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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8) 궁핍했던 시인 이용악

    “북쪽은 고향/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다시 풀릴 때/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마음은 눈감을 줄 모르다” 절창 이용악(李庸岳·1914∼1971)의 시 ‘북쪽’이다.같은 고향을 노래하는 데도 곰살스럽지 않게 식민지의 비애가 묻어나면서도 기개와 투지가 넘친다.민족정서를 노래한 시인 중 드물게 건장한 구리빛 얼굴의 농투사니 심경에 바탕한 남성적 세계를 형상화한 이용악은 여성적인 김소월과 대조를 이뤄 오히려 이 시인이야말로 우리의 민족시인이라는 주장이 확산되어갈 지경이다.그가 노래한 ‘북쪽’은 바로 함경북도 경성(鏡城),파인 김동환과 같은 곳이다.지연만으로도 이용악은 충분히 삼천리사와 가까울 수 있는 처지인데 거기에다 그 특유의 마당발식 사람됨까지 겹쳐 북도 출신 문학인의 재경(在京) 친목회장 격이었다. 누구나 서울 오면 그를 앞세워 고향 선배에게 찾아 다녔음이 여러 편지에서 드러난다.꼿꼿하기로 소문난 황순원조차도 평양에서 상경하면 최정희를 직접 만나지 않고 “이용악형과 함께 찾아 뵈올까 했으나 그날 사와 댁에 계실 것같지 않다는 이형의 개의(改意)”로 만나기를 포기하고 하향했다고 전한다. 황순원의 발신지는 평양시 무림리 156-6.숭덕학교 교사로3.1운동에 관련되어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아버지의 기개를 이은 듯한 고결한 시인이자 작가였던 황순원은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뒤 평양에 머물다가 1943년고향인 대동군 재경면 빙장리로 낙향하여 학대받던 한글로창작에 전념하며 상처 없이 8·15를 맞은 깨끗한 문사였다. 평양에서 낙향 직전에 보낸 이 편지로 이용악은 최정희의일정을 꿰고 있다는 것과 황순원을 비롯한 서도(평안도)와북도 문인들을 연계지어 주는 중개역이었음을 엿볼 수 있다. 그것도 잡지사와 작가를 연계시켜 주는 단순한 뚜쟁이가 아니라 집필 상담도 해주는 자문역을 수행하고 있다. 장사꾼이었던 아버지가 객사한 뒤 어머니의 국수 떡 계란을 팔아 연명했다니 이용악 집안의 어려움은 알만하다.일본 유학시절에는 온갖 품팔이를 다 해본 이 시인은 가난의무서움을 알기에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에 민망할만큼 애절하게 취업을 청탁하고 있다.“매신(每日新報) 건(件) 지금으로부터 잘 운동하면 될 것 같은데 김선생(파인)께서힘써 주셨으면 얼마나 감사하겠습니까. 아무튼 수일 내로이력서 다시 써서 김선생께로 보내 볼 작정이 올시다”고이용악은 숫제 사정조다. 다른 한 편지에서는 “김동진(金東進)씨”를 언급하면서 “김선생께선 그후 만나실 기회가있으셨는지” 구체적으로 묻는데, 김은 바로 평양출신 언론인으로 1940년 11월부터 매일신보 상무로 있었던 인물이다.입사하기만 하면 친일파로 낙인찍혔던 매일신보에 그렇게 기를 쓰고 들어가려 했던 이용악의 소망은 좌절당했는데,대체 그가 얼마나 호구지책이 어려웠기에 이 지경이었을까.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1939)한 이용악은 물 불 가릴 틈새 없이 생활난에 허덕이며 ‘인문평론’같은 별로 평판이좋지 않던 잡지에 몸담았다가 서울 생활이 어려워져 귀향한 것이 1942년이었고,그가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는 다 이때 쓴 것들이다. 바로 이 해에 최정희 주변에는 어떤 일이있었던가. 편지에 보면 우선 김동환과 신원혜 부부의 장남영사(英士·1926년생)가 죽었는데,파인은 매우 침통해 했었던 것으로 나타난다.용악은 최정희에게 “최선생 조차곁에 없다면 김선생께선 도저히 이번 슬픔에서 헤어나지못할 것입니다.잘 위로해 주시길 바랍니다”고 했는데,신원혜의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은 천진스런 시인의 눈치가 엿보인다. 이용악 서간문의 발신지는 청진시 신암동이나,잠시 “극히가난한 월급 봉투를 받고 있던” 청진일보사였다. 그러나이 시인이 아이를 가지고도 “내지인(일본인)이 아니면 배급도 주지 않는다”는 가난 속에서 “입고 있던 와이셔츠등속이랑 뜯어서 기저귀를 만들었답니다.그러나 댁(최정희)에서 애기 낳을 때 쯤에는 혹은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르겠습니다”란 구절은 너무 서럽다. 콩트처럼 이런 가난한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어 단 한 컬레뿐인 ‘백화(白靴)를 훔쳐 가버렸는데,“용악이 보다도더 비참한 사람이겠습니다.덕분에 며칠이고 들어앉아 독서나 해야 밑지지 않겠습니다.취직되면 구두 한 켤레야 사겠죠”란 구절에 이르면 이용악의 인간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판세에 최정희에게 아기(지원)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봐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그의 설래발은 여전히 널리 펼쳐져 있었던 것 같다. 이 각박한 시대에 우리의 민족시인이용악이 가난과 병마와 싸우며 ‘채근담(菜根譚)’과 헤세의 ‘데미안’을 탐독했었다는 삽화는 그의 문학론 이해에 새 조명을 쏘게 해준다. 이 고난의 시기에 이용악이 쓴 시 ‘길’(‘국민문학’ 1942.3)은 자칫하면 “싱가포르 함락이라는 ‘지극히 복된기별’을 듣고 별을 우러러 ‘즐거운 백성’된 것을 노래함으로써 일제의 침략 전쟁을 합리화했다는 엉뚱한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실은 “고통스런 시대를 살아가는 식민지 지식인의 부끄러운 자기 확인의 사회적 의미”(윤영천,‘이용악론;민족시의 전진과 좌절’)로 보기도 한다.사족이지만 이용악은 이 혹독한 가난의 체험 때문에 8.15직후상경하여 ‘조선총독부 도서관(국립도서관의 전신)’ 일본인 관장 관저가 적산가옥으로 접수된 걸 불하받는 민첩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조선문학가동맹에 적극 가담,활동했으나,정부수립 전후해서는 정인택(鄭人澤) 등과 정릉 이웃에 살다가 6.25 직전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전쟁중 현덕·설정식 등과 월북한 그에 대해서는 북한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관계는 얽히고 설키기 마련이어서 이용악이 그토록 들어가고자 했던 매일신보사의 ‘사진순보(寫眞旬報)’에 근무했던 작가 정인택은 직장 관계로 꽤나 친일작품을 지저분하게 남긴 심리주의적 경향의 작가로 이상·안회남(安懷南) 등 서울내기 중 몰락한 집안 출신들과 가까웠다.안회남은 ‘금수회의록’의 작가 안국선의 외아들로 우국지사인 아버지 때문에 불우한 성장기를 보낸 고독한 작가로 술을 즐겼다.진도로 유배당한 안국선이 현지 처녀와 결혼,방면 후 서울에서 얻은 아들이 바로 회남이다.지사 기질을이어받은 회남에게 식민지 교육은 배포가 안 맞아 아버지의 타계와 비슷한 시기인 고교 4학년 때 등록금을 유용한채 자퇴,문학과 술과 연애라는 일제 통치 아래서의 전형적인 절망의 문학병에 빠져들었다. 최정희에게 언제나 술타령 구절이 들어있는 편지를 보냈던곳은 종로구 체부동 시절로 안회남이 1940년대 초반 충남연기군 전의면으로 낙향하기 직전에 쓴 글들이다. 편지에는 친하게 지냈던 작가 현덕(玄德),이석훈(李石薰)이 등장하고,원고료를 받으면 “아내가 월여를 두고 조르던 전기다리미를 하나 사고는 최정희에게 점심을 사겠다”는데 그메뉴가 “정식을 취하시든지 또는 50전 영화 구경 50전 맥주 50전 런치를 취하시든지”하라는 제안은 당시 문인들의취향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엽서는 오히려 노골적인 사과내용을 담아낸다. “저녁에 댁에 간 것은 저의 잘못이올시다.용서해 주시옵소서.술이 대취했습니다”고 정중히 사과하는 안회남의 자세는 다른 문인들과는 달리 지사형 작가로서의 풍모가 드러나 있다. 이용악을 중심축에 둘 때 그 양쪽에 배치되어야 할 인물은당연히 같은 고향인 재주꾼 김종한과 문단에 별 기반을 못잡은 박찬모(朴贊謨)일 것이다. 원산 북선매일신보를 발신지로 한 박찬모의 편지에 등장하는 인물은 단연 ‘용악형’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현덕인데,작품 경향으로 볼때 용악과 현덕은 어떤 의미에서는 상통한다.“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이번 삼독째 덤벼 중권을 읽는 참에 독소전단(獨蘇戰端)의 보(報)를 받았다는 것이 요즈음 마치 살아나게 되는 것 같은 자극입니다”는 구절은 이 젊은 작가가시골에 몸은 두고서도 세계정세를 정확히 독파하고 있구나싶은 대목이다.세계사를 제대로 공부한 사람이라면 독일의패배는 예견된 필연이었다. “딱 엎드려 동면을 하고 싶은가 하면 느닷없이 어디 부딪쳐 보고 싶어 못 견디겠고”라고 이어지는 구절은 심상찮은 암시다. 아들 자랑과 가정을들먹이는 대목은 역사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자괴감을 달래려는 속내를 드러낸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네티즌 칼럼] 軍복무 대체 봉사제 다양화를

    죄짓고는 못사는 법이다.고위층 병역비리를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노항원사가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있다.그는 100여건의 병역비리를 통해 최소 20억원 이상을 받았다는것이다.원사는 상사보다 위이고 소위보다 낮은 계급인데어떻게 그토록 큰 병역비리를 저지를 수 있었는지 참으로해괴한 일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는 세상이라는 자탄의 목소리가 높다.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대부분 국방의 의무인 병역의무를 당연한 것으로받아들이고 있다.그러나 한켠에서는 군생활은 고생만 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니 빠질 수만 있다면 박씨 같은 브로커를 동원해서라도 빠져보자는 경우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와는 별개로 최근 종교적인 신념 등을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찬반양론이 인터넷에서 불을 뿜고 있다.각 언론사 토론방에는 네티즌들의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특정 종교인들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선 무기를 들 수 없다는 양심의 이유를 들어 병역을 거부하고 2년동안 교도소행을 마다하지 않는다. 20대 초반에 스스로 전과자로 낙인찍히길 감수하는 이들에 대해 반대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국가 수호를 위해서는특정 종교의 이해가 앞설 수 없다는 지적이 바로 그것이다.현재의 국가적 평화 상태가 전후방에서 군복무에 여념이없는 젊은이 덕분임을 망각해선 안된다는 의견이다. 반면 한 지식인은 종교와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에겐 대체봉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소방서나 병원,그밖에 군대와 관련이 없는 산업체에서의 봉사나 사회봉사를 군 복무 기간만큼 수행하도록 법으로 지정하자는 것이다.이 제도는 군복무를 거부하고 감옥에서 젊음을 낭비했을 사람들을 더 생산적으로 활용하여국가경제에 이바지하게 하는 장점으로 많은 나라에서 도입되고 있다.아직 이들 나라에서 대체봉사제도 도입으로 국가방위체제가 흔들렸다는 보고는 없다. 박노항 원사의 경우에서 보듯 한국 사회에서 병역 관련 비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생각한다.하나는 국방의 의무에 대한 역사적,사회적 환경과 인식의변화이다.다른 하나는 군생활의 민주적이고 개방적인 변화 과정에서 여전히 구시대적 권위주의 군문화가 충돌하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지금은 중요한 때다.남북화해와 같은 큰 분수령도 넘었다. 당국은 박노항 원사 검거를 계기로 병역에 대한 보다 투명하고 객관적인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특히 군이 내부에 실질적인 변화를 도모해 젊은이들의 새로운 의식 변화를 담아줄 수 있는 환경으로 일신해야 할줄 안다.또 차제에 양심이나 종교적 이유를 들어 병역을거부하는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장치 마련도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김 찬 영 부산대도서관 멀티미디어센터]cykim1@hyowon.pusan.ac.kr
  • [대한광장] 매카시즘과 마녀사냥

