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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사형제 폐지할 때 됐다

    사형제 폐지 논란이 다시 가열되고 있다. 법무부는 엊그제 “사형제도 존폐문제와 함께 제도 개선 방안에 관해 보다 심층적으로 연구하기로 했다.”고 밝혀 이를 공론화했다. 그 대안으로는 ‘절대적 종신형’을 내비쳤다. 그동안 정부는 국제사면위원회 등의 폐지 권고에도 사형제도를 고수해온 게 사실이다. 따라서 법무부의 이번 방침은 전향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환영한다. 앞서 우리는 인권선진국을 자부하는 한국이 사형제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주장한 바 있다. 우선 사형제 폐지는 시대적 조류다. 현재 사형제 폐지국가는 112개, 존치국가는 83개라고 한다. 특히 인권에 관해 종주국격인 영국, 독일, 프랑스 등은 모두 폐지했다. 미국도 10여개주는 사형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다. 다른 나라의 예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는 유신시절 대법원 사형확정 선고 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을 집행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다. 이른바 인혁당 사건이다. 또 법원이 오심(誤審)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미국에서도 사형 집행 후 진범이 나타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경우 사형제도가 있는 한 구제의 길은 요원하다. 사형제를 폐지하려면 무엇보다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다. 국회에는 사형제를 절대적 종신형으로 대체하는 내용의 법안이 제출돼 이미 계류 중이다. 국가인권위도 지난해 4월 사형제 폐지 의견을 내놓은 적이 있다. 그런 만큼 공청회 등을 열어 심도있게 토의하면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현재 63명의 사형수가 있지만 1997년 12월 이후 사형집행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형제는 폐지돼야 마땅하다. 열린 마음으로 중지를 모아가야 할 때다.
  • 사형제 폐지 ‘징벌 vs 인권’ 논란클듯

    사형제 폐지 ‘징벌 vs 인권’ 논란클듯

    법무부가 21일 발표한 변화전략계획은 ‘인권´과 ‘개혁´을 기본철학으로 깔고 있다. 급진적이라는 이유로 논란이 일었던 국가인권위원회의 국가인권정책(NAP) 권고안을 기본으로 올해 6월까지 NAP 초안을 만드는가 하면, 그동안 언급을 자제하던 사형제 폐지 논란이나 과거사 문제도 정면으로 다뤘다. ●과거사 진상규명에도 적극 나서 사형제를 폐지하고 가석방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 도입을 지원한다는 내용은 반발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사형선고의 징벌효과를 내세우며 사형제 폐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만만찮다. 일부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부여키로 한 것은 교정업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깼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역시 정책추진 과정에서 논란이 일 전망이다. 현행 선거법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지 않았다면, 선거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박탈하도록 규정한 현행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상태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오스트리아는 1년 미만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수형자들에게, 캐나다는 2년 미만, 호주는 5년 미만의 수형자들에게 선거권을 인정하고 있다. 법무부는 과거사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하는 한편 재심 절차가 진행중인 사건에 대해서는 공판에 적극 참여키로 했다.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민·형사적으로 무한 책임을 지게 한다는 의미에서 공소시효 연장·배제,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에 대해 법률적으로 정비할 계획도 갖고 있다. 과거 검찰의 잘못이 있었다면 적극적으로 반성하겠다는 것이지만, 검찰 내부의 반발을 살 수도 있는 대목이다. ●서민 지원책은 강화 이번 전략계획은 서민의 눈높이에서 마련됐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보증인 보호를 위해 금융기관에서 채무자의 채무 현황을 보증인에게 미리 알리도록 의무화한 것이나, 법률구조 대상자를 늘린 게 대표적이다.2008년까지 전국민의 절반이 민·형사상 법률구조 대상자가 되도록 적용범위를 넓혔고, 영세민·가정폭력 피해여성·장애인·범죄 피해자까지 무료 법률구조 대상에 포함시켰다. 소외계층뿐 아니라 일반 민원 서비스도 개선돼 2007년까지 민원안내 등이 개별통보되는 시스템이 갖춰지게 된다. 온라인으로 발급되는 증명서류도 현행 출입국사실증명, 외국인등록사실증명, 국내 거소 신고 사실증명 외에 사법시험 합격증명, 국적선택 및 이탈신고 사실증명까지 확대된다. 또 앞으로 피내사자를 포함해 검찰 조사를 받는 사건 당사자들에게도 검찰 조사과정과 처리결과가 즉시 통지된다. 자신에 대한 수사가 종결됐는지 확인할 수 없는 현재 모습과 비교해보면 수사기관의 정보독점 현상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법무부 내에 ‘법교육 전담부서´가 설치되고 법무연수원에서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알기쉬운 법교육´‘우리활 국궁´ 등을 강의하는 등 일반인들에 대한 법률교육도 강화된다. ●고소사건 조정제도 도입도 검토 최장 5년간의 중장기 전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전략계획은 검찰의 달라질 미래상을 보여준다. 우선 검찰의 공판역량 강화를 위해 재판부마다 전담 공판검사가 배치된다. 재산분쟁·명예훼손 등 사적분쟁에 관한 사건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면 조정에 회부할 수 있는 ‘고소사건 조정제도´ 도입도 검토단계에 있다. 법무부 김준규 법무실장은 “한해 고소되는 인원 60만명 가운데 기소되는 사람은 17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민사사건으로 해결될 일이 형사사건으로 비화됐기 때문”이라며 도입 배경을 밝혔다. ●출입국 정책 등은 인식전환 틀 제시 올해 상반기 동안 자진 출국하는 불법체류 동포에게 출국후 재입국을 허용하는 제2차 동포자진귀국 프로그램을 실시하거나 중국과 구소련 지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방문과 취업을 동시에 하도록 5년 유효의 복수비자를 발급하는 ‘방문취업제´를 도입한 것은 법무부의 개혁행보와 관련 시민단체의 의견이 조율된 결과로 풀이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간첩·조작’ 40년 논란 종지부

    26일 국가정보원 과거사진실규명위가 밝힌 동백림 사건의 실체는 ‘공안기관의 무리한 확대적용’과 ‘정권의 정치적 악용’이 빚어낸 공안사건이라는 것이다. ●‘실체’를 확대적용한 공안사건 공안기관이 무리하게 확대 적용하고 정치적으로 악용한 사실은 진실위 조사결과 곳곳에서 드러났다. 당시 중앙정보부가 서울대 ‘민족주의 비교연구회’(민비연)를 동백림 공작단의 일부라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진실위는 “중정은 당시 6·8부정선거로 학생들의 시위가 거세지자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가혹행위를 동원, 민비연과 황성모 교수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재판 결과 민비연 관련자들은 대부분 무죄선고를 받았고 민비연이 국가전복을 기도했다는 공소사실은 무죄 판결됐다. 동백림 수사과정에서 검찰 송치자 66명 가운데 23명에게 간첩죄가 적용됐지만 최종 선고결과 피고인 기운데 단 한 사람도 간첩죄가 적용되지 않았다. 사건 발생 3년 뒤인 1970년 12월까지 사형 선고를 받은 정하룡·정규명 박사를 포함, 모두 석방됐다. 단순 대북접촉자까지 간첩죄를 무리하게 적용한 탓이다. 중정이 해외 연행을 위한 ‘GK공작계획’을 수립해 30여명을 연행하는 과정에서 서독지역 연행자는 모두 자진귀국했고 나머지는 임의동행했다고 밝혔지만 사실상 강제연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끝나지 않은 동백림 사건 동백림 사건은 ‘건국 이래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불려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먼저 인지한 특이한 사건이기도 하다. 진실위는 비록 ‘정권이 사전 조작하거나 기획하지 않았던’이라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당시 6·8 부정선거 시위가 이 사건 직후 수그러졌고 사형선고자가 무죄로 석방되는 등 정황상 ‘조작’으로 이해될 수 있는 대목이 많다. 중정이 ‘동백림 간첩단’이라고 발표하지 않아 진실위측은 간첩단 여부에 초점을 맞추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방문, 금품 수수, 대북접촉 주선, 대북방송 청취’ 등을 예로 들어 중정은 간첩활동 혐의를 적용해 실정법 위반을 내세웠다. 사실상 간첩단임을 시사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개정 논의에 맞춰 진실위의 적극적인 재해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동백림 사건은 윤이상·이응로 선생 등 세계적인 예술가가 연루돼 조명을 받았던 사건이기도 하다. 지난 40여년 동안 분단으로 인해 ‘간첩’과 ‘조작’을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고, 이들의 예술적 성과에 대한 ‘무형의’손실도 역사 속에 묻혀버렸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동백림 사건 중앙정보부가 1967년 7월 대학교수와 유학생, 예술인, 의사, 공무원 등 194명이 동백림(동베를린)을 거점으로 대남적화공작을 벌이다 적발됐다고 공개한 사건. 정규명씨 등 2명에게 사형이, 강빈구·윤이상씨 등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등 34명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천상병 시인은 사건 연루자인 친구로부터 막걸리 값을 받아썼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독일과의 외교분쟁으로 이어질 뻔했고 연루자들은 1970년 광복절 특사로 모두 풀려났다.
  • 과학사 신문/이향순 지음

