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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重, 초대형 해양설비 수주

    현대重, 초대형 해양설비 수주

    현대중공업이 1조원이 넘는 초대형 해양설비를 단독으로 수주했다. 수주액이 꽤 큰 에너지 설비를 일괄 공사하고, 극한 환경을 견딜 수 있는 기술력을 인정받은 점에서 돋보인다. 현대중공업은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국영석유회사인 스타토일 ASA사와 원통형 부유식의 가스생산 플랫폼 건설 건을 계약했다고 20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8억 달러 규모의 해양설비 공사에 뒤이은 성과다. 6만 4500t 규모의 부유식 플랫폼(조감도)은 가스 생산과 저장, 하역 기능을 갖추고 하루 2300만㎥의 가스와 원유를 생산할 수 있다. 플랫폼의 상부구조물은 높이 195m의 원기둥 형태로, 16만 배럴(bbl)의 초경질유를 저장할 수 있다. 하부구조물은 2015년 말까지 노르웨이 북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수심 1.3㎞ 해상(아스타 한스틴 필드)에 설치된다. 현대중공업은 설계부터 구매, 제작, 운송·설치까지 일괄도급방식(EPIC)으로 공사를 진행한다. 특히 강한 파도와 영하권 추위 등 북해의 거친 해상 환경에 견딜 수 있도록 최첨단 공법으로 설계·시공하고, 세계적으로 까다롭다고 평가받는 노르웨이의 해양산업표준규정(Norsok)을 따르게 된다. 김종도 현대중공업 부사장은 “40여년간의 해양설비 제작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동, 호주, 사할린, 서아프리카 등지에 더욱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천연가스 개발사업 수주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운 기자 kkwoon@seoul.co.kr
  • “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역사만 있고 역사책 없는 고려인 그들의 150년 通史이자 痛史죠”

    “2013년은 고려인의 선조들이 두만강 너머 연해주 지신허에 최초의 고려인 마을이 들어서고 대륙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한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역사는 있지만 역사서는 없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역사서를 건네주고 싶었다. 다시 일어서려는 고려인들의 손을 잡아주는 계기가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서울신문 편집국장과 문화일보 편집인을 지낸 원로 언론인 김호준(70). 러시아, 아니 유라시아 대륙에 흩어져 사는 50만 고려인의 역사를 정리한 책 ‘유라시아 고려인 150년-디아스포라의 아픈 역사’(주류성 펴냄)를 냈다. 지난 17일 서울 중구 태평로의 서울신문사에서 만난 신문사 대선배인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닌 한 언론인의 이 무모함에 학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궁금하다”고 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가 고려인에 ‘꽂힌’ 건 2002년 여름 키르기스스탄을 방문하면서부터였다. 한국에서 6000㎞나 떨어진 산악지대에 고려인 2만명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이들이 어떻게 오지 중 오지인 이곳까지 흘려들어왔고, 무얼하며 먹고사는지 등이 궁금해졌다. 키르기스 고려인에 대한 궁금증이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유라시아 전체의 고려인으로 확대됐다. “그동안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에만 15~6차례 현지답사를 다녀왔다. 현지에서 인터뷰한 고려인만 100명가량은 된다”고 했다. 고려인 이주와 관련된 자료는 보이는 대로 모았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옛 소련 고문서의 비밀이 해제되면서 빛을 본 고려인 강제이주에 대한 기록들이 책 쓰는 데 도움이 됐다. “러시아에도 한국에도 고려인에 대한 제대로 된 역사책 한 권이 없더라. 기가 막혔다. 소련의 민족사 교과서는 수천 명밖에 남지 않는 소수민족까지 다루면서 40여만명에 이르는 고려인에 관해서는 한 줄도 적지 않았다. 해방 후 북한정권 창건에 참여해 건설상까지 지냈다가 카자흐스탄으로 돌아간 역사학자 김승화가 1960년대에 출간한 ‘소련 한족사’도 강제이주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고 말할 때는 저절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이 책은 고려인의 150년 역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별로 개괄한 통사(通史)인 동시에 고려인의 한 서린 수난사인 통사(痛史)”라고 정리했다. 저자는 고려인의 역사를 크게 4차례의 대이주를 경계로 정리, 복원했다. 첫번째는 1860년대 조선 땅에서 살 수 없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한 것이다. 두번째는 1937년 일본의 러시아 진출 교두보 역할을 할 것이 두려웠던 스탈린에 의해 18만여명이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내몰리며 삶이 뿌리째 뽑힌 시기다. 이어 1953년 스탈린이 죽은 뒤 자유여행이 허용되면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지로 개별적인 재이주가 이뤄지며 고려인은 1차 전성기를 맞는다. 하지만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15개의 민족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면서 경제난과 차별정책에 몰려 10만명의 고려인이 다시 유랑길에 올랐다. 저자는 연해주 고려인을 다룬 앞부분의 상당 부분을 항일 독립운동에 할애했다. 또 2차대전 당시 일본에 징용으로 끌려왔다 남은 사할린 고려인도 빠뜨리지 않고 다뤘다. 저자는 “‘한과 슬픔의 역사’인 고려인의 유라시아 이민사를 정리하면서 방점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좌절하지 않고 시련을 기회로 만드는 강인함과 개척 정신이다”라면서 높이 평가했다. 150년 고려인의 발자취를 530쪽에 정리해놓았는데도 술술 읽힌다. 저자의 저널리스트로서의 30년 경험이 녹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10여차례의 현지방문에서 만난 독립운동가 최재형의 여섯째 딸 최 류드밀라를 비롯해 키르기스스탄 3선 의원 신 로만, 최장수 각료 김 니키포르, 탈영한 북한군 대위 출신 김수봉 부부, 연해주로 이주한 최 니키타, 고려인 출신으로 16년째 주한 우즈베키스탄 대사를 맡고 있는 편 위탈리 등과의 인터뷰와, 이들로부터 들은 일화 등은 기존의 역사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들이다. 고려인 작가들의 시와 화가의 작품, 수집한 다양한 사진 자료들도 또 다른 볼거리다. 현재 52만 3000여명의 고려인 가운데 러시아 고려인이 21만 3000명으로 가장 많다. 이 가운데 1만명의 고려인이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개척자 정신이라는 DNA를 갖고 있는 고려인들이야 말로 우리(한국)에게 21세기를 함께 열어가야 할 대륙의 인도자가 되고 있다”며 고려인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김균미 문화부장 kmkim@seoul.co.kr
  • 정부, 강제동원委 인력 감축

