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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시장경제 지향”/공산당 1당체제는 고수/새 헌법안 발표

    【하노이 AFP 로이터 연합】 베트남은 30일 민간 기업을 보호하고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나 동구식의 다당제를 거부하고 국가에 대한 공산당 1당체제와 그 지도적 역할을 재확인하는 내용의 새로운 헌법안을 발표했다. 부 마오 의회대변인은 1백47조의 이 헌법안이 공개적인 재검토를 거친후 오는 4월 의회에서 승인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헌법안은 베트남에서 외국인의 자본과 자산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고 『외국인이 투자한 기업은 국유화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고 있으며 베트남인은 처음으로 자신의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자신의 사업을 할수 있으며 공동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게 된다. 토지에 대한 사적소유는 불가능하지만 새 헌법은 처음으로 국가가 할당한 토지를 양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개인 혹은 조직에게 부여하고 있으며 토지의 할당과 양도조건은 국회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 헌법안은 쇠퇴하는 경제를 부양시키기 위해 지난 80년대말이래 베트남이 채택한 자본주의적 요소의 일부를 성문화한 것이지만 베트남 공산지도자들은 1당체제를 고수하면서 사회주의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 외언내언

    북한의 학제는 우리와 다르다.우리의 기본 학제는 국민학교6년 중학교3년 고등학교3년 대학4년으로 되어있지만 북한은 인민학교4년 고등중학교6년 대학4년으로 되어있다.국민학교에 해당하는 인민학교 교육과정이 우리보다 2년짧은것이 두드러진 차이점.우리는 중고과정을 분리했지만 북한은 분리하지 않았고 남쪽에서는 새학기가 3월에 시작되는데 북쪽에서는 9월에 시작되는것도 다르다. ◆초등교육과정을 몇년으로 해야하는가,중고교를 분리하는 것이 좋은가 통합하는 것이 좋은가,새학기는 봄이좋는가 가을이 좋은가하는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그것의 장 단점은 교육적 관점에 따라 다를수 있다.때문에 북한의 학제가 우리보다 못하다고 우길것도 없고 우리보다 잘된것이라고 시샘할 일도 아니다. ◆문제는 교육내용이다.체제의 차이때문이지만 남북의 교육내용은 엄청난 괴리를 보이고 있다.11년의무교육(유치원1년포함)을 자랑하고 있는 북한의 교육목표는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공산주의식 인간으로 키우기 위한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교과 내용은 정치사상교육과 기술교육위주로 되어있다.역사 지리 등은 중요한 과목이 아니기때문에 시험도 「합격」「불합격」만 판정하고 점수는 매기지 않는다. ◆가장 비중이 큰 정치사상교육은 김일성부자우상화로 채워져있다.서울교육청이 남북의 초등교육과정과 내용을 처음으로 비교,분석한 「통일대비 교육지침서」에 따르면 북한의 인민학교전학년 국어교과서의 경우 1백96개단원중 김부자우상화내용이 1백24개,공산주의 도덕교양을 위한 내용은 72개로 되어있다. ◆북한은 최근 변화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그속셈이 어디에 있는지 또 그 폭이 어느정도가 될지는 알수없지만 교육내용이 바뀌지 않는한 변화의 몸짓은 한낱 전술 전략 이상으로 보기 어렵다.김부자 신격화에서 우선 인간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로의 변화가 시작될때 비로소 남북관계의 변화도 기대할수 있을 것이다.
  • 공직사회가 흔들려선 안된다(사설)

    공직사회에도 근무조건이 열악한 부서를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는 보도다(서울신문 28일자).더욱이 사회일반에 나타나고 있는 이른바 3D현상이 공무원들에게까지 번져 힘이 들거나 위험스런 직종근무를 꺼린다는 얘기도 있다. 이직의 이유도 과거처럼 승진불만,과로,낮은 보수가 아니라 바로 이 3D 기피현상 때문이라는 것이다.그것이 다름아닌 공직사회의 경우라서 더욱 예사스럽지 않은 것이다. 민주화 사회발전,다양한 사회형태와 관련하여 항상 지적되고 강조되는 바이지만 공직사회에 무사안일풍조가 만연되고 기강이 무너지면 사회질서가 함께 흔들린다.나아가 국기마저 흩어져 국정의 효율적인 추진이 어렵게 된다.사회 다른 부문이 그렇다면 달리 어떻게 해본다지만 공직사회는 다르다.그렇게 돼서는 안되는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안팎으로 엄청난 변화속을 헤쳐온 한해의 저물녘이다.정치권은 정치권대로 내년의 각급 선거에 대비한 채비가 알게 모르게 한창들이다.경제권 역시 그들대로 한햇동안 축적된 주름살을 마지막으로나마 다듬고 고쳐 잡아보려 안간힘들이다.사회분야 또한 세모의 들뜬 듯한 분위기에 젖어 있다.시기적으로 힘들지만 그럴수록 중요하고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지나칠 수 없는 때이다.이럴때 일수록 공직사회만은 한점 빈틈없이 엄하고 확고해야 한다. 우리 공무원들의 근무자세에 요즈음 우려할 사태가 번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지는 오래됐다.딱부러지게 진원이 어디고 그 내용이 어떤 것이라고 꼬집어 낼 수는 없지만 최근의 미묘하고 복잡한 정치 경제 상황에 얽혀 많은 공직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눈치만 살피느라 일손이 늦다는 것이다.「인사」에 기웃거리고 승진에 얽매이며 전직정보에 귀기울여 할 일을 제쳐놓기 일쑤라는 것이다.그럴수록 무사안일과 보신 또는 개인적 영달과 출세에 몰두하는 풍조는 깊어만가게 마련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건 사회기풍쇄신이 역설될 때마다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문제는 항상 첫번째로 꼽히게 된다.자리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공직자들 모두는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복이자 향도이다.민심과 여론을 수렴하여 국가사회의 복지와 능률을 극대화 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지도층이다.우리는 지금 엄청난 변혁의 시대를 살고 있다.밖으로는 지나간 한 시대 하늘처럼 떠받들여졌던 이념이나 체제가 곤두박질 치는 세상이다.사회주의,공산당이 붕괴되고 소련이 사라진 이 시기이다.국가적으로는 세계적인 격변추세에 적응하여 국제사회에서의 새 위상을 확보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는 구성원 각자의 발전적인 의식변화에 부응하는 생활규범과 행동양식을 새로이 정립해가는 때이다. 강조컨대 한 사회의 바람직한 기풍조성은 공직사회의 공인의식과 봉사와 헌신에 달려있다.어려운 시기에 모든 공직자들이 국가사회 유지의 초석임을 알아 동요하지 말아야할 것이다.
  • 「서사연」사건 잇단 유죄판결 의미

    ◎“「학문의 자유」보다 체제 우선” 선언/분단국에서의 법적 한계 규정/「이적적 주장」 깔린 의식에 쐐기 서울형사지법이 26일 서울대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 신현준피고인(29)의 국가보안법위반사건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린데 이어 27일에도 권현정피고인(27·여)에게 다시 유죄를 선고한 것은 분단국가에서의 학문의 자유에 대한 한계와 범위를 규정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 이른바 「서사연」사건으로 불렸던 이사건은 『체제가 우선이냐』 『학문의 자유가 우선이냐』하는 논쟁을 불러 일으켰었다.이에대해 법원은 전문영역이 아닌 일반적인 지식수준을 판단기준으로 해 『아무리 학문의 자유를 내세운다 하더라도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책자나 행위의 이적성이 인정된다』고 유죄판결을 내렸다.즉 『피고인이 발간한 책자와 유인물이 객관적으로 민중민주주의·사회주의 혁명이론및 북한의 대남선전과 동일하다고 보여 유죄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당국이 주목한 부분은 지난 4월20일 도서출판 민맥에서 출판한 「사회주의 정치경제학논쟁의 재검토」가 『한국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노동운동을결합,민중민주주의 혁명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부분등이었다. 또 신피고인의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발전」이란 학위논문에서는 『민중민주주의 혁명으로 한국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등 학술활동및 논문형태를 빌렸을 뿐 분명한 이적행위를 했다는 것이 검찰의 지적이었다. 그러나 이에대해 학술단체협의회소속 전국교수협의회 등은 『진보적 학술운동전체에 대한 탄압이며 학문자유의 위기』라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에대해 『헌법에 보장된 학문의 자유는 순수한 진리탐구를 의미하는 것으로 무제한적이 아니며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의 필요에 의해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하지 않는한 제한이 가능하다』고 못박았다. 때문에 법원으로서는 「순수학문에 대한 제한」이라는 차원이 아닌 토론·연구수준을 넘어선 「이적성주장이 짙게 깔린 내용에 대한 제재」라고 풀이하고 있다. 실정법에 따라 학문의 자유에 대한 첫 판례가 된 이번 공판에서 신피고인등에게 유죄판결을 내리면서도 형의 집행을 유예시킨 것은 체제우선을 선언하되 학문의 자유를 가능한한 침해치 않으려는 또하나의 배려로 풀이되고 있다.
  • 러시아공 독립/정부,공식 승인

