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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세상의 아픔을 품은 의사들/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세상의 아픔을 품은 의사들/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의사는 아픈 사람을 고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역사 속에서 몇몇 개인을 넘어 사회의 아픔을 고치고자 고군분투한 의사들을 만난다. 독일의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 1965), 캐나다의 노먼 베순(1890~ 1939), 아르헨티나의 에르네스토 게바라(1928~1967)가 그들이다. 슈바이처는 루터교 신학자이자 목사이면서 음악가이기도 했다. 다방면에서 재능을 발휘한 그는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역사적으로 늘 문제가 돼 왔던 알자스 출신이다. 실제로 그는 독일인으로 태어나고 성장했으나 44세가 되던 해인 1919년부터는 프랑스인이 됐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패전하면서 알자스가 프랑스령이 됐기 때문이다. 종교적으로도 알자스에서는 다양한 개신교와 가톨릭, 유대교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슈바이처는 특정한 민족이나 종교적 정체성에 매몰되지 않고 다양한 정체성을 존중하는 보편적 세계시민으로 거듭났다. 가난한 자에 대한 관심, 평화주의에 대한 열망은 그를 아프리카로 이끌었고 그는 가봉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숭고하고 희생적인 의료활동을 전개했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서 정열적인 활동을 하고 있던 1920년대에 캐나다에서는 노먼 베순이라는 젊은 의사가 결핵 치료법을 찾는 데 열성을 다하고 있었다. 결핵 문제가 빈곤 문제와 직접 연관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사회문제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사회주의 정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공황으로 피폐해진 민중들을 돌보던 그는 1930년대에 국적과 상관없이 세계적인 분쟁 지역에 뛰어들어 의료 봉사활동을 전개했다. 파시스트 프랑코의 쿠데타가 발발한 에스파냐에서, 또 군국주의 일본의 침략을 받고 있던 중국에서 그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의료활동을 펼치다 안타깝게 사망하고 말았다. 에스파냐 내전을 피해 아르헨티나로 망명한 공화주의자들과 친하게 지냈던 의사 에르네스토 게바라에게는 같은 이름의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은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의대로 진학했지만 극단적인 빈부격차에 시달리던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현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람을 고치기 전에 사회를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쿠바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체 게바라’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는 쿠바에서의 안정적인 삶을 버리고 콩고와 볼리비아에서도 혁명 운동을 전개했지만, 소련과 갈등을 빚어 버림받고 결국 전사했다. 정치적으로 실패한 삶이었지만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을 위한 그의 대의는 아직도 전 세계에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이뿐이겠는가. 자신의 목숨보다도 보편적인 인류애를 중요하게 여기며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의료활동을 실천한 의사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남태평양을 비롯한 저개발 국가의 빈곤 환자에 대한 의료활동으로 ‘아시아의 슈바이처’라 불린 이종욱(1945~ 2006), 신부이면서 의사로서 현 남수단 톤즈에서 헌신적인 의료활동을 전개한 이태석(1962~2010)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이 보여 준 보편적인 인류애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와닿는다.
  • “中 공산당 3중전회 빨라야 12월초 개최…내년으로 연기될수도”

    “中 공산당 3중전회 빨라야 12월초 개최…내년으로 연기될수도”

    중국 지도부가 정책 우선순위와 방향을 제시할 제20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20기 3중전회)가 빨라야 다음 달 초에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3일 전망했다. 오는 15일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 준비와 경제 회생책 모색 등으로 시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매체는 “지난달 말 당 중앙정치국 월간 회의에서 3중전회 일정이 발표되지 않아 ‘올해 3중전회가 평소보다 늦게 개최될 것’이라는 신호가 분명해졌다”며 “일러야 다음 달 초에나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당 중앙위원회는 5년마다 열리는 당대회 사이에 7번의 전체회의를 갖는다. 3중전회는 이 가운데 3번째 회의라는 뜻이다. 보통 1·2중전회에서 지도부를 선출하고, 3·4·5중전회에서 구체적인 정치·경제 정책을 마련한다. 6·7중전회에선 사상을 정비하고 다음 당대회를 준비한다. 3중전회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새 중앙위원회를 꾸린 이듬해 10∼11월에 열린다. SCMP는 “(개혁개방이 본격화한) 1978년 이후 3중전회는 2018년을 제외하고 10월이나 11월 초에 열렸다”고 전했다. 다만 직전 회의인 19기 3중전회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헌법 개정 준비로 예상보다 3개월 이상 미뤄진 2018년 2월에 열렸다. 익명을 요구한 베이징의 한 정치학자는 “3중전회 연기는 국내외적으로 적절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뜻한다”며 “시 주석도 종종 회의 개최에 유연함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는 중국 개혁·개방 45주년이다. 그러기에 이번 3중전회에서는 그동안의 경험을 정리하고 미래를 위한 새 전략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5’나 ‘0’으로 끝나는 해를 정주년(꺾어지는 해)이라고 해서 각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3중전회 연기는 친강 전 외교부장과 리상푸 전 국방부장 낙마 등 예상치 못한 고위직의 인선 변화 때문이기도 하다고 SCMP는 지적했다. 친 전 부장은 홍콩 TV 아나운서와의 불륜 문제로, 리 전 부장은 군수 납품 비리 혐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당국은 아직까지 두 사람의 해임에 관해 설명하지 않고 있는데, 둘은 여전히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남아있다. 당 헌법에 따르면 중앙위원회 위원에 대한 징계는 연례 전체회의에서 결정돼야 하기 때문에,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3중전회에서 이들의 거취가 완전히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CGS-CIMB 증권의 쑹성운 이코노미스트는 “중국 부동산 분야 등에 대한 우려가 크기 때문에 3중전회에서 중국 경제를 뒷받침할 조치들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싱크탱크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닉 마로 분석가는 “놀랄만한 정책 발표는 있을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런 목소리들이 대부분 무시돼 왔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서울광장] 리커창 사망과 중국 개혁정치의 종언/오일만 세종취재본부장

