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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치는 범법자들(러시아에선 지금…:10·끝)

    ◎치안 실종… 외국인 대낮 총기피습 일쑤/군용무기 범람… 한국특파원도 털려/강제로 택시태우고 수십배 바가지 대부분의 경우 외국인이 모스크바시내 호텔 현관문을 들어서면 그를 처음 맞아주는 사람은 호텔 도어맨이 아니라 바로 「마피아」들이다. 10여명이 무리를 지어 위압적인 자세로 현관문을 막고 버티고 서서는 첫인사가 『달러 체인지』이다.제복차림의 호텔 도어맨들은 몇발자국 뒤쳐져 팔장을 끼고 멍하니 서 있다. 외출을 할라치면 호텔앞 택시승강장을 차지한 이들이 일반영업용 택시의 접근을 막고는 자기들이 대놓은 택시를 타라고 반협박조로 욱박지른다. 멋모르고 이 택시를 탓다간 몇십 루블이면 갈수있는 거리를 그 수십 배의 바가지를 쓰게 된다. 이들 마피아들의 위세는 호텔 밖에 국한되지 않는다.호텔직원,특히 각층마다 경비원으로 지키고 있는 「제주르나야」(당직)라고 불리는 여인들도 알고보면 이들 마피아들과 한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그래서 밤만되면 역시 마피아와 한패인 「밤의 여인들」이 호텔복도를 제집같이 오가며 객실 방문을 두드리고 전화질을 해대 잠을 못잘 지경이다. 귀중품을 방에 두고 외출했다간 누군지도 모르게 방을 뒤져 훔쳐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현금·귀중품은 반드시 몸에 품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을 겪여야 한다. 지난해 가을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한국특파원 한명도 집에서 강도를 당한 일이 있지만 최근 몇개월 사이 이곳의 치안상태는 「제로」상태이다.경제난이 심화되면서 특히 달러를 소지한 외국인들은 범죄의 제1표적이 되고있다. 지난 4월초에는 안전하기로 이름난 모스크바대 외국인 유학생 기숙사에서 대낮에 아프리카 수단 출신의 한 유학생이 총기피습을 당해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많은 사람들을 아연케하기도 했다. 거의 마비상태에 이른 치안불안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은 시중에 엄청난 숫자로 범람하는 총기류들.연방해체 이후 군대·경찰에서 흘러나온 총기·무기류 때문에 웬만한 범죄조직들은 기관단총까지 갖추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러시아 내무부의 아나톨리 투르진총기국장은 총기문제의 심각성을 『모스크바에선돈만 있으면 탱크도 살수있다』는 말로 자조했다.투르진국장에 따르면 지난 88년 이전 연간 3백∼4백건이던 총기불법소지 적발건수가 지난해에는 압수된 총기가 3만4천정,탄약은 50만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실제로 저녁무렵 아르바트가 일대에 나가보면 『무기를 사겠느냐』고 물어오는 사람을 쉽게 만날수 있다.이들이 제의하는 무기는 군용단검을 포함한 칼·권총이 주종을 이루는데 단검은 값이 1천루블,권총은 체코제의 경우 1정에 1백50달러면 쉽게 구할수 있다. 투르진국장은 정확한 거래량은 집게되지 않지만 연방해체 이후 코카서스지역 주둔 군인들로부터 흘러나온 총기류가 최근 2년간 1만5천여정에 이른다고 말했다.현재 구소련군 사병의 평균월급은 1백루블이 채 안된다.한화로 환산하면 고작 8백원.기본적으로 생활이 안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연방해체로 기강까지 엉망이 돼 닥치는 대로 내다 파는 것이다. 여기다 마약복용자까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러시아내무부의 알렉산더 세르게예프 마약밀매단속국장은 『러시아경제가 세계경제로 편입되면서 제일 먼저 이루어진 게 마약시장의 개방』이라고 한탄했다.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지역에서 밀경작된 아편·대마초 등 마약류들이 거의 무방비상태로 모스크바로 흘러들어온다. 아편의 경우 중앙아시아지역의 밀경작면적은 지난 90년 80㏊에서 91년에는 1백54㏊로 크게 늘었지만 장비·인력·경비부족으로 이의 반입을 막을 모스크바의 경찰력은 거의 손을 놓고 있다. 이런 세태를 반영하듯 최근 모스크바시민들은 돈만 있으면 최우선적으로 하는 일이 아파트 현관문을 철문으로 고치는 일이다.몇천 루블씩 들여서 이중으로 철문을 달고 거기다 안전키를 서너개씩 덧붙인다. 이와 함께 불티나게 팔리는 것이 가스총.왠만하면 저녁 외출을 피하지만 외출할 경우에는 최루신경가스를 채워넣은 소형가스총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다.1개 가격은 1백달러 정도인데 노점상에게 부탁하면 유럽제 가스총을 원하는대로 구할수 있다. 노상강도 등의 강력범죄가 아니라도 승용차 도난같은 일은 비일비재하다.모스크바시경의 아나톨리 예고로프부국장은 모스크바시내의하루 도난차량대수가 1백대에 이른다고 했다.그밖에 카스테레오·윈도 브러시 심지어 바퀴까지 빼내간다. 모스크바시내에 다니는 승용차들을 보면 윈드브러시가 없다.그러다 비가오면 사람들은 잽싸게 차를 세우고는 카 박스에 넣어둔 윈드브러시를 꺼내 앞유리에 다는 것이다.심지어 어떤 사람은 주차를 할때 못 미더워 클러치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을 쇠줄로 칭칭감아 자물쇠까지 채워놓는다. 차가 깨끗하면 범죄에 더 잘 노출된다고 믿기 때문에 일부러 세차를 않는다.흙탕물이 덕지덕지 붙고 윈도브러시도 없는 차들이 더러운 도로를 매연을 풍풍 내뿜으며 다니는 도시가 바로 모스크바이다. 시사주간지 「노보예 브레미야」(신시대)지의 야콥 브라보이 논설위원은 『강도·마약·도난사건이 이렇게 늘어나는 것은 일면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후유증인 물자부족현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측면들이 너무 여과없이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지금 경제적·정신적으로 너무 어렵고 황폐해 있어 이런 문제들을 차분히 토론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할 여유가 없다고 브라보이씨는 안타까워했다.
  • 중국,보수파 숙청 착수/교육위부주임 하동창 해임/홍콩지 보도

    ◎「반 등노선」 북경시간부도 곧 경질/등,국영기업 방문… 개혁가속 역설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공산당 중앙위는 강경보수파 간부로 등소평노선에 반기를 들었던 국가교육위원회 부주임 겸 당조서기 하동창을 해임하기로 정식으로 결정함으로써 보수좌파 간부들에 대한 숙청작업에 착수했다고 홍콩의 성도일보가 28일 보도했다. 성도일보는 당중앙위가 중국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자신의 방좌 개혁노선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간부들을 공격한 가운데 하동창의 국가교육위 부주임 및 교육위 당조서기직 해임을 정식으로 결정했으며 곧 국무위원회의 토의를 거쳐 이에 대한 국무원의 공식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또한 이와함께 강경좌파 간부로 등소평의 남순강화의 선전보도를 방해했던 당정치국원 겸 북경시당위 부서기 겸 북경대학 당위 서기 왕가류를 비롯한 북경시 당간부에 대한 해임발표도 곧 뒤따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북경 로이터 연합】 중국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금년초 남부지방의 경제특구 등을 순방하며 경제개혁을 역설한데 이어 지난 주에는 북경 소재 대규모 국영기업을 방문함으로써 등을 정점으로 한 개혁파의 경제개혁이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의 근간이 되고 있는 대규모 국영기업에 대한 급속한 개혁을 서두르고 있는 등은 지난주 중국 5대 기업중의 하나로 18만5천명의 종업원을 갖고 있는북경 소재 수도강철창을 방문,기업의 고위간부들과 중요한 협의를 가졌다고 이 공장의 한 관계자가 28일 밝혔다.
  • “통일 비용은 장기적 투자”/노 대통령,인 일간지와 회견

