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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드베데프 비난 하루 만에…쿠드린 러 재무 결국 경질

    러시아의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 겸 부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의 권력 맞교환 시나리오를 공개 비난한 지 하루 만에 경질됐다. 26일(현지시간) 리아노보스티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쿠드린 장관은 이날 대통령 산하 ‘경제 현대화 및 기술발전 위원회’ 회의에서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거친 말다툼끝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두 사람은 회의가 TV로 생중계되는 것도 아랑곳없이 각을 세웠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먼저 전날 공개 석상에서 “메데베데프 내각에서 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한 쿠드린을 향해 “이견이 있으면 오늘 안에 사표를 제출하라.”고 공격했다. 그러자 쿠드린 장관은 “푸틴 총리에게 물어본 뒤 결정하겠다.”고 답했고, 이에 격분한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총리를 포함해 누구와도 의논할 수 있지만 아직까지 대통령은 나이며, 그 같은 결정은 내가 한다.”고 쏘아붙였다. 이런 논쟁 뒤에 대통령 대변인은 쿠드린 장관의 경질을 알리는 성명을 발표했다. 대변인은 현행 절차에 따라 총리의 제청으로 경질 명령서에 서명했다고 밝혔지만 쿠드린 장관은 사직서를 제출했느냐는 언론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입장 차이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쿠드린이 10년 넘게 재무장관으로 일하면서 러시아 경제 안정성을 책임지는 보증수표로 통한 만큼 그의 빈자리가 투자자들을 위축시키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새 재무장관 대행으로 경제관료인 안톤 실루나노프를 임명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나는 국가대표다] (18)비장한 A매치 출사표

    이제 ‘대망의 A매치’다. 여자럭비대표팀이 28일 출국, 새달 1~2일 열리는 국제럭비위원회(IRB) 아시아여자 7인제대회(인도 푸네)에 출전한다. 밤 비행기로 뭄바이까지 9시간을 날아가 거기서 또 차로 3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고난의 행군(?)이다. 하지만 장거리 비행이나 인도 문화에 대한 걱정보다는 오직 경기 걱정뿐이다. 이번 대회가 우리팀의 존재 이유였다. 멀리 2014인천아시안게임을 바라봤다고 해도 가까이는 이번 인도대회를 위해 5개월여간 쉼 없이 달려왔다. 지난달 중국 상하이에서 치렀던 친선경기는 ‘견학’ 성격이 짙었다. 5전 전패로 왕창 깨졌지만 남자 중학생이 아닌 ‘여자들’과 실제 경기를 치를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번 대회 결과로 아시아여자팀의 랭킹이 정해진다. 경기를 보면서 탄성을 질렀던 카자흐스탄·중국·홍콩·태국 등 쟁쟁한 나라들을 비롯, 총 12개국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별리그 대진도 정해졌다. 첫 경기부터 ‘후덜덜’이다. 지난해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카자흐스탄이다. 상하이 대회 때 보니 엄청난 ‘덩치’를 앞세워 웬만한 태클쯤은 가볍게 뚫고 돌진하는 파워 럭비를 구사했다. 다음은 홍콩. 영국령이었던 터라 럭비에 잔뼈가 굵고 선수들 실력이 수준급이다. 힘과 기술을 고루 겸비했다. 마지막 상대는 홈팀 인도로 우리가 1승 상대로 노리고 있다. (서로가 그럴 것 같지만) 이렇게 세 팀과의 조별리그가 끝나면 순위결정전까지 2~3경기를 더 치른다. 우리의 목표는 오직 ‘1승’이다. 한 번 이긴다고 뭐 달라지는 게 있을까 싶지만 뭔가 결실을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물론 두렵고 떨린다. 지난해 남아공월드컵을 앞두고 허정무 감독이 왜 그렇게 ‘유쾌한 도전’을 강조했는지 얼핏 알 것도 같다. 스스로 ‘즐겁다.’, ‘할 수 있다.’ 주문을 걸지 않으면 실력발휘를 할 수 없다. 정신부터 지고 들어가면 경기는 보나 마나 끝이니까. ‘상대는 너무 강해.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거야.’라는 나약한 마음보다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근성으로 그라운드에 서야겠다. 27일 오후 운동-아마도 2기 대표팀의 마지막 오후 훈련이었을-을 마치고 파이팅을 할 때 말했다. “우리 스스로가 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면 여자럭비팀이 할 거라고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우리끼리만이라도 동료를 믿고 1승을 믿자.”고. 가을볕에 더욱 새까매진 동생들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제 출발이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피플 인 포커스] 러 부총리 쿠드린 ‘파워바터’ 반대

    [피플 인 포커스] 러 부총리 쿠드린 ‘파워바터’ 반대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59)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6) 대통령의 파워 바터(권력 맞교환) 시나리오에 푸틴의 ‘20년 측근’인 알렉세이 쿠드린(50) 재무장관 겸 부총리가 공개 반발했다. ‘푸틴 대통령-메드베데프 총리’ 방안이 집권 여당 전당대회에서 결정된 지 하루 만이다. ●“군비 지출 이견… 새 내각 거부” 쿠드린 장관은 25일(현지시간) 내년 대선을 통해 권력 맞교환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메드베데프 내각에서 일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외신들이 전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쿠드린 장관은 러시아 국영 통신사 기자들에게 이같이 밝힌 뒤 “군사비 지출 확대를 비롯해 경제 정책에서 메드베데프와 이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메드베데프 내각이) 내게 자리를 제안하지도 않을 것이며, (제안이 오더라도)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쿠드린 장관의 도발은 차기 권력 구도에 대한 ‘푸틴 사단’ 핵심 인사의 첫 내부 반란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쿠드린 장관의 반기를 계기로 주류 내부의 권력 투쟁이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메드베데프 “당장 사표 내라” 격노 이에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26일 대통령 산하 ‘경제 현대화 및 기술발전 위원회’ 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회의에 참석한 쿠드린 장관에게 이례적으로 “이견이 있으면 하루 안에 사표를 내라.”고 격노했다고 현지 리아노보스티 통신이 전했다. 쿠드린 장관은 최근 하원 연설에서도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향후 10년간 군사비로 653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예산 지출 증대를 통한 국가 현대화 작업을 추진하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으며, 푸틴이 대통령이 되면 재정 건전화 개혁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러 정치 주류 권력 투쟁 신호탄 쿠드린 장관은 메드베데프와 마찬가지로 1990년대 초반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정부 시절부터 푸틴과 함께 일했고, 푸틴이 처음 대통령에 오른 2000년 이후에는 줄곧 재무장관을 맡아온 최장수 각료로 꼽힌다. 이같은 이력을 배경으로 쿠드린 장관은 푸틴 대통령 복귀시 유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돼 왔다. ‘푸틴의 2인자’를 꿈꿔온 쿠드린 장관에게 메드베데프 내각의 등장이 달가울 리 없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없다’ 이원규 시인

