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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육·산업 진흥(다시 태어난 ‘대한매일’:16)

    ◎新民會와 함께 민족미래 설계/오산·대성·삼흥학교 등 개교소식 날마다 상보/민족기업 창립 대서특필/‘동양척식’ 흉계 통박 대한매일신보가 배일구국(排日救國)의 선두에서 민족언론을 이끌면서 일제공격에만 관심을 쏟은 것은 아니었다. 대한의 백성에게는 ‘스스로 힘을 길러 나라를 지켜야 함’을 줄기차게 호소했다. 국채보상운동에서 유난히 빛난 이런 논조는 평상시에도 ‘교육장려’와 ‘산업진흥’으로 표출됐다. 대한매일은 일찌감치 국민교육 관련 기사를 중요하게 보도해 독자들을 일깨웠다. 1906년 11월 평남 용천에 광화학교가 문을 열자 다음달 이를 예찬하는 송축가 ‘광화교황(光華校況)’을 실었다. ‘어화 우리 학도들은//대한 의무 생각하세//지금 세상 하(何)시대뇨//경쟁열강 대치로다//우승열패 확연하니//개인진취 안할손가//자포자기 하지 말고//자국정신 수습하여//교육 식산 공업으로//개명 발달 목적일세…’ 당시 민중에게 널리 읽힌 가사체로 된 이 축사에는 ‘열강의 다툼 속에 국권이 위태로우니 각자 학업에 힘쓰고 공업을일으켜 국가발전을 이루자’는 강한 호소가 들어 있다. 1907년에 들어 대한매일은 논설·잡보·기서(독자 기고)·광고 등 전 지면을 동원해 학교·회사 설립 소식을 알리기에 더욱 힘썼다. 이는 당시 최대 규모의 비밀결사체인 신민회(新民會) 발족과 직접 관련된다. 이해 4월쯤 창설된 신민회는 그 본부를 대한매일에 두었으며,양기탁이 대표를 맡은 것을 비롯해 대한매일 사원들이 조직의 핵심을 이루었다. 대한매일은 ▲李昇薰이 평북 정주에 세운 오산학교 ▲安昌浩 중심의 평양 대성학교 ▲李東輝의 강화 보창학교 ▲安重根 의사 3형제가 설립한 진남포 삼흥학교 ▲呂運亨의 광동학교 등 잇따른 학교 설립 소식을 전하며 그때마다 찬사와 기대를 보냈다. 그 무렵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여성교육에도 특별히 관심을 기울여 논설·기고를 자주 실었다. 1909년 10월28일자 金致淳의 기고 ‘여자교육에 대하여’는 그 대표적 글이다. 김치순은 가정교육이 기초됨을 강조하고 ‘가정 교육은 여자교육에 있거늘 우리 대한인사는 여자교육이라면 웃음거리로 안다’고 개탄했다. 대한매일이 교육진흥 못잖게 중요하게 여긴 일이 민족산업을 장려하는 것이다. 1908년 이승훈을 중심으로 평양에 자기제조 주식회사를 발기했을 때 논설로 민족사업의 중요성을 독자들에게 깨우쳤고,이 회사가 주식을 공모하자 적극 권유해 발족을 도운 것은 그 대표적 사례다. 대한매일의 자국산업 부흥 의지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반대투쟁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일제가 한국 경제를 독점적으로 착취하고자 1908년 설립한 이 회사는 1942년 말에는 한반도 내 임야 16만정보를 독차지할 만큼 국토 침탈의 앞잡이 노릇을 했다. 일본 의회가 1908년 3월 ‘동양척식주식회사법’을 통과시키자 대한매일은 곧바로 반격했다. 논설 ‘동양척식회사 설립문제’(1908년 4월24일)에서 대한매일은 ‘겉모습을 보면 개명사업인듯 하나 내용을 심리하면 한국인의 생사를 제어하는 문제’라고 그 본질을 꿰뚫었다. 이어 독소 조항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1,000만원 자본으로 대한 삼천리 토지와 이천만 인민을 차례로 사들여 소유권을 장악하려 함’이라고 그 흉계를 폭로했다. 대한매일이 내세운 교육·산업 입국의 기치는 1910년의 합병으로 그 맥이 끊기지만 그 정신은 시대를 건너뛰어 요즘도 언론계의 각종 문화사업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만평 ‘통상신약’/“매국노는 괴물” 비아냥/죄상 낱낱이 고발 “염라국에 수출” 통탄 동양척식회사 설립이 한일 양국에서 정식으로 공포돼 그 출범이 한달여밖에 남지 않은 1908년 10월29일,대한매일은 ‘통상신약(通商新約)’이란 만평을 실었다. 경제권이 일제에게 넘어가는 것이 뻔히 보이는 상태에서 朴齊純·權重顯 같은 매국노들을 처단하지 못하는 분노가 구절구절 담겨 있다. 그 첫 대목은 ‘만국통상 이 시대에 상업않고 어찌 사나//빈약할 사 대한국은 수출품이 전무하다’고 한탄한다. 이어 유유일대(惟有壹隊),곧 ‘오직 한 무더기 있는 것이라곤’ 괴물밖에 없다면서 그렇지만 ‘동서양을 물론이고 수출처가 바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 무더기’ 괴물은 어떻게 처리할까. 동서양 어느 곳에도 수출할 수 없으니 그 괴물을 ‘염라국과 교섭하여 통상조약 성립하고//그곳으로 수출할까’고 이어간다. 그 괴물들이란 ‘내실 간휼(奸譎),즉 간사하고 속임수를 쓰는 데 둘도 없는(無雙)자들,박제순과 권중현이다.가사는 ‘박제순과 권중현을 한바리로 실어내자’고 비아냥댄다. 둘만이 수출대상은 아니다. ‘통상하세 통상하세 염라국과 통상하세’로 시작해 ‘한바리로 실어내고’로 끝나는 각 절마다 간신배 2명씩을 거명해 그 죄상을 낱낱이 밝혔다. 李完用과 李根澤의 죄상은 다음과 같다. ‘불학무식하고 어리석은 주제에 소란을 피워,나라가 기울고 민생이 도탄에 빠진 것을 알지 못하며 간적(奸賊)의 괴수가 되었다’는 것. 이밖에도 △‘노예 자격이 극진한’ 李載崑과 趙重應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일진회의 李容九·宋秉畯 등이 ‘한바리로 실어내어 염라국에 수출되어야 할 한무더기의 괴물로 꼽혔다.
  • 대한매일 역사성과 새 좌표 세미나­주제발표 내용

