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회민주당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집사 변호사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해외 출장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재계 투자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 행복 농촌
    2026-03-2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3
  • 나이지리아사태/군정의「대선무효화」가 발단/「반정부투쟁1년」의 전말

    ◎석유사­금융노조 잇단 파업… 시위 본격화/“대통령 선언” 야 아비올라 구속으로 확산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인구와 자원을 가진 「검은 경제대국」 나이지리아의 정국이 위기에 처해있다. 나이지리아 야당지도자이며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사실상 당선됐으나 군부정권에 의해 무효화된 모슈드 아비올라가 지난달 구속된데 반발한 노동자의 파업과 시위가 4주째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중 세번째 원유수출국인 나이지리아의 석유노조가 파업을 일으키자 국제유가가 널뛰기 현상을 보여 세계의 눈이 온통 나이지리아에 집중돼 있다. 미국의 제시 잭슨 목사가 르완다보다 더 참혹한 내전을 야기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 나이지리아의 정변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비롯된다.지난 85년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출신 바반기다 대통령은 8년만에 실시된 선거에서 재야세력이 지지하는 사회민주당의 아비올라가 58%의 지지를 얻어 승리가 확실시되자 『선거부정이 있었다』며 대선무효를 선언하고 임기중 약속한 민정이양마저백지화시켰다. 바반기다는 이어 자신의 추종자인 쇼니칸을 수반으로 하는 과도정부를 출범시키고 물러났지만 몇달 못가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사니 아바차가 다시 쿠데타로 군사정부를 재탄생시킨 것이다. 지난해 대선무효화 때부터 싹튼 유혈 반정부투쟁은 지난달 대선 1주년을 맞아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난달 11일 아비올라가 라고스에서 3천여명의 시민이 참가한 비밀집회를 열어 자신을 대통령으로 한 새 정부탄생을 선언하고 아바차정권의 퇴진을 강력히 요구한 것이 그 발단이다. 이에 나이지리아 군사당국은 곧 반역죄와 정부전복 등의 혐의를 적용,아비올라를 지난달 23일 전격구속했다. 아비올라가 구속되자 가장 먼저 나이지리아 외화수입의 90%를 차지하는 기간산업인 석유회사의 노조가 총파업에 들어갔으며 이어 교사를 비롯해 금융,식품,공공부문 노동자 60만명의 회원을 거느린 세스칸 노조도 연대파업에 돌입했다. 전국이 마비상태에 빠지자 군사정부는 아비올라 석방을 내거는 등 노조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노조측은 새로운 정부형태에 대한 언급이 없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어 나이지리아의 정국은 쉽게 풀리지 않을 것 같다. 15세기 영국·스페인의 노예무역시장이었고 1914년 영국식민지가 돼 60년 독립한 나이지리아는 다른 아프리카국가들과 같이 여전히 군부세력이 큰 힘을 발휘,독립후 30여년간 7차례의 쿠데타를 겪었었다.
  • 귀순 강명도·조명철씨 기자회견 일문일답

