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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달에 만난 사람] 그 남자 감독, 그 여자 편집

    [이 달에 만난 사람] 그 남자 감독, 그 여자 편집

    취재, 글 이미현 기자 ┃ 사진 한영희 한눈에 보아도 두 사람은 참 다르다. 조용조용한 말투에 순박해 보이는 박흥식 감독(46세)과 경상도 사투리에 말도 생김도 시원시원한 박곡지 편집기사(43세).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박곡지 씨를 ‘열 감기’, 박흥식 감독을 ‘해열제’라고 부른다. 내로라하는 감독과 제작자를 쥐락펴락하는 그녀도 남편 앞에서는 꼼짝 못한다는 이야기.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이미 박곡지 씨는 성공한 편집기사였고, 박 감독은 아직 조감독으로 일하고 있었다.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박 감독이 프러포즈를 했는데 박곡지 씨가 그리던 장소가 아니었다. “그랬더니 장소만 옮겨 똑같은 프러포즈를 다시 하는 거 있죠.” 그녀는 그의 그런 순수함이 좋았단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 그로 인한 갈등이 없었을까? 박 감독이 <역전의 명수>로 감독 데뷔를 한 것이 결혼하고도 8년 뒤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신기하게 그런 것이 크게 문제 되지 않았어요. 사람들 사는 게 다르지 않겠지만, 우린 좋은 집, 좋은 차… 그런 고민들을 조금 덜하며 사는 것 같아요. 둘 다 이상이나 꿈에 대한 허용치가 크달까요.” 얼마 전 개봉을 마친 영화 <경의선>의 제작자는 바로 부인인 박곡지 씨다. “그간 모아둔 돈 많이 들어갔죠. 남들처럼 좋은 집 사는 데 보탤 수도 있었겠지만, 우리가 하고 싶은 영화 한 편 샀다고 기쁘게 생각하려고요.” 이런 두 사람도 크게 부부 싸움을 한 적이 있다. 바로 <역전의 명수>를 편집할 때다. 남편의 첫 장편영화인 만큼 애정과 욕심이 앞섰던 것. 그 시간들이 두 사람에게 좋은 약이 되었던지 <경의선> 때는 별 마찰 없이 편집을 마쳤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얘기를 할 때만큼은 두 사람 모두 양보가 없다. “상업영화, 예술영화 구분이 없다고 하지만, 이런 구도로 하면 예술영화라고 외면당하게 돼.” “그건 편견이지. 상업적인 잣대로 만든 영화들이 모두 성공하는 건 아니잖아.” “그래도 그 잣대를 가진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그걸 무시할 수는 없어.” “그 잣대를 바꾸어야 해. 코미디도 깊이를 지닐 수 있다고.” 어째서일까? 옥신각신 논쟁 중인 두 사람이 행복해 보이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 박흥식 감독의 영화에는 가족이 있다. IMF 사태로 가족이 깨지는 것이 가슴 아파 실직자의 하루를 다룬 단편 <하루>를 만들었고, <역전의 명수>는 쌍둥이 현수, 명수의 가족이 배경이다. 영화 <경의선>에선 가족이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주인공인 만수와 한나는 한 가정의 아들, 딸로 등장한다. 실제로 박 감독은 6남매의 맏아들이고, 박곡지 씨는 9남매 중 다섯 째다. 박 감독에게 가족은 당연히 늘 함께인 ‘사람’이자 내가 머무는 ‘자리’이다. 아내 박곡지 씨는 가족을 이렇게 말한다. “거짓말이 아닌 한, 나와 같은 편이 되어주는 사람.” 몇 년 전 <역전의 명수>를 준비하면서 영화 제목 관련 표절 사건 때문에 마음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남편이 박곡지 씨에게 당신이 삭발을 해야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두말없이 “그럴게”라고 했다. 당시 그녀는 임신 9개월, 만삭의 몸이었다. <경의선>이 개봉하자 박 감독은 관객이 한 명만 있어도 무대 인사를 가겠다고 했고, 박곡지 씨는 남편이 받을 상처가 염려되어 그를 말렸다. 하지만 박 감독은 무대 인사를 강행했고, 뒤에서 아내는 혼자 마음을 졸여야 했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그는 알 것이다. 박곡지 씨도 인터뷰를 빌어서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남편의 마음을 알 것이다. 가족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일에 있어서는 철저한 박곡지 씨이지만, 천하의 그녀도 못하는 게 하나 있다. 바로 ‘정리’다. 하지만 박 감독은 정리의 달인. 냉장고 속까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일을 못 하는 사람이라는 아내의 고자질에 지지 않고 한마디 하는 남편. “어떻게 당신은 자기 옷장 정리도 안 해.” “해도 당신이 다시 할 거잖아. 잘하는 사람이 하면 되지.” “그래도 당신은 좀 심해.” “당신도 심해.” “맞아, 우린 둘 다 심해.” 웃어버리고 마는 두 사람. 사랑 찍고 행복 편집하는 찰떡궁합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그 남자 감독, 그 여자 편집’이라는 제목으로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시작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로 해서 중반부터는 홈 드라마가 될 테고, 부부 싸움 씬에서는 약간의 액션 장면도 들어가겠지? 아직 그 영화는 촬영 중이다. 박흥식 감독은 1999년 실직자의 하루를 다룬 단편 <하루>로 토리노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영화 <역전의 명수> <경의선>을 감독했다. 올 연말 크랭크인을 목표로 한국 남자와 일본 여자의 사랑을 다룬 세 번째 영화 <연>을 준비 중이다. 그는 무엇이든 다 늦었다. 대학 입학도, 결혼도, 영화감독 데뷔도…. 늦게 시작한 만큼 오래오래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 그의 바람이다. 반대로 그의 아내 박곡지 씨에게는 최연소 편집기사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1987년 편집기사로 일하기 시작해 5년 뒤 정식 편집기사가 되었고, 이후 탁월한 편집 감각을 인정받아 수많은 작품에 참여했다. <접속> <친구>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미녀는 괴로워>에 이르기까지 100여 편의 영화를 편집했으며, 1997년 <은행나무 침대>로 페낭국제영화제 편집상을 수상했다. 둘 사이엔 일곱 살 딸 혜민이와 다섯 살 아들 보민이가 있다.
  • [발언대] 탈북자들의 손을 잡아주자/조순환 서울 노원경찰서 보안과 경위

    “안녕하십네까? 반갑습네다.” 통일부 산하 탈북자교육기관인 하나원에서 정착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탈북자들과 신변보호담당관의 첫 만남에서 듣는 북녘 사투리다. 같은 민족 형제자매이면서도 이방인 같은 그들을 대할 때마다 “오랜 분단의 역사가 같은 민족도 이렇게 다른 모습으로 변하게 하는구나.”하고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생활고와 억압된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부모형제, 처자식과의 인연도 끊은 채 돈을 벌겠다는 욕심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 공안들의 눈을 피해 떠돌게 되고 그 과정에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져서 남한에 입국하게 된다. 그들은 우리가 어렸을 적 생각했던 뿔달린 공산당도, 우리에게 직접 총부리를 겨누었던 적도 아니다. 헤어져 있던 시간만큼 너무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우리의 형제자매들일 뿐이다. 월남이 패망한 후 돌아갈 조국이 없어 이국을 떠돌던 베트남 난민들을 떠올려 보면서 부모형제와 처자식을 떠나 낯선 남한을 찾아온 탈북자들을 관심있게 바라 보자. 탈북자 1만명 시대 탈북자들이 외로움을 이겨내고 하루빨리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신변보호담당관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우리 모두 그들의 손을 잡아 주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통일로 가는 길이며 우리들이 반드시 해야 할, 아름다운 사랑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조순환 서울 노원경찰서 보안과 경위
  • 그녀의 ‘카메라 사랑’은 계속된다

    누가 조선희를 ‘연예인 전문 사진가’라 했던가. 그는 자신을 당당히 ‘대중문화기록자’라고 소개한다. 시대를 기록하는 자로서의 의식과 신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EBS ‘시대의 초상’은 7일 오후 10시50분 ‘카메라와 질기게 사랑하기-사진작가 조선희’를 방송한다. 독특하고 기괴하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쌓아왔다는 평을 듣는 조선희의 솔직한 사진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한국 광고사진의 스타 조선희는 김중만의 제자로 사진계에 입문했다. 그는 사진을 시작하던 때를 이렇게 설명한다.“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모든 게 출발한 거 같아요. 제가 5남매 가운데 중간이거든요. 내가 쟁취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위치였죠.” ‘사랑갈구증’이 힘을 얻고 탄력을 받은 것은 대학 시절. 연세대 사진동아리에서 첫 출사를 나간 날, 한 선배가 그에게 말했다.“한 발 더 다가서라.” 이 말은 그가 세상에 카메라를 들이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었다. 시련도 있었다.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그에게는 한때 ‘비주류’라는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특이했던 거죠. 사진과도 안 나왔고, 여자고, 사투리도 팍팍 쓰고….” 어렵사리 들어온 프로젝트 제의가 비주류라는 이유로 취소당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는 다짐했다.“더 이상 이렇게 누가 내 것을 빼앗아가게 하진 않겠다.”고. 이제 어느 누구도 그를 ‘비주류’라고 부르지 않지만, 조선희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이야기한다.‘조선희다움’은 늘 시작이라고, 카메라와의 질긴 운명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이 사진만큼이나 빛이 난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구걸해서 고급요리 사먹는 베이징역 거지들

