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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암살/엇갈리는 증언… 진상규명 본격화해야

    ◎일제청산·단정반대로 이박사와 갈등/극우·친일파 조직적음모 여부가 초점/안 1년복역후 출감… “암시”발언 의무투성이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진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암살지령을 내린 배후는…? 사건발생 43년이 지나도록 줄곧 단독범행을 주장해온 암살범 안두희씨(75)의 최근 증언으로 이 사건이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안씨는 최근 두차례에 걸쳐 『김창용육군특무대장·장택상초대 수도경찰청장,노덕술수도경찰청수사과장,최운하수도경찰청정보과장 등이 나와 반공이념·인생철학이 같았으며 이들 모두 백범을 미워했다.누구로부터 암살지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증언해 갖가지 추측만 무성하게 낳고 있다.백범암살사건의 전말과 관계자들의 증언,앞으로의 사건전개 전망등을 짚어본다. ○안두희발언 계기 사건전말·관계자주장 재조명 백범은 1919년 중국의 상해로 건너가 이봉창·윤봉길의사등의 의거를 지도하는 등 독립운동에 몸바쳐 임시정부의 주석에까지 올랐다.그는 8·15해방을 맞아 45년11월 26년만에 광복 조국에 돌아왔다. ◎반탁운동에 앞장 백범은 서대문 경교장에 숙소를 정한 뒤 28년 이시영 이동령 등과 함께 중국에서 창당한 한국독립당을 이끌며 45년 12월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의되자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47년 11월 국제연합(유엔)은 남북총선거에 의한 독립정부수립을 결의하고 48년초 총선거감시위원단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그러나 백범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은 남북분단을 고착화 시킨다』면서 5·10선거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김규식과 함께 평양으로 가 김일성 김두봉등과 4자협상등을 벌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백범은 8월15일 이박사를 대통령으로 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경교장에 머물며 일제잔재의 청산과 통일정부수립 등의 노선을 견지,갈수록 이박사등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같은 상황아래서 49년 6월26일 정오 경교장 2층 집무실에 있던 백범은 육군포병사령부 소속 안두희소위가 쏜 4발의 총탄에 맞아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안두희는 범행직후 『단독범행』이라고 밝힌뒤 헌병사령부 김병삼대위 등 헌병들에게 연행돼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재판장 원용덕소장)에서 「살인및 군인의 정치관여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태원 형무소에 수감됐다.한달뒤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그는 곧이어 징역15년으로 감형됐으며 백범 1주기를 하루 앞둔 50년 6월25일 6·25의 발발과 함께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석방됐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7월10일 육군소위로 복직됐으며 51년 국회질의에서 이같은 사실이 문제가 되자 소령으로 예편,강원도에서 식품군납업체를 경영하게 됐다. 그의 「단독범행」주장에 대해 49년8월 한독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이대통령에게 ▲백범이 안을 응대한 시간이 겨우 3분에 불과하고 안과 같은 청년과 정치언쟁을 벌였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범인의 심리로 일시적 흥분에 의한 것이면 1발로 족할 것이며 저격후 8발의 탄환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던지고 체포당한 것은 안의 개인적 행동으로 간주할 수 없다▲경교장 경비경찰관의 손에 체포되는 즉시 난데없이 헌병대가범인을 데려간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등의 진상규명 요청서를 보내 의문을 제기했다.백범의 장례는 그해 7월5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새로운 내용은 없어 백범암살에 대한 안두희씨의 최근 증언이후 안씨의 배후문제에 대한 또다른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그동안의 증언들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새로운 것은 별로 없으며 안씨 역시 최근 두차례의 증언에서 일부 대목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안두희씨(범인)=당시 백범을 암살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는 않았으나 김창용육군특무대장 초대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장택상씨와 친일경찰관으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던 노덕술,정보과장 최운하씨 등으로부터 백범을 암살해야 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고 공감해 범행했다. ▲김신씨(70·백범아들·전교통부장관)=김창용육군특무대장 등이 지시했다는 안씨의 증언은 빙산의 일각이다.이승만정권하에 있던 친일세력과 해방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세력을 중심으로 당시 군부와 경찰·정계 고위층을 망라한 정권차원의 배후세력이 선친살해에 관련되었다는 일부 증거를 갖고 있다.그러나 정확한 명령계통을 밝히지 못해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진상규명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최대교씨(91·변호사·당시 서울지검장)=사건직후 최초지휘때 김병삼헌병대위가 한때 경교장출입을 막기도 했다.권승렬법무부장관과 함께 대책을 숙의하기 위해 이범석국무총리 집에 갔으나 꿩사냥을 갔다고 해 신성모국방장관 집으로 가 아프다는 신장관을 겨우 만나 『경무대에 빨리 백범피살 사실을 알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됐다』고 말했다.또 검사장인 나도 모르게 범인 안씨에게 비밀당원증을 발급해준 김학규 한독당 조직부장 등 민간인 7명의 살인교사죄 구속영장을 김익진 당시 검찰총장이 직접 청구,한격만서울지법원장에 의해 발부됐다.