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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대선 인맥 대해부] 박근혜의 사람들(상)

    [2012 대선 인맥 대해부] 박근혜의 사람들(상)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사람들은 다양한 그룹으로 분류된다. 박 후보가 2인자를 두거나 특정 인물에게 힘이 쏠리게 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측근들이 방사형으로 포진된 형태를 띤다. 박 후보가 신뢰를 중요시하는 만큼 박 후보의 사람들도 의리와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하고 입이 무거운 것도 공통점이다. 이번 경선 과정을 비롯해 앞으로 대선 가도를 이끌 핵심 참모진으로는 우선 최경환 의원이 꼽힌다. 3선의 최 의원은 이번 캠프의 총괄본부장을 맡아 실무 전반을 진두지휘했다. 박 후보가 당 대표 시절 함께 당직을 맡으면서 인연을 맺었고 2007년 대선 경선에서도 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최 의원과 함께 박 후보의 비서실장을 지낸 3선의 유정복 의원과 이학재 비서실장도 박 후보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다. 2007년 경선 때보다 강화된 역할을 하며 이른바 ‘신주류’로 부상한 정치인 그룹도 주목을 받는다. 서병수 사무총장은 향후 대선 자금을 비롯한 당무 전반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캠프에서 공보단장을 맡았던 윤상현 의원과 정책을 담당했던 안종범·강석훈 의원도 신주류에 속한다. 박 후보의 ‘입’ 역할을 해온 이상일·조윤선 대변인과 이정현 최고위원도 높은 신임을 얻고 있다. 이번 캠프에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투톱’ 체제를 형성했던 홍사덕 전 의원과 김종인 전 장관은 주로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자처하며 사실상 좌장 역할을 해 왔다. 특히 김 전 장관과 함께 비상대책위원을 지냈던 이상돈 교수는 외부인사임에도 불구하고 캠프내 신주류로 꾸준히 부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만큼 영향력을 보였다. 6선 국회의원을 역임한 홍 전 의원은 2007년 경선에서도 선대위원장을 맡는 등 영원한 좌장으로 꼽힌다. 박 후보의 싱크탱크 격인 국가미래연구원과 공부모임 소속 인사들은 박 후보의 정책을 다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경선 캠프에서 ‘줄푸세’(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는 세운다) 위원장이었던 김광두 교수와 윤병세 전 외교안보수석,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 안종범 의원 등은 모두 국가미래연구원 소속이다. 참여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장수 전 의원도 박 후보의 안보분야 자문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다. ‘7인회’로 논란을 빚었던 원로그룹도 여전히 안팎에서 박 후보를 돕고 있다. 이병기 여의도연구소 고문과 김용환·최병렬·김기춘·김용갑 당 상임고문, 현경대 전 의원 등이 거명된다. 물밑에서 캠프를 이끌어 온 실무진들도 역할이 컸다. 박 후보가 정치를 처음 시작한 1998년부터 15년째 함께해 온 박근혜 의원실의 이재만·이춘상 보좌관과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이 캠프에서 각각 정책, 홍보 등 분야별로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번 캠프 실무진들의 상당수는 2007년 경선을 같이 뛰었다가 복귀한 인사들이다. 5년 전 정책메시지총괄부단장으로 박 후보의 메시지와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조인근 전 비상대책위원장실 부실장은 이번에도 메시지 팀장을 맡았다. 신동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청와대 행정관 출신인 장경상 전략기획팀장 등도 캠프 안팎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 캠프의 핵심이었던 김무성 전 원내대표와 유승민 전 최고위원 등은 탈박, 또는 구주류 친박 등으로 분류되면서 이번 경선에서는 박 후보와 거리를 멀리했다. 캠프 안팎에서는 박 후보가 본선에서 보다 소통과 통합의 이미지를 굳히려면 이들과 다시 함께해야 한다는 조언들이 이어지고 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美, 위키리크스 마녀사냥 중단하라” 어산지, 두달만에 모습 공개

    에콰도르 정부로부터 망명허가를 받은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41)가 미국 정부를 겨냥해 위키리크스에 대한 마녀사냥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어산지는 19일(현지시간)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 1층 발코니에 나와 이 같은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6월 영국 정부의 스웨덴 강제 송환을 피해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한 지 두 달 만이다. 그는 “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올바른 행동을 하라고 요구했다.”면서 “미국은 비밀 외교 전문을 공개한 위키리크스에 대한 마녀 사냥을 끝내라.”고 밝혔다. 어산지는 이어 위키리크스에 국무부 외교전문을 넘겨준 미 일병 브래들리 매닝의 석방을 촉구했다. 그는 망명을 허가한 에콰도르 정부와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에 대한 감사를 표하면서 자신의 망명 결정을 지지한 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도 “용감한 나라들이 정의를 지지했다.”고 밝혔다. 또 징역형을 받은 러시아 펑크밴드 푸시 라이엇을 들어 “자유를 탄압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으며 이에 맞서는 단결되고 단호한 저항도 있음을 확신한다.”고 주장했다. 10분에 걸쳐 준비해온 성명을 모두 낭독한 어산지는 자신을 기다려준 지지자들을 향해 양쪽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등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앞서 영국 정부는 대사관에 들어가 어산지를 직접 체포하겠다는 뜻을 에콰도르 대사관에 전달했다. 이에 에콰도르 정부는 “영국의 위협은 국제법을 무시한 어리석은 행동”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고, 곧이어 남미국가연합(UNASUR)의 긴급 외무장관 회의가 열리면서 영국과 남미 간의 외교 갈등이 불거졌다. 한편 크리스틴 흐라픈손 위키리크스 대변인은 발표에 앞서 “스웨덴 정부가 어산지를 미국으로 보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어산지는 그동안 자신이 스웨덴으로 추방되면 재판 없이 신병이 미국으로 넘겨져 간첩 혐의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앞서 어산지는 2010년 8월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같은해 12월 런던에서 체포된 뒤 스웨덴으로 추방될 위기에 처하자 보석허가를 받아 지난 6월 19일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신청했다. 2007년 개설된 위키리크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군사기밀 9만건을 포함해 수십만건의 비밀정보를 유출해 세계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윤형렬 “여성들 ‘훤앓이’ 하는 동안 군 복무하며 ‘속앓이’ 했죠”

