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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사망] “죽거든, 내 집 허물라”… 貧國을 富國 만든 ‘反부패 독재자’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사망] “죽거든, 내 집 허물라”… 貧國을 富國 만든 ‘反부패 독재자’

    “죽거든 내 집부터 허물어라.” 23일 사망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생전에 남긴 말이다. 자신의 집이 ‘국가 성지(聖地)’로 보존되면 주변의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 이웃 주민들이 경제적 손실을 볼까 걱정해서다. 양식은 말할 것도 없고 먹을 물조차 구할 수 없던 작은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50여년 만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 6113달러(IMF·2014년 기준), 세계 8위의 경제부국으로 끌어올린 ‘국부’(國父) 리콴유.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법치국가’를 세운 카리스마 넘치는 이미지와 달리 이처럼 세심함도 갖춘 지도자였다. 리콴유는 1923년 싱가포르의 부유한 화교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1951년 귀국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노동운동을 펼치며 정계의 주목을 받은 그는 1954년 ‘인민행동당’을 창당해 사무총장에 올랐다. 1959년 35세의 나이에 영국연방 자치정부의 초대 총리가 됐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까지 무려 26년간 총리를 지냈다. 총리 시절 유교적 철학에 바탕을 둔 ‘아시아적 가치’를 전파한 것으로 유명한 그는 싱가포르를 선진국으로 끌어올린 ‘공로자’와 개발독재를 펼친 ‘독재자’라는 상반된 이미지가 교차한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했을 때만 해도 국민 대부분이 제대로 된 집조차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고, 실업률도 10~12%에 달했다. 리콴유는 자유경쟁과 과감한 개방정책을 실행해 ‘기적’을 일궈 냈다.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고자 규제를 풀었고, 외국 기업이라도 사업을 승인받으면 연구개발비를 지원했다. 못 배운 국민이 숙련된 노동자가 될 수 있도록 교육정책을 개발하고,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했다. 그의 통치가 찬사만 받은 것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깨끗하고 범죄가 드문 성공한 도시국가의 이면에는 강력한 억압통치가 자리 잡고 있다. 길거리에서 흡연하거나 껌만 뱉어도 큰 벌금을 매겼고, 마약 소지자는 사형에 처했다. 서구 언론들은 지금까지 싱가포르를 태형과 벌금의 나라라는 꼬리표를 달고 소개하며, 그를 ‘동남아시아의 작은 히틀러’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장남 리셴룽(李顯龍)이 2004년 8월부터 제3대 싱가포르 총리로 재직하면서 세습정치라는 비판도 받았다. 장기 집권, 가부장적 통치, 개발독재라는 공통점 때문에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와 자주 비견됐다. 다만 리콴유는 무력이 아닌 법규와 교육을 통치 기반으로 적극 활용했다는 게 차이다. 이 과정에서 지나친 엘리트 지상주의를 앞세웠고 “똑똑한 사람들끼리 결혼해야 한다”는 우생론에 집착했다. 일각에선 영토 분쟁이 끊이지 않는 국가를 이웃으로 둔 인구 530만명의 작은 섬나라가 택한 당연한 길이라는 반론도 만만찮다. 그의 일생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생존’이었다는 이야기다. 덕분에 플라톤의 철인정치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현대에 구현한 실용주의 정치가로 규정되기도 한다. 올해로 독립 50주년을 맞은 싱가포르의 사회 분위기는 리콴유 사후 사뭇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리콴유의 타계는 표현의 자유와 정치 참여를 통제하던 억압의 시대에 종말을 고하고 자유와 변화의 새 시대를 여는 분기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현장 행정] 안중근 의사 애국혼 용산에서 살아나다

    [현장 행정] 안중근 의사 애국혼 용산에서 살아나다

    “효창원에는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는데 이번 문화예술전을 통해 안 의사의 유해가 하루빨리 돌아오기를 기원해 봅니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안중근 문화예술전’의 최종점검회에 들러 “일본이 아직도 역사에 대해 솔직하게 반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중 문화인들이 모여 안중근 의사의 절개와 지조를 기념하게 됐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행복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 보면 좋겠다”고 16일 밝혔다. 한·중 문화예술인이 그린 작품 150점을 17일부터 19일까지 용산아트홀 전시장에서 전시하며 관람료는 없다. 전시회는 지난 2월 7~9일 중국 하얼빈에서 ‘안중근 문화예술전 중국전’으로 먼저 열렸고 당시 안 의사의 사형선고일(2월 14일)에 맞춘 한·중 합작 뮤지컬 ‘영웅’과 함께 진행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달 안중근 문화예술전이 열리고 다음달 영웅이 용산의 한 공연장에서 막을 연다. 전시회를 함께 추진한 중국 관계자는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항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용감하게 싸운 자유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안 의사는 한국뿐 아니라 동북아의 영웅”이라면서 “몇 년 전부터 문화작품을 통해 중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졌고, 중국인들도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모습을 존경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가 구청 아트홀에서 열린 것은 구 효창원 내에 안 의사의 가묘가 모셔진 인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안 의사의 유해가 돌아올 것을 바라면서 1946년 가묘 설치를 주도했다. 안 의사의 가묘는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묘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안 의사는 1879년 9월 2일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으며 1909년 2월 7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칠 것을 오늘 우리 모두 손가락을 끊어 맹세하자”면서 결사 동지 11명과 왼손 무명지를 자르고 태극기에 ‘대한독립’ 혈서를 썼다. 같은 해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초대 조선통감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고 1910년 3월 26일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번 행사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주최하며 안중근 문화예술전 조직위원회, 안중근 한·중 우호교류협회가 주관한다. 또 용산구, 용산문화원, 용산미술협회, 하얼빈문학예술연합회 등이 후원한다. 성 구청장은 “많은 시민이 와서 애국의 의미에 대해 되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美 부동산 재벌, 다큐 찍다 마이크 켜진 줄 모르고 ‘살인 자백’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냐고? 뭐긴 뭐야, 다 내가 죽여버렸지” 연쇄살인 의혹을 받고 있는 미국의 한 억만장자가 다큐멘터리 촬영 과정에서 녹음이 되는 줄도 모르고 내뱉은 혼잣말 때문에 용의자로 기소됐다. 뉴욕 맨해튼에 고층건물 15채 등을 보유한 부동산 재벌의 맏아들 로버트 더스트(71)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뉴올리언스의 한 호첼에서 살인 혐의 등으로 연방수사국(FBI) 수사관에 의해 체포됐다. 로스앤젤레스 검찰은 16일 더스트를 사형 선고가 가능한 1급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지금까지 2건의 실종 및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고, 다른 1건의 살인사건은 정당방위로 인정받아 법망을 피해갔다. 더스트는 뉴욕 맨해튼에서 부동산 사업으로 수십억 달러의 돈을 모은 세이모어 더스트의 아들이다. 그가 처음 용의자로 지목받은 것은 1982년 1월 자신의 부인 캐슬린이 실종됐을 때다. 이웃들이 “캐슬린이 평소 ‘내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무조건 남편이 벌인 일’이라고 말했다”고 증언했기 때문이다. 더스트는 캐슬린을 집 근처 지하철역에 내려준 이후 무슨 일이 생겼는지 모른다고 주장했다. 캐슬린은 이후 발견되지 않았으며, 더스트가 실종에 관여했다는 증거도 나오지 않았다. 더스트의 오랜 친구이자 캐슬린 실종 이후 더스트의 대변인 역할을 해 온 수전 버먼 역시 2000년 12월 캐슬린의 실종과 관련해 경찰에 증언하기 며칠 전 자택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숨졌다. 다시 더스트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지만 이렇다 할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더스트의 살인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버먼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이후 더스트는 텍사스로 갔다. 단지 거처만 옮긴 것이 아니라 언어 장애가 있는 할머니로 변장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 2001년 더스트는 이웃인 모리스 블랙을 살해한 뒤 토막내 바다에 버린 혐의로 체포됐지만 정당방위가 인정돼 풀려났다. 더스트가 덜미를 잡힌 것은 미국 케이블방송 HBO의 다큐멘터리 ‘징크스’에서 가진 인터뷰 때문이었다. ‘징크스’는 더스트 주변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앞서 2010년 자신을 소재로 한 영화 ‘올 굿 싱스’를 본 뒤 더스트는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HBO 다큐멘터리에 출연하기로 했다. 마지막 녹화를 마친 더스트는 착용하고 있던 무선마이크가 켜진 줄도 모르고 화장실에서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했냐고? 뭐긴 뭐야, 내가 다 죽여버렸지”(What the hell did I do? Killed them all, of course.)라고 중얼거렸고, 이 혼잣말이 그대로 녹음됐던 것. 자백이나 다름없는 혼잣말은 다큐멘터리 제작진조차 당시 알아차리지 못했고, 10개월 전에서야 발견해 확인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더스트가 버먼의 살해에 연관됐다는 정황 증거는 또 있다. 1999년 더스트가 쓴 편지를 버먼의 양아들이 발견했는데 이 편지에 쓰인 글씨체 및 ‘베버리 힐스’ 철자 오기가 사건 당일 ‘버먼의 아파트에 시체가 있다’고 경찰에 전해진 쪽지의 필적과 거의 일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뉴올리언스에서 체포될 당시 더스트는 가명과 현찰을 사용하고 위조 서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미뤄 미국을 떠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ABC 방송이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그러나 더스트의 변호인단은 방송사 측이 더스트를 잡기 위해 이번 시리즈를 기획하고 수사당국과 협력했다고 주장했다. 미국 법조계에서도 사적 공간에서 한 혼잣말이 증거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더스트의 동생은 “이번 일로 형이 죗값을 치르게 돼 다행”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파키스탄, 하루에 사형수 12명 사형 집행… ‘충격’

