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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쭉뻗은 각선미·빼어난 가창력 컴퓨터가 만든 드림걸 아시나요

    ◎일 신세대 팝송팬에 「다테 교코」 선풍 오똑한 콧날,쭉 뻗은 다리,아슬아슬한 초미니 스커트.컴퓨터가 만든 가상의 인물인 열 여섯살 난 소녀가수 다테 교코가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다테 쿄」란 별명도 갖고 있는 차세대 팝스타 다테는 도쿄의 저명한 탤런트 에이전시사인 호리프로사가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창조해낸 인물. 80년대 영국 텔레비전의 컴퓨터 그래픽주인공 맥스 헤드룸과 유사한 이 신세대 탤런트는 하루 24시간 일할수 있고 각국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또 사탕발림 목소리의 가수들보다 훨씬 높은 음조로 노래할 수 있는 뛰어난 가창력도 갖고 있다. 움직이고 말하고 노래하는 다테의 다양한 재능을 완벽하게 하기 위해 20개월동안 10여명 이상의 컴퓨터그래픽 아티스트들이 노력을 쏟아왔다.결국 컴퓨터가 만들어낸 인물도 실질적인 스타가 될수 있음이 입증됐다.컴퓨터 게임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컴퓨터로 만든 가상의 스타를 받아들이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문화도 일조를 했다. 다테는 외모상으로도 스타가 될수 있는 완벽한 조건을 갖췄다.검붉은 빛이 도는 섹시한 머리카락에 세월이 흘러도 결코 늙지 않고 마약에 빠질 리도 없다.애당초 스캔들을 일으킬 수도 없는 모범생이다. 다테 같은 애니메이션 스타들은 CD를 내놓아도 수만장씩 팔리고 독자적인 팬클럽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다테가 인기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는 팝스타의 고정팬인 10대 소녀들뿐 아니라 소년들,특히 소프트웨어 게임시장에 연간 1백10억달러에 해당하는 돈을 쏟아붓는 컴퓨터와 게임에 사로잡힌 신세대남성들에게 어필해야 한다. 다테와 같은 컴퓨터 애니매이션 스타와 10대 소녀를 소재로 한 게임들은 실제로 여자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잘생기고 활달해야 하는 조건을 지니지 못한 대다수 젊은 남성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 환경평가 없이 무모한 개발 말아야/최광빈(발언대)

    「세계사의 대실수」의 저자 조프리 리건은 이집트 나세르의 아스완댐을 역사의 대실수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고대 이집트문명은 초등학생도 알고 있듯이 나일강변 양쪽 평원에 기름진 침척토를 만들어주는 홍수가 만들어낸 걸작품이다.다시말해 해마다 되풀이되는 홍수가 없었다면 이집트의 비옥한 지역은 모두 사막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집트를 중심으로 아랍세계를 한데 묶으려 한 나세르대통령은 1950년 국위선양사업으로 거대한 아스완댐 건설계획을 세웠다.이 댐이 완공되면 나일강의 수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수십개의 새로운 산업에 전력을 공급하게 된다.이 엄청난 공사는 시작 15년만인 71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댐에는 「나세르호」라고 이름붙여진 큰 호수가 생겼고 사탕수수·면화·옥수수 등의 생산이 늘고 화학비료·강철·직물을 생산하는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단기이익을 누렸다. 수천년의 꿈이 15년만에 성취된 것처럼 여겨졌다.이때까지만 해도 나세르는 이집트의 영웅이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그는 우매하고 무모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됐다. 홍수가 만들어내는 비옥한 충적토가 더 이상 생기지 않자 정부는 비료를 대량으로 생산해야 했다.결과적으로 생산된 전력은 비료공장에 동력을 제공하기 위해 사용됐다.또한 침적토(침니)가 나세르호의 바닥에 쌓여 저수량이 줄기 시작했다.세월이 흐르면 호수가 사막이 될 판이었다.나일강이 막히자 영양분이 충분한 「충적토 수프」가 지중해에 흘러들지 못했고 정어리·안초비 등 어족은 영양실조에 결렸다.결국 이집트 어민의 목을 죄게 된 것이다.이밖에도 여러가지의 생태학적인 재앙이 뒤따랐다.전체계획을 입안한 사람의 처지에서 본다면 역사적인 대실수라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시궁창으로 바뀐 시화호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환경영향을 도외시한 졸속개발이 초래한 재앙이다.이 담수호를 정화시키는 데 4천5백억원이 든다고 한다.시화호건설비에 버금가는 돈이 정화비에 쓰여진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이집트 국민이 겪은 아스완댐 건설의 우매함을 우리는 25년이 지난 지금 답습한 셈이 됐다.이제부터라도 개발에 앞서 환경보전을 중요시 여기는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그래서 다시는 이러한 재앙을 부르는 실수는 하지 말아야 하겠다.
  • 말뿐인 초당외교/오일만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조선조 4색당파가 극에 달할때도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스스로 논쟁을 멈췄다.손님에 대한 예우도 고려했지만,분열된 모습을 외부에 보이지 않으려는 전략도 담겨있었다.단합된 모습을 과시,국난을 막겠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 등 야권의 총재및 당3역은 22일 청와대에서 열린 파키스탄 부토총리의 만찬 참석을 거부했다.그것도 개인적으로 불참을 통보한 것이 아니라,「보란듯이」 언론을 통해 「단체거부」를 공표했다. 야권의 이같은 결정은 신한국당 이신범 의원의 발언파문과 관련해 야권의 불편한 심기를 여권 핵심부에 전달하기 위한 것 같다.행간에는 『앞으로 국내정치는 물론 정부가 추진하는 외교정책에 대해서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메시지도 담긴 셈이다. 그러나 양당의 이런 전략이 과연 국익을 생각하는 「큰 정치」인지를 묻고싶다.양당은 기회 있을 때마다 「초당 외교」를 강조해 왔다.『국익을 위해선 사사로운 정파의 이익을 초월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셀수없이 되풀이했다.그렇다면 양당이 내세운 「초당외교」라는 것이 오직 표만을 염두에 둔 수사적 「사탕발림」임을 자인한 꼴이다.아니라면 단합된 힘을 보여줘야 할 기회에 「대결과 분열」의 실상을 외빈에게 알려 무슨 이득을 보겠다는 것인가.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정치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전후 반세기동안 야당생활에 이골이 난 일본 사회당도 대북외교 등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앞장서 집권당을 도왔다.전운이 감도는 미­북간 대결 와중에서는 미국의 전대통령인 카터씨는 노구를 이끌고 북한을 오가며 화해를 이끌어 냈다.국익의 참뜻을 온몸으로 보여주는 가슴 뭉클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부토총리는 이번 방문에서 양국간 경제협력과 유엔 등 국제무대에서 협조강화 방안을 협의할 예정이다.부토총리는 우리의 외교사각지대인 비동맹외교에서 지원사격을 담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이런 의미에서 야권의 만찬거부는 『국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을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 같다. 국내 정치문제로 야기된 대립을 초당적으로 임해야 하는 외교문제,그것도 외빈의 만찬행사와 연결시킨다는 것은 우리 정치의 「편협한 정파주의」를 드러낸 표본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 미국의 대쿠바 양면전(해외사설)

    EU(유럽연합)·캐나다·멕시코의 보복조치에 직면한 클린턴 대통령은 쿠바에 대해 새로운 제재를 가하는 헬름스­버튼 법안에 있어 가장 문제되는 조항의 시행을 후퇴하는 선택을 했다.클린턴 대통령은 타이틀Ⅲ으로 불리는 제재조치를 6개월 동안 철회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이 타이틀Ⅲ 조항은 쿠바에 압류된 미국인의 재산을 「거래」하는 외국인의 행위가 미국시민이 된 쿠바인을 포함,이전 소유주에게 피해를 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클린턴 대통령은 이 조항을 철회하지 않았다.그가 한 것은 피해를 준 외국인들을 미국법정에 고소하는 권리를 미 대통령선거가 끝난지 한참 후인 내년 2월1일까지 6개월 동안 유보한 것이었다.미행정부의 법률전문가들이 사탕발림식으로 만든 이러한 타협안으로 클린턴 대통령은 법의 시행을 무디게 하면서 플로리다주의 쿠바출신 미국인 강경론자들을 귀히 여긴다는 원칙을 감싸안았다. 그러나 초기반응을 감안하면 클린턴대통령의 양면전략은 논쟁만을 일으키는 것 같다.EU·캐나다·멕시코에서는 헬름스­버튼법안을 사실상 국제적인 지지를 받지 못하는 미국의 대쿠바 무역금수조치를 행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미 국내법을 적용하는 시도로 보고 있다.이들 국가는 미행정부는 전통적으로 그러한 간접적 금지조치를 반대해왔다는 사실을 정확히 주시하면서 미상원이 이란과 리비아에 대해 같은 전략을 사용하는 수정안을 승인한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이들 국가는 특히 쿠바가 압수한 재산을 거래한 외국인의 경우 그 가족들까지도 미국입국이 금지되는 조항을 문제삼고 있다.보복수단으로 EU는 최근 미국기업인 여행자들에게 비자를 요구하는 것을 비롯,일련의 상응조치를 승인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이 조치가 강경한 쿠바출신 미국인들의 시각처럼 고립적인 쿠바의 민주화를 촉진시킬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EU 등은 왜 미국의 쿠바전략이 다른 공산국가들에 대한 접근과는 달리 그렇게 급진적이냐고 묻고 있다.무역정책과 정치적 개입은 소련제국의 붕괴를 촉진시켰으며 미행정부는 지금 중국에도 유사한 접근책을 쓰고 있다.그렇다면 왜 악감정의 씨를 뿌리면서미행정부 내에서조차 냉담한 반응인 법안에 대해 보복을 감수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 유치원생 성추행/카센터 직원 영장

