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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신대 징발,최악의 전쟁범죄”/증빙자료 발굴한 요시미교수

    ◎“일정부 한때 부인,양국민 모독/피해보상·자료공개·반성 마땅” 『일본의 한국인 종군위안부(정신대) 강제연행은 제2차 대전중 저질러진 최악의 전범행위로 일본인들은 이같은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를 부끄러워 해야 한다』 한국여성 정신대 모집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하는 군자료를 최초 발굴한 일본 중앙대의 요시미 요시아키(길견의명) 교수는 14일 기자와 만나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요시아키 교수는 당시 일본군은 중국 등지에 파견된 일본군이 빈번하게 강간사건을 저질러 반일감정이 악화되자 자구책으로 정신대를 모집했음이 이번 방위청 자료를 통해 증명됐다고 말했다. ­이번 자료를 발견하게 된 경위는. ▲정신대 모집에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것은 일본 국민들에게는 이미 다 알려진 비밀이었다. 일본정부만이 이를 부인해왔을 뿐이다. 그러던중 지난해 한국인 종군위안부였던 김학순(67)씨 등 3명이 처음으로 보상청구소송을 제기한 것을 계기로 적극 자료발굴작업을 펴오다 이번에 방위청 도서관에서 당시 보병 제41연대 진중일지,군위안소 종업부 등 모집에 관한 문서 등 5가지 군자료를 발견케 된 것이다. ­일군의 관여를 부인해온 일본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것은 이 문제가 일정부로서는 그만큼 숨기고 싶은 치부였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역사왜곡 행위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대정부 불신감만 증폭시켰다. ­일 정부는 이번 군자료 발굴을 계기로 일군이 정신대문제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공식인정했다. 이같은 자세전환에 어느 정도의 진실성이 담겨 있다고 보는가. ▲일본정부가 군의 관여를 인정한 것은 자료발견자로서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나 일정부가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하고 적극적인 행동을 보일지는 의문이다. 이번에 군자료가 발견됐지만 외무성,후생성,노동성들에 보관돼 있는 자료는 아직도 미공개로 남아있다. 외무성에는 30년이 지난 자료는 공개한다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침략행위 및 보상관련 자료는 30년이 지났어도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본은 보상 등을 포함,앞으로 어떤 후속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일정부는 진정한 사죄와 함께 물리적,정신적 피해에 대한 성의있는 보상을 해야한다. 양국 정부간의 보상문제는 마무리됐지만 개인에 대한 보상책임까지 면제된 것은 아니다.
  • 일제,국교생도 정신대로 끌어가/서울영복·교동국교 학적부 기록 발견

