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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공화국과 張勉]- (9) 신구파 대립과 分黨(상)/비교

    李承晩독재체제에 맞선 통합야당 민주당은 1955년 9월19일 탄생한다.이날서울 태평로 시공관은 하루종일 민주주의를 희구하는 열기로 들끓었다.전국에서 모여든 민주당 대의원 2,000여명이 오전에는 발기인대회를,오후에는 창당대회를 잇달아 열었다.오전 대회에서 鄭一亨의 경과보고에 이어 張勉의 인사말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대한민국을 구하고 우리의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우리는 일체의 독재를 배격한다고 정강의 서두에 내걸었습니다.우리는 진실한 민주주의를 살려나가기 위해 공정한 선거와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오후의 창당대회에서는 申翼熙가 민주당 출범의 의의를 밝히는 인사말을 했고 朴順天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우리는 민주세력의 집결 강화만이 국정쇄신의 방도임을 확신한다”고 선언문을 읽어내려갔다. 창당대회 다음날 민주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최고위원 선거에 들어갔다.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 申翼熙는 234표를 얻어 49표에 그친 張勉을 누르고 선출됐다.이어 연기명으로 실시한 최고위원 투표 결과 趙炳玉(282표)·張勉(278표)·郭尙勳(262표)·白南薰(111표)이 뽑혔다. 이들 가운데 제헌의회 의장을 지낸 申翼熙,내무장관을 역임한 趙炳玉,민국당 최고위원 출신인 白南薰은 구파였고 총리를 지낸 張勉,국회부의장인 郭尙勳은 신파였다.이밖에 중앙상무위 의장은 成元慶(신파)이 맡았다. 집행기구 16부 부장은 尹潽善(원내총무격인 의원부장)·柳珍山(노동부장)·鄭一亨(섭외부장)·玄錫虎(조직부장) 등으로 구성됐다.구파는 대표최고위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세 자리와 부장 7석,신파는 최고위원 두 자리에 상무위의장과 부장 9석을 차지해 신·구파는 처음부터 팽팽한 균형을 이루며 출발했다. 민주당 창당후 처음 맞은 큰 이슈는 다음해 치르는 제3대 정·부통령 후보를 뽑는 일이었다.당시 민주당에서 대통령후보로 거론될 만한 인물은 申翼熙·趙炳玉·張勉 세 사람 정도였지만 대세는 申翼熙에게 기울어 있었다.초점은 부통령후보였다.신파는 張勉을 대통령후보로 민다고 공표했으나 내심은부통령후보를 노리고 있었다.구파는 구파대로 ‘대통령후보 申翼熙’를 기정사실로하는 한편 趙炳玉을 부통령후보로 세우려고 물밑작업을 벌였다. 이 문제는 郭尙勳이 적극 나서 해결됐다.郭尙勳은 趙炳玉을 찾아가 “이번에는 당신이 양보합시다.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해공(申翼熙)이 적격이니 그를 시켜야 할 것이 아니오? 차후에 입후보하면 내가 적극 지원하겠오”라고설득한다(郭尙勳 회고록에서). 이에 趙炳玉은 “운석(張勉)이 대통령후보 경쟁에 나서지 않도록 책임져라”라는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전당대회에서 申翼熙·張勉을 정·부통령 후보로 뽑은 민주당은 신·구파 구분없이 힘을 합쳐 선거운동에 매진한다. 56년 정·부통령 선거는 민주당이 李承晩정권을 누르고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이룩할 절호의 기회였다.52년의 ‘발췌 개헌’과 56년의 ‘사사오입 개헌’으로 이어진 李承晩의 영구집권 음모와 자유당의 폭정(暴政)에 이미 많은국민이 염증을 느끼는 상태였다.게다가 申翼熙·張勉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민주당이 내건 선거구호 ‘못살겠다 갈아보자’도 돌풍을 몰고 왔다. 56년 5월2일 한강백사장에서 열린 유세에는 당시로서는 짐작도 못할 30만∼40만 인파가 몰려들었다.그러나 민주당의 손에 들어온 듯하던 대통령 자리는한강백사장 유세 3일 후에 그만 손아귀를 빠져나간다.호남 유세에 나선 申翼熙가 5월5일 열차칸에서 급서한 것이다. 대통령후보 부재에도 불구하고 張勉은 李起鵬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된다. 이로써 민주당은 창당 9개월 만에 수권 능력을 가진 야당으로서 당당히 자리잡는다.이같은 자리매김은 58년의 제4대 국회의원 선거로 연결돼 민주당은 78석을 확보한다.창당 때의 33석에 비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민주당 위상 강화와 비례해 신·구파 대립도 점차 심해져 갔다.첫 충돌은정·부통령선거 직후에 찾아왔다.56년 7월 金度演·金俊淵·蘇宣奎 등 구파중앙위원 60여명이 연명(連名)해 최고위원 불신임안을 제출한다.이에 최고위원 전원이 사표를 내고 후임자 선출을 논의하게 된다. 신파는 “국민에게서 압도적 지지를 받은 張勉부통령이 당연히 대표최고위원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구파는 표대결을 요구한다.투표 결과 대표최고위원에는 趙炳玉이,최고위원에는 郭尙勳·張勉·金俊淵·金度演이 뽑힌다. 일부에서 분당을 거론할 정도로 사태가 악화된 끝에 신·구 양파는 다음해부터 대표 및 최고위원을 중앙상무위가 아닌 전당대회에서 선출한다는 등 몇 가지에 타협하고 수습한다.이후 구파는 부통령인 張勉에게 당의 주도권을빼앗길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그를 더욱 견제하게 됐고,신파는 張勉을 중심으로 더욱 똘똘 뭉치게 됐다. 59년 11월 전당대회에서 신·구파는 다시 한번 격돌한다.60년 정·부통령선거에 나갈 대통령후보 지명전에서 趙炳玉은 483대480 단 3표차로 張勉에게 신승한다.다음날 대표최고위원 투표에서는 거꾸로 張勉이 趙炳玉을 70여표차로 물리친다.최고위원에는 郭尙勳·白南薰·尹潽善·朴順天이 올랐다. 이 전당대회는 신·구파 사이에 메우기 힘든 골을 파놓았다.대회를 몇달 앞두고부터 양쪽의 경쟁은 한계를 넘어서 각종 추태가 난무했다. 趙炳玉이 대통령이 돼서는 안된다고 인신공격한 ‘결격사유 10개조’라는 괴문서가 전국 지구당에 배포되는가 하면,경남도당대회가신·구파 당원 간의난투극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신·구파의 격한 대립 속에서도 민주당은 趙炳玉대통령후보,張勉부통령후보 겸 당 대표최고위원 체제로 1960년을 맞는다.56년 申翼熙의 급서로 이루지못한 정권교체의 꿈을 이번에는 꼭 이룬다는 각오와 함께였다. 李容遠 - 신구파 내력과 특징 비교 민주당(民主黨)창당은 자유당의 ‘사사오입’개헌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자유당(自由黨)은 ‘초대 대통령에 한해 중임(重任)제한을 철폐’하는 내용의 제5차 개헌안을 마련한다. 李承晩에게 영구집권의 길을 터주려는 이 개헌안은 1954년 11월27일 국회에서 찬성 135,반대 60표로 부결된다.그러나 이틀뒤 자유당은 수학의 ‘사사오입’규정을 적용하면 개헌 정족수를 통과한 것이라는 궤변으로 헌법개정을공포한다. 이후 열달동안 반(反)李承晩세력은 통합야당 결성에 노력한다.한민당(韓民黨)의 후신인 민주국민당(민국당,民國黨)과 무소속 의원들은 호헌동지회를 결성해 원내교섭단체로 등록한다.여기에는 자유당을 뛰쳐나온 ‘탈당파’의원12명도 가세한다. 당시야당으로서는 민국당이 가장 컸지만 원내의석이 15석에 불과해 다른 야당 세력을 흡수,통합하지는 못했다.따라서 민국당의 발전적 해체를 전제로 55년 12월 신당촉진위원회가 구성된다. 그러나 신당추진 세력은 곧 의견대립에 부딪친다.민국당의 申翼熙 趙炳玉과재야의 張勉 등 ‘자유민주파’는 좌익에서 전향한 자,독재 또는 부패혐의가 짙은 자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명분으로 혁신계인 曺奉岩과 족청계 李範奭을 배제하려고 한다.반면 張澤相 徐相日 등 ‘민주대동파’는 범야세력의총결집을 주장하며 맞선다. 결국 민주당은 ‘자유민주파’만으로 출발하는데 당시 원내 의석은 33명이었다.이에 비해 자유당은 120여명,무소속은 40여명이었다.‘통합야당’을 표방했는데도 무소속으로 남은 의원이 40여명이나 된 사실은 야당의 분열상을 보여주는 증거이자,민주당의 포용력이 부족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창당후 민주당은 다시 신·구파로 갈린다.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申翼熙 趙炳玉이 중심인물이었다.한민당을 실질적으로 이끈 金性洙가 55년 2월별세한 뒤여서 구파의 대표성은 申翼熙가 갖고 있었다. 반면 신파는 張勉을 지도자로 鄭一亨 朱耀翰 등의 흥사단계(張勉은 흥사단계로 알려졌지만 흥사단에 가입한 일이 없다),吳緯泳 金永善 李相喆 등의 원내자유당계,玄錫虎 李泰鎔의 자유당 탈당파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됐다. 한마디로 구파는 한민당에 뿌리를 둔 ‘구세력’이고 신파는 이를 제외한,새로 야당에 가입한 ‘신세력’이었다.하지만 더욱 중요한 차이점은 신·구파가 출신 배경,사회활동,이념적 지향에서 어느정도 구분지어진다는 점이다. 구파는 대부분 지주집안 출신에 독립운동가나 지사형이었고 상당히 보수적이었다.이에 견줘 신파는 관료·법관·금융계 출신의 전문인이 주류였다.韓昇洲 고려대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구파 지도자 가운데 80%는 처음부터 정계에나섰으나 신파 지도자는 오히려 60%가 행정·관료직으로 출발했다.韓교수는또 “연령을 보아도 구파 지도층은 평균 51세,신파는 48세로 차이가 없는 듯하지만 신파의 지도력이 사실상 명확히 젊었다”고 평가했다. 정치행태에서도 달라구파는 비조직적이고 점잖아 “하나하나가 모두 장성같았지만”,신파는 조직적이고 투쟁적이어서 상부의 명령에 일거수일투족이 움직였다.(구파 출신 閔寬植 회고록에서)민주당 신·구파는 이처럼 이질적인 요소가 강한데도 ‘李承晩정권 타도’라는 공동목표아래 힘을 모았다.초기에는 그래도 단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59년 정·부통령 후보 선출을 놓고 대립이 심해졌다.4월혁명이후 정권장악이분명해지자 그때부터는 치열한 정권쟁탈전에 들어간다. 李容遠
  • 군내무반 민간주택처럼 꾸민다

