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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선 서울시의원 “지역아동센터 운영형태와 관계없이 단일임금체계 도입돼야”

    최선 서울시의원 “지역아동센터 운영형태와 관계없이 단일임금체계 도입돼야”

    개인·법인·협동조합 등 운영형태와 관계없이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라면우리동네키움센터 종사자와 같은 수준으로 단일임금제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최선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강북구 제3선거구)은 15일 진행된 제 295회 서울시의회 정례회 3차 본회의에 참석해 지역아동센터 운영형태와 관계없이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에게도 단일임금체계가 도입돼야 한다는 내용의 시정질문을 진행했다. 2004년 법제화한 지역아동센터는 2019년 11월 기준 서울 관내 총 436개가 운영 중이며, 동 시설에 근무 중인 종사자는 총 1,068명이고, 이용 아동 수는 12,955명이다. 지역아동센터에 대한 운영비 지원은 설치신고 후 1년 이상 된 운영시설에 한하며, 2019년 기준, 서울시가 지원하고 있는 시설은 총 436개소다. 정부가 2011년부터 지역아동센터 취약계층 아동 비율을 60% 이상이 되도록 규정하면서 이용 아동의 대부분은 저소득, 장애인 가구 등 취약계층이 차지한다. 올해 기준 이 비율은 80% 이상까지 높아졌다. 이로 인해 센터를 이용하는 아동에 대해 사회적 낙인효과가 유발된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실정이다. 이와 달리 우리동네 키움센터는 일반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의 만 6∼12세 초등학생 자녀를 방과 후, 방학, 휴일 등에 돌봐준다. 서울시의 경우 2022년까지 키움센터를 400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현재 지역아동센터는 일정요건만 갖추면 허가를 해주는 방식으로 민간/개인이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며,「아동복지법」에 따른 아동복지시설에 해당하지만, 그동안 타 시설들에 비해 종사자에 대한 처우가 타 상대적으로 열악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현재 서울시 관할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별 현황을 살펴보면, 개인 운영자의 비율이 59.2%로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2020년 예산안에서 국비지원시설의 인건비를 공무원 대비 95%수준에 맞춘 서울시 사회복지시설 단일임금체계로의 적용을 단계적으로 반영했고(2020년 95%, 2021년 100% 적용) 지역아동센터 역시 적용대상에 포함했다. 다만 단일임금체계 적용에 있어 공공성 확보가 선행된 법인시설에 대해서만 우선 적용한다는 원칙으로, 법인·공구립·사회적협동조합 시설은 우선적용 대상이지만 개인․단체 시설은 단일임금체계를 적용하지 않고 처우개선비로 추가 지원하도록 조치한 탓에 아직 법인화되지 않은 지역아동센터의 종사자들은 여전히 처우개선을 호소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선 의원은 이날 본회의에 출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강북구 송천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35인 시설로 인근에 노래방이 있어 아동복지법에 따라 (시설 50미터 주위에 청소년 출입, 고용금지업소 불가) 법인화 추진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이어“이 센터는 현재 법인화 시설 기준을 맞추기 위해 제3의 장소를 일주일간 찾아보았으나 보증금과 월세의 압박으로 쉽지 않다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개인시설도 법인시설과 동일하게 공적돌봄기관으로서 심화평가와 지자체 정기점검을 통해 운영의 체계성과 회계의 투명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운영지침과 규정을 성실히 따르고 있다”라며, “위 사례처럼 법인시설로 전환하고자 하고 있으나 조건을 맞추기 어렵고, 제3의 공간으로 이전할 경우 그 동안의 시설비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한시적으로 50미터 내의 유해시설로 인해 법인화가 어려운 센터들의 경우에는 법인 시설 변경이 가능하도록 서울시 차원에서 대안을 마련할 수 없는가”라고 질의했다. 이에 박원순 시장은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말씀하신 시설 주위 노래방 운영 금지 등 법인운영 입지 조건 완화 등에 대해 이미 중앙정부에 건의한 상황” 이라며“아직 법인화가 안 된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서울시에서 컨설팅 등을 실시하여 법인화 추진과정의 애로사항을 해소할 계획”이라고 답변했다. 마지막으로 최 의원은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의 처우가 타 사회복지시설 종사자들에 비해 지금처럼 낮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낙인은 해소될 수 없을 것”이라며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소속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서울시 차원에서 노력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11년 만에 다시 출근… ‘제2의 무쏘’ 만들 생각에 떨려

    쌍용자동차 마지막 복직 대상자 35명이 지난 4일 일터로 돌아갔다. 2009년 쌍용차가 2646명을 구조조정한 지 10년 11개월 만이다. 이들은 두 달 교육을 거쳐 7월 1일부터 현장에 배치된다. 길고 지난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복직 투쟁은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우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지난 14일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5월에 복직한 조문경(57), 김성국(52), 이민영(44)씨를 만나 그간의 소회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었다.복직자들은 교육을 받으면서 현장에 적응하려고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02년 쌍용차에 입사한 이씨는 “빨리 현장에 돌아가 차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차량 정비사로 일하다 1994년 입사한 조씨는 “처음 회사 들어갔을 때는 주어진 일을 무엇이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항상 있었는데 현장을 11년 동안 떠나 있었으니, 작업 속도나 과정을 제대로 따라갈 수 있을지 좀 두렵다”고 말했다. 복직 노동자 교육을 맡은 강사가 이들에게 처음 던진 질문은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냐”였다. 건설 현장 일용직이나 자영업으로 입에 풀칠하느라 바빴다는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11년의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김씨는 “충남 천안, 경기 안성 등에서 노가다(막일) 현장도 뛰고,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하는 일도 했다”면서 “시설관리공단에서 일할 때도 있었는데 잠을 재워 주고 4대보험도 나와서 좋았다”고 기억했다. 이씨는 “일하느라 전국에서 제주 빼고는 다 가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회적 낙인 탓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웠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라는 타이틀은 주홍글씨처럼 이들을 따라다녔다.조씨는 “쌍용차에 다녔다는 이력을 알고 나면 그만두라고 하더라. 그러니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막노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대출금을 갚기도 막막했다. 적금이나 애들 앞으로 들어 둔 얼마 안 되는 보험까지 모조리 해약했다”고 회상했다. 2009년 4월 8일 회사가 인력 감축을 발표할 때만 해도 해고는 실감나지 않는 단어였다. 하지만 전체 인원(7130명)의 36%인 2646명이 쫓겨날 것이라는 얘기가 돌자 불안감이 엄습했다. “너 아니면 내가 해고”될 판이었다. 어느 날 해고를 알리는 ‘노란 봉투’가 날아왔다. 조씨는 “사장이 주는 상도 받고 성실히 일했는데, 나까지 잘리진 않겠지 생각했었다”면서 “상 받은 사람들도 한꺼번에 잘렸다”고 말했다. 이씨도 해고 통지를 받자마자 “‘내가 왜 대상이지?’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함께 공장에서 일하던 김씨의 동생은 “형 거야”라면서 노란 봉투를 건넸다. 그의 동생 역시 일자리를 잃었다.날벼락 같은, 납득할 수 없는 해고를 통보받은 1000여명의 노동자들은 평택 공장에서 77일간 정리해고를 반대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보다는 물리적인 충돌만 부각됐다”고 기억했다. 당시 시위에 투입된 경찰특공대는 크레인을 타고 공장 옥상에 진입해 방패와 진압봉을 휘둘렀고 수십명이 크게 다쳤다. 경찰은 유독성 최루액과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와 헬기까지 동원하는 등 전쟁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경하게 대응했다. 경찰이 쌍용차 파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50명의 ‘인터넷 대응팀’을 운영하고 조현오 전 경기지방경찰청장이 강희락 당시 경찰청장의 반대에도 직접 청와대 고용노동 담당 비서관에게 전화해 공장 진입을 승인받은 사실 등은 2018년에야 밝혀진 사실이다.해고 노동자들은 경찰의 강제 진압이 남긴 트라우마와 싸워야 했다. 조씨는 경찰에 두들겨 맞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여러 번 봤다. 그는 “세어 보니까 27대를 맞았다. 원 없이 맞았다”면서 “뒤쪽으로 끌려가서 니킥으로 가슴을 맞기도 했다”고 했다. 이씨는 “첫날에는 정신이 없으니 아픈 줄 몰랐는데, 다음날부터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고 했다. 김씨는 위독한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파업 현장에서 일찍 나왔지만, 헬기 진압 장면을 목격한 뒤 불면증에 시달렸다. 그는 “집에서 공장이 보이는데 헬기 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면서 “유서를 쓸 생각도 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했다. 2009년 정리해고 이후 해고자와 가족 30명이 목숨을 잃었다. 김승섭 교수팀의 ‘2015 함께 살자 희망 연구’에 따르면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50.5%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렸다. 걸프전에서 포로로 잡혔던 미군(48.0%)보다 높은 비율이다. 2018년 발표된 쌍용차 해고자 배우자 실태조사에서는 해고자 배우자(28명)의 절반인 12명(48.0%)가 ‘지난 1년간 진지하게 자살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김 교수 연구팀은 “급격한 사회경제적 지위의 하락과 사회적 지지의 단절 속에서 해고자는 모든 부담을 신체적·정신적으로 감내했다”면서 “그들이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국가와 정책 입안자의 책무이자 역할”이라고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이 정부 고용센터로부터 구직 과정에서 실질적 도움을 받은 경우는 9.1%에 불과했고, 60%는 친구나 지인,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경찰은 2019년 강제 진압과 관련해 노조에 사과했지만 당시 노동자들이 새총으로 쏜 너트와 볼트에 기중기·헬기 등이 파손됐다며 해고 노동자와 노조에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철회하지 않았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노조 지부장은 “폭력 진압에 대한 사과는 받았지만 지연 이자를 포함해 100억원에 달하는 손배·가압류 문제를 같이 처리하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면서 “2016년 (경찰의 손을 들어 준) 2심 판결이 내려진 뒤에 2018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가 나온 만큼 대법에서 빠르게 파기 환송을 해 법리를 다퉈야 한다”고 말했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제자리로 돌아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70m 높이 굴뚝에서 89일간 머물고, 두 팔꿈치, 양 무릎, 이마까지 바닥에 대는 오체투지 행진도 했다. 노력 끝에 2016년 18명을 시작으로 2017년 19명, 2018년 79명이 복직했다. 2020년 복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47명까지 163명(12명 휴직)이 회사로 돌아갔다. 회사로 돌아가지 않거나, 세상을 떠나거나 정년을 넘겨 회사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도 있다.복직을 선택한 이유는 저마다 달랐다. 김씨는 명예회복을 꼽았다. 2014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차 해고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지만, 9개월 뒤 ‘양승태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김씨는 “가족이나 친구들이 4, 5년쯤 지나니까 ‘그만하자’고 했다. 내가 옳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면서 “옛날처럼 동료들과 원만하게 지내면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회사를 사랑해서 마지막까지 좋은 차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더라”면서 “전국을 다니면서 일하면 돈은 더 많이 벌 수 있지만 가족들과 평택에서 자리 잡고 지내고 싶었다”고 했다. 쌍용차의 존속은 안갯속이지만, 복직자들은 언제나처럼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도로를 누비던 차를 떠올렸다. 김씨는 평생 무쏘의 거북등(차체)을 만들었다. 2002년 뉴렉스턴 조립 라인에서 일을 시작한 이씨는 차도 뉴렉스턴만 몰았다. 품질관리(QC)와 조립 라인에서 일했던 조씨는 동료들 이야기를 듣더니 쌍용차 대표 모델의 역사를 줄줄이 읊었다. “2001년 렉스턴이 처음 양산될 때는 대한민국 상위 1% 차였죠. 저는 뉴 훼미리를 팔 때쯤 입사했는데, 무쏘가 히트를 칠 때는 품질 관리에서 일했습니다. 그다음에 체어맨이 나왔는데….” 글 사진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정승민의 막론하고] ‘넘어 넘어’ 오는 진실들

