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진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16강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수원FC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둘째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 제재
    2026-03-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61,094
  • 더 치열해진 ‘AI 노트북’ 경쟁… 갤북5 프로 vs LG 그램 대격돌

    더 치열해진 ‘AI 노트북’ 경쟁… 갤북5 프로 vs LG 그램 대격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새해부터 인공지능(AI) 기능을 담은 노트북 신제품으로 맞붙는다. 양사 모두 초저전력이면서 AI 기능 구동에 적합한 인텔의 최신 칩을 사용한 만큼 올 한 해 판매량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는 2일 국내 시장에 AI 기능을 탑재한 노트북 ‘갤럭시 북5 프로’를 출시한다고 1일 밝혔다. 갤럭시 북5 프로는 최대 47TOPS(1초당 최고 47조회 연산)의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지원하는 ‘인텔 코어 울트라 프로세서 시리즈2’(코드명 루나레이크)를 탑재했다. 루나레이크는 ‘인텔 코어 울트라 프로세서 시리즈1’(메테오레이크) 대비 절반 정도의 전력으로 동일한 성능을 발휘한다. 전력 대비 성능이 크게 좋아진 셈이다. 특히 갤럭시 북5 프로는 ‘AI 셀렉트’ 기능을 갤럭시 북 모델 최초로 탑재했다. AI 셀렉트 기능은 사용자가 화면 속 원하는 사진 위에 원을 그리면 해당 내용에 대한 정보를 즉시 검색해 준다. 사용자가 별도의 검색어 입력 없이도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 삼성전자는 향후 갤럭시 북5 프로 업데이트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PC’ 기능도 지원할 예정이다. 이 기능은 사용자가 작성 중인 문서 내용을 분석해 관련 정보나 추천 문구를 제공해 문서 작성을 돕거나 파워포인트에서 슬라이드 디자인이나 콘텐츠 구성을 제안해준다. 갤럭시 북5 프로는 40.6cm(16인치), 35.6cm(14인치) 두 가지 모델로, 그레이·실버 2가지 색상으로 출시된다. LG전자는 오는 7일 미국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5’에서 AI를 탑재한 프리미엄 노트북 2025년형 ‘LG 그램’ 라인업을 공개한다. 같은 날 동시에 국내 시장에도 출시한다. 2025년형 LG 그램은 갤럭시 북5 프로와 같이 루나레이크를 탑재했다. LG전자에 따르면 이번 제품은 온디바이스 및 클라우드형 AI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는 ‘멀티 AI’ 기능을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먼저 온디바이스 AI(기기 자체에 탑재된 AI 모델)인 ‘그램 챗 온디바이스’는 고객의 PC 사용 기록이나 저장된 파일을 기반으로 네트워크 연결 없이 노트북 내에서 AI 연산을 수행한다. 클라우드형 AI인 ‘그램 챗 클라우드’는 네트워크에 연결해 오픈AI의 새모델 GPT-4o를 기반으로 고차원 문제에도 적절한 답을 준다. 2025년형 LG 그램을 구매한 고객은 그램 챗 클라우드를 1년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 [씨줄날줄] 2025 신년사

    [씨줄날줄] 2025 신년사

    섣달그믐부터 카카오톡으로 새해 인사가 쏟아진다. 휴대전화 화면 가득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가 쌓인다. 예전에는 종이 연하장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카톡 등 모바일 메시지로 대체된 지금 돌아보면 아련한 풍경이다. 새해 첫날이면 이런 일상적인 인사 외에 정치인과 기업인의 신년사도 접하게 된다. 지인 간 새해 인사가 관계 유지나 친밀감을 표현하는 메시지라면, 이런 신년사는 국민과 시장에 전달하는 공적 메시지다. 시대의 고민과 목표를 압축적으로 담고 있어 국정운영이나 경영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신년사는 사회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 때문에 대중의 관심이 높다. 역대 대통령 신년사는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토대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한국전쟁 이후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강조한 국가 재건과 반공,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와 근면 성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회복이 그런 경우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20년 신년사에서 혁신과 포용, 공정과 평화를 바탕으로 함께 잘사는 나라,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가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담대한 선언’이었으나 5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양극화 심화에 남북 관계 악화의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 대통령 탄핵소추로 올해 대통령 신년사는 없다. 대신 최상목 권한대행이 민생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국민 편에서 일하겠다”(우원식 국회의장), “국정 안정”(권영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국민의 삶에 함께 하겠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등 정치인 신년사는 익숙한 수사의 반복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년사는 오래 귓가에 머문다. 국정 위기의 심각성을 일깨워서일까. 신년사의 각오나 다짐대로 복잡한 현안들이 풀린다면 더이상 바랄 나위가 없겠다. 모든 신년사가 국민과 경제에 희망의 불씨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현갑 논설위원
  • 尹 “반국가세력 준동”… 직무정지에도 극렬 지지층 동원 메시지

    尹 “반국가세력 준동”… 직무정지에도 극렬 지지층 동원 메시지

    “유튜브 통해 여러분 보고 있어”직접 서명한 새해 인사 글 전달공수처·경찰과 시위대 충돌 우려野 “여전히 내란 획책… 부적절”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지지자들에게 결집 메시지를 낸 것은 내란 혐의 수사와 탄핵 심판에 관해 윤 대통령이 느끼는 위기감이 커졌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그럼에도 직무정지 상태에서 사실상 극렬 지지층 ‘동원 유도’ 메시지를 냈다는 점에서는 파문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한남동 관저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벌이는 지지자들에게 A4 크기의 종이에 인쇄된 편지 형식의 글을 배포했다. 종이 한 장 분량의 글 하단부에는 윤 대통령의 사인이 담겼다. 윤 대통령의 친구인 석동현 변호사는 “오늘 저녁 7시 반쯤 대통령이 관저 앞 도로변에서 24시간 철야 지지 집회 중인 시민들에게 A4 용지에 직접 서명한 새해 인사 및 지지 감사의 인사 글을 직원을 통해 집회 진행자에게 1부 전달했다”고 밝혔다. 집회 진행자가 이를 시위 참석자들에게 알리고 사진으로 찍어 전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먼저 “자유와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이라고 시작했다. 윤 대통령은 “새해 첫날부터 추운 날씨에도, 이 나라의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나와 수고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면서 “저는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나라 안팎의 주권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지금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면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가나 당이 주인이 아니라 국민 한 분 한 분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면서 “우리 더 힘을 냅시다”라고 했다. 석 변호사는 이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여러분에게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을 저에게 꼭 전해 달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정국 현안에 대한 입장을 밝힌 것은 지난달 12일 대국민 담화 이후 20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당시에도 “저는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밝혔다. 전날 법원이 윤 대통령의 체포영장과 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집행 시점이 다가오자 지지층 결집을 도모하며 반발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탄력이 붙게 된 것도 위기감을 고조시킨 것으로 보인다. 최근 대통령 관저 앞에는 탄핵 찬성과 반대 시위대가 연일 집회를 벌이고 있다. 특히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되면 이를 막아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공수처와 경찰 등이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나서면 시위대와 물리적으로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윤 대통령의 이러한 대응은 앞서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박근혜·노무현 전 대통령과도 비교된다. 박 전 대통령은 기자간담회나 유튜브에 출연해 의혹에 대해 반박했지만 집회 지지자들에게 메시지를 낸 적은 없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윤석열의 메시지는 그가 여전히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란을 획책하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며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 철새 도래지·활주로 고작 2500m… “새만금공항 안전 강화해야”

    철새 도래지·활주로 고작 2500m… “새만금공항 안전 강화해야”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 중 하나로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로 인한 기체 결함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올해 착공 예정인 새만금국제공항의 안전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새만금공항 부지가 철새 이동 경로와 겹치고 활주로 길이도 국내 지방공항 가운데 가장 짧기 때문이다. 1일 전북특별자치도에 따르면 올해 착공해 2029년 개항 예정인 새만금공항은 철새들의 이동 경로인 ‘수라갯벌’과 인접해 있다. 수라갯벌은 사계절 내내 철새들이 찾아오는 연안습지다. 멸종위기 1급인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를 비롯해 법정 보호종 53종이 서식하는 이곳은 동아시아 대양주를 이동하는 철새들의 주요 월동지이자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환경단체들은 공항 입지 초기 단계부터 갯벌을 메워 만드는 새만금공항의 조류 충돌 가능성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공군 전투기와 가마우지 무리가 정면 충돌하는 사진을 찍어 공개 하기도 했다. 무안 참사 이후 전북지역에서는 새 공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조류 충돌 사고를 막을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새만금공항은 활주로 길이가 2500m로 국내 지방공항 중 가장 짧게 설계됐다는 점도 우려 대상이다. 새만금공항 활주로는 무안공항(2800m)보다 300m, 청주공항(2744m)보다 244m나 짧다. 그만큼 비상 착륙에 대비할 시간적 여유도 짧아질 수밖에 없다. 전북도는 “미 공군이 활용하는 군산공항도 해마다 조류 충돌 사고가 발생하지만 큰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면서 “활주로를 3200m까지 늘릴 수 있도록 땅을 확보해 둔 만큼 일단 개항 후 확장 공사를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활주로 연장에는 관련 예산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든다. 건설업계와 한국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국내 지방공항의 활주로를 700m가량 연장하는 데는 960억~100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런 가운데 전북도는 “당장 추가 예산 확보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개항을 마냥 미룰 수만은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제주항공 참사 이후 무안공항의 둔덕형 로컬라이저가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여수, 광주공항 등 다른 지방공항의 유사 시설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여수공항은 남쪽 활주로 끝단에 설치된 로컬라이저의 높이가 4m에 달한다. 광주공항에도 높이 70㎝ 안팎의 둔덕형 로컬라이저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공항시설법에 따른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지침(국토교통부 예규)은 ‘공항부지 내 장애물로 간주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무안공항은 2023년 보수 과정을 거쳐 로컬라이저 둔덕에 콘크리트를 추가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이번 참사를 계기로 국내 공항들의 로컬라이저 설치 상태를 전면 재검토하고,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명확한 규정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이다.
  • “이대로 가다간 ‘천만국가’…‘알바들의 공화국’ 선언, 노동가치 높여야”[이순녀의 이사람]

    “이대로 가다간 ‘천만국가’…‘알바들의 공화국’ 선언, 노동가치 높여야”[이순녀의 이사람]

    지금 정책은 중산층 위주로 설계비정규직들 결혼·출산 엄두 못 내사람 귀함 모른 채 덩치만 선진국자본희소→노동희소 사회 전환 중알바들의 자식이 환영받는 세상문명 차원 변화해야 저출생 반전‘총괄 기구’ 기재부에 설치했으면연방제 도입, 수도권 집중 완화를 나라가 혼란하던 지난해 연말, 가뭄 속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10월 출생아 수가 1년 전 대비 13.4% 늘어난 2만 1398명으로 14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었다는 통계였다. 연간 출생아 수도 2015년 이후 9년 만에 증가세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이 뒤따랐다. 2023년 출생아 수는 23만명, 합계출산율은 0.72명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출산율이 1.0명 미만인 국가는 우리나라뿐이다. 국가 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심각한 저출생 문제가 극적인 해결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을까. 경제학자 우석훈(57) 박사는 지금 추세라면 20년 후에는 연간 출생아 수 10만명 선도 어렵다고 본다. 최근 출간한 ‘천만국가’(사진)에서 연간 출생아 수 10만명에 평균 수명 100년을 가정해 궁극적으로 인구 1000만명인 국가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2007년 저서 ‘88만원 세대’로 청년세대와 기성세대 간 불평등 논의를 촉발했던 진보 경제학자가 이번엔 ‘1000만 대한민국’이란 충격적인 화두를 던진 이유가 궁금했다. 우 박사를 지난해 12월 24일 서울신문 광화문 사옥에서 만났다. -‘천만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무척 놀랍다. 일종의 충격요법인가(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총인구는 5175만명, 2072년 예상 인구는 3622만명이다). “공식 통계로 가장 많은 출생아가 태어난 것은 1971년의 102만명이다. 그해 합계출산율은 4.12명이었다. 1971년을 변곡점으로 출생아 수는 조금씩 줄어들다 2000년에 64만명으로 떨어졌다. 30년 만에 3분의1이 감소했다. 2022년에는 26만명으로 급감해 20년 동안 60%가 줄었다. 지금은 합계출산율 0.7명대도 위태롭다. 이 속도라면 앞으로 20년 뒤에는 10만명도 안 될 것이다. 정부는 2051년까지 출생아 수 20만명 선을 지킬 수 있고, 10만명은 절대 뚫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인구가 1000만명이라고 해서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스위스와 스웨덴처럼 작지만 잘 살고 모범적인 국가들이 있다. 잠재적 천만국가에 대비하는 사회구조로 바꾸고, 문명도 변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국가소멸을 막는 최후의 방어선인 인구 1000만명도 유지하지 못할 수 있다.” -저출생 대응이 근본적으로 어려운 이유도 짚었는데. “저출생은 모두의 문제이지만 현실에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니다. 문제가 작아서가 아니라 당사자가 없기 때문이다. 인구가 줄면 많은 문제가 생기지만 자신이 풀어야 할 우선순위 1번이라고 생각하는 개인이 있나. 시민단체 중에서도 저출생 문제에 특화된 단체는 없다. 어떤 정부 부처도 자신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로 여기지 않는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저출생 정책을 내놓기는 하지만 특정 직업군이나 계층의 득표와 직결되는 정책들에 순위가 밀린다. 지난 20년간 한국에서 저출생 문제는 아무의 문제도 아닌 것으로 방치돼 왔다.” -역대 정부의 저출생 대책에 대한 평가는. “저출생 문제는 합계출산율이 2.0명 이하로 내려간 1980년대부터 시작된 해묵은 문제다. 노무현 정부 때 본격적으로 문제를 인지하게 됐고, 박근혜 정부 때 무상 보육 전면 실시로 국가 차원의 행동이 시작됐다. 그 덕에 저출생 속도를 잠깐이나마 늦출 수 있었다. 저출생 정책은 진보와 보수 정부 간에 차이가 없다. 저출생 정책을 전담하는 정부 부처조차 만들지 못하는 현실 아닌가. 말이 아니라 실제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중요한데 박근혜 전 대통령은 비가역적인 무상 보육을 실행했다. 저출생 정책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든 유일한 대통령이다.” -현재 저출생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출산휴가, 육아휴직 등 저출생 정책의 기본설계가 중산층 위주로 돼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정규직에 집도 물려받을 수 있는 수준의 계층을 대상으로 정책을 만들다 보니 소외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플랫폼 노동자, 편의점 알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렇게 보면 지금 합계출산율도 높은 편이다. 알바도 출산을 할지 안 할지는 개인이 선택할 문제이지만 알바여서 출산을 못 하는 사회는 잘못된 거다. 정부의 정책은 가장 많은 모집단을 대상으로 설계돼야 하는데 범위를 좁혀서 할 수 있는 일만 해 왔다. 그러니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이다. 유럽에 가 보라. 동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점원도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불안정 고용 상태에 있는 부모들의 출산을 지원하고 육아를 보장하는 총괄 기구를 기획재정부에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출산율 하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우리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빠르다. 그 이유 중 하나로 ‘사람을 막 대하는 문명’을 꼽았는데. “선진국 경제의 기본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기본을 배우지 못하고 덩치만 선진국이 됐다. 노키즈존, 맘충 등 혐오가 많다. 많은 재화들은 공급이 줄어들면 희소성이 높아지고 더 귀하게 대접받는데 한국에서는 어린이들이 줄어들었어도 문화는 반대로 움직였다. ‘임대 거지’처럼 저소득층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도 심하다. 노동자를 막 대하고, 가능하면 돈을 적게 주고 장시간 일을 시키는 것이 한국 문명의 특징 아닌가. 이런 현실에서 자신의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고 아이를 낳을 결심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나라가 ‘자본 희소 사회’에서 ‘노동 희소 사회’로 가고 있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한국은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없던 전쟁의 폐허에서 출발한 전형적인 자본 희소 사회였다. 자본집약형 수출 산업에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전략으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지만 그 과정에서 자본만큼 중요한 생산 요소인 노동을 경시하고 사람을 막 대하는 사회적 문화가 형성됐다. 사람을 귀하게 생각하기보다 귀찮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인구 구조에서 살아왔다. 이제는 출산율 하락으로 젊은 노동자를 보기가 힘든 사회, 노동이 부족한 사회로 가고 있지만 사람을 아무렇게나 대하고 자본이 희소하다는 생각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책에서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추진한 촉법소년 연령 하한과 이민청 정책을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례로 비판했다. “두 개의 정책은 한국의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노동에 대한 가치관을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버리고 가기’와 ‘밖에서 데려오기’다. 자녀가 한 번만 삐끗하면 바로 사회에서 격리되고, 이민 정책으로 늘어난 외국인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면 출산율을 높이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민은 외국인 체류 노동자와 다르다. 정부 당국자들이 저출생을 정책으로 풀지 못하고 이민을 안전장치로 여기는데 노동시장의 충격을 일부 완화할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출산율의 극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요소는 노동이 귀해지면서 생겨나는 경제사회적 변화다. 회식이 사라지는 등 기업문화가 바뀌고, 주4일제 도입이 논의되는 등 노동 희소 사회로의 변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두 갈래 길의 분기점에 서 있다. 하나는 이미 걸어가고 있는 ‘상속자들의 공화국’이다. 뭐라도 가진 게 있는 사람들만 결혼을 하고, 상속할 것이 있는 사람들만 출산을 하는 나라다. 다른 길은 최소한 출산을 결정하는 데 상속 여부가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사회로 가는 것이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알바들의 공화국’을 만들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노동 가치가 높아지는 사회가 되면 저출생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우 박사는 “잠재적 천만국가인 연간 출생아 수 10만명에서라도 저출생 경향에 반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문명 차원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알바들의 자식을 환영하고 환대하는 사회가 우리가 가야 하는 미래”라는 주장이다. 중산층 상속자들만이 출산할 수 있는 나라는 ‘작고 강한 나라’가 아니라 ‘망해 가는 나라’라고 매섭게 비판했다. -인구 문제와 관련한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로 수도권 집중 완화를 꼽았다. “스위스, 스웨덴 등 인구 1000만명이 안 되는 국가들은 연방제나 강력한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리도 연방제 도입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저출생 문제가 심각해도 서울과 수도권 인구는 줄지 않는다. 반면에 지방은 생존이 달린 문제다. 지방 정부에 지금보다 많은 예산과 권한을 줘야 한다. 일본도 저출생 정책에 지자체의 역할이 크다. 연방제를 도입한다고 단기간에 출생아 수가 늘어나지는 않지만 급격하게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에 대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될 수 있다.” ●우석훈 경제학자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제10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금융경제연구소, 국무총리실 등에서 근무했으며 성공회대 외래 교수를 역임했다. 2007년 청년세대의 경제적 불평등을 다룬 저서 ‘88만원 세대’로 한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진보 경제학자로서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에 예민한 촉수를 뻗쳐 ‘슬기로운 좌파생활’, ‘민주주의는 회사 앞에서 멈춘다’ 등 60여권의 책을 펴냈다. 경제소설 ‘모피아’, 신인류가 등장하는 ‘호모콰트로스’ 등 세 권의 소설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순녀 수석 논설위원
  • 러시아, 새해 첫날부터 우크라 수도 키이우에 드론 공습 “여성 1명 사망”

