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회주의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11
  • 태영호 공사 강연영상 보니…英가디언 “흠잡을 데 없는 영어”

    태영호 공사 강연영상 보니…英가디언 “흠잡을 데 없는 영어”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귀순하면서 과거 강연 영상이 18일 현재 유튜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태영호 공사는 강연을 통해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고 때로는 혁명가를 부르며 열정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했다. 태영호는 2014년 10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미국 비판 강연회에서 “영국의 지배계층은 영국과는 다른 체제를 지향하는 북한을 싫어한다”면서 “이런 점이 매스미디어가 북한에 대해 부정적인 뉴스를 쏟아내는 이유”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외신 기자들은 ‘북한 주민들은 자유가 없다’고 본질을 확대해 비난하곤 한다”면서 “이는 예컨대 외교관이 영국 여왕으로부터 초대받았을 때 철저한 보안 규정에 따라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 점을 확대해석해 비난을 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영국공산당(CPGB-ML) 주최로 런던에서 열린 러시아 10월 혁명 98주년 기념행사에서는 러시아 혁명가를 우리말로 번역한 ‘정의의 싸움’을 불러가며 열정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선전하기도 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태영호는 매력적이고 똑똑하며 흠잡을 데 없는 영어를 구사하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현지 탈북자들은 태영호가 다른 외교관들과 달리 조용하고, 지적인 인품을 소유한 전형적인 당 일꾼 타입이라고 말했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북한 첫 대동강 맥주축제 ‘후기’ 들어보니… ‘치맥’ 인기

    북한 첫 대동강 맥주축제 ‘후기’ 들어보니… ‘치맥’ 인기

    지난 12일 북한 평양에서 ‘대동강 맥주 축제’가 개막한 가운데, 이 축제에 참가한 현지인들의 후기를 담은 동영상이 공개됐다. 중국 CCTV 등 해외 언론의 14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한 최초로 열린 이번 맥주 축제에는 지역 주민을 포함해 외국인 관광객과 초청인 등 8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인기메뉴인 ‘치맥’을 의식한 듯, 이번 페스티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안주는 치킨이었으며 이밖에도 다양한 튀김 및 구이 안주가 참가자들의 테이블 위에 올랐다. 현장에서는 북한 가요와 각종 이벤트가 끊이지 않았고, 미모를 자랑하는 여성 종업원들이 맥주 서빙에 나서 더욱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종업원들은 스튜어디스 유니폼을 연상케 하는 모자와 의상으로 카메라 세례를 한 몸에 받았다. 일부 테이블에서는 서양인을 보이는 관광객들이 현지인과 한 자리에 앉아 대동강맥주를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축제에 참가한 한 북한 주민은 “세계 수준의 맥주”라고 자랑했고, 또 다른 주민은 “맛있습니다. 최고입니다” 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정식 명칭이 ‘평양대동강 맥주축전’인 이번 행사와 관련해 북한 당국은 “대동강 맥주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이번 축전을 개최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동강맥주는 금강‧룡성‧봉학 맥주와 더불어 북한의 4대 맥주로 꼽힌다. 최영남 인민봉사총국장은 “조선(북한)에서의 맥주 생산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으나 여러 맥주 공장에서 출품하는 국내산 맥주들은 내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가 지난 12일을 시작으로 약 20일간 지속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3일 “대동강 맥주 축전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을 짓부시며 인민의 낙원, 사회주의 문명 강국을 보란 듯이 건설해 나가는 우리 인민의 행복하고 낙관에 넘친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AP·평양=연합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독립운동가 조봉암 선생, 생가 복원 언제쯤

    독립 운동가인 죽산 조봉암 선생(1899∼1959)의 강화도 생가 터 복원 사업이 예산 미배정으로 몇년째 제자리걸음이다. 15일 인천시에 따르면 시는 2011년 죽산 선생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차원에서 12억여원을 들여 생가 터 발굴·복원 기념사업, 중구 도원동 거주지 보존사업 등을 민간단체와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3년에는 제68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죽산 조봉암 선생 기념사업중앙회’와 생가 복원을 함께 추진키로 했다. 이에 따라 인천시는 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죽산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고 추모공원도 조성하기로 했다. 당시 기념사업중앙회는 죽산 선생의 생가를 찾아내기 위해 생가터 발굴 조사위원회와 함께 인천시와 강화군 지원을 받아 2012년 9∼11월 기초 조사를 마쳤다. 이어 죽산 선생의 족보·가계 분석, 친족 정보 수집, 문헌 조사 등을 마치고 생가 터를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가지마을로 잠정 확정했다. 사업회는 이러한 사실을 심포지엄에서 밝히고 인천시와 토지 매입 등을 협의하기로 했지만 이후 시 재정난과 서훈 문제가 겹쳐 사업 예산이 책정되지 않았다. 사업회는 2011년 국가보훈처에 죽산 선생의 서훈 신청을 했지만 그가 일제에 헌금 150원을 냈다는 1941년도 ‘매일신보’ 기사를 이유로 신청이 반려돼 지난해 재심 청구를 한 상태다. 결국 죽산 선생 생가 터는 아무런 조치 없이 5년째 그대로 방치됐다. 1898년 강화도에서 태어난 죽산 선생은 일본 동경에서 유학하면서 사회주의 노선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1932년 일본 경찰에 체포돼 7년간 복역하는 등 치열한 항일 운동을 벌였다. 해방 후 국회의원과 농림부장관 등을 지내고 진보당을 창당했지만 1958년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돼 간첩죄 등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으나 2심과 3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재심 청구가 기각되면서 1959년 7월 형장의 이슬이 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죽산 선생의 사형 집행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 대법원이 유족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2년여의 심리를 한 끝에 2011년 1월 무죄 판결을 받아 사형 집행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최저연봉 8000만원’ 1년…월급쟁이의 세상을 뒤집었다

