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회적 낙인
    2026-05-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67
  • 박옥분 경기도의원, 보호관찰 대상자 안정적인 사회정착 위한 기반 마련

    박옥분 경기도의원, 보호관찰 대상자 안정적인 사회정착 위한 기반 마련

    경기도의회 교육행정위원회 박옥분 의원(더불어민주당·수원2)이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대표발의한 ‘경기도 보호관찰 대상자 등에 대한 사회정착지원 조례안’이 21일 해당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날 박옥분 의원은 제안설명에서 “우리나라에서 각종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연간 158조 원이고, 재범의 경우 10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며 “재범률이 1% 낮아질 때마다 사회적 비용은 연간 903억 원이 절감되나 최근 3년 간 재범률은 약 7%대에 머물러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업서비스를 제공받은 출소자의 재범률은 0.3%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출소자들이 취업의 어려움 등 생활고에 의해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의 방증일 수 있다”며 보호관찰 대상자들에 대한 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박 의원은 “죄를 지은 자에게 혈세를 지원해야 하는 것에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죄를 지었다고 평생 낙인이 찍힌 채 재기할 기회조차 박탈되는 사회는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며 “누구에게나 동일한 기회가 제공되는 평등한 사회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종착지이며 범죄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범죄로부터 안전한 지역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해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제정 취지를 밝혔다. 조례안은 보호관찰 대상자 등이 지역사회에 원활히 정착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도지사의 책무와 도민의 협력 사항을 규정했고, 보호관찰 대상자 등의 사회정착을 위해 필요한 지원 내용을 담았으며, 아울러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보호관찰제도의 특성을 감안하여 지역사회 협력체계 구축을 위한 내용을 규정해 조례의 실효성 확보를 도모했다. 조례 통과 후 박옥분 의원은 “사회적 약자로 볼 수 있는 보호관찰 대상자들의 안정적인 사회정착이 우리사회 안전성 제고로 연결되는, 사회 전체적인 시각에서 발의한 저의 의도를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님들이 이해해주시고, 공감하여 원활히 통과시켜주신 것 같아 감사드린다”며 “향후 보호관찰 대상자들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 안전한 지역 공동체가 구현되길 바란다”고 소회를 전했다. 이날 해당 상임위를 통과한 박옥분 의원 대표발의 조례안은 오는 29일 본회의를 통과하면 즉각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민 절반 “코로나19 장기화로 불안·우울해”

    국민 절반 “코로나19 장기화로 불안·우울해”

    코로나19 장기화로 국민 과반이 불안·우울감을 호소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경기연구원은 지난 3월 22∼23일 전국 17개 광역시·도 20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웹 설문조사 (신뢰수준은 95% 표본오차 ±2.19%p)를 한 결과 ‘코로나19로 불안·우울하다’는 응답 비율이 55.8%로 나타났다고 20일 밝혔다. 지난해 4월 전국 15세 이상 1500명을 조사했을 때는 47.5%로 악화된 수치다. 이번 조사에서 전체 17.7%가 우울증 위험군, 12.7%가 불안장애 위험군으로 각각 분류됐다. 성별로는 여성(우울증 19.9%, 불안장애 14.0%)이 남성(우울증 15.5%, 불안장애 11.3%) 보다 심각했다. 연령별로 우울증은 20대(22.4%)와 60대 이상(18.3%), 불안장애는 20대(14.9%)와 30대(14.8%)의 비중이 각각 높아 전반적으로 20대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의 66.4%는 ‘일상생활을 방해한다’, 30.6%는 ‘수면의 질이 나빠졌다’고 답변했다. 특히8.3%는 코로나19로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유로는 경제적 어려움(21.5%), 정신적 스트레스(21.5%), 고립감·외로움·인간관계 단절(16.0%) 등을 주로 꼽았다. 이 밖에 응답자의 73.0%는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정신건강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은환 연구위원은 “이번 조사 결과에서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낙인 인식도가 매우 높았다”며 “이는 대상자들을 사회로부터 심리적으로 격리, 불안·우울감을 더 악화하는 만큼 이를 해소할 캠페인 등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차별의 색’ 짙게 바른 아파트

    ‘차별의 색’ 짙게 바른 아파트

    “분홍색 동은 임대아파트예요. 우리 가족은 파란색 분양아파트에 살아요.” 12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A아파트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정모(13)군은 “같은 단지인데 왜 일부만 분홍색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16개 동으로 구성된 이 아파트의 13개 동은 파란색 새 페인트로 도색된 상태였지만 나머지 3개 동의 외관은 빛바랜 분홍색이었다. ●16개동 중 ‘임대’ 3개동 빼고 새로 도색 1999년 준공된 A아파트는 분양아파트와 공공임대아파트가 섞인 ‘소셜믹스’ 형태로 지어졌다. 사회·경제적 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도록 해 계층 격차를 완화하는 취지의 주거공급 방식이다. A아파트 관리사무소는 2012년 이후 8년 만인 지난해 가을부터 외벽 도색 작업을 시작했지만 임대아파트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관리 주체와 관리비 체계가 분양아파트와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결과적으로 전체 입주민의 30%가 거주하는 임대아파트만 낡은 외벽 상태로 방치되면서 소셜믹스를 잘 몰랐던 동네 주민들도 ‘분홍색 동은 임대아파트’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황용삼(52)씨는 “주변 아파트는 모두 깨끗한데 바로 옆인 우리 동은 낡아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부지만 한 곳에… 관리는 ‘따로따로’ 아파트 도색은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의 몫이다. 파란색 분양아파트는 집주인이 부담하는 장기수선충당금에서 약 3억원을 도색비로 썼다. 분홍색 임대아파트의 집주인은 서울시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외벽 색이 달라 나타나는 사회적 낙인을 걱정하면서도 서울시나 위탁관리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도색을 요구하기는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강길지(80)씨는 “거주민 대부분이 새터민이나 장애인, 저소득층이라 입에 풀칠하기 바쁘다”며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라는 생각에 하소연만 한다”고 말했다. ●답십리 아파트엔 임대동에만 철조망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의 구조 등 외관상 차이는 차별을 강화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의 B아파트는 4개 동 중 1개의 임대 동에만 철조망을 둘러 경계를 나눴다. 출입구도, 주차구역도 달라 한 단지로 보기 힘들 정도다. 인근 주민인 김민영(20)씨는 “어릴 때 임대 동에 살던 친구는 집에 대해 얘기하는 걸 부끄러워했다”면서 “계속 어울리지 못하고 집안 형편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모여 다녔다”고 전했다. ●SH 임대아파트 위탁관리 소홀 지적 오정석 SH 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재개발·재건축 임대아파트는 완공 후 서울시가 매입하고 SH가 위탁관리하기에 분양아파트와 외관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분양아파트가 주택 가격을 의식해 외관 도색과 관리에 적극적인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 아파트들이 5~7년마다 아파트 외벽을 새로 칠하는 점을 고려하면 SH가 임대아파트 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SH 관계자는 “매매아파트와 임대아파트의 공존을 위해 내년에 A아파트 임대 동 도색을 검토하겠다”며 “다만 단지 상태를 평가한 후 도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글 사진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같은 아파트인데 분양은 파란색, 임대는 분홍색?

    같은 아파트인데 분양은 파란색, 임대는 분홍색?

    “낡은 분홍색 동은 임대아파트이에요. 우리 가족은 분홍색 임대아파트가 아니라 파란색 분양아파트에 살아요.” 12일 찾은 서울 노원구 중계동의 A 아파트. 1차와 2차 16개동 중 13개동의 외벽은 파란색 페인트로 새단장을 했지만, 나머지 3개동의 외관은 빛바랜 분홍빛이었다. 단지 안에서 만난 초등학교 6학년 주민 정모(13)군에게 “같은 아파트인데 왜 저 건물들만 분홍색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분양아파트와 공공임대 아파트가 섞인 소셜믹스로 만들어진 이 아파트는 2012년 이후 약 8년 만인 지난해 가을부터 외벽 도색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2차 단지에서는 9개동 중 1개동을, 1차 단지에서는 7개동 가운데 2개 동은 도색 작업을 하지 않았다. 임대아파트는 관리 주체나 관리비 체계가 분양 세대와 다르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국 약 30% 주민이 사는 임대아파트만 낡은 외벽이 그래도 남겨진 탓에 사정을 잘 알지 못했던 동네 주민들에게도 “분홍색 동은 임대 아파트”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임대아파트에 사는 황용삼(52)씨는 “주변 아파트는 모두 깨끗한데 바로 옆인 우리 동은 낡아서 괜히 눈치가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파트 도색은 세입자가 아닌 ‘집주인’의 몫이다. 분양아파트는 집주인이 부담하는 장기수선충당금에서 약 3억원을 도색비로 썼다. 임대아파트 주민들은 사회적 낙인 찍기를 우려하면서도 ‘집주인’인 서울시나 위탁관리하는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강길지(80)씨는 “거주민 대부분이 새터민이나 장애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라면서 “다들 생계를 꾸리기도 바쁘고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는 생각에 서로 하소연만 한다”고 했다. 임대아파트와 분양아파트의 구조 등 외관상 차이는 차별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임대동에만 따로 철조망을 친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의 B아파트 인근에서 사는 김민영(20)씨는 “주변에서도 무시하다보니 임대동에 사는 친구는 스스로 집에 대해 얘기하는 걸 부끄러워했다”면서 “계속 어울리지 못하고 끼리끼리 다니게 됐다”고 했다. 13년째 임대동을 경비하는 박모씨는 “예전에는 어린 아이들도 살았지만, 지금은 사실상 노인만 남았다”고 귀띔했다. 오정석 SH 도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재개발·재건축 임대아파트는 지어진 후 서울시가 매입해 SH가 위탁관리하기에 분양 아파트와 외관상 차이가 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분양 세대가 주택 가격을 의식해 외관 도색 등에 적극적인 편”이라고 짚었다. 그러나 통상 5~7년마다 아파트를 도색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SH가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SH 관계자는 “매매아파트와 임대아파트의 공존을 위해서 내년에는 임대아파트를 도색하겠다”면서도 “단지 상태를 평가한 후 도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편견 없는 무채색, 짙은 호소… “亞혐오, 자신을 혐오하는 일”