    [저자와 차 한 잔]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없다’ 이원규 시인

    “벌교장터의 국밥집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국수조차 3000원은 줘야 먹는 세상에 국밥 한 그릇에 2000원을 받으면서도 미안해하는 분입니다.” 그는 그 할머니의 ‘밥은 묵고 댕기냐?’는 걱정 어린 한마디에 울컥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산청군·하동군·함양군 등 3개 도 5개 시·군에 너른 품을 펼치고 있는 지리산. 크고 작은 골이 아흔아홉개라고 하니 그 안에 품은 것들을 어찌 다 헤아리랴. 나무·바위·짐승·바람…. 거기에 사람이 빠질 리 없다. 산문집 ‘멀리 나는 새는 집이 없다’(오픈하우스 펴냄)를 낸 이원규 시인도 14년째 지리산에 깃들어 살고 있다. 이원규 하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도 ‘낙장불입 시인’ 하면 고개를 끄덕거릴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소설가 공지영씨가 쓴 ‘지리산 행복학교’의 주인공 중 한 명이기 때문이다. 이 시인을 만나 책과 그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책 소개부터 해 달라는 말에 그는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쓴 책”이라며 껄껄 웃는다. “모처럼 혼자 바깥나들이를 다녔습니다. 장터든 오지마을이든 사람 사는 향기가 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지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니….” ‘멀리 나는 새는 집이 없다’는 그렇게 떠돌아 다니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강가에 구르는 돌처럼 평범한 우리의 이웃, 구두수선공·대장간 주인·시골 이발사·다문화 가정의 ‘동네가수’ 소녀 등이 등장한다. “벌교장터의 국밥집 할머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국수조차 3000원은 줘야 먹는 세상에 국밥 한 그릇에 2000원을 받으면서도 미안해하는 분입니다.” 그는 그 할머니의 ‘밥은 묵고 댕기냐?’는 걱정 어린 한마디에 울컥하고 말았다고 고백한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이 시인이 10년 동안 살던 서울을 떠나 지리산으로 간 까닭은 세상과의 불화와 환멸 때문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시인이자 일간지와 잡지사 기자였다. 그리고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삶은 살얼음을 디딘 듯 늘 위태로웠다. “촌놈이라 그런지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았습니다. 사표를 내고 싶었지만 어머니가 걸려 그러지도 못하고…. IMF가 터진 1997년 12월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죄송스러운 말이지만 제게는 기회였지요.” 결심을 굳히기까지 곡절이 얼마나 많았으랴. “IMF를 맞이하니까 직장에서는 좋은 사람부터 밀려나더군요. 그러던 차에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도 당하고…. 그런 꼴을 보느니 산짐승처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의 주머니에는 50만원이 남아 있었다. 그걸로 중고 모터사이클을 사서 타고 지리산을 떠돌아다녔다. 그가 14년 동안 지리산에서 살면서 시만 쓴 것은 아니다. 아니, 더 큰 공을 들인 게 ‘생명평화운동’이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3년을 놀고 나니까 세상에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때, 댐 건설로 지리산 칠선계곡과 실상사가 잠길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례인생의 시작이었다. 산과 강을 살리겠다고 수경·도법스님 등의 길동무가 되어 걷고 또 걸었다. 지리산·낙동강·새만금을 위해 걷다 보니 10년이 넘고, ‘대운하’를 막겠다고 풍찬노숙하다 보니 11년이 됐다. 그렇게 걸은 게 줄잡아 3만 리. 그는 요즘 은근히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한다. 공지영씨의 책에 소개된 뒤 치르는 유명세 때문이다. “엄청나게 찾아와요. 대개는 빈집을 구해 달라고 오지요. 덕분에 집값이 뛰다 보니 돈 없는 제가 쫓겨나게 생겼습니다.” 그렇게 말하지만 그의 얼굴엔 별 걱정이 없다. “철새에게 따로 집이 필요하겠습니까? 날마다 도착하는 곳이 집이지요.” 이호준 편집위원 sagang@seoul.co.kr
  • 박원순 “토목 줄이고 복지 확대”

    각종 여론조사에서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려온 박원순 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21일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 대강당에서 이뤄진 출마 기자회견에는 ‘보통시민’ 300여명이 모여 그의 출마를 반겼다. 참석한 보통시민들은 서울 성수동 영동대교 북단에서 30여년 동안 구두 수선일을 해온 이창식(54) 씨와 서울 안국동의 아름다운가게 1호점장 출신인 전직 교사 유명옥(73·여)씨 등 오랫 동안 박 전 상임이사와 친분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다. 정치인이나 저명인사 등 유명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회견에서 시종일관 강조한 것처럼 철저한 ‘시민후보’임을 부각한 것이다. 다소 상기된 얼굴로 단상에 오른 박 전 상임이사는 “시민이 원하는 서울을 만들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과거와는 다른 정치를 원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주도한 전시성 토건 예산을 삭감하고 그 재원으로 복지, 환경, 교육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 소외 계층과 청년 일자리 창출 등의 공약이 대표적이다. 특히 SH공사를 개혁해 전세난을 최소화하는 등 새로운 임대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박 전 상임이사는 시민 후보의 위상을 선거운동 과정에서부터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선거 캠프를 ‘희망 캠프’라 이름짓고 펀드 형식으로 운영할 생각이다. 시민들에게 돈을 차용받아 웹에 공개하는 방식이다. 앞서 박 전 상임이사는 투명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안국동 선거 사무실의 전체 벽을 유리로 만들기도 했다. 박 전 상임이사는 기자회견장에 그동안 쓰고 읽은 책과 국내외를 돌며 시민들과 만난 뒤 모아온 자료들을 한가득 바퀴 달린 책상에 담아 갖고 나왔다. ‘준비된 서울시장’임을 강조하는 퍼포먼스인 셈이다. 박 전 상임이사는 민주당 예비후보들의 강한 견제를 의식, “야권 단일후보가 되는 과정은 심각한 일”이라면서도 “민주당의 전폭적인 협력으로 단일후보가 되고 선거를 치른 뒤 그 이후도 함께 갈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민주당 후보와의 통합 경선에 대해서도 “새로운 정치에 걸맞고 시민이 지지할 만한 방식으로 치러져야 한다.”고 못 박았다. 박 전 상임이사는 밤새 몇 번이나 다듬고 고친 기자회견문에 사인을 덧붙여 행사에 참석한 ‘보통 시민’ 6명에게 나눠줬다. 구두 수선공 이씨는 “11년 전 결혼생활에 실패한 뒤 술로 세월을 보내다 박 전 상임이사를 만나 나눔의 삶을 알게 됐다. 나의 방황을 바로잡아준 것처럼 서울시도 새로운 변화를 기대한다.”며 기자회견문을 받아들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열린세상] 아! 그리운 황고집 선생님/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아! 그리운 황고집 선생님/문흥술 서울여대 국문과 교수·문학평론가

