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회적 낙인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파크골프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우루과이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용산구청장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 농공단지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67
  • “조합원 삶의 질 향상 실리추구… 노동탄압 땐 파업 불사”

    “조합원 삶의 질 향상 실리추구… 노동탄압 땐 파업 불사”

    “조합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파업보다 성과를 중심으로 한 당당한 실리를 추구하겠지만,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 중대한 사태 발생 땐 파업도 불사하겠습니다.” 이경훈(53) 현대자동차 노조위원장 당선자는 성과 중심의 실리를 추구하는 노조를 만들겠다고 10일 밝혔다. 그는 “노조의 사회적 고립과 노동운동 자체를 좌우 구도로 나누고 갈라지는 악순환을 끝내라는 조합원들의 요구”라면서 “현 집행부의 상처뿐인 파업과 경영 실적에 걸맞지 않은 성과분배, 주간 연속 2교대제에 조합원들이 실망한 것으로 본다”면서 “실리 중심의 선거 공약이 조합원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어 냈다”고 당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의 경영비리와 구조조정, 정리해고, 노조 파괴 등에 대해서는 강력한 파업투쟁을 단행하는 전투적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겠다”며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단체교섭의 원칙과 기준을 확립하겠다”고 다짐했다. 조합원 복지를 위해 “‘주주 3, 조합원 3, 재투자 3, 사회공헌 1’이라는 성과분배의 원칙을 확고히 정착시키고 임금인상 수준도 물가상승, 노동생산성, 부가가치 증가 등을 감안해 합리적인 원칙을 세우고 관철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노사가 힘을 합쳐 전원마을 원가분양, 반값 생활비 추진, 새마을금고 운영 참여, 각종 생활금융 지원 등 이른바 사회적 조합주의 운동의 대중화로 조합원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노조 운영의 우선과제로 “삶의 질 향상과 분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임·단협 투쟁에 집중하며 주간 2교대제의 문제점을 마무리하고 실리 공약 이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사측에 대해서는 “해마다 천문학적 광고비와 사회공헌기금을 쏟아붓고도 노조의 경우 노동 귀족으로 낙인찍히고, 회사도 협력업체의 등골을 빼먹는 불법 경영자로 성토당하고 있는 만큼 26년의 낡은 악습을 없애려면 회사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소외계층과 아픔을 함께 나누며, 협력업체와 같이 상생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우선 해결하는 데 노사가 다를 수 없다”면서 “조합원들도 실리와 유쾌한 변화를 위해 적극 동참해 달라”고 당부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열린세상] 청소년 자살과 청소년 비만/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학장

    [열린세상] 청소년 자살과 청소년 비만/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학장

    세계보건기구에서는 청소년기를 10세에서 19세로 정의하고 있으나, 우리는 사회적 통념상 중고등학교 학생을 말한다. 청소년기는 소아에서 어른으로 이행하는 시기로, 빠른 신체 발달을 정신적인 성장 속도가 따라가지 못해 사회정신의학적인 문제가 중요한 건강 문제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유로 청소년기에 두 번째로 흔한 사망원인이 자살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 자살률은 성인 자살률보다도 높다. 증가율도 성인 자살률이 10년간 50% 정도 늘어난 것에 비해 청소년 자살률은 약 57% 증가하였다. 이 증가율은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이고 청소년 자살률은 전 세계 5위까지 높아졌다. 대한민국의 미래이자 장차 세계를 이끌어갈 우리 젊은이들이 꽃다운 청춘을 제대로 펴보기도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너무도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무엇이 우리 젊은이들을 자살로 몰고 간 것일까? 성인의 주된 자살 요인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질병의 고통에 의한 것이 많은 반면에 청소년의 자살 원인은 성적 및 진학문제와 이에 따른 가정불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성인 자살자의 대부분이 우울증 병력이 있던 반면에 청소년 자살자에서는 아주 일부만이 우울증을 갖고 있어 우리 청소년은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가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우리 교육이, 세계 과학 올림피아드를 석권하는 우리 청소년들이, 국제 공인 기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 능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우리 학생들이, 자살률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그리고 세계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학업이 우수한 학생은 모범생으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문제아로 낙인 찍어 버리는 학교 교육과 그에 암묵적으로 동조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자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이를 해결하려면 사회 구성원 모두가 청소년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따뜻한 애정과 진실한 격려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 세계는 다양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사회이기에 창조적인 생각을 갖고 다름을 인정하며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를 이끌어 갈 창의적 리더로 커갈 수 있는 교육의 토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자살만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청소년 비만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비만율은 세계 1위라고 한다. 청소년기에 비만하거나 중학교 때 키가 부쩍 자란 여학생이 어른이 되어서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에서도 보듯이 청소년 비만은 성인이 된 이후에 암, 당뇨, 고혈압과 같은 대표적인 성인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 문제가 더 심각하다. 비만은 신체 에너지 불균형의 산물로 고열량 음식의 과다한 섭취와 운동 부족의 복합적 결과이다. 중고생의 하루 일과는 청소년 비만의 위험 요인을 모두 갖고 있다. 종일 의자에 앉아서 수업을 받고 고열량 패스트 푸드로 허기를 때운 후 대여섯 시간 잠을 자는 것이 대부분 청소년의 일과이다. 불규칙한 식사, 운동 부족, 고열량 음식 섭취, 수면 부족, 거기에 학업 스트레스 등 비만을 조장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는 요인들이 모두 다 들어 있다. 불안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 고열량 음식을 더욱 많이 찾는 경향이 있다고 하니 악순환의 연속이다. 더욱 큰 문제는 부모의 소득이 낮거나 학력이 낮은 집안의 청소년 비만율이 높다는 사실이다.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건강 민주화의 첫 번째 과제로 청소년 비만을 해결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육부와 교육청, 보건복지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흩어져 있는 청소년 건강관리 체계를 일원화하고 예방중심의 건강관리 시스템을 도입하여야 한다. 청소년 건강식단의 개발·보급 및 체육 운동 교육 강화 등과 더불어 공부나 학업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학업 부진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선배들의 경험을 스스로 배우고 체화할 수 있도록 학교 교육의 쇄신과 변화가 필요하다.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모든 국민이 행복한 나라로 거듭나려면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들이 건강해져야 한다.
  • [열린세상] 사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사회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제비 한 마리가 왔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제비 한 마리는 분명히 봄의 전령사이기도 하다. 취업 경쟁이 대학가를 휘몰아치는 와중에 순수 사회학 그 자체에 관심을 두는 기특한 학생들을 전보다 자주 마주치게 된다. 금융 분야 자격증 따기, 공무원 시험 준비, 영어 점수 올리기라는 생존 경쟁 계획표에 맞추어 돌아가는 학생들 가운데 “사회학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요” 하는 한 마디가 주는 울림은 크다. ‘사회가 되돌아온다’는 새 시대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좋게 말하면 ‘다이내믹 코리아’이지만 변화의 속도가 멀미가 날 정도로 빠르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국제정세를 알아차리지 못해 이웃나라의 식민지로 전락했던 과거사의 회한을 만회하기라도 하는 것 같다. 20세기는 농촌에서 도시로, 아시아에서 서구로, 공동체에서 개인으로, 자연에서 개발로, 협동에서 경쟁으로 삶의 패러다임을 숨 가쁘게 바꿔왔다. 이 질주에서 앞선 사람 또는 집단은 승자로 추앙되었고 속도에 어지럼증을 느끼는 개인 또는 집단은 가차없이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앞만 보고 달리게 되면 가속도가 붙게 된다. 근대화에 이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믿는 눈치 빠른 부모들은 빚을 내서라도 자녀를 유학시켰고 기러기 가족 만들기도 불사하였다. 전 지구적 차원의 무한 경쟁을 개인적 적응으로 대응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으로 무장하고 약육강식은 동물계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예외 없는 철칙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우리가 앞만 보고 달리는 동안 세상은 소리 없이 방향을 바꾸고 있다. 글로벌 대신 로컬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자유 대신 공정을, 경쟁 대신 협동을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패스트푸드 대신 슬로푸드가 주목을 받고 심지어 슬로 시티도 등장하고 있다. 네덜란드 여대생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환경에 피해를 주거나 아동을 불법으로 고용하면서 만든 것은 아닌지 질문하기 시작했다. 소위 가격 대비 품질을 중시하는 합리적 소비이론과는 달리 제품 생산 과정에서의 사회적 영향과 책임을 묻는 소비방식이다. 이런 흐름이 점점 커져서 이제는 대세가 되기에 이르렀다. 기업에도 사회적 책임을 묻는 행동지침이 유엔에서까지도 제도화되기에 이르렀다. 실패한 국가의 자리, 실패한 시장의 자리에 사회, 그리고 사회적이라는 차원이 들어서고 있다. 이 새로운 변화의 흐름이 우리 사회에서는 다양한 시차로 나타난다. 헌법 조문에만 있었던 경제 민주화라는 단어가 지난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가장 중요한 공론으로 등장하지 않았던가. 사회가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뿐인가. 수많은 논쟁을 거쳐 세종특별자치시가 출범했다. 세종은 봉건시대에도 ‘여민동락’(與民同)이라는 소셜 거버넌스를 실천했던 성군이다. 선거공약과 공론을 통해 도시가 탄생한 것을 전에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던가. 공공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사회적 경제, 소셜 커머스, 등 사회 또는 소셜이라는 형용사가 끝 간 데 없이 쓰이고 있다. 19세기엔 목욕탕 이름에서부터 과자 이름까지 ‘자유’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도쿄대 교수의 분석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이런 새로운 흐름에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 등은 이 변화의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옛 문법대로 행동하고 말하다가 변화된 세상의 공분에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한 번 단추를 잘못 끼우면 계속 어긋난다. 지난 100여년의 흐름이 큰 폭으로 바뀌고 있는데 방향 전환이 어렵다. 과거가 흘러가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는 상태에서 새것이 오고 있다. 게다가 따라잡기 바쁜 질주에 가속도가 붙어 방향을 바꾸기도 어렵다. 식민지시대, 냉전, 신자유주의의 유제가 사라지지 않고 사회 구석구석에 얽혀 있다. 새것이 들어설 틈이 없어 보이는데도 사회가 돌아오고 있는 징표는 분명하다. 우리 모두 새로운 변화에 대한 시차 적응이 필요한 때다.
  • 성폭력 막아야죠 거미줄 같은 홍보로 인식, 꼭 바꿀겁니다