    파키스탄에서 17일(현지시간) 12명의 사형수가 한꺼번에 사형 집행됐다. 이날 사형집행은 카라치, 파이살라바드, 라왈핀디 등 전국 6개 교도소에서 이뤄졌으며 사형수 가운데에는 테러범 외에도 강도살인 등을 저지른 일반범도 포함됐다고 현지 일간 돈(DAWN) 인터넷판은 보도했다. 파키스탄 정부가 지난해 12월 말 6년 만에 사형 집행을 재개한 이후 하루에 10명이 넘는 사형수를 처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로써 사형 집행 재개 이후 처형된 사형수는 모두 39명이 됐다. 파키스탄 정부는 지난해 12월 16일 북서부 페샤와르에서 파키스탄탈레반(TTP)의 군부설 학교 공격으로 학생 등 150명이 사망하자 2008년 이후 6년간 유예한 사형집행을 테러범에 한해 재개했으며 이달 10일 일반범의 사형 집행도 재개했다. 현재 파키스탄에는 8천여 명이 사형선고를 받고 수감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부는 사형 집행을 계속할 예정이다. 14세 때인 2004년 한 소년을 살인한 혐의로 사형이 선고된 샤프카트 후사인도 오는 19일 사형 집행을 앞두고 있다. 후사인의 가족은 그가 고문을 받고 허위 자백을 했다며 재심을 요구하고 있으며 야당인 파키스탄인민당(PPP)도 그가 범행 당시 어린 나이였음을 참작해 집행 중지를 요청했다. 인권단체들은 후사인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사형수 가운데 변호인의 도움을 충분히 받지 못했거나 경찰의 고문 등으로 불공정한 재판을 받은 경우가 있다며 전반적인 사형 집행을 반대했다. 국제 앰네스티의 루퍼트 애벗 아시아-태평양 담당 이사는 “사형집행은 부끄러운 퇴보”라며 “파키스탄의 법질서를 유지하고 치안을 확보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AFP 통신에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늘 말씀하셨죠, 사법권은 썩지 않았다고…”

    “늘 말씀하셨죠, 사법권은 썩지 않았다고…”

    “돌아보니 참 행복한 삶이었다.” 1965년 3월 16일. 아침부터 진눈깨비가 내리던 봄날 훗날 ‘사형수들의 아버지’, ‘사도법관’으로 기억될 김홍섭 판사는 50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20년 넘게 남편을 뒷바라지해 온 아내 김자선씨와 당시 대학생이던 맏딸 철효씨가 간암으로 시름하던 김 판사의 임종을 지켰다. 욕심 없이 살아온 삶처럼 그는 가는 길에도 특별한 당부의 말을 남기지 않았다. 최근 서울신문과 만난 철효씨는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차츰 흐려져 얼마 남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하나를 꺼냈다. 예전에는 재판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집에 찾아오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김 판사는 작은 물건도 결코 받지 않았다. 사람들이 슬그머니 보따리를 놓고 돌아가면 재빨리 뒤따라가 물건을 돌려주는 일은 자녀들 몫이었다. 철효씨는 “아버지의 이런 평소 모습이 산교육이 됐다”고 회상했다. 김 판사는 자상하면서도 엄했다. 자녀들이 아플 때면 밤을 새워 간호했지만 잘못했을 때는 준엄하게 꾸짖었다. 하지만 회초리를 드는 법은 없었다. 소년부에 자원해 재판할 때도 미성년자인 아이들을 성인 범죄자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벌을 주기보다는 타일러 교화하려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소년 범죄에 대한 형벌이나 규칙은 성인 범죄와 크게 구별이 없어서 이를 시정하는 것이 시급히 필요하다.” 1950년 한 일간지에 연재한 글에서는 이 같은 그의 철학이 오롯이 드러난다. 자녀들에게는 일기 쓰기를 강조했다. 하루 동안 한 일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반성하는 기회를 만들기를 바랐다. 여덟 남매를 둔 아버지였지만 김 판사는 더 많은 아이들을 마음으로 보듬고자 했고, 틈나는 대로 고아원을 찾아가 아이들을 위로했다. 1915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김 판사는 21살이 되던 해 전주의 한 변호사사무실에서 일하다 전주지원 군산지청 서기시험에 합격했다. 1940년에는 18명이 합격한 조선변호사시험에 붙었고 이듬해 가인 김병로(초대 대법원장) 선생의 사무실에서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서울지검 검사, 서울지법 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전주지법원장을 거쳐 1964년 서울고법원장에 올랐다. 판사로 재직하면서 늘 값싼 중고 양복에 검정 고무신을 신었다. 점심은 언제나 아내가 싸준 무짠지 반찬 도시락이었다. 많지 않던 봉급 중 일부는 사형수들에게 보내 줄 책과 영치금에 썼다. 가족조차도 외면한 그들이 묻힐 묘지를 마련하기도 했다. 피고인들에게 판결을 내리면서도 늘 자신을 되돌아보며 법관이기 이전에 인간이 되고자 다짐했던 김 판사는 수시로 사형수들을 찾아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톨릭에 귀의한 뒤에는 사형수들의 대부가 되길 자처했다. 그들과 주고받은 수백 통의 편지는 현재 190여통이 전한다. 한 사형수는 “인간으로서는 하지 못할 죄악을 범하고 지금은 최고형이 확정된 보잘것없는 저에게 친히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영감님의 뜻 대단히 감사히 생각합니다. 영감님의 따뜻한 손길에 감화받아 얼마 남지 않은 기간 참삶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라고 썼다. 베푸는 삶을 살았기에 가정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지만 가족들은 가난을 불평하지 않았다. 철효씨는 “오히려 ‘사법권만은 절대로 썩지 않았다’고 누누이 하시던 말씀에 자부심을 가졌다”고 말했다. 김 판사가 세상을 떠난 뒤 집안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지만 부인은 이후에도 수십년간 교도소를 찾으며 남편의 뜻을 이어 갔다. 서울고법은 제10대 서울고법원장을 지낸 김 판사 탄생 100주년, 서거 50주기를 맞아 16일 추념식을 연다. 가족들을 비롯해 양승태 대법원장, 이상민 국회 법제사법위원장 등 법조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다. 법조인으로 구성된 법조 관현악단이 기념 연주를 하고 ‘어느 법관의 삶-사도가 된 법관 김홍섭’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상영된다. 최종고 서울대 명예교수의 특별강연도 이어진다. ‘사도법관 김홍섭 회고전’은 오는 18일까지 계속된다. 김 판사가 생전에 남긴 자작시, 스케치, 사진, 사형수들과 주고받은 편지, 그가 입었던 법복 등 유품이 전시된다. 현직 법관들과 생전 지인들이 말하는 김 판사에 대한 기억과 그가 맡았던 주요 사건의 판결, 신문 등에 기고한 논문 등을 실은 자료집도 발간된다. 글 사진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직격 인터뷰] “절규하는 국민에게 답 못줬다… 野, 더 겸손하고 더 절박해져야”