    “정부의 가장 중요한 부처인 국무부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유린되고 있다.나는 그중 205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다.” 마흔두살 젊은 상원의원은 서류뭉치를 높이 들어 청중에게흔들며 이렇게 소리쳤다.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이었다. 한국전쟁 발발 4개월 전인 1950년 2월9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에서 열린 공화당 여성당원대회에 초청연사로 참석한 매카시 상원의원의 돌발적인 폭탄선언은 그후 4년동안 미국사회를 소련스파이 사냥이라는 백색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고, 지금까지도 전세계에 매카시즘이란 용어를 유통시킨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매카시즘은 역사적으로 유럽에서 12세기 말에 시작되어 16∼17세기에 절정에 달한 마녀사냥의 현대판 미국식 버전이랄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소련에서 스탈린시대에 정치적 반대자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통용된 미국스파이론의 미국식 변형이라 할 수 있다.단지 마녀사냥이 가톨릭교회가 사회불안이나 종교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단적 신앙을 공격하는 종교적 성격을 띤 반면 매카시즘은 정치적 반대자를공격하여 제거하는 데 목적을 둔 정치적인 것이라는 점뿐이다. 마녀사냥·미국스파이·매카시즘은 반대자에 대한 공격방식이라는 점에서,그리고 허구적 상황을 조작하여 진실인 양 대중을 기만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대중의 심리적 불안감을극도로 조장함으로써 집단적 마취상태를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끝내는 사실무근으로 밝혀지게 되지만 사실과관계없이 폭발적인 파괴력을 갖는다는 점에서도 일치한다.더욱 중요한 사실은,이들이 사실을 날조하고 반대자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위기탈출을 기도한다는 것이다. 마녀사냥을 유발한 중세의 위기상황은 경제적 피폐와 전염병의 확산 등 사회적 요인과 이단의 등장으로 인한 가톨릭의위기라는 종교적 요인 등 복합적인 것이었다. 소련의 위기상황은 서구의 포위공격으로 인한 사회주의혁명의 위기와 스탈린체제 자체의 위기였다.전후 미국의 경우 냉전체제라는 낯선 국면에서 소련의 원폭개발과 중국의 공산화라는 구체적인위협요인의 대두가 크게 작용했다. 통상적으로 매카시즘은,우파 보수세력이나극단적 수구세력이 위기상황에서 위기의 본질을 호도하고 탈출하는 방법으로등장한다. 우리의 경우 과거 선거 때마다 등장한 색깔론이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그런데 이번에는 교육부총리 한사람을 두고 일부 의원과 신문이 매카시 색깔의 불을 지피려고 애쓰고 있다.김용갑씨 등 일부 의원들이 신임 부총리를친북성향의 좌파인사로 매도하는가 하면 조선일보는 그의 통일론을 거두절미하여 ‘북한퍼주기’로 비판하고 있다. 이 정부 들어 방탄국회라는 신개념까지 만들어낸 김용갑씨의 정치적 어려움은 이해할 수 있다.검찰의 압박도 만만찮을것이다. 그렇다고 특정인의 화해적 통일론을 친북성향으로매도하고 너무 온건해서 문제인 사회인식을 좌파 중의 좌파로 매도한다면,그것은 좌파에 대한 지나친 모독인 동시에 좌파에 대한 무식의 노출이 아닌가.조선일보에 대한 사회적 저항이 예전같지 않고 뜻있는 많은 사람들이 조선일보를 떠나는 등 조선일보가 처한 어려움도 익히 이해할 수 있다.그렇다고 인도주의적 주장을 ‘퍼주기’라니 너무 심한 것 아닌가.인도주의적 온건개혁주의자를 친북좌파라 하는 것은 자기스스로 ‘꼴보수’라고 하는 것밖에 더 되겠는가. 한심한 일이다. 매카시 상원의원은 미국 정계에 매카시즘을 상표로 등록시킨 후 같은 수법으로 한차례 더 상원의원을 역임하게 되지만명성보다는 오명으로 더 유명해졌다. 사필귀정이라고나 할까,그는 1954년 상원 공청회에서 상원의 전통을 더럽힌 인물로낙인찍혀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1957년 병을 얻어 젊은 나이로 쓸쓸하게 사망하고 말았다.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없는 것처럼 냄비뚜껑으로는 흐르는 강물을 막을 수 없다.이런 일을 하려는 사람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도록 노력해야 하며 타인의 경험에서 자신을바로잡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역지사지만으로 부족하다면 직접 체험하고 느끼는 역지감지(易地感之)도 있다.비판이 사회적 상규를 벗어나면 언젠가는 화살이되어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기억할 일이다. 정대화 상지대교수·정치학
  • 기동취재/ 불법체류자 자녀 실태‘대안

    *불법체류자녀 시민단체·선교회서 극소수만 교육. 국내에 머무는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의 자녀들이 학교 밖을 떠돌고있다. 학교에 갈 나이이거나 본국에서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도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힌 부모 때문에 학교에 전·입학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은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부모가 일터에나가면 집안에 있는 일이 허다하다. 실제 국내 현행법 어디에도 불법체류자 자녀들에게 교육을 보장하는 규정은 없다. 시민단체들은 “불법체류자에 대한 법적인 대응도 중요하지만 최소한 아이들에게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교육기회를 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불법체류 현황] 지난 8월까지 국내 불법체류자는 17만2,501명으로집계되고 있다. 몽골인의 예를 들 경우 불법체류자가 1만2,155명에 이르며 이들의 20세 이하 자녀는 200명 가량으로 추산된다.몽골인들은 다른 나라 출신과는 달리 입국할 때 또는 정착한 뒤 가족을 데려오는 경향이 강하다. 정부는 몽골인을 비롯,다른 국가출신 불법체류자들이 일터를 찾아자주 이동해미성년자수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육실태 및 관련법]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19조에는 ‘재외국민및 외국인이 보호하는 자녀 또는 아동이 국내의 초등학교에 입학하거나 전입학할 경우,출입국관리사무소장이 발행한 출입국에 관한 사실증명서나 거류신고증을 거주지를 관할하는 학교장에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불법체류자가 아닌 합법 체류자를 위한 조항이다.불법체류자들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출입국 사실증명서 등의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정식으로 학교에 다니며 교육을 받는 일은 불가능하다.현재불법체류 외국인 자녀들은 간혹 시민단체나 선교회 등의 도움을 받아교육을 받는다. 성남지역에서는 유일하게 교육청의 승인 아래 성남초등·금빛초등·창곡중·성남동중에서 불법체류 몽골학생 10여명을 전·입학시켰다.엄밀히 따지면 ‘변칙’인 셈이다. [유엔협약과 외국예] 유엔의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에는 ‘아동은 인종·피부색·언어·종교·정치적 또는 사회적 출신 등의 신분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며 아동의 교육권리를 적시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불법체류자 자녀라 하더라도 거주 사실이 확실하면 유치원은 물론 초·중학교까지 학비를 면제해 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미국도 불법체류자의 자녀에 대해 교육의 권리만은 보장하고 있다. [대안] 외국인노동자대책위원회 가족분과 이금연(李今淵·40)위원장은 “교육은 인간의 기본권”이라면서 “불법체류자 자녀들의 교육제공은 자칫 불법체류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지만 우선 법에 앞서 인권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이 학교에 다닐 수있는 법적 근거는 없다”면서 “법개정 여부를 관련부처와 협의중”이라고 밝혔다. 박홍기 조현석기자 hkpark@. *재외국민자녀, 성남초등교에 정식 입학. ‘교장선생님께.외국인 노동자 자녀들이 학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교장선생님을 비롯,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얼마전 경기도 성남초등학교 교장실로 한통의 편지가 배달됐다.이학교 2학년에 다니는 몽골학생 오양가양(8)의 어머니 앵흐씨(40)가보낸 글이었다.불법체류자로 떠도는 신세지만 자식만은 어떻게 해서든 가르치고 싶었던 앵흐씨는 딸을 받아준 학교가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라고 적었다. 오양가양처럼 불법체류자 자녀의 신분으로 이 학교에 다니는 몽골아이들은 모두 6명.‘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통해 지난해부터인연을 맺었다. 처음엔 교실 한켠에 자리만 하나 더 차지하는 ‘청강생’이었으나지금은 출석부에 이름이 어엿하게 올라있는 정식 ‘재학생’이다. 올초 졸업을 앞둔 몽골학생 바이에르군이 수료증만으로는 중학교에진학할 수 없게 되자 학교측에서 결단을 내린 것이다.재외국민 자녀전입학절차를 규정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원용해 정식으로전입시켰다.엄밀히 따지면 ‘변칙’인 셈이다.현재 성남에는 금빛초등과 성남동중·창곡중도 몽골 학생들을 받고 있다. 말만 다를 뿐 얼굴 생김새나 행동이 여느 우리나라 아이들과 다름없다.두달 정도만 지나면 한국말도 눈에 띄게 늘고 같은 반 친구들과도거리낌없이 어울린다. 손규동(58)교감은 “학생들도 몽골 아이들을 따돌리기보다는 오히려감싸고 보살펴준다”고 전했다. 부모가 일나가고 나면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아이들은 학교가 마냥즐겁기만 하다. 오양가양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공부하고 노는게 너무 재밌다”며 즐거워했다.6학년인 밍크양(12)도 “사회와 국어는 어렵지만 미술시간은 맘에 든다”며 즐거워했다. 김선옥(金仙玉·55)교장은 “불법체류자는 규제해야 하지만 부모손에 이끌려 타국에 온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느냐”면서 “인도주의차원에서 교육의 권리는 지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 *김해성 목사 “한국 알릴 민간사절 키우는 셈”. “2년전 한 몽골부부가 초등학생 연령의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 집안에 가둬놓고 일하러 간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경기도 성남시청 부근에서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운영하는김해성(金海性·39)목사.‘외국인 노동자의 대부’로 통하는 그는 합법적인 교육의 길이 막혀있는 불법체류자 자녀들에게배움의 기회를주기위해 지난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인근 학교를 찾아가 간곡히 부탁했으나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하나같이 난색을 표했다.김목사는 ‘청강생이라도 좋으니 일단 받아달라’고 간청하다시피 해 성남초등학교에 이들을 맡겼다.문제가 생기면 책임지겠다는 각서도 썼다. “본국에서 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이 부모의 불법체류로 교육의 권리를 송두리째 빼앗기는 건 너무 가혹한 처사”라는 게 김목사의 주장이다.다행히 성남지역 몽골 학생들은 시교육청과 학교측의 배려로 정식 교육을 받게 됐지만 다른 지역 불법체류자 자녀들의 교육기회는요원하기만 하다. 김목사는 “일차적으로는 인도주의 입장에서 이들을 가르쳐야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우리나라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어에 능숙하고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이들이 고국에 돌아가면 양국을 잇는 훌륭한 민간외교 자원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는 “자칫 불법체류자를 양성할 우려도 있으나 국제인권규약 등을근거삼아 학령기 아동들을 구제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관련 부처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순녀기자
  • [기고] 반부패기본법 빨리 입법화 하라

    우리들이 부패하지 않은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이러한 사회일수록 모든 사회관계가 공평과 공정의 원칙에 의해서 행해지고,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으며,규범문화가생활화되어 있고,자유와 인권 보장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아직도 국제적으로 그 투명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부끄럽게도 부패 정도가 높게 나타나 있다.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에걸쳐 오래 전부터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러한 현상은 공사간의 관계에 있어서 투명성,공익성,규범 의식이 선행되고 강조되기 보다는 이기성,호혜성 그리고 은폐성이 널리 성행되고 구조화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국제기관에서 발표한 지수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투명도는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하위 수준으로 나타나 있다.그리고 지난 몇년 사이에 더 악화되어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부패지수에 의하면 1995년에는 27위였던 것이 2000년에는 48위로 전락되고 있다.그리고 수출 주도 19개국의 뇌물공여지수조사결과에서도 한국은 최하위인 18위를 기록하고있다. 이러한 국제적 평가결과는 우리들에게는 많은 것을 시사해주고,또한 성찰케하고 있다.어느 사회에 부패가 만연되어 있을 때 불법적인 호혜만을 통해서 부당하게 자기 이익을 챙기는 소수의 탈법자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선의의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과 피해 의식을 느끼게되고,성실한 공무원들과 근로자들의 근로 의욕 역시 저하되며,그 결과 국민적 연대감이 해이되고 아노미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또한 국제적으로도 페어플레이에 역행하는 불신의 나라로 낙인받게되어 경제 성장에 필요한 외자 유치는 물론 수출에도 타격을 입게 마련이다.이런 맥락에서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부정부패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인 동시에 하루빨리 추방해야 할 시급한 과제이다. 역대 정권의 부정부패 척결 노력은 부정비리 연루자에 대한 사후 처벌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근본 대책이 되지 못했으며,정치권 역시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실시하고 있는 부패방지법의 제정,부패를 유발하는 제도의 개선 등 부패의 방지와 추방을 위한 체계적인입법화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늦기는 하지만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이 그 누구보다도 부패척결의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범정부적으로 이 문제를 추진하고 있다.지난해 김대중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와 그에 이은 부패방지종합대책은 대통령의 부패 방지와 척결에 대한 강한 의지와 고심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9월10일에는 대통령 직속으로 반부패특별위원회가 출범됐다.그러나 1년이 넘도록 아직껏 특별위원회 활동과 기능의 기본틀이 될 기본법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어 기구 설립의 본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위원회의 역할을 제대로다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국민들은 기본법의 제정을 주시하고 있다. 국민들은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서 부정부패가 추방되기를 여망해왔다.그리고 한국이 투명한 선진 사회에 진입하기 위해서도 부패 척결은 우선적이고 필수적인 과제이다.이러한 국민의 여망과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서 국회는 이번 회기에 반부패기본법을 반드시 입법화해야한다.그리고 기본법은 제도적 차원에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우리 사회의 부정부패를 추방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강력한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문 석 남 전남대 교수·사회학
  • ‘사이버 중독’ 당신을 노린다

