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회계약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법 개혁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청소년 비행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사형 선고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 차기 대선
    2026-04-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4
  • 갈리,「새 사회계약」촉구/“빈곤퇴치가 기본인권”

    ◎유엔 사회개발회의 개막 연설/1백84국 대표 참석 【코펜하겐 AFP 연합】 빈곤퇴치와 고용창출및 사회안정 방안을 논의할 유엔사회개발 정상회담이 6일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에서 1백84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사무총장은 이날 개막연설에서 「새 사회계약」을 촉구하면서 각 대표들의 임무는 총체적 사회책임의 개념을 다시 생각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1주일 예정으로 열리는 이번 정상회담은 1백16개국 국가원수및 정부수반이 전세계의 빈곤을 퇴치하고 고용을 창출하는 한편 사회분열에 맞서기 위한 10개항의 선언및 행동계획을 채택한 뒤 12일 폐막한다. 폐막 선언문의 주제는 이미 예비모임의 승인을 받은 바 있다. 라스무센 총리는 개막연설에서 『사회진보는 단순히 자유시장의 힘으로만 실현되지 않는다』면서 『사람들의 복지에 대한 투자만이 사회보장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부트로스 갈리 총장은 가난에서 빠져나오는 일이 기본인권이라고 강조하면서 전세계인구 가운데 13억은빈곤 상태로 살고 있으며 또 15억은 가장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트로스 갈리 총장은 사회개발과 인권간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말하고 진정한 경제발전은 사회분야의 진전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부트로스 갈리 총장은 이번 정상회담의 3대 주제인 빈곤퇴치,고용창출및 사회통합을 위해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 더 강력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경없는 경쟁… 세계시민을 키우자/선진화의 길 특별대담

    ◎교육제도 근본 혁신… 창의적 인재 양성/흉내내며 뒤좇지 말고 흐름 선도해야/“모르면 당한다”… 언어·문화장벽 극복 서두를때/김호길 포항공대 학장/이상우 21세기위원장·서강대 교수/ 경제전쟁으로까지 불리고 있는 국제경쟁에서 이기고,다가오는 21세기를 주도하는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기위해 선진화와 국제화가 국가적인 주요과제가 되고있다.오늘날 우리는 과연 어느 수준에 있으며 선진화·국제화는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김호길 포항공대학장과 이상우 21세기위원장(서강대교수)의 대담으로 선진화·국제화의 방향과 과제등을 들어본다. ▲이상우위원장=최근들어 선진화와 국제화가 우리의 주요과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이 시대 우리에게 왜 선진화·국제화가 꼭 필요할까요. ▲김호길학장=교통통신의 발달로 세계가 한 이웃이 됐고 그 이웃을 무시하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됐기 때문이라고 봅니다.정치적으로는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니까 이웃국가와 더 가까워져서 경쟁이 나라안이 아니라 나라간에 더욱 치열해 졌습니다.이런 상황에서 경쟁에 이기고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선진화와 국제화가 필수적입니다. ▲이위원장=옛날에는 같은 우물을 먹는 사람이 이웃이고 같은 냇물로 농사짓는 사람이 고을을 이뤘습니다.그러나 이제는 전세계가 이웃이고 활동무대입니다.한마디로 지구화되고 있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위해 국제화의 필요가 절실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선진화·국제화 일까요. ▲김학장=글쎄요.국제화하는 것이 선진화의 길이며 국제화란 곧 나라나 언어의 장벽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닐까요.전세계를 의식하고 세계를 이용한다는 생각으로 합리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이위원장=국제사회의 보편적인 행위준칙을 따르는 것이 국제화나 개방화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우리의 사고방식을 지금까지의 국가단위에서 인류가 다같이 추구하는 수준으로 넓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태평양의 어느 곳의 해양오염이나 시베리아의 삼림도 우리 문제라는 세계시민의식을 가지는 것이 곧 국제화라는 말입니다. ▲김학장=인도네시아인의 생활도이해하고 미국 흑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도 역지사지로 생각해야 합니다.