    ◎북군부 오진우·오극렬파 암투 치열/김정일,85년부터 외교 제외 모든 권한 행사/전쟁 대비,마카오·스위스·일등에 외자 예치 27일 귀순 기자회견을 가진 강명도씨와 조명철씨는 『북한 김정일의 정치 체제에 회의를 느껴 귀순을 결심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 ­귀순동기와 강성산총리에게 알렸는지에 대해 말해 달라. ▲(강씨)89년 인민무력부 실장으로 있을때 군부고위계층의 권력다툼과정에서 18호 관리소에 2년간 수용된 적이 있었다.이때 죄없는 3만여명의 죄수들이 구타당하며 비참하게 생활하는 것을 보고 김정일의 정치체제에 불만을 품게 됐다. 부모친척중에 김정일의 측근이 많다.그래서 이들이 석방을 제의해 김의 지시로 석방된뒤 강성산의 도움으로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으로 발령받고 작년 12월 강재수출관계로 중국으로 가게됐다. 그러나 강재를 못 팔아 자금회수가 어려워 1주일로 예정했던 체류기간이 한달로 길어졌다.북한에서는 내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돼 체포명령이 떨어졌고 이 사실을 친구를 통해 알게돼 탈출을 결심했다.강성산이나 가족들은 탈출사실을 모른다. ­한달간 머문 행적은. ▲(강씨)중국에서는 겨울이 지나야 강재값이 오르므로 팔지 않고 있었다.돈을 돌리기 위해 심양과 북경등지를 왕래했다.김일성 사후에 대해서도 신중히 생각했다.오늘의 귀순기자회견 내용이 보도되면 강성산에 대한 대우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것이다. ­군부내 권력다툼이 심각하다는데. ▲(강씨)북한 군부내의 권력다툼은 오진우·오극렬·이봉원파등 3개파로 갈라진다.그 밑으로 1군단과 2군단 출신파로 갈려 있다. 오진우파와 오극렬파가 갈려진 배경은 이렇다.87년에 오진우가 김정일과 함께 만찬에 참석했다가 대형 벤츠 승용차를 직접 몰고 돌아오다 가로수를 받아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오진우는 거의 죽을 상태가 돼 후임을 오극렬이 대행하게 됐다.오는 이후 총참모부에 공군사령부 출신을 측근으로 기용하는등 파벌을 형성하고 자기가 무력부장이 다 된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오진우가 러시아에서 치료를 받고 1년만에 회복돼 복귀해 이봉원한테서 이런얘기를 듣고 분개했다.이봉원은 오극렬과 사이가 안좋았다. 원래 오진우는 혁명1세대이고 오극렬은 만경대학원 출신의 2세대인데 오진우는 오극렬을 키우다시피 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김일성에게 교체를 요구해 결국 오극렬은 물러났고 그의 사람도 다 나가게 됐다. ­김정일의 후배로서 김을 어떻게 생각하는가.정무원 간부들이 성향은.(강씨에게)김달현의 근황은.강성산이 88년 좌천이후 재발탁된 배경은.강성산과 김정일의 관계는. ▲(조씨)나는 북한에서 풍파를 격은 사람이 아니다.고스란히 자라서 순탄한 길을 걸었다.남산고등중학교를 다녔는데 이 학교는 고등반 인민반 유치원반으로 나눠져 있고 장차관급이상 자녀들만 따로 교육하는 곳이다.이 곳에서나는 김정일의 동생 김평일,영일과 함께 공부했다. 대학졸업후 김일성대학 교원이 돼 상류생활을 하면서 행복에 빠져 자기만을 위한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그러면서 김정일체제와 북한 사회를 다시 생각할 기회가 있었다.김정일은 정치적 경제적인 업적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남쪽의 소식도 들을 기회가 많았다.나의 행동이 북조선 통치자들에게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김평일과 영일은 공부도 잘했다.김평일은 사람을 많이 끌었다.학교에서는 김정일을 치켜 세우는데 장애가 되는 요인을 결단코 제거하자는 운동이 미사여구로 미화됐고 정당성으로도 연결됐다.이런일도 있었다.학생들은 김평일과 영일과는 대면하지 못하게 돼 있으나 어느날 축구를 하고 선생들이 평일 영일과 식당에 가 식사를 같이 했다.서로 불문에 부치기로 했으나 어느 선생이 노트를 두고 나와 탄로가 나 많은 선생들이 물러났다. 정무원 각료들은 파벌은 없다.그러나 이들은 개방을 원하고 있다.정무원의 모든 부장들은 개방을 지향하고 있다. ▲(강씨)김달현은 나의 친척이다.할아버지는 강선욱인데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의 아버지와 6촌형제이며 전부주석 강양욱과 친형제이다.김달현은 강반석의 오빠 강진석의 손녀 사위이다. 김달현은 대외분야를 많이 맡아 92년 12월 강성산이 총리가 되면서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에서 같이 승진했다.그런데 김은 강성산이 심장쇼크로 입원하면서 처음으로 총리를 대행하면서 경제를 책임지게 됐다.그때 군수공장의 전기를 30% 삭감해 탄광등지로 보냈는데 그 때문에 군수생산계획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보고를 김일성이 받게됐다.김일성은 대노해 『정신 있는 사람인가』 하면서 질책을 했고 김달현은 사상검토를 받고 도청도 당했다.김달현은 강성산과 때로 맞서기도 했다.강성산이 내놓는 방안을 놓고 옥신각신 다툼을 벌이기도 했던 것이다.결국 김은 작년 12월 함남에 지도원으로 내려갔다. 강성산은 경제문제등이 꼬여 집에 들어가지도 못해 당뇨병이 심해졌다. 그래서 김일성이 쉬도록 권고해 88년에 함북으로 휴양을 갔다.91년에 다시 총리가 되었는데 재기는 상상도 못했다.강성산은 어려서부터 김일성이 키운 사람이다.강은 중국 출신이고 아버지 강위련은 빨치산출신으로 김일성의 무릎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강의 삼촌 강위룡은 아직 살아 있다.강위련은 기관총 분대장을 했는데 강이 죽자 김일성이 몹시 울었다고 한다.강은 혁명학원에서 공부하고 이근모 연형묵등과 함께 체코에서 유학도 해 체계적으로 키워져 김일성이 등용했다.강은 김정일과도 가깝다.김정일과 사이가 나쁜 김성애의 동생 김성갑의 비리를 들춰 낸 것이 계기가 됐다. ­북한의 핵 상황은. ▲(강씨)김정일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핵이라 생각하고 있다.인민생활과 경제가 파탄상태인데도 그것을 해결하는 길은 핵이라고 여기고 있다.북한에는 군수공장이 민간공장보다 더 많다.핵이 개발됨으로써 군수공장의 투자를 민간으로 돌릴 수 있다는 논리이다.동구권국가가 허물어지면서 공격받지 않으려면 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지금 북한은 5개 정도의 핵폭탄생산을 완료했다.핵을 실어나를 로켓 생산은 실험단계이고 94년까지 완전 생산할 것이다.최소한 10개정도 확보한 다음에는 보유사실을 공개해 남북 대미 관계에 이용하려 하고 있다. 핵폭탄은 이미 개발이 완료됐고 다만 갯수에 관한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이 이야기는 영변 핵단지에 있는 고위 간부가 아들 결혼식 때문에 나와 술과 담배 식료품등을 취급하던 나와 대화를 나누던 중에 들은 것이다. ­북한내 지식인이나 고위층주변의 김정일에 대한 평판은 어떠한가. ▲(강씨)북한의 지식인들과 일부 고위층 사이에는 김정일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 있다. 이때문에 식량난과 경제난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김정일 체제는 붕괴될 수 밖에 없다는 인식이 이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평소 김정일은 지나치게 즉흥적인 정치행위를 일삼고 심지어 일부 원로들에 대해서까지 너무 편견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이러한 내막을 알고 있는 지식인이나 고위층들은 그에 대한 신뢰감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조씨)지식인 계층을 중심으로 한 북한 이반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자신이 북한사회를 빠져 나올 경우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 것을 두려워해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뿐 80년대 중반부터 노골화된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거나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김정일 체제는 얼마나 갈 것 같은가. ▲(강씨)20년전부터 정치를 해와 권력기반은 튼튼해 수명이 길 것으로 본다.75년부터는 정권기반을 닦았으며 85년부터는 김정일이 외교권 행사를 제외하고는 총지휘했다. 당정의 지시를 받아 모든 일을 처리한다는 유일적 지도체제에서 당정은 사실상 김정일을 말하는 것이다. 또 기본권력수뇌부인 당정 조직 지도부가 모두 김일성대학 출신의 2세대인만큼 권력기반은 확고하다.총비서,주석을 다 겸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청진시의 화학석유공장이 91년부터 지금까지 3년동안 가동이 중단됐고 작년 9월 한달동안 김책제철소가 가동되지 못하는등 경제의 70%정도가 파탄지경이어서 김정일 체제 수명은 주민 불만고조로 짧아질 수도 있다.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총정치국장을 겸하고 있는가. ▲정치국과 참모부간의 갈등이 많아 오진우가 겸임하고 있다. ­94년을 잘 넘긴다는 뜻은 무엇이고 핵수출 가능성은. ▲지난해 김정일은 북미회담과 IAEA핵사찰문제와 관련된 미국의 진의,핵사찰에 대한 중국의 입장등을 파악하느라 집에도 가지못하고 청사에서 자면서 북미회담을 지휘했다. 이때문에 김정일은 당시 내년(94)만 잘 넘기면 북미회담및 남북회담에서 유리하다고했다.핵수출여부는 잘 모르겠다. ­외화보유고는 얼마나 되나. ▲대성은행이 전쟁에 대비해 마카오,스위스,일본은행등에 외화유치를 하고 있다. ­북한의 사로청과 한총련과의 관계는. ▲사로청 산하 조선학생위원회는 사로청의 외곽지도를 받고있으나 사실상 대남사업부인 통일전선사업부 6과에서 지도하고 있다.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그럴싸한 이론으로 보일 수도 있다.그러나 왜 남조선으로 오는 귀순자들이 있는지 학생들은 심각히 생각해봐야한다. 또 서강대 박홍총장의 얘기는 약과다.대남정보부에서는 공장의 노동자들보다는 흥분하기 쉽고 혈기가 있는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주체사상을 전파하려고 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김정일의 성격,지식,지도력,건강,가족관계는. ▲성격이 대단히 급하고 저돌적이다.특히 측근들을 질책할 때는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성질의 기복이 매우 심하다는 뜻의 「패났다」는 소릴 들을 정도다. 피아노를 전문가이상으로 치는등 예술에 매우 조예가 깊다.매우 건강한편이다. 또 초대소(별장)에서 동생 경희가 어머니를 회고하며 눈물을 흘리면 동생을 나무라다가도 따라서 우는등 눈물도 많다. 김정일이 김평일등 곁가지등과의 식사및 사진촬영등을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피해야한다는등 자신의 입지확보에 장애가 되는 이복형제들의 제거에 신경을 쓰는등 졸렬하다. 김정일은 또 평소 잘 웃지 않는다.83년 할아버지(강양욱 부주석)가 죽었을 때 김정일은 김일성과 함께 왔으나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92년 11월 식품을 담당하는 경리부 시찰을 왔을 때는 신제품 음식을 보고는 『잘 됐다』는 의사표시로 미소를 지은 것이 고작일 정도로 거의 웃지않는 편이다. 김정일의 방탕한 사생활은 대남정탐본부인 통일전선사업부 이동호 제1부부장이 김정일이 초대소의 여자에게 관심이 많은 것을 알고 78년 문수초대소로 초대,이때부터 기쁨조에 관심을 보였다. 또 외교부 산하에도 기쁨조를 두고 있으나 정·군을 장악하기 시작한 85년부터는 업무때문에 기쁨조를 축소시켜 현재는 각 도별로 3개씩 모두 72명의 기쁨조가 있다. 김정일은 유일한 동생인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을 제일 신임하며 인민무력부장 오진우·호위총국장 이을설등 항일 빨치산 세대인 이른바 「혁명1세대」는 대부분 존경한다. 가족관계는 본처 김영숙과의 사이에 딸 2명과 아들 1명이 있으며 이들은 55호 관저에 있다. 두번째 처는 무용수출신의 고영희씨(40)이며 고씨와의 사이에 아들과 딸 1명씩을 각각 두고 있다. 자식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김정남(23·미혼)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배우인 송혜림과의 사이에서 났으며 70년대 당시 결혼한 송씨를 차지하기위해 송씨의 남편을 프랑스의 유네스코 대표로 보냈다. 김군은 그러나 김정일 뒤를 이를 후계계승자도 아니고 김정일을 아버지로 부르지도 못하며 식모등과 함께 문수구역에 거주하고 있다. 김군을 93년 9월 고려호텔에서 만났을 때 김군이 여자랑 노는등 타락한 생활을 해 호텔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남한에 대한 정보는 어떤 방법으로 입수했는가. ▲(조씨)남산고등중학교 시절에는 남한 신문을 볼 수 있었고 아버지가 건설부부장으로 일할 때 장관급 이상 고위직에게 보급되는 국제정세,남조선정세,과학기술정세등에 관한 참고통신을 아버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이 통신은 논평없이 있는 그대로 사실만 기록돼 있다.또 지식인들 사이에는 이같은 정보가 비밀히 나돌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김일성사망으로 집단 통곡하는 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조씨)북한의 주체사상은 공산주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현실에 맞게 적용했다고 주민들은 세뇌당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현상이다.주민들은 주체사상이 대중과 민중을 위한 이론으로 알고 있어 이를 만든 김일성의 죽음에 슬퍼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또 주민들이 그토록 슬퍼했던 것은 앞으로 김정일 체제에 대한 불안감도 작용했다. ◎“장인 강총리 숙청될것” 괴로운 표정/“북뉴스 접촉기회” 내외신기자 2백명 몰려/귀순자 기자회견장 이모저모 27일 귀순한 강명도씨와 조명철씨의 기자회견이 열린 프레스센터 20층 회견장에는 두 사람이 북한고위인사의 친인척이어서 폐쇄적인 북한 내부의 고급 뉴스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내외신기자 2백여명이 한꺼번에 몰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취재경쟁을 벌였다. 특히 일본의 교토통신과 유럽의 로이터통신등 외신기자가 보도진의 절반을 넘었으며 국내 기자들보다 앞서 질문공세를 펼침으로써 최근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강씨등은 시종 진지하고 또렷한 말투로 취재진의 질문에 성의있게 답변했으며 종래 귀순자들과는 달리 고위층 내부의 비밀스런 활동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 이날 회견에서 강씨는 여유있는 태도와 달변에 가까운 말솜씨로 북한 내부사정을 조리있게 설명.반면에 조씨는 구체적인 답변보다는 학자풍의 원칙론적인 대답으로 일관해 대조적. ○…특히 강씨의 경우 오진우 인민무력부장이 지난 87년 음주교통사고를 낸 상황을 설명하면서 오의 대형벤츠 승용차 번호인 216­5555를 정확하게 기억해 내기도 해 기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이날 강씨는 3시간여동안의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나의 귀순과 기자회견으로 단기간내에는 강성산총리의 신변에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이지만 조만간 숙청등 그 대가를 치르고 상당히 곤경에 빠질 것』이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기자회견도중 땀을 훔치는 등 다소 힘든 모습을 보인 조씨는 『북한에 있는 가족·동료들은 북한의 모순된 체제를 내부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달아났다고 비난할 것』이라면서 『다만 우리들의 귀순동기가 북한사회에 알려져 북한사회를 바로 잡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끝을 맺었다. □인적사항 ▷강명도◁ ▲나이·생년월일:36세,58.12.4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광복거리 1동7반 ▲직책: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 릉영윤전합영회사 부사장 ▲학·경력 ­70.8∼76.9 평양외국어학원 불어과 졸업 ­76.10∼79.9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졸업 ­79.9∼82.7 중앙사로청 과외교양지도국 외사과 지도원 ­82.7∼85.10 조선인민경비대원,평양시당 39호실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5.10∼86.7 조선사회민주당 중앙위 국제부 지도원 ­87.6∼92.2 인민무력부 보위대학 보위전문연구실장 *외국인 무단접촉으로 90.3∼92.2 평남 북창군 「18호관리소」수용 ­92.3∼ 금수산의사당(주석궁)경리부(대외명칭 「릉라888무역회사)산하 「릉영윤전합영회사」부사장 ▷조명철◁ ▲나이·생년월일:35세,59.4.2생 ▲출생지:평양시 만경대구역 봉수동 ▲주소:평양시 만경대구역 당상1동 8반 아파트 20층1호 ▲직책:김일성 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92.8부터 중국 북경언어학원·천진시 「남개」대학 유학 ▲학·경력 ­71.9∼77.8 남산고등중학교 졸 ­77.9∼83.8 김일성종합대학 자동화 학부자동조정학과 졸업 ­83.9∼87.10 김일성종합대학 박사원졸업 *기업관리 현대화 전공,준박사학위 취득 ­87.10∼92.7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상급교원(전임강사) *경제수학·기업관리 현대화 강의 ­92.8∼93.7 중국 유학,북경 언어학원 중국어 연수 ­93.9∼ 중국 천진시 남개대학관리학부 연수 *경영합분야의 정책결정론 과정
  • 독의회,구유고파병작전 승인/조기경보기 역외초계 가능