    ‘아리스토텔레스, 에게해 섬으로 망명’-아테네 고등법원 재판서 사형선고 받아- 기원전 323년 세계 과학계의 성자 아리스토텔레스가 반대파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그의 활동무대인 아테네를 떠나 망명하였다.…고발자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 식민지 스타게이로스 출신으로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 아테네 정복자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의 어린 시절 가정교사를 지내면서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것이다…. 마치 신문을 읽듯 과학사건과 과학자 이야기를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게 꾸민 책 ‘과학사 신문’(현암사)의 ‘창간호’ 머리기사다. 저자는 연세대 천문대기학과를 나와 스포츠서울과 과학신문에서 오랫동안 과학담당 기자를 지낸 이향순씨. 이씨는 “공식과 수식으로 나열된 과학 속에 있는 인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며 “생생하게 꾸며진 과학사 사건과 인물 이야기를 읽으면 과학에 흥미가 없는 사람도 과학의 묘미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총 3권으로 구성된 책은 어린이 청소년은 물론 성인이 읽어도 무리가 없는 과학교양서적이다. 당대 과학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는 과학자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토막인터뷰’,‘과학사의 중요한 사건이나 관련 인물에 관한 당대의 왜곡된 시선과 여론을 담은 ‘단소리, 쓴소리’는 물론, 있을 법한 주요사건을 바탕으로 한 짧은 문구의 광고까지 넣어 읽는 재미를 한껏 끌어올렸다. 우선 고대과학부터 18세기 과학의 중흥기까지를 다룬 1권만 나왔다.19세기 과학의 르네상스부터 나노 과학을 포함한 최첨단 과학이야기를 들려주는 2권, 그리고 가까운 미래에 현실화될 기술을 소개하는 3권은 올해 말까지 출간될 예정.1만 5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책꽂이]

    ●라 로슈푸코의 인간을 위한 변명(홋타 요시에 지음, 오정환 옮김, 한길사 펴냄) 잠언집으로 유명한 프랑스 고전 작가 프랑수아(6세) 드 라 로슈푸코의 일대기를 시대상과 엮어 소설처럼 재미있게 꾸몄다. 프랑수아 6세는 루이 13세 때 리슐리외 재상 타도 음모에 개입돼 바스티유에 투옥되고 프롱드의 난에서 반란군을 지휘하는 등 시대의 풍파를 온몸으로 겪었다. 그는 “사람은 결코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큼 행복하지도 않고 불행하지도 않다.”고 말한다.1만 8000원.●왜관, 조선은 왜 일본사람들을 가두었을까?(다시로 가즈이 지음, 정성일 옮김, 논형 펴냄) 왜관(倭館)은 이런저런 이유로 바다를 건너 조선 땅에 와서 머문 일본 사람들을 위해 조선 정부가 마련해 준 거처를 뜻하는 말. 에도시대의 전 기간은 물론, 메이지 시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일본 아닌 외국땅에 있었던 유일한 ‘일본인 마을’이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초량왜관은 1678년 부산포 초량에 설치돼 200년 동안 존속했던 것으로, 현재 부산의 용두산 공원에 해당하는 곳이다.1만 8000원.●비단같고 주옥같은 정치(하워드 웨슬러 지음, 임대희 옮김, 고즈윈 펴냄) 의례와 상징으로 본 당대(唐代) 정치사. 당 왕실이 왕조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해 각종 의례와 상징행위를 어떻게 유효적절하게 활용했는가를 밝힌다. 그중 하나가 태산 봉선제(封禪祭). 당 고종은 서기 666년 1월, 후한 광무제 이후 600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췄던 태산 봉선제를 성대하게 거행함으로써 절대군주는 오직 자신뿐임을 만천하에 알렸다.1만 5500원.●제로 이야기(마리아 몰리나 지음, 김승욱 옮김, 경문사 펴냄) 0이라는 개념은 4세기경 인도에서 생겨났다. 이것이 이슬람을 거쳐 유럽으로 전파됐다. 책은 새로운 수 체계를 도입하기 위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픽션 형식으로 그렸다.9∼10세기 인구 50만이 넘은 대도시였던 이슬람 왕국의 수도인 코르도바가 배경. 수학에 심취한 한 모즈아랍인(이슬람 지역에 살면서 믿음을 지킨 기독교인)의 이야기가 시선을 끈다.8000원.●이야기 독일사(박래식 지음, 청아출판사 펴냄) 게르만족은 신장이 크고 힘이 세어 로마의 용병으로 활용됐으며, 때론 로마의 변방지역을 침입해 로마제국이 두려워하는 민족이었다. 로마는 게르만민족의 침입에 대비해 대부분의 군대를 게르만족과 경계를 이루는 라인강과 도나우강 지역에 배치했다. 이 책은 게르만족의 이동과 부족국가 시기를 거쳐 근대 국가체제로 발전하며 입지를 강화해온 역동적인 독일역사의 현장을 다룬다.1만 4000원.●자본론, 자본의 감추어진 진실 혹은 거짓(칼 마르크스 지음, 손철성 풀어씀, 풀빛 펴냄) ‘자본론’은 마르크스가 약 20여년에 걸친 연구를 바탕으로 쓴 방대한 책이다. 이미 역사적 사형선고를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책을 오늘날 다시 읽는 게 의미있는 일일까. 자본주의가 여전히 내적 모순을 양산해내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전혀 설득력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9000원.
  • [토요영화]

    [토요영화]

    ●그린마일(EBS 오후 11시30분) 할리우드 영화계가 자랑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스티븐 킹의 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 사형수와 간수장의 만남과 헤어짐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주연 톰 행크스와 마이클 클라크 던컨 외에도 데이비드 모스, 해리 딘 스탠튼, 게리 시니즈, 샘 록웰 등 연기파 배우들이 나와 열연을 펼친다.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은 1981년 ‘헬 나이트’ 등 공포 영화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성했다. 역시 스티븐 킹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데뷔작 ‘쇼생크 탈출’(1994)로 단숨에 A급 감독 대열에 섰다.2001년 짐 캐리 주연의 ‘마제스틱’까지 휴머니즘이 짙게 깔린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제목 그린마일은 사형수가 감방에서 나와 사형집행실까지 가는 녹색길을 가리키는 은어다. 폴 에지콤(톰 행크스)은 어느 날 60년 전을 떠올린다. 루이지애나주 콜드마운트 교도소에서 사형수 감방 간수장을 하던 시절이다. 폴은 사형수들의 난폭한 행동에도 불구, 그들이 사형집행일까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어느 날 백인 쌍둥이 여자아이를 강간한 뒤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은 흑인 코피(마이클 클라크 던컨)가 이송된다.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을 지닌 코피는 사실 억울한 누명을 썼다. 폴도 코피가 어수룩하게 보일 정도로 순진한 인물이라는 점을 깨닫고 의아해한다. 코피는 폴을 괴롭히던 방광염을 낫게 하고, 폴은 점차 코피의 무죄를 확신하게 되는데….1999년작.188분. ●다크 블루(KBS2 밤 12시15분) 액션 스타 커트 러셀을 좋아하고, 나아가 경찰 영화를 즐겨보는 팬이라면 놓치면 안 되는 작품. 미 평론가들은 커트 러셀이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1992년 로드니 킹 사건으로 LA 폭동이 일어나기 직전을 배경으로 했다. 경찰청 내의 비리와 음모, 흑백 갈등 등을 3대에 걸친 경찰 집안을 통해 그리고 있다.1950년대를 무대로 한 ‘LA 컨피덴셜’(1997)을 연상케 한다. 또 덴젤 워싱턴 주연의 ‘트레이닝 데이’(2001)에 좋은 점수를 줬던 팬이면 만족할 만하다. 미국 LA 경찰청 소속 특수수사대의 베테랑 형사 엘든 페리(커트 러셀)는 신참 바비 코프(스콧 스피드맨)와 파트너를 이루게 된다. 페리는 코프에게 부패 등 경찰 생활의 이면에 대해 알려주게 된다. 강력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LA 사우스센트럴 지역은 이들이 살인자를 잡아야 할 곳일 뿐만 아니라, 범죄자보다 더욱 잔인하게 변해가는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 하는 곳인데…2002년작.118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주말탐방] 심마니