민족과 국경을 초월해 서로 존경하고 이해하고 협력하는 것이 국제화의 기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위원장=그렇습니다.바깥세상의 행위준칙을 국내문제가 아니라고 해서 떼어놔서는 안될 것입니다.천안문사태때 중국 고위관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그 관리가 『우리 애들 종아리 좀 때리는데 왜 태평양 저쪽에서 난리냐』고 불평을 하길래 제가 『세계시민의 일부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대답해줬습니다. ○제2의 개화를 ▲김학장=19세기말 일본은 서양과 조약을 맺으며 국제조약이 뭔지 몰라 잔뜩 사기를 당했습니다.그뒤 일본은 똑같은 방법으로 구한국과 협약을 했고요.국제 준칙과 관행을 배워야 합니다.최소한 몰라서 당하는 일은 없어야 겠죠. ▲이위원장=19세기말의 국제화는 바로 개화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개화가 늦어지는 바람에 열강에 몰리고 식민지와 분단 및 미군정 등 여러가지 수모와 고통을 겪었지 않습니까.18∼19세기 서세동점 시대에 문닫고 국제화에 신경쓰지 않는 바람에 우리보다 한 50년 먼저 국제화한 일본에 당했습니다.그런데 요즘 국제화는 전세계로 빨리 뛰어나가 공장을 짓고 무역을 하는 등 세계사의 흐름에 직접 참여한다는 의미에서 과거와는 다른 제2의 국제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아무튼 제2의 국제화에선 결코 뒤지지 않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선진화·국제화 수준은 과연 어느 정도나 될까요. ▲김학장=기업은 비교적 국제화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선진시장에 수출할 생각으로 물건을 만드니 어느정도 국제화의 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겠죠.가장 후진적인 분야는 학계·교육계입니다.과학기술분야는 말하기 비참할 정도입니다.1920년대의 일본 정도라고나 해야 할지…기술이란 것은 사람의 능력입니다.남해에 석유가 발견되면 우리나라는 부자가 되겠지만 당장 능력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기술은 한세대안에 나올 수는 없는 겁니다.2000년대에는 우리도 G­7에 들어간다거나 선진국에 진입한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이는 기술과 교육을 너무 얕보고 역사발전을 너무 쉽게 보는 것입니다. ▲이위원장=전적으로 동감입니다.사회과학 계통을 보면 동경제대에서 교육받은 우리 세대가 21세기 세대에게 강의하고 있는 형편입니다.다행스러운 것은 해방직후 한반도에 대학이 하나 밖에 없었으나 이제 대학이 1백51개나 되고 90%나 되던 문맹률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낮아졌다는 것입니다.그러나 대학이 1백51개나 되지만 내실을 들여다보면 이것도 대학이냐하는 자괴감이 듭니다.1백년 앞을 내다보는 일이 교육이라고 했습니다.그런데도 교육이 너무 눈앞만 내다보고 있지 않나 염려됩니다. ○눈앞만 봐서야… ▲김학장=교육의 첫째 조건은 교육자가 최선진적인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그래야 피교육자가 빨리 자랍니다.동경대 초창기에 물리학교수를 영국에서 모셔와 영어로 강의를 했습니다.거기서 길러진 졸업생들을 영국으로 유학보내 교수자격을 갖추게한뒤 다시 데려와 일어로 강의를 하도록 했습니다.이들에게 교육받은 학생들은 급성장을 했죠.이에비해 우리는 그동안 독학하다시피한 교수가 대학을 만들고 다음세대를 가르치는 식이었습니다. ▲이위원장=농부는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듬해 뿌릴 씨는 보관합니다.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나쁜 씨만 남겨놓고 좋은 종자는 다 먹어버리는 대책없는 일을 저질러 왔습니다.그래도 생활양식면에서는 국제화가 많이 된 셈입니다.각종 제도도 그런대로 국제화의 흉내는 내고 있습니다.그러나 제도는 남의 것을 베껴 놓았으나 의식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헌법은 제일 좋은 것을 베껴놓았으나 민주화가 안되는 것은 의식이 뒤따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눈에 안보이는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국제화해나가느냐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김학장=기술운영 능력은 한두 세대가 가야,그것도 열심히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결국은 교육밖에 길이 없습니다.