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사진기자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노사분규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여자 계주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투자협약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 임대사업자
    2026-03-2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53
  • 김대통령 ‘국민과 대화’/ 이모저모

    한국방송협회 주관으로 KBS,MBC,SBS,YTN,MBN이 생중계한 가운데 1일 오후 7시부터 2시간여 동안 진행된 4번째 ‘국민과의 대화’는 지난 99년 2월 이후 2년만에 재개됐다.경제상황이 좋지않은 탓인지 국민들의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으며,과거와 달리 공격적인 질문이 많았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시종 감성적인 접근법을 구사,대화 전체가 매끄러웠다는 평가이다. 김 대통령은 대화를 시작하면서 “오른쪽 눈 모세혈관이 터져 보기 안됐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란다”며 부드러운 대화를 유도했다.민감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꼼꼼히 메모하기도했으며 수첩을 꺼내보기도 했다.패널들의 보충질문이 나올때는 “오늘은 제가 단단히 시험을 치른다”며 너털웃음으로받아넘겼다. 대화는 소설가 김주영씨와 KBS 중견아나운서인 이규원씨가함께 진행했으며 전문가 패널로는 김광두 서강대경제학과 교수와 김연명 중앙대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맡았다.국민패널로이윤균(LG화재 대리)씨를 비롯해 생산직근로자 자영업자 중소기업인 농민 주부 사회복지사 등 8명이 나섰다. 이날 대화에서는 모두 20여개의 질문중 경제 및 민생문제가절반 이상을 차지했다.김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려 노력했으나,의약분업 준비가 소홀했다는 지적에대해선 “의약분야를 잘 몰랐고, 준비를 못해 국민을 걱정하게 만들었다“며 사과했다. 앞서 김 대통령은 오후 6시25분 KBS에 도착,박권상(朴權相)사장 등의 영접을 받아 귀빈실에서 10분간 환담한 뒤 10분간분장을 하고 사진기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한 뒤 5분간 휴식을 취하고 나서 국민과 대화에 임했다.방송협회측은 인터넷등을 통해 연령,직업,거주지 등을 감안,각 계층을 대변할 수있도록 방청객 300여명을 선발했다. 신청만 해놓고 불참 할경우에도 대비,340여명을 방청객 명단에 올렸다. 이춘규기자 taein@
  • “패션쇼, 무대 중간∼끝이 명당”

    패션쇼에 초대받아 행사장에 도착한 일반인들,지정석이 아닐 경우에는 어디에 앉아야 좋을지 우왕좌왕 하게 된다.이자리가 좋겠다고 생각해 앉았다가 모델의 뒷모습만 구경하고오는 경우도 있다. 패션쇼장의 명당은 있을까? 어느 자리에앉아야 ‘고양이 걸음(Cat-Walk)’의 모델을 ‘머리에서 구두까지’ 꼼꼼히 살펴볼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않다.초보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글쎄요”하고 말꼬리를 흐릴 정도다. 디자이너 경력 40여년의 앙드레 김은 ‘무대의 정면’이라고 한마디로 잘라 말한다. 오랫동안 패션쇼를 열어본 경륜의 다른 디자이너들도 앙드레 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이는 원형 무대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한 변형 무대건 간에항상 적용되는 ‘불변의 원칙’이다. 앞뒤로 긴 ‘1’자형의 무대를 예로 들어보자.최고의 자리는 모델이 잠시 멈춰선 뒤 포즈를 잡는 정면이다. 보통 사진기자를 위한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포토라인에바짝 붙어있는 좌석은 셔터를 누르는 소음 때문에 시끄럽다는 것이 단점이다.만찬을 겸한 패션쇼에선 그곳에 ‘헤드테이블’이 마련된다. 차선(次善)의 자리는 무대위의 모델이 오른쪽으로 도는 방향으로 놓여 있는 좌석의 첫줄이다. 주최측은 이곳에 주요 단골 고객을 위해 VIP석을 마련한다. 세번째로 좋은 자리는 왼쪽편 좌석의 첫줄로 ‘기자석’으로흔히 정해진다. 패션전문 홍보대행사 ‘데크’의 이계명 실장은 “각 좌석마다 맨 앞줄이 가장 좋다.또 모델이 나오는 무대 입구보다는 무대 중간부터 끝까지의 좌석이 옷을 더 잘볼 수 있다”고 말한다.비지정석인 경우 이같은 ‘원칙’을 고려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국내의 패션쇼에는 10∼20분정도 개최시간이 늦어지는 ‘코리언 타임’이 적용되곤 한다.쇼가 시작되려 하는데 여전히앞좌석이 비어있을 경우,눈치껏 자리를 옮겨 앉는 순발력이필요하다. 패션쇼에서 유념해야 할 한가지. 현장에서 나눠주는 작품발표 순서지를 잘 챙겨야 한다.여기에는 색 디자인 소재 등 각종 정보가 담겨있다.미리 읽어놓아야 쇼를 즐길 수 있다. 패션전문가들은 “모델들이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 지나치기때문에 순서지에 실린 내용을 먼저 읽어야 디자이너가 옷을만든 의도 등을 알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문소영기자 symun@
  • 한국보도사진전 입상자 발표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盧在德)는 9일 ‘2000 한국보도사진전’에서대한매일 사진팀 도준석기자의 ‘첫 모습 드러낸 린다김’을 대상작으로 선정하는 등 29편의 입상작을 발표했다. ■뉴스부문△금상 ‘성난 농심’(연합뉴스 백승렬) △은상 ‘눈물의이별’(한겨레신문 이종찬)△동상 ‘선생님…’(동아일보 전영한)■스포츠부문△금상 ‘아,금메달’(연합뉴스 김동진) △은상‘공중볼다툼’(스포츠서울 김홍배)△동상 ‘2체급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작은거인’(스포츠서울 성복현) ■시사기획부문 △금상 ‘떠도는 아이들’(경향신문 김문석) △은상 ‘뇌사자의 숭고한 희생(부산일보 김영수)△동상 ‘타버린 백두대간에도 생명은 있다’(한국일보 김며원)■생활기획부문 △금상 ‘홍석천’(경향출판 황정옥)△은상 ‘포츄레이트 윤미조’(한겨레출판 정진환)△동상 ‘예지원 패션 스토리’(동아출판 최문갑)
  • ‘첫 모습 드러낸 린다김’

