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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 플러스 / 여대생 납치살해 3명 사형 구형

    수원지검 성남지청 형사1부(부장검사 이종환)는 24일 여대생 하모(피살 당시 22세)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윤모(58·여)씨와 윤씨의 조카(41),조카의 고교동창생 김모(40)씨 등 3명에 대해 각각 사형을 구형했다.검찰은 이날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합의1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이 사건은 고모가 친조카를 시켜 사위 여동생 인척을 살해한 전대미문의 사건”이라며 “피고인 윤씨의 경우 사건의 주범인데도 반성없이 살인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응징 차원에서 법정최고형을 구형한다.”고 밝혔다.선고공판은 10월8일 오전 9시45분 열린다.
  • “자카르타 테러 발리와 유사”휴대전화 이용… 발리테러 용의자 사형선고

    인도네시아 경찰은 7일 자카르타 JW 메리어트호텔 폭탄테러와 지난해 발리 테러와의 유사성에 주목,테러조직 알 카에다와 연계된 것으로 알려진 단체인 ‘제마 이슬라미야(JI)’의 범행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중이다. 또 잇단 추가 테러 경고속에 이날 오후(현지시간) 발리 테러 핵심 용의자 암로지(사진·41)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자 경찰은 법원 주변과 자카르타 시내 주요 시설물에 대한 경계를 대폭 강화했다. 에르윈 마파셍 인도네시아 경찰청장은 7일 기자회견에서 호텔 테러현장에서 흑색 화약,염화 칼륨,TNT 등이 발견된 점,테러에 이용된 차량의 차대 번호가 지워진 점,폭탄이 휴대전화에 의해 폭파된 것 등이 지난해 발리 테러와 유사하다고 밝혔다. 경찰은 2주전 테러에 사용된 도요타 밴을 판 사람의 진술을 토대로 용의자 몽타주를 작성,배포하는 한편 폭파 차량 안에서 수거된 용의자의 혈액 등에 대한 DNA검사를 의뢰했다. ●추가테러 우려 경계 강화 덴파사르 특별법원은 이날 오후 202명이 사망한 발리 테러를 계획하고 도운 혐의로 구속돼 사형이 구형된 암로지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혐의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덴파사르 법원 주위에는 이틀전 발생한 자카르타 도심 폭탄테러가 사형선고에 대한 사전 경고 성격을 띤데다 추가 테러 가능성에 대비,500여명의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폈다. ●JI 잔당,조직 재건 마치고 활동 재개 인도네시아와 싱가포르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은 자카르타 시내 호텔 폭탄테러를 계기로 지난해 10월 발리 테러 이후 지하로 숨어들었던 JI가 조직재건을 마치고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한 것 아닌가 우려하고 있다. 발리 테러 이후 인도네시아에서만 JI 조직원 50여명을 포함해 2001년 7월 이후 동남아 지역에서 190여명의 조직원들이 체포됐지만 대부분의 JI 핵심 지도부와 폭탄 전문가들이 건재하고 하부조직 재건을 마쳤다는 첩보가 입수됐기 때문이다. 김균미기자 외신 kmkim@
  • 사회 플러스 / 대구지하철 방화범 무기징역 선고

    사형이 구형됐던 대구지하철 방화참사범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대구지법 제11형사부(부장 이내주)는 6일 대구지하철 방화참사 선고공판에서 1079호 전동차에 불을 질러 330여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대한(56) 피고인에게 현존전차방화치사죄 등을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어 지하철 화재 후 승객대피를 소홀히 한 채 달아난 1080호 기관사 최상열(38) 피고인에 업무상과실 치사상죄를 적용해 금고 5년을,1079호 기관사 최정환(32) 피고인과 운전사령 방정민(45) 피고인에게는 금고 4년을 각각 선고했다.
  • 대구지하철 방화범 사형 구형