이를 김총장에게 항의하자 『저 영감(이대통령 지칭)이 일체 비밀로 하라고 해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고 해 백범암살 수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얼마뒤 사표를 냈다. ◎“동족에 죽을일 없다” ▲선우진씨(71·당시 백범비서실장)=백범피격 하루전 대광고교 교감 박동엽씨가 찾아와 『옛 제자인 김정진소령을 만났더니 역시 제자인 오병순소위가 암살조에 가담,괴로운 나머지 털어 놓았다』고 밝혀 『몸조심 하십시오』라고 백범선생께 말했다.백범은 『동족에게 맞아 죽을 일은 하지 않았다』면서 이같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을 박씨로부터 들었다. ◎인천에서 사격 훈련 ▲정관일씨(71·안씨와 육사특8기 동기생으로 포병사령부에 함께 근무)=안씨는 당시 장은산포병사령관의 지시로 인천앞바다 비밀사격훈련장에서 주5회 극비사격훈련을 받았다. ▲홍영기씨(74·국회의윈·당시 육군법무감실검찰과장)=안씨를 기소한뒤 채병덕육참총장이 부르더니 『안두희에게 몇년을 구형할 생각인가』고 물어 『살인범이니 마땅히 사형』이라고 대답했더니 『사형은 너무 심하니 징역10년만 구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후 은폐위한 사기 ▲한필동씨(72·사건당시 김창용특무대장과 같은 부대에 근무·미국거주)=김창용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는 안두희씨의 증언은 진짜 배후인물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다.내가 알기로는 신성모국방장관·채병덕육참총장,김태선내무장관 등의 비호아래 장은산포병사령관이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전봉덕헌병사 부사령관이 작전을 지휘하는등 백범암살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김교식씨(56·현대역사자료연구소장)=안씨의 증언은 앞뒤가 맞지않으며 직접 명령을 내렸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뒤 수사과정에서 처음 만난 김창용을 끌어들였을 뿐이다.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장택상 노덕술 최운하씨 등도 암살사건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김태선씨 또한 김지웅을 지원하며 경찰쪽에서 별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포병장교인 안씨와 접촉이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암살계획의 시나리오는 포병사령부쪽에서 실행을 맡고 헌병사령부쪽에서 현장을 감시하며 육군정보국제3과에서 수사종결처리를 맡는 것으로 짜여진 것으로 보는게 옳다. ○서거43년… 「백범암살 재조명」을 보며/박성수 정문연교수 ◎민족정기 바로잡는 계기로/「통일민족주의」의 큰뜻 되새겨야 할때 최근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가 범행 40여년만에 드디어 일부 배후 인물을 밝혔다 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증언 내용이 겨우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을 뿐 바다속의 엄청난 얼음덩어리는 여전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잠겨 있다. 안두희의 증언 자체가 이처럼 불성실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행이 얼마나 중대한 과오였는가에 대해서도 거의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게 세론이다.아직도 안두희는 자신을 애국지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그의 증언 태도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백범 김구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큰 인물이다.그의 이름 두자를 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사를 쓸 수 없음은 물론 광복이후 47연사도 기술할 수 없는 것이다. 『백범이 살아 있었어야 한다』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대답일 것이다.백범은 생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송받게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었다.「아름다운 나라」란 더러운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선생 자신이 아름드리 거목이듯이 이 나라도 아름드리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군정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의 불가능에 도전한 사실을 안두희와 같은 극우반공주의자들은 단순한 용공주의자로 몰아 세울수 있었을지 모른다.그러나 평생을 통일운동에 몸바친 선생의 혈적을 모르는데서 온 무지의 소치였다.흔히 임정을 상해시대 14년(1919∼32년),이동시대 8년(1932∼40년),중경시대 5년(1940∼45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27년을 단순한 독립운동의 역사로 보아서는 안된다.그것은 동시에 통일운동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경시대에 이르러 모든 민족주의 진영은 임정산하에 통일되었으나 공산주의자들 만은 연안으로 도주하여 중공산하에 들어갔으며 1950년 6·25 남침의 주력부대가 되는 김무정의 소위 조선의용군이 되었다.김구선생은 귀국후 임정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통일운동을 광복된 조국에서 실현하려고 했다.그것이 군정반대로 나타난 것뿐이다.그에게 있어 남북통일은다름아닌 한국독립운동의 연속이요 완성이었던 것이다. 좌우익투쟁의 피비린내나는 해방정국에서 그것은 부당하게도 김구로선으로 명명되어 그 실질이 왜곡되고 말았으나 그것은 김구자신의 역사신앙이었던 것이다. 만일 김구선생이 그때 없었어도 될 안두희라는 인간,아니 짐승에게 쓰러지지 않고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현대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고 있다. 다른것은 몰라도 최소한 남북의 분단상태를 악용한 이른바 사이비 통일민주주의만은 이땅에 뿌리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진실된 통일민주주의가 자라나서 통일의 날을 앞당겼을 것이다. 오늘처럼 김구선생의 독립정신,통일정신이 절실한 때가 또 있었을까.또 오늘처럼 우리나라가 아름드리 나라로 커야 한다고 바라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다시한번 경교장의 비극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앞날을 생각할 때라 할 것이다.
  • 상습 성폭행범에 사형구형/“강도·계획적 가정파괴 중형 마땅”