    구걸해서 고급요리 사먹는 베이징역 거지들

    중국 베이징과학기술대학(이하 과기대) 학생들이 베이징역에 상주하는 거지들의 일상과 실상을 조사해 네티즌의 눈길을 끌고 있다. 베이징 일간지 ‘신징바오’(新京报)는 3일 ‘거지 같지 않은 거지’의 생활을 조사한 과기대 학생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보도했다. 조사자들은 지난달 20일부터 열흘동안 베이징역 곳곳에 상주하는 수많은 거지들을 관찰했다. 과기대 조사팀은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진짜 거지도 있었지만 거짓으로 임신한 척하거나 아이들에게 연기연습을 시키는 거지를 만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또 “어른들이 매일 역 모퉁이에서 거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며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사투리를 연습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연습을 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특히 조사팀은 “어떤 거지는 퇴근전 화장실에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아이들과 불고기를 먹은 후 200위안(한화 약 2만 5천원)을 지불하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조사팀의 샤오쉬(小徐)대표는 “거지들에게는 당장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역보다 노동으로서 돈을 벌수있는 생존 공간이 필요하다.” 며 “구걸을 위해 매우 열정적인 눈물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이 ‘예술인’들에게는 어떠한 동정도 필요치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7월에는 한 호주 관광객이 베이징역에서 거지에게 쫓기다 기절한 일이 발생해 올림픽을 앞두고 도심 구걸행위가 중국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5) 제주시 추자면 횡간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5) 제주시 추자면 횡간도

    섬의 모습이 마치 비껴서 길게 누워 있다 해서 ‘빗갱이’라고도 한다. 제주도 북쪽 끝머리에 위치한 횡간도(橫干島). 육지와 제주의 중간 거점이며 동서로 길게 뻗어 추자도로 불어대는 엄동설한의 북풍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한단다. 목포에서 하루 한번 오가는 쾌속선을 탔다. 뱃길 곳곳에 들쑥날쑥 무인도가 나타난다. 하지만 자욱한 물안개 탓에 무려 38개나 된다는 무인도의 경관을 제대로 볼 수 없어 안타까웠다. 추자도 선착장을 거쳐 행정선으로 횡간도에 도착하자 배에서 사귄 전옥분(78) 할머니가 마을까지 동행을 하겠단다. “본래 무인도였던 이 섬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는 한 200년 됐지라.” 할머니는 섬의 유래를 꽤 상세히 알고 있었다. ●달성서씨 가문 200년전 개척 조선시대 철종 때 달성서씨(達城徐氏)가 들어와 정착한 것이 시초란다. 마을까지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고 바위뿐이어서 행정선에 실려온 생필품을 운반하기 위한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마을 집들은 대부분 키보다 높은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바람이 심한 섬에서 바람막이로 만든 것인데 구불구불 이어진 것이 마치 영화 ‘천국의 아이들’에서 애들이 뛰어 다녔던 골목길을 연상시킨다. 담장에 붙어서 소담한 생명의 미소를 함께 나누는 담쟁이넝쿨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을 지나서자 마을에 하나뿐인 공동 우물가에 동네 아낙들이 모여서 수다를 떨고 있다. 주민이라야 고작 15명뿐인 마을에서 식수로 쓰는 우물이다. 하늘의 허락을 얻어야 비로소 생명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던가. 주민들에겐 고맙다 못해 함부로 훼손하기 힘든 영물임에 틀림없다. 척박한 섬에서 물은 생명줄과도 같다. 생명줄을 타고 올라오는 두레박은 아낙들의 수다를 함께 퍼담는 듯 연방 곤두박질을 한다. 내친 김에 정상까지 가보기로 했다. 대문도 문패도 없는 집들을 지나 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올랐다. 여기서 나고 자랐다는 김금순(77) 할머니. “예전에 학교 자리였구먼유.” ‘추자국민학교 횡간분교’라는 녹슨 입간판이 폐건물에 걸려 있다. “우리 아그들도 모두 여서 배웠당깨.” 한때는 30명이 넘는 학생들로 북쩍거리고 교사도 3명이나 있었단다. ●이웃 추자도는 ‘닭´, 횡간도는 ‘지네´ 서너평은 됨 직한 교실엔 아직도 몇 개의 책걸상이 남아 있다. 양호실로 쓰였을 작은 방엔 반창고와 약병, 체온계가 아직 그대로 놓여 있다. 정상에서 거침없이 내려다 보이는 아득한 바다. 가늠하기 어려운 거리를 재다 보니 수평선 멀리 제주의 관문인 추자항이 아물거린다. 풍수지리학상 횡간도는 ‘지네’이고 추자도는 ‘닭’으로 비유된단다. 그런 연유로 두 마을 사람들끼리 혼인을 하면 여자가 청상과부가 된다는 속설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섬은 행정구역이 전라도와 제주도로 몇 번씩 바뀌었다. 그래서인지 사투리와 풍습은 전라도와 흡사하다. 농사도 지을 수 없는 고령의 노인만 살아서인지 눈에 띄는 밭은 모두 버려져 있다. 황돔, 흑돔, 농어 등 어종이 풍부하여 연간 100여명의 낚시객이 횡간마을을 찾아온다. 배라곤 보트 2척밖에 없어서 주민들은 먼 바다까지는 나갈 엄두를 못낸다. 근해에서 잡고기와 해조류 등을 채취하는 것이 유일한 수입원이다. ●50년 장기집권(?) 이강설 이장 적막한 섬에 어둠이 밀려온다. 석양 속에서 아직도 물질을 하고 있는 해녀. 섬에서 맞이하는 초저녁 밤은 퍽이나 낭만적이다. 하루 몇 시간 발전기를 돌려 시간제로 불을 밝히는 탓에 적막하지만 멀리 고깃배들의 불빛과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감상하는 것은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체험이다. 모깃불을 피우며 야참을 내오는 이강설(72)씨는 이장일을 50년 동안 했단다. “제주 사는 아들놈이 모시고 살탱게 섬에서 나오라고 하지유.” 자식들의 권유에도 아랑곳 않고 부인과 둘만이 섬집을 지키는 이유가 있다. “부모님 산소도 돌봐야 허고….” 200년 동안 섬사람들은 평화와 생명의 고귀함을 품고 느끼며 살아 왔다. 횡간도 사람들이 지켜온 느린 시간은 이제 더 이상 ‘과거’가 아니다. 빠름에 지치고 공해에 찌든 사람들이 꿈꾸는 ‘미래’다. 사람 냄새가 그리운 절해고도(絶海孤島)이지만 인간의 여유만큼은 풍족하다. 인심 좋은 할아버지 얼굴에 배어 있는 넉넉한 웃음. 갓 잡은 소라와 함께 건네주는 막걸리 한잔. 고향의 향기가 스며나온다. 글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국악]

