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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선정 20세기·1999년 10대사건

    [워싱턴 AP 연합] 세계적인 통신사인 미국의 AP통신은 21일 ‘99년 세계 10대 사건과 20세기 10대 최대사건을 각각 선정했다.전세계 36개국의 74개 고객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여 뽑았다. ◆ 20세기 10대사건 1.미국, 일본에 원자폭탄 투하(45년) 2.러시아 혁명으로 공산정권 등장(17년) 3.독일, 폴란드 침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발발(39년) 4.미국 우주인 닐 암스트롱 달 착륙(69년) 5.베를린 장벽 붕괴로 소련 붕괴(89년) 6.연합군 나치 독일에 승리(45년) 7.세르비아 왕세자 암살 제1차 세계대전 발발(14년) 8.라이트 형제 동력 비행기로 공중 비행(03년) 9.인류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 발견(18년) 10.‘에니악'등장 컴퓨터 시대 도래(46년)◆ 20세기 10대사건 1.코소보 잔학행위와 나토의 유고 공습 2.클린턴 美 대통령 성희롱 고소사건 종료 3.터키 지진… 1만8,000여명 사망 4.동티모르 독립투표와 유혈 폭력사태 5.러시아, 체첸 무력공격 6.뉴밀레니엄과 Y2K에 대한 기대와 우려 고조 7.수백명이 사망한 인도-파키스탄 국경분쟁 8.수천명의 사망자를 낸 타이완(臺灣) 지진 9.세계 경제 및 주식시장서 미국 영향력 증가 10.터키 쿠르드반군 지도자 오잘란 체포 및 사형 선고
  • [의열 독립투쟁] (16) 조명하 의사

    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0분경 대만 타이중(臺中)시 다이쇼죠(大正町)도서관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대만주둔 일본군 검열차 육군특별검열사 자격으로 대만을 방문한 일본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장인이자육군대장인 구니노미야 구니요시(久爾宮邦彦)를 환영하기 위해서 동원된 인파들이었다. 바로 그 시각 한 청년이 군중을 헤치고 구니노미야가 탄 무개차를 향해 뛰어들었다.청년이 단도를 빼어들고 구니노미야를 겨누자 무개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하였으며,시종무관 오누마(大沼)는 몸으로 구니노미야를 비호하였다. 청년은 구니노미야를 향해 힘껏 단도를 던졌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맹독이 묻은 단도는 구니노미야의 왼쪽 어깨를 스친 뒤 운전사의 등에 맞고 떨어졌다. 거사후 청년은 ‘대한독립만세’를 부른 후 현장에서 체포되었는데 그가 바로 조명하(趙明河)의사다.구니노미야는 이때 입은 상처로 이듬해 1월 27일사망하였다. 조 의사는 1905년 5월 황해도 송화군 태생으로 송화보통학교 졸업후 집안형편이 어려워 진학을 포기하고 친척이경영하고 있던 한약방에서 일하면서 독학(獨學)으로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어 등을 공부하였다.5년여 동안 한약방에서 근무하면서 틈틈히 실력을 쌓은 조 의사는 1926년 황해도 신천군(信川郡) 군청 서기 임용시험에 합격하였다.당시 군청 서기는 상당한 실력을갖춘 엘리트로,경제적으로도 안락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해 ‘6·10만세의거’,송학선(宋學先)의 ‘금호문(金虎門)의거’로 조선민중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몸으로 느낀 조 의사는 어렵게 합격한군청 서기직을 3개월만에 그만두고 일본으로 건너가기로 결심하였다.조 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이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고 판단,국외에 나가서라도 조국의 독립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우고 있었다. 일본으로 건너간 조 의사는 아키카와 토요오(明河風雄)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고 일본인 행세를 하면서 낮에는 회사원·점원으로 일하였고 밤에는 오사카상공전문학교(大阪商工專門學校)를 다니면서 국제정세를 파악하였다.일본식 이름 아키카와 토요오(明河風雄:명하풍웅)은 본명 ‘명하’를 일본식 성(姓)으로 바꾸고 ‘의로운 일로써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겠다’는 의미의 ‘풍웅’을 이름으로 삼은 것으로 이는 조 의사의 독립투쟁 의지가 담긴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 활동에 한계를 느낀 조 의사는 1927년 상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 참여키로 하고 이 해 11월경 기착지인 대만에 도착하였다.조 의사는 대만에서도 역시 일본인에 의해 자행되는 수탈과 행패를 눈으로 확인고는 당시 대만 총독 우에야마(上山)를 처단하고자 하였다.조 의사는 일본인 행세를하면서 타이중시에 있던 일본인 소유의 부귀원(富貴園)이란 찻집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단도를 구입,독극물을 발라 놓고 거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중 1928년 5월에 일본 천황의 장인이며,육군대장이던 구니노미야가대만주둔 일본군의 검열차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처단키로 결심하였다.구니노미야는 일본 육사·육군대학을 졸업한 이후 일본 육군에 투신,육군참사관을 거쳐 1928년 당시 육군대장으로 군(軍) 내의 실력자였다. 사전에 일정을 입수하여 검토하는 한편 거사현장을 직접 답사한 조 의사는1928년 5월 14일 오전 9시 50분경 수많은 인파를 뚫고 돌진,그를 처단하였다.조 의사의 의거는 당시 조선과 똑같은 일본의 식민지로서 일본의 식민지 차별정책에 대해서 울분에 차 있던 대만 군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한편 조 의사의 신원이 조선인으로 밝혀지자 조선총독 야마니시 한조(山梨半造)는 대경실색하여 대만총독과 연락하여 조사를 진행하였다.조선총독부에서는 조 의사가 17세에 고향을 떠날 때까지는 요시찰 인물이 아니었으므로조선에는 아무런 연루자나 교사자가 없다고 단정하였다.그러나 대만총독부에서는 범인의 자백과 왕복 서류,기타 정황에 의하면 조 의사에 향리에 공범이 있을 것으로 보고 5월말경 대만총독부 보안과장과 경부 2명을 파견,조사를벌였으나 공범검거에는 실패했다. 조 의사의 재판은 오랜 시일 예심을 거쳐 1928년 7월 7일 대북고등법원(臺北高等法院)에서 가네코(金子) 판사의 단독심으로 진행되었다.변호인은 대만변호사협회 소속 일본인관선변호사 아보(安保)와 가네코(金子)가 선임되었지만 식민지 치하에서 일본인 관선변호사가 재판정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뻔한 것이었다.재판부는 일본 형법 제 75조 ‘황족위해죄’,즉 “황족에 대하여 위해(危害)를 가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위해를 가하려 한 자는 무기징역에 처함”을 적용하여 조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그 해 10월 10일 오전 10시 12분 조 의사는 순국하였는데 그 때 의사의 나이 스물 넷이었다. 일본 황족이 대만에서 상해를 입은데 대하여 대만총독은 황송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 하여 사직하기에 이르렀다.일제는 이 사건을 극히 중요시하여 언론보도를 철저히 통제,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난 뒤인 6월 15일에야 비로서 신문지상에 공개되었다. 조 의사는 일본 국왕의 장인 구니노미야 한 사람에게 칼을 던졌으나,이는조선민족 전체의 의분이 담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조 의사의 의거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조선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으며,조선민중들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달게 받고 있다”는 일제의 선전이 허구라는점과 조선인들은 일본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되기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린쾌거였다고 할 수 있다. [김순석 독립기념관 연구원] - 조명하 의사 후손근황과 기념사업 24세로 순국한 조명하 의사는 슬하에 일점 혈육을 남겼다.조 의사의 외아들 혁래(赫來·73)씨는 태어난지 1개월만에 부친 조 의사가 고향을 떠남으로써 부친의 얼굴도 모르고 자랐다고 한다.일제하 황해도 은율에서 농업학교를마친 혁래씨는 해방후 평양공과대학 4학년 재학중 6·25를 만나 월남하였다. 취직보다는 개인사업에 손을 대 최근 2∼3년전까지도 사회활동했었다.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은 모두 해외에 나가 있고 세 딸은 모두 한국에살고 있다. 장남 경환(京煥·43)씨는 호주에서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고,2남 정환(正煥·40)과 3남 국환(國煥·39)씨는 같이 미국 LA에서 식당업을 하고 있다.혁래씨 가족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는 드물게 사는 형편이 괜찮은 편이다. 80년대초에 결성된 조명하의사기념사업회는 전 통일원장관 홍성철씨가 회장을 맡고 있는데 홍씨는 황해도 은율출신으로 조 의사와 동향인 셈이다.기념사업회는 지난 88년 과천 서울대공원 정문 앞에 조 의사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 매년 순국일인 10월 10일 추모제를 주관해오고 있다. 78년에는 대만 교포들이 한교(韓僑)소학교 내에 동상을 세운 바 있다.혁래씨는 “월남할 때 부친 관련자료를 하나도 챙겨오지 못한 것이 아쉽다”며“하루빨리 통일이 돼 이북에 있는 선친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국회 이모저모

