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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多樂房] ‘와즈다’

    ‘와즈다’는 자전거를 타고 싶은 사우디아라비아 소녀의 고군분투기를 담은 작품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삶을 바꾼 ‘와즈다’에 대한 영화적 경험은 한마디로 ‘놀라움’이다. ‘와즈다’를 보면서 대다수의 관객들은 적어도 두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이 영화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통제된 삶에 대한 생생한 묘사가 있다. 이슬람교 율법으로 인해 중동지역 여성들이 자유롭지 못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열 살 소녀의 욕망과 그것을 억누르는 교육 현실을 이처럼 생동감 넘치게 그려낸 영화는 없었다. 남성들의 이목으로부터 철저히 자신을 차단시켜야 하는 불편한 일상, 그것을 정숙한 여성의 미덕으로 세뇌시키는 여학교의 보수적 교육 등은 아직 유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머리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유독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폭력적 금기들-얼굴 노출, 여행, 운전, 투표 등-은 ‘문화’나 ‘가치관’의 다양성으로 받아들이기에 분명 벅차다. 이 영화는 이러한 금기들에 순응하지 못하는 말괄량이 소녀 ‘와즈다’와 그녀의 엄마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애환을 잘 표현해 냈다. 그런데 ‘와즈다’의 진짜 비범함은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기성세대 혹은 기존 가치관에 한순간도 무례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심지어 극단적인 표현이나 상황 하나 없이 착하기만 한데도 충분히 강렬하고 감동적이다. 사회 비판이나 고발보다는 희망적 결말을 통해 ‘작은 변화’를 만들고자 했던 감독의 의도가 잘 드러난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그 작은 변화는 영화 속 와즈다의 가정으로부터 시작돼 영화 개봉 후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실로 퍼져나간다. 두 번째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이토록 탄탄한 작품이 사우디아라비아 ‘최초의’ 장편 영화일 뿐 아니라 ‘최초의 여성 감독이 만든 처녀작’이라는 점이다. 엄마와 딸의 이야기가 복선(複線)으로 진행되다 한 번씩 맞물리는 내러티브의 치밀함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카메라는 무심한 듯 정교하게 현실의 단면들을 포착해 낸다. 일례로 영화의 도입부에서 와즈다의 등굣길에 여기저기 파헤쳐진 공사장의 모습, 모래바람에 휘날리는 와즈다의 아바야(얼굴을 가리는 검은색 스카프) 등은 급변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와즈다 모녀의 갈등과 화합을 시각화해 나가는 방식도 흥미롭다. 이 영화가 ‘최초’라니, 감탄스러우면서도 한편 서글픈 이유는 뭘까. 일찍이 레닌은 영화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예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그의 목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기반으로 한 예술의 대중선동이었다는 점에서 현재의 매체 인식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그가 영화의 사회적 파급력을 간파했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리고 21세기에도 영화가 세상을 바꾸는 일은 일어나고 있다. ‘와즈다’ 개봉 이후 자전거를 타게 된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에게 앞으로도 계속 변화의 물결이 일기를, 그 가운데 영화가 일임을 담당해 주기를 소원한다. 19일 개봉. 전체 관람가. 영화 평론가
  • 이 골을… 상처난 조국에게

    이 골을… 상처난 조국에게

    베다드 이비셰비치(30·슈투트가르트)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축구 역사를 새로 썼다. 이비셰비치는 16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월드컵 F조 조별리그 아르헨티나와의 1차전에서 0-2로 끌려가던 후반 40분 만회골을 터뜨렸다. 그는 상대 골문 앞에서 그림 같은 스루패스를 이어받아 감각적인 슈팅을 날렸고 공은 골키퍼의 몸에 맞은 뒤 그대로 골문 안으로 굴러 들어갔다. 1992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에서 독립한 이후 3년 동안 내전을 벌여 20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지금도 그 상흔 극복에 안간힘을 쓰는 조국에 바친 월드컵 1호골이었다. 당초 전문가들은 간판 공격수 에딘 제코(28·맨체스터 시티)가 보스니아 첫 영예의 주인공이 될 것으로 점쳤다. 하지만 영광은 후반 24분 멘수르 무이자(30·프라이부르크)와 교체 투입된 이비셰비치의 몫이 됐다. 앞서 수비수 세아드 콜라시나츠(21·샬케04)가 경기 시작 2분 8초 만에 월드컵 사상 최단 시간 자책골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자책골은 공식 기록이 되지 않기 때문에 ‘1호’가 되지도 않는다. 이비셰비치의 득점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보스니아의 16강 진출에 분수령이 될 오는 22일 나이지리아와의 2차전에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스니아 선수들에게 불어넣을 것으로 보인다. 이비셰비치는 2003년 미국 프로팀에서 뛰다가 현재 알제리 대표팀의 지휘봉을 쥔 바히드 할릴호지치 파리생제르맹 감독의 눈에 들어 이듬해 프랑스프로축구 리그앙(1부 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는 못했고 2007년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의 호펜하임으로 이적해서야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히가시타니 사토시 지음, 신현호 옮김, 부키 펴냄) 20세기의 운명을 바꾼 현대 경제학자 14명의 삶과 이론을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존 M 케인스를 중심으로 전개했다. 케인스 경제학을 받아들인 미국의 케인스주의자들과 케인스에 반발한 경제학자들로 나누어 독창적 주장과 이론을 소개한다. 하버드대 재학 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로부터 받은 차별을 멋지게 극복한 폴 새뮤얼슨, 학생 시절 겪은 대공황의 충격을 계기로 빈곤 문제를 파헤치고 새로운 사회주의론을 펼친 존 갤브레이스, 무명의 학자로 살다가 금융위기 예측으로 극적으로 부활한 하이먼 민스키, 케인스 경제학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밀턴 프리드먼, 아버지의 실명과 아내의 자살 등 연이은 불행을 새로운 경제학 연구로 확장한 게리 베커 등을 소개한다. 경제 사상과 이론의 발전 과정, 천재적 경제학자들의 눈부신 활약과 실수 속에 전개된 20세기 경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416쪽. 1만 6000원. 미학사3(타타르키비츠 지음, 손효주 옮김, 미술문화 펴냄) 폴란드 출신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브와디스와프 타타르키비츠(1886~1980)가 남긴 미학 분야의 명저 ‘미학사’ 중 마지막 권. 고대와 중세 미학을 각각 다룬 1권과 2권에 이어 15~17세기 근대 미학의 역사를 다뤘다. 총 9부로 구성돼 이 시기 유럽 미학에서 의미 있는 사건과 주요 인물, 특징을 정리했다. 책은 시, 시학, 음악, 건축, 회화 등 예술 장르 대부분을 아우르면서 근대 미학의 태동기로서의 15~17세기에 집중한다. 저자는 미학이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잡는 데 이 시기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강조한다.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를 시작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로보르텔로, 스칼리체르, 뒤러, 몽테뉴, 카라바조, 루벤스, 코르네유 등 당대 예술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역사적 의미와 이론 등을 풍부한 원문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근대 미학을 이끈 주요 인물들의 희귀한 초상화를 각 장에 삽입했고, 역사적으로 사료 가치가 증명된 희귀 도판들도 고증 자료로 제시했다. 904쪽. 3만 8000원. 한반도 나비도감(백문기·신유항 지음, 자연과생태 펴냄) 한반도에 기록된 나비 전종(280종)을 분류학적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 나비 연구의 시초가 된 석주명 박사의 ‘한반도 나비’(1939년) 이래의 한반도 나비 연구사를 집대성한 책이다. 오랜 세월 한반도 나비 연구에 대한 종합적 분류작업이 없었던 탓에 잘못된 정보를 반복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 우리나라 곤충 연구사의 산증인인 80대의 신유항 박사와 열정 어린 40대의 중반의 곤충연구자 백문기 박사가 합심해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6년에 걸쳐 참고 문헌 400여종을 꼼꼼히 살펴 한반도 나비의 분류학적 소속을 명확히 하고 옛 지명을 현재에 맞게 정리했으며 같은 종의 다른 이름도 추리고, 북한명도 밝혀내 기입했다. 수리팔랑나비, 모시나비, 호랑나비 등 무리별로 우리나라 이름의 유래와 분포, 출현 시기, 먹이식물 등을 정리한 그림 검색표를 수록해 찾기 쉽도록 했다. 생태 및 표본 사진 3200여 컷을 수록했으며 한반도 나비의 먹이식물도 정리했다. 600쪽. 5만 5000원.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다산북스 펴냄) ‘강남 좌파’의 간판 스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펼쳐 보인 자화상. 화려한 스펙, 잘생긴 외모로 소위 ‘엄친아’로 알려진 그가 어떻게 만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만 26세에 교수가 되고, 그리고 대표 진보 지식인으로 살게 됐는지 솔직하게 풀어 놓는다. 조 교수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시간 대부분을 7평 연구실에서 공부하며 보낸다. 책 제목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화두 아래 끊임없이 공부하는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며,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좋은 대학, 직장에 전전긍긍하며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한국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난다. 류재운 작가가 조 교수를 인터뷰한 내용을 조 교수가 다시 집필했다. 260쪽. 1만 5000원.
  • “근현대 100년 건축사에 한 조각 남은 퍼즐 맞춘 셈”

