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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軍, 미국인 여성도 위안부 삼았다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장교가 미국인 여성을 상대로 매춘을 강요한 것과 관련해 재판을 받은 기록이 확인됐다. 그동안 한국, 타이완, 중국 등 아시아여성이 위안부에 강제동원된 사실이 드러난 적은 있지만 미국령인 괌 여성의 피해 사실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같은 사실은 그동안 ‘위안부의 존재는 인정하나 일본군의 개입은 부정해 온’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반박하는 또 하나의 물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달 30일 미국 하원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는 위안부 결의안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일본군이 칼로 위협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 25일 위안부문제를 연구하는 국내 한 전문가가 미국의회도서관에서 입수한 350장짜리 1945년 미 해군 괌 재판보고서에 따르면 1942년 2월부터 6개월 동안 일본인 괌 사령관 하야시의 부관(소령급)인 ‘사카이’는 당시 17세인 F양을 강제로 끌고가 성노리개로 삼았다. 사카이는 당시 괌에서 활동하고 있던 일본인 사업가 ‘시노하라’와 함께 F의 집으로 찾아가 부모를 칼로 위협해 강압적으로 F를 데리고 갔다. 이어 한 집에 F를 감금한 뒤 매일 감시를 했다. 그 곳에서 F는 언니를 만났다. 사카이는 하야시와 함께 일주일에 2∼3차례씩 그 곳에 들렀다. 그러나 재판기록에는 언니와 하야시 두명에 대한 이야기는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F는 재판에서 “약혼자가 있었지만 집으로 끌려간 첫 날 사카이와 잠자리를 해야 했다.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자 (시노하라가)도망가려고 하면 나쁜일이 일어날 것이고 복종하지 않으면 목을 베어버릴 것이라고 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또 사카이가 “세탁과 청소를 하면 매월 20엔씩 주겠다.”고 했으나 약속한 돈은 절반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적혀있다.시노하라는 재판에서 ‘매춘을 목적으로 여성을 강제로 끌고간 혐의’등 5개 혐의에서 유죄를 인정받아 교수형을 선고받았다가 징역 15년형으로 감형됐다. 일본군 장교 사카이는 미군이 괌을 탈환하기 직전 일본으로 돌아가 재판을 받지 않았다.●“특정인을 위한 성노예도 위안부” 시노하라는 당시 괌 거주 일본인 협회 회장을 지낸 사업가로 일본군 장교 사카이의 지시로 이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1938년 일본 육군성이 중국 북부지역 참모에게 보낸 결재서류에 ‘위안부 모집은 지역의 군이 통제하고 모집책(업자)선정을 적절히 할 것’이라는 내용과도 일맥 상통한다. 서울대 사회학과 정진성 교수는 “전쟁 중 성매매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첫 사례인 네덜란드 바타비아 법정문서보다 앞선 것”이라면서 “이번 재판기록에는 한명의 피해여성이 나오지만 앞으로 케이스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어 “전형적인 위안소의 형태는 아니지만 특정인을 위한 성노예도 위안부라 할 수 있다. 한국의 위안부 할머니 가운데서도 이런 사례가 여럿 있다.”고 덧붙였다. 건국대 법학과(국제법 전공)조시형 교수는 “인신매매 현장에 일본군인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일본군의 개입은 명확하다. 설사 사적인 목적이라 하더라도 국제법상 일본군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미국 여성의 사례가 발견되기는 처음인 만큼 앞으로 미국의 태도가 주목된다.”면서 “미국 차원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처벌을 위해 미국의 관련 문서 공개를 촉구하는 등 법제정 움직임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대선주자 25시] 이해찬 前총리

    [대선주자 25시] 이해찬 前총리

    이해찬 전 총리의 출사표를 요약하면 도덕성과 국정운영 능력, 미래비전이다. 출마를 선언한 뒤 대중 정치인의 자질 면에서 집중적으로 지적받는 부분이 있다. 대중성 부족이다. 오죽하면 ‘버럭 이해찬’으로 불릴까. 여야를 넘나들며 정책위 의장을 거친 데다 지난 1995년 조순 전 서울시장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장을 필두로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대선본부 부본부장,2002년 새천년민주당 선대위 기획본부장 등을 거치며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왔다. 그러나 대선이 정책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판인가. ●진정한 대중성은 ‘진실’ 지난 4일 부산을 찾은 자리에서 이 전 총리는 사과 이야기를 꺼냈다. 청중을 향해 “사과가 다섯 개 있는데 이중 세 개를 먹으면 몇개가 남을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당연히 두 개라고 답했던 청중들은 이 전 총리의 답변에 자지러질 듯이 웃었다.“아니, 먹는 게 남는 건데 세 개지 왜 두 개냐.”라는 게 아닌가. 앞으로는 웃음을 유도하는 후보가 되겠다고 다짐도 했다. 그러면서도 진정한 대중성은 ‘대중 추수주의’가 아닌 진실성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용은 왜곡되고 이미지화되면서 형식만 갖추는 게 대중성은 아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실에 기반한 대중성에 대해서도 명확한 답변이 이어진다. 대중의 이해에 충실하면서 대중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개혁파 정치인이면서도 현실주의적인 해법을 중시하는 그의 정치적 컬러가 대변하고 있다. 한 핵심 측근은 “진짜 개혁세력이 힘을 얻으려면 주장에만 그칠 게 아니라 관철시키는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이 전 총리의 지론”이라고 설명했다.1997년 대선을 앞두고 전교조 합법화를 유보했다가 여당이 과반의석을 넘었을 때 관철시킨 것, 노동법 재개정 당시 국제기준을 준수해 정리해고제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체성과 도덕성 그가 이날 총리 낙마의 결정타를 안겨줬던 부산을 찾아 맨 먼저 들른 곳은 민주공원이었다. 부마항쟁이 유신의 마지막을 가져온 역사적인 사건인데 저평가됐다며 아쉬워했다. 기념관에서 ‘타는 목마름으로’를 부를 때 그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과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투옥됐을 때를 떠올리는 듯했다. 정체성은 범여권 후보의 자격에서 상대 후보와의 차별화나 마찬가지다. 사형선고까지 받으며 삶의 끝을 오갔던 그였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향해 “대학만 같지 살아온 이력은 다르다.”고 한 것은 뼛속 깊이 체화된 자신감으로 들렸다. 그는 대선 후보의 자질과 관련, 도덕성을 첫손에 꼽는다. 공개 강연이 있을 때마다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경선 후보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자기 땅 고도제한 추진은 청문회감”(13일 울산시당 간담회),“이 전 서울시장은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11일 경주시당 초청강연)며 비수를 꽂았다.16일 이명박 후보 가족의 주민등록초본 불법발급과 유출사건에 대해 정치공작 의혹을 거론하자 “위장전입과 위장 땅투기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온갖 비리에 연루된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참으로 용감한 사람”이라며 기자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그럼에도 지지율이 높은 이유를 묻자 “후보의 자질과 상관없이 수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집권욕 때문이다. 후보가 정해지면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지난해 3·1절 골프 파문은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같은 진영 후보조차 “이 전 총리에게 검증된 건 골프 실력밖에 없다.”고 공격받았다. 그는 “보도와 실체가 달랐다는 게 드러나지 않았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아직 완벽하게 여과되지 않아 보인다. 그가 본선 무대에 오르면 다시 묻기로 했다. ●세 여자의 등과 이해찬의 눈물 ‘이해찬’ 하면 강팍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다. 그때마다 “평판에 신경쓰지 않는다. 일로 승부한다.”고 답해왔다. 굳이 사족을 더 붙인다면 “워낙 도덕적으로 결점이 없다 보니 사사로운 것까지 들춰내고 싶은 모양”이라며 대수롭지 않아한다. 그런 그가 한없이 울었던 적이 있다.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안동교도소에 복역 중일 때 어머니와 아내 김정옥 여사, 딸 현주(당시 2살)가 찾아왔다. 그의 서른 살 생일날이었다. 면회를 끝내고 돌아서는 세 여자의 등을 봤던 것이다. 그는 감방에 돌아와 한 시간을 울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딸 현주를 자전거에 태우고 둑 위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어쩌면 아빠보다 할아버지가 더 따뜻하고 포근한 남자였을지 모른다며 애써 위안도 했으리라. 아내 김정옥 여사와는 대학시절 서울지역 사회학과 학생들의 학술모임에서 만났다. 대쪽 같은 정치인 남편을 둔 죄(?)로 서점과 곰탕집, 온갖 직업을 섭렵케 했다며 평생을 미안해 한다. 그는 전국을 다닐 때 아내와 항상 함께한다. 김 여사가 강단에 서서 남편 이해찬을 말할 때도 있다. 김 여사는 “남편이 스킨십 없다고 하지만 정말 그렇다면 우리 딸이 생겼을 리가 있겠냐.”며 웃어보였다. 딸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가훈을 적어오라는 숙제를 같이 하다가 “주는 대로 그냥 먹자.”라고 결론냈던 남편이었단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민복기 전 대법원장 별세