    정기국회 폐회일을 닷새 남긴 13일 여야 의원들은 산적한 개혁·민생법안을다뤄야 하는 명분과 실리를 챙겨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였다.시정아치 같은 말싸움도 벌어졌다.급기야 본회의에서는 국회의원 자성론이 제기됐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상징인 한국전력의 분할·민영화를 위한 전력산업구조개편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오전 소관 산업자원위에 상정됐다.그러나 심사는이뤄지지도 못했다.전력산업법개정안,전기사업법개정안,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 등 관련 3개 법안이 상정됐으나 본격 심사는 다음 회의로 미뤄진 채 낮 12시쯤 산회됐다. 법안 상정 자체를 반대한 한전 비상대책위원회와 시민단체의 시선을 의식한여야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다. 회의장 주변에서는 ‘전력산업 분할·해외매각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관련 법안 폐기를 주장하며 유인물을 뿌렸다.특히 이날 회의에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 전원이 서명한 전력산업 구조개편 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 반대 청원도 함께 상정돼 향후 상임위심사과정에서 진통을 예고했다. 관련 법안 상정 직후 국민회의 박광태(朴光泰)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부결되든 가결되든 상정된 뒤 심의를 해야 하는데도 한전 노조원 등이 낙선 운운하며 지역구에 유인물을 뿌리고 데모를 하는 것은 심히 유감스러운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윤리특위에서는 지난 10월 언론문건 파동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인 한나라당 정형근(鄭亨根),국민회의 장영달(張永達)의원의 징계 요구건과 윤리심사요구건이 각각 상정됐다.지난 6월 옷로비사건과 관련,‘최순영(崔淳永)리스트’를 본회의에서 거론한 한나라당 이신범(李信範)의원의 징계 요구건도 함께 올랐다. 비공개 회의에서 여당은 ‘눈엣가시’인 정 의원 등을 겨냥,“허위사실을유포,개인 명예에 심각한 손상을 준 행위는 징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에 한나라당은 “국회 발언을 윤리위에 회부하거나 고소·고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맞섰다. 3개 안건은 여야 토론 직후 징계소위와 윤리소위에 각각 넘겨졌다.그러나이날 현재 29건의 안건이 소위에 회부만된 채 심사가 지지부진한 점을 감안하면,이번 안건들도 여야간 힘겨루기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본회의 5분자유발언에서 국민회의 홍문종(洪文鐘)의원은 개혁·민생현안을 외면하는 국회 행태를 자성했다.홍 의원은 “여야간 대화와 대타협으로 새천년을 향한 성숙한 국회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한나라당 박원홍(朴源弘)의원은 사형제도와 관련,“현 정부 들어 사형집행이 없었던 것은경하할 일”이라며 폐지를 주장했다. ■정무위에서는 국민회의 국창근,한나라당 김영선(金映宣)의원이 반부패방지법에 특검제 도입을 포함시키자는 야당 주장을 놓고 낯뜨거운 설전을 벌였다. 국 의원이 “나이도 어린데 아버지뻘 되는 나한테 따질 수 있느냐”고 질책하자 김 의원은 “국회 안에서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며 대들었다. 박찬구 김성수기
  • [김삼웅 칼럼] 신당은 김대통령 책임으로

    김대중 대통령은 오래 전부터 이른바 ‘퇴진론’에 시달려 왔다.박정희 정권은 아예 ‘제거론’을 실천에 옮겨서 71년의 자동차 사고를 빙자한 살해기도에 이어 73년에는 도쿄납치 살해미수 사건을 저질렀다. 그런데도 ‘제거’가 안되자 전두환 정권은‘사법살인’을 기도하면서 군사법정을 통해 사형을 선고하였다.국내외 여론에 밀려 ‘집행’이 불가능해지면서부터 이른바 여론을 통한 ‘퇴진론’으로 선회하였다. DJ를 정계에서 제거하려는 부단한 움직임은 여러가지 형태로 나타났다.해외추방,투옥·가택연금,공민권 제한 등 실정법과 물리력을 동원하는 방법과 지식인·언론인을 통해 퇴진론을 펴 정계에서 추방하고자 들었다.이런 음모는상당기간 유효했다. ‘퇴진론’의 경우 DJ에게만 한정시키면 속보이는 까닭에 경우에 따라서는YS를,또 다른 경우에는 JP를 묶어서 양김 또는 3김청산론을 펴왔다.군사정권과 그 후계세력 또는 그들과 유착관계를 맺어온 언론·지식인들이 자신들의기득권 유지에 가장 큰 걸림돌로 인식돼온 DJ의 집권을 한사코 막고자 제거론과 퇴진론을 되풀이해온 것이다.최근에는 이미 퇴진한 YS까지 묶어서 3김퇴진론을 펴는 웃기는 사람들도 있다. 이와 같은 ‘제거’음모에서도 DJ는집권에 성공했고 6·25전쟁 이래 최대국난이라 불리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국가경제를 다시 회복시켰다. 39억달러로 곤두박질 친 외환보유고를 1년반 동안에 700억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마이너스 5.8%이던 성장률을 9% 수준으로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물가·금리·환율·수출 등 모든 면에서 성공적인 경제관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정치와 인사관리의 난맥이라 하겠다.엄격한 검증이 없이 요직에앉힌 일부 구시대 인물들의 관행적 부패와 타락,권력을 즐기는 무사안일,그리고 개혁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은 거대 야당과 공동여당의 갈등과 정치력부재 등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져 오늘의 국정난맥을 가져왔다. 마침내 국정난맥과 구시대 정치의 관행을 단절시키고 21세기 뉴 밀레니엄일류국가를 지향하고자 신당 창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기존 정치권의 부패와 정쟁에시달려온 국민들은 정치권의 개혁과 변화를 기대한다.바뀌지 않고는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당 창당과 관련하여 어김없이 DJ 2선 후퇴론이 전개된다.정치도의상 있기어려운 야당 총재가 성냥불을 켜고 일부 언론, 지식인 그리고 국민회의 인사들도 합세한다.물론 반DJ측과 친DJ측의 2선 후퇴론의 목적과 배경은 다르다. 친DJ측은 전국정당화를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건다.상당한 설득력에도 불구하고 자칫 명분과 실리를 다 잃게 될지 모른다.1선이든 2선이든 신당은 DJ가정치개혁과 국민통합을 목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일이다.그런데 ‘아닌 것처럼’위장해야 한다는 것은 신당의 목적과 명분에 걸맞지 않다.또한 정당정치 구조에서 대통령이 집권당을 이끌지 못하면 책임정치는 물론 그 정당은 여당도 야당도 못되는 반신불수의 기형이다.그같은 기형적인 정당체제로 어떻게 국정을 이끌며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겠는가.특히 지역주의 주술에 빠진 사람과 이를 선동하는 세력이 있는 상황에서는 DJ가일선에 서든 2선에 서든 마찬가지효과일 뿐이다.그렇다면 당당하게 전면에나서 2년의 업적을 평가받고 개혁의 중심에 서는 것이 떳떳하다.지난 92년 DJ가 떠난 민주당이 9인9색의 오합지중으로 무질서와 파벌싸움을 벌일 때 언론과 국민이 얼마나 지탄했던가를 돌이켜봐야 한다.더구나 지금은 집권당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위기와 기회의 과도기적 상황이고,여러가지 정치·사회적인 불안과 도전이 도사린 처지에서 향후 3년의 국정은 DJ 책임하에 이끌어가야 한다.이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책무이고 권리다.대통령책임제의 한국적 정치 풍토에서 임기말의 대선관리라면 몰라도 임기 중반기에 대통령이 집권당을 이끌지 못한다면 레임덕 현상은 물론 정치혼란을 불러올 것은 불을보듯 뻔하다.DJ 2선 후퇴론이 음습한 제거론의 속편이든,그를 위한다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정신이든 결코 용납되기 어렵다.DJ 책임하에 심판(현재)과 평가(후일)를 받아야 한다. [김삼웅 주필 kimsu@]
  • [의열 독립투쟁] (15)이봉창 의사

