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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정보와 예술을 품은 광고판/최나욱 건축평론가

    [문화마당] 정보와 예술을 품은 광고판/최나욱 건축평론가

    코로나19 탓에 유동인구가 줄고 도시가 휑하다. 건물 단위에서 사라진 것은 광고판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사람들이 도시를 돌아다니지 않으니, 굳이 돈 들여 광고를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가시적이고 직접적인 효과를 기대한다면 자못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사진가 조반니 하니넨은 이 편견을 뒤집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없이 쏟아지던 지난 5월 밀라노의 광고판을 대여해 여러 가지 작업을 발표했다. 유례없을 정도로 스산해진 도시에서 과연 누가 보겠나 싶지만, 반대로 조반니는 ‘광고판이 담긴 도시 사진’을 다시 찍어 보이며 이렇게 말한다. “코로나 때문에 한산해진 도시 사진들을 나날이 찍고 공유하는 중이다. 지금처럼 도시의 광고판이 널리 선보일 날이 또 언제 있겠는가.” 평소 같았다면 광고가 집행되던 기간에만 거리의 사람들에게 보였겠지만, 역사적으로 기록될 작금의 ‘사람 하나 없는 밀라노 사진’과 함께 이 사진은 꽤나 광범위하게 소비될 것 같다. 도시를 직접 경험하는 일은 분명히 줄어들었지만, 역설적으로 ‘도시 자체’의 이미지는 여느 때보다 주목받는 것이다. 한때 불편한 도시 공해처럼 여겨지던 광고판이 반대로 오늘날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도시 이미지의 정보 요소로 위상이 바뀐 것도 그 방증이다. 광고와 정보의 차이는 사람들이 원하냐 원하지 않냐의 여부인데,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따라 이 관계 또한 전복된다. 이는 루이비통의 아티스틱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한참 전부터 해 왔던 주장을 연상하게 한다. 패션업계에서는 오프라인 매장을 여는 일이 성공의 징표나 다름없었는데, 아블로는 그것의 비합리성을 지적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의 진짜 기능을 다시 이야기한 바 있다. 앞으로 매장은 ‘무언가를 파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 있다’는 광고판의 기능이 전부라고 말이다. 심지어 매장에는 와이파이만 있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사람들이 매장 경험에 집중하고 있을 때 아블로가 이미지의 경험을 얘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조반니의 작업은 도시 경험을 이미지를 이용해 설명한다. 상당수의 직접 경험이 어려워져만 가는 상황은 건축과 도시 분야에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컨대 공간을 찾아 경험하는 게 어려워진 오늘날에도 과연 건축의 본질을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지,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곳곳을 경험하는 지금 우리에게 도시는 어떤 것인지 등등. 한때 너무 당연하게 믿어 왔던 믿음들이 깨져 가고 변화하는 중이다. 보이는 층위와 방법이 달라지면서 언젠가 광고였던 게 정보가 되기도, 광고판은 도시 이미지를 형성하는 중요한 건축 요소로 기능하기도 한다. 거리두기와 함께 ‘이미지’가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다. 아무리 이미지가 범람하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그렇지 않다고 주장해온 경험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일련의 경험마저도 점차 이미지로 소비되고 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데 더욱 비판적 역량이 요구된다. 그저 뻔한 유행과 감상을 반복하는 이미지 대신 말이다. 가령 그저 ‘비어 있다’는 황량한 감정을 조장하는 도시 이미지들의 반복은 예술적으로도 진부한 어휘이지만, 사회적으로도 사람들을 우울감에 빠뜨리는 일차원적인 기록 사진을 벗어나지 못한다. 직접 경험을 대리하는 역할로서 이미지는 갈수록 많은 것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지금 팬데믹 시대가 분명 비극일지라도, 특정 시대를 기록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어느 예술가들은 단순한 감상에서 벗어나 또 다른 통찰과 해석으로 나아가야 한다.
  • [전태일50]하림 “중대재해처벌법 심사전 ‘그 쇳물’ 노래를 부르라”

    [전태일50]하림 “중대재해처벌법 심사전 ‘그 쇳물’ 노래를 부르라”