    [직격 인터뷰] “절규하는 국민에게 답 못줬다… 野, 더 겸손하고 더 절박해져야”

    대구에 내려가 보고 싶었다. 대구 사람들이 그를 보는 눈빛, 그를 대하는 몸짓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일정이 맞지 않았다.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지역분권추진단장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대구에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것이다. 지난 2·8 전당대회 당시 꼭 출마해야 한다는 주변의 독촉도, 2017년 대통령 선거에 나갈 만하다는 섣부른 부추김도 그에게는 다 부질없는 소리들이었다. 내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 출판사가 김 단장에 대한 책을 펴냈다. 책 속에 ‘수성 좌파’라는 유권자의 말이 들어 있다. “가끔은 기적을 바랄 때도 있지만, 여기선 희망이 없어요.” 이것이 김 단장이 마주한 냉혹한 현실이다. 김 단장과의 인터뷰는 지난 12일 오후 3시부터 서울신문 편집국 회의실에서 1시간 30분 동안 이도운 부국장 겸 정치부장과의 대담으로 진행됐다. →지역분권추진단장을 맡았다. 핵심적인 의제는 무엇인가. -당에서 내팽개친거나 다름없는 약세지역의 절박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도록 당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동부벨트는 사실상 전멸이다. 우리 당에 강원도 의원이 한 명도 없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권의 인기가 떨어졌다고) 정치지형이 유리하게 바뀐 것도 아니다. 국민에게 실망을 줘도 여당 지지율은 40%가 나온다. 우리 당은 30%가 안 되고. 이 갭을 어떻게 메우나. 시·도당에서 재정권과 인사권 등 상당 부분의 자율성을 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 같다. 시·도당의 합리적이고 정당한 요구는 반영해야 한다. 거기서 일하는 분들은 다음 선거가 절박하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아무 희망도 없고, 승리의 전망도 보이지 않는 선거를 계속 치르라고 등 떠밀 수는 없다. 정책적, 물적, 인적 뒷받침을 해 줘야 한다. →2·8 전당대회는 친노(친노무현) 대 호남의 대결이었다고 대다수 언론이 평가했다. 동의하나. -문재인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48%의 지지를 얻은 후보였다. 굳이 친노만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박지원 의원도 단순히 호남만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김대중’이란 걸출한 지도자와 함께했던 상징성이 있다. 경쟁 과정에서 서로 상처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나고 보면 야권은 그런 경쟁이 정리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 새로운 힘을 얻는 것 같다. →지난 경선에서 누구를 지지했나. -끝까지 중립을 유지했다. 출마 예상자에서 출마를 포기한 마당에 확실하게 어느 후보 편을 드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았다. →김 단장에게는 친노와 호남 가운데 어느 쪽이 중요한가. -둘을 다 합친 당의 지지율도 30%가 안 되는 것 아닌가. 우리 당은 두 축이 다 갖춰져야 한다. →문 대표가 여야 통틀어 대선 후보 선호도 1위다. 문 대표가 다음 대선 후보가 될 것으로 보나. -과거 관행으로 보면, 이전 대선에서 인상적인 득표를 한 것은 가장 강력한 후보의 조건이다. 그러나 2012년의 시대정신과 2017년의 시대적 요구는 다르다. 노무현에 대한 애틋함, 추억만 갖고는 국민이 계속 문 대표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이라는 지도자가 만들어 내는 내용과 그림, 그것에서 국민들의 감동이 있어야 한다. →두 분은 어떤 관계인가. 동지인가 라이벌인가. -하하하…. 그걸 지금 어떻게 알겠나. →17일에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대표의 3자 회동이 있다. 문 대표가 어떤 모습을 보여 주길 바라나. -전통적 지지자들은 여전히 야당 당수답게 대통령에게 낯을 붉히더라도 독한 모습을 보이기를 바란다. 문 대표와 야당의 긍정적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유연한 모습을 보이기를 바랄 것이다. 대통령이 지금 힘들다. 이럴 때 국정의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좋은 사인을 주고, 그 대신 복지와 증세처럼 국민의 삶이 부대끼는 문제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확실히 요구해야 한다고 본다. →국정의 파트너로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친노 강경파가 동의할까. -친노 강경파만 의식하면 언제 대한민국 리더를 할 수 있나. 친노가 문재인의 가능성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열어 보겠다는 생각이라면 그에게 재량권을 줘야 한다. 친노가 문 대표를 계파의 수장으로 묶어 두려는 것은 천박한 기득권이다. →현 시점에서 친노라는 그룹 또는 계파는 구체적으로 어떤 집단인가. -상당 부분은 관성이다.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경험이 주축인 것은 맞고, 그 한복판에 문 대표가 있었다. 친노라는 정치세력이 형성되고 발언권이 강화된 것은 노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나서다.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국민들이 존경했고 사랑했지만 돌아가신 대통령에게서 미래의 비전을 만들 수는 없다. 문재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 내놔야 한다. →친노는 왜 친문(친문재인)이 되지 않고 있나. -문 대표가 자신의 콘텐츠와 비전을 만들면 바뀔 것이다. 과거 친노의 중심인물 측이 문 대표 이후에 변화됐다고 느끼지 않나. →당 지지율이 30%를 넘었다가 다시 20%대로 떨어졌다. -당의 상징적인 인물들이 지금보다 더 겸손하고 더 절박해야 한다. 겸손하자는 것은 말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과도한) 언어로 상대방을 규정하는 데 익숙해졌다. 절박하자는 것은 국민의 삶 때문이다. 절규하는 국민들에게 야당으로서 답하는 게 없었다. 우리 당이 담뱃값 인상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한 이유가 있었나. 대신 부자 증세라도 얻어냈어야 하지 않았나.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에서 우리가 바라는 세상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래 야당은 무기력하고 무능한 모습을 보여 왔다. 왜 그런 건가. -과거의 투사형 정치인들은 대충 다 떠나시고, 그렇다고 해서 정책이 유능한 신진 정치인이 충원된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눈에는 야당의 모습이 좀 어중간하다. 그 분들의 눈에 비치는 야당의 모습은 진정성 있게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관리하면서 뭐든 하다가 만다는 것이다. →4·29 재·보궐 선거가 곧 있지만, 내년에 총선이 있다. 2·8 전당대회 당시 대표 출마 요구도 많았기 때문에 당의 공천 방향에 대해 생각해 봤을 것 같다. -먼저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계보에 줄 잘서서 공천받았다는 말이 나오지 않게. 이렇게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면 개인적인 하자가 있거나 어느 정도 역할을 다한 분들 외에는 현재 우리가 가진 자원을 아껴야 한다. 야권의 딜레마다. 국민은 항상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는데 인물 찾기가 쉽지 않다. →내년 총선에서 어떤 공천이 이뤄져야 할까. 예를 들어 비례대표 1, 2번을 누구에게 줘야 하나. -한계에 내몰린 계층의 대표를 확보해야 한다. 자영업자, 소상공인, 비정규직, 청년, 보육 관계자 등. →박지원 의원은 당에서 어떤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나. -우리 당은 급할 때 박 의원을 찾았다. 전통적 지지층이 결집해야 할 때 늘 그에게 요청했다. 지금 그런 요청이 필요없을 만큼 당이 튼튼한가. 당 대표는 안 됐지만 박 의원만 한 자원을 어디에서 구할 수 있나. 그분 마음이 쓸쓸하지 않도록,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만약 내년 총선에서 당선되면 대구를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대구시장과 여야 의원들이 대구 전체의 성장 동력, 도약의 계기에 대한 합의를 했으면 한다. 여야의 문제가 아니다. 또 개별 지역구의 문제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내 선거구에서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으로는 돌파가 안 된다. →유시민 전 의원은 대구에서 왜 실패했다고 보나. -그 당시(2008년)는 아직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반감이 심할 때였다. 지역민들은 하루아침에 투표 성향을 바꾸지 않는다. 그분들과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부단한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 인간으로서 기본 신뢰를 얻고 난 뒤에 정치적 메시지가 통한다. 나 스스로 당 대표 출마 요청을 받았을 때 고민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집사람 등이 말하기를 자꾸 중앙정치에 기웃거리면 “대구의 일꾼이 되거나 친구가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발판을 삼으려고 대구에 왔냐”고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 내년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됐다. 그의 도전과 김 단장의 도전은 어떤 차이가 있나. -차이는 따지지 말자. 그래도 대구 분위기가 우호적으로 바뀐 것은 이 의원의 당선 덕분이다. 이 전 수석이 당선되니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도 많이 바뀌었다. 사람들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적나라하고 교활하게 악용하는 것에 지쳐 있기도 하다. →새누리당에서는 정권의 안방을 절대 내줄 수 없다고 하는데. -어느 상가에서 김무성 대표를 만나 얘기했다. 대통령 되시려면 시원시원하게 야권에 양보하는 큰 정치 해야지, 모든 게임을 다 이기려고 하느냐고. 대한민국에 귀하지 않은 지역이 어디 있나. 정치를 잘해서 천하의 민심을 얻을 생각을 해야지, 뭘 선거구 하나하나를…. 정치를 잘하면 모든 곳이 안방이다. →한동안 야당 내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해 고민했다. 지금은 새정치연합이란 당의 중심세력이라고 자부하나. -그것보다는 이제 내 발언의 영역은 생겼다고 본다. 우리 당이 부족했던 정치의 여러 가지 태도, 부족한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목소리를 낼 것이다. 과거 진영논리로만 한국 정치를 끌고 온 사람들과 이제는 아주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는 밑천은 있다. 예컨대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연정이라는 방법을 통해 실천하고 있다. 만약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기존 정치권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지 않겠나. 정리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백색증 환자, 왜 테러 표적이 되었나…끔찍한 신체 절단 이유는?