    “근현대 100년 건축사에 한 조각 남은 퍼즐 맞춘 셈”

    “(전시 총감독인) 렘 콜하스가 기획한 이번 건축전은 그간 건축 담론을 이끌던 (서구 중심의) ‘문법’을 무시하고 단어나 의미부터 다시 살피도록 했어요. ‘문법’을 따르도록 강요당한 변방 국가들에 기회가 왔고, 그래서 ‘뒤집어지게’ 만들었죠. 우리가 안 받았다면 칠레나 인도네시아가 받았을 겁니다.”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한국관의 조민석 커미셔너는 스승 격인 렘 콜하스 총감독 얘기부터 꺼냈다. 12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조 커미셔너는 “콜하스가 현지 기자회견에서 누군가가 볼 만한 국가관을 물으면 한국관부터 언급했고, 심사위원단이 30분 넘게 한국관에 머물러 상을 타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말했다. “지인이 전화를 걸어 울면서 수상 소식을 전했을 때도 사실 담담했다”고 덧붙였다. 조 커미셔너는 이번 수상을 100년간 이어 온 근현대 건축의 역사에서 우리나라가 하나 남은 퍼즐 조각을 맞춘 것으로 표현했다. 서구에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담론이 일어나 건축에 영향을 미쳤으나 우리는 남북으로 갈려 각기 다른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제로 ‘한반도 오감도’전을 내놨고 한국이 처음으로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기자회견에선 조 커미셔너와 총감독인 콜하스의 ‘인적 네트워크’에 대해 질문이 쏠렸다. ‘차세대 건축가’로 두각을 나타내 온 조 커미셔너는 콜하스가 소장으로 있는 네덜란드 설계사무소 OMA에서 경험을 쌓았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지난해 이런 배경을 참고해 국제적 네트워크가 풍부한 조 커미셔너를 공모에서 최종 낙점했다. 배형민(서울시립대 교수) 한국관 큐레이터는 “스승과 제자인 콜하스와 조 커미셔너의 관계는 각별하다”며 “조 커미셔너는 콜하스가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기자회견에 참석한 한국관 관계자들은 “국내에는 제대로 된 건축박물관 하나 없다”며 “이번 수상이 건축을 문화로 만들고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문창극 “나라 망하려고 게이 퍼레이드”

    “우리나라는 불신 사회다. 서로 믿지 않고 헐뜯는다.”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자가 1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진행된 언론정보학과 전공선택과목 ‘저널리즘의 이해’ 종강 수업에서 “어느 사회에나 갈등은 있기 마련이지만 우리는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균열이 생겼다”면서 “불신을 극복하지 않으면 쇠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젊은 후배들이 바르게 자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복지를 더해 달라’, ‘버스를 공짜로 태워 달라’며 기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노약자나 장애인처럼 도움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자기 힘으로 걸을 수 있고 자기 힘으로 살 수 있으면 자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 후보자는 또한 “‘문창극=보수 논객’은 고정관념, 편견, 착각이다. 사회에 뿌리내린 이런 편견을 깨뜨려야 하는 것이 언론인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기 직전 문 후보자는 “게이퍼레이드, 이런 걸 왜 하나. 혼자서만 그러면 되지. 나라가 망하려고 그런다”며 성소수자들을 비하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대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강의 평가 사이트 ‘스누이브’에서 2010년 문 후보자의 ‘저널리즘의 이해’ 강의를 평가한 10명의 학생은 10점 만점에 평균 3.0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서울대 학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는 2010년 문 후보자의 수업을 들은 학생이 올린 글로 연결되는 링크가 올라오기도 했다. 이 학생은 문 후보자가 무상급식에 대해 쓴 칼럼이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도 수업 시간 자료로 썼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당시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무상급식과 관련해 문 후보자가 ‘무료 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뉴스 플러스] 좌파 토론회 참석 서울대생 무죄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사회주의노동자당 건설 토론회에 참석해 이적표현물에 대한 긍정적 발언을 하는 등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서울대생 이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해 의견을 말했을 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 문창극 총리 후보 칼럼 분석…DJ·盧는 물론 朴대통령·안철수 대표도 비판

    문창극 총리 후보 칼럼 분석…DJ·盧는 물론 朴대통령·안철수 대표도 비판

    문창극 총리 후보 칼럼 분석…DJ·盧는 물론 朴대통령·안철수 대표도 비판 10일 새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은 과거 보수성향 일간지에 몸을 담으면서 논설위원, 대기자 신분으로 칼럼을 발표해왔다. 문창극 후보자가 쓴 칼럼의 특징은 크게 ▲고(故)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시각 ▲이명박 정부 당시 박근혜 대통령 등 유력 대권후보들에 대한 견제 ▲각 분야에 대한 보수적인 색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문창극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던 2007년 6월11일 ‘정치도 성품이 먼저다’라는 칼럼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그의 언어는 왜 그렇게 상스러운가. 그의 말로 인해 나라 전체의 품격은 무너지고 있다”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2009년 5월 26일에는 문 후보자는 2009년 5월26일 ‘공인의 죽음’이라는 칼럼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자연인으로서 가슴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 그 점이 그의 장례절차나 사후 문제에도 반영돼야 했다”며 국민장 논의를 반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2007년 8월 3일 ‘마지막 남은 일’이라는 칼럼에서는 병세가 위독한 것으로 전해진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비자금 조성과 재산 해외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많은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물론 당사자 쪽에서도 일절 반응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경을 헤매는 당사자에게 이를 밝히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면서도 “그렇다고 이런 제기된 의혹들을 그대로 덮어 두기로 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이 안타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을 총리 후보로 지목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2011년 2월22일 ‘복있는 나라Ⅱ’라는 칼럼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겨냥, “행정수도 고집이나 과학벨트 언급은 단지 약속을 지킨다는 이유 때문일까. 국가 안보가 어려울 때는 한마디도 안 하다가 불쑥 복지정책을 꺼내든 이유가 무엇인가. 국가의 미래보다 선거의 표 때문은 아닐까”라고 비판했다. 같은 해 4월 4일 ‘박근혜 현상’이라는 칼럼에서도 “우리가 뽑지도 않았고 권한을 위임하지도 않았는데 권력이 한쪽으로 몰려가고 있다”면서 “5년은 국민이 그(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나라를 다스릴 권한을 위임한 불가침의 기간인데 왜 앞질러서 그의 권력을 훼손하려 드는가”라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이어 “그녀는 자기 주장을 논리적으로 자세히 설명하지도, 발표하지도 않는다. 그저 몇 마디 하면 주변의 참모가 해석하고, 언론은 대서특필한다”라며 “자유인인 지금도 이럴진대 만약 실제 권력의 자리에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국민의 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휘장 속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2012년 대선 정국에서는 안철수 현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언행을 비판했었다. 문창극 후보자는 2012년 10월 30일자 칼럼에서 “그가 현실을 쫓아간다면 그는 과거 모든 제3의 인물들처럼 역사의 한 포말이 되어 흩어질 뿐이리라”고 적었다. 문창극 후보자는 사회, 북한, 경제 등의 각종 분야에서도 보수적인 입장을 보였다. 2010년 3월 당시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이던 무상급식과 관련, ‘공짜 점심은 싫다’라는 칼럼에서 “무료 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2012년 2월 28일 칼럼에서는 “천안함이 공격을 당해도 우리는 그 분노조차 집약시키지 못하는 나라로 변해버렸다. 지금 모두의 관심은 복지에 쏠려 있다”라며 “문제는 안보다, 이 바보야!”라고 일갈했었다. 앞서 2010년 12월27일에는 “이제는 햇볕정책의 실패를 선언해야 한다”고 평가했고, 2011년 8월9일에는 한진중공업 농성과 제주도 해군기지 시위 등을 가리켜 “불법에 대해서는 단호해야 한다”며 어느 사회든 곰팡이는 있게 마련이지만 특히 우리는 북쪽에서 그 균이 날아오고 있다. 6·25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창극 ‘노무현 서거’ 칼럼에 野 반발…서울대생 문창극 강의평가 내용도 눈길

