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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환 비밀누설, 워너원 멤버들 비밀 뭐길래? ‘궁금증 UP’

    김재환 비밀누설, 워너원 멤버들 비밀 뭐길래? ‘궁금증 UP’

    ‘안녕하세요’ 고민해결사로 변신한 김재환의 맹활약 현장이 포착됐다. 20일 방송되는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출연한 김재환은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까지 팔색조 매력으로 안방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예정이다. 최근 워너원 활동을 마치고 솔로가수로 돌아온 김재환은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음에도 변함없이 겸손한 태도를 유지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런 김재환의 수줍은 모습이 신동엽과 이영자의 장난기를 불렀고, 최대한 거만한 포즈를 취해보라며 팔, 다리를 붙잡고 있던 신동엽은 김재환의 신체변화(?)를 포착하고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다는 후문. 이와 관련 공개된 사진 속에는 신동엽이 김재환의 손을 붙잡고 격하게 반가워하는 악수장면이 담겨있어 과연 어떤 대목에서 동지의식을 느낀 것인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이후 김재환은 이영자와 함께 사연을 소개하면서는 욱하는 경상도 아버지 역할을 맡아 사투리 연기를 차지게 소화해내는가하면 프로그램명과 똑같은 자신의 솔로 타이틀곡 ‘안녕하세요’를 무반주로 선보였다고 해 많은 음악팬들과 시청자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노래면 노래, 연기면 연기까지 프로그램의 재미를 업그레이드시킨 김재환의 활약이 이어지는 가운데 워너원의 비하인드가 깜짝 폭로돼 출연진과 방청객을 깜짝 놀라게 했다고. 이영자의 유도질문과 김태균의 부추김에 깜빡 넘어간 김재환은 그만 워너원 멤버들의 민망한 비밀(?)을 누설했다고 해 과연 어떤 비하인드가 숨겨져있을지 궁금하게 만들고 있다. 한편, KBS2 ‘안녕하세요’는 20일 오후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애달픈 국민 위로한 변사, 문화재로 등록 않으면 크나큰 문화 상실”