    편견 없는 무채색, 짙은 호소… “亞혐오, 자신을 혐오하는 일”

    ‘낙서’로 혐오에 맞서는 작가가 있다. ‘예롱’이라는 필명으로 만화를 그리는 고예성(28) 작가다. 2018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고 작가는 2019년 10월 한국 사회의 일상 속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책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를 출간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그의 만화는 흰색 바탕 위에 검정색 선이 들어가는 무채색의 분위기가 특징이다. 고 작가는 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성별과 인종이 가진 특성을 색깔로 묘사하는 것이 오히려 편견과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차례로 제거하다 보니 무채색의 그림이 됐다”며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 작가는 인종차별이 결코 먼 얘기가 아니라면서 한국에 7년째 거주 중인 외국인 A씨가 겪은 일을 들려줬다. A씨가 승강기에 타려고 하자 건물 관리 직원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와 발로 걷어찰 듯이 위협을 가하고 손 세정제를 뿌렸다는 것이다. 직원은 A씨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A씨는 이미 진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고 작가는 “최근 관할지역 거주 외국인들이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한 행정명령도 외국인들을 바이러스 감염원으로 낙인 찍고 혐오를 부추기는 행위였다”고 지적했다. 작품 주제는 인종차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도 맞선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심각해진 아시안 혐오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 미국 애틀랜타 백인 남성의 총격에 숨진 아시아 여성들, 한인 슈퍼마켓에 들어와 쇠막대기로 난동을 피운 흑인 남성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에 고 작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고 작가는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는 가해 대상인 동양인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면서 “중국 혐오 댓글을 남기고 공감하는 행위는 결국 자신의 안전을 위협하고 혐오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중국 혐오, 나아가 아시안 혐오에 다 함께 힘을 합쳐 저항하는 것이 나와 내 가족들, 내 친구들을 지키는 일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작가는 중·고교 학생에게 강연을 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청년기구에서 화상 연설을 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상황에 따라 우리 모두 소수자가 될 수 있다”며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일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아시안 혐오에 저항하는 일이 나와 내 가족·친구를 지키는 일”

    “아시안 혐오에 저항하는 일이 나와 내 가족·친구를 지키는 일”

    ‘낙서’로 혐오에 맞서는 작가가 있다. ‘예롱’이라는 필명으로 만화를 그리는 고예성(28) 작가다. 2018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고 작가는 2019년 10월 한국 사회의 일상 속 인종차별 문제를 다룬 책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흑인이 앉았다’를 출간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그는 흰색 바탕 위에 검정색 선이 들어간 무채색의 만화를 그린다. 만화에는 상황을 설명하고 고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짧은 글이 적혀 있다. 고 작가는 6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특정 성별, 특정 인종이 가진 특성들을 색깔로 묘사하는 것이 오히려 편견과 오해를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런 요소들을 차례로 제거하다 보니 무채색의 그림이 됐다”며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평소 외국인들로부터 감사와 응원 메시지를 받는다는 고 작가는 인종차별이 결코 먼 얘기가 아니라면서 한국에 7년째 거주 중인 외국인 A씨가 겪은 일을 들려줬다. A씨가 승강기에 타려고 하자 건물 관리 직원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와 발로 걷어찰 듯이 위협을 가하고 손 세정제를 뿌렸다는 것이다. 직원은 A씨가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소리치기까지 했다. A씨는 이미 진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고 작가는 “최근 관할지역 거주 외국인들이 모두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한 행정명령도 외국인들을 바이러스 감염원으로 낙인 찍고 혐오를 부추기는 행위였다”고 지적했다.작품 주제는 인종차별에 국한하지 않는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도 맞선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심각해진 아시안 혐오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낸다. 미국 애틀랜타 백인 남성의 총격에 숨진 아시아 여성들, 한인 슈퍼마켓에 들어와 쇠막대기로 난동을 피운 흑인 남성을 다룬 기사에 달린 댓글에 고 작가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중국인을 쏘는 것은 말리지 않겠다”, “중국인들 때문에 우리가 피해 보네” 등 중국인을 겨냥한 혐오적 내용이었다. 고 작가는 “세계 각지에서 심해지고 있는 중국 혐오가 아시안 혐오로 이어지고 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는 그 동양인이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가 중요하지 않다”면서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해 중국 혐오 댓글을 남기고 공감하는 행위는 결국 스스로의 안전을 위협하고 혐오하는 행위와 다름 없다. 중국 혐오, 나아가 아시안 혐오에 다 함께 힘을 합쳐 저항하는 것이 나와 내 가족들, 내 친구들을 지키는 일임을 인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고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 민감한 이슈인 군 입대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남자에게만 징병을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성차별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런 징병 문제를 단순히 남녀갈등 문제로 보면 안 된다”며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했다. “직장 상사가 남자에게만 일을 줬어요. 여자가 자기한테도 일을 달라고 했는데 상사가 여자에겐 일을 안 줘요. 이렇게 굉장히 불합리한 상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여자와 남자가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 이런 상황을 만든 상사에게 불합리함을 이야기해야 할까요.” 고 작가는 “오히려 여성과 남성이 힘을 합쳐 남성에게만 군 입대 의무를 부여하는 국가에 항의하고 적절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작가는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확산이 심해지기 전까지 중·고교 또는 도서관에서 인종차별과 성차별, 장애인 차별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연예기획사에서도 고 작가에게 강연을 요청한다. 지난달 23일에는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청년기구에서 한국 사회의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연설을 하기도 했다. 고 작가는 “연설이 끝나고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취업을 할 때 어떤 차별을 받는지’, ‘어떻게 하면 한국의 차별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을 받았다. 저는 취업할 때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보는 시선이 한국 사회에 있는 것 같다고 답했고,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차별금지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연합(EU)의 후원을 받고 있는 한국·EU 시민사회 네트워크(KEN)와 협업을 하여 차별을 주제로 하는 만화를 연재하는 고 작가는 “상황에 따라 우리 모두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소수자를 향한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일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외국인 노동자 강제검사는 중대 차별”…서울대, 서울시에 철회 요구

    “외국인 노동자 강제검사는 중대 차별”…서울대, 서울시에 철회 요구

    서울대학교가 외국인 노동자의 코로나19 진단검사를 강제한 서울시의 행정명령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다. 서울대는 19일 외국인 노동자 진단검사 행정명령은 외국인에 대한 중대한 차별이자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이같이 밝혔다. 서울대는 지난 17일 서울시로부터 서울에 거주하는 모든 외국인 노동자가 오는 31일까지 의무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행정명령을 받았다. 검사를 받지 않으면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서울대는 “외국인 검사 의무화는 과학적 근거가 확인되지 않아 코로나19 예방 및 확산 방지에 부적절하다”라며 “많은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집단감염의 근본 원인은 밀집, 밀접, 밀폐로 감염에 취약한 노동조건과 열악한 주거환경”이라고 밝혔다. 서울대에 재직하는 외국인 교수, 유학생들도 의무적으로 검사를 받고 이에 불응하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학교 측은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등 국제기구가 코로나19 대응 지침이 이주민과 이주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낙인, 차별, 인종주의, 외국인 혐오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등하게 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서울대는 서울시의 이번 행정명령의 역효과가 크게 우려된다며 향후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구제 신청을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기고] 4월 재보궐선거 전에 의혹 정리돼야/김세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기고] 4월 재보궐선거 전에 의혹 정리돼야/김세환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독특한 선거 방식으로 콘클라베가 있다. 1274년부터 제도화된 것으로 교황 선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분열,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교황청의 오랜 전통이다. 선거 과정이나 결과에 대한 신뢰가 국가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중세시대에도 매우 컸음을 보여 주는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선거는 대통령을 선출해 행정부를 조직하고, 국회의원을 선출해 입법부를 구성하며, 대통령과 국회를 통해 사법부를 형성하는 국가 설계의 수단으로 기능한다. 정치적 성향이 다양한 유권자가 참여하기에 그 과정과 결과에 이견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제로 민주주의 역사에서 국가적 혼란의 상당수는 선거 과정이나 결과의 불신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가깝게는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그렇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의 합의된 규정과 선거 전담 기관이 없어 주별로 선거를 관리한다. 이번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여러 주에서 소송을 제기했고, 급기야 지지자들이 의회에 난입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우리 헌법은 선거관리 주무기관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선관위는 선거 과정과 결과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 책무도 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4월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 부정이 있다며 선거 무효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수차례 해명했음에도 선거 후 1년이 다 되도록 같은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부정선거 주장자가 제기한 선거무효소송 116건이 아직 진행 중이다. 결정의 지연은 단순한 의혹이 확대재생산돼 사실로 포장될 여지를 주고 이를 반복해 접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거 결과에 막연한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는 향후 선거 관리에 대한 낙인효과로 작용해 선거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표출될 수 있어 안타깝다. 대법원은 선거소송에 대한 결정을 신속히 해 주길 바란다. 소모적 논쟁을 매듭짓는 것은 앞으로 실시될 수많은 공직 선거와 국가의 미래를 위하고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선거 관리 최고의 지향점은 공정성·정확성·투명성이다. 공정하고 정확하더라도 투명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지 못한다. 제도적으로 금지된 것 외에는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하다면 제도 개선을 통해서라도 공개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본다. 선관위는 선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가를 설계하는 선거 기능이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일을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4월 7일 재보궐선거가 불과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제기된 모든 선거 부정 의혹이 하루빨리 해소되기를 기대해 본다.
  • [데스크 시각] 화해와 용서의 기술/이제훈 체육부장

