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회주의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감사위원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취업지원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조건부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 웹사이트
    2026-02-1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10
  • 정전위 기본틀 유지에 “적신호”/중국의 대표 소환결정과 정부대응

    ◎정전협정→「평화」 대체 남북합의없인 불가/정부,유엔사 통해 중국에 “협정위반” 상기 중국이 1일 군사정전위의 중국대표를 「소환」키로 결정함으로써 현행 정전체제에 적신호가 켜졌다. 지난 53년 출범한 정전위는 유엔을 대표하는 미국과 북한·중국등 3기둥으로 구성돼 있었으나 이번에 중국이 정전위대표를 소환,회의에 불참키로 한데 따라 대화당사자는 미국과 북한 둘만이 남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는 한국을 빼고 미국과 직접 군사문제를 거론할 수 있는 최대의 여건을 조성한 셈이 됐다. 중국은 지난 4월28일 일방적인 정전위철수를 단행한 북한으로부터 「같은 보조」를 취해달라는 끈질긴 부탁을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마침내 4개월여만에 북한의 뜻에 호응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4월 『조·미 사이의 적대관계를 개선하고 화해를 이룩하며 조선반도에 진정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자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정전기구를 대신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일방적으로 정전위철수와 중립국감독위의 폴란드철수조치를 밝혔다. 북한은 이어 정전위의 무력화를 위한 갖가지 정전협정 위반조치를 저질러왔다. 4월28일 하오 비무장지대안에 무장병력 40여명을 투입,유엔과 한국군을 긴장시킨데 이어 5월30일에는 정전위회의장의 북한측 집기를 모두 회수해가는 소동을 벌이기도 했다. 북한은 이를 통해 정전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자 하면서 이 과정에서 중국의 「동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이번에 사회주의종주국으로서의 위치와 특히 인접국인 점을 감안해 북한을 지원하게 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번 결정은 북한의 요청수준보다는 다소 낮은 수준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은 「철수」를 요청해온 북한의 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소환」을 채택했으며 사전에 한국측에 『전통적 조·중관계에 의해 취해지는 조치일뿐 중국대표가 1년에 1∼2차례 회의에 참석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달라지는 점은 없다』고 해명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전협정의 평화협정대체는 핵문제가 해결되고 남북 사이의 신뢰가구축되면 남북한당사자가 직접 만나 협의,해결해야 한다는 우리측 입장을 중국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당국은 중국의 이같은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전위의 기본틀에 자칫 변화가 초래되지나 않을까 우려하면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특히 이번 중국의 정전위소환과 지난 4월 북한의 정전위철수단행이 모두 북한핵문제과 관련,중요한 전환점이 될 시점에 거론됐다는 점에서 북한핵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다른 문제로 돌리고 한·미간의 공고한 연계를 이간하고자 하는 술책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중국의 북한동조와 관련한 정부의 인식도 종전의 그것에서 그다지 달라진 점이 없다. 정부는 이번 북한의 요청에 따른 중국의 정전위소환이 미·북연락사무소설치와 경수로지원등을 위한 2개의 전문가회의가 평양과 베를린에서 각각 열리게 되는 10일과 북·미간 3단계회담 2차회의(23일)를 앞둔 시점에서 취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4월28일 북한의 정전위철수도 북한핵문제에 대한 국제제재분위기가 한층 고조되는 가운데 취해졌다. 정부당국은 또한 북한이 앞으로 진행될 미·북회담등에서 정전협정문제를 본격거론,한·미간의 공고한 유대에 틈새를 벌리기 위한 고도의 작전을 펼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북한과 중국의 정전위철수와 관련,이같은 행위가 『협정을 수정·추가하려면 당사자간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정전협정 5조 부칙 61항과 『적당한 협정에 의해 규정이 교체될 때까지 명확한 효력을 갖는다』고 명시한 같은 조항 62항을 위배한 것으로 규정하고 모든 문제를 정전위에서 논의하자는 것이 기본방침이다. 정부는 또 이같은 입장을 유엔사에 전달,유엔사가 같은 입장을 채택해 중국에 전달해줄 것을 요망하고 있다. 어쨌든 중국의 정전위대표 소환으로 기존의 정전체제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사회의 이해」 박성수교수 등 5명의 비판

    ◎“한국 반대해야 올바른 현대사” 강변/“피착취계급 입장에 서야” 논리적 오류/가설을 「진리」로 규정… 언어의 테러 자행 고려대 한승조교수(정치외교학과)에 이어 박성수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도서관장)를 비롯한 5명의 다른 학자들도 경상대 교수 10명이 공동으로 쓴 「한국사회의 이해」를 비판하고 나섰다.박교수등은 1일 「한국사회의 이해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논문의 서론에서 『「한국사회의 이해」에 수록된 주장들은 지난 80년대 이래 자칭 「진보적」 사회과학자들이 공공연히 발표해온 논저에서 취한 것들로 그 중에는 당연히 북한 공산당의 주장과 일치하는 내용들이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논문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 사회를 보는 틀◁ 피지배자 민중의 입장에서만이 올바르게 사회를 볼 수 있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에 서로 대립하는 착취와 피착취계급이 존재하며 한국사회를 올바르게 보려면 피착취계급의 입장에 서야 한다는 잘못된 논리다.또 「상식과 과학의 통일성」에 입각해야 한다는 것은 「사회연구에서 오직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만이 과학」이라는 그들의 주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그리고 「한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한국사회를 이해하려 한다」는 기술은 제3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사회를 본다는 가치중립적 입장으로 해석된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시공을 초월해 적용되는 절대 진리가 아니다.우리 사회는 1백40여년전 마르크스가 살았고 관찰의 대상이 됐던 프러시아 영국 프랑스등 서구 제국의 사회와 다르고 종속이론의 발상지인 남미 제국의 사회상과도 다르다. 이 책의 저자들은 우리 사회가 대대로 이어지는 절대 불변의 계급구조 속에서 자본가는 잉여가치의 착취에 의해 부를 더욱 증가시키고 가난한 사람은 그로 인해 더욱 가난해지는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듯이 기술하고 있다. ▷사회과학=사회운동,사회과학자=사회운동이론가?◁ 이 책에서 우리는 민중운동의 이론가와 사회과학자와 정치가간의 차이에 혼란을 일으킨다.대학 강단에 선 정치학자 사회학자 경제학자등 모든 사회과학자들이 사회운동의 실천적 이론을 제공하는 사람들이 돼야한다는 주장을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 ▷근·현대사의 왜곡◁ 이 책은 1919년의 3·1운동이 노동자 농민의 계급투쟁이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민족대표를 비롯한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민중을 배신함으로써 3·1운동이 실패했다고 주장한다.김일성과 박헌영이 6·25 남침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책이 과연 객관적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는지,아니면 객관적 역사 서술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근대사를 적화통일하려하고 있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이 책은 한국 현대사를 북한정권의 시각에서 보고 대한민국을 반대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발전과 종속이론◁ 부정부패,소득분배의 불균형,수출위주 경제의 대외의존성 등을 이유로 종속이론에 입각해 우리 현실을 이해하려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한국사회의 계급구조와 계급의식◁ 저자들은 한결같이 우리 사회를 자본주의 계급사회로 규정하고 계급간의 모순과 갈등을 강조하고 있으나 그러한 주장들은 대부분 실증이 결여되고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외면한 구호적혹은 상투적 주장에 불과하다.저자들이 주장하는 계급은 존재하지 않고 계급의식은 더구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정체는◁ 저자들이 장황하게 기술한 공산주의 사회주의 이념 자체의 이상적인 내용과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변혁 이후 구현될 이상사회와 이상국가 체제의 구체적 청사진이 제시되지 않았다.노동자계급이 변혁의 주체라는 주장 역시 자명한 명제인 것만은 아니다.사회혁명이나 변혁에 있어 노동자계급이 자신 위에 군림할 소수의 독재자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해방할 수 있는 가능한 방도는 아직까지도 인류 역사의 숙제로 남아 있다. ▷자본주의의 상대적 우월성◁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사회적인 문제란 노동자들이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착취를 당함으로써 나타날 수 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문제다.그러나 이 문제는 자본주의의 처음 단계에서는 심각했을지 모르지만 자본주의가 성숙해지면 효과적으로 대처되고 극복돼 갔던 것이 현실이다. ▷글을 마치며◁ 「한국사회의 이해」의저자들은 이른바 「과학화」의 개념적 도구들을 총동원해 우리 사회를 파악하려 든다.또 가설을 바로 진리로 확정해놓고 그것을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그리고 믿지 않는 자에 대해서는 온갖 언어적 테러를 자행할 뿐아니라 물리적 테러도 서슴지 않고 있다.이런 태도는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종교신자의 태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다.우리는 「한국사회의 이해」와 같은 선동적 책자가 우리 사회에서 유포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 호치민과 김일성의 차이/이목희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우리 국무총리로서는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한 이영덕총리가 31일 상오 하노이 중심부에 자리잡은 호치민(호지명)묘소를 찾았다.이총리는 나라안에서의 「주사파」논란을 우려한 듯 호치민묘소에 헌화만 하고 시신을 보존하고 있는 내부는 참배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자의 눈으로 볼때 이총리는 하지 않아도 될 몸조심을 한 듯 여겨졌다.호치민과 김일성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호치민은 이데올로기를 떠난 국민적 영웅이었다.이총리가 그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는 날씨가 화창했으나 전날까지만 해도 비가 억수같이 퍼부었다.그런 빗속을 뚫고 맨발에 후줄그레한 차림의 참배객들이 그의 묘소에 줄을 이었다. 한 베트남 참배객은 이렇게 말했다.『프랑스에서 독립하기 위해,미국과 싸우기 위해 사회주의를 택했을 뿐 그것이 우리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라며 『호치민은 공산주의 지도자이기 이전에 민족의 지도자』라고 강조했다. 이 참배객의 말은 실제에서도 일치했다. 이총리가 총리회담을 하고 국가주석을 예방한 하노이의 주석궁은 일반의 상상을 벗어나 있었다.정문을 지키는 위병은 슬리퍼를 신은 자유스런 복장이었다.주석궁 안에서 경호를 하는 경찰관도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채 귀빈의 방문을 전혀 개의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북한처럼 삼엄하고 강요된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주체사상」이라는 명목아래 김일성·김정일을 「살아있는 신」이라 주장하는 북한과는 확연히 달랐다.물론 「기쁨조」도 없고 「어버이수령」이란 말도 없었다.그만큼 「인간적」이었다.사회주의에 앞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표현과 감정의 자유를 한껏 누리는 듯한 분위기였다. 따라서 호치민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치열하게 싸우다 통일도 보지못하고 운명을 달리한 민족지도자였지 「주체사상」이라는 허무맹랑한 이데올로기로 국민을 압제한 독재자가 아니었다. 지난 69년에 사망한 그는 아들에게 정권을 물려주지도 않았다.그의 사망후 베트남은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그가 물려준 「청렴주의」도 철저히 이행,25년동안 무리없이 정권을 이끌고 있다.최근들어 중간관리들의 부패가 일부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이나오지만 최고지도층은 아직도 그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사파」도 이데올로기 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해진다.
  • 교과서내용 감독 철저해야(사설)

