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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장성택 전격 처형] “張, 사회주의 전복 실세총리 되려 했다”… ‘1번 동지’로 우상화도

    [北 장성택 전격 처형] “張, 사회주의 전복 실세총리 되려 했다”… ‘1번 동지’로 우상화도

    “현대판 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 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해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 밑에(아래) 갖은 모략과 비열한 수법으로 국가전복 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했다.”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정권의 2인자로 군림했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죄목을 이렇게 설명했다. 북한은 처형의 근거로 ‘국가전복 음모죄’를 적시했다. 통신은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 제도를 전복할 목적 밑에 반당·반혁명적 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라고 표현했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3대째 세습해 온 ‘김씨왕조’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장성택이 이른바 ‘쿠데타’ 의도를 시인했다고 밝혔다. 장성택은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 간부들을 이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했다”고 재판에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구체화된 쿠데타 시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장성택은 “정변 시기는 딱히 정한 것이 없었다”면서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 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은 장성택에 대해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김일성·김정일 시대에 충성하는 척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시기에 와서 “왼새끼를 꼬면서(‘속으로 딴마음을 먹다’라는 뜻) 계승 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대역죄를 지었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적시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2010년 9월 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될 때 장성택이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장성택이 ‘불순 이색분자’들을 당과 국가의 중요 직책에 끌어들이며 ‘반동무리’를 규합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들 사이에서 장성택은 ‘1번 동지’로 불리고,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면서 자기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고 ‘우상화’를 꾀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수장으로 있던 당 행정부를 ‘소왕국’으로 만들어 놓고는 국가의 물자를 가로채 심복들에게 나눠 주고, 당의 방침보다 장성택의 말을 더 중시해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하도록 만들었다고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용어 클릭] ■북한 형법 60조 ‘국가전복 음모죄’를 “반국가적 목적으로 정변, 폭동, 시위, 습격에 참가했거나 음모에 가담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 형법의 내란음모죄와 비슷하다. 국가전복 음모죄를 저지른 자는 5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에 처하며 죄가 중대할 경우 무기 노동교화형이나 사형, 재산몰수형을 받을 수 있다.
  • 北 김정은, 장성택 처형 뒤 첫 공개활동…軍 설계연구소 시찰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인민군 설계연구소를 찾았다. 장성택 처형사건 이후 첫 공개활동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김 제1위원장이 “당의 전국요새화 방침과 사회주의 문명국 건설구상을 관철하는 데서 인민군 설계연구소가 맡은 임무가 대단히 중요하다”면서 자신이 건설부문일꾼대강습이 진행되는 중에 이곳을 찾아왔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건설부문일꾼대강습은 지난 8일 시작돼 13일에 끝난만큼 김 제1위원장의 군 설계연구소 방문은 장성택 사형이 집행된 다음날인 13일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 김 제1위원장의 공개활동 보도는 그가 장성택 숙청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 지난달 30일(보도날짜) 백두산지구 삼지연군 방문 이후 14일만의 일이다. 김 제1위원장은 “선군 조선의 새로운 건설 역사를 창조하자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면서 “건설의 대번영기를 위한 투쟁에서 군 설계연구소가 선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설계연구소는 1953년 6월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따라 설립된 후 4·25문화회관과 서해갑문 등을 설계했으며 특히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인민군무장장비관,‘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미림승마구락부(클럽)의 설계를 맡았다고 통신은 소개했다. 김 제1위원장이 장성택 숙청사건 이후 첫 시찰지로 군 설계연구소를 택한 것은 앞으로 군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김정은 체제 ‘업적’으로 내세우는 각종 시설물 건설에 군을 앞세우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의 군 설계연구소 방문에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 장정남 인민무력부장, 황병서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동행했다. 이들은 장성택의 처형 이후 김 제1위원장의 첫 공개활동에 동행했다는 점에서 향후 김정은 체제 구축에서 핵심실세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의 눈] 치명적인 상처 줄 내란음모 사건/김병철 사회2부 부국장급

    [오늘의 눈] 치명적인 상처 줄 내란음모 사건/김병철 사회2부 부국장급

    정부는 지난달 5일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65년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다. 헌법재판소는 내년 5월 초까지 진보당 해산 여부에 대한 헌법적 판단을 내리게 된다. 정당의 존폐를 넘어 자유민주주의 질서의 테두리를 규정짓는 헌재의 역사적 판단은 수원지법에서 한 달째 진행되고 내란음모 사건 재판과 맞물려 있다. 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이 사건에 연루되면서 정부가 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하도록 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내년 2월쯤 내려질 1심 판결은 헌재가 판단을 내리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청구 소장을 통해 “진보당이 사실상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있으며 그 핵심 세력들이 북의 대남혁명전략에 따라 내란음모를 했다”고 적시했다. 국정원과 검찰도 지하 비밀조직인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를 조직해 북한과 연계, 내란을 모의한 혐의로 자택과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였고 이 의원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형법상 내란음모 및 선동,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등으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북한과의 연계 여부를 가리는 게 이번 재판의 핵심인 셈이다. 재판은 12일로 한 달을 맞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18차례 재판이 진행됐지만 국정원과 검찰은 RO 조직의 실체와 북한 연계성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를 내놓지 못한 채 변호인단과 공방을 벌이고 있다. RO 내부 제보자 이모씨도“ ‘남철민’이라는 조직명을 북한이 붙여줬다”고 주장했다가 “북한에서 붙여줬다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은 없다”고 다시 말을 바꿔 신빙성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RO의 결성일이나 조직체계, 활동 내역을 특정하지 못하고 있고 제보자 진술조서를 사전 작성했다는 점도 수사당국에 부담이 되고 있다. 사건 공개시점이 대선 댓글 의혹 등으로 국정원이 수세에 몰린 8월이었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제보자는 당시 수사관에게 “댓글사건도 있는데 (공개수사가) 맞겠느냐”고 묻자 수사관은 “그럼 언제하나. 내년에 선거이고, 사건이 중요하니 실체를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다. 변호인 측은 “제보자가 자발적으로 나선 게 아니라 경제적 이유 때문에 국정원의 사주를 받아 녹음한 것이라 녹취록이 증거로 인정될 수 없다”며 공세를 펼치고 있다. 재판부는 검찰이 결정적인 증거로 제시한 녹취록에 대해 아직 증거 채택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과 검찰은 RO와 북한 연계성에 대해 계속 수사 중이지만 이를 입증하지 못할 경우 국면전환용 수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반대로 내란음모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진보당은 정당 해산이라는 압박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최대 변수는 추가 수사 결과다. 국정원은 이 사건과 별도로 북한 대남공작 부서와 접촉한 혐의로 통진당 당원이자 민족춤패 ‘출’의 대표 전모(44)씨를 구속했다. 수사당국은 전씨와 출 단원들이 RO 조직원들과 수시로 연락한 사실을 포착하고 RO 관련성을 캐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새로운 혐의가 드러날 경우 내란음모 혐의 등에 대한 유죄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국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건이라 법원의 판단에 이목이 쏠릴 수밖에 없다. kbchul@seoul.co.kr
  • “비열한 쓰레기”…北, 장성택 사형 보도 전문보니