    ◎10대 공범 2명엔 무기징역 서울지검 공판부 임권수검사는 30일 연말 유흥비 마련을 위해 대낮에 흉기를 들고 가정집에 침입,강도·강간을 일삼아온 박용섭피고인(22·무직)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죄(강도 강간)등을 적용,사형을 구형하고 공범 이모군(18·무직)등 10대 2명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검찰은 논고문에서 『피고인들은 20세 안팎의 어린 나이에 계획적으로 대낮에 식칼등 흉기를 들고 가정집에 침입,유부녀와 노인 등 부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윤간하고 금품을 뺏음으로써 개인과 가정에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사회에도 치안에 대한 불안을 가중시켰다』며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들을 사회에 다시 복귀시킬 경우 또다른 범죄로 사회에 엄청난 피해를 입힐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극형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박피고인등은 연말 유흥비를 마련하기위해 지난해 12월 3일 상오 9시쯤 서울 강남구 논현동 김모씨(27·주부)집에 들어가 흉기로 김씨를 위협,양손을 묶은 뒤 번갈아 성폭행하고 68만원 상당의 금품을 빼앗아 달아나는 등 연말까지 7차례에 걸쳐 강도·강간 행각을 벌인 혐의로 지난 1월 구속 기소됐었다.
  • 가정파괴 3명 사형구형/부산지검/어머니앞 딸 폭행등 36차례 범행

