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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귀철새들 홍도·흑산도서 쉰다

    희귀철새들 홍도·흑산도서 쉰다

    멸종위기종인 청다리도요사촌과 노랑머리할미새, 제비물떼새 등과 같은 철새가 홍도와 흑산도를 경유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는 일본 조류표식협회와 공동으로 황금새와 무당새, 적원자, 꺅도요사촌, 검은이마직박구리 등 55종에 금속 가락지를 달아 이들의 이동경로를 확인했다고 28일 밝혔다. 청다리도요사촌은 스코틀랜드에서 동아시아에 이르는 북위 50도 이상의 북반구에서 번식한다. 열대 및 남아프리카, 호주, 뉴질랜드에서 겨울을 지내고 북반구로 이동하면서 한반도 남서부 지역을 통과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흑산도에서 포착된 제비물떼새는 간척지와 갯벌 등에서 20∼30마리씩 무리지어 다니고 남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일부에 분포한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이두한 원장의 건강이야기] 대장암과 가족력

    어느 날, 병원에서 스물다섯 난 젊은 여성 환자를 만났다.10여년 전부터 항문에서 자주 피가 나오고 설사도 많이 한다고 호소했다. 가족력을 살펴보니 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젊어서 대장암으로 돌아가셨고, 사촌 오빠도 30대에 대장암 수술을 받은 적이 있었다. 내시경으로 들여다 보니 수많은 용종이 직장부터 맹장까지 대장 곳곳에 빈틈없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족력이나 용종 상태로 봐 가족성 용종증으로 의심되어 유전자검사를 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원인유전자가 드러났다. 가족성 용종증은 대장암 원인의 1% 정도를 차지한다. 멘델에 의해 우성 유전을 하는 가장 먼저 밝혀진 유전성 대장암이다. 이런 유전 기질을 가진 사람은 사춘기 이후부터 대장에 용종이 생기기 시작해 나중에는 수백∼수천 개의 용종이 대장 전체를 뒤덮는다.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은 일생 중 언젠가는 대장암에 걸리기 때문에 사춘기 이후부터 정기적인 대장검사를 통해 용종을 관리해야 한다. 이런 가족성 용종증보다 더 흔한 유전성 대장암은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이다. 전체 대장암의 5∼10%나 차지한다. 우성 유전을 하지만 가족성 용종증처럼 용종이 많지는 않다. 이런 가족력을 가졌다면 25세 이후부터 정기적인 대장검사를 통해 미리 용종을 제거하면 대장암을 예방하거나 최소한 조기 발견은 가능하다. 특히 이 질환은 대장암 이외에도 자궁내막암과 난소암, 위암, 소장의 암, 담도암, 췌장암, 유방암 등 여러 종류의 암이 한 가계 내에서 동반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질환의 진단에는 정확한 가족력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한 가족 내에 3명 이상의 대장암 환자가 있고,3명 중 2명이 나머지 1명에 대하여 1대 가족 관계가 있으며,3명 중 1명이 45세 이전에 대장암이 생겼으면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으로 볼 수 있다. 최근 들어 유전성 대장암의 원인유전자가 상당 부분 밝혀졌다. 따라서 대장암 가족력이 있다면 정기적인 대장검사와 수술을 통해 대장암을 예방하거나 조기에 치료할 것을 권한다.대항병원장
  • [17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2 오후 7시30분) 아들 창우는 성숙한 생각과 행동으로 엄마, 아빠에게 든든한 행복이 되어준다. 처음 창우의 존재는 경선씨의 선택을 힘들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친 아빠 이상으로 아들 창우에게 각별하게 대하는 정수씨. 핏줄에 대한 아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할 만큼 아들로서 창우가 채워주는 의미가 크다고 한다. ●글로벌 코리안(YTN 오후 8시30분) 독일 프랑크푸르트 한글학교에 공채로 교장이 임명됐다. 그동안 학부모회에서 선임된 명예교장이 역할을 해 왔다. 교육 전문가 출신 교장에 대한 학부모와 교사들의 기대와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신입 교장은 갑작스러운 변화보다 평소에 느꼈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풀어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60분 부모(EBS 오전 10시) 사랑만 말하기에는 왠지 복잡하고도 미묘한 것이 가족관계이다.‘가정의 달 특집’ 가족의 재발견 시간. 우리에게 친근한 가족관련 영화와 문학작품 등에 등장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 사이에서 끊임없이 겪어야 했던 상실의 아픔들. 그 비밀들을 풀어보고 가족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기회를 갖는다. ●쩐의 전쟁(SBS 오후 9시55분) 노숙자로 전락한 나라는 고교 때 은사인 인철과 마주치자 당황한다. 인철은 게걸스럽게 국밥을 얻어 먹고 있던 나라에게 집에서 함께 지내자고 제안한다. 한국에서 제일 부자라는 사람이 사채업자 독고철이라는 소리를 들은 나라는 독고철을 찾아간다. 나라는 독고철을 좇아 다니며 돈버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조른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건우는 세영의 유산 소식을 듣고 마음이 착잡하다. 경선은 건우가 천벌을 받을 거라며 뒤늦게 소식을 알게 된 진아와 부둥켜 안은 채 눈물을 흘린다. 소영은 태현과의 결혼을 준비하느라 말자와 예물을 고르고, 우람이까지 챙긴다. 봉달은 며느리 노릇을 하려는 소영을 보며 서경을 떠올린 채 씁쓸해 한다. ●TV소설 그대의 풍경(KBS1 오전 7시50분) 수련은 사촌언니 정순의 집에서 보배를 키우지만, 정작 정순부부는 수련의 존재를 불편해 한다. 사법연수원에 다니는 동혁은 점점 윤주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마침내 정순은 떠나지 않으면 비밀을 퍼뜨리겠다고 수련을 다그친다. 늦은 밤 수련은 보배를 업고 몰래 도망치려 하는데….
  • [20&30] 경조사비 문화

