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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자는 최고의 사치” 이혜린 신작 ‘혼자가 좋은데 혼자라서 싫다’

    “혼자는 최고의 사치” 이혜린 신작 ‘혼자가 좋은데 혼자라서 싫다’

    혼자라는 것은 치명적이며 멋있고 낭만적으로 아름답지 않다. 모든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에 옮겨야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별로 좋지 못하거나 게으르다면 사회로부터 멀어져 진짜 혼자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혼자는 내 사람을 만드는 것과 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은 그 존재 자체로 스트레스이다. 그보다 더 큰 스트레스는 그들 없이 혼자 잘 먹고 잘 살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완연한 혼자의 시간이 불안하지 않고, 혼자서도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완벽하게 혼자를 즐길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낱낱이 보여준다. 어차피 고독한 인생. 우정, 사랑, 회사, 독립, 고독속에서 이 외로움을 껴안고 얼마나 즐겁게 살 수 있느냐, 이 외로움이 주는 이득을 취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성장을 위한 가장 완벽한 순간이자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인 혼자의 순간이 보다 밝게 빛나길 응원하는 책이다. 늘 사람들한테 부대끼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세상 그 누구보다 외롭다고 자부하는 연예매체 대표의 혼자의 경험, 생각, 몸부림을 낱낱이 보여준다. 성격이 별로 좋지 못해 걸핏하면 친구들과 싸우고 태생이 게을러 툭하면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 했지만 그러다 이 사회에 혼자 남을지도 몰라 무서워했던, 그래서 내 사람을 만드는 것과 내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던, 하지만 그를 통해 완벽한 혼자가 되고 싶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혜린 작가는 2005년 스포츠신문 연예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낼모레 서른, 드라마는 없다’, ‘로맨스 푸어’ 등의 책을 냈다. 최근에는 모바일 연예매체 뉴스에이드의 대표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대인배 듀랜트…구단 사치세 부담될까봐 연봉 깎아

    골든스테이트의 미국프로농구(NBA) 파이널 우승에 최고 역할을 했던 케빈 듀랜트(29)가 950만 달러(약 109억원)를 포기해 놀라움을 안겼다. 올스타 포워드로도 뽑힌 듀랜트는 1년에 최대 3400만 달러 연봉 계약이 가능한 것으로 점쳐졌지만 첫해 연봉을 950만 달러 손해 보는, 2년 동안 5300만 달러 계약에 합의했다고 미국 ESPN이 4일 전했다. 지역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듀랜트의 연봉은 첫해인 2017~18시즌 2500만 달러로 지난해 연봉(2654만 달러)과 비교해도 150만 달러(약 17억원) 줄어든 것이고 당초 예상한 연봉에 비해서는 680만 달러(약 78억원) 이상 적은 금액”이라고 보도했다. 또 10년차 최고 연봉인 3450만 달러도 충분히 가능했던 점을 따지면 950만 달러나 되는 손해를 감수한 것이다. 이번 여름 자유계약(FA) 선수 자격을 얻는 듀랜트는 일찌감치 FA 권한 행사를 포기하고 팀 잔류를 선택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액수를 포기한 것은 NBA에서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골든스테이트는 스테픈 커리, 안드레 이궈달라, 션 리빙스턴, 데이비드 웨스트 등 주축 선수들을 모두 붙잡는 데 성공해 왕조 구축에 밝은 불을 켰다. 듀랜트가 950만 달러를 포기한 것은 구단에서 사치세를 토해내게 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것이라고 방송은 분석했다. 미국의 사치세는 초과된 금액의 다섯 배를 물려 구단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NBA] 케빈 튜랜트 살신성인 “구단 사치세 피하려고 109억원 포기”

    [NBA] 케빈 튜랜트 살신성인 “구단 사치세 피하려고 109억원 포기”

    골든스테이트의 미국프로농구(NBA) 파이널 우승에 결정적인 한몫을 했던 케빈 듀랜트(29)가 스스로 연봉 950만달러(약 109억원)를 포기해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올스타 포워드로도 뽑힌 듀랜트는 1년에 최대 3400만달러 연봉 계약이 가능한 것으로 점쳐졌지만 첫해 연봉을 950만달러 정도 손해 보는 2년 동안 5300만달러 계약에 합의했다고 미국 ESPN이 4일 전했다. 첫해 연봉이 2500만달러이며 2년차는 옵트아웃을 신청할 수 있으며 2800만달러의 연봉을 챙길 수 있다. 지역신문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듀랜트가 이번에 맺는 2년 계약 가운데 첫해인 2017~18시즌 연봉은 2500만달러”라며 “이는 지난해 연봉(2654만달러)과 비교해도 150만달러(약 17억원)가 줄어든 것이고 당초 예상한 연봉에 비해서는 680만달러(약 78억원) 이상 적은 금액”이라고 보도했다. 또 10년차 최고 연봉인 3450만달러도 충분히 가능했던 점을 고려하면 950만달러 손해를 감수한 셈이라고 전했다. 이번 여름 자유계약(FA) 선수 자격을 얻는 듀랜트는 일찌감치 FA 행사를 포기하고 팀 잔류를 선택했지만 이렇게 엄청난 액수를 자진해서 삭감한 것은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따라 골든스테이트는 스테픈 커리, 안드레 이궈달라, 션 리빙스턴, 데이비드 웨스트 등 주축 선수들을 모두 붙잡는 데 성공해 왕조 구축에 밝은 불이 켜졌다. 듀랜트가 950만달러 삭감을 자청한 것은 골든스테이트 구단이 사치세를 토해내게 될까봐 걱정한 결과라고 방송은 분석했다. 미국의 사치세는 초과된 금액의 다섯 배를 물려 구단 재정에 심각한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단의 어려운 형편을 들어주고 2년 차 계약 때 옵션을 행사하면서 ‘대박’을 노린 정교한 셈법이란 분석도 가능하다. 심지어 듀랜트는 만약 이궈달라가 떠나고 팀이 이적시장에 나온 루디 게이 영입에 착수할 경우 추가적으로 몸값을 더 줄일 생각까지 갖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궈달라가 3년 동안 4800만달러에 잔류하기로 결정하자 자신도 지난 시즌과 엇비슷한 계약을 결심한 것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62경기에 출전해 평균 33.4분 코트를 누벼 25.1득점 8.3리바운드 4.8어시스트 1.1스틸 1.6블록을 기록한 그는 이전 시즌보다 평균 2.4분을 적게 뛰었지만 오히려 기록은 더 나았다. 파이널 다섯 경기 모두 30점 이상씩 터뜨려 존재감을 키웠다. 다섯 경기 평균 39.7분을 소화하며 35.2득점 8.2리바운드 5.4어시스트 1스틸 1.6블록을 기록하며 데뷔 첫 우승을 자축했다. 이제 골든스테이트의 마지막 과제는 자베일 맥기를 붙잡는 것이다. 베테랑 최저액 계약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부활을 알린 맥기를 LA 클리퍼스와 피닉스 선스와 마이애미 히트 등이 노리고 있어서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6000억원 복권 당첨된 美부부…1년 후 모습은?

    6000억원 복권 당첨된 美부부…1년 후 모습은?

    지난해 2월 미 플로리다의 한 부부가 무려 5억 2870만 달러(약 6074억원)에 달하는 파워볼에 당첨돼 큰 화제를 모았다. 인생역전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행운의 주인공은 데이비드 칼츠슈미트(56)와 모린 스미스(71) 부부. 이들은 30년에 걸친 수령 대신 세금을 제외하고 총 3억 2800만 달러(약 3768억원)를 일시불로 받아 일약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그로부터 1년 여가 지난 부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근 데일리메일 미국판이 칼츠슈미트 부부의 근황을 단독으로 공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결론부터 요약하면 부부는 놀랍게도 당첨 전과 별 차이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먼저 부부는 당첨 전 거주하던 30만 달러(약 3억 4000만원) 짜리 집에서 지금도 살고 있으며 기존에 다니던 마트와 상점, 레스토랑 등을 여전히 찾고 있다. 과거와 달라진 점은 항공 엔지니어 출신인 칼츠슈미트가 직장을 그만둔 것이지만 사실상 정년을 앞둔 상황이라 큰 의미는 없다. 그가 막대한 당첨금으로 누린 호사라고는 기존에 타던 SUV 차량을 한 단계 위 새 모델로 바꾼 것 뿐이다. 그나마 부인 스미스는 사치(?)를 누렸다. 당초 자가용이 없던 그녀는 전기자동차 테슬라를 9만 달러(약 1억원)를 주고 사들였다. 한 이웃주민은 "부부는 하룻밤에도 수백만 달러를 쓸 돈이 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면서 "여전히 주민들과 어울리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흥미로운 점은 당첨 직후 부부가 밝혔던 계획이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해 2월 당첨 직후 기자회견에서 칼츠슈미트는 "우리는 축하파티 같은 것은 하지 않을 계획"이라면서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그대로 살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길섶에서] 독립유공자의 비애/오일만 논설위원