    [주말탐방] 심마니

    “심∼봤∼다∼.” 깊은 산속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심마니(혹은 심메마니)의 목소리는 마치 산을 닮았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벅참과 혼자만의 횡재를 잊는, 그저 산에 감사하는 탄성일 뿐이다. 산의 영험함을 아는 사람들이기에 항상 겸손, 절제의 미덕을 실천하며 살아가기 때문일 게다. 속세의 삶이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팍팍해지지만 산을 믿고 산과 함께 사는 심마니들의 삶은 그래서 산처럼 욕심이 없고 우직스럽기만 하다. 수백년 묵은 산삼 한 뿌리에 수억원을 호가한다는 그럴듯한 소문으로 산삼이 ‘로또’로 여겨지고 있는 세태다. 그러나 대부분 심마니들의 실상은 이와는 거리가 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본다. ■ 심마니들의 삶과 애환 심마니들은 “운이 좋아 십수년생짜리 산삼이라도 몇 뿌리 캐면 몇백만원을 벌어 그럭저럭 생활을 이어갈 뿐이다.”라고 입을 모은다. 어쩌다 몇천만원을 호가하는 천종산삼이라도 캐면 돈을 좀 만져볼까. 그것도 중간상인이나 장사꾼들이 많이 챙겨가 별반 남는 것도 없단다. 진짜 심마니들은 그저 욕심을 절제하고 산이 좋아 산삼을 찾을 뿐이다. 세상에 떠들썩하게 알려지는 수백년짜리 산삼도 대부분 뻥튀겨 놓은 얘기일 뿐 알고 보면 십수년짜리가 수두룩하다는 것이 안목있는 심마니들의 귀띔이다. 심마니 경력 21년의 베테랑 정재후(50·한국심마니협회 경기도 연천지부장)씨는 “최고 산삼으로 치는 천종산삼도 백년 전후가 대부분이다.”며 “매스컴에서 떠드는 산삼을 보면 10년 남짓된 산삼을 100년 이상된 것으로 둔갑시켜 파는 것이어서 답답하기만 하다.”고 씁쓸해했다. 정 지부장은 “산삼은 영물이다 보니 캐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정해져 있는 것 같다.”면서 “산삼을 캐놓으면 생면부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꿈속에서 이곳에서 산삼을 구해 먹으라고 알려다.’며 찾아 오곤 해 깜짝깜짝 놀란다.”고 신기해한다. 심마니들은 “우리나라 산삼은 별자리에서 하늘의 천제가 거처한다는 자미성(紫微星)의 영향을 받아 약효가 가장 좋다.”고 입을 모은다. 믿거나 말거나 심마니들 사이에 전해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이 때문에 이들은 간혹 신비로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산삼을 얻기 위해 이런저런 금기사항을 지켜야 하고 길몽을 꾸어야 한다는 것도 심마니들 사이에 믿음으로 자리하고 있다. 더구나 심마니들의 산속 생활에는 일반인들과 다른 독특한 습속과 일반인들이 알아 듣지 못하는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 신비로움을 더한다. 단지 산삼을 캐는 것을 목적으로 산을 잘 알고 산을 생업의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일까. 최근 몇년 사이 실직자들이 늘면서 아마추어 심마니(천둥마니)들이 많이 생겨나 심마니들의 삶도 세상사와 무관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지만 심마니들은 저마다 가슴속 깊은 곳에 아픈 상처 하나씩은 묻고 산다. 그들은 그만큼 한(恨)이 많아 산속에 묻혀 산과 더불어 세상을 잊고 살아간다. 병원에서 암 말기 사형선고를 받고 산을 찾은 사람, 잘나가던 직장에서 쫓겨나 죽으려고 산을 찾은 사람…. 이런저런 사연을 안고 산을 찾았다가 짧게는 5∼6년 길게는 20∼30년까지 심마니로 눌러 사는 사람들이 많다. 몇년 전부터 한국심마니협회가 생겨 사람 됨됨이를 보고 회원을 들이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심마니협회에 들어오면 산삼 보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춘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국심마니협회 박만구(47·심마니경력 15년) 회장은 “심마니들은 단순히 산삼만 캐는 사람들이 아니라 산을 사랑하고 보호에 앞장서는 사람들”이라면서 “더불어 옛날부터 이어져온 심마니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가는 무형문화 지킴이”라고 강조했다. 일반인들은 단순히 산삼을 캐는 사람으로 알고 있지만 심마니의 본래 역할은 한국 산삼을 후세에까지 이어지도록 보존하고 약효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일도 한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일을 하면서 현재 협회에 가입된 전국의 심마니는 300명가량 된다. 이 가운데 심마니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70% 정도로 파악된다. 박 회장은 “최근에는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산삼 관련 동호회와 중국·러시아 등지의 외국 산삼을 한국산으로 속여 파는 문제까지 다양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각종 산삼 관련 동호회들이 대형 버스 등을 동원, 한번에 수십명씩 산을 헤집고 다니며 어린 산삼까지 닥치는 대로 캐가 아예 씨가 마르고 있단다. 또 약효가 떨어지는 중국 산삼을 마치 한국 산삼인 것처럼 국내에 유통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우리나라 ‘고려산삼’을 도용해 해외에서 유통되는 사례의 대부분이 중국·러시아산으로 알려지고 있어 산삼 보호를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정부차원의 산삼인증과 심마니들의 무형문화 보존이 절실하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심마니들의 불문율 요즘도 전통 습속을 고집하는 심마니들이 산을 찾아 산삼을 캐는 모습은 경외스럽다. 산에 오르기 전에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입산 이후 산행에서의 질서까지 일사불란하게 규칙을 따르는 심마니들의 모습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채삼단(심마니 그룹)을 구성할 때는 혼자 가는 경우가 드물고 대부분 리더격인 ‘어이마니(혹 어인마니)’를 중심으로 3명,5명,7명 등 홀수로 정한다. 산삼 채취에 나서는 일수도 3일(사흘 한삼),5일(오일 한삼),7일(치일 한삼) 등 홀수로 정한다. 하산 날짜도 홀수로 한다. 여자는 절대 포함시키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산으로 떠나기 전 몸을 깨끗이 씻고 떠난다. 초상집을 다녀온 사람이나 부정한 것을 겪은 사람은 함께 산행을 할 수 없다. 산행에 함께 올랐어도 어이마니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하산시키는 엄격한 규율이 지금도 불문율처럼 지켜지고 있다. 이들은 산에 오르기 전에 입산제를 지낸다. 돌로 1m 정도의 간단한 제단을 쌓고 그 안쪽에 막대를 옆으로 걸고 한지에 실을 묶어 건다. 촛불을 붙이고 제물을 올릴 때는 술과 포, 과일을 놓고 쌀을 21번 씻어 뚜껑을 열지 않고 지은 밥을 솥째 올려놓는다. 제례는 고축문과 함께 여러번 정성을 들여 절하며 지낸다. 일단 산에 오르면 집단생활을 원칙으로 한다. 큰 바위 밑을 이용하거나 나무움막을 지어 ‘모둠(산막의 심마니 은어)’을 세우고 기거하게 된다. 모둠을 세운 뒤에는 낮잠을 청하며 꿈을 꾸기를 기원하기도 한다. 산삼을 캤을 때는 다시 산신께 제사를 지낸다. 심마니들의 산삼 채취과정은 제사에서 시작해 제사로 끝난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산삼 어떻게 어디서 자라나 인삼의 씨앗이 산삼이 되려면 새똥에 묻어 처음 떨어져서 싹이 난 1대(수명 10년 정도), 이 삼의 씨앗이 떨어져 다시 삼이 된 2대(수명 15년 정도), 다시 이 삼의 씨가 떨어져 산삼이 된 3대(수명 20년)…. 이런 식으로 7대 이상 지나야 100년 이상을 사는 천종산삼이 된다. 오래 대를 이어가야 산삼 수명이 늘고 뿌리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오가피과에 속하는 산삼을 숲속에서 초보자들이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산삼은 깊은 산속이면 어디든 분포해 있지만 위도 38도를 중심으로 한 강원도와 경기도 일대에서 많이 자라며, 이 지역에서 캔 산삼이 약효도 좋다. 특히 해발 1000m가 넘는 설악산, 오대산, 가리왕산, 방태산, 계방산 등 강원도 유명산과 명지산, 화악산, 지리산, 대둔산, 덕유산 등에 많이 자생하고 있다. 산삼이 자라는 여건도 산의 7부 능선쯤 서북쪽 그늘진 곳으로, 적당히 습기가 있으면서 배수가 잘되고 기름진 흙을 좋아한다. 식생률은 대략 7대 3 정도로 음지를 선호한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낸다.’는 신비의 명약 산삼은 먹는 방법도 독특하다. 산삼을 먹기 전날 회충약을 먹고 다음날 저녁 빈속으로 대추씨 몇알을 먹는다. 그런 뒤 산삼을 먹으면 된다. 다만 가을 산삼은 뿌리만 먹지만 봄 산삼은 잎부터 줄기, 뿌리 순으로 천천히 많이 씹어서 먹은 뒤 잠을 자는 게 약발을 제대로 받는 방법이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심마니들의 은어에 담긴뜻은 “흑조 고무하야 알릴 적에 마당삼, 줄삼, 떼삼밭으로 인도해 주옵소사. 육구만달이, 칠구두루붙이, 천년덥석부리, 만년동자삼밭으로 인도해 주옵소사.” (까마귀-심마니들의 길조-울며 알릴 때에 산삼이 많이 난 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최고의 가치가 있는 산삼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주십시오.) 심마니들이 산신제를 올릴 때 읽는 축문의 일부분이다. 일반인들은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하는 말뿐이다. ‘덤팽이(안개), 줄맹이(비), 메차리(이슬), 노래기(해), 달(불), 숨(물)’ 모두 생소하다. 요즘 심마니들은 이같은 은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들만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옛날부터 사용해 오던 비밀언어를 선별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같은 특수한 채삼용어는 예부터 면면히 심마니들을 통해서만 이어져 오고 있다. 산삼을 캐기 위한 신앙 기원적인 의미도 있지만 집단 이익을 목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같은 구성원들 사이에서만 통용돼 왔다. 심마니들 사이에 믿음의 부적처럼 전해오는 꿈에 얽힌 이야기도 신비롭다. 꿈속에 할머니가 나타나 무를 뽑으라고 했다든지, 여자와 동침하는 꿈을 꿨다면 심마니들은 백발백중 산삼을 캐는 길몽으로 꼽는다. 실제로 설악산 휘운각 계곡의 ‘무네미’가 ‘목네미’로 바뀌어 불리게 된 사연도 꿈속에 심마니가 지고간 망태기(베낭의 일종) 속에 개가 목만 내놓고 있어 ‘이 목(언덕)만 넘으면 산삼이 있다.’고 믿게 됐고 실제로 언덕을 넘어 봉정암 쪽으로 가다 산삼을 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같은 이야기는 예부터 구전되며 설화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심마니들 사이에 전해지는 ‘항아리 심’ 얘기나 ‘파계승과 산삼’ 얘기도 산삼을 캐는 꿈 이야기다. 일반인들에게는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아직도 심마니들은 길몽을 신봉하고 있다. 실제로 꿈을 꾸고 산삼을 캤다는 이야기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심마니들은 오늘도 길몽을 소원한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후세인 “교수형보다 총살형 원해”

