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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직원 사칭 현금카드 사기/7백만원 빼내가

    지난달 30일 낮 12시50분쯤 서울 송파구 문정동 국민은행 훼밀리아파트지점에서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주부 정모씨(55·문정1동)에게 은행직원을 사칭해 접근,현금카드를 가져가 인근 농협 가락시장지점에서 현금 7백10만원을 빼내 달아났다.〈김성수 기자〉
  • 김일순 연세의료원장 인감위조혐의로 고소/예수병원 이사장

    【전주=조승진 기자】 재단법인 예수병원 유지재단의 주계명 이사장은 이 재단 김일순 이사(연세의료원 원장)가 이사장 인감을 불법제작,범법행위를 했다며 16일 전주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주이사장은 소장에서 『김이사는 이사장 직명을 사칭하고 엄연히 등록된 이사장 인감을 불법제작,날인해 임시이사회를 소집하고 이사장과 일부 이사를 선임,등기하는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김이사를 불러 인감제작 및 임시이사회 개최 경위 등을 집중 조사했다.
  • 선거초반 폭력사태 속출/쇠파이프 편싸움에 가스총 위협까지

    ◎유인물 배포싸고 2시간 몸싸움­구로/유세장 자리다투다 코뼈 부러져­인천 4·11총선 선거운동이 시작된지 불과 사흘밖에 안된 시점에서 곳곳에서 선거 운동원들이 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상대방 흠집내기에 급급,공명선거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있다. 더욱이 일부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자신의 공약을 적극 홍보하기 보다는 다른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감시하거나 방해하면서 상대방을 무조건 고소·고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민주당 경기도 여주지구당은 29일 『28일 하오 9시쯤 신한국당의 정동성 후보가 여주군 문장1리 강모씨 집에서 좌담회를 갖고 있던 현장을 이형욱 홍보부장등이 비디오 카메라로 촬영하려 하자 정후보가 권총을 꺼내 「죽고 싶냐」고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정후보는 이에대해 『지역 청년회의소 회원 30여명이 모임을 갖는다기에 인사차 들렸다』며 『선관위 직원을 사칭한 청년 10여명이 몰려와 나의 수행원과 운전사를 강제로 붙들고 밀쳐 급한김에 호신용으로 갖고 있던 가스총을 내보이며 제지했다』고 해명했다. 또 28일 하오 8시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교회 앞길에서 선거 홍보물을 승용차에서 내리던 신한국당의 이신항후보 부인 조은희씨(47)를 국민회의 김병오후보 운동원들이 「김후보를 비방하는 유인물」이라며 내용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며 에워싸 운동원들사이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경찰서장이 직접 지휘하는 경찰 기동대가 긴급출동,유혈사태는 간신히 막았지만 운동원들의 몸싸움이 극심해 이 일대에서 한때 교통이 통제되고 2시간여동안 극심한 교통체증을 빚었다. 이에앞서 27일 하오 4시30분쯤 인천 서구 연희동 한국아파트앞에서 열린 국민회의 조철구후보 개인유세장에서 조후보와 신한국당 조영장후보 운동원들이 자리다툼을 벌이다 쇠파이프,가스통등을 휘두르며 20여명이 패싸움을 벌였다. 이 싸움으로 국민회의 당원 김용진씨(24)가 코뼈가 부러지는 등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고 양측에서 모두 5∼6명이 크게 다치기도 했다.〈전국 종합〉 ◎총선폭력 강력대처/김 내무 지십 김우석 내무부장관은 29일 『15대 총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사태에 대해 여야를 막론하고 강력히 대처토록 하라』고 박일용 경찰청장에게 긴급 지시했다.
  • 선거 폭력사범 구속 수사/배후조종자 철저색출/대검지시

    ◎연설방해·현수막 훼손 등 집중 단속 대검 공안부(최병국 검사장)는 28일 4·11총선을 앞두고 폭력사건이 잇따르자 선거폭력사범은 구속을 원칙으로 엄중하게 단속하라고 전국 검찰에 지시했다.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폭력 또는 후보자와 선거사무관계자에 대한 폭행 등 사안이 중대할 때는 배후조종자를 철저히 추적해 색출토록 했다. 집중단속대상은 ▲후보자 및 가족,선거사무장과 사무원 등에 대한 폭행이나 협박 ▲선관위 직원행세 등 공무원사칭 ▲선관위위원과 직원 등 선거사무관계자 등에 대한 폭행 ▲각종 연설회에서의 연설방해 및 소란 ▲벽보와 현수막 등 선전 및 선거관리시설의 무단설치·방해·훼손 등이다.〈박홍기 기자〉
  • “청와대 친인척” 사칭/돈뜯은 40대 여인 구속(조약돌)

    ○…서울 서초경찰서는 24일 박윤정씨(44·여·서초구 양재동)를 사기 혐의로 구속. 박씨는 지난 94년 1월28일 평소 알고 지내던 정모씨(39)에게 『청와대 고위층의 사촌동생인데 직원들에게 줄 월급을 빌려달라』고 속여 7백만원을 받는 등 지금까지 3차례에 걸쳐 모두 1천2백만원을 가로챈 혐의.〈박용현 기자〉
  • 환경감시요원 사칭 공장돌며 금품 갈취/일당 6명 영장

    서울 구로경찰서는 16일 환경감시요원을 사칭해 인천과 김포지역 공단의 영세 공장주들을 협박,상습적으로 금품을 갈취한 황용학씨(42·인천시 남구 용현동 557) 등 일당 6명에 대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인천환경대책협의회」라는 유령단체를 결성한 뒤 지난 1월19일 폐수시설 점검 명목으로 인천시 서구 검안동 Y석재를 찾아가 사장 김모씨에게 『허가증이 없으면 공장 폐쇄명령을 내리겠다』며 협박,20만원을 뜯는 등 지금까지 기업체 13곳에서 모두 3백10여만원을 갈취한 혐의다.
  • 선거운동원 사칭 거액상품권 절도/2명 구속·수배

    서울 중부경찰서는 21일 허경운씨(37·강남구 신사동)를 특수절도혐의로 구속하고 김춘식씨(42)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허씨 등은 지난 16일 하오 8시20분쯤 E제화 채권부에 전화를 걸어 『유권자에게 나눠줄 구두상품권 7천장이 필요하다』며 이 회사 직원 이모씨(36)를 대구 달서구 본동 B빌딩 자신의 임시사무실에 불러들인 뒤 이씨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5억여원어치의 상품권이 든 가방을 가로채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 한은 구미사무소 9억 사기인출/「3가지 의문점」 집중 수사