    정부는 27일 소비에트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소련)을 승계한 러시아 연방의 독립을 공식 승인했다. 조원일외무부대변인은 이날 『정부는 지난 21일 알마아타에서 개최된 구소연방공화국 지도자들간 회의에서 독립국가연합을 창설키로한 결정과 러시아연방이 구소연방의 국제적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고 있는 점에 유념한다』면서 러시아 연방을 국가로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 소 소멸과 러시아공 부상/특별기고

    ◎유라시아에 「거대개발국」 출현/「공동체」는 이름 뿐인 국가연합될것 지구상에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이 없어졌다. 소련은 1917년10월 볼셰비키혁명 다음해인 1918년에 형성된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었다.즉 볼셰비키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을 붕괴시킨 신흥혁명세력은 레닌과 스탈린을 주축으로 하는 「소비에트시대」를 개막했다.소비에트시대란 소련식 사회주의의 대명사였다.레닌은 무너진 차르러시아 제국의 자리에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그리하여 민족적으로 유사한 러시아,우크라이나,백러시아 3개국을 통합하는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형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소련이라고 하는 연방정부가 없어지고 「독립국가 공동체」라는 동맹에 가까운 연계체만을 유지하는 협력관계를 모색하고 있다.국가연합이라고 하는 개념으로 소련을 대신할 새로운 제국의 재건이 가능할 것인가는 2000년대의 과제일 수 있다. 소련이 해체되는 과정에서도 73년전처럼 러시아공화국이 중심이 되어 이른바 동슬라브민족의 대결합이 있었다.이른바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로 하는 3개의 공화국의 결탁으로 고르바초프가 관장하는 소비에트 중앙정부를 해산시키고 여타 소수민족공화국을 끌어 들여 독립국가공동체구성에 합의를 얻어 낸 것이다.다시말해서 소비에트 연방정부를 탄생시킨 힘이 러시아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슬라브민족의 결합이었듯이,이번 독립국가공동체를 탄생시킨 핵심 세력도 러시아를 구심점으로 하는 슬라브계의 대동단결이었다. 새로 등장할 「러시아제국」은 어떤 형태로 나타날 것인가.아직도 많은 미지의 변수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세가지 유형을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첫째,러시아공화국이 서서히 독자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소련을 계승한 유일한 제국으로 성장하는 길이다.이 길은 러시아 민족주의가 독주하는 상황을 의미한다.둘째,러시아공화국이 같은 슬라브계인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그리고 러시아인이 다수를 유지하는 중앙아시아의 카자흐공화국 등을 포함함으로써 이른바 「슬라브연방」을 새롭게 구성하는 길이다.이 길은 러시아가 보다 많은 양보와 관용으로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셋째,러시아공화국이 여타 독립공화국과 명목상의 국가연합 또는 독립국가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협력관계를 지속하는 것이다.이 길은 앞으로 있을 영토분쟁과 소수민족분규,그리고 경제 및 재산관할권문제 등에서 러시아의 상당한 양보없이는 유지하기 힘든 협력관계 유형으로 보인다. 이러한 3가지 선택 가운데 가장 현실적인 것을 택한다면 그것은 물론 첫째번의 경우일 것이다.두번째의 선택은 우크라이나와 벨로루시가 러시아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불신이 가시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그렇다면 서방이 흔히 말하는 「슬라브민족연방」은 당분간 불가능한 것으로 판단된다.또한 세번째의 선택은 러시아가 수용하기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하겠다.말하자면 러시아는 자국의 영토를 보존하고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양보도 할 수 없을 만큼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그렇다면 러시아의 선택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 현실적으로 스스로의 살 길을 택하는 수 밖에 없어 보인다.즉 러시아공화국은 제국의 계승을 위해 독주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그렇게 되는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즉 러시아가 우선 정치·경제·군사·외교적으로 안정되어야 여타 슬라브계와 한때 동지였던 여타 소수민족공화국을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공화국이 주동이 되는 독립국가공동체는 날이 갈수록 무의미한 국가연합으로 나타나게 되는 반면,러시아공화국의 부상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국내외적으로 그 자리를 확고히 하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이는 옐친시대의 개막을 의미하여 미국은 옐친의 독주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탈냉전시대라고 하나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은 것은 국방의 자위권이며 경제적 민족주의다.이러한 상황하에서 러시아공화국은 구소련의 방위력과 경제적·잠재력을 모두 독점적으로 물려 받은 것이다.과거의 소련은 국가관리가 매우 어려운 15개 공화국으로 분산되어 있었으나 이제 대략 같은 규모의 경제적 잠재력과 방위력을 러시아공화국 하나에 집중시키고 집약시킴으로써빠른 시일내에 옐친은 제국의 구조를 내실있게 재정비할 수 있어 보인다. 러시아공화국은 그 정체적 성격면에서 물론 강력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추구하면서도 국가주도적 발전모델을 받아들일 것으로 예측된다.그렇게 되는 경우,한국의 경제성장 경험이 러시아에게 암시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따라서 러시아의 정치발전 모델도 국가주도형이 되는 경우,비교적 성공적인 제3세계 모델이 러시아에 매우 유용하게 적용될 것이다.결과적으로 러시아의 등장은 유라시아에 방대하고도 강력한 개발국가의 부상을 의미하며 이는 유럽과 아시아에 새로운 지역변수로 주목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미국과 러시아의 상호견제와 대립,그리고 경쟁 또는 협력관계는 계속되리라 믿어진다.1840년 프랑스 정치사학자 토크빌은 그의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과 러시아간의 라이벌관계를 예견하고 있었다.그는 영토의 규모,인구의 크기·민족성·경제적 잠재력,그리고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보아 미국과 러시아는 향후 수세기동안 세계의 중심세력으로 서로가 경쟁하고 협력하는 「제국」으로 보았다.러시아 홀로만으로도 미국에 버금가는 잠재적 국력을 가지고 있다.러시아가 새로 태어나는 자본주의 국가로 급격히 발전하면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에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 대권 쥐었지만 험난한 「옐친의 앞날」(소련 소멸 그이후:상)