    [20&30] 경조사비 문화

    ‘계절의 여왕’ 5월은 결혼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의 계절이지만 주머니가 가벼운 직장인들에게는 ‘잔인한 계절’이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결혼식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축복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돈 쓸 일이 많은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스승의날 등이 겹친데다 한 주에 2∼3개씩 결혼식이 몰리다 보면 축의금 부담에 지갑은 어느새 홀쭉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돌잔치나 지인이 상(喪)이라도 당한다면 지갑은 텅빌지도 모른다. 용돈을 받아쓰는 학생이나 박봉에 시달리는 월급쟁이들에게 5월은 ‘잔인한 달’인 셈이다. 그렇다고 1만∼2만원을 봉투에 넣을 수도 없다. 경조사비는 ‘3만원,5만원,10만원’이라는 인식이 뿌리깊기 때문이다. 경조사비에 대한 20&30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 중장년층들은 대부분 경조사비와 관련된 ‘장부’를 갖고 있다. 오랫동안 쌓이면 기억하기 쉽지 않고 자칫 실수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상부상조 전통을 지켜온 어르신들은 경조사비를 언젠가는 꼭 되갚아야 하는 ‘빚’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기성세대에 일반화된 ‘받은 만큼 되돌려준다.’는 생각은 20∼30대에서도 여전히 지지를 얻고 있다. 회사원 임모(29)씨는 아직 조의금 부담은 별로 없지만 한 달 평균 10만원가량을 축의금으로 지출한다. 임씨가 봉투 두께를 결정하는 기준은 철저한 ‘상대주의’다. 임씨는 “내가 결혼할 때 준 사람한테, 받은 만큼만 낸다. 보통 5만원 정도가 적정 수준인 것처럼 돼버렸지만 거래처 사람이나 안면만 있는 경우에는 3만원으로 끝낸다.”고 밝혔다.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친분도 없는 사람에게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는 경우도 늘었다. 임씨는 “체면 때문에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의식이 문제인 것 같다. 꼭 봉투가 오가지 않더라도 외국처럼 친한 사람끼리 모여 의미를 새기고 조촐하게 치르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머니 사정 고달파도 인간관계 유지 위해 필요” 고등학교 교사인 강모(32·여)씨는 학교 상조회비로 매달 2만원씩 내는 것 외에도 개인적으로 평균 월 10만∼20만원 정도의 경조사비를 지출한다. 강씨의 지출 기준은 친소관계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친하거나 직접 참석하는 경우에는 3만원, 아주 끈끈한 사이일 땐 5만원을 낸다. 물론 가족이나 친지의 경조사가 있을 때는 훌쩍 뛴다. 사촌동생의 결혼에는 20만원, 시동생이 결혼할 때는 50만원을 냈다. 시아주버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30만원을 냈다. 강씨는 “경조사비를 낼 때마다 버거운 게 사실”이라면서도 “사회생활을 원만하게 꾸려가고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 같다. 돌려받을 생각을 한다기보다는 어려울 때 보태준다는 데 의미가 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회사원 송모(31·여)씨도 친분관계에 따라 지출을 결정한다. 송씨는 “결혼 후 시댁 친지까지 챙겨야 하니 (경조사비가) 더 많이 나가는 것 같다.”면서도 “나도 그만큼 받기 때문에 손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경조사비라는 게 결국은 돌고 도는 것 아니냐.”며 웃었다. 가끔은 경조사비 때문에 치사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내가 낸 만큼 받지 못하거나, 내가 못 받은 사람에게 어쩔 수 없이 내야 할 때 은근히 기분 나쁘다. 경조사가 끝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장부’에 액수를 적는 일인데, 가끔씩 (너무 조금 받아서) 상대방을 괘씸해 하거나 (너무 많이 받아서) 과분한 생각이 들 때면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서구처럼 현금 대신 선물을 주고 받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송씨는 “차라리 돈으로 주는 게 속 편하다.”고 말했다. 경조사마다 상대가 무엇을 좋아할까 고민할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친소관계로 봉투 두께 달리하는 것은 야박” 5년차 회사원 홍모(31)씨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는 상대방과의 관계를 떠나 무조건 5만원을 봉투에 넣는다. 홍씨는 “그냥 좀 아는 친구나 절친한 친구나 5만원을 한다. 친소관계에 따라 돈을 달리하는 것은 너무 계산적”이라고 말했다. 진짜 친한 친구들이 좀 섭섭해할지도 모르지만, 신혼 때 집들이 선물로 만회한다는 게 홍씨의 전략이다.4∼5월이면 한 달 평균 20만∼30만원이 지출돼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경조사비 문화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는 않다. 홍씨는 “일부에서 다소 변질된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큰 일이 있을 때 서로 돕자는 뜻 아니냐.”면서 “부모님들 입장에선 그 동안 자식농사 지으면서 뿌리신 만큼 거둘 수 있는 기회도 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직장인 김모(26·여)씨는 꼭 형편이 안 좋을 때 경조사가 몰려서 생기는 징크스가 있다.5월에만 결혼식과 돌잔치, 어버이날, 어머니 생신까지 줄줄이 겹쳐 ‘목돈’ 80만원이 통장에서 빠져나갔다. 여느 때 경조사비가 20만원 정도였음을 감안하면 허리가 휠 정도다. 김씨 역시 봉투 두께는 ‘5만원’으로 한결 같다.3만원은 너무 적은 듯하고 그 이상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김씨는 경조사 때 반드시 돈으로 해결하는 게 결코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본 다음에 선물 또는 현금으로 주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맹목적으로 봉투를 내미는 것은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건강한 거래’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회사원 송모(36·여)씨는 일괄적으로 3만원에 끝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버겁지 않고 분수에 넘치지 않는 선에서 하는 것이 부조의 의미에 맞다고 생각한다. 물론 특별히 친하거나 친척인 경우에는 5만∼10만원까지 낼 때도 있다. 결혼식이나 돌잔치 등에는 봉투만 인편에 보내고 참석하지 못할 때도 많지만 상가에는 열 일을 제쳐놓고 달려가는 편이다. “결혼식이나 회갑잔치, 돌잔치 때는 돈은 냈어도 안 가는 경우가 있지만, 안 좋은 일에는 잠시라도 들러서 얼굴을 비추고 오는 편이죠. 십시일반 도움을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 품앗이고 계속 지켜가야겠죠.” ●“축의금은 NO, 조의금은 Yes” 프리랜서 기고가인 강모(29)씨는 축의금과는 담을 쌓고 살아왔다. 그동안 친구들의 결혼식에는 특기를 살려 축가를 불러주거나 사회를 맡는 등 몸으로 때웠다. “아까워서가 아니다. 나중에 내가 결혼할 때도 안 받을 생각이다. 결혼이든 돌이든 그냥 축하할 일이지 반드시 돈으로 표현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관례적으로 남들이 해왔다는 이유로 나까지 그러고 싶진 않다.” 주위에서도 대체로 강씨의 생각을 존중해주는 편이다. 그런 일로 욕을 하거나 화를 낼 사이라면 아예 결혼식에 안 가는 게 낫다고 강씨는 말한다. 물론 그도 조의금은 꼬박꼬박 낸다. 결혼은 오랜 기간 계획을 짜고 준비를 하는 것이라서 특별한 도움이 필요없지만, 조사는 대부분 갑작스럽고 경황 없이 찾아오기 때문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임일영 강아연 정서린기자 argus@seoul.co.kr ■ “장례식은 꼭 참석” 男>女, 기혼>미혼 한국 직장인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조사는 장례식이고, 남성에 기혼일수록, 나이가 많을수록 장례식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평균적으로 내는 결혼식 축의금은 4만∼5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지난해 12월 말 직장인 165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꼭 참석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조사’로 50.2%가 장례식을 꼽았다. 결혼식이 40.6%로 뒤를 이었고 돌잔치는 8.3%였다. ‘장례식’이라 답한 사람들을 구체적으로 보면 ▲남자 52.7%, 여자 47.7% ▲기혼 56.0%, 미혼 47.8% ▲40대 63.5%,30대 52.6%,20대 46.1%를 기록했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기혼이 미혼에 비해, 나이가 많을수록 장례식을 가장 중요한 경조사로 생각했다. 반면 꼭 참석해야 할 경조사로 ‘결혼식’을 꼽은 사람들은 ▲남성 38.7% ▲여성 42.4% ▲기혼 35.5% ▲미혼 42.7% ▲40대 이상 32.4% ▲30대 38.5% ▲20대 43.5%로 나타나 장례식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결혼식 축의금은 4만∼5만원을 내는 사람이 전체의 57.5%로 가장 많았다. 남성(61.7%)이 여성(52.5%)에 비해, 기혼(67.3%)이 미혼(30.4%)에 비해,40대 이상(66.7%)이 20대(51.4%)와 30대(63.2)에 비해 높았다.1만∼3만원(응답 비율 25.2%)의 경우엔 여성(28.9%)이 남성(22.1%)에 비해, 미혼(30.4%)이 기혼(14.7%)에 비해,20대(30.3%)가 30대(21.1%)와 40대 이상(15.6%)에 비해 높게 나타나 대조를 이뤘다. 경제력에 따라 축의금 액수도 차이 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편 지난 7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수지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인 이상 전국 가구의 경조비 지출 규모는 한 달 평균 3만 8188원으로, 연간 45만 8000원을 조금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中 축의금 내고 부의금 NO, 美 ‘샤워파티’서 선물 전달 축하객이 많을수록 경사(慶事)는 더 기쁘고 조문객이 많을수록 조사(弔事)는 덜 슬프다고 믿는 한국과 달리, 외국의 경조사는 아주 친밀한 사람만 초대해 간소하게 치르는 경우가 많다. 일본인들은 경조사에 친척, 친구, 회사동료 등 모든 지인을 다 초청하는 대신 아주 친한 사람만 초대하고 참석자에겐 꼭 답례품을 챙겨준다. 축의금은 보통 3만엔(약 24만원)∼7만엔(약 56만원)가량, 부의금은 축의금보다 적은 1만엔(약 8만원)가량 낸다. 중국은 축의금으로 200(약 3만원)∼300위안(4만 5000원)을 내지만 부의금은 내지 않는다. 축하할 만한 일이 아니란 이유다. 서양도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결혼식의 경우 신부 친구들이 ‘샤워파티(shower party)’를 열어 토스트기, 수건 등 신부가 필요로 하는 저렴한 물품을 사서 선물한다.‘우정이 비처럼 쏟아진다.’는 의미에서 ‘샤워’란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반면 장례식에서는 카드나 꽃을 주고, 필요한 경우 1만원 정도의 돈을 모아 전달하기도 한다. 카드나 명함 문화가 발달한 것도 특징이다. 생일을 맞은 사람이나 상을 당한 사람에겐 보통 카드나 명함으로 축하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명함으로 축하인사를 보낼 때에는 명함 하단 좌측에 소문자 ‘p.f(pour feliciter : 축하합니다)’를 연필로 적어 보내는데, 명함 모서리를 접어놓으면 당사자가 없는 사이에 직접 다녀갔다는 의미다. 상대방은 고맙다는 카드를 보내거나 ‘p.r.(pour remercier : 감사합니다)’라고 적은 명함으로 답례한다. 장례식 때 받은 부의금을 기부금으로 사용하는 예도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한때 장례식 때 돈을 냈지만 식장 밖에 마련된 모금함에 넣기 때문에 누가 얼마를 냈는지 알 수 없고, 이런 돈은 주로 불우이웃에게 전달됐다. 미국 회사에서도 가족이 암으로 사망한 동료 직원을 위해 돈을 걷으면 “지금 모금하는 돈은 암 정복을 위해 수고하는 암센터로 보내질 것입니다.”라는 공지를 함께 받게 된다고 한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케이블·위성방송]

    ●MBC MOVIES 07:00 마술기연 09:00 장금이의 꿈 11:00 페이지마스터 17:00 스티븐시걸의 죽음의 땅 19:00 윈드토커 21:00 히달고 01:00 멕시멈 리스크 ●KBS드라마 09:00 행복한 여자 12:30 마왕 13:50 아줌마가 간다 15:30 스타 골든벨 17:30 헬로 애기씨 20:10 해피선데이 24:00 마왕 01:10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 ●기독교TV 11:30 생명의 말씀 12:00 버지니아참사 추모기도회 13:20 이애라목사와 찬양을 14:00 장학봉목사의 해피바이블(재) 15:05 조용기목사의 성경강해 17:00 범사에 강건하기를 ●MBN 08:20 주간 팝콘 영상 09:20 부동산 특급 알짜가 보인다 12:20 신화창조 13:20 성공예감 기업과 기업인 14:20 라이브 리플 20:10 체험 지구촌 홈스테이 21:10 다시 뛰는 대한민국 ●Q채널 08:00 호치민 루트 10:00 TV동물농장 11:00 요리보고 세계보고 12:00 이웃사촌 13:00 인간극장 16:00 공룡대탐험 23:00 리얼다큐 천일야화 24:00 서바이버 ●GS홈쇼핑 08:20 보험 09:20 이진아, 오영실의 똑소리살림법 11:20 생활용품 12:20 속옷 13:20 파리진출기념,LONE특별전 3탄 14:20 패션 15:20 생활용품 16:20 주방가전 17:20 레포츠 ●SBS스포츠채널 07:00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10:30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야쿠르트 14:50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요코하마 21:30 프로야구 두산:LG 01:00 K리그 대전:서울 ●EBS플러스1 07:00 EBS기본과 특별한(종합) 영어테마독해, 영문법 즐겨찾기 08:40 EBS기본과 특별한(종합) 국사, 수학10-가(1)(2) 11:10 EBS기본과 특별한(종합) 국어(상)(1)(2), 도덕 13:40 EBS포스(종합) 수학Ⅱ(1)(2) 15:10 EBS포스(종합) 영어구문투어 16:10 EBS포스(종합) 수학Ⅰ(1)(2) 18:10 EBS포스(종합) 영어독해유형 19:50 잊혀져 가는 것들(재) ●EBS플러스2 08:30 주택관리사 시험대비 강좌(재) 10:00 청소년드라마 비밀의 교정(1)(2) 11:45 꾸러기 실험실 12:30 춤추는 소녀 와와 13:00 동물대탐험 구리구리 댕댕(1)(2)(3) 15:30 초등학교 3학년 국어, 수학(재) 17:30 초등학교 5학년(재) 국어, 수학(재) 20:00 빵빵 그림책 버스 21:20 모여라 딩동댕(재)
  • 20년만에 불러본 ‘가리봉동 아리랑’

    “퇴근길은 몹시 춥다. 회사는 1공단에 있고, 그래서 다른 이들은 거의 1공단 근처에 방을 얻어 살고 있었으나 우리들의 외딴 방은 3공단에 있다. 그곳에 전철역이 있기에. 그 전철을 타고 큰오빠는 동사무소에 가야 하고 셋째오빠는 학교에 가야 하기에. 그날 따라 외딴 방으로 돌아가는 길은 멀고 춥다. 내일부터 노조원들은 잔업 거부인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사촌과 나는 떨고 있다.”(신경숙의 ‘외딴 방’ 가운데) 지난 22일 오후 2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의 한 카페. 소설가 신경숙(사진 왼쪽)씨와 방현석(오른쪽)씨가 독자 30명과 함께 자신들의 작품배경이 됐던 가리봉동 일대를 둘러보고 자리를 잡았다. 이어 기타리스트 신해원씨의 연주를 배경으로 신씨는 ‘외딴 방’, 방씨는 소설집 ‘내일을 여는 집’ 가운데 ‘새벽출정’의 일부를 직접 낭송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뜨거운 토론. 독자들은 작품의 배경을 가리봉동으로 정한 이유와 작품 속에서 풀어내고자 했던 내면의 세계가 무엇인지 작가들에게 묻고, 작가들은 젊은 날 자신들에게 다가왔던 가리봉동의 의미를 진실된 목소리로 설명했다. 작품이 태어난 지 20여년이나 지난 뒤여서 이미 ‘구로공단’은 디지털단지로 ‘환골탈태’된 상태다. 하지만 작가와 독자들은 가리봉시장, 가리봉 5거리, 가산디지털단지역 등을 함께 걸으며 문학의 현장을 몸으로 느꼈다. 문학나눔사업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서울 속 문학투어’의 첫번째 행사인 ‘문학, 다시 가리봉동을 가다’는 이렇게 오후 5시까지 계속됐다. 문학적 배경이 되는 서울의 특정 지역공간을 작가와 독자가 함께 찾아 그곳의 문학적 의미를 되새기고, 작가와 독자가 문학의 현장에서 직접 소통함으로써 문학을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사이다. 인천에서 노동자 생활을 한 방씨의 등단작 ‘내딛는 첫 발은’은 구로공단을 배경으로 80년대 후반 노동자의 현실을 비장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신씨의 장편 ‘외딴 방’에는 낮에는 여공으로 밤에는 산업체고등학교 학생으로 살아야 했던 작가 자신의 체험 등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외딴 방’에서는 80년대 중반의 구로공단과 가리봉동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가리봉동과 구로공단은 두 작가에게 젊은 시절의 열정과 고통을 함께 앓게 한 공간인 셈이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어머니와 쌀자루 / 이영희