    서울 마포경찰서는 10일 이성관씨(23·카센터 종업원·서대문구 북가좌2동 378)를 미성년자 강제추행 및 치상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씨는 지난 6월 4일 자신이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는 마포구 연남동 K카센터 앞을 지나가던 유치원생 박모양(5)에게 사탕과 과자를 사주며 카센터안으로 유인,박양의 몸을 만져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모두 5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고있다.
  • 악화되는 식량난(북녘국경지대 지금은…:5)

    ◎춘궁기 북한주민 국경넘어와 양식구걸/“새땅찾기” 개간사업에 야산은 온통 “민둥산”/북친척방문 조선족 자기먹을 양식 따로 휴대/원자재 바닥나 공장기계 멈추고 상점 진열대는 텅비어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마주보고 있는 중국 요령성 란동시 세관 옆의 허름한 버스정류장.60년대 한국의 시골버스를 연상케 하는 2대의 버스가 북한으로 가는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나 그 버스는 보통의 버스가 아니었다.절반으로 나누어 뒷부분은 짐을 싣도록 개조된 「절반의 버스」였다. 그 절반의 버스는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징표다.북한에서 필요한 식량이나 생활필수품을 보다 많이 싣고 가기 위해 버스를 개조한 것이기 때문이다.그날도 짐칸은 양식이나 식용유 등을 넣은 상자로 한치의 빈틈도 없이 가득찼다. 버스는 보통 하루에 1∼2회씩 「양식」과 북한의 친척을 방문하는 조선족을 태우고 국경을 넘는다.북한으로 막 떠나려는 버스에는 10여명의 북한 방문객이 타고 있었으며 조그마한 버스정류장은 이들을 환송하는 조선족으로어수선했다. 아내를 환송하기 위해 나왔다는 조선족 황모씨(43)는 『중국에서는 북한의 식량사정을 잘 알기 때문에 조선족이 북한에 갖고 가는 양식에 대해 거의 간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는 『조선족은 양식이든,생활필수품이든 자신이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챙겨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길림성 장백현에서 만난 조선족 최모씨(53)는 『옥수수·감자를 먹을 정도면 잘 먹는 축에 든다』며 『많은 북한주민은 풀뿌리나 칡뿌리 등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고 말했다.조선족은 이 때문에 북한의 친척을 방문할 때 자기가 먹을 양식과 친척에게 줄 양식을 갖고 가는 것이 상례화돼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함경북도 무산군 노덕리와 강폭이 1백m쯤 되는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중국 길림성 화용시 덕화진 남평촌.2백∼3백가구가 오순도순 모여 사는 농촌마을이다.서정적인 농촌풍경이 한가롭지만 이곳 주민은 커다란 걱정거리가 생겼다.중국인 양모씨(58·여)는 『춘궁기를 맞아 끼니거리가 없는 북한의 무산군 주민이 하루가 멀다 하고국경을 넘어와 밥을 얻어먹거나 양식을 구걸해가는 통에 안줄 수 없어 고민』이라며 그들의 걱정거리를 털어놓았다. 함경북도 회령의 상황도 암담하다고 한다.최근 회령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 김모씨(42)는 『회령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죽음의 도시」 같았다』고 말했다.『식량난에다 원자재마저 부족해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오가는 사람은 많았지만 거리의 상점에는 진열된 물건도 없고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회령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안내원에게 친척을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그러나 안내원이 『친척이 만나지 않으려고 한다』며 친척방문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렇지만 거듭 간청해 돌아오기 전날에야 겨우 친척집을 방문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준비해간 건면(밀가루국수) 50근과 사탕·과자 등을 내놓았다.친척은 『7개월동안 양식을 배급받지 못했다며 우리 두 식구가 반년은 먹을 수 있다』고 즐거워했다고 한다.왜 만나려 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친척은 『대접할 음식이 없어 초청을 못했다』고 말해 그는 한동안 할말을 잃었다고 한다. 그는 길가에 20대청년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안내원에게 『왜 저러냐』고 묻자 『간질병이 도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그러나 나중에 한 주민에게 묻자 『못먹어서 그렇디요』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고 그는 전했다. 북한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식량난을 타개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숭선진에서 만난 조선족 김모씨(36·여)는 『북한은 식량절약을 위해 「하루 한끼 먹기운동」 「새 땅 찾기운동」등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새 땅 찾기운동은 야산에 새로운 땅을 개간하는 것. 북한은 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뙈기전을 허용하고 있다.뙈기전은 주민이 아침저녁으로 짬을 내 야산을 개간해 만든 조그마한 땅이다.그는 『뙈기전에서 생산한 양식은 자기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기 때문에 주민이 뙈기전 개간에 온통 신경을 쓴다』고 설명한다. 뙈기전과 산에 밭을 만드는 국가적 개간사업으로 북한의 야산은 나무를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으로 변해 있었다.지난해 일어난 대홍수 원인중의 하나도 개간사업이라고 북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북한은 식량난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딴 곳으로 돌리기 위해 한국의 전쟁준비설을 선전하고 있다고 한다.고구려의 도읍지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서 만난 조선족 강모씨(46)는 『북한은 식량난을 무마하기 위해 「한국에서 전쟁을 벌이려 한다」고 선전하며 전쟁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전했다.〈중국 길림성 집안에서=김규환·김명환 기자〉
  • 필리핀/첨단산업 투자유망지 “각광”

    ◎정치안정되자 미·일 유명업체 속속 진출/작년 전자제품 75억불 수출… 전체의 44% 군부쿠데타와 부패로 얼룩진 역사를 갖고 있는 필리핀이 정치적 안정을 회복하면서 첨단 하이테크산업의 새로운 투자 유망지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인텔,에이서,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일본의 도시바,산요 등 세계 굴지의 전자·전기업체들이 값싼 임금과 함께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엔지니어들과 현장근로자들이 풍부한 필리핀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과거 「동아시아의 병자」라는 필리핀의 오명도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지난 2년간 필리핀에 대한 외국 전자업체들의 신규투자 규모만 해도 20억달러를 웃돈다.최근에는 양안간 갈등 고조에 따라 대만 기업인들까지 한국·일본에 이어 달러 보따리를 싸들고 필리핀을 찾고 있어 필리핀의 장래를 더욱 밝게 해주고 있다. 95년 필리핀의 전자제품 수출액은 75억달러로 94년보다 50% 가량 늘었다.이는 이 나라의 상품 전체 수출액의 44%를 차지하며 88년의 전체수출 규모를 능가하는 수치다.그 결과 필리핀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5% 가량 늘어난데 이어 올해에는 6%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필리핀당국은 올해를 새로운 도약의 해로 정하고 2000년까지 2백40억달러의 전자제품을 수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이 때문에 남쪽 세부 섬에서 북부 휴양도시 바기오에 이르까지 후지츠·히타치·인텔 등 일본 전자회사들이 사탕수수밭을 무너뜨리고 현지공장 신·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루손 섬에 위치한 아키노 전대통령의 사탕수수 농장에는 이미 진출한 일본 산요측이 대규모 전자공장을 설립했으며 미군기지였던 수빅만,클라크공단에는 일본기업에 이어 대만 하이테크 업체들이 속속 진출하고 있다. 필리핀 전자산업의 중심지는 마닐라 북쪽 2백40㎞ 떨어진 바기오 공업단지.바기오는 막탄,카비테,바탐 등 필리핀 4대 수출공업단지중 면적과 노동자 수에서는 가장 작은 규모이지만 수출액 면에서는 최대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이곳에 진출해 있는 12개 외국업체 가운데 4개가 전자관련 기업이다.이들 4개 기업은 필리핀과 대만의 합작기업인 아미테크·렐테크,미국의 무그 콘트롤즈,아울러 미국 대형 반도체기업 TI의 현지기업인 TIPI 등이다. 특히 TIPI는 이 회사가 설립된 80년부터 94년에 이르기까지 31억달러의 반도체를 수출했다.95년에는 8억1천3백만달러를 수출한데 이어 96년에는 12억∼13억달러를 수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등 금액면에서 필리핀 최대의 단일 수출업체이다.TIPI의 하루 반도체 출하량은 9톤이며 크리스마스를 포함,단 하루도 빠짐없이 항공화물을 실어 내보내고 있다. 이때문에 바기오당국은 주택·의료시설·골프장 등과 같은 편의시설을 외국기업들에게 제공하는 등 투자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윤청석 기자〉
  • 귀순 최세웅씨 부부 일문일답

