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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

    ●최병택(LG 유플러스 부장)성욱(파라다이스그룹 상무)씨 부친상 장성태(전 국민카드 부사장)씨 장인상 최재환(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씨 조부상 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4일 오전 7시 (02)3010-2231 ●강두식(서울대 명예교수·전 호원대 총장)씨 별세 사욱(서울대 교수)사임(충청대 교수)사희(미국 디펜스 인스티튜트 교수)씨 부친상 채연석(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조호제(미국 산타클라라대 교수)씨 장인상 이정화(이화여대 독문학과 동창회장)씨 시부상 강현서(독일 뮌헨대 연구원)씨 조부상 1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5일 오전 7시 (02)3410-6917 ●박남건(메리츠종금증권 영업이사 상무)정건(자영업)필건(삼성생명 본부장)혜금(영재치과의원 원장)씨 부친상 2일 부산 해운대백병원, 발인 4일 오전 (051)711-1452 ●구태희(전 경인일보 사진기자)씨 모친상 2일 충북 충주의료원, 발인 4일 오전 8시 (043)871-0780 ●최동규(산업통상자원부 FTA정책관)씨 부친상 2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4일 오전 9시 30분 (02)2258-5940 ●변제호(금융위원회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 운용기획팀장)씨 부친상 2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4일 오전 9시 30분 (02)2227-7566 ●박기태(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단장)종호(네오아이즈 이사)정아(롯데백화점 평촌점)씨 모친상 2일 서울의료원, 발인 4일 오전 9시 (02)2276-7671
  • [씨줄날줄] 취재윤리/안미현 논설위원

    1980년대 프리랜서 사진기자 케빈 카터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네클리스’를 처음 목도하고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힌다. 네클리스는 휘발유를 채운 타이어를 목에 걸게 한 뒤 불을 붙여 죽이는 공개처형 방식이다. 몇 년 뒤 케빈은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람들이 하는 짓을 보고 놀랐고, 이런 현장에서 내가 하는 일에 대해 한 번 더 놀랐다. 사람들은 내가 촬영한 사진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렇게 충격적인 현장에서 목격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꼭 형편없는 일이라고만 치부할 수는 없다.” 1990년대 케빈은 내전이 한창인 수단으로 향하던 중 기도하듯 땅바닥에 엎드린 소녀를 발견했다. 소녀의 뒤에는 독수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셔터를 눌렀다. 먹을 것을 갈구하는 듯한 소녀와 ‘먹잇감’이 죽기를 기다리는 듯한 독수리의 조용한 응시…. 미국 뉴욕타임스는 1993년 3월 이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그 어떤 말보다 전쟁의 참상을 소름 돋치게 포착한 사진 앞에서 전 세계는 전율했다. 셔터를 누르기 전에 소녀를 구해야 했다는 비판여론도 동시에 들끓었다. 논란 속에 이 사진은 이듬해 퓰리처상을 안았다. 퓰리처상을 받아든 몇 달 뒤 케빈은 차 안에 가스를 틀어놓고 서른 넷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살 이유를 두고는 지금도 주장이 분분하다. KBS가 성재기 남성연대 대표의 투신 장면을 촬영한 것을 두고 시끌시끌하다. 성 대표는 지난 25일 남성연대 홈페이지에 “남성연대 부채 해결을 위해 1억원만 빌려달라. 내일 한강에서 뛰어내리겠다”는 글을 올린 뒤 실제 뛰어내렸다. 사흘이 지난 어제 시신이 발견됐다. KBS 측의 해명에 따르면 “취재팀이 마포대교에 도착해 보니 성 대표가 보이지 않아 경찰에 신고했고 그 뒤 한 남자가 다리 난간에 매달려 있다는 제보를 받고 그곳으로 달려갔지만 순식간에 뛰어내렸다”고 한다. 말릴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장면이 찍힌 또 다른 사진을 보면 남성연대 측 관계자로 보이는 두명도 촬영을 하고 있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소녀와 독수리’에 빗대 촬영기자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보다는 촛불시위는 외면하면서 ‘자살 퍼포먼스’ 예고 현장에는 득달같이 달려가게 한 KBS의 제작 태도가 더 난타당하는 양상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논란에 앞서 우리 사회의 불감증이 더 마음에 걸린다. 많은 이들이 성 대표가 투신을 예고했을 때 ‘쇼’쯤으로 치부했다. “자살하려는 게 아니다. 살아 나올 자신이 있다”는 말을 너무 안이하게, 냉소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은 아닌지…. 안미현 논설위원 hyun@seoul.co.kr
  • 교황님 봉변당할 뻔

    프란치스코 교황의 취임 후 첫 남미 브라질 방문 일정이 시작된 22일(현지시간) 경호를 맡은 경찰과 브라질 정부의 재정낭비에 반발하는 시위대가 충돌해 최소 3명이 다치고, 6명이 구금됐다. 이날 브라질 일간 오글로보 등에 따르면 가톨릭 청년 축제인 ‘세계청년대회’ 참석차 수도 리우데자네이루를 찾은 프란치스코 교황은 행렬 도중 1500여명의 시위대에 에워싸여 어쩔 수없이 헬리콥터를 타고 이동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의 첫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수만명의 신도들이 모였지만 그 중에는 지난달 초부터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 정부에 정치개혁을 요구해 온 시위대도 포함돼 있었다. 브라질 정부의 조치로 이번 교황의 행렬에는 3만명의 군 및 경찰력이 동원됐지만 역부족이었다. 브라질 군 관계자는 “교황의 경호가 취약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칫 (시위대가 던진)돌이나 무언가에 맞았다면 더 심각한 상황을 초래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소형 피아트 차량을 타고 이동하다 무개차로 갈아타 시내를 가로지르던 교황은 결국 헬리콥터를 이용해 주지사 집무실이 있는 리우데자네이루 과나바라 궁에서 열린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교황은 가톨릭 청년들에게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형제·자매로 이뤄진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경찰은 환영식 이후 최루가스와 물대포, 섬광탄을 동원해 시위대를 해산했다. 이 과정에서 대치상황을 취재하던 AFP 통신 소속 일본인 사진기자가 전투경찰의 곤봉에 머리를 맞아 심한 출혈로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본지 박지환기자 보도사진상