    96학년도부터 사용될 중·고교 국사교과서의 개편을 위한 교육부시안이 31일 발표됐다.이 시안에 의하면 당초 학계연구팀이 마련해 논란을 빚었던 근·현대사의 용어문제가 대체로 현행교과서대로 기술토록 되어있어 우선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지난3월 「국사교육내용전개의 준거안연구」를 맡았던 연구팀들은 1차시안에서 「제주도 4·3사건」을 「4·3항쟁」으로,「대구폭동사건」을 「10월항쟁」으로,「동학농민운동」을 「농민전쟁」으로 기술하는등 역사의 진실을 북의 사회주의 사관에 근접한 왜곡된 시각으로 기술하려하는 듯한 의구심을 자아내게 했었다.연구자들의 주관을 지나치게 노출시켜 객관성이 결여되기도 했던 이같은 용어의 선택은 국민정서에 맞지않는 것이어서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았었다. 역사기술에 있어서 용어의 선택이란 사실을 포괄하고 개념을 정립시켜주는 역할을 하기때문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또한 국가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사관을 기초로 해야 한다.따라서 학자들의 충분한 연구와 검토를 바탕으로 신중하게 결정되어야만한다.역사인식에 대한 고정관념은 벗어나야 하지만 균형감각을 갖추는 것이 또한 필수적이다.특히 교과서의 기술에서는 학계의 공통된 연구성과를 반영해야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그런 점에서 현행교과서의 용어들을 대부분 그대로 쓰기로 한 교육부의 시안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결정이라고 본다. 다만 「4·19의거」가 「4월혁명」으로,「5·16군사혁명」이 「5·16군사정변」으로 바뀐 것은 그나름의 설득력이 있다고 보여진다. 현대사는 역사적평가가 미완으로 되어 있으므로 역사기술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된다. 무엇보다도 연구팀의 시안에서 주장했던 김일성주체사상의 서술을 완전 삭제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합당한 조치라 하겠다. 대학강단에서 공공연히 주체사상강의가 이루어지고 대학의 교양과목교재가 이적성의 급진좌경사상을 수록,가르치고 있는 사실들이 발견되고 있는 요즈음이다.시대착오적인 낡은 이념으로 무장한 주사파학생들이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위협하면서 우리사회의 혼란을 가중시키고있는 상황이 아닌가.중고교 국사교과서에주체사상을 서술하겠다는 연구팀의 당초 발상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어떻게 그런 발상이 나왔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교육부의 심의안은 앞으로 1종도서심의위·국사편찬위 등 3단계의 심의 검토를 거쳐 확정하게된다.그 과정에서 전문가들의 충분한 검토작업이 있을것으로 예상된다.국사교과서란 검증되지않은 일부학자의 학설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지난번 물의를 일으켰던 연구팀의 시안을 교훈삼아 신중하고 객관적인 재편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해주기를 기대한다.
  • 「김 사후 첫방북」 일관광객이 본 “오늘의 북한”

    ◎“가로등 꺼진 「평양의 밤」 전력난 실감”/웃음잃은 주민… 신발 못신은 아이도 많아/강가엔 밤늦게까지 낚시꾼… “부족한 식량 대체” 인상/“승차줄서기 배급행렬 오해” 사진 못찍게 『평양은 활력이 없는 「검은 도시」였다.야윈 북한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었고 해가 저물면 평양은 전깃불이 거의 없는 검은 빛으로 변했다.전체적으로 무거운 침묵속에 싸여 있었다.그 가운데 김정일체제가 정착되고 있는 느낌이었다』김일성 사망후 지난28일 북한을 다녀온 어느 일본 관광객이 말하는 오늘의 북한 모습이다.북한관광이 재개되면서 일본관광단 34명이 지난달 23일부터 5일간 북한의 평양,개성,묘향산,판문점등을 여행했다.그들은 김일성사망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일본사람들이었다.그중 한 일본인이 본 지금의 북한상황을 소개한다. ○한낮 사람·차 드물어 평양의 순안국제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좁았다.공항에는 일본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별로 사람들이 없었다.평양거리에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아침 저녁 출퇴근시간에는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 차를 타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나 낮에는 거의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자전거와 자동차도 드물었다.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는 일본제거나 벤츠였다. 북한사람들의 모습도 텅빈 평양시내만큼이나 활력이 없었다.평양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그들의 야윈 모습에는 명동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활기찬 삶의 즐거움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깡마른 얼굴과 단조로운 색깔의 지저분한 옷에는 가난이 짙게 배어있었다.평양을 벗어나면 가난은 더욱 심각했다.개성에서 만난 어린이들중에는 신발을 신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다. 강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밤늦게까지 낚시를 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북한에서의 낚시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부족한 식료품을 보충하기 위한 절박한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평양에는 사람보다 오히려 각종 구호를 적은 간판이나 플래카드가 더 많았다.열심히 일할 것을 촉구하는 구호는 어딜 가나 넘쳐흘렀다.많은 구호는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일하지 않는 통제된 사회주의 체제의 취약점을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듯했다. ○주체사상탑만 불빛 밤이되자 평양은 숨을 멈춘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가로등이 꺼져있는 평양거리는 바로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어둡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평양의 밤은 「역사의 정지」와도 같은 느낌이었다.어두운 평양의 모습은 심각한 전력난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그 가운데 주체사상탑만이 유령의 불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북한거리에서는 사망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북한에서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라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했다.후계문제와 관련,어떤 이상한 조짐은 느낄 수 없었다.TV·라디오는 김정일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방송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24일 아침 8시 평양방송의 보도도 「군사의 영재이신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위대함을 강조했다.김일성의 동상앞에는 지금도 조문객이 많았다. 북한여행은 2명의 감시인과 1명의 통역이 반드시 따라다니는 통제속에 이루어졌다.그들은 ▲불특정다수의 사람들 ▲정복입은 사람 ▲열차안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사진을 찍을 경우 반드시 상대방의 허락을 받고 찍으라고 말했다.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모두 피했다. 『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찍으면 안되는가』라고 질문을 하자 통역은 『차를 타기 위해 줄서있는 것을 찍은 후 식량배급을 받기위해 서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식량난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북한은 관광객의 여행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판매하고 있었다.1개당 1만엔.일행중 25명이 비디오를 샀다.25만엔은 북한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다.비디오판매는 북한선전과 함께 외화벌이이기도 한듯하다.북경에서 하루 잔 것을 포함,1주일간의 여행비는 25만7천엔이 들었다. ○8비트 컴퓨터교육 일본인집에서 본 비디오는 북한의 밝고 좋은 면만을 담았다.우리에게 낯익은 어린학생들의 연주모습도 있었다.그들은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이었다.연주는 훌륭했다.평양제1중학교는 북한이 자랑하는 「쇼윈도」다.그러나 그 뒷모습은 오늘의 어려운 북한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변소는 수세식이었으나 물이 나오지 않아 대변이 쌓여있었다.휴지도 없고 전기도 꺼져있었다.이때문에 여자관광객들중에는 놀라 뛰어나온 사람도 있었다. 비디오는 컴퓨터교육도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그 컴퓨터는 일본에서 15년전에 쓰던 8비트 사프사 제품이었다.세계를 잇는 정보하이웨이 구상이 현실화되고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정보화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정보원시세계」에서 그들은 살고 있었다. ○김 대통령 수시 비난 관광객들은 북한사람들과 직접접촉할 기회가 드물었다.지하철을 탔을때도 같은 칸에는 북한사람들이 한명도 없었으며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묘향산에 갔을 때 머무른 향산호텔(2백28실)에는 손님이라곤 우리외에는 없는듯 보였다. 안내원들은 관광객들에게도 정치선전을 늘어놓았다.그들은 고려연방제통일안을 강조하며 남한,특히 김영삼대통령을 기회있을 때마다 비난했다. 관광객들에게도 정치선전을 하는 나라.삶의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는 정체된 사회.북한은 이상한 수수께끼의 나라였다. ◎독 외교관이 쓴 「북한인상기」 출간/“평양에 「준전시」 긴장감”/주민에 “남서 침략” 강박관념 주입 북한의 최근 모습을 직접 보고 체험했던 독일외교관이 쓴 북한이야기가 최근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는 지난달 30일 평양 독일이익대표부 개설임무를 띠고 91년초 부임,최근까지 근무하다 돌아온 페터 샬러씨의 북한인상기 「북한­김씨부자의 마술적 힘에 의해 조종되는 나라」를 소개했다. 신문은 「장미넝쿨속의 독재국가」 제하의 서평기사에서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히 폐쇄되어 있는 북한에 대한 보고가 극히 드문 현실로 볼때 공산권사정에 밝은 젊은 외교관이 쓴 이 관찰기록은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저자는 북경,쿠바 등지에서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정권의 선전과 자기과시의 가면을 넘어 북한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으며 북한사회의 깊숙한 구석까지 관찰하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샬러씨는 이 책에서 북한내부는 냉전의 분위기와 준전시 상황이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북한사회는 고도의 전시체제아래 사회전반적인 군사화가 진행되어 있으며 늘 남한이 침략해올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이 부임해서 북한측이 지명해준 현지고용인원을 대하면서 느낀 감정이나 사회이면 등을 묘사하고 있다.또 외교관으로서 북한사회를 접촉하면서 느낀 감정이나 주민생활의 모습,여행을 하면서 보고들은 얘기들을 풍부한 일화로 엮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관찰기록은 단순히 피상적·단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주체사상과 북한의 경제운용상황 등 국가지도이념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실제 사회조직체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속에 일화들이 녹아들면서 북한이라는 거대한 실체를 나름대로 더듬어내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일반주민들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일방적 관찰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을 뿐 주민들과의 가슴을 열어놓은 대화나 의견교환을 통한 깊숙한 북한이야기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어쨌거나 샬러씨는 북한정권의 핵심을 설명해주는 것은 개인우상화라고 지적하면서 그 대가로 치르고 있는 극도의 내부적 억압과 대외적 고립이 북한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 근간인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 한­베트남/「경협단계」넘어 외교파트너 부상/양국총리회담이 뜻하는것