    윤형렬 “여성들 ‘훤앓이’ 하는 동안 군 복무하며 ‘속앓이’ 했죠”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만든 ‘배트맨’ 시리즈 최종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는 프랑스 혁명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가 숨바꼭질하듯 촘촘히 녹아 있다. 극 중 배트맨을 자처한 브루스 웨인이 죽자 배트맨의 협력자로 활약한 고든 형사가 웨인의 무덤 앞에서 그의 유언장을 대신 조용히 읊조린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전에 내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훨씬 가치 있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제껏 알아온 그 어떤 안식보다도 훨씬 더 평안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말이다. 사실 이 대사는 두 도시 이야기에서 주인공 시드니 칼튼이 귀족에 대한 민중들의 분노와 항거의 결과로 사형을 선고받은 찰스 다네이(시드니 칼튼이 사랑한 루시라는 여성의 남편)를 대신해 단두대에 오르기 전 남긴 독백을 그대로 빌린 것이다. 놀런 감독이 배트맨 시리즈를 만들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이 소설 ‘두 도시 이야기’라고 고백한 것도 이러한 맥락 때문이다.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오는 24일 국내 무대에서 첫선을 보인다. 배트맨이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은 만큼 두 도시 이야기 또한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배트맨과 평행이론(다른 시대를 사는 두 사람의 운명이 같은 패턴을 띠는 것)의 궤를 함께하는 시드니 칼튼 역에는 배우 류정한과 윤형렬이 더블 캐스팅 됐다. 나날이 시드니 칼튼 역에 몰입하고 있다는 윤형렬(29)을 지난 14일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근처에서 만났다. 윤형렬은 2008년 25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의 꼽추 ‘카지모도’ 역을 따내며 뮤지컬 배우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배우가 아닌 신인 가수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시 가수 휘성, 거미 등이 활동한 소속사 엠보트에서 현재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멤버 양요섭과 함께 연습생 생활을 거친 뒤 솔로 가수로 데뷔, 음반을 발표했다.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의 음반을 들은 노트르담 드 파리 제작사 관계자가 그에게 뮤지컬 오디션을 제의했다. 그의 음색이 프랑스 오리지널 팀의 카지모도, 배우 맷 로랑(Matt Laurent)과 흡사해 거칠면서도 구슬픈 매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당당히 배역을 따냈고 데뷔와 동시에 주연을 거머진 것은 물론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이후 ‘모차르트’ ‘햄릿’ 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하며 잘나가는 배우로 거듭났다. 하지만 2010년,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하게 되면서 2년간의 공백기를 가졌다. 윤형렬은 당시 누구보다 불안한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한 첫해에는 무대에 너무 서고 싶어 아예 공연장에 발을 들이지 않았어요. 2년차 때는 조금씩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같이 무대에 섰던 형들이나 동료가 조연에서 주연으로 치고 나가며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잊혀지는 게 아닐까 불안했죠.”라고 말했다. 특히 누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이훤 역을 맡아 전국 여성들이 ‘훤앓이’를 하게 만든 배우 김수현을 꼽았다. 그는 “수현이랑 예전에 같은 소속사(엠보트)에서 활동했어요. 그때만 해도 수현이는 시트콤에 단역으로 나올 때였거든요. 내가 노트르담 드 파리 할 때 수현이가 공연을 보러 와서 자기도 뮤지컬이 하고 싶다며 대기실을 구경시켜 달라고 해서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나요. 비스트의 요섭이도 연습생 생활을 함께 했고요. 두 친구 모두 스타가 된 걸 보면서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나만 혼자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 같았어요.”라고 말하며 한참을 웃었다. 그래서 군 복무 이후 첫 주연을 맡은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가 그에겐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그는 “노트르담 드 파리 때는 가수 생활을 하면서 냈던 앨범이 다 망했어요. 힘들었죠. 그래서 노트르담 드 파리 오디션부터 공연까지 매 순간 최선을 다했어요. 그간의 실패 한을 무대에서 풀고 싶었거든요. 두 도시 이야기 또한 그래요. 군 복무 기간 내내 좋은 배우가 될 거라고 칼을 갈았기에 진지하게 임할 수밖에 없죠. 정말 잘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밝게 웃었다.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런던과 파리를 넘나들며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단두대에서 죽음을 맞이한 한 남자의 숭고한 사랑 이야기다. 민중과 귀족의 대립 등 프랑스 혁명 당시의 정치적 상황도 엿볼 수 있다. 한국 초연 무대에서는 토니상을 네 차례 받은 무대 디자이너 토니 윌튼의 무대 세트를 그대로 선보인다. 24일~10월 7일 서울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 5만~12만원. 1577-3363.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대한민국은 힐링중] 정치·스포츠… 떠오르는 힐링 리더십

    [대한민국은 힐링중] 정치·스포츠… 떠오르는 힐링 리더십

    힐링 신드롬이 확산하면서 힐링 리더십도 주목 받고 있다. 정치, 사회, 문화계에서 수직적으로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눈높이를 맞추는 수평적 자세로 대중의 고통에 공감하고 그 고통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리더십이 주목 받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 사회에 강하게 불었던 ‘소통’이라는 화두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것이다. 불만을 토로하기 전에 먼저 대중의 마음을 읽고 먼저 다가가며 낙오자 없이 전체를 포용하는 리더십이다. 소통뿐만 아니라 사회를 통합해낼 수 있는 능력과 전문가로서의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정치계에서 대표적인 힐링 리더십은 유력한 대권주자로 손꼽히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청춘콘서트’를 통해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20대에게 멘토가 되는 힐링 리더십을 선보였다. 별다른 정치적 활동 없이도 40%를 훨씬 웃도는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다. 현재 서점가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그의 저서 ‘안철수의 생각’이 폭발적으로 판매되는 배경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는 그를 두고 정치계에선 “꼼수를 쓰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일방적으로 대선 출마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책을 통해 던지고 독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방식도 기존과 다르게 참신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국민과의 수평적인 소통을 통해 출마를 결정짓겠다는 방식은 힐링형 리더로서 그의 철학이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통서 더 나가 마음 먼저 읽어주기 2012 런던 올림픽에서 축구 대표팀이 64년 만에 사상 첫 동메달을 획득하는 데 1등 공신으로 꼽히는 홍명보 감독도 대표적인 힐링형 리더다. 모든 것을 선수들 자율에 맡기고 반말도 하지 않는 그는 선수들과의 소통을 바탕으로 한 따뜻한 ‘형님 리더십’을 선보였다. 감독과 선수라는 수직적인 위계질서가 아니라 마치 형과 동생처럼 수평적이고 인간적인 관계로 끈끈한 신뢰를 쌓아 최강의 팀워크를 자랑했다. 병역논란에 시달린 박주영을 대표팀으로 선발한 뒤 “반드시 입대한다.”는 기자회견을 함께하며 불신과 오해를 불식시켰다. 그리고 한·일전에서 박주영에 대해 끈질긴 믿음을 보여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대회 내내 벤치를 지키던 김기희를 경기 종료 4분 전에 투입해 병역 특례에서 소외시키지 않은 것도 홍명보식 힐링 리더십의 소산으로 볼 수 있다. 연예계의 대표적인 힐링형 리더는 바로 유재석이다. 강호동과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가 강호동의 잠정 은퇴 이후 국민 MC로서 독주하는 그는 상대방과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배려하는 힐링 리더십을 선보였다. 힐링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해피투게더 3’나 ‘무한도전’ 등을 진행하면서 유재석은 게스트를 압박해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그 속에서 진솔함과 재미를 추구하는 진행 방식을 선보였다. 상대방의 장점을 먼저 파악하고 먼저 다가가는 행보에 게스트들은 어느덧 긴장감을 풀고 자신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최근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도둑들’의 최동훈 감독도 힐링형 리더다. 김윤석, 김혜수, 전지현, 이정재, 김수현 등 톱스타 10명을 캐스팅해 흥행의 토대를 닦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현장에서 배우들과의 기 싸움 대신 소통을 중시한다. 최 감독은 지난달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장을 통제하기가 쉽지만은 않지만, 충분히 사전에 이야기하고 촬영에 들어가면 배우들을 굳이 이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배우들을 믿고 수평적인 의사소통을 중시한 덕분에 성격이 까다롭다고 알려진 김윤석은 4편, 김혜수는 2편째 최 감독과 함께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의 발전 과정에서 힐링 리더십을 최고로 친다. 1단계가 리더의 지식을 주입하는 해결사형이었다면, 2단계는 리더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화로 풀어가는 소통·공감형, 3단계는 상대의 경험에 대면해 자가 치유를 하는 힐링형 또는 헬퍼형으로 점차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성회 CEO 리더십 연구소 소장은 “해결사형은 나의 주도적 선택이 아니라는 점에서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있고, 공감·소통형은 들어 줄 때는 좋은 것 같았는데 다시 원점회귀의 측면이 있다.”면서 “힐링형은 리더가 던져준 질문과 기회를 통해 자신의 힘으로 치유하고 변화했다는 주도성과 해결성 등 양 요소를 갖추고 있어 효과가 높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자기가 해결해야 하지만 계기와 환경 및 자극은 리더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카리스마 리더 더이상 원하지 않아 사회 문화적으로 힐링 열풍을 확산시킨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제작을 맡고 있는 이창태 SBS 예능국장은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인 가치가 실종된 상실의 시대에 대중은 위로를 받고 상처를 메워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된다.”면서 “예를 들어 고 김수환 추기경처럼 진정성과 믿음을 가지고 사회적인 가치를 실천하는 모습을 보고 치유를 받는 힐링형 리더십을 찾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영섭 대구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가 자기 구호를 앞세우는 카리스마적인 리더보다는 겸손하고 자기 성찰적인 힐링형 리더를 원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이번 대선에서도 권력 의지에 대해서도 분명히 거리를 두고 경계하고 통찰하는 것은 물론 삶의 질을 어느 쪽으로 끌고 갈 것인가를 중시하는 힐링 리더십이 주목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중국통신] 자살 실패하자 ‘사형 선고’ 받으려 살인한 남자