    ◎한은 사기범 현상금 2천만원/대동은 백지수표 분실 왜 몰랐나/거액 인출하며 도장확인도 안해/헌돈 요구에 의심없이 모두 내줘 【구미=한찬규 기자】 사상 최고액수의 한국은행 구미사무소 9억원 현금인출 사기사건은 많은 의문점을 갖고 있다. 신용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은행에서 ▲거액을 인출하면서도 확인작업을 않은 점 ▲인출때 헌 돈을 요구했으나 의문을 품지 않은 사실 ▲백지 당좌수표가 분실된 점 등은 있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 구미사무소는 9억원이라는 거액의 현금을 인출하면서 수표에 찍힌 가짜 도장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가장 큰 실수를 범했다. 대동은행 구미지점이 그동안 한은 구미사무소에서 당좌수표를 현금으로 인출한 최고액은 4억7천만원이었다.갑절이 넘는 9억원을 지불한다면 당연히 대동은행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범행에 사용된 당좌수표는 칼로 예리하게 절취돼 육안으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었고 절취된 수표와 원부사이에 찍는 간인도 없었다. 또 대동은행 지점장 등 4명만이 지불 준비금 인출업무를 맡아와 얼굴이 충분히 알려 졌는데도 한국은행 담당직원은 범인들이 대동은행 배지를 달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거액을 내주었고 새 돈이 아닌 헌 돈으로 인출해 달라는 요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한국은행 구미사무소 현금창고에 설치된 감시용 폐쇄회로 TV카메라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범인들을 찍은 필름만으로 인상착의 확인이 전혀 불가능 한 것도 간과할 수없는 허점이다. 대동은행 구미지점의 백지 당좌수표 관리에도 문제점은 많았다.지난해 11월17일 한은 구미사무소로부터 백지 당좌수표 1백장을 발부받아 사용해 왔으나 쓰고 남은 용지가 얼마나 되는지는 한번도 점검해보지 않아 언제 도난을 당했는지도 몰랐다. 일반 은행에서 한국은행과 거래하는 당좌수표가 분실돼 현금이 유출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한국은행은 일반은행과 거래할 때 1백장 한 책으로 된 백지 당좌수표를 주고 일반 은행에서는 이 백지수표에 필요한 액수를 기입해 돈을 인출하고 있다. 한편 경북 구미경찰서는 20일 범인 3명의 몽타주를 작성,2천만원의 현상금을 걸고 전국에 수배했다. 이에 앞서 지난 17일 하오 1시쯤 대동은행 구미지점 직원을 사칭한 30대 남자 3명이 구미시 공단동 한국은행 구미사무소에서 한국은행 발행의 위조된 백지당좌 수표 1매를 제시하고 현금 9억원을 인출해 도주했다.
  • 민주 산악회 간부 사칭 금품 갈취한 50대 구속

    서울 동대문경찰서는 17일 김청치씨(53·강남구 대치동)를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김씨는 94년 8월초 동대문구 용두동 W빌딩에 「레드」라는 광고업체를 차려놓고 「민주산악동지회」 현판을 건뒤 같은달 20일 같은 건물의 중소 건설업체인 S공영 대표 장모씨(42)에게 『민주산악회 사무처장인데 청와대로부터 유선방송 광고사업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면서 『후원해주면 수주를 도와주겠다』고 속여 8백만원어치의 사무실 집기와 1천만원권 수표를 받는 등 4차례에 걸쳐 3천8백만원어치의 금품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 생활 적응 못하는 귀순자 많다/김형덕씨 밀항기도 계기로 본 실태

    ◎제도적 지원불구 체제차이로 방황/사기피해 늘어… 자활의지 부축해야 북한을 탈출한 귀순자들 가운데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 94년 9월 귀순한 김형덕씨(22)가 거액의 외화를 갖고 중국으로 밀항을 기도하다 7일 적발된 사건도 대표적인 사례이다.김씨는 『남한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괴로웠고,북에 있는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다.심지어는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90년 들어 지금까지 귀순한 북한동포는 모두 1백26명.한 때 러시아에서 일하던 벌목공들이 혹독한 여건에 못 견뎌 「귀순러시」를 이룬 지난 94년에는 48명이 자유를 찾아왔다.70∼80년대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의 체제가 크게 흔들리며 굶주림과 불안감으로 귀순자가 급속하게 늘고 있다. 귀순자가 늘어나자 정부는 지난 94년 12월 그동안의 각종 특별보상금을 주던 「귀순용사」를 「망명동포」로 격을 낮추고 한때 선별입국의 방안까지검토했다.이들에게는 월 최저생계비의 20배에 해당하는 「정착금」을 지원하는데,그나마 예산이 넉넉치 못해 지급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올해 보건복지부의 귀순동포 지원예산은 30여명분으로 1인당 4백90만원선이며 별도로 주거 지원비가 8백40만원선이다.이밖에 안보강연회 등에서 강연료 등을 벌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 문제가 아니다.체제의 차이에서 느끼는 심리적 갈등이 훨씬 더 크다. 경제감각이 익숙지 않아 사기를 당하는 일도 많다.북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폭음을 하는 등 생활이 흐트러진다. 지난 해 9월 충북에서 데이트하던 남녀를 공기총으로 쏘아 중상을 입히고 총을 맞고 쓰러진 여자를 성폭행해 경찰에 구속된 신광호씨(28·충북 음성군 음성읍)는 국민들에게 크게 충격을 주었다. 또 기관원을 사칭해 사채업자를 납치,폭행하고 금품을 뜯다가 적발된 이모씨(39),술을 마시고 파출소 기물을 부순 혐의로 구속된 김모씨(37)등도 우리를 안타깝게 한 사례이다. 물론 적응에 성공해잘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지난 87년 일가족을 이끌고 「따뜻한 남쪽나라」를 찾았던 김만철씨(56)는 장남 광규씨(30·토지공사 근무)를 결혼시키고 경남 해남에서 양로원과 노인병전문진료소 등을 개설하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살고 있다. 그 역시 송아지를 수입해 큰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속아 1억1천여만원을 사기당한 일이 있다. 나이가 어린 귀순자들은 남한에 와서 대학진학을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91년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탈출해 귀순한 안혁(28),강철환씨(28)는 귀순 이듬해 한양대에 입학했고 89년 귀순유학생 전철우씨(28)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최근 개그맨으로 데뷔,김용씨(49)에 이어 연예인으로 활약한다. 정부 관계자는 『몇푼의 정착금보다 자활의지를 키워주고 우리 사회에 적응하는 훈련을 다각적으로 베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 언론사 간부 사칭 돈 뜯은 30대 구속/“소송해결” 미끼