    오는 6월 30일 업무 종료를 앞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인력 재배치와 감축으로 내부 갈등을 겪고 있다. 우경화 바람 속 일본의 역사 왜곡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정학적 변화에 역행한다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28일 핵심 부서인 조사1과와 조사2과에서 각각 4명의 조사관을 지원 부서로 발령냈다. 조사1과와 2과는 강제동원 피해조사 계획을 수립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사할린 강제 동원자 등의 피해 실태를 조사하는 부서로 각각 9명이 일하고 있었다. 이번 조치로 전체 인원의 44%가 줄어든 것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까지만 운영하기로 했던 조직을 연장하는 과정에서 인원 30% 감축을 국회와 합의했다”면서 “조사 1, 2과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말했다.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조국은 사할린을 버렸다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조국은 사할린을 버렸다

    “귀국선은 오지 않았다.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사할린에는 ‘이제 곧 귀국한다’, ‘조선인이 먼저 떠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았다. 1949년 7월 23일 마지막 일본인들을 태우고 간 귀국선 ‘운센마루’는 돌아오지 않았다.” 파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귀국선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열여덟 살 청년. 그는 이제 팔순의 노인이 됐다. 경기 안산시 고향마을 영주귀국노인회의 고문 성점모(81)씨는 “일본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러시아 사할린(당시 일본령)으로 끌려간 강제동원 피해자 1세대의 후손이었다. 2010년 12월 가까스로 아버지의 나라에 돌아왔지만 망향의 설움은 쉬이 사라지지 않았다. 일본은 “19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사할린 동원자의 재산권은 소멸했다.”며 보상을 거부했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버티기에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참다 못한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2295명은 지난 23일 “국가가 사할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성씨는 이 자리에서 사할린 동포들의 수난사를 기록한 수기 ‘망향의 반세기, 사할린 동포의 눈물 젖은 과거’를 서울신문에 제공했다. 성씨의 아버지는 하루 12시간 넘게 도로 건설에 노동력을 착취당했지만 우편저금 등의 명목으로 빼앗긴 임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수기에는 한인들의 고통과 분노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하루 한 줌도 안 되는 콩밥과 간한 청어 한 토막으로 2년을 버텼다. 분노를 참지 못해 반항하면 아이구… 때리고 또 때리고 죽도록 얻어맞았다.”(사할린 탄광에서 일했던 이기복) “어렸을 때 그물로 멸치를 잡던 일이 어제 같다. 그 멸치를 삶은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으면 왜 그렇게 맛이 있던지.… 한 번이라도 가봤으면 한다.”(노동에 시달리다 현지에서 사망한 울산 출신 김길용) 광복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황국신민화정책’을 통해 일왕에 충성을 강요했던 일제는 전쟁이 끝나자 사할린 동포들의 국적을 박탈한 뒤 모르쇠로 일관했다. 소련은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이들을 억류했다. 그들의 모국은 힘이 없었다. 동포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소련 국적을 취득하거나 무국적자로 남았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으로 배상의 길이 열리는가 했지만 사할린 문제는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성씨는 “그때 ‘조선이라는 것은 잊어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제서야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접고 러시아어를 배워 모스크바 법과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모국 대신 생존을 택한 이들을 새롭게 가로막은 것은 이념 갈등이었다. 북한과 소련은 한국 정부와 교류가 없었다. 사할린 동포들은 일본과 소련에서 귀향 운동을 시작했다. 경기도 출신 도만삼씨는 1977년 소련 공산당위원회 앞에 가서 “한국으로 보내 달라.”고 외쳤다. 소련은 어쩐 일인지 “귀국 준비를 하라.”고 답했다. 그러나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두만강 기슭이었다. 북한 장교가 ‘환영 인사’를 건넸을 때 도씨는 충격에 휩싸여 기절했다. 성씨는 “도씨 등 조선인 40명이 북한으로 추방된 뒤 한인사회는 공포에 휩싸여 귀향에 대한 말은 입 밖에도 낼 수 없었다.”고 적었다. 귀향의 꿈은 1980년대 고르바초프가 소련 사회를 개방한 뒤에야 찾아왔다. 1990년 6월 제주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국과 소련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있었다. 그해 한국 가수들이 찾아와 사할린에서 위문 공연을 가졌다. 성씨는 “너무 늦었지만 드디어 잃었던 모국을 찾았다.”면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눈시울을 적셨다.”고 회고했다. 1992년부터 영주귀국 사업이 시작돼 지난 3월까지 4000여명의 동포 및 배우자, 장애 자녀가 귀국했지만 망향의 한은 지워지지 않았다. “남한 노인들이 말하더군요. ‘사할린 동포들은 사할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랏돈을 받는다’고. 나라를 잃고 설움 속에 헤맨 우리들의 고통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배경헌기자 baenim@seoul.co.kr
  • 사할린 징용자 외교부상대 헌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할린에 끌려간 징용 피해자들이 “임금 문제에 대해 일본과 적극적으로 교섭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며 오는 23일 헌법재판소에 외교통상부를 상대로 한 헌법소원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20일 밝혔다. 청구인은 국내에 거주하는 사할린 영주 귀국자 3500명의 70%인 2500여명이다. 향후 일본 거주자들도 참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들은 1940년대 일제가 점령하고 있던 사할린에 끌려가 탄광 등에서 강제노동을 한 뒤 일당 등을 대부분 우편저금 등의 명목으로 뺏긴 채 돌려받지 못했다. 한편 헌재는 지난해 8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정부를 상대로 낸 헌법소원에 대해 “피해자의 배상청구권을 놓고 한·일 양국간 분쟁이 있는데도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구체적인 노력을 다하지 않는 것은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위헌 결정을 내렸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안성희의 전설적 장구춤 영상 발굴