    민복기 전 대법원장 별세

    제5∼6대 대법원장을 지낸 민복기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변호사가 13일 오전 4시17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94세. 고인은 1913년 서울에서 출생,38년 경성제대 법학과를 졸업한 뒤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한 뒤 39년 경성지법 판사로 법조계에 입문했다.68년부터 10년간 대법원장을 지낸 뒤 국정자문위원, 헌정제도연구위원장 등을 맡았다가 87년부터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고인은 친일 법관으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포함됐고, 인혁당 재건위 사건 관련자 8명에게 사형 확정 판결이 난 75년엔 대법원장이었다. 유족은 장남 경성씨 등 2남 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영안 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6일 오전,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이다.(02)2072-2020.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정종욱 월드포커스] 힐과 강석주가 의기투합하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정종욱 월드포커스] 힐과 강석주가 의기투합하면/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한반도 주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말에는 미국의 힐 차관보가 평양을 방문해서 환대를 받았고 이달 초에는 중국의 양제츠(楊潔) 외교부장이 역시 평양을 방문해서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다. 그리고 이달 중순쯤 시작될 영변 핵시설의 폐쇄와 봉인을 감시할 국제원자력기구 대표단의 방북을 앞두고 오늘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이 서울을 방문한다. 그뿐 아니다. 다음주에는 6자회담 수석대표들이 만나고 8월 초에는 필리핀에서 아세안지역포럼(ARF)을 계기로 6자회담 외무장관 회담이 개최될 가능성이 있다. 외무장관 회담 다음으로는 더 굵직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동안 물밑에서 거론되던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도 구체화될 수 있다. 이미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종전선언의 서명을 제의한 바 있다. 라이스 장관의 방북이나 종전선언 서명은 바로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와 직결된다. 왜 이렇게 서둘까? 우선 협상의 주역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쪽에서는 북핵문제 주도권을 라이스와 힐이 쥐고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의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이나 갈루치 차관보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다. 크리스토퍼와 갈루치가 점잖고 꼼꼼한 협상전문가라면 라이스와 힐은 선이 굵은 투사형에 가깝다. 정치적 야망도 있다. 밀어붙여서라도 협상을 타결시켜 역사에 남는 인물이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북한에서는 강석주 부부장이 얼마전 국방위원이 되었다. 북한의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에 그가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가 핵문제 해결의 전권을 맡았음을 뜻하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북한주재 대사와 외교부장이 모두 미국통으로 교체된 바 있다. 사람뿐 아니라 국내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부시에게는 이라크에서의 실패를 만회할 필요가 있고 김정일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북한 경제가 악화되었다. 내년의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북핵문제의 조기 타결을 바라는 중국의 압력도 점차 강도가 더해지고 있다. 물론 북핵문제가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는 없다. 폐쇄와 봉인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해도 그 다음이 산 넘어 산이다. 핵문제는 핵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의 관계정상화, 일본인 납북자 문제, 한반도 평화체제 등 많은 난제가 얽혀 있다. 그래서 미국은 포괄적 해법을 시도하고 있다. 제기된 사안들을 한꺼번에 묶어서 일괄타결하겠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1990년대 초 북핵 1차위기 때 강석주가 이미 사용한 바 있다. 힐도 평양방문 때 이 방법을 제기했다고 한다. 포괄적 해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적어도 협상이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특히 부시와 김정일의 신임을 딛고 힐과 강석주가 의기투합하면 한반도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우리로서는 바로 이 점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심한 경우에는 우리를 빼놓고 미국과 북한이 밀실에서 흥정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친구도 입장이 달라지면 남이 될 수 있다. 이미 과거에 경험한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북핵문제에 매달려 왔다. 그러다 보니 하루라도 빨리 핵에서 벗어나고 싶은 국민적 열망이 생겼다. 정부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국가 존망이 달려 있는 안보문제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침이 없다. 무엇보다 사태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북핵문제의 본질은 핵이 아니라 북한 체제이다. 북한 체제가 변화하지 않으면 완전한 핵 해결은 불가능하다. 핵에만 매달리지 말고 보다 넓게 보아야 한다. 정부의 신중한 대응이 있기를 기대한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27) 이괄의 난이 일어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27) 이괄의 난이 일어나다Ⅰ