    서울경찰청은 18일 언론사 간부를 사칭,판사에게 청탁해 소송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속여 9천만원을 사취한 정정전씨(39·무직·서울 강남구 역삼동 702)를 사기 및 사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긴급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모언론사 보도국장 직함의 기자증을 가지고 다니며 지난 8월 임대료 문제로 건물주로 부터 민사소송을 제기당한 서울 중구 D빌딩내 일식집 주인 임모씨(39·여)에게 접근,『잘 아는 판사에게 부탁해 소송을 해결해 주겠다』며 교제비조로 2천5백만원을 받는 등 6차례에 걸쳐 모두 9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 경인일대 사이비 기자 횡행/본사기자 사칭 돈 갈취 잇따라

    ◎경찰 수사나서 최근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에서 서울신문기자를 사칭하며 금품을 갈취하는 사이비기자들의 행각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5일 상오 인천시 남구 옥련동 환경위생업체인 W공사에 서울신문 제2사회부 김명국 기자」,C일보 인천주재기자등을 사칭하는 40대 남자 3명이 찾아와 페기물불법처리사실을 기사화하겠다고 협박,무마비조로 3백만원을 갈취해 달아났다. 16일에도 이들이 서울 강동구 천호동N사에 찾아가 같은 수법으로 금품을 요구하는 등 서울 인천 수원 기흥등지의 군소업체와 건설현장등을 찾아다니며 공갈·사기행각을 펼치고 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신문 사진부 김명국기자가 인쇄소에 맡긴 명함을 가로채 소속부서를 「제2사회부」로 변조한뒤 가짜신분증과 함께 제시하며 취재기자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 「보안사 4인방」 수사… 사법처리 관심

    ◎“「12·12」 치밀한 사전모의” 확인/“정총장 연행계획 수립” 전씨 12월초 지시/서삼수­총장 체포조·헌병초소 장악조 등 지휘/허화평­경복궁 모임·연희동만찬 준비·연락담당/권정달­일선지휘관 도애 파악·병력동원 요청 허화평·허삼수·권정달·이학봉씨 등 보안사 「핵심4인방」에 대한 조사가 숨가쁘게 진행되면서 이들의 사법처리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4명은 12·12군사반란 당시 보안사령관겸 합동수사본부장이던 전두환씨의 「수족」으로 정승화 전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는 등 하극상을 일으킨 뒤 5공정권 창출에도 절대적인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수괴인 전씨를 추종해 군사반란을 일으킨 공범중의 「공범」으로 볼 수 있어 이들의 사법처리여부에 따라 다른 가담자의 사법처리도 가닥이 잡힐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은 구속된 전씨가 입을 다물고 있는 만큼 우선 이들을 상대로 군사반란모의부터 성사단계까지의 전과정을 철저히 조사해 「밑그림」을 완성한 뒤 나머지 가담자를 차례로 불러 조사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지금까지 검찰조사결과 합수부측은 79년 12월12일 거사 이전인 12월 초순쯤 정전총장 연행계획을 세워놓고 치밀하게 사전준비를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해 12월 초순쯤 전씨로부터 정전총장 연행계획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받은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은 정씨가 퇴근후 거의 외출하지 않는 점을 감안,일과시간 뒤 총장공관에서 정씨를 연행하기로 하고 이를 같은 달 8일 전씨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씨는 이씨로부터 보고받은 다음날인 9일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과 우경윤 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 합수부 수사2국장에게 정씨의 연행방침을 알리고 이씨와 협의해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육본 헌병대장으로 총장공관상황을 잘 알고 있는 성환옥 당시 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과 이종민 육본 헌병대장,최석립 수경사 33헌병대장 등을 가담시켰다. 이들이 세운 정전총장 연행 세부계획에 따르면 「허삼수·우경윤조는 정씨를 직접 연행하고 성환옥·이종민조는 총장공관입구 헌병초소를 장악하는 한편 최석립은 한남동 공관촌부근의 경비병력을 차단한다」고 되어 있는 등 사전준비가 치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12·12사건은 순전히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주장해온 신군부측의 거짓이 입증된 셈이다. 이같은 계획이 완성되자 전씨는 거사당일인 12일 하오7시 이학봉씨에게 정전총장 연행지침을 시달했으며 이씨는 이를 허삼수씨에게 바로 통보했다.특히 보안사 인사처장이던 허씨는 공관촌정문 해병대초소에서 보안사 정보처장을 사칭하기도 했다.정전총장 연행팀은 결국 총격전 끝에 정씨를 연행하는 데 성공했다. 허화평 당시 보안사령관 비서실장은 수도권 주둔 장성들의 경복궁 모임 및 연희동 만찬 참석자에게 연락하는 등 이 사건 계획 및 준비과정에 참여하고 거사당일에는 연락업무를 담당했으며 권정달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은 예하 보안부대의 보고 등을 통해 일선지휘관의 동태를 파악,전씨에게 급보하고 30사단장에게 합수부측을 위해 병력동원을 요청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 “최씨 강제구인 현재론 검토안해”/이 특수본부장 문답

