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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권 ‘5·17’‘5·18’재조명 열기

    80년대 민주화의 열기가 17일 여의도에서 재현됐다. 당시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투쟁에 몸바친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들이 이날 오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이름아래 한자리에 모였다.지난 80년‘5·17 김대중(金大中)내란 음모사건’의 당사자와 가족도 이날 저녁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모임을 갖고 민주화 정신을 되새겼다. 민추협 기념식 민추협기념사업회는 민추협 창립 15주년을 맞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심포지엄 및 기념식을 가졌다. 김상현(金相賢·전민추협 공동의장 권한대행) 김명윤(金命潤·전민추협 부의장)의원은 기념사에서 “민추 승리의 원동력은 다름아닌 하나로 뭉쳤다는데 있다”며 “이는 앞으로도 우리의 값진 교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두김의원은 특히 “길을 달리하고 있더라도 모든 동지가 민추시절 처럼 뜨거운 동지애로 하나가 된다면 민추협은 과거와 현재에 이어 앞으로도 민주발전과 민족통일의 역사를 이끌어가는 정신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세력의결집을 호소했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도 축하 메시지를 통해 “민추협은 지난 84년 자유와인권이 억압당하던 암울했던 시절에 김영삼,김대중이 앞장선 가운데 군사독재체제에 맞서 민주화의 등불을 밝혀들어 85년 2·12총선 선거혁명과 87년 6월 국민 대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이었다”고 회고했다. 고려대 강만길(姜萬吉)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1부 심포지엄에서 토론에서 참석자들은 민추협 정신의 계승과 현 정치상황의 극복 과제를 중심으로 의견을 주고 받았다.2부 기념식에서는 일부 고인이 된 민추협 출신 인사 유가족에게 민주화 공로패가 수여됐다. 행사에는 동교동과 상도동계 인사를 포함,모두 500여명이 참석했다.현역의원으로는 국민회의 안동선(安東善) 한광옥(韓光玉) 한화갑(韓和甲) 이협(李協) 김옥두(金玉斗) 남궁진(南宮鎭) 이윤수(李允洙)의원과 한나라당 신상우(辛相佑) 김덕룡(金德龍) 박관용(朴寬用) 서청원(徐淸源) 김무성(金武星) 박종웅(朴鍾雄)의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김대통령은 직접 참석하지 않는 대신 축하 메시지를 전해왔다. ‘5·17 내란음모사건’ 재조명 지난 80년‘김대중(金大中)내란음모사건’의 연루자와 그 가족 30여명은 이날 모임에서 내년 사건발생 20주년을 앞두고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했다.이날 모임에서 참석자는 사건 관련자의 회고록이나 민주화 운동 관련 사진을 모은 사진집을 출간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한 참석자는 모임 직후 “국민의 정부를 맞아 내란음모사건은 반드시 짚고넘어가야 할 과제”라면서 “사건발생 20주년을 맞아 내란음모사건의 진실을 규명하고 사건의 경위를 재조명하는 기회를 갖기로 했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DJ 내란음모사건’재조명 추진

    - 여권의 한화갑의원등 당사자들 주축 오늘 회동…내년 기념사업개최 논의 지난 80년 ‘5·17 김대중(金大中)내란 음모사건’의 당사자와 가족들을 중심으로 이 사건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사건에 연루돼 옥고를치렀던 대표적 인사들은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 김상현(金相賢) 김옥두(金玉斗) 김홍일(金弘一) 설훈(薛 勳)의원과 한승헌(韓勝憲)감사원장,이해찬(李海瓚)교육부장관,이문영(李文永)아태재단이사장,한완상(韓完相)전부총리,이해동(李海東)목사,고은(高銀)시인,김종완(金鍾完) 예춘호(芮春浩)전의원 등. 이들과 그 가족 30여명은 사건발생 19주년인 17일 모임을 갖고,20주년을 맞는 내년에 이 사건을 재조명할 수 있는 기념사업을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사건 관련자들이 기념사업 준비에 나선 것은 그동안 사건자체를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준비모임측은 우선 이 사건이 갖는 의미와 평가를 담은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제)라는 책과 사건 관련자 및 가족들의글·회고담을 엮은 ‘좁은 공간,긴 사연’(가제)이란 책 출간을 구상하고 있다.또 당시 재판사진을 비롯,민주화운동 관련 사진들을 모아 ‘렌즈로 본 20년’이란 사진집을 내고 내년 20주년을 전후로 사진전시회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이와 함께 이 사건과 관련한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사건 관련 자료를 데이터 베이스화하기로 했다.이를 다른 민주화 관련 사건이나 단체의 홈페이지와 연결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설훈의원은 16일 “그동안 정기모임을 가져왔으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사건발생 20주년을 맞아 사건 전체를 재조명하고 총정리하는 기회를 갖자는얘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강동형기자 yunbin@
  • 한대수 ‘포크 30년’ 우리곁으로

    한국 모던포크의 선구자 한대수(51)에게 올해는 어느 해보다 뜻깊은 한해가 될 듯 싶다.그가 처음 국내에 전했던 포크가 어언 30년의 연륜을 쌓은 음악으로 성장했고,오는 5월5∼9일에는 그가 아끼는 포크가수 양희은과 함께 무대에 서기 때문이다.또 75년 판금됐던 두번째 앨범 ‘고무신’이 24년만에복각돼 발매되고,곧 6집 앨범도 세상에 나온다. 먼저 양희은과의 공연(영산아트홀,02-3272-2334).‘아주 특별한 만남’이란 부제처럼 둘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얘깃거리다.한대수가 미국에서 갓귀국한 68년 명륜동을 지나는 버스 차창밖으로 그를 처음 보았던 양희은은,한번도 그를 만나지 못한 채 ‘행복의 나라로’를 취입했고 이후 뉴욕에 가서야 한대수와 돈독한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내 공연에서 그와 함께 노래를 부른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고 감격이다”(양희은).한대수 또한 새앨범 작업으로 눈코 뜰새 없는 미국 현지 사정에도 불구하고 만사제치고 서울행을결정했다.“고집스럽고 흔들림없이 중년 문화를 꾸준히 개척해온 후배에게격려와 힘이 돼주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5월1일 발매되는 앨범 ‘1975 고무신 1997 후쿠오카’는 75년 ‘고무신’과 97년 일본 후쿠오카 공연실황 앨범,그리고 같은해 미국에서 발표한 그의사진집을 함께 묶은 것이다.‘고무신’은 나오자마자 군사정권에 의해 마스터테이프까지 소각돼 그가 갖고 있던 LP앨범에서 복각했다. 후쿠오카 공연실황앨범은 97년 일본 초청으로 포크록의 여왕 카르멘 마키와 함께 공연했던 것으로,그의 70년대 대표곡 ‘행복의 나라로’‘물 좀 주소’등이 실려있다.또 신곡 ‘에이즈 송’‘스페어 파츠’‘노 릴리전’등이담겨있다. 현재 준비중인 6집 ‘에이지 오브 리즌,에이지 오브 트리즌(이성의 시대,반역의 시대)’은 두번의 그래미 상을 수상한 존 롤러와 영화 ‘바스키아’음악을 맡았던 브라이언 캘 리가 프로듀서로 작업하고 있다.후쿠오카 공연실황앨범에 담긴 3곡의 신곡과 ‘디스 이즈 더 월드’‘빅토르 초이를 추모하며’등 11곡을 선보인다. 이순녀기자
  • 뉴스 인사이드-日 스튜어디스 누드집 파문