    ◎“북,외화난 타개위해 금·은 헐값 판매”/엘리트들 “체제잘못” 해외 나가려 공작/전력난도 심각… 공장 대부분 가동중단 지난 해 12월 귀순한 최세웅(35)·신영희씨(35) 부부는 아들 창혁군〔9) 및 딸 송희양(6)과 함께 2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일문일답으로 정리한다. ―귀순 동기는. ▲최세웅씨=북한체제에 대한 회의와 염증을 느꼈다.자유로운 의사에 의해 모든 것이 실현되는 민주주의가 북한에는 전혀 없기 때문에 평소 「인간의 자유가 뭔가」,「무엇이 진짜 민주주의인가」 등에 대한 의문을 가져왔다. 또 지난 91년 런던주재 국제해상기구(IMO) 북한대표부로부터 유지비를 달라는 요청을 받고도 들어주지 않자,이들이 북한당국에 내가 당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유언비어를 흘렸다.이때부터 나를 검토(감시)할 사람을 회사로 보냈다. 아버지가 말 한번 잘못해 잘못되는 현실에 「내 아들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런던에서 아이들이 『평양보다 좋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자식을 위해서라도 귀순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식량,연료,외화난 등 북한의 경제사정은. ▲최=90년대에 들어서,동구권이 무너지며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받아오던 지원이 끊기자 심각한 외화난에 직면하게 됐다.북한 경제의 30∼40%를 차지하는 대성은행이 외화난을 겪는 것으로 봐,다른 당 기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이를 타개하기 위해 금과 은을 원가보다 20∼30% 낮은 헐값에 파는 실정이다. ―북한은 최근 전력난도 심각하다는데. ▲최=지난해 11월말쯤 유럽을 방문한 북한의 고위 관리가 「원자재난과 전력난이 심화돼 96년 1월쯤이면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중단해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유럽주재 무역은행 북한대표부 요원으로부터 들었다.지난해 4월 북한에 갔을 때는 고위관리로부터 남포제련소와 강원도의 문평제련소가 전력난으로 가동을 중단했다는 말을,94년 11월 방북 때는 평양 방직공장의 2백개 방직기계중 5개만 가동중이라는 말을 각각 들었다. ―김정일의 비자금 총규모와 조성경위,관리방법은. ▲최=외국에서 「충성의 자금」이란명분으로 매년 2천만∼3천만달러씩 상납한다.그만한 돈을 가지고 들어가는 것을 직접 본 적도 있다.하지만 이 돈을 하달하는 방식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외화를 1백만달러 이상 반입한 사람은 훈장이나 「노력 영웅」 칭호를 받는다.85년 오스트리아에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공작원이 파견돼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지난 85년 남북교환 예술공연단의 일원으로 서울에 온 뒤 10년만에 다시 보는 소감은. ▲신영희씨=85년엔 30년 넘게 받은 사회주의 교육으로 사상이 굳어져 있던데다 공연 중에 범할지 모르는 실수에 대한 두려움으로 남한의 모든 것이 거짓과 선전물로만 보였다.해외에 살면서 남한이 북한에 알려진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북한의 자녀교육 환경은. ▲신=부모들의 마음에 가장 걸리는 것은 먹이고 싶은 음식을 제대로 못 먹이는 것이다.김정일의 생일인 2월16일 등에 나오는 사탕이나 강냉이 튀기(뽕뽕이)가 최고의 간식이다. ―탈북자들로 인한 상류층의 동요는 없나. ▲최=해외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지식인들은 남한이 북한의 선전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북한이 왜 폐쇄정치를 펼쳐야만 하는지도 몸으로 느끼고 있다.엘리트들은 북한체제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는 인식 때문에 그냥 감수하려 한다.그래서 자꾸 해외로 나가려고 공작한다. ―북한 권력은 언제쯤 붕괴될 것으로 보나. ▲최=쥐구멍이 둑을 무너뜨린다는 속담이 있다.북한의 쥐구멍은 경제난이다.그러나 북한도 하나의 국가다.중산층들은 북한을 미국이 지배하면 자기들을 먼저 처형할 것으로 두려워한다.이들은 북한체제가 좋아서가 아니라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기존 체제에서 굶어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어 쉽게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이들의 의식이 변하도록 민주주의 선전 등 외부의 지원이 있어야 가능하다.〈김환용·박상렬 기자〉
  • 4당 대변인/저속한 「말 잔치」 백태

    ◎정신이상자·돈 갈퀴·인간고목은 보통/이리새끼 등 동물 빗댄 언어폭력 속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공개한 정당대변인들의 비방발언은 정치인으로서 양식을 의심케할만큼 저속한 표현들이 많아 유권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치인들의 이같은 욕설에 가까운 말싸움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표」를 끌어들이기는 커녕 도리어 「도덕적으로 타락했다」는 인상만을 심어주어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게 선관위의 분석이다. 선관위는 따라서 깨끗한 선거분위기에 먹칠을 하는 이런 상스런 표현들을 자제하도록 여야 정당에 강력히 촉구하는 한편 경고에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을 때에는 선거법에 의한 제재조치도 불사한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선관위가 지난 1월11일부터 3월21일까지 여야4당 대변인의 성명과 논평 7백여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어떻게 하면 좀더 저속한 용어를 끌어댈 수 있을까 「고심한」 것처럼 비치기까지 한다. 「정신이상자의 망발」 「장물을 갈라 먹은 한패거리」 「가증스런 술책」「뒤가 구린자들이 밀실에서 정치적 거래를 해왔다」는 등은 정도가 낮은 편에 속한다. 「사탕하나 주면 해롱해롱한다」 「한입으로 두말하기 공동금메달감이다」 「세마리 고래틈에 끼어있는 새우의 허장성세」 「인간고목은 중상모략,음모,돈갈퀴들만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조자룡 헌 칼 쓰듯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못하고」 「대통령병에 걸린 치유불능의 환자」 「쪽박까지 깨질까 전전긍긍」 「중무장한 람보,적수공권의 태권동자」라는 표현들은 「치졸한 말잔치」수준이다.「노인성치매」 「잡탕밥」 「발악적으로 충성」등도 마찬가지다. 「피묻은 돈」 「극악무도했던 죄악」 「독선과 전횡으로 만신창이가 되었고」 「정계의 망나니」 「발작적으로 난리법석을 피우고」 「군사독재의 사생아」 「총재의 양심적 고백과 사과를 난도질하는」등은 섬뜩한 느낌마저 주는 말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 도가 지나친 것은 상대방을 동물에 빗대어 비하한 표현으로 모멸감을 느끼게 할만했다. 이런 유형으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저리 뛰고」 「멸치가 기가 막혀요」 「카멜레온같은 권력을」등에서부터 「낭자(이리새끼)무리들」 「철새정치인」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 「흡혈귀」 「불나비처럼 권력의 주변에서 영구히 기생코자 하는 노정객의 추한 모습」 「나쁜 주인을 그대로 본따라하는 동물농장의 돼지수령」까지 저속한 표현이 속출했다.〈손성진 기자〉
  • 통계자료로 본 오늘의 북한/평통,분야별 현황 공개