    ‘집에서 밥먹거나 화장실 갈 때 외에는 인터넷에 매달린다.인터넷을하면서 갑자기 접속이 끊기지 않을까 늘 불안하다’사이버 세계에 지나치게 빠져들어 실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이버 중독’현상의하나다.인터넷이 빠르게 보급되면서 N세대인 청소년은 물론, 직장인과 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사이버 중독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을 가상공간에서 대리만족하는 ‘나만의즐거움’에 빠져 현실과 혼동하거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대학을 졸업하고 중견기업에 취직한 30대 A씨는 요즘부모님이 있는 시골에서 요양하고 있다.외환위기때 실직한 뒤 자포자기 상태에서 인터넷 게임에 빠진 뒤 게임을 하지 않으면 하루도 살수 없게 돼 컴퓨터와 PC방이 없는 시골로 내려가 치료 중이다. 학교에서 ‘왕따’로 낙인찍힌 고등학생 B군(17)은 친구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뒤 인터넷 게임에 빠졌다.현실과는 달리 사이버 공간에서는 게임실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PC방에서 게임하느라학교도 그만두고 가출을 거듭한 B군은 사이버공간과 현실을 구별하지못해 결국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사이버중독 현상으로 학계에 보고된 사례들이다.정보화시대의 대표적인 역기능으로 알려진 ‘사이버중독’은 단순히 인터넷에 빠지는차원을 넘어 실제 생활에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사이버중독(Cyber Addiction)이란 정보이용자가 지나치게 컴퓨터에매달려 심각한 사회적,정신적,육체적,금전적 지장을 받는 상태를 말한다.인터넷 증후군이나 웨버홀리즘(Webaholism),인터넷 중독장애 등으로도 불린다.지난 96년 미 피츠버그대 킴벌리 영 박사가 정신질환과 연관성을 밝혀냈다.그러나 질병인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아직까지논란이 일고 있다. 이같은 증세를 보이는 사람들은 마음이 심란하거나 허전하면 자신도모르게 컴퓨터에 접속해 위안을 얻고,컴퓨터를 끄지 못하는 내성 현상을 띠는 공통점이 있다.인터넷을 떠나 있으면 왠지 불안한 금단증상도 보인다. ■청소년 10명 중 1명은 사이버중독 사이버중독 현상은 컴퓨터 세대인 청소년들에게 주로 나타나고 있다.청소년보호위원회와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윤영민(尹英民·45) 교수가 최근 청소년 1,9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소년의 11%가 전체 8개 항목에서 6개 이상 ‘그렇다’고 응답,사이버중독이 의심스러운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을 하지 않으면 기분이 우울해지거나 불안해져서 다시 인터넷을 하게 된다’고 답한 학생이 336명으로 전체 17.4%를 차지했다. 남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인터넷을 하는 것이 좋다’고 응답한 학생도 631명(32.7%)에 달했다. 윤 교수는 “사이버중독에 대한 전문적인 상담요원 양성과 함께 학교에서 인터넷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길러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나도 사이버중독자가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예전에 정신적 문제에시달렸던 사람이나 정서적으로 예민한 청소년,전업 주부나 실업자 등시간적 여유가 많으면서 현재 처지에 불만이 많은 사람들이 중독현상을 보이기 쉽다고 분석한다.그러나 정상인이라도 업무나 공부 때문에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을 빼고 하루에3∼4시간 이상 지나치게 빠져들면 스스로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사이버중독을 예방하려면 컴퓨터 이용시간을 정해 꼭 지키고 오락하는 시간을 줄이는 대신 신체적 활동과 현실에서의 대인관계를 늘려야한다고 조언한다. 청년의사 인터넷중독치료센터 김현수(金鉉洙·35) 원장은 “학교와직장을 그만두거나 이혼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서 상담하러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사이버중독이라고 의심되면 빨리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천기자 patrick@. *“인터넷 잘쓰면 藥 못쓰면 毒”. “컴퓨터는 이제 생활과 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 됐지만 정보화 시대의 역기능인 사이버중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부족한 상태입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박행석(朴行奭·44) 기획관리부장은 최근 사이버중독 현상이 사회문제화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설마 내가’라는 그릇된 생각이 되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획관리부는 지난10일 문을 연 사이버중독에 관한 각종 정보를 소개하는 ‘사이버중독정보센터’(www.cyadic.or.kr)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곳.사이버중독에 걸린 사람들의 경험담과 예방 및 대응 방안,관련 연구자료 등을 소개하고 있다.지난 3월 정보통신부와 학계,의료계,법조계 인사들의 도움을 받아 7개월 동안 준비했다.서비스를 시작한지 보름만에 600여명이 실태조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할 정도로 큰 호응을 받고 있다. “사이버중독에 대한 국내 연구는 아직 걸음마 단계입니다.우리나라실정에 맞는 연구모델이 없어 미국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보통신윤리위원회는 앞으로 사이버중독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이루어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에는 정통부와 협의를 거쳐 정신과 전문의와 사회심리학자 등전문가들과 함께 사이버중독에 대한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할 예정이다. 청소년을 지도할 학부모와 교사를 위한 인터넷 사용 지침서도 개발하기로 했다.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스스로 인터넷을 현명하게 사용하는지혜가 필요한때입니다” 박 부장은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당부했다. 김재천기자. *사이버중독 자가진단…나도 혹시. 각 항목에 점수를 매긴 뒤 합산한다. 전혀 아니다=1점,거의 그렇지 않다=2점,가끔 그렇다=3점, 자주 그렇다=4점,항상 그렇다=5점[항목] 1.예정보다 더 오래 컴퓨터에 붙어있다. 2.컴퓨터 때문에 집안 일이나 사무실 정리 등을 게을리한다. 3.친구나 배우자와 함께 있기 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노는 것이 더좋다. 4.사이버 공간에서 친구를 사귄다. 5.주위에서 온라인 이용시간을 줄이라고 말한다. 6.온라인 때문에 성적이 내려가거나 숙제를 못한다(학생) 7.온라인 때문에 일의 생산성이 떨어진 적이 있다(직장인) 8.꼭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메일 박스부터 확인한다. 9.온라인에서 무엇하느냐고 물었을 때 숨긴 적이 있다. 10.사고(思考)가 힘들어지면 사이버 공간을 생각하며 벗어난다. 11.온라인 접속을 생각하면서 들뜬 적이 있다. 12.인터넷이 없으면 지루하고 공허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13.누가 옆에서 온라인 활동을 방해하면 짜증이 난다.14.온라인 때문에 잠을 설친 적이 있다. 15.컴퓨터를 껐을 때 사이버 공간의 일과 현실이 혼동된 적이 있다. 16.온라인을 하면서 “몇 분만 더”라고 중얼댄 적이 있다. 17.온라인 이용시간을 줄이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18.하루 몇시간 온라인을 하는지 숨긴 적이 있다. 19.다른 사람과 밖에 나가는 것보다 온라인하는 것을 선택한다. 20.기분이 좋지 않다가 온라인을 하면 좋아진 적이 있다. ■결과 ▲ 20∼39점 사이버 공간 잘 활용.이용자 스스로 통제 가능한상태 ▲ 40∼69점 인터넷 때문에 실생활에 문제를 일으킨 적이 많음▲ 70∼100점 심각한 상태.상담 필요. 한국정신병리진단분류학회 제공
  • [대한시론] 한국 매카시스트의 소갈머리

    남북분단 이래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안겨준 사이비 ‘반공주의’는한국판 매카시즘으로 모습을 갖추어 이 사회를 지배해 왔다.1991년소비에트 체제의 해체로 냉전시대가 끝나고 1998년 우리에게는 반세기 만에 정권 교체가 있었지만 한국의 매카시즘은 여전히 위세를 떨치며 건재하다.과거와 달라진 것은 매카시스트가 정권에 기생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지만 일제시대 이래 친일 기득권세력으로부터 이승만 정권과 군사정권을 거치며 군림해온 기득권층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실세다.독재정권하에서 특혜로 뿌리를 내려 도사리고 있는 재벌과 일부 관료및 사회 각계 요직에 박혀있는 구세력 인사들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한국의 매카시스트들은 바로 그들의 이해를 대변하여 정부의 개혁을 물어뜯고 훼방놓고 있다.여기서 기막힌 일은 한국의 매카시즘은 1950년대의 미국의 그것처럼 일시적인 열병이 아니라 거의 만성화된제도적 힘을 지닌 극우의 횡포란 점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지자 매카시스트의 도전은 아주 감정적이고상궤를 훨씬 벗어나기 시작했다.이미 그들은 정권교체가 이룩되자 미칠 지경이 돼서 정권에 흠집 내기를 “DJ정부는 좌경세력의 광란시대”(정모 의원의 말)라고 악을 써댔다.법률상식으로 봐도 비방의 한도를 훨씬 넘은 명예훼손이고 모략중상이다. 우리사회에서 빨갱이로 낙인찍히면 그것은 ‘사회적 사형선고’이다.매카시즘의 횡포가 바로 그러한 낙인찍어 ‘폐인 만들기’였다.그런데 지금도 그러한 수법을 버젓이 쓰며 정권에게까지 도전한다.정권이 문제삼으면 그것 자체를 이용하겠다는 심보와 함께 현 정권이 과거의 군사정권처럼 탄압의 칼을 함부로 휘두르지 않으리라는 치밀한 계산하에서 하는 물어뜯기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매카시스트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우선 그들은 남북교류 자체가 용공행위로서 못마땅하다.결국 북에 대한 군사적 대결의 강경노선을 고수해야 한다는 것이다.그렇지만 그러한 군비경쟁은 남북이 함께 자멸에 이르는 길이다.이미 1953년 정전협정 당시에 무력통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됐다.다음에 그들은부패기득권 구조를 유지하려는 것이다. 기득권 유지에 위협을 준다고 생각되는 재벌개혁이나 정경유착의 부패구조 청산을 중단하고 군사정권시대같은 개발독재 체제로의 회귀와 복고를 꿈꾸고 있다.그래서 현 정권이 빨리 끝나길 바라고 심지어는 앞당겨 끝내고 싶어 안달이다. 그렇지만 재벌개혁을 비롯해 전반의 민주화가 없이는 우리는 몰락한다.나라나 겨레가 몰락한다.매카시스트가 대변하는 것은 재벌의 시장독점과 특혜대출,노사분쟁의 관권에 의한 치안대책적 제압 억제,대북긴장 고조 속에서 기득권 유지,구조의 안정 정착이다.그렇지만 그러한 개발독재의 효용성은 이미 시효가 끝났다.매카시스트와 그에 동조하는 사이비 지식인의 집념은 완강하다.특히 매카시즘의 법률적 발판 기능을 해온 국가보안법의 개폐가 마치 안보를 망가뜨리는 듯이 허풍을 떤다.우리나라가 국가보안법 없이는 하루도 지탱 못하는 형편없이 허약한 나라라는 논리를 태연히 내세우고 있다. 한국의 매카시스트가 조작해온 몇가지 신화를 보면 그 정체를 쉽게엿볼 수 있다.영국의 외무부 관리였고 역사가인 E.H.카를 공산주의자라고 법정에서 감정의견을 내놓아 세상을 웃겼다.정경유착과 경제파탄의 장본인을 근대화의 공로자로 뻔뻔스럽게 내세워 코웃음을 치게하고 있다.미국 비판과 미국과의 거래 논리 관철을 반미이고 용공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이런 무지와 독단은 국익에 적합한 것도 아니고 자유민주주의의 옹호도 아니다.21세기 세계화와 정보 기술혁명의 시대에는 그야말로 사고의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한다.그런데 국제관계나 정치·사회 인식에 대한 기본상식도 결여한 채 구시대의 독단을 진리로 착각해 고집을부려 웃음거리가 되고 나라일을 그르치는 것은 보기에 딱하다.더구나 책임있는 지위에 있었거나,있는 사람이 그러니 더욱 안됐다. 분단 이래 매카시스트가 정권에 기생하며 위세를 떨쳐왔으나 정권교체로 사정이 달라졌다.그들은 버려진 고아의 심정으로 위기의식에 사로잡혀 현 정권을 심정적으로 거부한다.국민이 선택한 정권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기존 법제의 테두리까지도 넘어서며 악을 써댄다.그렇지만무법의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국민의 무지에 편승해 이리떼가 온다는 소동놀이로 정치조작을 하는 작태도 끝장내야만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한 상 범 동국대교수·법학
  • [대한광장] 보수언론에 대한 작은 반란

    최근 전국의 지식인 154명이 서울의 한 레스토랑에서 조선일보에 대한 거부선언을 했다. 이 자리에서 154명의 지식인들은 ‘조선일보’를 극복하지 않고서는개혁과 평화적인 통일이 어렵다는 점에 뜻을 같이하고,이 신문의 반통일적인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시민운동 차원의 공동대책위원회를구성해 대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물론 154명이라는 그리 많지 않은 숫자이고 또한 이들이 조선일보를거부한다고 해서 조선일보의 영향력이 갑자기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땅의 보수언론,특히 조선일보가 행해온 사상 재단(裁斷),반통일적 보도 등을 생각하면 이제라도 일부이긴 하지만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거부운동에 동참했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를 가질수 있다.물론 보수적인 논객들이나 지식인들은 당연히 조선일보를 지지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조선일보에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한다고 해서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진보진영 내부에 있었다.진보적인 지식인임을 자처하는 사람이나 시민운동가들까지도 보수언론의 활용론을계속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건 무슨 신문이건 간에 그 신문을 활용하여 내가 주장하는주장과 활동을 전파하면 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활용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평가하는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 기간중에도 논란이 되었다.총선시민연대 내부에서 보수언론의 방해로 인하여 총선시민연대의 주장을 축소하거나 폄하함에도불구하고 보수언론의 지면에 나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들중 일부는 언론에 얼굴이 나가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했다. 또 하나의 기류는 조선일보로 뛰어들어 조선일보의 논조를 바꾸는것도 중요하다는 주장이다.그들은 조선일보의 독자로서 조선일보를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도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바로 조선일보가 노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보수적인 지식인들은 당연히 자기네들의 주장에동조하고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다.그러나진보적인 진영에 대해서,특히 영향력이 있는 진보지식인과 시민운동가들에게도지면을 할애하면서 그들에게 끊임없이 함께 동참하기를권유하고 있다.그러면서 조선일보는 광범위한 계층이 지지하는 신문이라고 선전을 하는 것이다. 혹자는 왜 조선일보만을 문제삼느냐라고 물어온다.그러면서 동아일보,중앙일보는 문제가 없느냐라고 말이다.물론 다른 신문들에도 문제는 많다. 그러나 구체적인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한다면 모든 것을 상대로 해서는 그 목적을 이룰 수 없다.신문개혁이 전략적인 목표라면 전술적인목표는 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하나만을 목표로 할 수밖에없다. 보수언론의 선봉에 서 있는 것이 조선일보이고 조선일보에 의한 사상 재단 등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기 때문에 조선일보의 문제가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이문열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안티조선이 “DJ와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행해지는 일종의 문화적 위장”이라고 주장했다.그는 더나아가서 반조선일보운동이 또 하나의 “테러리즘의 변형”이라고도했다. 모르겠다.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세력들중에서 DJ와 가까워서,DJ를 지원하기 위해서 조선일보를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진보적인 지식인들 중에도 DJ의 통일정책은 지지하지만 박정희기념관 건립이나 지역중심의 인사정책 등은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DJ 일당”이라고 낙인찍으면서 전체주의적인 논리를 정당화해 나간다.오히려 조선일보와 그 지지자들이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적 ‘테러리즘’을 행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일보 거부운동이 비록 세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 운동은 역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언론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사상검증과 지적 ‘테러리즘’,그리고 또 하나의 전체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反) 조선일보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는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임동욱 광주대교수·언론학
  • [대한광장] 도덕적 사회와 비도덕적 인간

