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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따듯한 미소 남기고…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이 16일 선종(서거를 뜻하는 천주교 용어)했다.향년 87세.  천주교 서울대교구 고위 관계자는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추기경이 이날 6시12분 선종했다고 밝혔다.김 추기경의 안구 등 장기는 고인의 뜻에 따라 기증될 예정이다.  앞서 서울대교구 한 관계자는 이날 오후 4시반부터 관계자들이 김 추기경의 임종에 대비한 대책회의를 가졌다고 밝혔다.서울대교구는 명동성당에서 고인의 장례미사 준비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은 지난해 8월29일부터 건강 악화로 서울 반포동 강남성모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그해 6월11일 조촐한 생일파티가 고인이 세상에 공개된 마지막 모습이다.이후 끊임없이 위독설이 나돌았고 수차례 고비를 넘겼지만 최근에는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기력이 쇠약해졌던 것으로 알려졌다.김 추기경은 입원 이후에도 생명연장 장치 사용을 거부해왔으며,의식불명 상태에서 의료진이 매일 응급 처치한 사실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마지막 순간 큰 고통 없이 영면한 것으로 전해졌다.주치의였던 강남성모병원 정인식 교수는 “추기경께서는 노환에 따른 폐렴 합병증으로 폐기능이 떨어져 있었지만 마지막까지 스스로 호흡했다.”면서 “선종때까지 큰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추기경께서는 평소 늘 하시던 말씀대로 임종을 지켜본 교구청 관계자들과 의료진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고 가셨다.”고 덧붙였다.  가톨릭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동시에 한국 사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고인은 1951년 사제서품을 받았고,초대 마산교구장(1966년)을 거쳐 1968년 대주교로 승품한 뒤 서울대교구장에 올랐다.1969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된 김 추기경은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등을 역임한 뒤 정년(75세)을 넘긴 1998년 서울대교구장에서 은퇴했다.  고인은 자신의 신념을 교회와 현실 속에서 실천하기 위해 헌신했다.핍박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곧 깊은 관심을 가졌던 김 추기경은 독재와 불평등한 사회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1970년에는 3선 개헌·유신 등 박정희 정권의 독재 행보에 강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정권의 거센 압력 속에서도 성직자로서의 양심과 소신을 지키고자한 고인의 신념에 힘입어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잡았다.  김 추기경은 또 장애인과 사형수·빈민 등을 만나 소외받은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농민과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도 노력했다.1987년 ‘도시빈민 사목위원회’를 교구 자문기구로 설립,복지사업에도 힘을 기울였다.  고인은 1999년 서울대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 등 2권의 책을 발표했다.이 책에서 김 추기경은 “가톨릭 최고의 성직자로서 예수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기도 했다.또 “이웃사랑을 강조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지 못함으로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여러분과 또한 많은 이들을 위하여.” 지난 1966년 주교서품을 받으면서 사목표어로 정한 이 말 처럼 김 추기경은 자신의 신념을 평생에 걸쳐 실현하고 따뜻한 미소를 남긴 채 떠나갔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김수환 추기경 약력  ▲1922년 5월8일(음력) : 대구 출생  ▲1941년 : 서울 동성상업학교 졸업 후 일본 동경 상지대 입학  ▲1942년 : 상지대 문학부 철학과 진학  ▲1944년 : 2차 대전으로 학업 중단  ▲1947~51년 : 서울 가톨릭대 신학부 신학전공  ▲1951년 : 사제서품 및 대구 대교구 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3년 : 대구 대주교 비서 신부  ▲1955~56년 : 대구 대교구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6~63년 : 독일 뮌스터대 대학원 사회학전공  ▲1964년 : 주간 가톨릭 시보(현 가톨릭신문) 사장  ▲1966년 : 마산교구 주교 서품 및 마산 교구장 착좌  ▲1967년 이후 : 교황청 세계 주교 시노드(대의원회의)에 한국대표로 6차례 참석  ▲1968년 : 서울 대주교 승품 및 서울 대교구장 착좌  ▲1969년 :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추기경 서임  ▲1970~75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1차 역임)  ▲1970~73년 :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5~98년 : 평양교구장 서리  ▲1981~87년 :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2차 역임)  ▲1998년 : 서울대교구장 은퇴,아시아 주교회의 공동의장  ▲1998~99년 : 실업극복국민운동 공동위원장,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국민재단 초대 이사장  ▲2001년 : 사이언스 북 스타트운동 상임대표  ▲2003년 : 생명21운동 홍보대사  ▲2009년 2월16일 : 선종    ●김수환 추기경의 명예학위  ▲1974년 :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1977년 : 미국 노틀담대 명예법학박사  ▲1988년 : 일본 상지대 명예신학박사  ▲1990년 : 고려대 명예철학박사,미국 시튼홀대 명예법학박사  ▲1994년 : 연세대 명예신학박사  ▲1995년 : 대만 푸젠 가톨릭대 명예철학박사  ▲1997년 : 필리핀 아테네오대 명예인문학박사  ▲1999년 : 서울대 명예철학박사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공교육 아름다움 일깨운 ‘임실 혁명’ 대학생 직장인 눈물겨운 부채탕감 비책 ”고용유지도 힘든데 나누긴 뭘” ’워낭소리’ 성공했지만 갈길 먼 독립영화
  • [김수환 추기경 선종] DJ와 민주화 상의할 만큼 각별… 박정희와는 대립각