    ‘최저연봉 8000만원’ 1년…월급쟁이의 세상을 뒤집었다

    지난해 초 미국의 신용카드 결제시스템회사인 '그래비티 페이먼트'는 파격적인 내용을 밝히며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연봉 110만 달러(약 13억원)를 받는 CEO 댄 프라이스가 자신의 연봉을 7만 달러(약 8000만원)로 삭감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직원 120명 중 7만 달러 이하의 연봉을 받는 30명의 연봉을 자신과 같은 수준으로 올렸다. 일부에서는 '세상의 관심을 받기 위해 한 소영웅주의'라며 격하하기도 했고, 그에게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며 곱지 않게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세계 대다수의 월급쟁이들은 마냥 부러움의 시선과 자신들의 직장에서도 도입되기를 바라는 희망 섞인 기대감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CEO 댄 프라이스의 이러한 파격적 조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미 프린스턴대 교수의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 결과를 실험적으로 기업 현장에 도입한 첫 번째 시도이기도 했다. 디턴 교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에 따라 연봉 7만5000달러가 될 때까지만 행복감이 늘어나고, 그 이후에는 소득이 행복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그래비티 페이먼트'에도 실질적인 변화가 있었을까. 프라이스 CEO는 12일(현지시간) 미 NBC뉴스 '투데이'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선사업을 하듯, 혹은 나를 희생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며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일종의 '장기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접근했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는 "나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100% 사실은 아니지만, 일정 부분 사실인 부분도 있을 것"이라면서 "비판적 의견을 통해 배우는 부분도 많다"고 말했다. 연봉 7만 달러 실험 이후 실제로 많은 것이 바뀌었다. 맨먼저 직원들의 이직률이 뚝 떨어졌고 만족감은 올라갔다. 2011년부터 계속 늘어나던 이직률은 2013년 13.2%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 -18.8%로 대폭 낮아졌다.(표 참조) 또한 연봉이 올라가면서 회사 근처 시애틀에 집을 구하는 직원들도 생기면서 출퇴근 시간이 짧아졌고, 퇴근 뒤 집에서 즐길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많아졌음이 확인됐다. 프라이스 CEO 역시 7만달러 소득에 맞추기 위해, 기존 집은 에어비앤비(일종의 민박업체)에 빌려줘서 임대수입을 얻고, 자신은 직장 근처 게스트하우스 방을 구해 지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그래비티 페이먼트에 입사하겠다는 사람들의 원서가 3만장이 넘게 들어왔다. 이중 50명의 직원을 새로 뽑았다. 또한 한 해 1~2회 정도이던 직원들의 출산율이 10명으로 확 늘었다. 저녁이 있는 삶이 준 부수적 혜택이다. 만족도가 높은 직원들이 이뤄낸 업무 성과와 함께 개선된 기업이미지가 결부돼 경영상황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지난해 동안 4155명의 새로운 고객을 확보했다. 이는 55% 증가한 수치로 연평균 5% 정도의 증가율이었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신장세다. 또한 9%에 이르던 고객 이탈율은 5%대로 감소됐다. 매출 증가는 당연한 귀결이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도보다 35% 상승한 2180만 달러(약 240억원)였다. 수익 역시 650만 달러(약 72억원)로 전년도(350만 달러·약 39억원)의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하지만 프라이스 CEO는 "경제적 효과, 즉 돈 문제만을 갖고 바라보는 게 가장 쉬운 접근이겠지만, 우리가 진짜 주목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의 증대"라면서 '연봉 7만 달러 실험'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는 디턴 교수의 연구 결과에 충분히 동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론 마냥 순풍에 돛 단듯 순항하는 것만은 아니다. '사회주의자'라는 비난까지 쏟아지는 상황 속에서 공동창업자였던 형과의 소송, 전 부인의 가정폭력 고소 등 '연봉 7만 달러 실험'의 비본질적 요소긴 하지만 부정적인 걸림돌은 존재한다. 프라이스 CEO는 "많은 어려움과 부정적 의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야할 일이 여전히 많다고 생각한다"면서 "나는 기업의 대표이자 기업계의 리더 중 한 사람으로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인간과 사회의 질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늦춰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北 외국인까지 모셔다 ‘맥주 축제’…제재 속 건재함 과시

    北 외국인까지 모셔다 ‘맥주 축제’…제재 속 건재함 과시

    최근 국제사회의 제재로 고강도 압박을 받고 있는 북한이 평양 대동강에서 유람선까지 띄워 대규모 ‘맥주 축제’를 개최했다. 제재로 ‘돈줄’이 끊긴 상황에도 체재의 건재함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조선중앙방송은 13일 ‘대동강 맥주 축제’가 평양 대동강유람선에서 전날 개막했다고 전했다. 방송은 이날 ‘평양대동강 맥주축전 개막-대북제재에 대한 대답’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평양 대동강 맥주 축전(축제) 개막식이 12일 진행됐다”면서 “성·중앙기관 일꾼들과 근로자들, 맥주 애호가들, 조선(북한)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 손님들과 사회주의 조국을 방문하고 있는 해외동포들이 개막식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 방송은 “대동강 맥주 축전은 미제와 그 추종세력의 악랄한 반공화국 고립압살 책동을 짓부시며 인민의 낙원, 사회주의 문명 강국을 보란 듯이 건설해 나가는 우리 인민의 행복하고 낙관에 넘친 생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대동강맥주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는 최고 품질의 흰쌀 맥주들과 흑맥주 등 여러 종의 맥주들이 출품됐다”면서 “축전이 진행되게 될 현대적인 식당 배 ‘대동강호’와 부두는 특색있는 불장식(조명)과 대형 전광판으로 화려하게 단장되어 있다”고 전했다. 최영남 인민봉사총국장은 개막연설에서 “이번 축전은 우리식 사회주의 제도의 우월성과 생활력을 과시하며 우리의 명제품인 대동강맥주를 널리 자랑하고 그 경쟁력을 더욱 높여 나가는 데서 의의 깊은 계기로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사회주의자’ 샌더스 별장구입에 “집만 3채 위선자” 비난 쇄도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 나섰던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의 별장 구입 소식이 전해지면서 소셜미디어에서 “위선자”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미 언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경선 내내 서민과 중산층의 옹호자임을 내세웠던 그가 경선이 끝나자마자 지역구 내 경관 좋은 휴양지에 별도의 거처를 마련해 집을 3채나 갖게된 데 반감이 생겨난 것. 샌더스가 버몬트 주 챔플레인 호수 주변에 구입한 가족별장은 57만5천 달러(6억3천만원) 상당으로 4개의 침실이 있는 건평 50평 규모인 것으로 전해졌다. 버몬트 주와 뉴욕 주를 거쳐 캐나다 퀘벡 주까지 길게 뻗은 챔플레인호는 미국에서 6번째 큰 호수다. 호수에 여기저기 흩어진 섬들은 다리로 이어져 있다. 여름에는 뉴잉글랜드의 대표적 휴양지이며, 가을에는 인근 애디론댁 산맥의 수려한 경관으로 사람들이 찾는다. 샌더스 별장은 버몬트 주 최대도시인 벌링턴에서 차로 40분 거리. 챔플레인 호의 물가 150m를 끼고 있다고 한다. 샌더스의 부인 제인은 이 사실을 처음 보도한 지역신문 ‘세븐 데이즈’에 메인 주에 있던 가족별장이 팔리는 바람에 서둘러 별장을 구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위선자”라는 식의 비난이 무성했다. 그가 워싱턴과 벌링턴에 이어 또 한 채의 거처를 갖게 됐기 때문이다. WP는 “소셜미디어에 비난이 일고 있다”며 “사회주의와 부동산 포트폴리오가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
  • [열린세상] 당신이 지옥에 있다면/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열린세상] 당신이 지옥에 있다면/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신문을 펴기가 무서울 정도로 테러와 경제 위기로 세계가 위태로워지는 요즘 각종 사건에 러시아가 제법 많이 등장한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 탈퇴)가 결정되자 가장 먼저 나온 반응은 유럽연합(EU)이 약화되면 그 반대 세력인 러시아의 푸틴이 가장 큰 수혜를 볼 것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터키의 쿠데타가 진압되는 과정에서 러시아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음이 밝혀지면서 두 나라의 밀월관계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 200여년간 유라시아의 패권을 두고 러시아와 겨루던 터키가 친러로 기운다면 유라시아에 대한 서방의 영향력은 극도로 약화될 수 있다. 여기에 미 대선에 등장한 트럼프마저 러시아의 푸틴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나섰다. 이 모든 사건들의 주인공인 러시아는 정작 올해 초까지도 곧 망할 나라처럼 보도됐다. 석유값의 폭락으로 석유에 의존하던 러시아 경제는 극도로 악화됐고 EU의 강력한 경제 제재가 더해지면서 루블화는 순식간에 3배 이상 폭등했었다. 그리고 푸틴의 정적이었던 넴초프가 암살되는 등 러시아 정치도 혼란해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서방의 우려와 달리 정작 러시아는 오히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배경에는 얼마 전 소련의 붕괴라는 지옥 같은 상황을 이겨 낸 러시아 국민의 의연한 모습에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추운 시베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하던 시절 나는 소련이 붕괴한 이후 참담했던 러시아의 혼란을 목도했다. 평생을 사회주의라는 틀에서만 살아왔던 러시아 사람들은 눈뜨고 러시아의 자본이 마피아와 소수의 자본가들에게 지배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생필품이 부족해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면서 결혼과 출산율은 급격히 감소했고, 인재들의 해외 유출로 러시아의 국력은 심각하게 추락했다. 이런 혼란을 겪으면서도 러시아는 자포자기 대신 미래를 위한 전략 수립에 골몰했었다. 국가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러시아과학원은 90년대 중반 예산이 대부분 삭감되면서 큰 곤란에 처했다. 그러자 각 연구소의 소장들이 모여서 배고픔의 괴로움은 잠시지만 젊은 학자가 사라지는 것은 과학의 멸종을 의미한다며 뜻을 모았다. 그리고 젊은 학자들을 위한 연구비를 만들어 필사적으로 학문의 맥을 잇고자 했다. 그 결과 당시 젊은 대학원생들은 지금 40대 중반의 중진이 돼서 러시아 과학의 세대를 잇고 있다. 최근 세계적인 경제 위기 속에서 러시아가 흔들리지 않는 데에는 이러한 러시아인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숨어 있다. 얼마 전 영화 ‘내부자’에 나와서 유명해진 ‘지옥에 있다면 계속 전진하라’라는 금언이 있다. 이 어구는 2차대전 당시 히틀러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윈스턴 처칠의 담화로 잘못 알려졌는데, 원래는 아일랜드의 속담이다. 만약 당신이 지옥 길에 들었다면 악마에게 덜미를 붙잡혀 지옥으로 끌려가기 전에 우왕좌왕하지 말고 정신 차리고 도망치라는 뜻이다. 2~3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도 지옥의 조선(헬조선)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옥 길에 들어섰을 뿐 아직 지옥에 빠진 것은 아니다. 적어도 90년대의 러시아나 지금의 시리아 같은 나라쯤 돼야 지옥을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헬조선이라고 탄식하기보다는 우리의 미래와 후속 세대를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불평은 언제라도 할 수 있지만 미래를 향한 대안은 시기를 놓치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0~20년 후 현재의 자포자기한 상태의 젊은 세대가 별다른 대책 없이 사회의 중진이 된다면 우리의 지옥은 그때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다. 세계 각국이 모두 지옥 길로 접어드는 즈음에 우리가 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다면 우리에게 그것은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며, 그 길은 전적으로 젊은 세대에게 있음을 기억하자. 위대한 사람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이겨 내기 때문에 위대해지는 것이다. 멀리 러시아가 아니라 한국전쟁 후 한국을 보아도 그렇다. 전후 한국의 엄청난 교육열은 궁극적으로는 젊은 세대를 위한 미래에 대한 투자였다. 그리고 그 수혜를 받은 우리 기성세대들도 젊은 세대들을 대책 없이 ‘헬조선’으로 내보내기 전에 그들을 위한 미래 전략과 투자를 구체적으로 수립해야 한다.
  • 北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리우 도착···서방세계 첫 방문