    성폭력 막아야죠 거미줄 같은 홍보로 인식, 꼭 바꿀겁니다

    “젊고 빠르다.” “학습 속도가 굉장하다.” ‘민생’과 ‘현장’을 강조하는 박근혜 대통령이 애정을 담아 임명한 조윤선(47)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여가부 직원들의 평이다. 조 장관은 3월에 취임하자마자 미혼모 시설,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 등 각종 현장을 20곳 이상 찾을 정도로 숨가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변인으로 전국을 누비던 대통령 선거 때도 변함없던 체중이 빠질 정도다. 세계 108위.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우리나라의 성 격차지수다. 조 장관은 한국 여성의 위상 제고를 위해 이제 행보를 국제적으로 넓혔다. 15~16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5차 동아시아 양성평등 장관회의에 수석대표로 참석하는 데 이어 이달 말에는 프랑스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스위스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을 찾는다. “세계경제포럼 회장과 성 격차지수를 관리하는 부처를 만나 우리의 내부적 노력을 알리고, 지수 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조 장관은 밝혔다. →일과 가정 모두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여성가족부의 큰 역할 가운데 하나다. -사회적 인프라를 만들어줘야 한다. 1994년에 첫 아이를 낳았는데 2000년대 초반까지 전혀 사회적 기반이 없었다. 일·가정 양립의 만병통치약은 없다. 일하는 여성에게 최대한 많은 옵션을 제공하겠다. 집 근처에 맡기거나 돌보미, 직장 어린이집, 육아휴직 등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이 경력에 치명적 불이익이 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게 목표다. →윤창중 전 대변인의 사태에서 보듯이 공직자의 양성평등 의식 수준이 낮다. -대통령 업무보고 때 올해를 ‘성폭력 예방교육 원년’으로 삼아 국민 대상 홍보 콘텐츠를 개발하고, 모든 사람이 접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거미줄처럼 짜기로 했다. 모아서 교육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동통신사, 카드회사, 대형할인점 등에서 고객들에게 보내는 편지나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 반상회보, 은행창구의 모니터, 회사 사보 등 국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통해 인식 개선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다. 메시지 내용은 성폭력, 다문화, 미혼모, 일과 가정의 양립 등이다. →끊이지 않는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 여가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뜻밖에 가장 효과 있는 것이 또래상담이다. 여가부는 청소년상담개발원에서 선생님에게 또래상담 동아리 활동 지도법을 교육한다. 한영고에 가서 또래상담반을 만났는데 상담자로 나선 한 학생이 ‘중학생 때 왕따를 당했다. 점심시간에 식판을 걷어차이고 음식이 엎질러지는 모욕을 당했다. 도서관 서가에서 울곤 했는데, 한 친구가 이야기를 들어줘서 치유됐다’고 말해 눈시울을 적셨다. 또래상담을 하는 학생도 고민이 있지만, 소통을 통해 치유된다고 하더라. 대통령 업무보고에 초청됐던 태안여고는 또래상담으로 문제아 학교에서 지역사회에서 사랑받는 학교로 바뀌었다. →유리 천장 앞에서 좌절하는 여성들에게 들려줄 수 있는 조언은. -유리 천장은 자꾸 여러 사람이 부딪쳐야 실금이 가서 드디어 깨진다. 직장생활하며 아이 키우고 조직에서 자리 잡는 게 쉽지 않다. 이번 정부에서는 유리 천장을 없애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여서 지속 가능한 성장 터전을 만들자는 게 큰 과제다. 이 과제를 모든 부처가 공유하고, 대통령도 강조하고 있어 유리 천장을 깨기에 더 좋은 계기는 없는 것 같다. 경쟁력 있는 회사일수록 여성직원이 육아휴직을 쓰면 ‘저 친구는 우리 회사에서 승부를 걸 생각이 없고, 대강 다니려는구나’란 낙인을 찍는다. 이런 낙인을 찍는 문화가 없어야 한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은 일·가정 양립을 잘하는 가족친화기업으로 인증받고 나서 입사 경쟁률이 100대1에서 1000대1이 됐다고 하더라. 결혼해도 되느냐, 애 낳아도 되느냐고 묻는 후배들에게 일단 시작하라고 한다. 산도 오르다 보면 이정표가 있고 길이 보인다. 저도 일 시작하고 애를 낳았더니 친정부모, 시부모께서 도와주셨다. 국가가 마음먹고 엄마가 돼주겠다고 했으니 일단 시작하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일하거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뛸 생각은. -장관 한 지 두 달하고 사흘 정도 됐는데,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은 화장실 가는 시간밖에 없을 정도다. 대통령께서도 여성의 임신, 출산, 양육 등 전 생애에 걸쳐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가시적 성과를 가져오라고 첫 국무회의에서 말씀하셨다. 눈 뜨면 어떻게 잘할까 그 생각밖에 없다. →대통령의 기대가 각별한 것 같다. -현오석 기획재정부 장관이나 정홍원 국무총리가 모두 ‘백’이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조정할 수 있는 경제장관회의에 현안이 없어도 꼭 참여해서 부탁을 많이 드린다. 여성 인재 활용은 남성 일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 새로운 창의적 일자리를 만드는 게 관건이다. →‘을’로 일한 경험이 있는가. -‘갑’이었던 경험은 별로 없다. 변호사로 일할 때 갑을 관계 중에 ‘병’이나 ‘정’ 정도로 일했다. 기업변호사로 보통 소송만 하던 변호사와 달리 정말 서비스 정신을 투철하게 배웠다. 국회의원 할 때도 을로 일했다. 의원은 국민에 대해서는 영원한 을이지 않느냐. 대변인으로 일할 때도 언론인 앞에서는 ‘정’쯤 됐다. 여가부 장관은 다른 부처 장관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사설] SAT 취소까지 부른 ‘부정 한국’ 부끄럽다

    4일로 예정됐던 미국 대학수학능력평가시험(SAT) 한국 시험이 전격 취소됐다. 이 시험을 주관하는 비영리기관 칼리지보드는 “한국 시험에 출제될 수 있는 문제의 일부가 유출돼 많은 응시자들이 이미 시험문제를 접했기 때문에 5월 시험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기적이고 부도덕한 소수가 저지른 부정 행위로 갑자기 시험이 취소되는 바람에 정직하게 공부한 수험생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 다급한 학생들은 다른 나라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부정 한국’의 낙인이라니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SAT 문제 유출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6년엔 시험문제 유출 의혹으로 한 외국어고의 시험장소 자격이 박탈됐고 2007년 3월 한국에서 치러진 시험의 경우 학원 강사 일당이 두 달 전 태국에서 시험을 치르고 문제를 빼낸 것으로 드러나 응시자 900여명의 성적이 전원 무효처리되기까지 했다. 지난 2월엔 서울의 일부 어학원이 아르바이트생들을 고용해 동남아에서 시험을 치르게 한 뒤 문제를 유출한 혐의를 놓고 검찰이 수사 중이다. 다른 시험도 마찬가지다. 토플시험에서 유사한 부정행위로 2000년 이후 시험방식이 두 차례나 변경됐고, 미국 대학원시험(GRE)은 2002년 문제가 유출돼 국내에서 전산망을 이용한 시험을 치를 수 없다. 해커스 교육그룹의 임직원들은 2007년 이후 100차례 이상 토익과 텝스 문제를 빼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런 전과에도 불구하고, 문제 빼돌리기가 점점 더 대담하고 교묘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험 부정을 심각한 범죄로 여기지 않는 사회분위기, 돈이 된다면 무슨 수단이든 동원하는 학원들의 부도덕성, 어떻게든 단기간에 점수를 올려 미국 명문대에 입학하면 된다는 학부모와 수험생들의 비뚤어진 의식이 주된 원인이라고 본다. 수사당국의 소극적 자세도 문제다. SAT와 같은 국제인증시험 부정은 응시자들에게 불이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국가신뢰도를 실추시키는 심각한 사안임을 인식해야 한다. 점수만능주의에 대한 사회적 각성과 함께 앞으로 이런 부정행위가 발붙일 수 없도록 일벌백계를 당부한다.
  • [Weekly Health Issue] ‘아픈 아이들’ ADHD 증후군

    [Weekly Health Issue] ‘아픈 아이들’ ADHD 증후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이 무렵에는 학교생활 적응에 따른 다양한 문제가 표출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녀를 많이 두지 않아 귀하게만 키우느라 온갖 응석을 다 받아주다 보면 아이들이 보이는 행동을 냉정하게 관찰,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학령기 아동의 ADHD 유병률이 3∼8%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이 가운데 많게는 70%가 성인이 되어서도 병증을 계속 가져 문제가 되기도 한다. 과잉행동과 주의력 결핍이 주요 행동 특성으로 나타나지만 더러는 충동적인 공격성을 드러내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는 ADHD에 대해 국소담 명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건강센터장(정신건강의학과 교수)과 얘기를 나눴다. →ADHD란 어떤 장애상태를 말하는가. -ADHD(Attention Deficit·Hyperactivity Disorder)는 흔히 말하는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로, 주의력 산만·과잉행동·충동성을 특징으로 하는 질환이다. 주로 7세 이전의 초기 아동기에 발병해 만성화하는 경과를 밟게 되며, 가정·학교·사회생활 등 여러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는 질병이다. →지금 시점에서 ADHD가 새삼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ADHD를 가진 아이들을 그저 ‘되바라진 아이’나 ‘말 안 듣고 버릇 없는 아이’ 등 잘못 길들여진 나쁜 아이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많은 교육과 홍보를 통해 ADHD를 질환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ADHD 아이들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픈 아이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최근의 발병 추이와 유병률을 짚어 달라. -국내외 조사 연구를 종합하면 일반 아동의 3∼7%가 ADHD에 노출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별로는 3∼4대 1정도로 남자 아이에게 흔한데, 이는 남자 아이의 경우 더욱 공격적이거나 반사회적 문제 행동을 동반해 임상적 관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원인은 무엇인가. -원인은 다양하다. 가족력도 작용하며, 유전적인 소인도 중요하다. 실제로 과잉행동을 보이는 아이의 형제는 정상인의 2배에 이르는 위험률을 나타낸다. 이 밖에 대뇌 감염이나 외상 등의 뇌손상, 도파민·노르에피네프린 등 신경 전달물질의 불균형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증상은 어떻게 나타나며, 특히 주의해 살펴야 할 증상은 무엇인가. -ADHD 아동들은 흔히 아주 어릴 때부터 활동량이 많거나 까다로운 경우가 많으며,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단체생활 중에 문제 행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된다. 행동 양상은 부주의해서 실수를 많이 하는가 하면 수업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며, 과제나 준비물 등을 자주 잊어버린다. 이런 아이들은 마치 모터가 달린 것처럼 끊임없이 움직이거나, 말이 너무 많거나, 순서를 잘 기다리지 못하는 등의 증상을 보인다. 특히, 과잉행동은 잘 두드러지지 않아 단순히 ‘부주의하다’고 볼 수 있는 증상만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검사 및 진단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환아 및 보호자에 대한 의사의 면담과 ADHD 평가 척도 및 주의력 검사 등을 종합해서 판단한다. →치료는 어떻게 하며, 예후는 어떤가. -예전에는 나이가 들어가면 ADHD 증상도 덩달아 호전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ADHD 아동의 40∼50%, 많게는 70%가 성인기까지 증상이 지속되는데, 이 경우 대개 과잉행동은 줄어들지만 주의력 감소와 충동 성향 등은 오래 남는 경향을 보인다. ADHD로 인한 주의력 산만이나 과잉행동·충동성 등의 증상을 치료하지 않으면 성장하면서 학교 생활과 대인 관계, 가정 문제 등을 겪게 되고 이는 대인 관계의 부적응, 학업 의욕 저하와 학습 부진, 좌절감과 부정적인 자아상 및 난폭한 성격 형성 등의 문제를 낳게 된다. 여기에 반항장애·품행 장애 및 알코올 등 물질 남용 등이 동반되면 더욱 부정적인 치료 예후를 보이게 된다. 따라서 증상이 의심되면 전문의를 통해 정확히 진단한 뒤 약물치료와 인지행동 치료, 환경 조절, 부모 상담을 병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이다. 약물치료는 1차적 약제로 중추신경 자극제를 사용하며, 이 경우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치료 효과 및 약물 부작용 여부를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함께 사회 기술훈련, 놀이치료, 뉴로 피드백 등의 방법도 함께 적용한다. →아직도 많은 환자들이 방치돼 있다.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앞서 지적했듯이 ADHD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 그저 말을 안 듣는 산만한 아이 정도로 생각해 치료 필요성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다음으로는 ADHD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이유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여기에 해당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소아정신과 치료를 꺼려하는 사회적 편견이다. 정신과의 문턱이 낮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사회 내부에 ‘스티그마(stigma·낙인)가 존재한다는 점이 문제다.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자부하면서도 사회적인 인식 때문에 안타까울 때가 많다. 실제 학부모들은 아이 문제를 전문의와 상담하기 위해 병원 등 전문기관을 찾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소아정신과 병원에 오는 것을 꺼리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상담이나 학습보조 등을 통해 증상을 치료하려고도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주로 이런 문제 때문에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친다고 보면 될 것이다. →ADHD와 관련한 정책적 문제와 대책도 짚어 달라. -최근의 아동 성폭행이나 왕따·학교폭력 문제 등에 대한 관심에서 알 수 있듯이, 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구나 문제 의식은 높지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다른 소아정신과적 질환도 마찬가지이지만 ADHD는 무엇보다도 학교·가정·병원의 적극적인 협력이 필요한 질환이다. 이는 대상군을 선별해 내는 작업뿐 아니라 치료와 예방 전 과정에 해당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배신자 낙인에 고통받는 대한민국의 내부 고발자