    군 내무반이 온돌형으로 바뀌고 세면장과 화장실이 분리되는 등 군 막사가민간주택 수준으로 개선된다. 육군은 21일 신세대 장병들의 부대적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내무반 등 각종 병영시설을 오는 2004년까지 연차적으로 개선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목재 침상 형태의 현행 내무반을 온돌형으로 바꾸고,침상 높이를 현재의 21㎝에서 30㎝로 높이고 외벽에 신소재 단열재를 넣어 난방효과를높이기로 했다.세면실 수도꼭지에는 샤워장비를 부착할 계획이다. 이밖에 면회실과 민원실,병원,복지시설 등 대민 접촉이 잦은 시설물의 바닥을 요철형으로 바꾸고 계단을 경사형으로 교체하는 등 장애인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 차기 농협회장 누가 될까

    농협이 오는 19일 임시 조합장 총회에서 차기 회장을 선출키로 함에 따라元喆喜 회장 후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물망에 오르는 인사는 朴海振 신용담당 부회장과 회장 직무대리를 맡은 李來秀 경제담당 부회장,鄭大根 감사,蘇久永 농업기술교류센터 사장 등 4명이다. 촉박한 일정을 감안할 때 이들 중 1명이 차기 회장이 될 듯하다. 朴부회장은 대리로 농협에 입사해 줄곧 신용사업 부문에서 일하며 강한 업무추진력을 발휘,차기회장 1순위로 꼽힌다. 李부회장은 조용한 성품으로 리더십이 뛰어나고 따르는 후배들이 많아 만만치 않은 기반을 갖추고 있다. 삼랑진단위조합장 출신의 鄭감사는 지난 94년 직선 2기 회장선거에 출마,元喆喜 전회장과 일전을 겨룬 사이로 차기 회장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蘇사장은 지난해 3월 선거 때 출마설이 나돌았던 인사로,재사형이라는 것이주변의 평가다. 이밖에 자민련 전국구의원을 지낸 韓灝鮮 전회장의 출마설도 나돌고 있으나,元전회장 반대파의 기대사항일 뿐 성사되기는 어려우리라는 분석이다. 陳璟鎬
  • 우용각씨 북송 인도적 차원서 해결을/2.25 특별사면 이모저모