    20세기 전반기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 여러 나라들이 일제의 침략을받았다.일제의 침략을 받은 각 민족은 국가와 민족을 보존하기 위해 일본에저항해 싸웠다.그러나 한국민족만큼 강인하고 격렬하게 일제와 싸운 민족은드물었다.그 중에서도 침략의 괴수인 일왕 처단을 시도한 민족은 우리민족뿐이었다. 1932년 1월8일 일본의 수도 도쿄 한복판에서 일왕이 타고 가던 마차에 폭탄이 날아들었다.일왕을 처단하려는 조선인 애국지사가 던진 세번째 폭탄이었다.1924년 박열(朴烈) 의사가 히로히토의 결혼식에 폭탄을 던지려다 사전에발각되었고,1925년엔 김지섭(金祉燮) 의사가 일본궁성으로 들어가는 이중교에 폭탄을 투척한 바 있었다. 히로히토에게 폭탄을 던진 한국인 청년은 이봉창(李奉昌) 의사였다.이 의사는 1900년 서울 용산에서 태어났다.그의 집안은 수원의 철로부근에 있던 땅을 일본인에게 빼앗긴 탓으로 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 자랐다.소년시절에는일본인이 경영하는 제과점에서 고용살이와 용산역에서 기차운전 연습생으로일하기도 했다.그리고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뒤 6년여동안 나고야 등지를 떠돌며 노동으로 삶을 꾸려갔다. 청년으로 성장하면서 이 의사는 일본인과 분간할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일본말을 잘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 습속도 잘알고 있어 겉모습은 일본인과 다를 바 없었다.그러나 일본인의 고용살이를 하면서,또 일본에서 막노동을 하면서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한민족의 피가 끓고 있었다.스무살때 경험한 3·1의거를 계기로 그는 일본에 대한 적개심과 조국독립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있었다. 1931년 1월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간 이 의사는 임시정부 인사들을 만나 “당신들은 독립운동을 한다고 하면서 일왕은 왜 못 죽입니까”라고 일왕의 처단을 촉구했다.일왕을 손쉽게 죽일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를 임시정부에선 의심스럽게 여겼다.그의 행색이나 말투가 일본인과 흡사하였기 때문에수상히 여긴 것이다.김구(金九)는 직원을 시켜 이 의사를 은밀히 떠보도록하였다.어느 술자리에서 이 의사는 “작년에 도쿄에서 일왕이 능행(陵行)한다고 행인들을 엎드리라고 하기에 엎드려생각하기를 지금 나에게 폭탄이 있다면 쉽게 죽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라며 자신이 일왕을 죽일수 있다는 얘기를 또다시 꺼냈다. 그를 은밀히 살피던 김구가 이 의사를 직접 만났다.그는 “제 나이 이제 서른 한 살입니다.앞으로 서른 한 살을 더 산다고 해도 지금보다 더 나은 재미는 없을 것입니다.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지난 30년 동안에 인생의 쾌락을 대강 맛보았습니다.이제부턴 영원한 쾌락을 위해 독립사업에 몸바칠 목적으로 상해에 왔습니다”라며 자신의 진심을 김구에게 털어놓았다. 당시 김구는 한인애국단을 조직,독립운동의 한 방법으로 의열투쟁을 모색하고 있던 때였다.일왕을 죽일 수 있다는 것과 독립사업에 몸바치겠다는 이 의사의 각오는 김구를 감복케 하였다.두 사람은 자주 만났고,마침내 일왕을 폭살시키기 위한 계획을 추진하기로 하였다.준비는 김구가 맡았다.김구는 중국군에 복무하고 있던 김홍일(金弘壹)에게 부탁하여 상해 병공창에서 폭탄을만들었다.준비한 폭탄은 두 개였다.하나는 일왕을 처단하기 위한 것이었고,다른 하나는 이 의사 자신의 자결용 폭탄이었다. 1931년 12월 13일 이 의사는 한인애국단에 정식으로 가입하였다.단장 김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 의사는 “나는 참된 적성(赤誠)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여 한국애국단의 일원이 되어 적국의 괴수를 도살(屠殺)하기로 맹서하나이다”라는 선서를 했다.적국의 괴수,그것은 일왕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일본인으로 가장한 이 의사는 이 해 12월말경 일본 도쿄로 향했다.그는 일왕이 1932년 1월 8일 요요기(代代木) 연병장에서 거행되는 신년 관병식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이 날을 거사일로 결정하였다.김구에게는 “물품은 1월 8일 방매하겠다”는 전보를 보내 거사일을 알렸다.이 의사는 거사장소로 일본궁성 근처에 있는 경시청 앞을 택하였다.일왕은 경시청을 지나 사쿠라다몬(櫻田門)을 통해 궁성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1932년 1월 8일,예정대로 신년 관병식이 거행되었다.이 의사는 경시청 정문 앞에서 일왕을 기다리고 있었다.일왕이 탄 마차행렬이 앞을 지나자 이 의사는 뛰쳐나가며 손에 든 폭탄을 일왕을 향해 힘차게 던졌다.폭탄은 일왕이 탄 마차 뒤쪽에서 굉음을 내며 폭발하였다.순간 일장기를 든 기수와 근위병이탄 말 두필이 거꾸러졌다.그러나 안타깝게도 폭탄의 위력은 일왕에게 미치지 못하였다.폭탄을 만든 김홍일은 ‘회고’에서 군중과 일왕의 거리가 100미터 되는 것을 고려하여 폭탄을 멀리 던질 수 있도록 가볍게 만들었다고 했다.위력이 약했던 것이다. 이 의사의 일왕 저격의거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그중에서도 중국의 반응은 남달랐다.중국의 각 신문은 이 의사의 의거를 대서특필하면서 “한국인 이봉창이 일왕을 저격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적중하지 못하였다”고 하며,일왕을 폭살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애석해 했다.일제는 이러한 중국의 보도에 반발,1932년 1월 상해를 무력으로 침공하는 ‘상해사변’을 일으켰다. 이 의사의 의거는 일본제국주의가 신격화해놓은 일왕을 폭살시키려 했다는점에서,그리고 일제의 심장부인 도쿄 경시청 앞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현장에서 체포된 이 의사는 그해 9월 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 10일 순국하였다. 해방후 김구는 일본에 있던 이 의사의 유해를 윤봉길·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효창원에 안장하였다.정부는 62년 이 의사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하였다. 한시준 단국대 역사학과 교수 **이봉창의사 주변 일본제국주의의 총수격인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고 자신은 적지 일본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이봉창 의사.순국 당시 이 의사는 32세로 미혼이었다.그런 이 의사에게 직계후손이 있을 리 없다.이 의사와 가장 가까운 혈손으로는 이복형의 딸인 질녀 은임씨가 유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은임씨는 이 의사가 독립운동에 투신하기 전 일본서 노동자생활을 할 때 이 의사의 뒷바라지를 했다.거사를 앞두고 이 의사는 백범에게 질녀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해방후 환국한 백범은 은임씨에게 집을 사주는 등 이 의사와의 약속을 지켰다.은임씨도 이미 수 년전 작고했다.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 중에서도 번듯한 후손을 둔 경우는 그래도 낫다.기념관이나기념사업회를 운영하기도 하고 묘소를 돌보기도 한다.그러나 이 의사처럼 후사가 없는 선열들의 경우는 죽어서도 외롭다. 현재 이 의사를 기리는 기념사업회나 추모단체는 없는 실정이다.다만 효창원순국선열추모회가 4월 13일 합동추모제를 지내고 있을 따름이다.동상 역시 지난 95년에야 겨우 효창원에 건립됐다.이 의사처럼 일점 혈육도 남기지 못한채 청춘에 간 애국선열은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다.당국이나 종친에서 ‘외로운 영혼’을 위해 양자라도 한 사람 세워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다. 정운현기자
  • [외언내언] 사형 폐지론