    10년전 당진 사고 기억하며 작곡“각성제 먹고 일하던 여공들처럼지금 택배기사들도 과로로 숨져서글픔·분노 넘어 결연한 감정을여기저기서 연대의 깃발 들어야”“법안을 심사하는 위원회에서 노래를 한 번 부르고 심사를 시작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10년 전 당진에서 1600도 쇳물에 빠져 사망한 청년의 죽음을 위로한 댓글 시인 제페토의 시 ‘그 쇳물 쓰지 마라’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부활시킨 뮤지션 하림은 “국회의원들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심사하기 전에 노래를 불러보면, 최대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마음이 갈 것”이라고 자신했다.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그 쇳물 쓰지 마라/자동차를 만들지도 말 것이며/철근도 만들지 마라.” “더불어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서 제안해 부르면 더 좋겠다”며 웃는 하림과의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서울 금천구 하림의 작업실에서 진행됐다. 하림은 당진 사고 10주기(9월 7일)를 기억하며 “의미 있는 일이니 돕겠다”라는 생각에서 작곡하고 챌린지에 나섰다고 한다. 그런데 챌린지를 시작한 지 3일 만에 2018년 김용균씨가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의무감을 더 크게 느꼈다. 하림은 당시 페이스북에 “나쁜 마음들이 노래의 마음을 비웃는 듯하다. 평소보다 더 쓸쓸하고 화가 나는 건 아마 나도 노래하는 동안 노래의 마음을닮아서인가 보다. 노래가 힘이 생길 수 있을까”라고 적었다. 그는 지인들에게 챌린지에 참여해달라고 더 열심히 연락을 돌렸다. 그는 뉴스를 찾아보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처음 알게 됐다. 관련 법 국회청원이 1주일을 남겨두고 5000명 정도 부족했을 때는 조심스럽게 청원을 제안하는 글도 페이스북에 남겼다. “저한테 사랑 노래 불러 달라고 하지, 이런 목소리를 내면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도 조금 도와보고 싶어서 완곡한 표현으로 이런 것도 있다고 글을 썼어요.” 청원은 10만명을 달성했고, 하림은 “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물론 하림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낼 때 악플도 따라왔다. “악플조차 녹일 정도로 노래가 통하면 돼요. 자신 있어요. 말은 노래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결연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잖아요.” 실제 그는 “서글프거나 분노하는 것 말고 차분하게 연대하고 결연한 감정을 들게 하자”는 마음으로 작곡했다. 그는 조금 힘들어도 결연한 마음으로 깃발을 잡고 있다고 했다. 누군가는 깃발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당진 사고 10주기를 기리며 시작한 ‘그 쇳물 쓰지 마라 챌린지’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경유하며 자연스럽게 전태일 50주기(11월13일)로 이어지고 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민주노총 등이 전태일 50주기를 맞이해 통과시키려는 ‘전태일3법’ 중 하나다. 지난해 산업재해로 2020명이 사망했는데, 위험 방지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나 경영 책임자를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림은 “전태일과 산업재해를 방지하는 모든 법, 노래, 목소리들이 다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쇳물 쓰지 마라 챌린지와 전태일은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여공들에게 타이밍 약(각성제)을 먹였던 사람들은 당시에 같이 일하던 동료였잖아요.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동료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잖아요. 지금 택배 기사들도 원래 그러려니 하고 일하다가 과로사로 죽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회사에서도 책임이 없다고 나오고요.” 전태일을 가난한 시대를 어렵게 살아온 이들의 스토리가 아니라, 자기 존엄을 해치면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문제의식으로 하림은 바라본다. 하림은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넘어서서 몸 망치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순간에 일을 그만하고 회사에 진정서를 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노래다”고 강조했다. 그 쇳물 쓰지 마라 챌린지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림은 “여기저기서 깃발을 들어야 한다”고 한 번 더 강조했다. 하림은 노래가 천천히 오래 불리면서 진영 밖으로 넘어가길 바란다. 그는 “요즘은 태극기 노인분들이나 진보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자기 울타리 안에서만 자기 이슈를 소비하고 분노한다”면서 “생각들이 진영 밖으로 넘어가서 섞이는 과정이 필요한데, 노래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평화로운 수단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순풍 불 듯이 노래가 진영 밖으로 넘어들어가서 (진영 밖에 있는) 그분들이 어느 날 노래를 흥얼거려야 하는 것”이라며 “저는 음악가로서 상상하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래와 현장의 힘을 인터뷰 내내 강조했다. 하림은 “실제로 현장에서 불리면 음악이 알아서 일한다”며 “어떤 것도 뚫고 들어가지 못한 벽을 신비한 힘으로 뚫고 들어가고. 에너지를 담아서 어딘가로 전달하죠. 그게 정말 신비로운 걸 늘 느낀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비긴어게인에 참여하고 그 쇳물 쓰지 마라 챌린지까지 진행한 그에게 올해는 특별한 해다. 그는 “챌린지에 음악가들이 참여하는 것을 보면서 예술의 선한 의지라는 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면서 “음악이 위로가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더 느낄 수 있었다. 음악가로 더 책임감을 갖고 노래를 원하면 불러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금 힘이 있는 사람들이 깃발을 가져가서 부르기 시작하면 저도 마음껏 사랑 노래를 부를 수 있겠죠.” ※ 이 글은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앞두고 제작된 <전태일50> 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전태일50> 신문 제작에는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오늘의 전태일’ 이야기를 신문으로 만들겠다는 현직 언론사 기자, 사진가, 활동가들이 참여했습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만 고수 군산 인근 서해서 1년간 집중 촬영 아웃사이더로 제한 없는 자유 추구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을 고수하는 사진가 민병헌은 ‘회색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 복잡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는 작가다. 잡초, 폭포, 안개 등 자연을 주제로 그동안 선보인 연작 작업들은 한 폭의 수묵화나 연필화처럼 고즈넉이 스며드는 힘으로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가 이번엔 ‘새’ 연작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한 개인전에 새를 촬영한 작품 26점을 공개했다. 창공을 홀로 나는 새, 물위에서 헤엄치는 새의 무리, 하늘을 뒤덮은 철새들의 군무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회색 조로 펼쳐져 마치 꿈인 양 환상인 양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이 흐리니까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떨어져서 봐야 외려 잘 보인다”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였다. 뒷걸음질할수록 피사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의 사진들에는 디지털 기술을 빌린 어떤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삭이 없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실 그대로의 자연이 담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회화적인 느낌이 가능할까.그는 “흐릿한 사진은 흐린 날씨에 찍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똑같은 광경이라도 광선의 차이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흐린 날, 안개 낀 날, 어스름 저녁에 주로 촬영하는 이유다. 이전 연작 작업은 주제를 정한 뒤 3~4년 긴 시간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새’ 연작은 달랐다. 지난해 과거 필름들을 정리하다 새가 찍힌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촬영지는 집과 작업실이 있는 전북 군산 인근 서해안이었다. 전시회에는 서해안에서 찍은 작품과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전에 맞춰 프랑스 최대 사진 출판사인 ‘아틀리에 EXB’에서 ‘새’ 연작 50여점을 실은 사진집도 나왔다. 1955년생인 작가는 홍익대 건축공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헤어나질 못하겠더라”며 웃었다. 당시 사진을 전공한 유학파 1세대들이 활약하던 시기라 열등감과 소외감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는 사진이 재미있어서 열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암실을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 하면서 “전공을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홀로 작업해 온 것이 훨씬 도움이 됐다”고 했다. 안개가 잦은 양수리에서 17년을 살았던 작가는 5년 전 군산에 있는 100년 된 고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도시이면서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군산의 매력에 빠져 연고도 없는 곳에 무작정 정착했다. 군산과 서해안의 날씨와 풍광이 그의 카메라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전시는 오는 12월 2일까지. 글 사진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사진작가 민병헌 개인전 ‘새‘

    흑과 백 사이 절묘한 빛을 담다, 사진작가 민병헌 개인전 ‘새‘

    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회색이 존재한다. 아날로그 방식의 흑백사진을 고수하는 사진가 민병헌은 ‘회색의 달인’으로 불릴 정도로 그 복잡 미묘한 차이를 절묘하게 포착해 내는 작가다. 잡초, 폭포, 안개 등 자연을 주제로 그동안 선보인 연작 작업들은 한 폭의 수묵화나 연필화처럼 고즈넉이 스며드는 힘으로 보는 이들을 매혹시켰다. 그가 이번엔 ‘새’ 연작을 들고 왔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갤러리나우에서 개막한 개인전에 새를 촬영한 작품 26점을 공개했다. 창공을 홀로 나는 새, 물위에서 헤엄치는 새의 무리, 하늘을 뒤덮은 철새들의 군무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한 회색 조로 펼쳐져 마치 꿈인 양 환상인 양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사진이 흐리니까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는데 떨어져서 봐야 외려 잘 보인다”고 조언했다. 말 그대로였다. 뒷걸음질할수록 피사체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졌다. 그의 사진들에는 디지털 기술을 빌린 어떤 인위적인 가공이나 첨삭이 없다. 현장에서 촬영한 사실 그대로의 자연이 담겼을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회화적인 느낌이 가능할까.그는 “흐릿한 사진은 흐린 날씨에 찍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똑같은 광경이라도 광선의 차이에 따라 분위기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상황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흐린 날, 안개 낀 날, 어스름 저녁에 주로 촬영하는 이유다. 이전 연작 작업은 주제를 정한 뒤 3~4년 긴 시간을 두고 피사체를 촬영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새’ 연작은 달랐다. 지난해 과거 필름들을 정리하다 새가 찍힌 작품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1년간 집중적으로 작업했다고 한다. 촬영지는 집과 작업실이 있는 전북 군산 인근 서해안이었다. 전시회에는 서해안에서 찍은 작품과 이전에 촬영한 작품이 섞여 있다. 개인전에 맞춰 프랑스 최대 사진 출판사인 ‘아틀리에 EXB’에서 ‘새’ 연작 50여점을 실은 사진집도 나왔다.1955년생인 작가는 홍익대 건축공학과를 다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공부했다. 그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헤어나질 못하겠더라”며 웃었다. 당시 사진을 전공한 유학파 1세대들이 활약하던 시기라 열등감과 소외감이 심했다고 한다. “그때는 사진이 재미있어서 열중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암실을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피처로 여겼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 하면서 “전공을 안 한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깨달음이 왔다고 한다. “아웃사이더로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홀로 작업해 온 것이 훨씬 도움이 됐다”고 했다.안개가 잦은 양수리에서 17년을 살았던 작가는 5년 전 군산에 있는 100년 된 고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도시이면서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는 군산의 매력에 빠져 연고도 없는 곳에 무작정 정착했다. 군산과 서해안의 날씨와 풍광이 그의 카메라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하다. 전시는 오는 12월 2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투탕카멘 무덤의 사진사