    ■ 전직 대통령과 다양한 인연 김수환 추기경은 격동의 시대에 전직 대통령들과도 다양한 인연을 맺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가장 각별한 관계였다. 김 전 대통령은 재야 지도자 시절부터 김 추기경과 민주화운동을 상의할 정도로 가까웠다. 김 전 대통령이 1976년 명동성당 앞 3·1 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됐을 때 김 추기경은 직접 면회를 갔고, 김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됐을 때는 미사를 베풀었다. 김 전 대통령은 17일 직접 조문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김 추기경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1974년 지학순 주교가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금됐을 때 김 추기경은 박 전 대통령을 만나, 지 주교의 석방과 사형선고를 받은 유인태·이철 전 의원 등의 감형을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다. 김 추기경은 “제3기 집권 욕망을 꺾고 나머지 과제를 후임자에게 넘겼더라면 국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국부가 됐을 것”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회고했다. 김 추기경은 1980년 1월1일 새해 인사차 방문한 당시 전두환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에게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잖아요.”라고 꼬집었다. 전 전 대통령은 임기 말 김 추기경을 만났을 때 “주위에서도 (권력을) 놓지 말라고 조언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나 저는 내놓을 겁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태우·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국가 원로로서 자리를 함께한 적은 있지만, 개인적 인연은 깊지 않았다. 김 추기경은 1992년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되자 “이제 목소리를 높여 민주화를 촉구하지 않아도 되고 정권과 팽팽하게 대립할 필요도 없겠구나.”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003년 2월 당선인 신분이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는 “노 당선자도 세례를 받았으니 신앙을 다시 찾아 이 어려운 시기에 하느님께 기도하는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믿음을 강조했다고 한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어록으로 본 발자취

    ●위정자도, 국민도, 여당도, 야당도, 부모도, 교사도, 종교인도 모두 이 한 젊은이의 참혹한 죽음 앞에 무릎을 꿇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반성해야 합니다.(1987년 1월26일 박종철군 추모 및 고문 추방을 위한 미사 강론) ●사형은 용서가 없는 것이죠. 용서는 바로 사랑이기도 합니다. 여의도 질주범으로 사랑하는 손자를 잃은 할머니가 그 범인을 용서한다는데 왜 나라에서는 그런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까? (1993년 평화방송·평화신문 새해 특별대담) ●그럼 사는 길은 제가 볼 때는 자기를 여는 겁니다. 그것만이 북한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들이 그렇게 되도록 도와야 되고요. 그래서 북한이 정말 필요한 건 지금 미국이라든지 일본하고 수교를 하는 거라고 봅니다.(1994년 평화방송 신년대담에서 북한 핵문제 청산과 개방, 북한과 미국·일본의 국교정상화를 이야기하며)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무슨 보복이나 원수를 갚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해섭니다. 책임자는 분명히 나타나야 하고, 법에 의해 공정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1996년 평화방송 신년 특별대담 중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며) ●세계 앞에 한국이, 한국 사람들이 고개를 들 수 없는 아주 부끄러운 일이에요. (한참을 우심) 하느님이, 평소에 느꼈지만 하느님이 우리 한국 사람에게 너무 좋은 머리를 주셨어요. 그런데 그 좋은 머리를 좋게 쓰지 않고 그렇게 했으니…(2005년 12월 평화방송 성탄 특별대담에서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언급하며)
  • YS “추기경이 DJ보다 먼저 대통령 하라고 했다”

    YS “추기경이 DJ보다 먼저 대통령 하라고 했다”

     전날 갑작스럽게 선종한 김수환 추기경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 명동성당 빈소에 17일 많은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진 가운데 전직 대통령의 빗나간 추도사가 누리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김영삼 전 대통령. 오후 2시쯤 빈소를 찾은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씨가 여기 왔다갔는지 모르겠는데,김 추기경께서 ‘나이는 젊지만 (내가 김대중 전 대통령보다) 먼저 대통령 되는 게 옳다.’고 하셨다.”고 말했다고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 등이 전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내가 단식을 23일(간) 할 때도 오셔서 강력히 우려하셨다. 나는 죽을 각오로 싸우는데,살아야 한다고 하셨다.‘김 총재가 돌아가면 민주주의는 누가 하냐.’고 하셨는데,그 말이 단식을 끝내는 계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또 “제가 대통령 할 때 청와대에 많이 오셨다,큰 일이 아니라 노동자 한 명만 갇혀도 오셨는데 되도록 그 분 부탁을 들어드렸다.”며 김 추기경과의 각별한 인연을 강조했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블루마리*^^*’은 ‘이 와중에도..누가..먼저..대통령되고..안되고를..따지냐?’고 한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 ‘a8681aaa’은 ‘나잇값 못하는 김영삼’이라고 막말을 늘어놓으며 ‘김영삼 가벼운 줄은 알고있었지만 이런 자리에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앞서 이날 오전 11시쯤 빈소를 찾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제가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지만 김 추기경님은 정신적 지도자이다.야당 시절과 대통령 시절 가르침과 의견을 받았다.진주와 청주에서 감옥살이 할 때 아내에게 100만원씩 두 번 차입금을 주시기도 했다.자상하고 따뜻한 사랑을 받은 것이 개인적으로 영광이다.서거를 슬퍼하면서도 영생을 누리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밝혔다.  김형오 국회의장 역시 오전 11시50분쯤 이곳을 찾아 “김 추기경은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민족의 양심을 일깨워주신 이 시대의 스승”이라며 “1년 반 전에 사형제 폐지 문제로 당시 유인태 의원과 함께 김 추기경을 뵈었다,국회의장 취임 후에도 뵙고 싶었는데 (김 추기경이) 와병 중이라서 결국 못 뵈었다.”고 아쉬워했다.  이밖에 정세균 민주당 대표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도 김 추기경을 조문했는데 손 전 대표는 지난해 세배 드리고 세뱃돈 1만원을 받았다고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박대출 선임기자 정가 In&Out] 2인자 정치의 두 얼굴