    【방콕 연합】 노태우 대통령은 26일 남북한 통일에 소요되는 비용은 소모성 지출이 아나라 남북한 모두의 경제와 복지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장기적인 투자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자 인도의 유력 영자 일간지 인디아 타임스지에 보도된 회견을 통해 『최근 많은 전문가들이 동서독의 사례를 보고 남북통일에 소요되는 비용을 예측하고 있으나 이는 독일의 경우로,교훈은 될수있으나 우리에게도 똑같은 비율로 적용될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대통령은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통일비용이 아니라 경직되고 폐쇄된 북한의 공산체제이며 북한이 정치,경제체제를 개방한 후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 경제체제의 이질성』이라고 지적했다.
  • “남북교역확대,경제격차 줄여야”/노 대통령,인지 회견

    【방콕 연합】 노태우대통령은 26일 남북한 통일에 소요되는 비용은 소모성 지출이 아나라 남북한 모두의 경제와 복지 향상을 위해 필요한 장기적인 투자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이날자 인도의 유력 영자 일간지 인디아 타임스지에 보도된 회견을 통해 『최근 많은 전문가들이 동서독의 사례를 보고 남북통일에 소요되는 비용을 예측하고 있으나 이는 독일의 경우로 교훈은 될수 있으나 우리에게도 똑같은 비율로 적용될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노대통령은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는 통일비용이 아니라 경직되고 폐쇄된 북한의 공산체제이며 북한이 정치·경제체제를 개방한 후에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간 경제체제의 이질성이라고 지적하고 이같은 이질성을 극복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남북한 교류 교역을 추진함으로써 남북한 사이의 경제적 격차를 좁혀 나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김귀정양 1주기/성대서 추모행사/사노맹 현수막 등장

    성균관대를 비롯한 서울시내 대학생 2천여명은 25일 하오2시쯤 성균관대 운동장에서 김귀정양의 1주기 추모식을 갖고 김양이 숨졌던 중구 퇴계로4가 쪽으로 나가 거리굿을 가지려고 교문을 나서다 경찰에 막히자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이날 집회에는 「모진 탄압에도 굽힘없이 항상 민중형제들과 투쟁한다」는 「사노맹」의 대형플래카드와 「사회주의」라고 쓴 깃발을 흔드는 모습을 그린 「사노맹 수도권위원회」의 대형 그림이 나붙기도 했다.
  • 북의 대남전략 변함없다(사설)

    북한의 변화와 개방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우리는 그들 대남전략의 실체가 드러날때마다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기다리다가 실망하고 실망하면서도 기다리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변화가 확실하게 기약된 것도 아니다.이것이 오늘날 남북한관계의 현실이다. 남한의 지하방송으로 위장된 소위 「구국의 소리」는 북한땅 평양 칠보산에 있는데 북한당국은 바로 엊그제 이 「구국의 소리」방송행진곡에 발맞추며 무장간첩을 침투시켰다.자수간첩에 의해 확인된 「구국의 소리」의 정체에 대해서는 새삼 놀랄일도 아니다.그러나 최근들어서 비교적 뜸한 듯하던 무장간첩의 남파는 북한의 대남전략과 검은 공작이 수십년 여일 하게 단한치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북한 정권의 최고 목표는 물론 이른바 「우리식의 사회주의」건설인 것으로 알고 있다.오늘도 북한정권은 그들 「사회주의의 승리」를 신앙처럼 믿도록 국민들에게 강요하고 있다.그 과정에서 짓밟히는 인권들은 또 어떠한 것일까 상상하기에 어렵지 않다.그 당국자 자신들도 부인하지 못하는 주민들 굶주림과 헐벗음 또한 어느 정도인가.주민들의 그 엄청난 고통과 질곡위에서 사회주의 승리를 위해 「구국의 소리」를 위장하고 무장간첩을 침투시키는 마당에 더이상 무슨 대화와 교류를 의논할 것인가에 생각이 미친다면 민족적 분노와 함께 새삼 참담한 심정을 아니 가질 수가 없다. 최근엔 서해안 휴전선부근 지역에서 땅굴을 파는 듯한 지하음이 들린다고도 전해진다.차마 북한이 오늘과 같은 냉전와해의 국제분위기와 남북한 대화의 과정에서 제5·제6의 땅굴을 파는 「미친짓」은 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최근 북한의 전후방 군사 동향이 심상찮은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의 현역병이 1백20만명에 이른다는 사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최근 그들 지상군이 기습공격 포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내외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은 또다른 무엇인가를 시사하고 있다.월여전에 로버트 게이츠 미중앙 정보국장은 북한이 무기가 낡기전에 남침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군 최고사령관 자리를 거머쥔 김정일은 그들 군부사기진작용으로 수백명을 장성으로 올렸고 하루도 끊이지 않는 군사 퍼레이드의 구호는 「미제국주의 말살」과 「남조선 해방」일색이다.아버지 김일성이 살아있을때 한반도 통일을 이루겠다고 호언하는 김정일의 무모한 모험주의 책동이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위장된 대남 흑색방송의 정체와 무장간첩의 침투등 사건들은 북한당국이 겨냥하는 한반도 문제의 전쟁적해결 전략과 대남적화공작의 산물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우리는 북한당국에 이점을 거듭 지적하고 강력히 경고하고자 하는 것이다.
  • 공장절반 “스톱”… 북한경제 붕괴 위기/NYT기자가 본「92평야」

    ◎육류배급 중단… 대중·소 교역열차도 격감/생존위해 시장경제 도입·외자유치 애써 뉴욕 타임스지는 21일 극심한 연료와 식량난으로 북한경제는 붕괴직전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김일성은 그가 몰아냈던 일본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을 직접 돌아보고 쓴 1쪽 전면에 걸친 르포기사에서 데이비드 생거기자는 북한이 새로운 경제시대를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이웃 독립국가연합과 중국의 남부지방에서 실험되고 있는 폭넓은 시장경제체제도입을 고려하고 있는 듯하면서도 그렇다고 그들의 철권통치체제를 바꾸려는 의도는 조금도 엿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생거기자는 북한이 이번달 1백45명의 일본 중국 미국 한국의 학자 경제계인사들의 입국을 허용한것이 바로 북한이 더이상 홀로 살수없다고 판단한 명백한 증거라고 말하고 그가 만난 북한관리들은 김일성정권이 6·25이후 40년래에 가장 어려운 시련에 처해 있음을 솔직히 시인했다고 전했다. 김달현 부총리는 「왜 서방자본을 유치하려 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제 지구상에는 불과 몇개의 사회주의 국가가 남아있을 뿐이다.우리는 그중의 하나다.그러나 우리는 기술개발을 원한다』면서 『그것은 우리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답변했다. 슬쩍 슬쩍 지나가는 여행자의 눈으로도 평양이외의 북한경제는 크게 휘청거리고 있음이 분명했고 농촌지역 공장굴뚝에서 연기가 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는데 대체로 50∼60%의 공장만이 가동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보도했다. 1인당 GNP 1천달러 미만의 북한이 언제라고 풍족했던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위기는 옛 소련이 지난 89년 무역대금의 경화결제를 요구한 이래 결정적으로 심화됐다면서 한 외교관의 말을 인용,한달에 배급받기로 된 2.2파운드의 육류공급마저 받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생거기자는 북한에서는 북한의 실정을 파악할 어떤자료도 구할수 없었다고 밝히고 그러나 중국 독립국가연합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동북부 한 두만강 철교의 경우 수년전까지만 해도 하루 5∼6대의 기차가 화물과 근로자를 실어 날랐었으나 지금은 하루1대가 될까말까하다는 한 철도원의 말을 인용했다. 북한의 고위관리들은 누구나 외국의 투자 유치를 강조했는데 특히 동북아경제포럼의장인 조리재씨는 『일본사람들이 잠시 관망하고 있으나 그들이 곧 북한에 오는것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했다.그는 그 이유로 『그들은 전에도 여기 있었다』고 답변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생거기자는 그와 동행한 한 일본인 실업인(그는 16세때까지 북한에서 살았었다)은 『북한을 다시 보게 돼 매우기쁘다.그러나 한번이면 족하다.다시 올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고 기사의 끝을 맺었다.
  • “사회주의 환상에 조국 배신”/오길남씨 공항회견