    어머니와 쌀자루 / 이영희

    안 먹어도 배부르고 좁은 셋방살이를 해도 행복한 날. 넉넉함에 저절로 흐뭇해지는 그날은 바로 20kg 쌀 한 포대를 들여놓는 날이다. “쌀독에 쌀이 가득하면, 부자가 된 것 같아요”라는 2층 새댁의 말처럼 나 역시 월급날보다 쌀을 사는 날이 더 뿌듯하고 든든하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전파상이 하는 일을 하셨다. 전파상을 했다고 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말하기엔 우린 너무 넉넉지 못했기 때문이다. 좁은 방 여기저기에는 납땜 기구, 고장 난 가전제품, 온갖 부속품들이 가득했고, 색색의 전선이 천장에 매달려 있었다. 서울로 원주로 다니며 무거운 물건들을 손수 사오시던 아버지는 3대 독자에 유복자셨는데 딸만 넷 둔 것을 늘 괴로워하셨다. 자식들 키우랴, 소작 밭 일구랴 어머니의 고생은 끝이 없었다. 공납금도 제대로 못 내며 간신히 학교를 다니던 나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공부보다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어느 봄날의 화창한 토요일 오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혹시 내가 뭘 잘못했나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교무실에 가니, 선생님께선 양호실로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곳에서 선생님은 매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쌀자루를 가져가라고. 순간 면으로 된 흰 자루에 한 말쯤 되는 쌀이 담긴 것이 보였다. 이번 불우 학우 돕기에서 걷은 것이라며 비록 힘들더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고 다독거려주셨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많이 망설였다. 도저히 가져갈 수가 없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때처럼 비참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 쌀을 보면 기뻐하실 어머니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머니는 늘 쌀 걱정을 하셨다. 남들은 농사지어서 쌀 걱정은 않는데 시골에 살면서도 쌀이 없어 늘 이웃집으로 쌀을 꾸러 다녀야 했던 어머니의 궁색함이 장녀인 나를 더욱 짓눌렀다. 쌀밥 한번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이었던 우리 가족. 한참 예민한 사춘기 소녀의 자존심이 문제가 아니었다. 의외로 순순히 대답하는 나를 보시고 안심하신 선생님께서는 무거우니 옆집 사는 친구를 불러 같이 들고 가게 하셨다. 선생님의 따스한 배려로 내 가방의 책은 모두 친구 가방으로 옮겨졌고, 나는 부끄러운 생각에 쌀자루를 가방에 강제로 쑤셔 넣었다. 교복을 입던 시절, 내가 들고 다니던 검은 가방은 다행히 크기가 커서 쌀자루가 간신히 들어갔다. 무거운 쌀자루가 비죽이 튀어나온 가방을 두 손으로 껴안다시피 하고, 남학생이라도 볼까 두려워 정신없이 교문 앞 스쿨버스에 올랐다. 내 눈치만 살피는 친구는 아랑곳없었고 어서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집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쌀자루를 독에 던져버렸다. 아득히 추락하는 내 자존심, 툭 소리를 내며 떨어지던 쌀자루…‘…. 그날 저녁 어머니의 물음에 모른다고만 했다. 어머니는 영문도 모르고 먹을 수는 없다고 하셨고, 덕분에 오랫동안 쌀자루는 쌀독에서 쉴 수 있었다. 유난히 고집이 세었던 나는 어느 날 나는 동생과 몸싸움까지 하며 심하게 다투었다. 똑똑하고 명랑해서 반장이며 전교부회장을 도맡아 하던 동생과 나는 성격 차가 심해 자주 싸웠는데, 그날 유난히 심하게 다투자 어머니는 언니가 참아야 된다며 나만 빗자루로 마구 때리시는 것이었다. 설움에 복받친 나는 갑자기 쌀자루를 가져온 게 나라며, 한술 더 떠서 그거 가져오는데 얼마나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했는지 아느냐고 어머니에게 마구 퍼부어댔다. 어머니는 통곡을 하셨다. 그렇게 서럽게 우시는 건 외할머니 돌아가셨을 때 외엔 본 일이 없었다. “싫다고 하지, 어떻게 가져왔니‘?” “불쌍한 내 새끼, 우리 영희!” 어머닌 내 손을 쓰다듬으시며 오래오래 하염없이 우셨다. 다음 날 아침, 우린 그 쌀로 지은 밥을 먹었다. 어렵긴 어려웠던 때인가 보다. 예순 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한 봉투씩 혹은 두 봉투씩 가져온 쌀은 일반미뿐만 아니라 보리쌀, 정부미에 강원도에서 흔히 먹던 옥수수 가루까지 섞여 있었으니 난생 처음 먹어보는 밥맛이었다. 그 후로도 난 가끔 불우 학우 돕기로 학용품이나 양말을 받았지만, 쌀자루를 받았던 그 가슴 쓰리면서도 한편으론 기뻤던 경험은 다신 없었다. 내가 학용품이 든 봉투를 가져오면 친한 친구는 또 글 써서 상 받았냐며 부러워했는데, 그 친구가 이 사실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선생님과 나 그리고 몇몇 가난한 친구들만이 알았던 이야기. 은밀히 볼펜과 공책을 주시던 선생님의 자상한 마음은 지금 생각해도 감사하고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답다. 일주일 전, 친정 고모댁에 다녀왔다. 사촌 언니가 보리밥이 먹고 싶다고 하여 오랜만에 별미로 보리밥을 먹었는데, 어머니 생각이 났다. 연세 드신 어른들은 일부러 잡곡을 섞어 드신다는데, 어머니는 보리밥과 보리쌀 섞인 밥을 유난히 싫어하신다. 하얀 쌀밥이 제일이시란다. 보리밥을 너무 많이 드셔서 먹히질 않으신다니 별미로 보리밥을 비벼 맛있게 먹는 내 입맛이 부끄러웠다. 쌀을 한 포대 늘어놓았다. 두 아이를 둔, 서른한 살의 둥그런 내 그림자조차 영락없는 어머니 모습이다. 어려운 요즘, 자존심보다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가져갔던 쌀 한 자루가 부쩍 생각난다. 웃는 얼굴 대신 그토록 서러이 통곡하시던 어머니…‘…. 두고두고 어머니 마음에 상처로 남았던 쌀 한 자루. 아무도 몰래 움 틔우는 목련의 아픔처럼, 시리게 다가오는 그날의 기억이 쌀 부대의 뜯겨지는 실밥처럼 줄줄 풀려난다. 그땐 오히려 담담하더니 왜 새삼 지금 이리도 눈물이 날까‘? 의지는 운명을 이기리라 자신만만하던 이십 대를 힘겨이 보내면서 포기를 배웠고, 궁상스럽게 느껴지던 가난한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요즘은 더욱 만만치 않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마지막까지 붙들고 살고 싶은 꿈이 있다. 사랑이 있다. 어서 봄이 왔으면 좋겠다.(1998) ‘이영희‘_ 함민복 시인은 ‘시 한 편에 삼만 원이면 /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라고 했지요. 어머니의 웃는 낯이 보고 싶어 창피함을 무릅쓰고 받아든 쌀 한 자루가 어머니를 울리고,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립니다. 이 글 한 편에 우리 마음도 따뜻한 밥이 됩니다. 희망예보 <오늘은 맑음>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6) 역관 명문 인동 장씨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16) 역관 명문 인동 장씨