    [곽민수의 고대 이집트 기행] 투탕카멘 무덤의 사진사

    역사상 가장 유명한 고고학적 발굴이라 할 수 있는 ‘투탕카멘 무덤 발굴’은 1922년 11월 4일에 시작됐다. 이날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는 “무덤의 첫 번째 계단들이 발견됐다”는 문장을 자신의 다이어리에 써 두었다. 그러니까 지난 11월 4일은 투탕카멘 무덤이 발견된 지 9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도굴되지 않은 왕묘는 놀라운 고고학적 발견들이 넘쳐나는 이집트에서도 그 예가 흔치 않은 것이었던 만큼, 무덤은 즉각적으로 학자들과 매스컴의 주목을 끌었다. 때는 바야흐로 20세기, 매스미디어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중이었다. 무덤 발굴 소식도 그 바람을 타고 여러 언론을 통해서 전 세계로 신속하게 퍼졌다. 그리고 이 소식은 서구사회에서는 ‘이집트학 열풍’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는데, 이때 형성된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학문으로서의 이집트학이 의지할 수 있는 든든한 사회적 배경이 됐다. 그런데 이때 투탕카멘 무덤 발굴 소식이 보다 더 생생하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식이 단지 글로서만 전해진 것이 아니라 사진과 함께 전해졌기 때문이다. 무덤의 발굴 과정 전체를 촬영한 한 사진가 덕분이었다. 그 사진가는 바로 해리 버튼이라는 인물이다. 해리 버튼은 1879년 영국 링컨셔에서 목공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노동계층의 집안에서, 그것도 아주 많은 남매들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와 마찬가지로 노동자로 살아갈 가능성이 매우 컸지만, 우연히 같은 마을에 살던 미술사학자 로버트 헨리 커스트와 교분을 갖게 됨으로써 인생이 크게 바뀌게 된다. 르네상스 시대에 관심이 있던 커스트는 1895년께 아예 피렌체로 이주를 하는데, 이때 그동안 좋게 봐 왔던 해리 버튼을 자신의 비서로 데리고 갔다. 버튼은 커스트를 따라가 옮겨간 피렌체에서 자연스럽게 예술에 대한 감각을 키웠고, 결정적으로 당시에는 최신이었던 기술, 즉 사진 촬영술을 배우게 된다. 버튼은 1910년에 이집트로 휴가를 가게 됐는데, 이때 그의 사진 능력을 높이 산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를 발굴 작업 기록을 위한 박물관 전속 사진사로 고용한다. 당시는 발굴 작업을 최대한 자세하게 기록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고고학 발굴이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대였고, 자연스럽게 발굴 현장에서의 사진 촬영이 갖는 중요성도 막 인식되기 시작했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고용된 버튼은 주로 미국인 이집트학자 허버트 윈록이 이끌던 발굴팀의 작업을 촬영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이후 버튼은 10년 넘게 이집트에서 머물며 점차 ‘고고학 전문’ 사진사가 돼 갔다.그러던 중 1922년 왕들의 계곡에서 발굴을 해 오던 영국인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아주 놀라운 발견을 해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황으로 보아 카터가 발견한 것은 도굴되지 않은 파라오의 무덤이었다. 이집트 고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플린더스 페트리의 발굴팀에서 훈련을 받아 고고학자로 성장한 카터는 아주 엄정하고 훌륭한 고고학자였지만, 아쉽게도 그의 발굴팀에는 전속 사진사가 없었다. 카터의 발견이 세기의 발견이 되리라 직감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는 대승적으로, 카터를 지원하고자 버튼을 카터 팀으로 파견했다. 결국 버튼은 투탕카멘의 무덤 발굴 과정 전체를 사진 촬영할 수 있었다. 그의 사진은 여러 언론사를 통해서 전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갔고, 서구사회에서 고대 이집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 내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했다. 버튼의 사진들은 매우 퀄리티가 높아 오늘날에도 자주 귀중한 자료로 사용된다. 여러분이 투탕카멘과 관련해 어디선가 한 번쯤은 봤을 좀 오래된 느낌의 흑백 사진들은 거의 대부분 버튼이 촬영한 것이다. 버튼은 이후에도 계속 이집트에 남아서 여러 고고학 발굴 작업에 참여했다. 그는 ‘파라오의 저주’라는 도시괴담을 비웃기라도 하이 당시 기준으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 60세까지 살았다. 그리고 이집트 중부 아슈트에 있는 외국인 묘지에 묻힘으로써 영원히 이집트에 남았다.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코로나19와 가을 하늘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코로나19와 가을 하늘

    가능하면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려고 한다. 취미 사진가로서 빛의 순간을 포착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어서다. 사진찍기는 세상을 찬찬히 관찰하고 음미하는 버릇을 들이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한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사진을 찍을 순 없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사진 찍기도 곤란하다. 뜀박질하면서도 사진을 찍을 수 없다. 걸어야 가능하다. 서둘러 급히 걷기보단 천천히 걸어야 세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올해 가을은 매우 특별했다. 가을 하늘이 올해처럼 맑고 투명한 적이 근래에 있었던가. 물론 지금의 장년층 세대가 뛰놀던 유년 시절에는 가을 하늘이 그야말로 투명하고 푸르렀다. 하지만 우리가 경제발전과 고도성장을 향해 달려가면서, 그리고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발돋움하면서 하늘은 암울하게 변했다. 어두컴컴해졌다. 2009년 가을,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익산시를 바라보며 찍은 사진이다. 우리가 작년까지 봤던 낯익은 하늘 아닌가. 연무와 공해에 찌든 하늘이다. 칙칙하기 그지없다. 이랬던 가을 하늘이 올해는 그야말로 환골탈태했다. 저마다 스마트폰으로 아름다운 저녁 하늘을 찍어 SNS에 올리느라 정신이 없다. 수십 년 동안 잃어버렸던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을 되찾은 것이다. 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맑고 공활한(드높은) 가을 하늘’을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감염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생각하면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이 모든 상황이 코로나19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인간의 이동과 생산활동이 줄어들면서 오염과 공해가 줄어들고, 그 결과 뜻하지 않게 맑고 투명한 가을 하늘을 수십 년 만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역사가들은 늘 시대 구분에 관심을 기울인다. 역사학은 ‘시간적 차원’에 주목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2020년은 중대한 역사적 분기점이다. 후대 역사가들은 2020년을 ‘역사적 21세기’의 출발점으로 평가할 것 같다. ‘물리적 21세기’와 다른 차원이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세계는 확연히 구분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온 세상이 잠시 속도를 늦춘 이 시기를 문명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는다면, 코로나19는 인류와 지구를 위한 전화위복의 발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천천히 걸으며 생각해 보자.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나이지리아 군, 시위대 향해 발포 …“10여명 사망”