    2011년 1월 경기 포천의 한 양돈농장에서 일하던 박재운(54)씨는 농장을 소유한 육가공업체에서 구제역 보상금을 타내려고 살처분한 돼지 수를 부풀린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 살처분한 돼지보다 9500여 마리나 많은 2만 9570마리를 살처분했다고 신고했다. 제보를 고민하는 박씨에게 친구는 “회사도 무너지고 너도 힘들어지는데 그냥 넘어가라”고 말했다. 박씨도 회사가 잘못만 인정하면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요지부동이었다. 박씨는 “양심과 도덕이 무너진 현실을 견딜 수 없다”고 사표를 쓴 뒤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은 28억여원의 부당 이득을 챙긴 혐의로 업체 간부 등 15명을 기소했다. 박씨는 지난해 공익신고자로 대통령 표창을 받고 참여연대에서 주는 의인상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솔직히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망설였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고향인 전남 담양에서 경기 의정부를 오가며 1년 넘게 재판에 참석하는 일도 고역이었지만 주변의 근거 없는 비방과 싸늘한 시선이 벅찼다. 신고 뒤 ‘여자 관계가 복잡하다’, ‘사기 전과가 있다’ 등의 헛소문이 퍼졌다. 재판정에서 동료들은 “저 친구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아 업무를 모른다”고 진술했다. 박씨는 “배신자라는 낙인 때문에 동종업종에는 취직하기도 어려웠다”고 말했다. 내부 고발은 여전히 희생과 용기를 요구하는 어려운 결단이다. 생계 단절과 사회적 낙인에 대한 두려움도 문제지만 제도적 한계도 있다. 국가정보원의 정치 개입 의혹을 제기한 전직 국정원 직원 김모(50)씨 등은 현행법상 공익신고자로 보호받을 수 있는 길이 없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적용되는 180개 법률에 국정원법과 국정원직원법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부패방지법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김씨는 법에서 규정한 감사원과 권익위, 수사기관이 아닌 정당에 알려 해당사항이 없다. 김씨는 22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9월 전현직 국정원 직원을 통해 국정원 대북심리전단이 정치 댓글이나 달아야 하는 현실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들었다. 두 달 뒤 국회 정보위원회에서도 국정원에 문제 제기를 했지만 국정원은 공식 부인한 상황이었다”면서 “국정원 직원법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원장의 허가를 받아야 외부에 증언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과연 원장 허가를 받고 문제 제기하는 게 가능한지 반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공익신고자들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2011년 광명역 인근에서 발생한 KTX 열차의 사고 원인을 폭로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가 공익신고자보호법의 ‘1호 수혜자’로 지난해 복직한 신춘수(44)씨도 “법 자체는 의미 있지만 언론 등 신고할 수 있는 외부 기관이 크게 제한되어 있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주말 인사이드] “범죄자 딸이래”…예비 범죄자 낙인에 멍드는 수감자 자녀 7만명

    [주말 인사이드] “범죄자 딸이래”…예비 범죄자 낙인에 멍드는 수감자 자녀 7만명

    “배가 너무 아파요. 콕콕 쑤시고 조이고….” 6년 전 A(11)양은 유치원 차에서 내리다가 경찰에 잡혀 가는 아빠를 목격했다. 강도살인 혐의였다. 다섯살이던 A양은 그날 이후 급격히 말수가 줄었다. 유치원도 그만둬야 했다. 범죄자의 딸과 함께 내 아이를 공부시킬 수 없다는 다른 부모들의 민원 때문이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아빠가 체포되던 그날만 오면 A양은 심한 복통을 호소한다. 부모의 범죄로 인해 원치 않은 ‘주홍글씨’를 새기고 살아가는 수감자 자녀. 정부는 부모의 수감으로 가난과 심리적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아이들을 약 7만명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통계는 없다. 법무부는 매년 200만건 이상의 범죄가 발생하며 이들 가운데 전국 50개 교정시설에 매년 10만명 정도가 새로 입소한다고 본다. 이들 절반 정도가 기혼으로 파악되며 기혼 수형자의 70%가량이 최소 1명 이상의 미성년 자녀를 둔다고 추정한다. 장기 수용자 자녀에 새로 입소하는 자녀들까지 더하면 수감자 자녀들은 나날이 증가하는 추세다. 7만명이면 미성년 인구 100명당 0.5명으로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문제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 속에 아이들이 속수무책으로 방치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치되는 배경엔 사회의 편견도 한몫한다. 아이들은 부모가 교도소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예비 범죄자’, ‘나쁜 종자’라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범죄자의 딸’이래요. 내가 교도소 갈 짓한 것도 아닌데…왜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해요?” B(16)양은 지난해 아빠가 교도소에 갔다는 사실을 알고부터 삐딱선을 탔다. 사춘기 소녀는 세상의 편견도, 아빠에 대한 원망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선택한 것이 ‘엇나가는 삶’이었다. 싸움박질도 했고 일진들과 어울리며 학교에서 도둑질도 했다. 같은 잘못을 해도 손가락질은 B양에게 쏠렸다. “애들이랑 다같이 지갑 한번 훔친 건데 걔네 엄마들이 제가 애들을 물들였다고 몰잖아요. 진짜 짜증났어요.” B양은 지난해 학교를 그만뒀다. 학자들은 부모에게서 받는 충격과 배신감에 사회적 편견이 화학작용을 일으켜 범죄가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신연희 성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가족성원들을 단위로 보는 공동체 문화가 강한 까닭에 수감자의 범죄와 가족을 분리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면서 “이런 문화적 배경에서 가족들은 주위의 낙인을 피하려 숨어 버리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수감자 자녀들도 죄를 진 부모와 자신을 분리하지 못했다. 신 교수는 “상담 결과 아이들이 ‘나는 범죄자 자식인데 뭘 할 수 있을까’ 등 병에 가까운 심리적 고통을 앓는다”면서 “불안정한 가정환경과 정서적 문제, 학교 부적응은 결과적으로 가출과 탈선, 비행으로 이어지는 일이 많다”고 했다. 부모가 수감됐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저마다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기혼 남녀수용자 56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수용자 가족방문 실태 및 그 효과· 2009)에 따르면 ‘아이가 말이 없어짐’, ‘매사에 의욕이 없고 기가 죽었다’는 응답이 각각 40%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양육환경도 매우 불안정해진다. 수감자 자녀 중 30%는 부모의 입소 뒤 2번 이상 보호자가 바뀌었다. 보호자가 없어 아이 혼자 살고 있는 경우도 20%가 넘었다. 자연스럽게 공부와도 담을 쌓게 된다. 부모의 입소 후 공부에 관심이 없고 성적이 떨어졌다는 대답은 25%, 학교를 결석하거나 무단 이탈을 하는 아이도 11%를 차지했다. 학교를 중퇴해 버리는 아이도 7%에 달했다. “돈이 없어 학교를 못 다닐 것 같아요. 오빠는 가출했고 엄마는 매일 울어요.” 부도로 인해 아버지가 수감된 뒤 C(17)양의 가정은 붕괴됐다. 어머니 역시 건강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자 가세는 형편없이 기울었다. 한살 터울인 오빠는 옷가지만 챙겨 집을 나갔다. C양은 고등학교 등록금이 없어 학교를 그만뒀다. 수감자 자녀 대부분은 절대 빈곤 상태에 놓인다. 한쪽 부모가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가계소득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고 여기에 재판에 따른 비용, 수용생활 지원 등으로 인한 비용손실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직결된다. 한 수감자(50·무기징역)는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지원을 받았으면 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도, 주려는 곳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많다. 법을 잘 준수하고 사는 사람들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큰데 세금으로 범죄자 자녀까지 도울 필요가 있느냐는 시각이다. 비슷한 이유로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수감자 자녀의 경제 지원 등은 민간단체가 맡는 일이 많다. 교정위원인 노병란 목사는 “부모의 죄값을 그 자녀까지 치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면서 “아이들만 생각하는 인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심도는 낮은 편이다. 지금껏 수감자 자녀 수조차 공식적으로 헤아려 본 적이 없다. 보고서도 2007년 ‘수형자 가족관계 건강성 실태조사 및 향상방안 연구’라는 이름으로 내놓은 단 1건이 전부다. 당연히 별도 예산도 없다. 수감자 자녀 지원 프로젝트인 ‘가족사랑캠프’는 소요 비용이 1일 기준으로 150만원 안팎이지만 별도 예산은 없다. 박선영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법무부 등에서 2011년 10월부터 위기가족 지원 등을 한다지만 수감자 자녀 대상으로 실질적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면서 “지금 위기청소년 지원 예산 안에 포함된 것만으로는 수감자 자녀 지원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가장 필요한 일은 수감자 자녀 통계를 잡는 것”이라면서 “수감자 자녀를 교정통계의 주요 항목으로 포함시켜 정기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정책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감자 자녀들을 보듬어 줄 시설도 많지 않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친인척이나 일반 가정에 위탁해 신체적 보호를 해주는 가정위탁 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수감자 자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면서 “우리나라의 경우, 일반 위탁이 보편화돼 있지 않아 대부분 양육시설로 보내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박영숙 성산효대학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법무부는 수감자 교정만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복지 마인드를 가진 사회복지사를 많이 늘리고 수감자 자녀와 수감자가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미술·심리치료 등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30)씨는 가정폭력이 심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인사 불성이 돼 주먹을 휘둘렀다. 참다 못한 어머니는 잠자던 아버지의 목을 졸라 죽였고 7년형을 선고받았고 D씨는 홀로 됐다. 여든이 넘은 할머니는 D씨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인근 교회로 보냈고, 그곳에서 D씨는 원로목사의 지속적인 사랑 속에 자랐다. 그는 현재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재직 중이다. 전문가들은 수감자 자녀를 위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D씨와 같은 사례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김혜란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범죄자의 자녀가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식의 논의들이 이뤄지는 걸 많이 보는데 이조차 낙인이 될 수 있다”면서 “수감자 자녀 지원에 논의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사람들은 위기와 시련의 상황에서 이를 극복해 내는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면서 “스스로 일어서기 힘든 수감자 자녀에게도 사회가 사랑의 손을 내밀어 이들이 건강한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할 때”라고 말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한국 ‘근대화 DNA’ 16세기부터 있었다