    마지막 ‘변사’ 생활 30년 최영준이 말하는 ‘목소리 마술사’“인간문화재 등록요? 좋죠! 무성영화 변사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로 인정받고 계승 발전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면 더 없이 반가운 일이죠. 나라잃은 설움에 가득찬 식민지 백성을 통곡하게 하고 목놓아 아리랑을 노래하며 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나운규의 무성영화 ‘아리랑’과 변사는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을 발했던 문화적 횃불입니다. 변사의 역사가 짧다고요? 제가 마지막 변사가 아닌 새로운 시작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국가적으로 방법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30여년 전 무성영화가 단 한편밖에 남지 않던 시절 사명감 하나로 사재를 털어 변사공연을 이어왔습니. 100년 전통을 가진 무성영화와 변사를 하찮게 여겨 이 시대에 소멸시킨다면 크나큰 문화상실이자 후손에게 잘못이 될 것입니다.”변사, 일제시대 탄생한 광대… 무성영화, 관객에 전달애달픈 대사에 심금 올리는 목소리… 관객 울리고 웃겨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동영상을 만들 수 있고, 영화관에 들어서면 선명한 고화질 화면에 서라운드 음향이 펼쳐지는 디지털시대다. 이런 와중에 무성영화를 해설하고 연기하고 관객을 울리고 웃기는 변사(辯士)가 아직도 활동한다는 사실에 반가움이 끓어올랐다. 호기심으로 수소문한 최영준씨. 자신을 광대(廣大)라고 부르는 그는 한국에서는 유일한 ‘목소리 마술사’라는 변사다.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한국영화 백년사에서 빠질 수 없는 무성영화 변사. 애달픈 스토리에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로 세파에 시달린 관객을 웃겼다 울리는 변사. 그러나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변사가 전국을 다니며 전성기를 누리듯 공연을 이어 간다니 그의 애환과 비결을 듣고 싶었다. 지난 3일 최영준씨를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광대의 나이는 늘 철없는 열 살”이라며 굳이 나이를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30여년전 우연히 본 ‘검사와 여선생’에 꽂혀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 제작해 변사로 나서새로운 장르여서 ‘무성영화 변사극’이라 명명”- 변사극에 빠지게 된 계기는. “30여 년 전, 모노드라마 1인극 연극배우로, 인천에서 ‘약장수’, ‘팔불출’을 직접 제작하고 출연해 서울로 진출하였죠. 그 당시 연극의 중심이었던 이대입구 소극장에서 한 작품 당 2년씩, 장장 4년간 장기공연을 마치고 차기작품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5년 전에 작고하신 변사 신출 선생의 무성영화 ‘검사와 여선생’을 보게 됐어요. 무성영화와 변사를 보는 순간 ‘아, 이거다’ 싶었죠. 제 눈에는 변사가 1인극 배우로, 무성영화는 훌륭한 무대장치로 보였던 겁니다.” 이걸 꼭 해야겠다 마음먹고 그 시절의 다른 흑백무성영화가 또 있는지 찾았다. 당시 한국에 ‘검사와 여선생’ 외에는 무성영화가 단 한편도 없었던 상황. 신파극으로 유명한 ‘이수일과 심순애’를 무성영화로 직접 제작해서 변사로 나섰다. 그때가 1986년. 그 때부터 전국 순회공연과 미국 공연도 갔다. 장르에 대한 구분이 필요해서 그는 직접 장르 이름을 ‘무성영화 변사극’이라고 붙였다. - 무성영화 변사극이란 뭔가요.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시대를 주도하는 문화가 있다면 시대를 역행하는 문화도 있어야 합니다. 무성영화 변사극은 우리나라 식민지 시절의 아픈 역사 속에서 위로 받고 싶었던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신파극, 악극, 그 시절 대중가요, 흑백 무성영화, 그리고 변사를 새롭게 디자인하여 이 시대의 관객과 함께 어울리고 소통하는 마당극이라는 그릇에 담았습니다. 저의 연출기법이죠. 장르의 융합이랄까, 하이브리드 콘텐츠라고 할 수 있지요. 각기 독립된 장르의 장점을 섞어놓은 비빔밥 같은 장르이니 그 이름을 새롭게 붙인겁니다.” - 다양한 경험을 했는데, 변사 연기에 도움이 되나. “한 우물만 파라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죠.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시기에, 저는 늘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며 살아 왔죠. 극단의 허드렛일부터 시작해서 연극배우, 연출, 시나리오 작가, 영화배우, 작사, 작곡, 가수, 개그맨…, 라디오 DJ도 재작년까지 25년간 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노래 ‘한국을 빛낸 백명의 위인들’을 부른 가수가 바로 접니다. 글쓰기, 연기, 연출, 노래, 작사, 작곡…. 발표한 음반도 열장이 넘습니다. 음반 한 장에 제가 만든 신곡이 평균 10곡이니 거의 미친 듯이 열정을 쏟아 붓는거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말이 쉽지 완전히 맨땅에 헤딩 하는거죠. 전사의 심장으로, 독학으로, 가시밭길을 헤쳐 가는 겁니다. 수많은 시행착오가 저의 학습이고 노하우를 터득하는 방법입니다. 파란만장한 제인생의 이런 모든 것이 자양분이 되어 ‘1인36역’의 변사를 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변사극 매력?…관객과 소통, 무성영화와 호흡마당놀이 형식… 관객 호응 일본 영화사도 놀라주 관객은 노령층… 노인 증가에도 콘텐츠 부족”- 무성영화 변사극의 매력은 무엇인가. “관객과 대화하고 함께 얼싸안고 울고 웃는, 접촉을 통한 소통입니다.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 무성영화와 변사의 환상적인 호흡인거죠. 변사의 연기술과 웃음을 주는 애드립은 젊은 관객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어르신을 위한 공연입니다. 또한 마당놀이 형식을 도입해서 관객의 적극 참여를 유도합니다. 지난 2월에 일본 마츠다 영화사를 방문하였는데 무성영화 1000편을 보유하고 있더군요. 그러나 변사는 5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지만 대중의 주목도가 떨어져 정부의 지원사업에 의지하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제 공연 영상을 보더니 어떻게 이렇게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 내는지 놀라는 반응을 보이며 9월에 초청공연을 갖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일본의 무성영화 상영이 역사적인 콘텐츠의 재연이라면,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은 변사와 관객이 함께 어울리고 즐기는 공연입니다. 제가 이렇게 지극히 한국적으로 변사극을 만들고 틀을 잡아 놓으면 후대에 누군가에게는 초석이 되고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문화 영역이 더욱 확장되는 것이죠.” - 변사극 공연, 지방에서 많이 하던데, 그 이유는. “아무래도 서울 보다 지방이 문화 소외지역이라고 해서 그쪽 문화단체나 지자체에서 많이 초청을 해줍니다. 이게 아날로그 콘텐츠이다 보니 관객층은 주로 저를 알아봐 주시는 어르신들이죠. 그런데, 사실 진짜 문화소외 지역민은 서울에 사는 어르신들이예요. 노인을 위한 구경거리가 없다면서 어쩌다 변사공연을 보시고는 ‘자주 보고 싶다, 많이 아쉽다’고 하시더군요. 우리나라도 노인 인구가 많아지지만 즐길 문화 콘텐츠가 부족하잖아요. 앞으로 방방곡곡 더 많은 공연으로 노인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좋은 일이고,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시간 넘게 계속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썼다는 미발표곡 ‘목포항’도 불렀고, 조금 뒤에는 ‘목포의 눈물’도 구성진 가락으로 읊조렸다. 아이들 같은 목소리로 동요도 여러차례 불렀다. 물론 변사의 역할을 소개하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영화와 유독 인연이 깊다고 했다. 연극배우 시절 극장 개봉영화 ‘엘리베이터 올라타기’, ‘랏쉬’에 주인공으로 출연했고, 개그맨 데뷰 후에는 어린이 영화 십여편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어린이 영화 시나리오 두 편을 썼는데요, 한 편은 지난달에 경주에서 촬영을 마쳤고요, 또 한 편은 8월에 제주도에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배우들의 대사는 전부 제주도 사투리입니다. 영화음악도 제가 다 작사 작곡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올해가 한국 영화 탄생 100년이 되는 해이다. “변사 배우러 오면 말려…엄청 노력에도 돈은 안 돼그래도 배우겠다면 1인극 ‘팔불출’ 공연하라면 안 와10년 노력해야 제대로 된 변사… ‘노랑목’ 나와야 해”- 변사, 하고 싶다는 사람이 혹시 있나. “가끔씩 찾아옵니다만 제가 말리죠. ‘변사극 쉽지 않다. 떼돈 버는것도 아닌데 노력은 엄청 많이 필요하다.’ 그래도 변사를 해보겠다고 하면 제가 30년 전에 공연했던 모노드라마 ‘팔불출’의 대본과 동영상을 주면서 ‘이 작품, 한번 공연하고 오라’고 합니다. 90분 동안 혼자 공연한 작품이거든요. 그러면 다 기겁을 하고 다시는 찾아오지 않더군요. 변사가 되려면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타고난 재능에 연기가 익어야 합니다. 부단히 노력해서 한 10년은 해야 제대로 된 변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랑목이 나와야합니다. 변사 연기의 신의 한수는 노랑목입니다.” - 노랑목?, 이게 뭔가요. “이게 뭐냐하면요, 이난영 선생의 ‘목포의 눈물’을 가만히 들어보시, 모기소리처럼 들릴 듯 말 듯 아주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이 소리가 애달프면서도 심금을 울립니다. 발성이 달라요. 노랑목 연습은 입을 작게 벌리고, 귓가에 속삭이듯 노래하고 말합니다. 그러자면 목구멍을 딱 막아야 합니다. 보통은 목을 열고 말하는데 이건 목구멍을 닫아야 해요. 그래야 비성, 두성 가성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게 됩니다. 변사는 흘러간 옛 노래도 불러야 되고, 모든 배역의 목소리를 연기해야 하는데, 특히 남자 변사가 여자 주인공 목소리를 예쁘게 구사해야 합니다. 노랑목이 가능해지면 실제 여성보다 더 여성스런 목소리, 변성기 이전의 어린아이 같은 예쁜 목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물론 오랜 연습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언제부터 이런 엔터테이너 소질을 보였나. “제가 어릴 때부터 연극을 시작할 무렵인 20대 중반까지는 내성적이고 말도 없었습니다. 남 앞에 나서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연극판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죠. 고등학교 다닐 때 잠깐 연극부에서 활동을 했지만, 처음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할 때 연기는 모르고 자의식은 강해서 많이 힘들었죠. 더구나 대학을 조선공학과에 입학했는데 적성이 맞지 않아서 1년 다니다 그만두었으니, 전공이 완전 다른 연극 문외한 이었죠. 그래도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당시에 최고의 연극배우 이호재씨를 롤모델로 삼았어요. 그때 마침 그 분이 1인극 약장수를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그 배우의 ‘약장수’ 대사를 전부 몰래 녹음해서 숨구멍은 어디인지, 억양은 어떻게 하는지, 소리는 어떻게 내는지 연구하고 따라했습니다. 그의 공연을 매일 봤고, 그의 대사를 전부 외웠습니다. 그 명배우의 모든 것을 그대로 벤치마킹 한 셈이죠. 그러다가 결국 제가 살던 인천에서 소극장을 만들어서 개관 기념공연으로 최영준 모노드라마를 무대에 올렸습니다. 그때가 20대 후반이었습니다. ‘약장수’에 이어서 ‘팔불출’을 했는데, 한 작품을 2년씩 하루 두번 계속 공연하니 그 작품에 대해서는 도가 트더군요. 그러던 어느날, 서울 서대문 푸른극장에 있는 공연기획사인 ‘태멘’으로 스카우트되어 모노드라마를 푸른극장 지하 말뚝이 소극장에서 계속 했습니다.” - 모노드라마 당시 반응은. “처음 인천에서 할 때는 객석이 텅 비다시피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관객 없이 연습도 하는데 …. 연기 공부를 한다’ 하는 심정으로 독하게 계속하니 나중에는 입소문이 나서 극장이 미어터졌습니다. 그래서 한달에 400만원 줄테니 서울의 말뚝이 소극장에서 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고 서울로 진출했던 거죠. 당시 선배들이 저를 두고 ‘너같은 어린 놈이 무슨 일인극이야. 일인극은 베테랑들이 하는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 ‘형, 나이 먹으면 힘이 없어서, 체력이 딸려서 못하는 게 일인극이예요’라고 받아치면 선배들이 저보고 ‘저런, 당돌한 녀석’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 “연극배우 이호재가 롤모델…대사 몰래 녹음해 연습고 강계식 선생의 한마디 충고가 신의 계시처럼 꽂혀‘희극 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울릴 줄 알아야’전유성도 고마운 사람… 인맥 동원해 영화도 만들어줘”- 그래도 격려해준 선배는 없었나.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계시는 이민재 형이 약장수 공연 당시에 연출을 봐 주셨는데, 저의 연기 개인지도 교사였죠. 연기에 눈을 뜨게 해주신 은인이죠. 변사를 체계적으로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습니다만 강계식, 고설봉 두 분이 생각납니다. 영화계에선 이향, 이런 분들과 신파극 작업을 함께 했습니다. 80년대 초반이니 당시 이분들이 70대를 넘겼거나 80대에 가까웠습니다. 이분들이 신파시대의 마지막 세대예요. 제가 빨리 같이 작업하지 않으면 이분들이 갖고 있는 신파극의 유산을 놓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연기도 연출도 같이 하면서 그분들하고 여러 작품 신파극을 만들면서 ‘이건 뭐예요’, ‘저건 뭡니까’하면서 많이 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강계식 선생이 저보고 ‘여보게 미스터 최, 자넨 말이야, 희극배우야. 희극을 전문으로 연기를 하라는 거야. 근데, 희극배우는 웃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객을 울릴 줄도 알아야 돼.’라고 하신 말씀이 신의 계시처럼 제게 팍 꽂혔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는 하염없이 웃기다가 끝에는 관객을 반드시 울립니다. 슬픔으로 끝나야 그게 예술적이라는 거죠. 카타르시스도 있고. 그 당시 신파극에 대한 것을 많이 배우고 터득했죠. 또 한분은 개그맨 전유성씨예요. 어느 날, 저의 무성영화 변사극 계획을 들으시더니 감독을 맡아 주시고 당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영화도 그럴듯하게 만들어 주시고 제가 변사로 나설수 있도록 해주신 결정적인 귀인이자 은인이죠.” - 우리나라에 변사극 레퍼토리가 많나. 무성영화가 있으면 변사극이 가능한가. “무성영화라고 해서 다 변사극이 될 수는 없습니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는 변사가 없어도 상영할 수 있습니다. 변사의 개입이 필요 없는 그 자체로도 완벽한 영화입니다. 변사극의 무성영화는 반드시 변사가 개입해야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예컨대 ‘검사와 여선생’을 변사 없이 무성영화로만 상영한다면 이상하고 싱거운 상황이 될 것입니다. 변사는 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합니다. 변사의 능력이 흥행을 좌우할 정도로 변사극의 핵심입니다. 현재 저의 변사극 레퍼토리는 세편입니다. 1948년작 ‘검사와 여선생(감독 윤대룡) 1986년작 ‘이수일과 심순애’(감독 전유성), 2002년작 ‘나운규의 아리랑’(감독 이두용) 입니다.” - 남기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올해안에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를 제가 무성영화로 제작, 감독할 예정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 무성영화에서 시도했던 여러 가지 장치들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생각입니다. 이수일과 심순애의 경우 예를 들면, 변사가 영화속 배우들의 싸움을 말린다. 영화 속 김중배 얼굴에 두루말이 화장지를 던진다. 이수일이 돈을 뿌리는 장면에서 변사도 같은 동작으로 돈을 뿌린다… 등등. ‘홍도야 우지마라’에서는 변사가 영화 화면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쁜놈을 때려주고 화면 밖으로 나오고, 비맞는 영화 속의 홍도에게 변사가 우산을 건네주고, 화면 속 홍도의 편지를 변사가 받아서 홍도 남편에게 건네주는 등의 가상현실 같은 장치를 할 생각입니다. 그러나 애수를 자아내는 장면을 그대로 살려낼 겁니다.” “올해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 무성영화 제작 예정제작비 구애없이 다음 세대 위해 작품 남기는 게 할일언젠가 무성영화 박물관 설립하고 변사 양성하고 싶어”- 무성영화 제작에 큰 돈이 들텐데 제작비 조달은 어떻게 하나. “1억원정도 예상하는데, 변사극 공연으로 벌어서 영화 제작할 돈을 모으고 있습니다. 제작비용이 부담이 되긴 하지만 한 번 만들어 놓으면 손익 분기점이 올 때까지 계속 울궈 먹을수 있으니 그렇게 무식한 투자라고 생각하진 않는거죠. 많은 분들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면 좋겠다는 요구도 있고요. 다음 세대, 후학들을 위해 제가 살아있는 동안 여러 작품을 남겨놓는 것이 이 시대 마지막 변사로서의 할 일이죠.”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10년 전, 2009년에 미국 LA에서 공연기획을 하는 이광진씨 초청으로 미국 서부지역 한국교민들을 위해 순회공연을 떠났어요. 서울 촌놈이 샌디에고, 오렌지카운티, LA, 산호세,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태평양을 따라 죽 거슬러 올라갔죠. 가는 곳마다 대성황이었어요. 마지막으로 미국에서도 오지라는 알래스카에서 공연을 마치고, 공연장 출입구에 서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며 관객 배웅을 하는데,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한분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20달러를 차비에 보태 쓰라고 주시는 거예요. ‘마음만 받겠다’고 해도 한사코 주시면서 ‘나, 집에 가고 싶어. 한국에 가고 싶어….’라며 눈물을 글썽이며 돌아가시던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분들에게는 저의 공연이 고국의 추억이며, 그리움이었던 거죠.”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여섯살 무렵 서울로 왔단다. 함경도가 고향인 부모님이 한국전쟁 통에 부산으로 피난 내려온 것이었다. 서울에선 휘문중고를 다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가세가 기울어 인천으로 이사하면서 인천에서 서울로 통학했다. 대학을 그만두는 바람에 배워야 한다며, 지금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그는 늘 학생의 정신으로 살아간다. “언젠가는, 때가 되면 무성영화 박물관을 만들어 전 세계의 무성영화를 수집, 보관, 상영하고 변사학교를 만들어서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변사를 양성하고 싶습니다. 물론 무성영화 제작도 계속할 겁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마약 투약’ 혐의 로버트 할리, 검찰에 불구속 송치