    러시아, 새해 첫날부터 우크라 수도 키이우에 드론 공습 “여성 1명 사망”

    2025년 새해 아침부터 우크라이나 키이우 하늘에는 러시아 드론이 날리는 소음과 이를 격추하려는 공군 방공망의 격추하는 소리가 들렸다. 러시아가 1일(현지시간) 새벽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드론 공격을 가해 한 명이 사망하고 6명이 부상했으며 두 지역의 건물이 파손됐다고 시 당국이 밝혔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비탈리 클리치코 키이우 시장이 “우크라이나 공군이 수도에 접근하는 드론에 대해 경고하고 방공망이 적의 공격을 격퇴하고 있다”면서 “이 공격으로 주거용 건물 2개 층이 일부 파괴됐다” 말했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발표 이후 “잔해에서 한 여성의 시신을 수습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여러 지역에서 밤새 발사한 드론 111대 중 63대를 격추했다”면서 “또 다른 46대는 전자 전파 방해로 격추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다음달 24일이면 꼬박 3년 동안 최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 도시에 드론 공습을 가해왔다. 우크라이나 재난 당국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진에는 소방관들이 건물 한 구석에 물을 뿌리고 구조대원들이 노인 피해자를 돕는 모습이 담겨 있다.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은 성명을 통해 건물 중 하나가 추락한 드론의 잔해로 인해 파손됐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다른 지역의 비주거용 건물도 파편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새해 첫 날에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어떻게 피해를 입힐지에 대한 고민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확 바뀐 시진핑 신년사…왜 가족사진 치우고 만리장성 앞에 앉았나

    확 바뀐 시진핑 신년사…왜 가족사진 치우고 만리장성 앞에 앉았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취임한 이후 처음으로 신년사를 확 바꿨다. 그동안 시 주석은 베이징 중난하이 집무실의 서재를 배경으로 여러 사진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시 주석의 2025년 신년사는 만리장성 그림과 오성홍기만을 두고 이뤄지면서 훨씬 강력한 내용을 전달한다는 평가다. 특히 시 주석은 신년사를 발표할 때마다 서가에 배치한 15장 내외의 사진을 통해 ‘사진 정치’를 펼쳤다. 서가에 배치됐던 사진은 시 주석의 어릴 때 모습이나 가족사진, 지방 출장을 갔을 때의 모습이 많았다. 외동딸 시밍저의 어릴 때 모습이나 배우자 펑리위안이 젊을 때 함께 찍은 시 주석의 가족사진을 통해 가정을 중시하는 온화한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했다. 2025년 신년사에서 시 주석은 전년도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5% 상승이란 경제 성장을 자신하면서도 “현재 경제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면서 어려움을 인정했다. 이어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이라는 도전과 신구(新舊) 동력 전환 압박 등 몇 가지 새로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그러나 이들은 노력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 우리는 비바람 속에 성장했고 시련을 거치며 장대해졌다”고 강조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 주석의 신년사 배경이 바뀐 것을 두고 “지난 몇 년간 언론의 관심은 시 주석 뒤의 책과 사진, 전화기 등 책상 위의 물건에 집중됐지만, 올해 연설에서는 목적의 심각성을 보여주려는 듯 만리장성 그림과 중국 국기 외에 개인 물품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 몇주 전에 중국이 경제적 전환을 이루고 외압에 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강화하고자 했다”고 해석했다. 또 “시 주석이 신년사에서 중국 경제가 호전되고 있으며 도전과제를 상쇄하고자 정부가 광범위한 국제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는 국제 투자 커뮤니티의 회의론과는 대조적인 메시지”라고 비판했다. 중국 관영언론은 만리장성 배경을 두고 2024년이 만리장성 수리 기금 모금 운동 40주년이 되는 해란 점을 들어 애국심과 민족정신을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올해 신년사 배경의 만리장성 그림이 인민대회당 접대청(리셉션홀)에 걸린 것과 같다면서 “만리장성은 중화민족과 중화문명의 상징”이란 시 주석의 관련 발언을 소개했다.
  • 북한군 수천명 죽어가는데…김정은, 공연 보며 새해 맞아

    북한군 수천명 죽어가는데…김정은, 공연 보며 새해 맞아

    북한이 2025년 새해를 맞아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에서 대규모 신년 경축 공연을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이번 행사는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지난달 31일 밤 시작해 1일까지 이어졌다. 김 위원장을 비롯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등 당정 간부, 무력 기관 지휘관, 노력 혁신자가 참가했다. 통신은 평양에 체류하는 해외동포들도 공연을 봤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딸 주애도 함께했다. 공개된 사진에는 유리창을 통해 행사장이 한눈에 보이는 좌석에 김 위원장 양옆으로 그의 딸과 박태성 내각 총리가 착석했다. 이 밖에도 최룡해, 조용원, 리병철, 박정천, 노광철, 김덕훈, 리일환, 조춘룡, 최선희, 김정관, 최동명, 리영길, 김명식, 정경택 등 간부들이 자리를 함께했다. 통신은 지난해 신년 경축 공연 보도문에서 김 위원장이 ‘존경하는 자제분과 여사’를 동행했다고 소개했지만 올해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았다. 공연은 지난해 공개된 김 위원장 찬양가 ‘친근한 어버이’에 맞춰 피겨스케이팅 선수와 학생 소년들이 은반 위에서 율동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통신은 환영곡이 울리는 가운데 관람석에 나온 김 위원장을 향해 전체 참가자들이 “최대의 영광과 경의를 삼가 드리었다”고 전했다. 공연은 1, 2부로 나뉘어 진행됐으며 공연 중간 초읽기(카운트다운)와 함께 새해를 맞았다. 경축 봉화 점화와 함께 축포도 발사됐다. 통신은 “공연이 끝나자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를 우러러 터치는 ‘만세!’의 환호성이 장내를 진감하고 아름다운 축포탄들이 연해연방 터져 올라 경축의 밤하늘에 황홀한 불보라를 펼치었다”고 묘사했다. 김일성광장에서는 전날 오후 11시부터 평양 학생들이 참가한 가운데 신년경축 야회가 열렸다. 새해 시작에 맞춰 국기 게양식과 축포 발사 등 예년과 비슷한 신년 맞이 행사가 펼쳐졌다. 통신은 “정각 0시,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소리가 울리고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김정일 장군의 노래의 숭엄한 선률이 수도의 하늘가에 메아리쳤다”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가 장중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노동자, 농민, 지식인들을 대표하여 수도의 모범적인 근로자들이 국기를 정중히 게양했다”고 전했다. 이어 “수도의 하늘에 공화국기가 세차게 펄럭이는 속에 새해를 경축하는 황홀한 축포가 일제히 터져 올라 화려한 불의 세계를 수놓으며 다채로운 화광을 펼쳤다”고 했다. 통신은 새해를 맞아 김 위원장에게 여러 나라 국가수반, 정당 지도자, 각계 인사들이 연하장을 보내왔다고도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비롯해 베트남, 몽골,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벨라루스 대통령 등이 연하장을 보냈다. 최근 서신을 공개하는 등 연일 밀착관계를 과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달리 시 주석의 보도가 축소된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북한은 각국 정상의 연하장 수신 사실을 공개하며 중국 주석과 러시아 대통령 등 순으로 언급했지만 올해는 달랐다. 또한 지난해 수교 75주년을 맞아 선포한 ‘북중 우호의 해’ 폐막식 보도도 하지 않아 별다른 행사 없이 수교 75주년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병력을 보내면서 중국보다 러시아와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북한군 사상자가 1100여명에 달한다고 공식 확인한 바 있다. 이것도 시점이 조금 지난 상황이라 사상자가 더 늘어났을 수 있다. 최근에는 사망한 북한군 병사의 편지가 등장했고 생포된 북한군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는 “다수의 첩보 종합을 평가할 때 북한군은 교대 또는 증원 파병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단골손님 부탁받고 산 복권이 ‘20억’ 당첨되자…돌변한 복권 가게 주인

    단골손님 부탁받고 산 복권이 ‘20억’ 당첨되자…돌변한 복권 가게 주인

    단골손님의 부탁에 대신 복권을 구매해줬다 1등에 당첨되자 말을 바꾼 복권 판매소 주인이 소송 끝에 패소했지만, 해당 손님은 아직 당첨금을 받지 못해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1일(현지시간)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정기적으로 복권을 구매해 온 중국 북부 산시성 시안시 출신 야오씨는 지난 2019년 7월 17일 복권 가게 주인 왕씨에게 20위안(약 4000원)을 송금하고 복권 두 장을 구매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왕씨는 무작위로 복권 두 장을 산 뒤 인증을 위해 야오씨에게 산 복권 사진을 전송했다. 그런데 이날 왕씨가 야오씨의 부탁을 받고 대신 구매한 뒤 인증 사진을 보낸 복권 두 장 중 한 장이 당첨금 1000만 위안(약 20억원)에 당첨됐다. 야오씨는 들뜬 마음으로 사진으로 받았던 복권을 실수령하기 위해 왕씨를 찾아갔지만 황당한 말을 듣게 됐다. 왕씨가 야오씨에게 “당첨된 복권은 사실 다른 사람이 산 건데, 당신에게 사진을 잘못 보냈다”고 주장한 것이다. 왕씨는 야오씨에게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15만 위안(약 3000만원)을 주겠다면서 휴대전화의 모든 채팅 대화 기록을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야오씨는 본인의 잘못도 어느 정도 있다고 생각해 왕씨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 달 뒤 야오씨는 1등 복권 당첨금을 수령한 사람이 왕씨의 사촌인 가오씨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실제로 가오씨는 지난 2019년 9월 산시성 복권관리센터로부터 복권 당첨금에서 세금을 공제한 800만 위안(약 16억원)을 받았다. 분노한 야오씨는 자신이 당첨 복권의 진짜 주인이라며 왕씨를 상대로 민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시안시 인민법원 재판부는 2021년 10월 가오씨가 복권 1등 당첨금을 야오씨에게 반환해야 하며, 왕씨는 이 당첨금에 대한 공동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에 가오씨는 1심 판결에 불복하고 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지만 7월 시안 중급인민법원은 가오씨가 복권을 구매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들어 원심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그러나 야오씨는 “소송에서 이기긴 했으나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난 그들로부터 단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변호사 비용으로도 수십만 위안을 부담했다. 어떻게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토로했다. 법원이 가오씨의 은행 계좌를 동결했지만 이 계좌에는 잔액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자택 역시 경매로 넘어갔지만, 아직 낙찰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야오씨 측 변호사는 법원에 복권 당첨금의 행방에 대해 조사해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우울한 어둠 뚫고 새해엔 희망의 빛 차올라라

    우울한 어둠 뚫고 새해엔 희망의 빛 차올라라

    2025년 을사년 새해 첫날이 밝았다. 한밤의 비상계엄 선포와 현직 대통령 체포영장 발부 등 정치·사회적 혼란부터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까지 세밑에 불어닥친 절망적인 소식들로 대한민국은 아직 동이 트기 전 어둠 속에 놓여 있다. 새벽녘 구름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은 비록 작고 약한 빛을 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높이 떠올라 밝고 크게 빛나는 것처럼 새해는 우울한 그림자를 걷어내고 환한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강원 영월군 별마루 천문대에서 촬영한 태백산맥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
  • 재혼 못한 이유 묻자…돌싱男 “불경기라” vs 돌싱女 “남자 못 믿겠다”

    재혼 못한 이유 묻자…돌싱男 “불경기라” vs 돌싱女 “남자 못 믿겠다”