    여야 국회의원 91명이 사형을 없애고 무기징역을 법정 최고형으로 하자는사형폐지법안을 7일 국회에 제출했다.현재 106개 나라가 사형을 현실적으로폐지했으며 해마다 2,3개 나라가 사형을 폐지하는 추세로 “20세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한국이)생명과 인권 존중의 새 문명을 지향하자”는 취지다.현재 전세계를 통틀어 사형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는 나라는 89개국이며,미국의 몇개 주를 제외하고는 아시아·중동·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등 군사독재국가나 저개발국들이 이에 속한다. 그러나 이 법안이 이번 회기안에 법제화 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여야 정책위의장들이 이 문제가 ‘매우 예민한 문제’임을 들어 광범한 여론수렴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동안 사형폐지 운동을 벌여온사회단체들은 사형제도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헌법재판소는 96년 11월 다수 의견으로 ‘합헌’결정을 내리면서 “사형선고에 신중을 기하고,평화롭고 안정된 사회가 실현됐을 때는 폐지해야 된다”고 판시했었다.그래서 필자는 헌재에 묻겠다.이미 사형제도를 폐지한 106개 나라들이 모두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라고 판단하는가.그런 사회는 역사적으로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을 모형으로 창조됐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죽일권리는 없다”는 특정 종교의 주장은 접어 두기로 하자.굳이 ‘사회계약론’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국민은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권한’까지 국가에 위임한 일이 없다”는 주장에 아무도 반론을 내세울 수 없을 것이다.사형제도 옹호론자들은 흔히 ‘막가파’같은 흉악범마저도 살려둬야 하느냐고 주장한다.사실 인간의 심저(心底)에는 보복감정이 있다.그러나 이성을 통해 그같은 보복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문명이다.더구나 ‘흉악범을 가둬 놓고 국민의 세금으로 먹여 살려야 하느냐’는 ‘경제주의적 항의론’은 검토할 가치도없다.다음으로 지적할 것이 ‘사형이 과연 휴악범죄의 억제에 효과가 있느냐’는 점이다.그동안의 연구 결과는 억제효과가 없다는 것으로 나와 있다.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할 또 하나의 근거는 오판(誤判)의 가능성이다.사람이 하는 재판에 오판이 없을 수 없고 오판에 의해 일단 사형이 집행되고나면 회복할 길이 없다.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이 정치권력이 사형제도를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할 가능성이다.80년 전두환(全斗煥)신군부가 김대중(金大中)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사실이 있지 않은가.사형제도는 폐지돼야 한다. 장윤환 논설고문
  • 박삼중스님 후원회 염주 사기판매혐의 내사

    사형수의 아버지로 불리며 권희로(權禧老·71)씨 석방에 큰 힘을 보탰던 부산 자비사 박삼중 스님 후원회가 염주를 사기판매한 혐의로 경찰의 내사를받고 있다. 부산 금정경찰서는 7일 이 후원회가 지난 6월부터 지금까지 삼중 스님의 법회에 참가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플라스틱 염주를 게르마늄 염주로 속여 판매한 혐의를 잡고 내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 이기철기자 chuli@
  • 사형수 무기로 감형 추진

