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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계부채 대책 ‘반쪽’… 고금리 사채 빠져

    주부 이모(59·여)씨는 늦은 밤마다 매일같이 집으로 찾아오는 대부업체 직원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이 유명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리고 난 다음 불어나는 이자를 제때 갚지 못하자 직원이 매일 집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사업을 핑계로 집에 잘 들어오지 않고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씨는 이러한 사정을 하소연했지만 대부업체 직원은 “거짓말하지 말라’며 윽박질렀다. 이씨는 “유명 대부업체인데도 무섭게 몰아세워 아이들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근혜 정부의 가계부채 대책이 반쪽짜리 대책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대통령의 대선 공약집을 보면 불법 추심과 채무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지난 21일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고금리 사금융에 관한 내용이 빠져 있다. 당초 박 대통령은 대부업법을 개정하는 한편 대부업을 금융감독원의 공적 감독대상으로 편입하고, 중소 대부업체 대형화를 유도해 경쟁질서 훼손과 소비자 피해를 방지하겠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이 국정과제에는 빠져 있어 새 정부의 해결 의지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인수위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인수위가) 국민행복기금에 대해 중점 논의했을 뿐 불법 사금융 문제에 대한 논의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가계부채 해결책인 국민행복기금 18조원은 1년 이상 장기연체 채무자들만 구제할 공산이 높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대부업체는 1만 2000여개, 대부중개업체는 1000여개가 난립 중이지만 감독인력은 200여명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불법추심과 수수료 편취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업법을 개정해 시장 진입장벽을 높이고 감독·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상빈 한양대 경영대학 교수는 “대부업을 금융업에 포함시켜 업체를 쉽게 세우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면서 “대부업체를 대형화해 200~300개 정도만 남긴 뒤 감독과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업 자격을 강화해도 음지에서 계속 불법을 저지르는 것이 문제”라면서 “무등록 업체를 행정조치하는 것만이 아니라 형사처벌을 도입하는 것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日銀총재에 ‘금융완화론자’ 아베노믹스 가속페달 밟나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25일 일본은행 총재에 ‘금융완화론자’로 알려진 구로다 하루히코(68)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내정했다. 대담한 금융완화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키겠다는 ‘아베노믹스’가 강력한 ‘원동기’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취임 직후부터 ▲대담한 금융완화 ▲2% 물가 상승 목표 ▲디플레이션 탈피 등을 위해 자신과 노선이 같은 인물을 일본은행 총재로 기용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혀 왔다. 구로다 총재의 내정 소식에 이날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도쿄증시는 지난 주말에 비해 276.58포인트(2.43%) 급등해 1만 1662.52를 기록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4년 5개월 만의 최고치다.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도 오후 4시 현재 전날보다 0.93엔 떨어진 달러당 94.21엔에 거래되고 있다. 도쿄대 법대,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사 출신인 구로다 내정자는 영어 구사 능력이 탁월한 국제통이다.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재무성에서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재무관으로 근무하면서 대규모 엔 매도에 나서는 등 시장 개입을 주도해 ‘엔고 파이터’로 불렸다. 당시 엔화 약세를 위한 외환시장 개입에 총 14조엔을 투입했다. 일본은행에 물가 목표 도입을 요구하는 등 금융완화에도 적극적이다. 관료 최고위직인 사무차관(차관보)에 오르지 못한 채 퇴임했고 2005년부터 ADB 총재로 일해 왔다. 그가 일본은행 총재에 취임하면 재무성 출신으로는 15년 만에 중앙은행 수장이 되는 것이다. 사무차관까지 승진하지 못한 재무성 출신 인사가 중앙은행 총재가 되기는 처음이다. 구로다 내정자가 취임하면 일본 경제 회복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구로다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내가 일본은행 총재라면 일본은행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 규모를 확대하고 자산 종류를 회사채나 주식으로 늘리겠다”며 금융완화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또 2년 안에 2% 물가 상승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2명의 부총재에는 이와타 기쿠오(70) 가쿠슈인대학 교수와 일본은행의 나카소 히로시 국제담당 이사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내각은 이번 주 내 중·참의원에 이 같은 인사안을 넘겨 표결에 부칠 예정이다. 한편 임기를 4년 가까이 남긴 구로다가 조기 사임할 경우 ADB 다른 회원국들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후임 총재를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세 대결 가능성도 거론된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금감원, 5년만에 사금융 실태조사

    금융감독원은 25일 2008년 이후 5년 만에 사금융 실태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장기 경제 불황에 서민들이 점점 돈 빌리기가 어려워지면서 불법 사채 피해가 계속 발생하기 때문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금융은 체계적 자료 수집 경로가 없고 과거 추정자료도 시일이 많이 지나 신뢰성 있는 통계 자료가 필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지하경제 양성화와 서민금융 지원 등 새 정부의 핵심정책을 추진하려면 기초자료가 필요한 것도 이번 조사의 배경이다. 사금융 시장은 등록 대부업체와 무등록 대부업체(사채업자), 개인 간 거래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번 조사는 사금융 시장 규모, 이용자 수, 평균 이자율, 대출형태 등 사금융 시장 현황과 사금융 이용 계기, 상환의지, 상환능력, 연체경험, 애로사항 등 이용자 특성 전반을 알아볼 예정이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쌍용건설 8년만에 또 워크아웃

    쌍용건설 8년만에 또 워크아웃

    시공 능력 13위인 쌍용건설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다. 건설업계는 ‘부도 악령’이 되살아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쌍용건설은 완전 자본잠식과 2년 연속 적자로 인한 유동성 악화로 이번 주중 워크아웃을 신청하기로 했다. 2004년 10월 워크아웃 졸업 이후 8년 만에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간다. 쌍용건설은 다음 달 말까지 자본잠식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면 증시에서도 퇴출당한다. 현재 19조원 규모의 해외 공사 입찰을 진행하고 있으며 국내외 현장만 130곳이 넘고 협력 업체도 1400여개에 이르고 있어 부도 시 연쇄 도산, 대규모 실직 등 큰 파장이 예상된다. 회사는 채권 행사 동결, 감자와 출자전환 등으로 정상화하고 유상증자, 자산매각 등으로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채권단과 전 최대주주인 캠코가 부실 책임 이행 여부로 갈등을 겪고 있어 워크아웃 추진에서 진통이 예상된다. 채권단은 캠코에 전 최대주주로서 부실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며 7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출자전환 등을 추진하라고 요구했다. 채권단도 1500억원의 출자전환에 나선다. 쌍용건설은 1998년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이 해체되자 캠코로 넘어가 3년간 워크아웃을 추진, 2004년 10월 졸업했다. 이후 해외공사 수주, 국내 주택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등 정상화 노력을 기울였으나 경기 침체와 부동산시장 부진 등으로 2년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여기에 쌍용건설에 투입한 공적자금을 모두 회수한 캠코는 최근 보유 지분을 예금보험공사 자회사와 신한은행 등 23개 금융기관에 넘겼다. 또 해외공사 수주 등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석준 회장의 대표이사 사임을 권고, 쌍용건설의 해외사업 좌절과 신용등급 하락이 불가피해졌다. 건설업계는 쌍용건설 워크아웃 신청으로 다시 부도 공포에 휩싸였다. 현재 100대 건설사 중 법정관리나 워크아웃의 길을 걷고 있는 건설사는 21곳이다. 대부분의 건설업체가 회사채 만기 도래로 인한 유동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설업체 상당수가 신규 대출이 끊겨 부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시공 능력 12위의 두산건설도 긴급 유동성 확보에 나서 계열사로부터 1조원대의 대규모 지원을 받기로 하면서 겨우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그룹 차원의 지원이 어려운 대부분의 건설사들은 자금위기에 매우 취약한 상태다. 특히 올해 경기 동향과 수주여건을 감안하면 개선 여지도 기대하기 어렵다. 주택경기 침체, 공공공사 수주물량 감소 등으로 건설사들의 자금난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화 내봐야 자기 손해죠… 추하고 초라할 뿐이에요”

    “화 내봐야 자기 손해죠… 추하고 초라할 뿐이에요”

    올해는 이 배우의 이름 석 자를 주목해야 할 것 같다. 조진웅(37). 그동안 영화 ‘퍼펙트 게임’, ‘용의자 X’, ‘고지전’ 등에서 명품 조연으로 각광 받던 그가 올해는 기대작의 주인공으로 줄줄이 캐스팅되며 충무로의 ‘대세남’으로 통한다. 그 포문을 여는 작품이 바로 21일 개봉한 영화 ‘분노의 윤리학’이다. 한 여대생 살인사건을 둘러싸고 네명의 악인이 펼치는 이야기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다룬 이 영화에서 오직 돈이 목적인 악랄한 사채업자 명록 역을 맡아 호연을 펼쳤다. 최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조진웅을 만났다. 처음부터 살인사건의 범인을 밝히고 시작하는 영화는 한편의 부조리극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는 선한 얼굴을 하고 돈을 갚으라며 그녀의 목을 죄어오는 사채업자 명록, 찌질한 전 남자친구 현수(김태훈),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청하는 옆집 스토커 정훈(이제훈), 불륜 관계를 맺고 있는 교수 김수택(곽도원) 등 네 남자의 욕망과 분노를 그린다. 이 가운데 수다스럽고 능청스러운 명록의 캐릭터가 단연 돋보인다. “박명랑 감독이 시종일관 명록이 멋있으면서도 귀여워야 한다고 해서 좀 당황했어요.(웃음) 사실 제가 제일 약한 부분이거든요. 코미디 연기가 정말 어려워요. 상황은 웃긴데 본인은 뭔가 절실해야 하니까요.” 범인을 포함한 이들은 여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각자의 입장을 합리화하면서 서로에게 분노를 표출한다. 작은 분노도 참지 못하고 정당화시켜 폭발시키는 요즘 세태와 겹쳐진다. “제목에서 오는 부담감이 있지만 영화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인물별로 친절하게 나눠져 설명하는 장면들도 있어 곱씹어 볼 수 있고 키득거리면서 볼 수 있는 장면도 있습니다. 물론 저예산 영화에다 다분히 연극적인 장면도 있지만 관객들이 어떤 맛인지 극장에서 한번 맛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동안 다소 순박하거나 투박한 역할을 자주 맡았던 그가 이번에는 ‘날티’나면서 뻔뻔한 악인을 소화해냈다. 전작과의 연기의 차별점은 무엇일까. “캐릭터 자체가 워낙 독특해서 사채업자의 전형적인 능글능글하고 비굴한 모습에 저만의 개성 있는 명록의 음성과 행동을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헤어와 메이크업의 도움을 받았죠. 그래서인지 굉장히 스타일이 멋있게 나온 것 같아요(웃음).” 영화 속 대사 중에 명록이 “희로애락 등 사람의 감정 중에서 가장 으뜸인 것은 쾌락이 아니라 바로 분노”라고 강조하는 대목이 나온다. 분노가 치밀면 모든 감정이 사라지고 화가 모든 것을 지배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독 잠재된 분노의 수위가 높은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는 결국 분노가 부질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분노하면 추악해보이고 그 이후 자신이 더욱 초라해질 뿐이죠. 저도 가끔 화가 나면 스스로 분에 못 이겨 울 때도 있었지만 분노는 한 순간이고 집에 갈 때쯤 되면 모든 일이 ‘한 끗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연기에 대한 호기심으로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조진웅. 대학 1학년 때 10년만 해보고 승부를 내겠다고 생각한 그는 부산 극단에서 연극을 하면서 단역 배우를 전전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지인의 소개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오디션을 보게 됐고 그 작품으로 본격적인 배우 인생이 시작됐다. 조원준이었던 본명을 아버지의 이름인 조진웅으로 바꾼 것도 이때쯤이다. “당시 제게 터닝 포인트가 필요했어요. 아버지는 별 걸 다 가져간다고 핀잔을 주셨지만 이름이 굉장히 멋있잖아요. 아버지가 처음에는 반대도 많이 하셨지만 지금은 격려를 해주십니다.” 이후 그는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종횡무진하며 다양한 연기를 펼쳤다.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서 우직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조선 제일의 검객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그는 지난해 영화 ‘범죄와의 전쟁: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는 비열한 악질 건달 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는 ‘명량-회오리바다’, ‘화이’, ‘군도’에도 줄줄이 캐스팅됐다. 팔색조 연기의 비결은 무엇일까. “캐릭터에 대해 아무리 상상해도 현장에 가면 100% 깨지기 마련이거든요. 그래서 저는 대사도 일부러 외우지 않고 몸속에 내재된 자연스러운 연기를 추구하죠. ‘연기하고 있네’라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쌍용차 재기 첫단추 끼웠다

