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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의 구심점(송화강 5천리:28)

    ◎각지 조선족 단오에 모여 한마당 잔치/한복차려입고 송화강가서 씨름·그네·널뛰기…/아리랑 국악에 망향의 설움 달래/“핏줄이 뭐길래…” 혼인날보다 더 기다려/10여개 한글신문·방송이 민족혼 일깨워 길림성 길림시 송화강변 버들가지에 새순이 돋고나서 막 숲을 이루면 조선족 축제가 어김없이 열린다.바로 음력으로 5월 단오절 축제인데,길림시 조선족문화관이 매년 이를 주최하고 있다.여자들은 서로 약조나 한듯이 한복 치마저고리로 곱게 차려입고 강변으로 모여들었다.억센 북녘 사투리로 왁자지껄하지만,조선말씨가 마냥 정겨웠다.단오절은 잡거구에 사는 조선족들이 유일하게 어울리는 명절이기도 했다. 길림시 조선족문화관은 이날을 위해 음력설을 쇠고부터 서둘러 준비했다는 것이다.전문인력을 불러들여 가락과 춤사위를 지도했는가 하면,문화관 간부들은 성이나 시정부는 물론 기업인들을 상대로 행사경비 모금에 나섰다.그리고 큰 직장이나 마을은 나름대로 단오절에 선 보인 공연종목을 정하고 몇달씩 연습을 했다.길림화학공장 공정사 김학일씨(47)는 이날을 기다린 이유를 설득력있게 들려주었다. 『단오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사람은 나 하나 뿐이 아닐겁네다.어떤 사람은 자신의 결혼날보다 더 손꼽아 기다린다고 기래요.고향 까마귀를 만나도 반갑다는데,머나 먼 이국땅에서 자리잡은 민족끼리 한해에 한번 만나는 단오절은 기쁜날이 아닐수 없디요.민족이라는 핏줄이 도대체 뭐인디….타국살이 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그리움을 모를 것입네다』 잡거지구에서 조선족문화관이나 조선족군중예술관은 조선족을 대표한 문화창구다.정부 대역으로 조선족 문화활동을 주도하고 있다.그래서 길림시 조선족문화관은 단오절 민속축제를 가락과 춤사위가 있는 여러 놀이와 운동경기로 꾸몄다.어디까지나 단오절 고유의 민속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민속씨름과 그네·널뛰기 등을 경연에 붙였다.그리고 축구와 배구,육상을 곁들였다.전에는 이틀에 걸쳐 행사를 치르었으나 요새 와서는 정부 보조도 줄고 모금도 여의치 않아 하루로 단축해버렸다. ○정부보조 줄어 행사 축소 송화강가 버들숲은 수만명을 수용하기에는 그리 비좁은 것은 아니었다.그러나 무대를 설치하고,놀이나 운동경기 참가자들 자리와 정부관리를 포함한 귀빈 특별석을 빼고나면 옹색했다.개회식은 의례히 「아리랑」주악속에 시작되었다.이 때 만큼은 「아리랑」이 조선족들 콧등을 찡하게 만들었다.정부 대표의 축사는 민족사무위원회(민위)주임이 단골로 맡았다.민위는 소수민족의 정치·경제·문화·교육 등을 담당한 소수민족 후원기관이라 할 수 있다. 길림성과 흑룡강성 같은 성급의 민위 주임은 관례적으로 조선족에게 돌아왔다.민위 주임이라는 자리는 해당지구 소수민족의 수령 격이다.흑룡강성의 경우 전임 민위 주임이었던 이민은 항일투사라 추앙을 받았으나,지금은 조선족을 대표할만한 이를 선듯 꼽기가 어렵게 되었다.그만큼 인재가 없다는 이야기다.이는 조선족의 구심점이 없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다.그렇다고 민족을 한데로 묶는 종교가 있는 것도 아니다.근래 들어 단군을 내세우는 경향을 보이지만,단군이 누구인지를 아는 계층은 두텁지 않았다. 그러면 인물도 없고 뿌리 의식도빈약한 조선족 사회를 이끄는 힘은 어디 있는 것일까.바로 조선족 신문과 방송이다.이들 신문과 방송매체는 지난날 조선족이 지녔던 긍지의 역사를 살피면서 오늘의 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중국 동북3성의 한글판 신문은 성급일간지로 길림신문,흑룡강신문,요녕조선문보와 자치주급 일간지 연변일보가 나온다.그 이외에 가정신문,건강보,공상보,공안보,생활안내,스포츠신문이 있다.모국어 방송은 북경 중앙 송국의 조선말방송,흑룡강성방송의 조선말방송,연변 라디오와 텔레비전방송,연변교육텔레비전방송,연변유선텔레비전이 있다.그러나 텔레비전방송은 전파가 연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흑룡강신문이 대표적 한글판 신문들은 비록 성급의 일간지라 할지라도 전국지나 다름 없다.전역에 흩어져 사는 조선족들에게는 조선족 못자리판인 동북3성의 소식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되어 한글판 신문은 전국에 배포되었다.그리고 한국 등 바깥 소식을 한글로 대할수 있다는 점도 동북3성에서 발행하는 한글판 신문이 전국 조선족에게 배포되는 또 다른 이유의하나일 것이다.길림신문사 이금남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한글판 시문이 그런대로 독자층이 넓게 확산되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우리 길림신문은 올해로 11년째가 되었습니다.지금 3만부를 발행하는 우리 신문은 동북3성과 중국 전역은 물론 심지어는 티벳과 신강 같은 오지에도 들어갑니다.길림성의 2백만 조선족을 겨냥한 신문이기는 합니다만,대단한 숫자지요.2천만 이상의 한족을 대상으로한 한어판 길림신문은 10만여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한글판 보다 더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인구에 비례하면 한글판이 한 수가 위라고 생각합니다』 동북3성에서 가장 잘 꾸린다는 평판을 받는 한글판 신문은 흑룡강신문이다.흑룡강성 조선족 50만을 보고 창간한 이 신문은 30% 이상이 성 바깥으로 나간다는 것이다.인구 비례하면 자랑할만한 수준이기는 하나 모두가 국가의 지원을 받고있다.자본주의사회 신문들이 광고를 주수입으로 운영하는 세계적 현실을 고려하면 전근대적임에 틀림 없다.그러나 민족기업이 빈약한 탓에 광고를 기대하기 어렵다.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이 광고를 주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인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광고라는 것이다. 지난날 신문사 기자들은 월급과 별도로 기사량을 원고료로 환산한 가욋돈을 더 받았다.그런데 요즘들어 원고료가 끊어졌다.그래서 젊고 유능한 기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일이 많다.여간한 사명감을 갖지 않고는 신문사를 지키는 일이 어렵게 되었다.흑룡강신문 경제부 박문봉(41) 부장은 부인 허봉자씨(38)도 같은 신문사에서 문화부장으로 일하는 부부기자다.그는 신문사에서 일하는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기자들 박봉에도 긍지 대단 『재작년까지만도 부부간의 원고료도 있고 해서 어려운대로 생활은 유지했습네다.그런데 원고료마저 끊기고 나서리 빚만 지고 말았디요.어떤 때는 당장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불쑥불쑥 듭네다.경제부장을 하다 보니 아는 기업도 있어서리 도와달라는 청도 적지는 않디요.기래도 인생이 너무 돈만 쫓아가는 거이 볼썽 사납고 해서리 마음을 고쳐먹고 그냥 눌러 있수다.사실은 신문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릅네다』 송화강변에서 축제가 펼쳐지는 동안 인파속을 누비고 땀을 흘리는 사람들 가운데 한 부류는 기자들이었다.길림성내 조선족신문과 방송 기자들이 몰려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조선족 기자들은 길림시의 단오축제가 면면히 이어지도록 민족혼을 불어넣은 정신적 역군이기도 할 것이다.
  • 창작극 「남자충동」 이유있는 관객호응(객석에서)

