 TV 뉴스시간의 인삿말도 80년대 중반쯤 「동지들」에서 「시청자 여러분」으로 달라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방개혁의 영향외에 중국에서 동지란 호칭이 외면당하는 또다른 큰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 평등의식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된다. 중국의 고위직 당원이나 관리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랫사람이나 일반국민이 자신을 동지라 부르는 것을 대단히 불경스럽게 생각해서 이름뒤에 직위를 붙여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성장·국장·청장하는 식으로불러줘야 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동지」는 본래의 평등개념을 상실하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또는 국민들 사이에서나 간혹 쓰이게끔 천대를 받게 됐고 게다가 개방이 확대되자 이 말을 쓰면 구식의 촌놈으로 놀림받기까지 됐다. 한편 중국 당국은 지난해 천안문 사태 이후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경계심을 더욱 높이고 사회주의 혁명정신을 지키기 위한 국민사상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천안문 민주화요구 시위를 반혁명 폭란으로 널리 선전함은 물론 모택동이 장정끝에 혁명기지로 삼았던 연안참배를 강력히 권유하는 등 혁명정신을 고취시키는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동지란 호칭을 쓰도록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취해지는 언어정책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러한 복고조의 사상교육이 개방바람에 맞서 과연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 1백여 이민족 연방/오늘의 소련 국세

    ◎2천만㎢ 면적에 인구 2억9천만명/12국과 접경… 한인 50만명 거주 추정/개혁추진속 침체경제·민족분규 몸살 한때는 붉은 곰·철의 장막·동토의 나라를 먼저 연상케했던 소련이 노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우리에게 성큼 다가오고 있다. 15개 공화국과 1백개 이상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연방국가 소련은 유라시아대륙의 북부에 위치,세계 육지면적의 6분의 1이나 되는 2천2백40만㎢의 광활한 땅덩어리를 차지하고 있는 대국이다. 동유럽에서 북아시아 및 중앙아시아에 걸쳐 동서로는 1만1천㎞,남북으로는 5천㎞에 달하는 광대한 이 나라는 세계 최장의 국경선을 가지고 있으며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모두 12개국과 접경하고 있다. 인구는 90년 현재 2억8천9백만명으로 중국과 인도 다음의 세계 제3위이며 인구밀도는 1㎢당 13명을 약간 웃돈다. 정식명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 연방이라는 국호가 공식채택된 것은 1917년 11월 혁명으로 제정이 무너진후 22년 12월30일에 개최된 제1차 전소련 소비에트대회에서 였다. 처음에는 러시아연방,자카프카즈연방,우크라이나공화국,백러시아공화국 등 4개 사회주의국가 연방으로서 성립했다. 그뒤 일부 연방의 해체에 따른 새 공화국의 탄생,그밖의 공화국의 가입과 통합 등을 거쳐 지금은 15개의 공화국(러시아 우크라이나 백러시아 우즈베크 카자흐 그루지야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몰다비아 키르기스 타지크 투르크멘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이 소비에트 연방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15개 공화국의 통치구역내에는 각기 상이한 소수민족들이 자치권을 인정받아 20개의 자치국,8개의 자치주,10개의 민족관구를 형성하고 있기도 하다. 민족구성은 러시아인(51%)·우크라이나인(15%)·우즈베크인(6%) 등 12대민족이 전체 인구의 89%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개는 유럽계이지만 아시아계도 상당수 혼재해 있다. 현재 소련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의 수는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는 1백여개 이상의 소수민족 가운데 수적으로 29위를 차지한다. 소련의 공용어는 러시아어이지만 민족수와 거의 같은 숫자의 언어가 민족어로 사용되고 있다. 소련은 1917년 11월7일의 혁명으로 로마노프왕조를 무너뜨리고 탄생한 최초의 사회주의국가이다. 24년 레닌이 죽자 대권을 잡은 스탈린은 28년부터 2차대전까지 3차례의 5개년 계획을 실시,국민경제의 사회주의화와 공업화를 이룩했으며 농업을 집단화 했다. 오늘날 소련이 가진 강대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이때 형성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4년말부터 38년까지 대숙청을 단행한 스탈린은 2차대전 이후 동유럽과 아시아에서 태동한 사회주의국가들의 대부가 됐다. 그후 흐루시초프(53∼64년),브레즈네프(64∼82년),안드로포프(82∼84년),체르넨코(84∼85년) 등을 거치며 가쁜 숨을 몰아쉬던 세계 공산권의 종주국 소련은 85년 3월 현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시대를 맞으면서 개혁과 개방의 탈바꿈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헌법개정을 통해 공산당 일당독재를 포기하고 사유재산권을 인정하는 등 일련의 대개혁조치를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소련은 지금 이같은 개혁조치에도 불구하고 침체된 경제문제와 각 공화국의 분리 독립요구,민족문제등 소 연방체제의 운명을 좌우할 양대난제에 직면해 있는 실정이다. 동구 대변혁의 기적을 만들었던 고르바초프는 민족분규의 확산과 군부의 동요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으며 고르비의 개혁을 지원하려는 EC 등 서방측은 소련의 취약한 경제구조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불확실성 때문에 구체적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특히 심각한 생필품 부족현상은 국민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는 실정이며 70년대 이후 계속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경제성장률,노동생산성의 저하,낮은 투자효율 등은 86년부터 시작된 제12차 5개년경제계획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 「평화의 앞날」 소 학자의 진단

    ◎“반제이념 포기 안하면 북한 설 땅 없다”/한·소 수교로 대외정책 수정 불가피/근본변화 없는 남북회담은 “벙어리와의 대화” 소련 최고회의 상무위원회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러시아」는 최근 역사학자인 안드레이 부츠킨이 기고한 글을 통해 북한이 여러가지 국제적 압력에 못이겨 남북대화에 나서고 있으나 북한의 고위지도부가 「비타협적 반제투쟁」에 관한 스탈린의 도그마와 이데올로기적 명제들을 포기하지 않는한 남북회담의 현실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또 세계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북한이 구원의 궁여지책으로 「주체사상」을 내세우고 있으나 그것이 언제까지 가능할까 하는 것은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지난달 22일 「북한이 동유럽의 길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주체의 아성으로 남아 있을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주간지 「러시아」에 실린 글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문제는 전후 국제관계사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중 하나다. 한반도의 분단에는 남북한외에 미국 소련 일본도 관여돼 있다. 소련이 이들 4개국중 맨처음으로 북한·한국과 완전한 국교를 수립했다. 그러나 이를 「교차승인론」의 실현의 시초로 볼 수는 없다. 「교차승인론」에 따른다면 소련에 이어 중국이 대한민국을 승인하고 미국과 일본이 북한을 승인,국교를 설정하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나 북한 지도부는 이 방안에 줄곧 반대해왔다. 또한 중국도 이 문제와 관련,북한의 동맹국적 공약뿐 아니라 대만과의 관계를 고려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한국도 이러한 방안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있는데 여기에 「열강」의 강권발동의 여지가 있다. 한편 한 소 수교는 한반도 문제해결에 새로운 상황을 낳고 있는 데 이는 소련외교의 공적은 아니다. 오히려 대화를 진지하고 참을성있게 진행하면서 언제나 예의를 지켜온 한국측이 이 문제를 주도한 것이다. 실로 엄청난 재정 경제 무역의 잠재력을 지닌 한국은 붕괴된 소련의 소비시장을 어느정도 회복시킬 수 있게 할 것이며 일부 공업부문에 활기를 부여하여 소련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다. 소련이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유리한 관계인 한 소 수교를 조기에 이루지 못한 것은 동맹국 북한에 대한 공약이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또한 변명이지 원인은 아니다. 소련의 대외정책을 담당하는 국가기구의 저항,그 기구의 허구적 개념설정이 최선의 정책결정을 하는데 방해가 되었던 것이다.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그 정치국 사상가들은 김일성이 「위대한 수령」으로 불리며 북한을 「사회주의 협동체」로부터 격리시키려고 하는 시도에 불쾌감을 가져왔다. 그리고 북한 지도부는 나름대로 페레스트로이카를 눈의 가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쌍방간의 관계는 한계에 도달했다. 김일성은 이미 1986년 모스크바 방문때 고르바초프에게 북한을 방문하도록 초청했으나 그 방문이 아직 실현되지 않고 있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그럼에도 모스크바와 평양간의 관계는 군사적인 면과 대외정책적인 면의 2가지 측면때문에 불안한 상태이나마 유지되고 있다. 특히 군사적 측면에서 양국간의 군사적 협조는 매우 긴밀해 이는아직까지도 소련 의회도,러시아 의회도 감시할 수 없는 시야밖에 놓여있는 문제다. 페레스트로이카 시절에도 소련의 무력적 욕망때문에 반제투쟁이 극동동맹자에게 신형무기를 대량 공급하고 있다. 오늘날 소련 대표단들이 많이 오가는 서울 김포공항은 소련제 미사일들로 공격받을 수 있고 소련제 전투기인 「미그­29」기들도 공습을 준비하고 있다. 모스크바 프둔젠스카야 나베레쥬나야 강변거리에 자리잡고 있는 소련군 장성들은 전과 다름없이 극동지도에다 적대적 지대를 동그라미로 침략의 「3각동맹(워싱톤∼서울∼동경)」이라고 그려놓고 있다. 한편 모스크바와 서울간의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평양의 정치적 대외조건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추진으로 소련과 북한의 입장이 극단적으로 상반되고 있다. 평양 지도자들의 훈계적 어조와 주제넘은 언동에도 불구하고 북한정권은 실로 심한 타격을 입었고 콧대가 꺾였다. 그러나 이는 그 정권,선발된 당료들,나아가 김일성일족의 권력이,국내에서 조작된 그 정치적 구조의 권익이 결정타를 받을 것인지 한국과는 연관이 없는 것이다. 김일성정권은 자신들의 대외정책 구상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할 필요성에 직면했다. 사태는 한반도 문제해결을 위한 평양의 새로운 태도를 필요로 한다. 오늘날 북한 지도부는 한국과의 경제·정치적 경쟁이나 외교적 경쟁에서 참패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서울측에는 유엔가입의 길이 트여 있다. 중국의 입장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북경 지도부가 단독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국과 대한민국 사이에 무역대표부설치 합의가 이미 이뤄졌으며 중국 지도자들이 이데올로기적 정설 때문에 실용주의를 배격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평양측은 한반도문제가 광범위하게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평양측은 자기입장을 세우기 위해 남북대화의 재개를 시도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최근 2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은 눈먼 사람과 벙어리의 대화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교환방문은 무익한 것이 아니다. 그 결실을 평양이 아니라 서울과 모스크바가 거뒀기 때문이다. 한국과 소련은 관계정상화에 유리한 배경이 형성되자 이를 놓치지 않고 행동을 한 것이다. 이 점에서 노태우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개가를 올리고 있다는 평가는 근거가 있는 것이다.
  • 모스크바·겨울·노태우 대통령/이재근 본사 논설위원(서울칼럼)