    ◎가격자유화등 공화국간 조율 급선무/민족갈등·영토분쟁 중재도 무거운 짐/식량난해소 조기가시화 못하면 수성 “불안” 고르바초프의 인기가 한창이던 지난 87년 모스크바시 당서기장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속도가 너무 늦다고 강력히 비난,서기장직에서 쫓겨났다.이때 오늘의 옐친이 있을 것을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러나 옐친은 4년후인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의 직선대통령에 당선되는 화려한 재기에 성공했다.그이후 지난 8월 쿠데타 기도분쇄,독립국가공동체(CIS)의 창설주도,핵버튼인수로 상징되는 최고실력자 부상등 급속한 정치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른 지금 옐친이 앞으로도 과거와 같이 순탄할 길을 걸을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고르바초프가 사임을 발표하는 날 모스크바시민들이 보인 반응을 봐도 옐친의 앞날이 밝지 않음을 쉽게 알수 있다.이들은 고르바초프의 사임에 극히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옐친의 등장에도 전혀 환호하지 않았다.새로 출범하는 CIS에 대해서도 상당수가 신뢰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최근 실시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70% 이상이 앞으로의 경제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으며 CIS가 출범한다 해도 과거와 달라지는게 없을 것이란 비관적 대답도 60%를 넘어섰다. 이같은 상황속에서 국민들의 비관을 낙관으로 바꾸고 생필품부족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무마시키기 위해 옐친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것인가.우선 서방세계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구소련을 계승한 러시아의 최고지도자로서 핵무기의 안전한 통제를 보증,국제사회의 불안을 해소하는게 그에게 주어진 첫번째 과제라고 할 수 있다.또 구소련이 체결한 각종 국제조약을 준수하고 다른 공화국들도 이에 따르도록 책임을 지는 역할도 어쩔 수 없이 옐친이 떠맡을 수 밖에 없는 몫이 될것이다. 이보다 더욱 시급한 것이 파탄에 빠진 경제를 소생시켜 국민들의 주린 배를 채우는 일이다.경제파탄이란 거센 격랑앞에서 침몰위기에 놓여 있는 구소련의 경제개혁호를 무사히 안전지대로 이끄는 선장의 역할이 이제 최고권좌에 오른 옐친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이와 관련,내년 1월2일부터 실시키로 돼있는 가격자유화를 둘러싼 러시아와 여타공화국들간의 마찰을 해소하는 일이 가장 화급한 현안이 되고 있다. 옐친은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한다는 야심적인 경제개혁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이같은 옐친의 의도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냐의 여부가 가격자유화조치를 둘러싼 러시아와 여타공화국들간의 대립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옐친이 자신의 의도대로 경제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해도 그를 기다리는 또다른 과제가 있다.위기에 처한 구소련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어떻게 최대화하고 또 이를 각 공화국간에 어떻게 배분하느냐는 문제를 옐친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구소련은 이제 15개의 공화국으로 분산됐지만 서방의 경제지원이 효율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창구를 단일화할 필요가 있는데 이역시 옐친이 맡을 몫인 것이다. 경제문제와는 별도로 폭발직전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민족갈등의 상처를 치유하고 영토문제등을 둘러싼 각공화국간의 이해대립을 CIS를 유지하는틀내에서 조정·무마시키는 중재자의 몫도 옐친이 떠맡아야 할 과제이다. 또 알렉산데르 루츠코이부통령의 옐친자신에 대한 비난등 옐친진영 내부에서 빚어지는 불협화음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도 새 체제의 안정적 출범을 위해 빠뜨릴 수 없는 대목이다. 옐친으로선 어느것 하나 쉬운 것이 없다.그러나 이제 최고지도자가 된 이상 이같은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그자신의 정치력외엔 다른 방법이 없다.옐친 자신에 대한 서방세계 일각에서의 불안한 시선을 스스로의 힘으로 불식시켜야 하는 때가 된것이다. 이같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때 옐친은 진정 새로운 영웅으로 기록될 것이다.그러나 그 반대의 경우 옐친 역시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퇴진할 것이 확실하다.
  • “「소련 74년」이 남긴건 굶주림 뿐”(특파원수첩)

    ◎주민들,이념의 공백속 불확실한 미래에 초조 『고르비가 물러가고 소련이 없어지고 옐친이 부상하고…,다음은 어떤 차례이지요』 25일 하오TV를 통해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사임연설을 지켜보던 블라디미르 쿨라긴씨(45·블라디보스토크지기자)는 마치 퀴즈게임하듯 기자에게 반문한다.담담한 그의 말씨가 나타내주듯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표정이다. 『벌써 10일째 휘발유 판매가 중단돼 자동차들은 발이 묶였고 빵 한조각을 사려면 영하30도의 추위속에 새벽3시부터 빵가게 앞에 긴 줄을 서야하는 마당에 누가 대통령이 되든,떠나든 국민들의 큰 관심사는 아닙니다』 그는 이미 지칠대로 지쳐있는 국민들은 오로지 어떻게 이 겨울을 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발등의 불 이라고 얘기한다. 지난 86년 고르비가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을 발표했던 시영빈관은 하룻밤 1백20달러를 받고 외국인들을 재워주는 호텔로 둔갑해 소련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그때 고르비를 시중들던 여종업원들은 달러를 갖고와 거들먹거리는 자본주의나라 비즈니스맨들의 비위를 맞추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일반시민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지난 74년간 자국민들에게는 억압과 공포의 절대지배자였고 서방세계에는 막강한 핵무기로 무장한 「예측불능의」 위험한 상대였던 소련의 몰락이 갖는 의미는 크다. 소련의 소멸은 무엇보다 소련이라는 이름으로 대변되던 공산주의이념과 그에 입각한 사회주의 경제체제의 완전몰락을 의미한다. 아울러 이는 그 체제가 있음으로 해서 가능했던 지난 한 세대 동안의 동서대결체제가 명실상부하게 종언을 고한 것이라 할 수 있다.소련의 붕괴는 이데올로기면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두 체제의 우열을 확연하게 가려내준 역사적 이벤트임에 틀림없다.전통적 의미에서 이념대결시대는 이제 더이상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소외도 빈부의 격차도 없고 그리고 눈물 없고 착취 없는 위대한 사회주의 건설의 약속이 소련국민들에게 남긴 것은 기아와 눈물 뿐이었다』 이 대목을 얘기하는 쿨라긴씨의 목소리는 자못 흥분되었다.자본주의는 자체모순으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카를마르크스의 「위대한 예언」은 빗나갔고 오히려 정반대로 사회주의가 내부의 힘에 의해 스스로 그 막을 내렸다고 그는 단정했다. 물론 앞으로 사회주의가 물러난 과거의 소련땅에서 자본주의가 쉽게 그 자리를 대신하리라고 속단하기는 어렵다.소련국민 대부분이 지난 70년동안 사회주의 외에 어떤 이념도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사회주의가 사라진 이념의 공백상태가 무엇으로 채워질지 지금으로서는 그 누구도 정확히 점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러시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로 대표되는 슬라브민족주의가 당분간은 이들을 묶어주는 큰 유대역할을 할 것이고 여타 군소 공화국들도 나름대로 국가의 결속을 유지해 나갈 것이다.그 테두리 안에서 민족간 갈등과 경제난이 어우려져 혼란도 가중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인류는 전혀 새로운 미지의 새로운 실험을 눈앞에 두고 있다.긴장된 양자대결상태에서 어느 한쪽의 소멸은 나머지 한쪽에도 필시 변화를 가져오게 마련이기 때문이다.그 변화의 모티브는 「대결」 「완승」 「패배」「공멸」등과 같은 과거세대의 수식어가 아니라 공존을 전제로한 평화의 장에서 찾아야 한다. 미국이 과거 냉전기간동안 소위 「공포의 균형」관계를 유지해왔던 소련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러시아를 소련의 상속자로 신속히 인정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미국도 자신들의 일차적인 과제가 구소련땅에서 일어나는 불안정,불확실성을 최소화하는데 있다는 것을 인식한 것같다. 과거엔 소련의 강대화가 서방세계의 위협이었는데 이제 반대로 서방은 소련의 불확실성을 더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소련의 상속자가 된 러시아가 언제쯤 다시 기력을 회복하게 될지 또 어떤 성격의 국가로 등장할지 지금으로선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근대적인 산업국가로서의 국가경영기법을 도입해 재건에 나설 경우 그 장래가 크게 어둡다고만 볼 것은 아니다. 쿨라긴씨는 조국의 엄청난 변혁을 담담하게 맞으면서도 소련의 몰락은 한 세대동안 지속돼온 반목과 갈등의 대결구도를 청산하고 인류에게 「공존의 장」을 만들어갈 호기를 마련해준 『역사적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라는 기자의 견해에는 쉽게 동의를 표했다.
  • 북한 권좌 조기세습의 「신호」/김정일 군최고사령관 등장 의미