    반정 직후 인조정권이 명에 대해 충성을 다짐했던 것과 맞물려 후금에 대한 적개심도 높아져 갔다. 인조와 신료들은 후금과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을 가상하고 작전과 승패 향방을 자주 논의하곤 했다. 하지만 후금과의 군사적 대결을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우선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시급했던 것은 정권 교체 이후 극히 불안해진 민심을 수습하는 문제였다. ●불안한 민심 예나 지금이나 정권이 바뀌면 여러 가지 후유증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더욱이 반정처럼 정상적인 정권교체가 아니라 무력을 동원한 쿠데타일 경우, 그 후유증은 결코 만만할 수 없었다. 인조정권은 대북파(大北派)를 비롯한 북인들에 대해 대대적인 숙청을 단행했다. 반정군은 창덕궁으로 진입했던 직후부터 ‘살생부’에 올라 있던 인물들을 줄줄이 처형했다. 입궐하라는 명패(命牌)를 받고 가장 먼저 달려 왔던 병조참판 박정길(朴鼎吉)이 최초로 참수되었다. 이윽고 광해군 정권의 핵심이었던 이이첨과 정인홍을 비롯한 32명의 관인들이 복주(伏誅)되었다. 죽음을 겨우 면한 인사들도 대부분 멀리 유배되거나 조정으로부터 쫓겨났다. 복주된 자들의 ‘적산(賊産)’은 몰수되었다. 북인들은 이제 정치적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북인 정권’이 몰락하면서 도성의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죽음을 당하거나 관직을 잃은 자들뿐 아니라 하루아침에 실직하게 된 모리배들도 적지 않았다. 자연히 불평과 원망이 높아갔다. 살벌하고 뒤숭숭한 분위기에 편승하여 날뛰는 자들이 출현했다. 무뢰배들 가운데 ‘인조 호위’를 핑계로 몰려 다니면서 재물 약탈에 재미를 붙이는 자들이 횡행했다. 유생들 가운데는 반정공신들의 종사관(從事官)이란 직함을 갖고 설치는 자들이 있었다. 바뀐 현실 속에서 상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정공신들은 민심 수습을 꾀하는 한편 인조에 대한 호위를 강화했다. 특히 이귀의 노심초사가 컸다. 그는 무엇보다 ‘반혁명(反革命)’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그는 종실(宗室)들의 동향을 주시했다. 인조에게 흥안군(興安君)을 잘 감시하라고 강조하고, 능원군(綾原君)의 동향도 심상치 않다고 보고했다. 흥안군은 인조의 숙부이고, 능원군은 동생이었다.1623년 7월29일, 우려했던 ‘반혁명’의 움직임이 현실로 나타났다. 전 현령 유응형(柳應泂)이 역모가 일어났다고 고변(告變)했다. 관련자의 진술 가운데 ‘지금 반정한 사람들은 천명(天命)이 돌아간 사람을 왕으로 세워야 했다. 그런데 금상(今上)이 스스로 왕이 된 것은 옳지 않으며, 조정의 사대부들이 하는 행위도 지난날과 다름이 없다. 우리들이 다시 거사하려 하는데, 성공하지 못해도 사육신(死六臣)에게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란 내용이 나왔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것을 비판하고 그것을 되돌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8월25일에도,10월1일에도 고변이 터졌다.10월1일의 공초에서는 ‘지금 하는 짓은 광해군 때보다 더 심하고, 인사가 불공평하고 부역이 무거워 원망이 자자하다.’라는 진술이 나왔다. ●‘정권 안보’를 위한 노심초사 불과 석 달 사이에 세 번이나 고변이 발생하자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경악했다.‘정권 안보’에 비상이 걸렸다. 쿠데타로 집권한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나는 것이다. 인조와 반정공신들은 기찰(譏察)을 강화했다. 기찰이란 ‘반혁명 세력’을 색출하려는 목적으로 감시와 사찰을 벌이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가는 사람들은 ‘사찰 리스트’에 올랐다. 광해군때 벼슬에 있었다가 쫓겨난 인물들이 일차적인 대상이었다. 반정에 동조했던 남인(南人)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기찰의 방식이 문제였다. 반정공신들은, 의심되는 인물에게 자기 휘하나 심복을 접근시켰다. 심복들은 ‘사찰 대상자’에게 반정 이후의 변화된 상황에 대해 불평을 늘어 놓거나 스스로 ‘역모를 꾀하고 있다.’고 먼저 고백한다.‘미끼’를 던지는 것이다. 대상자가 동조하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 그를 잡아다가 족치는 방식이었다. 한마디로 공작정치의 냄새가 짙었다. 기찰이 남긴 후유증은 컸다. 불신 풍조가 심해졌다. 병력을 거느리고 있는 무장들은 ‘감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몸을 사렸다. 훈련을 목적으로 병력을 이동시키려 해도 반정공신들이 보낸 밀정들의 감시를 의식해야만 했다. 자연히 군사 훈련이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반정공신들은 휘하에 사병(私兵)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은 반정이 성공한 뒤에도 사병을 해산시키지 않았다. 민심이 불안하기 때문에 인조에 대한 호위(護衛)를 강화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런데 사병 가운데 상당수를 차지하는 군관(軍官)들의 폐해가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사실상 반정공신들의 개인적인 집사(執事)나 마찬가지였다. 호위를 명분으로, 반정공신들의 위세를 빌려 백성들에 대한 침학을 자행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에게 지급하는 급료는 국고에서 충당되고 있었다. 남인들은, 횡행하는 기찰과 군관들의 폐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당장 기찰을 중지하고, 군관들을 해산시키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반정공신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반발하는 신료들에게 ‘반혁명 분자’라고 면박을 주기도 했다. 어렵게 잡은 정권이 또 다른 쿠데타에 의해 붕괴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괄이란 인물 잘 알려진 것처럼 인조정권은 1624년 이괄의 반란 때문에 전복될 뻔했다. 겨우 진압되긴 했지만 이괄의 반란군은 서울을 점령했고, 인조는 공주(公州)까지 쫓겨가는 수모를 겪었다. 반정에 참가하여 광해군 정권을 뒤엎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던 ‘공신’ 이괄이 ‘반란군의 수괴(首魁)’로 변신하게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반정을 성공시키던 당일뿐 아니라 성공했던 직후, 이괄은 인조에게 가장 믿음직한 무장이었다. 이괄 또한 인조에게 후금군을 방어하는 대책을 아뢰고,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정권 보위에 나섰다. 인조는 이괄을 서북 변방으로 보내 후금 방어를 맡기려 했다. 그러자 이귀가 반대했다. 그는 ‘이괄을 서울에 남겨 의지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괄에게 호위를 맡기자는 것이었다. 이괄은 1623년 5월, 좌포도대장(左捕盜大將)에 임명되었다. 포도대장 이괄은 5월27일, 군관들을 이끌고 전 부사(府使) 박진장(朴晋章)의 집에 난입했다. 박진장을 ‘반혁명 분자’로 의심하여 기찰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이괄의 군관들은 박진장을 끌고 나오면서 그의 노모까지 구타하는가 하면 집을 부수고 재물을 탈취했다. 적어도 1623년 5월까지 이괄은 인조 정권을 지키기 위한 선봉대로서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변방의 정세가 수상해지자 인조는 8월16일, 이괄을 부원수(副元帥)로 임명하여 서변(西邊)으로 내려가게 했다. 인조가 송별을 위해 그를 접견했을 때, 이괄의 태도는 태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인조에게 ‘신의 재주가 없는 것을 아시면서 변방의 중임을 맡기시니 은혜를 갚으려고 할 따름’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적이 쳐들어 올 경우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고 다짐까지 했다. 그의 휘하에는 1만 5000의 병력이 주어졌다. 녹훈(錄勳)이 문제였다. 이괄이 임지로 떠난 지 세 달 여가 지난 윤 10월18일, 인조는 김류와 이귀를 불러 반정공신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논의했다. 정사공신(靖社功臣) 53명을 선정했다. 1등 공신이 10명,2등이 15명,3등이 28명이었다. 김류와 이귀 등은 1등공신이 되고, 이괄은 2등공신 가운데 첫머리에 놓여졌다. 임지에서 소식을 접한 이괄은 불만스러웠다. 더욱이 서울에서는 ‘이괄의 아들이 반란을 꾀했다.’는 소문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자신을 옹호했던 이귀가 ‘이괄을 속히 잡아들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는 소식도 날아들었다. 이윽고 1624년 1월17일, 이괄은 자신을 체포하기 위해 들이닥친 금부도사 일행을 살해하고 병력을 일으켰다. 인조정권이 그토록 무서워했던 ‘또 다른 쿠데타’가 일어났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처참한 태국 수용소 탈북자에 의약품을”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 갇힌 탈북자들은 지난 4월 처우개선을 요구하는 단식 농성 후 더욱 열악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320여명이 80∼100평 남짓한 방에 갇혀 30∼40도의 찜통 더위와 비위생적인 처우를 견뎌내고 있습니다. 싼값에 옷도 사고, 탈북자도 도우세요.” 8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 홍익대 인근 상점에서는 탈북자동지회 등이 후원하고 국제의료지원기구(AIMS)가 주관한 ‘태국 탈북난민 돕기 바자회’가 열렸다. 7∼8일 이틀간 열린 바자회에는 회원들이 손수 내놓은 물품 1000여점과 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내놓은 500만원 상당의 재고품이 손님들을 맞았다. 다양한 종류에 10만원을 넘는 고가품이 1만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으로 팔리면서 많은 고객들로 바자회는 이틀 내내 북적댔다. 바자회는 태국 이민국 수용소에 있었던 탈북자 김모(33)씨가 처참한 이민국 수용소안 생활을 폭로한 한통의 편지가 계기가 됐다. 김씨는 “수용소는 너무 비좁아 사람을 타고 넘어 용변을 보고, 변기를 목에 대고 자는 사람들도 있으며,1명뿐인 의사는 의사소통도 안 되고 주사나 처방 없이 단지 약만 던져주는 수준”이라면서 “방광 줄이 끊어져 호스를 낀 부위가 아프고 피고름이 계속 섞여 나오면서 호스 구멍을 자주 메워 소변보기도 어려웠지만 치료는 전혀 받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김씨는 탈북과정에서 북송되어 고문을 당해 방광이 터지며 몸을 심하게 다쳤고, 사형집행 직전 극적으로 살아나 1만㎞ 탈북 대장정에 성공했으나 그를 맞은 것은 치료조차 불가능한 이민국 수용소였다고 전했다. 태국 수용소 탈북자들을 돕기 위한 모금운동을 위해 지난 3일 발족한 AIMS 등에 따르면 지난 4월24일 탈북자들이 조속한 한국행과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벌인 뒤 ‘탈북자 잡아가기’는 더욱 심해졌다. 태국 정부에 붙잡힌 탈북자들은 1인당 약 1만 바트(약 30만원)의 벌금을 내거나 그 벌금 액수에 해당하는 날짜만큼 수용소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AIMS 서세진(29) 대표는 “4월 이후 정부지원이 끊기고 유엔과 한국대사관의 수용소 방문 루트도 닫혔다.”면서 “바자회를 통한 수익금 전액으로 생필품과 의약품을 구입해 29일 수용소 탈북자들에게 전달할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모금계좌는 610-20-047082(제일은행). 이경주기자 kdlrudwn@seoul.co.kr
  • 같은 법조항 2번 위헌제청 헌재 소극적 위헌결정 논란