    北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리우 도착···서방세계 첫 방문

    최룡해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하계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4일(현지시간) 리우 갈레앙 공항에 도착했다. 최 부위원장은 지난달 30일 평양을 출발해서 중국 베이징에 도착했다. 이후 같은 공산주의 국가인 쿠바를 거쳐 이날 상파울루 공항을 통해 브라질에 입국했다. 상파울루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환승한 최 부위원장은 이날 오전 8시쯤 리우 갈레앙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는 김철학 주브라질 북한 대사를 비롯한 북한 측 인사들이 영접했다. 최 부위원장은 숙소인 시내 W호텔로 이동한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들과 만찬을 함께한다. 오는 5일에는 올림픽 개회식 참석 등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다. 북한은 이번 대회에 9개 종목에 선수 31명을 파견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거론되는 최 부위원장은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해 리우를 방문했다. 중국, 러시아를 제외한 서방 세계를 처음 방문한 최 부위원장은 브라질에 1주일가량 머물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대신해 북한 선수들의 선전을 당부하고 격려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0위에 오른 북한은 이번에는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한다. ‘스포츠광’으로 불리는 김 위원장이 그동안 체육 분야에 대대적인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집권 후 체육강국을 통한 ‘사회주의 강국’ 건설을 모토로 삼아 롤러스케이트장, 놀이공원, 스키장 등을 건설했다. 최 부위원장의 이번 리우 방문은 스포츠 외교를 통한 고립 탈피 의도도 있어 보인다.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로 경제·외교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과 브라질은 2001년 3월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브라질은 미주 지역에서 쿠바에 이어 두 번째로 2009년 7월 평양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아르나우두 카힐류가 초대 대사를 지냈고 콜린 대사는 2012년 3월 평양에 부임했다. 북한은 2005년 7월 브라질에 대사관을 개설했다. 지난해 4월 말부터 김철학이 주브라질 대사를 맡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희대 특집] 폴 케네디, 미래 위한 대학 역할 강조