    【본 로이터 AFP AP 연합】 독일의회는 22일 독일군의 해외전투역할 참여를 승인한 헌법재판소의 최근 결정을 처음으로 적용,해군과 공군을 구유고에 파견한 것을 4백24대48및 기권16표의 압도적 찬성으로 소급승인했다. 의회는 또 유엔의 대세르비아·몬테네그로 무역제재 시행을 감시하기 위해 아드리아해에 파견된 독일함정에 무력행사권을 부여하고 보스니아 상공을 감시하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공중경계관제기(AWACS)에 탑승한 독일승무원이 나토영역상공 밖으로 비행하는 것을 승인했다.아드리아해에서는 2척의 독일구축함이 다른 나토함정들과 함께 초계활동을 하고 있으나 금수위반 혐의의 선박에 대한 제지및 수색과 무력사용은 금지되고 있으며 AWACS기에 탑승한 독일군도 나토역외로 비행하는 것이 제한돼 왔다. 이날 결정은 야당인 사회민주당 의원 약 80%가 찬성,초당적으로 이루어진 셈이며 독일의회가 통일이래 가장 중요한 정책변경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전후 독일은 지난 90년의 공산주의 붕괴와 통일 이전에 유엔이나나토의 해외군사활동에 참여한 일이 없으며 걸프전 당시는 방관만 하고 있다는 이유로 맹방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다.
  • 김일성영결식/김성애 14위로 참석

    【내외】 19일 평양 금수산의 사당에서 치러진 김일성영결식에 김일성으 처인 김성애가 서열14위로 참석,주목되고 있다. 북한방송들이 9일 보도한 영결식 참석자 명단에 따르면 지난 9일 발표된 2백73명의 「국가장의위원회」명단에서 1백4위에 올라있던 김성애가 노동당정치국원겸 평남도당책임빗 서윤석의 뒤를 이어 14위로 거명됐다.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의 참석여부는 밝혀짖 않았다. 1김정일 2오진우(노동당 정치국상무위원겸 인민무력부장) 3강성산(노동당 정치국원겸 정무원총리) 4이종옥(노동당 정치국원겸 부주석) 5박성철(〃) 6김영주(〃) 7김병식(사회민주당 위원장겸 부주석) 8김영남(노동당 정치국원·부총리겸 외교부장) 9최광(노동당 정치국원겸 군총참모장) 10계응태(노동당 정치국원겸 당비서) 11전병호(〃) 12한성룡(〃) 13서윤양(노동당 정치국원·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14김성애(미망인) 15김철만(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16최태복(노동당 정칙구 후보위원겸 당비서) 17최영림(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부총리) 18홍성남(〃) 19양형섭(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최고인민회의 의장) 20홍석형(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겸 국가계획위원장) 21연형묵(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자강동당책겸 인민위원장) 22김기남(당비서) 23김국태(〃) 24황장엽(〃) 25김중린(〃) 26서관희(〃) 27김용순(〃) 28김환(〃) 29김복신(〃) 30김창주(〃) 31김윤혁(〃)
  • 나이지리아/대규모 반정시위 조짐/3천여명 비밀집회… 군정퇴진 요구

    ◎“새정부구성” 야지도자 도피 【라고스 AFP AP 로이터 연합】 지난해 6월 나이지리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했던 야당지도자 모스드 아비올라 전대통령후보가 지난 11일밤 자신이 나이지리아의 대통령이라고 선언한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피한데 이어 아비올라를 지지하는 재야민주세력들은 13일부터 민주화요구 반정부시위를 전개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아비올라는 지난해 6월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사회민주당후보로 출마,압승을 거두었으나 당시 군사정권지도자 이브라힘 바반기다대통령의 선거무효화 조치로 집권이 좌절됐으며 그뒤 9월 무혈군사쿠데타로 국방장관이었던 아바차장군이 과도집권평의회 의장에 취임하면서 국회와 지방의회가 해산됐었다. 아비올라는 야당인사 등 3천여명이 참석한 한 비밀집회에서 『이 순간부터 나이지리아연방공화국은 대통령이자 군통수권자인 본인이 이끄는 새로운 민족화합정부의 통치를 받게되며 이 정부는 나이지리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고 선언하고 군사무혈쿠데타로 집권한 사니 아바차장군에게 퇴진을 요구했다. 나이지리아 군사정부당국은 즉시 아비올라를 정부전복혐의로 체포하기 위해 수색에 나섰으며 아비올라는 11일밤 자택연금상태에서 빠져나와 비밀집회에 참석한 뒤 종적을 감췄다.
  • 스웨덴(외국원전 어떻게 운영하나:3)

