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독자수필] 음악편지
쿵쿵딱딱 쿵쿵쿵 도도레도 파미~ ♪♬
“아니, 박자가 틀렸잖아. 다시!”
트로트나 뽕짝에 간드러지는 코러스를 센스 있게 넣는 내 실력으로 편곡한 생일축하 노래. 4분의 3박자, 겨우 여덟 마디. 간단하고 짧은 곡인데도 서로 자꾸 어긋난다.
몇 년 전 봄, 우리 삼남매와 내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감동적인 생일 축하곡을 위해 밴드를 급히 결성했다. 제법 거창하지만 실상은 이렇다. 사촌동생에게서 잽싸게 빌려온 멜로디언이 키보드. 냄비뚜껑과 밥그릇과 그 위를 미친 듯이 질주하는 젓가락이 타악기. 음정은 불안정하지만 소리 지르는 것 하나는 끝내주는 동생이 보컬. 마음 내킬 때에 추임새를 넣는 코러스, 오빠.
대학에 온다고 삼남매가 모두 상경해서, 공부를 하네, 아르바이트를 하네, 동아리를 하네, 연애를 하네, 이것저것 바쁜 일도 많아 우리는 평소 고향집에 별로 못 내려갔다. 그런데 하필 그해 엄마 생신날이 개강과 겹쳤다. 그래서 생신에 맞춰 도착할 수 있게 편지를 쓰자고 우리 남매는 의견을 모았다.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어머님 전상서’는 뭔가 비장하고 ‘사랑하는 엄마께’는 괜히 낯간지러웠다. 그냥 ‘어머니께’라고 쓰기에는 너무 밍밍했고, 그렇다고 딱히 어울리는 수식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의 심금을 울리고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갈 편지. 자식 키운 보람이 있다고 절로 콧노래가 나올 편지. 어미 배 아프게 하고 세상에 나온 자식들이 보낼 수 있는 가장 멋진 편지. 그건 대체 무엇일까. 상상력이 빈곤하고 몸은 게으른 삼남매가 머리를 맞대고 궁리를 한 끝에 노래로 편지를 대신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카세트플레이어에 공테이프를 넣고 연주를 녹음해서 들어보기를 수차례. 불타오르던 우리의 의욕은 조악한 환경을 핑계로 그 기세가 슬그머니 수그러들었다. 아무리 들어봐도 우리의 실력은 크게 나아지는 게 없었고, 오히려 우리의 귀가 점점 익숙해져서 이 정도만 해도 어쩐지 괜찮을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기를 모으고 열과 성을 다해 녹음한 끝에 겨우 완성한 곡. 최선을 다해 연주한 곡이라고 생각하며 들어서인지 지금까지 녹음된 것 중에 나름 훌륭했다. 특히 곡이 끝난 후 “엄마, 생신 축하해요!”라고 소리를 지른 부분은 웅장한 맛이 있었다. 이걸 우리는 편지랍시고 엄마께 부쳤다.
며칠 후 엄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리 음악편지 괜찮았어?”
“아, 테이프? 그게 편지야? 고맙다. 그런데 아직 못 들어봤어. 잘 들어볼게.”
집에 있는 카세트플레이어가 말썽이라 엄마는 아직 음악테이프를 못 들었다고 하셨다. 어쨌든 고맙다고 하시며, 곡을 잘 들어보고 평가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직전에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고맙긴 한데 다음에는 좀 현실적인 걸로 보내라.”
“알았어. 다음에는 진짜 편지 쓸게.” 하고 대답하니 엄마가 툭 내뱉었다.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돈 같은 것.”
돈이면 돈이지 돈 같은 것은 또 뭔가 싶었다. 그런 식의 표현은 우리가 보낸 음악편지가 딱히 엄마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내용이 짧든 길든 우리들의 손글씨로 적힌 편지를 퍽 좋아하셨던 엄마다. 손으로 한 자 한 자 정성들여 쓴 편지가 아니라, 녹음한 테이프가 도착해 아무래도 섭섭하셨던 것 같았다. 그때 종이에 직접 편지를 써서 보냈다면 어땠을까. 그래도 엄마는 ‘좀 현실적인 무언가’를 언급하셨을지 모른다. 엄마는 나이를 먹으니 하루가 다르다며, 젊었을 때의 낭만을 점점 놓치는 때가 많았으니까.
몇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엄마는 우리의 음악편지를 듣지 못했다. 고장난 플레이어를 고친다 고친다 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사는 게 바쁘고 시간은 덧없이 흘러서 그 테이프를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불후의 명곡, 우리들의 음악편지는 사라졌다. 대신 불후의 명언, 엄마의 말이 해마다 울려 퍼진다. “애들아, 그냥 돈으로 줘.”
글 김연화 경기도 구리시 수택1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