    김영삼(YS) 대통령은 골프 금족령을 내렸다. 공식적은 아니었다. 사실상 치기 어렵게 했다. 공직자들은 눈치껏 필드에 나갔다. 5년 뒤 김대중(DJ) 대통령은 해금했다. 조건을 달았다. 자기 돈으로 치도록 했다. 접대성은 금지됐다. 하지만 골프파문도 있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자주 도마에 올랐다. DJ 때는 골프를 예외적으로 불허했다. 긴급 사태나 특별한 시기에 적용했다. 수해 때나 현충일 등이다. 박지원 비서실장이 총대를 멨다. 그가 국무조정실에 지시를 내렸다. 지시는 각 부처에 통보되고, 산하기관에 하달됐다. 2인자의 역할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때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권한을 독식했다. 관람권까지 쥐고 있었다. 늑장은 일쑤였다. 티켓은 겨우 사흘 전에 도착했다. 청와대는 24시간 가동체제를 구축했다. 박 전 실장이 대책반장을 맡았다. 티켓을 잽싸게 팔았다. 전 경기장 만석을 해냈다. 실력자의 개입은 발빠른 대응으로 이어졌다. 반면 일본은 빈자리가 많았다. 인천공항 개항도 마찬가지다. 부처간 이견이 많았다. 개항에 차질이 예상됐다. 이때도 박 전 실장이 나섰다. DJ의 수족이었다. 최측근에서 보좌했다. 그의 업무는 힘이 실렸다. 하지만 그는 정권이 바뀌자 구속됐다. 그러다가 18대 총선에서 정치 재기에 성공했다. YS 때는 차남 현철씨가 막후 실력자였다. 아버지 거산(巨山)에 빗대 소산(小山)으로 불리었다. 군 하나회 척결은 소산의 작품이었다. 치밀한 작업 끝에 군부의 허를 찔렀다. 군부도 이 점은 인정했다. 현철씨 역시 구속되는 불운을 맞았다. 지금은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을 맡고 있다. 1주일에 한 번 출근한다. 하지만 그다지 환대받는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2인자를 두지 않았다. 국정은 시스템으로 운영한다고 했다. 박 전 실장은 “치밀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형 노건평씨는 고향에 머물렀다. 동생은 형을 “시골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형은 봉하대군으로 불리었다. 막강한 영향력을 빗댄 표현이었다. 그 형 역시 영어(囹圄)의 몸이다. 금품 로비에 연루된 혐의다. 지금 한나라당에는 이상득 의원이 있다. ‘영일대군’,‘만사형통’이란 말이 나온다. 그는 요즘 노건평씨 얘기를 자주 한다. “노씨보다 10배는 당할 각오를 하고 있다.”고 한다. 권력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의 정치 행보는 활발해졌다. 친이계 결집에 적극이다. 단합을 자주 강조한다. 반면 몸조심도 철저하다. 그는 대출청탁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단 한 건도 들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1인자의 영역은 한계가 있다. 만사를 100% 커버하기 어렵다. 그 빈틈 메우기는 2인자의 몫이다. 1인자를 잘 보좌하면 윤활유가 된다. 역방향으로 가면 국정은 피폐해진다. 2인자 정치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이다. 2인자의 미래도 그 방향에 달려 있다. dcpark@seoul.co.kr
  • [열린세상]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김충현 서강대 언론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김충현 서강대 언론대학원 교수

    1970년대 암울한 시대에 그래도 젊은이들의 낭만이라고 하는 것 중 하나는 기타 치면서 노래를 즐기는 것이었다. 당시 즐겨 부르던 노래 중 하나가 ‘나도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였다. 그런데 요즘 느닷없이 그 노래가 입안에서 흥얼거려진다. 왜 그럴까? 처해 있는 현실이 너무 절망적이고 삶에 지쳐서일까? 2차 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오바마라는 새 인물에 대한 기대감과 희망으로 들떠 있다. 반면 우리는 일년 전 출범한 정부의 대통령이 희망을 강조하지만 국민들의 냉소만 부추기고 있으니 어떻게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의아하게 생각된다. 물론 지금의 우리 형편이 오로지 국가 지도자의 잘못된 리더십 탓이라고 돌리는 것은 합리적 판단이 아닐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관리·경영하는 지도자는 특별해야 한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그동안 우리는 주로 ‘투사형’ 지도자에 익숙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업형’ 지도자가 많은 지지를 받았다. 기업형 지도자는 어떤 사람인가? 효율성과 성과를 중시하며 모든 것을 그런 잣대로 바라본다. 기업경영과 국가경영은 많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대통령은 준비된 대통령은 아닌 것 같으며 국민이 어떻게 하면 행복하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물론 물질적 풍요와 이를 뒷받침하는 경제성장과 발전은 무엇보다 중요하며 기본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경제만이 우리에게 ‘행복감’을 주는 주체가 아니다. 아직 절대적 빈곤에서 시달리는 계층도 있지만 넘쳐 흐르는 칼로리를 감당하지 못해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도시민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들 모두에게 어떻게 행복감을 줄 수 있을까? ‘용산사건’을 비롯한 사회적 갈등문제는 직접 관련성이 없는 사람들마저 지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미네르바’를 구속한다고 해서 제2, 3의 ‘미네르바’는 등장하지 않을까? 그를 구속하는 것보다는 왜 우리 사회가 그러한 유언비어적 사회병리 현상에 현혹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해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여의도 정치를 불식하겠다고 했지만 갈수록 태산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의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결국 준비되지 않은 기업형 지도자의 한계라 할 수밖에 없다. 이는 물론 ‘인사’와 ‘참모’의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역대 대통령들이 국민과의 소통문제를 자주 거론하였으며 이 대통령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과 국가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국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얘기와 다름없는 말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대통령이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열’과 ‘성’과 ‘지’를 다해 좋은 정책을 개발하고 국민이 이를 믿고 희망을 갖는다면 소통은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하면 국민이 행복해질 수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단순히 경제성장이나 물질적 풍요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가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되돌아보면 모두가 경제만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본적 삶의 가치에 대해 어느 누구라도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는가? 종교인구와 단체는 늘어나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지만 흉악범죄와 사회윤리 붕괴, 계층간 괴리는 날로 심화되고 있으며 공교육 문제는 언급조차 하기 민망한 것이 현실이다. 경제회복도 시급하지만 그것보다도 우리가 지도자가 제시하는 바를 믿고 비록 그 성과나 결과는 불투명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길이다. 국가 지도자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비전을 성심으로 제시하는 것이 소통의 큰 줄기이다. 경제규모 10위, 행복지수 100위,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김충현 서강대 언론대학원 교수
  • 안중근 의사의 옥중 저술 ‘동양평화론’ 아시나요