    나이지리아 군, 시위대 향해 발포 …“10여명 사망”

    나이지리아 군이 최대 상업도시 라고스에서 2주 넘게 이어진 시위 참여자들을 향해 총격을 가해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위 진압을 위해 군을 동원한 것은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인 나이지리아가 정치적 혼란의 상태로 들어간 것을 의미한다. 나이지리아 군의 발표 상황을 목격한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이렇다. 수백명이 시위를 벌이던 라고스의 중심부 레키 톨게이트 근처에서 해가 떨어진 직후인 오후 7시쯤 픽업트럭 한 대가 도착했다. 트럭에서 군인들이 최류탄을 발사하다 군중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몇명이 사망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도로에 시신이 몇 구 있었다는 목격담이 나왔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면 노란 최류가스 속에 피를 흘리는 시신 주위에 시위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런 동영상이 수십건 올라왔다. 사망자와 부상자 수에 대해서는 매체마다 보도가 엇갈린다. 뉴욕타임스는 현장을 목격한 한 경찰이 익명을 요구하면서 11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목격자인 아킨보솔라 오군사냐는 10명 전후가 총을 맞았다며 군인들이 시신을 옮기는 것을 봤다고 로이터통신에 전했다. 경비원인 알프레드 오노누그보(55)는 “그들이 군중을 겨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며 “한 두사람이 총탄에 맞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총탄을 맞은 사람의 상태는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가인 인옌 악판(26)은 로이터에 “20명 이상의 군인이 레키 톨게이트에 도착해 발포했다”면서 “2명이 총에 맞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아킨보솔라 오군산야는 10명이 총에 맞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군인들이 시신을 옮기는 것을 봤다고 덧붙였다. 토크쇼 진행자인 아킨보솔라 아데예미는 “나이지리아 정부가 군대를 보내 우리를 죽이고 있다”며 “많은 사람이 총을 맞았다”고 말했다.라고스 빅토리아 아일랜드에 한 병원 의사는 총탄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했다고 말했다. 의사는 이름 공개를 거부했고, 치료받은 사람의 숫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라고스 주정부는 발포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나이지리아에서 시위가 발생한 이후 최소 15명이 살해됐다고 밝혔다. 시위는 경찰의 강도특수부대(SARS)가 벌여온 가혹행위에 대한 분노로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문제의 SARS는 지난 11일 해체됐지만 시위는 계속됐다. 시위는 나이지리아가 민주화된 1999년 이후 21년 만에 최대 규모 시위로 경찰 개혁을 넘어 국정 전반의 개혁을 요구하는 시위로 확산하고 있다. 택시기사 스티븐 아데도자(35)는 “이것은 경찰의 가혹행위 이상의 것,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군 출인인 무하마두 부하리 대통령이 하나의 이슈에서 시작한 항의 시위에 거의 대처하지 못하자 광범위한 정부 부패와 경제 실정, 정실주의 반대 시위와 결합하면서 시위가 커졌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그 남자는 왜 늪을 못 벗어나는가

    [그 책속 이미지] 그 남자는 왜 늪을 못 벗어나는가

    지독한 끌림/정봉채 지음/다빈치/240쪽/2만 5000원 검은빛 하늘이 한가득 내려앉았다. 물도 뭍도 아닌 곳에 작은 배 하나가 선을 그으며 지난다. 그쯤이 지평선과 수평선의 경계일까. 사진가 정봉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내륙 습지로 사시사철 물안개가 늪을 감싸는 우포의 아름다움에 끌려 20년 동안 이곳을 피사체로 삼았다. 차에서 먹고 자며 사진을 찍다가 몸이 망가져 늪 가까운 곳에 나무집을 빌려 살기 시작했고, 지금은 손수 지은 작업실에서 지내며 사진을 찍는다. 새벽에 눈뜨면 어김없이 늪으로 나가 밤늦도록 작업한 그의 글과 사진을 책에 담았다. 해마다 철새가 찾아오고, 수많은 동식물이 사는 이곳. 문득 궁금해진다. 억겁의 세월을 품은 늪의 매혹, 그 형언할 수 없는 지독한 끌림의 이유는 무엇일까.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설렘의 시간, 수줍은 고백