    ◎식량­생산량 수요의 절반 수준/군사력­정규·예비군 남한의 1.6배/당간부 횡포·생활고 풍자 은어 성행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는 18일 최근 북한의 분야별 현황 등을 「북한의 오늘」이라는 자료를 통해 공개했다.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식량◁ 북한의 식량수요는 연간 6백50만∼6백70만t에 이르지만,생산량은 90년 4백82만t,91년 4백43만t,92년 4백27만t,93년 3백88만t 등으로 감소해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보일 수밖에 없다. 식량배급 기준은 직위에 따라 다르다.특수군인(경보병)과 중노동자는 8백g,노동당과 정부기관의 간부,군인은 7백g,일반노동자와 사무원,대학생은 6백g,고등중학생 5백g,인민학생 4백g,부양가족등 무직자 3백g,유치원 이하 3백∼1백g등이다.당과 정부 간부가 받는 식량은 1백% 흰쌀이다.또 특수군인의 경우 백미와 잡곡이 7대3이며,나머지는 쌀과 잡곡이 2대8이다. 매월 15일 각 직장에서 배급하는 카드로 「전쟁비축미」로 2일분을 뺀 13일분의 식량을 받도록 되어있다.그러나 실제로는 13일분에서도 다시 「절약미」 명목으로 10%가공제되며,평양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그나마도 원활치 않은 실정이다. ▷군사력◁ 북한의 정규군은 1백4만명,예비전력은 6백61만7천명으로 우리의 정규군과 예비군에 비해 각각 1.6배씩 많다.물론 국민총생산(17.8대 1)등 기본적인 경제기반은 우리가 월등히 앞선다.지난해 군사비는 우리가 1백30억달러로 북한의 56억달러보다 많다. ▷화학무기◁ 북한은 60년대부터 독자적으로 신경·수포·질식·혈액작용제등 화학무기를 개발해왔다.현재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화학무기 생산시설은 신의주·만포 등 8개소,연구시설은 흥남등에 3개소,저장시설은 사리원등에 6개소가 있다.화학무기 발사수단은 박격포·야포·방사포등과 미사일·항공기·지뢰 등 다양하게 개발돼 있다.특히 AN―2,IL―28기와 전폭기를 사용한 대규모 살포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은어◁ 당정간부의 횡포를 풍자하고,생활고를 반영하는 은어들이 계속 성행하고 있다. ▲고도=키가 작은 김정일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다니는 것을 비꼬는 말. ▲김인백 동무=김일성은 인간 백정이다는 말을 줄인것. ▲다마네기 정책=당국의 정책이 너무 구태의연하여 아무리 벗겨도 내용이 같다는 말. ▲콩사탕=공산당이란 발음을 변형시킨 말.콩사탕 때문에 입맛 버렸다는 말은 공산당 때문에 일생을 잡쳤다는 뜻. ▲무 3형제=무 한가지로 만든 무국 무김치 무찐지 등 3가지 반찬. ▲떼레비 깍쟁이=TV가 있는 집 아이들이 보여주지 않을 때 하는 말. ▲3백%=처녀가 시집가면 직장,가정,남편과의 관계에서 모두 1백%를 해야 한다는 뜻. ▲구들공사=자식을 많이 낳아야 배급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부관계를 많이 해야 한다는데서 생긴 말. ▲공동변소=외국인이나 해외여행자를 상대로 매춘행위를 하는 여성.〈이도운 기자〉
  • 「일국양제」·「분리독립」 대립 팽팽/중­대만 통일정책의 차이

    ◎중국­국제적 고립·경협 강화 양동전략… 통합 시도/대만­3불정책·유엔 재가입 추진… 주체 확보 총력 중국과 대만관계는 「하나의 중국원칙」과 「대만의 실체 및 국제적 활동인정」이란 두가지 상반된 명제가 부딪치며 빚어내는 파노라마로 비유된다. 중국은 개혁·개방이래 통상,통신,통항교류 등 3통원칙과 경제 및 민간교류확대로 경제통합을 진전시키며 대만을 끌어당기고 있다.「하나의 중국원칙」을 통해 국제적으로 대만을 포위,고립시키면서 경제민간교류의 확대,양안 통합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이에 대해 중국의 무력사용 포기를 요구하는 대만은 접촉·담판·협상 등 3불정책을 고수하며 유엔재가입시도 등 국제사회의 생존공간 확보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두나라의 화해될 수 없는 기본입장차는 95년 2백9억달러라는 무역액에도 불구,양안을 긴장상태로 몰고 있다.미사일발사 등 대만에 대한 무력시위도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란 사실을 거스르는 어떤 행동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경고와 함께 전쟁까지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다. 이런 일관된 입장은 지난 5일과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기간중 이붕총리의 국정보고 및 전기침외교부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확인됐다.이총리 및 전부장은 대만독립시도야말로 위험한 행위며 영토주권을 지키기 위해선 무력사용을 포기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미사일훈련 등 강경입장과 더불어 중국정부는 심국방 외교부대변인의 발언을 통해 대만은 홍콩보다 한단계 높은 자치 및 자율을 향유할 것임을 강조하고 직항로 조기개설,경제협력강화 등 일련의 평화공세도 강화하고 있다.97년 7월 홍콩,99년 마카오회복을 눈앞에 둔 중국정부는 한나라에 두가지 체제를 허용한다는 「일국양제」와 「(지역주민의)자치허용」이란 사탕을 내보이며 다음 목표인 대만의 민심을 집요하게 흔들어대고 있다. 무역액의 17%를 중국에 의존하고 대부분의 무역흑자가 대중무역에서 나오는 것도 대만이 중국이란 구심력속으로 빨려들고 있음을 보여준다.정부규제로 대륙투자를 못했던 대기업들도 대륙시장 접근을 시도하고 있고 긴장이 높아진 지난1·2월 대만기업의대중국 투자허가건수가 전년도에 비해 늘어난 것도 양안관계의 흐름을 상징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지식인들은 5월 20일 출범하는 새로운 직선 총통정부가 중국과 어떤 타협점을 찾을것인지 불안해 하고 있다.국제적 생존공간 확보를 시도하면서도 대중경제 의존도는 높아지는 아이러니속에 강대해진 중국의 적극적인 통일외교가 대만을 점점 짓누르고 있다.
  • 유권자가 공약 검증할 차례(사설)

    4·11총선에 참여하는 여야 각당의 공약이 사실상 확정됐다니 이젠 유권자들이 나서서 그 공약의 차별성과 실현가능성 등을 검증할 차례라고 본다.이번에 드러난 각당의 선거공약을 과거와 비교해 보면 민생관련 공약이 크게 늘어났음이 발견된다.우리 정치가 국민을 무서워 하는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다행이다.특히 신한국당이 정부측 이의 제기에 부딪혀 일부 공약을 확정짓지 못한채 발표를 미루고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여당 공약에 대한 신뢰를 높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선 정당의 선거공약에 대해 선거만 끝나면 흐지부지되는 1회용 사탕발림으로 치부하는 부정적 인식이 지배적이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선거공약을 부각시켜서 정당간 정책대결을 유도해 나가는 것이 선거풍토를 정화하고 정치문화를 한 차원 높이는 지름길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특히 지역바람에 선거가 좌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정책대결의 활성화는 적극적으로 도모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유권자들이 각당의 선거공약을 검증하여 시비를 걸 필요가있다.특히 시민의 권익을 대변하는 각종 사회단체나 직능단체,그리고 언론기관들이 이러한 일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예를 들어 이번에 국민회의는 국가보안법과 민방위제도의 폐지를 주장하면서 대체입법을 대안으로 제시해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안법과 민방위제도의 폐지가 과연 타당한지도 문제이지만 폐지하자면서 대체입법이란 또 무언지 그 진상을 유권자들이 능동적으로 가릴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각당도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여 선거공약의 나열식 발표에 그칠게 아니라 공약실현을 위한 재원염출방안 제시,타당 공약과의 차별성 부각등의 새로운 노력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세금 몇% 올리는 문제로 정권이 바뀌고 복지정책의 강도로 정당 선호도가 달라지는 정치풍토가 정착될 때 이 땅에 참된 정치발전이 이룩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 브라질 원주민 인디언 자살 급증

    ◎82년이래 236건 발생… 대부분 10살 안팎/전통문화 상실에 가난·학대 못 이겨/“영혼안식의 길” 문화적 배경도 한 몫 브라질 남부 작은 마을에 살던 9살박이 인디언소녀 루시아나 오르티즈양은 최근 별다른 이유 없이 나무에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며칠 뒤에는 20세의 안드레 파울로군이 동이 틀 무렵 같은 방법으로 목을 맸다. 브라질 원주민인 구아라니 인디언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수년래 이런 자살사건이 그치지 않고 있다.82년부터 지금까지 적어도 2백36건의 자살사건이 일어났고 자살자 대부분은 루시아나 또래의 어린이들이었다.지난해만 보더라도 2만3천명의 구아라니 인디언 가운데 54명이 음독이나 목을 매는 방법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인디언들의 자살이 잇따르자 브라질 국립인디언보호기구등 정부당국은 원인규명에 나서는등 바짝 긴장하고 있다.당국은 인디언들에게 번지는 자살현상을 「조용한 반항」이라고 부르며 대책마련을 서두르고 있다.일단 인류학자등 전문가들은 인디언들의 자살이 선조로부터 내려온 토지의 박탈과 전통문화의 상실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한 탓으로 풀이하고 있다.더욱이 인디언들이 겪는 학대와 가난도 주요원인일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한마디로 인디언들은 극단적인 절망에 빠져 자살을 도피구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아라니 인디언들의 생활은 처참하기만 하다.26만명에 이르는 이들 인디언은 파라과이 이웃에 위치한 섬에서 대부분 살고 있다.이들의 집은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움막들이다.수입이라고는 하루종일 콩이나 사탕수수 농사일을 하고 받는 3달러16센트가 고작이다.이들은 이 돈을 맥주를 마시는데 다 써버리고는 돈이 떨이지거나 할 일이 없으면 자살을 통해 삶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이들에게 풍부한 것은 오로지 아침에 나무잎새로 비치는 햇살뿐이라고 한 관계자는 말했다. 인디언들의 자살에는 문화적 배경도 한 몫을 하고 있다.이들은 자살만이 그들의 영혼을 「악마없는 땅」(Terra Sem Mal)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이런 생활고와 문화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인디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자살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브라질정부는 이에 따라 인디언들에게 더 넓은 땅과 생활자금을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있다.그러나 인디언들의 자살이 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인디언들이 요구하는 것은 자본주의도 산업화도 아닌 자연속의 조용한 삶이기 때문이다.
  • 에토와 무라야마의 「제국근성」/강석진도쿄특파원(오늘의 눈)