    지난해 재혼을 원하는 돌싱(돌아온 싱글)들을 대상으로 재혼을 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조사한 결과, 남성은 ‘경기 불안’을, 여성은 ‘이성 불신’을 가장 많이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1일 재혼정보회사 온리-유와 결혼정보회사 비에나래가 전국의 돌싱남녀 538명(남·녀 각 26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4년 재혼 추진 활동이 저조했던 가장 큰 이유’ 설문에서 ‘불경기’와 ‘이성불신’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혔다. 남성의 경우 31.2%가 ‘불경기’를 꼽아 가장 큰 이유로 택했다. 여성은 32.7%가 ‘이성 불신’을 꼽아 재혼 추진 저조의 가장 큰 요인으로 택했다. 두 번째 요인으로는 ‘이성불신’을 27.1%의 남성이, ‘불경기’를 26%의 여성이 택했다. 3위로는 남성의 경우 ‘직장 문제(21.3%)’, 여성은 ‘가족 돌봄(18.6%)’이라고 답했다. ‘무더위(남 14.1%, 여 15.6%)’가 4위를 차지했다. 이경 비에나래 총괄실장은 “돌싱들은 남녀 불문하고 이혼 시 재산을 분할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경제력이 취약한데, 최근의 불경기로 자영업자나 중소기업 종사자는 물론 직장인들도 재혼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올해 재혼 맞선 자리에 나간 돌싱들을 대상으로 상대를 실제로 만났을 때 실망했던 이유를 묻는 설문도 진행했다. 남성의 경우 38.3%가 ‘사진 보정(뽀샵)’으로 답해, 외모에 관련된 실망이 가장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센스없음(23.4%)’이 뒤를 이었다. 여성은 30.5%가 ‘노잼(재미가 전혀 없음)’을 첫손에 꼽아 첫 만남에서 어느 정도의 ‘유머감각’을 중요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어 ‘매너없음(25.3%)’이 뒤따랐다. 3위로는 남녀 모두 ‘대화 불통(남 17.1%·여 20.8%)’을 들었다. 또한 ‘올해 본인의 실수로 이상적인 재혼 상대를 놓쳐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남성의 67.3%와 여성의 62.1%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러 번 있다(남 28.6%, 여 26.4%)’와 ‘몇 번 있다(남 38.7%, 여 35.7%)’ 등으로 집계됐다. ‘기회를 놓친 적이 없다’고 답한 비중은 남성 32.7%, 여성은 37.9%였다. ‘거의 없다(남 24.1%, 여 30.5%)’와 ‘전혀 없다(남 8.6%, 여 7.4%)’ 등으로 나타났다. 온리-유 관계자는 “재혼 교제에서는 무성의한 옷차림이나 몰상식한 언행, 배려심 부족 등의 이유로 소중한 인연을 수포로 날리는 경우가 많다”며 “이성간의 만남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케미(상호 조화), 소통 등과 같은 사항이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너무 조건에 얽매이지 말고 적극적인 자세로 폭넓게 이성을 만나다 보면 생각지 않은 이성과 인연이 맺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 JK김동욱 “슬픔 강요 말라…글 안 썼다고 추모 안 하는 거 아냐”

    JK김동욱 “슬픔 강요 말라…글 안 썼다고 추모 안 하는 거 아냐”

    가수 JK김동욱이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는 글을 올렸다. JK김동욱은 지난달 31일 인스타그램에 “새해는 나라도 지키고 사람도 지키고 건강도 지키고 꿈들은 키우자고”라고 시작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그 어떤 이유든 슬픔을 강요하는 건 절대 옳지 않아. 소셜미디어(SNS)에 사진 안 올린다고 슬퍼하지 않는 게 아니고 글 하나 안 썼다고 추모하지 않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새해가 밝았고 우린 모두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뻐하고 슬퍼하며 함박웃음과 눈물 속에서 또 한 해를 살아가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그러면서 “다들 올 한 해는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더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는 한 해로 만들어보자”고 덧붙였다. 그는 “나도 그런 마음으로 곡을 쓰는 중이니까 나부터, 나로부터, 나이기에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살아보자”고 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무안 공항에서 일어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정부는 오는 4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제주항공 참사와 관련해 많은 연예인이 SNS에 추모와 애도의 글을 올린 가운데 JK김동욱이 이와 관련한 자기 생각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한편 JK김동욱은 지난 2002년 데뷔했다. ‘미스터트롯’,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했으며, 지난해 디지털 싱글 ‘베터’를 발표했다.
  • “러, 韓 전쟁시 공격 목록에 포항제철·부산 화학공장 포함”

    “러, 韓 전쟁시 공격 목록에 포항제철·부산 화학공장 포함”

    러시아가 한국, 일본과 전쟁을 하는 상황에 대비해 원자력 발전소와 민간 인프라까지 표적으로 삼는 훈련 계획을 수립한 정황이 포착됐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FT는 러시아군 기밀문서를 입수했다며 러시아가 한국과 일본을 공격하기 위해 장교들을 훈련했다고 전했다. 해당 문서는 2013년 또는 2014년에 회람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한국과 일본의 도로, 교량, 공장 등 160곳을 잠재적인 공격 목표물로 설정했다. 그 중 첫 82개 목록에는 이들 국가의 지역 사령부, 레이더 시설, 공군 기지, 해군 시설 등 군사 목표물이 나열됐다. 이와 함께 한국의 포항제철소, 부산의 화학 공장 등 민간 시설도 타격 목록에 포함됐다. 일본의 경우 혼슈와 규슈섬을 연결하는 간몬 터널을 비롯한 교통 인프라와 원자력발전소, 정유소 등 전력 시설들이 거론됐다. 이들 목록은 러시아의 Kh-101 순항 미사일의 능력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언급됐다. 문서는 Kh-101을 이용한 가상의 공격이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지를 거론하며 일본의 오쿠시리토 레이더 기지의 내부 건물들의 사진과 이들의 정확한 치수를 적시한 내용도 포함했다. 이 밖에 러시아가 2014년 2월 24일 한국과 일본의 방공망을 시험하기 위해 Tu-95 폭격기를 출격시켰다는 내용도 문서에 담겼다. FT는 이 문서가 2008~2014년 러시아 동부 국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분쟁에 대비해 장교들을 훈련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여전히 러시아의 전략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문서에는 러시아 동부 지역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강조돼 있다”며 “러시아의 군사 기획자들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와의 전쟁이 발생할 경우 러시아의 동부 국경이 노출돼 미군 자산과 지역 동맹국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고 짚었다.
  • “슬픔을 나눕니다”…무안공항 분향소엔 끝없는 인파, 계단엔 ‘추모의 글’

    “슬픔을 나눕니다”…무안공항 분향소엔 끝없는 인파, 계단엔 ‘추모의 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현장인 무안국제공항이 거대한 ‘추모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 공항 1층 대합실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엔 한꺼번에 수천명의 참배객이 몰려들고, 1~2층을 연결하는 계단은 수백장의 ‘추모의 글’이 나붙은 ‘추모의 벽’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 나흘째이자 새해 첫 날인 1일, 무안공항 1층에 마련된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전국에서 참배객들이 몰려 들면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참배가 시작된 오전 8시부터 300여명이 기다리며 서있던 ‘참배 대기줄’은 시간이 갈수록 길어지면서 낮 12시30분 현재 공항 밖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장사진을 이뤘다. 참배객들에게 국화꽃을 전달하며 현장을 정리하던 자원봉사자들은 “오전부터 지금까지 2000명 이상의 참배객들이 다녀간 것 같다”며 “위패와 영정이 있다보니 참배객들이 다른 곳보다 이곳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무안공항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 손잡이에는 이날 오전부터 피해자들의 영면을 기원하는 글이 써진 ‘포스트 잇’이 1~2 장씩 붙여지더니 낮 12시쯤에는 형형색색의 포스트잇 수백장이 손잡이의 빈 틈을 매웠다. 노란색 포스트잇에는 친구에서 보내는 편지인 듯 “사랑하는 **아, 너무 미안하다. **랑 하늘에서 행복하게 살아라. 잊지 않을게, 늘 함께 해줘, 사랑한다”는 글이 씌어져 있었다. 상당수 종이에는 “너무 마음이 아프다, 천국에서 안식하시길 바랍니다” “선생님, 그 곳에서 평안하시길” 등의 글이 ‘희생자의 이름’ 과 함께 씌어져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종이에 글을 써 붙이던 최 모(18)씨는 “함께 공부하며 놀았던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가슴이 아팠다”며 “사랑하는 친구를 지켜 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아 편지를 썼다”고 말했다.
  • 참사 일어났는데 “모든 것이 운”…안현모, 논란에 결국 입 열었다

    참사 일어났는데 “모든 것이 운”…안현모, 논란에 결국 입 열었다

    방송인 안현모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글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렸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결국 사과했다. 1일 안현모는 자신의 SNS에 “애통한 마음을 전하려 함에 저의 부족함이 있었다”면서 이렇게 밝혔다. 제주항공 참사로 비통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다는 그는 “이번 일로 큰 고통을 받으셨을 유가족 분들께 진심 어린 애도의 뜻을 전한다.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전했다. 안현모는 앞서 지난달 30일 자신의 SNS에 “금요일에도 토요일에도 그리고 오늘도 며칠째 비행기에 오르지만 날고 내리는 모든 것이 운이었음을.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었음을”이라는 글을 올렸다. 이어 “생각할수록 들숨도 날숨도 비통할 수 있음을”이라며 공항에서 촬영한 사진을 올렸다. 이를 두고 일부 누리꾼들은 참사가 벌어진 상황에 ‘운’을 언급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안현모의 SNS 계정엔 비난이 쏟아졌고, 이에 안현모는 댓글창을 닫기도 했다. 앞서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7C2216편은 지난달 29일 오전 9시 3분쯤 무안공항 착륙 도중 랜딩기어를 펼치지 못하고 활주로를 이탈, 공항 외벽과 충돌 직후 화재가 발생했다. 승무원 2명을 제외한 탑승객 179명이 전원 사망했다. 이에 정부는 1월 4일까지 7일간을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했고, 연예계 역시 예정됐던 시상식 일정과 방송, 공연 일정 등을 취소 혹은 연기하며 애도에 동참하고 있다. 안현모는 2009년부터 2016년까지 SBS와 SBS CNBC에서 기자 및 앵커로 활동했다. 이후 지난 2016년 SBS를 퇴사한 뒤 프리랜서 방송인 겸 통역사로 활동했다. 지난 2017년 브랜뉴뮤직 대표인 래퍼 겸 프로듀서 라이머와 결혼했으나, 지난해 이혼 조정 절차를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 [무안공항 참사] 광주교육청, 트라우마 심리·정서 지원

    [무안공항 참사] 광주교육청, 트라우마 심리·정서 지원

    광주시교육청이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와 관련해 심리·정서적으로 불안감을 겪고 있는 피해 가족 등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 1일 시교육청에 따르면 이번 무안공항 제주항공 참사로 광주 지역 학생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팀을 꾸리고 현장 맞춤형 정신건강 및 심리·정서 지원에 들어갔다. 학생 희생자가 발생한 S중학교에는 학급 단위로 애도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오는 1월 2일에는 D초등학교에서 동의한 학생에 한해 애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사고 영상 등을 보고 불안해하는 학생들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Wee 클래스- Wee센터-병원형 Wee센터로 이어지는 3단계 지원체계를 체계화하고 동·서부, 광산 Wee센터의 대상별 맞춤형 심리·정서 지원 등을 방학 중에도 이어간다. 상황관리전담반을 구축, 비상근무에 들어간 시교육청은 지난 30일 청사 앞 이음광장에 별도의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애도 기간 송년 행사·시무식 등 공식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각급 학교에 조기 게양과 애도 리본 패용 등을 안내했다. 예정된 국제교류 현장체험활동과 교외체험학습을 점검하고, 방학기간 중 발생할 수 있는 교통수단별 사고 매뉴얼을 각급 학교에 제공하는 등 긴급 안전교육을 진행했다.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희생된 분들에 대해 마음 깊이 애도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학생 및 교직원들이 트라우마를 겪지 않도록 심리·정서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2025년 뱀의 해, 다채롭게 빛나는 잘파세대

    2025년 뱀의 해, 다채롭게 빛나는 잘파세대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잘파세대’가 본격적으로 사회 진출에 나선 2025년(을사년)을 맞아 직장인 송병윤(오른쪽·28)씨, 대학생 이유진(가운데·19)씨, 고등학생 이재현(17)군이 ‘푸른 뱀의 해’를 형상화한 ‘라이트 페인팅’(빛을 이용해 사진에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배경으로 디지털기기를 들고 있다.
  • “결혼 이틀 전 연락받고 다음 날 촬영”…‘오겜2’ 공기놀이 손, ‘달인’이었다

    “결혼 이틀 전 연락받고 다음 날 촬영”…‘오겜2’ 공기놀이 손, ‘달인’이었다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2에 출연한 배우 강하늘의 공기놀이 장면은 대역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10월 SBS ‘생활의 달인’에 공기놀이의 달인으로 출연한 박종남씨는 지난달 2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넷플릭스 데뷔(했다)”라며 ‘오징어게임2′에 대역으로 출연하게 된 사연을 전했다. 박씨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10월 결혼식을 이틀 앞둔 저녁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에게 전화를 건 제작진은 “생활의 달인 PD로부터 연락처를 받았다”면서 “밝힐 수는 없지만 글로벌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인데 공기놀이를 하는 손 장면이 필요해서 출연해주실 수 있냐”며 박씨에게 출연을 요청했다고 한다. 결혼식을 위해 마침 휴가를 냈던 박씨는 연락받은 다음 날 촬영을 위해 대전으로 갔다고 한다. 박씨는 “대전에 가서 엄청난 보안서약서들을 썼다”며 “점심 먼저 먹자고 하셔서 식당에 따라갔는데 앞에 (배우) 이병헌님, 이정재님, 강하늘님이랑 감독님이라는 분이랑 연락을 준 연출 감독님이랑 같이 밥을 먹었다”고 했다. 이어 “내 생애 이런 유명한 배우들과 한 상에서 밥을 먹다니. ‘결혼이 내일인데 와주셨다’는 얘기, 공기를 어쩌다 잘하게 되었느냐, 결혼 축하한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밥을 먹었다”며 “유명 배우들이 우리 결혼을 그렇게 축하해 줬는데 보안 때문에 사진 한 장 사인 한 장 못 남긴 것은 너무 아쉽다”고 했다. 박씨는 “촬영장은 1단부터 꺾기까지 원테이크로 찍으면 되는 거라 어렵지는 않았으나 배우들과 이인삼각부터 같이 해야 해서 너무 떨렸다”며 “두 번 정도 촬영하고 생각보다 금방 끝이 났다”고 했다. 이어 “촬영 전후로 강하늘님이 계속 긴장을 풀어주신 게 인상 깊었다”며 “공기하는 법도 알려달라고 해서 알려주고 같이 제기도 차고, 촬영 끝나고 아내에게 주라며 성심당 부추빵도 주신 게 생각난다”고 했다. 박씨는 “1년간 비밀로 하다가 오징어게임 공개된 날 아내랑 보는데 너무 재밌다”며 “이왕 나도 나왔으니 더 잘 됐으면 좋겠다. 오징어게임 파이팅”이라며 응원했다. 강하늘은 극 중 해병대 출신 청년인 강대호역을 맡았으며, 강대호는 공기놀이에 도전해 한 번에 성공한다. 한편 넷플릭스 공식 사이트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공개된 ‘오징어게임’ 시즌2의 넷플릭스 시청 시간은 지난해 12월 넷째 주(23~29일)에만 4억 8760만 시간으로 집계됐다. 비영어권 TV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같은 기간 영어권 TV 부문, 영어·비영어권 영화 부문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공개 첫 주 기준으로 2021년 9월 넷째 주(20~26일) 전작 ‘오징어 게임’ 시즌1이 세운 4억 4873만 시간의 기록을 깨고 최대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 돼지꿈/고찬하 [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희곡]