    문창극 ‘노무현 서거’ 칼럼에 野 반발…서울대생 문창극 강의평가 내용도 눈길

    ‘문창극 노무현’ ‘국무총리 후보’ 문창극 ‘노무현 서거’ 칼럼 내용이 야권의 반발을 사고 있다.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10일 신임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가운데 문창극 후보자가 과거에 쓴 칼럼 내용에 야권이 반발하고 나섰다. 야권에서는 문창극 총리 후보의 칼럼 속에 드러난 ‘반공 우파’ 성향을 들어 통합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문창극 총리 후보는 지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 중앙일보 기명칼럼에서 “자연인으로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면서 “그 점이 그의 장례절차나 사후 문제에도 반영되어야 했다”고 국민장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문창극 총리 후보는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대의 자살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이 나라에서 대통령을 지낸 사람까지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한다면 그 영향이 어떻겠는가”라면서 “백번 양보해 자연인으로서의 그의 선택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국가의 지도자였던 그가 택한 길로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죽음의 의미는 죽은 당사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들에 의해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면서 “그런 점에서 나는 그의 죽음으로 우리의 분열을 끝내자고 제안한다. 이제 서로의 미움을 털어내자. 지난 10년의 갈등을 그의 죽음으로써 종지부를 찍자”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이명박 정부의 책임론이 일고 있는 상황에서 분열을 끝내자는 이 칼럼은 당시에도 거센 논란을 불러왔다. 문창극 총리 후보는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직후에도 “비자금의 실체를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사망해 안타깝다”는 글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정책이었던 ‘햇볕정책’에 대해서도 문창극 총리 후보는 “평화는 햇볕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힘을 바탕으로 지켜진다”는 반대 논리를 내세워 비판하기도 했다. 야권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문창극 총리 후보의 보수적인 성향에 칼끝을 맞출 기세다. 때문에 향후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도 문창극 총리 후보의 정치적 성향이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정애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에서 “문창극 전 주필은 복지 확대를 반대하고 햇볕정책을 대놓고 적대시했던 분”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한정애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이전과는 다른 대한민국을 만든다고 했는데 이에 적합한 인물인지 우려스럽다”면서 “이번 인사 역시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위한 인사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서울대 초빙교수인 문창극 후보자 수업을 받았던 서울대 학생들의 강의 평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 학생은 2010년 3월 문창극 후보자가 ‘저널리즘의 이해’ 강의에서 무상급식과 관련해 작성한 ‘문창극 칼럼’이 사회적·정치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도 수업 자료로 썼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문 후보자는 2010년 6월 지방선거의 주요 쟁점이었던 무상급식과 관련해 ‘공짜 점심은 싫다’라는 제목의 3월 16일자 칼럼에서 “무료 급식은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 싶다”고 주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패 잡는 시진핑, 간통도 잡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서슬 퍼런 반부패 드라이브가 중국의 오랜 폐단인 부패 관리들의 축첩 문화에도 제동을 걸고 나섰다. 부패 관리와 얼나이(첩)는 불가분의 관계라는 점에서 국가 법률에도 없는 간통죄를 적용해 부패 관리를 엄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당원들의 비리를 조사하는 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가 국영기업인 수출신용공사의 다이춘닝(戴春寧) 전 부사장에 대해 간통 등 당 기율 위반 혐의로 당직을 박탈했다고 8일 신경보가 보도했다. 기율위는 “중국 법에서는 비록 간통이 처벌 대상이 아니지만 당법에 따르면 간통 혐의로 당원을 직위 해제하거나 당직을 박탈할 수 있다”며 공산당원은 국법뿐 아니라 당법까지 적용해 일반인보다 엄히 다스려야 한다고 처벌 취지를 설명했다. 이 같은 결정이 나오자 “기율위의 처벌은 법을 초월한 것이다”라는 반응부터 “공직자의 남녀 문제는 더 강하게 벌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는 등 네티즌 사이에 찬반 논란이 뜨겁게 일고 있다. 공산당은 간통이 사회주의 도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당법에서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으나 중국의 법률은 개인의 도덕 문제로 간주해 간통죄를 다루지 않고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첩을 두는 문화는 중국의 오랜 전통으로, 1949년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 뒤 사라졌다가 개혁·개방 이후 다시 확산돼 지금도 성행하는 만큼 간통이 사회적으로 문제되는 분위기도 아니다. 2000년대 들어 간통으로 처벌된 공직자는 2012년 낙마한 장쑤(江蘇)성 우시(無錫) 전 시장인 마오샤오핑(毛小平)이 유일하다. 게다가 기율위는 그동안 부패 공직자의 남녀 문제에 대해 ‘도덕적 타락’(道德敗懷·3명 이상의 정부를 둔 경우)이나 ‘생활의 부패’(生活腐敗·3명 이하의 정부를 둔 경우) 등의 표현으로 에둘러 언급해 왔을 뿐이다. 최근 사법 처리된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의 오른팔인 궈융샹(郭永祥) 전 쓰촨(四川)성 부성장 등의 여자 문제에 대해 ‘도덕적 타락’ 혐의가, 보시라이(薄熙來) 전 쓰촨성 당서기 등에게는 ‘다수의 여성과 부정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죄목이 적용된 바 있다. 이에 따라 당국이 얼나이를 두는 것보다 낮은 단계인 간통까지 처벌 대상으로 명시한 것은 반부패 고삐를 더욱 세게 조이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그동안 적발된 부패 관리들의 사례를 보면 얼나이에게 이권을 주거나 얼나이를 뇌물 수수 창구로 이용하는 등 부패를 공모한 경우가 많다. 일각에서는 단순히 고위 관료들의 문란한 성 문화를 다잡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도 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세계의 창] 억압과 통제 그 톈안먼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1989년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한 ‘6·4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지 4일로 25주년이 된다. 그 사이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지만 시위대가 요구했던 정치·사회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톈안먼사태의 배경이 된 부정부패 등의 사회문제는 오히려 그때보다 심해졌고 민주 개혁 요구에 대한 당국의 억압과 통제 역시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지난 1일 세계 최대 광장이자 베이징의 심장부로 불리는 톈안먼광장을 찾았다. 광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마다 공항 검색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다. 수도 베이징에만 10만여명의 보안 요원이 배치돼 최고 수준의 경비·경계령이 발동됐다는 외신 보도가 실감났다. 미국에 서버를 둔 중화권 매체 보쉰은 중국 당국이 최근 군대와 무장경찰, 소방당국에 통지문을 보내 임전 태세 돌입을 지시했으며 이런 상황은 앞으로 2개월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톈안먼사태 묻자 “그 폭동 말하는 거요?”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톈안먼사건을 아느냐”고 묻자 대부분 고개를 저었다. 