    한국사진기자협회가 9일 ‘2000 한국보도사진전’에서 대상작으로 선정한 대한매일 사진팀 도준석기자의 ‘첫 모습 드러낸 린다김’.대한매일은 지난해 5월6일 이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기자협회는 지난 한해 동안 현장에서 취재한 보도사진 500여점가운데 뉴스·시사기획·스포츠보도·생활기획 등 4개부문 금·은·동상 수상작 등 입상작 28편도 발표했다.시상식은 오는 16일 열린다. 16일부터 23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전시회도 연다.
  • 청와대 사진기자단, 北 어린이돕기 성금 전달

    청와대 사진기자단(간사 朴榮君)은 4일 대한적십자사를 방문,서영훈(徐英勳)총재에게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 1차분을 전달했다. 성금은 사진기자단이 남북정상회담 화보집 ‘반갑습니다’ 출판으로얻은 수익금 1,500만원 전액과 대통령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의 금일봉을 합쳐 마련됐다.사진기자단은 “화보집 판매로 생기는 추가 수익금은 2·3차에 걸쳐 북한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전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오풍연기자 poongynn@
  • 어제 새벽 서울 ‘엠파이어’ 2t대형철골 용접 떨어져

    31일 새벽 1시55분쯤 서울 강북구 미아3동 엠파이어 나이트클럽에서천장에 매달려 있던 가로 15m,세로 10m,무게 2t 가량의 대형 철제조명구조물이 중앙무대로 떨어져 춤을 추고 있던 김모씨(37) 등 62명이 다쳤다. 종업원 남모씨(40)는 “조명구조물을 위로 올리려고 높낮이 조종단추를 눌렀는데 갑자기 한쪽으로 기우뚱하면서 7m 아래 무대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나이트클럽에는 300여명의 손님들이 춤을 추거나 술을 마시고 있었으나 다행히 중상자는 없었다.부상자들은 대부분 떨어지며깨진 조명등의 유리 파편에 맞거나 대피하다가 넘어져 다쳤다. 경찰은 수십개의 크고 작은 철제 조명구조물을 연결하고 있던 네 가닥의 쇠줄 용접 부분이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지면서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나이트클럽 주인 이모씨(62)와 건물 감리자,조명시설 시공자등을 조사해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실이 드러나면 업무상과실치상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한편 이 업소 종업원들은 영업 준비를 이유로 멋대로 사고현장을 훼손하고 출입문을 소파 등으로 막아 경찰의 조사를 방해했다. 이들은 또 사진기자들의 카메라를 부수고 필름을 빼앗으며 취재를막았다. 경찰도 간단한 감식만 했을 뿐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고 방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영우 박록삼기자youngtan@
  • 북한주제 복합미술전 ‘광화문 갤러리’ 개관기념

    ‘지하철타고 평양에 가볼거나’ 21일부터 내년 1월 29일까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전시장에서 ‘서울의 화두는 평양’이란 주제로 미술전시회가 열린다. 지하철역사내 첫 상설갤러리인 ‘광화문갤러리’ 개관을 개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회엔 임옥상·석영기·이강우씨 등 한국 현대작가 34인이 참여해 북한을 주제로 설치·복사·사진·평면·입체·퍼포먼스예술의 진수를 선보인다. 이들 작품은 특히 서울과 평양 두 도시간 문화적 동화(同化)를 모색하고 남북화합과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황창배·최진욱씨가 평양의 전경과 평양 사람들의 단상을 표현한 그림,남과북의 내면을 스케치한 임종진씨의 영상,서울시민의 통일에 대한 반응을 담은 허은씨의 영상 등 순수미술 작가뿐 아니라 사진기자,만화가,전각가,공연예술가 등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한편 광화문갤러리는 광화문역 지하1층 166평 공간에 첨단 조명과장식 등을 갖춰 일반 갤러리에 전혀 손색없이 꾸며졌다. 서울시는 광화문갤러리를 시작으로 내년에 9개 역사,2002년 7개 역사에 전시장 및 공연장,정보센터 등 각종 독립된 문화공간을 설치할계획이다. 임창용기자
  • 백악관 안주인 정겨운 인수인계

    힐러리 클린턴 여사와 로라 부시 여사의 백악관 안살림 인수인계가시작됐다.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당선자의 부인 로라 여사는 18일 지난 8년간 백악관 안살림을 맡아온 힐러리 여사를 방문,차를 들며 백악관 살림살이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 물러나는 퍼스트 레이디와 새로 백악관의 안주인이 될 두 사람간의만남은 미 대통령의 권력승계 절차의 하나로 자리잡은 전통. 언론들은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생활을 시작하는 ‘활동파’힐러리 여사와‘현모양처형’인 로라여사의 백악관 대면 분위기를 상세히 전했다. AP통신 등은 ‘헬로’‘만나서 반갑습니다’로 시작된 두 퍼스트 레이디의 만남에 대해 워싱턴의 혹한을 녹일만큼 따뜻하고 정다웠다고설명했다.힐러리 여사는 현관 입구에까지 나와 예정시간보다 7분 늦게 도착한 로라 여사를 맞았으며 두 사람은 손을 맞잡은 채 사진기자들에게 환한 미소로 포즈를 취했다.특히 혹한 때문에 승용차 문이 얼어 붙어 열리지 않자 힐러리 여사는 따로 경호원을 불러 문을 열어줬다. 로라 여사는 “백악관에 대해서는 좀아는 편이며 링컨 룸과 퀸즈룸에서 자 본 적이 있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그녀는 시아버지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 재임 때 백악관에 묶은 적이 있는 데다 남편이 텍사스 주지사 재직중 백악관 초청행사 등에도 참석,백악관과는 매우 친숙한 편.지난 89∼93년까지 백악관 안살림을 챙겼던 시어머니 바버라 부시 여사로부터 세밀한 조언을 받을 수도 있는 형편이다. 힐러리 여사는 자서전 판권료로 거액을 챙긴 것과 관련,“워싱턴에수백만달러 짜리 집을 살 계획이 있느냐”라고 기자들이 묻자 “좀도와줄 수 있겠냐”며 농담으로 응수,프로 정치인다운 여유를 보였다. 두 사람의 패션도 주목을 받았다.힐러리 여사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된 검정색 바지 정장에 광택나는 분홍색 블라우스,로라 여사는 자주색 울 수트에 소박한 모양의 구두 차림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9.끝)일본 도쿄