    한국 ‘근대화 DNA’ 16세기부터 있었다

    2002년 한국 대학들의 해외 석학 초빙 열기를 전하는 한 일간지 기사는 이렇다. 대학과 학자 이름, 그리고 그 학자를 왜 영입했는지를 설명해주는 학문적 업적이 쭉쭉 나열된다. 그런데 도쿄대에서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기는 미야지마 히로시(65) 교수를 두고는 한마디 토를 달아뒀다. “일본의 한국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점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고. 식민지근대화론자, 그것도 한국인도 아니고 일본인에게 이런 명칭을 붙인다는 것은 거의 ‘종북좌파’ 수준의 낙인이다. 그런데 2010년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 무효를 선언했던 한일 양국 진보적 지식인들의 ‘한일 지식인 공동선언’에서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의 이름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무엇이 진실일까.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너머북스 펴냄)는 일본인으로서 왜 한국사를 공부하게 됐는지,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오해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지, 그 오해가 왜 잘못됐는지, 자신의 소농(小農)사회론이 어떻게 생겨났고 궁극적으로 서구 중심의 일직선상에 놓인 근대발전사관을 어떻게 뒤엎을 수 있는지 등을 본인의 입으로 차분하게 설명해둔 책이다. 저자의 기본적인 관점은 이것이다. 19세기 이후 조선은 “정치적으로 체제변혁에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는 거대한 변혁이 순조롭게 실시됐을 뿐 아니라 그 이후 경제적, 사회적 변화도 아주 급속하게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20세기 들어 근대화를 꿈꾸지 않은 나라는 없다. 그런데 왜 다들 못했을까. 이왕 식민지배 받을 거면 일제처럼 훌륭한 지배자를 만났어야 하는데 하필이면 귀축(鬼蓄) 같은 영미(英米)놈들 치하에 살았기 때문에? 아니면 어차피 군부독재할 거였다면 박정희처럼 경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위대한 독재자를 만났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해서? 아니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축적되어온 한국인들의 장기적 경험이다. 그러니까 서구적 근대가 오기 전에 이미 한국 내부에 근대적인 요소가 무르익어 있었고, 그러기에 식민지에다 분단과 전쟁과 독재까지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라는 과제를 그 어느 누구보다 빨리 흡수해서 성취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일제 덕도, 박정희 덕도 아니라는 얘기다. 주의할 부분은 저자에게 근대는 ‘평가’보다 ‘서술’에 가깝다는 점이다. 역사를 쭉 살펴보니 사실이 그러하다는 것일 뿐, 근대를 빨리 잉태하고 있었으니 뛰어나다거나 장하다거나 훌륭하다는 평가는 아니다. 그래서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발전론 양쪽 다 비판한다. 아니 이 논쟁뿐 아니라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개편, 우익 정권의 역사 미화 논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박정희 정권 평가 문제 같은 국내적 이슈뿐 아니라 오늘날 중국의 부상과 일본의 우경화 문제까지 짚어보려면 빼놓을 수 없는 책이다. 토지귀족의 부재, 관료제와 과거제, 미약한 신분제 등 저자 특유의 소농사회론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어느 정도 알려졌으니, 이번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성리학의 창시자 주희에 대한 재평가다. 주희의 이미지는 오늘날 그럭저럭이다. 대사상가로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으니 무시하긴 그런데, 고리타분하고 교조적인 인상이 짙다. 심지어는 불교와 도교에서 빌려온 형이상학적 개념을 쓸데없이 가져다붙이는 바람에 고졸한 맛을 풍기던 고대 유학을 다 망쳐놨다는 험담까지 나온다. 저자는 아직 연구 중이라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주희에 대한 기존 연구가 “주희의 사상 그 자체의 연구라기보다 주자학에 관한 연구, 바꿔 말하면 주희 이후에 형성된 장대한 주자학 사상체계를 통해 주희의 사상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치우쳤다는 것이다. 이기론 논쟁도 싹 무시한다. “주자학의 일부에 불과한 이기론이 유럽적인 철학의 방법에 친근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후대에 들어 지나치게 크게 부각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주희 사상의 핵심으로 가례와 사창(社倉)을 지목해뒀다. 알려졌다시피 주희가 살았던 남송시대는 나라는 남쪽으로 밀려났지만, 이로 인한 대규모 강남개발로 물질적인 부유함은 넘쳐흘렀던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가 주희의 주된 관심사였다. 주희는 가례로 한 사회의 최소단위인 가정을 바로 세우고, 사창으로 사회의 공공성을 확보하려 들었다. 그러니까 “공동체에 의거하지 않으면서 사회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라는 게 주희가 맞닥뜨린 시대문제였고, 이건 다름 아니라 오늘날 근대 사회에서 흔히 발견되는 문제의식과 똑같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주희는 12세기에 살았던 근대인인 셈이다. 그래서 한국사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16세기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19세기 말 개항 이후의 서구적 근대만 중요한 게 아니라 12세기 중국에서 발생한 주자학을 깊숙이 받아들인 16세기 이후 조선식 근대, 그리고 이 조선식 근대가 개항 이후 맞닥뜨린 일제식 근대, 미국식 근대, 소련식 근대와 어떻게 부딪히며 섞여들어갔는지를 규명하는게 오늘날 한국사 이해의 핫 포인트라는 것이다. 장기 16세기라 부를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책은 올해로 정년을 맞은 저자의 마무리 작업 같은 성격이다. 끝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소농사회론의 관점에서 일본 우경화 문제를 다루는 책을, 족보에 대한 그간의 연구성과를 한데 모은 책을 곧 낼 예정이다. 일본에서도 조선사 통사와 소농사회론에 대한 책을 낼 계획이다. 2만 3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경찰 관리받던 문제아, 공부카페 ‘스타 강사’ 되다

    경찰 관리받던 문제아, 공부카페 ‘스타 강사’ 되다

    ‘우범 청소년 관리대상’, ‘박치기 왕’, ‘전문대 학점 1.74’ 이 꼬리표들은 한 청년을 사회적 패배자로 낙인 찍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그는 스타 영어강사를 거쳐 긍정의 전도사로 변신했다. 25일 경기도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유근용(30)씨 이야기다. 유씨는 950명의 회원을 보유한 인터넷 공부 카페 ‘어썸 피플’(Awesome People)의 운영자다. 꿈을 잃고 방황하는 학생, 영어 초보자 등이 각자의 이유로 모였다. 이들은 밑바닥에서 일어선 유씨의 인생을 통해 “나도 할 수 있다.”는 긍정의 기운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유씨의 어린 시절은 어두웠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부모가 이혼했고 계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고 했다. “누가 쳐다보면 화를 못 참고 1주일에 서너 번은 싸운 것 같습니다. 작은 키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박치기밖에 없어서 박치기 왕이라고 불렸지요. 폭주족 생활을 하다 경찰 우범자 리스트에도 올랐습니다.” 간신히 전문대에 들어갔지만 그의 폭력적 방황은 계속됐다. 2년간 학점은 4.50 만점에 1.74. 그러나 군대에서 만난 동기가 그의 인생을 바꿨다. 모르는 게 없던 마음씨 따뜻한 명문대 출신이었다. 유씨는 “그동안 살아 온 내 삶을 돌아보며 잘못 살았다는 걸 느꼈다.”고 회상했다. 유씨는 제대후 체육교사를 꿈으로 정했다. 4년제 대학에 편입을 해야 했다. 그때 결정적인 벽이 영어였다. 4년제 대학 편입에 성공한 뒤 그는 영어의 달인을 인생의 1차 목표로 삼았다. 하루 16시간씩 쉴 새 없이 입을 움직였다. 항상 집에서 네 정거장 떨어진 곳에서 버스를 내려 미국 드라마 대사를 주인공이 된 듯 큰소리로 따라했다. “하나 둘 표현을 외우니 외국 사람을 만나도 어느덧 말을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유씨는 서울 강남의 영어학원에서 전문대 출신 토종 영어강사로 나서 명문대생들을 가르쳤다. 보란 듯이 인생역전에 성공한 셈이다. 지금은 학원에서 나와 영어를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소규모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유씨는 “단순히 영어강의만 하는 게 아니라 불량 학생들, 꿈을 잃은 누군가가 자신의 길을 찾는 데 멘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범수기자 bulse46@seoul.co.kr
  •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3)양극화