    일찍이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 인간들의 집합이 결과적으로 비도덕적 사회에 기여한다고 분석했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도덕적 사회를 지향하던 사람들이 그들이 지향하던 그 도덕성 부재로 인해 사회로부터 지탄을 받고 도덕의최소한인 법의 심판까지 받고 있다.드러난 그들의 행태를 가지고 애초부터그들이 도덕성이 없었다고까지 속단할 필요는 없다.적어도 겉으로 나타난 그동안의 그들의 행위들로 미루어보면 지향성만큼은 남들보다 훨씬 높았다고추정된다. 그들에 대한 사회의 폭발적 분노는 한편으론 지나친 과잉 기대에 따른 실망일 것이고 또 한편으론 그들이 기성 세대에게 걸었던 싸움,특히 내용보다 방식에 대한 잠재적 분노가 한꺼번에 표출되어 집단적 반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또 사소한 잡담거리일 수도 있는 사건들이 일파만파로 번져가고있는 것은 모두가 비슷한 사건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동시에 자기통제 기제로 사건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해결해야 할 정치적,정책적 의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런 표피적 현상들에사회가 온통 떠들썩해서야 되겠냐는 비판의 소리도 들리지만 이러한 일련의현상에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근본적인 문제가 숨겨져 있다.누적 반복되는 현상이라면 이는 개인의 인격을 논하기에 앞서 사회적 현상일 것이며더욱이 그 당사자들이 이성으로 마땅히 자신을 통제했어야 할 지식계층이라면 그 통제능력 결여에는 분명히 사회적 원인이 있을 것이다.그들을 철면피로 낙인찍기에는 사회 곳곳에 드러나지 않은 비슷한 우리들의 자화상이 있지 않은가? 우리 자신들이 언제 어떻게 도덕 파탄자로,범법자로 비난받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땅히 이에 대한 논의는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전개되어야한다. 이번 사건들은 세가지 점에서 불일치를 보여주고 있다.그 첫번째는 제도와문화 간의 불일치이다.민주적인 여러 제도들이 일찍이 도입되었지만 문화로,관행으로 정착하지 못한 데서 오는 파행현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자유와평등이 겉으로는 외쳐졌지만 아직 삶의 구체적 영역에서 규범화하는 데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오랜 투쟁의역사를 갖는 서구의 자유가 그냥모방 이식된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두번째는 국가 도덕성과 개인 도덕성 간의 불일치이다.그간 우리 사회는 정통성과 관련하여 국가적 도덕성이라는 거대 담론에만 매달려왔다.권력의 잔인성에 대항하여 싸우는 가운데 행태는 그대로 학습되고 목적적 정의만이 우선한 채 모든 것이 그 안에서 용해되고 관용되기를 기대하면서 인간의 얼굴없는 투사를 양산해왔다.이들 투사들에게도 이제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특히 이들은 전 사회적인 계서적 구조는 건드리지 못한 채 자신들 또한 그러한 구조의 일부가 되어 인물교체에만 매달려왔다. 세번째는 여성과 남성 간의 인식의 불일치이다.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은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데 반해 남성들은 아직도 반봉건 상태에 있는 인식의시차가 존재한다.남성수난시대를 운운하며,문제를 제기한 여성들의 조그만잘못이라도 찾아보려는 남성들의 태도에는 사라져가는 그들 전유시대에 대한 애착과 집단적 공모의 분위기가 있어 애처로울 정도이다. 이러한 중층적 불일치를 극복하고 간극을 메우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서구적 제도를 우리의 문화에 잘 접합시키기 위해서 문화 충돌의 골을 메울 수 있는 실천적 교육이 요구된다.신지식의 내용은 실용적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 인격체를 길러내는 종합적이고 심층적인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시민운동은 이제 분야별 전문화를 추구함과 동시에 사회의 중층적계서구조를 바꾸는 종합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국가와 협력모델을 발견한다면 더욱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설될 여성부에서는 여성특별법등 제반 법규들이 한국 문화에 자연스럽게 융합될 수 있도록 세련된 방법을 개발하고 남녀 상호간 원활한 관계 소통구조를 열어서 양성의 특화나 적대 대결구도로부터 남녀 상생의 구도로 전환시켜야 할 것이다.도덕적 사회를 지향하는 비도덕적 인간이 양산되지 않도록 구조변화에 모두가 노력해야 할 때이다. 金 明 淑 상지대 교수·정치학
  • [새세기를새롭게비전’한국21’](14)변화하는가족도수용하자

    새천년을 맞으면서 그 어느때보다 가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관심은두가지 방향으로 집중된다.가족이 해체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와 ‘열린가족’에 대한 논의다. 우리 사회에 가족이란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져야한다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아직은 굳건하다.그 결과 독신가족과 편부모가족, 공동체가족이 늘어나는 것을 ‘가족의 위기’로 받아들인다. 반면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지난해부터 논의되고 있는 ‘열린가족’은 가족형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화될 수 있다는 유연성을 갖는다.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외에도 어머니와 자녀 또는 아버지와 자녀로 구성된 편부모가족, 독신가족, 자녀가 없는 부부가족, 공동체 가족,동성애자 가족 등 혈연을떠나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서울 여성의 전화는 이같은 논의의 첫단계로 ‘가족,그 막힘에서 트임으로의 가능성은…?’이란 워크숍을 열었다.올해도 가족 논의는 이어갈 예정이며 대안 가족모델 개발을 위한 논의에 역점을 두고 있다.지난 97년부터 편부모가족을 위한 한부모교실을 운영해온 여성민우회 가족과 성상담소가 오는 6월3일 장충동 경동교회안의 여해문화공간에서 여는 ‘이제,닫힌 가족의 빗장을 열자’는 주제의 축제한마당도 이같은 노력의 하나이다. 여성의 전화 연합의 이현숙 수석부회장은 “여성의 전화는 지난 15년간 가정을 지키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근원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 오히려 가부장적 여성억압의 현실을 더돕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문을 갖게됐다”고 가족 논의를 시작하게 된배경을 밝혔다. 이처럼 가족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은 가족을 둘러싼 변화가 여성 의식과 사회적 지위의 변화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국여성연구소 이박혜경 가족분과장은 설명했다.그는 “맞벌이 부부는 증가하고 있으나가정내에서 여성이 여전히 가사노동을 전담하는 등 불평등한 관계가 지속된다면 이혼율은 증가하고 가족형태는 더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까지 나타나고 있는 ‘열린가족’의 징표로는 ‘나홀로 가족’의 증가와 이혼·사별로인한 편모·편부 등의 ‘한부모가족’ 증가 등을 들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나홀로가족’은 75년 전체가구 가운데 4.2%에 불과했으나 95년에는 12.7%로 증가했다.결혼적령기인 25∼34살 인구 가운데 미혼인구의 비율도 95년 현재 남자 41.6%,여자 18.1%로 남녀 합해 29.9%에 이른다. 또한 65세 이상 인구 가운데 혼자사는 노인의 비율이 95년 현재 13.7%(35만명)이다.특히 여자노인은 5명 가운데 1명 정도인 19%가 노후를 혼자보내고있다. 또 지난해 인구 1,000명당 2.6쌍이 이혼한 것으로 나타나 97년의 2쌍 보다30%포인트나 늘었다.그만큼 한부모 가족이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혼이나 혼자사는 것이 더 이상 ‘문제있는 소수’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이는 90년대 후반 이후 급격한 사회변화와 맞물려 수치는 더욱 증가했을 것으로 보인다. 김태현 성신여대 교수는 “우리사회의 다양한 가족 유형의 출현은 구조적변화로 가족해체나 붕괴와 일치시킬 수 없다”면서 “이를 모두 정상적인 가족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따라서 그는 이제 가족문제도사회복지란 차원에서 국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열린가족’논의는 우리에게 두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가족은 더 이상 소유물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동체며,당연한 것이 아니라선택의 대상이 될수 있다는 점이다. 강선임기자 sunnyk@. *한부모가구 급증 사회복지 관점서 관심 필요. “담임선생님이 아이가 명랑하고 학교생활도 잘 한다고 했습니다.그런데 제가 아빠가 없다고 했더니 ‘그래서 산만하군요’라고 말을 바꾸더군요”한국여성민우회 가족과 성상담소가 지난 97년부터 운영해 온 ‘새로짓는 우리집을 위한 한부모교실’(02-739-8858) 참가자들이 털어놓은 사연중 하나다. 이와 관련,상담소 신경혜부소장은 “한부모가족은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며 “이혼과 사별로 한부모가족이 증가하고 있는 만큼 누구라도 한부모가 될수 있음을 인정해야 할것”이라고 말했다. 상담소에서는 지난해 5월 ‘고정관념 깨기’작업의 하나로 설문조사를 통해명칭을 ‘편부모’에서 ‘한부모’로 바꿨으며 ‘한부모가족 인권선언’도내놓았다. “편부모,결손가정이란 명칭에는 ‘부족하다’‘정상이 아니다’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사람을 위축시키는 경향이 있지만 ‘한’이라는 말에는 ‘온전하다’‘가득차다’라는 긍정적인 의미가 담겨 있어 좋은 반응을얻고 있다”고 신부소장은 말했다. 한부모교실은 매월 첫째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열린다. 강의중심으로 진행되며 내용은 자신감을 심어주는 데 역점을 둔다.‘홀로서기 이렇게 합시다’‘이혼·사별이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열린가족 이야기 한마당’‘재혼·복합 가족에 대한 이해’ 등으로 이뤄진다.참석인원은 10∼30명 정도로 고졸이상의 고학력자들이 대부분이다. 한부모교실에 참여했던 한 여성은 “혼자서만 끙끙 앓던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다보니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며 “이제 행복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고 자신감을나타냈다. 여성민우회는 올해부터는사업지역을 확대하기 위해 상담소가 있는 원주,진주,김포,군포,광주 5개 민우회 지부에서 매월 한 지역씩을 선정,‘지역방문상담’을 실시하고 있다.직접 방문하기 어려운 이들을 위해 상담원이 주말마다 해당지역으로 찾아가 상담하는 것이다. 다음은 ‘한부모가족 인권선언’. ▲누구나 한부모가족이 될수 있다▲모든 가족은 정상가족이다▲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라▲한부모가족 자녀를 무언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바라보는 편견에서 벗어나라▲교과과정에 다양한 형태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하라. 강선임기자. [기고] “다양한 가족가치관 부응 가정복지정책 수립해야”. 그 동안 우리 사회의 산업화와 경제활동 구조의 변화는 노인,장애인,아동,여성 문제 등 사회복지 수요를 크게 변화시켰으며,가족의 구조 및 기능의 변화는 가족구성원의 문제를 새로이 대두시키고 있어 가족 기능을 지원하는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이제 핵가족의 보편화,이혼율의 증가와 함께 편부모가정과 재혼가정의 급증,독신가구와 미혼모 등다양한 가족형태의 증가현상은 가족내의 아동 및 청소년 그리고 노인 보호 문제의 심각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지난 97년 말경제상황의 위기가 몰고 온 이혼,가출로 인한 가족해체는 아동,노인, 여성의요보호상태로의 전환과 노숙자의 증가 등 사회구성원의 생존 위협을 가져왔고 가족복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대응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서는 최저생계비에 미달된 모든 가족을 정책대상으로 정함으로써 가족안전망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다양한 가족형태의 출현은 가족문제가 빈곤가족차원에만 머무르지않음을 시사한다.현재 사회복지사업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복지서비스 대상자들은 대부분 가족과 분리된 노인,여성,아동 등으로 한정되며,복지서비스 내용도 대부분 사후적이고 소극적이라고 볼 수 있다.즉 가족내의 가족문제 및가족의 기능을 지원할 복지서비스기능이 미흡한 실정이다. 이러한 관점에서좀 더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가족복지정책이 요구된다. 첫째,가족복지법의 제정이 필요하다. 가족구성원이 자신의 가정에서 성장하고 부양될 수 있도록, 아동수당 및 편부모의 지원을 다루고 노인부양가족들의 부양수당을 지원할 종합적인 가족복지법이 요구된다.부모로부터 포기된 아동을 아동시설에서 10여년간 보호하기보다,가족 내 양육지원이 효과적이고 사회적 비용도 낮출 수 있다. 둘째,편부모가족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다양한 가족들이 가지는 새로운 문제에 대응하려면 현재 저소득가족 중심에서 모든 편부모가족으로 복지서비스대상을 확대하고 그들의 경제적,사회적,심리적 욕구들을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셋째,지역사회중심의 가족복지서비스를 보편화해야 한다.예방적인 측면에서지역사회 내 모든 가족들의 서비스욕구를 다룰 수 있도록 지역내의 집중적인상담체계, 아동보육시설, 학교,종합사회복지관,재가복지기관 등의 지역사회지원체계 등이 다양한 가족의 욕구에 따라 전문적인 재가복지서비스를 개발해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위와 같은 가족복지사업을 위한 중요한 전제조건으로 가족에 대한 편견을 바꾸는 일이다. 결손가족,해체가족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과 낙인은 그속에서 성장할 아동과 부모의 적응에 비수를 댈 뿐이다.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공존하는 사회에서 모든 가족은 고유하며, 중요하다. 이혼가족,재혼가족이 잘 적응할 수 있는 다양한 가족가치관이 허용되고,그들이 건강한 가족으로 설 수 있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모든 가족들이 건전하게성장,유지될 것이며,나아가 건강한 사회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申惠玲 국립보건원 훈련부 교수
  • [쟁점 좌담] ‘시민단체 낙선운동’ 어떻게 볼것인가