    “나는 군 통수권자다. 군인답게 명예로운 죽음을 맞고 싶다.” 인권유린 및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최근 변호인과 만난 자리에서 만약 사형을 선고받는다면 교수형보다는 총살형을 원한다는 심경을 밝혔다고 워싱턴 타임스가 3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후세인은 지난달 7일 사형 선고 가능성을 언급하며 대책을 묻는 변호인단의 이심 가자위 변호사에게 “이라크의 대통령이자 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교수대보다는 군인들 총에 맞아 죽는 것이 정당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바그다드 법원 지하의 피고인 대기실에서 마련된 접견에는 미국 법무장관 출신인 램지 클라크 변호사도 동석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독일 前외무차관 가족5명 예멘서 피랍

    |파리 함혜리특파원|전 독일 외무차관 일가족 5명이 예멘에서 납치됐다. 시사주간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위르겐 흐로보크(65) 전 외무차관과 부인 및 자녀 3명이 예멘에서 납치된 사실을 독일 외무부가 확인했다고 28일 보도했다. 예멘 정부도 흐로보크 전 차관 가족이 예멘 수도 사나에서 동쪽으로 460㎞ 떨어진 샤브와주에서 알-압달라 부족의 무장세력에 납치됐다고 밝혔다.흐로보크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 정부에서 외무차관을 역임했으며 지난달 앙겔라 메르켈 총리 내각이 들어서면서 물러났다. 그는 현재 독일 자동차회사 BMW가 설립한 재단의 이사장직을 맡아 정·재계 간 대화를 주선하고 있다.납치범들은 인질 석방 대가로 예멘 정부에 대해 사형 선고를 받고 복역 중인 부족원의 석방을 요구하고 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예멘의 부족 무장세력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서방인 납치를 이용하고 있다. 이번 납치는 예멘에서 올들어 네번째 발생한 서방인 납치 사건이다.lotus@seoul.co.kr
  • “살려만 놨어도…”유족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헌화

    “1심에서 사형 판결이 나오자 질리는 저에게 남편이 ‘괜찮다.’며 웃어보였습니다.2심에서 또 사형이 선고되자 남편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군요.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니 둘다 얼이 빠졌습니다. 대법관 13명이 나가고 한참 뒤까지 분을 못참고 손에 든 양산을 부서져라 앞의 의자에 내리쳤습니다.‘당신들은 살인자’라고 소리치다가 끌려 나왔습니다.”<고 우홍선씨의 아내 강순희씨> 인혁당 사건에 대해 30년 만의 재심결정이 내려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방청석의 맨 앞줄을 차지하고 앉아있던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내들은 결정문 낭독이 끝나자 일어나 힘차게 박수를 쳤다. 울다웃다를 반복하다 이들은 버스를 타고 남편과 동생이 사형당한 서대문형무소를 찾았다. 이들은 사형장 교수대 입구에 흰 국화를 한 송이씩 놓으며 눈물을 훔쳤다. 이씨는 “공산주의자의 아내로 낙인찍히며 살아온 삶도 억울했지만,30년 동안 유족의 목소리를 외면한 사법부가 더 원망스러웠다.”고 했다. 재판장인 이기택 부장판사는 결정문을 읽기에 앞서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이 자리에 피고인들이 없다는 것, 그것도 재심 대상 판결로 사형을 당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면서 “이런 사정들은 이 재판의 역사적 위치와 함께 재심을 통한 피고인들의 권리 구제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해 마음이 무겁다.”고 사과했다. 재심이 이루어지더라도 이미 사형이 집행된 피고인석은 비워둔 채 공판을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황우석 조사’ 중간발표] 과학계 “원천기술 없거나 과장됐다”

    [‘황우석 조사’ 중간발표] 과학계 “원천기술 없거나 과장됐다”

    서울대 조사위원회가 23일 황우석 교수팀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에 ‘고의적 조작’이 있었다고 발표하자 한국 과학기술계의 자정 능력과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 및 서울대의 대외 신인도 하락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는 등 후폭풍이 클 전망이다. 황 교수도 사실상 ‘학문적 사형선고’를 받아 연구 재개가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조사위가 추가로 밝혀내야 할 의혹들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원천기술 보유 주장, 과장됐다? 우선 2004·2005년 논문의 조작 범위와 황 교수의 개입 정도 등을 가려내야 한다. 그래야 황 교수의 ‘원천기술’ 보유 주장의 진위 및 과장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 조사위가 22일 외부기관에 의뢰한 DNA 지문분석 결과가 나오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보다 명확히 밝히려면 김선종 연구원 등에 대한 조사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황 교수팀의 2004년 논문에 대한 검증작업이 끝나지는 않았으나, 원천기술 보유 주장은 적어도 과장됐다는 게 과학계의 중론이다. 황 교수팀의 주장은 서울대 연구실에서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만든 배반포 단계의 배아를 김 연구원에게 넘겨 배양과정을 맡겼지만, 김 연구원이 미즈메디병원의 수정란 배아줄기세포로 ‘바꿔치기’했다는 것이다. 결국 황 교수팀은 체세포 복제에 의해 확립된 줄기세포를 보유하지 못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즉, 황 교수팀의 원천기술은 최대 배반포 단계까지이며, 보다 엄밀히 얘기하면 ‘젓가락 기술’로 알려진 포도알을 짜내는 듯한 ‘스퀴징 방법’에 국한되는 셈이다. 바꿔치기 주장은 황 교수의 착각이나 ‘자작극’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원천기술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란도 예상된다. 김동욱 연세대 의대 교수는 “줄기세포 원천기술이라고 하면 체세포 핵치환으로 만든 복제배아를 배반포 단계까지 배양해 줄기세포까지 확립하는 전 과정”이라면서 “황 교수팀의 원천기술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반면 공일근 전남 순천대 동물자원학과 교수는 “스퀴징 방법은 황 교수팀의 독보적인 기술”이라면서 “배반포를 만들었다고 해도 체세포 복제 분야에는 가장 앞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황 교수 연구성과, 총체적 부실? 원천기술 보유 논란을 비롯,2004년 논문의 진위를 가리려면 체세포 복제가 맞는지, 사진 및 DNA 지문분석 데이터의 조작이 있었는지 등도 확인해야 한다.2004년 논문에서 만들었다는 배아줄기세포가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이용해 복제된 것이 아니라면, 처녀생식에 의한 돌연변이일 가능성이 크다. 핵이 제거된 난자에 체세포를 주입해 전기자극을 통해 배아를 복제해야 하지만, 난자의 핵을 없애지 않고 전기자극을 주는 처녀생식에 의한 방법으로 배아를 복제했을 가능성도 있다. 의혹의 시선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사위는 지난 4월 탄생한 ‘세계 최초의 복제개’ 스너피에 대한 의혹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황 교수는 지난 8월 네이처에 스너피 관련 연구성과를 한 장 분량의 요약논문으로 발표했다. 문제는 논문의 내용이 너무 간략해 스너피가 체세포 복제개임을 증명하는 DNA 데이터가 없어 신뢰성이 떨어진다. 스너피가 복제개가 아니라 체세포를 제공한 개와 ‘일란성 쌍둥이’란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조사위가 스너피 등의 혈액 3종에 대한 DNA 분석을 의뢰한 이유다. 황 교수팀이 지금까지 발표한 연구성과는 ‘세계 최초’ 또는 ‘국내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었지만 2004년 2월 ‘인간 배아줄기세포 배양’ 논문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대부분 논문으로 검증되지 않았다.2003년 발표한 ‘광우병 내성소’는 현재 일본 쓰쿠바 동물고도위생실험실에서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독재정권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