    ◎「보안사팀」에 여러 경로 통해 소환통보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장인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은 8일 『낮 12시30분쯤 최규하 전대통령의 비서관 최흥순씨를 통해 최전대통령에게 출석요구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출석요구서의 내용은. ▲9일 하오 3시까지 검찰에 나와달라는 것이다.부득이하면 11일 상오 10시까지 출석해 줄 것을 요구했다. ­불응하면 강제구인도 검토하는가. ▲현단계에서는 강제구인은 검토 안하고 있다. ­방문조사는. ▲그쪽의 대응을 지켜본 뒤 검토하겠다. ­최전대통령측에서 통보가 왔나. ▲아직 답변이 없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수사는. ▲현단계에서는 말할 단계가 아니다. ­이와 관련,국세청 등에 자료를 요청했거나 받았나. ▲수사기밀에 속하는 사항이다.은행감독원이나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는 없다. ­대검으로부터는 자료를 받았나. ▲말할 단계가 아니다. ­기업인들을 호텔에서 조사했다는 말이 있는데.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비자금 수사가 가시화되는 시점은. ▲다음에고려할 것이다.이렇다 저렇다 말할 단계가 아니다. ­내일 소환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최근 검찰청인 것처럼 사칭해 중요인사들에게 전화를 해 소환당했는 지를 떠보는 사례가 있다.따라서 이쪽에서 전화를 하면 상대방이 다시 전화를 거는 방법으로 소환하고 있다. ­서울지검 특수3부를 수사팀에 투입하는가. ▲서울지검3차장 소속이므로 인력이 모자라면 투입할 수도 있다. ­허삼수·허화평씨등 이른바 「보안사 4인방」에 대한 소환은. ▲일부 언론에 강제구인을 거론했는데 이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수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이들과도 여러 경로를 통해 소환통보를 하고 있다.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닌 당시 실무자에 대한 조사는. 수사팀에게 일임했다.실무적으로 조사하는 과정에서 필요하면 수사팀이 수시로 부른다.
  • 「12·12」수사 검찰·안양교도소·백담사 표정

    ◎최 전대통령 출두여부 놓고 조바심/이건영 의원 “참군인상 정립 계기되길”/전씨 9시간 조사받은뒤 피로한 기색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는 8일 차규헌 당시 수도군단장 등 관련자 7명을 소환 조사하는 한편 최규하 전대통령에게 소환장을 전달,증언을 요구했다. ▷검찰◁ 최 전대통령의 출석요구 날짜가 토요일인 9일로 결정되자 『역시 토요일』이라는 반응. 지난 2일 전두환씨 출두통보일이 토요일이었던 점에 비춰 이번에도 토요일에 출두요청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기 때문.이와 관련,「메가톤급 거물」의 출두는 토요일이라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질지도 모른다는 추측도 등장. ○…최 전대통령에 대한 출두요구가 발표되자 최대의 관심은 최씨의 출두여부. 그동안 검찰은 최씨에 대한 직접 조사를 위해 수차례 절충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해 속앓이를 해왔기 때문. 검찰이 최 전대통령에게 9일이 여의치 않으면 11일에 출두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검찰이 출두를 요청하긴 했으나 출두거부를 예상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2∼3일전 쯤부터 검찰을 사칭하는 괴전화가 12·12 및 5·18 관련자들에게 걸려오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검찰이 이를 해명하느라 곤욕. 이종찬 수사본부장은 8일 하오 브리핑에서 검찰이 주로 전화를 이용해 관계자들의 출두를 통보하는 점을 악용,『505호로 나오라고 요구하는 등 검찰사칭 전화가 많아 검찰수사에 혼선을 빚고 있다』고 「괴전화」사실을 토로. ○…12·12사건 당시 수도군단장으로 「경복궁모임」 핵심인물인 차규헌씨는 8일 상오 9시50분쯤 서울지검에 들어서면서 『국방장관에게 정승화 참모총장 연행 재가를 강요한 사실이 있는가』,『전두환씨 단식투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등 질문에 씁쓸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 이에 앞서 이날 상오 9시30분쯤 출두한 당시 9사단 참모장 구창회씨도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체 함구. 반면 낮 12시50분쯤 출두한 김진영 당시 수경사 33경비단장은 『진실은 재판정에서 가려질 것』이라며 당당한 모습. ○…8일 하오 1시50분쯤 검찰에 출두한 12·12사건 당시 3군사령관 이건영의원(신한국당)은 6시간 남짓 참고인 조사를 마치고 하오 7시50분쯤 귀가하면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진정한 군인의 명예와 참군인의 상을 세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피력. 이의원은 검찰청사 1층 로비에서 기자들이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26사단(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출동을 요청했는데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었나』고 묻자 『당시 작전통제권을 갖고 있는 8군사령관과 국방장관으로부터 부대출동이나 이동에 관한 지시를 받지 않아 사태수습이 돼 있는 것으로 알았다』고 답변. 이의원은 또 『3군사령관쯤 되면 당시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지 않았느냐』고 묻자 『당시 나는 나라와 국가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심각하게 내린 결심이었고 경기도 3군사령부에 있어서 서울의 움직임은 알수 없었다』고 해명. ▷안양교도소◁ 안양교도소 구속수감 엿새째를 맞은 전두환 전대통령은 8일에도 「항의성 단식」을 하고 있는 가운데 상오 대부분 시간을 독서와 휴식을 취하며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전날 하오 10시30분쯤검찰의 조사가 끝난 직후 30분 정도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으며 이날 기상시간보다 다소 이른 상오 6시쯤 일어났다고 교도소측은 설명. 전씨는 그러나 전날 무려 9시간이 넘는 검찰의 강도높은 조사를 받아서인지 상당히 피곤해 보였으며 상오시간 내내 휴식을 취했다고 교도소 관계자는 전했다. 전씨는 이날도 아침식사를 보리차로 대신했으나 아직까지 건강에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8일 상오 전씨를 면회한 이양우 변호사는 『오랜 식사 거부 때문인지 체력이 많이 소진된 것 같다』고 근황을 설명. 이날 상오 9시30분쯤 교도소에 도착 1시간여 동안 면회를 마친 이변호사는 『앞으로도 교도소측이 제공하는 음식을 먹지 않을 생각인 것 같다』고 말해 전씨의 단식이 당분간 계속될 것임을 시사. ○…이날 상오 11시25분쯤 교도소에 도착,1시간여만에 면회를 마친 둘째아들 재용씨는 『아버지가 시국상황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며 『아버님이 시국상황에 대해 많이 얘기했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식사를 재개할 의사가 없는것으로 보인다』고 전언. ○“꼭 말해야 하나” 기피 ▷백담사◁ 백담사 방문 이틀째인 8일 상오 이순자씨는 경내에 모여 있던 취재진에게 『7일 기도를 드리러 왔다』고 밝혀 오는 13일까지는 산사에 머무를 예정임을 시사. 이씨는 이날 상오 10시 예불을 올리기 위해 극락보전으로 가는 길에 사진촬영에 응한 뒤 『현재 심정이 어떠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꼭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라고 반문하며 법당으로 들어가 불편한 심기를 노출. 한편 전두환씨 형제의 부인들인 최수자씨(전기환씨 부인)와 손춘지씨(전경환씨 부인),전씨의 막내 여동생인 전점학씨 등 3명은 7일 하오 5시쯤 백담사를 찾아 이씨와 함께 이날 예불에 참석.
  • 12·12 관련자 잇단 소환 “긴장 고조”/검찰 재수사 이모저모