    │도쿄 黃性淇 특파원│일본의 현역 스튜어디스가 대담한 자세의 누드사진집 을 출간,파문을 낳고 있다.화제의 주인공은 일본항공(JAL)의 나카다니 가오 리(中谷織香·23).지난주 전국 서점에 깔리자마자 그녀의 사진집은 날개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가오리양의 누드집이 출간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가장 당황한 것은 JAL측.이달 초 부랴부랴 사실확인을 한 JAL은 그녀에게 ‘자택대기’ 명령을 내렸다.그녀도 지난 주말 미련없이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주간 신쵸(新潮) 최신호에 따르면 삿포로(札幌) 출신인 가오리양은 고향에 서 2년제 대학을 마친 뒤 97년 3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JAL 계약직 사원으 로 입사했다. 국내선 승무원이었던 그녀는 6개월 전부터 신분을 숨기고 이름 없는 잡지의 누드모델로 활약해왔다. 허가 없이 매스컴에 나오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 JAL의 취업규정에도 불구하 고 그녀가 누드모델 ‘몰래바이트’에 나선 것은 적은 수입 때문이었다는 게 주간 신쵸의 분석.화려하게 보이는 직업인 데도 불구하고 그녀 연봉은 250만엔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 그녀는 출판사로부터 정식으로 사진집을 내자는 제의를 받고 “회사를 그만 둬야 할지 모른다”고 망설이기도 했으나 결국 지난달 촬영에 들어가 사진집 을 내기에 이른 것. 한편 가오리양은 “출판사측이 약속을 어기고 현역 스튜어디스임을 밝히는 바람에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며 소송을 제기할 태세여서 이래저래 화제 는 꼬리를 물고 있다. [ marr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日 할머니 정신대 사죄/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한 일본 할머니가 여성을 성의 노예로 삼은 일제의 만행을 사죄하는 편지와 함께 500만엔의 돈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보내왔다 한다.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공식 사과와 국가배상을 한사코 거부하는 일본 정부나 망언을 일삼는 관료들과는 달리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반가운 소식이다. 미키하라라는 성(姓)만 밝힌 이 75세의 할머니는 17세때 일제의 군 위안부로 끌려갔던 김학순 할머니가 지난 91년 증언하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면서 “만행을 저지르고도 뉘우칠 줄 모르는 일본의 국민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작은 성의지만 진실을 되찾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고 편지에 썼다. 김학순 할머니는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처음으로 용기있게 밝혀 위안부문제에 관한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지난해 작고한 분이다.일본을 방문해 “나를 17세때로 돌아가게 해주오.당신네 일본사람들이 나의 청춘을 망쳐놓았소”라고 절규했다. 미키하라 할머니는 자신과 같은 또래인 김학순할머니의 절규에 같은 여성으로서 공감했던 것 같다.일본 전통시 단가를 짓는 시인으로서 남들보다 예민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어 위안부할머니의 고통을 함께 느꼈을 법도 하다.김학순 할머니가 먼저 이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두 할머니가 손을 맞잡고 사죄를 청하고 용서해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고베에 살고 있는 미키하라 할머니는 “좀더 빨리 돈을 보내고 싶었지만 몇년전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돈 모으는게 늦어졌다”고 말해 더욱 우리를 감동시킨다. 이 할머니처럼 양심적인 일본인들은 많다.일본의 대표적 출판사인 이와나미 서점 사장으로 지난 1월 별세한 야스에 료스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배상을 촉구한 진보적 지식인이었다.도쓰카 에쓰로 변호사는 지난 92년 유엔 인권위원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처음으로 호소한 일본인으로 그의 열성적인 유엔 활동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지난 96년 ‘올해의 여성상’을 수여하기도 했다.그밖에도 일본 대사관 앞의 수요정신대 시위에 참석한 일본여성,정신대 기념관건립에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일본인,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을 낸 일본인 사진작가,일제의 정신대 만행을 참회하며 성금을 거두어 전달한 일본인 개신교 신자와 목회자들도 있다.망언을 일삼아 이웃 국가들의 묵은 상처를 덧내는 일본 정치가들이 이들의 도덕성을 배운다면 21세기의 한·일 관계는 진정한 선린우호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진영상의 해’ 마무리 사진집 3권

    ◎‘한국의 전통초가’‘사진가와의 대화3’‘들꽃피는 학교 분교’출간 98년은 사진영상의 해. 올해를 마감할 날이 머지 않은 요즘 사진과 관련된 책 3권이 나왔다.‘한국의 전통초가’(도서출판 재원),‘사진가와의 대화 3’(눈빛사진선서),‘들꽃피는 학교 분교’(학고재)가 바로 그것. 한장의 사진은 백마디,천마디 말이나 글을 압도한다.거짓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는 사실성 때문이다.기록성,역사성도 곁들여진다. 초가는 지난 60년대까지만 해도 농촌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우리 삶의 터전이었다.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에 밀리면서 초가는 박제가 됐다.민속촌이나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아니면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의 전통초가’는 시인이자 한국전통초가연구소장,초가 모형박물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은 윤원태씨가 4년간 전국을 누비며 화석화한 초가를 카메라에 담아 글과 함께 펴낸 것이다. 윤씨는,초가는 국가사회가 형성된 철기시대 초기에 생겼으리라고 추정한다. 농경·정착생활이 시작되면서 벼농사의 부산물인 볏짚을 지붕으로 이용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초가는 구조가 간단해 별다른 비용을 들이지 않고 손쉽게 지을 수 있지만 주거공간으로서도 좋다.볏짚으로 쌓아 지붕에 생긴 공간은 여름에는 햇볕을 차단해 주고 겨울에는 집안의 온기가 빠져 나가는 것을 막아준다.특히 초가지붕의 짚이 주는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은 우리 마음의 고향이다. 윤씨는 강원,경남,전북,제주 등 남한은 물론 중국 조선족 거주지 및 북한 북부지방의 초가도 사진에 담았다.초가 집짓기에 필요한 도구와 의례,기술 등도 서술했으며 부록으로 배치도,정면도,평면도,우측면도,좌측면도,종단면도와 함께 초가 집짓기 설계 예시도도 실었다. ‘사진가와의 대화’는 중앙대 사진학과 임영균 교수가 임응식,정범태,김태한 등 한국사진을 개척한 원로사진가 8명과 대담한 기록이다.원로들은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지만 후일 기록이 되고 역사가 된다며 기록으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이들의 대표작 48점도 곁들였다.임교수는 우리말로 된 사진관련 서적이 없던 시절,일본어·독일어 사진을 뒤져 가며 공부한 선배들의 열정에 머리가 숙여진다고 말한다. ‘들꽃피는 학교 분교’는 한겨레신문 사진부 강재훈 기자가 사라져가는 분교의 모습을 담은 사진집이다.지난 91년 늦가을부터 카메라를 둘러메고 오지 학교를 쫓아다녔다.두 명을 놓고 수업하는 선생님,교실 난로에서 감자를 구워먹는 산골 어린이들의 모습은 사라진,또는 사라질 것에 대한 아쉬움을 짙게 남긴다. 사진이 탄생하자 미술은 추상의 세계로 옮겨갔다.더 이상 사실화로서는 사진을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임교수는 국제미술전에 사진이 많이 등장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한다.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대중성 때문으로 풀이된다.동화상시대에도 사진은 생명력을 갖는다는 얘기다.
  • 국정홍보 무크지 ‘내가 살고싶은 나라’ 창간/공보실 1만부 배포

    정부 공보실은 19일 국정 홍보용 무크지 ‘내가 살고싶은 나라’ 창간호 1만부를 발행했다. 창간호에는 ‘제2건국론’을 특집으로 엮어 고려대 崔章集·서울대 韓相震 교수,시사해설가 鄭範九씨 등의 개혁을 주제로 한 글을 실었다. 또 ‘새로운 2000년대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를 주제로 대우경제연구소 李漢久 소장,동국대 黃台淵 교수 등의 의견을 담았으며,申庚林 시인의 시,尹胃榮 전 문화공보부장관의 사진집,吳效鎭 공보실장의 콩트,李重漢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의 문화비평 등도 게재됐다. 공보실은 잡지를 시,군,구청의 민원실,시중은행 객장,국적 항공사의 국내선 기내 등에 각각 비치하고,서점을 통해서도 권당 2,500원에 판매할 계획이다.
  • 베트남 스케치/유재홍 지음(화제의 책)