    [데스크 시각] 화해와 용서의 기술/이제훈 체육부장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거나 잘못할 수 있다. 아직 완전한 인격체로 자라지 않은 어린 시절에 그런 일은 더 많이 벌어질 수 있다. 못 말리는 개구쟁이가 성인이 돼서 점잖은 사람으로 바뀔 수도 있고 둘도 없는 모범생이 교활한 범죄자가 되기도 한다. 심리학자 딕 티비츠는 자신의 저서 ‘용서의 기술’에서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하고 인생을 살아가며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실수를 하면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이 주어지는 것이다. 실수를 통해 교훈을 얻어 성숙한 인격체로 발전할 수 있어서다. 유명 소설가 파울루 코엘류는 2018년 자신의 트위터에 “누구나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있지만 같은 실수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실수가 계속되면 의도가 있는 것으로 고의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또 신은 언제나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준다고도 밝혔다. 최근 프로배구와 프로야구, 프로축구까지 번진 ‘학폭’(학교폭력) 문제를 바라보면서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두 번째 기회라는 것이 생각났다. 인기 구단에서 연예인급 인기를 누리던 이재영ㆍ다영 쌍둥이 자매는 학폭 가해자란 낙인과 함께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가대표 무기한 자격 박탈이라는 중징계에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프로배구 삼성화재의 박상학은 학폭 문제가 불거지자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며 은퇴했다. 어떤 이유로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 특히 꿈 많은 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괴롭힘을 당한다면 그것은 바로 지옥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괴롭혔던 이가 유명인이 돼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면 그 트라우마를 다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성인인 국가대표에게 폭력을 행사한 당사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업계에서 지도자로 활동한다면 괴로움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국가대표 시절 코치로부터 전치 3주의 폭행을 당했던 박철우가 이상열 당시 코치의 태도에 화가 나 SNS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적은 것만 봐도 피해자가 느꼈을 분노가 어느 정도일지 조금이나마 짐작이 간다. 10여년 전의 끔찍한 기억을 평생 안고 살아갈 수는 없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정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려면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사과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와 함께 피해자가 이들의 사과를 받아들여 마음을 풀고 용서해야 한다. 그래서 화해와 용서의 기술은 그 사회의 성숙성을 보여 주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폭로하기 전에 가해자에게 자신의 괴로움을 알리고 먼저 사과를 요구했으면 어땠을까? 견디다 못한 피해자의 폭로가 이뤄진 뒤에 언론이나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사과문을 발표하는 게 아니라 진정으로 피해자를 찾아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피해자의 아팠던 과거에 공감하며 용서를 구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피해자가 원했던 것은 무기한 자격정지나 은퇴로 가해자가 스포츠계를 영원히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와 사과하고 손을 내미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가해자를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학폭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지 않는 분위기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스포츠계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곳곳에 있는 폭력 문제가 단번에 사라지기는 힘들 것이다. 학폭으로 불거진 사회적 분노를 일부에게 화풀이 대상처럼 풀어 버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차분하고 냉정하게 학폭 문제에 접근해야 할 때다. parti98@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백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백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박찬구 정책뉴스부 선임기자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13개월 남짓 만에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정부 표현대로 ‘백신의 시간’이다. 백신은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기대와 안도감이 앞서지만 백신으로 인해 우리 공동체가 바이러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우려 섞인 의문이 남는다. 확진자 한 사람이 몇 명을 감염시키는지를 나타내는 감염재생산지수가 1.0을 오르내리며 유행이 지속되고 있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가 신규 확진자 5명 가운데 1명을 넘고 있다. 불안한 일상의 연속이다. 방역 당국과 감염병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바이러스가 백신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이를 일으킬 수 있고 이번 위기를 넘기더라도 제2, 제3의 감염병이 내습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코로나19로 드러난 우리 안의 치부, 익숙한 일상에 가려진 민낯을 돌아보면 서로를 보듬고 함께 희망을 나눌 공동체를 복원하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사회적 약자를 차별하고 불신하며 확진자에게 낙인을 찍는 행태가 대표적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 따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사회복지시설 휴관과 폐쇄가 장기화하면서 발달장애인의 돌봄 공백으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과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자가격리 중인 신장 장애인이 의료기관의 투석 거부로 심정지를 일으켜 숨지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체 확진자 중 장애인 비율은 4.0% 정도이지만 사망자 중 장애인은 21.0%에 이른다. 장애인 확진자 중 사망자 비율은 7.5%로 비장애인(1.2%)보다 높았다. 장애인 확진자나 격리자에 대한 대응책이 미흡해 병상 부족에 따른 자택 대기나 돌봄 공백으로 사망한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장애인에게 무서운 건 감염보다 고립’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K방역의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코로나19에서 완치됐는데도 진료를 거부당한 사례도 있다. 지방의료원에서 퇴원한 할머니가 허리를 다쳐 병원을 찾았으나 발길을 돌려야 했다. 죽은 바이러스 조각 때문에 양성 판정이 나왔지만 감염력은 없는 상태였다. 할머니를 돌보던 간호사는 병원 측 사정도 이해는 하지만 너무한 처사 아니냐며 씁쓸해했다. 앞서 서울의 한 파출소 관계자가 관내 감염병 전담병원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지역 주민들이 불안해하니 병원 지정 계획을 철회해 달라며 보건 당국에 전화로 읍소하기도 했다. 이른바 코로나 님비 현상이다. 정부든 시민이든 틈만 나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과 담론을 얘기하고 다 함께 사는 세상을 구호로 외치지만 정작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는 목소리가 약한 소외계층이 관심 밖으로 밀리고 ‘다 좋은데 나는 안 된다’는 이기심을 앞세우는 모양새다. 방역 성과와는 별개로 코로나19가 우리에게 던진 무거운 숙제라 할 수 있다. 저물녘 온기가 스러지듯 불안과 공포에서 헤어날 수 없는 시간이 그렇게 간다. 체념이 이어지고 일상이 된다. 어떤 희망과 믿음으로 버텨 나갈 수 있을지 되묻는다. 분명한 점은 고립된 개체로서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나갈 수 없다는 것, 공동체 일원으로 서로를 보듬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 희망은 바로 그 지점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감염병 종식은 어떤 도전에도 공동체를 살려내겠다는 구성원 모두의 집념과 노력이 전제돼야 가능하다. 감염을 이유로 누군가를 차별하고 당사자와 가족을 낙인찍는 행태는 바이러스 공세 앞에서 우리의 진지를 허무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백신이 게임 체인저가 된다 한들 그늘진 곳, 약자를 향한 시선을 외면한다면 공동체는 어디서 구원을 찾을 수 있을까. 정부세종청사 옥상 입구에 길을 안내하는 바람개비 20여개가 돌고 있다. 희망과 생명의 바람이 모두에게 불어오길 소망한다. ckpark@seoul.co.kr
  • 코로나 이후 사회·경제·교육 변화 조망한다…관련 서적 봇물