    “비열한 쓰레기”…北, 장성택 사형 보도 전문보니

    조선중앙통신은 13일 북한이 전날 특별군사재판을 열고 장성택에 사형을 판결한 뒤 즉시 집행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됐다”면서 “공화국 형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했고 판결은 즉시에 집행됐다”고 밝혔다. 북한 형법 제60조는 국가전복음모행위에 대한 규정으로 사형에 처할 수 있다. 다음은 조선중앙통신 보도 전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 관한 보도에 접하여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에게 혁명의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는 우리 군대와 인민의 분노의 웨침이 온 나라를 진감하고있는 속에 천하의 만고역적 장성택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이 12월 12일에 진행되였다. 특별군사재판은 현대판종파의 두목으로서 장기간에 걸쳐 불순세력을 규합하고 분파를 형성하여 우리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찬탈할 야망밑에 갖은 모략과 비렬한 수법으로 국가전복음모의 극악한 범죄를 감행한 피소자 장성택의 죄행에 대한 심리를 진행하였다. 특별군사재판에 기소된 장성택의 일체 범행은 심리과정에 100% 립증되고 피소자에 의하여 전적으로 시인되였다. 공판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판결문이 랑독되였다. 판결문의 구절구절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이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인 장성택의 머리우에 내려진 증오와 격분에 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준엄한 철추와도 같았다. 피소자 장성택은 우리 당과 국가의 지도부와 사회주의제도를 전복할 목적밑에 반당반혁명적종파행위를 감행하고 조국을 반역한 천하의 만고역적이다. 장성택은 일찍부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의 높은 정치적신임에 의하여 당과 국가의 책임적인 직위에 등용되고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은덕을 그 누구보다도 많이 받아안았다. 장성택은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로부터 이전시기보다 더 높은 직무와 더 큰 믿음을 받았다. 장성택이 백두산절세위인들로부터 받아안은 정치적믿음과 은혜는 너무도 분에 넘치는것이였다. 믿음에는 의리로 보답하고 은혜는 충정으로 갚는것이 인간의 초보적인 도리이다. 그러나 개만도 못한 추악한 인간쓰레기 장성택은 당과 수령으로부터 받아안은 하늘같은 믿음과 뜨거운 육친적사랑을 배신하고 천인공노할 반역행위를 감행하였다. 놈은 오래전부터 더러운 정치적야심을 가지고있었으나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께서 생존해계실 때에는 감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눈치를 보면서 동상이몽, 양봉음위하다가 혁명의 대가 바뀌는 력사적전환의 시기에 와서 드디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전당, 전군, 전민의 일치한 념원과 의사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위대한 장군님의 유일한 후계자로 높이 추대할데 대한 중대한 문제가 토의되는 시기에 왼새끼를 꼬면서 령도의 계승문제를 음으로 양으로 방해하는 천추에 용납 못할 대역죄를 지었다. 놈은 자기의 교묘한 책동이 통할수 없게 되고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의 총의에 따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높이 모시였다는 결정이 선포되여 온 장내가 열광적인 환호로 끓어번질 때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서서 건성건성 박수를 치면서 오만불손하게 행동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치솟는 분노를 자아냈다. 놈은 그때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행동한것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군령도지반과 령군체계가 공고해지면 앞으로 제놈이 당과 국가의 권력을 탈취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조성될것이라고 생각하였기때문이라고 자인하였다. 장성택은 그후 위대한 장군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일찌기, 너무도 애석하게 우리곁을 떠나시게 되자 오래전부터 품고있던 정권야욕을 실현하기 위하여 본격적으로 책동하기 시작하였다. 장성택은 경애하는 원수님을 가까이 모시고 현지지도를 자주 수행하게 된것을 악용하여 제놈이 늘 원수님 가까이에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특별한 존재라는것을 대내외에 보여주어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려고 꾀하였다. 장성택은 제놈이 당과 국가지도부를 뒤집어엎는데 써먹을 반동무리들을 규합하기 위하여 위대한 장군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놈에게 아부아첨하고 추종하다가 된타격을 받고 철직, 해임된자들을 비롯한 불순이색분자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당중앙위원회 부서와 산하기관들에 끌어들이였다. 장성택은 청년사업부문에 배겨있으면서 적들에게 매수되여 변절한자들, 배신자들과 한동아리가 되여 우리 나라 청년운동에 엄중한 해독을 끼치였을뿐아니라 그자들이 당의 단호한 조치에 의하여 적발숙청된 이후에도 그 끄나불들을 계속 끌고다니면서 당과 국가의 중요직책에 박아넣었다. 놈은 1980년대부터 아첨군인 리룡하놈을 제놈이 다른 직무에 조동될 때마다 끌고다니였으며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종파적행동을 하여 쫓겨났던 그자를 체계적으로 당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자리에까지 올려놓아 제놈의 심복졸개로 만들어놓았다. 장성택은 당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는 중대사건을 발생시켜 쫓겨갔던 측근들과 아첨군들을 교묘한 방법으로 몇년사이에 제놈이 있는 부서와 산하단위들에 끌어올리고 전과자, 경력에 문제가 있는자, 불평불만을 가진자들을 체계적으로 자기 주위에 규합하고는 그우에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군림하였다. 놈은 부서와 산하단위의 기구를 대대적으로 늘이면서 나라의 전반사업을 걷어쥐고 성, 중앙기관들에 깊숙이 손을 뻗치려고 책동하였으며 제놈이 있던 부서를 그 누구도 다치지 못하는 《소왕국》으로 만들어놓았다. 놈은 무엄하게도 대동강타일공장에 위대한 대원수님들의 모자이크영상작품과 현지지도사적비를 모시는 사업을 가로막았을뿐아니라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조선인민내무군 군부대에 보내주신 친필서한을 천연화강석에 새겨 부대 지휘부청사앞에 정중히 모시자는 장병들의 일치한 의견을 묵살하던 끝에 마지못해 그늘진 한쪽구석에 건립하게 내리먹이는 망동을 부렸다. 장성택이 지난 기간 우리 당의 조직적의사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역하는 반당적행위를 감행한것은 제놈을 당에서 결론한 문제도, 당의 방침도 뒤집을수 있는 특수한 존재처럼 보이게 하여 제놈에 대한 극도의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는 고의적이고 불순한 기도의 발로였다. 장성택은 제놈에 대한 환상을 조성하기 위하여 당과 수령에 대한 우리 군대와 인민의 깨끗한 충정과 뜨거운 지성이 깃들어있는 물자들까지도 중도에서 가로채 심복졸개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제놈의 낯내기를 하는 무엄한짓을 하였다. 장성택이 제놈에 대한 환상과 우상화를 조장시키려고 끈질기게 책동한 결과 놈이 있던 부서와 산하기관의 아첨분자, 추종분자들은 장성택을 《1번동지》라고 춰주며 어떻게 하나 잘 보이기 위해 당의 지시도 거역하는데까지 이르렀다. 장성택은 부서와 대상기관에 당의 방침보다도 제놈의 말을 더 중시하고 받아무는 이질적인 사업체계를 세워놓음으로써 심복졸개들과 추종자들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에 불복하는 반혁명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하게 하였다.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것들은 그가 누구이든 혁명의 총대는 절대로 용서치 않을것이며 그런자들은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힐 자리가 없다. 장성택은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가로채기 위한 첫 단계로 내각총리자리에 올라앉을 개꿈을 꾸면서 제놈이 있던 부서가 나라의 중요경제부문들을 다 걷어쥐여 내각을 무력화시킴으로써 나라의 경제와 인민생활을 수습할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가려고 획책하였다. 놈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세워주신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무시하고 내각소속 검열감독기관들을 제놈밑에 소속시키였으며 위원회, 성, 중앙기관과 도, 시, 군급기관을 내오거나 없애는 문제, 무역 및 외화벌이단위와 재외기구를 조직하는 문제, 생활비적용문제를 비롯하여 내각에서 맡아하던 일체 기구사업과 관련한 모든 문제를 손안에 걷어쥐고 제 마음대로 좌지우지함으로써 내각이 경제사령부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할수 없게 하였다. 놈은 국가건설감독기구와 관련한 문제를 내각과 해당 성과 합의도 하지 않고 당에 거짓보고를 드리려고 시도하다가 해당 일군들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작성해주신 건설법과 어긋난다는 정당한 의견을 제기하자 《그러면 건설법을 뜯어고치면 되지 않는가.》고 망발하였다. 장성택은 직권을 악용하여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세워주신 수도건설과 관련한 사업체계를 헝클어놓아 몇년사이에 건설건재기지들을 페허로 만들다싶이 하고 교활한 수법으로 수도건설단위 기술자, 기능공대렬을 약화시키였으며 중요건설단위들을 심복들에게 넘겨주어 돈벌이를 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평양시건설을 고의적으로 방해하였다. 장성택은 석탄을 비롯한 귀중한 지하자원을 망탕 팔아먹도록 하여 심복들이 거간군들에게 속아 많은 빚을 지게 만들고 지난 5월 그 빚을 갚는다고 하면서 라선경제무역지대의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에 팔아먹는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2009년 만고역적 박남기놈을 부추겨 수천억원의 우리 돈을 람발하면서 엄청난 경제적혼란이 일어나게 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도록 배후조종한 장본인도 바로 장성택이다. 장성택은 정치적야망실현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종 명목으로 돈벌이를 장려하고 부정부패행위를 일삼으면서 우리 사회에 안일해이하고 무규률적인 독소를 퍼뜨리는데 앞장섰다. 1980년대 광복거리건설때부터 귀금속을 걷어모아온 장성택은 수중에 비밀기관을 만들어놓고는 국가의 법은 안중에도 없이 은행에서 거액의 자금을 빼내여 귀금속을 사들임으로써 국가의 재정관리체계에 커다란 혼란을 조성하는 반국가범죄행위를 감행하였다. 장성택은 2009년부터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사진자료들을 심복졸개들에게 류포시켜 자본주의날라리풍이 우리 내부에 들어오도록 선도하였으며 가는 곳마다에서 돈을 망탕 뿌리면서 부화방탕한 생활을 일삼았다. 장성택이 2009년 한해에만도 제놈의 비밀돈창고에서 460여만€를 꺼내 탕진한 사실과 외국도박장출입까지 한 사실 하나만 놓고보아도 놈이 얼마나 타락, 변질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장성택은 정권야욕에 미쳐 분별을 잃고 날뛰던 나머지 군대를 동원하면 정변을 성사시킬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타산하면서 인민군대에까지 마수를 뻗치려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장성택놈은 심리과정에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파국적으로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하였다.》고 하면서 정변의 대상이 바로 《최고령도자동지이다.》고 만고역적의 추악한 본심을 그대로 드러내놓았다. 놈은 정변의 수단과 방법에 대하여 《인맥관계에 있는 군대간부들을 리용하거나 측근들을 내몰아 수하에 장악된 무력으로 하려고 하였다. 최근에 임명된 군대간부들은 잘 몰라도 이전시기 임명된 군대간부들과는 면목이 있다. 그리고 앞으로 인민들과 군인들의 생활이 더 악화되면 군대도 정변에 동조할수 있지 않겠는가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내가 있던 부서의 리룡하, 장수길을 비롯한 심복들은 얼마든지 나를 따를것이라고 보았으며 정변에 인민보안기관을 담당한 사람도 나의 측근으로 리용해보려고 하였다. 이밖에 몇명도 내가 리용할수 있다고 보았다.》고 꺼리낌없이 뇌까리였다. 장성택놈은 정변을 일으킬 시점과 정변이후에는 어떻게 하려고 하였는가에 대하여 《정변시기는 딱히 정한것이 없었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에 가서 경제가 완전히 주저앉고 국가가 붕괴직전에 이르면 내가 있던 부서와 모든 경제기관들을 내각에 집중시키고 내가 총리를 하려고 하였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것으로 타산하였다.》고 토설하였다. 장성택은 비렬한 방법으로 권력을 탈취한 후 외부세계에 《개혁가》로 인식된 제놈의 추악한 몰골을 리용하여 짧은 기간에 《신정권》이 외국의 《인정》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어리석게 망상하였다. 모든 사실은 장성택이 미국과 괴뢰역적패당의 《전략적인내》정책과 《기다리는 전략》에 편승하여 우리 공화국을 내부로부터 와해붕괴시키고 당과 국가의 최고권력을 장악하려고 오래전부터 가장 교활하고 음흉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악랄하게 책동하여온 천하에 둘도 없는 만고역적, 매국노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장성택의 반당적, 반국가적, 반인민적인 죄악은 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 심리과정에 그 가증스럽고 추악한 전모가 낱낱이 밝혀지게 되였다. 시대와 력사는 당과 혁명의 원쑤, 인민의 원쑤이며 극악한 조국반역자인 장성택의 치떨리는 죄상을 영원히 기록하고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세대가 열백번 바뀌여도 변할수도 바뀔수도 없는것이 백두의 혈통이다. 우리 당과 국가, 군대와 인민은 오직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동지밖에는 그 누구도 모른다. 이 하늘아래서 감히 김정은동지의 유일적령도를 거부하고 원수님의 절대적권위에 도전하며 백두의 혈통과 일개인을 대치시키는자들을 우리 군대와 인민은 절대로 용서치 않고 그가 누구이든, 그 어디에 숨어있든 모조리 쓸어모아 력사의 준엄한 심판대우에 올려세우고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의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징벌할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안전보위부 특별군사재판소는 피소자 장성택이 적들과 사상적으로 동조하여 우리 공화국의 인민주권을 뒤집을 목적으로 감행한 국가전복음모행위가 공화국형법 제60조에 해당하는 범죄를 구성한다는것을 확증하였으며 흉악한 정치적야심가, 음모가이며 만고역적인 장성택을 혁명의 이름으로, 인민의 이름으로 준렬히 단죄규탄하면서 공화국형법(북한법) 제60조에 따라 사형에 처하기로 판결하였다. 판결은 즉시에 집행되였다. 맹수열 기자 guns@seoul.co.kr
  • [사설] 예기치 못할 北 급변사태 철저히 대비해야