    ◎서울신문사서 펴낸 베트남 풍물집 서울신문사에서 펴낸 사진작가 유재홍씨의 베트남 풍물 사진집. 60년대의 한국 시골장터를 연상케 하는 산간오지 장터에서는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의 강한 생명력과 풋풋한 인정미가 느껴지고 메콩강에서 그물을 건져올리는 어부의 모습에서는 삶의 순박성과 근면성이 정감있게 다가온다.작가는 그동안 두차례에 걸쳐 베트남 관련 사진전을 열고 사진집 ‘굿모닝 베트남’,‘팡시팡에 핀 야생화’를 출간한 바 있는 베트남통으로,베트남 우정국 우편엽서에 그의 사진이 실릴 정도로 베트남과 깊은 인연을 쌓고 있다.국배판.100쪽.1만2,000원
  • 김동리 유고詩 30편·윤동주 미발표詩 8편/햇빛

    ◎김동리­타계 직전까지 작품.한국 토착정서 뿌리/윤동주­연희시절 습작품 등 육필원고 공개 소설가 김동리(1913∼1995)의 유고시 30편과 윤동주 시인(1917∼1945)의 미발표 시 8편이 처음 공개됐다. 김동리씨의 시 ‘달밤’‘비 젖는 언덕에서’등 30편은 부인인 소설가 서영은씨가 보관하던 원고를 고인의 3주기(17일)를 맞아 월간 문학사상 7월호에 공개키로 한 것이다.이는 김씨가 지난 89년 시작(詩作)을 재개한 후 타계 직전까지 써온 작품들이다. 김동리씨의 시작은 처음이 아니다.1935년 단편 ‘화랑의 후예’로 등단,‘을화’‘황토기’‘등신불’‘무녀도’ 등의 소설을 통해 민족정신의 원형을 추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이미 34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 ‘백로’로 등단했고,37년에는 서정주,김달진 등과 ‘시인부락’ 동인지를 창간했고 시집 ‘바위’‘패랭이꽃’을 남겼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작품들이 갖는 의미는 김동리씨가 말년의 10여년간 침묵을 지키면서 몰두한 생각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김씨의 제자 이근배 시인은 “이번 유작시는 김동리 선생이 87년부터 의욕을 갖기 시작한 시작업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데, 한국의 토착적인 정서에 바탕을 둔 ‘우주와의 화음(和音)’으로 집약할 수 있다”라고 평가했다. 한편 윤동주(1917∼1945) 시인의 조카 윤인석 교수(성균관대 건축학과)는 최근 보관중이던 윤시인의 육필 시원고 8편을 공개했다.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야행’‘가슴2’등의 시들은 윤동주 시인의 연희전문 시절의 습작품들로 시인 자신이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생각 ‘X’표를 한 것들도 있다. 윤인석 교수는 “훼손우려가 있어 사진자료로 발간키로 하고 1년전부터 작업해왔다”고 밝혔다.육필원고 150여점을 모아 오는 8월쯤 민음사에서 ‘육필원고 사진집’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 무용가 김말애(이세기의 인물탐구:149)

    ◎혼 깃든 춤사위… 한국춤의 선도자/“한국춤은 얼굴과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그는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 수려한 용모·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을 개척하는 타고난 춤꾼이다” 무용가 김말애가 사진집 ‘춤’을 출간했을때 무용평론가 김경애는 이 책을 소개하면서 “김말애는 끝없이 춤추는 이 시대 서정시인”이라고 했다.흑백사진속에서 그는 마치 수평선을 넘나드는 한마리 새가 되어 ‘살을 푸는 떨림과 한을 푸는 흐름’으로 장면장면마다 선명한 춤선을 그려내고 있다.지난 여름 LA예총 초청으로 ‘회귀선’공연을 가졌을때는 그곳에서 활동하는 시인 고운씨가 ‘아득한 꿈길 돌아오는 배’란 즉흥시를 지어 능란한 춤꾼인 김말애에게 헌사했다.‘아득히 끝도없이/꿈이 철철 넘치게/출렁이는 배 하나/지구가 돌아가는 선을 가르고/지금은 어디쯤 어느 물길에/덩실덩실 춤을 굴리나…’로 시작되는 이 장시는 망망대해에 뜬 한척의 배를 인생행로에 비유하여 ‘인간의 삶은 출발도 끝도 없는 원점으로 되돌아간다’는 김말애의 무일물사상을 실감있게 담아내고 있다. ○“끝없이 춤추는 서정시인” 평론가들에 의하면 그는 ‘우리 무용계에서는 흔치않은 대형무용가’다.한국춤은 얼굴이 작고 체구가 작아야 한다는 종래의 통념을 깨고 후리후리한 키에 긴팔,잘생긴 얼굴과 풍부한 감성으로 한국춤에서의 ‘정중수로’와 ‘동중백학’을 성취해 보인다.그중에서도 한국춤의 정신을 되살린 창작무 ‘춤을 위하여’는 ‘무엇이 나를 춤추게 하는가’ ‘왜 춤추게 하며 어떻게 추어야 하는가’를 빠르게 돌아가는 리듬과 함께 가벼운 움직임,강철같은 강인함을 엇섞어 내딛는 보폭마다 절륜의 백태를 연출해낸다.또 누구보다 전통춤을 잘 가꾸고 보존시키는 무용가이기도 하다.음악이 춤을 능가하거나 음악을 따라가기보다 음악을 몰고가는 쪽으로 작품을 구성하여 다른 무용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현대성과 참신도를 간직하면서 ‘역동성의 균형’을 포착하는 안무실력이 특징이다. 그는 “춤추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는 어머니 장종숙여사로 인해 춤추게 되었고 그어머니는 지금도 여전히 딸의 후견인이자 열렬한 열성팬이다.여섯살되던 해 삼척읍에 있던 심덕진무용연구소에 데려갔고 “너는 반드시 훌륭한 무용가가 돼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초등학교 2학년때 서울에서 열린 ‘전국아동무용경연대회’에서 입상,어머니는 너무 좋아서 삼척의 택시들을 총동원하여 딸을 태우고 시내퍼레이드를 벌인 일도 있다.이로 인해 “딸을 광대로 만들거냐”고 춤을 반대하던 부친 김태규씨(수산업·89년 타계)마저 딸의 재능을 인정하게 되었고 초등학교 5학년되던 해 서울로 전학,당대 최고의 무용가이던 조택원·김문숙씨 댁에 머물수 있게 도와주었다.그러다가 김백봉의 ‘부채춤’에 반해 묵정동에 있던 김백봉무용연구소에 찾아갔으나 스승은 “아무도 너를 추천해준 사람이 없는데 내가 남의 제자를 훔쳐온 줄로 알겠다”면서 받아주지 않았다.후에 김문숙씨와 ‘춤’지의 조동화씨가 적극 권하여 상명여중 시절에 김백봉 문하에 정식 입문했다. ‘어찌나 춤을 잘추던지’ 무용계의 거봉 조택원씨는 66년,일본에서 발행되는 ‘문예춘추’에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제하로 ‘너는 최승희를 능가하는 무용가가 되라’는 격려의 글을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김백봉 스승은 공연때마다 그를 언제나 센터에 세워주었고 고교 2학년되던 해 이화여대가 주최한 ‘전국고교무용콩쿠르’에서 특상하여 장학생 특전을 받았으나 ‘김백봉’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늘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스승이 몸담고 있던 경희대에 진학했다. ○6살때부터 무용 배워 그는 우리 무용사의 신화적인 존재들인 최승희와 조용자,그리고 김백봉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아마도 외모 이전에 예술에 대한 치열성과 자신감때문일 것이다.편협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과 타악기·구음 등의 생음악으로 춤의 활력을 작동시키는 능력이 탁월하다.지난 20년동안 대학교수로서 예술현장을 지키는 춤작가로서 그리고 무대에 서기를 서슴지않는 춤꾼으로서 그의 역할은 두드러졌으나 오로지 무대에서만 ‘끼’를 펼칠 뿐이며 ‘예술가는 무대에서 빛나야 한다’는 고집을 굳건히 지킨다.그러나 ‘예술가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 도정에 늘 함정이 도사린다’는 것을 경험할 수 밖에 없었고 ‘나에게는 스승만 있는줄 알았는데 어느틈엔가 나의 제자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있음’을 깨달을수 있었다.그래서 제자들이 설 땅을 만들어주기 위해 전에 없이 사회 각층과의 다양한 교분을 트는가 하면 춤공연을 펼칠수 있도록 춤·타래무용단을 만들기도 했다. 그가 무대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수많은 춤중에서도 김백봉스승에게 전수한 ‘부채춤’을 빼놓을수 없다.전립의 패영을 늘어뜨린 장삼차림에다 두 부채를 편채 열정적으로 춤추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는 모습은 ‘범접할 수 없는 깨끗한 기상을 보이면서 지음실력으로 인위(인위)와 자연의 극치를 조화시킨다’는 평을 듣는다.지난 8월 LA 윌셔 이벨극장에서 그가 재구성한 일련의 전통춤공연을 펼쳤을때 재미 무용평론가 이병임은 “그의 춤스타일과 그가 구사하는 무용언어가 전혀 새로운 영역의 한국무용이라는 점에서 이런 류의 우리무용을 미국사회에 소개하고 싶었다”고전제하고 “미국의 관객들에게 부채춤이나 장고춤이 행사나 형식무용이 아닌,화려하고 아름다운 동양예술로 재인식됐다”고 극찬했다.가족은 사업을 하는 김효영씨와 남매. ○여중때 김박봉 문하생 입문 그는 때때로 솟구쳐 오르는 흥과 청으로 마치 무당처럼 춤추고 억제할 수 없는 벅찬 감동때문에 춤을 추는 동안 구슬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남보기에 행복하고 순탄한 역정을 지나친 것 같지만 모든 고통스러움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뿐 예술적 파란과 시행착오를 이긴 강인한 정신의 소유자이다.평론가 김태원이 “극적인 연기로 관객의 시선과 환호를 휘몰아갈수 있는 특이한 스타적 재능을 가진 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그는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춤을 추는 춤의 완결앞에서 어느때보다 당당하고 의연한 의지를 지금 만인에게 과시할 수 있는 시기다. □연보 ▲1950년 강원도 강릉 출생 ▲1971년 경희대 무용과 졸업 ▲1972년 김말애 작품발표회 ▲1973년 경희대 대학원 졸업 ▲1976∼현재 경희대 교수 ▲1983년 김말애 창작무용발표회 ▲1985년부터 대한민국무용제 참가 ▲1986년 뮤지컬 ‘양반전’ 안무 ▲1988년 서울올림픽개막식 ‘차일춤’ 안무,주불대사관 초청 서울올림픽 유럽 홍보공연 ▲1988년 창작무용 ‘애장터’ 안무 ▲1989년 일본 오사카예술대 교환교수,우시마도국제예술제 공연 ▲1990년 춤·타래창단공연 ▲1995년 한국무용제전 참가 ▲1996년 김백봉춤 보존회 열린무대 ▲1997년 ‘아,김백봉무용’ 공연출연,LA한국예총 초청 미주 공연 ▷수상◁ 대한민국무용제 안무상(85년) 서울국제무용제 대상·안무상·음악상(92년) ▷저서◁ ‘춤’(94년)‘한·중·일 궁중무용의 변천사’(96년)외 논문집 ▷현재◁ 대한무용학회 이사·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스포츠무용철학회 부회장
  • 간행물윤리위원회 세미나 주제발표