    본지 박지환기자 보도사진상

    서울신문 사진부 박지환 기자가 18일 한국사진기자협회(회장 김정근)에서 주관하고 캐논코리아 컨슈머이미징㈜이 후원하는 제125회 이달의 보도사진상 ‘스팟뉴스’ 부문에서 최우수상에 선정됐다. 수상작인 ‘기어서라도’는 밀양 송전탑 건설현장에서한전 직원들 사이를 기어서라도 돌파하려는 할머니의 애절한 모습을 담고 있다.
  • [부고]

    ●이진철(일동주조 회장)진하(맛샘 회장)진강(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진팔(사업)진소(사업)씨 모친상 동한(미국 거주)인한(미국 거주)문한(대검 공안3과장)세인(부산대 로스쿨 교수)명한(삼성디스플레이 책임)영한(LG전자 선임연구원)씨 조모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1일 오전 8시 (02)3410-6915 ●이재준(수원시 제2부시장)씨 부친상 28일 수원 연화장, 발인 31일 오전 (031)218-8708 ●김주한(KBS 목포방송국 촬영부장)씨 장모상 28일 목포 기독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061)287-4446 ●민영환(자영업)수용(한국프로골프협회 사진기자)씨 부친상 진용학(전 매일경제신문 사진부 차장)씨 장인상 2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30일 오전 (02)2258-5940 ●오세종(SST 회장)씨 부인상 승석(SST 이사)씨 모친상 이근(홍익대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장)김형욱(KT T&C부문 프로덕트1본부장)씨 장모상 2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30일 오전 8시 30분 (02)3010-2230 ●조영필(전 조선대 치과대학장)씨 별세 28일 연세강남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8시 30분 (02)2019-4002 ●정구영(감고을노인병원 홍보부장)구상(합동전기 대표)구복(충북 영동군수)씨 모친상 28일 충북 영동병원, 발인 31일 오전 9시 (043)743-4499 ●이경식(삼성전자 전무)씨 장모상 2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30일 오전 7시 (02)3410-3151 ●김미영(한국은행 부속의원 치과의사)성일(전 세브란스병원 원무과 근무)씨 모친상 천사무엘(한남대 기독교학과 교수)전봉균(치과의사)씨 장모상 2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30일 오전 6시 30분 (02)2227-7577
  • ‘수병과 간호사’ 찍은 카메라 1억6000만원 낙찰

    ‘수병과 간호사’ 찍은 카메라 1억6000만원 낙찰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수병과 간호사의 키스’를 찍었던 카메라가 경매에 나와 고가에 낙찰됐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세기의 키스로 손꼽히는 이 사진을 찍은 카메라가 오스트리아 빈의 베스트리히트 갤러리에서 25일(현지시간) 열린 경매에 나와 11만 4000유로(약 1억 6000만원)에 팔렸다. 작가의 서명이 돼 있는 이 사진 프린트 한 장도 2만 4000유로에 낙찰됐다. 이 사진은 뉴욕의 시사화보잡지 사진기자였던 독일 출신 알프레드 아이젠슈타트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8월 14일 두 남녀가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서 만나 승전을 기뻐하며 환희의 키스를 나누는 모습을 찍은 것으로, ‘종전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다. 사진 속 간호사는 당시 27세였던 이디스 셰인으로 2010년 91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수병은 로드아일랜드주 뉴포트에 거주하는 해군 출신 어부 조지 멘돈사(90)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사진가가 찍고 시인이 숨결을 불어넣다

    탁기형은 사진가다. 정확히는 보도사진가다. 몇몇 신문사 사진기자를 거쳐 지금은 한겨레21 사진 부문 선임기자로 뛰고 있다. 그가 시인 전영관과 함께 포토에세이집 ‘그대가 생각날 때마다 길을 잃는다’(푸른영토 펴냄)를 냈다. 시인은 웅숭깊은 문장으로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고, 사진가는 감성 넘치는 사진으로 문장을 빛낸다. 흔하지는 않지만, 요즘 간간이 시도되는 형태의 책이다. 탁기형의 사진은 절묘한 압축미를 구사한다. 사진을 흘낏 보는 것만으로도 그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혹은 사진 속 인물들이 무얼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를 단박에 알게 된다. 그가 오랫동안 보도사진 분야에 천착해 온 덕분일 것이다. 학부에서 예술사진을 전공한 그는, 그보다 몇 곱절 긴 시간을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보냈다. 여러 함의와 다양한 복선으로 가득 찬 역사의 한 순간을 함축적이되 명료한 사진에 담아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직업 정신’이 작품 곳곳에 스며 있다.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들에 주목했다. 그렇다고 숱한 연애지침서들처럼 사랑앓이에 대한 위로나 연애 방정식을 알려주는 법은 없다. 사랑과 이별에 공식이 없는데, 따로 해답이 있을 리 없잖은가. 어느 시인이 말했듯 “상처와 치유를 반복하며 견디라”는 게 충고라면 충고겠다. 사진가가 보여 주는 “깊고 넓고 여러 겹”인 세상 풍경도 결국엔 ‘상처와 똑바로 마주하기’에 맥이 닿는다. 1만 4800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칸의 여인⑨] ‘위기의 주부’ 에바 롱고리아 ‘노팬티’ 굴욕