    코로나 이후 사회·경제·교육 변화 조망한다…관련 서적 봇물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발견된 지 1년여가 지났고 백신 도입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여전히 멈출 수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드러난 우리 사회·경제·교육 현장의 문제를 조명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어떻게 달라질지를 전망하는 책들이 잇달아 출간됐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도 우리가 코로나19 이전처럼 살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한국 사회의 사각지대는…‘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창비는 인권활동가 미류, 문화인류학자 서보경 등 10명이 저자로 참여한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을 통해 코로나19를 계기로 드러난 한국사회의 사각지대를 짚었다. 인권, 환경, 노동, 젠더, 인종, 장애 등 다양한 관점에서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코로나 시대 이전과 이후 우리 삶이 같아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인권활동가 미류는 갑자기 자가격리를 하게 되며 느꼈던 두려움을 털어놓고, 결국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 감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문화인류학자 서보경은 언제 어떻게 바이러스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확진자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 낙인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으로 이어지는 감정의 고리들을 파헤친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팬데믹 시기 여성에게 더 가혹하게 닥친 위기를 다각도로 살피면서 돌봄이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주장한다.●코로나 이후 경제 체제 대안…‘공유 경제 2.0’ 조산구 한국공유경제협회 회장이 펴낸 ‘공유경제 2.0’(21세기 북스)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할 경제 체제의 대안으로 공유경제를 꼽았다. 사람들이 될 수 있는 한 대면 접촉을 피하고 백신이 개발됐지만, 바이러스도 진화하고 있어 이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 문화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우버는 음식배달을 하는 우버이츠와 사업 다각화를 통해 매출을 끌어올렸고, 에어비앤비는 최근 성공적으로 기업 상장을 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고도화된 정보통신(IT)과 네트워크 기술로 누구나 접근하고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플랫폼을 제공하면서 이를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 창업도 늘어났다. 저자는 코로나19 이후 경제적 이득보다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중시하고, 시민 중심의 협력적 공유경제 2.0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단언한다.●온라인 수업 1년, 이제 무엇이 필요한가... ‘코로나 이후 학교의 미래’ 현직 초등학교 교사와 교육학자 등 7명이 우리 교육현장을 돌아본 ‘코로나 이후 학교의 미래’(오브바이포)도 출간됐다.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진통을 겪는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담았다. 김재현 이담초등학교 교사와 김종훈 성신여대 교육학과 교수 등은 온라인 수업 환경에서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지금의 교육과정과 내년도 새로운 교육과정 개정의 방향, 교육부의 하향식 지침에 익숙한 학교가 자율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 등을 설명한다. 온라인 수업과 등교수업을 접목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이 시급하고, 교육부에서는 교육현장에 있는 교사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이여 한다고 제시한다. 온라인 수업을 통해 정부나 교육청의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긴 했지만, 아이들의 놀이·식사·생활 태도 등까지는 책임지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을 가장 이해해줄 수 있는 부모의 지원이 절실하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김균미 칼럼] ‘믿는다’도 다르게 이해하는 저신뢰사회

    [김균미 칼럼] ‘믿는다’도 다르게 이해하는 저신뢰사회

    대통령이 연일 ‘특단’의 조치를 강조한다. 16일 국무회의에서 “국토부는 집값 안정에 부처 명운을 걸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역대급 고용위기”에 전 부처가 ‘비상한 대책을 시급하게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15일 신임 문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는 스포츠계 폭력을 근절할 ‘특단의 노력’을 당부했다. 작년 코로나 위기 이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와 국무회의 때마다 방역, 부동산, 고용 대책과 관련해 ‘특단’이라는 표현이 거의 빠진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더이상 ‘특단’이 아니라 ‘또 특단’으로 들린다. 정부가 내놓을 대책에 대한 기대도, 신뢰도 떨어진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사건·사고에 휘말리지 않고 큰 병에 걸리지 않길 바란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사법 당국이 자신을 지켜 줄 마지막 보루이길 기대하지만, 실제 사법 당국에 대한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다. ‘공정’과 ‘민생’에 방점을 둔 권력기관에 대한 개혁을 지지하는 이유다. 자발적인 개혁에는 물론 한계가 있지만 지금처럼 거대 여당에서 몰아붙이는 검찰 개혁, 사법부 개혁, 경제 개혁에 이은 언론 개혁은 부작용이 따르고 그렇지 않아도 낮은 신뢰도를 더 추락시키고 있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은 하는지 심히 걱정된다. 선출된 권력임을 강조하며 개혁을 명분으로 내건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그럼 높은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18년 4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32.3%로 낮다. 민망하게도 정치계가 6.9%로 꼴찌다. 여당이 개혁 대상으로 지목한 언론(35.5%), 법조(34.0%), 공직사회(37.2%)도 낮지만 평균보다는 높다. 기업에 대한 신뢰도는 17.9%에 불과하다. 여북하면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1995년 펴낸 책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저(低)신뢰 사회´로 표현한 것이 아직 통할까. 코로나 위기 속에 방역 당국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높은데 무슨 소리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방역을 빼고는 전반적인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큰 편이다. 후쿠야마의 분석이 유효하다는 지표는 많다. 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매년 11월 공신력 있는 국제지표와 여론조사 등을 토대로 발표하는 ‘레가툼 번영지수’에서 한국은 2020년 교육과 보건, 경제의 질, 개인의 자유 등을 종합 평가한 결과 167개국 중 28위로 상위권이다. 하지만 ‘사회적 자본´ 항목은 139위로 최하위권이다. 편차가 커도 너무 심하다. 사회적 자본은 개인 간 신뢰와 국가 기관과 제도에 대한 신뢰, 사회규범과 시민의 참여 정도로 사회 안정과 경제 성장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무형 자산이다. 국가 기관에 대한 신뢰 중에서 사법 시스템과 법원에 대한 신뢰가 164위, 군에 대한 신뢰가 147위, 정부에 대한 신뢰가 123위,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111위로 유독 낮다. 정치인에 대한 신뢰는 2010년 25위에서 급락했다. 인적·물적 자본에 비해 비정상적일 정도로 낮은 한국의 사회적 자본 확충 논의는 2000년대 들어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16년에는 심지어 신뢰, 믿음, 협력 등을 통해 사회통합과 발전을 추구하는 내용의 ‘사회적자본증진법’까지 발의됐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같은 해 ‘한국의 사회적 자본 축적 실태와 대응과제 연구´ 보고서까지 내며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적폐청산과 권력기관 개혁, 코로나 위기까지 겹치면서 사회적 자본 확충 논의는 사그라졌다. 편 가르기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내 편이 하면 선, 반대 편이 하면 적폐로 낙인찍기 일쑤다. 이런 마당에 신뢰가 뿌리내릴 틈이 어디 있나. 여야가 따로 없지만, 특히 슈퍼 여당은 통합과 상생 정치를 말로만 한다. 불신과 분열의 원인은 모두 남 탓이란다. 사회의 신뢰 자본을 이렇게 망가뜨리고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는지 걱정스럽다. 코로나 위기에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자본을 거론하는 것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개인 간,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야말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하다. 신뢰 자본을 쌓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설득하고 솔직하게 소통해야 한다. 이때 소통은 당연히 양방향이어야 한다. ‘믿는다’는 말에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지만 신뢰가 부족하면 책임지라는 말로만 들려 불신을 키울 수 있다. 국민 신뢰도가 가장 낮은 정치권부터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야 개혁 명분도 산다.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봄 27세의 청년 시인이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한 잡지에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공주의와 역사적 무지를 강타한 이 충격적 시편은 당시까지 사회적 금기였던 제주 4·3의 참담한 비극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라산’은 비통한 현대사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격정을 담은 그야말로 불화살 같은 시편이었다. 그 시가 시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청년 시인은 도피 끝에 결국 그해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1988년 가을에 석방된 그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념적 낙인과 세상의 편견에 노출된 고난의 운명을 감수했다. 진보적 문인조차 시인과 거리를 두는 막막하고 고립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불과 몇 년 전에는 골목길 백색테러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이 기구한 운명의 시인은 올해로 갑년을 넘기며 어언 22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최근 ‘악의 평범성’을 펴낸 이산하 시인 얘기다. 설 연휴 동안 그의 새로운 시집과 작년 가을에 출간된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읽으며 보냈다. 시편마다 문장마다 올올이 박혀 있는 시인의 선연한 상처, 깊고 쓸쓸한 환멸, 사회의 그늘을 응시하는 투철한 시선, 분노와 회한이 어우러진 시어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가슴 저미는 시집이다. 시인은 “가을 단풍처럼 질 것을 알면서도/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저항과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숙명을 묘사한다. 그 길은 시인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도정(道程)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과 모순을 응시하는 단단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의 시선이 단지 좁은 정치와 이념의 세계에 유폐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 이산하 시인은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적었다. 대신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처’다. ‘한라산’ 이후 전개된 그의 인생 여정은 상처와 함께한 시간이었을 테다. 감옥행, 세상의 편견, 고문의 악몽…. 시인은 “이 세상은 어느 곳이나 인디언의 구슬 같은 상처가 있다”며 “상처 있는 것이 상처 없는 것보다/오히려 더 아름답다는 믿음”을 피력한다. 시인은 노래한다. “꽃이 나무의 상처라면/열매는 그 상처가 아문 생의 유일한 빈틈이다”(‘빈틈’) 나는 시인 이산하만큼 한국 사회의 이념적·역사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해 스스로 사회적 상처가 된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에는 시인 자신의 상처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상흔이 켜켜이 배어 있다. 시인은 운동권의 변절과 출세, 비정규직 차별, 촛불의 한계 등 이 시대의 중대한 사안을 응시하고 감옥에서 만난 사형수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을 보듬는다. 또한 시인은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였으며 “가난하고 소박한 생을 최고의 삶으로 꿈”꿨다는 너무나 역설적인 사실을 일깨운다. 더불어 세월호 희생자 등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를 극단적 언어로 조롱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통렬한 각성을 통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창안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환기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점점 ‘내 생각이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내가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상처가 보편적인 정념이 돼 가고 있다. 어떤 시집은 때로 어떤 소설이나 영화 이상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움직인다. 그건 단지 일시적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정념과 그 사회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도 시집을 안 읽는 시대, 상처에 대한 내성이 많이 떨어진 이 시대에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 어떤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뜨거운 시집을 권하고 싶다.
  •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권성우의 청파동 통신] 상처받은 시인의 아름다움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인 1987년 봄 27세의 청년 시인이 장편 서사시 ‘한라산’을 한 잡지에 발표했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반공주의와 역사적 무지를 강타한 이 충격적 시편은 당시까지 사회적 금기였던 제주 4·3의 참담한 비극을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한라산’은 비통한 현대사에 대한 뜨거운 분노와 격정을 담은 그야말로 불화살 같은 시편이었다. 그 시가 시인의 운명 그 자체였다. 청년 시인은 도피 끝에 결국 그해 11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다. 1988년 가을에 석방된 그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념적 낙인과 세상의 편견에 노출된 고난의 운명을 감수했다. 진보적 문인조차 시인과 거리를 두는 막막하고 고립된 시기가 있었는가 하면 불과 몇 년 전에는 골목길 백색테러로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도 했다. 이 기구한 운명의 시인은 올해로 갑년을 넘기며 어언 22년 만에 새로운 시집을 펴냈다. 최근 ‘악의 평범성’을 펴낸 이산하 시인 얘기다. 설 연휴 동안 그의 새로운 시집과 작년 가을에 출간된 산문집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읽으며 보냈다. 시편마다 문장마다 올올이 박혀 있는 시인의 선연한 상처, 깊고 쓸쓸한 환멸, 사회의 그늘을 응시하는 투철한 시선, 분노와 회한이 어우러진 시어를 통해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마디로 가슴 저미는 시집이다. 시인은 “가을 단풍처럼 질 것을 알면서도/거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저항과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숙명을 묘사한다. 그 길은 시인 자신이 스스로 선택했던 도정(道程)이기도 했다. 하지만 슬픔과 모순을 응시하는 단단한 아름다움으로 채워진 시집을 읽다 보면 시인의 시선이 단지 좁은 정치와 이념의 세계에 유폐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인의 말’에서 이산하 시인은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고 적었다. 대신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상처’다. ‘한라산’ 이후 전개된 그의 인생 여정은 상처와 함께한 시간이었을 테다. 감옥행, 세상의 편견, 고문의 악몽…. 시인은 “이 세상은 어느 곳이나 인디언의 구슬 같은 상처가 있다”며 “상처 있는 것이 상처 없는 것보다/오히려 더 아름답다는 믿음”을 피력한다. 시인은 노래한다. “꽃이 나무의 상처라면/열매는 그 상처가 아문 생의 유일한 빈틈이다”(‘빈틈’) 나는 시인 이산하만큼 한국 사회의 이념적·역사적 금기에 정면으로 도전해 스스로 사회적 상처가 된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이번 시집에는 시인 자신의 상처와 함께 한국 현대사의 상흔이 켜켜이 배어 있다. 시인은 운동권의 변절과 출세, 비정규직 차별, 촛불의 한계 등 이 시대의 중대한 사안을 응시하고 감옥에서 만난 사형수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을 보듬는다. 또한 시인은 “유대인 학살을 총지휘한 나치 친위대장 하인리히 히믈러”가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채식주의자”였으며 “가난하고 소박한 생을 최고의 삶으로 꿈”꿨다는 너무나 역설적인 사실을 일깨운다. 더불어 세월호 희생자 등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를 극단적 언어로 조롱하는 이들이 우리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통렬한 각성을 통해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창안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환기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넘치는 시대다. 점점 ‘내 생각이 존중받지 못한다’거나 ‘내가 사회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상처가 보편적인 정념이 돼 가고 있다. 어떤 시집은 때로 어떤 소설이나 영화 이상으로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을 강력하게 움직인다. 그건 단지 일시적 위안에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정념과 그 사회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무도 시집을 안 읽는 시대, 상처에 대한 내성이 많이 떨어진 이 시대에 세상의 모든 상처받은 사람들, 어떤 희망도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이 뜨거운 시집을 권하고 싶다.
  • 코로나에 녹초된 지역아동센터… 책임 두배·예산 그대로 복지사는 ‘돌봄 이중대’