    ◎85년 독서 경박학위… 친북인사권유로 입북/대남방송·간첩활동 염증느껴 탈출 결심 『단순한 학문적인 욕심에 조국을 배신했던 것이 한없이 죄스럽다』 22일 자수한 재독간첩 오길남씨는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으로 월북했으나 현실을 직접 보고는 한순간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게 됐다고 털어놨다. 다음은 오씨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왜 입북했나. ▲자본론등 공산주의 경제이론에 심취돼 북한이 모든 분야에 균형을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뤄나가는 곳으로 착각했다. 85년 7월 브레멘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받았으나 일정한 직업도 없이 아내마저 간염으로 앓아누워 생계가 어려웠다. 이때 재독 친북인사인 김종한씨(52)로부터 입북권유를 받고 북한 대남공작원에게 인계돼 입북하게 됐다. ­북한에선 어떤 일을 했나. ▲11개월동안 대남방송요원으로 일했다. ­대남방송요원으로 지난69년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이 있다는데.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를 졸업한 성경희씨(46)와 연세대 도서관학과 출신인 정경숙씨(46)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억류된 신세를 애통해하며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다. ­탈출 동기는. ▲처음 입북할때는 경제학자로서 연구활동을 할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나를 대남방송요원으로 이용하고 나중에는 간첩까지 시키는데 염증을 느끼게 됐다. ­윤이상씨(75)를 비롯한 친북 해외인사들은 어떤 사람인가. ▲북한의 사주를 받을뿐만 아니라 북한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탈출경위는. ▲당시 북한요원 1명과 함께 코펜하겐 공항에 도착하니 북한의 동독주재대사가 마중 나왔다. 이들이 먼저 입국장밖으로 빠져나간 뒤 양말속에 숨겨뒀던 『망명을 도와달라』는 쪽지와 박사학위사본을 공항직원에게 몰래 건네준 뒤 그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빠져나왔다. ­망명한 뒤부터의 생활은. ▲북한에 남겨둔 가족들을 송환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망명뒤 북한의 가족들과 연락이 가능했나. ▲지난 87년 9월 윤이상이 김일성에게 자신의 노래를 바치기 위해 북한에 다녀와 아내의 편지를 전해줬다. 아내는 이 편지에서 입북당시 받은평양역 근처의 아파트를 떠나 산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 칠레:1/10년째 무역흑자… 연5%지속성장(중남미를 다시본다:8)

    ◎나윤도특파원 현지 리포트/민선정부 수립후 사회형평 공감대 형성/주택·의보·연금등 복지정책 폭넓은 지지 「중남미의 호랑이」­이는 70년대 중반 중남미에서 가장 먼저 시장경제체제를 채택,82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째 무역흑자를 유지시켜오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안정기조속에 연5%의 지속적 경제성장을 이뤄오고 있는 칠레를 가리키는 말이다. 서울에서 싱가포르까지의 거리에 해당하는 남북 4천3백㎞의 좁고 긴 국토를 갖고 있는 칠레는 면적은 75만6천㎦로 한반도의 3.5배에 불과하지만 안데스산맥과 태평양으로 외부와 고립돼 있으면서 사막·화산·극지등 지구상의 모든 지형은 물론 사계 또한 상존하고 있는 다양성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시장경제체제 도입 칠레가 중남미의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일찍 경제적 안정을 이룩할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아벨리우크 마나세비치 생산진흥부장관(61)은 『지난 73년 쿠데타로 집권,89년까지 16년간 통치해온 아우구스트 피노체트 군사정권의 과감한 개방정책추진과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말하고 『더욱이 90년 파트리시오 에일윈 민선대통령정부 수립이후 분배및 사회평등에 대한 노력이 국민의 컨센서스를 조성,안정기조를 확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칠레는 50,60년대 비교적 정치적 안정을 이뤄왔으나 지난 19 70년 세계최초의 선거에 의한 사회주의정권인 살바도르 아옌데정권이 등장,주요산업의 국유화등 급격한 사회주의정책을 펼쳤고 이는 결국 경제파탄으로 이어졌다. 이에 반발,73년 육·해·공군과 경찰의 연합쿠데타를 주도,정권을 장악한 피노체트장군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국회폐쇄및 정치활동을 금지시킨후 군정비판에 대해서는 체포·국외추방·국내유배등 강압정책을 펼쳤다. ○외국투자 적극 유치 그러나 피노체트정권은 경제적 측면에서는 대대적인 개방정책으로 시장경제체제를 확립시켰으며 경제안정기조를 구축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가지 아이러니칼한 사실은 군사독재의 주역이었던 피노체트장군이 민선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군참모총장직을 계속 맡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이에대해 많은 칠레사람들이 『그가 비록 독재정치는 펼쳤어도 부정부패가 전혀 없는 깨끗한 정치를 했기 때문에 건재하는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선정부의 안정을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하에 정책을 추구하고 있는 칠레정부가 세운 금년도 경제목표는 경제성장률 5%,인플레율15%,실업률 5%로 돼있다. 이를위해 적극적인 경제외교 추진으로 대외경협및 외국인투자유치를 적극 확대,미국·일본·EC등 14개국으로부터 5억2천5백만달러 규모의 유·무상국제협력자금을 공여받을 계획이다. 이같은 경제목표의 달성을 위해 카를로스 오미나미 경제부장관(42)을 중심으로한 젊은 경제팀은 지난해 관세를 15%에서 11%로 인하하고 멕시코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NAFTA(북미자유무역지대) 참여에의 길을 연것을 비롯,금년2월에는 약8%의 대미환율절상을 시도하는등 강력한 정책을 펴왔다. 특히 정부의 엄격한 조세제도 운영으로 기업의 세금포탈은 불가능한 실정이며 국민들도 적극 협조,일상생활에서 영수증을 주고받는 것이 생활화돼있다.길거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도 영수증을 주며 택시를 타도 영수증을 발급해주는 철저한 영수증사회를 이루고 있다. 또한 공무원들의 청렴도 역시 매우 높은 편으로 경찰공무원까지 국민의 존경을 받을 정도로 정부와 국민간 신뢰를 바탕으로한 강력한 사회기강을 확립하고 있다. ○한국과의 경협 모색 현재 칠레정부의 정책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폭넓은 공감대를 얻고 있는 정책은 근로자들에 대한 복지정책.고용주로 하여금 피고용인에 대해 기본급의 13·5%에 해당하는 연금기금조성비와 기본급의 7%에 해당하는 의료보험료등 사회보장기금을 부담토록 의무화하고 있는데 이를 개인집의 가정부에게까지도 적용시키는등 철저하게 시행하고 있다.또한 무주택자의 경우 주택구입시 일정액의 무상지원도 해주고 있다. 파리대학 경제학박사인 오미나미장관은 『지속적 경제안정은 거시경제에 입각한 정부의 건전하고 엄격한 경제정책 운용과 국민적 공감대 형성으로 가능했다』고 밝히고 현재 칠레경제의 성장에 있어 장애요인으로 ▲1차산품의존의 경제구조 ▲고부가가치상품의 수출부진 ▲숙련된 노동력의 부족 ▲비효율적인 자원배분등을 지적했다. 오미나미장관은 또 특히 한국과의 경협방안에 대해서 『칠레는 한국의 경이적인 경제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고 전제하고 『정부간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개발의 경험을 배우고 과학기술분야의 협력을 강화해야 하며 상호간의 인적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비 총선과 서구민주주의(사설)