    지금까지 확인된 조선시대 잡과(雜科) 합격자는 모두 6122명이다. 이 가운데 역과가 2976명, 의과가 1548명, 음양과가 865명, 율과가 733명 순이었다. 산학(算學)은 정조 즉위년(1756)부터 주학(籌學)이라고 했는데, 잡과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에 취재(取才)를 통해 1627명 이상 선발했다. 역과가 가장 많은 합격자를 냈는데, 인조가 병자호란 때에 남한산성에서 나와 청나라에 항복한 이후 역관(譯官)의 업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조정에서는 사신들의 여비를 공식적으로 지급하지 않고,1인당 인삼 여덟자루(80근)를 중국에 가져다 팔아 쓰게 했다. 돌아올 때에 골동품이나 사치품을 사다가 팔면 몇배의 장사가 되었다. 인삼이 차츰 귀해지자, 인조 때에는 인삼 1근에 은 25냥으로 쳐서 2000냥을 가져다 무역하게 하였다. 사신들은 중국 장사꾼과 만날 수 없어 사신들의 몫까지 역관들이 대신 무역했다. 역관들이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서울의 돈줄은 역관의 손에 달려 있었다. 연암 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허생이 돈을 빌린 갑부 변씨도 역관이다. 변씨는 허생을 어영대장 이완에게 추천하여 벼슬을 주려 했다. 역관들은 막대한 재산과 해박한 국제정세를 통해 정권의 핵심에 가까이 다가갔다. 역관의 딸로 왕비에까지 오른 장희빈이 대표적인 예이다. 인동 장씨는 역과 합격자가 22명뿐이라 전체의 1%도 채 안되지만,1등 합격자가 많고 정치적·경제적 수완이 뛰어난 인물들이 나와 역관 명문을 이루었다. ●역관들 중국과의 인삼무역으로 막대한 돈 벌어 원래 양반인 인동 장씨 집안에서는 20대 경인과 응인 대에 이르러 처음 역관이 되었다. 장경인은 1628년 명나라에 진향사(進香使) 역관으로 갔다가 사신이 재촉해 시세에 맞게 팔 수 없게 되자 중국인 앞에서 서장관을 욕해 나중에 심문을 당했다. 경험이 없어 첫 장사에 실패한 것이다. 그의 맏아들 장현(張炫)이 1639년 역과에 1등으로 합격해 사역원에서 중국어를 가르치고,40년 동안 북경에 30여차례나 다녀왔다.‘인동장씨세보’에는 장경인 이하 역관 집안이 빠져 있어, 김양수 교수는 역과방목과 ‘역과팔세보(譯科八世譜)’ 등을 통해 이 집안이 어떻게 역관 집안으로 정착되었는지 조사했다. 다른 역관들도 인삼 무역을 통해 부자가 되었지만, 장현은 색다른 방법을 썼다. 자신의 딸을 효종의 궁녀로 넣어, 왕을 후견인으로 삼은 것이다. ●왕명으로 화포까지 밀수입 효종 4년(1653) 7월에 대사간 홍명하가 자신의 벼슬을 바꿔달라고 아뢰었다. 사신들이 압록강을 건널 때에 화물 50여 바리에 내패(內牌)가 꽂혀 있어 물의를 일으킨데다, 불법무역을 심문당하던 역관 김귀인이 동료들의 이름을 끌어대자 형관이 손을 저어 말렸기 때문.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는 뜻이었다. 내패(內牌)는 내수사(內需司)의 짐이라는 꼬리표였으니, 역관 장현의 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도 손댈 수 없었다. 효종은 “풍문이 사실과 다르다.”면서 장현을 감싼 뒤에, 도강 초기에 50바리라는 것을 알았으면 왜 그때 조사하지 않고 지금 와서 시끄럽게 구느냐고 오히려 나무랐다. 이날의 실록 기사에는 장현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관은 이 기사 끝에 “성명을 끌어댄 자는 역관 장현인데, 궁인(宮人)의 아버지이다.”라고 붙였다. 대사간이나 효종의 입에서는 장현의 이름이 끝내 나오지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한번의 무역만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남겼는데, 무역량과 그 이익은 해가 가고 직급이 높아질수록 눈덩이처럼 커졌다. 심지어는 화포(火砲)까지 밀수입하다 청나라 관원에게 적발되기까지 했다. 염초(焰硝)나 유황(硫黃), 화포 등의 무기류는 금수품(禁輸品)이다. 선양에서 모욕적인 인질생활을 겪었던 효종은 복수를 다짐하며 북벌책(北伐策)을 강구했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기를 사들였다. 현종 7년에도 최선일이 염초와 유황을 밀수하다 적발돼 청나라 사신에게 문책당하고 몇천금의 뇌물을 썼다. 숙종 17년(1691) 6월에는 장현의 밀수건이 문서로 넘어왔다. 몇년 전에 청나라에서 화포 25대를 구해오다가 봉황성장(鳳凰城將)에게 적발된 사실이 자문(咨文)으로 이첩돼와, 조정에서도 할 수 없이 “장현을 2급 강등시키겠다.”고 청나라에 알렸다. 그가 역모를 꾸미지 않았다면, 화포는 당연히 나라에서 쓸 물건이다. 적어도 화포 밀수건은 왕의 묵인하에 저지른 사건이라고 볼 수 있다. 장현의 신임이 그만큼 두터웠고, 그에 따른 경제적 이익도 막대했으리라고 짐작된다. 응인은 경인과 사촌 간으로 선조 16년(1583) 의주에 역학훈도(譯學訓導)로 있었다. 목사와 통군정에 올라 시를 짓는데, 술을 따르고 운을 부르자 술잔이 식기 전에 시를 지을 정도로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다. 그의 아들 장형(張炯)도 취재를 거쳐 사역원 봉사를 지냈다. 그의 장인 윤성립은 밀양 변씨 역관 집안의 사위였다. 장형의 맏아들 장희식은 효종 8년(1657) 역과에 장원으로 합격해 한학직장(漢學直長)이 되었으며, 작은아들 장희재는 총융사까지 올랐다. 딸이 장희빈이니, 장희빈의 외할머니는 조선 최고의 갑부 역관 변승업의 큰할아버지 딸이었다. 안팎으로 역관 집안들과 혼맥을 이루면서, 인동 장씨도 역관 집안의 핵심이 되었다. 장희빈이 처음 종4품 후궁인 숙원(淑媛)에 봉해지던 숙종 12년(1686) 12월10일 사관은 이렇게 기록했다. ●정치력 발휘, 장희빈을 왕비로 장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았다. 전에 역관 장현은 온나라의 큰 부자로 복창군 이정과 복선군 이남의 심복이 되었다가 경신년(1680) 옥사에 형을 받고 멀리 유배되었는데, 장씨는 바로 장현의 종질녀(從姪女)이다. 나인(內人)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얼굴이 아주 아름다웠다. 경신년(1680)에 인경왕후가 승하한 후 비로소 은총을 받았다. 왕실과 가까이 했던 장현은 경신대출척으로 한때 밀려났지만, 바로 그해에 오촌 조카딸 장희빈이 숙종의 눈에 들면서 기사회생하였다. 장현이 딸을 궁녀로 들였던 것처럼, 장형도 역시 딸을 궁녀로 들였다. 인경왕후는 노론 김만기의 딸이니,‘구운몽’의 작가 김만중의 조카딸이기도 하다. 숙종 14년(1688) 10월에 장씨가 아들을 낳자 숙종은 노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원자로 정해 종묘사직에 고했으며, 소의(昭儀·정2품) 장씨를 희빈(정1품)에 봉했다. 노론을 견제하려던 종친과 남인들이 장희재 주변에 모여들자, 서인의 영수 송시열이 “원자로 정하는 것이 너무 이르다.”고 상소했다가 남인의 공격을 받고 삭탈관직당했다. 노론의 등쌀을 지겨워했던 숙종이 장희빈에게 마음이 기울면서 남인을 편들어준 것이다. 다음날로 목내선을 좌의정에, 김덕원을 우의정에, 심재를 우의정에 임명하면서 정국을 뒤바꿨다. 이것이 바로 기사환국이다. 장희빈의 아버지 장형은 영의정, 장수는 좌의정, 할아버지 장경인은 우의정에 추증하여, 역관 집안이 정국의 핵심에 들게 되었다. 목내선은 “역관 장현이 청나라 내각의 기밀문서를 얻어온 공로를 표창해 주십사.”고 아뢰었다. 이미 품계가 숭록대부(종1품)까지 올라 더 이상 오를 수 없지만 “600금이나 비용을 쓴 점을 감안하여 그 자손에게라도 수여하자.”고 하자, 왕이 “그 자손에게라도 한 급을 올리라.”고 했다. 장희빈이 왕비로 책봉되자, 오빠 장희재도 포도대장을 거쳐 총융사에 올랐다. 숙종실록 18년 10월24일 기사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실렸다. ●서울의 돈줄 좌지우지 왕이 주강(晝講)에 나오자, 무신 장희재가 아뢰었다.“신이 주관하고 있는 총융청은 군수(軍需)가 피폐하므로, 병조판서 민종도와 상의하였습니다. 병조의 은 1만냥을 꿔다가 장차 교련관에게 주고, 사신이 북경에 갈 적에 같이 가서 잘 처리하여 그 이득을 가지고 동(銅)을 무역해다가 주전(鑄錢)하는 재료로 삼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임금이 옳게 여겼다. 이때 민종도와 장희재가 서로 안팎이 되어 마구 뇌물 주기를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했었다. 숙종이 기사환국을 통해 당쟁으로 약화된 왕권을 회복하려고 하자, 남인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 집권하고 서인에게 복수하려 했다. 장희재는 국고를 이용해 역관의 무역방식으로 재산을 불렸다. 후대의 사관은 군수(軍需)를 빙자한 무역의 이익이 결국은 두 사람의 뇌물로 쓰였을 것이라 판단했다. 수출과 수입을 통해서 몇배를 벌어들인 뒤에 그 구리로 동전까지 찍어 풀었으니, 얼마가 남는 장사였는지 계산하기 힘들다. 서울의 돈줄이 역관 집안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허생전’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SK그룹 7월 지주회사 전환

    SK그룹 7월 지주회사 전환

    SK그룹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단순하고 투명한 지배구조가 확립된다.S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은 삼성, 현대·기아차 등 주요 대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SK㈜는 11일 이사회를 열어 지주회사격이던 SK㈜를 오는 7월1일 지주회사(가칭 SK홀딩스)와 자회사(가칭 SK에너지화학)로 분할하기로 의결했다. SK는 “한층 개선된 기업지배구조를 확보하고 자회사들의 독립된 경영체제 구축을 통해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주주가치 실현 등을 위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키로 했다.”고 밝혔다. 신헌철 SK㈜ 사장은 “지주회사는 자회사에 대한 투자만 전담하고 자회사들은 독립경영체제를 갖춰 사업 경영에 집중하게 돼 경영효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단순하고 투명한 기업지배구조는 시장의 요구에도 맞는 일이지만 계열사 동반부실의 위험을 막는 장점도 있다. 지난 2월 실시한 해외투자자 설명회에서 주요 주주 및 투자자들은 지주회사 전환을 요청했다.SK㈜는 지난 3월 이사회가 새롭게 구성된 이후 본격적인 검토를 해 왔다. SK그룹은 오는 2009년 6월까지 현재의 복잡한 출자구조를 해소해 지주회사가 SK에너지화학,SK텔레콤,SK네트웍스,SKE&S,SKC,SK해운,K-Power 등 7개 주요 사업자회사를 거느리는 식으로 지분구조를 단순화할 계획이다. 지주회사 전환에 따라 SK텔레콤,SK네트웍스 등 SK㈜가 보유한 자회사 주식은 지주회사의 자산이 된다. SK에너지화학은 에너지·화학업종을 하는 데 필요한 자산과 SK인천정유, 대한송유관공사 등 사업영역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자회사 주식들을 자산으로 갖는다. SK㈜가 채택한 분할 방식은 회사 재산과 주주 보유주식의 분할을 함께 진행하는 인적 분할이다.SK㈜ 기존 주주는 이번 분할에 따라 1주당 지주회사 주식 0.29주, 사업 자회사 주식 0.71주를 나눠 갖게 된다. 지주회사와 SK에너지화학의 경영진은 이달 말쯤 확정된다. 지주회사는 SK㈜에서 출자한 투자회사관리실을 주축으로 조직이 갖춰진다.SK㈜의 기존 임직원 대다수는 신설법인인 SK에너지화학 소속으로 된다. 한편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인 최신원 SKC 회장과 최창원 SK케미칼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SK케미칼과, 이 회사가 지배하고 있는 SK건설은 수직 출자구조에서 배제됐다.SK그룹의 사촌간 지분 정리에 따른 것이다.SK그룹의 지주회사 전환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사촌간 지분도 완전히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애들 장난이라고요?” 성폭력 가해자 24%가 14세미만