    4일은 일본에서 신년연휴가 끝나고 새해 업무가 시작되는 날이었다.전후 50주년이었던 지난해 과거 침략사와 관련,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워낙 잦았기 때문에 올해는 제발 일본정치인들도 맑은 도쿄 겨울하늘처럼 과거사에 대해 밝은 시각을 가져주길 기대해 보았다.그러나 이런 기대가 지나친 것이었음이 즉각 드러나고 말았다. 지난해 한국·중국 등 피해국민을 격노시켰던 망언의 당사자 에토 다카미(강등륭미) 전총무청장관은 이날 장관사임의 원인이었던 한국식민지지배 정당화 발언을 또다시 정당화하는 발언을 했다.『실언한 것도 아니고 폭언이나 망언을 토한 것도 아니다.나쁜 것은 나쁘다고,좋은 것은 좋다고 당연한 말을 한 것 뿐이다.왜 반성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한일합방조약에 대해서도 『국민의 총의를 얻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탄압도 했다』면서도 『다만 양국간에 체결한 국제조약으로서는 성립했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미국 민주주의는 노예제도와 인디언 학살 위에 이루어졌다고 기술한 책도 있다』면서 『(일본도 한국에 대해)사탕과채찍을 모두 사용했으며 심한 일도 했으나 부산항과 인천항,5천개의 학교도 건설했다』고 망언을 되풀이했다. 에토 전장관은 지난해 망언한 것이 문제가 되자 한국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며 발언을 전면적으로 철회한 뒤 한국측의 강력한 반발과 함께 통합야당인 신진당이 불신임결의안을 제출하자 전격 사퇴했었다.그의 발언 철회,사퇴는 결국 속임수에 불과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같다. 또 5일 사임 의사를 표명한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총리는 4일 첫 행사로 일본왕가의 선조를 받들고 있는 이세신궁을 공식참배했다.65년 사토 에이사쿠(좌등영작) 총리의 참배 후 자민당 단독정권 시절 총리의 이세신궁 연두참배는 항례행사였다.무라야마는 그러나 지난해 「정교분리의 헌법원칙에 위배된다」며 참배하지 않았다.그것이 1년만에 참배로 선회했다.위헌이라고 비판하던 입장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일이다.「소금」은 짠 맛을 잃고 있고 일부 보수정객들의 병든 과거사 인식은 그대로다. 전후 50주년이라는 한 매듭이 지나갔지만 일본정계의 보수화 흐름을 주시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것이 새해 벽두부터 일본정치권이 주는 인상이다.
  • 남북한 어휘 5만개이상 달라

    ◎북,한자·외래어는 한글로 바꾸거나 풀어써/주요 사례­사실혼부부→뜨게부부 미혼모→해방처녀 손자→두벌자식 지하도→땅속건늠굴길 뒷걸음질→물레걸음 노크→손기척 『북한사람들의 말귀를 못알아들을 때가 더러 있었다.이러다가 동족간에도 통역이 필요한 때가 오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최근 투자조사차 북한에 다녀온 우리측의 한 업계 인사의 우려였다. 이처럼 분단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 남북간 언어 이질화 현상이 날로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최근 통일원 산하 통일연수원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북한에서 일상적·전문적으로 사용하는 어휘중 약 5만개 이상이 남한의 그것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테면 남한에서 쓰이는 토요일,잔돈,연립주택,사실혼부부등이 북한에서는 「문화일」,「사슬돈」,「문화주택」,「뜨게부부」등 생경한 어휘로 대체되고 있다.가정주부와 「가두녀성」,간통사건과 「부화사건」,미혼모와 「해방처녀」,공무원과 「정무원」,손자와 「두벌자식」등도 남북간 언어 이질화의 산물이다. 이처럼 남북 언어의이질화가 심화되는 일차적인 요인은 북한이 이른바 「문화어」를 표준어로 삼고 있다는 사실때문이다.이「문화어」는 평양지역에서 사용되는 방언을 중심으로 한 것으로,서울의 중산층이 쓰는 말씨를 기준으로 한 우리측의 표준말과는 어휘나 어법상 상당한 차이가 있음은 물론이다. 북한 「문화어」의 특징은 첫째,한자어는 한글고유어로 대체하거나 고유어가 없을 경우에는 뜻을 풀어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각선미→다리매,권련→마라초,구설수에 오르다→말밥에 오르다,냉수욕→찬물미역,돌파구→구멍수,멸균→균깡그리죽이기,미숙아→달못찬 아이,산란기→알쓸이철,지하도→땅속건늠굴길,합병증→따라난 병 등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외래어를 새로 작명한 한자어나 고유어로 대체해 사용하는 경우이다.즉 헬리콥터→직승비행기,볼펜→원주필,노크→손기척,도넛→가락지빵,드레스→나리옷,소프라노→녀성고음,슬리퍼→끌신,아파트→살림집,액세서리→치레거리,캐라멜→기름사탕,클로즈업→큰보임새 등의 사례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남쪽말과는뜻이 다르거나 판이하게 쓰이는 말도 많다.예컨대 괜찮다→일없다,귀빈석→주석단,개고기→단고기,구석구석→고삿고삿,김매기→풀잡이,악착스럽게→이악하게,이제→인차,단잠→쪽잠,단비→꿀비,뒷걸음질→물레걸음등이 그것이다.또 디딤돌→구팡돌,식혜→밥감주,배웅하다→냄내다,오전→낮전,빼어닮다→먹고닮다,은행원→은행경제사,삿대질→손가락총질,서명하다→수표하다도 마찬가지 사례다.
  • 해외동포 어디에 얼마나(서울신문 50돌 특집)