    【부산=이기철기자】부산지검 강력부 조영곤검사는 17일 상오 부산지법 103호 법정에서 부산지법 제3형사부 심리로 열린 이상수(23·절도등 전과5범·경남 마산시 합포구 산호1동 20) 전장호(20·절도등 전과4범·창원시 대방동 733) 노경태(20·절도등 전과4범·〃대방동776) 황모 피고인(18·〃반송동)등 강도강간범 일당 4명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이들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상의 강도강간 등 6개 죄목을 적용,미성년자인 황피고인에게는 징역 20년을 구형하고 나머지 3명에겐 사형을 구형했다. 피고인들은 지난해 9월 초순부터 같은해 12월 5일까지 3개월동안 「총알택시」등을 이용,부산 대구 마산 등지를 돌며 흉기를 들고 부녀자들만 있는 집을 골라 침입,18세의 여고생에서 48세의 가정주부까지 닥치는대로 폭행한 뒤 금품과 예금통장 등을 탈취하는 수법으로 36차례나 범행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됐었다. 특히 이들은 임신부·환자·학생 등을 가리지 않고 범행을 저질렀으며 시어머니앞에서 며느리를 성폭행하는가 하면 중풍으로 거동도못하는 노모 앞에서 딸을 집단 성폭행하는 등 악랄한 수법을 보여 왔다.
  • 김태촌피고 사형구형/서울고검,항소심 결심

    서울고검 조승식검사는 31일 서울고법형사5부(재판장 권광중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조직폭력배 「서방파」두목 김태촌피고인(44)의 범죄단체구성 등 사건 항소심결심공판에서 김피고인에게 1심대로 사형을 구형했다. 김씨와 함께 구속기소된 부두목 이택현(39) 행동대장 양춘석(36) 조직원 정광모피고인(42) 등에게도 1심대로 징역15년이 구형됐다.
  • 가정파괴범 2명/사형·무기형 구형

    서울지검 동부지청 박기택검사는 14일 대낮에 흉기를 들고 금품을 빼앗은 뒤 신고를 못하게 하기 위해 부녀자들을 욕보인 혐의로 구속기소된 경수복(34·서울 성북구 길음동 629의 34),정재호피고인(35·운전사·서울 은평구 응암동 270의 1)등 가정파괴범 2명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강도강간)죄를 적용,사형과 무기징역을 각각 구형했다.
  • 애관극장 대표 살해/30대 피고 사형 구형

    【인천】 인천지검 형사3부 강경필검사는 21일 인천 애관극장 탁상덕회장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일군씨(32·인천시 남동구 만수1동 930)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상오11시 인천지법 103호 법정에서 김완섭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이 사소한 금전관계로 전혀 반항할 수 없는 73세의 노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한뒤 1천2백만원을 빼앗아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등 범행후에도 반성하는 기미를 전혀 찾아 볼 수 없어 극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 사노맹 박노해 피고/항소심도 사형구형

    서울고검 안승규검사는 16일 국가보안법위반죄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중앙위원 박기평피고인(필명 박노해·33)에게 원심대로 사형을 구형했다.
  • 이득화군 유괴 살해/문승도에 사형 선고

    【수원=김학준기자】 수원지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유정주부장판사)는 13일 수언 이득화군(8)유괴살해범 문승도피고인(23·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병점리 555)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문피고인에게 미성년자 약취유인및 살인,사체유기죄등을 적용,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구속기소된지 22일만에,사형이 구형된지 1주일만에 사형을 선고하기는 이례적인 것으로 흉악범에대한 응징효과를 높이고 어린생명을 담보로 하는 유괴·살인사건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법원의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 폭력조직 「학동파」/행동대장 사형 구형