    “애들 장난이라고요?” 성폭력 가해자 24%가 14세미만

    # 1 지난 3월 서울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A(5)양은 같은 단지에 사는 초등학생 B(11)군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B군은 A양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성추행을 하다가 A양이 소리를 지르자 도망쳤다.A양 어머니가 B군 부모에게 항의하자 “미안하다. 아이들 장난인데 뭘 그러냐.”며 아들을 야단치는 것으로 끝냈다.B군은 이날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본 뒤 밖으로 나왔다가 성추행을 했다. 결국 A양 가족은 B군을 피해 이사를 가야 했다. # 2 지난 2월 C(5)양은 설날 가족모임에서 사촌오빠인 D(11)군 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해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C양의 어머니는 병원에서 딸의 성기에 산부인과적 염증이 있는 것을 발견한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C양의 어머니는 “D군이 성추행을 하며 이 사실을 이야기하면 너희 엄마와 우리 엄마가 싸운다며 겁을 줬다더라. 제사도 명절도 끔찍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동성범죄, 장난이라고? 청소년 성범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형사처벌은 물론 보호처분도 받지 않는 12세 미만 어린이의 성범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섰다. 이들의 범죄는 ‘아이들 장난’이라는 식의 사회적 무관심 속에 있지만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재범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0일 성폭력 아동 전문상담소인 해바라기아동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직접 상담했거나 피해자가 지목한 성폭력 가해자 645명 가운데 만 7세 이하가 58명(8%),8∼14세 미만이 101명(16%)에 달했다. 지방법원 소년부에 송치해 보호처분을 할 수 있는 12∼14세가 포함된 통계이지만 어린이·유아 성폭력 가해자들의 심각성을 엿보기에 충분하다.12세 미만의 성폭력 범죄는 법적으로 책임을 지울 수 없는 데다 가해자 부모는 물론 피해자 측도 숨기는 경우가 많아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실정이다. 김소향 해바라기아동센터 전문상담원은 “아이들의 성적 공격 수위가 ‘장난’ 수준을 넘어서 어른들의 범죄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면서 “청소년 성범죄 재범률이 다른 범죄에 비해 높고, 적절한 치료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재범률을 뚝 떨어뜨릴 수 있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16세 미만 성범죄자 치료프로그램 없어 현재 10대 성범죄자에 대한 법원의 치료프로그램 수강명령은 16세 이상으로 제한돼 있다. 일부 상담센터를 제외하면 16세 미만에 대한 상담·치료 프로그램이 사실상 없는 셈이다. 이금형 경찰청 여성청소년과장은 “외부 자극에 민감한 어린이 가해자들이 늘어난 것은 인터넷 음란사이트의 영향이 큰 만큼 차단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가족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무엇보다 치료프로그램 수강명령 나이를 14세 이상으로 하향 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신의진 연세대 의대 정신과 교수는 “청소년보다 어린이 성폭력 가해자들이 훨씬 심각하다. 상담 과정에서 아이라고 보기에도 섬뜩한 애들을 많이 만났다.”면서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여서 치료하지 않으면 반복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지적했다. 그는 “맞벌이와 이혼, 별거 등 우리 사회의 가족제도가 아이들을 보호하기엔 너무 허술해졌다.”면서 “일탈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스크린해 부모에게 통보하고 치료하는 등 학교보건의료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회봉사명령과 기준을 맞추다 보니 16세 이상이 됐다.”면서 “소년법 개정안에서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것에 맞춰 수강명령 기준도 조정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 박창규기자 argus@seoul.co.kr
  • “박태환등 박씨가 국위선양” 으스대다 이웃간 주먹다짐

    박태환 선수 등 박씨 성을 가진 운동선수들이 국위 선양에 앞장선다며 으스대다 이웃간에 주먹다짐이 벌어졌다.28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이웃사촌인 택시 기사 박모(60)씨와 동료 운전사 김모(46)씨는 자신들이 사는 관악구의 한 아파트 단지내 벤치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이들은 최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거머쥐며 연이은 ‘낭보’를 전한 박태환 선수를 화제로 삼아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그러나 술이 과하게 오르자 박씨가 “박태환뿐만이 아니다. 박지성, 박찬호, 박세리 등 나 같은 박씨 덕에 나라 위상이 올라간다.”며 가문 자랑을 늘어놨다. 이에 은근히 부아가 치민 김씨는 “그만 좀 하라.”고 짜증을 냈고 박씨도 “왜 박씨 자랑하면 안 되냐.”며 말다툼을 벌였다. 결국 주먹다짐으로까지 이어졌고, 사이 좋게 술잔을 기울이던 이들은 경찰에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5) 실패에서 배운다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5) 실패에서 배운다

    성공한 귀농인도 많지만, 실패해서 탈농(脫農)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농림부 등에 따르면 귀농한 사람 3명 가운데 2명은 농촌 정착에 실패한다. 농촌에 정착하기는 그만큼 어렵다. 지금 귀농을 꿈꾸고 있다면 실패 사례를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앞서 귀농에 실패한 사람들이 겪은 경험은 새내기 귀농인들이 닥칠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데 훌륭한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된다. 전문가들은 조급한 한탕주의와 무리한 투자, 지역사회 부적응 등이 귀농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생강·양배추만 짓다 2년만에 빚더미 A(43)씨는 지난 99년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서산으로 귀농했지만,2년 만에 1억원 가까운 빚만 지고 다시 서울로 돌아갔다. 그의 사례는 노력 없이 ‘대박’만을 좇는 ‘한탕주의’ 농사로 ‘쪽박’을 찬 귀농 실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A씨의 잘못은 귀농을 농사꾼이 되기 위한 과정이 아닌 단순 ‘돈벌이’ 수단으로 봤다는 것.A씨는 귀농 당시 다른 귀농 준비자보다 무척 유리한 상황이었다. 그는 고려대 농과대 대학원을 졸업해 농업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춘 데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농지 5000평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A씨는 귀농 첫 해 농지 5000평에 모두 생강을 심었다. 당시 생강 가격이 큰 오름세를 보였기 때문에 큰 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귀농전 귀농교육단체 등에서 위험분산을 위해 소량다품종으로 재배할 것을 교육 받았지만, 돈 욕심에 무시했다. 그러나 그 해 생강 농사가 너무 잘되는 바람에 가격이 폭락,A씨는 귀농자금 5000만원을 고스란히 날렸다. 그러나 A씨의 ‘도아니면 모’식의 투기농업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이듬해 양배추를 모두 심었고, 또 가격이 폭락하면서 수천만원을 잃었다.A씨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기보다 돈으로 밀어붙이면 농사도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다.”고 후회했다. ●초기투자 2억… 주말 즐기다 ‘빈손´ B(55)씨는 6년 전 2억원의 여윳돈을 갖고 경기 이천 부근으로 귀농했다. 그는 한달에 최소 100여만원의 소득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3000여평의 땅을 구입하는 데 1억원 가까운 돈을 썼다. 게다가 전원 주택과 화훼용 비닐하우스를 짓는 데 또 1억원을 들였다. 그러나 B씨는 농사일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주말은 서울로 올라가 사람들을 만나거나, 집으로 손님을 불러 들여 즐겼다. 결국 비닐하우스 관리 소홀로 꽃들이 대부분 얼어 죽고 말았다. 이듬해 농협 등으로부터 5000여만원을 대출받아 다시 꽃을 키웠지만, 경험 부족으로 또 다시 실패했다. 결국 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을 팔고 서울로 올라가야 했다.B씨는 “땅과 집을 사는 데 너무 많은 돈을 들여 정작 농사지을 돈이 부족했고, 농사 경험을 쌓는 노력도 게을리했다.”고 뒤늦게 후회했다. 경기 분당에 사는 C(40)씨는 경기 용인 전원주택을 경매로 낙찰받고 귀농을 감행했다. 그러나 그 지역은 평소 귀농후 꿈꾸던 약초, 버섯, 삼 등은 재배가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그저 논·밭농사 정도만 가능했다. C씨는 가진 돈과 은행 대출금으로 만든 3억여원을 모두 1000여평의 논과 밭을 구입하는 데 썼다. 그러나 농사 경험이 없어 땅을 대부분 놀리기 일쑤였다. 겨우 앞 마당에 텃밭이나 가꾸는 정도였다. 소득이 거의 없자 서울로 올라갔고, 귀농전 하던 임시직 일을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기름값 부담에 몇달 만에 포기해야 했다. 그는 결국 용인의 집을 버리고 분당으로 돌아가 의료 기구 판매 일을 하고 있다.C씨는 “무계획·무대책 귀농으로 인한 무리한 초기 투자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돌이켰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D씨는 지난 2001년 직장을 잃고 고향인 충북 청주로 귀농했다. 첫 해와 이듬해는 부모님이 마련해 주신 밭을 일구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다 욕심이 생기면서 단기간에 많은 양의 토마토를 수확할 수 있는 ‘양액재배’ 시설 등을 마련하기 위해 3000여만원을 대출했다. 그러나 토마토 가격이 하락하면서 대출금 갚기가 힘들어지자 결국 농사를 포기하고 말았다. ●도시서 출퇴근… 부인과 갈등 도시 U턴 지난 2002년 서울 직장을 그만두고 강원도로 내려간 30대 중반의 E씨. 그는 농촌관광 사업을 하겠다며 폐교를 임대해 숙박시설을 마련했다. 그러나 시설 관리를 몸소 하지 않고 서울서 온 또 다른 귀농자에게 관리를 맡겼다. 본인은 인근 도시에 집을 사서 출퇴근을 했다. 게다가 폐교를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한 채 술을 파는 유흥음식점으로 개조했다. 결국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폐교 임대가 취소돼 적자 상태에서 사업을 접어야 했다. 30대 후반의 F씨는 2005년 4월 귀농을 결심, 아무 연고 없는 경북 영양에 둥지를 틀었다.2000평 고추농사로만 연간 2000만원 이상 소득을 올렸고, 아내와 아이들 셋을 키우기에 크게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내와 갈등을 피할 수 없었다. 아내는 농촌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외로움을 호소했다.30대 중반의 주부로서 대부분 60대 이상인 마을 여성 주민들과 쉽게 동화하기 힘들었다. 특히 농촌에서는 불가능한 아이들 학원 수강 문제를 놓고도 의견 대립이 심했다. 문화생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의료 시설 부족에 대한 아내의 불평도 나날이 높아갔다. 결국 F씨의 가족들은 지난 2월 짐을 싸야 했다.F씨는 “가족 동의 없이 제 의지만으로 귀농을 고집, 아내가 농촌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것이 실패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귀농사모’가 말하는 성공 수칙 “조그만 차이가 성공과 실패라는 큰 변화를 가져옵니다.” 정성근(43)‘귀농사모(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 대표는 귀농의 성공과 실패에는 그럴 만한 이유들이 있다고 말한다. 귀농사모는 3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의 자발적 온라인 귀농동호회이다. 정 대표는 “도시 직장에 첫 출근하는 신입사원의 각오를 농사일에서 가지면 귀농 실패는 없다.”고 강조한다. 다음은 그가 현장에서 느낀 귀농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조건들. ●실패하는 귀농의 5대 조건 1. 공부안하기 영농기술과 시골·농촌 문화를 습득하는 데 소홀하면 할수록 농사일은 힘들고 지겨워진다. 2. 게으름 피우기 일찍 일어난 새가 먹이를 먹는다. 늦잠 자고 일 안하는 만큼 소득은 줄고 지역 주민들은 떨어져 나간다. 3. 잘난 척 배운 척 있는 척하기 귀농후 3년 동안은 시집살이하는 셈 치고 겸손하라. 농사일 만큼은 시골 사람이 한수위다. 4. 은둔하기 유유자적 한답시고 주민과 담 쌓으면 농사일과도 담을 쌓게 된다. 5. 자만하기 귀농 첫 해 만족할 만한 소득을 올렸어도 배우는 자세로 더 열심히 일하라. 아직 고비가 더 남았다. ●성공하는 귀농의 10대 조건 1. 귀농생활을 널리 알려라 주변 친구·친지에게 귀농 결심을 알려라. 기대 이상의 도움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 2. 버리지 마라 도시에서 필요 없던 헌 옷도 농촌에서는 훌륭한 지하수 동파 방지용 덮개가 된다. 3. 인맥을 최대한 활용하라 귀농 동호회 등에 가입해 선배 귀농인의 조언을 구해라. 농협 직원과 공무원도 알아두면 좋다. 4. 적을 만들지 마라 시골은 익명성과 거리가 멀다. 튀는 행동으로 반감을 사면 곧바로 낙인찍힌다. 5. 동네행사에 적극 참석하라 주민들과 접촉 빈도를 높여 호의를 이끌어내라. 성공의 지름길이다. 6. 동네 일을 맡아라 ‘이웃 사촌’이 되면 주민과의 동화는 자연스레 이뤄진다. 7. 인사 잘해서 남주나 인사만 잘 해도 주민과의 관계에서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8. 지역사회에 기여하라 농사로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는 지역 주민을 위해 환원하라. 9. 당당하게 행동하라 한 없이 저자세로 나가지 마라. 일단 무시당하면 회복하기 힘들다. 10. 교류하라 농업 관련 단체 등 지역 사회와 연결고리를 맺어라.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국내 조선소 ‘샐리던트’ 바람