    지난 14일은 작가 황순원 작고 11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이즈음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보면서 더욱 작가가 그리워진다. 2000년 작가의 장례식장을 지킬 때, 세 명의 여고생이 국화 한 송이씩을 들고 조문을 왔다. 그들에게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더니, 평소 작가를 존경하던 차에 부음을 듣고 하굣길에 들렀다는 것이다. 작가는 일평생 그 흔한 문인 단체의 감투 하나도 쓰지 않았으며, 문학과 관련이 없는 잡문 하나 쓰지 않았다. 작가의 소설 ‘독짓는 늙은이’에는 자신이 평생 만들어 온 독을 완성하기 위해 가마 속으로 몸을 던지는 송 영감이 나온다. 그 송 영감처럼 작가는 오로지 문학에만 모든 열정을 바쳤던 것이다. 그 결과 “소설가 황순원을 말한다는 것은 해방 이후 한국 소설사 전부를 말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훌륭한 문학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작가의 제자 중 소설가가 되기 위해 신춘문예에 근 10년을 투고한 이가 있다. 어느 해 그 제자가 술에 취해 횡설수설한 적이 있다. 1월 1일자 신문에 실린 신춘문예 소설 심사평을 보니 자신의 작품이 다른 한 작품과 함께 최종심까지 올랐고 자신은 탈락했는데, 심사위원이 작가라는 것이었다. 평소 작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보여 드렸으니 자신의 작품인 줄 뻔히 아실 텐데 어떻게 그러실 수 있냐 하면서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징징거렸다. 몇 년 후 그 제자가 신춘문예로 등단하자 작가는 제자를 불러 “이제야 소설다운 소설을 썼군. 그때 자네를 뽑았다면 아마 자네는 몇 년 못가 사라질 작가가 되었을 거네.”라는 말씀을 하셨다. 제자는 스승의 깊은 배려에 몸 둘 바를 몰랐고, 이후 더욱 정진하여 큰 작가로 거듭났다. 작가는 그렇게 제자들을 문인으로 키웠고, 그들은 지금 문단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언젠가 작가는 60대 이후의 얼굴은 자기 책임이란 말을 했다. 환갑을 넘어선 작가의 얼굴은 순진한 소년의 모습 그것이었다. 그런 아름다운 얼굴은 물질적 탐욕과 권력 따위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고귀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해온 이만이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표로 받들 대가가 부재하는 시대라는 말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요즘이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지식인, 부패한 교육자, 학연과 지연에 얽매여 온갖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패거리들. 권력욕과 물욕에 사로잡힌 이들의 비루한 얼굴을 보면서 올곧게 문학 외길을 황고집으로 살아온 대가 황순원의 아름다운 얼굴이 더욱 그리워진다. 작가는 살아생전 자주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했다.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양평 계곡에서 제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제자 중 말석에 있는 내가 흥에 겨워 “선생님 노래 한 곡 부탁드려요.”라고 외쳤다. 평소 노래를 절대 안 하시던 작가가 조용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평양 가는 기차는 칙칙폭폭…….” 제자들 모두 겉으로는 환호를 했지만, 속으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작가의 소설 ‘학’을 보면 전쟁 당시 남쪽과 북쪽을 대표하는 성삼이와 덕재가 등장한다. 성삼이가 덕재를 호송하고 가던 중, 올가미에 묶인 학을 함께 놓아주던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면서 덕재를 풀어주는 장면이 나온다. 작가가 부른 노래에서 이념과 분단의 장벽을 넘어 북쪽에 두고 온 고향으로 학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은 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 마치 마주 달리는 기관차처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우리 사회가 헛된 이념을 넘어 학처럼 훨훨 날아오르는 작가의 마음을 회복할 날은 언제일까. 그런 점에서 작가야말로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누구보다 먼저 드러내는 예외적 개인이 아니겠는가. 작가의 제자들 사이에는 문학 이외의 분야에서 스승에 대해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있다. 아마 이 글을 본 제자들이 나를 엄청나게 질타할지 모른다. 그래도 이 타락하고 황폐한 시대에 아름다운 스승님이 그리운 걸 어떡하겠는가. 선생님, 이번 추모제에 참석하지 못한 못난 제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주말에 꼭 찾아뵙겠습니다.
  • 민주 서울시장 경선 4파전

    민주 서울시장 경선 4파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야권 후보군이 속속 윤곽을 드러내면서 ‘예선 대진표’가 확정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선(先) 자체 후보, 후(後) 단일화’에 합의한 야권의 ‘투 트랙 경선’이 본궤도에 진입했다. 15일 민주당의 박영선 정책위의장, 천정배 최고위원, 신계륜 전 의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추미애 의원도 이날 후보 등록을 마친 뒤 16일 출마 의사를 밝히기로 했다. ●“거부할 수 없는 순간 왔다” 민주노동당에선 최규엽 새세상연구소장, 이상규 전 서울시장 후보, 김종민 서울시당위원장이 후보로 나선다. 오는 17~19일 후보 등록, 21~25일 당원 투표가 진행된다. 특히 민주당은 ‘1부 리그’가 4파전으로 짜여지면서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안철수 효과’를 등에 업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멀찌감치 앞서 있고,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무너졌던 제1야당의 자존심을 다소나마 회복할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향후 지지층 결집 추이와 후보들의 경쟁력이 당내 경선의 성패를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 같다. 고심 끝에 출마를 결정한 박영선 정책위의장은 ‘구당’(求黨) 의지를 앞세웠다. 이날 출마 기자회견에서 “거부할 수 없는 순간, 피해갈 수 없는 상황이 왔다고 느꼈기에 이 자리에 섰다.”면서 “1000만 시민을 위해, 민주당을 위해 기꺼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려고 한다.”고 밝혔다. 앞서 당 고위정책회의에서는 “당을 위해서 촛불이 되라면 촛불이 되고 낙엽이 되라면 낙엽이 되겠다.”고도 했다. 박 의장의 출마 기자회견장에는 당내 각 정파 관계자들이 거의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공교롭게도 박 상임이사와 고향(경남 창녕)이 같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직후 출마 의사를 밝혔던 천정배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민주개혁진보 진영의 맏이로서 소임을 다할 때만 대한민국은 전진해 왔다.”면서 “반드시 서울시장이 돼 민주당이 새로워졌다는 인정을 받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서울시는 경제, 행정, 정치 모든 분야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면서 “이명박 정권과 한판 승부를 벌일 적임자가 누구겠냐.”고 호소했다. ●천정배·신계륜 “내가 적임” 서울시 부시장을 지낸 신계륜 전 의원은 “오랜 시간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해 온 준비된 후보”라면서 “이번 선거가 정파의 싸움이 돼서는 안 되며, 통합할 수 있는 후보가 나서서 전통지지 세력에 새로운 젊은 바람을 결합할 때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추미애 의원은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와 서울시에 대한 국민들의 변화 열망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겠다.”며 출마 선언을 할 계획이다.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국립중앙의료원장 사표 수리

