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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대위의 「북한체제 염증」/구본영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28일 상오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지난 23일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철수 대위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었다. 시종 의연하게 귀순동기와 북한사정을 설명하던 이대위도 끝내 눈시울을 붉혔다.북한에 남은 가족의 앞날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대목에서였다. 그는 『한마디로 가슴 아프다』며 말끝을 흐리면서 『이북 민중을 굶주림으로부터 구하고 이남 민중에 북한의 전쟁준비 상황을 고발하기 위해서 왔다』는 등 귀순동기를 거듭 밝히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가족의 안위에 대한 근심을 애써 지우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를 사랑하는 가족과 생이별을 결심하도록 만든 것은 북한사회의 부조리와 배고픔 때문이었을 것이다.이는 결국엔 이른바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북한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기자는 조금은 엉뚱하게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다른 경제학의 역설을 떠올렸다.공기와 물은 사용가치는 무한하지만 교환가치가 거의 없는 반면 사파이어나 다이아몬드는 그 반대라는 사실이다.따지고 보면 이대위를 귀순길로 내몬 것은 교환가치도 사용가치도 전무한 주체사상이라는 허구의 논리가 아닌가 싶다.이 개인우상화에 바탕을 둔 터무니 없이 폐쇄주의가 동구권에서 조차 실패한 실험으로 끝난 사회주의와 결합해 「북한식 사회주의」를 낳은 탓이다. 북한사회에서 선택받은 계층에 속하는 한 조종사의 귀순은 북한의 세습왕조가 서서히 저물고 있음을 예감케 한다.굳이 오동잎 한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가을을 느낀다는 옛시구를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문제는 우리 내부에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2천2백여만 북한주민에게 인간다운 삶의 질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할 만큼 과연 우리사회의 내실이 다져졌는 가 하는 의문이었다. 통독을 가능케 한 일차적 요인은 사회주의권중 그래도 경제사정이 괜찮은 편이었던 동독을 압도하는 서독의 경제력이었다.그러나 동독주민이 기꺼이 서독에 흡수통일되기를 바라도록 했던 원동력은 사회주의체제를 무색케 하는 서독의 높은 복지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이적표현물 단속반」 구성/서울지검 공안부

    ◎사노맹 재건기도 첩보로 수사 강화 서울지검 공안1부(정진규 부장검사)는 27일 최근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사노맹)」 조직원들이 조직을 재건하기 위해 1∼2개 재야단체에 침투,활동하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사노맹 조직원들이 합법을 가장하기 위해 재야단체에 침투해 활동하며 「사노맹」의 재건을 기도하고 대중의식화작업을 광범위하게 벌여 공산주의 전위당을 결성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좌경세력들이 만드는 이적표현물이 크게 늘어남에 따라 「이적표현물 특별단속반」을 구성,대대적인 단속을 펴기로 했다.단속대상은 이적 서적,출판사,유인물,PC 통신 등이다. 검찰은 올들어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합법정당 결성을 꾀하는 「사노맹」 조직원 9명을 포함,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4명을 구속했다.〈박홍기 기자〉
  • 박성수 정문연 교수 「한국독립운동사론」 펴내

    ◎30여년의 연구 결산 논문 59편 한권에 묶어/주요사건·사실 평가… 역사연구 방법론 제시 지난 30여년동안 독립운동사 연구에 힘써온 박성수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가 그동안 발표한 연구논문을 한권의 책으로 묶어냈다.정문연 연구총서의 하나로 최근 간행된 이 논문집은 「한국독립운동사론」. 59편의 논문이 들어있는 이 책에서 박교수는 독립운동과 직접 관련된 의병전쟁,애국계몽운동,3·1운동,상해임시정부등 주요 사건·사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물론 자신의 역사관과 역사연구 방법론을 폭넓게 펼쳐 보이고 있다. 그는 먼저 한국에서 민족운동은 『이념적 분열에도 불구하고 1896년에서 1945년에 이르는 반세기동안 절대독립 노선을 고수했다』고 보았다.그리고 그 민족주의가 외국의 예처럼 사회주의나 제국주의로 변질되지 않고 『방어적이며 자위적이고,민족 내적통합을 이루는데 전력을 다한 평화주의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했다.따라서 통일을 앞둔 이 시대의 민족주의도 일제강점기에 전개된 민족주의와 민족운동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교수는 자신이 틈틈이 관심을 보여온 고대사 부문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그는 단재 신채호,백암 박은식등 일제하 민족사학자들이 『전통 유교사관이 갖는 도학적 이념과 헤겔의 역사철학을 수용해 일제 침략으로 빚어진 역사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면서 그들의 역사관을 높이 평가했다. 아울러 현재 사학계에서 위서로 취급하는 「단기고사」「규원사화」「환단고기」등의 사서에 대해서도 『덮어놓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면밀히 비판·검토해 잃어버린 상고사를 되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용원 기자〉
  • 북 정치지도원/말단부대까지 침투 군감시·통제

    ◎당서 군장악 위해 이원조직 운영/뇌물수수·횡포잦아 장병들 불만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 공군 이철수 대위(30)는 군수사당국의 조사때 귀순동기 가운데 하나를 『정치지도원이 승진 누락 등을 이유로 계속 괴롭혔기 때문』이라고 진술했다. 장래가 촉망되던 전투기 조종사를 탈북과 귀순으로 몰아넣을 만큼 북한 군부내에서 정치지도원의 횡포가 극심하다는 사실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군수사당국에 따르면 이대위는 후배가 뇌물을 써 자신보다 먼저 중대장(편대장) 보직을 차지한 데다 정치지도원에게 계속 괴롭힘을 당했다고 했다.심지어 『당신은 더 이상 승진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정치지도원과의 불화는 깊었다. 북한군부에서 정치지도원은 군인 신분이지만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일반 야전군인보다 우위에 서서 이들을 끊임없이 감시하며 통제하고 있다.이같은 체제가 가능한 것은 북한사회가 조선노동당의 1당독재사회이며 군은 당에 종속되는 당 우위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헌법과노동당 규약에 따라 「당의 군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아울러 당 조직이 군 내부의 말단 부대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침투해 있어 당과 군의 이원화된 계선 조직을 갖고 있다. 인민무력부­총참모장­지상군·해군·공군으로 이어지는 군 지휘 체계와 함께 노동당 중앙위원회­인민군 당위원회­인민군 총정치국­각 군부대로 연결되는 이원화된 조직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북한은 특히 군 내부의 김일성 주체 유일사상 확립을 위해 지난 69년 군내 정치조직을 대폭 강화했다.대대와 중대 정치지도원의 계급을 군 지휘관과 비슷하게 올렸다.그리고 연대급 이상 군부대에도 정치위원 제도를 만들어 군 지휘관의 명령도 정치위원들의 공동서명 없이는 효력을 발생할 수 없도록 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이같은 북한군의 이원 조직은 상대적으로 군 지휘관들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정치 군관들의 권한을 강하게했다.이에 따라 야전 군 지휘관들의 불만은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오극렬이 총참모장으로 재직할 당시 정치군관들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이원화된 군조직을 개혁하려 했으나 정치군관들의 반격을 받아 지난 88년 노동당 민방위부장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이대위의 귀순은 김일성 사후 김정일체제에서 북한 군부의 위상이 더욱 강화돼 가고 있음에도 당의 통제를 받는 정치군관의 입김은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순수 군 지휘관들의 불만이 팽배해 있음을 보여준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황성기 기자〉
  • 귀순 이철수 대위 남행기/“때마침 안개”편대 이탈후 기수 남으로