    ◎검사들 밝은 표정… 「최씨 조사」 가닥/조홍씨 민원실 통해 “극비리 출두” 12·12 및 5·18사건을 재수사중인 검찰은 4일 소환 첫 케이스로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과 조홍 수경사헌병대장을 불러 조사를 벌이는 등 본격수사에 나서 검찰주변은 다시 긴박감이 감돌고 있다. ▷검찰수사◁ ○…재수사착수 이후 관련자 가운데 처음으로 검찰의 소환통보를 받은 노전국방장관과 조 전헌병대장은 이날 하오2시52분과 상오9시30분쯤 각각 출두. 조씨는 주위의 시선을 피해 1층 민원실 출입문을 통해 출두했으며 노씨는 검은색 뉴그랜저승용차를 타고 현관에 도착,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주는 등 다소 여유있는 모습. 당시 정황을 규명하는 데 상당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씨는 검은색 바바리 차림에 백발이 성성한 모습이었으며 「반란세력의 정승화 총장 연행을 재가했느냐」는 등 기자들의 질문에 『됐어요』라고만 말하고 11층 조사실로 직행. ○…특별수사본부 이종찬 본부장과 김상희 주임검사는 이날 상오11시쯤 최환 서울지검장실에서 간략한 보고를 마친 뒤 매우 밝은 표정으로 나와 그 이유에 대한 관심이 집중. 검찰주변에서는 현재 검찰수사에 가장 큰 관건이 되고 있는 최규하전대통령의 조사와 관련해 날짜 및 방법이 잡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 최검사장은 이와 관련,『최전대통령이 검찰조사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에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최전대통령의 진술이 반드시 필요한 만큼 내가 직접 나서서라도 설득할 생각』이라고 밝히고 최전대통령이 검찰의 조사에 응하도록 언론의 협조를 당부. ○…특별수사본부 김상희주임검사 등 검사 4명은 이날 하오1시50분쯤 노씨에 대한 2차조사를 위해 서울구치소로 출발. 노씨는 검찰조사에서 『12·12 당시 9사단 병력을 서울로 출동시킨 일 등은 전씨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라며 일련의 사건진행 과정에서 자신이 피동적인 역할에 그쳤음을 강조했다는 후문. 이에 반해 전씨는 2일 집앞 성명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고 밝혔듯 12·12등은 모두 자신이 주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대조. ○…관련자들에대한 소환조사가 본격화되면서 일부 핵심관련자의 집으로 수사본부 이모검사를 사칭,『내일 검찰청에 나와달라』는 전화가 걸려온 사실이 확인. 검찰은 『이같은 전화를 건 범인이 기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서울지검 기자실에 자제를 요청. ▷서울 구치소◁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노씨는 이날 주민등록에 등재돼 있는 양력 생일을 맞았으나 야채된장국·갈치조림·배추김치를 「생일상」으로 받는 등 평소와 똑 같은 수감생활. 32년 12월4일생인 노씨는 본래 음력생일을 쇠었기 때문에 이날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비자금 사건으로 기소되기 바로 전날과 묘하게 겹친 탓인지 매우 씁쓸한 표정이었다는 것이 교도소 관계자들의 말. 구치소 관계자들은 『미결수의 경우 생일을 챙겨주지 않는데다 면회 때도 음식물을 반입할 수 없기 때문에 노씨가 특별한 생일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없다』며 『지금까지 생일 때마다 측근을 비롯해 수백여명의 하객들이 붐볐던 것을 회상하면 자신의 처지에 대해 더욱 비참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라고 한마디.
  • 타계한 카피차 구소 외무차관과 한반도/김학준 단국대 이사장

