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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년만의 귀향’ 趙南起 중국政協 부주석에 듣는다

    조선족 출신인 조남기(趙南起)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政協) 부주석이 26일 국내 언론과는 최초로 대한매일김삼웅(金三雄)주필과 단독 대담을 가졌다.지난 24일 김봉호(金琫鎬)국회부의장 초청으로 61년만에 고국을 찾은 조 부주석을 김 주필이 이날 라마다 르네상스호텔 22층 로열 스위트룸 접견실에서 만났다.조 부주석은 지난 99년 2월 7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김 주필을 만나 한반도문제 등 국제정세와 한·중관계 등에 대한 폭넓은 대화를 나눈 바 있다.조 부주석은 다음 달 3일까지 열흘간의 일정으로 한국에 머문다. ■베이징에서 뵙고 서울서 다시 만나니 반갑습니다.서울에 오신 감회가 남다르실 줄 압니다. 충북 청원군에서 태어나 13살이 되던 39년에 가족 전체가 고향을 떠나 중국으로 옮겨 왔습니다.식민지 치하에서 성까지 바꿔야 하는 치욕을 안고 수탈속에 끼니를 이을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어요.할아버지가 3·1운동을주도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일제의 감시와 탄압의대상이 된 것도 이주의 계기였습니다.지린(吉林)성에 정착해 살다가 1945년일제 패망 후 식구들이 “조국으로 가자”고 했지만 추수를 한 뒤 귀향하려다 38선이 막히면서 중국에 남게 됐어요.먼저 떠난 할아버지와 동생만 한국에 살게 됐지요.지게와 초가집 등 당시 고향 모습이 아련하네요.할아버지의등에 업혀 고향을 떠나던 기억도 어제인 듯 눈에 선합니다. ■지난 25일 청와대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예방하셨지요. 김 대통령을 꼭 한번 뵙고 싶었어요.‘김대중 선생’의 자서전 ‘나의 인생,나의 길’의 중국어 번역본인 베이징 외문(外文)출판사가 펴낸 ‘我的人生我的路’를 읽으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어요.사형 선고와 수십년 동안의 핍박속에도 신념을 버리지 않은 지조와 의지, 금융위기 속에서 한국 경제를 빠르게 회복시키고 남북관계를 개선시킨 경륜과 비전,경제적으로 사상 최고의 외환보유고를 기록하고 있고 외교적으로도 국가 위상은 부쩍 높아진 느낌입니다.암초와 폭풍 속에서 풍파를 이기고 배를 항구에 무사히 닿게할 수 있는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근황을말씀해 주시지요. 지난 98년 3월부터 정협(政協) 부주석으로 활동하고 있어요.각계각층의 의견 수렴과 정부의 자문 역할을 준비하느라 여전히 쉴 틈이 없군요.98년 6월정협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남북의 통일 열망은 같다는 인상이 아직도 깊게 남아 있습니다. ■98년 평양 방문 당시 주요 지도자들을 만나고 광범위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박성철(朴成哲)북한 부주석 등 여러 지도자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통일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어요.방문 직후 중국 정부에 ‘대북 지원의확대 필요성’을 보고했고,중국의 휘발유 지원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평양방문 당시 긴장 완화와 통일을 위해선 ‘삼불(三不)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무력을 사용하지 않고,상대방을 흡수하지 않고,지키지 않고 있는약속들을 이행하는 ‘불이행 불용납’의 실천이 그것입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로 관계 변화가 기대됩니다.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하는 대북 포용정책의 일관된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정상회담에 대한 전망은 어떻습니까. 밥도 한 숟갈 한 숟갈씩 먹을 수 있지요.한 공기의 밥을 한꺼번에 입에 넣고 먹을 수 있나요.시작이 반이란 말도 있지요.남북이 오고가다 보면 믿음이생기고 전쟁 위험도 사라지고 협력도 활발해지는 것입니다. 김 대통령께서도어떤 획기적인 돌파구를 기대하기보다는 조금씩 진전되는 과정에 의미를 더두시는 모습이었는데 그게 옳다고 봅니다.중국 속담에 “뚱보는 한 입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남북관계 발전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 개선에 조 부주석의 개인적인 역할을 기대하겠습니다.중국 정부의 노력도 동북아 평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겠습니까. 한반도문제는 남북한이 당사자이며 주역입니다.자주적인 만남과 협의 속에서만 남북관계는 발전할 수 있습니다.저 개인이나 중국은 이웃이자 조연 역할만을 할 뿐입니다.한반도에 뿌리를 둔 사람으로서 남북 화해와 관계 발전을 남은 삶의 사명으로 알고 노력하고 있습니다.그러나 ‘주체사상의 북조선’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도 기억하셔야합니다. ■중국은 사유재산을 헌법에 보장하는 등 사회주의형 자본주의를 추구하고있습니다.북한도 중국처럼 ‘변화된 사회주의’를 선택할까요. 북한은 최근 미국,일본 등과 관계 정상화를 추구하는 등 대내외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근본적인 변화를 뜻하는 것이냐에 대해선 판단하기이릅니다. 그러나 북한도 변화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고있다는 점은 확실한 듯합니다. 북한도 평화를 ‘수요’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남북 정상회담의 성사도 같은 맥락에서 관찰한다면 시사하는점이 적잖을 것입니다. ■21세기 첫 해의 8월15일에 남북한과 중국,일본 4개국 최고지도자가 ‘평화와 화해’를 주제로 영상(映像)회담을 갖는다면 어떻겠습니까.조 부주석께서이같은 계획을 중국 정부와 북한 당국에 전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좋은 생각입니다.역사적인 의미가 깊군요.실현이 가능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무엇보다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4개국 정상들이 어떤식으로든 현안을 논의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한·중 교류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교류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관계를 전망해 주시지요. 98년 11월 김대중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두 나라간 본격적인 교류시대를열었습니다.김 대통령은 장쩌민(江澤民)주석과 함께 한·중관계를 21세기를준비하는 ‘협력 동반자관계’로 격상시켰습니다.경제 교류에 치중되던 교류를 국방·문화·환경 등 전면적인 협력으로 끌어올린 계기였습니다. ■군사 교류도 주목을 받고 있지요. 지난해 두 나라 국방장관의 상호 방문 실현은 그만큼 신뢰가 쌓였다는 방증입니다.불편했던 남북관계는 한 차원 높은 한·중관계의 발전에 짐이 돼 왔던 게 사실이에요.남북관계 발전도 한·중관계 발전을 가속화할 것입니다.한국의 대통령이 언제 중국의 군사기지를 방문하고 중국 군함을 시찰할 수 있을 것이냐를 묻는 이도 있어요.대세가 어디로 가느냐를 살펴보십시오. ■지난 3월 베이징 등 중국 일부 지역에서 조선족들이 한국인들의 금품을 노린 강력사건이 있었지요.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도 일탈 행동과 범죄는 있게 마련입니다.자칫 한·중관계는 물론 한국인과 조선족간의 신뢰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그러나 한국인들의 조선족에 대한 ‘취업 사기’가 역시 개인적 차원에서 저질러진 불법 행위이듯 이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언론 보도에 잘못된 점이 많습니다.감정만 부채질하고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사안을 과장되게보도하는 점은 반성해야 합니다. ■중국 내 주요 문물의 한국 전시 행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북한도 중국 문물에 대해 전시를 원해요.가끔 남북한의 요구가 상충될 때도있지요. 헤이룽지앙(黑龍江)·랴오닝(遼寧)·지린성 등 동북지역에서 발견된문물에 대해서는 북한에 우선권을 주고 있습니다.반면 상하이(上海) 및 충칭(重慶)임시정부와 관련된 문물에 대해선 한국 전시를 우선한다는 것이 중국입장입니다. ■안중근(安重根)의사가 중국 땅에서 순국하신 지도 90주년을 넘겼습니다.아직 유해도 찾지 못해 애석한 바 큽니다.도움을 주실 수 있는지요. 북한측에서도 도와 달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이 문제는 우선 남북한이먼저 논의해 합의한뒤에나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중국은 99년 10월1일 국가 수립 50주년을 성대하게 기념하면서 세계 속에우뚝선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발전 계획을 소개해 주시지요. 지난 97년 말 열린 15차 공산당전당대회에서 중국은 오는 2010년까지 국민총생산량을 두 배 가량 늘릴 것을 결의했습니다.중국은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발전의 길을 따라 전진해 나갈 것입니다.중국인들은 지금 세계 속의 초강대국으로서 성장을 낙관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습니다. ■중국 내 소수민족 가운데 최고위직에 오른 가장 성공한 인물로 꼽히고 있지요.성공 비결은 무엇인지요. 무엇보다 자신을 잊고 일에 전력투구해 왔습니다.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 학력뿐이었지만 모두 5년 과정인 중국 인민해방군의 군정대학과 후근학원을 최우등의 성적으로 2년 만에 졸업한 것도 이같은 집념과 열성 덕택이었습니다.두번째는 ‘태산도 한 걸음씩 올라야 한다’는 정신을 잃지 않고유지했다고 자부합니다.지난 88년 중국군의 최고지위인 상장 지위에 올랐을때 300만 군인 가운데 45년 이후 출발한 사람은 나 혼자 였어요.중국군의 재정과 병차,공정을 총괄하는 후근부 부장,중앙군사위원 등을 역임하기도 했지요.또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정책도 성공을 도운 중요한 요인이지요. (주위에선 그가 자오즈양(趙紫陽)전 총리 때에는 농업담당 부총리직을 제의받았지만 평생 군인을 하고자 고사한 적도 있었다고 귀띔한다.지금도 중국군의 대부로서 널리 추앙받고 있는 양상쿤(楊尙昆)전 국가주석으로부터 각별한사랑을 받는 등 역대 지도자들의 신임을 한몸에 받아왔다는 평이다.)■회고록 등 집필을 준비하고 있다는데 출판 의사는 없는지요. 군에서 퇴임한 뒤 원래 지난해나 올해쯤 내려고 마음 먹고 준비 중이었지요.그러다 정협 부주석이 되면서 재직 중엔 그와 같은 출판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의해 발표와 출판을 미루고 있습니다.한국어 번역판을 낸다면 대한매일에 맡기고 싶군요. ■가족관계를 말씀해 주시지요.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두었어요.큰아들인 건(健)은 한국의 청와대나 총리실격인 국무원 국장으로 근무 중이고,큰딸영(英)은 미국 워싱턴에서 컴퓨터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둘째딸 연(燕)도 미국에 남편 따라 가 삽니다.막내딸여(麗)는 중국에 있고 남편인 막내사위 리우쥔(劉軍)은 영국에서 박사학위를받고 중국의 컴퓨터 전문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98∼99년 한양대 교환교수로와서 한국에 머물기도 했습니다. 정리 이석우기자 swlee@
  • 새 영화/ 아나키스트