쓰촨(四川)성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자오(趙·40)모씨는 “‘톈안먼 폭란(暴亂·폭동)’을 말하는 거냐”고 답했으나 자세한 내용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당국은 시위 당시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사건을 ‘반혁명적 폭동’이라고 규정했다가 2004년부터 ‘1989년의 운동 풍파(정치 풍파)’라고 바꿔 부르고 있다. 중·고교 교과서에도 언급되지만 사회주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 사건을 제대로 알기가 힘들고 진상을 입에 올리는 것도 여전히 금기다. 중국 대학생들 중 상당수는 인터넷 등을 통해 톈안먼사태를 접했다면서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정치 기류와 사회 형태가 1980년대와 달리 안정적이고, 젊은이들이 정치 개혁보다 돈 버는 일에 관심을 두는 분위기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 중국 전문가는 “톈안먼사태가 일어난 세 가지 원인은 부정부패와 물가 상승 그리고 민주화 요구인데 당국이 ‘부패와의 전쟁’에 총력을 쏟고 있고, 경착륙 우려 속에서도 물가를 억제하면서 민심을 달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당국이 민주 인사들을 잡아들이는 등 통제의 고삐를 조이는 것도 사태에 대한 관심과 재평가 요구를 억누르는 주요 요인이다. ●민주화 요구에 반부패·물가 통제로 입막음 당국은 지난 5월 초 베이징의 한 가정집에서 ‘6·4 톈안먼사태 기념 토론회’를 위해 모인 인권변호사 푸즈창(浦志强) 등 민주 인사 5명을 공공질서 문란 혐의로 체포했다. 타이완 중앙연합신문망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인권운동가 228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2일에도 왕젠민(王健民) 등 홍콩에서 활동 중인 반체제 성향의 언론인 2명이 체포됐다고 타이완 자유시보가 전했다. 당국은 톈안먼사태에 대한 추모 활동이 이뤄지지 못하도록 지난달 27일부터 ‘중국판 카카오톡’인 웨이신(微信)을 집중 단속하고 있다. 당시 시위에 참가한 베이징대 출신의 류쑤리(劉蘇里)는 “비록 사람들이 톈안먼사태를 잊은 듯 아무도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 사회의 허리 세대는 사건을 잊지 않고 있다. 어떤 임계점을 계기로 침묵하는 이들 다수가 함께 입을 열 날이 올 것임을 공산당도 알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침묵… 언젠가 함께 입 여는 날 올 것” 톈안먼사태로 이어진 당시 학생운동은 개혁파 후야오방(胡耀邦)의 급작스러운 사망이 도화선이 됐다. 1980년부터 총서기를 맡은 후야오방은 정치 개혁을 주장하고 당시 성행하던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1987년 실각했으며 2년 뒤인 1989년 4월 15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당시 그의 죽음을 기리는 대학생들이 톈안먼광장에서 벌이던 추모 모임이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바뀌면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톈안먼사태는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 서거일부터 같은 해 6월 4일 당국의 유혈 진압으로 시위가 끝나기까지의 전 과정을 말한다. 시위는 톈안먼광장은 물론이고 중국 전역 400여개 도시에서 함께 이뤄졌다. 중화권에선 톈안먼사태라는 이름은 시위가 톈안먼에서만 이뤄졌다는 인상을 준다며 ‘89 민주화 운동’으로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톈안먼사태와 후야오방의 깊은 인연 때문에 공산당 지도부나 관영 매체가 후야오방을 언급할 때마다 그의 복권과 톈안먼사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로 술렁인다. 지난 4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이 후야오방 생가를 방문했을 때도 이러한 관측이 고조된 바 있다. 사회과학원 출신의 역사학자 장리판(章立凡)은 “후야오방은 중국 공산당 계보에서 개혁과 청렴을 상징하는 최대 자산으로 현 정권은 인민 지지를 높이는 데 그를 이용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톈안먼사태 재평가는 공산당의 자기 부정이고 재평가를 기점으로 각종 불만 시위와 폭동이 도미노처럼 확산될 수 있어 재평가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글로벌 시대] 미얀마와 북한/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글로벌 시대] 미얀마와 북한/정해문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드라마는 은막이나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현실에서도 수많은 드라마가 펼쳐지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제작된 작품보다 더욱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곤 한다. 최근 역사를 돌이켜 보면, 지난 3년간 미얀마가 숨 가쁘게 달려온 개혁·개방의 길은 그야말로 세기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민주화 투쟁의 아이콘 아웅산 수치 여사의 복권이 상징하듯 민주주의 정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미얀마 테인 세인 대통령의 상호방문이 보여주듯 이 나라는 장기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의 당당한 일원으로 기지개를 켜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경제제재가 풀리자 동남아의 마지막 숨은 보석을 캐려는 외국기업인들로 미얀마는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얀마는 제이드와 루비 등 주요 보석의 세계적 생산강국이다. 또한, 대다수 소수민족 반군과 개별적으로 정전·휴전 합의를 도출한 데 이어 카친독립기구(KIO)를 비롯한 기타 반군그룹을 포괄하는 단일 평화협정 체결에 우선순위를 부여함으로써 정치·경제·사회 안정과 발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양곤을 중심으로 미얀마의 주요 도시는 지금 활기가 넘친다. 사람들의 얼굴은 밝은 내일을 확신한 듯 진취적인 모습이 역력하며 경제발전과 개인 생활수준 향상을 이루겠다는 열정으로 충만해 있다. 이러한 개혁과 개방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미얀마는 1997년 아세안 가입 이래 처음으로 올해 아세안 의장국을 수임하고 지난 5월 아세안 정상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2015년 아세안 공동체 출범 준비에 응분의 기여를 함으로써 장차 동남아 핵심국가로 발돋움할 입지를 굳히면서 국제사회의 호감도를 계속 높여가고 있다. 세계를 놀라게 하는 미얀마의 드라마는 어떻게 가능했고, 그 정반대의 길로 빠져들고 있는 북한에는 어떤 시사점을 던질까. 군부 강권 통치로는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깨달음이 새로운 진로선택을 강요했다고 볼 수 있다. 태국을 비롯한 같은 아세안 회원국과 중국, 인도 등 접경국들의 경제적 번영도 미얀마의 역사적 선택에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보인다. 과감하고 전향적인 행보로 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미얀마의 드라마를 가장 관심 깊게 지켜봐야 할 나라는 북한이다. 북한은 핵무기 개발과 고립·폐쇄 정책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경제적 피폐와 주민 고통으로 이어져 체제 이완으로 귀결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북한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미얀마 방문 당시 외교사절 등 수행원 1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웅산 테러를 자행하였다. 30여년이 지난 올해 당시 참극의 현장인 아웅산 묘소의 경내에서 추모비 제막식이 곧 거행된다. 이 추모비는 세계가 그날의 아픔과 함께 북한의 테러행위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임을 증언해 줄 것이다. 개혁·개방으로 성공하지 못한 나라는 거의 없다. 북한은 멀리 쳐다볼 필요도 없이 미얀마의 드라마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한때 사회주의 형제국이었던 미얀마, 베트남, 라오스 및 캄보디아 등 아세안 후발 가입 4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전벽해와 같은 변화의 물결이 주민들 생활수준 향상에 어떤 순기능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경제 체질을 강화시켜주고 있는지, 어느 정도로 국제 사회와의 상호의존을 깊게 해 주는지, 관찰하면 북한 스스로에 대한 답이 나올 것이다.
  •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춤추는 이유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춤추는 이유