    [위기의 한국호 해법-전문가에게 묻다] (3)양극화

    ‘승자 독식’, ‘부의 쏠림’ 등으로 표현되는 양극화 문제가 우리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어떤 일자리에 종사하느냐에 따라 소득은 물론 계층까지 나뉘는 현실이다. ‘대기업 귀족’, ‘중소기업 평민’ 등의 표현까지 등장한다. 기업 규모에 따른 양극화부터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 실업 등 위기에 처한 노동의 현실이 대물림되는 현상도 우려된다. 교육은 양극화가 시작되는 진원지이자 악순환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첫 단추로 꼽힌다. ■기업양극화 진단과 제언 기업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복잡한 퍼즐을 짜 맞추는 것과 같다.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어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없다는 것이다. 기업 규모에 따른 양극화가 심화되는 원인부터 살펴야 한다. 14일 김주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1990~2009년 20년간 제조업 출하액은 중소기업이 연평균 10.8% 늘어난 반면 대기업은 1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연평균 부가가치 증가율도 중소기업(9.8%)이 대기업(8.7%)을 앞질렀다. 대기업이 중소기업보다 성과가 더 커서 양극화가 확대됐다는 주장은 편견인 셈이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의 집단적 성과를 뜻하며, 이는 활발한 진입의 결과”라면서 “오히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는 급여 격차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지난 20년간 연평균 급여 증가율은 대기업이 9.7%, 중소기업이 8.3%다. 이에 따라 1990년 대기업 직원의 급여는 중소기업 직원에 비해 1.48배 높았으나, 2009년에는 1.89배로 확대됐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대기업에서 자본집약적 생산방식이 확대되면서 종사자 수가 감소했고,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종사자의 1인당 노동생산성 격차를 확대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어 “무조건적인 창업 지원은 경쟁 심화라는 역효과를 불러오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갑을 관계를 심화시킬 수 있다.”면서 “중소기업이 시장에 접속할 수 있는 통로를 확대하고, 기업의 인력 관리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갑수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중소기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낙인 효과를 없애고 ‘긍정 바이러스’를 퍼뜨리려면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화두인 경제민주화만으로 기업 양극화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업 투명성 강화는 물론, 기업 경쟁력 확대, 중소기업·자영업자 혁신 등 경제 이슈를 세분화한 뒤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천식 KDI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양극화는 경쟁력 선도 부문과 낙후 부문 간 성과 격차가 확대되는 동시에 낙후 부문의 고용 비중이 증가되면서 분배 구조가 악화되는 양상”이라면서 “이는 시장 질서를 바로잡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자영업자들의 자생·혁신 능력을 키워 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잠재적인 공급 능력을 확대시키는 총수요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면서 “10~20년 단위의 ‘내셔널 프로젝트’ 형태로 추진하면 진행 과정에서 경기 진작 효과와 생산기반 강화 효과도 거둘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한기 경실련 경제정책팀장은 “자영업에 무작정 뛰어드는 ‘하드 랜딩’을 차단하려면 스스로 학습 조직화할 수 있도록 하고, 기술·자금 지원 외에 사업 실패에 대비한 사회안전망도 구축해야 한다.”면서 “이렇듯 자영업자 대책은 기업·일자리·민생 차원의 ‘융합정책’ 형태로 제시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교육양극화 진단과 제언 “계층이동 가로막는 가장 큰 벽… 입시중심 교육 해소” “사회계층 간 이동 수단이 되어야 할 교육이 오히려 계층 이동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 양극화의 한 축은 ‘교육 양극화’라 할 수 있다.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대학입시 경쟁을 위한 사교육 격차가 벌어지면서 결과적으로 대학진학과 취업, 소득 격차로까지 이어지는 ‘사회 양극화의 첫 단추’가 바로 교육 양극화라는 것이다. 김영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4일 “서울과 지방 6대 도시 간 서울대 진학률 격차는 지난해 2배가 넘었고 가정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10분위로 나눴을 때 상하위 분위 간 30위권 대학 진학률은 10배 이상 차이가 났다. 이런 경향은 1990년대에 비해 2배 이상 심각해졌다.”고 지적했다. 갈수록 경제적 상류층과 취약계층, 서울과 지방 간 교육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통계치다. 양정호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취약계층의 우수한 인재들이 입시과정을 거치며 ‘체계적으로’ 누락되고 있다.”면서 “진학 격차 확대는 사회통합 측면에서도, 인재양성과 국가경쟁력 확충 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경제적 격차에 따른 교육기회의 불균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선 특수 목적고와 일류 대학 위주의 입시·성적 중심 교육이 해소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이수연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특목고 교육이 영재교육 형식으로 대학교육 입시경쟁의 본산이 되고 있다. 본래의 설립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잠재력 있는 학생들에게 폭넓은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입학사정관제가 오히려 돈이 더 드는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문경민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장은 “사정관제를 겨냥한 족집게 학원교육이 등장하는 등 부유층 자녀를 위한 전형으로 전락한 측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근본적으로는 중·고등학교 학업 성취도 위주의 대학입시에 대한 근본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 연구위원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처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상대평가나 자격고사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현재도 기회균등선발제가 있긴 하지만 사회 형평성 차원에서 지역·계층 균등선발이나 사회적 배려 전형 비율을 확실하게 늘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의 사교육비 경감 대책 및 취약계층 학업지원 대책으로는 EBS 교육방송 강화, 방과후 학교 활성화 등이 제시됐다. 김 연구위원은 “학원 선행학습에 대한 규제도 일정 부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력 차별주의와 이에 따른 취업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장기적인 제도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문 정책위원장은 “공공 부문이 인력 채용 때 블라인드 테스트, 지역할당제 등을 선도하고 민간기업에 관련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대학 간판 우선주의를 철폐해 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文 “특수고용직 4대보험 보장” 安 “대입전형 단순화”

    文 “특수고용직 4대보험 보장” 安 “대입전형 단순화”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는 18일 “특수고용 노동자들도 4대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문 후보는 오전 여의도 동화빌딩 시민캠프에서 가진 ‘특수고용 노동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들에 대한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자리에는 골프장 캐디, 화물차·레미콘기사, 학습지 교사 등 20여명이 참석해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며 불만을 털어놨다. 문 후보는 “근로기준법과 노동관계법을 개정해 참여정부 때보다 더 발전된 보호방안을 강구하겠다.”면서 “우선 가장 시급한 4대 보험 보장부터 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문 후보는 이어 동작구 공군회관에서 열린 민주캠프 노동위원회 출범식에 참석, “2017년까지 최저임금을 근로 평균소득의 50%까지 인상하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보다 연 400시간 이상 많은 국내 노동시간을 단축, 법정노동시간(주 40시간)이 지켜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는 이날 강원도 춘천 호반초등학교에서 학부모들과 간담회를 갖고 “대학 입시 제도와 관련해 전형 방식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수시 전형 등이 너무 복잡하고, (전형 방식이) 수천, 수만 가지나 된다고 한다.”며 “입시에 자율을 너무 (많이) 줘서 사교육이 더 활개치는 불행한 상황이 됐다.”고 진단했다. “어느 정도의 지침을 두고, 좀 더 단순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학교 급식과 관련해서는 “무상교육의 일환으로서 무상급식은 당연하다.”며 “자라나는 아이들까지 낙인효과 때문에 사회적 차별을 느끼게 하는 것은 굉장히 비교육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기자 songsy@seoul.co.kr
  • 한국 조산원 “출산중 아기 죽었다”…입양 수수료 챙기고 호주로 입양

    최근 호주의 한 방송사가 20여년 전 호주로 입양된 한국계 호주인 여성의 충격적인 사연을 보도해 논란이 일고 있다. 입양 수수료를 챙기려고 한국의 한 조산원이 친부모에게 “출산 중 아기가 죽었다.”고 속인 뒤 이 여성을 호주로 입양시켰다는 내용이었다. 호주 정부는 조사에 착수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호주의 민영방송사 SBS는 1988년 경남 거제시의 한 조산원에서 태어난 후 호주로 입양됐다는 에밀리 윌(24·가명)의 사연을 보도했다. 방송에 따르면 윌은 이상 없이 태어났지만, 조산원 측은 친아버지에게 “아이가 사산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부모는 실의에 빠졌지만 비보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는 입양 수수료를 타내기 위해 조산원이 꾸민 거짓말이었다. 아기는 태어난 직후 경남 진주시의 한 입양기관으로 옮겨졌고, 5개월 뒤 호주로 입양됐다. 입양 서류에는 “혼전 관계에서 아이를 낳은 부모가 양육을 포기했다.”고 적혀 있었다. 진실은 지난해 윌이 자신의 두 아이를 위해 한국의 친부모를 찾으면서 뒤늦게 밝혀졌다. 윌은 “(친부모를 모르니) 내 아이들에게 어떤 유전적 질병이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이유로 친부모를 찾아 나섰다. 지난해 23년 만에 친부모와 재회한 윌은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친부모가 출산 당시 혼인한 상태의 부부였고, 아이는 죽은 줄 알고 있었다는 것. 조산원이 거짓으로 사산 통보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호주에서는 비난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호주인 리 푸(25)는 “아무리 어려웠던 시기라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이들의 잃어버린 삶은 누가 책임지느냐.”고 비판했다. 해당 기사에 댓글을 단 호주 네티즌(juyon*******)도 “한국처럼 발전한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면서 “돈이라면 아이도 사고파는 탐욕과 혼외 출생아에 대한 사회적 낙인에서 비롯된 일”이라고 말했다. 호주 법무부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정작 한국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사문서 위조에 해당 된다고 하더라도 공소시효가 7년에 그치기 때문이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뉴스&분석] 삼성 vs 애플 등 글로벌 특허전쟁 치열한데

    [뉴스&분석] 삼성 vs 애플 등 글로벌 특허전쟁 치열한데

    삼성과 애플이 전 세계 9개국에서 벌이고 있는 ‘글로벌 특허 전쟁’을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지식재산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도 특허 출원 건수만 놓고 보면 세계 4~5위의 ‘특허 대국’이지만, 정부와 기업·학계의 전반적인 특허 관리 역량은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1일 서울신문이 최근 발간된 ‘2011 지식재산통계연보’의 심판 종류별 청구 및 처리 건수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특허무효심판(기존 등록 특허의 무효 여부를 다투는 소송)이 청구돼 심사 결정이 진행된 특허 580건 가운데 64.5%인 374건이 무효 판정을 받았다. ‘특허 심판대’에 오른 특허 3건 가운데 2건은 독창성을 인정받지 못해 ‘가짜 특허’로 낙인찍혀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다. 한국의 특허 무효율은 미국(20%대), 일본(50% 안팎) 등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특허 출원 건수가 늘면서 무효율도 이에 비례해 높아지고 있다. 2001년만 해도 45.9%에 머물렀지만, 2009년 71.6%까지 치솟았다. 2010년에도 무효심판이 청구된 특허의 67.3%가 ‘효력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 ‘특허의 수’라는 양적인 면에만 집착해 독창성이 떨어지는 부실 특허를 양산하는 사회적 풍토가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어렵게 얻어낸 특허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산업계의 특허 관리 역량도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실제로 무효 판정을 받은 특허의 30% 정도는 특허 자체의 독창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게 특허 업계의 분석이다. 평소 기업들이 전문인력을 육성해 자신들의 특허에 대해 법원과 특허청, 소송 당사자에게 정확히 설명만 해도 특허가 무효가 되는 불상사는 상당 부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전 세계가 특허로 새로운 보호무역 장벽을 쳐 나가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는 특허 전문인력을 대폭 양성하겠다.”고 구호만 외치고 있는 정부도 문제다. 특허 소송 전문성 확보를 위해 제기돼 온 ‘특허 소송 시 변리사 공동 대리(공동 소 제기)’와 같은 해묵은 이슈조차 변호사들의 반대로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 홍국선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우리보다 기술이 앞선 선진국도 지식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면서 “개발자들이 기술 연구에 의욕을 가질 수 있도록 우리도 제도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류지영·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커버스토리-혼외출생 1만명 시대] 다큐멘터리 영화 ‘미쓰마마’ 출연 김현진·최형숙씨와 유쾌한 수다