    얼마 전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후예를 만난 적이 있다. 친인척 47명이 독립운동 서훈을 받았을 정도로 ‘항일 명문가’였다고 한다. 99칸의 집과 전답을 모두 팔아 일가 전체가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했지만 해방 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가난과 냉대였다고 한다. 그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한다. “만주서 귀국한 석주 후손들은 집도 땅도 없는 남한에서 끼니조차 잇지 못했다. 생활고 때문에 중학교 이상의 교육은 사치였다. 더 힘든 것은 친일파 정권들이 석주 후손들을 연좌제로 몰아 ‘빨갱이’ 취급을 한 것이다. 고문을 받고 풍비박산 난 집안이 한둘이 아니다.” 가난과 울분 속에 독립운동가와 그 후예들은 이 땅의 최하층민으로 전락했지만 ‘친일 명문가’들은 반대로 승승장구했다. 일제에게 받은 하사금과 토지를 밑천으로 떵떵거렸고 해방 후에는 최고의 학맥과 혼맥을 통해 부와 권력을 늘려 갔다. 지금도 사회 곳곳에서 친일파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유다. “나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이런 꼴을 당하니 누가 애국하겠나” 그의 절규가 귓가에 맴돈다.
  • 5000만원 옥팔찌 구경하다 깨뜨린 中여성, 기절

    5000만원 옥팔찌 구경하다 깨뜨린 中여성, 기절

    중국의 한 관광객이 5000만 원이 넘는 옥(玉)팔찌를 실수로 떨어뜨려 두 동강 낸 뒤 놀란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실신하는 일이 발생했다. 춘청완바오(春城晚报)는 27일 오전 중국 윈난지역을 여행 중이던 한 중국 여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녀는 고가의 옥 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지나다가 눈길을 끄는 옥팔찌를 발견했다. 옥팔찌의 금액은 자그마치 30만 위안(약 5000만 원)에 달했다. 고가의 옥팔찌를 살 형편은 못됐지만, 착용이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옥팔찌를 집어 들었다. 하지만 옥팔찌는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바닥에 떨어졌고, 그대로 두 동강이가 나버렸다. 두 동강 난 옥팔찌를 보는 순간 그녀의 낯빛은 사색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은 너무 놀라 어쩔 줄 모르는 그녀에게 “주인과 협상을 하면 되니 너무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했지만, 그녀의 낯빛은 점점 창백해졌다. 급기야 입술도 창백해지고, 식은땀을 흘리더니 그 자리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과 구조대의 도움으로 그녀는 깨어났다. 매장은 그녀에게 “팔찌의 원가만 보상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워낙 고가의 제품이라 원가도 갚을 능력이 안돼 협상은 아직까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가 알려지자 중국 누리꾼들은 “돈이 없으면 사치품 매장에는 되도록 가지 말자”, “한순간의 실수로 평생을 후회한다”는 댓글을 올렸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조선 아낙네가 관아에 이혼을 요청한 까닭은

    조선 아낙네가 관아에 이혼을 요청한 까닭은

    남편과 잠자리 문제로 억울한 소박 윤리 강조하고 욕망 억압받던 사회사랑·치정에 얽힌 성 풍속도 조망 ‘낭군은 외모로 보면 면목과 몸과 수염이 여느 사람과 흡사하지만 방 안의 일에 이르면 중들과 마찬가지입니다. 서 있는 나무처럼 형체를 갖추었지만 크기만 할 뿐 힘이 없어 사나운 범이 주저하는 듯하니 벌이나 벌레가 쏘는 것만도 못합니다.’조선시대, 남편과의 잠자리 문제로 불화를 겪은 중하층 양인 여성이 관아에 올린 이혼 요청서다. 헛되이 보내는 밤이 이어지자 자결하려던 여성은 고모가 자신을 구해 주자 정식으로 이혼하기로 마음먹는다. 여성은 남편을 ‘쓸모없는 장군’, ‘수염 난 아녀자’로 묘사하며 억울하게 소박맞은 이유를 사또에게 호소한다. 19세기 조선 평민들을 위한 민원문서 사례집에 실린 곡진한 사연이다.사랑, 욕망, 치정이 교차하는 조선의 이색적인 풍경을 고문헌, 고문서로 엿볼 수 있다. 다음달 1일부터 12월 16일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열리는 특별전 ‘옛사람들의 사랑과 치정’에서다. 정약용이 회혼례(해로한 부부의 혼인 예순 돌을 축하하는 잔치)를 맞아 지은 시(여유당 전서) 등 70여종의 고전자료가 등장하는 이번 전시는 우리 선인들이 품고 살았던 사랑의 의미를 조망한다. 욕망을 억압하는 윤리가 지배적인 사회로 알고 있지만 조선 일상사에도 어긋난 사랑과 그로 인한 파국은 휘몰아쳤다. 16세기 순천김씨 묘에서 출토된 신천강씨의 편지에는 늙은 남편의 외도를 딸에게 하소연하는 아내의 한탄이 절절하게 담겨 있다. 나이 예순에 시골역의 찰방직을 맡은 김훈은 호기롭게 사치를 부린다고 첩을 들였다. 종들이 알면 질투라고 할까 봐 내색도 못 하는 아내는 “서러운 마음은 일백 권의 종이에도 다 쓰지 못할 것”이라며 “내 손에 죽으리”라고 딸에게 하소연한다. 정약용의 ‘흠흠신서’(1822)에는 조선 후기 백성의 일상사를 보여 주는 사연이 등장한다. 정조 시대 황해도 토산에 사는 김몽세는 병약한 아들이 죽자 며느리와 내연 관계에 있던 김천의를 밟아 죽인다. 병든 남편을 두고 부적절한 관계를 맺는 부인, 사위의 장례식장에서 딸을 개가시키겠다고 하는 친정 부모, 막 과부가 된 사람에게 공공연히 떠나자고 하는 외간 남자 등 욕망에 솔직한 일상의 단면들이 흥미롭다. 선조 시대인 1602년 박의훤이 자식에게 재산을 상속하려고 작성한 문서, 박의훤 분급문기에서는 조선의 자유로운 연애관을 발견할 수 있다. 다섯 명의 부인과 결혼한 그가 전처 네 명과 이혼한 이유는 모두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 도망가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이번 전시는 전통시대를 새롭게 바라봄과 동시에 그 시대가 지키고자 한 가치의 이면을 진솔하게 살펴보려는 의도”라고 밝혔다. 공휴일·일요일은 휴관.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열린세상] 교육개혁, 끊임없는 소통과 설득이 답이다/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열린세상] 교육개혁, 끊임없는 소통과 설득이 답이다/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사의 교육공약 평가단에 참여했다. 덕분에 후보들의 공약들을 꼼꼼히 살펴볼 수 있었다.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여러 모로 짜임새 있고 충실해 보였다. 일부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이대로 실천되면 우리 교육이 많이 바뀔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국가가 교육개혁을 추진하는 방식은 세 가지다. 첫째, 분야별 개혁 과제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큰 그림을 만들고, 개혁 로드맵과 함께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해 공감대를 만든 뒤에 차근차근 이행하는 것이다. 시간이 좀 지체되더라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교육개혁은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심리전이다. 국민이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수긍하고 동참하지 않으면, 개혁은 공염불에 그친다. 정책 효과는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고, 정부에 대한 불신만 쌓인다. 이런저런 교육 실험으로 아이들만 희생양이 되고, 큰 성과는 없었던 사교육 정책이 대표적이다. 한편 교육정책은 서로 긴밀히 얽혀 있다. 고교 학점제를 하려면 교사와 시설이 확충돼야 하고 평가체제도 바뀌어야 한다. 절대평가제도는 교육적으로 바람직하지만 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고려해야 한다. 요컨대 교육개혁은 큰 틀을 보여 주고 정책 간 선후를 따져 가면서 치밀하게 추진할 때 비로소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요즘은 학부모들이 모두 교육 전문가 수준의 식견을 가지고 있다. 무작정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해서도 진정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정책에 가급적 손대지 않는 것도 방법이다. 교육 정책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오늘의 교육적 상황은 사회적 논란과 개인적 비용을 치른 역사의 산물이다. 정권이 교체됐다는 핑계로 쉽게 바꿔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 제도가 미처 성숙하기도 전에 새 제도를 맞이하는 ‘개편안의 홍수시대’를 살고 있다. 두 살 터울 형제가 다른 교육과정과 교과서로 배우고, 다른 입시를 치르는 게 정상적인가. 명확한 교육 비전과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그냥 놔두는 것도 선택지일 수 있다. 마지막 방법론은 교육개혁에 대한 비전과 국민적 공감대는 소홀히 한 채 낱낱의 정책을 공약이라는 이유로 ‘전광석화’처럼 해치우는 것이다. 역대 정부를 보면 이런 사례는 정권 초기에 많았다. 정책 간 연계나 우선순위에 대한 고려 없이 그동안 별러 오던 정책들을 분풀이하듯이 밀어붙이는 경우다. 특히 일부 집권세력의 ‘경도된 이념’과 ‘정치적 계산’이 교육적 가치를 압도할 때 나타났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비전과 방향을 자세히 알리지 않고 개별 정책을 밀어붙이면 국민은 정부와 정책을 신뢰하기보다 각자도생의 길을 택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는 보수, 진보 정권을 막론하고 같았다. 긴 안목으로 계획하고 설득과 합의를 거쳐 추진하는 것이 오래가는 성공한 정책을 만드는 길이다. 스탠퍼드대학의 타이액과 큐반 교수는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이루어진 교육개혁 역사를 분석한 뒤 ‘유토피아를 향한 어설픈 개혁’이라는 책을 썼다. 그들에 따르면 교사, 학부모 등 교육 공동체를 외면하고 기존 제도의 역사성을 무시한 하향식 개혁은 다음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소통과 합의보다 독선과 조급함이 앞서면 그토록 희망했던 유토피아는 하룻밤의 꿈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교육 비전과 개혁 방향에 대한 총론과 각론을 소상하게 설명하고, 끊임없는 소통과 설득으로 참여를 이끌어 낼 때 비로소 교육개혁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 대통령이 약속한 국가교육위원회에 기대가 크다. 정치 논리에서 벗어난 교육자, 학부모, 정책 전문가들이 모여 정권을 넘어서는 개혁안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 적어도 교육 문제는 한시적 기구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속도전’하듯이 밀어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마구 쏟아져 나오는 ‘개편안’들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게다가 교육 문제로 대통령을 보좌할 청와대 교육수석 비서관 자리도 없애 버렸다. 형제, 자매라도 같은 교육제도 아래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은 사치인가.
  • [인물 플러스] “인천 우수 중소기업들과 ‘협력’해 미래 열어갈 것”