    돼지꿈/고찬하 [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희곡]

    때: 현재곳 : 단독주택, 침실등장인물병철(58세, 남)동수(95세, 남)은희(57세, 여)민식(32세, 남)태연(29세, 여) 1장 무대는 침실이다. 옷장과 수납장이 있고 선반에 동수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액자가 걸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누런 자국이 남아 있는 벽지.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병철과 은희가 잠들어 있다. 병철의 코 고는 소리가 이어지면, 동수가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다. 동수: 끌끌끌…. 자식, 잘도 자는구만. 인자 좀 먹고살 만허냐? 이 썩을 자슥아! 아부지 왔다. 인나라! 느그 아부지 왔다! 동수, 병철을 내려다보며 발로 걷어찬다. 병철: (눈을 비비며) 야밤에 누구여…. 워메, 아부지! 동수: 이 자슥, 인자 배때지가 뜨뜻허니 먹고살 만한갑네. 병철: 아부지! 무슨 일로 또 이까지 오셨수! 동수: 인마, 아버지가 자식놈 생일도 못 챙기냐? 병철: 생일? 동수: 그려! 생일! 워떠냐? 이 애비 덕에 좀 먹고살 만허냐? 병철: 아유, 말을 혀야 뭣할라요. 접때 아부지가 짚어 준 종목들이 상한가를 칠 줄을 누가 알았겄어요? 아부지 덕에 우리도 인자 팔자 폈으요! 강진 당숙네에 저당 잡힌 주택담보 싹 다 갚구, 십 년 묵은 신용대출도 깨끔허게 정리해부렀당께요. 보소, 이 집도 우덜 것이라요. 울 집안도 인자 남부럽지 않다고요. 동수: 자슥, 얼굴 폈네. 살림도 이만허믄 좀 나아진 것 같고. 애들은 잘 있냐? 병철: 애들이요? 그 개팔 놈의 호로자슥들은 말도 마셔요. 연락 끊긴 지 오래구만. 동수: 다 죽어 가는 집안 살려 놨더니 도루 콩가루네. 병철, 베갯머리에서 신문지와 볼펜을 꺼내 든다. 병철: 아부지, 고건 고렇고 요참에는 어디요? 어따 돈을 박어야 쓰겄소? 동수, 병철의 시선을 외면하며 딴청을 피운다. 병철: 아따, 아부지 그라지 말고 요번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알려주쇼! 아니믄 복권 번호라도 몇 개 찍어주셔요! 동수: 패가 안 좋아. 병철: 고거이 뭔 말이여? 동수: 다 잃을 패다, 이거다. 병철: 좀 알아듣게 말혀 보소! 동수: 이 자식아, 잘 들어라. 너 애비 덕에 딴 돈 그거 있지? 병철: 암요. 인자 그 돈으로 대대손손 먹고 살아야제! 동수: 그 돈 하룻밤에 다 잃을 거다. 병철: 고거시 뭔 자다가 벼락 맞을 소리여? 동수: 오늘 하루다. 시간이 읎어. 병철: 와요? 뭣 땀시 나가 돈을 다 잃는다는 거시여? 동수: 한 방에 땄으면 한 방에 또 잃는 거지. 동수,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한다. 병철: 아부지, 가지 마요. 인자 좀 먹고살만헌디 다 잃는다뇨. 동수: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말 알지? 요즘은 ‘운구기일’(運九技一)이란다. 병철: 운구기일? 동수: 다 운이다 이 말이여. 아등바등 살아 봐야 우에 쓸꼬, 팔자가 좌우하는 벱인 것을…. 동수, 크게 웃으며 퇴장한다. 병철: 아부지! 아부지! 병철, 동수가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면, 자고 있던 은희가 깨어난다. 은희: 여보, 여보? 병철: (넋이 나간 채로) 아부지! 아부지…. 은희: 이 양반이 자다 말고 왜 땀을 비질비질 흘리구 소리를 꽥꽥 질러대? 병철: 어? 뭐시여? 당신이여? 은희, 선반에서 알약과 물그릇을 가져와 병철에게 먹인다. 은희: 또 자다가 뭐라도 본 거야? 왜 그렇게 얼굴이 새파래졌어? 병철: (약을 삼키며) 아부지 왔다 갔어. 은희: 또? 죽은 아버님이? 병철: 그, 글씨 말여…. 은희: (반색하며) 이번에는 또 뭐래? 복권 번호라도 몇 개 찍어 줍디까? 병철: 개꿈이여. 은희: 개꿈? 병철: 그려! 개꿈! 은희: 뭐라고 하셨는데? 병철: 아니 글씨, 요참엔 돈을 다 잃을 거라네…. 은희: 그거 개꿈이네. 병철: 접때는 돼지꿈이더니 요번엔 개꿈이여. 은희: 그냥 흘려들어. 병철: 아부지 덕에 돈방석 앉은 거 잊었어? 무시혔다간 집안 말아묵어! 은희: 당신 꿈속에서 아버님 나타났다는 게 몇 번째지? 병철: 아이, 요참에도 확실하다니께. 은희: 암만 생각해도 이상하단 말이지. 저번에 그것도 그냥 운이 좋아서 대박 났던 거 아냐? 솔직히 요즘 같은 때에 이게 뭔 귀신이 씻나락 까먹을 소리야. 아무래도 집터가 이상한가 봐. 언제 한번 굿이라도 해야 하려나. 병철: 이 사람이 아직도 못 믿네? 꿈 속에서 아부지가 다 알려 줬다니께. 금영에 칠천! 현산에 팔천! 그 육실헐 잡주들이 한날한시에 약속이나 한 맹크롬 들쓱거릴지 누가 예측혔겄어? 그걸 우덜 같은 선량한 서민들이 워쩐다고 예측혀? 다 아부지 덕이제…. 은희: 죽은 사람이 꿈에 나타난다는 거 자체가 망조야! 병철, 수납장에서 신용카드, 통장, 인감도장, 집문서 따위를 꺼내어 바닥에 늘어 놓는다. 병철: 어디 보자. 농협에 칠천, 새마을에 육천, 수협에 삼천오백…. 은희: 뭐하는 거야? 병철: 일단 우덜 계좌에 있는 돈은 싹 다 인출해 와야 쓰겄구만. 은희: 그 돈 들고 워따 쓰게? 병철: 여그 보이는 데에 딱 놓구 지켜야제. 은희: 그다음은? 병철: 집안에 돈 될 만한 물건도 싹 다 창고로 좀 옮겨야 쓰겄어. 은희: 그렇게 하면 잃을 돈이 그대로 있대? 병철: 아부지가, 분명히 아부지가 말혔어…. 은희: 이 양반이 진짜, 돈이 그렇게 좋아? 망할 놈의 주식질에 맛들리더니 헛것이 보이는 거야! 병철,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친다. 병철: 나는 은행엘 좀 갔다 올 것인께. 당신은 창고에 물건 좀 옮겨 둬. 은희: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야? 병철: 시간 읎어! 싸게 움직여! 은희: 민식이 아부지, 난 말이야. 이런 돈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우리 목포 월세집서 시작했을 때처럼…. (곰곰이 떠올리다가) 아, 그땐 좀 아닌가? 병철: 가난뱅이였던 때가 좋아? 씨빠지게 고생혔던 때가? 밤낮 공장서 일당 받아감서 삭신이 쑤시네 어쩌네, 앓는 소리 달고 살믄서 은행에 돈 갖다 바쳤던 때가? 은희: 주식하고 나서부터는 당신 맨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눈알 퀭해 가지고는 헛것이 나 보고, 이딴 약이나 달고 살고 말이야. 사람이 뒷바라지를 시켜도 정도껏 해야지. 병철: 요것이 다 내 땜시다? 은희: 당신은 뉴스도 안 봐? 밤낮 돈, 그놈의 돈 때문에 가족끼리 칼로 배때지를 쑤셔대고 이게 정상이냐고? 병철: 그런 썩어 빠진 정신으로는 요즘 같은 시상에서 못 살아남어. 글고 우덜 자석들 생각은 안 혀? 울 자석들은 번듯허게 살게 혀야 않어? 이거, 이거, 이 집두 워뜨케 산 건디? 은희: 자식들 생각한다는 인간이 애들이랑 연락도 끊고 살어? 병철: 당신은 신경 꺼! 나가 다 알어서 헐것잉께! (넋이 나간 채로) 아, 아부지, 아부지 어따가, 어따 돈을 넣어야 이 우환을 피할랍니까…. 병철, 통장과 신용카드, 인감도장, 집문서를 집어 들고 퇴장한다. 은희: 얻다 대고 큰 소리야? 저 망할 놈의 인간, 된통 당해 봐야 속이 시원하지. 은희, 불길하다는 듯이 동수의 영정사진을 뒤집어 놓는다. 암전. 2장 무대는 이사를 앞둔 집처럼 텅 비어 있다. 동수의 영정사진이 옆으로 누워 있고 가구가 있던 자리는 짙은 자국만 남아 있다. 구석에 놓여 있는 빗자루. 조명이 밝아지면, 병철과 은희가 여행 가방을 낑낑대며 끌고 등장한다. 병철: 어구, 무거워라! 은희: 어디 금고에라도 넣어 놔야 하는 거 아냐? 병철: 집에 금고가 어딨어? 은희: 그럼 이 많은 돈을 어떡하려고? 병철: 저짝 다용도실에 박스 몇 개 없는가? 은희: 감자 박스가 있긴 할 텐데. 은희, 퇴장한다. 병철, 여행 가방을 연다. 오만 원짜리 지폐 다발이 쏟아져 나온다. 병철: 이 한병철 쉽게 안 죽는다. 이거시 워뜨케 딴 돈인디. 아부지, 보고 계시죠? 나 그렇게 호락호락한 놈 아니어요. 은희, 감자 박스를 들고 등장한다. 은희: 이거면 돼? 병철: 이리 가져와 봐. 다 들어갈란가 모르겄네. 병철, 감자 박스에 돈을 차곡차곡 담는다. 은희: 그러니까 이게…. 병철: 우덜 계좌에 짱박아 둔 것은 다 쓸어온 거시여. 은희: 무슨 계좌? 병철: 아따, 그 뭐시냐, 보이스피싱인가 머시긴가 땀시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여. 출금 한도가 걸려분다고 은행 청년이 하두 의심을 혀 싸는 바람에…. 은희: 그나마 찾아온 게 이 정도라는 거야? 병철: 긍께 당신 것이랑, 내 것이랑 끄낼 수 있는 현찰이란 현찰은 죄 뽑아온 것이여. 저짝 읍내부터 시내꺼졍 은행만 여섯 군데를 돌아다녔다니께! 은희: 개꿈 하나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집 치우랴 돈 숨기랴 이게 뭔 짓이야? 병철, 박스를 단단히 포장하며 집문서, 통장, 인감도장까지 넣는다. 병철: 이걸 인자 여그다 넣고 자알 지키기만 허믄 돼. 은희: 지켜? 어떻게? 병철,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주변을 보다가 빗자루를 집어 든다. 이내 사주경계를 하며 초병처럼 듬직하게 서 있는다. 은희: (한참을 보다가) 그러고 언제까지 있을 건데? 병철: 아부지가 분명 하루라고 혔어…. 은희: 하루? 병철: 오늘 하루만 이 돈이 고대로 여기 있음 되는 거시여. 은희: 당신 진짜 이번에 아무 일도 없으면 주식 그만하는 거야. 사람이 성실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지…. 병철: 뭐? 승실? 은희: 생전 자식들한테는 제 손으로 밥 벌어 먹고 살라고 혁대 풀고 고래고래 야단을 쳤으면서, 애비란 작자가 저러고 자빠졌으니. 병철: 알어! 잔말 말구 싸게싸게 돈이나 지켜. 암만혀도 불길하단 말이여. 그때, 초인종이 울린다. 잔뜩 경계하며 밖을 노려보는 병철과 은희. 침묵이 흐르면, 두 사람을 재촉하듯 초인종이 연달아 울린다. 은희: 누가 왔나 봐. 병철: 아침 댓바람부터 올 사람이 누가 있어? 은희: 나가 볼까? 병철: 잠깐! 나가지 말어! 은희가 무시하고 나가자, 병철은 감자 박스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살핀다. 왁자지껄한 소리와 함께 민식과 태연이 케이크 박스를 들고 등장한다. 민식, 태연: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태연, 삑삑이를 분다. 은희, 뒤따라 들어온다. 은희: 웬일이야? 연락일랑 하고 오지! 태연이도 같이 왔네! 은희, 태연을 꼭 끌어안는다. 민식: 어머니, 잘 지내셨죠? 태연: 아따, 명절도 아닌디 차가 허벌나게 막혀부렀소. 은희: 둘이 어떻게 이렇게 같이 왔어? 민식: 터미널에서 만나서 같이 왔어요. 은희: 여보, 우리 애들 왔어! 병철: (떨떠름한 표정으로) 느그들, 그동안 연락 한번 없더니 웬일이냐? 민식: 꼭 무슨 일 있어야 오나요? 오늘 아버지 생신 아녀요. 축하드리러 왔죠. 병철: 우리 첫째, 복지관서 사회복지산가 머시긴가 허느라 바쁘담서. 민식: 내내 복지원에 있다가 새벽에 내려 왔어요. 여기 눈 밑에 다크써클 봐요. 태연: 아부지, 오랜만이요? 근디 내는 별로 안 반가운 갑소? 병철: (싸늘하게) 니는 서울서 사업허느라 바쁘담서. 은희: 아유, 또 왜 그래? 간만에 우리 가족 이렇게 다 모였는데! 민식, 케이크 박스를 흔들어 보인다. 민식: 아버지, 제가 케이크 사 왔어요. 고구마 케이크. 태연: 그라요. 일단 께이크에 불부터 붙입시다. 민식, 케이크 박스에서 성냥을 꺼내려고 하면, 태연, 주머니에서 지포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켠다. 어색한 침묵. 은희: 참, 부엌에 소고기미역국 있는데 그것도 좀 가져와야겠다. 간만에 이렇게 다 같이 모이니까 얼마나 좋니? 은희, 퇴장한다. 민식, 케이크를 꺼내며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민식: 아니, 근데 밖에 있던 식탁은 어디 갔어요? 태연: 그라고 보니께 가구들이 죄 사라져 부렀네. 민식: 어? 할아버지 사진은 왜 이러고 있어요? 태연: 여행 가방은 또 뭐시여? 병철: 뭐, 뭐가? 민식: 우리 가족 사진도 없어졌네! 태연: 아부지, 집안 꼴이 와 이랍니까? 워데 이사 갑니까? 병철: 벽지 도배를 새로 혀서 그란다. 창고에 다 있응께 신경 꺼라. 태연: 벽지는 누리끼리한 거시 그대론디…. 민식: (케이크 박스를 흔들며) 이걸 올려둘 곳이 필요한데요. 민식, 태연 주변을 살핀다. 병철: 느그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태연, 감자 박스를 발견한다. 태연: 저짝에 박스 하나 있구만. 민식: 잠깐 그거라도 여기 가운데에 두죠. 태연, 말릴 틈도 없이 감자 박스를 들어 중앙으로 옮긴다. 태연: 아따, 묵직한 거시 상으로 딱이네잉. 병철: 안돼! 누구 맘대로 그러는 거여! 태연: 거참, 여그 뭐 금덩이라도 들었소? 병철: 느자구 없는 것들이 댓바람부터 들이닥쳐 가지고는, 여그 안 갖다 놓냐? 병철, 빗자루를 마구 휘두른다. 태연: (기침을 한다) 워메, 아부지! 먼지 날린당께요! 은희, 김이 피어오르는 냄비를 들고 등장한다. 은희: 아니, 이 양반이! 애들아 글쎄 니들 아버지가 말이다. 병철: 에헤이, 진짜! 민식: 경계 좀 풀어요. 오늘 생신이잖아요. 아무도 아버지 안 해쳐요. 저희는 진심으로 축하드리러 온 거예요. 태연이 감자 박스를 툭툭 털면, 민식은 그 위에 케이크를 올려 둔다. 병철: 이건 내 거야, 내 거라고. 왜 내 것을 느그들이 맘대로 하려고 혀? 민식: 잠깐 쓰고 저기다 그대로 돌려 둘게요. 병철: 내 거라는데 자꾸, 어? 태연: ···참말로 째째허시네. 아부지 성깔은 하여간 징해부러. 민식: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또 안 좋다고 하니까. 민식, 태연 웃는다. 병철: 우째 느그들은 만날 멋대로냐? 집 나가는 것도 멋대로, 연락도 멋대로, 불쑥 찾아오는 것도 멋대로. 왜 매사에 느그들 맘대로인 거냐고? 민식: 우리 아버지, 서운했구나? 병철: 그려! 서운혔다! 인자 솔직허게 말혀 봐라. 무신 볼일이 있어서 온 거냐? 민식: 가족이란 게 무슨 볼일이 있어야 만납니까. 늦게 와서 미안해요. 병철: 이 늙은 애비가 눈치도 없는 줄 알어? 이것들 시커먼 속내가 있어서 온 거시여. 고거이 아니믄 저렇게 방실거릴 것들이 아니여. 은희: 무슨 말을 또 그렇게 섭하게 해. 얼른 케이크에 불이나 붙이자. 은희, 감자 박스 위에 냄비를 올려 둔다. 민식이 케이크에 초를 꽂으면, 태연은 지포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민식: 이야, 초에 불이 붙으니까 연말 느낌이 나고 좋은데요? 민식, 병철의 머리에 고깔모자를 씌운다. 병철: 어허이! 뭐시여? 민식: 아버지, 다시 한번 생신 축하드려요. 만수무강하셔야죠. 간만에 노래라도 같이 부를까요? 병철: 노래는 무슨! 민식: 자자, 축하 노래 다 같이 부르는 거예요. 은희, 벽면의 전등 스위치를 내린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민식이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자, 은희와 태연도 덩달아 부른다. 은희, 민식, 태연: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생일 축하합니다! 병철, 빗자루를 쥔 채로 머쓱하게 있다. 은희: 빨리 불어! 초 다 녹는다! 병철, 마지못해 불을 끈다. 울려 퍼지는 박수와 웃음소리. 태연이 폭죽을 터트리면, 은희가 전등 스위치를 올린다. 조명이 다시 밝아진다. 병철: 이란다고 눈이나 끔뻑할 거 같으냐? 시상 천지에 느그들 만치…. 은희, 케이크 칼로 케이크를 크게 썰어 병철의 입에 넣어 버린다. 은희: 소원 빌었어? 병철: (우물대며) 소원은 무슨! 민식: 자, 다들 건강하시라고 제가 대신 소원 빌었다 칠게요. 민식, 바닥에 흩어진 폭죽 잔해를 치우면, 은희, 병철의 입을 소매로 거칠게 닦는다. 그 모습을 보고 크게 웃는 민식. 태연, 주위를 서성이다 목을 가다듬으며 병철에게 가까이 간다. 태연: 아부지, 인자 생일 축하도 혔겄다. 쪼까 드릴 말씀이 있는디요…. (사이) 긍께, 시방 지가 요참에 투자처에서 중국 수출 계약 건을 하나 잡아부렀는디, 계약금을 저당 잡을 것이 쪼까 부족허거든요? 큰 거 두 장으로 급전만 땡기믄 그다음 수익은 서너 배로 불릴 수가 있는디…. 병철: (케이크를 삼키다 말고) 너, 너 지금 그따구 소리가 목구녕서 나오냐? 태연: 아따, 아부지! 사람 말을 좀 끝까지 들어보시랑께요. 민식: 야, 아까랑 얘기가 다르잖아? 돈 얘기 안 한다면서? 태연: 우째 이래? 오빠도 돈 얘기할라고 온 거 아녀? 요새 복지원 힘들어서 후원 필요하다 안 혔어? 계장인가 뭔 쌈장인가 실적 타령 허믄서 들들 볶는담서? 민식: 인마, 사람이 순서라는 게 있는 법이지. 아버지 앞에 두고 다짜고짜 그게 맞아? 너도 허구헌 날 돈 빌린 사람들 쫓아다녀 봐서 알 거 아니냐. 이런 일일수록, 절차에 맞춰서 진행하는 게 업계의 도리 아니겠냐. 병철, 이마를 짚는다. 병철: …이 새끼들이 보아하니 생일 핑계 대고 또 돈 빌리러 왔구나. 태연: 아부지! 내는 참말로 힘들어요. 인자 곧 나이가 서른인디 신림동 단칸방서 월세살이 허구, 대출금 갚느라 바쁘당께요. 참 웃기지 않어요? 냄들한테 돈 빌려주는 내 같은 금융업자도 빚을 갚느라 또 은행에서 돈을 빌린다니께? 무신 놈의 시상이 죄다 대출이고 할부고 빚으로 돌아가요. 요즘도 다달이 나가는 이자 갚느라, 요 주둥이가 바짝바짝 마른당께요. (사이) 아부지, 인자 손주는 봐야 쓰지 않겄소? 민식: 금융업은 개뿔, 사채로 사람들 등쳐 먹고 다니는 것이…. 태연: 뭐시여? 민식: 중국 수출이 뭐? 이제는 약장사도 하냐? 태연: 먼 약을 팔어? 요참엔 화장품이여. 화장품. 은희: 니들은 예나 지금이나 나이를 똥구녕으로 먹는 건지 만났다 하면 쌈박질이냐? 