교육은 서두르는 것보다 느긋하게 미래를 위한 바탕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국제화에 필요한 교육은 상대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합리주의적인 사고를 갖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또 국제화에 대비,실용적인 외국어교육을 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인구도 큰 자원 ▲이위원장=세계사의 큰 흐름에 따르는 것이진보입니다.예컨대 한자를 없애는 것이 애국이라는 생각은 얼마나 속좁은 소견입니까.일본이 명치시대에 그 많은 서양의 어휘를 한자어로 바꿔 놓았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한자문화권인 한·중·일 3나라만 모국어로 대학 강의가 가능하다고 봅니다.당시 일본에서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말한 「리베르테」라는 용어를 10년 동안 여러가지 후보작을 시험하다 오늘날처럼 자유라는 단어로 정착시켰습니다.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의 주요대학 강단에 서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외국인이 한국에서 교수 노릇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이런 풍토에서 하루가 달라지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겠습니까.빨리 의식을 국제화하는 국민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김학장=같은 생각입니다.필요하다면 소련사람이든 유태인이든 흑인이든 과감하게 데려와 배워야합니다.대학입시를 비롯한 교육제도는 개혁이 아니라 근본부터 완전히 혁신해야 합니다. ▲이위원장=물론 의식의 국제화를 우리 것은 버리자는 것으로 오해해선 안됩니다.우리 고유문화를 인류의 보편적인문화와 접목해 국제화·선진화하자는 것입니다.국제화를 위해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과제는 무엇일까요. ▲김학장=한 노벨상 수상자가 인간자본(HUMAN CAPITAL)이란 말을 썼죠.옛날에는 자원이 많고 인구가 적어야 부국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호주나 남미보다 인구가 많은 일본이 더 부국입니다.결국 교육을 잘시키면 인구도 큰 자원이 됩니다.즉 선진화·국제화된 인력을 양성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과제의 핵심입니다. ▲이위원장=그런 측면에서 남북한 겨레와 해외교포 7백만을 포함해 8천만 한민족을 잘만 활용하면 우리도 선진국으로 충분히 발돋움할 수 있을 겁니다.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이 그동안 남의 탓만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소홀한 점을 자성하는 한편 국민을 계몽하는데서 국제화와 선진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모두가 반성을 ▲김학장=1백년 앞을 생각하면서 현실의 급한 일도 해결해야 합니다.맡은 분야에서 국제수준과 비교해서 반성을 해봐야 합니다.기업은 물건을 세계적 수준으로 만드는가.교수는 국제수준의 논문을 낼 수있느냐.한번씩 돌아보고 보완하고 자책하는 운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위원장=좁은 나라 안에서 옆의 동료와만 비교해 질시하는 따위의 자해행위는 그만둬야죠.비교기준과 척도를 국제사회로 삼는 것이 국제화의 첫걸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얼마전까지만 해도 국력을 얘기할 때 군사력이 제일 중요한 요소로 치부되었습니다.10여년전부터는 경제력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습니다만 21세기는 문화수준이 관건입니다. ▲김학장=결론적으로 선진화·국제화를 위해서는 보다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야하며 이를 위해 교육이 중요합니다.모방도 철저하게 잘 하는 것이 필요하고요.급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병행해서 장기적으로 무엇이 중요한가를 염두에 두고 국제경쟁력을 기르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 육아보다 생계유지에 바쁘다(특파원코너)