    [경희대 특집] 폴 케네디, 미래 위한 대학 역할 강조

    1972년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를 경고한 지 40여년이 지났지만 파국의 징후는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구 증가, 산업화, 환경 파괴, 천연자원 고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게다가 민족 분쟁, 군비 경쟁, 실업, 빈부 격차가 고착화된 지 오래다. 해결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현대 문명의 위기는 만성질환처럼 여겨질 수도 있다. 인류가 사라지지 않고서는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질병처럼. 하지만 인류가 처한 문제는 만성질환이 아니라 급성질환일 수도 있다. 공멸을 가져올지도 모를 유례없는 위험이기 때문이다. 1972년 출간된 ‘성장의 한계’는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을 100년으로 보았다. 근본적인 변화가 없으면 100년 안에 암울한 미래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50년 남짓이다. 50년 안에 현재의 문명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함께 사라질지도 모른다. ●보코바 “인간의 삶엔 평화가 기초해야” 지난 세기 중반부터 고등교육기관의 사회적·지구적 책임을 강조해 온 경희대가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은 도서를 잇달아 발행하며 문명 전환을 시대의 화두로 제시하고 있다. ‘미원렉처’ 시리즈와 ‘문명 전환’ 시리즈를 기획해 지구적 차원의 복합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미원렉처는 경희대학교 설립자 고 조영식 박사의 호를 따서 만든 특별 강연이다. 국내외 석학과 실천인을 연사로 초빙해 인간, 세계, 문명의 새로운 지평을 탐색하고 있다. 이 특강 시리즈를 경희대 출판문화원에서 책으로 엮은 게 미원렉처 시리즈다. 지금까지 7차례 개최됐으며 그중 5개 강연이 책으로 발행됐다. 경제, 정치, 역사 등 여러 분야 석학들과 국제기구 전문가들이 자신의 관점에서 문명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고 있다. ‘강대국의 흥망’이란 저서로 유명한 폴 케네디 교수는 ‘교육과 인류의 미래’에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대학의 역할은 복잡다단한 인간과 세계의 본질을 스스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전히 다른 사유 방식이다. 사유 방식이 변해야만 더 높은 수준의 교육과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케네디 교수는 대학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한다. ‘인류와 문명’은 고이치로 마쓰우라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의 강연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속 불가능한 현재의 삶을 지속 가능한 삶으로 바꿔야 하는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강조한다. 지구 자원의 과잉 개발을 멈추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구적 문명을 창조해 지구적 방식으로 행동하는 길밖에 없다고 논한다. 저명한 사회학자 프레드 불럭 교수는 ‘지구적 근대성, 그 위기의 근원’에서 경제 위기를 넘어 근대성 자체까지 위협을 받게 된 원인을 먼저 분석한다. 그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이분법으로 경제를 바라보는 것을 문제라고 했다. 이분법 구조를 벗어나 위축된 집단적 상상력을 다시 활성화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유네스코와 21세기 고등교육’에서 이리나 보코바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인간의 존엄과 삶의 능력에 평화가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평화의 또 다른 기반으로 문화적 다양성의 존중을 제시한다. 인간의 선천적 존엄을 보호하고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21세기 평화의 토대이자 새로운 휴머니즘의 뿌리다. 피터 카젠스타인 교수는 ‘세계 정치와 문명: 동서양을 넘어서’에서 정치와 문명의 문제를 다원주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그는 문명 간의 차이가 충돌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치적 목적으로 문명의 본질을 이용하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서로 교류하고 진화하면서 공존하는 문명의 본질은 다원주의적 경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미지의 세계로 향해야 한다. 미원렉처 시리즈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논제를 보다 쉽게 풀이한다면, 문명 전환 시리즈는 전문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논하는 총서 성격의 시리즈다.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그 첫 번째 책으로 어빈 라슬로 교수의 ‘의식 혁명’(가제)을 준비 중이다. 헝가리 태생의 과학철학자이며 시스템이론가인 라슬로 교수는 과학과 영성을 결합한 새로운 과학을 기반으로 인간과 우주의 연관을 주장한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일체성을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벨 “존중하고 차이 인정해야 공존가능” 의식 혁명에서 라슬로 교수는 다른 두 전문가와 대담을 나누며 우리가 처한 위기와 전환을 진단하고 예술, 과학, 교육, 목표와 가치, 세계관, 종교, 영성의 역할을 숙고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의식의 역할을 중시한다. 현재 우리 의식의 상태가 다른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핵심 사안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 책은 9월 21일 개최되는 경희대 Peace BAR Festival ‘지구 문명의 미래: 실존 혁명을 향하여’에 맞춰 발간될 예정이다.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문명 전환 시리즈를 통해 문명 전환의 이론과 실천에 관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 도서를 발행할 계획이다. 한편 경희대 출판문화원은 지난 5월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연설문집인 ‘불가능의 예술’을 발간하기도 했다.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모색하는 경희대학교의 교육철학과 하벨의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벨은 지구 문명을 위해 실천 도덕으로서의 정치를 추구했다. 다문화적 공존의 정신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지구촌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도덕의 핵심인 책임감은 우리의 삶을 넘어 자연, 지구, 심지어 우주까지 이어진다. 하벨은 인간, 자연, 지구, 우주가 신비롭게 연결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인류 문명의 미래라고 확신했다. 문명 전환의 시대에서 우리는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현대의 위기는 우리 인류의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공멸이냐, 공생이냐. 대학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의 존재 이유는 과거와 현재를 성찰하면서 미래를 창출하는 데 있다. 폴 케네디의 말처럼 대학이 대학 본연의 역할과 책임을 재확인하고 대학의 공공성을 실천해야 할 때다. ‘대학의 미래, 인류의 미래’를 강조하는 경희대가 출판하는 책들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자칭 ‘체육강국’ 北, 선수단 훈련 보도 후끈

    북한이 ‘권력 실세’인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5일(현지시간)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개막식 대표단장으로 파견하면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제재 국면에 ‘스포츠외교’를 통한 이미지 개선이란 정치적 목적이 강하지만 ‘체육강국’을 자처하는 북한이 올림픽 무대를 매우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1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2012년 11월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설립하고 당 중앙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 공동구호에 ‘체육강국’을 포함시키는 등 체제 차원에서 체육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당시 정치국 결정서는 체육사업을 “국력을 백방으로 강화하고 선군조선의 불굴의 기상과 존엄을 만방에 떨치는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에서 매우 중대한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체육을 곧 국력 및 체제 강화의 수단으로 이해한 것이다. ‘농구광’으로 알려진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직접 체육기재 생산 공장 등을 방문하기도 했다. 북한은 남한이 한반도 내 유일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원국 지위를 가지면서 1963년까지는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었다. 이후 국호로 논란을 겪다 1969년 IOC에서 북한 정식 국호를 ‘DPRK’로 정한 뒤부터 본격적으로 세계대회에 참가했다. 하계올림픽은 1972년 독일 뮌헨올림픽 출전이 처음이었다. 당시 사격 50m 소총 종목에서 리호준이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철봉에서 리송섭이 ‘허공에서 두 바퀴 돌아 360도 방향 바꾸기’(리송섭 내리기) 동작을 처음 해내 화제가 됐다. 이번 리우올림픽을 앞두고 북한 매체들은 올 초부터 북한 선수단의 ‘입장권’(출전권) 획득 및 훈련 소식들을 잇달아 보도하고 있다. 리우 현지의 선수촌 준공 소식과 테러 위협 등 브라질 치안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북한 선수 및 감독들은 올림픽 등 세계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공화국영웅, 노력영웅, 인민체육인, 공훈체육인 등 각종 칭호를 수여받는다. 이런 칭호를 받으면 자동차와 아파트, 연금 등 혜택도 따라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안금애(유도), 김은국(역도) 등은 노력영웅 칭호와 함께 훈장을 받았다. 북한 최고의 명예칭호인 공화국영웅은 1999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이 체육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받은 적이 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현장기고] “TPP 반대” 샌더스 외침에 환호 터져… 진보 좌파와 중도의 단결을 목격하다