    도쿄시내를 동서로 가르는 지하철 유라쿠초센(有樂町線)의 중간지점에는 사쿠라다몬(櫻田門)이라는 역이 있다.이 역의 3번 출구는 경시청 입구로,4번 출구는 사쿠라다몬으로 나온다.황궁으로 들어가는 관문인 사쿠라다몬에서 바라보면 왼쪽으로는 고색창연한 법무성 건물이,오른쪽으로는 멀리 일본 의회의사당 건물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바로 정면,불과 80m 정도의 거리에는 일본 치안의 총본산인경시청 건물이 위압적인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기자가 이곳에 도착한 시각이 마침 점심시간이었다.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인근 관공서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짝지어 사쿠라다몬을 지나 황거(皇居·황궁)앞 광장에서 조깅을 하고 있었다.일본사람들이길조(吉鳥)로 여기는 까마귀는 떼를 지어 날아다녔고,그 아래로 일본의 상징 일황이 거주하는 황거가 적막에 갇혀 있었다. 일제하 항일 독립투사들의 의열투쟁은 조선 땅이나 중국·러시아 등망명지는 물론 적지의 중심부인 일본 본토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1932년 1월8일.일황 히로히토(裕仁)는 도쿄시내 서북부에 위치한 요요기(代代木)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황궁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일황이 탄 마차가 황궁 입구의 사쿠라다몬에 다다를 무렵 난데없이 폭탄 하나가 날아들었다.폭탄은 일황이 탄 마차 뒷편에서 굉음을 내며 터졌다.순간 일장기를 든 기수와 근위병이 탄 말 두마리가거꾸러졌다.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폭탄의 위력은 일황에게까지 미치지는 못하였다.폭탄을 만든 김홍일(金弘壹·전 광복회장,작고)은 회고록에서 “군중과 일황의 거리가 100m 정도가 될 것을 고려하여 폭탄을 멀리 던지도록 가볍게 만들었다”고 했다.가볍게 만들다보니 상대적으로 위력이 약했던 것이다. 거사의 주인공인 이봉창(李奉昌·1900∼1932)의사는 의거후 현장에서 체포돼 그해 9월30일 도쿄 대심원에서 사형을 언도받고 10월10일 이치가야(市谷)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백범 김구 선생이 이끈 한인애국단 소속인 이의사는 의거에 앞서 “물품(폭탄)을 1월8일 방매하겠다(터뜨리겠다)”는 내용의 전보를 백범에게 보내 거사일을 미리 알렸다.당일 이의사는 일황이 관병식을 마치고 경시청을 지나 사쿠라다몬을 통과하여 황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알고 경시청 정문 앞에서 일본인으로 가장해 기다리다가 거사를 성공시킨 것이다. 의거후 일본은 발칵 뒤집혔다.식민지 백성인 조선인이 도쿄 중심부,그것도 일본 치안의 총지휘부인 경시청 앞에서 일황이 탄 마차에 폭탄을 던진 ‘사건’은 충격적인 일이었다.일본은 이 사건을 ‘사쿠라다몬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최서면(崔書勉)국제한국연구원장은 “엄격히 말해서는 ‘경시청앞 사건’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하나 ‘사쿠라다몬사건’역시일황과 관련된 표현이므로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이의사의 의거현장인 경시청 정문 오른쪽에는 ‘경시청 창립 100주년 기념식수’라는 자그마한 기념표석이 서 있으나 이의사의 의거를 알리는기념물은 어디에도 없었다.일본 경찰로서야 ‘수치스런 기억’이겠지만 이는 또 하나의 역사은폐가 아닐까. 경시청 앞에서 사거리를 지나 황거를 에워싼 해자(垓子,궁성 주위에방어용으로 파놓은 연못)를 건너 사쿠라다몬으로 들어서면 황거의 분위기가 완연히 느껴진다.도쿄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면서도 마치 외떤 섬과 같은 분위기가 든다.문 안으로 들어서면 거목과 잘 포장된 길이 황거로 안내한다.포도((鋪道)가 끝나는 지점에 작은 자갈이 깔린길이 나타나는데 넘실거리는 해자의 물결과 함께 황거가 모습을 드러낸다. 도쿄 시내 치요다(千代田)구에 위치한 이 궁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쓰(德川家康)의 손자인 3대 쇼군 이에미쓰(家光)시대에 만든 것으로 해자가 이중으로 조성돼 있다.황거의 면적은 총30만평 규모로,제122대왕인 메이지(明治)가 황거를 교토(京都)에서 옮겨온 뒤 도쿄성으로불린다.자갈밭 중간지점 쯤에는 이중으로 된 돌다리가 나타나는데 흔히 이를 니주바시(二重橋)라고 부른다.바로 황거를 연결하는 다리로,길이는 약 29m,폭은 약 7m정도다. 지방에서 도쿄 관광을 온듯한 일본인들이 니주바시를 배경으로 무리를 지어 기념사진을 찍곤 했다.기념사진 촬영용으로 만든 계단식 간이의자가 있었고 전담 사진사도 두 명이나 됐다.