    옛 소련의 외무부 제1차관이던 미하일 카피차 박사가 지난 18일 지병 때문에 향년 74세로 별세했다는 부음이 모스크바로부터 보도됐다.짧막한 기사여서 지나치기 쉬운데,옛 소련 외무부에서 1급 아시아전문가로 정평있던 그는 한반도와 인연이 깊다. 모스크바의 마리아토레즈 외국어교육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카피차는 졸업과 동시에 20대초반의 젊은이로 옛 소련 외무부에 들어갔다.때는 19 43년으로,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통해 나치독일에 큰 타격을 입힘으로써 승기를 잡기 시작했던 무렵이었다.카피차는 곧 모스크바의 동방학연구소로 파견됐고 여기서 러시아와 중국의 외교관계를 연구해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야심만만한 그에게 곧 출세 길의 실마리가 잡혔다.49년 12월 하순부터 50년 2월 중순까지 모스크바에 머물며 중소우호동맹조약의 체결을 교섭하던 중국공산당 주석 모택동에게 소련공산당 서기장 스탈린이 마침내 정상회담의 기회를 베풀었는데,이 때 스탈린의 중국어 통역으로 『중국어를 중국 사람처럼 잘 한다』는 칭찬을 받던 카피차가 뽑힌 것이다.이 정상회담의 결과 50년 2월15일 중소우호동맹조약은 맺어졌다.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첫번째 회담이었던 이 중소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관계에서는 물론 국제 공산주의 운동사에서,그리고 세계 외교사에서 매우 중요한 뜻을 지녔다.많은 전문가들은 이 회담에서 50년 6월25일에 개시된 북한의 전면 남침 공격의 계획이 논의됐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카피차의 회고는 뜻밖이었다.소련이 해체된 뒤 소련의 비밀들이 마구 공개되던 시점에서도 그는 그 회담에서 그러한 계획은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강력히 반박했던 것이다. 지난해 6·25 남침전쟁과 관련해 옛 소련의 비밀문서들 가운데 일부가 공개됐다.그러나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의 중소 정상회담부분은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이 부분이 앞으로 공개될 때 카피차의 반론의 진실성 여부는 가려질 것이다. 어떻든 이때 스탈린에게 잘 보였던 카피차는 소련 외무부안에서 승진을 거듭해 동아시아국장으로 올랐고 파키스탄 주재 대사라는 중책도 맡았다.그러나 파키스탄 대사때 현지출신 여비서와 대사 집무실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그녀의 남편에게 철제 걸상으로 이마를 찍혔다.비명 소리에 뛰어든 대사관원들의 보호로 죽을 고비는 넘겼으나 그 큰 상처는 평생토록 그의 이마에 남아 있었다.이러한 추문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시아전역을 담당하는 제1차관으로 승진했다. 카피차는 자연히 북한도 다루게 됐다.특히 84년 5월에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그때 소련공산당 서기장이던 체르넨코와 회담했을 때,실무적으로 깊이 관여했다.이어 84년 11월에는 카피차 스스로 북한을 방문해 소련과 북한 사이의 국경분쟁을 매듭지었다. 이때 카피차를 직접 상대했던 북한의 교섭창구가 김정일이었다.카피차는 이 사실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겨,국제학술 회의에서 『북한의 김정일이 북한 땅에서 처음으로 만나준 외국인이 바로 나였다』고 회고하곤 했다.『나하고 김정일 둘이 두만강과 백두산에 가서 여기는 소련 땅이고 여기는 조선 땅이라고 줄을 그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84년이면 김정일이 만 42세때다.카피차는 『김정일이 키에 비해 살이너무 쩠고 심장병과 당뇨병을 앓는 것 같다』고 뒷날 회고해,김정일 건강이상설의 주요한 한 원천이 됐다. 88년의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정부가 소련과의 관계개선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때,카피차는 이미 외무부를 그만두고 소련 과학아카데미 산하 동방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었다.또 장관급의 대우를 받는 원사칭호도 지니고 있었다.그래서 정식 외교관계가 열리기 이전에 흔히 활용되는 비정부차원의 「학술외교」「문화외교」의 창구로 적격이었다.실제로 그는 몇차례에 걸쳐 소련의 학자들을 이끌고 서울의 초청에 응했으며 또 역시 몇차례에 걸쳐 소련에 한국학자들을 초청해 한소학술대회를 열기도 했다.한소수교의 막후에서 일한 공이 있다고 할까? 그를 서울과 모스크바,그리고 도쿄(동경)에서 여러차례 상대했던 필자로서 새삼 고인의 명복을 빌게 된다.
  • 민정수석 사칭 괴전화 잇달아/청와대 진상조사 나서

    ◎구청장에 “노재우씨 만나게 해달라”/민자당의원 등에도 비밀 자료 요구 노태우 전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으로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청와대를 사칭하는 괴전화가 정·관가에 이어져 청와대가 진상조사에 나섰다. 문제의 괴전화로 가장 고심하는 인사는 김영수 민정수석.사정업무를 담당한 탓인지 김수석을 사칭하면서 이상한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난 11일에는 한 남자가 조남호 서울서초구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나는 민정수석인데 극비중의 극비사항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조구청장이라 부탁한다.관내의 노재우씨(노전대통령의 동생)를 만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노재우씨가 말한마디 잘못하면 대통령께서 큰 화를 입게 되어 내가 꼭 만나야겠으니 구청장이 주선해 달라.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했다.조구청장은 즉각 김수석에게 괴전화 내용을 알렸고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발신자 추적을 통해 괴전화의 주인공을 찾았으나 범인이 계속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바람에 검거에 실패했다. 김민정수석은 『조구청장뿐 아니라 신명수 동방유량회장과 민자당의 K·L의원 등에게도 나를 사칭하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하더라』면서 『특히 의원들에게는 비밀스런 자료를 요구했다』고 밝혔다.김수석은 『이런 전화들이 조직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 장난전화만은 아닌 것 같으며 고도의 공작적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고 말했다.이원종 정무수석도 『정치판에서 일부러 루머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김민정수석은 새 정부 초기부터 청와대에서 근무했다.홍인길 총무수석과 함께 가장 근속기간이 길다.김수석은 『오래 근무하다 보니까 이상한 일도 생긴다』면서 어이없어 하기까지 했다.
  • 청와대 직원 사칭 6백만원 가로채/건축비 융자 미끼

    서울 강동경찰서는 27일 청와대직원을 사칭,건축자금을 융자받게 해주겠다고 속여 6백만원을 받아 가로챈 방우영(40·건축업·경북 울산시 중구 교동 214)씨를 사기혐의로 구속했다. 방씨는 지난 93년 6월30일 유스호스텔을 지으려는 이모씨(54·식당업)에게 『체육청소년부를 통해 18억원을 융자받게 해줄테니 담보가 없으면 보증보험에 입금시킬 돈을 내놓으라』고 속여 6백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 김정일 군 간부 환심사려 벤츠 선물/귀순 최주활 상좌 일문일답