    대구지하철 참사 방화범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됐다. 23일 대구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내주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1079호 전동차에 불을 질러 사망 198명,부상 147명의 인명피해를 낸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대한(56) 피고인에게 방화치사죄 등을 적용해 사형을 구형했다. 검찰은 “피고인이 신병을 비관,자살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고 주장하지만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지하철에 대한 이같은 행위는 계획적인 범행이 분명하며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있다.”며 “무고한 시민들을 죽음에 빠트리고 유족들을 평생 고통 속에 몰아넣은 피고인은 법정 최고형으로 다스려 영원히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마땅하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또 승객 대피를 소홀히 한 채 달아난 1080호 기관사 최모(38),1079호 기관사 최모(32) 피고인에게 업무상과실 치사상죄의 최고형인 금고 5년을 구형했다. 이들에 대한 선고공판은 오는 8월6일 오전 10시 대구지법 11호 법정에서 열린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 용의자 총기·저격탄환 일치, 美’스나이퍼’ 범행증거 확보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워싱턴 일대를 공포에 떨게 한 연쇄 저격살인범들에게 사형이 구형될 것 같다.미 앨라배마주 당국 관계자는 25일 이번 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존 앨런 모하메드(41)와 존 리 말보(17) 부자에게 사형을 구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버지니아와 메릴랜드주의 카운티 검사들도 이날 불법무기 소지 혐의로 체포된 이들 부자에 대해 살인죄로 기소하는 문제를 논의한다.한편 미 연방법원은 모하메드에 대한 첫 심리를 열고 보석없이 구금할 것을 명령했다.모하메드는 별다른 말 없이 자신의 불법무기 소지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방 알코올·담배·화기국(ATF)은 이날 탄도실험 결과 이들이 타고 다니던 차량에서 발견된 부시매스터 223 소총이 연쇄저격 살인에 사용된 총임을 확인했다.이 총의 탄도학적 특성이 지금까지 일어난 13건의 저격사건 가운데 8명을 죽게 하고 3명을 다치게 한 11건의 저격사건에 사용된 탄환과 일치한다고 밝혔다. ◆제보 두 건이 결정적 역할 지난 17일 스나이퍼를 자칭한 사람이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와“나는 신이다.도대체 누구를 상대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는 말인가? 몽고메리에서 일어난 사건을 체크해보라.”고 알렸고 이 사람은 다음 날에도 버지니아주 애슐랜드의 한 신부에게 전화를 걸어 좀더 구체적으로 이 사건을 조사해보라는 얘기를 했다. 반신반의하던 경찰은 신부의 제보를 받고 9월21일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카운티에서 일어난 주류판매점 강도살인 사건 때 채취된 말보의 지문을 확인했다.경찰은 말보가 올해 초까지 워싱턴주 타코마시에서 모하메드와 함께 살았고 모하메드가 말보의 어머니와 동거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모하메드가 흰색 밴이 아닌 청색 시보레 차량을 뉴저지주에 등록했고 이웃들에게 ‘워싱턴으로 간다.’고 말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경찰 수사가 급진전됐다. ◆드러나는 범행 증거 용의 차량에서는 M-16을 개조한 반자동 부시매스터 XM-15 소총과 망원경,저격 받침대,화약가루 등이 발견됐다.차량 뒷좌석을 들어올려 트렁크에 누운채 밖을 겨낭할 수 있도록 개조됐으며,총기를 숨기는 칸막이도 발견됐다.그러나말보가 앨라배마에서 사용한 총기는 이번 저격사건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타코마시 집에서 모하메드가 과녁삼아 쏜 나무밑둥까지 증거물로 확보했다.지난 19일 버지니아에서 발견된 스나이퍼의 메모에는 말보의 필체로 추정되는 자메이카 구어체와 유명 밴드의 상징이 포함돼 있어서 경찰은 심증을 굳혔다. ◆범행 동기 무얼까 경찰은 이들이 테러조직에 연루된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군 정비병 출신인 모하메드는 저격훈련을 받지 않았으나 특등사수였던 것으로 기록됐다.1994년 전역한 뒤 이슬람으로 개종,지난해 성을 윌리엄스에서 모하메드로 바꿨다.말보는 자메이카 시민권자로 워싱턴주 벨링햄의 고등학교를 다녔다.당시 입국 비자를 받지 않은 점 때문에 현지 경찰에 조사를 받았다.경찰은 이들이 9·11테러 이후 반미 감정에 동조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mip@
  • 600억대 다단계 사기피해자 30여명 법정난동으로 재판 중단

    다단계 유사수신행위 사기 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600억원대의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법정에서 심한 소란을 피우며 피고인측 변호사를 위협해 재판이 중단되는 소동이 벌어졌다.이들은 최근 1심 재판부도 찾아가 선고 형량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며 집단행동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1심 재판부가 구형량대로 10년형을 선고했지만 다시 항소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13일 오전 서울지법 418호 법정에서 형사항소8부(부장 金建鎰) 심리로 열린 유사수신행위 사기 공판에서 재판을 방청하던 피해자 30여명이 피고인 이모씨에 대한 변호인 신문 도중 “함께 죽자.”며 피고인을 향해 뛰쳐나가 법정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이들은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한다는 각서를 쓰기 전에는 물러날 수 없다.”면서 법정 바닥에 드러눕거나 제지하는 경찰 및 경비원 40여명과 깨물며 몸싸움을 벌였다.피고인측 국선변호사에게도 행패를 부리는 등 소란은 1시간여 동안 이어졌다.이 때문에 뒤이어 열릴 예정이던 다른 재판 일정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그러나 재판부는피고인들이 대규모 사기를 당한 피해자이고 부녀자인 점을 감안,감치명령은 내리지 않았다.재판을 속개하기 위해 법정에 들어선 재판부는 “피고인도 자신을 변론할 권리가 헌법에 있는 만큼 소란이 계속되면 엄중한 조치와 함께 방청을 불허하겠다.”고 경고했지만 소란이 계속되자 재판을 연기했다.피해자들은 “연 264%의 배당금을 내걸고 1만 7000여명으로부터 600억원 이상을 가로챈 사기꾼이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99년 5월 결성된 ‘재테크뱅크’는 부산·경남 일대에서 피라미드식 영업으로 투자자를 끌어모아 모두 600억원대를 갈취했으며,대표는 해외로 도주한 것으로 드러났다.검찰은 회사 상무로 피해수습대책위원회 대표를 맡은 피고인 이씨에 대해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해 말 기소했다.‘재테크뱅크’는 부도를 낸 뒤에도 사태수습을 위해 마련된 대책위원회와 배당급 지급을 약속하며 새로 설립한 우량투자개발로 이름을 바꿔가며 3차례나 투자자들을 속여 원성을 샀다. 검찰은 1심에서 이 피고인에게 사기죄의 법정최고형인 징역 10년형을 구형했고 1심 재판부도 징역 10년을 선고했지만 피해자들의 강력한 요구로 검찰은 다른 사건과 병합해 10년 이상의 형을 구형하기 위해 항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중산층 복지향상 온힘”健保재정 안정책 추진