    ◎당·정 이어 군부통제권까지 장악/김일성 사후 권력갈등 소지 제거 김정일이 24일 열린 북한노동당6기 19차 전원회의에서 군최고사령관으로 추대됐다는 북한중앙방송의 25일자 보도는 두가지 점에서 주목된다. 그 하나는 김정일이 노동당 전원회의라는 공식절차를 통해 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됐다는 점이다.다시 말해 이번 보도는 이제까지 간간이 흘러나왔던 김정일최고사령관 「호칭설」과 달리 그 절차를 명시함으로써 의심의 여지를 불식시켰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80년 제6차 노동당대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표면화된 김정일권력승계가 최종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나타내는 동시에 김정일이 당정에 이어 북한권력의 마지막 핵심고리인 군부를 완전히 장악했음을 명시적으로 천명한 것으로 김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임박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 이와 더불어 당6기 19차전원회의가 지난해 5월이후 1년7개월만에 열렸다는 점이 이번 보도의 또다른 특징이다.당대회와 당대회 사이 북한 노동당이 직면한 중요문제를 토의·결정하는 최고결정기구인 당중앙위전원회의가 「남북합의서」가 채택되고 국제적인 핵사찰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시점에 열렸다는 것은 북한이 권력승계의 마무리작업과 대내외정세에 따른 국면전환을 연계해 진행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는 남북관계개선과 현실주의에 토대를 둔 대외정책추진 등 북한의 정책전환에 따른 내부적인 결속와해를 최소화하면서 김일성·김정일부자세습을 부동의 사실로서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사후에 빚어질지 모르는 내부적인 권력갈등의 소지를 완벽하게 없애겠다는 김일성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도 해석해볼 수 있다. 또한 대일수교추진 등에 있어 적극성을 보인 것으로 알려진 김정일이 북한군부를 대표하게 됐다는 사실은 앞으로 북한이 대남정책 및 대외정책 추진에 있어 보다 전향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럼에도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93조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된 국가주석,곧 김일성주석이 「전반적 무력의 최?自渶?관」임을 규정하고 있는데 이로 인해 당중앙위 전원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주석직의 승계가 없는 김정일의 최고사령관 추대가 외형적인 권력조직상 가능한 것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때문에 이번 최고사령관 「추대」보도 역시 김정일이 군부에 대해서도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또한 당차원에서의 군통수권을 완전 장악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정부조직상의 최고사령관의 지위에 올랐음을 뜻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이경우 김정일은 북한방송의 표현과 달리 이제까지 김일성이 맡아온 당중앙위 군사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됐으며 이 사실이 곧 당우위의 북한권력 특성상 사실상의 최고사령관의 지위승계로 평가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다만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김정일이 지난해 5월 정부기관인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돼 군에 대한 통수권을 내용상 승계한데 이어 이번에 「군최고사령관」에 추대됨으로써 최고 지도자의 지위에 한발 더 다가섰다는 점이다. 동시에 지난해 5월 「당6기 18차전원회의개최→최고인민회의 제9기1차회의소집」의 절차를 거쳐 국방위 제1부위원장에 올랐듯 이번 「당6기19차 전원회의개최」에 이어 내년 2월 김정일의 생일을 전후해 또는 4월 중순쯤 「최고인민회의 제9기3차회의」가 소집돼 김정일에게 보다 명실상부한 지위를 부여하지 않겠느냐는 예측을 낳고 있다.
  • 고르비의 퇴장(사설)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25일 마침내 사임을 발표했다.31일의 소련방공식소멸에 따르는 불가피한 퇴장이다.그가 영도하던 소련방과 함께 역사의 뒤안으로 물러나는 것이다.85년 3월11일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된지 6년 9개월만의 사임이요 퇴장이다. 공산종주국 소련의 개방과 개혁 그리고 신사고외교로 세계사의 방향을 바꾸어 놓은 역사적인 인물의 퇴장인 것이다.그는 74년간에 걸친 1당독재의 비이와 부정·부패 그리고 비능률의 한계에 이른 소련공산당과 공산체제에 과감하고도 혁명적인 개혁의 불을 지른 장본인이다.동구공산권을 해방하고 독일통일을 허용했다.미국과의 획기적인 군축으로 세계적인 화해·협력·공존의 탈냉전시대를 개척한 세계적 지도자였다.한·소수교의 문을 열고 제주도를 방문한 그는 한반도의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세계적인물의 한사람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물론 세계는 그의 퇴장을 보면서 아쉬운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가 시작한 개혁이 미처 성공의 결실을 거두지도 못한 상태에서아니 실패라는 평가의 혼돈 상태에서 바로 그 개혁의 결과에 강요당한 그의 퇴진을 안타까워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감정일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사회주의의 완전포기가 아니라 개혁을 통한 구제와 강화에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가 그의 이상이었다.사회당으로 개혁된 공산당이 민주화된 사회주의 소련의 집권당으로 남기를 그는 바란 것이 분명하다.소연방의 소멸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인간의 소망대로만 움직여 주지는 않는 경우가 많다.고르바초프의 경우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었다.그의 희망은 바람직스러운 이상이었는지 모른다.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방법론상 실현이 불가능한 것이었는지 모른다.오늘의 소련경제현실과 민족갈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방의 소멸과 그의 사임자체가 그것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인 인물에게는 나름대로의 소임이 있는 법이라면 고르바초프의 그것은 누구도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한 「짐승의 얼굴을 한」1당독재의 공산주의체제 부정과 개혁의 과감한 시작에 있었는지 모른다.그런 시각에서 보면 그는 자신에 부여된 역사의 소임을 충분히 그리고 훌륭하게 완수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작을 수습하고 굳히고 발전시키는 것은 다음 지도자들의 소임임에 틀림없다.고르바초프의 개혁은 지난 8월의 쿠데타 소동으로 한계를 드러낸바 있다.새출발의 전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그렇지 않으면 파국을 맞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옐친의 독립국공동체는 그 전기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고르바초프가 공산당해체와 독립국공동체 인정및 연방해체와 자신의 사임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같은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그의 퇴장은 그가 시작한 개혁의 성공을 위한 불가피한 희생일지 모른다.고르바초프의 위대한 시작이 옐친등에 의한 훌륭한 결실로 이어지길 우리는 바란다.
  • 고르비/「해빙」을 부르고 「개혁」에 지다