    백색증 환자, 왜 테러 표적이 되었나…끔찍한 신체 절단 이유는?

    백색증 백색증 환자, 왜 테러 표적이 되었나…끔찍한 신체 절단 이유는? 알비노(백색증 환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살상 행위를 막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탄자니아 경찰이 주술사와 전통 치료사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탄자니아 경찰의 아드베라 불림바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주술사와 무허가 전통 치료사 22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이들 중 일부는 도마뱀 가죽, 멧돼지 이빨, 타조알, 원숭이 꼬리, 새 발톱, 당나귀 꼬리, 사자 가죽 등을 지니고 있었다고 불룸바 대변인은 덧붙였다. 탄자니아를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주술 의식을 행하면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퍼져 있다. 특히 올 연말 선거를 치를 예정인 탄자니아 정부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주술의식이 유행하면서 알비노의 희생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지난 1일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자카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도 최근 알비노 살해 행위를 탄자니아의 수치라고 규정하고 알비노 대상 범죄를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관련, 탄자니아 법원은 지난 5일 알비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고, 이튿날에는 정체불명의 약재를 소지한 32명의 주술사가 살인혐의로 체포됐다. 탄자니아는 근친결혼 등으로 서구보다 훨씬 많은 인구 1400명당 1명꼴로 알비노가 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75명 이상의 알비노가 살해된 것으로 유엔은 추산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색증 환자, 왜 테러 표적이 되었나…주술사 미신에서 비롯

    백색증 환자, 왜 테러 표적이 되었나…주술사 미신에서 비롯

    백색증 백색증 환자, 왜 테러 표적이 되었나…주술사 미신에서 비롯 알비노(백색증 환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살상 행위를 막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탄자니아 경찰이 주술사와 전통 치료사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탄자니아 경찰의 아드베라 불림바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주술사와 무허가 전통 치료사 22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이들 중 일부는 도마뱀 가죽, 멧돼지 이빨, 타조알, 원숭이 꼬리, 새 발톱, 당나귀 꼬리, 사자 가죽 등을 지니고 있었다고 불룸바 대변인은 덧붙였다. 탄자니아를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주술 의식을 행하면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퍼져 있다. 특히 올 연말 선거를 치를 예정인 탄자니아 정부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주술의식이 유행하면서 알비노의 희생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지난 1일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자카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도 최근 알비노 살해 행위를 탄자니아의 수치라고 규정하고 알비노 대상 범죄를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관련, 탄자니아 법원은 지난 5일 알비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고, 이튿날에는 정체불명의 약재를 소지한 32명의 주술사가 살인혐의로 체포됐다. 탄자니아는 근친결혼 등으로 서구보다 훨씬 많은 인구 1400명당 1명꼴로 알비노가 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75명 이상의 알비노가 살해된 것으로 유엔은 추산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색증 환자, 신체 절단된 모습 “반복되는 테러, 도대체 왜?”

    백색증 환자, 신체 절단된 모습 “반복되는 테러, 도대체 왜?”

    백색증 백색증 환자, 신체 절단된 모습 “반복되는 테러, 도대체 왜?” 알비노(백색증 환자)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살상 행위를 막기 위해 총력전에 나선 탄자니아 경찰이 주술사와 전통 치료사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탄자니아 경찰의 아드베라 불림바 대변인은 12일(현지시간) 주술사와 무허가 전통 치료사 225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고 BBC가 보도했다. 이들 중 일부는 도마뱀 가죽, 멧돼지 이빨, 타조알, 원숭이 꼬리, 새 발톱, 당나귀 꼬리, 사자 가죽 등을 지니고 있었다고 불룸바 대변인은 덧붙였다. 탄자니아를 비롯한 일부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주술 의식을 행하면 재물과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미신이 퍼져 있다. 특히 올 연말 선거를 치를 예정인 탄자니아 정부는 정치인들 사이에서 주술의식이 유행하면서 알비노의 희생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지난 1일부터 대대적인 단속에 나섰다. 자카야 키크웨테 탄자니아 대통령도 최근 알비노 살해 행위를 탄자니아의 수치라고 규정하고 알비노 대상 범죄를 뿌리 뽑겠다고 다짐했다. 이와 관련, 탄자니아 법원은 지난 5일 알비노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4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했고, 이튿날에는 정체불명의 약재를 소지한 32명의 주술사가 살인혐의로 체포됐다. 탄자니아는 근친결혼 등으로 서구보다 훨씬 많은 인구 1400명당 1명꼴로 알비노가 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2000년부터 지금까지 75명 이상의 알비노가 살해된 것으로 유엔은 추산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숀 펜, “복역 때 13명 살해한 연쇄 살인마과 편지 교환했었다”

    미국 영화배우 숀 펜(53)이 과거 악명 높은 연쇄 살인마와 같은 교도소 내에서 편지를 교환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펜은 최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한 특강에서 “1987년 LA 카운티 교도소 수감 당시 연쇄 살인마 리처드 라미레스를 만났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할리우드 리포트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라미레스는 1984년부터 2년간 LA 교외를 중심으로 무차별적으로 민가를 습격하고 폭행·강간·강도 등을 저지르고 13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이다. ’나이트 스토커’(Night Stalker)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라미레스는 2013년 B세포 림프종으로 교도소 사형수 수감동에서 사망했다. 펜은 “교도소 내에서 몇 달간 서로를 지켜본 뒤 라미레스가 교도관에게 내 자서전을 요구했다고 들었다”면서 “그는 이후 내게 편지를 보내 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라미레스가 보낸 편지에는 ‘헤이, 숀. 마음을 꿋꿋하게 먹고 출감하면 그들을 다시 두들겨 패줘라--리처드 라미레스, 666’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에 펜은 “어이, 너는 독방에 갇혀 수감자들과 연대감을 느끼는 게 불가능할거야. 그리고 나는 너와 연대감을 느낄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어. 원컨대 정신이 멀쩡하기 전 네가 가스실에 가길 바란다”라고 답장했다는 것이다. 펜은 당시 급한 성격 탓에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기 일쑤였으며, 과속과 촬영장에서 단역배우 폭행 등으로 두 달간 교도소에 수감됐다. 펜은 또 지난달 23일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시상자로 나섰다가 영화 ‘버드맨’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소개하며 “누가 이 자식에게 영주권을 줬는가”라는 농담을 던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숀 펜, “복역 때 13명 살해한 연쇄 살인마와 편지 교환했었다”