    시민단체들의 연이은 총선개입 선언이 정가의 ‘돌풍’이 되고있다.시민단체들의 총선개입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정치권과 시민단체들 간의 갈등도 첨예하게 증폭되는 양상이다.대한매일은 13일 여야 국회의원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국민회의 송훈석(宋勳錫)·한나라당 신영국(申榮國)의원과 경실련 박병옥(朴炳玉) 정책실장,정치개혁시민연대 김석수(金石洙) 사무처장이 참석,서로의 입장과 향후 전망 등을 진단했다. [신의원] 경실련의 총선부적격자 명단 발표와 총선연대의 낙선운동 움직임 등 시민단체의 최근 총선 개입 움직임은 긍정·부정의 두가지 측면을 갖고있습니다.긍정적인 평가로는 각 당의 공천과정에서 시민들의 감시와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유권자에게 자세히 제공한다는 점입니다.앞으로 시민단체의정치권 관심은 정치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첫째로 일부긴 하지만 언론보도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선정된 당사자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있으며 인권에도 문제가 적지않습니다.현행법에도 저촉됩니다.400∼500개의 시민단체가 국민들 모두에게 신뢰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 중 일부는 후보자의 사적인 문제 등 불공정한 접근에대한 우려도 높습니다. [박실장] 먼저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언론에선 경실련이낙선운동을 하고 총선 부적격 명단을 발표했다고 했지만 사실과 다릅니다.현재 가장 큰 문제는 정보의 ‘불균형’입니다.후보자들은 자신의 미화에 몰두하고 있고 정확한 다른 정보가 균형적으로 흘러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는 일은 국민들의 선택을 돕는 ‘후보자 판단자료’를 국민에게 알리는 ‘정보 공개운동’입니다.정보 공개운동은 낙선운동과 구별되며 합법적인 것입니다.후보자 비방이 아니라 국민의 알권리를 보호하는 일입니다. [송의원] 시민단체의 선거개입이 과거 정치권엔 밀실공천,돈공천 불공정공천 등이 있었는데 이런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정치권도 과거의 부정적인 것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그러나 부정적인 것은 경실련 발표 기준이 애매하고 부당한 것이 적지 않다는 점입니다.자의적이고 주관적인 정보 때문에 유권자 판단에 혼선을 제공할 우려가 큽니다.특정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발표한 것은 사전 선거운동과 명예훼손 등 실정법 위반 소지가 많습니다. [박실장] 후보자 바로알기 차원에서 하는 명단발표나 낙선운동은 자유 민주적인 질서에 합치합니다.일반 국민의 정치활동 자유가 훨씬 앞선 가치입니다.낙선운동 등은 헌법적 권리로 보장돼야합니다.정치권의 일방적 힘의 행사를 제어하기 위해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정치권의 입법관행을 바로잡는 것은민주발전을 위한 과도기적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김처장] 공감합니다.후보자 바로알기 차원에서도 발표한 그 단체가 책임을질 일입니다.우리는 98년부터 창립돼 평소 의회에서 의정감시 모니터링 결과를 가지고 낙선운동 대상자를 선정하거나 후보자 바로알기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그리고 각 단체마다 선정 기준이 다를 수 있습니다.환경단체는 반(反) 환경의원을,개혁단체는 반개혁인물의 낙선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서로 다른 선정 기준으로 대상자를 결정하는 것은 자유 민주주의 원칙에 맞는 일입니다. [송의원] 시민단체 활동엔 공감가는 부분도 있지만 각 단체마다 기준이 달라지면 유권자 선택에 혼란이 일어납니다.객관적 기준이 절실합니다.예컨대 국가보안법 개정과 관련,보수적인 의원은 반대할 수 있고 진보적 의원은 찬성할 수 있습니다.민주주의의 요체는 다양성입니다.소신에 따른 선택을 반개혁적으로 매도하는 것이 문제입니다.나도 반(反)환경 의원으로 지목됐는데 설악산 특별법을 문제로 삼았습니다.지역의 특성에 따라 찬성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설악산은 세계적인 관광자원인데 개발법은 설악산 훼손이 아니라 환경친화적으로 관광자원을 개발,관광경쟁력을 높이자는 취지입니다.제주도 특별법도 상당한 효과를 보지 않았습니까. [박실장] 국회의원은 개인이 아닌 정부의 기관입니다.잘못하면 책임 추궁을받아야 합니다.국회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많지 않습니다.언론 자료를 근거로 한 한계는 인정합니다.2·3차 자료를 업데이트해서공신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앞으로 아무개 의원을 인터넷에서 클릭하면 긍정적·부정적 정보를 모두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최종 판단은 유권자가 하는 것입니다. [신의원] 이번 명단 발표에 대해 국민의 80%가 찬성했다는 보도를 봤습니다. 시민단체가 잘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정치권과 의원들에 대한 불신이 크기 때문입니다.시민단체가 앞으로 제대로 크려면 책임이 중요합니다.열 사람좋은 인물보다 한 사람 저질의원을 뽑는 것이 더 나쁩니다.어떤 사안에 대해 적격·부적격을 판단할 경우 아직 정치문화가 성숙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단체가 나쁘다고 하면 나쁜 것으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어떤 사안을 가지고평가하지 말고 4년의 국정활동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김처장] 시민단체는 특정목표가 있어야 하는데 모든 계층과 국민이 공감하기는 힘듭니다.보안법 개정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시민단체를 만들어 국가보안법 개정을 찬성하는 의원을 떨어뜨리면 됩니다.사적인 것이 개입되면 안되지만 선정기준이 달라야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부합합니다.선정 기준이 똑같아야 한다는 것은 군사문화의 잔영입니다. [송의원] 4년 동안 단 한번 실언으로 저질의원으로 낙인찍힌 경우도 있습니다.의정활동을 하다보면 때론 흥분할 수도 있는데 이것을 반개혁적으로 몰아가서는 안됩니다.유권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야 합니다.적격·부적격은 한 사안만 보지 말고 4년간 종합평가가 있어야 객관적인 평가를 받게 됩니다.기준도 우선순위를 정하고 점수도 차등화시켜 종합점수제로 평가할 것을 제안합니다. [김처장] 낙선운동 자체는 현행법에 불법운동으로 돼있습니다.현행 선거법이라는 것은 국민들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야정치권의 이해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요.정치권의 이해관계만으로 만들어진 선거법을 수용하기 어려운 국민들의 정서가 있습니다.현재 노조도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데 공익운동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정치활동 자유를 봉쇄하는 것은 헌법 정신과 자유민주 질서가 지향하는 기본 정신에도 맞지 않습니다. [신의원] 국민의 동의 여부로 접근하는 것에 동의하기 힘듭니다.사회 유지를 위해선 질서와 원칙이 필요합니다.법이 시대적으로 국민의 공감을 못 얻는부분이 있어도 우선 준수해야 사회가 유지됩니다.시민단체가 후보자에 대한사적인 유착으로 유권자의 판단을 흐릴 수 있습니다.자유도 좋지만 자유의악이용,역이용을 막는 것도 중요합니다. [김처장]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는 맞지않습니다.언론 결사 표현의 자유에서이해돼야 합니다.국민적 동의없이 만들어진 선거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입니다.우리는 조만간 헌법소원을 제기할 것입니다. [송의원] 정보제공은 알권리 차원에서 수긍합니다.하지만 특정후보의 조직적·계획적인 낙선운동이 실정법 위반입니다.시민단체가 누구보다 법을 준수해야 국민의 공감을 얻습니다.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백개의 사회단체가 나서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선거운동을 한다면 오히려 선거를 과열시키는 등 부작용이 더 많을 것입니다. [박실장] 정치권은 유권자의 능력을 평가절하하고 있습니다.세계적으로도 우리 유권자들의 고등교육 퍼센트는 상당히 높습니다.문제는 정치에 관한 정보가 없다는 점입니다.책임성엔 공감하지만 시민단체에 대한 검증은 언론이나시민들이 내립니다.공신력을 얻지 못하면 스스로 도태됩니다.법이라는 것은의식과 관행의 그릇입니다.인식이 바뀌면 그릇이 바뀌어야 합니다.낙선운동에 대해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로 사회적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했습니다.정치권에서 이러한 흐름을 이해하고 법을 개혁해야합니다. [김처장] 시민단체가 어느 정당에 편향적이고 편협한 입장에 섰다가는 시민들의 지지를 잃을 것입니다.언론사도 특정 정당을 지지할 수 있습니다.그 책임은 국민의 평가로 나타납니다.정치인들이 그것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의원] 이번에 정치권은 병역관계,납세관계,금고 이상 전과자 공표하는 문제 등을 도입하려 합니다.국민들의 요구와 목표엔 미달하지만 방향만은 제대로 가고 있습니다.공천보다 부정선거가 더 큰 문제입니다.따라서 정치권은국민선거 감시단을 출범시키기로 했습니다.정치권에서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처장] 물론 정치개혁이 안됐기 때문에 정치권의 불신이 더욱 깊어지고 있습니다.여야 합의로 국민선거 감시단을 만들기로 했다지만 정치권 자신의 일을 자신이 감시하겠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듭니다.정치권의 필요에 의해 만든다는 오해가 있습니다.부정선거 방지를 위해 이번 기회에 검찰과 경찰이 행자부 금감위 등을 포함해 범국민적인 선거관리단체를 구성해야 합니다. [박실장] 이번 4·13 선거로 정치개혁이 이뤄질 것이라 희망합니다.낙선운동 등이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은 시민단체가 잘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불신과혐오 때문입니다.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가장 중요한 것은 공천과정입니다.국민의 판단과 무관한 밀실공천에서 탈피하고 투명한 과정을 확보해야 정치개혁도 이뤄질 것입니다. [신의원] 정치권은 국민의 신뢰를 받는 인물들을 찾기 위해 서로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당선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특정 지역은 문제지만 지금은 오히려 사람이 없습니다.중앙에서 여론 조사를 통해 공천을 합니다.계파도 없어졌고 당선가능성을 통해 공천자를 선정하기 때문에 밀실공천이라는말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송의원]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상향식 공천은 현실성이 없습니다.현재로서는 당원들을 상대로 출마자를 선택할 경우 현역 지구당 위원장이 무조건 되는풍토입니다.지금은 보스가 혼자 공천을 결정 못합니다.밀실공천이 없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신의원] 지금은 정치개혁을 하지 않으면 정치권이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입니다.이번 선거는 정치개혁의 첫 단추가 돼야 합니다.전문적이고 개혁적인정직한 인물들이 선출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시민단체 모두가 선거부정을 철저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박실장] 이번 선거를 통해 시민단체들은 선거문화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이번 선거는 정보가 강물처럼 흘러다니는 선거가 돼야 합니다. 정리=오일만 조현석기자 oilman@
  • 영화비평지 ‘필름 컬처’ 내일-23일 특별주간

    ‘영화의 성자(聖者)’ 로 베르 브레송(1907∼).현존하는 가장 위대한 감독 가운데 하나인 그의 작품세계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된다.영화비평 계간지 ‘필름 컬처’는 17일부터 23일까지 제2회 필름컬처 영화주간을 열어 브레송의 대표작 8편을 상영한다.서울 정동 아트홀에서 열리는 이번영화제에서 선보일 브레송의 작품들은 모두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것들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브레송은 프랑스 누벨 바그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진정한 의미의 영화작가. 인간의 영혼이라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집요한 추구는 1950년대 그의 영화를 세계적으로 가장 혁신적인 작품 축에 들게 했다.영화산업의 주류에진입하려 애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브레송은 아웃사이더였다.그러나 비타협적인 자세로 일관하면서도 그는 주류 영화계에 끊임없이 충격을 줬다.이번 영화제에서는 프랑스 영화가 현대영화로 가는 길을 닦아 놓은 브레송의 면모를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거장의 세계’라는 이름 아래 소개될 브레송의 영화는 ‘볼로뉴 숲의 여인들’‘저항’‘소매치기’‘잔 다르크의 재판’‘당나귀 발타자르’‘무셰트’‘호수의 란슬로트’‘돈’.‘무셰트’는 조르주 베르나노스의 소설을원작으로 한 것으로 14세 소녀 무셰트가 강간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버리기까지의 과정을 일종의 종교적 수난기처럼 보여준다.‘호수의 란슬로트’는아더왕 전설을 소재로 한 작품.성배를 찾기 위한 고투에서 돌아온 기사 란슬로트는 왕비 기느비어에 대한 사랑과 아더왕에 대한 충성,그리고 신에 대한경배라는 딜레마 속에서 고민에 빠진다.브레송은 익히 알려진 이 소재에서로맨스와 스펙터클,마술적 요소를 모두 제거해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영화적 약동감을 안겨준다는 데 이 영화의 미덕이 있다.‘당나귀 발타자르’는 인간의 모순과 허위를 증언하는 매개자로 당나귀를 내세운 독특한 방식의 영화로 눈길을 끈다. 한편 이번 영화주간에는 브레송의 영화 외에 1960년대 일본 뉴 웨이브 영화들도 소개한다.프랑스 누벨 바그의 주역들이 시네필(영화광)이었던 데 비해일본 뉴 웨이브의 감독들은 영화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적·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점이 색다르다.따라서 일본의 뉴 웨이브 영화들은 출발당초부터 강한 정치성를 드러낸다.오시마 나기사의 경우가 그 대표적인 예. 이번 행사에서는 일본 뉴 웨이브의 개막을 알린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초기대표작 ‘청춘 잔혹이야기’를 비롯,막부시대 말기를 배경으로 한 지사의 야심과 파멸을 그린 시노다 마사히로의 ‘암살’,인간의 본원적인 성적 에너지를 다룬 이마무리 쇼헤이의 ‘인류학 입문’,스즈키 세이준의 ‘살인의 낙인’등 4편이 선보인다. 이밖에 98년 베니스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드라이 클리닝’(감독 안 폰테인)과 핀란드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의 ‘성냥공장 소녀’란 작품이 ‘월드 시네마 걸작선’이란 제목으로 상영된다.입장료 4,000원 (02)736-6069김종면기자 jmkim@
  • [발언대] 법위반 소규모 서민주택 양성화 모색하길

    우리 사회의 시급한 문제 중 주택문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비록 비좁은 공간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눈치보지 않고 마음 편하게 쉴수 있는 보금자리를 가능한 한 뼘이라도 넓히고 싶은 것은 누구나의 공통된 바람이다.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부모입장에선 공간을 넓혀주고 싶다. 더욱이 평생 소원인 자신의 집을 지을 때엔 조금이라도 편리하게 짓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인지라 사소한 건축법을 위반하는 사례가 있다.보다 쾌적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으로 집을 보수하거나 신축할 때,발생한 작은 위반으로인해 법으로부터 외면받고 불법건축물로 낙인찍혀 준공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않게 일어나고 있다.이로 인해 그들이 겪는 정신적,경제적 어려움은말로 다 형용할수 없을 것이다. 물론 법은 지켜야 한다.국민은 누구나 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그래야 사회 질서가 유지되고 우리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법과 정의에 비추어,또는 사회통념에 비추어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불법사항은 용납해서는 안될 일이다. 그러나세상을 살아가자면 법대로 살수 없는 상황도 있다.그래서 범법자라고 하더라도 때로는 법이 이해하고 너그럽게 용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때 제한적으로나마 불법건축물을 구제한 정부의 조치가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며 불법사항의 경중을 가려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개인소유의 소규모 불법건축물에 대해서는 과감히 관용을 베풀어 양성화함으로써 이들의평생소원을 성취할수 있도록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우리사회는 지금 복지국가건설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정부가 과감하게 특단의 조치를 내려 낙심하고 있는 소시민들의 어깨에 희망과 삶의 빛을 주기를 바란다. 최광진 [서울 서대문구의회 의원]
  • 기독교 이단교파 실태·문제/150여단체 ‘反성경’활동