    ◎지난해 결심… 첫 시도 연료부족으로 실패/멋모르고 잠든 처자에 눈물의 마지막 인사 미그 19기를 몰고 북한을 탈출한 이철수 대위는 군당국의 보호아래 자유세계에 적응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다음은 이대위가 군당국에 밝힌 진술내용을 토대로 그의 남행 결심과 실행까지의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편집자 주〉 『성공했구나!』 23일 상오 11시 9분 한국 공군기의 빈틈없는 엄호를 받으며 수원공군기지에 무사히 착륙,귀순한 북한 공군 이철수 대위(30·57비행연대 2대대)의 뇌리에는 남행을 결심한 지난 몇달 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부인조차 모르게 몇달 몇일을 잠못 이루며 계획한 남행이었기에,성공하든 실패하든 북에 있는 가족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문과 중노동에 시달려야 한다는 비장한 현실이 닥치기에 그의 얼굴은 활짝 웃으면서도 만감이 교차하는 듯 했다. 그러나 극도의 긴장아래 결행한 남행이었기에 수원공군기지에 착륙한 뒤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는 기분이 들었다. 긴장이 지나쳐 혈압수치가 너무 올라가자가슴이 답답하고 갑자기 목이 말랐다.그래서 한국공군 요원들의 안내를 받아 기지막사로 들어온 뒤 위스키를 한 잔 시켜 마셨다.다소 진정이 되는 듯 했다.자유대한의 품에 들어온 사실이 비로소 실감이 났다. 북한에서 장래가 촉망되던 전투기 조종사 이대위가 남행에 뜻을 둔 것은 지난 해 부터. 공군 조종사하면 북한의 상류계층에 속하고 월급이나 복지면에서 최고대우를 받는 그였지만 가슴 한 구석에서 피어오르는 자유에의 갈망은 억누를 수 없었다. 남한의 실상을 알 수 있는 정보 접근이 일반 주민보다 쉬웠던 그로서는 살기좋고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남한에 대한 동경심이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더욱이 그가 태어나고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북한 땅에서 지난 94년 김일성이 사망한 이후 어떠한 변화도 없이 극심한 식량난을 겪으며 답답하게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얼음장같이 경직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그리고 풍요와 자유의 땅인 남한에 대한 동경심을 키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구체적인 남행결행을 각오한것은 올해 초.유능한 조종사로 평가되던 자신이 아닌 후배를 중대장으로 승진시킨 북한군의 잘못된 인사관행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실력보다는 출신성분이나 군 고위층이나 노동당 간부와의 연줄 등이 승진을 좌우하는 풍토에 극심한 환멸을 느꼈다. 이대위가 수원비행장에 도착한 뒤 미그기에서 내리면서 『노동당에 감사한다』고 비아냥거리듯 말한 것도 이같은 귀순동기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더욱이 그를 늘 뒤따라 다니는 정치지도원도 별다른 이유없이 끊임없이 괴롭혔다.이 모든 것이 무너져 가는 북한체제의 구조적인 부조리 때문이라고 여긴 그는 남행 결심을 하루하루 다져갔다. 이대위는 어린 시절,삼지연 비행장에서 비행기 발동기 기사로 일했던 아버지에게서 간간이 전해 들은 비행장의 갖가지 재미있는 일들을 회상했다.소년 이철수에게 전투기 조종사의 꿈을 갖게 했고,그것이 결과적으로 남행의 결단을 내리는 끈을 만들었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이대위의 아버지 이춘상씨(62)는 군 생활을 오래했으며 평북 운천군에서 노동자로 일하기도했다. 당초 그는 남행일을 지난 9일로 잡았다.이착륙 숙달훈련을 위해 3대로 이뤄진 편대가 함께 발진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눈을 피해 대열에서 이탈하기도 어려웠던데다 계기판의 연료 눈금은 1시간 비행이 어려울 만큼 적었다.결국 이날 계획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유류난마저 겪고 있는 북한군이 기름 절약은 물론 조종사들의 귀순을 막기 위해 임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름만 채워주기 때문이었다. 1차 시도가 무산된 이대위는 그날부터 손에 땀을 쥐는 초조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그러나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조종사 대기실에서 대기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훈련을 실시하더라도 지상훈련이 고작이었다. 조바심 속에 공중훈련을 기다리던 22일 마침내 이착륙 숙달훈련 계획이 통지됐다.23일 상오 10시30분 이륙이었다.운이 좋게도 편대 가운데 마지막으로 비행하는 3번기를 배정받았다. 비행장 부근인 평남 온천군 온천읍 201번지 집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면서 그는 91년 결혼한 부인 이성옥씨(27)와 아들 명진(5),세살배기 딸 명심이를 한번씩 쓰다듬었다.곤히 잠들어 있는 그들과 재회를 기약할 수 없는 이별의 정을 그렇게라도 표현해야 했다.양볼로 흘러내리는 두줄기 눈물을 닦으며 이대위는 쓰라린 마음을 가다듬고 23일의 남행 계획을 수십차례 점검했다. 한숨도 못자고 집을 나서면서 평소의 그답지 않게 가족들과 마지막 포옹을 했다. 이날 따라 남행에 알맞게 안개도 자욱히 끼어 있었다.꿈에도 그리던 자유대한으로의 귀순을 위해 평안남도 온천비행장을 이륙한 것은 23일 상오 10시30분.남행에는 충분치는 않았으나 기름도 보통 때보다 많이 채워져 있었다. 1,2번기의 뒤를 쫓으며 온천 상공을 2차례 선회비행한 이대위는 10시42분 돌연 편대에서 이탈,기수를 서해쪽으로 돌렸다. 계획대로라면 5분정도면 김포비행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편대에서 벗어난 그는 즉각 위험을 무릅쓰고 8백m정도의 저고도 비행으로 전환했다.안개가 짙게 끼어 있어 이 정도의 저고도면 관측이 불가능할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대위는 조종석의 속도장치를 최대로 당겼다.곧 미그 19기가 낼 수 있는최대속력인 마하 1.36에 도달했다. 비행기는 태탄 상공을 지나 어느덧 서해 상공에 진입하고 있었다. 헬멧에 장착된 헤드폰을 통해 시야에서 사라진 자신을 찾는 무전음이 들렸다. 『바다쪽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는가­』. 무전을 통해 교신하는 북한군의 목소리는 상당히 다급했다.뒤따라오는 북한기는 없었지만 긴장감 때문에 등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남한의 영공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상오 10시53분,2㎞ 전방에서 자료사진으로만 보던 F­16 2대가 나타났다. 이대위는 귀순한다는 국제공통의 의사 표시로 기어를 내린 뒤 날개를 수차례 흔들어 보였다. F­16이 귀순의사를 확인한 듯 귀순기를 유도하기 위해 1대가 왼쪽에 바싹 붙었고 다른 1대는 엄호 및 초계를 위해 뒤쪽에서 비행했다. 얼핏 남한 땅이 보이더니 활주로가 나타났다.수원공군기지였다. 마침내 자유의 땅에 안긴 것이다.〈황성기 기자〉
  • 4백일 이후 홍콩의 명암/천진환 LG그룹 중국본부장(서울광장)

    중국의 제8차 전국인민대표대회 4차회의(96.3.5∼17)는 충분한 토론과 심사를 거쳐 국무원이 제출한 「국민경제와 사회발전의 9차 5개년 계획과 2010년까지의 장기 목표 요강」을 정식으로 통과시켰다.이는 금세기의 남은 5년과 다음 세기 첫10년간의 중국의 발전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즉 지금까지 중국이 실행해오던 개혁,개방과 중국식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사업을 다음 세기에 어떻게 연결해 나가야 할것이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과제를 포함하고 있다.따라서 홍콩인들에게는 이러한 요강이 홍콩과의 관계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또한 어떠한 기회가 이를 통하여 그들에게 주어질 것인지,좋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홍콩인들의 역할은 무엇이 될 것인지 하는 것들이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1898년 중국은 영국의 압력에 못이겨 홍콩조차조약을 체결하였으며,이어서 1842년 남경조약과 1860년 북경조약을 체결함으로써,홍콩 전 지역이 영국의 조차지가 되었다.이제 마침내 그 조차조약의 만기일을 400여일 남겨둔 시점에서 홍콩의 장래와 중국의 발전 전략을 연결시켜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홍콩은 중국의 제9차 5개년 계획(9·5계획,1996∼2000)기간내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일개 특별행정구가 될 것이고 아울러 중국의 각 성,시,직할구와 함께 9·5계획과 2010년까지의 장기 목표 달성에 직접 참여하게 될것이 분명하다.그러나 실제로 「일국양체제」의 정책하에서 추진될 중국의 장기목표 요강자체에는 홍콩의 장기발전이나 목표에 대하여 전혀 언급된 바가 없다. 그렇지만 홍콩이 지난 100년간의 영국통치에서 벗어나 중국에 귀속되지만 이미 결정된 「일국양체제」정책에 따라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가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사실상 홍콩에 대한 발전 방향은 이미 확정된 것이라고 믿어진다.따라서 금세기말 부터 시작될 홍콩의 새 시대는 중국이 새로운 세기를 맞아 시도하는 발전과 번영의 실현 과정중에서 홍콩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능력과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향후 2010년까지의 중국의 발전 목표를 보면 전면적이고 광범위한 것이다.즉,국영기업의 개혁을 비롯,농공업의 발전과 산업구조 조정을 통하여 전국 각 지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하고 나아가 인민생활 수준향상과 사회발전을 실현토록 계획되어 있어 자금,기술,무역,기업관리등 다방면에서 홍콩의 협력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따라서 향후 홍콩의 역할은 중국의 무역,금융,해운,정보통신의 중심지가 될 것이며,또한 상해,광주,무한,심천등 대륙의 새로운 경제 중심지와의 상호 의존관계를 한차원 높여나가는 견인차가 될 것이다.홍콩은 1997년 중국 귀속후,이미 보유하고 있는 국제상의 우위를 바탕으로 가장 개방되고,국제화가 원숙한 도시로서 외상이 중국시장에 진입하는데 가교의 역할을 할 것이며,아울러 중국 본토와 대만간의 중계인 역할도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그러므로 홍콩은 그 위치와 역할이 1997년 이후 삭감되는 것이 아니고,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이 21세기의 중국을 주시하는 가운데,그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역할을 충분히 수행해 갈수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장미빛 홍콩의 장래 이면에 잠재된 몇가지 문제점들도 고려해 보아야만 할 것이다.첫째,홍콩은 그동안 영국의 통치하에 자본주의적 삶을 영위하여 왔고 향후 최소한 50년간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마련되어 있다.그러나 실제로 97년 7월1일 이후 사회주의 영토의 일부로서 홍콩의 중국화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혹은 중국의 홍콩화가 실현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에 대한 문제는 아직 더 두고 보아야할 문제이다.둘째,최근들어 고조되고 있는 상해와 홍콩의 경쟁적 시각이다.상해의 발전이 근년에 이르러 급속한 성장을 지속하는 가운데 홍콩의 중국 귀속후 상해가 홍콩의 역할을 맡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과연 조속한 시일내에 상해가 홍콩의 위치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인지,적어도 30년간은 홍콩의 위치가 전혀 흔들림없이 장미빛 역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문제 역시 더 두고 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셋째,자주권의 문제이다.홍콩이 중화인민공화국의 일개 특별 행정구라는 새로운 환경속에서 얼마만큼의 자주권을 누리며 기회를 향유할 것인지,또한 홍콩인들의 심리적 갈등은 어느정도 해소될 것인지 하는 문제도 결코 쉽게 해결될 문제는 아닌듯 싶다. 다만 한가지 틀림없는 사실은 만일 중국이 홍콩의 제반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 실패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이는 홍콩의 장래 문제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양안관계 즉,대만 문제에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으로 보여 중국의 통일문제가 동남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 대학내 좌경세력 발본하라(사설)