    ◎12살짜리 5명등 10명 밝혀져/당시 일인 교사/“양심 가책 느껴 추적끝 확인”/본지와 전화통화서 생생히 증언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우리의 나이어린 국민학생들까지 이른바 정신대(정신대)로 동원했던 사실을 기록한 당시의 학적부가 14일 서울 영희국민학교(교장 안중복·강남구 일원동)에서 발견돼 충격을 주고 있다. 서울신문사는 이날 하오 이 학적부를 기록했던 은퇴한 일본인 여교사와 국제전화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기록이 모두 사실임을 확인했으며 서울 교동국민학교 등에서 같은 종류의 기록을 더 찾아냈다. 영희국민학교가 보관하고 있는 문제의 학적부는 지난 70년 폐교한 방산국민교(당시 경성부 제2부 공립소학교)의 것으로 이학교 어린이들이 정신대로 출발한 날짜와 장소·동원경위·설득과정 등이 생활기록란에 상세히 기재돼 있었다. 이 학적부에 따르면 일본인 여교사 이케다씨(지전정지·68·일본생구시거주)가 담임을 맡았던 6학년4반 어린이 72명 가운데 1명이 44년 2월25일,5명은 같은해 7월2일 각각 일본 도야마(부산)와후지고시(불이월)등의 공장에 정신대로 파견된 것으로 기록돼 있으며 1명은 13살이고 나머지 5명은 모두 12살로 돼 있었다. 이들 어린이는 성적이 과목마다 10점 만점에 7∼9점 정도로 우수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특히 도덕점수가 모두 높은 것이 특징이다. 또 대부분 『발육및 영양상태가 좋다.품행방정하고 성실하다』고 기재돼 있으며 『부모의 반대를 설득 또는 본인의 의지로 극복했거나 국가를 위해 본인이 희망,정신대에 참가했다』고 기술돼 있다. 당시 12살의 한 고등과 1학년생(현재의 중학교1학년)에 대해서는 『부모의 반대를 알고 있었으나 본인의 희망을 물어 정신대로 가는것을 허가하였다』는 기록과 함께 「소화 19년(44년)정신대 동원」이라고 적혀있다. 이들을 정신대로 보냈던 이케다씨는 제자들을 정신대로 보낸 죄책감으로 이들의 소재를 수소문해오던 끝에 지난해 방산국민교가 폐교한 뒤 그 학적부를 보관해온 영희국민교를 찾아 문제의 학적부를 찾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이케다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국제전화에서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수소문해 본 결과 당시 정신대로 끌려간 6명중 1명은 이미 사망했고,1명은 북한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생존해 있는 3명 가운데 한 명을 만났다』고 밝혔다. 이케다씨는 또 『당시 방산국교에서는 내가 맡았던 반 외에도 고등과학생 14∼15명 가량이 정신대로 동원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당시 정신대로 동원된 제자 6명 가운데 5명은 해방되던 해 12월 내가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무사히 귀환했으나 1명만 돌아오지 않아 항상 마음에 걸렸었는데 당시 귀국을 확인하지 못한 그 제자(김모씨)를 지난해에야 만났다』고 말했다. 이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귀국후 한국쪽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한채 독신으로 살아왔다는 그는 『조만간 정신대로 끌려갔던 제자들을 일본으로 초청,조금이라도 위로의 뜻을 전해주고 싶다』면서 『이들에게 사죄의 뜻을 진심으로 전하기 위해 현재 한글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 종로구 경운동 교동국민학교(교장 유하림·63)문서창고에서도 이날 지난 44년 여학생 4명을 정신대원으로 보낸 자료가 발견됐다. 이 학교의 44년 고등과 제2학년 학적부에는 당시 14살이던 어린학생 4명이 7월에 일본 부산시 불이월공장 여자 정신대원으로 떠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한편 서울중앙여중(당시 경성가정여숙)에서도 지난 43년 여학생 한명(당시 17세)이 정신대로 징발된 사실을 기록한 학적부가 발견됐다.
  • 어떻게 사죄할 것인가(사설)