    ◎수교 2년만에 동남아 친한교두보 구축/ARF 참여 의사… 민간교류 늘어날듯 정부는 30일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서 열린 한국과 베트남 두나라 총리회담에서 기대를 넘는 성과를 얻어냈다.정부가 이번 총리회담에서 베트남에 대해 파격적인 경제지원을 약속하면서 바랐던 것은 두가지.북한핵문제및 우리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진출에 베트남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었다. 베트남은 김일성이 사망했을때 전국민 애도일을 선포할 정도로 그동안 사회주의국가와의 의리를 중시해왔다.우리의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진출에 대해서도 함께 비상임이사국을 노리는 스리랑카를 의식,확답을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베트남은 이날 총리회담에서 「화끈한 언질」을 해주었다.우리의 평화통일노력과 한반도비핵화지지는 물론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진출도 적극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이제 수교2년을 맞은 두나라가 경제에 이어 정치면에서도 성숙한 동반자관계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이총리의 이번 베트남방문으로 총리급 왕복외교까지 올라선 한·베트남 두나라는 곧정상들의 교환방문도 실현하게 된다.베트남의 제1인자 도 무오이 공산당서기장이 올연말쯤 우리나라를 방문,김영삼대통령과 월남전이후 두나라의 첫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고 김대통령도 멀지않은 장래에 베트남을 방문하게될 전망이다. 특히 베트남은 우리가 주도하는 아시아지역안보대화(ARF)에도 참여의사를 밝혀 안보면에서의 협력도 기대된다. 베트남은 우리와 한때 피를 뿌리며 전쟁을 치른 나라이다.그럼에도 이처럼 관계정상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는 배경에는 우리의 능동적이고 진솔한 협조자세가 뒷받침되고 있다. 미국이 올해초까지 금수조치를 풀지않아 서방국가들이 베트남에 투자를 망설이는 동안 우리는 2년남짓 짧은 기간이나마 많은 일을 해놓았다.벌써 대만·홍콩에 이어 제3의 교역·투자국으로 올라섰다. 일각에서는 베트남에 대한 우리의 투자가 중복·과잉되었다는 지적도 일었지만 정부는 개의치 않고 있다.이영덕총리는 오히려 『베트남을 아시아에 있어 최대의 경제협력대상국으로 삼겠다』고 밝혔다.미국·일본보다도 앞서 닦은 기반을활용,인적·물적 자원이 풍부한 베트남 경제진출의 선두주자로 나서자는 것이다.나아가 미개척분야인 라오스·캄보디아 진출의 기지로도 삼자는 구상이다. 베트남도 우리의 노력에 부응,한국 기업이 활동하기 편하도록 각종 제도를 고쳐나가겠다고 약속했다.한국을 경제개발의 모델로 삼겠다는 자세인 것이다. 이제 남은 과제는 이번 총리회담의 합의를 착실히 다지는 일이다. 정치분야에서는 우리의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진출이 보다 확실시되고 있다.우리는 세계 1백여개국의 지지를 목표로 외교활동을 벌이고 있으며 이미 41개국으로부터 서면 지지약속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베트남의 동참으로 동남아권에서 지원세력을 더욱 넓힐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북한핵문제에 있어 베트남의 지지약속은 같은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이 우리쪽 처지를 이해하는데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경제분야에서는 우리가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 무상원조를 약속대로 늘려갈 것이다.두나라의 자원협력위설치,전전자교환기(TDX)지원,문화협정체결은 우리와 베트남의관계진전을 더욱 가속시키리라 여겨진다.
  • 사노맹 지하조직 결성/보안법 위반 1명구속

    【전주=조승용기자】 국가안전기획부 전북지부는 30일 반국가단체인 사회주의노동자연맹에 가입해 사회주의혁명을 선전선동한 이화춘씨(36·농업·전북 익산군 삼기면 기산리 364)를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했다. 안기부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91년7월 당시 「사노맹」 전북지역 조직책인 이병일씨(26·93년1월 구속)를 통해 사노맹에 가입한 뒤 이 조직의 위장지하조직인 「삼원식품」을 결성,노동자들을 상대로 사회주의혁명을 선전선동한 혐의를 받고 있다.
  • 들로르 EU집행위장 불 정계 정식복귀

    【로리앙(프랑스) AFP 연합】 올연말 퇴임하는 자크 들로르 유럽연합(EU)집행위원장은 27일 자신이 이끄는 불사회당 「증인」파벌이 서부 로리앙시에서 개최한 한 회합에 참석함으로써 프랑스정계에 복귀했다. 그는 그러나 내년 5월 대통령선거에 출마키로 결정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당신들이 상관할 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함구했다. 들로르는 「증인」파의 회의에서 프랑스인들에게 현재의 「사회적 위기」의 극복을 위해 사회당의 사회주의및 노동조합주의에 눈을 돌리라고 촉구하면서 『사회당에 책임을 부여하고,노동조합주의로 복귀하고,의사결정과정을 단순화함으로써 우리는 성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대학주사파 설득 교수가 나서라/최호중(시론)

    지난 8월초에 세계자유민주연맹의 연차 총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다.세계반공연맹의 후신인 이 민간단체가 공산주의 총본산이었던 옛 소련의 수도에서 대대적인 모임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많이 변한것을 절감케 되지만,러시아 정부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하여금 크렘린 내에 전대표단을 불러 환영 만찬을 베풀게 하는등 극진한 환대를 한 사실도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총회에서는 러시아를 비롯, 개혁과 개방을 추구하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정치적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원만하게 달성할 수 있도록 가능한 지원을 다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인류 보편의 기본가치인 자유와 인권과 행복을 확보함에 있어 공산주의와 통제경제를 가지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가름이 난만큼,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원리에 바탕을 둔 새로운 국제질서를 굳히는데 힘을 모아 나가자는 결의를 하필이면 바로 이 모스크바에서 공동 코뮈니케로 발표하게 됐는지 어리둥절하면서도 자못 진지했던 회의 분위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총회 참석차 러시아를 방문한 김에 제정러시아의 역사를 살펴보고 또 그 유물을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그러면서 느낀 것은 과연 왕정을 뒤엎고 혁명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 상황이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왕족이 그 영화를 누리려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렸으니 누구라도 더 참고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갔다.그런데 노동자 농민들을 다 잘살게 해주겠다던 공산혁명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다.공산주의는 비록 목표하는 것 자체는 좋았다 하더라도 그 목표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 못됐고,더욱 잘못된 것은 공산혁명을 통해 집권한 세력이 지난날 왕족이 누린 것과 똑같은 영화를 누리기에 급급했을 뿐,인민을 잘 살게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이었다.말하자면 다른 방편으로는 권력을 잡을 수 없는 처지에서 권력을 잡기위해 인민을 속이고 그들을 교묘하게 이용한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이것은 비단 소련에서만 그런것은 아니었다.모택동 정권하의 중공도 마찬가지였다.외빈을 조어대에 초치해 놓고 만찬을 대접하면서 이 방은 옛날에 건륭황제가 자주 찾았던 곳이고이 술과 이 요리는 그가 즐겨 들었던 것이고,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식기와 탁자도 모두 그때 사용했던 것이라고 하면서 마치 황제자리에 앉기라도 한 양 우쭐해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은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주석궁이라는,대궐을 무색케하는 어머어마한 집을 지어놓고 그 속에서 살면서 노경에 접어든 김일성은 손님을 대접하는 자리에 나와 밥을 질질 흘리면서도 손에는 늘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박힌 최고급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모든 인민에게 쌀밥에 고깃국,비단옷에 기와집을 마련해 주겠다는 공수표를 해마다 되풀이해 오면서 말이다. 옛 소련과 동구권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소용돌이 속에서 그네들이 내세울 수 있는 것은 『주체사상으로 무장된 우리식 사회주의는 필승불패』라는 억지뿐이었다.그 「우리식」이라는 것은 이미 손을 들고만 공산주의 방식과 다를 것이 없었다.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외에,안으로는 혹독한 억압을 강화하고 밖으로부터는 자유와 개방의 바람이 스며들지못하도록 막는 일이었다.그 결과는 국제적 고립과 경제파탄,그리고 북한주민이 겪어야하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정황이 이러함에도 우리 사회일각,특히 대학가에 주사파가 오늘도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시대착오적인 북한의 주의주창을 맹종하고 있는 그들이 북한의 사주를 받고 있든지,아니면 자생적이든지 간에 우리는 더 지체하지 말고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어느 사회고 욕구와 현실간에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불만계층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은 억울하고 막막하게 여기는 현실을 타파해 보려고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쉬운 것이 사실이다.그렇다고 어떠한 언동도 모두 용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대가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우리 대학가를 좀먹고 있는 주사파의 뿌리를 뽑아야 하고,맹종자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한다.그 책임은 마땅히 우리 사회전체가 져야 하지만 아무래도 일차적 책임이 교수진에게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지금까지는 학원내 이상기류를 의식해서 일부교수들이 학생선도의 본분을 애써 기피하거나 외면하고 국내외 학술회의 참석,언론등에 대한 기고,혹은 정부 각 기관에 대한 자문역할등에 보다 많은 비중을 두어온 감이 없지 않지만,이제는 교수 모두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해야 한다.그래서 모스크바에서 버린 길을 뒤늦게 서울에서 쫓아가는 우를 범하려하는 것을 방임해서 온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고,나라와 겨레의 장래가 어지럽게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 사회주의 전위대 양성… 체제전복 기도/「사민청」 핵심 12명 적발