    ◎6세이하 어린이 가진 미 어머니 58%/남편수입으론 부족… 이혼 늘어난 탓도/대부분이 “좋은 엄마노릇 못한다” 자책 불과 30여년 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어머니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는 애들을 거들고 낮에는 집안에서 과자를 굽고 애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숙제와 애들의 공부를 돕는 일에 만족했다. 그러나 오늘의 어머니들은 그런일에 자족하지도 않으려니와 그렇게 할수도 없다.뉴욕 타임스지가 최근 조사한 자료를 보면 1960년에 6세이하의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중 직업을 가진 사람은 20%정도였다.그러나 지난 91년 현재는 58%가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도 풀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일하는 어머니들은 대부분 학교에 가는 애들보다 먼저 집을 나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애들 보다 늦게 귀가하게 된다.그러니까 수많은 미국의 어머니들은 지금 전통적인 어머니상과는 거리가 먼 어머니가 돼 있는 셈이다. 어머니들이 일을 하는데는 두가지 요인이 있다.첫째가 경제적인 이유다.갈수록 규모가 커지고 생활비가 많이드는 살림을 남편의 수입만으로는지탱할수가 없다.보다 심각한 것은 91년 현재 미국의 전가정중 29%가 어머니나 아버지중 하나만 있는 홀부모가정이다. 아이를 낳기 불과 2주일전 남편이 가출해 버렸다는 27세의 한 여인은 애를 낳았으나 집에는 가스도 전기도 물도 없었다고 회고하고 있다.애틀랜타시에 사는 애드워드라는 이름의 이 여인은 그때 할수 있다면 몇가지의 일이라도 한꺼번에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미국의 홀부모 가정이 모두 이혼이나 해서 생긴 결과만은 아니다.독신모의 증가도 일하는 어머니가 늘어나는 한 요인이다. 둘째는 현대여성들이 갖는 자기성취욕구이다.홀어머니가 아니면서도 일하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전통적 의미에서의 좋은 어머니가 되지 못하더라도 일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자기성취를 위해 일을 하는 많은 여성들이 한결같이 『나는 좋은 어머니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직업을 가진 어머니들은 『직장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애가 있는 집에 가있다』고 말하고 있다. 고학력 여성일수록 자신이 집에만 머물러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면서도 일을 하면서는 또 좋은 어머니 노릇을 못한다는 죄책감을 갖는 모순에 빠져있다.현대여성들이 찾은 자각과 남아있는 전통적 가치관이 빚는 괴리현상이다. 정부와 기업과 가정간에 새로운 사회계약이 맺어져야할 시점인것이다.예일대의 심리학교수 에드워드 F 지글러박사는 ▲보다 융통성있는 휴가제도의 모색 ▲어린이를 적절히 돌볼수 있는 양질의 탁아시설 확보 ▲융통성있는 작업시간 조정기능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선은 『무엇이든 자신있게 선택하는 것이 좋은 어머니가 되는 길』이라고 충고하는 사람이 있다.『풀 타임 가정주부든,풀 타임 직장인이든 본인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택해 행복을 찾게되면 그 행복한 모습이 자녀에게 좋은 어머니로 비쳐질 수 있는 것』이란 논리다.
  • 고르비/「해빙」을 부르고 「개혁」에 지다

    ◎「영욕의 7년」 집권서 퇴장까지/「통독의 문」 여는등 냉전종식을 주도/냉전장악 실패·「빵」 해결못해 “몰락 길”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마침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5년 3월11일 최연소 정치국원으로 제8대 소련공산당 서기장에 선출돼 6년9개월의 집권기간동안 철저한 현실노선에 입각한 정책으로 「제2의 소련혁명」이라 불릴만한 엄청난 변화를 소련과 국제사회에 몰고 왔었다. 그가 권좌에 오르면서 동토의 소련국민들은 볼셰비키혁명 68년만에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되찾았다. 이어 89년에는 사상최초로 복수정당후보를 상대로 한 선거가 치러졌다. 90년 2월 공산당은 일당독재를 포기했고 고르바초프는 헌법을 개정,대통령에 취임했다.서구민주주의 개념을 도입,당과 정부의 국가경영에 국민들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생각에서 이루어진 조치다. 이에 바탕을 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은 국제정치면에선 세계사의 변혁을 주도해 왔다.대외정책에 있어 그는 항상 군비축소와 주권존중이라는 「신사고 외교」를 원칙으로 삼았다. 고르바초프는 집권한지 8개월만인 85년11월 제네바에서 당시 소련을 「악의 제국」이라고 비난하던 레이건 미국대통령을 만나 화해의 악수를 나눔으로써 양국간의 적대관계를 청산했다. 87년 중거리핵전력(INF)협정체결을 비롯,88년 동유럽주둔군 50만 감축,91년 전략무기 감축협정(START)등 그의 혁신적인 군축정책은 『탱크를 녹여 쟁기를 만든다』는 말을 유행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난 45년 얄타협정으로 출발한 미소 양극체제의 동서냉전시대는 종언을 고하기 시작했다.이와함께 고르바초프시대의 최대업적인 독일통일과 동구권의 대변혁이 이루어졌다. 