    국민회의는 6일 ‘뉴 밀레니엄 사면·복권’의 기준을 마련,새천년을 앞두고 국민대화합을 위한 대대적인 사면·복권을 단행해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 이에 따르면 IMF형 경제사범과 생계형 행정사범에 대한 특별사면·복권 및공무원·교직원,공기업 직원에 대한 징계사면,경미한 신용불량자에 대한 신용구제 조치 등이 이루어져 수혜자는 수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회의는 특히 사면의 상징성을 강조하기 위해 형이 확정돼 집행 대기중인 사형수에 대한 무기감형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형이 확정돼 수감중인 IMF형 경제사범에 대한 특별감형 또는 사면,가석방조치와 더불어 식품위생법,건축법,도로교통법,농지보존이용법 위반자 등 각종 생계형 행정사범에 대한 특별사면·복권 조치도 요청했다. 신용불량자에 대해서는 금융기관의 자율적 판단에 따른 블랙리스트 해제 검토를 금융감독원에 건의했다.IMF체제 이후 부도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27개건설회사,8,000여명의 건축사에 대한 건교부의 제재 해제 조치 등 경제생활정상화를 위한 정책방안 마련도 촉구했다.이와함께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형이 확정되지 않아 지난 8·15 특사때 사면·복권받지 못한 전 한총련 의장정태홍(3기),정명기(4기),강위원(5기)씨 등 공안사범 33명의 특별사면도 함께 이루어질 전망이다. 국민회의는 이번 ‘뉴밀레니엄 사면’이 새천년을 앞둔 마지막 사면인 만큼 부처별로 사면·복권의 폭을 확대해줄 것도 당부했다. 이지운기자 jj@
  • 국회 본회의 통과 법안요지(下)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 33건 가운데 15건의 개정법률안 요지는 다음과 같다. (18건은 3일자에 게재)■교통안전공단법 분담금으로 조성된 자금의 용처를 교통안전교육,자동차 안전시험 등에 소요되는 비용으로 제한함. ■국회사무처법 의정연수원이 폐지되어 사무처 직무 중 연수에 관한 사항을신설함. ■국회도서관법 국회도서관의 전자도서관 구축을 추진토록 함.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관세법 위반행위자의 가중처벌에 관한규정의 관련 조문을 정비함으로써 법 적용상의 혼란을 방지함. ■사법경찰관리의 직무를 행할 자와 그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 지방국토관리청 등에 근무하며 도로시설관리사무에 종사하는 4급 이하 국가 및 지방 공무원에게 사법경찰권을 부여함. ■행형(行刑)법 교도소 등에 입소하는 수용자에게 접견·규율·징벌 및 청원등에 관한 사항을 고지토록 함으로써 수용자의 알 권리를 신장함.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 궐석재판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는 사건의 범위를 사형·무기 또는 단기 3년 이상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사형·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사건으로 변경하여 대상 범위를 축소함. ■형사소송비용법 형사소송비용의 범위를 정할때 공판절차 외 형사절차에서소요된 비용이 포함되도록 하고 국선변호인의 보수를 소송비용에 포함시키는등 형사소송법의 규정에 의한 형사소송비용의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함. ■중재법 법원이 법에 규정된 사항에 대해서만 관여할 수 있도록 하여 중재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당사자가 중재인을 선정하지 못하는 경우 등 법원의지원이 필요한 경우 이를 행할 관할법원을 구체적으로 정함. ■법원조직법 행정법원의 관할사건 중 단독판사가 심판할 것으로 행정법원합의부가 결정한 사건에 대하여는 단독판사가 재판할 수 있도록 하여 신속한재판이 가능토록 함. ■군사법원법 재판장은 피고인 또는 피의자에게 수인(數人)의 변호인이 있는 때에는 피고인·피의자 또는 변호인의 신청이나 직권으로 3인 이내의 대표변호인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함. ■법인세법 지주(持株)회사가 자회사에게 받은 배당소득금액의 일부를 수익금에 산입하지 않는 등 배당소득에 대해 이중과세가 되지 않도록 함. ■상속세 및 증여세법 상속세 및 증여세의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경우를 과세표준 50억원 초과에서 30억원 초과로 조정하고,최고세율을 45%에서 50%로 조정함. ■조세특례제한법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투자·인수 등을 위해 결성된 기업구조조정조합에 개인이 출자하는 경우 구조조정 대상기업의 주식을 취득하거나 양도함으로써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하여는 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고,기업구조조정조합에 대한 출자액의 30%를 소득공제하도록 하는 등 기업구조조정을 위한 자금 조달을 지원토록 함. ■관세법 납세자의 실질적 권리구제를 위해 세관장이 납세액의 부족을 이유로 세액을 경정(更正)하여 부족분을 징수할 때에는 납세자에게 사전 통지토록 하고,통지를 받은 납세자가 세액 경정에 이의가 있는 경우 과세 적법성여부를 심사청구할 수 있도록 과세 전 적부심사 제도를 도입함.
  • 대학‘만능학생증’등장

    ‘학생증 하나면 만사형통’. 교내 셔틀버스 승차권,도서관 출입증과 식권 등 전자화폐와 신분증 기능을한데 모은 ‘다기능 학생증’이 나온다.플라스틱 재질에 개인정보가 입력된마그네틱 띠를 씌워 금융 서비스 기능까지 하는 신분증 겸 신용카드다. 성균관대는 내년 1학기부터 기존 학생증에 전자화폐 기능을 첨가한 다기능학생증(RFIC)을 발급키로 했다.도서관 출입증,현금·직불카드,교내 셔틀버스용 교통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다.우선 2000학년도 신입생들에게 다기능 학생증을 발급한 뒤 단계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연세대도 현재 중앙도서관 출입증,현금·직불카드로 쓰이는 학생증에 신용카드 기능을 추가,내년 3월부터 사용토록 할 계획이다. 이창구기자 window2@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 (45)노동시인 박노해