    [서울광장] 리커창 사망과 중국 개혁정치의 종언/오일만 세종취재본부장

    “사람이 하는 일을 하늘이 본다. 푸른 하늘에도 눈이 있다.”(人在干 天在看 蒼天有眼) 최근 사망한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총리가 지난 3월 공식 송별회에서 인용한 말이다. 제갈량이 북벌에 앞서 촉나라 관료들에게 남긴 말로 ‘삼국지연의’에 담겨 있다. ‘하늘이 보고 있으니 의인은 정진하고, 악인은 악행을 멈추라’는 뜻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진핑에 대한 경고라는 해석을 낳기도 했다. 리 전 총리가 지난달 27일 68세 나이에 심장병으로 급사하자 중국인들은 ‘인민의 좋은 총리,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등등의 추모글을 쏟아냈다. 중국 인민들에게 그는 ‘비운의 2인자’로 남아 있다. 리커창의 정치 여정은 화려하다. 한때 황태자 등극을 앞둔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지만 시진핑에게 밀리면서 영원한 2인자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18차 당대회에서 총리에 올랐으나 시 주석의 1인 권력 강화의 희생자로 전락했다. ‘머리 내민 새가 먼저 총을 맞는다’(槍打出頭鳥)는 속담처럼 너무 빨리 재능을 부각해 후계자로 떠오르면서 맹렬한 견제를 받은 것이다. 재위 10년간 리 전 총리는 시 주석의 그늘에 가려 ‘실권 없는 총리’로 지내야 했다. 물론 리 전 총리는 임기 중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는 등 이따금 소신 발언을 하며 ‘쓴소리’의 역할을 했지만 시 주석에게 집중된 권력의 벽을 넘기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리 전 총리 서거는 단순히 한 정치인의 죽음이 아니다. 이는 공산당 내부 개혁을 촉구했던 전 후야오방 당 총서기 이래 이어 오던, 보다 자유롭고 투명한 개혁적 사회주의 계파의 종언을 의미한다. 공산당 일당 독재를 고수하는 중국 현대사에서 정치 담론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6·29 톈안먼 학살을 주도했던 덩샤오핑 사후(1997년) 20년 남짓에 불과하다. 당시는 상하이를 토대로 경제성장론을 주창했던 상하이방과 신중국 건국 자제들로 구성된 금수저 태자당, 똑똑한 머리 하나로 자수성가한 공청단 등 3개 계파가 경쟁하던 시기였다. 마오쩌둥 사후 처음으로 균형과 견제의 정치가 살아 있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특히 리 전 총리가 속했던 공청단은 한때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과 후진타오 전 주석을 배출한 정치세력으로 성장했다. ‘퇀파이’(团派)로 불리는 이 세력은 시진핑 집권 초기까지 견제 세력으로 건재했다. 공청단 출신들은 말단 관직에서 천천히 중앙 정계로 진출하면서 요직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조선시대 훈구파에 밀려 지방에서 은인자중하던 사림파들이 힘을 키워 권력을 쥔 것과 비슷한 이치다. 공청단 출신 정치인들은 사회주의 이상 실현에 충실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부정부패를 일삼는 태자당 등을 견제하는 세력으로서의 역할은 인정할 만하다. 시 주석이 지난해 집권 3기 들어 일인독재 체제를 굳힌 가운데 그 뒤를 이을 후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후야오방·후진타오·리커창 등 공청단 수장 출신을 중심으로 이어진 중국 최고지도부의 계보도 사실상 끊어졌다. 현재 중국 정계는 상하이방과 공청단파가 모두 무너져 오로지 시진핑 독재를 추종하는 시자쥔(習家軍) 천하가 됐다. 이런 의미에서 리커창의 죽음은 더이상 시진핑 절대권력을 견제할 세력이 중국 땅에서 사라졌다는 의미가 크다. 중국의 시진핑 체제는 앞으로 미국과의 관계 등에서 더욱 과격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균형과 견제가 사라진 절대권력은 늘 치명적 오판 가능성에 열려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시진핑 체제에 대한 치밀한 연구와 대비가 더 절실해졌다.
  •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내 무덤에 비석과 동상을 세우지 말라” …베트남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부(國父) ‘호 아저씨’ [한ZOOM]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이 ‘바딘광장’ (Ba Dinh Square)’을 가로 질러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은 호찌민의 묘소에요. 호찌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죠. 수많은 사람들이 방부처리한 호찌민의 시신을 직접 보기 위해 이 곳을 찾고 있어요. 호찌민의 시신은 매년 러시아로 보내서 점검한다고 해요.” 솔직히 그동안 호찌민(Ho Chi Minh, 1890~1969)’이라는 인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던 어린 시절에는 사회주의자인 호찌민의 이름을 들어볼 일이 없었다. 게다가 ‘람보’, ‘머나먼 정글’과 같이 베트남 전쟁을 미국의 시각으로 다룬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베트콩(Viet Cong)의 정신적 지주였던 호찌민에 대한 이미지는 긍정적일 수 없었다. 그러나 사촌동생의 말을 듣고 나서는 호찌민이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50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존경하는 이유와, 베트남의 경제도시 사이공을 호찌민의 이름을 붙여 ‘호찌민시티’(Ho Chi Minh City)로 바꾼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렇게 호찌민이라는 사람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호 아저씨’의 등장 호찌민은 1890년 5월 19일 베트남의 작은 마을에서 3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응우옌 신 꿍(Nguyễn Sinh Cung)’이었다. 호찌민이라는 이름은 독립운동을 위해 사용한 174개의 수많은 가명 중의 하나였다.  한편, 베트남 사람들은 국부(國父)인 호찌민을 ‘박호(Bác-Hồ, 伯胡)’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우리말로 풀이하자면 ‘호 할아버지’ 또는 ‘호 아저씨’라는 의미이다. 호찌민이 태어났을 때에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원래 프랑스가 식민지로 만들려고 했던 나라는 중국이었다. 하지만 영국이 양쯔강 유역을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중국에서 내려오는 메콩강(Mekong River)과 홍강(红河, Red River)이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  프랑스 역시 다른 열강들처럼 식민지 베트남을 세금과 노역으로 착취했다. 1907년 프랑스의 착취에 반발하는 농민들의 봉기가 절정에 이르던 당시 호찌민은 프랑스식 국립학교 학생이었다. 호찌민이 다니던 학교는 졸업만 하면 고위관리가 될 수 있는 곳이었지만, 호찌민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할 수 없었다. 외국어에 능숙했던 호찌민은 자청해서 농민들의 주장을 번역해서 프랑스 당국에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농민들의 시위가 점점 과격해지면서 시위에 연루된 호찌민은 퇴학당했고 프랑스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호찌민은 프랑스 경찰을 피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어느 작은 마을에 정착해 교사가 되었다. 그러던 1911년 10월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사라졌다. 얼마 후 그는 남부 항구도시 사이공(現 호찌민시티)에 나타났다. 호찌민은 지금 이대로는 베트남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랑스를 포함한 서구의 나라들이 힘을 가진 이유를 직접 보기 위해 주방보조 선원이 되어 프랑스로 가는 배에 올라탔다. 그렇게 호찌민의 세계여행이 시작되었다. 호 아저씨의 성장 프랑스로 가는 배에서 주방보조로 일하며 프랑스에 도착한 호찌민은 이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의 수많은 나라들을 여행했다. 그는 험한 일도 가리지 않고 경험하면서 가난하고, 핍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직접 보고 경험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식민지 체제 아래에서 고통받는 조국 베트남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키워갔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간 호찌민은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원래 베트남은 중국 유교문화 영향을 받은 나라였다. 호찌민 역시 유학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유교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호찌민이 경험한 서구의 현실은 탐욕과 부의 착취로 보인 반면, 사회주의의 공동체 의식, 검소함, 평등 등의 가치는 유교문화에 더 가까웠기 때문에 호찌민이 사회주의에 심취한 것은 어떠면 자연스러운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찌민의 사회주의는 일반적인 사회주의와는 결이 달랐다. 유교는 봉건시대 도덕, 종교는 아편으로 취급하던 사회주의 속에서도 호찌민은 공자,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했다. 또한 호찌민은 규율과 복종에 가치를 두는 사회주의 속에서도 근면, 검소, 정의, 성실의 네 가지 덕목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호찌민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자였지만 사실상 베트남 민족주의자에 더 가까웠다.  호찌민은 1930년 '베트남 공산당'을 창설했고, 1941년에는 ‘베트민(Viet Minh, 越盟, 월맹)’을 결성해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에 맞서 싸웠다. 1945년 9월 2일 일본이 패망하자 베트남 독립을 선언하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을 수립했다. 1954년 5월 6일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에 승리하면서 독립을 인정받았지만, 사회주의 국가의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은 열강들의 일방적안 결정으로 베트남은 남과 북으로 나눠졌다. 이후 남베트남 정권의 폭정과 무장저항의 확산으로 베트남 전쟁이 발발했다.  호 아저씨의 유언 “내가 죽은 후 웅장한 장례식으로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시신은 화장하고, 재를 셋으로 나누어 베트남의 북부, 중부, 남부에 뿌려 주길 바란다. 내 무덤에는 비석도 동상도 세우지 말라. 대신 넓고 튼튼하며 통풍이 잘 되는 집을 지어 방문객들이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약 방문객들이 나를 추모하는 의미로 나루를 심는다면 세월이 지나 그 나무들이 숲을 이룰 것이다.”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9월 2일 24번째 독립기념일 아침 호 아저씨는 베트남의 통일을 보지 못한 채 79세의 나이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장례식은 검소하게 하고, 화장한 유해를 조국의 땅에 뿌려달라고 부탁한 그는 떠나는 순간까지도 애국자이자 민족주의자였다. 하지만 그의 유언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화장하지 않고 방부 처리되어 전시되어 있다.  쿠바의 혁명가로 유명한 ‘체 게바라(1928~1967)’는 호찌민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았다. 호찌민에 대한 대외적인 평가는 다양하다. 하직만 적어도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 아저씨’, ‘호 할아버지’로 불릴 정도로 다정하고 온화한 국부(國父)이자,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서는 목숨을 바친 강인한 지도자였다.
  • 하마스 전 수장 “중국, 현재 대만 공격 고려하고 있다” 주장 [대만은 지금]

    하마스 전 수장 “중국, 현재 대만 공격 고려하고 있다” 주장 [대만은 지금]