    미국 영화배우 숀 펜(53)이 과거 악명 높은 연쇄 살인마와 같은 교도소 내에서 편지를 교환했다는 사실을 고백했다. 펜은 최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로욜라 메리마운트 대학에서 한 특강에서 “1987년 LA 카운티 교도소 수감 당시 연쇄 살인마 리처드 라미레스를 만났다”면서 이같이 밝혔다고 할리우드 리포트가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라미레스는 1984년부터 2년간 LA 교외를 중심으로 무차별적으로 민가를 습격하고 폭행·강간·강도 등을 저지르고 13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마이다. ’나이트 스토커’(Night Stalker)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라미레스는 2013년 B세포 림프종으로 교도소 사형수 수감동에서 사망했다. 펜은 “교도소 내에서 몇 달간 서로를 지켜본 뒤 라미레스가 교도관에게 내 자서전을 요구했다고 들었다”면서 “그는 이후 내게 편지를 보내 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라미레스가 보낸 편지에는 ‘헤이, 숀. 마음을 꿋꿋하게 먹고 출감하면 그들을 다시 두들겨 패줘라--리처드 라미레스, 666’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에 펜은 “어이, 너는 독방에 갇혀 수감자들과 연대감을 느끼는 게 불가능할거야. 그리고 나는 너와 연대감을 느낄 마음이 털끝만큼도 없어. 원컨대 정신이 멀쩡하기 전 네가 가스실에 가길 바란다”라고 답장했다는 것이다. 펜은 당시 급한 성격 탓에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기 일쑤였으며, 과속과 촬영장에서 단역배우 폭행 등으로 두 달간 교도소에 수감됐다. 펜은 또 지난달 23일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시상자로 나섰다가 영화 ‘버드맨’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을 소개하며 “누가 이 자식에게 영주권을 줬는가”라는 농담을 던져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씨줄날줄] 과공비례(過恭非禮)/문소영 논설위원

    유학은 예(禮)를 소중하게 생각했다. 도(道)가 예를 통해 드러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예의 바르지 않으면 선비가 아니라고 했다. 조선시대에 양반 가문이라면 당연히 의관을 바르게 하고 교만하거나 건방진 언행은 삼가는 것이 기본이었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공자는 “지나친 공손은 예와 어긋난다”는 뜻의 과공비례(過恭非禮)를 경고했다. ‘맹자’도 이루장에서 “비례지례(非禮之禮)와 비의지의(非義之義)를 대인(大人)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인은 비례와 비의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과공비례이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예는 학문뿐 아니라 통치에도 관여했다. 17세기 조선 후기 벌어진 1차·2차 예송 논쟁이다. 1차 예송 논쟁은 1659년 둘째 아들로 왕위를 이은 효종이 죽자 효종의 어머니 자의대비(인조의 계비)가 3년상을 받을지 1년상을 받을지 논란을 벌인 것이다. 아무리 국왕이지만 둘째 왕자였으니 1년상만 치르면 된다던 송시열 등 서인이 이겼다. 2차 예송 논쟁은 1674년 효종비 인선왕후가 죽자 다시 자의대비가 상복을 얼마나 입을까로 시작됐다. 남인은 1년, 서인은 9개월을 주장했는데 현종은 1년을 주장한 남인의 손을 들어 줬다. 예송 논쟁은 왕권을 일반사대부 수준으로 취급하려던 서인의 몰락과 남인의 득세로 이어져 왕권 강화가 됐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습을 두고 19세기 말 일본에서 벌어진 ‘오쓰 사건’과 비교하기도 한다. 1891년 5월 19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릴 시베리아철도(TSR) 기공식 참석을 앞두고 러시아 황태자 니콜라이가 일본 오쓰 지역을 방문했는데 일본인 순사 쓰다 산조가 갑자기 일본도로 황태자를 습격한 것이다. 찰과상에 그쳤지만,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 메이지 천왕이 황태자를 위문했고, 전국의 학생은 위문편지와 위문품을 보냈다. 일본인들은 이어 쓰다 성(姓)을 가진 사람들은 성을 바꾸고, ‘산조’라는 이름은 폐기했다. 일본 정부는 사형을 선고하도록 사법부에 압력을 가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거부하고 일반인 모살 미수죄를 적용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후 쓰다는 복역 중 사망했고, 그 일가는 일본인들의 집단 따돌림 등으로 멸절됐다. 리퍼트 대사는 피습 직후 한국어로 “같이 갑시다”라는 글을 남겨 외교관의 냉철한 이성을 보여 줬다. 지난 주말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는 행사를 내외신으로 보았다. 한복을 입은 중년 여성들이 부채춤과 장구춤을 추고, 발레를 선보이는가 하면 기도회도 열렸다. 70대 남성은 개고기와 미역국을 싸들고 병문안을 갔단다. 과공비례가 아닌가 싶다. 지나친 공손은 예의도 아니고 비굴하게 보이거나 미덥지 못한 대상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혈맹’이라는 한·미 동맹이 개인의 피습으로 훼손될 만큼 허약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3부)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KT] 130년 국내 통신 산역사… 공룡 이미지 벗고 국민기업 날갯짓

    [재계 인맥 대해부 (3부)공기업에서 민영기업으로 KT] 130년 국내 통신 산역사… 공룡 이미지 벗고 국민기업 날갯짓

    KT는 ‘한국통신’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하다. 민영화가 된 지 13년이 됐지만 공기업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조직 규모가 방대하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통신공룡’이라는 수식어도 따라다닌다. 그러나 국내 통신 시장의 30%가량을 차지하는 KT는 우리의 통신 역사이자 ‘통신 맏형’으로 통신 업계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KT의 뿌리는 조선 고종 22년인 1885년 생긴 ‘한성전보총국’(漢城電報總局·현 우정사업본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과 인천 사이의 전보 업무를 담당했다. 지금도 KT 광화문빌딩에서 내려다보면 세종대로 건너편 한성전보총국 터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보인다. 일제 강점기 이후 정체된 한국 전화사업은 광복 후인 1948년 미군정으로부터 인수한 체신부를 중심으로 다시 부흥기를 맞는다. 박정희 정권 수립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 비약적 경제성장은 거대한 통신수요를 가져왔다. 그러나 체신부 내에 속한 정부기업 형태로는 기술변화에 따른 발빠른 대응과 공격적인 경영이 어렵다는 판단이 대세였다. 체신부의 전기통신 사업을 분리해 오늘날 KT의 전신인 한국전기통신공사(KTA: Korea Telecommunication Authority)를 1981년 12월 설립했다. KT는 당시 한국전기통신공사 시절부터 일찌감치 인터넷과 이동통신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준비에도 박차를 가했다. 1989년부터 무료 전자우편서비스, 공중영상회의 서비스, 공중기업통신망 상용서비스 등 초보적인 네트워크 서비스를 선보인 데 이어 1994년 코넷(KORNET)이란 이름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상용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다. 훗날 우리나라의 본격적인 이동통신 시대를 연 한국이동통신서비스주식회사도 앞서 한국전기통신공사가 1984년 2월에 출범시킨 것이다. 이 회사는 1992년 SK로 매각돼 지금은 국내 최대 통신사업자인 SK텔레콤으로 변신, 지금은 모기업이었던 KT와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은 KT 역사의 큰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개방과 경쟁 시대를 앞두고 KT는 민영화 추진이라는 거시적인 목표 아래 1989년 주식회사형 공기업으로 전환한다. 1991년 한국통신(Korea Telecom)으로 회사 이름도 한 번 더 바뀐다. 정부 지분율을 꾸준히 줄여가던 한국통신은 2002년 5월 정부 지분을 모두 다 팔고 민영화에 성공한다. 민영화된 한국통신의 이름이 바로 지금의 KT다. KT는 이후 공격적인 투자로 각종 ‘최초’ 퍼레이드를 기록하며 업계를 이끄는 ‘맏형 행보’를 보여 왔다. 2004년 6월 홈네트워크 서비스 ‘홈엔’에 이어 2005년 7월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 광통신망을 연결해 남북 관계 개선에도 기여했다. 2006년 와이브로 상용화도 처음 성공시켰다. VDSL과 FTTH, 기가 인터넷 등 국내 최초와 최고 인터넷 기술을 개발해 인터넷 대중화를 선도했다. KT는 민영화 이후 독립적인 이사회를 구성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는 식으로 지배구조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KT 이사회는 8인의 사외이사와 3인의 사내이사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KT의 길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민영화 직전보다 인원이 2만명 이상 줄었지만 조직이 여전히 커 투입 대비 수익성이 좋지 못한 점은 KT의 성장 발목을 잡고 있다. ‘공룡의 굴레’라는 말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실제로 KT의 직원수는 동종 업계 1위인 SK텔레콤(4200명)보다 5배가량 많은 2만명을 넘는다. 그러나 인력이 많이 투입되는 주력 사업인 유선전화의 수익은 매년 4000억원씩 줄고 있다. 민영화는 됐지만 주인이 없는 탓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CEO 문제로 조직이 크게 흔들리는 것도 발전을 저해한다. 민영화 이후 CEO 선임 때마다 잡음이 일었으며 이는 사내 파벌 갈등과 대규모 임원 교체 문제로까지 이어지면서 경영 안정을 위협한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KT는 올 들어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새 출발을 다짐하고 있다. 국가 경제와 국민 행복을 추구하겠다며 새로운 경영 목표로 ‘국민 기업’을 내세웠다. KT는 2014년 한 해 이동통신 가입자 수를 87만명 늘렸다. 인터넷 가입자(812만명) 1위, IPTV 가입자(585만명) 1위 등의 성과를 이룩한 점은 향후 전망을 밝게 하는 점이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새하얀 흑인’ 알비노 환자 죽인 일당 사형선고