    내일 모레 방한할 일총리가,「정신대 문제」를 공식 사과하리라고 한다. 일이 워낙 불가피하게 되었으므로 뭔가 「말로 때우기」라도 급히 서둘러야 할 필요가 절박해졌기 때문인 듯 하다. 구한무렵까지만 해도 『정신대문제는 민간이 한 일이므로 일본정부로서는 모르는 일』이라고 딴청을 피웠던 사람들이다. 그것도 관방장관이라는 사람이 그랬었다. 그런데 다른 먼데것은 고사하고 일본의 방위청 문서속에 「비밀문서」상대로 숨겨져 있던 「증거」가 드러나고 말았다. 『태평양 전쟁중 군이 위안소의 설치와 위안부의 감독 통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문서가 방위청에 보관되어 있었음을 일본신문이 보도함으로써 발뺌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방한하는 미야자와(궁택)총리로 하여금 「사죄」의 말을 하도록 문구를 고르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공교롭게도 이런 보도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문구 때문에 머리를 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당국일지도 모른다. 또한,일본총리의 방한과 이렇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더라면 「사죄」따위 꿇리는 짓은 안할 수도 있었다는 생각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것이 「일본인다운」품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이 궁리중이라는 사죄문구따위의 수사학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의 뿌리 깊숙이에 잠재된 생각의 근원에 변화가 일기를 기다리고 있다. 방위청 문서속에 확연한 증가가 꽁꽁 숨어 있는데,명색이 장관이라는 사람이 『조사해 보았으나 정부당국이 관여했다는 단서가 될만한 것은 없었다』고 기자들앞에서 공식 발언을 했다. 정부를 대표하는 장관으로 하여금 이토록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발언을 하도록 만드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속깊은 정체가 우리는 환멸스럽다. 이런 나라이므로 겉보기에 유려하지만 실속은 공허한 「문구」를 찾아내어 「총리의 방한길」만을 매끈하게 포장하려 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무엇보다도 일본자신이 도덕적으로 구원받지 못한다. 태평양전쟁에 의한 피해의 상처는 「정신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징용도 있고 징병도 있고 갖가지 정신적·물질적피해가 역사위에서 아직도 피고름을 흘리며 남아 있다. 그것을 일본의 태도만으로 낫는 일이라고 우리는 생각지 않는다. 스스로 나아가는 일을 한민족은 고통스럽게 계속해야하고 하고있다. 다만 일본은 일본을 위해 할 일이 있다. 어머니인 여성은,한 민족의 생명의 근원이다. 그 근원을 다른 한 나라가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정책을 통해 유린하고 난도질한 행위가 이른바 「정신대」문제다. 일본이 문화적 양식을 지닌 선진국이 될 자질을 갖지 못한 나라였음을 입증하는 것이 이 문제로 상징된다. 「사죄」와 「보상」만으로는 쉽게 씻기지 않지만 그 방법으로 밖에는 극복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아시아를 경영하는 일본」의 꿈도,세계강국으로서의 일본의 자부심도 이 범죄의 흔적이 풍기는 악취를 없애지 않고는 좀처럼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 “종군위안부로 고통당한분들께 충심으로 사죄와 반성”

    ◎일,「정신대」 공식사과/관방장관 담화/일 총리 “방한때 별도 사죄” 【도쿄 연합】 가토(가등) 일본 관방장관은 13일 하오 『한국인 종군위안부로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쓰라린 고통을 당한 모든 분들에게 충심으로 사죄와 반성의 뜻을 전한다』고 말했다. 가토장관은 이날 구일본군이 「종군위안부」문제에 관련돼 있음을 분명히 밝혀주는 문서가 발견된 것과 관련,발표한 공식담화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정부는 또 이같은 과오를 결코 되풀이하지 않는다는 깊은 반성과 결의위에서 평화국가로서의 입장을 견지하는 한편 미래를 향한 새로운 한·일관계를 구축해나가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토장관은 또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반도출신의 종군위안부들이 체험한 쓰라린 고초를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질듯한 기분이 든다』고 밝히고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일본군이 관여한 것으로 생각되는 자료가 방위청에서 발견된 것을 솔직히 인정,엄숙히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정부는 이날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인 종군위안부」문제의 대응방안을 논의한 끝에 우선 정부의 사죄담화를 발표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미야자와총리는 이와는 별도로 한국방문에서 「한국인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할 것으로 보인다.
  • 태평양전쟁 유족/정부청사서 시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회원 1백여명은 13일 하오2시쯤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뒷문에 몰려가 『일본은 태평양전쟁 희생자전원에게 국제관례대로 배상하고 미야자와 일본총리는 생존한 군대위안부 10여명을 직접 만나 사죄하라』고 주장하며 시위를 벌였다.이중 대표일행은 하오 5시 이상옥외무장관을 만나 일본정부에 성의있는 자세촉구를 공식요청해 줄 것을 당부했다.
  • 태평양전쟁 유족회/일 대사관앞서 시위/한때 도로점거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회원 1백50여명은 10일 하오 2시15분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엔화에서 이등박문의 초상을 삭제하라」는 등의 플래카드와 피켓등을 들고 일본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며 시위를 벌였다. 김종대회장등 대표 3명은 이어 하오3시쯤 오노 마사아키(소야정소)참사관을 만나 태평양전쟁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사죄와 성실한 피해보상을 촉구했다. 이들은 이에앞서 낮12시10분쯤 종로2가 탑골공원에서 미야자와총리의 방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인뒤 한때 종로2가의 왕복 10차선도로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여 이일대 교통이 30여분동안 마비되는등 혼잡을 빚게했다.
  • 일 총리,“「정신대사죄」 용의”