    이태복(李泰馥) 신임 보건복지부장관은 29일 “복지행정은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만큼 관련단체들의 의견을 수렴,대화를 통해 민주적으로 풀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역점을 둘 분야는 무엇인가. 기초생활보장제 시행으로 극빈층 복지 증진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으나 중산층 서민복지는 아직 취약한 상태다.상대적으로 열악한 중산층 서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 ◆건강보험 제도에 대한 대책은. 건강보험 재정안정 대책을강력히 추진하겠다.또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대비,이질 등전염성 질병 관리와 사회복지 내실화에도 힘을 쏟겠다. ◆보험료,의료수가 논란 등을 해결할 복안은 있나. 의약계와 보건의료 전반에 관한 통계를 공유함으로써 한가지 사안에대해 상이한 시각을 갖지 않도록 하겠다. 이 장관은 평생을 노동운동에 헌신해온 노동문제 전문가.81년 6월 민노련 사건으로 구속돼 사형을 구형받았으나 김수환(金壽煥) 추기경 등의 석방 노력 덕분에 88년 12월 특별사면됐다.출소 후 주간 노동자신문에 이어 99년 노동일보를 창간했다.부인은 노동신문 편집인인 심복자(45)씨. 오풍연기자
  • 美탈레반전사 ‘囚衣還鄕’

    미국인 탈레반 전사 존 워커 리드가 24일 미국 법정에 첫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푸른색 죄수복을 입고 버지니아 법정에 출두한 워커는 혐의사실 확인과 앞으로의 절차 등에 관한 판사의 질문에 공손히 대답, 첫 심리를 무사히 마쳤다. 앞서 23일 오후 워커는 군용기편으로 자신이 태어난 워싱턴의 덜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연방요원의 삼엄한 경비 속에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 감옥으로 직행했다. 9·11 테러공격 혐의로 유일하게 기소된 자카리아스 무사위가 수감된 곳이기도 하다. 다른 탈레반 전사들이 쿠바 해군 기지에 수감된 것과 달리 미 시민권자인 워커는 버지니아 법정에 서게 됐다. 워커의 손발은 수갑과 족쇄로 채워졌으며, 탈레반 전사의 상징인 더부룩한 턱수염과 산발한 머리카락은 한 올도 남기지 않고 깎였다. 워커에 대한 혐의는 해외에서의 미국인 살인공모로 종신형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부 장관은 “조사 결과 반역죄가 추가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법무부는 사형을 구형할 예정이다. 연방수사국(FBI)은 워커가 묵비권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워커의 부모들은 변호사접근이 허용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으나 법무부는 이를 무시했다. FBI의 조사에 따르면 워커는 이슬람교와 아랍어를 공부하기 위해 1998년 중동으로 갔으며 지난해 5월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 훈련캠프에 합류했다. 6월에는 알 카에다 훈련캠프를 거쳐 그가 체포된 아프가니스탄 북부지역의 탈레반 전사로 배치됐다. 한편 워커는 이란 콘트라 사건을 수사했던 제임스 브로스나한 등 4명의 전직 연방검사들의 변호를 받으며, 법무부는 이중 스파이 로버트 핸슨의 수사를 맡았던 랜디 벨로우스 등 최고 검찰팀을 구성해 법정 대결도 관심을 끌고 있다.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mip@
  • 美탈레반전사 사형 면해