    ‘새하얀 흑인’ 알비노 환자 죽인 일당 사형선고

    백색증이라 부르는 알비노 환자에 대한 인권 유린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알비노 환자를 잔혹하게 학대하고 살해한 일당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탄자니아에서 알비노 여성을 납치하고 살해한 뒤 이를 비싸게 팔려 한 일당 4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이들이 살해한 알비노 환자는 올해 22살의 자와디 맨기두라는 여성으로, 일당들은 그녀를 붙잡아 살해한 뒤 신체 일부를 잘라 비싼 값에 팔려 한 혐의를 받았다. 탄자니아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있으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겨 강제로 빼앗거나 매매하는 사례가 많다. 알비노 환자의 팔이나 다리 하나는 3000~4000달러, 시신 전체는 7만5000달러에 매매된다. 알비노 환자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다. 길거리에서 무차별 공격을 받기도 하고, 이 여성처럼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끔직한 폭행을 당한 뒤 왼팔을 잘린 한 알비노 남성은 당시를 떠올리며 “나는 도살되는 염소처럼 길바닥에 누워있어야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맨기두 역시 이 같은 미신 때문에 살해됐으며, 그녀를 납치하고 살해한 일당 중에는 그녀의 남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근래까지는 이러한 미신이 지나치게 팽배한 탓에 당국 역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갓난아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알비노 환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가 잘려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렸지만 누구도 이러한 현실을 책임지지 않았다. 하지만 탄자니아 알비노 환자의 인권 유린에 대한 지적이 전 세계에서 잇따르자 결국 탄자니아 대통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신을 유포하는 주술사들을 제재하고 살인이나 폭행에 나선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기로 한 것. 또 알비노 환자들을 대표하는 협회의 대표를 만나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폭행 또는 살해당한 알비노가 많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단체는 “경찰이 보고하지 않은 알비노 피해자들이 매우 많다. 현재 탄자니아에 사는 알비노 환자는 20만 명에 달한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하얀 흑인’ 탄자니아 알비노 죽인 일당 사형선고

    ‘하얀 흑인’ 탄자니아 알비노 죽인 일당 사형선고

    백색증이라 부르는 알비노 환자에 대한 인권 유린이 심각한 것으로 알려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알비노 환자를 잔혹하게 학대하고 살해한 일당이 사형선고를 받았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5일자 보도에 따르면, 최근 탄자니아에서 알비노 여성을 납치하고 살해한 뒤 이를 비싸게 팔려 한 일당 4명이 당국에 체포됐다. 이들이 살해한 알비노 환자는 올해 22살의 자와디 맨기두라는 여성으로, 일당들은 그녀를 붙잡아 살해한 뒤 신체 일부를 잘라 비싼 값에 팔려 한 혐의를 받았다. 탄자니아에서는 알비노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있으면 부와 명예를 얻을 수 있다고 여겨 강제로 빼앗거나 매매하는 사례가 많다. 알비노 환자의 팔이나 다리 하나는 3000~4000달러, 시신 전체는 7만5000달러에 매매된다. 알비노 환자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는다. 길거리에서 무차별 공격을 받기도 하고, 이 여성처럼 죽임을 당하기도 한다. 끔직한 폭행을 당한 뒤 왼팔을 잘린 한 알비노 남성은 당시를 떠올리며 “나는 도살되는 염소처럼 길바닥에 누워있어야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맨기두 역시 이 같은 미신 때문에 살해됐으며, 그녀를 납치하고 살해한 일당 중에는 그녀의 남편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근래까지는 이러한 미신이 지나치게 팽배한 탓에 당국 역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았다. 갓난아기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알비노 환자라면 언제 어디서나 목숨을 잃거나 팔다리가 잘려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위험이 도사렸지만 누구도 이러한 현실을 책임지지 않았다. 하지만 탄자니아 알비노 환자의 인권 유린에 대한 지적이 전 세계에서 잇따르자 결국 탄자니아 대통령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신을 유포하는 주술사들을 제재하고 살인이나 폭행에 나선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벌하기로 한 것. 또 알비노 환자들을 대표하는 협회의 대표를 만나 이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연구하겠다고 밝혔다. 현지 경찰은 폭행 또는 살해당한 알비노가 많지 않다고 주장했지만, 이들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사회단체는 “경찰이 보고하지 않은 알비노 피해자들이 매우 많다. 현재 탄자니아에 사는 알비노 환자는 20만 명에 달한다”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김성균, 천의 얼굴…질릴 틈 없네

    김성균, 천의 얼굴…질릴 틈 없네

    얼떨떨했다. 연기를 한 대가로 이렇게 큰 돈을 받아도 되나 싶었다. 5년 전이었다. 사실 처음 오디션 볼 때만 해도 별생각 없었다. 10년 넘어선 연극판 생활은 힘겹기만 했고, 갓 태어난 아이 밑으로 들어가는 돈은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공사판을 전전하던 중 마침 경상도 사투리가 되는 배우를 구한다 했다. 대구가 고향이니 단역이나 맡으면 다행이겠구나 싶었다. 영화 ‘밀양’의 송강호 대사를 주문하길래 그냥 보여줬다. 1차 오디션을 통과해 2·3차 최종 오디션까지 올라간 뒤 처음으로 영화 대본을 받았다.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조폭의 2인자 박창우 역할이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존재만으로도 폭발적인 카리스마를 분출하는 하정우, 최민식 틈바구니에서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시작한 연기 인생의 대전환점이었다. 영화계 관계자들 사이에 김성균 이름 석 자를 제대로 각인시켰다. “인생역전이었죠. 500만명 가까운 관객이 보셨어요. 그런데 그때는 그게 당연한가 보다 생각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삼청동 한 찻집에서 김성균(35)을 만났다. ‘범죄와의 전쟁’이 발굴해 낸 배우다. ‘초록물고기’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송강호 이상의 강렬함이었다. 영화계에서 대본이 쏟아지던 중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만났고, 이를 통해 영화계의 인정과 함께 대중의 인기까지 얻게 됐다. “인생역전은 ‘범죄와의 전쟁’이었지만, 진짜 돈을 번 것은 ‘응답하라 1994’였었죠. 아우~ TV드라마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출연료도 출연료지만, 광고 많이 찍었습니다.” 이렇듯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범죄와의 전쟁’과 함께 ‘응답하라 1994’였다. ‘화이’, ‘이웃사람’ 등 일련의 영화를 통해 대중의 뇌리 속 사이코패스 역할에 적격화된, 등골이 오싹해지는 인물로 각인됐던 것을 한 번에 뒤집었다. 순박하기 그지없는 ‘포블리’ 삼천포가 그 안에 내재해 있음을 입증했다. 김성균은 대구 대건고 연극반에서 처음 연기하면서 대구 청소년연극제 등을 오르내렸다. 연기상 등을 받았고 친구들에게 우쭐거리며 까불었다. 지방대학 연극영화과를 가서도 “딱히 배울 게 없었다”며 1년 반 만에 자퇴해 버렸다. 대구·경남 지역 극단을 떠돌았고, 제멋에 취해 거들먹거리던 그는 거기에서 연기를 삶으로 받아들이며 지내오던 선배들에게 신나게 깨졌고 철이 들었다. 2005년 서울 대학로로 올라왔고 ‘강풀의 순정만화’, ‘서스펜스 햄릿’, ‘라이어’, ‘보고싶습니다’ 등에 출연하며 연기의 내공을 차곡차곡 쌓았다. 많은 연극판 출신 배우들이 그랬듯 ‘범죄와의 전쟁’ 혹은 ‘응답하라 1994’의 김성균은 하루아침에 등장한 ‘깜짝 스타’가 아니었다. 12일 개봉하는 ‘살인의뢰’에서 그는 섬뜩한 가해자 이미지를 벗었다. 대신 처절한 복수를 다짐하는 피해자가 됐다. 범죄 스릴러 영화지만, 배배 꼬지 않는다. 시작하자마자 연쇄 살인범 강천(박성웅)의 존재를 보여주고, 그를 검거한 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풀어낸다. 강천의 손에 암매장된 은행원 승현(김성균)의 아내는 경찰 태수(김상경)의 동생이기도 하다. 아내가 묻힌 곳을 찾으려는 승현의 의지는 강천을 향한 복수심으로 불타게 된다. 영화는 사형제도의 정당성 및 사적 복수-자력 구제-의 불가피성의 정황을 만들며 함께 생각해 보자고 강조한다.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성균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사형제도는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측면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고민해 볼 대목이 많습니다. 하지만 강천이 같은 연쇄 살인범이라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는 “이번 영화는 피해자 가족의 정서와 심경, 생활상에 초점을 맞췄다”면서 “여전히 일상 속을 살아가면서 만날 수 없지만, 결코 잊을 수도 없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 문득문득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범죄와의 전쟁’과 달리 이후 작품에서는 흥행의 부침도 겪었다. 영화를 올리면 수백 만명이 그냥 보러오는 게 아님을 알았고, 1만명, 2만명의 관객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뼛속 깊이 깨달았다. 그는 “앞으로 출연 제의가 들어오지 않는 날도 있겠지만, 평생 연기하면서 늙을 수 있다면 더이상 행복한 삶은 없을 것 같다”며 배시시 웃었다. 실제 모습은 섬뜩한 범죄자보다는 삼천포에 더 가까웠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정메트로하임, 서정리역 사실상 마지막 소형아파트 분양 열풍