    [칸의 여인⑨] ‘위기의 주부’ 에바 롱고리아 ‘노팬티’ 굴욕

    ’위기의 주부’ 에바 롱고리아(38)가 위기일발 순간을 겪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열린 제66회 칸 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한 롱고리아는 드레스를 들어 올리다 실수로 ‘중요 부위’를 노출하고 말았다. 이날 에머랄드빛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고 레드카펫을 거닐던 롱고리아가 ‘사고’를 친 것은 행사장이 빗물이 넘쳐났기 때문. 드레스가 젖지않게 치마 자락을 들어 올렸다가 뜻하지 않게 속옷도 입지 않은 모습을 노출하고 만 것. 순간 수많은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고 이 사진은 전세계 연예매체를 장식해 롱고리아는 뜻하지 않은 망신을 당했다. 그러나 롱고리아는 의연(?)했다. 사고 후 롱고리아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드레스를 자랑하며 “더이상 의상으로 인한 부작용(?)은 없다.”고 적었다. 한편 롱고리아는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에서 가브리엘 솔리스로 출연하며 전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인터넷뉴스팀
  • [주말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1, 2부(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견습 수녀인 마리아는 미사도 잊을 정도로 노래를 좋아하며 기도시간에 늦는 등 수녀로서의 자질을 의심받는다. 하지만 항상 쾌활한 성격으로 원장 수녀의 귀여움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리아의 장래를 생각한 원장 수녀는 명문 트랩가의 가정교사로 그녀를 추천한다. 퇴역 해군 대령으로 7명의 자녀를 둔 홀아비 트랩은 엄격한 군대식 교육을 해 아이들은 아빠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아름답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밝은 분위기를 찾도록 노력한다. 한편 마리아는 언제부터인가 트랩 대령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만 그에게는 이미 약혼녀 백작 부인이 있는 상황이다. 트랩 대령이 백작부인을 맞으러 빈으로 떠나자 마리아는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게 해준다. ■독립영화관-미운오리새끼(KBS1 토요일 밤 1시 5분) 1987년 전직 사진기자 출신에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줄을 놓아버린 아버지와 그 바람에 미국으로 떠나버린 어머니 때문에 멀쩡한 23살 낙만은 오후 6시 정시에 퇴근하는 6개월 방위로 입대한다. 낙만은 이발병으로 입대하지만 그가 하는 일은 고작 사진 찍기, 바둑 두기, 헌병 대신 영창 근무 서기 등 일당 백의 잡병으로 취급당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무시당하던 낙만은 얼른 이 생활을 마무리하고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 와중에 별별 희한한 감방 수감자들을 만나고, 자신을 눈엣가시라 생각하는 중대장의 딴죽과 시시콜콜 군대의 온갖 잡일을 시키는 선임병들의 횡포에 시시각각 낙만의 군생활은 위협을 받는다. ■베스트셀러(OBS 일요일 밤 10시 15분) 희수는 10여년간 대한민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군림해 왔다. 하지만 발표한 신작 소설이 한 공모전의 심사를 맡을 당시 작품을 표절했다는 혐의를 받게 돼 하루아침에 사회적 명성을 잃고 결혼생활마저 순탄하지 못하게 된다. 그 후 2년 동안 창작생활이 어려워진 희수는 오랜 친구인 출판사 편집장의 권유로 화려한 재기를 꿈꾸며 딸 연희와 함께 시골의 외딴 별장으로 내려간다. 그들이 찾아간 별장은 굳게 잠긴 2층 구석방, 간헐적으로 집안 전체에 울려퍼지는 기괴한 진공 소리, 작업실 천장에 점차 번져가는 검은 곰팡이 등 왠지 모를 섬뜩한 분위기가 가득하다. 한편 희수의 딸 연희는 ‘언니’라고 불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 [칸의여인⑥] 조지아 메이 재거, 붉은 드레스로 ‘모델 몸매’ 과시

    [칸의여인⑥] 조지아 메이 재거, 붉은 드레스로 ‘모델 몸매’ 과시

    영국의 유명 모델인 조지아 메이 재거(Georgia May Jagger·21)가 15일 개막한 제66회 칸 영화제 오프닝 세레모니에 참석했다. 이날 그녀는 가슴이 깊게 파인 늘어 뜨린 붉은색 드레스를 입었다. 입술은 레드립으로 치장, 강렬한 이미지에 관능미까지 묻어 났다. 또 11캐럿의 다이아몬드 귀걸이를 매치해 화려함과 세련미를 뽐내, 레드카펫 주위를 둘러싼 관객들과 사진기자들의 많은 주목을 받았다. 조지아 메이 재거는 록 그룹 ‘롤링스톤즈’의 보컬리스트인 믹 재거의 딸로도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그녀는 현재 세계적인 패션 잡지 ‘보그’와 ‘바자’등의 전문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레드카펫을 행사를 시작으로 막을 올린 칸 국제영화제는 오는 26일까지 진행된다. 이번 칸영화제 개막작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위대한 개츠비’가 장식했다. 사진=TOPIC / SPLASH NEWS(www.topicimages.com) 인터넷뉴스팀
  • 사진으로 본 5·18…피카소의 삶 오롯이

    녹음이 우거진 푸른 5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이색 전시회들이 눈길을 끈다. 33년 전 ‘그날’을 소재로 사진작가들의 해석을 덧입힌 ‘그날의 훌라송’전과 피카소의 알려지지 않은 이면을 담은 ‘피카소, 예술과 사랑’전이다. ‘그날의 훌라송’전은 5·18민주화운동을 사진저널리즘과 현대사진을 통해 재해석했다. 사건의 무대인 광주가 아니라 부산에서 열린다. 지방 최초의 사진전문미술관인 고은사진미술관에서 오는 18일부터 7월 31일까지 전시된다. 이상일, 이창성, 강홍구, 권순관 등 사진작가 11명이 11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회에 참여하는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본부장은 사진기자로서 당시 상황을 꼼꼼하게 기록한 자신의 사진들을 풀어놨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작품들이다. 사진마다 개인적 트라우마에 작가적 시선을 곁들였다. ‘그날의 훌라송’이란 제목은 당시 5월 광주에서 가장 많이 불렸던 노래인 ‘훌라송’에서 따왔다. “손뼉 치며 빙빙 돌아라”는 동요로도 알려진 이 노래는 5·18 시위대가 “무릎 꿇고 사는 것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노라 훌라훌라”라고 가사를 바꿔 부르면서 알려졌다. (051)746-0055. ‘천재 예술가’ 피카소의 예술과 사랑도 이목을 집중시킨다. “나는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 4년이란 시간을 소비했다. 그러나 아이처럼 그림을 그리기 위해선 평생을 바쳤다”는 피카소의 말처럼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경기 안양 롯데백화점 내 롯데갤러리 안양점에서 오는 17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열린다. ‘천재 예술가 피카소’ ‘영원한 뮤즈-피카소의 여인들’ ‘피카소의 초상-앙드레 빌레르 사진’ 등 3부로 구성됐다. 이번 전시에선 1940년대 후반부터 제작하기 시작한 피카소의 판화와 도자기 22점, 앙드레 빌레르가 찍은 피카소의 흑백 사진 30점도 만날 수 있다. (031)463-2715.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12일 TV 하이라이트]