    [현장기고] “TPP 반대” 샌더스 외침에 환호 터져… 진보 좌파와 중도의 단결을 목격하다

    정치는 설득이고 감동이다. 거기에는 소통이 있다.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지는 못했지만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만큼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움직인 정치인도 흔치 않을 것이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버니’(샌더스의 애칭)로 시작해서 ‘힐러리’(힐러리 클린턴)로 끝나게 설계돼 있다. 첫날의 하이라이트는 샌더스였고 나흘째 클린턴의 수락연설로 대미를 장식한다. 모든 것을 관통한 것은 샌더스의 정신이다. ‘진정한 슈퍼스타’ 샌더스는 연설을 시작하기도 전에 쏟아지는 기립박수를 멈추게 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지난 여정을 기억할 때마다 흘러내리는 지지자의 눈물은 함성과 박수 못지않은 울림으로 전파됐다. 샌더스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마약과 교도소가 아니라 학교와 직장이며, 학자금 융자 때문에 학교를 떠나고 기아임금에 시달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며 최저임금 인상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득했다. “백만장자이면서 상위 1%를 대변하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는 결코 갖고 있지 못한 가치를 클린턴이 보유하고 있다”며 ‘분명한 대조’를 반복했다. 하나뿐인 지구별을 보존하기 위해 화석연료 세력과 싸워야 하며 그 길은 젊은이훈에게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융 탐욕을 개혁하고 전관예우와 회전문을 뜯어고치는 것과 함께 그가 강조해 온 미국의 핵심 개혁 주제이다. 월가의 탐욕과 싸워온 전사, 엘리자베스 워렌 상원의원 등 많은 연사들은 클린턴이 역사상 가장 준비된 후보라고 강조했지만 알게 모르게 샌더스의 가치를 얘기했고, 청중은 호응했다. 흔히들 묘비에 쓰는 추모의 글이라고 하여 아무도 안 읽는 정당 강령을 주목하게 한 것도 샌더스였다. 샌더스의 요구에 따라 민주당 강령은 엄청나게 좌클릭했다. 전대의 목적어들은 미래, 아이들, 가족, 청년이었고 그 흔한 목적어에 생동감을 심어준 것은 샌더스였으며 진보적 좌파와 중도파를 하나로 묶어낸 것은 클린턴의 정치력과 야망이었다. 1992년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선거전을 한마디로 규정했는데 당시 민주당 슬로건은 ‘사람이 먼저’(putting people first)였다. 이번 전당대회 연단 뒤 전광판에는 ‘가족이 먼저’(putting families first)라는 구호가 자주 눈에 띄었다. 그만큼 일자리의 상실과 가족의 해체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샌더스가 일자리의 상실을 우려하며 환태평양경제협정(TPP) 반대를 외칠 때 반응은 뜨거웠다. 일자리를 잃은 백인 중하층의 분노를 궤변과 광기로 표현하는 트럼프에게 미국의 한쪽은 열광하고, 시민의 각성과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는 샌더스에게 다른 한쪽은 뜨겁게 반응한다. 영화감독 마이클 무어는 ‘분노한 백인의 적극적 투표 참여로 파시스트 트럼프가 인류에게 저주가 될 승리의 주인공이 될 것’이라고 칼럼을 쓴 바 있다. 하지만 전대 현장에는 사회주의자에서부터 중도까지 아우르는 단결이 있었고 가치로 무장해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 [씨줄날줄] 달라이 라마 효과/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달라이 라마 효과/오일만 논설위원

    국제무역에서 ‘달라이 라마 효과’라는 용어가 있다. 티베트 분리독립을 추진하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그 국가는 중국에 경제 보복을 당한다는 뜻이다. 독일 괴팅겐대학의 안드레아스 폭스와 닐스 헨드릭 클란 교수가 ‘국제무역에서의 달라이 라마 효과’라는 연구를 통해 제기한 학설이다. 시진핑 주석의 전임자인 후진타오 시대 달라이 라마를 만나면 해당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무조건 감소했다. 구체적으로 장관급 각료의 경우 무역 감소폭은 8.5%였고 대통령급이 만나면 16.9%로 대폭 줄어들었다. 두 교수가 159개국의 사례를 통해 조사한 결과다. 2008년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중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달라이 라마와 만난 일이 있었다. 중국은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진행됐던 에어버스 항공기 150대 구매 협정을 무산시켰다. 프랑스 외무부는 “하나의 중국 정책과 티베트가 중국 영토의 통합된 일부분이라는 것을 재확인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실상 백기 투항이었다. 달라이 라마 효과는 중국의 핵심 이익과 관련이 깊다. 핵심 이익에 대한 정의는 다소 모호하지만 후진타오 정권 시절 당시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상세한 설명을 했다. 2000년 제1차 미·중 전략경제대화를 통해서다. 그는 사회주의 체제 유지와 국가 안보와 영토·주권 수호, 경제·사회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발전을 중국의 3대 핵심 이익으로 제시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대만 문제)과 티베트·위구르 분리독립, 서구식 다당제 반대, 남중국해 및 센카쿠 영토 분쟁 등이 해당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95주년 기념식에서 “그 어떤 외국도 우리가 핵심 이익으로 거래할 것으로 기대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2010년 노벨상위원회가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를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하자 중국은 노르웨이 연어 수입을 금지했고 2010년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이 격화될 당시 일본이 중국 어선의 선장과 선원을 억류하자 즉각 희토류 수출을 중단시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대구 치맥페스티벌에 참가하기로 했던 중국 칭다오시가 불참을 통보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의 경제 보복이 아니냐는 보도가 적지 않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날 선 공세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 정부는 사드 배치와 관련해 핵심 이익이라고 단언하지 않았지만 시 주석은 이미 ‘전략적 안보 이익을 훼손했다’고 규정했다. 중국이 국제 시선 때문에 대놓고 경제 보복을 하지 않더라도 다양한 카드를 갖고 우리를 흔들 가능성은 크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열린세상] 북한 주민들이여, 무엇을 열망하십니까/손기웅 통일연구원 부원장