    중국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감탄스럽게 보면서 현재 대만에 대한 유사 공격을 고려하고 있다는 주장이 전 하마스 수장에 의해 제기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1일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하마스의 전 최고지도자 칼레드 마샬이 지난 26일 이집트 방송 사다엘빌라드가 보도한 인터뷰에서 중국이 하마스의 공격을 눈부시게 바라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마샬은 하마스가 서방 아랍계의 지원은 물론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하마스의 공격이 미국의 우크라이나 전쟁 관여를 방해했다면서 러시아가 반사 이익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중국 정부가 이스라엘 남부에 대한 하마스의 공격을 ‘눈부신 사례’로 보고 있으며 이를 군사학교에서도 가르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하마스의 침공에 중국은 대만을 위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생각하고 있다며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에서 알카삼 여단이 취한 행동을 모방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끝으로 아랍인들이 세계에 ‘마스터클래스’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가자 지구에 본부를 둔 하마스 알카삼 여단은 1980년대부터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며 반 이스라엘 투쟁을 이어온 무장 조직으로 미국은 1997년 10월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지난 10월 7일 하마스 군대는 가자지구와 접해 있는 이스라엘 지역의 군사 시설과 정착촌에 기습 공격을 가했다. 하마스는 군 초소와 집단 농장, 음악 축제 장소 등을 습격해 민간인 등 1400명을 살해하고 이스라엘인 및 이중 국적자 200명을 납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갈등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판 ‘샹그릴라 대화’인 샹산포럼에서도 집중 조명됐다. 대만 TVBS에 따르면, 허레이 중국 공산당 군사과학원 부원장(중장)은 “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우리 중국 군대가 어떻게 다른 무장 조직이나 군대의 사례를 따를 수 있겠는가”라며 마샬의 발언을 부인했다. 이어 “중국은 대국이고 중국군은 대국의 군대이다. 우리는 자주독립적인 사회주의 국가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대만 국방부 쑨리팡 대변인은 10월 31일 기자회견에서 “대만군은 중국 공산당의 가능한 모든 행동에 대해 매우 주의 깊게 분석하고 관찰해오고 있으며 다양한 수단을 통해 정보를 획득했다”며 이러한 것들은 비상대응 규정에 포함됐다고 강조했다. 국방부 정보연구센터 정보장교 뤄정위 대령은 테러리즘이 국제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으며 이는 인도-태평양 지역 의 안보와도 관련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만군은 적의 위협에 따라 자주 국방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동맹국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위험과 도전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히틀러·도조와 천하 호령…아군 장교 손에 처참한 최후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인물 10걸 ❿ 1922.10.31 무솔리니, 39세에 총리 등극베니토 무솔리니(1883.7.29~1945.4.18·이탈리아)는 아돌프 히틀러(1889~1945·독일), 도조 히데키(1884~1948·일본)와 더불어 제2차 세계대전 추축국 3대 인물로 유명하다. 셋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지도자로 꼽히기도 한다. 3형제 중 맏아들 무솔리니는 아버지의 대장간에 나가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에 얽힌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름도 멕시코의 혁명가 베니토 후아레스(1806~1872)를 따라 지었다. 집에선 가톨릭 신앙에 충실한 초등학교 교사 어머니 무릎에 앉아 성경을 배웠다. 그러나 결국 아버지의 영향을 더 받았다. 1902년 무솔리니는 병역을 피해 스위스로 이민했다. 그는 제네바에서 머물며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 조르주 소렐(1847~1922), 빌프레도 파레토(1848~1923)의 사상을 깨우쳤다. 그곳에 망명해 있던 안젤리카 발라바노프(1878~1965),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과 같은 러시아 마르크시스트도 만났다. 1904년 스위스는 무솔리니를 이탈리아로 추방했다. 무솔리니는 1905년부터 2년간 군 복무를 마쳤다. 1908년 무솔리니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통치를 받던 트렌토로 가서 노동당 서기에 올랐다. 정치 신문 ‘라보니레 델 라보라토레’(노동자의 미래) 편집진도 맡았다. 1910년엔 고향인 포를리로 돌아가 주간지 ‘로타 디 클라세’(계급 투쟁)의 편집진이 되었다. 이후 무솔리니는 사회주의 운동가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1911년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리비아 점령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규탄했다가 5개월 징역형을 받았다. 석방된 뒤 무솔리니는 사회당에서 전쟁을 지지한 수정주의자와 정쟁에서 승리해 기관지 ‘아반티’(전진)의 편집장에 선임됐다. 무솔리니는 2만명이던 기관지 독자를 10만명으로 늘렸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9개월 뒤 수류탄 폭발로 중상을 입었다. 1917년 8월 병상에서 전역한 무솔리니는 사회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당시 “사회주의 이론은 죽었다. 남은 것은 원한뿐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1919년 3월 무솔리니는 밀라노에서 200여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파쇼 ‘파르시 이탈리아니 디 콤바티멘토’(이탈리아 투쟁 결사)를 창립했다. 모든 사회 계급의 구분과 계급 투쟁을 부정하는 이념에 국가 부흥을 염원하던 국민들에게 많은 박수를 받았다. 급격히 세력을 확장한 끝에 1921년 ‘국가 파시스트당’(Partito Nazionale Fascista)을 창당했다. 같은 해 무솔리니는 의회 진출에 성공한다. 더욱 힘을 얻은 무솔리니와 ‘파시스트당’은 1922년 10월 27일 로마 진군을 감행했다. 당내 준군사 조직인 ‘검은 셔츠단’을 앞세운 쿠데타로 루이지 팍타(1861~1930) 총리를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다음날 무솔리니는 군부, 자본가, 우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총리에 올랐다. 만 39세였다. 2014년 취임한 마테오 렌치(1975.1.11~현재) 전 총리와 함께 이탈리아 역사상 최연소 기록이다. 무솔리니는 권력을 독점했다. 7개 장관을 겸직하기도 했다. 비밀경찰인 ‘반파쇼 분자 진압을 위한 조직’(Organizzazione per la Vigilanza e la Repressione dell’Antifascismo, OVRA)을 창설했다. 무솔리니는 이러한 철권통치로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1925년부터 1927년 사이 무솔리니는 권력을 휘두르는 데 걸리적거리는 모든 헌법 조항들을 폐기하고 이탈리아를 경찰국가로 변모시켰다. 1928년엔 파시스트당을 뺀 정당 활동은 금지됐다. 같은 해 의회가 해산되고 파시즘 대의회가 대신했다. 이탈리아 제국은 스스로를 신로마 제국으로 칭하기 시작했다. 팽창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파시즘은 결국 에티오피아를 침략한다. 또 반종교주의, 특히 반가톨릭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스페인 내전에 개입했다. 1936년 7월 무솔리니는 공군 전투비행단 선발대를 스페인으로 파견했다. 이탈리아군은 1939년까지 반란을 일으킨 프란시스코 프랑코(1892~1975)를 지원했다. 그 결과 이탈리와와 프랑스, 영국의 관계는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으며 무솔리니는 히틀러와 동맹을 맺는다.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대해 즉각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 이탈리아는 즉각 참전하진 않았다. 1940년 들어 전황은 독일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솔리니는 독일의 승전으로 곧 종전을 맞을 것으로 판단해 6월 영국과 프랑스에 전쟁을 선포했다. 1941년 6월 무솔리니는 소련에 전쟁을 선포하고 군대를 진군시켰다. 이후 일본 제국이 진주만 사건을 일으키자 이번엔 미국에도 선전포고를 했다. 그러나 1942년 이후 전황은 이탈리아에 불리해졌다. 대대적인 후퇴가 계속됐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에 이탈리아는 패배를 눈앞에 뒀다. 연합군의 이탈리아 본토 폭격으로 석유, 석탄과 같은 자원을 공급받지 못했다. 여기에다 곡물 수급난으로 가격이 폭등했다. 1943년 들어 무솔리니의 선전술은 더 이상 국민 마음을 붙들 수 없었다. 그들은 바티칸 라디오나 라디오 런던을 들으며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3월 이탈리아 북부 공업도시에서 1925년 이래 최대의 파업이 벌어졌다. 또한 최대의 공업도시 밀라노와 토리노는 공습을 피해 노동자 가족들을 소개하면서 생산이 멈췄다. 사람들은 이탈리아를 대하는 독일의 태도로 인해 이를 묵인하는 무솔리니를 대놓고 반대했다. 일찍이 무솔리니는 아프리카 전선과 튀니지에서 패퇴하자 히틀러에게 서부 전선으로부터 공격해 오는 연합국과의 전쟁에 집중해달라고 간청했다. 아프리카와 튀니지를 얻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가 겨눌 다음 목표는 당연히 이탈리아 반도 본토이기 때문이었다.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 며칠 후 무솔리니는 해외 군대의 회군을 지시했다. 이에 놀란 히틀러는 7월 19일 이탈리아 북부에서 무솔리니와 회동했다. 무솔리니는 더 이상 독일의 말만 따르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솔리니는 이날 역사상 최초로 로마가 폭격을 당했다는 최악의 소식을 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탈리아 파시스트 정부 안에서마저 무솔리니에 대한 반대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무솔리니에 대한 불신임안이 대의회에서 19 대 7로 가결됐다.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1869~1947)는 무솔리니를 왕궁으로 불러 해임을 통고했다. 무솔리니는 왕궁을 나오자마자 근위대에 의해 체포됐다. 호텔에 연금됐던 무솔리니는 9월 12일 나치 독일 무장친위대 72명으로 이뤄진 구조대에 의해 구출된다. 독일군은 왕가와 내각인사를 체포하고 무솔리니의 권력을 회복시키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를 오스트프로이센으로 데려와 회동했다. 히틀러는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로 돌아가 파시스트 국가를 재건하기를 바라면서 독일군이 밀라노, 제노바, 투리노 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동의한 무솔리니는 9월 23일 살로에서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망명 정부의 수반에 오른다. 무솔리니는 자신을 배반한 파시스트 대의회의 요인들을 처형했다. 이 무렵 무솔리니는 1928년 출판한 자서전의 개정판 ‘나의 흥망’ 집필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1945년 4월 패전을 예감한 무솔리니는 연인이었던 클라라 페타치(1912~1945)와 함께 스위스를 거쳐 스페인으로 탈출할 참이었다. 그런데 27일 공산주의 계열의 파르티잔에게 체포됐다. 무솔리니는 병사들과 함께 독일군 장교로 위장하고 있었다. 이튿날 발레리오(실명 왈테르 아우디시오) 대령은 두 사람을 총살했다. 시신은 29일 트럭에 실려 밀라노로 옮겨졌다. 파시스트당에 의해 15명의 반파쇼 운동가들이 처형된 자리였다. 숱한 군중의 발길질에 짓밟힌 두 시체는 주유소 지붕에 거꾸로 매달렸다.
  • [글로벌 In&Out] 중국 일대일로 10년과 딜레마/함명식 중국 지린대 교수