    「피플스 파워」(민중의 힘)로 지난 86년 민주화혁명에 성공했던 필리핀이 또다시 정치혼돈의 큰시련에 직면하고있다.3개월간의 선거운동기간을 통해 30여명의 사망자와 6천여명의 부상자를 내는 진통끝에 지난11일 실시된 총선이 대통령선거개표를 둘러싼 시비로 극한대립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이번엔 독재타도가 아니라 민주화정착의 시련이다. 개표초반의 선두에 섰던 산티아고 후보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아키노대통령의 지원을 받은 라모스후보에 역전당하면서 먹구름이 드리우기시작한 것이다.부정부패척결로 대중의 인기를 모으고 있는 산티아고후보는 개표및 집계과정에서 대대적인 부정이 자행되고 있으며 자신의 승리가 강탈당하고 있다고 주장,대규모 반정부시위에 나서기 시작했다.1,2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근소한 표차가 화근이다.라모스후보가 패배해도 그냥있을 것같지는 않다.현상황으론 어느쪽도 상대방의 승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같지가 않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있다.또한차례의 큰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마르코스독재축출과 아키노민주화이후 처음실시된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필리핀총선이다.질서있고 성공적인 총선을 통해 필리핀민주화가 정착되고 발전하기를 세계는 물론 우리도 기대하고 있으며 그만큼 혼돈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도하다.동시에 민주정치를 발전시킨 구미와 다른 문화와 여건의 개발도상국들이 서구민주정치를 수용하고 정착시켜 발전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도 생각하게 된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는 가장먼저 민주주의를 접한나라라 할수있다.1898년부터 미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42년에 민주국가로 독립,민주정치체제정착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부정부패와 폭력,공산반란과 독재의 소용돌이로 얼룩진 나라다.마침내 안정된 민주발전의 길로 들어서는가 했으나 쿠데타소용돌이의 혼돈이 이어졌으며 이제 총선의 파국위기인 것이다. 사회주의정치는 몰락했고 해가고있다.민주정치의 승리가 구가되고 있는 오늘이지만 서구민주정치는 정말 만국공통의 만병통치제도인가.구소련과 동구등의 민주화 진통과 함께 필리핀의 혼돈을 보면서하게되는 반성이다.한때 신생아시아에선 토착민주주의란 말이 유행한적이 있었다.우리경우엔 한국적민주주의가 강조되었었다.그런주장들이 독재와 장기집권및 탄압의 방편으로 이용됨으로써 국민에게 외면당하고 실패 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실험된 최상의 정치제도라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문제는 그 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 운영하는데는 적지않은 부작용이 있음을 우리는 오늘의 필리핀사태에서 새삼 실감하고 있다.깬 시민의식이 있고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유권자가 있고 민중의 힘을 두려워 할줄아는 위정자가 있을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그 진가를 발휘 할수 있다. 우리는 현재 개표가 진행중인 총선결과에 주목하면서 필리핀의 국민이 원하고 유권자의 뜻이 제대로 반영된 대통령이 선출돼 민주제도가 하루속이 정착되기를 기대한다.
  • 아직도 사회주의 혁명인가(사설)

    아직도 이땅에 파르티잔식 보급투쟁으로 자본주의와 정면대결하면서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기도하는 세력이 있었는가.그사실에 우리는 보통사람들로서의 상식에서 귀와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로맹」들은 3천5백여명의 조직체로서 공장들과 대학가에 침투하려했고 은신처와 인맥을 이용하며 공산주의식 비밀공동생활을 유지,암약했다.정말이지 놀랄일이다.그들의 황당한 사회주의 이념과 폭력혁명 논리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들이 세상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사실에 아연할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개 지식인들이다.조금이라도 배운사람이라면 그가 발딛고 사는 세상과 현실에 대한 「생활인식」이 있을 것이다.일찍이 공산주의혁명전략사상의 종주국이요,지난 70여년간 사회주의이념과 체제의 실험실이었던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은 이미 세상에 없다. 정통마르크스 레닌주의도 사라졌고 계급혁명이론이나 무산자에 의한 폭력혁명도,또 자본주의의 필연적인 소멸이라는 자의적인 변증법적역사발전의 이론도 지금은 박물관의 유물전시관에서밖에 찾을 수 없다.공산주의 정당은 이제 북한땅에서 간신히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고 공산주의 중국에서 역시 그 국가이념자체로는 색이 바랜채 자본주의를 실험하는 이른바 주자적개혁과 개방속에서 퇴색되고 있다. 그런데 「사로맹」들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혁명이념으로 삼아 노동자 계급중심의 폭력투쟁으로 현 정부를 타도하고 사회주의를 건설한다는 노선을 추진해왔다.좌우익이 대립하던 건국초기의 혼란기에 조직된 남로당말고는 정부수립 이후 「남민전」등 크고 작은 좌경조직들이 당국에 적발되기는 했으나 이 「사노맹」과 같이 조직원들의 수가 많고 체제가 완비된 조직은 없었다는 당국의 설명이다. 「…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실날을 이어 사회주의 혁명투쟁에 살고 죽으려한다」는 출범선언문을 보면 이른바 극좌노선의 마르크스 레닌 교조주의 맹신자들이 분명하다.시대조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역사전개의 측면에서 정치사회의 발전이론으로 볼때 지배세력의 억압과 부의 불공정한 배분에 저항하는 이른바 변혁이데올로기는 어느한면 긍정적인 평가를 가질수 있다.그러나 우리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발전과 변혁의 이데올로기를 정립하더라도 이미 폐기처분된 마르크스 레닌이나 스탈린·모택동·김일성의 낡은 교조만은 답습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노맹」의 허황된 노선이 우리 현대사에 대한 극좌계열의 이론적왜곡에 바탕하고 있다면 그것도 문제이다.그러나 이른바 그 「주사파」들도 이제 우리의 대학가나 노동계를 오염시킬수는 없다.「사노맹」들의 철없음을 탓함과 함께 그들 극좌파운동논리의 역사왜곡을 단절·발본할 계기에 이르렀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 불 리베라시옹지 기자 방북르포