    자살시도가 번번히 수포로 돌아가자 ‘사형’을 받기 위해 무고한 시민을 죽인 남성이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진양왕(金羊網) 17일 보도에 따르면 지난 달 1일 산시(陝西)성 린퉁(臨潼)시에 소재한 여행사에서 28세의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같은 날, 범인이 경찰서에 자진출두, 범행 일체를 자백하며 사건 해결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살인 사건만큼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범인의 자백. 가해자 리창(李强)은 조사에서 “죽는 것이 사는 것만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줄곧 성적이 나빴던 리씨는 당시 쥐약을 먹고 세상을 등지려 했지만 때마침 집으로 돌아온 가족에 의해 발견되며 ‘원치 않게’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리씨는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위해 상하이(上海)로 향했다. 그러나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해도 손에 들어오는 돈안 고작 3000여위안(한화 약 54만원). 일찌감치 삶을 포기하고자 했었던 리씨의 자괴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그리고 다시 자살을 결심, 바다에 몸을 던진 리씨. 행운인지 불행인지 이번에는 파도에 휩쓸려 뭍으로 떠내려오면서 또 한번의 자살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다. 두번의 자살시도가 모두 실패로 끝나자 일자리를 찾는 등 다시 한번 삶의 지푸라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세상은 일자리를 찾는 것 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삶의 회의를 느낀 리씨의 선택은 살인. 리씨는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빌어 내 숨을 끊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국통신원 홍진형 agatha_hong@aol.com
  • 에콰도르, 어산지 망명 허용… 英은 “불허” 외교 갈등 고조

    에콰도르가 폭로전문사이트 ‘위키리크스’의 설립자 줄리언 어산지의 망명을 승인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가 에콰도르의 결정과 상관없이 어산지가 영국을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로 한 데다 스웨덴 정부도 자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외교 마찰이 고조되고 있다. 리카르도 파티노 에콰도르 외교부 장관은 16일 오전(현지시간) 수도 키토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산지는 정치적 박해를 당하고 있는 피해자”라며 “에콰도르 정부는 어산지의 망명을 승인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는 또 영국 정부가 어산지의 신병을 넘기지 않으면 런던의 에콰도르 공관에 진입하겠다고 협박한 점을 강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영국 외무부는 “실망스러운 결정”이라면서도 “에콰도르의 결정으로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단호한 태도를 유지했다. 외무부는 트위터를 통해 “영국 정부는 어산지를 스웨덴으로 인계해 재판을 받게 할 법적인 책임이 있다.”며 “쌍방이 합의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하겠다.”고 밝혔다. 스웨덴 정부도 에콰도르 대사를 불러 “에콰도르가 스웨덴 법 절차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용납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외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영국 정부가 어산지의 에콰도르행을 강력 저지할 방침임에 따라 그가 에콰도르 대사관을 나설 경우 체포될 가능성이 높다고 BBC는 전했다. 런던 경찰은 이날 어산지의 지지자가 집결한 에콰도르 대사관 밖에서 3명을 체포했다. 앞서 파티노 장관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영국 정부의 협박을 단호하게 거절했다.”면서 “이번 사태는 민주화된 문명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우리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파티노 장관의 기자회견 뒤 위키리크스도 즉각 항의성명을 내놨다. 위키리크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대사관을 습격하겠다는 영국의 주장은 세계 모든 나라의 대사관은 보호받아야 한다는 빈 협약을 무시한 조치이며 일방적이고 부끄러운 행동”이라면서 “영국의 협박을 강력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어산지는 2010년 8월 스웨덴에서 여성 2명을 성폭행한 혐의로 그해 12월 런던에서 체포돼 540일간 보석상태로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6월 대법원이 그의 추방 거부 신청을 최종 기각하자, 같은 달 19일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해 망명을 신청했다. 어산지는 자신이 스웨덴으로 추방되면 재판 없이 신병이 미국으로 넘겨져 간첩 혐의로 사형에 처해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2007년 개설된 위키리크스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군사기밀 9만건을 포함해 수십만건의 비밀정보를 유출해 세계 외교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광복절 67돌] 나눔의 집, ‘말뚝테러’ 日검찰에 고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에 ‘말뚝 테러’를 벌인 일본인 스즈키 노부유키(47)를 나눔의 집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현지 사법당국에 직접 고소·고발하기로 했다. 검찰에 스즈키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으나 사법처리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검찰은 본국으로 돌아간 스즈키를 데려오기 위해 강제력 있는 법적 대처방안을 검토했으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눔의 집과 위안부 피해자들의 대리인을 맡은 박선아 변호사는 15일 “국내에서 스즈키를 사법처리하기 힘들 경우에 대비해 다음 달쯤 일본 현지 검찰에 직접 고소·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변호사는 “나눔의 집 자원봉사자 등 뜻을 함께하는 일본인을 통해 고발장을 제출할 것”이라면서 “대한변협 일제피해자 인권특위에 있는 일본 변호사들의 도움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에는 평화헌법이 있어 전쟁을 찬양하는 등의 행위는 처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사건을 국내에서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부장 이성희)는 일본 정부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검찰은 스즈키를 국내에서 사법처리하는 방안에 대해 법적으로 검토해 왔다. 앞서 김순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0명은 지난달 스즈키를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2002년 체결된 한·일 간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르면 양국 법률에 의해 사형·종신형 또는 1년 이상의 자유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는 인도 청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스즈키가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옆에 한글로 ‘타캐시마는 일본땅’, 일본어로 ‘다케시마’(竹島·일본에서 독도를 부르는 단어)라고 적힌 말뚝을 놓고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한 것이 이러한 범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범죄 행위에 대해 혐의가 특정되지 않았다. 혐의가 밝혀지더라도 범죄인 인도청구 대상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스즈키는 말뚝 테러 사건 직후 한국 국민에게 추가적인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고 국민 감정이 좋지 않다는 점 등을 사유로 입국이 금지된 상태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中, 한국인 마약사범 사형선고

    중국 내 한국인 마약사범 1명이 사형을, 다른 1명이 사형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최근 중국 정부의 외국인 관련 마약범죄 단속이 강화되면서 올 들어 중국 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한국인 마약사범만 해도 3명이다. 14일 외교통상부에 따르면 연변조선족자치주 중급 인민법원은 이날 오전 열린 공판(1심)에서 필로폰 10.3㎏을 불법 유통시키려 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인 신모(51)씨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또 신씨와 같은 혐의로 기소된 김모(44)씨에게는 사형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들은 2009년 7월 필로폰을 소지하고 중국 지린성 창춘에서 선양으로 이동하다 공안 당국에 검거됐다. 이들과 함께 붙잡혀 재판을 받던 문모(65)씨는 지난 6월 연변주 왕칭현 간수소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신씨 등 3명은 마약 관련 범죄로 검찰에 의해 국내에서도 수배된 상태다. 중국은 1㎏ 이상 아편 또는 50g 이상 필로폰을 밀수·판매하는 경우 중형에 처하고 있다. 특히 1㎏ 이상 필로폰의 경우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최근 중국에서 외국인이 마약범죄로 사형된 사례는 2009년 영국인 1명, 2010년 일본인 4명, 지난해 필리핀인 3명이다. 한국인은 신씨와 함께 지난 4월 김모(58)씨, 5월 장모(53)씨가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2001년 신모씨가 사형됐다. 김씨와 장씨는 현재 상소 절차를 진행 중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서대문형무소서 ‘1박2일 옥사체험’ 해보세요