    ◎일 정부 소식통,“16일 방한때 언급”/위안부 군극비기록 발견 【도쿄 연합】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일본총리는 오는 16일 한국 방문에서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 어떠한 사죄를 할 의향을 갖고 있다고 일산케이(산경)신문이 10일 정부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이 신문에 의하면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일 정부소식통은 「화제에 오르면 사죄할 따름이다.땅에 머리를 조아리고라도 사과한다」고 말하고 「변명할 도리가 없는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16일부터 18일까지 미야자와총리의 방한을 통해 이루어질 한일정상회담에서는 한국측이 종군위안부문제를 의제의 하나로서 제시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고 산케이신문은 설명했다. 이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는 당분간 실태조사부터 펴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도쿄 연합】 1940년 일본군이 중국인 노동자를 사할린과 홋가이도(북해도)에 이주시키려 했었을 당시 한인여성을 위안부로서 노동현장에 투입시키려했던 계획이 최근 일본군 관계기록에서 밝혀졌다고 일교도통신이 10일 보도했다.교도통신에 따르면 이같은 사실은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단장 김기철)이 홋가이도 개탁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 육군성관계의 극비문서를 분석한 결과 밝혀졌다. 계획이 실행됐는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구 일본군 관계 기록으로부터 한인위안부에 대한 기술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문서는 육군성 정비국 전비과가 작성한 「고력 관이요강 초안」(1940년3월22일)으로 당시 탄광등을 널리 경영하고 있던 홋가이도탄광기선회사의 서류철에 포함되어 있었다. 고력(쿨리)란 탄광이나 댐등 열악한 조건하에서 부득이 노동하는 중국인 육체노동자를 일컫는 말이다.
  • 일 만행 보상요구/일 대사관앞 시위/대일 보상청구단체련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등으로 구성된 「대일 보상청구피해자단체연합회」회원 20여명은 9일 하오4시30분쯤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몰려가 오는 16일로 예정된 미야자와 일본총리의 방한과 관련,「과거 죄악의 사죄없이 선린우호는 없다」는 등의 피켓을 들고 일본대사와의 면담을 요청하며 항의시위를 벌였다.
  • 오대양 암장 6명/4년∼7년 선고/3명엔 집유

    【대전=최용규기자】 대전지법 형사 합의 2부(부장판사 장용국)는 21일 오대양직원 상해치사 암매장사건 선고공판에서 구속기소된 김도현(38),문윤중(37),한호재피고인(38)등 3명에게 상해치사죄 및 사체 은닉죄를 적용,징역 7년씩을,이세윤피고인(45)에게는 징역 5년,오민철(33),김섭규피고인(31)등 2명에게는 상해치사죄를 적용,징역 4년씩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구속기소된 이인희피고인(27·여)과 불구속 기소된 이복희피고인(30·여)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심해련 피고인(25·여)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 “일,정신대문제 조사 검토”