    25일 오전 10시 형집행정지 등으로 사면돼 교도소를 나온 禹用珏씨(71) 등미전향 장기수 17명의 표정은 비교적 밝고 건강해 보였다. ▒41년동안 복역한 禹씨는 검정색 바지와 점퍼차림에 뿔테안경을 쓰고 대전교도소를 나왔다.교도소 정문에는 오전 8시쯤부터 민가협 회원과 대학생 100여명이 나와 禹씨 등의 출소를 반겼다. 禹씨는 감정이 벅차오른 듯 눈물을 비치기도 했으며 “북송문제는 개인적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인도적 차원에서 해결되길 바란다”고 밝혔다.이어 “변화한 사회환경에 적응해나가며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며 생활하고 싶다.미력하나마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지난 78년 재일 조총련 간첩단사건으로 21년동안 복역한 趙相綠씨(53)도경북 안동교도소를 나와 가족의 품에 안겼다.趙씨는 남파간첩 이외의 최장기 복역수였다. 구미유학생 간첩단사건의 姜용주씨(37)의 어머니(74)는 “준법서약서를 거부하는 아들을 말릴 수 없어 늘 가슴을 졸인 채 지켜만 봤다”며 눈시울을붉혔다. ▒서울구치소에서 풀려난 高永復 전 서울대교수(71)는 “독방의 고독과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나 기쁘다.건강이 허락하는 한 학계에 끼친 피해를 회복하는데 힘을 쏟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입소 7개월만에 공주치료감호소를 나온 朴正熙 전 대통령의 아들 志晩씨(41)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2시간 빠른 오전 8시 치료감호소를 퇴원했다.李世宗감호소장(55)은 퇴원전 志晩씨가 “다시는 이곳에 들어오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志晩씨는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삼양산업 직원이 몰고 온 회색 BMW 승용차를 타고 감호소를 빠져나갔다. 志晩씨의 누나인 朴槿惠 한나라당 부총재(47)는 24일 오후 4시30분쯤 志晩씨를 30분동안 면회했다고 감호소 관계자가 전했다. ▒대전교소소 출소자 중에는 92년 3월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용의자로 체포돼 93년 3월 사형선고를 받은 파키스탄인 무하마드 아자르씨(38)와 아미르 자밀씨(31)가 포함됐다. 천주교인권위원회의 끈질긴 석방 노력으로 특사에 포함된 아자르씨와 자밀씨는 출소 직후 金壽煥 추기경과 金大中 대통령을 연호하며 사면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중나온 천주교인권위 吳昌翼사무국장(34)은 “살인사건의 범인이 따로 있다고 판단한 인권위는 두 사람의 석방 탄원을 계속,오늘과 같은 기적을 이뤘다”며 “이들은 오늘 저녁 8시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고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터키 검찰, 오잘란 사형 구형

    ┑이스탄불 DPA연합┑ 터키 검찰은 23일 쿠르드 노동자당(PKK)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에 대해 반역혐의로 사형을 구형했다고 터키 TV 방송이 보도했다. 지난 16일 체포된 이후 임랄리 섬의 특수보안 감옥에 투옥돼 조사를 받아온 오잘란은 이날 처음으로 교도소에 마련된 법정에 출두해 신문을 받은 뒤반역혐의로 정식 기소됐다. 이날 공판은 구속자가 체포된 지 1주일 이내에 심리를 열어야 한다는 터키법 소송절차에 따른 것으로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오잘란의 변호인들은 참석이 배제됐다. 이에 앞서 오잘란에 대한 고문과 불공정한 재판 가능성을 우려하는 유럽연합(EU)과 인권단체 등 국제사회에 대해 뷜렌트 에제비트 터키 총리는 그가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이므로 외부에서는 간섭하지 말라는 경고 성명을 발표했다.
  • 오잘란 신병처리 딜레마…터키, 어떻게 할까

    터키 마르마라해의 임랄리 교도소에 구금된 쿠르드 반군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의 신병처리 문제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오잘란의 죄명은 반역 및 살인죄.쿠르드족 독립국가를 건설하려는 반역을꾀하고 이 과정에서 14년간 3만5,000명 이상의 터키인들이 희생됐다는 게 터키의 주장이다.법정에서 테러혐의가 확정되면 사형을 받을수 있다. 따라서 오잘란이 사형판결을 받을 것이 확실하지만 집행될 공산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관측이다.터키정부가 사형집행 가능성을배제하고 있는 데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공정한 재판을 거쳐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뷜렌트 에제비트 터키총리는 17일 터키가 지난 15년간 단 1건의 사형도 집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특히 인구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1,200만명의 쿠르드족의 저항을 무릅쓰고 처형하기는 쉽지 않은 점도 작용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극형을 피하는 쪽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오잘란이 공정한 대우와 적법한 절차를 받아야 한다”고밝혔다.유럽연합(EU) 등도 오잘란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고 옵서버들이 재판을 참관하도록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극형을 선고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있다.터키는 오잘란의 변호사 접견을 금지하고 사법처리 절차를 감시토록 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일축했다.에제비트 터키총리도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를 자신하고 예언할수 없다”며 복선을 깔았다.‘뜨거운 감자’ 오잘란을 둘러싸고 터키와 국제사회가 한바탕 힘겨루기기 이뤄질 전망이다. 金奎煥 khkim@
  • 인천 국제공항공사 정식 출범