    ◎「영욕의 7년」 집권서 퇴장까지/「통독의 문」 여는등 냉전종식을 주도/냉전장악 실패·「빵」 해결못해 “몰락 길”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5년 3월11일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제8대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돼 6년9개월의 집권기간동안 철저한 현실노선에 입각한 정책으로 「제2의 소련혁명」이라 불릴만한 엄청난 변화를 소련과 국제사회에 몰고 왔었다. 그가 권좌에 오르면서 동토의 소련국민들은 볼셰비키혁명 68년만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았다. 이어 89년에는 사상최초로 복수정당후보를 상대로 한 선거가 치러졌다. 90년 2월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포기했고 고르바초프는 헌법을 개정,대통령에 취임했다.서구민주주의 개념을 도입,당과 정부의 국가경영에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에 바탕을 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은 국제정치면에선 세계사의 변혁을 주도해 왔다.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항상 군비축소와 주권존중이라는 「신사고 외교」를 원칙으로 삼았다. 고르바초프는 집권한지 8개월만인 85년11월 제네바에서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던 레이건 미국대통령을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눔으로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87년 중거리핵전력(INF)협정체결을 비롯,88년 동유럽주둔군 50만 감축,91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등 그의 혁신적인 군축정책은 『탱크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난 45년 얄타협정으로 출발한 미소 양극체제의 동서냉전시대는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이와함께 고르바초프시대의 최대업적인 독일통일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이루어졌다. 그는 또 88년5월 아프가니스탄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단행했다. 89년12월 몰타에서 열린 미소정당회담에서는 정식으로 냉전시대의 마감을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중국·이스라엘등 갈등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과도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연 것도 다름아닌 그의 신사고 외교의 결과였다. 고르비는 셰계를 움직인 정치인답게 다양한 별명도 갖고있다.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세계의 대도박사」 「기적의 마술사」등 경탄스런 수식어가 붙는가하면 「금세기들어 가장 탁월한 소련지도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그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당시 『고르비가 상을 받은게 아니라 오히려 노벨상에 무게를 더해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은 「신사고 외교」의 바탕이 되어 탈냉전·군축등에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빵」문제는 해결하지못해 그를 몰락의 길로 재촉했다.그 이유는 고르바초프 자신이 사회주의에의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으며 개혁의 속도를 끝내 스스로 통제하려고 했기때문이다.그는 사유화등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거부했다.그리고 경제적인 비상조치를 취할수 있는 포고령 발동권을 갖는등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90년 여름 급진적인 내용의 경제개혁안인 「샤탈린의 5백일 개혁안」을 거부하면서 개혁파인사들과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보수파들이 득세했다.상황이 이렇게 바뀌게되자 그해 12월 그의 측근이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독재출현과 쿠데타를 경고하며 사임했다. 급기야는 지난 8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발생,고르바초프는 이들에 의해 연금을 당했다. 이 쿠데타는 3일천하로 끝나기는 했지만 고르바초프와 연방정부의 권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그는 쿠데타이후 공산당 활동도 정지시키고 보수적인 색채의 내각도 물갈이했다.원성의 대상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도 숙정했다.그리고 발트해3국의 독립도 승인했고 각 공화국에 폭넓은 권능을 부여하는 내용의 신연방조약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연방정부의 권위는 회복될 수가 없었다.지난 1일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으로 소련방과 고르바초프에게 결정타를 안겼다.그 뒤를 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국 공동체 구성은 소련연방의 사망신고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환상적 꿈에서 깨트려 현실적 사회로 되돌리려 했으나 70여년간 경직될 때로 경직된 공산체제의 「현실」의 벽에 부딪쳐 끝내 실각을 자초하고 말았다. 1931년 3월2일 러시아 공화국 남쪽 스타브로폴지역의 프리폴노예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고르비는 학비 때문에 고등학교를 3개월이나 휴학하는등 어려운 청소년기를 경험했다. 그는 고교시절 집에서 16㎞ 떨어진 읍에서 방 한칸을 얻어 자취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집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는 모범학생이었다.이때만해도 그가 훗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 법대에 입학,마르크스·레닌저작 외에도 로마법,로크의 정부론,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 나갔다.심지어 법대에는 미국헌법까지도 열람이 허용됐는데,이같은 서구사상을 담은 「금서」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탈린 치하에선 하나의 큰 행운이었다.이때의 지식들이 현실정치와 접목되어 뒷날 페레스트로이카로 체계화 된다. 1954년 대학재학시절에 만난 라이사 티타렌코와 결혼한 고르비는35세의 나이에 고향인 프리폴노예 시당위원장이 됐고 4년후엔 보다 넓은 지역인 스타브로폴지구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이때 그는 다시 대학에서 농업경영학을 공부,학위를 얻고 농업문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고르바초프는 1978년 농업담당 당서기가 되면서 중앙무대인 모스크바로 진출하게된다.그가 모스크바로 올라오게된 계기는 농정실패에 책임을 느낀 쿨라코프가 자살함으로써 농업담당 당서기가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그에게는 확실히 소련 역대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관운이 따르고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러나 소련사회에 평화와 자유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개혁가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역사의 아이러니임에 틀림없다.동토의 땅에 개혁의 문을 열어젖힌 그는 결국 그 문으로 퇴장한 것이다.
  • 남북의 빗장 풀릴까/남북 「화해시대」로 가는가:9(끝)

    ◎“「화해의 큰흐름」 북도 외면 못할것이다”/「주체틀」 고수속 새 정세 적응 고심/「12·13합의」 얼마나 실천할지… 일부선 회의적 「12·13합의서채택」은 남북관계의 흐름에 비쳐 하나의 「돌출사건」인가.그리고 이같은 합의서채택이 북한의 전략적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전술적 차원의 트릭인가등의 물음이 남북합의서 서명이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같은 물음이 계속 제기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이 바로 남과 북이 합의서서명 정신에 걸맞게 화해와 평화,공생공존의 시대로 나아갈수 있느냐를 가늠해 볼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대해 신중론에 서있는 관계자들은 오는 26일 있을 핵관련 판문점대표접촉을 지켜보자며 핵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명쾌하게 확인되기 전까지는 성급한 결론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이들은 북한의 국가적 전략목표인 「사회주의완성」과 「조국해방」이라는 2대 정책은 쉽사리 바뀔수 없으며 그들의 대남전략 또한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낙관론자들은 북한이 이미 변혁의 행보를 시작했으며 그 변혁의 속도는 예상보다 매우 빠르게 진전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냉전적 사고에 얽매여 북한이 최근에 취해온 변화조치들에 대해 지나치게 냉소적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2∼3년동안 진행되어온 남북관계의 변화흐름을 감안해 볼때 합의서채택이 결코 돌출적인 사건이 아니며 북한이 이미 소련의 대변혁사태이후 탈냉전의 흐름에 편승,변신의 항해를 시작한만큼 그 행보를 되돌이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같은 낙관적 전망은 현재로서 판단해볼때 나름대로의 상당한 객관적 근거를 갖고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령 남과 북은 올 한햇동안만도 남북단일 탁구및 축구팀을 구성,세계대회에 공동 출전했으며 남북음악인들은 일본 후쿠이(복정)현에서 환일본해국제예술제에 함께 참가했었다.평양에서 개최된 IPU총회에 IPU규약과 관례보다 많은 수의 남한대표단의 파견및 판문점통과가 허용됐으며 9월17일에는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다. 합의서 채택과 함께 올해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은 북한이 비록 가입후에도 「하나의 조선」정책이 바뀐 것이 아니라고 강변했으나 궁극적으로 북한의 대외관계는 물론 대남 및 대내정책의 수정을 가져올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당시 대부분 북한전문가들의 평가였다. 남북간의 화해무드는 이외에도 물자교역에서 두드러졌는데 남한 쌀 10만t과 북한 시멘트·무연탄과의 직교역 계약체결을 비롯,모두 3건의 직교역과 간접교역을 포함,올 1월부터 11월말까지 1억7천만달러의 남북물자교역이 이뤄졌다.이같은 수치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배가 늘어난 양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지난해 9월이후 대일수교에 나서 최근까지 모두 5차례의 수교회담을 진행했으며 미국을 비롯,서구·동남아·호주·대만 등 서방권과의 관계개선 노력을 펼치는 등 탈이념적 다변외교를 추구해 왔다. 즉 북한은 고르비 등장이후,그리고 동구사회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연방해체로 대변되는 소련사태의 급진전 이후 기존의 틀을 벗어난 대외정책을 펼쳐왔으며 남한쪽으로도 분단 40년 넘게 닫아 놓았던 문호를 제한적이나마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그 하나 하나가 지난 40년간 「주체의 울」안에 안주해온 북한의 특성과 연관지어 볼때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조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이 정권창출의 직접적인 지원자였으며 정신적·물질적 지주였던 소련이 연방해체라는 사태를 맞고 있는 급격한 국제정세 변화속에서 단순한 전술적 변화를 통해 체제생존을 도모하리라는 일반의 분석은 북한의 속사정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데서 나온 것일 수 있다.소련의 연방해체는 곧 북한과 소련 양국간에 과거에 지속되어 왔던 혈맹관계가 다시는 복원될 수 없음을 예단케 하는 동시에 북한으로 하여금 새시대에 맞는 새로운 활로를 찾도록 강요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 핵사찰 압력에서 잘 드러나듯 2차세계대전후 45년간 계속돼온 양극화시대를 종말짓고역사상 최초로 세계를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유일적 지도국으로 등장한 미국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에게 새로운 선택을 집요하게 강요하고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소련이란 막강한 후원자를 잃어버린 북한이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무소불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미국의 압력을 외면하기에는 역부족임은 너무나 자명하다. 따라서 북한이 26일에 있을 판문점 대표접촉에서 그 어떠한 반사적 반응을 보일지라도 결국은 빠른 시일내에 핵사찰을 수용하는 등 보다 전향적인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시도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 농촌서 권위 약화/중국공산당 고심/홍콩지 보도