    [글로벌 In&Out] 중국 일대일로 10년과 딜레마/함명식 중국 지린대 교수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언명한 일대일로가 출범 10년을 맞이했다. 일대일로의 주된 목표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질서에서 소외된 개발도상지역에 물류와 인프라망을 집중적으로 건설해 세계를 하나의 통합된 경제 단위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부정에도 일대일로는 장기적으로 서구 중심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대체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인식돼 왔다. 일대일로가 특별히 주목받은 이유는 시 주석이 집권 이후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 중국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중국몽은 공산당 출범 100주년인 2021년까지 모든 중국인이 경제적으로 최소한의 안정을 획득하는 샤오캉사회(小康社會)를 이룩하는 것과 신중국 건립 100주년인 2049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을 통해 국제사회에서 초강대국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을 지칭한다. 일대일로의 결과가 관심을 끄는 연유는 부상하는 중국의 궁극적 지향점이 후자의 달성 여부와 밀접히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일대일로의 시간적·공간적 범위가 워낙 광대하고 관련 사업 자체의 투명성이 부족해 지난 10년의 성과와 한계를 꼭 짚어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중국이 집중적으로 지원한 국가의 현황을 볼 때 일대일로가 두 가지 ‘내재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중국이 ‘중국 내재적 특성의 보편화’를 시도하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개도국은 중국과 차별화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출발부터 일대일로는 개발도상지역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주된 이유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의 지도자들이 ‘정치 개혁 없는 경제 발전’ 모델의 차용을 통해 지배의 정당성을 보장받으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력한 공산당 일당 지배로 정치 안정과 정책 집행의 자율성을 누린 중국과 달리 대다수의 개도국은 극심한 정치 불안정에 시달리고 있다. 예를 들어 일대일로의 상징처럼 언급되는 파키스탄의 경우 중국의 대규모 지원에도 군부의 지대추구로 사회적 혼란과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와 수단도 계속된 내전으로 고통받고 있다. 둘째, ‘물류 생산 없는 물류망의 건설’이다. 파키스탄, 라오스 등 일대일로 혜택을 받은 국가에 철도, 도로, 교량 등의 인프라가 일정 정도 확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과의 인프라 연계에도 시장 불완전성 문제로 이들 국가의 경제 성장 전망은 밝지 않다. 우선 다양한 산업 분야의 동시적인 발전을 통해 대규모 소비층이 형성됐어야 하는데 일대일로 핵심 참여국 중 아직 산업 발전을 이룩한 국가가 없다. 또한 연관된 산업의 동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이미 존재하던 산업도 제품 생산 시설의 가동을 멈출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대일로 타깃 국가 중에 철강, 자동차, 조선처럼 연관 산업의 동시 발전을 추구할 정도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완비한 나라가 눈에 띄지 않는다. 순풍을 타는 듯하던 일대일로는 미국의 중국 견제, 코로나19,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악재를 만나 고전 중이다. 과연 현 중국 지도부가 난마처럼 꼬인 실타래를 풀고 21세기 실크로드 네트워크를 건설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세상 떠나 ‘할말은 했던 2인자’ BBC “사망 소식 경시”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세상 떠나 ‘할말은 했던 2인자’ BBC “사망 소식 경시”

    올해 3월 퇴임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68세, 상대적으로 한창 나이에 허망하게 삶을 접었다. 중국중앙(CC)TV는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최근 상하이에서 쉬고 있던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생했고, 응급조치도 소용없이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관영 신화통신은 리 전 총리의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6시 30분에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치협상회의 공동 명의로 낸 부고를 통해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정은 “그의 서거는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라며 “우리는 비통함을 힘으로 바꿔 그의 혁명정신과 숭고한 품덕, 우량한 작풍(업무 태도)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더 긴밀하게 단결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 관철해야 한다”며 “리커창 동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 당정은 오전 8시 별세 소식 발표 후 “곧 부고를 내겠다”고 했지만 10시간이 넘게 부고와 입장문이 나오지 않자 서방 매체 등 일각에선 중국이 리 전 총리의 죽음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나온 2511자 분량의 부고문에는 젊은 시절부터 최근까지 리 전 총리의 업적이 상세히 설명됐다. 중국 당정은 특히 “세계적 변화의 가속화와 코로나19의 충격, 국내 경제 둔화 등 다중의 도전에 직면해서도 ‘안정 속에 진보를 추구한다’는 기조 하에 새로운 발전 구도를 만들고, 양질의 발전을 이끌었다”며 “탈(脫)빈곤과 농촌 진흥 전략 추진으로 빈곤 퇴치 성과를 늘렸다”고 평가했다. 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내에선 비슷한 연배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고,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 주석을 밀어주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는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 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 총리는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명의 월 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되며, 1000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 주석이 업적으로 꼽고 있는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고 발언하며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 주석에 권력이 한층 집중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그는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리 전 총리는 퇴임 후 중국 경제 회복 둔화 속에 오히려 더 인기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 8월 말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온 리 전 총리의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 방문 영상을 보면 수백명의 관광객이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는 장면이 나온다. 별세 소식이 알려진 이날 중국 SNS 웨이보에서는 오전부터 종일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가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누리꾼들은 추모 의미를 담은 붉은 촛불 이모티콘과 함께 “너무 갑작스럽다”거나 “믿고 싶지 않다”, “침통한 마음으로 리커창 총리를 애도한다”, “편히 가세요” 등 메시지를 작성했다.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같은 반응도 많았다. 한국 정부는 “리커창 전 총리가 한국의 가까운 친구로서 한중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그의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깊은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 정부도 추도 입장을 발표했다.영국 BBC 방송은 리 전 총리가 “빈부격차를 줄이고 저렴한 주택 제공에 초점을 둔 정책으로 덜 혜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며 “시 주석에 의해 결국 배제됐지만 경제정책 면에서는 실용주의로 인기있는 지도자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리 전 총리가 재임 시 “시 주석에 충성하는 그룹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현직 고위 관료”였으며 “최근 몇년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서 고립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도 “엘리트 경제학자인 리 전 총리는 ‘리코노믹스’(리커창+이코노믹스)로 불리는 접근방식 아래 더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공급자 측면의 개혁을 옹호했으나 이는 완전히 실행되지 못했다”고 평했다. 로이터는 이어 “궁극적으로 리 전 총리는 국가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진핑의 선호에 굴복해야 했고 시진핑이 요직에 자기 사람들을 앉히면서 리 전 총리의 권력 기반은 약해졌다”고 짚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 전 총리의 합리적인 정책 결정은 시진핑의 정치화된 통치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관료주의를 없애겠다며 사업 등록 기간을 대폭 단축한 것과 같은 리 전 총리의 성과는 시 주석의 반기업 정책으로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리 전 총리가 “자유시장과 중국의 더 빈곤한 시민들을 옹호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며, 시진핑 독재 부상으로 밀려난 정치적 대안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외신들은 영어에 능통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해온 리 전 총리가 중국 지도부 안에서 미국 등 서방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목소리를 대변했다고도 평가했다. CNN은 “중국과 서방 국가의 관계가 갈수록 경색되던 시기에 중국과 세계의 다른 접근법을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며 리 전 총리가 2021년 3월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이 공통의 이익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일화를 전했다. 로이터는 일부 중국 지식인과 자유주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등불이었던 리 전 총리의 별세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도 싱크탱크 카네기차이나의 비상주 학자 이언 총을 인용해 “리 전 총리의 죽음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 내에서 눈에 띄는 온건한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며 “이는 아마 시 주석의 권력행사에 대한 제약이 더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전했다. 외신들은 중국 당국이 리 전 총리의 사망을 축소해 전달하고 인터넷에서 리 전 총리 관련 내용을 검열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BBC는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관영 언론들이 리 전 총리의 경력에 대한 공산당의 평가를 나타내는 공식적인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망 소식을 경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9년 리펑 전 총리 사망 때 “탁월한 당원, 오랜 기간 검증받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 군인이자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지도자”라는 찬사를 쏟아낸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BBC는 그러면서 “중국 전직 지도자들의 죽음은 과거에도 시위를 촉발한 적이 있다”며 “지난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을 때 애도 목소리도 시진핑 주석에 대한 미묘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WSJ도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리 전 총리 사망 관련 댓글이 검열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거 중국 고위 관리들의 사망 때 대중의 애도 움직임이 현직 지도자를 겨냥한 대규모 시위로 발전한 적이 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도 그해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애도하는 집회에서 시작됐다”고 짚었다.
  • “당과 국가 사랑하라”는 中 ‘애국주의교육법’에 대만도 포함 [대만은 지금]

    “당과 국가 사랑하라”는 中 ‘애국주의교육법’에 대만도 포함 [대만은 지금]