    보건복지부는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지난달 말에 제출한 사직원을 14일 수리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박 전 의료원장이 국립의료원 법인화 이후 병원 경영 개선을 위해 노력해온 점과 의료원 직원들의 탄원 등을 고려해 사표를 반려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본인의 뜻이 확고해 수리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국립중앙의료원장 부재에 따른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원과 협의해 곧바로 후임 원장 임명절차를 밟을 방침이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여야 10·26 서울시장 보선 후보 향배] 한나라당, 나경원? 외부 수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 물색 작업을 놓고 한나라당이 장고(長考)를 거듭하고 있다. ●나 “당이 하나되는 게 우선” 핵심은 ‘박원순 대항마 찾기’다. 한명숙 전 총리의 보궐선거 불출마 선언으로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야권 통합 후보로 가시화되면서 여권 내 지명도 1위를 달리고 있는 나경원 최고위원을 내세울지 아니면 당내 경선이나 외부 영입을 할지 고민이다. 나 최고위원은 당내 지지가 전폭적이지 않다는 데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중 지지도는 높지만 ‘안풍’(안철수 바람)을 등에 업은 박 상임이사를 꺾기에 역부족이라는 당내 부정적 여론도 있기 때문이다. 나 최고위원은 13일 “국민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고 당이 하나 되는 게 우선이다.”라면서 출마 여부를 최종 저울질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어 “정당의 주인은 당원과 정치인만이 아니라 그 정당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면서 “당이 하나가 돼 뜻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與 “15~17일 절차 확정” 한편 김기현 대변인은 13일 여의도 당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번 주 중 후보 선출 절차를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15일부터 17일 사이에는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후보군에 대해선 “현재 당내외 유력한 후보들을 계속 접촉하고 있다.”면서 “기업인도 포함해 다 접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당내에선 강동구청장을 지낸 재선 김충환 의원이 유일하게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시장 출사표’ 박원순 그는…

    ‘시장 출사표’ 박원순 그는…

    박원순(55)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국내 시민단체 운동의 선구자로 꼽힌다.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경기고를 졸업한 박 이사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 세대’다. 1975년 서울대 법대 1학년 재학시절 유신체제에 항거해 할복한 고(故) 김상진 열사의 추모식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투옥, 제적된 뒤 단국대 사학과로 적을 옮겼다. 1980년 사법시험(22회·연수원 12기)에 합격, 대구지검 검사로 1년여 근무하다 옷을 벗고 인권변호사로 변신했다. 권인숙 성고문사건, 미국 문화원 사건, 한국민중사 사건, 말지(誌) 보도지침 사건,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 국민연금 노령수당 청구소송을 승소로 이끌며 ‘생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시민운동에 참여한 것은 1994년 ‘시민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참여연대를 창립하면서부터다. 그는 2000년 비영리법인 ‘아름다운재단’을 설립해 기부문화 확산에 힘썼다. 2006년에는 한국 민주주의가 진일보하는 데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영리병원 보완책 고려” 임채민 복지 후보자 밝혀

    “영리병원 보완책 고려” 임채민 복지 후보자 밝혀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2일 “영리병원 문제를 이분법적으로만 보지 말고 영리병원 추진 병원에 대해 사회공헌을 하도록 한다거나 반대로 서민들에 대한 의료 혜택을 확대하는 식으로 보완 방법을 찾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국무총리실장(장관급)직 사표를 제출한 임 후보자는 퇴임 인사차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리병원과 관련, “(복지부에 가서) 열린 귀로, 열린 마음으로 관련된 이야기를 모두 들어 보겠다.”고 말한 뒤 이같이 밝혔다. 일부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임 후보자를 “MB정부가 영리병원을 추진하기 위해 임용한 불도저”라며 임용 철회를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과거 제주 지역만 놓고 볼 때는 영리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말한 것인데 그게 앞뒤 이야기 다 잘리고 마치 무조건 도입하겠다는 것처럼 (기사가)나오면서 오해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최근 이슈로 떠오른 복지 철학 문제에 대해서는 “일을 해보지도 않고 (보편적 복지든 선택적 복지든) 무조건 옳다 그르다 이야기할 수 없고, (보건복지부에) 가서 이야기를 잘 들어 보고 저도 다시 출발해 봐야 안다.”며 즉답을 피했다. 임 후보자는 오는 1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임시 사무실을 배정받아 청문회 준비에 몰입할 예정이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박재갑 원장 사퇴 말아달라”