    ◎매연속의 청진… 19세기 산업지대 방불/한 농가에 4∼5세대 함께 거주/가게엔 실물은 없고 모조품만 미국 일본등 다른 서방 기자들과 함께 지난 4월29일 평양을 출발,버스와 기차편으로 북한의 북쪽 국경지대까지 둘러본 프랑스 일간지 리베라시옹의 뤽 랑프리에르기자는 「끔찍한 가난 그리고 황폐한 도시들」이라고 북한의 실상을 묘사했다. 다음은 랑프리에르 기자의 북한 방문기를 요약한 내용이다. 「러시아와 중곡을 잇는 철교에 러시아 열차가 지나가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이선필이라는 국경역장은 사회주의 붕괴이후 러시아 열차의 통과가 거의 중단됐다고 말했다.평양방문은 차라리 종교적 순례였다.김일성 생가 그리고 김일성 경기장에서는 2시간에 걸쳐 15만 학생이 김일성 생일을 묘사하는 「우주의 별」이라는 공연이 외국방문객들에게 보여줬고 시내 다른 곳에서는 5천명의 음악인과 합창단이 김에 대한 송가를 불렀다. 평양으로부터 러시아 국경까지의 여행은 하나의 거대한 연출이었다.그러나 안내인들은 삶의 모습을 전적으로 지울수는 없었다.평양을 벗어나자 대부분 자갈길인 도로에는 차량통행이 뜸했고 들에는 일부 소형 트랙터가 보이긴 했으나 소들이 쟁기를 끌고 있었다.멀지 않은 곳에 「김일성동지가 만살까지 장수하길 기원한다』는 표어가 보였다. 일단의 농부들이 삽으로 흙을 뒤엎고 있었다.마을의 집들도 빈약하기 그지없었다.기와로 덮인 가옥들은 굴뚝수로 미뤄 작고 흰 집마다 4∼5 가구가 살고있는 듯했는데 집주위에는 강낭콩을 세우는 가느다란 지주들이 들어서 있었다. 평양으로부터 한시간 거리인 선천에 들어서자 「성공」의 선전장인 평양에 대한 기억은 곧 사라져 버렸다.도시마다 거대한 김일성 동상이 있었지만 석탄에 의해 까맣게 된 집들이 일상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중국인 여행자들이 북한에 대해 「상상을 초월한 가난」이라고 「증언」했듯이…. 기차로 지나친 다른 마을들의 대부분 건물들은 미완성이거나 아니면 폐허상태로 남아있었다.유리가 없어 대신 플라스틱으로 창문을 달고 있었다.일행이 지나간 북부농촌지역의 경우,들에 농부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마을에는 주민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학교교사들은 일행이 지나치자 학생들에게 빨리 학교안으로 들어가라고 다그쳤다. 나진·청진·선봉등 북부항구도시들을 방문할 때도 일행과 주민들과의 최소한 접촉을 막기위한 모든 조치가 취해졌다.나진항의경우 2천명에 달하는 항구직원들이 때마침 일제 휴가중이었고 인구 10만이라는 이 도시의 거리에도 수십명의 여성들이 한복을 입은 부자연스런 모습으로 지나간 외에 삶의 흔적을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었다. 길가의 가게들은 물건이 차있는듯 보였으나 가까이 가보니 모두 가짜였다.예기치 않은 열차고장으로 선봉시내 한 가게를 살펴볼 기회를 가졌는데 텅빈 가게내 모습이 진열대에 의해 감춰져 있었다. 동북의 주공업도시인 청진은 기차에서 본 모습이 19세기의 버려진 산업지대 같았다.매연을 뿜는 철강·화학단지의 매연아래 폐허화된 회색빛 건물,낮고 초라한 가옥등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증기기관차가 아직 달리고 있었으나 일부는 역구내에서 녹슬고 있었다. 일행이 더 이상 보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안내원들은 당초 계획됐던 시내의 호텔대신 수㎞ 떨어진 조그만 역에 열차를 세우고 밤을 보내는 바람에 일행은 밤외출을 삼가는 수밖에 없었다.
  • 간첩보다 치밀한 보안망 구축/「사노맹」의 조직과 보위활동

    ◎음어·약어 사용,조직노출 막아/자살용독극물·가스총등 비치/지하인쇄소 운영… 사무전산화도 추진 「사로맹」은 90년과 91년 두차례의 조직개편작업을 거치면서 전국적인 조직망을 구축,비밀아지트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특히 위장된 조직명칭과 음어등을 개발,사용하는 등 철저하게 조직의 노출을 피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조직은 최고기구인 중앙위원회와 중앙상임집행위원회,조직국,정책국과 파견조직 등으로 구성돼있다. 중앙상임집행위원회 직속기관으로 「남한 사회주의 과학원」을 두고 사회주의 이념을 연구,전파하고 선전·선동무크지 「우리사상」을 발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총책의 부설기관인 비서실·전산부·시각매체연구소를 갖춰 조직내 사무전산화를 추진하면서 비디오·컴퓨터 그래픽 등 시각매체를 이용한 선전·선동물을 제작해왔다. 기획실로도 불리는 조직국은 중앙조직과 각지방위원회를 관리하고 공단지역에 핵심조직원을 파견해 「공장소조」를 결성하고 지도하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대외적으로 「사노맹 구속자가족 석방대책위원회」를 지도하는 활동을 맡아왔다. 연구실로도 불리는 정책국은 「사노맹」의 투쟁지침을 정립,각조직에 제공하고 대내외 선전·선동사업을 위한 집필과 대외기고등을 맡고있다.「계몽사」라는 위장명칭을 사칭하는 지하인쇄소를 두고 「노동자의 벗」출판사를 운영해왔다. 지방조직은 광역개념으로 수도권·영남·중부·호남등 4개권역으로 나눠 각권역별로 조직국·정책국등을 두면서 학원가·공장·단체등에 침투된 하부조직을 관리해왔다. 이들은 조직의 위장을 위해 수도권위원회를 「제일물산」이란 위장명칭으로 부르는등 각종위장명칭과 은어를 개발,사용해왔다. 서울지역을 「KOEX」,동부지역공장소조를 「아모레」로,민중당파견망을 「우성건설」,호남준비위원회를 「한양교통」등의 명칭으로 위장했다. 「사로맹」조직원들은 「빨치산의 후예답게 죽음으로써 조직을 사수한다」는 결의를 다지면서 「선진활동가의 10대수칙」이라는 조직보위지침을 생활화하고 있다. 이들은 조직의 사수를 위해 ▲청산가리등을 이용한 자살용 독극물을 개발하고 ▲비밀아지트에 가스총·도검류 등을 비치,수사관들의 검거에 대비해왔을 뿐아니라 ▲음어·약어 사용,무인 포스트운영등 간첩조직을 능가하는 2중·3중의 보안장치를 마련,비밀활동을 생활화해왔다는게 수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조직원 선발은 각 지방위원회별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사상의 숙지정도 ▲전위조직원으로서 조직지도능력 및 사업추진역량 ▲비밀활동수행능력등 45개 항목에 이르는 심사기준에 따라 심사한뒤 중앙위에 보고해 최종 승인을 받아 뽑는 방식을 택해왔다. 「사로맹」은 또 모든 조직원을 공장·대학등 각분야에 점조직 형태로 침투시켜 세포단위로 활동하도록 해 횡적 연락관계를 차단,조직의 비밀을 최대한 유지해왔다.
  • 사노맹 중앙위원 7명의 범죄사실