    국내 조선소에도 ‘샐리던트(salident)’ 바람이 거세다. 샐리던트는 샐러리맨(직장인)과 스튜던트(학생)의 합성어. 공부하는 직장인을 일컫는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중공업은 이달 초 경남 거제조선소에 조선해양공학과 학사과정을 신설했다. 부산대 조선공학과 교수진이 직접 조선소에서 생산시스템 공학 등 20여 과목을 강의한다. 퇴근후 저녁시간을 이용해 4학기 동안 총 70학점을 따면 정식 학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삼성중공업측은 “거제조선소 주변에 4년제 대학이 없어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진주나 부산으로 공부하러 다니는 직원들이 적지 않았다.”며 “조선소안에 학사과정을 설립함으로써 공부에 대한 열망도 충족시켜주고 생산성 향상도 꾀할 수 있게 됐다.”고 흡족해했다. 이에 질세라 거제조선소 이웃사촌인 대우조선해양 직원들도 올해부터 거제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있다.30명씩 열번에 걸쳐 총 300명이 평생교육원에서 기계·전기·전자 등의 강의를 듣는다. 대우조선측은 “효과가 좋으면 아예 조선소안에 교육원을 설립하는 방안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주의 90% 이상이 외국인인 점을 감안, 해마다 100여명씩 12주간 영어 집중교육도 받는다. 일찌감치 자체 교육을 시작한 현대중공업은 ‘현중기술대학’을 통해 벌써 상당수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대학은 1999년 회사내 훈련원에 설치됐다. 고등학교만 나온 과·차장급 간부사원들이 1년간 이곳에서 조선공학·경영학 등을 공부한다.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세계최고 과학철학 ‘라카토슈상’ 런던대 장하석 교수 수상 영예

    “아직 학자로서 젊은 편이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이라 기쁩니다.” 런던대(UCL) 과학철학 교수로 재직 중인 장하석(40)씨가 과학철학 분야 세계 최고의 상인 라카토슈 상 올해 수상자로 결정됐다. 장 교수는 2004년 출간한 저서 ‘온도계에 담긴 철학(Inventing Temperature: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게 됐다. 런던정경대(LSE)에서 과학철학을 가르쳤던 헝가리 출신 세계적인 과학철학자 임레 라카토슈를 기려 그의 제자인 선박재벌이 만든 상으로, 최근 6년 동안 과학철학 분야에서 나온 영어 서적 가운데 최고를 선정했다. 장 교수는 “온도는 일상 생활에서 가까이 접하는 쉬운 과학적 개념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려운 문제”라며 “과학이 발달하기 전에 제일 처음 온도를 어떻게 쟀을까, 처음 온도계는 정확했을까 하는 의문들을 풀어나간 책”이라고 설명했다. 처음 온도에 대해 관심을 가진 뒤 책을 내기까지 10년 정도 이 문제에 골몰했다고 장 교수는 말했다. 장 교수의 집안은 유명한 학자들을 다수 배출한 호남의 천재 집안으로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장재식 전 산자부 장관이고, 형은 유명한 경제학자인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다. 장하진 여성가족장관,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사촌지간이다. 장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학부를 마치고, 스탠퍼드대학에서 박사를 받았으며,1995년부터 런던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상식은 4월18일 런던 정경대에서 열리며, 올해 공동 수상자인 하비 브라운 옥스퍼드대학 교수와 상금 1만파운드를 절반씩 나눠 받는다.런던 연합뉴스
  •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남해 설흘산

    [산이 좋아 산으로] 경남 남해 설흘산

    남해군 남면에 자리한 설흘산은 동쪽으로 앵강만, 서쪽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 여수만, 남쪽으로 태평양의 출발점 남해를 두루 끼고 있어 산행 중 어디서든 바다 조망이 가능하다. 특히 ‘설흘산 공룡능선’으로 불리는 암릉에 서면 마치 파도 위에 누운 거대한 용의 등뼈를 걷는 듯 짜릿한 황홀경을 맛볼 수 있다. 산행은 대체로 응봉산(472.7m)을 한데 넣어 이뤄진다. 전체적인 산군은 설흘산을 기준점으로 했을 때 동쪽 망산(406.9m)과 서쪽 응봉산을 포함하는데, 암릉은 주로 응봉산에 집중돼 있어 두 산을 연결해 산행하는 것이 좋다. 지형도 상에는 서쪽 바위길 위에 문산(422m)·낙뇌산(257m)·옥녀봉(171m) 등이 늘어서 있지만 특별한 이정표가 없으므로 손쉽게 찾아내기 힘들다. 공식적으로 암릉은 ‘진입금지’가 원칙이며 안전한 우회길이 열려 있다. 선구마을 ‘노을펜션’ 이정표를 보고 시멘트 포장길을 들어서면 수령 350여년이 넘었다는 큼직한 팽나무가 산행객들을 반긴다. 초입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왼쪽에 인공으로 파놓은 듯한 굴이 하나 나온다. 굴 속을 잠시 살펴보고 오름길을 따르면 곧 쉬어가기 좋은 너른 암반이다. 능선을 따라 8분쯤 걸으면 제단 같은 평평한 바위와 만난다. 비석도 세워져 있으나 비바람에 마모돼 글씨를 읽어내는 일은 어렵다. 오솔길 걷듯 부드러운 능선을 따르는가 싶으면 무너져 내릴 것처럼 포개진 바위들이 길을 막고 서서 걷는 재미를 높인다. 응봉산을 2㎞ 못 남긴 지점으로 산은 서서히 공룡 등뼈로 변신한다. 초입을 출발 35분 후쯤 뾰족뾰족한 암릉이 산행객들을 맞는다. 암릉 시작 구간엔 밧줄이 쳐 있고 ‘진입금지’ ‘길 없음’이란 경고문구가 붙어 있다. 바위벽을 왼쪽에 두고 안전한 우회길을 선택해 10분쯤 올라선다. 암릉구간은 ‘설흘산의 공룡능선’이란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아찔하다. 암릉은 20분 정도 흘러가다 잠시 숨을 돌린다. 등을 돌려 바닥으로 내려서면 계단이 설치된 우회길(암반)이다. 암릉은 10여분간 더 이어지다가 응봉산 정상을 500m 앞두고 그 기운이 쇠잔해진다. 응봉산에서 이정표를 따라 내려서면 완연한 오솔길이다. 육조문 갈림길을 지나면 너른 헬기장(설흘산 1.5㎞ 전방)이 나오고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두어 개의 갈림길을 만나는데, 설흘산 봉수대에 올랐다가 이곳 안부로 회귀해 가천마을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길이 가파르다.10분쯤 힘을 쏟고 올라서면 다시 홍현마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온다. 정상은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100m 남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봉수대에 올라선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설흘산 봉수대는 높이 6m 직경 7m 정도의 방형 봉수대로 왜구의 침입과 재난 시 남해 금산과 전남 돌산 봉수대로 연락되었던 곳이다. 번잡한 봉수대에서 남쪽으로 5분쯤 가면 서포 김만중이 유배생활을 했던 섬 노도가 코앞에 보이는 전망바위에 닿는다. 전망바위에서 곧바로 이어진 길은 산행 안내도마저 제대로 표기하지 않은 곳이지만 등산로는 뚜렷하다. 산행 마무리는 가천마을이 되어야 한다. 설흘산 든든한 기운을 병풍 삼아 펼쳐진 가천마을 옹골진 다랑이논엔 새파란 마늘이 한창이다.‘옛날에 한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더라.’는 유래에서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가천의 촘촘한 농토에는 자투리 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남해인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여행 정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진주IC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 후 사천IC로 나와 3번 국도를 따르면 창선·삼천포대교와 만난다. 남해대교를 건너려면 진교나 하동IC에서 19번 국도를 따른다. 그후 1024번 지방도로로 진입한다. 초입인 선구리(사촌해수욕장 옆)는 남해읍에서 남면 소재지 가기 전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10분 정도 걸리고, 창선·삼천포대교를 건넜다면 이동면을 거쳐 가천(다랭이마을)을 지나 20여분 진행한다. 글 이영준 황소영(월간 MOUNTAIN 기자)
  • 재벌 3·4세 경영참여 “한발 앞으로”

    재벌 3·4세 경영참여 “한발 앞으로”