    쌍용차가 800억원의 유상증자 결정으로 신차 개발 등 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자동차 내수시장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이 국정조사와 해고자 전원복직을 주장하고 있어 정상화까지 넘어야 할 고비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쌍용차는 14일 서울 강남 서울사무소에서 파완 고엔카 인도 마힌드라자동차 사장과 이유일 쌍용차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이사회를 열고 지난해 12월부터 미뤄 왔던 8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 추진과 다음 달 1일자로 무급휴직자 455명의 복직을 의결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최대 주주인 마힌드라가 신주를 전량 사는 제3자 배정 방식으로 진행된다. 즉, 마힌드라가 쌍용차 인수 후 처음으로 유상증자 방식으로 800억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발행될 신주는 1454만 5455주이며 신주 발행가는 5500원, 납입 예정일은 오는 5월 22일이다. 2011년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졸업하면서 유상증자가 아니면 투자금을 확보할 대안이 없어진 쌍용차는 지난해 12월에도 신차 개발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섰으나, 정리해고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논란이 불거지면서 마힌드라가 결정을 미뤘다. 쌍용차는 이 800억원을 2015년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소형 SUV ‘X100’ 등 신차 개발과 마케팅에 투입할 예정이다. X100의 총 개발비용은 2900억원으로 알려졌다. 쌍용차 관계자는 “마힌드라가 앞으로 약속한 1조원을 투자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야가 쌍용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정치권과 금속노조 등의 국정조사 요구가 거센 상태에서 마힌드라가 쌍용차에 대한 투자를 이어갈지는 미지수이다. 미한드라 측은 현재 적자 상태에서 455명의 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킨 것 이상의 재고용은 불가능하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국정조사 등 쌍용차를 외부에서 흔들면 앞으로 투자 계획은 지킬 수 없을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 문제는 쌍용차 내부에서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놨다. 쌍용차는 지난해 내수 4만 7700대, 수출 7만 3017대 등 총 12만 717대를 팔아 전년 대비 6.8% 증가한 판매실적을 기록했지만 내수시장 침체와 수입차 공세 강화 등으로 지난해 800여억원의 적자를 냈다. 한편 마힌드라는 2011년 3월 총 5225억원(신규 유상증자 4271억원, 회사채 954억원)으로 쌍용차 지분 70%를 인수했다. 지난 1월 앞으로 4~5년간 9억 달러(약 1조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3종의 신차와 6종의 엔진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대둔산·화암사의 아름다운 설경

    대둔산·화암사의 아름다운 설경

    대체 얼마를 겨눴는지 모릅니다. 겨울철 빼어난 설경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곳, 대둔산 말입니다. 도회지의 월급쟁이가 자연의 시계를 따라잡기가 어디 쉬운가요. 대둔산에 눈이 내리면 일상이 몸을 붙잡고, 모처럼 시간이 나면 눈이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지요. 그렇게 마주한 대둔산의 설경은 감동적이었습니다. 폭설이 내리고 이틀 뒤 찾았으니 필경 절정의 자태는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마저 눈물겹게 고마웠습니다. 대둔산 눈꽃 너머엔 ‘꽃바위’ 같은 절집, 화암사(花巖寺)가 있었습니다. 안내 책자의 소개글 하나 보고 찾아간 절집은 몇 구절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빼어난 풍모를 하고 있었지요. 배티재에 선다. 전북 완주와 충남 금산을 가르는 고개다. 사내의 알통을 닮은 암릉들이 전방의 시야를 꽉 채운다. 선인들은 저 모습에서 새싹을 보았던 게다. 대둔산의 둔(芚) 자는 싹이 나온다는 뜻. 짐작컨대 산의 이름을 대둔산이라 정한 것도, 최고봉인 마천대(878m) 등의 봉우리들이 봉긋봉긋 솟은 모양새가 봄의 새싹을 닮았다는 걸 비유하려는 뜻이지 싶다. 대둔산은 충남 금산과 논산, 전북 완주 등에 걸쳐 있다. 오르는 방법도 여러 가지. 가장 일반적인 건 완주의 대둔산도립공원을 출발해 금강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을 거쳐 마천대에 오르는 코스다. 하산은 낙조대와 용문굴 등을 돌아 다시 동심바위로 내려선다. 산행거리는 5㎞, 4~5시간쯤 걸린다. 케이블카를 이용해도 좋겠다. 대둔산 중턱인 금강구름다리 아래까지 단박에 오를 수 있다. 그 덕에 마천대까지 오가는 시간도 2시간 이내로 확 줄어든다. 케이블카 상부역사 위 정자가 산행 기점이다. 거인이 힘 주어 뽑아 올린 듯한 암벽 사이로 철계단이 나 있다. 암벽을 비집고 나서면 금강구름다리다. 임금바위와 입석대를 잇는 빨간 철계단이다. 80m 높이에 50m 길이로 쭉 뻗은 구름다리에 서면 누구든 비명을 지르기 마련이다. 아래를 보자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 들어 위를 보니 거대한 암봉들이 위압적인 자태로 서 있다. 오금 바짝 당겨 버텨봐도 입술 사이로 찬탄 섞인 비명이 새 나가는 건 막을 도리가 없다. 삼선계단은 더하다. 삼선봉으로 향하는 36m짜리 ‘수직’ 계단이다. 경사가 51도에 달하는 것에 견줘, 폭은 0.5m밖에 되지 않는다. 127계단을 오르는 내내 계단 틈에 코를 박고 납작 엎드려야 할 만큼 공포스럽다. 장난은 금물이려니와 혹시라도 계단 중턱에서 쉬게 될 경우 절대 뒤돌아보지 말길 권한다. 허공에 매달린 듯한 공포감에 모골이 송연해진다. 삼선계단에서 마천대로 향하는 길도 가파르긴 마찬가지다. 숨이 턱에 닿을 때쯤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마천대다. 정상에는 대둔산 개척 기념탑이 솟아 있다. 1972년 세웠다니 꼬박 31년 동안 마천대를 짓누르고 있었던 셈이다. 마천대에 오르면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집산연봉과 마주한다. 그 자태가 꼭 파도를 닮았다. 전북과 그 아랫녘의 산자락들이 일망무제로 내달리고, 눈꽃 핀 숲은 밀가루를 뒤집어 쓴 듯하다. 손에 잡힐 듯한 덕유산은 물론, 멀리 마이산과 지리산까지 죄다 두 눈에 담긴다. 마천대에서 마주 보이는 왕관바위까지는 다녀오는 게 좋겠다. 마천대의 암릉들이 얼마나 기골이 장대한지, 어깨를 맞댄 주변의 산들은 또 얼마나 늠름한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완주 여정에서 화암사를 ‘발견’한 건 행운이었다. 자투리 시간에 노느니 독 깬다는 생각으로 돌아본 절집에서 뜻밖에 고즈넉한 풍경을 ‘캐냈’으니 말이다. 화암사는 꽃바위에 걸터앉은 절집이란 뜻이다. 오래전, 병마와 싸우던 공주가 용이 기르는 복수초를 먹은 뒤 씻은 듯 나았는데, 그 꽃이 핀 자리가 바로 화암사가 터를 잡은 바위벼랑이었다는 설화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불명산(佛明山)으로 방향을 잡는다. 화암사가 깃든 산이다. 들머리는 경천면 가천리 요동마을이다. 마을 초입에 내걸린 짚신 두어 켤레가 예사롭지 않다. 마을 안내판에 따르면 예전 남도의 선비들이 한양 갈 때면 이 마을에서 헤진 짚신을 갈아신었단다. ‘싱그랭이 마을’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화암사로 드는 산길은 싱그랭이 마을을 지나야 나온다. 판근과 불퉁한 바위들이 차량의 진입을 막고 있다. 우수를 앞둔 계곡에선 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싱그럽다. 길은 계곡과 공간을 나눠 쓴다. 닦여진 길은 없고, 계곡물을 피해 발걸음 놓은 자리가 곧 길이 된다. 절집엔 그 흔한 일주문이 없다. 오래전 선인들이 걸었을 이 길, 절집으로 향하는 마음을 스스로 추스르게 만든 산길이 바로 일주문이었던 게다. 살풍경한, 그러나 바위벼랑을 오르기에 더없이 유용한 철제 계단을 오르면 누런 빛의 목재 건물이 객을 맞는다. ‘우화루’(雨花樓·보물 제662호)다. 애초 단청이란 없었겠다 싶을 만큼, 곱게 늙은 나뭇결을 온전히 드러낸 건물이다. 꽃바위에 걸터앉은 절집에 꽃비가 내리는 건 수미상응일 터. 행여 누각의 이름에서 신선에 이르는 ‘우화’(羽化)를 연상하지는 마시라. 절집은 소박하다. 민낯이다. 그리고 묵직하다. 건물을 이고 선, 빛바랜 나무들이 주는 세월의 무게감 때문이겠다. 절집으로 드는 문은 달랑 하나다. 우화루와 문간채 사이로 난 쪽문이다. 허리 굽혀 쪽문으로 들어도 본전인 극락전은 온전히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자칫 극락전에 고정될 뻔했던 시선 속에 주변의 소소한 것들까지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가람 배치 덕일 게다. 극락전은 우화루와 숨결이 맞닿을 거리에 서 있다. 지난 2011년 국보(제316호)로 승격된 절집의 본전이다. 극락전은 하앙식(下昻式) 구조로 유명하다. 처마를 좀 더 밖으로 빼기 위해 기둥과 처마 사이에 부재를 끼운 건축양식이다. 이 같은 공법의 건물은 국내에서 화암사가 유일하다. 절집은 극락전과 우화루, 그리고 요사채인 적묵당과 불명당이 마주 보는 구조다. 네 건물이 모여 네모난 작은 마당을 만들었다. 그러니 거기서 보는 하늘이라고 다르랴. 하늘도 땅도 죄다 네모다. 글 사진 완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63)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 추부 나들목으로 나와 추부면 소재지를 지나 배티재를 넘어가면 대둔산이다. 천안~논산고속도로 논산 나들목을 나와 679번 지방도로→양촌·운주 방향 17번 국도→배티재→대둔산 순으로 가도 된다. 대둔산 케이블카는 2월까지 오전 9시~오후 5시, 2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왕복 기준 어른 8500원, 어린이 5500원. →맛집 화산면엔 붕어찜으로 유명한 집들이, 대아저수지 인근엔 민물고기 매운탕집이 많다. 대아댐에서 10여분 거리의 고산면 소재지엔 한우 전문 식당들이 늘어서 있다. →잘 곳 봉동읍 소재지와 대아저수지, 대둔산 인근에 깔끔한 모텔들이 몰려 있다. 완주군 문화관광 홈페이지(tour.wanju.go.kr) 참조.
  • 용산역세권 개발 7000억대 소송전 조짐