    [정승민의 막론하고] ‘넘어 넘어’ 오는 진실들

    꼭 40년 전 오늘 광주는 다시 계엄군에게 넘어갔다. 끝까지 전남도청에서 저항하다 죽어간 시민군 중에는 몇 명의 학생이 있었다. 문재학, 박성용, 안종필. 빡빡머리 고교생들을 조명한 서울신문의 특집 기사를 읽다가 한강 작가의 장편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현실의 그들처럼 소설의 주인공도 10대 ‘아그’이기 때문이다. 짧은 생(生)은 항상 억울하고 원통하다. 더욱이 국가권력에 의한 죽음은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산 자에게도 무거운 숙제다.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광주의 진실을 학문적으로 밝힌 정치학자 최정운은 5·18이 모든 이에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라고 확언한다. 금남로의 죽음이 없었다면 독재는 계속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민주주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무거운 부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소년이 온다’가 5월마다 찾아오는 ‘계절풍’ 베스트셀러인 사정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미증유의 참극을 다룬 소설의 주인공이 왜 중학생일까. 10대가 가장 정의감이 강한 시기이기도 하고 사건의 비극성을 부각하기 위한 설정일 수도 있다. 당시 광주시 인구 7명 가운데 1명이 학생이라는 인구학적 특성도 감안하지 않았을까. 여러 풀이가 있겠지만 질문을 던지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가 아닌가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화려강산(華麗江山)이 현실의 광주에서는 피로 돌변한 까닭을 에두르지 않고 묻는 인물이 중3 동호다. 국군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 주고 태극기로 감싸는지 궁금하다. 죽음이 예고된 도청의 시민군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피해 버리면 되는데 누구는 남고 누구는 떠나는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소설 말고 여타 기록에서도 시민들은 태극기와 애국가에 필사적으로 집착한다. 한낱 ‘도륙된 고깃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또는 반란군이 죽인 것이기에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존재증명을 위해서다. 국가(國歌)를 제창하고 국기를 펄럭이는 것은, 일종의 ‘내전’을 감행한 폭력과 야만의 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바꾸어 내면서 국민주권이 무엇인지를 보여 줬다는 것이 김종엽 한신대 교수의 평가다. 여기서 광주는 희생자가 아니라 건설자로 승화된다.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다시 정초하는 주인공들이어서다. 물리력으로는 더이상 정치적 갈등을 풀 수 없다는 광주의 교훈이 있었기에 2016년의 촛불이 가능했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헌정 절차가 작동했다. 실로 한 세대 전에 뿌려진 유혈의 씨앗이 무혈의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정치적 차원은 차치하고 실존적 차원에서 가장 답답하고 안타까운 대목은 ‘왜 그들은 남아서 죽었을까’다. 동호의 말마따나 ‘꽃 핀 쪽으로’ 가지 않고 캄캄한 죽음의 세계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내면에 들어 있는 도덕법칙에 대한 소명의식이 세속적 부와 권력은 물론 생명까지도 상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절대적인 숭고함을 느끼는 순간, 생존본능이라는 자연법칙마저 극복하고 불가능한 용기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최정예 특수부대의 압도적 폭력에 맞서면서 시민들은 자신의 목숨과 공동체의 삶이 일치하는 이른바 ‘절대공동체’를 경험했다. 광주의 진실은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뛰어넘게 했다. 만약 모두가 무기를 두고 떠났다면 광주의 10일은 폭도의 시간으로 회칠되고 반역의 도시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십자가를 짊어진 시민군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는 부활할 수 있었다. 개 끌리듯 끌려간 그들이 ‘죽음을 넘고 시대의 어둠을 넘은’ 것이다. ‘유리같이 연약한’ 인간들이 총탄을 맞고 사라지더라도 그들이 보았던 밤하늘의 별, 그들이 보여 줬던 빛나는 양심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서 스러진 영혼들을 언제나 기억하고 기념하자. 그렇게 사회적 애도, 역사적 조문을 치를 때 우리의 사람됨과 시민됨은 복구되는 것이다.
  • [정승민의 막론하고] ‘넘어 넘어’ 오는 진실들

    [정승민의 막론하고] ‘넘어 넘어’ 오는 진실들

    꼭 40년 전 오늘 광주는 다시 계엄군에게 넘어갔다. 끝까지 전남도청에서 저항하다 죽어간 시민군 중에는 몇 명의 학생이 있었다. 문재학, 박성용, 안종필. 빡빡머리 고교생들을 조명한 서울신문의 특집 기사를 읽다가 한강 작가의 장편 ‘소년이 온다’가 떠올랐다. 현실의 그들처럼 소설의 주인공도 10대 ‘아그’이기 때문이다. 짧은 생(生)은 항상 억울하고 원통하다. 더욱이 국가권력에 의한 죽음은 죽은 자뿐만 아니라 산 자에게도 무거운 숙제다. ‘오월의 사회과학’에서 광주의 진실을 학문적으로 밝힌 정치학자 최정운은 5·18이 모든 이에게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라고 확언한다. 금남로의 죽음이 없었다면 독재는 계속되었을 것이고 지금의 민주주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무거운 부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소년이 온다’가 5월마다 찾아오는 ‘계절풍’ 베스트셀러인 사정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그런데 미증유의 참극을 다룬 소설의 주인공이 왜 중학생일까. 10대가 가장 정의감이 강한 시기이기도 하고 사건의 비극성을 부각하기 위한 설정일 수도 있다. 당시 광주시 인구 7명 가운데 1명이 학생이라는 인구학적 특성도 감안하지 않았을까. 여러 풀이가 있겠지만 질문을 던지기에 가장 적합한 캐릭터가 아닌가 한다. 교과서에서 배운 화려강산(華麗江山)이 현실의 광주에서는 피로 돌변한 까닭을 에두르지 않고 묻는 인물이 중3 동호다. 국군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 주고 태극기로 감싸는지 궁금하다. 죽음이 예고된 도청의 시민군들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피해 버리면 되는데 누구는 남고 누구는 떠나는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소설 말고 여타 기록에서도 시민들은 태극기와 애국가에 필사적으로 집착한다. 한낱 ‘도륙된 고깃덩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또는 반란군이 죽인 것이기에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존재증명을 위해서다. 국가(國歌)를 제창하고 국기를 펄럭이는 것은, 일종의 ‘내전’을 감행한 폭력과 야만의 나라를 새로운 나라로 바꾸어 내면서 국민주권이 무엇인지를 보여 줬다는 것이 김종엽 한신대 교수의 평가다. 여기서 광주는 희생자가 아니라 건설자로 승화된다. 민주공화국의 역사를 다시 정초하는 주인공들이어서다. 물리력으로는 더이상 정치적 갈등을 풀 수 없다는 광주의 교훈이 있었기에 2016년의 촛불이 가능했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헌정 절차가 작동했다. 실로 한 세대 전에 뿌려진 유혈의 씨앗이 무혈의 결실을 거둔 것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  정치적 차원은 차치하고 실존적 차원에서 가장 답답하고 안타까운 대목은 ‘왜 그들은 남아서 죽었을까’다. 동호의 말마따나 ‘꽃 핀 쪽으로’ 가지 않고 캄캄한 죽음의 세계를 선택했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철학자 칸트는 인간의 내면에 들어 있는 도덕법칙에 대한 소명의식이 세속적 부와 권력은 물론 생명까지도 상대화시킬 수 있다고 봤다. 절대적인 숭고함을 느끼는 순간, 생존본능이라는 자연법칙마저 극복하고 불가능한 용기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최정예 특수부대의 압도적 폭력에 맞서면서 시민들은 자신의 목숨과 공동체의 삶이 일치하는 이른바 ‘절대공동체’를 경험했다. 광주의 진실은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뛰어넘게 했다. 만약 모두가 무기를 두고 떠났다면 광주의 10일은 폭도의 시간으로 회칠되고 반역의 도시라는 낙인이 찍혔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설명한다.  십자가를 짊어진 시민군들이 있었기에 민주주의는 부활할 수 있었다. 개 끌리듯 끌려간 그들이 ‘죽음을 넘고 시대의 어둠을 넘은’ 것이다. ‘유리같이 연약한’ 인간들이 총탄을 맞고 사라지더라도 그들이 보았던 밤하늘의 별, 그들이 보여 줬던 빛나는 양심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 그곳에서 스러진 영혼들을 언제나 기억하고 기념하자. 그렇게 사회적 애도, 역사적 조문을 치를 때 우리의 사람됨과 시민됨은 복구되는 것이다.
  • [열린세상] 안심밴드, 청소년의 재범방지용으로 쓴다면/양중진 수원지검 부부장 검사