    대학가에 아직도 좌경세력이 준동하고 있다는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다.극소수의 운동권학생이 저지르고 있는 시대착오적인 친북투쟁은 무시해도 좋을 것이란 견해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안당국은 22일 전국 98개 대학 학생회를 장학하고 있는 한총련에 친북성향의 NL(민족해방)계가 득세,북한과의 연계를 강화하면서 공개적으로 북한의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폭력시위를 전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미 또는 정권타도라는 이들의 투쟁목표는 국민을 섬뜩하게 만들고 있다.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10일까지 벌어진 대학가의 화염병시위는 74회,던져진 화염병은 3만3천여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배나 늘어났다고 한다.또 최근 적발된 「전국학생정치연합」은 「사회주의노동자당」결성을 기도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이러한 정황들은 대학가 좌경세력의 준동이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있다.따라서 공안당국이 우리사회의 혼란을 부추기는 이들의 과격시위에 단호히 대처키로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차제에 친북좌경세력을 끝까지 추적,발본색원해주기 바란다.아무리 학문의 전당인 캠퍼스에서 자유로운 주장이 있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체제를 부정하는 과격투쟁으로 번지는 것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당국은 남조선혁명전략을 고수하고 있으며 그 거점을 대학가를 중심으로 구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구시대적 유물인 「사회주의계급혁명론」을 지금까지 붙들고 있는 북한지도부의 역사의식도 한심스럽지만 우리의 일부 대학생까지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음은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이제 이들의 불순한 기도는 철저히 봉쇄해야 한다.정부는 좌경세력이 발붙일 수 없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대학당국도 사회주의사상에 오염된 학생을 바르게 이끌 수 있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주기 바란다.
  • “탈북자 증가는 북 경제난 때문”/83년귀순 이웅평 대령 인터뷰

    ◎우리국민 안보의식 낮은것 같아/귀순조종사 사회적응 도와줄터 『북한을 이탈하는 사람이 계속 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사정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83년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대령(43·공군대학 안보환경학처장)은 23일 상오 역시 미그 19기 1대를 몰고 남한으로 넘어온 북한 공군 소속 이철수대위의 귀순에 대해 이같이 피력하고 같은 처지에서 이대위가 앞으로 우리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대령과의 일문일답. ­귀순 조종사의 동기는 무엇으로 보는가. ▲북한 조종사들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는 사회주의체제가 현실과 맞지 않을 경우 실망한 나머지 북한을 이탈하는 경우가 많다. ­조종사의 귀순으로 미뤄 알 수 있는 북한의 실정은.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았는데 내가 귀순한 83년에는 경제사정이 곤두박질 치고 있었으며 최근엔 더욱 힘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후배 귀순자에게 하고 싶은 말은. ▲귀순조종사가 서른 한살이라고 들었는데 알맞은 시기에 넘어온 것 같다.처음엔 여러가지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이기 때문에 내 경험을 충분히 들려주고 우리사회에 잘 적응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앞으로 북한체제의 전망은. ▲경제사정이 아무리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북한이 금방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 등 외부의 충격과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달렸다. ­안보의식 강연을 하러다니며 느낀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 수준은. ▲일반적으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무척 낮은 것 같다. ­귀순한 이후 생활은 어떠했나. ▲지난 13년의 절반 정도는 민간대학 위탁강연 등 대민활동을 해왔고 절반은 군에 들어와 안보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다.〈대전=이천렬 기자〉
  • 북 공산정권의 역사적 소임(박화진 칼럼)

    「세계공산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역사적·시대적 소임과 역할은 끝났다」 옛소련·동구공산권 붕괴당시 소련공산당 당이론지「커뮤니스트」의 선언이다.마르크스 레닌이 지향한 공산주의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소임은 초기 천민자본주의가 보인 극단적인 사회경제적 모순의 척결이라 할수 있는 것이었다.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소임은 공산주의자신의 힘과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복지·평등등 사회주의이념 도입이라는 자본주의의 자기혁신을 통해 달성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본의든 아니든 그 역사적 소임을 다했으나 스스로는 자본주의의 경쟁적 성장원리 도입에 실패함으로써 한계를 드러낸 공산주의는 그 존재이유와 명분을 상실케되었으며 붕괴와 청산은 역사의 당연한 명령이라 할수있는 것이었다.그 결과가 옛소련·동구의 공산주의청산과 서구자본주의 도입이라든가 중국·베트남등 아시아공산권의 자본주의경제방식 도입과 자본주의시장경제 실험의 개방·개혁이라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공산정권만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개방·개혁을 거부하며 「우리식 공산주의」를 고집하고 있을 뿐아니라 한반도 적화통일이라는 시대역행적 야심마저 버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민족의 가슴아픈 불행이요 시련이라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북한정권이 세계공산권 가운데 특별히 훌륭하고 모범적인 통치를 해왔거나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식량난,에너지난,외화난등 경제파탄의 북한공산정권 50년통치는 공산권뿐아니라 전세계 최악의 실패로 평가받아 마땅할 것이다.국민을 먹이고 입히는 것은 통치의 원초적 기본이다.그마저 못해 백성을 헐벗고 굶주리게 하고 있는 북한공산정권이다.시베리아벌목공,한·만 국경주민,해외공관외교관등의 탈북자들이 러시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23일엔 공군미그기 조종사까지 북한을 이탈,귀순하지 않았는가.종주국들마저 버리는 공산주의를 북한만 고수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인가.김정일을 비롯한 북한정권 책임자들은 개인이나 정권·체제가 아닌 민족이익차원에서 대범하고 냉철하며 이성적인 자기반성을 해야할 역사적 시점이라 생각한다. 북한지도자·책임자들은아전인수식 오판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현재의 위기가 일시적인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수 있을 것이라 착각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될 것이다.경제적 경쟁자본주의화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화는 그 누구도 거역할수 없는 오늘의 세계적인 역사 및 시대진행의 방향이다.북한도 예외일수 없음은 물론이다.미국과의 적당한 거래로 시간을 벌다보면 위기극복이 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일 것이다. 미국이나 우리가 북한과의 대화를 추진하면서 수십억달러의 경수로·중유·식량제공등 도움도 주고 있는 것은 북한이 공산주의를 고수하도록 돕자는 것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시간문제일뿐 북한의 민주화개방·개혁도 불가피한 역사의 필연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기초로 하는 것임을 잊지말아야 할 것이다.미국이 잘 쓰는 「북한의 추락 아닌 연착유도」란 말의 의미는 북한공산주의체제 옹호의 연착 아닌 질서있는 민주화변혁의 그것이라는 사실을 뜻하는 것임을 북한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점진적이고 질서있는 민주화의 달성과 보편적인 세계정치·경제원리 수용외에 북한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는 없다고 보아야한다. 그것은 오늘의 북한정권이 할수있고 반드시 해야하며 하지 않을수 없는 유일의 역사적·민족적 소임이요 과제라 생각한다.21세기 선진G7대열 진입을 지향하는 한국의 목표는 한국만이 아니라 2천만 북한동포까지를 포함하는 7천만 한민족공동의 역사적 비전이자 과제라 할수 있다.북한의 동참을 전제로 하는 민족에너지의 총집결이 요구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북한의 개방·개혁거부와 무의미한 공산주의 고수의 현상유지는 만주벌판과 중국 그리고 시베리아를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야하는 21세기 통일한국과 한민족전체의 시대적 진운을 가로막는 장애요 역사반동이라 하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남북공히 백년대계의 민족이익차원에 입각한 일대 발상전환의 결단을 내려야할 중대한 역사시점에 서있다고 할수 있다.4자회담의 수용과 남북대화 및 협력관계 발전은 엄청난 희생을 불가피하게할 북한의 붕괴를 막고 최소한의 비용과 희생의 점진적이고 질서있는 민주화개방·개혁 및통일로 가는 첫 관문이자 출발점임을 북한공산정권 지도자들은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심의·논설위원〉
  • 러 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선임연구원 나탈리아바자노바박사(해외기고)