    1920년대 중국 상하이는 이데올로기의 전시장이었다.민족주의 제국주의 무정부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온갖 사상이 숨가쁘게 소용돌이친 질풍노도의공간이자 수많은 혁명가와 창녀가 한데 모여든 모험과 환락의 땅이었다.여권이나 비자 없이 들어가 살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도시,그 화려한 땅은 조국을등진 인간들을 감싸주는 ‘망명자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유영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아나키스트’(29일 개봉)는 바로 이 상하이를배경으로 한 액션 느와르다.허무주의 인텔리겐차 세르게이(장동건),낭만적휴머니스트 이근(정준호),냉철한 사상가 한명곤(김상중),과격한 행동주의자돌석(이범수),소년 테러리스트 상구(김인권)등 5명의 조선인 무정부주의자가이야기를 끌어간다. 아나키스트는 ‘선장 없는 선원의 무리’란 어원의 그리스어 아나키야에서나온 말로 무정부주의자를 뜻한다.노동조합운동, 이상촌건설운동 등도 벌였지만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테러활동에 주력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항일 테러활동의 본산인 의열단에 속해 있다.의열단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아나키스트가 공존하던 독립운동단체로 1919년 김원봉이 중국 베이징에서 조직했다.그 사상적 지주는 단재 신채호였다.이들의공통된 적은 아시아 전체에 침략의 마수를 뻗치던 일본 제국주의자들. 아나키스트들은 실제로 항일운동에서 한몫을 담당했다.하지만 이들의 활동은 잘알려져 있지 않다.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양 진영에게서 모두 버림받은 아나키스트들의 삶,그 역사의 사각지대를 복원하고자 했다는 데 이 영화의 의의가있다. 그러나 ‘아나키스트’는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작품성이 뒷받침되지 못해아쉬움을 남긴다. 진중한 주제의식을 전하기에 시나리오는 밀도가 떨어지고,배우들의 연기엔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을 던진 열혈남아의 초상을 그려낼 만한 카리스마가 없다.댄디즘에라도 빠진 것일까.저마다 멋과 감상으로만 치달아 연기가 겉돈다.특히 비속어로 범벅이 된 이범수의 튀는 연기는 극의 원활한 흐름을 번번이 끊어놓는다. “삶은 산처럼 무거우나 죽음은 깃털처럼 가볍다.”1920년대 격랑의 역사에휩싸인 조선인무정부주의자들의 삶을 표현한 이 말은 영화 ‘아나키스트’에선 왠지 공허하게 들린다. 김종면기자
  • 피노체트 사법처리 되나

    칠레의 전군부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의 면책특권 박탈여부를 심리하기위한 첫 공판이 26일(한국시간) 수도 산티아고 항소법원 법정에서 열렸다. 오는 29일까지 3일 동안 계속될 이번 공판에서 재판부가 칠레 연방법원의후안구스만 판사가 기소한 정치범 19명의 납치 및 행방불명 사건과 관련,배후조종 혐의를 인정할 경우 피노체트는 종신 상원의원으로서의 면책특권을잃게 된다. 피노체트가 면책특권을 잃으면 지금까지 칠레의 인권단체와 군정시절 납치및 고문,살해 희생자 유족들이 제기한 92건의 인권유린 혐의에 대해 본격적인 형사소송 절차가 진행되며,그럴 경우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피노체트는 이날 공판에 불출석한 채 산티아고 근교 라 데에사의 자택에서가족 및 측근과 함께 머물면서 공판결과를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봤다.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이날 성명에서 “이번 공판은 지난 25년동안 피노체트에 대한 사법단죄를 가로막아 온 걸림돌을 제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주의자인 리카르도 라고스 칠레대통령은 이날 칠레 전역이 평온했다고밝히면서 정의가 구현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논평했다.한편 지금까지 2차례연기된 끝에 첫 공판이 열리자 법정 주변에서는 피노체트 지지세력 및 인권단체와 군정희생자 유족간에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불상사가 속출했다. 경찰은 시위현장에서 최소한 8명을 체포했다.21명의 법관으로 구성된 항소법원 재판부는 피노체트 변호인단이 고령과 정신쇠약 등을 이유로 정밀 정신감정 등을 요청할 경우 이를 받아들일 것으로 보이며,이 경우 면책특권 박탈여부에 관한 법원의 결정은 당초 예정보다 훨씬 늦은 5월말쯤 나올 것으로보인다. 피노체트는 지난 98년 영국여행중 스페인 사법당국의 요청으로 영국법원에구금됐다가 1년 6개월여만인 지난 3월초 영국정부의 구금해제 결정으로 풀려나 귀국했다. 멕시코시티 AFP AP 연합
  • “제2의 황석영문학 시작될 겁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이 시대를 헤쳐온 작가 황석영(57)이 출옥 2년1개월만에2권짜리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창작과비평사)을 출간했다.방북사건으로5년간 복역하는 동안 구상된 이 작품은 1980년 이후의 한국사회 변화와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근간으로 하는 세계사적 변화를 배경삼으면서 젊은 두 남녀의 파란많은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1년2개월간 일간지에 연재된 이 작품은 작가가 ‘무기의 그늘’이후 12년만에 내놓은 역작이다.현재 홍성에 살고있는 작가가 25일 책출간을 맞아 상경해 기자를 만났다. ■출간의 감회는. 5년여의 망명,5년여의 징역을 끝내고 출옥했을 때보다 훨씬 더 기쁘다.작가로 되돌아왔기 때문이다.10여년의 우여곡절과 방황에서 놓여나는 기분이며처음 시작하는 이삼십대로 되돌아간 마음이다.제2의 황석영문학이 시작될 것이다.침체되고 서사가 결여된 한국문학이 남성적이며 서사가 풍부한 본격문학으로 새 출발할 수 있도록 힘쓸 것이다. ■작품이 이미 일간지에 연재되었는데. 3,000여매의 연재분 가운데 군더더기 에피소드 300∼400매를 빼는 등 다시손봐 빠듯하게 조였다.연초에 나왔으면 한층 시의에 맞았을 것이다.제목에서암시하듯 이 소설은 유토피아가 있었느냐고 묻는 것이다. 세계와 더불어 한반도가 겪은 유토피아 갈등을 다룬 것이며 그 마지막 불꽃인 우리의 80년대를 정리한 의미를 갖는다.이 책은 국민들의 사회변혁 욕구가 높아지는 현 상황에서 80년대 시절과 386으로 불리는 그 시절의 젊은 세대에 대한 나의 진혼곡이다.나는 당시 기성세대 연배였지만 내 분신들과 같은 그때의 청년들과깊이 연결되었었다. 그래서 광주로 대변되는 80년대 초 학생 세대들이 출옥한 뒤에도 내게 개인적으로 커다란 관심을 표해 주었다. ■감옥에서 오래 구상했다는데. 그렇다. 그런데 구상보다 실제 글이 훨씬 더 잘 풀렸다.감옥에서의 구상엔삶의 디테일이 빠져 있었다.시정에 섞여 사람들과 같이 살 때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된다.또 하나 스스로 놀란 것은 글쓸 때의 노심초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마음을 비웠다고나 할까.이처럼 편안하게 글을 써보기는 40년 문단생활처음이다. 마감 원고질질 끌기로 유명한 나였는데 이번 연재에서는 몇회분을 앞서 갖다주기도 여러번이었다.이같은 변화는 비유컨대 옛날엔 문학과 내가 사랑하는 젊은이들처럼 꼭 부둥켜안고 있는 형국으로 가끔 지겨워질 수있었다면 지금은 성숙해져서 뒤에서 가만히 다가와 나 아직 있어 하는 듯 툭툭 어깨를 치는 그런 모습이다. ■출옥하면서 앞으로 쓸 작품들을 구체적으로 거론해 주목받았는데. 감옥에 있으면서 출옥하면 이런 글을 쓰겠다고 제목까지 임시로 정해 여러사람에게 알린 것이 5∼6개 되고 그중 ‘손님’이란 글을 먼저 쓰고자 했었다.그러나 그 작품은 소설의 양식을 실험하는 것이어서 이번의 ‘오래된 정원’에 밀렸다.‘손님’은 지금 절반쯤 쓰고 있고 다음달부터 연재해서 4∼5개월만에 마무리할 생각이다.1,000매 정도로 얄팍한 소설이다.긴 작품 안 읽기는 세계가 다 마찬가지다.대하드라마 시대는 갔다고 할 수 있다.우리의 80년대는 19세기적 상황이었다.그런 시절이 간 지금 소설의 수법과 관련해서‘영상’을 떠올리게 된다.영화와 영화적 기법에 관심이많다. ■최근의 한국문학에 대해 말한다면. 지금 한국문학은 한국영화 정도의 현실성과 서사조차 없어 보여 안타깝다. 서사가 부족한 점과 관련해 너무 감각적인 경향이 눈에 띤다고 할수 있다.인생은 가볍지만은 않다.경제위기를 맞은 지 2년이 되어 사는 게 그만큼 힘들어졌건만 이에 관해 제대로 된 소설 한 편이 안 나왔다고 할 수 있다.반면영화는 크게 발전했다.탄탄하고 그리고 다양하다.옛날엔 문학에서 영화가 영양분을 취했지만 이제는 반대가 된 듯하다. ■자신의 문학 2기라고 말했는데. 10여년 동안의 어떤 모색들을 현실화한다는 의미이며 양식 실험 및 리얼리즘과 관련이 깊다.현실 생각을 반영하는 사실주의적 내용에다 연희 놀이 등동아시아적 양식을 과감하게 채용하고자 한다.리얼리즘을 우리 식으로 풍부하게 하고자한다.우리는 그간 현실주의를 너무 사실주의적으로 해석해왔다. 객관적 사실주의에서 벗어나는 남미 문학이 서구에서 큰 칭찬을 받고있고 우리의 꼭두각시놀음 같은 것에는 전위적인 요소가 담겨있다.이것들을 끌어내야겠다. 김재영기자 kjykjy@. ◆ 황석영 연보. 1943년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인 1962년 단편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받으면서 등단했고 70년 단편 ‘탑’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이후 소설집 ‘객지’(74) ‘북망.멀고도 고적한 곳’(75) ‘심판의집’(77) ’가객’(78) 등에 이어 84년 장편 ‘장길산’ 10권을 완간했다. 89년 베트남 전쟁을 그린 장편 ‘무기의 그늘’ 2권을 낸 뒤 3월 북한의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초청으로 방북하였고 이후 독일 미국 등지에서 체류했다.93년 4월 자진 귀국하여 방북사건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 98년3월 석방되었다.
  • 베트남 통일 25주년/ (상)현황