    31조원 규모로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결국 소송전으로 번질 조짐이다. 용산 역세권 개발 실무업무를 담당하는 용산역세권개발(용산AMC)은 7일 열리는 용산 개발 시행사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드림허브) 이사회에서 코레일을 상대로 7094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진행하는 안건을 상정한다고 6일 밝혔다. 용산AMC는 “코레일을 상대로 랜드마크 빌딩 매입 2차 계약금 4342억원과 토지 오염 정화 공사비 1942억원, 토지 인도 지연 손해배상 810억원에 대한 손배소를 진행할 것”이라면서 “이사회 구성원 10명 중에서 민간 출자사 7명의 특별 결의로 안건 승인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해볼 테면 해보라는 입장이다. 코레일 관계자는 “2500억원의 전환사채(CB) 발행을 코레일이 의도적으로 막았다고 하는데 이는 드림허브 이사회에서 결정된 것이다. 한마디로 용산AMC가 청구하겠다는 소송은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설사 소송 안건이 드림허브 이사회를 통과해 진행된다 해도 이미 법적 대응책을 마련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용산AMC의 코레일에 대한 손배소 진행 여부는 이사회에서 결정 난다. 이번 용산AMC가 코레일을 상대로 소송을 추진하는 것은 겉으로 보면 용산 개발사업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코레일의 자금을 끌어내려는 제스처로 볼 수 있다. 용산AMC는 자금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500억원 규모의 CB 발행을 추진했지만 출자사들이 CB를 매입하지 않았다. 용산AMC의 자금줄이라고 할 수 있는 드림허브마저 자본금이 5억원으로 줄어들어 파산 직전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사업 좌초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명분 쌓기를 시작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 용산 개발 관계자는 “용산AMC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롯데관광개발이 코레일에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이사회에서 소송 안건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롯데관광개발 측이 추가 소송을 진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자본금이 5억원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용산 개발이 사실상 부도 상태라는 의미”라면서 “부도나기 직전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상대에게 소송을 걸어 명분을 쌓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대부업체 대출잔액 급감

    대부업체 대출잔액 급감

    지난해 들어 대부업체의 대출 잔액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연체율이 지난해 14%까지 오르는 등 대부업 영업환경이 악화돼 대출심사를 엄격하게 한 이유가 크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는 저신용자들이 불법사채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6일 한국대부금융협회에 따르면 대부금융업체 상위 10개사의 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4조 7249억원으로 전년 말(4조 9658억원)보다 4.9%(2409억원) 줄었다. 2010년 말 27.8%, 2011년 말 11.5% 증가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대부금융협회 관계자는 “2011년 6월 대부업 상한 금리가 39%로 낮아져 영업환경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연유에서 대출 잔액은 2011년 6월 말 5조 1058억원을 기록한 뒤 계속 하락세다. 경기 불황에 연체율이 계속 올라 대출 심사도 깐깐해졌다. 지난해 9월 상위 10개사의 평균 연체율은 14.03%로 전년 동기(10.54%)보다 3.49% 포인트 상승했다. 일부 대형업체들이 연체율 낮추기 캠페인을 벌여 12월 연체율은 11.99%로 다소 떨어졌다. 문제는 대부업에서 거부당한 저신용자들이 불법사채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시·도에 등록된 대부업체도 2007년 말 1만 8500개에서 올해 1월 9170개로 절반으로 줄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상한 금리가 내려갈수록 등록 대부업을 포기하고 음지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상한 금리를 낮추는 대신 제도권에서 채권을 발행해 대부업 조달금리를 낮추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건설사 P - CBO 지원 대기업까지 확대된다

    다음 달부터 건설사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채권(P-CBO) 지원대상에 재계 순위 1~10위를 제외한 대기업도 포함된다. 금융위원회는 건설경기 부진 장기화로 업계의 자금난이 지속되는 점을 감안, P-CBO 지원범위를 현행 중소·중견기업에서 대기업까지로 확대한다고 6일 밝혔다. 이에 따라 두산건설, 동부건설, STX건설 등의 P-CBO 발행이 가능해졌다. P-CBO는 신용도가 낮아 채권시장에서 회사채를 직접 발행하기 어려운 기업들이 이용할 수 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서울광장] 이러다 ‘경조(慶弔) 소득세’ 징수할라/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러다 ‘경조(慶弔) 소득세’ 징수할라/육철수 논설위원

    어딜 가나 지하경제가 화두다. 얼마 전 대기업 중역 J씨와 나눈 대화도 그랬다. 그와 나는 지하경제가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1이나 되는데도 나라가 멀쩡하게 굴러가는 게 신통하다고 공감했다. 얘기 끝에 J씨는 “우리 집사람도 지하경제의 공범”이라고 했다. 웬 돈다발이라도 땅에 묻어뒀나 싶어 귀를 쫑긋 세웠다. 얘기인즉, 그의 아내가 백화점 매장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골랐는데 너무 비싸더란다. 그래서 망설였더니 현금을 주면 20% 깎아준다고 해서 덜컥 샀단다. 듣고 보니 지하경제에 일조한 ‘공범’임에 틀림없었다. 지하경제란 세금을 피해 숨어다니는 돈이다. 그렇다고 범죄 수익금처럼 검고 구린 돈만 지하경제는 아니다. 2011년 4월 전북 김제의 마늘밭에서 나온 5만원권 뭉칫돈 110억원은 똑 떨어지는 지하경제다. 불법 도박 수익금으로 밝혀진 데다 땅 속에 묻혀 있었으니…. 지난해엔 서울 강남의 어느 병원장 집에서 현금 24억원이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적발돼 주위를 놀라게 했다. 지하경제 ‘활성화’엔 정치인들도 적잖이 기여한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재벌로부터 받은 ‘차떼기 현금’은 지하경제의 역사를 새로 쓴 사건이다. 1987년 대선 때 어느 재벌이 김대중 후보에게 준 돈 상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당시 이 돈을 며칠 보관했던 K씨는 “퀴퀴한 돈 냄새에 골치가 너무 아팠다”고 털어놓았다. 지하경제를 키우는 사람들이 어디 범죄자와 정치인들뿐이랴. J씨의 부인처럼 대부분 국민은 이익에 솔깃하거나, 불가피한 사회적 관행 탓에 ‘공범’이 되는 게 현실이다. 살다 보면 ‘영수증 없는 현금’으로 때워야 하는 일이 좀 많은가. 지하경제에 한쪽 발을 담그고 있는 경조사(慶弔事) 비용이 대표적이다. 업무상 갑을 관계는 경조금으로 수백만~수천만원을 건넨다고 한다. 힘깨나 있거나 잘나가는 사람은 부조금 수입이 수억원은 될 것이다. 일반 가정의 경조금도 국가적으로 보면 만만치 않다. 한 해에 32만쌍이 결혼하고 25만명이 사망하니까 집집마다 경조비가 수십만~수백만원은 들 테고, 이를 다 합치면 수십조원은 족히 될 게다. 투명한 거래를 한답시고 혼주(婚主)·상주(喪主)한테 부조금 영수증을 달라 했다간 ‘미친 놈’ 소리 듣기 딱 알맞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복지공약에 들어갈 재원이 임기 5년 동안 135조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장률이 2%대로 주저앉아 세수(稅收)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새 정부는 연간 6조원을 지하경제를 파헤쳐 조달할 것이며 국세청이 총대를 멜 모양이다. 조사 인력을 몇 백명 늘려 현금거래로 탈루하는 자영업자들을 족치고 유사 휘발유 판매자, 불법사채업자를 샅샅이 뒤진다지만 세수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세금 나올 구멍이 더 이상 없으면 국세청이 ‘경조(慶弔)소득세’를 신설할지도 모른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데 독한 마음 먹으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지상경제’에서는 1년에 고작 수천원 예금이자에도 몇백원 소득세를 칼같이 떼가는 국세청이 아닌가. 혼주·상주에게 부조금 장부와 필요경비 공제용 영수증 등을 첨부하게 해서 세무신고 의무사항으로 정하고, 의심 나면 현장 입회조사나 세무조사를 벌이면 간단한 일이다. 더구나 경조금은 결혼식장·장례식장 같은 길목만 잘 지켜도 비교적 접근이 용이한 세원(稅源)일 테니까. 하지만 이는 헌법보다 무서운 ‘국민정서법’을 거스르는 일이다. 국민적 공감대가 없으면 정권이 위태로울 수 있다. 성직자의 소득에 과세를 추진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지하경제에는 세금을 매길 수 있는 돈과 없는 돈이 섞여 있다. 그걸 엄정하게 가려내는 게 국세청의 능력이다. ‘조자룡의 헌 칼’ 쓰듯 징세권을 휘두를 생각 말고, 지하경제 양성화에 큰 공을 세운 ‘카드·현금 사용액 소득공제’라도 현실에 맞게 잘 다듬는 게 아무래도 최선일 듯하다. ycs@seoul.co.kr
  • [눈여겨 볼 금융상품 3題] 수시 입출·예금보다 높은 금리 혜택

    [눈여겨 볼 금융상품 3題] 수시 입출·예금보다 높은 금리 혜택

    사회 초년생 재테크의 기본인 월급통장. 직장인들 사이에 대신증권의 ‘대신 밸런스 CMA’가 월급통장으로 인기다. 종합자산관리계좌(CMA)의 장점인 수시 입출금 기능이 있는 데다 은행의 정기예금 통장보다 높은 수준의 금리를 주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기준 ‘국공채형 CMA’의 금리는 연 2.65%, ‘회사채형 CMA’는 2.85%다. 3개월 기준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2.6%)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높다. 우대금리 혜택도 장점이다. 매월 50만원 이상 급여 이체를 신청하거나 매월 1건 이상 공과금을 납부하면 300만원 한도로 1% 포인트 우대금리를 받을 수 있다. 신규 금융거래를 트면 금액에 따라 우대금리도 준다. 경쟁사 CMA의 우대금리가 통상 700만원까지인 데 비해 이 상품은 최대 5억원까지 가능하다. 최광철 대신증권 상품기획부장은 “급여 이체, 공과금 납부를 신청하면 이체 수수료가 자동 면제되는 한편 은행 현금인출기를 이용할 때도 수수료가 면제된다”고 전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단독] 용산개발, 자본금 5억밖에 안 남아

    [단독] 용산개발, 자본금 5억밖에 안 남아

    31조원 규모의 서울 용산국제업무지구개발 사업을 맡고 있는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의 자본금이 거의 바닥나 사실상 부도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인데도 드림허브의 1, 2대 주주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은 사업 중단 시 발생할 서부이촌동 주민 2200여 가구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도권 다툼만 하고 있다. 24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용산사업PFV 향후 자금소요 내역’에 따르면 2007년 1조원으로 시작한 드림허브의 자본금이 현재 5억여원밖에 남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까지 51억원이던 드림허브의 자본금은 이달 17일 자산유동화증권(ABS)의 이자 46억원을 지급하면서 바닥을 드러내게 됐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추진된 25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발행에 실패하면서 추가 자금 수혈을 못 하게 됐다”면서 “ABS 이자는 부도 처리를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집행했다”고 말했다. 사업을 위한 투자금 마련은커녕 부도를 막기에도 급급한 실정이다. 자금은 바닥났지만 줄 돈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드림허브는 종합부동산세 1차분 56억원과 토지오염정화사업비 271억원,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설계비 654억원, 용산AMC 운영경비 14억원 등 총 1066억원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빚이 남은 자본금의 200배가 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종부세 2차분과 용산AMC 운영경비 등 2월까지 지급해야 하는 82억원을 연체시킨다 해도 3월 12일 지급해야 하는 유동화기업어음(ABCP)의 이자 59억원을 지급하지 못하면 부도를 맞게 된다. 용산개발 관계자는 “현재도 법률상 부도 처리가 되지 않았을 뿐 사실상 부도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했다. 드림허브가 부도 처리되면 개발 지연으로 수년째 재산권 행사를 하지 못한 서부이촌동 주민들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1, 2대 주주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이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상황의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부도가 나게 되면 양쪽 다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청산·법정관리·개발방식 변경 중 택일해야