    안성희의 전설적 장구춤 영상 발굴

    월북 무용수 최승희(1911~1969)의 딸인 안성희(왼쪽)의 장구춤과 평양기생 출신 가수 왕수복(오른쪽·1917~2003)의 ‘아리랑’ 독창 등 1950년대 북한 공연예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영상자료가 나왔다. 문화재청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과 러시아의 연해주, 사할린 등에 퍼져 있는 무형유산 현항을 조사한 결과를 16일 서울 경복궁 국립고궁박물관 회의실에서 ‘독립국가연합(CIS) 고려인 공동체 무형유산 전승실태 연구성과 발표회’에서 공개했다. ●안, 어머니에게 춤 배워 러 유학… 67년이후 행불 알마티 오페라 극장 공연실황 영상은 임상영 한국외국어대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장이 지난 2007년 카자흐스탄 국립영상물기록보존소에서 발굴했는데 모두 9분 분량이다. 이 중 4분 정도가 구소련 시기 북한 공연예술단의 중앙아시아 순회 공연물로 추정되는데, 그동안 단편적으로 소개된 ‘장구춤의 달인’ 안성희와 일제 강점기 조선을 신민요로 사로잡은 왕수복의 공연, 장검무의 나숙희 공연 모습이다. 이번 영상물은 북한에서 주체철학이 사회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전인 1950∼1960년대 북한 공연예술의 모습을 알 수 있어 문화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 최승희와 안막 사이에서 태어난 안성희는 어머니에게 춤을 배운 뒤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발레무용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했다. 1967년 최승희가 돌연 숙청되자 안성희는 오빠(또는 남동생)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고 지금껏 행방이 묘연하다. ●왕, 이효석의 연인… 2년 사귀며 임종 지켜 이번 자료에는 북한 민속성악을 발전시킨 왕수복의 아리랑 단독 공연 실황도 흥미거리다. 왕수복은 12살에 평양 기생학교에 입학해 졸업 후에 레코드 대중가수로 진출했다. ‘유행가의 여왕’으로 불린 왕수복은 신민요 가수이자 이탈리아 성악을 전공해 메조소프라노로도 활동했다. 1935년 잡지 ‘삼천리’가 실시한 인기투표에서 선우일선, 이난영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왕수복의 연애사도 화려했다. 소설가 이효석의 연인으로 2년 사귀며 그의 임종을 지켰고, 1947년 시인 노천명의 약혼자였던 김광진 보성전문학교 교수와 결혼했다. 김광진과 함께 월북한 왕수복은 1959년 북한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고 현재 애국 열사릉에 묻혀 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현장 행정] ‘新 의료관광 메카’ 강서, 세계로 뛴다

    [현장 행정] ‘新 의료관광 메카’ 강서, 세계로 뛴다

    강서구가 새로운 의료관광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구는 다음 달 카자흐스탄 의료관광단이 처음으로 방한하는 등 민선 5기 출범이후 시작된 의료관광 특구 사업이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노현송 구청장은 “우리 구는 공항이 인접해 있어 해외 환자들의 방한이 쉽고, 여성·척추·관절 등 특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전문병원들이 많다.”면서 “의료관광객 유치를 통해 지역 발전과 도시경쟁력 강화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구는 연말까지 영어와 중국어, 러시아어 등 3개 국어로 제작된 의료관광 단일 홈페이지를 제작하고, 외국인 환자를 간병할 수 있는 국제 간병인도 양성한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보건복지부의 지역해외환자 유치 선도기술 육성사업에 ‘공항거점 강서 메디컬 클러스터 조성’이 선정돼 1억 5000만원의 정부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해외 마케팅 사업에 총력을 쏟고 있다. 지난 7월 지역에 있는 14개 여성·척추·관절 특화 전문병원들로 구성된 ‘강서구 병원협의체’와 함께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의료설명회를 개최한 데 이어 사할린 홀름스크 시립병원과 환자송출과 치료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최근 러시아 환자 100여명이 방한해 여성전문 병원인 미즈메디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척추 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은 러시아 측의 요청에 따라 의료 코디네이터를 현지에 파견해 5개 에이전시와 계약을 맺었다. 특히 의료관광 상품 홍보 비디오가 카자흐스탄 등지에서 방영되면서 다음 달 카자흐스탄 의료관광객이 처음으로 입국한다. 카자흐스탄은 과체중과 비만인구가 많은 국가로 국내를 찾는 외국인 환자가 급증하는 국가 중 하나다. 다음 달에는 미국 의료시장 진출을 위한 교두보 마련을 위해 미국 뉴욕과 뉴저지를 방문한다. 구는 다음 달 1일부터 3일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미국지사 주관으로 열리는 ‘2012 미동부 한국의료 홍보회’에 참석해 지역의 수준 높은 의료시설과 차별화된 서비스를 소개할 계획이다. 노 구청장은 “의료 수출 지원을 위해 올해 안에 의료관광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공포할 예정이며, 지역 특화 의료관광 상품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도 진행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지역의 높은 의료수준과 서비스를 토대로 미국과 유럽 등으로 의료관광객 유치를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시론] 이광범 특검팀에 바란다/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시론] 이광범 특검팀에 바란다/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검사는 수사와 기소의 권한을 갖는다.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해 검찰 수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고위 공무원이나 같은 검찰 인사의 범죄나 비위사실에 대한 수사·기소도 검찰에 맡긴다면 공정성과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경우에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 검사가 아닌 독립된 변호사가 수사와 기소 등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것이 바로 ‘특별검사제’이다. 검찰법상의 검사가 아닌 변호사가 수사와 기소의 주체라는 점만 다를 뿐 특검은 법이 규정하고 있는 검사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이러한 특검은 변호사 단체나 국회가 추천한 2인의 후보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보통 법조 경력이 15년 이상 된 변호사들이 특검이 되어 고등검사장에 준하는 보수와 대우를 받는다. 특검은 자신의 수사를 도와 줄 특검보와 특별수사관도 선정하며, 검찰에도 검사와 검찰수사관의 파견을 요청할 수 있고 사건 수사와 관련해 관련 기관에 여러 협조 요청도 할 수 있다. 특검제는 원래 미국에서 탄생했다. 닉슨 대통령의 민주당 선거캠프 도청을 다룬 ‘워터게이트’ 사건 때부터 정부윤리법이라는 법률에 근거해 특검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그 이전에도 고위 공무원의 탈세비리나 뇌물비리를 수사하기 위해 특검을 임명한 적이 있었지만 이것은 법률이 아니라 연방법무부규칙에 근거해 그때그때 간헐적으로 특검이 실시된 정도다. ‘인디펜던트 카운슬’(Independent Counsel)이라는 특검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에서 특검은 철저히 독립성을 확보하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의 범죄나 비리 혐의를 성역 없이 수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이러한 특검제의 도입이 논의되었다. 검찰 수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의문이 제기될 때마다 주로 야당 의원을 중심으로 특검제 도입의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다가 1999년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과 검찰총장 부인 옷로비 사건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위해 각각 1명씩의 특검을 임명하는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에 특검제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그후에도 이용호씨 금융비리 사건, 대북 송금 의혹사건, 대통령 측근의 권력형 비리 의혹사건, 사할린 유전개발 사건, 삼성 비자금 사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시절 이명박 대통령의 주가조작 의혹 사건, 스폰서 검사 사건, 2011년 재·보궐 선거 디도스 사건 등 10건에 가까운 민감한 대형 사건들이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특검의 수사대상이 된 바 있다. 그러나 초기의 몇 건을 제외하고는 특검의 수사에서 별로 속시원하게 밝혀진 것이 없었다는 평가가 많다. 특검을 임명할 때는 온통 요란을 떨지만 정작 수사결과는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결과에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해 용두사미 식으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수십억원의 예산을 쓰고 수십명, 많게는 100명이 넘는 수사 인력을 동원하고도 새로이 밝혀진 것이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특검의 수사기간이 30일, 60일 등 너무 짧게 주어지는 등 악조건도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특검의 수사결과는 많은 경우 국민들의 기대에 훨씬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국민들은 한번 더 특검제에 희망을 걸고 대통령 일가의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사건을 특검의 손에 맡겼다. 최장 45일의 수사기간을 부여받고 16일 수사를 개시한 특검팀은 벌써부터 주요 사건 관계자 10여명에 대한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하고, 사무실 압수수색도 감행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검찰수사에서 서면조사에 그쳤던 몇몇 주요 관련자들도 이번에는 직접 소환해 조사할 태세다. 많은 국민들은 이러한 특검팀의 출발을 바라보면서 이번에는 제발 용두사미 식 수사로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특검팀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국민들의 기대에 보답해야 한다. 국민들이 알고 싶은 것은 이 사건의 진실이고, 국민들은 그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 특검팀에 바란다.
  • 국가기록원 ‘해방전후의 사할린 한인 희귀 기록물’ 공개