    법률에 대한 사형 선고권을 쥔 헌법재판소가 권한을 너무 조심스럽게 행사하는 바람에 일선 법원이 똑같은 법률 조항에 대해 두 차례나 위헌 제청을 한 사실이 4일 뒤늦게 밝혀졌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지난달 5일 서울 강남에서 함께 건물 임대사업을 하는 한모·최모(73)씨 부부가 영등포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소득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을 심리하던 중 구(舊)소득세법 43조3항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결정했다.43조3항은 부부 등 특수관계의 동거 가족이 공동으로 ‘부동산임대소득(상가임대 등), 사업소득(제조업 등), 산림소득’이 생기는 사업을 할 경우 지분이 큰 한 사람에게 소득세를 몰아서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많은 소득에 누진세가 적용될 걸 피하기 위해 공동사업으로 위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부부가 함께 임대사업을 하는 한씨 부부도 이 규정으로 누진세가 적용된 종합소득세 2억여원을 물게 되자 소송을 내면서,“세금을 깎아 보려고 공동사업자로 꾸민 것도 아닌데 많은 세금을 몰아서 물리는 것은 위헌이다.”면서 위헌제청을 신청했고, 법원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 법률 조항은 이미 지난해 4월 같은 법원의 위헌제청을 받은 헌재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었다. 당시 헌재는 “일률적으로 특수관계자의 ‘사업소득’을 한 사람의 소득으로 보고 높은 세금을 물리는 것은 필요 이상으로 과도한 방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결정했다. 이 위헌 결정에 따라 관련 법률 조항도 ‘공동사업이 조세 회피를 위한 것으로 확인된 경우’ 등에만 합산과세하도록 개정됐다. 따라서 서울행정법원의 이번 위헌 제청은 이미 사망선고된 법률을 또다시 문제삼은 꼴이 됐다. 재판부는 “지난해 헌재의 위헌 결정은 ‘사업소득’에만 제한적으로 판정한 것이고 이번 위헌 제청은 ‘부동산임대소득’ 부분에도 위헌 판정을 해달라고 새로 촉구한 결정이다.”고 설명했다. 소득세법이 합산과세 대상으로 삼았던 ‘사업소득, 부동산임대소득, 산림소득’ 모두에 대해 위헌 판정이 내려졌어야 했다는 게 법원의 속내다. 사실 헌재는 법률을 무효화시키는 데 따르는 파장 등을 감안해 심판이 청구된 부분에만 제한해 위헌 판정을 내린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위헌 결정하는 김에 역시 위헌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 임대소득·산림소득’까지 모두 포함시켰더라면 또다시 위헌제청을 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한 법조인은 “헌재의 위헌 결정 취지대로라면 같은 법률조항에 나열된 다른 소득 부분도 사실상 위헌 판정을 내린 것인데 너무 좁은 시각으로 결정하면서 나머지 위헌 부분을 방치해 버린 셈이 됐다.”고 지적했다.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1980년 8월21일, 석달윤(76)씨는 신군부가 장악한 당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남산 대공분실 168호에서 47일간 고문을 당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고종 10촌 형님 박양민씨 탓이었다. 석씨가 간첩으로 남파된 박씨에게 전남 진도 해안 경비상황을 보고했다며 중정은 자백을 강요했다. 남파공작원 오모씨의 “박씨 간첩활동을 북에서 들은 바 있다.”는 막연한 진술이 근거였다. 수사관들의 고문은 가혹했다. 발로 배를 차고, 머리를 욕조에 담그고, 송곳으로 하반신 곳곳을 찌르고…. 잠은 안 재우면서 잠깨라고 볼펜 심지를 성기에 집어넣고…. 당시 중정 조사실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석씨는 결국 “내가 형님의 간첩활동을 도운 게 맞다.”고 자백했고,1981년 1월 안기부는 “고정간첩 15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47차 전원위원회에서 1980년 발생한 ‘석달윤 등 간첩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진실위 “반인권적 사건… 재심조치를” 진실화해위는 “장기간 불법구금 및 강압적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하고, 사형 등 중형으로 처벌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사건”이라면서 “국가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 및 재심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27년 만의 진실규명 결정이다. 석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떳떳하므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짓으로라도 자백하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 땅속에 있을 것”이라면서 “일주일만 그런 고문을 받으면 김일성이라도 만났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8년 복역… 지금도 보안관찰 대상 석씨는 무기수로 징역 18년을 살았다. 함께 누명이 벗겨진 박씨의 외조카 김정인씨는 이미 1985년 10월31일 사형당했다. ‘간첩’의 처자식은 생계가 끊겨 두 달 동안 고구마로 연명했고, 고향 진도에서 살지 못해 내쫓기듯 이사했다. 1998년 8월15일 가석방된 석씨는 여전히 공안당국의 보안관찰 대상이고, 고문으로 굽은 허리는 지금도 하루 턱걸이 70개를 해야 펴진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 것에 불과하다. 석씨의 ‘법적’ 간첩혐의는 바뀐 게 없다. 석씨는 “당연히 재심 청구한다. 백번 천번이라도 청구해서 무죄를 인정받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에서 배운 서예솜씨로 석씨는 국전에 수차례 입선했다. 그는 안산에서 통일운동가와 서예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김창룡 저격사건’ 기록 첫 공개

    ‘김창룡 저격사건’과 관련된 기록물이 51년 만에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3일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에 따라 한국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사료로 판단되는 사건기록 중 김창룡 저격 사건을 4일부터 국가기록포털(http://contents.archives.go.kr)을 통해 공개한다고 밝혔다. 이날 공개되는 사건기록은 3000여쪽에 달하며 서울지검에서 생산한 형사사건기록 70여건과 법원 판결문(7건), 사형집행종료보고(2건) 등이다. 사건기록은 용의자가 체포된 56년 2월부터 사형이 집행된 58년 3월까지의 진행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중 형사사건기록은 육군특무부대 의견서와 피의자 신문조서, 증인진술조서 등 수사기록과 검증조서, 구속영장 등 관련 기록이 포함돼 사건의 전모와 수사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사건의 전모뿐 아니라 정치권력을 둘러싼 역학관계 등 1950년대 한국사회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김창룡 저격사건은 1956년 1월30일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이 출근길에 괴한들의 총탄을 받고 사망한 건국이래 최대 군기(軍紀)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사법살인 법관 처벌법 만들어야”