    서대문구가 14~15일 우리 민족 수난 극복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제67주년 광복절을 기리는 다양한 행사를 펼친다. 15일에는 역사관을 관람객에게 무료로 개방한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서울시 지정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옥사 3개동과 사형장을 포함해 2만 9218㎡가 사적 324호로 지정돼 있다. 최근 구 보안과 청사로 사용됐던 전시관의 외형을 복구하고 유관순 열사가 수감되고 순국했던 옛 여성 구치감 옥사와 수감자 운동시설인 격벽장, 정면담장 등을 원형도면대로 복원해 의미가 더욱 깊다. 우선 14일 오후 5시부터 15일 오전 9시까지 가족이 함께 체험하는 ‘1박 2일 옥사체험 행사’가 열린다. 참가자들은 먼저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옥중생활에 대해 배우고 3개조로 나뉘어 중앙사 2층 등 미개방 공간을 포함한 역사관 야간탐방을 한다. 이어 가족별로 독방과 벽관 등에 들어가는 고문체험과 ‘독립가’ 개사곡 등을 만들며 점수를 매겨 사식을 확보하는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또 형무소 곳곳을 찾아다니며 퍼즐을 풀어 태극기를 찾는 ‘잃어버린 태극기를 찾아라!’ 경기도 펼쳐져 관람객들의 흥미를 끌 전망이다. 침낭 등 최소한의 침구류로 옥사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독립투사의 옥중 생활과 민족정신을 조금이나마 기리는 행사도 열린다. 15일 오전에는 격벽장에서 운동체험을 한다. 격벽장은 수감자 운동시설로, 일제 강점기 당시 애국지사들이 운동 중에 서로 정보를 교환하지 못하도록 좁은 공간에 벽까지 설치해 격리했던 안타까운 우리 역사의 중요한 장소이다. 15일 오후 7시 30분부터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대무대에서 프롬코리아 예술단이 출연하는 특별기획공연 ‘젊은이의 의로움과 맹서한 마음은 붉었도다!’가 펼쳐진다. 서울시 예비사회적기업인 ‘예술과 마음’에서 기획·제작한 이 작품은 타악단과 무용단, 실내악단까지 함께한 대규모 예술무대이다. 무료로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15일 초·중·고교생 관람 감상문 대회도 눈길을 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진행되며 청소년은 누구나 사전 예약 없이 당일 참여할 수 있다. 총 15명을 선정해 시상할 계획이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독립유공자 후손 13명 한국 국적 취득

    독립유공자 후손 13명 한국 국적 취득

    “한국에 나와서도 할아버지가 독립유공자라는 사실에 항상 떳떳할 수 있었습니다.” 13일 오후 3시 경기 과천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서 열린 대한민국 국적증서 수여식. 대표로 선서를 한 박도백 선생의 손자 박승천(46)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소감을 말했다. 박도백 선생은 1919년 부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1년 3개월의 옥고를 치르고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했다. 박씨는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기억은 없었지만, 역사책을 보고 할아버지의 역사를 찾게 됐다.”고 말했다. 증손녀 금련(30)씨도 국적을 취득했다. 박씨 등 독립유공자 후손 13명은 이날 법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1919년 4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21년 평양형무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최일엽 선생의 증손녀 둥하이(37)·둥장(34)씨도 함께 국적 취득의 기쁨을 누렸다. 만주와 간도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이명순 선생의 증손녀 이진숙(49)씨와 러시아령 니콜리스크에서 러시아어 항일신문 ‘학생과 목소리’를 발간하며 민족해방운동을 벌인 김아파시나 선생의 손녀 김율리야(35)씨 등도 국적을 받았다.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김씨는 1998년 고국에 돌아와 한국인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다. 올 초 국적 획득 신청을 한 뒤 친자확인 절차를 걸쳐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김씨는 “큰 영광”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국적증서 수여식은 2006년 이래 일곱 번째다.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술 취한 헤이우드 입에 독극물 부어… 구카이라이의 수사 협조 참작할 것”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에 대한 재판이 9일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의 중급인민법원에서 열린 지 단 7시간 만에 종결됐다. 재판정에 들어선 구카이라이의 모습이 담긴 화면과 살인 과정이 언급된 혐의 내용은 이날 중앙CCTV 등 자국 매체를 통해 중국 전역에 전파됐다. 허페이 중급인민법원은 구카이라이와 공동 기소된 집사 장샤오쥔(張曉軍)에 대해 영국인 닐 헤이우드를 고의 살인한 혐의로 공개 심리를 진행했으며 재판에서 검찰 측은 구카이라이를 주범, 장샤오쥔을 종범으로 지목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구카이라이는 법정에서 평온한 얼굴로 살인죄를 인정했다. 법원은 추후 결심 공판일을 정해 선고하기로 했다. ●평온한 얼굴로 살인죄 인정 통신은 특히 검찰의 기소 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살인 과정을 상세히 묘사했다. 우선 구카이라이와 아들 보과과(薄瓜瓜·24)는 경제적인 문제로 헤이우드와 갈등을 빚었다. 아들의 안전을 위해 헤이우드를 살해하기로 결심한 구카이라이는 집사 장샤오쥔을 시켜 헤이우드를 충칭의 난산(南山) 리징(麗晶) 홀리데이인 호텔로 유인했다. 2011년 11월 13일 밤 이 호텔 1605실에서 헤이우드와 함께 술을 마셨고 술에 취해 물을 찾던 헤이우드의 입에 장샤오쥔에게 미리 건네 준비해 간 독극물을 들이부어 살해했다. 통신은 재판에서 검찰이 재판부에 관련 증거를 제출했고 감정인의 증언도 진행됐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통신은 특히 허페이 중급인민법원이 이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선임한 변호사들의 변호를 받도록 하는 등 권리를 충분히 보장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변호인으로 구카이라이의 가족들이 당초 고용하려던 베이징의 유명 변호사 대신 안후이 지역의 무명 변호사가 배당됐는데 이는 사건이 정치적으로 처리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해외 언론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재판은 주중 영국대사관 직원, 언론사 기자, 전국인민대표대회 위원, 정치협상회의 위원 등 140여명이 방청한 가운데 열렸다. 탕이간(唐義干) 허페이 법원 대변인은 재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두 사람은 기소된 혐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구카이라이가 조사에 협력한 점을 참작할 것”이라면서 “구카이라이의 건강 상태가 양호하고 심리 상태도 안정적이다.”라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15년”… “사형” 각 매체 관측 달라 홍콩 언론은 대체로 구카이라이가 아들인 보과과에게 미칠 신변 위협을 우려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힌 점을 들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서버를 둔 중국어 웹사이트 보쉰(博訊)은 잔혹하고 계획적인 범죄 사실이 드러난 만큼 극형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중국에서 살인을 저지르면 통상 사형을 선고받는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사설] 해외 수감 국민 숫자도 모르는 까막눈 외교

    정부가 해외에 수감된 우리 국민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외교통상부가 북한 인권운동가 김영환씨 고문 사건을 계기로 해외 수감자의 실태조사에 착수한 결과 내놓은 통계가 오락가락한다고 한다. 해외 수감자를 제대로 보살피기는커녕 기본적인 수감자 숫자도 파악하지 못한 외교부를 보니 한심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지난달 27일 김성환 외교부장관의 국회 보고 시에는 수감자가 전 세계 1780명, 이 가운데 중국이 619명이라더니 지난 3일 36개국 1169명, 중국 346명으로 통계가 바뀌었다. 불과 2주일 사이에 전 세계 수감자는 34%, 중국 수감자는 50% 가까이 감소한 것이다. 외교부는 ‘기술적인 착오’라고 하지만 국민이 볼 때는 단순 착오로 보이지 않는다. 평소 해외를 방문하는 정치인 등 권력자들에게는 굽실거리고, 교포 등 재외국민에게 무관심하던 외교관들을 봐 왔기에 외교관들이 현지에서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이들에게 얼마나 관심과 성의를 보였을지는 안 봐도 알 것 같다. 가뜩이나 외교부는 중국 공안당국에 구금된 김영환씨가 전기고문을 당한 사실을 알고도 중국과의 외교마찰이 염려돼 쉬쉬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으니 재외 국민 보호에 소홀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001년 중국 정부는 한 한국인을 사형한 뒤 팩스로 통보해 외교 문제로 비화됐던 적이 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우리 정부는 자국민 보호를 하는 데 한 걸음도 진전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2009년 취재차 북한 국경을 넘어 체포됐던 두 여기자를 데려오기 위해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까지 나서 평양으로 날아가는 등 자국민 보호에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자국민 보호에서 왜 이렇게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가. 국가가 국민 보호를 최우선시하지 않으면 국민은 정부를 믿고 따를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 ‘아이큐 61’ 텍사스 남성에 ‘사형 집행’ 논란