    【홍콩 연합】 중국 공산당의 농촌지역에 대한 이념상의 통제력이 서서히 약화되어 가고 있으며 중국 당국은 당 권위의 전통적인 보루인 농촌지역에서 당의 권위가 상실되어 가고 있는데 대한 대책마련에 골몰하고 있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24일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농촌지역의 사회주의 보루 강화방안」에 관한 보고에서 절강성 당위원회는 수많은 농촌지역의 당 조직들이 부르주아적인 영향을 받아 약화되고 해이해지고 있음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 소 11개공 「독립국공동체」 출범 문서

    ◎핵무기 통제 협정문 영내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카자흐,벨로루시(이하 구성국이라 칭함)는 모든 핵무기의 제거를 지향하며 핵무기의 확산금지를 확인할뿐아니라 핵의 국제적 안전을 희망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 1조:구소연방 합동전략군소속이던 핵무기는 독립국가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국가의 집단안보를 보장한다. 2조:구성국은 누구도 핵무기를 최초로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한다. 3조:구성국은 핵문제에 관한 정책을 공동으로 입안한다. 4조:우크라이나및 벨로루시의 핵무기가 완전 제거될때까지 핵사용문제는 구성국의 공동 입안으로 합의된 절차에 따라 결정된다. 5조:(1)항=우크라이나및 벨로루시는 지난 68년의 핵확산 금지조약에 핵비보유국가로 가입하며 이의 적절한 보장을 위해 국제원자력기구와 협정을 체결한다. (2)항=구성국은 직,간접적으로 핵무기와 핵무기 운영에 관한 기술을 다른국가에 양도하지 않으며 다른 국가의 핵제조및 보유를 돕지 않는다. (3)항=상기 2항의 규정은 우크라이나,카자흐,벨로루시로부터 핵무기를 파기할 목적으로 러시아로 옮길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6조:구성국은 국제협약에 따라 오는 92년 7월1일까지 벨로루시및 카자흐의 핵무기 파기를 돕고 나아가 우크라이나는 공동 사찰하에 핵무기를 해체하기 위해 전술핵을 중앙공장지대로 철수시킬 것을 보증한다. 7조:구성국 정부는 이같은 핵무기에 관한 합의서의 비준을 얻기위해 각국 최고회의(의회)에 제출한다. 8조:이번 협정은 비준을 필요로 한다.각국의 비준서가 러시아정부에 인도된 뒤 30일이 지난뒤 협정은 발효된다. ◎알마아타 선언문 11개 독립국들은 민주적 합법 국가와 상호승인,국가주권 존중,주권적 평등,결코 변경할 수 없는 자결권,평등및 내정불간섭의 원칙,무력사용과 무력·경제 또는 다른 압력 수단을 통한 위협의 배제,분쟁의 평화적인 해결,소수 민족의 권리를 포함한 인간의 자유 및 권리에 대한 존중등을 기초로 발전해 나갈 상호관계의 건설을 위해 노력하면서 현존하는 국경선의 불가침성과 서로의 영토보전을 인정·존중하고 국내 평화와 국제협정의 유지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면서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공동체 구성원들간의 협력은 국가나 초국가적 조직이 아닌 구성원들간의 합의에 의해 질서있게 행동하며 동등의 기초위에 형성된 조정기관을 통한 평등의 원칙위에 존재한다. ▲국제전략상의 안정과 안전 확보라는 목적을 위해 전략군통합사령부와 핵에 관한 단일통제가 유지될 것이며 비핵 중립국의 상태를 확보하려는 서로의 노력은 존중받게될 것이다. ▲독립국가연방은 구성원들의 모든 합의와 함께 구소련의 구성원들 뿐 아니라 독립국 연방의 원칙을 공유하는 다른 국가들에 대해서 개방돼 있다. ▲그같은 헌신은 공동유럽시장 및 공동유라시아시장,공동경제공간의 형성과 발전에 의한 협력을 향해 확인된다. ▲독립국가연방과 함께 소비에트사회주의연방은 소멸된다. ▲헌법적 절차의 구조에 따라 독립국가연방 보증에 참여하는 국가들은 구소련의 협정과 조약에서 벗어나 그들의 헌법적 구조에 의거,국제적 의무를 완수한다. ▲독립국연방 참가국들은 이 선언에 포함된 원칙들을 철저히 준수한다. ▷독립국공동체기구◁ ▲국가원수평의회(CHS)=최고 통치기구로서 독립국 연방의 주요 문서들을 승인,개정 또는 첨가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1년에 두차례 개회되며 독립국가공동체 구성국의 요청에 따라 특별회의도 개최할 수 있으며 의장직은 교대로 맡게 된다. ▲행정수반평의회(CHG)=국가원수평의회회의와 때를 맞춰 1년에 두차례 회의를 갖게 되며 독립국공동체의 기초적인 정책들을 채택하는 역할을 갖게 되나 자세한 권한은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다.의장은 윤번제. ▲장관급위원회=독립국공동체의 기능에 관한 정책을 조정하고 실질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 소「독립국공동체」 공식발족/11개공 정상회담/연방소멸 합의

    ◎현 국경선 인정등 3개항 서명/「핵」사령관 샤포슈니코프국방 임명/러시아공 유엔안보리 승계도 동의 【알마아타 AP AFP 연합 특약】 러시아공을 비롯한 소련 11개 공화국 지도자들은 21일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에 관한 3개 문건에 서명,현재의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을 정식 소멸시키면서 이를 대체할 독립국가공동체를 구성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을 비롯,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에 최초로 합의한 슬라브계 3개 공화국 지도자들과 추후 가입의향을 천명한 카자흐·몰도바 등 모두 11개 공화국 지도자들은 이날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대통령 사저에서 회동,5시간여의 협상을 벌인 끝에 이같은 역사적 합의에 도달한 뒤 서명 조인식을 가졌다. 조인식이 끝난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옐친대통령은 『실질적으로 모든 일을 해냈다』고 말했으며 새 독립국가공동체의 기초가 될 3개 문건의 첫 부분은 「의정서」로서 11개 공화국이 「동등한 자격」의 공동체 창설 멤버로서 새 공동체에 가입한다는 것이다.두번째 문건인 「알마아타선언」은 11개 공화국의 독립과 함께 현존 국경선을 인정하는 내용이다.마지막 문건은 핵무기의 처리및 통제에 관한 최종합의를 오는 30일까지 연기하되 그때까지 2만7천기의 핵무기 등을 통제하는 임시 통합사령관에 샤포슈니코프 현 연방국방장관을 임명하기로 동의한 것이다.따라서 핵무기는 30일 벨로루시의 민스크에서 최종 방위협약이 체결될 때까지 통합사령관의 단일통제하에 있게 됐으며 샤포슈니코프는 이날부터 고르바초프를 대신해 소련군 최고사령관으로 통수권을 갖게 됐다.이로써 공동체 체제아래서 핵무기의 통제문제는 30일 협상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또 참가공화국들은 러시아공이 유엔 안보이 상임이사국 지위를 승계하는데 동의했으며 공동체 시민권을 따로 제정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옐친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날 초청받지 못한 고르바초프의 장래에 대해 언급,『지도자들은 그가 사임 의사를 표명한 것을 참작해 적절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으나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 한·중 조기수교의 발판 마련/양국 무역협정가서명의 의의