    중국에서 지난 7월 초 간첩 행위의 범위와 처벌 규정을 크게 강화한 반간첩법 개정안이 시행된 가운데 애국주의교육법이 통과돼 대만 언론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대만 통일’을 추구하는 중국은 이 법에 대만도 포함시켰다. 대만 언론들에 따르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4일 ‘애국주의 교육법’을 통과시켰다. 총 5장 40조로 이루어진 이 법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된다. 해당 법안 1조 1항에는 “새시대 애국주의 교육을 강화해 애국정신을 계승 및 함량해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를 종합적으로 건설하고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전면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헌법에 의거하여 이 법을 제정한다”고 명시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아이들의 교육을 강조하고 공무원, 회사 직원 등이 적용 대상이 되며 홍콩과 마카오는 물론 대만까지 싸잡아 비애국적 행위에 대해 형사 처벌을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대만 관련 조항에는 통일 단체인 ‘대만동포회’가 애국 교육을 실시하며 대만 동포들은 조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책임을 자각하며 ‘대만 독립’이라는 분리주의 행위를 결연히 반대해야 한다고 했다. 대만 FTNN은 대만도 이 법으로 당(공산당)과 국가(중국)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생겼다고 적었다. 대만 상보는 이 법이 중국 공산당에 대한 어떠한 의구심도 가져서는 안되며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에 대한 개인 숭배를 강화하는 법이라고 전했다. 25일 위자첸 대만 시대역량당 대변인은 “실제로 철저한 시진핑 사랑 교육”이라며 중국 공산당이 이념적 통제로 흔들리는 시진핑의 정권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애국교육법 목적은 ‘조국의 통일과 민족의 통일을 수호한다는 이념을 국가 교육 제도,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의 교육에 완전히 집어넣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는 최근 몇 년간 자국 주변 해역에 군사 훈련을 강화했는데 그런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불량배라는 중국의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 세인트 토마스 대학 예야오위안 국제학과 석좌교수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중국의 최근 조치“라며 ”범죄에 대한 모호한 정의가 이 법에 더 많은 해석의 여지를 준다“고 말했다. 미국 프린스턴 차이나 소사이어티 천쿠이더 회장은 ”이 법안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 경제의 쇠퇴, 국제적 봉쇄 또는 고립 등 중국의 ’내외적 어려움‘과 관련되어 있다“면서 ”젊은이들을 이념적으로 통제하여 중국 공산당에 더욱 충성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이 법이 통과되자 애국심 교육과 중국 문화를 알리는 데 중점을 둔 관련 실무 그룹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를 사랑하고 홍콩을 사랑한다는 가치와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정책에도 부합한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 유발 하라리 “하마스 편드는 서방 좌파의 도덕 불감증에 실망”

    유발 하라리 “하마스 편드는 서방 좌파의 도덕 불감증에 실망”

    베스트셀러인 ‘호모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가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지하는 서방의 일부 진보주의자들에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24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하라리 교수는 ‘극도의 도덕 불감증에 실망을 표한다’는 성명에 서명한 90명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성명에는 “평등, 자유, 정의, 복지를 옹호하는 좌파 개인들이 이렇게 극단적인 도덕적 무감각과 정치적 무모함을 드러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적혀 있다. 이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복과 점령에 단호히 반대하는 것과 무고한 민간인에 대한 잔혹한 폭력 행위를 명백히 비난하는 것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며 “일관된 좌파라면 두 입장을 동시에 가져야 한다”고 했다. 또 “우리는 좌파 동료들에게 인본주의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에 기초한 정치로 복귀하고, 모든 형태의 인권 침해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취하고, 폭력과 파괴의 악순환을 끊기 위한 투쟁에 도움을 줄 것을 촉구한다”고 끝을 맺었다. 하라리 교수는 “평화를 위한 노력이 완전히 황폐화되고, 동맹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유럽의 일부 진보주의자들이 이번 사태에 대해 보인 반응과 관련해 “하마스를 비난할 뿐만 아니라 모든 책임을 이스라엘에 전가하는 반응을 듣고 충격적이었다”며 “이는 이스라엘 민간인을 향한 끔찍한 공격에 전혀 연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라리 교수는 일부 미국과 유럽 사회주의자들이 소련의 스탈린을 지지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급진 좌파가 매우 잔혹한 운동과 정권에 동조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라리 교수는 국제 좌파 단체들의 대응 방향이 이스라엘 좌파에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좌파는 ‘두 국가 해법’에 반대하는 이스라엘을 설득할 마지막 희망의 보루이며, 이들을 향한 국제적인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라리 교수는 이스라엘 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이어 온 인물이다. 지난 3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입법안과 관련해 “역사상 많은 독재정권은 거리에서 탱크를 발사하는 것이 아니라 닫힌 문 뒤에서 (국민 모르게) 문서에 서명하는 것으로 수립됐다”고 언급한 일이 있다. 또 하마스의 공격 당일에는 “오늘의 사건은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지적했고, 공격 다음날에는 “모든 폭력 사태에 대한 책임은 이스라엘 정권에 있다”고 밝혔다. https://www.news-journal.com/what-yuval-noah-harari-thinks-hamas-wants-out-of-israel-attack/video_e321355e-7714-5526-8642-5644074ecd06.html
  • 대통령 제명한 볼리비아 집권당 세 과시

    대통령 제명한 볼리비아 집권당 세 과시

    볼리비아 집권당인 사회주의운동(MAS) 민병대가 17일(현지시간) 연 옥외 시민회의에 노동조합원들과 원주민이 참석해 세를 과시하고 있다. MAS는 이달 초 당 대표인 볼리비아 첫 원주민 출신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과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루이스 아르세 대통령을 당에서 제명했다. 엘알토 AFP 연합뉴스
  • “검찰, 숲 못 보고 땅만 파” vs “이재명, 술 마시고 운전한 격”

    “검찰, 숲 못 보고 땅만 파” vs “이재명, 술 마시고 운전한 격”

    “저 산이 참나무숲이냐, 소나무숲이냐는 그냥 쳐다보면 안다. 그런데 검찰은 현미경을 들고 숲속으로 들어가 땅을 판 뒤 ‘소나무 DNA가 발견됐다’고 하는 느낌이다.” 대장동·위례 개발 비리, 성남FC 후원금 비리로 기소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재판에서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약 33분간 자신의 혐의에 대해 소명했다. 죄가 있다면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데 검찰이 과도하게 수사하며 흔적만 훑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이날 재판은 점심시간을 포함해 10시간이나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김동현)는 재판을 열면서 지각한 이 대표에게 주의를 줬다. 김 부장판사는 이 대표에게 “10여분 정도 먼저 와서 재판 준비를 해 달라”고 했고 이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오전 검찰은 법정 한쪽의 스크린에 준비해 온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띄우고 ‘대장동 개발 특혜’에 관한 공소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은 “일반 민간개발의 경우 관이 감독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대장동 사업과 같은 민관합동개발에서는 관도 하나의 선수가 되기 때문에 공공성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면서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적어도 술을 마신 상태라면 운전하면 안 된다”며 민관합동개발 사업의 과정상 오류를 지적했다. 검찰이 “(이 대표는) 민간업자들이 원치 않는 것은 사업에 넣지 말라고 했다”고 말하자 이 대표가 10여초간 검사 쪽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하다못해 택시 면허를 해 줘도 하나에 1억원씩 하는데 공사에 택시 면허를 (허가)해 주면, 다 그렇게 해 버리면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배임 혐의에 관해서도 “공공기관은 인허가를 하게 되면 받는 쪽이 혜택이 있는데 그걸 누가 가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지 얼마나 회수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또 “검찰 논리에 따르면 왜 누룽지 긁듯 딱딱 긁어서 다 이익을 회수해야지 못했느냐, 그러니 배임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 대표의 위증 교사 혐의도 대장동·위례 특혜 의혹 사건의 재판부가 맡게 됐다. 이로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 및 성남FC 후원금 관련 재판과 백현동 의혹 관련 재판, 위증 교사 혐의 재판까지 총 3건의 이 대표 재판을 진행하게 됐다. 이 대표가 주 2~3회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만큼 ‘재판 리스크’ 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 이재명 “검찰이 현미경 들고 ‘소나무 DNA 발견됐다’고 하는 느낌”...대장동·위례 재판 출석

    이재명 “검찰이 현미경 들고 ‘소나무 DNA 발견됐다’고 하는 느낌”...대장동·위례 재판 출석

    재판 시간보다 7분 늦은 ‘지각 출석’검 “적어도 술 마시면 운전은 하면 안돼” 비유李 “검, 누룽지 긁듯 회수 못해 배임이라 주장”‘위증교사 혐의’ 재판도 같은 재판부에 배당주 2~3회 재판 출석...‘재판 리스크’ 현실화 “저 산이 참나무 숲이냐, 소나무 숲이냐는 그냥 쳐다보면 안다. 그런데 검찰은 현미경을 들고 숲속 들어가 땅을 파고 ‘소나무 DNA가 발견됐다’고 하는 느낌이다.” 대장동·위례 개발비리, 성남FC 후원금 비리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7일 재판에서 직접 발언 기회를 얻어 약 33분간 자신의 혐의에 대해 소명했다. 죄가 있다면 멀리서 봐도 알 수 있는데 검찰이 과도하게 수사하며 흔적만 훑고 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당초 이날 재판 예상 소요 시간을 8시간 30분 넘게 잡아뒀던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김동현)는 재판을 열며 지각한 이 대표에게 주의를 줬다. 김 부장판사는 이 대표에게 “10여분 정도 먼저 와서 재판 준비를 해달라”고 했고, 이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오전 검찰은 법정 한쪽의 스크린에 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을 띄우고 ‘대장동 개발 특혜’에 관한 공소사실을 설명했다. 검찰은 “일반 민간개발의 경우 관은 감독 역할을 하는 것과 달리 대장동 사업과 같은 민관합동개발에서는 관도 하나의 선수가 되기 때문에 공공성이 떨어질 위험이 있다”며 “술이나 음료수를 마시는 것은 자기 마음이지만 적어도 술을 마신 상태라면 운전하면 안 된다”며 민관합동개발 사업의 과정상 오류를 지적했다. 검찰이 “(이 대표는) 민간업자들이 원치 않는 것은 사업에 넣지 말라고 했다”고 말하자 이 대표가 10여초간 검사 쪽을 쳐다보기도 했다. 이에 이 대표는 “하다못해 택시면허를 해줘도 하나에 1억원씩 하는데 공사에 택시면허를 (허가) 해주면, 다 그렇게 해버리면 사회주의 국가가 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배임 혐의에 관해서도 “공공기관은 인허가를 하게 되면 받는 쪽이 혜택이 있는데 그걸 누가 가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지 얼마나 회수할 것인가를 결정하지 않는다”라고 반박했다. 또 “검찰 논리에 따르면 왜 누룽지 긁듯 딱딱 긁어서 다 이익을 회수해야지 못했느냐, 그러니 배임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도 대장동·위례 특혜 의혹 사건의 재판부가 맡게 됐다. 이로써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는 대장동·위례 신도시 개발 특혜 및 성남FC 후원금 관련 재판과 백현동 의혹 관련 재판, 위증교사 혐의 재판까지 총 3건의 이 대표 재판을 진행하게 됐다. 이 대표가 주 2~3회 법원에 출석해야 하는 만큼 ‘재판 리스크’ 논란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 “어리석은 전쟁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될 권리” [지구촌 소사]