    ◎주인공의 돋보인 「열의 얼굴」 연기 불황의 찬바람은 공연예술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대부분의 공연장이 봄을 타고 있다.그래선지 창작 실험극의 공연보다는 과거 성공작들의 재탕공연이 늘고 있는 추세다.이런 사정을 감안한다면 지난달 초 첫 무대에 올라 관객들의 폭발적 호응속에 19일부터 연장공연(동숭아트홀)에 들어간 환퍼포먼스의 창작극 「남자충동」(극본·연출 조광화)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우리 관객이 과연 어떤 무대를 인정하고 찾는가 라는 점에서­. 이 작품은 영화「대부」의 알 파치노를 숭상하며 강한 남성에 집착하는 주인공이 가정과 사내로서의 출세를 위해 폭력에 의존하다 결국은 자신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지키고자한 가정마저도 몰락의 길로 몰아간다는게 큰 줄거리. 기본적으로 「남자충동」은 남성을 고발한다.강하다는 것,권위,가부장,카리스마 등 뭇 남자들이 선망하는 남성으로서의 상,그 상의 이면에 감추어진 위선과 강박적 폭력성을 들추어 강한 남성의 허망함을 보여주는게 극의 목적이다. 그런데 정작 이 작품은 남성을두들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두둔함으로써 절묘하게도 남성 고발과 남성관객에의 어필을 동시에 달성한다. 주인공 장정역의 안석환은 열의 얼굴을 보여준다.폭력배를 테러하고 아버지의 손을 자르는 잔인함,자폐증 여동생을 향한 지극한 애정,휘하 졸개들에 대한 보스로서의 관대함,범죄를 감추기 위해 남동생을 협박하고 꼬드기는 교활함,겉으로는 당당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나약한 이중적 모습 등을 표현해내는 연기가 일품이다.거기다가 얼뜨기같은 몸짓과 함께 쏟아내는 강한 전라도 사투리는 한 투박한 사내의 인간미를 되레 돋보이게 만든다.그래서 그의 몰락과 죽음 앞에서 터지는 객석의 웃음과 박수는 어색하지 않다.남성의 상반되는 두 측면을 효과적으로 분리,메시지는 메시지대로 살리면서 휴머니즘이라는 감동과 극적 재미를 동시에 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소재는 다소 무겁고 긴장감을 주지만 출연진들의 배역소화가 좋아 연극이라기보다 바로 옆집 한 문제가정의 일을 구경하는 듯한 자연스러움을 준다.그래서 편안한 재미속에서도 순간순간 가슴찡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 돈빨래 한다고 돈이 희어지랴(박갑천 칼럼)

    「세탁」의 토박이말은 「빨래」다.「빨다」에 뒷가지(접미사) 「애」가 붙어 「빨애→빨래」로 된것.「놀다→놀애→노래」 「막다→막애→마개」따위와 같다.「노래방」「머리방」…하던데 세탁소도 「빨래방」이라 못할것 없을 법하건만. 『두다리 드리우고 귓속이야기한다』(윤동주의 시「빨래」)는 빨래.이 빨래를 뜻하는 말에는 지금은 거의 잊혀간다 싶은 「서답」도 있다.국어사전에서도 「빨래」의 사투리라면서 못쓰게 해놓았으니 더욱더 그럴 밖에.일부 지방에서는 개짐(달거리할때 샅에 차는 헝겊)을 이르기도 했지만 「빨래」라는 뜻으로 전국에서 쓰였던 말인것을….『서답하러 간다』면서 서답감들 이고 동네 우물터로 가시던 외할머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서답」은 한자말 「세답」에서 온 듯하다.지난날 궁중에서 빨래하는 일 맡은 부서를 세답방이라 했고,생피륙을 삶아서 빨거나 바래는 일하는 사람을 이르는 마전쟁이를 세답장(「대전회통」)이라 한데서도 그 자취는 나타난다.나은 이의봉의 「고금석림」 등에 따를때 『손으로 씻고(세) 발로써 밟아서(답)때를 빼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빨래-서답」하면 생각나는게 탄천에 얽힌 전설이다.탄천은 경기도 용인군 구성면 석성산에서 일어 서울 청담동과 잠실동 사이에서 한강으로 흘러드는 강이다.옛날 염라국 사자가 동방삭(삼천갑자=18만년을 살았다는 사람)을 잡으러 용인으로 왔다(『죽어서 용인』이란 말은 중국까지 번졌던게지).동방삭 얼굴을 모르는 사자는 꾀를 내어 냇가에서 야지랑스레 숯을 빤다.지나가던 사람이 이를 보고 혀를 찬다.『내원,별꼴 다보는군.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희게 한답시고 빤다는 얘긴 듣다 처음이야』 요놈하고 잡아갔다던가.이는 토박이 이름 「검내」를 「탄천」으로 한자화한 다음 만들어낸 얘기일 뿐이다. 「돈세탁」이란 말이 또 입입에 오르내린다.왜 돈빨래-돈서답은 하는가.숯처럼 검기 때문이다.거기다 역겨운 냄새까지도 풍긴다.그러나 아무리 잘 빨아도 가리사니는 잡히게 마련이라고 한다.탄천가 저승사자도 검은걸 희게는 못했던 터.더구나 냄새가 고약하지 않은가.또 빨래한 사람이 살아있는 한언젠가 꼬리는 드러나게 돼있는 것이리라. 『세­타­ㄱ!』 세탁소사람이 일감찾아 외치는 소리가 수떨하다.그건 돈빨래 나무라는 소리다.〈칼럼니스트〉
  • 3당대표 예산 연설/대선유세장 방불

    ◎이 대표­“두 김 총재 퇴진” 주장/DJ·JP­문민정부 실정 질타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위원과 국민회의 김대중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 여야 3당 대표들은 29일 충남 예산에서 열린 「매헌 윤봉길 의사 문화제」 개막식에 참석,축사를 통해 한보정국의 원인과 처방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빗속 5천여 청중모여 특히 이날 「연설대결」은 오는 7월로 예정된 예산 국회의원 재선거와 연말 대선을 앞두고 각당의 충청권 공략이 가속화되는 시점에 벌어진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야당 총재들은 거센 빗줄기에도 옥외 가설무대 아래에 모인 5천여 청중들의 환호와 박수속에 「한보」를 물고 늘어지며 정권교체를 호소했다.반면 예산이 고향인 신한국당 이회창 대표위원은 「내고향 예산」을 부르짖었지만 청중들의 표정은 무덤덤했다.심지어 연설도중 『한보사건이나 발표해』라는 목소리가 청중들 사이에서 튀어 나오기도 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충청도 사투리를 섞어가며 문민정부의 실정을 질타한 자민련 김종필총재의 연설때와는 분위기가 판이하게 달랐다. 이대표는 『이제 정경유착과 부패구조를 척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대표는 『지역할거주의를 조장한 정치지도자들은 스스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두 김총재의 퇴진을 간접적으로 주장했다. ○사상검증시비 부채질 이어 국민회의 김총재는 『공산주의 극복을 위해 확고한 안보태세로 뭉쳐야 한다』며 여권내 대선주자들간의 사상검증 시비를 은근히 부채질했다.김총재는 또 『검찰이 여당의 대선자금 6백억원 수수의혹과 한보몸통,현철씨 국정농락 의혹 등을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마무리한다면 자민련과 다음 단계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DJ­JP간 공조 과시 자민련 김총재는 『내일이 안보이는 어지러운 세상을 만든 사람이 반성이나 책임의 기색없이 얼굴을 들고 큰소리치는 세상』이라고 이대표를 몰아붙여 환호를 샀다.두야당 총재는 여러차례 악수를 나누며 공조를 과시했지만 이대표는 국민회의 김총재가 도착하기전 자민련 김총재와 악수를 나눈뒤 행사장을 떠났다.이날 격전장에는 재선거를 앞둔 신한국당 오장섭 자민련 조종석 예산지구당 위원장과 3당 대변인,현역의원 10여명이 수행했다.
  • 새로 거명된 김왕규씨 누구인가

    ◎현철씨와 4차례 해외나간 여행사회장/“민주계 희생 배후역할” 추궁엔 강력 부인 한보 국정조사특위의 김현철씨에 대한 청문회에서 한마음여행사 김왕규 회장(51)이 새로이 부각됐다.국민회의 김원길 의원(서울 강북갑)의 신문을 통해서이다. 김의원은 이날 『김회장을 아느냐』고 현철씨에게 물었고,현철씨는 『집안 어른으로 여행스케줄을 챙겨주었으며,96년 일본 미국 중국 독일 등 4차례에 걸쳐 해외여행을 함께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김의원은 『인품이 훌륭한 분으로 알고있다』면서도 『현철씨에 대한 애정에서 한보로 부터 현철씨를 보호하기 위해 대신 민주계를 희생시키는 배후역할을 했다는데 사실아니냐』고 다그쳤다. 현철씨는 이에 『정치와는 거리가 먼 집안어른』이라며 『사실과 다르다』고 부인했다.한보사태 이후 김대통령과의 청와대 독대설에 대해서도 『아버지가 청와대로 불러 만날 분이 아니며,그런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김씨는 경남 함양 출신으로,전기부품 판매업체 금전사 대표이사 겸 한마음여행사 회장의 직함을 갖고 있다.지난 87년 대선을 전후해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가담하면서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냈으며,현철씨가 『아제』(아저씨의 경상도 사투리)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 방언 하나가 정치바람을 타고보니(박갑천 칼럼)