    ■ 영원한 춘향 안숙선 28일 오후 7시 KBS홀. 명창 안숙선의 소리 50주년 기념공연.(02)781-3864.■ 성창순 명창의 춘향가 8월11일 오후 8시 국립극장 하늘극장.4시간30분간 진행되는 춘향가의 완창판소리.2만원.(02)2280-4115.■ 풍류-서울사투리 12월15일까지 금·토 오후 8시 소리재·쇳대박물관·김영사 후원 등. 서울대 출신 국악인들의 모임 ‘고물(www.gomool.org)’이 8회 연주회를 통해 선비들의 풍류방 재현. 무료.(011)9545-4543.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0년 맞은 국민코미디언 백남봉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데뷔 40년 맞은 국민코미디언 백남봉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소 운동가’였다. 생전에 자신의 산장 입구에 ‘빙그레 벙그레’라는 간판을 내걸고 살았다. 전국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빙그레 벙그레’라는 글귀를 써 붙이고 미소운동에 모두 동참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갓난아이의 방그레’‘젊은이의 빙그레’‘늙은이의 벙그레’를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본연의 웃음이라고 했다. 화기(和氣)와 온기(溫氣)가 민족의 번창을 이끌어 준다고 주창했던 것이다. 문득 ‘일소일소 일노일노(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화내면 한번 늙어진다는 뜻이다. 웃는 문으로 온갖 복이 들어온다는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도 새삼스럽다. 웃음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피를 젊게 하는 묘약이요, 국가의 건강동맥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가장 한국적인 웃음은 어떤 것일까. 얼른 답이 안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웃음이 답이 아닐까 여겨진다. 우리의 문화유산 속에 담겨진 대부분의 해학과 풍자가 서민의 희노애락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 답을 온몸으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본명 박두식(朴斗植), 나이 마흔아홉(정신 연령), 고향 전국팔도, 특기 사투리와 성대모사, 자연의 소리 흉내내기…. 정말이지 온갖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람이 없는 사람이다. 가히 천의 얼굴을 가진 원맨쇼의 달인이라고 할 만하다. ●한국적 원맨쇼의 달인 영원한 청춘이자 국민 코미디언 백남봉씨. 전국 어디를 가나 구수한 팔도 사투리를 간이 맞게 버무려가며 거침없는 입담으로 가장 한국적 웃음을 선사한다. 지금도 여전히 동네 노인들의 칠순잔치나 전국 고향마을을 방문해 시골 노인들의 마음에 서린 주름까지도 쫙쫙 펴준다. 어디 이뿐인가. 그럴 때마다 못해도 텔레비전 한 대쯤 선물로 가져가는 선행도 잊지 않아 귀여움(?)까지 받는다. 최근 들어 그에게 몇 가지 변화가 생겼다. 지난해 ‘청학동 훈장나리’라는 앨범을 내고는 가수 활동으로 더욱 바빠진 것이 하나이고, 매일 2∼3시간씩 자전거 타기를 즐겨 건강 나이를 12살 아래로 쭉∼ 내린 것도 변화라면 변화이다. 여기에 매주 휴일 조기축구회에 나가 공격수로 뛸 만큼 발재간이 좋아 ‘백 펠레’라는 별명도 새로 얻었다. 이른바 만능 코미디언에다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꼬리표까지 달아 그야말로 새로운 인생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올해로 그는 무대 인생 40년을 맞는다.1967년 서울의 물랑루즈 무대에서 희극인생을 시작했다. 이와 관련된 일화 한 토막. 당시 백남봉이 ‘새나라쇼단’에 막 입단해 활동하던 시기였다. 쇼단에는 선배 남보원도 있었다. 하루는 ‘남보원 쇼무대’가 열렸다. 남보원은 이미 인기 반열에 올라 있을 때였다.‘초짜’였던 백남봉이 어느 날 얼떨결에 그 무대에 찬조 출연을 하게 됐다. 남보원에 앞서 무대에 오른 그는 평소 준비한 ‘김치 팔도사투리’로 좌중을 실컷 웃기고 내려 왔다. 이 사실을 모르고 무대에 오른 남보원이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라는 시조를 팔도사투리로 풀어내며 용을 썼지만 객석의 반응이 썰렁했다. 무대에서 내려와서야 내막을 알게 된 남보원이 백남봉을 불렀다. “야, 너 이리와 봐, 사투리했어?” “예.” “그럼, 얘길 해야지, 쪼다됐잖아.”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 이후 둘은 형·동생 사이로 발전했으며, 오늘날까지 원맨쇼의 영원한 라이벌로 정겨운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당뇨 낫게 해 준 자전거는 나의 보약 최근 서울 잠실 선착장 인근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백남봉씨를 만났다. 흰색 헬멧과 까만 스포츠안경 차림이었다. 몸에 쫙 달라붙는 하늘색 슈트 차림이어서 강건한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다.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았다. 카메라 기자를 보더니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며 잠시 포즈를 취한다.“타고 온 자전거가 값 좀 나가 보인다.”고 하자 “체형에 맞도록, 일일이 맞춤형으로 만들다 보니 돈이 좀 들었다.”며 “가보 1호의 보약 자전거”라고 너스레를 떤다. “자전거는 술 깨는 데도 좋고, 소화가 잘 안 되어도 자전거 몇 바퀴 돌리면 되고…. 집이 구의동인데 방송이 있는 날은 남산(교통방송)까지 자전거로 다녀요. 나이는 적지 마쇼. 적어도 40대 후반의 체력과도 안 바꿀 자신 있으까. 며칠 전 간기능 검사를 했는데 의사 양반이 나보고 30대라고 합디다.” 이때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10여명의 아줌마들이 백씨를 알아보고는 멈춰서서 악수를 청한다. 백씨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끼리는 언제, 어디서든 항상 웃으며 인사해 사교성까지 좋아진다.”며 넉넉한 웃음으로 기념 촬영까지 했다. 아줌마들은 “오빠, 고마워요. 건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남기고 떠난다. 그의 자전거 경력은 올해로 13년째. 당뇨가 찾아와 시작한 게 어느 새 지독한 마니아로 발전했다. 국가 대표급 선수들과 산악자전거 경기를 하다가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길만 보고 있어도 발이 절로 돌아갈 정도. 그동안 수도권 주변의 산이란 산은 죄다 섭렵했고, 바다 건너 제주 일주까지 했다. 외국에 다녀올 때 공항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귀가하는 경우도 여러 번이다. 요즘 들어서는 집에서 나서 워커힐~덕소~팔당대교~퇴촌~남한산성을 돌아오는 코스(80㎞)를 자주 애용한다. “저는 축복받은 인생입니다. 나이 들면서 더 바빠요. 방송 진행(‘KBS1TV-언제나 청춘’,‘교통방송-두 시가 좋아’ 등)도 그렇지만 전국 각지에서 절 찾는 사람이 많거든요. 비결요? 목소리 처지지 않고, 몸매 좋고, 주둥이 잘 나불거리니….” ●주둥이 나불거릴 힘 있으니 복 받았죠 주변에서 가끔 보톡스 맞았느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그는 “100% 자연산이다. 아무리 보세가 좋아도 원단만 못하다. 부모가 물려준 오리지널이 최고지.”라고 말하며 파안대소했다. 그는 전북 진안에서 태어났지만 부친 따라 곧바로 평안도로 건너가 진남포에서 자라다가 해방이 되면서 서울로 월남했다.6·25때 피난길에 나섰다 한강 인근에서 아버지가 기총소사를 받아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아원에서 지냈다. 이후 껌팔이, 공장 직공, 구두닦이, 아이스케이크 장사, 장돌뱅이 등 온갖 밑바닥 삶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이놈, 저놈한테 얻어맞을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설움을 가슴으로 삼키며 참는 법을 배웠고,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남을 웃기기 시작했다. 팔도 사투리와 장타령, 사설 등도 이때 익힌 그의 소중한 레퍼토리이다. 그가 스물여섯 살이 나던 해였다. 서울 어느 거리에서 기가 막히게 남을 웃기는 그의 모습을 눈여겨본 한 정계 인사가 그를 당시 잘나가던 코미디언 이종철씨에게 소개해 줬다. 오디션을 보게 된 셈. 즉석에서 서영춘씨를 흉내내고, 창과 사투리를 쏟아놓았다. 결국 대선배로부터 ‘연예인 자격증’을 받아 쥔 그는 이때부터 쇼단 등을 찾아다니며 선후배 연예인들과 얼굴을 익혔다. 그후 서른 세살 때는 라디오 공개방송에 나가 스스로 개발한 ‘김장마라톤’을 선보였다. 김장재료인 마늘, 양파, 고춧가루 등이 모여서 마라톤을 벌이는 모습을 중계방송 형식으로 풀어내는 것. 인기 폭발이었다. 이후 출연 요청이 쇄도했고 ‘백남봉’이라는 이름 석자가 비로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런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국민 코미디언 백남봉이 탄생했던 것이다. “지구가 돌듯 뭐든 돌려야 합니다. 부부도 실은 모난 돌끼리 만나 서로 둥글게 돌리며 사는 것 아닙니까. 선풍기도 돌려야 시원하잖아요. 나이 생각하지 말고 자꾸 돌려야 건강해집니다. 저는 죽어도 안 죽을 테니, 여러분들도 죽어도 죽지 마세요. 하하하.”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9년 전북 진안 출생. ▲46년 평남 진남포(남포)에서 월남. ▲67년 물랑루즈쇼단 데뷔. ▲69년 TBC라디오 장기자랑 첫출연. ▲70년 영화 ‘팔도사나이’출연. ▲89년 KBS-1TV ‘전국일주’ 진행 ▲2000년 한국연예인협회 주관 대한민국연예예술상 대통령표창. ▲06년 ‘청학동 훈장나리’ 첫앨범 발표. ▲07년 현재 KBS-1TV 일요일 저녁 6시10분 ‘언제나 청춘’과 매주 화요일 교통방송 ‘두 시가 좋아’ 프로그램 진행.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전통무용음악 집대성하는 대금산조 명인 이생강 선생