    [인물 플러스] “인천 우수 중소기업들과 ‘협력’해 미래 열어갈 것”

    지난해 12월 (사)인천시유망중소기업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김춘식 강운공업㈜ 대표는 취임사로 “회원간 상호 교류 활동과 공동 협력 사업에 많은 관심과 지지를 보내 달라”고 협력을 강조했다. 이 연합회는 인천광역시 소재의 200여 중소기업이 모인 단체다. 시에서 기술력이 우수하고 성장잠재력이 높은 소규모 중소기업을 선정하며, 여기서 선정된 유망중소기업만 연합회 회원사가 될 수 있다. 성장 가능성 있는 회사들이 모인 만큼, 시의 다양한 지원을 받으며 상호 협력하면 성과가 날 것이라고 김 대표는 기대했다.김 대표에게 ‘협력’은 연합회뿐 아니라 기업 운영에서도 우선시하는 철학이다. 그는 “목표를 달성하고 이익이 생기면 직원들과 나누는 것이 오랫동안 함께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직원들 대부분은 회사를 ‘내 회사’라고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 강운공업은 ㈜한화의 대표적인 장기 협력사로 30여 년간 관계를 유지하며 신의와 기술력을 갖춘 협력사로 자리를 잡고 함께해 왔다. 김 대표가 말한 ‘협력’이 신임 회장의 인사치레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연합회 회장으로서 김 대표는 회원사 권익신장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그 결과 유망 중소기업 지원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고, 기간 종료 후 재지정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최근 유정복 인천시장과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나눈 것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인천시는 오는 7월 14일까지 소규모 기업을 신청받아 유망 중소기업을 선정하고 있다. 선정된 뒤에는 연합회 가입 자격이 주어지며, 기간 후에도 회원사로 남을 수 있다. 인천시 중소기업 맞춤형 원스톱 지원시스템 홈페이지(bizok.incheon.go.kr)에서 자세한 내용을 확인 및 신청이 가능하다. 한편 강운공업은 방위산업분야 공장 자동화 설비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다. 산업의 특성상 확장과 해외진출이 수월하지 않지만 한화와의 협력을 통해 몽골·중국·일본·베트남·이집트 등에 수출하며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4차 산업혁명’이 대두되면서 떠오른 ‘스마트팩토리’의 핵심 기술을 확보한 기업으로도 기대를 받고 있다. 다음은 김춘식 강운공업㈜ 대표와의 일문일답. →인천시유망중소기업연합회 회원 자격 기준은 무엇입니까. -인천시에서 선정된 유망중소기업인들이 모인 사단법인입니다. 유망중소기업은 개인이 아닌 인천시가 선정을 하는 것이고요. 요건을 갖춘 기업을 선정해서 지원하는 제도인데, 여기에 선정된 기업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성장 잠재력이 우수한 기업을 시가 발굴하여 지정한 만큼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합회 차원에서 보훈단체 지원 소식도 있었는데요. -자주 있는 일입니다. 저희가 호텔과 같은 곳에서 송년회를 했었는데, 지난해부터는 이것도 낭비라고 결정해서 소외계층을 돕는 예산으로 돌렸습니다. 장애인 복지재단도 도왔고요. 인천시와 협의해서 보훈단체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회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연합회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유망 중소기업에 선정이 되면 3년 동안 지원을 받습니다. 3년 후에는 종료가 되던 걸 올해 5년으로 늘렸는데, 이것도 사실은 부족하다고 봅니다. 실질적으로 기업이 3년 또는 5년 가지고 성장해서 제대로 간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한 번 정도는 재지정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중소기업인들의 모임인 만큼 정보가 부족 할 수 있습니다. 정부나 시에서 지원해 주는 부분들을 우리 회원들에게 잘 알려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우리 단체에서 해야 할 일이지요. →강운공업은 공장자동화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꼽히는데, 핵심 기술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40여 년간 공장자동화 기계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방위산업 관련해서 자동화를 하는 기업이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은데, 우리가 쌓아온 기술들은 해외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자동화’란 단순히 사람을 줄이려는 기술에 그치지 않습니다. 품질 향상과 오차 없는 생산성 등이 핵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자동화 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길목에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태기 객원기자
  • [런웨이 조선] 사뿐사뿐 걸음마다 정적인 한복에 생동감 더해