    [커버스토리-혼외출생 1만명 시대] 다큐멘터리 영화 ‘미쓰마마’ 출연 김현진·최형숙씨와 유쾌한 수다

    “그런 놈들 북한으로 보내 버려야 돼. 정신교육에 그만한 데가 없다니까.” 양육 미혼모들을 다룬 백연아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쓰마마’에 나오는 네살짜리 아들을 키우는 장지영(31)씨가 ‘비정한 아빠’에게 던지는 뒷담화다. 혼외출생 1만명 시대, 무책임한 남자와의 사랑 없는 결혼 대신 아이와 자신의 삶을 선택한 ‘미쓰마마’들을 만났다. 최형숙(41)씨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준서(7)의 엄마다. “미혼이 아니라 모(母)가 중요하다.”는 최씨는 자기소개를 부탁하는 질문에 아들 이름부터 입에 올린다. 이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은 낙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엄마를 이상하게 여긴다. TV 속 미혼모들의 삶이 늘 모자이크 뒤에 가려져 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러나 엄마라는 게 부끄럽지 않은 최씨는 ‘생얼’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지 않다. “어두운 시사프로그램 대신 버라이어티쇼에 나가고 싶다.”고 농담처럼 말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출산에 대한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니다. 최씨는 오랫동안 연애하던 남자친구와의 사이에서 준서를 임신했다. 임신 사실은 헤어진 뒤에야 알았다. 처음엔 낙태를 고민했다. 못할 짓이다 싶어 낳았지만 가족들은 입양을 강요했다. 마지못해 준서를 시설에 보냈다. 밤새 울다 다음 날 아이를 찾으러 다시 시설에 갔다. 갑작스러운 임신이었지만 억지로 결혼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씨는 “결혼은 의무가 아니라 가치관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치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개인의 몫”이라고 했다. 최씨는 미혼보다는 비혼(非婚·결혼할 의지가 없음)에 가깝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아 생긴 장점도 있다. 최씨에게는 눈치 볼 시댁이 없다. 무조건적인 희생과 집안일을 강요하는 남편도 없다. 최씨는 “월급만 가져다주고 아빠 노릇 다했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무슨 의미냐.”고 되묻는다. 혼외출생을 보는 일반적인 인식은 양면성을 띄고 있다. 통계청이 2009년 발표한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에 따르면 혼전임신을 했을 경우 미혼남성(20~44세)의 21.5%, 미혼여성(20~44세)의 16.6%가 ‘반드시 낳아야 한다’고 답했고, 미혼남성 56.6%, 미혼여성 60.7%는 ‘가능하면 낳아야 한다’고 답했다. 젊은 남녀 모두 혼전임신이라도 출산은 필요하다고 여긴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아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항목에서는 미혼남성의 36.4%, 미혼여성의 36.5%만이 찬성(전적으로 찬성+대체로 찬성)했다. 이미 생긴 아이는 낳는 게 좋지만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는 출산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 인식이 많음을 보여 준다. ●“칙칙한 시사프로 대신 버라이어티쇼 나가고 싶다” 백 감독은 이에 대해 “가부장적 편견과 모순의 집결체가 미혼모에 대한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최씨는 과거 미혼모라는 사실을 수군대는 회사가 싫어, 입사 사흘만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네살짜리 딸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 김현진(29)씨는 “미혼모라면 무조건 문란하고 부도덕하다고 여기는 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장지영(31)씨가 “드라마에 나오는 미혼모는 왜 항상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구제받지? 혼자 애 키우면서 살아가면 안 되나?”라고 불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 사회에서 미혼모는 여전히 구제와 손가락질의 대상이다. 또 다른 미혼모 원미현(가명·35)씨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신했지만 종교적 신념 때문에 지운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냉정하게 낙태수술 예약을 잡더라.”고 8년 전 일을 회상했다. 원씨는 두 번이나 병원을 찾았지만 차마 수술대에 오르지 못했고 현재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 친부는 ‘혼인신고를 하면 죽여버리겠다.’는 통보를 마지막으로 연락을 끊었다. 원씨는 “당당한 싱글맘으로 살려해도 ‘사생아’라고 손가락질 받는 아이를 보며 울 때가 많았다.”고 했다. 이처럼 현실 속의 양육은 오롯이 여성들 몫이다. 통계청이 5년에 한 번씩 발표하는 총가구조사에 따르면 2010년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미혼여성은 16만 6609가구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혼남성 1만 8118가구에 비해 크게 앞섰다. 미혼여성이 13만 3234가구, 미혼남성이 9218가구였던 2005년 조사보다 ‘싱글대디’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긴 했지만 차이는 압도적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식이 사회규범적 의식과 현실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남성들은 ‘나는 낙태하라고 했는데 네가 좋아서 낳은 거니까 책임지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결혼하지 않더라도 양육비를 지원하게 하는 등 법적 책임을 강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양육의 1차적 책임이 어머니에게 있다는 보이지 않는 규범이 강하다.”면서 “모유 수유 등의 측면에서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운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혼외출생에 대한 편견은 미혼모 자신에게 그치지 않는다. 미혼모의 부모와 자녀도 똑같은 편견에 시달린다. 김씨는 “부도덕한 미혼모를 만든 부모도 똑같다고 여기는 문화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씨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최씨의 아버지도 처음에는 “연을 끊자.”고 했다. 경상도 출신인 최씨의 아버지는 다음 날 변기통을 부여잡고 남몰래 펑펑 울었다. 김씨는 “솔직히 엄마는 평생 내가 미혼모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함께해 주는 건 가족”이라고 덧붙였다. 최씨도 “출산을 반대하던 오빠가 지금은 ‘내가 왜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미혼모부터 검색해 보는지 모르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엄마, 엄마는 왜 거북이처럼 느리게 일해?” 여권이 신장됐다고 하지만 미혼모들이 사회인으로 홀로 서기를 하기란 여전히 벅찬 게 현실이다. 정부는 가족관계법·한부모가족지원법 등에 따라 혼외출생자들을 지원하고는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하면 양육 미혼모의 54.7%는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라 기초생활수급비를 지원받고 있다. 자녀가 18개월 미만일 경우 월평균 63만원을, 36개월 이상은 32만원을 받는다. 그러나 취업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미혼모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임신, 출산과 관계없이 직장생활을 지속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퇴사 등 불이익을 겪는다. 200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미혼모의 95%가 ‘임신 이후 직장을 그만두었다.’고 답했다. 이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미혼모라는 이유로 채용에서의 불이익도 크다고 적었다. 여성가족부는 ‘미혼임산부 및 미혼모에 대한 직장에서의 차별금지’를 추진 중이다. 비양육 미혼부에게 양육비를 청구하는 법안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최씨는 미혼모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단체인 한국미혼모가족협회에서 대외정책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김씨는 비슷한 처지의 양육 미혼모들이 함께 만든 사회적 기업 ‘용감한 컵케이크’에서 제빵 일을 돕다 얼마 전 그만뒀다. 최씨는 직장 탓에 집에 늦게 돌아오는 날도 많다. 준서는 그런 엄마를 두고 “왜 안 놀아주느냐.”며 울먹인다. 사회적 지원이 부실한 상황에서 미혼모가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다큐멘터리 속에서 울먹이던 준서는 “엄마는 왜 거북이처럼 느리게 일하냐.”고 묻는다. “빨리 일 끝내고 와서 놀아달라.”며 보채는 것이다.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김씨는 용감한 컵케이크를 떠나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아름다운 재단에 창업 지원 자금을 신청했다 지난 4일 탈락의 고배를 마신 김씨는 “혼자 설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감이 좀 떨어지긴 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물론 포기하지는 않는다. 김씨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입을 수 있는 커플룩을 판매하는 의류 매장을 운영할 생각에 밤잠을 설친다. 양육 미혼모뿐만 아니라 사실혼이나 동거관계에 있는 신가족들도 결혼을 기준으로 짜여진 사회 제도 속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사실혼·동거 관계 역시 각종 사회보장제도를 비롯, 세제혜택과 상속 등 경제적인 부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신혼부부 특별청약을 실시하는 보금자리주택은 혼인신고를 한 가족에게만 청약자격이 주어진다. 공공임대주택의 경우도 다자녀가구, 3세대 가구 등 대가족에게 우선권을 준다. 사실혼 관계라 해도 연말정산 소득공제에서도 부양가족에 대한 인적공제가 전혀 제공되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편견과 차별로 엄격하게 대하기보다는 생활과 양육에 필요한 지원을 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편입시키는 한편 다양한 가족 형태를 아우를 수 있는 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사회연구실장은 “정부나 기성세대들은 ‘그렇게까지 지원해야 하나.’고 되묻는다.”면서 “조장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변화의 산물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고 보호할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럽과 북미 선진국은 혼외출생, 이혼, 비혼(非婚) 등 아이를 혼자 키우는 사람이 많아지자 이들을 다양한 가족의 형태로 받아들여 적극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프랑스는 혼외출생이 절반 이상으로 늘어나자 2006년부터 법적부부의 출산과 혼외출산을 구별하는 규정을 폐지했다. 자녀를 양육하는 자체로 가족수당, 양육수당을 받고 출산·육아휴직 등의 혜택을 차별 없이 받는다. 변화순 팸라이프가정연구소 소장은 “프랑스는 정식부부보다 혼외출생에 대한 지원·혜택이 더 잘돼 있다.”면서 “그래서 결혼보다 동거가 급증하는 부작용이 초래됐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영국은 아동부양비와 양육수당, 교육유지수당 등 다양한 형태의 보조금과 바우처를 제공하고 있다. 미혼모들에게 주택·건강·부모교육·고용훈련 등을 제공하는 슈어스타트(Sure Start)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독일도 최저생계비·부모수당을 지급하며 모성보호법 등에 근거해 10대 미혼모의 교육권까지 철저히 보장하고 있다. 조은지·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시민 알 권리” vs “낙인효과로 재범죄”