    [열린세상] 안심밴드, 청소년의 재범방지용으로 쓴다면/양중진 수원지검 부부장 검사

    ‘우리 애가 진짜 착한데 친구를 잘못 만나 나쁜 길로 빠졌어요.’ 소년사건을 대할 때 부모들로부터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필자의 생각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혼자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범죄를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저지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집단심리에 기댄 범죄다. 반만 맞는 대목이다. 뒤집어서 친구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그 친구가 우리 애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친구의 탓만이 아닌 우리 아이의 잘못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은 틀렸다. 청소년기는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친구들과 함께라면 무모하게 행동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물론 그것이 좋은 행동일 수도, 나쁜 행동일 수도 있다. 잠잠해질 듯하던 코로나19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집단시설이나 공중밀집장소에 가지 않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여전히 필요한 상황이다. 방역 당국은 자가격리를 지키지 않는 사람의 손목에 안심밴드를 부착해 위치를 파악하도록 했다. 집단시설에 격리하는 대신 집에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되 약간의 강제성을 부여하자는 취지다. 소년범에 대한 보호관찰 현장에도 비슷한 제도가 있다. 바로 야간외출제한이다. 청소년 범죄가 대부분 밤에 일어나는 점에 주목해 야간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판사가 보호관찰을 선고하면서 부가적으로 붙이게 된다. 야간외출만 제한하는 일종의 일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다. 보통은 밤 11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집에 꼭 있으라는 내용이다. 준수 여부는 오후 11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체크한다. 받는 사람의 음성을 분석해 대신 전화를 받을 수 없게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일단 전화를 받은 청소년에게는 다시 전화를 하기 어렵다. 외출제한을 지키지 않는 청소년을 감시할 필요도 있지만, 지키는 청소년의 수면권도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밤새도록 전화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 휴대전화 대신 장소가 고정된 집전화를 사용하기 때문에 벨소리로 인해 다른 가족의 수면에도 영향을 준다. 일단 전화를 받은 청소년은 외출의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친구들로부터 끊임없이 유혹의 전화도 걸려온다. 마음속 악마가 ‘외출만 했다가 아무 일 없이 돌아오면 되지’라고 시도 때도 없이 꼬드긴다. 일단 유혹에 넘어가 외출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1980년대까지 오후 10시 무렵만 되면 TV와 라디오에서 어김없이 나오던 공익광고다. 어떻게 이런 멘트가 나오게 되었을까. 실제로 재범을 저지른 청소년들의 범행시간대를 분석해 보니 공익광고가 이해되고도 남았다.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6시까지 8시간의 심야시간대에 저지른 범죄가 50%를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제 딸을 합동 강간한 미성년자들을 고발합니다’라는 사건이나 차를 훔쳐 무면허로 운전하다 무고한 대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10대들의 교통사고도 심야시간대에 일어났다. 남들이 활동하지 않는 시간대에 친구들끼리 어울리다가 범죄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검사실에 온 부모들은 친구 탓에 덧붙여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얼마 동안이라도 친구들을 못 만나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도통 집에 붙어 있질 않아요. 그렇다고 24시간 내내 감시할 수도 없고요’라고. 자가격리를 어긴 사람에게 안심밴드를 부착한 사례를 보면서 문득 직업적 호기심이 일었다. 소년범에 대한 야간외출제한에도 응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우선 전자발찌처럼 24시간 착용하는 것이 아니라 야간에 집에서만 부착하므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띌 일이 없다. 밴드로 인해 범죄자라고 낙인찍힐 일이 없는 것이다. 또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로 인해 잠에서 깰 일도 없다. 무엇보다 심야시간 내내 외출하지 않게 잘 지켜줄 수 있다. 청소년들을 범죄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려면 좀더 효율적인 사회적 거리두기 방법이 반드시 필요하다. 어쩌면 안심밴드가 대안이 될 수도 있어 보인다.
  • 전남대, ‘1980년 전남대총학생회와 박관현’ 발간

    전남대학교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1980년 당시 총학생회 활동을 정리한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와 박관현’을 발간했다고 21일 밝혔다. 이 책은 1970년대 이후 전남대 학생운동권의 형성을 시작으로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의 활동과 5·18민중항쟁의 발발 ▲비상계엄의 확대로 인한 고통(도피, 구금, 고문, 사회적 낙인 등) ▲박관현 총학생회장의 리더십 ▲1980년 이후 총학 구성원들의 삶(박관현 기념사업, 관련 장학재단 등) 등이 담겨 있다. 이 책은 전남대 5·18 연구소 최정기 소장과 김형주·유경남 전임연구원, 양라윤 학예연구사(5·18민주화운동기록관)가 공동 집필했다. 저자들은 기존의 연구 성과와 자료를 집대성하고, 1980년 총학생회 구성원 17명과 총학 이외 7명 등 모두 24명을 심층 면접했다. 최영준 관현장학재단 이사장은 “1980년 박관현 총학생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남대 총학생회는 학내·외 민주화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면서 광주시민들의 적극적인 지지와 참여를 끌어냈지만, 정작 5·17 비상계엄확대로 상당수가 예비검속으로 체포되거나 피신해야만 했다”며 “항쟁의 전면에 나서지 못했던 부끄러움과 성찰 때문에 드러내놓고 말하지 못했던 활동과 경험을 지금이라도 담담하게 기록으로 남기고자 5·18연구소와 힘을 모았다”고 말했다. 박관현 열사는 5·18 당시 도청 앞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수감됐으며, 옥중에서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단식투쟁을 벌이다 1982년 10월 단식과 고문 후유증 등으로 숨졌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시험용 인식되는 5·18… 현재로 이어지는 나눔과 배려 가르쳐야”

    “시험용 인식되는 5·18… 현재로 이어지는 나눔과 배려 가르쳐야”

    교사들이 말하는 교과서 속 5·18과 대안 교재엔 민주화운동 단편적 나열돼 한계 사건 깊게 다루는 ‘계기수업’ 통해 보완 문답식 인정교과서로 생생한 역사 습득 “40년째 왜곡·막말 바로잡아야 인식 변화”40년 전 그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사람이 싸운 역사는 오늘날 청소년에겐 ‘시험 범위’가 돼 버렸다. 서울신문이 만난 10대 대부분은 5·18민주화운동을 과거 사건으로 여겼다. 5·18의 역사적 의미를 묻는 말에는 한참을 망설였다. 건강한 시민을 길러 내야 할 학교는 5·18 영령이 남긴 민주 정신을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걸까. 해답을 찾기 위해 현직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3명을 만났다. 김영주(40·14년차) 광주여고 교사, 박래훈(42·16년차) 전남 순천 별량중 교사, 이희정(34·2년차) 강원 원주 북원중 교사다. 김씨와 박씨는 올해 광주교육청의 5·18 인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했다. 이씨는 원주에서 광주까지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으러 다닐 정도로 더 생생한 수업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자신이 태어나기 한참 전에 일어난 5·18을 옛날 사건으로 느끼는 건 당연하다”며 “과거의 정신이 현재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씨는 “지난해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주먹밥이 선정됐듯이 5·18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은 시민들의 나눔과 배려”라면서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라고 말했다. 이씨는 “5·18은 박제된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반민주적인 요소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도록 하는 힘”이라며 “학생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가르치려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교사들은 현재 교과서와 현장의 한계가 크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현재 근현대사 교과서에는 5·18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이 단편적 사건으로 각각 나열돼 있다”며 “학생들에게 ‘또 독재하고 또 저항한다’는 인상만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씨는 “교과서에는 당시 계엄군의 (전남)도청 진압 직전까지 저항한 민중의 희생과 성숙한 시민 의식, 자치 능력이 치밀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적 사건을 심도 있게 다루는 계기수업이 부족한 교과서의 보완재가 될 수 있다. 광주·전남 지역 학교들은 5·18기념재단과 함께 인정교과서를 개발해 수업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김씨는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5·18 등 계기수업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면서 “교사 입장에선 학교 관리자가 ‘지역 정서에 맞지 않다’며 눈치를 주면 아무래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씨는 “지역 특색과 교사 개인의 역량을 살린 다채로운 수업이 많아지면 좋겠다”며 “광주가 5·18이라면 대구는 2·28민주운동, 제주는 4·3사건, 강원은 분단과 통일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계기수업을 활성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에게 생생한 역사를 가르치려면 교사가 먼저 배워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정교과서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박씨는 “광주교육청에서는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5·18 연수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면서 “5·18을 모르는 교사가 얼마나 되나 하겠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단순히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교사가 자세히 알아야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5·18 인정교과서는 학생들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단 최근의 관점까지 포괄한 것”이라며 “사건 이후 트라우마, 역사 왜곡, 다른 나라와의 연대, 청소년과 여성의 입장 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를 모두 5·18이라는 소재로 얘기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40년이 지나도 계속되는 5·18 왜곡과 막말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박씨는 “5·18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이 드러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발포 명령자도 모른다.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이를 바로잡아야 교육 현장에서도 청소년에게 5·18의 가치를 바르게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는 “특정 지역에 대한 차별과 혐오, 5·18에 대한 ‘낙인’은 청소년이 아니라 기성세대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역사에 대해 사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5·18 교육? 지금의 우리와 연결고리 찾는 데부터 시작해야”

    “5·18 교육? 지금의 우리와 연결고리 찾는 데부터 시작해야”