    [런웨이 조선] 사뿐사뿐 걸음마다 정적인 한복에 생동감 더해

    한복은 동(動)보다는 정(靜)에 가까운 옷이다. 느리게 움직이고 우아하게 멈춰 있어야 멋이 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 정적인 아름다움을 동(動)으로 바꾸는 여러 요소가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포진해 있다. 머리 장식에 사용하는 떨잠, 비녀, 화관, 족두리를 비롯해서 고름, 허리끈, 허리띠, 신발 등 어느 것 하나 움직임을 강조하지 않는 것이 없다. 작은 떨림에서 흔들림까지 모두가 몸의 움직임을 따라 반응하도록 설계돼 있다.먼저 머리장식부터 보자. 가체 금지령 이후 의례용 수식으로 애용된 화관이나 족두리는 귀금속으로 장식돼 가체와 맞먹는 사치품이 됐다. 그러나 이 수식물이 갖는 미적 특징은 크고 풍성한 가체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떨잠은 대례복인 적의나 원삼 등을 입고 큰머리를 할 때 머리에 꽂는 장식품이다. 옥을 조각해 나비 모양이나 원형으로 판을 만들고 그 뒤에는 동으로 만든 납작한 머리꽂이를 붙이고 앞에는 진주, 산호, 비취, 칠보를 상감한다. 또 옥판에 붙여 놓은 용수철 끝에 달아 놓은 칠보로 만든 작은 나비는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크고 작은 떨림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광선에 의한 빛의 반사도 시각적인 떨림을 조성해 시선을 집중시키는 조형적 효과를 갖는다. 용수철 위에서 흔들리는 나비는 봄을 알리는 신호인 동시에 부부애, 기쁨, 즐거움을 나타내는 길상(吉祥)의 의미를 담는다.비녀 역시 쪽진 머리가 유행하면서 쪽을 고정시키기 위해 사용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장신구가 모두 그렇듯이 단순히 실용적인 목적만을 추구하지 않는다. 비녀는 재료에 따라서 금, 은, 백동, 놋, 진주, 영락, 비취, 산호, 나무, 뿔, 뼈 등으로 만들고 비녀의 머리장식 무늬에 따라 용, 봉황, 칠보, 원앙, 목련, 석류, 국화, 초롱 등 모양이 다양하다. 특히 백옥초롱영락잠과 같이 장식적 목적이 강조된 비녀에는 여지없이 떨새를 달아 움직임을 강조하고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여기에 화관이나 족두리는 떨림의 효과를 더욱 다채롭게 이용했다. 칠보족두리에는 철사에 꿴 진주, 마노, 산호 장식이 여러 줄에 꿰어져 있다. 용수철에 매달린 나비보다는 움직임이 적지만 구슬과 구슬 사이의 여백에 따라 떨림에 차이가 있다.그런데 화관이나 족두리에서는 떨림보다 더 강한 흔들림이 있다. 그것은 족두리와 화관의 이마 앞쪽으로 흘러내리는 술 장식이다. 술 장식이 그 어떤 떨새보다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러 가지 구슬을 꿰고 그 끝에 매단 술 장식이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 장식에서 또 다른 흔들림은 댕기이다. 댕기는 머리카락을 정리하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지만 댕기의 아름다운 색채와 소재는 머리카락의 흔들림보다 더욱 강렬하다. 머리카락이 한 줌도 되지 않을 서너 살 때부터 배씨댕기를 시작으로 결혼 전까지는 머리를 땋고 그 위에 붉은색 댕기를 드리운다. 결혼을 하면 빨간 댕기를 매어 쪽을 찌는데 나이가 들어도 자식이 있고 부부가 해로하면 계속 빨간 댕기를 맨다. 은근히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고픈 여성의 마음이리라.조선여인들이 가장 사랑한 소품은 단연 노리개다. 노리개는 향갑, 향낭, 침낭, 장도 등 주체에 따라 명칭이 달라진다. 여기에 장식으로 부착된 매듭과 술은 몸의 동작에 따라 율동감을 더한다. 노리개는 향을 넣은 향갑이 특히 인기가 있었다. 향갑 위에는 국화매듭을 하고 향갑 아래에는 오색의 딸기술을 단다. 딸기술 아래로 늘어진 오색술은 단아한 치마의 색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인들의 필수 아이템으로 빗, 거울과 함께 장도를 꼽는다. 장도는 호신용인 동시에 의장용으로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의 정절의 상징이기도 했다. 장도를 처음 사용할 때에는 젓가락, 귀이개, 과일꽂이 등을 달아 실용적인 목적으로 사용했지만 점차 패션 소품으로 자리잡았다. 금, 은, 동의 금속재료를 비롯해 흑단, 향나무, 대추나무, 서각, 흑각, 상아 등의 나무와 뿔로 만들었다. 이 외에도 옥, 호박, 공작석, 산호 등 보석류가 이용되었다. 형태에 따라서도 여인들의 버선코같이 생긴 을(乙)자형, 일(一)자형, 사각형, 팔각형이 있으며 장도의 중간에 있는 고리에 매듭을 달고 술을 연결하는 것으로 당시 공예기술의 정수를 담았다. 특히 노리개를 다는 위치는 흔들림의 정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 저고리에는 노리개를 고름에 끼워 단다. 고름을 한 번 묶고 그 위에 노리개를 끼우면 눌러 주는 효과가 있어서 설사 고름이 풀어진다 해도 바로 옷이 젖혀질 위험은 없다. 치마 위에 내려오는 노리개는 걸음걸이의 속도에 따라 흔들림이 달라지므로 걸음의 속도와 보폭을 조절하는 데 효과적이다. 사뿐사뿐 걸을 때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생동감은 살리고 품위와 우아함은 지키는 보요의 미. 한복의 아름다움을 지키는 신의 한 수가 아닐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잠룡들의 땅… 600년 권력의 용광로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3회 ‘서울사방 서촌, 사람을 품다’ 편이 지난 3일 서촌 일대에서 진행됐다. 투어 참가자 30여명은 이날 10시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3번 출구를 출발, 통의동 백송터-동양척식주식회사 관사-겸재 정선 생가터-청와대 무궁화동산-우당기념관-벽수산장터-노천명 가옥-윤동주 하숙집-수성동 계곡-이상의 집-통인시장-이상범 가옥-배화여대 캠벨기념관-필운대 등 순으로 2시간 30분에 걸쳐 서촌의 골목 골목을 누볐다. 이번 코스 중 서울미래유산은 청와대 무궁화동산, 우당 이회영선생기념관, 노천명 가옥, 이상의 집, 통인시장, 캠벨기념관 등 모두 6곳이다.초여름의 햇살이 따가운지 서울미래유산 로고가 찍힌 빨간색 스카프를 머리에 뒤집어쓴 참가자도 있었지만, 대부분 햇살에 아랑곳하지 않고 목이나 손목, 가방에 스카프를 맵시 있게 장식하며 멋을 냈다. 해설자 한세화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구수한 입담에 탄성을 내뱉으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코스는 길고 시간은 짧다 보니, 한 해설자는 지름길을 찾아 꼬불꼬불한 서촌 골목길을 내질렀고, 일행은 선두에 따라붙느라 잰걸음을 놓아야 했다. 부부, 친구, 자매 등 젊은층이 주를 이뤘고, 일본인 여성도 동행해 ‘장안의 핫플레이스’ 서촌의 인기를 실감 나게 했다.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사람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고 갈파했다. 사람이 사는 장소와 집이 그 사람을 존재케 한다는 뜻이다. 거주이동의 자유가 보장되면서 집에 대한 관념이 이전처럼 그리 절대적이진 않지만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서촌의 형성사를 알면 애정도 깊어질 것이다. 우리는 서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서울을 좀 아는 사람은 ‘북촌보다 서촌’이라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작위적인 북촌에 비해 격은 좀 떨어지지만 서촌의 편안함에 점수를 더 얹는 식이다. 서촌에는 서울말을 사용하는 중류사회의 서울토박이들이 많이 살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해봐도 화려한 삼청동, 가회동보다 소박한 옥인동, 통인동에서 오히려 ‘한국을 더 많이 느낀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골목마다 만갈래 사연과 곡절 숨어 서촌의 이 같은 소박함과 자연스러움은 어디에서 왔을까. 투어 참가자들에게 물어보니 북촌은 사대부와 벼슬아치 같은 지배층이 살았고, 남촌에는 퇴락한 선비들이 산 반면, 인왕산 아래 서촌에는 궁이나 관청일을 보는 아전(衙前)계층이나 고관대작의 일을 봐주는 겸인(?人)같은 중인 이하 서민층이 산 동네로 알고 있었다. 서울 걷기 열풍이 불면서 해설자들이 알려준 판에 박힌 답변이기도 하다. ‘오래 묵은 도시’서울의 정체성을 단숨에 설명하기 쉽지 않고, 뾰족한 답도 없는 게 사실이다. 서울의 역사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고, 학교에서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가치는 거대한 랜드마크가 주는 이미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 안에 녹아있는 이야기에 있다고 한다. 도시가 안고 있는 기억이 도시의 주인인 셈이다. 그런 측면에서 서촌은 풀어도 풀어도 끝이 없는 ‘거대한 실타래’ 같다. 골목골목마다 천 갈래 만 갈래의 사연과 곡절이 숨어 있다. ●한국전쟁 이후 서촌의 모습 바뀌어 인왕산 기슭 서촌에 대대로 서울의 서민층이 살았을 것이라고 알았다면 그것은 오해다. 조선 초부터 일제 강점기까지 최고 권력의 핵심 배후지였다. 북촌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의 부산물이다. 월남한 피란민과 일거리와 학교를 찾아 고향을 떠나온 지방민이 무작정 정착한 결과 반세기 만에 오늘의 모습으로 변했다. 서촌의 또 다른 지명인 웃대(상촌·上村)는 경복궁 서쪽 인왕산에서 흘러내린 백운동과 청풍계의 물줄기가 수성동천, 옥류천과 합류하는 위쪽을 말한다. 경복궁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지역으로 임진왜란 이전까지 왕족 이외엔 거주가 불가했다. 태종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의 잠저가 통인동(옛 준수방)에 있었다는 얘기는, 태조의 다섯째 아들 태종의 집도 그곳에 있었다는 뜻이다. 방원과 왕위를 다툰 배다른 동생 무안대군 방번의 옛집도 자수궁터(옥인동 군인아파트)였다. 퇴위한 정종은 사직단 근처 인덕궁에서 머물렀다.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비해당이 수성동 계곡에 있었고, 효령대군이 비운에 간 조카의 집을 이어받았다.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불타 버린 뒤 세도가와 중인층이 야금야금 틈입했다. 서촌은 광해군의 잊혀진 영토이기도 하다. 광해군은 ‘왕기가 있다’며 경덕궁(경희궁), 인경궁(사직동과 내자동 일대), 자수궁 등 인왕산 아래 3곳에 3개의 왕궁을 짓느라 민가 수천채를 허물고 공사를 일으키는 바람에 인조반정의 원인을 제공했다. 누각동, 누상동, 누하동이라는 지명은 이때 지은 궁궐의 누각에서 비롯됐다. 답사단이 처음 찾아간 통의동 백송터는 영조가 태어난 창의궁이었다. 영조실록에 따르면 영조는 재위 52년간 무려 247번 이곳을 참배, 바느질 무수리였던 어머니 숙빈 최씨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 영조의 부마집에 입양돼 창의궁에서 자란 추사 김정희는 서촌에 흘러들어온 서당 훈장 천수경이 결성한 문학동인 송석원 시사(詩社)와 인연을 맺어 ‘송석원’이라는 바위각자를 썼다. 인왕산이 백악산과 이어지는 기슭인 지금의 청운동과 효자동, 궁정동은 장동 김씨의 옛 터이다. 안동 김씨 서울파인 장동 김씨가 순조~헌종~철종 3대에 걸쳐 누린 세도정치의 산실이다. 답사단은 경복고등학교 교정 안에 있는 겸재 정선의 옛 집터와 그 집터에 세워진 자화상 ‘독서여가도’ 동판비를 둘러보고 학교 운동장 스탠드에서 인왕산을 바라보는 사치를 누렸다. 300여년전 겸재가 인왕산을 바라보던 바로 그 앵글이다. 한 지도사는 인쇄해 온 한성부 지도와 인왕제색도를 일행에게 나눠줘 이해를 도왔다. 장동 김씨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장동팔경첩도, 인왕제색도도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다음 코스 궁정동 무궁화동산은 장동 김씨의 영화를 있게 한 김상용·김상헌 형제의 집터이다. 척화파 김상헌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가 새겨진 시비와 궁정동 안가, 효자동에 살았던 시인 박목월의 연애담으로 귀가 즐거웠다.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인 영빈 이씨의 사당 선희궁 터에 세워진 국립 농학교와 맹학교를 지나 우당 이회영기념관을 만났다. 인왕산의 또 다른 이름 필운대의 주인 백사 이항복의 직계 11대손이다. 전 재산을 팔아 간도로 독립운동을 떠난 우당과 육형제를 기리는 기념관이 서촌 신교동에 자리잡은 것은 사필귀정이다.서촌 분위기를 깨는 유리건물 GS남촌리더십센터 고갯길을 내려가면 옥인동47번지 옛 벽수산장이 나타난다. 한때 이 땅의 주인이 서촌의 주인인 시절이 있었다. 장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고종 대의 외척 여흥 민씨에 이어 순종 대의 외척 해평 윤씨 등 조선 말 경화사족(京華士族)들의 권력 각축장이었다. 인왕산을 주산으로 정하려던 무학대사를 물리친 정도전의 후예들이 지향한 신권(臣權)정치의 무대였다. 왕의 산, 인왕산을 차지한 신하들이 왕권을 윽박질러 당파정치, 외척정치, 세도정치를 일삼는 바람에 사화(士禍)와 반정(反正)이 되풀이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조선 권력의 배후지, 매국노가 삼켜 인왕산 기슭에서 사직단 북쪽을 일컫는 서촌은 조선초기부터 권력의 배후지이자 왕족의 세거지로 금역이었다. 장차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잠룡들의 사저이자 왕위에서 배척당한 왕족의 도피처였다. 성종 이후 사대부 세력이 조금씩 틈입해오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이 전소되면서 법궁이 창덕궁으로 옮겨가자 통제가 풀렸다. 장동 김씨, 남양 홍씨, 기계 유씨를 비롯한 경화사족들이 청풍계와 백운동, 옥류천을 중심으로 자리잡았으며 이들의 뒤를 따라 천수경을 위시한 중인들이 필운대와 인왕산동을 오가며 송석원시사를 열었다. 이들이 이룬 중인문화가 서촌의 한 축을 형성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는 친일 매국노들의 독무대였다. 옥인동의 절반인 2만평이 윤덕영의 차지였고, 이완용도 옥인동 19번지 4000평을 매집해 못지않은 저택을 지었다. 둘 다 팔지 못할 것(나라)을 팔아서 갖지 못할 것(서촌)을 차지하고 아방궁을 지었다. 옥인동 윗동네는 윤덕영, 아랫동네는 이완용이 나눠 지배했다. 중인문화가 꽃피었던 옥류동 계곡 전체가 개인 사유지가 됐다. 지금의 서촌은 해방 후, 한국전쟁 이후 두 집의 필지를 분할한 수많은 작은 집들이 들어서면서 형성된 것이다. 불과 반세기 전의 일이다. 송석원의 역사는 곧 서촌의 역사요, 서울의 역사이자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3대 세도정치를 편 장동 김씨에게서 명성황후를 등에 업은 여흥 민씨에게 넘어갔다가, 순종효황후의 큰아버지 해평 윤씨 윤덕영이 벽수산장을 지어 소유했다. 한국전쟁 시기 서울을 점령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청사로 사용됐고, 미군과 유엔청사로 차례로 쓰였다. 프랑스풍 조선 최대의 건물, 벽수산장은 1966년 화재로 불탔고, 1973년 철거됐다. 유일한 증거가 박노수미술관이다. 청전 이상범의 제자 박노수는 집과 작품, 소장품 1000여 점을 종로구청에 기증했다. 진정한 서촌사람이다. 노주석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길섶에서] 도전/오일만 논설위원