    비이성적 과열/로버트 실러 지음/이강국 옮김/알에이치코리아/504쪽/1만 8000원 1996년 주가가 치솟을 무렵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은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표현을 했다. 지금 월가와 학계에선 증시와 관련한 ‘비이성적 과열’ 논쟁이 끊이지 않고, 실제로 과열 현상은 도처에서 진행 중이다. ‘비이성적 과열’은 증시와 집값의 붕괴를 정확히 예고했던 저자가 버블의 원인과 대안을 밝힌 책이다. 저자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예일대 교수다. 2000년 책이 발간된 직후 실제로 주가가 폭락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전면 개정판인 이 책은 집값 거품을 경고했고 그 예상도 서브프라임 사태로 현실화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전통 경제학에 사회심리학을 결합한 책의 핵심은 아주 명쾌하다. 무엇보다 시장 변동의 진정한 요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시장 변동이 경제와 실제 삶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 주장의 끝에는 놀랍게도 이런 결론이 맺어진다. 시장 변동을 이끄는 진정한 결정 요인의 많은 부분은 바로 마음속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든 시장 과열의 커다란 원인은 자본주의 시장의 폭발적 확대와 물질적 가치의 지나친 존중이다. 잘 알려졌듯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몰락 이후 노동조합·협동조합 운동이 쇠락한 자리는 거대한 국제 금융시장과 온라인 경매시장으로 메워졌다. 노동의 가치가 하락하면서 안정적 자산 확보를 위한 투자처로서 주식·주택시장의 가치가 상승했고 기업 경영진과 핵심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를 보장하기 위한 스톡옵션은 주가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런 이론의 바탕 위에 저자가 주목한 건 바로 문화심리적 요인이다. 주가가 하락하면 조만간 다시 오르며 장기적으로는 주식이 채권보다 수익이 더 높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상식의 오류일 뿐이다. 왜냐하면 시장의 진정한 가치는 이론적으로 규정하기 힘들고 대중이 계산하기란 더 어렵다. 결국 책의 결론은 비이성적인 시장의 움직임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이다. 먼저 주식 보유를 줄이고 더 나은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라고 한다. 계획을 세워 저축을 늘리고 여론 주도층이 시장 안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라고도 촉구한다. 두 차례의 세계적인 붕괴를 예고했던 그가 제시하는 해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어떨까.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너무 예민한 中 언론 통제는 톈안먼 25주년 앞둔 진통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취임 이후 심화돼 온 언론 통제 압박이 6·4 톈안먼(天安門)사태 25주년을 앞두고 절정에 달하는 분위기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8일(현지시간) 중국 공안 당국이 지난 13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충칭(重慶)지국의 중국인 취재보조원 신젠(辛健)을 공공질서 문란죄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베이징의 일본 언론인들은 신젠이 체포된 것은 앞서 당국에 체포된 인권 변호사 푸즈창(浦志强) 사건 취재와 관련이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푸즈창은 이달 초 톈안먼 사태 추모 세미나에 참석한 뒤 공공질서 문란죄로 체포됐다. 일부 주중 외신 기자들은 톈안먼 사태를 앞두고 민감한 사안을 취재할 경우 “심각한 결과가 나타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다고 RFA는 전했다. 언론에 대한 중국 당국의 단속은 지난달 말 반체제 여기자 가오위(高瑜)가 국가기밀 유출 혐의로 구속되면서 본격화됐다. 이달 초 미국에 서버를 둔 반체제 중화권 매체인 보쉰(博訊)의 샹난푸(向南夫) 기자는 공공질서 문란죄 위반 혐의로 체포됐으며, 유명 뉴스 포털 사이트인 텅쉰망(騰訊網)의 장자룽(張賈龍) 기자는 최근 회사로부터 ‘업무 기밀과 기타 민감한 기밀 정보를 누설한 혐의’로 해고됐다. 이런 가운데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해외판은 지난 28일 사설에서 “서구 민주주의가 오늘날 계속 쇠퇴하는 것은 그 자체에 결함이 많기 때문”이라며 중국식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자부심을 다시 강조했다. 사설은 이어 “태국·우크라이나·이집트는 민주화가 번영과 안정을 가져오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지적한 뒤 민주화가 오히려 멀쩡했던 국가를 혼란에 빠트렸다고 비판했다. 중국 내 반체제 인사들은 “톈안먼 사태는 진정한 민주화 운동으로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수많은 희생자를 잊어서는 안 된다”며 톈안먼 사태 재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서구 민주주의를 지는 해에 비유한 이 사설은 톈안먼 사태 25주년을 앞두고 점차 고조되고 있는 희생자 추모 분위기를 단속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김정일 타도하자 글귀 북한 파출소에 흔했다”

    “김정일 타도하자 글귀 북한 파출소에 흔했다”

    “사람들이 아는 북한은 1990년대 이야기일 뿐이에요. 젊은 세대의 생각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어요.”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이란 칼럼을 기고한 탈북자 박연미(21)씨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20대는 자본주의에 친숙하고 오히려 사회주의를 잘 모른다”고 말했다. 2007년 탈북해 2009년 한국에 들어온 그는 “홍보대사로 일하는 민간 싱크탱크 ‘프리덤 팩토리’의 관계자와 상의해 메일로 WP에 기고문을 보냈더니 싣고 싶다고 바로 연락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영어로 쓴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기고문에서 ‘장마당 세대’를 소개했다. 장마당 세대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 태어나 국가의 배급을 제대로 받지 못하며 시장 경제를 체득했다. 그는 ‘김씨 왕조’에 대한 충성심이 없고, 외부 미디어와 정보에 익숙한 장마당 세대가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국대학교 경찰행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박씨는 “북한에서 주체사상은 죽고, 시장주의가 떠오르고 있다. 북한 파출소에 ‘김정일 타도하자’라는 글귀가 붙는 건 흔한 일이었다”면서 “나조차도 레닌, 공산당선언 등을 오히려 한국에 와서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공부를 많이 해서 통일 한국과 세계를 잇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예측 불가능한 독재 권력의 ‘붕괴’/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글로벌 시대] 예측 불가능한 독재 권력의 ‘붕괴’/윤영미 평택대 외교안보전공 교수