    경남 통영시에서 발생한 초등학생 살인사건 피의자의 성범죄 전과가 드러나면서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 공개 소급 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2006년 관련 법안이 마련되기 전에 판결이 난 성범죄자는 신상공개제도의 소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성범죄자에 대한 신원을 전면 공개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막아야 한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신상 공개 대상을 확대하고 적용 대상을 소급하는 것은 위헌일 뿐 아니라 효과도 미지수”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발단은 통영 초등 4학년 학생의 살인 피의자 김점덕(44)씨가 성폭력 전과가 있음에도 신상공개제도를 비켜 간 것으로 밝혀지면서 비롯됐다. 2005년 실형을 선고받은 김씨는 이후 만들어진 성범죄 신상공개제도를 피해 갈 수 있었다.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 신상 공개는 2006년, 성인 대상의 경우 지난해 4월 이후 확정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신상 공개 소급을 찬성하는 쪽은 주변에 성범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경각심이 높아져 범죄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유치원생 딸을 둔 직장인 김모(38)씨는 “통영 사건도 주민들이 자신들 주변에 성범죄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좀 더 조심해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면서 “성범죄자의 인권이 어린아이들의 안전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직장인 장모(31·여)씨도 “성범죄는 다른 범죄보다 재범률이 높다. 언제 범죄를 저질렀는지보다 시민의 안전이 더 중요한 것 아니냐.”면서 “무한정은 어렵더라도 최소 5~10년 정도는 소급하는 것이 맞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상 공개 제도의 범죄 예방 효과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공개 대상을 확대하는 것은 불안감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반대 논리도 만만찮다. 김영희 충북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성범죄자가 재활과 치료 기회를 놓칠 수 있어 사회적 논의가 더 필요하다.”면서 “또 신상 공개가 낙인 효과로 이어지면 범죄를 반복할 수도 있어 범죄 예방 효과도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김두나 한국성폭력상담소 활동가도 “주변에 성범죄자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더라도 막상 취할 수 있는 예방 조치가 별로 없다.”면서 “오히려 불안감과 공포심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판결이 난 사건에 대해 신상 공개를 소급 적용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있고 또 범죄 예방에 뚜렷한 효과가 있다는 증거도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보통 아동 성폭행 사건 직후 관련 법을 소급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지만 시간이 지난 뒤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현재 시스템으로 충분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며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김동현·이영준기자 moses@seoul.co.kr
  • 성인 30% 정신 병력… 상담만 해도 ‘주홍글씨’

    성인 30% 정신 병력… 상담만 해도 ‘주홍글씨’

    정부의 정신질환자 범위 축소는 국민정신건강의 중요성과 함께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뒤늦게나마 인식한 데 따른 현실적인 조치다. 1995년 제정한 정신보건법을 17년 만에 전면 개정에 나선 것이다. 통계상으로는 우울증을 포함, 국내 성인의 30%가량이 정신질환 병력을 갖고 있다. 또 3.2%는 자살을 시도할 정도다. 그러나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부담, 불합리한 대우 탓에 의료 서비스조차 제대로 받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정신질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 이상 성인 가운데 519만명이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경험했다. 우울증 등 주요 정신질환 유병률도 2006년 12.6%에서 지난해 14.4%로 늘었다. 공황장애·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 불안장애 경험자는 245만명, 우울증·조울증 등 기분장애 경험자는 130만명에 달했다. 알코올 사용장애는 159만명, 인터넷 중독은 233만명, 도박중독은 360만명으로 추산됐다. 악화되는 정신건강은 자살률 급증으로 이어졌다. 국내 10년간 자살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3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복지부 관계자는 “자살 원인 중 정신적 문제가 29.5%를 차지할 정도로 정신질환과 자살 간에는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신질환 경험자 가운데 정신과 전문의나 정신건강 전문가로부터 전문적인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사람은 15.3%에 불과하다. 미국(39.2%), 호주(34.9%), 뉴질랜드(38.9%) 등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정신질환 증상이 처음 나타난 때부터 최초로 치료가 이뤄지는 기간도 1.61년이나 걸렸다. 병증은 만성화되고 치료 비용은 증가하는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환자의 경중도를 고려하지 않고 정신과 의사와 단순한 상담만 해도 정신질환자로 규정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환자들이 상담과 진료를 피하는 이유다. 의료법·국가공무원법·도로교통법 등 70여개 법률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자격취득·임용·고용 등에 제한을 두고 있고, 민간보험 가입도 제한되고 있다.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의사나 약사, 공무원 등의 길을 막아놓은 것이다. 사회적 차별이다. 복지부는 종합대책을 통해 정신질환자를 ▲상담만으로 정상생활이 가능한 상태 ▲상담과 복약 치료가 필요한 상태 ▲입원치료가 필요한 상태 등 3단계로 구분했다. 사회활동에 지장이 없는 경증 환자는 정신보건법상 정신질환자 개념에서 제외해 사회적 차별로부터 적극 보호하기로 한 것이다. 한계가 없지 않다. 상담했을 때만 질환명을 적지 않고 ‘일반질환’으로 표기할 뿐 상담을 받은 뒤 일단 가벼운 약을 처방받을 경우, 기록에 남기 때문이다. 우울증으로 정신과를 찾은 이모(35·여)씨는 “상담과 함께 약을 처방받았는데 제도가 바뀌더라도 내 사례는 여전히 기록에 남는다.”면서 “1시간 상담에 10만원 가까이 하는데 상담만을 위해 정신과를 찾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Weekly Health Issue] 뇌전증

    [Weekly Health Issue] 뇌전증

    잠을 자다가,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빛과 마주한 순간, 그도 아니면 멀쩡하게 자기 일을 하다가 느닺없이 특정 신체부위가 뒤틀리며 발작을 일으킨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심하지 않더라도 당사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소규모 발작이 이어지는 경우도 정도의 차이일 뿐 주변을 당황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간질’이라며 신내림 정도로 여겨왔던 질환 ‘뇌전증’이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발작에 대해 근거 없이 혐오와 기피의 정서를 키워왔다. 멀쩡한 사람을 두고 귀신이 씌었다거나 속되게는 ‘지랄병’이라며 기피하고, 경원했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의학은 뇌전증이 지랄병에 대한 막연한 인식처럼 갈피 모를 병이거나 잡귀가 들어 나타나는 발광이 아니라 뇌의 전기적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경련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뇌전증을 두고 대한뇌전증학회 회장인 김흥동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교수와 얘기를 나눴다. ●뇌전증이란 어떤 질환인가. 일반인들에게 ‘경기’, ‘발작’ 그리고 ‘간질’(뇌전증) 등의 용어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같은 뜻을 가진 말인지, 아니면 뜻이 다른지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뇌전증이라는 말을 들으면 정신 질환으로 잘못 알거나, 치료가 어려운 불치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사코 병을 숨기고 치료조차 하지 않은 채 방치한 것이다. 뇌전증이란 ‘뇌에 전류가 흐른다.’는 뜻으로, 일시적으로 뇌의 신경세포에서 비정상적인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몸이 굳고, 떨리거나, 의식을 잃거나, 이상 감각 등의 증상이 반복되는 질환이다. ●특히, 뇌전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뇌전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병 가운데 하나로,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나 카이사르, 나폴레옹, 도스토옙스키, 고흐 등도 모두 뇌전증 환자였다. 하지만 뇌전증은 잘못된 정보와 인식 때문에 질병과 관련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가장 심한 질환이기도 하다. 이처럼 뇌전증에 대한 오해가 심화되면서 진단과 치료를 기피하게 됐고, 이런 가운데서도 병원을 찾아 잘 치료받고 있는 많은 환자들도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다. ●뇌전증의 유병률은 어떤가. 우리나라 국민 100명당 약 1∼1.5명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다. 또 연간 새로운 환자 발생률이 유방암과 비슷할 정도로 흔한 만성 뇌질환이다. ●원인은 다 밝혀져 있나. 원인은 무수히 많으나 연령대에 따라 주요 원인에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환자별로 다를 수 있는 원인을 찾아 교정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전증의 원인은 크게 봐 뇌가 형성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고, 교통사고나 출생 당시의 뇌 손상이나 뇌염 등에 의한 뇌손상, 해마경화증이나 알코올중독, 뇌종양, 뇌혈관기형, 유전적 요인 등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원인이 다양한 탓에 일부 환자의 경우 특정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증상을 상세히 짚어달라. 일반인들이 주로 알고 있는 증세의 양상은 눈을 치뜨고, 팔다리가 뒤틀리고, 입에 거품을 무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대발작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대발작보다 발작의 양상이 소소한 부분발작이 훨씬 많다. 부분발작은 뇌의 어느 부분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환자 본인만 아는 전조증상이나 비정상적인 느낌 등이 있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이 관찰하는 시각에서 보자면, 불러도 반응이 없거나 반복적으로 입맛을 다시는 행동 등이 모두 뇌전증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에 해당된다. ●치료는 어떻게 하며, 각 치료법의 예후는 어떤가. 뇌전증은 치료하지 않아도 호전될 수 있는 양성부터 정상 발달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뇌전증성 뇌증까지 다양한 종류로 구분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치료도 달리 하는 게 일반적이다. 치료는 약물치료와 약물외 치료로 구분할 수 있다. 약물치료는 모든 뇌전증 치료의 첫 단계로, 전체 뇌전증의 약 70%는 이 방법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나머지 30%의 난치성 뇌전증은 점점 유용성이 확대되고 있는 수술적 치료나 케톤성 식이요법, 미주신경 자극술 등을 적용해 치료한다. ●뇌전증 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잘못된 인식이 아직도 상존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국내의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 약 50%가 질환으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취업할 때 뇌전증 환자임을 알린 경우 약 60%가 취업을 거부당했으며, 취업을 하더라도 40%는 발작 증세 때문에 해고됐다. 이런 이유로 일반인에 비해 취업률은 절반에도 못 미쳐 실업률은 1.7배, 미혼율은 2.6배나 높다. 사회적 참여에 있어 심각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교육시스템 구축 및 연구 지원에 적극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뇌전증의 날을 제정, 매년 실효성 있는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환자 80%가 자신의 질환을 밝히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고 답할 정도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뇌전증과 관련한 정책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우선, 뇌전증을 바로 알리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 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치료에 장기간이 걸리고, 비용 부담이 큰 소아뇌전증과 난치성 뇌전증에 대한 산정특례 적용, 뇌전증 수술에 소요되는 전극 비용의 수가 적용 등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절실하다. 장애판정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뇌전증에 대한 지금의 장애판정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 제한적이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감안, 뇌전증에 대해 추가로 장애 6급을 적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20대女, 아픈 과거 회사에 잘못 얘기했다가…