    언젠가 임권택 영화감독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거장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왔다. “TV에서 1960년대에 제작된 내 영화가 나왔는데 끝날 무렵에야 내 작품인 것을 알았다. 부끄러웠다. 감독 데뷔 초기 10년간 50여편의 작품을 보면 지금도 괴롭고 잊고 싶다.” 18살에 가출해 군화 장사로 연명하던 그는 순전히 ‘먹고살기 위해’ 영화판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주린 배를 움켜쥔 그에게 작품성은 사치였고 충무로 제작자들이 원하는 돈벌이 영화에 골몰했다. 국제 영화제를 휩쓸며 한국 자존심을 세운 80대 노감독의 ‘고해 성사’가 충격으로 다가온 이유다. 이런 ‘임권택’을 세계 최고의 감독으로 만든 것은 열정과 도전이었다. 60년대 너도나도 미국 영화 베끼기에 나설 때 그는 한국적 정서를 생각했다. 돈 되는 할리우드 아류작을 포기하고,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곰삭은 설렁탕’ 같은 작품을 꿈꿨다. 초기 실패를 거듭했지만 오랜 세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영상 기법들을 실험했다. ‘잡초’, ‘서편제’, ‘취화선’ 등 세상을 놀라게 한 걸작들이 이렇게 탄생했다.
  • [관가 와글와글] 문패 달자마자 또 이사… 짐싸기 달인 미래부

    [관가 와글와글] 문패 달자마자 또 이사… 짐싸기 달인 미래부

    과천청사의 미래창조과학부가 정부조직 개편에서 살아남으면서 소속 공무원들의 눈이 자연스럽게 정부세종청사 이전으로 쏠리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미래부와 행정자치부의 세종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이르면 7월에 이전 밑그림이 나오지 않겠느냐는 관측부터 내년 초나 돼야 나올 것이라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그사이 이견을 가진 직원 간 보이지 않는 골도 깊어지고 있다.# “현판식 한 지 일 년도 안 됐는데…” 미래부 소속 공무원들은 상당수가 이미 3~4차례의 이사 경험을 가지고 있다. 과거 과학기술부 시절에는 정부과천청사에 있었다가 교육과학기술부로 문패를 바꾸면서 정부서울청사로 옮겼다. 박근혜 정권과 함께 미래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과천청사로 돌아왔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지난해 7월 과천청사에 자리잡은 지 3년 4개월 만에 미래부는 4동(棟)에서 5동으로 이사했다. 4동에 방위사업청이 새로 입주하면서 공간을 내줘야 했기 때문이다. 미래부 직원 900여명 중 190명은 5동으로 바로 이사할 수도 없었다. 기존 5동에 있던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이전과 일정이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임시로 3동 2~3층으로 이사했다가 올 초에야 5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이사 한번 갈 때마다 수십억 훌쩍 이사에는 예산도 꽤 들어간다. 앞서 세종으로 이사한 부처들을 보면 산업통상자원부 74억원, 보건복지부 62억원, 국토교통부 58억원, 기획재정부 45억원, 교육부 39억원 등 적게는 20억원대에서 많게는 60억원대의 비용이 발생했다. 이사비에는 이송비뿐 아니라 인테리어, 방송통신 설치 등 공사비와 전산 장비, 집기, 비품 구입, 장차관의 관사 임대료 등이 포함된다. 세종 이전은 여건이 달라서 단순 비교할 순 없지만, 지난해 과천청사 내에서 이사할 때 소요됐던 비용 44억원(내부 인테리어 21억원, 통신·전기 설비 이전 12억원 등)을 훨씬 넘어설 수밖에 없다. 청사 내 이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에서 과천으로 이사 올 때의 비용과 거의 비슷한 금액이었다. # 살아남았지만… 더부살이 슬픈 예감 미래부 내부에서는 세종 이사가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종청사에 미래부가 들어갈 공간이 남아 있지 않는 데다 정부청사관리소 등이 정부 세종 3청사 건립 추진을 검토하고 있는 만큼 당분간 민간 건물을 빌려 쓸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미래부 A사무관은 “이제 이사라면 이골이 날 지경”이라며 “한 공간에 5년을 머무르지 못하다 보니 누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겠는가. 업무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 “가족과 사는 건 사치… 두 집 살림” 미래부의 세종 이전을 놓고 소문만 무성하다 보니 직원 간 입장 차이가 극명하게 나뉜다. 서울이나 과천 인근에 살고 있는 직원들은 당장 집과 자녀 학교 문제, 배우자 직장 등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세종에 주거지를 두고 있는 공무원들 역시 마음이 편치 않은 실정이다. ‘하루빨리 내려갔으면…’하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혹시 과거 정권처럼 희망 고문만 시키다 마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큰 것도 사실이다. 미래부 B사무관은 “요즘 직원 여럿이 모이면 어김없이 청사 이전 이야기가 나온다”며 “서로 입장이 극명하게 갈리다 보니 얼굴 붉히는 일도 생기고 ‘집 팔아라’, ‘집값 많이 올랐겠네’ 등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소리에 속앓이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집을 여러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려움이 없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세종에 아파트를 구입하면서 얻은 대출금 이자를 갚기도 빠듯한 데다 과천과 세종에 두 집 살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만만치 않다”며 “세종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들 하지만 그건 집을 팔았을 때 하는 이야기지 거기서 사는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없는 말”이라고 말했다. # 이번엔 역통근 신세 벗어날까요? 세종에 주거지가 있는 공무원 중 일부는 ‘역(逆)통근 셔틀버스’를 이용해 세종과 과천청사를 오간다. 딱 한 대뿐인 역통근 버스는 매일 오전 6시 세종에서 출발해 오전 8시 과천청사에 도착한다. 퇴근 때에는 과천청사 앞에서 오후 6시 45분 출발한다. 하지만 야근과 주말 근무 등의 이유로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렇다 보니 2~3명이 함께 방을 구해 살거나 자취를 하는 동료 방에 더부살이를 하며 지내는 경우도 있다. 몇 년째 주말부부로 살고 있는 미래부 C과장은 “세종으로 이전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심란해하는 직원이 많아 나도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며 “단지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 힘들 줄 몰랐다”고 토로했다. 글 사진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무 계단 오르며 떠난 100년의 근현대 여행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나무 계단 오르며 떠난 100년의 근현대 여행