    청산·법정관리·개발방식 변경 중 택일해야

    서울 용산역 철도기지창 개발을 맡고 있는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가 결국 부도 직전에 몰렸지만 1, 2대 주주인 코레일과 롯데관광개발은 해법은 내놓지 않은 채 주도권 싸움에만 골몰하고 있다. 최근에는 실질적인 사업 추진을 담당하는 용산역세권개발(용산AMC) 내에서도 직원과 경영진 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용산 개발에 대한 정책적 지원과 함께 사업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건의했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부도가 불가피한 만큼 그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용산 개발이 어그러지게 된 1차 원인은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여파로 인한 부동산 경기 침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선 사업 환경이 나빠진 것보다 이를 풀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대주주 간의 갈등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엉켜 있는 지분 구조가 한몫했다. 용산 개발의 실질적인 몸통인 드림허브의 1대 주주는 코레일(25%)이고 2대 주주가 롯데관광개발(15%)이다. 하지만 용산 개발의 실무를 담당하는 용산AMC의 1대 주주는 롯데관광개발(70.1%)이다. 나머지 29.9%는 코레일이 가지고 있다. 용산 개발 관계자는 “드림허브에서 개발 자금의 대부분이 나오는데 실무적인 의사결정은 용산AMC가 하고 있다”면서 “결국 돈은 코레일이 대고 주도권은 롯데관광개발이 가지고 있으니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1, 2대 주주가 다투는 상황에서 사업이 표류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일각에서는 구원투수라고 데리고 온 박해춘 용산AMC 회장의 책임론도 제기하고 있다. 박 회장은 2010년 삼성물산이 사업에서 손을 떼면서 용산 개발의 자본 유치 등을 위해 영입됐다. 하지만 기대했던 외자 유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용산 개발은 만성적인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최근에는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용산AMC 관계자는 “직원 70여명의 월급이 총 9억원 안팎인데 박 회장은 매월 6000만원가량을 받고 있다”면서 “자신은 고액의 급여를 챙기면서 직원들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고통 분담이 아니라 ‘고통 전가’”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느냐다. 업계에서는 크게 세 가지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첫째는 드림허브가 파산하면서 청산 작업에 들어가는 것이고, 둘째는 용산역세권개발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가면서 사업이 지속되는 것, 마지막은 정부가 사업에 개입하면서 개발 방식이 민간 중심에서 공공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다. 반면 롯데관광개발은 “현재 사업 방식으로도 1조원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며 기존 개발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이 있다면 지난해 12월 전환사채(CB) 2500억원 발행이 성공했을 것”이라면서 “획기적인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용산 개발은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수목극 시청률이 저조하다고? 조인성·송혜교·장혁·최강희… 이래도?

    수목극 시청률이 저조하다고? 조인성·송혜교·장혁·최강희… 이래도?

    2013년 안방극장의 첫 스타는 누가 될까. 1월을 맞아 신작 드라마가 속속 선보이는 가운데 상반기 첫 히트 드라마가 어떤 작품이 될 것인지 방송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2011년에는 KBS ‘추노’, 2012년에는 MBC ‘해를 품은 달’ 등이 새해 첫 주부터 돌풍을 일으켰지만 올해는 아직 이렇다 할 흥행작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올해 상반기 안방극장 기상도를 전망해본다. 현재 방영되는 밤 10시대 주 중 미니시리즈는 흥행의 기준으로 불리는 시청률 20%를 넘기는 뚜렷한 강자가 없는 가운데 월화극 시장은 새판짜기에 들어간다. 현재 월화극은 MBC 사극 ‘마의’가 20%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KBS 월화극 ‘학교 2013’도 10대와 40대 등 학부모와 학생층을 동시에 공략하며 15%대까지 상승한 상황. 또한 지난 14일 첫방송한 SBS ‘야왕’이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호스트바를 전전하며 헌신하는 남자 주인공 하류 역의 권상우의 연기가 화제를 일으키며 맹추격을 하고 있다. 당분간 오는 28일 종영을 앞둔 ‘학교 2013’과 ‘마의’의 치열한 선두싸움이 예상되는 가운데 새달 4일 KBS 새 월화극 ‘광고천재 이태백’이 방송되면서 새로운 경쟁 체제가 구축될 것으로 보인다. ‘광고천재 이태백’은 광고 크리에이터 이제석의 삶을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광고인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전문직 드라마다. 맨몸으로 광고업계에 뛰어든 열혈 청년 이태백 역은 최근 영화 ‘26년’에서 호연한 진구가 맡았고, 세계 유수의 광고상을 휩쓴 광고기획자(AE) 애디 강 역에 조현재, 최고의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백지윤 역에 박하선, AE의 꿈을 위해 과거도 버린 고아리 역에 한채영이 출연한다. 한편 ‘야왕’은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한 여주인공 주다해(수애)의 야망을 위한 행보가 본격적으로 그려지며 그를 위해 헌신한 하류와의 갈등이 다뤄질 예정이다. 3월에는 월화극 2라운드가 펼쳐진다. MBC가 ‘마의’ 후속으로 이승기·수지 주연의 ‘구가의 서’를 내놓고, SBS는 김태희 주연의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로 맞불을 놓을 예정이다. ‘구가의 서’는 반인반수로 태어난 최강치(이승기)가 사람이 되기 위해 벌이는 소동을 그린 무협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강은경 작가와 ‘신사의 품격’, ‘시크릿 가든’의 신우철 PD가 제작에 참여해 퓨전 사극의 성격을 띨 것으로 보인다.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김태희의 첫 사극 도전작으로 침방 나인이자 조선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장희빈을 새롭게 조명한다. 비교적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수목극 시장도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새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오는 23일 MBC가 ‘보고싶다’ 후속으로 ‘7급 공무원’의 첫선을 보이는 것을 시작으로 새달 13일에는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KBS ‘아아리스 2’가 동시에 첫 방송을 시작한다. 세 작품의 장르가 각기 다른 데다 톱스타들과 유명 작가 및 감독의 컴백으로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드라마 ‘7급 공무원’은 동명의 영화를 드라마화한 작품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썼던 천성일 작가가 드라마의 극본을 맡았다. 개성파 여배우 최강희와 안방극장의 루키 주원이 남녀 주인공을 맡아 신분을 감춘 국정원 요원들의 좌충우돌 로맨스를 비롯해 조직 내의 갈등과 에피소드를 그릴 예정이다. 2월에 맞붙는 KBS ‘아아리스 2’와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톱스타들의 치열한 자존심 경쟁이 예상된다. ’아이리스2‘는 시즌 1편에서 의문의 저격을 당한 김현준(이병헌)의 죽음으로부터 3년 후의 이야기를 그리며 미스터 블랙과 아이리스의 정체를 밝혀내는 첩보 액션 드라마다. 장혁, 이다해, 이범수, 오연수, 윤두준, 임수향 등이 출연한다. 한편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조인성의 군 전역 후 첫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일본 드라마 ‘사랑 따윈 필요없어, 여름’을 리메이크한 이 드라마는 유년시절 부모로부터 버려지고 첫사랑마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뒤 의미 없는 삶을 사는 도박사 오수(조인성)와 갑자기 찾아온 시각 장애와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외롭게 살고 있는 대기업 상속녀 오영(송혜교)의 사랑을 그린 정통 멜로물이다.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을 만들었던 노희경 작가와 김규태 PD가 다시 한번 호흡을 맞춘다. 후속작으로는 서로 다른 정당에 속해 있는 남녀 국회의원의 비밀 연애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내 연애의 모든 것’이 4월에 방송될 예정이다. 신하균, 김정난 등이 출연한다. 최근 방송사 간 시청률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주말극도 신작들의 대결이 볼 만하다. MBC가 지난 5일부터 주말 밤 10시대에 동시간대 정상을 지켰던 ‘메이퀸’ 후속으로 새 드라마 ‘백년의 유산’을 방송한데 이어 SBS는 새달 2일 ‘청담동 앨리스’ 후속으로 새 주말극 ‘돈의 화신’을 방송한다.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를 히트시켰던 장영철·정경순 부부 작가가 집필한 이 드라마는 돈 때문에 소중한 것을 잃고 중앙지검 특수부 검사까지 오른 주인공 이차돈(강지환)을 중심으로 로비와 비리로 얽힌 한국 사회의 이면을 그린다. 강지환은 사채업자의 딸 복재인 역을 맡은 황정음과 호흡을 맞춘다. 현재 시청률 40%를 돌파하며 인기를 누리고 있는 KBS 주말연속극 ‘내 딸 서영이’ 후속으로는 ‘최고다 이순신’이 편성됐다. 오는 4월 방영 예정인 이 드라마는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 엄마와 막내딸의 행복 찾기를 그린 작품. 섬마을 출신으로 서울로 올라와 스타가 되는 주인공 이순신 역에 아이유가 물망에 올라 있고 상대역으로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조정석이 거론되고 있다. 한편 MBC는 오는 3월부터 밤 9시 20분대 일일극을 신설한다. 첫 작품은 13년 전 히트 드라마 ‘허준’을 리메이크한 ‘구암 허준’으로 당시 이 작품을 썼던 최완규 작가가 다시 집필을 맡는다. 당시 70여분 64부작이던 작품을 40여분 120부작으로 선보인다. 지상파 방송 3사의 드라마가 없는 시간대에 일일 사극으로 승부수를 던진 전략이 성공할지 주목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사설] 은행들 비올 때 中企 우산 뺏을 텐가

    중소기업의 돈 가뭄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위해 중소기업 대출을 줄일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서다. 박근혜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중소기업 지원 강화 방안을 마련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그런데도 은행들은 자산 건전성을 위해 대출 축소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중소기업의 연쇄 도산이 우려된다. 역량 있는 중소기업들이 일시적 자금난을 피하지 못해 무너지는 안타까운 일은 없어야 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경기 침체기에는 부동자금이 국채나 은행 예금 등 안전자산으로 쏠리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회사채나 유상 증자 등 직접 금융을 통한 자금 조달이 사실상 막힌다. 전적으로 은행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들에 은행 문턱마저 높다면 새 정부의 중소기업 중심 기업정책 효과도 빛을 발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지난해 12월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11월보다 11조 8000억원 줄었다. 2011년 12월 이후 최대 감소 폭이라고 한다. 당국은 중소기업 대출이 크게 줄어든 정확한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은행들의 기업 대출 연체율 관리는 선진화된 리스크 관리 기법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 수없이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매출액이나 담보 등 외형 중심의 대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들은 줄곧 대기업과 가계대출 중심으로 대출을 늘리고 있다. 지난 2009년 1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3년간 대기업 대출은 65% 증가한 반면 중소기업 대출은 5%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기업 신용평가를 제대로 해서 당장의 담보 가치는 낮더라도 기술 혁신 등을 위해 노력하는 곳엔 아낌없이 자금 지원을 해줘야 한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잘 골라 내기 위해 현장 실사 등의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당국은 중소기업의 금융환경 혁신을 위한 제도들이 일선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철저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2월 중소기업 대출 부실에 대한 면책제도를 개혁하고, 은행권의 담보물 평가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의 ‘중소기업 대출심사 개혁대책’을 발표했다. 이 조치로 중소기업 대출 숨통이 트일 것이란 기대가 무산된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 [주말 인사이드] “사채꾼들을 양지로… 글쎄요?”