    ◎국난때 정론 편 대표적 민족지 오는 11일 ‘대한매일’로 역사적인 새 출발을 하는 서울신문이 3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대한매일의 역사성과 새 좌표’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갖고 그 역사적 의의를 재조명했다. 이날 발제자들은 대한매일신보가 창간 당시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한 국운을 바로잡기 위해 항일구국의 기치를 드높였던 민족정론지였다고 평가하고 오늘날 또 다른 국난기를 맞아 그 같은 정신의 부활은 시의적절한 것이라고 역설했다. 특히 새로운 천년,새 세기의 지평에서 공익언론·구국언론으로서 대한매일의 부활은 1세기 전 선각자들이 이루지 못했던 꿈과 도전을 실현시킬 계기가 될 것임을 전망했다. 이날 발표된 ‘대한매일신보 창간 당시의 민족운동과 시대적 상황’(신용하),‘대한매일신보의 논조와 민족 독립운동’(정진석), ‘대한매일의 정체성과 새 좌표’(김삼웅) 세 편을 요약 소개한다. ◎창간 당시 시대적 상황/애국세력 신민회 본부 사내에 설치/국채보상 일어나자 전국적 캠페인/愼鏞廈 서울대 교수·사회학 구한말 ‘을사5조약’의 늑결(勒結)로 외교권 등 국권을 상실한 뒤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한 신문이 ‘大韓每日申報’(대한매일신보·이하 대한매일)였음은 학계의 연구에 의해 잘 알려졌다. 그 요인과 조건을,외국인 명의로 발행돼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왔다. 이런 외적 조건은 일면에 불과한 것이어서 대한매일이 과감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할 수 있던 내적 조건을 밝힐 필요가 있다.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 전개 대한매일은 영국인 裵說을 사장으로 고용추대하고 梁起鐸은 총무가 되어 합작으로 1904년 7월18일 창간했다. 원래 대한제국 정부가 한국의 처지와 한국정부의 주장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영어를 사용한 신문의 필요성을 절감,궁내부 예식원 관리인 양기탁 등이 배설을 고용해 창간했다. 예식원 영어통역관인 양기탁은 고종의 내탕금과 李容翊·閔泳煥 등의 자금지원을 받아 신문사 시설을 설치하고 런던 데일리 크로니클지 임시통신원 배설을 사장으로 고용해 신문을 창간했다. 따라서 대한매일은 양기탁의 주도로 창간됐으며,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사의 편집과 업무를 총괄했다. 대한매일이 가장 과감하게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하게 된 내적 조건의 특징은 신민회(新民會)가 창립돼 그 본부를 대한매일 안에다 둔 사실과 직접 관련돼 있다. 신민회는 1907년 4월 초 다섯가지 애국세력이 연합해 창립했는데 그 첫째가 대한매일 집단이다. 양기탁이 총무로,申采浩가 주필로,張道斌(일시 주필)玉觀彬 李章薰 梁寅鐸 金演昶 兪致兼 李晩稙 등이 기자로,林蚩正 姜文秀 등이 회계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신민회 창립 직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였다. 이밖에 서울 상동교회,구한국 무관 출신,민족자본가,미주(美洲)에 있는 공립협회(共立協會)등이 참여했다. 신민회에서는 특히 대한매일이 그 핵심세력이 되었다. 신민회 총감독(당수 또는 회장)이 양기탁이었고 본부를 대한매일 내에 두었다. 장도빈은 주도회원에 신민회 청년단체인 청년학우회 간부였다. 신민회 조직을 발의한 것은 안창호 중심의 공립협회였으나 미주에서는 효과가없으니 본국에서 설립해야 한다고 판단해 안창호를 파견했다. 안창호는 1907년 2월 귀국 즉시 대한매일로 양기탁을 찾아갔고 두달 후 다시 만나 신민회를 비밀결사체로 조직하기로 합의했다. 신민회 창립 제의는 안창호가 냈으나 창립은 양기탁 중심으로 되었다. 당시 그는 애국계몽운동의 유력한 지도자로서 국내 애국인사들과 긴밀한 유대를 가졌을 뿐아니라 민중에게서도 큰 존경을 받았다. 아울러 양기탁이 신민회 총감독으로 추대된 것은 그가 대표하는 대한매일의 조직과 세력이 중시됐기 때문이다. 신민회는 전국에 지국을 가진 대한매일을 중핵으로 하여 단기간에 비교적 용이하게 지방지회를 설치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신민회 본부는 대한매일에 있었고 대한매일 영업국장인 임치정과 직원 김홍서가 비밀사무를 보았다. ○安昌浩 중심 신민회 조직 발의 1909년 대한매일의 지사 숫자는 51곳으로 일제가 후에 파악한 신민회 지회 세력과 분포가 거의 일치한다. 신민회는 국권회복이라는 목적의 실행방법으로 ‘신문·잡지·서적의 간행’을 최우선으로 설정했는데 창립 후 독자적으로 신문을 간행하지는 않았다. 대한매일이 신민회의 기관지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이는 장도빈,일제 관원,독립운동가의 자료들에서 확인된다. 대한매일이 신민회 기관지로 전화한 1907년 4월 이후 논설·편집·보도는 매우 열렬하고 전투적으로 되었다. 일제는 1908년 4월 ‘신문지법’을 개정해 외국인 명의 신문이 가진 특권을 모두 없앴으며 대한매일을 해체하려고 배설·양기탁을 고소·구속했다. 그럼에도 대한매일은 굴복함 없이 더욱 적극적으로 의병운동을 지원했다. 이는 대한매일 종사자들이 굳게 단결,신민회 노선에 따른 과감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의 민족운동에서의 애국적 전통은 21세기를 맞이하는 오늘 우리 한국 신문에서도 면면히 계승·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논조와 독립운동/李 침략 본격화 맞서 대항논리 제공/직필 논설 통해 항일의병투쟁 고무/鄭晋錫 한국외대 교수·정책과학대학원장 대한매일신보는 러일전쟁이 일어난 1904년부터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까지 나라 안팎의 정세가 몹시 복잡하던 시기에 발행된 대표적인 민족지였다. 일본과 영국은 대한매일이 창간된 때로부터 한일합방까지 대한매일을 외교적인 현안문제로 다루었다. 따라서 대한매일은 언론사,독립운동사,한국문제에 관한 영·일 양국의 외교사,국제사법사 등의 핵심이 되는 연구과제이다. ○한일합방때까지 6년간 발행 대한매일의 항일 언론이 한국의 언론사와 현대사에 미친 영향을 요약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주목할 것은 이 신문의 발행시기다. 이 신문은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부터 한일합방이 공포되던 날까지 약 6년 동안 발행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이 러일전쟁을 기점으로 한반도에서의 독점적인 우위를 확보하고 침략정책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던 때였다. 대한매일은 이와 같은 민족사적 전환기에 발간되면서 항일운동의 논리를 제공했고 항일운동을 확산시키는 동시에 한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이었다. 둘째 대한매일의 외교사적인 중요성이다. 이 신문에는 한국 영국 일본 세나라의 각기 다른 입장이 한반도의정치적 문제와 연관되어 미묘하게 얽혀 있었다. 이 신문은 소유주가 영국인이었으나 한국의 황실과 민족진영이 뒷받침하고 있었으며 논조는 항일이었다. 일본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신문이 침략정책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었다. 일본은 여러가지 방법을 동원해 裵說을 한국으로부터 추방하거나 신문을 발행하지 못하게 만들려 했고 그 교섭 상대국은 영국이었다. 영·일간 교섭 과정에서 외교정책,사법 절차상 미묘하고 복잡한 문제들이 야기되었음은 물론이다. 셋째 이 신문은 한반도문제에 있어 영국과 일본의 기본적인 입장과 양측의 외교정책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을 제공하고 있다. 일본은 영국이 영일동맹으로 맺어진 우호관계라는 점을 내세워 일본의 대한정책을 방해하는 영국 시민 배설에 대해 만족할 만한 제재를 가해달라고 요구했다. 때문에 영국 정부 자체에서도 이 문제의 처리에 고심했다. 처음에는 영국과 일본이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과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 결국은 영국의 재판에 회부하게 되었다. 다섯째 한국민족운동사에서 본 대한매일의 중요성이다. 이 신문은 소유주가 영국인이었으므로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았다. 이로 인해 일본의 한국 침략정책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하고 한국 국민들의 저항운동을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었다. 많은 의병들이 이 신문의 영향을 받아 무장항일투쟁에 가담했으므로 이 신문은 한국 민족독립운동의 정신적인 구심점이 되었다. ○독립운동의 정신적 구심점 여섯째 언론사에 있어서의 중요성이다. 이 신문은 발행되고 있던 기간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는 점만으로도 연구의 필요성은 크다.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 국한문 한글 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대한매일이 벌인 국권수호운동은 1차적으로는 지면을 통해 전개되었다. 대한매일은 일본 침략을 규탄하고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면서 한국 언론사에 가장 빛나는 항일 언론의 역사를 기록했다. 대한매일은 항일의 필봉만으로 일제와 싸운 것이 아니었다. 국채보상운동이 온나라에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던 때에 의연금을 수합하는 총본부격인 국채보상의연금총합소가 되었고 梁起鐸 朴殷植 申采浩 등은 논설로 일제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하여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 의병들의 무장항일투쟁도 대한매일의 논조에 고무된 바 컸다. 대한매일은 한국 언론사의 주류를 형성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이 신문이 세운 민족 언론의 전통은 일제 치하를 거쳐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 내려오고 있다. 대한매일은 결국 한일합방 직전에 일본측으로 넘어가 합방 후에는 총독부의 기관지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대한매일 발행 당시의 언론사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언론 연구에도 그 선행연구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정체성과 새 좌표/굴종과 오욕의 역사 치열하게 자성/원래 출발선으로 다시 돌아가 국난극복·21세기의 비전 제시 노력/金三雄 본사 주필 그릇된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국민적 목소리가 ‘국민의 정부’가 탄생하면서 거세게 일어났다. 지난 반세기 동안 구조화된 적폐들을 청산하자고 정권교체라는 시민혁명을 이룬 국민 절대다수의 요청에 따라 가장 추한 모습을 지닌 우리 언론을 바로잡자는 언론정화운동과 언론개혁시민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있다. 이는 역사의 기승전결 법칙을 교과서적으로 무섭게 반영한 결과라고 본다. 서울신문이 제호를 변경하면서 출생의 뿌리를 찾고 그 정신을 새로이 하면서 새 출발의 전기를 확립하려는 의지는 바로 기승전결의 역사법칙이라 할 것이다. 서울신문은 이러한 역사발전의 전기로,국운이 기로에 처한 1900년대 초의 절망적인 시대 상황에서 민족의 긍지를 일깨우고 자주의 주권회복 기치를 높이 들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제호를 회복함으로써 우리가 처한 국난을 이기고 새로운 천년의 21세기에 앞장서고자 한다. 제호 변경은 서울신문이 단순히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었다는 인연만으로 막연히 옛이름으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백색독재와 군사독재정권의 홍보지로서 본의 아니게 걸어왔던 갖가지 형태의 굴종과 오욕의 역사를 청산하고 원래의 출발점이었던 대한매일신보의 제호를계승함으로써 구국활동·개화운동·애국정신·민족사상·독립정신을 이어받는 제2창간의 역사적 동기를 부여코자 하는 것이다. 서울신문의 전사(前史)에 해당하는 대한매일신보는 당대의 대표급 애국지사들이 참여하여 만든 민족지였다. 신문 경영의 주체는 배설이지만 실질적 신문 제작은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장도빈 등 민족사상이 투철한 항일 언론투사인 우리 선각자들이 맡았다. 당시 대한매일신보는 항일운동의 선봉에 선 구국활동의 전위였다.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이 한반도의 영구 식민지화를 꾀하려는 책동임을 지적하면서 그 부당성을 널리 폭로하고,의병 항거를 대서특필했다. 일진회의 합병 주장을 사흘에 걸쳐 통박하고,황성신문과 공동 보조를 취하면서 민족지의 방향을 주도했다. 정간 2회,압수 45회라는 일제의 폭압적 상황 아래서 고종황제의 퇴위 기도를 폭로,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국채보상운동의 실질적 본부 역할을 한 것을 비롯,항일구국운동의 총본산으로서 시대적 사명에 충실했다.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격때는 이들이 반포한 격문을실었으며 군대해산 조치에 저항하여 일제를 통렬히 비난했다. 국권 상실과 함께 대한매일신보도 그 정신을 상실하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 8월29일 한일병합과 함께 눈엣가시와 같았던 대한매일신보를 탈취하여 ‘매일신보’라는 총독부 기관지로 만들었다. 강압에 의한 합병조약이나 을사조약이 원천적으로 불법이기 때문에 무효이듯이 대한매일신보의 강탈도 원천 무효인 것이다. 제작을 처음부터 도맡았던 총무 양기탁은 이 신문의 발행인 명의가 친일 인사로 바뀐 그날부터 자신은 이 신문에서 손을 떼었다는 광고를 게재하고 신문사를 떠났다는 사실에서도 대한매일신보사가 매일신보로 이어질 수 없음을 역사에 밝혀준다. 양기탁 선생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지사들이 매일신보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서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는 결코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새롭게 태어나는 대한매일에서 그 지령을 승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새 대한매일은 대한매일신보의 지령 1651호와 서울신문의 지령을 합산하여 승계하고,창간기념일은대한매일 재창간일인 11월11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겠다. 서울신문의 제호 변경과 뿌리찾기는 서울신문이란 한 언론사의 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굴종과 오욕의 역사로 점철된 현대 한국 언론계가 반성,회개하며 거듭나고 기회를 마련하는 기폭제가 될 것이다. 모든 언론이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되새겨 21세기 참언론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대한매일은 ‘대한매일의 다짐’을 통해 다음의 4가지를 지향하고자 한다. 첫째,공공이익을 앞세우는 신문. 둘째,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 셋째,민족화합을 앞당기는 신문. 넷째,2000년대에 앞서가는 신문. 대한매일은 1세기 전 대한매일신보가 실천하고자 했으나 미처 이루지 못한 꿈과 비전을 새로운 시대,변화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국가이성(國家理性)’으로 집약,표현하고자 한다.
  • 제2건국운동 골격 잡혔다/‘범국민 추진위’구성 어디까지