    호치민시티(옛 사이공)의 중앙광장 한 편에 혁명지도자 호치민(胡志明)의대형초상화가 걸려 있다.이 초상화 밑에는 ‘공산주의의 위대한 승리는 1,000년을 지속할 것’이라는 구호가 적혀 있다.그의 초상화가 바라보는 광장 건너편에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패션모델 신디 크로포드의 입간판이 서있었다. 지금은 베트남 당국이 통일 25주년 기념을 위해 철거했지만 크로포드는 호치민과 나란히 서서 미국산 고급시계를 사라고 베트남인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호치민의 초상화와 크로포드의 입간판은 베트남전(베트남인들은 미국전쟁이라고 부른다)이 끝나고 남북으로 갈라졌던 베트남이 통일된지 25주년을 맞는베트남의 오늘을 잘 보여준다.미국은 베트남의 적이었고 모든 악의 근원이었다. 베트남 지도자들에게는 지금도 마찬가지다.그러나 베트남 젊은이들에게 미국은 적이 아니라 모든 좋은 것의 상징이다. 현재 베트남의 인구 7,800만 가운데 절반 이상이 75년 통일 이후 태어났다.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만 베트남전쟁을 아는 이들에게 베트남전쟁은 역사의일부분일 뿐이다.30일의 통일기념일도 그저 휴일일 뿐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이들에겐 많은 돈을 벌어 편안한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여전히 사회주의 노선을 고집하는 베트남 지도층과 이같은 젊은이들의 의식차이는 오늘날 베트남이 안고 있는 고민을 대변해준다.전쟁은 베트남에 통일을 안겨주었지만 대신 경제를 파탄에 빠뜨렸다.베트남의 1인당 국민소득은 380달러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다.국민의 80%가 시골에 살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깨끗한 식수와 전기조차도 사치로 여겨질 정도다. 통일 후 사회주의 경제를 도입하고 자본주의의 모든 폐해를 제거하기 위해안간힘을 썼던 베트남은 결국 86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도이모이’(혁신) 정책을 채택했다.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에 문을 연 것이다.95년에는 미국과의 외교관계도 재개했다. 도이모이 정책은 외국인 투자를 불러오는 등 성공하는 듯 보였지만 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여파로 타격을 받았다.95년 9.5%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지난해 4.8%로 뚝 떨어졌고 96년 최고 90억달러에 육박했던 외국인 투자도지난해에는 14억달러로 격감했다.올해는 더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외국인 투자가 감소하는 것은 베트남의 개혁이 외국으로부터 신뢰를얻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베트남은 지난해 미국과의 무역협정을 마무리짓고도 최종 단계에서 조인을 연기했다.무역협정이 조인됐다면 수출도 크게 늘어나고 외국인 투자도 늘어날 수 있었다.그러나 공산당의 사회 장악이 약화되고 국가지배체제가 흔들릴 것을 우려한 나머지 지도부가 방향을 바꾼 것이다.외국 투자가들로선 베트남의 개혁정책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다. 베트남 정부는 사회주의와 자주독립노선을 유지하면서 경제 개방에 의한 경제개발도 계속한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문제는 사회주의와 경제 개방이 양립하기 힘들다는데 있다.개혁을 택할 것이냐 보수를 택할 것이냐 베트남은 지금 생존을 위한 심각한 교차점에 서 있는 것이다. 전쟁은 실제로 25년전 끝났다.그러나 베트남에서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있다.베트남 지도자들은 경제를 통한 미국 등 서방의 침공을 막아야 한다고생각하고 있다.이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지향적이다.그러나 전쟁 후 태어난 젊은이들은 이들과 다르다.베트남이 잘 살기 위해서는 세계경제로 진입해야 한다.그리고 그 열쇠는 바로 미국이라는 것이 젊은이들의 생각이다.젊은이들은미래지향적이다. 과거지향의 지도층과 미래지향의 젊은이들간에 경제를 중심으로 한 서방의 가치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치러지고 있는 것이다. 남과 북의 경제적 격차도 점점 커지고 있다.남쪽은 외국인 투자도 많고 그런대로 번영을 누리고 있지만 북쪽은 상대적으로 경제가 더 어려운 형편이다.베트남 정부는 북쪽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남쪽에의 투자를 외면하고 있다. 남쪽에서는 북부지역을 살리기 위해 남부지역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불만이 쏟아져나오고 있다.통일이 됐다고 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면 남과북은 대립은 계속되고 있고 실제적인 통일은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근면한 국민성,높은 교육열 등 베트남의 가능성만은 무한하다는데많은 베트남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이들은 베트남만큼 잠재적 가능성과 현실과의 괴리가 큰 나라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유세진기자 yujin@. *100만명 아직도 고엽제 후유증. 베트남은 남북이 통일된 지 25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통일전쟁’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남베트남인들의 희생은 철저히통일 베트남 역사에서 잊혀지고 있다.남북 베트남 출신간 갈등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골은 여전히 깊다.10년간 지속된 민족전쟁에 따른 빈곤문제,고엽제 문제와 실종자 및 난민(보트피플)문제,미군과 최근 불거진 한국군의 주민학살 문제 등 당면한 문제가 산적해 있다. 1965년부터 1975년까지 10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300만명의 베트남 국민들이사망했다. 이중 200만명이 민간인이다.북베트남 군인중 30만명이 실종됐고남베트남 군인의 실종자수는 아예 잡혀 있지도 않다.100만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한편 미군은 5만8,000명이 전사했고 2,000여명이 실종됐다.한국군은 4,960명이 전사했다. □민족갈등 종전후 100만명 이상이 베트남을빠져나갔다.40만명 가량은 '재교육‘ 명목 아래 수용소에 보내졌고 140만명은 전쟁으로 황폐해진 베트남남부의 ‘신경제구역’에 강제이주당한 뒤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똑같은 전쟁 참전군인 유족이지만 남베트남 군인의 유족들은 얼마 안되는 연금마저 받지 못하고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베트남의 한 언론인은 “1975년에 지리적으로 남북이 통일됐고 76년에 법적으로 통일국가를 세웠지만 정서적으로 완전히 통일이 되려면 수십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지적,그만큼 남북간 감정의골이 치유되기 어렵다는 점을 인정했다. 아직도 당서기장,총리,대통령 등 3역을 뽑을 때 묵시적으로 지역 안배를 하고 있고 경제특구를 설정할 때도 마찬가지다.이같은 지역갈등은 베트남의 완전 개방을 가로막는 요인중 하나로 지적되고 있다. □고엽제 문제 미군이 베트콩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정글 속에 설치된 근거지를 찾아내기 위해 62∼71년까지 정글에 쏟아부은 고엽제는 약 4,200만ℓ. 베트남 정부는 현재 7,800만 인구중 100만명이 고엽제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밝혔다.고엽제는 암,면역결핍증,기형아 출산 등의 주원인으로 알려져왔으며 특히 최근 미 공군이 발표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고엽제는 당뇨병과 심장질환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고엽제 피해자들에게 미국이 지원을약속했고 1월부터 베트남 정부와 관련단체들이 매달 일정액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보상금 규모가 턱없이 미미해 이들은 적절한 치료는 차치하고끼니를 때우기에도 부족한 실정이다. □난민(보트피플)문제 70년대까지만 해도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찾아 무작정 배에 몸을 실어 망망대해로 떠났던 이들에게 세계는 동정적이었다.상당수가 홍콩,태국,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필리핀,한국 등지의 난민촌을 거쳐 미국이나 캐나다 영국 호주 등에서 재정착했다.그러나 80∼90년대 경제난을 피해 도망친 사람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세계의 시선도 냉정해졌다.이들은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대부분 본국으로 이송됐다.되돌아온 이들을 끌어안고 경제난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가 최대의 과제다. □양민학살 문제 미군은 68년 3월16일 무방비 상태의 미라이 주민 수백명을학살했다.이 사건은 미군의 수치와 은폐의 동의어가 됐고 미국의 여론을 반전으로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최근 들어서는 한국군의 주민학살 논쟁까지 가세했다.베트남 정부는 과거의 문제로 접어두고 경제개발에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입장이다.하지만 언제든 보상문제는 당사국간에 현안으로떠오를 수 있다. □대미관계 윌리엄 코언 미 국방장관이 3월 베트남을 방문,고엽제 피해자에대한 지원을 약속했다.실종자 문제는 양국이 합동조사위원회를 설치해 조사중이다.아직 양국간 전쟁과 관련 어떠한 보상협상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본협상이 이뤄질 경우 어떻게 결론날지 미지수다. 김균미기자 kmkim@
  • 대학가 ‘통일동아리’ 활기