    정확히 100년 전인 1909년.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안 의사는 이듬해 여순감옥에서 순국했다. 하지만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안중근 의사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니, 올해가 의거 100주년을 맞은 해라는 것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의 ‘안중근 평전’(시대의창 펴냄)은 이같은 시기에 큰 의미를 지닌다. 그는 ‘백범 김구 평전’, ‘단재 신채호 평전’, ‘만해 한용운 평전’ 등에 이어 7번째로 이 평전을 펴냈다. 안중근 의사를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가 국채보상운동, 교육사업, 의병전쟁, 단지동맹 등 수많은 구국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안 의사가 옥중에서 저술한 ‘동양평화론’은 세계평화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논문으로 남아 있다. 사형 집행 날짜를 연기해 주겠다던 일제가 약속을 어기는 바람에 비록 미완성에 그치고 말았지만 말이다. “동아시아 현재와 미래의 평화구도와 공동체의 모델로 인식되는, 대단히 선구적인 제안으로 평가받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동양평화론’은 일본의 속성에 대한 진단, 제국주의의 침략논리 등을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동양평화의 주체를 일본으로 보는 등 사상적 한계점 역시 드러낸다. 그럼에도 안중근 의사가 주창한 동양평화에 대한 지론은 현 시점에서 적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한·중·일이 공동으로 동양평화회의를 구성할 것, 국제분쟁지인 여순을 중립화해 동양평화회의 본부지로 삼을 것, 3국 공동 개발은행을 설립해 공동화폐를 발행할 것 등 그가 제안한 주장들은 유럽공동체 EU를 연상시킬 정도이다. 안 의사는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항소하지 않았다. 이는 “구차하게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자신의 의지와 “큰일을 하였으니 목숨을 아끼지 말라. 일본 사람이 너를 살려줄 까닭이 없으니 비겁하게 항소 같은 것은 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뜻이 맞물렸다고 한다. 선각적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었던 인간적 배경, 암흑의 시대 한 가운데서도 잃지 않은 고결한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안 의사를 객관적·사실적으로 알 수 있게 하는 점이 이 책의 미덕이다. 하얼빈 의거와 이후 공판투쟁 때의 행적, 처형 전후에 대한 여러 사람의 증언 등을 역사적 사료와 기록을 통해 보여준다. 순국 이후 국내외에서 쏟아진 전기, 시문 등도 그의 영향력을 짐작케 한다. 1만 7800원.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독도는 일본땅” 하치에몬 주장 허구 증명

    “독도는 일본땅” 하치에몬 주장 허구 증명

    19세기 일본의 어부 하치에몬은 조선의 섬 울릉도에 몰래 들어갔다는 이유로 처형당한다. 그 이후 주요 해안에 울릉도 도해금지 경고문이 걸리게 된다. 그런데 그는 근대에 이르러 시마네현에서 독도 실효지배의 근거로 내세워지고 우익 인사들에 의해 영웅으로 추대된다. 14일 오후 8시10분 KBS 1TV에서 방영되는 ‘금단의 땅 독도-하치에몬은 왜 처형당했나’ 편에서는 하치에몬의 진술과 그가 그린 지도 등을 통해 독도가 일본땅이 아니라는 역사적 증거들을 살펴본다. 에도 막부 시절, 하치에몬은 하마다 영주에게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도해허가를 요청했으나 거절당한다. 이후 하마다의 가신과 편법을 모의해 울릉도 도해를 감행한 하치에몬은 목재 등을 베어 오사카에서 팔다가 결국 감찰을 돌던 막부 취조관에 발각되어 사형당하고 만다. 막부는 당시 판결문에서 “하치에몬이 울릉도를 도해한 사건으로 엄벌에 처해졌다.”면서 “죽도도 같음을 알아서 도해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과정을 기록한 ‘죽도도해일건기’(1836)에 따르면 하치에몬은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두 섬 모두 빈 섬이라고 생각되므로 이대로 두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초목을 베고 어업을 하면 내 이익이 될 뿐 아니라 막대한 국익이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특히 하치에몬이 직접 그렸다는 지도에는 한반도와 울릉도와 독도는 붉은색이고 오키섬과 일본열도는 하얀색으로 구분돼 있다. 제작진은 “이는 18~19세기 막부시대 일본인들의 영토의식을 보여주는 지도로 색깔이 확연히 구분된다.”며 “울릉도와 독도는 같은 색으로 조선령이며, 1951년 3월 영국이 작성한 지도 역시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사설] “혼란과 고통 주는 대입 자율화 안된다”

    고려대가 촉발하고, 연세대가 뒤따른 ‘멋대로 입시안’이 대입자율화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정부의 경고 메시지가 나왔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그제 교총을 방문한 자리에서 “대입 완전자율화가 가능한지는 2012년 이후 상황을 보고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3불 정책’(본고사·고교등급제·기부입학제 폐지)이 이명박 정부에서 계속 유지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나아가 “지금처럼 혼란과 고통을 주는 상황에서는 자율화가 불가능하다.”면서 “입시가 무질서로 간다면 정부로서도 엄청난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해 정부의 재개입 가능성을 내비췄다.직설적 스타일이 아닌 안 장관의 이날 ‘준비된’ 발언이 갖는 함의는 크다. 고려대는 올 수시2학기 모집전형에서 사실상 고교등급제를 적용해 특목고출신을 노골적으로 우대했다. 연세대는 2012학년도 본고사형 대학별고사 도입방침을 내놓았다. 3불정책의 정면훼손이다. 대학자율화 시행 1년여만에 관제교육의 화를 자초하는 격이다. 대입자율화의 취지를 점수위주 학생선발로 방향을 잘못 잡은 일부 대학들의 일탈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입시요강을 어긴 대학은 대학자율화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대학이 발표한 요강은 학생들과의 약속이다. 3불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대교협의 기본입장이라면 이 지침도 지켜야 마땅하다. 일부에서는 안 장관의 발언이 대입자율화의 취지와 일정을 뒤엎는 역주행이라고 비판한다. 또 혼란을 빌미로 입시에 재개입하려는 명분 축적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어떻든 대입자율화란 이름의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도도한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 대학은 취지에 맞지않는 입시안을 철회하고, 정부는 관제교육 기도를 포기하기 바란다.
  • [데스크 시각] 대통령 부인이라면 ‘그들’처럼…/황수정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대통령 부인이라면 ‘그들’처럼…/황수정 국제부 차장