    ◎그들의 위상은 어떠한가/6대주 142국에 520만명 근면·성실로 기반 확고히/2년새 5.7% 증가… 중국에 최고 194만 거주/미 180만·일 69만·중앙아시아 46만명 생활/최근 취업·유학·투자이민 급증/망국·가난의 한 딛고 현지 빠른 적응/정·관·재·교육계서 활약 숱한 인재 배출/한민족 동질성 유지가 최대의 과제로 구한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 이주로부터 시작된 한국이민사가 90여년에 이르면서 해외교민수가 5백만명을 넘어서고 있다.중국이나 일본에 비하면 그리 길지않은 역사이지만 한민족 특유의 근면성과 성실성으로 세계 곳곳에서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어느 나라에 얼마나 살고 있으며 그들의 현재 위상은 어떤가를 알아본다. ▷교민현황◁ 94년12월31일을 기준으로 외무부가 파악하고 있는 우리의 해외교포는 모두 5백22만8천36명이다. 지역별로는 아시아에 2백72만,미주에 1백96만,유럽에 52만,중동에 9천2백,아프리카에 3천2백명이 분포하고 있다. 국가별로 볼 때는 중국에 1백93만명으로 가장 많다.이어 미국에 1백53만,일본에 71만,러시아를포함한 독립국가연합에 46만명이 거주중이다. 전세계 1백92개국 가운데 우리동포가 살고 있는 나라는 무려 1백42개국이나 된다.중국이나 미국·일본등처럼 역사적인 이유로 우리 민족이 옮겨간 경우도 있다.그러나 우리동포의 분포가 이처럼 넓어진 것은 최근 늘어난 선교이민과 태권도교관의 파견 때문이라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 2년마다 해외교포의 현황을 파악하는 외무부가 92년12월31일자로 파악한 해외교포는 4백94만3천5백90명이다.해외교포는 지난 2년동안 5.7%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교포가 증가한 것은 교포의 2세·3세·4세가 태어났고,해외경제활동의 증가로 우리 기업등의 파견원이 많이 진출하기 때문이다. 해외교포 가운데 95%인 4백70만명은 거주국의 국적을 갖고 있거나 거주국에서의 영주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나머지 5%는 상거래나 취업·유학등으로 체류중이다. ▷중국 교민◁ 중국에 한국인이 건너간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이다.이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부터 전쟁포로나 인질·공녀등의 형태로 한국인의 이주가 시작됐다.그러나 중국에 2백만의 교민사회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엽,일본의 한반도 침략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외무부에 따르면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한국민의 중국이주가 급격히 증가,1907년에 7만1천명,1910년에 10만9천명,1916년에 20만명,1921년에 30만7천명이 조국을 떠난 것으로 기록돼 있다. ○해방이후 80만명 귀국 1945년 이전까지 약 2백16만명의 한국인이 만주지역에 거주했으며,해방과 더불어 80만명이 귀국하고 나머지가 잔류했다. 현재 우리교민은 중국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12번째 규모다.전체의 약 97%인 1백87만명이 길림성,흑룡강성,요령성등 동북 3성에 집중 거주하고 있다.특히 길림성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는 82만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중국 교민들은 해방후부터 냉전시대까지 남한과는 별다른 접촉을 가질 수가 없었다.따라서 정부도 이들에 대해 특별한 정책을 세울 수 없었다. 지난 88년부터 우리정부가 사회주의권 교민의 자유로운 모국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중국동포와의 교류가 본격화됐다. ○동북 3성에 집단촌 그러나중국교민들의 모국 방문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교민들이 경제수준이 월등한 모국에서 돈벌이를 하고자 대거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밀입국,불법취업,취업사기,절도·강도등의 사건이 잇따랐다. 정부는 이에 따라 중국교민들에 대한 사증발급 심사를 강화하고,이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현지에서 성장하도록 지원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중국내에서 교민들은 한인이나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경제·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또 중국 교민들은 스스로를 한국인 혹은 북한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선족 중국인으로 생각한다. ▷미국 교민◁ 한미우호통상조약에 따라 1903년 한국인 1백21명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떠나면서 미국 이민사가 시작됐다. 이후 1961년 해외이주법이 제정된 이래 지난해까지 모두 62만6천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이 기간 동안의 총 해외이주자 79만2천명 가운데 미국이민 비율이 79%를 차지하고 있다. 재미교민의 상당수는 한국내의 중산층,식자층 출신이며 자녀의 교육문제,경제적 이해관계,혹은 한국사회에서의 불만 때문에 미국에 건너간 사람들이다. ○구한말 하와이로 나가 이들은 다른 민족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이민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국사회 내에서 확고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물론 언어장벽과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에 아직 미국사회의 주류에 진출하는데는 한계를 보이지만,최근들어 의사·변호사등 전문직 진출자가 늘어나고 있다.캘리포니아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된 김창준씨가 대표적인 한국교민의 성공사례이다. 교민 1.5세와 2세 이후세대는 현지에서 교육,성장해 비교적 빠르게 현지에 동화되어 가고 있다. 또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교민 사회에 북한과의 교류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고,과거 음성적으로 활동해오던 친북인사의 활동도 표면화하고 있다고 외무부 당국자는 밝혔다. ▷일본 교민◁ 일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다른 지역의 교민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태평양전쟁 발발후 일제가 전쟁수행을 위해 한반도 남부지방에서 강제적으로 징용해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강제 징용자의 숫자는 19 45년 당시 2백10만명에 달했으나,해방후인 46년 이후 65만명이 잔류하고 있다. 재일교민들은 오사카를 필두로 나고야·고베등지에 밀집해 거주하고 있으며,주로 상업 제조업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일본교민들은 본국에서의 좌·우익 대립을 그대로 답습,민단과 조총련으로 나뉘어 대립하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그러나 최근에는 남북간의 국력차이가 워낙 커져서,민단과 조총련이 특별히 경쟁하는 양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교민1세들은 우리국적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민족주의적인 성향으로,일본에 귀화하는 것에 대해 큰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교민 2세이후부터는 모국과의 연대의식이 희박해지고 있으며,이에 따라 일본에 귀화하는 사람이 늘고있다.지난 50년 이래 일본에 귀화한 한국인은 모두 20만명 정도다.특히 교민 2,3세들은 일본인과의 결혼을 선호해 91년 결혼한 사람 가운데 82.5%가 일본인 배우자를 맞이했다. ▷독립국가연합지역 교민◁ 현재 옛 소련 지역내에는 러시아에 11만명,우즈베키스탄에 22만명,카자흐스탄에 10만명,우크라이나에 9만명등 모두 46만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이들은 대부분이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강제이주된 우리 교민의 2,3세들이다. 각 지역으로 강제 이주된 뒤 이들은 자연적으로 그곳의 문화에 동화되었다.따라서 우리말과 문화적 전통을 많이 잃은 상태고,러시아 극동지역에 거주하는 교민들 말고는 우리말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도 적다. 그러나 이들은 국제고려인단체연합회등 31개의 교민단체를 조직,모범적으로 혈연의식을 이어가고 있다.또 이를 바탕으로 각종 문화단체 활동,출판물 발간활동과 함께 대학교수,영농지도자를 다수 배출했다.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각 공화국은 우리교민의 근면성,높은 교육수준과 사회기여도를 평가하고 있다. ○사회기여도 평가 받아 이 지역에 대해서 정부는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우리업체와 현지 교민들간의 고용과 취업지원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다. 러시아의 경우 내각 안에 「민족문제 및 지역정책부」가 설치돼 소수민족과의 화합 및 육성지원 정책을 마련한다고 표방하고있으나 체첸 공화국 사태에서 보듯이 러시아의 범위를 이탈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는다.정부는 이러한 점을 감안,교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민족의식과 민족적 일체감을 고양하기 위해 한글교육,전통문화 재생,학술·체육 교류를 중심으로 지원책을 마련해가고 있다. 사할린에 거주하는 4만명의 교민들 가운데 1세들을 본국으로 귀환하는 문제는 한·러·일간의 현안으로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이주추이◁ 우리나라의 최근 해외이주자 추이를 보면,80년 3만3천3백명에서 83년에 2만3천3백명으로 하강세를 보이다,86년 3만7천80명으로 다시 늘었다.이후 다시 감소해 93년에는 1만4천4백명으로 매우 낮은 수치를 나타냈다. 그러나 사업과 취업이주는 지난 10여년동안 꾸준히 증가했다.이는 그동안의 연고초청 이주,즉 막연한 동기의 해외이주보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이주형태가 늘어나고 있음을 반영한다. 이민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는 역이민도 늘어나고 있다.80년 역이주자수는 1천49명으로 그해 이민자의 2.8%였다.86년에는 역이민자의 비율이 7%를 차지했다가 89년 25%로 급증했으며,91년 40%,92년 50%를 기록한 뒤 93년에는 60.65%를 차지,이민자의 반이상이 되돌아오는 현상을 보였다. 역이주자수가 늘어나는 이유는 우리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돼 국내에서도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외무부는 설명하고 있다.같은 이유로 해외이주자수도 점차 감소하고 있다고 외무부는 밝혔다. 최근 국내외에서 해외교민들을 적극 활용하는 방안의 하나로 해외동포에 대한 이중국적을 허용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해외교민에게 이중국적을 부여, 국내 왕래를 자유롭게 하고 각종 할동 및 재산권 행사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은 교민의 권익을 크게 신장할 수 있는 방안이기는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점을 수반한다. 우선 교민들이 국적을 가진 두나라로부터 납세와 병역의 의무를 동시에 부여받게 되고, 범죄가 발생할 경우 자국민 불인도 원칙을 고수,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많다. 또 납세·병역 등 의무를 다하는 국민들과 비교할 때 권리행사와 의무이행의 형평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다른 국민들과 위화감이 조성될 우려가 크다.
  • 자연 휴식년제 5년째… 「설악」의 두 모습