    ◎“혁명전위” 사회주의 노동자당 결성 획책/자본가와의 정면 계급전쟁 선포/노조·종교에까지 침투 세력 확장 ▲백태웅(29)사노맹 총책겸 중앙상임집행위원(가명 이정로·통칭 김실장)=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86년 마르크스·레닌주의 추종 지하혁명조직인 반국가단체 「제헌의회(CA)그룹」결성,선전부장으로 활동하다 이 그룹이 와해되자 지하로 잠적. 87년 박기평등과 함께 CA그룹 재건조직인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노해동)을 결성,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기관지 「선봉」제작 및 「남한사회의 성격과 노동자계급의 역사적 임무」제하의 「민족민주혁명」(NDR)론을 정립,보급하는 등 사회주의이념 전파에 주력. 88년 「노해동」이 보수야당과의 연대를 강조하며 「민주연립정부수립」을 주장하는 다수파와 민중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민중집권론」을 주장한 소수파로 양분되면서 소수파가 「노해동」에서 분리,사회주의혁명 전위당 건설을 목표로 한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 준비위원회」(사준위)를 발족시켜 중앙위원으로 활동. 89년 스스로를 「빨치산의 맥을 잇는 혁명적 사회주의자」 「진정한 마르크스·레닌의 후예」라고 자처하면서 자본가와의 계급전쟁을 정면으로 선포하며 반국가단체인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로맹)을 공식 출범시킨 뒤 조직의 실질적 총책으로 활동. 사로맹의 기관지 「노동해방문학」을 통해 「사회주의진영 위기의 근원 고르바초프 개혁노선의 우편향」등 10편의 논문을 기고하고 「남한 사회주의자의 꿈」 「1990년 봄까지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하자」제하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관련 선전문을 제작 배포. ▲정명섭(30)중앙상임집행위원겸 중앙조직국장=고려대 통계학과 3년중퇴자로 89년 「사로맹」 인천위원회 공장사업위원으로 주안공단에서 공장소조활동. 91년부터 중앙조직국장으로 「사로맹」 산하조직인 「전민학련」 및 「서민학련」에 대한 지조 및 투쟁지침 하달 등 배후조종.「사로맹」 조직확대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지각변동」이라는 암호명으로 「특별 재정확보(보투)투쟁」으로 약 2억원 자금조성. ▲은수미(29·여)중앙상임집행위원겸중앙정책국장(가명 조미라·김종순)=서울대 사회학과 3년 제적생으로 89년 박기평·백태웅등과 함께 「사노맹 출범선언문」안 공동작성. ▲이은경(32·여)중앙위원겸 수도권위원장(가명 손오공·이선희·정명수·이진숙)=서울대 의류학과 학사 제명된 뒤 85년 구로공단 나우정밀에 위장취업했으며 89년 「사준위」 서울시 위원장으로 선임,구로공단내 주식회사 서광 및 청계피복노조에 위장 침투,임금투쟁 등 선동활동. 90년 메이데이 투쟁으로 구로공단 입구 등지 무인방송 설치 및 성수4거리 가두투쟁 주도하고 91년 각종 시위시 사회주의 선동대 및 「노동해방 선동대」를 결성,사노맹 선전활동. 92년 동국대에서 열린 「민정추」주최 「총선평가 공청회」때 「진보적 이념정당 건설하자」제하 유인물 살포. ▲차익종(31)중앙위원겸 수도권위 총무국장(가명 한종태·이실장·한부장)=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생으로 85년 구로구 소재 대한광학(주)위장취업중 시위난동 및 유인물 살포등으로 86년 해고. 88년 「사준위」결성 주도후 「전노협」 「전국 노운협」파견망으로 활동. 89년 「사로맹」에 가입후 91년1월 백태웅·박기평의 추천을 받아 중앙위원으로 선임. 91년 최헌식(31·사로맹 수도권위원회 조직국원)등 10여명을 포섭,사노맹 조직에 가입시킴. ▲김기수(32)중앙위원겸 수도권위 조직국장(가명 신동현·이부장·이선생·이경준)=경희대 경영학과 졸업생으로 86년 서울 독산동 소재 「무극사」(노트공장)공원으로 위장 취업. 88년 「사준위」결성에 참여하여 사준위 지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89년 「사로맹」 출범에 가담,경기위원회 책임자로 활동. 91년 수도권위원회 조직국장으로 공장소조·노조운동·민중당·「민정추」사업,학생운동·종교·타계급사업 소조활동 전개. ▲박홍순(29)중앙위원겸 「민정추」 선전국장(가명 김부장·김정수·김희석)=성균관대 자퇴생으로 88년 「사준위」에 가입후 조직구성에 참여. 90년 백태웅으로부터 중앙위원으로 추천받은 뒤 91년 중앙위원으로 선임돼 「민정추」 선전국장으로 프랙션 활동.
  • “빨치산식 보투”… 2억6천만원 확보/“자급원칙” 자금조달 수법

    ◎가족·인맥 집중공략… 포장마차등 수익사업도 「사노맹」은 『혁명자금을 많이 확보할수록 「승리의 시기」를 앞당길수 있다』는 인식아래 조직원들에게 자금조달을 독려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사노맹」은 레닌의 「플로레타리아 재정사상」,남노당·빨치산의 「자급자족원칙」등을 모범으로 내세워 「혁명자금 확보투쟁」 「보급투쟁」을 결행할 것을 전조직원들에게 지시했다. 이에따라 조직원들은 「상부」에서 시기 별로 제시한 「보급투쟁지침」에 입각,▲신혼비작전 ▲박노해건강치료 기금모금작전 ▲호랑이 사냥작전 ▲지각변동등의 암호명이 붙은 「혁명자금확보투쟁」을 벌여 지난 4월까지 2억6천만원의 자금을 확보한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특히 지난91년12월 중앙위원명의로 「지각변동을 위한 전조직적 투쟁을 호소한다」는 「보급투쟁지침서」를 지하조직에 전달,「사회주의 혁명전위당」건설에 필요한자금 9억원을 확보할것을 독려해왔다. 「사로맹」은 모금성과를 극대화하기위해 『비록 우리앞에 가시덤불과 지뢰밭이 놓여있고 적들의칼끝이 우리를 노리는 악조건속에서도 재정투쟁을 기필코 승리해야한다』는 등의 선동으로 조직원들의 사기를 고양시키면서 보급투쟁 5대원칙과 10개항의 전술을 제시했다. 보급투쟁의 5대원칙은 ▲가족·학연등 인맥을 파악 협조가능정도를 전수로 환산,우선순위에 따라 관리할것 ▲「예약전선」에서 지레 겁을 먹고 액수를 낮추어 요청하는 우를 범하지 말것 ▲「수금전선」에서 어떻게되겠지하는 등의 해이된 마음을 경계할 것 등을 담고있다. 또 구체적인 10가지 보급투쟁전술에서는 연구소설치계획등을 제시,자금확보의 긴박성을 역설할것.회사내 노조원등을 상대로 꿀이나 약재를 팔아 자금을 조달할것.노동현장에서 급전계를 조직하거나 신용협동조합의 대출을 적극활용할 것등을 제시하고 있다. 박기평의 수사와함께 자금을 지원해준 인사들의 명단이 노출되고 보급투쟁전술등이 폭로돼 「외부지원」이 어렵게 되자 91년9월부터는 학원경영·포장마차운영등 자체수익사업을 「개별보투」와 병행했다.서울 시내 일대에 미술학원,속셈학원 포장마차등을 운영해왔고 최근에는 청소년층을 대상으로하는 액세서리·카세트테이프 노점상등을 경영할것을 구상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 사노맹/안기부가 밝힌 「붉은 조직」의 정체·활동