    현직 역사교사 3인이 말하는 “5·18 교육 이렇게 하자” 단순 서술 아닌 스스로 묻고 답해야‘주먹밥’처럼 나눔과 배려 가치 연결 교사도 적극적 학습하되 독선 경계해야왜곡·막말 처벌하는 정부 역할도 필요40년 전 그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이들이 싸운 역사는 오늘날 10대 청소년에겐 ‘시험 범위’가 되어버렸다. 서울신문이 만난 많은 청소년이 민주화 운동을 과거의 일로 여겼고, 내용도 제대로 몰랐다. 현재 학교는 이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충분히 주고 있을까. 미래 세대에게 5·18을 포함한 민주화 운동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현직 중고등학교 역사 교사 3명을 만났다. 김영주(40·14년차) 광주여고 교사, 박래훈(42·16년차) 전남 순천 별량중 교사, 이희정(34·2년차) 강원 원주 북원중 교사다. 김씨와 박씨는 올해 광주교육청의 5·18 인정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이씨는 강원도에서 광주까지 정기적으로 연수를 받으러 다닐 정도로 더 생생한 수업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다. “교과서 단편 서술 한계…스스로 생각하는 수업 필요” 근무 지역도 기간도 다르지만, 이들은 공통으로 “학교 수업에서 단순히 과거 기록을 전하는 데서 벗어나 현재 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어나기도 전이니 당연히 옛날 사건으로 느껴지겠지만, 과거의 정신이 현재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박씨는 “지난해 광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주먹밥이 선정됐듯, 5·18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자신도 어려운 상황에서 이웃의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고 나선 시민들의 나눔과 배려”라면서 “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에게도 꼭 필요한 자세”라고 말했다.이씨는 “5·18은 박제된 하나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반민주적인 요소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마주하도록 하는 힘”이라면서 “학생들에게도 이런 현상이 동떨어져 있지 않다는 걸 가르치려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교사들은 현재 교과서와 현장의 한계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현재 근현대사 부분에서 5·18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이 단편적 사건으로 각각 나열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한 흐름인데도 시민들의 역량이 축적되는 과정을 알 수 없고, ‘또 독재하고 또 저항한다’는 인상만 줄 수 있다”면서 “민주화 운동끼리 연결 지점이 없어 피해 내용 중심으로 서술된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교과서에는 당시 계엄군의 도청 진압 직전까지 저항한 민중의 희생과 성숙한 시민 의식, 자치능력이 치밀하게 나오지 않는다”면서 “단순 사건 나열만 있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민주화 운동은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된다”고 말했다.이를 위해 사회적 이슈에 대해 더 심도 있게 교육할 수 있는 계기수업의 역할이 필요하다.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5·18 기념재단과 함께 인정교과서를 개발해 학교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여전히 부족하다. 김씨는 “일부 지역에선 아직도 5·18 등 계기수업 자체를 불편하게 여긴다”면서 “교사 입장에서 학교 관리자가 ‘지역 정서에 안 맞다’며 눈치를 주거나, 일괄적으로 강요하는 교육은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교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업을 준비하면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독선에 빠지지 않게 관리하고 소통하면 된다”고 지적했다. 계기수업 격차 커…지역 특색 살려야 이씨는 “지역과 교사 개인마다 역량이 차이 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오히려 이런 특색을 살려 다채로운 수업이 많아져야 한다”면서 “광주가 5·18이라면 대구는 2·28 민주운동, 제주는 4·3사건, 강원은 분단과 통일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전문성을 보장하도록 지자체와 교육청에서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학생들에게 생생한 역사를 가르치려면 교사가 먼저 나서서 배워야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인정교과서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박씨는 “광주교육청에서는 전국 교사를 대상으로 5·18 연수를 매년 실시하고 있다”면서 “5·18을 모르는 교사가 얼마나 되나 하겠지만,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면 단순히 아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교사 스스로 자세히 알아야 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인정교과서는 학생들 스스로 질문, 응답하는 형식으로 구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이라기보단 최근의 관점까지 포괄한 것”이라면서 “사건 이후 트라우마, 역사 왜곡, 다른 나라와의 연대, 청소년과 여성의 입장 등 지금 우리 사회에서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를 모두 5·18이라는 소재로 얘기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특히 40년이 지나도록 계속되는 왜곡과 막말 등에 대해선 이를 처벌할 수 있는 정부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박씨는 “5·18 특별법 제정으로 진실이 다 드러났다고 하지만, 당장 발포 명령자도 모른다. 책임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정부에서 이런 역할을 다 해야 교육 현장에서도 청소년에게 5·18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고 가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씨 역시 “지역 차별적인 인식이나 5·18에 대한 ‘낙인’은 청소년이 아니라 기성세대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오히려 미안하다”면서 “학생들의 인식을 바꾸려면 우리 사회 전체가 잘못된 역사를 사죄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홍대 술집, 이성애자 식당이라 안해”…트랜스젠더 박한희 변호사

    “홍대 술집, 이성애자 식당이라 안해”…트랜스젠더 박한희 변호사

    국내 첫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박한희 변호사가 “‘게이’가 방역에 필요한 정보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한희 변호사는 14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서울 이태원 클럽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확산되면서 ‘게이’를 부각한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 “같이 극복하자는 게 아니고 감염된 사람을 찍어내고 이슈화시키는 건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재난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위기이기도 하고 특히 이게 사회적 소수자, 사회 경제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더 가혹하게 다가올 수 있다”며 “특히 언론 보도가 재난이 어떤 특정 집단이나 특정 산업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 굉장히 초점을 두고 방역이나 이런 것을 도움이 되는 보도나 다 같이 위기를 극복하자는 메시지가 아니라 감염이 된 사람의 어떤 집단의 개인을 약간 찍어내고 좀 더 이슈화시키고 그 사람들을 소모시키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면서 약간 조회수만 올리려는 목적으로 하는 보도들이 있어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실 이태원 클럽 확진자가 8일 나왔을 때 국민일보에서 단독으로 게이클럽이라는 것을 헤드라인에 붙였다. 이게 사실 클럽에서 집단감염이 확산 된 건 맞지만 클럽이 성소수자 클럽인지 아니면 그냥 비성소수자 아니면 그냥 일반 시민 클럽인지는 상관이 없는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진행자가 ‘홍대 술집에서도 감염자가 나왔는데 그때는 이성애자 식당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말하자, 박 변호사는 “꼭 그걸 그렇게 하지 않는데 성소수자는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방역에 필요한 정보도 아니고 오히려 이게 낙인 효과를 가지고 온다. 마치 성소수자들의 문제고 성소수자들이 감염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식으로 비난을 받게 되는 어떤 효과를 만들어서 사실 더 숨게 만든다. 이걸 단독이라고 이렇게 보도하면서 신문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떤 화제를 일으키겠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익명으로 코로나19 검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선 “실효성이 있다고 본다. 익명 검사가 지금 하는 방식이 이름을 묻지 않고 그냥 일련번호로만 사람을 표기하고 전화번호만 받는 거다. 이런 식의 방식들이 개인이 과도하게 노출될 우려가 없기때문에 좀 더 안심하고 검사받을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또 박 변호사는 불안감 때문에 코로나19 검사를 꺼리고 있는 이들을 향해 한 마디했다. 박 변호사는 “이게 어찌 됐든 본인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다 같이 공동체의 안전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고 검사를 받고 서로의 건강을 챙기고 서로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에 조금 약간 두려움은 있다고 하더라도 함께 맞서나갔으면 좋겠다”며 “그걸 위해서 대책본부도 꾸려져서 저희가 인권 침해 상담도 받고 정보기관과 연계해서 구제방안들도 얘기하고 있으니까 함께 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인 박한희 변호사는 남중, 남고를 거쳐 포항공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업했지만,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으며 우울증을 겪었고,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커밍아웃을 결심하고 2013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에 입학했다. 대학원 입학 후 성 정체성을 공개했고, 로스쿨 졸업 후 그해 변호사시험에 합격하면서 국내 최초 트랜스젠더 변호사가 됐다. 그는 2017년 방송된 EBS ‘까칠남녀’의 성소수자 특집방송에 출연해 “난 아직도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가 1번. 난 수술하지 않았고, 앞으로 수술 계획도 없다”며 “한국에서는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으면 성별 정정 허가를 해주지 않는다”며 “수술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성별 정정을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처벌만으론 청소년 범죄 못 막아… 성장할 기회 줘야”

    “처벌만으론 청소년 범죄 못 막아… 성장할 기회 줘야”

    20여년 현장서 뛴 청소년 지도 전문가 “아이들 비행은 사회 시스템 무너진 탓 부처간 장벽 허물고 맞춤형 솔루션 마련 소년원 나온 후 안정된 사회 복귀 도울 것”“가정 내 불화부터 사회적 낙인까지 여러 굴곡을 거친 소년원을 나온 이후 어떻게 악순환을 끊고 사회에 안착해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달 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을 추천제가 아닌 공모제 방식을 통해 임명했다. 위기 청소년에 대한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법무부의 의지가 엿보인 변화였다. 공모 절차를 통해 임명된 김기남(47) 신임 이사장은 지난 20여 년간 청소년수련관, 청소년이동쉽터 등 이른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위기 청소년 지도 전문가다. 김 이사장은 지난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현장에서 위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는 분들을 지원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위기 상황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어떻게 돌볼지를 고민해 볼 생각”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한국소년보호협회는 소년원 출원생 등 위기 청소년의 비행을 예방하기 위해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직업훈련 등 사회 정착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도 협회 1층에 있는 카페에서는 소년원 출원생들이 일하고 있다. 단순히 커피를 만드는 일 뿐 아니라 고객을 응대한다.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출원생들이 사회를 직접 접하고 성장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김 이사장은 “위기 청소년들이 사회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협회의 빈 공간을 활용해 공유 주방을 조성하려고 한다”면서 “사회에 열린 공간 속에서 출원생들이 성공 모델을 보면서 일하고,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했다. 물론 김 이사장 역시 위기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알고 있다고 했다. 특히 ‘대전 뺑소니 사망사고’ 등과 같이 사회적 분노를 일으킨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무작정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사회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비행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부처를 넘나드는 아이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는 종합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부처들은 학교 밖 청소년, 가출 청소년, 범죄소년 등을 다 따로 규정짓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만나보면 가출 청소년들이 삐끗 잘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등 결국 이들은 같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협회 차원에서 소년원 출원생 등의 아이들을 위해 법적·제도적 부분부터 각 가정 내 문제까지 두루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김 이사장은 “부처간 장벽을 허물고, 아이 하나 하나에 맞는 종합적인 솔루션을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청소년 범죄에는 사회 잘못도 있다” 김기남 한국소년보호협회 신임 이사장 인터뷰