    ◎투자보장·2중과세방지 협정도 곧 매듭 한·중 양국이 20일 무역협정을 사실상 체결함에 따라 우선 경제적인 면에서 한국상품의 대중수출이 증대되고 무역수지적자가 상당부분 해소되게 됐다. GATT(관세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상호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한 미수교사회주의국가에 대해 GATT 세율을 적용하는 편익관세를 적용,차별대우를 방지해 왔다.이같은 편익관세가 중국에도 적용됨은 물론이다. 중국은 우리의 차별관세에 해당하는 보통관세와 최혜국 대우를 보장하는 최저관세를 국무원령으로 규정해오고 있다.그러나 중국의 보통관세는 상호 연간 교역량이 40억달러에 이르는 한국을 비롯,남아공·이스라엘등 극소수 국가에만 적용되어 왔다.그 이유는 아직 미수교상태이며 무역협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우리의 대중수출상품에는 5∼30%의 높은 차별관세가 부과되어 왔다.이는 대중무역수지적자가 올들어 8억1천만달러에 이르는등 무역불균형의 주요원인이 되는 것이다. 주중한국무역대표부측은이같은 무역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지난 10월 차별관세를 철폐,최혜국대우(MFN)를 보장하는 무역협정을 조속히 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이것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중국상품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강력한 입장을 전달했다.또 지난 11월 양국 상공장관회담에서 이같은 점을 거듭 촉구,연내 무역협정체결원칙에 합의했다. 이날 협정체결에 따라 내년 1월 협정이 발효되면 차별관세가 철폐돼 우리의 대중수출규모가 15%가량 늘어날것으로 정부 관계자들은 기대하고 있다.또한 무역수지도 균형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한·중 양국이 이날 처음으로 경제협정을 체결함에 따라 앞으로 투자보장협정 및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양국 경제협력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정치관계개선으로 이어진다.중국의 전기침외교부장은 『양국 경제교류·협력의 증대는 관계정상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한바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이날 무역협정체결은 조기수교를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무역협정체결과 함께 남북간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채택과 핵협상 개시등 일련의 남북관련 변화와 진전을 감안할때 한·중수교는 내년 상반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중국문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 「낫과 망치」의 적기 역사에 묻히다/소 연방해체 합의 의미와 전망

    ◎옐친 밀어붙이기에 고르비 결국 “항복”/공동체출범 선언 맞춰 공식 사임설도/경제난등 해결 못할땐 옐친도 같은 운명 될듯 「질서있고 합헌적인 절차」에 따라 소연방을 해체하고 독립국가 공동체를 출범시킨다는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대통령간의 합의에 따라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주역 소련은 이제 역사의 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이와 함께 독립국가공동체의 탄생을 둘러싼 두 지도자의 갈등도 일단 해소됐다.옐친과의 권력다툼에서 고르바초프의 패배 자인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독립과 슬라브계 3개공화국의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선언,군부의 공동체 지지와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등 각공화국의 잇따른 참여의사 표시로 소연방의 해체와 독립국가공동체의 탄생은 사실상 돌이킬수 없는 대세로 굳혀졌다.그럼에도 불구,고르바초프가 이제까지 사임을 거부했던 것은 이같은 과정이 「적법한」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한가지 이유에서였다.또 사실상 대권을 잡은 셈이었던 옐친이 갖가지 압력수단을 동원하면서도고르바초프를 몰아내지 못한 것 역시 독립국가공동체가 소연방의 적법한 승계자로서의 지위를 굳히지 못한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합의로 이같은 문제들이 해결된 셈이다.고르바초프는 대세의 흐름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내세웠던 합헌적인 명예퇴진의 명분을 살릴수 있게 됐고 옐친은 고르바초프의 명분을 살려주는 대신 독립국가공동체가 소연방의 적법한 승계자란 정통성을 확보할수 있게 된것이다.더욱이 이날 합의는 베이커 미국무장관이 소련을 방문,옐친및 고르바초프와 연쇄회담을 가진 직후 나온 것이어서 옐친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독립국가공동체를 인정한 듯한 인상을 국제적으로 과시할수 있는 기대밖의 효과까지도 얻을수 있게 됐다. 그동안 고르바초프를 고사시키기 위한 옐친의 작전은 꾸준하게,그리고 치밀하게 전개돼 왔다.지난 8월의 쿠데타실패이후 러시아공화국의 물자공급 중단은 연방경제를 더욱 도탄에 빠뜨렸고 지난달말 바닥난 연방재정에 대한 지원을 중단함으로써 공무원과 군인들에 대한 봉급조차 지불하지 못할 정도로 연방정부를 위기에 몰아넣기도 했다.소련군부는 자신들을 지탱해줄 돈줄을 쥔 러시아공화국에 매달리지 않을수 없었고 이것이 옐친의 승리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고르바초프는 처음 독립국가공동체의 창설을 위헌이라고 비난,이를 결코 수용치 않겠다고 강력한 반발을 보였다.특히 군최고사령관으로서 핵무기의 통제권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집착은 한때 서방세계에 고르바초프와 옐친간에 팽팽한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까지 부르게 했다.그러나 과거 소연방의 핵이었던 3개공화국이 연방에서 이탈하고 군부마저 옐친진영으로 돌아서 연방정부는 사실상 빈껍데기만 남은 상태였다.뿐만아니라 미국조차 고르바초프보다 옐친과의 회담을 중시함으로써 고르바초프의 마지막 설 땅을 없애버렸다.이렇게 되자 고르바초프로선 대세의 흐름을 반전시킬수 없음을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이제 그가 할일은 자신의 사임시기가 언제인가를 결정하는 것뿐이다.앞으로 고르바초프가 어떤 절차를 통해 이를 공식화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이와 관련,오는 21일 알마아타에서 열리는 각공화국지도자 회담에서는 고르바초프의 사임과 독립국가공동체의 탄생이 공식선포될 것이란 추측이 나돌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사임은 옐친이 독립국가공동체의 최고지도자가 됨을 뜻하는 것이다.이는 옐친이 오랫동안 꿈꿔온 것이겠지만 이와 함께 고르바초프가 해결하려고 했던 많은 문제들 역시 옐친에게 그대로 넘겨지게 됐다.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옐친의 운명도 판가름나게 될것이다. □소연방 74년 약사 ▲1917년=2월혁명 발발 니콜라이 2세 퇴진(3월2일) 볼셰비키 정권 장악(10월25일) ▲1918년=레닌,러시아소비에트공화국 창설 내전 발발 ▲1919년=코민테른(사회주의 인터내셔널)창설(3월) ▲1921년=크론스타트에서 선원 봉기 10차 당대회서 신경제정책(NEP)채택하고 일당독재 형성 ▲1922년=연방조약 체결 스탈린 당서기장에 선출 ▲1924년=레닌 사망(1월21일)스탈린 등 3인 집단지도체제 형성 ▲1936년=스탈린,대숙청 단행 ▲1945년=2차대전 종전 소련,동유럽에 위성정권 수립 ▲1953년=스탈린 사망 흐루시초프 정권 장악 ▲1956년=흐루시초프,20차 당대회서 스탈린에 대한 개인숭배 비판 코민테른해체 소련군,헝가리 민중봉기 진압 ▲1964년=흐루시초프 실각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서기장 계승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 유리 안드로포프 서기장직 승계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 콘스탄틴 체르넨코 선출 ▲1985년=체르넨코 사망 고르바초프 당서기장에 선출 ▲1986년=27차 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정책 도입 ▲1989년=동유럽 공산주의정권 연쇄 붕괴 베를린장벽 붕괴(11월9일) ▲1990년=고르바초프,독일 통일에합의 당중앙위원회 다당제 도입키로 결정 ▲1991년=보리스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6월12일)강경파 쿠데타 기도 실패(8월19∼21일)고르바초프 당서기장 사임및 당중앙위원회의 자진해산 촉구(8월24일)발트 3국 독립 공식 승인됨(9월6일)공화국 지도자들 신연방조약안 거부(11월28일)러시아·벨로루시·우크라이나 등 슬라브계 3개공화국 독립국가공동체 창설 합의(12월 8일)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독립국가공동체 참여결정(12월13일)
  • 소 연방의 소멸과 한반도(사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소련)이 마침내 소멸된다. 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91년의 마지막 날인 오는 31일이 운명의 날이다. 낫과 망치로 상징되는 사회주의혁명의 붉은 깃발이 크렘린의 게양대에서 하강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소련을 탄생시킨 1917년 볼셰비키 사회주의혁명 이후 74년만의 종언인 것이다. 물론 소련이라는 국가실체의 소멸은 아니다. 소비에트연방은 해산되지만 공화국들은 남는다. 옐친이 주도하는 독립국가공동체로 새 출발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것이 될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이 있다면 공화국들의 위상이 거의 절대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유·민주·자본주의 공화국들의 필요에 따른 자발적 공동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분명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의 공식 종언을 의미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연방의 붕괴보다도 공산혁명과 함께 탄생한 소비에트의 소멸,그리고 공산혁명 그 자체의 공식 종언에 더 큰 역사적 의미를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산주의 소련은 소 국민은 물론 세계에 대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이었던가. 돌이켜보면 고통과 희생의 강요로 일관되었던 74년의 공산혁명사였다. 공산주의 이장사회 건설의 명분밑에 얼마나 많은 인명의 희생과 고통의 강요가 요구되고 정당화 되었던가. 소련에서는 물론 동구와 중국대륙,그리고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 있었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실패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도 결국은 그런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74년간의 공산주의가 세계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자본주의의 파멸을 막는데 도움을 준 사실 뿐이란 역설적 평가도 있다. 사회주의의 장점인 분배와 평등의 가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산권은 그로서 「빈곤의 평등」을 달성했지만 덕분에 서방은 복지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발전시킴으로써 공산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소련과 동구,그리고 인도차이나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누구와 무엇을 위한 공산혁명이요 희생이며 고통이었단 말인가. 중국과 북한은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주의 고수를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정치사회주의와 경제자본주의라는 정경분리의 방향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소련등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공산혁명의 포기와 민주화개혁의 변화는 소련의 소멸이 상징하듯 어쩔 수 없는 세계사적 시대의 요구인 것이다. 소련의 소멸을 보면서 한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과 골육상쟁의 한반도는 공산혁명의 가장 큰 희생자의 하나였다. 소련의 소멸이 상징하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최근의 남북한 합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이미 역사의 유물이요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 무의미해진 분단을 가장 적은 혼돈과 희생과 비용으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남북한의 공통된 역사적 소임이다. 북한의 질서있는 민주화 개혁의 달성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돕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 것이다.
  • 사노맹 박노해 피고/항소심도 사형구형