    ◎남노당이후 최대 지하혁명조직/폭력통한 사회주의국 건설이 목표/지난 총선땐 조직원 8명 출마시켜/「전노협」·「전대협」에도 조직원 침투,정파투쟁 국가안전기획부가 15일 발표한 「사노맹」의 실체는 전국적 규모의 완벽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기도해온 해방직후의 「남노당」이후 최대규모의 좌경지하조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좌우익이 대립하던 건국초기의 혼란시대에 조직된 「남노당」맡고는 정부수립이후 「남민전」등 크고 작은 좌경조직들이 당국에 적발되기는 했으나 「사노맹」과 같이 조직원들의 수가 많고 체계가 완비된 조직은 없었다. 지난 89년 11월 출범한 「사노맹」은 2년 반밖에 되지않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4개 지역으로 나눠 69개의 공장등에서 3천5백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릴만큼 대규모의 좌경조직으로 세력을 확장해 자유민주체제를 위협해온 것이 사실이다. 「…남한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실날을 이어 사회주의 혁명투쟁에 살고 죽으려 한다」는 출범선언문에서 보듯 「사로맹」의 목표는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거쳐 남한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노맹」은 「빨치산의 혁명투쟁 전통을 계승」하여 94년 봄까지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한다는 중간목표를 세워놓고 전국의 공장과 학원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세력을 확장하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이들은 이른바 「공장소조」등 공장침투조직말고도 「정파투쟁」을 벌여 「전노협」「전대협」등 다른 투쟁조직과 지하조직에까지 조직원을 들여보내 조직확대를 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또 출범이후 조직의 활동이 조금씩 드러나 당국의 수사를 받게돼 지난 90년 9월 중앙위원 남진현등 조직원 54명이 검거되고 지난해 3월에는 중앙상임위원인 박기평등이 붙잡히자 백태웅을 중심으로 조직을 보다 더 확대·전문화시켜왔다는 것이 안기부의 설명이다. 이같이 조직원을 확보한뒤 94년까지 결성한다는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창당계획은 모두 5단계로 나뉘어져 있고 올해부터 계획을 실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의 건설을 위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수단으로 「새건추」(새로운 민중당 건설을 위한 추진위원회)「민정추」「민중진영 단일정당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들어 합법정당인 「민중당」의 후보를 위원장으로 선출,세력을 침투시켰는가 하면 3·24총선에 「민정추」소속 후보 8명을 출마시켜 3천여만원을 선거자금으로 지급하고 선거운동을 「사노맹」에서 직접 관장하는등 합법적인 정치활동을 기도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무장봉기 없이는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무장 폭력혁명만을 유일한 수단으로 강조하고 있다. 무장봉기를 위한 3단계 계획을 수립하고 무장력을 갖추기 위한 폭발물을 개발하려고 했는가하면 무기고 탈취계획까지 수립한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또 선전 선동의 면에서도 「시각매체연구소」라는 조직을 만들어 선전용 비디오와 영화를 제작하는가 하면 주간신문과 전국적 「정치신문」의 발간도함께 추진해왔다. 이처럼 치밀하게 짜여진 조직의 목표와 행동방향아래 각 분야에 침투한 조직원들은 각종집회 시위와 노사분규현장 등에서 과격투쟁을 일삼아 왔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수사에서는 「사노맹」이 직접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해온 사실은 드러나지 않았으나 북한등 국제사회주의 세력과의 연대를 모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번 수사에서 「사노맹」의 실체가 드러났다 하더라도 그 배후세력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북한등과의 연계에 대해서도 수사를 계속한다는 것이 안기부의 방침이다. 이번 「사노맹」사건으로 소련과 동구의 공산주의의 몰락에도 아랑곳없이 폭력으로 사회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체제전복투쟁이 계속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 좌익세력에 대한 적극적 대처와 경계를 늦출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 고르비 「모금행보」의 여운/이경형 워싱턴특파원(오늘의 눈)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대통령은 14일 미의회를 방문,연설을 하고 저녁에는 백악관에서 부시대통령과 비공식만찬을 가짐으로써 「고르비 재단」모금을 위한 2주간에 걸친 미국여행을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고르비는 이날 스태추어리 홀에서 상하원의원들의 열렬한 환영속에 『러시아는 비록 그 형태는 변모되었을지라도 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로 남을것이다』고 감동어린 목소리로 연설했다. 그러나 그의 힘찬 목소리와는 달리 「권좌에서의 몰락」이 주는 처연함과 함께 산산히 조각난 「공산주의 종주국의 현주소」를 자신의 처지를 통해 더욱 실감나게 전달해주는것 같았다. 불과 1년전만해도 그는 크렘린에 앉아 발트제국의 봉기를 진압하기위해 「붉은 군대」를 파견했고 작년 8월 강경파의 쿠데타직후에도 자신은 진정한 사회주의 신봉자임을 천명했지만 지금은 단돈(?)3백만달러의 모금을 위해 자본주의의 총본산인 미국의 9개도시를 강행군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고르비의 이번 모금여행은 그자체로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샌프란시스코에서 있은1만달러짜리 티켓의 리셉션도 성황을 이뤘고 뉴욕의 경제클럽이 주최한 1백75달러짜리 오찬연설티켓은 삽시간에 2천5백장이 팔렸다.또 스탠퍼드대 연설에서는 9천5백명의 청중이 4시간동안 숨을 죽였고 그의 부인 라이사가 뉴욕의 한 서점에서 자서전을 사는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줄때는 1시간반동안에 3백94권이 불티나게 팔렸다. 이러한 미국시민들의 대중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정부는 그에 대한 의전적 예우를 극히 사적인 방문차원으로 국한시키고 있고 정치적인 의미에서 고르비의 부각을 극도로 억제하고 있다. 앞으로 고르비가 정치적으로 재기할 여지가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의 이번 여행은 슬라브의 자존심에 여운을 남겨주는 것같다.
  • 이게 무슨 짓인가(사설)

    14일에 일어난 목포대생들의 난동과 잇달아 벌어지는 대학생들의 공권력 「습격」행위는 우리를 다시 한번 분노와 실망에 사로잡히게 한다.경찰서와 지서를 습격하고 무기를 탈취하고 경찰관을 인질로 잡고….이것이 대체 무슨 짓인가.법을 지키는 국민이기를 포기해버린듯한 이런짓을 대학생의 이름으로 아직도 하고있는 그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집회에 인공기를 등장시키고 그것과 관련한 공권력에 항의하기 위해 저지른 짓이라고 한다.인공기는 북한기다.법에 의해 게시하지 못하게 되어있는 깃발이다.이 기를 보면 아직도 몸서리를 치는 이웃에 대한 예의로라도 그래서는 안될일을,법을 어겨가며 하고 그학생들이 연행되었다고 해서 민생치안을 담당한 공공기관을 향해 화염병을 던져 파괴하는 짓이 어떻게 용인되겠는가.게다가 그들은 경찰을 납치하여 인질상대로 삼으려 했고 무기까지 탈취하였었다.이런 짓은 명백하게 범법자가 하는 짓이다.범법자중에서도 강력범이 하는 짓이다.오죽하면 시민들이 나서서 그들을 막았겠는가. 그들은 이런 일련의 행동을 통일의 명분 아래 벌이고 있지만,그것이 통일을 위해 아무런 도움도 안된다는 것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통일을 논의하는데 저해되는 것은 북측의 태도이고,일부 학생들의 무모하고 불법적인 행동은 북쪽을 고무하고 편드는 결과로만 나타난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알고 있다.그런데도 여전히 그런 행동을 버리지 않는 것은,그것이 북쪽과 연결된 행동이라는 의심을 지울수 없게 한다.어느 모로도 그것은 정당하고 현명한 행동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서도,통일을 위해서도,개개인 자신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은 커녕 어리석은 일일 뿐인 이런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배후에 어떤 불법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버릴수 없게 한다. 안기부가 이른바「사로맹」의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한 것에 의하면 그들은 「마르크스­레닌과 빨찌산·남로당의 정통 후예임」을 자처하고,가칭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한뒤에 결정적인 시기에 폭력혁명을 유발하려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는 사회주의 지하조직임이 밝혀졌다고 한다.아직도 이런 환상적인이념의 노예가 되어 자신은 물론 사회와 이웃을 파괴하고 분열시키는 세력이 존재해 왔다는 사실에 환멸이 느껴진다.인공기 소동을 새로운 전략으로 학원을 혼란시키고 사회를 유린하려는 운동권세력의 태도도 같은 범주로 밖에 달리 해석할 방법이 없다. 점점 소외되는 운동권의 논리와 처지를 그렇게 탈출할수 있으리라는 생각이라면 그건 승산없는 어리석은 짓이다.거의 모든 시민이 거부하고 절대다수의 동료학생들이 외면하며 세계여론이 웃음거리로 여기는 일일 뿐이다. 판단력도 이성도 없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폭력운동권학생들의 난동에 경찰은 언제까지 우세를 당할 것인가.소수의 이런 세력에 의해 사회를 혼미하게 하는 일에 경찰은 보다 단호한 조처와 대응을 할수 없겠는가.언제까지 「인공기 놀이」에 취해 놀아나는 세력들에게 휘말릴 것인가.빨리 법의 권위를 회복하여 불법세력의 발호를 뿌리뽑도록 하라.대다수의 학생을 포함한 절대다수의 국민은 그것을 촉구하고 있다.
  • “사노맹 선봉은 「공장소조」·「전민학련」”/안기부 발표