    신적(神笛)이다.‘귀신을 일으키고 거친 바다를 잠재우는 신라의 소리’라고 했다. ‘만파식적’ 설화에 등장한다. 제31대 신라 신문왕(神文王)은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동해안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추모했다. 그러자 죽어서 해룡(海龍)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이 합심, 용을 시켜 동해의 한 섬에 대나무를 보냈다. 그런데 이 대나무는 낮이면 갈라져 둘이 되고, 밤이면 하나가 됐다. 왕은 이 기이한 소식을 듣고 하루는 현장에 나갔다. 이때 나타난 용에게 왕이 대나무의 이치를 물었다. 용은 “한 손으로는 어느 소리도 낼 수 없지만 두 손이 마주치면 능히 소리가 나는지라, 이 성음(聲音)의 이치로 천하의 보배가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왕은 곧 이 대나무를 베어서 피리를 만들어 불었더니, 나라의 모든 걱정과 근심이 해결되었다고 한다. 아울러 이 피리를 국보로 삼고는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라고 이름지었다. 삼국통일 이후, 흩어져 있던 유민들의 민심을 통합해 나라의 안정을 꾀하려 했다는 전설이다. 이처럼 대나무는 3죽(竹)이라고 해서 대금·중금·소금 등 우리 고유의 전통악기의 재료로 사용돼 왔다.‘笛(적)’은 가로 부는 관악기를 가리킨다. 시인 복효근의 ‘어느 대나무의 고백’의 내용도 눈길을 끈다.‘∼내게서 대쪽같은 선비의 풍모를 읽고 가지만/내몸 가득 칸칸이 들어찬 어둠속에/터질듯한 공허와 회의를 아는가/∼흰눈 속에서도 하늘 찌르는 기개를 운운하지만/바람이라도 거세게 불라치면/허리뼈가 뻐개지도록 휜다 흔들린다/제 때에 이냥 베어져서/태평성대 향기로운 대피리가 되거나∼/흉흉하게 들려오는 세상의 바람소리에/어둠속에서 먼저 떨었던 것이다∼’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 대금산조의 최고 명인 죽향(竹鄕) 이생강(70·중요무형문화재45호) 선생. 다섯살 때부터 소금(小)을 배웠으니 사실상 올해로 음악인생 65년째를 맞은 셈. 그 세월만큼이나 대나무 악기에 관한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는다. 지난 4월5일 북악산 개방행사때에는 노무현 대통령 등이 참석한 자리에서 감동적인 대금산조를 연주,39년 동안 잠자던 북악산의 정기를 새삼 일깨우기도 했다. 그는 얼마전 우리 음악사의 중요한 획을 하나 더 그었다.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을 한꺼번에 내놨다. 본인의 평생 숙원사업이기도 하지만 이 전집에는 산조춤, 화관무, 부채춤, 살풀이, 승무, 농악 등이 총망라돼 있어 우리나라 전통 무용음악의 100년사를 담은 ‘대백과사전’이라는 점에서 실로 의미가 크다. 아울러 이번을 시작으로 나머지 350장(최종목표 400장)의 음반을 더 내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늦어도 2∼3년 안에 완결짓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지난주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 위치한 연구실(죽향대금산조 원형보존회)에서 그를 만났다. 괄괄한 목소리에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내뱉으면서 “우리나라의 난다긴다는 예인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인데 그곳에 가서 대금을 배울 때 경상도 사투리를 함부로 쓸 수 있었겠느냐.”고 하면서 누가 말을 시키면 “그저 대금을 입에 대고 소리만 냈다.”며 웃는다. 얼굴이 50대로 젊어 보인다고 하자 “대금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복식호흡을 하게 된다.”며 나름대로의 비결을 귀띔했다. 20여평 남짓한 연구실 벽면에는 온갖 상장이며 지나온 발자취의 업적이 쭉 내걸려 있었다. 아들 이광훈이라는 이름도 눈에 들어왔다. 중앙대 국악과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자신의 뒤를 잇고 있다면서 “저기봐, 대통령상도 받았어, 아주 잘해.”라며 잠시 자랑끼를 발동한다. 친손자와 외손자들도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금과 가야금 등에 소질이 많다고 부연했다. “11세 되던 1947년, 전주에 계신 스승(한주환)을 만나면서 대금을 본격적으로 배웠지요. 판소리든 민요든 한국의 전통공연은 음악과 무용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제시대 때 우리 문화말살 정책으로 우리 것이 중단되고, 또 6·25때 16개국이 참전하면서 서양음악이 거칠게 들어왔어요. 그래서 국악공부에 더욱 오기가 생겼습니다.” 6·25로 인해 부산으로 피란온 당대 국악의 대가들과 자주 접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어떨 때는 하루 동안 열심히 뛰어 일곱분의 스승에게 찾아가 ‘한수 한수’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일취월장, 자신감을 얻은 그는 서양의 7음계를 우리 5음계에 접목시켜가면서 ‘대니 보이’‘엘 콘도 파사’ 등의 팝송과 재즈를 넘나들며 대금의 음역을 계속 넓혀나갔다. 그랬더니 얼마후에는 악보도 없이 ‘눈물젖은 두만강’‘목포의 눈물’ 등 우리의 전통가요까지 자유자재로 불 수 있게 됐다. 결국 그는 다섯살 때 선친에게 단소와 피리를 배우는 것을 시작해 11세 때 한주환 선생을 비롯, 퉁소의 전추산, 피리의 오진석·임동석, 태평소시나위의 김문일 등 여러 스승에게 배우면서 스스로 ‘이생강류’라는 독특한 음악세계, 즉 전통과 현대를 크로스오버하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민속악예술대학 설립이 숙원사업 그의 명성이 세계 무대에 알려진 것은 1960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이때 단원의 악사로 참가했으나 춘향역을 맡은 주연 무용수 안나영씨가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혼자 13분 동안 최초의 대금독주로 시간을 때운 것. 이때 객석에서는 동양적 음향에 반했다며 많은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던 1968년 멕시코올림픽 참가공연을 계기로 여기저기에서 초청을 받아 40여개국 순회공연까지 가졌다. “군대생활요? 27사단 정훈부 군예대에서 돌아가신 코미디언 이주일씨와 같이 근무했어요. 나중에는 피리명인 정재국씨와 함께 근무했는데 서로 ‘정악’(피리)과 ‘민속악’(대금산조)을 가르쳐주며 생활했습니다. 무형문화재는 정씨가 먼저 됐지요.” 나이 70을 넘기면서 그에겐 할 일이 더욱 많아졌다. 하루속히 자신을 뛰어넘는 제자를 길러내는 것(서울 국악예고와 중앙대 국악대 강의)이고 각종 공연활동과 음악강연을 틈틈이 하면서도 ‘춤의 소리’ 백과사전을 마무리짓는 일이다. 이 사업이야말로 먼저 가신 스승에게 보답하는 길이요, 후배들에게는 길잡이 역할을 해주는 사명감이다. 오래전부터 단소와 단소교본을 만들어 왔는데 ‘국민1인 1국악기 갖기’운동에도 앞장설 생각이다. 또한 전통 가무악을 전수할 민속악예술대학을 설립하는 것도 숙원사업. 궁중음악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교육되고 있으나 민속음악은 그러지 못한 형편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화합번영과 자긍심을 위해서라도 민속악의 대금소리는 계속 울려퍼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거듭 강조한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7년 일본 도쿄 출생. 해방후 부산 정착.▲42∼60년 이덕희·지영희·전추산·오진석·방태진·한주환 등에게 피리, 단소, 퉁소, 소금, 태평소, 대금 등을 익힘.▲59년 임춘앵 여성국극단에서 음악반주.▲60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회 세계민속예술제 참가공연.▲77년 첫 대금산조 개인 발표회. 이후 16차례 개인발표회.▲88년 서울 올림픽폐회식 때 대금독주.▲9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보유자 지정. ▲2005년 음악인생 60주년 기념공연(세종문화회관). ▲07년 6월 ‘춤의 소리’ 전집음반 50장 제작. 현재 죽향대금산조원형보존회를 운영, 한국국악협회 부이사장. # 수상경력 전주 대사습대회 장원(78년), 신라문화재 대통령상(84년),KBS국악대상(84년), 한국국악대상(02년), 서울시 자랑스런 시민상(94년), 대한민국 국민상(97년) # 주요 작품 한국 전통무용음악을 집대성한 ‘춤의 소리’(07년, 신나라뮤직) 전집음반 50장 외에 400여 종의 앨범제작.
  • [씨줄날줄] 미야자와 기이치/황성기 논설위원

    총리를 지낸 미야자와 기이치는 일본 정치인답지 않게 영어에 능통했다.“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웠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미야자와 총리와 정상회담을 가진 뒤 그의 발음에 대해 “정통 영어다.”라며 극찬했다. 당시 미국 언론들은 “남부 사투리가 섞인 클린턴보다 미야자와의 영어가 훨씬 낫다.”고 치켜세웠다. 도쿄대학 법학부 재학 중 갔던 미국에서 자신의 영어가 회화에 쓸모없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영어 공부에 매달렸다. 특히 미군정하 대장성(현 재무성)에서 미 당국과의 연락업무를 하면서 영어실력을 부쩍 키웠다고 한다. 미야자와는 대장성 시절 조사차 다녔던 시골을 몇십년이 지난 뒤 찾아서도 골목길까지 술술 댈 만큼 머리가 좋았다. 과시욕 강한 수재들이 그렇듯 학벌에 관한 집착이 유난했다. 후배 정치인이나 신문기자들에게 출신학교를 묻고는 도쿄대가 아니면 노골적으로 바보 취급을 하곤 했다. 정적이던 다케시타 노보루와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도쿄대 출신으로 여기고는 “몇기생이십니까?”라고 물었는데 다케시타가 “와세다대학입니다.”라고 하자 코웃음쳤다고 한다. 게다가 “당신때 와세다대 상학부는 무시험이었다죠?”라고 응수해 다케시타를 격분케 했다. 그런 미야자와의 자식들은 도쿄대와 인연이 없어 아들은 와세다대, 딸은 게이오대를 졸업했다. 총리 자리에도 다케시타보다 4년 뒤에나 올랐다. 87세로 그제 타계한 미야자와는 몇 안 남은 일본 현대사의 산증인이었다. 이케다 하야토 내각에서 경제기획청장관으로 발탁된 뒤 통산상, 외상, 대장상을 거치며 일본의 경제부흥을 이끈 정치인으로 기록된다. 총리 취임후 첫 해외방문지로 1992년 한국을 찾은 그는 국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하는 연설을 했다. 침략을 ‘진출’로 표현한 검정교과서가 외교마찰을 빚은 82년 관방장관 시절 교과서 수정을 국제공약으로 내건 ‘미야자와 담화’를 발표했다. 일본의 침략전쟁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에서 일본 헌법에는 손대지 말자는 호헌파였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앞으로 일본에서 자유라는 것이 없어지지 않도록 노력해 달라. 전쟁에 진 세대로서 가장 걱정하는 일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김인영 작가 “현실풍자 작품 계속 쓰고 싶어요”

    김인영 작가 “현실풍자 작품 계속 쓰고 싶어요”

    ▶만화적인 설정이나 무협소설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것 같다. 어투도 문어체를 사용할 때가 많은데 의도한 것인가. -대구가 무협소설 작가로 나오지 않나. 그런 특징을 코믹하게 드러내기 위해 그런 독특한 대사체를 썼다. 원작은 모두 사투리를 쓰는 것으로 돼 있다. ▶청년실업이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이다. 현재 백수인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것인지. -꼭 백수가 아니더라도 힘들어 주저앉고 싶고 능력없다 자책하는 사람들에게 ‘자기자신을 잘 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를 믿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희망을 얘기하고 싶었다. ▶고동선 감독과 작품에 대해 의논은 자주 하나. -그렇다. 또 본격적으로 촬영 들어가기 전에 연출부, 배우 등이 다같이 MT처럼 모여서 밤새도록 얘기를 나눴었다. 배역에 대해 서로 묻기도 하고 직접 연기도 해보면서 의견을 많이 나눴다. 그때는 고동선 PD가 제일 연기를 잘 했다.(웃음) ▶시청률이 높지는 않지만 댓글이나 시청자게시판을 보면 인기가 대단한 것 같다. -변함없이 최선을 다하는 배우와 스태프 덕분이다. 시청률이 잘 안 나오면 보통 배우들이 투덜거리거나 나태해지곤 하는데, 우리 팀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하나, 지현우의 연기에 만족하는지. -물론 대만족이다. 이하나씨와 지현우씨는 참 심지가 곧고 바른 사람이다. 이 분들과 통화할 때마다 ‘참 인품이 훌륭한 배우구나.’라고 생각한다. ▶극중에 보면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 대구가 괴로워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혹시 대본 쓰다가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나. -드라마를 안할 때는 여행, 공연, 연주회 등을 닥치는 대로 가보는 편이다. 낯선 사람에게 말도 걸어보고 여러 사람에게서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드라마를 하고 있을 때는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노트북에서 멀리 떨어져서 산책을 하며 기분전환을 한다. ▶1996년도에 MBC ‘짝’으로 데뷔한 뒤 그동안 ‘진실’,‘비밀남녀’등 많은 작품들을 써왔는데,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극성이 강하고 현실풍자가 들어가면서도 코믹한 작품들을 계속 써보고 싶다. 또 강하고 독특한 여성 캐릭터가 계속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를 쓰고 싶다. ▶‘메리대구공방전’에서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는 무엇이었나. -네티즌들도 명대사로 많이 꼽았던 것인데,“스스로의 한계와 싸우는 건 에베레스트 등반대만 하는 일이 아니야. 나도 매일 주저앉고 싶은 나 자신과 싸우며 산다고.”라는 대사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20&30] 사투리, 그들의 ‘이중생활’