병철: 오늘 꿈자리가 뒤숭숭하더니 다 니들 때문이구나. 돈 잃는다는 얘기가 다 느그들 때문이여. 조상님덜, 보고 있소? 나가 전생에 먼 죄를 지었다고 자슥들이 이랍니까. 태연: 예? 먼 돈을 잃어요? 민식: 아버지, 죄송해요. 집 앞에서 싸우지 말자고 그랬는데…. 은희: 돈, 돈, 그놈의 돈 얘기 지긋지긋하다. 먼 놈의 대화가 도로 돈 얘기냐? 이러니 집안이 콩가루네 뭐네, 동네 마실에서 할매들이 손가락질을 해 대지. 집안 꼴이 아주 아사리판이야. 태연: 간만에 모였응께 다 같이 살 궁리를 찾자 이거죠. 가족 아닙니까. 병철: 다 같이 살어? 너 우리랑 다 같이 살자고 접때 돈 안 빌려준다고 연락 끊었냐? 태연: 나가 시방 언제 연락 끊었다 그라요? 핸드폰 신형으로 바꿔서 그렸다 안 혔어? 병철: 느그들한테 줄 돈 10원두 없다. 돌아가라. 보기도 싫다! 태연: 에이, 돈이 없긴…. 집에 가구며 돈 될 만한 건 싸그리 치워 놓구. 병철: 뭐시여? 민식: 아버지, 근데 정말 저희들 오는 거 알고 물건 치우신 거예요? 태연, 집안을 둘러본다. 병철: 뭐, 뭐가? 느그들이 뭔 상관이여? 도둑놈들도 아니구? 여그는 느그 엄니랑 내랑 씨빠지게 주택담보대출 갚아서 산 내 집이란 말이다. 내 집서 나가 맘대로 집도 못 치우냐? 이 손을 봐라, 딱딱허게 이 마디마디가 죄다 늘러붙은 이 손을. 나가 이 손으로 평생 쇳질을 해다가 은행에 차곡차곡 적금 부어서 산, 내 것이다 말이다. 민식: 네? 집을 사셨다고요? 태연: 당숙 어른네 집이 아니고? 워메, 먼 수로? 병철: 느그들이 알 거 없다. 병철이 감자 박스를 치우려고 하자, 태연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는다. 태연: 아부지! 참말로 부탁 좀 헙시다. 요참엔 분명 감이 좋아요. 나가 시방 어젯밤에 먼 꿈을 꿨는 줄 알어요? 이 집채만 한 황금돼지가 가랑이로 들어왔당께요! 요 몇 년 새 그런 돼지꿈은 처음이었제. 지금도 눈앞서 본 것 맹크롬 아주 선명혀. 휘황찬란하게 순금으로 맹근 돼지드라니까? 그라서 오는 길에 편의점서 스피또도 하나 샀어요. 부정탄다고 혀서 아무한테도 말 안혔는디…. 근디 요참엔 참말 이어요.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믿어 보시랑께요. 열 배, 아니? 스무 배로 돌려줄 수가 있당께요. 그 돈이믄 대대손손 먹고살고도 남아불제. 우리 가족도 인자 남부럽지 않게 살 수가 있다니께. 병철: 뭐? 꿈? 정신머리가 있는 눔이냐 없는 눔이냐? 그리고 뭐? 스피또? 젊은 놈이 성실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 궁리를 혀야지, 미친 것! 태연: 내 믿고 한번만, 지발 목돈 좀 마련 해 줘 봐요. 큰 거 두 장은 바라지도 않어. 딱 한 장만 있어도 떡을 치고도 남제. 암, 그라제잉. 민식: 저어, 아버지? 말이 나온 김에 저도 한 말씀 올려도 될까요? 병철, 두 사람을 번갈아 노려본다. 병철: 니들은 천성부터 버러지여. 애비가 느그들 땀시 여태 잃은 돈이 얼맨 줄 알어? 이 집안 말아먹을 놈들아! 서울서 번듯허게 자리나 잡으라고 씨빠지게 쇳밥 먹어감서 아등바등 키워 놨드만. (가슴을 치며) 워메, 복창 터져분다! 태연: 나가 뭐 첨부터 이렇게 돈, 돈 거렸는 줄 알어요? 다 시상이 이렇게 맹글었다 안 합니까. 아니, 막말로 냄들은 집에서 다 척척 해 준다고. 갸들하고 나는 출발점부터가 다르다니께? 민식: 아버지, 일단 진정하시고 천천히 얘기 좀 들어봐요. 그러니까 저희들 계획은 말이죠…. 병철: 느그들이 그러니 문제다! 두 손이 멀쩡한 것들이 쇳질을 하든, 길바닥서 발품을 팔든 일을 혀서 번듯하게 자수성가를 혀야 쓰지 요즘 것들은 돈만 생겼다허믄 워따가 꼬라박을 생각부터 하니. 고거시 전부 한탕주의다, 이 말이다! 태연: 뭐시여? 뭔 주의? 워메, 기냥 맥아리가 확 나가부네잉. 나가 이 말은 안 할라고 혔는디, 막말로 아부지 때랑 지금이랑 같어요? 병철: 다를 건 또 머시여? 태연: 한탕주의로 따지믄 소싯적 아부지도 한따까리 허셨음서, 남 말하듯 허는 거시 참말로…. 민식, 태연 웃는다. 병철: 너 이 자슥, 주둥이 안 다물어? 태연: 못 다물어요! 요것이 다 아부지한테 배운 거 아녀요. 우리 집이 그동안 와 돈이 없었는지 엄니는 알어? 공장 장막 치믄 읍내 잡부들이랑 비닐하우스서 삼삼오오 모여가 아부지가 섯다 치믄서 돈을 월매나 땡겼는디? 일당 받으믄 밤낮 경마장에서 눈깔 빠지게 뻬팅이나 했음서, 뭐시여? 내보고 한탕주의? 병철: 그 주둥아리로 한마디만 더 지껄여 봐라잉! 태연: 나처럼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 어딨습니까? 일찍부터 집안 건사하랍시고 대학도 못 가게 허고, 상고로 밀어 넣은 것이 아부지 아니여? 나가 상고 졸업하고, 열아홉에 뭣 땀시 은행에 기 들어가 행원으로 씨빠지게 일을 혔는디? (웃는다) 나가 그 망할 놈의 캐피탈이란 것을 열아홉에 은행서 다 깨우쳐 부렀지라. 그라니 지금 이라고 냄들한테 돈 빌려주고, 이자 장사하고 있는 거 아녀요. 병철: 뭐시여? 캐피탈? 이 가시나, (태연의 머리를 민다) 니가 그리 원대한 꿈이 있어 은행 박차고 나와서 냄들 삥이나 뜯구 사냐! 태연: 지금 나 쳤소? 태연, 감자 박스를 엎고 일어난다. 박살나는 케이크. 병철: 이 육실헐 것이…. 병철, 덩달아 일어나자, 태연은 감자 박스를 발로 걷어찬다. 오만 원짜리 지폐가 쏟아진다. 민식: 어? 돈이다! 태연: 이게 뭐시여? 태연, 바닥에서 지폐 다발을 한 움큼 집어 든다. 병철: 느자구없는 것들이, 뭔 짓거리여! 손대지 마! 만지지 말라고! 태연: 워메, 여따 꽁쳐두고 있었구만? 아부지 진짜 너무한 거 아니요? 민식: 태연아, 일단 그만둬. 아버지도 그만해요! 병철, 민식, 태연 너나 할 것 없이 뒤엉킨다. 엎어진 케이크와 미역국으로 범벅이 된 돈다발. 은희: 무슨 꿈 타령 하나에 자발들을 떨어대는 거냐? 병철: (태연을 붙잡으며) 나가 시상에 호래자식을 내놨당께! 민식: 진정 좀 하세요. 이러다 숨넘어갑니다! 태연: (뿌리치며) 누가 가져간다 혔어? 기냥 세어보기만 현다고! 병철: 이 년이 가장 문제여! 애비 말이 홍어 거시기로 들리냐? 이것아, 안 놓냐? 태연: 아따, 참말로 얼맨지 시어보기만 현다니께! 병철: 안 놔? 요것이 애비 돈을 껄떡대고, 기냥 눈깔이 확 뒤집혀 부렀구만! 병철, 태연의 뺨을 후려친다. 정적이 흐른다. 태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노려본다. 태연: 시방 혁대로 후려치던 그 손버릇을 여태 못 버리구 또 손찌검이요? 병철: 요, 요것이 말하는 뽄새 좀 봐라, 어서 이런 막돼먹은 가시내가 나와가지고. 이젠 허다허다 애비 돈에 손을 갖다 대냐? 태연: 나가 인자 얻어 맞고도 가만히 있는 기집이 아니여, 다 컸다 이 말이여! 태연, 케이크 칼을 주워서 허공에 번쩍 들면, 은희: 안돼! 병철: 아이고! 자석 놈이 애비한테, 애비한테! 아이고, 골이야, 골이야! 병철, 뒷목을 잡고 쓰러진다. 은희: 워메, 민식이 아부지! 민식: 아버지! 괜찮아요? (태연에게) 야이, 호로새끼야! 태연: …뭐시여? 나 암것도 안 혔어! 민식: 이 자식이 이제는 패륜을 서슴지 않네. (병철을 흔들며) 아버지, 일어나세요! 아직 가시면 안 돼요! 아버지! 태연: 참나, 저 여시 같은 인간. 닿지도 않았는디 회까닥? 아주 징해부러라···. 태연, 케이크 칼을 내려놓고 돈을 살핀다. 민식: 돈 줍지마! 아버지 쓰러졌잖아! 어떡할 거야? 어떡할 거냐고! 민식, 태연을 붙잡으면, 태연, 민식의 멱살을 쥐고 흔든다. 태연: 그따구 명령조로 지껄이지 말어! 민식: 이 새끼가 진짜. 민식, 주먹을 치켜들면, 은희: 진정해라, 다 설명해 줄라니까. 응? 둘 다 내려놔라. 태연: 돈의 출처부터 알아야 현다고. 요거시 시방 아부지 돈이 맞어? 집안에 현찰을 요로코롬 짱박아 뒀다고? 밤낮 돈 읎다고 노랭이질하던 인간이? 민식: 아버지가 쓰러졌는데 이 짓거리 하는 건 맞아? 은희: 피보다 진한 게 돈이라더니, 그만 안 하냐? 태연, 민식에게 머리를 들이민다. 태연: (노려본다) 쳐, 쳐보랑께? 둘 중 한 놈은 오늘 제삿상 치르는 거시여. 민식: (손목시계를 푼다) 이 자식이, 간만에 피를 끓게 만드네. 은희, 냄비를 집어 들고 바닥에 있는 힘껏 내던진다. 은희를 쳐다보는 민식, 태연. 은희: 너희들 아버지 아프다! 맨날 죽은 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난다고 하지를 않나, 제정신이 아니란 말이다. (약 봉투를 보이며) 이봐라, 약도 안 먹으면 잠도 제대로 못 잔단 말이다. 민식, 태연 씩씩대며 떨어진다. 은희, 병철을 살핀다. 민식: 어머니, 구급차라도 부를까요? 은희: 다행이다. 잠깐 정신을 잃은 거야. 태연: (한참을 보다가) 이것두 연기 아니여? 와, 그 있잖어. 비암이 나타나믄 깨꼬닥 죽은 척허는 개구락지 맹크롬. 은희와 민식, 태연을 보고 한숨을 쉰다. 민식: 너 그게 할 소리냐? 태연: 엄니, 요참에 깨끔허게 단도리를 칩시다. 은희: 뭘 쳐? 태연, 돈다발을 은희에게 쥐여 준다. 태연: 이왕 이래 된 거, 같이 뜹시다. 나가 시방 돼지꿈을 꾼 거시 뭔 뜻인지 이제야 알겄어요. 엄니, 내랑 같이 살어요. 같이 요 뭣 같은 집안, 확 떠불자니께요. 은희, 아무 말 없이 돈다발을 바라본다. 민식: 쓰러진 아버지 앞에 두고, 터진 입이라고 말을 함부로 해? 태연: 내는 집안서 뭔 말도 못 혀? 민식: (태연의 머리를 밀친다) 넌 성격 괴팍한 것이 아버지랑 똑 닮았어. 태연: 뭐시여? 오빠가 내한테 이럼 안 되는 거시지. 민식: 내가 틀린 말 했냐? 태연: 안 여물어? 나가 그동안 월매나 참았는지 알어? 아부지가 나를 상고에 왜 보냈는지 모르제? 시골 동네서 기집애는 개천에 용 날 수가 없다드라고. 언능 취업혀서 오빠 학비나 보태라 그라드라고. 고거이 벌써 십 년 전이여! 내는 뭐, 하고 싶은 게 없는 줄을 알어? 근디 다른 놈도 아니고 우째 오빠가 그라고 느자구없는 말을 헐 수가 있어? 진장 염병할 집안! 민식: 뭐? 저 툭 터진 주둥이를 아주 그냥…. 민식, 태연의 얼굴을 부여잡는다. 두 사람, 낑낑대며 악다구니를 쓴다. 태연: 시상에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없다는디, 요 집안은 귀한 아들래미 뒷바라지할 씨는 따로 있당께! 은희: 그만해라. 입 아프다! 민식: 그래! 이 자식아! 악 좀 그만 써라. 까놓고 그게 내 잘못이냐? 내가 너한테 은행 가라고 시켰냐고 인마. 민식, 태연을 바닥에 패대기친다. 은희: 첫째야, 그만은 네가 해야 할 것 같다. 민식: 저요? 아니, 저 파렴치한 놈이 지금 아버지 돈에 눈깔이 뒤집어져 가지고는…. 은희: 뭐? 아버지 돈? 태연, 대자로 뻗어 발버둥친다. 태연: 그려! 눈깔 뒤집어졌다! 눈깔을 뽑아다 오독오독 씹어 묵어부러라! 민식: 저도 돈 빌리러 왔다지만, 아버지 돈에 손을 대는 저런 패륜아가 어딨어요? 은희: 아버지 돈? 아버지 돈에 손을 대? 민식: 네, 아버지 돈이요. 태연, 누워서 돈다발을 허공에 뿌린다. 태연: 더러븐 집구석, 기냥 다 같이 뒷간에 콱 빠져 디져 불자! 은희, 민식에게 다가간다. 은희: 첫째야, 넌 왜 이 모든 게 당연히 네 아비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민식: 네? 은희: ···그래, 너희들은 어릴 적부터 돈에 관한 것은 전부 아버지한테 말하고는 했지. 문구점에서 연필 한 자루를 사더라도 밥상머리 앞에서 국그릇 내다 주는 이 어미한테는 일언반구 않고 그저 아버지 눈동자만 멀뚱멀뚱 쳐다보곤 그랬지. 민식: 갑자기 무슨 서운한 말씀이세요. 태연, 버둥거리며 돈다발 사이를 헤엄친다. 은희: 너희 아버지는 쩍쩍 갈라지고 마디가 툭 터진 손이 무슨 훈장인 것마냥 꺼드럭대는데, 니들이 이 어미 손을 본 적이 있냐?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하루 열두 시간 서 있던 몸뚱이 끌고 와, 밥 차려주던 이 손을 본 적이 있어? 민식: 어머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은희: 이제야 알 것 같다. 내 것을 너무 쉽게 남한테 맡겨 버렸어. 다들 이렇게 악을 쓰면서 자기 것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면서 사는데, 어째서 나는 한 번도 내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민식: 어머니, 그러지 마시고 아버지 일어나면 차분하게 얘기를 하시죠. 은희: 아니다! 민식: 네? 은희, 동수의 영정사진을 본다. 은희: 그래, 오늘 하루라고 했지? 분명 하룻밤이라고 했지? 돈에 발이 달린 것 마냥 오늘만큼은 이 인간 손에서 전부 떠난다고 했지? 민식: 하루요? 은희, 돈다발 틈에서 통장과 집문서를 꺼낸다. 은희: 나한테는 이거 필요 없다. 이참에 내다 버리자…. 민식: 다 버리자고요? 태연,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킨다. 태연: 엄니, 고거이 무슨 자다가 벼락 맞을 소리여? 은희: 오 년이다! 오 년! 너희들이 돈 때문에 집구석에 오는 것이 오 년 만이다! 니들 아버지는 평생을 제 것처럼 하고 살았는데 왜 나는 하루도 내 것이라고 못해? 이 어미는 왜 하루도 제 것처럼 하지 못하냐 이 말이다! 오늘은, 하루 정도는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야. 나도 그럴 수 있는 거야. 민식: 어머니···. 태연: 오라질 것! 뭘 고로코롬 실없는 소리를 혀요? 콱 기냥 뜹시다! 은희, 통장과 집문서를 갈가리 찢어 버린다. 은희: (돈다발을 걷어차며) 이거 전부 갖다 줘 버려라. 이까짓 거 들고 있다고 악다구니 쓸 일 없는 사람들한테나 줘 버려라. 민식: 네? 은희: 싹 다 복지원에나 줘버려라. 태연: 환장하겄네! 이 돈으로 나랑 대대손손 먹고살아야제! 민식: 기부를 하시겠다는 거예요? 은희: 그래, 가지고 가라. 다 가지고 가 버려. 얼른 들고 사라져라…. 태연, 돈다발을 벽에 던진다. 태연: 진장, 염병할! 나 안 가! 오함마로 손모가지를 찍든, 도끼로 발모가지를 끊든, 여서 한 발자국도 안 갈 것잉께 그리 알어! 민식: ···저 자식은 돈에 한 맺힌 악귀가 든 게 분명해요. 태연: 그려! 나 돈에 허천났다! 배때지를 찢든, 대그빡을 부수든 혀라! 나 안 가! 민식: 어머니, 이놈은 제가 구마를 하든 굿을 치든 해서라도 끌어낼게요. 근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저야 상관이 없지만···. 은희: 너 좋으라고 하는 일 아니다. 태연: 뭣 같은 시상! 또 아들래미 몫이여? 민식: 이제는 어머니 앞에서도 막말을 하네! 태연: 돼지꿈은 육실헐, 팔자가 개팔자인디···. (주머니에서 복권을 꺼낸다) 냄들은 뭐 잘만 풀린다드만 또 꽝이네? 난 태생부터 허벌나게 꼬여부렀어. 사는 것이 요로코롬 뺑이치다 뒤질 개꿈이라니께! 민식, 태연을 붙잡으려 하면, 은희, 태연을 꼭 끌어안는다. 은희: 이것아, 돼지꿈은 무슨 돼지꿈이냐···. 정신 좀 차려. 세상이 돼지우리다. 눈을 씻고 봐도 똥 묻은 돼지 새끼들이 지 몸에 묻은 것이 황금이나 된 줄 알고 똥밭을 뒹굴고 사는 거란 말이다. 너까지 돼지가 되면 어미는 어쩌란 말이냐. 이빨 드러내면서 컹컹 짖는 개처럼 살어. 차라리 개처럼 악을 쓰면서 살란 말이야. 태연: 엄니, 요것이 참말로 사는 것이 맞어? 내는 우째 악쓰고 살아야 쓰는디? 내는 우째 악을 써야만 되는 것인디? 우째 꽥꽥 소리를 써야만 들어주는 것인디? 은희: 누가 네 것을 빼앗으려고 하면, 지금처럼 소리를 꽥꽥 지르고 악을 단단히 써 버려. 절대 빼앗기면 안 돼. 이 어미처럼 살지는 말어. 그냥 그렇게 살어…. 태연: 시방 나도 기냥 살고 싶단 말이여. 기냥 살고 싶다 이 말이여. 태연, 서럽게 운다. 은희, 오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워서 태연에게 쥐여 준다. 은희: 굶지 말고 가는 길에 따뜻한 밥이나 한 숟갈 떠. 글고 다 잊어. 그깟 꿈 얘기, 싹 잊어버려. 태연: (돈을 쥐고) 진장, 드러븐 돈, 드러븐 집구석···. 민식, 감자 박스에 돈을 쓸어 담는다. 민식: 익명으로 후원하면 아버지도 모를 거예요. 근데 정말 후회 없으시겠어요? 은희: 괜찮아. 다 필요 없다. 나는 필요 없어. 민식: 아버지는 어쩌죠? 가만히 있진 않으실 텐데. 은희: 그놈의 아버지, 지긋지긋한 아버지. 민식: 죄송해요. 걱정이 되어서···. 은희, 입을 쩍 벌리고 누워 있는 병철을 바라본다. 잠꼬대를 하듯이 몸을 움찔거리는 병철. 은희: 또 꿈을 꾸는 모양이구나. 이 인간 깨어나기 전에 가라. 민식: 괜찮으시겠어요? 은희: 걱정할 거 없어. 원래부터 내 것이었어. 다 내 몫이었어. 얼른 가, 어서 가라…. 민식: (태연을 걷어찬다) 일어나! 아버지 깨어난다! 이제 가자! 민식, 감자 박스를 집어 들면, 태연,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일어난다. 태연: 엄니, 사실 핸드폰 안 바꼈어요. 연락 자주 헐 것잉께…. 민식: 핸드폰 바꾼 것도 거짓말이었냐? 태연, 은희와 포옹한다. 병철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척인다. 은희: 애들아, 얼른 가라, 얼른 가. 민식: 어머니, 만수무강하세요. 구정에는 과일이라도 한 박스 사서 올게요. 태연: 엄니…. 민식, 태연을 끌고 퇴장한다. 은희: (무대 밖으로) 그래, 연락들 자주해라. 밥 잘 챙겨 먹고, 뛰지 말아라 다친다···. 병철, 잠꼬대를 한다. 은희, 한참 동안 그 모습을 보다가 전등 스위치를 내린다. 조명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병철, 요람에 싸인 아기처럼 몸을 웅크린다. 3장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은희는 가구를 재배치한다. 무대 밖에서 옷장과 수납장을 들여와 제자리에 두고, 누런 벽지에 가족 사진도 건다. 선반에 제대로 놓여 있는 동수의 영정사진. 규칙적으로 코 고는 소리가 울리는 와중에, 은희는 병철에게 다가가 고깔모자를 벗긴다. 순간 잠에서 깨는 병철. 병철: 아부지! 아부지! 은희: 이 양반이 또 꿈을 꿔? 병철: (끙끙 앓는다)  아부지! 은희, 병철을 흔든다. 은희: 왜 자다 말고 땀을 비질비질 흘리구 소리를 꽥꽥 질러대? 일어나…. 병철: 어? 당신이여? 은희: 자다가 뭐라도 봤어? 병철: 아부지가 꿈에 나왔구만! 은희: 그래? 이번에는 뭐래? 복권 번호라도 몇 개 찍어 줍디까? 병철: 그, 글씨 말이여…. (사이) 아니, 근데 우리 돈은? 이 써글 놈들! 병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은희: 돈? 병철: 그려! 여그다 내가 돈을 분명히! 근디 그 호로자슥들이 와 가지고! 은희: 개꿈이야. 당신 꿈을 꾼 거야. 병철: 꿈? 은희: 당신 원래 꿈을 잘 꾸잖아. 돈은 무슨, 귀신이 씻나락 까먹을 소리야. 병철: 꿈? 꿈이라고? 병철, 혼란스러운 듯이 주변을 둘러본다. 은희: 도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 평생 제 손으로 돈은 만져 본 적도 없으면서. 병철: 분명히 아부지가 그렸어, 아부지가! 은희: 아까 전화 왔었어. 민식이랑 태연이한테. 둘 다 서울에서 번듯하게 자리잡았나 봐. 구정에 한 번 내려오겠대. 애들이랑 연락 안 한 지 오래됐잖아…. 병철: 안 돼! 그것들이 여그 오믄 안 돼! 은희: 그냥 살자, 제발 그냥 살자 우리. 병철: 아버지가 오늘 하루라고 혔어. 하룻밤 안에…. 은희: 당신 오늘 생일이잖아. 더 자, 푹 자. 그냥 그 터무니없는 돼지꿈이나 꿔버려. 병철: 꿈? 꿈이라고? 진장 꿈이라고? 워째 혀끝에 엿기름이 배인 만치 달디달다 혔어. 은희, 선반에서 알약과 물그릇을 가져와 병철에게 먹인다. 병철: (약을 삼키며) 아, 아부지. 어따 돈을 넣을까요? 아아, 요참엔 어따 돈을 넣어야 할까요…. 병철, 중얼거리며 드러눕는다. 은희도 함께 눕는다. 암전.