    대학가의 통일 관련 동아리와 학술모임이 활기를 띠고 있다. 이들은 과거 운동권 학생들의 사회주의적 통일론을 답습하기 보다 통일에대비하고 적극 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학생들로부터도 폭넓은 호응을 받고 있다. 지난달 1일 활동을 시작한 서울대 통일 소모임 ‘링고(RINGO·Reunification Inspiring NGO)’는 학생들을 상대로 통일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하루에 5분만이라도 다가올 통일에 대비해 함께 고민하자고 호소하고 있다.지난 8일에는 홈페이지(www.ringo.or.kr)도 개설했다.이들은 통일 비용에 보태기 위해 ‘통일기금 저금통’을 만들어 500원씩 받고 나눠주고 있다.벌써 500개나팔았다. 학생들은 저금통에 모은 돈을 통일기금으로 기증하게 된다. 이 모임 대표 조지영(趙智英·22·여·물리교육과 4학년)씨는 17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 발표 이후 대학생들 사이에도 통일 붐이 일고 있다”면서 “통일분야의 비정부기구(NGO)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동국대 북한문제 학술 소모임인 ‘겨레화합 연구학회’는 남북분단이나한국 근·현대사에 대해 매주 토론을 한다.이 학교 북한학과 영화소모임 ‘플리커(flicker)’도 전공을 살려 최근 한 인터넷업체로부터 북한 영화 관련컨텐츠 제작을 의뢰받아 작업중이다. 명지대 북한학과 학회 ‘형설지공’은 96년 발족한 이후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으나 올들어 다시 신입생을 받았다.학생들은 북한 문화나 정치·경제는물론,북한과 관련된 국제정세 등도 공부한다.지난 10일에는 남북정상회담을주제로 토론하는 등 매주 토론회를 열어 회원들간 공감대를 넓히고 있다. 조선대 동아리 ‘통일21’은 지난 12일 신입생들과 남북정상회담을 주제로토론회를 가졌다.이 동아리는 남북관련 국제정세나 북한 역사 등을 주제로매주 토론회를 열고 있다.국정은(鞠廷恩·22·북한학과 3학년) 회장은 “신입생이 6명이나 가입할 정도로 후배들이 통일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 기쁘다”고 말했다. 조선대 ‘한국정치연구회’와 ‘제3세계’ ‘정치경제연구’ 등 통일과 남북한의 정치·경제 등을 공부하는 학술 동아리들도 최근 조성되고 있는 통일붐에 고무돼 신입 회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
  • 북한학 남북정상회담 ‘특수’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바빠진 사람들이 있다.바로 북한학 연구자들이다.북한학계로선 지난 94년 김일성주석 사망에 이어 두번째 ‘특수’인 셈.북한·통일관련 학계는 벌써부터 학술회의 기획안을 내놓거나 준비중인데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하여 학술세미나가 홍수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북한학’이 독립학문으로 자리잡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80년대 후반 이념서적의 해금으로 북한연구가 시작된 이후 정치,경제,사회,군사학 등의 주변학문에서 분리돼 5∼6년전부터 독립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그러나 통일연구원 전현준 박사는 “북한은 우리 영토의 일부인데다 북한문제 역시 한국문제의 연장으로 인식돼 아직 독립학문으로 자리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동국대에 국내 처음으로 북한학과가 생긴 것은 지난94년.또 소장파 연구자들의 총집결체인 북한연구학회가 탄생한 것은 96년이며,경남대에 북한학대학원이 개설된 것은 그 이듬해인 97년 10월이다.결국독립학문으로서의 북한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인 셈이다. 그러나 북한학계는 노·장·청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폭넓게 포진하고 있다.1세대의 경우 대개 보수·반북적 경향을 보여 왔는데 이는 이들이 대부분미국 유학파인데다 이북출신인 점과 무관치 않다.국내파로는 언론인 출신의양호민씨,김창순 북한연구소장,정용석 단국대 교수,민병천 전동국대 총장,김남식 전평화연구원 수석연구원 등과 해외파로 이정식(펜실베니아대)·고병철(일리노이주립대)·서대숙교수(전 하와이대·현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장)등이 있다.2세대는 주로 미국에서 정치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한 50대들로 양성철 전국회의원,박재규 통일부장관,이상우 서강대교수,곽태환 통일연구원장등.소장연구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3세대는 학과·전공이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이들은 96년 북한연구학회를 결성,북한연구의 다양성을 모색하고 있다. 학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강성윤 동국대 교수를 비롯해 유석렬·서동만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통일연구원 전현준 박사,류길재(경남대)·정해구(성공회대)·강정구(동국대)·김영수교수(서강대) 등. 한편 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냉전논리하의 보수 일색이던 북한학계는 90년대 들어 일대 전환기를 맞았다.세종연구소 이종석 박사는 “사회주의 붕괴와94년 김일성주석 사망 이후 북한의 장래에 초점을 맞춘 연구가 쏟아졌다.그러나 어려운 경제상황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체제에 큰 변화가 없자 이후부터는 보다 차분한 자세로 ‘북한바로보기’로 연구방향이 전환됐다.이 무렵부터 연구자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졌고 영역도 넓어졌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연구자는 줄잡아 200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북한관련 박사학위논문은 98년 2월 현재 140편 정도다.국내에 북한학과가 설치된 대학은 6곳이며,북한을 주제로한 일반·특수대학원은 경남대,동국대를 비롯해 10곳 안팎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연구는 정치학계가 중심이 돼 북한의 외교정책이나 대남전략및군사정책,주요인물 연구가 대종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그동안의 연구가주로 ‘대결’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면 이제는 민족의 동질성 모색에 초점을맞춰야한다는 지적이다.특히 언어,스포츠,예술,고고인류학 등 문화분야에대한 연구가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유영구 중앙일보 통일문제 전문위원은“북한의 신문·방송에 대한 매체분석이 그동안 소홀했다”면서 “언론학계에서 전문적인 매체분석을 통해 북한의 정책동향이나 민족의 동질성을 찾아내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특별기고/ 남북정상 진지한 통일논의 기대