    6월의 첫 주말인 지난 3일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탐방단은 차분하면서도 치밀한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의 해설을 따라 대학로길 100년의 근현대 역사문화여행을 떠났다. 먼저 한국의 대표적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아르코미술관’, ‘아르코예술극장’, ‘샘터사옥’, ‘샘터 파랑새극장’ 등 대학로의 상징인 붉은 벽돌 건물군을 만났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4채의 건물은 붉은 벽돌 외양은 물론 내부 역시 골목을 건물이 품에 안는 듯한 특이한 구조가 인상적이었다.마로니에 공원 안 옛 서울대 본관(예술가의 집)은 경성제국대와 서울대 본관으로 사용되다가 1975년 서울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문화예술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청사로 사용됐으며 2010년 사적으로 지정된 근대 건축물이다. 표면의 오차를 막기 위해 줄이 그어져 있는 스크래치 타일이 인상적이었는데 일행들은 스크래치 타일의 독특한 촉감을 직접 만지고 느껴 보았다. 방송통신대 역사기록관으로 사용되는 중앙시험소 청사 건물을 만났다. 근대 유일의 현존하는 목조 양식 건축물은 일행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1910년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와 중앙시험소를 거쳐 1916년 경성공업전문학교로 개편되었으며 해방 후 서울공대가 되었다고 한다. 투어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옛 흥덕동천을 복원한 개울가에서 휴식을 가진 뒤 대학로를 건너 또 다른 서울미래유산인 서울대병원으로 향했다. 서울의대 본관 뒤편에는 사도세자와 정조의 애틋한 사연이 담긴 경모궁이 숨어 있었는데 본래 함춘원 경모궁 터 한편을 차지했던 서울대병원이 이제는 함춘원과 경모궁을 포위하고 있는 모양새가 가슴 아팠다.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는 옛 대한의원 건물은 고색창연했다. 신바로크 양식의 기계식 시계탑과 태극문양이 격조 있었다. 박물관을 견학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 배분 덕분에 삐거덕거리는 나무계단을 따라 박물관 내부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우리는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학림다방 앞에 멈춰 섰다. 낡은 나무계단과 시계 태엽을 되감은 듯한 색바랜 내부였지만 우리는 이곳을 단순한 찻집이 아니라 서울미래유산으로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 코스는 혜화동 로터리의 혜화동 성당이다. 등록문화재인 이 성당은 서울에서 명동성당과 약현성당 다음 세 번째로 오래됐다고 한다. 이날 코스는 교육과 예술, 건축과 의학의 근대사가 한데 어우러진 코스였다. 평소 스쳐 지나갔던 건축물들에 대한 상세한 해설을 들으며 ‘경험한 자만이 느끼는 작은 사치’를 만끽했다. 오늘 경험한 100년이 100년 뒤 후손에게 물려줄 미래유산으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했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성균관 반촌 代 이은 번화가…근대건축 껴안은 서울대의 본향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성균관 반촌 代 이은 번화가…근대건축 껴안은 서울대의 본향

    마로니에 공원을 품은 대학로에는 근대의 향기가 진동했다. 백년 후의 보물, 서울미래유산이 내뿜는 포스 때문이리라. 서울신문이 서울시 및 서울도시문화연구원 등과 함께하는 ‘2017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회 ‘서울사방 동촌 교육과 예술의 현장, 대학로’편이 지난 3일 대학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그랜드투어 참가자들은 국가대표 건축가 김수근이 남긴 서울미래유산인 아르코예술극장과 아르코미술관, 샘터사옥과 파랑새극장을 차례차례 둘러봤다. 시멘트와 유리, 철골조가 지배하는 회색 도시의 한편에 서 있는 붉은 벽돌 건물 4채에서 ‘힘과 기’를 느끼는 표정이었다. 예술가의 집으로 변신한 옛 서울대 본관과 근대건축의 요람 경성고등공업학교 옛 터에 서 있는 옛 중앙시험소(한국방송통신대 역사관)에서 타일과 목조로 지어진 근대건축물의 매력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자연형 실개천 개념으로 복원한 흥덕동천의 마른 물길을 돌아 서울대 의과대학 본관과 옛 대한의원, 함춘원 동산에 세워진 정조의 회한이 서린 경모궁, 유신시대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 학림다방, 옛 백동성당 터에 세워진 근대성당 건축의 모태 혜화동성당 순으로 대학로를 순례했다.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초여름 대학로의 정취를 만끽했다.“이야기가 살아 있는 도시는 흥하고 이야기가 사라진 도시는 멸망한다”라고 했다. 스토리(story)가 곧 역사(history)가 되는 이치다. 대학로는 서울 종로5가역을 시점으로 이화사거리를 거쳐 혜화동로터리까지 이어지는 연장 1.6㎞의 간선도로이지만 우리는 흔히 이화사거리에서 혜화로터리 구간 왕복 6차선 도로 주변을 대학로라고 통칭한다. 누구나 한 번쯤 이곳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행사와 공연에 대해 들어봤거나 체험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젊음과 예술의 해방구이다. 대학로에 문화예술혼이 깃든 데는 600년 이상 묵은 곡절이 있다. 조선 유일무이의 대학 성균관과 대한민국 최초, 최고의 국립대학 서울대의 본향이기 때문이다. 중세에서 근대까지, 최고 대학 교육의 발상지가 대학로에서 만난다. 괜스레 대학로가 아니다. 경성제국대학을 거쳐 서울대 법문학부가 머문 시기, 이곳은 서울의 유일한 4년제 대학이 있던 지역이었다. 수식어 없이 이곳을 대학로라고 불러도 이의가 없었다. 대학천, 대학신문도 같은 맥락이다.●근대의학 태동지 연건동·근대건축 뿌리 동숭동 근대의학과 근대건축도 대학로를 사이에 두고 연건동과 동숭동 양쪽에서 나란히 꽃피었다. 광혜원에서 싹튼 근대의학의 전통이 옛 대한의원을 거쳐 지금의 서울대 병원으로 이어졌다. 또 방송통신대 역사관 터에 있던 관립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테크노크라트들이 우리 근대건축의 개척자가 됐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기원을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학설이 힘을 받는 이유는 중세 성곽도시 한양이 초거대 세속도시 서울이 된 무한대에 가까운 팽창의 출발점을 경성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학로는 왜 대학로인가. 대학로의 지역 정체성은 무엇인가. 대학로는 1985년 군사정권에 의해 불쑥 급조된 장소가 아니다. 조선시대 한양의 좌청룡 낙산 아래 형성된 동촌(東村)의 역사가 층층이 살아 숨쉰다.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보면 낙산 아래 연건동을 중심으로 이화동·동숭동·원남동·연지동·충신동이 동촌에 해당한다. 양반이 살던 4곳의 지역색을 뜻하는 사색(四色) 중 동인은 남인과 북인, 대북과 소북으로 갈라졌는데 18세기 후반의 문인 이가환의 ‘옥계청유첩서’에는 소북가문이 동촌에 살았다고 기록돼 있다. 동산(東山) 아래 동촌에 거주하는 동인의 기질이나 지역색은 성균관과 반촌(泮村)에 의해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반촌이란 반민(泮民)의 거주지인데, 성균관을 반궁(泮宮)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성균관과 유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특수신분인 반인들은 성역화된 성균관의 위세를 빌려 소 도살 면허를 독점하면서 부유한 치외법권 주민으로 행세했다. 지금의 대학로 일대가 반촌이다. 400명의 유생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반촌은 대궐 다음으로 북적거리는 번화가였다. 반민들은 사치스러운 차림새와 호쾌한 기질로 유명했다. 성균관 유생들이 함께 어울린 하숙촌 대명거리(혜화역 4번 출구에서 성대 앞까지)는 1895년 갑오개혁으로 과거제가 폐지될 때까지 ‘원조 대학로’로 흥청거렸다. ●낙산 아래 동인들 모여 살던 동촌 명승지 이화장 동촌의 정체성은 낙산과 혜화문, 낙산 아래 제일의 명당 이화장, 흥덕사와 흥덕동천, 송시열이 살던 송동 집터와 북관묘 터에서 각각 찾을 수 있다. 낙산 아래 이화장 자리는 동촌 제일의 명승지였다.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석양루 터였으며 신숙주의 손자 신광한의 집 기재(또는 신대)를 거쳐 왕의 관을 만들던 장생전이 깃들었다. 김홍도의 스승 표암 강세황도 이곳 바위에 글씨를 남겼지만 이화장을 지으면서 땅속에 묻혔다. 현재 서울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이 흥덕사와 송동, 북관묘의 옛 터이다. 본래 지명은 숭교방이었으며 오늘의 동숭동은 ‘숭교방 동쪽’이라는 뜻이다. 흥덕사는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 머물던 한양 잠저였고, 본부인 신의왕후를 모신 교종의 본산이었다. 송시열의 집도 이 터에 있다. 흥덕동천은 대학로를 지나 청계천 오간수문으로 흘렀다. 오늘의 대학로 40m 도로는 한때 대학천이라고 불리던 흥덕동천을 복개한 덕에 얻은 길이다. 서울대 문리대생들이 대학천과 다리를 빗댄 센강과 미라보 다리를 오가며 ‘제25의 강의실’이라고 불리던 학림다방으로 건너다녔다. 흥덕동천을 되살린다고 요란하게 선전했지만 옛 물길은 땅속에 묻혔고, 작은 개울만 흉내 삼아 만들어 놓았다. 관운장을 모신 북관묘터는 1882년 임오군란부터 1884년 갑신정변, 1895년 을미사변까지 근대사의 비극이 오롯이 담긴 역사의 기억장치이다. 그러나 아픈 역사는 역사가 아니라며 스스로 지워 버렸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대학로의 근현대 유산이 미래세대에게 전해지도록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이유를 사라져 버린 동촌의 옛 역사가 시리도록 웅변한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위원
  • 292만원…세계에서 가장 비싼 햄버거