    ◎공단침투… 노조활동 배후조종 청년대중을 사회주의 전위대로 양성하여 외세를 축출하고 현정부를 무너뜨린뒤 남북민중연방공화국을 건설,사회주의 실현을 목표로 활동해온 대학교수·통혁당 사건 관련자·과외교사등 12명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국가안전기획부는 26일 이같은 활동을 벌여온 「사회민주주의청년동맹」(사민청·의장 홍승문·27)을 적발,이 가운데 홍의장과 최창우씨(38·사민청 지도위원)등 사민청 간부 5명을 국가보안법위반(이적단체 구성)혐의로 구속하고 김영호씨(26·사민청 노동위원장)등 4명에 대해서는 긴급구속장을 발부받아 연행,조사하는 등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이와 함께 「사민청」정치학교장을 맡고 있는 충북대 철학과 부교수 유초하씨(46)등 3명에 대해서는 긴급구속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섰다고 덧붙였다. 안기부에 따르면 사민청은 『남한내의 청년 대중을 사회주의 전위대로 양성,미국을 몰아내고 현 정부를 타도한뒤 남한 내에 민중연방공화국을 건설,사회주의를 실현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활동해왔다는 것이다. 홍씨는 90년 1월6일 지도위원 최씨가 결성한 사민청 「정치학교」에 6기로 입학,정치학교장 유씨로부터 사회구성체론 등을 수강한뒤 유씨의 지도하에 사회주의 사상과 이념을 전파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안기부 조사결과 「사민청」은 전국노동자대회,UR비준반대대회 등에 참여하는 한편 구로공단 등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노조활동을 배후 조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안기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익선동 103 「사민청」사무실과 의장 홍씨 등 간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중앙위원회 회의록·컴퓨터 디스켓 등 1백여점을 압수했다. 「사민청」은 86년 창당된 혁신정당인 사회민주당(대표 김철·사망)의 청년 외곽단체였으나 89년 사민당과 결별하고 독자적으로 조직을 결성,기관지 「녹두」,소식지 「열린 공간」등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을 전파해 왔다고 안기부는 발표했다. 검거된 사민청 조직원은 다음과 같다. ▲홍승문 ▲최창우 ▲권오창(58·지도위원·통혁당사건 관련자) ▲최형록(36·전 민중당 기관지편집인) ▲최인기(28·노동위원) ▲김영호(26·노동위원장) ▲정승희 ▲이정예(27·총무국장) ▲방진옥(24·조직국장)
  • 김정일체제 “난기류” 확실/잇단 이상징후에 대한 정부시각

    ◎승계지연 50일… 「추모」론 너무 길어/대사 신임장도 부주석들이 받아/우리측 건강이상·전단살포설 보도에도 묵묵부답 김정일 후계구도가 결정적인 난관에 봉착한 듯한 징후가 잇따라 포착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단지 26일로 김일성이 죽은지 50일째를 맞고 있음에도 아직 김정일이 당총비서나 국가주석에 취임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그 보다는 최근 「김정일타도」전단 살포사건 등 북한내부에서 불거져 나오는 각종 특이동향들이 김이 전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심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가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김정일측이 김일성 추모분위기를 김정일 추대열기로 연결시키기 위한 시점 택일을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던 일부 정부 관계자들의 입에서도 다른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즉 철저한 피라미드식 독재체제인 북한 권력구조에서 그 정점에 있는 당총비서 등 최고요직의 장기공백이 계속되고 있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25일 상오 열린 통일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는 김정일체제가 당장 좌초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일단 난기류를 맞고 있다는 잠정결론을 내리고 우리측의 대처방안을 심각히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는 주변국중 북한정보에 가장 정통한 중국의 전기침외교부장조차 북한의 권력승계절차가 늦어지고 있는데 대해 『이상한 일』이라고 당혹감을 나타낸 사실을 중시하고 있음을 뜻한다. 정부내에서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둘러싼 내분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인사들은 반금 전단살포 이외에 몇가지 정황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북한정권 창건일(9월9일)이 코앞에 다가왔음에도 최고인민회의 소집공고 등 권력승계 절차를 밟을 조짐을 보이기는 커녕 박성철 등 부주석들이 외국대사들에게 신임장을 받는 등 파행적 양상이 계속되고 있는 점이다. 둘째,「산 김정일」에 비해 「죽은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 작업의 강도가 아직도 압도적이라는 사실이다.북한은 최근 공장·협동농장 등 하부단위조직은 물론 정무원 등 중앙고위조직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교양학습」을 은밀히 실시하고 있으나 김일성 주체사상과 치적을 강조할 뿐 김정일에 대한 충성유도는 형식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셋째,북한 선전매체들이 우리측이 북한내 권력암투설을 제기했음에도 정면대응은 자제하고 있는 점도 북한체제가 이미 표류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북한은 납북자문제나 북한핵 특별사찰 문제및 북한체제의 불안정성 등을 우리측이 거론할 때마다 언론매체를 통해 격렬히 반박한 바 있다.그런 북측이 정작 김정일과 직접 관련이 있는 건강이상설이나 전단살포건 등에 대해선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이 문제야말로 건드리면 커지는 「상처」임을 인식하고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북언론 논조 통해 본 북사태/김정일,당·정·군 완전장악 “차질”/승계 당위성 새삼 조목조목 설명 김정일의 권력승계 마무리가 지연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잇따라 특이한 논조를 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우선 최근 북한 방송·신문들은 종전과는 달리 북한과 김정일체제가 당면한 제반 위기상황을 감추지 않고 언뜻언뜻 내비치고 있는 점이 두드러진다. 24일자 노동신문이 현재 북한상황이 『매우 어려운 시기』라면서 김정일을 중심으로한 단결을 호소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이 신문은 「위대한 혼연일체」라는 제목의 정론을 통해 김이 『당면한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한 의지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고 밝혀 역설적으로 김정일체제의 출범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김정일타도 전단이 발견된 다음날인 21일 중앙방송이 논설을 통해 느닷없이 『야심가·음모가의 배신이 있을 경우 당과 혁명이 농락된다』는 요지의 보도를 내보낸 것도 그러한 맥락이다. 게다가 뒤늦게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새삼스럽게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21일 중앙방송이 『대를 이어 계승하는 수령의 후계자문제는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의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라면서 김정일의 후계승계를 통한 김일성의 「혁명위업」 계승을 강조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같은날 북한방송들이『여러나라들에서 수령의 위업계승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해 사회주의가 좌절되었다』며 죽은 김일성을 들먹이며 부자간 권력세습의 당위성을 역설한 것도 그 일환이다. 이는 북한 매체들이 지난달 김정일 후계구도를 기정사실화 하던 논조를 펴던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이를테면 지난달 20일 김일성 추도대회 당일 평양방송 정론은 김정일이 『당과 국가와 혁명무력을 진두에서 영도하고 있다』며 그의 권력승계가 이미 끝났다는 식으로 보도한 바 있다.하지만 이번달 21일 중앙방송 논설은 『수령의 혁명위업을 계승·완성하기 위해서는 당에 대한 후계자의 영도를 확고히 보장해야 한다』며 아직도 권력승계 작업이 진행중임을 암시하고 있다. 때문에 김정일측이 북한 매체들을 통해 북한주민들에 대한 세뇌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일단의 도전세력들이 여론의 호응을 얻어 조직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일수도 있다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말하자면 당정군을 아직 완전 장악하지 못한 김정일측이 손쉽게 조종이 가능한 선전선동매체들을 이용해 반금세력을 힘겹게 견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주한 외교관들이 본는 「김정일타도」 전단