    조선 효종 임금이 청나라 사신을 접견한 자리.임금이 묻는다.『내가 선양에 볼모로 가있을때 보니 재상들은 희첩이 많아서 자식이 20∼30명씩 울세던데 공은 아이들이 몇이나 되오?』청나라 통역관이 이를 잘못 듣고 『공은 희첩이 많을것인즉 범방하는 횟수도 많을것 아니오?』하고 전한다.파안대소하는 사신의 대답­『첩의 방에 자주 들어가고는 싶으나 그들이 내몸을 생각하여 못들어오게 하는 바람에 뜻대로 못합니다』 「공사견문록」에 쓰인 얘기다.이건 통역을 세운 외국인끼리의 사례.하지만 같은말을 쓰는 같은나라 사람끼리도 뜻이 잘못 전달될 수는 얼마든지 있다.빗듣거나 못알아듣거나 지레 짐작하면서.김구 선생 암살을 두고 다음과 같은 추측이 나온것도 그때문이다.즉,이대통령이 『그사람 요새 좀 뻗장댄단 말야.없어야할 사람인데』하고 쭝덜거리는걸 곱송그리는 유신이 『죽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 결과라는 것.용혹무괴한 인생사다. 서거정의 「태평한화 골계전」에서 그런 「골계스런」얘기 하나를 보자.­과거보는 사람들은 시험날짜가 다가오면 「낙제」의 「낙」자를 싫어한다.그래서 「낙타」를 「타립」이라 하고 먹는 낙지도 「낙지」와 소리가 같다하여 「입지」라 하면서 「낙」자를 입에 올리면 당조짐놓았다.그런터에 어떤사람이 시험장에서 시험지를 떨어뜨렸다.이를 본 사람이 「떨어졌다」는 말을 못하고 『당신 시험지가 섰소』했다.어찌 알아들을리 있겠는가.그는 시험을 망칠밖에 없었다. 이런 오해는 사투리로 해서도 생긴다.6·25때 부산으로 피란간 전라·충청도쪽 사람들은 『어서 오이소』 『저리가소』하는 말에 혀를찼다.이는 그쪽에서의 반말로 『어서 오시오』 『저리 가시오』 해야할 자리다.처음엔 시비도 붙었다던가.그뿐 아니다.전라도쪽에서는 「고생했다」면서 쓰는 「욕봤다」를 경상도쪽에서는 「능욕당했다」로 쓰니 잘못써서 망신당한 일도 있다.이는 제주도 가서 「보자기」란 말 함부로 못쓰는 것과 같다.곳에따라 여성의 중요한 곳을 이르니 말이다. 이른바 한보사건에서 「깃털」이란 말은 두고두고 말썽이다.한데 그말을 한 사람의 고장에서는 「하찮은 존재」를이르면서 흔히 쓴다고한다.그렇다면 본인은 하찮게 쓴 홍모같은 말이 정치바람 타고 무겁게 몸통되어 번져났구나 싶어지기도 한다.〈칼럼니스트〉
  • 황수관 신드롬(외언내언)

    24,25일밤 TV를 보느라 잠을 설친 사람이 많았다.화제의 프로그램은 SBS가 신춘특별기획으로 내보낸 4부작 「황수관 박사의 신바람 건강법」 25일 자정부터 26일 0시50분까지 방영된 제4부의 경우 시청률이 무려 27%(점유율 74%),이 시간대의 시청률로는 경이적이다.24일밤의 1,2부작 방영때도 각각 19.6,24.7%의 시청률을 올려 이틀밤 전국의 심야시청자들은 거의가 이 프로에 매달려 신바람이 났다는 얘기가 된다. 「신바람 건강법」은 연세대 의대에서 스포츠의학을 강의하는 황수관 박사의 강연 프로그램으로 건강법의 핵심은 밥을잘 먹을 것,항상 웃음을 잃지말도록 노력할 것,각자의 몸에 맞는 운동을 찾아 적당한 운동을 계속할 것 등이다.평범한 상식적 얘기가 그토록 인기를 끈것은 「건강」이란 인기 품목에 현직 의대교수의 권위,그의 뛰어난 입담과 코미디언적 기질,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빚어낸 합작품. 황박사는 최근 「내몸에 맞는 운동으로 현대병을 고친다」는 책도 펴냈는데이 책에서도 그는 많은 사람들이 운동의 중요성은 알면서도 제몸에 맞는 운동을 찾아내 효과적으로 운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운동과 신체는 궁합이 있다는 것.그래서 그는 체질에 맞는 「안성맞춤 운동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체질에 맞는 운동을 찾는 것은 전문의사의 지도를 받으라고 권유한다. 「신바람 건강법」은 지난 89년 한때 전국에 휘몰아쳤던 「이상구 신드롬」을 연상케 하고 있다.그러나 이씨의 건강법이 지나치게 채식주의에 치우쳐 「이상구 신드롬」은 문제가 됐다.또 의학적이라기 보다 종교적인 측면이 강해 결국 도중하차 하고 말았던 것이다. 「신바람 건강법」은 아직 객관적 검증이 되지 않았고 「황수관 신드롬」의 열풍이 얼마나 클지도 아직은 가늠할 수 없다.어느 한쪽에 치우침없이 한국민의 건전한 건강법이 됐으면 한다.
  • 소설가 윤흥길(이세기의 인물탐구:122)