    인류가 신앙을 가진 이래 이단 시비로 몸살을 앓지 않은 종교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기독교의 이단논쟁은 그 뿌리가 깊다.기독교 자체가 유태교의 이단으로 출발했으며 개신교도 가톨릭의 이단으로 몰렸던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각 교파의 선교사가 경쟁적으로 들어오면서 수많은 이단 시비를 낳았고 이것이 토착신앙이나 사회상황 등과 겹치면서 증폭됐다.현재 기독교계 주요교단의 이단·사이비성 연구단체들은 한국교회 안에 이단으로 지적되는 종교단체나 개인이 15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 이단·사이비성 종교단체로 꼽히는 것은 지난해 집단자살로 큰 물의를 일으킨 ‘영생교’,92년 휴거소동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수혈이나 집총을 거부해 논란을 빚고 있는 ‘여호와의 증인’,오대양사건으로 한때 사회적 문제가 됐던 침례회 계열의 ‘구원파’,‘30개론’이란 통일교 원리강론과 유사한 교리로 대학가에 확산됐던 ‘국제크리스천연합(JMS)’ 등이 있다. 또 안수기도로 병을 고친다는 ‘할렐루야기도원’을 비롯,‘태백기도원’,나운몽장로의 ‘용문산기도원’,극단적 신비주의 형태로 92년 예장(통합)으로부터 이단으로 낙인 찍힌 ‘레마선교원’,귀신을 쫓는 비디오를 보여 주며 전도하는 ‘땅끝예수전도단’,비슷한 계열의 ‘김기동류(베뢰아아카데미)’,비성경적 현상을 중시하는 ‘예태해’도 정통 교단에서는 이단·사이비성종교단체로 꼽고 있다. 이번에 MBC 방송중단사태를 빚은 만민중앙교회는 지난달 30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회장 지덕)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았다. ‘종말론 사경회’라는 포스터를 붙이며 종말복음을 전파하는 ‘밝은빛 종말론’,공산당을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로 보는 ‘새일파’,4년 전 종교연구가 탁명환씨 피살사건 관련설이 나돌았던 ‘대성교회(구)’,사탄 마귀귀신을 중심으로 인간의 죄와 구원을 푸는 일종의 사탄신학 내지는 축사신학(逐邪神學)으로 사이비 기독교운동의 특성을 지닌 ‘다락방전도운동’도 대표적인 이단·사이비성 단체. 이밖에 미국의 시한부 종말론을 따르는 ‘제7일 안식일 예수재림교’,여기서 갈라져 나온 ‘엘리야선교원’,‘몰몬교’,중국인 위트니스 리가 세운 ‘지방교회(회복교회)’,로마가톨릭적 요소에서 출발한 ‘트레스 디아스’,장막성전 계열의 ‘무료성경신학원(신천지안양교회)’도 정통 교단에서는 이단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 유독 이단 시비가 빈발하는 것은 개신교 교파의 분열에 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교단마다 교세경쟁을 하다 보니 이단문제가 불거져 나와도 쉬쉬하기에 급급하고,해당 교단에서 이단으로 정죄를 받아도 다른 교단으로 옮겨가거나 새 교단을 차리면 되기 때문이다. 개신교계 내에서 ‘이단성’을 판정하는 공식적인 기관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교회의 보편성 원리와는 달리 통일된 잣대가 없는 것도 이단시비를 부추기고 있다.심지어는 이단 판정을 둘러싸고 ‘금품수수설’이 난무하고 이단문제로 치부하려는 이른바 ‘이단 장사꾼’까지 등장하는 형편이다. 이단으로 낙인 찍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통’을 자처하는 측에서 단죄해야만 가능한 것이다.그 잣대는 신학적인 문제가 핵심이다. 성경의 절대 기준에서 어떻게 얼마나 벗어나 있느냐 하는 것이 이단·사이비를 규정하는 잣대가 되는 것이지 윤리적 도덕적으로 빗나간 현상때문에 이단으로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종교학자들은 이단신앙의 특징으로 ▲시한부 종말론 ▲개인숭배 ▲열광적이고 주술적인 종교의례 ▲초능력 동원 ▲선민사상 주입 ▲치병(治病)강조와 헌금종용 ▲자의적인 경전해석 ▲무속 등 다른 종교와 배합 ▲신비주의적 체험 강조 ▲배타적 공동체형성 등을 들고 있다.
  • [제2공화국과 張勉](14)분출하는 욕구(中)/교원노조

    4월혁명후 활발해진 각계의 움직임 가운데 노동운동은 특히 두드러졌다.이승만(李承晩)정권에서 체제유지의 첨병 노릇을 한 대한노동총연맹(대한노총)등 기존의 노동관련 단체들은 급속히 그 힘을 잃어갔다.반면 노동조합을 비롯한 새로운 노동조직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생겨나고 쟁의도 크게 늘어났다. 4·19직전 전국의 노동조합은 621곳,조합원은 30만7,000여명이었다.하지만다섯달이 채 지나지 않은 1960년 9월1일 현재 조합 수는 821군데로 32.2%,조합원 수는 33만3,000여명으로 8.6%가 각각 늘어났다. 노동쟁의도 1958년에 50건,59년에 109건이던 것이 60년에는 218건으로 급증했다.노동운동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활력을 보인 것이다. 그 격렬한 흐름 속에서 정치·사회적으로 가장 관심을 끈 것이 교원노조 운동이었다.교직(敎職)이 갖는 가치지향적 성격에,학생·학부모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도 컸지만 무엇보다 교원노조가 합법성을 얻고자 벌인 투쟁이 워낙 치열했기 때문이다. 교원노조 운동은 4월혁명후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된다.대구에서는 4월29일 경북여고에 중고교 교사 60여명이 모여 학원 자유화와 교사의 권익옹호를 위해 ‘교원조합’을 결성키로 합의한다. 이어 ▲5월1일 동성고에서는 ‘서울시 교원노조결성 준비위원회’가 ▲5일에는 전주고에서 교원노조가 ▲12일에는 부산 동광초등학교에서 교원노조 결성준비위가 각각 출발한다.5월 말이면 학교 단위로,또는 시·군 단위로 교원노조가 속속 모습을 드러낸다. 이승만정권이 무너진 지 한달만에 이처럼 교원노조가 전국적으로 자생하게된 토양은 무엇일까.그것은 ‘속죄와 책임의식’이었다.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독재권력에 항거하여 용감하게 싸우는데 그들을가르친 교사들은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는 자기반성,그리고 ‘역사의 비극을 또다시 저지를지도 모르는 권력 앞에 무방비로 있을 수는 없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사실 ‘3·15부정선거’를 앞두고 자유당정권이 교육계에 저지른 만행은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교육감·교장들이 나서 교사들을 자유당 비밀당원으로 입당시킨 일은 기본이었다. 환경미화를핑계로 이승만·이기붕(李起鵬)의 사진,업적을 교실에 장식토록해 그 결과로 교사의 근무성적을 평가하거나 ▲교장·교감이 가정방문에 나서 자유당후보 지지를 직접 호소하고 ▲학생들에게 글짓기를 시켜 이승만을찬양토록 하는 일들이 예사로 벌어졌다. 교육계 지도자들도 총동원되다시피 했다.60년 1월26일자 서울신문 1면에 난자유당의 ‘정·부통령선거중앙대책위원회’공고를 보면 지도위원에 백낙준(白樂濬)김활란(金活蘭)임영신(任永信)김연준(金連俊)유석창(劉錫昶)등 사학(私學)의 거물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을 정도였다. 교원노조 운동은 60년 7월17일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교조총련)’를결성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통일된 체제를 갖춘다[별표 참조].이때 노조에 참여한 교사는 이미 1만9,883명이었다.교조총련은 위원장 자리를 당분간 공석으로 두는 대신 서울지구 부위원장인 강기철(姜基哲)을 대표로 지명했다.얼마전 타계한 재야인사 계훈제(桂勳梯)도 서울지구 중앙위원으로 참여했다. 교원노조 결성 움직임이 본격화되자 정부측 대응도 곧바로나왔다.허정(許政)과도정부의 이항녕(李恒寧)문교차관은 “교원노조 결성을 권장하지도 막지도 않겠다”고 밝혔다.그러나 곧이어 이병도(李丙燾)문교장관은 5월19일 “교원노조를 불허한다”고 신문지상에 발표했다. 교원교조의 적법성을 둘러싼 논쟁이 곧 사회 전반으로 번졌다.교사들은 53·57년 법무부의 유권해석을 근거로 ‘합법’을 주장했고 대한변호사회도 이를 지지했다.‘7·29총선’을 앞둔 민주당의 장면(張勉)주요한(朱耀翰)조재천(曺在千)등 신파 지도자들도 이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교원노조와 행정권의 정면충돌은 60년 8월 대구에서 발생했다.조준영(趙俊泳)경북지사가 대구·경북의 노조간부 25명을 산간벽지로 전근시킨 것이다.대구·경북 노조는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8월25일 오후6시 조합원 8,000명 전원이 퇴직한다’는 마지노선을 확정한다. 조합원들은 11일부터 연좌농성에 들어가는 한편 16일에는 경북지사의 부당한 인사조치를 중단시켜 달라는 ‘행정처분 집행정지명령 가처분신청’을 대구고법에 냈다. 이 와중인 8월23일장면내각이 정식 출범한다.교조총련의 강기철 대표를 비롯한 수뇌부는 오천석(吳天錫)문교장관,윤택중(尹宅重)문교부 정무차관과 협의를 계속한다. ‘교사 8,000명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는 그러나 의외로 손쉽게 해결된다. 교조가 정한 시한인 8월25일 대구고법이 경북지사의 인사가 잘못됐다는 판정을 내린 것이다.그 이유는 ▲교원노조 결성이 합법이며 ▲경북지사의 인사권 행사는 재량권의 범위를 넘은 것으로 판정했기 때문이다. 이 사태후 장면정부는 ‘노동조합법 개정’‘교직단체법 개정’을 통해 교원노조 운동의 흐름을 바꾸려고 애쓴다.그렇지만 교원노조는 9월 말 단식투쟁에 돌입해 결속을 과시한다.교원노조 운동은 1960년 당시 한국 노동운동을대표했다.이 운동은 ‘5·16쿠데타’후 사실상 사라졌다가 결국 1980년대 ‘전교조운동’으로 되살아난다. 이용원- 교사40%가 자발적 참여 교원노조 운동에서 노조를 대표한 인물은 강기철(姜基哲·74·전 평택대교수)씨.강씨는 1960년 7월17일 ‘한국교원노동조합총연합회(교조총련)’가 발족할 때 대표를맡았다.그는 ‘5·16쿠데타’로 교조총련이 용공·불법 단체로 낙인 찍힌 다음에도 지금까지 그 대표직을 유지해 왔다. 강대표는 교원노조가 설립될 당시 한양대 강사였다.그는 “‘3·15부정선거’당시 교육자는 독재권력의 하수인 내지는 시녀 노릇을 해왔다”면서 그 당시를 “정신적인 노예상태”라고 기억했다. “교원노조는 자주적인 힘으로 탄생했다”고 강조하는 그는 “당시 전국의교사가 10만명이 채 안됐는데 그 가운데 4만명 가량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강교수는 허정(許政)과도정부 당시 이항녕(李恒寧)문교차관,김학묵(金學默)보사차관 들이 처음 교원노조 결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음을 기억했다. 그런데 그들이 입장표명을 한 지 며칠만에 현직에서 쫓겨나더라는 것. 강교수는 “장면(張勉)정부는 교원노조 운동에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고 평가하면서 “그래도 쿠데타 세력보다는 장면정부의 죄가 엷다”고 말했다. - 노조측 쟁의권 자진포기 교원노조 설립 당시 윤택중(尹宅重·86)옹은 장면내각의 문교부정무차관이었다.윤옹은 전북 학무국장 출신으로 정계에 입문,장면내각에 문교부 정무차관으로 들어갔으며 나중에 문교장관을 지냈다. 그는 교원노조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강대표 등 한국교원노조총연합회 간부들을 만나 장면정부의 입장을 대변한 인물이다. 윤 전장관은 “당시에도 교사들의 노동운동은 일반 노동자와는 다르다는 인식이 깊었다”고 회고했다.교사들에게 단체행동권 등을 인정하는 것은 좋으나 굳이 ‘노동조합’이란 명칭을 사용해야 하느냐는 반감이 있었다는 것. 윤 전장관은 “교원노조 대표들과 상의할 때도 일반 노동조합과는 다르다는사실에 뜻을 같이했다”고 공개하면서 “그들도 파업 등 쟁의권을 실제로 포기했다”고 밝혔다.그는 교원단체 명칭을 ‘교원노조’가 아니라 교원연구단체나 교원친목단체로 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가다 ‘5·16쿠데타’를 당했다”고도 기억했다. 장면내각에 들어올 당시 신·구파 어느쪽도 아니라 중도파로 인정받은 윤 전장관은 “다만 민주당원으로서 새 정부 출범에 기여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며 “신·구파 갈등이 혁명을 불렀다는 주장은 쿠데타세력이 조작한 명분”이라고 단정했다. 이용원기자
  • [특별기고] 뇌물퇴치의 사회적 접근/文石南 전남대 교수·사회학