    코로나에 녹초된 지역아동센터… 책임 두배·예산 그대로 복지사는 ‘돌봄 이중대’

    돌봄취약 아동 지역아동센터 이용 시간 2배… 국고 지원은 그대로아이들 밥 굶을지 몰라 정부 지침대로 휴원·정원 감축은 어려워저소득·다문화·한부모·조손 가정 등 돌봄 대책 없어 지역아동센터로코로나 대유행으로 문을 닫은 학교 대신 지역 내 돌봄취약 아동들에 대한 교육·보호·급식·정서 지원을 제공하는 지역아동센터들이 녹초가 되고 있다. 아동센터의 사회복지사들은 “돌봄 책임은 코로나 이전보다 두 배로 는 반면 예산·인력은 제한적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봄 이중대’라고 부른다”고 말했다. 코로나 확산 이후 취약계층 아동들의 지역아동센터 이용 시간은 두 배로 늘었다. 하지만 국고 지원 운영금은 달라진 코로나 현실을 반영하지 않아 종전과 동일하다. 코로나가 있기 전 아이들은 방과 후 오후 2시~7시 시간대에 시설을 이용했다. 하지만 학교들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초등학생들은 아침 10시부터 등원해 점심·저녁 급식을 받고 오후 7시 귀가하고 있다. 운영금이 증액되지 않은 건, 지급 기준이 시설 운영 시간과 관계없이 아동 인원수에 따라 책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지역아동센터장인 A(54)씨는 “아이들이 더 오래 머무는 만큼 전기세, 가스비, 통신비가 곱절로 나간다”면서 “돌봄 비용 산정이 현실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달 한파에 가스비가 역대 최대로 나왔지만 지역사회의 후원으로 버텼다”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방역 지침도 지역아동센터의 부담을 가중한다. 방역당국은 아동센터에 휴원이나 정원의 30%만 받을 것을 권고한다. 하지만 센터가 아니면 밥을 굶을지 모르는 저소득층이나 맞벌이·한부모 가정 아동들을 외면할 수 없다. 권고를 그대로 따를 수 없는 현실이다. 정모(50) 복지사는 “가정 돌봄을 해달라고 집마다 전화를 돌려도 아이를 돌볼 방법이 마땅치 않은 부모들이 대부분”이라며 “센터마다 다르지만 정원이 넘쳐 취약계층 아동들이 대기 명단에 있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국내 지역사회 돌봄서비스는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 2가지로 분류된다. 지역아동센터는 개인이나 민간 설립 ‘공부방’에서 출발해 2004년 법제화했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는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4138곳이 운영 중이다. 지자체가 설립하는 방과후 아동돌봄 시설인 다함께돌봄센터는 2019년 1월 아동복지법 개정 이후 전국 236곳이 개소해 아직 초기 단계다. 지역아동센터 정원은 시설 면적을 기준으로 한다. 아동 구성은 저소득·다문화·한부모·조손 가정 등 돌봄취약아동 80%, 일반아동 20% 비율로 배분된다. 지역아동센터서울시지원단에 따르면, 센터별로 대기나 정원 미달 등 사정은 천차 만별이다. 때문에 전체 현황을 집계하는 기관 역시 별도로 없다.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다양한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들에 대한 지원도 쉽지 않다. 취약계층 아동의 부모가 돌연 퇴소를 통보해도 아동센터가 취할 조치가 없다. 지난해 10월부터 결석을 반복하다 퇴소한 최모(11)양은 한부모 가정이다. 일용직에 종사하는 아버지와 살고 있지만 센터를 떠나면서 돌봄을 지원할 방법이 없다. 사회복지사들이 최양의 학습과 끼니를 걱정하며 퇴소를 말렸지만 아이와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최양이 돌봄 사각지대에 머물러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셈이다. 아울러, 지역아동센터는 저소득이나 불우한 가정 환경의 아이들이 다닌다는 사회적 낙인과 돌봄 노동자에 대한 열악한 처우 등도 고질적인 병폐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코로나라는 유례없는 비상 시국에 정부가 보다 유연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면서 “지역아동센터의 현실에 맞는 추가 예산과 인력 제공, 문제 상황에 대한 전문가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기사와 연관된 ‘2021 격차가 재난이다-코로나 세대 보고서’ 는 디지털스토리텔링 사이트(http://www.seoul.co.kr/SpecialEdition/gapDisaster/)에서 더 살펴볼 수 있습니다.
  • 민주·정의, 김종인 “정상적 엄마” 발언 사과 촉구