    ◎“전단은 일과성… 권력승계 영향못줘”/소수 지식층 “존재알리기 저항” 추정/군이 김정일 강력지시… 건강이 변수 북한의 평양시내 외교단지에 「김정일 타도」 전단이 대량으로 살포된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이 외교단지에 있는 한 서방공관이 이를 수집,본국정부에 전문으로 보고하면서였다.전단은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에 살포됐고,김정일의 세습은 사회주의 건설에 어긋난다고 비난하는 내용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전단 살포 사실이 오래 지난 뒤면 몰라도 북한 주민들에게 곧바로 알려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양외교단지 거주 경험이 있는 한 주한외교관은 관측했다.익명을 요구한 이 외교관은 『외교단지가 평양의 변두리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북한 주민들의 접근이 쉽지 않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전단 살포를 「찻잔 속의 태풍」쯤으로 여기는 눈치였다.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북한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주한 외국공관 외교관은 평양에 공관을 두고있는 러시아와 동구권 국가,중국등 모두 15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한외국공관 업무를 맡고있는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평양에서는 일반인의 외교단지에 대한 접근이 봉쇄되어 있다고 들었다』면서 『접근이 가능한 아주 소수의 지식인들이 국제사회에 자기들의 존재를 확인시키기 위해 계획적으로 저지른 것 같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라고 말했다.다시말해 조직적인 권력투쟁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북한에서 간혹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했다.주한 외교관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북한에서 전해들은 조직적인 저항에 대한 소문등을 털어놓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지난해 초 원산의 대학가에 나붙은 김정일 비난 대자보와 10여명 정도의 지식인으로 구성된 김정일 비난 모임이 낙서·토론등을 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 동아시아지역 출신의 한 외교관은 『어느 체제건 반대 세력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반문하면서 『북한의 권력승계엔 이상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비난 전단의 살포와 승계이상설을 연계하길 거부했다. 이처럼 북한에 근무한 적이 있는 외교관들은 전단살포를 일과성의 사건으로 바라봤다. 최근 중국의 북한전문가를 만나고 온 한 인사는 『중국 지도층이 김정일의 건강 상태를 매우 우려하고 있었다』고 전하고 『그러나 리더십 경력등으로 볼때 김정일을 대신할 사람이 없다는 게 중국의 판단이었다』고 말했다.이 인사는 또 북한군부의 동향에 대해 『혁명1세대인 오진우가 후견인인 만큼 쿠데타의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분석했다』면서 『중국은 김정일의 건강문제와 김일성의 사체처리만 끝나면 권력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체제를 유지하려는 혁명1세대와 보다 개방 폭을 넓히려는 혁명3세대 사이의 갈등과정에서 이러한 반대세력의 움직임이 변수가 될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았다.한 서방외교관은 『비록 간헐적이지만 북한 내부의 저항은 결국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면서 지식인들의 저항이 개방의 확대와 연결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김정일 타도」 전단… 정·관가 시각/「김정일세습」 이상징후 추측도/정부/채널 총동원,후속정보 수집에 주력/여야/“일단 사태추이 지켜보자” 신중 반응 정부는 물론 여야 정치권은 평양 시내 외국공관 단지에 「김정일 타도」 전단이 살포된 것에 대해 북한 권력체계의 이상조짐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일 수도 있다고 보면서 추가 움직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 ○…정부는 이번 사태를 일단 김정일후계체제 구축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로 분석하고 다각적인 대비책 마련에 나섰다.외교및 정보채널을 총동원,후속정보 수집에 주력하는 한편 북한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청와대는 현재 반금정일전단이 뿌려졌다는 사실밖에는 다른 후속정보가 없어 북한 내부사정을 정확히 진단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그러나 특수계층만 들어갈 수 있는 외국공관단지에 권력세습을 반대하는 내용의 전단이 뿌려진 것만으로도 김정일후계체제에 이상이 있다는 징후로 보고 있다. 통일원은 전단사건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날 아침 일찍부터 북한방송을 청취하며 북한내부동향을 예의주시.이번 사건을 점진적인 개방을 유도하는 김정일과 혁신적인 개방정책을 요구하는 일부 엘리트계층간의 노선싸움이라고 보는 분석이 나오는가 하면 이런 움직임이 오히려 김정일의 입지를 강화시켜 권력승계를 재촉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실정. 외무부는 이번 사건에 너무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신중한 생각이며 해외공관에 긴급전문을 보내 북한관련 정보수집에 전력을 다하라고 지시. ▷정치권◁ ○…「김정일타도」전단이 아직 북한의 권력관계에 어떤 변화를 의미하는지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고 신중한 반응. 민자당의 박범진대변인은 이날 당무회의가 끝난 뒤 『한국은 김일성사망후 새로운 남북관계등을 고려,북한의 정세변화를 예민하게 지켜보고 있는 상태』라면서 『조용히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상책』이라고만 언급. 이날 당무회의 토론에서도 이 문제는 공식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으며 회의에 참석했던 일부 당무위원들도 『김정일타도 전단은 과거에도 이따금 있었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군부와 당에 반금정일 분위기를 조직화할 구심이 있느냐하는 문제』라고 조심스런 반응. 민주당은 미국 국무부가 이 문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예로 들며 정부의 정확한 정보수집과 신중한 발표를 주문. 박지원대변인은 『이는 김정일 건강이상설과 함께 주목할 만한 사실이지만 정부가 이미 밝혔듯 대화로써 북한정권의 안정과 평화적인 핵문제 해결등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므로 조용히 북한의 변화를 주시할 것』이라고 논평. 외교통인 조순승의원은 『북한내 반체제 세력은 김일성생전에도 있었으며 문제는 반체제세력의 존재보다 김정일의 건강이상유무』라고 피력.
  • “북한 권력투쟁 가능성”/개혁 노선 싸고 대립… 김정일승계 지연

    ◎바자노프,러외교아카데미 부원장 【도쿄 연합】 일본을 방문중인 예프게니 바자노프 러시아외무부 외교아카데미부소장(아시아문제전문가)은 24일 북한의 체제확립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북한지도부내에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있을 것이라는 인식을 나타내고 『북한의 현체제는 종언을 향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바자노프부소장은 일본 교도통신과의 회견을 통해 이같은 견해를 밝히고 북한에 관한 자신의 이야기는 러시아에 거주하고 있는 북한인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바자노프는 북한 김정일의 당총서기,국가주석직 취임이 늦어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북한에는 개혁에 소극적인 김을 반대하는 세력과 김을 개인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있다.정권내부에서 권력투쟁이 계속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북한지도부내에 노선 등을 둘러싼 대립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바자노프는 또 『김정일은 국가주석에 취임한다 하더라도 개혁의 길로 나가지 않으면 안될것』이라고 밝히고 그 이유로 지도부내 개혁파의 존재이외에 ▲축적된 민중의 불만 ▲개혁을 요구하는 중국 등 외부의 압력 ▲심각한 경제위기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동유럽 등의 사회주의 정권붕괴를 예로 거론하면서 『북한은 어느 길을 선택하더라도 지금까지의 독재체제는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정일의 권력승계 북방송 당위성 선전

    【내외】 북한은 23일 김정일의 권력승계를 지지하는 해외친북인사들의 언급을 장황하게 소개하면서 김일성의 사망에 따르는 김정일 권력승계의 당위성을 부각,선전했다. 북한의 중앙방송은 이남 전체코공산당위원장,벨기에 노동당위원장,프랑스의 한 대학교수 등 해외친북인물들의 말을 인용,『김일성이 공산주의운동역사에 남긴 업적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은 생전에 혁명위업계승문제를 해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방송은 『여러나라들에서 수령의 위업계승문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해 사회주의가 좌절되었다』고 주장하면서 『김정일이 사회주의위업을 계승한 것은 세계 사회주의자들에게 있어 실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 김정일,「혁명1세대 끌어안기」추파/북방송「각별한 배려」선전의 배경

    ◎권력승계 지연속 「충성부추기기」 일환/70대이상 고령원로 장악력 미흡 반증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의 순항여부가 주목되는 가운데 최근 북한 선전매체들이 김정일과 북한권력핵심층인 이른바 「혁명1세대」간의 돈독한 관계를 강조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를테면 북한 중앙방송이 최근 김일성을 추종하던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각별한 배려」를 장황하게 선전한 것이 그 하나다. 중앙방송은 이례적으로 김정일과 혁명원로들 사이의 일화 등을 장시간에 걸쳐 소개했다.특히 김이 혁명1세대들을 『응당 우리 인민의 존경을 받아야할 사람들』이라고 말한 사실을 들어 『일찍이 김일성을 받들어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한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사랑은 각별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방송은 더 나아가 이들 혁명1세대들에 대한 김정일의 「배려」를 강조하면서 김에 대한 충성을 노골적으로 독려했다.김정일의 「품」을 『노투사들 모두가 운명을 맡긴 위대한 어버이 품』이라든가 『모자 밑에 흰서리를 날리면서도 왕성한 기백으로 사회주의 위업에 헌신할 수 있게 하는 정력의 샘터』라고 비유한 논조에서 그같은 기류가 감지된다. 특히 이같은 움직임들은 김정일의 권력승계 공식화 절차가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말하자면 아직도 김정일이 이들 원로그룹을 의식할 만큼 확고한 권력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반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혁명1세대는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 운동을 한 원로를 지칭하며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이다.오진우인민무력부장을 비롯해 박성철부주석,최광군총참모장,전문섭국가검열위원장,백학림사회안전부장,이을설호위총국장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그러나 김일성 사망을 전후해 이들 혁명1세대 원로급 인사 7명이 잇따라 숨졌다.지난달 28일 사망한 강희원(73·부총리)을 비롯해 주도일(75·인민군차수·국방위원·평양방어사령관),조명선(72·군대장·강건군관학교장)최만현(75·전금속공업부장)등이 그들이다.
  • “대선공약사업 적극 추진”(국무회의:23일)