    ■KBS 파노라마(KBS1 밤 10시) 화산에 빠진 한 남자, 제프 매클리는 15년간 전 세계의 활화산을 직접 촬영해 온 뉴질랜드 탐험가다. 그가 찾았던 수많은 화산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도전은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의 엠브림이다. 섭씨 1200도의 용암이 들끓는 용암 호수 30m 앞,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뜨거운 현장을 카메라에 담았다. ■VJ 특공대(KBS2 밤 10시) 영화 ‘아이언맨 3’를 들고 홍보 월드투어를 진행한 주인공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우리나라를 먼저 찾았다. 비공개로 전용기를 타고 오는 할리우드 스타를 놓칠세라 이른 시간부터 공항에서는 사진기자들과 팬들 간의 포토라인 영역전쟁이 벌어진다. 기자들은 1분 1초라도 먼저 기사를 띄우기 위한 속도 전쟁이 시작된다. ■나 혼자 산다(MBC 밤 11시 15분) 서로의 성격이 너무나도 반대인 ‘방치남’ 서인국과 ‘결벽남’ 노홍철이 어색한 한강 나들이에 나선다. 한편 연륜이 느껴지는 ‘기러기 아빠’ 김태원과 ‘골드미스터’ 형님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 그리고 각자의 인터뷰에서 최악의 조합과 실망의 악순환을 토로하는 이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5시 35분) 오늘도 엄마를 애타게 찾으며 우는 다섯 살 예은이. 엄마가 어디 먼 곳으로 떠났을까 싶지만 떠나기는커녕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엄마를 향해 이렇게 울부짖고 있다. 엄마의 조그마한 움직임에도 방방 뛰며 기절할 듯 울부짖는 예은이는 왜, 코앞에 있는 엄마를 이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걸까. ■하나뿐인 지구(EBS 밤 7시 30분) 전직 교사출신 주민들을 주축으로 만든 선애학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전 학년이 모인 대안학교이다. 충북 보은, 전남 고흥과 영암에 3개의 캠퍼스가 있는 선애학교의 교육은 특별하다. 방학 2주 동안학생들이 함께 합숙하며 집중교육을 받고, 중국의 선애학교와도 연계해 동아시아로 넓혀가고 있는데…. ■프린세스 다이어리(OBS 밤 11시 5분) 미아는 샌프란시스코의 고등학생이다. 영리하지만 수줍음을 많이 타는 미아는 미술가인 어머니 헬렌과 단둘이 산다. 남들처럼 미아도 로맨틱한 사랑을 꿈꾸지만 부스스한 외모와 수줍음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항상 따돌림을 받는다. 그런 그녀에게 평생 연락을 끊고 살 줄 알았던 할머니가 온다는 소식이 날아온다.
  • 佛기마병 옷 차림 사관생도 그냥 폼 나니까 입힌다?

    1997년 중국 반환을 앞둔 홍콩에서 영국 국기 하강식이 열렸다. 조금 있으면 사라지게 될 장면. 사진기자들이 스케치성 취재에 나섰다. 그때 찍힌 사진은 바람에 펄럭이는 킬트, 그 사이로 드러난 스코틀랜드 병사의 근엄한 알궁둥이였다. 안 그래도 늘 질문에 시달리던 차에 대체 킬트 안에 뭘 입느냐는 질문에 또 시달리게 됐다. 킬트가 남자의 옷이다보니 마릴린 먼로처럼 몸을 배배 꼬면서 샤넬 넘버 파이브라 답할 수는 없는 노릇.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인정하는 베스트 대답. Q : 킬트 안에 무엇을 입으셨나요? (여자에게 답할 때) A : 신이 주신 은총을 입고 있다오. (아주 무례한 여자에게) A : 커다란 백파이프요! 만져보시겠소? (남자에게 답할 때) A : 스코틀랜드인의 자부심을 입고 있다오. (아주 무례한 남자에게) A : 당신 마누라의 립스틱! ‘옷 입은 사람 이야기’(이민정 지음, 바다출판사 펴냄)는 옷에 대한 재밌는 얘기 모음이다. 그렇다고 낄낄거릴 내용만은 아니다. 저 얘기 끝에 저자는 우리나라는 왜 버젓한 전통 내팽개치고 육해공군 사관생도들에게 프랑스 기마병 옷을 입히느냐고 되묻는다. 그냥, 폼 나니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미친 모자 장수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16~19세기 유럽의 비버털 모자 유행을 읽어낸다. 존 에스터라는 모피사업가가 현재 돈으로 1100억 달러, 그러니까 약 132조원을 벌어들일 정도로 어머어마한 유행이었다. 비버는 멸종위기에 몰렸고, 비버 털을 치대 모자를 만들던 모자장이들은 수은 중독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이 비버 광란은 19세기 중반, 딱 멈췄다. 비버 사랑 자연 사랑을 깨달아서? 비천한 노동자들의 수은 중독을 더는 눈뜨고 지켜볼 수 없어서? 이유는 딱 하나. 유행이 바뀌었다. 비버털 모자에서 실크 모자로. 미트 롬니 전 공화당 대선 후보로 인해 부각됐던 모르몬교의 특이한 속옷 문화, 히잡을 쓴 역도선수 쿨숨 압둘라의 사례, 온몸을 검은 천으로 둘러싸고 있으면서도 팬티만큼은 초특급으로 야한 것만 골라 입는 시리아의 희한한 풍속, 모피 반대 운동 등 동물해방을 외치는 페타(PETA·동물의 윤리적 처우를 지지하는 사람들) 운동의 너무 극단적이고 이율배반적인 행위 등 옷과 문화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흥미롭다. 리바이스 청바지의 신화를 해체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16년간 옷 공부를 하면서 모아뒀던 이런저런 자료에서 재밌는 얘기들을 추출해냈다. 1만 28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34일째 겉돌던 정부조직법 협상… 큰 틀에서 합의점 겨우 찾아