    신공항건설공단이 1일 주식회사형 공사체제인 인천국제공항공사로 정식 출범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정부가 98년말까지 투자한 국고출연금 1조6,768억원을전액 자본금으로 전환해 설립됐다.신공항이 완공될 때까지 총사업비의 40%를 정부가 부담키로 한 약속에 따라 올해 5,400억원,내년에 1,800억원 추가 출자는 예정대로 이루어 진다. 공사는 공항 준공 시점에 자산 재평가를 한 뒤 오는 2001년 개항전까지 총지분율의 30%를 민간에 매각하고 2002년까지 51%이상을 민간자본화 해 실질적인 민영화를 이룰 계획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경영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통신,한국중공업처럼 공기업민영화법의 적용을 받는 주식회사형 공사체제를 갖추고 인천국제공항공사법이라는 별도의 특별법 적용을 받게된다. 이에따라 사장 이사 감사 등 모든 임원은 주주총회에서 선임하되 사장은 오는 3월초 후보자 공모를 하게 되며,3월말까지는 상임이사 선임 등 새로운 경영체제를 갖출 예정이다. 이사회도 50% 이상을 비상임이사로 임명해 탁월한 경영능력을갖춘 민간전문가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된다. 그러나 새로운 경영체제가 자리잡기까지는 기존 공단의 이사장과 임원을 인천국제공항공사법에 따라 사장 및 임원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건교부 관계자는 “공단이 주식회사형 공사체제로 전환돼 향후 민간자본 유치의 걸림돌이 제거됐다”며 “계획대로 민간자본 유치가 이루어 질 경우 차입금과 금융비용 부담이 완화돼 손익분기점이 7년정도 단축되고 2005년이면내부 유보자금이 1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예상돼 2단계 건설사업비의 대부분을 자체 조달할 것”이라고 밝혔다.朴性泰sungt@
  • 교황요청 수락, 사형수 무기감형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멜 카내헌 미국 미주리 주지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요청을 받아들여 28일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살인범을 무기형으로 감형했다. 사형수 대럴 미즈는 이번주 사형이 집행될 예정이었으나 교황방문때를 피하기 위해 2월 10일로 집행이 연기됐었다. 침례교도인 카내헌지사는 “교황의 개인적인 호소를 고려하고 교황에 대한깊은 존경과 그가 대표하는 모든 것 때문에 감형요청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즈는 88년 미주리 서남지역에서 마약을 같이 홉입하던 동료와 그의 아내,손자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았다. 교황은 방미중이던 27일 안젤로 소다노 교황청 국무장관을 카내헌 주지사에게 보내 미즈를 감형해 달라는 간청을 전달했었다. 바티칸 시티로 돌아온 지 수시간만에 미즈의 감형소식을 전해들은 교황은카내헌 지사의 결정을 치하하면서 만족해했다고 교황청 대변인은 전했다.hay@
  • 교황, 美사형-인종차별 종식 촉구

    [세인트루이스 AP AFP 연합]미국을 방문중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7일 미국이 사형제도와 인종차별을 종식시킬 것을 촉구했다. 교황은 이날 세인트루이스의 미식축구장인‘트랜스 월드 돔’에 운집한 10만여명의 군중들에게“현대사회는 범죄자들이 회개할 기회를 박탈하지 않고도 자신을 보호할수단을 갖고 있다”면서“지난해 크리스마스때 호소했던 잔인하고도 불필요한 사형제도의 철폐를 또다시 촉구한다”고 말했다. 교황은 또“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끝낼 것을 촉구한다”면서“인종차별은 여러분의 주교들이 이 나라의 가장 고질적이고 파괴적인 악으로 규정한 재앙”이라고 말했다.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5회)-문학평론가 金宇鍾씨