이곳에서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어주는 다나카 아키코(田中明希子·22·국제관광사진주식회사 소속)씨는 “관광객이 니주바시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즐겨찍는다”고 말했다.사진값은 2장 1세트로 2,100엔(송료 별도)이라고했다. 니주바시 입구에는 3명이 경비를 서는데 근처까지 관광객의 접근이가능했다.회청색이 감도는 황거 건물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이었다.사진 몇장을 찍고는 다시 기념사진 찍는 곳으로 내려와,잠시짬을 내 쉬고 있는 다나카씨를 찾아갔다. 기자는 일제강점기때 이곳에서 발생한 ‘조선인 폭탄투척’사건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봉창의사의 사쿠라다몬사건은 물론 김지섭(金祉燮·1884∼1928)의사의 니주바시폭탄투척 사건도 전연 몰랐다.학교에서 그런 내용을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더러 한국인 관광객이 찾아와 기념사진을 찍곤하지만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은 아직 없었다고 했다. 1924년 1월5일 오후7시쯤 한 조선인이 니주바시에 던진 폭탄사건으로 일본은 소용돌이에 빠졌다.신(神)으로 받드는 일황의 궁성에 조선인이 폭탄을 들고 뛰어들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내무차관견책에 이어 경시총감·경무부장·국성 경비책임 경찰서장 등 치안책임자가 줄줄이 파면되었다. 의열단 소속 김의사는 1924년초 도쿄에서 일본총리를 비롯해 조선총독 등이 참석하는 제국의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이들을 폭살할목적으로 23년말 상하이 포동(浦東)부두에서 일본으로 향했다.그러나 제국의회가 갑자기 연기됐다는 소식을 접한 김의사는 계획을 변경,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일황 궁성을 폭파키로 결정하였다.그러나 접근이 불가능하자 날이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궁성 입구인 니주바시에폭탄을 던진 것이다. 아깝게도 김의사가 던진 폭탄은 불발이었다.타고온 배가 습기 많은화물선이어서 도쿄로 오는 동안 폭탄이 모두 젖어버린 탓이었다.김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복역중 고문 후유증으로1928년 2월20일 뇌일혈로 지바(千葉)형무소에서 순국했다. 76년전 김의사가 목숨을 내놓고 폭탄을 던진 니주바시 아래로 백조들이 무리를 지어 쌀쌀한 초겨울 날씨를 한가로이 즐기고 있었다. 도쿄 글 정운현기자 jwh59@. *연재를 마치며. 구한말 항일민족지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정신을 되살려 민족정론지로 거듭 태어난 ‘대한매일’이 금년 7월초부터 매주 수요일(일부화요일)자에 장기기획물로 연재한 ‘해외항일전적지를 찾아서’는 일제강점기하 선열들의 항일투쟁 현장을 관련자료와 현지 전문가들의도움을 받아,현장답사를 통해 생생히 복원한 점에서 평가할만 하다. 금년초 대한매일은 김삼웅 주필과 편집국 특집기획팀 소속 취재기자와 사진기자,외부전문가 등으로 특별취재반을 편성해 해외에 산재한항일유적지 실태를 파악한 뒤 구체적인 지역선정과 일정확정에 들어갔다.논의 끝에 최종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 등 4개국을 답사대상지로 선정했다. 무장투쟁 본거지인 중국의 동북3성을 첫 답사지로 결정했다.중국은지역이 광범위한데다 항일운동 주무대였다는 점에서 독립군이 무장투쟁을 벌인 동북3성과,임시정부·광복군의 활동무대인 관내지역을 2차로 나눠 답사했다.이어 미국 러시아 일본의 항일유적지 현장답사와취재 순으로 이어졌다. 이번 기획연재는 ‘청산리전투’등 항일투쟁사에서 찬란한 전과로 기록된 독립투쟁의 현장을 기자가 직접 답사하여 딱딱한 논문 형태가아닌,재미있고 현장감있는 신문기사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학계의 높은 평가를 받았다.그러면서도 관련자료와 현지 역사학자·주민 증언을 토대로 해 학술적 가치도 결코 적지 않다고 인정받았다. 특히 답사과정에서 보존가치가 크나 방치된 유적을 현장사진과 함께실감있게 보도함으로써 관계당국이 적극적으로 발굴·보존하는 방안을 마련토록 자극을 주었다.또 독자들에게는 선열의 위업을 현창하고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음을 자부한다. 아울러 취재반은답사과정에서 북한 김일성주석이 소년시절 다닌,중국 길림시 소재 육문(毓文)중학을 남한 최초로 취재하였으며 박정희 전대통령의 만주군관학교 졸업 당시 사진을 발굴하는 등 과외의 성과도 거두었다.취재반은 이번 답사를 통해 취재·보도한 내용을 보완,내년초 이를 단행본으로 엮어 출간할 계획이다. 정운현기자
  • 국회 사진기자단 성명 “파파라치 발언 사과하라”