    ◎가토관방장관,정부차원서 적극 대처 첫 시사/“민간단체의 일” 46년간 발뺌 급급/번복 전례… 공언 안될지 두고봐야 한인 종군위안부 문제와 관련,일본정부가 16일 처음으로 정부차원 대처방침을 시사해 주목을 끌고 있다. 일본의 교도통신은 가토 고이치(가등굉일)관방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종군위안부 문제에 관해 『내각관방이 중심이 돼 조사태세를 가다듬어 검토를 하고 있다』고 언급,정부차원에서 실태조사를 벌인 후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는 생각을 표명했다고 보도했다.태평양전쟁때 일제 식민압제정권에 의해 저질러졌던 조선여인 정신대징용의 만행이 드디어 일본정부로부터 역사적 사실이란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인가. 최소한 15만명에 달하는 조선여인들의 전쟁위안부용 「징발」은 한국인에게는 도저히 망각할 수도,용서할 수도 없는 역사였다.그러나 일본정부는 사죄는 고사하고 종전후 반세기가 가깝도록 『정부로서는 전연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으로 일관해 왔었다.고작 한다는 말이 『민간업자들이 군에 함께 데리고 있었던 것 같다』는 정도인 것이다.따라서 가토 관방장관의 발언은 한국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지만 일본정부의 태평양전쟁이나 식민지지배 사과발언 행태와 그 전력을 염두에 두게되면 가토 장관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는 의구심이 먼저 앞서는 것이다. 가토 장관은 지난 11일 상오 기자회견을 통해 한인 정신대징용과 관련,『정부가 관여했다는 공식기록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종래 주장을 되풀이한 후 뒤가 구렸든지 『노동성에 보다 치밀한 조사를 하도록 했다』고 말해 정부차원의 조사지시가 끝난 인상을 심어 주었다.한국의 태평양전쟁희생자 유족회가 앞서 지난 6일 국내에 생존해 있는 종군위안부 3명등과 함께 일본정부를 상대로 공식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최초의 소송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기했고 또 한국정부가 9일 한국인 정신대 피해자 명단을 공식 요청해와 일본정부와 가토장관은 뒤가 구릴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이같은 보도가 나가자 일본 노동성 측은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관방장관이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며 이를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서 가토장관의 발언이 무마조의 일회용으로 급조되었음이 탄로되고 말았다. 정신대 피해자로서 처음으로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들이 일본 현지TV에 나와 일본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준 데다 정신대 강제연행에 직접 관여한 일본인에 의해 당시 정신대 동원을 담당한 「노무보국회」가 사실상 일정부의 산하기구임이 주장된 저간의 사정과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따라서 정신대 만행과 관한 일본정부의 태도를 「개과천선」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이르다.
  • 5세 여아 성폭행 살해/40대 범인에 무기 선고

    【수원=김학준기자】 수원지법 형사합의2부(재판장 유정수부장판사)는 17일 5세여아를 성폭행한뒤 목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손학식피고인(44·노동·경기도 용인군 용입읍 고임리747)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손피고인에게 살인및 미성년자 의제강간치사죄를 적용,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5살난 여자어린이를 성폭행하고 범행사실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울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이 어린이를 목졸라 살해한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로 무기징역에 처한다』고 밝혔다.
  • “「웅진여성」 자진폐간/윤석금회장/사회물의 빚어 국민에 사죄”

    웅진그룹 윤석금회장(46)은 10일 월간지 「웅진여성」12월호에 실린 「에이즈여성복수극」이란 허위사실보도에 대해 『허위기사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자책감에서 문제가 된 12월호를 끝으로 웅진여성을 폐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윤회장은 이날 종로구 인의동 동원빌딩12층 그룹본사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고 『이 기사가 사회적으로 물의와 충격을 준 데 대해 국민과 관계기관에 깊이 사죄한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웅진여성」은 지난 9월하순 10월호로 창간한 뒤 11,12월호 3권만에 단명했다. 윤회장은 『제보자가 제공한 내용에 대해 사실확인없이 기사화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보도자세』라면서 『책임자로서 부끄러움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기사로 피해를 입은 김동영의원 가족등에 대해서는 명예훼손과 관련해 물적,심적으로 보상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 진주만기습 50주년(사설)