    ‘마약 투약’ 혐의 로버트 할리, 검찰에 불구속 송치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아왔던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61) 씨가 1일 검찰에 불구속 상태로 넘겨졌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이날 오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하씨를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하씨는 지난달 중순 자신의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필로폰 1g을 구매한 뒤 같은 날 외국인 지인 A(20)씨와 함께 투약하고 이후 홀로 자택에서 한 차례 더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마약 판매책 단속 도중 하씨가 한 판매책의 계좌에 70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에 착수해 지난 8일 서울시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하씨를 체포했다. 또 같은 날 하씨의 자택을 압수수색 해 필로폰 투약에 사용된 주사기를 발견했다.하씨는 체포 이후 진행된 소변에 대한 마약 반응 간이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자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하씨와 한 차례 필로폰을 함께 투약한 혐의를 받는 A씨는 방송과는 상관없는 일반인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A씨 또한 자신의 혐의를 인정했다. 하씨는 경찰에서 “방송을 비롯한 업무와 관련된 스트레스가 많아서 마약에 손을 댔다”고 진술했다. 그는 체포된 뒤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지난 10일 영장이 기각된 뒤 불구속 상태로 수사를 받아왔다. 하 씨는 체포 직후와 영장 기각으로 석방될 당시 “가족과 동료,국민께 죄송하다”며 사죄했다. 미국인 출신인 하 씨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유창한 부산 사투리와 입담을 선보여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1997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조선족, 허드렛일 하는 ‘바닥 인생’ 인식 안타까워…우린 최첨단 광학렌즈 생산”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조선족, 허드렛일 하는 ‘바닥 인생’ 인식 안타까워…우린 최첨단 광학렌즈 생산”