    “청소년 범죄에는 사회 잘못도 있다” 김기남 한국소년보호협회 신임 이사장 인터뷰

    20여년간 위기청소년 돌본 김기남 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 인터뷰“가정 내 불화부터 사회적 낙인까지 여러 굴곡을 거친 소년원을 나온 이후 어떻게 악순환을 끊고 사회에 안착해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달 한국소년보호협회 이사장을 추천제가 아닌 공모제 방식을 통해 임명했다. 위기 청소년에 대한 문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법무부의 의지가 엿보인 변화였다. 공모 절차를 통해 임명된 김기남(47) 신임 이사장은 지난 20여 년간 청소년수련관, 청소년이동쉽터 등 이른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위기 청소년 지도 전문가다. 김 이사장은 지난 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현장에서 위기 청소년들을 위해 일하는 분들을 지원하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위기 상황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어떻게 돌볼지를 고민해 볼 생각”이라며 포부를 밝혔다. 한국소년보호협회는 소년원 출원생 등 위기 청소년의 비행을 예방하기 위해 이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고 직업훈련 등 사회 정착과 자립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도 협회 1층에 있는 카페에서는 소년원 출원생들이 일하고 있다. 단순히 커피를 만드는 일 뿐 아니라 고객을 응대한다. 여러 상황을 겪으면서 출원생들이 사회를 직접 접하고 성장할 기회를 주기 위함이다. 김 이사장은 “위기 청소년들이 사회에 어떻게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협회의 빈 공간을 활용해 공유 주방을 조성하려고 한다”면서 “사회에 열린 공간 속에서 출원생들이 성공 모델을 보면서 일하고, 자유롭게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한다”고 했다.“반복되는 청소년 범죄, 사회 시스템 무너졌기 때문” 물론 김 이사장 역시 위기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알고 있다고 했다. 특히 ‘대전 뺑소니 사망사고’ 등과 같이 사회적 분노를 일으킨 청소년 범죄에 대해서 “아이들을 성장시키는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무너진 것”이라고 했다. 다만 무작정 처벌만 강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이사장은 “사회의 분노를 이해하지만,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아이들의 비행이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아이들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신 부처를 넘나드는 아이 한 명, 한 명을 생각하는 종합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부처들은 학교 밖 청소년, 가출 청소년, 범죄소년 등을 다 따로 규정짓지만 실제로 아이들을 만나보면 가출 청소년들이 삐끗 잘못해 범죄를 저지르는 등 결국 이들은 같은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협회 차원에서 소년원 출원생 등의 아이들을 위해 법적·제도적 부분부터 각 가정 내 문제까지 두루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종합적 솔루션 마련해야” 특히 이들을 단순히 ‘문제아’라고 규정짓는 인식 또한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이사장은 “근본적으로 평범한 친구들과 다르지 않다는 태도로 위기 청소년들을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일명 ‘가출팸’ 등의 아이들을 만나보니 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소통을 시작할 것인가가 중요하더라”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부처간 장벽을 허물고, 아이 하나 하나에 맞는 종합적인 솔루션을 고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英언론의 ‘부부의 세계’ 감상평…간통죄·직장 내 성차별 언급

    英언론의 ‘부부의 세계’ 감상평…간통죄·직장 내 성차별 언급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에 연일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가운데, 원작 ‘닥터 포스터’가 제작된 영국에서도 흥미로운 감상평이 나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8일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한국의 드라마가 심장을 뛰게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부부의 세계’ 신드롬을 다뤘다. 가디언은 “한국은 5년 전까지 간통죄 처벌 법률이 있어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을 수 있었지만 현재는 더 이상 (간통이) 범죄로 취급되지는 않는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도하는 남편과 아내에 대해 비난을 기대하는 심리가 존재한다”고 전했다. 이어 “한국판 ‘닥터 포스터’(부부의 세계)는 스카프에서 발견된 미스테리한 사건부터 사소한 범죄에 이르기까지 원작에 충실한 부분이 있지만, 사회적 격차과 성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확대했다는 것이 원작과 다른 점”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주인공 지선우(김희애 분)와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설명희(채국희 분)가 직장 내에서 승진을 두고 성차별적 발언을 들었던 지난 회차를 언급한 것으로, 한국 시청자가 “‘부부의 세계’ 속 병원 원장이 너무 싫다. 내 상사를 떠오르게 한다. 중년의 성차별주의자가 없는 한국 직장은 찾아볼 수 없다”고 남긴 감상평을 소개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또 이 드라마가 남성을 묘사하는 기존의 틀을 깨뜨렸다고 평가했다. 주인공 지선우는 아내가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의 배경에 머무르며 남편을 조용히 지원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아내와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 또 “드라마 속 주인공인 지선우가 이혼으로 주변 지인들에게 비난을 받는 대목 등은 이혼 후 잘생긴 백만장자들의 사랑을 받는 무수하게 다른 드라마와 달리 매우 현실적으로 표현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다소 지나치게 폭력적인 장면이 전파를 탄 것, 코로나19 사태로 집에 머물고 있는 아이들이 많음에도 선정적인 장면이 등장한 것 등이 한국 시청자들의 비난을 받았으며, “이러한 드라마가 이혼은 인생의 큰 상처라는 구식의 인상을 줄 수 있다. 요즘 한국에서는 이혼이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서울의 40대 시청자의 감상평을 덧붙였다. 가디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이혼율이 가장 높지만, 이혼한 여성과 자녀는 여전히 사회적 낙인과 재정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전했다.3 한편 종영까지 4회만을 남겨둔 ‘부부의 세계’는 등장인물 간의 더욱 격해진 감정 폭발을 그릴 것으로 예고돼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환자 두고 떠나가는 패잔병,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입니다”

    “환자 두고 떠나가는 패잔병,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입니다”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치료·격리할 목적으로 지난달 1일 개소한 14개 생활치료센터가 30일 모두 해산한다. 경증 환자 3025명이 입소해 2957명(완치율 97%)이 퇴소했으며 의료진 등 누적 관리자가 1611명에 이른다. 전국에서 가장 처음 문을 연 대구 중앙교육연수원 생활치료센터도 이날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는다. 이곳에서 60일간 간호조무사로 봉사한 유동훈(39)씨는 29일 서울신문에 편지를 보냈다. 지난달 10일에 이은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패잔병’이라 표현했다.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 가는 환자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는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음을 못내 아쉬워했다.대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3월 1일부터 일했으니 이제 60일째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이곳에 지원했지만, 의료진 감염 소식에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개소 직후 들어오던 수많은 구급차 행렬은 잊지 못할 겁니다. 대구에 오기 전엔 환자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외딴곳에 내려와 환자들이 먹는 도시락을 먹으며 같은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오랜 격리 생활에 지친 환자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고립감과 불안감 등으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렇게 함께 고생한 환자들이 완치돼 의료진에게 감사 편지를 남기고 떠날 때 위안과 기쁨을 받았습니다. 환자 증상은 다양했습니다. 오랜 격리 생활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고령자, 기저질환자분들은 긴장하고 더 살펴야 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통증이 있으면 항상 방호복을 입고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잊지 못할 환자가 많습니다. 코로나 환자 이송 업무를 하다가 감염돼 입소한 구급대원이 있었습니다. 항상 표정이 밝아 보는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습니다. 요양병원 간병사도 있었습니다. 간호사,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확진돼 오신 분들을 보면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치료 후 사회로 복귀해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환자들이 있습니다. 고용불안 문제 때문입니다. 2년간 공무원 준비했던 한 남성은 코로나19로 일주일 정도 다닌 회사에서 해고됐습니다. 실업급여 대상도 아니어서 살길이 막막하다고 합니다. 진심으로 위로했지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돌아갈 직장이 있는 분들도 회사에서 낙인찍혔다며 걱정을 많이 하셨습니다. 대구의 누적 완치자가 6000명대에 이릅니다. 다른 생활치료센터들은 속속 문을 닫았습니다. 다른 센터가 문 닫을 때마다 제가 있는 센터로 환자가 몰렸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고 있다는 언론 보도와 이곳의 현실이 달라 이질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점차 고립돼 낙오된 보병과 같았습니다.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한 수많은 의료진이 겪었을 정신적인 고통에 공감합니다. 이곳도 이제 해산합니다. 적은 숫자이지만 아직도 병이 낫지 않은 분들이 있습니다. 고생하신 분들을 집으로 보내 드리지 못하고 저는 패잔병처럼 서울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기도밖에 해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외딴 이곳까지 기부 물품을 보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꼭 지켜 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이제 할 건 기도밖에”…생활치료센터 마지막날 자원봉사자가 보내온 편지