    “칸트도 ‘순수이성비판’에서 말하기를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이라고 했다.아무리 직관으로 아름다움에 통하는 시라 하더라도 거기서 시인이진정 무엇을 호소하려 했는지 그 개념이 빠져 있다면 그 시는 맹목의 시,동공이 빠져 있는 시,알맹이가 없는 시이다.그러므로 순수문학은 그 작법의 제1장 제1절부터가 진정한 예술정신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金宇鍾씨(70)가 1965년 일본의 교포잡지 ‘한양(漢陽)’지에 발표한 ‘순수의 자기기만’이란 글의 한 대목이다.문학은 현실문제에 어떻게대응할 것인가.60년대 순수-참여논쟁의 중심에는 늘 金씨가 있어 풍요로웠고 든든했다.그에게 순수문학은 “겉볼상만 깨끗한 매춘부의 문학이요 도금(鍍金)문학이요 페인트칠 문학”이었다.그는 “순수의 성벽을 허물고 민중의 광장으로 뛰쳐나오라”고 외쳤다.그러나 그의 주장은 애당초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60년대 순수문학에 대한 비판은 그를 문단의 미운 오리새끼로 만들었다. “순수비판과 참여운동은 60년대 초반에는 ‘현대문학’지를 중심으로 전개됐습니다.그뒤 60년대 중후반 ‘창작과 비평’ 등이 나오면서 이 운동은 한층 확산돼 갔지요.초기단계에는 어려움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당시 문단은 순수문학의 독천장이었어요.한번 이단자가 돼 고립되면 발표지면도 얻기 어려웠지요” 金씨는 지난 57년 ‘현대문학’에 ‘은유법논고’와 ‘이상론’이 趙演鉉선생에 의해 추천되면서 등단했다.‘현대문학’은 처음부터 순수문학을 표방했다.그가 비록 ‘현대문학’을 통해 평단에 나왔지만 그 지면을 통해 순수문학 타도를 외치기는 곤란한 일이었다.‘한양’지에 글을 발표하게 된 것은 그런 연유에서다. 유신체제를 탄생시킨 朴정권은 문인탄압의 구실을 찾고 있었다.그러던중 문인 몇몇을 ‘한양’지와 연결시켜 이른바 ‘문인간첩단사건’을 만들어내게된 것이다.74년 2월 5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을 거점으로 한 ‘문인 및 지식인 간첩단’을 적발,李浩哲(43·소설가) 任軒永(34·문학평론가) 金宇鍾(45·경희대교수) 鄭乙炳(40·소설가) 張秉禧씨(필명 張伯逸·41·문학평론가) 등 5명의 문인을 반공법 위반 및 간첩혐의로 구속했다”고 발표했다.구속된 5명의 문인은 북한 노동당 재일공작지도원 金基深에 포섭돼 문단·언론계 등의 동태를 보고하고 반정부 활동을 선동하는 작품활동을 해왔다는 게 혐의 내용이다.한편 金基深은 49년 북한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62년 민단에위장입적한 뒤 ‘한양사’란 회사를 세워 일본에 오는 문인·학자들을 포섭해왔다는 것이다.‘한양’지는 바로 金基深씨를 발행인으로 한 국문(한글)월간 종합지였다. 金宇鍾씨에 따르면 ‘한양’지는 1973년까지도 주일 한국공보관에 전시돼있었으며 국내에도 정식으로 수입·배포되던 잡지였다.정부기관이나 민단측에서도 이 잡지를 ‘불온’으로 문제삼은 적은 없었다.‘한양’은 구속된 5명의 문인들뿐 아니라 한국의 각계 인사들이 전부터 기고해오던 잡지로 불온서적으로 낙인찍은 것은 구실에 불과하다는 게 金씨의 설명이다. “‘한양’지는 민족주의적인 색채가 강했습니다.남한의 사회상과 정부시책을 비판적으로 본 측면이 있긴 했지만 그것이 곧 반국가단체의 위장출판물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될 수 없어요.그럼에도 당국이 무리하게 기소를 감행한것은 피고인들이 73년 11월 문인 60여명의 연명으로 된 개헌요구 성명에 참여했기 때문이며 지식인 사이에 그런 개헌운동의 확산을 막아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당시 검찰당국은 ‘한양’지의 자금 출처가 조총련쪽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그렇게 볼만한 증거는 찾기 힘들다.이에 대해 金씨는 金基深씨가 경영하는 ‘한양원’이라는 음식점에서 나오는 수익과민단계의 협찬광고 등이 그 재원이었다고 증언한다. ‘문인간첩단사건’으로 내몰린 5명의 문인들은 결국 검찰 발표에 앞서 73년 12월 투옥됐다.金宇鍾씨의 회고.“감옥에 들어가면서 이브 몽탕이 주연한 프랑스영화 ‘생사의 고백’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주인공은 억울하게스파이 누명을 쓴채 법정에서 진술하는 연습까지 강요당하지요.그는 텔레비전에 생중계되는 공개재판에서 할 수 없이 스파이임을 자백한 뒤 사형장으로 끌려가게 됩니다.제 경우 영문도 모르고 체포된 뒤 숱한 반증자료들을 제시했지만 무죄언도를 받지는 못했습니다.결국 몇개월의 형을 산 뒤 74년 6월집행정지로 풀려났습니다” 출옥되자 金씨는 경희대 국문과 교수직에서 강제휴직됐다.이어 76년 해직됐다.80년 덕성여대 국문과 교수로 취임하기까지 6년동안의 세월은 소태보다쓴 것이었다.그 시절 그는 피폐한 심신을 추스리기 위해,아니 생계를 위해그림 그리는데 몰두했다.“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나가 조개나 잡겠다는 패배주의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외려 깨어진 뱃조각을 주워 모아더 큰 고기를 잡겠다는 오기가 솟더군요.그때 그린 그림들은 모두 분노의 시절 제 마음의 무늬들입니다” 金씨의 삶의 자취는 75년에 나온 에세이집 ‘그래도 살고픈 인생’(학진출판사)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한낱 수상집에 불과하건만 유신당국은 이 책을긴급조치 4호 위반으로 금서목록에 올렸다.“판금조치가 된 이유를 알 수 없어요.살풍경한 감옥의 일상을 그린 글 ‘옥중인생’이 당국의 눈에 거슬렸는지…” 엄혹한 ‘겨울공화국’에서도 金씨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그를 부축했다.그때의 심경을 그는 글로 남겼다.“비단실을타고 봄의 정액이 땅속으로 스며든다.얼어버린 대지는 어느새 봄을 잉태하고…” 그래서 그에게 인생은 ‘그래도 살고픈’ 것인지 모른다.서슬퍼런 감옥의 한평 쪽창 어둠 속에서도 그는 밝게 타오르는 촛불이었다.
  • 공무원-납세자 결탁‘有錢小稅 無錢多稅’

    한국 사람들의 눈을 의심케 하는 기사 한 토막이 지난해 말 외신을 타고 들어왔다.가짜 부가가치세 계산서를 만들어 7억6,000만달러를 탈세한 중국 저장(浙江)성 진화(金華)현의 세무관리 1명과 기업인 3명에게 인민법원이 사형을 언도했다는 뉴스였다.?갸선鳧獵? 곳에 비리있다 검은 돈을 받은 세무관리와 돈을 준 기업인에 대한 중국의 ‘가혹한’ 처분을 본 한국의 세무관리와 기업인들은 잠시 섬뜩한 기분을 느꼈을 것이다.그러나 같은 기사를 읽은 대부분의 국민들은 ‘우리도…’라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한국의 형편은 어떤까.지난 한해도 우리 주위에서는 갖가지 세무비리가 끊임없이 생산됐다.‘유전소세(有錢小稅) 무전다세(無錢多稅)’라는 세간의 비아냥이 난무했다. 세금을 흥정대상으로 삼아 기업들로부터 정치자금을 긁어모은 이른바 ‘세풍사건’은 징세권 악용의 극치였다.특정업체를 겨냥한 세무조사의 남용,잘못된 기준에 따라 멋대로 부과한 억울한 세금,납세자와 짜고 세금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등 갖가지 세무 커넥션이 ‘맑은 세정’을 가로막았다. 지난해 5월 세무공무원 경력 15년째인 서울 모세무서 8급 직원의 부인이 쓴 ‘뇌물백서’를 본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9개월 만에 1억원 목표초과 달성,매일 30만∼150만원씩 모두 1,800만원,앞으로 8년 동안 10억원을모아…’의 대목에서는 말을 잃었다. 사무실은 물론 국세청 복도·화장실·승용차안 등에서 마구잡이로 이뤄진‘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세무공무원의 뇌물수수 천태만상이 감사원 국감에서 폭로되기도 했다. 지난 97년 1월부터 98년 8월까지 감사원에 적발된 중앙부처 공무원의 뇌물수수 범죄 270건 가운데 72%인 195건이 국세청 공무원의 몫이었다.?건太섟? 샌다 세무공무원의 비리는 개인의 독직과 치부에 그치지 않는다.엄청난 국고손실로 이어진다.뇌물을 챙긴 세무공무원이 1억원을 받았을 때 뇌물을 준 당사자는 10배 이상의 반사이익이 보장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97년부터 98년 8월까지 20개월 동안 일선 세무공무원들의 법규적용 잘못 등으로 발생한 기업체 및 개인의 세금탈루액이 6,200여억원이었다.국세청 자체조사 결과 조세감면 요건을 실수 또는 고의로 적용하거나 소득표준율을 낮게 적용하고,체납중인 세금을 부당하게 결손처리해 주는 등 다양한 ‘세금깎아주기’ 수법이 동원됐다.?갼錚뺐? 깰 것인가 세정에 대한 납세자들의 뿌리깊은 불신을 어떻게 깰 것인가. 국세청은 요즘 세제개혁안을 마련 중이다.미국처럼 한번 세무조사를 받으면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을 모두 추징,파산케 하는 ‘초강도’의 작업이 진행 중이다.세무서의 조직개편도 개혁안에 포함된다. 세무서 직원별로 지역·사업자·기업을 맡아 납세신고를 받고 세무조사를하던 ‘비리의 온상’ 지역담당제는 이미 없앴다.납세신고도 세무서에 마련된 신고센터에 내거나 우편으로 우송토록 하는 등 세무공무원과 납세자의 만남 자체를 아예 차단했다.
  • 영문전기‘김대중’한글판 출간