    ‘아이큐 61’ 텍사스 남성에 ‘사형 집행’ 논란

    아이큐(IQ)가 불과 61인 남성이 살인 혐의로 사형을 당해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에 위치한 헌트빌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마빈 윌슨(54)이 치사 주사(lethal injection)로 인한 사형 집행으로 세상을 떠났다. 윌슨은 지난 1992년 경찰 정보원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판결을 받았으며 20년간 복역하다 이날 형이 집행됐다. 윌슨의 사형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저능아에 해당되는 그의 아이큐 때문. 윌슨의 변호인은 “지난 2004년 실시한 테스트에서 윌슨은 IQ 61로 판정받았다.” 면서 “돌고래 보다 낮은 수준으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형의 집행을 강하게 반대해 왔다. 이날 윌슨의 변호인은 대법원에 이같은 이유를 들어 사형 집행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기각당해 결국 전격적으로 형이 집행됐다.   과거 하급 법원 재판에서 검찰 측은 “IQ 61이라는 결과는 딱 한번 나왔으며 테스트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이를 법원 측이 받아들인 바 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날 윌슨은 창문을 사이에 두고 가족들에게 최후의 작별을 했으며 울지말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 리 코바스키는 “대법원의 결정에 심히 유감을 표한다.” 면서 “계속해서 텍사스에서 사형이 집행되고 있으며 시민들과 함께 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텍사스는 미국 내에서 사형 집행이 가장 많은 주로 사형에 대한 주민 여론과 주지사, 법원의 지지가 높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재키’라 불리던 구카이라이 ‘장칭’ 신세로

    ‘재키’라 불리던 구카이라이 ‘장칭’ 신세로

    한때 재클린 케네디(존 F 케네디의 아내)에 비유됐던 보시라이(薄熙來·62)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51)가 역사의 죄인이 된 마오쩌둥(毛澤東)의 처 장칭(江靑)의 전철을 밟게 될 전망이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구카이라이에 대한 재판이 9일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시 중급 인민법원에서 열린다. 장칭을 비롯한 문화대혁명 4인방 재판과 마찬가지로 ‘세기의 재판’으로 전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지만 재판은 초스피드로 진행돼 단 하루 만에 끝날 것으로 알려졌다. 구카이라이는 영국인 사업가 닐 헤이우드를 독살한 혐의로 사형 집행유예 선고를 받은 뒤 이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될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 중문판이 8일 보도했다. 앞서 구카이라이는 검찰 조사에서 뇌물 수수 및 재산 해외 은닉 등의 부패 혐의도 인정했지만 살인 혐의로만 기소된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는 부패 문제에서 보 전 서기를 제외시키려는 당 지도부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구카이라이는 마오의 ‘오류’까지 뒤집어쓰고 문화혁명의 혼란을 일으킨 주범으로 지목돼 사형을 선고받고 훗날 목을 매 자살했던 장칭에 비견된다. 실제로 장칭이 마오를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둘렀듯 구카이라이도 보 전 서기의 권력을 이용해 각종 이권에 개입, 막대한 부를 챙겼다. 해외 재산 관리를 맡았던 헤이우드를 독살하는 등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무소불위의 안주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도 두 사람이 닮은 꼴이란 평이 나온다. 다만 장기간 중국인민최고법원 특별재판부에서 재판을 받았고 그 내용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만천하에 공개됐던 장칭과 달리 구카이라이 재판은 비공개로 조속히 마무리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허페이 법원 앞에는 몰려든 해외 언론을 겨냥해 일찌감치 진입 금지를 표시하는 폴리스라인이 설치되기도 했다. 공산당 권력 서열 25위 이내의 최고위 권력가였던 보 전 서기가 개입된 민감한 정치적 사건을 단순한 형사 사건으로 축소시킨 것은 올가을로 예정된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에서 보 전 서기 문제를 최대한 차단시키기 위한 지도부의 의도라고 홍콩의 명보는 분석했다. 이처럼 구카이라이 수사, 기소, 재판이 지도부가 사전에 합의한 각본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곧 당이 사법부를 통제하는 중국 사법 체계의 결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국 인권변호사 푸즈창(蒲志强)은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안후이에서 재판이 열린다는 점, 가족들의 뜻과는 달리 지역의 무명 변호사가 배정된 점 등은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처리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조선도 일본도 기억하지 않는 그 이름, 양칠성을 아시나요