    일반적으로 미국인은 실용주의적이고 소련인은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보지만 사실은 정반대이다. 개인생활이나 정치면에서도 미국에는 이상주의자,도덕주의자가 훨씬 더 많고 소련에는 냉소적인 현실주의자,실용주의자가 더 많다는게 소련 연구가들의 분석이다. 소련정치도 겉으로는 이데올로기적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산주의 이상에 따라 움직여 왔으며 대부분의 경우 현실적인 국가주의의 이해와 여러 사회집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운영돼온 것이다. 도의적인 이상이나 이데올로기에 좌우되는 현상은 소련보다는 미국의 정치에서 찾을 수 있다는 설명도 있다. 국민성도 그러하다. 소련 연구가들의 관찰이나 많은 여행기들을 살피면 소련 국민들,특히 러시아 국민들처럼 솔직하고 개방적인 생활태도를 갖고 있는 민족도 드물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서민의 생활과 대인관계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그들은 대개 자연스런 감정으로 솔직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되고 있다. 스탈린시대의 거칠고 얽매인 통제사회를 거치면서도 사람들의 행동은 거기에 물들지 않았고구김살없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전후 시베리아에 억류되었던 한 일본인 작가는 그 저서에서 러시아인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러시아인은 밖에서 세사람만 모이면 노래를 부른다. 그들이 부르는 합창소리가 바람에 실려 내가 있는 곳까지 들린다. 정말 소비에트식의 밝고 낙천적인 풍경이다. 소비에트권력의 침울한 어둠과 민중의 밝고 낙천적인 감성사이에는 도대체 어떤 관계가 있을까. 「볼가의 단가」에서 느껴지는 애조띤 감성은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점이다』 그렇게 볼때 오늘날 저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공개)는 이 러시아적 소련 민족성의 필연적인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라는 한 탁월한 지도자에 의해 그것이 시대적으로 표출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노선을 천명한 최대의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소련적 사회주의가 막다른 곳에 달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의 기둥은 당연히 경제개혁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고르바초프의 모든 개혁정책은 결국은 경제활성화를 위한 것이라고 해도 좋다. 60년대의 전반까지도 대부분의 소련국민은 소련의 사회주의 체제가 인류보편의 가치를 갖는다고 믿고 있었다. 60년대 중반이후 일부 자유주의적인 지식인들이 체제비판의 소리를 높인바 있었으나 극히 한정된 소수였다. 특히 경제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미 50년대 후반부터 경제개혁의 문제가 제기되어 60년대초에는 「이윤의 도입」을 둘러싼 경제논쟁도 빚어졌다. 65년에는 이른바 「코시긴 개혁」이 실시되는등 스탈린체제를 뜯어고칠 필요가 있다는 점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각되고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60년대까지는 사회주의와 그 이데올로기의 신앙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70년대가 되자 소련체제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이 이제 누구의 눈에도 분명해졌다. 60년경 허풍쟁이 흐루시초프는 『70년에는 미국을 따라잡는다. 80년대에는 능력에 따라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취하는 풍요한 공산주의 낙원이 도래한다』고 세계에 선언했다. 당강령에도 그렇게 기록하게 했다. 그런데 70년대가 되어도 소련에서는 고기나 소시지,기타 기본 필수품을 입수하기 위해 서민은 뛰어다니고 긴 줄을 서고 악전고투 하지 않으면 안될만큼 경제상태가 나빠졌다. 지방에서는 육류가 몇년씩 상점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사태로까지 되었다. 사람들은 드디어 큰 환멸을 느꼈다. 70년대에 이르러 공산주의는 급속히 퇴색하고 풍화되어 버렸다. 당의 지도자가 아무리 사회주의체제의 우월성을 설득해도 매일처럼 생필품을 사는 행렬꽁무니에 몇시간씩 서있어야 하는 서민들은 냉소했다. 많은 지식인들이 독주 보드카에 탐닉하며 울분을 풀고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신할 가치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소련을 우리는 어느만큼 아는가. 어느 사람의 표현대로 「무서운 속도」로 북방으로 달려간 우리에게 있어 소련은 정말 어떤 존재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아직 그들에게 느끼는 우려,당혹,두려움은 어디에 기인하는 가도 잘 살펴야 한다.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가 상대를 너무 모른다는 데서 오는 것이다. 구한말의 짧은 기간을 제외하고는 직접 그들과 교류한 역사가 없고 특히 냉전체제하에서는 원천적으로 접촉이 불가능했다. 더구나 고르바초프 정권하에서는 최근 몇년동안 그들 자신이 너무 급격하게 변하는 중이어서 마치 움직이는 표적을 맞히는 것 같은 어려움도 있다. 그들이 대국이라는 콤플렉스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들이 「진짜 크렘린」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소 수교가 이뤄졌다. 거기에다 노태우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 전후 처음으로 아니 사상 처음으로 우리의 국가원수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 「입성」하는 것이다. 노대통령은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회담할 것이고 붉은 광장을 거닐 것이며 크렘레프스카야 제방도로를 달려 톨스토이가를 지나칠 것이다. 무엇보다도 붕괴된 대제국 오늘의 소련 대통령과 한 소간 정치·경제·문화협력을 논의하다가 때로는 과거를 바탕으로 역사도 얘기할 것이다. 바로 그 대목이 중요하다. 그럴적에 대통령은 반드시 다음과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 조용히 얘기해야 할 것이다. 즉 멀리는 노일전쟁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제에 의한 한반도흥정,구러시아제국과 구한말의 관계에 이르러야 한다. 이어볼셰비키혁명을 전후한 한반도의 소용돌이에도 언급될 것이고 그 완전한 식민지화도 회상돼야 할 것이다. 전후 해방·독립·분단에 언급한데 이어 드디어 6·25 동족전쟁에서의 소련의 책임도 지적돼야 할 것이다. 82년의 무자비한 대한항공(KAL)여객기 격추사건은 또 어떻게 언급될 것인가. 나흘간의 짧은 일정속에 이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소 관계의 진정한 개선과 앞으로의 전개를 위해서는 그 「모든 것」이 역사와 우호협력의 이름으로 반드시 여과돼야 한다. 그것이 한 소 관계의 진전과 노대통령의 모스크바 입성을 지켜보는 국민의 눈초리인 것이다.
  • 과학·기술분야 교류/학술·문화분야 교류(한·소 새 지평:5·끝)