    ◎불행한 시대를 증언하는 서민의 양심/날카로운 현실비판·화해의 정서 공유/능란한 사투리 구사로 해학의 멋 더해 「…비는 분말처럼 몽근 알갱이가 되고 때로는 금방 보꾹이라도 뚫고 내릴 듯한 두려움의 결정체들이 되어 수시로 변덕」을 부리다가 「주룩주룩 쏟아지는 비가 온 세상을 물걸레처럼 질펀히 적시면서」 소설 「장마」의 무대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서서히 스며든다.「악의에 찬 빗줄기」는 「손가락으로 그저 꾹 찌르기만」해도 「선명한 물기가 배어」나오고 후렴처럼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처연한 슬픔이 치렁치렁 이어진다.윤흥길 소설은 토속적인 사투리를 능란하게 구사하면서도 문장마다 판소리의 사설조가 절조를 이루는 것이 특징이다.단순히 장대비가 줄기차게 내리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둡고 질퍽한 당대적 배경과 등장인물의 심리묘사가 치밀하게 직조되어 평론가 천이두는 이를 「문학의 백미」로 평하고 있다. ○등장인물 심리묘사 치밀 76년 그의 첫번째 창작집 「황혼의 집」이 나왔을때 그 속에 실린 「장마」를 읽으면서 소설가 이문구는 「언젠가 반드시 나오리라고 기대한 제대로 쓴 소설」에 감동하여 「혼자 웃다 울다 하느라고 담배 한갑을 다 태우고는」 자신도 모르게 「왔구나!」하는 탄성을 질렀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빗소리처럼 구슬프게 가슴에 파고드는 이 한편의 소설은 발표된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명문의 명문」「명편중의 명편」으로 꼽힌다. 평론가 김치수는 「도중에서 그만둘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의 소설을 읽고 나면 「방금 읽은 소설의 여운이 한동안 가시지 않는 것이 다른 작가와 구별되는 윤흥길만의 매력이자 독창성」이라고 했다. 윤흥길이라고 하면 우선 「장마」와 「황혼의 집」「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장편 「에미」「완장」「밟아도 아리랑」 등 문체가 일렁이는 눈부신 주옥편을 얼마든지 들 수 있다.그리고 어느 소설을 읽던 「음험한 세력의 위협 아래 놓인 소시민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비극으로 치닫는 중에도 「인간적인 면」과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다.사회저변에 산재된 모순과 비리를 파헤치는 과정에서도 그것이 소설인 이상 그는 「글만의 묘미」를 완벽하게 살리는 미점을 지킨다. ○「반신마비」로 집필 주춤 79년 일본의 젊은 세대의 문학적 기수이던 나카가미 겐지(중상건차)와의 교분이 계기가 되어 「장마」가 「나가자메(장우)」라는 타이틀로 일본문단에 소개됐을때 요미우리·아사히신문 등은 「지적소설」로 이를 일제히 호평하고 특히 평론가 아키야마 도시(추산준)은 「인간을 응시하는 철저한 작가정신」과 「곳곳에 번뜩이는 세태풍자와 야유의 직재성」을 특필한 바 있다.두번째 창작집인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가 그해 연말과 연시 2개월동안 3판매진,이후 일본어로 동시출간된 장편 「에미」와 「완장」이 현대문학상·한국창작문학상을 한꺼번에 수상하던 83년 무렵에는 문단의 시선이 온통 그에게 집중되어 「윤흥길 전성시대」를 맞기도 했다.그러나 베를린에서 열린 제3세계 문학축제 참가후 예상치못한 「반신마비」증세를 일으키면서 그는 왕성하던 집필을 잠시 주춤거리지 않을수 없었다. 윤흥길은전북 정주에서 식산은행에 다니던 윤상오씨의 2남4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풍요로운 환경에서 「도련님」으로 불리던 어린시절이 있었고 「사세에 따라 적당히 굴신하면서 영달을 도모하는 직장생활에 적응치 못한」 부친의 무능탓에 「가난이 점철된 어두운 사춘기」를 보냈다.전주사범 졸업후 익산군 소재 국민학교 교사시절에 「소설을 통해서만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각」에서 뒤늦게 문학에 입문했다. ○한때 초등교 교사지내 그와 절친한 이문구에 의하면 「아무날 아무데서 보더라도 본디 생긴대로 그냥 남아 있는 별종이 곧 윤흥길」이며 「서너마디는 건네야 한마디 넘어올지말지한 더디고 무딘 입」「아무리 말쑥한 옷을 걸쳐도 반찬 없이 밥먹고 나온 사람처럼 멋적은 표정」이 그의 겉모습이다.그러나 어눌하되 호불호가 선명하고 경거부박을 경계하여 자신이 하기 싫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에 타협이 없다. 최근의 새 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역시 찬란한 어휘구사와 풍자의 범람으로 한번 소설을 손에 들면 끝까지 놓지 못한다.또 이미사어가 돼버린 「자닝하게」「툽상스럽게」「옴나위없이」「왜장치는 소리」며 「방짜」와 「행짜」,「우두망찰」「족탈불급」 등 우리의 고유어를 소설문맥속에 되살려 익살과 해학의 맛을 톡톡히 실감시킨다. 그의 절제력은 주목할 만한 사상적 메시지를 전개하는 자리에서도 「관념을 극구 피하고 구체적인 스토리와 주변묘사」로 작가의 의도를 투영한다.「인간심리의 섬세한 기미를 포착하여 이를 객관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그의 뛰어난 능력」일 것이다.가족은 오늘날까지 끝없는 기도로 감쌀 뿐만 아니라 진솔한 호남사투리의 출처인 어머니 조옥성 여사(74)를 모시고 있고 부인 유경순씨와의 사이엔 남매,과기대를 졸업한 아들 아람은 현재 예일대 재학중이고 딸 예니는 이대에 다니고 있다. 그의 최근의 소설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와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문학적 응전이며 작가적 문제의식을 강렬히 환기시키기 위해 「사실주의 작가가 드러내게 마련인 안이한 평판성」 대신 「사실주의적 세계를 비사실주의적 시각으로 전화」하려는 의지가강하다.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 윤흥길은 이제 「한국문학사라는 넓은 체계속에 편입되어」 작가로서의 입지를 탄탄히 이룩한 위치다.그래서 작가는 「어떤 형태로든지 불행한 시대를 증언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이며 「밝음 저쪽에 가려진 어둠 가운데서 진실을 끄집어내는 것이 작가가 수행하지 않으면 안될 중대한 역할」임을 실천하는 시기다. 「아무날 아무데서 보더라도 본디 생긴 그대로」「더디고 무딘 입」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정통적인 소설관과 그 기법을 견고히 지키고 「독자의 평균에 부합하지 않는」 자신만의 명철한 창락의 글을 쓰고 있다. 현실에 도사린 환부를 날카롭게 도려내고 우리의 정체성을 지향하는 중에도 「따스한 해조」와 「화해」의 정서를 함축하는 그의 소설은 독자의 언 가슴을 훈훈하게 녹여주면서 그는 자랑스러운 「우리시대 우리만의 작가」로 언제라도 풋풋하게 이곳에 서 있다. □연보 ▲1942년 전북 정주출생 ▲61년 전주사범학교 졸업 ▲68년 한국일보신춘문예 소설 「회색면류관의 계절」 당선 ▲73년 원광대 국문과 졸업 ▲76년 첫창작집 「황혼의 집」(문학과 지성사) 출간 ▲78년 첫장편 「묵시의 바다」(문학과 지성사) 출간 ▲79년 중편 「장우(장마)」(동경신문출판국),「황혼의 집」일어판 출간 ▲81년 나카가미 겐지(중상건차)와의 문학대담집 「동양에 위치하다」 출간 ▲82년 장편「에미」(한국방송사업단),일어판 「모」(일본 신조사) 출간 ▲84년 베를린 제3세계문학축제 참가 ▲89년 전작장편소설 「낫」(일본 각천서점) 출간 ▲95∼현재 한서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대표작품집〉 창작집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77년 문학과 지성사) 「무지개는 언제 뜨는가」(79년 창작과 비평사),장편 「순은의 넋」(80년 도서출판 은애),중단편집 「장마」(민음사),창작집 「완장」(83년 현대문학사),문학수상록 「문학동네 그 옆동네」(83년 전예원), 장편 「백치의 달」(85년 삼성출판사),중편집 「꿈꾸는 자의 라성」(문학과 지성사),장편 「묵시의 바다」(87년 문학사상사) 「밟아도 아리랑」1·2권(91년 문학과 지성사) 「산에는 눈 들에는 비」(93년 세계사),에세이집 「텁석부리 하나님」(95년 문학동네」,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1·2권(97년 현대문학사)등 다수 〈수상〉 한국문학작가상(77년) 한국창작문학상·현대문학상(83) 요산문학상(95년)
  • 윤홍길씨 신작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

    ◎종말론에 휩쓸린 망나니부부 검질긴 「잡초」의 인생유전/작부출신 부월과 「별」다섯 전과자 임종술/우연히 만난 사이비종교의 선교사 되는데… 세태풍자의 대가 윤흥길씨가 신작장편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1∼2를 현대문학사에서 펴냈다.96년 7월까지 삼년이상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한 것을 묶었으며 먼젓번 장편 「완장」의 속편격이다. 제목에서 자칫 종교소설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번 작품은 정작 「완장」의 망나니부부 임종술과 김부월이 서울에서 시한부 종말론 교파에 휩쓸려 벌이는 웃지못할 소동을 다루고 있다. 저수지관리인 완장하나 차고 갖은 행패를 일삼다 쫓기듯 고향을 빠져나온 임씨네 부부는 훔쳐온 수양어머니 패물로 차린 서울 새살림마저 거덜나자 「너죽고 나죽자」는 심정으로 겨울 한강에 투신하러 나간다.여기서 예수믿고 「빛의 길」로 들어선 박장로를 만나 부부는 「재기」의 발판을 얻는다.「길잃은 어린 양」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박장로 일가의 후덕한 보살핌속에 작부출신 부월은 회개한 사마라이여인 못지않은 간증의 여왕으로,종술은 저수지시절 뺨치게 힘있는 빌딩관리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같은 부부가 오랜만의 고향나들이에서 돌아오는 서울역에서 「10월 28일 휴거」를 주장하는 시한부 종말론파와 마주치면서 소설의 해학은 꼭지점까지 달려간다.종말론이 가진자들의 불안심리를 부추겨 재산을 통째로 알겨먹을 「노다지광」임을 순식간에 눈치채고 이들의 선교사로 또한번 변신한 부월과 종술이 조직 깊숙이에서 구린 내막을 속속들이 들춰보여주는 것이다. 갖은 꾀로 한몫 잡는데 혈안이 된 작부출신 부월과 「오성장군」(별다섯의 형무소 출입경력)주먹을 자랑하다가도 마누라 한마디면 스르르 떡심풀려 어리숙해지는 종술.세인의 기준으로 볼때 이들은 의인은 커녕 정반대의 유형임이 분명하다.그럼에도 이 못말리는 한쌍을 미워하기란 쉽지 않다.배신과 양다리걸치기를 천연덕스럽게 해치우는 이들이야말로 사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기를 떡먹듯이 되풀이해온〉 우리의 피해자 이웃들이기 때문이다.물러터진 천성에 늘 제꾀에 제가 넘어가면서도 살아갈잔머리를 굴리며 번번이 벌떡 일어서는 이들 부부는 검질긴 잡초의 생명력을 닮았다. 〈시방은 요래 꽁지 빠진 장닭맨치로 추레혀 뵈야도 왕년에는 지가 널금 일대를 사정없이 주름잡던 뫼미구만요〉〈고속도로 타딧기 김부월 슨교사 한참 깃발 날리는 판국인디…〉 등 비릿하고도 걸판진 부부의 남도사투리가 소설 전체에 기세좋게 펼쳐진다.
  • 현대무용가 김복희(이세기의 인물탐구:118)