    ‘사법 살인’ 등 고의로 법률을 왜곡해 판결을 내린 법관을 형사 처벌할 수 있는 법제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동아대 법학과 허일태(56) 교수는 3일 발간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계간 논문집 ‘형사정책 연구’ 여름호에서 쓴 ‘법왜곡 행위와 사법 살인의 방지를 위한 입법정책’이라는 논문에서 이 같이 주장했다. 허 교수는 “법관이 사실관계의 왜곡이나 조작, 부당한 법규 적용 등으로 인해 ‘법왜곡행위’를 저질렀을 경우 형법으로 법관을 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 교수는 한국형사법학회장을 지냈으며 사형제 폐지 주장과 함께 이를 대체할 ‘절대적 종신형’ 제도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주장했다. 허 교수는 논문에서 1974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부당한 법적용 판결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논문은 당시 유신헌법에 의거해 선포된 긴급조치로 피고인 8명에게 사형을 선고해 18시간 만에 이들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는데 이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을 규정한 유신헌법 자체가 권력분립주의와 법치국가주의 등 헌법의 근본 규범에 반(反)하기 때문에 긴급조치 역시 무효라고 분석했다. 또 피고인들이 1965년 이미 ‘인혁당사건’에 의한 반공법위반으로 처벌받았기 때문에 이를 다시 국가보안법에 적용시킨 건 일사부재리 원칙에 반한 것이 된다고 밝혔다. 특히 피고인의 가족 중 1명과 수사기관원 등 일부에게만 재판을 방청하도록 해 공개 재판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변호인의 변호와 피고인의 최후 진술권마저 빼앗은 채 사법살인을 저질렀다고 설명했다. 허 교수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도 법관이 강압에 의한 피고인의 자백이나 허위·날조된 증거 등을 의심할 이유가 있을 땐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고 형사소송법에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선고했다.”면서 “이런 사건이 독일에서 일어났다면 담당 재판관들은 사법살인미수로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독일과 러시아,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나라와 타이완, 중국, 북한 등은 법왜곡행위에 대해 법관이 최고 10년 이하의 구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허 교수는 “‘수사절차나 소송절차에서 어느 당사자에게 유·불리하게 고의로 법률을 왜곡한 법관에게는 소정의 형벌을 가한다.’는 법 규정이 하루빨리 형법에 삽입돼 법왜곡으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일생의 파멸이 초래되는 일이 다시는 없게끔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참신하고 진취적인 기사/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그놈의 기자’ 뽑습니다” 서울신문이 수습기자와 경력기자 모집을 알리는 6월20일자 1면 사고의 제목이다. 기자실을 둘러싸고 정부와 언론의 입장이 맞서고 있는 상황을 빗대어 얼마 전 대통령이 말한 ‘그놈의 헌법’이라는 표현을 빌려온 문구가 눈길을 끈다. 내용을 보면 ‘참신하고 진취적인 기사’와 ‘특색있는 지면구성’이라는 다짐도 엿보인다. 아니나 다를까. 같은 날 서울신문 기사는 좀 다른 느낌을 주었다. 우선 같은 1면에 실린 “청(와대), 선관위에 준법투쟁”이라는 기사를 보자.‘벼랑 끝에서 특유의 오기가 또 발동됐다.’ 이 기사의 첫 문장이다. 기사의 본문에서도 ‘다시 선관위에 공을 넘겼다.’ ‘한나라당은 날을 세웠다.’는 문장이 두드러진다. 스트레이트 기사 치고는 생생한 느낌을 주는 간결한 문장들의 표현과 구성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같은 날 5면에 실린 한나라당 정책토론회 기사에서도 후보간의 질문과 대답을 그대로 인용한 문장이 기사의 앞머리에 배치되어 토론회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하는 효과를 시도하였다.12면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1주년 ‘시민고객과 시장과의 대화’ 기사에서도 ‘보육정책’ ‘학교근처 금연’ ‘장기전세주택’에 대한 시민의 질문이 첫머리에 실려 있다. 통상적인 도입부가 생략되고 기사의 흐름이 빨라진 것이다. 기사의 첫머리에 취재원의 인용문을 배치하는 사례는 지난 한 주간 서울신문의 지면에서 유난히 두드러진다. 미 하원 국무위원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이 통과된 지난 6월28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도 정신대 할머니들의 반응이 직접 인용문으로 첫머리에 배치되었다. 같은 날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원인 기사도 사고 비행기의 조종사와 관제탑간 교신내용을 따옴표로 처리해 전면에 배치하였다. 무미건조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새로운 표현과 구성으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사실 스트레이트 기사는 말 그대로 ‘스트레이트’ 방식으로 처리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첫머리에 6하 원칙에 따라 사건의 개요와 핵심이 제시되고 이어서 사건 행위자와 정보원의 설명과 인용이 뒤따르는 역피라미드형 방식을 많이 따른다. 역피라미드형 기사작성은 간결하고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한다는 취지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스트레이트 기사가 거의 대부분 역피라미드형으로 작성되는 경우 기사들간에 특색이 없이 단조롭고 지루하다. 한마디로 ‘그 기사가 그 기사처럼’ 느껴진다. 이런 기사가 신문마다, 매일같이 반복되면 독자의 주목도도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참신하고 진취적인 기사작성의 대안은 무엇일까? 한국언론재단의 유선영 연구위원이 펴낸 ‘새로운 신문 기사 스타일’에서는 미국신문편집인협회에서 펴낸 연구보고서를 바탕으로 전통적인 역피라미드 방식 대신 ‘관점형’ ‘서사형’ ‘정보형’ 등 세가지 기사작성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관점형’은 사건의 맥락과 배경을 설명하고 각기 다른 주장과 입장을 배치한 뒤 나름의 의미와 결론, 전망을 제시하는 사다리형의 기사이다.‘서사형’은 개인의 시점으로 기사를 시작해 사건의 핵심을 기술한 후에 다시 개인의 시점에서 마무리하는 다이아몬드형 기사이다.‘정보형’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보다는 독자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 역피라미드의 형식논리적인 양시, 양비론을 극복하는 방식이다. 각각의 스타일은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신문의 기사가 한가지 방식만으로 작성되면 신문을 읽는 재미와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디지털시대에 신문의 가장 큰 매력은 누가 뭐래도 ‘글을 읽는 재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신문이 시도하는 ‘참신하고 진취적인’ 시도에 기대를 걸어본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 쿠르드족 학살 주도 혐의 ‘케미컬 알리’ 에 사형 선고

    1988년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 마을 학살사건(안팔 작전)을 저지른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알리 하산 알-마지드가 24일 이라크 1심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사촌인 알-마지드는 당시 화학가스 살포를 명령해 ‘케미컬 알리’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로써 지난해 12월30일 후세인의 교수형 집행을 필두로 시작된 후세인 정권의 권력 핵심층에 대한 신병 처리가 이라크전 발발 4년여 만에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연합뉴스
  • “독한 X” 6개월간 연구끝에 남편 살해한 中여성

    “정말 무서운 세상이네.남편을 죽이기 위해 6개월 동안 정부(情夫)와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짰다구요.” 중국 대륙에 한 여성이 자신의 남편을 없애기 위해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정부와 머리를 맞대 치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실행에 옮겨 남편을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중부 쓰촨(四川)성 선한(宣漢)현 톈성(天生)진 치리(七里)향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외지에서 온 남자와 불륜에 빠지자 6개월동안 치밀한 계획을 짜 정부로 하여금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도록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가 21일 보도했다. ‘천하의 악녀’는 치리향 집 근처에 구멍가게를 열고 있는 우샤오친(吳小琴).그녀는 불륜에 빠진 정부와 오래 놀아나기 위해,그것도 자신을 위해 천리 멀리 떨어져 뜬벌이 생활을 하는 가련한 남편을 살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냉혈녀이다. 악독한 살인 사건의 뿌리는 지난 2004년 9월부터 태동하기 시작했다.우가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충칭(重慶)직할시 량핑(梁平)현 출신의 류다룽(劉大榮)이라는 젊은 미남이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찾아오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류는 당시 고향을 떠나 이곳 탄광에서 채탄부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눈에 반한 이들 불륜 남녀는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잠자리를 함께 한뒤 동거에 들어갔다.한 3개월쯤 지났을까.2005년 춘제(春節·설날)기간에도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타 그녀는 류가 마치 자신의 남편인양 행세하도록 했다.우는 특히 류에게 “당신과 함께만 있다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결국 이 말이 ‘씨’가 됐다.우는 류를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이 때문에 ‘천하에 몹쓸 생각’까지 하게 됐다.뜬벌이 생활하는 까닭에 돈도 많이 벌지 못하고 외모마저도 그저 그런 남편이 무작정 싫어진 것이다. 이들 불륜의 남녀는 여러 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우의 남편 양정푸(楊正富)씨를 살해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류가 양씨를 찾아 나섰다.광둥성 둥관(東莞)시에 있는 양씨의 회사를 찾아낸 류는 일단 양씨의 회사 근처에 방을 얻었다.보다 완벽하게 살인하기 위해서다. 방을 얻은 그는 양씨의 고향 친구 행세를 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양씨를 둥관시 후먼(虎門)진의 한적한 곳으로 유인해내는데 성공했다.그때가 지난 2005년 10월 6일 오후 6시30분.류는 양씨를 만나자마자 몸에 지니고 있던 과도를 꺼내 무차별 난자,그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광둥성 중급법원은 최근 류대룽과 우샤오친 두 사람에게 고의 살인죄를 적용,각각 사형과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독한 X” 6개월간 연구끝에 남편 살해한 여성