    [주말 인사이드] “사채꾼들을 양지로… 글쎄요?”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도소매업을 하는 조모(43)씨는 꼬박 10시간을 칼바람 속에서 번 10만원을 오늘도 사채업자에게 ‘납세’한다. 한 달 전 500만원을 빌리면서 10%의 선취 수수료를 떼고 손에 쥔 돈은 450만원. 앞으로 한 달 동안은 지금처럼 10만원씩 매일 일수를 줘야 한다. 실상 450만원을 빌려 600만원을 주는 꼴이다. 법정 이자한도 연 39%의 4배 수준인 셈이지만 조씨에겐 마약과도 같은 희망줄이다. 이미 2004년 ‘카드 대란’ 때 돌려막기로 장사 손해를 메우다 워크아웃을 신청한 상태라 지금까지도 매달 일정액을 갚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손님이 줄어 겨울 한 번 나려면 임대료에 인건비, 재료비까지 3000만원가량 적자가 나 어느새 사채에까지 손을 대게 됐다. 이렇게 해 오기를 2년. 사채업자들의 생리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게 된 조씨는 최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지하경제 양성화’ 공약에 대해서도 “쉽지 않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하경제 양성화란 사채, 마약 거래, 매춘 등 정부의 공식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경제 활동을 수면위로 끌어올려 탈루 소득에 대한 징세 강화로 세수를 늘리겠다는 것인데 탈법, 편법, 범법이 생활화돼 있는 이들이라 양지로 나오게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사채업자들의 교묘한 법망 피하기에 대해 이렇게 증언했다. “일단 명함이나 광고 전단지를 보고 연락을 하면 대포폰으로 전화를 받은 뒤 다시 연락하겠다면서 한참 뒤 다른 번호로 전화가 온다. 최대한 흔적을 안 남기려 하는 것”이라면서 “계좌로 돈을 주고받으면 증거가 남는다며 돈 빌리는 사람 보고 직접 새로 계좌를 만들거나 기존 계좌의 통장과 체크카드를 달라고 해 업자들이 매일 입금한 돈을 자유롭게 빼간다.” 아이 셋을 키우는 전업주부 김모(38)씨도 부족한 생활비를 사채로 메우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온 경우다. 김씨는 “오토바이를 탄 수금 사원이 매일 집까지 찾아와 돈을 받아 갔다”면서 “처음 인터넷 게시판에 돈을 싸게 빌릴 수 있느냐는 글을 남겼다니 업자가 아니라 자기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는 또래 여성이 접근해 와 업체를 알선했다”고 털어놨다. 사이버상에서 조언 핑계를 대며 브로커로 활동한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김씨와 친분을 쌓은 뒤엔 400만원을 한 사람이 빌려 나눠 쓰자며 쉽게 돈 빌릴 곳을 알려주고 200만원을 받은 뒤 종적을 감췄다. 일용직 노동자 성모(30)씨 역시 “추가로 돈을 더 빌리려고 하면 돈이 없다며 옆 사무실 사람을 소개해 준다고 한다. 만일을 대비해 꼬리를 언제든 끊을 수 있도록 같은 사무실인데도 별도의 사무실인 것처럼 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사채시장을 양지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법망에 걸려들지 않는 방법을 훤히 꿰뚫고 있는데 굳이 세금을 내려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또 낸다 해도 일부만 드러내고 알짜는 감춰 둘 것이 뻔하다고 강조했다. 조씨는 “지금도 TV 광고에 나오는 정식 대부업체들이 뒤로는 돈이 시급한 사람들에게 법정 이자의 몇 배를 받고 돈을 빌려 주는 탈법을 저지른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4월 18일~12월 7일 진행된 ‘불법사금융 단속현황’에서 1만 525명이 검거됐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5% 증가한 수치다. 불법 채권추심은 7배 이상(617%) 급증했다. 강도 높은 단속에도 뿌리 뽑히지 않는 것이 현실인 셈이다. 정부는 어떻게든 뿌리 깊은 탈세구조를 타파해 복지재원을 마련할 방침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내건 대표 공약 중 하나가 300조~400조원으로 추산되는 지하경제를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다. 박 당선인은 해마다 27조원씩 재임 5년간 총 135조원의 재원을 마련해 늘어나는 복지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지하경제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 등 전면전을 벌여 세수를 연간 6조원 안팎 더 확보하겠다는 내용을 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인수위 측은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금융거래 정보를 국세청이 공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할 작정이다. 은행을 비롯한 모든 금융기관은 원화 1000만원 이상(외화 5000달러 이상) 거래 때 불법재산이나 자금세탁, 테러자금 등으로 의심되면 FIU에 혐의거래보고(STR)를 해야 한다. 국세청은 FIU가 전담하고 있는 STR 분석 작업을 국세청이 같이 할 수 있다면 탈세 적발 비율을 더욱 높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STR 보고 건수는 2009년 13만 6000건에서 2011년 32만 9000건으로 2년 사이 142%나 급증했다. 국세청은 시중에 성행하는 가짜 석유, 면세유 불법거래, 자료상만 뿌리 뽑아도 최소 5000억원대의 세수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한다. 국세청은 사채업을 비롯해 예식장, 대형 음식점, 골프연습장 등 탈세 가능성이 큰 현금 수입 업종과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관리 강화, 부정매입 세액공제, 자료상 추적 등도 확대할 방침이다. 하지만 갈 길은 멀다. 불법사채시장 등 탈세자들의 범법 노하우가 상당한 데다 관계 당국 간 이견도 많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FIU 정보를 국세청과 공유하는 것에 대해 원칙적으로 부정적이다. 다만 최대한 협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금융위 고위 관계자는 “개인정보 노출 위험 등 실명제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면서 “일단은 큰 틀에서 전면적인 (정보) 공유는 부작용을 야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필요한 정보를 국세청에 최대한 협조한다는 데는 의견 접근을 본 만큼 조정안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검은돈 양성화’가 쉽지 않은 숙제인 만큼 채찍과 당근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사채시장이나 세금 탈루 등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해 온 만큼 이를 드러내 세수원으로 확보하는 게 녹록지 않다”면서 “너무 급진적으로 칼을 들이대면 강한 반작용이 따를 우려도 있는 만큼 무기명 채권을 활용해 금융실명제를 피하게 하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단속과 유인책 등을 통해 제도권 시장과 지하경제 간의 간극을 좁혀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금융감독 대표’ 바젤위 자산보강의무 등 완화

    전 세계 주요 금융감독기관을 대표하는 바젤은행감독위원회(바젤위원회)가 대형은행들의 자산 보강의무 기준 및 시한을 대폭 완화했다.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이후 강화된 건전성 규제로 압박을 받아왔던 글로벌 은행들의 숨통이 트이게 됐다. 한국과 미국, 영국, 일본 등 27개국 중앙은행장과 금융감독기관 책임자로 이뤄진 바젤위원회가 6일(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에서 최고위급 회의를 열어 은행의 ‘단기유동성 비율’(LCR) 완전도입 목표 시한을 당초 예정됐던 2015년 1월에서 4년 연기하기로 만장일치 합의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 등이 보도했다. LCR은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은행들이 30일 안에 처분할 수 있는 고(高)유동성 자산 비율을 가리키는 것이다. 은행의 유동성 부족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2년전 바젤위원회가 도입한 ‘바젤Ⅲ 패키지’의 핵심이다. 이번 합의로 각국의 대형은행들은 2015년 1월까지 LCR을 100% 채우는 대신 60%를 먼저 충족한 뒤, 2019년 1월까지 매년 10%포인트씩 비율을 늘리면 된다. 바젤위원회는 또 고유동성 자산에 현금과 국채, 우량 회사채 등의 ‘안전자산’만 넣도록 했던 기존 방안을 완화해 주식과 우량 주택담보대출채권(RMBS) 등도 포함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들은 숨통이 트였지만 일각에서는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금융시스템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바젤위원회의 노력이 은행업계의 로비와 압력에 무너졌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은행들은 2015년까지 LCR 비율을 맞추려면 당장 대출 축소가 불가피하고, 은행시스템이 국가 부채위기에 더 취약해진다며 공공연하게 불만을 제기해 왔다. 바젤위원회 의장인 머빈 킹 영란은행(BOE) 총재는 “이번 제도는 사상 처음으로 전 세계 은행의 최소 유동성 기준을 마련한 데 의미가 있다”면서 “경제 회생을 지원하는 은행의 대출 사업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조폭 계보 및 향후 판도는

    범서방파의 두목 김태촌씨가 지난 5일 사망하면서 조직폭력계의 판도와 변화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거물급 인사의 사망으로 조폭계에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오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다. 하지만 경찰은 “신흥 조폭의 형태를 볼 때 우려는 기우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1980년대 전국 3대 폭력조직으로 꼽히던 범서방파(김태촌), 양은이파(조양은), OB파(이동재) 등은 폭력·갈취·사채·성매매·마약 매매 등 전통적인 조폭 범죄를 일삼았다. 하지만 이른바 ‘범죄와의 전쟁’으로 전통적인 조폭은 세력이 크게 약화되거나 와해됐다. 실제 조폭계의 전설로 통하던 조양은씨와 김태촌씨는 살인 등의 혐의로 각각 20년, 3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보냈다. 이 틈을 타 신흥 조폭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고 과거보다 쪼그라든 형태로 조직들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7월 말 기준 경찰청이 파악한 전국 폭력조직은 217개, 조직원은 5384명이다. 평균 조직원 수가 25명이 채 못 된다. 조폭의 수가 가장 많은 지역은 서울로 조직 22개, 조직원 484명이 활동 중이다. 부산은 조직 23개에 조직원 381명이 활동해 광역시도 중 인구 대비 조직원 비율이 가장 높다. 활동 영역도 변했다. 2000년대 신흥 조폭들은 건설업, 증권투자업, 연예, 대부업 등으로 눈을 돌려 이른바 ‘화이트칼라 범죄’를 저지른다. 생존을 위한 진화를 거듭해 겉으로는 기업의 형태를 띤다. 과거 두목·부두목이란 호칭은 자연스럽게 회장·사장으로 바뀌었다. 세력 과시를 위해 수십명씩 떼를 지어 움직이는 일도 드물다. 돈이 되는 일이 생기면 여러 조직이 뭉쳤다가 해체하는 점조직 형태를 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찰은 김씨의 사망이 조폭계의 세력 재편성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과거 지역 기반을 둔 보스 밑에 주먹으로 단결하던 때와 달리 이미 조폭들이 기업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김씨의 사망이 주먹판을 뒤흔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kimje@seoul.co.kr
  • [2013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기막힌 동거/임은정