    ◎부딪치는 모든 인연을 안무주제로/한지·상여·전통악기 등 우리것 춤속 용해/동서의 모든것 혼합·파격… 「한국적 춤」 고수 「변치않는 경상도 사투리」 「70년대의 몸매와 90년대의 몸매」 「풍경을 만들줄 아는 멋쟁이」 「우정」 「시시한 평문은 무시하기」 「뛰어난 음악 감식안」 「생선요리와 채소선호」 「연습때는 호랑이」 「작품에 임할때는 독」 이는 무용평론가 김영태가 김복희와의 20년 교류를 정리한 「김복희의 열가지 특징」이다. 김복희는 자신의 예술을 성취하기 위해 절대로 소극적이지 않다.어느 부분에서도 「호랑이」와 「독」의 요소를 속속들이 지니고 있다.정열적으로 자신을 설명할줄 알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한 승부근성이 대단하다.그의 춤은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고 부딪치는 모든 인연」을 안무의 주제로 삼으면서 어떤 무대에서나 「정서적으로 안정된 한국적 춤」을 고집한다.그의 춤은 이른바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자료들, 이른바 백의와 한지와 탈 상여 부채를 끌어내고 대금 징 목탁과 구음을 춤에 인용하고 있다.또 자료와 자료들을 서로 접목시키거나 동서의 모든 것을 뒤섞어 보기도 한다.그리고 이 모든 것을 파격하고 다시 용해시켜 춤의 탄성을 확고하게 확대해 나간다. 이광수소설을 원작으로한 「꿈,탐욕이 그리는 그림」에서의 대금과 첼로의 대비가 그랬고 서서히 역사의 뒤로 사라져가는 고려의 이미지를 윤이상의 「이미지」에 접목한 「반혼」이 그 한예이다.그중에서도 대작 「꿈,…」은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조각」들이 현실의 가상공간으로 유도되는 과정을 오버랩과 자막으로 처리하면서 불균형과 비대칭으로 해탈과 초월에 이르는 경지를 경건하게 그리고 있다.이 춤은 지난 95년,푸미폰 아둔야뎃태국국왕 즉위50주년을 맞아 태국정부가 마련한 기념공연페스티벌에 초청되어 『그의 극미한 거동조차도 춤의 흐름이며 춤의 다이내믹스와 짜임새가 놀라울만치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았다. 그의 저돌적이면서도 앞장서는 행동은 71년 이화여대를 졸업하던 해부터 시작된다.그가 현대무용을 본격적으로 접하던 60년대 말의 우리의 현대무용은 육완순이 미국에서 배워온 마사 그레이엄과 호세리몬의 테크닉이 전부였다.그 시절에 스승을 떠나 독립한다는 것은 일종의 도전으로 받아들여졌으나 그는 『예술의 세계와 사제지간은 별개』라고 선언하고 동기생인 김화숙과 스승의 문하를 떠났다. ○대학졸업때 독립선언 「우리만의 한국적 현대무용」을 만든다는 각오로 전통악기나 살풀이가락을 춤에 맞추거나 한국적인 정중동과 서구적인 역동성을 도입하여 그들만의 독특한 세계를 이룩하기 위해 긴 세월을 모색으로 보냈다. 그때의 첫무대가 불교적 색채가 짙은 「법열의 시」다.공연이 끝나자 『현대무용의 새로운 시각이다』 『아니다.저것이 무슨 현대무용이냐?』는 호평과 비난이 엇갈렸고 결국 「구성상의 재치가 돋보이는 완성도 높은 작품」을 계속 선보여 「자신들의 세계를 투철하게 성취」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톨스토이의 「예술은 체험의 산물」이라는 말에서 출발된 그들의 협력작업은 「예술가는 항상 자신에게 귀기울이면서 자신이 들은 것을 스스로 기록해야 한다」는 에머슨의말에 공감하여 지난 92년부터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그때부터 김복희는 그동안 축적된 자신의 세계를 솟구칠듯 분출시키면서 「오리지널 김복희춤」을 연속적으로 발표해 나갔다. 「십우도」를 바탕으로하여 「인간본성의 상실과 억제,정열과 정열의 파멸」을 심층있게 파헤친 「아홉개의 의문,그리고」를 비롯,그리움이 하나가 되어 한송이 꽃에 이르는 「국화옆에서」와 인체를 산이나 강에 비유한 「진달래꽃」,역시 종교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장승과 그림자」는 인간의 현란한 삶이 「장승」이라는 목신의 유구함에 비해 아무것도 아닐수 있다는 새로운 해석으로 무용계의 호평받았다.평론가 김경애의 「평소 불교적인 소재의 작품을 많이해온 김복희의 일련의 작품에서 또다른 탁월한 능력을 인정하게 된다」는 평이 이를 뒷받침한다. ○「법열의 시」가 첫무대 그가 불교적 의식과 분위기를 좋아하게 된것은 대학 4학년때 우리의 전통악기를 사용한 작품 「탑」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부터다.절에서 울리는 북이나 종소리를 녹음해 오기도 하고 석가탑다보탑 등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실감하기 위해 그는 요즘도 자주 지방여행에 나선다. 그는 대구중심가인 상서동에서 태어나 비교적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다.과수원을 하던 아버지는 완고한 편이었으나 어머니가 무용을 좋아해서 두딸중 장녀인 그에게 무용을 가르쳤다.6살때부터 함귀봉무용연구소에 다녔고 정소산 최희선을 거쳐 수도여사대 김남주 교수에게 발레를 배우기도 했다.자신의 무용과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지 배운다는 욕심에서 그는 대학에 와서도 현대무용외에 김진걸의 「산조」,육태환의 「탈춤」을 사사했고 「반드시 춤은 몸으로만 춘다」는 타성에서 벗어나 「몸으로 내는 모든 소리와 움직임은 춤」이라는 원칙을 세우게 되었다. ○불교적 소재 즐겨 사용 사업을 하는 김규현씨와의 사이엔 딸만 둘,74년부터 살고있는 연남동자택에서 가야금과 관음보살상이 걸린 서가에 앉아 그는 강의와 공연이 없는 날은 하루종일 탈춤을 연구하고 무당춤의 동작에 파고들어 새로운 동작을 창조하는데 천착한다.그의 저서에서 「춤은 끊이지 않고 의미를 바꾸면서 암시적이면서도 포괄하기 어려운 고리를 형성시킨다」고 한것처럼 그는 강렬한 창작력이 샘솟는 가운데 「가장 감정적이고 지적인 경험」을 그의 새로운 작품에 살려내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일수 있고 춤을 출수 있을때까지 무대에 서겠다」는 그의 의지는 「춤을 춤으로도 보고 춤을 소리로도 듣고 춤을 그림으로도 생각하면서」 언제나 「열려진 감각으로 사물과 자연과 풍속과 세태를 감지」하는 자세를 지킨다.그리고 김영태의 지적대로 자신의 일상적인 모습은 변치않지만 그의 춤만은 끊임없이 변하고 흐르고 움직이면서 긴 인고와 고뇌끝에 마침내 「춤은 아름답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이제 한국현대무용언어를 정립한 시점에서 「그만의 의식을 위해」「인생의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밤새 천둥소리를 이긴 또다른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그는 현란한 창조의 빛을 무대에 흩뿌리고 있다. □연보 ▲1948년 대구출생 ▲71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제1회 현대무용발표회 「법열의 시」외 ▲74년 이대 대학원 졸업,이대 강사 ▲75년한양대 전임강사,제2회 현대무용발표회 「춘향이 이야기」외 ▲79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남불) 개인공연 ▲80년 브뤼셀 암스테르담 개인공연 ▲80∼85년 서울대 연세대 강사 ▲81년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82년 미국 LA개인공연 ▲83년 일본 ’83무용작가협회 특별공연(도쿄 도라노몬홀) ▲84∼85년 소극장운동 전개 ▲85년 파리 국제무용제 참가 ▲86년 현대춤협회 회장 ▲87년 파리 피에르카르댕극장 개인공연 ▲88년 서울올림픽 개회식 「혼돈」안무,서울국제무용제 참가 ▲89년 대한무용학회 부회장 ▲90년 멕시코 세르반티노시티 축제참가 및 5개 도시순회 공연 ▲91년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서울예술단 「영혼의 노래」 안무 ▲92년 원광대 대학원(철학) 졸업 ▲93년 예술의 전당 개관기념공연 ▲94년 경기대 대학원서 박사학위,스페인 마드리드 라빌라문화센터 초청공연 ▲95년 태국국왕제위 50주년기념 페스티벌초청공연,광주비엔날레 축하공연 ▲96년 멕시코문화원초청공연,김복희무용단 창단25주년기념공연 〈저서〉「현대무용 테크닉」(80년) 「무용창작」(83년) 「무용론」(86년) 〈수상〉대한민국무용제우수상(79년) ’87최우수예술가선정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90년)
  • 방송은 언어 파괴자인가/임영숙 논설위원(서울논단)