    ◎전국 260개 위원회 1만2,000명 조직구성 한창/연내 개혁일정·실천과제 확정… 새해 본격활동 건국 이래 최대의 관민합동 결사체가 될 ‘제2건국운동’조직이 그동안의 물밑작업을 거쳐 조금씩 모양을 드러내고 있다. 제2건국운동의 구심체인 ‘제2건국범국민추진위’가 본부조직을 마무리한 데 이어 26일부터는 전국조직인 지방위원회 구성에 착수한 것이다. 조직구성이 마무리되면 전국적으로 260여개의 위원회에 위원수만 최고 1만2,000명이 넘는 거대조직이 된다. 국내 명망가 대부분이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제2건국범국민추진위는 27일 제1차 20인 공동위원장회의를 열고 위원회 운영체계와 향후 업무 일정 등을 논의했다. 이보다 앞서 26일에는 행정자치부를 통해 시·도 자치단체에 추진위원회 구성권고안을 전달했다. 범국민추진위측은 제2건국운동이 급하게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두를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일단 위원회가 활발히 움직인다는 점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분위기다. 추진위가 연말까지로 시한을 잡은 1차목표는 크게 ▲중앙부처 내 추진반 설치와 지자체별 위원회 구성 마무리 ▲실천과제인 ‘개혁일정(agenda)’ 확정 등이다. 이를 위해 추진위는 중앙부처 및 각지자체 앞으로 과제발굴에 대한 지침서를 이미 전달했다. 이를 토대로 11월 말까지 개혁일정을 확정지을 예정이다. 위원회와 중앙부처간 업무연락을 맡을 추진반은 이달 말로 구성을 마무리짓고 11월부터 본격활동에 들어간다. 각 부별로 차관이 총괄책임을 맡고 기획관리실장이 추진반장이다. 지방위원회는 시·도가 100인 내외,시·군·구는 20∼50인 내외로 구성된다. 지방위원회는 11월 초 위원회 설치조례를 만들고 11월 중순 창립대회를 열어 본격가동한다.각 위원회 안에도 업무연락을 맡을 추진반을 만들고 단체장이 총괄책임자가 된다. 지방위원회 구성에 있어 제2건국 추진위측에서 신경을 쓰는 부분은 역시 인선문제. 위원 인선은 자치단체장 책임하에 하도록 일임해놓았다. 그러나 단체장들이 대부분 당적(黨籍)을 갖고 있어 정치적으로 편향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각 지자체 앞으로 전달된 위원 인선요령에는 ‘대표성,도덕성,전문성을 고려해 신망도가 높은 인물을 선정할 것’이라고만 규정해 놓고있다. 조직완비 뒤 첫번째 과제인 개혁실천과제 발굴작업은 단기(금년 말까지),중기(99년 말),장기(2,000년 이후 계속)과제로 구분해 이루어진다. 추진위서 마련한 개혁과제발굴기준은 ▲공공부분 구조조정,경제의 투명성확보 등 파급 효과가 큰 제도개혁과제 ▲국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경제개혁 ▲각종 행정규제 철폐 ▲생활,의식개혁 등이다. 국정전반이 일단 과제대상이라고 보면 된다. 추진위의 위상은 대통령자문기구다. 집행력도 없는 자문기구에 왜 이렇게 방대한 조직이 필요하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될 수 있다. 이에 대해 權善宅 추진위 총괄심의관은 “국정전반을 총괄적으로 다루기 위해 불가피하다”며 “업무가 궤도에 오르면 이런 비판은 없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범국민추진위의 큰 현안 중 하나는 제2건국운동의 파트너격으로 추진해 온 국민운동본부 설립문제. 범국민추진위의 역할이 국정의 방향을 잡는 자문역이라면 시민단체연합 형태가 될 국민운동본부는 이를 실천에 옮기는 역을 맡는다. 그러나 시민단체,야당 일각에서 정부개입으로 시민운동의 순수성을 해친다며 시민운동본부 구성에 반발을 보이고 있다. 權심의관은 이때문에 “국민운동본부 설치법안이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될지 불투명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운동본부 구성과 관계없이 범국민추진위는 조직정비,실천과제 선정을 연말까지 마무리하고 새해부터 본격 활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 일가족 일주일간 인질극/40대 검거

    ◎“험담한다” 옛 집주인 찾아가 살해 1주일째 일가족 4명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던 40대 남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전남 순천경찰서는 25일 오후 순천시 행동 38 趙榮干씨(59·상업) 건물 3층에 경찰 특공대 7명을 투입,LP가스통을 폭파하겠다며 인질극을 벌이던 金成秀씨(44·무직)를 최루탄을 쏘아 검거했다. 인질로 잡혀있던 趙씨의 아들 영준씨(27)는 무사히 구출됐으나 2층에 있던 趙씨는 손발과 입이 묶인 채 며칠 전 숨진 상태의 사체로 발견됐다. 金씨는 지난 19일 오후 11시30분쯤 趙씨의 건물 2층에서 趙씨를 결박한 뒤 3층 응접실로 올라가 趙씨의 가족 3명을 포박,1주일째 감금해 왔다. 경찰은 金씨가 지난 1월 趙씨의 사무실을 빌려 장사를 하려다 못한 뒤 趙씨 가족이 이웃에 나쁜 소문을 내 가게를 얻지 못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이날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 OB,진로쿠어스 인수 추진/채권단에 實査 협조공문

    한국·벨기에 합작법인으로 재출범한 OB맥주가 진로쿠어스맥주 인수 의사를 밝혔다. OB맥주는 22일 “진로쿠어스의 인수에 적극 참여하기로 결정하고 이달초 채권단에 사전실사작업 실시를 위한 협조공문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진로쿠어스 채권은행단 관계자는 “OB맥주측이 이달초 채권단에 진로쿠어스 인수의사를 표명해왔다”고 확인한뒤 “아직까지 인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매입금액이나 부채탕감 조건 등은 OB측이 제시하지 않았으나 채권단 입장에서는 조건만 좋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 쿠어스사가 단독으로 인수를 추진해 온 진로쿠어스의 매각 향방은 2파전으로 확대됐다. OB가 진로쿠어스를 인수할 경우 국내 맥주시장은 하이트,OB의 2사체제로 재편되며 그동안 하이트에 시장점유율 1위를 빼앗겼던 OB맥주가 시장을 탈환할 것으로 보인다.
  • 민주열사 열전:12/‘녹화사업’ 의문사:하(정직한 역사 되찾기)