    “박재갑 원장 사퇴 말아달라”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 임원 97명이 1일 서울 을지로 부지 이전과 임금 협상 등의 문제로 노조와 마찰을 빚다 사표를 낸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의 사직서 반려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보건복지부에 냈다. 또 레지던트와 간호사, 행정직원 등 전체 직원의 90%에 달하는 700여명도 복지부에 같은 내용의 탄원서를 제출했다. 전문의 97명으로 구성된 전문의협의회는 전날 긴급회의를 열고 박 원장이 사퇴할 시점이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탄원서를 작성, 이날 복지부를 방문했다. .직원 700여명 가운데는 박 원장과 마찰을 빚은 노조원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사는 물론 조합원들까지 사직서 반려를 요청한 것은 아이러니하고 황당하다.”고 말했다. 박 원장은 “평생 제일 싫어했던 것이 환자 병실 바로 옆에서 확성기를 트는 문제”라면서 “아무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고 우리 식구들이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고 사직서를 낸 것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병실 앞에서 꽹과리치는 게 온당한 건가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이 임기의 절반을 남겨두고 엊그제 보건복지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의료원 노조원들과 상급단체 노조간부 120여명이 파업 전야제 행사를 열면서 병실 앞에서 꽹과리를 치고 확성기로 구호를 외치는 등 환자를 진료하는 병원에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병원 측에 거세게 항의할 정도였으니, 평생 환자를 진료하며 살아온 의료인으로선 창피해 머리를 들 수 없었을 것이다. 중앙의료원 노조는 그동안 병원 측과 6차례에 걸쳐 임금교섭을 벌이다 임금 인상과 병원 이전에 대해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파업까지 결의했다. 노조는 임금 9.5% 인상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4.1%를 제시했다. 연간 250억원의 적자로 올해 400억원의 정부 지원을 받는 의료원으로선 직원들 처우도 중요하지만 장비 구입 등 시설투자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의료원을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서초구 원지동으로 옮기는 사업도 이미 정부 차원에서 결정된 것이어서 의료원 권한 밖의 일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조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간부들과 함께 환자들이 있는 입원실 앞에서 꽹과리와 확성기를 울리며 ‘공공의료 수호’라는 구호를 외쳐댔다. 환자를 돌보는 의료 종사자의 직분을 망각한 비인도적 행위를 서슴지 않은 것이다. 민주노총의 일탈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에는 산하 노조원들이 전북지사 딸 결혼식장에 나타나 ‘전북도지사 각성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피켓시위까지 해 물의를 빚었다. 서울지하철노조가 민주노총을 탈퇴한 것도 이러한 막가파식 투쟁에 조합원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다. 의료원 노조의 적반하장도 가관이다. “박 원장이 경영에 의욕을 보였는데 노조 때문에 그만두는 것이 아닌 것 같다.”며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다. 노조가 불감증에서 깨어나 깊은 자기성찰을 해주기 바란다.
  • [데스크 시각] 곽노현 ‘법의 정신’/이기철 사회부 차장

    [데스크 시각] 곽노현 ‘법의 정신’/이기철 사회부 차장

    서울 교육계가 패닉에 빠졌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2억원 선의 지원’ 사건 탓이다. ‘곽 교육감의 사퇴가 최선’이라느니, ‘표적수사이니 물러나서는 안 된다.’느니 갑론을박도 만만찮다. 수도 서울의 공교육을 책임진 교육감 리더십이 큰 타격을 받았다. 2학기 교육행정은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교육계의 수장으로서 법적 매듭 이전에 도덕적 책임을 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곽 교육감의 2억원 선의 지원 사건에서 큰 줄기의 팩트 두 가지는 이렇다. 지난해 5월 교육감 후보로 나섰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가 중도 사퇴함으로써 당시 곽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졌다. 또 한 가지는 곽 교육감이 박 교수에게 2억원을 전달했다. 곽 교육감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국민은 대체로 이렇게 생각한다. 두 후보 단일화 논의가 있었고, 곽 후보의 라이벌이었던 박 후보가 선거 레이스를 중도하차했다. 결과적으로 곽 후보가 건넨 2억원은 석연찮다. 부적절한 처신을 했기에 물러나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교육비리를 뿌리 뽑아야 하는 교육감이기에 더욱 그렇다. 곽 교육감은 그러나 “떳떳하다. 막중한 책임감으로 교육감직을 수행하겠다.”고 말한다. 사퇴 여론에 돌아앉은 돌부처 격이다. 법학자인 그의 해명은 국민의 법 감정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는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박 교수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두번이나 출마하는 과정에서 많은 빚을 져 궁박해 모른 척할 수 없었다.”며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어 2억원의 돈을 선의로 지원했다.”고 스스로 밝혔다. 한마디로 박 교수의 딱한 사정을 인정상 외면할 수 없어 돈을 줬다는 것으로 압축된다. 대가성이 없어 법적 책임을 질 일도, 도덕적 비난을 받을 일도 없다는 항변으로 들린다. 대가성 여부야 사법당국이 판단하겠지만 선의로 돈을 전달한 과정치고는 복잡하다. 곽 교육감은 “드러나게 지원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기에 선거와는 무관한 친한 친구를 통해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과정에서 드러난 것과 제보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돈 전달과정을 철저히 숨기고 싶어했다. 곽 교육감은 친구 강모 교수를 통해 박 교수의 지인 최모씨에게 현금으로 전달했다. 최씨는 다시 박 교수의 동생에게 인터넷 송금을 했고, 동생은 형인 박 교수에게 이를 전달했다. 곽 교육감은 “법의 특징과 수단은 합법성에 있고, 목적은 인간다운 행복한 삶”이라면서 “인정을 상실하면 몰인정한 사회가 된다. 제가 배우고 가르친 법은 인정이 있는 법이자 도리에 맞는 법”이라고 주장했다. 곽 교육감은 “(딱한 사정에 있는 경쟁 후보자에게 선의로 2억원을 전달한 것을) 후보 매수행위로 봐야 하나요.”라고 반문한다. 곽 교육감이 보여준 법의 정신이다. 하지만 실정법과는 배치된다. 민주주의 근간인 선거에서 사후에라도 돈이 개입되는 것은 금물이다. 실정법은 이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공직선거법은 “후보자가 되고자 하는 것을 중지하거나 후보자를 사퇴한 데 대한 대가를 목적으로 후보자가 되고자 하였던 자나 후보자였던 자에게 그 이익이나 직의 제공을 받거나 제공의 의사표시를 승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다시 “개혁 성향인 자신에게 정치적 의도가 반영된 표적수사”라고 주장한다. 자신을 수사하는 검찰에 정치검찰이란 색깔을 덧칠한다. 검찰은 정치검찰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더욱 철저하게 사실관계와 실체적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던 지난달 24일 곽 교육감은 “투표 거부는 정당한 권리행사의 방법”이라며 나쁜 투표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상당수 국민들은 국회의원 선거는 나쁜 후보들 가운데 ‘덜 나쁜 후보’를 뽑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국회의원 선거는 나쁜 선거이고, 그래서 투표를 거부해 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법학자이자 교육자인 곽 교육감에게서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위기가 느껴진다. chuli@seoul.co.kr
  • 1년만에 당 복귀 이재오 “토의종군할 것”