    설렘의 시간, 수줍은 고백

    거창과 이웃한 합천도 가을이 차분히 내려앉고 있는 모습이다. 합천의 가을은 황강을 따라 온다. 합천 시내를 관통해 흐르는 강이다. 황강 주변만 차분하게 살펴도 하루해가 짧을 만큼 볼거리가 많다. 거리두기가 완화됐다고는 해도 아직 코로나19에 대한 불안감은 여전한 만큼 황강 변의 실외 공간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신소양체육공원으로 먼저 간다. 이름은 ‘체육’공원이지만 이 계절엔 합천읍을 통틀어 최고의 ‘풍경 맛집’으로 변한다. 핑크뮬리(꽃말 ‘고백’) 때문이다. 체육공원 평지에 동심원 형태로 핑크뮬리를 식재했는데, 이 풍경을 즐기려는 이들이 제법 많이 찾는다. 핑크뮬리는 사실 소개하기가 참 애매한, 계륵 같은 식물이다. 생태계 위해성 논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분홍쥐꼬리새’로 번역되는 핑크뮬리는 ‘생태계 위해성 2급’ 식물이다. 강력한 제재는 하지 않지만 식재 자제가 권고되는 식물이다. 위해성 여부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하는 식물인 것이다. 한데 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래서 여러 지방자치단체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핑크뮬리를 심고 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7년 정도 된 핑크뮬리가 이제 우리의 가을 들녘을 온통 점령한 듯한 형국이다.핑크뮬리는 벼과 식물이다. 농부들이 애면글면 가꾸는 벼와 친척인 셈이다. 다만 벼와 달리 오로지 조경용으로만 식재된다. 벼는 가을에 노랗게 물들지만 핑크뮬리는 연분홍으로 물든다. 동심원의 미로처럼 꾸며 놓은 핑크뮬리밭을 보자니 상큼발랄한 느낌이다. 두 갈래로 머리를 땋은 ‘빨강머리 앤’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지 싶다. 체육공원 옆으로는 산책로가 나 있다. 핑크뮬리에 홀린 관광객들의 시선에서는 살짝 비켜서 있지만, 억새와 갈대가 익어 가는 강변 흙길을 걷는 정취가 제법 깊다.합천읍 쪽으로 좀더 올라가면 함벽루가 나온다. 1321년 고려 충숙왕 때 세웠다는 정자다. 비가 올 때면 낙숫물이 지붕 처마에서 황강으로 곧장 떨어지도록 지어졌다고 한다. 참 낭만적인 설계다. 들보 아래로는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의 시가 적힌 편액이 마주 보고 있다. ‘경상 좌도에 퇴계가 있고, 우도에는 남명이 있다’는 말이 전할 정도로 쟁쟁한 두 인물의 시를 한자리에서 마주할 수 있다. 함벽루 뒤 암벽에도 우암 송시열이 쓴 ‘涵碧樓’(함벽루)가 각자돼 있다. 함벽루와 바짝 붙은 절집은 연호사다. 창건연대가 643년까지 거슬러 오르는 고찰이다. 합천을 대표하는 해인사(802년)보다 159년 앞서 창건된 셈이다. 함벽루에서 강 건너 맞은편은 정양레포츠공원이다. 인근에서 ‘내륙 바캉스’ 명소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다. ‘바캉스’라는 표현에서 느껴지듯, 공원 앞으로 드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다. 신발을 벗고 발에 닿는 모래알을 느끼며 걷기 딱 좋다. 황강을 따라 왕복 6㎞ 길이의 황강은빛모래길도 조성돼 있다. 오토캠핑장, 경관조명 등의 시설도 갖췄다. 레포츠공원에서 보는 함벽루의 자태도 빼어나다. 새벽 물안개가 감싸는 가을이나 눈 내린 겨울이면 이를 담으려는 사진가들로 붐빈다. 합천 읍내를 살짝 벗어나면 합천호가 기다린다. 1988년 황강 물줄기를 막아 합천댐을 만들면서 생긴 인공호다. 호수 주변 둘레길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호수와 산허리를 번갈아 끼고 도는 길이 약 40㎞에 걸쳐 있다. 호수 주변엔 벚나무가 많다. 호수 조성 당시에 조경용으로 식재한 나무들이다. 어느새 굵은 둥치의 나무로 자라 짙은 숲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봄에는 백리벚꽃길로, 가을철엔 단풍길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특히 물안개가 피는 가을 새벽이면 선경이라 해도 좋을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글 사진 합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책 속 한줄] 이제 그만 고개를 드시길/손원천 선임기자

    [책 속 한줄] 이제 그만 고개를 드시길/손원천 선임기자

    “검색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과 검색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사람들의 욕구가 만나는 곳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창이다. 인기든 오명이든 관심이든 이 창을 통해 사람들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으로부터 쫓겨나기도 한다.”(130쪽) 창문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일부는 휴대전화에 시선을 둔 채다. 차 안에서 그리 하는 이도 있다. 그들 중 몇몇은 댓글도 쓸 것이다. 그 글들을 보면 세상이, 사람들이 다시 보일 때가 많다. 걷는 사람이 아바타인지, 휴대전화 속 아바타가 진짜 아바타인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사진가 허영한의 책 ‘함부로 말할 수 없다’(2017, 새움)에는 제목과 달리 잘라 말하는 문장이 몇 개 나온다. 앞의 글은 그 몇 안 되는 문장 중 하나다. 고개 숙인 채 걷고 먹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구로 이만한 것도 없지 싶다. 우리는 정말 나날이 ‘스마트’해지고 있는 걸까. angler@seoul.co.kr
  • 우포늪으로 가 늪이 된 사진작가 정봉채의 가을 엽서

    우포늪으로 가 늪이 된 사진작가 정봉채의 가을 엽서

    부산에서 고교 교사 생활을 하다 창녕 우포 늪으로 향한 작가, 아예 늪이 됐다. 2000년에 처음 떠나 5년 동안은 일년의 절반을, 그 뒤 5년은 내내 차에서 먹고 자며 머물렀다. 관절염과 천식, 습진을 얻었다. 10년 전 빈집을 하나 얻어 늪가에 누웠다. 그리고 이제 이웃 마을로 옮겨와 정봉채 갤러리를 열고 우포 늪 찍고 텃밭 돌보는 일로 하루를 삼고 있다. 서문을 펼치면서부터 참 글을 잘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작가에겐 대단히 실례되는 말인데, 사진보다 글이 먼저 마음에 다가왔다. 억겁의 세월을 품은 늪의 매혹을 그는 책 제목 ‘지독한 끌림’(다빈치 2만 5000원)에 농축했다. 공간의 면면과 그걸 담아내는 카메라, 그 뒤에 정봉채 작가가 체험한 늪의 시간이 여섯 주제로 나눠 담겼다. 1장은 안개, 2장은 맑음, 3장은 바람, 4장은 비와 눈, 5장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수놓은 무명 천에서 살아나온 새, 6장은 우포의 하루다. 장마다 뒤에 시 같은 산문이 실려 있다. 풍토병, 해바라기와 방울새, 나의 첫 카메라, 고라니, 어머니의 횟댓보, 나의 집이다. 책 여기저기 흩어진 문장을 한 데 모으면 훨씬 이 책을 집어들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내 안에 우포가 체화될수록 유명한 사진가가 되려 하기보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과 질서로 회귀하려는 나을 보았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만들어내는 것은 누구도 찾을 수 없도록 숨겨둔 촬영 포인트, 기막힌 셔터 찬스, 최고의 장비가 아니었다. 겸손하고 한없이 작은 사진가가 되는 것, 그럴수록 자연은 숨은 속살을 보여준다는 깨달음이었다. 우포늪을 바라보던 나의 마음처럼 내 사진을 보는 이들의 마음이 정화되는 것, 그것이 내가 오래도록 한결같이 추구해 온 내 사진의 의미임을 알게 되었다. 매료됐다는 말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묘한 느낌. 그리고 잊힌 꿈처럼 우포를 만났다.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으로는 우포의 심연에 다다를 수 없었다. 어느날 우포의 표정에 내 입김이 녹아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우포의 비경을 봤다고 하는 이들은 알지 못한다. 아름다움을 취하려면 내가 가진 한 부분을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을. 하루에 2천 컷에서 3천 컷의 사진을 찍는다. 나는 늪이 준 내 병을 사랑하기로 했다. 정화의 의미를 찾아 우포로 왔다. 자연의 메타포는 인간의 지적 소산보다 강렬하다. 시간은 모든 것을 삼키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순환하게 한다. 때가 되면 나도 가벼워질 것이다. 때가 되면 무르익은 내 자리를 푸릇한 너에게 내어줘야 한다. 우포에서 나는 시간의 변화를 온몸으로 감지하며 공간이 시간을 호흡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진가와 피사체의 관계는 때로 폭력적이다. 생태계의 먹이사슬처럼 포획하고 포획당하는 관계에 놓이기 시작했다.언제부턴가 나는 우포를 벗어나 다른 곳에 갈 때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는다. 의도하지 않아도 몸이 따르는 순리다. 나는 언제나 늪에 살 것이다. 그러나 늪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늪을 오래도록 바라보며 하루하루 우포를 내 영혼의 그릇에 담을 뿐이다. 내가 문득 좋은 사진을 찍게 된다면 나는 그것을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불쌍하게, 열심히 찍고 있는 나를 어여쁘게 여긴 신이 주신 선물.”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순 없다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순 없다