    ◎‘염세 자살’로 매도된 의문의 죽음들/이윤성­신검없이 징집… 제대 8일 앞두고 죽어/김두황­운동권 리더… ‘애인변심 자살’ 軍 강변/한영현­늑막염 앓아 軍면제 판정 불구 끌려가/최온순­가족 항의로 재수사해 자살 오명 벗어/한희철­새벽 4시 사망… 녹화사업중 고문 의혹 대학생들의 강제징집과 이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었던 녹화사업은 80년대초 연세대생 정성희를 비롯한 여섯명의 죽음과 결부되어 계속 거론되고 있다.대부분 염세 자살이라는 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인권단체들과 가족들은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강제순화·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 이들 의문사의 직간접적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다섯명의 의문사를 차례로 알아본다.(정성희는 10월15일자 녹화사업 첫회에 보도) ▷이윤성◁ 81년 성균관대 역사철학 계열에 입학한 이윤성은 유복한 가정환경이었지만 사회·역사 전반에 대한 문제의식이 깊었다고 한다.2학년 때 인문과학연구회라는 동아리의 회장직을 맡았다.82년 11월3일 학생의 날 가두시위에 참가, 여러 학생들과 함께 경찰서로 연행됐다.조사 과정에서 동아리 회장이란 것이 밝혀져 11월7일 새벽 신체검사도 없이 군에 끌려갔다. 그는 부친이 60세가 넘은 고령인 3대 독자인데다 시력마저 나빠 상식대로 하자면 현역입대가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83년 1월10일쯤 친구들이 가족과 함께 면회갔을 때 이윤성은 건강한 모습으로 “내가 여기서 짬밥을 제일 잘 먹고 있으니 걱정말라”고 하는 등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뒤늦게 가정환경이 참작돼 5월말 의가사 제대가 결정되었다.제대가 8일밖에 남지 않은 5월4일 이윤성 부모는 아들이 이날 새벽 자살했다는 군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 자료에서 ‘이윤성은 군 수사기관의 조사기간 중에 사망했으나 이 조사는 학원소요와 관련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국감 자료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이윤성은 83년 4월19일 소속대 인근에서 북괴가 살포한 월북용 안전보장증 등 불온전단 2매를 습득,본인의 철학개론 책자 속에 보관하다가 4월30일 소속대대 보안담당관 중사에 의해 관물함에서 적발됐다.5월3일 당시 지역 보안부대 대공계장 상사가 월북 용의성 및 전단휴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취침에 들도록 했으나 4일 새벽 2시 반경 용변본다고 밖으로 나가 부대 정구장 심판대에 군화끈 및 요대를 사용해 목매 자살했다.가족 입회 아래 부검을 실시했으며 구타 등의 타살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가족들은 지금도 그의 죽음에 관해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84년 국방장관의 국회보고와 마찬가지로 이 국감 자료도 이윤성이 자살할 당시 제대가 8일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김두황◁ 80년 고려대에 입학해 경제학과 과대표와 경제학 동아리 회장을 맡은 김두황은 학내활동의 활성화와 민주화를 주도한 고대 운동권 리더의 한명으로 알려졌다.4학년이 된 83년 3월초 학내 학회,동아리 회장들과 호국단 선거,4·19행사 등을 논의하던 중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1주일간 조사를 받고 석방되었으나 곧 부모와 함께 다시 경찰서로 불려온 뒤 어쩔 수 없이 자원입대서에 서명했으며 즉시 군대로 끌려갔다. 3월18일 입대한 김두황은 3개월 뒤인 6월18일 밤11시 30분 자살했다고 가족들에게 통보됐다.그간 외출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군생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나 훈련 성적이 우수해 사단장상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시신은 두부가 없어진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군 당국은 가족들에게 “동료 2명과 경계 근무를 서던 중 ‘소변보러 간다’고 한 후 잠시 있다가 총성과 함께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군은 가족들에게 사인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와 화장동의서를 받아낸 뒤 부검은 실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84년 국회에 보고할 때 국방부는 김두황의 사망 원인에 대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전방부대에 배치된 것에 불만을 표시하고 내무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군복무에 염증을 느껴왔으며 애인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고심하다가 자신의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설명했다.그러나 그의 고대 학우들은 김두황의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 등과는 전연 어울리지 않는 ‘관제’ 사망원인이라고 반박해 왔다. 같이 강제징집된 뒤 죽음의 공포감이 엄습하는 녹화사업을 겪었던 친구 양창욱씨는 “두황이가 고대 운동권에서 차지했던 비중을 생각하면 나보다 훨씬 심한 녹화사업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영현◁ 81년 한양대 기계과에 입학한 한영현은 민속문화연구 동아리와 야학활동에 참가하던 중 83년 1월 부천 야학선배의 경찰조사 과정에서 이름이 나와 성동경찰서로 연행됐다.경찰서 조사후 4월1일 수원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았지만 늑막염으로 병종 판결,군대에 갈 수 없는 처지였다.그러나 이튿날 경찰서 출두명령을 받고 나간 뒤 행방불명되었으며 보름 후 그의 옷이 집으로 우송되자 가족들은 비로소 강제로 군에 끌려간 것을 알았다. 그는 입대후 훈련소에 가지 않고 4월10일부터 18일까지 군 수사기관에서 그간의 활동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고 뒤에 말했다.6월18일 포상휴가를 나왔는데 그의 팔에 철사로 심하게 맞은 듯한 피멍이 선명했다고 한다.휴가중 그는 “정신력으로 모든 환경을 버틸 수 있다고 생각되나 자신이 없다” “기관의 어느 사람을 만나면 의가사로 10월이면 제대가 가능할 수 있지만 죄책감이 너무 크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전한다. 귀대한 지 얼마 안되는 7월2일 부대로부터 전보로 자살 소식이 전해졌다. “불침번 근무중에 분대장의 탄입대에서 실탄 1발을 절취한 뒤 2일 아침 9시 경계근무를 서다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는 것이다.국방부는 84년,88년 관련보고에서 모두 한영현의 ‘불우한 가정환경’을 강조했다.‘한영현은 모친이 부동산투기로 가산을 탕진하여 부친이 사우디 취업중 귀국해 불화 끝에 모친을 토막살해한 죄로 무기형 복역중이고 형도 소아마비인 것을 고민해 세상을 비관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마치 그의 아버지 사건이 당시에 일어난 것처럼 발표했지만 실은 3년 전인 고3 때의 일이며 한영현은 이 와중에서도 한대 기계과 장학생으로 입학했다.대학 학우들도 그의 학교생활이 아주 건강했다고 말한다. ▷최온순◁ 83년 동국대 사대 수학교육과 3학년이던 최온순은 시위예비 음모 혐의로 5명의 학우와 함께 경찰에 연행돼 1주일 간 조사를 받은 후 3월29일 강제징집 되었다. 4개월이 조금 지난 8월14일 군에서 급위독이라는 전보를 보내와 가족들이 급히 부대로 가보니 그는 벌써 새벽 4시경 숨을 거둔 뒤였다.헌병대에서 나온 사람이 자살이라고 통보했으나 가족들이 자살할 리가 없다는 확신을 갖고 강력히 항의하고 영안실의 사체를 며칠간 지키면서 재수사 및 진상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이에 군 수사대가 재수사를 하여 그 결과 고참병과 말다툼 끝에 피살되었다는 수정 통보를 얻어내 최온순은 자살이라는 오명을 벗고 대전 국군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공식 군 수사기록은 가족의 항의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철책선에서 같이 복초를 서던 고참 상병이 ‘최온순의 자살을 주장했으나 17일 밤부터 18일 새벽까지 추궁하자 그의 우발적 살인 범행을 자백했다’고 기록하고 있다.84년 국회 보고서는 ‘최온순은 복초근무중 잠을 자다가 고참인 상병이 주의를 주자 이에 반항해 소총으로 가해하려다 상병이 소총으로 위협한다는 것이 잘못돼 오발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제징집된 뒤 최온순과 함께 훈련받았던같은 대학의 최석민씨는 “한대 때렸다고 해서 고참에게 총을 겨누기엔 그는 너무 밝은 성격이었다”고 아직도 못믿어 한다. ▷한희철◁ 빈한한 가정에서 79년 철도청 장학생으로 서울대 공대 기계설계학과에 입학했으며 4학년말인 82년 12월1일 군에 자진입대했다.서울대 가톨릭학생회와 성남 대학생연합회에서 지도적 역할을 하는 등 운동권 성향을 보이자 지도교수가 장학금을 주지 않겠다고 해 일단 휴학을 했다는 것이 가족들의 설명이다. 군 생활에 잘 적응해 포상휴가를 두번이나 받았고 83년 10월14일 보름간의 첫 정기휴가를 나왔다.친구들에게 “늦어도 한달 후에는 의가사 제대를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귀대한 지 한달 쯤 지난 12월11일 자살했다는 연락이 왔다.84년 국방부 사망원인에 따르면 ‘평소 가정빈곤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없음을 비관했고 입대전 의식화 동아리에 가입했으며 정기휴가 때 학원소요와 관련해 도피중인 친구의 주민등록 갱신을 위해 방위병인 다른 친구에게 용지를 훔칠 것을 부탁한 사실이 적발돼 조사를 받고 훈방된후 평소 불만과 주민등록증 절취모의 탄로로 고민하다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망 당시 군 당국의 설명에 의혹을 떨구지 못한 부친 한상훈씨가 끈질기게 알아본 결과 한희철은 12월6일 당시 보안사령부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10일 귀대한 것으로 드러났다.부친은 이때 전기고문이 가해졌고 주민등록증 용지 건뿐 아니라 심한 녹화사업 취조가 행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그의 11일 새벽4시 사망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 국감자료 왜곡 해석 많다/“차관·1급 지역 편중” 주장

    ◎분석대상 줄여 자의적 해석/여 “유언비어 수준 재가공”/동해안 사체·공기업 인건비도 정부 흠집내기에 악용한 사례 일부 국회의원들이 산더미처럼 받아놓은 국감자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구태(舊態)가 빈발하고 있다.정부는 ‘왜곡해석’에 반박자료를 내 적극 대처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왜곡해석’논란의 대표적 경우는 영호남 인사편중 공방.한나라당 李海鳳 의원은 최근 국감자료 분석에서 “중앙부처 차관급과 1급 고위공직자 89명 중 지난 정부에서 8명이던 호남 출신이 새정부 들어 30명으로 늘었다”며 편중 인사를 문제삼았다.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즉각 ‘반격’했다.청와대는 “李의원이 장관급만 29명인데 비해 20명만 축소 비교했으며,차관급은 64명 중 36명만,1급은 146명 중 53명만 자의적으로 분석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했다. 국민회의는 “정부 자료를 유언비어 수준으로 재가공,국론분열과 지역갈등을 부채질하고 또하나의 흑색선전을 부추기고 있다”고 공박했다.당정은 ‘장·차관급 고위공무원 출신 지역 현황’이란자료를 제시,문민정부 당시 영남인사는 장·차관과 1급 등 고위공직자가 각각 40%를 넘었다고 밝혔다.국민의 정부에서는 호남인사가 장관급 29명 중 8명,차관급 64명 중 15명,1급 146명 중 34명으로,전국을 영남·호남·충청·기타지역 등 4개 권역으로 나눴을 때 25% 정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한나라당 李允盛 의원 등이 제기한 ‘동해안 사체처리 의혹’도 정부·여당이 ‘자료 왜곡케이스’로 삼은 경우.의원들은 “국감자료를 검토한 결과 지난 8월 초 대북 용의점이 있는 시체를 발견했으나 정부가 햇볕정책을 위해 서둘러 봉합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그러나 문제의 사체는 8월2일 발견된 이래 ‘사체처리에 관한 모든 절차’를 밟았다는 것이 당국의 설명이다.국민회의도 “근거없는 주장으로 국감을 정부 흠집내기로 악용하는 사례”라고 반박했다. ‘산자부 산하 공기업들의 올해 인건비가 지난해보다 늘어났다’는 보도자료를 돌린 산자위 소속 의원들의 ‘자료해석’도 같은 맥락이다.산자부측은 “97년도 집행예산과 완전히 집행되지 않은 98년도 예산계획서를 비교해 일어난 착오”라면서 “오히려 지난해보다 인건비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 車산업 2원화 바람직/金宇中 전경련 회장

    【바르샤바=權赫燦 기자】 동유럽 지역내 대우그룹 사업장을 시찰중인 金宇中 전경련 회장은 현대가 기아자동차의 인수업체로 결정된 것과 관련,“장기적으로 국내 자동차 산업은 2원화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金회장은 19일(현지시각) 바르샤바의 대우 FSO공장에서 전경련 기자단과 만나 “현대가 인수사로 결정된 것은 매우 잘된 일”이라며 “자동차 산업이 2사체제로 재편되면 양사는 과당경쟁을 지양하고 부품의 공동사용과 개발에 협력,부품업체에도 이익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金회장의 발언은 향후 자동차 산업이 현대와 대우의 양축으로 재편된 뒤 양사중 한 업체가 삼성자동차를 통합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金회장은 그러나 “삼성자동차 문제는 삼성 스스로 판단할 일”이라며 직접적인 의견은 회피했다.
  • 민주열사 열전:11/‘녹화사업’ 의문사:상(정직한 역사 되찾기)