    “이제 할 건 기도밖에”…생활치료센터 마지막날 자원봉사자가 보내온 편지

    대구 생활치료센터 30일 완전 해산첫날부터 자원봉사 지원한 유동훈씨지난 10일 이후 두 번째 편지 보내와코로나19 진정에 기쁘지만미완치 환자 볼 때 안타까움 더해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가 지난 3월 1일 설립된 이후 4월 30일을 끝으로 해산한다. 설립된 지 꼭 60일 만이다.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치료·격리할 목적으로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처음으로 센터가 설립된 이후 14개 센터가 추가로 설립·운영됐다. 경증 환자 3025명이 입소해 2957명(완치율 97%)이 퇴소했으며, 의료진 등 누적 종사자는 1611명에 이른다. 중앙교육연수원에 센터가 마련됐을 때부터 간호조무사로 자원봉사를 한 유동훈(39)씨가 해산을 맞아 29일 서울신문에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달 10일 이후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패잔병’이라 표현했다.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환자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는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음을 아쉬워했다. 대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3월 1일부터 일했으니 이제 60일째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이곳에 지원했지만, 의료진 감염 소식에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이곳이 세계 최초의 생활치료센터라는 점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높아 행동 하나하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개소 직후 들어오던 수많은 구급차 행렬은 잊지 못할 겁니다.과거에 병원에서 일할 땐 환자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외딴곳에 내려와 환자들이 먹는 도시락을 먹으며 같은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오랜 격리 생활에 지쳐 있는 환자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고립감과 불안감 등으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의료진은 환자들과 가장 밀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며 투약 업무 등 늘 환자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다른 불편한 증상이 있을 때도 의사 지시 하에 관찰하고 보고하고, 환자에 관련된 모든 걸 살피며 지내왔습니다. 계속되는 유전자 증폭(PCR) 검사 때도 들어가 의료진을 돕고, 검체 포장 등 잡다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지내온 환자들이 완치해 우리에게 감사 편지를 남기고 떠날 때 위안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심리적 압박 겪는 코로나19 환자들 이곳에 입원한 환자 증상은 다양했습니다. 오랜 격리생활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심리적 부분도 지원하고자 지역대학의 정신간호학 교수님이 매일 오셔서 환자 한분 한분 상담을 해주시며 일일이 살피고 정서적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고령자, 기저질환자 분들은 긴장하고 더 살펴야 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통증이 있으면 항상 방호복을 입고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도 많습니다. 코로나 환자 이송업무를 하다가 감염돼 입소하신 구급대원이 있었습니다. 항상 표정이 밝아 보는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습니다. 간호사,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확진돼 오신 분들을 보면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다 감염된 분도 있었는데, 저와 동성동본이라 더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치료 후 사회로 복귀해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고용불안 문제 때문입니다. 2년간 공무원 준비했던 한 남성은 코로나19로 일주일 정도 다닌 회사에서 해고됐습니다. 실업급여대상도 아니어서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당장 이달 월세 낼 돈도 없고 주소도 대구로 이전돼 있지가 않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위로해 드렸지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생활고에 시달려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저도 돈 벌면서 야간에 간호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계속 병원 일을 하며 돈을 마련해 왔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대구에 내려오긴 했지만, 그 뒤에 대한 삶은 저 역시 또 고민이 생길 것 같습니다. 돌아갈 직장이 있는 분들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회사에서 낙인이 찍혀 안 좋은 소문이 돌아 허탈해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신천지도 아닌데 신천지로 소문난 분도 있습니다. 지역적 팬데믹을 만들어낸 신천지에 대한 분노도 컸습니다. 특히 한 분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신천지 교인으로 인해 감염 됐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신천지랑 상관도 없는데 왜 코로나 걸렸느냐고 추궁하는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는 젊은 분 이야기를 들을 땐 가족 간 오해도 생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 세상 어머님들은 역시나 본인보다 가족과 자식을 더 걱정하며 지냈습니다. 남편이 타지에서 근무하고 자녀가 10, 15세 아들이라 끼니 거르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어머님, 6, 10세 아이들을 다른 곳에 맡겼지만 그래도 밥 먹는 게 걱정된다는 어머님, 자녀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자녀 전화 안 받는다는 어머님 등…그중 안타까웠던 건 7년 전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으로 자신이 간병을 해왔는데, 격리되는 바람에 간병을 할 수 없는 분 이야기였습니다. 차라리 이곳에 병실을 따로 만들어 제가 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전쟁 뒤의 황폐함 들어 대구 지역만 현재 누적 완치자가 6000명대에 이릅니다. 그래서 다른 생활치료센터들은 속속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그곳들이 닫을 때마다 이곳에 환자가 집중돼 뉴스로 보는 바깥세상과 이곳의 현실이 달라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점차 고립돼 낙오된 보병과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한 수많은 의료진이 겪었을 정신적인 고통에 공감합니다. 20대 초반부터 병원 일을 시작해 음악 대학원 마칠 때까지 병원 일을 했습니다. 환자들을 대하며 살아온 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그때도 많은 죽음을 봐왔고 종종 가까운 이들의 죽음도 겪었지만 잘 이겨냈습니다. 그때 경험은 교통사고를 겪은 느낌이라면, 이번 일은 전쟁 뒤의 황폐함 같은 감정이 듭니다. “패잔병처럼 저는 서울로 갑니다…할 수 있는 건 기도뿐” 이곳 생활치료센터도 이제 해산합니다. 적은 숫자이지만 아직도 완치되지 못하고 집에 못 돌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또다시 여러 병원으로 나뉘어 보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들을 결국 집으로 보내드리지 못하고 저는 패잔병처럼 서울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기도밖에 해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특히 외딴 이곳에까지 기부 물품을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머사이트 커뮤니티인 ‘웃기는 대학’ 회원들이 우리의 수분 보충을 염려해 음료수를 상자 채로 보내줬던 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꼭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경기도의회 전국 첫 ‘기지촌 여성 지원조례’ 제정

    경기도의회 전국 첫 ‘기지촌 여성 지원조례’ 제정

    경기도의회가 전국 지방의회 가운데 처음으로 주한미군기지 주변 ‘기지촌 여성’을 지원하기 위한 조례를 제정했다. 경기도의회는 29일 임시회 본회의에서 김종찬(더불어민주당·안양2)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을 의결했다. 조례안은 기지촌 여성의 생활 안정과 복지향상, 명예회복 등을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조례안은 1950년 한국전쟁 후 군사 안보가 국가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이면서 정부가 주한미군을 위해 성매매 행위를 정당화하고 조장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내용도 담았다. 이에 따라 도는 사회적 낙인과 생활고에 시달리는 기지촌 여성에게 임대보증금 지원 및 임대주택 우선 공급 등 주거 혜택과 생활안정 지원금·의료 급여·장례비·간병인 등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해당 조례안은 2014년 8대 도의회부터 수차례 발의됐지만, ‘지원 사업비 부담’, ‘사회적 공감대 형성 부족’ 등의 이유로 번번이 무산된 바 있다. 기지촌 여성들은 앞서 2014년 6월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으며, 2018년 2월 2심 재판부는 국가의 방조 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경기여성연대와 기지촌여성인권연대는 조례 제정을 환영했다. 이 단체들은 “그동안 피해자들과 관련 단체들은 인권침해 피해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등을 위해 특별법 및 조례 제정, 국가배상소송 등을 진행해왔다”며 “이번에 통과된 조례는 보다 진전된 기지촌 여성 인권회복 역사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도의회는 이날 결혼이민자 등에도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지급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도 의결됐다. 이에 따라 경기도 내 외국인 가운데 결혼이민자와 영주권자도 다음 달 중에 도가 지급하는 재난기본소득 10만원씩을 받게 됐다. 도가 추산한 지급 대상 규모는 결혼이민자 4만8000여명, 영주권자 6만1000여명 등 총 10만9000여명이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김종찬 의원 발의 ‘기지촌 여성 지원 관련 조례안’ 가결

    김종찬 의원 발의 ‘기지촌 여성 지원 관련 조례안’ 가결

    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회 김종찬(더민주) 부위원장이 대표발의 한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이 22일 소관 상임위에서 가결되었다. 김 의원은 “현재 도내 거주하고 있는 기지촌 여성들의 대다수는 사회적 낙인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이에 경기도에서 선도적으로 기지촌 여성 노인들을 대상으로 복지향상 및 생활안정을 근거를 마련하고자 전국 최초로 기지촌 여성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조례를 발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7일 조례 제정을 위하여 인권단체, 햇살사회복지회 등 관련 단체와의 간담회를 통해 그동안의 주요 논점, 조례 내용, 이후 추진계획 등 조례 심의 시의 중점적으로 논의돼야 할 사항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의원은 “도내 기지촌 여성들의 대다수는 70~80대 고령으로 일반 고령자가 겪은 노년기의 빈곤, 질병 외로움 이외에도 향정신성 의약품 과다 복용으로 인한 건강문제, 일반 국민과 분리되는 낙인감 등으로 인해 최소한의 생계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2008년 이후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진행된 수많은 공론화 자리에 이어 드디어 2018년 고등법원 판결을 통해 정부가 기지촌을 운영?관리한 것에 대한 책무성과 위법성이 인정됐다”며 “본 조례안이 하루의 삶조차 버거웠던 기지촌 여성들에게 주거, 생활안정금, 의료급여, 간병인·장례비 등을 지원하여 기지촌 여성들의 최소한 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상익 함평군수, 군수 관사 폐지…‘29년만에 군민 품으로’

    이상익 함평군수, 군수 관사 폐지…‘29년만에 군민 품으로’

    전남 함평군수 관사가 29년 만에 군민 품으로 돌아간다. 함평군은 이상익 군수가 후보자 시절 공약으로 내세운 군수 관사 폐지를 최종 결정했다고 22일 밝혔다. 군은 5월 한달간 공모방식으로 군민 의견 등을 수렴해 오는 6월까지 용도와 사용자를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군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큰 취약계층 자생조직이나 지역민 복지와 관련된 시설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다. 이들에게는 가급적 무상(공과금 별도)으로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함평군수 관사는 관선 단체장 재임 당시 정부에서 파견된 단체장의 주거안정을 위해 1991년 건립됐다. 군청 옆 728㎡ 부지에 연면적 228㎡, 2층 규모다. 그동안 군수의 업무 연장 공간으로 인식되면서 29년간 유지되어 왔지만 일각에선 권위주의 논란과 예산 낭비 등을 이유로 폐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 군수는 “고비용·저효율로 낙인찍힌 군수 관사는 관치시대의 유물로 현재 몇몇 지자체에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며 “관사가 갖는 상징성과 예산 등을 고려해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는 선에서 군민을 위한 시설로 탈바꿈시키겠다”고 말했다. 함평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오늘의 눈] 감염병 그리고 그들의 전염병/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오늘의 눈] 감염병 그리고 그들의 전염병/이현정 정책뉴스부 기자