    서울지검 강력부 이재순검사는 9일 지난 88년 광주시내 유흥가의 주도권을 둘러싸고 다툼끝에 반대파 행동대원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광주 「학동파」행동대장 김기주피고인(23)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살인죄등을 적용,김피고인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 득화군 유괴살해범 사형 구형

    【수원=김동준기자】 수원지검 강력부 김홍일검사는 6일 이득화군(8·수원 파장국교1년)유괴살해범 문승도피고인(23·상업·화성군 태안읍 병점리 555)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위반(미성년자 약취·유인)및 살인죄등을 적용,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 5세 여아 성폭행뒤 살해/40대에 사형구형

    【수원=조덕현기자】수원지검 형사3부 박충근검사는 3일 5살난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뒤 목졸라 살해한 손학식 피고인(44·노동·용인군 용인읍 고림리 747의1)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살인 및 미성년자 의제 강간치사죄를 적용,사형을 구형했다. 수원지검 형사합의2부(재판장 유정주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박검사는 논고를 통해 『한순간의 성적 쾌락을 위해 5살난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행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며 『이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범죄라기 보다는 우리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로 이해돼야하며 피고인을 사회로 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여의도 살인질주/20대에 사형구형/집중 심리제 첫 적용

    서울지검 남부지청 전상훈 검사는 22일 남부지원 합의 2부(재판장 송기홍 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서울 여의도광장 「살인질주」사건 첫 공판에서 김용제 피고인(20)에게 살인죄를 적용,사형을 구형했다. 이번 공판은 올해 1월부터 시행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관한 특례법에따른 집중심리제도를 형사재판에서는 처음으로 채택해 1차례의 공판만으로 모든 심리와 검사구형까지 마쳤다.
  • 사형구형 두 피고인/증거없다 무죄선고/「아가방」 살인사건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이근웅부장판사)는 7일 서울 동작구 사당동 「아가방」가게 두여인 살해범으로 사형이 구형됐던 김성민피고인(22)등 2명과 무기징역이 구형됐던 3명에게 『자백의 임의성이 없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 미장원 상습강도/20대에 사형 구형/공범엔 무기

    서울지검 공판부 정교순검사는 29일 카페 미장원 여관등을 돌며 30여차례 강도·강간등을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된 박은구피고인(23·서울 노원구 상계9동)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죄등을 적용,법정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공범 김동만피고인(22·서울 성동구 구의1동)에게는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 김태촌피고에 무기선고/서울형사지법/“범죄단체 조직 인정”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이근웅부장판사)는 1일 범죄단체를 조직,폭력을 휘두른 혐의로 구속기소돼 사형이구형된 「서방파」두목 김태촌피고인(43)에게 범죄단체조직·공갈죄등을 적용,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피고인과 함께 구속기소돼 징역15년이 구형된 부두목 이택현피고인(38)과 행동대장 양춘석피고인(35)에게는 징역8년씩이,정광모피고인(41)에게는 징역7년이 선고됐다. 범죄단체조직죄로 무기징역이 선고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은 그동안 8차례에 걸쳐 모두 15년의 형을 복역한 전과자로 지난 89년말 폭력을 휘둘러 구속된 뒤에도 신병치료를 이유로 가석방된 상태에서 폭력조직을 재건하는등 범죄를 저질렀다』고 지적하고 『피고인이 조직한 범죄단체가 조직원 3백명을 동원할 수 있을만큼 대규모인데다 폭력대상이 전국적이어서 중형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부하인 손하성씨(42)가 법정에서 증언을 번복했으나 그전에도 손씨가 증언을 번복한 사실이 있는 점등에 비춰볼때 자의가 아니고 피고인 주변인물의 협박등에 의한 것이라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 김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방청석에 있던 가족들이 재판부에 거세게 항의했으며 일부 방청객은 재판부에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 김태촌피고 사형구형/「서방파」두목/범죄단체조직등 15개 범죄 적용