    10여년 전이다.서울이 고향인 원로 국어학자 ㄴ교수가 『나는 인간 문화재』라고 말했다.자신처럼 정확한 표준어를 쓰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말이었다.양주동 선생의 자칭 「천재」가 연상되기도 하고 과장된 느낌도 들어 혼자 실소했다. 그런데 요즘 방송을 들으면서 그의 말을 자주 떠올린다.이러다가 정확한 우리 말을 쓰는 사람은 문화재처럼 정말 희귀한 존재가 되는것 아닌가 걱정스러워지기도 한다. 방송언어는 사적인 말이 아니다.공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적인 언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석에서도 곤란한 말을 방송에서 사용한다.문법에 안맞는 문장은 물론이고 틀린 용어,잘못된 발음,이상한 조어,사투리,비속어,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언어 오염이 가장 심각한 방송 프로그램은 토크쇼를 포함한 오락프로그램이다.어느 쇼에 출연한 연예인은 상대방을 향해 『저것두 나이 처먹고 이제 머리 쉬네』라는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고 어떤 MC는 『다음 코너엔 두분이 준비되어 있습니다』고 사람을 물건처럼 소개했다.또 『뒤를 돌아주시고』 『전국적으로 돌풍이 몰아붙여 갖고』 『너무 즐겁고 너무 아주 아름다운』 등의 표현도 등장한다. ○언어오염 위험수위 드라마에서는 극의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데도 거친 말투와 상소리를 남용한다.「이놈 저놈」 「자슥아」 「임마」는 약과이고 「이새끼 저새끼」 「×팔」「×자슥」 등의 욕설을 남녀 출연자를 불문하고 쏟아낸다. 우리말을 파괴하는 이런 잘못된 표현과 비속어를 예로 들자면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문제는 오락프로그램 뿐만 아니라 뉴스에서도 부정확한 발음과 사투리를 남발하고,광고에서는 광고효과를 위해 일부러 틀린 말을 만들어 쓰거나 이상한 발음을 하는 등 방송언어 전체가 왜곡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언어가 국민의 언어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방송언어가 왜곡되고 오염되면 국민의 언어생활도 왜곡되고 오염된다.따라서 방송에서는 바르고 고운말을 사용해야 한다. ○뉴스발음도 부정확 국민의 올바른 언어생활을 위해 방송출연자와 방송사는 바르고 정확한 문장을 쓰려는 노력과 훈련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방송사 안에 방송언어 전문교육기관을 두어 성우나 아나운서 뿐만 아니라 모든 방송 고정출연자에게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또한 심의기구를 설치해 방송인의 잘못된 말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해야 한다.잘못된 언어습관을 고치지 못하는 방송인은 출연을 정지시키고 재교육해야 한다. 광고주도 바른 광고언어 사용에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바른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광고는 일차로 방송국에서 걸러내야 하며 명백하게 우리 말을 왜곡시키는 광고는 광고심의위원회 등에서 제재해야 한다. ○바르고 고운말 써야 방송언어의 문제점과 개선책은 이미 방송인들 사이에서 논의된 바 있다.방송언어연구위원회의 토론회가 열리기도 했다.그러나 아직도 그 실천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얼마전 잘못된 방송언어 사례를 꼬집는 에세이집 「애무하는 아나운서」를 낸 강재형 MBC 아나운서가 우리말의 오염 원인은 『방송의 시청률 만능주의와 말에 대한 무신경』이며 『무지보다 더 나쁜것이 무심함』이라고 말한 것은 정곡을 찌른 말인듯 싶다.40여년동안 방송활동을 해온 성우 고은정씨가 『우리 국민은 말을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것이나,아나운서 출신의 전영우 교수(수원대 국문과)가 『영어발음에 기울이는 만큼의 주의를 국어발음에 기울여 주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경청할만하다. 영국에는 「BBC영어」라는 말이 있고 일본에는 「NHK일본어」라는 말이 있다.BBC방송과 NHK방송에서 쓰는 영어와 일본어가 그만큼 정확하다는 이야기다.「KBS한국어」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임영숙 논설위원〉
  • 「빠떼루」가 유행어됨은 세상탓이라(박갑천 칼럼)

    지난 애틀랜타 올림픽후 유명해진 체육인(레슬링 해설가)이 있다.「빠떼루아저씨」로 통한다는 김영준씨.전파매체에 불려다니더니 광고에까지 나온다.그런만큼 그가 쓴 「빠떼루」란 말은 유행어로서 소소리바람을 일으킨다. 「빠떼루」는 레슬링에서 경고를 주는 파르테르 포지션(parterre position)의 「파르테르」에서 왔다.이 프랑스말은 꽃밭·땅바닥을 뜻한다.경고받은 선수가 경기장 바닥에 엎드리는데서 온듯하다.프랑스말은 【p】나【t】가 된소리(경음)에 가깝기 때문에 「빠르떼르→빠떼르」로.김씨 입에서는 그게 「빠떼루」로 나오면서 「일본식발음」이란 말도 있었지만 「르→루」만 뺀다면 오히려 「프랑스식 발음」이라 해야겠다. 이말이 뜻밖의 유행바람을 탄 까닭은 투박하고 구수한 그의 남도사투리에 있다고들 말한다.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세태와도 관계는 있는듯이 보인다.한때 유행한 대중가요 노랫말에 앞을 보나 뒤를 보나 「몽땅 사장님」이란게 있었는데 그말 그대로 앞을 보나 뒤를 보나 「빠떼루」감들 좀많은 세상인가.따져 생각해보자면 이승을 사는 사람치고 「빠떼루」감 아닌 경우는 없다고 함이 더 옳은 표현으로 되는 것이리라. 설교를 받아야할 사람이 언거번거한 설교를 하고 단속을 받아야할 사람이 지더린 단속을 한다.제허물은 덮어둔채 곤댓짓하면서 남더러만 「빠떼루」감이라고 나탈거린다.「송남잡지」 등에 나와있는 속담마따나 『가마밑이 노구솥밑 검다고 하는』것이 세상사.큰 「빠떼루」감들이 작은「빠떼루」감들에게 생청붙이는게 아니던가.「맹자」(리루상편)가 『사람의 잘못된 버릇은 남의 스승되기를 좋아하는데 있다(인지환재호위인사)』고 말한 뜻도 거기 있다.남을 탓하기에 앞서 제 매무새부터 챙기고 제 걸음걸이부터 살피라는 뜻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사회라는 큰 얼개로서 본다면 「빠떼루」란 끊임없이 주고받아야 하는것.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럴수밖에 없고 그가운데서 발전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한판의 레슬링은 그래야 하게 돼 있는 인생무대를 비쳐준다.그러므로 특히 어른들의 「빠떼루」주는 소리는 서릿발 같아야 한다.그 말본새가 시르죽으면 안된다.그럴수있게 어른들 스스로도 몸가짐 마음가짐을 삼갈줄은 알아야겠고. 『지금 빠떼루 주고 있슴다.경기(사회)가 잘 풀리고 있슴다』〈칼럼니스트〉
  • 거둠의 철은 인생을 가르치누나(박갑천 칼럼)

    거둠의 철은 축복의 철이다.지금 산과 들을 그들먹하게 채우는 시설거림.봄의 씨뿌림과 여름의 가꿈에 이은 열음들의 찬송가다.어디에고 보람이 있다.노래가 있다.기쁨이 있다. 거두어들임을 일러 「가을하다」고 한다.물론 가을(추)과 관계되는 말이다.이말들은 「□다」라는 옛말에 뿌리를 두고있다.그건 「끊다,자르다」는 뜻.그 「□」에 「□」이 붙어 「□□­가알­가을」로 되고 「□」가 붙어 「가□­가위(협)」가 된다.「가슬(가실)하다」「가새」따위 사투리는 우리 옛소리 「□」이 「ㅇ­ㅅ」으로 갈렸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가을은 익은 곡식하며 과일들을 끊고 잘라서 갈무리하는 달이다. 뿌린만큼 거둔다고 했다.더바르게는 뿌리고 땀흘린만큼 거둔다고 해야겠다.따라서 가을은 심판의 철.어떻게 노력해 왔느냐에 대한 결과가 열매로서 나타난다.씨만 뿌려두고 팽개친 작물이 오달진 열매를 맺겠는가.공행공반이 빈말은 아니다.행한 바가 없으면 돌아오는 결과도 없는법.여름날 나무그늘 아래서 노래부르며 세월보낸 베짱이는 그때 땀흘린 개미한테추운 겨울날 동냥하러 가는게 아니던가. 그렇다.가을은 「맹자」(양혜왕하)의 『네게서 나온바는 네게로 돌아간다』(출호이자,반호이자야)는 진리를 가르친다.선악 등 세상사는 뿌린대로 되돌아오는 메아리.「명심보감」등에 보이는 강태공의 말도 이를 생각게한다.­『내가 어버이께 효도하면 자식또한 나에게 효도하나니 내가 먼저 효도하지 않는다면 자식이 어찌 효도하리요』 이승의 거둠에는 거저가 없다. 더러는 거저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게 인생사.이를테면 청장같은 세에서 그걸 느낀다.도하라는 새는 강물의 벌흙속을 헤집으며 고기를 찾느라 애를쓴다.물고기들은 그러는 도하를 피해 물가로 나온다.그걸아는 청장은 미리부터 물가에 지켜섰다가 쫓겨오는 고기들을 수고도 하지 않고 날름날름.진대붙이는건 아니라해도 소드락질에 진배없다(이은상의 「민족의 맥박」).사람세계에도 이런 청장은 있다.하지만 그게 삶의 모두라고 할수는 없는 것.섭리는 그 「주고받음」을 정확하게 셈해 나가고 있는 것이리라.어찌 괘다리적은 청장을 부러워할 일이겠는가. 거둠의 철은 가르침의 철.침묵의 철 겨울을 향해 가는 길목이다.경건한 마음으로 하늘을 우러러본다.〈칼럼니스트〉
  • 9번째 한국방문 일본대학원생 와카쓰키 마치