    “어리석은 전쟁에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될 권리” [지구촌 소사]

    ■ 10월 지구촌 소사(小史): 사건 10걸 ❹/1969.10.15 세계 휩쓴 반전 시위“나는 전쟁을 반대해 행진에 참여했습니다. 의회 민주주의에 뿌리를 둔 어떤 정부도 시민들이 반대할 수 있는 전쟁, 심지어 잘못일 수도 있는 전쟁에서 싸우며 죽이고 죽게 만드는 힘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1969년 12월 당시 23세이던 빌 클린턴(77) 전 미국 대통령은 아칸소대학교 예비역장교훈련단(ROTC) 책임자에게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서 클린턴 전 대통령은 “옥스포드에 있는 내 친구 두 명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며 “나는 그들 중 1명을 위한 탄원서를 징집위원회에 제출했는데 그 어떤 편지보다 더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베트남 전쟁을 둘러싸고 미국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반대운동이 뜨겁던 때였다. 그는 군부대에 징집돼 그토록 경멸하는 전쟁에 참가할 가능성에 직면했다. 그래서 아칸소대 법학대학원에 진학해 ROTC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며 징병을 연기할 수 있었다. 그런데 클린턴 전 대통령은 대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로즈 장학생으로 2년 동안 공부하게 됐다. 결국엔 새로운 제도 덕분에 추첨을 통해 징집 명단에서 빠졌다. 앞서 10월 15일은 ‘반전 시위 행동통일의 날’로 약속돼 있던 터였다. 영국 런던의 미국대사관 앞에서 열린 집회를 옥스퍼드대에 유학 중이던 클린턴 전 대통령이 주도했다. 미국 워싱턴DC에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모라토리엄 시위가 대대적으로 펼쳐졌다. 25만여명의 군중은 거리를 누비면서 피켓을 흔들며 당당하게 구호를 외쳤다. 뉴욕에서도 같은 취지의 시위가 열렸는데, 존 린지(1921~2000) 뉴욕시장이 시위대를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시청에 반기(半旗)를 게양해 높은 호응을 이끌어냈다. 린지 시장은 당시 공화당 소속이었지만 유달리 진보적인 정책을 꾀하다가 재임 중이던 1971년엔 결국 민주당으로 옮긴다. 베트남 전선으로부터 탈주병을 숨겨주거나 국경을 초월해 보호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미 국방부는 전쟁의 전모를 조사해 47권이나 되는 방대한 국방성 비밀보고서 ‘펜타곤 페이퍼’로 총정리했는데 뉴욕타임스(NYT)에 게재돼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미국의 베트남 정책에 숨은 허상을 고스란히 드러냈으며 반전운동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반전운동을 지탱해 준 논리로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법의 구속에서 벗어난 대외정책을 수행하는 것보다도 국제법규를 준수한 정책을 펴는 쪽이 국가이익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또 둘째론 미국의 정책이 잘못됐고 국제법에 위배된다면 곧바로 지적하는 게 시민으로서의 의무이며, 정부도 불법행동을 벌일 땐 반대하는 게 애국하는 길이라는 신념이다. 마지막으로, 시급히 전쟁 종식에 방도를 찾아내야 하는데 정부 스스로의 정책 수정을 기대할 수 없으면 국민의 여론을 환기시켜야 한다는 판단이다. 1955년 발발한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에 냉전시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진영 대리전 양상을 띠었던 전쟁은 1973년 1월 중대한 고비를 맞는다.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돼 그해 3월 말 미군이 완전 철수했고, 1975년 4월 30일 사이공 함락으로 북베트남이 통일을 이뤄 이듬해 사회주의공화국을 선포했다. 전쟁엔 18개국이 직접 참여했다. 16개국은 물자 등을 지원했다. 무엇보다 민간인 최소 26만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남북 베트남에서 최소한 70만명과 미군 5만 8300여명을 포함해 외국군 6만 5400여명도 전사했다. 우리나라 군인 5000여명도 희생됐다. 부상자도 전체를 통틀어 200만명을 웃돌았다.
  • 美는 자율규제·EU는 위험 방어… 업계 “AI 규제, 경험 통해 유연하게”

    美는 자율규제·EU는 위험 방어… 업계 “AI 규제, 경험 통해 유연하게”

    美·英 기업 ‘가이드라인’ 작업中 사회주의 체제 유지 최우선EU 위험성 기반한 단계별 규제韓 ‘디지털 권리장전’·법안 계류 업계 “규제책보다 지원책 필요” 생성형 인공지능(AI)이 전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의 최대 화두가 된 가운데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산업을 선도하는 주요국은 철저히 각자의 이해관계에 맞춰 관련 규제를 마련하고 있다. 한국은 기술 면에서 선도 국가에 포함되지만 규제 마련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통제보다는 전폭적인 지원을 바라는 국내 AI 기업들의 긴장된 시선이 앞으로 만들어질 규제안 방향에 쏠려 있다. 12일 현재 미국과 영국은 규제보다는 기업 중심으로 ‘가이드라인’ 성격의 규범을 확립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은 지난 8월 ‘생성형 인공지능 서비스에 대한 관리 조치’를 발빠르게 마련해 이미 시행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로 ‘AI 법률(act)’을 입법해 이르면 2025년부터 시행한다.중국과 EU가 이미 마련한 명문화된 규제안 곳곳엔 자국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챙긴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어 중국은 체제 유지를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관리조치 4조 1항을 보면 ‘생성형 AI를 사용해 생성된 콘텐츠는 사회주의 핵심가치를 반영해야 하며 국가 권력이나 사회주의 체제를 전복하거나 분리주의를 선동하는’ 등 ‘사회 질서를 방해할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6조는 ‘대중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기 전 국가 사이버 공간 및 정보 관리국에 보안 평가를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EU의 AI 액트는 지난 6월 유럽의회를 통과할 당시 각국 외신이 “가장 강력한 규제”라고 보도했을 만큼 엄격하다. AI 기술과 서비스를 ‘위험성’ 기반으로 분류해 단계별로 규제를 부여했는데, AI를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도 위험한 서비스로 분류했다. 또 학습에 사용한 데이터를 상세히 공개하고 AI가 만든 콘텐츠임을 명시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는 초거대언어모델엔 1000만 유로(약 142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이노베이션 센터장은 “EU의 경우엔 초거대 AI 플랫폼조차 없다”며 “EU의 법안엔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미국 빅테크의 AI 기술에 종속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이에 반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을 자랑하는 미국은 오픈AI, 구글 등 빅테크가 스스로 만든 자율규제를 중심으로 정부와 의회가 함께 규범을 마련하고 있다. 하 센터장은 “최근 백악관과 상원에서 빅테크 대표들이 참석한 회의가 있었다”며 “규제 자체보다는 ‘게임의 룰’을 만들어 그 안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지난달 정부가 헌장 성격의 ‘디지털 권리장전’을 발표했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AI 법제정비 로드맵’을 연내 발표하기로 한 상태다. 이와 별도로 국회에선 개별 의원들이 관련 법안을 발의해 10여건이 계류 중이다. 업계는 국내 AI 기술 수준이 높지만 해외 빅테크에 비해 자본력이 턱없이 부족한 만큼 국가가 규제책보다는 지원책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 센터장은 “글로벌 테크 기업의 인력, 투자 규모는 적게 잡아도 국내 기업의 수십배”라며 “시장의 크기가 작고 인재 풀도 작은 만큼 국가 경쟁력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업계는 규제 방향이 미국보다는 EU와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갈까 우려하고 있다. 카카오브레인은 “AI라는 영역 성격상 자율규제가 합리적이라고 판단한다”며 “카카오를 비롯한 대부분 AI 기업들이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과 별개로 자율규제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기술기업 업스테이지 측도 “AI는 사람들이 많이 써 봐야 안다”며 “특정 기술을 무분별하게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적으로 경험하면서 융통성 있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 [마감 후] 한국은 배구, 농구만 ‘우물 안 개구리’일까/장형우 문화체육부 차장