    남북간 정상회담이 오는 6월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에서 개최된다. 1948년남북이 분단된 상태로 각각 정부를 수립한 지 어언 52년 만이다.남북의 화해와 단합,교류협력 그리고 평화와 통일을 진정 기원하고 있는 모든 이가 이합의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고 있다.그동안 정부의 일관된 대북협력 정책과양 정상의 역사적 만남을 성사시킨 훌륭한 교섭성과가 높이 평가된다. 지금의 남북관계에 있어 정상회담은 그 어떠한 형태의 남북협력 사안이나국제적 협의,성명 또는 행위보다 중요하고 필수적이다.그리고 그 성과에 기대한다.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남북간에 상존하는 뿌리깊은 불신의 해소에 가장 효과적이다.북은 남측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그 진의파악에 회의와 혼선이 있었다.남측정부의 ‘외형적 명분’은 햇볕정책 또는 포용정책이나 진의는 미·일 협력 아래 북의 압살 또는 흡수통일을 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이다. 배경에,미국 공화당 등 일부 대북 강경세력의 위협이 있었고 일본의 우익세력이 있었다.대북 정책관계 주요 인사의 잇단 북의‘개방’ 촉구가 있었다. 얼마전까지 대북정책의 책임인사는 재직시 북은 개방해야 하고 개방하지 않으면 붕괴한다고 했다.정부의 ‘관리’하에 있는 모 인사는 공개적으로 ‘앉아서 죽느니 김정일과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광고하고,대량의 출판물을발간 배포하고,그 취지를 국내외 주요 일간지,월간지와 회견,역설했다.이와같은 일들은 남북기본합의서의 남북상호 비방,체제 전복,내정간섭 불가 정신에 위배된 일이다.북이 남측은 사회주의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면 부당한 것과 같은 논리다.이같이 상이하고 혼돈스런 남측의 진의를 정확하게 설명하고 이해와 협력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 바로 최고책임자의 몫이다. 둘째,우리민족 지상의 당면과업인 평화적 통일의 기틀마련에 필수적이다.IMF역경을 겪으면서 통일에 대한 국민적 열의가 급격히 냉각됐다.여기에 겹쳐북의 심각한 식량난 등 경제적 파탄으로,이 시점에서 북과의 통일은 당분간고려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우리와 비교안될 만큼 경제적으로 번영된 서독이통일 후 겪은부담을 한국은 감당할 수 없다는 검증 안된 ‘교훈’이 있다. 지난해 크리스찬 아카데미 주최 학술회의에서 전 서독 대통령 바이츠체커는“한국의 통일은 늦으면 늦을수록 그 비용은 더 커진다”고 했다. 언제든지 즉각적으로 전투행위에 돌입할 수 있는 모든 태세를 갖춘 200여만명의 남북 군사대치상황은 지난 서해해전으로 그 확전 위험성을 명백히 보여주었다.만일 북이 당시,그들의 해안포,미사일 등으로 우리 함정을 격침시켰다면,사태는 확대되어 전면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남북이 같이 안고 있는 많은 어려움의 가장 큰 요인은 분단상태에 있다.분단상태의 해결없이 즉,통일과업의 성취없이 전쟁의 완전한 예방이나 평화공존은 보장되지 않는다.상호군사비의 과중한 지출이나 전쟁위협을 그대로 둔 채 민족의 번영은있을 수 없다. 인구팽창,자원고갈,오염 등의 엄격한 지구환경 속에서,패권행사의 적나라한 물리적 힘의 대결인 국제사회에 있어,떳떳하고 자랑스런 국가역할을 하려면 현재의 분단상태로는 불가능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95년 국가연합,국가연방,완전통일의 3단계 통일론을 제창했다.북은 북대로 80년,일부 전제사항은 있었으나 고려연방제와 상호 10만명으로 감군할 것을 제안하면서 완전한 통일은 다음 세대에 넘기자고 했다.이번 기회에 평화공존을 위한 경제와 문화,예술,군사 등 교류협력에 국한할 것이 아니라,근본문제인 통일방안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을 것을 기대한다. 분단 52년이 지난 지금 통일논의를 ‘서둘러서’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시일이 지날수록 통일여건은 나아진다고 아무도 확언 못한다.지금 우리 세대에의한 통일달성은 1,000년 전 고려가 주동이 되어 달성한 통일에 버금가는,역사에 길이 빛날 민족적 기념비로 기록될 것이다. 孫 章 來 전 말레이시아대사
  • 南北 정상회담/ 부동산시장 전망

    남북정상회담은 국내 건설·부동산 시장에도 많은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경제협력이 가시화되면 호텔 등 관광단지의 개발과 관련된 컨설팅 사업이 각광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우리측에서는 북한과 이어지는 도로나 철도망의 건설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그동안수도권 남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일산이나 파주,포천 등수도권 북부지역의 부상이 예상된다. 그러나 주택부문에 대한 특수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의식주 가운데 주거부문은 북한이 사회주의 체제인 만큼 어느정도 해결이 된 상태인데다가 정책우선순위도 주거부문보다는 부족한 식량난 해결이나 경제활성화 쪽에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유망사업 남북경협이 본격화된다면 북한에서 가장 유망한 사업은 개발사업이다.이는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건설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호텔이나 관광단지 개발 등은 쉽게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보듯이 북한의 외화벌이와 우리기업의 수익창출이라는 두가지 목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데 가장 적합한 것이 관광단지 개발 사업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코리아랜드는 평양시 보통강유역에서 105층짜리 유경호텔을 건립중에 있다.이 사업은 현재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남북경협이 원활히 이루어진다면 다시 활성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남한 부동산시장 활성화 기대 남북경협에 속도가 붙으면 부동산시장에 끼치는 영향은 북한보다는 남한이 더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남북경협으로 SOC수요가 생기면 북한과 단절된 철도나 도로 등의 연결공사에 착수하게 되고이 경우 주변지역 부동산 가격이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수도권 남부에 비해 관심이 덜했던 일산이나 파주,문산,포천 등지가 각광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2,000만평 규모의 생태도시 건설이 추진되고 있는 철원,평강,파주 등지도 눈여겨볼 지역으로 꼽힌다.현재 생태도시 건설은한국토지공사가 용역을 발주해 거의 마무리된 상태이며 이번 남북정상회담계획으로 건설가능성이 커지고 그 시기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북한지역 개발 관련 사업이 본궤도에 오르면 북한 투자와 관련된 부동산투자신탁(REITs) 등 간접부동산 시장의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건설교통부는REITs 제도의 연내 법제화를 추진중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 * 건설업체 움직임. 남북 정상회담 개최 합의를 계기로 북한내 도로,항만 등 대규모 건설사업을 통한 ‘북한특수’가 일어 침체된 건설 경기 활성화가 기대되고 있다.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나 일정 등이 나와 있지 않지만 정상회담후 전격적인 대형 사업계획이 발표될 수 있는 만큼 준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남북관계가 호전되면 북·일 수교협상이후 일본이 북한에 지불할 것으로예상되는 배상금(50억∼100억 달러)과 관련된 시장도 만만치 않다. 일본의 배상은 현금보다는 현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고 이 가운데 상당부문은 사회간접자본시설(SOC)에 투입돼 5조원 가량의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금강산관광 등 현대그룹 대북사업 실무를 맡고 있는 현대건설은 도로,항만등 대형건설사업에서 그간의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또 서해안 공단 조성사업과 해외건설 등 제3국에서 북한인력 활용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LG건설의 경우 LG상사의 대북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정유,항만,도로 등 북한내 사회간접자본 확충사업 진출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LG상사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대림산업도 북한의 인프라구축과 관련된 토목사업 중심으로 대북추진을 모색중이며 특히 항만,도로,교량 등 SOC관련 사업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박성태·류찬희기자 sungt@
  • 南北 정상회담/ 경협 대금결제 어떻게

    남북경협이 순조롭게 이뤄지려면 남북한간의 대금결제가 자유로워야 한다. 경협이 본격적으로 진전되면 제3국을 통한 현재의 방식으로는 몹시 불편하기 때문에 결제방식의 개선 논의가 진행될 전망이다. 현재 남북한간의 대금결제는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 제3국의 외국은행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현대의 금강산 관광 관련 자금의 결제도 홍콩의 한 은행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같은 불편을 해소할 결제방식의 대안으로는 남북 청산계정 방식이 거론되고 있다.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때부터 거론됐던 이 방식은 92년 9월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에 들어있는 남북의 공식 합의사항이지만 그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문제 등으로 논의가 중단됐다. 이는 남북한간에 거래가 있을 때마다 대금을 지불하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남북한의 중앙은행이 1년에 한번 정산하는 방식이다.예를 들어 남쪽 사업자가 북한에 제품을 수출했다면 한국은행에서 원화로 돈을 지급받는다.수입했다면 원화를 한은에 낸다.북한의 사업자도 북한의 중앙은행인 조선 중앙은행에 똑같은방식으로 대금을 결제하면 된다. 이렇게 해서 남북 중앙은행이 거래 차액만큼만 1년에 한번 정도씩 제3국의은행을 이용해 외화로 대금을 지불하면 결제가 끝난다.이 방식은 과거 동독과 서독,사회주의 국가에서 이용했던 방식이기도 하다. 한국은행 김주현(金周顯)북한경제팀장은 “청산계정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널리 쓰여져 온 제도로 북한도 잘 알고 있는 제도”라며 “남북한이 서로 유리한 점이 많기 때문에 북한도 반대할 이유가 없어 도입될 가능성이 많다”고 말했다. 민간은행에서는 한빛은행이 북한의 고려상업은행과 업무제휴를 추진중이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다.제휴가 이뤄지면 두 은행을 통한 기본적인 자금거래가 이뤄질 수도 있다.그러나 결국 최종적인 방식은 북한이 금융을 개방,남북한이 은행지점을 상대 지역에 설치하는 것이다.그러나 국영은행 위주의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손성진기자 sonsj@
  • 페루대선 부정의혹 政情 혼미