    34일째 겉돌던 정부조직법 협상… 큰 틀에서 합의점 겨우 찾아

    정부조직법개정안 협상이 34일째 교착되면서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일주일인 4일까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를 맞게 됐다. 정치권도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시작부터 국정 운영의 추동력을 상실하며 흔들리고 있고 야권은 야권대로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협상 가능성은 종일 열려 있었다.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협상 쟁점을 ‘방송의 공정성 확보 방안’으로 좁히면서 물꼬가 트일 기미가 보였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제 작은 줄기를 잡은 것”이라며 협상에 진전이 있었음을 내비쳤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민주당이 주장하는 ‘방송의 공정성 확보’에 대해 공감의 뜻을 전했다. 청와대가 제안한 5자 회담은 무산됐지만 오후 내내 양당 원내수석부대표 간 마라톤 협상이 계속됐다. 새누리당 이 원내대표·김기현 원내수석부대표와 민주통합당 박 원내대표·우원식 원내수석부대표는 저녁 내내 각 당 원내대표실에서 이봉건 새누리당 원내대표 비서실장을 메신저로 교환하며 마지막 타결을 시도했다. 민주당이 IPTV의 인허가 및 법령 제·개정권을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는 쪽으로 양보하기로 접점을 찾았다. 민주당 쪽에서는 밤 10시 20분쯤 합의문 발표 임박을 예고하면서 희망 섞인 관측이 나왔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풀 사진기자단을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현 방송통신위원회에서 관장하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사업자의 법령 제·개정권을 놓고 이견이 불거지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밤늦게 이 원내대표를 방문하는 등 당청도 긴박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 정무수석이 밤 10시 50분쯤 소득 없이 원내대표실을 떠났고 곧이어 이 원내대표, 김 원내수석부대표도 11시 30분쯤 ‘금일 협상 종료’를 선언했다. 김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과) 통화해 보니까 안 된다고 한다. 내일 또 해야죠”라면서 방을 나섰다. 이 원내대표는 “SO 인허가권을 방통위에 두고 제·개정권을 달라고 해서 타결될 줄 알았다”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박 원내대표 역시 “원점으로 돌아갔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러나 여야는 나머지 사항에선 큰 틀의 합의점을 이뤄 합의문 작성을 거의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청와대가 얽힌 실타래를 푸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박 대통령이 이번에는 특유의 ‘원론 고수’ 자세에서 벗어나 대안을 제시하는 타협의 정치력을 발휘할 때라는 지적이다. 여권 관계자는 “여야 협상이 출구를 못 찾는 상황에서 야당이 요구하는 방송 공정성 담보 방안에 대해 획기적인 안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4일 오전 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에서 이 같은 내용이 제시될지 주목된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DB를 열다] 1965년 초가집 처마 밑 햇볕 쬐는 아이들

    [DB를 열다] 1965년 초가집 처마 밑 햇볕 쬐는 아이들

    초가집 처마 밑에서 두툼하면서도 남루한 옷을 입은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햇볕이 제법 따뜻해지자 아이들이 양지에 나와 겨우내 움츠렸던 몸을 녹이고 있는 것이다. 1965년 2월 17일 서울 근교의 어느 마을이다. 이날은 절기상으로 우수(雨水)여서 사진기자가 스케치 취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우수라는 말은 눈이 녹아서 빗물이 된다는 뜻이니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온다는 의미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사진상으로는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구슬치기쯤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마당이나 공터에서 할 수 있는 놀이의 종류는 무척 많았다. 비석치기, 사방치기, 술래잡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공기놀이, 자치기, 고무줄놀이, 깡통차기 등 손가락으로 꼽기 어렵다. 사진의 초가집은 초가집이기는 하지만 벽의 절반쯤을 돌로 쌓은 점이 특이하다. 구한말에는 서울에 있는 주택의 70%가 초가집이었다는 통계가 있다. 1960년대에도 서울에서 초가집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다. 1961년 말 서울에는 초가집이 1만 6770채 있었다고 기록돼 있다. 당시 전체 주택 26만 1867채의 6.4%에 해당한다. 사대문 안에도 초가집이 있었고 사대문을 벗어나면 시골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서 초가집 동네는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몸 바쳐’ 돈 벌어오던 형이, 엄마를 죽였다