    한국사회는 부정부패로 얼룩져 투명하지 못하다.새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부정부패 척결은 예외없는 개혁과제로 대두돼 왔다.그러나 부정부패의 상징인 뇌물거래의 퇴치는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뇌물문화는 깊이 뿌리내려져있는 반면,시민의식인 고발정신은 이에 필적할 만큼 성숙되지 못하고 윗물역시 맑지 못한 데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일찍이 우리역사에 탐관오리(貪官汚吏)라는 말이 있듯이 뇌물의 시작은 받는 쪽인 관리에서 비롯됐다.뇌물은 항상 권력,돈,이권이라는 세가지 요소가대가성을 매개로 공생적 연결고리를 형성하여 음성적으로 거래되기 때문에좀처럼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뇌물거래는 사회 성원들 사이에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이다.공정한경쟁이 보장되지 않은 불투명한 국가는 결코 건전하고 성숙한 사회가 될 수없다는 것이 사회학자들의 집약된 견해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청렴도를 나타내는 투명지수는 대단히 낮다.지난해 말 국제투명성협회(TI)가 발표한 바에 의하면,한국의 투명지수는 10점만점에겨우 4.2점으로 조사대상 85개국 가운데 43위를 차지했고,아프리카의 후발개도국인 짐바브웨와 같은 수준이었다.한국사회가 뇌물 등 부정부패로 얼룩져그만큼 맑고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도로 공무원에 대한 뇌물공여방지를 목적으로 ‘해외공무원에 대한 뇌물방지협약’이 발효되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이 국제협약의 발효로 한국의 해외공사 수주의 상거래에 미칠 파장이 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있다.한국이 국내외적으로 투명성이 담보된 성숙한 사회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부정부패의 상징인 뇌물거래를발본색원하는 것이 시급한 국가적 과제이다. 뇌물은 대부분의 경우,권력층이 힘없는 시민을 대상으로 편익을 볼모로 한거래행위이다.한 연구기관의 뇌물관련 조사에 의하면,응답자의 54%가 공무원에게 뇌물을 준 적이 있다고 답하고 있다. 뇌물연구가 ‘누난’의 말을 빌리자면,공복으로서 사명과 의무를 망각하고‘돈에 영혼을 판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뜻이다.이들 공무원에게는뇌물의 환수와 실형의 선고 등 법적 제재도 필요하지만,‘영혼을 파는 파렴치한행위’라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끔 일깨워 주는 것이 더 시급한 치유법이다.그리고 이들의 행위가 평생동안‘사회적 낙인’을 수반하게끔 돼야 한다. 법률은 도덕의 최소한의 축소판에 불과하기 때문에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현대인에게는 자각에 의한 규범의식의 내재화가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이 될 수 있다. 뇌물의 제공자들은 이권을 얻거나 자기의 약점이나 위법행위를 돈으로 사보려는 이기심에서 출발한다.그리고 적극적으로 이권을 취득하려는 사례보다는 소극적으로 약점이나 탈법행위를 모면하려는 경우가 더 많다.그러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준법정신과 규범의식으로 철저히 무장돼 있을 때 이기심의 침투는 차단될 수 있다. 편익이나 위법행위는 결코 뇌물로 맞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모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뇌물제공자는 철저히 공개되고,그 몇배의 정신적·물질적 불이익을 그들에게 안겨주어야 한다.그리하여 뇌물의 죄책감과 법의 준엄성을올바로 인식케 하고,뇌물의 제공은 사약을 마시는 자살행위와 같다는 것을모든 국민이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이게끔 보편화돼야 한다. 뇌물거래 없는 맑고 청렴한 사회는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이를 위해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규범문화의 정착을 통해 뇌물거래를 기필코 퇴치해야 할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다.
  • 金三雄 칼럼-장면박사 출생100년

    “자기의 명성이 자기의 진실보다 더 빛나지 않는 자는 축복이다”―인도시인 타고르의 말을 올해 출생 100주년을 맞는 제2공화국 張勉총리에게 드리는 헌사로 삼으면 어떨까. 격동의 현대사에서 장면박사처럼 잘못 평가된 정치지도자도 흔치 않다. 그가 이끈 야당과 시민 학생에 의해 타도된 독재자나 합법정부를 쿠데타로 전복한 군사독재자가 ‘존경받는 인물’의 상위를 차지하는 반면 인격적이고도덕적인 품성과 자질로써 ‘단군 이래의 자유’와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동시적으로 추진하다 좌절한 민주지도자는 망각되고 있다. 이것은 5·16이래 거듭된 군사쿠데타와 그 아류 정권에 의한 ‘승자의 기록’의 결과이지만, 진실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학자·교사·언론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이다. 한국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4월 시민혁명으로 출범한 장면정권은, 프랑스대혁명이 입헌군주주의자와 시민계급, 온건파와 과격파싸움으로 나폴레옹쿠데타를 불러오고, 독일 바이마르 공화정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사회를 구현한다면서 극좌·극우싸움의 혼돈끝에 히틀러 나치스를 맞았듯이, 집권8개월만에 박정희쿠데타로 붕괴되었다. [인간 장면의 인품] 역사상 대부분의 시민혁명이나 개혁이 쿠데타나 반동세력에 의해 좌절된 것처럼 장면정권 역시 5·16쿠데타를 겪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그는 무능과부패의 상징으로 낙인찍혔으며, 독재자들이 역사인물로 격상되는 가치전도현상이 나타났다. 우리 현대사나 국민정신면에서 대단히 부끄러운 모습이다. 장면박사는 인격적으로 매우 훌륭한 분으로 평가된다. 한없이 온후하고 어진 분으로서 인자하면서도 강직하며 사려깊은 분이었다. 외유내강의 독실한신앙인이고 지식인이었다. 그는 ‘각하’의 호칭보다 ‘장박사’로 불리기를 원했으며 집권 8개월 동안‘단군 이래의 자유’로 불릴만큼 민주주의를 허용했다. 물론 무질서와 정치사회적 혼란이 따르기도 했지만 오랜 억압구조에서 시달리던 국민에게 과도기적 현상이었다. 반민주행위자와 부정축재자의 처단등 4·19혁명과업을 수행하는 데 너무 미온적이었다는 비판도 따른다. 그러나 독재정권에 대한 안티테제로 등장한 정권으로서의 시대적 한계와, 민주정치 제도에서 가장 운영이 어렵고 높은 민도와 양식있는 국회의원들을 전제로 하는 의원내각제에 발이 묶여서 과단성있는 정책을 추진하지 못한 제도적 한계도 따랐다. 여기에 야당의 사사건건 발목잡기와 이상주의적 조급성에 기운 혁신계와 일부 지식인·학생들의 급진적 통일론도 장면정권 좌절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재평가와 교훈찾아야] 장면은 비록 군인들에게 탈권당한 비운의 정치인이지만 그가 한국현대사에남긴 족적은 너무 크다. 무엇보다 제3차 유엔총회 한국수석대표로서 대한민국정부가 한반도 합법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는데 기여한 일이다. 또 6·25전란 당시 주미대사로서 유엔군 참전을 위해 발휘한 역량도 큰 업적이다. 특히 민주당을 결성하여 이승만정권으로부터 암살 저격까지 받으면서 끝까지 반독재투쟁을 벌인 것이나, 집권기 혼란속에서도 일관되게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고 경제개발계획을 착실히 마련한 것등은 큰 업적이다. 그러나 교과서적 민주주의나 미온적인 시국 대처는 프랑스혁명기와 독일 바이마르공화정 시기처럼 반동세력에게 기회를 주게 되고 결국 역사를 후퇴시킨 행위로서오늘의 김대중정부에도 교훈으로 남는다. 곧 시작될 대한매일의 ‘제2공화국과 장면’연재는 장면박사의 재평가를 통해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고 제2공화국 좌절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자는데 있다.
  • 都産 40년/崔弘運 논설위원(外言內言)

    70년대에서 80년대 중반까지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영등포산업선교회’를 취재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용기가 필요했다.도산(都産)또는 산선(産宣),성문밖 교회로 더 널리 알려진 이 곳은 용공세력의 온상으로 지목돼 정보기관의 감시를 항상 받고 있었으며 위원장 印名鎭 목사는 ‘빨갱이’로 매도돼 취재하려는 기자들마저도 요시찰 인물로 낙인찍히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언론은 연일 독재정권이 뿌린 일방적인 자료에 의해 왜곡보도를 일삼았고 산업현장에서는 심지어 ‘도산이 들어가면 도산(倒産)한다’는 악성루머가 나돌아 산업선교회는 발붙일 곳이 없을 정도로 핍박을 받았다. 그 산업선교회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30일과 31일 정책토론회와 40년사 출판기념회,축하공연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지난 날을 회고하고 21세기에 걸맞는 새로운 활동방향을 모색한다.지난 시절 움츠러진 자세로 먼 발치에서 취재했던 기자로서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다.복음전파와 노동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불혹(不惑)의 연륜을 쌓은 이 선교회의 활동에 기대한다. 산업선교회는 산업화의 싹이 움트던 1958년에 태어났다.산업화의 속도만큼이나 급속하게 형성된 산업현장의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교하기 위한 출발이었으나 그러고만 있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당시 노동환경이었다.하루 18시간의 노동에 저임금,잔업,철야작업에 시달리고 휴일도 없이 비인간적인 생활을 하는 노동자들에게 신앙생활은 사치였다.그리고 그 비참한 생활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환경과 체제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노동인권옹호 활동에 적극 나섰다. 10년후인 1968년부터는 도시산업선교개념이 공식적으로 채택돼 산업화와 도시화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기 시작했으며 1983년 이후에는 약자이며 소외된 ‘성문밖 사람들’이 노동자들이라는 뜻에서 ‘성문밖 교회’로도 불렸다.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약한 사람들의 권익보호에 앞장섰다.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의 표현이지 용공활동은 더 더욱 아니었다.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활동도 공식화됐지만 ‘IMF한파’는 이 선교회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고 있다.정신적 공황과 절망감에 빠져있는 오늘의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등불이 되는 도산을 지켜볼 것이다.
  • 制憲 50돌을 돌아본다:4­1/보안법 문제(정직한 역사 되찾기)