    ‘미국인 탈레반 전사’ 존 워커 (20)가 사형을 면하게 됐 다.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은 워커를 미국 시민을 살해하기위해 공모한 혐의로 기소하며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에서 재판을 받는다고 15일(현지시간) 밝혔다. 애슈크로프트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워커가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 연방지방법원에 기소되며 따라서 최고 구형량도 종신형에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워커는 살해공모 혐의 외에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지원하고,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불법적인 거래에 가담한 혐의도 받고 있다. 애슈크로프트 장관은 “테러범이 미국 시민인 경우에도 미국에 대한 공격 혐의를 간과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기소내용은 대부분 워커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박상숙기자 alex@
  • 정인봉의원 비방기사 게재 J저널 대표에 실형 선고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金庸憲)는 7일 지난해 4·13 총선 때 한나라당 정인봉(鄭寅鳳·당시 후보) 의원을 비방한 기사를 게재한 J저널 대표 이모 피고인(42)에게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 위반죄를 적용,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 후보가 지난 80년 군검찰로서김대중 내란음모사건을 맡아 김대중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거나 이후 변호사로 개업한 뒤 재소자에게 히로뽕을 건넸다는 등의 거짓 기사를 작성,배포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 ‘박정희館’ 반대 1인시위

    ‘박정희기념관 반대 국민연대’(대표 이관복)는 29일 시인 김지하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작가 4명이 30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서울시청 앞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인다고 밝혔다. 문인의 시위는 97년 1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 반대 가두시위 이후 4년 만이다. 30일에는 ‘순이삼촌’,‘지상에 숟가락 하나’ 등을 쓴소설가 현기영씨,다음달 2일에는 ‘절반의 실패’ 등을 쓴 여류 소설가 이경자씨,3일에는 77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옥고를 치른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의 소설가 김영현씨,마지막날인 4일에는 74년 민청학련 사건과 당시 시대상을 풍자했던 ‘오적’의 필화사건 등으로 사형을 구형받고 8년간 옥고를 치른 김지하 시인이 참여한다. 안동환기자 sunstory@
  • 7월의 독립운동가 김한종 선생

    국가보훈처는 30일 항일의병으로 활약하고 비밀결사조직인 대한광복회에서의열독립투쟁을 전개한 일우(一宇) 김한종(金漢鍾·1883∼1921) 선생을 광복회 등 유관기관과 공동으로 ‘7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1883년 충남예산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난 선생은 충남 홍주성을 탈환하기 위해 의병으로참여했고 경술국치이후 충청지역 동지들을 모아 부여를 방문하는 조선총독암살계획을 모의했다. 선생은 1917년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정치로 의열투쟁이 여의치 않자 비밀결사체인 대한광복회에 가입,충청도지부장을 맡아 조직 확대,군자금 모금,악덕지주 및 친일부호배 처단 등 ‘독립전쟁 준비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이듬해 1월 대한광복회 조직이 적발되면서 충청도지부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체포돼 1919년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1921년 7월28일 38세의 젊은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옛애인 막판 진술번복 20代 사형선고 모면

    “강간을 당했다는 진술은 거짓말이었습니다.그런 상황에서 계속 (같이)잤다고 하자니…” 박모씨(28)는 지난해 12월5일 오전 2시30분쯤 옛 애인인 신모씨(25·여)의셋방을 찾아가 문을 열어줄 것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흉기를 들고 다시 찾아가 신씨와 자고 있던 새 남자친구를 살해하고 신씨를 두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사형을 구형받았다. 그러나 서울지법 동부지원 형사1부(재판장 金熙泰 부장판사)는 박씨의 범행뒤 잠들었다가 평소처럼 어머니가 자신을 깨우기 위해 방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일어나 경찰에 신고했다는 신씨의 진술에 의문을 가졌다. “남자 친구가 죽고 자신은 강간당했는데 아무런 조치없이 다시 잠들 수 있을까?” 또 흉기는 남자 친구의 몸에 박혀 손잡이만 남아 있는 것으로 되어있는데도 박씨가 흉기를 자신의 목에 들이대 위협했다는 진술도 맘에 걸렸다.재판부는 선고 공판을 한차례 연기해 가며 신씨를 다시 불러 박씨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음을 알린 뒤 “성폭행 당한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다.4∼5분 동안 망설이던신씨는 결국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어머니도 “딸이거짓말을 했다며 괴로워했다”고 털어놨다. 재판부는 2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박씨에 대한 강간 혐의는 취하됐고 살인을 자백하고 있는 정상이 있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택하는 것은 너무 과중하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전영우기자 ywchun@
  • 5월의 독립운동가 양진여 선생

    국가보훈처는 30일 구한말 전남 광주,담양,장성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한 서암(瑞菴) 양진여(梁振汝·1862∼1910)선생을 5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전남 광산군 서창면 벽진리에서 태어난 선생은 1907년 일제의 만행과 봉건정부의 부패에 분개해 담양군 대치산에서 의병을 일으켰다.선생은 이듬해 10월 광주 송정읍에서 일본군 의병토벌대 수백명을 격퇴했고 11월에는 전해산·강판열 의병부대 등과 연합,일본군 광주수비대를 대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선생은 아들 양상기와 함께 부자 의병장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선생은 1909년 8월 일본 군경에 붙잡혀 이듬해 경성고등법원에서 사형을 확정받은 뒤 그해 5월30일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했다.선생은 “이 한목숨은 아깝지 않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죽으니 유감”이라는 유언을 남겼다.정부는지난 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노주석기자 joo@
  • 4·13총선 D-9/ 여야,낙선명단 반응·대책