    ‘몸 바쳐’ 돈 벌어오던 형이, 엄마를 죽였다

    살인 사건이었다. 13평 아파트에 사는 중년의 변계숙이 살해됐다. 범인은 볼링공으로 내려쳤다. 범인은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주변을 돌아다닌 터라 7명이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고 15분 만에 잡혔다. 현장검증에서 범인은 거침없이 자신의 범행을 재연했다.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살해 직전 변계숙에게 건넸다고 했다. 신문 1면 헤드라인은 ‘후안무치한 살인범 춤추듯 현장으로’로 채워졌고, 2면과 3면 사진은 ‘태연자약하게 범행 재연 반성의 기미 전혀 없어’가 됐다. 현장검증이 끝나 사진기자들과 형사들이 사라진 살해 현장, 아파트에는 락스와 향균스프레이, 수세미를 든 조인호가 서 있다. 조인호는 변계숙의 아들이다. 또한 범인은 조인호의 형이다. 여기까지 읽고서 존속살해를 당한 피해자이자 범인의 가족으로 살아가야 하는 조인호의 굴곡진 인생이 등장하려니 했다. 그러나 안보윤(32)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모르는 척’(문예중앙 펴냄)의 주인공은 조인호의 네 살 위 형, 어머니를 살해한 조인근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신문 사회면에 있을 법한 보험 사기라는 것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그러니 이야기의 대강과 결말도 윤곽이 잡히는 듯했지만 예단은 어긋났다. 부모의 사랑을 갈구하는 형제의 심리적 갈등과 편애가 낳게 되는 병리적인 감정, 착한 자식이자 가장으로 길러지는 맏이의 운명, 제대로 살고 싶은 가난한 사람들의 욕망 등이 ‘자본주의적 폭력’과 뒤얽혀 굴러가기 때문이었다. 어느 집이나, 어느 집단이나 헌신적이고 희생적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너 아니면 안 돼’라는 마법 같은 주문에 휘둘린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사람들은 산다. 그런데 헌신적인 사람들은 어느덧 그 주문에 휘말려 자기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나 하나 고생하면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진다며 각오를 다진다. 그런데 그들의 헌신은 고작 ‘제가 좋아서 그러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이해된다. 전업주부였던 변계숙의 가족은 가장인 아버지가 돌연사한 탓에 가난한 P시로 흘러왔고, 무능한 엄마 대신 12살의 맏아들이 가장 역할을 떠맡았다. 머리를 벽에 짖이기고, 망치로 발가락뼈를 부러뜨리며, 높은 계단에서 뛰어내려 206개의 뼈가 모두 조각조각 났는데도 인근은 말한다.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다.” 그의 범죄의 기원은, 근친살해의 기원은 대체 어디서 찾아야 할까. 부모가 동반자살해 절집 아이로 자랄 수밖에 없었던 석문정은 이런 잔혹하고 매정한 상황을 적시한다. “제일 나쁜 건 있지, 기대하는 마음이 생긴다는 거야.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당장 나한테 이득이 생기면 마음이 흔들려. 못 이기는 척, 모르는 척 받아들이게 돼. 그게 좀 더 지나면 당연해져 버리는 거야.”(201쪽) 가난하고 남루한 P시 청소년의 대화도 암담하다. 가난은 뿌리가 깊다. “아빠가 시멘트 개고 엄마가 벽지 바르고 내가 벽돌 나르면 알콩달콩 신도 나겠다, 씨발. 노가다가 가업이라니 끔찍하잖아.”(207쪽) 왜 제목이 ‘모르는 척’인가. 사실 우리는 헌신적인 사람들의 고통을 모르는 척하고 영악하게 부려 먹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폭력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32살의 젊은 작가가 묻고 있다. 우리는 또 무엇을 모르는 척 회피하고 있는지 큰 바늘로 쑤시는 듯하다. 같은 사실을 처한 상황과 인지 수준에 맞게 이해하는 인근과 인호의 엇갈리는 서술은 영화 ‘오! 수정’이나 소설 ‘산체스의 아이들’을 떠올린다. 작가는 2005년 문학동네 작가상으로 등단해 2009년 제1회 자음과모음 문학상을 받았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웹 사진신문 ‘프레스 포토’ 창간

    한국보도사진가협회 회원 등이 참여하는 사진전문 인터넷 신문 ‘프레스 포토’(www.ipressphoto.co.kr, 대표 김윤찬 전 서울신문 사진부장)가 창간됐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뉴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국민기자 제도를 채택, 사진동호회 등이 촬영한 스포츠 사진과 여행·축제, 추억의 옛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또 전직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대연각 호텔 화재, 테레사 수녀와 김수환 추기경 등 특종사진도 선보인다.
  • 사진전문 인터넷 신문 ‘프레스 포토’ 창간

    사진전문 인터넷 신문 ‘프레스 포토’ 창간

    한국보도사진가협회 회원 등이 참여하는 사진전문 인터넷 신문 ‘프레스 포토’ (www.ipressphoto.co.kr, 대표 김윤찬 전 서울신문 사진부장)가 창간됐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뉴스를 제공할 수 있는 국민기자 제도를 채택, 사진동호회 등이 촬영한 스포츠 사진과 여행·축제, 추억의 옛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또 전직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대연각 호텔 화재, 테레사 수녀와 김수환 추기경 등 특종사진도 선보인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씨줄날줄] ‘박근혜 핸드백’/육철수 논설위원