    ◎노사 극렬투쟁·대학 과격시위 선동/69개 기업 침투,조직활동/공장소조/70개대 1천2백명 포섭/전민학련/전국에 「고교생실천위」 구성도 착수 「남노당」이후 최대규모의 좌경지하조직으로 드러난 「사노맹」은 전국 각지의 공장과 대학,심지어 고등학교까지를 혁명의 요새로 만들 계획을 세워온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안전기획부가 15일 발표한 수사결과 이른바 「공장소조」로 불리는 「사노맹」의 혁명전진조직은 현재 구로·인천·성남·마산·창원등 전국 69개 공장에 침투,3백10명의 조직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노맹」은 사회주의혁명의 완수를 위한 1단계 작업으로 조직원들을 공장에 위장 침투시켜 「공장소조」를 조직한뒤 2단계로 「공장위원회」를 건설하며 94년초까지 지하혁명지도부인 「남한사회주의노동자당」을 결성한다는 단계별 계획을 수립해왔다고 안전기획부는 밝혔다. 임금과 후생복지등에 불만을 가진 근로자들이 중심이 돼 조직된 「공장소조」는 노사분규때마다 극렬투쟁을 선동해왔으며 특히 올해초부터는 노조중심의 투쟁활동에서 벗어나 「공장사회주의운동」으로 전환,대기업침투를 기도해왔다는 것이다. 「사노맹」이 「공장소조」를 조직한 전국의 산업체는 수도권에 아남산업 동부기계 한라중공업 영창악기 해태제과 대우자동차등 30개공장에 1백40명이며 중부권에 태평양화학 맥슨전자등 14개 공장 46명,영남권에 현대자동차 풍산금속등 14개 공장 69명,호남권에 아시아자동차 광양제철등 11개 공장 55명등이다. 「사노맹」은 이들 산업체의 노동조합을 혁명투쟁의 교두보로 삼고 조직원을 침투시켜 노조원들에게 계급의식과 정치의식을 불어넣어 기업주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고 투쟁에 앞장서도록 선동했다는 것이다. 포섭된 조직원들로 하여금 「노동해방선봉대」와 「사회주의선봉대」라는 투쟁조직을 만들어 지난해 5월 강경대군 치사사건 시위현장,아시아자동차 노사분규현장,지난해 8월 광양제철 노사분규,지난해 11월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노동자집회」등에 개입,과격 폭력시위를 배후조종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사노맹」은 이와함께 투쟁선봉대 역할을하는 전국의 학생조직을 장악할 목적으로 각 대학의 「비주사파」 학생들을 규합,「전민학련」을 결성했다. 이 조직은 현재 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등 전국 70개대학에 1천2백여명의 조직원을 확보,「사노맹」의 조직이념에 따라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수사결과 밝혀졌다. 지난 1월에는 총책 백태웅씨(29)의 지시로 「전민학련」을 「사노맹」체제에 맞게 「남한 사회주의 학생동맹」으로 바꾸어 사회주의 혁명조직임을 명백히 했으며 조직원을 추가 포섭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민학련」이 극렬투쟁을 벌인 시위는 지난해 2월 서울 신답전철역 앞에서의 집회와 다음달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정치집회가 끝난 뒤의 폭력시위,지난달 강경대군 사망1주기 추도식에서의 시위등 여러건이 있었으며 오는 19일의 「민자당」전당대회일에도 화염병 5천여개를 준비,폭력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안기부는 또 「사노맹」이 「고등학생 정치활동을 위한 공동실천위원회」를 구성하는등 고교생들까지 조직원으로 포섭하려했다는 사실을 중시,집중 수사를 벌이고 있다.
  • 「사노맹」 조직원 3천5백명 암약/안기부 발표

    ◎공장·대학침투,폭력혁명 기도/백태웅등 핵심간부 39명 곧 송치 국가안전기획부는 15일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이 이른바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당」을 만들어 사회주의 혁명을 이룩한다는 목표아래 전국의 주요공장과 학원에 3천5백여명의 조직원들을 침투시켜 폭력혁명을 기도한 「남로당」이후 최대규모의 사회주의 혁명 지하조직임이 드러났다고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안전기획부는 이에따라 지난달 29일 검거된 이조직 중앙위원장인 총책 백태웅씨(29·가명 이정로·서울대 법대졸업)등 핵심간부 3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반국가단체구성·수괴임무종사·목적수행·찬양·고무등)혐의로 오는 20일 검찰에 구속송치한다고 밝혔다.안기부는 이들로부터 컴퓨터 13대와 조직원들의 활동내용이 수록된 디스켓 1천82개,위조된 주민등록증 26개,활동자금 2천7백여만원등 20만여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안기부는 또 아직 붙잡히지 않은 일부 핵심간부와 조직원들을 끝까지 추적,검거하기로 하는 한편 북한 공작조직과의 연계가능성등 배후세력에 대해서도 정밀 수사하고 있다. 수사결과 「사노맹」은 94년 봄까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을 모아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당」을 건설한다는 중간 목표아래 선거기를 틈타 대대적인 조직확대작업을 전개,3천5백여명의 조직원을 확보해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기도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위해 「사노맹」은 공장노조를 장악,혁명요새화할 목적으로 서울 부산 광주 울산등 전국 16개지역의 69개공장에 조직원 3백여명을 침투시켜 이른바 「공장소조」를 통해 폭력투쟁을 전개해왔다는 것이다. 또 학원을 혁명의 전진기로 삼기 위해 「전국 민주주의 학생연맹」(전민학련)을 결성,서울대 고려대 성균관대 부산대등 전국 70개 대학에 1천2백여명의 조직원을 확보해 정치집회나 노사분규 현장에서 화염병 투척등 극렬투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고교생들까지 조직원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성남지역등 27개 고등학교 학생들을 포섭,이른바 「고등학생 정치활동을 위한 공동실천위원회」를 구성해 사회주의 사상을 교양해온 사실도 밝혀졌다. 「사로맹」은 이같은 조직활동을 위해 조직의 최고지도부로 「중앙위원회」를 두고 그 아래 「비서실」「정책국」「조직국」「전산국」등의 산하조직및 선동영화를 제작하는 「시각매체연구소」등 중앙조직과 「수도권위원회」「영남위원회」「중부위원회」「호남위원회」등 지방조직을 구성했으며 혁명이념을 연구하는 「남한사회주의 과학원」이라는 외곽조직과 지하인쇄소·출판사등도 보유해 완벽한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또 비밀아지트 운영비·선전물 제작비·간부활동비등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속셈학원·광고기획사 등을 경영하고 모금을 해 2억6천만원의 자금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안기부는 이번 수사로 「사로맹」의 실체가 명백히 드러난 이상 나머지 조직원들을 추적 검거하는 한편 「인민노련」「반제민중전선」등 60여개의 불순 지하조직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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