    ◎국내산업에 첨단기술 접목 기대/정보교류 넓혀 경쟁력 강화 계기로 과학은 국경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순수한 과학이 정치적·군사적으로 응용될 때 국가이익에 큰 영향을 주는 탓으로 국가간 과학협정 체결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중에는 양국간 과학기술협정이 체결됨으로써 과학정보·인적 교류 및 공동연구 추진 등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게 됐다. 이번 협정조인에 앞서 지난 9월말 최영환 과학기술처 차관의 방소기간중 가조인이 있었으며,과학분야의 교류는 88올림픽 무렵부터 시작됐다. 즉 KIST 도핑콘트롤센터를 통한 기술이전 및 과학자의 왕래가 있었고 올 들어 소련의 주요 기술수준에 대한 조사분석이 국내에서 한차례 이뤄졌다. 소련은 국가과학기술프로그램,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업기술 공동협력대상 1백개 기술 등에 대한 자료 등을 한국에 제공했으며,지난 11월 소련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메드베데프 위원장 내한시 보다 상세한 기술정보를 보내왔다. 11월말 내한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미하일로프 수석부위원장은 한국과학자 1명을 소련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추전해줄 것을 공식요청했다. 또한 마하일로프는 『소련은 기초과학이 발달돼 있다. 다만 시장체제에 대한 개념이 없어 중요 과학기술이 산업화로 응용되지 못했다』며 한국이 원하는 핵심기술·첨단과학기술 등 무엇이든지 줄 수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지금까지 우리의 과학기술 교류는 미·일·유럽 등 서방선진국에 편향돼 왔었다. 그러나 선진국은 최근 우리를 견제,기술을 팔지 않고 있다. 『우리가 현재 소련과의 과학기술 협력에서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은 어떻게 우리 과학기술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고 서방과의 기술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을 찾아내 가져오느냐 하는 문제이다』 백창현 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의 지적이다. 『소련은 초강대국으로 세계를 지배했다. 그러나 외부접촉 없이 폐쇄국으로 살아와 우리가 필요한 기술을 어디서 갖고 있느냐를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난 9월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KIST 박원희 원장은 어려움을 말했다. 『수학공식처럼 소련은 기초과학이 발달했고,한국은생산기술이 앞섰다느니하는 섣부른 기대·판단은 금물이다. 장기적·미래지향적 시계를 갖고 접근해야 한다』 KIST 장재중 국제협력실장의 지적이다. 소련은 1917년 볼셰비키혁명으로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한 이래 1980년대 중반까지 중화학공업 및 군사기술 위주의 산업구조와 기술발전으로 항공·우주기술·신소재·생명공학·원자력·입자가속기술·조선 및 발전기술분야에서 세계 최대의 기술대국이 되었다. 소련에는 수천 개의 연구소와 1백50만명의 연구원이 있다. 그러나 각 공화국마다 횡적 교류가 없어 필요한 것을 찾아내는 일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임은 틀림없다. 『정부출연연구소 등이 산업화할 수 있는 기술을 찾아내고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후 기업 쪽에 이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자들은 성급한 접근대신 대소 과학교류 방법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시베리아 유물 공동탐사 큰 관심/예술단 선별초청,문화역조 없어야 한소간의 학술·문화교류는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현실화되었다. 동서 냉전체제의 벽을허물 수 있는 계기가 바로 서울올림픽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두 나라의 문화교류는 국제학술회의와 예술행사로 나타났다. 이 무렵 소련의 학자들은 물론 문인과 화가,그리고 음악·무용가를 주축으로 한 공연예술단이 쏟아져들어왔다. 이들을 통해 소련에 우리 문화를 알리는 데 어느 정도 공헌했고 또 우리는 생소한 소련 문화예술을 직접 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 교류는 소련 쪽에서 더 많이 우리나라를 찾는 문화교류의 역조현상을 가져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예술분야의 경우 올해 소련은 4개 분야 11개 단체 7백39명 규모의 예술단이 내한공연을 가진 데 비해 우리는 2개 분야 6개 단체 2백23명이 소련공연을 가졌다는 사실은 이를 잘 입증한다. 이는 한소간의 제도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그 첫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소련 쪽의 전략적 문화진출 시도에 우리의 언론사나 대기업들이 말려들어 공연예술단을 경쟁적으로 초청한 것도 불균형현상을 가져온 요인이 되었다. 특히 소련 쪽의 공연·전시행사는 수준이 높을 뿐 아니라대규모적인 상업성교류라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소규모의 비상업적 교포 위문행사에 머무르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문화교류는 주최기업이나 관계 국책기관이 경비를 부담하는 경우이고,소련은 엄청난 공연료를 벌어가는 실정이다. 한 언론사가 주관한 창극 「아리랑」 방소공연 때 주관사와 관계기관이 3억5천7백만원의 경비를 썼다. 반면 올해 내한공연에 나선 소련 국립모스크바서커스단은 83만달러를 받아간 것은 한 사례로 지적될 수 있다. 학술교류도 우리는 거의가 민간연구소나 대학 부설 연구기관에 의해 추진되고 있으나 소련은 국책연구기관인 소련과학원에 의해 주도되어왔다. 지금까지 한소 학술교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가운데 어느 정도 가시화시킨 국제퇴계학회나 한양대 부설 중소연구소,경남대 부설 극동문제연구소 등이 소련과학원이나 그 산하기관을 교류창구로 했다. 국제퇴계학회와 소련과학원이 지난 여름 모스크바에서 공동주최한 퇴계학학술회의는 한국학의 본격적인 소련진출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주로 사회과학분야에서 한소 학술교류를 추진해온 중소연구소나 극동문제연구소도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었다. 문화인류학적으로도 소련 시베리아지역은 우리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그래서 두 나라는 고고유물 전시와 고고유적 발굴이 공동관심사로 떠올랐다. 소련과학원 러시아 분소가 지난 여름 국제학술회의에 참가한 한국 고고학자들에게 블라디보스토크 구석기 유적 발굴에 참여해줄 것을 제의하는 등 학술협력의 가능성도 조용히 모색되고 있다. 지금까지 한소 문화교류는 역조현상을 보이는 가운데 소련의 상업적 공연물이 쏟아져들어왔다. 이제는 우리 문화발전에 직접 도움이 될 수 있는 실리유입과 더불어 우리 문화예술이나 한국학을 보다 본격적으로 소개할 북방문화정책 수립이 시급한 것이다.
  • 중국 경제개혁 가속화 전망/개혁파,「보·혁대결 승리」의 안팎

    ◎보수리더 이붕 총리,“개혁지지” 공식천명/등소평 건재 입증… 강택민체제 강화될 듯 개방개혁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지속돼왔던 중국의 보수 대 개혁의 힘겨루기는 요즘들어 개혁세력의 승리로 끝날 것 같은 조짐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중국 지도층은 내년부터 시작되는 8차 5개년계획(91∼95년)을 포함한 향후 10년 동안의 경제운용과 관련,심도있게 개혁을 추진하려는 측과 중앙통제에 의해 긴축과 안정을 유지하려는 보수파가 서로 맞서 팽팽한 대결을 보여왔다. 이러한 양상은 올 하반기 들어 더욱 심화돼 개방개혁의 주창자였던 등소평이 지난 7월이후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는 동안 진운 중앙고문위 주임,이붕 총리 등 중앙통제식 사회주의경제 신봉자들인 강경보수파는 기회만 있으면 개혁정책을 비난하고 사회주의경제의 틀 안에서 안정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 해왔다. 그렇다고 보수파가 무작정 개혁 불가론만을 내세운 것은 아니고 과거와 같이 연평균 9% 정도의 급속한 성장을 보이는 개혁의 가속화 현상과 이에 따른 방만한 지방경제의 자율성을 경고했던 것이다. 보수파는 또 자본주의식 시장경제에 의해 국가발전을 꾀하기에는 중국의 인구가 너무 많고 국토가 광활하기 때문에 강력한 중앙통제에 의해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주의계획경제를 강조했다. 보수파들은 과거 10년간의 개방개혁이 과열경제현상을 불러 일으키고 이에 따라 부정부패·인플레 등의 부작용이 만연했던 사실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보수파에 대한 반발은 이미 오랫동안 고속성장의 단 맛을 본 중국의 동남부 개방지역으로부터 특히 거세게 쏟아져 나왔다. 광동·복건성 등 개방지역 지도자들은 중앙의 보수파들이 개방지역으로부터 보다 많은 세금을 거둬 재정의 확대를 꾀하고 자율적인 정책 결정권을 축소하려는데 대해 「손에 손잡고」식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또 개혁지향의 중국내 경제전문가들도 잇따른 토론회를 통해 이미 10년 이상 계속돼온 개방개혁의 속도를 늦추고 중앙통제에 의한 긴축과 안정을 고집할 경우 중국경제의 침체현상이 심화될 뿐 아니라 4백50억달러에 이르는 외채상환의 길이 없어진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렇지만 보수파들의 주장이 꺾여지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등소평의 저력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당초 북경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인 10월 중순쯤 열릴 예정이었던 제13기 중앙위 7차 전체회의(7중전회)에 대비,이붕 총리가 지난 9월 8차 5개년계획 초안에 관한 보고서를 등에게 제출했을때 등은 『개혁방안이 거의 없다』며 매우 불쾌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지난 10월20일 국가경제체제 개혁위 진금화 주임은 당간부회의에서 『등소평동지의 뜻을 따라 개방개혁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눈길을 끌었다. 한편 이붕 총리는 지난달 30일 일본 무역사절단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는 등소평동지의 정책노선을 견지할 것이며 강택민 당총서기를 영도집단의 핵심으로 삼아 굳건히 뭉쳐 일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총서기와는 최대의 라이벌관계이며 강경보수파의 대표격인 이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86세의 고령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등의 손에 아직도 중국의 대권이 쥐어져 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등은지난해 천안문사태 이후 상해시장 출신에 지나지 않았던 강을 당총서기로 임명한 데 이어 자신의 마지막 공직인 군사위원회 주석자리까지 물려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혁파인 강은 당과 군의 최고실력자가 된 셈이지만 이붕을 비롯한 정치선배들은 그의 권위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관측통들은 이총리의 이번 발언으로 미뤄볼때 앞으로 중국의 경제정책은 강총서기의 주도에 의해 상당기간 개방개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될 게 틀림없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한편 명보등 홍콩지들은 최근 개혁파의 우세를 반영,이붕 총리의 직계로 계획경제 신봉자인 경제담당부총리 요의림이 오는 25일 개최될 제13기 중앙위원회 7차 전체회의(7중전회)에서 퇴진할 것으로 보도했다. 요대신에 조자양 전 당총서기를 도와 개혁정치를 추진했던 전기운 부총리가 다시 경제를 맡아 개혁을 가속화할 것으로 홍콩지들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보수파의 후퇴가 전략적일 뿐이란 주장을 하고 있다. 비록 보수파들은 현재 등의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할 수 없는데다 개방지역 책임자들까지 계획경제를 강화하는데 크게 반발하는 등 7중전회를 앞두고 대세가 불리한 상황이기 때문에 「개혁가속」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경제운용에 있어 개혁의 부작용이 발생할 경우 이붕 총리를 비롯한 강경보수파들은 개혁파를 곤경에 몰아 넣고 정책방향을 중앙통제식 계획경제로 급선회시키는 역습을 가할 가능성이 많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 「자유경제출판문화」 대상에 서상목씨 「한국자본주의…」