    주요 그룹의 임원인사가 마무리됐다. 지난 연말부터 석 달 가까이 달려온 ‘인사 레이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오너 주자’들의 약진이다. 특히 3·4세로 넘어가는 ‘젊은 피’가 대거 승진했거나 새로 수혈됐다. 안팎의 불확실한 경영 여건과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경쟁에 대비해 안정적인 오너 체제를 두텁게 쌓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영능력에 대한 검증이나 사후 평가 없이 관대하게 이뤄지는 ‘핏줄 등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경영 전면 속속 부상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의 외아들인 재용씨는 올초 전무 승진과 동시에 고객총괄책임자(CCO)를 맡았다.2001년 상무보로 입사한 지 6년 만이다. 현대·기아차그룹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 의선씨는 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입사해 2005년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다. 언제 현대차 사장을 맡을 것인지가 핵심 관심사다. 현대가(家)의 다른 ‘선(宣)’자(字) 항렬들도 어깨가 무거워졌다. 정몽근(정몽구 회장의 동생) 현대백화점 명예회장의 일선 퇴진으로 장남 지선씨가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고 있다. 대표이사 부회장이다. 차남 교선씨는 입사 3년 만에 올초 전무로 초고속 승진했다. 유통 라이벌인 신세계그룹도 3세 체제를 구축했다. 이명희(이건희 회장의 동생) 회장의 외아들 정용진씨가 이사대우 입사 12년 만인 지난 연말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대표이사 타이틀만 남겨두고 있다.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이건희 회장의 형)씨의 장남 재현씨는 삼성가 3세 가운데 가장 먼저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2002년부터 CJ를 이끌고 있다. 애경그룹 장영신 회장의 두 아들인 채형석·동석씨도 각각 총괄부회장, 부회장을 맡아 형제 경영을 펼치고 있다. 제주항공 런칭, 삼성플라자 인수 등은 형석씨의 작품이다. 효성도 3세 체제를 공고히 했다. 조석래 회장의 세 아들 현준(사장)·현문(부사장)·현상(전무)씨가 올초 나란히 승진했다. 모두 핵심인 전략본부 근무를 거쳤다. ●요직에 포진한 잠룡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외아들 원태씨는 지난 연말 상무보로 승진했다.2004년 차장으로 입사한 지 2년 만이다. 얼마 전에는 IT 계열사인 유니컨버스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삼구 회장의 외아들 세창씨도 지난 연말 그룹 전략경영담당 이사로 승진했다. 부장 입사 1년 만에 요직에 배치됐다. 손(孫)이 많기로 유명한 두산가에는 4세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경영 복귀를 추진중인 박용성 전 그룹 회장의 장남 진원씨가 두산인프라코어 상무, 차남 석원씨가 두산중공업 부장으로 각각 근무 중이다. 그룹의 실세인 박용만(박용성 전 회장의 동생)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의 장남 서원(28)씨가 언제 경영에 합류할지가 관심사다. 서원씨는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 LG그룹에서 분리된 LS그룹은 본가와 달리 2세대인 ‘자(滋)’자 항렬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갓 합류한 20대 후계자들 LG그룹 구본무 회장의 양자인 광모씨가 가장 눈에 띈다. 딸만 둘인 구 회장은 2004년 말 동생(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을 입적했다. 광모씨는 LG전자 재경 부서에서 실무를 익히고 있다.GS그룹 허창수 회장의 장남 윤홍씨는 2002년 GS칼텍스에 입사했다. 지금은 GS건설 과장으로 근무 중이다.GS칼텍스 허동수(허창수 회장의 사촌형) 회장의 장남 세홍씨는 올초 상무로 경영에 합류했다. 대신증권 이어룡 회장의 장남 양홍석씨도 지난해 6월 공채로 대신증권에 입사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에서 나란히 유학중인 LS그룹 구자홍 회장의 장남 본웅(28)씨와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의 장남 승담(27)씨는 입사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딸들도 맹활약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장손녀인 CJ엔터테인먼트 이미경 부회장이 대표주자다.‘그룹 경영을 넘겨받을 딸’로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맏딸 정지이씨가 가장 근접해 있다. 정씨는 지난 연말 전무로 승진했다. 롯데쇼핑 신영자(신격호 회장의 딸) 부사장의 딸 장선윤 롯데쇼핑 상무와 신세계 이 회장의 딸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는 유통가의 맞수다. 정 상무가 백화점 업무에 가세하면서 세간의 화제인 ‘명품 전쟁’을 벌이고 있다. 한진 조 회장의 딸 현아씨와 두산 박용곤 명예회장의 맏딸 혜원씨도 각각 상무로 일하고 있다. 정몽구 회장의 맏딸 성이씨는 그룹내 광고계열사 이노션의 설립을 주도했다. 직함은 고문이지만 대주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동양 현 회장의 두 딸 정담씨와 경담씨, 대신증권 이 회장의 맏딸 양정연씨는 갓 입사해 ‘기초 훈련중’이다. ●화려한 이력서 창업주 세대와 달리 이들은 화려한 이력서가 특징이다. 미국 하버드대·브라운대 등 이른바 명문대학이 몰려 있는 ‘아이비 리그’ 출신들이다. 소탈하고 겸손하다는 수식어도 공통적으로 따라붙는다. 대한상공회의소 이현석 상무는 “이력서만 보면 기업들이 일부러 스카우트해올 인재들”이라면서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인들이 자질이 떨어지는데도 핏줄이라고 무조건 중용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반면 김선웅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장은 “오너 후계자들은 신상필벌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무책임한 핏줄 등용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독립된 사외이사제 등과 같은 평가장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미현 김태균 박경호기자 hyun@seoul.co.kr
  • [길섶에서] 장난/송한수 출판부 차장

    준우와 준호는 겉보기에도 ‘장난끼´가 줄줄 흘렀다. 생김새는 사뭇 다른데, 누가 사촌 아니랄까봐 그랬다. 장난을 걸 때면 까만 얼굴에 입을 삐죽거리는 모습도 얼추 닮았다. 그럴 때면 친구들은 또 무슨 꿍꿍이를 감추지 않았나 슬그미 째려봤다. 중학교 시절 이들 형제는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장난을 자주 했다. 그러나 걸리는 일은 드물었다. 뒤에도 눈이 달렸는지 선생님이나 선도반이 떴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곤 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경우도 많았다.‘어쩌다 한번’이 고약한 신세를 만들기도 했다. 얌전히 앉아 있다가 영웅심리에 이끌려 의자를 번쩍 들었나 했더니 주변이 찬물을 끼얹은 표정이다. 호랑이 담임선생님께서 지켜보고 계신 줄 혼자만 까맣게 몰랐던 게다. 장난에도 이래저래 요령이 있는 모양이다. 장난이 통할 때도, 그렇잖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다. 하긴 “계집 때린 날 장모 온다.”고 하던가.119 장난신고가 크게 늘어나자 마침내 특단책이 나왔다. 과태료를 200만원이나 물리게 됐으니. 송한수 출판부 차장 onekor@seoul.co.kr
  •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20) 한국인이 살지 않는 아프리카의 코리안 타운 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촌

    전세계에 한국인이 단 한명도 살지 않으면서 동네 이름에 ‘코리아’가 붙은 그런 곳이 있다. 현지에서는 일명 ‘코리아 사파르(Korea Sefer)’라고 부르는 곳이다. 사파르는 현지어로 ‘지역’ 정도의 의미. 아디스 아바바 시내의 아라트 키로라는 곳에서 벨라로 가는 미니버스를 타고 ‘케벨레(Kebele) 5’에서 내리면 이 마을을 만날 수 있다. 케벨레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상의 ‘동(洞)’에 해당된다. 코리아 사파르는 케벨레 5에서 케벨레 6에 걸쳐 있다. 마을은 아주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엉성한 양철지붕에 우리나라 달동네를 연상케 했다.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때 유엔 참전국 16개국 중 하나였던 에티오피아의 참전 용사들이 전쟁이 끝나 본국으로 귀환한 후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현재 약 3만명 정도가 살고 있고 이 중에 참전용사 가족들은 약 6천명 정도다. 1970년대 사회주의 체제의 돌입으로 한국전 당시 북한을 상대로 싸웠던 이들은 모진 시련을 겪게 되고 그 여파로 주민들 대부분은 여전히 빈곤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을 안에 모스크가 하나 있지만 이슬람교(에티오피아 전체 인구 절반이 믿고 있다.) 신자는 약 5% 정도고, 90% 이상이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이다. 가난을 탓하지 않는 정교회 교리 때문인지 대부분의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은 아주 가난하다. 마을 안에 공공 시설이라고는 한국 정부가 지어 준 Hibret Firre 초등학교가 전부이다. 학령기의 아이들 중 13.4%만 이곳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 지금은 우리한테도 원조를 받고 있는 에티오피아지만 1950년대만 해도 황제시대로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다.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가 파견한 참전용사들은 ‘깍뉴(Kagnew)’라고 불리던 황제의 근위병들이었다. 당시 총 6,037명이 파병되었으며, 253개의 주요 전장에서 단 한 명의 포로 없이 총 122명이 전사했고, 536명이 부상을 입었다. 치료시설이 열악해 부상자들은 대부분 유엔의 군용헬기에 실려 일본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1951년 4월 13일 제 1차 깍뉴부대(깍뉴부대는 1965년 3월 1일 본국으로 완전히 철수할 때까지 총 5차에 나누어 파병되었다.)를 싣고 에티오피아를 출발한 배는 중간에 그리스, 태국, 필리핀 병사들을 태운 후, 같은 해 5월 6일에 부산항에 도착한다. 간단한 훈련을 마치고 이들은 바로 그 해 8월부터 전장에 투입되어 크고 작은 전투에서 용맹을 과시하며 혁혁한 공훈을 세운다. 이례적인 것은 전시 중에 깍뉴부대원들이 전쟁고아들을 돌보았다는 것이다. 상상이 가지 않지만 전쟁 중일 때는 고아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면서 끝까지 함께했다는 것이다. 휴전 후 돌보던 고아들을 위해 고아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이들을 해외로 입양하는 일도 추진했다고 하는데 그리스나 다른 참전국에는 군인들을 따라간 고아들이 많았는데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따라간 고아들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깍뉴부대는 1년을 주기로 교체되었는데 참전용사와 결혼까지 간 한국인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치료차 혹은 휴가를 즐기러 일본을 방문했던 병사들과 일본여인들과의 로맨스는 지금도 노래로 불려지고 있다. 이 노래는 같은 리듬으로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에티오피아에서는 암하릭어로 불려지고 있다. 제목은 Japanwan Wodije. 한국전 참전용사들 중에 전쟁이 끝난 후 콩고 내전에 참가했던 병사들도 많다고 하는데 이상하게 ‘콩고 빌리지’는 남아있지 않고 에티오피아에는 ‘코리안 빌리지’만 남아 있다. 현재 한국의 월드비전을 비롯해 몇 개의 NGO 단체가 유아 혹은 여성을 위주로 지원을 하고 있는데 효과는 미미한 편이다. 한국 정부에서는 현재 국제협력단(KOICA)에서 초등학교를 지어준 후 이 곳에 3명의 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시가 아디스 아바바와 자매결연을 맺은 인연으로 똑 같은 모양의 참전용사회관을 춘천과 아디스 아바바에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디스 아바바의 경우 건물만 덩그러니 있고 무용지물이다. 얼마 전 이곳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총장이 이 곳에 관심을 표명한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변화의 조짐이 없다.       <윤오순>
  •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남편죽인 17세 신부(新婦)와 시동생