    위기는 질서를 재편한다. ‘공공의 선(善)’이란 명목하에 신체의 자유와 사생활 등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화되고 인권의 가치는 부차적인 것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목소리는 공포 앞에 무력화된다. 시민은 감염된 자와 오염된 자,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뉜다. 감염병을 전파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 아닌 잠재적 위험으로 취급하는 것이 용인된다. 내가 걸릴 수 있는 코로나19는 ‘감염병’이지만 그들이 걸린 코로나19는 나의 건강을 위협하는 ‘전염병’일 뿐이다. 확진자는 자신의 건강보다 사회적 낙인을 더 우려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일부는 대중의 조롱거리가 됐다. 확진자의 불요불급한 동선을 공개하지 않기로 한 뒤론 구청마다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라는 주민 요구가 쏟아진다. 확진자를 비난하지만, 그들도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보통의 하루를 살았을 뿐이다. 일부는 개인의 신앙을 고백하지 않을 권리마저 빼앗겼다. 정부는 확진자의 연번 뒤에 ‘신천지 신도’라는 알림을 낙인처럼 새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구로구 콜센터 직원 가운데 신천지 신도가 있다는 사실을 굳이 밝히기도 했다. 진단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기에 공개할 이유가 없는 이들이었다. 최근 ‘안심밴드’ 도입 논란은 숱한 인권 문제를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격론 끝에 정부는 자가격리 이탈자에 한해 동의를 얻어 안심밴드를 채우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자가격리에서 이탈하면 최대 징역 1년,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받게 되는데, 안심밴드를 착용하면 참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꿔 말하면 안심밴드 거부 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부착에 대한 동의를 자발적 동의로 평가하기 어렵다. 이런 행정적 발상 자체가 자가격리 이탈자들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9일 공개한 코로나19 자가격리 관련 국민 인식조사에서 응답자의 80.2%는 안심밴드 착용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자가격리 대상자들에 대한 공포, 편견과 혐오 등 보이지 않는 적을 맞닥뜨린 인간의 복잡한 감정이 엿보인다. 안심밴드를 채워서라도 가두고 싶어 했던 자가격리자는 나와 내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생명이 달린 감염병 정국에서 인권만이 지상 최대 과제일 수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급박해도 어렵게 쌓아 온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일은 위험하다. 감염병은 되풀이될 테고, 그때마다 인권 문제를 뒷전으로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질병을 향해야 할 혐오가 사람을 겨냥하면 바이러스가 지나간 자리에 폐허만 남게 된다. 감염병으로부터 소중한 일상을 지킬 힘은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와 존중, 희망에서 나온다. 코로나19 속에 겨울은 더디게 물러갔다. 그러나 이 얼어붙은 봄을 보자고 그 긴 겨울을 견딘 것은 아닐 것이다. hjlee@seoul.co.kr
  • 마스크·성금 선뜻 낸 난민들 “한국인 밥 情이 우릴 움직였다”

    마스크·성금 선뜻 낸 난민들 “한국인 밥 情이 우릴 움직였다”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빗장을 걸어 잠그며 외국인을 향한 차별과 혐오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도 상황은 비슷하다. 바이러스는 국적과 인종을 가리지 않지만, 코로나19 확산 초기부터 국내에서는 “모든 외국인의 입국을 금지하라”는 여론이 거셌다. 이런 와중에 국내 거주 난민들이 “코로나19로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오히려 한국 사회에 손을 내미는 사례가 늘고 있다. 최근 코트디부아르와 수단,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 커뮤니티에서는 약 480만원의 돈과 물품을 대한적십자사에 기부했다. 난민 지원단체 ‘피난처’의 도움을 받고 있는 국내 거주 난민들이다. 자신들도 고향을 떠나와 결코 여유롭지 않은 처지에 도리어 남을 위해 기부한 이유는 뭘까. 지난 6일 민주콩고에서 온 놈비(46)와 프레디, 코트디부아르에서 온 앙쥐(41)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십시일반 기부에도 ‘눌러살지 말라’ 비난 놈비를 한국 땅에 오게 한 건 500만명 이상의 인명 피해를 낳은 2차 콩고 내전이다. 전쟁이 시작된 1998년 무렵 놈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막 들어간 상태였다. 그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무력으로 납치당해 전쟁터로 끌려갔다. 반군은 총을 겨누는 건 기본이었고, 사람들을 강간하거나 마구 죽였다”고 말했다. 르완다와의 접경지대인 콩고 동쪽 고마 지역에 살던 놈비는 2006년 반군에게 납치됐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해 이듬해 한국으로 왔다. 그는 한국에 온 뒤 민주콩고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프리덤 파이터스’ 활동을 하고 있다. 2018년 꾸려진 이 단체는 모두 놈비처럼 전쟁을 피해 도망친 난민들로 구성돼 있다. 공식적인 내전은 끝났지만, 계속 이어지는 크고 작은 시위와 민주콩고 정부의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겠다는 목적이다. 그런 그와 동료들이 콩고에 있는 지인이 아닌 이방인들을 위해 선뜻 돈을 내놓은 데 대해 놈비는 뜻밖에 ‘한국인의 밥 정’ 때문이라고 운을 뗐다. 놈비는 “한국에서 활동할 때 지원 단체에서 식당에 데려가거나 밥을 같이 먹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인에게 밥은 환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4월 말 프리덤 파이터스 활동가들이 모여 파티를 하는데,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한국 상황이 너무 나빠졌다”면서 “먹고 즐기는 걸 좋아하는 한국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데, 우리끼리 즐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내놓은 성금은 이들이 파티에 쓸 비용을 모은 것이다. 무용수이던 앙쥐와 대학생이던 프레디 역시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서 아프리카 기독교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프레디는 “한국은 제2의 고향이다. 이 국가에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건 형제를 돕는 것”이라면서 “목사로서 위험에 처한 이들을 돕는 건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이들만이 아니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돈을 모아 기부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난민들이 직접 마스크를 만들어 국내 취약계층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최근 국내에 있는 서아프리카 비아프라(현 나이지리아) 난민들도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국인들에게 힘을 보태겠다”면서 손소독제를 기부했다. 헌혈자 감소로 혈액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헌혈에도 동참하겠다고 나섰다. 이들 단체는 지난 7일 경기 동두천시청에 소독제를 전달하며 “우리도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한국의 안전과 모두의 건강을 위한 의무에 함께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난민을 비롯한 외국인을 보는 한국인의 시선은 여전히 편견으로 가득하다. 이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을 기부하고 한국인을 돕고 나섰는데도, 온라인에선 ‘나중에 자기들 가족을 데리고 오려는 투자금일 뿐이다’, ‘언젠가는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난민이다. 눌러살지 말라’ 등의 악성 댓글이 달렸다. 난민이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편견이다. 가장 기본적인 의사소통부터가 문제다. 놈비는 “정치적, 문화적 상황이 너무 다른데 외국인은 한국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프리덤 파이터스 활동 이후인 2018년 가택 침입 사건이 있었다. 콩고에서는 이렇게 공격당하거나 죽임당하는 일이 일상적이어서 너무 불안했는데, 한국 수사기관은 전혀 무슨 말인지 모르고 이해하려는 생각도 없었다”면서 “한국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치안이 좋은 나라니까 그런 것”이라고 했다. 프레디는 “난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인도적 체류자로 계속 지내면 어렵사리 일을 구해도 3개월이나 6개월에 한 번씩 체류연장 심사를 받아야 한다”면서 “그러지 않아도 언어소통이 자유롭지 않은데, 심사 때문에 일을 계속 빠져야 하니 사측에서는 당연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불만이 크다”고 말했다. 이렇게 난민으로서의 지위를 보장받지 못하는 건 단순히 일을 못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프레디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경제적 능력이 없고, 돈이 없으니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고, 결국 건강 관리는 꿈도 못 꾼다”고 말했다. 사회에서 유령처럼 살아가게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다.●소외됐지만 “재난 상황 같이 싸우고 싶다” 하지만 정부 대책에서 외국인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다. 특히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인 난민과 외국인 노동자 등은 완전히 배제됐다. 정부는 지난달 5일 마스크 보급 대책을 내놨지만, 건강보험 가입 자격이 되지 않는 6개월 미만 체류 이주민이나 외국인 미등록자는 마스크 구매 자격조차 부여받지 못했다. 실제 앙쥐는 외국인 등록증이 없어서 마스크 구매를 포기해야 했다. 그는 “난민 신청이 계속 받아들여지지 않아 외국인 등록증이 없는데, 약국에 갔더니 여권을 내밀어도 안 된다고 하더라”면서 “결국 지인이 대신 사다 준 마스크를 몇 번씩 재활용하며 쓰고 있다”고 토로했다. 놈비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아이들이 몸이 안 좋아 병원에 갔는데, 모든 사람의 시선이 우리를 향했다”면서 “단순 몸살 정도라고 얘기하려고 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았고, 무조건 국적이 어딘지 중국에 갔다 왔는지만 물어봤다”고 말했다. 놈비네 가족은 이후 두 달 동안 집 안에만 있었다. 이런 피해는 지난달 20일 이주공동행동 등 이주민 관련 시민단체가 연 ‘코로나19가 드러내는 인종차별 민낯 증언대회’에서 나온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공중시설에서 무조건 외국인의 입장을 제한하고, 이주 노동자들을 아예 공장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는 등 차별 실태가 심각했다. 김영아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 대표는 “마스크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유일한 자기방어책이다. 또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민폐를 끼치는 사람으로 낙인찍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면서 “코로나19에 대한 난민과 이주민의 공포가 증폭됐고 사회 심리적 방역은 실패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프레디는 “한국 내의 인종차별이나 편견이 코로나19 때 많이 드러난 것 같다”면서 “코로나19 초기 식당에서 중국어로 얘기하는 사람만 봐도 바이러스 보균자인 것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에선 이미 외국인들이 한국인과 전혀 섞이지 않으니 외국인의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낮다”면서 “한국 내 외국인이 코로나19에 잘 걸리지 않는 것도 교류 자체가 없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이들이 한국을 돕는 이유는 뭘까. 프레디는 “한국은 우리의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은 우리의 친구다. 본국에 있는 가족보다 여기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게 더 빠르다”면서 “지금 여기에 평화가 없으면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앙쥐는 바이러스가 모두의 문제라는 걸 강조했다. 그는 “불이 나면 외국인, 자국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 다 태우지 않겠냐. 그러면 같이 힘을 모아서 모두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면서 “외국인도 한국에서 이 바이러스와 함께 싸울 수 있게, 그래서 모두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새 영웅’ 한국·‘무기력’ WHO 만들어낸 코로나…비축의 미덕 일깨웠다