    1989년을 기점으로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체전 전환을 경험했다. 당시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이 붕괴됐을 때 많은 소련 전문가들은 ‘맨붕’에 빠졌다. 그렇게 빨리, 갑작스럽게 몰락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당시 소련 전문가들의 대부분은 소련체제가 ‘견고하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또 24년 동안 차우셰스쿠의 독재통치하에 있던 루마니아는 만성적인 식량부족과 실업으로 인해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 차우셰스쿠와 부인은 민중봉기로 인해 1989년 12월 25일 공개 처형됐다. 탈냉전기 리비아 사태도 이런 예측 실패에 속한다. 대부분의 중동 전문가들은 카다피 독재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철통같이 견고해 보였던 독재체제가 몰락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문제는 그런 독재체제 붕괴의 시점을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교훈처럼 북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매우 견고해 보이고 상당 기간 지속될 것처럼 보이지만, 구소련이나 루마니아와 리비아처럼 언제 붕괴될지 알 수 없는 매우 위험한 정권인 것이다. 이미 국내외 수많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급변사태 징후를 다양하게 지적했다. 즉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 내 권력 판도가 심상찮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권력 2인자였던 장성택 처형 이후 ‘최고 존엄’의 핵심권력에 미묘한 양상이 감지되고 있다. 일명 ‘혁명1세대’의 적통이자 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인 최룡해는 최고 핵심권력으로 부상했지만 노동당 비서로 임명돼 서열이 추락했다. 그는 당뇨나 과로 합병증 등 건강상 이유로 실각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장성택의 전철을 밟을까 두려워서 스스로 전략상 퇴진하는 수순을 밟았다. 게다가 돈과 여자 문제가 깨끗하고 충성심 강하고 핵·미사일 개발 의지가 뚜렷하다고 알려진 새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황병서는 2010년 군 인사권 장악을 넘어 김정은 주변 측근들을 자기 사람으로 채우고 있다. 마치 김정은 중심의 1인 독재 지배체제의 강화로 보이지만 어리석게도 김정은은 장성택을 처형하고 최룡해마저 물러나게 해 황병서 견제세력을 제거해 버렸다. 북한 내 고위 당정 간부들에 대한 계속되는 숙청과 실세권력의 잦은 교체과정이 이어지고, 권력의 중추기관인 국가보위부가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황병서가 주축이 돼 당·정·군에 포진된 지지 세력을 규합해 집단지도체제 구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김정은파와 권력투쟁 같은 ‘돌발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체제불안이 야기될 경우 추가도발도 우려된다. 김정은은 김일성이나 김정일보다 더 즉흥적이고 변덕스럽고 잔인하다는 점 등에 비춰보면 이런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2014년 4월은 그야말로 잔인한 달이었다. 온 국민을 애통함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했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에 무사안일주의와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만연해 있는가 하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줬다. 세월호 참사가 일상적 안전에 대한 무감각이 빚어낸 비극이라 한다면, 북한체제의 안보위기에 대한 우리의 불감증은 또 다른 비극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예기치 못한 급변사태에 의한 김정은 정권의 붕괴 가능성이 늘 열려 있음을 잘 인식하고 철저한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 사회 모순에 맞선 한국의 대중 그들은 누구인가

    사회 모순에 맞선 한국의 대중 그들은 누구인가

    대중의 계보학/김성일 지음/이매진/352쪽/2만원 스페인 철학자 오르테가 이가세트는 대중이 장악한 권력을 정치적 진보가 아닌 문명 퇴보로 판단하고, 이들의 움직임을 반란(Revolt)이라고 했다. ‘집단지성’의 저자인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레비는 대중의 양상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에서 ‘우리는 생각한다’로 넘어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확실한 것은, 대중의 움직임은 오늘의 현상이라는 점이다. “고지식한 지식인과 부패한 정치인, 그리고 무능력한 공무원과 신자유주의 후광으로 기세등등한 자본가”들이 맺은 동맹과 정면 충돌한 대중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하게 드러난다. 이 같은 물살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시민교육을 강의하는 김성일씨는 신간 ‘대중의 계보학’에서 지난 100여년 동안 한국에서 형성된 대중의 지층을 촘촘히 살핀다. 자신의 박사 논문 가운데 이론적 배경을 살리고 나머지를 재구성했다. 저자는 2002년을 한국에 ‘새로운 대중’이 출현한 시기로 본다. 무질서와 폭력, 마비된 이성으로 규정된 대중이 자율적인 질서와 규범을 만들며 집단행동을 실천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들끓던 2008년은 대중의 결집이 정점에 달한 시점이다. ‘이전 대중’의 시초는 19세기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가 발견한다. 근대식 학교가 들어서고 출판 사업이 발전하면서 지식의 주체가 된 ‘근대적 대중’이 형성됐다. 그 한 축인 모던보이와 모던걸은 절실한 미래보다는 자유분방하고 유행을 좇는 소비의 주체였다. 또 다른 축은 민권에 대한 열망을 드러낸 저항의 주체로서 동학농민전쟁, 만민공동회, 3·1운동, 사회주의운동 등을 이끌었다. 1960년대 들어 경제근대화와 도시화가 추진되면서 대중의 의미는 달라졌다. 국가가 주도한 경제개발과 반공이데올로기 속에 대중은 ‘산업역군’과 ‘반공주의자’로 호명됐다.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바닥에 깐 이 말은, 박정희 정권의 취약한 정당성에 대한 의심과 저항을 무마하기 좋은 수단이 됐다. 1980년대 들어서 비참한 노동 현실을 공론화한 노동자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중 운동이 구축되고 폭발했다.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정권의 폭력성을 체감하고, 1987년 6월 항쟁으로 대중이 국가권력에 맞선 저항 주체로 나섰다. 책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자리 잡은 신자유주의 속에서 자기계발의 주체가 된 대중부터 인터넷이 확산된 뒤 새로운 저항 세력으로 떠오른 디지털 신인류까지 변화상을 차근차근 따지면서 촛불집회에 다다른다. 2002년 벽두에 터진 ‘오노 사건’(김동성의 금메달 박탈 사건)은 사이버 공간을 반미의 공간으로 채우면서 사회적 결속을 다지고,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은 축제처럼 결집을 형성했다. 그해 미선이 효순이 촛불집회는 길거리 응원전의 정치적 승화로 평가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계급·계층·세대·성별을 초월한 대중은 하향식 계몽과 지도가 아닌 상향식의 자발적인 참여로 변화했다. 그러나 한편 대중의 진화는 맹목적 애국주의와 왜곡된 포퓰리즘이라는 “모순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저자는 “대규모 대중 결집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억압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연구해야 하는 주제”라면서 “대중 연구는 지금 여기 대중의 삶을 짓누르는 부당한 권력과 자본에 맞서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지난 100여년간 한국 대중운동의 흐름을 분석한 ‘대중의 계보학’에서 저자는 2002년을 ‘새로운 대중’이 출현한 때로 봤다. 그해 월드컵 길거리 응원전(왼쪽)에서 축제를 열듯 결집한 대중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오른쪽)에서는 신자유주의 정책 반대 등 의제를 설정하며 대중운동을 발전시켜 나갔다. 서울신문 포토라이브러리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생존의 한계(케빈 퐁 지음, 이충호 옮김, 어크로스 펴냄) 극한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어디까지 견뎌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 온몸이 녹아내릴 것 같은 화염, 기계적 지원이 없이는 생존 불가능한 우주 등 적대적 조건에서 인체가 어떤 영향을 받으며 어떻게 반응하고 버텨내는지, 그리고 그 한계를 인류가 어떻게 확장했는지 추적하는 교양과학서다. 마취와 집중치료 전문의사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 의학연구원으로 장기 우주여행이 인체의 생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케빈 퐁 런던대 생리학 교수가 썼다. 수련의 시절 처음 목격한 가슴절개 시술 장면, 얼음물에 빠져 2시간 동안 심장이 멈췄던 환자를 살린 의료진의 경험이 저체온 기술 심장수술의 토대가 된 이야기 등을 박진감 넘치게 전한다. 후반부는 항공우주의학에 할애된다. 인간의 생존을 보장하는 정밀한 공학의 위력과 취약성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생소하지만 흥미진진한 얘기들을 생생하고 긴박감 넘치게 소개한다. 344쪽. 1만 6000원. 한국독립운동사(박찬승 지음, 역사문제연구소 기획, 역사비평사 펴냄) 일본의 한국병합 과정에서 우리 민족은 동학농민군, 의병 등으로 결집해 치열한 저항운동을 펼쳤다. 병합 이후에는 만세운동, 무장투쟁, 외교운동, 의열투쟁, 노동쟁의와 소작쟁의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한양대 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일제 강점기를 시기별로 구분해 독립운동 양상과 그 배경이 된 일제의 지배 정책을 정리했다. 1910년대 국내외 독립운동의 출발, 3·1 운동과 임시정부 출범, 1920년대 국내 독립운동의 좌우 분화와 상호 연대, 1930년대 독립운동 진영 재편, 중일전쟁·태평양전쟁 시기 독립운동 세력의 결집 등 5개 시기로 구분했다. 1980년대 이후 학계 안팎에서 대두한 민족주의 세력 중심론, 민족협동전선(민족통일전선) 세력 중심론, 사회주의 세력 중심론처럼 특정 세력을 독립운동의 주류로 설정하는 태도를 피하고 여러 진영의 독립운동사를 균형 있게 서술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역사비평사가 2007년부터 출간해 온 ‘청소년과 시민을 위한 20세기 한국사 시리즈’ 9번째 책이다. 408쪽. 1만 6000원. 사회를 바꾸려면(오구마 에이지 지음, 전형배 옮김, 동아시아 펴냄) 세월호 참사로 촛불집회가 곳곳에서 이어지는 이즈음, 제목부터 절로 시선을 잡아끄는 책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말을 인용한 책의 부제는 ‘세상은 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행동하라!’ 일본 게이오대 역사사회학 교수인 저자는 사회를 바꾸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고찰하고, 사회를 바꾸는 작업을 역사·사회구조적으로 성찰한다. 오늘날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데모, 사회운동, 공개, 대화 등 직접 행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근대 정치·경제는 주체가 객체를 지배하고 민중을 조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면 반드시 직접적인 사회운동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 일본 국민들을 분노케 했던 일본 정부의 불투명한 정보 제공과 대응 방식, 사고 이후의 사회운동 과정 등을 자세히 설명한다. 440쪽. 1만 9000원. 뮤지컬 사회학(최민우 지음, 이콘 펴냄) 현대 문화산업을 이야기할 때 뮤지컬은 빼놓을 수 없는 예술장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뮤지컬 시장은 외국들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티켓 값이 해외보다 상대적으로 비싸고, 주인공이 여러 명 번갈아 무대에 오르고, 세계적으로 대박을 친 작품이 유독 우리나라 관객들에게는 먹히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 해 무대에 오르는 신작 뮤지컬은 150여편. 한국 뮤지컬 시장의 독특한 생리를 현장 기자의 시각으로 다각도로 분석한 책이다. 뮤지컬이 만들어지는 과정, 유통과 소비가 이뤄지는 행태, 국내 시장의 특수성 등을 두루 짚는다. 소소한 의문들도 풀어준다. 객석을 메우는 주 관객이 여성들인 이유, 유럽 뮤지컬이 한국시장에 강한 이유 등이 흥미롭다. 319쪽. 1만 4000원.
  • [씨줄날줄] 중·러 군사훈련/박홍환 논설위원