    [열린세상] 북한 주민들이여, 무엇을 열망하십니까/손기웅 통일연구원 부원장

    1989년 10월 7일은 동독 건국 40주년이었다. 당시 사회주의 제1의 경제 강국이었던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 공산당 서기장은 동독 체제에 대한, 자신의 통치력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 주려고 동베를린의 알렉산더광장에서 화려한 무대를 연출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를 비롯해 폴란드의 야루젤스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북한의 연형묵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 주요 정치지도자를 옆에 배석시킨 가운데 동독 인민군의 사열과 분열, 27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가공할 만한 단·중·장거리 미사일을 포함한 각종 무기체계를 행진시켰다. 호네커는 당시 동구에 몰아친 개혁과 개방의 바람에도 변화 없이 자신만의 길을 흔들림이 없이 갈 것이라고, 자신이 통치하는 동독 체제가 얼마나 확고한가를 특히 곁에 선 고르바초프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 밤에는 같은 장소에서 수십만을 동원해 횃불 군중시위를 펼쳤다. 자신의 앞으로 일렁이며 행진하는 횃불 바다 앞에서 그는 손을 내뻗으며 외쳤다. 동독 체제가 수백 년은 더 지속될 것이라고. 정확히 한 달 이틀 후인 1989년 11월 9일 동독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호네커의 앞을 행진했고 환호했던 바로 그 인민군과 시민들이 무기를 내려놓고 이제는 서독으로의 행진을 시작했고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다. 그 화려했던 무기들도 부질없었다. 비밀경찰 슈타지를 통한 억압과 통제, 강력한 정치사상 교육에도 불구하고 호네커는 동독 주민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열망됐는가를 결코 알지 못했다. 독일 통일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시사점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평화적인 합의 통일이었다는 것이다. 흡수 통일이 아니다. 동독 주민들이 그들의 체제가 아니라 서독에 더 많은 자유와 민주, 인권과 복지가 있음을 깨닫고 스스로 장벽을 허물었다. 베를린 장벽이 열린 후 4개월이 지난 1990년 3월 18일 동독 역사 40년 만에 최초로, 전 세계가 초미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가운데 실시된 ‘자유로운 총선거’에서 동독 주민의 다수는 서독 체제로의 조속한 통일 염원을 표출했다.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를 부르짖었던 그들이 자유선거를 통해 전 세계에 자유민주체제로의 민족자결권을 행사한 바로 이날이 ‘독일민족’의 통일 날이었다. 이 선거를 통해 구성된 동독의 마지막 정부가 서독과 7개월간의 협상을 진행해 마침내 1990년 10월 3일 독일은 법적으로 하나가 됐다. 동독 주민의, 동독 주민에 의한, 동독 주민을 위한 평화적 합의 통일이 독일 통일의 과정이었다. 우리의 통일도 남북한의 주민에 의해 결정돼야 한다. 한반도에 존재하고 있는 두 개의 정치 체제가 각각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추진하면서 국민의 행복, 국리민복을 위해 건설적인 경쟁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민주, 복지와 인권이 더 많이 실현되는 체제로 뜻을 모으고, 민족자결권의 행사를 통해 평화적 합의에 의해 통일을 이룩하는 것이다. 서로 상대방을 흡수하려 하거나 무력에 의한 통일은 결단코 배제돼야 한다. 지난해 10월 10일 북한은 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27년 전의 호네커와 똑같은 형식으로 가졌다. 김정은 위원장은 낮에는 류인산 중국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을 옆에 세우고 화려한 열병식을, 밤에는 역시 거대한 횃불 군중시위를 펼쳤다. 자신이 얼마나 확고하게 북한을 틀어쥐고 있는지, 주민들이 얼마나 자신을 떠받들고 있는지, 북한 체제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 주고자 했다. 또한 흔들림 없이 자신만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말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와 민주, 복지와 인권을 외면한 채 권력 유지에 매달리고, 이를 위한 군사적 모험을 끊임없이 감행하는 김정은을 북한 주민들이 과연 신과 같은 수령으로 충심으로 사랑하고 있을까. 김정은 앞을 행진한, 충성을 고함지른 북한 인민군, 북한 주민들은 과연 무엇을 열망하고 있을까.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군사적 도발이 지속되고 있다. 그에 대한 군사적 대응책의 강구와 함께 북한 주민의 마음에 귀 기울이는 통일정책도 동시에 추진할 시점이다.
  • ‘칼보다 강한 펜’ 무서웠나 中, 인터넷 뉴스 포털 감찰

    중국의 인터넷 언론 통제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6일 신경보에 따르면 인터넷정보판공실과 국가인터넷정보협회, 베이징인터넷정보협회 등은 전날 합동으로 중국 8대 뉴스 포털에 대한 대대적인 감찰에 나섰다. 감찰 대상에는 바이두, 신랑망(시나닷컴), 소후, 왕이(이지넷), 텅쉰, 봉황망 등 대형 뉴스 포털이 모두 포함됐다. ●바이두·소후 등 8대 뉴스 포털 대상 합동 감찰조는 “인터넷 매체의 일탈이 심각해지고 있고, 총편집 책임제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으며, 사회주의 사상 인식이 부족한 반면 맹목적인 이익 창출에만 혈안이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정보판공실은 텅쉰과 봉황에 대해서는 별도로 책임자를 불러 문책할 계획이다. 텅쉰은 지난 1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공산당 창당 95주년 기념식 연설 관련 소식을 전하면서 오타를 내 총편집과 담당 에디터가 해임 통보를 받은 상태다. 텅쉰은 시 주석의 발언을 전하면서 ‘발표’를 의미하는 ‘파뱌오’(發表) 대신 ‘엉뚱하다’는 의미의 ‘파뱌오’(??)를 썼다. 합동 감찰은 최근 베이징인터넷정보판공실이 온라인 방송 뉴스채널 7개를 폐쇄한 이후 나온 조치다. 폐쇄된 뉴스 채널은 포털이 자체적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편집해 온 플랫폼으로 소후의 뉴스채널 3개와 왕이의 채널 2개, 신랑망과 봉황망 채널 1개씩이다. 당국은 포털의 자체 뉴스 생산 금지를 ‘인터넷언론서비스관리규정’ 제16조에 따른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조항은 언론사가 아닌 인터넷 사업자는 자체 취재 및 편집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 조항은 사문화되다시피 했으며, 대다수 포털이 자체 취재를 해 왔다. ●포털 뉴스들 ‘재해 대책 비판’ 큰 호응 중국 언론계는 사문화된 조항이 부활하게 된 계기를 최근 수해 보도 때문으로 보고 있다. 당국의 검열을 받는 매체들은 재해 복구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지만, 포털의 자체 뉴스채널은 처참한 재해 현장을 여과 없이 보여줬고 허술한 재해 대책을 비판해 시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관변 보도로 소비자의 외면을 받고 있는 기존 매체들은 당국의 인터넷 언론 옥죄기를 환영하고 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인터넷 언론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고, 환구시보는 “상업 매체의 불법 행위를 더욱 엄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모든 미디어의 관변화는 시 주석의 의지”라면서 “건국 초기 마오쩌둥의 언론 통제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특파원 블로그] 덩샤오핑, “농촌에서 사회주의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 우리가 몰랐던 남순강화

    [특파원 블로그] 덩샤오핑, “농촌에서 사회주의 철학을 가르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 우리가 몰랐던 남순강화