    ◎등산길 “중병” 휴식구간 “울창”/등산로­인파에 나무뿌리 노출… 곳곳 쓰레기/휴식구간­원시림 복원속 희귀식물 등 회생 5부능선까지 곱게 물들어 만산홍엽의 절정을 이룬 설악산이 수많은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그러나 5년째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일부 등산코스는 어느덧 원시림의 자태를 찾아가고 있어 현행 등산로와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남한 제1의 명산 설악산의 두 모습을 르포로 구성해본다. 10월 초순의 설악산은 뼈대를 자신만만하게 드러내고 있는 기암괴봉과 절정에 이른 단풍 옷을 껴입은 능선,능선과 능선 사이 고적한 계곡,높고 맑은 하늘이 얽혀 가을 한복판에 접어든 명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내설악·외설악·남설악을 합쳐 3백73㎦에 이르는 설악산을 들여다 보면 군대의 행군같은 등산객들의 무수한 발걸음으로 곳곳이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지난 8일 낮 12시쯤 설악산의 정상인 1천7백8m 대청봉에 오르는 가장 빠른 길인 오색코스 매표소 앞은 원색 차림의 등산객들로 시장터처럼 붐비고 있었다.이날 설악산을 찾은 6만명 가운데 1만4천여명이 이곳을 통해 대청봉을 올랐다. 예상했던대로 5㎞의 이 구간의 대부분은 등산로라고 하기보다는 잘 닦인 비포장 길 같았고 어떤 곳은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너비가 5m이상 될만큼 훼손돼 있었다. 수많은 발걸음으로 흙이 파여 곳곳에 나무 뿌리가 드러나 있는가 하면 이들 뿌리를 지팡이로 쓰려고 서슴없이 꺾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5부능선까지 내려와 곱게 물든 단풍을 기념품 삼아 꺾기도 하고 계곡에서 음식을 먹어가며 노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친 발길을 쉴만한 곳이면 어김없이 담배꽁초는 물론 사탕이나 초콜릿 봉지,나무젓가락,심지어는 쓰레기 비닐봉지등으로 어수선하기만 했다. 자연을 보존한다는 취지로 지난 91년부터 등산로를 폐쇄하고 5년째 자연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는 대청봉∼권금성간 8㎞ 등산로. 북동쪽으로 난 이 구간 초입은 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산죽이 수북이 덮고 있어 아주 보기 좋았다.만경대로 내려가는 갈림길의 칠성봉∼집선봉∼권금성 구간은 불과 5년의휴식에도 불구하고 원시림의 원기를 되찾은 모습이었다. 등산로 같으면 손길이 닿아 벌써 따갔음직한 빨간 마가목 열매가 그대로 달려 있었고 한해에 8㎝정도 자란다는 단풍나무도 40㎝남짓 크기로 오솔길 같은 등산로를 덮고 있었다.금강초롱도 사람의 발길에 채이지 않아 보라빛 꽃자태를 유감없이 자랑하고 있었다.길도 몇년째 낙엽이 쌓이고 쌓여 어떤 곳은 길인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으며 기고 나는 짐승들의 움직임도 어느곳보다 활기찼다. 나무와 풀은 물론 바위·흙까지도 자연의 휴식이 왜 필요한지를 실감케 하는,세계적 자연보존지구 설악산의 두 모습이었다.
  • 장백진의 탑산(압록강 2천리:3)

    ◎발해의 기상 말하듯 「5층 전탑」 고고히…/높이 12.64m의 네모꼴… 꽃무늬 벽돌로 쌓아/조선인 2가구 19세기 이주,현재 4만명으로 중국 길림성 장백조선족 자치현 장백진의 탑산은 산에 탑이 서 있기 때문에 탑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그 탑산의 탑은 이른바 영광탑인데 벽돌을 쌓아 만든 5층 전탑으로 되어있다.네모꼴을 기본형으로 한 이 탑의 높이는 12.64m에 이른다.탑 꼭대기 지붕(옥개)위에는 마치 조롱박 5개를 포개 올린 것처럼 보이는 높이 1.98m의 청동제 상륜을 세워놓았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불탑이다.청회색 꽃무늬 벽돌을 쌓아 마감한 상층기단 남쪽에는 아치형 문을 냈다.그리고 각층의 탑신 남쪽 벽에 네모꼴 창을 뚫었다.지붕의 추녀와 추녀 받침은 벽돌쌓기를 통해 마치 목조건물이 풍겨주는 것과 같은 그런 멋을 부렸다.상층기단 아래에는 길이 3.2m,너비 3.4m,깊이 1.49m의 지하공간 지궁을 갖추었다.지궁 뒷벽에는 사리함을 봉안했던 것으로 보이는 대좌가 마련되었다. ○청동제로 상윤 세워 이 탑이 후대에 들어 발해의 탑으로 고증된 것은 19 82년께다.중국 동북고고대의 소춘화와 중국과학원 장어환 교수가 2년에 걸친 검증에서 발해시대 불탑임을 확인했던 것이다.그러나 어느때 누가 세웠는지,또 불탑의 이름이 무엇이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문으로 담아있다.다만 19 08년 청나라 장백부 관리였던 장풍대가 이 탑을 보고 생김새가 노나라 때 영광전을 닮았다고 해서 영광탑으로 불러왔다. 이 탑에 대한 전설도 있다.장백조선족자치현 문화관 이성태 관장이 들려준 전설은 발해의 퇴락을 간접적으로 이야기 한성 싶다.전설에 의하면 어느 해 어느 날 괴상한 사람들이 탑속으로 스며들어 이레를 보냈다.그리고 금불상을 훔쳐 배에 싣고 가다 배가 뒤집히는 통에 금불상이 강에 가라앉았다고 한다.그 뒤에 늘 빛을 훤히 드러내던 탑은 광채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그러자 독사가 탑주변에 살면서 사람과 가축을 마구 잡아먹었다는 것이 전설의 요지다. 장백현 일대는 발해가 융성한 시기의 강역 압록부에 해당한다.그 중심지 서경이 하류에 있었는 데 장백진에서 그리 멀지 않다.이 탑은 물론발해가 융성했던 시기에 세웠을 것이다.오늘 날도 탑이 있는 산아래 압록강변 장백진의 벌이 탑전이고 보면 탑산의 탑은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이 탑의 영향력이 어디 장백진에만 국한했으랴.강건너 북한땅 혜산시 역시 옛 발해의 압록부였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압록강 유역의 양안은 본래 고구려 강역이었다.그러나 고구려는 당에 정복되어 장백진에는 정복자의 전설이 더 많이 남아있을 뿐이다.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함께 세운 발해가 멸망한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들이 더 많은 세월을 지배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는 쇠잔하기 이를 데 없는 잔영에 불과했다.그런 탓인지 탑산에는 당의 장수 설인귀의 전설이 남아있다.탑산에 세운 한 비석에다 설인귀가 말에 올라 군사를 호령했던 자리라고 기록해 놓았다.그리고 말발굽자리처럼 자연적으로 푹 파인 커다란 화산돌은 설인귀가 탔던 말발굽자리라 해서 과마석으로 묘사했다. ○정복자의 전설남아 역사의 흥망성쇠를 두고 「삼국지연의」머리시는 「한 마당 꿈」이라고 했다.정녕 그런 것인가.민족의 고대국가 강역에서 중국의 역사도 흥망성쇠를 거듭했다.발해가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면서 요,금에 이어 명이 숨가쁘게 지나가고 청이 시작되었다.청은 중국의 동북을 만족(만주)자신들의 발상중지로 여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봉금령을 내렸다.그리고 나서 청은 16 77년 백두산과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1천여리 넓은 땅을 봉금구로 정했다.특히 장백현은 경위장이라는 이름의 그들 사냥터가 되었다. 그러니까 장배현은 짐승들만 들끓는 무인지경이었다.19세기 초엽에 와서야 밥짓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다. 「장백현황」에 따르면 청나라 연호로 도광 11년(서기18 31년)오늘날 길림성 임강 부근인 모아산 북탕하지방에서 조선인 2가구를 발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이어 도광25년에 조선인 10여명이 임강으로 건너왔고,함풍 2년(서기 1852년)에는 함경도 단천군 사람들 10여명이 와서 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함경도서 많이 이주 이들이 바로 압록강을 건너온 이주민 선구자들이다.그로부터 세월리 흘러 20세기에 접어들어 19 05년에는 압록강 유역 장백·임강·집안 등지에 사는 조선족 이주민은 8천7백가구 3만9천4백여명을 헤아리게 되었다.그 무렵 장백현으로 들어온 평안도 출신의 이주민2세 이동근(82)노인은 압록강을 건너와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했던 뼈 아픈 사연을 회고했다. 『고향을 떠나서리 들어온 데가 장백진 탑전 사탕골이었댔시요.내 나이 연네살이었는데 자꾸 고향 생각이 납데다.그런 판에 부친은 한 해치 품삯 60원을 받고 연치산이라는 조선족 집에 머슴으로 들어가고 모친은 삯일을 했수다.부친이 만 네해 머슴을 살고 여섯식구가 다시 모였디요.기쁜 맘도 잠시고 여러 식구가 먹고 살게 있어야디.그래서 내 열여섯살 나던 해에 김세익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시요.저 노친(김증손·77)이 겨우 열한살이었던가 기래요.다섯 해 데릴사위 노릇을 하다보니 어린 처가 숙성해집데다.그래서리 결혼을 해버렸디요』 이 노인은 딸 넷과 아들 하나를 두었다.딸들은 모두 인근으로 출가하고 막둥이로 둔 아들도 커서 장가를 들었다.아들은 장사를 하는데 조선(북한)을 자주 드나든다는 이야기다.노인은 묻지도 않았는데 『조선에 물건만 가지고 가면 다 돈이 된다고 기래요』라는 말을 했다.노인의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해관(세관)이 있는 압록강변 국경지대로 짐을 실은 차들이 몰려들었다.물건이 잔뜩 든 골판지 상자와 큰 부대자루들이 장백진 쪽에서 통관을 기다리고 있었다.
  • EU 곡물관세 부과/WTO에 협의 요청/미 무역대표부

    【워싱턴 연합】 미국은 갓 발효된 유럽연합(EU)의 수입곡물 관세부과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마찰을 해결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따른 즉각적인 사전 협의를 모색할 것이라고 미 무역대표부가 19일 밝혔다. 이로써 미·EU간에 쌀 등 주요 곡물 수입문제를 놓고 또다시 마찰이 본격화될 조짐이다.미국이 이번에 시비를 건 곡물에는 쌀·밀·보리·호밀·옥수수 및 사탕수수가 포함돼 있다.
  • 혈육의 정/연변은 남북이산가족 “만남의 장소”(두만강 7백리:6)