    소련(현 러시아)의 공산당 서기장 이오시프 스탈린 사망 후 중국과 소련은 ‘동지적 관계’가 무색할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은 소련을 ‘교조주의’라 원색적으로 공격하고, 소련 역시 중국을 ‘수정주의’로 몰아붙이는 등 사회주의 양대 세력 간에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주도권 다툼이 본격화됐다. 급기야 1969년에는 중국 측 헤이룽장(黑龍江)과 러시아 측 우수리강 일대의 섬 관할권을 놓고 전쟁까지 불사했다. 동맹조약까지 폐기했던 양국이 화해의 물꼬를 튼 것은 소련의 몰락을 전후해서다. 소련의 위상이 소비에트연방에서 러시아로 위축되면서 새로운 중·러관계가 시작됐다. 중·러 밀월은 옛 소련의 몰락 이후 세계 유일 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을 견제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은 자명해 보인다. 2001년 양국은 중앙아시아의 옛 소련 위성국들까지 모아 이른바 ‘상하이 협력기구’(SCO)를 결성, 서방과의 본격적인 세 대결에 나서기 시작했다. 옛 소련제 무기체계를 공유하니 합동군사훈련도 어렵지 않았다. 양국 만의 첫 번째 합동군사훈련은 2005년 8월 중국 산둥(山東)반도 일대에서 실시됐다. ‘평화사명 2005’로 명명된 당시 훈련은 규모나 장비 면에서 실전을 방불케 했다. 육·해·공군 첨단 무기와 1만여명의 병력을 동원, 해상봉쇄 훈련까지 실시했다. 유사시 미 항공모함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의 훈련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후에도 양국은 ‘대(對)테러 공조’ 등을 명분으로 내건 다양한 형태의 합동군사훈련을 상대국을 오가며 거의 매년 실시하고 있다. 올해 훈련도 범상치 않다. ‘해상연합 2014’로 이름 붙여진 올해 훈련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지난 20일 훈련 개막식에 참석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26일까지 계속되는 훈련 구역이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ADIZ)인 이어도 남쪽 해상이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전투기와 구축함, 잠수함, 특수부대 등이 동원돼 우리 측 방공식별구역 안에서 실사격 훈련을 하는데도 사전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외교 및 군 당국의 무능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밀월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회귀’ 전략 등에 대한 양국 간 위기의식의 발로로도 읽힌다. 중국 입장에서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협력에 대항할 수 있는 응원군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미국 등의 제재에 직면한 러시아로서도 중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박홍환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인천시장] 유정복 vs 송영길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인천시장] 유정복 vs 송영길