    북한 김정은 독재권력 체제가 요동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집권 3년을 앞둔 시점에 대대적인 숙청 작업에 착수했다.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했던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공개 석상에서 체포해 끌어냈고 이를 TV 뉴스로 공개했다. 앞서 그의 측근 2명을 공개처형하기도 했다. 이미 장성택 측근 수십명이 처형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선대의 피의 숙청을 재연하고 있는 셈이다. 김일성의 1956년 연안파·소련파 숙청과 1967년 갑산파 숙청, 김정일의 1997년 심화조 사건을 연상케 한다. 김정일은 심화조 사건 당시 3년에 걸쳐 당 간부와 가족 등 2만 5000여명을 제거했다. 이번 김정은의 숙청 역시 앞으로 수년간 2만~3만명의 희생을 부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금의 숙청 작업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예단할 수 없다. 김정은이 권력을 더 틀어쥐게 될지, 아니면 3대 세습 체제를 무너뜨리는 쪽으로 가게 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숙청작업이 어떤 배경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그 파장이 달라질 것이다. 군부를 중심으로 한 강경파들의 반발 때문일 수도 있고, 김정일 사후 헝클어진 돈줄을 장악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항간에서 떠도는 소문처럼 부인 리설주와 장성택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일들이 만들어 낸 여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배경이 무엇이든 이번 숙청 작업은 장기적으로 김정은 체제를 심각하게 흔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굳게 잠근 빗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에는 이미 시장경제 요소가 넓게 스며들었고, 돈맛을 본 주민들의 체제 불만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당장은 김정은의 공포정치에 숨죽일지 몰라도 언제 어떤 운명을 맞을지 모를 북한 권력층의 불안감은 그에 대한 충성심을 떨어뜨리고 체제 결속을 약화시킬 것이다. 숙청 대상 고위층의 망명 도미노와 주민들의 집단 탈북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한반도의 위기는 숙청의 후유증이 분출하는 시점에 찾아올 것이다. 당장이야 김정은이 내부를 향해 뽑아든 칼을 휘두르는 데 힘을 쏟겠지만, 제 뜻대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는다면 칼끝을 돌연 밖으로, 남으로 돌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은 독일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빌미로 히틀러 나치당이 사회주의 진보세력을 대대적으로 처형하는 광란의 마녀사냥 끝에 일어났다. 북의 급변사태가 당장 오늘내일 들이닥쳐도 그리 이상할 것 없는 시기에 우리는 들어섰다.
  • ‘張 숙청 결정’ 정치국 주석단 새 권력층 부상

    ‘張 숙청 결정’ 정치국 주석단 새 권력층 부상

    북한의 권력 2인자였던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숙청으로 북한 권력 지형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신진 파워그룹으로 떠오를 인물과 장성택과 운명을 같이할 인물들 면면에 관심이 쏠린다. 우선 장성택 숙청이 결정된 지난 8일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함께 주석단에 앉은 고위 인사들은 숙청의 광풍과 무관하게 직위를 유지하거나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석단은 권력 서열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고위 간부들에게만 허용된다. 당시 주석단 앞줄에 앉은 고위 인사는 박도춘(당 정치국 위원)·김기남(위원) 당 비서, 박봉주 내각총리, 김영남(상무위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룡해(상무위원) 군 총정치국장, 김원홍(위원) 국가안전보위부장, 최태복(위원) 최고인민회의 의장, 김양건(후보위원) 통일전선부장으로 박봉주를 제외하고는 전원 당 정치국 후보위원급 이상이다. 박봉주는 당 정치국 내의 어떤 직위도 맡고 있지 않지만 적어도 위원급 이상이 앉는 주석단에 포함됐다는 점에서 확대회의 전에 당 정치국 고위직을 맡게 됐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영림 전 내각총리가 당 정치국 상무위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공식 발표만 나지 않았을 뿐이지 이미 상무위원급 지위를 누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뒷줄에는 이전에 주석단에 앉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포진했다. 우선 장성택 숙청에 앞장선 조연준(후보위원)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눈에 띈다. 조연준은 민병철 조직지도부 부부장, 박도춘 군수담당 비서와 함께 당에서 김정은 체제를 떠받칠 신진그룹으로 떠오르는 인물로 김 제1위원장의 후견인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경옥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도 박봉주와 마찬가지로 당 정치국 내 직위가 없으면서도 주석단에 앉았다. 김경옥은 김정은 집권과 함께 핵심 인물로 급부상한 당내 실세로 알려졌다. 이 밖에 장성택을 대신해 대(對)중국 외교를 맡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김영일(후보위원) 당 국제부장, 당 간부들을 총괄하고 있는 김평해(후보위원) 당 간부부장, 경제 분야의 대표적인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인 곽범기 당 비서 겸 계획재정부장, 문경덕(후보위원) 평양시 당 책임비서가 주석단 뒷줄에 앉았다. 문경덕은 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시절부터 장성택과 고락을 함께해 왔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나 무슨 까닭인지 이번 일로 오히려 입지가 더 단단해진 것으로 보인다. 장성택에게 등을 돌리고 숙청 과정에 참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래 주석단에 앉아야 하는 정치국 위원인 김영춘 전 인민무력부장,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리용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강석주 내각 부총리는 일반석으로 내려앉았다. 이 가운데 김영춘, 양형섭, 강석주 등은 장성택 비판 발언권을 얻기 위해 손을 드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일반석에 앉은 정치국 위원들은 이번 일로 권력 핵심부에서 밀려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성택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이른바 ‘장성택 라인’에는 곧 숙청의 피바람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장성택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은 리수용 전 조선합영투자위원장과 리광근 현 합영투자위원장, 리영수 당 근로단체 부장, 박명철 국방위원회 참사(전 체육상), 김기석 국가경제개발위원장, 리석철·김철진 부위원장, 로두철 내각부총리,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장성택의 자형인 전영진 쿠바 대사와 조카인 장용철 말레이시아 대사, 지재룡 중국 대사가 숙청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한편 장성택 측근의 망명설과 관련해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10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제가 알기로는 없는 것 같다”고 했고,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 북한 인사의 망명 요청 여부에 대해 “없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헌재 ‘진보당 해산 심판’ 본격화