    엊그제 뉴욕타임스는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최근 행보를 자세히 챙겼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부인 미셸이 소리없는 내조를 넘어 운신의 폭을 넓히고 있다는 요지였다. 상세한 현장 스케치도 보탰다. 일단 정부 부처들을 방문할 때면 그는 꼭 할리우드 스타 같은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연단에 올라서면 상황은 달라진다. 정색을 한 미셸은 ‘정책 전도사’가 된다. 경기부양책, 교육정책, 실업대책 등 대통령 남편이 힘주려는 정책들을 누구보다 뜨겁게 지지하는 후원자다. 역대 미국 퍼스트 레이디들의 유형에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무난한 미덕으로 암묵적 동의를 얻어온 ‘그림자 내조형’이다. 낸시 레이건, 바버라 부시, 로라 부시 등이 그 대열에 줄선다. 일거수일투족이 국민적 관심사여서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족족 유행으로 이어진 ‘스타형’도 있다. 생각할 것 없이 재클린 케네디였다. 가열찬 내조 열정이 수위조절이 안돼 더러 부담스럽기도 했던 ‘전사형’. 이건 따져볼 것도 없이 지금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었다. 미셸이 어떤 역할모델을 제시할지는 미지수다. 키 180㎝의 늘씬한 몸매, 시쳇말로 ‘간지 나는’ 옷맵시로 본의 아니게 스타형 퍼스트 레이디로 계속 부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지 언론들을 살펴보면 다른 해설이 압도적이다. 그는 백악관 입성 전에 연봉 30만달러를 받는 이른바 전문직 여성이었다. 그런 면모를 살려 정책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자임할 거라는 예측들이다. 기실 그 징후는 곳곳에서 읽혀지고 있다. 지난달 취임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임금차별금지법에 서명할 때 백악관에서 여성단체 대표들을 직접 챙겼다. 미국민들은 거기에 밑줄을 그어가며 각별한 의미를 싣는 분위기다. 유례없는 국가 위기를 맞아서일까. 어쨌거나 분명한 건 지금 미국은 퍼스트 레이디의 고전적 역할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허를 찌른’ 세컨드 레이디의 행보까지 그런 기대에다 기름을 붓고 있다. 조 바이든 부통령 부인 질 바이든은 대학 강단에서 월급을 받기로 했다. 체면 따지고 남의 눈 무서워하는 우리네 정서로야 더 깊이 폐부에 꽂히는 뉴스다. 질 바이든의 새 직장은 워싱턴 근처 북버지니아 커뮤니티 칼리지의 알렉산드리아 캠퍼스. 일주일에 10시간쯤 수업을 해야 하는 유급 부통령 부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일단 흥미롭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지난달 말 맨 먼저 이 뉴스를 보도한 워싱턴포스트의 어조는 살짝 흥분돼 있었다. 교육학 박사인 질이 강단을 택한 진짜 이유 때문이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미국 주 정부에서 운영하는 2년제 공립대학이다. 사석에서 커뮤니티 칼리지의 사회적 기능을 자주 강조해온 세컨드 레이디가 지역대학 살리기 전도사로 뛸 것이란 측근들 얘기를 덧붙였다. 좀 다른 얘기지만, 개인적으로 프랑스 대통령 부인 카를라 브루니의 뉴스를 좋아한다. 십중팔구는 가십성으로 취급되고, 모델 출신답게 튀는 젊은 부인을 어느 자리에나 대동하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팔불출 소리도 듣는다. 그런 들 뭐 대수인가. 재킷 한 장, 색색이 화려한 보석 샌들로 외신을 사로잡는 ‘패셔니스타’ 대통령 부인 덕에 패션강국 프랑스가 음양으로 챙기는 국가 브랜드 광고효과는 대체 얼마나 될까. 거창하게 따질 것도 없다. 당장 프랑스 국민들에게 브루니에 시력을 맞춘 월드뉴스들은 일상을 깨워 주는 ‘보너스’일 테니까. 우리 대통령 부인 캐릭터가 시절이 아무리 변해도 진화할 생각을 하지 않는 까닭은 뭘까. 애초에 도태될 일 없으니 경쟁할 일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다. 팍팍한 일상에 신선한 메타포를 찍어 주는 새 임무를 고민해 주면 어떨까, ‘그들’처럼…. 황수정 국제부 차장 sjh@seoul.co.kr
  • “간통죄 국민의 이불 속 보는 것”

    “간통죄 국민의 이불 속 보는 것”

    신영철 대법관 후보자는 10일 국회 인사청문특위에서 열린 인사청문회를 통해 사형제 및 간통죄 폐지, 흉악범 얼굴 공개 등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현안에 대해 소신을 뚜렷하게 밝혔다. 신 후보자는 사형제 폐지론과 관련해 “사형 판결이 확정되면 집행하는 게 맞다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신 후보자는 “법철학적으로 접근하면 반문명적 성격 때문에 언젠가는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보지만 지금이 그때인지는 확신을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흉악범의 얼굴 공개 논란과 관련,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국민의 알권리라는 공공의 이익이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전제한 뒤 “공공의 이익이 큰 경우 공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간통죄 폐지 문제에 대해서는 “위헌이라고까지 할 수 없으나 국민의 사생활이나 이불 속까지 들여다보는 것은 문제”라면서 “간통죄는 폐지를 생각해야 할 단계”라고 말했다. 민주당이 ‘MB악법’으로 규정한 일명 떼법방지법(불법집단행위에 대한 집단소송법)과 관련해서는 “입법부가 판단할 문제지만 법이 도입되면 실무적으로 법원에서 일하기에 애로가 많을 것 같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에 대해서는 “참사의 원인과 책임자 처벌 문제가 법원으로 넘어오게 된 만큼 성급하게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전제한 뒤 “법치주의란 민주주의를 꽃피우기 위한 기초로, 법치주의로 가야 한다는 원칙은 양보할 수 없지만 너무 냉정한 법치주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또 미네르바의 구속적부심이 기각된 것에 대한 견해를 묻는 질문에는 “사이버 언론의 영향력이 커진 만큼 그에 맞춰 책임도 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판사가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고 답했다. 한편 신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지난 1988년 충북 옥천 소재 땅 1959㎡를 명의신탁 형태로 매입한 것과 관련, “어머니 묏자리를 위한 것이었지만 외견상 부적절한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면서 “청문회를 준비하며 많이 반성했다.”고 답했다. 신 후보자는 2001년 충남 공주 소재 논 4162㎡를 부친에게 증여받을 당시, 농지법은 자경목적일 때만 증여가 가능하도록 돼 있는 농지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 “아버지가 하신 일이라 잘 몰랐고, 아버지가 계속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부자 간이라 괜찮으려니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아울러 소득이 있는 부친을 부양가족으로 신고, 소득공제를 받은 것에 대해서는 “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부적절하게 공제받은 것 같다. 적절히 상의해 반환하는 방법을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씨줄날줄] 여죄/이용원 수석논설위원