    ◎병력 70% 전진 배치… 93년 미그21기 생산/군 간부 「외화벌이 밀수」 성행… 50%는 착복/인민군서 25개사 운영… 남한쌀 군량미 비축 가능성 귀순한 북한 인민무력부 후방총국 소속 최주활상좌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내외신 기자와 자유총연맹,함북도민회 회원 등 3백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종 또박또박하고 침착한 말투로 김일성 사후 북한내부의 권력상황,첨단무기실태와 전쟁준비 실상 등을 1시간 40여분동안 낱낱이 폭로했다.최상좌의 일문일답 내용을 간추린다. ◇귀순동기와 과정 ­귀순동기는. ▲해외공관 무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면서 반인민적,1인 독재의 북한 체제에 반감을 가지게 됐다.지난 5월 27일 중국에 무역실무대표단으로 파견돼 연길등지에서 남한 실업가들과 자연스럽게 접촉하면서 남한의 실상을 알게 됐고 지난 6월19일 잦은 접촉을 이유로 북한 당국으로부터 『승인없이 남한인과 접촉한다』는 이유로 소환명령을 받고 귀순을 결심했다.북한에 소환되면 정치적으로 매장될 것이 뻔하고 게다가 김정일 체제가 몇년 가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차라리 남한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지난 82년 7월 체코주재 북한대사관 부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본국의 긴급 명령으로 화염방사기 등 군사과학비밀자료를 수집하다가 추방당했는데 이후 3∼4달동안 제대로 인사조치도 안해주는등 조국이 「쓴 웃음」으로 대해 불만과 회의를 품었다. ○망명자는 3대를 멸족 ­귀순경로는. ▲혼자 무역실무 대표단을 이탈해 중국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조선동포의 도움으로 동남아로 탈출,귀순하게 됐다. ­귀순하기전 가족과 상의했나. ▲북한에 2남1녀를 두고 있어 귀순을 결심하는데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북한에서는 귀순자나 망명자 가족들에게 「3대를 멸족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가족들을 「관리소」라고 부르는 정치범수용소에 뿔뿔이 흩어지게 한뒤 굶어 죽게 만든다.북한에 남은 가족도 기자회견 사실이 알려지면 곧바로 처리될 것이다. ­군인 신분으로 연변에서 남한의 기업인들과 접촉하는 것이 가능한가.최근 자진월북한 것으로 북한에서 보도한 안승훈목사에 대해 아는 바는. ▲군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연변에서 무역실무대표단 활동을 벌였다.북한에서 군인출신이 남한인을 만나는 것은 엄격히 금지돼있다.내가 접촉했던 남한 기업인들은 나를 북한 축산총국 융성회사 직원으로만 알고 있다.안승훈목사에 대한 것은 내가 북한을 떠난 뒤에 일어난 일이라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연변에서 나를 감시한 조선인민정찰국 요원 리봉식의 기본 공작임무가 남한사람을 만나 월북하도록 포섭하는 것이다.남한의 장교급이상 군인을 월북시키라는 지시를 받은 리봉식이 이를 실행하는 것이 어렵자 대신 안승훈목사를 납치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김일성 사후 변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지 1년3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는. ▲김정일은 국가지도자로서 반드시 갖춰야할 자질인 군사및 경제분야의 분석능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군사전문가들이 쓴 책을 보고 자신의 머리에서 나온 것처럼 군사지침을 발표하는 실정에서 알력이 심한 군부내의 세력들을 장악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같다.국가경제적으로도 최악의 상태에 몰린 현 상황에서 주석직을 승계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하다는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또한 성격이 조급하고 변덕스러우며 사생활이 문란한 점도 지도자로서의 자질과는 거리가 멀다. ○군 요직에 자파 속속 배치 ­김일성 사후 김정일 지도체제 구축정도와 군부내 최근 동향은.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하려해도 군에서 받쳐줄 사람이 없다.김정일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 인민군 작전국장 김명국대장,보위국장 원응희대장,3군단장 장성우대장 등 군부내에서 총애하는 인물들을 요직에 배치했다.그러나 상당수 군간부들이 속으로 김정일에 반대하고 있다.김정일은 이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최근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호화주택을 건설해 자기 이름으로 군고위간부들에게 선물하고 올들어서는 20여명의 군단장급들에게 3∼4년밖에 되지 않은 고급 벤츠 승용차를 최신형 벤츠로 바꿔주기도 했다. ­최근 남한측에서 북한에 지원한 15만t 규모의 쌀이 군량미로 쓰이지는 않나.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른다.일부는 인민들에게 배포가 되었겠지만 군량미나 비상시 예비용으로 비축됐을 가능성이 크다.최근 강원도,양강도,함경도 등에서는 지난 93년 12월부터 쌀배급이 아예 없어 14∼15세 아이들이 당이나 군 간부 집을 전전하며 동냥을 하는 것이 예사로운 일이다.얼굴이 붓고 굶어죽는 노인들도 많았다.북한 당국은 오래도록 「자력갱생」을 외쳐왔기 때문에 남한에서 쌀을 지원받은 사실을 극비로 하고 있다.당국의 감시가 심하지만 당시 쌀 수송에 관여했던 노동자 등을 통해 결국 남한에서 쌀이 온 사실을 입에서 입을 통해 알게 될 것이고 북한주민들은 고마움도 느끼고 적대감도 해소될 것이다. ­현재 인민군의 외화벌이 상황은. ▲지난 80년대 중반부터 인민군은 경제난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량과 피복 등을 자체적으로 충족시키려고 외화벌이에 나서 현재 인민군 산하에는 25개 회사가 운영되고 있다.특히 융성무역회사는 종업원 수만 2천명이 넘고 신진합작회사·수산기지·일본수출공사 등을 갖고 있다.그러나 외화벌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군고위간부들이 돈을 가로채며 비리를 일삼고 있다.7백만원을 벌어들이면 3백만원쯤은 간부들의 주머니로 들어간다.실제로 올해초 함경북도 6군단이 아편밀수로 외화를 벌어들이는 과정에서 수익의 50%를 관련자 40여명이 5만∼10만달러씩 착복했다가 적발된 적이 있다. ○김일성배지 아직 착용 ­아직 김일성배지를 착용하는가. ▲공식적으로 김일성배지를 착용하도록 하고 있다.그러나 지난해 말부터 국가안전보위부 직원들에게는 김정일배지를 비공식적으로 지급했으며 이 배지들이 외부로 유출돼 일부는 김정일배지를 달고 다니기도 한다. ­군내부의 세대교체를 둘러싼 원로·신진 세대간 갈등은. ▲김정일은 군내부 원로들을 잘 우대해주는 한편 신진세력들에 대해서도 군사칭호등을 격상시키는등 양쪽으로부터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근의 군사동향 ­북한의 전쟁준비 상황은. ▲김정일은 현재 국방공업건설에 주력한다는 방침아래 러시아제 탱크와 각종 신형무기를 모방,생산하고 사정거리가 다양한 로켓을 양산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로켓 개발은 평양시 부근 「돼지공장」이라 불리는곳에서 비밀리에 추진되고 있다.또 사정거리 50㎞로서 서울에 직접 사격할수 있는 1백75㎜ 주체포와 함께 93년부터는 사정거리 1천㎞의 로켓도 생산하고 있다.80년대 후반에는 각종 러시아제 전투용 경비행기를 자체 생산했고 93년에는 비밀리에 미그21기의 시험생산을 하는등 전쟁준비에 필요한 무기를 자체 생산하고 있다.현재 2천만 인구 가운데 정규군만 1백20만에 이르고 교도대·노농적위대 등 전체 인민을 전투병력화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이와 함께 80년대 중반부터 「훈련소」라는 이름으로 위장한 기계화군단을 7개나 증강했고 93년에는 남한의 특공대에 대비해 양강도·황해도 등지에 3개의 군단을 새로 편성했다. 