    292만원…세계에서 가장 비싼 햄버거

    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보통의 버거나 수제버거, 높은 수준으로 요리된 버거까지 모두가 아름다움 그 자체다. 그러나 화려한 재료들로 사치스럽게 장식된 버거도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 해외 제품정보 사이트 럭셔리런치는 5일(현지시간) 지난달 28일 국제버거의 날(International Burger Day)에 기네스 세계 신기록으로 승인 받은 전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햄버거를 소개했다. 이 버거의 가격은 2600달러(약292만원)로, 3년 전 180만원이 넘는 영국 런던의 ‘글램버거’ 이후 처음으로 고가를 기록했다. 버거 속 패티는 일본산 드라이 에이지드 와규(a Japanese dry-aged Wagyu)와 블랙 앵거스 소고기 패티(Black Angus beef patty)를 함께 사용했다. 거기에 오스터스헬더산 바닷가재, 이베리아의 햄, 네덜란드 연안산 진, 푸아그라, 흰 송로버섯, 레메커 치즈, 프랑스 상추, 일본 토마토와 캐비어를 층층이 곁들였다. 특히 랍스터, 자메이카 블루 마운틴 커피, 마다가스카 바닐라, 사프런, 일본 간장 등 35가지 재료를 섞어 특별히 만든 소스가 인상적이다. 이 모두를 샤프런과 금으로 덮여 있는 브리오슈번이 감싸안고 있다. 미국 바이스 미디어에 따르면, 버거를 만든 네덜란드 출신의 요리사 디에고 부이크는 2년 동안 영국 런던에 있는 소호 하우스에서 일하며 햄버거에 대한 열정을 키워왔다고 한다.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돌아온 직후, 자신만의 버거를 디자인하고 창작하기 시작했고 2015년에 시에서 최고의 패티와 번을 만들어 상을 받았다. 그리고 올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버거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디에고는 자신이 만든 버거가 가장 비싸긴 하지만 자신이 맛본 버거 중 최고는 아니라고 솔직한 답변을 털어놓았다. 한편, 디에고의 최고가 버거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사우스 오브 휴스턴'(South of Houston) 레스토랑 메뉴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데다 준비 시간이 많이 걸리는 관계로, 시도해보고 싶다면 사전 예약이 필수다. 사진=럭셔리런치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환경 위해 종이컵대신 머그컵? 그럼 빨대는…

    환경 위해 종이컵대신 머그컵? 그럼 빨대는…

    환경보호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실 때 종이컵 대신 머그컵을, 컵홀더 대신 손수건을 사용하려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서 번번이 빠지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플라스틱 빨대다. 최근 영국의 한 재활용기업 대표가 빨대를 두고 “환경적 재앙”이라고 지칭하며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재활용기업 ‘비즈니스웨이스트’ 대표 마크 홀은 “플라스틱 빨대는 인간의 궁극적인 사치품”이라면서 “이를 사용하는 성인은 8살 된 아이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비난했다. 홀 대표가 이처럼 ‘격분’하는 이유는 작은 빨대 하나가 땅에 버려져 분해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몇십 년에서 몇백 년에 이른다는 사실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에서 분해가 잘 되지 않는 플라스틱 빨대를 대체할 종이 빨대가 버젓이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플라스틱 빨대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는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홀 대표는 BBC와 한 인터뷰에서 “플라스틱 빨대의 수명은 고작해야 20분 정도다. 그 이후에는 버려지는데,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가게들은 분리수거를 할 때 빨대를 따로 분리하지 않고 그냥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비닐봉지에 세금을 붙여 사용량을 줄였던 것처럼 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세금을 더 내도록 해야 한다”면서 “당신은 ‘더 이상 8살 난 어린아이가 아니다’라며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종이 빨대가 플라스틱 빨대에 비해 분해가 쉽고 빠르긴 하나, 일부 종이 빨대에는 화학 코팅제가 입혀져 있어 플라스틱 빨대와 마찬가지로 환경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미술관, 마음의 위안처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미술관, 마음의 위안처

    어려운 일, 피곤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어딘가 편한 곳을 찾는다. 영화 ‘뮤지엄 아워스’(2012)에서 마음의 피난처는 미술관이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공간, 수많은 사람들의 세파에 닳아버린 삶들이 담긴 그림들 사이로 또 다른 사람들이 오늘이라는 시간 속에 분주하게 때로는 무망하게 그림을 보는 일상 아닌 일상 속 시간이 멈추어 선 곳, 문득 떠난 낯선 여행지 같은 그곳이 바로 미술관이다.캐나다에 사는 앤(마거릿 오하라)은 어느 날 존재조차 모르던 사촌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한다. 연고자가 없어 유일한 친척 앤에게 연락이 와 빈에 왔지만 사촌도 도시도 다 낯설고 서툴다. 그래서 낯선 도시에서 두렵고 외로우면 조용히 미술관을 찾는다. 그러다 미술관 경비원 요한(보비 소머)에 의해 발견(?)된다. 음악 일에 종사하다 정년퇴직한 그는 그림 보는 일과 그림 보는 관객을 보는 재미로 미술관 일을 하던 중이다. 그런 그가 미술관에서 유독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앤을 발견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영화는 두 사람의 뜻밖의 만남을 통해 전개된다. 미술관과 빈이라는 도시를 표류하듯 방황하는 두 사람을 카메라는 정교하게 따라붙어 다큐멘터리처럼 미술품과 일상적 풍경 사이를 슬라이드 쇼처럼 교차하거나, 화면이 분할되어 두 개의 상황이 하나의 화면에 등장하면서 두 사람의 만남은 관객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런 영화의 전개방식은 영화보다 비디오아티스트로 더 잘 알려진 젬 코언 감독 덕택이다. 그의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 등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의 영화와 설치미술 작품들은 주로 다큐멘터리 기법을 차용해 영화도 미술, 음악도 아닌 중간영역에 둔다. 16㎜나 슈퍼 8㎜ 홈비디오를 써서 중심과 주변, 전경과 후경을 수시로 바꿔 주변과 중심을 뒤섞어 놓는데 영화에서도 카메라의 프레임은 액자가 되고 액자 속 그림의 주인공이 움직인다.요한이 근무하는 미술관은 1891년 개관한 빈 미술사미술관이다. 독일의 건축가 G 젬퍼가 설계한 석조건물에 빈을 수도로 600년 동안 유럽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과 17세기 중엽 레오폴트 빌헬름 장군이 수집한 약 40만점의 미술품이 보태져 서양미술사 전반에 걸친 진귀한 작품들로 가득한 미술관 중 미술관이다. 영화의 배경이 미술관이니 그림은 영화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이다. 병문안을 함께 간 요한은 코마 상태의 환자를 두고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아르침볼도의 ‘여름’(1563) 그리고 파티니르의 ‘그리스도의 세례’(1515~24)를 이야기한다. 파산 후 궁핍하고 쓸쓸한 노년기를 보낸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삶의 덧없음과 젊은 날의 회한을, 아르침볼도는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얼굴을 연작으로 그렸는데 ‘여름’은 인생의 가장 절정, 또는 건강했던 시절을 말한다. 파티니르는 루카복음 3장 1~18절과 21~22절을 소재로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렸다. 요한의 그림 이야기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환자에게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하지만 ‘뮤지엄 아워스’에서 주인공은 단연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르 브뤼헐이다. 처음에는 ‘민간의 전설’ 즉 속담 등을 주제로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풍경 속에 수많은 개미같이 작은 인물들을 그렸지만 점차 교묘한 대각선 구도를 통해 화면에 질서를 주어 주제가 명료해지면서 화가로 정착했다. 특히 농민 생활을 애정과 유머를 담아서 사실적으로 표현하며 인물이 커지면서 ‘농민의 브뤼헐’이 됐다. 현존하는 작품으론 동판화 1점을 포함, 총 45점이 있다. 브뤼헐의 비중은 영화 도입부에서부터 확인된다. 그의 ‘눈 속의 사냥꾼’(1565)에서 까마귀가 나뭇가지를 차고 날아오르는 그림의 일부와 실제로 까마귀가 나는 일상은 영화에서 오버랩된다. 영화에 함께 등장하는 ‘우울한 날’(1565)과 ‘소떼들의 귀환’(1565)은 그의 대표작인 ‘계절’ 연작 중 일부다. 브뤼헐의 그림이 익숙한 건 1970년대 우리나라 크리스마스 카드와 달력에 많이 사용된 때문이다. 브뤼헐의 작품에는 주인공이 없다. 아니 화면을 개미 떼처럼 가득 채운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들은 숨은그림찾기 속 인물처럼 소리 없이 자신들의 자리에서 지지고 볶고 살아간다. 영화 속 앤과 요한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그들의 존재는 안중에 없다. 주변부의 인생을 살아가는,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중심인 그런 사람들이다. 젬 코언은 시대와 상관없이 언제나 세상의 한 부분을 이루고 살아온 주변을 병렬 배치함으로써 삶과 사회, 삶과 죽음을 되뇌게 한다. 영화의 이해를 위해 그림을 병렬 배치해 보면 요한은 브뤼헐의 작품에서 숨은그림찾기를 하며 소일하다 앤을 발견하고 그녀가 마음을 열게 되자 한스 멤링의 누드화 ‘아담과 이브’(1485)를 함께 보며 알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한다. 그리고 브뤼헐의 작은아들 얀의 ‘큰 꽃다발’(1607)을 본다. 화병에 꽂혀 있는 꽃이란 결국 뿌리 없는 허공 중에 떠 있는 아름다움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런 화병 속 꽃 그림은 메멘토 모리 즉 덧없는 삶 혹은 유한한 삶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예술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주제이다. 결국 영화는 삶은 그 자체로 죽음의 연속이며, 처음부터 삶 안에는 죽음이 포함돼 있다는 몽테뉴의 말을 빌려 일상과 영화를 버무려 놓고 삶과 죽음을 한 공간에 놓아둔다. 그의 이런 화법 때문에 요한은 미술관 경비원이 아니라 미술관 그림들과 함께 있는 브뤼헐의 그림 속 사람처럼 보인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최악의 ‘영화’이고, ‘예술’을 선호하는 이들에겐 ‘작품’이 되는 이 영화는 대사보다는 화면에 몰입해야 보이고 읽히는 영화이다. 늘 익숙하게 지나치던 일상의 풍경들을 통해 새로운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익숙함과 생경함을 동시에 슬며시 쥐어 주며 생의 비약, 허무의 초극을 동시에 보여 준다. 그래서 일상 속 미술관은 일상 너머의 미술관과 같은 장소임을 알게 해 준다. 몸도 쉬어야 하지만 마음도 정신도 휴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지금껏 복지가 몸만 생각했다면 마음도 쉴 수 있는 헤아림이 포함된 문화복지를 말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인들에게 돈만 지원해 주면 발전하고 융성(?)할 것이라는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우리에겐 일자리도 중요하지만 마음과 정신을 쉴 곳도 절실하다. 결코 사치가 아니다.
  • [공무원 대나무숲] 공무원이 정치 후원금·수입차?… 나도 자유롭고 싶다!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행동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 그래도 난 가끔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말이다. 첫째, 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기쁜 일, 슬픈 일도 솔직하게 나누고 싶다. ‘좋아요’도 맘껏 누르고 싶다. 가끔은 정치 이슈에 대해 시민으로서의 내 생각을 페친들과 도란도란 나누고 싶다. 찬성과 반대 의견 다 들으면서 내 사고의 지평도 넓히고 싶다. 선거 때가 되면 모든 것이 금지되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 속삭이며 속절없는 허공에 내 생각을 날려 버리고 싶지 않다. 둘째, 나는 가끔 멋진 안경도 쓰고 싶고 근사한 차도 운전해 보고 싶다. 인기 있는 정치인의 린드버그 안경테도 써 보고 싶고, 색과 디자인이 경쾌한 소형 외제차 미니쿠퍼도 타고 싶다. 비쌀 수도 있겠지.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을 악착같이 모으면 살 수 있지 않을까. ‘공무원이 그래도 돼?’ 하는 시선에 인간으로서의 내 개성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가라서, 명품이라서가 아니라 그 상품에 담긴 가치가 탐나서, 그 폼이 멋지고 좋아 행복할 따름이다. 가끔은 내 사치도, 내 인간적 욕망도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셋째, 나는 내가 좋아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도 내고 싶다. 기부나 후원은 자유로운 개성의 발현이다. 복지단체에, 종교단체에 기부하는 것처럼 정치인 후원도 가능했으면 좋겠다. ‘좋은 일’이라서가 아니라 내가 ‘즐겁기 때문에’다. 난 행정부 공무원이지만 정치 또한 우리 삶을 바꾸는 공공선의 실천이라고 생각한다. 공적인 가치를 위해 내 월급의 일부를 나눌 수 있을 때 행복하지 않겠는가. ‘보수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인’,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는 정치인’ 중 한 명씩 뽑아 두 사람에게 정치 후원금을 내고 싶다. 영원히 덧없는 소망일까.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했다.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행동을 자유롭게 하고 개성을 자유롭게 발현하는 것이다. 공무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나도 그러한 인권을 맘껏 누리면 안 될까. <중앙부처 과장>
  • 흙수저들의 마지막 탈출구 공무원…“최소한의 삶 살고 싶어요”