    ◎방사성폐기물 길이 1.2㎞ 해저동굴 저장/콘크리트상태로 반입,누출위험 전혀 없이 1980년 스웨덴은 국민투표로 매우 이례적인 결정을 내린다. 오는 2010년 이후 원자력 발전을 불허하고 95년과 96년에 원전 1기씩을 조기 폐쇄한다는 내용이었다.그러나 11년 뒤인 91년 5월 사회민주당과 자유당,중앙당 등 3개 정당의 합의아래 이 계획은 폐기된다. 번복 사유는 간단하다.아무리 따져봐도 원자력을 대체할 만한 발전원이 없기 때문이다.80년의 결정이 정치적 차원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음이 실증된 셈이다. 스웨덴에는 수력이 풍부하지만 다른 에너지원은 빈약하다.그래서 원자로 개발이 일찍이 40년대부터 시작됐다.45년에 연구용 원자로가 처음 등장했고,72년엔 자체기술로 첫 상업용 원전을 가동하는 데 성공한다. 그 후 스웨덴의 원자력 개발은 장애없이 추진됐다.반핵의 조짐도 없었다.한 때 핵문제에 대한 논쟁이 있었지만 13기의 원전 건설에는 차질이 없었다. 그러다 76년 새 정부가 들어서자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문제를 놓고 국가에너지 계획에 대한 논쟁이 재개됐다.논쟁은 79년 미 트리마일(TMI)원전사고를 계기로 증폭돼 결국 국민투표로 이어지게 된다.의회는 투표결과에 따라 가동 중이거나 건설 중인 12기의 원전을 한시적으로 운영키로 결정했던 것이다. 3개 정당은 91년 이 결정을 다시 뒤집고 「대체에너지 개발을 위한 5개년 계획」에 착수하면서 3가지 충족요건을 제시한다. 원전이 폐쇄돼도 고용수준이 유지돼야 하고,원전폐쇄의 여파로 석탄과 석유의 사용이 늘어서는 안 되며,원자력만큼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에너지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이었다.대체에너지 개발에만 대략 2백19억∼4백60억 크로나(5조9천억원)의 자금이 들어가야 했다.원전이 폐지돼 전기요금이 오르면 경쟁력이 떨어지고,철강업과 기초 화학산업 등의 생산이 반감되며,13만명(스웨덴 총인구 8백40만명)이 일시에 해고될 우려가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따라서 국민들은 원자력을 대체할 에너지원의 개발구상을 「환상」으로 받아들였다. 스톡홀롬에서 북쪽으로 2백㎞ 떨어진 해안에 위치한 SKB(스웨덴 핵연료 폐기물 관리회사)의 포스마크 폐기물 처분장.포스마크 원전 1·2·3호기 인근에 있는 이 처분장은 발틱해변에 60m 깊이로 뚫은 해저 동굴로 길이가 1.2㎞이다.저장능력 1만8천㎥로 88년부터 스웨덴의 원전에서 나오는 작업복과 장갑 등 중·저준위 폐기물을 보관하며 일반에 공개된다. 시멘트로 밀폐한 중·저준위 폐기물들을 거대한 크레인이 착착 쌓는 모습을 누구나 볼 수 있다.폐기물이 콘크리트 상태로 반입되기 때문에 방사선의 위험이 전혀 없다.그럼에도 중앙 감시센터는 동굴처분장 곳곳을 감시하고 오염도를 시시때때로 체크한다. 이 처분장은 스웨덴의 원전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계획보다 축소돼 건설됐다.SKB는 당초 중준위 폐기물용 사일로 4개와 9개의 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을 건립할 계획이었다.그러다 원전계획의 수정으로 2010년까지 나올 폐기물 처분량에 맞춰 규모를 줄였다.지금은 중준위 폐기물용 사일로 1개(직경 30m,높이 70m)와 저준위 폐기물처분장(높이 21m,길이 50m)4개만 들어서 있다. 이곳이 처분장으로 선정된 것은 해저암반이 잘 발달된 데다 지진의 우려가 없기 때문이다.보다 중요한 것은 처분장이 들어설 당시(83년)지역 주민의 반대가 없었다는 점이다.스톡홀롬에서 일부 학생들의 시위가 있었을 뿐이다.포스마크 처분장의 핸드리 홍보부장은 『지금 투표를 하면 원전을 찬성하는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이라며 『정부가 원전을 안 짓겠다고 했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포스마크의 처분장은 스웨덴의 원전정책으로 축소됐지만 앞으로 더 늘릴 수 있는 여지를 확보하고 있다.계획 단계에서 민란 수준의 대혼란을 겪었던 우리의 「안면도 폐기물 처분장」 사건이 떠올랐다.
  • 핀란드 첫 직선대통령 아티사리/유엔관리 거친 외교통(뉴스 인물)

    6일 핀란드 최초의 직선대통령에 당선된 마르티 아티시리(56)는 유엔관리이자 20년이상 해외,특히 아프리카지역의 대사를 두루 지낸 직업 외교관 출신. 핀란드 최대야당인 사회민주당 당원인 아티사리 대통령당선자는 이번 선거에서 현중도우파정부의 경제정책을 공격하면서 실업해소를 위한 새로운 고용창출정책을 공약으로 내걸어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다. 평소 국경을 맞대고 있는 러시아가 범유럽안보체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온 그는 앞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개선,유럽연합(EU)내에서 20%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는 국내 경제문제를 해결해야할 과제등을 안고 있다. 외교관출신답게 영어,불어,독어,스웨덴어에 매우 능통하다.
  • 김병식 8위 부상/북 권력서열

    【내외】 구랍31일 평양체육관에서 열린 새해 설맞이 모임에 김일성을 비롯해 노동당 정치국원·후보위원 거의 전원이 참석,변화된 북한 권력서열을 보여주었다. 이날 설맞이 모임 「주석단」은 지난해 12월 노동당 제6기 21차 전원회의(12·8)와 최고인민회의 제9기6차회의(12·9∼11)에서 대대적인 인사개편이 있은 이후 고위간부 전원이 한자리에 모인 것으로 앞으로 상당기간 이 구도가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한의 권력서열 변화를 보면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와 함께 부주석에 오른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 김병식이 김영주다음의 8위로 부상했으며 부총리인 홍성남은 18위로 올라섰다. 1김일성 2김정일 3오진우(인민무력부장) 4강성산(총리) 5이종옥(부주석) 6박성철(부주석) 7김영주(부주석) 8김병식(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부주석) 9김영남(부총리겸 외교부장) 10최광(차수·군총참모장) 11계응태(당비서) 12전병호(당비서) 13한성용(당비서) 14서윤석(평남도당책겸 인민위원장) 15김철만(국방위원) 16최태복(당비서) 17최영림(부총리겸 금속공업부장) 18홍성남(부총리) 19강희원(부총리) 20양형섭(최고인민회의 의장) 21홍석형(국가계획위원장) 22연형묵(자강도당책겸 인민위원장).
  • 최근의 북향동향/강인덕/김영주 재기용은 「노간부」 무마책(기고)