    ■유정복 후보는… 朴心 충만 ‘엘리트 리더’ 박대통령 그림자 수행 ‘행정의 달인’… “중앙 정부와의 소통 최대 강점”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인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 장관은 친박근혜계 핵심으로 ‘행정의 달인’으로 불리는 3선 정치인이다. 3선의 국회의원에 앞서 행정고시 출신으로 중앙부처와 지방 행정 관료 경험을 두루 쌓았고,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걸쳐 2번의 장관직을 지냈다.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난 유 전 장관은 인천 송림동 달동네와 간석동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은 황해도에서 월남한 이산가족 출신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TV에서 이산가족 상봉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펑펑 쏟았던 부모님 때문에 남북문제에 대해 남다른 의식을 갖게 됐다고 회고한다. 그의 부모는 국경일 뿐 아니라 보통 날에도 늘 대문 앞에 태극기를 걸어놨다고 한다. 가난한 집의 7남매 중 여섯째인 그는 이런 집안 분위기 덕에 자연히 공직에 대한 꿈을 품고 자랐다. 선인중과 제물포고를 나와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한 그는 22살 때인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엘리트 공무원의 길로 들어섰다. 강원도청과 내무부를 거쳐 1993년 경기도 기획담당관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지방행정 경험을 쌓게 된다. 이듬해 제33대 김포군수로 최연소 기초자치단체장 기록을 세운 이후 1995년부터 제5대 인천서구청장, 초대 민선 김포군수, 1·2대 김포시장을 연이어 지내면서 전국 최연소 구청장·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리고 2004년 47세의 나이에 중앙정치 무대에 도전하며 변신을 시도한다. 당시 탄핵정국의 17대 총선에서 그는 경기·인천 지역에서 초선으로는 한선교 의원과 함께 단둘이 당선되며 당시 한나라당 대표이던 박근혜 대통령의 눈에 띄었고 이듬해인 2005년 당 대표 비서실장으로 박 대통령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박 대통령을 그림자 수행하며 명실상부한 ‘박근혜의 남자’로 자리매김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박근혜 후보 비서실장을 지냈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중국특사로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2010년 친박계 몫으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으로 입각할 때에도 박 대통령은 흔쾌히 수락했다. 2012년 대선 때는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직능총괄본부장으로 박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국민생활체육회 회장, 국회 생활체육과 국민행복 포럼 대표 등으로 전국 직능단체들을 관리해 온 경험을 발판 삼아 대선 때 다양한 직능단체들의 박 후보 지지선언을 이끌어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엔 초대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냈다. 유 전 장관의 조직 관리는 철저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신중하고 완벽주의에 가까운 일 처리와 무거운 입을 가진 성향 때문에 그를 아는 이들은 ‘박 대통령의 복사판’이라고들 말한다. 한편에선 유 전 장관이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갖지 못하고 ‘박근혜의 남자’ 이미지에 기대는 것을 놓고 비판론도 나온다. “뼈를 묻겠다”던 경기도(지역구 김포)가 아니라 인천에서 출마한 데 대해 실망하는 경기 지역 유권자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유 전 장관은 “인천에서 나고 자라 고등학교까지 나왔고, 지방·중앙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 정부와의 소통력도 뛰어나다”고 설명한다. “송영길 현 시장 체제에서 ‘부채, 부패, 부실로 얼룩진 인천’의 위기를 극복해 ‘대한민국 중심도시 인천’을 만들겠다”는 게 출마의 변이다. 특히 그는 “공항에서 서울로 가기 전 스쳐 지나가는 도시 인천이 아니라 경제활력 도시, 시민행복 도시를 반드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재난 대응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의 전임 장관으로서 세월호 참사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송영길 후보는… 야심만만 ‘차세대 리더’ 야권내 입지 탄탄한 차기 대선주자…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 포부 밝혀 새정치민주연합 인천시장 후보인 송영길 현 인천시장은 야권 내 입지가 단단한 차세대 대선주자로 꼽힌다. 1963년 2월 26일 아버지 송영수씨와 어머니 김광순씨 사이 4남 2녀 중 넷째아들로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1981년 광주대동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떠꺼머리 촌놈’ 송영길은 대학에 들어가 급성장했다. 1984년 서울대 이정우, 고려대 김영춘 등과 함께 학도호국단 해체 운동을 주도한 뒤 초대 직선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선출됐다. 이후 본격적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한다. 1984년 12월에는 민정당사 점거농성사건으로 구속됐고, 제적됐다. 시대가 송 시장을 민주화운동 대열에 합류시킨 것이다. 투옥으로 군대는 면제됐다. 1985년 석방된 송영길은 인천 대우자동차 르망공장 건설현장에서 배관용접공 일을 시작하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1987년에는 인천 부평에 노동자들의 인권탄압 ’관련 법률상담과 교육 등을 하는 인천기독교민중교육연구소를 열었다. 1987년부터는 운수노조 노보 상담실장을 하며 택시노동조합 운동을 시작했다. 1988년에는 사면 복권됐고, 대학교도 졸업했다. 1991년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인천시지부 초대 사무국장을 역임하며 택시·버스·화물자동차 운전기사 등 운수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들을 전개했다. 노동운동을 하던 1987년 대학 때부터 사귄 남영신씨와 결혼했다. 냉전시대의 종결은 송영길의 인생 항로를 틀게 했다. 1991년 동유럽으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간 송영길은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이 연쇄적으로 붕괴된 현장을 지켜봤다. 그리고 재야 노동운동보다 제도권에 들어가 개혁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1992년부터 사법시험을 준비한다. 2년간 신림동 고시촌에서 공부, 1994년 36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마친 1997년에는 다시 인천으로 내려가 인권변호사로서 지역 운동에 뛰어든다. 1998년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인천시지부 정책실장 겸 고문변호사로 정치권과 인연을 맺는다. 1999년 6월 3일 국민회의 후보로 인천 계양구·강화군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6·3 보궐선거 출마 당시 연세대 선배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영수증 처리 없이 후원금 1억원을 받은 일로 홍역도 치렀다. 송 시장은 2000년 16대 총선 때 국회의원에 첫 당선됐다.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에 적극 참여했고 2004년 17대 총선 뒤 당내 재선그룹의 선두주자가 됐다. 18대 총선에서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지만 그는 인천 계양을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그는 2007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8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1위를 차지, 차세대 주자로 입지를 다졌다. 2010년에는 인천시장직에 도전, 고전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당선돼 일약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정치인 송영길은 서두르지 않는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대선 도전 얘기가 나오지만 그는 “시장 재선이 급선무”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선 도전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때를 기다린다는 인상을 준다. 송 시장은 “정치는 힘든 일이다. 그리고 정치인들의 말로가 대부분 아름답지 못했다. 대통령 다수가 퇴임 뒤 홍역을 치렀고, 일반 국회의원들도 존경 속에 은퇴한 경우가 드물다”면서 조심한다. 그러나 “함께 꿈꾸면 꿈이 현실이 된다”는 그의 정치관(觀)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라는 말도 한다. 송영길은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 민주정치를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고 통일을 이루어, 대한민국이 대륙으로 뻗어나가는 데 조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씨줄날줄] 뫼비우스의 띠/정기홍 논설위원

    토론자들이 갖는 맹점이 있다. 자기의 주장을 할 땐 논리가 맞지만 상대를 부정할 땐 틀린 경우가 많다. 자신과 상대방의 생각이 양립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과 상대에 대한 불신을 저변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갈등과 논쟁은 물론 복수와 배신을 불러온다. 우리는 왜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하고, 반대 진영의 논리엔 화를 버럭 낼까. 남 탓만 하는 우리 사회가 곱씹어야 할 일침이다. 미국 독립선언문을 함께 만든 제퍼슨과 애덤스는 라이벌이었다. 수많은 논쟁으로 서로가 성가신 존재였지만 애덤스는 그가 직접 쓴 선언문을 제퍼슨에게 집필하게 했다. 둘은 이후에도 사사건건 의견 대립을 했지만 미국을 만들었다. 이후 애덤스는 2대 대통령에, 제퍼슨은 3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둘은 건국 50년이 되는 해 같은 날에 사망했다. 야사(野史)에는 앙숙이면서도 동지였던 둘 간의 관계를 들어 양쪽의 부음 심부름꾼이 중간지점에서 만났다는 우스갯말로도 전해진다. 중간지대가 지닌 가치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간의 대립을 극복한 ‘제3의 길’(Third Way) 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2005년 설립된 유럽의 싱크탱크인 ‘제3의 길’은 우파와 좌파를 초월해 이념 논쟁을 잠재웠다. 초당파적인 두뇌집단인 ‘제3의 길’은 유럽 국가들에 발전적 정책을 조언하면서 사회·정치적 갈등을 조율했다. 이 이론은 미국 등 세계 국가에도 접목돼 열풍을 이었다. 이분법적인 격한 주장이 세월호의 사고를 비집고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고위 관리는 “사건만 나면 대통령과 정부를 공격한다”며 국민 탓을 하고 반대쪽은 “대통령을 때려잡자”며 극한 말이 난무한다. 양쪽의 주장에 실린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은 마땅히 뒤따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때같은 학생들이 바다 밑에서 지금도 시신으로 나오는 데도 유족의 의중과 동떨어진 보·혁 간 주장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자기만의 사고와 주장에 함몰돼 있는 듯하다. 이 기회에 함몰된 아집과 일도양단의 사고를 허물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장이 대립하면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해결책을 도출해야 한다는 ‘삼각형 이론’이 요구되는 요즘이 아닌가 싶다. 재래식 방앗간의 벨트는 항시 꼬아 건다. 벨트를 꼬아서 걸면 양면을 사용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긴 종이를 꼬아 이으면 안과 밖이 골고루 연결된다는 ‘뫼비우스의 띠’의 이론을 이용한 것이다. 이 이론은 물질에 양면성만이 있는 것이 아니란 뜻으로 원용된다. 세월호를 치유하는 데 이타적인 좌와 우가 어디 있겠나. 세월호 사고를 앞에 놓고 벌이는 서로 간의 타박이 야속하기까지 하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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