  •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결합된 제품이었다. 이름은 비디오 비전. 검고 매끈한 TV 수상기 밑에 VHS 투입구가 달린 모델이었다. VHS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 빼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관문처럼 마구 펄럭였다. 나는 그게 마치 누구의 손짓 같아서 그 문이 금세 닫힐 것 같은 조바심에 손을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하지만 매번 편지 한 통 없는 우편함처럼 미지의 그곳은 텅 빈 공백으로 열렸다 닫힐 뿐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어딘가 멋진 곳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집에는 어린이용 비디오테이프는커녕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불량·불법 비디오테이프 하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끈질기게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날은 평소에 뽑혀 있던 케이블이 비디오 비전의 본체와 콘센트 사이에 연결돼 있었다. 미지의 세계 관람권인 비디오테이프는 없었지만, 입장권을 들고서 문 앞에서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TV 전원을 켰다. 리모컨을 든 나는 놀이공원 앞에 서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환해진 직사각 화면에는 기대와 다르게 회색의 담벼락이 펼쳐졌다. 황량한 공장의 경계를 드러내는 콘크리트 담. 공장 담벼락 같아서였을까. 소음이 들렸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11번으로 9번으로 7번으로 채널을 바꿔도 소용없었다.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 낮 시간대였다. 실망을 금치 못한 나는 리모컨 버튼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도 전원 버튼 근처는 누르지 않았다. 은밀한 일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 소음이 진동하였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멍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들어 버렸다. 회색 소음과는 다른 소음을. 삐-------이. 삐—————————익. 회색 소음보다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귀에 거슬려 TV를 끄려다 소음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회색 소음은 회색 화면에 어울리는, 공중에 스크래치가 그어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높고 날카로운 소음은 회색 스크래치와 이질적이었다. 저 소음을 방송국에서 보낸 것일까. TV 스피커에 귀를 갖다 대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TV 스피커에서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기가 귓가를 스치는 정도로 시작되는 데시벨은 금세 한여름 매미 떼의 데시벨로 거세지고는 했다. 나는 당연히 아버지와 누나도 소음에 시달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TV를 볼 때 별다른 말이나 반응이 없었다. 소음을 듣지 못하는 건 수리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하게 생긴, 그리 크지 않은 귀를 스피커에 갖다 댄 수리기사는 고개를 몇 번 갸웃했다. 수리기사의 고갯짓에 아버지는 그것 보라는 눈빛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초조해져서 열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매미 떼가 맹렬히 힘줄을 튕길 때 지금이라고 외쳤다. 수리기사는 평범한 귀를 다시 스피커에 밀착했고 아버지도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소음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예민한 아이로 치부하며 미안하다고 말했고, 수리기사는 공구함 한 번 열지 않았다며 출장비를 사양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미의 합주를 들었다. 이렇듯 분명히 울리는 소리를 나만 듣는다는 게 답답하거나 억울하기보다는 어쩐지 서글펐다.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백히 혼자라고 느꼈다.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하면 고민 없이 부풀어 오른 질문들이 날아든다. 음악하세요, 아니 디자이너니까 미술 쪽인가. 사운드를 디자인화하나요, 디자인을 사운드화하나요.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의 예술인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고요한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를 몰래 잡아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포획의 목적은 잠자리가 아니다. 잠자리의 소리다. 그물망에 든 잠자리를 조심히 빼서 사각의 채집통에 넣어 두고 귀를 연다. 잠자리의 날개끼리 충돌해서 나는 타닥타닥 소리. 그 소리는 점점 허물을 벗어 잠자리에서 탈피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잠자리의 소리를 다른 무언가의 소리와 연결하는 사람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사실 뭘 어떻게 인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사물에 있는 것을 튀어나오도록 하면 된다. 숨어 있는 물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마련하는 게 나의 일이다. 적막한 설산을 걸을 때는 굵은 소금이 뿌려진 바닥을 밟으며 밀가루 포대를 손으로 주무른다. 수풀이 바람에 휘날릴 때는 릴테이프 더미를 양손 사이에 놓고 비빈다. 중세 시대의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릴 때는 콘크리트 벽돌들을 포개어 놓고 두 벽돌을 맷돌 돌리듯이 간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된다. 채집하고 발견하는 셈이다. 순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채집하려면 발견이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채집이 먼저이다. 채집한 후에야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극에 매달려 있던 때였다. 그 작업은 현대에서는 접하기 힘든 소리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였다. 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하에서 적장을 향해 팽팽해진 활시위의 탄력과 긴장을 어떻게 해야 소리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활시위와 연결할 수 있는 사물이 떠오르지 않아 활 자체로 가능할지 시도해 봤다. 하지만 실제로 눈을 밟는 것보다 소금을 밟는 소리가 사람들 머릿속의 눈 발자국 소리에 더 가깝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수풀보다 릴테이프가 더 실감 나는 것이다. 활을 아무리 팽팽히 당겨도 소용없었다. 내가 당긴 활시위에서는 음률이 없는, 맥 빠진 거문고 줄 소리가 났다. 가죽가방과 고무장갑 따위를 비틀고 늘려도 소득은 없었다. 뭘, 그렇게 발길질당한 강아지마냥 낑낑대요? 고무장갑의 탄성 한계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두 팔을 채아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믹싱 작업을 맡고 있는 채아는 내 입에서 난다는 소리를 자주 타박했다. 힘을 쓸 때나 뭔가에 몰두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개 같다고 했다. 선배에게 개 같다니 참 맹랑한 말이지만, 나는 내가 소리를 낸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남의 소리는 그렇게 잘 들으면서 어떻게 자기 소리는 못 들을 수 있어요. 무슨 소리를 내냐고 반문했을 때, 채아는 내 직업적 소양이 의심된다며 따졌다. 가벼운 발길질이 아냐. 늘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아. 무심결에 또 어떤 소리를 냈을까. 궁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숨 꼴딱거릴 것처럼 혀 내밀고 있지 말고 수분 보충 좀 해요. 선배를 계속 개 취급하는 못된 버르장머리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가 채아가 건네는 맥주캔을 넙죽 받았다. 거절하기에는 맥주캔의 표면이 얼음장처럼 시원했다. 나는 모래가 쌓여 있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게, 이럴 때는 백사장 같네. 나는 손으로 모래를 뒤적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래 옆에는 나무 옆에는 대리석 옆에는 소금 바닥이 있었다. 왜요? 휴가 못 가는 삶이 처량해요? 채아가 자신의 맥주를 들고 옆에 앉았다. 채아는 엉뚱하게 넘겨짚는 구석이 있었지만, 캐묻지 않고 넘겨짚는 포즈를 취한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파트너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의 독성이 빈속을 찔렀다. 불법을 저지른 듯한 짜릿함. 백사장이 아닌 모랫바닥에서라도 잠시 쉬고 싶었다. 나는 금세 침묵에 이르렀고 내 마음을 넘겨짚었는지 채아도 보조를 맞췄다. 창고라고 불리는 작업실에는 철가방, 문손잡이, 깡통, 톱, 바이올린 활, 구두, 로프, 용수철, 자동차 문짝이 나름의 질서 속에 존재했다. 스스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물성을 깨우는 힘에 연주하는 악기들. 악기들은 지휘자가 없다는 듯 고요했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에게 고요는 휴식 또는 죽음과 같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러나 곧 수면의 문턱을 넘다 정강이가 쾅, 부딪혔다. 뭐야. 미안해요. 블루투스가 꺼진 줄 모르고 볼륨을 키웠네. 끌게요. 아니야, 끄지 마. 본능적으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가가자 채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채아가 무안할 만큼 거친 손길로 스마트폰을 뺏어 들었다. 화면 속 영상에서 판다 한 마리가 죽순을 맛있게 뜯고 있었다. 선배도 얘 알아요? 선배가 알 정도면 푸바오가 인기긴 인긴가 보네. 나는 스마트폰을 던지듯이 채아에게 떠넘기고 진열장을 뒤적였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을 찾아 꺼낼 때는 낮게 탄성이 배어 나왔다. 갑자기 죽도는 왜 꺼낸 거예요? 나는 채아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샷건마이크 앞에 섰다. 대나무로는 텅텅, 비어 있는 소리만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다의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은 예상치 못한 대나무의 물성을 깨우고 있었다. 판다가 씹는 게 죽순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단단한 뼛조각처럼 느껴졌다. 죽도를 두어 번 바닥에 내려쳤다. 탁탁. 대나무를 다른 사물에 부딪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죽도를 감싸고 있는 줄을 칼로 끊어 버리고 붙어 있는 네 쪽의 대나무에 칼집을 내어 서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떨어진 대나무들을 한 손에 감싸고 가볍게 비볐다. 부드득. 귀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죽도를 샷건마이크에 더 가까이 대고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대나무들을 비볐다. 부드드드드드드득. 대나무에서 소리가 튀어 올랐고, 활시위를 당기는 팽팽한 팔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물의 성질은 마찰에 의해 드러난다. 우리가 외부와 마찰을 빚을 때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소리를 발견한 쾌감에 대나무를 비비는 나의 팔뚝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사극 작업이 끝나고 몇 개월 뒤에 스튜디오를 그만두었다. 사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입소문이 났는지 작업 물량이 컨베이어벨트처럼 이어졌다. 줄지어 운반되는 의뢰를 수하물로 적재하고 물품을 의뢰서에 맞게 포장한 후에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출하하는 기계적인 시간이 계속됐다. 과로나 질식이 원인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소리를 단순 제조하는 업자가 되리라는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기존에 녹음해 둔 파일들을 대강 믹싱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캐릭터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인을 만나러 달리는 그리움이 실감되도록 수십 번을 달리고 또 달리고, 도회적인 세련 아찔한 피로 흔들리는 일상이 전해지도록 하이힐을 신고 균형을 잡던 시간이 떠올랐다. 당분간 멈춰야 했다. 휴가를 가랬더니 휴식에 들어가네. 채아는 내가 내민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물끄러미 보았다. 채아의 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머뭇거림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뭔가를 넘겨짚었는지 다가와서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나는 계획하지 않고 쉬는 계획을 세웠다. 눈이 감길 때 자고 눈이 떠질 때 일어나고 때가 이르거나 늦게 식사하고 술을 가볍게 또는 취하도록 마시고 느릿느릿 산책하고 레고 블록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조립했다. 집 근처를 돌거나 여행을 떠나서 풀벌레, 지하 터널, 경운기, 야적장, 항만, 오일장, 밤바다에 붐마이크를 갖다 댔다. 녹음 파일들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았고, 녹음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시간은 왜곡 없이 흘렀고 나는 날짜와 요일 감각을 잃었다. 일상에 파동이 없었다. 파동이 없으므로 외부에 닿는 주파수도 없을 터였다. 