    별빛이 떠난 거리/빌 헤이스 지음/고영범 옮김/알마/212쪽/1만 3300원 17일 0시 기준 미국 코로나19 확진자는 682만 8301명, 사망자는 20만명을 넘었다. 이 사망자 중 6분의1이 뉴욕에서 나왔다. 세계적인 대도시에 몰아닥친 전염병의 공포를 가늠할 수 있다. 불빛으로 반짝이던 뉴욕의 밤거리는 이제 별빛마저 삼켜 버렸다. 책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뉴욕 풍경을 기록했다. 2015년 별세한 올리버 색스의 동성애 연인으로 알려진 작가이자 사진가인 빌 헤이스가 애틋한 사진에 아주 사적인 글을 입혔다. 저자는 코로나19의 한복판에서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는 뉴요커를 포착했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키스하는 연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여전히 희망이 있음을 확인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길을 잇다, 맘이 닿다

    길을 잇다, 맘이 닿다

    원산도 양옆은 태안에 속한 안면도와 보령에 속한 대천이다. 두 곳 모두 서해안의 내로라하는 관광지다. 어느 곳에서 출발하더라도 두 관광지를 거치지 않을 수는 없다. 원산도로 가는 ‘환상(環狀) 여정’은 그러니까 돌팔매질 한 번에 새 두 마리를 잡는, 시쳇말로 ‘일타쌍피’의 여정인 셈이다.안면도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무시로 찾는 여행지다. 그만큼 명자깨나 날리는 관광지들이 널렸다. 코로나19의 기세가 여전히 등등한 만큼, 이번 여정에선 찾는 이들이 비교적 적은 곳을 중심으로 돌아보자. 빼어난 드라이브 코스인 77번 국도를 타고 안면도 깊숙한 곳까지 내려간다. 꽃지, 샛별 등 이름난 해수욕장들이 발목을 잡겠지만, 이번만큼은 눈 딱 감고 곧장 가자. 솔향 가득한 정당리 솔숲길을 지나면 곧 안면암이다. 3층 높이의 대웅전과 용왕각 등의 당우들로 구성된 독특한 절집이다. 안면암엔 탑이 많다. 크기와 모양이 각기 다른 탑들이다. 건물 하나가 통째 탑처럼 세워진 것도 있다. 안면암은 바닷가에 바짝 붙어 있다. 절집 앞으로 펼쳐진 너른 갯벌이 탁 트인 풍광을 선사하고 있다. 멀리 두 무인도 사이에도 탑이 세워져 있다. 밀물 때면 바닷물 위로 떠오르는 탑이다. 썰물 때는 탑까지 걸어갈 수 있다. 탑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부교가 놓여 있다. 바닷물이 찼을 때는 부교를 따라 탑 앞까지 갈 수 있다. 바다 위를 걸을 때마다 몸이 일렁이는 느낌이 독특하다. 두여해변은 습곡 지대가 볼만한 곳이다. 습곡은 수평으로 퇴적된 지층이 옆으로 작용하는 힘에 의해 굽어지며 물결처럼 굴곡된 지형이다. 주름처럼 이리저리 휜 갯바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해변 위엔 ‘두여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너른 갯가 풍경을 두 눈에 담을 수 있다.이웃한 운여해변은 사진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저 유명한 꽃지해변의 해넘이와는 느낌이 다소 다른 일몰 풍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바다에 비친 소나무와 주황빛 노을이 어우러지며 절경을 펼쳐낸다. 구름과 달이 없는 밤에는 은하수와 별을 촬영하려는 이들로 또 한 번 부산해진다. 원산도에서 출발한 카페리가 닿는 대천항 인근엔 대천해수욕장이 있다. 백사장 길이 3.5㎞로, 명실상부한 서해 최대 해수욕장이다. 관광약자를 위한 무장애 데크 등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빼어난 일몰 명소이기도 하다. 거칠 것 없이 너른 바다 너머로 지는 해가 서정적이면서도 웅장하다. 스카이바이크를 타고 바닷가를 가로지르는 재미도 각별하다. 일종의 레일바이크로, 바다를 바짝 끼고 달릴 수 있도록 조성됐다. 밀물 때면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거리는 왕복 2㎞가 조금 넘는다. 대천해수욕장과 대천항을 오간다. 소요시간은 40분 정도다. 대천해수욕장 끝자락에 있다.보령에서 요즘 ‘핫’한 카페가 두 곳 있다. 성주산 첩첩산중에 있는 ‘갱스 커피’는 ‘인생 사진’ 건질 수 있는 카페로 입소문 난 곳이다. 석탄산업이 호황이던 시절 탄광 목욕탕으로 쓰이던 건물이 재활용돼 모던한 느낌의 카페로 새로 태어났다. 카페 옥상에서 맞는 저물녘 풍경도 빼어나다. 주교리 바다와 바짝 붙은 ‘니나블러썸’은 공방 카페다. 한적한 어촌 풍경과 심플한 느낌의 건물이 잘 어우러져 있다. 주인장이 직접 만든 반지 등 액세서리, 식사, 음료 등을 판다. 글 사진 태안·보령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사람들