    민주·정의, 김종인 “정상적 엄마” 발언 사과 촉구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10일 한부모 비하 논란에 휩싸인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에게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했다. 김 위원장은 전날 미혼·한부모 가족 복지 시설인 애란원을 찾은 자리에서 정신질환·지적장애 미혼모의 어려움을 듣던 중 “엄마도 정상적인 엄마가 별로 많지 않은 것 같고”라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허영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현장의 고충을 듣겠다더니 미혼모를 ‘정상적인 엄마’가 아닌 것으로 낙인찍은 것은 물론, 장애인 비하까지 하며 사회적 편견을 조장했다”며 “참담하다”고 밝혔다. 허 대변인은 “아픔이 있는 곳에서 공감은커녕 비하로 그 아픔을 더 한 것에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며 “즉각 사죄하라”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이 ‘미혼모라고 해도 임신하게 한 상대방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미혼모는 부득이하게 임신한 사람의 경우가 태반이냐’라고 말한 것에 대해서는 “애초에 미혼모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발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명백한 장애인 차별·비하 발언으로 시대와 동떨어진 제1야당 대표의 인권 의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줬다”며 “단순한 실언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즉각 사과하고 재발 방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라”고 촉구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신지예 “서울시장 선거에 소외된 다수 대표 시민후보 나와야”

    신지예 “서울시장 선거에 소외된 다수 대표 시민후보 나와야”

    2018년 6월 서울시장 선거에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당찬 출사표를 던졌던 여성 정치인.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는 그렇게 사람들 기억에 박혀 있다. 그는 지난해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갑에 무소속으로 출마, 3위를 차지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이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한여넷)라는 단체를 만들어 피해자 지원 및 여성 정치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수면 위로 올랐을 때 누구보다 빨리 ‘장 의원의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고 지지했다. 행동하는 정당인, 정치인, 활동가로 ‘살아 있는’ 신 대표를 최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냈나. “한꺼번에 많은 일이 돌아가서 정신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성폭력 사건 1심이 끝났고, 피의자와 검사가 모두 항소해 2심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를 맡으면서 그 안에서 정치 세력화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이다. 정치권 성폭력 사건이 계속 터지는데 예방도 중요하지만, 사후 우리 사회가 이를 제대로 처벌하느냐 또한 중요하다.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 관련해서는 진상 규명 활동 및 공론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성신문 젠더폴리틱스연구소에서 매주 글을 쓰며 여성 재산권 보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 관련 정책을 구상하고 있다.” -정치권 성폭력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가장 최근엔 김종철 전 정의당 대표의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 정의당의 조처를 어떻게 봤나. “정의당이 기존에 조직이 보여주지 못했던 ‘공동체적 해결’을 시민들에게 인식시켜줬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피해자가 그곳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 사건에 대해 다른 구성원들도 2차 가해를 하지 않고 더 이상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구조적 해결에 천착하는 것이 필요한데, 거기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사건 해결을 맡은 배복주 부대표의 강단 있는 결정, 장혜영 의원의 용기가 시작을 잘 열어줬다. 다음 몫은 정의당 당원들의 힘에 달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장 의원에 대한 지지 발언을 올렸다. “작년 2월 같은 당 당직자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 사건 직후 바로 고소했고, 조사를 받았다. 이후 21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지지자들에게 왜 녹색당을 떠나 무소속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지 설명해야 했다. 정치인은 국민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하고 피해를 받는 게 아니라 피해당한 사람을 구제하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다. 그런 사람이 ‘내가 피해자’라고 나서면서 출마하는 걸,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이 됐다. 이번에 장 의원을 보면서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밝힐 때 주홍글씨가 될까 봐 두렵다. 그런데 장 의원은 용감하게 자기 목소리를 냈다. 이게 윗세대들이랑 다른 지점이다. 수많은 여성이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에 고통을 속으로 삭이지 않고, 이것이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정치적 문제라고 밝히며 사건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신지예라는 개인도, 장혜영이라는 국회의원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완전히 다른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야망’을 넘어, ‘투철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본인 사건으로 넘어가 보자. 지난달 부산지법에서 나온 1심 판결에서 피의자는 준강간치상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치상 혐의를 인정한 재판부에 감사드리지만 죄질에 비해 형량이 낮다고 생각한다. 상해 정도가 미미하다는 것과 가해자가 반성한다는 점, 가해자 가족들이 쓴 탄원서 등을 감경 요인으로 꼽았다. 가해자의 어린 딸도 탄원서를 썼는데, 그 사실 자체로 가슴 아팠다. 또 다른 폭력 아닌가. 가해자 측 변호인은 내가 약속된 한 행사에 축사를 하러 참석한 것을 근거로 ‘상해가 미비하다’고 주장한다. 상해가 심했으면 축사를 할 수 있었겠느냐는 논리다. 그렇다면 성폭력 피해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해진 업무를 다 취소하고 집안에 틀어박혀야만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아픈 몸과 마음을 이끌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여성들이 부지기수다. 전형적인 피해자다움 요구다. 이것이 반성하는 가해자의 태도인지 묻고 싶다.” -사건 발생 1년 만에 나온 녹색당의 입장문에 대해 SNS에 쓴 글을 봤다. 진상조사단을 꾸려 달라는 요청에 수개월 묵묵부답하다 이제 와 안전망 구축과 제도개선 교육을 얘기한다는 내용이었다.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 이후 서울시가 내놓은 입장도 ‘시스템 정비’였다. 그러나 제도 개선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도 될 이야기다.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려면 제도 개선뿐 아니라 처벌이 필수적이다. 내부에서 제대로 조사하고 기록해야 한다. 녹색당도 그걸 제대로 하지 않고 사건의 맥락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다. 성폭력 사건은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였다. 당시 녹색당에 비례위성정당을 준비하는 집단이 있었다. 나는 당 공동 운영위원장임에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당내 가부장 권력을 중심으로 한 모든 논의에서 일방적으로 배제됐다. 나는 ‘녹색당’ 차원의 선거 준비를 제안했으나 오히려 ‘신지예 때문에 선거를 치를 수 없다’며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시작됐다. 이 상황에서 가해자는 나에 대한 허위 소문을 없애는데 도움을 주겠다며 유인해 성폭력을 저질렀다. 어느 날 갑작스럽게 성폭력이 벌어진 게 아니라 위성정당 합류의 흐름 속에서 당 내부에서 자행됐던 마녀사냥의 끝이 성폭력이었다. 한국 위성정당의 흐름, 특히 비례대표 후보 공천 등이 매우 가부장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이 가부장적 정치가 개인에게는 성폭력이라는 사건으로 발생한 것이다. 사건 이후 당에 진상조사단을 만들 것을 요구했는데, 아직까지도 꾸려지지 않았다. 작년 3월, 당이 위성정당 참여 결정을 내릴 때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겠다는 생각으로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서울 서대문갑에 출마했다.”신 대표는 중학교 2학년 때 두발자유화운동을 하며 ‘한국청소년모임’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다. 이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대안학교(하자작업장학교)에 입학했다. 사회적 기업, 시민단체, 정당활동과 세 번의 선거에 출마(2016년 총선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2018년 서울시장 선거, 2020년 총선 서울 서대문갑)했다. 그가 끊임없이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는 이유와 동력이 궁금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두발자유화운동에 나섰나. 당시 많은 중·고등학생이 두발 제한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했어도 선생님한테 반항하는 것 이상의 용기를 내는 일은 드물었다. “‘중2병’이었던 것 같다.(웃음) 세상에 반항하고 싶고, 아빠랑 사이가 안 좋았다. 학교는 ‘늙은 아버지’ 같았다. 선생님 중에 왜 두발단속을 해야 하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파마, 염색을 하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헌법에 ‘모두에게 신체의 자유가 있다’고 써놓고 학교는 그걸 왜 안 지키는지 얘기해주지 않았다. 당시 막 생겨난 ‘다음 아고라’에 이런 얘기를 올리면 “학생은 공부나 할 것이지” 같은 답을 들었다. 화가 났고, 많이 분노했다.” -왜 정치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정치를 할 거라고 생각 못했고, 정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 편이었다. 두발자유화운동을 하면서 정당에 일찍 발을 들였는데, 당시 치고받고 싸우는 어른들을 보면서 ‘저렇게는 세상을 바꿀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대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대안학교에 가고, 사회적 기업·시민단체 회원으로 일했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라 이윤 창출이 제1 목표더라. 시민단체에서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서 월세 8만원짜리 쪽방촌에 들어가 어르신들과 함께 사는 프로젝트를 했다. 그런데 재개발, 재건축 바람이 불며 망원동이 갑자기 ‘망리단길’이 되었다. 여든, 아흔 되는 어르신들이 쫓겨났다. 3평짜리 방에서 할머니들이 이웃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게 큰 꿈도 아닌데 그걸 사회는 못 지켜보는구나, 결국은 법과 정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을 보면서 탈핵, 기후 생태에 대한 정치적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여겼고, 전원 추첨제 대의원 제도를 가진 녹색당이 민주주의적 권력 분배에 관심이 많은 정당 같아 2012년 가입했다. 당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 2015년이다.” -신지예 하면 사람들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슬로건을 기억할 것이다. “부끄럽지만 당시 나올 사람이 없었다. 서울시당 위원장이었는데, 후보자를 못 만들어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페미니스트’라는 슬로건에 부담감은 없었다. 사회적 기업이나 대안학교처럼 성인지 감수성이 높은 분들과 일하며 ‘온실 속 화초’처럼 산 것인지, 포스터 훼손 등 구체적 공격이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를 돌아본다면. “여성의 정치적 열망을 구체적으로 권력화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8만 표를 얻었는데, 그 사람들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정치지형이 만들어졌느냐, 미래를 같이 그릴 수 있는 정치적 동료 혹은 느슨한 형태의 연대체라도 만들어졌느냐는 점에서 많이 부족했다. 페미니즘 정치라는 게 의회에 더 많은 여성을 보내는 것, 질적인 능력을 높이는 것 등 많은 게 있겠지만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정치적 조직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한데 그걸 못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을 중심으로 한 사회가 필요하다는 열망을 가진 사람이 8만 명 이상이라는 걸 확인한 건 나에게도 사회적으로도 큰 의미였다.” -2016년 20대 총선부터 2018년 서울시장 선거, 2020년 총선까지 세 번의 선거를 치렀다. 힘들지 않았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운 세상이다. 옛날처럼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은퇴해 노후를 즐긴다는 삶의 노선이 더 이상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길이 됐다. 한국에서 살 방법은 ‘영끌’해서 주식투자하고 부동산 투자해서 시세 차익 노리고, 연봉 높이는 것이다. 여기서도 여성은 유리천장 때문에 더 어렵다. 정치가 아직까지도 굉장히 구리고, 재미없는 영역이긴 해도 바꿔낼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기술보다 빠르게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영역이라 생각해 계속 하고 있다. 하다 하다 안 되면 어쩔 수 없고.”-한여넷 얘기를 해보자. 박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 이후 발족한 것으로 안다.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활동을 하나. “박 전 시장 사망 이후 뜻을 같이하는 이들과 긴급회의를 했다. 단체를 만들어 반복되는 정치권 성폭력을 막고, 해결책을 내놓고, 더 많은 여성이 정치적인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교두보 역할을 하자는데 뜻이 모였다. 녹색당에서 활동했던 사람, 선거 때 활동했던 분들, 여성단체 활동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지난달 25일,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박 전 시장 사건 직권조사 결과에 아쉬움을 많이 토로했다. “인권위 결과에 매우 박한 평을 주고 싶다. 예전에 서울대 신 교수 사건(1993년) 때 성희롱·성추행에 관한 얘기가 나와 어떤 것이 성희롱인지 명징하게 밝혔는데, 최영애 인권위원장이 쓴 보고서와 수십 년 전에 나온 보고서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2021년 다운 보고서라면 더 나아가 2차 가해가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피해자한테 2차 가해를 하거나 묵인해온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을 포함한 전·현직 비서실장, 젠더특보, 오성규, 김민웅 같은 인물이 대표적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박 전 시장이 서울대병원에 처방전을 갖고 가 약을 타오라고 한 의료법 위반 의혹, 업무추진비 법인카드를 이용해 개인적 용도로 물품을 구매하도록 지시한 부분 등에 대해서도 조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한여넷에서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를 제출했다.” -4월 재보궐은 성평등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달 15일 ‘줌’(ZOOM)으로 ‘미투선거 시국회의’를 열었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정치적 전망을 내부에서부터 만들어나가자는 취지로 각계각층의 사람을 초대해 방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130명 정도는 두 시간 반 내내 참석해 여성들의 의지가 높음을 알 수 있었다. 오는 10일 저녁 8시30분 2차 회의를 열 예정이다.” -재보궐선거가 성평등 선거가 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출마할 계획은 없나. “시민연합후보를 내자는 제안을 금태섭 후보와 권수정 정의당 후보께 제안했었다. 금 후보께는 시민연합선거의 판을 만들자고 제안 드렸다.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 동물, 장애인, 세입자, 자영업자, 노동자, 노인 등을 대변할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 수 있지 않겠느냐, 선거 이후에는 새로운 정치의 판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숙고 끝에 거절하시더라. (금 후보는 안철수 후보와 단일화 의지를 밝혔고, 정의당은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무공천 결정을 내렸다.) 아직 시간은 있다고 생각한다. 선거에서 조금이라도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이다. 서울시장에 출마한 후보들 정책을 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적은 듯하다.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후보는 강을 메워 주택을 짓겠다고 하는데 후대에 죄를 짓는 범죄다. 박영선 후보는 ‘콤팩트 시티’의 개념을 잘못 차용해 갖고 왔다. 서울은 이미 ‘메가 시티’인데 이 도시를 어떻게 더 밀집시킨다는 건지 모르겠다. 국민의힘, 안철수 후보도 개발을 외치고 있는데, 서울을 끝없이 개발하는 정책으로는 한국 사회의 산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서울 집중의 문제는 결국 일자리, 부의 재분배, 풀뿌리 민주주의, 낮은 에너지 자립도 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50년 후, 100년 후를 바라보고 큰 비전 아래 도시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여성과 성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성평등도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생태도시, 빈틈없는 사회 안전망을 갖춘 돌봄 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페미니스트로서 자신을 지키며 살기 쉽지 않다. 어떻게 자신을 지키고,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며 사는가. “요즘에는 기를 모아 SNS에 글을 쓰고, 마이크를 들고 기자회견을 한다.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 말하고 설득하면서’ 분노가 삭여지는 것 같다. 또래 여성들로부터 큰 힘을 받는다. ‘2030’ 여성들은 무슨 일이 터지면 자기 일처럼 분노하고, 댓글이라도 달면서 움직인다. ‘나 혼자만 고군분투하는 게 아니구나’라고 느낄 때 버틸 수 있다. 현 민주당 집권 세력, ‘586’도 운동하던 시절의 그 자신만만한 열망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온 것 같다. 정권을 창출하고, 180석이라고 하는 유례없는 의석을 만들어냈다. 페미니스트라고 그러면 안 될까. 페미니스트들이 ‘나라 한 번 뒤집어 봐’하는 작정으로 일상 속 실천과 사회적 싸움을 계속해나가며 느슨하고도 너른 정치적 연대체를 꾸린다면 10년 안에는 결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10년 안에 결실’이라는 건? “평등한 한국을 만들 진정한 페미니스트 정권창출이다.”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냄새 나요, 배달기사는 화물용 승강기 이용하세요”…고가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