    전경련이 제정한 「자유경제출판문화상」 제2회 대상에 서상목의원이 쓴 「한국자본주의의 위기」가 선정됐다. 또 우수도서에는 복거일저 「현실과 지향」,김정렴저 「한국 경제정책 30년사」,명순희역 「대실패」 등 3편이 뽑혔다. 이밖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북한은 변화하고 있는가」「신국부론」「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서의 권위와 불평등」등 5편이 추천도서로 선정됐다. 이들 수상작에 대해서는 전경련이 각각 5백만∼2천만원 상당의 도서를 구입,전국 대학 및 공공도서관에 배포할 예정이다. 대상을 받은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는 우리 경제가 자유시장 경제체제하에서 발전하면서 안게된 강점과 약점을 분석,앞으로의 발전방향을 쉽고도 명확하게 제시했다는 평을 받았다. 대상수상자인 서상목의원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경제학 박사로 한국개발연구원(KDI)부원장 등을 거쳐 13대 국회에 민자당 전국구로 진출했으며 현재 당내에서 제4정책조정실장을 맡고 있다.
  • 북한의 대외정책 어떻게 변할까(한·소 새 지평:4)

    ◎평양의 서방접근 가속화 예상/대소 반발엔 한계… 대중 경사 심화/대일 수교 앞둬 남북대화는 유지/「송년음악회」 유보 위협은 「방소 불만」 표시인 듯 지난 10월1일의 한소 수교 이후 북한의 대외정책은 크게 볼 때 다음과 같은 골격을 유지해 오고 있다. 첫째 로동신문 등 관영 언론매체를 통해 소련의 변신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외교관계의 틀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둘째 대소 관계에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대신 또 하나의 사회주의 종주국인 중국에 대한 접근을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셋째 대일 수교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미국 등 서방세계와의 관계개선에도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남한에 대한 불쾌감을 표시하면서도 제한된 범위나마 남북대화를 유지해 오고 있다. 그러면 노태우 대통령의 방소가 북한의 대남정책 및 대외정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에 대해 국내외의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측면에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감 및 한소 두 나라에 대한 불쾌감은 증폭될 수 있으며 이에따라 남북관계 및 북­소 관계의 경색화를 가져올 수 있으나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이를 계기로 남북대화를 중단하거나 소련과의 기본적인 외교관계의 틀을 파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관측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한소 국교수립 이후 나름대로 외교정책의 추진방향을 설정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가 눈에 거슬리기는 하겠지만 이것에 충격을 받고 또다시 정책적 전환을 도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오히려 북한은 한소 수교에 따른 국제정세의 변화가 그들의 예상했던대로 구체화되고 있음을 확인,10월 이후 추진해온 외교노선을 더욱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북한이 최근 노 대통령의 방소에 따른 불쾌감으로 베를린 3자회담에 참가했던 범민추대표 3인의 구속사건을 빌미삼아 「90송년통일전통음악회」(9∼10일)와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11∼14일)의 불참을 시사하고 있으나 북한으로서는 최대 현안문제인 대일 수교를 서둘러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남북관계의 악화라는 장애물을 구태여 만들지는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한소 수교가 이미 이뤄진 이상 양국간의 관계긴밀화를 막는다는 것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와 관련,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 또한 높다. 이와 관련,정용석 교수(단국대 국제정치)는 『단기적으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감은 더욱 심화되고 남한에 대한 증오감도 보다 격렬하게 표출될 것이다. 북한은 또 소련의 대한 접근에 대한 반발로서 일본을 비롯한 서방세계에 대한 접근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그러나 「개방에 따른 김일성 신격화의 붕괴」라는 부작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어 대서방 접근노력에 있어서도 일정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의 대소 불만 역시 군사·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해 문자 그대로 「불만토로」에 그칠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만 북한과 중국과의 관계긴밀화는 어느 때보다도 강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장기적 측면에서 볼 때 한소 관계의 밀착은 북한의 체제를변화시키는데 간접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게 정 교수의 평가이다. 유석렬 교수(외교안보연구원·국제정치)는 북한은 이미 한소 수교 당시 로동신문을 통해 「달러 몇 푼에 팔고 사는 외교관계」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소련에 대해 강도높은 불쾌감을 표시해 왔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의 변화에 저항할 만한 다른 수단을 찾지 못하고 북­소간의 외교단절 등의 가능성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은 대소 불만의 표시로 소련에 대해 직접적인 조치를 취하기보다 대남 관계에 어떠한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유 교수의 분석이다. 즉 남북관계의 진전을 바라는 남한주민들에게 실망을 던져줄 수 있는 방법,예를 들면 송년음악회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는다든가 남북고위급회담을 연기한다든가 하는 조치를 통해 불만을 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때문에 유 교수는 북한이 최근 인원수까지 확정,통보해온 송년음악회에 참가의사를 유보하고 있고 또 고위급회담의 개최 여부 역시 불투명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베를린회담 참가자의구속」이라는 표면적인 이유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방소가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소련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해도 북­소의 기본적인 외교관계는 유지될 수밖에 없으며 남북고위급회담 등 남북대화도 「잠정합의」된 날짜를 연기할 수는 있으나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이 3차 남북고위급회담과 관련,느닷없이 실무협의를 제의해 왔던 것은 이같은 사태를 염두에 두고 개최연기의 명분을 삼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씻을 수 없다는 것이 유 교수의 분석이다.
  • 「모스크바 대좌」의 파급 효과(한·소 새 지평:2)

    ◎대중관계 정상화의 촉매 기대/「서방편향」 탈피,전방위외교 구축/아주 친북 국가와도 협력길 넓혀 한소 수교에 이은 노태우 대통령의 12월 중순 방소는 그 동안 우리 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왔던 방북외교의 3거봉 중 「북극 곰」 봉우리를 정복하면서 동시에 본격적인 정지작업에 들어가게 됐음을 뜻한다. 아울러 나머지 2개 봉우리인 북경봉과 평양봉의 정복도 이로 인해 시간문제일 것으로 관측된다. 그만큼 한소 수교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지역의 정세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수교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 연내 노 대통령이 소련을 방문한다는 사실은 양국 관계가 수교 이후에 급속도로 밀착되어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따라서 노 대통령 방소 등은 성숙기에 접어든 북방외교에 또다른 날개를 달아준 것이며 바로 그 점은 남북 관계개선 및 한중 관계정상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견인하는데 주춧돌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남북 관계개선 전기 그리고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 등 아시아지역의 미수교 사회주의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탄자니아 등 친북한 노선을 걷고 있는 아프리카 전선국가들과도 차근차근 관계정상화를 꾀할 수 있도록 만드는 동인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러한 한소간의 우호적 분위기가 한중 관계개선에 엄청난 효과를 미치리란 점이다. 아직까지 북한을 의식,대한 관계개선에 있어 신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중국 당국으로서는 수교에 이은 한소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대한 관계개선 속도를 빠르게 조율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한·중 수교 예상 또한 노 대통령의 방소로 인해 내년 4월께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의 방한이 거의 확실해지는 등 한소관계의 급진전은 한반도 및 동북아지역에서의 소련 영향력이 증대됨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대한 관계개선에 적극성을 띨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여하튼 중국은 노 대통령 방소를 계기로 지난 10월말 한국과 합의한 무역대표부 교환설치 수준을 격상시키는 문제를 긍정 검토할 것으로 예측된다. 사실 무역대표부는 이곳에 파견되는 정부공무원이 외교상의 면책특권을 향유하는 등 준외교공관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양국간에 양해가 된 만큼 중국측의 이같은 대한 관계정상화 움직임이 뚜렷해지더라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양국간 무역대표부는 그 기능과 역할수행에 있어 한소간의 영사처개설보다는 한 단계 높은 것으로 분석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개선의 행보가 속도를 더할 경우 빠르면 내년 상반기중에 역사적인 한중 수교가 이뤄질 가능성이 많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와 함께 적어도 92년도까지 노 대통령이 북경을 방문,등소평·강택민 등 중국 최고지도자들과의 정상회담을 갖는 시나리오까지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같은 예상스케줄은 다분히 기대섞인 우리측의 「희망사항」에 그칠 공산도 있다. 왜냐 하면 북한에 대해 느끼는 중국측의 이념적 유대감이 예상보다 깊은 것으로 관측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치적인 측면 말고도 외교적 측면에서 이번 노 대통령방소는 종전의 대서방 편향의 절름발이식 외교를 지양하고 명실상부한 전방위 입체외교를 정착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해 줄 것으로 읽혀진다. 특히 전방위 입체외교야말로 우리 정부의 국제적 지위고양에 한몫을 톡톡히 하는 것은 물론 유엔가입·북한사회개방 등 한반도 내부적인 현안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으로 판단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이번 방소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 같다. 지금까지는 미수교 사회주의국가들과 수교만 달성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해왔고 또한 이를 북방외교의 성과로 치부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소 경제진출 및 양국간 경협의 본격착수를 의미하는 이번 방소는 아직까지 미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대동구권 경제협력을 촉진시키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앞으로 미수교국과 국교를 수립하면서 이에 따른 경제적 실익도 다시 한 번 생각케 하는 효과도 지닌 것으로 풀이된다. 결과적으로 이번 방소는 북방외교의 내실다지기에 확실한 기여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방외교 내실 다져 이에 따라 국제무대에서의 한국 발언권도 크게 강화될 것 같다. 이와 관련,내년 1월 가이후(해부준수) 일 총리,3월 부시 미 대통령,4월 고르바초프 소 대통령 등 한반도 주변 3강 지도자의 연쇄방한은 마치 서울이 세계정치의 중심인 양 그 성과 여부에 관계없이 국제정치적으로 상당한 비중이 두어질 것으로 기대된다.
  • 노대통령 방소의 정치·문화사적 의미