    조선도 일본도 기억하지 않는 그 이름, 양칠성을 아시나요

    ‘아리랑’(님 웨일즈·김산 지음, 동녘 펴냄)의 혁명가 김산이 풍기는 묘한 매력은 이념보다는 광활한 대륙에서 나온다. 한반도 안에서 지지고 볶고 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대륙에서 태평양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어떨까. ‘적도에 묻히다’(우쓰미 아이코·무라이 요시노리 지음, 김종익 옮김, 역사비평사 펴냄)는 또 한 번 시야를 확 틔워준다. 인도네시아에서 조선인 군무원들이 결성한 항일단체 ‘고려독립청년당’에 대한 얘기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에야 한국에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 동남아에 군무원으로 동원됐다가 전범으로 내몰린 조선인에 대한 얘기는 그간 간간이 알려져 왔다. 전범재판 기록이 존재하는 데다 생존자들의 증언과 수기 같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이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 전범자들의 모임 ‘동진회’를 취재해 ‘적도 아래의 맥베스’라는 연극 작품을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책은 1980년에 나왔으니 그보다 앞서 있을 뿐 아니라, 항일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도네시아 독립운동에 투신했던 조선인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 희미하게나마 조선인 군무원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저자들은 1975년 인도네시아 유학을 계기로 본격 연구에 나섰다. 인도네시아로 건너간 그해 11월 18일 그들은 흥미로운 행사에 참가했다. 공동묘지에 있던 3구의 시체를 자카르타 국립묘지로 이장하는 행사였다. 함께 독립운동을 벌였던 동지들이 인도네시아 정부 요직에 오르면서 이들에게 독립영웅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들 3명의 이름은 아부바카르, 우스만, 코마르딘. 이들의 일본 이름은 아오키, 하세가와, 야나가와. 그 가운데 야나가와의 본명은 양칠성, 그러니까 조선인이다. “일본 정부가 두 명의 일본인 병사에 대해서는 기념식에 맞춰 유족을 찾아내 그들의 희망에 따라 분골의식까지 행하게 했으면서 조선인 양칠성의 유족에게는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일제에는 ‘조센징’, 연합군에는 ‘전범’이었을 양칠성이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이라는 점에 이끌렸다. 이 부분을 연구하다 조선인 군무원들이 항일단체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책은 이를 추적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이야기다. 배경은 일제의 대동아전쟁이다. 1941년 12월 일제는 진주만 공격 1시간 전에 말레이 반도에 상륙했다. “수마트라 남부 팔렘방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군사작전은 성공했으나 일제는 곧 당황했다. 25만~30만명에 이르는 영국·네덜란드 포로들 때문이었다. 포로가 되느니 죽으라고 배웠던 일본군이 보기에 패전한 주제에 포로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서구인들은 구제불능이었다. 그래서인지 혹독하게 부려먹다 쓰러지길 내심 원했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에서 봤듯 밀림을 뚫는 가혹한 철도공사에 동원하거나, 호주 북부를 기지 삼아 북진해 오려는 미군을 저지하기 위해 태평양의 산호초섬에다 비행장을 건설하는 작업에 동원했다. 이들을 부리고 감독하기 위해 고용된 이들이 바로 조선인이었다. 월급 50엔씩이나 주고 2년만 근무한 뒤 귀국하면 면서기라도 시켜 줄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갔다. 전시동원체제 자체가 가혹했고 민족차별까지 겹치니 조선인들로서는 먹고살 거리가 없었다. 더구나 개죽음당할지 모르는 군인으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군무원이 더 나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제가 오래가지 못하리라고 내다본 사람이 있었다. “과달카날, 솔로몬, 뉴기니, 자바, 말레이, 미얀마, 그리고 북쪽으로 애튜섬에 이르기까지 활 모양으로 길게 펼쳐진 2만㎞나 되는 긴 전선에는 무리가 있다.” 1942년 조선인 군무원들을 태우고 자바로 향하던 배 안에서 고야마 도오조, 그러니까 서울 태생의 이억관이 조선인들을 모아두고 한 말이다. 기회를 엿보자는 제안이다. 이 말은 1944년 12월 29일 웅아란산 기슭 스모오노 연병장에서 현실화된다. 일제의 패색이 짙어지고 불만이 끓어오르자 집안 단속 차원에서 연병장에다 조선인 군무원들을 다 모았는데, 이게 조선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기회였다. 수용소 별로 흩어져 있던 조선인들이 한데 모이자 이억관을 중심으로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했다. ‘아시아의 강도, 제국주의 일본에 항거하는 폭탄아가 되라.’고 결의한 뒤 혈서를 썼다. 말로만 떠든 게 아니었다. 저자들이 인도네시아를 샅샅이 훑고 다닐 때도 여전히 “상하이 임시정부의 김구 주석으로부터 받아둔, 당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취지의 친서와 태극기”가 자카르타 시내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이 떠돌 정도였다. 저자들은 여러 정황과 진술을 종합했을 때 “연합군이 상륙할 때 일본군의 후방을 교란”한다는 목표 아래 “조선인 군무원, 반일 화교, 친 네덜란드 화교, 네덜란드계 혼혈 인도네시아인 등”이 연합하는 방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됐다고 본다. 실제 이들은 1945년 1월 암바라와에서 의거를 일으키기도 하고 연합군 포로들과 짜고 탈주하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으나 조직이 탄로나 1945년 7월 모두 군법회의에 회부됐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일제의 패망이 확인됐으나 다시 진주하기 시작한 영국·네덜란드 등 연합군은 조선인을 일본군의 일원으로 간주했다. 전범으로 몰아버린 것이다. 심지어 영국군은 위안부를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군에게는 해 주다가 왜 우리에게는 안 해 주느냐는 주장이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조선인 군무원들 가운데 일부는 인도네시아 독립운동 쪽으로 기울어진다. 제국주의가 물러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제국주의가 몰려온 것이다. 이에 인도네시아 독립군에 무기를 가지고 투항한 뒤 그들의 일원이 되어 싸웠다. 양칠성이 속한 부대는 1948년 11월 네덜란드군에 졌고, 포로로 사로잡힌 양칠성은 몇 달 뒤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저자들은 양칠성 외에도 더 많은 조선인이 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저자들은 “항일 독립 조직 결성, 항일 반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참가, 연합군의 보복 기색이 농후한 재판정에서 내려진 전범판결 등등. 조선인 군무원 3000명이 걸어온 길은 각자 달랐지만, 그 모든 길에는 일본 제국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 어떤 경우에도 명확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도 완전히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인 장교와 하사관은 ‘조센징은’이라고 말하고 ‘조선인 아무개’라는 고유명사로 조선인 군무원을 말한 적이 거의 없다. 그것은 마치 조선인 군무원들이 인도네시아인을 고유명사로 말하지 않는 것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일치를 보여줬다. (중략) 일본인은 ‘조센징’이라 하고, 조선인은 ‘인도네시아인’이라고 한다. 오로지 인도네시아인만이 고유명사를 써서 ‘가네미쓰 나리’, ‘야나가와’, ‘아오키’, ‘하세가와’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타자화의 유혹에서 자유로울까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맴돈다. 1만 6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與 “安, 언행달라” 安 “검증은 사랑의 매” 민주 “朴, 더 문제”

    여권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한 본격 검증에 나서며 안풍(安風) 조기 차단에 나섰다. 안 원장 측은 “의혹이 있다면 전부 다 공개하라.”며 대선 행보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안 원장을 연대 대상으로 보고 있는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역공세를 펴며 안 원장을 측면 지원하는 형국이다. 새누리당은 안 원장의 과거 행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벤처기업인 모임인 브이 소사이어티 회원으로 대기업의 은행업 진출 시도에 연루된 행적과 분식회계로 구속된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명을 위한 탄원서 제출 등을 들어 안 원장을 연일 도마 위에 올리고 있다. 새누리당 전략기획본부장인 조원진 의원은 2일 “안 원장은 지난해 한 강연에서 금융사범에 대해 사형 운운하며 과격 발언을 했는데 최태원 회장의 죄가 바로 분식회계”라며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르다.”고 비판했다. 인터넷에 떠돌고 있는 지난해 9월 강연 동영상에서 안 원장은 금융사범 등 경제사범에 대해 “잡히면 반은 죽여 놔야 돼요.”, “그런 사람 사형을 왜 못 시켜요.”라고 발언했다. 안 원장 측은 새누리당의 의혹 제기를 “네거티브 공세”로 규정하며 이달 중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 출판 강연이나 토론회 방식으로 국민과의 대화를 열어 대선 행보 수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안 원장은 이날 서울대 학사위원회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본격화되는 검증에 대해 “사랑의 매로 생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인정하고 해명할 게 있다면 당당히 밝히겠다는 이야기”라며 “국민 의견을 다양하게 먼저 듣고 (대선 출마 여부를) 판단하려고 한다. 곧 행동을 실행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안 원장 측근인 강인철 변호사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안 원장에 대한 의혹이 있다면 다 공개해야 한다.”면서 “안 원장은 국민의 생각을 보고 앞으로 가겠다고 한 만큼 국민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국민을 위한 정책을 내놓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안 원장 논란과 연관해 박근혜 후보에 대한 역공세를 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표 시절 대기업의 과거 분식회계 유예기간 요청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면서 “그럼에도 박 후보가 안 원장의 최 회장 구명운동을 비판한 것은 본인에게는 관용을 보이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적인 자세”라고 비판했다. 안동환·송수연기자 ipsofacto@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2)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2)공주 고마나루 명승길