    [20&30] 사투리, 그들의 ‘이중생활’

    ‘니들이 사투리를 알어?’강원도,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사투리 등은 각종 드라마와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로 등장해 구수한 옛 정취를 풍겨낸다. 밋밋한 서울말보다는 거친 한마디 말이 더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나 코미디 프로그램 만큼 녹록지 않다. 현실에서는 사투리로 인해 부끄러워하고 좌절했던 경험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사투리로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서울 사투리’는 ‘표준어’지만 지방 사투리는 ‘비표준’이라고 불리는 현실속에서 사투리와 ‘사투’를 벌이며 살았고, 살아가는 ‘20&30’들의 속내를 들어봤다. ●놀림받기 일쑤… 피나는 서울말 연습 회사원 손모(27·여)씨는 대구에서 20여년을 살다가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심한 ‘사투리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사투리 스트레스는 여자들한테 더 심합니다. 촌스러워 보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간혹 사투리가 귀엽다는 사람도 있지만, 서울말 우아하게 쓰는 사람들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요.” 풋풋한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대생들의 관심사인 ‘미용’ 말고도 손씨는 ‘말투’까지 관리해야 했다.“친구들이 저랑 얘기할 때 제 말투를 흉내 내더라고요. 처음엔 따라 웃었는데, 계속 그러니까 나중엔 솔직히 짜증이 났어요. 그래서 말투를 고치기 시작했죠.” 회사원 송모(26)씨도 대학시절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 심한 전라도 사투리 때문에 촌스러워지는 자신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신입생 때였어요. 미팅을 나갔는데 친구들에게 ‘화장실 가야쓰것다.’고 했더니 배꼽을 잡고 웃는 거예요.‘나도 서울말 쓸 줄 안다.’고 외치면서 ‘화장실 가야것다.’고 말했더니 애들이 뒤로 쓰러지며 웃더군요.” 송씨는 이후 사투리를 쓰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열심히 서울말 연습을 했다. 지금은 오랜 친구가 아니면 다들 자신을 서울 사람으로 착각한다고 한다.“사투리에 얽힌 추억을 말하라면 며칠 밤도 모자랄 겁니다. 지금은 옛 친구를 만날 땐 전라도 말로, 대학 친구를 만날 때 서울말을 씁니다.2개 국어인 셈이죠.” 5년전 대구에서 올라온 전모(34)씨는 처음 두 달 정도는 자기도 모르게 위축돼 말을 제대로 못했다고 밝혔다.“내 말을 사람들이 자꾸 못 알아듣는다는 게 큰 스트레스였어요. 심지어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나를 쳐다본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죠.”서울말이 익숙해진 지금은 고향에 갈 때가 문제다. 언어습관에 관한 한 완벽한 ‘경계인’이 돼버린 것. “이제는 고향에 가면 사람들이 나를 쳐다봐요. 대구가 원체 보수적인 곳이고 외지 사람들이 별로 없거든요. 가끔 대구에 가는 게 싫어질 정도예요. 한번은 대구에 있는 식당에 갔더니 주인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고향 친구들도 내 말투가 간지럽다며 놀립니다.” ●사투리 속에 감춰진 편견과 선입견 회사원 김모(28·여)씨는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다. 그는 자신이 서울 사람들 앞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서울에 살면서 사투리를 쓴다는 건 촌스럽다, 순진하다, 멍청하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심어준다.”고 말한다. 경상도가 고향인 전모(34)씨와 그의 아내는 네 살 된 아들이 경상도 사투리를 배우지 않을까 싶어 아들 앞에서는 최대한 서울 말씨를 쓴다.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말투가 이상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으면 안 된다는 걱정 때문이다. 전씨는 “아들이 태어나서 두 살 때까지 대구에서 자랐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고 말했다. 사투리 속에는 편견과 선입견이 감춰져 있다. 과거 전라도 사람들은 “왜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악역은 전부 전라도 사람으로 나오느냐.”는 불만을 털어놓으며 지역 차별의 한 징표로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전라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될 즈음에 방영된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에서는 주인공의 어머니를 괴롭히는 악당이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장안의 화제가 됐을 정도다. 안진걸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은 평소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만 전화를 받을 때는 언제나 또박또박 서울말을 쓴다. 그는 “특히 항의전화가 왔을 때 사투리를 쓰면 ‘시민운동하고 데모하는 놈들은 전부 전라도 것들이지.’라는 황당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면서 “민감한 정치적 사안일 경우 지방 출신 시민운동가들은 말을 할때 굉장히 조심스러워 한다.”고 귀띔한다. ●독특한 말투는 취업 방해꾼? 20년을 대구에서 살았던 회사원 주모(26·여)씨는 학창시절 꿈꿔 왔던 아나운서도 포기하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말끝마다 배어나오는 경상도 억양이 화근이었다. 주씨에게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해야 하는 아나운서는 넘기 힘든 강이었다.“고등학교 방송반 활동을 했을 때에는 몰랐는데,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면서 방송국 활동을 하다 보니 서울말이 어렵다는 게 뼈저리게 느껴지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란 서울 모대학 졸업반 윤모(26)씨는 취업을 앞두고 고민이 많다.“면접 볼 때에는 깔끔한 서울 말씨를 써야지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잖아요. 아무리 고치려 해도 특유의 억양은 고치기 힘들더군요. 행여나 면접관들이 ‘저 사람은 말투하나 못 고쳐서 어디다 쓰나.’하고 생각할까 걱정입니다.” 서울에 처음 와서 친구들이 장난으로 촌스럽다 놀려대도 가볍게 웃어 넘겼지만, 취업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하니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얼마 전에는 존경하는 교수가 “요즘 취업 준비생들은 잘난 사람이 하도 많아서 조그만 약점이라도 눈에 띄면 감점요인이 된다.”면서 “사투리가 약점이 될 수 있으니 꼭 고쳐야 한다.”는 충고 아닌 충고를 하기도 했다. ●사투리? 뭐가 어때서! 사투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대학생 이모(27)씨는 주변에서 뭐라 하든 상관 않고 꿋꿋이 정통 부산 사투리를 쓴다. 친구들이 그만 고치라고 해도 개의치 않는다. 이씨는 학원 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항의 아닌 항의를 받았다고 말한다.“선생님은 왜 맨날 싸우는 말투에요?” “선생님 말 너무 빨라요.” 등 종종 학생들이 불만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이씨는 “원래 경상도 말이 이렇다. 이 기회에 경상도 말 한번 배워봐.”라고 당당하게 대답해준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만 당당하면 된다는 게 이씨 생각이다.“사투리도 똑같은 언어입니다. 단지 문화 차이 때문에 쓰는 언어가 다소 달랐을 뿐입니다. 부산이 수도였으면 부산 말이 표준어 아니겠습니까. 뭐 문제될 게 있나요.” 강국진 이경원기자 betulo@seoul.co.kr ■ 오해를 부르는 사투리 “‘빠구리’치러갔는데요….” 경상도가 고향인 장모(38)씨는 10여년 전 광주에서 대학 시간강사를 맡았다가 당황스러웠던 경험을 밝히며 활짝 웃었다. 장씨는 “출석을 부르는데 ‘아무개 학생 안왔나?’하고 물으면 하나같이 ‘빠구리치러 갔다.’는 거예요. 내가 알기로는 ‘성교(性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알고 있는데 한두명도 아니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싶기도 하고 내가 경상도 사람이라고 놀리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 기분이 그렇게 나쁠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 그는 전라도 목포가 고향인 친구로부터 “학생들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너는 수업 빼먹고 빠구리쳐본 적 한 번도 없냐? 나도 대학 다닐 때 빠구리 꽤나 쳤는데.”라는 말을 듣고 전라도 사투리에서 ‘빠구리’는 ‘학교나 직장을 몰래 빠져나온다.’ 다시 말해 ‘땡땡이’를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이제는 전라도에서도 그 말을 쓰지 않는다. 전라도가 고향인 회사원 강모(33)씨는 중학교 때 사투리 때문에 오해를 받아 봉변을 당할 뻔한 적이 있다. 서울로 전학온 그는 갑자기 선배로부터 ‘버릇이 없다.’며 학교 뒤편으로 끌려 갔다. 강씨는 한참이 지나서야 그 선배가 왜 그렇게 노발대발했는지 알았다. 강씨는 부모나 가까운 친척, 형이나 누나들에게 무언가를 물어볼 때 “누나, 밥 먹었능가.” “아버지, 진지 잡능가.” 등의 식으로 물어봤는데 그 선배는 그것을 자신에게 반말을 한 것으로 오해를 한 것이다. 고등학교까지 서울에서 다니다가 경북지역 대학에 입학한 소모(25)씨는 경상도 사투리를 오해해 밤새 술을 마시게 된 적이 있다.“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과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하는데 피곤하고 하숙집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같은 하숙집을 쓰는 선배에게 그만 가보겠다고 했지요.” 그 선배는 소씨에게 “그래. 들어가자.”라고 답했다. 소씨는 같이 하숙집으로 돌아가자는 말로 알아듣고 선배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 선배는 일어날 기미가 없어 결국 새벽까지 술을 마셔야만 했다. 소씨는 “그 선배가 말한 ‘들어가자.’는 나에게 ‘그래. 너 들어가라.’는 뜻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면서 “그 선배 입장에서는 ‘들어가라.’고 계속 말했는데도 들어가진 않고 ‘들어가겠다.’는 말만 계속하는 내가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인터넷 사투리 사전도 있다 말의 철자, 발음, 의미를 전달하는 책 ‘사전’에 사투리만 모아놓은 사투리 사전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표적인 것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픈 백과’라 불리는 인터넷 사투리 사전이다. 기존의 사전과의 차이라면 전문가에 의해 가나다 순으로 체계적으로 집필돼 있는 것이 아니라 네티즌들의 ‘업데이트’에 의해 이뤄지지고 있는데, 상세한 풀이를 담고 있다. 네티즌들은 생활 속 사투리를 직접 올리고, 공감 정도에 따라 평점을 매긴다. 인터넷 사투리 사전에는 1만 3400여건의 사투리가 올라와 있다. 그렇다면 수많은 사투리 가운데 가장 높은 평점을 받은 영예(?)의 1위는 뭘까. 바로 평점 134점을 받은 ‘천지빽가리’다. 이 말은 무엇이 정말 많을 때 과장되게 표현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천지’와 벽성의 준말인 ‘벽’, 곡식과 땔감을 쌓은 더미인 ‘가리’가 합쳐 ‘하늘과 땅 사이에 곡식 더미가 성처럼 쌓여 있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어원은 분명하지 않다. 2위는 평점 105점을 얻은 ‘신찬하다.’.‘품질이나 상태가 좋지 않다.’를 의미하는 전라도 사투리로 표준어인 ‘시원찮다.’와 발음이 유사하다.‘총각무’를 일컫는 강원도 사투리 ‘꼬달무’가 평점 92점으로 3위에 올랐다. 이외에도 ‘오두방종’의 경상도 사투리인 ‘녹띠방정’,‘말해줘도 모른다.’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 ‘고랑몰라.’,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를 일컫는 전라도 사투리 ‘떡애기’ 등이 순위에 올랐다.‘쭉담’,‘깻대’,‘갈부랭이’,‘왁왁 이우다.’등도 인기 목록이다. 네티즌들은 이러한 의견에 리플을 달며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이 말 우리 할머니한테 들어봤다.’,‘정말 재미있다.’는 공감어린 리플에서 ‘그것 외에도 다른 뜻으로 쓰인다.’,‘꼭 그런 의미는 아니다.’는 보충 설명까지 반응은 다양하다. 일부 네티즌들은 이해가 쉽도록 예문을 달아 놓기도 한다. 네티즌들은 사투리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며 우리나라 각 지방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가고 있다고 말한다. 인터넷 사투리 사전을 자주 이용하는 김모(26)씨는 “처음에는 재미로 이용하기 시작했지만, 다양한 지역의 사투리를 보면서 문화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금발’ 사내의 가슴아픈 한국사랑