    국회를 출입하는 사진기자단은 5일 성명을 발표,“민주당 김경재(金景梓)의원이 지난 4일 예결위 정책질의에서 장재식(張在植·민주) 예결위원장의 메모파문과 관련해 이를 보도한 언론을 향해 ‘파파라치’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또 “국회 회기 중 공개된 회의장 내에서 공인인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을 취재,보도한 것을 상업적 목적으로 촬영,그 결과물을 판매하는 ‘파파라치’와 같은 행위라고 보는 김 의원의 언론관에 대해강력히 항의한다”면서 발언 취소와 사과를 요구했다. 이지운기자 jj@
  • 2차 남북이산상봉/ 방북단 귀환 왜 늦어졌나

    북한이 남한의 일부 언론보도를 문제삼아 2차 이산가족 상봉일정을늦추는 등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일 2차 남북 이산가족의 귀환이 약 3시간 정도 지연됐다.이유는 북측이 1일자 조선일보 인터넷 신문의 ‘김일성 장군 호칭 잦아남측 가족 머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문제삼았기 때문이다. 북측은 1일 밤 11시40분쯤 공동취재단으로 평양에 가 있던 조선일보사진기자를 남북연락관 접촉실로 데려가 3시간 정도 억류했다. 이 때우연히 연락관실에 들른 남측 연락관이 “감금이 아니냐”며 항의하자 이들은 사진기자가 평양 현지에서 ‘역할’을 하지 않았느냐며 추궁했다는 것. 북측은 남북 연락관 협의에서 사진기자의 노트북과 카메라 2대를 직접 검사해 보기로 하고 새벽 3시쯤에야 사진기자를 방으로 돌려보냈다.북측은 “전체 분위기나 정서에 안 맞지만 딱히 문제삼을 것은 없다”면서 사진기자 카메라에 파일로 저장됐던 북한 시내 스케치 사진등을 다 지우고 돌려줬다. 북측은 ‘1.조선일보는 사죄하라.2.아니면 연락관이라도 사죄하라.3.앞으로 계속 이럴 경우 교환방문 할 수 없다’는 세가지 조건을 내세웠다.이 요구에 남측이 반대,귀환 출발이 지연됐다.남측이 화해협력 정신에 맞춰 일을 진행하자고 설득,2일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상황이 종료됐다.이에 따라 평양에서 2일 오전 9시부터 30분간 예정됐던 환송상봉은 낮 12시10분부터 시작돼 20여분에 그쳤고 서울 북측방문단의 평양귀환도 늦춰졌다. 전경하기자 lark3@
  • [현장] 시대 거꾸로 가는 정보사

    “이 ××야,사진을 찍지 말라면 말 것이지 왜 자꾸 찍고 난리야.” 22일 오전 11시 서울 삼성동 봉은사 충령각 앞 대한민국첩보전 유공자대책위원회(회장 朴富緖)의 ‘제1회 대북첩보전 사망자를 위한 추모제’ 현장.국내외 언론사 사진기자들과 국군정보사령부 소속 군인들 사이에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졌다. 정보사 군인들은 취재 기자들의 사진기를 빼앗으려 했다. 기자들은필사적으로 저항했다.한 기자는 건장한 군인들에게 밀려 5m 아래 계단으로 굴러떨어질 뻔했다.군인들은 그래도 계속 욕설을 하며 취재를방해했다. 군인들 40여명은 처음부터 현장을 빙 둘러싸고 기자들의 접근을 완력으로 막았다.기자들이 “누구냐,소속이 어디냐”며 항의해도 “왜남의 집안 일에 끼어드느냐”는 등의 말만 되풀이했다. 현장으로 가려는 기자의 허리춤을 잡고 계단 아래로 끌어내는가 하면 멱살을 쥐다시피 해서 밀어내기도 했다. 기자들이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이냐”고 물어도 “우리? 우리야 집에서 온 사람들이지”라고 빙글빙글 웃었다.이들은 “우리 선배들의 추모제에 기자들이 왜 왔느냐”면서 “이건 기밀사항인데 또 무슨 왜곡보도를 하려느냐”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이들은 군 선배들을 추모하려고 온 사람들로 보이지 않았다. 추모제 현장 주변에서 농담을 하며 웃거나 사찰 경내에서 태연히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심지어 현장 외곽에서 추모사를 받아 쓰는 기자옆에서 콧노래로 유행가를 부르며 취재를 방해하는 군인도 있었다.수십년 동안 한을 품고 살아 온 북파 공작원과 그 가족들은 안중에도없는 듯한 태도였다. 일부 군인들은 “주최측이 우리에게 출입 통제를 부탁했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하지만 한 전직 북파공작원(70)은 “우리가 기자들의 출입 통제를 부탁했다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면서 “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에 있던 세계적 통신사인 AP통신 기자는 이같은 장면을 찍어 전송했다.우리 군의 후진성이 전 세계에 알려지는 순간이었다. 전영우 사회팀기자 ywchun@
  • 20년만에 드러난 신군부 보도지침

    ‘누가 다음 정권 후계자인가 등 보도불가’(10.30),‘김영삼 외신기자회견 보도금지’(11.23),‘12·12사태는 ‘사건’으로’(12.15)박정희 유신정권의 종막을 고한 10·26 이후 80년 ‘서울의 봄’과‘광주항쟁’ 당시 신군부의 검열지침 실태가 당시 신문사 사회부 기자로 활동했던 한 언론인에 의해 20년만에 전모가 공개됐다.5공시절폭로된 ‘보도지침’에 이어 10·26직후 신군부의 언론통제 실상을보여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68년 한국일보 사회부기자로 출발,세계일보 도쿄특파원 등을 역임한채의석(59)씨는 최근 출간한 ‘99일간의 진실-어느 해직기자의 뒤늦은 고백’(개마고원 펴냄)에서 20년만에 당시의 실상을 폭로했다.그는 80년 ‘광주항쟁’ 당시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취재했고,뒤이은 신군부의 언론인 강제해직 때 회사를 그만둔 인물이다.이번에 그가 펴낸 책은 계엄하 신군부의 검열지침 실태와 당시 한국언론의 굴절사를 꼬집은 한국언론의 ‘비판서’라고 할 수 있다. 채씨에 따르면,그가 다니던 회사에서 검열지침이편집국내 흑판에고지되기 시작한 것은 79년 10·26으로 인한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긴급조치 9호가 발동된 지 나흘 후인 30일부터였다.당시 기자들은 자조적인 표현으로 이를 ‘오늘의 말씀’이라고 불렀는데 80년 3월 14일부터는 ‘보도지침’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당시 ‘지침’은 문공부로부터 신문사 각 부에 전화로 시달되었는데편집국 부국장이 매일 이를 취합,서무를 통해 흑판에 기록해 알렸다는 것.신군부의 보도지침이 20년만에 빛을 보게된 데는 매일 매일 이를 기록하고,또 흑판에 적힌 내용을 사진으로 찍어둔 사진기자가 있었기 때문이다.당시 한국일보 사진부 김성수(70·경기도 고양시) 기자가 그 주인공이다.채씨는 김씨로부터 입수한 검열지침 내용을 책말미에 부록으로 날짜별로 정리하고 사진도 일부 실었다. 이번에 채씨가 공개한 것은 한국일보 편집국 게시판에 고지를 시작한 79년 10월 30일부터 도중에 고지를 창피하게 여긴 국장석이 관행을 바꿈으로써 게시가 중단된 이듬해 5월 24일까지 약 7개월간에 걸친 것으로 그 가운데 검열지침이고지된 99일분의 내용이다.신군부의검열지침은 10·26 직후에는 반체제 인사나 계엄사의 동정,학생시위·노사분규·야당의 활동에 대한 보도금지가 위주였다.그러나 ‘12·12쿠데타’ 3일 뒤인 15일자에는 ‘12·12사태를 ‘사건’으로’보도하라는 내용도 있다. 또 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에는 ‘(광주 시위)학생들의 행위를정당화하거나 지지하는 식의 기사는 모두 불가’(16일),‘인명피해,사상자 처리에 관한 개별 취재내용 보도불가’(24일) 등 광주항쟁 내용을 왜곡·은폐한 반면,간첩 검거,계엄당국 발표,계엄군의 활동 등공식발표에 대해서는 ‘크게 취급 요망’하고 있다.채씨는 “많은 날은 하루에 3회에 걸쳐 지침이 내려온 경우(79년 12월 6일)도 있었으며,103회에 걸쳐 총 474건의 상황이 검열대상이었다”고 밝혔다. ‘말’지 86년 9월호에 전두환 정권의 ‘보도지침’을 폭로했던 당시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는 “전두환정권은 ‘10·26’으로 비롯된 계엄상황을 5공 내내 유지한 셈”이라며 “채 선배가 공개한 검열지침은 80년대 중반 ‘보도지침’의 원조격”이라고 말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검찰, 밤 늦게까지 표결향방에 촉각