    ◎거의 조선족이 알선… 70년대부터 재회 급증/한달간 머물며 “못다한 정”나누고 여행도 중국에 사는 조선족들은 허리가 잘려 두 동강이 난 고국 어느쪽의 혈육이든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다.남북의 혈육들이 이념적 갈등 때문에 고국땅에서 서로 만날 수 없는 현실과 대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조선족들의 이런 처지는 남북으로 갈라진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속된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에 조선족들이 끼어들게 마련인 것이다. ○문혁이전엔 엄두 못내 그러나 남북 혈연들의 상봉을 주선하기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문화혁명 이전에는 상봉을 주선하기는 커녕 조선족 자신들조차도 남한에 혈연,특히 이름깨나 난 혈연이 있다는 사실을 감추었다.문화혁명 당시에는 이런 꼬투리만 잡혀도 호된 투쟁을 받았다.남한에 혈연을 둔 것도 죄가되어 실제 곤욕을 치른 조선족들도 많다. 용정시 백금향에 들렀을 때 백금발전소 최몽필 문화잠장으로부터 생소한 이야기를 들었다.지금은 고인이 된 박정희 대통령의 6촌 계수가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발전소에 살면서 좀 떨어진 향 소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밥을 지어준다는 그 여인의 이름은 윤순옥(64).막상 만났더니 오랜 고생 탓인지는 몰라도 노쇠한 그늘이 역역했다. 그녀는 24살이 되던 해에 12살이나 더 먹은 박용태(함북 길주군 태생으로 72년 작고)의 후실로 들어왔다.후취 장가를 들 무렵 3살난 아들이 있었다.박용태의 부친은 박관일,박관세,박관선 3형제였는데 그녀의 주장대로라면 박정희 대통령과 5촌이 되는 사람들이다.보학도 배우지 않았거니와 족보도 확인하지도 못한 나로서 그렇다 아니다를 논할 처지는 못 되지만,일단 믿어보기로 했다. ○방송국에 편지 부탁 그녀의 말에 따르면 박용태는 박정희 대통령과 군관학교 정문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신사복 차림에 중절모를 쓰고 형제분이 찍은 사진이었다.밤이면 이불 속에서 사진을 보이면서 박정희라고 이야기 할 때 그녀는 모골이 송연했다.그때만 해도 적국의 대통령과 인척관계가 된다는 사실만이라도 감옥 밥을 무던히 먹을 죄였던 것이다.벽에 걸어둔사진틀 뒤에 몰래 보관하고 집식구들끼리만 돌려 보곤 했다. 그러다가 문화혁명 시기에 우연히 사진이 치보주임 최홍운씨의 눈에 띄었다.최 주임은 박정희라는 것은 몰랐지만 해방전 박용태의 신사복차림을 보고는 소각해버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귀띔해 주었다.그러나 박씨는 사진을 농속에 깊숙히 감추어 두었다.만약 당시 최주임이 고자질을 했더라면 박정희와의 관계는 뒤로 제쳐놓고도 투쟁을 받았을 것이다.1972년 박씨가 세상을 뜨자 사진을 불살라버렸다. 한중수교가 이루어 진 후 일가 친척 없이 고독하게 살아온 그녀는 한국 KBS사회교육방송국에 친척을 찾아달라는 부탁의 편지를 냈다.그런데 박정희 대통령과 친척이라고 선을 달아 줄 것을 요구한 편지가 꽤나 된다면서 그녀의 혈육을 찾는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 주지는 못했다.사회교육방송국에서 종종 보내온 책자와 편지를 지금도 보배처럼 보관중인 그녀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쉬움이 많다. 『령감은 고생만 하다 너무 일찍 가셨디요.기런 북새통을 살다보니 박대통령 사진도 못 남겼수다.다가저의 불찰이디요.저는 박씨 가문에 들어온 사람이라 남이라면 남일테지만….자식들한테 혈육도 모르고 지내게 하는 거이 가슴 아픕네다』 그러나 두만강을 사이 두고 한동안 친선을 유지해온 중국과 북한은 사정이 달라 혈육간의 왕래가 비교적 잦았다.용정시 대소과수농장의 방승섭(68)은 여기서 김일성주석으로 호칭하는 그의 처형 아들이었다.다시 말하면 김일성주석의 본처 김정숙의 언니가 바로 방승섭의 모친이다.70년대 초 두 나라 정부에서 교섭하여 방승섭부부,어머니,두 아들과 딸하나를 데려갔다.1986년 대소과수농장의 관치성농장장은 조선을 방문하는 기회에 청진시 칠세대에 사는 방씨 댁을 찾아갔다.고향 사람을 만났다고 후한 접대를 해주었다.방씨 부인은 3년 전에 대소과수농장을 찾아온 적도 있다. 용정시 지신(일제시기 화룡현 다라즈)의 출신이고 항일투쟁에 차가했다가 현재 조선인민군에서 장군이 된 김광협의 친척들은 50년대와 60년대에 북한으로 이주했다.김광협의 7촌 조카 김상호는 1946년 참군하여 조선으로 나간 후 소련 유학을 하고돌아와 조선인민군 공군 부사령이 되었다고 한다.김상호는 어머니와 일가친척을 모두 모셔갔다. 연변에 살던 김광협의 친척들은 소작농으로 가정 살림이 째지게 가난했다.세발의 막대를 휘둘러도 거칠 것 없는 살림인지라 김광협의 동생은 한쪽 눈이 먼 여성을 아내로 맞았다.동생 일가가 평양에 도착하던 날 김광협은 처 유명옥과 함께 역으로 마중을 나왔다.제수를 보는 그의 마음은 참 딱했을 것이다.그런만큼 그는 제수를 끔찍히도 아꼈다고 한다.순 농군으로부터 국가 간부가 된 동생은 처하고 불화했는데 그 일 때문에 형님한테서 모진 꾸지람을 들은 다음부터 가정화목을 지켰다는 것이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노인들의 이야기다. 김광협의 6촌 형님 김병협은 북흥촌 이기희씨의 고모부이다.그 이씨가 회령 사탕공장에 있을때 들었다는 이야기는 김광협 일가의 생활상을 짐작케 한다. 『그러네까 64년도 일입네다.김광협 6촌형의 딸,내게는 고종사촌 되는 누이가 두만강을 건너 평양 갔다 오는 걸음에 우리집에 들렸댔습네다.그 고종4촌 말이 김광협 집 앞대문엔 보초가 다섯이나 서 있더라고 기래요.삼촌을 집에 모신 김광협은 아침 문안을 꼭 드리고 식사도 독상을 대접하더랍데다.김광협은 식구들과 식당칸에서 밥을 먹으면서 요리가 나오면 모처럼 온 조카딸에게 연신 넘겨주었다는 거디요.조카딸도 화룡영화관 해설질을 하던 남편과 함께 나중에 평양으로 불러들였디요』 ○남북 오누이 극적 상봉 그러한 북한과의 일변도 왕래가 변화를 일으켜 딴판을 맞고있다.중국의 조선족은 이념의 벽을 뛰어넘어 남쪽의 혈육과도 정을 통하게 되었다.두만강을 훌쩍 건너는 것보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우회하는 먼거리에 남한이 있을지라도 무척 가까워졌다. 지금으로부터 3,4년 전의 일이다.중국 조선족 한 분은 북과 남에 사촌형제들이 있다.그해 북에 건너가 4촌 여동생한테 남에 사는 형한테서 온 편지를 전했다.편지를 받아쥔 여동생은 흐느껴 울었다.얼마나 그립던 오빠였던가!여동생의 남편은 6·25전쟁 당시 조선인민군이 되어 남으로 밀고 내려갔다. 그분은 얼마있다가 남한의 사촌형님 집으로 갔다.형을 만난 그는 깜짝 놀랐다.형님이 앞을 못보는 장님이 되었던 것이다.6·25전쟁 당시 국군에 있었던 형은 어느 한 전투에서 인민군의 총에 맞아 소경이 되었다는 것이다.어찌 보면 매부의 총에 부상을 입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타의에 의해 혈육간에 살생을 해온 우리 민족처럼 뼈에 사무치는 한을 가진 민족은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분은 여동생과 형님이 중국에서 만나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다.그러자 형님은 『소경인 내가 볼수도 없는 신세이고 만나면 여동생한테 서러움만 더 줄것이니 친척 동생더러 대신 가서 만나라』고 했다.결국 친 오누이의 만남은 무산되었지만 다른 혈육이 중국에서 뜻깊은 눈물의 상봉을 가졌다.그들은 만 한달간 한 집에 머물면서 한 많은 회포를 풀었다.그래서 두만강가는 이래저래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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