    ◎우랄산맥 넘어 동서화해의 새 이정표로/한반도안정·남북통일 앞당길 중요변수/시베리아 자원 발굴·인문과학 교류 기대 오는 12월 중순 있을 노태우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우리나라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이루어지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한소 정상회담이 10월1일의 양국 국교정상화로 이어졌다면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 및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의 회담은 양국간의 실질관계를 여는 또 하나의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노 대통령의 방소를 계기로 한소 양국간 정치·경제·과학분야 등의 협력문제와 재소 한인문제 및 앞으로의 양국관계에 대한 전망 등을 김열규 서강대 교수와 최평길 연세대 교수에게 들어본다. 【대담=김열규 서강대 교수·최평길 연세대 교수】 ▲최평길 교수=노태우 대통령의 이번 소련방문은 지난 6월4일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10월1일 역사적인 양국 국교정상화 등으로 비롯된 양국간 공식적인 관계개선을 대통령이 직접 최종 마무리 짓는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구 한말 당시 러시아와의 관계 이후 80여 년 동안 단절된 양국간 역사를 다시 정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80년 단절의 재봉합 ▲김열규 교수=한소 관계는 1884년 당시 제정 러시아와 조로통상조약을 맺음으로써 시작된 이후 선린우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6·25 등을 겪으면서 양국관계는 단절됐지만 한소 수교와 이번 노 대통령의 방소는 역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양국관계의 재봉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소련의 국가원수가 한국의 국가원수를 초청했다는 것은 앞으로 양국관계의 순탄한 정상적 관계를 의미한다고 봅니다. ▲최 교수=남북한 분단은 냉전시대의 희생물로 탄생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의 소련 방문은 남북통일의 외부적 변수로 작용,통일을 앞당기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남북 분단의 원인제공자의 하나인 소련이 통일을 위해서도 근본적인 영향을 미쳐야 할 것입니다. 이번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는 노­고르바초프 대통령간 남북통일을 위한 공동 코뮈니케가 있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같은 모스크바 공동선언이 내년초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한시 서울선언으로 발전,남북통일에 커다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김 교수=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북한을 위축시킬 수도 있습니다. 북한은 동구국가 등이 사회주의국가 완성에 실패한 이유가 전략의 실패라고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마지막 보루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학자들을 만나면 소련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북 영향 고려해야” ▲최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결과를 낳은 6공 북방정책은 탈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변화와 함께 이념체제 측면에서 동구와 극동이 근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북한도 이러한 한반도 정세변화에 따라 합리적인 방향으로 기존정책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군사안보적 차원에서 소련과의 관계개선을 시도해 왔지만 경제적인 면에서도 동북아에서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본에 비해 대소 경제관계 선취권을 획득했다고 분석됩니다. 따라서 내년 3월 고르바초프­가이후(해부) 일 총리회담에 앞선 노­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일·소 정상회담의 의미를 희석시켰다는 측면도 있습니다. ▲김 교수=한반도를 포함한 시베리아 문화권의 주도권을 우리가 쥐어야 합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아시아를 포함한 우랄 알타이 산맥의 동서를 잇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3국시대 신라문화는 범시베리아 문화의 완성체였습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방소는 시베리아내의 우리 문화를 발굴하는 커다란 전기가 될 수 있다고 관측됩니다. 즉 문화사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습니다. ▲최 교수=소련의 자연과학 및 기초수학분야의 권위는 세계적입니다. 장기적으로 소련의 신소재개발을 비롯한 첨단기술을 우리 산업과 접목,응용하면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김 교수=오늘날 세계인문과학의 어떤 부분은 그 근원지가 소련인 것이 있습니다. 소련문학에서의 구조주의 ·기호주의도 서구문학에 큰 영향을 줬습니다. 소련이 경제적 으로 부유하지는 못하지만 문학·음악 등에 있어서는 세계 문학·음악 등에서 한몫을 해내고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문화학술의 교류야말로 적극 추진되어야 할 과제입니다. ▲최 교수=노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옐친 등과 같은 이른바 「지방분권론자」들도 포용해야 합니다. 소련연방내 15개 공화국의 자치정부를 주장하는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소련 전국민의 90% 이상입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는 한소관계 정립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지만 6·25 및 한반도의 분단에 소련이 관련되어 있고 교민들의 강제 이주 및 KAL기격추사건 등의 앙금도 남아 있어,이 문제들의 처리도 중요합니다. ○「KAL격추」 짚어야 한반도는 동서대결의 최첨병기지로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르게 된 것이기 때문에 소련은 이에 대한 응분의 정신적 배상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한반도의 안정에 일조를 해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한국정부로서도 노 대통령의 방소를 맞아 이 점을 소련정부에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교수=소련은 현재 심각한 경제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따라서 소련은 노 대통령의 방소기간 동안 경제원조 및 경제문제에 대한 협력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사실 소련은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맞아 아·태 경협에 참여하려고 하고 있으며 한국에 경협을 기대할 정도로 심각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좌초된 경제를 희생시키려는 소련에 대해 진지한 자세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소,경협 촉구할 듯 소련은 한국정부에 대해 생필품수출 및 공동투자,합작 현금차관 등을 요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은 소련이 획기적으로 국방비를 감축할 때 대소 원조를 한다고 밝히고 있고 일본도 북방 4개 도서 문제로 정부차원에서 대소 경협에 거부감을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정부는 전통적인 우방국가들인 미일과 보조를 유지해야 할 입장에 놓여있는 한편 대소 경제외교도 풀어야 할 형편이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한국정부의 현명한 경제외교가 절실히 요청되고 있습니다. 양국의 경제관계는 우리가 소련에 생필품을수출하고 소련으로부터 이에 대한 것을 물품으로 받는 구상무역의 형태를 띨것 같습니다. 소련은 한국으로부터 물품을 받은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뒤 다른 물품을 제공하는 연불수출을 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한국정부는 이 경우 즉각 현금으로 될 수 있는 금을 비롯한 원유·비철금속 등을 소련으로부터 받을 수 있도록 강력히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한소경협이 진전되면 중기적으로 양국이 신소재개발 등을 통해 빠른 시일안에 상품화가 가능한 것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장기적으로는 대형 프로젝트에 컨소시엄 형태로 한국이 참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따라서 한국이 빠른 시일 안에 대응할 수 있는 행정협정을 체결해야 합니다. 또한 대외협력기금을 엄격히 관리하여 북방진출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이 부당이익을 볼 수 없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하겠습니다. ▲김 교수=소련내에는 40만∼50만명의 교민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 교민의 시각은 사실 친북한 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 동안 한소관계가 단절된 상태였기에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재소 한인들은 우리 문화와 소련의 문화를 조화롭게 접목시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봅니다. 교포들은 또한 그들이 속한 공화국내에서 경제·문화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한반도 주위의 다른 4강인 중국·미국·일본내 교포들의 위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우리들은 이들을 동정어린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정부는 이들이 콜 호스에서 생산하는 사탕수수와 콩 등을 모국에 수출하기를 원하고 있는 등 경제유대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직시하고 적절한 대책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한국 정부는 교포교육문제에도 세심한 노력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재소 한인들은 우리들로부터 멀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앙아에 영사관을” ▲최 교수=중앙아시아지역에 총 영사관을 설치하는 것도 검토되어야 하며 한국의 기업이 진출할 경우 재소 한인들을 고용,그들의 수입을 높여 주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김 교수=노 대통령의 방소 기간중 교민대책이 제기되었으면 합니다. 재소 한인들이 현재 있는 공화국내에서 소수민족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기 전에 교포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문제를 결정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령 지난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교민들이 원래의 위치로 돌아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으며 교포들이 많이 사는 곳이 자치공화국이 되도록 소련정부에 요청하는 등 교민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랍직합니다.
  • 포르노물·마약추방 비상령/중국(특파원코너)