    [2013 신춘문예-희곡 당선작] 기막힌 동거/임은정

    등장인물 아영(25) 숙자(37) 동곤(25) 집주인(55) 아들(28) 장씨(50)- 1인 2역 때 현대 겨울 장 소 도심 변두리 다가구주택 무 대 오래되고 낡은 느낌의 집이다. 조그만 마당이 있고 셋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보인다. 문을 사이에 두고 마당과 방이 나뉜다. 방 안은 소박하고 단출하게 꾸며져 있다. 벽에는 커다란 시계가 걸려 있고 옷장, 책상, 앉은뱅이 화장대가 한구석을 차지한다. 부엌에는 싱크대와 소형 냉장고가 있다. 부엌 옆으로 화장실로 들어가는 문도 보인다. 네모난 종이 상자가 몇 개 놓여 있고, 일상용품과 옷들이 흩어져 있다. 1장. 마 당에서 방 안을 기웃거리는 정장 차림의 숙자. 한 손에는 고객 파일을 들고 있다. 목에 건 스톱워치를 보며 초조한 듯 시간을 재고 있다. 숙자 5, 4, 3, 2, 1.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아영 아직 내 시간이에요. 숙자 이제 내 차례야. 아영 (시간 확인, 밖으로 나간다) 이제 아영이 밖이고, 숙자가 방 안이다. 아영이 밖에서 방 안을 기웃거린다. 휴대전화 보며 시간을 기다리다 방 안으로 소리친다. 아영 1분 남았어요. (모래시계 꺼내서) 시, 작! (다 떨어지면) 땡!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숙자 아직 내 시간이야. 아영 이제 내 차례예요. 숙자 (시간 확인, 밖으로 나간다) 다시 마당에서 방 안을 염탐하는 숙자. 밖으로 나오는 아영을 붙잡아 방으로 밀고 들어온다. 숙자 전화는 왜 안 받아? 요리조리 도망만 다니고. 무조건 피하면 다야? 일부러 그런 거지? 어떻게 됐어? 벌써 며칠째냐고. 오죽하면 대낮에 일하다 말고 너 잡으러 왔겠어. 더 이상은 안 돼. 아영 숨 넘어 가겠어요. 숙자 시간 없어. 말일까지는 해결해줘. 아영 무리예요. 숙자 안 쫓겨나는 것만도 다행이거든. 아영 조금만 더···. 숙자 최후통첩이야. (고객 파일을 두고 나간다) 아영, 마당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온다. 어깨에 큰 가방을 메고 있다. 집주인, 빗자루 들고 다가간다. 집주인 꼼짝 마. 아영 으악! 집주인 내려놔. 아영 아니에요. 오해세요. 집주인 가방 내려놓으라니까. 아영 고모 모르세요? 여기 사는 분요. 집주인 (방 쳐다본다) 아영 키 좀 크고, 얼굴 동그랗고, 파마머리···. 집주인 젊은 게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아영 저 방이, 숙자 고모예요. 친척 동생, 아 그러니까···. 조, 조카예요. 집주인 도둑년이 어디서 수작질이야. 아영 (가방을 쏟으며) 조카 맞아요. 보세요. 다 옷뿐이잖아요. 고모 부탁으로 세탁소 가던 길이었어요. 훔친 거 아니에요. 두 사람은 대치하고 있고, 숙자가 급히 들어온다. 아영 고모! 도, 도둑으로 몰렸어요. 집주인 (빗자루 내리며) 아는 사람이야? 숙자 오해를 하신 것 같아요. 조카가 놀러 왔어요. 집주인 이 시간에 집에는 웬일이야? 숙자 뭘 좀 두고 와서요. 집주인 객식구는 오늘 가지? 숙자 (머뭇거리다) 며칠만 있을 거예요. 집주인 은근슬쩍 넘어갈 생각 말고 계산이나 똑바로 해줘. 숙자 무슨···. 집주인 수도, 전기, 가스! (수첩 꺼내서 적으며) 단 하루라도 사람이 늘었으면 더 내야지. (시계 보며) 어머, 마트 타임 세일···. (나간다) 아영, 떨어진 옷을 가방에 챙겨 넣는다. 숙자 조심하랬잖아. 아영 연습한 시나리오대로 잘 말했어요. 숙자 그 아줌마 눈치가 보통 아니야. 들키지 않게 잘해. 아영 (일어난다) 너무 억지를 부려요. 놀러왔다는데 세금이라니···. 숙자 밀린 방세나 신경 써. 숙자, 방으로 들어가 고객 파일을 챙겨 나간다. 아영,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벽시계 쳐다본다. 오후 2시 무렵. 우유 배달 아줌마 변장을 한 동곤, 손수레를 끌며 마당을 서성인다. 동곤 (노크하며) 신선하고 고소한 내추럴 우유 왔어요. 아영 (문 가까이 다가와) 아무도 없어? 동곤 장트라블타에 직방인 야쿠르트 왔어요. 아영은 동곤이 온 것을 확인, 문을 열어 준다. 동곤, 후다닥 방으로 들어간다. 변장용 옷과 가발을 벗는다. 동곤 이렇게까지 해야 돼? 아영 앞으로 더한 것도 해야 돼. 동곤 뭘 또 시키려고? 아영 다른 방법이 없잖아. 동곤 이런 기발한 생각은 어떻게 한 거야? 아영 한 수 모방했지. 동곤 이런 걸 뭐라고 하냐? 월세방은 아니고, 파트방인가? 아영 아무려면 어때. 동곤 우리 시간제로 방 쓰잖아. 그러니까 시간방 아니야? 아영 잘도 갖다 붙인다. 2시부터 8시면 황금 시간대야. 어디가도 이런 방에, 이런 가격 없어. 동곤 방세 좀 깎아줘. 아영 휴학하고 미친 듯이 알바 뛰는 거 보고도 그래. 동곤 나도 밤마다 미친 듯이 부킹한다고. 아영 그럼 다른 방 알아보든지. 동곤 아, 아니야. (사이) 망이나 좀 봐. 슈퍼 좀 갖다 오게. 두 사람, 조심스럽게 마당으로 나오다 집주인과 맞닥뜨린다. 아영 (둘러대며) 동, 동생이에요. 집주인 동생? 혹시 남동생도 같이 이 방에···. 아영 아니, 놀러 온 거예요. (동곤에게) 뭐해? 들어가자. 집주인 나오던 거 아니었어? 아영 들어가던 길이예요. 아영과 동곤은 방으로 들어오고, 집주인은 자기 집으로 간다. 동곤 동생이라니? 아영 급한데 그렇게라도 둘러대야지. 이제부터 나는 누나, 그 누님은 고모야. 동곤 졸지에 수상한 가족 탄생! 불안 불안해서 여기 계속 살겠냐? 아영 변장 안 하면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마. 출입 금지야. 동곤 무슨 감옥도 아니고. 아영 그래 봐야 저녁 8시까지야. (나간다) 동곤은 손수레에서 침낭을 꺼내 덮고, 벽시계는 꺼내서 베고 잔다. 저녁 8시. 숙자는 방 앞에서 스톱워치 보며 계속 차례를 기다린다. 시계 알람 소리 몇 번 울린다. 동곤, 겨우 일어나 허겁지겁 나온다. 숙자 거기서 왜···. 동곤 ···. 숙자 누구···. 동곤 오, 오빠예요. 숙자 오빠라뇨? 동곤 아영이는 알바 가고, 깜빡 잠이 들어서···. 집주인이 마당으로 나오다 순식간에 두 사람과 마주친다. 숙자는 당황하고, 동곤은 침착하게 대처한다. 동곤 고모도 만나고 가려고···. 집주인 누가 뭐래. (숙자에게) 건넛방, 할 얘기가 있어. (집 전화 울린다) 잠시만. 집주인은 나가고, 숙자는 동곤을 붙잡아 방 안으로 들어간다. 숙자 오빠라고 안 했어요? 동곤 저···. 숙자 고모는 또 뭐예요? 동곤 둘 다예요. 숙자 무슨 소리예요? 동곤 그렇게 돼 버렸어요. 아니 그렇게 해야 돼요. 숙자 혹시 주인이 아영이를 알아요? 그쪽도요? 동곤 다 같이 만났어요. 숙자 만나다뇨? 동곤 주인은 우리가 남매인 줄 알아요. 숙자 남매가 아니에요? 동곤 아니 맞아요. 아영이는 동생입니다. 숙자 오빠라며? 너 뭐하는 놈이야? 동곤 (물러선다) 오, 오빠라니까요. 숙자 아영이는 분명히 형제가 없다고 그랬어. 동곤 사, 사촌 오빠. 사촌끼리 워낙 친하게 지내서 그냥 오빠라고 그래요. 숙자 뻥까지 말고 바른 대로 대. 동곤 복잡하게 생각 마세요. 집주인은 아무것도 몰라요. 아영이가 집주인한테 잘 둘러댔어요. 그러니까 우린, 모두, 아무것도 들키지 않았다고요. 숙자 가택 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할 거야. 동곤 가택 침입이라뇨? 여긴 내 방이에요. 숙자 여기가 왜···. 동곤 이 방은···. 숙자 둘, 둘이 동거해? 동곤 대박! 근친상간이라고요? 숙자 빌려 쓰는 방에서 살림을 차리면 어떡해? 동곤 아니 점점···. 숙자 빨리 불어. (휴대전화 꺼내며) 당장 경찰에 신고할 거야. 콩밥 좀 먹어 볼래. 동곤 세, 세 들었어요. 숙자 세라니? 동곤 아영이가 세 든 12시간 중에서, 6시간을 다시···.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집주인. 숙자 (동곤에게) 꼼짝 말고 있어. 밖으로 나가본다. 집주인과 싸움이 벌어진다. 숙자 갑자기 이러시면 곤란해요. 집주인 일이 그렇게 됐어. 숙자 이 추운데 당장 방을 어디서 구해요. 집주인 원래 거기가 우리 아들 방이었어. 숙자 법적으로도 이건 걸려요. 이런 식은 문제가 있다고요. 집주인 젊은 사람이 팍팍하게 왜 그래. 법까지 들먹이는 건 좀 그렇잖아. 숙자 심한 게 누군데요. 집주인 내가 주인인데, 내 집을 맘대로 못 할 게 뭐가 있어. 숙자 다 낡아 빠진 집 한 칸 있다고 유세는···. 집주인 뭐, 유세···. 숙자 주인이면 다야? 집주인 이 여자가···. 당장 방 빼. 2장. 숙자, 아영, 동곤이 서로를 경계하며 마당을 빙빙 돈다. 숙자는 목에 건 스톱워치를 손에 들고, 아영은 가방에서 모래시계를 꺼내고, 동곤은 우유 손수레에서 큰 벽시계를 꺼내 든다. 도는 속도 점점 빨라진다. 숙자 0.5 아영 0.4 동곤 0.3 숙자 0.2 아영 0.19 동곤 0.18 숙자 0.17 아영 (건너뛰며 재빨리 다 센다) 0.16, 0.15, 0.13, 0.11. 땡! 다같이 내 차례야. 세사람은 서로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난리 법석. 순식간에 몰려 들어와 각자 방 안의 일상을 시작한다. 숙자는 출근 준비를 서두르고, 동곤은 시계를 베고 눕는다. 아영은 방의 벽시계 시침과 분침을 돌려 오전 8시로 맞춘다. 아영 내 시간이에요. 빨리 해주세요. 숙자 누구 때문에 이러는데. 아영 시간 가요. 빨리요. 숙자 (단단히 화가 나) 아영이 너···. 아영 ···. 숙자 사람을 들이면 어떻게 해? 동곤 (노래하듯) 뛰는 놈, 그 위에 나는 놈. 아영 조용히 해. 숙자 이건 엄연한 계약 위반이야. 이제 너하고는 계약 해지야. 아영 갑자기 그러시면···. 숙자 저 놈만 끌어들이지 않았어도 아무 탈 없었어. 동곤 (일어나며) 이거 왜 이래요. 나는 피해자예요. 아영 방법이 있을 거예요. 숙자 괜히 들켜서 피곤해지느니 방 빼서 다른 데 가는 게 나아. 어차피 주인도 나가라고 한바탕 난리 부렸어. (사이) 아들이 여기로 들어온대. 아영, 동곤 네? 아영 제발 그것만은···. 동곤 우리도 같이 이사 가요? 아영 (동곤을 째려본다) 숙자 계약 해지라니까. 동곤 해지라뇨? 겨우 하루 살았다고요. 숙자 내가 뭐 어쨌다고. 동곤 시간방을 탄생시켰잖아요. 이 방의 어머니 같은 존재랄까요? 아영 농담이 나와? 동곤 맞는 말이잖아. 숙자 헛소리 집어 치우고. 아영이하고 해결해. 숙자, 휴대전화가 울린다. 친절하게 통화한다. 숙자 네, 고객님. 암보험요? 자녀분 것도 드신다고요. 그리로 금방 갈게요. (통화 마치고, 아영을 쏘아본다) 빨리 해결해. 저놈도, 월세도. 숙자, 서둘러 나가다 뭔가 생각난 듯 뒤돌아 온다. 깜빡한 가방은 챙겨 가고,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두고 나간다. 급하게 나가다 문을 살짝 열어두고 간다. 아영 안 들키게 조심하랬잖아. 동곤 변장까지 시켜서 끌어들인 게 누군데. 아영 끝까지 모른다고 버텼어야지. 동곤 더 있다가는 짭새 뜰 뻔했다고. 아영 주인집 아들이 문제야. 그놈만 안 오면 아무 문제 없는데. 동곤 우리 업소 형님들한테 부탁 좀 해볼까? 아영 허튼 짓 하지 마. 아영,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벌컥 마신다. 