    과거는 현재의 원인이며 현재는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7일(한국시간 8일)은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진주만을 기습공격한지 꼭 50주년이 되는 날이다.아침 7시30분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에 나선 3백50여기의 일본전폭기들은 불심을 자랑하던 미전함 애리조나등 미태평양함대 군함 수십척을 격침하고 2천4백명의 사망자를 포함,수천명의 군인·민간인들을 살상했다. 이른바 「진주만기습」인 것이다.세계사에 있어 그것은 태평양전쟁의 개전이다.일제에 있어 그것은 제국의 팽창을 견제하고 봉쇄하던 미국을 극복하기위한 「성전」의 개시를 의미했으며 미국에 있어 그것은 불의에 당한 오욕의 패배였다.우리와 아시아이웃에 있어 그것은 보다 심각한 수난의 시작을 알리는 비극의 신호였다.무수한 인명과 재산을 앗아가고 참기 어려운 고통과 희생을 강요했던 5년간의 이 전쟁은 일제의 패망으로 끝이 났다.그리고 개전 50주년이요,종전 46주년인 것이다. 당연히 회고와 반성이 있어야할 날인 것이다.그것은 지난날의 과오와 불행을 되풀이하지 않기위해 필요한 것이다.새로운 비극의 예방을 위해서도 필요불가결하다.전쟁의 당사자인 미국·일본의 경우는 말할것도 없고 그 희생자인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반성하고 자중해야할 나라는 개전의 장본인인 일본이다.미·구의 봉쇄에 대항하기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는가 하는것이 그동안 일본의 은연중의 변명이었다.일본은 한번도 개전의 과오를 정말로 인정하고 반성하거나 사죄한 일이 없다.입으로만 하고 지나가는 형식적인 사과와 반성은 몇차례 있었으나 그것도 마지못해 하는 인색하기 짝이 없는것이었다.진주만기습50주년을 계기로한 일본의회의 사과와 반성의 「비전결의 무산」소동은 오늘의 일본 심리상태를 그대로 말해주는 것이라 할수있다. 일본은 그동안 반성하고 사과하며 보상하려 노력하기보다는 변명하고 외면하며 회피하려고만 해왔다.그러고는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의 논리로 적반하장의 역습만 일삼아왔다.일제만행을 외면하는 역사교육이 그것을 말한다.그동안의 일본에서는 개전의 날을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사람이나 행사는 거의 없었다.오직 8·15종전의 날만 와신상담의 계기로 기억되어왔다.히로시마(광도)나가사키(장기)에 대한 미국의 「무자비한」원폭피해만 강조하고 선전해왔다.개전은 불가피한 것이었고 원폭이 죄악이라는 것이 많은 일본사람들의 논리다.사죄는 미국이 하라는 것이다. 선전포고 없는 기습의 진주만공격은 전쟁이었지만 야비한 비도덕의 상징이다.그것을 옹호하고 변명하는 심리도 불도덕인 것이다.그 부도덕을 오늘의 일본사람들은 예사롭게 생각하게 된것이 아닌가.승패의 역전을 논하는 성급한 사람도 있다.일제가 가졌던 자만이요,오만의 부활인 것이다.패전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어있다가 「다행스런 점령자」미국의 비호와 도움속에 거부가 되면서 다시 살아나고있는 것은 아닌가.「미국에 대해선 경멸밖에 할말이 없다」는 말도 거침없이 하게된 오늘의 일본인이다.패전당시의 겸손과 자중은 찾아볼수 없게 되었다.경제뿐아니라 정치 군사대국화의 21세기를 거침없이 지향하고있다. 사정이 이렇고서는 또 한차례의 「진주만」이걱정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일본은 진주만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될것이다.
  • “전승국 미에 사죄할 필요 있나”/일 의회 「부전결의」 논란

    ◎매파의원,“원폭부터 사과 받아라”/누적된 대미 불만 표출… 마찰 우려 진주만기습(12월7일) 50주년을 맞는 일본에는 「2중적」흐름이 있다.일부에서는 일본의 진주만기습에 대해 미국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강변한다. 일본 여야는 진주만기습 50주년을 기해 진주만공격에 의한 전쟁도발 반성,미국및 아시아등의 피해에 대한 사죄,향후 국제평화에의 공헌등을 내용으로 하는 「부전결의」를 채택할 예정이었다. 부전결의는 당초 사회당·공명당등 야당에 의해 제의되었다.집권 자민당도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의 심의를 촉진하는 차원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그러나 당내 일부에서 이에 강력히 반발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불전결의의 채택이 사실상 어렵게 됐다. 일부 의원들은 『일본이 일방적으로 사죄하는 내용은 필요치않다』고 주장한다.특히 일본의 보수지식인을 대변하고 있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의 저자 이시하라 신타로(석원신태낭)의원(자민당)은 『왜 패자가 승자에게사죄해야 하는가』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2차대전은 식민주의의 충돌이었다』고 전제하고 『전후 독립한 아시아 민족에게는 일본이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지만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등에는 사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자민당 지도부내에도 전후 45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러한 「부전결의」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회의적 분위기가 지배적이다.「평화헌법」이 정착된 현상황에서 국회가 다시 부전결의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일본내의 이같은 분위기는 와타나베외상이 워싱턴 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진주만공격을 사죄하고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것에 대해 사죄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힌데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일본노조연합체(연합)의 야마기시 아키라(산안장)회장은 5일 『일본이 미국을 기습공격한 것은 반성해야겠지만 미국의 원폭으로 무고한 주민이 30만명이나 죽었기 때문에 미국도 원자탄 투하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미국에 대한불만의 표시로 경제문제를 둘러싸고 증폭되고 있는 양국간의 마찰을 더욱 심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 “정신대 연행은 군서 명령한것”/징집책임자 요시다