    헌법재판소가 24일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청구 및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사건(주심 이정미 재판관)에 대한 준비절차기일을 연다. 헌재는 10일 법무부가 청구한 진보당 해산과 정당활동정지 가처분신청 사건에 대한 준비절차기일을 오는 24일 오후 2시 헌재 소법정에서 열기로 하고 양측에 출석을 통보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헌재는 양측에 오는 18일까지 주장을 요약하고 쟁점을 정리한 서면과 상대방이 제출한 서면에 대한 의견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정당해산 심판제도와 진보당 강령의 민주적 기본질서 위배 여부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를 진술할 참고인 2~3명씩을 추천할 것을 요구했다. 준비절차기일에는 양측의 주요 입장을 듣고, 가처분과 본안 소송의 진행방식, 심리 절차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 본격적인 심리에 들어가면 증인 신문과 증거 제출 등 양측의 법정 공방이 시작된다. 헌재 심리는 일반인도 방청할 수 있는 공개변론 방식으로 진행된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5일 “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며 해산심판 청구와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신청을 헌재에 제출했다. 이에 진보당은 지난 5일 헌재에 130쪽 분량의 답변서를 보내고 “정당 해산은 엄격한 요건이 갖춰져야 하고, 내란음모 사건 등 확정되지 않은 혐의를 해산 사유로 삼는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北 장성택 실각설] “張 측근 2명 공개처형 죄명은 월권·분파행위·유일영도체계 거부”

    [北 장성택 실각설] “張 측근 2명 공개처형 죄명은 월권·분파행위·유일영도체계 거부”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최측근으로, 지난달 말 공개처형된 리용하 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의 죄명은 ‘월권’과 ‘분파행위’, ‘유일영도체계 거부’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장성택 역시 실각한 것이 사실이라면 같은 혐의로 숙청됐을 가능성이 높아 주목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5일 대북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리용하와 장수길 등은 장성택의 뒤에 숨어 ‘당 위의 당’, ‘내각 위의 내각’으로 군림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면서 이들의 구체적인 죄명을 공개했다. 이들은 ‘경제과업 관철 및 군사분야에까지 관여하려 책동했다’는 비판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정보 당국 역시 장성택이 반당(反黨) 행위 또는 최고지도자의 권위를 넘보는 ‘역린’ 행위로 실각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리영호(당시 북한군 총참모장)도 지난해 7월 반당·반혁명분자로 내몰려 숙청된 바 있다. 장성택 실각설이 맞다면 당시 리영호 숙청을 주도했던 장성택은 그와 유사한 죄목으로 1년 5개월 만에 ‘토사구팽’을 당한 셈이다. 정 수석연구위원이 주장한 리용하·장수길의 혐의 가운데 ‘경제과업 관철에 관여하려 했다’는 죄명은 최근 북한의 개혁·개방 움직임을 둘러싼 세력 간 갈등과 연관된 문제로 풀이된다. 조봉현 IBK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체제에 위협이 되지 않는 제한적인 경제개혁을 원했지만, 장성택은 과감한 개혁·개방을 원했다는 설이 있다”면서 “결국 노선 갈등이 표출돼 장성택을 측근비리 명목으로 실각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공안기관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 기반을 다지는 역할을 맡고 있는 장성택이 체제 안전에 위해가 되는 중국식 개혁·개방을 주장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장성택 세력에 대한 감찰과 숙청 과정에는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뿐만 아니라 황병서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도 개입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황병서는 11월 들어 김원홍과 함께 김 제1위원장의 ‘1호 행사’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진보당 “이석기 판결 후 정당해산 심판해 달라”

    정당 해산심판 ·청구 건과 관련한 통합진보당 대리인단은 이석기(51) 의원 등의 ‘내란 음모’ 사건에 대한 재판이 수원지법에서 진행되고 있는 만큼 확정판결이 내려진 이후에 이 사안을 다뤄 달라고 헌법재판소에 요청했다고 5일 밝혔다. 진보당 대리인단은 이날 서울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내세운 주요 사유가 ‘혁명조직’(RO)이 내란 음모를 했다는 것이지만 RO 자체에 대해서는 공소제기조차 이뤄지지 않았다”며 “재판 중인 사안을 정당해산 사유로 삼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설사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더라도 개별 구성원의 행위가 정당의 행위로 평가되기는 어렵다”면서 “정부가 제출한 청구서와 증거자료를 조목조목 반박한 130쪽 분량의 답변서를 오전에 헌재에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답변서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식 사회주의가 아니며 주한미군 철수나 국가보안법 폐지는 헌법과는 관련이 없는 정책사항에 불과하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김용헌 헌재 사무처장은 해산심판청구에 대해 “(재판부가) 아직까지 적시처리 사건으로 선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앞서 법무부는 해산심판청구를 적시처리 사건으로 해달라는 의견을 헌재에 서면으로 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北 장성택 실각설] 장성택 현재 평양 자택서 자숙… 김정일 2주기때 재등장할 수도

    [北 장성택 실각설] 장성택 현재 평양 자택서 자숙… 김정일 2주기때 재등장할 수도

    실각설이 제기된 북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현재 평양 자택에서 자숙 중이며, 이르면 오는 17일 ‘김정일 사망 2주기’ 행사 때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외교관 출신인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5일 “장성택은 김일성 주석의 유일한 사위라는 점에서 처형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국가안보전략연구소가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주최한 학술회의에 참석해 “비록 별거 중이지만 김경희가 살아있는 한 장성택을 칠 사람은 없다”면서 “김정일 2주기 또는 몇 개월 뒤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장성택을 데리고 등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때의 장성택은 이미 모든 직위와 세력을 잃은 상태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또 현재 북한은 장성택 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 작업을 진행 중이며, 장성택과 연계된 노동당 중앙 및 시·도당 행정부 인원이 2000여명인 점을 감안할 때 숙청 대상자가 최소 2000명은 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장성택의 경우 앞서 숙청된 리영호 북한군 총참모장과 달리 북한 권력기관 전반에 걸친 인맥의 뿌리가 깊다”면서 “행정부뿐만 아니라 국가체육지도위원회 등 장성택 직할 부서들에 대한 해체 내지 구조조정 작업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장성택의 최측근인 리용하 당 행정부 제1부부장과 장수길 부부장이 공개처형된 사실을 언급하며 “북한 역사상 당 중앙위 부부장 이상을 공개처형한 사례는 없었다. 이는 장성택에 대한 엄중한 경고”라고 강조했다. 북한의 새로운 2인자로 떠오른 최룡해 총정치국장에 대해서는 ‘야심가’라고 소개하며 “1990년대 후반 ‘사회주의 청년동맹 황색 사건’ 당시 처형을 면하고 지방 산골에서 온갖 모욕을 당하며 칼을 갈았다는 소문이 한때 북한에서 돌기도 했다”고 전했다. 고 수석연구위원은 콩고 주재 북한대사관 1등 서기관으로 일하다 1991년 망명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北 ‘김정일 시대’ 종언… 김정은 ‘만기친람’ 체제로