동곤을 쳐다본다. 아영 내 시간이야. 동곤 치사하게. 비상이라고 일찍 오라며? 아영 다 끝났잖아. 동곤 그래서 지금 날더러 나가라고? 아영 응. 동곤 우리도 해결 봐야지. 아영 걱정 붙들어 매. 이 방은 반드시 지킬 거야. 동곤 오늘만 그냥 좀 있자. 아영 너랑 같이? 동곤 뭐 어때? 우리 같이 건조한 사이에. 아영 가줄래. 머리 아파 죽겠거든. 동곤 나갔다 오면 집주인 눈치도 봐야 하고. 어디 갈 데도 없다고. 아영 약속한 시간을 지켜줘. 동곤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을게. 아영 6시간만이라도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동곤 (옷장 가리키며) 저, 저기 들어가 있을게. 아영 뭐라고? 동곤, 순식간에 옷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영이 밖으로 끌어내려 한다. 아영 뭐하는 짓이야? 동곤 이제 편하게 쉬어. 방해 안 할게. 아영 거기서 당장 나와. 동곤 나 없다고 쳐. 그거, 투명 인간! 아영 죽고 싶어? 동곤 여기 한숨 때리기 딱이다. 아영 좁아 터진 데서 잠이 와? 동곤 시간 되면 바로 깨워. 낯선 남자가 방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온다. 아영 (멀찍이 서서) 누, 누구세요? 아들 그쪽은요? 아영 ···. 아들 여기 살아요? 아영 네. 아들 (굉장히 놀라며) 이 방을 세 줬어요? 아영 누구신데···. 아들 아들 집 나간 지 얼마 됐다고. 아영 혹시, 주인집? (사이) 일단 여기 좀 앉으세요. 두 사람, 어색하게 앉는다. 아영 이 방으로 이사를 온다고···. 아들 누가요? 내가요? 아영 그래서 방 빼라고 그러셨는데. 아들 그럴 리가 없어요. 뭔가 꿍꿍이가 있겠죠. 아영 무슨···. 아들 그게 아마도···. (망설인다) 아무튼 내가 이 방에 오는 건 아닙니다. 오늘은 집에 잠시 왔다가, 내 방에 두고 온 게 생각나서. 아영 (옷장을 쳐다본다) 아들 저, 화장실 좀 써도 될까요? 아영 그러세요. 주인집 아들이 화장실에 간 사이, 아영은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고, 옷장을 두드린다. 아영 그새 잠든 거야. 반응이 없자, 더 세게 두드린다. 아영 시간 됐어. 빨리 튀어 나와. 동곤, ‘시간’이라는 말에 놀라 옷장 밖으로 나온다. 이때 아들이 화장실에서 나온다. 아영 그자야. 주인집 아들. 동곤 뭐? 아영과 동곤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는다. 동곤, 손수레에서 업소용 쟁반을 꺼내 아들을 위협한다. 동곤 너 잘 걸렸다. 아들 (물러선다) 왜 그래요. 동곤 우리 형님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아들 무슨 소리야? 아영, 부엌에서 식칼을 찾아 동곤에게 주려 한다. 아영 이걸로 해. 동곤과 아들, 모두 놀란다. 동곤 사람 놀라게. 아영은 칼을 든 채 아들에게 위협적으로 다가간다. 아영 이 방은 우리 거야. 여기로 들어오지 마. 아들 도, 도둑이었어? (동곤 보며) 그것도 2인조. 책상 위로 강하게 칼을 내리꽂으며 협박한다. 아영 이 방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아들 ···. 동곤 한 발짝도 안 돼. 발모가지를 확 그냥···. 아들 (주머니 뒤진다) 돈 가진 거 다 줄 테니까 제발 나 좀 보내줘요. (손목시계 푼다) 이 시계도 가져요. 비싼 거예요. 다 가져요. 아영 지금 무슨 헛소리 하는 거야? 동곤 도둑들 아니고 세입자들! 아들 정말이에요? 도둑 아니에요? 동곤 이렇게 때깔 좋고 잘생긴 도둑 본 적 있어? 아들 아니 근데 왜 나한테···. 아영 당신 때문에 쫓겨나게 생겼다고. 동곤 이 방에 들어온다고 그래서. 아들 아니 들어올 일 없다니까 자꾸 왜 그래요. 이 방 월세 밀렸다고 엄마한테 쫓겨나서 친구 집 전전하면서 산다고요. 밀린 방세도 아직이에요. 동곤 (쟁반 내리며) 아들인데도 월세를 받아? 아들 자식이라고 봐주는 거 없어요. 악착같이 뜯어 갑니다. 아영 그러니까 진짜 이 방에 이사 올 일이 없다고? 아들 그렇다니까요. 아영 그럼 주인 아줌마 속셈은 뭐지? 아들 그건···. 아영, 아들이 망설이자 꽂혀 있는 칼을 뽑아 들려고 한다. 아들 월, 월세 올려 받으려는 거예요. 아영 (더 위협) 확실해? 아들 보증금 빼줄 돈도 없을 거예요. 밖에서 숙자가 문을 두드린다. 숙자 문 좀 열어 봐. 동곤, 아영은 몹시 당황한다. 숙자 (계속 두드린다) 안에 없어? 아영 (동곤에게) 옷장. (아들에게) 당신은 화장실. 빨리 피해. 동곤 화장실은 위험해. 아영 둘 다 옷장! 빨리! 아들 누군데 그래요? 동곤 사채업자. 동곤, 옷장에 들어가 숨는다. 아들도 얼떨결에 따라 들어간다. 옷장 안이 비좁아 아영이 억지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린다. 문 열어주자 숙자가 급하게 들어온다. 아영은 옷장 앞에 선다. 숙자 빨리 안 열고 뭐했어? 아영 자느라고요. 집에는 왜 다시···. 숙자, 무언가를 찾는다. 책상 위에서 휴대전화 발견. 숙자 내 정신 좀 봐. 여기 두고. (책상에 꽂힌 칼을 본다) 저건 뭐야? 아영 (다가가 칼 뽑으며) 과일 좀 깎아 먹으려고. 숙자 취미도 참 별나. 숙자, 가려다 뒤돌아 다시 들어온다. 숙자 내 목도리를···. 어디 뒀더라. 방 안을 찾다가 옷장을 보고 서서히 다가온다. 놀란 아영은 가방에서 자기 목도리를 꺼내준다. 아영 바쁜데 이거 그냥 하고 가세요. 선물이에요. 숙자 (받는다) 선물은 선물이고, 월세는 월세야. 목도리 두르고 나가는 숙자를, 아영이 잠시 불러 세운다. 아영 밤에 들를게요. 방 때문에 상의할 게 좀 있거든요. 숙자 집주인 조심해. (나간다) 옷장 안에서 두 사람 쏟아져 나온다. 헉헉거린다. 동곤 죽을 뻔했어. 둘은 안 돼. 무리데스. 아들 사채업자 아니죠? 누군데 그래요? 아영 이 방 주인. 아들 네? 우리 엄마가 주인 아니에요? 동곤 쉽게 말해서. (노래하듯) 세 준 놈, 그 위에 세 준 놈, 그 위에 세 준 놈. 동곤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울린다. 동곤 (받는다) 뭐라고요? 현빈 형님요? 알았어요. 총알같이 갈게요. (끊는다) 1시까지는 다시 올 수 있어. 괜찮겠어? 아영 너는 2시부터야. 동곤 저 사람은? 아영 바로 돌려보낼 거야. 동곤, 서둘러 나가는데 아영이 불러 세운다. 아영 (우유 손수레 가리키며) 야, 장동곤! 저거는? 동곤 어차피 다시 올 거잖아. 아영 변장 안 해? 들고 가. 들키면 어쩌려고. 동곤, 마지못해 손수레에 자기 물건을 쑤셔 넣고 밖으로 나간다. 아들도 슬쩍 따라 나가려고 한다. 아영 잠깐만요. 정말 죄송해요. 워낙 방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우울증이 심해서 그래요. 가끔 나도 모르게 불같이 화가 나는데···. 아들 아니, 뭐, 그럴 수도···. 아영 혹시 하루 종일 집에 있어요? 아들 취직도 안 되고 해서, 밤에는 친구 가게에서 일을 좀···. 아영 굉장히 싼 방이 있는데. 아들 ···. 아영 하루 종일은 아니고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쓸 수 있어요. 하루 6시간, 월세는 8만원만 내면 돼요. 아들 그런 방이 있어요? 아영 네. 시간방! 오전에는 방에서 쉬고, 오후에는 도서관 가고. 어때요? 아들 거기가 어딘데요? 아영 (손짓) 여기! 아들 이 방요? 3장. 숙자는 얼굴에 수건을 묶고 마사지크림을 바르고 있다. 아영은 그 옆에 앉아 숙자 눈치를 살핀다. 아영 주인이 아무래도 빼줄 보증금이 없는 것 같아요. 숙자 (쳐다본다) 누가 그래? 아영 동네 아줌마들 염탐 좀 해봤는데 확실해요. 소식통 슈퍼 아줌마한테 들었는데, 글쎄 주인집 아들이 다단계에 홀딱 빠져서 패가망신할 뻔했대요. 주인이 그 일 처리하느라 빚까지 엄청 지고, 난리도 아니었대요. 숙자 뭐? 큰소리만 뻥뻥 치더니 뭔가 미심쩍다 했어. 아영 보증금은 확실히 없어요. 숙자 순둥인 줄 알았더니 재주도 용하다. 아영 버티면 돼요. 이 방에서 안 나가도 된다니까요. 숙자 그래도 그놈은 해결해야 돼. 아영 월세를 아예 안 낼 수도 있는데. 숙자 (솔깃하며) 하나도? 아영 대신 밀린 월세 몇 달만 좀 봐주세요. 숙자 그거야···. 아영 언니라고 해도 되죠? 숙자 편하게 불러. 아영 저희 합쳐요. 숙자 같이 살자고? 아영 어차피 밤에 알바하느라 집에 거의 안 들어와요.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같이 방 써도 집에 거의 없을 거니까. 숙자 불편하지 않을까? 아영 월세 하나도 안 내셔도 된다니까요. 숙자 (바싹 다가간다) 진짜 무슨 수가 있어? 아영 하나 더 들이세요. 숙자 ···. 아영 셋이서 월세 다 부담할게요. 숙자 지금도 주인 눈치 보이는데 어떻게 그래. 들키기라도 하면···. 아영 안 들키게 철저하게 교육시킬게요. 시간도 그대로 쓰고, 월세도 안 내고. 언니는 손해날 거 하나도 없어요. 대신 밀린 월세만 좀···. 숙자 괜히 일을 더 크게 벌이는 것 같은데. 아영 돈 급하시잖아요. 카드 빚도 갚아야 하고. 그래서 12시간 세도···. 숙자 그걸···. 아영 카드 회사 독촉장 봤어요. 오해 마세요. 방에서 그냥 우연히 본 거니까. 사각 티슈 몇 장을 연거푸 뽑아 얼굴에 마구 문지른다. 숙자 내가 쓴 거 아니야. 다 그놈이 저지른 거야. 아영 누가···. 숙자 망할 놈의 개자식. 원수덩어리. (사이) 전 남편. 아영 그러니까 사람 하나 더 들이세요. 빨리 빚 갚아야죠. 숙자 사람을 어디서 구해? 아영 적임자가 하나 있어요. (휴대전화 울린다) 네. 지금 나가요. (끊는다) 알바하다 잠시 온 거라서···. 숙자 잠은 안 자? 아영 그럴 시간 없어요. 월세는 봐 주시는 거예요. (마당으로 나간다) 집주인이 아영을 기다리고 있다. 집주인 정말 올려 줄 거야? 아영 네. 그렇다니까요. 집주인 고모 일에 조카가 왜? 아영 월세 올려 드리고 저도 여기 같이 살까 하고요. 집주인 그래? 근데 얼마나? 아영 십오 정도. 그냥 아드님 쓰라고 하기에 방이 좀 아깝지 않아요? 다달이 사십을 집에 갖다 주는 것도 아니고. 집주인 (혼잣말) 사십! 아영 생각해 보시고 연락 주세요. 집주인 나가고, 아영도 밖으로 나간다. 째깍째깍 시간이 흐른다. 아영, 조심스럽게 다시 방으로 들어온다. 동곤이 마당에서 방 쓸 차례를 기다린다. 아영, 나오다 기겁한다. 아영 뭐해? 변장도 안 하고? 동곤 이제 조카잖아. 그럴싸하게 연기만 하면 돼. 아영 자주 들락거리면 의심받아. 아영, 동곤을 데리고 재빨리 들어간다. 동곤, 벽시계를 2시에 맞춘다. 동곤 안 가고 뭐해? 내 시간이야. 아영 잠시만. 중요한 일이야. 동곤 지정된 시간을 지켜줘. 아영 그새 따라 하기는. (사이) 방세 올려줘야 돼. 동곤 뭐? 아영 집주인이 요구를 해. 동곤 아들놈 때문이라며? 아영 원하는 건 돈이었어. 동곤 고모한테 더 내라고 해. 아영 장난하지 말고. 한 방에 사니까 공동 책임이잖아. 동곤 주인하고 계약한 건 그 여자야. 아영 십오를 더 달래. 동곤 이런 낡은 방을? 아영 당장 아쉬운 건 우리잖아. 동곤 (시계 본다) 일단 좀 씻고. 쓰레기통에서 수건, 칫솔, 면도기를 꺼내 빠르게 움직인다. 아영 거기다 왜···. 동곤 들고 다니기 귀찮아서 짱박았어. 아영 들고 다녀. 