    ◎북경당국의 「소황운동」 언저리/“퇴폐풍조 침투땐 사회주의 몰락” 전전긍긍/“위법자 종신형·사형” 이미 입법화 「소황」. 글자 그대로 노란 것을 쓸어 버린다는 얘기다. 노란것은 퇴폐적이고 선정적인 포르노물을 가리킨다. 중국도 현재 거국적으로 범죄와의 전쟁을 진행중이며 그 가운데 가장 많이 힘을 쏟고 있는 게 바로 소황이다. 중국 지도층은 음란비디오나 서적 등 포르노물을 자본주의의 썩은 정신문화로 보고 있으며 이러한 포르노 바이러스를 중국인민들을 병들게 하고 각종 범죄를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간주,초연이 없는 박멸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10월25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임위에서는 포르노를 제작하거나 판매 전파하는 자에 대해 종전 형량을 크게 확대,종신징역 또는 사형에 처하도록 입법조치했다. 이 새 법에 따라 북경에서 출판업을 하면서 지난 88년이후 6만권의 각종 음서를 만들어 팔아온 이경덕 등 2명이 종신형을 받았고 나머지 관련자 5명은 모두 15년의 장기징역형에 처해졌다. 중국의 범죄와의 전쟁은지난해 천안문사태이후 시작됐으며 7대 사회악을 뿌리뽑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칠해라고 부르는 근절대상 범죄는 매음·포르노물제작·부녀자유괴·도박·마약·봉건미신·폭력 등이다. 중국당국은 이러한 범죄들이 개방개혁에 편승,서방세계로부터 침투했을 뿐아니라 천안문사태발생의 한 요인으로도 작용했다는 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일곱가지 범죄 가운데 포르노가 가장 심하게 사회주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규정,소황을 계급과 이념투쟁의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실정이다. 즉 포르노물은 민주자유화를 내세운 국내자산계급에 의해 전파되는 것이며 중국사회주의를 멸망시키려는 자본주의 세계가 밖에서 대륙안으로 던지는 당의의 썩은 고깃덩어리이기 때문에 계급투쟁과 이념무장을 통해 이를 몰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민일보는 개방지역인 광동·복건·해남성 등 동남연안지방에서 청소년 성범죄자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의 범행동기가 거의 모두 음란서적·비디오 등을 본데서 비롯됐다고 보도했다. 또 이신문은 『우리의 적들은 감히 총칼로는 덤빌 수 없으니까 포르노물을 침투수단으로 삼아 사회주의와 공산당을 몰락시키려 한다. 중국대륙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모든 인민의 건전한 정신생활을 위해 항구적인 투쟁을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동구각국이 줄줄이 사회주의 노선에서 이탈하게 된 것도서구에서 밀려드는 각종 오디오·비디오제품이나 출판물 등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결과로 풀이했다. 한편 중국에선 홍콩과 인접해 있고 대외개방을 처음으로 한 광동성이 매음이나 포르노물과 관련,가장 말썽이 많은 지역으로 돼 있다. 때문에 광동성은 지난달 10일 별도로 소황공작회의를 갖고 외국인 진출과 함께 부쩍 늘어난 가라오케 술집을 대상으로 집중 단속에 나섰다. 중국당국이 소황 다음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은 마약퇴치 문제. 연도별 마약단속건수가 87년 56건 88년 2백68건 89년 5백47건으로 급증하고 있고 압수물품도 87년 아편 1백37㎏,헤로인 43㎏이던 것이 89년 아편 2백69㎏,헤로인 4백88㎏으로 엄청나게 늘고 있는 추세이다.올들어서는 6개월동안 2천2백16㎏의 아편과 헤로인을 적발했다. 마약의 경우 중국은 과거 아편전쟁을 일으켰을 정도로 망국의 근원이란 인식이 강해서 오래전부터 단속을 강화해오고 있으나 남부 운남성이 미얀마(구 버마)·베트남·라오스 3국의 국경을 끼고 있는 아편 밀재지역인 이른바 황금의 3각 지대와 가까워 근절이 힘든 실정이다. 지난 6월에는 운남성에서 14명의 마약밀매범을 잡아 총살시키는 등 대부분의 마약사범을 약식재판에 의해 종신형 또는 사형에 처하고 있다. 중국당국은 내국인 마약중독자가 7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운남성의 마약은 대부분이 홍콩·마카오 등지를 거쳐 미국등 서방세계로 팔려 나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운남성주민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마약중독자 가운데는 주사기를 돌려 쓰다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 걸린 주민들도 수백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서 포르노와 마약이 성행하면서 빠질 수 없는게 폭력사범들. 사회주의 방식으로 웬만한 범죄자는 공개적으로 총살을 시켜버리기때문에 폭력배가 드러내 놓고 날뛰지는 않지만 광주 등 개방도시의 불량배들이 홍콩의 폭력조직과 손을 잡고 이따금씩 강도사건을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어쨌든 중국은 속도의 완급은 있을망정 경제발전을 위해선 개방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고 이에 따라 그들이 말하는 자본주의의 독소인 퇴폐풍조의 침투에도 맞서 싸우느라 매우 바쁜 것 같다.
  • 북한영화 96년까지 전면개방/정부방침

    ◎남북 관계개선땐 시기 앞당겨/공산 원전·예술영화 내년부터/93년엔 체제선전자료도 공개 정부는 오는 12월11일 서울에서 열릴 제3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가 채택되면 현재 법적으로 일반국민들에 대한 공개가 금지되어 있는 북한 및 일부 동구권국가의 영화·자료·출판물 등을 일반국민에게 전면개방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3차 서울고위급회담에서 남북 관계개선 기본합의서가 채택되지 않더라도 내년초부터 북한영화 및 자료를 단계적으로 추가개방,오는 96년까지는 전면개방키로 방침을 정했다. 2일 정부가 마련한 「북한영화 및 자료 개방확대방안」에 따르면 1단계인 내년 3월까지 국내법상 일반국민이 소지·탐독할 수 없도록 금지되어 있는 「마르크스·레닌 사상」 「자본론」 등 공산주의 원전을 비롯,북한의 순수한 예술성 영화 및 작품을 개방한다는 것이다. 2단계인 93년에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하고 있는 북의 영화 및 자료를 개방하며 이같은 단계적 개방조치로 국민들이 북한영화 및 자료에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96년(3단계)에는 모든 북한영화 및 자료를 전면개방할 방침이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이날 『그 동안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거쳐 북한 및 동구국가 영화 및 자료 개방문제를 협의한 결과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 및 판단을 위해 북한영화 및 자료를 단계적으로 개방하기로 방침을 세웠다』면서 『91년 3월(1단계)까지는 예술성있는 북한영화 및 자료와 전면적인 동구권 자료를 우선 개방하고 93년(2단계)에는 북의 체제선전적인 북한영화 및 자료를 개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 및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96년쯤에는 북한영화 및 자료를 전면개방할 것』이라며 『우선 내년의 개방을 위해 법제도 개선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또 『지난 9월30일 한소 수교에도 불구,공개되지 않고 있는 일부 소련의 자료 및 발간물을 비롯해 「마르크스·레닌 사상」 「자본론」 등 공산주의 원전도 내년초에 일반인에게 공개할 계획』이라며 『3차 서울고위급회담에서 3통협정과 불가침협정을 체결,자유로운 인적 왕래가 이뤄지고 전쟁의 위협이 사라진다면 그 즉시 북한영화 및 자료를 전면개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은 이어 『정부가 마련한 「북한영화 및 자료 개방확대방안」은 남북대화 진전을 비롯한 남북 관계개선과 국제정세 변화 등의 내외부 여건에 따라 융통성있게 그 속도가 조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기업 대 동구 투자/3천만불 수준

    지난 10월말까지 우리나라 기업들이 동구권등 사회주의국가에 투자하겠다고 관계당국의 허가를 받은 금액은 모두 1억3천7백84만8천달러이며 이 가운데 실제로 투자가 이루어진 것은 3천1백93만달러이다. 30일 재무부에 따르면 투자대상국 가운데는 중국이 64건에 8천2백42만2천달러(허가금액),2천9백98만5천달러(투자금액)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홍콩인은 대륙에 순종하라”/신화사 지사장 발언 큰 파문

    ◎천안문시위 주동자 석방요구에 발끈/“정치적대항 계속땐 대가 치를 것” 위협 『홍콩은 중국의 사회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전초기지 노릇을 하고 있다. 만약 홍콩이 계속해서 중국에 정치적으로 대항할 경우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상의 우세를 잃게 될 것이다』 이는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 홍콩 분사장인 주남이 29일 홍콩 공업총회 주최의 만찬에서 한 경고발언이다. 다분히 협박적인 주의 이 발언이 현재 홍콩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신화사 분사장은 중국이 홍콩에 파견한 관리 가운데 가장 고위직 인물이며 사실상 대사역할을 하고 있는만큼 그의 말은 북경정권의 의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홍콩을 곱게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지난해 천안문사태 발생때 이곳에서 가장 요란하게 중국의 민주화지지 움직임을 보였기 때문. 이밖에도 중국은 홍콩을 거쳐 심수·광주 등 대륙의 개방지역으로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서적들이나 포르노물,폭력조직 등 그들이 가장 꺼리는 자본주의의 독소들이 스며드는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은 천안문사태 당시 홍콩을 「반혁명기지」로 비난했으며 이번 주의 말도 표현은 조금 부드러워졌으나 홍콩에 대한 적개심엔 변함이 없는 것으로 현지 주민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받아 들이고 있다. 주가 이같은 말을 하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최근 북경에서 천안문시위 주동자들에 대한 재판이 열리는데 대해 홍콩의 민주단체들이 무조건 석방을 요구하며 데모를 벌이는데 있는 것 같다. 다시 말해 중국으로선 이미 경고를 보냈는데도 요즘 다시 민주단체를 비롯한 홍콩 주민들이 중국당국을 비난하며 시위주동자 석방을 주장하자 심기가 몹시 불편해졌다는 얘기다. 주는 또 『홍콩이 비록 번영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소요자원을 대륙에 의존하고 있는 만큼 중국정책을 반대해서는 안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을땐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결국 중국당국에 순종하지 않으면 오는 97년 이후 홍콩이 대륙에 귀속됐을때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으름장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주는 29일의 만찬참석 이전에 심수 주해 경제특구의10주년 기념행사때 강택민 당총서기와 양상곤 국가주석을 만나보고 온 것으로 돼있어 강등으로부터 홍콩을 잘 길들여 놓으라는 지시를 받은게 아니냐는게 관측통들의 견해이다. 한편 중국은 90년대 안에 상해를 홍콩보다 규모가 크고 활기에 찬 자유무역항과 공업 및 금융중심지로 개발키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홍콩은 민주의식이 높고 자본주의 사상에 너무 젖어있어 정치불안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그 대안으로 제2의 홍콩을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어쨌든 주의 이번 위협발언은 그렇잖아도 97년 대륙귀속을 앞두고 해외이주를 서두르는 홍콩주민들의 이민열기를 더욱 부채질하게 될 것 같다.
  • “남북 경제합작 부진한 이유는”/30일(국감중계)