    [리마·아테네·트빌리시·사라예보 외신종합 연합] 9일 치러진 페루 대통령선거에서 대규모 선거부정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자 경찰이 시위자들에 최루가스를 발사하는 등 극도의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그리스 총선에서는 집권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이 간발의 차이로 승리했고 그루지야 대통령선거에서는 셰바르드나제 현대통령이 압승을 거두며 재선에 성공했으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방선거에서는 야당이 승리를 주장했다. ■페루/ 당초 출구조사 결과 야당인 ‘페루의 가능성’당의 알레한드로 톨레도 후보가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에게 1.6∼4.8% 앞선 것으로 나타났으나 개표 막바지 후지모리 대통령이 48%를 얻어 41.6% 득표(99% 개표 현재)에그친 톨레도에 역전한 것으로 바뀌었다. “페루는 희망이 가득찬 미래를 향한 새벽을 맞고 있다”며 일찌감치 승리를 선언했던 톨레도측 지지자들은 대규모 부정행위가 저질러졌다며 거리로쏟아져나와 곳곳에서 선거부정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페루 경찰은 “선거부정”을 외치는 한편 돌과 병을 던지면서 페루 대통령궁으로 행진하려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를 발사하며 저지했다.톨레도 후보도 “국민의 뜻을 무시하려는 기도를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며 시위대의 앞장에서 항의행진을 주도했다. 개표 결과가 후지모리 대통령이 앞선 것으로 나타나기는 했지만 후지모리와 톨레도 모두 과반수 획득에 실패,5월말이나 6월초께 양자간에 결선투표가불가피하게 됐다. 국제선거감시단은 선거과정에서 각종 부정이 있었다고 지적하고 결선투표가 실시되면 ‘철권통치’를 해온 후지모리 대통령이 3선 연임을 위해 부정선거를 감행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리스/ 집권당인 좌파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의 승리가 거의 확정됐다. PASOK를 이끌고 있는 코스타스 시미티스 총리는 10일 새벽 총선 승리를 선언했으며,그리스 내무부는 PASOK가 총 300석중 157석,야당인 우파 신민주주의당(ND)이 126석,그리스 공산당(KKE)이 11석,좌파연합당(SYN)이 6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이는 선거전 PASOK160석,ND 103석에 비해격차가 크게 준 것이다. 93% 개표 결과 PASOK가 43.7%를 득표,42.9%를 얻은 ND에 간발의 차로 앞섰으나 그리스 선거제도는 제1당이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제1당에게 의석배분상의 특혜를 주고 있다. ■그루지야/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72) 대통령이 압승을 거둬 재선에 성공했다. 중앙선거위원회는 81%의 개표 결과 셰바르드나제가 80%의 지지를 얻어 그루지야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출신인 쥼베르 파티아슈빌리 후보(17%)를 압도적 표차로 눌렀다고 밝혔다. 셰바르드나제의 경쟁자였던 파티아슈빌리 후보는 투표 마감 직후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이번 선거가 관권선거와 선거부정으로 얼룩졌다고 비난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야당인 사회민주당(SDP)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다.카를로 필리포비치 SDP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서,SDP가 수도 사라예보와 투즐라,제니차 등지에서 50% 이상 득표,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제1당이 된 뒤 다른 민주 정당들과 연합해 정권을 인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보스니아 동부의 세르비아계 지역에서는 내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의 세르비아민주당(SDS) 소속 강경파 인사들이 압도적 지지를 얻은 것으로알려졌다. 서방 국가들은 집권 이슬람 정당인 사회민주행동당(SDA)이 부패한데다 비(非)이슬람계 난민의 귀환을 저지하고 있기 때문에 다민족 정당인 SDP의 승리를 희망하고 있다.
  • 美 UC버클리大 ‘21세기 북한체제’ 세미나

    미 UC버클리대 동아시아연구소 한국학연구센터(소장 이홍영교수)는 8일 ‘21세기 북한 체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갖고 현 북한체제의 실상과 전망을 진단했다.저명한 한반도 전문가인 로버트 A.스칼라피노 UC버클리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은 북한은 현재 김정일(金正日) 당총비서가 당정을 확고히장악하고 “현대 기술사회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는견해를 피력했다.다음은 주요 발표 요지. [로스앤젤레스 연합] ◆로버트 스칼라피노(UC버클리대 명예교수). 김정일 당총비서가 정권유지에 자신감이 생긴듯 최고인민회의에 예산 발표권을 부여하는등 제도화 및 법제화를 꾀하고 있다.남북간 정치적 화해가 성사되기에는아직 거리가 있으나 경제 문화 스포츠 교류는 활발해질 전망이다. 한반도 주변 열강은 모두 북한에 대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를바라고 있다.현재 북한의 내부붕괴 조짐은 없으며 지배 주체가 군부에서 민간인으로 바뀔 전망은 당분간 없다.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확대(브래들리 뱁슨 세계은행 수석고문)북한은 국제사회와 관계개선으로 21세기를 시작하고 있다.이탈리아가 지난 1월 서방선진 7개국(G7)중 처음으로 북한과 수교한 후 스웨덴,프랑스,영국등 많은 유럽국가와 호주,캐나다,필리핀 등 환태평양 국가들의 방문과 회담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일본의 긍정적인 대북 관계 정상화 논의와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베를린 선언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런 움직임들은 북한 지도층이 수십년간의 고립후 북한을 국제사회에 통합시키기로 결정했음을 시사한다. 북한 정부는 앞으로 대외경제협력 확대를 위해 다음 3가지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 첫째 외국인 투자자와 무역 파트너를 유치하기 위해 환율제도와 금융시스템,대외부채,법률문제,관리와 노동관행 등 각종 장애물을 제거해야 한다. 특히 도로 전력 상하수도 통신은 민간투자를 유치하는 데 필수적인 사회기간시설이다. 김대중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통해 정부당국간 차원에서 북한의 사회간접자본확충 의지를 표명한 것은 매우 의미있다. 둘째 개발원조국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배워야한다.북한이 정부개발원조(ODA)를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가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가입하려면 국제금융기관들의 대주주격인 미국과 일본의 지지를 얻어야하고 이를 위해선 전제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셋째 확대된 대외경제활동의 결과를 잘 관리해야 한다.정책결정과정에서의내분과 미숙함은 투자자들과 원조국의 불만을 사고 북한 철수를 야기할 수있다.수익의 정당한 배분과 부패근절,외국인 접촉 증가에 따른 ‘문화오염’과 국내정쟁 문제에 대한 유연한 대처 등도 요구된다. ◆북한의 농업위기(히더 스미스 호주국립대 교수)북한 농업위기의 가장 큰요인은 80년대말 구 소련 붕괴 등 사회주의 블록 해체로 농업에 대한 투입량(input)이 급감한 것이다.사회주의 무역 파트너 상실로 관개와 농업화학공장,전력공급 등에 필요한 석유,비료,기계부품 수입이 감소함으로써 북한의 농업운영이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또 집단농장체재의 실패로 기술개발이 이뤄지지 못하고 생산잠재력을 억제시킨 것도 농업위기를초래한 주 원인이다. 물론 북한 당국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몇년간 계속된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도 위기의 요인이 될 수 있으나 이는 2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북한이 외국이나 국제구호단체들로부터 비료와 기름을 대규모로 무상 원조받는 것은 식량난과 에너지난을 임시로 완화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북한이 장기적으로 식량안보를 이룩하려면 경제구조를 비교우위 관점에서 조정하고 국제시장과 상호교류를 증진시켜야 한다.
  • 총선… 大選… 주말 지구촌 달군 유세전

    8일 보스니아 지방선거를 필두로 9일 페루와 그루지야 대선,그리스 총선 등주말 지구촌 곳곳이 선거로 부산했다.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3선에 도전하는 페루대선에서는 원주민 출신 알레한드로 톨레도후보의 강력한 추격으로 결선투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그루지야에서는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이 무난히 재선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다. ◆페루 9일 대선의 쟁점은 알베르토 후지모리 현 대통령의 3선연임이냐,최초의 페루 원주민 출신 대통령의 탄생이냐 여부.당초 후지모리 대통령의 무난한 당선이 예고됐다가 각종 여당측 선거부정이 밝혀지면서 인디오 원주민 피를 물려받은 알레한드로 톨레도 ‘페루의 가능성’당 당수쪽으로 민심이 급격히 기울고 있다.8일 여론조사 결과는 후지모리 46.3%,톨레도 41.7%로 어느후보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해 6월 결선투표로 갈 가능성이 유력하다. 그러나 후지모리측이 안데스산맥 및 아마존 정글 등지에서 결과조작에 나설 경우국제 선거감시기구도 속수무책일수밖에 없어 벌써부터 정국불안 심화가 우려되고 있다. ◆그루지야 별다른 쟁점이 없는 가운데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대통령(72)의 재선여부가 관심을 끌고 있다.셰바르드나제 대통령외 대안은 없다는 분위기가 주조다.구소련 외무장관 출신인 현직 대통령은 고령에도 불구,5년임기재임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불태워 아슬란 아바쉬제,텐기즈 아산디체 등 두후보를 자진사퇴시키기도 했다.현재 줌버 하티아쉬빌리 구소련 공산당수가셰바르드나제 아성에 도전중이다.국제요원 150여명의 선거감시아래 300만유권자가 투표한다. ◆그리스 300석의 국회의원을 새로 뽑는 9일 총선에서 집권 좌파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당(PASOK)과 제1야당인 중도우파 신민주주의당(ND)간 정권교체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2주전 최종여론조사 결과는 PASOK의 0.4% 리드로박빙의 승부를 예고중. PASOK는 지난 90∼93년 ND에 한차례 정권을 내준 것을 제외하고 81년부터 줄곧 집권해왔다. 불법이민규제,경제난 해소 등 양당 정책이 대동소이한 가운데 농촌표가 판세를 가를 것으로 예측,코스타스 시미티스총리(64)가 이끄는 PASOK는 각종농업장려금·사회보장정책 등으로 농심공략에 부심해왔다.반면 코^^스 카라만리스(43)당수의 ND는 11% 고실업률 등 집권당의 농정실패를 맹공,상당한성과를 거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투표가 의무인 그리스에서 1,020만 국민가운데 유권자는 900만여명이다. ◆보스니아 8일 선거는 지난 92∼95년 내전 이후 두번째 치러지는 지방선거.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감시아래 250만 유권자가 145개 지자체 의원들을 뽑는다.서방측은 이번 선거가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 회교도로 갈려 20만인명피해를 낸 내전 후유증을 치유할 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투표행태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예측돼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계는 97년 첫선거 승리지역을 각각 다시 차지할 공산이 크다.일부 크로아티아계 도시에서 세르비아계의 선거조작을 우려한 보이콧이 발생하기도 한가운데 수도 사라예보에서는 투표율 70∼80%를 기록중이다.선거결과는 10일나올 전망이다. 손정숙기자 jssohn@
  • 쿠바 초대 ‘퍼스트 레이디’ 폴리타 그라우 여사 사망