    [마감 후] 한국은 배구, 농구만 ‘우물 안 개구리’일까/장형우 문화체육부 차장

    중국에는 도시 서열이 있다. 신일선도시연구소가 발표하는 ‘도시상업매력순위’로 각 도시의 순위가 정해진다. 1순위는 ‘1선도시’라고 부르는데 상하이, 베이징, 광저우, 선전이 여기 속한다. 제19회 아시안게임이 열린 항저우는 청두, 충칭, 우한 등과 함께 1선도시보다 약간 낮은 ‘신1선도시’에 속한다.아시아 각국에서 모여든 기자들이 대회 소식을 전했던 메인프레스센터(MPC)는 원래 엑스포센터 건물이다. 항저우도 조만간 엑스포를 유치할 계획이다. 항저우도 13년 전 아시안게임을 거쳐 1선도시로 올라섰던 광저우의 선례를 따르고 있다. 항저우는 거대 기업 알리바바의 본산이기는 하지만 상하이, 베이징 등과 비교하면 화려함이 덜하다. 원래 도심은 항저우시를 관통하는 첸탕강 이북의 그 유명한 서호 주변이지만,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샤오산구를 중심으로 한 강남 개발이 한창이다. 항저우도 조만간 1선도시로 올라설 것이다.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이번 아시안게임의 현장에서 강한 정부와 협력적 인민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 기간 항저우 시내에는 교통체증이 없었다. 승용차 홀짝제 시행과 동시에 항저우 외부에서 들어오는 차량을 전면 통제했다. 개폐회식이 열린 날엔 주경기장을 지나는 지하철 6호선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서울로 치면 잠실종합운동장을 지나는 2호선을 세워 버린 셈이다. 주경기장과 MPC 일대의 차량 통행을 전면 통제했는데, 빽빽이 들어선 대단지 아파트 입구 주변에 펜스를 쳐 버렸다. 불편할 만도 했지만 주민들은 경찰과의 마찰 없이 통제에 따르는 모습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강한 통제에 따르는 인민들의 모습에서 중국이 순식간에 최첨단으로 발전한 원동력을 찾을 수 있었다. 종이 지도를 보던 운전자들은 내비게이션을 건너뛰고 스마트폰 앱으로 갈아탔고, 위조지폐를 걱정했던 현금에서 신용카드 대신 알리페이로 점프했다. 항저우시는 휘발유, 경유 차량은 자가용 등록을 못 하고, 전기차만 받는다. 비록 아침에 머리에 까치집을 짓고 다니는 사람이 많고, 도로는 경적 소리로 시끄럽지만 이처럼 중국의 발전 속도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물론 중국이 사회주의 체제라서 당과 정부의 지시와 방침에 국민 모두가 순응하니까 그런 것 아니냐는 지적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나라의 정치·사회 문제의 해결은 1차적으로 그 나라 국민들의 몫이다. 우리나라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반도체, 휴대전화, 정보기술(IT), 문화 콘텐츠 등 비교 우위에 있는 분야에서 중국에 추월당하지 않기 위해 더욱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중국은 일사불란한 동원체제를 강점으로 ‘점프’를 거듭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 방식을 따를 수는 없다. 결국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이번 대회에서 축구, 야구는 우승했지만 배구와 농구는 여자농구(동메달)를 제외하곤 아시아권에서도 경쟁력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높은 연봉을 받는 프로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다는 혹독한 비난을 받고 있다. 과연 한국의 농구, 배구뿐일까. 아직도 ‘되놈’이라 부르며 무시했던 과거의 중국을 떠올리며 경계하지 않는다면 곧 우리도 우물 안 개구리가 될 것이다.
  • 북한 ‘조용한’ 당 창건일 78주년 자축…정찰위성 개발 언급

    북한 ‘조용한’ 당 창건일 78주년 자축…정찰위성 개발 언급

    북한이 ‘사회주의 명절’로 칭하는 노동당 창건 78주년을 맞이해 그간 성과를 자찬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절대 충성을 요구했다. 또한 10월 중 발사를 예고한 군사정찰위성 개발 사업에도 정당성을 부여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당 창건일인 10일 “최장의 사회주의 집권사를 새겨가고 있는 원로적인 당, 가장 권위 있는 조선노동당이 자기의 일흔 여덟번째 생일을 뜻깊게 맞이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빛나는 78년 행로에서 창조와 변혁의 위대한 서사시가 엮어지고 세계적인 강국에로의 눈부신 비약이 이룩되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김일성이 당을 창건하고 김정일이 이끌어 왔다며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영도가 있어 조선 혁명은 언제 한번 탈선이나 연착, 정착이 없이 승승장구의 대로를 따라 힘차게 전진해올 수 있었다”고 칭송했다. 또한 김정은 위원장 집권 10년의 성과로 “전투력과 영도력을 비상히 강화한 것”을 꼽은 뒤 “이 10여년이 있어 천만년 승승할 우리 당의 미래가 확고히 담보되었다”고 강조했다.신문은 지난달 헌법에 핵무력 강화 정책을 명기한 점을 거론하며 “당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우리 공화국은 또 하나의 의의 깊고 사변적인 정치적 성과를 달성했다”면서 “당의 노숙하고 세련된 영도”라고 치켜세웠다. 북한은 ‘10월 3차 발사’를 예고한 군사정찰위성 개발 사업이 미국의 우주군 확충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가항공우주기술총국 연구사 리성진은 ‘선제적인 침략전쟁기도를 노린 미국의 우주군 배비소동’ 글에서 “군사정찰위성을 비롯한 우주개발 사업은 국가의 안전 이익과 생존권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 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밝혔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런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이 오는 12∼16일 부산에 기항한다.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의 정례적 가시성을 증진하기 위한 것으로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는 목적도 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한미는 지난 4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등을 통해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 증진’과 ‘한미가 함께 협의·결정·행동하는 일체형 확장억제’ 등에 합의한 바 있다.
  • 하마스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럴까