    ◎중국 더이상 북한우호국 아니다/“4자회담 중참여 불원” 북입장서 확인/”한반도 전쟁나도 개입반대” 여론 높아/관리들도 “수명 다해가는 절대주의국가” 혹평 공식적인 공동성명이나 연설을 보면 중국과 북한은 두 나라의 관계가 치아와 입술만큼 가깝다고 주장한다.그리고 그들의 우호는 영원하며 결코 깨질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두 나라의 지도자 얘기만 보면 이것은 사실일지 모른다.그러나 중국사회의 다른 집단을 보면 중국이 북한을 왜 형제국이라고까지 하는지 정말 의아스럽다. ○의아한 “형제국 관계” 필자는 최근 중국의 여러 도시를 둘러보고 모스크바로 돌아왔다.여러 도시를 도는 동안 중국의 중간관리·학자·언론인·기업인에서부터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람과 북한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이들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우선 중국인은 북한정부를 매우 보잘것없는 정부로 보고 있었다.중국 동부의 절강성지방에서 공무원과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나는 절강지방이 유럽·아시아·미국등외국의 도시와 교류를 갖고 있는지 물었다.그리고는 『북한은 어떠냐』고 물었다.나의 질문에 공무원은 물론 참석자 모두가 커다란 웃음을 터뜨렸다.웃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들은 북한을 『이상한 나라』 『절대왕정의 봉건국가』 『해프닝의 나라』로 부르며 듣기가 거북할 정도로 깎아내렸다.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후지앙지방과 북경시의 학자들은 북한경제를 가리켜 『왜곡되고 불구가 된 지 오래된』 『활력도 의미도 없는 경제』로 묘사했다.랴오밍지방의 한 기자는 김정일에 대해 국가지도자로서의 합법성을 문제삼았다.북경대학의 학생에게 북한방문에 흥미나 관심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이들은 『어떤 곳이라도 갈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북한과 같은 「섬뜩한 나라」에는 안가겠다』는 식의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해남도의 한 낚시꾼만이 북한을 「아시아에서의 유일한 사회주의국가」로 치켜세웠다.중국에서의 개혁은 아직 이 남자에게만큼은 긍정적인 결과를 심어주지 못한 탓일까. 중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와 관련,두번째 결론은 대다수의중국인이 김정일 정권의 미래가 좋게 끝날 것으로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한 유명한 언론인은 『평양정부가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지배계급은 모두 멸망할 것』이라며 『북한경제는 더 이상 운용되지 않고 있다』고 폭로했다. 학자들은 노동자에게 토지사용권을 주지 않는 한 북한은 계속 식량난을 겪을 것이라고도 했다.그리고 상황은 더 악화되리라고 진단한다.폭동이 일어날 것이며 현재 같은 리더십도 무너질 것이라고 한다.김정일은 무능한 지도자로 공개적인 도전에 직면할 것이며 계속되는 권력다툼은 권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지배층 몰락 예상 다른 중국의 관리는 『북한처럼 한사람의 절대통치에 놓여 있는 정부는 현대사회에서 존립할 수 없다.한 사람의 결정이란 원시적이고 일방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북한을 비꼬았다. 한 중국인 기자는 『북한 같은 전체주의 통치하에서는 사회경제적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고 단언했다. 중국여행기간에 이들에게서 보여진 공통적인 시각은 『북한의 현정권은 수명이 다해가고 있으며 정권은 3∼5년 안에 보다 분별 있는 정부의 손아귀로 넘어갈 것』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중국계층과의 대화에서 얻어진 세번째 결론은 가장 인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나는 중국인 친구들에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때 중국의 입장은 어떤 것이 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그들은 한결같이 『우리는 이 전쟁에서 발을 뺄 것이다』라는 말을 했다. ○3∼5년대 정권교체 나는 질문을 돌렸다.『미국이 한반도전쟁에 개입할 것이고 북한을 지나쳐 중국의 국경까지 올지도 모르지 않느냐』고 했다.이 친구들은 『미국이 결코 중국을 치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했다.중국이 너무 크고 미국만큼 강력해 미국인은 중국공격을 원치 않을 것이라고 했다.나는 다시금 묻고 또 물었다.중국의 동맹국이며 오랜 친구인 사회주의국가 북한이 붕괴되어도 상관이 없단 말이냐고.대답은 한결같이 『북한은 더 이상 우리의 동맹국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상해의 한 국제관계전문가가 차분히 그 이유를 설명한다.『한국과 미국이 최근 북한에 대해 중국이 포함된 4자회담을제의했다.북한은 물론 꺼리고 있다.그들은 중국이 4자회담에 끼는 것조차 원치 않고 있는 것이다.이것이 어찌 동맹국의 태도인가』 나는 중국인 친구들에게 다시 상기시켰다.『한국전쟁기간에 수만명의 중국군인이 희생됐다.이같은 사실을 접어두고 북한의 운명에 무관심할 수 있는가』 다시 이 중국인들이 반문한다. 『우리는 물론 잊지 않고 있다.하지만 북한은 자신만으로 전쟁을 승리했다고 본다.북한을 무정부상태에서 구해준 중국의 많은 자원자를 그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나는 나아가 『중국의 최고관리들은 어떤가.그들중 일부는 개인적으로 한국전쟁에서 싸운 바 있다.그래서 그들은 평양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나타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심 「나의 의견과 맞지 않는 말」을 둘러댔다. ○짐스러운 관계 변질 하지만 친구들은 『중국정부에 그러한 지도자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설명이었다.친구 가운데 한명은 『혹시 당신 생각이 맞는지도 모른다.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개입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거의 모든 국민은 여기에 반대한다. 이런 식의 개입이라면 다시 중국의 개혁과 미래를 망치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중국과 북한은 그동안 여러 면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제 갈길을 걸어왔다.때문에 그들의 정치·경제·전략적인 관심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결과적으로 중국은 북한과 그들의 미래에 대해 이런 식의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다.
  • “북 식량난 구조적인문제/체제 상당기간 지속될것”/권부총리 강연

    권오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22일 『북한의 식량난은 주체 농법의 비효율성과 과도한 군사비지출등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고수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관련기사 10면〉 권부총리는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고려대 언론대학원 초청강연에 참석,이같이 전망하면서 『북한은 식량난 등 경제사정악화와 권력체제 미확정으로 체제위기가 가속화되자 군부중심의 위기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권부총리는 『그러나 북한체제의 불안정이 당장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며 이같은 분석의 근거로 ▲장기간에 걸친 후계체제확립작업 ▲북한주민의 민주주의 경험 전무 ▲철저한 통제체제유지 등을 거론했다. 그는 『4자회담은 북한의 수용여지를 최대한 반영한 「열린 방안」이나 북한은 이에 대해 「현실성 검토」,「미국의 설명필요」 등을 이유로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있다』며 『정부는 회담을 위해 한·미·일 공조하에 북한을 계속 설득중』이라고 말했다.〈구본영 기자〉
  • 북­조총련 기업인 불화/재일민단 관계자

    ◎소장층 중심 체제비판 확산 올들어 재일 조총련의 대북송금이 격감하는등 조총련계 경제인과 북한당국간에 상당한 불화가 빚어지고 있는 것으로 22일 밝혀졌다. 정부당국과 최근 열린 민주평통자문위원 일본지역 협의회에 참석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머무르고 있는 민단관계자등에 따르면 조총련계 기업들이 대북진출을 극도로 꺼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당국자는 이와 관련,『지난해 조총련 상공인들이 북한의 나진·선봉자유경제무역지대 사회간접자본조성용 자금으로 4억∼5억엔을 모금,북한당국에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북측이 이를 당창건 기념탑건설등에 전용해 상당한 반발을 샀다』고 전했다. 민단관계자도 『김일성 사후 조총련조직내 소장파를 중심으로 북한식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적 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면서 『특히 조총련계 젊은 상공인들 사이에는 이데오르기보다는 비즈니스 중심의 실용적 대북관이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말했다.〈구본영 기자〉
  • 긍지잃은 외교관(귀순 고영환·현성일씨가 말하는 북외교 실상:2)