    국가기록원 ‘해방전후의 사할린 한인 희귀 기록물’ 공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할린에 살던 한인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소련 정부는 한인 감소 원인 중 하나로 일본군의 대량 학살을 지목해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일제 만행에 대한 면밀한 진상조사 목소리도 커질 전망이다.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이 광복 67주년을 맞아 14일 공개한 ‘해방 전후 사할린 한인 관련 희귀 기록물’에 따르면 사할린 서북부 에스토루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 1만 229명의 한인이 살았지만, 전쟁 후에는 5332명밖에 남지 않아 한인 인구가 5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소련이 1945년 당시 현장을 누빈 민정국 인구조사 담당자가 작성한 보고서에 담겨 있다. 당시 소련 정부는 한인 인구가 5000명 가까이 줄어든 이유로 피란이나 귀환과 함께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한인 학살을 인구 감소 원인 중 하나로 주목했다. 하지만 정확히 몇 명이 언제 어떻게 살해됐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이강수 국가기록원 연구관은 “일본군이 5000명을 모두 살해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당시 소련 정부는 한인 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이유로 일본군의 한인 학살도 지목했다.”고 말했다. 기록원은 또 러시아와 일본 등에서 일본이 강제동원한 1만 2000여명의 사할린 한인 명부와 서신, 가족관계 및 활동, 귀환운동 관련 기록도 확보했다. 이번에 확보된 사할린 강제동원 관련 명부는 1950년대 일본이 작성한 일본 귀환자 명부 2권(778명), 1960~1970년대 사할린 귀환 재일한국인회가 조사한 귀환 희망자 명부 4권(1만 2600여명), 1980년대 일본과 한국에서의 귀환운동 과정에서 작성된 명부 14권(6000여명)이다. 중복된 명부를 제외하면 모두 1만 1211명이다. 이는 지금까지 일부 공개된 일본의 사할린 한인 강제동원 명부의 3~4배 규모로, 서신과 가족관계 및 활동 관련 기록은 강제동원 사망·행방불명자 유족에게 보상의 근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소련의 1급 비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소련 정부는 해방 직후 쿠릴 지역 한인들을 사할린으로 이주시켜 일괄 통제했으며, 이들의 귀환 문제는 언급하지 말라는 보도지침까지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글로벌 시대] 주변국과 영토분쟁하는 일본/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글로벌 시대] 주변국과 영토분쟁하는 일본/류진즈 베이징대 국제관계학 교수