    中동포 ‘롤모델’ 남기학 회장이 말하는 ‘조선족 경제’“우리 회사가 만든 초정밀 광학 렌즈는 삼성이나 LG, 소니, 화웨이 등에 들어갑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렌즈와 플래시 렌즈에 들어가는 거죠. 우리가 공급에 차질이라도 빚을라치면 이런 세계적 대기업들도 공장 가동에 막대한 타격을 입을 겁니다. 우리 광학 렌즈는 TV를 비롯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뿐만 아니라 중국은 물론이고 독일, 일본, 미국 자동차 제조회사에도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중국에 사는 우리 동포들도 우리 기업을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를 만나고부터 첨단 기술로 창업을 꿈꾸는 중국 동포 청년들의 ‘롤 모델’이 된다는 이유를 알 듯했다. 중국 첨단산업의 심장부인 광둥(廣東)성 선전시에서 예지아(燁嘉)기술그룹 이끄는 남기학(南基學·58) 회장. 창업 18년째인 그의 회사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눈인 광학 렌즈, 귀이자 입인 음향기기 및 스피커 부문을 선도하고 있다. 그가 수석 부회장을 맡고 있는 세계한인무역협회가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리조트에서 개최한 제21차 세계대표자대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빼곡한 일정 탓에 서울에서 만나기는 어려워 24일 행사장으로 무작정 차를 몰았다. 조선족 사업가인 그를 인터뷰하면서부터 중국 동포들은 가난하고 힘들게 살 것이라는 편견은 여지없이 깨어졌다. “창업 18년에 9개 계열사…올매출 8천만 달러4차산업의 ‘눈’ 초정밀 광학렌즈…‘中톱5’ 들어삼성·화웨이 공급…美日·유럽車 제조사도 공급”- 한국말이 사투리도 거의 없이 유창하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헤이룽장(黑龍江)성 지시(鷄西)시 융핑(永平) 조선족 마을에선 한국말로 다 이야기합니다. 물론 학교에선 중국말을 하지만요. 어릴 때 같은 동네에 사는 어떤 분의 말은 쉽게 알아듣겠는데 옆집 다른 할머니 말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알고 봤더니 그 할머니가 사투리를 심하게 써서 그랬던 겁니다. 8도 사람들이 다 모여 살았기에 제 말투에는 전국의 사투리가 조금씩 섞여 있을 겁니다.” 그의 말투는 나긋했고, 조심스러웠다. 목소리도 높이지 않았다. 전직이 교수여서인지 말하는 스타일도 설명하듯 했다. 선비형 최고경영자(CEO)로 느껴졌다. 그는 자신을 거리낌 없이 ‘조선족’이라고 칭했다. - 주력 사업은 무엇인가. “말씀드린 대로 최첨단 정밀 광학 렌즈를 생산하는 광학사업부가 가장 큽니다. 최근 5년간 3억 위안(516억원 상당)을 투입해 초정밀 광학 렌즈 가공기계와 전자설비 및 전자동 라인 시스템을 스위스, 독일, 일본에서 도입했습니다. 중국에서 ‘톱5’에 꼽히는 광학 렌즈공장일 겁니다. 음향기기 및 스피커 사업부, 실리콘사업부, 전자사업부, 자동차전자사업부, 헬스케어 사업부 및 플라스틱 공장도 있습니다. 계열 자회사가 9개로, 전체 종업원은 1500명 정도입니다. 공장은 선전, 동관, 절강에 있습니다. 차량에도 들어가는 광학 렌즈는 차량 조명이 LED와 레이저 램프로 바뀌면서 우리 제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지시대학 교수생활 10년…日기업 ‘러브콜’ 받아안정된 교수 그만두고 中남쪽 끝에 내려가 도전가방 하나 딸랑 들고 선전 도착…풍토병에 고생”- 언제, 어떻게 창업했나. “제가 일본 기업에 7년째 다니던 2001년 3월 창업했습니다. 당시 프린터기와 복사기에 들어가는 플라스틱 부품을 생산해 전량 일본 회사에 납품했습니다. 초창기엔 일본 회사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저녁 9시부터 새벽 두세 시까지 휴일도 없이 일했습니다. 처음 7~8달간은 적자에 시달렸습니다만 그 고비를 넘기자 조금씩 나아졌습니다. 우리 4형제와 친척의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들여서 시작했습니다. 3년 뒤 일본 회사를 그만두고 완전히 독립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혁신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2014년부터 광학 렌즈 사업에 주력했습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가 온다는 것을 예감하고, 광학 렌즈에 집중투자한 것이 시대의 흐름에 맞았던 겁니다.” - 2년에 한 개꼴로 회사를 만들었다. 승승장구 비결은. “늘 위기감을 가지고 긴장하면서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합니다. 잘 될 때 다음 사업, 또 그다음을 준비하는 것이죠. 또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고 육성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을 좌우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인재가 있으면 세계 어디든지 찾아가 모셔 옵니다. 현재 일본에서 스카우트한 직원이 회사에 많이 있습니다. 회사에는 조선족과 한국인, 일본인, 대만인이 있고, 물론 중국인이 제일 많이 있습니다.” “日기업 다니던 2001년 창업…새벽 두세시까지 일해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혁신사업 절감…광학렌즈 투자” - 매출은 얼마나 되나. “아직은 적습니다. 작년에 6000만달러의 실적을 올렸고, 올해는 8000만달러(930억원 상당)는 무난히 넘어설 것으로 봅니다. 내년에는 1억달러 달성과 함께 거래소 상장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참, 한국에 공장은 없지만, 회사는 있습니다. 한국은 땅값이나 인건비 등에서 제조업 경쟁력에서 중국에 비교되지 않지만, 브랜드 가치를 높이거나 세계화에선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중국산 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지만 한국 브랜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전략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 상장하면 정부의 간섭이 많아지지 않나. “중국에선 기업 상장 자체가 매우 까다롭습니다. 현재 중국에 4000만개가 넘는 회사가 있는데, 상장된 회사는 3800여개에 불과합니다. 상장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렵지만, 기술력과 성장잠재력 등을 제대로 평가받는다는 면에서 의미가 큽니다. 어떤 면에선 국가가 기업가치를 인정했다는 것이고, 정부가 그만큼 보호도 해줍니다. 그래도 우리만의 기술을 위해 설비투자와 함께 연구개발(R&D) 투자도 늘리고 있습니다.” “한국 전통문화 너무 변해 원형 찾아보기 어려워조선족들, 항일운동 지원한 독립 투사들 후손들中정부, 항일투쟁 무시 못해…韓도 잊지 않았으면”- 거래 업체는 어떤 곳이 있나. “협력사는 일본의 캐논, 소니, 도요타, 파나소닉, 교세라, 닌텐도, 샤프 등 15개사입니다. 한국은 삼성, LG, MOLEX 등이 있고, 미국은 IBM, GM 등 5곳입니다. 중국 내에선 화웨이, 샤오미, 오포, 하이센스 등 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현재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국가와 지역으로 한국, 일본, 대만, 미국, 유럽 순으로 최근에는 중국 내수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다루는 제품은 정밀광학렌즈, 인공지능 가전제품, 가상현실 및 증강현실(VR/AR)제품, 프린터, 게임기, 건강관리제품, 생활용품, 음향기기, 자동차전자제품, 자동차부품, 핸드폰과 복사기 부품 등입니다.” - 창업 전에는 무엇을 했나. “1994년 광둥성 선전에 있는 일본 회사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갔습니다. 일본 회사에 취직했을 때 임원들이 더럽고 힘든 일을 앞장서서 하고, 세밀히 체크하면서도 단합심과 러더십을 발휘하는 등의 경영관리를 많이 배웠습니다. 나중에 제가 경영할 때 이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일본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지시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 10년간 있었습니다. 그에 앞서 1984년 7월 하얼빈공업대학 동북중형기계학원(현재의 옌산대) 자동제어 학부를 마쳤습니다. 그리고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유학하려고 틈틈이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일본어도 되고, 중국어도 되는 저를 일본 기업이 영입했던 겁니다. 당시 안정된 교수 직업을 버리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중국 대륙 최남단인 선전까지 내려가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사실 고민스러웠습니다만 후회는 없습니다.” “내년 매출 1억달러 돌파…거래소 상장도 동시 추진인공지능 가전제품, AR/VR 제품, 음향기기도 생산” 남 회장은 중국에서 대학입시가 부활한 지 2년 만인 1980년, 지시 지역에서 손가락에 뽑힐 정도의 고득점으로 명문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지시대학에 배치되면서 컴퓨터, 전력분야 지식도 더 쌓고 석사과정도 마치며 1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일본 기업에 들어가면서 유학의 꿈을 접었다고 했다. - 당시 중국에서 남방붐이 불지 않았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1번지인 선전경제특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외자 기업들도 그만큼 많았습니다. 당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나가지 않고 선전을 비롯한 연해도시의 외국인 투자기업으로 갔습니다. 이들이 성장해서 지금은 그 회사의 경영인이 되거나 독립해 경제를 이끌고 있습니다. 저 역시 가방 하나 딸랑 들고 내려갔습니다. 춥고 건조한 북동쪽 끝에서 태어나 자란 저는 무덥고 습한 남쪽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극심한 기후 차로 습진 등 피부병에 걸려 온몸에 물집이 생기고 가려워 긁으면 또 터지면서 상처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북방에서 온 사람 누구나 첫 한두 해에는 풍토병을 겪습니다.” 남 회장은 2009년 전 세계 76개국에 147개 지회 7000여명의 최고경영자(CEO) 회원을 둔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회장 하용화)에 가입해 중국심천지회 1, 2대 회장을 지냈다. 2014년부터 부회장으로 활동하다 작년 10월에 수석 부회장이 됐다. 중국아시아경제발전협회 해외무역위원회 회장, 중한일기업연의회 부회장, 광둥성조선민족연합회 부회장 등 다양한 직무도 맡으며 민족 사회에 기부활동도 활발히 하고 있다. “민족사회에 좀 더 많이 헌신하려고 합니다. 한국은 우리의 전통문화가 사라졌거나 너무 변해서 원형을 알아보기 어렵지만 연변에 가보면 우리 민족의 풍속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조선족 동포 사회에 좀 더 헌신할까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韓서 조선족, 3D 일하는 ‘바닥 인생’ 인식 안타까워식당서 허드렛일하는 아주머니가 조선족 전부 아냐한국 오면서 문화차이로 적응애로에 거칠어졌을 뿐조선족 경제력 급성장…이제 누구도 무시못할 공동체”- 중국 동포들, 경제력 얼마나 되나. “동북 3성이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의 혜택을 늦게 보지만 요즘 무섭도록 발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족들 역시 경제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중산층이 두터워지고 있습니다.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조선족 기업들이 다수 있습니다. 2014년 한국의 유명 유아패션용품업체 아가방을 인수했던 신동일 랑시그룹 회장, 북한에 호텔 등을 다수 건축한 길림천우건설그룹의 전규상 회장, 건축·무역·부동산·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자회사를 많이 거느린 요녕신성그룹 표성룡 회장…. 이런 분이 대표적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에겐 서울의 음식점에서 허드렛일을 하거나 서빙하는 아주머니를 보고선 조선족들이 3D 일을 하는 ‘바닥 인생’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소양도 안 갖춰져 있고, 거칠게 사는 조선족도 일부있지만 그들이 우리 중국 동포를 대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에 오면 문화도 생활습성도 일하는 방식도 달라서 조선족들이 한국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많이 겪으면서 거칠어진 사람도 있겠지만 …. 조선족은 이제 누구도 무시못할 커다란 경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동포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국과 우리 조선족, 그리고 중국과도 동반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 - 북한 진출 관심은. “북한에 생필품 공급이나 부동산과 광산 개발 등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2500만명이나 살고 있으니깐요. 우리에게 휴대폰 공장 제의가 왔습니다만 IT는 당장 유엔 감시 대상이어서 조심스럽습니다. 북한에 500만명이 휴대폰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가 유엔 눈치를 보는 요즘 중국인들은 정말 많이 북한에 드나들고 있습니다. 베이징에서 평양으로 가는 비행기편이나 단둥에서 넘어가는 기차편은 항상 거의 매진이라 들었습니다. 북한과의 물밑 움직임이랄까 접촉이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죠. 대북 제재 해제와 동시에 북한에 진출하면 늦다는 것을 우리 같은 사업가들은 직감적으로 압니다.” “北진출?…베이징~평양행 항공티켓 매진이라 들어물밑 접촉이 많다는 방증…재제 해제후 진출은 늦어우리에겐 휴대폰 공장 제의도…UN 제재 탓에 조심”- 어떻게 해서 중국에 살게 됐나. “돌아가신 제 아버지가 11살 때인 1927년, 경기도 이천시 율면 월포리에 사시던 할아버지가 만주로 건너왔습니다. 3대 독자였던 할아버지가 당시 일제로부터 엄청난 유뮤형의 정치적·경제적 압박을 피해 고향을 등지고 왔던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생계 때문에 항일운동에 직접 나서지 못하고 농사를 지으셨지만 독립지사들을 물심으로 적극적으로 도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머니 고향은 강원도 철원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마을의 촌장(지부 당대표)를 지내면서도 밤에는 이불 속에서 KBS 라디오를 몰래 듣곤 하셨습니다. 흘러간 옛노래라도 나오면 눈물을 훔치며 따라 부르거나 가사를 적어 외우시곤 하였습니다. 수교되기 이전의 일입니다만 아버지가 고향 땅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게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이천에 가봤지만, 할아버지가 3대 독자여서 친척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이천에 가면 가슴이 뭉클한 묘한 감정이 일어납니다. 이게 피붙이인가요.” “3대 독자 할아버지, 1927년 일제 압박 피해 만주行선친, 이불 속에서 KBS라디오 몰래 들으며 눈물 훔쳐이천 갔지만 친척 못찾아… 뭉클한 ‘피붙이’ 감정 느껴” 남 회장은 조선족이 우리의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는 이유와 관련해 일제의 압박을 피해 만주로 건너간 선조의 항일운동에서 찾고 있다. “중국의 항일운동에 우리 조선족 선조가 많이 참여했습니다. 중국 정부도 이를 결코 무시하지 못하죠. 그래서 조선족 학교에 대해 중국 당국이 어려워도 지원을 끊지 않았고,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대로 보존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올해가 항일운동 100주년이라고 하는데 우리 할아버지들도 많이 참여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글·사진 정선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녹두꽃’ 조정석, 첫방부터 강렬 존재감 “내 이름은 ‘거시기’”

    ‘녹두꽃’ 조정석, 첫방부터 강렬 존재감 “내 이름은 ‘거시기’”