    1986년 나온 할리우드 영화 ‘헨리-연쇄살인범의 초상’은 역대 공포영화 베스트나 영화감독·비평가가 권하는, 꼭 보아야 할 영화 목록에 자주 오르는 수작(秀作)이다. 그렇다고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 잔인한 장면이 이어지는 건 아니다. 도시의 뒷골목을 떠돌며 조용히, 무감각하게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의 뒷모습에서는 오히려 고독·슬픔 같은 감정이 묻어나온다. 하지만 현실 속의 살인범 헨리 리 루카스는 비루한 거짓말쟁이에 불과했다. 1982년 체포된 헨리는 곧 범죄 경력을 떠벌이기 시작했다. 혼자서, 때로는 떠돌이 동료인 오티스 툴과 함께 모두 600명이 넘는 사람을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당연히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35개주의 경찰이 미제 살인사건 210건을 들고와 헨리와 면담하기를 원했다. 혼란이 극에 달하자 대규모 경찰 회의를 열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헨리가 자백한 특정사건이 자기 관할지역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경찰관끼리 다투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헨리는 범죄현장을 들러보거나 법정에서 증언한다는 핑계로 전국을 돌아다녔다. 에어컨 없는 텍사스의 감방에서 벗어나 비행기·승용차로 여행하면서 모텔에서 자고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것이다. 거짓말은 결국 들통났다. 진술에 의문을 품은 한 수사관이 (중남미의 섬인) 가이아나에 가서도 살인을 했느냐고 묻자 헨리는 자동차를 몰고가서 범행했다고 대답했다. 헨리는 최후에 한 건의 살인사건으로만 기소돼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종신형으로 감형됐다. 그를 직접 심문한 적이 있는 전설적인 프로파일러 로버트 케슬러는 훗날 그의 저서 ‘FBI 심리분석관’에서 헨리는 1975년 이후 5명쯤을 살해했다고 인정했으며, 나머지 자백은 “즐기기 위해서, 경찰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다고 분석했다. 경기도 화성의 한 골프장에서 진행되는 시신 발굴작업이 끝나면 연쇄살인범 강호순이 자백한 7건의 살인사건 수사는 종료된다. 그 뒤로는 여죄를 캐는 과정에 들어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미제사건 숫자를 줄이려는 노력이 아니라 진범을 정확히 가리는 일이라는 게 ‘헨리 리 루카스 사건’이 남긴 교훈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사설] 흉악범에 절대적 종신형 검토할 만하다

    한나라당이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같은 흉악범에 대해 절대적 종신형을 선고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감형이나 가석방, 사면이 불가능하도록 함으로써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사회로부터 완전 격리해 국민을 보호하고 범죄 예방효과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사형제 존폐 문제를 둘러싸고 사회적 합의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범죄는 점점 흉포화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조치가 사회적 방어체계를 구축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서 충분히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말 23명이 한꺼번에 사형에 처해진 이후 10년이 넘도록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상 사형제 폐지 국가가 됐지만 이번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뜨거워진 사형제 존폐 논란에서 보듯이 사형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것을 반대하는 국민은 여전히 많다. 강호순 같은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사형해야 마땅하다는 여론도 거세지만 11년만에 사형을 재개하는 것은 정치·사회적으로 부담이 크다. 그렇다고 해서 형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현행법에만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리나라는 흉악범에 대해 무기형을 선고하고 있지만 10년이 지나면 수형자의 복역 태도에 따라 감형을 하도록 하고 있다. 범죄자들 모두가 죗값을 치르면서 자신의 죄를 뉘우친 뒤 건전한 사회구성원으로 사회에 복귀해 활동한다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재범을 저지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절대적 종신형이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해 끔찍한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
  • 흉악범에 감형없는 종신형

    정부와 한나라당은 연쇄살인범 강호순과 같은 흉악범에 대해서는 사형과는 별도로 종신형을 선고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나라당 장윤석 제1 정책조정위원장은 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극악무도한 범죄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법을 전반적으로 정비하는 계기로 삼겠다.”면서 “종신형 도입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오는 12일 법무부, 행정안전부, 경찰청과 당정협의를 할 예정이다. 당정협의를 통해 감형이나 가석방, 사면이 불가능한 종신형을 추진해 흉악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방침이다. 이번에 추진키로 한 종신형은 무기형과 다소 비슷한 개념이지만 감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무기형은 수형자가 개전의 정을 보이거나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보이면 일부 감형해 주기도 하지만 종신형은 아예 감형을 원천적으로 봉쇄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현재 가중 처벌을 해도 25년을 넘을 수 없도록 돼 있는 징역형의 형기를 50년 이상으로 대폭 확대해 강력범에 대한 형을 선고하는 데 제약이 없도록 할 방침이다. 장 위원장은 “종신형이 도입돼도 현재의 사형제도는 그대로 존치된다.”면서 “무기형이 감형 등으로 반감효과가 있어 형벌체계를 사형제와 종신형, 무기형 상한 50년으로 강화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당정은 피의자 인권보호 차원에서 얼굴 등 신원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성범죄자의 경우 직업을 포함한 인적사항까지 공개한다는 점을 고려해 흉악범의 경우도 신상공개를 제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나라당은 또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사형제 집행 여부를 법무부 등과 논의할 예정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10년간 사형 집행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지난 5일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 흉악범 얼굴 공개와 사형집행에 대해 “둘 다 해야 한다.”며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일란성 쌍둥이 너무 똑같아 둘다 교수형 면해