    검찰총장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17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에는 밤늦게까지 긴장감이 감돌았다.대검과 서울지검의 검사들은퇴근을 하지 않고 TV를 지켜보면서 국회의 표결 향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대검 간부들은 수시로 바뀌는 국회 상황에 관심을 쏟느라 일손을 거의 놓은채 어수선한 분위기속에 하루를 보냈다.대검의 한 검사는 “정치권이 검찰을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마음대로 탄핵할 수 있는선례를 남긴다면 검찰의 정치 중립성 확보는 더욱 어려워 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순용(朴舜用)총장은 오후 7시쯤 “집으로 간다”며 퇴근길에 올랐고 신승남(愼承男) 대검차장은 이보다 앞서 오후 6시20분쯤 청사를떠났다.박총장은 사진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해주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늦은 밤까지 자리를 지키던 서울지검의 고위 간부는 “검찰에 대한정치권의 탄핵이 도대체 법률적 근거가 있는 것이냐”고 반문하면서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한 부장 검사는 “선거 수사마다 검찰의 중립성을 문제 삼는다면 어떻게 제대로 된 수사를 하겠느냐”면서 “이제 정치권에서도 검찰을 흔들기 보다는 공정수사를 하도록 도와줘야할 때”라고 밝혔다. 박총장은 평소보다 늦은 이날 오전 9시44분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로 출근했다.박총장은 “강원도에 눈이 많이왔다더라”면서 “이렇게 환영해주는 것을 보니 좋은 일이 있을 모양이죠”하며 가벼운 농담을 건넸다. 박 총장과 신승남(愼承男) 대검 차장은 이날 김각영(金珏泳) 서울지검장의 정례 업무보고를 제외하고는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일부 소장 검사들은 “정치권이 더이상 검찰을 흔들어대지 못하도록‘특단의 대책’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영화(林榮和) 변호사는 “수뇌부에 대한 탄핵소추가 앞으로 사정수사를 벌일때 더욱 엄정히 하라는 채찍질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홍환 이상록 장택동기자 stinger@
  • 趙특사 ‘검색 생략’ 準국가원수급 예우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조명록(趙明祿)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은 9일 오후(한국시간 10일 오전·이하 현지시간) 워싱턴에 도착,백악관에서 멀지않은 메이플라워 호텔에서 워싱턴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조 특사 일행이 9일 오후 7시15분 유나이티드 에어(UA) 806편으로워싱턴 인근 덜레스 공항에 도착하자 미국측은 지난 9월 김영남 북한최고 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프랑크푸르트공항 사건’을 의식한 듯준 국가원수급에 해당하는 극진한 예우로 영접.이들은 일체의 보안검색을 생략한채 대기중인 특별 셔틀버스편으로 공항귀빈실로 이동,찰스 카트먼 한반도 평화회담 특사와 메리 멜프렌치 국무부 의전 담당 대사 등으로부터 영접받는 파격적 대우를 받았다. 조 특사 일행은 인근 유엔주재 차석대사 등 배석한 북한 관계자들과 잠시 환담한 뒤 캐딜락과 리무진등 미국측이 제공한 승용차 7대에나눠타고 경호차량 4대의 삼엄한 호위속에 워싱턴 시내로 직행. ■조 특사 일행이 오후 8시4분 호텔에 도착하자 40여분전부터 대기하던 웬디 셔먼 국무부 대북정책조정관이 호텔입구까지 나와 깍듯이 영접. ■말끔한 양복차림에 부드러운 인상의 조 부위원장은 마중나온 셔먼조정관과 약 30초동안 호텔입구에서 악수를 나눈뒤 함께 호텔방으로직행.조 부위원장은 사진기자들이 “이쪽도 좀 봐주세요”라고 소리치자 셔먼 조정관에게 “저쪽도 봐달라는 군요”라며 반대편을 바라봐주는 등 여유를 보이기도. ■조 부위원장의 선발대로 이틀전 워싱턴에 와있던 박명국 북한 외무성 미주국 과장은 지난 9일 저녁 송재경 전 워싱턴한인회장등 4∼5명의 한인교포들과 회동하는 등 분주히 활동한 것으로 확인.박 과장은이 자리에서 워싱턴주재 북한 연락사무소 개설을 강력히 시사했던 것으로 알려져 북미 연락사무소 개설이 상당히 진전됐음을 시사. ■조 특사 일행의 숙소인 메이플라워 호텔은 백악관에서 4블록 떨어진 워싱턴 한복판의 최고급 호텔.미국의 ‘역사적 호텔’로 지정된 75년된 건물로 역대 대통령 취임무도회장은 물론,트루먼·프랭클린·루스벨트 등 전 대통령들이 취임 전후 장기투숙한 장소로 유명.
  • 시드니 취재석/ 남북대결보다 화합을 보고싶다