    권좌에 오른다는 건 영광이기도 하지만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보는 눈이 워낙 많으니 신경쓰이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얼마 전 ‘지엄하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이마에 ‘겁 없는’ 파리 한 마리가 앉았다. 전 세계 신문들은 이 사진을 큼지막하게 실었다. 파리가 보통 사람의 얼굴에 앉았다면 얘깃거리도 안 됐을 터. 대통령 체통에 경망스럽게 파리를 즉각 ‘격퇴’하지 못하고 사진기자에게 틈을 허용하고 만 오바마의 고충을 그 누가 알겠는가. 옛날 황제에게 ‘기본자세’를 가르친 이유도 결국 남의 눈 때문이었다. 제왕의 일거수일투족은 신하와 백성의 예리한 시선을 피할 도리가 없기에 항상 위엄과 단정함에 신경을 써야 했다. 용이나 호랑이처럼 점잖게 걷고(龍行虎步), 소매를 단정히 하고 위엄있게 용좌에 앉고(正襟威坐), 곁눈질을 하지 말며(目不斜視), 말할 때는 입모양을 비뚤게 하지 말라(口莫開)고 가르친 것은 뭇시선을 두려워하란 뜻이다. 요즘 국가지도자들의 언행과 치장은 상당 부분이 언론에 노출돼 순식간에 국민에게 알려진다. 옛날 제왕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세계의 여성 대통령이나 총리의 경우,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패션에도 입방아를 찧어대니 그 스트레스가 오죽할까 싶다. 핸드백은 여성의 패션에서 구두·브로치 등과 함께 중요 포인트 중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일부 여성 국가지도자들의 핸드백은 언론에 종종 화제가 된다. 독일 메르켈 총리는 중요한 날이면 오렌지색 핸드백을 들고 나타난다. 프랑스 브랜드 ‘롱샴’으로 알려진 이 핸드백은 300유로(50만원)짜리. 그는 옷 색깔과 상관 없이 이 핸드백을 메고 다녀 전문가들에게 ‘패션 테러’란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정상회담 등 주요 행사에 영국 명품인 검은색 ‘아스프레이’ 핸드백을 자주 들고 나왔다. 국무회의 때는 이 핸드백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서류를 꺼내 장관들을 꾸짖어 ‘권력의 상징’이 됐다. 헬레 토르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도 핸드백 애호가. 명품 백을 늘어놓고 화보까지 찍어 ‘구치 헬레’란 별명을 얻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회색 ‘타조가죽 핸드백’이 논란거리다. 100만원이 넘는 명품이라며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왁자지껄하다. 그런데 실은 국내 영세업체가 만든 저가 제품이라고 한다. 그래도 박 당선인이 들었으니 눈에 띄었나 보다. 주시하는 눈이 많으니 별 것 아닌 게 다 관심거리다. 새 대통령을 육안(肉眼)이 아닌 심안(心眼)으로 봐주는 누리꾼의 성숙함이 아쉽다.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상)

    [명사가 걸어온 길] 3. 한국 경제의 산증인, 박승 前 한국은행 총재(상)