    비단물결은 깊은 산림을 지나 백제의 옛 도시 공주로 휘감아 돌아간다. 공산성의 깃발, 고마나루의 황포돛은 옛 정취를 자아내고 백제의 옛 숨결을 전해주듯 비단 물결에 나부낀다. ‘잊혀진 왕국’ 백제의 옛 도읍인 공주에 역사의 향취를 느끼며 도보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고마나루 명승길’이 조성됐다. 백제 웅진시대의 숨결과 근현대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의미를 더한다. 고마나루길은 공산성~무령왕릉~공주박물관~공주보~연미산자연미술공원~금강교를 돌아보는 코스가 14㎞에 달한다. 단순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명승지가 많아 완주하려면 4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공산성~무령왕릉~공주박물관~고마나루 등 웅진시대와 황새바위~공주보~연미산자연미술공원~금강교를 답사하는 근현대사 코스 설계가 가능하다. 공산성과 고마나루, 무령왕릉은 공주시민이 선정한 ‘공주 10경’에도 포함됐다. ●“공산성은 천혜의 요새” 접근성이 좋은 공산성이 출발점이다. 웅진시대 방어거점이었던 공산성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포곡형(包谷型) 산성으로 길이가 2.66㎞에 달한다. 강 건너편에서 보면 성곽이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이다.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 석성으로 개축했다. 성벽은 높이 2.5m, 폭 3m 정도로 보수됐고 성벽을 따라 노란색 바탕에 봉황 등이 그려진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공산성은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로 통일신라시대 김헌창의 난이 일어났고, 조선시대 이괄의 난 당시 인조가 피란한 역사를 품고 있다. 금서루·공북루·영동루·진남루 등 동서남북 4개 누를 비롯한 다양한 유적이 복원됐다. 금서루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공주의 구도심을 한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성왕의 연회 장소였던 임류각, 조선시대 임금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던 쌍수정, 우물인 연지, 영은사 등을 통해 역사 속에만 있는 ‘웅진’을 만나게 된다. 4~10월(7, 8월은 제외) 매주 토·일요일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 정시마다 수문장 교대식이 열린다. 오인숙 문화관광해설사는 “공산성은 금강과 계룡산, 차령산맥을 품고 있는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 있다.”면서 “현재 입구는 서문이지만 과거에는 호남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남문을 거쳐 북문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올라갔다.”고 말했다. 남문 앞에는 박찬호 선수가 운동을 했던 느티나무가 있어 관심을 끈다. 무령왕릉 가는 길에 황새바위에 들렀다. 황새가 많이 살았다는 설과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목에 씌우는 칼인 ‘항쇄’를 차고 바위 앞에 끌려가 처형돼 황쇄바위로 불렸다는 설이 함께 존재한다. 1801년 2월 28일 김대건 신부의 외조부로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이 서울에서 충청 감영(공주)으로 환송돼 황새바위에서 참수된 후 순교지가 됐다. 사형이 집행될 때면 백성들은 공산성에 올라 그 광경을 구경했다고 한다. 순교자 337위와 순교탑, 명상의 길 등이 조성돼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순례지가 되고 있다. 송산리고분군의 7호분으로 불리는 ‘무령왕릉’은 묘지석과 최초의 토지거래서인 매지권이 발견돼 피장자를 확인할 수 있는 삼국시대 유일의 왕릉이다. 무덤에서는 다량의 유물이 발굴됐는데 12종목 17건이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절대연대가 확인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백제사 연구의 보고(寶庫)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무덤 형식인 벽돌무덤으로 중국제 도자기와 일본산 금송을 사용한 관재 등을 통해 백제사회의 국제성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997년 영구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 후 고분의 내부를 직접 볼 수는 없고, 지난 4월 리모델링한 송산리고분재현관에서 아쉬움을 달랠 수 밖에 없다. ●현대의 공주 속으로 지난해 10월 공주보가 완공됐다. 총연장 280m의 보는 무령왕을 상징하는 봉황을 모티브로 비단수(금강)를 지키는 모습을 상징화했다. 수변공원과 32.4㎞에 달하는 자전거 도로가 조성돼 수려함을 더한다. 연미산은 연미터널이 건설되기 전까지 공주와 청양을 연결하던 연미치고개로 유명하다. 연미산자연미술공원은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 입구에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나무, 흙 등 자연 재료를 주로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숲과 어우러져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정안천생태공원은 공무원과 시민들의 참여로 조성된 상징적인 공원이다. 33만㎡에 연꽃 연못(9만㎡)이 만들어졌고 10만여 송이의 튤립, 100만 포기의 꽃잔디 등이 식재돼 있다. 남녀노소 누구나 산책을 즐길 수 있도록 자전거 산책로와 메타세쿼이아길, 앵두나무길 등 테마길이 조성돼 있다. 1만 5000㎡의 자연학습장은 장미동산과 물레방아 연못, 모래놀이터 등을 갖춰 유치원생들의 생태학습 및 체험 장소로 활용된다. 공주시 산성동과 신관동을 연결하는 다리인 금강교는 1933년 만들어졌다. 1986년 공주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던 유일한 ‘통행길’이었다. 6·25 전쟁 당시 교량 대부분이 파괴돼 복구가 이뤄졌다. 현재는 구시가지로 진입하는 차량만 이용 가능한 일방통행로로 공산성과 연계, 명소로 부상했다. 택시기사 김정권씨는 “전에는 다리가 이것밖에 없어 버스 2대가 묘기를 부리듯 아슬아슬하게 지나다녔다.”면서 “추억이 깃든 장소이다 보니 운전할 때마다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금강산도 식후경 여행의 즐거움 중에는 맛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공산성 서문 맞은편에는 대표적 음식거리인 ‘백미고을’이 있다. 공주의 대표음식을 만날 수 있는데 밤의 고장답게 밤국수와 밤피자 등을 내놓는 음식점은 물론 쌈밥, 60년 전통의 따로 국밥집, 칼국수집 등 다양하다. 가까운 거리에 ‘백미백선’(백가지 맛과 백가지 볼거리가 있는)을 지향하는 산성시장에서 장터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고마나루 인근, 공주보에서 시내방향으로 한옥마을이 조성됐다. 한옥 10여채가 모여 있는 이곳은 지자체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조성한 숙박촌이다. 공주를 둘러본 뒤 부여에서 숙박, 단순히 지나치는 지역에서 머무는 도시로 변화하는 첫 시도로 전통 한옥의 구들장 체험을 할 수 있다. 숙박객이 직접 나무를 때보고, 공주 밤과 감자 등을 구워 먹을 수 있어 겨울철에 인기가 높다. 공주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13회는 대구 ‘칠성로’와 광주 ‘육판서길’을 소개합니다.
  • [Weekend inside] 구카이라이 ‘고의살인죄’ 기소…보 사법처리 급물살

    [Weekend inside] 구카이라이 ‘고의살인죄’ 기소…보 사법처리 급물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의 부인 구카이라이(谷開來)가 살인죄로 정식 기소되면서 중국 당국이 보시라이의 ‘운명’을 확정하기 위한 마지막 수순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오는 10월 말 권력교체가 이뤄지는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전까지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 방침이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구카이라이가 지난 26일 밤 고의 살인죄로 검찰에 의해 기소된 것은 중국 지도부가 보시라이 처리에 대한 합의를 도출해 낸 것이며 이는 곧 18차 당대회 직전까지 보시라이 사건을 처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라고 영국 BBC 중문망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실제로 보시라이 처리 문제를 놓고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공청단(共靑團·공산주의청년단),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의 태자당,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상하이방이라는 중국 3대 정치 파벌이 힘겨루기를 벌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차기 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에 오를 것으로 관측됐던 보시라이가 낙마하면서 이를 둘러싼 계파 간 다툼이 격화됐다는 분석이다. 이번 주중 개막된 것으로 전해지는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가 차기 구도를 확정하는 내부 회의인 만큼 사건의 중요 고리인 구카이라이에 대한 기소가 이뤄지면서 보시라이에 대한 처리 방향과 계파 배분 문제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법학자 왕여우진(王友)은 “중국은 정권교체라는 정치적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는 점에서 구카이라이에 대한 판결은 물론 보시라이 처리 방침도 18차 당대회 이전까지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권력교체를 위해 모든 잡음 요소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당대회는 오는 10월 중하순으로 전망된다고 홍콩 명보가 27일 보도했다. 그러나 보시라이가 어떤 혐의로 ‘운명’을 맞이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 검찰로부터 형사상 문제로 수사받은 구카이라이와 달리 당 검찰기율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다는 점에서 부패 문제로 사법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보시라이의 혐의에 대해서는 뇌물수수, 해외자금 이전, 당 지도부 감청, 군 매수를 통한 정변 기도, 불륜 스캔들 등이 거론돼 왔다. 반면 해외자금 이전, 돈세탁 등의 혐의가 제기됐던 구카이라이에 대한 검찰 기소장에서 부패 문제가 전혀 거론되지 않은 만큼 보시라이에게 부패 혐의가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전날 발표된 구카이라이에 대한 기소문에서 구카이라이가 아들 보과과의 신변 안전을 우려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설명을 곁들였다는 점에서 구카이라이가 사형은 면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최소 15년 이상의 징역이나 사형집행유예(死緩·2년간 지켜본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 판결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 영사관 망명 기도로 구카이라이의 살인 혐의는 물론 보시라이의 부패 문제를 만천하에 공개한 단초인 왕리쥔의 경우 조만간 국가반역 혐의로 최소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1) 인천 홍예문 길