    ◎검찰인사 지역편중현상 추궁/북한영화 수입 정부의 입장은/무박 과기관은 과학공원으로 조성계획 ▷문공위◁ 문화부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북한영화 수입문제·출판문화인 구속 등의 문제를 날카롭게 추궁했으나 적은 예산에 허덕이는 문화부를 동정,격려하는 질문도 다수 등장. 임인규·최재욱 의원(이상 민자) 등은 『지난 9월20일 민간업체인 양전흥업이 수입추천을 의뢰한 「돌아오지 않는 밀사」 「임꺽정」 등 북한영화 5편에 대한 정부측의 입장은 무엇이냐』고 질의. 이에 이어령 문화부 장관은 『북한영화의 국내반입 문제는 통일원 승인사항이며 문화부로서는 상업적 목적의 국내 수입에 앞서 남북영화 교류가 우선 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 조홍규 의원(평민)은 『현재 정식 교과과정에 채택치 않고 있는 국악교육을 초·중·고교 음악과목에 포함시키라』고 촉구하고 『숫자로 나타나고 눈에 보이는 것만 중시하는 경제관료들을 상대로 문공위와 문화부가 공동투쟁해야 한다』고 문화부를 격려. 김인곤 의원(민자)은 『중앙국립극장의 국립창극단이 2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단원심사가 실력보다는 내부적 인맥이나 계파,또는 뒷거래 등에 의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으며 심지어 특정지역 출신을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질타. ▷법사위◁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대한 감사에서 ▲「범죄와의 전쟁선포」 이후의 민생치안 낙맥상 ▲검찰인사의 지역편중 ▲인천 조직폭력배 「꼴망파」에 대한 전과 누락사건 ▲국가보안법 존폐여부 등에 대해 백화점식으로 추궁. 특히 이날 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범죄와의 전쟁」으로 파생될지도 모르는 인권침해 등 부작용 예방에 초점을 맞춘 반면 야당 의원들은 흉악범에 대한 형량 상향조정 및 교도행정의 개선책 등을 중점 질문. 박상천 의원(평민)은 『국가보안법 제7조의 적용범위가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축소됐다는 점과 사회주의운동의 퇴조 내지 수정경향을 고려할 때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인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현행 국가보안법이 헌법의 민주적 기본질서 자체에 위반되는데도 당장의 수사편의를 위해서는 현행법의 존치가 좋다는 것은 검찰내부에 「집단이기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라고 추궁. 이에 비해 홍세기 의원(민자)은 『북한의 신형법의 반혁명범죄를 살펴보면 우리 국가보안법에 대응하는 범죄는 모두 포함돼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국가보안법이 처벌하지 않는 것도 광범위하게 처벌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북한과 국내 일부인사들의 국가보안법 개폐주장에 국제적 형평과 상호주의 원칙에 의한 적절한 대응논리를 강구하라』고 주문. ▷재무위◁ 재무부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민방 지배주주인 태영의 주가 급상승 배경,침체된 증시 개선방안,증권산업 개방에 따른 대책,담보부족계좌(깡통계좌) 강제정리의 문제점,보험사들의 자산 재평가과정에서의 폭리취득 여부 등을 질의 홍영기·임춘원·유인학 의원(이상 평민)·김덕룡 의원(민자) 등은 『태영의 주가가 지난 8월부터 10월까지 2개월여 동안 무려 72%라는 경이적인 상승을 보였다』고 지적하고 『이는 민방 대주주 선정에 대한 사전정보에 따른 것으로 여겨진다』면서 증권감독원이 이상폭등에 대해 조사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 그러나 답변에 나선 박종석 증권감독원장은 태영의 주가가 크게 오른 시점은 깡통계좌 정리시점인 10월10일 이후부터라며 10월중 태영의 주가상승률이 35.1%이고,이는 같은 기간 중 종합주가지수의 상승률 29.7%에 비교해볼 때 「사전정보에 의한 불공정거래혐의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는데 의원들과 증권감독원측의 통계에 차이가 나는 것은 주가상승률의 기준을 어는 시점으로 잡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 ▷국방위◁ 안기부에 대한 감사는 ▲안기부의 정치개입 및 언론대책반 구성여부 ▲노동운동탄압 ▲민간인 불법연행 ▲정보예산공개 촉구 등 그 동안 성역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보기관의 업무 및 행정전반에 대한 현안이 「국정심의」의 테이블에 올려져 공방을 벌였다. 이날 비공개로 진행된 감사에서 특히 야당 의원들은 기자들에게 미리 배포한 질의자료를 통해 6공 들어 여러 차례 안기부를 진원지로 「공안정국」이 「조성」됐던 점을 상기시키면서 『경제기획원 등정부 9개 부처에 안기부의 정보비를 분산,계상해 각 부처의 통제는 물론 정치 사찰비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주장,안기부 및 예산회계에 관한 특례법의 개정 쪽으로 초점을 맞췄다. 감사 초반 잠시 언론에 공개된 자리에서 서동권 안기부장은 인사말을 통해 각종 쟁점현안에 대한 견해 피력보다는 『부단한 자기성찰과 개혁을 통해 새 시대에 부응하는 근무자세를 확립하겠다』는 자기 다짐의 의지 천명으로 안기부의 위상을 새롭게 할 것임을 강조. 서 부장은 『자유민주 체제는 자유와 관용의 사회이지만 자유 그 자체를 부정하는 「자유의 적」에 대해서는 결코 관용하지 않겠다』며 확고한 업무수행방침을 천명. 권노갑 의원(평민)은 『안기부는 막대한 예산과 조직을 이용,과거보다 더 철저하고 치밀한 사찰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최근 모 잡지 기자에 대한 연행,노동운동근로자의 강제연행 사례 등을 증거로 제시하고 『안기부가 시·도·군청 및 지방검찰청 등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고 있는 것도 행정기관을 안기부의 통제하에 두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 이에 반해 정몽준 의원(민자)은 남북대화 등과 관련,『김정일 세습체제가 어느 정도 마무리돼가고 있는 시점에서 북한내의 온건파의 실존여부 및 잠재세력에 대한 파악은 어느 정도로 돼 있느냐』고 묻고 『각급 남북교류가 활발하게 추진되는 데도 불구 경제합작사업이 추진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느냐』며 실무적 차원으로 접근. ▷행정위◁ 30일 저녁 늦게까지 계속된 국회 행정위의 총무처 국감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연희동 사저 국고귀속 문제를 놓고 한동안 치열한 공방. 야당 의원들은 전씨의 하산설과 관련해 이 문제를 집요하게 따졌는데 양성우 의원(평민)은 이연택 총무처 장관의 『전직 대통령을 보살펴야 할 총무처의 입장으로서는 사저의 헌납을 권유하거나 종용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답변에 『무슨 소리냐. 전씨 본인도 연희동 사저를 떠날 때 모든 것을 국민의 뜻에 따라 처리해달라고 했다』고 흥분. 이에 이 장관이 다시 『전 전 대통령의 그 말은 도덕적,정치적 의미로 한 것이며 법률적 헌납의사로는볼 수 없는 것』이라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김종완 의원(평민)이 나서 『장관이 무슨 권리로 국민이 국가에 재산을 헌납하겠다는 것을 가로 막느냐』고 고성. 박실 김덕규 의원 등 다른 평민당 의원들도 가세,『전씨 밑에서 일했던 장관의 인간적 측면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나 이 자리에선 공적인 입장에서 답변을 해야 할 것 아니냐』며 『직접 전씨에게 묻기 곤란하면 직원을 전씨의 법정대리인에게 보내서라도 당초의 사저 헌납의사를 번복했는지 확인한 후 정확한 답변을 하라』고 촉구. 전씨 사저를 둘러싼 설전이 한동안 거듭되자 정상구 위원장은 『장관은 전직 대통령을 명예롭게 하는 길이 어떤 것인지 잘 생각해 처리하도록 하라』고 주문. ▷경과위◁ 대전시의 국립중앙과학관에 대한 감사에서 신영국 의원(민자)은 『국립중앙과학관이 건설됐는데 93년 국제무역박람회(EXPO) 때 2백40억원을 들여 과학기술관을 새로 짓는 것은 예산의 낭비가 아니냐』고 따졌고 신진수 의원(민자)은 『EXPO 과학기술관과 국립중앙과학관의 차이점』을 물었다. 최영환과기처 차관은 『국립중앙과학관은 과학사·기술사 중심으로 지어진 것이며 EXPO 과학기술관은 미래지향적 주제관으로 계획된 상호보완적 기능을 갖추고 있으며 93년 EXPO 이후 이 일대를 과학공원으로 꾸밀 계획』이라고 답변. 한편 원자력연구소에 대한 국정감사를 벌인 이날 경과위에서는 수감중이던 한필순 소장과 최영환 과기처 차관이 삿대질을 해가며 다퉈 한때 참관인들을 어리둥절케 하기도. 이날 한 소장은 이해찬 의원(평민) 등 여야 의원들로부터 안면도 핵폐기물처분장 건립계획에 대해 집중추궁을 받자 『인근 무인도나 대륙붕에 핵폐기물영구처분장을 건설할 계획이었다』고 설명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최영환 과기처 차관이 한 소장에게 다가가 『정책부서에서 밝힐 사안을 당신이 왜 나서느냐』고 질책하자 한 소장은 최 차관의 힐책에 대해 『사실대로 밝히는 데 뭐가 잘못됐느냐』고 맞대 놓고 응수하며 한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 ▷교체위◁ 서울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제2기 지하철 건설재원 확보방안과 ▲제2기 1단계(5·7·8·호선)착공이 지연되는 이유 등 지하철 건설과 관련해 집중추궁. 조찬형 의원(평민)은 『오는 92년말 완공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1단계 6개 건설구간(총연장 47㎞) 소요예산 1조1천8백만원 가운데 정부지원액이 2천4백억원밖에 안 돼 사실상 정상건설이 불가능하다』며 『1단계 및 93년부터 97년까지 2단계 공사의 구체적인 소요재원 조달방안을 소상히 밝히라』고 요구. 연제원 의원(민자)은 『서울지하철 5호선 공사가 사업착수 이전에 받도록 돼 있는 「환경영향평가」를 받지도 않은 채 불법착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하철내의 소음·분진 등이 이미 위험수위에 있음에도 환경처와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이냐』고 추궁. ▷상공위◁ 포항제철에 대한 감사에서 여야 의원들은 ▲포철의 법인세 추징문제 ▲동구권 수출대금 결제문제 ▲광양제철소 확장에 따른 보상문제를 집중 거론. 유기준 의원(민자)은 『포철이 소련으로부터 수출대금을 결제받지 못하고 있는데 향후 소련 등 동구권에 대한 수출계획을 재조정할 용의가 없느냐』고물었고 강삼재 의원(민자)은 『광양제철소 부지 확장과 관련,인근 공유수면 매립에 대한 보상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질의. 정명식 포철 사장은 북한산 철광석 사용문제와 관련,『북한 무산광산의 철광석에 대한 기술검토 결과 포철에서 사용하는 철광석의 5% 정도는 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으나 북한이 철광석을 남한에 공급할 의사가 있는지의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답변. 정 사장은 또 대중국 합작사업과 관련,『중국 기계공업기술 총공사와 석도용 강판 합작사업을,무한제철소와는 제철기술을 공여하는 문제를 논의중에 있으나 기술공여는 핵심기술이 아닌 일반수준의 국가협력이라는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고 설명. 이날 포철 감사에서는 채영석·이돈만 의원(평민) 등이 박태준 회장의 출석요구와 민자당 최고위원 겸직문제를 제기하는 바람에 회의 벽두 한때 어수선한 분위기. 이에 이성호·이상득·이정무 의원 등 민자당 의원들은 『박 회장이 민자당 최고위원을 맡고 있는 것이 정당법 등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반박하고 정명식 포철 사장에게 『박 회장이 민자당 최고위원을 맡아 포철 경영에 누수가 있느냐』고 유도성 질문을 펼치기도.
  • 불가리아,과도정부 곧 구성/집권 사회당­재야 협약 합의