    ◎일 저질만화 불법복제·유통 심각/출판사 규제강화… 청소년 보호해야 「청소년에게 유해한 외국복제간행물의 문제점과 대책」을 주제로 한 「97 간행물윤리 세미나」가 21일 하오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권혁승) 주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한 이원복 덕성여대 산업미술학과 교수와 서정우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발제내용을 요약한다. ◇외국만화복제물의 음란 폭력성 실태와 대책(이원복)=일본은 100여개의 만화출판사가 매달 300종에 이르는 만화잡지와 400여종의 단행본을 쏟아내고 있다.이같은 만화잡지와 단행본은 일본 출판시장의 3분의 1을 석권하고 있으며 세계 시장에도 무서운 속도로 침투해 들어가고 있다.우리나라에 일본 만화가 대량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70년대 이래 일본만화 유입은 날로 늘고 있으며 그 폐해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특히 올해부터 출판시장이 개방됨에 따라 무분별하게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 만화애 대한 적극적인 대책마련은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다.일본만화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는 미등록출판사에 의한 불법출판만화,즉 해적판으로 이를 규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취약하다는 것이다.유령출판사가 일본 음란·폭력만화를 무단 복제판매하더라도 15만원의 벌금만 내면 해결되며,등록된 출판사가 같은 행위를 한다고 하더라도 15만원의 벌금을 내고 등록을 취소당하는 것으로 끝난다.등록이 취소돼도 얼마든지 또 다시 다른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이 가능하기 때문에 일본만화의 불법복제를 효과적으로 막을수 없다. 따라서 현행 법제도를 대폭 강화해 불법복제 행위를 규제하고 등록 출판사의 경우도 심의규정을 위반할 땐 강력한 처벌을 받게하는 등 자정노력을 강화토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와 관련,미국처럼 경고 3회면 출판사 등록을 취소하는 「삼진제(Three Strikes Out)」의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또 성인만화에 대한 「밀봉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 ◇외국간행물 번역·복제물의 음란 퇴폐성 실태와 대책(서정우)=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가 90년부터 97년 4월까지 제재건의한 음란퇴폐성 도서는 총 154종.이 가운데 외국번역 복제간행물은 113종으로 전체의 73.6%를 차지한다.외국 사진집이나 성인용 에로잡지 등에서 발췌한 사진들을 반사분해하여 재수록한 간행물은 대체로 조잡하기 이를데 없으며 출판사 소재지가 불분명하거나 무등록출판물도 상당수에 달한다.외국 음란퇴폐성 작가들은 대부분 일본작가들로 도미시마 다케오,가지야마 도시유키,가스메 아스사,키쿠치 히데요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구미작가로는 스티븐 새건,마키드 사드,아나이스닌,시드니 셸던,에폴리 레르 등을 들 수 있다. 음란 퇴폐성 외국 번역 복제물은 대부분 불법 간행물로 교묘하고 은밀하게 수입돼 복제유통되기 때문에 보다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오는 7월부터 시행될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들을 유해환경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된다.불법 복제간행물은 제작 자체가 불법인 만큼 간행물윤리위원회가 합법적인 간행물과는 다른 기준을 적용,차별심의하는 것도 음란 퇴폐성 간행물을 추방하는 한 방안이 될 것이다.〈정리=김종면기자〉
  • 이 가구업체 「미체」(G7으로 가는 길:55)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적 가구 만든다/베르사유궁전 골동품 그대로 재현/“제작과정 하나하나가 예술” 자부심/1천여 원자재 컴퓨터관리로 부품 수급조절 『베르사유 궁전의 실내장식이 부럽습니까.당신도 프랑스의 황제 루이 14세가 사용했던 바로 그 가구를 가질수 있습니다』 흡사 프랑스 가구업체의 광고같지만 이 문구는 이웃나라 이탈리아의 가구업체 「미체」가 내세운 것이다. ○청동장식품으로 출발 미체는 프랑스의 영화를 상징하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쓰던 가구를 만드는 업체이다.그러나 프랑스의 어떤 업체보다도 프랑스 궁전가구를 더 잘 만드는 회사라고 자부한다.이 회사가 지난해 제작한 가구를 가장 많이 사들인 사람들이 프랑스인들이었다는 사실이 이같은 자부심을 뒷받침한다.「프랑스 가구업체보다 더 프랑스적인 것을 만들자」는 것이 가구업체 미체가 추구하는 목표다.지난해의 총매출액 2백10억원중 프랑스로 수출한 금액이 5분의 1을 넘는다. 미체는 베르사유궁에서 쓰여졌던 가구를 가감없이 원형 그대로 재현해 내는 회사이다.루이14세·15세·16세 등의 황제를 비롯,왕실의 가족들이 사용한 가구답게 화려한 문양과 장식을 특징으로 한다.품격도 갖추고 있고 우아함도 겸비하고 있다.물론 값도 비싸다.미체가 제작,판매하는 가구는 제품 하나의 가격이 3백만∼8백만리라(한화 1백70만∼4백50만원)이다.그러나 이것은 이탈리아 국내에서 판매되는 가격이고 외국 특히 아시아 등에서는 현지판매 가격의 10∼20배까지도 팔리고 있다. ○박물관서 진품 사진촬영 미체는 지난 63년 설립당시 가구에 다는 황동 및 청동 장식품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기업이었다.이 회사가 만든 장식품은 비록 값은 비쌌지만 품질이 우수해 여러 가구회사에 납품,호평을 받으며 한동안 순조롭게 성장했다.그러나 장식품을 만들어 파는 사업이 수지가 맞는다는 소문이 나자 곳곳에서 경쟁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장식품 제작업체의 난립으로 동종업계에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자 미체는 다른 기업을 따돌릴 수 있는 전략이 필요했다.미체가 살아남을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을수 없는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내의 가구업계도 상호경쟁이 말할 수 없이 치열했다.미체는 엉뚱한 데서 돌파구를 찾았다.이탈리아의 전통가구나 현대적 가구가 아닌,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가구를 본뜬 가구를 만들기로 했다.도메니코 루지아노 회장(46)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베르사유 궁전의 가구를 관람한 것이 계기였다.그는 박물관에 전시된 가구들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바로 이거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고 말했다. 미체는 새로운 디자인이 필요없는 기업이다.옛날 궁전에서 쓰던 골동품 가구가 디자인의 원본이기 때문이다.그러나 디자인 작업은 말처럼 결코 쉽지는 않다.진품은 모두 루브르박물관에 있다.진품들의 겉모양은 모두 사진촬영해오거나 사진집 등을 통해 외관을 파악할 수 있지만 눈에 띄지 않는 부분의 설계와 디자인은 알 길이 막막하다.루지아노 회장은 『우리는 베르사유 궁전가구의 디자인과 설계등에 관한 모든 것을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비법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고객취향따라 주무제작 미체가구는 옛날의 궁전가구 제작과정과 마찬가지로 일일이 손으로 제작된다.원목은 스칸디나비아 지방에서 나오는 무게가 가벼운 「비치우드」와 딱딱하고 무거운 「월넛나무」를 사용한다.이 원목들을 식탁,시계,침대,옷장,책장,화장대,소파 등 만들고자 하는 제품에 맞게 가공한다. 미체가 가구를 만들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무늬새김과 황동장식 2가지이다.장인들이 가구에 무늬를 새기는 과정은 우리나라의 전통 자개장에 조개를 박는 것과 비슷하다.예컨대 꽃무늬를 새길 때는 고유의 색깔을 지닌 나무나 염색된 나무를 잘게 잘라 일일이 가구에 붙여 꽃모양을 만들어낸다.고유의 독특한 색이 있는 나무로만 꽃무늬를 만들어낸 가구가 훨씬 고가임은 말할 필요가 없다.황동장식을 가구에 접착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황동장식을 빈틈없이 정확한 위치에 갖다 붙이는 일은 오랜 경험을 지닌 장인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이곳에서 17년간 근무한 기술자 피노체트(40)의 말이 인상적이다.『우리들은 제작 과정 하나하나가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모든 가구가 우리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죠』 ○작업중단 하는일 드물어 미체는 베르사유 궁전의 가구들을 원형 그대로 만들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원하는 취향에 맞게 주문제작도 한다.가구에 대해 안목이 높은 일부 고객들은 자신들이 설계와 디자인을 한뒤 사용하고자 하는 원목의 종류까지 직접 선택한다.소비자가 자신의 집안분위기나 취향에 적합한 가구를 주문하면 그에 따라 제작해주는 것이 사업의 일부이다. 미체의 장점중 하나는 컴퓨터로 관리하는 자재창고.미체가 사용하는 원자재의 종류는 1천개가 넘을 정도로 많다.원자재의 종류가 많아지면 작업도중 부품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컴퓨터 관리는 바로 이같은 부품의 절품을 막아주는 구실을 한다.항상 부품을 갖춰놓고 있기 때문에 작업이 중단되는 일이 드물다.작업능률을 높이고 생산기간을 줄여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미체」회장 도메니코 루지아노/“고품질·변함없는 가격 고수/최대시장 불 고객 특별관리” 도메니코 루지아노 미체 회장은 『최고의 가구를 적정가격에 파는 것이 미체의 경영전략』이라면서 『이같은 방침은 앞으로도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체의 성장비결은 무엇인가. ▲이탈리아에는 많은 가구회사가 있다.최근에는 치열한 경쟁을 이기지 못해 문을 닫는 회사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미체가구는 비록 고가이기는 하지만 10년전이나 지금이나 가격이 변하지 않았다.미체가 꾸준히 커가는 것은 가격경쟁력을 갖춘 최고급 가구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미체를 어떤 식으로 알렸기에 찾는 사람이 늘고있는가. ▲매년 열리는 가구박람회 또는 전시회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이런 행사를 통해 미체는 꾸준히 알려졌다.베르사유 궁전에서 쓰던 가구라 박람회나 전시회에 들른 사람들의 눈에 금방 띈다. ­지역적으로는 어느 곳에서 호평을 받는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팔린다.따라서 프랑스 시장만큼은 단골고객들을 특별관리,이들이 계속 미체의 소비자로 남아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이탈리아 시장에서는 고전적인 가구들이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 같다.프랑스 다음으로는 아랍과 아시아 미국등지의 부호들이 미체를 찾는다.최근에는 이 지역의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미체는 위기를 겪은 적이 없었는가. ▲왜 없었겠는가.가구판매가 줄어들면 항상 새 제품을 선보인다.지금까지 시장에 나오지 않은 새 제품을 내놓으면 그것이 소비자들의 눈길을 끌어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미체를 만들려면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장인들을 충분히 확보해야 가능할텐데. ▲그렇다.현재 100여명에 가까운 장인들이 미체에서 일하고 있다.이탈리아에는 가구기술을 가르치는 장인기능학교가 있기 때문에 이곳 출신들을 선발,미체를 만들어왔다.그러나 이제는 이탈리아에서도 가구기술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현격히 줄어들어 안타깝게도 5년전 이 학교가 폐교됐다.20년쯤뒤에는 장인인력이 모자랄 것이라고 생각하니 걱정이 앞선다. ­당신의 하루 근무시간은 얼마나 되나. ▲나에게는 퇴근시간이 없다.매일밤 10시이후에도 업무를 본다.주말에도 남들과 달리 일한다.1년에 한번뿐인 휴가도 보통의 유럽인들과는 달리 1∼2주간만 즐긴다.한마디로 일에 파묻혀서 사는 것이 내 인생이다.
  • 모택동 20주기…식지않는 추모열기/이석우 북경특파원(오늘의 눈)