    러시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지난 3일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구나시리 등 쿠릴열도 북방 4개섬 지역을 방문했다. 일본 측은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 주일 러시아 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긍정적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라며 항의했다. 그러나 메드베데프 총리는 5일 정부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일본 측 반응에 신경쓰지 않는다.”며 “쿠릴열도는 사할린 지역과 함께 러시아 영토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영토는 주권국가들의 핵심 가치다. 국가 간 영토 분쟁과 해결은 국가 최고 이익이 달린 핵심적인 게임이다. 2차세계대전에서의 패망으로 러시아에 넘어간 북방 4개섬에 대해 일본은 강경하게, 때로는 부지런한 외교로 러시아를 흔들어 왔다. 일본은 왜 이렇게 집착할까. 일본은 2차세계대전의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여전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은 전쟁 결과 상실한 북방도서에 대해 억울해한다. 일본은 자신들이 일으킨 침략전쟁의 결과로 이 지역을 상실했다는 점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고 있을까. 일본은 주변국들과의 영토 분쟁에도 강경하다. 한국과의 독도 문제나, 중국과의 댜오위다오 분쟁에서도 그랬다. 주변국들과의 영토 분쟁을 처리할 때 일본 정부는 국내정치의 속박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상대방 국가에 강요해 왔다. 자민당이건 민주당이건 영토문제와 관한 입장은 다르지 않았다. 북방영토를 회복하지 못하는 것을 일종의 치욕이자 민족정신의 훼손으로 여기는 것도 강경한 태도의 바탕에 깔려 있다. 러·일 분쟁에서 미국정부의 일본 지원도 한몫했다. 미국은 일본과 옛 소련이 과거 국교 회복회담을 벌일 때에도 북방 4개 섬 회복 요구를 지지했다. 게다가 “일본이 북방 4개 도서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오키나와 등의 주권도 돌려주지 않겠다.”고 압박하기도 했다. 일본을 통해 러시아를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러시아의 생각과 입장은 어떻까. 우선 북방 4개 섬에 대해 러시아는 과거 2차세계대전 승전의 결과물이며 국제적인 조약, 승인과 약속에 따른 정당한 결과라고 여긴다. 국제법적으로도 합법적인 결과라고 본다. 과거 이오시프 스탈린의 발언은 이를 잘 표현해 준다. “(이 영토는)누구도 손을 댈 수 없는 무수한 소련 군인들의 피로 얻어낸 전리품이다.” 구나시리는 러시아에 중요한 전략적인 요충지다. 러시아가 연방 해체 등으로 광대한 전략적 완충지대를 잃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 등으로 전략적 방어지대의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 지역은 포기할 수 없이 중요한 전략적 의의를 지닌다. 러시아총참모부 문서에서도 이 지역을 극동아시아와 캄차카반도에 이르는 해상운송의 중요한 통로이자 러시아 태평양함대를 보호하는, 대체할 수 없는 주요한 배후지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미국이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국 및 일본과 군사전략동맹을 강화하고 이 지역에서 군사활동 및 군사적 존재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강경 입장과 군사적 경계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 5월 블라디미르 푸틴이 다시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강력한 영도자에게 일본은 일말의 기대를 걸어보기도 했다. 주요 20개국(G20) 회담 등에서 푸틴은 일본의 노다 요시히코 총리와 북방 4개섬 분쟁문제를 논의했다. 일본은 영토를 가져오고, 그 대신 러시아에 다른 ‘선물’을 주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영토문제의 한계는 명백했다. 러시아는 주권 소재를 명백히 하면서 공동개발로 문제를 풀자고 접근했을 뿐이다. 러시아는 대화의 문을 연 채로 신축성 있게 대응하면서 국제적인 위상과 주도권을 강화했다.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그 결과에 대해 존중하지 않고, 국내정치의 필요성으로 영토 분쟁을 이용한다면, 일본의 강경 태도는 변할 수 없다. 국제질서와 체제의 커다란 변화 없이는 영토 문제를 둘러싼 분쟁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中, 사할린 해역 ‘막장조업’… 러 함포 저지

    中, 사할린 해역 ‘막장조업’… 러 함포 저지

    중국 어선 2척이 이번엔 동해를 거쳐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까지 침범해 불법 조업을 벌이다 러시아 당국에 붙잡혔다.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벌어지고 선원 1명이 바다에 빠져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산둥성 웨이하이(威海)시에서 출항한 중국 어선 2척이 각각 지난 15일과 16일 러시아 사할린섬 서남쪽 해역에서 불법조업을 하다 러시아 경비함에 나포됐다고 인민일보 계열의 인민망 등이 18일 보도했다. 어선에는 각각 19명과 17명의 어민이 타고 있었다. 16일 나포된 어선은 러시아 경비함의 정선 명령과 공포탄 발사를 무시하고 도주했다. 이 과정에서 3시간가량 추격전이 벌어졌고 러시아 경비함이 함포 사격을 가한 뒤에야 비로소 나포됐다. 나포 직전 경비함이 어선과 충돌했고 경비대원들이 배에 올라가 저항하는 어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총을 쏴 중국 선원 1명이 바다에 빠져 실종됐다고 홍콩피닉스TV가 모스크바타임스 등 러시아 매체를 인용해 보도했다. 그러나 하바롭프스크 주재 중국 총영사관 쑨리제(孫立杰) 총영사는 불법조업 선원 모두 무사하다며 실종설을 부인했다고 인민망이 전했다. 그러면서 “중국 어민이 러시아 영해를 침범해 조업하다 나포되는 사건은 자주 발생하는 일”이라면서 “(러시아 당국에 의해 나포된 중국 어민들은)보통 인도주의적 처우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쑨 총영사는 이어 “영사관 측은 이런 사건이 일어나면 러시아 당국과 소통해 벌금 등 경제적·법적 경로를 밟아 해결하고 있다.”면서 “이번 사건이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에서 불법조업으로 나포된 중국 어민은 2011년 75명, 2010년 53명으로 집계됐다고 환구시보는 전했다. 베이징 주현진특파원 jhj@seoul.co.kr
  • 강서구, 의료수출 앞장