    7일 국정원 과거사위가 발표한 인혁당·민청학련·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핵심은 과거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권력 남용’을 범하고 고문 등을 통한 ‘인권침해’의 과오를 빚은 대형 공안사건이라는 점이다. 또한 인혁당과 민청학련과의 연관성, 조직의 실체 여부 등에 대해 사실상 ‘관련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피해자 명예회복과 배상 문제, 정권 차원의 ‘명백한’ 조작 입증 등이 과제로 남아 향후 지속적인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의혹과 쟁점 인혁당 사건의 중요한 쟁점은 실체 여부와 민청학련과의 연관성이다. 고문에 의한 조작 사건이라는 부분은 의문사위 발표 당시에도 포함됐었다. 진실위는 “인혁당은 5·16 군사쿠데타로 정치활동이 전면 금지되자 혁신계 주요 인물들이 향후 합법화될 혁신정당 활동에 대비해 논의해오던 활동에 불과해 국가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라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실위는 이어 “인혁당은 서클 형태의 모임이었고 강령과 규약도 정식 채택되지 않았으며 인혁당 명칭도 여러 명칭 중 하나”이라고 밝혔다. 중정은 당시 창당을 주도한 남파간첩 김영춘과 창당에 참여한 뒤 월북했다가 재남파된 김배영을 예로 들어 인혁당이 북의 지령을 받아 활동했다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한홍구 진실위원은 “김영춘은 4·19 직후 사회대중당 후보로 출마해 낙선한 전 동아대 교수 김상한이며, 남파간첩으로 월북한 게 아니라 거꾸로 박 정권으로부터 지시받고 북파됐다.”고 부인했다. 김배영도 인혁당 사건 발생 3개월 뒤에 월북했지만 중정은 그의 행적조차 모르면서 사건에 개입된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 진실위측의 판단이다.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 “민주정권을 수립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던 학생들을 인혁당의 배후조종을 받은 국가 전복자로 탈바꿈시킨 사건”으로 규정했다. 또한 진실위는 인혁당 재건위가 민청학련의 배후조직으로서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조종하였다는 증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통령 개입 확실하다” 진실위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정황적 증거가 많았다고 전했다. 특히 1975년 4월8일 대법원 선고 이후 18시간 만에 전격 집행된 관련자 8명의 사형집행의 경우 “최고 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안병욱 간사는 “1975년 2월21일 박 전 대통령은 민청학련 관계자들이 석방되자 ‘법무부와 중정이 법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느냐.’며 질책했고 곧바로 황산덕 법무부장관이 ‘인혁당 사건은 김일성의 지시로 북괴간첩에 의해 조직된 사건’이라고 발표했다.”며 정권 개입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나 의문사위는 당시 윤모 수사팀장으로부터 “사건 처리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있는 문서를 본 적이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지만 진실위는 관련자 증언이나 자료도 확보하지 못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독재정권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

    ●인혁당, 민청학련사건이란? 인민혁명당(인혁당) 사건은 한일회담에 반대하는 시위가 거셌던 1964년 8월14일 인혁당이란 반국가단체가 북한 지령을 받고 국가 전복을 시도했다고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사건이다. 서울지검 공안부 담당검사는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를 거부했지만 당직 검사가 관련자 26명을 국보법 위반으로 기소,1965년 9월 대법원에서 전원 유죄판결을 받았다.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사건은 1974년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된 상황에서 비상군법회의 검찰부가 유신반대 투쟁을 주도한 관련자 180명을 구속 기소한 사건이다. 중정이 인혁당 재건위를 그 배후로 지목해 관련자 23명 중 8명에게 사형이 선고된 것이 2차 인혁당 사건이다.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박정희 前대통령 개입”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박정희 前대통령 개입”

    박정희 정권 당시 발생한 인민혁명당(인혁당) 및 전국민주청년학생연맹(민청학련) 사건은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개입으로 수사가 진행됐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국가정보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는 7일 국정원에서 이같은 내용의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진실위는 이들 사건이 당시 독재권력을 연장하기 위해 고문 등의 방법으로 민주인사를 탄압한 공안사건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러나 이날 진실위측의 입장만으로는 현재 서울중앙지법에 계류 중인 인혁당 재건위 관련 재심 재개와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의 배상 판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보여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진실위는 “박 전 대통령과 중정부장의 발표에서 규정된 인혁당과 민청학련의 성격은 전형적인 짜맞추기 수사로 무리하게 반국가단체로 만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문 의혹에 대해 “당시 수사관계자들로부터 고문에 대한 진실고백이 나온 것은 없지만 수사과정에서 불리한 진술의 강요나 핵심인물을 찾기 위해 가혹행위가 자행됐다고 본다.”고 진실위는 판단했다. ☞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 언론 발표문 전문 바로가기 특히 인혁당 재건위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이 대법원 판단이 나온 지 18시간 만에 집행된 것과 관련, 진실위는 “박 대통령 지시로 사형이 집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문서나 증언은 없었지만 사전에 관련부서의 협조가 있어야 집행될 수 있다는 점에 비춰 대법원 확정판결 즉시 처형한다는 방침은 이미 청와대 선에서 정해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안병욱 진실위 간사는 “모든 과정에 최고권력자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혁당의 경우 강령과 규약이 일부 논의되기는 했지만 채택된 적이 없고 서클 형태였던 만큼 인혁당이 국가변란을 기도한 반국가단체라고 볼 수 없으며 북한의 지령과도 무관하다고 진실위는 결론지었다. 민청학련 사건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유신반대 시위를 당시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공산주의자들의 배후조종을 받는 인민혁명 시도로 왜곡해 1000여명을 영장없이 구속하고 7명에게 사형을 선고한 국내 최대의 학생운동 탄압사건으로 규정했다. 여야는 이날 국정원 과거사위의 이같은 조사 결과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주노동당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게 입증됐다.”고 강조한 반면 한나라당 이계진 대변인은 “과거를 바로 잡고 규명하는 일은 필요하겠지만, 증거가 불충분하고 이해당사자들의 충분한 소명기회가 없는 정황에만 근거한 과거사 규명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며 정치적 이용 가능성을 경계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인혁당·민청학련 사건 전모] “법원 무죄판결로 명예회복·보상을”