    하마스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 대체 왜 그럴까

    균형된 시각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긴 쉽지만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지난 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영내에 침입, 민간인들까지 사냥하듯 해치고 인질로 붙잡고 이제 ‘인간방패’로 사용하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인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과 극우 연립정권이 정착촌 건설을 무리하게 밀어붙여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삶의 터전에서 밀어내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는 점을 외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하는 입장으로선 균형보다 이득에 쏠리기 쉽다. 그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하마스의 망동 다음날 미국 뉴욕 한복판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열린 하마스 지지 집회를 돌아보자. 연사들은 하마스 요원들이 잔인하게 민간인을 살해한 것을 찬양했다고 야후! 뉴스가 전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싶다. 한 연사의 발언이다. “여러분이 지켜본 대로 레지스탕스가 전기 행글라이더를 타고 내려와 적어도 수십명의 힙스터들을 억류할 때까지 그들은 사막에서 레이브 파티를 즐기며 대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그곳에서 많은 이들이 사냥하듯 살해됐고 능욕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렇게 발언하기 힘들 것이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독일 베를린까지 대다수 시민운동가들이 깊은 슬픔에 젖어 있는데 팔레스타인이 핍박받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맹신하는 이들은 이렇게 아주 기본적인 것조차 망각한 발언을 서슴치 않는다. 이날 집회를 개최한 단체는 미국 민주 사회주의자(DSA)란 극좌 단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자말 보우먼(이상 뉴욕), 라시다 틀라입(미시간) 등 연방 하원의원들도 속해 있다. 틀라입은 팔레스타인 출신 첫 연방 의원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스라엘에 대해 날선 얘기를 곧잘 하는 일한 오마르(미네소타) 하원의원도 이 단체에 이름을 두고 있다. 틀라입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점령하는 정책을 밀어붙여 오늘의 화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이다. “봉쇄와 점령, 격리 정책 아래 살아가는 잔인한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 어느 누구도 안전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한때 미국 민주당은 이스라엘에 확고한 지지를 보내왔지만 최근 들어 상당한 균열이 발생했다. 이스라엘 내각은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종교적 근본주의자들, 서안 정착자들에게 휘둘렸다. 미국의 좌파 진영은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받으려는 그들의 열정을 해방 운동으로 받아들였고, 그들의 메시지를 사회적 용어로 주입했다. 흑인 목숨도 소중해(Black Lives Matter) 운동의 한 활동가는 2021년에 “팔레스타인의 투쟁은 우리의 투쟁”이라고 말했다. 유대인 활동가는 1950년대와 60년대 민권운동의 중심에 있었는데 50년이 훨씬 지나 미국 흑인들과 유대인은 심하게 분열돼 버렸다. 테러리스트가 득세하게 된 하마스와 전체 팔레스타인 사람을 혼동해선 안 될 것이다. 이들 극렬 분자들은 이스라엘이 서안과 가자를 점령한 상태에서 태어나 자라났다. 어린 시절부터 이스라엘이 수많은 동포들을 대테러 작전이란 미명 아래 살해하는 것을 보고 자랐다. 소셜미디어에 해방이란 목표를 역설하고 공유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것 하나 이룬 것 없이 무고한 사람들만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좌절하고 좌절한 이들이다. 시위대는 맨해튼 중심가를 행진했는데 “인티파다(봉기) 혁명”이라고 참석자들은 입을 모았다. 이스라엘 민간인들이 살해된 것을 조롱하는 이도 있었다. 본질적으로 이스라엘을 제거해야 한다는 뜻을 품고 있는 구호 “강부터 바다까지 팔레스타인은 해방될 것(From the river to the sea, Palestine will be free)”이란 구호를 즐겨 외쳤다. 일간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친팔레스타인 진영의 분위기는 자축하며 흥에 겨워하는 것이었다. 시위대는 “700”이라고 외쳤는데 그때까지 이스라엘 측 희생자 숫자였다. 손가락으로 숫자 7을 만들어 보이는 이도 있었고, 참수하는 듯한 손 동작을 하는 이, 손가락으로 승리의 V 자를 그려보이는 이도 있었다. 욕을 내뱉는 이도 있었다. 집회에 앞서 캐시 호철 뉴욕 주지사는 “뜨악하고 도덕적으로 이상한” 집회라고 비판했고, 뉴욕 진보 진영에서 떠오르는 신예 리치 토레스 하원의원은 이스라엘 편에 서겠다고 공언했다. 토레스 의원은 “이스라엘을 악마로 만들어 이스라엘 희생자들의 인간성과 가해자들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부정하는 것은 도덕적 선명함을 빙자해 도덕적 혼동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뉴욕 출신 두 하원의원 어느쪽도 비슷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의사당에 돌아왔을 때 이미 상당한 혼돈의 일주일을 보낸 뒤라 적수들, 기자들, 의원 보좌관들로부터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토요일의 폭력 사태는 (미국의) 진보 진영을 결속시키고 있다. 그들은 무고한 이들을 살해한 일을 용납하지 않으면서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연대를 표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그 길을 찾지 못했다고 야후! 뉴스는 결론내렸다.호주 시드니에서는 9일 오페라하우스가 이스라엘 국기 색깔 조명으로 물든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이들이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는 장면이 있었다. 다음날 호주 일간 디오스트레일리안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지지 군중은 전날 저녁 시드니 도심 타운홀 광장에 모여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집회를 연 뒤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까지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오페라하우스 계단 아래에서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면서 이스라엘과 유대인을 반대하는 욕설 섞인 구호를 외쳤다. 주 경찰은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대와의 충돌을 우려해 유대인 공동체에 대해 가급적 해당 조명식에 참여하지 말고 집에 머물라고 당부했다. 이에 따라 유대 공동체에서는 자신들에게는 안전을 위해 시내로 나오지 말라고 요청하면서, 팔레스타인 지지 시위는 별다른 제재 없이 허용했다는 불만을 터뜨렸다. NSW주 유대인협회의 데이비드 오시프 대표는 “국가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어 유대인들에게 시드니 도심으로 나오지 말라고 요청한 것은 서글픈 일”이라고 비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을 지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벌어지자 “폭력 미화는 용납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트뤼도 총리는 오후 수도 오타와의 한 유대인 문화센터에서 열린 이스라엘 지지 행사에서 연단에 올라 하마스의 공격을 비난했다. 캐나다 전역의 정치 지도자들도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다만 친팔레스타인 시위와 하마스 지지 시위를 구분해야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총리실은 논평을 거부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 “中 경제위기, 코로나19 아닌 개혁 실패 탓…올해 4% 미만 성장”

    “中 경제위기, 코로나19 아닌 개혁 실패 탓…올해 4% 미만 성장”

    “中경제 안정에 대한 구조적 위협 역대 최대”“공산당 3중 전회 앞두고 경제 개혁 목소리↑” 올해 중국 경제가 리오프닝(경제 활동 재개) 선언에도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개혁 실패 탓으로, 경제 안정에 대한 구조적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이라는 경고가 나왔다. 올해 성장률도 4% 미만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로디엄그룹과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4일(현지시간) 공동 발간한 중국 경제 관련 보고서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의 경제 문제는 코로나19 같은 일회성 요인이 아니라 중국 경제 시스템의 개혁 실패라는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며 “경제 안정에 대한 구조적 위협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4% 미만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주요 국제기구들의 예측치 가운데 가장 낮다. 중국 당국이 목표로 제시한 5% 안팎과도 차이가 크다. 최근 JP모건체이스가 중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6.4%에서 4.8%로 낮춘 것을 비롯해 주요 경제기관들이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까지 주요 개혁 발표가 없는 것을 감안하면 내년에도 비슷한 약세가 예상된다”며 “설사 중국이 구체적인 개혁안을 발표한다고 해도 그에 따른 조정 고통으로 내년에는 성장이 더욱 둔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이러한 경제 성장률 둔화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대국 자리에 오르겠다’는 중국의 계획이 2020년대는커녕 이번 세기 내에도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뜻한다”고 덧붙였다.중국은 지난 여름부터 여러 지원대책을 쏟아내 3분기 들어서 경제가 다소 회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부동산 침체나 지방정부 부채 확대, 민간 분야와 외국 기업의 신뢰 약화, 저출산 고령화 등이 겹쳐 일본식 장기 불황으로 들어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중국이 2017년 설정한 ‘2035년까지 사회주의 현대화 달성’ 목표 달성 가능성을 낮춘다. 보고서는 “중국 지도자들이 구조적 둔화와 개혁에 대한 활발한 논의를 허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달 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20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 전회)에서 더 많은 개혁안이 발표될 것으로 점쳐진다고 덧붙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도 5일 “중국 경제 둔화가 이어지면서 고질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개혁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경제학자들과 전직 관리들이 개혁 강화를 외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산업발전촉진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웨이자닝은 현지매체 펑파이 인터뷰에서 “중국이 일본식 장기 불황을 피하는 유일한 방법은 개혁의 기회를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웨이민 전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부주임도 지난달 상하이 와이탄 금융서밋 포럼에서 “모든 부처와 지방 당국은 시장의 역할에 반하는 정책과 기업 활동·소비를 제한하거나 간섭하는 정책들을 시정하고자 여러 정책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핵무력’ 헌법화한 北… 러 도움 받아 10월 위성 쏘나[뉴스 분석]

    ‘핵무력’ 헌법화한 北… 러 도움 받아 10월 위성 쏘나[뉴스 분석]

    북한이 최근 ‘핵무력 강화 정책의 헌법화’를 채택함으로써 비핵화 문제가 더는 흥정 대상이 아님을 대내외에 공표한 가운데 조선노동당 창건일(10월 10일)을 전후로 앞서 두 차례 실패했던 군사정찰위성을 또 쏘아 올릴지 관심이 쏠린다. 정찰위성은 엔진과 발사 기술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같다는 점에서 미국 본토에 대한 직접적 위협으로 간주되기에 이번에 성공한다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고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3일 군 당국 등에 따르면 한미는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위성 관련 기술에 대한 조력을 받았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관련 징후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북측은 지난 8월 24일 군사정찰위성 2차 발사에 실패한 직후 “10월에 제3차 발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한 채 3차 시기를 못박은 것을 두고 이른바 ‘4대 명절’ 가운데 하나인 당 창건일을 염두에 둔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내부 결속을 다지고 첨단 군사기술 능력을 과시하기에 최상의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결국 10월 3차 발사 여부와 성패의 최대 변수는 2차 실패의 원인을 완벽하게 보완했느냐다. 2차 발사 실패 직후 짧게는 한 달, 길어야 두 달 남짓한 ‘10월 3차 발사’를 예고한 것은 그만큼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권용수 전 국방대 교수는 “1, 2차 발사 정황으로 볼 때 북한 자체 기술로 궤도진입에 문제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본다”면서 “북러 정상회담 이후 러시아의 자문을 받았을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정치적 변수도 있다. 북러 결속이 가속화한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뒷배’ 역할을 해 온 중국에서 열리고 있는 항저우아시안게임을 망치는 모양새는 평양도 부담스럽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아시안게임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은 낮다. 폐막식(8일) 직후인 9일과 10일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경우에도 9~10일에 기상 상황이 뒷받침될지는 또 다른 변수다. 반면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러시아와의 인적교류 추정 정황들이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으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12월로 연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특별한 움직임을 포착한 건 없다”면서 “언제 발사를 시도할지 알 수 없는 만큼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위성 발사 시기와 관련해 주목할 또 다른 지점은 지난달 북러 정상회담이다. 당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만났던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러시아 우주개발의 상징이다. 북한 위성 개발을 도울 것이냐는 질문에 푸틴 대통령이 “그래서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이라고 밝혔다. 정찰위성 발사 외에도 북한이 지난해 10월처럼 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시험 등 군사적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 북한은 지난달 26~27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9차 회의에서 ‘사회주의 헌법’에 ‘핵무기 발전을 고도화해 나라 생존권·발전권을 담보하고 전쟁을 억제하며 지역과 세계 평화·안정을 수호한다’는 내용을 추가하는 안건을 채택했다. 홍 선임연구위원은 10~11월 한미연합공중훈련 ‘비질런트 스톰’에 대한 북측의 반발 가능성에 대해 “SLBM이나 단거리 탄도미사일, 포사격 같은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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