    1991년 8월19일 오후 3시,“박노해,그를 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 시키기위해 사형을 구형합니다”라는 검사의 구형 앞에서 방청석은 흐느낌이 번졌다.그러나 시인은 당당하게,그러나 서정성 넘치는 최후 진술을 해냈는데,이진술은 트로츠키를 연상할 만큼 감동적이다. “사형!사형입니까?이것이 노동자에 대한 당신들의 대답입니까?서러운 기름밥의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며 인간다운 삶을 갈구해 온 한 노동자를 기어코사형 시켜야 되겠단 말입니까?결국 이 나라의 노동자에게는 두 개의 죽음 중 한가지를 선택할 자유밖에 없단 말입니까?임금 노예냐,사형이냐?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산업재해와 직업병으로 죽어가거나 아니면 당신들 손에 죽임을당하는 겁니까?지금까지 당신들은 이 나라 천만 노동자에게 폭력과 구속으로 대답해 왔습니다.박정희 정권은 나에게 폭행과 해고를 밥먹듯 자행했고,전두환 정권은 나를 수배자로 내몰았고,노태우 정권은 안기부 지하 밀실에서무려 24일간,576시간에 걸쳐 밤낮으로 고문하여 이 법정에 세우기까지,오로지 정치 보복과 정치 살인만을 준비해온 것입니다.우리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노동자가,박노해가 그렇게 두렵습니까?당신들은 지금 이성을 잃고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다 죽어 간다는 사회주의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나는 사형을 결정한 당신들을 진심으로 동정합니다.가련한 것은 사형을 받은 내가 아니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들입니다.얼마나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부실하고 부도덕한 정권이기에 한 노동자의 진실한 주장 앞에서 이토록 두려움에 떨어야 한단 말입니까.…우리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나에게 반드시 무죄를 선고해야 합니다.그러나 나에게 무죄를선고하는 것은 기적일 겁니다.참 어려울 것입니다.무죄라고 판정하기가 두렵거든 적어도 앞으로 10년 뒤에,2000년 1월1일,‘그때 우리 판결은 부끄럽지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살아 있으라,살아 있으라’)그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법정은 박수가 터졌는데,시인은 “무기 징역형을 축하 받아야 하는 슬픈 나라,슬픈 시대”라며,“그래도 산다는건 소중한 것이다”고 고해한다.그리곤 “1992년 4월,봄비가 차갑게 내리던 날”그는경주 교도소로 이감되어 1998년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그의 최후진술이 예견했던 10년보다 3년이나 빠른 역사의 일대 변혁이었다. 변한 건 역사만이 아니라 시인 자신도 마찬가지였다.“이글거리던 반역의 눈빛,성난 호랑이처럼 포효하던 혁명가의 얼굴은 어디로 갔느냐?마치 세속을떠난 수도자처럼 평온해 보인다”(‘오늘은 다르게’)는 그의 외모만 변한게 아니라 내면까지도 변했다.“당신은 아직도 사회주의자인가?”란 물음 앞에 그는 “예!” “아니오!”라고 답하는 이유를 세가지로 축약해 풀이해 준다.박시인에 따르면 사회주의에는 세가지 차원이 있다.첫째는 ‘체제로서의사회주의’인데,“나는 이러한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반대한다”고 단언한다.둘째는 ‘이념으로서의 사회주의’가 있는데,“그 방법론은 생산 수단의국유화와 계획 경제,프롤레타리아 독재,집단주의,민중항쟁노선으로 귀결됨으로써 위함한 독소를 내장하고 있다”고 비판한다.마지막 셋째 ‘가치로서의사회주의’는 “인류의 소중한 가치로 계승해야 할 요소”로 긍정한다면서,위의 두가지는 부정하고 마지막 한가지만 긍정하기에 그 대답은 ‘예’와 ‘아니오’의 갈림길이라고 밝혔다(‘흑과 백 사이에서’). 어떤 연유건 박노해의 역정은 노동시인에서 혁명가를 거쳐 이제 3단계인 지식인 시인이 된 셈이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외언내언] 아름다운 布施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한 사람이 탈출했다.분노한 나치 수용소장은 그 탈출자 대신 유대인 10명을 무작위로 뽑아 아사형(餓死刑)에 처하기로 했다.재수없게 뽑힌 사람중 한 명이 불쌍한 마누라와 가엾은 아이들 때문에 자신은죽을 수 없다며 울음을 터뜨렸다.그때 마르고 여윈 한 사내가 수용소장 앞으로 걸어 나가 “저 사람 대신 내가 죽겠소.나는 아내와 아이들이 없으니까”하고 말했다. 이렇게 남을 대신해 수용소 지하 아사감방에 끌려가 죽은 사내의 이름은 막시밀리안 콜베.폴란드인 가톨릭 신부다.처음엔 그를 비웃던 간수들도 죽기직전까지 아사감방에 함께 수감된 사람들을 위로하며 기도하는 그의 담담한시선을 나중엔 마주 쳐다보지 못했다.나치가 패망하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사람이 콜베 신부 이야기를 책으로 써 내면서 그의 “고귀한 희생이 바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었다”고 회상했다.콜베 신부는 영국 성공회의 본산 웨스트민스터 성당이 지난 97년 종파를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뽑은 ‘20세기의성인-순교자’ 10명에 포함됐다. 콜베 신부의이야기에 버금갈 만한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자기희생이 최근우리나라에서도 있었다.전북 남원 승련사의 용봉 스님(29)이 기독교 신자인신부전증 환자에게 신장을 기증했고 신장 기증을 받은 환자의 남편은 자신의 신장을 또 다른 환자에게 기증하는 릴레이 장기이식 수술이 지난 17일 이루어졌다. 타인의 생명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이 릴레이 장기이식은 불신과 증오와 이기심이 만연한 사회에 사랑의 불씨를 점화시킨 생명의 보시(布施)인 셈이다. 이런 생명 나누기 릴레이가 있기에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생명 나누기 릴레이가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은 장기 기증자가 스님이었고 그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가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인 듯싶다.우리사회에 종교간의 벽이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초등학교에 세워진 단군상이신앙의 대상인가 아닌가 시비가 붙어 목이 잘려 나가고,불교 사찰에 타종교광신도의 소행으로 보이는 의문의 방화가 잇따르는 현실을 반영하는 반응이다. 그러나 용봉 스님은 “모든 만물의 이치가 인연을 따라 서로 돕고 사는 것인데 하물며 생명을 살리는 데 종교의 벽이 있어서야 되겠느냐”고 말했다한다.어리석은 중생을 질타하는 일갈(一喝)로 들린다.유태교와 가톨릭 사이의 벽도 높지만 콜베 신부는 예수의 사랑을 실천했고 용봉 스님은 불교와 기독교의 벽을 넘어 부처의 자비를 실천했다.두 종교인이 실천한 숭고한 자기희생을 모든 사람이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겠지만 ‘옷 로비’ 사건이 보여주는 것 같은 이기적이고 추악한 종교인의 모습은 더이상 나타나지 않았으면좋겠다. [任英淑 논설위원 ysi@]
  • 천주교 정평위“사형은 인간 존엄성 무시한 제도”

    내년 대희년을 앞두고 천주교계가 사형폐지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위원장 박석희 주교)는 최근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서명운동에 나선 데 이어 인권주일(12월5일)을 앞두고 미리 성명을 발표,사형폐지 운동에 대한 신자들의 관심과 동참을 촉구했다. 정평위는 성명에서 “사형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는 행위로써 가장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불명예스러운 형벌”이라고 지적하고 “금세기 마지막 인권주일을 기해 우리나라도 사형제도를 폐지할 것을 국민과정부에 호소한다”고 강조했다. 정평위는 이어 “창조주가 아닌 어느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박탈할 수는 없는데도 국가 또는 어떤 권위에 의해 사형제도가 존속돼온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죽음의 문화”라고 지적했다. 정평위는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각 교구 정평위 등 교회내 단체및 일반 사회단체들과 연대해 사형 폐지운동을 벌인다는 방침 아래 내년 ‘교도소의 대희년’(7월9일)까지 범국민적인 서명운동을 전개한 다음국회에 입법청원서를내고 국제기구에도 청원할 예정이다. 김성호기자
  • 오잘란 사형확정 판결이후 터키 에제비트총리 ‘진퇴양난’

    [앙카라 DPA 연합] 쿠르드 반군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에게 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한 항소심 재판부의 25일 판결 이후 터키 정부,특히 뷜렌트 에제비트총리가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졌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의회와 대통령의 승인과정을 남겨 놓고 있어 공은 이제 정치권으로 넘어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에제비트 총리의 경우 개인적으로 사형제도에 반대하고 있는데다,정부로서도 국내의 환영 분위기와 국제적 비난여론 사이에서 어떤 결정도 내리기 힘든 딜레마에 빠져 있다.터키 쿠르드노동당(PKK) 지도자인 오잘란은 지난15년여 동안의 독립 투쟁 과정에서 모두 3만2,000명 이상을 희생시킨 ‘학살자’로 터키 언론과 국민들에 의해 낙인찍혀 있다. 그러나 유럽의 정치인과 외교관들은 터키가 오잘란을 사형시킬 경우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희망은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터키의 고민을 가중시키고 있다.한스-요하힘 페르가우 터키 주재 독일대사는지난 23일 “오잘란이 사형되면 터키 정부가 EU 비정규 회원국 참여의사를밝힌 핀란드 헬싱키 정상회담의 효력도 상실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극우정당인 국민운동당(MHP)의 부상도 에제비트 총리의 고민을 가중시키고있다.MHP는 지난 총선에서 PKK에 대한 강경방침을 공약으로 내세워 의석을 크게 늘리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 홍석현회장 보석 기각

    서울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金二洙)는 26일 25억여원의 세금을 포탈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기소된 보광그룹 대주주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 회장이 낸 보석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피고인에게 적용된 조세포탈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어 반드시 보석을 허가해줄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현행 형사소송법 95조는 ‘피고인이 사형,무기 또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이나 금고에 해당하는 죄를 범한 때에는 보석을 허가하지 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강남구, 양재천 제방에 장애인리프트 설치