    강서구는 지역 내 14개 전문병원으로 구성된 병원협의회와 함께 6일부터 4일간 러시아 하바롭스크와 사할린스크에서 해외 의료관광객 유치 활동을 벌인다고 4일 밝혔다. 여성 전문병원인 미즈메디병원과 뼈관절 전문병원인 우리들병원 등 의료 관계자 12명이 동참한다. 구는 여성 및 뼈관절 전문병원이 많이 있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7일 하바롭스크에서 여성 및 뼈관절 의료 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어 9일에는 사할린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하고 이 지역 병원인 홀름스크 시립병원과 환자 송출 등에 관한 업무협약도 체결한다. 이에 따라 홀름스크 시립병원이 강서구 지역의 병원으로 환자를 보내면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치료하고 사후 관리까지 하게 된다. 구는 의료 수출 지원을 위해 오는 9월 의료관광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제정할 계획이다. 지역 특화 의료관광 상품 개발을 위한 연구 용역도 진행하고 있다. 노현송 구청장은 “우리 구는 공항, 도시철도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 덕분에 해외 환자 유치 사업의 최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서 “우수한 의료 기술을 바탕으로 한 해외 환자 유치 사업 활성화를 통해 지역 경제 발전과 도시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메드베데프 쿠릴열도 방문 강행…日, 러시아 대사 불러 강력 항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3일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빚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를 방문했다. 이에 일본 외무성이 주일 러시아 대사를 불러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하면서 양국 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리아노보스티 통신과 일본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메드베데프 총리는 이날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하던 도중 항공기편으로 당초 예고한 대로 쿠릴열도 4개 섬 가운데 한 곳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에 도착했다. 그는 쿠릴열도를 방문하기에 앞서 사할린주에서 회의를 주재하며 “쿠릴열도는 사할린 지역, 나아가 러시아 영토의 주요 지역”이라면서 “정부 각료들이 쿠릴열도를 방문하는 관행은 당연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일본 외무성은 예브게니 아파나시예프 주일 러시아 대사를 도쿄 외무성으로 초치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사무차관은 아파나시예프 대사에게 “쿠릴열도는 일본의 핵심적인 영토이며 일본 정부는 메드베데프 총리의 방문을 수긍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겐바 고이치로 외무상은 “일본과 러시아 간의 긍정적인 기류를 형성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고 밝혔다. 앞서 메드베데프 총리는 2010년 11월 대통령 재임 시 쿠나시르를 처음 방문했으며, 당시 일본 정부는 “용납할 수 없는 무도한 행위”라며 격렬히 비난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는 지난달 18일 멕시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 중 양자회담을 갖고 쿠릴열도 영토분쟁의 해결을 위해 침착하게 대화를 계속해 나가기로 합의한 바 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러, 쿠릴열도서 日어선 나포

    러, 쿠릴열도서 日어선 나포

    러시아 국경수비대가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겪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에서 일본 선박을 나포했다. 26일 러시아 이타르타스 통신과 일본 NHK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 국경수비대 소속 순시선이 이날 오전 1시쯤(한국시간) 쿠릴열도 가운데 하나인 쿠나시르(일본명 구나시리) 서북쪽 해상에서 정선 명령에 응하지 않은 채 일본 쪽으로 빠른 속도로 도주하던 일본 선박을 붙잡았다. NHK는 이 선박에 일본인 2명과 러시아인 2명이 타고 있었고 말린 해삼과 금방 잡은 해삼이 실려 있었다고 전했다. 일본인 2명은 쿠나시르섬의 유즈노쿠릴스크로 연행됐다. 러시아 측이 이 같은 사실을 일본 측에 통보했다. 러시아 국경수비대는 지난 2007년에도 쿠나시르 인근에서 4척의 일본 예인망 어선을 나포한 바 있다. 쿠릴열도를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일본은 러시아가 이 해역에서 조업하는 일본 어선들을 나포하는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앞서 러시아 극동 사할린 소재 인터넷뉴스 통신 사흐콤(Sakh.com)은 지난 24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다음 달 초 쿠릴열도 중 하나인 이투루프(일본명 에토로후)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일본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고위 관리의 방문 계획은 일본의 입장과 배치되며 불쾌한 일이라고 논평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공직열전 2012] 외교통상부 (하)심의관

    [공직열전 2012] 외교통상부 (하)심의관

    외교통상부 심의관은 ‘외로운’ 자리다. 규모도 25명에 이르는 국장급의 절반 수준인 12명인 데다 심의관을 했다고 해서 꼭 국장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국장과 과장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지난해부터는 각국 활동을 외부로 알리는 ‘공보·홍보관’ 업무도 맡게 되면서 심의관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 ●공보관 업무도 맡아 역할 막중 지역국 심의관들은 지역 업무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국장과의 업무 차별화를 통해 시너지도 내고 있다. 박준용 동북아국 심의관은 동북아2과와 주중 대사관을 오간 중국통으로, 일본 전문인 국장과 업무 분담이 잘 된다는 평가다. 줄곧 미국 관련 업무만 해온 문승현 북미국 심의관은 주미 대사관 공사참사관 시절 한덕수 당시 주미 대사의 ‘오른팔’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양중모 유럽국 심의관은 사할린 초대 출장소장을 역임하는 등 러시아통 명맥을 잇고 있으며, 정태인 아중동국 심의관은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을 함께 접근하는 눈을 가졌다. 해양법 박사인 김선표 심의관은 해양 관련 연구원에서 근무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대학 교수 제의도 거절하고 국제법률국에서 전문성을 쌓아 외시 25회 중 처음으로 심의관을 달았다. 한·일 배타적경제수역(EEZ)협정, 한·중 어업협정 등과 관련한 협상을 맡았으며, 독도·위안부 등 현안도 다루고 있다. 이영호 재외동포영사국 심의관은 영사 업무에 잔뼈가 굵었다. 김영무 FTA정책국 심의관은 손꼽히는 통상 전문가로, 일찌감치 FTA 국장으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심의관 업무가 늘어나다 보니 정식 직제는 아니지만 심의관 임무 부여를 받은 경우도 생기고 있다. 임웅순 한반도평화교섭본부 부단장과 오영주 개발협력국 심의관은 외교부 내 선후배 사이에서 인정받는 에이스다. 김건 장관보좌관은 미국과 중국 업무를 한 북한·북핵 전문가로,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도 맡고 있다. ●과장급 80여명도 전문성 무장 외교부 과장급은 80여명에 이른다. 최봉규 동북아1과장과 허승재 동북아3과장, 이병도 북미1과장, 김태진 한미안보협력과장, 이문희 북핵협상과장은 각각 일본과 중국, 미국 업무에 주력해온 전문가로 손색이 없다. 변철환 동북아2과장은 영사 베테랑인 박기준 재외국민보호과장과 함께 2002년 ‘중국 공안의 베이징 대사관 진입 탈북자 강제 연행 사건’ 당시 공안들을 상대로 항의하다가 옷이 찢기고 부상을 입은 일화로 유명하다. 신성기 중남미협력과장은 7급 영사직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지역과장에 오른, 명실상부한 중남미 전문가다. 문성환 정책홍보과장은 뉴미디어팀을 이끄는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전문가로 꼽힌다. 유복근 영토해양과장은 국제법 박사로, 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국 국무장관이 공저한 ‘독일 통일과 유럽의 변환’의 역자로 알려져 있다. 고윤주 FTA상품과장과 행시 출신인 김영재 세계무역기구과장은 통상교섭본부의 최고 에이스다. 여성 과장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프랑스 전문가인 류복렬 공보과장은 외규장각 반환에 공을 세워 외교부 최초의 여성 공보과장이 됐다. 윤성미 유엔과장과 오현주 개발협력과장은 여성이 강한 다자외교의 선두주자다. 서은지 문화예술협력과장은 남성을 능가하는 배포와 추진력으로, ‘큰 그릇’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러 “쿠릴열도 개발 韓·中 참여” 日 “우리 영토… 인정할 수 없다”