    여야 정당은 ‘2호 태풍’인 ‘총선연대 낙선대상자 명단’이 발표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1호 태풍’인 ‘후보자병역·납세 공개’의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시소게임을 벌이는 후보들,특히 수도권 지역 출마 후보들에게는 치명타를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해당자가 적은 점을 들어 야당에 대한 공세를강화했다.한나라당은 애써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자민련은 불법이라며 강력한 단속을 촉구했으며,민국당은 총선연대 발표로 양강구도의 총선판도가달라질 것을 기대했다. ◆민주당 김한길 선대위 공동대변인은 3일 “총선연대가 후보들에 대해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의견을 제시한 것을 긍정 평가하고,관심있게 경청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그러나 김공동대변인은 “낙선운동은 실정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위기를 맞은 후보에 대해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종로의 이종찬(李鍾贊)후보가 대상자 명단에 포함되자 경쟁후보의 약점을 공격하며,구원에 나섰다. 김공동대변인은 “한나라당 J모 후보가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한 계엄본부 군법회의 검찰관이었으며,지난 96년 ‘구치소 필로폰 파티 사건’ 때 구치소 미결수들에게 필로폰을 전달한 변호사였다”는 당시 ‘언론 보도’를 상기시켰다. ◆한나라당 장광근(張光根)선대위 대변인은 “우리당 소속 대상자들을 전부검토해본 결과 이미 소명이 다 된 것으로 밝혀졌다”고 총선시민연대 발표를 무시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러나 “민주당 소속 대상자들 중에는 민주질서 파괴자와 교육 유린 장본인이 빠졌다”며 공세적 자세도 취했다. ◆지난번 낙천 대상자 명단발표에 ‘음모론’을 강력히 제기했던 자민련은이번에도 선관위의 강력한 단속 및 엄정한 법집행을 촉구했다. 이규양(李圭陽) 선대위 수석부대변인은 “총선연대의 낙선운동은 명백한 현행법 위반”이라고 역설했다. ◆민국당 김철(金哲) 대변인은 “시민연대의 정치권 정화를 위한 고심은 인정하나 병역·납세 의혹 대상자 중 상당수가 누락되는 등형평성에 다소 문제가 있다”며 양비론을 폈다.그러나 김대변인은 “정치를 혼탁시킨 주범인민주당,한나라당 후보들이 다수 포함된 것은 당연하다”며 기세를 올렸다. 강동형기자 yunbin@. *당사자 해명등 표정 .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 대상자로 선정된 여야 후보들은 일제히 ‘시민단체가 너무 나선다’며 반발하고 나섰다.선거에 미칠 파장을 걱정하며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대응 방법을 놓고 여야 후보들은 엇갈렸다.민주당 후보들은 ‘무대응’입장이 많았고 야당후보들은 법적 대응 등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일부 후보들은 ‘정치적 배후’를 의심하며 공세를 폈다. ◆민주당 후보들은 비교적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김봉호(金琫鎬·해남 진도)의원측은 “매를 맞을 만큼 맞았고 검증받을 만큼 받았다”고 밝혔다.한영애(韓英愛·화순 보성)의원측은 “야당이 대통령과 그 가족에 대한 폭로공세를 하는 데 대해 이를 막기 위해 목소리를 높인것이 잘못이냐”며 오히려 ‘충성심’을 강조했다.이종찬(李鍾贊·서울 종로)후보측은 “국보위 참여를 헌정질서 중단 운운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펄쩍 뛰었다.이성호(李聖浩·경기남양주)의원측은 “비리에 연루됐다면 4선의원의 재산이 1억3,000만원밖에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한나라당 후보들은 대부분 반발강도가 높았다. 이사철(李思哲·부천 원미을)의원은 “김대중(金大中)정권은 시민단체라는끄나풀을 이용하고 있다”며 “총선연대가 지역에서 불법낙선운동을 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흥분했다.김중위(金重緯·서울 강동을)의원은“민주당후보 당선을 위한 것”이라며 “총선연대 지도부 인사들을 상대로 30억원의 명예훼손 소송도 준비중”이라고 밝혔다.정형근(鄭亨根·부산 북강서갑)의원은 “낙선자 발표는 총선승리를 위한 현 정권의 전략이고 흐름”이라고 정치적 배후를 의심했다.하순봉(河舜鳳·진주)의원도 “총선연대는 정권의 공작적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정치적 의도’를 주장했다. ◆자민련도 법적 대응을 검토하는 등 강도높게 반발하고 나섰다. 박철언(朴哲彦·대구 수성갑)의원은 “문민정부 때 정치보복으로 억울하게투옥됐다”고 주장했다.한영수(韓英洙·충남 서산태안)의원은 “국방위 방청거부는 위원들의 결의로 한 것”이라며 “선거 후 법적 대응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주장했다.백남치(白南治·서울 노원갑)의원은 “어차피 낙천자명단에 넣었을 때부터 예정돼 있었던 것 아니냐”며 문제될 것 없다는 입장이다.최환(崔桓·대전 대덕)후보는 “나같은 우익 성향의 인사가 국회에 들어오는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면서 “법적인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흥분했다. ◆민국당 후보들도 “표적사정에 의한 사건을 문제삼는 것은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김윤환(金潤煥·구미)후보측은 “문제되는 부분이 과거 표적사정 때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다”고 밝혔다.김광일(金光一·부산서)후보측은 “이곳 유권자들에겐 오히려 탄압받는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고 주장했다.허화평(許和平·경북 포항북)후보측도 “15대 총선 때 옥중 당선돼 이미 면죄부를 받았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밖에 한국신당 이상만(李相晩·충남 아산)후보는 “영문을 모르겠다”면서 “야당탄압”이라고 몰아붙였다.무소속 서석재(徐錫宰·부산 사하갑)의원은 “14·15대 선거에서 당선됨으로써 이미 유권자의 심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홍문종(洪文鍾·의정부)의원은 “일상적인 선거운동 과정을 선거법위반으로 고발했던 것 자체가 구태”라고 역공을 폈다. 최광숙기자 bori@
  • 샤리프 前총리 사형 구형