    북한의 권력 2인자로 불렸던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힘을 잃으면서 이제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는 김정일 시대의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 때 운구차를 호위했던 7명 가운데 현재까지도 직위를 유지하고 있는 인사는 선전선동을 맡고 있는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뿐이다. 당시 리영호 군총참모장,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우동측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지난해 7월 리영호 숙청을 시작으로 차례로 퇴출됐다. 여기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고모부인 장성택마저 실각설이 거론되면서 김정일 시대는 사실상 종언을 고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김 제1위원장에 의해 축출된 군부의 리영호, 내각 총리였던 최영림, 노동당의 장성택은 김정일 시대 당·정·군의 ‘아이콘’이었다. 북한은 김정은 집권과 함께 ‘김정일 유훈통치’ 시대를 공식 선언하고 2012년까지 1년여간 유훈통치로 체제를 안정시켜 왔다. 김정은 시대가 개막했지만 사실상 김정일 시대가 이어졌던 셈이다. 마지막까지 권력 핵심부를 지켰던 장성택의 실각설은 북한이 김정일 시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에 들어섰음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일종의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김 제1위원장이 권력 지형에 대대적인 수술을 감행한 징후는 지난달 중·후반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우선 지난달 30일 김 제1위원장의 삼지연혁명전적지 방문이 주목된다. 삼지연혁명전적지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 혈통’의 상징적인 공간으로, 김일성 주석의 항일 무장투쟁을 기념하는 ‘삼지연 대기념비’가 세워진 곳이다. 당시 김 제1위원장은 장성택 세력 감찰과 숙청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우리의 국가정보원장), 대남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을 이끌고 이곳을 찾아 “여기에서부터 사회주의 만세 소리, 노동당 만세 소리가 더 높이 울려 나오게 하려는 것이 당의 확고한 결심”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시작에 앞서 일종의 ‘출정식’을 가졌던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특이한 점은 당시 최룡해 총정치국장이 참석한 사실이 북한 매체의 보도 사진을 통해 확인됐는데도 조선중앙통신은 최룡해보다 서열이 낮은 김원홍을 가장 먼저 호명하고 최룡해를 아예 호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양건 통전부장은 김원홍 뒤에 호명됐다. 최룡해가 늦게 도착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북한 보도는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최룡해 역시 견제 대상에 오른 게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북한,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에서 호명 순서는 대체로 권력 서열과 일치한다. 따라서 향후 김원홍과 김양건이 핵심 보좌 세력으로 떠오를 가능성도 적지 않다. 김양건은 ‘중국통’으로 분류되는 인물로 북·중 외교와 대남 사업 부문에서 장성택을 대신할 역량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인도주의로 포장 ‘재일동포 10만명 북송’의 실체

    인도주의로 포장 ‘재일동포 10만명 북송’의 실체

    1959년부터 25년 동안 재일동포 9만 3340명이 북한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일본과 북한이 맺은 ‘재일 조선인 송환협정’에 따른 조치였다. 그리고 이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 진실은 반 세기 만에 호주의 한 교수를 통해 드러났다. 호주국립대의 테사 모리스 교수는 2004년, 30년 만에 기밀 해제된 국제적십자위원회의 문건을 찾아내고 10년 간 일본의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의 실체를 추적했다. 5일과 6일 방영되는 KBS 1TV ‘KBS 파노라마’는 ‘북송’편을 통해 테사 모리스 교수와 함께 북송 사업의 은폐된 진실을 파고든다. 1950년대 일본 정부는 당시 재일동포 60만명을 사회 혼란의 원인이자 골칫거리로 지목했다. 1955년 일본적십자사를 필두로 일본의 ‘북송 프로젝트’는 본격화됐고, 1959년 2월 일본 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희망자를 북한으로 돌려보낸다는 ‘재일조선인 북송 사업’ 추진을 공식화했다. 대부분 남한 출신이었던 이들이 북한행을 택한 건 오로지 살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국적이 상실되고 일본 정부의 지원금마저 줄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한국 정부마저 이들을 ‘불순분자’로 여기며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북한행을 희망했던 이들은 140여명이었지만 결국 10만명에 가까운 이들이 북한으로 보내졌다. 일본과 북한 사이에 은밀하게 추진됐던 이 사업이 탄력을 받은 건 국제적십자사의 개입이었다. 남한 정부가 강력하게 반대하고 나선 가운데 국제적십자사는 ‘정치적인 사안’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일본의 설득으로 1956년 돌연 입장을 바꿔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 사업을 ‘인도주의적’ 사안이라고 포장해 비정치적인 조직을 정치적 사안에 교묘히 이용했다. 미국과 한국도 ‘침묵’을 지킨 공범이었다. 일본과의 안전보장 조약을 앞두고 있던 미국은 ‘인도적 차원’이라는 일본의 논리 속에 자유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 국가로의 대량 이주를 방조했다. 이승만 정부 역시 “단 한 명의 재일동포도 북송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정작 남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재일동포 사회에서는 조총련을 중심으로 북한으로의 귀국을 촉구하는 운동이 전개됐다. 무상 주택과 교육, 복지, 직업 등 장밋빛 미래가 이들을 손짓했다. 그러나 이들의 꿈은 청진항에 다다른 순간 깨졌다. 북한에서의 삶은 일본에서보다도 더 궁핍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왔다는 등의 이유로 2등 국민 취급을 받았다. 후회와 억울함, 배신감 속에 이들의 일부는 한국과 일본으로 다시 돌아갔다. 당시 재일동포들은 조총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이들의 비극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권력 도전 인정않겠다는 의지…‘張 제거=김정은 체제 안정’ 방증