    천안문광장은 행락철이면 늘 이른 아침부터 긴 줄이 늘어선다.광장 남쪽 모택동기념관에서 공개되는 모의 유체를 보려는 참배·관람객들때문이다.모사망 20주년을 하루앞둔 8일,일요일에다 초가을 좋은 날씨속에 천안문광장은 여느때보다 붐볐다.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없는 가족과 관광객들,넓은 광장에서 연날리는 사람들­.5∼7m높이로 치솟는 분수뒤로 천안문 정중간에 걸려있는 모의 대형초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날 당기관지 인민일보등 각 신문과 TV들은 「위인의 순간」이란 제목의 모택동 기념사진집 발간을 알렸다.전날 당서열3위며 국회의장격인 전인대 상무위원장 교석주최의 좌담회에서 모의 위업을 기리고 회고하는 자리가 있었음도 소개됐다.이밖에 별다른 추모행사는 없었지만 모가 이끌던 장정 60주년을 즈음해 당과 정부는 애국주의 운동일환으로 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며 기념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개혁개방 속도가 빨라지지만 「신중국건설」의 아버지며 중국공산당의 구심점으로서의 위치는 변함이 없다. 96년도 강택민의 지시문이나 현 중국의 기본노선인 등소평의 중국특색 사회주의도 모택동사상의 연속성속에서 강조되고 있다.『언제쯤 천안문에 걸려있는 모사진이 내려질 것인가』란 외국인의 어설픈 질문에 중국인들은 『중국공산당이 건재하는 한』이라고 단언한다.일부 과오에 대한 평가에도 중국혁명과 중국공산당의 뿌리로서 모의 위치는 여전하다.능력주의와 경제개발속에 평등주의가 퇴색하고 TV에서나 거리에서나 외제물건과 외래문화가 넘쳐나지만 「중국은 잘살게 되더라도 서방세계와는 다른 길을 갈것이며 영원히 제3세계에 남겠다」는 모시대의 정책은 등시대나 제3세대 집권세력인 강시대에도 여전하다.며칠전 미국의 이라크북부 비행금지구역에 대한 공격으로 국제경찰임을 자처하던 미국이 국제깡패로 인식되도록 국제여론을 환기시키는데 중국역할이 결정적이었음은 물론이다.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40대 연령의 제4세대 영도그룹 양성으로 미래와 변화에 대처하고 있다.중앙기관 국장급이되면 중앙당교에 입교,1년동안 교육받아야 하는 것이나 주요기관에 40대 국장들이 속속 포진하게된것도 이와 관련된다.천안문에 걸려있는 모의 초상이 이들의 성장과 함께 어떻게 될까.모에 대한 평가는 중국미래를 보는 시금석이다.
  • 가정의학의 김우룡씨 「꿈꾸는 낙타」(저자와의 대화)