    ◎후계체제 구축과정서 소외된 불만 해소 93년도 북한의 대내정치에서 가장 의외(?)라 할 수 있는 사건은 지난 8일 이후 드러난 인사개편이었다. 제6기21차노동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과거 18년간 종적이 희미했던 김영주(김일성의 실제)가 「정치국원」으로 임명되었고 양형섭(김일성의 4촌매부)이 「정치국후보위원」으로 부활하였다. 그런가 하면 제9기6차 최고인민회의에서는 김영주와 김병식(현 사회민주당당수·20년전 조총련 부의장)이 「국가부주석」으로 지명되었다. 그 대신 출세가도를 달리는듯이 보였던 김용순(당비서)과 김달현(부총리겸 국가계획위원장)이 정치후보위원에서 탈락되었다.김용순의 경우 당비서와 종전의 직책(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 같으나 김달현의 경우는 2·8비날론공장 책임비서로 임명되었다고 하니 좌천인 것만은 확실하다.이외 당중앙위원과 동 후보위원 16명이 새로 임명되었는데 그 중 9명이 군장성이고 나머지 7명이 기술관료출신이라는 점에서 군부의 부상이 점쳐지고 있다. 우리의 관심사는 과연 이번 인사가 어떤 정치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김영주가 담당할 역할이 무엇인가하는 점이 궁금하다. 일반적인 관측은 김정일세습체제가 마무리단계에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때 그의 역할은 김정일체제를 보다 강화시키는데 이바지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보고 있다. 필자 역시 이런 견해에 찬동한다.그런데 막상 구체적으로 그가 담당할 역할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해보면 석연치 않다.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김영주의 과거 경력을 캐 볼 필요가 있다.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전반까지 당조직을 전담했던 사람이다. 지난 56년 김일성에게 일대 위기를 가져왔던 연안파·소련파와의 권력투쟁(8월종파사건)에서 김일성일파가 승리한 이후 당내에 남아 있는 반금세력을 일소하는 작업을 바로 김영주가 수행했다.다시 당조직지도부장이었던 그는 젊은 열성당원을 동원하여 「집중지도사업」을 조직하고 김일성1인체제구축을 주도하였다.60년대 기간에 전개된 군부숙청(1969년2월 김광협·허봉학숙청)도 주도했다. 이렇게 보면 현재 생존해있는 60·70대의 노간부(필자는 이들을 1·5세대라고 부른다)중 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들 노간부들이 김정일후계체제구축과정에서 소외당해왔다. 김정일은 지난 74년 후계자로 지명되자마자 「3대혁명소조」를 조직하여 당기관은 물론 군부대,행정기관,기업 집단농장,교육기관,사회단체 등 모든 기관에 이들을 파견하여 기성간부들에 대한 사상지도사업을 전개했다.안하무인격의 3대혁명소조원들의 행동은 이들 간부의 반발을 사기에 충분했다.이들 기성세대들이야 말로 북한정권을 세웠고 6·25를 이겨냈으며,폐허화된 땅에 오늘의 북한경제를 「일떠세운」장본인인데 「무슨 이유에서 투쟁경력을 무시하며 애숭이들이 책임을 추궁하고 사상검토를 하려 하는가」하는 심한 불평 불만을 갖게 되었다.더욱이 김정일등장이후 북한경제는 그의 「통이 큰 정치」(광벽정치)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 강냉이밥 조차 배불리 먹을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졌으니 내심 불만일수 밖에 없다. 이들 1.5세대를 누가 위무할 것인가.역시 같이 싸워 온 김영주 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김영주가 담당할 정치적 역할이 어느정도 떠오른다.김정일후계체제확립과정에서 소외된 60대,70대 노간부들로 하여금 소외감을 떨쳐 버리고 김정일후계체제 강화에 참여케 하는 것이다. 지난 7월 휴전협정조인 40주년기념을 계기로 「전국로병대회」가 개최되고 이때부터 김영주의 이름이 공식거론되었다는것이 그의 정치적역할을 밝혀 주는 것이 었다°그렇다고 그의 등장이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전망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 할것이다.
  • 조총련출신… 대남정책 관여/부주석 발탁 김병식은 누구

    ◎전남태생으로 72년 입북… 서울방문도 북한 최고인민회의 마지막날인 지난 11일 부주석으로 전격 발탁된 김병식(74)은 조총련 간부 출신으로 72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로 서울에 온 적이 있어 우리에겐 낯익은 인물. 전남 신안 태생으로 해방전인 지난 43년 일본으로 건너간뒤 일본 동북대학 경제학부를 마쳤다.이후 곧 바로 조총련에 입단해 인사부장·사무국장·부의장과 조총련 산하 조선문제연구소 소장,민주전선 중앙위원회가 운영하는 조선통신사 편집국장 등을 거쳐 70년 조총련의 제1부의장으로 선출돼 2인자로 부상했다. 그는 뛰어난 언변과 처세술로 조총련에서 승승장구했으나 조총련의장인 한덕수와는 불편한 관계였다는 후문.이 때문인지 72년 조총련 고위간부 영구입북 케이스로 북한으로 건너갔다. 입북후에는 적십자회담 북측 자문위원과 77년 조선혁명기념박물관 관장,82년 남조선문제연구소 고문을 맡는 등 주로 대남정책을 맡아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후 최근 수년간 그의 동정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지난 7월 이계백의 사망으로공석이 된 노동당의 「우당」 사회민주당 위원장에 선출됨으로써 중용이 예고된 바 있다. 그의 부주석 기용은 북한내 실세급으로 부상했다는 것을 뜻한다기보다는 외화난에 허덕이는 북한당국의 조총련 송금라인 확보를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말하자면 핵개발 의혹으로 인한 유엔의 경제제재 조치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사전조치라는 것이다.또 그가 70년대초 남북대화의 북측 사령탑격인 김영주와 나란히 부주석으로 발탁된 배경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대만 신당·민주당 합당 추진(지구촌단신)

    【홍콩 연합】 대만 집권 국민당에서 분당한 신당과 중화사회민주당이 합당을 추진하고 있다고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지가 22일 보도했다.
  • 일 플루토늄 보유량 국내외에 4,500㎏

    【도쿄 교도 AFP 연합】 일본은 지난해 12월 현재 약4천5백㎏의 플루토늄을 국내와 외국에 보유하고 있다고 일본 과학기술청이 1일 밝혔다. 일본이 플루토늄 보유와 관련,부분적인 공표를 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전체 규모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과학기술청은 이날 사회민주당 소속의 아키바 타바토시 중의원의원의 서면질의에 대한 답변에서 일본은 국내와 해외에 각각 1천6백㎏과 2천9백㎏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 “경제개혁 미흡”… 국민 반발심리 반영/동구권 공산세력 권력 복귀

    ◎직업보장·자유 동시충족 “이중욕구”/정권담당자 정치경험 부족도 원인 최근 폴란드총선에서 옛 공산당의 후신인 민주좌파동맹(SLD)이 집권 자유노조계열 정당을 제치고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는데 성공하면서 공산주의자의 「권력복귀」가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89년 동유럽을 휩쓴 공산정권의 붕괴 도미노이후 현재까지 옛 공산주의자가 권력을 쥐고 있거나 선거를 통해 다시 득세하고 있는 나라는 리투아니아 등 구소련연방10개국,폴란드,슬로바키아,루마니아,구유고연방5개국 등이다.현재의 추세로 보아 헝가리와 불가리아도 내년 총선에서 옛 공산당의 후신인 사회당이 승리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 90년 소련 최초로 공산당독재를 무너뜨리고 독립선언을 한 나라다.그러나 반체제 독립운동의 결집체였던 사주디스는 경제난으로 지난해 11월 실시된 1,2차총선에서 대패했으며 지난 2월 실시된 첫 대통령선거에서는 공산당을 이어받은 민주노동당의 알기르다스 브라자우스카스가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다. 89년10월 공산당을 해체한 헝가리는 집권 헝가리민주포럼(MDF)이 시장경제도입 등을 포함한 신강령을 채택,실시해오다 지난 90년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집권당은 9%의 지지를 얻은 반면 옛 공산세력이 창설한 사회당은 21%의 지지를 얻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가리아의 경우도 최근 여론조사결과 집권당인 반공민주세력동맹이 23.1%의 지지를 얻은 반면 옛 공산당인 사회당은 26.4%의 지지를 얻어 내년 총선의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말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갈라져 나온 슬로바키아는 페테르 바이스의 사회민주당이 블라디미르 메치아르 총리의 집권당에 이어 제2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인기도에 있어서는 바이스가 메치아르를 단연 앞서고 있다. 루마니아는 지난 90년 5월 53년만의 첫 대선에서 공산당출신인 일리에스쿠대통령이 당선됐으며 지난해 2월 생활수준저하에 항의하는 전국적인 시위홍역을 치렀음에도 불구,같은 해 10월 재선됐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생활수준의 하락 등 어려운 생활환경에 대한 국민의 불만에힘입어 다시 권력을 잡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공산주의 망령이 유럽에서 되살아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그보다는 옛 공산주의자들의 권력복귀는 변화과정을 통해 「잃은 것이 많은 시민들로부터의 반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글라스고대학의 동유럽전문가인 빌 월리스는 『사유화 등 현재 추진중인 경제개혁성과의 책임을 현 정권담당자에게 묻는다는 것이 결국 쫓겨났던 옛 공산주의자의 선호로 나타난 것』이라면서 어디까지나 『개혁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일 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폴란드 경제성장률은 4%로 터키를 제외하고 유럽 최고의 성장률로 꼽혀왔다.그러나 지난 19일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현재의 높은 실업률,30%라는 실질소득의 감소를 들어 자유시장경제속도를 늦추겠다는 옛 공산주의자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또 다른 분석은 현재 득세하고 있는 공산주의자는 과거의 공산주의자와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동유럽의 공산당은 거의 모두가 「사회당」,「민주사회당」,「사회민주당」으로이름을 바꾸었고 이념도 옛 소비에트시대의 공산주의이념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옛 공산주의 세력의 재등장과 관련,전문가들은 ▲공산정권이 붕괴한 나라의 국민들이 과거의 보장된 고용기회와 시민의 자유를 동시에 얻으려는 욕구를 갖고 있는 점 ▲현 정권담당자들의 정치경험부족 ▲시민운동의 미숙 등이 옛 공산주의자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 깨끗한 정치 어떻게 가능할까