    1년만에 당 복귀 이재오 “토의종군할 것”

    이재오 특임장관이 딱 1년 만에 한나라당으로 돌아온다. ‘8·30 개각’과 맞물려 이 장관은 31일 청와대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청와대는 후임들의 청문회가 끝난 이후에 당에 복귀할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및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함께 이 장관도 맞춰서 당에 돌아갈 것을 원했으나, 이 장관은 서둘러 사표를 냈다. 청와대는 청문회 이후에 이 장관의 사표를 수리할 계획이지만, 이 장관은 사표를 수리 여부와 상관 없이 국회로 나올 생각이다. ●與서울시장 후보 선출 역할 주목 이 장관은 지난해 7·28 보궐선거에서 화려하게 부활한 뒤 곧바로 내각에 진출했을 때만 해도 ‘왕의 남자’라는 평가에 걸맞은 정권의 2인자였다. 하지만 1년 만에 권력 지형은 완전히 바뀌었다. 지난 4·27 재·보선과 5월 원내대표 경선, 7·4 전당대회에서 이 장관이 밀었던 후보들이 잇따라 패하면서 이 장관과 친이(친이명박)계는 구주류로 전락했고, 당의 중심은 친박(친박근혜)계와 쇄신파로 이동했다. 이에 따라 이 장관은 복귀한 뒤 철저히 ‘저자세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이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백의종군보다 더 낮은) 토의종군(土衣從軍)의 자세로 시작할 것”이라면서 “지역구 활동에 매진하며, 이재오 때문에 갈등이 생겼다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또 계파 갈등에 대해서도 “이제 내 머릿속은 친이와 친박을 뛰어넘었다.”면서 “친이계 모임도 갖지 않고, 박근혜 전 대표나 친박계도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친박 “스타일 쉽게 안변해” 긴장 그렇다고 이 장관이 전혀 존재감이 없는 의원으로 떠밀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당장 서울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일정 부분 역할을 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친박계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한 친박계 의원은 “정치스타일이 쉽게 변하겠느냐.”면서 “만일 이 장관이 다시 우리와 대립하면 당은 정말로 끝장난다.”고 말했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그동안 이 장관은 이명박 정권의 탄생과 성공을 위해 매진했다.”면서 “당 복귀와 동시에 본인의 ‘정치 2막’을 구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구·주현진기자 window2@seoul.co.kr
  • ‘오자와의 남자’ 가이에다, 日 새 총리 될까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로 인해 기로에 선 일본이 29일 새로운 리더를 맞게 된다. 일본 민주당은 29일 오전 도쿄 시내 호텔에서 중의원과 참의원 의원 총회를 열고 소속 의원 398명이 참여한 가운데 후보 등록을 마친 5명을 상대로 차기 총리가 될 당 대표를 뽑는다. 당 대표 경선에는 마에하라 세이지 전 외무상,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가이에다 반리 경제산업상, 가노 미치히코 농림수산상, 마부치 스미오 전 국토교통상 등 모두 5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현재 판세는 당내 최대 세력을 거느린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과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지지를 받고 있는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이 앞선 가운데 마에하라 전 외무상과 노다 요시히코 재무상 등이 맹추격하는 양상이다. 1차 투표에서 가이에다 후보가 과반(200표) 이상을 획득하지 못할 경우 결선투표에서 나머지 후보들이 연대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 접전이 예상된다. 가이에다 경제산업상은 ‘오자와 대리인’이라는 이미지와 자질론이 불거지면서 지지 의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중적 인기가 높은 마에하라 전 외무상은 재일한국인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문제로 고전하고 있다. 마에하라 전 외무상은 지난 27일 시내 한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05~2010년 재일외국인 개인 4명과 회사 1개사로부터 모두 59만엔(약 829만원)을 받았지만 모두 돌려줬다고 해명하며 파문 확산 저지에 나섰다. 민주당은 29일 당 대표 경선을 실시한 뒤 30일 중의원과 참의원 본회의를 열고 사퇴한 간 나오토 총리의 뒤를 이을 새 총리를 지명한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올리버 “금메달 넘겠다” vs 로블레스 “또 한번 세계新”

    올리버 “금메달 넘겠다” vs 로블레스 “또 한번 세계新”

    “스타트에 달렸다.”(올리버), “세계기록 세운다.”(로블레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남자 ‘110m 허들 제왕’의 자리를 놓고 뜨거운 3파전이 예고된 가운데 저마다 우승을 자신해 관심을 더하고 있다. 강력한 금메달 후보 데이비드 올리버(28·미국)는 26일 대구 선수촌 기자회견장에서 “스타트가 좋으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면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달리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올리버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류샹(28·중국), 세계기록 보유자 다이론 로블레스(25·쿠바)와 함께 3강을 형성하고 있다. 특히 그의 올 시즌 기록은 12초 94로 류샹(13초 00), 로블레스(13초 04)에 앞서 미국 팀의 기대주로 꼽힌다. 올리버는 “로블레스나 류샹은 기록이 13초를 밑도는 강력한 경쟁자들”이라면서도 “이들이 강력하다고 해서 특별히 긴장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항상 함께 달리는 경쟁자들일 뿐”이라며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로블레스의 세계기록을 깰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건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도 “지난 일요일 연습을 하면서 최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며 자신감을 거듭 내비쳤다. 또 다른 우승 후보 로블레스도 대구스타디움의 아디다스 홍보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불가능은 없다.’는 아디다스의 슬로건을 언급하며 “세계 신기록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날마다 세계기록을 깨는 꿈을 꾼다.”는 말로 신기록에 대한 열망을 드러냈다. 로블레스는 2008년 6월 체코 오스트라바에서 열린 대회에서 12초 87을 찍어 류샹이 2006년 세운 기록을 0.01초 앞당겼다. 지난해 허벅지 근육통으로 고전했던 로블레스는 지난 6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다이아몬드리그 110m 허들 결승에서 13초 04로 우승, 건재를 뽐냈다. 이는 올해 3위 기록이다. 로블레스는 “올리버와 류샹 등 13초에 근접한 경쟁자가 많다. 간발의 차이로 메달 색깔이 결정될 것”이라면서 “80%까지 올라온 대회 직전까지 컨디션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고 말했다. 남자 110m 허들 결승은 29일 오후 9시 25분 열린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식판정쟁’이 ‘市長대전’으로… 여·야, 재·보선 체제 전환