북한군은 현재 각 10만명씩으로 이뤄진 4개 군단을 휴전선 부근에 두고 서해와 동해에 각 1개 군단씩 두고 황해도와 개성주변에 기계화군단을 배치하는등 무력의 70%를 평양 이남지역에 전진 배치하고 있으며 전시에 대비,훈련의 60∼70%를 야간에 실시하고 있다. ­북한의 전쟁 시나리오는. ▲첫째,북한의 현 정세가 극도로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도 혼란을 겪고 있어 북한 주민들사이에는 『차라리 한번 싸워보고 죽자』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김정일이 이같은 혼란한 민심을 이용,전쟁을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한미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고 미군이 철수한 뒤 전면 도발할 가능성도 있다.일부 장성들은 우선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을 주타격대상으로 삼아 수천명을 사살,미국내 반전 시위가 거세게 일도록해 한미간 군사동맹체제를 깬다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셋째,미국을 중심으로한 서방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북한 특정지역을 타격하면 이를 계기로 핵무기를 동원,전면전을 일으키겠다는 전략도 갖고 있다.인민군 병사들은 일단 전쟁이 나면 남한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이 해외로 도피할 것이기 때문에 손쉽게 무력적화통일을 이룰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색무기개발 상당히 진척 ­북에서 느끼는 한국군에 대한 생각은. ▲장성급 등 군 고위간부들은 남한군이 현대 과학기술을 도입,최첨단 무기를 갖추는등 발전상을 잘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정보가 차단된 병사들은 한국군이 미군의 괴뢰군이며 전투력도 보잘 것 없어 손쉽게 물리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 상황은. ▲핵무기개발 상황은 북한내 최대 극비사안의 하나이기 때문에 나도 알 수 없다.그러나 평북 영변군 원자력연구소 감찰과에 근무하는 처남에게서 지난 88년 김정일이 연구소를 방문해 연구 결과를 둘러보고 상당히 만족,1대에 30만달러짜리 최고급 버스 2대와 모피코트를 선물한 사실을 알았다.이같은 사실로 미뤄 김정일의 관심속에 핵무기 개발사업이 상당히 진척한 것으로 보이지만 핵무기가 『있다』,『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현황은. ▲독가스를 비롯한 북한의 화학무기 보유여부에 대해서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여러 정황으로 봐서 개발에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지난 74년 러시아 부무관으로 활동했던 김종찬씨가 화학무기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는 소문을 들었으며 그후 김씨가 훈장을 받는등 초고속 진급을 한 적이 있다. ◇체제몰락 가능성 ­4∼5년뒤에 북한체제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떤 형태가 될 것으로 보는가. ▲현재 북한의 경제는 더이상의 후퇴가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상태이다.이런 상황에서 경제적 개방은 불가피하며 남한과의 경제교류도 점점 더 활발해질 것이다.이런 개방움직임을 통해 자연히 북한 인민들사이에 자유민주주의 사상이 널리 파급될 것이고 군부내 불만세력들이 이를 틈타 개혁 쿠데타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개혁쿠데타 일으킬것 ­기존 대미자주화노선에서 최근 대미·일 실용외교노선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에 대한 군부내 강경파의 반응은.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도는 미국이 남·북한 등거리정책을 펴 남한내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을 철수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미군이 철수한뒤 쌍방이 군대를 일정수준으로 감소하고 동시투표를 실시하면 사상교육이 잘된 2백50만 북한당원을 동원해 북한 대통령을 당선시킨다는 것이 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고려민주연방공화제의 기본 구도다. ­군수산업이 침체되고 대외교역이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진·선봉지역을 특수구역으로 개방한의미는. ▲군수산업과 민간산업은 전혀 별개로 운영되며 군수산업에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군수산업의 침체는 사회주의경제이론 자체의 모순에서 기인한다.개인의 이익이 없는 상태에서 생산의욕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또 그동안 질적 개선없이 양적 팽창에만 치우쳐 외국에 진출하지 못한 것도 대외교역 약화의 원인이다. ◎「김정일의 군 장악 여부」 정부측 평가/“군 간부들 겉으론 충성­속으론 불만”/올 시찰 13차례… 반대세력 조직화 시기상조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최고 권력자가 그 권좌를 움켜쥐기 위해서 유념해야 할 모택동의 어록으로 병영사회인 북한체제에 꼭 어울리는 경구가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맥락에서 13일 귀순,기자회견을 가진 북한군 상좌 최주활씨가 김정일의 북한군 장악력에 의문을 제기해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귀순자중 최고위계급 상좌(중령과 대령사이)인 그는 『김이 북한군부를 제대로 장악치 못하고 있다』면서 『이 때문에 당총비서·국가주석 취임등 권력승계가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의 이같은 증언을 계기로 북한전문가 집단에서 소수설에 그쳤던 김정일의 「권력기반 이상설」이 다시 대두되고 있다.지금까지는 경제난등 총체적 난국에도 불구,김정일이 당·정·군을 대체로 원활하게 통제하고 있다는게 중론이었다. 최씨의 회견을 지켜본 정부의 한 북한전문가는 『김이 북한군을 외형적으로 통제하고 있지만 「군심」은 장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같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우선 김일성과 같은 세대인 「빨치산 1세대」와 당시 「소년병」이었던 「혁명 1.5세대」가 김정일을 마음 속에서 애숭이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그의 군경력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동구 유학을 다녀와 해외사정에 밝은 상당수 고급장교들도 내심 김정일의 권력승계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게 다수 귀순자들의 증언이었다.실제로 고급장교 일부가 지난 92년 4월25일 인민군창설 기념식때 김일성부자를 제거하는 쿠데타를 음모했다가 발각돼 처형당한 기록도 있다.소련판 웨스트포인트격인 「푸른제 종합군사대학」 유학파인 안종호상장등 소장파 군관들이 그 비극의 주인공이었다. 김정일이 군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도 역설적으로 그가 군통제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입증한다.금년들어 김의 23차례 「현지지도」 가운데 군부대 시찰이 13번이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 준다.김이 최근 각종 행사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당비서등 당직은 제쳐두고 국방위원장겸 최고사령관이라는 군직함만을 사용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지만 북한군부내 반대세력이 아직 조직화되지는 않았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김정일이 당 지도부와 공안기관을 통해 군을 감시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생전의 김일성이 북한의 군사력을 인민무력부·호위총국·사회안전부·국가안전보위부 4각 편제로 상호견제토록 교묘한 장치를 해놓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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