    권력 도전 인정않겠다는 의지…‘張 제거=김정은 체제 안정’ 방증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집권 2주년을 앞두고 자신의 후견인 역할을 해 온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실각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주의 요소를 도입한 경제개혁을 추진하고 적극적 대외관계를 모색하는 등 광폭 행보에 나서던 북한의 변화는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과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장 부위원장의 실각 배경으로 군부와의 권력투쟁보다는 2인자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김 제1위원장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이들은 장 부위원장이 주도했던 개혁·개방정책의 운명과 김정은 체제의 ‘롱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각기 상반된 분석을 내놓았다. →장성택 부위원장의 실각 배경을 어떻게 보는가. -전현준(이하 ‘전’) 장성택이 그동안 김정은 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나름대로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너무 깊숙이 권력에 개입된 것 같다. 장성택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될 위험성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독재국가와 마찬가지로 북한체제에 2인자란 없다. 북한 외부에서 ‘장성택의 섭정’ 같은 표현까지 나왔던 상황이라 자칫 수령의 권위를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에 숙청된 것이 아닌가 싶다. 사실 장성택이 북한체육위원장 맡으면서부터 권력에서 멀어지는 조짐은 있었다. 장성택이 중국통이면서도 그동안 대중국관계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 대한 문책의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조영기(이하 ‘조’)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렸다기보다는 김 제1위원장이 어느 정도 권력기반을 장악했다고 생각하면서 2인자인 장성택의 존재를 불편해한 것 같다. →북한의 권력지형이 급변할 가능성이 거론되는데. -전 김정은 체제는 갈수록 안정될 것이다. 당권은 더욱 강화되고, 군은 군대로 김정은에 복종하고, 보위사령부·사회안전부·국가안전보위부 같은 조직들도 잘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정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정치적인 해석이 난무하고 있지만 장성택이 부정부패에 직접 연루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김정은이 장성택을 제거할 힘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앞으로 수령영도체제를 더 과감하게 추진할 것으로 본다. -조 장성택의 실각은 김정은 본인이 권력기반을 강화하려는 조치이다. 다만, 너무 강하면 부러질 가능성도 있다. 당장 장성택이 북한 권력체제의 한 기둥으로서의 역할을 했는데 갑자기 떨어지게 된 상황이라 분명 권력의 공백이 있을 것 같다. →김 제1위원장이 이처럼 빠른 시일 내에 권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배경은. -전 북한의 수령 유일 영도체계는 나이 어린 후계자가 최고지도자가 된다고 흔들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김정은 집권 초기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에 의한 섭정 또는 집단지도체제가 시작되리라 전망했는데 결국 빗나갔다. 장성택과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 최룡해 총정치국장 등은 모두 가신그룹일 뿐이다. 김정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일종의 ‘머슴’에 불과하다. 앞으로 김정은의 입지는 더욱 확고부동해지고 저항 세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조 김정은이 공식 등장한 2010년 9월 당대표자회의 때부터 북한의 권력은 군에서 당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일사상 체계를 뒷받침하는 소위 주체사상과 선군사상에 대한 해석권을 가진 사람이 당을 장악한다. 그런 면에서 김정은은 이미 당과 군의 권력을 상당히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전 선당이든 선군이든 모두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방식이다. 당 또는 군이 나라를 좌우하는 게 아니라 국가를 움직이는 수령의 힘을 어느 쪽에서 지원하느냐의 문제다. 선군·선당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현재로선 수령 체제를 위협할 대안 세력이 북한에는 없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가 붕괴할 가능성도 작다. -조 전 박사 말처럼 선군이냐 선당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외부에서 봤을 때 강해 보이는 독재 국가도 약한 측면이 있다. 권력기관 내부에서 붕괴 조짐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장성택의 실각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정책은 후퇴할까. -전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은 최룡해 또한 군부를 대표한다기보다 당료 출신이란 점이다. 군부 내의 인맥이나 지지도는 오히려 장성택이 더 높았다. 결국 북한 개혁·개방의 방향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고, 앞으로 최룡해를 중심으로 밀고 나갈 것이다. 개혁·개방은 점진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조 김정은이 핵·경제 병진정책에서 안보 혹은 국방 중시 정책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북한 권력 수뇌부들은 휴대전화나 시장의 활성화로 북한 사회 내부에서 반체제적인 분위기가 많아진 것으로 판단할 여지가 있다. →앞으로 김정은의 권력 기반은 튼튼할까. -전 독재체제를 받치는 시스템이 갖춰지면 최고지도자가 바뀐다고 체제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물론 리더도 중요하다. 김정은은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지만 2001년부터 후계자 수업을 받았다. 2007년부터 군 부대 내에서 후계자로 소문이 났고 2009년 당에서 후계자로 지목됐다. 전혀 짧지 않은 기간이다. 자다가 하루아침에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조 조금 생각이 다르다. 독재국가 지도자는 무엇보다 업적이 중요하다. 김정은은 업적 면에서 당을 위시한 지배계층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독재권력 주변에 포진한 노회한 권력자들이 김정은을 움직이려 할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김정은의 권력 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를 할 수도 있다. →신의주 경제특구와 13개 경제개발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조 북한처럼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경제개발구를 13개나 만드는 것이 과연 경제적으로 타당한지부터 짚어 봐야 한다. 13개 경제개발구는 대부분 관광 분야에 치중해 있다. 관광사업부터 시작한 국가치고 제대로 된 국가를 보지 못했다. 힘들더라도 경공업을 발전시켜 산업화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전 관광에 투자할 돈으로 공장 하나 더 짓는 게 맞다. 현재 김정은은 평양을 깨끗이 하고 화려한 체육시설을 보여 주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 -조 경제특구 전략 자체가 한계가 있다. 외부경제에 편입돼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실패가 불 보듯 뻔하다. -전 독재국가는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려고 자원을 활용한다. 이런 습성을 버릴 수 있느냐가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결국 핵이 문제인데, 북한이 핵을 포기할까. -전 핵 없이도 수령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면 북한은 핵을 포기하겠지만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의 대북전략은 북한에 핵이 없더라도 체제는 인정하지 못한다. 북한도 이를 알기 때문에 핵을 이용해 수령체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것이다. -조 경제개혁도 체제 수호 차원에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회주의 체제의 기본은 배급인데 배급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이 시장을 보완재로 활용할 때가 있다. 장마당도 경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딱 보완재 수준이다. 우리가 북한의 시장을 어떻게 활성화시켜 줄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전 북한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익숙지 않다. 인재를 외국에 유학 보내 자본주의 교육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생활 자체가 자본주의 시스템이 아니기 때문에 북한에 돌아오면 쓸모가 없어진다. 북한이 자본주의 마인드를 갖도록 다른 국가들이 도와야 한다. 정리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공포정치와 대중친화’ 두 얼굴의 통치술

    개혁·개방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 사회를 철저히 통제하면서도 따뜻한 지도자 이미지를 얻기 위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공포’와 ‘대중 친화’라는 양면의 통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체제를 이탈한 주민에게는 채찍을 들고, 순응하며 살아가는 주민에게는 당근을 주는 ‘두 얼굴의 통치술’은 1국가 2체제(자본·사회주의)에 가까운 경제 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이끄는 원동력이 됐다. 김 제1위원장은 지난해 4월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을 맞아 진행된 대규모 열병식에서 20여분간 육성연설을 하는가 하면 스스럼없이 웃고 손을 흔들며 대중과의 거리감을 좁혔다.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전 단 한차례 육성을 공개하고 대중과도 일정한 거리감을 두며 ‘신비화’를 추구했던 것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훈련 중 숨진 군인의 묘지를 직접 참배하고, 사병들과도 사진 촬영을 하는 등 밀착형 행보로 충성심을 끌어냈다. 반면 주민 통제는 더욱 강화해 지난 10월에는 ‘불순 출판선전물을 몰래 보거나 유포시키는 자들을 엄격히 처벌함에 대하여’란 제목의 포고문을 발표하고 불순 영상물 관련자들을 ‘계급적 원수’로까지 규정해 공개적으로 처형하는 등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유야무야되기는 했지만 체제 부정적인 당 간부 자녀들이 반발 세력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 9월 해외주재 외교관들에게 자녀들을 1명만 남기고 귀국시키라는 명령을 하달하는 등 관리들에게도 감시의 칼날을 번뜩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개혁·개방에 다가설수록 이 같은 사회적 통제가 더욱 잔인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동시에 김 제1위원장의 거침없는 대중 스킨십 역시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기업 자율 등 개혁정책 박차… 치적용 관광사업 많아 성과 미지수

    기업 자율 등 개혁정책 박차… 치적용 관광사업 많아 성과 미지수

    “북한 주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경제개혁과 개방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북한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개혁·개방은 체제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인 김정남은 2011년 2월 언론 인터뷰에서 북한의 개혁·개방이 불러올 역기능을 이렇게 지적했다. 개혁·개방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성 확대는 그동안 김 위원장과 그의 측근들이 끈질기게 개혁·개방을 반대해온 이유였다. 그로부터 10개월 뒤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삼남 김정은이 바통을 이어받자 북한 전문가들은 당분간 ‘유훈통치’로 개혁·개방에 대한 북한의 정책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예상보다 빨리 독자적인 정책을 펴기 시작해 지난해 6월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하는 ‘6·28 조치’를 발표했다. ‘김정은식(式) 경제개혁’의 시발점이었다. 지난 3월에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핵무력 병진노선’을 채택했고, 4월에는 2002년 일부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한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고안자인 박봉주를 내각 총리에 등용해 새 경제조치에 힘을 실었다. 그 결과 공장과 기업소의 자율성이 상당 부분 보장되고, 인센티브에 따른 임금 차별화(최고 100배 차등 지급), 대형 기업소의 자율적 해외 무역거래 허용,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 시장경제 요소가 확산됐다. 최근에는 희토류 등 희귀 광물질 매장지의 군부대와 보안시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개발을 보장하라는 지침까지 내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각 도에는 관광·농업·공업 등으로 특화된 1개 경제특구(신의주)와 13개 경제개발구가 착공을 앞두고 있고 평양에는 ‘위락시설’ 건설붐이 일고 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이미 북한의 사회주의는 껍데기만 남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문제는 김 제1위원장이 단기간 내 성과를 낼 수 있는 ‘치적쌓기용’ 관광사업에만 치중한 탓에 내실 있는 아래로부터의 변화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1·2차 산업은 부실한데 3차 산업만 비대해져 있는 상태다. 14개 경제특구 및 경제개발구도 수익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은 “중국이 투자를 해주면 일정 부분 성공할 가능성은 있지만, 미국이 대북제재를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발전 전략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 제1위원장의 아버지인 김 위원장은 생전에 중국식 개혁·개방을 선망하면서도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바로 한국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 윤택한 한국을 이웃에 두고 있는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하며 외부세계와 적극 교류한다면 자본주의 사조가 물 밀듯 들어오고, 내부 폭동이 일어나 자칫 체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중국은 워낙 대국이기 때문에 타이완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고 경제개혁을 할 수 있었고, 베트남은 경제개혁에 나섰을 때 이미 통일국가였다는 점에서 북한과는 상황이 다르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최근 한 학술회의에서 김정은식 경제개혁에 대해 “성공 가능성은 낮지만, 성공한다면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체제를 건 김 제1위원장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북한은 도약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지만, 개혁·개방이 부메랑이 되어 체제 붕괴를 앞당길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생활고 시달린다고…월북했던 윤봉길의사 조카