    ◎강제순화·프락치 강요에 ‘비극적 저항’/정 烈士 시위현장서 곧바로 징집… 의문의 죽음/5공 군당국 부모에 ‘이의제기 포기’ 각서 간청 광주학살 등 폭력을 자행한 5공화국의 全斗煥정권은 80년대 초 국민을 혹독하게 탄압하면서 독재정권의 기반을 다졌다.공포의 경찰국가 같은 상황이었지만 대학의 ‘반독재 반군사정권’ 시위와 함성을 막을 수는 없었다.5공 정권은 대학 시위를 막기 위한 특별조치를 강구하기에 이른다.그중 하나가 대학생 강제징집과 ‘녹화(綠化)사업’이다. ○대학생 477명 강제징집 녹화사업은 강제징집된 대학생들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밝혔으나 그 과정에서 여섯명의 의문사(死)가 나왔다.본래 군대갈 나이가 됐더라도 대학에 다니고 있으면 퇴학·휴학 등의 학적변동이 없는 한 신체검사와 입영이 연기된다.아울러 신검과 입영은 각각 20일,30일 전에 통지서와 영장이 송달된 뒤에 이뤄지도록 되어 있다.그러나 5공정권은 81년 11월부터 시위저지책의 하나로 학생들을 강제징집하기 시작했다. 당시 버젓이 대학내에 상주해온 정보요원에 의해 문제학생으로 지목됐으나 법으로 걸 만한 뚜렷한 혐의가 없던 학생,시위현장에서 붙잡힌 단순가담 학생들을 경찰서로 끌고와 구타와 함께 조사한 다음 집으로 돌려보내는 대신 곧바로 군부대로 끌고 갔다.병역법상의 사전통지 조항을 정면으로 무시했고 대학생 입영의 필수요건인 학적변동도 대부분 사후에 이뤄졌다. 6공이 들어선 88년 국방부 국정감사에서 뒤늦게 알려진 사실이지만 5공정권은 83년 말까지 2년 동안 이같은 강제징집으로 447명의 대학생을 억지로 군대에 보냈다.자진 휴학 등 정상적으로 학적이 변동되어 입대하는 경우와는 다른 이 ‘특수 학적변동’ 입대자들 가운데는 정상적인 신검을 받았을 경우 입대할 수 없는 신체상 결격사유나 가정환경의 학생들이 상당수 포함됐다.연령 미달자도 있었고 소아마비로 신체가 불편한 사람과 3대독자도 끌려갔다. ○장애자·3대 독자도 끌어가 강제징집은 강제징집으로 끝나지 않았다.당시 군 보안사령부가 입안한 ‘녹화사업’이 기다리고 있었다.‘녹화사업은 병역법에 의거,학원소요 관련 학사징계로 83년 11월까지 입대조치된 자 447명에 대한 정훈교육 계획’이라고 국방부는 88년 국정감사에서 밝혔다.문제학생들의 급격한 입대 증가 추세로 좌경의식의 군내 유입이 우려돼 보안사에서 이 ‘녹화사업’ 계획을 수립,많은 의식화 오염자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갖게 했다고 이때 국방부는 덧붙였다. 그러나 강제징집되어 군에서 녹화사업에 동원된 학생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그들은 학생운동에 관한 정보를 빼내고 이를 탄압하기 위해 보안사가 펼친 강제순화 및 관제프락치 공작활동이라고 주장해 왔다.녹화사업은 정신적인 성장 과정에 초점을 맞춘 방대한 분량의 자술서 작성으로 시작된다.의식 상태를 면밀히 심사하고 체제를 긍정하도록 하는 의식 개조작업이 뒤따른다.소속 군부대 및 서울 보안사 분실에서 행해진 운동권학생들의 ‘빨간 물을 빼고 푸른 물을 들이는’ 순화작업은 보름에서 두달간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녹화사업은 그러나 ‘순화됐다’는 맹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순화’된 학생에게 이를 입증할 관제프락치의 임무를 부여하는 것이다.대개 휴가 형식으로 사회에 내보낸 뒤 대학 선후배 등을 만나 활동상황,특이 동향의 정보를 수집,보안대에 보고하도록 강요한다.갑자기 군에 끌려온 학생들은 이같은 녹화사업으로 심한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 84년 초 강제징집된 6명의 대학생이 보안사 녹화사업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소문이 학원가에 돌았고 곧 정치·사회문제화됐다.84년 6월 당시 尹誠敏 국방장관은 국회에 나와 ‘학적 변경과 관련한 입대자 중 81년이후 군에서 사망한 인원은 자살 4명(정성희 이윤성 김두황 한영현),군기사고 1명(최온순) 등 5명이며 자진휴학 지원입대해 자살한 1명(한희철)을 포함하면 모두 6명’이라고 밝혔다. ○선후배 활동상황 보고 강요 尹관은 이같은 인명 손실은 학원사태 관련 군입영자에 대한 차별대우로 야기된 결과가 아니라고 강조했다.물론 ‘강제징집’ ‘녹화사업’이란 말도 쓰지 않았다. 녹화사업이 82년 9월부터 84년 11월까지 265명에 실시됐다고 밝힌 88년 국감 때도 국방부는 의문사에 대해 같은 입장을 견지했다.다만 녹화사업이 정치문제화함에 따라 84년도에 녹화사업 업무를 중단하고 보안사 전담부서를 폐지했다고 밝혔다.관련 자료도 3년 보존기간이 지나 폐기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권단체와 가족이 제기하는 녹화사업 의문사는 심증만 있을 뿐 진상을 알기가 극히 난망한 실정이다.여섯명의 의문사 중 ‘강제징집 사망1호’인 정성희씨의 경우를 먼저 살펴본다.(나머지 5명은 다음 회에서 보도할 예정이다) 81년 연세대 영독불문학 계열에 입학했던 정성희는 대학생활 8개월 만인 11월25일 교내시위 현장에서 20여명의 교우와 함께 연행됐다.이중 15명이 강제징집당했다.연행 3일 후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군에 강제로 입대한 그는 82년 6월8일 첫 휴가를 나와 친구,가족들에게 보안대의 감시 등을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졌다.귀대한 지 달포 후인 7월23일 아침 갑자기 사망통보가와 가족이 전방으로 달려가자 이날 새벽 0시10분 철책근무 중 목에 M16소총 4발을 발사해 자살했다는 설명이었다. ○사망현장 답사요구 묵살 군당국은사고현장이 민간인 통제구역의 최전방이므로 현지답사가 불가능하다며 간단한 도면설명과 함께 자살임을 믿어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부모로부터 부검포기서와 화장동의서,그리고 사망사인에 이의없고 이후 법적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받고 사체를 처리했다.유서는 없고 ‘백양로를 한번 더 걸어보고 싶다.죽음 앞에서 내가 이렇게 담담하다니’ 등 8줄 정도의 낙서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84년 국방부가 국회에 보고한 사망원인에 따르면 입대해 평소 사회제도에 불만을 토로했으며 사고 당일 전방교육 실습차 입소한 대학생 1명과 복초근무를 하면서 “순수한 철학도의 소원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는 말을 남기고 자살했다는 것이다.88년 국감자료는 보안사 정훈교육 이전 사망자로 염세 자살했다고 기록하고 있다.그러나 정성희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다.정성희와 다른 5명의 의문사는 민주화를 열망했던 학생들의 독재정권에 대한 비극적 저항이었다. □정성희 열사 연보 ▲1962년 인천 출생 ▲81년 부평고 졸업 연세대 영독불계열 입학 ▲81년 11월25일 학생시위로 연행 ▲81년 11월28일 강제징집 ▲82년 7월23일 사망 ◎당시 고려대생 양창욱씨 ‘녹화사업’ 회고/1주일간 심한 구타뒤 ‘감옥’‘군입대’ 택일 강요/보안대 조사땐 ‘감쪽같이 죽을수도’ 공포 엄습 현재 부천에서 ‘어린이 과학실험교실’을 내고 있는 양창욱(38)씨는 고려대 4학년 때인 83년 3월 문과대 시위주동자로서 성북경찰서에 연행됐다.다음은 그의 녹화사업 회고. 경찰서에서 1주일간 심하게 두들겨맞은 뒤인 3월7일 갑자기 부모를 불러오더니 ‘감옥에 보내겠느냐,군대에 보내겠느냐’며 양자택일을 강요했다.부모들이 군입대 각서에 서명한 직후 춘천 보충대로 가서 요식적인 신검을 치렀다.불러주는 대로 받아적는 서류작성에 불과했다. 동해에 있는 훈련단에 보내져 6주 훈련에 들어갔다.보름 만에 부친상을 당해 휴가를 나왔는데 서울에 도착하는 순간 슬픔도 슬픔이지만 해방감에 당황할 정도였다. 3개월쯤 지난 뒤인 6월 초 배치된 철책 초소에서 강릉 사단사령부 보안부대로 소환됐다.하룻밤을 묵으면서 행정고시 출신이라는 모 중위로부터 친구,학내 동향과 관련해 심문을 받았다.구타는 없었다.얼마 후 같이 강제징집된 친구 김두황의 죽음을 우연히 전해들었다. 10월 사단 보안대의 그 중위와 함께 서울 세운상가 뒤 아파트로 이동,녹화사업을 받았다.아파트 안은 오직 책상 하나와 백열등뿐이었고 매일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조사가 진행됐다.1주일간 이곳에 혼자 갇혀 있으면서 16절지 300장에 달하는 자서전을 작성했다.옆 방에서 고문당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구타나 고문은 없었다. 그러나 아무도 모르는 이곳에서 쥐도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순화교육이 끝났다는 표시로 태극기 아래서 사진을 찍더니 8일간의 휴가를 주면서 학교,서클과 관련해 몇몇 정보를 얻어 아파트로 다시 라는 프락치 임무가 주어졌다.큰 가치가 없어 보이는 정보 몇개를 가지고 갔더니 미진하다며 3일간의 추가 ‘프락치 휴가’를 주었다. 사흘 후 다시 가자 정보를 더 물어오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그동안있었던 일을 일절 입밖에 내지 않겠으며 이후 보안사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다. 이같은 조사는 제대할 때까지 두번 다시 없었으나 사단의 중위가 3개월마다 직접 부대에 와 점검했다.
  • 상담후… 상받았다고… 초·중·고 촌지 극성/교육비리 특감 나선다

    ◎감사원,유형별 실태 공개… 20일부터 착수 감사원장 자문기구인 부정방지대책위원회는 13일 ‘초·중등학교 부조리 실태 및 방지대책’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보고서는 각급 학교의 촌지와 교재 채택,시설 공사 등과 관련된 뿌리깊은 비리를 낱낱이 적시하고 있다.보고서는 부방위가 ‘인간교육실현 학부모연대’에 의뢰해 작성한 원고를 기초로 만들었다. 감사원은 부방위가 지적한 교육 비리 실태를 토대로 오는 20일부터 서울,인천,경기도 지역의 교육청과 일선학교를 대상으로 사교육비 경감대책 추진 실태를 특별감사하기로 했다. 부방위 보고서에 담긴 교육 비리의 유형과 대책은 다음과 같다. ▷촌지 실태◁ 대표적인 교육 부조리는 교사의 촌지 수수이다.촌지에는 학부모가 자발적으로 주는 경우와 교사가 의도적으로 촌지를 유도하는 경우가 있다.후자는 다시 6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상담촌지=경기도 어느 초등학교의 학부모 조모씨는 이유없이 아들을 때리고 벌주던 담임교사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아들을 전학보내겠다며 상담을 요구한내용이었다.조씨가 상담을 하며 교사에게 촌지를 주자 다음날부터 아들을 배려하기 시작했고 상까지 줬다. ▲행사촌지=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의 경우 운동회 행사 때 차전놀이에서 위에 올라가는 학생의 부모는 교사에게 반드시 사례를 해야 한다.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졸업식 송사를 맡은 학생의 학부모에게 담임교사가 같은 학년 교사 접대를 위한 회식비를 요구해 받은 뒤 중간에서 가로챈 경우도 있었다. ▲당선촌지=서울 모 초등학교는 전교 어린이회장으로 당선된 학부모가 50만원,부회장으로 당선된 2명의 학부모가 25만원씩을 모아 교사에게 당선 사례를 했다. ▲수상(受賞)촌지=서울 강남의 한 초등학교는 똑같이 상을 받더라도 50만원의 촌지를 주면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교장으로부터 상을 받고,촌지를 주지 않으면 담임교사가 교실에서 상을 줬다. ▲내신촌지=서울 강남 모 여고의 경우 2,3학년 학부모들이 한 반에 12명씩 모여 1인당 7∼8만원을 정기적으로 거둬 매달 100만원씩 1년 동안 담임교사에게 건넸다. ▲물품촌지=경기도 모 초등학교학부모 이모씨는 담임교사가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김치와 밑반찬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서울 강북 모 초등학교의 여교사는 학생의 원피스와 구두가 예쁘다며 자신의 딸 치수를 알려주며 사올 것을 요구했다. 보고서는 촌지와 함께 교재 및 부교재 채택,학교관련 공사,담임 배정 등 교내 인사,기부금품 수수,편·입학 및 특기자 선발 과정에서 비리가 만연해 있으며 교사의 과외와 학원소개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역교장단 자정 촉구 또한 대책보고서는 이같은 부조리가 발생하는 원인을 ▲교원의 부도덕성 ▲행정우위적인 교육풍토 ▲학부모의 가족이기주의 ▲교원의 처우 미흡 ▲성적위주의 평가 관행 ▲교육주체간의 불신이라고 분석했다. 부방위는 이에 따라 교원단체를 복수화하고 학부모 운동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대응책을 제시했다. 또 학교운영위원회를 활성화하고,‘촌지 없는 학교’를 운영하는 한편,지역 교장단들이 자정을 결의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부방위는 이와 함께 고발자 보호와 감사체제 개선도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 공기업 경영진 ‘좌불안석’