그는 또 88년5월 아프가니스탄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단행했다. 89년12월 몰타에서 열린 미소정당회담에서는 정식으로 냉전시대의 마감을 선언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중국·이스라엘등 갈등관계 혹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들과도 새로운 협력의 시대를 연 것도 다름아닌 그의 신사고 외교의 결과였다. 고르비는 셰계를 움직인 정치인답게 다양한 별명도 갖고있다. 「철의 이빨을 가진 사나이」「세계의 대도박사」 「기적의 마술사」등 경탄스런 수식어가 붙는가하면 「금세기들어 가장 탁월한 소련지도자」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그는 지난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할 당시 『고르비가 상을 받은게 아니라 오히려 노벨상에 무게를 더해주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은 「신사고 외교」의 바탕이 되어 탈냉전·군축등에는 괄목할 성과를 거두었으나 정작 「빵」문제는 해결하지못해 그를 몰락의 길로 재촉했다.그 이유는 고르바초프 자신이 사회주의에의 미련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으며 개혁의 속도를 끝내 스스로 통제하려고 했기때문이다.그는 사유화등 급진적인 경제개혁을 거부했다.그리고 경제적인 비상조치를 취할수 있는 포고령 발동권을 갖는등 권력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그러나 위로부터의 개혁에는 한계가 있었다. 90년 여름 급진적인 내용의 경제개혁안인 「샤탈린의 5백일 개혁안」을 거부하면서 개혁파인사들과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보수파들이 득세했다.상황이 이렇게 바뀌게되자 그해 12월 그의 측근이었던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이 독재출현과 쿠데타를 경고하며 사임했다. 급기야는 지난 8월 보수파들의 쿠데타가 발생,고르바초프는 이들에 의해 연금을 당했다. 이 쿠데타는 3일천하로 끝나기는 했지만 고르바초프와 연방정부의 권위에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혔다.그는 쿠데타이후 공산당 활동도 정지시키고 보수적인 색채의 내각도 물갈이했다.원성의 대상이었던 국가보안위원회(KGB)도 숙정했다.그리고 발트해3국의 독립도 승인했고 각 공화국에 폭넓은 권능을 부여하는 내용의 신연방조약도 제안했다. 그러나 이미 연방정부의 권위는 회복될 수가 없었다.지난 1일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으로 소련방과 고르바초프에게 결정타를 안겼다.그 뒤를 이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이 주축이 된 독립국 공동체 구성은 소련연방의 사망신고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소련을 환상적 꿈에서 깨트려 현실적 사회로 되돌리려 했으나 70여년간 경직될 때로 경직된 공산체제의 「현실」의 벽에 부딪쳐 끝내 실각을 자초하고 말았다. 1931년 3월2일 러시아 공화국 남쪽 스타브로폴지역의 프리폴노예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고르비는 학비 때문에 고등학교를 3개월이나 휴학하는등 어려운 청소년기를 경험했다. 그는 고교시절 집에서 16㎞ 떨어진 읍에서 방 한칸을 얻어 자취하면서 주말이면 고향집에 내려가 농사일을 돕는 모범학생이었다.이때만해도 그가 훗날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 법대에 입학,마르크스·레닌저작 외에도 로마법,로크의 정부론,루소의 사회계약론 등을 읽으며 사고의 폭을 넓혀 나갔다.심지어 법대에는 미국헌법까지도 열람이 허용됐는데,이같은 서구사상을 담은 「금서」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스탈린 치하에선 하나의 큰 행운이었다.이때의 지식들이 현실정치와 접목되어 뒷날 페레스트로이카로 체계화 된다. 1954년 대학재학시절에 만난 라이사 티타렌코와 결혼한 고르비는35세의 나이에 고향인 프리폴노예 시당위원장이 됐고 4년후엔 보다 넓은 지역인 스타브로폴지구 위원장으로 승진했다. 이때 그는 다시 대학에서 농업경영학을 공부,학위를 얻고 농업문제전문가로 등장했다. 고르바초프는 1978년 농업담당 당서기가 되면서 중앙무대인 모스크바로 진출하게된다.그가 모스크바로 올라오게된 계기는 농정실패에 책임을 느낀 쿨라코프가 자살함으로써 농업담당 당서기가 공석이 됐기 때문이다.그에게는 확실히 소련 역대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관운이 따르고 있다는 평도 받고 있다. 그러나 소련사회에 평화와 자유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개혁가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역사의 아이러니임에 틀림없다.동토의 땅에 개혁의 문을 열어젖힌 그는 결국 그 문으로 퇴장한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