    20대女, 아픈 과거 회사에 잘못 얘기했다가…

    김흥동 교수는 안타까운 환자 사례를 거론했다. 유정아(여·28)씨는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했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어려서부터 앓아온 뇌전증, 정확하게는 뇌전증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문제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어린이집 실습에 나선 유씨는 병원 치료 때문에 자신이 뇌전증 환자라는 사실을 원장에게 털어놨다가 설명할 기회도 얻지 못한 채 실습 현장에서 퇴출되는 아픔을 겪었다. 질환의 고통보다 큰 세상의 벽을 그때 처음 느꼈다. 그는 치료에 적극적이었다. 덕분에 어릴 때보다 증세가 많이 호전돼 짧은 순간에 얼굴 근육이 조금 떨리는 경련 정도가 고작이었다. 발작이랄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런 그가 어린이집 사태를 겪은 뒤부터 달라졌다. 유씨는 “하고 싶은 일을 못할 수도 있다는 절망감을 느꼈고, 이 때문에 모든 걸 내려놓고 싶은 생각에 눈물을 쏟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그는 천성이 밝았다.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런 노력 끝에 대학 졸업과 함께 어린이집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가르치는 일이 생각과 달리 힘들었지만 그보다 평소 꿈꾸던 일이어서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물론 일말의 불안감까지 떨치지는 못했다. 잠이 부족하거나 피곤하면 예기치 못한 경련이 발생할 수 있어서였다. 이런 사실을 주변에 미리 알리는 게 도리다 싶어 용기를 내 원장에게 뇌전증 환자임을 알렸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해고였다. 원장은 그에게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죄목’을 붙여 해고하고 말았다. 선입견과 편견만으로 생애 첫 직장에서 그를 내쫓은 것. 그에게 남겨진 상처는 컸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Weekly Health Issue] 뇌전증…“뇌의 전기적 이상에 의한 경련… 발작 편견 버려야” 잠을 자다가, 아니면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통해 비치는 햇빛과 마주한 순간, 그도 아니면 멀쩡하게 자기 일을 하다가 느닺없이 특정 신체부위가 뒤틀리며 발작을 일으킨다면 놀라지 않을 사람이 없다. 심하지 않더라도 당사자를 곤혹스럽게 하는 소규모 발작이 이어지는 경우도 정도의 차이일 뿐 주변을 당황스럽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바로 ‘간질’이라며 신내림 정도로 여겨왔던 질환 ‘뇌전증’이다. 우리는 문화적으로 발작에 대해 근거 없이 혐오와 기피의 정서를 키워왔다. 멀쩡한 사람을 두고 귀신이 씌었다거나 속되게는 ‘지랄병’이라며 기피하고, 경원했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무지의 소산일 뿐이다. 의학은 뇌전증이 지랄병에 대한 막연한 인식처럼 갈피 모를 병이거나 잡귀가 들어 나타나는 발광이 아니라 뇌의 전기적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경련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런 뇌전증을 두고 대한뇌전증학회 회장인 김흥동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소아신경과 교수와 얘기를 나눴다. ●뇌전증이란 어떤 질환인가. 일반인들에게 ‘경기’, ‘발작’ 그리고 ‘간질’(뇌전증) 등의 용어는 비교적 익숙하지만 이런 용어들이 같은 뜻을 가진 말인지, 아니면 뜻이 다른지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뇌전증이라는 말을 들으면 정신 질환으로 잘못 알거나, 치료가 어려운 불치병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사코 병을 숨기고 치료조차 하지 않은 채 방치한 것이다. 뇌전증이란 ‘뇌에 전류가 흐른다.’는 뜻으로, 일시적으로 뇌의 신경세포에서 비정상적인 전기적 신호가 발생하고, 이 때문에 몸이 굳고, 떨리거나, 의식을 잃거나, 이상 감각 등의 증상이 반복되는 질환이다. ●특히, 뇌전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뇌전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질병 가운데 하나로, 우리가 잘 아는 소크라테스나 카이사르, 나폴레옹, 도스토옙스키, 고흐 등도 모두 뇌전증 환자였다. 하지만 뇌전증은 잘못된 정보와 인식 때문에 질병과 관련한 사회적 낙인과 차별이 가장 심한 질환이기도 하다. 이처럼 뇌전증에 대한 오해가 심화되면서 진단과 치료를 기피하게 됐고, 이런 가운데서도 병원을 찾아 잘 치료받고 있는 많은 환자들도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을 받고 있다. ●뇌전증의 유병률은 어떤가. 우리나라 국민 100명당 약 1∼1.5명이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다. 또 연간 새로운 환자 발생률이 유방암과 비슷할 정도로 흔한 만성 뇌질환이다. ●원인은 다 밝혀져 있나. 원인은 무수히 많으나 연령대에 따라 주요 원인에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환자별로 다를 수 있는 원인을 찾아 교정해 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뇌전증의 원인은 크게 봐 뇌가 형성되는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고, 교통사고나 출생 당시의 뇌 손상이나 뇌염 등에 의한 뇌손상, 해마경화증이나 알코올중독, 뇌종양, 뇌혈관기형, 유전적 요인 등이 원인인 경우도 있다. 이처럼 원인이 다양한 탓에 일부 환자의 경우 특정 원인을 파악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증상을 상세히 짚어달라. 일반인들이 주로 알고 있는 증세의 양상은 눈을 치뜨고, 팔다리가 뒤틀리고, 입에 거품을 무는 등의 증상을 보이는 대발작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대발작보다 발작의 양상이 소소한 부분발작이 훨씬 많다. 부분발작은 뇌의 어느 부분에서 발생하느냐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환자 본인만 아는 전조증상이나 비정상적인 느낌 등이 있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이 관찰하는 시각에서 보자면, 불러도 반응이 없거나 반복적으로 입맛을 다시는 행동 등이 모두 뇌전증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에 해당된다. ●치료는 어떻게 하며, 각 치료법의 예후는 어떤가. 뇌전증은 치료하지 않아도 호전될 수 있는 양성부터 정상 발달을 황폐화시킬 수 있는 뇌전증성 뇌증까지 다양한 종류로 구분할 수 있고, 이에 따라 치료도 달리 하는 게 일반적이다. 치료는 약물치료와 약물외 치료로 구분할 수 있다. 약물치료는 모든 뇌전증 치료의 첫 단계로, 전체 뇌전증의 약 70%는 이 방법으로 충분히 조절할 수 있다. 약물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 나머지 30%의 난치성 뇌전증은 점점 유용성이 확대되고 있는 수술적 치료나 케톤성 식이요법, 미주신경 자극술 등을 적용해 치료한다. ●뇌전증 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이나 잘못된 인식이 아직도 상존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국내의 한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뇌전증 환자 약 50%가 질환으로 인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취업할 때 뇌전증 환자임을 알린 경우 약 60%가 취업을 거부당했으며, 취업을 하더라도 40%는 발작 증세 때문에 해고됐다. 이런 이유로 일반인에 비해 취업률은 절반에도 못 미쳐 실업률은 1.7배, 미혼율은 2.6배나 높다. 사회적 참여에 있어 심각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유럽에서는 교육시스템 구축 및 연구 지원에 적극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 인식 개선을 위해 뇌전증의 날을 제정, 매년 실효성 있는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 환자 80%가 자신의 질환을 밝히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고 답할 정도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뇌전증과 관련한 정책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우선, 뇌전증을 바로 알리기 위한 캠페인과 교육 등을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또 치료에 장기간이 걸리고, 비용 부담이 큰 소아뇌전증과 난치성 뇌전증에 대한 산정특례 적용, 뇌전증 수술에 소요되는 전극 비용의 수가 적용 등 실효성 있는 지원책이 절실하다. 장애판정의 문제도 지적하고 싶다. 뇌전증에 대한 지금의 장애판정 기준이 너무 엄격하고 제한적이다. 환자와 가족의 고통을 감안, 뇌전증에 대해 추가로 장애 6급을 적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심재억 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저축은 환상” 美 저널리스트 워킹푸어 체험기

    일의 시작은 단순했다. 생물학 박사이자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잡지 편집장과 대중문화에 관한 글을 논의하다가 빈곤이라는 화두에 이르렀다. ‘워킹푸어(working poor)들은 시간당 6~7달러를 받으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에 다다랐고 에런라이크는 분명 ‘누군가’ 옛날식으로 체험 취재를 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가 생각한 ‘누군가’는 의욕에 찬 신참기자였으나, 편집장은 에런라이크를 지목했다. 고민 끝에 그는 ‘사회적 지위’에 대한 책임감으로 굉장히 복잡한 3년을 선택했다. ‘노동의 배신’(최희봉 옮김, 부키 펴냄)은 그 3년의 기록이다. 계획을 시작한 1998년 여름, 저자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자신의 능력에 의존해 일자리를 구하지 않고, 무조건 임금이 많은 곳을 찾는 것이다. 자신의 신분을 꾸미지 않는 것도 있다. 원칙은 무너졌다. 첫 일자리를 찾을 때부터 저자는 ‘고학력자’가 아니라 ‘넘치는 노동력 중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직장을 떠나면서 신분을 밝혀봤자 동료들은 “그럼 다음 주 저녁 근무에 안 나오는 거야?”라고 반응한다. 첫 직장은 플로리다 키웨스트에 있는 호텔 식당이었다. 팁을 받는다는 이유로 시급은 2.43달러였다. 쓸고, 닦고, 치우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오후 2시부터 8시간 넘게 일해도, 집세 600달러와 식료품·기름값 400달러를 대기가 벅차다. 청소용역회사에서는 육체노동이 더 세졌다. 수많은 창이 달린 대저택을 청소하면서 부와 삶의 불균형을 뼈저리게 느꼈다. 온몸을 뒤덮는 가려움증을 겪어도 쉴 수 없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어서다. 마지막 일자리인 대형 할인점도 마찬가지였다. 절약이나 저축은 환상이다. 부엌 있는 집을 구하기 어려운 탓에 패스트푸드에 돈을 쓸 수밖에 없고, 아파도 참거나 값싼 진통제나 술에 의존한다. 그러다가 큰 병이 생기면 의료보험이 없어 병원비가 더 들어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책이 처음 나온 2001년, 빈곤의 삶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다. 책은 150만부가 팔렸고 예일대 등 600여개 대학의 필독서가 되면서 현실을 바꾸는 기폭제가 됐다. 조금씩 최저임금이 인상되면서 지금은 시간당 7.25달러로 올라섰다. 그러나 저자는 더 높은 최저임금, 보편적 의료 혜택 등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본다. “10년이 지난 지금, 바람은 더 간소한 동시에 더 성취하기 어렵게 됐다.”고 전제하면서 인식 확장과 행동 변화를 요구한다. 공공주택 문을 닫으면서 노숙을 범법행위로 규정하고, 은행 대출을 유도해 빚더미에 앉히면서 채무불이행자로 낙인찍는 현실은 곤란하다. 적어도 아주 기본적인 원칙,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빈곤층의 현실이 한국과 닮아 있다는 점에서, 또 저자의 제안이 추상적이지만 오히려 더 근본적이라는 점에서 책의 가치가 빛난다. 1만 48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