    ◎3명엔 15년씩… 진술 번복 손하성씨 안나와 서울지검 강력부 조승식검사는 10일 폭력조직 「서방파」두목 김태촌피고인(43)에게 범죄단체조직죄등 15개항의 범죄혐의를 적용,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또 이단체 부두목 이택현(38),행동대장 양춘석(35),비서 정광모피고인(41)등 3명에게도 같은혐의로 징역 15년씩을 구형했다. 폭력조직두목이 범죄단체를 조직한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울형사지법 합의21부(재판장 이근웅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논고를 통해 『김피고인은 범죄 단체를 만들어 수많은 폭력을 휘두르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등 이사회를 폭력만능주의·한탕주의로 물들게 했으며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조성해왔다』고 지적하고 『특히 범행 수법이 잔인·교활하고 포악한데다 법정에서조차 반성하는 빛이 없이 범행을 계속 부인하고 있어 국내폭력조직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폭력조직이 더이상 이사회에 발붙일수 없도록 하기위해서라도 피고인을 이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극형을 구형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그동안 검찰과 법정에서의 진술을 통해 김피고인의 범죄사실을 폭로했다가 지난달 24일 법원에 진정서를 보내 진술을 전면 번복했던 「서방파」의 전부두목 손하성씨(42)는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 폭력 혁명세력에 “영구격리” 단죄/박노해피고 무기 선고 안팎

    ◎레닌 논리 추종해 국가체제 부정/“남로당이후 최대 조직” 단호 대처 「남한사회주의 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주도해오다 사형을 구형받았던 박기평피고인(필명 박노해)에게 무기징역의 중형이 선고된 것은 재판부가 우리사회를 폭력혁명으로 전복하려는 세력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재판부도 밝혔듯이 「사노맹」은 지난 80년대초 「남민전」사건관련자 71명의 수를 훨씬 넘는 규모로 「남로당」이후 최대의 조직으로 우리헌법을 부정하며 레닌의 2단계혁명논리에 따라 폭력혁명·무장봉기를 노려왔다. 검찰이 당초 시국사건에서 「남민전」이후 10년만에 사형을 구형한 이유도 기존의 지하운동단체가 의식화교육수준을 보였던데 반해 「사노맹」은 여러 운동권을 조종·통합,무장봉기를 꾀하고 월간 「노동해방문학」등 출판물을 펴내 사회주의혁명을 선동,실천적인 투쟁을 벌여왔기 때문에 「영구격리」가 필요하다는데 있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남민전」사건이후 우리사회는 정신적·물질적으로 사회구조가 변화,변혁운동에 대해 수용·인내·관용의 폭을 넓혀왔다』면서 『피고인이 비록 법을 부정한다해도 법은 피고인에게도 보호받을 권리를 줘야한다』고 극형을 피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그동안 변호인단들은 사상과 이념·표현의 자유를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사회주의이념을 주장한 것은 무죄라고 변론해왔었다. 74년전 폭력혁명으로 세운 소련 공산당이 몰락하는날 사형을 구형받았던 박피고인은 스스로 부정했던 법에 의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앞으로 성실하게 법정투쟁을 해 나가겠다』는 말을 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사노맹」 사건 판결문 요지 「사노맹」은 헌법이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사유재산제도와 이를 기초로 한 자본주의적 경제구조를 부인하고 모든 생산수단을 노동자·농민·도시빈민등 민중의 소유로 환원시키고 선거를 통한 평화혁명을 부인하며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주장하는 레닌의 2단계 혁명논리를 취하고 있으며 『민중이 국가 권력을 손에 움켜쥠으로써 스스로를 지배계급으로 조직화하는 봉기에 의해서만혁명이 완성 된다』고 주장한다. 또한 「사노맹」 전술결의Ⅱ에서 「노정권타도」라는 주장을 해온바 타도란 혁명적 행동 즉 직접적 무장봉기의 차원은 물론이고 선전·선동의 차원도 동시에 담겨 있으며 「사노맹」은 그동안 이 무장봉기노선을 주장해왔다. 「사노맹」은 또 당초 기록상 기간조직원 2천명,지지조직원 1천5백명이라 한 곳도 있고 피고 스스로 각각 5백명,3천명이라고 밝힌 바 있어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하는 이 정도의 거대한 조직은 10년전 「남민전」은 비교도 안되며 「남로당」이후 최대 규모이다.「남민전」은 71명 규모에 5명이 사형을 선고받았다.그러나 구형일에 사회주의몰락을 본 재판부는 엄한 태도냐 관대한 태도냐에 고심했고 아직 이에대한 뚜렷한 국민적 합의는 없으며 우리사회도 나름대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멈출 수 없다고 본다.피고가 헌법을 부정하고 법원밖에서 구원을 찾고 있으나 우리사회가 그동안 변혁운동에 대해 관용·인내·수용의 폭을 넓혀왔고 피고에 대해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고려할 때 검사가 구형한 사형을 그대로 선택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 박노해피고 무기징역 선고/서울지법