    ◎이 총리/동남아 3국 순방일정 설명 23일 국무회의는 올해 을지훈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늦춰졌다.남재희노동부장관의 보고와 이영덕국무총리의 당부 말고는 특별한 토의가 없었다.안건도 8건으로 평소에 비해 단출한 편. ○…현대중공업사태가 타결되기에 앞서 열린 이날 회의에서 남노동부장관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과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이 현대중공업 노사분규의 마지막 문제점으로 남아있다』면서 『노조는 이 원칙을 수락하겠다고 발표했으면서도 파업기간동안의 임금을 편법적으로 보상해 줄 것을 회사측에 요구하고 있다』고 보고. 남장관은 이어 『노조는 또 불법행위에 대한 사법처리에 있어 정부와 회사의 권한을 분리해 일단 회사측에 고소 고발을 취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현황을 설명. ○…이총리는 토의가 끝난뒤 김영삼대통령의 대선공약및 지시사항의 실천에 대해 언급,『국무총리실에서 지난 6월 대선 공약사업과 대통령의 지시사항의 이행을 점검해본 결과 각 부처에서 전반적으로 관리를 잘 하고있으나 일부 추진이 지연되고 있거나 재원 미확보등의 이유로 아직까지 착수되지 못한 사업도 있어 보다 적극적인 사업추진이 요망된다』면서 『이런 사업들은 대부분 국민들의 숙원사업이므로 국무위원들께서는 이행을 위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시달. 이총리는 이어 자신의 아시아 3개국 순방과 관련,『오는 28일부터 9월5일까지 베트남 싱가포르 방글라데시를 공식 순방하게 됐다』고 밝히고 『이번 순방에서는 방문국마다 총리회담을 갖게 되며 베트남에서는 문화협정에 서명할 예정』이라고 설명. 이총리는 『이 기간동안 여러 국무위원들께서는 양 부총리를 중심으로 모든 정책추진에 차질이 없도록 수고해달라』고 당부. ▲도로교통법 시행령(개) ▲사관학교설치법 시행령(개) ▲수도권 신공항건설공단법 시행령(제) ▲대한민국정부와 베네수엘라공화국정부간의 외교관 관용여권에 대한 사증면제에 관한 교환각서 체결안 ▲대한민국정부와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정부간의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체결안 ▲영예수여안(퇴직교원등) ▲정부인사발령안
  • “반대파 숙청 신호”­“노선 갈등”/심상찮은 「김정일의 북한」

    ◎92년 승계거론때도 “야심가 책동” 경고/후계체제 마무리에 이상 있을지도 김정일의 건강이상설이 꼬리를 물고 있는 가운데 북한 중앙방송이 느닷없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를 경고하고 나오는 등 심상찮은 북한의 내부 동향이 외부로 불거져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이같은 조짐은 김이 오는 10월1일 중국측의 건국행사에 참석요청을 받고도 거절했다는 일부 외신 보도와 맞물리면서 김정일체제의 이상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이상징후들은 아직 정부당국도 그 진위를 검증하지 못하고 있는 첩보단계에 불과하다.예컨대 중국측이 건국 45주년 행사에 김을 초청했는지의 여부도 확인이 필요한 보도라는 것이다. 또 『후계자 문제를 바로 해결하지 못하면 야심가·음모가들의 배신행위로 당과 혁명이 농락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22일자 중앙방송 보도도 반김정일세력이 부상하고 있는 징후로만 받아들이기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일부 북한전문가들은 오히려 주석이나 당총비서 취임 등 김의 권력승계 공식화를 위한 마무리 정지작업이 임박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야심가 운운하는 보도는 권력투쟁이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게 아니라 김정일체제 구축에 소극적인 인사들을 숙청하기 위한 전주곡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도 『김이 지난 92년 10월10일 당창당 47돌을 기념해 승계문제를 거론하며 음모가와 야심가들에 대한 책동에 경고를 보내는 등 최근의 중앙방송 보도내용과 같은 내용의 논문을 발표한 적이 있다』고 소개했다.그래서 『김정일체제에 이상이 생겼다기 보다는 앞으로 있을지도 모를 사태에 대한 일종의 경고이자 대비인 것으로 분석된다』는 설명이다.요컨대 김일성에 대한 추도분위기를 김정일에 대한 추대분위기로 전환하기 위한 신호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정부내에서 조차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독재국가일수록 언론매체가 물밑 권력이동의 흐름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므로 좀더 지켜봐야 김정일체제의 순항여부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통일원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북한의 공식선전매체들은 김정일의 핵심측근인 당선전담당비서 김기남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전제,『이 때문에 북한의 방송·신문들이 김정일 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후계체제가 안착됐다고 볼 수 없다』고 분석했다. 김기남은 『우리식대로 살자』,『우리 당중앙 목숨으로 사수하자』 등 북한의 유명한 구호를 만든 장본인으로 김의 심복중의 심복이다.하지만 폐쇄사회의 권력교체기에는 역시 무력을 장악하는 군부나 공안 쪽이 힘을 쓰게 마련이다.따라서 후계체제의 마무리 여부도 김이 군부 등을 제대로 장악했느냐에 따라 검증되겠으나 아직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김일성만한 장악력도,카리스마도 없는 김이 일단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후계자로 기정사실화 됐으나 내부 권력서열 재조정과 핵문제 등 대내외 노선을 둘러싼 내부 갈등에 직면해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양 갈래 분석을 염두에 둔다면 김정일체제의 이상설에 대한 정확한 진상은 오는 9월9일 북한정권 창건일이나 10월10일 노동당 창당일을 전후한 시점에 윤곽이드러날 것으로 보인다.이 때까지도 김이 승계절차를 마무리짓지 못한다면 김정일체제에 분명한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일 이상설」 정치권 촉각/김사망 연루·건강에 문제 가능성/민자/“권력구조 이상”·“문제없다” 양론/민주 정치권은 여와 야를 막론하고 김정일의 신상및 권력승계작업과 관련한 여러 가설들을 제시하면서 최근 다양한 갈래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 징후들이 북한의 권력구도 재편과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민자당◁ ○…오래 전부터 김일성의 사망원인에 대해 의문을 표시해온 이세기정책위의장은 『지금 나타나고 있는 북한의 이상기류들은 바로 김일성의 사인문제에서 비롯되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이의장은 특히 김일성의 사고사 가능설이 미국 정보기관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김정일의 연루문제로 후계작업의 매듭이 늦어지는 것 같다』고 피력. 이의장은 『김정일은 북한주민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만약 김일성의 사인에 대한 의혹이 북한내부에서 확산되면 김정일은 궁지에 몰릴 것이며 탈출수단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김정일체제의 확립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전망했다. 이달초 한­이란의회친선협회장으로 이란을 방문,과거 김정일과 단독면담을 몇차례 가졌던 이란의 북한담당 고위관리와 의회지도자들을 만나고 돌아온 김정남의원은 『김정일의 정신건강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던 그들의 말을 최근의 북쪽소식과 비교해보니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다』고 전하고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그의 건강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조부영경제담당정조실장은 『과거 중국이나 소련의 예를 보더라도 1인 독재정권이 와해되면 과두체제 또는 집단지도체제가 등장하는 것이 역사의 법칙』이라고 전제,『북한 역시 시차는 있을지 몰라도 과두체제의 등장이 필연이며 현재의 불투명한 상황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고 말했다. ▷민주당◁ ○…자세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당의 공식적인 판단은 유보하고있다.의원들도 북한의 권력구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측과 예상대로 김정일 단일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전망하는 측으로 나뉘고 있다.정보부족인 탓이다.다만 우리 정부가 보다 확실한 정보를 입수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전제 아래 불확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지나치게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 외무통일위의 이부영의원은 『비단 김정일의 중국방문 거부사실을 들지 않더라도 사회주의 국가가 국가원수를 한달 이상 공석으로 두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북한 권력구조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관측. 이의원은 『뭔가 북한의 지도체제에 대단히 심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염려된다』면서 『이런 때일 수록 정부는 북한에 대해 포용적인 자세를 보여 그들의 안정을 간접적으로나마 도와야 할 것』이라고 주장. 반면 김원기최고위원은 정보부족을 전제하면서도 김정일의 권력승계에는 이상이 없을 것으로 전망. 김최고위원은 『어떤 형태는 김정일의 권력장악은 기정사실화된 것 아니냐』면서 『문제는 김일성이 누리던 권력을 얼마만큼 승계하느냐일 뿐 정변등의 기미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피력.
  • 미답의 시장 북한/미·일·대만“선점 경쟁”/대북진출 물밑작전 시작