    서정메트로하임, 서정리역 사실상 마지막 소형아파트 분양 열풍

    사상 초유의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세대들이 최근 소형아파트로 몰리고 있다. 투자 자금이 적게 들어가는데다 수익률이 쏠쏠해서 1억 미만 자금으로 분산투자를 하면 은행금리보다 3~4배 가량 높은 수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거기다 정부의 각종 경기 부양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켜면서 수익형 부동산의 약진이 두드러진 점도 흥행요소다. 수익형부동산이 과거 오피스텔과 상가 위주로 꾸며졌다면 근래에는 소형아파트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5천만원 미만으로 적지 않은 수익률이 가능한 곳을 찾아 분산 투자하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며 “시중은행의 정기 예금금리가 2%대에 그치고 있는 가운데 노후대책으로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낼 수 있는 소형아파트가 단연 효자상품”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주)바롬산업개발이 평택 서정리역 초역세권에서 사실상 마지막 분양하는 서정메트로하임은 소형아파트 투자의 효자상품으로 찬사를 받는다. 교통, 개발입지, 미래가치, 배후수요에서 인근 단지 가운데 최고로 꼽히기 때문이다. 서정메트로하임은 건축연면적 17,467.23㎡에 1층 상업시설 11호, 오피스텔15호, 도시형 생활주택 299호 등 총314세대를 사전 분양 중이다. 기존 개발 혜택에다 삼성전자가 15조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인근에서 최대 수혜단지로 떠올랐다. 무엇보다 실투자금 3,000만원대로 종잣돈을 활용, 소액투자가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이미 성공적으로 분양 완료한 스마트빌듀오ⅠⅡⅢ, 서정벨루스하임에 이은 물량이어서 분양에 나서자마자 물량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조기 완판이 확정적이라는 평가다. 우선 특화설계가 눈에 띈다. 기숙사형 2인실 구조, 신혼부부 거주, 기업체 VIP용 등 소형이지만 다양한 평면구성이 돋보인다. 2인주거가 가능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해 1인 주거 시 한쪽을 침실, 서재 등으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공간구성을 극대화시킨 것도 장점. 내부는 풀옵션이 전 세대에 제공되며 이건창호, 삼성전자제품, KCC 등 럭셔리한 고급 가구로 풀퍼니시드 빌트인 시스템을 완비했다. 또한 일부 세대에 고품격 테라스를 제공해 도심에서도 나만의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설계할 예정이다. 평택 내 395만㎡ 규모의 고덕산업단지 삼성전자 입주 확정, 진위2산업단지 LG전자 입주 확정 등 주요 사업이 계획대로 완료되면, 현재 45만 여명으로 파악되는 평택인구가 5년 내에 2배 가까이 늘어나 100만명으로 기대돼 투자전망이 밝다. 2016년 주한미군부대 평택이전도 호재로 작용한다. 고덕국제신도시와 3분, 삼성전자산업단지와 6분, 도보로 약 5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지하철 1호선 서정리역이 있다. 서정리역은 KTX신평택역(가칭)과 한 정거장 거리로 KTX 이용 시 강남구 수서까지 약 21분 소요, 부산과 광주는 약 1시간 50분 소요돼 사통팔달 교통망을 갖췄다 분양 관계자는 “실투자금 3천만원대로 큰 돈이 들어가지 않는데다 산업단지 배후수요로 인한 공실률 제로가 예상돼 전국에서 투자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면서 “삼성투자 효과를 제대로 누리기 위해 소액을 분산투자해 노후를 준비하려는 사람들로 연일 장사진”이라고 전했다. 한편 서정 메트로하임 주택홍보관은 상담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방문 전 전화 예약을 하면 빠르고 편리하게 상담이 가능하다. 현재 봄 맞이 사은품 증정 등 푸짐한 혜택을 제공 중이다. 문의: 1877-5332
  • 女사형수, 폭설에 독극물 불량에 사형 2번 연기