    [길을 품은 우리 동네] (11) 인천 홍예문 길

    인천 홍예문(虹霓門)길은 파란만장한 한국 근대사의 영욕과 굴곡을 간직하고 있는 근대사의 무대다. 인천항이 1883년 개항한 뒤 조계지(租界地)로 몰려들기 시작한 일본인들의 유입과 확대 속에 생겨나고 번창했다. 해방 후에도 1990년대 남동구에 신도심이 생기고 시청 등 주요 기관들이 옮겨가기 전까지 늘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드는 ‘인천의 명동’으로서 100년간의 영화를 누렸다. 이 길은 인천항과 청나라 및 일본 조계지로 이뤄진 개항장을 비롯해 옛 인천 중심지의 한 축으로서 대표적 상권을 형성했다. 지금도 청국영사관 회의청,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 제1은행 등 일본 은행건물, 조선식산은행 터 등이 주변에 남아 있고, ‘인천 개항장 문화지구’에 포함돼 있다. 홍예문길에서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한 중구청은 개항기 일본 영사관과 일제강점기 인천부청으로 쓰였고, 1995년까지 시청으로 사용됐다. 홍예문길은 인천항과 지금의 동인천역을 끼고 있는 전동, 동인천동 지역을 최단거리로 잇는 지름길이다. 인천항 부두에 맞닿아 있는 제물량로에서 시작해 중앙동, 관동을 거쳐 송학동을 통해 동인천의 참외전로로 빠져나오게 된다. 총연장은 1㎞ 남짓하지만 오르막길로 시작해 내리막길로 이어져 훨씬 길게 느껴진다. 그 중간쯤에 홍예문이 서 있다. 1908년 응봉산 남쪽 마루턱을 깎은 뒤 세운 홍예문으로 이 길은 홍예문길이란 이름을 얻었다. 산마루턱 9m가량을 깎은 뒤에 양쪽 편에 석축을 쌓고, 마루턱 정점에 세운 아치형 돌문인 홍예문은 인천항을 동인천과 이어주는 연결 통로 역할을 해 왔다. 지금도 인천역에서 동인천역 쪽으로 걸어가려면 이 길을 넘는 것이 가장 빠르다. 70m 남짓한 응봉산이 가로막고 있는 탓에 인천항에서 동인천 방향으로 가려면 에둘러 빙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제물량로에서 시작해 홍예문 직전까지 2차선 너비로 이어지다가 홍예문에서는 차가 한 대씩만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진다. 아치형 화강암 터널 격인 홍예문의 폭이 4.5m밖에 안 되는 탓이다. 한쪽에서 차가 오면 다른 방향의 차량은 홍예문에 들어서지 못한 채 대기한다. 문 안으로는 보행자들이 차들과 함께 길을 재촉한다. 이 길은 지금도 학생과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홍예문 상단부는 응봉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자유공원과 고급 주택가였던 내동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 인천 개항지역을 동서로 연결하고 있다. 홍예문 상단부에 올라가 내려다보면 인천항이 눈에 들어온다. “많은 건물들이 들어서지 않았던 1960년대만 하더라도 홍예문 정상 난간에서는 인천항은 물론 팔미도, 대부도, 용유도, 영흥도 등 여러 섬들도 바라볼 수 있었다.”고 인천시의 견수찬 학예사는 설명했다. 외국인 범죄 등을 재판하던 인천감리서 터에 자리 잡은 아파트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김구 선생이 일본인 살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돼 노역살이를 했던 곳이다. 홍예문 길은 예전엔 지역명문 인천여고, 제물포고, 박문여고 학생들의 주요 통학로였다. 많은 추억과 기억들이 길 곳곳에 스며 있고, 인천에서 나고 자라 1930~1940년대의 추억을 지닌 일본인 노인들이나 그들의 자손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홍예문 바로 앞에 위치한 인성여자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하굣길에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다. 홍예문을 지나 동인천 쪽으로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보면 왼편으로 눈에 들어오는 제물포고도 이전을 계획하고 있었다. 한 지역 유지는 “또 한 역사가 떠나가려 한다.”고 아쉬워했다. 1990년대 아파트 단지들과 쇼핑센터들이 남동구에 생겨나면서 구도심에 살던 시민들이 하나둘 떠나고, 홍예문 주변을 떠받쳤던 시청 등 주요 시설들도 이전하면서 홍예문길도 100년 영화를 접게 됐다. 지금은 대형 음식점 몇 군데를 빼놓고는 대부분 작은 규모의 음식점들과 소규모 상점들이 이어져 있었다. 일제시대 인천항 쪽에서 홍예문길이 시작되는 곳에 있던 미두취인소(곡물 선물거래소) 터에는 국민은행 신포지점이 들어서 있었다. 옹진군 선거관리위원회 건물을 지나 홍예문 직전에 있는 인성여고 학생체육관은 일제시대 공회당이 있던 곳이었다. 일제시대 경찰서 등 주요 건물들도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많은 공공시설과 학교 등이 떠나갔지만 홍예문길 주변에 남아 있는 가옥과 단독주택들은 나이 먹은 가로수들과 무성한 담쟁이 덩굴 속에서 노신사와 같은 풍모를 풍기고 있었다. 개항장 일대가 문화지구로 재정비되고, 이곳을 찾는 중국 등 해외관광객들도 늘면서 홍예문길도 차츰 활력을 되찾고 있다. 개항장 일대와 함께 홍예문길은 인천의 역사탐방 도보 여행길인 ‘인천개항누리길’에 포함됐다. 문화재보호법과 ‘근대건축물 밀집지역 지구단위계획’ 등으로 고도제한 등 개발에 제한을 받고 있었지만 한국근대사의 대표적인 무대로서 ‘문화·역사관광의 메카’라는 새로운 발전방향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지역예술인들의 작업장과 전시공간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인천 아트플랫폼은 이 지역의 변신 노력을 보여준다. 1883년 세워진 일본 우선주식회사 창고 등을 개조해 만든 아트플랫폼은 옛 인천의 현대적 변신을 상징한다. 홍예문길과 개항장 일대는 변신을 꿈꾸고 있었다. 인천시와 중구청은 문화를 매개로 한 상권의 활성화를 위해서도 공을 들이고 있었다. 최인선 중구 관광문화재과장은 “인천개항장 문화지구에 박물관, 공방, 전통찻집 등 권장 업종 용도로 취득한 부동산에 대해서는 취득세 절반을 경감하고, 재산세도 3년에 걸쳐 절반으로 줄여준다.”고 말했다. ‘인천 내항 재개발구상’은 홍예문길로 상징되는 근대 인천의 다양한 모습과 근대 한국의 유산들을 보다 현대적으로 결합시켜 문화관광의 메카로 도약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인천발전연구원의 김용하 도시기반연구부장은 “인천 내항의 주요 물류기능을 외항으로 옮기고 박물관, 미술관 및 공연공간 등 문화시설과 공원 등 주민 편의시설을 건설해 시민들의 접근이 가능한 시민개방형 항만으로 만들려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내항을 일본의 대표적 문화생태 관광지로 변모시킨 요코하마의 미나토 미라이 지구와 같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건설 중인 수원~인천 철도가 2014년 개통되면 경기 남부와의 접근성도 좋아져 발전의 시너지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12회는 충남공주 고마나루길을 소개합니다. 글 사진 인천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노숙자 잇딴 테러…현장에는 ‘사형 집행장’?

    노숙자 연쇄 살인미수사건?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노숙자를 노린 살인미수 사건이 잇따라 3건이나 발생해 로스앤젤레스 경찰(LAPD)가 비상이 걸렸다. 20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등 지역언론에 따르면 7월들어 3명의 노숙자가 잠을 자다 칼에 찔렸다. 지난 3일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 3번가에서 56세 노숙자가 칼에 찔린 것을 시작으로 19일 밤에는 2명이 잇따라 칼에 찔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히 찔린 상처가 깊지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나 피해자 옆에 ‘사형 집행장’이라고 쓴 종이 쪽지가 발견돼 경찰이 수사중이다. 산타바바라 경찰서 하워드 대변인은 “사형 집행장에 서명된 이름 앤서리 로빈슨이 노숙자 습격사건과 뭔가 관계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며 추적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범행현장에서 발견된 칼은 ‘사냥칼’이라며 노숙자들은 안전한 쉼터로 거처를 옮기라고 촉구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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