    ◎화해무드 편승,재계 방북 타진/미/조총련 이용땐 즉시 투자 가능/일/화교자본 동원,장기 포석 모색/대만 북한 시장은 과연 열리는가.열리면 누가 이 시장에 들어가며,북한은 어떤 자본을 선호하는가. 북미 3단계 회담에서 양국이 연내 연락사무소의 개설 등 정치·경제의 정상화라는 큰 틀에 합의하자 그동안 북한 시장을 노리던 미국과 일본 등의 기업들이 조심스런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북미 양국의 관계가 대결에서 대화 구도로 전환했다고 판단,북한과의 경협은 시간 문제라는 생각이다. 가장 먼저 움직인 나라는 미국.미 기업들은 북한행 버스의 주도권을 일본과 한국 기업에 빼앗길 지 모른다는 우려를 최근 나타냈다. 주한 미상공회의소(AMCHAM)의 제임스 리들 회장은 이 달 초 미무역 대표단의 방북을 미정부에 요청했다.그 후 일주일도 안 돼 10개 미기업들로 구성된 무역 대표단이 8월말 쯤 평양을 방문한다는 소문도 나돌았다.그래서 미정부가 북한 시장을 선점하려는 재계의 입장을 감안해 북미 협상에서많은 것을 양보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북한 역시 체제유지와 외교 고립에서 탈피해 경제 재건이란 당면과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을 외면할 수 없는 처지이다. 무공의 홍지선 부장은 북한의 최적 경협 파트너로 일본을 꼽는다.일자본이 다른 자본보다 체제에 덜 위협적인 데다,북한 정권의 버팀목으로 알려진 조총련 자본이 공식적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에 흘러드는 조총련계의 돈은 현재 연간 6억∼7억달러,자산만도 58조엔(개인 자산 28조엔,단체 20조엔)으로 문만 열리면 상당 부분이 북의 경제 재건에 쓰일 돈』이라고 말했다. 제일경제연구소의 양범직 연구원은 북한이 북일 수교 조건으로 거론되는 배상액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그는 『30억∼50억달러로 거론되는 배상액은 북한 경제를 일시적이나마 파산 상태에서 구할 수 있다』며 『상당 부분이 기계설비 등 자본재로 들어갈 것으로 보여,일본이 북한 시장을 자연스럽게 선점할 기회가 되므로 양국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대만이 다크호스로 등장할가능성도 높다.홍부장은 『동북아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은 미·일의 일방적인 독주를 우려,대만을 앞세워 사회주의 형제국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지난 92년 한국과의 국교가 단절된 대만은 한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졌으며 북한을 화교 자본으로 포섭하려는 장기적인 전략도 숨어있다. 반면 한국 자본은 북한 체제에 가장 위험한 돈으로 인식돼,북한의 선호도가 가장 떨어진다는 분석이다.양연구원은 같은 민족도 못 들어가는 북한에 외국 기업들이 위험을 안고 들어가지는 않는다며 『북한은 남한 자본을 외국 자본을 유인하는 미끼로 인식,완전히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협의 조중우 과장은 『북한은 어느 한 국가에 시장을 독점케 하지 않고,자본끼리 싸움을 시키는 중국식을 택할 것』이라며 『외국 기업들도 위험부담 때문에 한국 기업과 합작 형태를 선호할 것이므로,우리 기업들은 가장 유리한 합작조건을 미리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 16만여개 외자기업이 선도/중국 경쟁력 어디서 나오나

    ◎국제시장 변화 신속대응… 수출 27% 담당/80%가 화교자본… 수입도 40%이상 차지 수교 2주년(오는 24일)을 맞아 한국의 가장 위협적인 경쟁국으로 떠오른 중국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중국이 단시일에 세계 경제무대에서 주요 비중을 차지하게 된 것은 중국에 진출한 외자 기업들 덕분이다.사회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중국 기업과 달리 국제 시장의 변화에 신속하게 적응하는 감각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외자 기업의 지난 해 수출액은 2백52억6천만달러로 중국 전체 수출(9백17억6천만달러)의 27.5%를 차지했다.92년 1백73억6천만달러(20.4%)보다 44%가,91년(1백20억5천만달러)보다는 2배가 늘었다.올 연말까지는 3백50억달러를 수출할 것으로 보여 90년(78억달러)이후 연평균 40%가 넘는 증가세이다. 외자 기업들이 수출에 앞장서는 것은 중국 정부가 생산량의 70%를 의무적으로 수출하도록 하기 때문이다.나머지 30%를 중국 내수시장에 팔 수 있지만 공급이 절대로 부족한 상품이나 하이테크 또는 수입대체 상품에만 허용되므로 한국과 경쟁하는 섬유나전자제품의 내수 비율은 더 낮다. 외자 기업은 현재 16만7천개.중국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 79년 이후 지난 해까지의 외국인 투자는 17만4천여건에 2천3백31억달러이다.제조업이 56.2%,부동산과 서비스가 31.1%이다. 투자액의 80%는 대만과 홍콩,싱가포르 등의 화교 자본이다.홍콩의 투자기업은 약 10만개로 중국 근로자만도 약 3백만명에 달한다.대만의 기업은 2만여개가 진출했다. 따라서 한국의 경쟁자는 중국 기업이 아닌 외자 기업,그것도 화교들인 셈이다.중국을 대리인으로 대만과 홍콩의 화교 자본이 합작해서 한국을 견제하며 세계 시장을 포위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중국의 외자 기업들은 한국의 경쟁 상대만은 아니다.우리 상품을 중국으로 수입하는 바이어의 기능도 하기 때문이다.외자 기업들의 수입액은 지난 해 중국 전체 수입(1천39억달러)의 40.2%(4백18억3천만달러)를 차지했다.중국의 수입을 좌우하는 실세인 셈이다.중국 기업에 대한 철저하고 엄격한 수입통제와는 달리 이들은 수출용 원부자재를 면세로 수입하는 특혜를 누린다. 무공은 『외자 기업들은 수출시장에서 우리의 경쟁자인 동시에 한국 제품을 수입하는 바이어』라며 『우리도 현재 11억달러 수준인 대중투자를 2000년까지 최소 50억달러로 늘려 중국 내에서 이들과 경쟁하며 중국의 내수 시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슈브니코프(전 평양주재 구소련대사)가 말하는 김정일 부자와 북정권