    한국은행 총재, 건설부 장관 등을 지낸 박승 중앙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여전히 젊다. 공정 사회에 대한 갈망이 그 누구보다 강하다. 이메일·전자파일 등 정보기술기기를 다루는 데도 능숙하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여전히 많아 천문학과 사진을 배우고 싶어한다. 그의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는 이 같은 소망을 담은 책 제목이다. 193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난 박 교수의 집은 가난했다. 소작농이었지만 아버지는 한글 초서 개발에 매진한 학자였다. 아버지가 농촌에서 농사에 전념하지 않는 “반거충이”다 보니 어머니가 농사일을 전담했다. 아버지는 박 교수의 모교인 백석초등학교 설립을 주도했다. 아버지의 한글 초서연구 결과인 ‘한글씨’는 독립기념관에 보존돼 있다. 소년… 수업료 못 내 시험도 못 봐 하루에 14㎞를 걷고, 기차를 타고 이리공업중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수업료를 제때 내지는 못했다. 중간·기말고사 때는 교문 앞에서 수업료 납부 여부를 체크해 수업료를 낸 사람만 시험을 볼 수 있게 했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성적이 나쁜 것은 내 잘못이지만 수업료를 못내 시험을 못 봐서 성적이 나쁜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고민했지요. 이때의 고민이 나를 성숙시켰습니다.” 지난달 초 태국으로 출국하기 전 서울신문기자와 만난 박 교수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 간 유동성을 보장하는 것이 교육이기 때문에 교육은 빈부와 관계없이 사회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은 그때 경험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기차 통학을 같이한 사람들은 10여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박 교수보다 나이가 1∼2살 많았던 6명은 공산군 점령하에 청년대로 차출됐다. 수복이 되고 난 뒤에 그들은 빨치산이 돼 경찰서 습격사건을 벌이다 죽었다. 2명은 국군, 1명은 인민의용군으로 나가 전사했다. 박 교수는 “나는 나이가 어려서 살아 남았으니 이 또한 운명”이라면서도 “한국전쟁은 동족끼리 서로 죽인 가장 더러운 전쟁”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 일기를 썼다. 일기장은 갈색 종이를 사서 직접 만들어 썼다. 그중 일부는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일기가 내 일생의 성장에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일기에는 그날그날 일어난 일도 썼지만 느끼고 반성해야 할 일도 담았다. 그래서 일기는 매일매일 뉘우치고 기도하는 장소였다. “어려울 때 용기를 주고 잘나갈 때는 겸손을 줬다”며 “어려운 환경 속에서 내가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는 데는 일기의 힘이 컸다”고 회고했다. 박 교수는 지금도 간략하게 그날의 일과를 기록한다. 어머니… 베틀북, 개똥 옆에 떨어진 감 박 교수가 어렸을 때 그의 집안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다. 가난한 집안에 먹을 것도 귀했던 시절인지라 그는 일어나면 감나무 밑으로 뛰어가 떨어진 감을 주워 먹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맛있게 생긴 감이 개똥 바로 옆에 떨어졌다. ‘맛있게 보이기는 한데 먹자니 찜찜하고 그렇다고 버리자니 아깝고….’ 이런 고민 끝에 그는 감을 어머니에게 줬다. “이렇게 좋은 감은 너가 먹어라”는 어머니 말씀에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어머니는 파안대소하더란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내가 부모를 나처럼 모신 것이 아니고 개똥 옆에 떨어진 감처럼 대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더욱 그 느낌이 강했다. 지금도 그의 서재에는 어머니가 쓰던 유품을 모아놓은 궤짝이 있다. 서재 곳곳에는 작은 유품들도 놓여 있다. 사진 촬영을 위해 각종 기념품이 있는 서가에서 물건을 하나 들어달라는 사진기자의 부탁에 그는 망설임 없이 베틀북을 들었다. 어머니가 길쌈할 때 쓰던 도구다. 어머니가 짠 베를 염색한 뒤 그걸 교복으로 만들어 입고 다녔단다. 박 교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해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어려서부터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기를 원했지만 가난하기에 공부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해사를 고른 이유는 학비가 없어도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당시 병약한 부모와 나이 어린 여동생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 문제로 이어졌다. 결국 가족회의를 거쳐 1년간 농사를 짓고 공부하면서 서울대 상대 진학시험을 보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대학생… 한 손엔 책, 한 손엔 농기구 1년 뒤인 1955년 서울 상대로 시험보러 가던 길에 대한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서울 역전과 남대문 일대는 전쟁으로 여전히 폐허 상태였다. 종로 네거리를 지날 때 눈에 띈 간판은 곰탕집, 복덕방 등이었다. “곰탕집은 곰고기를 파는 곳, 복덕방은 무슨 떡집”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그의 점심은 어머니가 싸준 찐 고구마 다섯 개였다. 합격은 했지만 공부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다. 결국 평소에는 농사를 짓고 시험 볼 때만 학교에 나타나는 학생이 되었다. 서울에 머무는 동안은 고모집 신세를 졌다. 농사를 지으러 내려갈 때는 도서관에서 10여권의 책을 빌려가고, 학교에 있을 때는 친구의 공책을 보면서 경제학을 배웠다. 그래도 대학 4학년 때 동아일보에 매주 실렸던 대학생 논단에 환율, 농촌 개발 등 경제 현안에 대해 3차례나 칼럼을 썼다. 주경야독이었지만 실력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날은 집에 내려갈 차비가 없었다. 김제까지 걸어갈 수도 없고. 이런저런 궁리 끝에 서울역에서 개찰을 담당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개찰 담당 직원인 김진성씨는 그를 여객 전무한테 데려가서 설명을 하고 인계했다. 그 뒤로 여객 전무의 도움을 받아 몇 번 기차를 타고 왔다. 박 교수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그분을 찾으러 서울역에 갔으나 행방을 찾지 못해 아직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한국은행… 새 인생을 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경제학을 배웠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교수가 돼야 하고 유학이 필요했다. 가정 형편상 유학을 갈 수 없었던 박 교수는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곳으로 한국은행을 선택했다. 1961년 한국은행 입행으로 박 교수는 안정과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고 했다. “한은에 들어오면서 직장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공부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게 됐지요.” 한은에 합격한 기쁨에 일기장에 ‘쾌재!’라는 단어를 세 번이나 썼다. 한은에서 국민소득추계의 정확성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아 1967년 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1968년 박 교수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갔다. 당시 서봉균 재무부 장관을 초청해 환율을 크게 올려야 한다는 정책 건의를 했는데 이것이 다음 날 아침 동아일보 1면에 환율이 큰 폭으로 오르는 것처럼 보도가 됐다. 발설자를 찾기 위해 한은 부총재를 포함해 10여명이 끌려들어가 심문을 당했다. 그러나 발설자는 나오지 않았다. 결국 자료를 만들고 보고한 박 교수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발설한 셈이 된다고 해서 그가 징계를 받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러나 나중에 발설자가 드러나면서 한은 내부에서는 그에게 뭔가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그러던 1970년 한은에 해외 학술연수제도가 생기면서 박 교수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36세였다. 2년 동안 석사를 취득하는 조건이었으나 그는 박사까지 따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생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한 박 교수는 “전쟁하듯이” 공부를 했다. 보통 박사학위 취득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부분은 논문 작성이다. 박 교수는 한은 조사부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노동력 과잉 경제에 있어서 외국자본의 경제개발 효과’라는 논문을 썼다. 논문 작성에 걸린 시간은 6개월.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는 권하지는 않는다. 박 교수는 “그건 나처럼 시간이 한정된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라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고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수… 나의 꿈, 나의 길 경제학 박사가 돼 한국은행에 복귀하니 두 군데에서 일자리 요청이 왔다. 대통령 경제수석실에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과 경제기획원이 제안한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개발자문단이었다. 우리나라와 반대 조건인 나라가 궁금했던 박 교수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했다. 한국에 어머니와 세 자녀가 남고, 사우디아라비아에 아내와 두 자녀가 동행하는 이산가족 신세가 1년간 계속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돌아온 뒤 한은에 잠시 머물다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가 됐다. 평생의 꿈을 이룬 것이다. “꿈을 실현했으니 굿판의 무당처럼” 신나게 가르쳤다. 대학 교수로 일한 시간은 총 26년. 학기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의 평가를 받았다. 지금은 보편화돼 있지만 30여년 전에는 낯선 시도를 한 것이다. 시험 채점도 조교에게 맡기지 않고 두번씩 직접 점검해서 점수를 매겼다. 신문에 글을 쓰고 방송에 나가 강연하는 활동도 열심히 했다. 서울신문 비상임 논설위원으로 1977년부터 3년간 경제 관련 사설을 쓰기도 했다. 당시는 유신 말기라 정치나 사회 쪽 사설은 쓰기가 어려웠다. 경제로 관심이 쏠리면서 매주 4∼5회 사설을 썼다. 박 교수는 ‘서울신문 100년사’에 “신문 사설을 쓰기 전에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실감하지 못했다”며 “내가 쓴 사설에 정부, 기업, 경제단체들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고 그 중요성을 점차 깨달았고 이 때문에 큰 보람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고 적었다. 1986년에는 한은 금융통화위원으로 임명돼 활동했다. 당시 금통위원은 비상임이라 매주 목요일에만 한은으로 출근했다. <하편에 계속> 전경하 기자 lark3@seoul.co.kr ■박승 前 한은 총재는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1942~1948년 김제 백석초등학교 1948~1954년 이리공업중고등학교 1955~61년 서울대 상과대학 경제학과 1961~1976년 한국은행 조사부 근무 1972~1974년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석사 및 박사 1974~1975년 사우디아라비아 경제개발자문단장 1976년 9월~2001년 2월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1977~1979년 서울신문 논설위원 1986년 1월~1988년 2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1988년 2~12월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1988년 12월~1989년 7월 건설부 장관 1993~1996년 주택공사 이사장 1997~1998년 교통개발연구원 이사장 2001년 2월~2002년 3월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2001년 3월~ 중앙대 명예교수 2002년 4월~2006년 3월 한국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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