    ‘식판정쟁’이 ‘市長대전’으로… 여·야, 재·보선 체제 전환

    판이 바뀌었다. ‘아이들 밥그릇 싸움’이라는 소리까지 듣던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이어지면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라는 초대형 선거정국이 펼쳐지게 됐다. 여야는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형국이다.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10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서겠다고 꿈이라도 꿔 본 인사들이 단 한명도 없는 여야다. 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60일이다. 이 안에 후보를 선출하고, 선거체제를 꾸려 민심 사냥에 나서야 한다. 26일 한나라당과 민주당 당사에는 긴장과 초조, 불안과 설렘이 교차했다. ■ 한나라당 오세훈 서울시장의 전격 사퇴로 직격탄을 맞은 한나라당이 10월 보궐선거 체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한나라당 핵심 관계자는 26일 “오 시장에 대한 미련은 이미 버렸다.”면서 “‘필승의 카드’를 내세워 시장직을 사수하는 방향으로 당의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선 후보 등록을 받아봐야 하겠지만, 당내 후보가 경쟁력이 떨어진다면 외부 영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미 사무처를 중심으로 영입 대상을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베스트셀러인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펴내 젊은 층에게 강하게 어필하고 있는 서울대 소비자학과 김난도(48) 교수가 영입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당 관계자는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카드”라고 설명했다. 당내 후보로는 인지도가 높은 나경원 최고위원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다. 당 일각에선 정몽준 전 대표를 전격적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정 전 대표는 이미 ‘대권 행보’에 가속도를 내고 있어 서울시장으로의 ‘하향 전환’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내 소장파들 중에는 “오 시장과는 다른 ‘버전’의 후보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개혁 성향의 초선 의원인 홍정욱 의원과 서울시 정무부시장 출신인 권영진 의원도 출마를 권유받고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권 의원은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 소장파들이 모두 호감을 갖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오 시장의 사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홍준표 대표가 아침에 소집한 서울지역 당협위원장 조찬간담회도 사실상 보선 대책회의로 전환됐다. 김기현 대변인은 “조찬간담회에서는 10월 26일 실시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전념키로 의견이 일치됐다.”고 전했다. 김정권 사무총장은 “주말부터 본격적으로 선거체제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서울시당을 중심으로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릴 것”이라면서 “시간이 촉박한 만큼 경선 절차와 외부 영입이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면서 “이번 주민투표에서 확인된 건전한 보수세력을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후보등록일이 10월 6일인 만큼 모든 절차를 밟아가며 시간을 끌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오 시장의 ‘지원유세’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홍 대표는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오 시장을 철저히 배제한 채 당력을 총동원하는 정면돌파를 선택할 것이라고 대표의 측근들은 전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민주당 민주당이 10·26 재·보궐선거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체적으로 한나라당에 견줘 한발 앞선 형국이다. 우선 26일 정장선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당 재·보궐선거 기획단을 첫 가동하고 선거 체제로 본격 전환했다. 기존 지역 이외에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포함된 만큼 민주당은 기획단을 확대 개편하기로 했다. 정 사무총장은 “다음 주쯤 예비후보 등록과 경선 일정, 공천심사위원회 구성 등을 확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거 체제와 별도로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필승 기류가 넘쳐난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승기를 이어가겠다는 각오로 받아들여진다. 이용섭 민주당 대변인은 “재·보궐선거 대상지 가운데 서울시장은 물론 민주당이 기존 단체장으로 있었던 곳(서울 양천구, 충주시, 남원시, 순창군)과 부산 동구 등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특히 서울시장 선거는 최우선 격전지다. 역대 서울시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치적 비중이 커졌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여야 대결구도가 넓어진 데다 대여(對與) 대립각을 강하게 세울 수 있다며 벼르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오 시장의 사퇴 발표를 전후로 계파별로 속속 집결하는가 하면 원외 당협위원장들도 전날 국회에서 모임을 갖고 선거 대책을 논의했다. 수도권의 한 당협위원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사실상 예비 대선으로 격상되면서 원내·외 가릴 것 없이 캠프가 꾸려지면 자원하겠다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후보군만 해도 전날 천정배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지는 등 당내에서만 10여명이 출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치열한 경선이 예상되는 만큼 경선 룰에 대한 관심도 높다. 최종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국민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뼈대로 하는 당 개혁특위의 공천안이 후보자 선출에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조기 과열 분위기 속엔 자성론도 섞여 나온다. 김칫국부터 마시다가 패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 천 최고위원의 출마 선언 직후 당 안팎에서는 “아직 오세훈 시장이 사퇴도 하지 않았는데 주소지부터 옮기는 것은 정치적 도의가 아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후 여기저기 깃발부터 꽂는 후보군을 보는 시선도 곱지 않다. 복수의 당 관계자는 “서울시장 선거전이 계파 대리전으로 변질되는 조짐이 있다. 이러다 적전분열은 시간 문제”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급기야 손학규 대표는 이날 확대간부회의에서 “최대한 겸손하게 낮은 자세로 국민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Mr. 애플’ 몽상·배짱·도전으로 썩어가는 사과 명품으로 바꿨다