    【도쿄=이창순특파원】 일본의 한국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에 대해 수년간 사죄활동을 펴고 있는 당시 연행책임자중의 한명인 요시다(길전)씨는 한국인 종군위안부 강제연행은 군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산구현 노무보국회동원부장을 맡고 있었던 요시다씨는 1942년 부터 45년까지 3년간 군의 명령에 따라 1천여명의 젊은 한국인 여성과 5천여명의 남성들을 강제연행했다고 밝히며 종군위안부연행은 민간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며 관의 개입을 부정하고 있는 일본정부의 태도에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일본 육군서부군사령부등으로부터 「황군위문 조선인 여자정신대 동원에 관한 건」이라는 명령서가 산구현 노무보국회회장앞으로 전달됐었다고 밝혔다.
  • 외언내언

    일본 아사히(조일)신문이 크게 망신당한 사진조작 보도사건이 있다.조작임이 탄로되어 기자 본인은 물론 사진부장·편집국장이 경질되고 마침내 사장까지 인책사임한다.89년에 있었던 일이다.◆아사히 신문은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를 고발하는 사진 시리즈를 실었다.문제가 된 사진은 오키나와(충승)현 이리오모테(서표)도 앞바다 속의 산호초.누군가가 「KY」라고 크게 새겨놓은 사진이었다.『산호초를 망가뜨린 KY는 누구인가』가 그 사진의 제목.그런데 「KY」는 바로 사진기자 자신이었다.「사죄광고」를 두번이나 내게 했던 사건.권위지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 사건이었다.◆이런 일은 어느 나라 언론매체고 간에 가끔씩 일어나는 일.지나친 경쟁의식과 취재기자의 그릇된 특종의식이나 영웅심 같은 것이 작용하면서이다.자기의 의도에 맞추려는 과잉의욕 탓이기도 하고.지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웅진여성」지의 「에이즈 복수극」기사의 진상은 무엇일까.「섹스 보복」을 하다 자살했다는 김모양의 일기내용은 과연 진짜일까.기자의 작위가 개재된 것일까.아니면 기자까지도 속은 「장난질」인 것일까.◆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그 분풀이로 무차별 성행위를 한다는 루머는 진작부터 나돌았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있어오는 일.우리 작가의 작품속에도 나타난다.그 유형도 갖가지.어떤 상대방을 의식하는 악의에 찬 것들도 적지 않다.가령 『에이즈에 걸린 한 일본 의사가 한국에 와서 강남 룸살롱 마담들을 모조리 상대했다더라』따위.강북쪽 술장수의 흑색선전일 수 있다.◆20세기가 저물면서 지구촌을 심각하게 하고 있는 에이즈.이런 기사가 경종이 되는 측면도 있다 하겠으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이 예민한 문제를 흥미의 대상으로 삼아 불안감·공포감을 흩뿌리는 태도를 옳다할 수 있을 것인지.우선 기사의 진상부터 밝혀져야 겠다.
  • 5세 여아 성폭행뒤 살해/40대에 사형구형