    ◎주재국의 푸대접이 가장 큰 고통/각종지원 약속 펑크내자 외무관리 면담거절 일쑤/김부자 찬양 기사게재 등 청탁에 현지언론도 “신물” 아프리카지역 해외공관에 근무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너나 없이 3중고에 시달린다.그 첫째는 지난 95년 8월부터 평양으로부터 끊긴 공관 유지비의 자체 조달이고 둘째가 주재국 외교부로부터 받는 괄시,셋째가 주재국 정부와 친선협회 및 언론으로부터 북한지지 성명 내지 찬양보도를 얻어내는 일이다.지난 93년 11월부터 지난 1월 귀순 전까지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근무했던 현성일씨(37)도 예외없이 3중고를 겪어야 했다.3중고 가운데서도 북한 외교관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주재국으로부터 받는 푸대접이라고 한다. 일찍부터 대외정책의 기본이념으로 자주·친선·평화를 표방은 했지만 대서방외교에 한계를 느꼈던 북한은 비동맹국가 및 제3세계 국가들과의 관계발전에 관심을 기울였다.북한이 추구해온 비동맹외교의 기본목표는 ▲제3세계 비동맹국가들과의 친선유대강화 ▲반제국주의투쟁의 연대성공고 ▲북한의 통일정책에 대한 지지획득이었다.이같은 평양당국의 비동맹외교노력에 힘입어 북한은 지난 75년 비동맹회원국이 됐으며 유엔에서의 북한 지지국 확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그러나 아프리카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비동맹외교는 처음부터 한계점을 갖고 있었다.경제적으로 북한이나 제3세계 국가들이 다같이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가 긴밀해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즉 제3세계 국가들은 한결같이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했으나 북한은 이들 제3세계 국가들에 자본과 기술을 제공할 여력을 갖고 있지 못했다.게다가 북한이 이들 국가들에 대한 경제및 군사지원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제3국가들의 대북 불신은 자연 깊어졌다.설상가상으로 70년대 후반들어서부터 비동맹운동이 종전 민족주의와 이념중시에서 경제적 실리에 초점이 맞춰져 전개되면서 북한의 비동맹외교는 내리막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 한편 80년대 후반들어 경제력을 앞세운 한국외교가 아프리카공략에 나서자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기다렸다는 듯 친한으로 방향을 바꿔 잡았다.북한 외교관들의 고통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현성일씨는 지금도 잠비아에서 겪었던 수모를 생각하면 분통이 터진다고 한다.그리고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불신과 업신여김도 모른채 우리식 사회주의를 외쳐대며 섣부른 짓을 마다않고 있는 북한체제에 더없는 절망을 느꼈다고 한다. 한마디로 현씨는 『아프리카에서의 북한외교는 없다』고 말한다.앞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들은 거의가 절대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같은 비동맹국 회원임을 앞세워,특히 「사회주의의 성공사례」를 자처하며 접근전을 펴온 북한에 대해 이들 국가들이 경제원조를 요구하고 나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그러나 제 코가 석자나 빠진 북한이 도와주는 것 하나 없이 국제무대서의 대북지지만을 요구하다보니 이들 국가의 외무관리들은 북한이라고 하면 진절머리를 낸다는 것. 현성일씨가 잠비아에서 제일 부러웠던 것은 한국 외교관들이 장관 등 고위 잠비아 외무관리들을 쉽게만나는 것이었다고 한다.그도 그럴 것이 북한 외교관들이 그들을 만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었다.잠비아 외무관리들은 한국 외교관들은 수시로 사저에 불러 파티를 하기도 하고 한국 외교관들의 방문은 언제고 환영하지만 북한 외교관들에겐 아예 집주소 조차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 북한 외교관들의 사기를 꺾는 건 비단 이것 뿐이 아니다.어렵사리 면회신청이 받아들여져 외무부를 찾아갈 경우 외무부 청사에 들어서기도 전에 북한 외교관들은 기가 콱 죽는다.청사 밖에 주차된 외교관들의 승용차가 현대 아니면 대우차인 것도 그렇지만 사무실의 컴퓨터·전화기·팩스 등 사무기기가 거의 한국제품인 까닭이다. 북한 외교관의 무기는 입이 전부다.그러나 주재국 외무관리들이 남북한의 경제적 격차를 훤히 꿰뚫고 있어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봤자 먹히질 않는다고 한다.『도와줄 처지도 아니면서 무슨 헛소리냐』는게 그들의 노골적인 반응이란 것. 잠비아에 주재하는 동안 주재 외교관 3명중 유일하게 영어를 할줄 알았던 현성일씨는 2·16김정일,4·15 김일성 생일 때마다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잠비아 정부나 잠비아·조선친선협회가 축하전문을 보내도록 하라는 평양의 지령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었다.어렵기는 북한의 핵확산금지협정(NPT)탈퇴지지를 위한 연대성집회소집 등도 마찬가지였다.콜라 한병 나오지 않는 연대성집회에 사람이 모이지 않을 건 당연한 일.그래서 현성일씨는 집회는 열지도 못한채 자신이 지지문을 작성한 뒤 현지 회장을 찾아가 통사정,겨우 수표를 받아 평양에 보냈다고 한다. 주재국 언론에 보도되는 북한관련 기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기자들이 직접 취재해서 게재하는 북한관련 기사는 거의 없고 외교관들의 로비에 의해 실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자국 정부와의 관계도 관계이지만 외교관들이 찾아가 애걸복걸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처음 몇번은 별 군소리 없이 기사를 실어준다고 한다.그러나 매번 같은 시기에 거의 같은 내용의 김부자 찬양문과 대북지지문,북한발전 PR기사 게재청탁을 쏟아놓다 보니 신물이 난 언론들이 이젠 드러내놓고 냉대를 한다는 것.심지어 『북한관련 기사 한건에 라디오 카세트 한개씩 가져오라』는 면박을 주기도 하며 실제로 북한관련 기사와 라디오 카세트를 맞바꾸기도 한다고 한다.이렇게 어렵사리 기사를 「날리거나」 전문 또는 보고서를 「만들어」 보내면 평양에선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마치 주재국에서 대규모 북한지지대회나 요란한 김일성부자생일 축하모임이 열린 것처럼 법석을 떤다는 것. 한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의 긍지는 이미 잃어버린지 오래이고 체면은 체면대로 구기고 있는게 북한 외교관들의 현주소라고 현씨는 말한다.
  • “「좌경」 위험수위… 철저색출”/검찰

    ◎80년이후 90여단체 결성 4만여명 각계침투/통일논의빙자 무분별 대북접촉도 엄단 검찰은 최근 좌경세력의 활동이 위험수위에 달했다고 판단,범정부적인 차원에서 좌경세력에 강력히 대처하기로 했다. 검찰은 지난 80년이후 90여개의 좌경단체가 결성돼 4만여명의 좌경세력이 정치·학원·노동·재야 등 사회전반에서 노골적으로 활동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검 공안부(최병국 검사장)는 17일 통일원·교육부·노동부·문화체육부·정보통신부·경찰청·안기부·기무사·공보처 등 10개 부처의 관계자 2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자유민주체제 위협세력척결을 위한 공안유관부처회의」를 열었다. 최검사장은 이날 『사회 각 분야에 침투한 좌경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유관부처간의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통한 대공수사력의 강화가 필요하다』며 『이번 회의를,자유민주체제를 지키는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주사파 등 사회주의혁명 추종세력과 배후조종자를 철저히 색출,엄단하고 북한의 주요포섭대상자·구운동권세력·해외거주 친북인사 등의 동향도 감시,혐의가 드러나는대로 사법처리키로 했다. 통일논의를 빙자,정부의 대화창구일원화방침을 무력화시키거나 밀입북·대북통신연락·대남공작조직과의 접촉행위 등 무분별한 대북접촉도 엄단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오는 23일에 열리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6·10민중대회,범민족대회 등 불순한 집회나 시위는 허가하지 않고,폭력시위주동자나 화염병투척 등 극렬행위자는 모두 사법처리키로 했다.〈박홍기 기자〉
  • 각종 집회·시위서 사회주의 선동/「노동자당 추진」 13명 구속

    ◎94년 「전학련」 결성 지하운동/경찰청·국군기무사 발표 경찰청은 16일 사회주의 학생운동 조직인 「전국학생정치연합」(전학련)을 결성,각종 불법 집회와 시위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선동해온 손영우씨(25·동국대 졸·전 전학련 의장) 등 9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현 의장 엄형식씨(22·외대 불어과 4년) 등 9명은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국군 기무사령부도 입대한 뒤 「독재와 독점을 타파해야 한다」는 내용의 소식지를 배포하는 등 군 내부의 좌경 의식화를 기도한 육군 OO사단 박노현 상병(23·동국대 국문 4년 휴학) 등 현역 군인 4명을 같은 혐의로 구속했다. 손씨 등은 지난 94년 3월19일 동국대에서 전국 27개 대학의 학생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미제 축출과 파쇼정권 타도」 등을 강령으로 전학련을 결성했다. 이들은 같은 해 4월9일 서울 보라매공원에서 열린 「우루과이 라운드 밀실협상 규탄 및 국회비준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에 조직원 3백여명을 동원,유인물 3천여부를 배포하는 등 지금까지대규모 집회나 시위 장소에서 7차례에 걸쳐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해 왔다. 경찰은 이들의 집과 사무실에서 컴퓨터 디스켓 30매와 불온서적 「사회주의 과거·현재·미래」 등 2백여점을 증거물로 압수했다. 구속자 명단은,◇경찰청 ▲손영우 ▲김홍석(26·명지대 경제 4년) ▲이소영(25·여·성신여대 졸) ▲윤여림(23·〃) ▲성혜연(25·여·덕성여대 졸) ▲김지영(24·〃) ▲서영주(23·〃) ▲김정순(23·여·외대 서구지역연구 1년) ▲빈순아(26·여·경희대 졸) ◇기무사 ▲김일영(26·서울대 공법 4년 휴학) ▲박종연(25·상지대 4년 휴학) ▲박노현(23·동국대 4년 휴학) ▲서정보(22·성균관대 4년 휴학)〈박용현 기자〉
  • 「북 체제 전환과 남북한 경제통합의 과제」/KDI 보고서