    “정말 무서운 세상이네.남편을 죽이기 위해 6개월 동안 정부(情夫)와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짰다구요.” 중국 대륙에 한 여성이 자신의 남편을 없애기 위해 무려 6개월 동안이나 정부와 머리를 맞대 치밀한 계획을 세운 끝에 실행에 옮겨 남편을 살해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충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중국 중부 쓰촨(四川)성 선한(宣漢)현 톈성(天生)진 치리(七里)향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외지에서 온 남자와 불륜에 빠지자 6개월동안 치밀한 계획을 짜 정부로 하여금 자신의 남편을 살해하도록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광주일보(廣州日報)가 21일 보도했다. ‘천하의 악녀’는 치리향 집 근처에 구멍가게를 열고 있는 우샤오친(吳小琴).그녀는 불륜에 빠진 정부와 오래 놀아나기 위해,그것도 자신을 위해 천리 멀리 떨어져 뜬벌이 생활을 하는 가련한 남편을 살해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냉혈녀이다. 악독한 살인 사건의 뿌리는 지난 2004년 9월부터 태동하기 시작했다.우가 운영하는 구멍가게에 충칭(重慶)직할시 량핑(梁平)현 출신의 류다룽(劉大榮)이라는 젊은 미남이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찾아오면서 비극의 씨앗이 뿌려졌다.류는 당시 고향을 떠나 이곳 탄광에서 채탄부로 근무하고 있었다. 한눈에 반한 이들 불륜 남녀는 만나지 얼마 되지 않아 곧바로 잠자리를 함께 한뒤 동거에 들어갔다.한 3개월쯤 지났을까.2005년 춘제(春節·설날)기간에도 남편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틈을 타 그녀는 류가 마치 자신의 남편인양 행세하도록 했다.우는 특히 류에게 “당신과 함께만 있다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다.”고 속삭였다. 결국 이 말이 ‘씨’가 됐다.우는 류를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미칠 것만 같았다.이 때문에 ‘천하에 몹쓸 생각’까지 하게 됐다.뜬벌이 생활하는 까닭에 돈도 많이 벌지 못하고 외모마저도 그저 그런 남편이 무작정 싫어진 것이다. 이들 불륜의 남녀는 여러 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우의 남편 양정푸(楊正富)씨를 살해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류가 양씨를 찾아 나섰다.광둥성 둥관(東莞)시에 있는 양씨의 회사를 찾아낸 류는 일단 양씨의 회사 근처에 방을 얻었다.보다 완벽하게 살인하기 위해서다. 방을 얻은 그는 양씨의 고향 친구 행세를 하며 기회를 엿보다가 양씨를 둥관시 후먼(虎門)진의 한적한 곳으로 유인해내는데 성공했다.그때가 지난 2005년 10월 6일 오후 6시30분.류는 양씨를 만나자마자 몸에 지니고 있던 과도를 꺼내 무차별 난자,그자리에서 숨지게 했다. 광둥성 중급법원은 최근 류대룽과 우샤오친 두 사람에게 고의 살인죄를 적용,각각 사형과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열린세상] 문화국가를 위하여/김형태 변호사

    [열린세상] 문화국가를 위하여/김형태 변호사

    한나라당 경선이 뜨겁다. 한쪽에서 ‘위장전입’이라고 몰아대면 다른 편에서는 ‘명박삼천지교’라고 받아친다.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가져가니 저처럼 사생결단의 싸움을 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웬 ‘대선’은 이리도 자주 돌아오는지. 대통령선거 몇 번 치르다 보니 청춘이 다 지나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온 나라가 편이 갈려 한바탕 홍역 치르기를 20년.1987년에 비하면 선거풍토는 많이 점잖아졌다. 산업화·민주화가 그간 대선의 화두였다면 오는 12월 선거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사회 전체가 점잖아지고 성숙해지는 ‘문화국가’를 상정해 본다. 자기 자신의 이익이나 권리 주장을 넘어서 이웃과 더 나아가 지구생태계까지 생각하는 넉넉함과 품격.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해 보이지 않는다. 동네에서 간장공장 사장님이 제일 부자이던 60년대에 비하면 너무 많이 바뀌었다. 삼성, 현대와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국가 전체 생산의 절반을 훨씬 넘는 고도자본주의에 접어든 우리 사회에서 경쟁과 효율은 최고의 가치가 되었다. 여기에 더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세계 최강의 미국 자본이 이 땅에서 자유롭게 경쟁을 하게 되니 문화국가를 향한 꿈은 멀어만 보인다. 최근 문제가 된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의 입시요강만 해도 그렇다. 내신 1등급과 2등급, 심지어 4등급까지 모두 같은 점수를 주게 되면 학교성적은 사실상 의미가 없다. 서울 강남 학군이나 특목고 출신들에게 유리한 제도다. 서울 변두리나 지방학생들이 상류계급에 편입될 기회를 줄이는 일이다. 사회적 강자들이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누지 않고 천년 만년 자기들만 독식하려 하는 한 문화국가의 꿈은 멀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제일 힘이 센 나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형을 집행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2002년 국제사면위 자료에 따르면 중국이 최소 1060명, 이란 113명, 미국 71명 순이다. 미국은 1930년부터 1967년까지 3829명을 사형시켰다.2005년까지는 미성년자도 사형을 집행했다. 철저한 경쟁논리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맞서 분배와 평등을 강조하는 유럽 사회민주주의 전통 아래서 사형제도는 없어진 지 오래다.‘유럽을 사형 없는 대륙으로’, 유럽연합(EU)의 목표다. 그래서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사형폐지를 내걸었다. 터키가 EU에 가입하려고 사형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미국은 전 이라크 대통령 후세인의 목에 밧줄을 거는 사진을 새해 벽두부터 전 세계에 돌렸다. 그 사진을 보는 세계인들은 무섭고 마음에 상처를 받았을 터다.EU 국가들이나 로마 교황청은 후세인이 수십만 쿠르드족을 죽였다 해도 사형집행은 안된다고 반대했다.2007년 대선을 앞둔 우리의 수준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통해 명확히 드러났다.‘후세인의 잘못이 크다. 사형제도는 각 나라의 입장에 맡길 일이다.’라고 했다가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로부터 호된 곤욕을 치렀다.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한국출신 반 총장이 지닌 한계라는 비판까지 들었다. 반 총장이 한국민 전체를 대표하여 받은 문화국가 성적표다. 이번 대선에 나오는 후보들은 우리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이는 비전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각 시대는 그 시대가 감당해야 할 소명이 있기 마련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온 힘을 쏟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모든 이의 의견이 존중되는 민주주의를 외치던 시절도 있었다. 이긴 자, 강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져가지 않고 이익과 권력이 사회 구석구석 골고루 퍼져 나가는 사회. 수십만 명을 학살한 전범이라도 사형은 안 된다고 못 박은 유엔 인권위의 정신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나라. 문화국가의 꿈을 꾸는 후보들을 보고 싶다. 김형태 변호사
  • 영화 ‘오즈의 마법사’등 38건 세계기록유산 등재

    넬슨 만델라의 아파르트헤이트(흑인차별정책) 투쟁 기록, 할리우드 영화 ‘오즈의 마법사’,1000년된 이란의 서사시 등 38건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19일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만델라의 투쟁 기록을 구텐베르크 성경, 바르샤바 게토(유대인 거주지)의 기록물과 함께 세계기록유산 명단에 올렸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기록물은 158건이 됐다.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된 작품들은 디지털 복사본이 제작된다. 이번에 선정된 기록물들은 이란의 유명 시인 페르도시(941∼1020년)의 ‘왕들의 책’, 기원전 1800∼1500년부터 내려온 힌두경전 ‘리그베다’,1066년 노르만의 영국 침공을 묘사한 ‘벽걸이 융단’ 등이다. 이밖에 제2차세계대전 당시 나온 영화 ‘오즈의 마법사’, 세계 최초의 장편영화 호주의 ‘켈리 갱 이야기’도 포함됐다. 우리나라 기록물로는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직지심체요절에 이어 조선왕조 의궤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이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사회플러스] 연쇄살인범 2명 사형 확정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용담 대법관)는 15일 춘천·광주 등지에서 부녀자 3명을 살해하는 등 연쇄 살인과 강·절도를 저지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모(40)씨와 조모(30)씨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사형 확정판결을 받아 복역 중인 사형수는 모두 65명으로 늘었다. 법무부는 1997년 12월30일 이후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
  • “70여가구중 환갑 때까지 생존자 드물어”