    【소피아(불가리아) AP AFP 연합】 젤리우 젤레프 불가리아 대통령은 안드레이 루카노프 총리가 이끄는 일당 사회주의 정부를 대체할 과도정부를 곧 지명할 예정이라고 불가리아 관영 BTA통신이 28일 보도했다. 이 통신은 젤레프 대통령의 측근 소식통들을 인용,루카노프 총리가 구공산당을 개혁한 집권 사회당이나 제1야당인 민주세력동맹 출신이 아닌 정치인으로 경질될 것이라고 전했다. 집권당과 재야간 회담에서 합의된 이 협약은 28일 밤 사회당 지도부 및 루카노프 총리의 인준을 받은 뒤 공식 발표될 예정이다.
  • 중국의 「개방창구」로 성장 뒷받침/「심수특구 지정 10년」의 허실

    ◎내외기업 2천5백개… 생산 15배 늘어/“외화벌이 전초기지”… 올해 33억불 수출/개발효과 편중… 지역격차·인플레 등 유발 논란도 중국 최초의 경제특구 심수를 비롯,주해 산두 하문 등 4개 지역에서 26일부터 특구지정 10주년 기념행사가 치러지고 있다. 강택민 당총서기는 26일 하오 심수의 기념행사에 참석,축하연설을 통해 경제특구가 중국발전에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개방개혁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과 전기운 부총리 등 개혁파 지도자들과 외빈 등 7백여명이 참석한 반면 이붕 총리를 비롯한 보수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3일 북경을 방문했던 북한의 연형묵총리도 천진을 거쳐 이날 심수행사에 참석,특구의 발전상을 돌아 보았다. 심수는 중국 정부수립 이후 대륙에선 처음으로 자본주의식 자유경제 운용방식을 도입,대외개방의 창구와 체제개혁 시험장 역할을 했으며 중국 개방개혁정책의 상징으로 통하는 지역이다. 심수의 뒤를 이어 특구로 지정된 같은 광동성의 주해 산두와 복건성 하문 등 4개 지역은과거 10년동안 외국자본과 경영기법 및 기술도입의 전초기지로서 중국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해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0여년전 한적한 농촌이던 심수에는 이제 2천5백개에 이르는 내국 및 외국합작기업이 들어섰으며 총 생산량의 60%를 수출하고 있다. 올들어 10월말까지의 수출실적은 33억달러. 심수등 4개 경제특구가 유치한 외국민간자본은 31억달러(4천1백78건)로 중국전체가 들여온 외자의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공업생산치는 10년전에 비해 15배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4개지역의 수출실적은 중국 전체의 8∼10%선으로 올해 6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며 이는 전년대비 21% 늘어난 규모이다. 또 4개지역 중국 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은 60∼80달러로 기타지역 근로자의 2배에 가깝다. 경제특구에서 벌어들이는 외화는 중앙정부의 에산으로 적잖게 전용되고 있어 심수의 경우 지금까지 40억달러의 재정수입을 중앙에 지원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경제특구에 대한 중국내의 평가가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과거 등소평·조자양(전당총서기)팀의 개방정책으로 출발하게 된 경제특구는 주로 성장의 파급효과가 중국 동남해안에 미치는데 그쳤기 때문에 지역간 발전격차를 심화시켰고 무분별한 외자도입은 인플레와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유발하는등 적잖은 부작용을 낳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폐단은 중국 지도층의 강경보수세력이 득세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고 개방개혁을 제자리걸음시킨 반면 사회주의식 중앙계획 경제운용을 유도했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현재 중국 지도층이 8차 5개년계획(91∼95년)을 포함,향후 10년의 경제운용방안을 놓고 개혁·보수파로 나뉘어 권력투쟁의 양상을 띠며 논란을 벌이는 사실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당초 심수 특구지정 기념식은 만 10년이 되던 지난 8월26일 거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개방개혁등 경제운용에 관한 이견이 첨예화됨에 따라 3개월이나 늦춰진 것이고 행사규모도 축소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개방정책의 총 설계사로 이번 행사에 당연히 참석할 것으로 예상됐던 등소평이 나타나지 않았고 개방에 비판적이던 진운 당중앙위고문 이붕총리 등 강경보수파들이 한명도 참석치 않은 점은 중국내 개혁·보수세력 사이의 암투를 단적으로 반영한 것이란 풀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한편 지난 88년 뒤늦게 특구로 지정된 해남을 포함해서 이들 경제특구의 장래는 중국 중앙정부가 전력을 다해 추진중인 상해 포동지구 개발사업으로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 최대의 도시이며 역사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했던 상해에 대규모 첨단공업단지를 마련하고 금융 및 무역중심지로 개발,90년대 안에 「사회주의세계의 홍콩」으로 탈바꿈 시킨다는게 중국정부의 구상이다. 조세·금융 및 각종 자원배분의 특혜를 주었던 기존 경제특구와는 달리 외국금융기관을 대거 유치,자체적인 자금조달과 성장계획에 의해 운용토록 함으로써 지역간 발전격차에 따른 위함감도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또 상해는 물론 주변 양자강 델타지역개발로 한국·일본·미국·캐나다 등 외국과 직교역 할 수 있는 중국최대의 자유무역센터를 건설할 계획이어서 다른 경제특구에 대한 정책배려는 크게줄어들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 “북한·일 관계개선 환영/이붕총리/아시아의 안정·평화증진에 도움”

    ◎중국 국영TV 보도 【북경 로이터 연합 특약】 중국은 24일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 움직임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날 중국 국영TV는 『이붕 총리가 인민대회당에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에게 중국은 북한과 일본의 관계정상화가 아시아의 안정과 평화증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붕 총리는 또 『한반도의 통일을 빨리 보고 싶다』면서 중국의 개혁정책에 관한 성공적인 보고서를 연 총리에게 제시했다. 북경의 외교관들은 『중국이 북한에 개방과 개혁에 대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연형묵 총리는 이날 하오 양상곤 중국 국가주석과 만났다고 일본 교도(공동)통신이 보도했다. 이 통신은 양 주석이 『양국은 각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으며 중국은 가장 어려운 경제문제를 점차 해결해가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에 대해 연 총리는 『국제사회가 어떤 변화를 보이더라도 양국의 우호관계는 강화될 것이며 사회주의를 철저히 추진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했다. 한편 연형묵 총리는 이날 북경의 마쓰시타(송하) 일본 전자회사를 방문,『일본과의 관계정상화가 되면 양국의 경제협력이 증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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