    “냄새 나요, 배달기사는 화물용 승강기 이용하세요”…고가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

    서울 시내 유명 브랜드 아파트 주민들이 배달노동자들이 화물용 승강기로 다니게 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민들은 “냄새가 나는게 싫다”는 이유로 배달노동자들에게 물건을 옮기는 화물용 승강기를 이용하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뿐만 아니라 이 아파트 주민들은 출입 전 신분증을 걷고,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기입하게 하는 등의 인권 침해 정황도 드러났다. 라이더유니온은 지난 25일부터 배달노동자들이 화물용 승강기로 다니게 한 것을 명백한 인권 침해로 보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기 위해 제보를 받고 있다. 라이더유니온이 28일 현재까지 라이더들에게 제보받은 5개 아파트에는 연예인이나 정재계 인사들이 다수 거주하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나인원한남, 서울 서초구 서초아크로비스타,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아크로포레스트, 서울 양천구 목동 하이페리온, 서울 영등포구 당산1동 리앤나빌리지 등이 포함돼 있다. 라이더유니온은 라이더들에게 ‘http://bit.ly/갑질아파트진정’를 통해 신청서를 작성한 뒤 riderworkers@gmail.com으로 증거 사진과 영상을 보내달라고 안내했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적 대우는 헌법 제11조 1항이 보장하는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침해한 조치”라며 “동조 2항이 금지하는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의 구체적 사례이며 배달 직종에 대한 명백한 혐오”라고 판단했다. 해당 아파트 입주민들은 승강기 내부의 음식 냄새가 불편하다는 등의 이유로 배달노동자에게 화물용 승강기만을 사용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라이더유니온은 “배달원은 화물이 아닌 사람이자, 노동을 통해 삶을 꾸려나가는 당당한 사회의 일원”이라며 “열등함의 공적 낙인 음식 냄새는 배달원들의 모멸감을 통해 해결할 것이 아니라 직접 로비로 나와 음식을 받는 것으로 수령방식을 통일하는 등 입주민의 자체적인 합의와 수고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해당 고가 아파트 주민들은 ‘보안과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동의를 받는 절차 없이 배달원의 신분증을 걷고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기획팀장은 “이러한 관행은 코로나 이전부터 계속된 관행으로 봐야할 것 같다”며 “인권위가 법정기구인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를 특정해 가이드라인이나 적극적으로 시정할 수 있도록 권고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반격 나선 洪 “손실보상, 오늘 방안·내일 입법·모레 지급 아냐”