    ◎성과 속이 함께하는 「업의 땅」 인도/생활고에도 비어있는 인도인의 마음/온갖 오욕 씻으려 기도하는 심성 조명 『혼의 힘이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곳,지구상에 그런 곳이 아직 남아 있다면 그곳은 바로 인도 땅일 겁니다』 최근 인도기행 산문집 「꿈꾸는 낙타」(행림출판사)를 낸 가정의학 전문의 김우룡씨(40)는 『인도는 고대와 현대,성스러움과 일상이 함께 부대끼고 노래하는 「카르마(업)의 땅」』이라고 규정한다. 한때 신춘문예 열병을 치르는 등 문학에의 꿈을 버리지 못하던 그가 델리행 비행기에 처음 몸을 실은 것은 93년 여름.그후 세차례에 걸쳐 인도를 떠돌던 그에게 영혼의 개안을 안겨준 것은 뜻밖에도 침묵의 사막을 뒹구는 미친 낙타다.『세상에 낙타만큼 순한 얼굴을 한 짐승이 또 있을까요.끝간데 없는 사막의 단조로움….그 사막만을 평생 보고 살아가야하는 낙타의 모랫빛 망막을 상상해 보세요.사막의 낙타는 더위에,또 외로움에 지쳐 곧잘 미쳐버립니다.미친 낙타는 이내 사막의 구릉 너머로 끌려가 네 다리가 잘리죠』 그는 인류문명사의 큰 흐름에서 소외된 모든 존재를 낙타,혹은 「미친 낙타」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고 싶다고 했다.세상이 온통 1등만을 향해 달려가고,모두가 탐욕스런 「근육질의 마음」들로 번들거리지만 이 시대에 정작 필요한 것은 꿈꾸는 낙타의 마음,곧 「비어있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눈물겨운 생활고에 시달리는 인도는 서양의 어느 사진작가의 말대로 「지상의 지옥」일지도 모릅니다.하지만 인간의 온갖 오욕을 씻어내기 위해 기도하는 인도인들을 보면 「지옥의 땅에서 천상을 꿈꾸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어요』 자신이 직접 찍은 60점의 흑백사진과 30편의 에세이가 어우러져 있는 이 책은 오늘날 인도가 처한 현실과 인도인의 생활상을 속속들이 보여준다.회교분쟁 지역인 서북인도 카슈미르 주에서 정부군과 회교반군이 벌이는 총격전 현장,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라자스탄의 사막,봄베이의 슬럼가,레닌의 포스터가 그대로 걸려 있는 서뱅갈주의 시골 철도역,바닥에 주저앉아 술을 마시는 헛간같은 술집 등…. 『인도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그들의 얼굴표정을 보십시오.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를 사는 한국인의 얼굴보다 국민소득이 3백80달러 밖에 되지않는 인도인의 얼굴에서 더 큰 여유와 평온이 읽혀지지 않습니까.물질을 이기는 것이 정신입니다』 『인도인의 얼굴에 너나없이 평화가 깃들어 있는 것은 그들의 청정무구한 종교적 심성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그는 인도 전국을 걸인 행색으로 떠도는 수십만명에 이르는 사두(힌두교의 방랑승려)들에게서 고통의 흔적을 발견하기 힘들듯,심지어 「불가촉천민」의 얼굴에서 조차 찌든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인다. 「인도명상기행」(폴 브렌튼),「인도방랑」(후지와라 신야),「델리」(쿠시완트 싱)등 인도 관련책은 거의 다 읽었다는 그는 조만간 인도를 다시 한번 둘러본 뒤 「인도사진집」을 펴낼 계획이다.〈김종면 기자〉
  • 몸/윌리엄 A 유잉 지음(화제의 책)

    ◎인간 몸 주제 사진 366점·테마에세이 수록 인간 신체의 갖가지 형상을 담은 사진집.사진이 발명된 183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몸을 주제로 한 걸작사진 3백66점과 12편의 테마에세이가 실려있다.나다르,머이브리지,에드워드 웨스턴,존 코플란,신디 셔먼,디터 아펠트 등 주요 사진예술가들의 작품이 망라돼 있는 이 책은 「인체로 보는 사진예술사」이기도 하다. 북미,유럽,일본 등지의 여러 미술관과 도서관,개인소장처 등에서 수집한 이 사진들은 한결같이 기묘하면서도 아름답고 측은하면서도 흉측스런 몸의 형체를 강조하고 있는 점이 특징.『사진은 1세기 이상 인간의 「몸」에 깊은 영향을 미쳐왔다』고 밝히는 지은이는 특히 사진의 부정적인 효과를 예리하게 지적한다.예를 들어 포르노 사진에 이용된 이미지는 남녀의 몸의 타락을 조장했으며,이상화된 청춘을 광고에서 극단적으로 미화한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심어줘 일반인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으로부터 소외되도록 만들었다는 것.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의 몸에 대한 각 시대의 정신과 미의식을 정리한 이 책은 「오늘날 인간의 몸이 왜 그토록 큰 관심의 대상이 될까」라는 의문에 대한 유력한 단서를 제공해준다.까치 1만9천원〈김종면 기자〉
  • 진각종 창종 50돌/다양한 기념행사/제2성장 위한 디딤돌 마련