    마약 거래범에겐 사형을 언도하게 돼 있는 말레이시아에서 일란성 쌍둥이 가운데 마약을 운반한 사람이 형인지 동생인지를 특정하지 못해 무죄 방면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졌다. 6일(현지시간)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의 자하라흐 이브라힘 판사는 2003년 166kg의 카나비스와 2kg의 생아편을 집으로 운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사티스와 사바리시 라즈(27) 형제에 대한 기소를 모두 각하할 것을 판결했다고 영국 BBC가 7일 전했다.이브라힘 판사는 “엉뚱한 사람을 교수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현지 일간 스트레이츠 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형제 중 한 명이 먼저 집에서 마약운반 혐의로 체포된 뒤 잠시 있다가 집에 돌아온 다른 형제마저 체포됐다.그런데 경찰은 당시 마약을 운반한 인물이 누군인지 분간하지 못했던 것. DNA 테스트에서도 둘은 정확히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법원에서 둘의 외모가 너무나 똑같았지만 키에서 조금 차이가 있었고 용의자는 안경을 쓰고 있었으며 나중에 도착한 형제는 안경을 쓰지 않은 차이만 있었다고 밝혔다.당시 그들은 입고 있는 셔츠로만 둘을 분간할 수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당시 형제를 체포했던 경찰관이 사망하는 바람에 누가 진짜 용의자인지를 더 이상 밝혀내기 어렵게 된 것. 이날 법정에 나란히 흰색 셔츠를 입고 나온 형제는 판사의 선고 이후 울음을 터뜨리며 서로 껴안았다고 신문은 전했다. 인터넷서울신문 bsnim@seoul.co.kr
  • 법원, 사이코패스엔 일반 양형+α

    법원이 사이코패스에게 높은 형량을 선고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 재발 위험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서울신문이 5일 사이코패스 테스트(P CL-R)를 양형 자료로 활용한 판결문 35개를 분석한 결과 전체 피고인 43명 가운데 사이코패스 성향으로 진단된 사람은 17명이었고 이들은 무기징역 등 높은 형량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은 피고인이 형량을 줄여달라고 항소한 사건은 예외없이 기각됐다. RCL-R를 자료로 활용하는 재판부는 대전고법 형사1부(부장 김상준)와 부산지법 형사합의5부(부장 고종주)이다. 사이코패스의 특성을 20개 문항으로 나열한 PCL-R는 40점 만점으로 미국은 30점 이상, 한국은 24점 이상을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한국 범죄자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예비 연구에서는 평균 점수가 15.4점이었다. 강호순은 두 차례 테스트에서 27점과 28점,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38점이 나왔다. 강모(41)씨는 20대 여성이 혼자 사는 원룸에 가스배관을 타고 침입해 15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전과 4범으로 강도강간죄로 처벌을 받은 적도 있었다. 심리검사 결과 성범죄자의 재범 위험성을 평가하는 테스트(K-SORAS)에서 22점(만점 30점), PCL-R에서 35점이 나왔다. 강씨는 법정 최고형(22년6개월)에 가까운 징역 20년을 확정받았다. 여섯 살 여자아이를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정모(54)씨는 PCL-R에서 29점, K-SORAS에서 19점을 받아 징역 5년형과 함께 3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달라는 명령을 받았다. 아동 성범죄 전과가 있었는데 출소한 다음날 동일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었다. 재판부는 “형량만 높여 재범을 방지하기 어렵다.”면서 “출소하고 나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초등학교 주변 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PCL-R 점수가 낮아 사형을 면한 피고인도 있었다. 7년8개월간 여성 127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49)씨는 테스트에서 비교적 낮은 점수인 16점을 받았다. 재판부는 “극도로 악한 성향이 뚜렷하다고 보이지 않아 교화·개선의 여지가 남아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PCL-R, K-SORAS 등 심리진단보고서를 양형 자료로 활용하는 김상준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재범 위험성을 과학적으로 진단할 필요가 있어 2007년 3월부터 심리전문위원에게 의뢰해 시행하고 있다.”면서 “사이코패스 경향이 높은 피고인이 왜곡된 범죄 의식을 바로잡고 충동 조절 능력을 익히도록 교정 당국이 치료적, 과학적 프로그램을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강의 팬카페 “범죄자 인권도 보호돼야”

     지난 2일 네이버에 개설된 ‘연쇄살인범 강호순님의 인권을 위한 팬카페(cafe.naver.com/ilovehosun)’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카페 개설 이틀여만에 1000명 이상이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매니저인 GreatKiller는 “우리는 장난이나 하는 무개념 카페가 아니다.”라며 일부 언론의 보도에 반발했다.  카페 매니저 GreatKiller는 “사람의 인권을 옹호하고 존중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 강씨와 같은 범죄자도 마땅히 인권을 가지고 있다.”면서 범죄자를 추종하기 위해 카페를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I love hosun이란 카페의 주소는 범죄 행위에 대한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자비에 기인한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카페 역시 얼굴 및 신상정보 공개와 사형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 등으로 위태하게 된 강호순의 인권을 지속적으로 옹호하자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강호순 팬카페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범죄자의 인권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가”란 네티즌들의 이의 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또 회원으로 가입해야만 글쓰기가 가능해 회원 대다수는 이런 카페를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매니저를 질타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있다.  네이버에는 강호순의 인권을 위한 카페 외에도 강호순의 모든 것을 파헤치는 카페, 강호순 안티카페도 개설돼 네티즌들의 지대한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오풍연 대기자 법조의 窓] 사형제도 단상