송신하지 않고 수신하지 않는 생활. 나는 자유로이 고립되었다고 느꼈다. 누나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돌아가셨다. 누나의 말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누나와는 일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 사이였으므로 액정 화면에 뜬 두 글자에 나는 이미 예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한 말은 고작 알겠다, 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촐했다. 친척은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어서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아버지가 은퇴한 지 십여 년쯤 지나서 대표이사가 보내는 화환조차 없었다. 나는 주로 국화가 장식된 제단 옆에 앉아 있었고, 한 번쯤 봤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맞절했다. 둘째 날 오후, 누나가 식탁으로 나를 불렀다. 주변 식장은 조문객들로 붐볐지만 장례 도우미를 제외하고는 누나와 나만 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누나는 대뜸 앉으라고 말했다. 누나는 군말하는 법 없이 할 말만 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군말 없이 누나와 마주 앉았다. 일 미터쯤의 간격조차 어색한 사이였지만 누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기억 속 어느 날에는 없었을 주름과 기미가 보여 열 살의 터울이 새삼스러웠다. 미처 상의하지 못한 장례 절차에 대해 말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내게 누나는 구겨진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반으로 접힌 편지 봉투는 살짝 불룩했다. 너한테 필요할 거다. 누나의 단정에 나는 편지 봉투에 든 것을 꺼냈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카세트테이프였다. 겉면 라벨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손때와 볼펜 얼룩이 낀 낡은 상태였다. 카세트테이프를 보자마자 나는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고, 누나의 말처럼 내게 필요하리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나는 일산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지 않은 땅에 창고가 딸린 농가주택이 비어 있었다. 창고를 작업실로 쓰면 되겠다는 심산에 덜컥 결정을 내렸다. 파동 없는 삶의 관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벗어나려고 했다기보다는 벗어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빚은 진동이 나를 다시 작업실로 이끌었다. 나는 일산의 공사장, 분리수거장,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물건들은 모두 채집하였다. 농기구와 농약, 비료 포대 등이 있었을 창고는 각목, 글러브, 밥솥, 스케이트보드, LP, 유리컵, 프라이팬, 사기그릇, 고무 팩 등이 있는 작업실로 탈바꿈되었다. 작업실의 윤곽이 자리잡힌 날, 양쪽에 테이프 플레이어가 장착된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진열장에서 꺼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발견한 괜찮은 매물이었다. 예상외로 쓸 일이 없다가 이사 오기 전에 쓰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편지 봉투에 담긴 테이프가 자리를 바꿔 플레이어에 담겼다. 달칵, 버튼이 눌리면서 테이프는 돌아가고 슥삭슥삭, 과도에 사과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큼큼. 부스럭 부스럭. 이게 맞나. 탕. 텅. 아, 아.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기타를 쳤다. 장롱 위에 뿌연 먼지를 덮어쓴 커버에 담겨 있던 통기타이리라. 나는 아버지가 통기타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는 연주되지 않고 진열되지 않은 채 장롱 위에 방치된 통기타의 존재성이 의아했다. 통기타의 쓸모를 알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면서 나는 통기타는 방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안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하였다. 가슴에 묻어 둔 열망이 장롱 위에 놓이는 방식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눈에 보이면 마음이 근질거리고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서걱여서 대강의 형태로 보이게 놓아둔 것은 아닌지. 동그란 스피커에서 가리워진 길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의 노래는 후렴에 이르러 그대를 애타게 불렀지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길을 터 줄 그대를 더 호출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기까지 들었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더 듣기로 한다. 여보세요. 아버지의 음성이 저랬구나. 아버지가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졌는지 통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고 아버지는 다시 통기타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줄 한 번 튕기지 못하고 통기타를 놓쳤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통기타는 소음을 일으켰지만, 뒤이어 터져 나온 소리에 소음은 배경음으로 밀려났다. 격렬한 기침 소리. 콜록콜록, 쿨룩쿨룩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숨이 차고 흉통에 경련하는 병색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생전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기타 소리를 들었다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다감하지 않았고 나는 살갑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나는 왜 그리 아버지의 소리에 둔감했을까. 일시 멈춤 버튼을 눌렀다.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끝났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남았다. 휴지(休止)가 필요했다. 커피를 끓이러 싱크대 쪽으로 향하는데, 양은 주전자가 발에 차여 시끄러웠다. 주전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째그랑 일을 벌여 놓고, 뭐하는 거야 째쟁쨍. 작업실에 쌓인 도구들이 매립지에 버려진 고물처럼 낡아 보였다. 이대로 뒀다가는 달걀 썩는 듯한 매립지 냄새가 진동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아, 이게 누구신가요? 나를 헌신짝으로 만든 그분 아닌가요? 채아와 거의 일 년 만의 통화였다. 가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생존을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버려지긴 누가 버려져. 내가 도망친 거지. 그럼, 멀리 가버릴 것이지 웬일로 연락했어요? 나, 얼마 전에 일산으로 이사했어. 일산? 왜? 거기로 왜 갔는데요? 이제는 잭을 다시 만나 볼까 하고. 누구요? 잭? 아, 난 또 누구라고. 잭 폴리? 내 말뜻을 알아들은 채아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이제는 도망가지 말아요.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답했다. 앞으로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채아에게 연락한 첫 번째 이유였다. 채아에게 알리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또 프리하게 때려치우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일감 때문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의뢰인과의 소통은 채아에게 맡겼었다. 소리만 잘 만들면 그만이라는 게 대외적인 사유였지만, 인맥이라든지 비즈니스적 관계에 반응하는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채아는 메신저로서 역할을 잘했고 사교적이어서 업계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때가 묻은 것인지, 생계의 절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채아를 통하면 일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다행스럽게 채아는 나를 넘겨짚었다. 채아의 주선으로 맡은 첫 복귀작은 돌침대 광고였다. 별 다섯 개가 돌침대에 박히는 효과음을 내 주세요. 광고 제작사 측에서 보내 준 영상에 등장한 돌침대 사장은 이마에 별 다섯 개를 달고 손가락 다섯 개를 좍 펴고 있었다. 별이 돌침대에 박히는 일은 당연히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관념에 있을 법한 소리를 뽑아내야 했다. 별이라는 거대 물질이 흔들림 없이 단단한 돌침대와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문짝을 해머로 치고 외날의 서양톱을 바이올린 활로 켜서 고음부를 녹음했고, 샌드백에 아령을 두들기고 대리석 바닥에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려서 저음부를 녹음했다. 녹음된 고음과 저음을 믹싱하니 별이 우주에서 날아와 돌에 꽂히는 듯한 효과음이 완성되었다. 광고는 마케팅 비용의 한계로 공중파에서는 송출되지 못하고 케이블TV의 프리미엄 시간대가 아닌 아침과 낮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빨간 별 다섯 개를 이마에 박은 돌침대 사장이 인터넷상의 밈이 되어 제품의 매출이 대폭 올랐다. 그 덕분에 돌침대 하나가 작업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고 이후로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단막극 등의 의뢰가 들어왔고,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을 정도의 딱 알맞은 속도로 작업이 이어졌다. 내게 맡겨지는 작업이 폭설로 쌓이거나 진눈깨비로 흩날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의 잔설로 덮이던 즈음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스팸이겠거니 무시하려는데, 부재중 통화가 2건 찍히고도 벨은 멈추지 않았다. 광고성 전화라고 하기에는 상도덕이 없다고 할 정도의 집요함이었다. 보이스 피싱도 이렇게 한 번호를 공략하지 않을 텐데. 집 나간 가족을 찾는 연락인가. 죄송합니다. 이채아 디자이너님이 이렇게 해야 받으실 거라고 하셔서. 젊은 여자는 사과부터 했다. 문자는 언제 확인할지 모르니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라고 하는 채아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럼, 채아를 통해 연락하면 되지 않나. 회장님께서 직접 연락드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회장이라는 말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요새는 낯 모르는 아무 행인에게 선생님이라고 한다는데, 회장님이야 등산회, 친목회 등 각종 모임으로 인해 길거리에 널린 직위가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자의 절제된 말투와 주변의 정제된 소음이 여자가 말하는 회장이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회장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필, 왜 저인가요. 회장님은 사극 마니아이십니다. 사극이라면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는 회장이 내가 디자인한 활 소리에 감탄했고, 수소문한 끝에 내가 일하던 스튜디오를 알아내고 채아를 통해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사연의 개연성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회장이 의뢰한 작업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회장이 투자하는 사극 영화에 사운드를 디자인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금세 납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장은 사극과 관련이 없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운드를 디자인하기를 바랐다. 작업은 간단했고 받는 금액은 과도했다. 이 정도의 일로 그 정도의 돈을 받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뭔가 대단한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제안을 할 리가 없을 텐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회장 비서의 말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몇 차례 거절하다가 일을 맡기로 했다. 결국 회장이 거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액수가 아니었다. 회장은 왜 그렇게 큰돈을 들여서까지 이 작업을 성사하려는 것일까. 회장에게 필요한 소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게 문제였다. 영상은 3분 30초 정도로 짧았다. 그것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처럼 보였는데, 별다른 촬영이나 편집 기술이 동원되지 않은 평범한 영상이었다. 여자의 브이로그는 시종일관 무성(無聲)으로 진행되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촬영할 때 음소거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소거된 음(音)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지고 헤어드라이어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장 속 옷을 뒤적거리다 여러 벌에서 한 벌을 꺼내는. 실감 나게 소리를 입히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고, 도대체 어디에서 상상력을 펼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반나절 만에 작업을 끝냈고 바로 보내기가 민망해 이틀 묵혔다가 보냈다. 소리가 빈 부분이 있다고 하십니다. 비서의 말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소리가 비어 있다? 알맹이가 드문 과자 봉지를 질소로 과포장했다는 비난처럼 들렸다. 사실, 과포장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비서를 통한 회장의 의사는 내가 과포장하는 성의조차 없이 볼품없고 납작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화가 났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만한 도발이었다. 몇 번이나 비서에게 연락해서 계약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그만두는 건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회장의 말은 자존심을 긁었지만,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돌려놨다. 다른 급한 작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이 일을 끝내기로 했다. 브이로그를 여러 번 돌려 봤다.