    ◎50년사 사진집·종립대 증축 추진 우리나라의 대표적 밀교종단인 대한불교진각종(총인 각해)이 올해 창종 50주년을 맞아 제2의 성장을 위한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오는 14일 창종기념일을 맞는 진각종은 최근 50주년 기념사업단을 발족,▲종조기념사업 ▲50년사 사진집편찬 ▲대구진각회관건립 ▲50주년 기념음악회 ▲종립대학인 위덕대학의 증축 ▲서원가 CD제작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진각종은 1947년 6월14일 회당 손규상대종사(1902∼63)에 의해 창종된 불교종단.1902년 5월10일 울릉도에서 태어난 손규상대종사는 해방후 극도의 혼란속에 국가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민족의 주체정신을 확립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심성을 바로 찾아야 한다며 47년 6월14일 영일군 기계면에 밀교도량을 열고 진각종을 창종했다. 법당에 불상을 모신 불교를 현교라고 한다면 밀교는 법신 비로자나불을 교주로 하는 종파이기 때문에 사찰에 불상이 없다. 여섯분의 부처님을 모시는 진각종의 기본이념은 밀교중흥·생활불교·현세정화·심인의 구현이라는 4가지로 분류된다. 심인의 구현이라는 이념은 진각종의 핵심이념.심인이란 인간의 마음중 밝고 맑은 부처의 마음을 말하며 이를 실생활에 실천하는 수행이 최대의 덕목이다.때문에 사찰을 심인당이라고 하며 설법을 하는 교역자를 정사라고 부른다.정사는 삭발을 하지 않고 가사와 장삼도 걸치지 않은 일반인 같은 복장을 하며 결혼을 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부부가 함께 선교와 포교를 한다. 현재 전국에 심인당 1백18개,교역자 2백39명,신도수 61만9천명이다. 창종 당시부터 교화사업과 교육·의료·구호사업등 4개 사업을 시작한 진각종은 교육사업에 비중을 두어 현재 유치원 26개,중학교 2개,고등학교 2개,4년제 종합대학교 1개등을 운영하고 있다.〈김원홍 기자〉
  • 이경모 사진집 1945∼95/이경모 지음(화제의 책)

    ◎격동의 현대사현장 생생히 올해 고희를 맞은 원로 사진작가의 대표작 모음.광복과 함께 작가활동을 시작한 뒤 카메라에 포착한 한국 현대사 50년을 담았다. 이 작품집이 특히 눈길을 끄는 까닭은 해방 정국­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역사현장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광복을 맞은 백성의 기쁨,미군 진주,여순사건,빨치산 소탕,한국전쟁과 관련해 요즘도 지면을 장식하는 유명한 사진들이 대부분 그의 작품이다.예컨대 51년12월 전남 담양일대 빨치산 일제소탕에서 체포된 사람들을 찍은 것이나 45년9월 미군들이 서울 명동에서 인력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촬영한 작품들이 그것이다. 작가는 처음 화가로 출발,광복 1년전에 「조선미술전람회」서양화 부문에 입선한 경력이 있으며 광복을 맞아 사진촬영에 나섰다.46년 1월 전남 광주에서 발행한 「호남신문」사진부장을 맡으면서 7년여동안 보도사진 부문에서 발군의 업적을 남겼다. 이 작품집에는 이밖에도 문화재,풍경,농촌 스케치등 흑백사진과 한국의 4계,해외 풍물등 컬러사진이 50점씩 들어있다. 작가는 그동안 화관문화훈장등 각종 상을 받았으며 지금은 동신대 객원교수이다.눈빛 4만원.
  • 사진작가 임응식(이세기의 인물탐구:84)