    ◎“제주도빼고 웬만한 곳 다 가봤어요”/“NHK방송 평양특파원 꼭 하고싶어” 경주,안동 하회마을,보길도,완도,삼랑진….고교생의 수학여행코스가 아니다. 한국에 푹 빠져 있는 일본학생 와카쓰키 마치 씨(24·여·나고야 대학원)가 『제주도를 빼고 웬만한 곳은 다 가보았다』며 열거한 방문지다. 『수원에 있는 우장춘 박사의 묘지도 찾아보고 삼랑진에서는 장애자를 위해 자원봉사를 하며 사투리도 배우고 요리법도 배웠어요』 그녀가 처음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도쿄에 있는 쓰다여대 영문과에 진학할 무렵만해도 동양에는 별관심이 없었다. 대학 3학년 때인 지난 92년 한·일 대학생간의 교류모임인 「한·일 학생포럼」 신입생 모집광고를 우연히 신문에서 보고 지원,한국에 오게 된 것이 그녀의 진로까지 바꾸어 놓았다. 2주일동안 서울 등지에 머물면서 많은 한국친구를 사귀고 한국에 정이 붙어 이듬해인 93년에는 이화여대에 교환학생으로 왔다. 한국말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입대한 친구를 걱정할 만큼 문화를 익혔을 때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이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고야대학 커뮤니케이션 석사과정에 입학했다.하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칠 만한 전문가가 되고 싶어 언론사에 응시,지난해 7월 NHK사에 기자로 입사했다. 그녀는 지난 3일 「전후 광복절을 맞아 한국언론의 일본에 대한 보도」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의 자료수집을 위해 9번째로 한국을 찾았다. 북한의 무장공비침투에 관해서는 『북한의 속은 도대체 알 수가 없다』고 고개를 내저으며 『평양특파원을 꼭 해서 한국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이지운 기자〉
  • 공비 사살… 주민 신고정신의 승리

    ◎택시기사 첫 신고후 곳곳서 잇단 제보/1명 생포도 부부 기지가 결정적 역할 강릉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발생 이틀만에 사실상 마무리 국면에 들어선 것은 주민들의 투철한 신고정신의 승리였다. 18일 새벽 강릉시 안인진리 앞바다에서 좌초된 잠수함을 최초로 발견,군과 경찰의 빠른 대응 태세를 갖추게 했던 사람은 강릉시의 택시기사였다. 강릉시에서 동해시로 손님을 태우고 가던 이진규씨(36·강릉 대종운수)는 새벽에 한적한 도로를 빠르게 지나갔지만 창문으로 힐끗 거동이 수상한 자들과 괴물체를 봤다. 찜찜한 생각에 1시간 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차를 세우고 해안으로 내려가 보고 괴물체가 무장공비들이 타고온 잠수함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무장공비 출현이 확인된 뒤에도 강릉경찰서 등 군경합동수색본부에는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랐다. 무장공비가 집에 침입했는데도 남편이 말을 거는 사이에 부인이 침착하게 신고해 생포토록 한 홍사근·정순자씨 부부의 신고정신은 특히 돋보인다. 주민신고는 18일 23건에 이어 19일 하오까지 14건이 접수됐다. 18일 하오 3시 강릉에서 부산으로 운행하는 한일여객 버스기사 서대근씨는 새벽에 군복바지 차림에 노란 티셔츠와 운동화를 신은 수상쩍은 젊은이가 강릉시 정동고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고 신고했다.신고는 즉시 수사본부가 설치된 173연대 상황실로 전해져 군의 수색작전이 시작됐다. 하오 3시47분에는 청바지에 흙이 심하게 묻은 사람이 구정영봉조합 앞에서 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하오 6시45분에는 이인수양(주문진고 1년)이 북한 사투리를 쓰는 사람 둘이 강원2다 4440호 캐피탈 승용차를 타고 대관령 쪽으로 갔다고 신고했다. 여고생으로서 차종과 차량번호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신고 빈도가 높아 신빙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그러나 한 사람의 사소한 제보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고 간첩을 일망타진 할 수 있다. 이같은 왕성한 신고 정신은 강릉시민들의 지역정서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도 있다.경찰 관계자들은 강릉에는 토박이 주민들의 비중이 어느 지역보다 높고 지형적인 영향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지녔고 반공의식도 강한 편이라는 것이다.
  • 등록금 24년만에 30배 “껑충”/통계로 본 서울대 50년사

    ◎72년 3만2천7백원→96년 99만2천원/학생수 3만여명 64년비해 2.5배 늘어 지난 72년 3만2천7백원에 불과하던 서울대 인문·사회계열의 등록금은 물가상승 등에 따라 올해 99만2천원으로 24년만에 무려 30배나 올랐다. 서울대 「50년사 편찬위원회」(위원장 한영우 국사학과 교수)가 6일 밝힌 각종 통계자료에 나타난 수치다. 신입생입학금은 72년 1천8백원이었던 것이 지난해 11만8천원으로 66배 올랐다.장학금도 63년 4천원에서 94년에 44만원으로 1백10배나 뛰었다. 학생수는 64년 1만2천여명에서 졸업정원제 등의 실시로 지난해 3만1천여명으로 2.5배 늘었다.대학원중심 대학을 표방하면서 대학원생도 같은 시기에 1천2백여명에서 8천여명으로 6.7배 늘었다. 여학생숫자는 64년 11.1%에서 학력고사가 실시된 뒤 85년 21.1%까지 늘었다가 본고사가 부활된 지난해에는 19.5%로 떨어져 여학생은 본고사에 약하다는 분석을 뒷받침했다. 출신지별로는 35%선을 유지하던 서울 태생이 90년대 들어 40%대로 높아져 「가난한 집 자식이 공부 잘한다」는 말은 옛얘기가됐다.특히 음·미대는 80%이상이 서울 출신이어서 사투리가 낯설게 느껴질 정도다. 「지역망국론」 탓으로 최근에는 각종 자료에 출신지를 표기하지 않아 정확하지는 않지만 서울에 이어 부산·대구 등 영남 출신이 25%안팎이고 나머지는 호남·충청·경기·강원·제주 순으로 추정됐다. 교수는 62년 5백여명에서 지난해 1천4백여명으로 늘었지만 학생수가 증가해 교수 1인당 학생수는 23명에서 21명으로 2명가량만 줄었다. 과외가 허용되는데다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학생의 자가용 등록대수도 지난 90년 1백60여대에서 지난해 2천5백40대로 16.3배나 늘었다. 서울대는 이처럼 시대의 변천사를 담고 있는 각종 통계자료를 모아 오는 10월 개교 50주년을 맞아 발간하는 사료에 실을 예정이다.
  • 국회사무총장 윤영탁씨/의장비서실장 구본태씨

    김수한 국회의장은 10일 장관급인 국회 사무총장에 윤영탁 전 의원을 내정하고 국회의장 비서실장에 구본태 전 통일원정책실장을 임명했다. 사무총장에 내정된 윤전의원은 이번 임시국회 회기중 본회의 승인을 얻어 정식임명될 예정이다. 김의장은 이밖에 국회도서관장에 이현구 국회의장 비서실장,의정연수원장에 윤수남 교육위수석전문위원,국회사무처 입법차장에 류수정 건설교통위수석전문위원,사무차장에 이재도 운영위수석전문위원을 각각 임명했다. 윤총장 내정자와 구비서실장은 정무직 공무원의 당적보유를 금지한 정당법에 따라 신한국당을 각각 탈당하게 된다.〈진경호 기자〉 ◆얼굴 ◎윤영탁 국회사무총장 내정자/사무처 공채 출신… 「금의환향」 구수한 사투리의 「무골호인」이지만 일처리에는 맺고 끊음이 분명하다.국회 사무처 공채를 거친 공무원출신으로 「친정」에 돌아왔다.대우 해외담당전무를 지냈고 12·14대때 각각 신민당과 국민당 후보로 당선된 재선의원 출신이다.15대때는 신한국당 간판으로 대구지역에 출마,낙선했다. ▲경북 경산·63세 ▲서울대 사회학과 ▲건설부 국토이용 관리국장·서울지방국토관리청장 ▲통일민주당 정책위부의장·국민당 정책위의장 ◎구본태 국회의장 비서실장/이론·실제 겸비한 통일전문가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통일전문가.통일원에 근무하면서 「한민족통일공동체」방안을 기초하는 실무주역을 맡았다.기획력이 돋보이는 「아이디어맨」으로 토론을 즐긴다.85년 경제회담 대표로 간 것을 비롯,평양을 세차례 방문했다.지난 4·11총선때 서울 양천을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고배를 마신 원을 대신 풀게 됐다. ▲경남 산청·49세 ▲서울대 외교학과 ▲충남대 교수 ▲통일원 통일정책실장
  • 배꼽고리 달아 멋내는 세상이라(박갑천 칼럼)