    ‘새 영웅’ 한국·‘무기력’ WHO 만들어낸 코로나…비축의 미덕 일깨웠다

    코로나19로 인해 대한민국은 다시 세계적으로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고 있다. 2020년 2월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자 세계는 대한민국을 향해 문을 걸어잠갔다. 케이팝과 영화 ‘기생충’ 등 한류로 형성된 이미지는 부서지고 감염병 관리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로 낙인찍혔다. 질병관리본부에서 발표하는 확진자를 입력해 그래프를 그려 보면 나타나던 ‘J자 곡선’은 무섭고 두려웠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확진자 급증의 추세에 브레이크를 밟았다. 이 일은 다른 나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3월 중순부터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이란, 미국,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세계는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있다(그림 1).●세계를 놀라게 한 한국 코로나 방역 수준 J곡선을 평평하게 한 대한민국은 능력의 상징이 됐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70년간 유지돼 온 동원국가 체제가 위기상황을 맞이해 수행한 총력전의 결과물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촘촘한 행정력, 탄탄한 제조업 기반, 공중보건의와 군의관 등 필요시 동원 가능한 의료 인력과 양호한 의료 인프라,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업들, 그리고 언제나 투덜거리지만 할 일은 하는 국민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모두가 부러워하는 납작해진 그래프의 곡선이다. 코로나19는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영웅을 등장시키고 몰락하는 존재들을 만들어 냈다. 코로나19 확산 과정에서 가장 무기력함을 드러낸 존재는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구, 그리고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의 국가 간 연합체였다. WHO는 코로나19가 처음 보고된 이후 72일 만인 3월 12일 확진자 수가 110개국 12만명을 넘고 사망자가 4300명에 돼서야 ‘팬데믹’(감염병 대유행)을 선언했다. 이는 2009년 신종플루로 난리가 났을 때 세계 74개국에서 확진환자 3만명이 나왔을 때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전례에 비춰 봤을 때 명백한 뒷북 결정이었다. 이후 WHO는 국가 간 협력을 조정해 내지 못했고 ‘마스크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4월 초에나 인정하는 등의 무능을 드러냈다. EU는 이탈리아에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할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 또한 최종 목적지가 다른 나라인 마스크나 인공호흡기 등 각종 의료물품이 자국의 공항을 경유하게 되면 ‘해적질’에 가까운 압류로 의료품을 확보했고, 수출통제 등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공동의 번영을 위한 협력이라는 EU의 이상은 위기상황 앞에서 무기력했다. 이에 비해 ‘국가’의 존재는 위기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경을 봉쇄하고, 국민의 이동을 통제하며, 마스크를 비롯한 각종 필수 물품을 조달하기 위해 국가 간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초국적 기업과 비정부기구(NGO) 등에 빼앗겼던 국가의 존재감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큰 차이를 나타냈지만 커다란 문제가 생겼을 때 사회가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존재는 역시 국가라는 점을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 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9일 오전 10시 40분 현재 151만 7866명의 확진자와 8만 8458명의 사망자를 기록하는 코로나19가 가지고 오는 충격은 과거 1·2차 세계대전에 비교되는 수준이다.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야전병원이 만들어지고 뉴욕시는 넘쳐나는 시신을 냉동트럭에 보관하고 있으니 전시나 다름없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전쟁과 대규모 전염병은 큰 충격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켰으며, 일단 변화된 사회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코로나19가 가져올 많은 변화 가운데 하나는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으로 대표되는 효율성과 비용 절감 대신 안정성과 확실함으로의 전환일 것이다. 세계화 과정에서 국경 내에 머무르던 제품의 생산은 가장 효율적으로 물건을 생산할 수 있는 곳으로 집중됐다. 즉 미국과 유럽에서 사용되는 마스크의 대부분은 중국에서 생산됐으며 미국에서 사용되는 제네릭 의약품의 40%는 인도에서 만들어졌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비축’은 구식의 개념이었다. 기업과 정부 모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잉여를 최소화하고 인력과 시설을 최소화했으며 최대한으로 가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평시 효율적이었던 이러한 시스템은 코로나19로 인한 비상 상황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코로나19 이후의 국가는 비효율을 감내하고서라도 비상시를 대비한 충분한 재고와 비축을 미덕으로 삼을 것이다. 냉전시기 형성됐던 비축의 관행을 버리지 않고 유지했던 핀란드가 인접한 다른 국가들에 비해 잘 대응하고 있는 것이 좋은 사례가 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필수 제조업 기능의 유지에 대한 강박이 강해질 것이다. 자체적으로 마스크 생산능력이 있는 한국이나 중국과 그렇지 않은 미국과 유럽의 상황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을 목격한 국가들로서는 필수 물품에 대한 생산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비교우위를 통한 무조건적인 효율성의 추구는 더이상 바람직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국가의 행정 변화도 이루어질 것이다. 권위주의 정부의 국민감시 차원에서 만들어졌던 전 국민 주민등록번호, 촘촘한 주민센터 등은 다른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밀착감시와 검사, 격리 등의 조치를 가능하게 했다(그림 2).●역학조사 과정 개인정보 활용 범위 ‘숙제’로 역학조사 과정에서 활용된 확진자의 신용카드 사용 내역과 폐쇄회로(CC)TV, 위치정보를 통한 추적시스템 등 개인정보의 활용은 2015년 메르스 사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나온 개정안이지만, 이후에는 프라이버시 보호에 대한 고려가 추가돼야 한다. 코로나19가 가져올 변화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아마도 경제에 대한 태도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코로나19의 확산은 전쟁도 아닌데 사망자가 급증하는 문제와 함께, 경제시스템의 붕괴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전술인 ‘국경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는 일국의 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이미 항공 및 관광업을 비롯한 몇몇 산업 분야는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유럽 각국은 엄청난 규모의 금융 및 재정 정책을 연이어 발표하고 있다. 미국은 무제한 양적완화와 수조 달러 규모의 재정투입을 통한 경기부양책은 물론 그동안 금기시하던 개인에 대한 현금 지원까지 동원 가능한 모든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EU 역시 고용유지를 위한 임금보조 확대, 소상공인에 대한 보조금 지급은 물론 그동안 금과옥조로 여겨 오던 재정적자(GDP 3% 이하), 국가채무(GDP 60% 이하)라는 EU 재정준칙의 적용을 일시중단하면서까지 대규모 적자재정을 편성해 투입하고 있다. 주요 국가의 재정지출 계획은 미국 6.3%, 독일 4.4%, 프랑스 1.8%이며 추가적인 대책도 얼마든지 고려되고 있다. 전시경제에 돌입한 것이다(표 1).이에 비해 우리는 추경 11조 7000억원, 최근 논의되고 있는 긴급재난지원금 9조 1000억원을 포함해도 GDP의 1%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규모의 적정성 여부도 문제지만, 비상 상황에서도 ‘재정건전성’을 이야기하는 기획재정부와 청와대 정책실장의 안이한 상황인식이 더 큰 문제다. 지출을 늘리고, 소비를 진작해야 하는 상황에서 고위직 공무원 등에 대해 임금삭감을 통한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있으며 시급을 다투는 재난지원금은 소득하위 70%라는 선별지급 원칙을 제시했다. 창의력을 발휘해 시장을 안정시켜야 하는 상황에서 규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스위스는 소상공인 대출 과정에 인공지능을 투입해 서류 1장만 작성하면 30분 만에 대출을 시행함으로써 단 1주일 만에 18조원의 대출을 집행했다. 반면 한국은 7일 현재 긴급자금을 신청한 소상공인 중 3분의1에게만 집행됐다. 전쟁사를 들여다보면 대등한 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패배하는 경우가 있다. 전력을 일시에 투입해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찔끔찔끔 ‘축차투입’을 하다가 불필요한 희생만 늘리는 경우이다. 우리의 방역정책은 압도적인 행정력을 동원해 검사(Test), 추적(Trace), 치료(Treat)로 이루어진 3T 전술을 구사해 성공을 거두었지만, 방역의 성공을 지켜줄 경제정책에서는 제대로 투입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전시경제’ 상황 신속한 재정 집행 장치 필요 한국 정부나 국민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는 인식의 전환과 신속한 재정집행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과잉투자와 방만한 예산집행을 문제로 지적했고 이때부터 예산당국은 강화된 권한을 가지게 됐다. 여기에 ‘재정건전성 확보가 IMF 조기졸업을 가능하게 했다’는 논리가 경제부처 구성원들과 여론 주도층의 인식에 자리잡으면서 적극적 재정집행을 가로막고 있다. 관행을 뛰어넘는 예산의 편성과 집행이 필요하며, 이는 기존 조직과 체계가 변화해야 가능하다. 여기에 ‘예비타당성 조사제도’는 신속한 대규모 투자를 가로막는 요소이다. 단기적으로는 예비타당성 조사의 한시적 중단이 필요하다. 추경을 편성하더라도 이것을 집행하는 데 1년 이상의 세월이 걸린다면 그 효과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반드시 필요한 제도인지에 대한 논의는 단계적으로 진행하더라도 현시점에서 평시와 같은 집행과정을 요구해서는 곤란하다. 코로나19 대응과정에서 한국이 거둔 성취를 만끽해도 좋다. 성취가 없다면 어려운 일을 극복할 힘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을 시민에 대한 정부의 우월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마스크 수급에서 어려움을 겪으면서 ‘WHO는 마스크 사용을 권고하지 않는다’며 마스크 정책에서 우왕좌왕했으나 ‘17번 확진자의 사례’를 통해 학습한 경험을 근거로 끝내 마스크 착용을 유지하며 코로나19 확산을 저지한 쪽은 국민이었다. 세계의 격찬을 받은 ‘드라이브 스루 검사법’이나 ‘워킹스루 검사법’ 역시 현장의 제안을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현장의 행정·의료 인력의 자발성과 창의력을 오히려 높이 평가해야 한다. 과잉으로 평가받던 민간병원의 병상과 인력, 기업들의 연수원 활용 등도 재평가해야 한다. 대형 할인점들의 막강한 유통망과 인터넷 배송 네트워크, 택배 노동자들의 헌신도 잊지 말아야 한다. 유통 네트워크가 한국에서 사재기를 없앤 것이다. 한국은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세상으로의 진입을 준비해야 한다. 지난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면서, 한국 정부와 한국인은 앞에 펼쳐질 낯설고 험한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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