    강남구는 양재천 공원화사업의 하나로 일원동 대치아파트 뒤편 양재천 제방에 경사형 장애인 리프트를 설치,26일 개통식을 갖고 일반에 개방했다. 길이 30m인 이 리프트는 2인용으로 제방을 1분만에 오르거나 내려갈 수 있다. 이 리프트가 완공됨으로써 그동안 양재천을 이용하지 못했던 인근 거주 400여명의 장애인과 노약자들의 불편이 크게 해소되게 됐다. 이에 앞서 강남구는 양재천공원화사업으로 자전거도로와 산책로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는 한편 물고기가 살고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줄길 수 있도록 자연하천을 조성,하루 1만여명의 주민이 양재천을 찾는 등 좋은 성과를 거두고있다. 조덕현기자 hyoun@
  • 비서실 개편 매듭과 金대통령 구상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비서실장에 이어 24일 정무수석을 교체함으로써제2기 청와대 비서실의 뼈대가 갖춰졌다.총선출마가 예상되는 일부 수석과비서관들에 대한 후속인사가 예상되지만 일단 2기 비서실의 지향점과 성격,향후 역할을 내보인 셈이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김대통령이 자신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오랜 측근 인사들을 요직에 전진배치했다는 점이다.이는 집권 중반기의 안정적인 국정운용과 정치개혁,정국 정상화를 이루기 위한 ‘정면돌파형’ 인사로 풀이된다. 4선인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과 재선인 남궁진(南宮鎭) 정무수석의 개인적 역량에다 김대통령과의 각별한 정치적 인연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지금 김 대통령이 생각하는 것은 정치”라는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의 설명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부분은 한 실장과 남궁 수석이 의원직을 사퇴하고 청와대에 들어왔다는 점이다.한 관계자는 “정치인에게 16대 총선의 의미는 과거와는 다르다”면서 “총선 포기는 정치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고 평가했다.스스로가 정치적 희생을 감수한 만큼 당정을 향해 과감한 개혁과 이에따른 고통분담을 흔쾌히 감수토록 주문할 수 있는 필요충분 조건을 갖춘 ‘친정체제’라는 설명이다.이 대목은 16대 총선 공천과 관련해 김대통령이 국민회의에 보내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총선승리를 담보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을 용인치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해석이다.김 대통령은 실제로 “여당이 안정돼야 정국이 안정되고,나라와 민생이 안정된다”면서 내년 총선에서 안정의석 확보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역할 수행을 위해서는 청와대 비서실의 기능조정이 뒤따를 것으로보인다.최근 잇따른 ‘악재’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등 청와대의 기능이 무기력 상태에 빠진 것이 아니냐는 자성론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 비서실장도 “내정에서는 대통령의 뜻과 국민들의 생각이 호흡을 같이하지 못하고 있다.국민의 뜻을 굴절 없이 보고·건의해 국민과 같이 가는 청와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정 대상은 정책기획·정무·공보·법무비서관실 등으로 알려지고 있다.먼저 정무수석실의 정무기획 기능과 공보수석실의 국정홍보 기능 일부를 정책기획수석 산하로 넘겨 기획기능이 짜임새 있게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법무비서관실의 인사 및 사정 기능 일부는 민정수석실로 옮기는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법무비서관실은 순수 법률자문 기능으로 국한하자는 주장과 민정수석실의비대화를 막기 위해 법무수석실을 신설하자는 안도 제기되고 있다. 양승현기자 yangbak@
  • 내일-새달 2일 동국대서 4회 인권영화제

    올해는 세계인권선언이 선포된 지 51주년이 되는 해.국제인권법과 유엔인권보장체계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는 아직도 인권탄압의 그늘에서신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영화로 인권현실을 고발한다’ 26일부터 12월 2일까지 동국대에서 열리는 제4회 인권영화제는 영화를 통해 핵심적인 인권문제들을 짚어보는 뜻깊은‘비주류’ 영화제다.올해부터는 특히 ‘올해의 인권영화상’을 신설하는 등 면모를 새롭게 해 기대를 모은다. 인권운동 사랑방과 동국대 총학생회가 공동주최하는 이번 인권영화제에서는 국내작품 14편,해외작품 30편 등 모두 44편의 영화가 상영된다.개막작은 리류리 감독의 미국영화 ‘모든 권력은 민중에게’.아프리카계 미국인 해방투쟁에 앞장섰던 흑인 좌익단체 흑표범당과 관련된 왜곡되고 가려진 이야기를다룬 다큐멘터리다.이 영화에서는 흑표범당을 중심으로 한 흑인민권운동의산 증인들이 모두 증언자로 나선다.그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인물은 지난 81년 필라델피아 경찰을 살해했다는 혐의로 구속돼 82년 사형선고를받고복역중인 흑인 민권운동가 무미아 아부-자말.이 영화는 아부-자말의 옥중인터뷰를 통해 흑인과 소수민족에 대한 미국의 반인권적 이중잣대를 신랄하게고발한다. 한국영화중 다큐멘터리 작품으론 제주 4.3항쟁의 진실을 기록한 ‘국가범죄-레드헌트2’,인천지역의 대표적인 빈민가 만석동에 있는 공부방 이야기를담은 ‘기차길옆 공부방’,국민의 정부 이후 유가협의 투쟁을 다룬 ‘민들레’,북한 꽃제비의 실상을 고발한 ‘탈북 소년들 중국에 가다’ 등이 상영된다.극영화로는 매향리 미군비행기 사격훈련장으로 인한 인권피해를 다룬 단편 ‘소리’가 소개된다. 해외작품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세계인권선언이 나오기까지의 과정과 선언의 의미를 살핀 ‘세계인권선언의 역사’(미국),러시아 변방 우랄지방을 무대로 농장노동자들의 신산한 삶을 그린 ‘변방’(우크라이나),브라질 망명조각가 프란스 크라지크베르그의 생애를 조명한 ‘소코로 노브레-삶은 어딘가에’(브라질),독일 점령기 비시정권의 대독 협력문제를 다룬 ‘슬픔과 연민’(프랑스)등.특히 상영시간이 4시간 20분에 이르는 ‘슬픔과 연민’은 당시 레지스탕스 또는 나치 활동자들의 증언을 통해 진실과 거짓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묻는가하면 때론 고통스런 참회의 순간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의 고전으로 관심을 끈다. 이번 영화제에선 표현 자유의 가치를 고찰한 ‘독방의 활력’(오스트레일리아),‘잃어버린 지평선’(인도),‘화해의 문’(캐나다)등 애니메이션도 6편선보인다. 한편 올해 인권영화제는 ‘세계무역기구(WTO) 뉴라운드 반대 민중행동’이란 특별행사를 마련해 주목된다.초국적 자본의 횡포를 벌거벗은 임금님 우화에 비유한 다큐멘터리 ‘황제의 옷’등을 상영하며 뉴라운드에 대응하는 민중행동 설명회,퀴즈대회도 연다.한국 인권영화중 가장 완성도 높은 작품에 주어지는 ‘올해의 인권영화상’ 수상작은 폐막작으로 상영된다.(02)741-2407김종면기자 @
  • [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44)노동시인 박노해