    파키스탄 검찰은 20일 군부 쿠데타로 실각한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에 대한비행기 납치 등에 관한 형사재판에서 사형을 구형했다. 라자 쿠레쉬 수석 검사는 이날 카라치 반(反)테러 법정에서 “법원은 피고인에게 법정 최고형을 선고해야 한다”고 말했다.비행기 납치는 종신형이나사형에 처해지며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다. 샤리프 전 총리와 그의 동생 샤바즈씨를 비롯한 7명은 비행기와 승객 납치,살인 기도,테러리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그러나 이들은 모두 혐의사실을부인하고 있다.이들은 비행기납치 혐의가 유죄로 인정될 경우 사형에 처해질수도 있다. 카라치 AP AFP 연합
  • 신창원 22년6월형 추가 선고

    무기징역이 선고돼 복역중인 탈옥수 신창원(申昌源·33)에게 추가로 징역 22년 6월이 선고됐다. 부산지법 제2형사부(柳秀烈부장판사)는 18일 특수강도강간죄 등 15개 죄목으로 기소돼 사형이 구형된 신 피고인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13개 죄목을 적용,징역 22년6월을 선고했다.특수강도강간죄 등 2개 죄목에 대해서는 무죄를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탈옥 후 전국을 무대로 100차례가 넘는 절도 및 강도 행각을 벌이고 파출소에 침입해 무기 탈취를 기도하는 등 범행의 치밀성이나 대담성을 감안해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나 도피과정에서 경찰관을 다치게 한 것 외에는 타인을 살해하거나 상해를 입히지 않은 점을 참작해 극형인사형이나 무기징역형을 배제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양형은 신 피고인이 지난 97년 1월 20일 부산교도소를 탈옥한 이후2년6개월동안 전국을 무대로 저지른 범행에 한해 적용된 것이다. 신 피고인은 교도소 탈주 이전인 89년 강도치사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상태이기 때문에 이번 선고와는 관계없이 무기징역형이 유지된다. 한편 검찰은 재판부의 판결에 불복,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탈주범 신창원 사형 구형

    특수 강도·강간 등 15개 죄목으로 기소된 부산교도소 탈주범 신창원(申昌源·33)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구형됐다. 부산지검 강력부 신은철(申殷澈)검사는 24일 부산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柳秀烈부장판사)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신은 교도소를 탈옥한 뒤 붙잡힐때까지 2년6개월간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범법행위가 흉악하다”고 밝히고“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사회와 영원히 격리함이 마땅하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한편 이날 신은 최후진술에서 “나는 의적도 아니고 죽어 마땅하며 동정받을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말한 뒤 1시간 이상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선고공판은 오는 2월18일 오전 9시30분에 열린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
  • [의열 독립투쟁](17)박재혁 의사