    배우 조정석이 관아의 악명 높은 통인 ‘백이강’으로 완벽 변신했다. 26일 첫 방송 된 SBS 새 금토드라마 ‘녹두꽃’에 출연 중인 배우 조정석이 극 중 악명 높은 이방인 백가의 장남이자 얼자 ‘백이강’역을 맡아 첫 방송부터 완벽한 사투리 구사와 몰입도 높은 연기력을 선보여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녹두꽃’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역사 속에서 농민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 했던 이복형제의 파란만장한 휴먼스토리를 그린 드라마로 조정석이 그간 보여주지 않았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을 예고해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또한 조정석이 ‘녹두꽃’에서 맡은 ‘백이강’은 백가 집안에서 얼자로 태어나 자신의 이름 대신 ‘거시기’라는 이름으로 지내며 백가네 일원이 되기 위해 독사와 같은 모습으로 온갖 악행을 저질러야 했지만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점차 변해가는 인물로 앞으로 조정석이 보여줄 ‘백이강’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녹두꽃’ 1,2 화에서 조정석은 독사와 같은 모습의 통인으로 군중들의 앞에 나타나 두려움에 떨게 했으며 동학군 최무성(전봉준 역)과의 대립 중 이름이 뭐냐고 묻는 전봉준에게 ‘거시기’라고 대답하며 살벌한 분위기를 조성해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였다. 뿐만 아니라 이복동생인 윤시윤(백이현 역)이 동학을 믿는 신관 사또를 죽이러 가는 조정석에게 그 동안의 미안함을 토로하며 눈물을 보이자 조정석은 “이현이 넌 꽃길만 골라서 싸묵싸묵 걸어가. 뒤넌 걱정허덜 말고”라고 덤덤하게 말해 이복형제와 얼자라는 신분에 대한 씁쓸한 감정이 시청자들에게까지 전해져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소속사 잼엔터테인먼트는 “이번 작품을 통해 그동안 조정석이 선보인 모습과는 또 다른 매력을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며 “첫 방송부터 보내주신 관심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흡입력 있는 전개에 녹아든 조정석의 캐릭터와 연기에 많은 기대와 관심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SBS 새 금토드라마 ‘녹두꽃’은 매주 금, 토요일 밤 10시에 방영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열혈사제’ 음문석, 현장 스태프도 웃게 한 연기 ‘기대감 UP’

    ‘열혈사제’ 음문석, 현장 스태프도 웃게 한 연기 ‘기대감 UP’

    ‘열혈사제’ 음문석이 온몸을 던지는 열연으로 초강력 웃음폭탄을 예고했다. SBS 금토드라마 ‘열혈사제’ 지난 주 방송분에서는 이중권(김민재 분)과 그 일당의 등장에 따라 신부 김해일(김남길 분)과 검사 박경선(이하늬 분), 그리고 경찰인 구대영(김성균 분)을 중심으로 한 ‘구담 어벤져스’가 무참하게 쓰러지는 내용이 그려지면서 후속 스토리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냈다. 오늘(12일)과 13일 방송분에서는 김해일이 이중권과 일당과 맞섬에 따라 구담 어벤져스와 구담 카르텔간의 한판 승부 또한 예고되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 특히, 이 와중에 황철범(고준 분)의 부하인 ‘롱드래곤’ 장룡(음문석 분)이 온몸을 던지는 열연을 펼칠 예정이어서 그 배경에도 눈길이 모아진다. 충청도 출신의 싸움꾼으로 스스로를 ‘부여 돌대가리 삼층 석탑’으로 칭하던 그는 중국집 배달부인 태국인 쏭삭(안창환 분)을 향해 ‘간장공장 공장장’을 발음해보라며 놀리는 등 수차례 해코지해왔다. 그러다 최근 다시 중국집에서 그는 쏭삭에게 다시 시비를 걸다가 결국 일대일 거리대결에서 처참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김해일과 서승아(금새록 분)에 이번에는 쏭삭에게도 당하면서 톡톡히 망신당함과 동시에 체면까지 구긴 것. 이번에 제작진이 공개한 스틸컷에는 이명우 감독과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음문석이 이내 바닥에 쓰러진 채 온몸을 바닥에 구르는 내용이 담겨있다. 심지어 감독의 요구에 그는 몸 연기에 더욱 디테일함을 가미, 단발머리부터 미세하게 떨더니 이내 팔과 다리, 심지어 손끝과 발끝에도 전에 없던 다급하고도 마치 숨 넘어가는 듯한 표정을 선보였다. 그러더니 알듯 모를듯한 미소까지 지으면서 자신의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그러다 이 감독의 우렁찬 “오케이! 아주 좋아요”라는 컷소리가 떨어지자 당시 같이 촬영중이던 이하늬와 김형묵, 김민재,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음문석 또한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들에게 화답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던 것. 한 관계자는 “그동안 사투리와 춤, 액션으로 극중 웃음을 담당했던 장룡역 음문석씨가 이번에는 온몸열연으로 초강력 웃음폭탄을 터트린다”라며 “그가 이 같은 행동을 하게 된 이유에는 깜짝 놀랄만한 사연이 숨겨져 있고, 여기에다 톡톡튀는 CG까지 가미되니 본방송으로 확인해 달라”라고 전했다. 한편, SBS ‘열혈사제’는 12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마약 혐의’ 로버트 할리 석방…구속영장 기각배경은

    ‘마약 혐의’ 로버트 할리 석방…구속영장 기각배경은

    ‘마약 투약’ 혐의를 받고 있는 방송인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61)가 10일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이 기각됨에 따라 체포된 지 이틀 만에 석방됐다. 할리는 법원이 구속 영장을 기각한 직후인 이날 오후 7시 55분쯤 구금돼 있던 경기 수원남부경찰서에서 나왔다. 그는 체포됐을 당시와 같은 복장에 검은색 모자, 하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할리는 심경과 혐의를 인정하는지 취재진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거듭 “죄송합니다”고 말한 뒤 승용차로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이날 할리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수원지법 박정제 판사는 “피의사실에 대한 증거자료가 대부분 수집돼 있고,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면서 영장 기재 범죄를 모두 인정하고 있어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앞서 할리는 이달 초 자신의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지난 8일 오후 4시 1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체포됐다. 체포 이후 진행된 할리의 소변에 대한 마약 반응 간이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사건을 수사하는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전날 할리에 대한 구속 영장을 신청했지만 이번 기각 결정으로 인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를 이어가게 됐다. 경찰은 할리가 마약 판매책의 계좌에 수십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판매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출신인 할리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특유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와 입담을 선보이며 방송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97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부산에서 거주하면서 ‘영도 하씨’로 본관과 성을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할리는 코레일, 서울시 강남구를 비롯해 전북도, 우체국 국제특송 EMS, 광주비엔날레, 공룡세계엑스포 등 다양한 분야와 지역에서 홍보대사 및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발하게 활동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로버트 할리 결국 참회의 눈물 “국민께 죄송합니다”

    로버트 할리 결국 참회의 눈물 “국민께 죄송합니다”

    1997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얻으면서 일약 ‘한국 대표 홍보대사’로 떠올랐던 방송인 하일(61·미국명 로버트 할리)이 10일 결국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마약 투약 혐의로 국민들에게 큰 실망을 안긴 자신이 원망스러운듯 그는 “국민들께 죄송하다”고 사죄하며 울먹였다. 하씨는 이날 오전 9시 10분쯤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입감돼 있던 수원남부경찰서를 나섰다. 그는 체포됐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베이지색 점퍼와 회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모자와 하얀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하씨는 “혐의 인정하냐”. “과거 마약 투약 혐의도 인정하냐”고 묻는 취재진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죄송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다소 덤덤한 모습으로 답변하고 호송차에 올랐다. 그러나 20분 뒤 수원지방법원에 도착한 하씨는 감정에 북받친 듯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에게 울먹이며 “함께한 가족과 동료들에게 죄송하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수원지법은 이날 오전 10시 30분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하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연다. 하씨에 대한 구속 여부는 저녁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하씨는 이달 초 자신의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중순 하씨가 마약을 구매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서 지난 8일 오후 4시 10분쯤 서울시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하씨를 체포했다. 같은 날 하 씨의 자택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에서는 필로폰 투약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주사기가 발견됐다. 체포 이후 진행된 하 씨의 소변에 대한 마약 반응 간이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하 씨가 마약 판매책의 계좌에 수십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판매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인었던 하씨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특유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국민들의 호감을 얻었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를 섭렵하며 방송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7년에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부산에서 거주하면서 ‘영도 하씨’로 본관과 성을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코레일, 서울시 강남구를 비롯해 전북도, 우체국 국제특송 EMS, 광주비엔날레, 공룡세계엑스포 등 다양한 분야와 지역에서 홍보대사 및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발하게 활동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마약 투약 혐의’ 로버트 할리, 처음 아니었다…오늘 영장실질심사