숙자 언니가 질색해. 동곤 잘만 숨기면 돼. 아영 더 낼 거지? 동곤 씻고, 쉬고, 자고, 밥 먹고, 똥 싸고. 꾸물거리다 언제 다 해. 나이트에서 부킹이 필수라면, 시간방은 스피드가 생명이지. 동 곤은 화장실로 들어가 쏜살같이 씻고 튀어나온다. 아영 그러니까 그 언니가 우리 사정 봐줘서 5만원을 더 내는 거야. 보증금도 그 언니가 내고 있고 12시간 쓰니까 15만원. 나머지는 너, 나 6시간에 각각 12만 5000원. 동곤 4만 5000원이나 더 내라고? 아영 이런 방을 어디 가서 구해. 동곤 고시원으로 갈까? 아영 거기도 한 달에 최소 삼십은 넘어. 그걸 어떻게 견뎌? 업소에서 오전에 쪽잠이라도 잘 수 있는 게 그나마 다행인 줄 알아. 동곤 돌겠다! 아영 너도 살고, 나도 살고. 동곤 주인 살고, 우린 죽고. 아영 ···. 동곤 5000원이라도 깎자. 아영 사용 시간에 따라 공평하게 고통 분담! 동곤 이 넓디넓은 지구에, 하루 24시간 내 몸뚱이 하나 편하게 누일 방 한 칸이 없다니···. 아영 지구는 좀 심하다. 동곤 심한 건 이 방이야. 아영 다음 달부터 올리는 거다. (나간다) 동곤, 부엌 싱크대 안에 숨겨둔 침낭과 시계를 꺼내서 잠을 청한다. 똑딱똑딱 시간이 흐른다. 저녁 8시 무렵, 숙자가 밖에서 문 두드린다. 동곤, 후다닥 일어나 방을 나오다 숙자와 마주친다. 숙자 이러다 의심받아. 빨리 가. 동곤 가요, 가. 숙자는 방으로 들어와 곧바로 잠을 잔다. 시간 흘러 아침 7시 30분. 알람 울리자 옷을 갈아입고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한다. 아영은 방 밖에서 기다리다 졸고 있다. 모래시계를 손에 쥐고 있다. 숙자 (나오며) 빨리 들어가. 아영 (잠꼬대하며) 찜질이세요? 목욕만 하세요? 숙자 (깨우며) 여기 집이야. 아영은 비몽사몽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벽시계를 8시에 맞춘다. 그대로 쓰러져 잠이 든다.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자, 벌떡 일어난다. 집주인 아가씨, 있어? 아영 네. 나가요. 아영, 정신을 차리고 눈빛을 번뜩인다. 집주인 그때 말한 월세는···. 아영 안 그래도 다른 방 열심히 알아보고 있어요. 집주인 다른 방이라니? 아영 보증금이나 잘 준비해주세요. 집주인 아들놈 잘 구슬려서 다락방 쓰라고 하면 돼. 아영 아드님한테 미안해서요. 그냥 이사 나갈게요. 집주인 이사라니? 내 집이다 생각하고 편하게 지내. 아영 그 월세면 투 룸도 가능하겠고. 아무래도 둘이라 불편하기도 하고. 집주인 그러지 말고 조금만 올려주고 그냥 살아. 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잖아. 아영 얼마나···. 집주인 10만원만 더 내. 아영 그 돈이면 그냥 이사 가는 게···. 집주인 섭섭하게 왜 그래. 그럼 딱 5만 원만. 아영 보증금 준비를 최대한 서둘러 주세요. 집주인 (자기도 모르게 소리 지른다) 안 돼! 아니, 당분간은 그냥 살아. 아영 최종 결정은 고모가 해야 하니까···. 집주인 월세만 밀리지 말아줘. 집주인은 울상을 짓고 나가고, 아영은 방으로 들어와 한숨을 돌린다. 혼자 계산을 해보며 웃음 짓는다. 아영 계산이 그러니까. (계산기 두드려 보며) 동곤이 6시간 12만 5000원, 주인 아줌마 아들 6시간 8만원. 나는 12시간 4만 5000원! 숙자 언니 0원! 겨우 25만원 딱 맞췄네. 이제야 두 다리 뻗고 자겠다. 마당으로 낯선 남자 한 명이 들어와 문을 두드린다. 장씨 나야. 아영 누구세요? 장씨 (여자 목소리 들리자 침묵) 동곤이 들어오다, 장씨를 보고 당황한다. 동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장씨 뭐가 잘못됐어? 집주인이 마당으로 나오다, 두 사람을 본다. 집주인 이 분은 또 누구···. 동곤 삼, 삼촌이세요. 장씨 (얼떨결에 목례) 집주인 친척들 사이가 아주 죽고 못사나 봐. 조카에, 삼촌에···. 동곤 저희 집안이 워낙에 서로 친해가지고. 아영은 웅성거리는 소리에 밖으로 나와 본다. 동곤 (아영에게) 삼, 삼촌 오셨어. 아영 (놀라서 바라본다) 집주인 (수첩 꺼내 적으며) 세금 추가! 친척들이 너무 많이 들락거려. (나간다) 아영은 두 사람을 데리고 황급히 방으로 들어간다. 아영과 동곤은 싸우고, 장씨는 방을 둘러본다. 아영 삼촌이라니? 동곤 그게···. 아영 뭐야? 동곤 삼촌 맞다니까. 장씨 동곤이 삼촌 맞습니다. 아영 아저씨는 빠지세요. 동곤 삼촌한테 왜 그래? 아영 누굴 속이려고. 동곤 삼촌이 나 보러 오셨다니까. 아영은 부엌에서 식칼을 가져와 책상에 위협적으로 내리꽂는다. 장씨, 놀라서 물러선다. 아영 당장 불어. 동곤 방, 방세가 올라서. 아영 뭐? 동곤 그냥 같이 지내려고. 아영 그게 다야? 동곤 룸메이트라니까. 아영 방을 같이 써? 동곤 반, 반. 아영 월세를? 아영은 다가가 동곤을 마구 꼬집는다. 동곤 악, 방을···. 아영 어떻게? 동곤 너처럼···. 아영 혹시? 동곤 아, 세 시간···. 아영 설마···. 동곤 악, 세, 세를···. 아영 너까지···. 동곤과 아영이 싸우는 사이, 장씨는 벽시계 시간을 오후 5시로 돌려서 맞춘다. 장씨 (손을 들고 큰 소리로) 잠깐! 아영과 동곤은 놀란 표정으로 장씨를 쳐다본다. 장씨 (벽시계를 가리키며) 이제, 내 차례입니다. 이때 문 밖에서 ‘똑똑똑’ 노크 소리 들려온다. 세 사람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본다. 경쾌한 음악 소리 들린다. 서서히 어두워진다. [당선소감] 실패를 두려워 않고 길 찾아 나섰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출발선에 섰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열심히 글 쓰고 살았다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결국 어느 것 하나에도 제대로 덤벼들지 못했습니다. 삶의 시기마다 그래야 했던 이유와 핑계는 무수히 많았습니다. 결국 문제는 내 안에 있었습니다. 실패가 두려운 거였어요. 그와 맞서 보려고 하지 않았더군요. 그때부터 쉽고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고, 더 늦기 전에 정진의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희곡을 쓰면서 실패하고 좌절했던 곳에서 새롭게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올곧게 홀로 서야 함께 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 길에 ‘신춘문예’는 큰 목표 지점이었고 파고들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남들보다 뒤늦게 뛰어든 만큼 많이 더디 가겠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언젠가 깨우칠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뭐라도 되겠지’ 그런 무한 긍정의 마음을 품고. 감사합니다. 너무나도 큰 행운을 만났습니다. 당선 소식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습니다. 기쁨의 눈물도 흘렸습니다. ‘정말이야? 꿈 아니야?’라고 몇 번이고 되물었습니다. 좌절을 거치니 희망이 옵니다. 노력은, 간절함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고마운 분들의 얼굴이 뜨겁게 떠오릅니다. 덕분에 오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부족한 작품, 천금 같은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감사합니다. 더욱 정진하며 열심히 쓰겠습니다. 다시 희곡 쓸 용기를 주신 라푸푸서원 차근호 작가님 특별히 감사합니다. 선욱현 작가님, 최원종 작가님, 김경락 연출님, 박세환 작가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퇴고를 도와준 배우 오혜진, 함께 고생한 지희야 정말 고맙다. 묵묵히 외조해 준 우리 남편 정재만, 부모님, 가족들, 모두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약력 ▲1976년 포항 출생▲계명대 국문과 졸업▲구성작가, 프리랜서 기자 활동 [심사평] 서민층 주거 문제, 탁월한 리듬감으로 살려 올해 희곡부문에는 254편의 작품이 출품되었다. 기록적인 숫자다. 구어적인 것을 글로 담는 것에 익숙한 세대가 도래한 것일까? 연극을 많이 보는 문화적 환경이 조성된 덕분인가? TV 매체에 대한 친근감이 삶의 드라마화를 촉진한 것일까? 아니면 문예창작과와 연극 전공 학생 수의 비약적인 증가가 누적된 결과일까? 출품작 중에 현실을 포착하는 능력, 혹은 발상이 빛나는 작품도 적지 않았다. 가능성 있는 작가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 것이 올해 신춘문예의 큰 기쁨이다. 출품작들이 다룬 소재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자살, 주거 문제, 실업 문제였다. 사람살이가 극도로 힘들어진 서민과 젊은 층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살’과 관련한 작품이 이례적으로 많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국가 중 자살률이 최근 8년간 가장 높다는 현실을 말해주듯 자살사이트, 자살학원, 자살을 둘러싼 해프닝과 사후 망자의 이야기까지, 자살의 연극화에는 끝이 없었다. 자살과 생명보험을 연결시킨 작품도 많아 자살의 주요원인이 경제적 문제임을 짐작하게 한다. 절박한 상황들을 기정사실로 한 채 그것을 연극적 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작품이 많이 등장한 것에서 이 시대의 누적된 피로감을 느낄 수 있었다. 당선작인 임은정의 ‘기막힌 동거’ 역시 서민층 주거 문제의 어려움을 증식 이미지의 코미디로 변형시킨 작품이다. 생존 문제를 타개하려는 평범한 등장인물들의 노력이 황당무계한 방식으로 펼쳐지는 가운데 인물들의 숨찬 생활의 리듬은 작가에 의해 연극적 템포감으로 변환되었다. 무대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작가의 감각이 탁월한 연극적 리듬과 타이밍으로 드러난다. 끝까지 논의된 또 하나의 작품은 김경민의 ‘욕조 속의 인어’다. 이 작품 역시 오늘날 한국 사회의 20대가 처한 주거 문제를 은유적으로 다뤘다. 브레히트의 ‘사천의 선인’을 떠올리게 하는 독창적인 상황 설정이 매력으로 꼽혔으나 인간을 일면적으로 이해하는 감상성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이 외에 변효진의 ‘연기수업’, 김중원의 ‘다금바리’, 안재희의 ‘완벽한 화장실을 찾는 법’ 등도 최종 논의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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