    1910년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민족지도자들은 중국 상해와 남·북만주,노령(露領)의 연해주,미주 등 해외로 이주 혹은 망명하여 조국광복을 위한독립투쟁의 기반을 다져 나갔다.이들은 자신들이 근거한 지역의 특성과 평소 신조에 따라 외교·의열투쟁·무장투쟁 등 다양한 형태의 독립운동 방략을모색,전개하였다. 이 가운데 의열투쟁은 일제의 침략기관이나 총독부의 일본인 고관,혹은 친일파에 대해 폭탄·총기 등으로 파괴와 암살을 통해 응징한 것으로 의열투쟁은 그 규모나 성패 여부를 떠나 독립운동 선상에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이는 의열투쟁을 통해 잔혹한 일제 식민지 통치에 대한 전체 한민족의 항일의지의 표출임과 동시에 일제 관리 및 친일 주구배 등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시키는 엄청난 효과를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1919년 11월 결성된 의열단(단장 김원봉)은 결성 직후 일제의 침략기관 파괴와 일본인 요인·친일주구배 처단을 위한 거사에 착수하였다.1920년 4월중순부터 진행된 제1차 암살파괴계획이 그것이다.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직전에 일제의 정보망에 노출돼 거사를 며칠 앞둔 6월 하순 관련자 20여명이검거되면서 실패하고 말았다.이로부터 3개월 뒤에 발생한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파의거’는 의열단에서 추진한 거사 가운데 최초로 성공한 거사였다. 박재혁(朴載赫·1895∼1921) 의사는 1895년 부산 범일동에서 태어났다.부산진보통학교와 부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1916년 부산가스전기회사의 전차 종업원을 거쳐 한때 경상북도 왜관 소재 무역상점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1917년 6월에는 무역상 주인에게 부탁하여 700여원을 얻어 가지고 상해로 건너가 무역업에 종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큰 돈을 벌지 못한 채 1918년 6월 귀국한 박 의사는 3·1의거 직후다시 상해를 거쳐 싱가포르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박 의사는 남양무역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독립지사들과 교류를 시작하였다.1920년 3월 일시 귀국한 박 의사는 7월 의열단장 김원봉(金元鳳)으로부터 입단 권유를 받았다.그러나 당시 박 의사는 가정형편과 외아들인 자신만을 바라보고 노년을지내고 있던 노모 때문에 고민하다가 끝내 김원봉의 권유를 거절하였다.그러나 8월 김원봉으로부터 재차 입단권유를 받자 박 의사는 결국 입단을 수락하였다. 1920년 8월 상해로 건너간 박 의사는 김원봉으로부터 부산경찰서를 파괴하라는 밀명과 함께 거사자금 300원,폭탄 1개를 전달받았다.박 의사는 폭탄과거사자금을 중국 고서적으로 위장한채 일본의 나가사키(長崎)를 거쳐 9월 6일 부산으로 밀반입하는데 성공하였다. 나가사키를 떠나기 직전 박 의사가 상해의 동지들에게 보낸 엽서(1920년 9월 4일자)에는 상황(商況),상로(商路),수익 등의 용어가 보이는데 이는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일종의 암호였다.그리고 ‘다른 길이 있는데,이익이 전에 비해 좋다’는 글은 나가사키에서 시모노세키(下關)를 거쳐 부산으로 가려고 했던 당초의 계획을 변경,나가사키에서 대마도를 거쳐 부산으로 가겠다는 내용을 알린 것이다.그러나 이 엽서에서 ‘많은 이익을 볼 수있으나 다시는 동지들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구절은 박 의사가부산경찰서 폭파의거를결행하면서 이미 죽음을 각오했음을 보여준 대목이라고 하겠다. 한편 부산에 도착한 박 의사는 먼저 부산상업학교 동창인 최천택(崔天澤)과 김영주(金永柱·부산진상업학교,25세),오재영(吳載泳·부산상업학교 중퇴,25세)등을 만나 자신의 임무에 대해 의논을 나누고 이들의 도움을 요청하였다.최천택 등의 도움을 받아 박 의사는 곧 거사를 준비하였다.마침내 9월 14일 오후 2시경 중국인 고서적상인으로 변장한 박 의사는 고서적 보따리로 위장한 폭탄을 짊어지고 부산경찰서장 하시모토를 찾아갔다. 서장실에서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하시모토에게 고서적을 구경시켜 주고 있던 박 의사는 고서적에 정신이 팔려 있던 하시모토에게 의열단의 전단,즉 하시모토를 처단해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적은 전단을 내보임과 동시에고서적 보따리에 감춘 폭탄을 터뜨렸다.순간 굉음과 함께 하시모토와 그의옆에 서있던 일경 두 명이 부상을 입고 쓰러 졌다.하시모토는 중상을 입고병원으로 긴급히 호송되었으나 이송중 절명하였다.인명피해는 물론 경찰서건물 역시 대파되었다. 박 의사는 폭탄을 터뜨린 직후 혼란을 틈타 탈출하려 하였으나 불행히도 부상을 입어 현장에서 체포되었다.박 의사는 응급치료만 받은 채 구금돼 온갖고문과 심문에 시달리며 재판을 받았다.부산지방법원은 폭발물단속벌칙위반및 살인미수 등의 죄목을 들어 박 의사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대구복심법원에서는 1921년 2월 박 의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였다.그러나 경성고등법원에서 최종 사형이 확정되었다.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채 일제의 계속된 잔악한 고문에 시달리던 박 의사는의거 당시의 부상이 채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폐결핵까지 겹치게 되자,‘왜놈들에게 이런 치욕스러운 수모를 당하며 구차한 목숨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자’고 결심하고는 단식을 계속하였다.일제의 집요한 회유에도 끝내 굴하지 않고 단식을 계속하던 박 의사는 결국 1921년 5월 11일옥중에서 최후를 맞이하였다.그때 박 의사의 나이 27세였다. 1962년 정부는 박 의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추서하였다. [조범래 독립기념관 연구원] ** 박재혁 의사, 유족 근황과 기념사업 27세로 순국한 박재혁 의사는 1남1녀를 두었는데 두 자녀 역시 모두 작고했다.장남 기동(基東·76년 작고)씨는 부산 부평동에서 상업을 하다가 30여년전 상경,말년에는 서울서 거주하였는데 생활은 그리 어려운 형편은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기동씨의 장남 정평(正平·52)씨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현재 서울 미아3동 소재 신일중학교 경비원으로 21년째 근무하고 있다.정평씨는 1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 무석(務石·32)씨는 상업을 하고 있다. 박 의사의 기념사업은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박 의사 장녀의 후손들이 중심이 돼 의거현장인 부산서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박의사기념사업회는 지난해 롯데그룹과 3·1운동동지회측의 지원을 받아 부산 연지동 소재 성지곡수원지 내에 동상을 건립한 바 있다.박 의사의 묘소는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애국지사 묘역(78번)에 있다. 장손 정평씨에 따르면 박 의사의 유품은 별로 전해오는 것은 없고 사진 한두장이 전부라고 한다.이는 박 의사가 독립투쟁에 참여한지 얼마 안돼 일경에 체포돼 감옥살이를 시작했고 또 옥중에서 순국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운현기자 jwh59@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45)노동시인 박노해