    “70여가구중 환갑 때까지 생존자 드물어”

    지난 4일 서해안 고속도로를 두 시간쯤 달려 도착한 충남 홍성군 덕정마을은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이었다.40세 이하 젊은이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뜰에는 간간이 노인들의 모습만 보였다. 나지막한 뒷산이 마을을 넉넉하게 끌어안았고, 논에는 푸릇푸릇한 모가 종아리 높이로 자랐다. 이방인을 반갑게 맞이해 주는 노인들은 저마다 ‘석면의 공포’에 짓눌려 있었다. 지금은 70여가구밖에 남지 않은 덕정마을이 일제시대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석면광산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징용으로 끌려온 조선인을 포함해 1000여명의 노동자가 석면 원석을 캐고 나르던 기억은 이제 몇몇 주민들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그들이 전하는 석면광산의 기억은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3대째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이정석(79)씨는 광천석면광산의 50여년 역사를 두 눈으로 지켜봤다. 자신도 열두살 때부터 30년간 광산에서 일했다는 이씨는 “눈꽃이 핀 것처럼 돌가루와 석면가루가 소나무에 하얗게 쌓여 있었다.”고 회상했다.“석면 원석을 보면 가느다란 흰 줄이 있어. 그게 석면이거든. 그걸 뽑아 내려고 돌을 빻았지. 그땐 마스크 같은 게 있나. 그냥 먼지를 다 마시는 거야.” 건강검진은커녕 변변한 보신책(保身策)도 없었다.“수당받는 날 돼지고기 몇 점 사먹는 거지. 목에 쌓인 먼지 씻는다고….” ●일제시대 아시아 최대 석면 광산… 1000여명 일해 광복 이후 광산이 외지인에게 팔리면서 광천석면광산의 규모는 쪼그라들기 시작했다.1983년 폐광 직전엔 근로자 수가 10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노출 후 잠복기가 긴 석면의 특성 탓에 광산과 주민 피해의 상관관계는 아직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온 가족이 광산에서 일했다는 홍순표(48)씨는 가족의 대부분이 제 수명을 채우지 못하고 사망했다. 홍씨의 아버지 3형제가 모두 광산에서 일했는데, 아버지 홍종수씨는 1970년 51세에 사망했고, 큰아버지 홍갑수씨는 10년 뒤 66세에 세상을 떴다. 작은아버지 홍수복(74)씨는 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있지만 관절염이 심하다. 홍씨의 고모와 고모부 역시 광산에서 일하다 30대의 젊은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했다. 홍씨의 형은 17세 때 굴이 무너지며 목숨을 잃었다. 홍씨는 “그땐 병원도 가지 못한 어르신들 대부분이 병명도 모르고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기침이 잦고 오랫동안 앓았던 기억만 남아 있다. ●“마스크 없이 석면가루 먼지 그대로 들이마셔”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장 이조민(64)씨는 마을 출신 피해자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었다. 이장의 입에선 사람들의 이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가장(家長)이 죽고 나머지 가족들이 외지로 간 사람도 많고…다하자면 한도 끝도 없어. 신○○ 형제도 둘 다 폐병으로 죽고, 강○○씨 아버지, 김○○씨 아버지…죄다 환갑잔치도 못 치르고 죽었으니 악상(惡喪)이 많았지.”이장 자신도 어머니(사망 당시 57세)를 폐암으로 잃었다. 지금은 서울에 사는 이석동(66)씨의 아버지도 광산 생활 15년이 죽음으로 돌아온 경우다.1967년 이씨의 아버지는 5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당시 진단은 폐결핵이었지만, 이씨는 석면으로 인한 폐암일 것으로 믿고 있다.“담배도 피우셨지만 워낙 석면 먼지를 많이 드셨어요. 돌아가시기 3∼4년 전까지 광산에서 일하셨으니까요. 정확한 병명을 모르니, 애꿎은 결핵약만 드셨지요.”아버지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주위에 환갑을 못 넘기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요. 옛날엔 폐결핵이 흔했다지만, 덕정마을은 주변 마을에 비해 훨씬 심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다 석면 때문이지요.” ●인근 담산리 주민 중 폐질환 사망자 없어 대조적 국립 홍성의료원 진료기록에서도 덕정마을의 심각함은 드러난다. 내원자의 병명 기록이 남아 있는 2000년 이래 폐 관련 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상정리(덕정마을 포함) 주민은 41명이었고,7명이 폐암 판정을 받았으며,3명이 사망했다. 인구가 비슷한 인근 담산리 주민 중 같은 기간 폐 관련 질환으로 사망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에 비하면 주목할 만한 수치다. 한때 수만평에 이르는 3개 광구를 갖췄던 덕정마을의 석면광산은 녹화작업으로 풀숲이 우거졌다. 지금은 석면 원석을 캐내 천길 낭떠러지가 된 절벽과 발에 차일 정도로 흔한 흰색 석면줄을 품은 돌멩이들이 당시의 엄청난 작업량을 짐작케 할 뿐이다. 광산은 과거가 됐지만, 광산이 남기고 간 석면의 상처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홍성 이창구 김민희기자 window2@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앞으로 40년간 늘어날 환자 유럽 25만·일본 10만3000명 석면 사용량은 산업화에 비례한다. 건축 자재나 자동차 부품에 주로 쓰이기 때문에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사용량도 폭증했다. 부작용도 비슷한 과정을 거친다. 산업화가 먼저 진행된 미국·영국 등 선진국에서 대규모 피해가 먼저 나타났고, 한국 등의 후발 산업국가에서 피해 조짐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산업화 단계에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위험성을 따질 겨를도 없이 석면을 마구잡이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950∼60년대 보일러공에게서 먼저 악성 중피종이 집단 발병했다. 보일러를 단열성이 뛰어난 석면으로 감쌌던 탓이다. 영국에선 1970년대 글래스고·버밍엄 등 공업지역을 중심으로 중피종이 확산됐다. 미국은 1972년부터 석면 규제를 시작했으나 세계적인 공감대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 형성됐다. 일본은 1983년부터 일부 석면 제품의 수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1999년에는 유럽연합(EU) 13개국이 석면 사용을 전면 금지했고,2002년 1월엔 프랑스가 독일·이탈리아에 이어 8번째로 석면의 생산·수입·판매를 불법화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서야 청석면·갈석면의 사용을 금지했고, 모든 석면의 사용 금지는 내년에야 실현될 전망이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도 아직 석면 공포는 끝나지 않았다. 미국에서 발행되는 권위있는 보건잡지 ‘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따르면 2004년에 환자수가 정점을 지난 나라는 미국 뿐이다. 유럽은 2015∼2020년, 일본은 2025년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40년간 늘어날 환자의 수도 유럽 25만명, 일본 10만 3000명, 미국 7만 2000명, 호주 3만명 등이다. 국제노동기구(ILO)는 매년 10만명이 석면 관련 질병으로 사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가톨릭대 의대 김형렬 교수는 “최근 일본에서 부작용이 속속 나타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도 향후 25년간 석면 피해가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는 급증하는 아시아의 석면 사용을 막는 일이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현재 건설공사가 활발한 중국·인도·태국 등에서 석면 사용량이 늘고 있다.”면서 “비극을 답습하지 않도록 모든 석면 사용을 하루빨리 금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석면은 허가된 살인도구… 통제 못한 정부 책임 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 놓인 심정을 아십니까. 우리에게 내일은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노동·환경단체들은 지난달 18∼19일 서울대병원에서 ‘석면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공동 심포지엄’을 열었다. 석면 전문가, 환경 운동가, 직업병 전문의, 사망자 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한 이 행사에서 단연 주목을 받은 이들은 악성 중피종과 싸우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두 피해자였다. ●“폐렴인 줄만 알았는데…” 창밖에는 비가 내렸다. 하이숙(54·여)씨는 “날이 궂으면 기침이 더 심해져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하씨는 국내 최대 석면공장이었던 부산 연산동의 제일화학에 1971년 5월부터 2년 4개월간 다녔다. 최근 집단 피해 조짐이 보이고 있는 바로 그 공장이었다. 현재는 ‘제일E&S’로 이름이 바뀌었고, 공장도 양산으로 옮겨졌다.1992년부터는 석면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다. 하씨와 동료들은 천으로 된 일반 마스크만 쓴 채 석면 가루가 풀풀 날리는 공장에서 일했다. 석면 입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5000분의1 정도여서 공기중 분진을 99.97% 이상 걸러내는 특수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5년 전 하씨는 갑자기 기침이 심해져 보건소를 찾았다. 보건소에서는 폐렴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어 큰 병원으로 갔으나 의사는 “왜 자꾸 폐가 굳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씨는 1995년에 석면폐(진폐증)로 사망한 동생을 떠올렸다. 동생 역시 같은 공장에 다녔다. 하씨는 의사에게 “석면 공장에 다녀서 이렇게 된 것 아니냐.”고 물었지만 “당신이 뭘 아느냐.”는 면박만 돌아왔다. 폐병 환자라는 주변의 멸시를 참고 견뎌온 하씨는 결국 2005년에 악성 중피종 판정을 받았다. 다행히 직업병으로 인정돼 산재 처리를 받았다. 그러나 완치가 안 된다는 사실에 하루하루 좌절하며 살아간다. 같은 공장에 다녔던 하씨의 남편도 걱정이다. 남편 하재복(56)씨는 “죽어가는 아내를 보는 것도 괴롭고, 내가 언제 이 몹쓸 병에 걸릴지 몰라 괴롭다.”며 눈물을 훔쳤다. ●“한국은 심각성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 38년 동안 건축 현장에서 일한 나카무라 사네히로(59) 역시 가쁜 숨을 내쉬었다. 목수로, 현장 감독관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일하던 나카무라는 2003년 2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심한 가슴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더니 흉막에 악성 중피종이 생겼다는 진단이 나왔다. 의사는 “기껏해야 2개월 정도 더 살 수 있다.”고 했다. 나카무라는 죽을 각오로 그해 5월 수술대에 올라 오른쪽 흉막을 들어냈다.15시간의 긴 수술이 다행히 성공적이어서 생명을 지금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나카무라는 “수술이 아무리 잘 됐어도 완치가 안된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절망했다.”면서 “죽을 때까지 석면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나카무라는 요즘 석면피해자 가족 모임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계단을 제대로 오르내리지 못할 정도로 심장이 약해졌다. 나카무라는 “일본은 석면 때문에 큰 홍역을 치러 위험을 잘 알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면서 “허가된 살인도구인 석면 제품을 무책임하게 생산한 업자나, 그 위험성을 통제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처럼 큰 피해를 당하기 전에 한국은 미리 석면이 함유된 건축물과 제품을 잘 처리해 대재앙을 피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용어클릭 ●석면 단열성, 내화성, 내마모성이 뛰어나 건설자재로 많이 사용되는 솜 같은 물질로 슬레이트, 자동차 브레이크 패드, 석고보드, 단열재 등에 널리 사용됐다. 몸 속에 들어가면 폐에 박혀 사라지지 않고 석면폐, 폐암, 악성 중피종 등을 유발한다. 청석면, 갈석면, 백석면, 악티노라이트, 안소필라이트, 트레모라이트 등으로 나뉜다. ●악성 중피종 석면에 의해서만 유발되는 암으로 흉막(폐막), 복막 등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사망한다. 석면 노출 후 20년 이상 경과한 뒤 발병하며, 치사율은 100%다. ●구보타 사태 석면을 함유한 외벽재와 파이프를 생산해 온 일본의 대형 석면공장인 구보타의 근로자와 주민에서 중피종 환자가 발견됐다고 1995년 발표돼 일본 사회를 큰 혼란에 빠트렸던 사건.1978∼2004년 사이에 근무한 전·현직 종업원 79명이 중피종 등으로 숨졌고,18명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공장 주변 주민 3명에게도 중피종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구보타 피해자는 15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회에는 지하철 등 생활 주변의 석면 문제를 다룹니다.
  • 盧대통령에 ‘중립의무 준수’ 공문