    ‘마약 투약 혐의’ 로버트 할리, 처음 아니었다…오늘 영장실질심사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61)씨에 대한 구속 여부가 10일 결정된다. 수원지방법원은 이날 오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를 받는 하일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연다. 하일씨의 구속 여부는 저녁쯤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전날 오후 10시 30분쯤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면서 하일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일씨는 이달 초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중순 하일씨가 마약을 구매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서 지난 8일 오후 4시 10분쯤 서울시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하일씨를 체포했다. 같은 날 하일씨의 자택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에서는 필로폰 투약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주사기가 발견됐다. 체포 직후 하일씨의 소변에 대한 마약 반응 간이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하일씨가 마약 판매책의 계좌에 수십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판매책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출신인 하일씨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하며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유창한 부산 사투리와 입담을 선보여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었고, 이후 꾸준히 방송 활동을 해 왔다. 1997년에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하일’이라는 한국 이름을 갖기도 했다. 하일씨가 경찰로부터 마약 수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과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경찰이 하일씨를 마약 혐의로 입건했지만, 마약 검사에서 음성 반응이 나와 무혐의 처분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같은 혐의로 구속된 A씨가 “하일씨와 함께 마약을 투약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하일씨를 입건했던 서울지방경찰청 마약수사대와 안양동안경찰서는 A씨의 진술을 확인하기 위해 하일씨를 불러 조사했다. 그러나 하일씨는 경찰 조사 때마다 머리를 삭발하고 몸 주요 부위를 왁싱하는 등 제모한 상태로 나타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하일씨에 대한 모발 검사가 불가능하자 소변으로 마약 투약 여부를 확인했지만 별다른 약물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환갑의 귀화 변호사까지…‘방송가 마약 쇼크’ 확대되나

    환갑의 귀화 변호사까지…‘방송가 마약 쇼크’ 확대되나

    마약상에 송금 확인… 소변검사 양성 기존 촬영분 편집… 방송가 퇴출 수순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9일 인기 방송인 하일(60·미국명 로버트 할리)씨에 대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하씨가 지난달 중순 직접 은행을 찾아가 마약 판매 관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 있는 은행계좌로 현금 수십만원을 무통장 입금하는 모습을 은행 폐쇄회로(CC)TV에서 확인했다. 경찰은 하씨가 이 돈을 입금하고 필로폰을 건네받아 이달 초 투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씨 소변검사에서 필로폰 양성 반응이 나왔고 자택에서는 범행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주사기가 발견됐다. 하씨가 혼자 투약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경찰은 다른 누군가와 함께 투약했는지, 과거에도 필로폰을 비롯한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인터넷과 SNS 등을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하씨의 범행을 확인했다. SNS 등 온라인으로 마약을 거래하는 일이 크게 늘면서 경찰이 마약 거래 의심 글을 집중적으로 모니터링하던 중 ‘마약 판매책’으로 추정되는 글을 발견했다. 경찰이 SNS 계정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하씨의 범행이 드러났다. 경찰은 하씨로부터 모발도 임의로 제출받아 소변과 함께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하씨가 마약을 구매한 내역이 확인된 만큼 판매책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하씨는 전날 오후 4시 10분쯤 서울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경기남부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체포됐다. 하씨는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죄송하다. 마음이 무겁다”라며 사실상 혐의를 인정했다. 하씨는 방송가에서 퇴출될 전망이다. MBC ‘라디오스타’ 제작진은 “10일 방송 예정분에서 하일 출연 장면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밝혔다. TV조선은 “‘얼마예요?’ 녹화분을 다 내보냈고 향후 출연 계획은 없다”며 “재방송을 모두 편집해서 내보내고 하씨가 출연한 VOD 서비스를 모두 중지한다”고 말했다. KBS도 ‘해피투게더 시즌4’ 출연분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한다. 국제변호사인 하씨는 1986년부터 한국에서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유창한 부산 사투리와 입담을 선보여 인기를 얻었다. 1997년 우리나라로 귀화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경찰 “도주 우려 있다”… 로버트 할리에 구속영장 신청

    경찰 “도주 우려 있다”… 로버트 할리에 구속영장 신청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61) 씨에 대해 경찰이 9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날 오후 10시 30분쯤 하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영장 신청 이유를 설명했다. 하 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11일쯤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하 씨는 이달 초 자신의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지난달 중순 하 씨가 마약을 구매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서 지난 8일 오후 4시 10분쯤 서울시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하 씨를 체포했다. 같은 날 하 씨의 자택에서 진행된 압수수색에서는 필로폰 투약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주사기가 발견됐다.체포 이후 진행된 하 씨의 소변에 대한 마약 반응 간이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왔다. 경찰은 정밀 감정을 위해 하씨의 모발과 소변을 이날 국과수에 감정의뢰했다. 경찰은 하 씨가 마약 판매책의 계좌에 수십만원을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 판매책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미국 출신인 하 씨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유창한 부산 사투리와 입담을 선보여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었다. 그는 1997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한편 하씨는 2017년~2018년 두 차례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하씨가 경찰에 조사를 받았다. 이번까지 세 차례 마약투약 혐의로 경찰에 걸리면서 상습 투약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마약 혐의’ 로버트 할리…과거 ‘대마초’ 발언 조명

    ‘마약 혐의’ 로버트 할리…과거 ‘대마초’ 발언 조명

    마약 투약 혐의로 지난 8일 경찰에 전격 체포된 방송인 하일(미국명 로버트 할리)의 과거 행보가 눈길을 끈다. 각종 ‘홍보대사’로 한국 알리기에 앞장선 그가 마약 투약 혐의로 체포되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인 출신인 하씨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한 뒤 특유의 구수한 부산 사투리로 국민들의 호감을 얻었고 각종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를 섭렵하며 방송인으로 인기를 끌었다. 1997년에는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했다. 부산에서 거주하면서 ‘영도 하씨’로 본관과 성을 직접 만든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코레일, 서울시 강남구를 비롯해 전북도, 우체국 국제특송 EMS, 광주비엔날레, 공룡세계엑스포 등 다양한 분야와 지역에서 홍보대사 및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돼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후기성도교회가 정식 명칭인 ‘몰몬교’ 신자로, 몰몬교의 본거지인 미국 유타주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몰몬교는 마약은 물론 음주, 흡연, 카페인 섭취까지 교리로 금지하고 있으며 신자들의 도덕적 삶을 중요시한다. 몰몬교 신자인 하씨가 마약 투약으로 체포된 사실이 국민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이유 중 하나다. 광주외국인학교 이사장인 그는 2015년 JTBC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 출연해 대마초를 합법화한 미국 일부 지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씨는 당시 “무엇을 금지하던 법이 폐지되면 그것을 하려는 사람이 늘어난다”며 대마초가 합법화된 미국 지역을 예로 들어 “금지된 법이 폐지됐을 때 일어나는 문제들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하씨는 9일 유치장 입감을 위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수원남부경찰서로 압송됐다. 하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를 일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경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는 “죄송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로버트 할리, 필로폰 투약 혐의 체포 ‘라디오스타’ 측 “최대한 편집”

    로버트 할리, 필로폰 투약 혐의 체포 ‘라디오스타’ 측 “최대한 편집”

    방송인 로버트 할리(한국명 하일·60)가 필로폰 투약 혐의로 체포되면서 방송을 앞두고 있는 프로그램에 비상이 걸렸다. 로버트 할리는 최근 tvN ‘아찔한 사돈연습’, SBS플러스 ‘펫츠고! 댕댕트립’에 출연했으며 전날 마약 투약 소식이 보도된 시점까지도 방송됐던 TV조선 ‘얼마예요?’에도 얼굴을 비추는 등 활발한 방송 활동을 해왔다. 또 오는 10일에는 MBC TV 예능 ‘라디오스타’에도 출연할 예정이었다. ‘라디오스타’는 일단 로버트 할리 촬영분을 최대한 편집하겠다고 밝혔다. 제작진은 9일 입장을 내고 “이번 주 수요일 방송 예정으로, 이미 녹화가 끝나고 편집을 마친 상태에서 불미스러운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제작진은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중대한 사안이라는 점과 연예인 마약 사건에 대한 시청자의 정서를 고려해 방송 전까지 로버트 할리 관련 내용과 출연 장면을 최대한 편집해 시청자들이 불편함 없이 방송을 보실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로버트 할리는 최근 자신의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9일 오전 유치장에 입감됐다. 그 자신의 혐의를 일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취재진에게도 “죄송하다. 마음이 무겁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미국 유타주 출신 변호사인 할리는 1978년 부산에 처음 와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으로 스타가 됐다. 이후 “한 뚝배기 하실래예”라는 유행어를 낳은 광고와 방송 활동 등으로 전국구 유명인이 된 그는 1997년 한국 국적을 취득, 하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광주외국인학교 이사장이기도 한 그는 수십 년 방송 활동 기간 별다른 추문이나 논란을 낳지 않고 모범적으로 생활했고, 친근한 이미지로 국민적 호감을 사왔기에 이번 체포 소식은 대중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로버트 할리 ‘필로폰 투약’ 혐의 전격 체포...“죄송…마음 무거워”

    로버트 할리 ‘필로폰 투약’ 혐의 전격 체포...“죄송…마음 무거워”