    ◎“자유민주 부정,무장 봉기·체제 전복 기도” 서울형사지법 합의23부(재판장 김동건부장판사」는 9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을 결성,상임중앙위원으로 활동해온 혐의로 구속기소돼 사형을 구형받은 박기평피고인(34·필명 박노해)에게 국가보안법위반(반국가단체구성등)죄를 적용,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박피고인이 결성·주도한 「사노맹」은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부정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주장해온 점이 인정되며 70년대 「남민전」보다 규모가 크고 사법사상 최대의 조직을 갖춘 반국가단체』라고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사노맹은 무장봉기로 체제를 전복할 것을 주장하면서 박피고인이 구속된 뒤에도 계속해서 활동하는등 사회주의가 몰락해가는 역사적 시점에서도 혁명노선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뒤 『그러나 법을 무시한 피고인도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고 피고가 비교적 성실히 재판에 임하는 등을 참작,극형이 아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재판은 박피고인의 가족과 운동권대학생등 1백50여명이 지켜봤으며 법정소란행위는 없었다.
  • 가정 파괴범에/검찰,사형 구형

    【수원=김동준기자】 수원지검 이광재검사는 21일 자녀가 보는 앞에서 주부를 성폭행하는등 11차례에 걸쳐 강도강간을 일삼아온 정수영피고인(25·무직·수원시 권선구 인계동 987의15)에 대해 사형을 구형했다.
  • 사노맹 박기평씨 사형구형/검찰/“정권탈취 위해 국가체제 전복기도”

    서울지검 공안1부 이귀남검사는 19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중앙위원 박기평피고인(33·일명 박노해)에게 국가보안법위반(반국가단체구성·가입등)죄와 현주건조물 방화죄등 5개 죄목을 적용,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날 서울형사지법합의23부(재판장 김동건부장판사)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논고를 통해 『사노맹」사건은 조국의 운명과 발전을 외면하고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힌 피고인들이 정권탈취의 수단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에 따라 국가체제의 전복을 꾀한 사건』이라고 지적하고 『국가의 존립기반을 안정시켜 국가보호」와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안위를 보장하기 위해 피고인을 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켜 마땅하다』고 사형구형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 『피고인은 잘못을 반성하기는 커녕 자신의 행동을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법정을 정치선전장으로 만드는등 개전의 정이 전혀없어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고 덧붙였다. 박피고인은 지난 89년 11월 백태웅씨(29·수배중)등과 함께 무장봉기를 통한 사회주의국가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사노맹」을 결성,폭력혁명을 선동하는 각종 유인물과 책자를 제작·배포하고 학생들을 동원,파출소 방화를 기도한 혐의등으로 구속기소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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