    [마이애미 AP 연합] 쿠바의 초대 퍼스트 레이디로 미국중앙정보국(CIA)과 공모해 피델 카스트로 정권 타도운동을 벌였던 폴리타 그라우 여사가 22일 84세를 일기로 숨졌다고 그의 딸이 23일 밝혔다. 출혈성 심장질환을 앓다가 마이애미의 요양원에서 숨진 그의 유해는 유언에따라 고국인 쿠바에 안치될 예정이라고 딸이 말했다. 1915년 아바나에서 태어난 그라우 여사는 쿠바 초대 대통령인 삼촌 라몬 그라우산 마르틴으로부터 퍼스트 레이디로 지명됐으며 59년 카스트로 사회주의정권이 들어서자 CIA와 공모, 카스트로 정권 전복운동을 벌여 14년간 옥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 [외언내언] 북한복덕방

    60∼70년대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 성업을 이뤘던 직업 가운데 하나가 복덕방(福德房)이었다.전국토 개발 바람을 타고 가옥이나 토지거래의 중개영업이번창했으며 복덕방의 무분별한 투기행위가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83년‘부동산중개업법’과 85년‘공인중개사자격시험’이 시행됨으로써투기의 산실로 한때를 풍미했던 복덕방 간판이 사라졌고 전문적인 부동산 중개업으로 바뀌었다.현재 9만6,000여명의 부동산 공인중개인들이 전국적으로영업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도 주택거래를 알선하는 복덕방이 생겨나 관심을 끌고있다.평양을 비롯해 지방도시에서 정식 간판없이 주택 암거래를 중개하는 복덕방 영업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재미학자 K씨가 LA타임스에 기고한 내용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주민들 사이에주택매매 행위가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북한에서는 모든 주택이원칙적으로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개인에 의한 주택 건축이나 매매행위는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난이 가중되던 90년대부터 주택거래가 조금씩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식량을 얻기 위해 헐값으로 집을 사고 파는 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고 한다.주민들은 식량만 얻을 수 있다면 살던 집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으며 지방의 경우 보통 방 한칸에 부엌 달린 집이 감자 1.5t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주택매매가 보편화되면서 거래절차도 단순화되고 있어 집값이 정해지면 사고 파는 사람이 해당지역 인민위원회 주택배정과와 분주소(파출소)에서 문서상의 거주지를 옮겨 적는 것으로 끝난다.물론 여기에는 술·담배 등 뇌물이 뒷거래되며 최근에는 통제가 약해 굳이 그런 형식을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통제가 심한 평양시의 경우 공개적인 주택매매보다 단순한 교환수단으로 이용되며 아파트 한 채의 경우 보통 미화 500달러를 호가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북한에는 먹을 것을 구하려고 집을 비운 채 몇달씩 다른 지방으로 떠돌거나 일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 경우가 많다 보니 지방 어디를 가도폐가나 빈집을 많이 볼 수 있다.아직은 주택매매가 공개적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으나 통제가 약한 틈을 이용해 불법 주택매매 행위가 성행하고 복덕방이 늘어나는 추세는 북한의 경제활동 구조 자체가 변화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중앙집권적 사회주의 통제경제체제 하에서 자행되고 있는 개인간 주택거래는 지하에서 자생하고 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원리의 표출이라는 점에서북한 변화의 필연성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북한내 복덕방의 등장은 장마당(암시장) 확산과 더불어 현행 북한경제 구조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앞으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장청수 논설위원
  • [대한광장] 중국과 타이완의 이혼(?)

    마오쩌둥과의 내전에서 패한 장제스가 국민당 간부·군대와 200만명에 이르는 난민을 이끌고 대만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국민당의 집권은 반세기가 지난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오늘 대만에서 총통선거가 실시됨에 따라 정권교체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특히 각 후보들의 대륙정책 차이점 때문에 선거 이후 전개될 양안관계가 초점으로 부각하고 있다.과연 대만인들은본토와의 관계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중국의 대만 독립에 대한 입장,대만의 중국 통일에 대한 입장과 중국의 대만에 대한 무력행사 가능성을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중국의 대만 독립 불가 입장은 확고하다(三不政策).96년 첫번째 총통선거에서도 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무력 시위를 벌임으로써 중국은 대만을 위협한 바 있다.당시 미국은 항공모함을 파견함으로써 내정간섭을 중지하라는중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민당의 롄쟌(連戰),민진당의 천쑤이볜(陣水扁),무소속의 쏭추위(宋楚瑜)후보는 양안관계에 대해 각각‘양국론’ ‘대만독립론’ ‘준국제관계론’을견지하고 있다.중국은 대만 독립을 주장하고 있는 천 후보에 대한 반감을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대만의 안정을 볼모로 낙선을 위한 영향력 행사를 꾀하고 있다.중국은‘하나의 중국 원칙과 대만문제’라는 백서를 통해 대만이무기한 통일 협상을 연장한다면 무력 사용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표시한 바있다. 대만의 안정에 호소하고 중국과의 대화에 가장 적극적인 후보가 쏭추위이고,명통암독(明統暗獨)을 염두에 두는 롄쟌은 표면적으로는 중국을 거스르지않고 있다.이에 따라 중국은 부패 혐의로 인기가 급락하고 있는 쏭추위 대신당선이 가능한 차선책으로 롄쟌 후보를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대만 거주인들의 본토와의 통일에 대한 태도는 어떠한가.대만인 대부분은 굳이 중국과 통일이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한다.중국 본토보다 월등한경제력을 보유한 대만은 사회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중국에 대해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통일이 되면 본토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사회간접시설에투자하기보다는 현금을 보유하는 등 그동안 통일에 대한 애착을 보이던 대만인들이지만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그동안 너무나도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고 해도 사회주의와의 불안한 동거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정서를 무시할 수없다.이런 대만인의 정서를 파고 들고있는 것이 천쑤이볜의 선거전략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대만 독립 입장에 대해 실질적인 무력 침공으로 대응할 것인가.79년 중국은 베트남을 응징하겠다는 명분을 앞세워 침공했다가 망신만당한 경험이 있다.무엇보다도 육군 위주의 중국이 전쟁 발발시 제공권에서대만에 대해 우위를 보일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물론 미국의 참전을 불러일으켜 중·미관계가 악화 일로로 치닫게 되는 상황 또한 중국은 원하지 않을것이다.동북아 안정에 심대한 위협이 되고 이 지역의 일본과 남·북한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한다면 중국은 쉽사리 전쟁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중국이 무력으로 전면전까지는 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사일 발사,해상훈련,삼군훈련 등으로대만을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은 충분히 할 수있다. 중국의 전인대(全人代)에 참가하고 있는 주룽지 총리에게 질문이 주어졌다. 대만 독립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은 마치 이혼하고자 하는 아내에게 무력사용을 해서라도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내용이었다.혼인법과 국제법이 다르다는 것을 내세운 주 총리의 답변이 재치가 있다고 느껴지기도 하지만,싫다는 파트너를 억지로 붙들기 위해 어떤 매력을 발할 수 있느냐가 문제로 남는다. 육체적(경제력)으로,정신적(중화인)으로 아무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서 도망칠 기회만 노리는 별거 중인 아내를 어떻게 붙잡아둘 수 있겠는가.중국으로서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강압적인 자세가 가져올 사랑의 상처를 감내할 수 있는 상호간 관용의 한계를 정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안인해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국제정치학
  • 통일운동가 육필수기 20년만에 햇빛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21년동안 감옥살이를 한 한 통일운동가의 육필수기가 탈고된지 20여년만에 출간됐다.저자는 민족자주평화통일 중앙회의 정책실장 최선웅씨(58).그는 최근 자신의 통일운동역정을 실록소설 형식으로 쓴‘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펴냈다(도서출판 두리). 고3시절 4·19에 참가한 것을 계기로 역사의식에 눈뜬 최씨는 부산 동아대정치학과 2년 중퇴후 한때 공화당 청년부 산하조직 청년사상연구회 중앙총회 선전부장을 지냈다.그 후 북쪽의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과 함께 통일문제를협의하기 위해 67년 10월 일본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다가 7개월만에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이듬해 ‘조총련간첩단조작사건’에 연루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최씨는 78년 12월 만기 출소할 때까지 대전형무소 특별사에서복역했다.그는 교도소에서 강제전향시키는 과정에서 자행된 반인륜적 만행을 고발하는 책을 준비했으나 이를 펴낼 출판사를 찾기가 쉽지 않아 10여년동안 자필원고를 보관하고 있다가 86년 일본의 한 출판사를 소개받아원고를넘기려다 발각되어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11년간을 감옥에서 보냈다. 원고내용중 자신의 방북행적과 교도소내의 인권탄압 실상을 고발한 부분이문제가 된 것이다. 96년 12월 출소한 최씨는 서적외판원과 강남일대 아파트촌을 상대로 자원재활용 강의,폐자원 수거 등으로 생계를 꾸려왔다.첫 부인과 사별한후 지난 98년에 재혼한 최씨는 “오랜 감옥생활 속에서도 조국의 미래를 낙관하며 기쁜 마음으로 기다려왔다”며 “앞으로 정당활동을 통해 통일운동을 계속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지구촌 反인륜 범죄] 실태와 처벌