    시드니올림픽에서 남북한은 ‘동시입장’이라는 역사적인 일을 해냈다. 전세계인들은 화해무드로 나아가고 있는 남북한에 아낌없는 박수를보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속에서 사람들은 경기장에서 부딪치는 남북선수의 태도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특히 북한 선수들의 달라진 모습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여준 북한 선수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을 적지않게 실망시켰다.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 양궁과 레슬링 두 종목에서 남북 맞대결이 이뤄졌다. 첫번째 대결은 지난 19일 열린 여자양궁 개인전에서였다.북한의 최옥실은 예상을 깨고 준결승까지 진출,한국의 김남순과 만났다.결과는김남순의 승리로 끝났지만 최옥실의 태도는 너무 냉담했다. 김남순의악수제의를 받은 최옥실은 얼굴을 돌린 채 무성의하게 답한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이어 열린 3·4위전에서도 최옥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김수녕에게 패한 최옥실은 사진기자들의 포즈제의를 무시한 채 울면서 경기장을 떠났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최옥실의 태도에실망하는눈치였다. 이런 태도는 25일 열린 레슬링경기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한국의 심권호와 북한의 강용균이 그레코로만형 54㎏급 준결승에 맞붙었다.결과는 심권호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경기 뒤 심권호는강용균에게 다가가 포옹하려 했지만 강용균은 애써 외면한 채 굳은표정으로 경기장을 떠났다. 물론 경기에서 진 선수에게 경기 뒤의 특정 행동을 요구하는 것은무리인지 모른다. 그러나 위에서는 남북정상회담이다,동시입장이다하면서도 정작 선수들의 행동이 예전과 같다면 좀 어색해 보인다. 승패를 떠나 남북한 선수가 다정스레 손을 맞잡는 모습을 보여줄 때세계인들은 다시 한번 뜨거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시드니 박준석기자 pjs@
  • 남북 국방장관회담 이모저모

    25일 제주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분단 반세기만에 처음 열린남북 국방장관 회담은 차분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국방부 윤일영(尹日寧) 대변인은 “서로 절제된 표현을 쓰면서도 허심탄회하게 발언하고 상대 얘기를 경청했다”고 전했다. ■조성태(趙成台) 국방장관과 김일철(金鎰喆) 인민무력부장은 25일오전 10시쯤 함께 회담장에 들어섰다.자리를 잡은 뒤 김부장은 조 장관의 요청에 따라 웃으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악수하는 자세를 취했다. “인민무력부장 선생이 오신 것이 남쪽 신문에 대서특필됐는데 보셨는지…”하고 조 장관이 묻자 김 부장은 “책임이 더 무겁다고 생각합니다.기대가 큰데…”라고 약간 부담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훈제연어 등으로 오찬을 함께 한 남북 대표단은 한라산 영실기암과항몽유적지, 분재예술원을 차례로 둘러봤다.삼별초가 몽고와 싸우다장렬히 최후를 맞은 항몽유적지인 북제주군 애월읍 고성리의 항파두성(缸坡頭城) 전시관에서는 그림을 찬찬히 살피는 등 관심을 보였다. 영실기암에서는 “백록담의 물깊이가 얼마나 되느냐,언제 화산 폭발이 있었느냐”라고 물었다.분재예술원에서는 육송,조선향나무,괴북나무 등을 둘러보면서 감탄을 거듭하며 안내를 맡은 성영범 원장에게“큰일 하셨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관광을 하는 동안 대표들은 짝을 지어 승용차에 탑승,26일 오전의마지막 회담에 앞서 막바지 절충을 계속했다.특히 조 장관과 김 부장은 24일에 이어 ‘승용차 밀담’을 계속해 회담의 성공 전망을 밝게했다. ■관광을 마친 양쪽 대표단은 모슬포 부근의 한 식당에서 제주도 특산물인 ‘다금바리’ 회와 ‘허벅술’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했다.조장관은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이번 회담을 꼭 성공시키자”면서 김부장에게 잔을 권했다.김 부장도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받들어좋은 결과를 이끌어내자”고 화답했다. 우근민 제주도지사 등도 함께 한 저녁식사는 첫날의 약간 긴장된 분위기와는 달리 참석자들이 일일이 일어나 축배를 제의하는 등 매우화기애애했다.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저녁식사 분위기로미뤄볼 때 26일 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면서 “한민족으로서 마음을 열고 진솔한 얘기를 주고 받았다”고 전했다. ■25일 오전 회담에 앞서 남북 대표단은 호텔 일·양식당에서 한식으로 아침식사를 하며 회담 막바지 점검을 했다.이날은 마침 조 장관의58회 생일이어서 남쪽 대표단은 생일케이크를 준비,간소한 생일축하행사를 가졌다. 제주 김상연 전영우기자 ywchun@
  • 여기는 시드니