    너무도 끔찍한 사건이 충남(忠南) 금산(錦山)군의 어떤 외딴집에서 일어났다. 17살짜리 형수와 19살짜리 시동생이 28살의 친형을 죽여놓고 그 시체옆에서 또 한번 불륜의 정을 통했다. 형수아가씨는 결혼1개월도 못되어 시동생과 패륜에 빠지고 넉달만에 남편을 공모살인 한 뒤 보따리를 싸들고 줄행랑을 쳤다가 드디어는 쇠고랑을 차고 말았다. 가난한 신혼에 짜증내자 그때마다 시동생이 위로 형수 김정임여인(가명·17)은 전북 정읍(井邑)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를 여의고 서모밑에서 자랐다. 3년전부터 전주, 광주 등지에서 식모살이를 해오다가 서모도 세상을 떠나자 식모살이를 그만두고 지난 1월20일쯤 서외삼촌 되는 전복남씨(가명·38·충남 금산군)집에 들른 것이 사연의 실마리였다. 전씨는 2월초순 같은 마을에 사는 박윤직씨(가명·28)와 생질녀 김여인과의 혼담을 진행시켜 『두 집이 가난하니 서로 결혼시켜 알뜰히 살도록 해주자』고 지난 2월24일 약혼식, 이틀 뒤인 26일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신랑 박씨는 입이 딱 벌어지게 좋아했다. 젊은 신부에 마음이 온통 쏠려 3만원의 이잣돈과 장리쌀 2가마를 누이인 박정숙 여인(가명·32)을 통해 얻어다가 동네사람들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여 축복을 보내는 가운데 결혼식을 올렸다. 가난한 살림에 신혼여행을 갈 수 없는 이들 부부는 신랑집인 이 마을 맨끝 산마루집 흙담 2간의 아랫방에 신방을 차리고 첫날밤을 즐겼다. 『내 비록 국민학교 조차도 못다니고 가난하지만 몸뚱이 하나는 튼튼해. 젊은 몸뚱이니까 밥은 안 굶겨. 당신만은 꼭 행복하게 해줄께…』 귀엣말로 속삭이는 남편에게 김여인은 『한번 재미있게 살아보더라고 잉! 이몸도 식모살이 하다가 시집온게 참 재밌구만!』하고 신아나서 좋아했다. 그런데 17살짜리 마누라는 싫증을 너무 빨리 느꼈다. 이유는 남편이 촌스럽다는 것. 재산이라고는 겨우 인삼밭 3간(약50평) 밖에 없고 남의 땅을 소작하고 있는 박씨의 가정에 대해 도시에서 잘 사는 집 식모살이라도 해 본 김여인은 촌스럽게 생긴 남편 박씨와의 시집살림에 며칠이 안가 싫증을 느꼈다. TV도 없고 전화도 없다. 설멋이나마 눈에 찰 것이 하나도 없었다. 결혼 10일이 지날 무렵부터는 남편에게 『촌사람 같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털어놓게 됐다. 이 때마다 친시동생인 박성직군(가명·19)이 17살짜리 형수를 위로하며 싸움을 말리곤 했다. 패륜은 우연히 시작되고 현장들키자 살해를 공모 결혼한지 만1개월에서 하루가 모자라는 지난 3월25일 아침에도 사소한 일로 김여인과 박씨는 언쟁을 한 뒤 박씨는 집을 나가 마을로 갔고, 홀로 있는 시어머니 홍여인(51)과 13살 된 시누이는 인삼밭에 가고없는 낮 4시쯤. 이날따라 봄 기운은 고사하고 매섭게 추운 날씨였는데 시어머니와 남편 박씨를 비롯한 5식구중 3식구가 집을 나가고 나니 남은 것은 형수인 김여인과 시동생인 박군 둘이만-. 형이 결혼한 뒤부터 박군은 거의 매일 저녁 뜬 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그간 흙담집 얄팍한 장지문을 사이에 두고 형내외의 야릇한 숨소리가 흘러 나올때마다 박군은 못견디게 몸부림쳤었다. 이 날 낮에도 아랫목 이불속에서 간 밤의 야릇한 숨소리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형수인 김여인이 부엌일을 끝내고 박군이 누워있는 이불속으로 몸을 녹이려 파고든 것이 불륜의 시초. 박군은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형수인 김여인을 부둥켜안았고, 김여인도 그만 순식간에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남편에게 불만이 있는데다 시동생 박군이 항상 자기 편에서 두둔을 해주곤 했기에 호감이 가던중 연령으로도 10여살 위인 남편보다 홀가분한 시동생의 품에 손쉽게 파고들고 말았다. 이들의 불륜은 거의 매일같이 계속되었다. 식구들이 일하러 가거나 마을을 간 틈을 타 벼락같이 진행되었다. 이들은 남의 눈을 두려워할 겨를도 없이 인삼밭이 띄엄띄엄 있는 뒷산으로까지 장소를 옮겨 가면서 육체의 향락을 즐겼다. 그러던 지난 6월5일 새벽 4시쯤. 논물을 보러 남편이 집을 나간 사이 시동생과 함께 어울리고 있다가 그만 돌아온 남편에게 2개월10일간이나 비밀리에 지속해 온 부정의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이 날부터 가정불화는 더욱 심해졌고, 겨우 빚까지 얻어 맞아들인 아내를 쫓아버리자니 가난한 살림에 새로 장가를 갈 수도 없는 박씨는 부인과 함께 딴 집으로 이사를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에서 이사준비를 하고 있을 때였다. 부정이 남편에게 탄로난 김여인은 그날부터 남편을 죽일 결심을 하고 그 방법을 곰곰 생각하게 됐으며, 시동생인 박군과도 의논이 됐다. 박군을 시켜 금산장날인 6월12일 읍내 모농약점에서 15원을 주고 극약 한알을 샀다. 나흘뒤인 15일 남의 집 모내기를 하고 막걸리 두어잔을 먹고 울적해진 박씨는 같은 마을에 있는 누이 박정숙여인 집을 찾아가 『내일 방을 얻어 이사를 갈테니 독 2개와 잔그릇 몇개만 장만해 달라』는 부탁을 남기고 16일 상오 0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지 약 30분뒤 아내 김여인이 갖다주는 극약이 든 냉수를 아무 의심없이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날밤 시어머니 홍여인은 13살된 시누이와 인삼밭을 지키러 나가고 없었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박씨를 동생인 박군이 준비했던 막대기로 이마를 내리쳤다. 머리가 깨진 박씨는 약물중독에 겹쳐 그 자리에 쓰러져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채 숨지고 말았다. 죽여놓고 자연사를 위장 장례 치르고 도망쳤으나 박윤직씨를 죽이는데 성공한 이들은 자연사를 가장하기 위해 숨진 박씨를 마당으로 굴러뜨려 얼굴에 상처를 입게 하고 다시 방으로 끌어들여 잔인한 살인연극을 끝냈다. 박군은 이 날 새벽4시30분쯤 동이 트자 같은 마을에 살고있는 누이집으로 달려가 『형이 소변보러 간다고 밖에 나가다가 넘어져 죽었다』고 태연히 말했다. 이 소식을 들은 박여인이 허겁지겁 뛰어 갔으나 이미 빳빳이 굳은 시체. 일단 자연사로 넘겨 날이 밝자 약 5백m 떨어진 마을뒤 밭에다 시체를 매장해버렸다. 이것으로 일단 사건은 끝났으나 매장을 한 다음날인 17일낮 11시쯤 김여인과 박군은 『남편과 형이 죽은 집에서는 살기 싫다』는 구실로 옷가지를 싸들고 중매를 선 전씨집에 들러 『집을 나간다』고 전한 뒤 자취를 감추자 약간의 의심을 품었던 전씨는 박윤직씨의 사인에 부쩍 의심이 짙어졌다. 박씨 어머니 홍여인으로부터 이와같은 사실을 들은 박씨의 6촌형 박모씨는 홍여인과 함께 경찰의 문을 두드려 박씨의 사인이 이상하다고 신고, 금산 경찰은 연고지를 토대로 수사에 착수하여 김연인과 박군을 긴급수배했다. 박군과 김여인은 금산읍 모하숙에서 이틀동안 단꿈(?)을 즐기다가 돈이 떨어지자 금산군 군북면에 있는 박의 고종사촌 형인 황모씨(45)집에 숨어 있다가 잡혔다. 이들은 경찰앞에서 박씨가 숨지고 난 다음 시체옆에서 『성교를 했다』고 진술하고 『약간 겁은 났지만 마음놓고 즐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금산=김앙섭(金昴燮) 기자> [선데이서울 70년 7월 2일호 제3권 27호 통권 제 92호]
  • [충격 ‘아동 성범죄’ 울고있는 아이들 (하)] “성폭력 피해아동 성인된후 공소시효 적용해야”

    [충격 ‘아동 성범죄’ 울고있는 아이들 (하)] “성폭력 피해아동 성인된후 공소시효 적용해야”

    올해 25살인 김모씨. 김씨는 6살때부터 13살때까지 사촌오빠 A씨로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강간과 강제추행을 당했다. 김씨의 육체적 상처는 회복됐지만 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김씨는 지난해 9월 검찰에 A씨를 강간치상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 공소권 없음이라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는 통지서만 받았다. ●성폭력 공소시효 중단해야 김씨는 공소시효로 인해 어린 시절 자신의 성폭력을 고소할 수 없게 된 것은 행복추구권과 평등권·재판청구권 등이 침해됐다며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한국성폭력 상담소도 “성폭력, 특히 아동성폭력의 경우 공소시효 연장 및 배제가 돼야 한다.”며 김씨를 돕고 있다. 여성계만이 아니다.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이달 미성년자가 성폭력을 당했을 경우 피해자가 19세가 될 때부터 공소시효가 적용되도록 하는 ‘성폭력범죄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신 의원은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성장해 가해자를 고소 또는 고발할 수 있는 때가 되더라도 현행 형사소송법상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일률적 제도 때문에 불가능한 사례가 많다.”면서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에 한해서는 가해자의 공소시효 적용을 성인이 된 이후에 적용함으로써 이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8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의 경우 법정형은 5년 이상이고, 형법 298조의 강제추행의 경우 법정형은 10년 이하로 차이가 있지만 공소시효는 7년으로 동일하다. 아동성학대의 경우는 5년이다. 더욱이 현재까지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13세 미만의 아동에게는 고소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6살때 성폭력을 당한 아동의 경우 13세가 지나야 고소를 할 수 있지만 이미 그때는 공소시효가 지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어린이 성폭력의 경우 피해를 입고도 나중에 이를 지각하게 되고 성인이 됐을 때 고소하려면 이미 공소시효가 끝나 버린다.”고 말했다. 해외는 우리보다 아동성범죄의 공소시효가 더 긴 경우가 많다. 독일은 강간범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20년이고 아동성학대는 10년으로 정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와 비슷한 공소시효를 갖고 있었지만 2004년 형소법을 개정해 전체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늘렸고, 특히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수사가 가능한 친고죄인 성폭력 범죄 등에선 사실상 고소기간의 제한을 없앴다. 각 주마다 차이를 보이는 미국의 경우 공소시효가 우리의 경우보다 전반적으로 길고 특히 가해자의 DNA 등 물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공소시효를 연장하는 특례를 마련해 놓고 있다. ●독일 강간범죄 공소시효 20년… 우린 7년에 불과 법조계에서 미성년자 성폭력의 공소시효 연장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박정해 변호사는 “아동 성폭력의 공소시효를 연장하거나 만 20세 등 성인이 된 이후부터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소시효가 연장되면 혐의를 밝히기 어렵다는 등의 반론에 대해서는 “혐의입증 어려움 등 연장에 따른 실효성은 없고 다른 범죄의 공소시효와의 형평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인정했다. 이정희 변호사는 “성범죄의 특성상 공소시효를 연장할 필요가 있는데 다른범죄와 형평성만을 고려해 연장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다만 연장 또는 산정방법을 논의할 때 성범죄의 성격·상황·피해 정도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하태훈 고려대 법대 교수는 “공소시효를 바꾸더라도 모든 상황을 다 입법할 수는 없을 것 같다.”면서 “일반적인 원칙을 정하고 넓게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아동성범죄 등의 경우는 예외로 하더라도 성폭력 등 특정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하기보다는 다른 강력범죄의 공소시효도 같이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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