    인터넷으로 필로폰 구매해 자택서 투약 혐의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에 전격 체포된 방송인 로버트 할리가 9일 사실상 혐의를 인정하며 사죄했다. 뚝배기 같은 푸근한 얼굴에 항상 웃던 모습에 시청자들은 그의 필로폰 투약 소식에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할리는 이날 오전 1시 30분쯤 유치장 입감을 위해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수원남부경찰서로 압송됐다. 그는 흰색 셔츠에 베이지색 점퍼와 회색 바지를 입고 검은색 모자와 흰색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수원남부경찰서 정문에 들어섰다. 아지는 취재진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마약 투약 혐의 인정하시냐” “필로폰은 어디서 구매했냐” “언제부터 마약 투약하셨냐” 등의 물음에 직접 답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만 답했다. 이어진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은 채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할리는 전날 오후 4시 10분쯤 서울시 강서구의 한 주차장에서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체포됐다. 할리는 최근 자신의 서울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구매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체포 이후 하일을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압송해 조사를 벌여 하 씨로부터 혐의를 일부 인정한다는 취지의 진술을 받았다고 했다. 경찰은 날이 밝는 대로 할리를 추가 조사한 뒤 구속영장 신청 여부를 판단할 방침이다. 미국 출신인 그는 1986년부터 국제변호사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해 예능 프로그램과 광고 등에서 유창한 부산 사투리와 입담을 선보여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었다. 1997년 미국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귀화하면서 ‘하일’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정답은, 봄이다 -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정답은, 봄이다 -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늘 보는 바다 / 바다가 그 날은 왜 그랬을까 / 뺨 부미며 나를 달래고 / 또 달래고 했다 ” <김춘수의 시, 통영읍 中에서> 다시 통영(統營)이다. 그리고 통영의 바다. 그래서 통영의 바다 위로 건너온 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을 강구안 바다 너머로 흔들던 통영 유약국 집 둘째 아들 청마 유치환도, 소설가 박경리 역시 <토지(土地)> 속과부 ‘모화’의 눈으로 ‘뚝지먼당’ 언덕받이 너머 호젓한 통영 바다를 바라보았다. 김춘수 시인의 말처럼 ‘푸르스름 패랭이꽃’ 같은 피를 입으로 쏟아내던 음악가 윤이상 또한 죽어서조차도 ‘고양이 울음같은 갈매기의 울음’이 온종일 퍼지는 통영 바닷가 언덕으로 기어이 돌아왔다. 통영이 고향(故鄕)이라 말하는 사람을 보면 괜스레 부럽다. 고향다운 이름을 가져서일까. 골목마다 고향 이야기 가득 품은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이다.통영의 지명 유래는 이러하다. 조선 선조 37년(1604년)에 이르러 삼도수군통제영이 이 곳으로 옮겨 오면서 통영의 이름이 시작한다. 그러다 1955년 9월 1일에는 통영읍을 충무시(忠武市)로 바꾸었고 또 다시 1995년 1월 1일에 이르러서는 옛 이름인 통영시라는 명칭을 다시금 살려낸다.570개의 섬과 617Km에 달하는 해안선을 지닌 통영은 예로부터 항구로서는 남도 최고의 터로 인정받아 왔다. 바다 앞마당에는 한산도와 거제도가 떡하니 각각 한 자리씩 잡고 있어 통영으로 몰아오는 큰 파도, 작은 바람 앞뒤에서 다 막아준다. 이 뿐만 아니라 내륙 속으로 슬쩍 바닷물 들어오는 강구안은 사시사철 삼남지방의 조운(漕運) 길목으로서, 이순신(李舜臣) 장군님 바닷길 굽어보시며 큰 칼 갈고 닦던 세병관(洗兵館)의 엄중한 자리로도 그 역할 톡톡히 하였다.통영 동피랑 벽화마을은 남해 바다가 가장 가깝고, 훤하게 보이는 세병관 동쪽에 위치한 언덕 골목길에 위치해 있다. 원래 ‘동피랑’이라는 뜻은 동쪽에 위치한 ‘비랑’, 즉 벼랑, 언덕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하는 데, 원래 이곳은 구불구불 통영 옛 마을인 동호동, 정량동, 태평도, 중앙동이 언덕마다 옹기종기 낮은 담벼락 아래 모여 있던 낙후된 마을의 다른 이름이었다.통영시의 계획은 동피랑 마을을 철거하고 이순신(李舜臣) 장군님의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마을을 복원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동피랑을 살리기 위해 몇몇 시민단체들이 2007년 10월에 공공미술의 도심 복원 가치를 내걸고 ‘동피랑 백일장 및 벽화그리기’, ‘마을 잔치’, ‘생태 문화지도 제작’을 추진하였고, 급기야 18개 미술팀이 동피랑 낡은 ‘비루박(통영 사투리로 벽을 뜻함)’에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러자 강구안에서 올려 본 벽화 그림 가득한 동피랑 마을의 풍광은 한 마디로 끝내 주었다. 온종일 절간 아랫마을같이 조용하던 동피랑 벽화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지금은 골목 골목 관광객들이 넘쳐 난다. 결국 통영시는 동피랑 마을 철거 방침을 철회하였다. 그림이 시간을 이겨내었다. 통영의 봄은 이렇게 다시 찾아 왔다. 동피랑 언덕길에 철빠르게 피어오른 벚꽃은 여전히 아름답다. 정답은 봄이다. <동피랑 벽화마을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동피랑, 서피랑 두 군데 모두 가 볼 만하다. 천천히 봄을 느끼기에는 제격. 2. 누구와 함께? - 연인들을 위한 곳. 3. 가는 방법은? - 경상남도 통영시 동피랑1길 6-18(구,동호동 118-1) / 버스 101번 중앙시장 - 주차 공간이 협소하다. 따라서 강구안 주변에 주차를 하고 올라가는 편이 낫다. 4. 감탄하는 점은? - 강구안의 풍경들. 중앙시장의 먹거리. 벽화마을에서 느껴지는 옛 시간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인산인해. 주말 동피랑 벽화마을은 올라가는 관람객 반, 내려오는 관람객 반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강구안 풍경들. 서피랑의 설치 미술과 99계단.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알쓸신잡의 ‘분소식당’, 멍게비빔밥 ‘수정식당’, ‘대풍관’, 물회 ‘통영해물가’, 복어 ‘만성복집’, 시래기국 ‘원조시락국’, 해물뚝배기 ‘통영식도락’, 수요미식회 ‘물보라다찌’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dongpirang.org/main/main.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통영 서피랑 99계단, 박경리 문학관, 스카이루지, 케이블카, 김춘수 전시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지금은 골목길 여행이 대세다. 동피랑 마을을 비롯하여 서울의 익선동, 동묘 벼룩시장, 삼청동길, 북촌마을, 동해 논골담길, 태백 상장동 골목, 부산 감천문화마을 등이 이름난 곳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의 생활공간에 대한 배려도 늘 염두에 두어야 여행의 의미가 더욱더 깊어질 듯.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재밌는 특허이야기 전하는 ‘4시의 남자’

    재밌는 특허이야기 전하는 ‘4시의 남자’

    “몸담고 있는 조직을 위해 작은 재능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어 행복합니다.” 특허청에서 ‘4시의 남자’로 불리는 박성우(55) 차세대수송심사과 파트장(서기관)은 만능 재주꾼이다. 대변인실이 특허 정책을 재미있는 대화 형식으로 풀어 보자며 ‘4시의 특허청’을 계획할 때 이미 진행자로 낙점됐다. 박 파트장은 각종 특허청 행사 때마다 사회자로 활약해 ‘엔지니어’는 무겁고 딱딱하다는 인식을 달리하게 만든 주인공이다. ●구독자·심사관 자발적 참여 늘어 진행 제의를 받았을 때 고민이 컸다. 남에게 보여지는 ‘끼’는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지 그의 ‘업’이 아니었다. 일주일 분량을 하루 종일 녹화하고 방송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본인 업무인 심사 부담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품위 우려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감내하기로 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첫방송 후 지금껏 74회를 진행했다. 매일 방송은 정부부처 중 특허청이 유일하다.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특허 이야기’는 시청자의 궁금증을 유발시키기 위한 계획된 멘트다. 나름 ‘다듬었다’고 하지만 툭툭 튀어나오는 거친 경상도 사투리가 방송의 재미를 더한다. 유튜브 방송 이후 그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뭐 하시는 분이세요?”란다. 박 파트장은 “발명가와 기업인 등 다양한 출연자를 만나면서 필요가 발명을 만든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면서 “구독자가 늘어나는 것도 좋지만 방송이 이어지자 자발적으로 출연하겠다는 심사관들이 생겨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외모와 달리 그는 전문성으로 무장한 검증받은 조선해양분야 심사관이다. ‘스마트 심사관’(2회)뿐 아니라 2015년 ‘심사명장’에 올랐다. 우수 파트장과 공중심사 최우수 파트에 선정되기도 했다. 기업에 근무하다 2003년 기술사 특채(5급)로 공직의 길에 들어섰는데, 워낙 적극적인 성격이다 보니 “행사 사회 보는 게 싫어 업을 바꾼 것 아니냐”는 소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특허 중요성 알려 조선 분야 출원 급증 공무원으로서 성과도 적지 않다.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기업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자청했다. 2003년 200건에 불과하던 조선분야 특허가 2014년 3600여건으로 늘었고, 지금도 연간 1800~2000건이 출원되는 등 기업의 인식을 전환하는 데 일조했다. 그는 “특허가 없으면 로열티를 많이 내야 한다고 하니 기업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담담히 전했지만, 조선업체들이 참여한 특허기술분과위원회는 지금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그가 ‘조선(造船)의 특허청장’으로 불리게 된 이유다. 박 파트장은 “욕심내지 않고 일을 즐기면 힘이 덜 든다”며 “부담도 있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며 똑똑해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차·유 케미’ 함께라면… 어촌이나 스페인이나 어디든 꿀잼