    31년 만에 드러난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의 진실 앞에 피해자와 유족은 묵은 세월에 대한 회한을 쏟아냈다. 시민단체는 환영과 함께 정부 차원의 보상을 촉구했다. 인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강창덕(79·대구 동변동)씨는 7일 “죽기 전에 진실이 밝혀져 기쁘다.”면서 “누명을 벗지 못하고 사형당한 여덟 분도 기뻐하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역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나경일(76·대구 범어동)씨는 고문 후유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사형을 당한 고 하재완씨의 부인 이영교(70·대구 방촌동)씨는 “남편이 사형당한 후 2남3녀를 키우면서 ‘빨갱이 가족’이라는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했다.”면서 “이제 고문과 사건조작 당사자의 양심 고백이 뒤따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 연루돼 15년형을 선고받았던 임구호(57·대구 시지동)씨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포함한 당시 정권 핵심부의 가담 여부까지 확인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아쉬워했다.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이 집행된 8명 중 4명이 안장돼 있는 경북 칠곡군 현대공원 묘지를 참배했다. 시민단체들은 ‘국가범죄’에 대한 역사적 심판과 향후 재발 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정책실장은 “과거 군사정권이 자행해 온 조작과 은폐, 고문 등 도덕성 추락 실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박래군 인권운동사랑방 간사는 “국정원의 발표는 환영하지만 피해자들의 고통까지 지워진 것은 아니다.”라며 “법원에서 무죄확정 판결을 내려 이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동시에 대통령의 사과와 보상방안 마련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대구 황경근 서울 안동환기자 kkhwang@seoul.co.kr
  • “신군부, DJ구명 美와 물밑거래”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형집행 여부를 놓고 신군부와 미국 백악관 사이에서 ‘거래’가 오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6일 백악관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뒤 인도적·정치적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의 구명에 나섰다는 내용의 기밀문서와 이희호 여사가 백악관에 보낸 탄원 서신 등 미공개 사료를 공개했다.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책임자 도널드 그레그(전 주한미대사)는 1980년 10월 이 여사의 탄원 편지를 받고 백악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게 서신의 내용과 자신의 의견을 더해 문서로 보고했다. 이 여사는 1980년 10월1일 그레그에게 재판의 부당성을 알리고 DJ의 구명을 바라는 영문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는 “사형을 면하면 정치를 포기하고 기독교 신앙을 보급하는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적었다. ‘DJ를 구명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브레진스키는 같은 달 20일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에게 “김(DJ)의 구명을 위해 사적인 방법을 동원해 한국 정부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편지를 전달했다. 이 편지에는 1980년 8월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씨가 10월 미국 수뇌부의 정황을 살피려고 ‘믿을 만한’ 장교를 미국에 밀사로 보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정권 창출의 정당성과 미국의 ‘승인’이 필요했던 신군부는 대외적으로 DJ를 사형하겠다고 위협을 하면서도 밀사를 미국에 파견,‘DJ카드’를 손에 쥐고 미국과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교보생명-故신용호 창립자家