    ◎내년 본부장제 폐지따라 대규모 퇴출 불가피/한전 등 13개 기관 법정이사 15이내 제한/관광공사 일부 본부장 사표… 후속인사 예고 내년부터 공기업의 본부장 직제가 폐지될 예정이어서 한국전력과 한국관광공사,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 13개 정부투자기관 부사장 등 본부장급 경영진에 대한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일부 공기업 본부장들은 이미 퇴진했고 나머지 인사들도 거취를 숙고하는 모습들이다. 기획예산위원회는 12일 본부장 직제 폐지와 상임·비상임 이사체제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투자기관 관리기본법 개정안’이 내년 1월1일부터 발효될 예정이어서 이들 공기업의 부사장 등 일부 본부장급 인사의 퇴진이 사실상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특히 정부는 13개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한다는 방침이나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일부 기관장의 경질도 점쳐지고 있다. 이들 공기업 본부장의 경우 상임이사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법정이사수가 15명 이내로 제한돼 있는 데다 사장을 포함한 상임이사수가 전체 이사의 50% 미만으로 규정돼있어 본부장급의 퇴진은 대부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때문에 특히 부사장 2명 등 11명의 본부장 직제를 두고 있는 한국전력과 9명의 본부장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의 본부장들은 벌써부터 불안감에 휩싸이고 있다.한전의 경우 임기를 남겨두고 있는 기획본부장과 계통사업단장 등이 최근 물러나 후속인사가 단행됐으며,한국관광공사도 일부 본부장이 사표를 내 조만간 후속인사가 이어질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전측은 “이번 인사가 내년 시행 예정인 본부장직제 폐지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대다수 공기업 관계자들은 한전의 이번 인사가 직제철폐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기업 관계자는 “대다수 정부투자기관 본부장들은 직제폐지로 신분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태”라면서 “이번 이사제 도입으로 인해 오히려 낙하산 인사시비를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여순사건 학살 양민 유골 대량 발굴/여수시 둔덕동 산길서

    50년대 여순사건 당시 학살된 양민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이 대량 발굴됐다. 사단법인 전남 여수지역 사회연구소(소장 李영일)는 여수시 둔덕동 남해화학 사택 부근 산기슭에서 여순사건 당시 학살된 양민의 것으로 추정되는 두개골 3구와 정강이 뼈 등 20여㎏를 찾아냈다고 12일 밝혔다. 사회연구소는 ‘이 지역이 여순사건 당시 양민들이 집단 학살된 곳으로 100여구의 사체가 묻혀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주민 진술에 따라 발굴에 들어가 유골을 찾아냈다.
  • 金 대통령 “오와비→사죄로 표현 잘된일”/訪日 뒷얘기

    ◎국회 연설때 의원 527명 참석 대성황 이뤄/청와대측 “申鉉碻 전 총리 활동 큰힘 됐다” 3박4일간에 걸친 일본 국빈방문을 마치고 10일 귀국한 金大中대통령이 남긴 뒷얘기는 이번 방일의 성과와 의미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단초이다.그속에서 金대통령의 노력,그리고 일본 정계지도자를 포함,조야(朝野)의 반응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金 대통령 지지대회 방불 ○…金대통령이 이번 방문에서 가장 인상적인 행사로 여기고 있는 것은 지난 9일 도쿄를 떠나기 직전 일본 전직총리 및 주요 정당대표들과 가진 오찬 모임이었다는 전언이다.朴智元 공보수석도 “이 모임은 마치 金대통령의 한·일 파트너십 제안에 대한 일본 여야지도자의 지지대회 처럼 보였다”고 설명했다. 특히 金대통령은 나카소네 야스히로,다케시다 노보루 전총리 등이 서로 발언에 나서 공동선언과 행동계획을 높이 평가하자 매우 흡족해 했다는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金대통령은 10일 귀국전 수행원들과의 조찬자리에서 외교통상부가 일본어의 ‘오와비’를 우리말로 ‘사죄’로표현토록 한 노력을 두고 “아주 잘된 일”이라고 평가했다고 朴공보수석이 전했다.이어 “일본이 앞으로 잘해보자는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석,실리에 비중을 둔 외교스타일을 가늠케 했다. ○…金대통령의 지난 8일 국회 연설에는 중의원 500명,참의원 251명 등 전체 751명 가운데 527명이 참석해 일부는 서있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이는 레이건 전미국대통령과 함께 일본 국회사상 가장 많은 의원들이 참석한 기록이다. 이날 방청석에 오부치총리 부인을 비롯해 전직총리 부인 5명과 여야의원 부인들과 대학생들이 다수 참석,눈길을 끌었다. ○…申鉉碻 전 총리는 이번 방일기간동안 金대통령이 일본 정·재계 인사들과 만나는 자리나 재일동포 간담회에 모두 참석했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도 “한·일관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申전총리의 활동이 金대통령의 방일성과에 큰 힘이 됐다”고 평가할 정도다.申전총리는 특히 “그동안 많은 일을 해봤지만 일본 국민이 이처럼 한국대통령을 진심으로 환영한 일이 없었다”고 격찬했다. 한편 金대통령은 일본어를 할 수 있음에도 공식통역을 통해 대화를 나눴으나 마지막 날이었던 10일 오전 일본 문화계 인사와 간담회에서는 출발시간이 촉박,통역없이 직접 일본어로 연설했다고. ○北 발사체 평가 엇갈려 ○…이번 정상회담 과정에서 한·일 양국은 북한이 지난 8월31일 쏘아올린 발사체에 대해 평가가 엇갈렸다. 일본측은 미사일 발사로 표현할 것을 주장했으나 한국측은 인공위성을 발사했으나 궤도진입에는 실패했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했다고.金대통령은 발사체 명칭에 외교조정이 필요없는 8일 일본 국회연설에서 ‘인공위성 발사’라고 언급했다.
  • 총체적 개혁 이끌‘국민 결사체’/제2건국위 출범 의미와 활동방향

    ◎제도·의식·생활 개혁 국민동참 유도/정치권서 시동… 민간주도 전환 계획 2일 공식 출범한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는 우리나라의 국가 역량을 총집결한 ‘국민 결사체’라고 할 수 있다. 민(民)과 관(官),정(政),노(勞),재(財),언(言),체(體),예(藝) 등 모든 분야의 인사들이 위원회에 망라돼 있다. 인적 구성으로 볼 때,이 정도의 역량을 가진 결사체라면 총체적 개혁을 기대해볼 만하다. 위원에는 서울신문 車一錫 사장,尹興烈 전무 등 언론계 인사와 함께 박세리 박찬호 선동열 등 국민적 스포츠 영웅도 포함되어 있다. 추진위는 개혁 주도세력과 국민을 잇는 가교라고도 할 수 있다. 추진위가 창립선언문에서 ‘참여하자,바르게 하자,다시 뛰자,우리 모두가 개혁의 주체가 되자’라는 구호를 내건 것도 국민의 적극적인 동참을 호소한 것이다. 추진위는 ▲국가제도의 개혁 의제 및 추진방향을 설정해 金大中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국민 의식·생활 개혁 의제를 선정해 범국민운동으로 연결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해 나가야 한다. 추진위는 일단 초기 단계에서는 어쩔 수 없이 정부와 정치권의 주도로 시동을 걸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선 ‘제2의 건국’의 이념과 철학을 가다듬어 이데올로기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새마을운동 당시의 ‘잘살아 보세’같은 짧고,강렬한 구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위원회 활동 지원을 위해 각 부처에 자체 추진반을 운영할 예정이다. 지방자치단체도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구성을 검토하고 있다. 일단 제2의 건국 운동에 불길이 댕겨지면 민간이 본격적으로 앞으로 나서게 된다. 추진위는 시민·직능 단체 등으로 ‘제2의 건국 범국민운동본부’를 구성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출범 이모저모/金 대통령 “정부는 지원역할만 하겠다” 제2건국 운동을 주도할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가 2일 현판식을 갖고 공식 출범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현판식에 참석한 뒤 추진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했고, 金鍾泌 국무총리는 위원들과 오찬을 함께 했다. 金대통령은 추진위원들에게 국민들이 제2건국 운동에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앞장서 줄 것을 당부했다. ○…출범은 金대통령과 邊衡尹 대표공동위원장의 현판식으로부터 시작됐다. 金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10분쯤 金총리,邊대표위원장과 姜英勳 전 총리,姜汶奎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 등 고문단과 鄭元植 전 총리 등 공동위원장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현판식을 가졌다. 金대통령은 이어 이날 오후에는 청와대에서 邊대표위원장을 비롯한 공동위원장 19명과 고문 9명,車一錫 서울신문 사장 등 추진위원 320명에게 위촉장을 수여했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모든 일을 추진위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처리해달라”고 주문한 뒤 “정부는 이를 지원하는 역할만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제2건국 추진운동이 국민 모두의 동참 속에 반드시 성공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달라”며 “아래로부터 물이 스며들듯 변화의 바람이 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邊대표위원장 등 19명의 공동위원장을 비롯한 추진위원들은 현판식 행사에 이어 창립총회 행사를 바로 갖고 창립선언문을 만장일치로채택하는 등 첫날부터 강행군. 한편 위원회 운영을 지원하게 될 기획운영실은 서울 종로구 적선동 한국생산성본부 4층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제2건국과 관련한 국민적인 제안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734­4672∼3번으로 전화해 줄 것을 당부했다.
  • 빅딜 10개월째 제자리걸음/진통 거듭 언제까지