    ‘Mr. 애플’ 몽상·배짱·도전으로 썩어가는 사과 명품으로 바꿨다

    “늘 갈구하고 겸손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 2005년 검은 예복 차림의 중년 신사가 미국 명문 스탠퍼드대 졸업식 연단에 섰다. 세상 밖으로 나갈 청년들에게 그가 던진 화두는 ‘결핍’과 ‘창의력’이었다. 스티브 잡스(56).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난 대학 중퇴자. 심지어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당했고 암 투병 중인 이 사내는 늘 배고팠다. 빈 곳을 채우려 완벽함을 좇았다. ‘지구상 최고의 최고경영자(CEO)’로 칭송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 덕분이다. ●결핍과 몽상의 결합… 혁신적 제품으로 “잡스가 위대한 건 천재여서가 아니다. 어떤 위험도 감수하는 배짱 덕이다.”(잡스 전기 작가 앨런 더치만) 잡스의 삶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몽상’과 ‘배짱’이다. 늘 꿈꿨고 상상을 실현하기 위해 쉼없이 도전했다. 스물한 살 되던 1976년 선배이자 엔지니어인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애플’을 창립하면서 도전이 시작됐다. 잡스의 학력은 리즈대 한 학기를 마치고 중퇴한 것이 전부였지만 선불교 등 종교에 심취했고 인문학에 몰두하면서 얻은 직관과 몽상가적 기질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잡스의 상상력과 워즈니악의 기술력으로 탄생시킨 개인용 컴퓨터(PC) ‘애플 Ⅱ’는 대히트였다. 4년 만에 100만대가 팔리며 ‘애플 제국’의 탄생을 알렸고, 순식간에 정보기술(IT) 업계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직관을 앞세운 독단적인 경영 스타일이 문제가 됐다. 잡스는 자신이 영입한 또 다른 경영진과의 마찰이 깊어졌고 결국 권력 다툼 끝에 ‘사표’를 냈다. 첫 시련이었다. ●어떤 위기도 짊어지는 ‘배짱’… 애플 제국을 만들다 “애플에서 해고당한 일은 최고의 사건이었다. 성공에 대한 부담 없이 창의적 시기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스탠퍼드대 졸업연설 중) 잡스는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중압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사업에 도전했다. 컴퓨터그래픽 업체(CG)인 픽사가 디즈니와 손잡고 만든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성공을 시작으로 흥행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그 사이 잡스를 잃은 ‘사과’(애플)는 걷잡을 수 없이 썩어갔다. 결국 애플은 잡스 소유의 PC업체 ‘넥스트’를 인수하는 방식으로 ‘경영의 신’을 다시 불러들인다. 13년 만의 복귀. 명예회복을 벼르던 잡스는 “연봉 1달러만 받겠다.”고 선언한다. 검정색 터틀넥과 청바지를 고집한 잡스지만 ‘창의적 DNA’에서 나오는 제품은 너무나 혁신적이었다. ‘승부사’ 잡스는 개발자가 만든 제품 중 ‘소비자가 사고 싶어 하는 것’을 직관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감성의 옷을 입혀 시장에 내놓았다. ‘디지털 음악의 혁명을 이뤘다.’는 음악재생기 ‘아이팟’(2001년)과 터치폰 방식으로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2007년), PC의 몰락을 이끈 태블릿PC ‘아이패드’(2010년) 등 잡스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은 여지없이 히트했다. 부도 위기에 몰렸던 애플은 잡스 취임 뒤 10여년 만에 세계 시가총액 1위(3372억 달러·약 364조원) 기업이 됐다. ●재발 암 이식 간에 전이?… 건강 악화된 듯 하지만 잡스에게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2003년 췌장암이 발병한 것. 치료를 위해 사임 전까지 세 차례 병가를 내면서도 ‘아이패드 2’ 등 신제품 발표회에는 꼭 자신이 직접 나섰다. 하지만 ‘오뚝이’ 잡스에게도 병마는 의지만으로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웠던 듯하다. 그는 24일(현지시간) 결국 사임을 결정했다. 의료 전문가들은 잡스에게 건강 문제가 생겼다면 ‘아일렛 세포 신경내분비계 종양’이 재발하고, 2009년 이식한 간으로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특히 잡스가 앓고 있는 종양은 재발할 경우 장기 이식의 거부반응을 예방하기 위한 면역억제제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치료가 상당히 까다로운 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 1월 병가 이후 주주총회 등에서 꾸준히 CEO 승계안이 논의된 데다 CEO에서 물러난 뒤에도 이사회 의장직을 유지키로 한 점 등을 감안할 때 CEO직 승계에 따른 혼란을 줄이려고 적절한 승계 시점을 찾았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강국진·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포스트 오세훈’ 누가 뛸까

    ‘포스트 오세훈’ 누가 뛸까

    오세훈 서울시장의 ‘조기 사퇴’ 분위기가 짙어지자 정국이 10월 보궐선거 체제로 급박하게 빨려드는 양상이다. 주민투표 후폭풍 첫날인 25일 여야의 관심은 온통 ‘포스트 오세훈’에 쏠렸다.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역대 어느 보궐선거와도 견줄 수 없는 ‘빅 매치’다. 그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내년 총선과 대선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한 발도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속사정은 사뭇 다르다. 보궐선거를 둘러싼 환경과 처지가 달라서다. 주민투표 결과로만 보면 민주당이 유리해 보이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선거 유불리를 예단할 수도 없는 처지다. 보수층의 강한 결집이 예상되는 데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처럼 인물 경쟁력이 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상대적으로 위기감이 높다. 오 시장이 이번에 치러지는 보궐선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다. 이렇다 할 움직임도 없다. 여권이 동반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후보 문제를 서둘러 거론할 경우 또 다른 역풍을 맞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나라당의 유력 예비주자들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차기 시장 후보로 첫손에 꼽히는 나경원 최고위원조차 출마 여부에 대해 즉답을 피하는 상황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유인촌 대통령 문화특보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여부와 관련, “지금 (이명박 대통령의 해외 순방지인) 카자흐스탄에 와 있다. 정신없이 바쁘다. 내일 들어가서 보자.”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당내 소장·쇄신파를 이끌고 있는 정두언 여의도연구소장은 아예 “서울시장 후보를 놓고 경선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정욱 의원도 “시장직 수행을 위한 철학과 소신부터 정립해야 출마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단순히 인지도만 믿고 선거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한 발 물러섰다. 반면 민주당은 분주하다. 벌써부터 후보군이 속속 수면 위로 등장하고 있다. 판세로 보면 불리할 게 없다고 판단한다. 보궐선거 자체를 오 시장의 귀책사유라고 몰아세우면서 사실상 현 정권에서 치러지는 마지막 ‘반이명박’ 선거로 준비하는 분위기다. 현역 의원, 중진급 인사, 원외 후보군 등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계파별 세력싸움 양상도 보인다. 3선 의원이자 당 지도부인 천정배 최고위원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주민투표의 승리는 서울시민의 승리이자 진보가치의 승리”라면서 “야권이 수권 세력임을 보여주고 통합을 이끌어 낼 후보가 필요해 나서게 됐다.”며 출마 선언의 배경을 밝혔다. 김한길 전 원내대표도 기자 오찬 간담회를 갖고 “2012년 총선·대선 승리에 기여하기 위한 내 역할을 고민할 때가 왔다.”면서 “이번 보궐선거에 경쟁력 있는 후보가 출마해야 한다는 원칙 속에서 (나도) 그 저울 위에 올라가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역 의원 시절 각종 선거의 기획통으로 불렸다. 이슈(복지) 주도력과 대중적 인지도 면에선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1순위다. 보편적 복지 전략을 세웠던 전병헌 전 정책위의장도 거론된다. 야권 통합 국면을 고려하면 이인영 최고위원과 원혜영 의원도 적임자로 꼽힌다. 구혜영·장세훈기자 kooh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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