    김일성이 사망한지 40여일이 넘었으나 북한은 김정일체제 공식출범을 미룬채 핵관련 미­북대화만을 진전시켜나가고 있다.그들은 남북대화등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고있다.김일성사후 김정일의 위상과 그가 그리고 있을 남북관계 청사진등 북한의 향후 진로와 내부동향등에 대한 궁금증만 커가고 있다.또 김정일의 자질과 성격등에 관해서도 여러 엇갈리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본지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은 최근 북한사정에 정통한 미하일 슈브니코프 전평양주재 구소련대사(70)를 만나 김부자의 행적,향후 북한정권의 장래에 관한 그의 견해등을 들었다.통산 13년간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한 북한통인 슈브니코프 전대사는 특히 소­북한관계가 원만한 82∼87년 평양주재대사로 근무,김일성부자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924년 러시아 툴라시에서 출생한 그는 소련군사외국어학교를 졸업했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국제부 한국(남북한)과장을 역임했으며 외교관으로선 주로 북한관련 업무를 담당했었다.슈브니코프 전대사는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모스크바 비밀방문,김정일의 사생활과 주변인물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그러나 특별한 개인적 유대 때문인듯 그의 김부자 평가는 비교적 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사정에 밝고 특히 김부자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전직 구소련고급외교관의 북한평가와 분석은 향후 「김정일 평양」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귀기울여 볼만 한 것들이었다. ◎평양식사회주의 미래가 없다/김일성 추모기간 끝나면 권력승계 무난/핵탄제조 능력… 플루토늄 보유량 적어 ­북한주재 대사로 근무했던 80년대는 소련과 북한관계가 밀월과도 같은 순탄한 시기였던 것으로 아는데 평양근무는 얼마나 했는지. ▲60년부터 3년간 첫번째로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했다.그리고는 본국으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에서 일했고 69년부터 73년까지 다시 평양근무를 했다.모스크바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장으로 일하다 82년 12월 북한주재 대사로 발령받았다.87년 12월까지 대사로 근무했으니 평양대사관에서만 13년을 일한 셈이다. ○13년간 평양에서 근무 나의 북한대사 재임기간이 소련­북한 양국관계가 가장 우호적인 시기였다는 점에 동의한다.이 기간중에 김일성주석이 모스크바를 두번 방문했다.나는 그중 한번은 김주석을 직접 수행,1개월에 걸친 기차여행을 함께 했다.60년 이후 그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일이 없다.주재국 대사인 나 개인으로서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김주석의 모스크바방문의 구체적 시기는 언제였는가. ▲첫번째는 체르넨코 서기장 재임시인 84년이었고 두번째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인 86년이었다.이중 84년 방문때 내가 모스크바까지 김주석과 동행했었다.1개월간 기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왔다가 귀국 때는 벨로루시,우크라이나,몰도바,루마니아를 돌아 평양으로 갔다.모스크바는 공식방문이었지만 나머지는 비공식방문이었다.86년 방문 때는 비행기편을 이용했는데 나는 동행치 않았다. ­김주석은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여행을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소공포증은 아니다” ▲그가 비행기여행을 피한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것은 척추에 문제가 있으니 비행기여행은 피하라는 의사들의 권유 때문이었다.비행기 착륙시의 충격이 허리에 무리를 줄수 있다는 것이었다.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그는 항상 허리를 똑바로 펴고 꽂꽂이 서 있었다.그것은 조금이라도 굽히는 자세가 되면 척추에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김주석은 말년에는 심장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사망원인도 심근경색으로 발표되었다.평소 그의 심장병 병세는 어느 정도였는가. ▲나이가 들면서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80년대 중반에 심장발작을 한차례 겪었다.내가 대사로 있을 때였는데 소련의사를 보내달라는 부탁도 자주 있었다.대부분 김정일이 직접 찾아왔고 외교부장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본국에 요청해 의사를 보내주었다.하지만 당시 러시아의사들의 최종진단은 『심장질환의 증세는 있으나 집무에는 지장이 없고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북서 모반 있을수 없다 ­김주석 사망과 관련,한때 자연사가 아니고 정치적 변고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1백% 불가능한 이야기다.자연사가 분명하다.김일성 주변을 보면 모반은 불가능하다.절대 불가능하다.김일성 주변의 인물은 김정일이 모두 통제하고 있다.그리고 김일성·정일 부자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부자지간 이상이었다.김정일은 정실 소생의 장자다.김일성은 그를 끔찍이 아꼈다.김일성이 김정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때가 많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내가 아는한 그렇지 않다.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니 김주석 사망후 김정일의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됐던데 무엇보다 부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김주석 사망으로 받는 정치적 중압감도 큰 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추모기간 지나면 승계 ­김일성 사망 1개월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김정일이 주석과 당총서기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없다.다소 이상한 일 아닌가.후계구도에 진통이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데. ▲김정일은 70년대 중반 공식 후계자로 확정되면서부터 실제로 국가경영 실습을 해왔다.70년대 당중앙위원으로 들어간 뒤 이후 정치국원,그리고 4∼6인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임위원이 됐고 김주석 사망당시는 군최고사령관이었다.그리고 요로에 자신의 심복들을 배치해놓고 있다.부친과 같은 세대인 원로들로부터 한결같은 지지를 받고있다.그래서 그의 권력승계는 별 문제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김일성 추모기간만 끝나면 주석직 승계와 함께 국가지도자로서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당총서기는 정치국에서 이미 선출해놓고 발표만 미루고 있을수도 있다.당대회소집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김정일은 이미 「경애하는 지도자」였고 군통수권자였다.부친 사망과 함께 자연스럽게 제1인자가 되도록 미리 치밀한 장치가 돼있었던 셈이다. ○김일성 음주 극히 자세 ­김정일이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도 없고 세습승계에 대해 일반주민은 물론 권력층 내부에도 반발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김정일은 과연 북한 최고지도자가 될만한 인물인가. ▲대사로 근무할 당시 김정일을 비교적 자주 만나 가깝게 지냈다.그는 수시로 나를 불러 식사도 하고 술도 함께 마셨다.당시 그는 술을 아주 조금 마셨다.김일성도 술은 극히 자제했다.이점에 대해 외부에서는 잘못 알고있는 것 같다. ○카레이스·영화 큰 관심 내가 겪은바로는 김정일은 말이 적은편이다.지나치게 자기 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점이 특징이다.북한 같은 사회에서 2명의 지도자가 존재할 수는 없다.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부친의 그늘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때때로 『이 사람은 진짜로 권력 정상에 오를 생각이 없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김정일은 부친과 사진을 함께 찍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쓸 정도로 몸조심을 했다.소련대표단이 그렇게 북한에 자주 갔는데도 김부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젊었을 때 김정일은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특히 카 레이스를 좋아했고 영화·음악등에 관심이 많았다.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성격이 조용하고 신중한 쪽으로 바뀌었다.부친의 영향 때문으로 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사람들이 겪는 인격성장 과정과 같다고 할수 있다.김일성대학 철학부에 다닐때 성적은 좋은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외국에서 공부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 ○손혜림,손성필의 친척 알콜중독자라느니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말을 나로서는 이해할수 없다.그와 자주 낚시도 다녔는데 나라문제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있고 또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는 교육받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그의 사생활등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그의 경력은 물론 부친이 만들어 준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김일성이 5자녀중 그를 후계자로 택한 것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겠는가.나름대로 그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겠는가. ­김정일의 가족관계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몇차례 이혼했다는 얘기도 있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의 집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부인이 있고 자녀가 2명 있다는 사실만 안다.내가 평양에 대사로 있을 당시 그의부인 이름은 손혜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모스크바주재 대사 손성필과 친척인 것으로 안다.김정일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북한에서는 이것이 비밀사항으로 돼있다.그는 60년대초 부친을 따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고 80년대 중반 북경에 간적이 있으나 그외 외국이라고는 나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때 동독 방문설이 있었으나 루머임이 확인됐다. ­아웅산 폭파사건,대한항공기 폭파사건,그리고 여러차례의 한국인 납치사건의 배후에 김정일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대사가 그의 성격등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 것 아닌가. ○소·동구 붕괴에 위기감 ▲솔직히 말해 그 사건들의 배후에 대해 나는 들은 것이 없다.한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저지른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당시 소련정보기관들은 추가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었다.북한 정보기관의 소행이었더라도 그들의 속성상 비밀사항이 외부에 새나오지는 않는다. ­앞으로 김정일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을 포함,모든 정책방향이 김일성생존시와 동일할 것으로 보면 된다.다소의 변화가 있더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지금 북한에서 정책을 바꾼다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김정일은 소련,동구의 예를 지켜보았다.체제변화를 쉽게 용납지 않을 것이다. ­경제난 때문에 결국 정책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올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김영주도 정일을 아껴 ▲북한은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는 것은 사실이다.북한경제는 소련에 의존한 체제였는데 지금은 그 관계가 단절됐다.지금 러시아지도자들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외부세계가 그들을 고립시킬수록 더 주체체제를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그들은 살아간다.북한은 지금도 철저한 분배사회다.그래서 사회안정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러시아보다 낫다고도 할수 있다. 예를들어 현재 러시아에서는 소비재가 상점에 넘쳐나지만 주민 90%가 이를 살 능력이 없어 불만이다.북한은 그렇지 않다.그들은 아예 가난하지만 주민 모두가 이를 참고 사는데 익숙해있다. 다시 말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은 좋은 결과를 낳기 힘들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물론 김정일은 한국과의 협력이 북한사회의 내부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응하겠지만 그들을 고립시키는 것보다는 이 개방을 유도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북,내부붕괴 우려 개방 신중/“주석,정일 매우 아껴… 부자관계 이상”/후처소생 평일은 대권 넘볼수 없다/김정일 나이들며 술적게 마시고 신중/김일성 항공여행 기피,척추통증 때문/80년대 중반에도 심장발작… 자연사 확실 ­삼촌인 김영주,이복동생 김평일은 개인적 야심이 없겠는가. ▲그들은 김정일과 같은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김영주와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그는 모스크바대학을 나왔는데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것으로 느껴졌다.김평일은 후처소생이어서 어차피 북한사회에서 김정일과는 격이 다르다.김일성은 생전에 김정일내외,그리고 거기서 난손자들을 특히 귀여워하며 아꼈다. ○불만있어도 표현 못해 ­북한에 반정부,반체제세력이 있는가.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충성은. ▲심각한 반대세력은 없다.인텔리겐차,교육받은 계층가운데 다소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짐작할수 있는것 아닌가.그러나 어떤 사람이고 그런 생각을 드러냈다가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조심해야 한다.따라서 사회전반에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군부의 김정일 지지는 확고하다.오진우는 김정일의 젊은 시절 스승이었고 그를 아주 좋아한다.오진우가 언젠가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김정일이 직접 내게 찾아와 모스크바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해준일이 있다.후일 오진우와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는 김정일과 내게 진심으로 감사했다.오극렬도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다. ­반정부 시위,주민들의 봉기가 일부 있었다는 얘기도 간혹 들리는데. ▲북한은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김정일의 여성편력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사의 견해는. ▲물론 내가 그의 사생활을 다 안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런 유의 얘기는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사회주의국가 간부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일거리들로 숨돌릴 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김정일이 오래전부터 실질적 국가경영을 맡아왔다고 볼때 방탕한 생활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보는가. ▲영변의 핵단지는 연구·훈련용으로 규모도 매우 작다.물론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인력과 기술은 갖고 있고 운반수단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핵폭탄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북한은 갖고있지 못한 것으로 알고있다.그들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화해의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북한은 이론적으로는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지만 실제로 이를 현실화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핵탄 현실화 어려울것 ­대사의 평양근무 기간은 소련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던 시기였는데 북한당국의 항의나 섭섭함의 표시는 없었는가. ▲공식적인 항의는 없었다.당시 소련지도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했다.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북한정부와 차이가 있었다.우리는 국제사회가 모두 문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북한은 주체사상을 고수했다.소련지도자들은 주체에 대해 반대했고 이것이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북한당국이 주체사상을 굳이 고집하는 데는 우리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가까이서 본 김일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66년에 조·소 정상회담 ▲ 그가 취한 정책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하자.우선 분단,남북대치등의 어려운 상황에서 50년 가까이 집권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던 브레즈네프와 김일성간 양자회담을 4시간 가량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는 참모의 도움없이 회담을 잘 이끌어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런 회담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 초문인데. ▲외교비밀인데 실수로 발설한 것 같다.66년 그런 회담이 열렸었다.당시 소원했던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해 두 지도자가 비밀리에 만났고 그후 양국관계는 급속히 좋아졌다.양국관계사에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다.이 자리에서 공식 협정체결 같은 것은 없었으나 주로 경제분야에서 많은 원조약속이 이루어 졌고 군사원조를 포함한 군사협력,기술지원 약속도 이뤄졌었다. ­공산주의,특히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러시아에서는 70년이나 되는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지금도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그러나 북한이 하고있는 사회주의는 미래가 없다고 본다.전혀 없다.남한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체제경쟁에서 북한이 졌다.그러나 그들이 굳이 그렇게 살겠다면 그렇게 놓아두고 그들이 스스로 변화를 택할 때까지 도와줄수 밖에 없지 않은가.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