    ◎보안법 상처의 흔적들/시행 50년… 멍든 인권 곳곳에/曺奉岩 등 수많은 政敵에 간첩죄 적용/사회 전반에 올가미… 한해 수백명 구속 영화 ‘레드 헌트’는 제주 4·3항쟁때 양민 학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지난해 9월 홍익대학교에서 열린 인권영화제와 한달 뒤 부산에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다. 검찰은 이 영화 상영과 관련,인권영화제를 주최한 인권사랑방 대표 서준식씨를 지난해 11월 구속했다. 국가보안법상의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였다. 그러나 부산영화제(조직위원장 문정수 부산시장) 상영과 관련해서는 구속된 사람이 없었다. 같은 영화 상영을 둘러싸고도 보안법 적용은 이렇게 다르다. 검찰은 당시 “서씨는 비전향 사상범으로 고의성 여부가 문제된다”고 밝혔다. 사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법적용이 다를 수 있다는 논리다. 국제사면위원회를 비롯한 국내외 인권단체들의 석방노력으로 서씨는 얼마전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국가보안법을 둘러싼 논란과 시비는 끊이질 않았다. 보안법과 관련,서준식씨의 경우처럼 세인의 주목속에 논란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조용히 처리되는 사건이 훨씬 많았다. 올해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지 50주년을 맞지만 보안법 역사의 뒷면에는 대한민국 인권의 상처투성이 흔적들이 가득하다. 우리 사회에서 보안법을 비켜갈 수 있는 분야는 어디에도 없었다. 진보적인 정치인,지식인,학생,노동자 등이 보안법의 올가미에 걸려 죽기도 하고 감옥에도 갔다. 진보적 정치운동과 관련, 보안법에 의한 최대의 피해사례로는 조봉암과 진보당사건 및 2차 인민혁명당 사건,김대중 내란음모사건 등을 들 수 있다. 1958년 1월11일 밤 경찰은 조봉암 위원장 등 진보당 간부 10여명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했다. 야당 당수 조봉암은 간첩혐의를 뒤집어쓰고 다음해 7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1심 재판장인 유병진 판사는 이승만 정권의 간첩조작에 저항해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유병진 판사는 우익세력들에 의해 용공판사로 몰렸고 2년후 법복을 벗어야 했다. 2차 인혁당사건은 1974년 전국적인 반(反)박정희 투쟁을 준비하던 민청학련을 용공으로 몰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던 배후조직을 조작한 사례로 비판받고 있다. 10년전 1차 인혁당 사건에서 이미 경미한 혐의로 판명됐던 인혁당이 10년 뒤 재건되어 정부전복을 꾀했다는 것. 그러나 2차 인혁당 사건은 1차 때보다 더 증거가 없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75년 대법원에서 상고는 기각됐고,24시간도 못되어 8명이 처형됐다. 보안법과 관련,현대언론사에서 최대의 필화사건으로 꼽히는 것은 1961년의 ‘민족일보’ 사건이다. 진보적 혁신 언론을 표방한 민족일보는 용공언론으로 몰려 조용수 발행인의 사형집행과 함께 폐간의 운명을 맞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공소장에 용공으로 단정돼 예시된 것들은 ‘통일에의 전진을 위하여’‘남북교역 시기는 성숙하였다’ 등의 제목하에 실린 기사들이다. 보안법 위반 사건 가운데 한가닥의 온정도,최소한의 법적 기본권과 인간의 존엄성조차도 기대할 수 없는 게 바로 간첩사건이다. 공안기관은 월·납북자의 친·인척,정보사법 전과자,조총련의 연고가족,납북 귀환어부 등의 신상 정보를 모두 입력해 놓고 있다. 이러한 신상 정보는 언제라도 ‘간첩사건을 조작할 수 있는 자료’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실제로 조작 의혹이 적지않았다. 78년 귀국중 간첩혐의로 체포돼 20년째 갇혀 있는 조상록씨도 그중의 한 사람이다. ◎독소조항/반국가단체 구성·가입죄­노동·학생단체 등 민주화 운동 조직 파괴/찬양·고무죄­개념 모호해 자의적 해석 가능… 남용 심각/불고지죄­‘침묵의 자유’ 침해… 반인륜적 행위 강요 치안유지법,조선사상범보호관찰령,국방보안법,조선사상범예방구금령,불온문서임시취체법…. 일제가 군사파시즘의 길을 걸으면서 국내외 반대세력을 탄압하기 위해 제정했던 대표적인 법률들이다. 이중 치안유지법은 일본 및 식민지의 사회주의자와 반체제주의자,독립운동가 등을 처벌한 대표적 악법이었다. 국가보안법은 탄생(1948년 12월1일) 과정부터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빼닮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형법의 특별법인 이 법이 형법 제정(1953년 9월18일)보다도 빨리 만들어졌다는 것은 당시 반대세력을 누르기 위해 이 법이 얼마나필요했던가를 잘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제2장의 제3∼10조가 범죄로 규정되는 행위들과 처벌을 정하고 있는 핵심적인 조항들이다. 이중에서도 제3조·7조·10조가 가장 독소적이고 남용될 소지가 많다고 비판받는 조항들이다. 제3조는 반국가단체 구성 및 가입,가입권유 등에 대한 처벌로 제7조 3항의 이적단체 구성·가입죄와 함께 민주화운동 조직을 파괴하는 주요한 조항으로 지목돼 왔다. 형벌도 반국가단체 수괴는 사형 또는 무기징역밖에 없을 정도로 엄청나게 가혹하다. 그러나 막상 반국가단체로 낙인찍힌 단체들의 면면을 보면 단순한 반정부적 노동·학생운동 조직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생운동조직인 전민학련과 민청학련,기독교 청소년들의 신앙공동체인 한울회 등이 대표적 사례다. 제7조는 반공법 제4조를 그대로 승계한 것으로 찬양·고무 및 이적단체 구성과 가입,이적표현물 제작·반포·판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가장 심각하게 남용돼온 조항으로 일반 형법 등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보안법의 ‘상징’과도 같다.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그 문언상 위헌이나 한정적 해석하에 합헌”이라는 한정 합헌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먼저 찬양·고무·동조라는 개념이 너무 애매모호해 지극히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집을 철거하려는 당국자에게 “김일성보다 더한 놈들”이라고 했다가 구속되고(1978년), “북한이 남한보다 중공업이 더 발달되어 있다”고 했다가 이 조항에 걸려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1976년). 10조는 반인륜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불고지죄 조항이다. 모든 보안법 위반자에 대한 불고지를 처벌하다가,91년 개정때 3조·4조·5조의 죄에 한해 성립하도록 범위를 축소했다. 또 친족관계일 때는 죄를 감경(減輕) 또는 면제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에도 불구하고 불고지죄는 ‘침묵의 자유’를 침해하고 직무상 취득한 비밀을 지켜주어야 하는 직업윤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안되는 반사회적인 행태를 여전히 강요하고 있다. 수년전 서경원 의원 방북사건에서 한겨레신문 윤재걸 기자가 인터뷰중 알게된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구속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김동식 간첩사건과 관련,불고지죄 혐의로 구속됐다 항소심에서 무죄선고를 받은 전 서울대 삼민투위원장 함운경씨는 “설사 보안법 위반자라는 것을 알아도 친구나 친척을 당국에 신고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라며 불고지죄의 반인륜성을 비판했다. ◎北 형법은 가혹한 反인권적 악법/유추해석 인정·중벌위주 형벌체계 적용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것이 북한의 반국가사범에 대한 가혹한 형법체계다. 보안법보다 훨씬 가혹한 법조항들이 북한내 통일논의 자체를 원천봉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법만을 폐지하면 ‘남쪽만의 무장해제’가 아니냐는 시각이다. 북한 형법은 자유민주주의국가의 기본 원칙인 법치주의 원리를 무시한 가장 비민주적인 악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북한 형법은 유추해석을 인정해 죄형법정주의를 무시하고 있다. 제10조에 “형사법에 동일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이 없을 때는 종류와 위험성으로 보아 가장 비슷한 행위를 규정한 조항에 따라 형벌을 정한다”고 돼 있어,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범죄인으로 규정,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공소시효에 대한 명문규정도 없다. 제42조는 “반국가범죄와 고의적 살인죄에 대해서는 기간에 관계없이 형사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로 규정,범인은 죽을 때까지 형사소추를 받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방하거나 그들에게 저항하는 행위는 반국가범죄(제44∼55조)로 규정,사형이나 전재산 몰수형으로 처벌하게 돼 있다. 또한 은닉범,불신고범,방임범의 처벌규정을 두고 있고,반국가범죄의 경우 이를 예외없이 적용하고 있다. 형벌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는 제21조에는 반국가범죄의 경우 ‘○○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고 돼 있어 우리법의 “○○년 이하의 형에 처한다”는 형식에 비해 중벌위주의 형벌체계를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한없는 형량을 선고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은 반인권적 형벌체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앰네스티와 보안법/“국제인권기준에 맞게 개정해야”/매년 인권보고서 통해 개폐 촉구 “양심수를 양산해온 국가보안법은 국제인권법에 크게 미달하는 수준입니다. 이는 국제인권기준에맞도록 개정돼야 합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로스 대니얼스 집행위원은 지난해 말 한국을 방문,이렇게 말했다. 그는 “어떤 사상을 가졌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테러단체를 조직하거나 폭력혁명을 공개적으로 추구하지 않은 이상 구속돼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앰네스티의 인권보고서를 통해 “보안법 위반으로 매년 체포되는 수백명 중 상당수가 폭력이 아닌 단지 ‘고무찬양’과 ‘이적행위’ 등으로 구속됐다”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국가보안법 개폐를 주장해왔다. 또한 주요 보안법 위반 사건마다 항의성명과 함께 피해자 석방을 촉구했다. 지난 96년에는 보안법 개정과 안기부의 권한 남용 방지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편지를 우리나라 정당 대표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李昌淳 팀장·許南周·李穆熙 차장, 金聖昊·任昌龍 기자
  • ‘미인’ 신중현:상(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2)

    ◎“어느새 耳順… 난 美人을 사랑할뿐”/50곡 금지 탄압 분명… 대마초는 그저 핑계/대통령찬가 작곡 주문 거부한게 빌미인듯/反戰·사랑메시지 우리가락 접목이 내꿈 1975년 12월 겨울 바람이 매섭던 어느 날,서울 서대문 구치소의 차가운 골방 구석에 낯익은 30대 인기 가수가 쭈그리고 앉아 한 숨을 내쉬고 있었다.대마초 사건에 연루된 록 가수 신중현(申重鉉·당시 37세)씨 였다.작곡관계로 만났던 히피족이 선물로 준 마리화나를 피운 것이 꼬투리가 돼 인기 절정에서 한 순간에 죄수로 추락한 몸.자신의 앞날이며 문화 예술계에 떨어질 불벼락이 모두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60∼70년대 신들린 사람처럼 무대를 오가며 팬들의 혼을 빼앗았던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그는 트로트,포크송,록으로 대별되던 대중음악 세계를 송두리째 흔들어 ‘이단아’로 눈총을 받았다.젊은이들의 음악세계를 주도했던 장본인 이던 그의 운명을 갑자기 바꾸어 놓은 것은 무엇일까.흔히 알려진 대로 대마초 때문일까.아니다.‘대마초 가수’로 낙인 찍힌지 23년이 지난 지금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다르다. 인기 절정이던 72년 가을 어느날,서울 신촌 집으로 운명의 전화가 걸려왔다.느낌이 좋지 않은 벨 소리였다.수화기를 들자 청와대라고 칭한 30대 남자가 박정희 대통령 찬가를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해왔다.그는 “정치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서민의 한 사람으로 내 길을 가고 싶다”는 말로 거부의사를 밝혔다.5분뒤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이번엔 당시 공화당의 유력 인사였다.역시 같은 주문이었다.“독재정권도 싫은데 그런 것까지 주문하려 드느냐”며 강도높게 반발하고는 전화를 끊었다.앞으로 자신의 음악인생에 드리워질 어두운 그림자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신씨가 대마초를 알게 된 것은 60년대말 록 음악을 하던 히피족들과 어울리면서부터.음악인으로서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록에 당연히 관심이 쏠렸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에 들어와 있던 히피들과 친분을 다지게 됐다.그중에서도 ‘환각음악’이라는 것에 빠졌고 함께 어울리던 히피들의 생활을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남겨진게 바로 대마초(마리화나)다. “작업을 하다가 틈틈이 피웠는데 한번씩 피우면 1주일간 머리가 멍한 상태로 곡을 못 쓸 정도가 됐어요.그러다 보니 자연 끊게 됐지요”. 그때만해도 일반인들은 마리화나 등 환각제가 무엇인지도 모를때 였다.소문을 들은 음악인들이 “집에 마리화나가 있느냐”고 물어오면 법 위반이나 위험성도 모른채 “우리 집에 산더미처럼 많다”며 나눠줄 정도였다.대마초를 피운 유명 음악인들이 하나 둘씩 묶여 들어가고 추궁 끝에 시발점인 신씨에게 화가 미쳐왔다.보건사회부와 검찰 합동수사반에 덜미가 잡혔고 남대문옆 건물 지하로 끌려가 이틀 동안 감금된채 혹독한 취조를 당했다. “구타에 물고문까지….견딜 수가 없더군요.사실대로 불었지만 막무가내였어요.취조의 목적이 엉뚱한데 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겠더군요” 신씨의 구속사실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연행 이틀째 새벽에 검사가 취조실로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국가 방침이니까 들어가 있으라”는 말을 전했다.정신병동에 1주일 입원해 있은 후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노래와 인생이 모두 묶이는 신세가 됐다.박대통령이 담당 검사 어깨를 두드리면서 격려했다는 소문을 후에 들었다고 한다. 신씨는 당시 정황을 볼때 박정희 정권이 저지른 문화탄압의 첫 표적이 자신과 자신의 노래였음을 확신한다고 말한다.“60년대말부터 월남전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어갔습니다.세계적으로 반전(反戰)무드가 강했고 록 음악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강하게 담아 전했지요.그같은 록을 따랐던 제 노래가 금지될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당시 히트했던 ‘미인’이나 ‘봄비’‘미련’‘저 여인’‘생각해’‘그 누가 있었나봐’ 등이 모두 현대감각을 살려 사랑을 표현한 노래들인데 모두 금지곡이라니요.평소 잘 알고 지내던 평론가들이 앞장서서 내 노래에 칼질을 해대더군요” 4년전에 피운 대마초를 핑계 삼아 75년 족쇄를 채웠고 87년 완전 해금될때까지 50곡이 금지곡으로 묶였다.“제가 구속된뒤 가요뿐 아니라 문학 등 문화예술 각 장르에서 구속과 금지의 회오리가 거세게 일었지요.당시 대중음악으로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던 저를 희생양으로 삼은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대마초가 핑계로 작용했구요” 그저 음악이 좋아 혼자 기타를 배웠고 우리 것이 우러나는 음악 만들기에만 몰두했다는 신씨.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의 대마초 사건이 우습기만 하다.대마초가 무언지도 모르고 피워대던 일이며 대마초 가수란 오명을 낳은 시대적 상황들….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기억 속에만 있다.그러나 어쩔수 없이 치러야만 했던 과정 치고는 그 댓가가 너무 컸다는 것이다. ◎사연들/골목길에 울려퍼진 ‘한번하고 두번하고’ 독재연장 삐꼰다나?/단순한 리듬에 쉬운 가사/改詞曲으로 인기 ‘눈엣가시’/혐오감·폭력성 씌워 금지 ‘한번 보고 두번 보고/자꾸만 보고 싶네/아름다운 그 모습을/자꾸만 보고 싶네/그 누구나 한번 보면/자꾸만 보고 있네/그 누구의 애인인가/정말로 궁금하네/모두 다 사랑하네/나도 사랑해/나도 몰래 그 여인을/자꾸만 보고 있네/그 모두 넋을 잃고/자꾸만 보고 있네”(미인). 1974년 발표,레코드 1백만장이 팔려나갈 정도로 크게 성공을 거둔 노래다.그러나 첫 구절 일부가 ‘한번 하고 두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로 바뀌어 당시 독재정권의 정권연장을 빗댄 노래로 대학가에서 번져나가자 금지곡이 됐다.동네 꼬마들의 입에까지 자주 오르내리게 된 대표적 금지곡이다. 신씨의 노래는 우리 가락조의 록이 주조를 이루는 가운데 평이한 가사와 리듬이 특징이다.대부분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분위기의 가사들을 담고 있다.그래서 그런지 그의 노래들은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흔히 개사(改詞)곡으로 애용되곤 했다.‘미인’은 그 대표적인 예.원 노래의 가사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개사곡이 널리 퍼지자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금지곡 딱지를 붙이게 된 것이다.이후 신씨가 만든 노래는 가사가 조금만 자극적이어도 ‘혐오감을 준다’‘폭력적이다’‘너무 슬프다’ 등등의 금지사유가 여지없이 따라 붙었다. “형광등이 비추는/천장을 보면서/눈을 떴다가 감았다/밤을 새우네/그 여자는 지금쯤/무얼하고 있을까/이리둥굴 저리둥굴/혼자 생각하네”(긴긴 밤)“저 여인은 왜 홀로 앉아 있나/저 여인은 무엇을 생각하나/그 옛날에 그 사람을/잊지 못하고 있나봐/그 여인∼아름다워”(저 여인)“웃으면 웃었지/울으면 울었지/왔으면 왔지/갔으면 갔지/나는 몰라/알게 뭐야/그 누가 웃으랬나/그 누가 울으랬나/그 누가 오랬나/그 누가 가랬나/아 그렇게 하면 어떻게/그렇게 노래 부르면/애인이 싫어하잖아(나는 몰라). □그의 길 ▲38년 서울 출생. ▲41년 만주 신경으로 이주. ▲45년 해방 맞아 귀국. ▲57년 서라벌고 2년 중퇴. ▲62년 한국 최초의 그룹 사운드 ‘애드4’ 결성. ▲75년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미인’‘거짓말이야’‘그사람 아니야’‘바람’ 등 무더기 금지곡 판정. ▲79년 부분(활동)해금. ▲87년 전면(금지곡)해금 ▲89년 서울 송파구 가락동 작업실 ‘우드스탁’ 입주. ▲92년 15분짜리 대작 ‘너와 나의 노래’ 작곡. ▲94년 실험적인 앨범 ‘무위자연’ 출반. ▲98년 음악인생 결산 대규모 록 콘서트 IMF로 무산. ▲현재 수원여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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