    ◎“제도 보완·불법선거 처벌 강화 병행을”/정당회계감사 의무화 등 도입/정치인·유권자 의식전환 시급 □전문가의 제안 과연 유리알처럼 맑은 정치가 이 땅에도 뿌리내릴 수 있을 것인가. 금융실명제 실시로 지하에서 떠돌던 「검은 돈」이 제도권으로 흡수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우리의 정치도 체질개선이 요구되고 있다. 새로운 환경을 따라잡기 위한 정치권의 「몸부림」이 정치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뤄내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이같은 이유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정부단체·학계등 각종 기관에서도 선거법 정당법 정치자금법등 일련의 정치관계법에 대한 개선방안을 활발히 내놓고 있다. 민자당의 박범진의원은 『법대로 한다면 우리도 선진국과 마찬가지로 돈을 쓸 수 없도록 되어있다』고 지적했다.불법으로 돈을 뿌리는 관행이 정치를 흐리는데 가장 큰 원인이지 제도가 잘못되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는 얘기다. 박의원은 선거비용과 관련,『영국의 경우처럼 법정선거비용을 1만원이라도 초과해 선거운동을 하는 후보는 당선무효시키는 등 처벌규정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 경우 단속의무가 있는 행정부의 의지만으로도 금권선거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의원은 또 미국 영국등과 같이 유급선거운동원을 폐지하고 자원봉사자들을 활용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금품수수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금지해온 호별방문의 경우 선진국처럼 허용해 후보자들이 「돈대신 몸으로 때우도록」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미국처럼 지구당을 두지않는 문제에 대해 『우리의 정치행태로 미루어 총량면에서는 정치자금이나 선거비용이 더 많이 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그는 정치자금을 모금하기 위한 후원회 문제와 관련,일본의 경우와 같이 회원 숫자를 아예 폐지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민주당의 박상천의원은 영국 의회제도의 도입여부에 대해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와는 달리 영국은 국회 중심의 철저한 의원내각제여서 우리와는 정치문화측면에서 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히 있다』고 선택의 신중성을 강조했다. 박의원은 그러나 『영국의선거공영제는 모범적』이라면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뒤 우리의 선거관리제도를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개인홍보물의 제작 배포는 금지하되 국가에서 제작비·인건비·발송비용등은 모두 맡도록 한다는 것이다.그러나 후보자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비율의 득표를 못할 경우 기탁금에서 공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대신 선거운동의 방법을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박의원은 『현행 선거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차량을 이용한 선거운동은 자동차 연료비와 마이크 대여비밖에 들지 않는다』면서 이의 허용을 촉구했다.일정 장소에 청중을 동원하는 연설회보다는 시장이나 도로등 유권자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곳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 돈 안드는 선거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박동서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는 정치자금과 관련,『우리나라는 동원가능한 모든 방법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미국은 정당에 대해 국고지원을 허용하고 있으나 독일은 금지하고 있다』고 전제,『금융실명제의 실시로 국고지원이 증가할 전망이지만 늘려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또 정당이 국민의 세금을 받아 쓰는 이상 회계감사의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계에서 국고지원을 주장하는 이유는 워낙 야당에 돈이 가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법정기탁금제를 탄력성있게 운영,야당에도 30%정도는 몫이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거운동의 방법을 가급적 확대해 허용하되 운동원 수는 줄이고 인쇄물 현수막 설치등 돈이 드는 것은 선관위에서 주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당 문제에 대해 박교수는 『우리 현실에서는 지방정치 활성화를 위해 존속되어야 한다』면서 『유급 당원수를 줄이는 대신 자원봉사자를 늘리면 운영비를 감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동성중앙대교수는 『선거자금법 선거법 의원자세면에서는 부정방지차원에서 영국의 제도가 가장 좋지만 정당운영과 선거관리 측면에서는 독일의 장점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면서 『그러나 단순비교는 곤란하다』고 밝혔다. 김교수는 선거관련법 개정과 관련,미국의 한 대통령과 기시전일본수상(안신개)의 말을 인용해 『국회의원에게 이를 맡기는 것은 도둑에게 체포관련법을 심사시키는 것과 같다』면서 전문가 집단에 의한 연구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제도의 개선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정치인이나 시민의 의식전환을 통한 올바른 정치문화의 정착이다. 정치제도와 정치문화는 깨끗한 정치를 이루는 수레의 두 바퀴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어느 것 하나도 개혁되지 않는 한 깨끗한 정치라는 목표는 또한번 물 건너갈 것이다. ◎불법선거땐 후보·유권자 쌍벌/영/중앙당 규모 적고 공천제도 없어/미/정치자금 철저 공개… 투명성 보장/독 □선진국의 경우 ▷영국의 선거제도◁ 영국의 선거는 돈이 들지않고 조용히 치러 진다. 영국 선거제도는 ▲선거 공영제의 완벽한 실시 ▲선거자금의 철저한 제한 ▲자유로운 선거운동 ▲부정·불법선거운동자에 대한 가혹한 처벌등이 가장큰 특징이다. 법정선거비용은 선거때마다 다소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후보개인은 소액의 법정 선거비용밖에 쓸수가 없도록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다.법정선거비용 4천3백30파운드(5백여만원)에다 도시는 유권자 일인당 3.7펜스를,농촌은 4.9펜스를 더 쓸수가 있다.한선거구당 평균 유권자수가 7만명인 점으로 볼때 선거비용은 우리돈으로 8백만∼9백만원에 불과하다. 이 돈도 지역구에서 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모금으로 조성된다. 조성된 자금은 지구당 사무장의 명의로 특별계좌에 예치하고 필요할때 인출토록 하고있다. 후보자는 선거비용을 신고해야 하며 법정선거비용을 초과하면 당선무효와 함께 형사처벌된다. 매표·향응제공등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후보뿐 아니라 운동원,돈을 받은 유권자까지도 함께 처벌받는 쌍벌죄를 채택하고 있다. 당선자나 낙선자 모두 유죄로 인정된 사람은 부패행위의 경우 10년간,위법행위의 경우 7년간 당해 선거구에서 출마할수 없다. 선거법위반사건은 10일 정도면 최종판결이 나올 정도로 신속하게 처리된다. 불법행위는 엄격히 제한하는 대신 선거운동은 폭넓게 허용하고 있다. 라디오나 TV광고만 금지될뿐 선거비용의 한도내에서의 호별방문,개인연설회,현수막등은 제한이없다. 선거사무장과 회계담당자에게만 수당을 지급할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운동원의 대부분이 자원봉사자이다. ▷미국의 정당제도◁ 미국 정당제도의 가장큰 특징은 중앙당의 규모가 작고 상설화된 지구당이 없다는 점이다. 거대한 정당조직이 없음으로 과다한 정치비용을 줄이고 의원 개개인도 지구당관리를 위한 음성자금이 필요없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정당은 워싱턴에 중앙당본부가 있지만 본부인원이 70∼80명 정도의 규모에 불과하다. 중앙당은 후보를 선출하는 전당대회 개최등 최소한의 역할만 담당하며 연락본부 기능 정도에 머물고 있다. 정책결정은 의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공식적인 당정책기구등도 없다. 대통령도 특정정당 출신이지만 중앙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없으며 의원들도 무조건 정당의 결정을 따르는게 아니라 지역의 이익을 대변한다. 정부의 중요한 안건이 의회에 회부되면 정당에서 이에 대한 방침을 결정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자기당 소속 의회지도자들을 초청해 안건에 관해의견을 교환하거나 중요한 의원을 사무실에 초청해 의견을 나눈다. 상설화된 지구당조직이 없으며 주단위로 주위원회,군단위로 군위원회,투표구단위로 투표구위원회가 있다. 전국적으로 노조·기업·직능단체들이 별도로 정치활동위원회(PAC)를 만들어 특정후보를 지원하고 지역구를 관리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물론 활동자금은 전적으로 자발적인 모금이나 자원봉사에 의존한다. 모든 연방직후보자는 후보자가 된후 15일 이내에 그 주된 선거운동위원회로서 정치위원회를 지정해야 하며 후원회로서 주선거운동위원회를 지정할수 있다. 미국의 정당제도의 또다른 특징은 공천제도가 없다는 점이다. 지역당원들이 뽑은 대의원이 각종선거의 후보자를 선출하는 상향식 공천제도이다. ▷독일의 정치자금제도◁ 독일 정치자금제도의 가장큰 특징은 영국등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공개에 있다. 이는 금융실명제의 정착으로 정치자금의 투명성이 보장된다. 독일정당의 정치자금은 당원들이 내는 당비,국고보조금,기부금,교섭단체위원회비,자산에 의한 수입,사업 또는 출판에 의한 수입,선거용 배당금으로 충당된다. 당원은 매월 당비를 내면서 당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고 특히 선거때가 되면 자원봉사로 정당을 돕는다.현재 독일에서는 당원들의 당비납부 액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정당에 대한 국고보조금도 증대되는 추세이다. 사회민주당 또는 기독민주당과 같은 큰 정당들의 당원에 의한 당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그 정당수입의 약 50%나 되어 당원들의 당에 대한 주인의식이 높다. 일례로 기민당의 경우 월소득 3천마르크인 당원은 당비로 월 30마르크(1만5천원정도)정도를 내고 국회의원인 당원들은 세비의 상당액을 당비로 납부한다. 유권자들도 입후보자를 음식점에 초청해 정견을 들을 때 자신들이 먹은 음식값은 각자가 낸다. 독일정당은 회계보고를 의무화하고 있어 정당은 수입자금의 출처를 회계보고서를 통해 공개해야한다. 회계보고서는 경리심사원 또는 경리심사협회의 검사를 받아 연방의회의장에게 제출하고 연방의 관보에 공포해야 한다.회계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연방의회의장은 자금의 지불을 중지시켜야야 한다. 기부금은 1년간 총액이 개인은 2만마르크(9백60만원정도),법인은 20만마르크를 초과하는 경우,기부자의 성명 주소및 기부금의 총액을 회계보고서에 기재·공표하여야 한다. 4천마르크 이하의 기부금은 면세된다.
  • 나이지리아 임정 곧 구성