    ‘공포분자’(恐怖子)는 ‘위협하는 사람들’(The Terrorizers)이다. 테러범이라고 지칭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총기나 폭탄으로 인명을 해치는 자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 ‘공포분자’(17일 개봉)를 통해 감독 에드워드 양은 위협하는 사람들이 무서운 불량배가 아니라 평범한 시민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니까 1986년 대만에서 만들어진 이 작품을 2020년 한국에서 다시 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평범한 시민이란 위협하는 사람들이라기보다 위협당하는 사람들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일상적 상식이다. 그렇지만 현실이 상식으로만 운용되지 않는다는 것. 이런 통찰이 에드워드 양의 영화적 상식이다. 그래서 관객에게 에드워드 양은 본인의 영화를 시를 읽는 마음으로 봐 달라고 부탁한다. 시는 이미지와 리듬의 언어화를 시도한 모든 자취의 기록이다. 이에 대한 성공과 실패의 흔적은 독자의 섬세한 시각 없이는 포착되지 않는다. 시를 읽는 마음은 어떤 과정이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과정 자체가 다양한 목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바꿔 말하면 관객이 자아와 세계가 대결하는 서사를 좇지 말고, 세계를 자아화한 서정에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포분자’에서 에드워드 양이 자아화한 세계는 무관심의 우연들이 겹쳐 불행으로 끝나고 마는 인생의 아이러니다. 그는 여러 명의 인물(소설가사진가의사소녀)로 그것을 직조한다. 소설가와 사진가는 직분에 충실하다. 소설가는 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쓰려 애쓰고, 사진가는 밖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 댄다. 의사와 소녀는 욕망에 휘둘린다. 의사는 승진하려고 동료를 모함하고, 소녀는 재미 삼아 장난전화를 건다. 이렇게 보면 소설가와 사진가는 바람직한 사람, 의사와 소녀는 바람직하지 않은 사람 같다. 하지만 에드워드 양이 그렇게 단순한 감독일 리 없다. 그는 소설가와 사진가 역시 결핍에 바탕을 둔 욕망에 휘둘리는 캐릭터임을 명징하게 그려 낸다. 이들은 거짓말과 도둑 촬영으로 자기 작품을 완성하니까.‘공포분자’는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 저지른 별것 아닌 허물들이 기묘하게 서로 얽히면서 빚어내는 파국을 그린 영화다. 딱히 나쁜 의도를 갖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것이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 위에 언급한바 타인을 배제한 우연들이 겹쳐 불행으로 끝나고 마는 인생의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피차 위협하는 사람들이 된다. 그럼 어떡해야 좋을까? 무관심을 관심으로 돌려야 한다. 에드워드 양은 이 영화에 관해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타인에 대한 ‘나’의 무관심은 그저 무관심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비운을 초래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고. 공포분자는 고통스러워하는 타인을 모르기보다 모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허희 문학평론가 ·영화 칼럼니스트
  • 日교사 성범죄 역대 최다…절반은 자기 학교 제자들

    日교사 성범죄 역대 최다…절반은 자기 학교 제자들

    일본 도쿄에서 활동하는 여성 사진가 이시다 이쿠코(42)는 중학생이던 15세 때 미술 교사에게 성폭력을 당했다. 고교입시 지도를 받던 중 교사의 집에 끌려가 강제로 키스를 당한 게 시작이었다. 교사의 성폭력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계속돼 19세가 돼서야 끝이 났다. 당시에는 그것이 성폭력이었다고 인식하지 못했던 이시다는 약 20년 후 교육위원회에 당시 가해 교사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당시 교사는 범행을 부인했고 이시다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법원에 냈다. 그러나 법원은 “소송 제기가 너무 늦었다”며 기각했고, 이에 이시다는 자신의 실명을 공개하고 아동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철폐 운동에 나섰다. 일본에서 학교 교원에 의한 성폭력 범죄가 증가하면서 해마다 최다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2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성폭행이나 성희롱 발언 등으로 징계처분을 받은 교원은 2018년 기준 282명으로 역대 가장 많았다. 피해자의 49%인 138명은 해당 교원이 근무하는 학교의 학생이나 졸업생이었다. 교원은 2000~2016년 성범죄 발생률에서 전체 평균보다 1.4배나 높았다. 교원들에 의한 성범죄가 갈수록 늘어나는 가운데 일본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 교육위원회에 피해자가 학생일 경우 해당 교사에 면직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3년이 지나면 범죄를 저질렀던 교사가 다시 교원 면허를 딸 수 있다는 것. 교도통신은 “먼저 있던 학교에서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가 지자체 간에 공유되지 않고 있다”며 “아동 포르노 사범으로 퇴출당했던 사람이 다른 지역에서 버젓이 교원으로 재임용돼 재차 범행을 저지른 사례도 있었다”고 전했다. 가미야 사쿠라 변호사는 “교원 징계처분에 대한 정보를 지자체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학교는 성폭력이 일어나기가 매우 쉬운 구조임을 학교 관계자들이 명심해야 한다”고 교도통신에 말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포연 속 렌즈, 치열하게 찍은 선악

    포연 속 렌즈, 치열하게 찍은 선악

    납치돼 목이 잘릴 뻔한 고비 ‘생생’전쟁과도 같은 사랑 여정도 담아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린지 아다리오 지음/구계원 옮김/문학동네/472쪽/1만 9800원 “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사진에 담으며 내 피사체들과 생존의 기쁨이나 억압에 저항하는 용기, 상실의 비통함, 억압받는 자의 끈기를 나누었으며, 가장 추악한 인간의 잔인함과 가장 훌륭한 선의를 지켜보았다.” 자신을 납치한 반군에게 “오늘 밤 그 예쁜 모가지를 싹둑 베어 줄게”라는 살해 협박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카메라를 놓지 못한 여성 보도사진가가 남긴 말이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키 155㎝의 평범한 여성의 몸 어디에 저런 강인함이 숨어 있는 걸까.‘최전방의 시간을 찍는 여자’는 전장(戰場)과도 같은 세계 곳곳의 갈등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한 사진기자의 자전 에세이다. 긴 망원렌즈를 들 때마다 휴대용 로켓포로 보이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진실을 보여 줄 의무”를 되새기며 위험 속으로 직진하는 종군 사진기자의 치열한 삶을 전쟁과도 같은 사랑 이야기와 함께 그린다. 폭력이 난무하는 현장에서 늘 최대 피해자로 남게 되는 여성과 아이들 문제에 분노하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몇몇 매체에서 사진기자 생활을 하던 저자가 전환점을 맞은 건 2001년이다. 당시 금융 뉴스를 다루던 다우존스의 인도지국장은 여성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저자에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보라고 권했다. 이후 9·11 테러 등으로 전 세계의 관심이 중동에 쏠렸고, 저자 역시 종군기자로 상당한 경력을 쌓게 된다.위험 지역을 취재하는 만큼 죽을 고비는 무시로 찾아왔다. 이라크, 리비아에선 납치돼 목이 잘릴 뻔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선 탈레반의 매복 공격을 받아 저승 문턱을 오갔다. 납치 상황에서도 차별은 엄연했다. 이라크 반군들은 동료 남성 기자는 누워 자게 하면서도 저자는 꼿꼿이 앉아 있게 했다. 여성이 낯선 남성 앞에서 누워선 안 된다는 게 이유였다. 성추행은 ‘흔한’ 일이었다. 대규모 군중집회 때 특히 그랬다. 과도한 호르몬과 광기로 달아오른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남자들의 손 수십 개가 엉덩이와 사타구니를 동시에 주무를 때도 있었다. 책에 매캐한 포탄 냄새와 피비린내만 진동하는 건 아니다. 욱스발이라는 바람기 많은 멕시코 남성, 자신의 눈 호강을 믿기 어려울 만큼 미남이었던 이란 배우 메디를 거쳐 로이터통신 터키지국장이었던 현 남편 폴에게 가는 여정도 적지 않은 분량으로 곁들여진다. 저자는 전쟁터와 평화로운 곳을 오가며 겪었던 이 혼란의 과정을 “젊은 시절의 자멸적인 연애 행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저자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남자들은 모두 동종 업계에 있는 인물들이다. 그가 ‘자멸적 연애 행각’이라고 한 건 결국 옷에 밴 포탄의 흔적과 피 냄새를 씻기 위한 한순간의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여겨지는 대목이다. 어쨌든 2006년 월드컵 결승에서 프랑스 ‘중원의 사령관’ 지네딘 지단이 이탈리아 수비수 마르코 마테라치에게 박치기를 하던 그날 밤, 터키에 머무르던 저자는 남은 인생을 이 남자와 함께 보내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원제는 ‘잇츠 왓 아이 두’(이것이 내가 하는 일)다. 그는 뉴욕타임스 취재팀의 일원으로 취재한 ‘탈레바니스탄 시리즈’로 2009년 국제보도 부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손원천 선임기자 angler@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바이든과 오바마(스티븐 리빙스턴 지음, 조영학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조 바이든 안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된 바이든은 이후 오바마와 정치 브로맨스로 미국 정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외교와 입법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살려 부통령직의 모범을 구축했다는 평을 들었다. 408쪽. 1만 8000원.말의 세계에 감금된 것들(홍세미 외 4인 지음, 오월의봄 펴냄) 여성 서사로 본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된 남편이나 아들의 옥바라지를 하고, 구속자 석방 운동을 벌였으며 동료 기자를 숨겨 줬다는 죄목으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을 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민가협 어머니들부터 탈북민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구술이 실렸다. 396쪽. 1만 8000원.내 몸 안에 준비된 의사 2(김재호 지음, 신세림 펴냄) 상대적으로 질병의 원인과 예방에 관심이 없는 현대의학의 한계를 꼬집는 저작. 저자는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이 확산되는 현실 속에서 “면역세포가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지킬 수 있도록 면역력을 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근본적인 대책이며,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395쪽. 1만 8000원.서로 다른 기념일(사이토 하루미치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언어와 감각이 서로 다른 한 가족이 써내려간 특별한 일상. 청각 장애를 가진 사진가 부부는 각각 음성언어와 수화를 쓰며 다른 세계를 살았다. 들을 수 있는 청인 아이가 태어나면서, 다른 언어를 쓴 부부는 다른 감각을 가진 아이와 지내는 또 다른 경험을 한다. 이 가족이 겪는 작은 사건들을 통해 존재의 소통을 이야기한다. 272쪽. 1만 4000원.포즈의 예술사(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동물생물학자이자 초현실주의 화가인 데즈먼드 모리스의 저서. 일평생 과학과 예술을 오간 그는 선사시대 가면부터 로마 조각상까지 231점의 미술 작품 속에 몸짓 언어(포즈)를 수집했다. 이를 아홉 가지 의사전달 형태로 분류, 포즈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냈다. 320쪽. 3만 2000원.일제의 특별한 식민지 포항(김진홍 지음, 글항아리 펴냄)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 전략을 포항의 근대화 과정으로 들여다봤다.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인 저자는 구한말 당시 한적한 어촌 마을이던 포항동이 면(面)에서 읍(邑)으로 성장하며 일본인들이 발전이라는 구호 아래 부를 축적시키는 과정을 상세히 전한다. 664쪽. 3만 8000원.
  • 국립무형유산원, 책마루 인문학 강연