    “북한에서는 저에게 CIA가 아니냐고 하고, 남한에서는 빨갱이라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도대체 왜 한국인들하고 사느냐고 묻지요. 북한에서는 핵무기 만들고, 남한에서는 밤낮 반미 시위를 하는데 말이죠. 그럴 때는 무인도에 가고 싶었습니다.” EBS ‘시대의 초상’은 26일 오후 10시50분 ‘당신들의 미국, 나의 한국-인요한’을 방송한다.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전라도 순천 촌놈’ 바로 그 사람이다. 인요한은 세브란스 병원 외국인 진료소장이다. 그를 처음 만난 사람들은 두번 놀란다.190cm의 큰 키와 육중한 몸집에 놀라고, 푸른 눈에 금발의 사내가 내뱉는 질펀한 전라도 사투리에 한번 더 놀란다. 그의 본래 이름은 린튼 존. 전라도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란 미국인이다. 1980년 5월26일. 광주에서는 내외신 기자와 광주 시민군 사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자 회견이 열렸다. 당시 연세대 의대 1학년생였던 인요한은 통역을 맡았다. 이날 광주에서 보낸 단 하루 때문에 주한미국대사관은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통지했다. 떠나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인요한은 한국에 남아 2년 동안이나 중앙정보부의 감시를 받았다. 그는 외국인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문무대’에서 대학생 병영훈련도 받는 기록도 세웠다. 1997년, 인요한은 북한 곳곳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났다. 인요한의 가족이 설립한 북한 지원 단체인 ‘유진벨 재단’에 북한이 공식적으로 결핵 퇴치 사업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인요한은 외부인에게 좀처럼 개방되지 않는 북한에서 의료 지원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인요한이 만난 북한은 어떤 곳일까? 아침에 두만강을 보고, 점심때 백두산 보고, 저녁에 압록강을 보았던 인요한의 북한 이야기도 펼쳐진다.‘한국 말 잘하는 백인’으로만 취급하는 사람들 속에서 인요한이 겪었던 가슴 아픈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9일 TV 하이라이트]

    ●사랑해도 괜찮아(KBS2 오전 9시) 지인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마루치와 깜빡 잠이 들어버리고, 아침에 살금살금 나오려다가 철웅과 마주친다. 시내와 함께 잔뜩 술을 마신 후 모텔에서 깨어난 하웅은 눈 앞에 있는 시내를 보고는 깜짝 놀란다. 한편, 석훈은 철웅과 함께 있던 지인을 본 후 꼬리를 무는 궁금증에 양이에게 찾아간다.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이슬람교 영향으로 억압을 받아온 파키스탄 여성들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신세대 여성들의 요구에 맞춰 체육관이나 의류매장, 미용실 등이 전국에 들어서고 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과 취업기회를 누리고 있다.TV나 인터넷의 영향으로 서양 여성 못지않게 스타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진실게임(SBS 오후 8시55분) ‘팔도사투리 총출동!진짜 지방 사람을 찾아라!’. 대한민국 전국 팔도를 사투리 하나로 평정한 엄청난 사연의 주인공들이 몰려온다. 유창한 본토식 사투리 구사와 걸쭉한 입담 뒤에 숨겨진 쇼킹한 비밀. 전국 최강 팔도명물들의 발칙한 진실공방이 펼쳐진다. 진짜 사연의 주인공은 단 두 사람. 이들을 찾아본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말자는 세영이 태욱과 지우를 말리지는 못할 망정 집에 와서 김치나 담가주고 있다며 비난한다. 세영은 안하무인격인 말자의 태도에 어이가 없다. 말자는 태욱을 강제로 끌고 나가고, 지우는 태욱이 돌아올까봐 오피스텔을 지키겠다고 한다. 서경은 진아를 찾아 곧 미국으로 가니 잊지 말아달라고 한다. ●하늘만큼 땅만큼(KBS1 오후 8시25분) 은주의 입덧이 가라앉을 때까지 처가살이를 하겠다는 상현에게 명자는 집에서 지내라고 말한다. 그 말에 상현은 은주와 같이 지내고 싶다며 다시 간곡하게 설득하지만 명자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 한편 순임은 싫다는 봉례를 졸라 봉례 차에 기사까지 대동하고 은주 집으로 쳐들어가는데…. ●다큐 인(EBS 오후 9시20분) 스피드 보트를 타고 피피섬으로 가는 일정이 남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성훈씨에게 걸려온 전화, 사무이 섬 현지 소장과 급히 논의할 일이 생긴 것이다. 이씨 없이 피피섬으로 떠나게 된 직원들. 설상가상 이씨는 비행기 시간에 늦었다. 이씨는 무사히 태국 현지답사를 끝마치고 ‘최고의 여행’을 기획해낼 수 있을까?
  • [토요영화]

    ●가문의 영광(KBS2 밤 12시35분) 스트레스가 쌓일 땐 집에서 코미디 영화 한 편 보며 맥주 한 잔 들이켜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여기 ‘대국민 스트레스 해소용´ 영화라 불러도 좋을 작품이 있으니 바로 ‘가문의 영광’시리즈다. 정흥순 감독, 정준호·김정은 주연의 ‘가문의 영광’은 ‘주먹계의 전설’로 통하는 집안의 딸과 서울대 법대 출신 벤처기업 CEO의 좌충우돌 결혼기를 다룬 코미디다.2002년 개봉 당시 전국적으로 51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최고의 히트작으로 떠올랐다. 그해 흥행몰이에 성공했던 영화 ‘집으로’가 세운 405만명을 훌쩍 뛰어넘는 기록이었다. 돈과 권력의 방석 위에 앉아 남부러울 것이 없는 호남주먹계의 신화 ‘3J’가문의 유일한 콤플렉스는 학력. 이런 3J가는 ‘가방끈 긴’ 사위를 보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다. 이들은 딸 진경(김정은)을 학벌이 좋은 남자와 결혼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골몰한다. 한편 서울대 법대 출신 대서(정준호)는 테헤란밸리에서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유망한 CEO. 어느날 대서는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자기 옆에 어떤 여자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다. 그 여자는 바로 진경.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하룻밤을 같이 보낸 둘은 황망해한다. 그리고 대서는 곧 진경의 세 오빠 ‘공갈협박브라더스(유동근·성지루·박상욱)’로부터 “진경과 결혼하라.”는 협박을 듣게 된다. 공갈협박브라더스의 ‘진경과 대서 결혼시키기’ 작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내용은 진부하고 유치하기 그지없지만, 주·조연 배우들의 살아 있는 코믹 연기가 이 영화를 볼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김정은이 전라도 사투리 연기를 하고 ‘나 항상 그대를’을 직접 부르는 등 열연을 했으며, 사극으로 권위있는 권력자의 이미지를 쌓아 왔던 유동근은 철저하게 망가진다. 정준호는 이 영화를 찍은 뒤 코믹한 CF에 단골 손님으로 초빙받기에 이르렀을 정도다. 전체적으로 ‘조폭 코미디’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상에 지친 마음을 위로하기에 딱 맞는 유쾌한 영화다.115분.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17~24일 강릉단오제 유혹