    ◎“통일땐 북 경제자유화·지역개발 촉진해야”/초기엔 정부 주도로 경제통합 혼란 줄여야/협동농장 해체·국영사 사유화·수출산업 육성 바람직/남북 소득차 줄이고 북 잔류자 우대… 급속이주 방지를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전홍택연구위원은 15일 「북한의 체제전환과 남북한 경제통합의 주요과제」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북한의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체제전환은 부분·점진적 방식보다는 전면·급진적 방식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밝혔다.또 북한지역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해 개발을 촉진하고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인구이동 억제책인 동시에 소득격차 완화방안이라고 강조했다.내용을 요약,소개한다. ○체제전환과 경제통합 한반도 통일의 경제정책 과제는 크게 북한사회주의경제의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과 소득수준 및 생산성에 현격한 차이가 있는 두 지역의 경제통합이라는 두가지 문제로 나눠볼 수 있다.독일통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기본적으로 중앙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한 가운데 남북한이 통일된다면 우선 북한경제가 시장경제로체제전환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체제전환은 동구의 경험이 말해주듯 매우 힘든 과제다. 경제체제가 기본적으로 같은 시장경제간의 통합이라 하더라도 생산성과 소득수준에 큰 격차가 있는 경우 경제통합에 따른 충격은 상당하다.남북한의 경우 두 경제가 서로 다른 체제하에 있을 뿐 아니라 소득수준의 격차도 크기 때문에 경제통합의 충격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독일통일의 예에서 보듯 예상치 못한 가운데 갑자기 통일이 이뤄지는 경우,여러가지 정책오류가 생길 수 있고 그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막대해질 수 있다.따라서 갑자기 통일이 이뤄지는 경우에 대비해 핵심정책과제에 관한 쟁점을 검토,기본적인 정책방향을 사전에 도출해놓는 것은 통일후의 구체적인 대응책 마련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중국과 동구의 비교 체제전환의 방식과 경제적 성과는 주로 체제전환 초기의 정치·경제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중국과 동구의 체제전환을 비교하면 먼저 중국의 경우 농업취업인구 비중이 71%나 되고 국영기업부문의 취업비중이 19%에 불과한 저개발농업경제이고 수출입의 GNP 비중이 10%에 불과한 폐쇄경제여서 개혁이 농업과 대외경제부문에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개혁 당시 거시경제 여건이 안정돼 있어서 점진적인 가격자유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이스라엘 칠레 폴란드 베트남 등 전면적 가격자유화를 일거에 실시한 국가들은 모두 초인플레이션과 심각한 국제수지 적자를 겪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공산정권에 의해 개혁이 추진돼 국영기업 개혁이 사회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생산수단의 전면적 사유화 대신 다양한 소유형태의 인정과 경영자율성 제고라는 두 가지 원칙아래 추진됐다. 중국은 개혁후 동구가 경험했던 생산붕괴와 대량실업의 발생없이 비교적 순조롭게 고도성장을 유지하고 있다.산업부문에 대한 투자를 통해 농업부문의 잉여노동력이 산업부문으로 이동해가는 전형적인 후진국의 경제발전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동구의 경우 공산체제의 붕괴에 따라 비공산정권에 의해 체제전환이 추진돼 처음부터 서구식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의 전환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체제전환 당시 경제구조는 2차산업 취업비중이 30∼60%,국영기업부문 취업비중이 50∼90%를 차지하는 중공업 중심의 과산업화경제였다.초인플레이션과 외채부담,통화팽창 때문에 거시경제의 불안정이 심각했다.따라서 대부분의 동구국가들은 전면적 가격 및 무역자유화,사유화를 통한 산업구조조정 등 충격적인 방식으로 체제전환을 추진했다. ○북 체제전환의 방향 통일이 이뤄질 경우 북한 체제전환의 기본방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첫째 협동농장의 해체를 통한 가족농 중심의 상업농업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북한은 GDP 및 취업의 구성비면에서 볼 때 산업화에 있어서는 체제전환 초기의 중국과 동구의 사이에 있으나 산업구조면에서 중국보다는 동구에 가깝다.북한의 농업여건은 중국이나 베트남에 비해 훨씬 불리하기 때문에 체제전환 후 농업부문이 성장의 견인차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렵다.그러나 초기에 농업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제고함으로써 식량 및 외환제약을 완화,경제성장의 토대를 마련하고농민의 도시 및 남한으로의 급격한 이주를 억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둘째 북한경제 재건과 자력성장기반 마련을 위해 수출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남한 및 외국인 직접투자유치를 통한 새로운 기업의 설립과 함께 기존 중공업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셋째 소규모 서비스산업의 자유화는 공급반응이 가장 빨리 나타나는 부문이므로 체제전환 프로그램의 주요과제가 돼야 한다. 넷째 농업 및 서비스산업의 개혁,산업구조조정,외자유치 등 경제자유화의 효과가 경제전체에 파급돼 경제활성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가격 및 무역자유화를 추진,자원배분을 효율화하고 경쟁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가격·무역자유화는 전면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다섯째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신속한 국영기업의 사유화가 요구되나 국영기업의 사유화가 완료될 때까지는 적어도 수년이상의 긴 시간이 소요되므로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면서 사유화를 진행시켜야 할 것이다.중국은 물론 폴란드도 사유화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경영자율성 제고와 경영여건의 시장화로 국영기업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여섯째 독일을 포함한 동구국가는 대부분 공산정권에 의해 몰수된 재산을 원소유자에게 반환함을 원칙으로 하였기 때문에 부동산 등 재산의 법적소유관계가 불확실해져 사유화 및 투자가 지체됐다.따라서 몰수재산 처리는 반환이 아닌 보상의 원칙에 의해 처리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법적인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끝으로 국유재산 사유화 방식 결정에 있어서 경제적 효율성과 신속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돼야겠지만 북한주민과 해당기업 근로자들에 대한 형평성도 감안돼야 한다. ○남북경제통합의 과제 북한경제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된다고 하더라도 남북한간 현격한 소득격차 때문에 경제통합은 매우 힘든 과제다.독일은 동독주민의 서독으로의 대규모 이주우려 때문에 통화통합 시기를 앞당기고 통화통합때 동독화폐를 고평가해 동독에 유리하게 통화전환비율을 결정했다.그 결과 통합직후 동독의 임금수준이 크게 상승했다.게다가 통합후에도 계속해서 급속한 임금인상을 방치 또는 조장해 인구이동을 방지하는 한편 고임금에 기초한 산업구조 고도화를 추진했다. 이에 따라 동독의 임금은 경제통합후 1년반만에 1백50%나 상승한 반면 생산성 증가는 25%에 불과했다.이같이 임금수준이 생산성을 크게 상회함으로써 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대량실업이 발생했다. 고임금·고기술전략으로 지칭될 수 있는 동독지역 산업구조조정정책의 핵심은 동독지역 임금이 결국 서독지역 수준으로 상승할 것이기 때문에 고임금을 감당하지 못할 산업은 도태시키고 처음부터 서독의 임금기준에서 유망한 부문에만 투자하는 것이었다.어차피 장기적으로 도태돼야 할 노동집약적 사양산업을 붙잡아두는 것은 오히려 동독경제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주장에 근거했다. 그러나 고임금·고기술전략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는 오류를 범했다.동독지역 임금이 서독수준과 같아지려면 자본장비와 인적자본이 서독수준과 대등해지도록 대대적인 투자가 필요하나 막대한 자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수익성이 있어야 하고,수익성이 있으려면 노동비용이 생산성을 초과해서는 곤란하다. 독일의 경우통화통합때 동독화폐 고평가와 산업구조조정에 있어서 고임금·고기술전략의 오류로 대량실업이 발생했고 실업자에 대한 보험 및 퇴직자에 대한 연금지급 등 소비적 지출을 위해 막대한 재정지출이 요구됐다. 그렇다면 남북한 경제통합의 경우에는 소득수준격차,인구이동,실업,산업구조조정 등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첫째 남북한간 소득격차 완화는 달성가능한 목표를 정해놓고 추진해야 한다.북한의 소득수준이 남한 소득수준의 40∼60%에 이를때까지는 20년 이상의 장기간이 소요된다.지금까지 대부분의 통일비용에 대한 연구는 10년내에 남북한간 소득격차를 완전히 해소하기 위해 천문학적 숫자의 통일비용이 소요된다고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둘째 독일의 경험을 보면 동·서독간의 기대임금수준의 격차가 이주의 중요한 결정요인이기는 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독지역에서의 고용기회 여부였다.이것은 북한지역의 개발을 촉진,가능한 한 고용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인구이동 억제책인 동시에 소득격차 완화방안이라는 것을 시사한다.지나친 이주를 억제하기 위해 고용확대와 함께 사유화의 추진과 사회보장제도의 적용때 북한잔류자에게 유리하도록 경제적 동기를 부여,북한거주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의 산업구조조정,경제활성화 및 고용촉진을 위해서는 남한 및 외국으로부터의 투자가 중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임금수준이 생산성 향상 범위내에서 증가하도록 적극적인 임금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제통합 초기에는 경제혼란을 방지하고 시장질서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 임금 가격 등의 결정에서부터 공단조성 및 사회간접자본 건설,전문인력 공급 등에 이르기까지 정부의 주도적 역할이 요구된다.독일의 경우 사회주의 실패가 지나친 경제개입에 기인했다는 일반적 인식과 함께 독일 통일 당시 경제침체를 겪고 있었던 서독경제의 문제가 정부역할 비대화에 기인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에 동독의 경제재건에 있어서 정부개입은 최소화하고 시장에 주로 의존했다.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다른 동구국가도 마찬가지였다. 서독과 달리 한국은 비교적 성공적인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경험을 가지고 있다.또한 갑자기 통일이 이뤄질 경우 예상되는 북한의 경제상황과 경제제도,인프라,경제주체들의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 등에 있어서 우리의 경우는 통일 당시의 동독에 비해 불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지나친 개입에 따른 정부실패는 피해야겠지만 시장경제의 정착을 촉진하고 북한경제를 재건하는데 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최악의 외화난(귀순 고영환·현성일씨가 말하는 북외교 실상:1)