    ◎“셔터 외곬 인생”… 한국 사진예술의 선각자/“비예술성” 홀대속 국전 사진부문 신설 앞장/“인간의 살아있는 순간을 포착… 영원을 간직”/입학 선물 카메라가 첫 인연… 8순 넘은 지금도 활동 「인간은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멈출 수 없지만 카메라는 파인더를 통한 순간포착으로 영원을 담아낸다」 불모지 한국사단의 개척자이자 사진예술의 선각자로 불리는 임응식 원로의 사진예술관이다.미술평론가 이경성씨는 그의 사진과 관련된 일관된 자세를 프랑스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디에 브레송에 비유하기를 주저치 않는다.「그의 눈은 과학자가 자연을 분석하고 연구하듯이 생의 본질을 잡기 위해 인간세상의 구석구석을 경건하게 통찰하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다.「인위적으로 생산된 사진,연출된 사진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브레송의 말대로 「그들의 사진예술의 공통점은 기록성이 확대되어 역사성으로 이어지고 한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노력과 정성의 불식」임을 지적하고 있다. ○베레모·검은 안경 차림 사진가는 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숙명을 쫓아 8순이 넘은 나이에도 그는 베레모에 검은 안경,간단한 촬영기재를 챙겨들고 아침마다 직장에 출근하는 것처럼 명동으로 나간다.명동은 「서울의 변화」이자 「한국의 문화사적 변천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거울」이며 그가 지나온 흔적이고 희망찬 미래이기 때문이다.20여년전까지만해도 전봇대위에 올라가 명동거리를 찍고 있는 그를 발견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지금은 서울 한복판에 서서 살아움직이는 명동의 표리를 응시하고 사유한다. 「나의 일생은 마라토너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골인지점 하나만을 똑바로 보고 혼자서 싸우며 앞을 향해 달렸기 때문에 성취감이 특별히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사진계에서 이룩한 수많은 그의 업적중에서도 57년 뉴욕근대미술관 25주년기념행사였던 「인간가족전」유치를 빼놓을 수 없다.작품을 운반하는 데만 대형트럭 70대,관람객 30만명을 동원하는 가 하면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68개국의 쟁쟁한 현역들이 참가한 「인간종합 전시의 파노라마를 연출했다」는 평을 들었다. 또 「사진쟁이가어떻게 문화인이며 예술인이냐」는 인식이 팽배한 가운데 온갖 수모를 딛고 문총(예총전신)에 사진을 가입시킨 일이며 12년에 걸친 완강한 고투끝에 국전에 사진부문을 설치한 것은 그만의 끈질긴 고집과 자존심,강직함의 승리라해도 과언은 아니다. 특히 국전 사진부 설치과정에서 조각가 윤효중씨와의 극도의 갈등은 한국사진사와 국전의 자취를 정리할 때마다 언제나 거론되는 사건의 하나다. 단지 사진이 한국미협에 소속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미협을 대표하는 윤효중씨는 국전의 사진부 신설을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섰고 심지어는 「한국미협에서 탈퇴한다면 당장 국전 사진부문 설치는 물론 홍대에도 사진과를 신설하겠다」고 회유했다.「아무리 목적달성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의리를 저버릴 수 없다」는 자세로 이를 묵살했으나 그가 60년도 서울시문화상 수상자로 추천된 자리에서 당사자인 윤효중씨가 「감언이설 따위에 미동도 하지않는 도도한 태도는 참으로 본받을 만한 예술인의 자세」로 칭송하여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드디어 64년 국전에 사진부가 탄생되긴 했으나 이번에는 최고상인 대통령상 국무총리상등 최고상에서 사진을 제외시키는 바람에 굴욕을 느낀 그는 국전심사위원직을 사퇴,국전의 차별성과 부당성을 성토하는 한편 주무당국에 시정을 촉구하는 건의서와 각 신문지상에 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그 때의 비참했던 심경을 그는 「렌즈에 담은 소명」이란 글에서 「우리는 비굴할 정도로 참아냈다」고 표현하고 있다. ○6·25때는 종군작가 활동 그의 예술가로서의 자세는 원리원칙과 정의를 주장하는 비타협주의로 응집되어있다.그리고 그것은 한 작가의 명예와 성문때문이 아니라 사진의 위상을 지키려는 사단의 자존심임은 두말의 여지가 없다. 초기에는 정물과 풍경,인물과 누드를 소재로한 인상파적 표현기법에 천착하여 「사진미학의 완성자인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 접근한다」는 평을 들었고 실제로 30,40년대 「침몰」같은 작품은 카메라를 쓰지 않고 인화지위에 직접 물체를 두고 빛을 쬐어 빛과 그림자만의 그라데이션으로 영상을 처리한 포토그램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가 현실에 눈돌리기 시작한 것은 6·25직후 USIS가 파견한 인천상륙작전 종군작가로 일하면서부터다.그와 친밀했던 「라이프」지의 기자 핸크워커가 「시체의 행렬」을 카메라로 끝 없이 쫓는 것을 보고 그는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진실한 기록」에 눈떠갔다.전후 폐허가 된 음습한 명동의 풀빵가게앞에서 허기진 배를 달래는 슬픈 부녀와 직업을 구하기 위해 거리를 방황하는 청년의 「구직」은 인간존엄의 상실과 살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을 「사진은 사진」이라는 차원에서 그려낸 새로운 시각의 작품들이다.「인간의 몸에서 피가 뚝뚝 흐르고 살점이 썩어가는 마당에 회화적 아름다움이니 관념적 자연미 추구는 한낱 한가로운 「음풍농월」이었고 그는 스스로 자책하여 싱싱한 「생활주의 리얼리즘」을 지향하기에 이르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그는 대학에서 최초로 사진을 강의하는가 하면 국립현대미술관에 예빙되어 사진가로선 처음으로 고희기념전을 개최,하셀블라드 같은 고급 카메라를 쓴적은 없지만 그의 작품 4백20여점은 미술관에 영구보존되는 영예를 누리고 있다.그는 제자들에게 「아무리 위대한 인물묘사도 한장의 사진이상 설득력이 없으며 사람의 눈이 미치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을 가차없이 포착하는 카메라의 눈에 자부심을 가지라」고 당부해 마지않는다. ○미술관에 420점 보존 그는 부산에서 한말 관리였던 임춘화씨와 김복덕 여사의 4남2녀중 막내로 태어났다.소년시절엔 바이올리니스트 화가를 꿈꾸기도 했으나 도쿄 와세다중학 입학기념으로 둘째형(응구씨 재일화가)이 사다준 박스형 카메라 한대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그리고 그가 무엇을 하던 엉뚱하게도 일본 풍도체신학교 졸업후 강릉우체국에 근무한 것까지도 결국 「사진」에 도달하기 위한 한 과정에 불과했을 뿐이다.사진에만 몰두하여 집안살림은 여유가 없었으나 신교육을 받은 부인 박갑득 여사가 3남 4녀를 훌륭히 키워냈고 장남인 범택(한양대 교수)씨가 부친의 뒤를 잇고 있다. 「여야일록」.화가 석도륜씨가 카메라를 메고 명동을 도는 그의 모습을 「들판의 한마리 외로운 사슴」에 비유한 휘호다.그러나 순간을 멈추고순간을 영원히 남기려는 그의 도정은 「도심을 꿰뚫는 혁혁한 형안」이란 표현이 한층 어울릴지 모른다. 이제 그에게서 쾌심작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수도 있지만 「사진이 인생의 모든 것이 돼버린 작가」만의 「삶의 지혜와 인생을 체관한 시각」은 그를 능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명동을 겨냥하는 그의 셔터소리는 시간을 정지하는 소리며 그의 카메라는 낭만과 전쟁과 역사의 비풍참우,인생의 모든 것이 충만하게 담긴,한국 제일의 보물상자에 틀림없을 것같다. □연보 ▲1912년 부산 출생 ▲31∼34년 부산사진 여광 구락부 가입,일본 와세다(조도전)중학 및 일본 풍도통신학교졸업,일본「사진살롱」지에 「초자정물」발표 ▲35∼37년 강릉우체국근무 ▲47년 부산예술사진연구회발족 ▲50년 인천상륙작전 종군,「경인전선 보도사진 개인전」 ▲52년 제1회 도쿄국제사진살롱에 「병아리」입선,한국사진가협회결성 ▲53∼73년 서울대를 필두로 이후 이대 홍대 건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숙대 서라벌예대출강 ▲55년 미국 사진연감 「포토그라피 애뉴얼」에「나목」수록 ▲57년 「인간가족사진전」유치(경복궁미술관) ▲64∼82년 국전초대작가 ▲69∼71년 월간「공간」지 주간 ▲72년 임응식회고전(서울,부산) ▲73년 한국사진협회 이사장 ▲74∼78년 국전운영위원,한국사진교육연구회창립 대표 ▲74∼90년 중앙대교수 ▲82년 국립현대미술관초대 회고전 ▲83년 미국LA한국공보원초대전 ▲89년 주불한국문화원초청「임응식 사진전」(파리) ▲95년 삼성 포토스페이스 개관 임응식회고전 서울시 문화상(60년) 대한민국문화예술상(71년) 문공부현대사진문화상(78) 은관문화훈장(89) 「한국의 고건축」(5집)「임응식 사진집」(79)「풍모」(82)「임응식 작품집」(95)외 「사진표현과 작가」「사진사상」등
  • 정신대출신 김학순 할머니 사진/일 「기금」 포스터에 무단게재

    ◎“기금모집 호소 오해” 관련단체들 사과 요구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의 자치노조(위원장 고토 모리시게·조합원 1백1만명)가 종군위안부문제의 해결을 위해 일본정부가 제시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모집 포스터와 전단을 제작하면서 한국의 김학순할머니(72)의 사진을 무단사용해 물의를 빚고 있다. 일본정부가 제안한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안은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의 국가책임과 사죄,정부보상을 회피하려는 방안으로 김할머니를 비롯한 피해당사자 및 아시아 피해국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는 구상이다. 한국정신대대책협의회등 26개 단체는 17일 자치노조가 사진작가 가쓰야마 다이유(승산태우)씨의 사진집에 실린 김할머니의 고뇌하는 모습 「한」을 포스터에 무단사용함으로써 김할머니가 기금안에 반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김할머니가 기금모집을 호소하고 있는 듯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치노조가 본인의 양해도 얻지 않고 사진을 무단으로 사용,포스터 2만장,전단 5만장을 제작 배포한데 대해 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하고 배포된 포스터와 전단의 회수할 것을 요구했다.
  • 중국의 얼굴/나이젤 카메론 등 지음(화제의 책)

    ◎서구인 눈에 비친 19세기 중국 모습 19세기 서구인의 눈에 비친 중국의 모습을 담은 사진 68컷과 참고도판,이와 관련된 글 4편을 엮었다.사진작가는 펠리스 비토,존 톰슨 등이다. 자희황태후(일명 서태후)가 악명높은 내시장 이연영과 함께 자금성에서 찍은 사진,아편전쟁 때 폐허가 된 이화원의 모습,북경으로 진주하는 서양연합군을 찍은 사진 등 희귀한 자료가 많이 소개돼 있다.또 중국인 상류층의 집 내부와 가족,하녀를 거느린 만주족·한족의 여인,범죄자 처형 등 중국인의 생활상과 풍속도 두루 등장한다.양자강의 고산,절강성 남부의 사원 등 절경도 곁들였다. 그러나 이 사진집은 단순히 자료집으로서만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이 사진들에서는 당시 동양문화에 대해 우월감에 넘쳤던 서구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곁들여 미지의 세계인 중국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도 뒤섞여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편역한 미술사학자 이영준씨는 『이 사진들이 중국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서양사진의 주변적 영역으로 볼 것이 아니라 사진의 역사를 이해하는중요한 자료로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열화당 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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