    ‘노동해방문학’지를 통해 꾸준히 시사시와 시평을 발표했던 박노해 시인은 그 복간호(이 잡지는 1989년 12월호까지 나온 뒤 휴간,1990년 6월 복간호를 내면서 종막을 고했다)에서 시인의 얼굴이 아닌 혁명가의 모습을 본격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획좌담,박노해 선배와 9박10일간의 비밀 좌담-남한 선진 노동자와의 대화’란 제목이 붙은 이 글의 ‘전문은 200∼300매의 단행본 2권 분량에 가까운 방대한 원고였으나 본지의 지면 관계상 토론의 전반부 중에서 일부만을요약,발췌’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박노해 시인이 사회를 맡은 이 좌담 참석자는 실록 ‘마침내 전선에 서다’의 필자 김미영을 비롯한 정준하(마창지역 해고 노동자),이장태(현대중공업 노조 대의원),최성호(마창지역 해고 노동자) 등이며,몇몇 옵저버들이 함께했다.이 좌담은 1989년 결성된 남한 사회주의 노동자 동맹(세칭 사노맹 사건)의 단초를 엿볼 수 있는 혁명에의 투지를담아낸 실로 장쾌한 대서사시에 가까운 담론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참석자들은 서로가 자기소개를 하는데,박시인은 “1978년부터 본격적인 노동운동을 시작하여 그 후로 직업적 노동운동을 계속해 오고 있습니다.1985년도에 해고되고 공식 수배되어 졸지에 우리나라 최장기 수배자로서 전위정당결성 투쟁에 주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혔다.논의는 선진 노동자는 누구인가란 문제부터 그 조직적 발전 전망,노조 활동,전국 노동운동의 분석,사회주의의 위기와 동요,수정,배신에 대한 가차없는 투쟁,노동자 계급 주도의 민중통일전선 등 노동자 주체적 전위 혁명조직의 전모를 담아내고 있다.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내면서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이 시집을 발표하면 내 앞에는 수배와 구속,어쩌면 의문사나 사형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걸 각오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나는 ‘얼굴 없는 시인’으로 쫓기기 시작했다.…그런 처지에서 무책임하게 아이를 낳아 기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죽음을 예감할수록 나 닮은 아이를 남겨두고 싶은 인간의 본능은 더욱더 강렬히 솟구쳤다.아내도 아이를 원하기는 했지만 봉재 공장 미싱사로잔업 철야에 시달리면서 하루하루 긴장된 현장활동을 해나가자니 도저히 임신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마침내 나는 동원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관수술을 하고 말았다.그건 나를 온전히 세상에 바치겠다는 결단이기도 했다.1980년대를 현장에서 열정으로 살아낸 친구들 중에 그렇게 정관 수술을 한 사람이 많았다”고 그는 고백한다.(‘나 닮은 아이 하나기르지 못하고’)사노맹 사건이 터지면서 박 시인은 ‘얼굴 없는 시인’에서 ‘지명 수배 당하는 혁명가’로 그 실체를 드러냈고,1991년 피체되었다.누구나 당하는 고문 말고 이 교육부의 ‘가방 끈’이 짧은 혁명가는 “지하 밀실의 고문장에서좌우의 이념보다 더 무서운 또 하나의 숨은 흑백 논리 앞에 직면”하게 된다.“‘노동의 새벽’은 누가 써준 거냐?대학도 못 나온 사람이 어떻게 그런시를 쓰고 어려운 이론 글들을 쓸 수 있느냐?”는 추궁 앞에서 시인은 다시노동자 해방의 정당성을 깨닫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여순 사건에 연루되었던 아버지가 소리꾼으로 떠돌다 암으로 타계한 건 시인이 여섯 살 때였다.‘빨갱이 자식’의 업보로 신부와 수녀와 노동자 시인이된 이들 남매를 키웠던 어머니는 “내가 죽어서 네가 산다면 열 번이라도 죽으련만…”이라며 “기도밖에 더 할 게 없구나”고 탄식했다. [任軒永 문학평론가]
  • 참고인 진술·정황증거에 나타난 실체

    지난 88년 당시 평민당 김대중(金大中)총재가 서경원(徐敬元)의원으로부터북한의 공작금 1만달러를 받았다는 검찰 발표는 검찰과 안기부의 공조 조작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참고인의 진술과 정황 증거 등을 종합하면 안기부가 89년7월10일쯤 서 의원의 비서관 방양균(房羊均)씨로부터 “흰 종이에 1만달러를 싸 갖고 가는 것을 봤다”는 자백을 받아내 검찰에 넘겼으며 이를 바탕으로 검찰이 7월28일 서 의원으로부터 ‘1만달러 제공’ 진술을 얻어냈을 가능성이 짙다.검찰과 안기부가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다. 방씨는 최근 검찰 조사에서 당시 안기부가 서 의원이 1만달러를 솔 담뱃갑2개 크기로 포장해 김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강요했으며 고문을 이기지 못해 허위자백했다고 밝혔다.수사는 정형근(鄭亨根) 당시 대공수사국장이 총괄했다.방씨는 자신을 직접 고문한 김모씨를 최근 만나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방씨 진술대로라면 ‘1만달러 수수 공작’은 안기부에서 시작돼 검찰이 마무리한 셈이다.정형근 의원이 ‘1만달러 수수’ 부분은 검찰이 밝혀낸 것이라고 한 발언과도 배치된다. 더욱이 당시만 하더라도 대공업무과 관련해서는 검찰과 안기부는 탄탄한 공조를 유지했다.안기부가 수사해 송치한 공안사건을 수사하다 송치내용과 다른 점이 발견되면 검찰이 반드시 안기부와 협의 또는 조정을 거치는 게 관례였다.검찰 관계자는 “사건의 중대성에 비추어 당시 안기부 대공수사 책임자가 당연히 검찰의 수사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라며 조율가능성을 내비쳤다. 서 전 의원과 방씨는 안기부뿐 아니라 검찰에서도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방씨는 자신이 당시 안모검사에게 안기부의 수사가 조작됐다고 하니까 ‘사형을 면해줄 테니 시인하라’고 회유했다고 진술했다.서 전 의원의 보좌관이었던 김용래(金容來)씨와 김씨의 친구인 안양정(安亮政)씨가 당시 검찰에제출한 진술서와 2,000달러 환전영수증이 누락됐다는 주장이 사실로 확인된것도 검찰의 공작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수사검사팀은 안기부와의 합작 수사에 대해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따라서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좀더 진행되어야 ‘공작’의 실체가 명백히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주병철기자 bcjoo@ *“어느선까지 소환”고민하는 검찰 검찰이 깊은 시름에 빠졌다.지난해 대전 법조비리사건에 이어 조폐공사 파업유도 및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특별수사로 자존심을 구긴 검찰이 ‘김대중(金大中)대통령 1만달러 수수 공작’사건으로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검찰 내부에서는 심각한 위기라는 탄식의 소리와 함께 ‘이번 기회를 통해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정치권의 논리로 검찰이 수사 검사를 수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앞으로 수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불만도 제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재수사’라는 칼을 뽑아든 것은 당시 수사에대해 조작 의혹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검찰 수사 발표에서 빠져서는 안될 서경원(徐敬元)전 의원의 보좌관 김용래(金容來)씨와 조흥은행 영등포지점 외환담당 대리 안양정(安亮政)씨 등 참고인의 진술과 물증의 누락 확인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이 같은상황에서 그대로 덮을 경우 검찰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작용했다. 검찰은 특히 당시 수사검사를 어떻게 조사할 것이며 어느 선까지 소환해야하는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검찰 수뇌부는 계속해서 회의를 열어 대책을숙의하고 있다. 당시 안기부에서는 정형근(鄭亨根)수사국장,안응모(安應模)1차장,徐東權(서동권)·박세직(朴世直)안기부장이 수사 보고라인이었다.검찰에서는 서울지검 安鍾澤(안종택)·이상형(李相亨)검사,안강민(安剛民)공안1부장,김기수(金起秀)1차장,김경회(金慶會)검사장,김기춘(金淇春)총장라인이었다. 이와 관련,안기부에서는 당시 안응모 1차장,검찰에서는 안강민 공안1부장까지 소환하는 것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적지않다. 주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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