    살인마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또다시 사형제에 관한 존폐논쟁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7년 12월30일 사형을 집행한 이후 지금까지 한 차례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가 규정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 상태다. 현재 사형이 확정되고도 미결구금된 범죄자는 유영철과 정남규를 포함해 58명에 이른다. 3명은 사형을 선고받고 2·3심이 진행 중이다.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국민여론은 사형제도를 찬성하는 쪽으로 기운다. 빨리 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히 사형을 집행해야죠. 유영철은 21명의 죄 없는 여성들을 토막내 죽였습니다. 사형을 집행 안 하면, 대법원이 왜 필요하고 왜 법이 필요하냐는 거죠. 이렇게 사형 집행을 안 하는 것은 소위 포퓰리즘이죠.” 김문수 경기지사가 최근 방송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사형제도는 사실상 폐지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1960년대 대법원에서는 사형이 합헌이라고 판시했다(1963.2.28.大判62도241). 헌법재판소도 사형을 합헌이라고 결정하고 있다. 헌재의 합헌 이유에서 주목되는 것은 비례의 법칙에 따라 타인의 생명 또는 공익을 보호하기 위해 예외적 조치를 인정한 것이다. 생명을 부정하는 범죄에 대한 응보주의와 일반예방상의 이유를 들고 있다(1996.11.28.95헌바1 전원재판부). 최고 재판소의 결정인 만큼 유효하다 하겠다. 외국의 경우를 보자. 독일연방공화국 헌법은 사형을 폐지하고 있다(동법 102조). 그밖에 사형을 법률로 폐지한 나라도 많다. 미국 연방최고재판소의 퍼먼 대 조지아 사건 판결(Furman v. Georgia,1972)은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사형이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잔혹하고 이상한 형벌이라는 까닭에서다. 사형폐지운동을 펴고 있는 인권단체 등의 주장은 이렇다. “사형의 비인도성과 오판 시의 구제 불능, 정치적 악용의 위험성을 들어 사형이 인정되어선 안 된다.” 심리학자 마이어스는 신념 집착(belief perseverance)을 얘기한다. 상반된 증거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신념에 매달리는 경향이다. 그것은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기 십상이다. 찰스 로드와 동료들은 사형제도에 상반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연구했다. 양측은 새로운 것처럼 포장된 두 가지 연구결과를 보았다. 하나는 사형제도가 범죄를 줄인다는 주장. 또 하나는 그 주장을 반박하는 것. 둘 다 자신의 신념을 지지하는 연구에 감동을 받았다. 때문에 사형제도의 찬반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법리논쟁을 떠나 필자는 사형을 집행할 것을 촉구한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떠안은 유가족과 불안에 떠는 시민들을 위해서도 주저할 이유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경한 법무장관도 법치를 강조하고 있다. 차제에 흉악범들이 더 이상 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좌고우면하지 말고 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바란다. poongynn@seoul.co.kr
  • [길섶에서] 거시기/오풍연 법조대기자

    우리나라는 면적이 넓지 않다. 대신 인구밀도는 높다. 지역색도 뚜렷하다. 말 역시 다양하다. 사투리가 심한 지역에서는 말 뜻을 이해하느라 고생한다. 특히 제주지역 방언은 알아 듣기 어렵다. 하지만 사투리는 언제 들어도 정겹다. 선조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전라도 지역에서 흔히 쓰는 ‘거시기’가 있다. 대부분 사투리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나와있는 표준어다. 말하는 중 물건이나 일의 이름이 얼른 입에서 나오지 않을 때 쓴다. 이에 관한 일화도 많다. 면장 출신 어른이 동네 혼사에서 주례를 서게 됐다. 궂은 날씨는 생각지 않고 주례사를 준비했다. 그런데 비가 쏟아졌다. “화창한 날씨에도 불구하고….”라며 운을 떼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에 당황한 주례는 다음말부터 ‘거시기’로 시작해 ‘거시기’로 끝냈다. 그래도 하객들은 모두 알아 들었단다. 요즘 거시기는 유행어가 됐다. 만사형통 언어로 등극했다. 집에서 종종 써 본다. “거시기 좀 가져와.”하면 알아서 내 놓는다. 우리말을 더욱 사랑하자. 오풍연 법조대기자 poongynn@seoul.co.kr
  • 민청학련 45명 재심 청구

    이해찬 전 국무총리, 유인태·장영달 전 민주당 의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이철 전 철도공사 사장 등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고자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30일 서울고법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민청학련 소속 대학생으로 지목돼 최고 사형까지 선고받았던 이 전 총리 등 45명은 “인혁당의 재심 무죄 판결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를 통해 민청학련 수사 당시의 고문과 공판기록 조작 등이 드러났다.”며 재심 청구 이유를 밝혔다. 재심 개시 결정에 앞서 검찰은 “증거에 따라 재판부의 현명한 결정을 바란다.”는 의견을 냈다. 재심 청구인에는 일본 ‘주간현대’ 기자로 한국을 방문해 이철 전 사장 등을 취재하고 약간의 사례비를 건넨 것이 ‘좌익자금’으로 조작돼 구속됐던 다치가와 마사키도 포함됐다. 민청학련 상임위원으로 활동하다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90년 12월에 사망한 김병곤씨를 대신해서 부인 박문숙씨가 참여했다. 이들이 청구한 17건의 사건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서기석), 형사4부(부장 윤재윤), 형사9부(부장 고의영),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이규진), 형사합의23부(부장 민병훈)에 각각 배당됐고 해당 재판부는 관련 기록을 검토해 재심 개시를 결정할 예정이다. 민청학련 사건이란 1974년 4월 당시 정부가 유신 반대 집회를 준비하던 민청학련 소속 대학생 등 180명을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 혐의로 구속·기소한 사건이다. 특히 민청학련 배후로 인혁당재건위를 지목했고 도예종 등 인혁당 소속 8명에게는 사형을, 민청학련 대학생에게는 최고 무기징역까지 선고했다. 인혁당 사건은 2007년 1월 재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피고인의 수사 기록이 장기간 구금된 상태에서 중앙정보부의 고문과 구타 등을 통해 작성돼 증거 능력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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