    미국에서 발간된 인물전기 ‘金大中’이 취임 1주년을 맞아 다음달 중순쯤한글로 번역,출간될 예정이다. 미국 대형출판사인 첼시 하우스 퍼블리셔스에서 지난 12월초 발행한 이 책은 세계 지도자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단행본이다.현재 이책은 미국 초·중·고에서 교재로 채택,위인전으로 읽히고 있으며 미국내 각 학교와 도서관에 보급됐다. 저자인 AP통신 기자 골드스틴은 이 책에서 金대통령의 삶의 역정을 ▒감격의 승리 ▒꿈 많았던 청년 ▒정치입문과 민주화투쟁 ▒사형집행을 앞두고 ▒다시 날아오른 불사조 등으로 나눠 그리고 있다.이 책은 서문에서 金대통령을 경제난국,남북대치 상황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을 불굴의 정신과 탁월한 위기 극복 능력으로 이끌어가는 민주적인 지도자로 소개했다.崔光淑 bori@
  • 『막오른 경제 청문회』이모저모

    IMF사태를 초래한 경제위기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경제청문회가 18일 오전 여당 단독으로 시작됐다.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과 자민련 朴泰俊총재 등 양당 지도부들이 참관한 가운데 열린 이날 재정경제부의 기관보고에서 특위 위원들은 보고서의‘질’과 ‘재경부의 자세’를 문제삼으며 열띤 공세를 펼치기도 했지만,한나라당 의원들의 불참속에 개시된 때문인지다소 맥빠진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청문회장 주변에는 100여명에 가까운 내외신 보도진이 몰려들어 취재경쟁을 벌이는 등 청문회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반영했다.▒회의에서 여당 의원들은 金泳三전대통령을 외환위기의 총체적인 책임자라며 집중 성토했다. 자민련 李健介의원은 “재경부가 경상수지 적자 누증,단기외채 급증,기업부도 등을 환란의 원인으로 들었지만 최고통수권자의 국정운영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며 金전대통령에게 환란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국민회의 丁世均의원은 “金전대통령의 집권 5년은 외환위기를 잉태·증폭·확대재상산하는 과정이었다”며 과거 5년을 총체적인 부실 국정운영기간으로 규정했다. 丁의원은 “환란은 국민경제의 악순환이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이었다”면서“거시경제정책과 분리된 환율정책으로 외채가 누증됐으며 실물경기의 급격한 침체로 금융이 부실화돼 이것이 외환위기로 옮겨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국민회의 金榮煥의원은 “IMF로 인한 기업 부도와 실업자 양산이라는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내탓이라고 말하는 관료와 정치인은 아무도 없다”며한나라당의 무책임론을 주장했다. 金의원은 또 “지난 97년 태국과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이 줄줄이 무너지는데도 金전대통령과 당시 집권여당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아 지도력 부재를 실감케 했다”며 “IMF사태는 어찌됐든 인재라고 봐야 한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이에 앞서 張在植위원장은 경제청문회 개시선언후 인사말을 통해 “이번국정조사에서는 경제파탄의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고 권력형 비리도 철저히파헤쳐 국민 앞에 실체적인 진실을 알릴 것”이라고 강조,정책청문회와 동시에 비리조사형 청문회로 이끌어갈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이어 李揆成재경장관의 보고에 앞서 국민회의 李允洙 金榮煥의원 등 상당수 특위 위원들은 재경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로 보고서를 작성해제출한 것이 아니냐며 재경부를 몰아세웠다. 李의원은 “재경부의 보고서는 IMF 관리체제를 맞게 된 것이 재벌회사 몇개가 부도나고 일부 동남아 국가들이 파탄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것이대부분”이라며 “사실은 재경부가 바로 책임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냐”며 재경부 보고자료의 부실을 문제삼았다. 李의원은 나아가 “재경부의 보고는 재경부를 감싸고 도는 듯한 내용인데,그러면 누구의 잘못으로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 됐느냐”고 질타한 뒤 “당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밝혀주는게 재경부의 임무가 아니냐”고 따졌다. 金의원도 “재경부의 보고서는 외환위기의 총체적인 진단과 원인을 보고하는 것인데 재경부의 입장은 적시되지 않았다”면서 “잘했다는 것인지 잘못했다는 것인지도 밝히지 않는 재경부의 자세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한편 이날 오전 10시 개최키로 했던경제청문회는 자민련측이 같은 시각국회의장실에서 열리는 여야 총무회담을 지켜보자며 재경부의 기관보고를 오후로 미루는 방안을 전격 제안,한때 혼선을 빚기도 했다.▒張在植 ‘국회 IMF 환란 규명 국정조사특위’ 위원장은 자민련 魚浚善의원으로부터 이러한 입장을 통보받자,특위 위원장실에서 급히 국민회의 趙世衡총재권한대행 및 韓和甲총무 등과 전화접촉을 갖고 대처방안을 숙의했다. 자민련 魚의원도 朴泰俊총재 등 지도부와 전화통화를 했으며,국민회의 韓총무와 자민련 李良熙수석부총무가 “오전부터 시작하기로 했다고 합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럼 예정대로 오전부터 시작하자”고 수긍,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자민련은 전날 청와대 고위관계자의 내각제 발언과 관련,일단 오전기관보고를 오후로 미룸으로써 불만을 표출하기로 했다가 국민회의 趙대행으로부터 ‘참여해달라’는 전화를 받고 일단 청문회에는 정상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민주개혁 국민연합 羅炳湜상임집행위원장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누구나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개혁을 추진해나갈 주체세력이 없습니다.이제는 개혁세력을 총 결집,대대적인 국민운동을펼쳐나가야 할 때입니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민주개혁 국민연합 羅炳湜 상임집행위원장(49)은 15일사회·시민단체들이 정부에 개혁을 촉구하거나 비판하는데 머무를게 아니라개혁의 주체세력으로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羅위원장은 “국민의 정부조차 개혁을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사회는 가치관의 공황사태를 불러 올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보수세력들의 조직적인 저항이 거세지기 전에 가시적인 개혁 성과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개혁 국민연합은 개혁추진의 첫 행동으로 최근 경제청문회 감시단을 발족했다.경제난국을 초래한 IMF 주범을 분명히 밝히고 책임을 묻기 위해 10여명에 이르는 감시단을 조직,청문회에 대비하고 있다. 또 실업문제 극복을 위해 해외취업을 알선하고,해외취업박람회를 개최키로하는 등 8개 부문조직과 16개 지역조직별로 세부활동계획도 세워 놓았다. 羅위원장은 “현재 활동중인 사회·시민단체가 1만여개에 이르는데도 이해관계에 얽혀 대동단결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파와 조직의이해관계를 넘어 80년대에 보였던 민중의 힘을 회복하자”고 제안했다. 민주개혁 국민연합은 과거 민주화 운동세력을 결집,민족민주운동의 전통을계승하면서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국민운동을 전개해 나가려는 국민운동단체이다. 羅위원장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뒤 유신반대 운동에 참여했다가 74년민청학련사건으로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는 등 민주화운동에 투신해왔다.79년부터 풀빛출판사를 꾸려 나가면서 민주대개혁국민위원회 정치연합 등에 참여했다.李鍾洛 jrlee@
  • 529호실 사태 시민진상조사위 결론