    “이 사통팔달, 한국 제일의 목에 방황하는 청소년을 위한 멍석을 깔아줍시다. 와서 사람과 만나고, 책과 만나고, 지혜와 만나고, 희망과 만나게 합시다. 이곳에 와서 책을 서서 보려면 서서 보고, 기대서 보려면 기대서 보고, 앉아서 보려면 앉아서 보고, 베껴 가려면 베껴 가고, 반나절 보고 가려면 반나절 보고, 하루종일 보고 싶으면 하루종일 보고, 그리고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고 사지 않아도 되고, 사고 싶으면 사 들고 가도 좋습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는 ‘대산(大山) 신용호’라는 평전에서 당시 세인의 반대를 무릅쓰고 금싸라기 땅인 종로 1가 1번지 교보빌딩 지하에 교보문고를 세운 일에 대해 이같은 논리로 동의를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한국의 미래를 모토로 만든 교육보험에도 청소년들의 지적 수준과 나라의 성장은 비례한다는 확신이 담겨 있다. 창업 이념도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다. ●독립운동 집안에서 태어난 다섯째 아들 신 창립자는 1917년 8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 솔안 마을에서 부친 신예범 선생과 모친 유매순 여사의 6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며 잦은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어머니가 가장 노릇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곱살 때는 폐병에 걸려 죽는다는 선고도 받았다. 열살 즈음 병이 나았지만 학교를 가진 못했다. 형편이 어려운 데다 형들이 각종 애국 운동으로 집안을 돌보지 않아 어린 마음에도 그가 살림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밭에서 일하는 대신 ‘책속에 길이 있다.’는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밤에는 책을 읽었다. 동생의 책은 물론 주변에 보이는 책은 닥치는 대로 가져다 보았다. 겨울엔 잠과 싸우기 위해 방에 불도 때지 않고 책을 읽다 동상에 걸리기 일쑤였다. 당시 ‘천일독서’를 목표로 각종 위인전, 철학서, 고전, 사서를 섭렵했다. 비록 학교 문턱에는 가지 못했지만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독서철학으로 스스로 내실을 다졌다. 함께 교보생명 창업을 도운 막내 동생 신용희(83) 전 회장을 제외하고 다른 형제들은 대부분 애국운동에 몸담았다. 큰형인 고 신용국옹은 일제시대에 항일운동을, 광복 후에는 청년 노동운동을 했다. 그 큰아들인 신동재씨가 2000년까지 교보의 부동산관리 전문 자회사인 교보리얼코의 회장을 지냈다. 둘째 형 고 신용율씨도 항일운동에 몸담았으며, 그의 둘째 아들 신평재(67)씨가 현재 교보생명 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한일은행 상무로 재직하다 1991년 제의를 받고 교보생명 사장 등을 역임했다. 셋째 형 신용원옹은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항일음악가로 활동하다 납북했다. 넷째 형 고 신용복옹은 일제 당시 조선생명지사장을 지냈다. 막내 동생 신용희 전 회장은 목포상고를 나와 산업은행에서 일하다 한국전쟁 이후 줄곧 신 창립자를 도와 함께 일했다.1967년 교보생명 창립 이후에는 30년간 교보에 몸담으며 부사장, 회장 등을 지냈다. 그의 아들인 신인재(39) 보드웰 인베스트먼트 사장(8%)과 함께 교보생명 지분을 13.25% 갖고 있다. 신 사장은 고 신 창립자로부터 경영권을 승계받은 큰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을 고집했다. 신 사장은 최근 이동통신사에 솔루션을 공급하는 코스닥 상장업체 무선인터넷솔루션 회사인 필링크의 대표이사 직함도 얻게 됐다. ●교육열을 사업으로 연결한 기지…교육보험의 탄생 문학가를 꿈꿨지만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사업에 뜻을 세웠다. 약관이 되던 해에 서울로 갔고 이어 1936년 중국에서 양곡 수송 사업을 벌였지만 광복과 함께 10년간 닦은 기반을 버리고 빈손으로 귀국했다.1946년. 귀국후 첫 사업으로 전북 군산에 ‘민주문화사’란 출판사를 냈으나 외상 책값이 회수되지 않아 간판을 내렸다. 그렇게 몇 차례 사업에 실패한 뒤 문득 중국에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논 한 뙈기 없어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강한 교육열이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무형원자재인 것이다.‘생·로·병·사’중 유일하게 보험이 빠져 있는 ‘생’ 부문에 교육보험을 끼워넣어 상품화하기로 했다. 당시 보험에 대한 인식은 형편 없었다. 일제시대 보험은 수탈 방식이자 보신(保身) 방편이었다. 더욱이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이 50달러도 미치지 못해 보험에 들 여유가 없었다.1954년 정부가 보험업을 재개시켰으나 기존 생명보험 회사들이 대부분 휴면상태에 있을 만큼 보험업은 쑥대밭이었다. 그러나 세상이 험난해서인지 국민의 80%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때 그의 재기가 번뜩였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을 찾아가 “담배를 끊고 그 돈으로 보험을 들면 아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다.”고 설득한 것이다. 창업 당시에는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지 못했다.1958년 종로1가 60번지 2층짜리 건물에서 직원 46명과 함께 먼저 ‘태양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교육보험이란 업종상 생명보험으로 분류돼 상호에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넣을 수 없었다. 교육열을 자원으로 만든 상품이었고 당시 생명보험에 대한 인식도 열악해 ‘교육보험’이란 이름을 포기하지 않았다.1958년 1월 창업한 뒤 관계 공무원을 끊임없이 설득, 같은 해 7월 상호변경 승인을 얻어 ‘대한교육보험’(현 교보생명)을 출범시켰다. ●슬하 2남2녀의 혼맥 1943년. 중국에서 한창 양곡수송 사업을 크게 벌이던 신 창립자는 당시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보를 받고 급히 귀국했다.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그를 맞아주셨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일 모레가 네 장가가는 날이다.”는 아버지의 한마디. 결혼을 시키려고 거짓 소식을 보낸 것이다. 당시 남자 26세는 혼기를 놓친 나이였지만 그는 벌인 사업 때문에 아직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여겼다. 도망칠 마음까지 먹었다고 고백하며 배려를 바랐으나 아버지가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눕는 바람에 결혼식을 치렀다. 부인 유순이(81)씨는 당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년제 전수학교까지 마친 명문가 출신 규수. 사업에 전력을 쏟느라 가정에 소홀했던 남편을 탓하지 않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묵묵히 2남2녀를 길러냈다. 자녀들의 혼사도 그와 비슷하다. 막내 아들을 제외하고 모두 중매 결혼이다. 명문 대가와의 정략 결혼은 눈에 띄지 않는다. 큰딸 신영애(56)씨는 전 서울대학교 의과대 의학과 마취과학교실 교수 함병문(58)씨와의 사이에 현진(32), 지훈(31), 세훈(25) 등 2남 1녀를 두었다. 신영애씨는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은 지분 평가로 지난 2004년부터 단번에 350억원대 자산을 보유, 연말마다 언론에서 선정하는 여성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둘째 딸 신경애(54)씨는 법조인에게 시집가 1남1녀를 낳았다. 남편 박용상(61)씨는 서울대 법대에서 박사까지 마친 뒤 사법시험에 합격, 서울고등법원 등에서 판사로 활약한 뒤 방송위원회 위원, 헌법재판소 사무처장, 국회 공직자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변호사박용상법률사무소를 운영중이다. 박용상씨의 큰형 용설씨는 내외빌딩관리㈜ 대표, 동생 용삼씨는 내외엔지니어링 대표다. 고 신 창립자의 자리를 이어받은 큰 아들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은 부인 정혜원(48) 봄빛여성재단 이사장과의 사이에 중하(24)·중현(22)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 출신인 신 회장은 불혹이던 지난 1993년 교보에 발을 들여놓은 뒤 현재 직계 중 유일하게 교보에서 일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이화여대 영문과를 나왔다. 막내 신문재(44)씨는 이정숙(44)씨와의 사이에 딸 혜진(18)을 두고 있다. 형제들 중 유일한 연애 결혼이다. 미국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1991년부터 2005년 8월까지 광화문 교보문고내 문구 액세서리 음반 팬시용품 등을 판매하는 400여평 매장의 문보장을 비롯해 전국 6개 교보문보장을 운영해 왔다. 교보문고가 직접 문보장을 운영하기 위해 신씨로부터 지난 8월 문보장 사업권을 회수했다. 현재 새 사업을 구상중이다. ●지독한 완벽주의와 파격 인사 고 신용호 창립자는 지독하다 싶을 만큼 완벽하고 집요하다는 평을 받는다. 땅을 고를 때도 좋은 날, 궂은 날, 비온 다음날 등 두루 살피는 완벽주의자다.77년 명예회장,85년 창립자 등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도 1990년대 후반까지 신입사원 면접에 직접 들어왔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도 실적이 저조해 본사 부장, 실장, 중역까지 나서 손을 들라고 권하자 그들을 나가게 한 뒤 ‘급료는 후불로 주겠다.’는 광고를 통해 간부 사원을 다시 구한 일화는 아직도 회자된다. 창업 10년 만인 1967년 회장으로 물러난 뒤 2000년 아들 신창재씨가 교보생명 회장에 취임하기까지 33년간 무려 사장이 19번이나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1.7년이었다. 경영 안정을 위해 최고경영진을 쉽게 바꾸지 않는 업계의 관행과는 다른 것이다. 교보의 임원 인사는 상식을 뛰어넘어 기발하고 파격적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다. 신창재 회장의 인사 스타일도 재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02년 5월 취임한 장형덕 대표이사 사장의 경우 사장직을 폐지하는 형식으로 취임 10개월 만에 퇴임시켰다. 단일 지도체제가 더 효과적이라며 사장을 없애고 대신 부사장 3명을 임명해 집단경영체제로 개편했던 것. 그때부터 ‘대표이사 회장’ 밑에 ‘대표이사 사장’ 없이 ‘대표이사 부사장’ 체제로 가고 있다. 이어 지난 2004년 2월 박성규 부사장을 선임,‘집단경영체제’는 다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맨손으로 생나무를 뚫어라’ 고 신용호 창립자는 ‘죽고 나면 손해’란 보험에 대한 당시 인식을 바꾸는데 초점을 맞춰 교육보험 1호인 ‘진학보험’을 세계 처음 내놓았다. 죽어야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부모가 돈을 적립해 자녀가 초·중·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마다 학자금을 주는 상품이다. 먼저 단체들을 공략했다. 군인 단체 저축성 보험인 일명 ‘화랑계약’을 고안했다. 잦은 군의 이동에 탈락계약이 늘어 성과는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군 이동에도 추적·관리되는 시스템을 도입,1967년 육군과 170억원의 단체 계약을 맺었다. 파죽지세로 해군·한전 등 대형 단체들과 꾸준히 계약하는 개가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판매 창구도 강화했다. 종로기독청년회관(YMCA)에서 대학생을 모아 보험강좌를 실시한 것을 계기로 대학지부를 설치, 대학생도 판매 채널로 끌어들였다. 지방유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기관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상품에도 그의 기지가 엿보인다. 암 상품은 그가 처음 개발했다.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성인병도 하나씩 보험상품으로 만들었다. 보험업계 전산화 발상을 추진한 최초의 인물도 바로 그였다.1974년 학자금 선지급 업무를 처음 전산화했고 “컴퓨터를 모르면 간부가 될 수 없다.”며 전 사원을 상대로 ‘컴퓨터 활용능력 자격인증제’도 실시했다. 그가 인생을 이야기할 때 전반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 과정’이고 후반은 ‘생나무 뚫는 것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인 과정’이라 비유했다. 인생은 장애의 연속이지만 강한 정신력만 있다면 아무리 높고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는 게 그만의 철학이다. 이같은 열성과 집념으로 1958년 당시 6대 생보사 중 막둥이로 태어난 교보생명은 창립 5년 만에 보유계약 56억원으로 업계 3위,1964년엔 보유계약 100억원 돌파로 업계 2위에 오른 뒤 1967년 설립 9년 만에 업계 정상에 섰다.‘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인생의 다른 한 축…교보문고 교육 보험은 대세가 아니었다.80년 들어 경제성장과 함께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는 시절이 오면서 보험만으로 교육비를 해결할 수 없게 됐다. 변하는 고객 욕구에 따라 양로보험, 종합보장생활보험 등 일반 생명보험 상품의 비중이 커졌다. 교육보험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자 1995년 ‘교보생명’으로 사명을 바꾸었다. 삼성생명의 약진으로 교보는 1974년부터 업계 1위에서 2위로 밀려났다. 자산이 늘어나면서 관련 계열사도 속속 설립했으나 모두 보험으로 맡긴 고객의 돈을 운용하기 위한 금융 계열사였다. 부동산관리 전문회사인 교보리얼코(1979), 교보증권(1994) 등 총 9개 자회사를 세우면서 교보를 오늘날 35조원 규모의 금융 자본으로 성장시켰다. 그 중 금융과 동떨어진 업종이 하나 있다. 바로 교보문고(1980)다. 교육을 통한 민족부흥을 창업 이념으로 삼고 있는 만큼 따지고 보면 업종의 본질은 같다는 설명이다. 1980년 종로 1가 1번지에 사옥 교보빌딩이 세워지자 그는 지하에 서점 설립을 제안했다. 온갖 연줄을 동원하며 지하아케이드 자리 쟁탈전이 벌어지던 때였다. 간부들은 채산성이 약하다며 서점이 들어서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의견을 냈고, 손해가 나면 보험회사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당시 허가관청인 재무부도 반대하고 나섰다. “우리 회사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자리에는 당연히 으리으리한 고급상가를 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이 값진 땅에 책방을 크게 열어 청소년과 시민이 자유롭게 이용토록 한다면 그 효과가 어느 정도나 될지 상상해 보시오.” 손해가 나더라도 청소년의 정신역량을 키우는 일인 만큼 자신이 떠맡겠다고 설득했다.1985년에는 일반 독자뿐 아니라 학자들을 위해 80만종의 세계 논문도 공급했다. 지방사옥이 세워질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이 교보문고 지점 설치를 요구했을 정도다. 대전, 성남, 대구, 부산, 부천, 강남 등에 속속 지점을 열었다.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를 찾는 고객 수는 일평균 4만 5000여명, 연간 1500만명에 달한다. 삶의 두 축이 교보생명과 교보문고라고 지적했을 정도로 애착도 컸다. 그러나 말년을 맞아 또다시 병마가 찾아 왔다.77세가 되던 1993년. 회사 정기건강 검진에서 간 기능에 석연치 않은 증후가 발견됐다. 담도암이었다. 의사들은 그에게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기운 있을 때 여행을 다녀오라는 처방을 내렸다. 사형 선고였던 셈이다. 그는 암과 싸우며 여생을 보내느니 살든 죽든 결판을 내겠다고 마음먹고 불가능하다는 담도암 수술을 감행했다. 수술후 그는 중환자실에서 목에 구멍을 뚫고 2개월이나 암흑 속에서 지내야 했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뒤 재활물리치료 반년 만에 골프장에 다시 나갈 수 있었다. 근력운동과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90년대 후반까지 업무를 보고받는 등 경영에 관여했다. 그러나 8년 뒤 암이 간으로 전이되면서 몸이 약해졌다. 결국 2003년 9월 19일 오후 6시1분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jhj@seoul.co.kr ■ 신창재회장과 정혜원 여사 “내조만 하며 살아온 탓에 사회공헌 사업은 꿈도 꿔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제의로 사회공헌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요. 내조와 아이들 뒷바라지에도 벅차지만 소명으로 여기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신창재(52) 교보생명 회장의 부인 정혜원(48)씨는 요즘 사회활동에 바쁘다. 그는 남편과 두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해온 전업 주부였다. 남편 신 회장으로부터 사회공헌 사업을 해보라는 제의를 받고 2004년 4월 성매매 피해여성 보호단체를 지원하는 봄빛여성재단을 창립,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순전히 남편 신 회장의 사재로 시작한 사회공헌 사업이다. 서울 종로구 적선동 사무실로 매일 출근하면서도 아이들이 완전히 홀로서기할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며 걱정이 많다. 그는 한사코 취재를 거부했다. 사회 활동은 하고 있지만 언론 대응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화여대 영문과 출신인 그는 소탈하면서도 적극적인 성격으로 책임감이 강하다는 평을 받는다. 중매를 통해 남편을 만났다고 밝혔다. 평범한 집안에서 데려온 며느리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고 신용호 창립자의 수수함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는 남편 신 회장이 양복도 맞추러 갈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쁘다고 했다. 실제로 신 회장은 아버지의 유업인 교보문고와 교보생명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아버지만큼 골프를 좋아하지만 교보로 옮긴 이후 거의 필드에 나가지 못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 교보생명은 지난 2000년 5월 신 회장 취임과 함께 ‘질´경쟁을 선언하면서 업계 2위에서 3위로 밀려난 뒤 여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먼저 교보문고는 교보생명이 증자해 전자책 등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는 지식문화 전문회사로 거듭나도록 하겠다는 포부다. 출판업이 사양산업으로 전락하다 보니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교보문고는 현재 부채비율이 416%로 은행으로부터 신규 여신이 어려운 처지다. 교보생명은 기존 주주가 여력이 없어 제3자 배정 방식으로 5000억원을 증자할 계획이다. 다른 생보사보다 상대적으로 지급여력비율(160%)이 낮다. 자기자본 확대가 이유다. 그러나 2대 주주인 자산관리공사가 난색을 표명하고 있어 문제다. 자산관리공사 소유·관리지분(41.26%)의 가치가 희석되지 않는 상태에서 잘 팔릴 수 있도록 협조해야 증자에 동의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업계는 신 회장이 과연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할 수 있을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교보생명의 한 임원은 신 회장에 대해 “아버지를 닮은 완벽주의자”라고 말했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산부인과 교수로 살아오다 불혹이던 지난 1993년 아버지 고 신용호 창립자의 뜻에 따라 그간 배운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대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교보생명에 발을 들여놓았다.1996년 11월 교보생명 부회장,2000년 5월 교보생명 회장으로 취임한 뒤 변화와 혁신을 기치로 삼고 전력 질주 중이다. 박성규 교보생명 부사장은 “과연 의사 출신이 기업을 어떻게 경영할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를 보면 답이 나온다.”고 전했다. 의사 출신답게 깊은 통찰력과 분석력을 갖춘 데다 책을 많이 읽는 덕분에 멀리, 넓게 보는 안목이 있다고 평가했다. jhj@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 차장 이종락·이기철·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싱가포르, ‘마약 400g’ 소지 교수형