    ◎여비 안나와 부임 못하는 외교관 많아/돈 타내려 배경 동원… 급행료 2백∼3백불/임지부임 경비 줄이려 대부분 열차 이용 북한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하지만 그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그러나 해외공관근무 발령을 받은 외교관이 항공료가 지급되지 않아 1년을 평양에서 허송세월을 하고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됐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가 귀순 북한외교관과 가진 단독인터뷰에서 밝혀진 것이다.냉전체제가 붕괴된 후에도 여전히 주체사상과 우리식 사회를 고집하고 있는 동안 북한경제가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음이 증명된 것.서울신문 국제전략연구소는 지난 91년 귀순한 전콩고주재 북한대사관 1등서기관 고영환씨(38)와 지난 1월 귀순한 전 잠비아주재 3등서기관 현성일씨(37)와의 대담을 추적한 「북한­오늘의 외교실상」을 4회에 나눠 싣는다. 북한경제는 지난 90년이래 내리 6년째 마이너스성장을 계속하고 있다.이같은 북한경제의 마이너스성장의 가장 큰 원인은냉전체제붕괴후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너나없이 시장경제체제로 돌아서면서 북한이 수출시장을 잃어버린데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냉전체제가 무너지기전 북한은 동구 사회주의국가를 상대로 광물및 공산품을 수출,그런대로 재미를 봤으며 몇몇 중동국가에 대한 무기수출을 통해 상당액의 달러수입을 올렸었다.그러나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단 자유화와 중동지역의 평화도래로 이 지역에 대한 무기수출길이 막히면서 외화벌이가 내리막길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여기다 스탈린식 폐쇄체제와 자력갱생이란 경제정책운영방식이 가져온 비능률과 저생산성도 북한경제를 파국으로 몰고가는데 한 몫을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경생이란 산업 전반의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산된 제품의 질 역시 형편없을 것은 뻔한 일.그 결과 북한은 수출경쟁력에서 크게 밀려 외화가득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 북한이 당면하고 있는 외화사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좋은 예로 현성일씨는 외교관들의 여비를 들었다.북한외교관들의 평균 해외공관근무임기는 3∼4년.그러나 임기는 임명장을 받은 날부터 기산되기 때문에 부임이 늦으면 늦은 만큼 평양에서 임기의 상당부분을 까먹게 된다.현씨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해외공관근무명령을 받고도 여비가 지급되지 않아 평양에 죽치고 앉아 있는 외교관이 40∼50명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심지어 1년 넘게 떠나지 못하고 있는 외교관도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이다. 해외공관근무명령을 받은 외교관들에 대한 여비는 외교부 외화국에서 지급한다.외교부 외화국은 무역은행에서 달러를 수령,지급하는데 무역은행에 달러잔고가 모자라 제때에 필요한만큼 타오질 못한다는 것.그러다보니 외교부 외화국장 테이블에는 외교관들의 여비신청문건이 산더미처럼 쌓인다고 한다.그러나 외화국 역시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여서 『임명받은 순서대로 받아가라』거나 아니면 『급하면 재간껏 무역은행에 가서 돈을 타가라』고 요령을 일러줄 뿐이라는 것.그래서 눈치빠른 외교관들은 해외근무명령을 받자마자 바로 「사업」에 나선다고 한다.「사업」이란 무역은행에 줄을 대 가급적 빨리 돈을 타내기 위해 벌이는 로비를 말한다. 무역은행에서 외교관여비지급업무를 관장하고 있는 부서는 제5국.워낙 외화가 모자라다보니 달러를 만지는 5국의 국장이나 부국장의 끗발은 보통 센게 아니다.배경이 좋은 외교관들은 위로부터 압력을 가해 5국장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못한 전문외교관들은 자기가 받을 여비에서 2백∼3백달러를 5국 간부들에게 떼주기로 하고 여비를 받아내는게 관행으로 돼있다.그러나 이것도 운이 좋을 때 얘기고 때를 잘못 만나면 부지하세월,여비가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현성일씨가 잠비아주재대사관 3등서기관으로 발령을 받은 것은 지난 93년 9월30일.그러나 그 역시 여비를 제때 받지 못해 한달을 기다린 끝에 10월30일 평양을 떠날 수 있었다.그가 한달만에 여비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아버지(현철규)가 함남도당 책임비서겸 인민위원장이라는 고위직에 앉아 있는데다가 마침 외화국장이 현지사정을 잘 아는 잠비아대사출신이어서 덕을 봤기 때문이었다. 워낙 돈이 궁하다보니 북한외교관들의 임지부임에는 여비절약의 지혜가 절대 필요하다.그래서 대부분의 외교관들은 여비를 아끼기 위해 불편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비행기대신 열차를 이용한다.하기는 비행기를 이용하려고 해도 임지까지 편리하게 연결되는 비행기편이 없어 대부분 포기한다.현씨 역시 잠비아부임때 먼저 평양∼모스크바행 기차를 이용했다고 한다.9일만에 모스크바에 도착,이틀을 쉬고 다시 열차편으로 이틀 걸려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까지 이동,소피아에서 짐바브웨까지는 열차가 없어 만부득이 항공기를 이용했다.짐바브웨서 잠비아까지는 자동차를 타고 육로로 갔다고 한다.그가 평양을 떠나 잠비아에 도착하기까지 자그마치 17일이 걸린 셈이었다.그러나 북한외교관들은 이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장거리코스를 좋아한다고 한다.새장같은 북한에 갖혀 지내다가 오랜만에 대하는 바깥세상이 너무도 반갑고 그 동안에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너무 소중해서라는 것.〈장수근 연구위원〉
  • 한국토지공사 이효계 사장(공기업 최고경영자에 듣는다)

    ◎“21세기엔 국민기업으로 발돋움”/택지·공장용지 올 73만평 공급… 서비스 개선/쓰레기 관로수송·에코폴리스 건설… 쾌적한 주거환경 조성 역점/중·러·베트남·인도 연결 아시아 공단벨트 구축 이효계 한국토지공사 사장은 대형 국영기업체의 최고 경영인이라기 보다는 시골 학교의 인자한 교장선생님을 연상케 한다.나직한 목소리에 간간이 엷은 미소를 띠우고 회사를 차근차근 소개하는 그의 말투에는 신뢰가 느껴진다.그러나 『토지공사가 개발이익을 너무 많이 남겨 「땅투기공사」라는 비난도 받고 있는 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그만 펄쩍 뛰었다.너무 억울하고 섭섭하다는 표정이 완연하다. 이사장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목청을 높여 『그건 정말 우리 토지공사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강조했다.『예전에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지만 지금이 어느 때 입니까.지난해 초 부임 이후 직원들의 자세를 검증해 봤는 데 부정의 소지가 없을 뿐더러 이제는 잘못을 저지르면 국민들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땅투기 말도 안돼…” 그는 토지공사가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문화재개발과 휴식공원조성 등 각종 좋은 사업도 벌이는 데 이것은 묻히고 땅문제와 관련한 헛소문만 부풀려져 떠도는 것이 못내 불만스럽다고 털어 놓았다. 그는 『땅을 처음 사들일 때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지만 이를 이용 가능토록 부가가치를 높여 개발하면 그 만큼 값이 비싸진다』며 『처음의 땅값과 개발후 땅값을 단순 비교해 투기라고 몰아붙이면 곤란하다』고 말했다. ­올해의 사업계획부터 듣고 싶은 데요. 『올해는 4조원을 들여 4백50만평의 주택용지와 2백50만평의 공장용지 등 모두 7백30만평의 토지를 공급할 계획입니다.주택용지는 계속사업지구에 2백40만평,신규사업지구에는 공동주택지를 우선적으로 공급합니다.공업단지는 2백86만평 규모의 오창과학단지와 1백5만평 규모의 전주과학단지를 본격 착수하고 18개 사업지구에 땅을 공급하게 됩니다.올해에는 해외공단개발사업도 본격화할 생각입니다.우선 베트남 하노이공단은 빠르면 6월에 착공할 예정입니다.러시아 나홋카공단도 늦어도 연말에는 착공될 것으로 보입니다.그러나 올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발도 중요하지만 공급이 더 큰 과제입니다.부동산경기가 침체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국민과의 약속은 지킬 것입니다』 ­올해초에 이름을 한국토지공사로 바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기업의 이름은 이미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이름을 바꾼데는 두가지 큰 이유가 있습니다.첫째는 이름과 업무의 연관성 때문입니다.창립 당시인 지난 75년에는 「토지금고」였습이다.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를 매입함으로써 부동산에 묻힌 자금을 산업자금화하는 토지은행 기능이 주업무였기 때문이지요.79년부터는 「한국토지개발공사」로 바뀌었습니다.토지개발 기능이 추가됐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현재는 토지관리·지가조사·도시계획·지리정보시스템·지역경제연구·기술개발 등 토지와 관련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면서 개명이 필요했습니다.두번째는 사회의 부정적 인식에 연유합니다.국민 대다수가 「땅」하면 「투기」와 「개발」을 제일 먼저 떠올립니다.그래서 제2의 창업 정신으로 과감히이름을 바꾸었지요』 ­그렇다면 제2의 창업에 걸맞는 새로운 경영전략이 있을 텐데요. ○고객지원센터 설립 『물론입니다.우선 고객제일의 경영체질을 위해 사업시행자 보다는 고객을 중심으로 제도와 서비스를 개선하고 있습니다.고객지원센터를 세워 용지보상·판매·세무·컨설팅·건축인허가 등 부동산관련 정보를 서비스 원스톱으로 서비스하는 것이 바로 그런 차원이지요.우리가 만든 제품에 정성과 혼이 담긴 품질위주의 완벽시공도 전략의 하나입니다.해외사업을 다변화하고 정당한 평가를 받기 위한 기업문화를 재창조하는 일도 새 경영목표에 포함시켰습니다』 ­일반국민들은 잘 모르지만 토공이 지역사회 발전에도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들었습니다. 『우리 공사는 20년 이상 택지와 공단을 개발하면서 여의도 면적의 1백배인 9천1백만평을 공급했습니다.택지는 지역간 균형개발을 위해 가격차별제와 지방업체 및 주민에게 분양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특히 주택업자에게는공동택지의 70%가 넘는 1천만평을 조성원가로 공급해 무주택 서민의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공단도 상대적으로 지역개발이 뒤진 서부권에 군장·대불·광주첨단 등에 총 공단개발 면적의 절반을 공급했습니다.이곳에는 7천3백여개의 공장이 입주할 수 있고 입주가 끝나면 연간 44조3천억원의 생산창출과 50만명이 넘는 고용증대 효과도 기대됩니다.신도시 건설과 관련해서는 분당선·일산선·도로·교량·하수처리장 등 각종 사회간접자본시설 건설을 위해 개발이익 중 3조4천억원을 지원했습니다.분당 중앙공원을 비롯해 일산호수공원 등도 개발이익을 지역사회에 환원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판매기법의 다양화 ­공사가 새로운 개발전략으로 추진하는 환경친화적·인간지향적 개발의 개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도 주택보급률이 80%를 넘었고 정부가 추진 중인 2백85만호 주택건설사업이 완료되면 95%에 이를 전망입니다.이제부터는 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동시에 주거의 질을 쾌적하게 만드는 것도 추구해야 합니다.토공에서는 「클린그린타운」 조성을 위해 용인수지 2지구에 국내 처음으로 최첨단 쓰레기 수거시스템인 관로수송방식을 도입합니다.이 방식은 환경선진국인 스웨덴·일본·미국 등에서 시행중입니다.또 자연을 그대로 살려 도심에서도 물고기가 사는 맑은 시내물을 볼 수 있게 환경친화도시(에코폴리스)를 건설할 계획입니다.』 ­지난 92년부터 지속된 부동산시장의 침체에 따른 판매부진으로 경영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데요.특별한 타개책이라도 있는지요. 『지난해는 전국적인 투자설명회와 「D­120일 작전」 등 공격적 마케팅으로 부동산시장 침체를 극복했습니다.3∼4년간 팔리지 않은 충무 도남,논산 강산 등의 택지는 20∼30%까지 낮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백화점식 가격할인제도 해봤습니다.덕분에 7백31만평,3조7천억원의 매각실적을 올렸지요.올해도 「D­300일 작전」을 세워 시행중입니다.앞으로도 특정 상품에 대해서는 한시적 가격할인제를 확대하는 등 판매기법을 다양화 하겠습니다. ­해외공단 개발사업은 어떤 의미를 갖습니까. 『민간기업에 비해 공기업의 해외진출 실적은 미미한 실정입니다.중국·러시아·베트남 등지를 돌아보면서 토지공사의 해외진출이 늦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습니다.경쟁국인 대만·홍콩·일본 등은 벌써부터 해외로 진출해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우리 공사의 해외사업은 국토의 확장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습니다.이미 착수한 중국의 천진·심양공단,베트남 하노이·호치민공단,러시아의 나홋카 공단,진출을 검토중인 인도·미얀마·중국연길 등 해외공단과 국내의 인천연수·아산·군장·목포대불·포철연관·동해북평 등을 지도를 펴고 이어보면 거대한 동북아 연안공단벨트를 형성하게 됩니다.공기업의 공신력과 경험·기술을 최대한 활용,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부응하는 해외공단개발을 통해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안심하고 생산활동에 전념토록 지원할 계획입니다』 ­토지전문기관으로 통일이후도 준비해야하지 않을까요. 『통일에 대비해 북한에 대한 토지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이 문제는 정부와 긴밀한 협조로 국익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습니다.중국·러시아·베트남 등 사회주의권에서의 개발사업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되고 참여의 기회가 닿는다면 북한지역의 토지개발사업에 적극 나설 생각입니다』 이사장은 숭실대 법학과(63년)와 서울대 행정대학원(68년)을 졸업한 뒤 미국 버클리주립대(70년)를 수료했다.대학재학 중이던 61년 고시행정과(13회)에 합격했고 내무부에 몸담아 전주시장·부산부시장·광주시장·전남도지사·국무총리비서실장·내무부차관 등을 역임한 행정통이다.〈육철수 기자〉 ◎토공의 장기 사업전략/물류·관광단지 등 특화사업 강화/동구·중남미·아주 등 개발거점 다변화/문화사업 지원 등 공공역할 비중 높여 한국토지공사가 올해부터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방향과 전략을 설정,21세기 미래지향적 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려 한다. 부동산 경기침체와 땅값 안정국면에서 수익성은 떨어지고 그동안 독점적인 사업영역도 지방공기업과 민간기업의 도전받는 위기상황에서 어쩌면 당연한 전략수정으로 보인다. 토공은 21세기에는 「세계로 웅비하는 최고 토지전문국민기업」을 목표로 잡았다.이를 위해 경영다각화·경쟁력강화·경영효율화·경영내실화 등 4가지 부문별로 기본전략을 수립했다. 경영다각화를 위해서는 주택과 공장용지 공급 일변도에서 벗어나 복합·과학·물류·관광단지와 역세권개발사업 등 해당지역의 여건에 맞는 지역특화사업 추진으로 방향을 설정했다. 또 21세기 고도정보화사회에 대비,파주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를 올해부터 본격화하고 인천신공항배후단지 건설 등 특정 프로젝트에도 적극 참여할 뜻을 갖고 있다. 해외사업을 통한 국제화 추진도 경영다각화의 한 방편이다.해외사업은 특히 현재 동남아·동북아 위주에서 동유럽·중남미·아프리카지역으로 개발거점을 다변화할 계획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국가경제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기능과 역할의 차별화·고유화를 이루고 택지 및 공단개발사업의 안정적 추진기반을 확보한다는 것이다. 또 경영효율화를 위해 연구개발의 전문화를 통해 고유기술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며 내실을 다지기 위해 사업방식개선,품질향상,대외 이미지 개선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토지공사는 그러나 실질적 주인인 국민의 친화적 공기업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사업상 전략 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최근들어 문화사업에 큰 비중을 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토공 관계자들은 『사실 토공만큼 공기업의 실상이 잘못 알려진 곳도 없다』고 푸념한다.우리의 부동산시장이 그간 부의 축적수단으로 인식되면서 땅을 다루는 것 자체만으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이다.토지수용이라는 비자발적인 토지의 양도과정도 이미지에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했다. 토공 관계자들은 그러나 『일반 국민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높은 공공성 때문에 재투자를 위한 최소한의 영리만을 취한다』며 21세기를 향해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하려는 토공에 국민들의 올바른 이해를 기대하고 있다.
  • 체제위기 오나(북녘국경지대 지금은…:6·끝)