    국회 529호실 사건에 대한 시민단체의 ‘판결’이 내려졌다.여야 모두 잘못이 있다는 양비론(兩非論)이었다.시민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孫鳳淑)는 15일 기자회견에서 우선 국회 출입 안기부 직원의 활동이 안기부법이 규정한 직무범위를 벗어났다고 지적했다.●야당의원의 거취문제●의원 비리연루 의혹●내각제개헌 동향 파악등은 안기부의 직무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수집이라는 주장이다.관련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과 문책도 요구했다.정부의 재발방지 노력과 제도적 보완책 마련도 촉구했다.진상조사위는 야당의 529호실 강제진입도 단죄했다.그러면서 검찰의 수사형평성 문제도 제기했다.한나라당의 강제진입의 위법성 고발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수사하면서 안기부 직원 활동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수사는 미온적이라고 지적했다.진상조사위는 국회 정상화도 촉구했다.孫鳳淑위원장은 “이 문제가 국회파행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유가 될 수없다”고 강조했다. 국회후생관 기자회견장에는 金文洙 金映宣,權哲賢의원등 한나라당의원들만보이고 국민회의측 의원들은눈에 띄지않아 대조를 이뤘다.崔光淑 bori@
  • 참 봉사 ‘섬김이’를 아십니까?

    ‘참 봉사 섬김이를 아십니까’ 대구 수성구는 올해부터 매월 봉사활동이 가장 뛰어난 직원을 선정해 인사상의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참봉사 공무원 제도’를 실시한다. 구는 이를 위해 참봉사 공무원을 상징하는 ‘섬김이’캐릭터를 개발하고 민원인들의 직접투표 방식으로 매월 참봉사 공무원을 선정하기로 했다.참봉사공무원으로 선정되면 1개월동안 ‘섬김이’캐릭터가 새겨진 블루자켓을 착용하고 근무하게 된다.‘섬김이’캐릭터는 녹색 도포와 검정색 각대를 착용한조선시대 종9품 이하 하급관리를 본딴 것으로 주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봉사형 공무원을 상징한다. 구는 호적·교통·지적 등 민원실내 15개 창구에서 우선 이 제도를 실시한뒤 성과가 좋을 경우 17개 실과 전체로 확대할 방침이다. 金圭澤구청장은 “직원이면 누구나 한번쯤 섬김이로 선정되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확실히 적용하겠다”며 “2회 연속 선정되면 근무평정 등급과 점수를 상향 조정하고 3회 연속 선정되면 근무평정에 ‘수’를 주겠다”고 말했다.대구l黃暻根 kkhwang@
  • 빅딜에 비친 5대그룹 총수스타일