    사형제 폐지의 날을 맞아 로마 콜로세움을 비롯, 세계 300개 도시를 일제히 밝힌 불빛도 결국 두 명의 사형수 목숨을 구해내지는 못했다.2일 싱가포르에서 마약 밀반입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호주 청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데 이어 미국에선 지난 1976년 사형제도 부활 이후 1000번째 형 집행이 이뤄졌다. 이날 집행은 사형 폐지 목소리가 커지는 시점에서 단행된 것이어서 논란이 어떤 방향으로 확산될지 주목된다. 싱가포르 내무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아침 6시 창이 교도소에서 베트남계 호주 청년 응우옌 뜨엉 반(25)의 교수형이 집행됐다.”고 밝혔다. 3년 전 싱가포르 공항에서 헤로인 400g을 소지한 혐의로 체포된 반의 형이 집행되는 동안 교도소 밖에선 사형 반대 집회가 열렸다. 호주에서도 주요 교회에서 철야집회가 이어졌으며 집행 순간에는 그가 살아온 햇수를 가리키는 25번의 조종이 울려퍼졌다. 싱가포르 당국은 호주 정부와 자국민들로 구성된 ‘사형 반대 위원회’ 등 각계의 구명 노력에 꿈쩍도 하지 않다 마지막 순간 어머니와 형에게 반의 손을 잡아보는 것을 허용했다. 직접 다섯 차례나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에게 구명을 호소했던 존 하워드 호주 총리는 아들을 안아보게 해달라는 어머니의 탄원을 당국이 거부한 데 대해 유감을 표했다. 그러나 하워드 총리는 이번 일로 양국의 무역이나 군사 협력을 중단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국제앰네스티(AI)의 사형 반대 운동 책임자인 팀 굿윈은 “야만적이고 잔인한 처벌”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마약을 15g만 소지해도 사형선고가 가능하고 특히 재판관의 재량권이 인정되지 않아 1991년 이후 420명을 처형시킨 싱가포르는 “그가 소지한 마약은 2만 6000명의 인생을 파탄낼 양이었다.”며 “더 많은 인명을 보호하려면 불가피한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 미국, 30년만에 1000번째 집행

    미국, 30년만에 1000번째 집행

    2일 새벽 2시15분(현지시간) 미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의 센트럴 교도소에서 1988년 전처와 장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케네스 리 보이드(57)가 독극물 주사를 맞고 절명했다. 이에 앞서 마이크 이즐리 주지사는 감형 요청을 거부했고 미 대법원과 연방항소법원도 형 집행 정지를 바라는 마지막 탄원을 기각했다. AP통신은 교도소 밖에서 삼엄한 경계가 펼쳐진 가운데 촛불 집회가 열렸으며 16명이 위법 혐의로 체포됐다고 보도했다. 사형수 보이드는 스테이크와 구운 감자, 샐러드 등으로 최후의 만찬을 든 뒤 가족과 친구들을 만났다. 아들 케네스 스미스(35)는 “많은 이들이 두번의 기회를 갖는데 아버지도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의 사형 집행은 1999년 최고 98건까지 늘어났다 지난해 59건에 그치는 등 최근 들어 상당히 자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인의 사형제 지지율은 94년 80%까지 올라갔으나 지난달에는 64%에 그쳐 27년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미국에선 38개 주와 연방정부가 사형제를 고수하고 있다. AI 집계에 따르면 사형제도를 법적으로 폐지한 나라는 86개국이며 살인 등 중범죄에만 사형을 허용하는 나라는 11개국이다. 또 10년 넘도록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나라는 25개국에 이른다.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74개국이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美 1000번째 사형수 극적 감형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에서 사형제도가 부활된 1976년 이래 1000번째로 처형될 처지에 놓였던 사형수가 집행을 하루 앞둔 29일(현지시간)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버지니아주의 마크 워너 지사는 30일 저녁 독극물 주사를 통해 사형을 집행할 예정이던 살인강도범 로빈 로비트의 형량을 사형에서 종신형으로 감면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날 미 오하이오주에서는 장모와 의붓딸 살해범 존 힉스가 999번째로 사형에 처해졌다. 로비트가 감형됨에 따라 1000번째 사형수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2일 사형 집행이 예정된 케네스 리 보이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워너 주지사는 사형 선고 과정에서 재판부나 배심, 검찰의 잘못은 전혀 없었으나 사형수 로비트의 살인 혐의를 확증할 만한 증거가 파기된 점을 들어 형량을 줄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로비트는 1999년 알링턴에서 살인강도를 저지른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로비트는 그러나 강도 행위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피해자는 다른 사람에 의해 살해됐다며 살인혐의를 부인해왔다. 변호인측도 피살 현장 부근에서 발견된 범행도구인 가위 등의 증거물이 법원 직원에 의해 조기 파기돼 범행을 확증할 수 없다고 주장해왔다. 법원 직원은 2001년 증거물 보관실을 넓힌다며 피묻은 가위 등의 증거물을 무단으로 파기해 초기 검사에서 확증이 어려웠던 DNA검사 등이 불가능해졌다. 살해 현장 목격자도 로비트가 범인임을 80%가량 자신하지만 100% 확신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로비트에 대한 감형을 계기로 미국 사회의 사형제도 찬반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사형제도가 부활된 직후부터 찬반 논란은 계속돼 왔으며,1999년 미 전역에서 최고 98건의 사형이 집행된 것을 고비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사형 집행은 59건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38개 주가 사형제도를 허용하고 있으나, 실제 집행은 텍사스(355명)와 버지니아(94명), 오클라호마(79명) 등 3개주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져왔다.daw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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