    1980년대 말 중국의 개혁·개방은 위기에 놓였다. 개혁·개방의 부작용은 인플레이션으로 나타났고 정치·사회적 불안은 1989년 톈안먼 사태로 분출됐다. 톈안먼 광장을 탱크로 쓸어버린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고립됐다.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자금성 옆에 있는 당·정 최고지도부 집단 거주지)에서는 연일 정통 사회주의 길로 회귀하려는 좌파와 자본주의로 밀고 나가려는 우파 간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남순강화’(南巡講話)는 바로 이때 나왔다. 당시 88살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1992년 1월18일부터 2월21일까지 노구를 이끌고 우한, 선전, 주하이, 상하이를 차례로 시찰하며 강화(담화)를 이어갔다.  중국 인문연구소인 중산국학당은 지난 22일 덩샤오핑의 남순강화 원본을 공개했다. 단순히 덩샤오핑의 말만 공개한 게 아니라 담화가 나온 장소와 분위기까지 생생하게 전했다.  시찰 첫날 후베이성 우한 한커우 기차역 귀빈실에 도착한 덩샤오핑은 작심한 듯 후베이성 서기 관광푸에게 “내 말을 똑바로 적어 베이징에 전하라”고 지시했다.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은 반(反)자유주의 투쟁에서 약간의 문제가 있었지만 개혁·개방에는 큰 업적을 남겼다. 약간의 과오로 그들의 성과를 완전히 부정하지 마라” 남순강화의 일성이었다.  덩은 톈안먼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이유로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총서기직에서 잇따라 끌어내렸지만 개혁·개방을 밀어붙이기 위해 두 총서기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차단한 것이다. 덩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덩은 “자본주의·사회주의 논쟁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농촌에서 사회주의 철학을 가르치는 일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까지 했다.  좌파에 대한 공격도 거칠었다. “좌파는 우리 당 역사에서 늘 두려운 존재였다. 혁명을 전유물로 생각하는 좌파는 이분법으로 우리를 겁박했다. 하지만, 똑바로 직시하라. 지금은 개혁·개방이 살 길이다.” 덩샤오핑의 첫날 담화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개혁·개방을 하지 않겠다는 자는 모두 직을 내놓아라”  둘째 날 덩샤오핑은 장시성 서기 마오즈로부터 보고를 받았다. 보고 중간에 “나는 퇴직한 늙은이다. 귀가 안 들린다. 그런 보고를 할 거면 그만두라”라고 호통쳤다. 장밋빛 보고에 대한 분노 폭발이었다. “내가 장시를 떠난 지 20년이 됐는데도 변화가 없다. 정치 투쟁만 일삼는 베이징을 쳐다보지 말고 광둥에서 배우라”고 했다. 덩의 훈계는 서릿발 같았다.  셋째 날 강화는 선전에서 이뤄졌다. 영빈관의 붉은 등이 덩샤오핑을 비추고 있었다. “내가 왜 남방을 찾아왔는지 아는가. 소련 때문이다. 자원과 생산력, 사회발전에서 모두 우리보다 앞선 소련 공산당이 집권 70년 만에 무너졌다. 사회주의 이론을 만들고 핵무기를 만드는 사이 백성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배급을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이게 말이 되는가”  덩샤오핑은 소련의 붕괴로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우리 백성도 여전히 식량, 옷감, 담배, 술 교환권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소련의 오늘이 중국의 내일이 될 수 있다. 개혁·개방 노선이 100년 동안 흔들려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순시 마지막 날 찾은 상하이는 비가 왔다. “마오쩌둥 주석이 이론만 중시한 소련파를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바로 실사구시 정신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오 주석도 말년에 자신을 마르크스주의와 일체화하려고 했다. 나와 마오 주석은 모두 평범한 사람이다. 누가 마르크스주의를 더 잘 알겠는가. 누가 자본주의를 더 잘 알겠는가. 정확히 알지도 모르는데 논쟁은 왜 필요한가”  덩샤오핑 강화는 아시아 ‘네 마리 용’(한국, 싱가포르, 대만, 홍콩)을 언급하면서 끝났다. “20세기 경제 현상 중 가장 괄목할 만한 게 바로 네 마리 용의 굴기다. 중국은 영국, 미국, 일본을 따를 게 아니라 네 마리 용에게서 배워야 한다. 반드시 20년 내에 따라잡아야 한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있은지 24년이 지났다. 중국은 네 마리 용을 넘어 미국과 어깨를 겨누는 G2의 반열에 올랐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서울광장] 중국판 쇼비니즘을 경계한다/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중국판 쇼비니즘을 경계한다/오일만 논설위원

    우려했던 일이다. 남중국해 영유권 중재 패소 이후 중국에서 부는 극단적 민족주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근 랴오닝성 다롄시 지하철에서는 한 청년이 나이키 운동화를 신었다는 이유로 한간(漢奸·매국노)이란 욕설을 듣고, 탕산시의 한 KFC 점포 앞에선 중국 청년 수십 명이 불매운동에 나선 동영상이 나돌았다. 이런 불매 운동을 비판한 한 주민이 구타당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런 동영상들이 끊임없이 전파되는 곳이 작금의 중국이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일제히 민족주의 정서를 자극하는 글들을 쏟아내고 있다. 해방군보는 “외세가 침략해 오면 반드시 때려 줘야 하고, 그것도 완전히 부숴 놔야 한다”는 마오쩌둥 어록을 인용하는가 하면 중국군 관영 웨이보 싼젠커(三劍客)는 “남중국해 중재 판결 패소는 중화민족에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며 반(反)외세 분위기 고취가 한창이다. 이런 ‘중국판 쇼비니즘’은 1990년대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中國可以說不)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예견된 일이다. 1999년 나토군의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이나 2005년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으로 이미 파괴력을 과시했다. 아편전쟁 이후 100여년에 걸친 치욕을 자양분으로 삼아 중국이 세계 중심에 서야 한다는 중화 민족주의가 다시금 위세를 떨치는 중이다. 2016년 중국에서 부는 민족주의 바람은 과거와 달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호전적 민족주의를 외치는 세력들의 칼끝은 외세에 머물지 않고 공산당 정권도 삼킬 기세다. 중국 공산당 정권이 조금이라도 타협적 태도를 취하면 난리가 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마저 ‘시겁쟁이’(習軟蛋)라고 조롱한다. 중국의 통치자들은 1989년 톈안먼 사태를 겪으면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더이상 중국을 이끌 수 없음을 직감했다. 중국은 이때부터 사회주의 체제를 대신할 중화 민족주의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으면서 국가 통치 수단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죽은 공자를 부활시켜 국학 바람을 일으켰고 중화부흥을 기치로 강한 국가주의적 색채를 가미했다. 정치적으로는 신권위주의,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 문화적으로는 전통주의로 무장한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탄생한 것이다. 체제 결속이라는 정치적 목적에 유용한 수단이 됐지만 거꾸로 공산당 정권마저 거센 민족주의 파고를 통제하기 어려워졌다. 호전적 민족주의의 뿌리는 마오쩌둥에 맥이 닿는다. 중국인들은 미국과 소련에 맞서 당당하게 ‘노’라고 말한 마오를 그리워한다. ‘동풍이 서풍을 제압한다’(東風壓倒西風)는 문화대혁명 당시 슬로건이 지금 중국 곳곳에서 나부끼는 이유다. 대만 문제나 남중국해 분쟁 등 ‘핵심 이익’에 대해 유약한 태도를 보이는 순간 겁쟁이로 낙인찍히는 분위기다. 우리는 안타깝게도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정면으로 대치하고 있다. 극우적 시각이 강한 환구시보는 최근 중국인 10명 중 9명이 한국 제재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면서 무역 보복을 선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이 한국을 통해 사드를 배치, 중국을 압박한다는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이에 질세라 한국 내에서도 반중(反中) 감정을 건드리는 정치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한 전직 국회의원이 사드 배치 찬반 토론 중 “20년 전 11억 중국 거지 떼들이 어디 겁도 없이, 우리 한국에”라고 발언하며 중국을 격렬하게 비난했다. 일부 네티즌들도 사드 배치 이후 중국의 강경 대응에 맞불을 놓는 저속한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국가 관계라는 것이 원래 냉정한 이성을 잃어버리는 순간 배타적 민족 감정이란 어두운 늪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우리는 군사 주권과 자위권 차원에서 사드 배치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지만 중국은 미국의 대중(對中) 포위 전략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다. 국익이란 측면에서 서로 시각차가 있을 수 있다는 열린 마음 없이 한·중 관계는 격렬한 쇼비니즘의 덫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수교 24년을 맞는 한·중 양국은 어렵게 쌓아 올린 공든탑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oilman@seoul.co.kr
  • “나치 히틀러, 독일로 교황 납치 시도했다가 실패”