    【아부자(나이지리아) 로이터 AFP 연합】 나이지리아 군부가 만든 두 정당인 중도좌파의 사회민주당(SDP)과 중도우파의 전국공화회의(NRC)는 군사정부가 지난달 12일 실시된 대통령선거를 무효화한 뒤 발생한 정치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임시거국정부 구성에 7일 동의했다고 양당 의장들이 밝혔다.
  • “한국 핵개발” 선전공세 강화/“대덕단지가 총본산”잇단 성명·담화

    【내외】북한핵이 국제사회에서 물의를 빚고 있는 가운데 북한이 최근들어 대덕연구단지를 거명하면서 한국의 핵무기개발을 연일 주장,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의 경우 당기관지 노동신문을 비롯해 ▲조선반핵평화위원회(5·25) ▲조선사회민주당(5·28) ▲천도교청우당(5·29) ▲조평통서기국장(5·30)명의의 성명·담화를 잇달아 발표,한국측의 핵무기개발이 현실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북한및 해외동포들의 반대투쟁을 선동했다. 또한 이달 들어서도 지난 12일자 노동신문과 평양방송(16일)을 통해 한·미양국이 북한을 압살하기 위해 북한 핵문제를 「날조」하고 있다면서 한국측에 핵무기개발중지를 요구한데 이어 21일에는 조선기독교도연맹·불교도연맹·천주교인협회등 종교단체위원장 명의로 각각 담화를 발표,한국측의 핵무기개발을 주장한 것으로 북한방송들이 22일 보도했다. 북한은 특히 한국의 핵무기개발과 관련해 이제까지 거론하지 않던 대덕연구단지를 거명,『현재 남조선에서는 핵무기개발과 핵무장화를 합법·실현화하려는계획에 따라 핵무기개발의 총본산인 대덕연구단지가 준공되어 핵분열성물질 추출기지와 내폭실험·핵탄제작·핵운반수단개발기지들이 종합적으로 꾸려져 있고 그것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베네수엘라대통령/“재판회부땐 사임”/페레스

    ◎대법원선 부패혐의로 탄핵 결정 【카라카스 AFP AP 연합】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20일 의회가 부패 혐의로 자신을 재판에 회부키로 결정할 경우 대통령직을 사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임 성명은 대법원이 페레스 대통령을 공금유용 혐의로 재판에 회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그를 탄핵하기로 결정한 뒤 수시간만에 나왔다. 페레스 대통령은 이날 전국에 방영된 TV 및 라디오 방송을 통해 결백하다고 주장한 뒤 그러나 예정대로 의회가 자신을 재판에 회부키로 결정한다면 헌법에 명시된대로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공금유용 혐의를 인정한 대법원의 결정을 기각해줄 것을 상원에 요청하지 않고 법정에 서겠으며 대통령직도 옥타비오 레파게 국회의장(사회민주당)에게 한시적으로 넘기겠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판사 15명을 상대로 페레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여부를 표결에 부쳐 9­6으로 가결했으며 이같은 결정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가 팽배하자 17명의 각료들은 표결 수분전에 전원 사임했다.
  • 이 사회당 당수 사임/벤베누토/소속의원 부패추문 관련

    【로마 AFP 연합】 소속 의원 상당수가 부패 추문에 연루돼 곤경에 처해온 이탈리아 사회당의 조르지오 벤베누토 당수가 20일 사임했다고 당소식통들이 밝혔다. 이들 소식통은 벤베누토 당수가 이날 당사무국 및 중진 의원들 앞에서 당수직사퇴를 밝혔다고 전했다. 사회당은 기민당·사회민주당 및 자유당과 함께 현이탈리아 내각을 구성하고 있다. 벤베누토 당수는 지난 2월 뇌물 수수 혐의로 물러난 베티노 크락시 전총리의뒤를 이어 사회당 당수에 올랐었다. 그는 파탄 상태에 이른 사회당의 재정난 해소와 이미지 개선을 위해 기울여온그간의 노력이 당중진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히자 깊은 좌절에 빠져온 것으로 전해졌다. 벤베누토 당수는 또 부패 스캔들과 관련해 조사받고 있는 44명의 자당 의원들에게 사퇴를 촉구했으나 단 한명만 이에 응하는 냉담한 반응이 나온데도 크게 충격받아왔다고 측근들이 귀띔했다.
  • 북한 연일집회… 전시분위기 조성/NPT 탈퇴이후 내부 동향