    러시아와 일본이 영토 분쟁을 빚고 있는 쿠릴열도(일본명 북방영토)의 개발에 한국과 중국 기업이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韓, 해안벽 건설… 中, 농장설립 예정 13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쿠릴열도를 관할하는 러시아 사할린주의 알렉산드르 호로샤빈 지사는 12일 한국과 중국 기업이 쿠릴열도의 4개 섬 가운데 이투룹(에토로후)과 쿠나시르(구나시리)에서 인프라 정비와 농업 생산에 참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쿠릴열도가 일본 영토여서 러시아가 추진하는 외국 기업의 쿠릴열도 투자와 개발 참여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러시아는 최근 수년간 한국과 중국 등 외국 기업에 쿠릴열도 개발과 투자에 참여해 줄 것을 요청해 왔으며 일본에도 공동 경제 활동을 제안했다. ●러, 일본에도 공동경제활동 제안 호로샤빈 지사의 발언은 일본의 참여가 없어도 외국 기업을 유치해 쿠릴열도를 개발하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기업은 연내 건설 예정인 이투룹의 해안 벽 건설 공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업 규모는 14억 루블(약 530억원) 정도다. 쿠나시르에는 중국 기업이 농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영토 문제 등 외교 현안의 논의를 위해 연내 러시아 공식 방문을 원하고 있으며 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으로 푸틴 대통령과 가까운 모리 요시로 전 총리를 특사로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는 일본 홋카이도 북서쪽의 이투룹과 쿠나시르, 시코탄, 하보마이 등 4개 섬을 일컫는 쿠릴열도에 대해 2차 세계대전 이후 합법적으로 귀속됐다며 실효 지배하고 있으나 일본은 역사적으로 자국 영토라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씨줄날줄] GPS의 명암/구본영 논설위원

    언젠가 수안보 부근 월악산 자락에서 밤길 운전 중 진땀을 흘려야 했다. 길눈도 어두운 편인데,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휘발유가 모자란다는 경고등까지 켜졌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이 효자였다. 가까운 주유소를 정확히 안내해줘 가까스로 낭패는 면했다. 이처럼 요긴한 내비게이션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란 우주기술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GPS는 본래 군사용이었다. 미국 국방부가 적국의 미사일을 요격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 1983년 KAL(대한항공)기가 항로를 잃고 사할린 상공으로 들어갔다가 구소련 미사일에 의해 격추되면서 민수용 전환의 계기를 맞았다.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민간에도 GPS 신호 수신을 허용하는 결단을 내리면서다. 승용차 내비게이션이나 항공기 위성항법장치로 원용되는 GPS는 미 공군이 쏘아올린 24개 측위위성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6개 우주궤도에 4개씩 배치된 이 위성들은 하루에 지구를 두번 공전한다. 그동안 GPS 수신기는 지구상의 어느 위치에 있든 최소한 4개 이상의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10m 오차범위에서 고도값과 위치를 파악하는 원리다. 미국이 GPS 신호를 부분적으로 무료 공개한 이후 쓰임새가 점점 커지는 추세다. 대형구조물의 안전진단에서부터 위치확인 기능을 이용해 노인복지나 레저용으로까지 활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는 지난 2008년부터 유럽국가들이 ‘갈릴레오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유럽식 GPS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만큼 21세기 핵심산업으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는 방증인 셈이다. 한반도 상공의 민항기를 겨냥한 GPS 교란이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교란 전파의 진원지를 추적한 결과 북한의 소행이 의심된다고 한다. 그러잖아도 얼마 전 북한은 인민군 특별작전행동소조 명의로 “혁명무력의 특별행동이 곧 개시된다.”고 대남 도발을 예고했다. “지금까지 있어 본 적이 없는 특이한 수단으로 초토화하겠다.”고 호언할 때부터 GPS 교란을 염두에 두었던 게 아닌지 섬뜩한 느낌이다. 관성항법장비나 전방향표지시설 등 이중삼중의 다른 항법시설이 있기에 망정이지 자칫 대형참사를 부를 뻔하지 않았는가. GPS 교란은 문명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야만적 행태다. 전세계가 GPS를 이제 ‘활인’(活人)을 위해 쓰려는 추세가 아닌가. 우리가 북한의 전자테러에 대비해야 한다는 새로운 숙제만 안게 된 것 같아 여간 씁쓸하지 않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강남을 미봉인 투표함 28개… 민주측 항의로 유효투표 제외