    ◎“북 식량난만으로 체제붕괴 안될듯”/주체사상 세뇌… “우리식으로 산다” 강변/김정일 공식승계 김일성 3년상뒤 유력/“주석취임날 쌀 대량 배급한다” 소문 돌아 압록강변에서 바라본 북한은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게 분명했으나 이같은 곤란이 급격한 사회변동이나 김정일체제의 붕괴조짐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확신을 갖기는 어려웠다.아직까지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금과옥조로 신봉하는 북한주민들은 식량사정 등 경제적 어려움이 따라도 「우리 식대로 살면 된다」는 의식으로 철저하게 무장된 탓에 체제붕괴로 연결될 가능성은 크지않다는 것이다. 북경에서 만난 한 북한문제 전문가는 『북한에는 체제저항 세력이 거의 없다』며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잘 조직화된 사회인 만큼 경제적 어려움만으로 체제붕괴를 점치기는 어렵다』고 분석한다. 중국 사회안전부의 관계자도 북한의 붕괴조짐이 감지되지 않는다는 점에 동의한다.김일성의 권력승계자로 부상한 이후 계속해서 김정일이 정보및 조직(인사)관리의 일을 담당했다는 점을 그근거로 든다. 최근 함경북도 회령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42)도 북한이 식량난과 물자난으로 위기국면에 처해 있지만 그것이 체제붕괴로 이어질 조짐은 없었다고 말했다.그는 『회령시만 하더라도 식량난은 물론이고 진열된 상품이 없는 텅빈 매장만 있어 북한경제의 위기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밝혔다.그는 또 『북한 관리들도 경제난과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원조를 받지 못하면 경제의 회생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전했다.그러나 체제붕괴의 징후는 전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삼합에서 만난 중국인 진모씨(47)는 『김일성 주체사상을 강철이념으로 받드는 북한주민들은 아무리 식량난에 시달리더라도 불평불만을 갖지 않는다』고 밝힌다.『북한주민들은 한국이나 중국이 잘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저 우리 사회주의식으로 살면 된다는 생각 외에는 그 어떤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그는 전했다. 북한 농업전문가 출신의 귀순자 이모씨(39)도 최근 한국에서 열린 한 포럼의 증언에서 『북한은 잘못된 농업정책과 구조적 모순이 상존하는데다 지난해의 대홍수까지 겹쳐 곡물사정이 매우 어렵다』고 시인했다.그러나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줄어들고 식량사정이 어렵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체제붕괴로 이어질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지적처럼 북한의 체제붕괴 조짐은 당장은 없어보인다.하지만 김정일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왜 늦어지는지에 대한 의문은 증폭되고 있다.지금까지 권력승계가 늦어지는 이유중 하나는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좋지않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연변 한국투자인협의회 한인상회 조흥연 회장은 『김정일의 목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며 『최근들어 김정일이 북한을 방문한 외국의 주요 관리들과 공식적으로 만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주소재지 연길시에서 자동차로 10시간동안 달려 도착한 중국 길림성 림강.압록강을 건너 자강도 중강진이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곳이다.북한 TV를 자주 보는 조선족 배모씨(42)는 『지난 93년 이후 김정일이 TV에서 직접 말하는 장면을 한번도 못봤다』고 전한다. 김일성과는 달리 항일투쟁 경험이 없는 김정일에게 신격화할만한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점도 승계가 늦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로 꼽히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독재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지도자의 카리스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그러나 지금까지의 김정일 행적으로 볼 때 카리스마를 얻을 만한 「업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승계가 차일피일 연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중국 사회안전부 관계자는 『김정일은 카리스마를 얻기 위해 식량난을 적절히 이용한다는 계획을 세우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밝힌다.그 내용들중에는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는 날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주민들에게 가구당 1백50∼2백㎏의 쌀을 한꺼번에 배급할 것이라는 믿기 어려운 얘기도 있다.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 동지가 인민을 위해 쌀을 하사했다」는 식으로 대대적으로 선전,신격화시킨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김정일이 김일성의 3년상을 지낸 뒤 공식 승계하리라는 전망도 있다.이는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공감을 받는 유력한 전망중의하나로 꼽힌다.회령을 방문했다가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는 『김정일의 승계가 지연되는 것은 「인민의 정서를 존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여러번 들었다며 김일성에 대한 추도기간이 끝나면 승계할 것』이라고 말했다.〈림강(중국)=김규환 기자〉
  • 사노맹재건 가담 3명에 집유선고/서울지법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재판장 민형기 부장판사)는 8일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로맹)의 조직재건에 가담,활동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징역 5년을 구형받은 사로맹재건위 인천지역 총책 강희원씨(31·고려대 법대3년 중퇴) 등 3명에게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적용,각각 징역 2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박상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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