    ◎“적 섬멸준비 갖춰라” 임전태세 고취 혈안/국경폐쇄·등화관제 실시로 긴장 부추겨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최근 팀스피리트훈련에 대응한 「준전시상태」 선포와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라는 초강경책에 따라 대내적으로 전쟁분위기를 조성하면서 주민들의 임전태세를 고취하는데 혈안이 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8일 팀스피리트훈련에 대한 대응조치로 예년보다 더욱 강도높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이후 평양시 집회(9일),사회안전부 군무자 집회(9일),평남군중대회(10일),김일성대학교직원·학생집회(10일),개성시 집회(11일),강원도 집회(14일) 등 지역·단위별로 군중집회를 잇따라 열고 전 주민에게 『한손에는 낫과 망치를,다른 손에는 총을 들고 긴장하고 전투적으로 일하며 생활할 것』을 촉구했다. 이와함께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장인 정무원총리 강성산으로 하여금 12일 김정일의 「준전시상태」선포를 지지하는 담화를 발표케 하여 전시 분위기를 더욱 부추겼다. 이처럼 전시 분위기로 휩싸인 가운데북한은 지난 12일 팀스피리트훈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결정에 대해 「사회주의 제도를 견결히 옹호·고수하기 위한 응당한 자위적 조치」라면서 돌연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북한 전역에 새로운 긴장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선언 직후 북한은 국경을 폐쇄했으며 북한 거주 외국인들의 국내 여행을 금지시켰다.북한은 이어 지난 13일 밤 평양에서 등화관제훈련을 실시,긴박함을 조성한데 이어 지난 14일로 예정됐던 부주석 이종옥의 방글라데시 방문을 돌연 취소,긴장감을 더했다. 핵확산금지조약탈퇴와 관련,북한외교부 부부장 강석주는 지난 12일 NPT탈퇴문제의 유엔안보이상정과 경제제재 조치등을 예상하면서 이같은 조치가 취해질 경우 『정세는 매우 악화되고 아주 엄중한 후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북한은 13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14일 조선사회민주당 성명,15일 외교부 비망록을 잇따라 발표,NPT탈퇴조치가 『온 겨레를 전쟁의 위험에서 구출하고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는 가장 정당하고 혁명적인 대책』이라고 주장하면서 남북한 및 해외동포들에 대해 『민족의 자주권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굳게 단결,미국과 그 추종세력의 부당한 강권행사에 공동으로 대응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북한은 NPT 탈퇴선언 이후 정부성명을 하루에도 수십차례씩 방송을 통해 반복 보도하고 있으며 신문 사설을 통해 이같은 조치가 「자위적 조치」라는 점을 부각·선전하고 있다. 북한은 14일에 이어 15일에도 당기관지 노동신문에 「우리당의 주체적인 전쟁관점으로 튼튼히 무장하자」제하의 사설을 게재,현 한반도 정세는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사태』에 놓여 있다면서 전 주민에 대해 『높은 혁명적 경각심을 갖고 적들의 일거일동을 예리하게 주시하며 원수들이 언제 어느때 덤벼들어도 제때에 섬멸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출 것』을 요구했다. 이같은 북한의 움직임과 관련,국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의 진의가 어디에 있든 이번 일들로 인해 상식과 이성을 잃은 북한의 실체가 거듭 확인됐다』고 지적하면서 『지금이야말로 그 어느 때보다 대북경계심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고 있다.
  • “노동당의 들러리” 북한의 「야당」(오늘의 북한)

    ◎그 위장단체의 실체를 파헤친다/통일전선전략 도구로 당지시에만 맹종/사회민주당/서구·남미 외교발판 마련 첨병역할/천도교청우당/「종교」가면 쓰고 반한·반미선전 앞장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김일성이 지난달 23일 병사한 사회민주당 중앙위원장 이계백(87)의 빈소를 직접 찾아가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고 보도했다.이같은 김주석의 조문은 다소 이례적인 것으로 북한전문가들은 북한이 사회민주당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큰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잘 알려진대로 북한은 노동당이 지배하는 사회로 모든 권력은 노동당에 집중돼 있으며 중요한 결정 역시 노동당에 의해 내려지고 있다.이처럼 노동당 유일당체제이면서도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노동당 이외에 다른 정당들도 기능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다. 북한이 노동당 이외의 복수정당이라고 주장하는 정당은 사회민주당과 천도교청우당이다.그러나 이들 정당은 이름이 정당이지 실제에 있어선 직맹이나 문예총과 마찬가지로 「당의 충실한 방조자」역할을 할뿐 정당으로서의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따라서 이들 두 정당은 「야당」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노동당의 정책과 노선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집권 노동당의 외곽단체이자 통일전선전략의 기구로서만 존재가치를 인정받고 있을 뿐이다.이들 두 정당의 실체를 벗겨본다. ▷사회민주당◁ 해방직후 공산당과 적위대 그리고 구소련군대의 행패가 빚어낸 민심의 이반을 막기 위해 복수정당제가 실현된다는 것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45년11월3일 「조선민주당」이란 이름으로 창당됐다.당시 당수는 고당 조만식.이후 48년3월 제3차 전당대회에서 최용건이 위원장에 올랐으나 최는 56년 4월 노동당 제4차대회에서 노동당 부위원장을 겸직,「우당」이라는 말조차 유명무실한 것으로 만들었다.김일성은 58년 조선민주당과 청우당의 지방조직을 전면적으로 해체,「당중앙」이라는 윗 조직만 남겨 놓았다. 이후 조선민주당은 하부조직도 없이 노동당의 대내외정책을 지지 또는 추종하는 어용정당으로 전락했다.이때부터 60년대까지 조선민주당은 대남문제와 관련한 성명발표와 집회참석등 대한·대미비난활동에 역점을 둔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다.그러나 70년대에는 남북대화 진행과정에서 부위원장 김성율을 남북적십자회담 자문위원으로 참여시켰는가 하면 79년1월 「조국전선」 4개항목의 구국방안에 따라 민족통일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 위한 남북접촉에 대표를 파견하는등 위장활동을 전개했다. 조선민주당은 81년1월28일 제6차 당대회를 열고 당의 명칭을 현재의 조선사회민주당으로 개칭하는 한편 민주사회주의를 당의 지도이념으로 내세우고 10개항의 당강령을 새로 채택했다.이는 북한이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응하는 한편 이 정당을 통해 서구및 남미 등지에 외교적 발판을 구축하려는 외교전략에 의한 것이었다. 북한은 80년대 이후 세계각국에서 혁신정당들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사회민주당의 역할을 부각시킴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반한여론을 조성하는 한편 서방의 사회주의 정당들과 연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 오고 있다. 북한은 지난 89년4월 부주석 강양욱이 병사한 이후 6년 넘게 공석으로 남아 있던 사회민주당 위원장직에 조총련부의장을 지낸 이계백을 선출했었다. ▷천도교청우당◁ 천도교도들의 정당으로 46년2월8일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책략의 일환으로 창당됐다.초대당수에는 김달현(18 84·함북)이 선출됐으나 김은 19 58년말 「조선전선 간첩사건」에 연루돼 숙청됐다. 천도교청우당은 사회민주당과 함께 하부조직이 없는 명목상의 정당으로서 노동당의 정책을 적극 지지해왔으며 특히 종교적 이념을 표방하면서 북한의 통일정책을 한국사회에 선전하는데 앞장서 왔다. 북한은 지난 89년3월 천도교청우당 제6기 14차전원회의에서 지난 77년 이후 천도교청우당을 대표해온 정신혁을 제1부위원장으로 강등시키고 그 자리에 최덕신을 앉혔었다.최는 한국에서 외무부장관과 서독주재대사 천도교교령 등을 지낸 경력으로 인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이 회의에서는 북한이 제시한 통일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한국의 모든 천도교도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할 것을 촉구하는 「남조선 천도교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한바 있다. 이와함께 북한은 천도교청우당을 ▲고려연방제 통일방안 지지 ▲팀스피리트훈련 중지및 주한미군 철수 ▲한국의 북방정책 모략·비방 등 북측 통일방안 지지 및 반한·반미선전에 적극 활용해오고 있다. 현재 천도교청우당은 최덕신의 사망(89년11월)으로 다시 정신혁이 대표를 맡고 있으며 최희준·이득렬·김철민·한일섭·한영수·임선태 등이 부위원장직에 올라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