    생활고를 이유로 월북했다가 지난달 25일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 밀입북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중에는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의 조카도 포함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는 당국의 허가 없이 밀입북해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윤봉길 의사의 조카 윤모(66)씨와 이모(64)씨, 송모(26)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이들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몰래 들어가 북측 관계자들과 접촉하고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윤씨는 서울에서 명문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 언론사에서 일하다 광고업체를 10여년간 운영했다. 그러나 그마저 실패해 빚 독촉에 시달리고 두 차례의 결혼도 모두 실패로 끝나자 2010년 중국을 거쳐 밀입북했다. 그는 ‘윤봉길 의사의 조카이므로 북한에서는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밀입북을 결심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윤씨는 결국 기대와 다른 북한 체제에 실망하고 남한으로의 송환을 요구해 판문점을 통해 돌아왔다. 이씨는 아내의 외도를 의심해 아내를 죽이고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에 그쳤다고 검찰은 전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밀입북’ 3명 구속기소… ‘생활고’ 윤봉길 의사 조카 등 포함

    ‘밀입북’ 3명 구속기소… ‘생활고’ 윤봉길 의사 조카 등 포함

    북한에 밀입북해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던 국민 6명 중 남은 3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에는 윤봉길 의사의 조카도 포함돼 있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부장 최성남)는 정부의 허가 없이 무단 방북하고 북한 체제를 찬양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윤모(66)씨와 송모(26)씨, 이모(64)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22일 밝혔다. 윤씨 등 3명은 북한에 밀입북해 김일성·김정일 부자와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찬양·고무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윤봉길 의사의 조카인 윤씨는 서울에서 명문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중소 언론사에서 기자와 편집부국장 등으로 일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자 ‘북한에서 생활하면 윤봉길 의사의 조카이므로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밀입북했다. 윤씨는 2009년 9월 중국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을 통해 자진입북을 신청했으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2010년 1월 직접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했다. 윤씨는 북한에 체류하면서 국가안전보위부 직원 등과 접촉해 한국의 정치 정세, 경제, 사회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등 반(反)국가단체의 구성원과 회합한 혐의도 받고 있다. 윤씨는 또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자 같은 밀입북자인 송씨와 함께 원산항 부두에 있는 분향소에서 참배하기도 했다. 송씨는 육군사관학교 등에 불합격한 뒤 가난한 집안 형편에 일용직 노동자로 생활했다. 그러나 모은 돈을 모두 주식투자로 탕진하면서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반감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는 대남 선전선동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조선신보’ 등에 몰래 접속해 북한 체제를 동경했고 중국어를 독학해 주중 북한대사관 위치 등 밀입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했다. 이후 2010년 1월 두만강을 건너 밀입북한 송씨는 북한에 머물면서 김영철 북한 정찰총국장을 비롯해 군부와 잇따라 접촉해 미군기지 위치 등의 정보를 제공했다. 또 북한 선전영화와 김일성 회고록 등을 시청하고 사상학습을 받으면서 북한 체제를 찬양·고무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밀입북자인 이씨는 생계 유지가 힘들고 건강마저 악화되자 2006년 가족을 데리고 베이징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 밀입북을 신청했다. 그러나 자녀들의 의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자 2011년 5월 부인과 함께 압록강을 헤엄쳐 밀입북했다. 이씨는 북한에서 ‘김일성회고록’, ‘21세기 태양 김정일 장군’ 등의 책을 읽으면서 북한 사회주의체제와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찬양했다. 그러나 북한 측 당국자와 부인이 부적절한 관계인 것으로 의심한 이씨는 제3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되자 단식투쟁을 하는 등 북한내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이후 이씨는 밀입북 때 갖고 간 돈을 부인이 북측 당국자에게 몰래 건네주는 것으로 오해하고 홧김에 부인을 살해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앞서 윤씨 등 6명은 지난달 25일 판문점을 거쳐 국내로 송환됐고, 국정원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뒤 수사를 벌여왔다. 검찰은 지난 12일에도 북한 체제를 찬양하고 무단 방북한 혐의 등으로 김모(43)씨와 장모(42)씨, 황모(55)씨 등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중국 보시라이당 창당/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중국 보시라이당 창당/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중국은 헌법상으론 다당제 국가이다. 1949년 집권한 공산당은 그러나 다른 정당의 창당을 국가전복 시도로 간주해 사실상 금지하고 있다. 집권 이전에 설립된 8개 정당만이 법적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民革), ‘중국민주동맹’(民盟), ‘중국민주건국회’(民建), ‘중국민주촉진회’(民進), ‘중국농공민주당’(農工黨), ‘중국치공당’(致公黨), ‘중국구삼학사’(九三學士), ‘타이완민주자치동맹’(臺盟)이 그들이다. 당원은 4000명(臺盟)에서 15만명(民盟) 정도이다. 이들은 독립 정당이라기보다 공산당에 협조하는 외곽단체 성격이 강해 중국 다당제를 합리화하는 구실을 제공한다. 당 주석(대표)의 면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완어샹(萬鄂湘) 민혁 주석은 최고인민법원 부원장, 장바오원(張寶文) 민맹 주석은 농업부 부부장, 천창즈(陳昌智) 민건 주석은 감찰부 부부장, 옌쥐안치(嚴?琪) 민진 주석은 상하이 부시장, 천주(陳竺) 농공당 주석은 위생부장 등을 각각 거친 전인대 부위원장들이다. 완강(萬鋼) 치공당 주석은 과학기술부장, 한치더(韓啓德) 구삼학사 주석은 베이징대 상무부총장, 린원이 대맹 주석은 전인대 부비서장 등을 각각 지낸 정협 부주석들이다. 장차관을 역임한 이들이 당대표를 맡고 있으니 야당의 역할을 기대하기에는 애시당초 물 건너간 셈이다. 부패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받고 복역 중인 보시라이(薄熙來)를 지지하는 정당이 결성됐다는 소식이다. 외신에 따르면 그를 종신 주석으로 추대한 ‘즈셴당’(至憲黨)이 6일 창립됐다. 보시라이는 충칭(重慶)시 당서기를 지내는 동안 ‘창훙다헤이’(唱紅打黑·사회주의노선 견지 및 범죄·부패 척결)와 공평한 분배정책을 실시해 신좌파 ‘영웅’으로 떠오르며 최고 지도부 진입을 눈앞에 뒀다. 하지만 지난해 2월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시 공안국장의 미국 총영사관 도주 사건으로 실각했다. ‘헌법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다’는 뜻의 즈셴당은 경제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있다. 창당 주역 왕정(王錚) 베이징경제관리직업학원 교수는 11일 “보시라이 사건은 형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인 만큼 이를 정치적으로 풀기 위해 정당을 만들었다”면서 교사와 은행원을 중심으로 입당 신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보시라이당의 앞날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우선 중국 정부가 활동을 허용해줄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반체제 인사 쉬원리(徐文立)가 1998년 중국 민주당을 설립하려다 미국으로 추방당했다. 더 중요한 점은 빈부격차와 부패문제 등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개혁 청사진을 제시해 중국인의 지지를 이끌어내느냐다. 소수 좌파의 ‘일장춘몽’으로 끝날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도 통합진보당을 둘러싸고 시끄럽다. 해산 심판이 청구된 진보당의 행보가 그간 일반 국민 정서와는 괴리가 너무 컸다는 지적이다. 진보정당을 표방해 온 진보당이 실제론 ‘북한 노동당의 하부조직 역할을 해왔다’는 국민 인식을 바꾸지 못하는 한 해산결정 여부와 관계없이 정당의 생명은 사실상 끝난다. 이들 정당의 운명이 주목된다. khkim@seoul.co.kr
  • [이슈&논쟁]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이슈&논쟁] 진보당 해산 심판 청구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종북’ 논란을 빚고 있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했다. 통합진보당이 이에 강력 반발하는 등 정당 해산 심판 청구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헌재의 심리가 시작되면 논란은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정부 조치에 대한 찬반 의견은 확연히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경선 부정과 폭력사태에다 이석기 의원이 내란음모 혐의 등으로 재판에 회부되는 등 통합진보당이 헌법을 파괴하고 국가를 어지럽히고 있는 만큼 정부의 해산심판 청구가 당연하다는 여론이 있는 반면 아직 이 의원에 대한 법원의 판결도 나오지 않은 데다 정당 해산은 국가나 정부가 아닌 국민의 권한이라는 반대론도 만만치 않다. 통합진보당을 상대로 제기된 정당 해산 심판청구에 대해 신율 명지대 교수와 이재화 변호사에게 찬반 의견을 들었다. 김효섭 기자 newworld@seoul.co.kr·일러스트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 <贊> 신율 명지대 교수 “헌법적 가치 해할 가능성에 우려… 정부, 국민불안 해소할 의무 있어”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로 정가가 시끄럽다. 일부에서는 정부에 의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가 이루어진 시점이 박근혜 대통령이 외국에 나갔을 때라는 점을 들어 대통령에게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한 배려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존재가 정치적으로 그만큼 비중 있는 존재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은 단지 정치적인 논란의 대상일 뿐이다. 지금 통합진보당의 지지율은 2% 남짓이다. 선거 직후라면 이 정도 지지율을 획득한 정당은 해산된다. 우리나라의 진정한 진보 정당이라고 할 수 있는 진보신당이 해산된 이유도 선거에서 2%의 지지율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정도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정당에 대한 해산 청구를 위해 대통령 외유 시기를 기다렸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물론 최초의 정당 해산 청구라는 점에서는 정부나 청와대가 부담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국민들의 불안감을 감안하면, 정부나 청와대가 가질 수 있는 부담감이 상당 부분 희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자기가 속한 상임위와 관련된 사안이 아님에도 국방부에 다양한 자료를 요청한 것을 두고 불안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로서도 이런 조치를 서두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정당 해산 청구가 법에 명문화돼 있는 나라는 전 세계를 통틀어 얼마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우리나라의 헌법 체계가 대륙법, 그것도 독일법 체계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즉, 독일도 정당 해산 청구 절차를 명문화하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이 헌법재판소를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 헌법체계에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가 헌법재판소와 함께 정당 해산 절차에 관한 규정을 두는 것은 그다지 부자연스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일부는 독일은 나치당까지 그냥 놔두는데 우리는 왜 정당을 인위적으로 없애려고 하느냐는 주장을 편다. 실제 이 주장은 모 종편 방송에서 한 평론가가 한 말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틀린 말이다. 독일은 나치당을 그냥 놔두지는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지만 독일 기본법(헌법) 1조는 “인간의 존엄성은 신성불가침이다”라고 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법(헌법)의 근본 정신인 인간의 존엄성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정당 혹은 정치인이 독일 정치에 등장하면 당연히 제재를 받는다. 독일 연방 헌법수호청(Bundes Verfassungsschutz)이 일차적으로 이들 정당을 제지하고 그 다음 정당 해산을 헌재에 청구한다. 실제 2001년 나치의 부활을 추구한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독일민족민주당에 대한 정당 해산 심판 청구 소송이 제기됐었다. 이 청구는 기각됐지만 그 이유가 이 정당이 독일 나치의 부활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독일민족민주당에 첩보원으로 침투했던 독일헌법수호청 직원의 신상공개를 수호청이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정당 해산의 요건은 갖추었지만 그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의 투명성이 문제였다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1990년대 자유노동자당과 민족연맹당은 모두 헌법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행정 절차에 의해 해산됐다. 즉, 독일 정부도 자신들의 헌법적 가치를 해할 가능성이 높은 정당은 최근까지도 해산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사례라는 주장은 동의할 수 없다. 국가는 0.01%의 위험성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이런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스위스가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국가의 이런 역할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해줄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려야 할 시점이지, 정부의 의도를 논할 때는 아니다. ■ <反> 이재화 변호사·민변 사법위 부위원장 “진보당 강령, 국민주권 부정 안해… 헌법상 요건 못 갖춘 청구권 남용” 민주주의는 다양한 의견과 사상, 정당을 수용하는 체제다. 반공주의만을 민주주의로 오인하고, 다른 사상과 의견을 가진 정당을 모두 적으로 규정하고 타도의 대상으로 여기는 것은 전체주의일 뿐이다. 헌법 제8조 제4항의 정당 해산 규정은 1960년 제2공화국 헌법에서 신설한 것이다. 1958년 행정처분으로 ‘진보당’을 해산시킨 사건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 야당을 보호하기 위해 명문화한 것이다. 정당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고, 헌정 질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을 때에 ‘최후의 수단’으로 정당 해산을 하도록 규정했다. 53년 동안 유신정권도, 전두환 군사정권도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은 것은 이 조항의 도입 취지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인 1950년대 독일에서 있었던 두 건의 위헌정당 해산 결정(1951년 사회주의제국당과 1956년 독일공산당 해산 결정) 이후 60여년간 선진국에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을 한 예는 없다. 정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적 가치에 다소 반하더라도 선거를 통하여 국민들이 그 정당을 심판하도록 하면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정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유럽평의회 산하기구인 ‘베니스위원회’(법을 통한 민주주의 유럽위원회)는 2009년 “정당의 금지나 해산은 헌정 질서를 전복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세계적인 추세는 소수 정당을 권력으로부터 보호하는 수단으로 정당 해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번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는 헌법의 취지와 세계적인 추세에도 반하는 또 다른 ‘헌법파괴 행위’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 강령 중 ‘민중이 주인이 되는 평등세상 건설’ 부분이 북한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와 같은 내용이고,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터무니없다. 민중이라는 용어는 제헌국회 초대 의장 이승만도 사용한 것으로, 북한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통합진보당의 ‘민중이 주인이 되는 평등세상’은 기득권 세력에게는 주권을 배제하고 민중들만이 주권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주권주의를 부정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정부는 통합진보당 당헌에 있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김일성의 사상을 도입한 것라고 주장하나, 이 또한 궤변에 불과하다. ‘진보적 민주주의’라는 용어는 김일성이 처음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1915년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이 처음 사용하였던 개념이다. 통합진보당이 북한의 지령에 따라 이 개념을 당헌에 규정하였다고 볼 아무런 증거도 없다. 통합진보당 강령에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자주와 평등, 평화와 통일, 민주와 민생, 생태와 평등을 가치로 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국민주권주의나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정부는 ‘이석기 의원 등 RO 조직의 활동은 통합진보당의 활동이고, 그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하였다’고 주장한다. 내란음모 사건은 현재 제1심 소송 중이다. 아직 사실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해서는 ‘재판결과를 본 후 관련자를 문책하겠다’고 하면서 내란음모 사건의 재판 결과를 지켜보지 않고 위헌정당 심판을 청구했다. ‘모순’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검사의 공소장에 의하더라도 RO 조직은 통합진보당 조직이 아니고, 그 행위도 통합진보당의 활동이 아니라 일부 당원들의 개별적인 것에 불과하다. 만약 그 조직이 통합진보당의 조직이고 그 활동이 당의 활동이었다면 검사가 이정희 당대표 등 당의 주요 간부들을 기소하지 않았을 리 만무하다. 중앙당이 RO 조직과 그 활동을 사전승인하거나 사후추인하였음을 인정할 아무런 근거가 없다. 따라서 정부의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정부의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청구는 헌법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명백한 청구권 남용이다.
  • 역사학계 진보-보수, 역사교과서 정면충돌