    인권이 민주사회의 최고 가치라는데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그러나 지난 세월 인간에 대해 같은 인간이 저지른 무참한 반인륜 범죄에 대한단죄는 여전히 부족하다.이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정의는 바로 설 수 없다.최근 귀국한 칠레의 전독재자 피노체트에 대한 처벌 여부는 이런 점에서 반인륜 범죄 단죄를 위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크메르 루주와 칠레,보스니아 및 코소보,동티모르 등에서 자행된 반인륜 범죄에 대한단죄 상황을 짚어본다. ◆칠레=전 독재자 피노체트의 귀국에 따라 그의 반인륜 범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칠레 내의 행보도 빨라졌다.칠레의 후안 구스만 판사는 종신직 상원의원으로서 피노체트에 부여된 면책특권을 박탈해 피노체트가 과거 인권을 유린한 죄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을 산티아고 항소법원에 요청했다.이는피노체트를 재판대에 세워 사법처리하기 위한 첫 조치로 분석된다. 면책특권이 박탈되면 그가 집권한 73∼90년 당시 발생한 수천건의 의문사사건과 관련,그동안 제기된 68건의 소송에 대해 본격 신문할 수 있다.세계인권기구들에 따르면 피노체트의 집권 18년 동안 반정부 민주인사 3,000여명이 고문·살해됐고 10만여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보스니아와 코소보=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저질러진 ‘인종청소’는 90년대 최악의 반인륜 범죄였다.그러나 이에 대한 단죄는 기대보다 훨씬 느리게진행되고 있다. 93년 전범재판소가 열린 이래 7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이제까지 기소된 사람은 93명에 불과하다.그나마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세르비아계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 등 주요 인물들은 여전히 법망을 피해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전범 재판은 지지부진한데도 그나마 전범 재판결과에 대해 18명이 불복,항소해 놓은 상태다. 92년 보스니아 이슬람정부가 유고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면서 촉발된보스니아 내전은 ‘인종청소’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을 낳았다.92∼95년 내전기간중 양측에서 25만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만명 이상의 난민이 발생했다. ◆동티모르=동티모르의 비극은 74년 포르투갈이 동티모르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자 인도네시아가 강제합병하면서 비롯돼,동티모르인들이 독립투쟁을 벌이는데 대해 수하르토의 인도네시아가 무참히 짓밟는 과정에서 22만여명의동티모르인들이 인도네시아 군부와 민병대의 총칼 아래 목숨을 잃었다.동티모르 분쟁을 사주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은 무너졌지만 99년11월 새로들어선 압둘라만 와히드 정부는 아직도 책임자들에 대한 단죄 작업을 진행시키지 않고 있다. ◆ 캄보디아=75∼79년 집권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살상극은 ‘킬링필드’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있다. 당시 정권은 자신들의 급진 사회주의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무차별학살,인구 4분의1에 달하는 170만명을 처형했다.97년 크메르루주 지도자 폴포트 사망,98년 키우 삼판 등 지도자 투항 등이 잇달면서 국제사회는 책임자 전범재판회부를 통한 과거청산을 요청하고 있으나 현 훈센 정권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김규환기자·손정숙기자 khkim@. *코소보戰犯 처리 어떻게. 보스니아와 코소보 내에서 벌어진 반인륜 범죄의 단죄는 대단히 지지부진하다. 옛 유고연방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반인륜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전범 체포와 구형 등 처벌은 자금난과 전범 체포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걸림돌을넘지 못하고 있다. 국제연합(UN) 등 국제사회는 옛 유고연방에서 자행된 학살,고문,강간 등 반인륜범죄 단죄를 위해 93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827호에 따라 유고전범재판소를 마련했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유고전범재판소(ICTY)는 지금까지 제네바협약과 전쟁관련 관습법에 따라 반인륜 범죄 혐의로 93명을 기소했을 뿐이다.이중 7명이 자연사 등의 이유로 숨졌고 18명은 무(無)혐의 처리됐다.36명은 재판을계속 진행중이고 3명은 체포돼 형이 선고됐다.크로아티아군 장성 티호미르블라스키치는 코소보 분쟁 당시 방화 등의 혐의로 45년형을 선고받았다.93년 전범재판소 개소 이후 최고형이다.그러나 재판 결과에 대한 불복도 적지 않다.12명의 전범이 재판에 불복,항소했다.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미국 등국제사회는 기소자 체포를 위해 열심히 뛰었다.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과 드라골류브 오야다니치 유고연방 국방장관 등 30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는 상태다.하지만 그간 체포된 것은 단 6건에 불구하고 자수는 12건에 그칠만큼 실적은 보잘 것없다. 전범들의 체포와 기소가 더딘 것은 전범들이 유고내 친정부 세력들의 은거지에 칩거하거나 아니면 독일 등 인접국가로 ‘가명’을 이용,피신해 이들의 신원 파악이 어렵기 때문이다. ICTY의 인력 부족과 자금난도 전범 체포와기소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ICTY의 판사는 재판장 1명을 비롯,14명에 불과하다.물론 68개국에서 파견된832명의 인력이 지원하고는 있지만 힘에 겨운 실정이다.예산도 연간 1억달러를 밑돈다.대부분 인건비로 충당돼 수사비와 전범 체포에 드는 돈은 턱없이모자란다. 박희준기자 pnb@
  • [인물 포커스] 한국인으로 첫 베트남훈장 받은 조원일 대사

    [하노이 연합]조원일(趙源一) 주베트남대사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0일오전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여하는 우의훈장을 전수했다. 92년 12월의 한·베트남 수교이래 8년만이며 외국인으로서는 스웨덴과 쿠바대사에 이어 3번째다. 베트남 외교부에서 훈장을 받은 조대사는 “베트남과 한국이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것”이라고 훈장의 의미를 평가했다.다음은 조대사와의 일문일답. ◆소감은. 25년전만해도 적대관계였던 베트남으로부터 훈장을 받으니 한국민 전체에 수여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 뿌듯하다. ◆훈장을 받게 된 이유라면. 지난해 베트남 중부지방 물난리때 외국대사로 가장 먼저 달려가는 등 베트남이 어려울 때마다 꾸준히 도왔다.97년 부임초기 우리 기업들과 베트남 근로자간 노사분규가 잦을때 세미나 등으로 수습해준 데도 고마워하는것 같다. ◆양국간 공감대를 어떻게 마련했나. 특수관계를 감안,정치·경제보다 문화와 인적교류에 신경썼다.코베트(KOVIET) 등 민간단체의 인적 물적 지원,문화예술단 교류,한국드라마 상영,언론기관간 상호 홍보 등이다. ◆베트남에서 못다 한 일은. 미수금 해결 등 사소한 문제며 후회없이 3년 임기를 보냈다.베트남이 보다과감한 개방정책으로 선회,한국과 더욱 활발히 교류하기를 바란다. ◆베트남 한국인들에게 당부할 말은. 베트남인들은 무작정한 물적지원보다 인간적 상호이해를 원하고 있다.계산기만 두드리지 말고 베트남인들과 인간적 관계를 먼저 맺으라.
  • “21세기 지구촌, 여성들 손으로 이끌자”

    “21세기의 지구촌은 여성들의 손으로 이끌자” 세계 여성들이 총궐기했다.스웨덴 등 극소수 나라를 제외한 세계의 여성들은 새천년을 맞아서도 여전히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남성에 비해 ‘약자’신세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여성들은 8일(현지시간) 제 92회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권익보호 및 증진을 위한 여성 대행진’을 벌이며 우먼 파워를 과시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성(性)의 평등과 국제기구에서 여성의 영역 확대를 촉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성명을 발표했다. 세계 여성의 날은 1911년 독일 사회주의 여성들이 여성의 귄리보호와 증진을위해 제정했다. 김규환기자 kh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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