    ●발신자 중앙선관위원장●수신자 대통령●제목 대통령의 선거중립의무 준수요청그동안 우리의 선거문화는 모든 국민의 참여와 노력으로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17대 대선은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국가의 발전 및 국민화합에 기여하는 선거가 되도록 함으로써 그동안의 선거개혁이 결실을 맺도록 해야 하는 중요한 선거이다.이를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외부로부터 부당한 영향을 받음이 없이 자유롭고 공개적인 의사형성과정을 통해 자신의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이런 과정에 기초하여 나타난 선거결과에 승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선거가 가까워져 오고 있는 시기에 국정의 최고책임자이자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인 대통령이 다수인이 참석하고 일부 인터넷 방송을 통해 중계된 집회에서 차기 대통령선거에 있어 특정 정당의 집권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자를 폄하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단순한 의견개진의 범위를 벗어나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공직선거법 제9조가 정한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를 위반했다고 결정했다.앞으로는 이런 사례가 반복되어 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하여 주시기 바라며,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가 선거법이 엄정하게 지켜지는 가운데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 속에서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해 주시기 바란다.
  • 또… 예산 방만 운용

    또… 예산 방만 운용

    #사례1 인천국제공항에 입주한 관세청 등 9개 기관은 무연고 독신자를 위한 아파트 784채를 매입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아파트 임차 보증금으로 돌려받은 410억원을 국고로 환수하지 않고 아파트 구입비로 직접 사용하고 차액 194억원만 예산에 편성했다. 게다가 아파트 784채의 사용실태를 확인할 결과 551채는 가족이 거주하는 관사형태로 사용하고 있었고 입주자 가운데 124명은 인천에 이미 주택을 보유하고 있었다. #사례2 아산시는 190억원 규모의 아산문예회관을 건립하기 위해 투자심사도 거치지 않은 채 예산을 1000억원으로 확대해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다. 부지매입이 늦어지고 재정부담이 불어나면서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인천광역시 남동구도 194억원 규모의 수도권 ‘해양생태공원 1단계조성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으나 전체 사업부지의 34%밖에 매입하지 못했다. 앞으로 부지 매입비로만 260억원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사례3 한국전력공사는 산업자원부에서 운용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받아 연구개발사업비로 사용했다. 이 중 한 공동연구사업자가 연구비 1억 4043만원을 유용하고 연구를 중단했으나 한전을 이를 알고도 출연금 중 일부만 환수했다. 한전은 또 한 연구업체가 2억 6900만원을 횡령해 연구개발사업이 중단되었는 데도 아무런 손을 쓰지 않았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국가기관과 공공기금 및 국유재산의 예산이 여전히 방만하게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이 31일 발표한 ‘2006회계연도 세입·세출 결산검사보고’에 따르면 2006년 5월부터 2007년 5월 사이에 총 1849건의 예산 위법·부당 사용 사례가 적발됐다. 감사원은 위법사례 가운데 총 1850억원을 환수하고 관련 공무원의 징계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또 예산을 편성목적과 다른 용도로 집행하거나, 타당성 없는 사업추진, 불법 이·전용, 예비비 부적정 집행 등 75건의 문제점을 적발했다. 또 지방자치단체의 국고보조금 운용실태를 감사한 결과 아산시 등이 사업타당성 검토를 충분히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부당사례 42건을 적발했다. 감사원은 이 가운데 96억원을 회수토록 하고, 보조금을 부당하게 지원한 관련공무원 1명을 고발했다. 감사원은 이밖에 13개 사업성기금을 대상으로 운용실태를 감사해 13건의 부적절한 지원사례를 적발했다. 감사원은 연구 사업의 사후관리를 부실하게 한 한국전력공사 등에 기금 회수와 관련, 연구원의 문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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