    흙수저들의 마지막 탈출구 공무원…“최소한의 삶 살고 싶어요”

    ‘공허한 군중의 행렬에 섞이어/ 내 어디서 그리 무거운 비애를 지고 왔기에/ 길-게 늘인 그림자 이다지 어두워’(김광균, ‘와사등’ 중에서) “노량진 거리를 걸으면 ‘와사등’이란 시가 생각나요” 강석진씨는 말했다. 이제 스무 살, 만으로는 열아홉이다. 그는 노량진 인근 편의점에서 컵라면이 익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몇 분을 흘려보내는 것조차 아까워 책을 펼친다. 공무원 수험서다. 그는 원래 뮤지션을 꿈꿨다. 아직 세상에 내보내지 못한 자작곡이 여럿이다.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에 참가한 적도 있다. 그러나 집안 사정 탓에 가수의 꿈은 일찍이 접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공시생 대열에 합류한 까닭이다. 가능한 한 빨리 합격해서 경제적으로 자립해야만 한다. ● 노량진의 스톱워치는 쉬는 법이 없다 김유진(25·가명)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노량진으로 왔다. 전공을 살려 병원에서 물리치료사로 일했다. 1년쯤 되니 회의감이 들었다. 몸을 많이 쓰는 일이라 힘에 부쳤다. 무엇보다 “40~50대가 되어도 계속할 자신이 없어 그만뒀다”고 말했다. 보건행정직을 지망하면 관련 자격증이 있는 김씨는 가산점이 붙는다. 상대적으로 유리한 편이지만, 다른 직렬인 교육행정을 준비 중이다. 학교는 퇴근 시간이 일정하고, 방학도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언젠가 누릴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오늘을 희생한다. 문제집 옆에 놓인 스톱워치가 쉼 없이 돌아갔다.1.8%의 성공률. 서울시청년활동지원센터가 대학내일20대연구소, 청년유니온과 조사한 결과, 공무원 시험 합격률은 1.8%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명 중 1~2명꼴이다. 지원자 수는 해마다 늘어나는 데 비해 임용 인원은 한정되어 있다. 그러니 합격 가능성이 점차 희박해지는 것이다. 2016년 7·9급 국가공무원 지원자 수는 약 29만 명이었다. 같은 해 신규 대졸자 수 51만여 명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이 중 합격자 수는 5000여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28만여 명은 시험을 포기하거나 다음을 기약해야 한다. 극소수만이 살아남는 구조다. ● “나라가 망할 일은 없잖아요” 청년들은 왜 이토록 어려운 시험에 매달리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고용 안정성’ 때문이다.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는 것은 물론, 자기계발을 하거나 취미를 즐길 시간적 여유가 있다. 3년 차 일반행정직 공무원 이미현씨(32)는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온라인마케팅회사에서 4년간 경력을 쌓았다. 일이 제법 익숙해지자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업계 수명은 너무도 짧았다. 선배들은 마흔을 못 넘기고 치킨집을 열었다. 그것은 곧 이씨의 미래였다. 그날이 오기 전에 사표를 내고 노량진으로 발길을 돌렸다.“나라가 망할 일은 없잖아요” 공시생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다. 기업의 존립도, 개인의 생존도 불안한 사회에서 공무원만큼은 나랏밥 먹으니 안전할 거란 뜻이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는 공무원 시험 열풍에 대해 “사회 전반적인 일자리의 질이 낮아져서 생긴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거니와 대기업에 들어간다고 해도 40대 중반이면 은퇴하는 게 현실이다. 그에 비해 공직사회는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이 교수는 “난민들이 복지제도가 잘 구축된 유럽으로 떠나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비유했다. 그러나 원하는 사회로 모두가 진입할 수는 없다. 경쟁에서 이기려면 그만큼 값을 치러야 한다. 이주연(30·가명)씨와 김선욱(27·가명)씨는 연애를 포기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을 “사랑보다 멀고 우정보다 가까운 사이”라고 소개했다. 서로 좋아하는 감정이 공부에는 방해가 된다는 것에 둘 다 동의했다. 같은 공무원 학원에 다니고, 쉬는 시간엔 도시락도 함께 먹지만 딱 거기까지 선을 긋는다. 시험이 끝나면 다시 만날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한 사람만 합격하거나 둘 다 불합격할 경우엔 관계가 불편해진다. 인간적인 삶의 모든 조건은 합격 이후로 미뤘다.노량진역 3번 출구 맥도날드는 이른바 공시생들의 ‘성지’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공부하거나 스터디모임을 가진다. 노량진은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찾기 힘들다. 주머니 가벼운 수험생에겐 커피 한잔도 사치인 셈이다. 그래서 1000원이면 충분한 패스트푸드점을 찾는다. 고정민(27)씨는 3월에 치렀던 경찰공무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남은 면접을 대비하기 위해 스터디그룹을 만들었다. 한상준(25)씨와 김근영(27)씨가 모집 글을 보고 맥도날드를 찾았다. “경찰공무원은 대규모 채용이라 그나마 사정이 낫죠” 한고비 넘긴 그들의 얼굴엔 안도감이 돌았다. 그 옆엔 뷔페식 고시식당이 하나 있다. 공시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식당이다. 한 끼 식사에 4500원이다. 다량의 식권을 구매하면 할인된다. 사장 이상규(48)씨는 단골이 합격해서 막걸리 한 병 사 올 때 가장 기쁘다고 한다. 하지만 머지않아 장사를 접어야 할 것 같다고 고백했다. 공시생 자체는 늘어도 노량진을 찾는 이들은 점점 줄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준비 비용을 감당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고시원비가 평균 월 40만~50만원이다. 과목당 15만~20만원씩 하는 학원비도 부담이다. 요즘은 자구책으로 저렴한 인터넷 강의를 많이 듣는 추세다.● 공정한 경쟁의 마지막 탈출구 청년들은 이 모든 정신적, 경제적 비용을 치르고서라도 공무원이 되고자 한다. 흙수저들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마지막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오찬호씨는 “불공정한 사회 안에서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것”이라며 “이에 시민 모두가 책임의식을 가지고 분노해야 한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청년들이 점차 ‘안정추구형’으로 변해간다”면서 “과거에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시대이기에 안정적인 직업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공시생들에게 원래 공무원이 꿈이었냐고 물으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한다. 한때는 저마다의 꿈이 있었다. 다만 꿈꾸는 대로 이룰 수 없기에 세상과 타협할 뿐이다. 오찬호씨는 “공무원 시험만이 희망인 현 세태가 10년 뒤엔 과거 속 추억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광 교수는 “기업문화가 ‘인간 중심’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안정된 일자리에서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면 지금의 기현상은 사그라질 것이라고 봤다. 대안을 좇는 청년들을 탓하기보다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먼저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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