    강남을 미봉인 투표함 28개… 민주측 항의로 유효투표 제외

    11일 오후 7시 30분쯤 서울 강남구 학여울역 서울무역전시장(SETEC) 개표장에서 봉인 처리되지 않은 투표함 28개가 무더기로 나왔다. 문제의 투표함 바닥면에 봉인 도장이 찍히지 않았다. 또 2개는 테이프로 밀봉조차 돼 있지 않았다. 일원2동 제1투표소, 수서동 제4투표소, 개포4동 제4투표소 등 강남을 지역구 18개, 압구정동 등 강남갑 지역구 10개에서 나온 투표함들이다. 미봉인된 투표함은 정동영 민주통합당 후보 측 개표 참관인이 발견했다. 개표가 일시 중단됐고, 여야 참관인들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졌다. 정 후보 측은 “투표함에 손대지 말라.”며 소리쳤고, 새누리당 김종훈 후보 측은 “개표를 위해 누가 뜯었을지 모른다. 문제 없다.”고 맞받았다. 정 후보 측은 “대치2동 제1투표소 투표함은 자물쇠가 잠겨 있지도 않았다.”며 문제의 투표함 모두를 유효투표에서 제외할 것을 요구했다. 또 “문제가 있는 4개 투표함을 이미 개표해 버렸다.”며 전면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선관위 “고의성 없고 부주의 문제” 그러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측은 문제가 없는 투표함에 대한 개표를 일단 강행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급하게 투표함을 밀봉해서 가져오는 과정에서 좀 문제가 생긴 것 같다.”면서 “고의성은 없고 부주의로 인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이어 “과거 철로 된 투표함과 달리 최근에는 조립식 투표함을 사용하는데, 테이프를 사용하고 도장을 찍는 것이 원칙이지만 도장을 찍지 않은 것이 법적으로 저촉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선관위는 이날 정상적인 투표함에 대한 개표가 모두 끝난 뒤 문제가 된 투표함을 두고 참관인들간 논의를 거쳐 투표함을 열 예정이었다. 정 후보 측 지지자들은 밤 늦게까지 “선거무효, 개표 중단”을 외치며 개표소 앞에서 항의했다. 한편 이날 전국 투표소에는 사할린 동포, 북한 이탈주민 등 전국 유권자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사할린 영주귀국 동포들의 거주지인 경기 안산시 사1동의 ‘고향마을’에서는 700여명에 이르는 70대 이상의 동포들이 성안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한 표를 행사했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90%대의 높은 참여율을 보인다고 안산시는 밝혔다. ●마라도, 강정마을 주민들도 한 표 행사 대구 달서구 월성2동 학산종합사회복지관 제3투표소를 찾은 북한 이탈 주민 장모(37·여)씨는 “남한으로 넘어온 이후 처음 투표다. 북한과는 달리 여러 후보 중 1명을 고를 수 있어 신기하다.”고 말했다. 제주도 최고령으로 알려진 신행년(112) 할머니는 오전 10시쯤 셋째 며느리와 함께 제주시 한림읍 한림2리복지회관에 마련된 투표소를 찾아 박수를 받았다. 갑자기 낀 짙은 안개로 여객선 운항이 끊기면서 투표소에 갈 수 없게 된 진도군 조도면 라배도와 모도 주민 66명은 긴급 투입된 행정선으로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계속되는 서귀포시 강정마을에서도 투표 행렬은 이어졌다. 귀포시 대천동 제1투표소인 강정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별다른 마찰 없이 투표를 마쳤다. 국토 최남단 섬 마라도의 주민 김신형(65·여)씨는 20분간 정기 여객선을 타고 서귀포시 대정읍 제8투표소로 나왔다. 그는 “배를 타고 오는 불편이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당연히 투표를 해야죠.”라고 말했다. 선관위 홈페이지의 투표소 약도가 틀려 당황해하는 유권자들도 적지않았다. 서울 동작구 상도1동 제4투표소, 마포구 염리동 제1투표소, 부산 해운대구 송정동 제2투표소 등에서 선관위 안내문의 위치에 착오가 있었다. 부산 동래구 사직2동 제2투표소는 위치를 표시한 인쇄물이 흐릿해 유권자들이 찾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서울 이영준·대구 한찬규·제주 황경근기자 apple@seoul.co.kr
  • 러시아에 두 번째 부산 의료관광 광고판

    러시아에 두 번째 부산 의료관광 광고판

    러시아 하바롭스크 번화가에 부산 의료관광을 알리는 대형 광고판이 설치된다. 부산시는 이달 중 하바롭스크 번화가(레닌그라드 7)에 의료관광 홍보 대형광고판을 설치한다고 1일 밝혔다. 지난해 8월 의료관광 홍보용 대형 옥외광고판을 전국 지자체 최초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설치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 광고판은 통행량이 많은 시내 번화가에 설치돼 러시아 지역에 부산 의료관광을 알리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가로 6m 세로 3m의 크기로 시 로고와 함께 의료관광의 메카인 부산을 방문해 달라는 문구를 러시아어와 영어로 표기하고 있다. 광고판은 해운대해수욕장을 배경으로 광안대교 및 누리마루, 의료 인프라 시설 등 부산의 관광자원 및 우수한 의료수준을 알리는 사진들로 구성돼 있다. 또 부산 지역의 의료시설, 대표 관광지 등 부산 의료관광에 대한 정보를 5개 국어(러, 영, 일, 중, 한)로 소개하는 부산 의료관광 홈페이지 주소(www.bsmeditour.go.kr)도 함께 게재된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실시한 해외 의료관광설명회(블라디보스토크·사할린)와 부산초청 의료관광 팸투어(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개최 결과 부산 의료관광을 극동 러시아에 대대적으로 홍보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이번에 해외 광고판을 추가로 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사할린 징용자 유골 봉환 올스톱

    일제강점기에 러시아 사할린에 강제동원됐다가 현지에서 사망한 한인들의 유골 발굴 및 국내 봉환사업이 예산 누락으로 좌초 위기에 빠졌다. 8일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 위원회’에 따르면 2012년도 예산안에 증액을 요청한 사할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봉환 예산 3억 8900만원이 전액 누락됐다. 이는 올해 정부 예산 총액(325조 4000억원)의 0.012%에 불과하다. 위원회는 지난해 6~10월 현장 조사와 자료 분석을 통해 사할린 현지에서 사망한 한인 묘 1600여기를 확인했다. 그러나 지난 연말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봉환 예산 요청액은 전액 누락됐고, 발굴 예산 역시 처음 요청한 6억 8000만원에서 절반 가까운 3억원이 깎인 3억 8000만원으로 최종 책정됐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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