    ◆한국선수끼리 맞붙은 결승전은 온통 태극기와 한반도기로 물결쳐‘코리아’ 축제 분위기였다. 관중들은 선수들이 10점 만점을 쏠 때마다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보냈다.한국 관중들은 징과 꽹과리를 치며 선수들을 응원했다.외국관중들도 선수들의 선전에 ‘아싸∼ 아싸∼ 코리아’를 외치며 함께응원했다. 우승이 확정된 뒤 윤미진은 아쉬움에 눈물을 흘리는 언니 김남순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두 선수는 손을 맞잡고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답례했다. ◆준결승에서 팀 후배인 윤미진에 패한 월드스타 김수녕은 눈물을 내비치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김수녕은 경기 뒤 “수고했다.축하한다”며 후배 윤미진에게 박수를 보냈다.그러면서도 동메달에 머문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김수녕은“동메달을 따서 기쁘다”고 말했지만 얼굴은 상당히 굳어 있었고 승부처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도 “그냥 열심히 쐈다”고만 답변.외국 기자들도 김수녕이 준결승에서 탈락하자 카메라를 들이대며 질문공세를 퍼부었지만 김수녕은 얼굴을 숙인채 황급히 자리를떴다. ◆의외의 선전을 펼치며 4강까지 오른 북한의 최옥실은 시종일관 긴장된 모습을 보였다. 최옥실은 3·4위전서 김수녕에게 아깝게 패하자 김수녕의 악수제의도 뿌린친 채 눈물을 흘리며 퇴장했다. 앞서 열린 준결승전 김남순과 최옥실의 경기에서는 남북한 두 감독이 양손을 맞잡고 입장해 관중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준결승에서 패한 최옥실은 사진기자들의 포즈제의를 뿌리치고 재빨리 경기장밖으로 사라졌다. 경기 뒤 김남순은 “꼭 같은 팀 동료와 함께 경기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북한 최옥실과 강호 나탈리아 발리바(이탈리아)가 맞붙은 8강전경기에서 의외로 최옥실이 선전하자 한국 응원단은 ‘최옥실’을 외치며 열띤 응원을 펼쳤다.초반에 뒤지던 최옥실이 중반에서 동점을 만든 뒤 경기 후반에 역전에 성공하자 응원단은 한반도기를 흔들며‘최옥실 힘내라’를 외쳤다. 최옥실이 승리하자 응원단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렀고 최옥실은 양손을 흔들며 한국 관중들에게 답례했다.또 사진기자에게도 환한 얼굴로 포즈를 취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날 양궁경기장은 평소와는 달리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지만 한국의 한여름 날씨만큼 무더웠다. 평소 초속 7∼8m였던 풍속이 이날은 2∼3m를 보여 선수들이 경기하기에는 쾌적의 조건이었다.그러나 간간히 심한 바람이 불어 활시위를당기던 선수들을 당황스럽게 하기도 했다. 시드니 특별취재단
  • 남북이산상봉/ 이선행-이송자-홍경옥씨 기구한 인생 드라마

    “통일돼서 다시 만나면 본처를 위해 자리를 양보하겠다.북쪽에 할아버지를 보내주겠다.그게 순리라고 생각한다” 분단의 부부는 마침내 17일 처음으로 오찬을 함께 하면서 잠시나마얼굴을 마주 했다.이송자(李松子·82)씨는 점심 식사 후 북의 아들을 돌려보내고 호텔방으로 가기 위해 승강기 앞에서 잠시 기다리다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북쪽 부인하고 하룻밤이라도 손을 꼭 잡고 지낼 기회가 있었으면…”북한에 각각 처자식과 아들을 두고 내려온 뒤 남쪽에서 부부의 연을 맺은 이선행(李善行·81·서울 중랑구 망우동)·이송자씨의 기구한 인생드라마는 상봉 사흘째인 이날 클라이맥스에 달했다. 북쪽 아내 홍경옥씨(76·평북 구장군)와 남쪽 아내 이송자씨는 그동안 세차례의 상봉과 한차례의 식사 때 서로 얼굴을 지나치면서도 선뜻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자식들 보기도 그렇고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던 탓이다. 이선행씨도 남북의 두 아내 사이에서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했다. 이런 어색함을 푸는 계기를 마련해준 사람은 바로 북측 안내원이었다. 이날고려호텔에서의 고별 오찬 때 안내원의 권유로 두 아내는 드디어 합석,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먼저 북쪽 아들들이 이선행씨에게 잔을 드렸다.이송자씨의 북쪽 아들 박위석씨(61)가 처음 얼굴을 맞대는 이선행씨에게 “아버님 잔 받으십시오”라고 들쭉술을 권하자,이씨는 “나는 머슴처럼 어머님을받들고 있으니까 걱정마라”고 노령인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북쪽 아들을 안심시켰다. 이선행씨의 북쪽 장남 진일씨(56)도 이송자씨를 “어머님”이라고부르며 “아버지를 돌봐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진일씨와 동생 진관씨(51)는 이송자씨 아들 박씨에게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라며 깍듯하게 예를 갖췄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송자씨는 “이같은비극이 다시는 없어야 한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정작 두 아내의 대화는 아주 짧게 이뤄졌다.이씨는 홍씨에게악수를 권하며 “반갑습니다.건강하세요”라고 했고 요즘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홍씨는 고개만 끄덕였다.진일씨는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이송자씨를) 잘 해드리라고 부탁했었다”고 대신 전했다. 앞서오전 개별상봉에서는 그동안 눈물을 보이지 않던 이선행씨와 홍씨가끝내 눈물을 터뜨렸다.이씨는 홍씨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혼자 애들키우느라 고생 많았어.스물여섯 예쁜 얼굴이 왜 이렇게 쭈글쭈글해졌느냐”며 오열했다.이씨는 사진기자들을 모두 내보낸 뒤 “이제 내마지막 소원을 이룰 차례”라며 갑자기 홍씨를 등에 업고 눈물을 흘리며 방 안을 한바퀴 돌았다. 평양 공동취재단
  • 김대통령 내외, 北어린이돕기 성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부인 이희호(李姬鎬)여사는 10일 최근 청와대 사진기자단이 발간한 남북정상회담 화보집 ‘반갑습니다’의 판매수익금 전액을 북한 어린이 돕기 성금으로 사용한다는 취지에 공감,사진기자단에 금일봉을 전달했다. 또 부인 이 여사는 이날 기독교방송과 사단법인 ‘남북 나눔운동’이 주최한 ‘북한 어린이 분유보내기’ 캠페인에 “아이들을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나누는 마음과 정성이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의 토대를 굳건이 해 줄 것”이라는 내용의 격려 메시지와 금일봉을 보냈다. 양승현기자 yangbak@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