    ◎자율결의후도 업종배분 싼 입씨름 계속/정유만 정리… 서로 “발전·반도체 못내줘” “기업의 역량을 주력 핵심사업에 집중시켜 국제경쟁력을 높여달라” 지난 1월13일 金大中 대통령당선자가 4대 그룹총수와 만난 자리에서 당부한 얘기다. 6개월 뒤 대통령은 金重權 비서실장을 통해 “재계가 빅딜(업종교환)을 통해 구조조정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에 5대 그룹은 제1차 정·재계간담회(7월26일)에서 “자율적으로 조기업종교환을 하겠다”고 화답했다. 그러나 지금 어떤가. 5대 그룹은 그나마 단일법인 설립 등으로 구조조정을 결의한 7개 업종의 경영주체 선정방안을 놓고도 여전히 씨름이다. 1일에도 반도체와 발전설비의 경영주체 방안을 두고 마라톤협상을 벌였으나 별 진전을 보지 못했다. ‘빅딜’은 커녕 ‘스몰 딜’조차 제대로 안되고 있는 형국이다. 6대 이하 그룹들은 요즘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다해서 몸집줄이기가 한창이다. 얼마되지 않는 계열사를 한 곳으로 모아 초미니그룹이나 슈퍼 단일기업으로 속속 재출범하고 있다. 반면 5대 그룹은 여전히 구조개혁에 소극적이다. 기술적인 시간끌기로 퇴출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이 추세라면 5대 그룹만 남고 그 이하 그룹들은 ‘그룹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한’,기형적인 산업구조로 재편될 게 뻔하다. 5대 그룹의 구조조정안의 내용을 좀더 살펴보자. 7개 업종 중 유일하게 구조조정의 성과로 평가되는 부문인 정유업종. 그러나 이도 엄밀히 따져보면 구조조정의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자금난 끝에 일찍이 국제시장에 매물로 나왔던 한화에너지를 현대정유가 인수한 것일 뿐이다. 물론 국내정유업계가 4사체제로 재편되고 한화그룹이 ‘애물단지’를 국내기업에 처분했다는 점에 의미를 둔다면 둘 수 있다. 삼성항공과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이 동등지분의 단일회사를 세우고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뒤 외자를 유치키로 한 항공부문도 그렇다. 항공분야는 수년전부터 과잉·중복투자업종으로 지목돼왔고 중형항공기 개발을 계기로 해당업체들이 새정부 이전부터 컨소시엄 구성에 동의했던 사안이다. 석유화학이나 철도차량이 단일법인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인수·합병이나 업종교환형식이 아닌 공동법인 형태의 구조조정이다. 이는 선단식 경영이라는 비판을 희석시키면서도 지분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벌경영에 새로운 시비거리가 되고 있다. 5대 그룹이 자율적인 업종교환합의를 외면한채 단일법인 설립을 위한 경영권주체 방안을 놓고 싸우는 사이에,또 여론이 그 싸움에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시간은 자꾸 흐르고 있다. 새 정부가 핵심역량으로 사업을 재편하도록 촉구한 지 1년이 다되지만 5대 그룹에서 이렇다할 구조조정의 성과는 미미한 것이다. 반도체와 발전설비 분야의 경영주체 문제만해도 해당업체간 팽팽한 줄다리기끝에 제3의 평가단 몫으로 남게 됐다. ‘시간이 걸리는 또 하나의 절차’가 생긴 셈이다. 외국언론들은 요즘 한국재벌들이 한국경제를 볼모로 서바이벌(생존)게임을 하고 있다고 입방아를 찧는다. ‘정권은 유한하고 기업은 영속한다’는 말에 재계가 여전히 솔깃해 있는 것은 아닌 지…. □빅딜 추진 일지 ·98년 4월20일=김대중 대통령, 경제 5단체장 청와대 오찬 간담회서 “대기업,남들이 욕심내는 좋은 기업 내놓아야” ·98년 7월26일=제1차 정·재계간담회서 5대그룹,자율적인 조기 빅딜 합의 ·98년 8월10일=전경련 구조조정 실무추진반(태스크포스) 1차회의 ·98년 9월3일=5대그룹 7개업종 구조조정안 발표 ·98년 12월말=통합법인 설립 등 구조조정 법적절차 완료
  • 빅딜 지연 혹시…/‘현대·LG 형제들간 이견 노출’

    ◎“내 사업 포기못해” 이해충돌/그룹후계 등 얽힌 미묘한 알력 현대와 LG는 ‘빅딜’의 걸림돌인가. 7개 업종에 대한 5대 그룹간의 사업구조조정이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반도체와 발전설비 분야 등 핵심분야에서 현대와 LG가 버티기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재계에서는 이를 현대의 鄭夢九·夢憲 회장과 鄭夢準 고문 등 형제간의 이해관계에서 파악하는 시각들이 있다.LG의 具本茂 회장과 具本俊 LG반도체사장 간의 이견설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현대의 경우 반도체와 철도차량에서 통합법인의 경영권을 고집하고,발전설비는 한국중공업과의 사업권 일원화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는 입장이다.그런데 鄭夢九 회장은 현대정공(철도차량),鄭夢憲 회장은 현대전자(반도체),鄭夢準 고문은 현대중공업(발전설비)의 대주주.간판기업이 구조조정의 도마에 오르면서 미묘한 관계가 엿보인다. 夢九 회장은 비교적 느긋한 편이다.그러나 夢憲 회장은 PC사업 분야를 분리한 데 이어 반도체마저 내줄 경우 입지가 약화될 여지가 없지 않다.夢準 고문도 알짜배기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구조조정 결과에 따라 로열패밀리 안의 역학구도와 후계체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이 때문에 의견조율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LG의 경우 具회장은 당초 정부고위층에게 “반도체를 내놓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그러나 具사장은 “어떻게 키운 기업인데…”라며 반발,그룹 내부에서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게 관측도 있다. □7대 업종 구조조정 추진내용 업 종 원칙합의 내 용 경영주체방안 반도체 2사체제 현대와 LG의 단일법인 경영권 놓고 단일법인 설립으로 현대와 LG입장 팽팽 삼성전자와 2사체제 항 공 단일법인 삼성항공,대우중공업 외자유치 ,현대우주항공 동등 지분의 단일회사, 전문경영인 영입 철도차량 단일법인 현대정공,대우중공업 맥킨지사에 종합실사 ,한진중공업이 단일 의뢰후지분결정 회사 설립 유 화 단일법인 현대석유화학과 삼성 공동법인 설립,외자유 종합화학이 30%씩 치,전문경영인 영입 지분으로 단일사 설 립,나머지 정부출자 분 외자유치 정 유 4사체제 현대정유가 한화에너 합의내용대로 인수결정 지 인수 선박용엔진 2사체제 삼성중공업의 관련부 삼성·한중·대우·한진 문을 한국중공업으로 단일법인과 현대 2사 이관,한국중공업­현 체제 검토 대중공업 2사체제 발전설비 일원화 현대와 한국중공업 현대,한중 일원화반대 일원화,방안은 추후
  • 국산 ‘과학위성 2호’/정부 2005년까지 발사

    ◎계획 5년 앞당기기로 100㎏급 ‘과학위성 2호’가 우리나라 기술로 2005년까지 발사된다. 정부는 23일 인공위성의 독자 발사 능력을 조기에 확보하기 위해 현재 추진중인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을 5년 앞당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2005년 독자 발사를 목표로 2002년부터 과학위성 발사체 및 탑재위성인 과학위성 2호의 동시 개발에 들어간다. 3단형 과학관측로켓(KSR­Ⅲ) 개발사업도 2003년 목표에서 1년 정도 앞당겨진다. 국내 기술로 독자 발사하는 과학위성 2호는 우주환경 실험장치 등을 싣고 지구 저궤도상의 우주환경 등을 관측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같은 우주개발 중장기 기본계획 수정안을 오는 10월 과학기술장관회의에 상정,심의 의결한 뒤 세부 과제별로 타당성조사 등에 들어가기로 했다.
  • 전세금 2,000만원 노려/10代 딸이 어머니 살해

    ◎돈 앞에 무너진 人倫 전남 여수경찰서는 23일 어머니를 살해한 혐의로 林모양(18·여수시 공화동)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달아난 林양의 동거자 李정일씨(22·무직)를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이들은 지난 18일 새벽 3시쯤 전남 여수시 신기동 신전초등학교 앞길에서 어머니 崔모씨(40·여수시 학동)의 머리를 돌로 내리쳐 숨지게 한 뒤 사체를 남산고물상 앞 농수로에 버린 혐의다. 경찰 조사결과 林양은 4살때 부모의 이혼으로 계모 밑에서 살다 1년전 崔씨가 생모임을 알고,崔씨의 아파트 전세금 2,000만원을 가로채기 위해 李씨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 고통분담 동참·공직 경쟁체제로/공무원 봉급삭감 배경