    女사형수, 폭설에 독극물 불량에 사형 2번 연기

    미국의 한 여성 사형수가 독극물 문제로 사형 몇 분 전 극적으로 집행이 무기한 연기됐다. 특히 이 여성은 지난달에도 날씨 때문에 사형집행이 연기된 바 있어 또 한번 뛰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미 현지에서 사형 집행 찬반 논란까지 일고있는 화제의 여성 사형수는 미국 조지아주 교도소에 수감돼 있는 켈리 기센다너(47). 그녀는 지난 1997년 내연남과 함께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당시 그녀는 내연남과 공모해 마치 강도를 당한 것처럼 꾸며 남편을 살해했으나 결국 무거운 죄값을 치뤄야 하는 신세가 됐다. 18년의 세월이 흘러 지난달 기센다너는 다시 현지언론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 이유는 2월 25일(현지시간) 형이 집행된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조지아주에서 여성 사형수의 형이 집행되는 것이 70년 만의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현지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특히 사형 집행을 앞두고 받은 인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도 화제가 됐다. 기센다너는 마지막 식사로 햄버거, 감자튀킴, 팝콘, 치즈, 달걀, 아이스크림 등 칼로리가 듬뿍 담긴 음식을 주문했다. 그러나 하늘의 뜻(?)이었는지 갑자기 지역에 내린 폭설로 사형 집행이 연기됐다. 그리고 다시 잡힌 사형 집행일인 지난 2일 오후 7시. 놀랍게도 집행을 불과 몇 분 앞두고 또다시 집행이 연기됐다. 이번에 이유는 사형 집행에 쓰이는 독극물 때문이다. 조지아주 교정당국은 "사형 집행에 쓰이는 독극물을 사전에 연구소에 보내 효능을 테스트 받았다" 면서 "그러나 몇 시간 후 사형 집행팀이 독극물을 체크해보니 내용물이 매우 혼탁한 상태여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기 위해 집행을 연기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4월 오클라호마주 사형수의 집행 때 사용된 독극물 문제와 관계가 깊다. 당시 사형수 클레이턴 라켓은 약물을 주입 받았으나 1시간 이상 발작을 일으키다 고통스럽게 사망했다. 이에 현지에서는 독극물 주사를 이용한 사형집행 방식에 대한 논란이 확산됐다. 현지언론은 "사형이 예정됐던 이날 교도소 밖에는 그녀의 사형을 반대하는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면서 "아직 사형 집행일이 정해지지 않아 또한번 그녀는 질긴 목숨을 이어가게 됐다"고 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열린세상] 국정의 책임성을 높일 내각제형 정부/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국정의 책임성을 높일 내각제형 정부/김명식 대구가톨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이완구 국무총리의 제청을 받아 3개 부 장관과 금융위원장 후보자를 지명했다. 그중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2명이다. 모두 임명되면 현 정부의 국무회의 구성원 20명 중 여당 의원이 국무총리와 부총리 둘을 포함해 6명이 된다. 인사청문회 부담을 감안했겠지만 내각제형 정부 형태의 시도로 볼 만하다. 국가는 ‘대한민국 헌법’에 의해 시원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인격체다. 그러기에 특정 정책 사안을 놓고 국가의 통치 권력을 분담 행사하는 국회와 정부, 법원 등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 물론 시차적으로 국회의 입법이 선행되고 정부가 정책을 집행한 후 법원의 판결이 있을 경우 최종 확정되지만, 입법과 정책은 대체로 같은 방향이다. 그런데 국가의 각 기관은 가치관과 성향 등이 천차만별인 사람들로 구성돼 있어 매사 만장일치 결정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단일 의사를 만드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해 우리 헌법은 각 통치 기관의 의사형성 방법을 직접 규정하고 있다. 국회에 대해서는 헌법 제49조에 따라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법률로 특별히 달리 정하려면 합리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 정부에 대해서는 헌법 제66조에서 대통령을 ‘수반’이라 함으로써 대통령의 결심이 정부의 최종 의사가 된다. 여기에서 정부의 공무원들은 상관의 합법적인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파생된다. 법원에 대해서는 헌법 제101조에서 대법원을 ‘최고’ 법원으로 명시함으로써 대법원 판결이 사법부의 최종 의사가 된다. 각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하지만 개별 사안에 관해서는 상급 법원 판결에 기속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헌법 제113조에 따라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으로 결정하므로 역시 다수결 원칙이 적용된다. 이처럼 각 기관 내부에서는 다양한 의견 수렴 절차를 밟더라도 외부로는 하나만 표시돼야 한 인격체인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모든 국가 기관에 공식 의견을 발표하는 대변인을 두는 논거이기도 하다. 소송이 제기돼야 시비를 가리는 소극적 입장의 법원과 달리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선출된 권력이므로 공약 사항을 정책으로 실행해야 하는 적극적 입장에 있다. 정당의 이념에 따라 지향성 차이는 있지만 국회와 정부는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절대 권력을 독점했던 왕으로부터 입법권과 행정권을 차례로 찾아온 입헌군주제 국가 대부분이 의원내각제인 배경이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도 제헌 헌법 초안에는 내각제였으나 막바지에 대통령제로 바뀌면서 대통령 권한에 속하는 중요 국책을 국무원에서 ‘의결’토록 하고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막지 않은 것은 두 제도의 절충물이다. 여당 의원이 국회 과반수이면 국회와 정부의 의사를 하나로 만들기 쉽다. 그러나 대립형인 우리나라 대통령제하에서는 정부와 여당이 늘 협조적이지는 않다. 더러 긴장 관계가 조성되는 이유는 5년 단임의 대통령과 4년의 연임 제한이 없는 국회의원 임기가 상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당 의원이더라도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정부 비판을 서슴지 않고 심지어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하기도 한다. 요즘 어딜 가나 대로변 목 좋은 곳에는 정당의 현수막이 경쟁하듯 걸려 있다. 이미 정부의 부처 이름이 거리에서 사라진 지 오래됐다. 국정의 추동력이 정부로부터 정당 또는 국회로 사실상 넘어간 정치과잉 시대의 정부3.0 모습이다. 정부의 존재감이 급격히 줄어드는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차라리 국무위원 모두를 여당 의원으로 구성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국가 의사의 단일화 및 책임행정 구현 측면에서는 장점이 많을 것 같다. 또한 대통령 재임 중 정부와 여당은 실질적 운명공동체가 돼 정책 추진의 일관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대통령에게 당을 떠나라는 말도 사라질 것이다. 현행 헌법하에서도 가능하므로 의지만 있으면 된다. 그러면 정당도 내각제형 정부의 예비내각을 염두에 두고 분야별 전문가를 적극 찾아 공천할 것이다. 다만 ‘공직선거법’상 총선 전에 국무위원을 사임해야 하는 문제는 있으나, 충분히 예상할 수 있어 운영의 묘를 통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 서정 메트로하임, 은퇴세대 소액투자 수익형부동산으로 인기

    서정 메트로하임, 은퇴세대 소액투자 수익형부동산으로 인기

    2년 후 정년퇴직을 앞둔 직장인 P씨는 요즘 잠을 못 이룬다. 그 동안 모아뒀던 노후자금을 자녀 학자금과 결혼자금에 보태고 나니 통장잔고가 바닥이 난데다 은행 금리마저 떨어져 퇴직금을 굴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P씨처럼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노후준비가 불안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사업을 하자니 불경기에 폐업률이 사상최고치에 이른다는 소식에 종자돈마저 까먹을까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P처럼 정년퇴직을 앞둔 은퇴준비 세대들이 소형아파트와 오피스텔 등 임대 수익형 부동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저금리 시대 연 5~6% 정도의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수익형 부동산이 노후 대비 안전장치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 이런 가운데 수익형부동산의 다크호스로 평택 ‘서정메트로하임’이 급부상 하고 있다. 평택 서정리역 초역세권에서 사실상 마지막 분양하는 소형아파트로 교통, 개발입지, 미래가치, 배후수요에서 최상의 평가를 받고 있다. (주)바롬산업개발이 사업 시행하는 서정메트로하임은 평택국제신도시 바로 앞 경기도 평택시 서정동 433-26외 2필지에 위치한 건축연면적 17,467.23㎡에 1층 상업시설 11호, 오피스텔15호, 도시형 생활주택 299호 등 총314세대를 사전 분양한다. 이미 성공적으로 분양 완료한 스마트빌듀오ⅠⅡⅢ, 서정벨루스하임에 이은 물량이어서 서정메트로하임도 조기 완판할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무엇보다 실투자금 3,000만원대로 소액투자가 가능한 것이 가장 큰 매력이다. 평택 내 395만㎡ 규모의 고덕산업단지 삼성전자 입주 확정, 진위2산업단지 LG전자 입주 확정 등 주요 사업이 계획대로 완료되면, 현재 45만 여명으로 파악되는 평택인구가 5년 내에 2배 가까이 늘어나 100만명으로 기대돼 투자전망이 밝다. 2016년 주한미군부대 평택이전 호재도 눈에 띈다. 고덕국제신도시와 3분, 삼성전자산업단지와 6분, 도보로 약 5분 정도 소요되는 곳에 지하철 1호선 서정리역이 있다. 서정리역은 KTX신평택역(가칭)과 한 정거장 거리로 KTX 이용 시 강남구 수서까지 약 21분 소요, 부산은 약 1시간 50분 소요된다. 기숙사형 2인실 구조, 신혼부부 거주, 기업체 VIP용 등 소형이지만 다양한 평면구성이 돋보인다. 2인주거가 가능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설계해 1인 주거 시 한쪽을 침실, 서재 등으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공간구성을 극대화 했다. 풀옵션이 전 세대에 제공되며 이건창호, 삼성전자제품, KCC 등 럭셔리한 고급 가구로 풀퍼니시드 빌트인 시스템을 갖췄다. 또한 일부 세대에 고품격 테라스를 제공해 도심에서도 나만의 정원을 가꿀 수 있도록 설계할 계획이다. 분양 관계자는 “입지 수익률이 높고 시세차익 가능성이 커서 평택은 물론 강남, 분당, 동탄, 천안, 안성 등 전국의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면서 “저렴한 분양가로 책정되어 실투자금 3천만원대로 1채를 분양 받을 수 있어 조만간 마감이 임박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서정 메트로하임 주택홍보관은 상담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방문 전 전화 예약을 하면 빠르고 편리하게 상담이 가능하다. 현재 봄 맞이 사은품 증정 등 푸짐한 혜택을 제공 중이다. 문의: 1600-6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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