    ‘차·유 케미’ 함께라면… 어촌이나 스페인이나 어디든 꿀잼

    차승원·유해진 콤비의 ‘케미’는 어촌에서도, 스페인에서도 여전했다. 여기에 새 식구 배정남은 스스럼없이 잘 녹아들었다. 17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5일 방송된 tvN 새 예능 ‘스페인 하숙’ 1회는 시청률 7.6%(유료가구)를 기록하며 순조로운 출발을 알렸다. 비슷한 시간대 방송된 MBC TV ‘나 혼자 산다’는 10.9%-11.9%를, KBS 2TV ‘더히트 뮤직셔플쇼’는 2.5%-3.0%, SBS TV ‘미추리’는 2.5%-2.5%를 기록했다. ‘삼시세끼’를 통해 국내 어촌을 누볐던 차승원·유해진 콤비는 스페인에서도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그들은 스페인의 작은 마을 ‘비야 프랑카 델 비에르소’에 하숙집을 차렸다. 늘 그랬듯 차승원은 요리를, 유해진은 가구 제작에 힘쓰며 손님 맞이에 분주했다. 차승원은 돼지고기 부위 이름을 스페인어로 적어 올 정도로 꼼꼼했고, 스페인 식자재로 순식간에 제육볶음을 만들어 내 눈길을 끌었다. 유해진은 부엌에 꼭 필요한 식기 건조대를 뚝딱 완성하며 유해진표 북유럽 감성 가구 브랜드 ‘이케요’(IKEYO)를 만들어 웃음을 선사했다. 이들 콤비에 화룡점정은 새롭게 합류한 배정남이었다. 그는 마늘 까기나 설거지 등 주방보조 일을 척척 해내고 형들과 먹을 안주까지 준비해 왔다. 특히 식재료를 살 땐 벼락치기로 배운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다가도 차승원과 있을 땐 진한 경상도 사투리로 ‘행님’을 연발하는 반전 매력을 보여 줬다. 한편 이날 MBC ‘나 혼자 산다’에서는 전현무·한혜진 커플이 결별로 하차한 이후 진행된 첫 녹화가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에서는 박나래와 기안84가 스튜디오 중앙에 등장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시청률은 지난 방송(13.5%)보다 2% 포인트 이상 떨어졌으나 동시간대 1위 자리는 지켰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골목식당’ 백종원 시식중단에 보리밥집 사장 “입맛 다른 걸 어쩌라고”

    ‘골목식당’ 백종원 시식중단에 보리밥집 사장 “입맛 다른 걸 어쩌라고”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이 ’지역상권 살리기‘에 도전한다. 27일 방송에서는 그 첫 번째 지역인 경상남도 거제 편이 첫 공개된다. ‘백종원의 골목식당’ 열두 번째 골목으로 선정된 거제도는 대한민국에 두 번째로 큰 섬이자, 대한민국 대표 조선업의 도시다. 그동안 거제는 ‘불황 무풍지대’라고 불렸었지만, 4년 전부터 닥쳐온 불황에 자영업자들까지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진행된 녹화에서 거제도 지세포항 골목을 찾은 3MC는 “고생길이 열렸다”며 걱정스런 마음을 내비쳤다. 백종원이 처음 찾아간 곳은 ‘거제도 토박이’ 사장님이 있는 충무김밥집이다. 사장님은 수줍어하면서도 애교 넘치는 사투리로 반전 매력을 뽐내 모두를 미소 짓게 했다. 하지만 “아무 맛이 안 난다”는 백종원의 시식평에 사장님은 급격히 말수가 줄어들었고, 냉장고에 들어있던 정체불명의 물건을 들키게 되자 두 눈을 질끈 감기까지 했는데, 자세한 내용은 방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어 백종원은 ‘요식업 14년차’ 사장님이 운영하는 보리밥&코다리찜집에 방문해 시식에 나섰다.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솔직한 입담의 보리밥집 사장님은 “살면서 내 음식이 맛없다고 한 사람은 없었다”며 확고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백종원은 시식 도중 “잠깐만”을 외치며 돌연 시식을 중단해 모두를 의아하게 했다. 특히, 백종원의 시식평을 듣던 사장님은 “내 음식은 ‘아랫 지방’ 사람들 입맛에 맞춘 것”이라며 “입맛이 다른 걸 어쩌라고”를 연이어 외쳐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백종원이 마지막으로 찾은 가게는 도시락집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며 가장이 된 사장님은 새벽부터 장사 준비로 분주했다. 하지만 백종원은 “인간적으로 너무 느리다”며 김밥 싸는 속도부터 지적했다. 김밥을 시식한 후에는 “건강한 맛”이라며 알 수 없는 시식평을 남겼는데, 유쾌, 상쾌, 통쾌한 일명 ‘거벤져스’ 사장님들과 함께 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오늘(27일) 밤 11시 10분에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앉은 자리에서 소바 300그릇 뚝딱, 왜 이런 관습 생겼을까

    앉은 자리에서 소바 300그릇 뚝딱, 왜 이런 관습 생겼을까

    일본 도호쿠 지방 이와테현 모리오카에 있는 아주마야 소바 식당은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3240엔(약 3만 3000원)만 내면 참치회를 비롯한 아홉 가지 메뉴와 함께 소바를 무한정 먹을 수 있는 이벤트를 개최한다. 일본에서는 완코 소바 챌린지로 알려져 있다. 완코는 이 지역 사투리로 ‘작은 그릇’을 뜻한다. 그런데 19일 미국 CNN이 소개한 동영상에 등장하는 이 여성은 17분 동안 무려 300그릇의 소바를 먹어 치웠다. 그릇이 크지 않아 한 입에 먹기 딱 좋다. 15그릇을 먹으면 보통 성인 한 사람이 먹는 소바의 양이라니 300그릇이면 20인분쯤 된다. 옆의 중년 여성 웨이터가 “더 먹어, 더 먹어”라고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내뱉으며 덜어주는 족족 소바를 먹어 치우는 그녀를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조금 뒤 덩치가 산 만한 남자는 200그릇을 먹어치운 뒤 포기했다. CNN 기자도 먹방 대열에 동참했다. 그는 33그릇을 먹고 대단히 인상적인 기록을 작성했다고 여겼는데 옆의 남자가 111그릇을 간단히 먹어 치워 혀를 내둘렀다고 털어놓았다. 왜 이런 완코 관습이 생겼을까? 1600년대 하나마키 마을을 찾은 영주에게 주민들이 대접할 것이 없어서 거친 음식인 메밀 소바를 조그만 그릇에 담아 대접했다. 영주가 많이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주가 맛있다며 자꾸 더 달라고 했다. 그때부터 손님이 찾아오면 그만 됐다고 할 때까지 계속 그릇에 담아 접대하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이와테현 관광청은 설명했다. 이와테현에서는 일년에 두 차례 먹기 대회가 열리는데 관광청 간부는 모리오카의 디펜딩 챔피언은 10분 안에 383그릇을 먹어치운 여성이라고 전했다. 아주마야 식당의 한 스태프는 과거 앉은 자리에서 570그릇을 먹는 남자를 봤다고 했다. 물론 진지한 뉴스가 아니니 동영상과 기사의 숫자가 일치하지 않아도 그냥 넘어간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영미~” 대신 “언니~”

    “영미~” 대신 “언니~”

    ‘“영미~” 대신 이젠 “언니야”.’ 평창동계올림픽 은메달로 감동을 안겼지만 지난해 11월 김경두 전 부회장 일가의 갑질을 폭로해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던 여자컬링 ‘팀 킴’이 모처럼 해맑게 웃었다. 경북체육회 여자컬링 팀 킴은 12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일반부 8강전에서 부산시를 19-2로 완파하고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뒤이어 ‘리틀 팀 킴’ 춘천시청과의 4강전에서도 연장 11엔드까지 가는 접전 끝에 6-5로 승리를 거뒀다. 지난해 8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춘천시청에 태극마크를 넘겼던 팀 킴은 김 전 부회장 일가가 물러난 지난해 12월에야 경북 의성 컬링훈련센터에서 훈련을 재개한 지 40여일 만에 복귀 무대를 연승으로 장식했다.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팀 킴은 이날 취재진 앞에 당당히 섰다. 팀은 눈에 띄는 변화를 겪었다. ‘안경 선배’ 김은정이 임신하면서 서드 겸 바이스 스킵이던 김경애가 스킵으로 나섰고 후보였던 김초희가 서드로 올라왔다. 김영미와 김선영은 그대로 리드와 세컨드를 맡았다. 김경애는 “오랜만에 스킵을 하게 돼 즐기면서 하고 싶었지만, 즐기기보다는 샷에 집중했다. 결승까지 한 샷 한 샷 더 집중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은정이 리드 김영미를 향해 외친 “영미∼” 대신 이제는 친동생 경애가 영미를 향해 사투리를 섞어 “언니야”라고 외친다. 김경애는 “언니가 요즘 말을 잘 듣는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코치석에서 임명섭 코치와 함께 경기를 지켜본 김은정은 “경애는 샷이 완벽하다. 결정을 빨리빨리 하는 것도 장점이다. 아이스 리딩과 팀에서 선수들을 잘 다루는 것 정도만 보완하면 될 것 같다”고 덕담을 건넸다. 임 코치는 “궁극적인 목표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 메달이다. 모든 걸 과정이라 생각하며 차근차근 쌓아 올리겠다”고 밝혔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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