    ◎공무원이 앞장… 민간부문 개혁 유도/삭감분 1조원 실업재원으로 사용 정부가 내년에 공무원 숫자와 인건비를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은 고통분담과 공무원사회에 경쟁체제를 도입하기 위한 다목적 카드다. 먼저 세수가 부족하고 재정적자가 불가피한 내년 경제상황에서 공무원사회가 모범을 보임으로써 민간부문의 개혁을 유도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기업과 가계가 IMF체제이후 부도와 실업,소득감소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공무원도 기본급 기준 10%를 삭감,사회적 형평을 꾀하겠다는 뜻이 깔려 있는 것이다. 내년에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5%에 달하는,20조원에 육박하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내에서 불필요한 씀씀이는 줄이겠다는 게 예산당국의 설명이다. 이렇게 마련한 1조2,000여원의 예산을 경제회생에 가장 필요한 실업자보호,구조조정,사회간접자본(SOC)의 투자재원에 쓸 계획이다. 아울러 공무원사회에도 능력위주의 인사체계를 다지겠다는 게 두번째 의도다. 공무원은 그동안 공기업과 마찬가지로 무사안일과 연공서열에 얽매여 ‘철밥통’으로 불려왔다. 능력에 관계없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웃자리에 올라가는 비능률과 비효율의 상징이 돼왔다. 이번 조치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은 봉급이나 승진에서 우대하는 풍토를 만들어 경쟁구조를 뿌리내리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장급 이상은 학력 경력 능력 사회적 형평성 등을 고려해 등급별로 연봉을 정하겠다는 구상이다. 일단 중앙부처 2급 국장의 경우 연봉 4,500만∼5,000만원에서 해당부처 장관이 근무성적을 평가해 정하도록 했다. 과장급 이하는 근무성적에 따라 연 최고 200%까지 상여금을 추가 지급토록 했다. 이른바 민간의 인센티브제를 도입,사명감과 창의력이 뛰어난 공무원을 우대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조치는 공무원 봉급체계를 단순화하는 부수효과도 노리고 있다. 공무원 봉급체계는 민간처럼 복잡다기해 일반수당만도 11가지에 달하며 특수수당을 합치면 무려 45개나 된다. 보너스도 체력단련비 250% 등 850∼950%에 달하고 있다.
  • ICBM/최첨단 미사일 5개국 보유

    국제사회가 보름 이상 미사일 파문으로 들끓고 있다.북한이 지난달 31일 발사체를 쏘아 올린 게 발단이 됐다.미사일이냐 인공위성이냐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파문은 북한이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개발하고 있다고 알려지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경쟁이라도 하듯 타이완(臺灣)의 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시험 발사 성공소식이 전해졌고 ‘미사일 강대국’ 러시아는 또 다른 종류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RS­토플을 성공적으로 시험 발사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조만간 북한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본토를 공격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뤄놨던 전역(戰域)방위망 구축 계획 추진을 서두르고 나섰다.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세계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지구를 반바퀴나 돌아 저편의 목표점을 정확히 맞힌다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집중 분석한다. ◎보유국 현황·추이/러 모두 11종 개발 4종류의 美國 앞질러/中 최근 급신장… 英·日은 제조기술 갖춰 세계에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중이거나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7개국.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최첨단 기술의결정체이기 때문에 수량보다는 얼마만큼 우수한 성능의 미사일을 개발했느냐가 관심의 척도.대개는 보유한 미사일의 종류로 가늠된다. 러시아가 대륙간 탄도미사일에서는 가장 앞서고 있다.SS시리즈 8종에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3종 등 모두 11종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러시아와 선두다툼이 치열한 나라는 미국.미니트맨과 피스키퍼(LGM­118)등 2종과 트라이던트 C4와 C5 등 2종의 SLBM을 갖고 있다. 요즘들어 중국의 부상이 눈에 띈다.CSS­4와 DF­31,DF­41및 JL­2 등 4종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생산중이다. 일본은 아직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없지만 언제든지 발사 시킬 수 있는 3단 로켓 발진체를 개발했기 때문에 보유국으로 분류된다.H­1로켓과 H­2로켓은 이미 인공위성까지 쏘아 올린 발사추진체다. 헐벗은 국민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3단 로켓발사 추진체를 개발중인 인도는 어찌보면 북한의 모델국가라고 할 수도 있다.사정거리 8,000㎞의 GLSV로켓과 1만4,000㎞의 PLSV로켓은 언제든지 전세계 어디에나 핵탄두를 날려 보낼 수있다. 영국은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만들 기술력은 있지만 직접 생산하지 않고 미국제 트라이던트를 배치하고 있다. 이스라엘도 로켓발사 추진체를 갖고 있고 브라질도 개발 중이지만 3단계 로켓을 발사할 성능에는 부족,보유국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전역미사일 방어계획/발사된 미사일 감지 레이저로 파괴/美 첩보위성 등 동원 정보수집… 상대 공격 즉각 무력화 안방에서 상대방 깊숙이 공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이 보편화되면서 세계 각국은 탄도미사일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어망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번 북한이 발사체를 쏘아 올린 것을 계기로 미국이 본격 추진키로 한 ‘전역(戰域)미사일방어계획’(National Missile Defence Program)이 바로 대표적.‘스타워즈 계획’혹은 ‘3+3 계획’으로도 불린다. 지상요격망 구축,지상감시 레이더망 구축,조기경보체제 고도화,전진기지 레이더,공중 레이저발사 시스템,전투운영,명령통제통신체제 등 모두 6가지 계획군(群)으로 되어 있다. 먼저 1,600㎞ 상공에 초강력 열감지 센서를 띄워 놓고 미사일을 감시한다. 센서가 감지한 미사일 정보는 지상 요격망 기지에 보내진다.기지에서는 레이저가 발사된다.TRW사가 개발해 시험까지 마친 초강력 레이저는 순식간에 미사일의 철판에 직경 50㎝의 구멍을 낸다. 한순간에 수행되어야 하는 일련의 작동은 조인트설 베이런스라는 이름의 하늘의 종합통신 조정대 J스타가 통제한다.첩보위성과 레이더기지 등에 전송된 갖가지 정보를 즉각 필요한 곳에 보내고 필요한 지시를 내리도록 되어 있다. ◎사정거리·정확도/美 미니트맨 1만4,800㎞ 날아/3단 추진체·고체연료·표적찾는 항법장치 필수/50%가 목표물 반경 1㎞ 이내 맞춰야 사용 가치 대륙간 탄도미사일은 긴 비행거리와 목표물을 제대로 맞히는 정확성이 생명이다. 가장 멀리 나는 미사일은 미국의 미니트먼.비행거리가 무려 1만4,800㎞.미사일이 멀리 날아가려면 우선 높이 날아야 하고 대기권을 벗어나야 한다.여기에는 초속 11㎞ 이상의 속도가 요구된다.때문에 3단계의 추진장치도 필수적이다. 엄청난 속도를 내려면 비행물체가 작아져야 한다.탄두를 줄일수는 없고 결국 연료의 크기를 작게 한다.액체연료 대신 고체연료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이 과정에서는 고난도의 화학적 뒷받침을 필요로 한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에서 정확도는 사정거리보다 더욱 중요하다.목표물을 스스로 찾아서 날아가는 고도의 항법장치가 있어야 한다.위성에서 발사된 전파로 미사일이 위치를 자동 수정한다.미국은 GPS시스템을,그리고 러시아는 GNSS시스템을 쓰고 있다. 탄도미사일 정확도는 CEP(Circular Error Probable)로 나타낸다.CEP는 발사된 미사일의 50%가 목표한 지점에 충격을 미쳤을 때를 전제로 성립된다.‘CEP 1㎞’라면 발사된 미사일의 50% 가량이 목표물의 반경 1㎞ 이내에 떨어진다는 뜻이다. 미사일의 정확도가 ‘CEP 17㎞’보다 크다면 탄도미사일로서 가치가 없다. 요즘엔 ‘CEP 1㎞’는 물론이고 목표물을 스스로 찾아가는 크루즈 미사일까지 개발됐다. ◎개발 완료 앞둔 나라/印·파 등 탄도미사일 경쟁/臺灣 미사일 요격용 성공… 北은 정확도가 관건/브라질·아르헨 중거리 對항공모함용 자체 개발탄도미사일 개발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신흥 미사일 개발국은 대체로 아시아와 중동에 집중돼 있다. 지난 5월 핵실험을 강행했던 인도와 파키스탄의 미사일 경쟁 역시 치열하다.인도는 중거리 미사일 ‘아그니’(불)와 단거리 미사일 ‘프리트비’(땅)를 개발했다.파키스탄도 단거리 탄도미사일 ‘가우리’를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가우리’는 북한의 ‘노동 2호’를 개조한 것으로 알려졌다.샤힌 1·2’호의 발사실험도 준비중이다. 북한은 이번에 ‘실패한 인공위성’ 발사를 계기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그러나 미사일의 생명인 정확도를 높이는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 중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타이완도 미사일에 관심이 많다.최근 발사에 성공했다.미국에서 기술을 들여왔다. 중동에서는 이스라엘이 앞서간다.지난해 미사일 요격 미사일인 ‘애로 2’를 발사시켰다.이란도 북한과 중국 등의 기술적 지원으로 이스라엘 터키 등 중동 대부분 지역에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 ‘샤바브 3’을 개발중인것으로 알려졌다. 남미에선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이 중거리 대항모 탄도미사일을 자체 개발해 보유하고 있다. ◎어떻게 분류하나/전술­전략미사일로/전술­용도 기준 대전차·공대지·공대공 등 구분/전략­대기권 이탈 여부따라 탄도·순항미사일로 미사일(유도탄)은 전장에서 직접 사용할 수 있는 단거리 유도탄,즉 전술미사일과 긴 사정거리 및 파괴력을 요구하는 장거리 유도탄인 전략미사일로 크게 나뉜다. 전술미사일은 용도에 따라 대전차 공격용,공대지(空對地)·공대공(空對空)·대함(對艦)·지대공(地對空)·미사일 요격용 미사일 등으로 구분된다.91년 걸프전 때에는 미국의 지대공 미사일 패트리어트가 맹위를 떨쳤었다. 전략미사일은 탄도미사일(Ballistic Missile)과 순항미사일(Cruise Missile)로 구분된다.비행하면서 대기권을 이탈하느냐 여부가 양자의 큰 차이점.전술미사일처럼 용도별로 구분할 수 있다. 탄도미사일은 로켓의 추진력으로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자체 유도장치에 의해 대기권 안으로 낙하한다.로켓 발사장치가 필수적이다.반면 순항미사일은 자동항법 방식에 따라 유도되며 디지털로 표시된 지형도의 지시대로 목표물을 찾아간다.대기권내에서 저공 비행하도록 되어 있다. 전략 탄도미사일은 지상에서 발사(GLBM)할 수도 있고 해저의 잠수함에서 발사(SLBM)할 수도 있다. 순항미사일 역시 수중발사(SLCM)및 공중발사(ALCM),지상발사(GLCM)가 가능하다. ◎대륙간 탄도미사일이란/사정거리 5,500㎞ 이상/대륙 건너편 공격 가능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사정거리 5,600㎞ 이상으로 대륙 저편을 공략할 수 있다.로켓 엔진으로 추진된다.핵탄두를 장착하며 3단계 고체연료추진방식이 주로 이용된다. 로켓에 의한 발사(부스트)단계를 지나면서 탄두부(버스)를 떨어뜨리고 탄도궤도에 오른다.지구 대기권 밖에서 미드코스 단계(2단계)의 비행을 한다.최종 단계에서 지구의 중력이 탄두를 대기권으로 끌어들여 목표지점으로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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