    17~24일 강릉단오제 유혹

    “강릉 단오축제 보러 오세요.” 천년 축제인 강릉단오제가 17일부터 24일까지 예향(藝鄕)인 강원 강릉시 남대천 단오장 일대에서 펼쳐진다. 단오제는 예년보다 3일 더 늘어 8일간 치러진다. 행사 기간에 강릉을 찾으면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이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에 선정된 강릉단오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영신제 시작으로 천년축제 막올라 행사는 17일 오후 제관(祭官)과 무녀들이 홍제동 대관령국사여성황사로 올라가 지내는 영신제와 거리축제인 영신행차를 시작으로 막이 오른다. 단오제 기간에는 단오굿과 강릉관노가면극 등 지정문화재 행사를 비롯, 모두 7개 분야 60개 종목의 행사가 펼쳐진다. 창포머리 감기와 수리취떡 만들기, 단오부적 그리기, 관노탈 그리기, 단오부채 그리기, 열두띠 찍기 등 전통 단오와 관련된 체험 행사가 행사 기간에 발길을 사로잡는다. 단오장에 마련된 체험관에 들르면 행사 한달전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쌀로 빚은 신주(神酒)와 수리취떡을 맛볼 수 있다. 또 씨름대회, 그네뛰기, 줄다리기, 강릉사투리 경연대회 등 민속놀이와 한시백일장, 시조경창대회 등 경축문화 및 예술행사도 다채롭다. 올해는 관노가면극에 나오는 시시딱딱이탈 만들기, 강릉단오제 이미지 탁본하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새로 만들어 보여준다. ●봉산탈춤 등 중요 무형문화재 공연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걸작 선정에 걸맞게 종묘제례악과 판소리(조상현)를 비롯해 봉산탈춤, 양주별산대놀이, 고성농요, 가산오광대, 하회별신굿 탈놀이, 은율탈춤, 강령탈춤 등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공연들이 펼쳐진다. 국내 최고의 탈춤 놀이마당이 강릉 단오장에서 한마탕 어우러지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 정선아리랑을 비롯해 양구 돌산령지게놀이, 속초 도문메나리, 철원 상노리지경다지기, 원주 매지농악, 황병산 사냥놀이 등 도 무형문화재 공연도 강릉단오제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세계청소년 비보이 대회도 열려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에 선정된 우즈베키스탄의 보이순 지역문화, 터키의 메블레비세마, 캄보디아의 스벡 툼 크메르인 그림자 극 등과 중국, 일본의 민속단 공연도 펼쳐진다. 특히 보름 앞으로 다가온 ‘2014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는 굿판이 펼쳐져 시민의 염원을 담아낸다. 단오제는 어른만의 축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청소년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심어주기 위해 ‘강릉단오제와 비보이(B-Boy)와의 만남’을 주제로 한 세계청소년 비보이 대회도 열린다. 해마다 단오장 주변에 먹거리와 각종 잡화상을 위한 대규모 단오난장(亂場)도 올해는 한층 깔끔해진 모습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강릉단오제는 24일 오후 신(神)을 대관령으로 모시는 송신제를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최종설(70) 강릉단오제위원장은 “올 단오제는 2014 동계올림픽 유치의 염원을 담아 더욱 정성껏 치러진다.”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해 우리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Local] 제주, 첫 창작 오페라 무대에

    제주 최초의 창작 오페라 ‘백록담’이 9∼10일 제주돌문화공원 야외 특설무대에서 선을 보인다. 오페라 ‘백록담’은 조선시대 실존 인물인 열녀 홍윤애(극중 구술이)의 삶을 토대로 제주 여성의 삶과 사랑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대본은 대한민국예술원장을 지낸 극작가 고 차범석 선생이 썼으며 음악은 김정길 전 서울대교수, 연출은 오페라앙상블 대표인 장수동 선생이 맡고 있다. 오페라 ‘백록담’은 지난 2002년 초연 이후 2003년 1차 수정공연에 이어 제주사투리를 가미하는 등 작품 수준과 완성도를 높여 이번에 다시 선을 보인다.
  • “노인무료급식 중단위기 노란점퍼 좀 사주세요”

    “노인무료급식 중단위기 노란점퍼 좀 사주세요”

    “30여년간 이어온 노인 무료 급식이 중단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누구라도 좋으니 ‘노란 점퍼’를 구입해 주세요.” 31일 낮 12시 서울 서대문구 천연동 영천시장 뒤편 30평 남짓한 지하 급식소는 수십명의 노인들로 가득 찼다. 노인들은 “오늘도 잘 먹고 간다.”며 밝게 인사를 건넸지만 이 급식소를 운영하는 한길봉사회 김종은(59) 회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정치권 인사 주문 하고 안찾아 공장부도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노란 점퍼’ 문제로 운영하던 옷 공장이 경영난에 빠지면서 하루 200∼300명의 노인들에게 따뜻한 점심을 제공해 온 급식소가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급식소는 김 회장이 1972년부터 운영해온 옷공장 수익금으로 운영되는데 하루 급식비로 100만원가량 든다. 급식소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한 것은 2005년 11월17일 정치권의 모 인사로부터 ‘노란 점퍼’ 15만장을 주문받으면서부터다. 김 회장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한 인사가 보름 안에 노란 점퍼 15만장을 급히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해서 그 말만 믿고 작업에 착수했다. 김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공장을 24시간 돌리는 것도 모자라 주변 공장 세 곳에 제작을 일부 맡겼다. 돈이 모자라 사채까지 끌어 썼다. 그러나 주문한 사람이 물건을 인수하지 않으면서 18억원어치의 물건을 팔지 못해 자금난에 빠졌다. 또 보관용 창고비와 이자, 급식비 등으로 한 달에 5000만∼6000만원씩 쌓이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지난달 공장 문을 닫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 모 일간지에 ‘노란 점퍼’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돼 보도되자 5만장 정도를 구입하려던 한 정치권 인사가 계획을 취소하고 잠적해 버렸다. ●5만원 짜리 원가 1만원에라도 사갔으면… 김 회장은 “노란 점퍼를 제작하면서 급식소 부지까지 저당을 잡혔다.”면서 “내가 바라는 것은 경위야 어찌 됐든 누구라도 노란 점퍼를 팔아 달라는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는 노란 점퍼를 펴보이며 “이게 백화점 등에서는 5만 3000원에 팔리는 고급 제품”이라면서 “누구라도 노인 무료 급식소를 도와주는 셈치고 원가(1만 2000원) 이하에라도 조금씩이라도 사줬으면 좋겠다. 그래야 밀린 빚이라도 갚아야 급식소를 살릴 수 있지 않느냐.”며 울먹였다. 그는 설움이 복받치자 투박한 충청도 사투리를 쏟아냈다. “저는 엄니가 앞을 못보게 되면서 네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시유.11살에 서울로 올라와 구걸도 해봤지유. 그래도 나는 원체 어렵게 자라서 대충 살면 걱정 없시유. 그런데 급식소가 없어져 밥 먹을 곳 없는 노인들은 어찌될까 걱정스럽구먼유.” 급식소를 이용하는 노인들의 상당수는 이런 사정을 몰랐다. 한 노인은 “최근 사기를 당했다는 소문을 들었다.”며 급식소가 없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문의 한길봉사회 02)392-0264∼5. 강국진 이경주기자 betulo@seoul.co.kr
  • [IT플러스] 길안내 지도 ‘맵피 유나이티드’ 출시