    반격 나선 洪 “손실보상, 오늘 방안·내일 입법·모레 지급 아냐”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기획재정부)의 나라냐’고 말한 점이 불쾌했다. 경제 논리는 정치로 풀어선 안 된다. 경제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에서, 처신으로 먹고사는 정치권이 정밀하고 복잡한 행정에 관여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 발전을 해치는 일이다. (‘기재부의 나라냐’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그 말을 하기 전에 기재부 관료를 불러모아 치열하게 토론을 했는지 묻고 싶다.”(전윤철 전 경제부총리) “자영업자 손실보상 법제화는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갈등이) 외부로 노출되고, 질타하고, 야단치는 모습은 굉장히 잘못됐다. 재정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입장은 정치권과 재정 당국이 다를 수 있다. 당은 정치적으로 접근할 테니 기재부가 전문적이고 정치중립적인 관점에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한덕수 전 국무총리) ●“시시비비 가려 지적하고 사표 쓸 각오하라” 손실보상 법제화 논의 과정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한 기재부를 대신해 원로 경제관료들이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전윤철(행시 4회) 전 부총리는 2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강한 어조로 최근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했다. 전 전 부총리는 “경제관료들이 입을 열어야 한다. 시시비비를 가려 (잘못된 것은) 지적하고 소신에 맞지 않으면 사표를 내고 나와야 한다. 경제정책은 어느 한쪽을 지원하면 다른 한쪽이 소외되는 ‘제로섬’이 많기 때문에 토론을 해야 한다. 내가 장관 할 때도 국무회의에서 토론이 많았고, 국회에도 솔직한 소신을 얘기했다”고 말했다. 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한덕수(행시 8회) 전 총리는 “권력의 중심이 정치나 국회로 가고 있다. 특정 계층을 지원하고자 할 때 기재부가 나서긴 어려우니 정치권이 의제를 주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정치가 항상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윽박지르고 야단칠 게 아니라 치열한 토론을 통해 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철학을 계승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경제사령탑들이 현 상황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낸 건 나라 곳간지기인 ‘기재부 패싱’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의 요구에도 곳간 열쇠를 함부로 내주지 않았던 기재부의 기개와 소신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재원 마련하는 영혼 없는 기술자로는 안 돼” 정치권의 계속된 압박에 요즘 기재부는 ‘앓는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다. 하지만 상당수 관료는 기재부가 이제라도 소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여당이 요구하는 ‘재원만 마련하는 영혼 없는 기술자’ 역할에 머물러선 기재부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장급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재정 소요 등은 따지지 않고 정치권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면 재정 당국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병 주고 약 주고’식 행보가 오히려 기재부의 소신을 꺾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가 확실한 불신임 신호를 보냈다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직’을 내놓고 반대 목소리를 냈을 건데, 신임한다면서 정작 민감한 사안엔 침묵하거나 여당의 손을 들어 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홍 부총리의 우유부단과 ‘윗분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다’는 태도가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4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정치권과 맞붙었던 홍 부총리는 정세균 총리에 이어 청와대까지 여당에 힘을 실어 주자 굴복했다. 지난해 11월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인 대주주 요건 강화 논란 때도 비슷했다. 당시 홍 부총리는 사의를 표명했지만 문 대통령은 즉각 반려했다. 소신을 지키지 못한 곳간지기로 낙인찍힌 홍 부총리는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라는 오명이 붙었다. 전 전 부총리는 “(청와대가) 홍 부총리 사표를 반려했다는 건 기재부 정책을 수용하겠다는 의미 아닌가”라며 “그렇다면 재정 당국 입장을 더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기재부 장관이 단순 장관직이 아닌 ‘경제부총리’ 직책인 것은 부총리의 의견을 내각이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대통령이 직접 홍 부총리를 불러 예산이 얼마이고, 어느 정도 여력까지 가능한지 심도 있게 논의하는 등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여당이 권력에 취하지 말고 스스로 제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재정경제원 출신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현정택(행시 10기)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은 “민주주의 발전으로 정치권의 역할이 강화됐지만 (경제관료의) 전문성을 지켜줘야 하는 선은 여전히 있다”며 “(여당의 힘이 막강한) 지금 같은 상황에선 홍 부총리가 아닌 누가 와도 (끌려다니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홍 부총리는 여당의 이르면 3월, 늦어도 4월 지급과 관련해 “손실보상 문제는 제도화 방법과 대상, 기준, 소요, 재원, 외국 사례 등을 짚어봐야 해서 차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오늘 방안을 마련하고, 내일 입법한 후, 모레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 총리와 여당의 일방통행에 맞서 곳간지기로서 ‘따질 건 따지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선거 전 돈 풀라는 정치… 기재부, 따질 건 따져라

    선거 전 돈 풀라는 정치… 기재부, 따질 건 따져라

    “(정세균) 국무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기획재정부)의 나라냐’고 말한 점이 불쾌했다. 경제 논리는 정치로 풀어선 안 된다. 경제전문가가 필요한 시점에서, 처신으로 먹고사는 정치권이 정밀하고 복잡한 행정에 관여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 발전을 해치는 일이다. (‘기재부의 나라냐’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생각이다. 그 말을 하기 전에 기재부 관료를 불러모아 치열하게 토론을 했는지 묻고 싶다.”(전윤철 전 경제부총리) “자영업자 손실보상 법제화는 충분한 협의가 필요한 사안인데 (갈등이) 외부로 노출되고, 질타하고, 야단치는 모습은 굉장히 잘못됐다. 재정이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입장은 정치권과 재정 당국이 다를 수 있다. 당은 정치적으로 접근할 테니 기재부가 전문적이고 정치중립적인 관점에서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한덕수 전 국무총리) ●“시시비비 가려 지적하고 사표 쓸 각오하라” 손실보상 법제화 논의 과정에서 ‘동네북’으로 전락한 기재부를 대신해 원로 경제관료들이 목소리를 냈다. 국민의 정부(김대중 정부) 시절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전윤철(행시 4회) 전 부총리는 27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강한 어조로 최근 정치권의 행태를 비판했다. 전 전 부총리는 “경제관료들이 입을 열어야 한다. 시시비비를 가려 (잘못된 것은) 지적하고 소신에 맞지 않으면 사표를 내고 나와야 한다. 경제정책은 어느 한쪽을 지원하면 다른 한쪽이 소외되는 ‘제로섬’이 많기 때문에 토론을 해야 한다. 내가 장관 할 때도 국무회의에서 토론이 많았고, 국회에도 솔직한 소신을 얘기했다”고 말했다.경제기획원 출신으로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지낸 한덕수(행시 8회) 전 총리는 “권력의 중심이 정치나 국회로 가고 있다. 특정 계층을 지원하고자 할 때 기재부가 나서긴 어려우니 정치권이 의제를 주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정치가 항상 좋은 정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윽박지르고 야단칠 게 아니라 치열한 토론을 통해 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재인 정부가 국정철학을 계승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경제사령탑들이 현 상황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낸 건 나라 곳간지기인 ‘기재부 패싱’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치권은 물론 대통령의 요구에도 곳간 열쇠를 함부로 내주지 않았던 기재부의 기개와 소신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내비친 것이기도 하다. ●“재원만 마련하는 영혼 없는 기술자는 안 돼” 정치권의 계속된 압박에 요즘 기재부는 ‘앓는 소리’조차 제대로 내지 못한다. 하지만 상당수 관료는 기재부가 이제라도 소신을 되찾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 여당이 요구하는 ‘재원만 마련하는 영혼 없는 기술자’ 역할에 머물러선 기재부의 존재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국장급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당연하다”면서도 “하지만 재정 소요 등은 따지지 않고 정치권이 시키는 대로만 해야 한다면 재정 당국이 왜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항변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병 주고 약 주고’식 행보가 오히려 기재부의 소신을 꺾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가 확실한 불신임 신호를 보냈다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직’을 내놓고 반대 목소리를 냈을 건데, 신임한다면서 정작 민감한 사안엔 침묵하거나 여당의 손을 들어 주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홍 부총리의 우유부단과 ‘윗분의 뜻을 거스리지 않는다’는 태도가 영향을 줬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해 4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놓고 정치권과 맞붙었던 홍 부총리는 정세균 총리에 이어 청와대까지 여당에 힘을 실어 주자 굴복했다. 지난해 11월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인 대주주 요건 강화 논란 때도 비슷했다. 당시 홍 부총리는 사의를 표명했지만 문 대통령은 즉각 반려했다. 소신을 지키지 못한 곳간지기로 낙인찍힌 홍 부총리는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라는 오명이 붙었다. 전 전 부총리는 “(청와대가) 홍 부총리 사표를 반려했다는 건 기재부 정책을 수용하겠다는 의미 아닌가”라며 “그렇다면 재정 당국 입장을 더 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기재부 장관이 단순 장관직이 아닌 ‘경제부총리’ 직책인 것은 부총리의 의견을 내각이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라면서 “대통령이 직접 홍 부총리를 불러 예산이 얼마이고, 어느 정도 여력까지 가능한지 심도 있게 논의하는 등 힘을 실어 줄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여당이 권력에 취하지 말고 스스로 제어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재정경제원 출신으로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현정택(행시 10기) 정석인하학원 이사장은 “민주주의 발전으로 정치권의 역할이 강화됐지만 (경제관료의) 전문성을 지켜줘야 하는 선은 여전히 있다”며 “(여당의 힘이 막강한) 지금 같은 상황에선 홍 부총리가 아닌 누가 와도 (끌려다니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홍 부총리는 여당의 이르면 3월, 늦어도 4월 지급과 관련해 “손실보상 문제는 제도화 방법과 대상, 기준, 소요, 재원, 외국 사례 등을 짚어봐야 해서 차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면서 “오늘 방안을 마련하고, 내일 입법한 후, 모레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 총리와 여당의 일방통행에 맞서 곳간지기로서 ‘따질 건 따지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