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세부를 살폈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디가 비어 있다는 것인지 그 공백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상에서 일어나는 충돌, 마찰 등의 물리 작용에는 그에 합당한 소리-내 판단으로는 그렇다-가 들렸다. 회장은 인식하는데 나는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내가 영상을 보고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소리는 화면 밖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무성으로 촬영된 영상의 화면 밖 소리를 듣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회장은 무엇을 지적한 걸까. 혹시 비어 있다는 것은 있어야 할 소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소리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 아닐까. 영상 속 여자, 누굽니까? 대뜸 던진 말에 비서는 평소와 다르게 뜸을 들였다. 질문하지 않는 데에 동의하신 것 아니었나요? 그랬다. 계약서에 있던 내용이다. 그랬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요. 제 소리가 실감 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소리의 주체를 모르고 만들었는데 소리에 어떻게 실감이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회장님의 뜻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 소리를 메꿀 방법은 없겠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틀 후에 비서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 질문에 대한 회장 측의 답은 이랬다. 그녀는 수백 개의 딤플로 뒤덮인 골프공 같습니다. 겉은 매끄러우면서 울퉁불퉁합니다. 속은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처럼 질기고 튼튼합니다. 그녀는 가볍지만 단단합니다. 간단히 한 손에 올릴 수 있지만 그 세계는 견고해서 함부로 부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본질은 공이어서 굴릴 수 있고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혀도 농구공처럼 통통 튀기지는 않습니다. 드라이버를 풀 스윙하면 그녀는 멀어집니다. 드라이버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반발력으로 멀어지는 그녀는 딤플의 수만큼 더 멀리 날아갑니다. 수많은 딤플로 비거리는 늘어납니다. 주인공을 알고 싶다는데 웬 골프공 타령이람. 초보자를 위한 골프 교본도 아니고 무슨 저의로 알쏭달쏭하게 의미를 엮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계약서 조항을 어긴 데 대한 장난성 조롱으로 읽혔다. 그러나 몇 번씩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녀는 왜 공일까. 많고 많은 공 중에서 왜 하필 골프공일까. 골프공을 뒤덮고 있다는 딤플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딤플은 골프공 표면에 오목하게 파인 홈으로 일반적으로 골프공에는 300~500개의 딤플이 파여 있다. 드라이버 스윙으로 날아가는 골프공에는 공기 저항이 생기는데, 공기 저항은 골프공 앞뒤 표면의 압력 차에 의해 발생한다. 이때 딤플은 주위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공기가 뒤섞여 공 뒤쪽 압력이 떨어지지 않아 비거리를 늘린다. 흠집이 난 골프공의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골프공에 흠집을 내어 사용한 것이 딤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골프공의 겉과 속. 가벼움과 단단함. 딤플과 비거리. 비로소 나는 비서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 캐릭터에 집중했다. 골프공 같은 그녀를 수없이 떠올렸다. 작지만 단단하고 가볍지만 통통 튀지 않는.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녀에게 합당한 소리가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입에서 계속 딤플이 맴돌았다. 딤플은 보조개라는 뜻이 있지만 외모의 특징을 표현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흠집이 많다는 뜻일까. 하지만 딤플은 비거리를 늘린다고 했으므로 결함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목하게 파인 흠집이 결함이 아니라면,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었다. 상처. 나는 상처의 비거리를 생각했다. 그녀는 문을 (힘없이 덜컥 탁) 여닫으며 방에 들어선다. 암막 커튼이 처진 방에 (딸깍) 빛을 부른다. 그녀의 손이 화장대 의자를 (그윽) 끌어당기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흔들린다. 초점 없는 화면이 360도로 돌아가고-슬픔이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 같다-스마트폰을 (드득) 거치대에 고정시키고 다시 돌아온 화면에서 수건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을 응시하다가-그녀의 얼굴은 뒤통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헤어드라이어 버튼을 (틱탁) 누른다. (경쾌함 없이 심란하고 무거운 위이잉) 헤어드라이어는 돌아가고 그녀의 손길에 머리카락이 부서진다. 이윽고 헤어드라이어의 작동은 (탁) 멈추고 상반신을 거울 쪽으로 수그린 그녀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러다가 (툭)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진다. 그녀는 브러시를 집다가 다시 (툭) 떨군다. 화장을 멈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드윽) 의자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트특) 거치대에서 뽑아 손에 든다. 옷장을 (탕) 열고 (드르륵) 옷을 휘적이다가 고른 하나를 침대에 (툭) 던져 놓는다. 나는 그녀의 영상에 소리를 입혔고 소리에 그녀의 상처가 묻어나도록 노력하였다. 볼륨과 톤을 조정하여 모든 음은 낮고 둔탁하였다. 그녀가 찍은 영상에 대한 작업은 끝났지만, 작업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다. 회장 측에서 보낸 파일에는 부가 영상이 있었다. CH 02 2023/10/30 11:27:11 그녀가 잔디밭 위 돌길을 걷는다. CH 01 2023/10/30 11:27:15 ~ 11:28:07 그녀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CCTV 화면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듯한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CCTV 화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 궁리하였다. 특히, 대문의 화면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번 채널의 카메라에서 그녀는 잠깐 나타났다가 대문을 열고 나간 뒤로 볼 수 없다. 대문 위에 포치가 있어 그녀는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멀어지는 발소리만 남게 될까. 1분이 채 되지 않는 마지막 부분을 돌리고 또 돌려봤다. 그러다가 영상이 끝나기 몇 초 앞두고 그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작업을 마친 지 2주가 지나서였다. 이번에는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나와 통화하였다. 회장은 정중하게 집으로 초대하면서 감사의 의미임을 분명히 했다. 회장 집 대문 앞에 도착한 나는 벨을 누르려다가 경사진 이면도로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몇 발짝 걸은 후에 뒤를 돌아 위를 올려다봤다. ㄱ자 형태 집의 가로획에 해당하는 곳 벽면에 CCTV가 부착되어 있었다. 노트북으로 봤던 1번 채널 화면의 각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CCTV 쪽에 고정한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데, 옆으로 그녀의 멀어지는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해의 시선이 거둬지는 시각이었다. 나는 그녀를 배웅하듯이 잠시 서서 그녀의 비거리가 얼마쯤이었을지 생각했다. 2번 채널 화면에서 그녀가 걷던 잔디밭 위 돌길의 끝에 현관문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회랑 같은 널따란 복도의 끝 오른편에 낮은 계단이 놓여 있었다. 아래로 깊고 편평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높은 층고와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을 자아냈다. 정면으로 보이는 통유리창을 왼편에 둔 소파에 회장이 앉아 있었다. 회장은 나를 통유리창을 마주 보고 있는 소파에 앉게 했다. 벨로드미코프, 좋아하시나요? 꽤 긴장했던 탓인지 실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회장의 말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운율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회장은 의외라는 듯 팔걸이에 올려 둔 손을 턱에 대고 입을 오므렸다. 입 주변의 주름이 엷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가요? 나는 벨로드미코프를 들으려고 저런 짓도 한 사람이오. 회장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전봇대가 서 있었다. 나만을 위한 전봇대를 설치한 거요. 공동 전봇대는 남들과 전기를 공유하는 탓에 아무리 좋은 오디오에서도 이런저런 노이즈가 들리길래 정원에다 저렇게 세워 놨어요. 그랬더니 벨로드미코프가 내 앞에서 연주하는 것 같더구려. 화구 박스가 매립된 벽난로 옆에 오디오, 앰프, 스피커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고가의 장비임을 눈치채게 하는 것들이었다. 회장은 오디오와 벨로드미코프에 관한 말을 늘어놓았다. 사운드에 대한 회장의 마니아적 열성은 순수한 애호와 성공한 자의 과시 사이를 오고 가는 듯했다. 어색함을 눅이는 커피가 잔 바닥에 엷은 띠를 남기고 있을 즈음 회장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급한 작업이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의뢰인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나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고, 차 한잔 마시는 정도가 예외의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장은 이번 초대의 메인을 거절하면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 나서 사업가답게 상대방이 거절하기 힘들도록 다시 제안하였다. 그럼, 식사 후 대접하려던 위스키 한 잔쯤 구경하시는 게 어때요. 과실향이 은은히 퍼지다가 끝에 스모키향이 감도는 위스키였다. 회장은 위스키 애호가이기도 한 듯했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설파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위스키를 마셨다. 어느덧 회장은 세 번째 잔에 접어들었고 내 위스키 잔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화면의 철 덜그럭거리는 소리, 덜그럭대다 쿵쿵거리는 소리, 그건 뭡니까? 굳게 닫혀 있던 가게 문에 철제 셔터가 열릴 때처럼 회장의 표정이 빗장을 푼 듯했다. 거래와 계약으로 묶여 있는 관계성을 술이 허물어뜨렸는지 말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마지막 영상 속의 여자는 대문을 나서는데,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49초 지점에서 그녀가 나타납니다. 그림자로 나타난 그녀는 3초 뒤 모습을 감춥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는데 2초, 대문에서 CCTV가 보이는 지점까지 3초, 그림자로 보이는 부분이 3초, 영상의 총길이가 52초니까 그녀는 대문 앞에서 44초를 머물렀을 겁니다. 회장은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유리들이 따깍, 울렸다. 그 머무름은 머뭇거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멀리 떠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마 미련이 조금 남았겠죠. 대문을 손으로, 발로, 툭툭, 그래서 덜그럭거리고 쿵쿵거리지 않았을까요. 회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느슨해진 상반신을 바로잡았다. 집의 창고를 수리하는 날이었소. 대문 앞에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있길래 인부 하나가 부주의했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대문에 누가 시멘트 묻은 발로 찬 것 같은 자국이 있었소. 그것도 인부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업체 사장을 나무란 기억이 나오. 그 애의 흔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소. 냉정히 떠난 줄 알았지. 머뭇거렸을 줄은. 이제부터 그 애가 집을 떠나기 전에 미련이 남아 머뭇거렸다고 생각할 거요. 그래야 나 자신을 더 나무랄 수 있을 거 아니오.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오. 하지만 그 애가 떠날 때까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 애의 소리를 듣지 못했소. 마지막 위스키 잔은 다 비워지지 않았다. 회장 집을 나서려고 할 때, 각얼음들이 녹으면서 달그락. 달그락. 천장 높은 거실을 울렸다. 아버지가 남긴 카세트테이프의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을 들은 다음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의 다른 면을 들었다. 테이프에는 아무것도 녹음되지 않은 듯 한동안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가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버지, 지금 뭐하세요. 누나였다. 녹음하면 들릴까 해서. 아들내미 예민한 거 하루 이틀이에요. 걔가 지금 시위하는 거라니까요. 자기만 힘든 줄 아나.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아버지와 누나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다시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는 TV 스피커에 카세트를 대고 TV에서 나는지 모를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나에게 들렸던 TV 소음을 아버지와 누나는 듣지 못했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10대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영역의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만 들을 수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열아홉 살인 누나는 왜 못 듣나, 의아했다. TV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주파 소음을 나만 들은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와 누나의 생각처럼 나의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환청이 들린 것일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음이 그날부터 들렸을까. 그날은 어머니가 영영 집을 떠난 날이다. 나는 마치 들을 수 있기라도 한 듯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댄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