    만도맵앤소프트는 최근 내비게이션 지도인 ‘맵피 유나이티드’를 출시했다.70만 사용자의 아이디어를 모아 만들었다.224개 경로를 제공한다. 고속도로 정체시 동시에 3개까지 우회도로 탐색이 가능하다. 잔여 교차로, 분기점 및 출구까지 직진 거리 등을 음성으로 안내한다.또 전국 417개 산의 등산로 루트 및 거리, 방향을 제공하고, 지역 경계를 넘을 때 안내 음성이 해당 지역의 사투리로 바뀌는 기능도 있다. 기존 맵피 사용자는 만도맵앤소프트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
  • [시인과 고향]향수는 시인을 놓아주지 않는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오늘의 강연 주제인 ‘시인과 고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에 앞서 저가 생각하는 시에 대해 나름대로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시와 눈 저는 시는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말할 것도 없이 눈이 보배입니다. 그 보배는 반짝이는 보배입니다. 보석과 같은 눈이 바로 시인의 빛나는 눈입니다. 시인은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눈을 감아도 보이는 그것. 눈을 뜨고 눈 속 깊이 감춰 둔 그것, 그것이 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요. 시의 눈도 하나의 풍경입니다. 시인의 눈은 풍경을 창조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는 시가 풍경이요 나아가서는 시인 자신도 풍경입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보는 것을 배우고 익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시는 내면의 뒤집기”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내면의 뒤집기’는 시의 또 다른 하나의 눈입니다. 참으로 오묘한 눈이 아니겠습니까. 다시 한번 시는 눈이라고 강조합니다. 저는 한자어의 관음(觀音), 문향(聞香)이란 말에서 시를 보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볼 觀, 소리 音, 소리를 본다는 것. 그리고 들을 聞, 향기 香, 향기를 듣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시의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시가 없는 곳에 시가 있습니다. 시인은 한 줌의 햇빛을 사냥하기 위해 언어 하나하나를 낚아챕니다. 그리고 말을 갈고 닦습니다. 그래야만 말의 빛을 더하게 되지요 .말의 빛은 바로 시의 빛입니다. 반짝입니다. 靑馬와 大餘 시 속에는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는 고향이 있습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그리워합니다. 고향은 그리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더욱이 예술가에게는 고향이 예술입니다. 시입니다. 미술입니다. 음악입니다. 새삼스레 말할 것도 없지만 청마 유치환 선생과 대여 김춘수 선생은 경남 통영이 고향입니다. 청마 선생은 1908년, 대여 선생은 1922년에 태어났습니다. 두 분의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대여 선생의 시에 청마 선생이 종종 등장합니다. 검정 사포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 우리 고향의 선창 가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 양지 바른 뒷산 푸른 송백을 끼고 / 남쪽으로 트인 하늘은 기빨처럼 다정하고 / 낯설은 신작로 옆대기를 들어가니 / 내가 크던 돌다리와 집들이 / 소리 높이 창가하고 돌아가던 / 저녁놀이 사라진 채 남아 있고 / 그 길을 찾아가면 / 우리 집은 유 약국 / 행이 불언하시던 아버지께서 어느 덧 / 돋보기를 쓰시고 나의 절을 받으시고 / 헌 책력처럼 애정에 낡으신 어머님 옆에서 / 나는 끼고 온 신간을 그림책인 양 보았소 이 시는 청마 선생의 <歸故>라는 작품 전문입니다. 고향 통영을 소재로 한 초기시입니다. 통영의 냄새가 물씬 나지 않습니까. 이 밖에도 <향수> 등 고향을 노래한 작품이 있습니다. ‘깃발’을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시인의 향수는 영원한 것입니다. 향수에는 시가 깃들어 있습니다. 시와 사투리 우리 현대시의 큰 획을 그은 김춘수 선생의 시는 고차원적인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상 풍경입니다. 어떤 이는 고급 장식품이라고도 했습니다. 선생의 풍경 속에는 고향이 보입니다. 대여 선생은 언어의 예술가입니다. ‘긴장된 말놀이’를 즐기는 고수의 테크니션이기도 합니다. 선생의 시는 그림이 있는 지적인 기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릭도 지척으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대여 선생은 고향을 소재로 한 시를 만년에 많이 남겼습니다. <통영> <귀> <앵오리> <귀향> <명정리> <고향으로 가는 길> <나의 생가> <방풍>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이 밖에 초기시와 대표작인 <처용 단장>에도 고향이 전면에 선명하게, 혹은 배경에 보일 듯 말 듯 아득하게 깔려 있습니다. 그리고 어릴 적의 기억들이 시속에 배어 있습니다. 기억은 소중한 것입니다. 시인은 기억을 시로 승화시킵니다.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 잠자리를 앵오리라고 한다. /부채를 부치라고 하고 고추를/고치라고 한다. /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 통영을 토영이라고 한다. / 팔을 폴이라고 하고 팥을 / 폴이라고 한다. / 코를 케라고 한다. / 우리 고향 통영에서는 / 멍게를 우렁싱이라고 하고 똥구멍을 / 미자발이라고 한다. / 우리 외할머니께서는 통영을 퇴영이라고 하셨고 동경을 / 딩경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 까치는 까치라고 하셨고 까치는 / 깩깩 운다고 하셨다. 그러나 / 남망산은 / 난방산이라고 하셨다. / 우리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 내 또래의 외삼촌이 / 오매 오매 하고 우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시는 <앵오리>의 전문입니다. 시에서 보다시피 통영의 사투리가 많이 나옵니다. 사투리는 바로 향수입니다. 향수는 시인을 그냥 놓아주지 않습니다. 선생의 시에는 사투리뿐만이 아니라 통영의 산과 바다와 섬이 자주 나옵니다. 고향은 햇빛도 바람도 생선맛도 다르다고 했습니다. 또 갯바람은 어머니의 젓내가 난다고 말했습니다. 대여 선생은 전혁림 화백과 윤이상 음악가와도 친교가 깊었습니다. 세 분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물론 동향인이기도 하지만 같은 빛깔을 갖고 있는데 그 빛깔이 바로 코발트 블루이지요. 통영의 바다 빛깔입니다. 작곡가는 가락에, 화가는 색채에, 시인은 언어에 그 빛깔이 숨쉬고 따라서 반짝반짝 빛나는 것입니다. 언어가, 색채가, 가락이 쪽빛 파도를 친다고 할까요. 기막힌 해후 대여 선생은 80년대 초 서베를린에서 죽마 고우 윤이상 작곡가를 만났습니다. 만나자마자 얼싸안았다고 합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이 기막힌 해후. 그때 윤 선생은 “춘수야, 나 고향 좀 데려가 줘…” 하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눈물범벅이 되었다는 후일담입니다. 그때 눈물은 얼마나 진하고 뜨거웠을까요. 향수는 어쩔 수 없는가 봅니다. 그날 그때의 눈물이 통영 앞바다의 얼룩진 코발트 불루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윤이상의 조국 대한민국은 그때 윤이상의 일시 귀국조차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안타깝다고 해야 합니까. 아니 슬프다고 해야 합니까. 대여 선생은 ‘서베를린서의 만남’을 그 뒤에 <귀>라는 시에다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1982년 / 서백림(西伯林) 윤이상의 집이다. / 앉았단 섰다 또 앉다가 / 막 피어나는 앵초꽃 너머로 / 본다. / 귓속에 귀가 있다. / 누군들 이름을 부르지 말아요. / 테레사 할머니, / 우리들의 고향은 통영입니다. / 앵초꽃 피는 / 그때가 4월 초순 / 귓속에서 물새가 운다 쉬었다가 울고 /쉬었다가 또 운다. / 귓속에 귀가 있다. / 한려수도 아득히 트인 / 귀가 귓속에도 귀가 있는, 귓속에도 눈물이 고이는, 눈물도 울림이 뜨거운 ‘귓속의 귀’가 찡하지 않습니까. 두 분의 귓속의 귀에서 고향 통영이 보이고 물새가 우는 소리와 한려수도가 물결치지요. 시인에게도 고향은 다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의 고향은 지구상의 한정된 한 지역이 아니고 전 우주가 고향입니다. 시인은 한 방울의 이슬에서도 우주를 보고, 그리고 대화를 나눕니다. 햇빛 속에서 우주의 빛을 보고, 바람 속에서 우주의 숨소리를 듣습니다. 특히 청마 선생의 시에서 우주를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선생의 오묘한 사유의 깊이는 물론 그 넓이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청마 선생과 대여 선생을 기리며 쓴 저의 졸시 <靑馬, 그리고 大餘>를 낭독하겠습니다. 이는 통영 시민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미안합니다 / 통영 시민 여러분/ 간밤에 바다를 훔쳤습니다 / 머리맡에 두고 꿈도 꾸었습니다/ 발치에 섬들이 보채곤 했습니다 / VOU, 수평선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 청마의 깃발이 하늘 깊게 나부꼈습니다/ 전혁림 화백의 빛부신 코발트 블루 위로/ 대여의 꽁지 하얀 새가 날아올랐습니다 / VOU, 수평선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 바다를 택배로 다시 보냈습니다 / 파도 소리만 가슴 깊이 감추고 / 바람은 더 푸르게 물결쳤습니다/ 통영 시민 여러분, / 감사합니다/ 유치환 선생과 김춘수 선생은 가셨지만 시는 살아 있습니다. 시 속의 고향도 살아 있습니다. 시의 행간행간에 통영 앞바다가 파도칩니다. 아! 눈부신 코발트 블루, 지금 이 시간에도 한려수도에서 바람이 부네요. 꽁지 하이얀 새가 쪽빛 바다를 물고 날아갑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원고는 통영문인협회 초청으로 강연한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일부는 계간 시지 《다층》에 발표한 것과도 중복됩니다.
  • 울산고래축제 17~20일

    울산고래축제 17~20일

    ‘고래와 놀자.’ 우리나라에서 하나밖에 없는 고래축제가 고래도시 울산에서 17일부터 20일까지 열린다. 신비스럽기만 한 고래의 세계를 이해하고 고래도시 울산의 역사·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해마다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13회째. 울산 남구가 주최하고 울산고래축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해 남구 장생포해양공원과 시가지 일원에서 고래를 테마로 보고 즐기고 체험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푸른 울산, 오감체험 고래여행 속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야제를 시작으로 공식·공연·특별연계·참여체험·부대 행사 등으로 구분해 4일동안 계속된다. 전야제 행사로 선사시대 고래 그림이 바위에 새겨져 있는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 현장에서 17일 오후 5시 고유제를 지낸 뒤 오후 8시부터 울산시가지에서 1800여명이 참가하는 화려한 거리퍼레이드 행사가 펼쳐진다. 18일에는 장생포 해양공원에서 개막식·식전·식후행사 등 공식행사가 열린다. 공연행사로는 고래잡이재현과 고래가요제, 일본·중국·러시아의 해외공연단 초청공연, 퓨전 콘서트 등이 마련됐다. 극경회유해면 탐사·고래학술 심포지엄·고래영화 상영·해군 함정 및 해경소방정 승선·고래마라톤·고래웅변대회·울산말(사투리) 경연대회 등이 특별행사로 열린다. 극경회유해면(천연기념물 제126호)탐사는 미리 신청받은 300여명을 대상으로 18∼20일 하루 한차례 100여명씩 나누어 울산해경 방재선을 타고 귀신고래 회유경로인 울산항∼울기등대∼간절곶 해상을 돌아보는 행사다. 이밖에 고래퀴즈대회·고래골든벨·고래고함지르기·고래얼음조각대회를 비롯해 다양한 참여·체험·전시 행사도 개최된다. 포경이 금지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래잡이 항구였던 장생포에는 국내 유일한 고래박물관(2005년 5월 개관)이 있으며 장생포항 주변과 시내 여러곳에는 바다에서 죽은 채 발견된 고래(혼획고래)고기를 파는 고래음식점이 있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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