    “나치 히틀러, 독일로 교황 납치 시도했다가 실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교황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교황청 기관지 격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나치의 SS친위대가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재위 1939~1958)를 독일로 납치해가려는 작전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사실 히틀러의 교황 납치와 관련된 소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교황이 히틀러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교황의 비서이자 훗날 뒤를 이어 바오로 6세 교황이 되는 조반니 몬티니는 미국과 영국의 정보당국으로부터 히틀러의 교황 납치 첩보를 듣게 된다. 이에 그는 1944년 1월 말 혹은 2월 초 교황을 알현해 이 사실을 알리고, 교황을 유서깊은 바티칸 도서관으로 피신시켰다. 이렇게 나치의 눈을 피한 교황은 2~3일 간 이곳에 숨어 지냈으며, 연합군 공수부대가 구조를 위해 로마 교외에 낙하산을 타고 도착하면서 피신은 끝났다. 당시 히틀러가 교황을 납치하려 했던 이유는 나치의 세계지배 계획에 교황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나치 대원 40%가 카톨릭 신자인 점도 히틀러에게는 골칫거리였다. 히틀러는 궁극적으로는 기독교를 말살해 자신의 국가사회주의를 세계의 새 종교로 삼을 계획도 세웠다. 과거의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히틀러가 교황을 자신의 손아귀에 두기 위한 계획을 세운 것은 1943년 경으로 당시 전황은 나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1년 전 발행된 이탈리아의 로마가톨릭주교회 기관지 '아베니레'에도 이같은 기사가 실린 바 있다. 당시 신문은 교황 납치를 위한 암호명 '라바트 작전’은 1943년 계획됐으며 이듬해 히틀러는 SS장성인 칼 프리드리히 오토 볼프에게 이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점령군 고위 책임자였던 볼프는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고 교황을 비밀리에 알현한 후 납치 음모를 알려 결국 납치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히틀러, 당시 교황 독일로 납치 시도했다가 실패”

    “히틀러, 당시 교황 독일로 납치 시도했다가 실패”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교황을 납치할 계획을 세웠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근 교황청 기관지 격인 '로세르바토레 로마노'는 나치의 SS친위대가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재위 1939~1958)를 독일로 납치해가려는 작전을 세웠다고 보도했다. 사실 히틀러의 교황 납치와 관련된 소문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언론 보도를 통해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새롭게 드러난 사실은 교황이 히틀러의 마수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다. 보도에 따르면 당시 교황의 비서이자 훗날 뒤를 이어 바오로 6세 교황이 되는 조반니 몬티니는 미국과 영국의 정보당국으로부터 히틀러의 교황 납치 첩보를 듣게 된다. 이에 그는 1944년 1월 말 혹은 2월 초 교황을 알현해 이 사실을 알리고, 교황을 유서깊은 바티칸 도서관으로 피신시켰다. 이렇게 나치의 눈을 피한 교황은 2~3일 간 이곳에 숨어 지냈으며, 연합군 공수부대가 구조를 위해 로마 교외에 낙하산을 타고 도착하면서 피신은 끝났다. 당시 히틀러가 교황을 납치하려 했던 이유는 나치의 세계지배 계획에 교황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나치 대원 40%가 카톨릭 신자인 점도 히틀러에게는 골칫거리였다. 히틀러는 궁극적으로는 기독교를 말살해 자신의 국가사회주의를 세계의 새 종교로 삼을 계획도 세웠다. 과거의 언론보도를 종합해 보면 히틀러가 교황을 자신의 손아귀에 두기 위한 계획을 세운 것은 1943년 경으로 당시 전황은 나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11년 전 발행된 이탈리아의 로마가톨릭주교회 기관지 '아베니레'에도 이같은 기사가 실린 바 있다. 당시 신문은 교황 납치를 위한 암호명 '라바트 작전’은 1943년 계획됐으며 이듬해 히틀러는 SS장성인 칼 프리드리히 오토 볼프에게 이를 지시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점령군 고위 책임자였던 볼프는 히틀러의 명령을 어기고 교황을 비밀리에 알현한 후 납치 음모를 알려 결국 납치 작전은 실행되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종북 콘서트 발언 논란 신은미 강제출국 정당”

    “종북 콘서트 발언 논란 신은미 강제출국 정당”

    ‘토크 콘서트’에서 북한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발언을 해 ‘종북 논란’을 빚었던 재미동포 신은미(55·여)씨에 대한 강제출국 조치가 정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5단독 송방아 판사는 7일 신씨가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장을 상대로 낸 강제퇴거명령 취소 소송에서 “신씨의 발언에는 북한 사회주의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을 인정할 만한 내용이 포함돼 국가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다”며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다만 송 판사는 “신씨 발언에 북한 주체사상 등을 직접 찬양하거나 옹호하는 내용이 있지 않아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시진핑 축전 한 통… ‘고립’ 북한에 숨통?

    시진핑 축전 한 통… ‘고립’ 북한에 숨통?

    국무위원장 추대 김정은에게 노동신문 1면 보도 친선 과시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무위원장으로 추대된 북한 김정은에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개인 명의로 축전을 보냈다. 며칠 사이 북·중이 서로 축전을 주고받으며 대외에 친선을 과시하는 듯한 모양새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2일 시 주석이 김 위원장에게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무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된 것에 대해 열렬한 축하를 보낸다”는 내용의 축전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시 주석은 축전에서 “중조(중국과 북한) 친선은 두 나라의 공동의 귀중한 재부(財富)”라면서 “중국 측은 조선 측과 함께 두 나라 사이의 전통적인 친선협조 관계를 끊임없이 발전시킴으로써 두 나라와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복리를 가져다 줄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중국공산당 창건 95돌을 맞아 시 주석에게 축전을 보냈다. 이틀 사이 북·중 지도자들이 서로 축전을 주고받은 셈이다. 보통 사회주의 정당 간에는 주요 행사 시 축전을 보내는 게 관례다. 하지만 다소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당대회 당시 시 주석의 축전은 신문 7면에 작게 게재했지만 이번에는 1면을 할애해 보도했다. 기관지의 보도 행태만 봐서는 올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으로 관계가 악화됐던 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셈이다. 이에 최근 북·중 관계가 어느 정도 회복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대회 직후 방중한 북한 리수용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시 주석에게 김 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중국은 유엔에 대북 제재 이행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제재에 동참하면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오는 12일 상설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이 예정된 남중국해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커지자 대응 카드로 중국이 대북 레버리지 확대에 나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북한은 4차 핵실험 이후 국제적 고립이 심해지면서 최근 쿠바 등 우호국들을 대상으로 외교전을 펼치며 활로를 찾으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특히 오는 26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대화 분위기 조성 및 핵보유국 지위 획득을 위한 여론전을 대대적으로 펼칠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이번 ARF는 북한 리용호 외무상의 데뷔무대라 어느 때보다 치열한 남북 외교전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