    【수원=조덕현기자】수원지검 형사3부 박충근검사는 3일 5살난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한뒤 목졸라 살해한 손학식 피고인(44·노동·용인군 용인읍 고림리 747의1)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살인 및 미성년자 의제 강간치사죄를 적용,사형을 구형했다. 수원지검 형사합의2부(재판장 유정주부장판사)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에서 박검사는 논고를 통해 『한순간의 성적 쾌락을 위해 5살난 여자 어린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행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며 『이는 피해자 개인에 대한 범죄라기 보다는 우리사회 전체에 대한 범죄로 이해돼야하며 피고인을 사회로 부터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일,「불전결의안」추진/중의원/2차 대전 사죄·평화지향 내용

    【도쿄연합】일본 중의원은 오는 8일 진주만 공격 50주년을 맞아 「불전」을 맹세하는 결의를 채택할 방침이라고 일 교도(공동)통신이 30일 보도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의원들은 결의에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교전국과 인근 아시아국가들에 참화를 가져다준데 대해 반성하고 전쟁책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헌법전문을 인용,일본의 국제적 공헌과 책임을 주창한다. 현재 여야의원들은 운영위원회에서 「불전결의」문안을 둘러싸고 최종적으로 조정을 벌이고 있는데 문안은 ▲전쟁에 대한 반성과 사죄 ▲전후 복구협력과 감사 ▲앞으로 국제적 공헌과 책임등 3개항목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결의에서는 우선 「개전 50주년을 계기로 인근 아시아국가들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에 심대한 괴로움을 준데 대해 반성한다」며 전쟁 책임을 인정하고 「전후 황폐화에서 경제대국으로 발전하게 된 것은 다름아닌 미국을 비롯,각국으로부터 물심양면의 협력 덕분」이라며 감사의 의향을 표명한다. 또 앞으로 일본의 입장에 관해서는 헌법의 전문대로 「평화국가」를 견지할 것임을 강조하는 한편 세계평화와 번영에 공헌한다는 결의를 천명할 것이라고 교도통신은 설명했다.
  • 종군 위안부 3명/대일 피해보상소/유족 회원 32명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회장 김종대)는 29일 국내에 생존해 있는 종군위안부 3명이 군인,군속생존자,전상자등 유족회회원 32명과 함께 일본정부를 상대로 공식사죄와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다음달 6일 도쿄지방재판소에 정식으로 제기한다고 밝혔다. 한국인 종군위안부가 피해보상과 관련,일본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부터 대일보상청구소송을 준비해온 유족회가입회원(1만5천여명)들을 대표한 이번 소송의 피해보상청구액은 한사람앞에 2천만엔(한화 1억1천5백만원상당)씩 총 7억엔에 달한다.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은 김순자씨(68·전남거주),김학순씨(67·서울종로구 충신동),김택씨(69·부산거주)로 이들 가운데 지난 8월14일 자신의 과거를 공개적으로 밝힌 김학순씨의 경우 일본으로 건너가 직접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다.
  • 한인 정신대 일본군 관리/미군 보고서 첫 발견

    ◎미 스탠포드대서 【도쿄 연합】 2차대전중 한반도에서 강제연행 됐었던 여자 정신대(종군창안부)는 일본군의 관할하에 있었다는 미군 보고서가 미스탠퍼드대에서 발견됐다. 일 오사카(대판)시 매일 방송은 최근 이를 확인하고 『여자 정신대에 대해 일본군이 직접 관여한 사실을 증명하는 공문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민간업자가 했던 일』이라며 관여사실을 완강히 부인해왔으나 이같은 결정적인 증거로 인해 사죄와 보상이 불가피하게 됐다. 공문서는 전쟁직후 오키나와(충승)에 주둔했던 미군이 작성한 1945년10월과 11월의 보고서로서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제임스 왓킨스 씨가 수집한 오키나와관계 서류중에 포함되어 있었다. 10월 보고서는 『일본군이 오키나와에 버려둔 한인 위안부가 치안상의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언급하고 『오키나와 본토에서 집합한 40명과 다른 유구열도에서 온 1백10명의 한인 위안부가 귀국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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