    1991년 8월19일 오후 3시,“박노해,그를 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 시키기위해 사형을 구형합니다”라는 검사의 구형 앞에서 방청석은 흐느낌이 번졌다.그러나 시인은 당당하게,그러나 서정성 넘치는 최후 진술을 해냈는데,이진술은 트로츠키를 연상할 만큼 감동적이다. “사형!사형입니까?이것이 노동자에 대한 당신들의 대답입니까?서러운 기름밥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인간다운 삶을 갈구해 온 한 노동자를 기어코사형 시켜야 되겠단 말입니까?결국 이 나라의 노동자에게는 두 개의 죽음 중 한가지를 선택할 자유밖에 없단 말입니까?임금 노예냐,사형이냐?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죽어가거나 아니면 당신들 손에 죽임을당하는 겁니까?지금까지 당신들은 이 나라 천만 노동자에게 폭력과 구속으로 대답해 왔습니다.박정희 정권은 나에게 폭행과 해고를 밥먹듯 자행했고,전두환 정권은 나를 수배자로 내몰았고,노태우 정권은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무려 24일간,576시간에 걸쳐 밤낮으로 고문하여 이 법정에 세우기까지,오로지 정치 보복과 정치 살인만을 준비해온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노동자가,박노해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당신들은 지금 이성을 잃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다 죽어 간다는 사회주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나는 사형을 결정한 당신들을 진심으로 동정합니다.가련한 것은 사형을 받은 내가 아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들입니다.얼마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부실하고 부도덕한 정권이기에 한 노동자의 진실한 주장 앞에서 이토록 두려움에 떨어야 한단 말입니까.…우리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반드시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그러나 나에게 무죄를선고하는 것은 기적일 겁니다.참 어려울 것입니다.무죄라고 판정하기가 두렵거든 적어도 앞으로 10년 뒤에,2000년 1월1일,‘그때 우리 판결은 부끄럽지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살아 있으라,살아 있으라’)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법정은 박수가 터졌는데,시인은 “무기 징역형을 축하 받아야 하는 슬픈 나라,슬픈 시대”라며,“그래도 산다는건 소중한 것이다”고 고해한다.그리곤 “1992년 4월,봄비가 차갑게 내리던 날”그는경주 교도소로 이감되어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그의 최후진술이 예견했던 10년보다 3년이나 빠른 역사의 일대 변혁이었다. 변한 건 역사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이글거리던 반역의 눈빛,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혁명가의 얼굴은 어디로 갔느냐?마치 세속을떠난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인다”(‘오늘은 다르게’)는 그의 외모만 변한게 아니라 내면까지도 변했다.“당신은 아직도 사회주의자인가?”란 물음 앞에 그는 “예!” “아니오!”라고 답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축약해 풀이해 준다.박시인에 따르면 사회주의에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첫째는 ‘체제로서의사회주의’인데,“나는 이러한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반대한다”고 단언한다.둘째는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있는데,“그 방법론은 생산 수단의국유화와 계획 경제,프롤레타리아 독재,집단주의,민중항쟁노선으로 귀결됨으로써 위함한 독소를 내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마지막 셋째 ‘가치로서의사회주의’는 “인류의 소중한 가치로 계승해야 할 요소”로 긍정한다면서,위의 두가지는 부정하고 마지막 한가지만 긍정하기에 그 대답은 ‘예’와 ‘아니오’의 갈림길이라고 밝혔다(‘흑과 백 사이에서’). 어떤 연유건 박노해의 역정은 노동시인에서 혁명가를 거쳐 이제 3단계인 지식인 시인이 된 셈이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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