    배꼽의 중세어는 「복」이다.배의 복판에 있는 것이라는 뜻.호남쪽 사투리가 「뱃봉」인 것은 그런 옛그림자를 달고 있는 때문인 듯하다. 배의 복판이면서 인체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배꼽.아버지 정기와 어머니피가 엉긴 태안에서의 삶이 있게한 생명의 뿌리기도 하다.사화산의 자국같아 보이지만 그렇지도 않다.보통 7백∼8백년을 살았다는 전설의 인물 팽조의 정력증강비법은 배꼽에다 장생연수단으로 뜸을 뜨는 것이었다지 않던가.장생연수단은 인삼과 부자등 15가지 생약으로 만든 가루.중국서는 지금도 이 뜸을 뜬다고 한다. 생명력이 엉긴 뿌리 배꼽은 제2의 성과 같은 느낌도 심어 내려온다.배꼽을 보인다는건 가까이 있는 치부를 보이는 것에 진배없는 일.여성의 경우가 더욱 그렇다.『열두살 먹어서부터 서방질해도 배꼽에 꽂는건 못보았다』는 야한 속담이 왜 나왔겠는가.갖은풍상 다겪었어도 이렇게 몰상식한 일은 처음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여성에게 배꼽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해주고도 있다. 그래서 옴살같은 오성(이항복)과 한음(이덕형)사이에 일화 하나를 덧붙인다.­어느날 오성이 한음집에 갔더니 한음은 퇴궐전이었다.사랑에 든 오성은 무슨 장난거리 없나 궁리하다가 옳지 하고 무릎을 친다.한음이 퇴궐하자 대뜸 『아까 자네부인 옷벗는걸 봤는데 배꼽아래 점이 있더군』.한음이 어디 인숭무레기인가.그러나 빈말인 줄은 알면서도 확인은 해보고 싶어진다(옛사람들은 남편도 아내 배꼽언저리를 못본다).그래서 잠든 아내 속옷을 헤집다가 들켜버린다.그 멋쩍음이라니.점잖은 체면에 그 무슨 얄망궂은 짓인가.오성이 노린 대목도 바로 그것이었다.그렇지만 사정을 알게된 한음부인의 꾀로 오성은 똥만두 씹는 복수를 당한다. 그런 배꼽이건만 요즘은 길거리에서 예쁜 서울까투리들의 배꼽을 흔히 볼수 있게 되었다.한데도 보기 쉬워지면 찾을모가 엷어지는법.그러자 이래도 안 볼테냐는듯이 배꼽에다 귀고리같이 고리를 다는 풍조가 번져나고 있다한다.언젠가는 코고리도 보게 되는 것일까.더지난 어느 날엔가는 동아프리카나 중앙아프리카의 어느 종족같이 축처진 유방을 이상적 아름다움으로 여기면서 젖꼭지에 묵직한 추를 다는 꼴도 보게될지 누가 알랴. 서제란 배꼽을 물어뜯는다는 뜻.다만 입은 배꼽을 물려해도 미치지 않는다.해서 후회해도 소용없다는 뜻으로 쓰인다(「좌전」장공6년조).세상은 후회해도 소용없는 쪽으로 흘러가는것만 같다.〈칼럼니스트〉
  • 김원기 민주대표(오늘의 인물)

    ◎“대표경선 불출마… 백의종군” 선언 민주당의 김원기 공동대표가 21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백의종군의 뜻을 밝혔다.『다음달 4일 전당대회 대표경선에 나서지 않고 당의 단합을 다지는 데만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총선패배와 당권포기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언뜻 정치적 쇠락으로 비쳐지기도 한다.하지만 그는 요즘들어 부쩍 표정이 밝다.「지둘러(「기다려」의 전북 사투리)」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모든 일에 박자가 느렸던 그이건만 요즘엔 말도,발도 빨라졌다.웃는 횟수도 늘었다.한발 물러선 사람의 여유가 배어 있다. 당내 범개혁그룹의 좌장으로서 김대표는 홍성우 최고위원에게 당권을 물려주는 작업에 바쁘다.백의종군 선언 역시 맞상대인 이기택 고문을 당권레이스에서 빼내려는 의도가 다분하다.일단 전당대회를 원만히 치르는 것이 급선무다. 어쩌면 민주당 대표로서 마지막일지도 모를 이날 간담회에서 김대표는 신한국당의 정국운영자세와 식언을 거듭하는 정치지도자들의 행태를 비난한 뒤 지역분열을 극복하는 데 정치권 전체가 매진해 줄것을 촉구했다. 어쩌면 김대표는 하나를 버리고 열을 얻는 지혜를 체득하고 있는 지 모른다.당내에서는 그의 당권포기를 새로운 시작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진경호 기자〉
  • 남제주군 대정읍 돌하루방(한국인의 얼굴:72)

    ◎또렷한 눈동자·오똑한 콧날 “너무나 인간적”/매서운 해풍 견디려는듯 목도리까지 둘러 오늘날 제주도 남제주군 대정읍 인성·안성·보성리는 조선시대 대정현청이 있던 고을 자리다.여기 와서 『돌하루방이 어디 있느냐?』고 토박이들에게 물었다면 『작간대 이수다』라는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곁에 있다」는 제주도 사투리다.대정현 당시 쌓은 읍성의 성돌도 현무암이요,그 성벽 지척에 돌하루방 역시 회흑색 돌인지라 하루방이 얼른 눈에 띄지 않았다. 대정의 돌하루방은 대정읍성 동문과 서문, 남문에 각각 1기씩 성문 밖에 3기가 우선 몰려있다. 그리고 보성초등학교에 3기,추사관과 마을회관앞에 각각 2기,토끼동산에 1기가 자리잡았다.대정의 돌하루방은 유별나게 키가 작았다. 평균 키가 1백36㎝에 지나지 않아 제주시 돌하루방 키와는 비교가 안되고,표선읍 성읍리 돌하루방 보다도 더 작은 키를 했다. 머쓱하지 않고 올차보이는 이유가 작은 키에 들어있다. 대정의 돌하루방은 거의가 둥글넓적하고 펑퍼짐한 벙거지를 썼다. 머리통크기가 키의 절반쯤은 차지했는데,얼굴에서는 후덕한 인상이 우러났다.그 까닭은 볼에 살이 실하게 붙어서일 것이다.대정 돌하루방의 또 다른 특징은 눈이다. 석수장이 타지역과 차별화를 시도했는지는 모르나 대정 돌하루방 눈에는 동자를 새겨넣었다. 이들 대정 돌하루방은 눈동자가 분명했으니까 읍성을 지키는데 어설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정 돌하루방의 코는 제주시의 돌하루방과 사뭇 다르고 코만을 비교한다면 표선면 성읍리 돌하루방을 좀 닮았다.그래서 제주시 돌하루방의 주먹코와는 달리 콧마루가 비교적 오뚝하고 길다.입은 작게 오목새김 했다.더러는 작은 입을 다물었고 또 어떤 돌하루방은 약간 느슨하게 입을 열었다. 흔히들 말하기를 인간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한 것이 대정의 돌하루방이라는 것이다.겨울 해풍이 매서워 목도리를 두른 돌하루방이 몇몇 있고 보면 사람이 하는 짓도 따라 하는 모양이다. 그러면 제주도의 돌하루방은 뭍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섬에서 스스로 태어난 것일까,아니면 어디서 흘러들어온 것일까. 이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없으나추정은 두 갈래로 나와 있다.남태평양의 석상문화와 몽골족.돌궐풍의 북방문화 유입설이다. 남태평양설은 제주도가 지리적으로 해양문화권일 수 있다는 점이고 북방설은 몽골이 제주도를 오랫동안 지배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제주도 고유의 향토적 특색을 고려하지 않고는 돌하루방 신원을 들춰낼 수 없다.분노하는 바다와 싸우고 거친 땅을 일구면서 자연의 섭리를 터득한 제주도 사람들의 자화상이 돌하루방인 것이다. 어깨가 넓어 보이고 더러 가슴이 튀어나온 돌하루방을 대하노라면 한 꺼풀을 훌쩍 벗어던졌다.그리고 숨겨둔 강인성을 드러내 보였다. 이들 돌하루방과 더불어 대정땅을 지킨 읍성은 제주도기념물 12호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있다. 그리고 대정은 추사 김정희가 9년동안 유배된 적거의 땅이거니와 그의 유명한 문인화 「세한도」의 산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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