    반도체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성사시킨 결정적 열쇠는 具本茂 LG회장의고뇌어린 결단이었다.기업의 생과 사를 가르는 거대한 구조조정의 틀은 아무래도 최종 결정권자인 총수의 의지와 스타일이 결정하는 듯 하다.재벌총수나름의 독특한 스타일은 구조조정 과정에 어떻게 반영됐을까. 전경련 회장으로서 나무(그룹)와 숲(재계)을 동시에 돌봐야 했던 金宇中 대우 회장은 손해보는 장사는 절대 하지 않는 냉철한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했다.철도차량·항공 등을 포기하고 대우전자를 빅딜로 내놓은데 이어 41개 계열사를 10개 주력기업으로 재편했다.‘메뉴’는 푸짐하게 차렸지만 알짜배기는 그대로 지켜냈다는 평.재계 전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도 특유의 ‘두뇌 플레이’에서 비롯된 묘수가 여럿 나왔다. 鄭夢九 현대회장은 부친인 鄭周永 명예회장처럼 불도저 같은 추진력으로 밀어붙였다.3차에 걸친 기아자동차 입찰에서 끝내 부채 7조8,000억원을 탕감받으며 인수에 성공,거대 자동차그룹의 사령탑이 됐다.그의 뚝심이 빚어낸 작품이란 평.鄭夢憲회장은 꼼꼼하면서도 저돌적인 스타일이다.연세대 국문과재학시절 전체 차석을 했을만큼 수재형인 그는 LG와의 ‘반도체 전쟁’에서한편으로는 치밀한 숫자 싸움을,한편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밀어붙이기전술을 병행해 승리를 거뒀다. 李健熙 삼성 회장은 사색을 좋아하는 이상(理想)주의형 총수다.일단 미래경영구도의 밑그림이 그려지자 항공 선박엔진 석유화학 등을 과감히 버렸고신속한 외자유치와 부채비율 감소,과감한 인력감축을 단행했다.지난연말 자동차를 빅딜로 내놓은 것은 구조조정의 압권이었다. 화끈한 승부사형으로 알려져 있는 LG 具회장은 대통령을 만나 반도체 포기라는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카드를 던짐으로써 자신의 면모를 확인시켰다.반도체 포기에 따른 반대급부를 어떤 승부처에 쏟아부을지 주목된다. 孫吉丞 SK회장은 전문경영인답게 합리적이면서도 혁신적인 경영기법을 강조한다.빅딜의 소용돌이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으면서 조용히 내실을 다졌다.5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올해부터 계열사 독립경영 체제를 도입한다.
  • 신공항 운영·관리 전면 자율화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이 오는 2월1일부터 인천국제공항공사로 탈바꿈하고오는 2001년 개항 예정인 신공항의 운영·관리가 정부통제를 벗어나 전면 자율화될 전망이다. 건설교통부는 7일 인천국제공항공사법이 국회에서 통과돼 민자유치가 가능해짐에 따라 오는 2003년 이후 자본금의 70% 이상을 민자로 유치,주식회사형공사형태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천국제공항은 당초 7조5,000여억원에 달하는 사업비를 국고지원 40%,차입금 60%로 해 충당할 계획이었으나 이번 공사화를 계기로 외자 등 민자유치를통해 민간지분을 2002년까지 51%,장기적으로는 70%대로 끌어 올리기로 했다. 현재 지분출자와 공항운영권에 관심을 갖고 우리 정부측과 협상중인 외국회사와 투자자는 무려 13개 기관에 달한다. 프랑스 파리공항공사,네덜란드 스키폴 공항관리주식회사,싱가포르공항개발(주)등 각국의 공항운영관리회사들과 일본 다이와증권,아더 앤더슨 등 해외투자전문회사들이 인천국제공항공사 지분 참여에 관심을 보이며 협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교부의 李^^在 신공항건설기획단장은 이와 관련 “공항공단이 공사화됨으로써 그동안 정부의 통제를 받던 공항운영 자율성이 확보되는 등 이제 공항운영·관리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계획대로 민자유치가 이뤄질 경우 공항공사는 실질적으로 민영화돼손익분기점이 당초 2012년에서 2005년으로 7년 정도 단축되는 등 획기적인재무구조 개선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98년 말까지의 국고출연금 1조6,000억원을 전액 출자금으로 해 설립되며 정부지분은 2001년 공항개항 전까지 70%,2002년 말까지 49%,2003년 이후 30% 수준으로 낮춰진다. 朴性泰 sungt@
  • 내고장 단체장 새해 설계-裵桂燮 춘천시장

    “지식 정보산업을 중점 육성해 춘천을 신산업의 메카로 우뚝 세우겠습니다” 裵桂燮 춘천시장은 올해를 수년동안 야심차게 추진해온 멀티미디어 애니메이션 게임 패션디자인 정보통신 생물산업을 중심으로 한 지식기반산업의 토대를 다지고 발전시키는 한해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는 9월까지 이들 사업을 지원하게 될 멀티미디어 기술지원센터,디지털 특수영상 스튜디오,생물산업 벤처기업지원센터,전자도서관이 속속 준공돼 사업환경은 무척 밝다고 자신했다. 시는 이와관련,서면 애니타운을 중심으로 한 만화이미지 정보센터를 올해착공하고 미주지역에는 해외통상관을 둬 애니메이션의 제작판매와 수주에도적극 뛰어들 태세를 갖추고 있다. 裵시장은 나아가 지식기반산업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및 관광도시로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도 중점을 두기로 했다고 말했다.전국 제일의 문화도시에 맞는 문화복지 인프라를 꾸준히 확충해 관광상품화는 물론 시민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의지이다. 사농동에 건립중인 인형극장을 올해안에 준공하고 남산면에는 농촌공공도서관을 건립한다.큰 호응을 받고있는 연극제 만화축제 인형극제도 참여팀을 늘리고 행사를 다양하게 꾸밀 계획이다. 춘천을 문화도시에 걸맞게 짜임새있게 개발하는 사업들도 시 전역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밝혔다.지난해 소양2교와 남춘천 철도 입체교차로,호반순환도로를 개통한데 이어 올해는 퇴계3,4지구 택지사업과 연계한 공지천 이남신시가지 조성사업과 학곡리를 중심축으로 한 동춘천권 개발사업을 시작할 방침이다. 낙후된 의암호 외곽생활권의 개발을 위한 신매대교 장학대교 소양3교의 조기 완공과 ‘강북과 강남’‘동과 서’를 연결하는 방사형 순환도로망 개설도 약속했다. 농업의 생산성과 수익을 높이는 방안마련에도 큰 관심을 표시했다.그는 농업이 경쟁력을 갖추려면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를 유지해 ‘생산자는 제값에,소비자는 제때’에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있다. 裵시장은 이를 위해 강원의 특산물인 버섯산업 육성을 위해 춘천에 버섯 특화단지를 만들고 동면과 동내면에는 자연농업단지를 조성할 방침이라고밝혔다.춘천|曺漢宗
  • 23년의 현장수사 경험 책 한권에 담았습니다

    오랫동안 수사 일선에서 활약해온 한 경찰관이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수사서류 작성에 관한 방대한 책을 펴내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창원경찰서 형사1반장 蔣勝在경위(50).蔣경위는 23년 동안 사건현장에서 겪은 생생한 실무경험을 살려 여러 형태의 범죄에 대한 수사요령을 묶은 책 ‘수사서류 작성요해’를 지난 연말 발간했다. 모두 913쪽의 이 책은 범죄에 대한 적용법규와 피의자 조사 때 착안할 사항,수사서류 작성법 등도 설명하고 있다. 책은 형사소송법 개정에 따른 현행범체포·긴급체포·체포영장에 의한 체포처리요령,기소중지자 처리요령,피의자 조사시 착안점,신문요령 등 수사형사들에게는 필수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蔣경위는 법 집행과정에서 법규가 잘못 적용돼 무고한 시민이 피해를 당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운 심정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혔다. 蔣경위는 “사회가 급변하면서 범죄도 다양화하고 있으나 아직도 경찰은 구속영장 신청시 구체적인 설명없이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있음’이라고 기재하는 것은 자성할 점”이라고 지적했다. 경남 김해출신인 蔣경위는 지난 74년 경남경찰학교 제53기로 입교,경찰에투신한 이후 마산 동부서와 울산 남부서 등 도내 일선 경찰서에서 23년간 수사형사로 활약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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