    한국 사학계 원로 교수 16명이 최근 정부, 여당을 중심으로 나오는 역사 교과서의 국정 전환 문제에 대해 ‘획일적인 역사 해석을 주입시키겠다는 시대착오적 망발’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주초 정홍원 국무총리와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현행 검인정 체제를 국정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역할과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놓고도 지적이 이어졌다. 한국 사학계 원로 교수들은 12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유신 독재하에서 시행될 때 우리는 정부가 강요한 전체주의적 획일화 교육이 가져오는 황폐화를 체험했다”면서 “오늘날 다시 정권 입맛에 맞는 한 가지 역사 해석만을 획일적으로 주입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망발이고 백년대계의 교육을 스스로 망치는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 전 숙명여대 교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장을 지낸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 민족문제연구소장인 임헌영 전 서울교대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인 안병욱 전 가톨릭대 교수, 이야기인물한국사 등 수많은 저작을 낸 이이화 전 서원대 석좌교수 등 원로 교수들이 참석했다. 역사 교과서 논란의 시발점이 된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들은 “교육 당국이 교과서의 기본 요건과 수준을 갖추지 못한 교학사판 교과서를 감싸면서 한국사 교육 자체를 파탄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아들의 한국 국적 포기로 논란을 빚은 유영익 위원장을 향해 “정권에 예속돼 가는 국사편찬위원회를 국가의 근간을 세우고 유지하기 위한 학술기관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현대사학회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8종 역사 교과서 비교 분석 세미나’를 열고 교학사 교과서를 제외한 7종의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에게 좋지 않다고 반박했다. 교학사 교과서 저자인 이명희 공주대 교수는 “천재교육, 미래엔 교과서가 미주에서 전개된 외교 활동 등에는 부정적 의미를 부여한 반면 국내 사회주의·민중운동은 긍정적으로 묘사했다”면서 “한국 사학계의 큰 문제점은 한국 사학자들 다수가 민중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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