    서울고검 안승규검사는 16일 국가보안법위반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중앙위원 박기평피고인(필명 박노해·33)에게 원심대로 사형을 구형했다.
  • 상호 체제인정이 평화공존 지름길(남북 「화해시대」로 가는가:3)

    ◎화해/내정간섭·비방 절대 안해야 대결 46년 청산/북은 대남혁명 노선 규정 「당규약」 폐기해야 『남조선괴뢰들이 「핵사찰」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반대하는 어리석은 선전나발을 계속 불어대고 있다.노태우××가 그 앞장에 서고 있다』 『미제와 노××파쇼도당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온 겨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범죄적 전쟁문서인 전시지원협정에 맞도장을 누름으로써 침략과 매국으로 얼룩진 미국·남조선관계 역사에 천추에 용납 못할 또하나의 범죄의 기록을 남기었다』 흡사 교전중인 적대국끼리 살포하는 비방전단에나 나올 법한 표현으로 점철된 문구들이다.이렇게 험악한 표현들이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기 보름여전과 바로 하루전인 11월22일과 12월4일 북한의 당기관지 로동신문과 관영 중앙방송의 정규뉴스를 통해 여과되지 않은채 보도됐었다. 한마디로 이런 표현들은 지난46년간 남북간에 지속돼온 대결과 대립의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가를 시사하는 것이다. 남북은 지난 13일 역사적인 「대화합」을 일궈냈다.그리고 이를 25개 조문으로 담았으며 그중 「남북화해」라는 장을 둬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존중하고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남과 북이 서로를 「꼭두각시」니 「괴뢰」니 하며 거듭해온 46년간의 중상모략을 이제 중단하겠다는 의지를 서로에게 약속한 것이다. 이에따라 남북은 앞으로 서로의 감정을 건드리는 불필요한 작태를 과감히 청산하고 진정한 이웃으로 하나의 핏줄을 가진 동포로,그리고 통일의 시대를 함께 이끌어내야 할 동반자로 서로를 새롭게 바라보아야 한다. 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고 했다.북은 처음에 이 조항에서 상대방에 「존재하는」이라는 표현의 체제인정을 고집했었다.이는 곧 「주체사상」을 유일한 정치이데올로기로 하는 북한의 현 사회주의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남측의 자유민주주의체제와 함께 반체제및 운동권세력이 내세우는 논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겠다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다시 말해 남측 당국은 물론 「남북이 실체를 공인한」재야세력과도 연계할 수 있는 바탕을마련하겠다는 숨은 의도를 나타낸 것이었으나 북측은 이번 합의서채택에서 이같은 논리를 철회했다. 남북은 이와함께 평화상태로의 전환조항을 화해부문에 포함시켰다.북은 이 조항을 당초 불가침부문에 넣었으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문제도 정전 협정의 체결당사자인 미국과 해결해야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 조항은 특히 불가침이행을 위한 신뢰구축조치부문과 함께 이번 5차회담에서 남북간 줄다리기의 「시작과 끝」이었다는 지적을 받을 만큼 북한이 완강히 거부했던 부문.그러나 양측은 「남북사이의」라는 표현을 넣는데 극적으로 동의함으로써 남북이 한반도평화해결의 주체임을 확인했다. 이는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국간,북한당국과 우리측 재야세력간,북한과 미국간 대화를 병행추진한다는 북한의 3자대화논리가 전면적으로 수정되고 있음을 반영한 것으로 앞으로 남과 북의 「책임있는」두 당국이 한반도의 평화와 공존,그리고 통일을 위해 하게될 「역할」이 기대된다. 남북은 또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에 합의했다.이는 남침용땅굴파기나 아웅산폭탄테러,KAL기폭파와 같은 간접침략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약속.이같은 약속은 상대방에 대한 무력침략반대와 함께 쌍방간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위해 필수적인 조치이다.이에따라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과 인민민주주의혁명 과업완수」라는 북한로동당규약(전문)에 명시된 대남혁명노선도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이후 북한의 국제적 지위가 약화되면서 북한의 대외활동도 위축됐고 그 결과 국제무대에서의 남과 북의 소모적인 대결은 줄어들었으나 남과 북이 그동안 보인 대결과 경쟁의 모습은 국제사회로부터 적지않은 비웃음을 산 것도 사실. 그러나 양측은 이번에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상호협력,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고 밝혀 앞으로 유엔등 국제무대를 비롯,소련과 중국·일본등이 각축을 벌이는 동북아에서 양측의 위상제고를 위해 한 목소리를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가까이 유엔개발계획(UNDP)에 의해 추진되는 두만강유역개발계획과 관련,남북간의 경제협력이 시도될 것이며 유엔아태경제사회이사회(ESCAP),아태각료회의(APEC)등 북한의 국제기구가입에 대한 남측의 적극적인 지원등이 잇따를 것이다. 이 모든 합의내용은 합의서 발효후 1개월 안에,즉 늦어도 92년 3월19일 이전까지 구성될 남북정치분과위원회에서 마련할 구체적 방안에 따라 실천될 계획이다. 또한 남과 북이 92년5월19일 이전까지 판문점 상대측 지역에 각각 설치할 남북연락사무소는 당국간 공식적인 연락기능 외에 남북한을 왕래하는 국민들에게 「방문증명서」발급등의 제공도 맡게 된다. 이 모든 조치들이 12·13「남북합의」이전엔 생각지도 못했던 혁명적인 것들임은 물론이다. 이제 남과 북은 쌍방이 약속한대로 서로를 「비난의 객체」에서 「가슴으로 껴안을 동족」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될때 남북이 하나가 되는 길은 가까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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