    전북 전주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이 오는 13일부터 10월 15일까지 매주 목요일 ‘책마루 인문학 강연’을 진행한다고 3일 밝혔다. 13일에는 이욱정 PD가 ‘누들로드-국수는 어떻게 인류를 매혹시켰을까’를 주제로 강연한다. 20일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명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27일 김진석 사진가의 ‘나를 찾아가는 사진’이 이어진다. 9월 3일에는 엄윤숙 작가가 ‘당신이 알던 속담의 배신’을, 10월 8일에는 김범준 성균관대 교수가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세상’, 15일에는 김용택 시인이 ‘자연이 말해주는 것을 받아쓰다’를 주제로 강연한다. 자세한 내용은 책마루 홈페이지(library.nihc.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류승범, 파리서 5년만 인터뷰 “아빠가 됐다는건 마법같은 일”

    류승범, 파리서 5년만 인터뷰 “아빠가 됐다는건 마법같은 일”

    배우 류승범이 프랑스 파리의 한 산 속에서 5년 만에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패션 잡지 데이즈드 8월호는 29일 최근 결혼과 함께 딸을 낳은 류씨의 화보를 공개했다. 류승범은 현재 파리에서 아내, 딸과 함께 살고 있으며 현지에서 화보 촬영을 진행한 다미아노 박은 류승범이 직접 제안한 사진가다. 류승범은 5년 만의 인터뷰에서 “아빠가 됐다는 건 확실히 마법 같은 일”이라며 “사랑과 탄생 그 앞에 무릎 꿇고 나를 던졌다. 나는 아직 사랑보다 아름다운 걸 찾지 못했고, 인간의 탄생보다 경이로운 경험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내게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를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다시 순수했던 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라며 그림을 비롯한 예술 활동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또 한국으로 돌아올지에 대해서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정착할지 묻는 사람이 많더라. 시간이 지나 한국 어딘가에서 지낼지 누가 알겠나? 미래는 알 수 없으니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새로운 내 가족과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싶을 뿐”이라며 앞으로도 자유로운 삶을 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류승범은 “배우로서 고민 중 가장 큰 건 다시 좋은 작품을 만나 즐겁고 행복하게 작업하고 싶다는 것이다. 멋진 감독과 협업해 관객에게 행복을 주고 싶고 ‘깊은’ 캐릭터를 걸쭉하게 표현해보고 싶다”며 “다음에는 어떤 영화를 만나게 될지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란 배우로서의 소신도 강조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포스터로 보는 현대미술 50년…‘남겨진, 미술, 쓰여질, 포스터’전

    포스터로 보는 현대미술 50년…‘남겨진, 미술, 쓰여질, 포스터’전

    전시를 소개하는 포스터가 주인공인 전시가 마련된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제작된 미술 포스터 60여 점을 소개하는 ‘남겨진, 미술, 쓰여질, 포스터’전을 8월 3일부터 10월 24일까지 연다.포스터는 광고나 선전을 위해 사용돼온 가장 고전적 매체다. 18세기 후반 대량 생산이 가능한 석판화 기술 발명으로 본격화했다. 초기엔 간결한 문자와 디자인 요소를 통해 대중의 이목을 끄는 응용미술의 영역에 머물렀으나 19세기 이후 툴루즈 로트렉과 알폰스 무하 같은 화가들이 화려한 색채와 대담한 기법을 활용하면서 순수예술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은 소장한 1000여 점의 포스터 가운데 역사와 기억을 소환하는 시각적 기호로서 활용도가 높고, 미술사적 의의가 큰 포스터를 선별했다. 1969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프랑스 사진가 장 으젠 오귀스트 앗제 회고전 포스터, 추상회화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의 1981년 워싱턴국립미술관 개인전, 1990년 워키힐미술관의 박길웅 개인전, 1991년 캘리포니아 MMOA의 김구림 초청 전시 등 다양한 국내외 전시 포스터를 만날 수 있다.김달진 관장은 “포스터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관람하기에 앞서 대중에게 보여지는 작가의 ‘첫인상’으로 그 의미가 남다르다”며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새로이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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